대학가 2014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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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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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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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인생 그래프_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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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독자다_ 대전중부 지방회 독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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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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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 꿈_ 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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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책_ 정서련, 신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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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미즘_ 이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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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_ 노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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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축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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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만나 #1_ 김지윤 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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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사진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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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는 사랑을 싣고_ 편집부

온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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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39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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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 년_ 박정혜, 심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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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연구소 ①_ 캠퍼스사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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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연구소 ②_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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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연구소 ③_ 일상생활사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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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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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라 IVF_ 이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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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IVF_ 황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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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수필 공모전_ 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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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만나 #2_ 김병년 목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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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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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살아 있네 1_ 백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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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살아 있네 2_ 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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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살아 있네 3_ 김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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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_ 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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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그니까_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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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만나 #3_ 신웅섭 간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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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축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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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수필 공모전_ 남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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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ake 대학가_ 김아롬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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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_ 안혜진

온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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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로 캠퍼스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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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인생 그래프

정리_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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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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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학생들과 함께 첫 발을 내딛다 <대학가>는 한국기독학생회(IVF)가 1980년 8월 15일부터 대학 사회의 학원선교를 돕기 위한 필요 에 따라 발간하기 시작한 정기간행물로 시작되었 다. 그 당시만 해도 IVF는 수도권 중심의 학교들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수련회 후기, 간증, 수련회 참석 지부와 인원 등을 직접 손으로 쓴 후 16페이지로 나누어 복사한 풋풋함이 담겨 있다.

줄을

따라 가시 오

1986~ 300원짜리 <대학가>? 86년 14호부터 한 부에 300원씩 받고 IVF 회원 들에게 배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왜 무료로 배 부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대학가>를 더욱 값 있게 만들고 학생들에게 의미 있게 읽히며 <대학 가>가 장수해로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그 당 시 선배들은 커피 반잔 값 정도 하던 300원을 기꺼 이 투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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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1987~ 전국 IVFer를 위한 발돋움 IVF 운동의 질적, 수적 증가와 더불어 서울, 강 원 지방 분리와 울산, 대구, 부산의 잇따른 개척 으로 인해 명실공히 전국의 IVF 운동을 돕는 목 적으로 꾸며졌다. 또한 발행과 중단을 거듭했던 것을 바로 잡아 정기적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1989~ 전설의 비주얼 大學街 지하철 공짜 신문만한 사이즈로 UP~! <대학가>의 이름을 한자로 쓰던 마지막 판형인 만큼 대문짝만하게 찍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IVF 운동과 지방회, 지부별 소식을 다양하게 실었 고 한 지면에 각 지방회를 소개하기도 했다.

1992~ 리뉴얼 <대학가> 80년대에 <대학가>가 IVF가 복음의 총체성을 인식하 고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었던 특징을 다루었던 반면 90 년대에 들어서는 문화와 캠퍼스 생활을 명세하게 다루었 다. 중철을 시작했고 판형과 디자인도 콤팩트해져, 현재 <대학가>의 전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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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세계관 운동의 르 네 상 스 강영안, 성인경, 홍병룡, 신국원, 지성근, 최규창 등 지금 들어도 후덜덜한 특급 필자들이 참여한 <대학가>. 이러한 학구열이 90년대 말까지 이 어졌다. 머리 아픈 얘기들로 가득할 것 같지만, 지성사회 복음화를 주장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지금 봐도 소장하 고픈 유익한 자료들이 쏟아졌던 시기였다.

2010~ 이음 나는요 보드게임이나 미니 <대학가>, 거꾸로 보 는 <대학가>를 만들어 캠퍼스 사역에 도움이 되는 시도를 하였다. 디자인과 판형이 가장 다양했던 시 기인 만큼 다루던 내용에서도 많은 고민이 녹아 있 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를 고려해, 전국의 지방 회를 투어하면서 각 지방회의 IVF 운동을 소개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표지 작업과 필자 로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학생 자발성을 높였다.

2008~ 가르침에서 소통으로 사회, 캠퍼스에서 개인에 좀 더 집중하여 진 로, 시간, 시험, 성 등 캠퍼스 생활에서 누구 나 고민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들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루었다. <대학 가>가 관계에 관심을 갖고 학생들과 소통하 기 시작했다. 8


1998~ 더욱 풍성해진 <대학가>

대학가

꽤 오랫동안 이어지던 학술지 같은 성격을 내려놓고 다양화를 시도하 였다. 독자엽서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였고, 학생들의 코 너를 만들어 학생들이 소설, 수필, 만화 등을 실을 수 있도록 하였다. 판 형이 바뀌었고 컬러 지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0~ <대학가>의 모든 것 <대학가>가 창간 20년 만에 100 호 생일을 맞았다. <대학가> 100 호 축하 메시지와 글짓기 공모뿐 아니라 점점 발전해 가는 미디어 매체와 통일 문제를 100호가 고심 한 주제로 담았다.

2014~ <대학가> 감성을 품다 감각적인 디자인과 감성적 언어로 소통하는 <대학가> D. 그 변화를 기대하시라.

2006~ 둘러보다 ‘지성사회 복음화’를 외치던 IVF의 비전이 바뀌었다. 대학 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가> 또한 온라인 게임, 성(性), 소비, 시간 등에 관한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 고 달라진 문화를 집중 조명했다.

2002~ 학생 기자 납시오 미디어 매체의 발달과 함께 문화는 더욱 다양해졌고 <대 학가> 또한 다루는 범위가 넓어졌다. 영화, 통일, 관계 등 으로 눈 돌릴 곳이 많아지던 이때, 학생 기자 1기가 세워졌 고 학생들의 꾸준한 참여가 시작됐다. 9


나는 애독자다

<대학가>야, 그동안 미안했어

진행_고성지 / 참가자_배인혜, 성지현, 최재혁

IVF <대학가>는 간사님들과 IVFer들의 수고와 헌 신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 던 대전중부 지방회 독자 인터뷰. 그동안 <대학가> 를 큐티 책과 함께하는 종이 책이라 여겼던 모습에, <대학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학가>의 존재를 인식하고 속에 담긴 알-찬 내용을 서로 읽고 나누기 위해 노력하자며 결의했던 독자 인터뷰의 현 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대학가> 독자 인터뷰에 어떻게 왔나요? 지현: 지부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인혜: 대표 형제의 연락을 통해 하겠다고 했는데, 예술 전공자들에 대한 인터뷰인 줄 알았다가 이 후에 <대학가> 인터뷰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재혁: 제가 쉬운 사람이 됐네요(웃음). 대표 자매가 지부 단체 카톡방에 관심자를 물어봤는데, 아 무도 안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제가 하겠다고 말해서 오게 됐어요.

<대학가>를 언제 접했나요? 인혜: <대학가>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다가 IVF에 적응할 때부터 <대학가>를 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대학가>를 QT책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함께 주는 인쇄물 정도라 생각했고, 대중적인 대학생 잡지를 IVF가 사서 구독하는 것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대학가>가 IVF에서 만드는 출판 물이라는 것을 알고서 놀랐어요. 재혁: 작년에도 <대학가>를 접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IVF 출판물인지 몰랐고 지방회 소식지와 <대학가>를 혼동하기도 했었어요. 나중에 지부 지체를 통해 IVF에서 <대학가>를 만드는 것을 알 게 됐어요. 지현: 2010년 3월에 교회언니의 소개로 IVF에 왔는데, 그 언니가 <대학가>에 대해 알려 주면서 IVF에 들어가서 받으면 꼭 자기에게 보여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일찍이 <대학가>를 알고 있었는 데, 그 당시 <대학가>에 보드게임 ‘나는요’가 있어서 처음에는 홍보물이라고 생각했었다가 이후 에 나온 <대학가>를 보고 잡지 형식의 출판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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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의미 있었던 <대학가> 주제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지현: 대전중부 지방회가 나왔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 취재하러 오신 간사님들께서 저희 공동체 하우스에서 머무르시기도 하고 얘기도 많이 나눴는데, 그 후로 IVF 중앙회 와 가까워진 기분이었어요. 재혁: 최근 3,4월 <대학가>에서 지부 공동체 하우스 에피소드 이벤트가 있었는데 당첨 되었어요. 제 글이 <대학가>에 나와서 신기했어요. 그때 받은 선물도 잘 쓰고 있어요(웃 음). 인혜: 다른 지방회의 조금씩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보면서 재밌었고, IVF 학사님들의 삶 도 보면서 운동성이 이어지는 모습에 든든하고 좋았어요. 그리고 저는 예전에 한 번 <대 학가> 표지를 작업했어요. 열심히 만든 후 출판된 <대학가>를 기대하면서 펼쳐 봤는데 그때 제 이름이 오타가 났던….(웃음)

<대학가>가 지부에서 많이 읽히는 편인가요? 인혜: 동방이 커피동방이라서 <대학가>를 비치했는데, 대부분 IVF의 출판물이 아닌 평 범한 잡지 정도로 생각해서 소홀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아직 <대학가>의 정체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재혁: 지부 인원에 비해 <대학가> 개수가 적어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고, 동방에 <대학가>를 두지만 눈에 띄지 않아서 다소 읽히지 않아요.

<대학가>가 지부 사역에 영향을 주고 있나요? 지현: <대학가>가 지부 사역에 크게 도움을 준다고 느껴요. 지 난 챕터 때도 리더들이 신입생을 주제로 다룬 <대학가>를 읽어 와서 읽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신입생 홍보 사역에 참고하기도 했었어요. 앞으로도 <대학가>가 지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 것 이라고 생각해요. 일반 잡지에서는 걸러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대학가>는 그리스도인이자 IVFer로서 공감되고 공급 받는 내용이 더 다양하고 유익하기에 필요성을 절감해요. 재혁: <대학가>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많은데, 지부 사역에 영 향을 주려면 결국 우리가 <대학가>를 읽느냐 안 읽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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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 관심을 가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재혁: 학생들이 바쁘고 급한 일에 집중되면서 <대학가>를 잘 읽지 않아요. 지현: 맞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짧고 재밌는 글에만 시간을 들이다 보니 <대학가>를 눈여겨보지 않고요. 성지간사: 괴리감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결과에 영향 받는 시대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요. 재혁: 잘 모르는 정보에 대해 활자나 사진 자체를 회피하기도 해요. 그래서 <대학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부 내 에서 PR을 해주는 것, <대학가>와 지부 내에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보는 것도 좋겠어요. 지현: 멤버가 고민하는 것이 생길 때 그 고민 주제에 맞는 <대학가>를 꺼내어 들며 “여기 <대학가>를 보면~”하는 방식 으로 자연스럽게 읽도록 독려해도 좋겠어요. <대학가>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낱말 퍼즐 맞추기 등의 이벤트를 여는 것도 괜찮겠고요. 인혜: <대학가>가 점점 디자인과 구성에 있어서 읽기에 좋고 관심이 가도록 발전해 간다고 느껴서 만족하고 있어요. 성지간사: <대학가>에 바라는 것이 있기보다는 <대학가>를 읽지 않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읽으라고 권면한다 해도 본인이 읽으려는 의지가 필요하겠죠. 중요한 건 스스로가 꾸준히 <대학가>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으로 소통하려 노력하고 화두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학가>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문서 운동의 일환으로써 중요하기도 하고, <대학가>를 통해 변화되고 도전받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죠. (모두 공감하며) 인혜:(<대학가> 간사님들께) 앞으로도 이대로 해 주시고, 힘내세요! 계속 응원할게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성지간사: 이번 학기에 <대학가> 애독자 모임을 기획 중이었는데, 이렇게 모 여서 <대학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재밌고 의미 있었어요. 재혁: 이 시간을 통해 <대학가>를 더 알게 되었어요. <대학가>를 소그룹에 활 용하는 것도 재밌겠구요. 지현: 고독한 기분으로 <대학가>를 읽다가 이렇게 <대학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인혜: <대학가>의 소중함을 알았고, 그동안 <대학가>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 에 반성해요. 앞으로 <대학가>를 많이 홍보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됐 어요.

<대학가>는 OOO이다 지현: 맞춤식 풀코스 요리! 인혜: 숨겨진 보물! 재혁: 생활 정보(생생정보통)!

고성지 공주대 담당 간사, 편집위원 배인혜 목원대 만화애니메이션학 10 성지현 충북대 지구환경과학 10 최재혁 홍익대 세종캠퍼스 광고홍보학부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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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온 진리

온 대학가 진리

우리는 복음이 온 창조 세계를 회복하고 완성하는 기쁜 소식임을 믿고 전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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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 꿈

그림_오지현

IVF 비전 선언문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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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현 조선대 애니메이션학부 10


나의 사랑하는 책

글_ 정서련, 신중민 온 진리

나의 사랑하는 책

IVFer에게도 성경은 어렵다. PBS라도 하는 날이면 멤버 수가 절반으로 줄고 남은 멤버들의 얼굴색이 변해가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한 번 빠져들면 끝까지 하게 되고 결국에 는 은혜롭다고 고백하게 하는 PBS의 반전 매력은 IVFer라 면 몸소 경험했을 터. 온 진리 섹션에서는 지방회의 성경 관 련 모임을 통해 성경을 사랑하게 된 학생들의 달콤 살벌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제 그 참을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져 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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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대전중부 지방회에서는 매년 여름 수련회 후, 3박 4일 동안 에스라 성서학당이 열린다. 물론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신청에 의해서다. 성서학당 신청은 여름 수련회 1차 등록과 함 께 시작된다. 허나 수련회 마지막 날이면 은혜 받은 멤버님들은 간사님과 리더 방 앞에서 애걸복걸하며 마감된 에스라 성서학당에 등록하려 애쓴다. 에스라 성서학당은 성경 일독학교, 성경의 맥, PBS 세 트랙으로 진행된다. IVF 1년차 시 절, 첫 번째 트랙인 성경 일독학교에 참여했다. 중간에 성경개론 강의를 제외하곤 먹고 자고 성경 읽고를 반복한다. 혼자서 읽거나 조별로 돌아가며 읽기도 하고 음성 파일을 들 으며 눈으로 따라 읽는 등 여러 방식으로 성경을 읽어 나간다. 여기저기서 정말 성경만 읽는다는 볼멘소리도 내뿜지만 3박 4일이 끝난 후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성경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설교나 QT 본문을 통해서 부분적으로만 접 했던 성경에는 다양한 삶이 담겨 있어서 성경 속 인물과 금세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며 읽을 순 없었지만 성경 읽기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나 멀리 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두 번째 트랙, 성경의 맥에서 학생들은 모세오경, 역사서와 선지서, 복음서, 서신서의 맥 잡기 강의를 듣는다. 성경의 맥 잡기를 통해 성경이 하나의 큰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 인식 속에서 각 권의 전반적인 내용들, 역사적 흐름과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 을 가진다. 성경의 흐름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예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이 세상 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절로 든다. 지칠 법도 하지만 성경의 맥 강의 실에서는 열심히 쓰고 듣고 보면서 배운 것을 소화하려는 학생들의 열정이 밤늦도록 이 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날 성경고사를 치른 후 수료한다. 마지막 세 번째 트랙은 에스라 성서학당의 꽃인 PBS다. 설화체, 강화체 PBS 강의를 들 은 후 PBS를 해 보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그 후, 학생들은 각자 설교안을 작성하고 마지막 날 아침이 밝으면 설교대회를 하고 수료한다. 에스라 성서학당 PBS의 묘미는 학생들이 주의 말씀을 깊게 연구하고 묵상하고, 공동체를 향한 적용 점을 찾아 공 동체에 그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이다. 멋있는 일이다! 어렵게 생각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부름 받은 사역자의 권한이라고 여겼던 설교를 하는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다. 에스라 성서학당에 참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공동체에, 이 세상에 가까이 있 는 말씀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삶의 중심을 말씀에 두고 다시 세상에 나아간다. 이상 대전 중부 지방회는 디모데후서 2장 15절 말씀을 토대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 하는 훈련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음을 자랑하는 바이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 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정서련 청주교대 실과교육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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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진리

PBS, ‘피보세?’ 아니죠! ‘파보세!’ 맞습니다!!

