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13=2014. 04+05
교회다움 담벼락에 기대어, 평상에 누워 봄을 맞이해요!
ⓒ 이재웅 | 상명대98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교회다움
소리정음
04 사람이 교회다_박찬주 08 교회, 지금 이곳의 하나님나라_성민모 12 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_양우석 16 세상 안에 있는 교 회_권영석 20 북테라피_정성민 22 말씀산책_문춘근
소리지음 27 당신의 연애자소서_한선미,김효주 30 제이언니의 결혼일기_김용주 32 파란만장 직장생존기_김작가 34 상연정(常然亭)에서..._홍정환 36 낭만주의자의 영화이야기_정일문 39 소리가 만난 사람_지성근
FINE, 전북학사회 45 일상에서의 만남_김선영 47 상상 그 이상의 공동체, Fine! 전북학사회_양원규 49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영성! 전북지방 홀리민턴(Holy-minton) 51 함께 어울려 놀 때 임하는 하나님나라, 전북 학사회 1박 캠프 55 안테나 58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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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소리이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소리정음 교회다움 지난 호에 이어 학사들의 교회생활을 들 여다봅니다. 만만치 않은 마음고생을 하고 도 “교회는 나의 자랑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고백이 아름답습니다. 더불 어, 작년에 ‘말씀산책’을 연재해 주신 권영 석 목사님이 교회가 붙들어야 할 핵심가치 를 세 가지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 된 한국교회가, 사람을 아끼며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참다운 교회다움을 되찾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소리정음의 내용은 IVF의 공식 입장과 다 를 수 있습니다.)
04 사람이 교회다_박찬주
20 북테라피_정성민
08 교회, 지금 이곳의 하나님나라_성민모
22 말씀산책_문춘근
12 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_양우석 16 세상 안에 있는 교회_권영석
소리정음‖교회다움
사람이 교회다 박찬주│숙명여대93 동네 아줌마들에게 ‘운동권 언니’로 불리는 7살 쌍둥이 엄마. 정의와 평화의 하 나님나라를 일구는 운동 단체인 <평화누리>(http://peacenuri.tistory.com)의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국민이 국가입니다’라고 절규한다. <휴먼 라이브러리>에서는 ‘사람이 책 이다’는 내용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에게는 ‘사람이 교회다.’ 7살 때 동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나에게 동네교회의 전도사님이 교회에 가자고 손을 내미셨다. 그 게 내가 처음 만난 교회였다. (지금 이런 일이 있으면 유괴니 뭐니 난리 났겠지만, 그 당시에는 다 들 그런 노방전도로 교회를 만났다.) 사회성이든 사교성이든, 인간관계에는 무지 서투른 DNA를 내재하고 태어난 나에게 그래서 처음 생긴 친구는 교회친구였다. 물론 처음 만난 선생님이란 존재 도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당연히 첫사랑도 교회오빠였고, 딸 넷인 집의 첫딸인 나에게 ‘친한 언 니’는 모두 교회언니들이었다. 나에게는 시작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이 그냥 교회였다.
나의 교회사(史) 교회 중고등부 시절, 나는 나랑 이름이 비슷한 목사님의 둘째아들이었던 교회오빠를 좋아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였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항상 쉽다. 이 후로 나는 많은 교회의 오빠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교회 내의 재산을 목사님이 본인의 명의로 몰 래 옮겨 놓은 일 때문에 장로님들과 목사님이 편을 나누어 싸우기 시작했다. 나랑 가장 친했던 교 회언니는 장로님의 딸이었고, 목사님이 사람들을 속이고 공금을 횡령한 거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 아들인 오빠는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다 교회를 위한 일이었는데 장로님 들이 오해를 한 거라고 했다. 결국 교회는 둘로 갈라졌고, 목사님은 새로운 교회와 성도들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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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교회를 새로 장만하셨다. 나는 좋아하는 목사님 아들인 오빠를 따라 차를 타고 30분은 가 야하는 곳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이 과정에서 목사님의 너무 많은 거짓말과 속임수를 겪었 고, 자꾸 따지고 드는 나 같은 애를 태우러 교회봉고차가 올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하셨는지 1년 만에 봉고차 운행은 중단되었다. 별 수 없이 나는 엄마가 오랫동안 다니시던 교회로 교회를 옮 겼다. 그곳은 우리교회가 아닌 엄마네 교회였다. 모두가 나 집사님(지금은 나 권사님이 되신)의 따님 으로 나를 부르고 인식했다. 마음을 줄 수 없었다. 친구들도 모두 아무개 집사님의 딸이거나 아 무개 장로님의 아들이었다. 그냥 엄마네 교회를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다만 고등부 전도사님의 설교가 좋았다. 늘 뭔가 도전적인 분이었는데, 어느 날 교사선생님 대신에 전도사님이 성경공부 모임을 맡으셨다. 그런데 이 분의 첫 번째 행동이 성경책을 주먹으로 쾅쾅 때리시는 것이었다. 이딴 건 그냥 책일 뿐이라고 책을 믿지 말고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이 성경책을 섬기 지 말라는 말을 하셨다. 내가 겪은 첫 번째 문화충격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첫 번째가 어려울 뿐, IVF에 들어와서 많은 긍정적인 문화충격을 겪었다.) 중1때 큐티를 배운 이후로 매일 성경을 읽었고, 자기 전엔 늘 찬송가 테이프를 틀어놓고 자던 나였다. 내게는 일종의 주술행위이며 제사 행위였다. 교회를 빼먹으면 무슨 큰 벌을 받는 줄 알고 아플 때도 죽어라고 교회에 기어가던 나 였는데 말이다. 그 전도사님의 도전으로 눈이 번쩍 뜨였건만, 결국 그 전도사님은 목사님과의 갈 등으로 아무 말 없이 교회를 떠나셨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목사님한테 심방만 다니지 말고 성 경도 읽고 성경공부도 좀 하시라고 하셨다던데, 사실 확인할 수는 없으나 가히 그러셨을 듯하다. 결국 내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전도사님이 떠나시고 나는 교회에 가서 멍 때리고 지내다가 대 학에 오면서는 교회를 멀리했다. 대학 때 나는 각 학교의 운동권들이 모여 만든 연합동아리에 내 시간을 다 쏟았다. 거의 매 주일 엠티장소에서 술에 취한 채로 주일 아침을 맞이했고, 온갖 세미나로 공산당선언이니 북한소설 이니 읽으면서 말도 안 되는 말싸움을 하면서 살던 중이었다. 엄마네 교회를 떠나 작은 개척교 회에 참석하던 때였는데, 대표기도 하는 집사님은 교회에 지각한 신자들을 야단치느라 바빴고, 목사님은 온갖 다양한 심령경험들을 나누느라 바쁘셨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내 생활 과는 완전히 정반대에 있었다. 나는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차 있었건만 교회에 는 이 사회에 속하지 않은 척 사는 사람들뿐이었다. 철거민들이, 우루과이 라운드로 고통 중에 있던 농민들이 들어올 틈이 없는 교회였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IVF가 찾아 준 교회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직전이었다. 휴학을 할까 말까, 이 운동권에서 빠져나올 수는 있을까, 빠져 나온들 내가 갈 곳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친구가 IVF 종강LGM에 같이 가자고 했 다. 주일날 교회도 지루한 판국에 무슨 캠퍼스에서 예배냐고 한심해 하던 중이었다. 오로지 이 유는 단 하나, 너무 심심했고 외로웠다. 그래서 갔다. 두 번째 문화충격이었다. 교회에서 늘 듣는 복 받는 노하우 전수가 아닌 너희 잘못 살고 있다, 회개하라는 내용의 설교였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나 고민들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고 나누는 모임이 있다며 서울지역연합 사회부 모임에 대 한 광고를 했다. 그토록 내가 찾던 교회였다. 중고등부 시절 내가 강제로 뺏겨 버렸던 교회를 나 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내게는 다시 IVF친구가 생겼고, IVF언니가 생겼고, IVF간사님이 생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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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정 음
다. (물론 좋아하는 IVF오빠도 생겼다.) 한 마디로 당시 나에게는 IVF가 교회였다. (그 이후로도 계속이었다. 지금의 교회를 만나기 전까지.) IVF간사를 마치고 기독교 단체와 기독교 언론에서 일했지만, (게다가 그 언론사는 한국교회개 혁을 기치로 내건 언론사였건만) 나는 한번도 교회에 대한 희망이나 교회의 회복을 바란 적이 없 었다. 교회는 나의 사랑도 나의 고민도 나의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냥 단 하나, 베드로에게 준 천국의 열쇠처럼 결국 교회가 이 땅의 남은 희망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한 가닥 붙잡고 있을 뿐 이었다. 교회개혁운동을 하는 분들을 지지했고, 그런 분들이 모여서 만든 정관을 가진 참 좋은 교 회를 다니고 있었지만(심지어 지금의 목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였건만) 주일설교가 좋을 뿐이었 다. 목사님이 신문과 방송에 나오면서 교회성도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한 이유였고 여전히 어렵기만 한 교회어른들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면, 오랜 시간동안 교회에서 겪 은 아픔과 배신들이 미처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지금 나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나의 교회를 사랑한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평생을 걸친 교 회에 대한 상처와 배신 심지어 무관심이 사라진 것일까. 모르겠다. 나도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 다. 어렴풋이 짐작되는 첫 사건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경이 권사님과의 만남이다. 나는 임신 초기에 하혈로 응급실에 입원했다. 전치태반이라는 병명이었다. 결국 출산 때까지 꼼 짝 못하고 집에 누워만 있어야 했다. 당연히 나는 교회에 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 겨우 출산을 한 후 한 달도 되기 전에 쌍둥이를 안고 교회에 나갔다. 유아세례를 너무 받고 싶어서였다. 오랜만에 나간 교회에서 내가 과연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건만 김경이 권사님이 예배 편하게 드리라고 하시면서 교회 입구에서 바로 아기를 받아 안아 들고 가셨다. 그렇게 매주 나는 오랫동 안 기대하던 예배에 갓난쟁이 둘을 데리고서 참석할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젖먹이 둘을 데리고 사람 구경 한 번 못하고 씨름하다가 나온 교회였다. 권사님과 여러 집사님들이 아이들을 돌봐주 고 환대해주었기에 한 주간의 고단함을 씻을 수 있었고 외로움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목사님의 설교만큼이나 큰 성령의 은혜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 권사님이 우리가 교회에서 아픈 일을 겪 고 지금의 교회로 새로이 시작되던 해에 병으로 하나님 곁으로 떠나셨다. 너무 많은 분들이 마음 아파했지만, 아기 엄마들은 모두 권사님에 대한 감사한 추억으로 이 헤어짐을 특히나 슬퍼했다. 또한, 병상에 계신 권사님을 위해 온 교인들이 합창곡 ‘할렐루야’를 연습해서 동영상으로 전해드 렸던 일은 권사님뿐만 아니라 온 교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해지는 공동의 첫 경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교회 공동체 공동의 은혜로운 경험들, 승리의 기억들을 쌓아가면서 친밀해졌다. 김경이 권사님이 나의 교회에 대한 낯섦, 껄끄러움을 없애주신 첫 따뜻함이었다. 나는 권사님으 로 인해 환대받는 따뜻한 교회를 회복했다. 지금 나의 교회는 예배 후 공동만찬을 드린다. 각자 집에서 밥과 반찬을 만들어 오고, 식판과 텀 블러를 챙겨 와서 함께 성만찬을 하고 식사를 한다. 나는 이게 그렇게 좋다. 매일 대충 끼니 때우 는 밥과 반찬에 질려 있다가 남이 차려준 음식을 푸짐하게 먹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교회 집사님들은 주일아침마다 이 음식을 해오느라 정말 바쁘실 텐데 나도 뭐라도 만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부담이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쌍둥이 챙겨서 교회 오느라 정신도 없는데 반찬까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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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러 만들어 오느냐고 그냥 맘 편히 오라고 하신 덕에 아직까지 쭉 맘 편히 먹고 있다. 일단 교회 만 가면 애들 데리고 알아서 놀아주시고 돌봐주시고 밥 차려 주시는 김경이 권사님의 후배들 덕 에 지금도 따뜻한 환대만 마냥 누리고 교회를 다닌다. 이제는 뭐라도 섬겨야지 싶어서 작년에 애들이 유치원에 가자마자 교회 집사님과 권사님들의 성경통독모임에 참여했다. IVF에서 간사를 했던 시간들 덕택에 성경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어 서 교회에서 받기만 한 것에 뭔가 체면치레라도 되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건만 ‘성경 선생님’이 라며 칭찬해 주시고 고마워 하셔서, 도리어 내가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로서는 교회 언니·오빠들을 다시 얻은 시간이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한 문화센터를 빌려 주일날만 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주중에는 따로 카페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각 집을 돌아가면서 구역모임을 한다. 이렇게 친해진 우리는 서로를 돌보게 되었고, 깊이 있는 나눔으로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힘들고 고단한 삶에 쉼을 얻을 수 있었다. 한번은 남편과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고 화가 나서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한 적이 있다. 남편과 나는 교회를 정말 좋아했고, 남편에게 가장 상처를 주는 방법은 내가 교회에 가지 않는 것이었 기 때문이었다. 결국 혼자 애들을 데리고 교회에 간 남편은 교회 언니·오빠들의 질문공세에 시 달렸고, 무척 반성했다. 그 다음 주에 교회에 나갔을 때 교회집사님들이 윤 집사가 속 썩이면 이 언니들을 부르라며 칠공주파 흉내를 내주었고, 교회 오빠들이 “몰래 불러서 매타작을 좀 해 줄 까?” 하는 통에 오픈 부부싸움이 웃음으로 해결되기도 했다.
