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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18 I 2015. 02+03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회복의 동력, QT! 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냉탕과 열탕사이:여행과 선물┃연결하고 소통하는 선교의 플랫폼이 되고파

싹 이 자 라 나 고 열 매 를 맺 게 하 시 는 하 나 님

ⓒ 이재웅 | 상명대98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04 08 12 15

소리정음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 » 전재중 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 » 안한영 회복의 동력, QT! » 한병선 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 » 황신혜

소리지음

20 25 27 30 32 34 36

말씀산책 » 박창운 냉탕과 열탕사이 » 정영민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 김작가 생활의 발견 » 홍정환 문화톡톡 » 배운기 다다익책 » 정모세 유금리 라이프 » 지은실

소리이음

38 44 48 51 53 55 58

소리가 만난 사람 » 이대행

나음누리, 새 인물을 소개합니다 » 백성대 새로운 학사회사역 네트워크 구축을 준비하며 » 이시종 정의로운 사회, 행복한 공동체: 즐거운 시민운동을 꿈꾸다 » 최삼열 ‘완생’을 향한 직장멘토링 » 이동훤 안테나 편집인의 글


소리정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새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잡기 좋은 때입니 다.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좀처럼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것 중 하나가 경건훈련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매일 치열한 삶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바쁜 일상을 핑계로 뒷전이 되기 십상이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학사들 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이들의 고백을 통해 영성생활을 유지하 는 비결을 얻어 가시고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는(딤전4:7) 기쁨 을 맛보면 좋겠습니다.

04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 »전재중

12 회복의 동력, QT! »한병선

08 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 »안한영

15 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 »황신혜


4+ 5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 전재중 ◆ 서울대78 CLF(기독법률가회)가 마지막 때 견고한 하나님나라 운동 공동체로 쓰이도록 기도 하고 후배들을 지원하는 일, 법무법인 소명 을 선교적 기업으로 세우는 일을 일생의 소 명으로 삼는다. 2-3년 전부터 중국을 통한 북한 관련 사업들에 시간과 자원, 열정을 좀 더 집중하고자 하고 있다. IVF 동기로 만 난 아내 민지홍(연세대78)과 중국에서 공 부하고 취업한 아들 우주, 서울대IVF 2년 차인 딸 우영이 있다.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청계산 기도원에 간다. 이 일이 2년을 넘어가 면서 이제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한창 활발하게 일할 중견법률가가 토 요일 이른 시간에 산자락의 기도원으로 가는 모습은 누가 봐도 현실 도피 적이다. 기도원에 갈 때 뚜렷한 기도제목이나 어떤 것을 응답 받겠다는 적 극적인 목적은 없다. 그냥 세상일들을 내려놓고 잠잠히 내가 있어야 할 제 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시간이다. 지난 연말에는 갑자기 이제 이런 연말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진짜 마지막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싶어 잠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매주말 기도원에서의 묵상과 기도시간이 내게 평온을 다시 가져다 준다.

로스쿨이 없고 사법연수원만 있었던 시절, 처음 CLF(기독법률가회) 사역 을 시작하면서 신우회 첫 예배에 말씀을 전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무엇 을 전할까 고민하고 기도하다가 헨리 나우엔의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IVP) 소책자를 A4 세장으로 빽빽이 요약하여 그대로 읽어 주었다. 그 나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

눔이 모인 이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켜 후배들

사무실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소송에

과의 모임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계기가 되었다.

걸린 돈도 상당히 컸을 뿐 아니라, 만일 이 일이 잘

그 책의 요지는 상향성의 종교를 버리고 예수 그

못될 경우 배상문제는 물론이고 그 회사와의 관계

리스도의 길을 따르라는 내용이었다. 예수님의 광

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현실적으로 해결책

야 시험을 예로 들면서 세 가지 시험에서 벗어나라

이 없어 보였다. 그 다음 날, 그 상태로는 도저히 주

는 충고였다. 첫째는 생산성, 상황 적합성의 시험이

일예배에 갈 수가 없었다. 주일 아침, 아내에게 말

고, 둘째는 이목집중의 시험, 세 번째는 영향력 확

하고 두꺼운 옷을 걸치고 청계산 기도원으로 갔다.

보의 시험이었다. 상향성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와

기도할 말문도 열리지도 않은 채, 눈앞에 닥친 다급

있는 법률가들에게 꼭 들어맞는 아픈 내용이었다.

한 문제에 대하여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겨우겨우

그후로 우리가 추구할 영성(Spirituality)은 하향성

힘겹게 이어가고 있었다.

이라는 걸, CLF 리더들 사이에선 모두가 공감한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서 들고 간 기도제목은 온데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매주 토요일 기도원에서

간데없이 사라지고, 갑자기 내 속 깊은 곳에서 탄식

보내는 시간은 변호사로서 생산성은 물론 상황 적

과 회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큐티나 기도생

합성도 없고,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으며, 아무런

활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로펌생활, 유

영향력 확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내

학, 개업 등으로 늘 쫓겨 살아오면서 깊은 기도에

가 기도원에 가는 행위는 우리가 추구하는 영성을

들어가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음성을 듣는 기도가 내게 절실하다는 것을 그 일 을 통해 깨달았다. 눈앞의 문제는 잊어버린 채 십자

청계산 기도원에 처음 가본 건 1993년 여름이었

가를 붙들고 부르심과 순종에 대하여 생각지도 않

다. 선배 부부를 따라 갔는데, 그곳이 목회자들이

았던 깊은 기도를 하게 되었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많이 와서 기도하는 곳으로 유명하고 기도가 잘 된

기도원에서 내려왔다. (문제의 그 사건은 여러 어

다 하더라는 소개를 받았다. 기도원 본당이나 산속

려움을 겪은 끝에 잘 해결되었다.) 그후 청계산에

곳곳에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서, 시내에서 가까

서 가졌던 그 기도 시간에 대한 갈망이 생기면서 자

운 곳에 이런 곳이 다 있나 싶었다. 그후 간헐적으

주 청계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로 산보 삼아 다니다가 본격적으로 이 기도원에 다 니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09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고 그해 8월초 제 1회 CLF 전국대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

1995년 12월, 성탄절을 앞둔 토요일로 쉬는 날이

러 가지 벽에 부딪치고 대회에 대한 심적 압박감

었다. 당시 진행하고 있던 한 소송 사건에 대해 직

등이 몰려왔다. 그리하여 대회 두 달 전부터 핵심

감적으로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사무실

멤버 서너 명이 매주 토요일 청계산에 가서 기도

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의 실수로 소송에서

하기 시작했다. 전문인그룹의 지성적 분위기가 아

가장 중요한 기일을 놓친 것을 발견했다. 당시 개인

니라 온힘을 다해 매달리며 외치는 기도회를 통하

소리 정음


6+ 7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

여 우리는 힘을 얻었다. 기도회 참석자가 점

안 가냐고 따져 물어올 상황이 되어 그 말이

점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40여명이나 되었다.

듣기 싫어서라도 갈 때가 있다. 나를 기도하

성공적인 경험이었다. 그후 매년 전국대회를

는 사람, 기도하여야 할 사람으로 봐주는 이

앞두고 기도회가 정례화 되면서, 청계산 기도

런 환경 자체가 감사하다. 억지로 가더라도

회는 CLF의 중요한 영적 자산으로 자리 잡게

한번도 그냥 빈손으로 내려온 일은 없다.