환 간사님(동의대 담당)을 초청하여 새로운 PBS-김유복 목사님 이 제시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IVF 말씀 운동의 꽃이라 불리는 귀납적 개인 성경연구방법(PBS) 의 애칭들(?) 중 학생들에게 가장 와 닿는 애칭은 ‘피보세’가 아닐

새로운 PBS의 방식은 관찰-해석-적용의 뚜렷한 구분이 없고 나

까 한다. 피를 볼 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핵심메시지

눠진 본문 구조를 면밀히 살핀 후, 작은 소제목들을 나누고 문단

를 뽑아내고 적용할 점을 찾아내는 PBS는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별로 묵상 내용과 적용할 점들을 뽑아낸다. 마지막 핵심메시지는

아니다. 나 또한 PBS를 한 번 하고 나면 힘이 다 빠지고 늙어버리

전체 요약과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기존 방식의 구문 분석이나 질

는 자신을 확인한다. 그러나 성령님께 말씀을 보는 눈을 열어 주

문 해결 과정 등의 절차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본문 구조 안에서

시고 참된 진리를 찾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구절구절을 유심히

내용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데 주안점을 둔다.

살피며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핵심메시지를 발견하는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PBS는 ‘파보세’라는 애

이날 동방에서는 1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간사님의 강의를 경청

칭이 더 어울린다.

했다. PBS 실습 시간에는 자신이 나눈 본문 구조 속에서 하나님 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여유를 가지고 보였다. 배경지식이 필요할

부산대 IVF는 말씀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방학과 학기 중에도

때는 배경주석을 살피고 주제를 뽑고 적용 점을 뽑는 가운데 진리

PBS 모임을 가진다. 학기마다 조금씩 달라지기는 해도, 리더만큼

를 확인하며 ‘피보세’가 아닌 ‘파보세’의 열정을 보여 주었다. 이날

은 PBS 운동에 참여하길 권유받는 편이며, 리더 모임 때 반드시

의 강의를 통해 PBS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PBS를 해오는 학기도 있었다. 멤버들 또한 자발적으로 PBS 모임

까지는 소수의 학생들만 함께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말씀 연구

에 오는 추세다. 이번 학기는 매주 금요일마다 야고보서의 본문으

를 위해 시간을 들일 여유가 없는 모습을 볼 때 씁쓸하다. 그럼에

로 PBS를 진행하고 있다.

도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말씀을 지키고 연구하려는 소수의 사람 들을 통해 부산대 IVF의 PBS 운동을 이어가신다.

부산 지방회는 지난 여름방학 말씀 훈련부터 김유복 목사님이 제 시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PBS 방식을 도입하여 PBS 훈련 입문 반

새로운 방식이든 기존의 방식이든 말씀 연구를 통해 풍성하신 하

에서 가르친다. 부산대 IVF 또한 PBS를 향한 멤버들의 진입장벽

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더 많은 부산대 지체들이 이 운동

을 조금이라도 낮추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 3월 21일에 손기

에 참여하여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신중민 부산대 언어정보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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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이강일

보그미즘

또 하나의 이름

‘복음주의’

‘복음주의’, 이거 알다가도 모를 말이다. 그냥 기독교라고 하면 될 것을 공연히 믿음을 어렵게 설명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같은 사람이라도 ‘잘난 사람’, ‘못된 사람’이라는 명칭을 붙여야 할 때가 있듯이, 기독교도 다르 게 불러 줘야 할 때가 있다. 그때란 ‘신앙의 정체 성에 위기가 닥쳤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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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진리

기독교에 복음주의라는 말이 붙여진 것은 중세 가톨릭교회가 복음의 본질에서 이탈했다고 믿던 종교개혁자 그룹을 향해서이다. 교회 전통과 복음의 메시지, 둘 다 높이는 가톨릭은 중 세 서유럽에서 천년 동안 지속되던 기독교 전통이었다. 이들 앞에서 성경의 복음만 중요하다 고 외치는 이들을 두고, ‘복음만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복음주의자라는 별칭이 생겨났 다. 이들은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지 않고 헬라어 원문 성경을 연구하면서 복음의 메시 지가 가톨릭교회 전통에 의해서 왜곡되어 온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복음 중심의 신앙 운 동을 외치다가 가톨릭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결국 복음주의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으면서 가톨릭과 구별되는 개신교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갔다. 짐작했겠지만 복음주의는 ‘복음 메시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믿고, 그것을 드러내려는 거 의 모든 신앙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와 큰 갈등을 빚으며 독립한 복음주의자들 은 그 후로도 복음의 메시지가 희석되거나 교회가 침체될 때, 혹은 개인적인 신앙이 의심될 때마다 복음중심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한번 가톨릭에서 빠져나왔다고 복음주의 정신이 자 동으로 유지될 리는 없을 터. 가톨릭에 독립한 루터교 전통이 그 뜨거운 신앙을 잃어버리자 경건주의 운동이 소그룹 성경 공부, 봉사, 선교 활동을 하면서 복음주의 정신을 재현했다. 한편 가톨릭에서 정치적으로 분립한 영국 국교회에서, 청교도는 국교회가 철저한 종교개혁 을 하지 않고 가톨릭의 예전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항의하면서 또 다른 형태의 복음주의 정신 을 보여 주었다. 세월이 흘러 국교회 신도로 신앙 운동에 열심이던 요한 웨슬리는 독일 경건 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고 자기 나름대로 대각성 운동을 시작하여, 영국 사회에 복음주의적 활력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복음주의가 역사적으로 어떤 운동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복음주의는 위에서 보듯이 특 정 교파의 전유물로 계승된 것이 아니다. 어느 교파가 자리를 잡으면서 복음을 제대로 설명 하지 못하고, 복음의 메시지를 훼손하면 곧장 복음 중심의 신앙을 말과 삶으로 실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이 바로 복음주의자이며 그들이 펼치는 운동을 초교 파적인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복음 운동’이라고 하지 않고 복음‘주의’운동이라고 하는 걸까? 무슨 무슨 주의가 왠지 어렵고 불편하다고들 하던데, 마음 쓰지 마시라. ‘주의’라는 말은 ‘이념 체계’라는 학술 적 접미어로 흔히 쓰이지만, 복음주의의 ‘주의’는 복음적 운동을 한마디로 명사화하면서 사용 한 접미어 ‘-ism’을 번역한 명사형 접미어인 셈이다. 그래서 벌어진 불상사(?)인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복음 운동이 복음 ‘주의’로 갑자기 격상(?)되면서 어떤 정교한 이론 체계나 주장 이 있을 것을 예상하였지만, 실제로 그렇게 복잡하고 거대한 이념을 복음주의가 담고 있지도 않다. 기독교가 본래 정신을 벗어난다고 느낄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난 초교파적 신앙 운동의 특징을 의미할 뿐이다. 어쨌든 이미 굳어진 말인 것을 어쩌겠나. 앞으로 ‘복음주의’라는 말이 어디서 들려오거든 ‘아하! 복음 운동’이라고 되뇌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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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신교파에 있는 복음적 신앙인들의 행동을 복음주의라고 부르다보니, 이 복음주의의 특징을 단 몇 마디 로 줄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데이빗 베빙턴(David Bebbington)이라는 영국의 기독교 역사학자가 복음주의를 ‘회심주의’(Conversionism), ‘행동주의’(Activism), ‘성경주의’(Biblicism) 그 리고 ‘십자가중심주의’(Crucicentrism)로 분류하였다. 이 네 가지 특징이 복음주의자로 변화된 사람에게서 어떻 게 작동하는지 예를 들어 보겠다. 일단 성경이 가톨릭교회 전통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성경주의) 그 본문이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악이 대신 해결되고 용서받게 되었음 을 믿는다.(십자가중심주의), 이로써 마음에 뚜렷한 변화를 경험한다.(회심주의), 이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그 복 음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 모든 행동이 적극적이 된다.(행동주의) 어떤가. 네 가지 특징이 변화의 과정에 고스란 히 담겨 있지 않은가? 이런 특징이 가장 역사적으로 표현된 것은 바로 18, 19세기의 영국과 미국에서 있었던 영적 대각성과 부흥 운동 이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미국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앞장을 섰고 19세기에는 찰스 피니가 대표적이었다. 열정적인 복음주의 설교자들을 통해 침체를 거듭하던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생 하게 선포되고 청중들의 마음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는 복음주의적인 자선 단체, 선교 단체를 통한 사회 개혁과 해외 선교로 이어졌다. 실제로 산업 혁명의 부작용으로 대도시 안에서 생겨난 온갖 사회 문제 를 복음주의 자선 단체들이 도맡기 시작하였고, 윌버포스나 샤프츠베리 등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노예제도 를 철폐하고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일까지 나선 적도 있었다. 영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대학생들 은 대학생 선교 단체와 교단 선교부를 통해 해외 선교에 헌신하였다. 복음주의 운동은 누가 앞장서서 해온 것일까? 바로 복음주의 선교 단체들이다. 지역교회가 직접 할 수 없었던 선교 운동을 교회의 후원 속에 대신 감당해 왔다. 선교 단체는 한때 미션 소사이어티(Mission Society)로 불리기 도 했으나 대체로 패러쳐치(Para-church, 교회병행단체)라고 분류한다. 선교학자 랄프 윈터(Ralph D. Winter)에 따 르면, 패러쳐치의 형태는 성경에서부터 나타난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Local-church, 지역교회)로부터 파송을 받 은 선교단을 통해 지중해 연안 선교에 나섰다. 이때 바울이 이끌고 간 선교 팀은 오늘날 선교 단체 혹은 패러쳐 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복음주의 선교 단체 운동과 가장 비슷한 예는 18세기 웨슬리의 메소디스트 (Methodist) 운동이나 19세기 말 세계 선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SVM(Students Volunteer Movement, 대학생 선교자원운동)에서 볼 수 있다. 선교 단체는 활동 중에 기존 교단 선교부로 흡수되기도 하고 스스로 교단이 되기

도 했는데, IVF는 자율적인 선교 단체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회가 직접 감당하기 힘든 대학생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위와 같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역사는 1940년대 이후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재조명되었다. 한때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라고 부르던 이 운동은 20세기 전반기 동안 변화된 세상의 요구에 대응하기를 단념한 채 과거의 교리만을 붙들고 있던 근본주의적 기독교 시대를 극복하고, 한편으로는 복음의 핵심 교리를 세속 문화에 맞춰 재해석하면서 혼란에 빠져 버린 자유주의 기독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다.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은 19세기 이전까지 있었던 복음주의 운동의 역동성을 되살리고 기독교적 학문 증진과 사 회 참여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이 더 활발해질수록 과거 기독교회사를 복 음주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일도 많아졌다. 자신의 기독교 전통을 복음주의에서 찾는 이들도 늘어나면서 복음주 의 역사과 개념은 더욱 풍성해졌다. 이런 과정 때문에 복음주의는 더 알쏭달쏭해졌는지도 모른다. 너나없이 자 신들의 전통을 복음주의 운동으로 설명하는 것을 볼 때, 복음주의 운동은 기독교회사에서 무시 못할 분명한 흐 름으로 존재해 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 20여년의 결실은 1974년 ‘로잔 언약’으로 나타났다. 근본주의 기독교가 복음주의를 독점하던 시절, ‘복음 전도만이 기독교인의 유일한 의무’인 것처럼 여겨오던 통념을 깨고 ‘복음 전도와 사회 참 24


온 진리

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중요한 합의가 성사되었다. 이 합의에 이르기까 지 1950년대부터 빌리 그래함의 복음 전도 활동을 중심으로 복음주의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전파되기 시 작했고, 70년대 이후부터 몰라보게 성장한 복음주의 교회는 세계 선교와 사회 참여 운동에 능동적으로 참 여할 의지를 다져 왔던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복음주의 운동은 19세기까지 이어졌던 복음주의 기독교 운 동의 전통을 현대 사회 요구에 걸맞게 되살린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70년대 빌리 그래함의 대규모 복음전도 집회를 통해 이 세계적인 복음주의 운동과 접촉하였 고, 80년대에는 한국 기독교 안에 하나님 나라 신학, 기독교 세계관 운동, 그리고 사회 참여 운동 등이 전 개되는 과정에서 ‘로잔 언약’을 만나면서부터 복음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기간을 통해 복음 이 개인 영혼을 회심시키는 데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오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미쳐야 한다는 총체적 복음주의 개념이 생겨났다.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의 이미지는 70년대 복음 전도 운 동으로 시작해서 80년대 기독교 세계관 운동, 사회 참여 운동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IVF도 ‘지성사회 복음화’라는 전통적 표어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는 ‘캠퍼스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운동’ 을 목표로 삼기에 이르렀다. 복음주의 운동은 이처럼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위기 때마다 청년의 열정처럼 되살아나 개인 구원과 사 회 개혁, 세계 선교의 원동력으로써 그 역할을 감당해 왔다. 짧은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독교의 또 하나 의 이름인 ‘복음주의’의 이미지가 좀 바뀌는지 모르겠다. 이제 묻고 싶다. IVF 운동은 복음주의 운동인가? 그대가 답해 보시라.

이강일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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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글_ 노종문

IVP의 역사와 문서 운동의 비전

IVP는 1930년대 영국에서 처음 생겨났다[처음으로 출간한 책은 T.C. Hammond의 In Understanding Be Men(1936)이라는 교리 책자이다]. 당시 영국의 IVF 간사들은 경건서적

일색의 기독교 출판 시장 속에 대학생들로 하여금 성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 러줄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로날드 인클리(Ronald Inchely)라는 한 학사를 불러 그 일을 맡겼다. 인클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련회를 다니며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 울인 것이다. 인클리는 학생들을 위한 출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 들 속에 미래의 IVP 저자가 될 뛰어난 은사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인클리의 사역을 통해 영국 IVP는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로이드 존스 같은 훌륭한 복음주의 저 자들을 길러냈다. 또한 인클리는 당시 주류였던 자유주의 신학의 대안이 되는 사상을 제시하는 출판사의 필요를 느끼고 IVP의 임프린트 틴데일(Tyndale)을 설립하여(1951) 중요한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저술을 출간하였다. 이렇게 IVP는 복음주의 학생 운동과 신학 운동을 위해 봉사하며 20세기 중 후반의 세계적인 복음주의 부흥을 위한 중요한 토대를 놓았다. 26


온 진리

한국 IVP의 태동이 시작된 것은 1974년이었다. IVF의 ’75 졸업생들이 졸업 직전에 만들어 놓은 “문서 운동 의 중요성”이라는 자료는 IVF가 어떻게 문서 운동을 펼쳐나갈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손으로 써서 등사를 한 이 문서에는 70년대 선배들의 숨결과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문서는, 복음 전도와 신앙 성숙 에서 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역설하고, 교회의 역사에서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역사의 물줄 기를 바꾼 사례들을 열거한 다음, 장차 IVF가 펼쳐나갈 문서 운동의 전략을 세 가지 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첫 단계는 저자 역자 양성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Literature Fellowship(LF)을 만들고 함께 모여서 글을 쓰 고 중요한 책자들을 번역한다. 두 번째 단계는 간사와 학생과 학사가 문서를 활용하는 단계이다. 제자훈련 수 련회(DTC)가 일방적인 강의만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문서 자료를 활용하여 연구 발표하고, 토론하고, 세 미나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세 번째 단계는 그렇게 내부에서 사용하던 자료를 책자 로 만들어 대내외로 홍보 판촉 하는 단계이다. 이것은 기독 지성이 IVF 공동체를 넘어 한국 교회와 사회를 위 해 기여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 준다. 결론 부분은 이렇다.