사람이 교회다 학생시절, 나는 교회가 이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면 차라리 교회를 버리고 이 사회의 아픔에 동 참하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온갖 비리와 세속적인 탐욕으로 물들어 있다면 더 단호하게 싸워야만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으로 교회개혁운동을 하고 사회 참여를 하는 교회 친구·언니·오빠들을 만났다. 존경하는 목사님을 가질 수 있고, 그 목사님을 멘 토로 삼을 수 있는 교회를 만났다. 이 좋은 교회에서 나는 내 평생에 가장 좋은 스승이던 선배 간 사님도 주일마다 뵐 수 있다. 훌쩍 큰 쌍둥이도 교회 친구와 놀고 언니·오빠들을 만날 수 있어서, 매일 “오늘 우리 새맘 교회 가는 날이야?” 하고 묻는다. “응, 우리 교회 가자. 예배도 드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언니·오빠들도 만나러 가자.” 이번 주일에도 우리는 각자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아이들은 언니·오빠들하고 같이 가지고 놀 장난감을 챙기고, 나는 성경공부모임을 이끌 참고서적들을 챙기고, 남편은 식판과 컵을 챙겨 신 나게 교회로 향한다. 이게 웬 복이냐! 주일이 이렇게 즐거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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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정 음
소리정음‖교회다움
교회, 지금 이곳의 하나님나라 성민모│연세대93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통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 커피전문점을 하는 아내와 언젠가는 한국 땅을 떠나서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주일 오전 11시,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교회 협력센터 2층 새문안 홀. '그안에 교회' 주보에 쓰여 있는 예배 시간과 장소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장소를 잘못 알았나 싶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 내려고 하는데, 양복 입은 아저씨 한 분이 짐을 한 아름 안고 들어서면서 인사를 한다. 담임목사 님이라고 한다. 뒤이어 도착한 고등학생 또래의 아이들은 자리를 잡고 바이올린의 줄을 맞춘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선다. 예배 시간인 11시가 훌쩍 넘었건만 서두르는 사람은 없다. 잠시 후 돌이 조금 지난 아기가 들어 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향한다. 한 주간 아이가 건강했는지 확인하고 덕담도 나누며, 돌 아가면서 한 명씩 아이를 안아본다. 이후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먼저 이 아기에게 다가간 다. 30분이 훌쩍 지나서 목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 ○○네 가정이 차가 막 혀서 늦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예배를 시작하겠다는 거다. 그 한 가정을 기다리기 위해 예배가 지 체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기다리면서 도리어 교제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드디어 시 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네가 도착하고 예배를 시작한다. 예배 시간에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돌이 지난 아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 힘찬 기합 소리를 내며 목사님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목사님도 성도들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이제 아이가 혼자 걸 음을 뗄 만큼 성장했다고 대견해할 뿐이다. 찬양 시간에는 뒤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난다. 언니 들의 관현악 연주를 따라 하고픈 어린아이가 멜로디언을 아무렇게나 불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 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어수선함의 하이라이트는 유치원에 갓 입학한 어느 남자아이다. 목사님 이 한창 설교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서 뜬금없이 왜 명왕성이 행성에서 퇴출 되었는지를 목사님에게 설명한다. 하지만 목사님이나 성도들은 역시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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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어린아이가 행성에 그렇게 관심이 깊은 것을 신기해하며 함께 즐거워한 다. 물론 아이는 엄마에게 끌려갔지만, 잠시 후 찬양 시간에 다시 앞으로 나 와서 제법 박자에 맞게 지휘를 한다. 봉헌 시간에는 헌금 바구니를 들고 앞 으로 나가겠다고 멜로디언을 부는 여자아이와 다툼을 한다. 결국 주위 어른 들의 말씀에 따라 둘이 사이좋게 들고 나갔다. 설교는 아이들을 위해서 또 어른들을 위해서 2번 연속으로 했다. 먼저 전 도사님이 유치부 아이들 5명 앞에서 포도나무 그림을 세워 놓고 설교를 하 신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의 엉뚱하고 창의적인 대답에 곤혹스러워하면서 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어린이를 위한 설교지만 의외로 어른들 도 꽤 집중해서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 설교를 마치고 아이들과 청 소년은 별도의 시간을 위해 나가고, 그제야 어른들을 위한 설교가 시작된다. 목사님의 설교는 약간 졸리고 난해하기도 하지만, 기존에는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이야기이다. 특히 풍부한 히브리어 지식을 바탕으로 구약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새롭고 참신하다. 조금 지루해질 쯤, 어디선가 풍겨오는 맛 있는 냄새와 함께 설교는 끝을 맺었다. 식사 시간이 되었으니 예배를 마치 는 것이다. 점심식사는 뷔페식이다. 각 가정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온 반찬이 상에 펼쳐 지고 사람들은 마음대로 가져다 먹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이 느껴지 는 음식이다. 오늘은 특별히 담임목사님이 직접 개발했다는 버섯전 야채무 침이 눈길을 끌었다. 본인도 꽤 뿌듯한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반응을 묻는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긴장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음식이 하도 맛있어서 한 접시를 더 먹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이 배부른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 원래는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삼삼오오 모인 사 람들의 나눔이 산으로 가면서 대화는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왠지 이제는 성경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성경공부는 건너뛰고 삶을 나누는 것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나의 모교회는 전형적인 한국교회였다. 십여 명으로 개척을 시작해 지연과 혈연을 중심으로 교회를 확장하여 수천 명으로 부흥을 시켰다. 교회 건물도 꽤 크게 지었고 그 과정에서 전형적인 건축헌금 모금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 도 당신들의 집을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건축 자금을 대셨다. 목사님은 사람 은 좋은 분이었지만 헌금에 민감했다. 설교의 대부분은 십일조와 그로 인한 물질적 축복에 관한 것이었고, 돈이 들어가는 일이 있을 때에는 직분별로 헌 금이 할당되어 주보에 실렸다. 그리고 그 목사님이 은퇴를 하고 난 후, 교회 돈으로 미국에서 10여 년을 유학한 큰아들이 교회를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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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F 출신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도 교회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 다. 그리고 대학 졸업을 즈음하여 결국 모교회를 떠나기로 했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녔다. 개척 교회부터 대형 교회, 보수적 교회에서 진보적 교회까지... 하지만 정말 '이 교회가 내 교회다'라 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교회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높은 것일까? 내가 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 던 중에 우연히 만난 교회가 '그안에 교회'였다. 그리고 이제는 이 교회를 '나의 교회'로 여기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지금 이 교회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첫 번째 대답은 밥이 맛있어 서이다. 실제로도 밥이 맛있지만, 이 ‘맛있는 밥'에는 혀로 느끼는 맛 이상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로 우리의 점심 밥상은 '이동식'이다. 아무 것도 없는 강의실에 밥상이 차려지기 위 해서 주일마다 교인들은 자기 몫의 짐을 잔뜩 가지고 온다.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우리에게 재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자유를 준다. 둘째로 우리의 밥상에는 '어머니의 마음'이 들어있다. 이 점심은 몰려오는 수십 명의 입을 때우기 위해 준비하는 식사가 아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점심 도시락을 싸는 준비와 정성, 그리고 수고로 만들어진다. 경험하지 않고 글로만 설명해 내기에는 힘든 ’마음’이 들어있 는 식사다. 이건 그냥 먹어보면 알 수 있다. 셋째로 여기에는 '나눔'이 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가 아니라, 서로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누고 싶어서 차리는 밥상이다. 내가 먹는 음식을 다른 사 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즐거이 내어 놓는 음식, 그것이 우리 교회의 주일 점심 밥상이다. 내가 우리 교회를 자랑하는 또 다른 모습은 '하나를 위한 다수의 배려'이다. 이 세상은 다수를 위해 하나가 희생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나라의 법칙은 한 명을 위해서 다 수가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이다. 아마 많은 기독교인이 이것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을 실현하는 교회는 별로 없다. 심지어 꽤 '진보적'이라고 하는 교회에서도 그 진보적 가치 를 위해서 개별 교인의 희생과 공동체에 대한 종속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군가는 예 배 시간에 늦는 1명을 기다리는 것이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 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1명을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예배는 '무언가를 하 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다림도 함께 한다면 그것 역시 우리 예배의 연장이다. 또 다른 교회의 자랑거리는 '통합적 삶과 예배'이다. 나는 삶과 예배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믿 는다. 왜 우리 교회가 굳이 어른 설교와 아이 설교를 같은 예배시간에 하냐고 묻는다면, 그 대 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삶을 보여준다고 대답하고 싶다. 아 이의 삶과 부모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면, 설교도 분리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부모가 아이의 공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함께함을 통해 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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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정 음
성장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향한 설교를 통해 그 아이들의 신앙의 성장 에 동참하고 또한 자신의 성장을 다시 바라본다. 이러한 통합의 원칙은 설교의 방법뿐만 아 니라 한 교인의 삶의 현장에 전체 교인이 관심을 갖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우리가 예배를 함 께 드린다면 삶도 함께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물리적 삶을 모두 함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각각의 삶의 현장이 어떠한지는 이해해야 하며 그 현장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고민과 기쁨이 함께 나눠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우리 교회는 별 볼 일 없는 작은 교회다. 교회 건물을 유지할 재정적 능력도 없고, 인원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냥 열 가정도 안 되는 30여 명의 교인이 그럭저 럭 모여서 간신히 유지해가는 교회로 보일 수도 있다. 워낙 인원이 적다 보니 모든 성도가 한도껏 헌금을 내더라도 목사님 생계비를 유지하기도 빠듯하다. 그래서 목사님이 신대원 강 사도 뛰시고, 다른 가욋일을 하셔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우리 교회가 좋다. 뭐가 좋은지 글로 써 달라고 해서 주저리주저리 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건 순전히 나 혼자 만의 생각이다. 어쩌면 나와 함께 이 교회를 좋아하는 아내는 내가 소설을 썼다고 구박할지 도 모른다. 교회를 만나는 것은 아내를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나에게 수많은 여자 중에서 왜 지 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할까? 나는 아마 또 나름대로 몇 쪽에 걸쳐서 이유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게 그렇게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내 생각과 아내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내가 지금의 '그안에 교회'를 만 난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왜 그 교회를 좋아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도 있겠 지만, 그것은 교회 전체의 생각도 아니고 정확한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나라를 느끼고 산다는 점이다. 이것은 경험이지 논리가 아니다. 이 시간에도 자신의 교회를 찾아 헤매는 많은 IVF 학사들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는 모든 기대를 접고 그냥 자기가 교회의 현실에 적응하기로 결정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 만 그러기에는 우리의 삶이 정말 소중하다. 좋은 배우자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에게 좋은 교회를 만나기 위해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찾 아보는 수고도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맞는 좋은 교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나의 경험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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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정음‖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나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 양우석│연세대07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였고, 지금은 동대학원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중이다. 무언가 원대한 가치를 따르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저 평범한 공대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교회에 잘 붙어 신앙을 배워가며, 인생의 숙성기를 잘 보내고 있다.
부담 원고 요청이 들어왔다. 현재 '만족스러운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학사'로서 교회에 대한 글을 써달 라고 한다. 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마치 '행복한 가정생활의 비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 은 것만 같다.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나, 그래도 나는 나름 다양한 스펙트럼에 있는 교회들을 겪 으며 고민을 해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 다니는 교회를 만나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거창한 글이 아니라도 청탁 의도에 부합한 글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동안 교회를 옮겨 다니면서 했던 수많은 고민들과, 현재 교회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솔직히 적어보면 어떨 까 싶어 교회와 관련한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만나다 돌아보면 나의 첫 교회는 이래저래 무난하고 평범한 교회였던 것 같다. 옆 동네에도 비슷한 분위 기와 문화를 가진 교회가 있을 법한, 동네의 작은 교회였다. 각 부서가 적당히 운영되고, 때때로 행사를 하고, 무난한 설교와 평범한 예배를 드린 교회로 기억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알게 된 이야기지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과의 갈등, 탈진해 있던 소수의 헌신된 청년들, 교회 재정 사용 으로 인한 갈등과 같은 평범한(?) 문제들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아, 또 기억난다. 어느 날부터는 당시 유행하던 전도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는데, 기도회 중에 담임목사님이 안수하면 성도들이 뒤 로 넘어지는 다소 특별한(?) 역사들도 일어났다. 왜 기도하는 사람들을 자꾸 넘어뜨리는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그곳에서 예수를 믿 노라고 고백하였으니, 나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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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다 회심의 감격에 들떠 있었던 나는 청년부에 올라오자마자 기존의 탈진한 청년들을 대신하여 교 회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맡게 되었다. 다른 평범한 헌신된 청년들처럼 찬양팀과 성가대, 교사와 셀리더 등을 맡았다.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서 보통 일주일에 세 번에서 다섯 번 교회에 갔 다. 당시에는 교회가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신앙의 그릇에 비해서 너 무 많은 일들을 했던 탓일까. 청년부 내에서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으며, 무엇보다 내가 많은 상처를 입은 채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도저히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나도 교회도 청년부도, 모두가 다 미성숙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교회가 내 삶에 차지하고 있던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에 당분간 친척 집에서 학교를 다니겠노라 며 삶의 터전을 아예 옮겨버렸다. 그렇게 해서 나는 두 번째 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다 두 번째 교회는 열정적이고 뜨거운, 다소 특별한 교회로 기억한다. 내가 그 교회를 찾아갔을 당 시는 분립개척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등록교인이 수천 명이나 될 정도로 빠르 게 성장하고 있었다. 예배 때마다 두 손을 들고 “아멘!”으로 목사님의 말씀에 화답하고, 기도는 무조건 주여 삼창으로 시작하는 통성기도였고, 찬양집회라도 할 때면 청년들은 목이 터져라 찬 양하고 뛰어다니는 교회였다. 열정적인 청년들이 평일에도 매일 밤 교회에 나와 전도와 기도를 쉬지 않기에, 매주 새로 교회에 나온 사람이 수십 명씩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회의 열정과 뜨거 움이, 목 놓아 부를 수 있는 찬양과 기도가, 또 IVF를 통해 배우는 말씀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 야기가 상처투성이인 내 영혼에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차츰 IVF에서 배우는 것과 교회에서의 가르침 사이에 큰 괴리를 느꼈다. 교회에 대해서 점점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기복적 신앙이 마음에 걸렸다. 교회에서는 매주 예배 때마 다 오른손을 들고, "나는 잘 될 수 있다! 나는 축복의 사람이다! 나는 십일조 왕이 될 것이다!" 따 위의 구호를 외쳐야 했다. 또한 매주 똑같은 설교를 듣는 것도 부담이었다. 설교는 주로 담임목 사님이 고난 받은 이야기였는데, 목사가 되고 싶었으나 신학교에 열 번 떨어진 이야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이야기, 돈이 없어서 고생하신 이야기, 하지만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 했더니 이렇게 교회가 성장했다는 이야기, 따라서 우리도 믿음의 말을 많이 하고 하나님만 의지 하면 교회가 받은 축복을 함께 받아 세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매주 다른 본문으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똑같은 이야기로도 매번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 는 목사님의 능력이 놀라우면서도 점차 지쳐가기 시작했다. 때론 교회가 아니라 다단계 업체 같 은 느낌이 들었다. 한때 다단계 업체에 몸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다단계 업체의 논리에 '하나님, 예수님, 구원' 등의 단어만 몇 개 바꾸어 집어넣으면, 소름끼칠 정도로 그 교회의 논리와 비슷했다. 교회를 또 옮겨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도 그 안에서 배워야 할 점들도 있고, 또 사람들도 진실했고, 교회를 쉽게 떠나면 안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딱히 갈 만한 교회가 없었기에 매주 예배에 참석한 것이 2년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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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나는 미련 없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어느 ‘전도총력주 일’이었다. 여느 평범한 주일보다 많은 새신자들이 예배에 참석하였다. 예배마다 새신자들은 등 록카드를 제출해서 내고(이때 한번 출석한 후 다시는 오지 않아도 등록교인이 된다), 목사님이 새신자의 이름과 인도자 이름을 함께 호명하여 환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예배에 어떤 한 헌신된 청년이 30명에 가까운 새신자를 전도한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했으면 한 예 배에 30명이나 새신자를 데려올 수 있을까. 담임목사님도 놀라셨는지, 오후 청년부 예배 때 그 청년을 앞으로 불러서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전도를 하였는지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청 년의 간증은 이랬다. 그래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취지에서 인터넷에서 알바를 모집했단다. 단순업무라고 모집 공고를 올린 후, 교회에 가서 한 시간 예배를 드리면 약속한 일 당을 주기로 하고 데려온 사람이 30명이라는 것이다. 예배 참석 알바라니! 이런 식으로 교회에 등록시켜 놓고 교회가 부흥한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꼴이라니! 이에 대해 담임목사님은 별 말 씀을 안 하셨다. 그냥 "다들 열심히 전도합시다."하고 마무리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참고 보아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에, 곧 다른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특별하게 만나다 한동안은 물어물어 몇몇 교회를 떠돌았지만 딱히 정착할 곳을 찾지 못했다. IVFer들이 많은 교 회는 왠지 편한 곳에서 편하게 안주하려는 것 같아서 꺼려졌고, 다른 몇몇 교회에서는 도무지 만족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LGM에 오셔서 인상 깊은 설교를 하셨던 어떤 목사님이 떠올 랐다. 그분이 목회하시는 교회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인덕원 역 부근에 위치한 지금의 교회, ‘산 오름 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목사님의 설교를 두 번 들었던 것 외에는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는 교회였다. 일부 나처럼 떠돌다 정착한 IVFer들이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평범한 지 역 주민으로 구성된 지역교회였다. 대충 보기에는 건물 한 층을 임대해서 쓰는 작고 평범한 교 회처럼 보였지만, 조금 겪어보니 특별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설교시간이 길었다. 이전 교회에서 는 설교시간이 15분~20분 정도였는데, 이 목사님의 설교는 50~60분 정도인 것 같다. 또 독특한 것은, 성경을 정해놓고 매주 순서대로 강해설교를 하신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 찾아갔을 때 요한 복음 설교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설교들이 매우 인상 깊어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 다. 그 이후로 요한복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성경이 되었다. '감추어져 쉽게 찾을 수 없는 비밀 (골1:26)을 이곳에서 발견하였구나!'하고 감탄했다. 그만큼 지금의 교회에서는 '설교'를 강조한 다. 어쩌면 요즘과 같은 '탈권위의 시대'에 교회의 권위를 강조하고, 설교의 권위를 강조하고, 목 사의 권위를 강조하는 우리 교회는 인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설교를 강조하기 때문에 이외의 것 은 다소 메말라 보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가대도 없고 찬양팀도 없다. 예배 때는 다 함께 찬송가를 부른다. 큰 집회나 행사 등도 거의 없다. 목사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심방 도 잘 안하신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다소 교회가 건조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여러 역할들 에 치여서 다들 소진되어 있는 나의 모교회와 같은 문제들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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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 이 교회에서 배운 여러 가지 중 가장 큰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1:22)'이라는 사실 이다. 물론 이전에도 알고 있었던 말씀이지만, 그 말이 얼마나 무게가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하였고, 신약 시대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요1:14) 예수님이 오셨으며, 지금은 그분의 몸인 교회에 하나님의 말 씀이 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발을 안고(왕하4:27)' 간구하였던 것 처럼, '예수께 나아와(마8:2)' 간구하였던 문둥병자처럼,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을 듣고 교회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말씀을 믿을 수 있을까? 도시의 변두리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조그마한 이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이 교회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이 엘리사의 발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과 예수님 앞 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과도 동일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여전히 부족하지만 청년부 모임에서도 우리의 모임이 단순한 만남이 아닌 교회에서 함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모였음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며 기도하고 있다.
고난 받다 지금의 교회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말 씀을 지키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애쓰는 교회에 큰 축복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데 오히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을 많이 겪었다. 목사님은 이 조그마한 교회 에 세상의 모든 고통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큰 슬픔이 있었을 때, 목사님이 '욥기'의 말씀으로 하셨던 설교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가 아직 말할 때에(욥 1:16~19)' 계속해서 전해지는 고난의 이야기들. 사람들은 욥기가 소설이라고 하지만, 이 러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는 욥 의 아내의 말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유혹인지 우리는 함께 경험하였다. 울면서 설교하고 울면서 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 이니까(시13:1)'라고 부르짖던 시편 기자의 탄식을 배워가고 있다.
살아가다 거할 곳을 찾아 방황하는 시절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교회라는 집에 하나의 벽돌 로서 안정되어 가고 있다. 때로 지치고 여전히 불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고 채움 받고 쉼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결국 교회라는 나무에 붙 어 그곳에서 말씀을 공급 받아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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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안에 있는 교회: 다원화한 도시사회에서 교회 공동체의 존재양식 권영석│건국대73 IVF 간사와 총무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학원복음화협의회>의 상임대표로 섬기고 있다. 송경숙 학사(서강대74)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지난 1년 동안 ‘말씀산책’ 코너를 통해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고 씨름해 보았다. 교 회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짚어 보지 않은 채, 모임의 숫자나 예배 형태 또는 프로그램만으로 교회에 대한 학사들의 회의의 먹구름을 걷어낼 수는 결코 없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결코 양보하 거나 타협할 수 없는 교회의 핵심가치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교회에 대한 저간의 생각을 취 합해 보고자 한다. 모임의 크기나 형태, 프로그램이 어떠하든지 주님의 교회라면 매한가지로 붙 잡아야 할 핵심가치는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교회 성립의 필요조건이 있다면 바로 이 핵심가치 를 붙들고 그 위에 굳게 서는 것이리라.
첫째로, 교회의 구조나 형태가 어떠하든 거기엔 먼저 복음이 있어야 한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 스도가 주인으로 계셔야 한다. 예수 부재의 교회는 결코 주님의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주님도 함 께하실 수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거기서 선포되고 가르치는 ‘복음’이란 기껏해야 도덕적 교훈이나 인생의 성공 비결을 재활용하는 수준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는 그 본질적 속성상 무엇보다 주님과의 만남을 경험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과 조우하게 된 이들 의 공동체가 곧 교회이다. 이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자들이다. ‘존재’가 없는 ‘소유’가 아무 것도 아니듯이, 주님과 그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없는 제도적인 교 회는 규모가 크든 작든, 재산이 많든 적든 교회로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생명이 가치 있으려 면 일단 태어나야 하며, 존재가 먼저 있어야 혹은 생겨야 한다. 생명이 없는 인형이 아무리 그럴 듯하고 화려하게 꾸민다 한들, 인형으로서는 존재감이 느껴진다 해도 생명으로서는 아무 가치 가 없다. 교회는 바로 이 복음으로 복음화 되고, 우리 주 그리스도로 그리스도화(化)한 사람을 구 성원으로 한, 그 사람들의 공동체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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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신 우리 주님과의 만남으로 말미암는 죄 사함과 구원의 경험은 결과로만 보면 ‘회심’과 ‘ 중생’으로 표현되는 사건이지만, 과정으로 보면 우리의 전 존재를 걸고 실제로 돌이키고 결단하 고 살아내는 사건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복음 선포,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일 련의 사건(구원/대속의 사건)의 기초 위에서, 주 님은 지금도 돌이켜 당신께로 나아오는 이들을 차별 없이 만나 주시고 당신 가족의 새로운 식 구요 형제로 맞아 주시기 때문에, 복음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적인 사건이다. 이 복음으로 인해 이제 우리는 가히 다시 태어 나게 되었으며 살아있고 또 살아가는 존재로 존 재하게 된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소유’를 다 준 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아니 결코 바꾸지 않을 ‘존 재’가 된 것이다. 예배란 바로 이 존재들의 존재 감의 표현이다. 이들이 하나님과 대면하고 영원 한 교제를 나누는 것,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 이 세상에 또 있으랴. 따라서 예배는 우리의 가 장 고상한 특권이자 동시에 하나님을 가장 기쁘 게 해드리는 우리의 봉사이기에, 주님의 교회는 무엇보다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리라. 한마디로 예배는 ‘소유’ 차원의 행위가 아니라, ‘ 존재’차원의 행위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사 마저도 수단으로 전락시킨 타락한 이스라엘의 예배는 도리어 하나님의 역겨움을 자아낼 수밖 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이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셨다는 데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지만 여전히 이 땅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주님의 교회는 세상의 죽은 커뮤니 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나라로 탄생했지만 여전히 이 어두운 땅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 이다. 이 두 현실, 곧 우리가 주님의 로열패밀리 라는 현실(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로열패밀리인 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에서 무명한 존재로 살아가야 하 는 현실, 이 두 현실이 공존해야만 하는 역설적 인 긴장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존재가 가능하게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양식이다.