되었다. 매해 열리는 전국대회도 은혜로웠지 만, 리더들이 준비과정에서부터 기도회를 통

단체 기도회는 7시반경에 독립된 공간에서

해 받는 은혜가 더 큰 체험이 되었다. 이러한

하지만 개인적으로 갈 때는 9시경에 가서 본

기도에 대한 갈망으로 어느 시점부터는 전국

당에서 두어 시간 기도하고 온다. 대부분 중

대회 이후에도 매월 1회 토요일 아침 청계산

보기도에 할애하지만, 기도가 깊어지면 주님

기도회가 CLF 정규 활동 중 하나로 자리매김

이 부어주시는 기도제목에 집중한다. 다리가

하였다. 전문인단체 중에서 CLF가 기도운동

저릴 때는 산으로 조금 올라가 한적한 곳에

에 더 매달리게 된 것은 다행이었고, 지금 생

서 찬양하고 기도하기도 한다. 기도를 마치고

각해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때로는 생수 한 병을 들고 기도원 뒷산을 통 하여 청계산 정상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어느

그러나 사역이 점차 확장되면서 사역 자체

단풍철에 몇몇 형제들과 함께 올라갔을 때 매

가 중심이 되고 기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봉 부근의 전망 좋은 곳에서 같이 기도한 적

었다. 게다가 로스쿨 사역에 따라 중보기도

이 있었는데, 마치 그곳이 CLF 아지트 같아서

부탁을 많이 받으면서 개인적으로 좀 더 기

지금도 정상까지 갈 때는 그 지점에 들러 잠

도의 짐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이에

시라도 기도하고 내려온다.

2012년 여름 전국대회 후에는 정례 기도회가 없는 날에도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혼자서 때

청계산 기도의 유익함을 들자면, 우선 비교

로는 한두 명의 동역자들과 같이 청계산 기도

적 긴 시간을 내어서 기도하니 눈앞의 필요를

를 이어오고 있다.

위한 기도가 아니라 좀 더 깊은 기도, 성령님 이 부어주시는 기도제목을 붙들 수 있어서 좋

이처럼 청계산 기도의 시작은 CLF 선배변호

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한 시간 정도 기도의

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씨름을 한 후부터 깊은 기도를 하게 되는데

이 기도가 사역과 관계없이 내 개인 신앙생활

그 시간이 정말로 달콤하다. 큐티를 한다거나

에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시공간이 되

일상생활 중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지 못

어 가고 있다. 이제 나는 토요일 오전에는 아

하기 때문에 깊은 기도에 다다르기가 쉽지 않

주 특별한 일 아니면 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

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 기도의 부족을 느

다. 가족들도 그 시간에는 내가 청계산에 가

끼고 매달리며, 깊은 기도의 경험은 계속하여

는 줄 안다. 혹 몸이 불편하여 가지 않으면 왜

기도 장소를 찾게 만드는 것 같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해지다

기도원에 거주하시는 매우 연로하신 권사님의 기도소리를 본당에서 들은 적이 있 다. 처음에는 다른 할머니와 대화를 하시는 줄 알고 왜 본당에서 잡담을 하는지 짜증 이 났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권사님은 기도하는 중이었다. 꼭 옆집 할머니와 잡 담하듯이 하나님과 주고받는 대화가 매우 신선했다. “아, 그때 제가 ~~라고 기도하니 까 하나님이 10분쯤 있다가 ~~라고 말씀하셨잖아요.” 하면서 하나님의 기억을 되살 리기도 하셨다. 때로는 “아, 그 있잖아요, 그 장로님 둘짼가 셋짼가 며느리, 목사 사모 하고 있잖아요. 아, 글쎄, 그 며느리가 말이에요~”하시며 하나님께 재미있는 이야기 를 들려주시기도 한다. 가끔 쉬는 시간에 본당 뒤편에서 그 권사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내가 아무런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없는 때가 된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 낼지에 대하여 그 권사님을 통해 대단한 힌트를 얻고 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결 코 복잡한 게 아니었다.

청계산 기도회에서 붙드는 중요한 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이미 실행하기로 작정하신 일들을 그 자녀들의 입술에 기도제목으로 주셔서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에 대한 응 답으로 하나님이 실행하신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실행 하시기로 한 일들만 기도한다면 100% 응답받는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기도가 주의 뜻에서 벗어날 때가 많지만, 갈수록 전부 응답받는 기도로 바뀌어 야 할 것이다. 그동안 기도 중에 우발적으로 부어주시는 기도제목에 따라 기도한 몇 가지 내용들이 예상치 않았던 경과를 거쳐서 진행되는 경험을 했다. 2012년 1월 이후 시작된 중국기독법률가운동에 대한 기도제목들이 현장에서 실행되고 발전되는 경험 도 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기도제목으로 기도할 때마다 심령의 뜨거움을 체험하면서, 개인적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가급적 건조한 회의를 통하여 결정하기보다는 깊은 기 도 중에 인도받은 내용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기도를 통하 여서도 역사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선교의 주체도 주님이심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다.

생산성도, 이목집중도, 영향력 확보도 상관없이 그냥 두꺼운 옷 한벌과 생수 한병이 면 족하다. 풍성한 시간이 확보되는 토요일 청계산기도원, 요즘 내 일상의 한 축이다. 기도원에는 총무님이 키우는 바둑이와 사랑이라는 강아지가 있다. 곰같이 생긴 사랑 이라는 녀석은 기도원 입구에 버티고 앉아 있으면서 단골손님인 내가 먼저 살갑게 인 사해도 절대로 반겨주는 법이 없이 무심한 눈길로 바라볼 뿐이다. 누가 봐주지 않아 도, 반겨주지 않아도 기쁘게 기도하라는 훈련을 시키시는가 싶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 도 청계산 기도원 가는 토요일을, 나는 언제나 즐겁게 기다린다.

소리 정음


8+ 9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 안한영 ◆ 숭실대83 중학생 시절부터 출석하는 교회에서 장로 로 섬기고 있으며, IVF 수련회에서 아내에 게 붙잡혀(?) 3명의 자녀들과 가정을 이루 었다. 25년간 교직에 몸 담고 있으며, 남서 울IVF 이사와 성서유니온교회(SU) 부이사 장으로 섬긴다. 교회에서 매주 PBS 모임을 인도하며, 은퇴 후에는 실버 세대를 위한 PBS 모임을 하는 게 꿈이다.

훈련 받은 대로 IVF 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몇 가지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그 말들이 제 마음을 울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요. 첫째, “그 운동이 성공했는가, 실패 했는가를 보려면 그 사람이 졸업 후 20년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보 면 된다.” 선배들과 간사님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둘째, 대학 3학년 대표를 할 때였는데, 필리핀의 한 부족을 위한 성경번역사역에 한평생을 헌신하신 선교사 부부가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 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훈련하라”는 메시지는 지금까지 삶의 모토가 되고 있 습니다. 또한 4학년 여름방학 때,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랴”라는 주제로 졸 업생 인생 설계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세미나를 마치면서 어느 간사님이 “제발 IVF에서 훈련 받은 대로 사세요”라고 호소했던 말씀이 아 직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

PBS와의 인연

과 제도의 혁신을 꿈꾸었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에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갱신되고 건

처음 PBS(Personal Bible Study)를 접한 것은 대

강하려면 시스템과 제도의 변혁 못지않게, 한 사람

학 3학년 때였습니다. 전국에서 리더들이 모여

한 사람이 말씀에 인격적으로 깊이 반응하는 누적

‘BIBLE&LIFE CONFERENCE’를 2주간 진행했는데

된 순종의 과정을 통해 생애적 헌신이 가능하다는

요. 집중적으로 PBS와 성경신학 등을 배우면서 말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서유니온과 인연을

씀의 깊이에 눈뜨고 하나님을 한평생 섬기고 그분

맺어 교회 청년부와 구역장들에게 성경묵상을 소

을 위해 나 자신을 드리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이

개하고 정착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이후 같이 사

때 훈련 받은 PBS가 평생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역하자는 성서유니온의 제안을 받아들여 가정주부 를 비롯해서 직장인, 목회자, 선교지 파송을 앞둔

졸업 후 후배들이 챕터캠프에서 PBS 훈련을 해줄

선교사에 이르기까지 성경묵상과 PBS 강의를 수차

것을 부탁하여 그러마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

례 해왔습니다. 자발적으로 참가비를 지불하고 1시

게도 고등학교교사 임용을 위한 면접 일정이 PBS

간 30분이 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늦은

강의 일정과 겹치게 되었는데, 저는 무모하게 면접

시각까지 훈련받는, 이렇게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

시험을 포기했죠. 그런데 오히려 학교 측에서 면접

이 많은 것을 보고 그분들에게서 오히려 커다란 감

시간을 조정해 주어 그 학교에 지금까지 20년 넘게

동을 받았습니다.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제 교직의 시작은 PBS 와 맞닿아 있습니다.