“위와 같은 실정에서 보면 한시 바삐 Literature Fellowship의 결성을 이룩하여 국내외 서적을 읽고 요약하 며 발표하는 일을 도맡아야겠다. 가능하면 번역과 글을 쓰는 일도 맡아야 할 것이다. … ’75가 시작한 이 일이 학사회의 Project로 채택되어야 하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75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세심한 관심과 동지 의식이 요청된다. 불과 1, 2 명이 동분서주하다가 그치게 되면 차라리 시도 안 한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여하 튼 문서 운동은 IVF movement의 기본적 요소로 굳어져야 하며 하루빨리 이런 근본적 문제를 파악하지 못 하는 무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제 가라(출4:12)” 하시는 그 음성을 우리 IVF가 모두 듣고 행하게 합소 서.” DTC 741227 이들 ’75 학사 그룹의 졸업 헌금이 기반이 되어 1978년에 한국 IVP가 설립되었다. 그후 IVP는 30여 년 동안 IVF의 문서 운동 팔로서, 또 출판 전문 기업으로서 단단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기독지성 양육”과 “문서 운동”이라는 IVF 고유의 비전과 정신이 IVP를 낳았음을 말해 준 다. 이 비전은 하나님이 우리의 선배들의 마음에 넣어주신 하나님의 비전이며, 선배들이 그 비전에 순종한 결 과로 오늘의 IVP가 존재한다. IVP의 문서 운동을 크게 몇 가지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한국 사회의 변동에 비추어 IVP의 성장을 해석한 글 로서, 신현기 “IVP의 역사와 문서 운동”(2005, 북뉴스 통권81호 참조)이 있다]. 첫 번째 단계는 IVP의 출범 단계로서

대학생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와 소책자, 그리고 “복음과 지성”을 출간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대략 1978년 부터 80년대 초반까지이다. 한국 IVP가 최초로 출간한 책은 성경공부 교재인 [원투원]과 [새로운 삶의 길] (1978.10.30)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복음과 지성”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며(1979~1984) “총체적 제자도” 라는 개념을 선도적으로 제시했고, 대학생들을 위한 읽을거리로서 소책자들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또한 포 괄적인 제자훈련 커리큘럼을 제시하려 한 야심찬 시도였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송인규, 1984)이 출간되었 다. 27


두 번째 단계는 IVP의 성장 단계로서 1980년대 후반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 IVP는 내부적으로는 전도 제자도 선교라는 IVF의 목적에 발맞추어 소책자와 성 경공부 교재들, 제자훈련 자료들을 차근차근 출간하며 복음주의 운동으로서의 IVF 운동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1988)가 대 표적인 예이다. 외부적으로는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중요한 책들을 내놓음으로써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과 관련하여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한가](송인규, 1984),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 사상](제임스 사이어, 1985), [그리스도인의 비전](브라이 언 월쉬와 리처드 미들톤, 1987) 등이 출간되었는데, 이런 책들은 기독 대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간주되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정점에 달해 있었고, 대학의 문화는 마르크스주의적인 학생 운동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 권 학생들의 사회과학 스터디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이 된 기독교 세계관 스터디는 기독인들의 사회 참여를 위한 기초 필수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의 또 한 가지 흐름은 “기독교적 ~관”이라는 프레임이 존재한 것이다(이런 흐름은 90년대까지 이어진 다). 기독교 세계관 스터디는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적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낳았고, IVP는 이에 부 응하여 [기독교와 현대 예술](한스 로크마커, 1987), [시간과 하나님 나라](윌리암 맥코넬, 1987), [데이트와 사랑 의 미학](조이스 허기트, 1987), [기독교 세계관과 정치](폴 마샬, 1989) 등의 주요 단행본과 다양한 소책자들을 출간하였다. 특히 소책자는 캔 커피 하나 값의 부담 없는 가격으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으면서도 그리스도 인의 삶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주므로 각광을 받았다. IVF가 60년대부터 꾸준히 강조했던 PBS(귀납적인 개인성경연구)는 IVP의 출간 목록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80년대 말부터 IVP는 귀납적인 방식의 성경공부를 돕는 “말씀과 삶 시리즈”(1987~)를 출간하여 성경공부 교재 출판사로 이름을 얻게 된다. 또한 [어떻게 예언서를 읽을 것인가](죠엘 그린, 1987),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크 리스토퍼 라이트, 1989) 등은 귀납적인 연구만으로 부족한 통찰을 제공해주는 복음주의적 성서학 자료로서 각 광을 받았다. 세 번째 단계는, 대략 1990년대에 해당하는데, 출판을 통한 복음주의 운동 지원 단계이다. 90년대 대학가에서 는 학생 운동의 열기가 잦아들고 문화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부상했다. 한국 교회는 성장 흐름이 정점에 달했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복음주의 운동이 여러 방면으로 펼쳐졌고, IVP는 그 러한 운동들을 출판을 통해 지원하였다. 90년대 초 IVF 운동과 한국 교회의 주된 관심 중 하나는 세계 선교였다. 이런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로잔 세계 복음화 운동의 역사](조종남, 1990), [땅끝까지 끝날까지](에이다 럼, 1990), [세계를 품을 그리스도인](송인규, 1992) 등 다양한 해외 선교 관련 도서들이 집중적으로 출간되었다. 또한 평신도 지도력과 일상생활의 영성의 중요성을 다루는 중요한 책들이 이 시기에 출간되었다. 성경 인물 느 헤미야의 리더십을 다룬 [탁월한 지도력](존 화이트, 1991), 캐나다 IVF의 간사 출신이며 평신도 신학 권위자인 폴 스티븐스의 저술 [평신도가 사라진 교회](1995), [현대인을 위한 생활 영성](1996)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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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진리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출간물은 기독교학문연구회와 협력하여 출간한 “신앙의 눈으로 본 학문 시리 즈”(역사, 심리학, 문학, 생물학, 사회학, 음악, 경영, 1995)이다. 이 시리즈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대학 의 전공과목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 이 시리즈가 출간될 즈음에는 IVF 학사 들의 주도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이미 학문의 영역뿐 아니라 경영, 예술, 교육, 법률, 대중문화 등 다양 한 영역으로 전문화되고 있었다. 네 번째 단계는 2000년대의 처음 10년인데, IVP의 출판이 확산되어 기독교 출판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시기이다. 2000년대 처음 10년간의 한국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는 경제 위기, 세계화, 포스트 모더니즘 등이었다. 기독교의 성장은 정체되고, 몇몇 계기로 인해 한국 사회에는 반기독교 정서가 생겨 났다. 한편, IVF와 다른 복음주의 학생 단체들이 그동안 배출한 학사 층이 두터워짐에 따라 복음주의자 들의 관심도 다양해졌으며, 따라서 IVP의 출판도 주제가 매우 다양해져서 내용을 한두 갈래로 정리하기 는 어렵다. 그런데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은 IVP의 출판 콘텐츠가 기독교 출판 전반으로 확산된 것이다. 즉, IVP를 내용적으로나 외형적으로 벤치마킹하는 복음주의 출판사들이 다양하게 출현한 것이다. IVP 와 IVF 출신의 출판인들이 여러 출판사(홍성사, 복있는사람, 살림, 새물결플러스 등)의 편집자로 일하면 서, IVF의 복음주의 정신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출판 전반에 확산되었다. 2010년대에 IVF와 IVP는 여러 가지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기독교 인구의 감소와 캠퍼스 상황의 변화 에 대한 대응, 새로운 세대를 향한 복음전도와 소통, 복음주의 운동과 학생 운동의 새로운 비전 모색, 한 국 사회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인 답을 제시해야 할 과제 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위압적인 도전 앞에서 모든 것이 전무했던 IVP 태동기의 경험을 돌아보게 된다. 로널드 인클리가 학생들과 학사들을 만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 안에서 미래의 IVP 저자들을 발굴해 냈던 일, IVF ’75 학사 그룹이 꿈꾸었 던 활발한 문서 운동 공동체를 꿈꾸며 헌신하였던 일들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대의 IVF 학생 학사 들 속에도 문서 운동을 위한 새로운 비전, 새로운 은사를 부어주시길 기도한다.

노종문 IVP 편집장

IVP의 베스트셀러 도서 TOP 10 1.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1981) 2.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1990) 3.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2004) 4.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1999) 5. 사귐의 기도(2002) 6.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1993) 7.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1999) 8. 소명(2000) 9. 제자도(2010) 10.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 인가(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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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축하 메시지 자유롭게 적어 주세요:)

소 애연구 좋은연

편집위원 편집위원 고성지

편집위원

편집 위원 김태 경

학생기자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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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만나 #1

인터뷰_강동훈, 전이슬 대학가

오늘은 당신과 걷고 싶어요

벚꽃이 꽃망울을 밀어내던 설레는 4월의 어느 날, 남자 1호와 여자 1호는 사심 가득한 마음으로 깔때기의 정점에 서계신 그녀를 만났습니다. 하지 만 이게 웬걸, 남자 1호와 여자 1호는 그녀의 넘쳐나는 매력에 폭 빠져 연 애 상담은 생각치도 못했답니다. 사랑 받는 멤버였고, 헌신했던 리더였으 며 캠퍼스의 부르심에 순종한 간사였던, 김지윤 소장님(추계예대 96, 전 IVF 간 사, 현 좋은연애연구소 소장)의 삶을 들어 보실까요?

김지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좋은연애연구소 소장님으로 나오던데요, 좋은연애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좋은연애연구소는 기업, 대학 등 다양한 단체에서 연애에 대한 강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소통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죠. 연구소의 장기적인 목표는 싱글맘& 싱글 파파에 대한 인식 개선이에요. 우리 사회 에서 가장 가슴 아픈 연애의 결과는 싱글맘& 싱글 파파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행동 에 최대의 책임을 졌지만 사회적으로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죠. 이들을 지원하고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을 해 갈 것입니다. 이 밖에도 연애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장님의 멤버 시절이 궁금해요. 소장님은 어떤 멤버였나요? 하루는 LGM에 가기 싫어서 동아리방에 ‘오늘은 걷고 싶어요.’라는 쪽지를 남기곤 홀연히 산책하러 떠나기도 했고, 한여름 수련회에 더운 가발을 쓰고 가서 리더들을 당황하게 하는 멤버였어요. LGM은 길고 지루했고, 답답했답니다. 이런 저를 사랑 해 주던 리더언니가 있었어요. 리더라고 하면 네가 틀렸다는 걸 강요할 것 같잖아 요. 그 언니는 무조건 따뜻하게 감싸주고 안아주었어요. 어수룩했지만 따뜻했던 언 니는 근육이 굳는 병으로 대학교 때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추계예대에서도 이 언 니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짧은 만남이었지요. 그 온화한 사랑이 저 를 IVF에 남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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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을 결단한 후, 리더와 간사 시절의 소장님은 어떠셨나요? 1학년 겨울 방학 DTC에서 진정한 회심을 하면서 전적으로 IVF에 헌신하게 됐어요. 리더 때나 간사 때나 모범이 되진 못했어요. 처음 간사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도 놀랐답니다. 캠퍼스는 추계예대와 항 공대를 맡았었는데요. 추계예대 재개척이 어려웠어요. 개척 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고통 스러운 것을 견디고 도망치지 않고 버텼어요. 이후에 후배들이 들어와 잘 해주었죠.(웃음) 선교부 간사 를 할 동안에는 영어가 콤플렉스였어요. 간사를 하면서는 내적인 긴장이 있기도 했어요. 다른 간사님과 의 열등감, 체력의 소진, ‘여자’간사로서 느끼는 진로에 대한 애매함이 있었죠. 간사 4년차 때는 일이 많 아서-전국적인 대회가 많았거든요- 관두고 싶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진심을 다해 재미있게 했어요. IVF는 국제단체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내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거라 생각했죠. 그리고 밀도 있게 헌신했던 동기들이 누구 하나 희미하지 않고 명확히 살아가는 것을 보며 많은 이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답니다.

간사의 삶 이후 작가와 방송인으로 세상과 소통하게 되셨는데 그 과정이 궁금해요 간사 임기 말에 선교사로의 비전이 있었지만 결혼과 영어로 인해 포기하게 되었어요. 이후에 간사를 사 임하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쉬는 동안 [사랑하기 좋은 날](포이에마)을 썼답니다. 감사하게도 책이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타자 교회에서 강의 제안이 들어왔고, 한 강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새 얼굴을 찾던 강사계의 주목을 받게 됐죠. 처음에 방송 섭외 요청이 왔을 때에는 거절했어 요. 그렇지만 연애가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지한 관계에 대한 고민이 그 영상을 클릭하게 된 동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방송 제의를 수락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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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세상과 소통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으신가요? 가치관 싸움이 어려워요. 사귀면 자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시대에서 기독교인들에 게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설득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 명해야 할지 막막해요.

마지막으로 IVF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첫 번째는 ‘보이지 않는 동역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야비해지고 싶어지는 순간, 함께 일했던 간사님들의 얼굴이 떠올라요. 우리가 함께 순수하게 달렸는데, 언젠가 이 길의 끝에서 함께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그 순간이 나를 지 켜주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소통’이에요. 어떤 조직이든, 몰입도가 강할수록 소통에는 실패하는 것 같아 요. 방송하면서 느꼈던 것은,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내지 않을수록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전달하는데 성공한다는 것이에요. 나의 가치관을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몰입된 조 직의 언어(IVF 용어, 기독교적인 용어)로 표현했을 때 그것이 소통을 가로막기도 해요. 어 떻게 하면 이 세대를 설득하고 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저는 “김지 윤 소장님 몰랐어요! 크리스천이시라면서요?”라는 말을 들으면 성공했다는 기쁨을 느 낀답니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라는 말에 설레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이 빛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연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빛나고 있다. 누군가를 건강히 사랑하는 이들을 돕는 소장님의 삶이 더 빛나는 것처럼.

강동훈 아주대 미디어학부 08, 학생기자

전이슬 가톨릭대 심리학 10,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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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사진 공모전

Together 상

200호 사진 공모전

유난히 추웠던 캠퍼스의 겨울이 지나고 꽃, 나무, 사람 모두가 다. 상큼한 신입생들에게 IVF를 홍보하는 중 창밖을 바라보았 한 학생들이 보이자 문득 “저 학생들에게 행복이 있을까?”란 200호 사진 공모전은 Together상 (선배, 동기, 후배와의 사랑 혹은 우 정을 표현한 사진)과 Life 상(캠퍼 스의 일상을 표현한 사진), 200호상 (200호를 기념하여 숫자 200과 함 께 찍은 사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쉽게도 200호상에 공모해 주신 독자님들이 없었답니다. Together 상과 Life상의 수상작을 발표합니 다. 참여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34

행복해지려고 노력할수록 더 불행해지는 현실. 내가 그들에게 수님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당신에게도 참 “오늘 커피 한 잔 어떠세요?”

김지인 연세대


대학가

우리 지부 생일 파티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 누군가가 생일을 맞으면 그 날에 공동체 사람들이 다함께 둘러앉는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특별한 말을 건넨다. 축복의 메시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 부끄러워서 하지 못할 이야기를 이 시간을 기회 삼아 도란도란 꺼낸다.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나상준 리더(왼쪽)에게 졸업하기 전 맞는 마지막 생일날이었다. 신입생 김민혁 형제(오 른쪽)에게 케이크를 먹여 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부디 이 좋은 전통이 이어지기를 바 라며.

오예인 아주대 건축학 12

, 사람 모두가 상큼해지는 봄이 왔 밖을 바라보았다. 창가 너머로 분주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예 당신에게도 참 행복을 전하고 싶다.

김지인 연세대 원주캠퍼스 작업치료학 12

life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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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는 사랑을 싣고

잘 지내나요,

청춘

학생 기자 출신 학사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간사, 교사, 군인, 바리 스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뽐내고 있었다. 기자들의 가슴 속에 묻어 있는 <대학가>의 정을 되살리고자 출신 기자들에게 질문을 들이 밀었다. <대학가>가 끼친 영향과 학생 기자 시절의 아련한 기억, 후배들에게 전하는 한마디까지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이야기를 공개한다.

진기웅 서울시립대 99 IVFMEDIA 간사 (웹, SNS 담당)

<대학가>는 IVF가 학생 ‘운동’ 단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매체였습니다. 유지은, 이수진 간사님과 취재하고, 고쳐 쓰며 만들었던 <대학가> 100호! 더불어 학생 기자 시절 만났던 동 료 학생 기자 친구들이 떠오르네요.(다들 뭐하고 사는지….) <대학가> 중간에 있던 스페셜 페이지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는 중간에 있던 노란 종이가 재미없기도 해서 억지로 읽었던 기억도 있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서 예전 <대학가>를 펼쳐볼 때면 다시 봐도 주옥같은 글들 이 많이 실려 있었음에 놀라곤 합니다. 학생 기자들의 서툴지만 날선 글을 접할 때마다 여 전히 <대학가>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뻔한 글들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대학가> 학생 기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감당해 주길 바랍니다.