이 긴장이 가져다주는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때로 우리는 이 세상의 예전 습성을 답습 하게 되거나, 아니면 이 세상에서 가능한 한 멀 리 도망함으로 격리된 존재양식을 추구하게 된 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교회 로 부르시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따라서 교 회는 언제나 복수(複數)의 우리이며, 사실 교회 의 탄생은 주님이 가져오신 복음 안에 이미 예 견되고 내포되어 있었다고 하겠다. 주님이 이 땅 에 오셨다가 떠나시면서 남긴 것이 다름 아닌 교 회 아니던가? 즉 그분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따르는 이들로 구성된 새로운 집단 곧 교회공동 체를 일구기 위해 오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 교 회의 주인은 무엇보다 우리를 부르시고 또 우리 가 따라나선 주님이시며, 그분이 보내신 성령님 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좇아 이 긴장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신앙고 백을 공유하는 교회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는 이 세상의 가치관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를 수밖 에 없다. 한 마디로 그것은 생명과 죽음, 존재(存 在)와 부재(不在)의 차이만큼 크다. 주님은 바로 삐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상을 심판하고 바르게 하기 위해 오셨으며, 죽어 있는 이 세상을 살리 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이 가치를 제자도라고 하 든, 진리라고 하든, 길이라고 하든, 은혜라고 하 든, 선물이라고 하든,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는 새로운 주님을 모시게 되었고 그 안에서 존재를 얻었으며, 예전에 추구하던 가치나 목표 또는 이 전의 습성이나 행동양식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 기준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사실 하나님은 모세 로부터 시작하여 시대마다 예언자들을 보내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일깨우고자 하셨다. 또한 마지막으로는 아드님을 보내어 무엇이 길인지 친히 본을 보이며 가르쳐 주셨고 궁극적으로는 그 아드님이 우리의 길이 되셨다. 주체성이란 바로 이런 ‘존재감’의 별칭에 불과 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경꾼이었지만 이제는 주인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 자신의 존재를 세우고 부각시키는 일에 골몰했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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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우리는 있는 그대로 이웃과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되 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언제나 타자의 위치에 있었기 에 이웃과도 분리되고, 우리의 직장과 하는 일과도 분 리되고, 우리의 이웃, 나아가서 사회와 자연과도 분리 되고, 심지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까운 매일의 일상 과도 분리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주체성 있는 존재라 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타자로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주인의 자격을 ‘득템’한 것이다. 그 야말로 노예의 굴레에서 해방된 것이며, 가히 죽은 자 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누구나, 비록 허물의 차이는 좀 있다 하더라도 함께 한 상에서 음식과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이란 이 정도로 복된 소식이다. 주님의 오심과 죽 으심과 다시 사심은 가히 “사건”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으며, 그 분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온 세상 을 정화하고 회복해 나가는 일에 그분의 동역자가 된 것이다. 이런 복음이 선포되는 공동체,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나누는 공동체,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살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이런 공동 체가 바로 주님의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우정의 범위는 내가 속한 지역교회를 넘 어서서 다른 지체들과도 동질/동지 의식을 느끼며, 필 요하면 얼마든지 동병상련하고 연대하는 데까지 나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에큐메니컬’ 정신이란, 교회들 간 의 인위적인 노력의 소산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교회공동체의 본질적인 속성의 중요한 한 측면이다.
둘째, 교회의 사이즈가 어떠하든 거기에는 새로운 한 가족으로서의 우애가 있어야 하며 그들 사이에 인격 적인 만남이 가능해야 한다. 오늘과 같은 첨단 스펙 사 회에서 조건을 따지지 않는 진정한 만남은 점점 더 낯 설어진다. 하지만 주님의 교회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 다 서로 있는 그대로 용납하고 인정하고 격려하며 사 랑하고 사랑받음으로써 이 안에서는 누구든지 민낯으 로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한 개인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 의 허리에서 온 인류를 창조하셨듯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류가 탄생하게 된 셈이다. 인간은 결 코 유아독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개인을 인정하 지 않는 집단은 병들게 마련이며 그런 집단은 도리어 그 집단에 속한 이들을 집단적으로 오염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단과 유리된 개인 역시 인생의 향방을 잃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만다. 주님이 마지막 식탁 을 앞에 두고 제자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허물투성 이인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신 것처럼,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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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님의 교회란 교우들 사이에 진정한 만남과 우정이 가능한 공동체이다. 따라서 인격적인 관계를 힘들게 할 정도로 사이즈가 커지거나, 무대 위와 무대 아래가 분리되거나, 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차별하거 나, 독단적이고 제왕적인 리더십 아래 종속되어서 일 대일 관계가 아니라 갑-을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면 이 는 결코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다.
셋째, 이 땅에서 교회는 이 세상과 연관을 맺어야 한 다. 교회가 내적으로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 이요, 예수 안에서 서로 동기가 되어 우애를 나누는 한 가족이라고 한다면, 외적으로는 기존의 커뮤니티(지 역사회)를 향하여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 어야 한다. 세상과 조우하지 않는 교회, 나아가서 세상 에 인카네이션하지 않는 교회는 주님이 의도하신 교 회라고 할 수 없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대신 하여 하나님나라를 대표하고 세상을 향해 그 핵심가 치를 드러내라고 이 땅에 교회를 두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교회의 사명이란 곧 교회의 존재 이유 요 본질의 한 부분이다. 교회의 사명은, 교회의 존재 에 수반하는 하위적 내지 종속적인 것이 아니다. 즉 교 회의 사명이란 교회가 먼저 존재를 확립하고 난 그 다 음에서야 비로소 감당할 수 있으면 하고 못해도 할 수 없는, 그런 선택 사항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 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 교회는 그 본질적인 속성상 이 세상과 끊임없이 조우해야만 한 다. 주님이 친히 성육신하신 것처럼, 우리는 천상의 가 족에 속하지만 끊임없이 이 땅의 어그러진 어둠의 세 력과 맞붙어서 빛을 발하고 진리의 길로 계도하는 수
소 리 정 음
고를 감당하고 또 때로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 읽고 알아야 하며, 그것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해하고 대안을 제 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지 일간신문의 주요 헤드라인에 오르내리는 뉴 스 정도는 최소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각 자의 전공이나 직업별로는 그보다 훨씬 더 전문 적인 지식과 정보를 의미심장하게 다룰 수 있어 야 할 것이다. 이런 참여의식/책임의식(앙가주망, engagement)의 부재야말로 앞에서 언급한 교회의 세 속화를 촉발한 주요 원인으로서, 성속 이원론을 양산하는 온상이라고 본다. 교회가 그저 거룩해 지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면, 주님이 굳이 이 땅에 교회를 두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산 위 에 있는 동네가 숨기지 못하듯이, 또 사람이 등 불을 가져다가 등경 위에 두듯이, 주님이 이 땅 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 것은 우리 자신을 위 함이 아니라 아직도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는 이 세상을 위함이며, 이를 위해 주님은 도리어 우리 를 이 세상 가운데로 보내신(missional) 것이 아 니겠는가? 오늘날과 같이 첨단 문명이 건설해 놓은 거대 도시 공간에 살면서 내가 속한 지역사회의 바운 더리를 규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 리는 우리의 이웃과 사회, 나아가서 우리가 종 사하는 직업과 속한 직장, 그리고 우리나라 전 체와 전 지구적인 일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자신을 노출하고, 또 필요하면 대항/저항 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함께 함으로 하나님의 미션을 거들어야 한다. 왜냐하 면 우리 주님이 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며, 종 내는 모든 것을 다 회복하고 통일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님은 이미 그 가운데서 일 하시며 또 함께 일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 은 결코 다원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과 이 땅의 생태계 전체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까닭은, 크리스토퍼 라이트 가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의 선교 관점으로 성경 내러티브를 열다》(IVP 역간, 2010)에서 잘 지적한 것처럼,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이 창 조하셨으며, 따라서 그 모든 것이 지금도 그분의 소유이고, 장래의 운명 역시 궁극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정화되고 회복될 것이기 때문 이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태학적 윤리와 선교에 관한 창조적 토대만이 아니라 종말론적 토대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치 우리가 소유주인 것처럼 함부로 군 림하거나 우리에게 주신 지식이나 자원을 남용 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청지기로 서 겸손한 종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성도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의 공동 체를 형성하든지, 또 어떤 형태의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하든지, 만일 우리 안에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생명으로 말미암는 존재의식/주체의식이 있고, 피차간에 형제 우애 가 있고, 또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해 보내심을 받 은 소명감이 확실하다면, 우리 가운데 이미 하 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이며, 우리가 바로 주님의 교회 즉 우리 주님의 충만을 증거하는 대리자인 셈이다. 교회의 이런 핵심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서, 필요하면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또 일터에 서, 아니면 어떤 초교회적 연합체를 통해, 나아 가서 온라인상의 연대를 통해서라도 우리는 "새 로운 나라"가 왔다고 하는 기쁜 소식을 누리고 또 나누며 전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국의 교회가 이런 본질에 착안하여 주님의 몸 된 교 회로 회복되고 새로워질 수 있기를 앙원한다. 이 '대업'을 위해 우리 학사님들이 할 수 있는 대로 더욱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또 헌신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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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테라피‖여러 고민으로 곮치 아픈 그대에게 드리는 책 처방
고통의 시대와 자기계발서 정성민│울산대 97 주민등록등본에 여자가 셋. 저항과 도전, 인문학적 상상력과 구체적인 생으로 하나님 나라를 펼쳐내 는 직장인이자 청년부 간사.
캠퍼스에 봄이 왔다. 알록달록한 봄의 축포를 품고 아슬아슬 해산날을 기다리는 꽃들과, 연두와 초록을 갈아입 는 나무들 틈에서 긴 겨울의 끝이 보였다. 교정에 쏟아진 아이들의 수다와 샛노란 웃음도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즈음이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고 아니 원래 봄은 없었다는 듯, 시린 겨울 속에 생명을 던진 이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5만 원짜리 14장을 남겨 두고서. 자살률 1위 대한민국. 개별적 사건은 날카로우며 황망하고, 수치는 짧고 단순해서 그 간격을 헤아리기가 어렵 다.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인 연약한 이들이 또 얼마나 나와야 이 자살공화국은 멈추어 설까.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이것이 비단 고통의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구조의 문제임을 알게 될까. 정치와 시장에는 계량화된 희망의 언어가 넘쳐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과 사람 들 속에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의 절망의 언어가 가득하다. 비단 자살률뿐이던가. 이혼문제나 가정폭력, 강간, 왕따와 학교폭력 등 우리 삶의 현장은 그야말로 ‘고통의 시 대’다. 이를 단순히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가 있을까.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인간의 삶을 전 방위에서 압박 해 오는 그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 고통의 시대, 절망의 시기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 온 교회를 우리는 어 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교회는 국가 혹은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이런 난맥을 짚어내는데 있어서 목회종사자들의 언어는 고루하거나, 현실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자기 한 계, 조직의 한계에 갇혀서 확장성과 운동성이 없는 언어와 삶으로 고착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슬프게도 종교 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불경건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목회종사자들 중에 많다. 사탄은 공중 권세를 잡고 구조와 시스템 속에서 역사하는데, 성도들은 개인 신앙에 골몰하였다. 그리 하여 ‘비도적적인 사회’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거나 발언할 수 없는 도덕적 개인,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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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말하다》는 이러한 시대 와 교회의 맥락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저자는 거 라사 지방에서 있었던 군대 귀신 사건을 르네 지 라르의 ‘희생양 이론’을 빌려 분석한다. (르네 지 라르는 사회적 경쟁이 공동체의 위기를 야기할 만큼 과열될 때마다 사회가 민심 속에 만연한 폭 락적 욕망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키기 위해 희 생양을 찾아낸다고 주장했다.) 의문의 마을 ‘거라사’에 왜 광인이 출몰했고, 방 치했으며, 치유를 행한 예수가 떠나기를 원했을 까. 책을 통해 ‘거라사’와 ‘광인’을 작동하게 한 영 적인 실체들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실체가 오늘 날의 대한민국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고통의 시대를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 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독교적, 사회적 맥락에 서 <나꼼수: 나는꼼수다>를 분석한다. 아울러 나 꼼수야 말로 불의를 거침없이 폭로하고 그 대가 를 지불하여, 조국교회의 역할을 대신하여 수행 했다고 주장한다. 돈 봉투로 회장 선거하는 한국 기독교총연합회야말로 교회가 아니라고 날선 검 을 들이댄다. 급이 다른 저자다. 그래서 한 호흡으로 책을 읽기 가 쉽지는 않았다. 그만큼 방대한 정보와 해박한 이론, 정치·사회·문학·역사·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 를 바탕으로 시대와 나꼼수를 질감 있게 통찰하 고 있다. 슬픈 것은 나꼼수의 태도를 문제 삼아 덮 어놓고 악으로 규정하는 분들은 (비단 이 책뿐 아 니라) 어떤 책이든 읽지 않을 것이라는 점. 놀라운 것은 이 분 최규창 대표가 학자나 목회자가 아니 라 평신도라는 것. 맙소사, 등골이 오싹해진다. 감 사한 것은 이분이 무려 IVF 학사라는 것. 어깨가 으쓱해진다. 새로운 시각과 언어로 문제에 접근 하는 좋은 작가가 한 명 배출되었다. 계속되는 우리 이웃들의 돌연한 죽음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 어보시기를 부탁드린다. 정치와 사회, 역사에 무 관심한 우리들의 암묵적 동의로 인해 고통의 시 대, 광기의 시대가 유지·존속되고 있다는 것을 발 견하게 될 것이다. 수많은 교회들의 공동체적 직 무유기 앞에서 구조적 정의의 달성을 위해 개개
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는 이러한 광인 을 양산하는 적자생존 무한경쟁의 사회에 큰 시 장으로 자리매김 중인 자기계발 열풍을 고발하 는 책이다. 저자 이원석 연구원은 자기계발서적 1,000권 읽었던 사람으로 자기계발서는 사기극이 라고 말한다. 천 권 정도 읽고 이야기하는데 별 도 리 없지 않겠는가, 잠자코 그의 주장을 들어볼 수 밖에. 청년대학생들이 봉착한 개인과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그의 책 세 권을 모 조리 구입했다. 추천 도서와 《거대한 사기극》 은 현실에 대한 진단을, 《공부란 무엇인가》는 대안을 다룬다. 오랜만에 만난 속이 후련해지는 책들이다. 최소 수십 명의 아이들을 건져 낼 수 있 겠다. 자기계발의 덫으로부터. 자기계발서는 극소수만 잘 살게 되는 사회의 구 조를 문제 삼지 않고, 모든 문제를 개인적 책임 으로 치환하여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을 실패자 로 낙인찍는다. 나아가 거짓 희망을 판매하여 현 실을 왜곡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조장한다. 재미있는 점은 성공과 욕망을 조장하는 자기계발 사회가 교회와 짝패라는 주장. 자기계발의 역사 로부터 시작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성 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아침형 인간》, 《시크릿》, 《인생수업》, 《긍정의 힘》, 《리 딩으로 리드하라》 등 널리 알려진 13권의 자기 계발 서적 비평을 따라가다 보면 교회의 거짓 가 르침과 세속적 욕망이 그 민낯을 드러낸다. 무한경쟁의 자기계발이 아닌, 서로계발을 권하 는 사회로의 문화변혁을 꿈꾸는 저자의 10대 시 절 꿈은 선교사. 단언하건대 이 책은 교회와 사회 의 온갖 거짓 상술을 고발하고, 참된 영적 성장과 인간계발에 대한 영감을 주는 측면에서 지극히 선교적인 책임에 틀림없다. 감명 깊게 읽은 책 목 록에 《시크릿》과 《긍정의 힘》을 올려놓고 향 방 없이 헤매는 사람들을 이제는 그만 만나고 싶 다. 우리들의 간절한 욕망과 긍정의 힘이 이 시대 를 자살 권하는 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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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산책‖말씀과 함께 걷는 우리의 삶
빌레몬서 산책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갈망하며(몬4-7) 문춘근│부산대 83 1992년 방현주(동아대82) 학사와 결혼하여 인생을 공유 중이다. 선물로 받은 아들 희찬을 미국 Emory 대학교에 보내놓고는 신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2008년 사귐의 교회를 개척하 여 옆집 아저씨 같은 ‘다님‘ 목사로서 성도들과 함께 춤추듯 살아가고 있다. 가족학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거닐면서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데 용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옆집 같은 교회를 몇 곳에 더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싸모님~~! 싸모님을 만나게 되고 알아가게 된 것이 제게 참 은혜요 축복입니다! 미약한 시작♥ 싸모 님과 함께하면서 장대한 저의 끝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쁨에 흐느끼며...ㅎ ㅎ) 제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면서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멈추었던 제 내면세계의 성장과 성숙이 싸모님과 문 목사님을 만나면서 또한 공동체 속에 속 하면서 폭풍 성장을 하려 하네요.^^; 이즈음에 제 깊은 내면 일부를 발견하게 되어 싸모님과 함께하고픈 생각에 CD 한 장 선택했습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왜 싸모님이 생각 난 것인지... ㅋㅋㅋ (이하 생략).” 2014. 3.9. 핫한 ○○자매.