교회에서 PBS를 TCF에서 PBS 훈련을

중학생 때부터 다닌 지금의 교회에서 청년부를 대 상으로 한두 번 PBS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

교사로서 저는 TCF(한국기독교사회)에서 활동하

후 그들은 PBS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준

였습니다. 그분들은 격주로 PBS 나눔을 하고 있었

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아 모임이

는데, IVF보다 강도 높게 PBS 훈련을 하고 학교 현

형성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장에 적용하면서 살아가는 열정이 대단한 분들이

성서유니온에서 개인성경연구 책을 출간하고 PBS

었습니다. TCF에 처음 온 선생님들은 다른 소그룹

워크숍을 진행했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 참가했던

에 참여하지 않고 한 학기 동안 집중적으로 매주

교회 분들이 우리도 PBS를 해보자며 자발적으로

PBS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세워놓은 위치만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곳에서 훈련을 담당 하다 보니 PBS가 훨씬 더 익숙해졌습니다.

영적 갓난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넘치는 의욕 을 갖고 매주 7-8명이 모여 마가복음을 본문으로 2

20대에 IVF 운동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년간 함께 공부했습니다. IVF에서 만난 아내도 멤

평신도 사역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갖고 교회갱신

버로 참석하여 서포터요 동역자로 나눔의 깊이를

소리 정음


10+ 11

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

더했습니다. 모임에 함께한 사람들은 말합니

이 어려운 동료를 위해 전세금을 마련해주고,

다. PBS를 하면서 이제껏 알고 있던 예수님의

손가락이 마비된 학생의 수술을 주도하기도

얼굴과 예수님의 실제 얼굴이 정말 많이 다르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대학입학금

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말씀이 주는 생명력과

을 지원하고, 한뎃잠을 자는 독거노인에게 거

울림을 경험하였다고요. 당신의 백성을 향한

처를 마련해 주고, 곰팡이 가득한 반지하 주택

사랑에 눈멀어 죽기까지 섬기신 예수님의 진

에 사는 할머니와 손자를 위해 집을 개조해 주

면목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에게서 감동이 일

었습니다.

어났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지고 거절당 하며 죽음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섬긴 예수님

성경묵상과 PBS를 교회에서 시작하면서 깨

의 삶에 마음이 움직이면서, 하나님 아파하시

달은 것은,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사역은 공동

는 곳에 ‘내’가 서있기를 바라는 섬김의 마음이

체적이라는 것입니다. PBS를 혼자 하려고 했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면 금세 주저앉았을 것이고 왕년에 나도 한 번 해보았지 하는 추억거리로 남았을지 모릅니

또한 창세기를 5년 동안 함께 공부했습니다.

다. 그러나 학사가 된 후 만난 TCF, 성서유니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어 통치

온, 교회 등의 여러 공동체에서 PBS를 계속해

권을 위임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떠

야 할 기회가 생겼고 꾸준하게 해올 수 있는 원

난 인간들에게 친히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통

동력이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나라는 단독자

치를 구현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새롭게 창조해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

가는 과정을 배워나갔습니다. 교사로서의 보람

로 고백하고 살아가는 공동체로 존재함을 체

은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훌쩍 성장해 있는 것

득했고, 파편화된 개인의 애씀보다는 공동체

을 보는 것인데, 성경교사의 보람도 역시 함께

적인 사역의 힘이 큰 영향과 울림을 줄 수 있

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을 볼 때

음을 확인했습니다. IVF에서 받은 훈련이 든든

입니다. 사오십 대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말씀

한 모판이 되고 토대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에 깊이 반응하고 순종하는 성장의 과정을 보

가 없습니다.

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며 보람이었습니다. 매주 모이기를 사모하고 서로를 향한 간절함이 더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힘입어 곧 6년

평생 PBS

예정으로 이사야서 PBS를 하기 위해 워밍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최근 10여년만큼 PBS를 열심히 하는 때도 없는 것 같습니다. IVF에서 받은 마

이렇게 8년 넘게 정기적으로 PBS를 하고 적

음의 울림과 배운 대로 사는 것은, 세월이 흐르

용을 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재물을 나누어 이

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웃의 아픔에 동참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

불 일듯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

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장애와 지체장애를 가진

이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내 마음에 합한

어른들을 찾아가 매달 봉사활동을 하고, 형편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우리 모두가 들었으면 좋


공동체를 이루는 힘, PBS에 있다!

겠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으리라고

지키는 일입니다. 제자들마저 교회를 향한 날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기독 학사

이 선 비판과 일리 있는 변명으로 합리화하며

들은 단지 젊었을 때 반짝했다가 나태해지는

교회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

사람이 아니라 세월이 더해갈수록 신앙과 인격

회를 돕는 운동으로 존재하는 IVF 회원들이 마

이 성숙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우리 IVF 운

지막까지 남아 믿음의 순결을 지키는 그루터기

동의 진정한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가 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기 때

저는 인생 후반기에 ‘실버 사역’을 하나님이 주

문입니다. 따라서 나그네 된 삶을 사는 동안 더

신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정년을 마치면 귀납

욱 용기를 내어 서로 서로 붙잡아 주어야 합니

적 성경연구를 주로 하는 에스라성경대학원대

다. 저는 이것을 이루어내는 힘이 말씀에 있고

학교 같은 곳에서 공부하며 그동안 해왔던 PBS

이 방법이 PBS에 있다고 믿습니다.

를 신학적 기반으로 풍성하게 채우고 노년층을 위한 PBS 모임을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그래

이미 언급했듯이, 제가 지금까지 꾸준히 PBS

서 노인들이 고집 센 늙은이가 아니라 존경받

를 해올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

는 어른으로, 말씀의 권위와 지혜로 하나님의

입니다. 함께 모여 서로의 삶을 주목하고 서로

경륜을 후세에게 전승해 줄 수 있는 사람들로

의 인생을 지켜봐 주는 그룹이 있어서 함께 성

자리매김 하기를 소망합니다. 윌리엄 윌버포스

장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게 건강

는 노예제도 지지자들에게서 온갖 중상모략과

한 교회를 복원하는 길입니다. IVF 멤버라면 누

비방을 듣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절대 굴하

구라도 먼저 깃발을 들고, 훈련 받은 대로 PBS

지 않고 전 생애를 바쳐, 마침내 영국에서 노예

를 다시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결심과

를 해방하겠다는 목표를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

실천이 모여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로 알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이웃에게 더욱 풍성하게 퍼져 나가면

은 아니어도 누군가 하나의 문제의식을 붙잡고

좋겠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 른 이에게 격려가 되고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2년 후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됩니다. 믿음 의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직 말씀”으

교회가 타락하고 무너지고 있는 어두운 시대

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

를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짐이 너무 무겁고 실

으나 살아 있는 사람(고후 6:9)”으로 살고 싶습

망과 낙심이 몰려옵니다. 얼마나 많이 벗어버

니다. 삶에 깊이 뿌리내린 교회 변혁의 미래를

리고 도피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

보고 싶습니다. 이 땅과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리는 사도 바울처럼 이미 복음에 빚진 자들이

그리스도를 온 세상 가득히 인정하게 되는 그

며, 하늘의 소망과 믿음의 비밀을 함께 나누는

날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애끓는 부르

참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성도’ 운

짖음과 거룩한 분노가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운하는 이런 때에 교회를 떠나는 건 아주 쉽습 니다. 더욱 어려운 일은 그 자리에 남아 교회를

“예수 우리의 왕, 그를 위하여!”