정한나 전북대 02 피아노 선생님

20대 후반에 기자 생활을 해보고 회보 만드는 일을 하게 한 건 ‘팔 할’이 <대학가>! 학생기 자가 되고 처음 쓴 기사는 2005년 전국리더대회 리뷰였어요.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전북 지방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좌담 기사를 쓴 적도 있어요. 단지 몇줄 기사 쓰는 것 에 그치지 않았고, 제가 속한 공동체와 자리에서 넓게 보고 깊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줬어요. 2학년 초에 IVF 동방 책장에 쌓여 있는 <대학가>를 발견하고 집으로 몽땅 가져와 며칠 걸 려 다 읽었어요. 나니아 옷장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지요. <대학가>를 통해 IVF를 만나 고 IVF를 배우고 꿈꿨네요.(가장 재밌게 읽은 호는 100호 특집!) 매달 받는 <대학가>를 모 으는 게 저의 소소한 취미였어요. 그만큼 저에게 소중한 책이었지요. <대학가>를 통해 나, 너, 우리의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도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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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박현선 이화여대 06 한국YMCA전국연맹 간사

<대학가>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IVFer를 만나서 그 삶에 매력을 느껴 여기까지 왔습니다. 2006년에도 기자를 했지만 2008 RUN 전국수련회 에서도 학생 기자를 했는데요. 그때 김병년 목사님 인터뷰, 행사장 스케치, 뮤지컬 팀 인터 뷰 등 현장을 종횡무진하던 기억이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대학가> 200호를 축하드리며! 하나님과 이웃, 자기 자신까지 사랑하는 따뜻한 후배가 되어 주시길!

김찬미 경희대 국제캠퍼스 06 월간 커피앤티(Coffee&Tea)에서 근무 (구독/총판 관리·마케팅)

글과 종이가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학부 때 <대학가> 학생 기 자를 하면서 짧게나마 경험할 수 있었죠. IVF에 대해 잘 모르던 2학년 때 지방회 소식을 전 하는 기사를 보내며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게는 버릴 것 없는 시간이었어요. 다양한 이 야기를 한 곳으로 결집시키는 <대학가>의 매력에 빠져 보세요~

박애란 계명대 07 대안학교 과학교사

지금 하는 일을 선택하기 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을 <대학가>를 통해 만났고 힘을 얻었어요. 졸업 후 선배들을 통해 격려 받는 열린 통로 <대학가>. 기자학교 때 여러 강사님 의 강의를 듣고 ‘반짝반짝 빛나는 글을 쓰리라!’ 다짐하고 캠퍼스에 돌아갔는데 정작 마감까 지 글이 이상해서 우울했던 기억, 학생 기자가 되던 첫 해, <대학가>에 글을 쓰기 위해 추운 2월, 소그룹 인터뷰를 하려고 학생 식당에서 녹음기를 켜놓고 공동체 식구들을 괴롭히던 기 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님들, <대학가>에 믿음으로 고민을 했던 과거와 진행 중인 현 재가 그리고 앞으로 후배님이 써 갈 미래가 있답니다.

한형빈 경북대 08 군인

<대학가>를 접한 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SNS나 블로그 등을 활용해 종종 글과 사진 등을 올리곤 했죠. 학생 기자가 되기 전 해에 재정 공동체 관련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기자가 아니었지만, 경북대 IVF에서 했었던 재정 공동체와 사회 부 모임에 대해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쓰고, 콘셉트를 잡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짧게나마 <대학가> 기자 활동을 하면서 문서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전 국에 있는 IVFer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학가>라는 매체가 감사하기도 했고요. 서로 얼굴 도 모르고 평생 볼 일이 없더라도 각자의 소소한 이야기는 서로에게 힘이 될 거라 생각해 요. <대학가>와 다른 방법들을 통해서 IVFer들의 이야기가 활발히 퍼지면 좋겠네요. <대 학가> 학생 기자.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니니 함께해 보세요! 37


최유진 영남대 05 편집기자

실제로 취재하고 글도 쓰면서, 기자에 대한 꿈을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학사님 인터뷰를 하러 울산에 간 적이 있는데, 처음 하는 인터뷰인데도 학사님께서 잘 챙겨 주시고 정성스럽 게 답해 주셔서 감사했고요. 이때부터 인터뷰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기자 활동 외에도 좋은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해서 좋았어요. 그때 함께한 사람들과 꾸준히 연락하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기자학교를 통해 기자를 꿈꾸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글을 써야 하는지(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기자를 꿈꾼다면 학생 기 자로 지원해서 좋은 시간 보내길 바랍니다.

임고은 동국대 07 홍보 AE

주제 선정부터 기사 기획, 기사를 쓸 때의 구체적인 단어 선택에 이르기까지, 독자들과 소 통하던 때의 노력이 고객들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지금의 홍보 AE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 습니다. 경희대 학생 기자의 가이드와 함께 벚꽃 흐드러지던 경희대 캠퍼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회의 겸 나들이를 즐겼던 추억이 있습니다. `10년도 학생 기자들! 보고 싶네요. <대 학가>는 시대, 사람, 책에 대하여, 마음껏 깊이 생각하고 글로 표현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텍스트만이 가진 묵직한 힘을 믿으며, 재밌게 함께 하시길 바라요!

류혜선 단국대 천안캠퍼스 08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 청소년교육팀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인터뷰 기사를 몇 번 썼었는데요.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어른들의 모습 을 통해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 그분들의 지혜를 나눌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덕 분에 지금 일을 하면서 어른들과 ‘소통’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주제가 정해지면 각자 맡 을 코너를 정해서 마감일까지 제출하던 기억이 납니다. 혜진간사님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 스마로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활동했어요. 특히, 학생 기자 때 난센의 김성인 학사님과의 짧 은 만남은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인터뷰 중에 “추수할 일꾼이 없는 게 아니라, 밭에 들어 가 제발에 흙 묻힐 사람이 없는 거예요”라는 말은 진로와 삶에서 나침반 역할을 했습니다. <대학가> 200호라니 기뻐요. 훌륭하신 선배들이 닦아놓은 IVF라는 터에서 ‘학생’ 의 때를 마음껏 누리시길 바라요.

김태진 한국해양대 07 바리스타

<대학가>는 대학생들이 가지는 고민(성적 관리, 진로, 연애 자아 성찰 등등)을 푸는데 중요 한 팁을 주었습니다. 2달에 한 번씩 만나 <대학가>에 실을 글을 위해 큰 주제만 주어진 상 황에 소스를 내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서로의 역할이 정해지면 끝없는 수정과 칼날 같은 편 집자님의 요청에 다시 새롭게 시작. 이 연속은 참 인생과도 같았죠. 학생 기자로 처음 시작 한 학생 기자 블로그! 이 블로그를 운영하기로 결정하고서 처음으로 했던 인터뷰가 가장 기 억에 남습니다. 후배님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학생 때 해보세요. 경험만큼 좋은 선생 은 없답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도움을 구하고 배우는 연습도 부끄러워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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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온 가족

온 가족

IVF 온 가족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를 말과 행동을 통하여 온 세상에 전파하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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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 년

산돌에 살어리랏다

글_심규원, 박정혜

따스한 봄날, 1년 만에 다시 산돌을 찾았다. 성주 하늘목장은 어느새 푸 른 봄기운이 가득했고 2기 친구들도 벚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우리를 환영 했다. 2기 친구들이 고백한 산돌의 삶은 ‘선물’이었다. 그것은 1기였던 나와 동기 친구들이 느꼈던 마음과 동일한 것일 터. 자격 없는 우리가 큰 선물과 호사를 누렸던 1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산돌 2기 친구들을 만나 보았다.

우리는 산돌에 왜 왔지? 산돌에 온 이유는 각자 다양했다. 1기 친구들이 다양한 배움을 위해 산돌에 왔다면 2기 친구들은 공동체와 함께함을 배우기 위해 산돌 을 찾았다. 나를 찾아가고 공동체를 알아가면서 이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 그 깨달음을 일상에서 실현하기를 바라는 그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두려운 곳이 아니다. ‘세상, 한 번 살아볼 만하다.’고 용기를 준 곳이 우리들의 산돌이었다.

산돌에서의 삶은? 산돌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와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을 누린다는 친구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가 기뻐했으면 좋겠다. 캐치볼, 농구, 춤추는 동작까지. 공동체를 누림으로 말이다.” 산 능선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관계가 아름답다. 게다가 관계 속에서 자유까지 누리니, 산돌은 선물 보따리 그 자체다.

산돌과 리더십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가 누구일까’란 고민으로 시작된 산돌. 학생들 모두가 산돌에서의 리더십은 그들이 생각했던 리더십 과 많이 달랐다고 한다. 밖에서의 리더십이 탁월함과 훌륭함으로 세워지는 리더십이라면 산돌에서의 리더십은 신뢰와 애정으로 지지 받고 격려 받으면서 세워지는 리더십이라며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산돌에서는 각자의 있는 모습 그대로 지내고, 맡은 일은 홀로 책임 져야 할 것처럼 느꼈던 지부에서의 삶과 반대로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산돌은 ‘좋은 리더십의 공유’가 일어나는 장이다. 1기 또한 그랬다.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 허사가 아니었다. 부족한 리더였지만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 을 가진 리더로 자랄 수 있었다. 강사님들과 간사님을 통해서도 리더십을 배운다. 단 한번의 경험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리더가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빨리 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오히려 시간이 걸리는 분투를 하는 것이 바로 리더십 훈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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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지 않을까. 우리는 군림해서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가는 리더십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밀어 주는 묵직한 리더십, 침착한 리더십, 바위 처럼 있어 주는 리더십을 꿈꾼다.

산돌, 안 오면 손해 아닌가! 산돌, 도대체 왜 미달인걸까? 산돌 2기는 아쉽게도 정원이 채워지지 않았다. 산돌 2기 친구들은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산돌을 적극 추 천하고 있단다. 산돌은 아침 5시 50분부터 시작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까지 알찬 일정으로 한 학기동안 이루어진다. 영성 생활, 공동 체 생활, 강의 시간, 책 읽는 시간, 목공과 텃밭 가꾸는 시간, 자전거를 타는 시간 뿐 아니라 자치회, 여러 행사(체육대회, 음악회 등), 국 내 및 해외 탐방 등의 시간은 그들에게 통념이 아닌 통찰을 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산돌 2기가 말한다 졸업 이후, 학사들이 IVF를 원망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과도기를 겪는 내게 산돌은 시선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이제 세 상에 나가서 살자. 살아내 보자!’고 다짐한다. IVF 생활을 하면서 외부 활동에 대해 닫힌 모습을 볼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그래서 무작정 시선을 사회로 던지곤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서 당신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도록 다듬어 가셨다.

6주의 시간을 보낸 2기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년 전의 나를 만났다. 산돌은 제2의 고향이다. 나의 리더십은 산돌에서 지지받고 동역했던 시간을 통해 자라갔다. 세상에 뛰어들 용기 를 북돋아 주었고 함께 사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스스로 부족하다 말하는 우리가 모여 아름다운 하나가 되니, 이보다 아름답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심규원 국민대 08, 산돌 1기 수료자 박정혜 창원대 08, 산돌 1기 수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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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연구소 ①

글_정석률

캠퍼스 사역연구소를 소개합니다 작년 오뉴월, 전국의 캠퍼스는 설문 조사로 들썩였다. IVF 활동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꼼꼼한 설문지, 혹시 기억하시는가. 캠 퍼스 현황 조사로 오랜 시간을 고군분투한 곳은, 캠퍼스사역연구 소라는 사실! 오호라, 캠퍼스 사역에 도움이 필요할 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연구소가 우리에게 있었다. 캠퍼스사역연구소 는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뚝딱뚝딱 연구소가 돌아가는 이 야기를 소개한다.

캠퍼스사역연구소는 어떤 곳인가요?

2013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실시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 조사에서 한 국 교회의 신뢰도를 조사한 항목이 있습니다. 20대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교회를 가장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연령층은 20대층이 었습니다. 20대층의 12.9%정도만이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 니다. “캠퍼스 사역이 어렵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캠퍼스 사역의 위기를 있는 그 대로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마음을 품고 적극적으로 현 실을 타개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사역연구소는 (1)우리가 처한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2)대학 사회와 20대들의 현실을 파악하며, (3)IVF 운동뿐만 아니 라 캠퍼스에서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할지 연구하며, (4)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연구하고 소개하고 소통하는 것을 위해 설립된 연 구소입니다.

캠퍼스사역연구소에서 하는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1) 캠퍼스 현황 조사 실시 2013년 5-6월 설문 조사 했던 것 기억나시나요? 대대적인 캠퍼스 사역에 관한 현황 조 사를 실시했습니다. 2013년 2학기에는 캠퍼스 간사들과 그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 졌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그 결과를 학생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IVF 운동의 각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다양한 전략을 세워 나갈 것입니다. 그 리고 캠퍼스 사역에 필요한 여러 자료들을 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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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2) 간사 연구지 <간사세계> 발행 캠퍼스 간사들의 사역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캠퍼스 사역 연구지인 [간사세 계]를 연 2회 발행하고 있습니다. 캠퍼스 사역에 대한 고민들을 주요 주제로 하여 캠퍼스 간사들 간의 소통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아직 못 보셨다구요? 간사님께 보여 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3) 대학 사회와 20대 연구 한국 사회에서 대학 사회와 20대가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흐름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 한 지속적인 연구를 펼치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학 평가 기준, 인구 변화 추이, 세대론의 변화 추이 등을 살피며 캠퍼스 사역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보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캠퍼스사역연구소가 펼쳐 갈 계획이 궁금합니다

(1) 캠퍼스 사역에 필요한 자료 발간 [복음주의와 복음주의 학생운동] 개정, 기초성경공부교재 [One to One] 개정, [캠퍼스 현황조사 자료집] 발간 등. 캠퍼스 사역에 도움이 되는 여러 자료들을 발간할 계획을 가 지고 있습니다. (2) 캠퍼스 현황 조사 후속 작업 진행 2013년 캠퍼스 현황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시대와 현재의 상황에 맞는 운동 전략들을 세 울 것입니다. 그리고 각 캠퍼스별로 창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전략들을 발굴하여 보급, 소통할 것입니다. (3) 소통하는 캠퍼스사역연구소 학생들과의 활발한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도입할 것입니다. SNS 활동, 자발적 모 임 등을 통해 운동의 주체인 학생들과 소통할 것입니다. 현장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의 목 소리가 서로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만들고 그 결과가 드러날 수 있도록 애쓸 것입니다.

정석률 IVF 캠퍼스사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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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 연구소 ②

정리_유신석

연구소로 떠나는 체험

IVF의 브레인, IVF 한국복음주의연구소. 중앙회관 4층의 자 그마한 공간을 홀로 드나들며 고민을 이어가시는 이강일 연구소장 을 만나 보았다. ‘복음주의’에 폭 빠진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유쾌 하다. 기다란 이름을 가진 IVF 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가 더 큰 활동을 위해 꿈틀대고 있다는데․․․ 우리에게는 생소한 연구소의 이 야기, 그 조용한 진동을 함께 느껴 보자.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복음주의연구소’하면 학술연구소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그래서 ‘이론 연구소가 아니라 운동을 돕는 연구소다’라는 의미로 ‘운동’ 이라는 말을 넣게 됐어요. 복음주의의 속성은 ‘주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운동’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IVF만을 위한 것이 아니 라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범복음주의 운동을 돕는다는 의미로 ‘한국’이 들어갔어요. 그렇게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라는 이 름이 되었죠.