얼마 전에 우리집을 방문한 부부의 자매가 건네 준 유쾌 발랄한 감사 카드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 감사카 드로 인해 기쁨과 위로와 새 힘을 얻을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카드가 오늘 분문의 주제어를 아 주 재미있게, 꾸밈없이 잘 담고 있어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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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소 리 정 음
우선 본문을 한 번 보실까요?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I always thank my God as I remember you in my prayers, because I hear about your faith in the Lord Jesus and your love for all the saints. I pray that you may be active in sharing your faith, so that you will have a full understanding of every good thing we have in Christ. Your love has given me great joy and encouragement, because you, brother, have refreshed the hearts of the saints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빌레몬서의 핵심 주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가해자(예를 들어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와 피해자(주인, 빌레몬) 사이의 인격적 화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화해를 주선하는 사람은 바울입니다. 이 세 사람 사 이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과 기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바울은 빌레 몬에게 “오네시모를 진정으로 용서함으로써 복음 안에서 진정한 인격적인 화해를 실현하라.” 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이 간청은 손쉽게 다룰 수 있는 가벼운 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지 만 자신의 간청에 가까운 간구(9상, 10하)가 사실은 너무나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라서 바울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또한 아무나 이런 복음적 화해의 도전을 인격적으로 받아서 순 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빌레몬서의 정례적 감사기도 부분(4-7절)에서 바울과 빌 레몬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특징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 다. 복음의 간청을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격적 특징을 지닌 것처럼, 그런 복음의 도전을 받는 사람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의 모습: 진정으로 감사기도하는 사람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바울, 진짜로 중요하면서도 매우 복잡한 간청을 빌레몬에 게 하기에 앞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감사를 통해 먼저 이야기할 본론을 준 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기도: 알고 드리는 인격적인 감사(4-6절) 4절에 볼까요?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나는 기도할 때 마다 빌레몬 당신을 기억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항상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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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자신의 기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감사를 드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대 빌레몬이었다고 털 어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편지가 처음 읽혔을 때 빌레몬은 얼마나 가슴 뭉클했을까요? 바울 은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감사기도를 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그냥 형식적으로 혹은 무조건 감 사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빌레몬을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한 이후에도(19하) 계속 그의 소식 을 들어 왔습니다. ‘듣다’라는 동사가 현재형인데 이는 바울이 계속해서 빌레몬에 대한 소식-아주 좋은 소식-을 오네시모를 통해서든 그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든 듣고 있다는 말입니다. 주 예수 안에 두고 있는 빌레몬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빌레몬의 사랑을 듣고 알게 됨으로써 바울은 진정으로 감사하 고 있습니다. 바울은 6절에서 감사의 대상인 빌레몬을 위해 감사를 넘어 이제 더 기도합니다.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해석의 논란이 대단히 많 은 구절이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충분히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지만 더 깊은 앎을 통해 바울이 건넬 간청의 내용을 그리스도 안에서 잘 소화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기도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 사람의 더 나은 모습을 위해 더욱 간구하게 만듭니다.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기도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형편에 늘 귀 기울이고 있어서 잘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의 더 나은 모습을 위해 중보할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 입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목회자나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수적으로 증가 하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주목하고 그 사람과 깊이 교제하면서 그 사람이 그 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숙해가는 모습 때문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의 각종 문제를 시스템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서로 한 사람에게 시간을 낼 수 있고 그 사람이 온 전한 믿음과 풍성한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도울 수 있을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빌레몬의 모습: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 5절에서 바울을 기분 좋게 만든 빌레몬에 관한 소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개역개정보다는 NIV 성경 이 잘 번역해 놓았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순서대로 직역하자면 A-B-C-B'-A'의 구조로 된 교차 평행절 과 같습니다. “그 사랑(A) - 그리고 그 믿음(B) - 네가 가진 바(C) - 주 예수를 향한 (B') -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 대한(A')” 두 가지 사실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 안에 있는 빌레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빌레몬의 사랑을 듣고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또 통상적인 순서와는 달리 바울이 빌레몬의 믿음보다 그의 사랑을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조금 있다가 빌레몬 에게 아주 민감하고 복잡한 간청을 할 때 기초로 삼은 것이 바로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7, 9절). ‘믿음은 강하고 센 데 비해 사람은 좀 아니다’라는 이상한 표현이 거의 의심 없이 수긍되는 교회 현실 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믿음과 사랑/인격이 따로 놀 수가 있을까요? 7절을 보십시오.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칭찬이 나옵니다.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5절에서 이미 바울이 감사했던 빌레몬의 인격 안에서는 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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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향한 믿음과 주위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따로 각각 노는 것이 아니라 한 쌍처럼 함께 하 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이 보여주는 사랑 때문에 자신이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 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다름 아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고 평안으로 채워주는 사 랑이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 많음을 칭찬하면서 이 기초 위에 간청의 보따리 를 풀어갑니다(9절).
진정으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던질 복음의 급진적 메시지에 인격적으로 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 들일까요? 주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은 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성령 의 도우심을 통해 자신의 타고난 인격을 넘어서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사랑을 구체적으 로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가까이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인격의 가 장 깊은 곳)을 터치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프로그램이나 행사용 사랑이 아니라, 가까이서 보고 만나고 알아가면서 그 사람의 중심에 다가가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절실합 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내버려둔 채 괜히 멀리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느라 바쁘게 살지 맙시다. ‘예수 믿는 사람’하면 빌레몬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이 떠오르는 시대가 오기를 바랍 니다.
3. 교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맞습니까? 우리 교회, 또는 우리 공동체의 표지가 ‘인격적인 감사’와 ‘관대한 사랑’입니까? 목회자와 성 도들이 인격적으로 감사할 줄 알며, 또 서로의 마음을 만져주는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입니까? 우리는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의 교제와 사랑의 순종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야 복음의 급진적 간청을 인 격적으로 도전할 수 있고 그 간청에 인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 과연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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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소리지음 27 당신의 연애자소서_한선미, 김효주 30 제이언니의 결혼일기_김용주 32 파란만장 직장생존기_김작가 34 상연정(常然亭)에서..._홍정환 36 낭만주의자의 영화이야기_정일문 39 소리가 만난 사람_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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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연애자소서 ] 당신의 연애에 한선미-김효주 부부가 띄우는 ‘자’상하고 ‘소’상한 편지(書)
Q.이 사람일까요? 소 리 지 음
안녕하세요? 힘겨운 ‘모태솔로’의 시기를 거쳐 현재 달콤하게 연애 중인 28살 자매 입니다. 저는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첫눈에 반한, 뜨겁게 설 레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차근차근 알아가니 볼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요. 저를 존중해주고 자상하게 대하는 그에게 점점 마음이 열렸습니다. 신앙이나 세 상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도 잘 맞고요. 그렇게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하고 교제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그토록 원하던 연애였건만, 연애를 하는 지금도 고민은 계속되 더라고요. 아직도 제 마음 속에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크게 꺼 려지는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도 그에게 호감이 있긴 하지만, 과연 이게 사랑 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첫 연애라서 더 헷갈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봐온 로 맨스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도 있겠죠.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원하는 건 아 니지만 딱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드네요. 그렇다고 열 렬한 감정이 있으면 그게 결혼의 확신으로 이어질지 그것도 미지수이고요. 이렇게 확신 없는 제 마음이 그에게 괜스레 미안합니다. 남자친구나 저나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찼으니, 보다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두 분은 어떻게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하셨나 요? 어떤 걸 고려하면 저에게 확신이 찾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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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미│한성대99 캠퍼스 간사 6년을 포함, 20대를 고스란히 IVF에서 뒹굴거리다가 지금은 살림과 육아에 전념 중이다. 2002년 착하고 성실한 줄 알았던 형제를 만나 열심히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고를 무 한 반복하다 그만, 2007년에 결혼까지 해버린 상태다. 하루에 4만 마디쯤은 거뜬히 하고 뜨개 질, 바느질, 독서 외에도 각종 오지랖을 넓혀가고 있는 아줌마.
Answer 그렇죠. 맞아요, 저도 많이 했던 고민이에요. “이 인간에게 정말 내 인생을 통째로 걸어도 되는 걸까?”, “얘랑 결혼했는 데 나중에 더 완벽한 인간, 진짜 사랑이 찾아오면 어쩌지?”하 는 고민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살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함께했던 6년이라는 청춘이 아까워서였어요.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나랑 결혼해서 살지 않 는 이상, 내 맘에 쏙 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는 깨달 음이었지요. 그러니 결국 계속해서 이해하고 설득하고 싸우 고 화해하며 살아가기로 선택한 거죠. 또 하나, 세 번째 이유! 엄청난 결격 사유가 있지 않은 한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생 각. 하하하. 생각보다 별 거 없죠? 결혼에 골인한 커플들에게 물어보세요. 정신 차려 보니 신부 입장 하고 있더라는 사람 들이 꽤 많을 걸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람, 하나님이 예비해두셨다는 바로 그 인연을 만나고 싶어 해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갑자기 벽에 글씨가 막 써진다거나, 그 남자 이마에 나 만 알아 볼 수 있는 표식이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 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 것 같아요. 다그닥 다그닥 백마를 타고 다니면서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 리칼을 쓸어 올리는 왕자님이 어딘가에 살고 있긴 하겠죠. 내 게 그런 왕자님을 충분히 주실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백 마 탄 왕자님 대신 오징어 남편을 주셨어요. 저는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해요. 어딘가에 있을지 없을지 도 모르는 왕자님을 찾느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의심 가득한 눈빛과 못마땅한 눈초리로 혀를 끌끌 차며 훑어보기 보다는 하필 이 타이밍에 내 눈 앞에 주신 남자, 이 남자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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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랑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어쩌면 우리가 어딘가에 있 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려움과 염려로 찾고 있는 완벽한 남자는 사실 조건의 완벽함, 내가 원하는 더 나은 환경은 아 닐까요? 크흐..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생각해봅니다.) 자매님, 28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혀 모르고 지냈던 남자와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석 달 전의 그 선택의 날을 떠올 려 보세요. 생판 남으로 지냈던 28년을 뛰어넘을 정도로 그 형제가 보여준 자상함, 또 거기서 느낀 따뜻함, 짧은 대화였 지만 우리가 잘 통한다는 그 희열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닐까요? 사랑이란 옷장에는 옷이 많아요. 어느 날은 뜨거 운 열정으로, 어느 날은 소박한 선물로,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라는 다양한 옷을 갈아입으 며 사랑은 자라가요. 제가 자매님이 했던 똑같은 고민의 종지부를 찍은 날 밤이 떠올라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더는 왕자님을 찾지 않고, 지금의 남편과 인생의 모험을 시작해보리라 결심했던 그날 밤. 저는 그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못 믿 어서 미안해. 고맙고 사랑한다.”라고 말이죠. 이 글을 쓰면 서 남편에게 그날의 일을 물어보니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냐 며 놀라네요. 자꾸 “정말? 정말? 정말?”이라는 말만 되풀이 합니다. 아, 내가 정말 이런 사람과 살고 있다니... 남자는 여 자의 응원과 신뢰를 받아먹고 더욱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고 해요. 아니, 어쩌면 우리가 의심과 두려움의 렌즈를 벗고 사랑과 믿음의 렌즈로 바라볼 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더 멋진 모습이 발견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자, 자매님, 그러니 이제 그를 붙잡아요!^^
김효주│고려대99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이었으나 하루에 4만 마디 하는 자매를 만나 연애시절 건당 30원하는 문 자메시지 값만 3만원 넘게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원래는 뭐 하나 꾸준히 하는 게 없는 캐릭터인 데, 한 사람과 6년 연애 후 결혼 그리고 결혼 후 6년 이상을 살고 있다. ‘오늘 점심 뭐 먹지’가 최 대 고민인 회사원 8년차이자 두 돌 지난 딸이 하나 있고 풀코스를 두 번 완주한 초보 마라토너.
Answer 말이라는 게 참 쓸수록 묘합니다. 먼저 질문 하나, 여자친구 가 옷가게에서 “약간 살이 쪄서 그런지 옷이 안 어울리네.”라 고 했을 때, 남자친구의 올바른 반응은 무엇일까요? 1번, “ 응, 잘 안 어울린다. 다른 거 입어볼래?” 2번, “그러게, 내가 너 운동 좀 하라고 했잖아.” 3번, “무슨 소리야, 원래 이런 색 은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대보니까 완전 잘 어울리는데? 야, 무조건 사.” 정답을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질문은 자신의 몸무게와 옷발에 대한 의견으로 구성되어 있 지만, 번역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질문의 진짜 의미 는 “난 이 옷을 사고 싶은데 확신이 안 생기거든. 남친인 네가 확신을 좀 주겠니? 살 안 쪘다는 말은 기본으로 깔고 말이 야.” 뭐, 이 정도쯤 되겠습니다. 장황하게 헛소리를 한 이유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혹시 자매님이 가지고 있는 확신에 대한 고민이, 남자가 너무 자상 하다 못해 혹시 좀 미지근한 게 아닌가 싶어서 내 운명의 사 람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어서 답답하신 거라면, 이건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런 경 우라면 그냥 저한테 남자친구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제 가 전화해서 해결책을 알려드릴게요. “야, 이 친구야! 당장 가 서 여친을 껴안아주라고!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말이야!” 하지만 정말 확신에 대한 고민이 문제라면, 이런 대답을 드 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람이야!’ 하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 건 남이 얘기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나님도 그 런 확신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배우자를 정해 준 호세아는 우리가 예상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는 않았
던 것 같습니다. 낙타에게 물을 주다가 이삭의 아내로 발탁 된 리브가는 나중에 축복 승계를 위한 가족 암투의 중심에 서죠. 결국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 하고 기대하는 행복한 관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 니다. 그런 확신은, 결혼 후 저 남자가 홀라당 뒤집어 내놓은 양말이나 중간부터 짜놓은 치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침 안 개처럼 빠르게 사라질 정도로, 별로 단단한 게 아니거든요. 사랑인지 아닌지 알게 되는 건, 오히려 작은 신호들을 알아 채는 게 아닐까요? ‘어머, 저 사람 되게 자상하네. 남자들은 권위적이라는데 어머어머 저 사람, 날 존중해주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신기하네? 오늘은 왠지 이걸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어머’의 내용은 수도 없이 많을 거 예요. 그런 ‘어머’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다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라도 짓고 있다면, 어머, 그건 바로 사랑 맞죠. 큰 확신보다는 작은 사랑을 소중히 여기고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 없는 내 삶을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 예요. 확신이란 건 그렇게,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 하는 방식 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를 잡는 것 같아요. 전 어땠을까요? 전 제 아내가 웃겨서 좋았어요. 지금도 제 아내는 엄청 웃기 고, 같이 있으면 완전 재미있어서 이 사람이 맞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결혼하고도 이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앗, 아내 사랑해!) 하루하루 웃고 아끼며 살 아가는 게 제게는 큰 행복입니다. 지금 자매님의 고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봄 바람처럼 찾아오는 사랑으로 행복하시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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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지 음
[ 제이언니의 결혼일기 ] ‘제이언니’가 남편 그리고 아빠로 살아가며 얻은 반성과 성찰
영혼의 민낯을 대면하는 경험 김용주│한양대95 한양 IVF 학사이며 SNS에서 '제이언니'로 불린다. 결혼, 출산과 육아의 경험은 나를 '유사 페미니 스트'로 만들었고 그런 생각들을 모아 오마이뉴스에 <제이언니의 아빠일기>를 연재했다. 대인배 아내, 토끼 같은 아들과 함께 일희일비하며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사랑이란 감정이 찾아온다. 나에게도 몇 차례 연애 기회가 있었고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그렇게 조금씩 경험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당시에 유행하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가벼운 책에서부터 게리 콜린스, 폴 투르니에의 책들을 읽었으니 나름 선행학습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선교단체 소그룹 리더를 하면서 얻은 교제의 노하우들은 연 애에 도움이 됐다. 자주 우려먹는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 하나를 풀어내다 보면, 몇 번 만나지도 않았지 만 금세 상대방과 내면의 깊은 대화로 발전하곤 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다분히 왜곡된 연애 판타지 같은 게 있었는데, 백마 탄 왕자라거나 키다리 아저 씨, 혹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이상형에 나를 동일시하곤 했다. 그렇게 내 연애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춰 주고 배려하는 방식으로 정형화되었고, 그런 경험들은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이 런 헌신과 배려의 태도는 신앙적으로도 권장할 만한, 인간관계의 어떤 모범처럼 느껴졌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작아져야 하고 나아가 상대방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연애에서도 바 람직한 자세로 보였다. 그 결과, 내게 연애는 필연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가는 설 렘이 지나면 내 일방적 배려가 지속될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되는 어떤 불연속적 이벤트가 되곤 했다. '내' 안으로는 들어올 수 없고 '너'의 안에서만 정서적 위로를 주려는 이런 ‘시스템’은 결혼을 하고 나서 야 비로소 허물어졌다. 결혼은 관계의 수위를 조절할 수 없는 어떤 특이한 물리적, 정서적 공간을 만들 어냈다. 일례로, 사소한 부부싸움 중에 꼭꼭 숨겨둔 내면의 상처를 공격받으면 무시하고 획 돌아서 갈 곳이 없었다. 한 침대 안에서의 일상은 에로틱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벼랑 끝 같은 곳이기 도 했다. 심리적 도피 공간이 없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이 해할 수 있게 제대로 말해봐.”... 이런 단순한 질문 앞에 나는 자주 망설였고 이내 말문이 막히곤 했다. 솔직히, 살면서 타인에게 스스로가 정한 내면의 선을 한 번도 허락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라는 이름의 이 ‘무례한 타자’는 사소한 일에서조차 그 선을 침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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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독립적인 두 남녀 사이를 넘나든다. 불행히도 사랑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젊은 두 사람이 만나 맛있는 음 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서로 키스를 하고 눈이 맞아 잠자리로 이어지는, 그런 ‘샤방샤방’한 경험에서 끝 나지 않는다. 주변을 보면 연애의 설렘이 다할 즈음 결혼 준비에 정신을 쏟고 결혼하여, 신혼의 설렘이 끝 날 즈음 임신과 육아에 정신 팔려 살다가, 이내 자녀교육에 ‘올인’함으로써 부부 관계에서 오는 빈 공간을 채워가는 모습을 본다.