소리 정음


12+ 13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회복의 동력, QT! 한병선 ◆ 성신여대84 ‘한병선 영상만들기’란 영상프로덕션을 운 영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좋아해서 관심분 야별로 책을 내고 있다. 하루하루 어떻게 기독인답게 살아가야 될까를 고민하여 자 녀양육, 여성 리더쉽, 돈, 직업인 등 다양한 아젠다에 대해 고민하며 해법을 찾고 있다. 계속 고민했던 부분을 IVF 학사회에서 어 떻게 제대로 풀어낼까가 과제이다.

어떻게 성경을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지 처음으로 배웠을 때가 중3때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교회 중등부 사역자는 선교단체 출신의 전도 사였다. 그분은 학생들을 모아서 어떻게 성경을 읽고 주제어를 뽑아 내용 을 정리하고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방학에 새 벽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묵상하고 느낀 점을 나누었다. 그때는 말씀이 주 는 유익보다는 전도사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참석했다. 하지 만 말씀이 주는 유익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다. 말씀의 유 익을 얻지 못하면 어떠한 경건생활도 오래갈 수 없다는 단순하고도 분명 한 교훈을 얻었다. ‘QT’는 이렇게 내 삶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다시 QT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 3학년이 되던 겨울방학이었다. 대 학생활은 평탄하지 않았고 고민이 많았다. 하나님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 겠고, 모든 것이 불투명했으며, 기독교가 아닌 다른 사상이 우월하다고 생


회복의 동력, QT

각하고 거기에 매진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 시기에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중, 선배의 권유로 IVF 겨울수련회에 가게 되었다. IVF라는 단체도 낯설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수련회 기간 동안 나는 내 가 아직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 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했지만 내가 알던 하나님은 나와 관계없이 그냥 존재하는 분이었고, 예수의 죽음과 내 삶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웠 다. 그토록 교회를 오래 다니고 많은 예배를 드렸는데 내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라 니….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그동안 한 일은 도 대체 무엇인가. 그날 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를 드렸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했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충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그동안의 갈망과 공허함, 존재의 무력감이 한순간에 채워지는 완전한 만족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진리를 찾아 헤맸고 내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써왔던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후 그 모 든 것이 채워지면서 내 안에 기쁨이 솟구쳤다.

그때 간사님은 지금의 은혜와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매일 성경을 읽으라고 말씀 하셨다.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모두 잊어버린다. 매일 성경을 읽 으면서 받은 은혜를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삶은 너무나 공허하고 힘들 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하나 님께 매달리며 QT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QT 말씀은 예전과는 다르게 정말 달 고 오묘했다. 말씀을 볼 때마다 기쁨이 넘쳤고, 그것이 내 시각을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 으로 재편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대학 3학년부터 시작하여 매일 이어진 QT 는, 감정의 일시적인 행복 상태가 아니라 든든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게 해주 었다.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QT는커녕 살아있는 것조 차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두 아이를 양육하는 5년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두 아이를 두 살 터울로 낳고 기르면서 QT는 고작해야 1년에 몇 번 정도밖에 할 수가 없 었다. 그러다 보니 QT를 하지 않는 게 너무도 당연하고 일상적이 되어버렸다. 순간순간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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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동력, QT

기도는 했지만 삶은 행복하지 않았고, 영적인 암흑

이렇게 잘 알면서도 나는 또 몇 년간 QT를 하지 못

상태로 날마다 삶에 대한 회의와 고갈이 이어졌다.

했던 시기가 있었다. 삶이 편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지치고 피곤하고, 영적으로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마음이 불편해서 QT를 하는

는 암흑이고, 모든 환경은 고통스럽고, 죽음과도 같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이걸 해

았던 5년이 지나갔다.

서 뭐하나 싶은 무력감이 들면서 몇 년간 성경을 잘 읽지도 않았다. 나는 낙담했고 자존감은 떨어졌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나

우울감이 밀려들어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든 시간

는 서서히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다시 QT를 시작

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일은 계속 해야 했다. 게다

한 것이다. 나는 QT를 할 때 늘 노트에 적는다. 글

가 책도 써야 했다. 심한 무기력으로 인해 손 하나

을 쓰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이해와 통찰이 생겨

까딱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우울증 치료를 위해

났고 그것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곤 하였다. 하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나님께로 가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세워 놓아야 하는데 그런 작업이 바로 QT였다. 그 작업

그때, 나는 결심했다. 다시 QT를 시작하기로. 이

은 매일 내 삶 속에서 일어나야 했다. 내가 어떤 부

위기와 침체를 극복할 방법은 다시 말씀 앞에 서는

분에서 바뀌어야 하는지, 무엇을 순종해야 하는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의지적으로

성경의 기준으로 나를 비춰보아야 한다. 결과적으

QT를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서서히 회복했고 새

로는 내가 변해야 QT가 의미 있는 것이었다. 자신

로운 힘을 얻어 책을 쓸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우울

을 바꿀 의지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증이 이렇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QT를 한다면 그것은 습관이지 말씀에 자신을 세우

다만 그때의 나에게는 QT가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는 것이 아닌 것은 물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노

영적으로 회복되는 동력이 될 수 있었던 것뿐이다.

력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돌아보니 내가 QT를 시작한 지 벌써 30년 가까 QT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하루 QT를 했다고 해

이 된다. 그동안 성경 전체를 여러 번 QT할 수 있

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다. 내 경우, 매일

었다. 그 덕분에 성경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는 시각

하는 습관이 3주 이상 계속될 때 비로소 조금씩 회

을 갖게 되었고, 말씀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고 성찰

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하루 빼

할 수 있었다. QT가 없었다면 말씀 앞에서 나 자신

먹는다고 해서 별로 큰 티가 나지도 않는다. 그렇

을 쳐서 복종시키는 그런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이

기에 늘 그냥 하루 빼먹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필연적으

된다. 한 번에 몰아서 주말에 할까, 혹은 내일 하면

로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이 일상화 되어야 할 것 같

되지, 하고 넘기곤 하는데 그렇게 때워버리기엔 우

다. 그것이 내가 말씀을 통해 변할 수 있는 길이고,

리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사실 적어도 1주일

하나님을 아는 길이고, 매일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에 5일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

박을 수 있는 기회라고 믿는다.

길 바라고 또 바라야 할 존재가 우리들이 아닐까.


신앙의 근육을 키우자, 얍!

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 황신혜 ◆ 서울신대06 피아노 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평범한 직 장인이다. 매일 새롭지 않은 현실을 마주 하지만 말씀 앞에서 제대로 살아가려고 노 력하고 있다.