연구소의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미국에서 194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복음주의 운동은 기독 지성 운동과 사회 참여 운동을 지향했어요. 우리 연구소도 한 국복음주의 진영에 기독 지성과 사회 참여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와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는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가들과 네트워크 사역을 했어요. 그리고 기독 대학원생을 위해 신앙과 학문의 통합적 연구를 지향하는 ‘아볼로 수련회’를 두 차례 치렀고요. 복음주의와 관련된 이슈를 가지고 ‘로잔 언약 과 한국 복음주의의 운동의 미래’, ‘존 스토트와 한국 복음주의 운동,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제목으로 포럼을 열었어 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해온 것은 대학원생들과 함께 복음주의 관련 신학, 역사 등을 주제로 모인 ‘복연 세미나’ 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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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연구소의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지성 운동과 관련해서는 먼저 복연 세미나가 한 팀으로 진행되었는데, 신학, 사회학, 역사 등 전문 분야별로 확대할 계획이에 요. 그리고 공부에 소명이 있는 전국의 대학원생들을 만나서 관심사를 듣고, 도울 방안을 찾을 것입니다. 노종문(IVP 편집장) 간사도 이 사역에 동참할 거구요. 가장 큰 계획은 일명 ‘산돌대학원’(가칭) 프로젝트예요. 1년 4학기 대학원 형식으로 학교를 만들어, 공부에 소명을 확인하고 싶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10-15명 정도 모집해서 여러 학문 분야에 포진한 대표적인 기독 학자들의 공부 방법을 배우도록 할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자기 신앙과 학문을 통합해서 학문적 글쓰기까지 할 수 있도록 도 와주려고 합니다. 사회 참여 문제와 관련해서는 연구소가 직접 사회 참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잔 언약을 기초로 한 통전적인 복음주의 사 상을 따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적인 담론을 형성해가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상의 이슈에 대해서 성 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이 시대에 필요한 복음의 강조점은 무엇인가, 소그룹, PBS의 신학, IVF의 역사는 무엇인가에 대 한 연구 기능을 연구소가 감당하려고 합니다.

연구소가 학생들과 간사님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이 연구소는 일차적으로 내부자들을 위해서 설립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연구 성과를 IVF 학생들과 간사들에게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이 부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일단 복연의 활동과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글 모음집, 일명 ‘복연 다이제스트’를 정기적으로 제공할 예정이에요. 이 시대의 시사, 신학, 사역 이슈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각종 설교, 강의, LGM, DPM 기도제목 등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 결과를 최대한 간결하고 실용적으로 가공하여 제공하는 방식이 죠. 아직 연구소가 뚜렷한 열매를 여러분들과 나누지 못한 점, 많이 아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해볼게요.

유신석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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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_일상생활사역연구소

삼 경 위

ing 연구소 ③

미션얼사역

21세기 초 한국교회는 신앙(영성,주되심)을 공간적으로는 교회당 안으로, 시 간적으로는 주일에만 국한시킴으로, 삶과 신앙의 분리로 인한 심각한 병리현 상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속에서 기독교와 교 회의 삶은 적실성이 없는 현실도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속에서 구 속된 인간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롬12:1) 이며,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골3:23)는 성경의 가르침이 재확인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 서 본 연구소는“일상생활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요 사역(service)”이 라는 관점과 보냄 받은 곳이 어디든지 사역의 현장, 선교의 자리라는 보냄받 은 존재의식(missional identity)을 고취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www.1391korea.net 1391korea 페이스북 그룹 groups/1391comm @ 1391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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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l Conference

다함께 미션얼!

미션얼 컨퍼런스

2014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슬로건


일상생활 성경공부 Everyday Life Bible Study Club

ELBiS Club 일상생활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소그룹

일 상 생

S e ize 활연 L ife 구

대학생들과 함께 음 식과 지식을 나누는 독서 모임(방학 기간 에 개최)

(食+識客)

식객

지 있 방에 자 는 들 소장 기반 의 을 모 기 임 독 두고 연 구

보냄받은 정신을 배우 고 공유하는 대회

다함께 미션얼!

삼 경 위일 험 체 하 기 E

rie 일 n T 로 상생 cing T 연 서 삼 활신 Th e 구 하 위일 학의 Trin 는 모 체신 근거 ity 임 학 을 Ex pe

기다 월요 리는 일을 사람 Th a T 일 nk G G 들 사 상생 od IM 매년 종교개혁주간 을 중심으로 일상생 활사역의 정신을 알 리는 캠페인

일상생활사역 일상생활 사역주간

멘 집 토, 제 , 교 영성 기 를심 육 등 , 옷 현 연구 도 있 다 , 음 재 양 식 11 지(2 게 다 한 , 호 01 룬 주 까 지 4년 4 정 발 월 간 )

기타사역

I 역 활 을 의 t's M o 나 영 누 성 nda 는 과 y 소 그 룹

1일터와 3삶터에서 91구원을 누리자!

변 북 방 소 의 리

Missional Conference

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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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학사

젊은 그대, 잠 깨어 오라!

학사들이 물 만났다! 캠퍼스에서 세상으로 먼저 간 학사들의 모임 스 토리. 졸업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평생운동가로 살아가길 꿈 꾸는 선배들에게 무슨 일이? 다양한 프로그램, 팟캐스트, 멘토링으 로 좌충우돌 하는 이야기부터 내년에 있을 전국학사수련회까지. 궁 금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곧장 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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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YGM에서 하나님 나라를 학사 이후의 삶을 요약하면 ‘꿈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겠다. 무엇을 꿈꿔야 할지도 몰랐던 학생 시절을 지나, 하나하나 몸으로 부 딪히며 시행착오를 거쳐 꿈을 찾아가고 있다. 그 과정이 아름답고 유쾌하지는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 속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기 싫었다. 그럼에도 갈급함이 있어 계속 수도권지역학사회를 찾았다. 학사회엔 학부 때만큼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소그룹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간사와 리더가 없다. 하지만 공동체에서 용기 있게 삶을 열었 을 때, 작은 위로와 격려를 얻어 돌아가기에는 충분했다. 끝까지 함께 이 길을 걷자며, 당겨주고 끌어주는 동역자가 학사회에 있었다. 인 턴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실직했던 날, 치킨을 뜯으며 받았던 위로. 백수의 난감한 지갑 사정을 아는 듯 “늦어서 미안하다”며 입금된 디 자인 비. 회사의 부정과 부당한 처우 속, 무력감을 느낄 때 함께 신나게 뱉은 욕지거리까지…. 함께 나누었던 격려와 재정, 심지어 욕지 거리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 되게 하심이 있었다고 믿는다. 시간이 쌓여 각자의 삶에 견고함이 생기고, 공동체에 근력이 생기면 꿈꾸었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날까지 삶에 성실히 임하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꿈을 꾸는 사람 들이 있는 곳, 수도권지역학사회에는 지금도 하나님 나라가 움트고 있다. YGM(수도권지역학사회)은 수도권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학사들(전국의 IVF 1~5년차)이 매주 화요일 저녁7시30분, IVF 중앙회관 지하 좋은땅에 모여서 성경 강해와 이성교제, 진로, 사회에 대한 특강을 나누며 졸업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고 있다. 또한 함께 사는 공동체를 소망하며 홍대, 신촌, 망원에서 다양한 지방회 출신 형제, 자매 학사들이 하우스를 이루며 살고 있다. 졸업 이후에 서울에서 취업을 하게 된다면 수도권지역학사회에 꼭 문을 두드리시길.

최보아 서울여대 07

수다로 풀어내는 하나님 나라 운동

봄꽃이 흩날리는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 하는데 힘쓰면서 봄을 보내고 있을 IVF 후배님들을 생각하면 부러움과 동시에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봄을 보내고 있을 학사들이 캠퍼스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한 걸음만 옮기 면 얼굴 맞댈 수 있었던 동역자들과 보낸 시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아쉬워하기에는 아직 팔팔하게 살아 있는 동서울 각 지부의 학사회 회장들이 모여서 대표자 모임을 시작했고 2년 전부터 다시 세 명의 임원을 뽑아서 대표 간사님, 학사회 간사 님과 함께 5명의 ‘어벤저스’ 멤버가 완성되었다. “우리도 팟캐스트 해볼까?” 바쁜 학사들의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초월하면서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까 하는 고 민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어벤저스팀의 팟캐스트 ‘북잡담회’는 시작됐다. 한 달에 한 번 주제를 정하고 관련 책을 읽고 만나서 최첨단 녹음 시설(사실은 딸랑 아이폰)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북잡담회는 만고불변의 인기검색어인 연애, 소개팅부터 캠퍼 스 추억, 재테크까지 소소하지만 우리를 평생 쫓아다닐 주제들로 수다를 떨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제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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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하여, 가까운 지방회 학사부터 한때 전설로 통했던 간사님까지 모시는 등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게스트들을 모셔서 세력 확장(?) 을 꿈꾸기도 하였다. 특히 올해부터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서 세미나, ‘이슈너머’를 운영하여 자연스럽게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통한 소통의 장을 넓혀가고자 한다. 팟캐스트 참여자들의 학교와 학번도 다양하다. 대부분 캠퍼스 시절에 함께한 시간이 짧거나 스쳐 지나간 사이지만 IVF라는 이름 아래 다시 모일 수 있음이 아름답다. 팟캐스트와 세미나를 통해 오늘도 캠퍼스에서 배운 삶을 살아내려 고 노력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김정은 시립대 02, 동서울 학사회 부회장

휴학생을 위한 “ing school”

‘휴학생 100만 명 시대’, 어느 날 신문을 통해서 본 기사 제목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취업의 관문을 넘기 위해 휴 학을 선택하고 있었다. 휴학이라는 피난처를 선택하였지만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하는 청춘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나라에 대 한 책을 읽는 과정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는 구절이 가슴으로 다가 왔다. 이 시대에 억 눌린 청춘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함께 하고픈 소망이 생겼다. 그러나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실현할 수 없었다. 2013년 1월 11일 대구 IVF 사무실에 신응종 간사, 정희돈 IVF 훈련 담당 간사, 박희광 교수가 모였다. 각자 삶의 영역은 다르지만 휴학생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한 마음이 되었다. 평신도가 가진 세상의 경험과 목회자가 가진 영적인 지혜, 간사가 경험한 묵상과 나눔을 통한 배움이라는 세 개의 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자신의 꿈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향 설정과 실력을 키우는 의미를 담은 이 름 ‘ing school’이 탄생했다. ing school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삶을 조정하는 calling,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과 기술을 배우 며 삶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tuning,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걸어가는 삶을 준비하는 시간 working. 이 세 단어가 가진 공통점인 ing를 in God(하나님 안에서)라고 재해석하여 붙인 이름이다. 주 1회 4시간, 12주간 이어지는 다양한 학습을 통해서 휴학생들은 무너진 자존감 을 세우고 비전을 설정하여 성장하기 위한 습관을 많은 동역자와 함께 배워 간다. 휴학생들이 희망하는 자리에 앞서 간 선배 학사들은 멘토로서 학생들에게 상담자 역할을 한다. 1기 수료식 때 학생들은 부모님과 많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비전을 발표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부모님이 “자녀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 자녀의 꿈을 들을 수 있어 서 감사하고 자녀에게 믿음이 간다.”며 우리의 손을 잡아준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억눌린 사람에게 해방을 선언하고 자유를 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일 것이다. 작은 생각을 큰 열매로 만들어 주는 동역자가 있는 곳 에서 IVF 학사 운동을 엿볼 수 있다.

박희광 경북대 85, 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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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관심과 상상, 실험 진주 지역 학사모임이 2005년 가을부터 시작된 이래로 한번도 ‘회장’ 또는 ‘리더’라는 명칭이 있었던 적이 없다. 진주 지역 간사님들 또한 동일한 학사의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 다. 진주 지역 학사모임은 이끌어가고 지도하는 고정된 자리 없이 서로 간의 열림과 관 심, 마음 씀이 넘친다. 모임 시간은 주일 오후 7-9시. 그러나 꼭 7시에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매주 모임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없다. 그리고 모임에 대한 최소한의 공지만 있 을 뿐 오고 가는 것에 대해서 학생 때처럼 챙기지 않는다. 각자가 보냄 받은 일상이 중요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작년엔 한 학사의 필요에 따라서 [한 권으로 꿰뚫는 소예언서](IVP) 를 함께 읽었다. 마친지 4개월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의 필요가 무엇이며 무엇을 할 것인 지 논의 중에 있다. 그래서 신입학사 또는 새롭게 학사모임에 참여하는 학사들은 당황한 다. 고정된 자리와 구조가 없는 진주 지역 학사모임은 상상과 실험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를 지성근 간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하는 네 남매들이 옷장을 통해서 나니아에 들어가 위대한 사자 아슬란을 만나는 시간, 즉 하나님 나라 이미지를 경 험하는 시간”이다. 상상을 실현해 내는 학사모임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오늘도 자발적 인 실험을 단행한다.

진주 학사모임

새로운 기독인대회가 온다

운동성 (동창회 성격이 아닌 운동성을 살리고 운동이 일어나는) 공공성 (개인 경건을 넘어서 공공성이 다루어지는) 자발성 (수동적인 참여보다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있는) 현장성 (이론적이고 사변적이지 않고 실천적이고 현장성 있는 내용을 담는) 참가자들이 콘텐츠가 되는 기독인 대회가 열린다면…. 지난 2012년 전국학사수련회 C.A.R(Calling, Awakening, Reunion)는 13년 만에 전국의 IVF학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었다. 수련 회를 통해 이미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운동을 펼친 학사님들의 운동성과 열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학사 운동의 꿈과 열정을 한 자리에 모으는 수련회가 계속되고 외부로(IVF학사들만을 위한 수련회가 아닌 기독인이 참여할 수 있는) 오픈하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2015년 7월에 있을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고, 적극적인 지지와 자원봉사도 필요하다. 반복되는 대회를 통해 세상을 섬기는 기독 시민의 연대를 만들고, 각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담은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변화 시키는 운동이 생기고 지형의 변화가 일어나길 꿈꾼다. 이미 현장에서 자발성을 살려서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학사들의 꿈과 열정이 잘 얽혀서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토대를 다지고, 운동의 연대를 형성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내년에 학사가 되는 이들 이라면 2015년 7월을 기대하시라. 물론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학생들의 섬김도 환영한다.

박주현 부산학사회 대표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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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라 IVF

글_이천석

경인IVF 학사들의 메가폰

2013년 3월, 모여라 IVF 제작진이 처음 모인 이후 IVF 학사와 학생들의 커 뮤니티로 자리 잡은 것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청취자들은 하나같 이 “모여라 IVF는 IVF 방송 같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나꼼수나 컬투쇼를 듣는 것 같은데, 결론이 다르단다. 청취자들의 또 다른 반응은 편하다는 것. 한 회 방송 분량이 40-50분이라서 출퇴근 시간이나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들으면 졸리지 않고, 전철에서 듣다가 혼자 웃어서 당황한 적이 있다고 했 다. 모여라 IVF 방송은 어떤 주제든 묻고 나누면서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게스트들의 경험담 속에 깊은 고민이 담겨 있기도 하고, 때로는 근본주의적 기독 담론을 풍자하기도 한다. 처음 방송했던 날이 기억난다. 이천석(인천대 04, 모여라 연출 및 보조MC)학 사가 운영하는 실용음악학원 1인 보컬 녹음실에 꾸역꾸역 모여 앉았다. 스 포츠 캐스터 계의 유재석을 꿈꾸는 조경준(인천대 05, 모여라 메인MC)학사 와 별명이 열무인 이무열(인천대 04, 모여라 엔지니어)학사가 함께 했다. 그 날 게스트로 경인 IVF 대표들을 초대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자매 리더들이 었다. 대본은 따로 없었다. 10가지 질문 목록을 보면대에 올려놓고 라이브 로 방송을 시작했다. 좁은 리코딩 룸에서 4시간에 걸쳐 방송을 하는데, 이 게 방송인지 수다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첫 방송은 모두에게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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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몇몇 사람들은 모여라 IVF 방송을 의아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천석 학사와 조경준 학사는 캠퍼스 시절부터 알아주는 입담 콤비였고 밤새 수다를 떨어도 지루하지 않던 몇 안 되는 형제들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방송은 여러 가지 주제와 영역을 다루고, 다양한 콘셉트를 적용했다. 미취업 학사 특집 방송부터, 취준생 특집, 교사 특집, 방송인 특집 등등 셀 수도 없는 특 집 방송이 이어졌다. 총 100회 분량의 방송을 하는 동안 거쳐 간 게스트만 해도 70여명이다. 이 방송의 매력은 쏠쏠한 재미뿐 아니라 방송을 하는 현장 속의 진솔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 때문에 처음 만나는 게스트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오히려 가까운 관계여서 털어놓을 수 없던 이야기도 콘덴서 마이크 앞에서 하게 되는 상 황이 매 주마다 벌어진다. 감사하게도 ‘모여라 IVF’이름으로 섭외를 요청했을 때 가볍게 거절했던 학사들은 한명도 없었다. 모여라 IVF는 90%에 육 박하는 게스트 섭외율을 자랑한다. 방송을 통해 IVFer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방송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IVF는 늘 연 구 대상이다. 선배들의 일상이 궁금할 때면 팟캐스트 모여라 IVF 방송을 들어 보시라.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모여라 IVF 방송이 세상 사는 낙을 선사해 줄 테니.