소 리 지 음
영적으로 더 깊어져야 할 사랑의 감정은 외부의 분주함에 기대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중년 의 심리를 다루는 많은 저자들이 지적하듯 자녀가 둥지를 떠나고 나서야 부부는 낯선 상대의 모습들을 대 면하게 되고 그제야 미뤄둔 실존적 질문에 직면한다. 우리는 왜 사랑에 빠졌던가, 우리가 결혼을 통해 얻 으려던 지향점은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표현을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혹은 섹스 그 자체로 이해했거나 반대로 선교의 베이스캠프라는 영적인 개념으로 비약하려 했 던 건 아닐까. 곧 불혹의 나이가 되는 나는 여전히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아내와 영혼을 대면하는 경험으로 나아가 지 못하고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다. 육아의 늪에서 빠져 나오고 나니,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서로에 대해 또 다른 낯선 모습을 경험한다. 아내의 거친 ‘야수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 안의 지질하고 연 약한 여성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당혹스러움도 맞닥뜨린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이렇듯 사랑하던 사람 의 낯선 영혼과 대면해야 하며 나아가 나조차 온전히 지켜낼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단 말인가. 사랑, 그 친밀한 관계의 원형은 삼위일체의 신적 교제 그 자체에 있다. 나아가 하나님 스스로만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조물 간에도 더 깊은 교제를 지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서로를 지향하 는, 영혼이 대면하는 지점에서 각자가 그 민낯을 편하게 드러내기엔 우리가 감내해야 할 두려움과 고통의 수위는 높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는 ‘페르조나’를 쓰고 역할극에 익숙해지려 한다. 이른바 부모-자식 노릇, 김과장 노릇, 교인 노릇 등, 그 겉보기 등급의 삶을 분주하게 만든다. 다행히 그 두려움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사랑이 찾아온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는 주기적으 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다. 영혼의 민낯을 대면하는 경험으로 내몰린다. 사회는 결혼이라는 꽤나 보수적 인 울타리 안에서 그 고통을 대면하도록 이끈다. 그 안정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조차 영혼의 민낯을 드러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이 사회에서 답답한 가면을 벗어 던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결혼은, 그런 의미 에서 하나의 신적 경험이자 최고의 도전이다. 물론 내겐 ‘아직도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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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를 담은 에세이
유치한 싸움을 ‘잘’ 싸우는 법 김작가│필명, J대06 올해로 학사 4년차이자 하나님의 나라를 청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소년 활동 가. 현재 5명의 팀원들과 함께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을 경험해가고 있다.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매주 월요일은 청소를 하는 날이다. 팀장님이 간부회의에 들어가고 나면, 남은 다섯 명의 팀원들은 역할을 분담하여 일 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모아놓은 쓰레기를 종류별로 분류하고 주차장 뒤편의 쓰레기장까지 가져다놓는 것은 주로 힘이 센 주사님들의 역할이다. 선생님들은 대걸레질을 하고 창틀의 먼지를 닦고 싱크대를 정리한다. 가장 먼저 일어나 사무실 바 닥과 복도를 쓰는 것은 팀의 막내인 내가 할 일이다. 그러나 정신없이 바쁜 월요일 아침에는 사실상 청소의 분업이 제대 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죄송해요, 저 이것만 마무리하고 도울게요!” 다른 팀원들이 쓰레기봉투와 걸레를 들고 사무실을 다니는 동안 임 선생님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급한 업무를 처리했다. 마침 김 주사님과 박 선생님이 출장을 간 터라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이 주사님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마친 후에 대 걸레질까지 해야 했고 나도 걸레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무실의 먼지를 훔쳤다. 임 선생님은 내내 미안한 표정을 지 으며 평소보다 빠른 시간 내에 업무를 마쳤지만 그때는 이미 청소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뭘 도우면 될까요?” “됐어요. 다 끝났어요.” 뒤늦게 일어난 임 선생님을 향해 이 주사님이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주사님은 이 팀의 차석(次席)으 로, 경력이 많고 급수도 높지만 말수가 적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툰 편이다. 반면 임 선생님은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아무와도 스스럼없이 지내고 싶어 하는 외향적인 성격이다. 때문에 언제나 맞물리지 않아 소소한 불꽃을 일으켰던 두 사람의 성향은 청소라는 작은 사건으로 인해 큰 불로 번지게 되었다. “무슨 말씀을 그런 식으로 하세요?” “제가 뭘요.” “지금 굉장히 불만이라는 투로 말씀하셨잖아요!” “청소를 하나도 안하셨잖아요!” “오늘은 급한 업무가 있다고 죄송하다고 먼저 말씀드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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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평소에도 잘 안하시잖아요.” “제가 언제요! 주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옆 사무실까지 두 사람의 싸우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어찌 할 바를 모르던 나는, 들고 있던 걸레로 닦았던 곳만 괜스 레 다시 닦았다. 팀장님이 돌아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각자의 업무에만 집중했고 오전 내 내 사무실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갈 시간이 되자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사과가 대충 오갔지만, 서로의 상한 마음이나 분노로 어그러진 감정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팀은 주사님들과 선생님들 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주사님들은 행정처리 업무에 탁월하지만 교육현 장에 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선생님들은 청소년들에게 좋은 것을 판단하여 업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행정 전반에 관한 까다로운 규칙이나 조항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다. 서로의 업무에 대한 입장차이가 다르다보니 회의를 한 번 하더라도 의견이 맞지 않아 삐걱대기 일쑤였다.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하고 언성을 높여 싸우는 것은 비단 이번만 의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라, 싸움을 하 면 사과하고 화해하라, 라고 배우며 자랐다. 교회 유초등부 에서 아이들이 싸움을 하면 잘못한 것을 말하게 하고 사과 하도록 가르치기도 한다. 싸움에 대한 해답은 언제나 간단 하다. 배운 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화가 나는 상황에 처하면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상 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반 면 내가 가진 불만을 말하는 것은 쉽다. 불만을 가진 상대 가 자리를 비우면 그것은 더욱 간단해진다. 욕을 먹지 않으 려면 어떤 모임이든 빠지지 말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에 서는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무실은 점심식사를 할 때 매일 돌아가면서 한 사 람이 돈을 내는데, 이에 대해서 김 주사님은 언제나 할 말 이 많았다. 박 선생님이 출장이 잦은 탓에 언제나 밥을 적 게 사고, 밥을 사는 날에도 비교적 싼 가격의 식당에만 간 다는 것이다. 출장이 잦은 것이 박 선생님의 탓도 아니고,
어느 식당에 갈지 함께 협의해서 결정하는데도 팀원들은 김 주사님의 불만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선 생님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보자는 말은 역효과만 낳 을 뿐인지라, 나는 김 주사님이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어떻 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느라 괜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박 선생님이 그동 안 밥을 살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고 미안해하면서 팀원들 을 샐러드바로 데려가 크게 한턱을 쏜 것이다. 식사 때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박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김 주 사님은 그 점심 한번으로 마음이 풀어지더니 출장이 많은 게 어디 박 선생님 탓이냐며 옹호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 하자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하고 풀어지 는 이 어른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싸움과 화해의 시작은 모두 사소한 것이었다. 나는 문득, 관계에 있어서 싸움은 어릴 때 배운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싸움을 한다면 사무실은 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제 사과하 고 화해하는 법 이전에 ‘어떻게 잘’ 싸워야 하는지를 배워 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사무실을 험악하게 만들었던 청소 사건 이후로 이 주사 님은 청소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바쁜 업무를 이해하게 되 었고, 임 선생님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다른 팀 원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조건 서 로를 이해하고 양보하라고 하면 아무리 어른이라도 화가 나는 법이다. 대신에 내가 어떤 사소한 것에서 마음이 상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상대방에게 잘 표현하고, 상대방이 어떤 사소한 것에서 마음이 상했는지를 잘 들어본다면 그 ‘이해’라는 것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잘 싸우는 것은 서로를 잘 이해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싸우 는 것도 화해하는 것도 유치하게만 보이지만, 사실은 관계 를 만들어가는 위대한 과정의 일부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 을 해보았다. 오늘도 나는 싸움이 그치지 않는 파란만장한 사무실에 앉 아 유치한 어른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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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지 음
[ 상연정(常戀亭)에서... ]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이야기
새로운 리더십 (3) 홍정환│부경대98 하늘가족공동체의 식구들과 더불어 삶을 예술로 가꿔가는 일상 생활사역연구소 자료개발위원(복사와 컴퓨터 수리담당).
숨 쉬기가 힘들다. 목구멍에서 단내가 올라온다. 주 저앉아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지만 달려야만 했다. ‘그것’의 입김이 목덜미에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결국 비틀거 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때 보았다. 거대한 몸 집의 토끼를... 아니, 토끼라는 말이 비현실적으로 느 껴지는 흉포한 생물을... “으악!” 적자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목덜미가 축 축했다. 꿈의 여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그는 불 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짧은 틈에 잠이 들다니, 역시 자네는 보통 사람 이 아니야.” “보통 사람이 다 뭡니까. 아예 사람이 아닌 지도 모르 지요, 사형.” 종자와 식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적자는 비로 소 긴 한숨을 토해냈다. “아, 사형들...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 꿈까지 꿨다고? 같이 점심 먹고 이야기하던 그 짧은 틈에?” 적자는 식자의 비아냥거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꿈에 본 ‘그것’을 이야기했다. “거대한 토끼가 저를 쫓아왔습니다. 이런 말이 좀 우 습습니다만, 토끼가 아니라 무슨 사자나 호랑이가 쫓 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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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운드워트1)를 만난 게로군.” 종자가 반응해주자 적자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손발 을 움직이며 꿈에서 본 토끼의 외양을 자세히 설명했 다. 그냥 두었다간 이야기가 토끼의 번식 방법까지 이 를 것 같아 종자는 손을 저어 말을 멈추게 했다. “그런데 자네 언제부터 잔 건가? 헤이즐 이야기는 듣 고 잔 건가?” “헤이즐...넛 아닌가요? 헤이즐이었나요?” 종자는 대답하는 대신 뭔가 골똘히 고민했다. 옆에 있던 지자는 종자의 고민을 간파하고 넌지시 말했다. “때리지는 말거라.” “예... 예, 스승님.” 종자는 스마트폰의 메모를 보며 -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워터십 다운》을 정치소설이라 말씀하신 하우어 워스 선생은, 이 작품을 통해 리더십과 공동체의 유형 을 몇 가지로 정리하셨지. 전통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 지 못해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샌들포드 토끼굴, 거 대한 폭력 아래에서 제한된 자유를 누리며 번영을 갈 망하는 카우슬립 마을, 카리스마 있는 리더 하나에 전 적으로 의존하는 에프라파 토끼굴. 이 셋이 부정적 리 더십과 공동체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면, 저자는 헤이즐 일행의 모험을 통해 바람직한 리더십과 공동 체를 표현하고 있다네. 자네가 이 부분을 읽어주겠는 가?”
“‘헤이즐이 매력적인 이유는 조용하고 겸손하고 분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헤이즐의 지도력은 상식에 기반을 둔다. 그런 지도력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괴롭히지 않고도 자신을 따르는 토끼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 대단한데요, 사형. 토끼 한 마리가 그렇게 존경과 신뢰까지 받을 수 있다고요?” “《워터십 다운》의 저자는 그렇게 말했지. 그렇다면 하우어워스 선생의 견해를 좀 더 살펴보자고. 아무래도 이 작품을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와 리더십에 대한 관점으로 읽어낸 이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네.”2) 적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토끼 한 마리에게 바치기에는 과도한 찬사 아닌가요?” “뭐, 토끼만도 못한 인간도 많으니...” “사형, 어감이 약간 이상합니다만...” “기분 탓일세. 기분 탓!” 어김없이 반복되는 식자와 적자의 갈등! 종자는 헛기침을 하며 둘 사이에 개입했다. “자네들은 참 한결같구먼. 그건 그것대로 장점이겠지. 아무튼 하우어워스 선생은 헤이즐을 통해 바람직한 리 더십의 모습을 정리했다네. 운드워트는 다른 토끼들을 자신에게 기대지 않고는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수 동적 존재로 만들었지만, 헤이즐은 ‘모두에게 주어진 재능을 최선의 상태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결정해주는 방법 을 알고’ 있었지.” “마치 스승님 같군요.” “응?” 적자의 난데없는 말에 종자와 식사는 물론 지자까지 깜짝 놀랐다. “그렇잖습니까! 각기 개성이 다른 제자들을 획일적으로 조직화하지 않으시고 타고난 결대로 살 수 있게 가르 치시니, 과연 그러하지 않습니까!” “...” 종자는 순간 고민했다. 자신도 한 마디 찬사를 덧붙여 스승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곧바로 말하자니 너무 얄팍해 보여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헤이즐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 불분명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릴 책임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 이었네. 공동체 식구들을 자율적 존재로 대접할 때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은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 단함을 소위 ‘수평적 리더십’으로 오해한다는 것이지. 우리 스승님은 이 둘의 균형을 잘 이루고 계시니 과연 훌 륭한 지도자가 아니신가!” 종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초조한 표정을 지은 채 손톱을 물어뜯는 식자가 보였다. “하하... 그쯤 해두어라. 헤이즐을 비롯한 모든 지도자는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란다. 다만 워터십 다운 의 토끼들이 가진 크나큰 장점은 헤이즐이 실수할 때에도 그를 ‘두목토끼로 남아있도록 지지해주는’ 것이었지. 위대한 지도력은 위대한 공동체에서 자라는 법이니... 새로운 리더십을 원한다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느니라.” 지자의 웃음소리가 상연정 가득히 울려 퍼졌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모양이다.
to be continued
1)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서울: 사계절, 2003)에 등장하는 독재자 토끼. 2)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을 참고했음. 스탠리 하우어워스, 《교회됨》, 문시영 역 (서울: 북코리아, 2010), p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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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지 음
[ 낭만주의자의 영화이야기 ] 낭만 가득한 영화 리뷰
이 순간을 즐기세요 (Have fun!) 정일문│연세대87 세대를 관통하는 씨네필(cinephile)이자 신앙과 문화의 접점을 모색 하는 물과학자. 좋은 친구이자 상담자인 아내, 토토로를 좋아하는 개구쟁이 딸과 함께 옳고도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3)> 코미디 배우 벤 스틸러가 원작을 리메이크 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열정이 사라진 중년들을 위한 판타지이자 실존했던 20세기 최고의 잡지 [LIFE]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합니다. 처칠과 히틀러, 마 릴린 먼로와 존 레논 등 역사적인 인물과 2차 대전 전장의 생생한 사진을 담은 [LIFE]의 커버스토리는 시대마다 큰 반향 을 몰고 왔었지요. 영화 속 주인공 월터(벤 스틸러)는 바로 라이프 잡지사에서 필름을 현상하는 일을 합니다. 사실 그는 틈만 나면 상상 속으로 뛰어드는 몽상가죠. 사진부의 신입직원 셰릴(크리스틴 위그)을 짝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멋진 영웅 이 되는 공상을 즐깁니다. 한편,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종이잡지의 폐간이 선고되고, 신임사장(아담 스콧)이 부임하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됩니다. 월터의 남은 과업은 커버스토리의 최종판을 현상하는 일. 그런데 전설의 사진작가 숀(숀 펜)이 보낸 25번 필름을 분실하면서 월터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관객은 삶의 정수(精髓)가 담겼다는 25번 필름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숀을 찾아 무작정 떠 나는 월터와 함께 여행길에 오르게 되지요. 하지만 필름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여정은 퍼즐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어려 웠고, 월터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험이 시작됩니다. 평생 특이한 경험이라곤 해 본 적 없던 그가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들게 되고 상어와 격투를 벌이기도 하지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아찔한 속도로 질주하는가 하면 눈앞에서 화산폭발 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비록 필름을 찾지 못해 해고통보를 받지만,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 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라는 잡지사의 모토대로 월터는 세상을 보고 장애 물을 넘는 체험을 통해 더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되지요.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월터처럼 통장잔고에 연연하며, 하고픈 일을 가슴에 묻은 채 숨죽이며 살아가는 관객들은 이 대 목에서 잊고 살았던 인생의 꿈을 기억해 냅니다. 문득 두고두고 잘했다 싶은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7년 전 일본 출장 때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생겼지요. 동료들이 숙소에서 쉴 때 저는 두 시간짜리 협곡열차투어를 선택했습니다. 늦가을인데 열차는 창 없이 뚫려있어 온몸에 한기가 파고들었지만, 단풍으로 수놓은 산속의 비경은 추위마저 잊게 했습니다. 기차에 서 내려 낯선 계곡을 걸어가다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개울을 보게 됐지요. 말로만 듣던 화산온천이었습니다. 비는 내리고 등산객들이 멀리서 지나가는 게 보였지만, 저는 용기를 내어 속옷만 입고 물속에 드러누웠습니다. 따스한 온기에 몸을 녹이는데 정말 짜릿하더군요. 찬송가 구절처럼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뿌연 수증기만 보였던 물아일체의 체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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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잊을 수 없습니다. 바라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의 차이는 아주 크다는 것, 기쁨의 순간은 유보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알 게 됐죠. 인생을 기차 여행에 비유한 에세이 <역(驛)>1)은 목적지인 역에 도착하는 것만 기다리며 정작 기차여행의 기쁨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저자인 해스팅스 목사는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염려는 오늘을 훔쳐가는 쌍둥 이 도둑들”2)이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다짐한다. “그래, 그 역에만 도착하면, 다 되는 거야! 열여덟 살만 되면... .승진만 하면... 마지막 애가 대학만 졸업하면... 벤츠450SL을 사기만 하면... 집 담보의 빚을 모두 갚기만 하면... 은퇴할 자금을 마련하기만 하면, 그 때 이후로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되는 거야.” 그러나 살다보면, 인생에 그런 역이 없음을 알게 된다. 한번 다다르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장소가 지상엔 없다. 기쁨은 그 여 행에 있다. 그 역은 환각이요, 다가갈수록 더욱 멀어진다. - 《역(The station)》 중에서
소 리 지 음
월터는 필름을 찾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17살 때 아버지께 선물로 받은 여행일지까지 챙겼습니다. 첫 장에 “Have fun!”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정작 단 한 번도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죠. 히말라야를 향해 출발한 그는 아프가니스 탄을 거쳐 극적으로 숀을 찾습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멋진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온 사람과 그 필름을 받아 정성껏 현 상하던 사람이 16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것이지요. 숀은 유령이라 불릴 만큼 만나기 어렵다는 히말라야의 눈표범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나타난 눈표범을 월터에게 보여주던 숀은 갑자기 셔터에서 손을 떼지요. 빨리 찍지 않고 뭐하냐는 월터에게 숀은 말합니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순간 속에 머물 고 싶지. 나를 위해서.” 월터는 숀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여행에서 돌아오지요. 그는 더 이상 지질한 몽상가가 아닌 당 당한 자유인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결국 영화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결코 주저하지 말라”고 속삭입니다. 짝사랑하는 그(녀)를 향한 고백, 괴롭 히는 직장상사에게 한 방 먹이기, 오지로의 여행과 같은 위시리스트는 마음만 바꾸면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행복이라 는 계곡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빠져보는 것, 당장 저부터 실천해 볼게요. 느낌 아니까!^^
그러니, 기차의 복도를 왔다 갔다 하고 마일 수를 세는 짓을 그만두라. 대신, 강에서 한번 더 헤엄치고, 산을 한번 더 오르고, 아기들에게 한번 더 입 맞추고, 별을 한번 더 세라. 더 웃고 덜 울라. 더욱 자주 맨 발로 걸어라. 아이스크림을 더 먹어라. 회전목마를 한번 더 타라. 일몰을 한번 더 구경하라. 인생은 가는 동안에 사는 것이다. - 《역(The station)》 중에서
1) 로버트 J. 해스팅스 목사님의 글. 원제는 〈The station〉(1980). http://www.robertjhastings.com/ 2)‘역’ 본문에 나오는 글(Regret and fear are twin thieves who rob us of today)로 2001년 6월 29일 뉴욕타임즈에서 인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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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가 풀어 쓴
이야기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유교의 모든 것
유교를 알면 기독교가 풍성해진다! 유교는 종교인가 사상인가? 기독교와 유교는 결코 조우할 수 없는가? 기독교적으로 제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한국인의 정신과 몸을 갖고 태어난 그리스도인에게 유교란 무엇인가? 유교와 기독교 모두를 깊게 연구한 배요한 교수의 지적 탁월함이 빛나는 이 책을 유교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과 배워야 할 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_ 김명용 총장(장로회신학대학교)
배요한 지음 328면 | 15,000원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이기동 교수(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 추천!