맥체인 성경읽기의 시작 나는 5년차 사회인이다. 직장인이라는 타이틀과 그에 따른 삶에 귀속되어 분주한 걸음을 걷게 된 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돌아보면, 학부시절에 는 공동체의 리더로서 나를 위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기를 힘썼 다. 경건훈련으로 성경을 읽거나 QT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맺어가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공동체에서 멀어지면서 안개가 서서히 걷 히듯 세상의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자발적으로 가졌던 경건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볼 것도 많고 누릴 것도 많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 기기도 했다. 이따금 어려운 상황이 내면을 파고들 때에야 겨우 말씀을 읽 고 그 시기를 견디어 내는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에 1년 전쯤 ‘맥체인 성경읽기’에 대해 다시 듣게 되었다. 물론, 중고등부 때 초록색 표를 받고는 그냥 책상 서랍에 넣어둔 기억이 있다. 저 성경읽기에 대해서 어디선가 들어는 보았으나 실제적 경험은 부족해 끝까

소리 정음


16+ 17

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

지 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교회를 옮긴 후,

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오직 말

목사님이 설교 중에 맥체인 성경읽기표로 말

씀과 기도로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하나님을

씀을 보면 그 맥락을 더 구체적이고 깊이 이

영광스럽게 했던 그의 삶이, 오늘을 살아가

해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교회는 2010

는 나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년에 만든 ‘맥체인 성경읽기 달력’이라는 책 자를 통해 전교인을 대상으로 성경읽기를 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이전에 모든 것을

장하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동안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웠던 순간이 떠오르

나는 성경을 단편적으로 묵상하거나 무작정

고, 그냥 주저앉으려 했던 내 자신에 대한 부

읽기만 했다. 당시에 바로 실천하지는 못했

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의 회고록을

지만 목사님의 권면에 힘입어 맥체인 성경읽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사소한 것, 당시

기표를 따라 말씀을 체계적으로 읽어보자고

자신이 어떤 감정과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결단하게 되었다. 매일 살아있는 말씀 앞에

를 글로 남겨서 나중에 다시 그 과정을 천천

서 영혼을 새롭게 하는 일이 좀처럼 쉬운 것

히 읽게 된다면, 지금 성경읽기를 주저하거

은 아니었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쓰지

나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

않으면 꾸준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

지 않을까 싶다. 맥체인이 성경읽기표를 만

고 읽기를 노력하고 있다. 말씀은 내 영혼과

든 의도 역시, 성도들이 성경 전체를 통해 그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유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알아 성숙에 이르 도록 권면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맥체인 성경읽기의 역사와 구조

먼저 맥체인 성경읽기표에 대해 간단히 소 개하겠다. 이것은 4개의 시작점으로 되어 있

맥체인 성경읽기표는 누구의 유익을 위해

다. 일반적인 성경읽기는 창세기, 출애굽기

만들게 된 것일까? 저자인 로버트 머리 맥체

등, 한 권의 책을 정하거나 혹은 읽을 분량을

인은 영국의 목사로, 말씀을 통해 부흥을 경

정해 놓는다. 맥체인 성경읽기에 관심이 없

험했던 시절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의 성도들

었을 때는 이 방법도 그저 어떤 기준에 따라

을 위해 이 성경읽기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읽을 분량을 잘 나눠놓았구나 정도로만 생각

맥체인 목사님에 대한 회고록을 지은 앤드루

했다. 그러나 4개의 시작점의 의미를 알게 되

보나는 맥체인의 동역자로서, 맥체인 목사의

면서 관점을 가진 성경통독의 중요성을 인식

사역과 그가 살아생전 남긴 글을 회고록을

하게 되었다.

통해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맥체인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

4개의 시작점은 ‘언약의 관점’에서 성경을

느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게 되었다.

통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선 언약의 시작-

또한 그가 죽기 전까지 자신과 동역했던 신

창세기, 새 언약의 시작-마태복음, 언약공동

자들이나 자신이 담당한 사역에 얼마나 막대

체의 귀환(회복)-에스라, 교회의 시작-사도


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

행전으로 분류된다. 한 해의 첫 달인 1월을 시

씀을 보는 눈과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기르

작점으로 해서 구약과 신약의 시작점을 가정

도록 훈련할 필요성도 느끼게 되었다. 기존의

과 개인으로 각각 나누어 읽도록 성경읽기표

성경읽기 방식을 사용했을 때는 말씀을 깊이

가 구성되어 어느 성경읽기표보다 잘 짜여 있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읽

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짜임새는 4개

어 내려갔다. 그런데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서

의 시작점을 따라 통독하다 보면 알게 되는

로 다른 듯하지만 같은 맥락을 지닌 말씀을

데, 먼저 한 가지는 구약의 본문이 신약의 본

함께 읽음으로써 성경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

문을, 혹은 신약의 본문이 구약의 본문을 해

며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석해 주거나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맥체인 성경읽기를 통해 좋은 습관도 생겼 다. 깨달은 바와 느낀 것을 적어 놓고, 또 하나

맥체인 성경읽기의 장점

의 사건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메모하고, 의 문이 생기는 부분들을 기록으로 남기다 보니

일반적인 통독 방식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말씀을 더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또한

구약과 신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느 부

맥체인 성경읽기로 얻은 유익이 아닌가 싶다.

분에서 구체적인 연관성이 나타나는지 알기 가 힘들었다. 그런데 맥체인 성경읽기는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면서 하나의 맥

꾸준히 읽기

락으로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신구약을 이 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같

경건을 훈련하는 방식은 개인의 성향이나

은 날짜에 통독하도록 되어 있는 예언서와 복

기질에 따라 각자가 선호하는 방법이 있지 않

음서의 내용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과 그 예

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맥체인 방법을 사용

언이 온전히 성취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

하기 전에는 함께하는 사람이 있지 않고서야

다. 구약의 스가랴서와 신약의 요한복음 내용

개인적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틀에 얽매이지

이 바로 그것이다.

않는 방법으로 경건의 시간을 가져왔다. 현재 는 말씀 그 자체에 대한 기대와 의미를 헤아

또한 이 성경통독을 통해 신구약의 유기적

리고자 맥체인 성경읽기를 계속해가고 있지

인 관계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

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맥체인 성

으로 적용할 수 있었던 것도 아주 유익했다.

경읽기를 처음 했을 땐 누가, 왜, 어떻게 만들

창세기에서 요셉이 언약을 대하는 태도와 복

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저

음서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를

표에 따라 개인 2장, 가정 2장으로 해서 총 4

함께 묵상했다. 두 본문을 통해, 같은 말씀을

장을 읽기에 급급했다.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상반 된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었고, 여기에서 말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관계에 스트레스를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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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삶의 양식인 성경읽기