이천석 인하대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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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황광은

iPad

9:4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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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IVF

OnIVF를 알랴드림

2014년 으리으리하게 변신할 OnIVF.com! iPad

9:45 AM

100%

IVF 스피릿 충만한 강해부터 <대학가>와 <소리>, IVF 가족들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담 은 OnIVF.com은 2010년부터 IVFer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크리스천들을 위한 콘텐츠 를 제공 중입니다. 특별히 2014년에는 빛의 속도로 IVF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대대적 인 공사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학생, 학사 모두에게 도움 될 콘텐츠를 채울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SNS에서 눈팅만 하지 말고 OnIVF.com 접속 해보는 센스, 아시죠? 느 낌 아니까~

소통은 내게 맡겨라! OnIVF Facebook 전국 IVFer의 친구인 OnIVF Facebook를 소개합니다. OnIVF에서 전하는 특별한 소식 과 이벤트를 놓치고 싶지 않은 IVFer라면, Facebook에서 ‘On Ivf’를 검색해 보세요. 특 히 샌애긔(라고 쓰고 새내기라고 읽는다)들은 후 꼭 ‘팔로우(Follow)’하는 것, 잊지 마시 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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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

학사들에게 인기 폭발! 팟캐스트 ‘IVF에서 했던 양질의 강의, 방송, 다시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 보셨죠? 이미 IVF 학사들에게는 출퇴근 시간 의 꿀잼, 꿀영성을 보장하는 인기 폭발 중인 팟캐스트는 무엇일까요? 대망의 채널은 두구두구두.

*팟캐스트 채널 목록 매일 아침 9시, IVF 출신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어보자! - 말씀으로 여는 하루 다른 지방회 강의를 듣고 싶다면? 각 IVF 지방회에서 직접 만든 - IVF on Campus 이미 많은 애청자를 보유중인 IVF-MEDIA표 양질의 컨텐츠 - OnIVF Channel - 안드로이드 유저들은 OnIVF Podcast 앱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OnIVF의 또 다른 활동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도 OnIVF가 빠질 수가 없죠. IT 관심자들을 위 한 IT CAMP, 그리고 수시로 인터넷 생중계를 하고 있어요. 특히, 지방에 사시거나 현 장 강의에 참석하기 어려운 분께 인터넷 생중계를 추천합니다! 기독 저자들의 특강 이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컴퓨터 혹은 스마트 기기를 통해 참여해 보세요~

OnIVF의 빛과 소금, OnIVF 학생스태프 1) OnIVF 학생스태프, 그 정체를 밝혀 보자! OnIVF는 IVF 사역의 일부이기에, 학생 자발성을 살려서 학생들과 함께 활동하고 싶었다고 해요. 그래서 만든 것이 OnIVF 학생스 태프이죠. 1기부터 3기까지 총 9명인데, 모두 IT 전공자들로 구성돼 있어요. 그렇다고 IT 전공자만 뽑으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학 생스태프들 모두 IT 지식을 활용해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만들고 싶어서 지원한 사람들이거든요. 현재는 학생스태프들이 주로 IVF와 관련된 앱(IVF 앱, OnIVF 팟캐스트 앱 등)을 제작 하는 정도로 범위가 좁지만, 앞으로는 훨씬 다양해질 거랍니다! 2) OnIVF 학생스태프, 뭐가 좋은 거지? IVF 공동체 내에서 나눌 수 없는 부분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전공에 대한 고민이나, 공대식 개그가 그런 예에요. 특 히 IT쪽 전공은 공동체에서 들어줄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거든요. 저는 여대 출신인데다, 지부 사람들 중에 같은 전공자가 한 명도 없어서 전공과 관련된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학생스태프를 하고 나서 그동안 쌓여 있던 공대 생 본능(?)을 표출할 수 있어서 좋았죠. 이 외에도 학생스태프 누구나 한 번쯤은 앱 개발에 참여하게 되니까 나중에 취업할 때도 도 움이 되어서 좋았어요. 그래서 저는 IVFer 중 IT 관심자라면 학생스태프에 지원하라고 적극 권하고 싶어요.(드루와 드루와)

황광은 숙명여대 09, OnIVF학생스태프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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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수필 공모전

글_이윤

그해 겨울이 따뜻한 이유 200호 수필 공모전 최우수작

2010년 교회 언니를 통해 IVF를 만난 후, 리더 3년차가 되었다. 1학년 때 동기들이 적어 언니오빠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에게 IVF가 필요한가.”라는 고민은 계속 일었다. 그렇게 여름 수련회도 가고 2학기에도 열심히 했지만 내심 IVF를 떠날 준비 를 하던 내게 ‘공동체’가 필요함을 뼛속 깊이 깨우쳐 준 사건이 있었다. 1학년 2학기 전공 수업 중에 자유롭게 영상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동영상이 되는 카메라가 없어서 소그룹 리더 언니의 카메라를 빌렸다. DSLR에 동영상 기능까지 있는 고가의 카메라였다. 무사히 과제를 제출했고 이제 카메라만 돌려주면 됐다. 언니에게 직 접 전해 주려고 동방 캐비닛 아래에 카메라 가방을 두고 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지 금 생각하면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지 싶을 정도로 어리고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그 렇게 종강을 했다. 그 당시에 학생회관의 동아리 방 문은 디지털 도어록이 아닌 열쇠였 다. 그때까지 아무런 도난 사건이 없었기에 문이 항상 열려 있었다(그 다음 해에 도어록 으로 바꿨다). 종강 3일 뒤, 오랜만에 언니오빠들 얼굴도 보고 DPM에 참석하려고 학교에 갔다. 설마하 며 캐비닛을 열었는데 다행히 카메라 가방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방을 드는 순 간,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가방 안에 있던 카메라와 케이블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내 가 오기 전에 장난친 줄 알고 동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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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공동체가 발칵 뒤집혔다. 온갖 자책을 해보았지만 이미 카메라는 없어진 뒤다. ‘나를 사랑해 주고 도와줬는데 그 사랑에 찬물을 끼얹는 구나! 더 이상 공동체에 있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숨고 싶었다. 그러나 간사님과 언니오빠들은 나의 두려움 과 절망을 녹여 주었다. “너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야, 문단속을 잘 하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어.” “같이 해결해 보자.” 중요하고 비싼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당신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행동으로 그 책임과 사랑을 보여 줬다. 숨고 회피하려는 내 게, 문제를 바라보고 같이 해결하는 과정을 가르쳐 주었다. 그 겨울에 교통비를 줄이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 오빠, 도시락을 싸고 다녔 던 언니들, 설 연휴가 지나면 세뱃돈을 조금씩 모으자던 언니 오빠들, 그리고 간사님까지…. 나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극히 일부의 돈만 채웠다. 그런데 공동체는 한 마음으로 돈을 모아 같은 기종의 중고 카메라를 구해 주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무엇보다 가장 값진 것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것 또한 공동체라는 것 을. 그 후로 IVF 공동체를 떠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이런 공동체는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를 떠올 리면 아찔하지만 그 사건이 결정적으로 IVF에 남게 된 이유가 아닐까 할 정도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공동체에서 받은 것이 많기에, 또 흘러 보내야 할 것이 많기에 하나님이 캠퍼스에 남기신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덧 찾아온 마지막 학기, ‘끊임없이 채우시고 깨닫게 하신 그 사랑과 은혜를 흘러 보내야지. 이렇게 바보처럼 보이는 사랑 경험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거듭 다짐한다.

이윤 전주대 만화애니메이션학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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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만나 #2

인터뷰_하우림, 전예진

나와 함께

춤을 추겠니 꽃망울이 한껏 터지는 봄날의 설렘을 품고 김병년 목사님(한국외대 83, 전 IVF 간사, 현 다드림교회 담임목사) 댁을 향했다. 지방회 행사 때 멀리서 바라보던 목사님을 가까이서 뵈니 편안한 옆

집 삼촌 같았다. 손수 커피도 내려 주시고, 과일도 내어 주시며 이야기를 꺼내시던 목사님 은 애정 가득한 IVF 선배님이셨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IVF를 시작해 대학교 2학년 때 인격 적인 회심을 하셨다던 목사님은 IVF를 영적 고향이라 하셨다.

목사님께 IVF는 어떤 곳이었나요? ‘IVF is my life’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IVF를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어려움에 대 응하는 제 모습 때문이에요. 하나같이 20대 때 배운 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거든요. “크리스천이 되면 질병이 없다, 고 난이 없다.”는 것보다 고난을 적극적으로 취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선배들에게 배웠었죠. 아내가 아픈 것을 통 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힘들고 불편해서 짜증날 때는 있어도 이것 자체를 거부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공 동체에서 말씀을 중심으로 서는 삶으로 배운 것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IVF is my life라고 해도 크게 어렵지 않죠.

다시 캠퍼스의 리더나 간사를 할 수 있다면요? 요즘 일반 사람들이 많은 것에 매여 있어요. 돈이나 쾌락, 성공과 직장 같은 것들이요.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들과 같은 삶의 패턴을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내는 능력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보여주면서 ‘인생은 이런 것도 있다!’ 고 해서 반 란을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요. 제국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논리대로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지 않을까 싶어요. 58


대학가

페이스북과 책을 통해서 삶을 나누시면서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요? 오픈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많은 그 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 지 못해요. 회개는 하나님께 수치를 당하는 것인데 수치를 당하지 않고 회개하려고 해요.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이야기 해 놓고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죠. 우 리가 사는 세상은 긍정적인 것만 요구해요. 그래서 우리에게 이미 있는 죄들을 덮어두고 삶 과 인격의 작은 부분만 보이게 돼요. 제가 글을 쓸 때 크게 두는 강조점은 결국 긍정적인 모 습이든 부정적인 모습이든 간에 두 가지 모습 모두 나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온전한 인간을 보여 준다고 할 때 솔직하게 글을 쓰지 않고는 안 된다는 거죠.

솔직한 글을 쓰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만큼 사람들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요. 수위 조절은 어떻게 하시나요? 거의 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른 형제, 자매들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글은 수위 조절을 하죠. 느낌과 감정은 거의 다 드러낸다고 보면 돼요. 때때로 어떤 사람들이 “목사가 이렇게 해도 됩 니까?” 하면 “그럼 목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반문을 하죠. “그렇게 하면 안 될 텐데 요.”라고 답이 오면 “글쎄요, 제가 생각하는 목사 상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하죠.

집필 작업, SNS, 어둠별 프로그램까지 바쁜 생활 속에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소통하는 일을 이어가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체면 같은 것들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요. 특히 한 국 교회는 ‘기뻐하라 감사하라’만 가르치는 경향이 있어요. 울고 싶을 때 울면 되는데 상갓집 에 가면 “아빠가 천국 갔지만 너무 슬픕니다.” 보다는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 아빠가 천국 갔 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걸 원하죠. 하지만 아픔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에요. 지금도 누군가는 질병 등으로 다른 이와 똑같 은 아픔을 겪고 있죠. 이 보편성은 사람들을 무장 해제 할 수 있는 큰 능력이 있어요. 아픔이 공감을 이끌어 내거든요. 비록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있거나 보이지 않지만 보편적인 고통을 나눔으로써 서로 연대하는 거대한 긍휼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서 소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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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 생각하는 고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낫게 해 준다는 약속을 해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요. 아프고 힘들지만 견디다 보면 새로운 은혜도 많이 받고, 단련도 되고, 영적 여정에 꼭 필요한 연단의 과정임을 틀림 없이 알게 되지만, 그 정도로 힘드니까요. 그래서 저에게 고통을 말하라면 ‘고통은 하나님의 가시다.’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물론 우리가 깨어진 세상에 살기 때문에 죄 때문에 겪는 고통이 많죠. 제가 겪는 이 일이 무 슨 죄로부터 왔는지를 묻는다면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훈련이 시 작되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 고통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고통은 가시 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그 외에 목사님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놀자 아닐까요? 놀자! 인생은 놀아야 하죠!

목사님은 무엇을 하실 때 즐거우신가요? 공차고 놀 때요. 놀자는 말은 잔치로의 초대 같아요. 예수님께서 천국을 잔치로 표현할 때 초청해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대화하잖아요. 우리는 노는 것을 열심히 일하고 쉬는 것으 로 생각하는데 놀이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생의 특권이에요. 하나님의 풍성하고 부요하심 을 마음껏 누리는 그런 의미로서의 ‘놀자’에요. 하나님과 사귀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을 위해서 살겠어요. 그분과 함께 노는 것을 가르치면 그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그분 의 통치 안에 살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인터뷰가 모두 끝난 후 두 기자는 한 권씩 들고 온 목사님 책을 여느 소녀 팬 마냥 들이밀며 사인을 요청하였다. 주위 사람들을 더 사랑하기 위해 아픔과 고통을 나누고 계시는 목사님의 삶을 들으면서 따뜻한 봄날에 포근한 위로를 경험하였다.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며 사는 목사님을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살자 고. 돌아가는 발걸음에 깊은 다짐을 담아 왔다.

김수지 한남대 프랑스어문학 11, 학생기자 한지선 경희대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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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온 세상

Intro

모든 피조 세계가 길을 잃고 신음하는 상실의 시대를 살며 우리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온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61


캠퍼스, 살아 있네 1

글_백소망

한예종에 아름다이 피어난

*들-꽃 *들-꽃은 버들+돌꽃의 합성어, 두 지부를 함께 부를 때 사용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석관캠퍼스에 IVF가 생겨난 시기는 2007년 11월! 한 형 제의 귀한 헌신을 통해 하나 둘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서였다. 09년에는 기적처럼 일곱으로 늘 었고, 11년에는 서초캠퍼스를 개척했다. 개척 지부가 개척을 하는 흔치 않은 상황 속에서 졸업한 학사들 이 활동학사를 자처하고, 학사리더가 세워지는 아름다운 광경을 목도하는 중이다. 고심 끝에 석관캠퍼 스는 돌꽃, 서초캠퍼스는 버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존재가 사역이다’라는 Purpose로 시작한 한예종에서의 IVF 운동은 생각보다 잘(!)됐다.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친구들이 많은 캠퍼스에서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뛰어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신 앙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하던 친구들에게 IVF에서 말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자유를 선포하는 복음이었 고, 주야로 계속되는 작업과 연습 그리고 과제 속에 찌든 친구들에게 동방은 지친 몸을 누이는 공간이자 과에서의 설움을 토로하는 해우소(解憂所)였다. 그렇다고 게토가 되진 않았다. 리더들은 자기가 속한 과에서 학회장이나 대표를 하며 주도적으로 학과 생활을 했다. 피곤했지만, 학과 선후배들에게 신뢰를 얻으며 IVF 일정을 따라 학과 일정을 짤 수 있는 편 리함을 얻기도 했다. 공동체 사람들하고만 지내기보다 학과 친구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레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기도 하고, 그들이 먼저 찾아오는 일도 빈번했다. 학내 문제를 다루는 다른 동 아리와도 연대해 함께 문화제를 준비하거나, ‘격려 LGM’을 통해 시험 기간에 학교에 남아 야간 작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샌드위치나 핫케이크를 나눠 주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워낙 이런 이벤트가 없는 학 교이다 보니 안티크리스천이 많음에도, 한예종 캠퍼스에서 IVF의 이미지는 꽤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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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자랑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말씀 속에 능동적으로 뛰어드는 태도이다. 한예종 LGM(큰모임)에는 ‘설교’가 없다. GIBS(Group Inductive Bible Study)를 하는데, 함께 성경 본문의 장면을 4컷 만화로 그리거나 성경 인물의 심정에 이입을 통해 말 씀을 맛본다. 이것을 통해 얼마나 말씀이 맛있는 것인지, 그 말씀을 소화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많은 친구들이 경험한 다. 리더모임에서 함께하는 PBS 나눔도 좋은데, PBS를 제대로 못해 오더라도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경험하는 풍-성한 은혜 가 있다. 가장 좋은 건 작업을 함께한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오빠에게 삽입 음악을 써 주고, 졸업연주회를 하는 동생의 영상을 촬영해 주기도 하고, 졸업 작품으로 드라마를 찍는 친구의 엑스트라가 되어주기도 한다. ‘품앗이’랄까. 기꺼이 서로의 작업을 돕고, 돕는다. 그저 함께 창조하는 것으로도 신남의 에너지를 생성한다. 신남! 신남! 이 에너지는 북서울 지방회 행사(수련회 오 프닝 공연이나 홍보 영상)나 기타 IVF 행사에서도 발휘된다. IVF 운동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시도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다. ‘실패하면 또 다르게 해 보면 되지 뭐 아하하하하하하하’의 정신이 만연한 것이 한예종 지부의 힘이다. 더 자랑하고픈 것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해야겠 다. 궁금하신 분들은 LGM이나 리더모임에 놀러 오시라!