죽음을 배우다 아
르
스
모
리
엔
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랍 몰 지음 | 이지혜 옮김 272면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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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기독교의 오랜 전통을 소개하고 죽음에 대한 통찰을 제시해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이들의 친절한 동반자가 되어 줄 책이다. 마르바 던「안식」 ( 저자), 제임스 패커「하나님을 ( 아는 지식」저자), 원주희(샘물호스피스선교회 회장), 최혜리(간호사) 추천!
[ 소리가 만난 사람 ]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학사운동의 역사를 만나다 #4
보냄 받은 자리에서 의미를 발견하길 지성근│부산대81,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소장 진행 이시종 편집장 / 정리 편집부
미션얼 컨퍼런스, 일상생활사역주간, TGIM, Seize Life 등등... IVFer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다양 한 사역들이죠. 이 사역들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 는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지성근 소장을 만났습니 다. 일상생활사역뿐 아니라 부산 IVF의 개척멤버 로서의 소회,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간사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가족의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사모님(김미혜, 동아대83)은 소문난 미인이시죠?
아내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등굣길이었어요. 학교 가는 길에 있던 사진관 앞에서 항상 같은 시간에 마주쳤 어요. 그때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교회에 와있더라고요. 관심 있게 지켜만 보다가, 아내가 중학교를 졸 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에 올라가기 직전,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 사귀자고 프러포즈를 했어요. 그래도 중 학교는 졸업해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더라고요. (웃음) 서로 잘 지내다가 제가 대학에 들어가서 바람을 피 웠죠.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만나주지 않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아내는 암흑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 죠. 그러다 제가 4학년, 아내는 2학년 올라갈 때, 아내가 저에게 성경책을 건네더군요. 이전에 저에게 사주기로 했었는데, 상황을 견디다 못해 이별의 의미로 선물한 거였어요. 저는 지은 죄가 있으니 말도 먼저 못 붙이다가 이 선물을 기도응답으로 생각하고 관계를 다시 시작했죠. (웃음) 그때의 일로 두고두고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29살 때 결혼을 했으니 프러포즈한 지 12년 만에 한 거네요. 저는 연애 기간을 12년으로 계산하고 우리 집 사람은 훨씬 짧게 계산해요. (웃음) 제가 신대원에 입학했다가 한 달 만에 휴학을 했어요. 그리고 총신대학원이 서류를 잘못 처리해서 85년 전체를 그냥 놀았습니다. 그때 동아대 IVF에 가서 찬양인도하고 DPM에도 참석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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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지 음
그래서 교회 대학부에서 IVF의 성경공부 교재를 접했 고 IVP에서 마스터본으로 만든 책을 읽었죠. 그러다 보니 캠퍼스에 IVF란 이름이 나타나자 관심이 생겼어 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성문 형제와 IVF에 처음으 로 가입하고, 신입생을 받아 첫 학기부터 1학년을 다 섯 여섯 명씩 맡아 소그룹을 했어요. 자발적인 전도사 님들의 세계학생운동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IVF와 연 결되었죠.
* 부산지역 학사회는 언제 시작되었나요? 초창기 부산 학사회의 목적이나 내용, 방식이 궁금합니다.
죠. 집사람을 옆에 두기 위해서였어요. 수업도 같이 들 었으니까요. 끈덕지게 붙어 있어서 마침내 쟁취할 수 있었죠. (웃음) IVF에 예쁜 자매가 있어서 들어왔는데 옆에 누가 꼭 붙어있더라고, 한 친구가 나중에야 말하 더라고요. 제가 동아대 학생인 줄 알았다더군요. 선배 라 감히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하대요. 자녀는 1남 2녀로 대학생, 고3, 고1이에요. 자녀가 우리에겐 하나님이 주 신 교육의 장이죠.
* 부산 IVF가 올해 30주년입니다. 부산 IVF의 개척멤버 로서,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때 함께했던 분들 은 누구인가요? 간사님은 어떻게 IVF와 연결되어 참여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부산 IVF의 시작이 독특해요. 80년대에 고신대학교 에 재학 중이던 전도사님들이 학생운동에 관심을 가 지고 스터디를 하다가, 성서유니온 간사를 통해 당시 의 IVF 간사님들과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우리도 캠 퍼스사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1984년 3월 초에 처 음으로 모집을 했어요. 그 멤버를 ‘고신7’이라고 부르 는데, 전 여덟 명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 ‘캠브릿지7’과 유사하게 하려고 ‘고신7’이라 한 것 같아요. (웃음) 부 산의 큰 두 개의 대학인 부산대와 동아대에 4명씩 가 서 신입생모집을 시작한 거죠. 그때 저는 4학년 1학기였어요. 서울에 유학하던 모교 회 선배들이 IVFer였고, 목사님 딸도 IVF 출신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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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산학사회 제1호 학사죠. IVF를 한 지 1년 만 에 학사가 됐으니까요. (웃음) 학사회는 88년에 졸업 생이 배출되면서 시작했어요. 정관도 만들고, 학사회 가 주도해서 세계관 스터디도 했죠. 마침 그때 제가 군 대를 제대하고 성서유니온 간사로 1년 동안 있었어요. 성서유니온 사무실이 IVF 학사회 사무실과 가까웠어 요. 성서유니온의 방이 더 커서 그곳에서 함께 모임도 하고 해외 서적을 번역하며 공부했죠. 명사초청 강연 도 들었고요. 그때까지 졸업생이 10~15명 정도라 관 계가 끈끈했죠. 그러다가 학사회 내에 세계관 모임, 회 보 모임, 문화연구 모임, 낙태반대 모임 등의 소그룹들 이 생겼어요. 몇 가지 모임이 독자적으로 모이기 시작 하면서 회보 모임은 전체를 네트워크하는 역할을 했 어요. 소그룹의 결과물이나 학사들의 동정을 수합해 서 회보를 만들었죠. 이 회보는 88년에 시작되어 제가 부산학사회를 맡았던 2006년까지 발행되었어요.
* 부산 IVF 대표간사를 하시다 캐나다로 신학연수를 가 셨죠. 이때 학사회 사역을 염두하고 나름의 준비를 하 셨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그 리고 이를 부산학사회에 어떻게 적용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처음부터 학사회 사역을 준비했던 건 아니었어요. 연 수 마지막 해쯤에 학사회 사역을 제안 받았죠. 직장 사 역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돌아왔습니 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실제 학사들의 삶은 사역을 하기엔 너무 척박했어요. 직장에 다니지 않는 학사를 중심으로 사역하다 보니 기존에 준비한 것이 소용이
없어졌죠. 학사회 임원들도 그간의 사역으로 지쳐있던 상황이라 제가 그만두고 쉬라고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일상생활이라는 개념이 더 적실성 있는 사역의 콘텐츠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안에 생겼던 첫 번째 질문은, 그때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교회병행단체’로서의 학사회가 교회와의 관 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였어요. 캠퍼스에서 전도해서 제자삼고 교회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 학사 회를 한다면 이 약속을 한 박자 늦추든지 혹은 학사회가 교회를 대신하기가 쉬웠죠. 두 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졸업하면 모두 직장인이 되던 시대에서 IMF 이후 졸업해도 실업자인 상황에 학사들에게 적실성 있는 메 시지와 콘텐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어요. 이런 고민에서 시작하여 정리한 것이, 부산지역 학사회의 방향 성은 ‘디아스포라 공동체’라는 것이었어요. 학사들이 보냄 받은 일상생활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 학사회가 교회병행단체로서 교회를 돕는 길이라는 게 결론이었죠. 그렇다면 모이지 않고 흩어져있는데 어떻게 공동체를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죠. 옛날에는 성령의 끈으로 모인 다고 했지만, 2000년대의 더 구체적인 끈은 홈페이지였습니다. 멀리서도 접속할 수 있는 공간이니 학사들이 볼 수 있도록 제가 매일 글을 썼어요. 6년 동안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학사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이 홈페이지 의 데이터가 손실된 사고는 지금도 무척 아쉽습니다. 저에게 학사운동의 기본전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학생운동이 학생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학생의 운동 이어야 하듯이, 학사운동도 학사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학사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학사회가 잘 모인다고 학사운동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학사운동이 잘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이죠. 왜냐 하면 IVF 출신 학사들이 곳곳에서 학사운동을 이미 잘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학사회는 그런 학사들을 발굴하 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네트워크 하는 역할을 해야겠죠. 그런 학사들 각자의 사역과 학사회 사역이 합쳐져 학 사운동이 총괄적으로 이뤄지는 거니 한국 IVF가 학사운동을 못한다는 평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습 니다.
* 간사님이 학사운동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일상생활사역연구소를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가치 생산과 유통으로 학사를 섬기려고 하신 것 같은데, 연구소의 취지와 일상성이 왜 중요한지 좀 더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본래 일상생활사역연구소는 부산지역 학사회에서 만든 두 개의 연구소 중 하나였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냥 편하게 연구소라 붙였죠. 일상생활 부분이 한국교회의 가장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영역 이라 생각했어요. 주되심 곧 하나님나라를 공간적으로는 예배당 안에, 시간적으로는 예배시간 안에만 가두어 놓지 않도록 한국교회에 권고하고 격려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고요. 이를 위해서는 신학교가 변해야 하니까 신 학교 교수와 신학생을 위한 읽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고, 그 연구가 축적되어야 하니까 연구지도 필 요한 것 같고, 강의, 강연도 당연히 필요하고... 그런 생각 끝에 연구소를 만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이런 연약 함에 대해 예상보다 공감하는 분이 많이 계셔서 연구위원으로 위촉할 때 흔쾌히 승낙하셨고, 2,3년 동안은 연구 위원들의 재능기부로 연구지를 만들었어요. 그 자체가 저에게도 많은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4년이 흐르니 그전에는 출판계에서 IVP만 일상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흔하게 사용하게 되었죠. 감사하게 생각해요.
* 구체적으로 학사들이 연구소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그간의 자료에 접근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 다.
연구소가 부산에 있어서 의사소통 하는 데 어려움이 있죠. 그걸 보완하는 장치가 SNS에요. 홈페이지에 축적 한 자료를 SNS를 통해 유통한다는 게 연구소의 기본전략이고요.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약간의 수고를 하시면 그간 축적된 연구소의 다양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령 TGIM 운영에 필요한 자료라든지, 일상생활 사역 과 관련되어 시중에 나온 책 15권 정도를 챕터별로 요약한 자료, CBS 방송에서 2년 동안 다뤘던 다양한 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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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지 음
일상의 눈으로 어떻게 성경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코멘트가 창세기, 고린도전서, 출애굽기의 챕터별로 정리되 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연구지와 기타 자료들도 검색할 수 있어요. 유트브에서 “일상생활사역”을 검색하시면 저 희가 만든 다양한 영상을 보실 수 있고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서 새로운 소식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 법입니다. * 작년 11월에 일상생활사역연구소가 주최한 ‘미션얼 컨퍼런스’가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생중계되면서 외국에 계신 분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셨죠. 그 컨퍼런스에 관해 말씀해주세요.
IVF가 캠퍼스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존재 자체가 ‘미셔널(Missional)’하다고 생 각해요. ‘보냄 받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IVF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으면 어 디에 보냄을 받든지 그곳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며 살게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최근 레슬리 뉴비긴과 같은 서구 학자들에 의해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보냄 받은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 면서 저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IVF가 한국교회를 향해 미셔널한 교회 정체성에 대해 담론을 꺼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이 ‘미션얼 컨퍼런스’라 생각했어요. 일상생활이 우리가 보냄 받은 곳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사역연구소와 관련이 없는 주제가 아니라 어쩌면 일상생활 영성에 중요한 신학적 기초를 미셔 널 처치가 담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2010년, 2011년에는 ‘교회 2.0 컨퍼런스’라는 이름으로 홍대 앞의 카페에서 개최했습니다. 이후에는 그 이름을 목회자 그룹에 넘기고 원래의 의도를 담아 ‘미션얼 컨퍼런스’를 열었어요. 컨퍼런스 이름에 교회를 넣지 않은 건 교회론으로 접근하면 또 다시 목회자들만의 전유물이 되기 쉬워서예요. 미셔널이라는 담론은 그리스도인의 정 체성에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거기서부터 확대되어 교회 이야기를 꺼내야 하니까요. 그 내용도 교회의 정 체성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목회자들뿐 아니라, 목회자가 아닌 분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보냄 받은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넣으려고 애썼습니다.
* 타이틀을 미션‘얼’로 붙인 게 독특합니다. 어떤 ‘정신’이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겠죠?
‘얼’은 한국적인 말이죠. 미셔널(Missional)이라는 영어 단어를 번역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교회가 온다》를 번역할 때도 고민이 있었고,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도 여러 의견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널’의 ㄴ을 앞 으로 붙이고 ‘얼’로 바꾸면 한국적인 정서에 보냄 받은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가미되어서 독창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겠다 생각했죠. 어색한 조어(造語)이긴 하지만 단어에 의도를 담아 만든 것이죠. 미셔널이란 개념을 서구에 서 가져온 프로그램이나 신학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10여 년의 역사를 둔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지난 2,000년 동 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든지 생각하고 고민했어야 할 내용이에요.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도 당연히 이런 보냄 받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고 영향을 미쳤겠죠. 그런 의미에서 외국의 논의는 물론 우리 안 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처음으로 열렸기 때문에 특별히 이론적인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신 분들의 사례를 나누는 내용이 더 많았습니다. 사례 발표자 중에는 자기가 하고 있는 게 미셔널 처치라는 걸 모르는 분도 있었어요. 거기에 이름을 붙여준 거죠. 그후 일종의 감으로 혹은 성경 에 대한 순종으로 시작했던 그 일을, 어떤 방향을 가지고 더 역동적으로 사역하게 된 분도 있어요. 앞으로도 이 미 한국에 있는 미셔널 처치를 발굴해서 이름 붙여주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컨퍼런스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또 다양한 방식으로 일을 해나가겠죠. 이런 다양성은 유지되어야 할 것 같아요.
* 신학연수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부산에서 거주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부산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부산을 떠 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서울에서 연구소를 하는 게 영향력 확산을 위해 더 적절한 선택이 아니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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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유와 압박(?)도 있었는데 꿋꿋이 버티고 계시고요. (웃음) 지방에서 연구소를 하는 장점과 가치 그리고 애환을 나 눠주세요.
우선 부산에 먹을 게 많죠. (웃음)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아빠가 공부한다고 캐나다에 따라갔다가 다시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많았어요. 그게 지금까지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서울로 자리를 움직 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아이들이 제일 어려웠을 때라 가정의 상황을 고려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물론 부산은 변방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이야 기대로 변방은 창조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확신이 생깁니다. 서울이라는 곳이 주는 삶의 압박감 속에서 새로운 사역을 한다는 게 어려웠어요. 그리고 그동안의 기반이 전부 부산에 있으니 그 런 자원을 활용하면서 사역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죠. 사람과 물자, 네트워크가 수도권 중심으로 되어있는 현 실이 사회구조적으로도 문제였고요. 당시 노무현 정권에서 지방분권과 각 관청을 지방으로 이양한다는 이야기 가 나오던 때라 그런 고민을 기독교 생태계 안에서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직장사역연구소도 있는 데 비슷한 내용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서울에서 생존하느니 지방에서 새로운 움직임으로 해보는 게 낫겠다 싶 었어요. 부산에서 살면서 부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일상생활이라는 주제 자 체가 변방의 주제죠. 이전의 왕조사 중심의 역사 기술에서 지금은 역사학의 대세가 일상사라는 변방의 작은 사 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와 같이 일상이라는 주제 자체가 중앙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상징적으로라도 부산이라는 몰락해가는 도시에서 목소리를 발하는 것 자체가 주는 함의도 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이제 50대의 삶을 살고 계신데, 앞으로 지금까지 해온 사역 외에 꼭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도 제가 꼭 해보고 싶다고 해서 한 게 있나요, 그저 하나님이 보내신 시점과 장소에서 응답하며 살았 으니까요. 50대든 60대든 그렇게 살지 않을까요. 꼭 하고 싶은 건 없어요. (웃음)
* 끝으로 학사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소리]를 읽고 계실 정도라면 학사운동에 관심이 많으실 텐데요. 지금 하고 계신 그 일이 학사운동이라 말씀드 리고 싶어요. 열심히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위해 고군분투 해주시는 게 학사운동의 성장과 발전에 큰 도움 이 됩니다. 직장을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서라면 학사모임에 안 오셔도 됩니다. (웃음) 그리 고 학사모임을 이끌어가는 임원이나 간사도 그 정도의 내성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임에 사람이 안 와 도 그게 우리 모임의 건강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요. 기독교 문화에서 자란 사람은 모임에 사람이 적으면 일 단 불안해요. 사람이 왜 이렇게 안 오지, 우리 모임에 위기가 온 건 아닌가, 이러면서요. 위기가 아니에요. 그게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어요.
* 일상생활사역과 미션얼은 앞으로 더 중요하게 부각될 주제인 것 같습니다. 학사들을 만날수록 이 부분의 필요가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아직 미완의 종교개혁이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사역들을 통해 재조정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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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지 음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소리이음
FINE,
전북학사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학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전북학사회 소식을 띄웁니다. 한 학사가 일상에서 분투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운동’하는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활동들로 지면을 채워주셨습니다. 전북학사회를 통해 즐거이 소통하는 비법을 얻어가시면 좋겠습니다.