받거나 육체노동을 하고 돌아오면, 성경읽기는 더욱더 쉽지가 않다. 말씀보다 더 달콤한 유혹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오기에 내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잠자리에 들기 전 졸린 눈을 비 비며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일도 생기고, 그냥 방치하면 이마저도 하지 않게 된다. 새해가 되면 많은 신앙인들이 성경일독을 결심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결단 없이 매일 성 경을 읽는다는 건 쉽지 않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에 하루 분량을 다 읽지 못하거나 사정이 생겨 며칠 건너뛰게 되면 그만큼의 구멍이 생겨 읽어야 하는 분량이 늘어나고 또 그걸 한꺼번에 소화 하기 어려워지면 읽기 자체를 포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맥체인이 가르치는 하루 4장이라는 분량이 많다고 느껴진다면, 장수를 조절해 가면서 자신만의 성경읽기 흐름을 만들어 꾸준히 읽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읽기 신앙의 선배인 존 스토트 목사님 역시 1970년대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로부터 맥체인 성경읽기표 를 소개받고 평생 체계적으로 성경 읽기를 실천했다고 한다. 균형 잡힌 신앙은 말씀과 기도의 균 형에서 나온다며 이를 위해서는 성경 읽기가 필수적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또한 평소 맥체인 성경읽기표에 대해 성경 한 편을 계속 읽어 내려갈 때 생기는 지루함을 방지해주는 좋은 성경읽기 방식이라고 말하며, 성경 전체를 체계적이고 균형감 있게 알아야 하는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 들에게 추천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성경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천천히 묵상하고 생각하며 읽고, 구절의 뜻이 명확해질 때까지 한 구절 한 구절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조언에 따라 나부터 믿음을 갖고 말씀읽기에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하다면 가족 혹은 가까운 지인과 점검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맥 체인 성경읽기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성경을 읽기 때문이다. 혼 자였다면 금세 포기해버리기 쉽겠지만, 어려움이 생기면 성도들의 도움을 얻어 올해는 꼭 성경전 체를 읽으리라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청년부에서도 맥체인 성경읽기표의 방식을 따 르되 하루에 한 장을 기준으로 함께 읽는 것을 독려하고 있다. 나 혼자라면 하기 힘든 일일지 모 르나, 공동체 지체들과 같은 본문으로 말씀을 공유하고 나눈다면 나눔도 훨씬 풍성해지고 함께 자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의 고단함을 이기고 말씀을 끝까지 붙들어 한해를 마무리 할 때는 감사의 고백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소망을 품고 올해도 역시 깊이 있는 말씀읽 기에 도전한다.


소리지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20 말씀산책 »박창운 25 냉탕과 열탕사이 »정영민 28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김작가 30 생활의 발견 »홍정환 32 문화톡톡 »배운기 34 다다익책 »정모세 36 유금리 라이프_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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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산책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1절과 6절을 중심으로)

박창운 ◆ 계명대83 1983년 계명대 IVF를 개척했고, 졸업 후 대 구에서 전임간사를 역임했다. 서울영락교 회 청년부목사를 거쳐 지금은 대구제일교 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아내와 딸 예은, 아들 예찬이랑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 아가고 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과연 이런 고백이 가능한가? 익숙한 말이긴 하지만, “이게 사실일까?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얼핏 보아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야 했고(4절), “원수의 목전에서 생명의 위협을 당해야 했던”(5절) 시인의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찬양이 가능할까?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쉽게 답을 하려 할지 모른다. “다윗이니까! 그럼, 다윗이니까 이런 찬양이 가 능할지 몰라!” 그러나 다윗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런 대답이 신통찮은 답이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향하여 스캔들을 일으킨 지극히 연약하고 죄 스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 다윗의 고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만큼이나 유명한 구절이 6절에 나오 는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 다윗이 부족함 없다 고 찬양한 이유가 담겨 있다. “주의 선하심, 인자하심, 나를 따름”, 이 세 가지 속에 믿음 가득한 찬양의 견고함이 숨어 있다.


말씀과 함께 걷는 우리의 삶

주의 선하심 주의 선하심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맛난 음식을 먹고 “음, 맛이 좋 은데!”라든지, 멋진 경치를 보고 “와! 정말 멋져”라고 감탄사를 쏟아 내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의 좋음, “good” 정도의 단어로는 주의 선하심을 이 해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선하심은 히브리어로 “토브”인데, 이 단어가 하나님의 활동하심과 관련해 쓰일 때는 아주 강력한 의미를 지닌다. “주님 의 뜻과 계획을 따라 이루어져서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다윗 은 이것을 믿는다. “지금 내 삶의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이 루어지고 있어!”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자신의 삶에 이루어진다고 믿는 믿 음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보통 구약학자들은 시편 23편의 삶의 정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피신 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들의 반역에 다윗은 맨발로 도망가며 슬피 울며 감람산을 넘어갔다. 천인공노할 사건이 자신의 삶에서, 그것도 가장 지척 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그의 삶은 바닥까지 떨어져 더 이상 헤어나지 못하 는 모욕과 절망 속에 빠진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노래한다. “주의 선하심이 나를 따릅니다.” 지금 가 장 처참한 상황에 봉착했다 할지라도 주님의 나를 향한 계획과 뜻은 실현 되고 있노라 확신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었다. 이런 믿음이 ‘부족함이 없는 믿음, 주님의 목자 되심을 믿는 믿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바울도 이 러한 믿음을 로마서 8:28에서 고백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 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을 이루느니라.” 모.든.것.

어떤가, 우리도 다윗처럼 처참한 위기와 절망을 맞닥뜨린 경험이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을 위하여 몸부림치고 분투하였지만, 막상 시원치 않은 결 과가 나왔을 때는 없었는가? 그런 때,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고백해야 할 신앙의 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주님, 주님은 지금도 나에 대한 당신의 계획과 뜻을 실현하고 계십니다. 그런 주님이 나의 목자이십니다. 주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소리 지음


22+ 23

말씀산책

주의 인자하심

자, 어쨌든…) 이러한 안아주심이 인자하심이다! (참고로, 그때 헤어진 그 아가씨가 지금의 내 아

이제 인자하심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좋겠다.

내가 되었다.)

‘인자’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 “헤세드”라고 기록되어 있다. 헤세드라는 단어가 이제는 널리

다윗은 이것을 믿었다. 내가 아무리 어려운 형편

알려져서 모든 성도, 특히 IVF 학사라면 잘 이해

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모든 것이 단절된 삶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전적 정의보다는 어

에 처하더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

떤 이미지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나를, 우

나를 안아주시는 그 사랑, 마르지 않는 사랑은 떠

리를 와락 끌어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나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고백하는 것이다.

대학생이었을 때,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그

때로 세상이 우리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보일 때

런데 어떤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

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하나님도 나에 대하여 등

고야 말았다. 너무나 사랑했는데, 환경이 우리를

을 돌리신 것은 아닌가 할 만큼, 어려움에 가슴이

지지해 주지 못해서 서로에게 “안녕”이라는 말을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다윗처럼 말이다. 그런데

하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졌고 하늘은 무너진 것

그때 우리가 고백해야 할 말은 이것이다. “주님은

같았다. 그녀와 헤어지고 터벅터벅 한두 시간여

나에 대한 인자하심을 거두시지 않았습니다.” 주

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가난했던 우리집

님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

은 방 한 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그날 밤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차고 넘치는 이별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부모님 옆에서 흐느껴 울었다. 내 울음소리를 들

나를 따르리니

으신 부모님이 잠에서 깨어 용수철처럼 일어나 셨다. 그녀와 헤어졌다는 내 말을 들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다윗을 따른다!

는 시큰둥하게 “남자 자식이 그런 거 가지고 이게

이제 ‘따른다’는 말뜻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단순

뭐냐”라며 다시 자리에 누우셨다. 그런데 어머니

하게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 뒤를 따른다는 정도

는 달랐다. 나를 갑자기 와락 끌어안으시더니 내

의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아주 강세를 띤 말이다.

마음을 달래주셨다. 그러고는 한마디 하셨다. “가

“추적하듯이 맹렬하게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

시나가 가밖에 없나!”(이 문장은 해석이 어려울

러니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지 모르겠다. 첫째는 경상도 방언이라는 문자적

사랑의 마음으로 나를 향하여 추적해 오시는” 것

의미와 두 번째는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

이다. 결코 놓칠 수 없는 사랑의 추적! 이것을 말

하면, “너 같은 멋진 아들에게는 널리고 널린 게

씀하시는 대목이다.

좋은 아가씨이니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머

찬송가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이 세상의

니의 이 말씀에 엄청난 어폐가 있음을 나도 안다!

모든 죄를 맑히시는 주의 보혈, 성자 예수 그 귀


말씀과 함께 걷는 우리의 삶

한 피 찬송하고 찬송하세. 주님 앞을 멀리 떠나

말씀이 정말 실재(實在)할까?