백소망 한예종 서초캠퍼스 09, 활동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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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살아 있네 2

글_박소연

그 중에 홍대를 만나

톡.톡 튀는 공동체를 말하다 talk. talk 홍대 세종캠퍼스가 있는 조치원에 처음 발을 딛고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시골이구나!’ 정문 건너편에는 복숭아밭이 있고, 학교 뒤에는 산길이 있 는 이곳 조치원은 홍대의 독특한 분위기와 더불어 깨나 정적이며 고립된 공간이다. 고요 한 시골 냄새가 나는 조치원에서 사는 홍대 공동체를 IVF 비전을 담아서 표현한다면 한 마디로 ‘역동’이다. 지속적으로 세워진 새벗 출신의 리더들과 ‘조형대’라는 다소 독특한 성향의 전공자들이 우리의 에너지와 자발성과 역동성을 끊이지 않게 한다.

공동체의 역사와 열매 홍대 공동체는 2005년 처음으로 개척하였고 2009년에 인원이 급증하여 2011년 정동아 리로 승인됐다. 그리고 수련회 소망의 밤과 홈커밍데이를 통해 학사님들과 소통하는 시 간을 꾸준히 갖고 있다. 광야와 같던 개척 시기 때 헌신과 소망으로 섬겨 주신 학사님들, 변화의 시기(2009-2013)를 감당하신 학사님들, 재학생들 모두 그 헌신의 시간을 통해 결 실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몇 가지 작고 특별한 일들은 때때로 지난 시 간을 더 선명하게 추억하며 웃음 짓게 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소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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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세상을 향하다 공동체 내 사회부는 2011년에 리더 한사람이 자발적으로 만든 이후 멤버들이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면서 그 흐름과 문화가 지속돼 왔다. 특히 사회부에서 진행한 이슈파이팅은 공동체가 세상과 소통하는 장이 되었다. 컴패션 기부금 모금, 빅 이슈 홍 보, 옷캔 캠페인(옷 모으기), 새터민 학교 기부 프리마켓 등 그리스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며 시작하였고 대 부분 외부 단체와 소통하며 진행하였다. 이처럼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해서 사회에 관심이 없던 지체들과 캠퍼 스의 다른 학생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캠퍼스를 향하다 또 다른 방식의 소통도 있었다. 2011년 가을, 조형대가 디자인을 함께 고민해 보자는 취지로 공주 한옥마을에 1박 2일간 캠프 를 떠나 강의를 듣고 함께 장래 계획을 구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전공자들끼리 모여 비전과 고민을 나눴던 귀한 시간이었 다. 2013년 축제 기간에는 공동체의 모든 멤버가 자발적으로 작은 음악회를 기획하여 교내에서 진행하였다. 음악을 통해 캠퍼 스와 소통하고자 했고 타 캠퍼스의 IVF 공동체와 홍대 캠퍼스의 다른 동아리 및 학생들과 교류하는 시간도 가졌다. 우여곡절 도 많았지만 소통의 장을 만들고자 시도한 일은 공동체를 알지 못하는 이들과 더불어 사는 가능성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의 공동체를 소망하다 많은 일을 하는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했다. 앞으로도 홍대 공동체가 자발성을 가지고 다양한 소통과 도전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개인의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공동체성이 약해지는 세상에서 ‘누군가 제안하고, 누군가 시작하여 서로 함께하는 시 간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들이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박소연 홍대 세종캠퍼스, 프로덕트디자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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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살아 있네 3

글_김인기

세상을 바꾸는

UNIST

파릇파릇 봄기운이 돋는 3월, UNIST IVF의 LGM 현장이다! 14학번 친구들은 처음 마주한 공동체의 분위기에 어쩔 줄 모르 지만, 고맙게도 딱히 이런 분위기가 싫지는 않은 듯 공동체 곳곳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다. UNIST IVF가 세워진지 올해로 다 섯 해를 맞이한다. 지부 개척 당시에는 리더십이 없어서 가까운 울산대 IVF 리더들과 소수의 UNIST 09학번 지체들의 기도 와 헌신을 통하여 세워졌다. 5년이 지난 지금, 공동체는 18명의 리더와 100여명의 멤버들이 함께하는 모습으로 자라났다. 또한 올해부터 15개의 소그룹 중 2개의 소그룹을 복음에 관심 있는 12명의 새벗 친구들로 구성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힘 쓰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의 다른 지부의 도움을 받았던 공동체를 이렇게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UNIST는 개교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다른 지역의 학생들은 아직 학교에 대해서 잘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UNIST(울산과학기술대학교)는 도심이 아닌, 멧돼지와 노루 출몰 주의 지역인 울주군의 깊은 산 속(원래는 학교 부지가 그 린벨트였다는 소문이...) 언저리에 뜬금없이 세워진 과학기술연구중심 국립법인화대학이다. 다른 대학과 다르게 UNIST는 학교 구성원의 출신 지역이 다양하다. 대다수 학생들이 수도권과 경상도 지역 출신으로 이루 어져 있지만 충청, 전라, 강원, 제주에서 온 학생들이 캠퍼스와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지체들이 모 였기 때문인지 각각의 멤버마다 톡톡 튀는 개성을 갖고 있고 그런 개성이 하나로 잘 녹아든 독특한 공동체의 모습을 띠고 있다. 또, UNIST는 전교생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학교다. 사실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자취할 곳이 없어서 기숙사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공동체 하우스는 없지만 함께 학식을 먹고 야심한 밤에는 치킨을 먹으면서 교제 한다. 기숙사 생활이 공동체 활동에 빛을 발하는 부분은 늦은 시간에도 IVF 모임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매주 수요 일 8시 30분에 LGM을, DPM은 수요일을 제외한 매일 밤 10시에 지키고 있다.(소그룹 모임도 늦은 저녁 시간에 많이 있다. 우리는 올빼미족!) 자취생이 많아 일찍 모이는 다른 지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돌아갈 차 시간 걱정 없이 모일 수 있는 환 경이 감사하다. 가끔씩은 이런 늦은 모임 이후에 자발적인 모임도 있다. LGM, DPM이 끝난 후 마음 맞는 형제 혹은 자매들 끼리 기숙사에 모여서 관계와 육체의 회복을 주는 치느님과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누는 비정규·정기적 모임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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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청소Day’라는 프로젝트는 지난 2,3학기(작년까지 UNIST는 기존의 학기제와 다른 3학기제를 시행했다)에 각 학기마다 1번씩 2차 례 실행했다. 청소Day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섬김은 무엇일지 이야기하던 중에 한 호실에 여러 명의 학생들이 함께 살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서 기숙사 공동 구역인 화장실과 거실 등을 청소하지 않는 모습이 떠올라 시작하게 됐다. 기숙사를 청소하 며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 예수님의 보혈을 깊이 묵상하기도 하고 이를 계기로 많은 IVFer들이 평소 어색했던 한집 식구와 이야기 문 을 트기도 했다. ‘생각뿌리포럼’은 진리를 탐구하고 따져 보기 좋아하는 학교 학생들의 면모가 종합적인 결정체를 이룬 기독교 세계관 포럼이다. 본 교 최원영 교수님, POSTECH 장수영 교수님, IVP 편집장 노종문 간사님과 같은 연사들로부터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강의를 듣고 주 변에서 쉽게 마주하는 다른 가치와의 충돌 속에서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이 포럼은 UNIST IVF와 다른 영남동부 지방회 IVF 이외에도 울산 지역의 대학생 크리스천이 함께한 범 캠퍼스적 기독지성 운동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방학마다 떠나는 ‘세상을 바꾸는 여행은’ UNIST IVF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울산대 ‘유토피아’(일반 대학생들의 단체)의 ‘세바여’에 서 아이디어를 얻어 크리스천다운 콘텐츠를 담아 재탄생시킨 활동이다. 이제까지 3차례에 걸쳐 전남, 강원, 제주 3지역을 다녀 왔고 해당 지역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또한 그 지역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전도하는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통해 이 세상의 필요를 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의 여행은 하나의 내적 성장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UNIST IVF가 꾸준히 성장하며 여러 가지 변화를 겪고 회심해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런 공동체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금에 만족하여 멈춰 서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도록 많은 격려와 기도를 부탁드린다.

김인기 UNIST 기계공학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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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

글_김하나

꿈같은

새터민 친구

To. 지민

지민아, 유난히 추울 것만 같았던 작년 11월 마지막 날, 우린 처음 만났잖아. *하나누리가 주최한 *Camp Shanti를 통해 말이야. 전국 곳곳의 IVFer들을 만난다는 건 낯설기만 했 는데, *여명학교에서 한 팀을 이룰 새터민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어색하겠지만 꽤 기대 됐었어. 그때까지도 새터민은 전혀 만나보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가깝고도 먼 존재였 으니까. 한 민족이지만 갈라져 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처럼. 그러나 우린 한 팀에서 유일 한 동갑내기로 만났고 함께 수업을 준비하면서 거리낌 없이 금세 가까워졌잖아. 우리가 인도 국제로뎀학교에 도착했던 첫 날밤을 기억하니? 안개로 덮인 달빛 아래서 번갈아가 며 펌프질을 해주며 씻고, 랜턴을 들고 어두운 화장실 문 앞을 서로 지켜 주고, 냉기가 올 라오는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막막하고 깜깜했던 그 밤 말 이야. 그렇게 그 곳 특유의 향기와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게 자연스레 스미었던 것 같아. 광활한 하늘 아래 초막에서 수업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두런두런 모여 네 이 야기를 들었던 날 기억하지? 생명을 걸고 북한 땅을 건너 태국과 라오스를 걸쳐 중국까 지 가서 6년 동안 겪었던 너의 이야기를 잊지 못할 거야. 어린 시절, 이해할 수 없는 여 러 가지 시련에 맞섰던 너. 몸과 마음이 힘들고 위태했더라도, 순간순간 신실하게 하나님 을 의지했던 너. 그런 너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던 네 삶의 간증이 아직도 생생해. 너 를 다듬으시고, 빚어 가시는 그 분의 손길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어. 하나님을 향한 너 의 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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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이렇게 만난 내 친구야. 너의 존재는 나에게 뭉클하게 다가오면서도 하나님과 삶에 대한 깊은 도전이 되기도 했단다. 하나님께서 너를 한국으로 인도하신 것과 네가 이곳에서 마 음껏 꿈꾸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참 감사하다고 했지? 기쁨으로 삶을 누리는 게 느껴

* ‘지민’이라는 이름은 본인의 요청으로 인한 가명입니다. * 하나누리 : 하나누리는 다양함이 어우러진

져서 나도 감사했어. 네가 여명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IVF 공동체와 함께하게

하나됨을 꿈꾸며 2007년 첫 걸음을 내딛었습

되어 가슴 설레고 벅차다. 네가 공동체에서 말씀과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고 풍성히

니다.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 있는 갈등을 평화

누릴 날들이 기대돼!

로 조율하며, 서로 다름이 더 큰 하나됨으로 전 환되도록 일하고 있습니다.

네가 새내기로서 우왕좌왕 부딪치며 적응했던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수고했다고 위로

* Camp Shanti : 하나누리 주최로 남북청년 이 인도 국제로뎀학교에서 하는 교육봉사활동.

하고 싶어. 집이 멀어 왕복 3시간이 넘게 통학하는 것으로도 많이 피곤할 텐데, 처음 접

* 여명학교 : 여명학교는 고학력 저학력 북한

한 전공과목들과 영어로 발표하는 수업 진행이 낯설어 적잖게 당황하며 걱정했던 시간을

이탈 청소년들이 내적 치유를 받아 건강을 회

잘 견딘 모습이 자랑스러워. 그래도 이곳저곳을 다니며 도움을 받고, 힘을 내어 노력하

복하고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뿐 아니라 이래

는 모습이 대단해. 캠퍼스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나 과 친구들과 IVF 공동체와 함께 할 때 발휘되는 너의 씩씩함과 친화력이란! 참 멋진 친구야 넌. 나는 그런 너에게 많은 것 을 배우고 있어. 지민아, 고마워. 너와 함께하는 것이 나에겐 활력이자 기쁨이고 가슴 떨

통일한국에 소중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인재로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4년에 세워졌습니 다. 2010년에 서울시 교육청에서 고교과정 학 력인가를 받은 학교입니다.

리는 소망이야. 곧 통일이 되면 우리 같이 네가 살던 곳도 놀러 가고 한반도를 누비며 방 방곳곳 여행 다니자! 지난겨울, 우리는 인도에서 꿈같은 1월의 여름을 보냈잖아.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았어. 지민아, 우리가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것 같아. 겨울이 지나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날이 오듯, 우리 민족에게도 이런 찬란한 계절 이 반드시 온다는 소망이 있는 만남이랄까. 마치 우리가 인도에서 보낸 푸르고 무성했던 여름날처럼, 너와 나 사이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는 평화와 사랑의 그 날이. 지민아, 우리 그 날을 기대하며, 함께 가자. 사랑해 친구야.

from. 하나

김하나 이화여대 경영학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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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둥그니까

글_임수연

베트남 친구 ‘짱’은 짱짱맨

떠남과 만남 나는 지난겨울, 서서울 지방회 베트남 선교여행 4기 팀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다. 베트남에 간 것은 조금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학기 내내 무기력했고,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베트남 선교여행 모집 소식 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과 하나님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에 도망치듯이 선교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준비모임을 하면서 ‘그곳에서의 하나님 나 라는 어떨까’라는 궁금증과 그들과 하나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갈망을 안고 베트남에 갔다. 베트남 도착 후 둘째 날 아침, 캠퍼스 투어를 가려고 숙소 로비에 모였을 때 짱을 처음 만났다. 베트남은 교 통수단이 거의 오토바이라서 NTC(베트남 IVF) 친구들은 우리가 어딜 가든지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줬었는데, 짱도 그들 중 한명이었다. 짱은 베트남 다낭외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NTC 친구다. 그러다 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소통하기 쉬웠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통역해 주었기 때문에 더 빨리 친해졌다.

베트남 NTC 짱의 나라인 베트남은 공산권 국가다. 그곳에서는 당의 주의를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종교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전도하기 는 아주 어렵다. 교회 밖에서의 종교 활동은 관리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받기가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한다. 그 래서 NTC에서는 전도를 위해 몇 년 전 부터 운동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운동대회를 위해 멤버들이 같이 축구, 캡틴볼 등을 연습하고 경 기한다. 그 시간은 다른 소그룹 멤버들을 알고 친해지는 좋은 기회가 되는데, 새벗 친구들도 초대해서 같이 경기를 하기 때문에 전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별히 크리스마스는 친구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날에는 NTC 친구들이 성탄 노래와 연극으로 자연스럽게 전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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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NTC는 한국 IVF처럼 매주 한번 소그룹으로 나눠서 활동하지만 도시 하나가 한 개의 NTC를 이루기 때문에 같은 학교에 다니면 같은 소그룹인 셈이다. 성경공부를 하고 게임도 하며 특별한 날에는 아웃팅도 한다. 한 주에 한 번 LGM도 있어서 같이 모여 말씀을 듣고 찬 양도 하면서 IVF와 비슷한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고 있다.