45 일상에서의 만남_김선영 47 상상 그 이상의 공동체, Fine! 전북학사회_양원규 49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영성! 전북지방 홀리민턴(Holy-minton) 51 함께 어울려 놀 때 임하는 하나님 나라, 학사회 1박 캠프
55 안테나 58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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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만남
각자의 소명을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학사들의 삶 이야기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이 도우시리 김선영│전북대95 남편과의 슬하에 초등3학년, 20개월 된 두 딸을 두었고,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영어 를 가르치고 있다. 일에 대한 중압감을 쉽게 받고 조급한 터라 주님께 맡기는 연습,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계속 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머감각과 느긋함 을 배우고 싶다.
기독교사 수련회에 다녀왔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담한 응답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두 딸의 엄마요 10년 차 직장여성, 평범한 가정의 아내로 순조로운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항상 이런저런 고민을 짊어지고 산다. 몇 년 전부터 교사를 계속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이 자리가 많이 버겁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자리가 다 시없을 좋은 기회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둘째 딸 때문이다. 직장에 가있는 동안은 육아의 짐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들긴 하지만 우리 딸에게는 미안하기 그지없다. 시어머님이 돌봐주시는 딸을 매일 한두 시간만 보고 돌아설 때는 맘을 헤집는 것 같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생명을 내 품에서 키우는 것이 직장생활하는 이 유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집안일의 어려움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당직을 서야 한다. 하루 이틀은 늦은 시간 까지 방과후수업을 해야 한다. 9시, 10시나 되어 퇴근을 하면 청소, 빨래, 먹을거리 준비 등 집안일이 쌓여 있다. 청소는 남 편이 한다고 해도 집안일을 잘 소화하지 못하니 조급함이 생긴다. 특히 먹을거리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내로서 좋 은 먹을거리를 챙겨 주지 못하고 엄마로서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다는 고민도 만만치 않다. 세 번째 이유는 학교에서의 생활이다. 직장이 대안학교이다 보니 안팎으로 교사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다. 학생들을 더 챙겨줘야 하고, 더욱 사랑으로 보살펴줘야 하고, 더 함께해야 하고... 나는 나름대로 ‘I don’t care’ 하면서 지내지만 다 른 교사와 비교하며 생기는 패배감은 어쩔 수 없다. 주부이고 엄마이기에 학생들에게만 나를 다 내어줄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과 서먹한 나를 보면서,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개벼...’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학생들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 데, 학생들이 나에게서 뭘 받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고 그냥 학기가 지나가버릴 때, 내가 준비한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과연 내가 여기 계속 버티고 있어도 되는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 더라면 나보다 더 값진 열매를 맺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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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내가 정말로 학생들을 사랑하는가 의문이 생겨서이다. 사실 우리 딸들을 사랑하기에도 버겁다. 어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사랑스러운 마음이 흘러나오지만 어떤 학생들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보 외 에는 마음을 주고받는 말을 하기가 어색한 친구들도 있다. 때로 교사에게 무례한 아이를 보면 마음이 상하기도 하기에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런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형제자매와 리더들과 멤버들을 사랑한다고 고백 했나 싶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은 내가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셨다. 수련회 기간 동안 하나님은 나의 이런 고민에 대 해 응답하시지 않았다. (물론 내가 못 들은 것일지도 모르지..) 그냥 이 고민을 내려놓게 하시고는 그저 나의 할 일은 내 신앙을 잘 지켜 우리 딸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결혼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게 쉬워보였다. IVF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살 소망을 품게 되고, 인 생을 다시 보게 되고, 무엇보다 좋은 공동체를 만났다. 졸업 후에도 나는 내게 익숙한 교회 공동체를 선택하고 보 호받고 즐기고 안정감을 누리며 살았다. 직장이나 내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기도하지만 결국은 내가 선택하 며 결정을 내렸다. 뭔가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나의 선택을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크게 걱정하거나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았다. 내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못했다면 그것은 아마 내 자신이 걸림돌이었기 때문일 것이 다. 나의 자유로운 선택은 결혼까지였다. 그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였다. 남편을 따라 서울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충청남도의 작은 읍에 내려와 학교 관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물 론 남편도 이곳이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3월에 남편은 대안학교를 개척한 멤버가 되었고 우리는 그해 6월에 결혼을 했다. 나 역시 남편과 함께 교사를 하고 있다. 결혼하고 나니 하나님의 인도는 나에게는 너무나 단순해졌다. 그래서 나는 너무 복잡해졌다. 내 신앙수준으로 는 너무나 벅찬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공동체의 교제나 말씀 안에서의 양육은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니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도 무너뜨려야 했 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삶이 버거워도 그냥 계속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다. 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으므로 하나님의 인도는 단순해졌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그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 계속 묻고 기다린 다. 이 기간은 그저 견디는 기간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부족해서 이 시기를 즐기지 못하고 견딘다는 표현을 쓰 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하나님의 손길이 잘 안 잡히는 듯하지만, 인생을 길게 보면 이 답답했던 시기에 날 다듬 으신 하나님의 손길에 눈물겹도록 감사할 날이 찾아올 것이다. 2014년에도 나는 다시 학교와 계약을 맺었고, 연구부의 일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아줌마인 나에게 교육과정계 획서를 맡길 수 있나 잠시 비통해할 여유도 없이, 입학식인 오늘 아침에야 내가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통 한 교무업무) 담당인 것을 알게 되어 뒤로 자빠질 지경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으니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 오늘도 그 믿음을 붙들고 교정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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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이음
FINE, 전북 학사회
상상 그 이상의 공동체 - Fine! 전북학사회 양원규│전북대93, 전북학사회 협동간사, 하늘가족교회 담임
* 전북학사회가 궁금합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나요? 전북지방 IVF는 작년(2013년)에 지방회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80년대 말 학 번의 학사님들이 개척멤버로 시작해서, 90년대 초반 학사님들이 졸업하는 시점부 터 전북학사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학사회는 교제 중심으로 모이다가, 2001년 전북학사회 수련회를 처음 가졌던 것을 계기로 학사운동에 관한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왜 학사회로 모여야 하는가?”란 주제로 학사들이 열띤 토론 을 벌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열띤 토론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학사회가 교제하는 정도에서 모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이제 학사로 세상에 파송되 었으니, 각자 삶의 자리(가정, 교회, 직장)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고, 학사회는 가끔 서로 격려하고 도전하는 교제의 장을 마련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견해는 학사회가 전문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교제만 하려고 또 학사모임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제는 학사회가 각자의 관심 분야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적용하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으로 나아 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이 두 입장 차이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후로 졸업한 학사들의 취업난이 이어지고, 많은 학사들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전북지역을 떠나기도 했고, 학 사모임을 주도하던 분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가장 바쁜 30~40대에 들어서면서 전북학사회는 큰 위기에 직면하 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학사회로 모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더불어 다시 “왜 학사회로 모여야 하는 가?”하는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 학사들은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에 접어들었고, 캠퍼스에 서 배출되는 후배 학사들의 수는 줄어들면서 학사회는 점점 더 어려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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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전북학사회 협동간사 제안을 받고 기 도하던 중에 이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느 헤미야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사랑하는 학사 공동체 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학 사회에는 그루터기처럼 그 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동 역자들이 있었고 지금은 그들과 함께 즐겁게 학사모 임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놀 라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 전북학사회 방향성을 “FINE”으로 설명하던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네 번째는 Encouraging입니다.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역입니다. 학사 사역은 단기간에 이벤트성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친 학사들을 격려 해주고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 이 필요합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시 는 학사님들 모두 모두 파이팅입니다.
“FINE”을 생각해 낸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 다. FINE은 멋진, 또는 더 나은 전북학사회를 이끌어 갈 학사회의 방향성이자 중점사역의 첫 글자들을 모 은 것입니다.
간단히 정리한다면, 전북학사회 방향성과 중점사역 은 찾아서(Finding), 소통(Interaction) 하고, 연결(Network)시켜서 격려(Encouraging)함으로 멋진(Fine) 학 사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Finding입니다. Find에 담긴 두 가지 의미 를 활용했습니다. 하나는 찾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발견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소식이 닿지 않았던 지방회 학 사들을 찾아가는 일과 더불어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 라 운동의 모델이 되는 학사들을 발굴하는 사역을 의 미합니다. 학사님들이 바쁘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 시니 저희가 찾아가야죠!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실 학사님들이 아주 많이 계십니다.
* 인격적인 관계 속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지향하 시는군요.
두 번째는 Interaction입니다. 말 그대로 소통입니다. 학사회는 소수가 이끌고 가는 모임이나 운동이 아닙 니다. 많은 학사들과의 소통이 일어날 때 상상 그 이상 의 운동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방회 학사들 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수렴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 해서 학사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사역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Network입니다. 이것은 학사들을 연결하 는 사역입니다.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학사들의 관계 형성과, 같은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학사들을 연결 시켜서 교제와 전문운동의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 재 각 지역에서 배출된 IVF 학사들이 정말 많은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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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제(Fellowship)와 운동(Movement)이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모 두 인격적인 관계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관계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으로 전개해 나가셨습니다. 학사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찾아가고, 서로 소통이 일어나고, 서로 연결되 고, 서로를 격려한다면, 그곳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이 꽃피우고 열매 맺을 것이라 믿습니다. 전북학사회는 이 길을 가고자 합니다. 쉬운 길은 아 니지만 이미 저희는 그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전국 의 학사님들이 함께 기도해 주신다면, 더욱 힘차게 그 리고 끝까지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봅 니다.
※ 전북학사회 큰모임(LGM) - 매월 금요일 기준 둘째, 넷째 주 금요일 늦은 7시 30분, 전북지방 비전센터 지하 예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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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영성! - 전북지방 홀리민턴(Holy-minton)!
여러분은 학사 소그룹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책 나눔? PBS? 주부 성경공부? 기도모임? 학사 소그룹에 새로운 도전! 이제 전북학사회의 배드민턴 소그룹인 “홀리민턴”을 소개합니다.
1. 홀리민턴의 탄생 양원규│전북대93 홀리민턴의 창시자(?), 홀리민턴에서 체력적 부담이 가장 많은 나이
작년 여름 무렵, 형제 학사들을 위한 소그룹을 고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성경공부나 책 나눔 형태의 소 그룹은 이미 교회에서도 하고 있는데... 뭔가 자발적으 로 즐겁게 나올 수 있는 모임 형태가 없을까?’ 순간 입 장을 바꿔 생각해보기로 했다. ‘만약 나라면 어떤 모임 에 즐겁게 시간을 내고 나갈까?’ 바쁜 직장생활과 가 정을 섬기는 일 그리고 교회 활동 이외에 시간이 남는 다면 그건 단연코 휴식과 취미생활일 것이다. 모여서 휴식을 취할 순 없으니, 취미생활로 초점이 옮겨갔다. ‘운동!’ 마침 지방회 간사들이 배드민턴을 친다는 소 식을 접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배드민턴.’ 남녀노소 가 즐길 수 있고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라 사계절 가능 한 운동이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영성이 깃든다. 일상에서 거 룩을 추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근본이니, Badminton에서 Bad(나쁜?)를 빼고 거룩한 Holy를 붙여, Holy-minton, 이른바 거룩한 배드민턴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이 하면 모든 것이 거룩해지니까~^^ 주님의 은혜였는지, 때마침 <우리 동네 예체능>이란 TV프로그램에서 배드민턴이 방영되는 바람에, 홀리
민턴의 회원 모집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목 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 일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운동과 교제를 나누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이나 모이는데도 자발적으로 기쁘게 나오는 이런 학 사 소그룹이 어디에 또 있을까. 현재 홀리민턴 카톡방 에는 07학번 신입학사부터 93학번까지 20명의 멤버 십이 확보되어 있다. 앞으로 회원 수가 얼마나 더 늘어 날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2. 학사회 홀리민턴 일기 오대원│전북대02 홀리민턴의 열혈 멤버 중 하나! 집은 익산에 있는데도 홀리민턴을 위해 전주로 직장을 정했다는 소문이...
2014년의 어느 날 아침. 06시 20분, 알람이 울린다. 화, 목, 토요일에는 아침잠이 사라졌다. 그건 바로 홀 리민턴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배드민턴, 특히 학사 회 선후배와 함께하는 홀리민턴에 빠져든 지도 어느 덧 4개월째로 접어든 거 같다. 간사님을 주축으로 하 던 모임이 지난해부터 홀리민턴으로 정식 출범(?)하 고 나서 더욱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농구를 참 좋아해 서 졸업 후에도 혼자 공원에 가서 뛰다오곤 했다. 그런 데 운동효과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재미도 없어질 즈음 에 홀리민턴을 접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거센 비바람 과 황사가 와도 걱정 없다. 실내에서 하는 홀리민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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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홀리민턴 멤버들의 응원 한마디
홀! 홀리한 건 운동과 거리가 멀다고요? No No! 건강 한 육체에 건강한 영성이 깃드는 법이지요~^^ 리! 리얼리? 그럼요. Dry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을 Hot하게 해주는 홀리민턴~! 민! 민감한 우리의 시간과 지갑을 열어젖히며 때로 고 민하게 하지만... 턴! 턴하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우리 홀리민턴, 사랑합 니다~^^ 윤승호(전주대98)
연중 어떤 방해 없이도 할 수 있다. 아무리 운동을 좋 아한다지만, 눈이 10cm 넘게 와서 도로 여건이 최악 임에도 더 일찍 일어나서는 옷 챙겨서 나가는 나를 보 며 알았다. ‘아, 내가 IVF 학사들과 함께하는 홀리민턴 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아니, 참 사랑하는구나...’ 07시 30분. 어느덧 체육관에 도착해서 반갑게 인사 를 한 뒤 바로 몸을 풀고 경기를 시작한다. 배드민턴은 짝이 참 중요하다. 세 명일 때는 2:1로 짝을 이뤄 정말 빡세게(?) 돌아간다. 아주 운동 제대로 한다! 멤버들 모두 다들 열심인데, 간사님 중에는 레슨까지 받아가 며 기술을 전수해주는 분도 계신다. 기초가 없는 나에 게도 많이 알려주셔서 내 실력도 조금 향상한 것 같다. 예전의 대원이가 아니라는 말을 부쩍 듣는다. 기분 좋 다. 실컷 땀을 흘리고 쉬면서, 또 함께 샤워하면서 학 사들 간의 근황과 삶을 나눈다. 이는 홀리민턴의 중요 한 방향성과 연계되어 있는 거 같다. 비록 짧은 시간이 지만, 캠퍼스 돌아가는 상황과 학사들의 실제적인 고 민과 애로사항들을 나눈다. 이 나눔은 기도 그 자체이 다. 역시 괜히 홀리민턴이 아니다. 그렇게 따뜻한 샤워 까지 마친 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사실, 내가 사는 집은 익산인데 홀리민턴 장소는 전 주이다. 25km라는 거리와 기름 값을 무시할 수는 없 다. 전기안전관리를 하고 있는 나는 전주나 익산, 두 지역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교제와 운동에 대한 갈망 때문에 전주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다. 다른 지방 학사님 중에도 전북지역에 계신 분들은 오셔서 함께 운동해요! 사랑해요~ Holy-minton!
일주일 동안의 근무와 육아의 힘듦을 한방에 날려버 리는 시간! 토요일에도 보내주는 아내의 헌신과 사랑을 확인하 는 시간! 편한 사람과 교제하며 운동하는 즐거운 시간! 홀리 민턴! 이우주(전주교대00)
보통 동호회하면 잘하는 분들 위주로 운영되는데, 홀 리민턴에서는 실력보다는 출석을 중요하게 생각합 니다. 언제나 함께 운동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는 곳, 홀리민턴에 오세요~ 류상승(군산대01)
실력을 떠나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 나에게 도 쉼이 되는 시간~~ 아쉬운 건 매주 참석하기 어렵다는 거~ 김성은(전주대98)
5개월 전 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처음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매주 홀리민턴을 통해서 이제는 효자동 이용대(?)가 되었습니다~~ 김신철(전북대05)
어떻게 홀리와 민턴이 만났을까? 참 아름다운 만남 이로다~ 앞으로도 영육 간에 강건할 수 있도록, 홀 리민턴 잘 부탁해~!! 오대원(전북대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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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소리이음
FINE, 전북 학사회
함께 어울려 놀 때 임하는 하나님나라 - 학사회 1박 캠프
전북학사회는 학사들의 교제를 위해 작년과 올해 두 번의 학사회 1박 캠프를 가졌다. 작년 1 박 캠프에는 <런닝맨>, 올해는 <1박 2일>의 콘셉트를 이용했다. 이렇게 예능프로그램에서 아 이디어를 빌린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1박 캠프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고 더 많은 학 사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감사하게도 그런 의도는 어느 정도 적중했고, 기대보다 많은 학사들이 참여하여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학사들 사이에 1박 캠프에 대한 기대와 소문이 심상치 않다. 바빠서 정기적으로 큰모임에 올 수는 없지만, 1박 2일 시간을 내어 참석하는 학사들이 늘고 있다. 한 학기에 한 번이라도 함께 모여 얼굴을 보고 웃고 울며 함께 교제를 나누는 시간은 학사회가 제공하는 일종의 청량 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학사회 1박 캠프로 즐겨라!