길을 잃고 헤맬 때에, 나의 뒤를 따라 오사 친히 구원하셨도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다윗은 기억해낸 것이다!

“목사님, 지금까지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지 잘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실례일지 모르지 만, 그건 전부 다 이론이 아닌가요?”

어떠한 상황, 어떠한 여건이 닥쳐와도 다윗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속에 있음

누군가 정말로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을 확신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운

나는, 아니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아주 간단하

사랑이 끊임없이 함께한다는 것도, 자신을 놓

게 대답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치지 않고 언제나 붙들고 계실 것임을 확신했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이다! 믿음은

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우리에게 모든 증거가 보이고 뭔가 손에 만져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할 수 있었다.

져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 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 믿음을 비웃는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데도 인격적인 주님의 말씀을 붙드는 힘이 믿 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렇다면 시편 23편

다윗은 자신의 존재 기반이 어디서 왔으며, 그 래서 자신이 어디에 거해야 하는지를 선명하

다윗의 노래는, 그렇게 믿는 자들에게 펼쳐지 는 실상이요 증거가 되는 셈이다.

게 인식한다. 우리는 어떤가? 다니엘이, 요셉 이 혹독한 세상 속에서도 멋지게 살아간 이유

이제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보자. 이 글

가 하나님에 대한 선명한 인식이라고 말해 주

을 여기까지 읽어왔다면 이제 한 번만 더 생각

는 구약의 말씀처럼, 우리도 이 세상 속에서 주

해 보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기에 정말 나는

님에 대한 선명한 인식과 신뢰로 살아가고 있

부족함이 없는가? 주님의 선하심은 내 삶에도

는가? 세상살이가 만만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실재인가? 주님은 나

다. 정말로 녹록하지 않은 세상이기에 더더욱

를 여전히 사랑하고 붙들고 계신가? 절대로 나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는 사랑으로 나

무한충성을 요구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

와 함께 하시는가? 이제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

라진 지 오래된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당신의

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을 외쳐 보라. 그리고

무한 충성심을 보여 달라고 세상은 우리의 목

다시 한 번 시편 23편을 나지막이 혹은 소리 내

을 조인다. 세상이 주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오

어 읽어 보자.

늘의 시대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소리 지음


24+ 25 메마른 일상에서 서로를 돌보다

누구나 마음 나눌 벗 하나는 필요하다

카린 아커만 스톨레츠키 지음 강미경 옮김 | 196면 | 10,000원

오늘 내가 건넨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영혼을 살릴 수 있다면? 일상에서 서로의 영혼을 돌보는 방법에 관한 실제적 조언과 신선한 통찰! “가정교회 사역을 하면서 상담 기술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었는데, 목자들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목장 사역에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가득하다.” _최영기 휴스턴 서울교회 은퇴목사 김병년・김영봉 목사, 한영주 교수 추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반지성주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고함

“진리에 의해 불붙은 뜨거운 헌신!” 지성은 성경적으로 균형 잡혀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영역 예배와 믿음, 성결과 인도, 전도와 사역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존 스토트 지음 | 한화룡 옮김 102면 | 7,000원

www.ivp.co.kr


냉탕과 열탕사이

여행과 선물 정영민(열탕, 그) ◆ 인제대99 9년의 연애 끝에 그녀와 결혼, 4년째 충성 스런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는 전(前) 경남 IVF 간사. 지금은 아들 연우에게 더없이 좋 은 아빠이며 청소년들의 꿈을 찾아주는 진

소리 지음

로 전문 강사. 황선정(냉탕, 그녀) ◆ 동아대00 평범하게 살고 싶으나 평범하지 않은 남편 때문에 흥미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연 우엄마.

여행

열탕(그)

오늘은 연인이 된 후 처음으로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여행을 떠 나는 날이다. 나는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대와 설렘이 내

마음을 꽉 채웠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도시락! 비록 김밥은 어머니가 싸주셨지만 재료는 내가 직접 샀고, 과일도 내가 직 접 손질했다. 준비하면서 나는, 그녀가 이 도시락을 보고 얼마나 만족스럽고 행복 해 할지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 그 자체가 내겐 행복이었다. 목적지는 부산진 역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임랑 해수욕장. 나는 정성스레 준비한 도시락 을 챙겨 약속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했다. 기차 출발 시간보다 조금 빨리 만나기로 약속했기에 조금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 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하자 그때 울리는 문자 알림음. 그녀의 문자였다. “미안해 요. 교회 동생 만나고 가느라 조금 늦어요. 하지만 기차 출발 전에는 도착할 거예 요.” 뭐지? 이 기분은? 분명 섭섭한데 섭섭하면 안 될 거 같은 이 기분…. 그녀의 말 대로 그녀는 기차시간에 맞게 도착했고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기차에 올랐다. 그 녀는 나에게 사과했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교회 동생이 남자라는 걸 알 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26+ 27

냉탕과 열탕사이

냉탕(그녀)

임랑? 부산에 그런 곳이 있었나? 임랑이라는 해수욕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신기해하는 나에게 그는 함께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얼마 후, 부산진역에서 만나 기차를 타고 그곳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날 우리가 만나기로 한 것은 오후였고, 점심에 나는 또 다른 약속이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온 교회 후배와 점심을 먹기로 한 것 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기차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후배 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그에게 조금 늦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에 기차 시간이 임박해왔고, 동생과 헤어져 기차역으로 향했다. 저 멀리 그가 보인다. 미안 한 마음에 그에게로 달려갔다. 뭔가 섭섭한 눈치다. 나는 사과를 하고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교 회 후배를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가 길어졌다고. 13살부터 알고 지낸 편한 사이이고 나에게 피 아노를 가르쳐준 고마운 동생이라고.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말이 길어지면 오히려 이상한 분위기가 될 것 같아서 모른 척 넘기며 기차에 올랐다. 그와 함께 가는 기차 여행은 어떨까? 임랑의 바닷가는 어떤 곳일까? 나는 설렜고 궁금했다.

선물

열탕(그)

그녀의 생일이 다가온다. 나는 가난한 활동학사다. 백화점에서 고급스럽고 좋은 것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현실은 상설할인매장이다.

집 근처의 아울렛 매장을 둘러보았으나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한 자매 리더가 나에게 좋 은 정보를 줬다. 어떤 백화점에서 크게 세일을 한다는 것이다. 당장 달려갔다. 소문대로 이월제 품들을 아주 싸게 팔고 있었다. 한 여성의류매장에서 유독 나의 시선을 끄는 치마원피스 한 벌. 봄에 입기 딱 좋은 색상과 그녀의 얇은 팔뚝을 돋보이게 할 민소매, 그리고 무엇보다 날씬한 허 리를 강조하는 슬림라인. 그녀에게 딱 어울리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라 더욱 신 이 났고, 내친 김에 그 옷에 어울리는 샌들까지 구입했다. 드디어 그녀의 생일,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했다. 차 조수석에 원피스를 걸치 고 조수석 바닥에 샌들을 놓고, 문을 열어놓은 채 나는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일을 마 치고 내려왔다. 내 차인 것을 확인하고 두리번거리더니 내가 준비한 선물을 보았다. 그때 내가 뒤에서 “짜잔~~”하고 등장했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눈 은 웃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 말엔 영혼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 표정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더 분명해졌다. 그후로 지금까지 10년, 그녀가 그 원피스를 입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딱 한 번뿐이다. 그 샌들을 신은 건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와 그녀의 추억 차이로 되짚는 연애의 재구성

(그녀)