베트남 친구 ‘짱’ 짱은 지난 3월에 명지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나는 짱이 집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처음이라 힘들어할 줄 알았다. 내가 한국에 서 베트남 친구들과 연락하듯이 짱도 페이스북 메신저와 skype 화상 통화로 베트남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소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 다. 또 이미 한국 친구들과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기 때문에 한국 생활이 좋다고 했다. 이곳 생활이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다. 늘 오토바이를 타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이나 베트남 음식이 그리운 것, 그리고 관계 맺는 것의 아쉬움이 있단다. 베트남 학생들은 수업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먼저 말을 걸고 관심을 가지지만 한국 학생들은 그러지 않는 다는 짱의 얘기를 들었을 때, 한국 대학생들의 개인주의가 조금은 생소하고 삭막하게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짱은 한국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신앙생활도 꾸준히 이어 나가고 있다. 명지대 IVF에서 LGM과 소그룹 모임을 가지 고 주일에는 베트남어로 설교하는 교회에 출석한다. 이렇게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관계 맺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고맙 다. 비록 함께할 시간이 넉넉지 않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 친구 짱이 한국어 실력뿐 아니라 소중한 추억도 많이 쌓을 수 있었으 면 좋겠다.

임수연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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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만나 #3

인터뷰_하우림, 전예진

선교를 꿈꾸던 청년,

동아시아 유목민이 되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뵙기 힘든 분을 만났다. 동아시아 IFES의 신웅섭 총무님은 1년의 절반은 동아시아 곳곳을 누비시거나, 비행기에서 보내신다고. 인터뷰 다음 주에도 해 외 출장 예정이셨던 총무님! 한국 IVF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동아시아 16개 나라 를 무대로 IFES의 사역을 섬기고 계신다. 이번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총무님의 바지자락을 붙들려고 <대학가> 학생기자들이 출동했다.

신웅섭 in 한국 IVF 총무님 학생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당시 IVF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입학 당시엔 구조나 조직이 없을 때였어요. 주일 저녁에 서울 지역 40-50명의 학생들이 모이다가 학교 별로 모이기 시 작했는데 모임 담당자도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15-20명이 가족처럼 조촐하게 모였습니다. 오붓하게요. 당시 IVF가 서울하고 춘천 이렇게 두 군데만 있었는데 여름 수련회를 가면 100명 정도 모였으니, 다른 학교 사람들을 서로 잘 알 수 밖에 없었어요. 캠퍼스 분위기는 지금에 비해서 촌스럽고 재미도 없었죠. (웃음)

<대학가>가 200호를 맞았어요. 총무님도 오랫동안 IVF와 함께 하시며 <대학가>와의 추억이 있으실 텐데요? 학생, 간사 때는 큰 신문이었죠. 대표하기 전에 저도 <대학가>를 맡았었고, 그땐 간사들이 별로 없어서 다 같이 했어요. 후에는 직접 관여하진 않았지만 <대학가>는 학생들에게 전체적으로 소식을 이어주는 매개체였죠. 지금이야 인터넷, 소 셜 미디어가 발달했지만 그땐 출판물 아니면 매체가 없었으니까 학생들과 간사들이 많이 기다렸던 기억이 있어요. 72


온 세상

오랜 시간 IVF와 함께 하셨는데요. 동아시아를 담당하시기 전, IVF의 대표로서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으셨을 걸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역할은 이전과 이후 세대를 잇는 다리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6개대 사태*’를 겪으며 선배가 다 떠 난 이전의 세대, 그리고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 사이에 제가 있었거든요. 대표의 자리를 떠날 때가 됐을 때, 쉽지 않았어 요. 다른 나라에선 리더십의 교체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함께 오랫동안 기도하며 준비했기 때문에 부담 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죠.

사임 후, 어떻게 IFES와 함께 하시게 되었나요? 대표를 마무리하고 다음 진로를 위해 기도하며 학생 시절부터 결단했던 선교를 가려고 했어요. IVF가 없는 중국의 한 도시에 가서 개척을 도와 학생 운동을 일으키는 사역을 하고 싶었죠. 그러던 중, 동아시아 지역이 워낙 크고 일할 게 많으니 함께 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오래 전부터 꿈꿔온 중국 선교의 꿈을 이뤄 주시나 했는데 혼란이 온 거죠. 그러다 점점 하 나님께서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전체에 대해서 부담감을 주셨어요. 그래서 문화와 상황이 각각 다른 아시아 지역을 돕기 로 했어요.

신웅섭 in 동아시아 IFES 지역 총무라는 자리를 설명해 주세요 배우려는 마음(teachable heart)이 중요한 자리에요. 오히려 자질은 도움 되지 않아요. 다양한 문화를 순회하며 늘 저의 틀과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니까요. 지역 총무들끼리는 서로 유목민(nomad)이라는 유대감이 있어요. 모든 IVF 운동은 자발적이기 때문에 각 나라가 알아서 하지만 우리가 없으면 국제 IVF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명감이 있죠. 힘들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진 않지만 전 세계 IVF를 돕는다는 확신이 서로에게 있어요. 각 나라를 방문하여 협력의 매개체가 되죠. 만약 지역총무가 2-3년 동안 공석이면 그 지역 연합 사역은 완전히 없어지게 되거든요.

동아시아를 사역지로 삼아 광범위한 활동을 하십니다. 여러 나라 간사님들과 동역하면서 빚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일본은 우리와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예민한 편이죠. 그런데 한 일본 간사가 한국을 너무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재일교포였 어요. 일본 사회에서 그 사실은 차별받을 수 있어 쉽게 공개하지 못했던 거예요. 마음이 아팠죠. 한번은 공항 면세점에서 한국 김치를 사서 그 간사에게 선물을 했어요. 그 이후로 한동안 못 보다가 간사 수련회에서 다시 만나게 됐는데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죠. 그 간사가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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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지역에는 영적으로 어려운 나라가 많아 사역에 어려움을 겪는다 고 들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보람되는 것, 감사한 일들을 나눠 주세요 지평을 넓혀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나의 울타 리, 개념, 경계를 넘어 다양한 나라에서 여러 모양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얼 마나 위대하신지. 특히 개척 사역을 할 때는 신실하게 학생 운동의 씨앗을 뿌리 시고, 곳곳에서 꿈을 가지고 자신을 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하셔 서 감사해요.

동아시아와 IFES 운동의 과제는 어떤가요? 서구 중심이 아닌 토착적인 리더십을 세워서 전 세계적인 운동을 만들어 나가 는 게 큰 과제에요. 그 나라와 새 시대에 맞는 비전으로 운동을 계속 새롭게 하 여 ‘movement’가 되느냐, 혹은 관성의 법칙에 따르다가 ‘monument(비석)’ 가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죠. 성장을 하다가도 정체, 갈등의 위기를 극복 하고 살아남아 변화되는 ‘movement’가 되어야 하는데, 갱신과 혁신이 안 되 고 현상 유지만 되면 ‘monument’가 되는 거예요. 생명력을 잃은 하나의 조직 으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 그게 제일 큰 도전이에요. 복음에 무관심한 곳에 복음 을 뿌리내리는 것 그리고 운동을 새롭게 갱신하는 것, 서로 다른 두 과제가 동 아시아에 있어요.

더 넓은 곳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시는 총무님의 입장에서 한국 IVF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전해 주세요 한국 사회는 밟고 밟히는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패배자로 낙인찍 히는 분위기와 그로 인한 비교의식도 심하죠. 점점 미래의 꿈을 갖지 않거나 갖 지 못하고 도전하기 보다는 계속 안정 지향적이 되는 것 같아요. 점수와 자격증 에 매인 모습을 보면 우리 학생들이 참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엔 큰 그림을 그리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미래 를 바라보며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품고 가 는 내공을 가진 후배들이 되길 바랍니다.

*6개대 사태(1991~1992) IVF의 방향성에 대한 서로 간의 관점의 차이로 인해 6개 대학(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이화여대) 지부가 제명되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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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림 광운대 08

전예진 상명대 역사콘텐츠학 11, 학생기자


200호 축하 메시지 자유롭게 적어 주세요:)

다드림교회

편집위원장

편집위원

학생기자

학생기자

편집위원 조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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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호 수필 공모전

글_남희원

사랑, 세상 어디에도 없는 200호 수필 공모전 우수작 출근 시간을 흘려보낸 오전의 소요산행 열차는 고즈넉하다. 고요한 아침의 지 하철을 빠져나와 1호선 석계역 6-1 승강장에서 내린다. 계단을 지나 출구로 나 가면 아직은 쌀쌀한 초봄의 찬 공기가 끼치고, 춥다고 느낄 즈음이면 햇빛이 비 쳐든다. 마을버스 종점이 있는 굴다리 너머로 새는 햇빛에 제법 눈이 부시다. 노원 13번 마을버스는 한참을 달려 학교 정문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붕어 방 연못에서 내려 학생회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3층으로 올라가자 오 늘도 나를 반기는, 하트가 그려진 하늘색 문이 보인다. 거의 매일같이 가는 곳 임에도 나는 여전히 떨리는 마음으로 동방의 문을 연다. 오늘도 변함없이 동방 에서 피어날 아름다운 하루를 기대하면서. 2년 전 4월, IVF에 처음 왔던 날을 기억한다. 처음 입학할 당시의 나는 이미 다른 지방회에서 활동하던 친언니의 권유도 마다하고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자, 어 느새 동방 앞에 멈춰 있었다. 당시 자존감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만큼 바 닥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 힘들었던 시 간조차 나를 공동체로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게 만난 공동체 사람들은 과분한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난생 처음으로 그 런 사랑을 받았던 나는 오히려 비뚤어졌다. 힘든 티를 낼 때마다 먼저 묻고, 원 투원을 하자던 리더들에게 별 일 없다고 둘러대기 일쑤였다. 나는 깊은 이야기 를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상처 나 유년의 아픈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항상 강해야 한다 고 생각해 온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 았다. 76


대학가

더욱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이 힘겨웠다. 중학교 때 따돌림을 당했던 이후로, 조용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꼈고 관 계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사랑받으며 나의 달란트와 장 점을 발견한 이후로,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점점 변 해 갔다. 스스로를 지극히 사랑하게 된 이후 바라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 이었다. 숫기 없고 내성적이던 나는 지난겨울에 리더가 되었고, 지금은 신입생 들을 맡아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삶을 지탱해 온 것은 신앙이었으나, 그 삶을 변화시킨 곳은 공동체였다. 요즘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변화는 내게 있어 분명 기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런 종 류의 기적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오늘 아침에도 학교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는 늘 그러했듯 바람이 불고 햇빛이 비칠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내 삶에는 따스한 추 억 하나가 새겨지리라. 벚꽃이 흩날리는 봄 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도 세상은 참 아름답다. 남희원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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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make 대학가

1. 기획 아이디어 수집

10. 레이아웃 검토

2. 편집 회의

8. 편집디자인

9. 교정 · 교열

+ %

11. 종이 발주 78

12. 인쇄 파일 송고


우리가 만드는 <대학가> 올해로 어느덧 200호를 맞은 <대학가>. 편집부, 편집위원, 필자, 독자들이 있었기에 <대학가>는 35년 동안 지속해 올 수 있었다. <대학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200호가 <대학가>가 독자들의 손에 전해지기까지 특별 히 수고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그림으로 담아 보았다. 물론 <대학가>는 IVF 전체 구성원이 함께 만드는 것이고, 그들 때문에 존재한다.

3. 원고 청탁

집장 ▿편 안혜진

4. 취재 · 인터뷰 · 촬영

너 선 자이 , 문이 ▿디 롬새미 김아

래퍼 자 토그 ▿기 엄창근 ▿포 지은실

작 ▿제 김효영

5. 기사 작성 및 원고 정리

7. 인포그래픽 기획 · 디자인

6. 디자인 배당

D

김아롬새미 IVFMEDIA 간사

13. 인쇄 · 제본

14. 전국 지방회 사무실, 외부 단체 발송 79


편집실에서 드르륵. 야밤에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당장에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면 기도하 자. 분명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은 잊지 말자. 밤잠이 편치만은 않은 날들이 지만 이 밤 너희의 평안을 빈다. 우린 그 시절 참 아름다운 제주 바다를 거닐었다.” 고등 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고1 시절, 무리 지으며 다니던 친구들은 2학년이 되어 다른 반으로 흩어졌고, 이맘때쯤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 우정 변치 말자”며 에메랄드빛으로 층을 이루던 제주 바다에 모여 사진을 찍었더랬죠. 제주의 푸른 빛 때문이었는지, 13년 동안 이어 온 우정 때문이었는지 그 사진은 마음에 뿌리 깊게 박혀 있습니다. 진도 여객선 사고 소식 을 접했을 때, 푸르른 제주 바다를 거닐던 우리의 사진이 찢기는 것 같았습니다. 피조물이 탄식하는 소리가 더욱 거세어져 갑니다. 그렇다고 편집부 또한 일상 속 항해 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4월 중순, 편집부는 사무실의 층간 이동으로 뭉친 어깨를 두드 리기도 잠시 200호 마감을 시작했습니다. 허나 사무실은 한창 공사 중이라 인터넷이 마 비되고, 숨 막히는 먼지와 쨍한 기계음 소리에 집중력이 흐트러졌죠. 엎친 데 덮친다고 진도 여객선 사고 소식까지 온몸으로 받은 편집부는 어렵게 200호 작업을 마무리했습 니다. 주어진 일을 멈출 수 없었기에, 멘탈 붕괴인 상태에서도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었 습니다. 사고와 200호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려 애를 태웠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 나며 200호를 완성한 편집부와 디자인팀의 노고를 기억하며 이번호를 읽어 주시길 부 탁드립니다. 더불어 200호를 축하하며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안혜진 <대학가> 편집인

<대학가>는 IVF 공식 회보로서 학생 운동 전반과 그리스도인 대학생의 신앙생활을 위한 읽을거리를 싣고 있습니다. 한국기독학생회(IV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는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비전을 가진 복음주의 선교단체입니다.

발행일 | 2014년 4월 25일 발행처 | (사)한국기독학생회 121-837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전화 | 070-8275-6335 팩스 | 02-333-7361 E-mail | daehakga@ivf.or.kr 발행인 | 한기수 편집위원장 | 박종서 편집인 | 안혜진 기자 | 엄창근 디자인 | 문이선 김아롬새미 표지 | 지은실 제작 | 김효영 인쇄 | 예원프린팅 편집위원 | 김민영 권민우 김태경 박형석 조해근 호욱 고성지 김동현 신민경 학생기자 | 황지혜 유창환 전이슬 전예진 송동일 강동훈 김수지 권기웅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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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IVF.com에서 크리스천들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 보세요!

해가 지면 서쪽 하늘에 어둠별이 뜹니다. 깊은 아픔이 머무는 우리 영혼에도 그런 빛이 있습니다. [난 당신이 좋아], [바람 불어도 좋아] 의 저자 김병년 목사가 전하는 위로와 사랑의 이야기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교회와 공동체를 섬기느라, 오직 믿음으로 니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당연히 잘 되겠거 앞에 현실 비로소 후에 광탈 했다가 서류 바로 선 형제자매들을 위해! 다. 오쌤커리어연구소 오규덕 소장이 왔습니

2013년 누적 조회수 6만, 1회당 평균 다운로드 300회 이상! 폭발적인 인기의 “아침 설교” 팟캐스트! 매일 아침 9시, 여러분을 찾아가는 은혜 가득 말씀으로 하루를 열어보세요.

더욱 실제적이고 정확하며 예리한 취업 니다. 뽀개기! 2014년 5월. 여러분을 찾아갑

시즌 2부터 주일 아침에도 ‘말씀으로 여는 하루’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타클로반의 빛 <원화 전시회> 일시. 2014.05.07(MON)~05.23(FRI) 장소. IVF중앙회관 1층 <산책 N 잇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서교동 3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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