소 리 이 음
1. 2013년 1박 캠프 – <런닝맨> 콘셉트 포함, 학사회 비전 및 방향성 소개 1) 학사회 1박 캠프 아이스 브레이크 - 오랜만에 만난 학사들, 타 캠퍼스 학사들과의 서먹서먹한 분위기 깨기! 이럴 땐 역시 유치한 게 최고, 추억의 공동체 게임들과 얼굴에 철판 깔고 진행해줄 사회 자는 필수! - 스피드게임, 이구동성, 전통놀이 (제기차기, 윷놀이, 투호 등) 그리고 다양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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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 게임 (종이컵 빨리 집기, 빨대로 양파링 옮기기, 계란 던지고 모자로 받기, 물 퍼서 나르기, 풍선을 서로 등 사이에 넣고 돌아오기(2인 1조), 동전 던지기, 림보 등) 2) 작년 학사회 엠티 때 시도한 <런닝맨> - 인터넷으로 런닝맨 이름표를 주문하면 택배로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전 등록의 중요성을 지 나치게 강조할 것! TV로만 보던 런닝맨의 주인공이 되는 것만으로도 반응은 후끈후끈, 이름표 떼기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반면 한 가지 주의할 점, 이름표 떼인 사람과는 관계가 급격히 얼어 붙을 수 있으니 혹 마음에 두고 있는 학사의 이름표는 절대로 떼지 말 것! - <런닝맨> 게임진행방식 ▶ 사전준비(이름표 구입, 팀 짜기, 코스별 미션 구성) ▶ 코스별 미션(점프 사진 찍기, 비석치기, 올챙이 잡아 단체사진 찍기 등) ▶ 팀별 대항 게임(코끼리 코 하고 돌기, 닭싸움, 보물찾기, 물총싸움 등) ▶ 물총 런닝맨(다양한 물총 구입해 물 뿌리며 이름표 떼기)
2. 2014년 1박 캠프 – <1박 2일> 콘셉트 포함, 신입학사환영식 1) 퀴즈 열전과 복불복 - 퀴즈 열전: 상식, 속담, 넌센스, 성경 퀴즈 등, 그 외에 역사, IVF 관련 퀴즈도 가능 -복불복 게임: 퀴즈를 맞힌 팀은 김밥 재료 가운데 원하는 재료 선택 권한 부여. 잘못 선택하면 설거지 당첨! 까나리액젓 등 다 양한 재료 준비 2) 신입학사환영식 - 신입학사에게 학사 임명장을 수여 3) 보너스 프로그램 소개 - 몸으로 말해요. 동계올림픽
3. 향후 전북학사회 1박 캠프 아이디어 향후 꼭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아빠 어디가”를 패러디한 아빠 학사와 아이의 1박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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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캠프 참여 후기 문신실(전주교대05)
최근에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배구시합에서 강스파이크로 점수를 내도, 유반장의 오락프로를 보아도, 회식자리에서 쇠고기를 먹어도 척추를 타고 전해오는 짜릿한 웃음까지는 아니었다. 그 런데... 전북지방 학사캠프는 재미있었다. 와우!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 때문에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하룻밤 옹기종기 모여 난센스 퀴즈를 풀고, 물총싸움을 하고, 비석치기를 하고, 김 밥을 싸먹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사회에서 치이고 고단한 삶을 살다 하 나님나라를 향한 순수한 눈동자를 간직한 동지를 만나서였을까. 보이지 않는 유대감과 반가움 에 대학시절을 추억하며 무엇이든 즐거웠던 것 같다. 우리들의 1박2일은 재미있다! 우리는 ‘It’s Very Fun’ 아니던가.
이창환(전북대02)
이번 캠프의 목적이 신입학사 환영 및 학사 단합에 있었다. 우리는 신입학사들의 삶 나눔을 들 으며 기도해주었고, 신입학사들에게 학사임명장을 수여하는 뜻 깊은 시간도 가졌다. 신입학사 들이 많이 오지 않아 아쉽기도 했지만 함께 해준 신입학사들이 있기에 감사했다. 본격적으로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 먼저 팀을 짜는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세 팀 간에 접전이 펼 쳐졌다.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서로 즐거워했고,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도 사라져갔다. 긴장도 풀고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이었다. 팀 짜기 게임 후 출출해진 뱃속을 채워야 했는데, 메뉴는 “IVF 김밥”이었다. 학부 시절의 IVF 김밥은 학사들에게는 추억이었다. 다양한 김밥 재료로 김밥을 만들어 서로 먹여주는 시간이었 다. 각자 만드는 김밥의 모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서로 먹여주려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특히 저 녁 늦게 식사를 해서였는지 배고픔을 호소하던 학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김밥을 먹었다는 소문 이 나돈다. 또 몇몇 학사들은 김밥을 맛있게 싸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주는 등, 훈훈한 김밥 만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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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리 이 음
2014 GLC SPRING PROGRAM
관통.貫通 한국교회사 ●
강사 : 이시종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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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기독교 전례 | 천주교와 개신교 전례 02 한국기독교 형성 | 평양대부흥운동과 3.1운동을 중심으로 03 수난과 훼절, 남은 자들의 역사 | 일제 시대 한국교회 이야기 04 해방과 분단, 근대화와 민주화 공간 안에서 개신교의 역할 05 교회 성장과 선교운동 06 한국 기독교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 2010년대 한국 기독교 환경 진단과 과제에 대하여
5월 10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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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0 - PM 5 | IVF 중앙회관 좋은땅 | 수강료 : 30,000원 | 수강인원 : 30명 ※기수강자, IVF 후원자, 단체 할인10%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문의 : 070-8275-6360, glc@ivf.or.kr / 카페 : http://cafe.naver.com/ivfglc (IVF리더십센터GLC)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52-18번지 IVF중앙회관 3층 GLC
4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1. 실행위원회 5차 비저닝모임이 2월 15일(토), 실행위 원회 모임이 3월 10일(월), 4월 14일(월)에 있었습니다. 학사사역의 큰 방향을 전환하는 이 시기에 실행위원들 과 간사진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순종하며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 2015년의 학사대회를 위해 2월 11일(화), 3월 11일( 화), 4월 29일(화)에 거쳐 세 차례의 기획모임을 가졌습 니다. 학사대회가 한국사회와 교회에 의미 있는 대회가 되도록, 또한 대회를 준비하는 기획위원들과 디렉터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3. 학사사역에 뜻과 마음을 함께 모을 학사들이 잘 연 결될 수 있도록, 학사사역이 학사자발운동으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필요한 재정이 마련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60-70학사회 1. 운영위원회(임원, 기별대표) 모임을 지난 3월 12일 (수) 저녁 7시 구로동 롯데마트 지하1층 “샤브미”에서 했습니다. 고영길(서울대69) 신임회장을 비롯한 운영 위원들이 모여서 올해의 사역을 나누고, 교제하고, 기 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 2014년 4월 10일(목) 저녁 7시~9시 반 IVF 중앙회관 좋은땅에서 봄 특강을 합니다. 강사는 신성진 학사(고 려대86)로 에셋비 대표입니다. 특강주제는 “크리스천 의 재정 관리와 노후준비”입니다. 참가비 1만원입니다. 관심 있는 후배 학사들도 참석 가능합니다. 3. 6월 12일(목) 저녁 7시~9시 반 IVF 중앙회관 좋은땅 에서 여름특강을 합니다. 강사는 유제필 학사(서강대 75)로 JP컨설팅 대표입니다. 특강주제는 “변화하는 시 대의 리더십”입니다. 참가비 1만원입니다. 관심 있는 후배 학사들도 참석 가능합니다.
● YGM사역부 1. 지난 2월 25일(화)에 있었던 신입학사환영예배에 85 명의 학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부산, 대
구, 대전중부, 충남, 경인 등 다양한 지방회 학사들과 함 께 했습니다. 앞으로도 수도권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전 국의 IVF 1~5년차 학사들이 YGM(수도권지역학사회) 을 알고 찾아올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2. 수도권지역학사회에서 협동간사로 사역하던 김경애 간사, 이미예 간사가 사임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와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두 학사님의 삶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3.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 중앙회관 좋은땅에 서 LGM이 있습니다. 4월 1일 성경강해 – 이시종 간사 4월 8일 성경강해 – 이시종 간사 4월 18-19일 봄MT – 불광동 팀수양관 4월 22일 학사특강(공동체) - 심명보 학사 4월 29일 학사특강(재정) - 허성호 학사 5일 13일 특강(결혼) – 이미순 간사 5월 20일 특강(이성교제1) – 김익환 간사 5월 27일 특강(이성교제2) – 김익환 간사
● 동서울 지방회 1. 2월 15일 동서울 학사임원단 주최의 북잡담회 팟캐 스트를 오픈세미나로 진행하였습니다. 주제는 “에니어 그램 특강”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2. 3월 15일 팟캐스트 주제는 “돈”을 다룰 예정입니다. 격월로 팟캐스트를 오픈 세미나로 진행합니다. 학사님 들의 참여와 기도 부탁드립니다. 3. 동서울 지방회 블로그를 제작 및 진행 중에 있습니 다. 동서울지방의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 강원(춘천) 지방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춘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 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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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주(한림대05) 010-6381-1635 춘천_신입학사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 7시 / 순회 문예지(한림대08) 010-3903-4028 수원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수원 최경순(한림대94) 010-9536-0703 부천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박은혜(한림대00) 010-9703-8815 평촌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 6시 / 평촌성심병원 김태준(한림대99) 010-5136-5877
● 강릉 지방회 1. 영동지역(강릉, 동해, 삼척) 학사모임이 매월 둘째 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에 강릉IVF 회관에서 있습니다. 회장 이상걸(삼척대89) 010-9440-6224 총무 신승우(강릉대89) 017-371-7383
2. 원주지역 학사모임이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있습니 다.
사무실에서 있습니다. 세상속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위 해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 대구학사회 1. 대구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 하 기 원하는 학사님께선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대구교대IEF 모임 매주 월요일 조현진 010-3536-9814 사회복지팀 모임 매주 화요일 김희연 010-6295-0179 가정피움팀 모임 매주 화요일 정희돈 016-9775-4209 평지 모임 매주 월요일 신응종 010-4513-1391
부회장 김남학(강릉대90) 010-9053-5017
2. 가정피움 무료공개강좌를 진행합니다. 참가신청은 문 성진 팀장에게 문자로 ‘참가자 이름, 연락처, 동행 참가 자 수’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3. 재경학사회 모임이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IVF 중 앙회관에서 있습니다.
일시 2014년 3월 25일(화) 장소 대구 GCF센터
회장 이상석(삼척대90) 010-3923-7273 부회장 김정기(강릉대91) 010-2359-7951
문의 문성진 팀장 010-9365-7081
회장 강호석(관동대85) 010-7346-7846
● 전북 지방회 1. 학사큰모임이 지난 3월 14일(금)에 개강했습니다. 2. 앞으로 학사큰모임은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금요일 저녁 7시 반에 전북IVF 비전센터 지하예배실에서 열립 니다.
3. 18기 커플피움학교는 취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피 워낸 커플들의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4~5월에 걸 쳐 커플/부부 상담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또 5월 3일 모 두를 초대해 강의를 듣고, 교제하는 ‘행복반올림’을 진행 할 예정입니다. 4. ing school(휴학생 훈련학교) 2기가 3월 5일부터 매 주 수요일 오후 6시~10시까지 12주간 대구 GCF센터 에서 진행됩니다. 2기 멤버로 10명이 선발되어 진행되 고 있습니다.
● 광주전남 지방회 1. 신입생 모집으로 수고하는 후배들을 격려하고자 지부 마다 방문하여 간식을 전달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2. 정기 학사모임이 매월 마지막 주 주일 저녁 6시 30분 에 광주IVF 사무실에서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 니다. 3. 학사 기도회가 매월 둘째 주 주일 저녁 7시에 광주IV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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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 부산학사회 부산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 참 여하기 원하는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고해주 세요. TGIM(Thanks God It’s Monday)
(1달에 2번 일상생활영성과 보냄 받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모 임) 진주점 류재한 010-8529-8216 창원점 정수정 010-3620-9495 울산점 정한신 010-6556-7373 E.M.포럼(복음주의목회자포럼)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해운대미래교회 문춘근 010-5504-5790 박순흠 010-8586-2535 마마클럽(주부학사모임) 매월 1회 임지은 010-4143-4936
● GLC 1. 2014년 겨울학기 <특강 예레미야 공개강좌>, 봄학기 <성경의 맥과 얼개 구약1과정>, <커피 소통과 나눔의 대 안문화 2기> 강좌는 잘 마쳤습니다. 2. 봄학기 4, 5월에는 <성경의 맥과 얼개 구약2과정>, < 공감 사도행전>, <관통 한국교회사>가 진행될 예정입 니다. <성경의 맥과 얼개 구약2_9기> 4월 7일~28일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반~10시 반 <공감 사도행전> 3월 29일~4월 5일 토요일 2주 과정 오전 10시~오후 5시 <관통 한국교회사> 5월 10일 단일과정 오전 10시~오후 5시
3. GLC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중 앙학사회와 더불어 발맞추어 사역의 틀과 내용을 채워 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학사님과 한국교회를 섬기는 GLC가 되도록 노력하겠 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넷카페 http://cafe.naver.com/ivfglc 페이스북페이지 IVF리더십센터 glc 교육신청 및 문의 김동민 간사 070-8275-6360 glc@ivf.or.kr
·서울지역 평촌한림대병원 모임 격주 수요일 6시 / 이레미즈외과 정성구 010-635-2491 삼성병원 모임 매주 수요일 / 삼성서울병원 이은경 010-8892-8076 아산병원 모임 격주 수요일 / 서동대 학사 집 민수정 010-8938-3417 대학로 모임 격주 금요일 / 정지영 학사 집 박현덕 010-8950-8903 서울대병원 모임 매월 둘째 주 금요일 / 서울대병원 장예림 010-8632-4597 ·강원지역 춘천·원주 모임 한 달에 한 번 / 원주 지역 학사 집 박인성 010-4148-0902
·경기지역 (용인)수도통합병원 모임 매주 수요일 / 장소 미정 이은주 010-5075-0704 일동병원 모임 첫째 셋째 화요일 / 국군병원교회 허난설 010-3060-4046 ·영남지역 대구 모임 매주 금요일 / 배기헌 학사 집 최선미 010-6248-8708 부산 모임 매월 둘째 주 목요일 / 장소미정 최정빈 010-5165-9170 모임안내 및 문의 양미희 간사 010-4226-0396 인터넷카페 http://club.cyworld.com/ilgfwork
● 나음누리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에 함 께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 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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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편집인의 글
두 번 연속으로 같은 기획주제를 다룬 건 처음이었는데, 어 떻게 보셨나요? 저 또한 정착할 교회 공동체를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라, 교회생활에 만족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 지 곰곰이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소비자의 태도로 입맛 에 맞는 교회를 쇼핑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도 했습니 다. 필자들이 교회다움의 핵심으로 꼽아주신 복음과 공동 체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늘 그렇듯이(^^;) [소리]지면 을 통해 정답이 아닌 질문을 안고 돌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전북학사회의 학사‘운동’도 흥미로웠습니다. 함께 웃고 떠 들며 어울리던 학부 때도 떠오르고요. 역시 It’s Very Fun!한 IVF의 정신은 계속 이어지나봅니다. 좁은 우물에서 살고 있 는 저에겐 각 지방의 특성에 맞게 활력 있는 학사모임을 꾸 려가는 이야기가 신선합니다. 이후 다른 지방회에선 어떤 색다른 시도를 소개해주실지 기대되네요. 작년의 겨울보다 새봄을 질투하는 꽃샘추위가 더욱 시린 것 같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허망한 소식도 곳곳에서 들려왔고요. 저에겐 새 생명이 피어나는 봄의 기운보다는 나른한 춘곤증이 발 빠르게 찾아온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 으며 새로운 지식도 습득하고 상큼한 봄나물로 감각을 깨우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 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작비로 사용됩니다.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2014년 1~2월 후원자 명단 강상선(*2) 강전은 국효숙(*2) 권도균(*2) 김계숙 김선미(*2) 김은하 김재 원(*2) 김종수-구한나 남은경(*2) 동진형 명관선 문성현(*2) 민은혜(*2) 박 설혜(*2) 박애숙 박창재(*2) 송인규(*2) 여운성(*2) 오규덕(*2) 윤정범-지 은실(*2) 윤창근(*2) 이상엽(*2) 이원경(*2) 임정하(*2) 장은숙 전명환 전선 애(*2) 전준희 정민경(*2) 정성구 정재성(*2) 조창훈(*2) 차성원(*2) 최말숙 (*2) 최수연(*2) 하현용-용지항(*2) 허성호(*2) 황석주 동서울(*2) 경남 경기남(*2) 북서울(*2) 강릉(*2) 전북(*2) 경인 충남(*2) 대 구(*2) 영남동부 원주(*2) 서서울(*2) 남서울(*2) 춘천(*2) 대전중부
며 기분전환을 해야겠습니다. 학사님들도 봄맞이 대청소로 마음의 먼지까지 훌훌 털어버리고 새힘 얻으시길 바라며, 또 한 권의 [소리]를 권합니다. (아참, 다음 기획주제가 궁금 하시다면 옆 페이지의 광고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김선미, 여운성, 차성원 후원자님은 [소리]편집부 (070-8275-0313)로 연
민혜경│편집인│sori@ivf.or.kr
락주시기 바랍니다.
제32권 제2호 통권213호 발행일 2014년 4월 1일 발행처 (사)한국기독학생회 학사사역부 주소 (121-838)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서교동) IVF 중앙회관 전화 070-8275-6313 팩스 02-333-7361 발행인 한기수 편집장 이시종 편집인 민혜경 김경아 편집위원 국효숙 김고운 김기인 김지은 윤창근 이상엽 조창훈 한병선 편집디자인 김아롬새미 문이선 그림 김아롬새미 표지 이재웅 제작 김효영 인쇄 예원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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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2014년 4월 26일 토요일 오후 2시 - 6시 창천교회 맑은내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47-2
인터넷 등록 www.tamgoo.kr 한국교회탐구센터
특강
청춘, 연애, 스킨십, 그리고 섹스
김지윤 소장
1강
기독 청년의 성의식
정재영 교수
2강
성sex 이란 무엇인가?
이상원 교수
3강
스킨십을 청문회에
송인규 교수
패널토의
전화 등록 070-8275-6360 김동민 간사 회비 10,000원 입금 계좌 국민 524902-01-361688 예금주 김동민 인원 150명 선착순 마감
김지윤 소장
정재영 교수
이상원 교수
송인규 교수
좋은연애연구소
실천신학대학원
총신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음 그리스도인이 믿는 신과 구원, 희망의 의미
‘이토록 엉망인 세상에서, 당신은 도대체 왜 신을 믿는가?’ 기독교의 복음이란 세상을 탈출하는 천국행 티켓이 아니라, 바로 이 절망의 세상으로 돌진해 들어온‘희망’ 이다. 회의자들의 벗, 열정적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복음 이야기! 김유복 지음 | 248면 | 12,000원
“우리에게도 C. S. 루이스 같은 변증의 고수가 생겼다!” _김기현「그런 (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저자) 박영덕(주은혜교회), 송태근(삼일교회) 목사 추천!
하나님 편에 서라 공동선은 어떻게 형성되며, 우리 사회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나의 관심은 하나님이 누구의 편인가에 있지 않다. 나의 큰 관심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에 있다.” _에이브러햄 링컨
교회는 잊어버렸고, 세상은 알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행동하는 기독교 지성 짐 월리스가 오늘, 사회적 제자도로 당신을 다시 한 번 소환한다. 짐 월리스 지음 | 박세혁 옮김 488면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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