냉탕

학원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정리하며 문자를 확인했다. 그가 학원 앞에

서 기다리고 있단다. 반가운 마음으로 서둘러 차 쪽으로 걸어갔다. 어, 그런데 운전석에 있 어야 할 그는 없고 조수석에 뭔가 있다. ‘아~서프라이즈 선물이구나.’ 나는 기대하면서 가 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조수석에는 원피스가 걸쳐있고 바닥에는 굽 높은 샌들도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런데 둘 다 연두색이다. 보기에는 참 예쁜데 내 마음에는 들지 않 는다. 평소 치마도 잘 입지 않고 샌들도 잘 신지 않는 나에게, 더군다나 연두색을 사주면 어 떻게 하란 말인가! 약간 실망을 하던 그 순간 “짜잔~~”하며 그가 나타났다.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좋아하는 척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에 만날 때 원피스를 입고 샌들을 신고 나오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해가 바뀔 때까지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 듬 해 여름이 다가오자 그는 자신이 선물해준 연두색 원피스와 샌들 얘기를 끊임없이 했 다. 이런 저런 핑계도 통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원피스를 입었다. 민소매 는 하얀색 카디건으로 커버했으나 허리라인이 잡혀있는 치마라 숨 쉴 때마다 배가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게 보였다. 신경 쓰이고 불편했지만 그래도 한 번은 꼭 입어 야 했다. 그가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인데 1년이 지나고 입고 나가서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결국 나는 딱 한 번 입은 연두색 원피스를 결혼 전 옷장정리를 할 때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샌들 역시 결국 한 번도 신지 못하고 색이 바래 그냥 버리고 말았다. 그후로 나는 생일 때 받고 싶은 선물을 그에게 미리 말했고, 내가 그에게 하는 선물도 그가 원하는 것으로 사주었다. 이렇게 서프라이즈 선물의 위험성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는 아직까지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소리 지음


28+ 29

파란만장 직장생존기

따뜻한 말 한마디 김작가 ◆ 필명, J대06 올해로 학사 5년차이자 하나님나라를 청 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 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 용합니다.)

며칠 전, 졸업생 모임에서 후배 학사를 만났다. 여행

나타나는 것 같다. 직장이라는 곳은 누군가에게 막말

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어떤

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인지도 모르겠다.

지 물었더니 과장님 이야기가 나왔다. 근무환경이나 업무 자체는 좋은데 과장님이 불편하단다. 왜 그런가, 했더니 그놈의 ‘말’이 문제였다.

언어라는 건 사실 참 신비로운 영역이다. 약속된 단 어를 통해 섬세한 의미를 구성할 수 있고 생각이나 감 정을 전달할 수 있으며 누군가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사무실에 여자 대리님이 계신데 좀 몸집이 있는 편

수도 있다. 관계에 있어서 ‘말’이란 가장 핵심요소가

이거든. 근데 과장님이 대리님 앞에서 만화 <슬램덩

아닐까 싶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깊어

크>의 뚱뚱한 감독을 닮았다면서 푸하하하! 하고 웃

지기도 하고 오해가 쌓이기도 하며, 사랑을 만들거나

는 거야. 순간 대리님 표정이 굳어지는데 난감하더라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의 사

니까.”

이를 구성하는 근간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이 를 더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그 과장님은 농담이랍시고 장난스럽게 던진 한마 디였겠지만, 아래 직원에게는 농담으로 받을 수 없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언어’

무거운 한마디였을 것이다. 우리 회사 과장님도 별반

를 얼마나 아름답게 사용하고 있을까? 하루의 대부

다르지 않다. 업무 실수를 한 동료 언니에게 “너 이대

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언어의 중요성도 그만큼 높

나온 여자 맞아? 이대 나온 여자가 뭐 이래?”라며 사

다. 말을 가려서 잘 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도 잘 알

람들이 보는 앞에서 막말을 해댔다. 저 짧은 문장 속

지만, 실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

에 반말, 내리까는 말, 성적으로 차별하는 말, 선입견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단순하게 <슬램덩크>의 감독

을 가지고 판단한 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니 어떤 의

을 닮았다거나, 뚱뚱하다거나 못생겼다거나 하는 ‘남

미로는 굉장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른

을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를 배려하

사람을 비하하는 농담이나 욕설, 남을 폄하하는 비난

는 대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 말은 상하관계가 뚜렷한 곳에서 유독 두드러지게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를 담은 에세이

작년까지의 팀장님은 비난의 아이콘이었다. “야, 이

었다. 몇 번을 물어봐도 대답이 비슷해 그냥 넘어가

계집애야”부터 시작해서 “저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면, 나중에 일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뽑으면 된다”든가, “책 좀 읽게 다른 일

업무를 다시 해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은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든가, 이런 식으로

했다. 신입사원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 역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막말킹’ 팀장님

시 배려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고 새로운 팀장님이 오 셨다. 이분은 표현도 부드럽고 말투에도 배려심이 넘

물론 배려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

쳐서 팀원들이 상처를 받는 일도 사라졌고 분위기도

은 것 같다.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말을 내뱉고 그 말

한결 좋아졌다.

에 대해 후회한다. 학생 때 학교에서 배운 ‘언어 영역’ 은 지문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기에 배려

하지만 나는 이번 팀장님의 ‘말’에 작년보다도 더 시

하는 말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어에는 인

달리고 있다. 팀장님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점심밥

격이 묻어나고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다. 우리가 하나

을 먹자마자, 일이 한가해지기만 하면 수시로 옆자리

님 안에서 배워야 할 ‘언어 영역’은 배려와 이해로부

에 찾아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는 쌓

터 출발하는 말일 것이다.

인 업무가 많고 일이 늦춰지면 약속된 기일에 맞출 수 없거나 야근으로 이어지기에 마음이 조급한데, 한번

직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 다양한 대화와 관계

시작된 팀장님의 이야기는 한두 시간이 지나도록 그

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가장

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가장 어린 내가 팀장님의 말

많은 말을 하는 곳이다. 때문에 그 사이에서 오가는

을 무시하고 업무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작은 말 한두 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

일주일간 팀장님의 과거사만 다섯 번은 들은 것 같다.

고 갉아먹기도 하는 것 같다. 남들보다 십분 먼저 퇴

팀장님의 형제가 몇인지, 그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근할 때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표현하면 남아있

지, 그분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고 어떤 불행이 있었는

는 사람들의 야근을 위로할 수 있고, 이름을 기억해

지를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서 불러드리면 관심을 표현할 수 있다. 야단치기 이전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에 칭찬 한마디를 먼저 시작하면 듣는 아랫사람이 자

이야기만 끝없이 늘어놓는 것도 배려하는 말은 아니

신의 잘못을 더 귀 기울여 받아들일 수 있고, 아부가

라고 생각한다.

아니라 존중하는 말을 하면 상사와 동료의 마음을 모 두 얻을 수 있다.

또 이런 경우는 어떨까. 내 친구는 지난 해 팀장으 로 승진을 했다. 중간관리자인 친구의 역할은 위에서

새해가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온다. 사무실 사

내려온 업무를 적절히 분배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분

람들이 바뀌기도 하고 자리나 맡은 업무가 달라진다.

담해주는 것이었는데 현장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

그 역동 속에서 올 한해 내가 이루고 싶은 변화는, 하

는 편이었기에 아랫사람들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했

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언어’로 아름다운 ‘관계’를 만

다. 그런데 유독 말이 없는 신입사원이 있었다. 말수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오늘도

가 적고 내성적인 것은 자신의 성향이니 이해할 수 있

직장동료들에게 웃으며 한마디를 건네고 있다. 이 한

지만,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마디가 우리의 일터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

도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물어물 “대충….”하고 끝이

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소리 지음


30+ 31

생활의 발견

“토토가”를 맘 편히 볼 수 없던 까닭 홍정환 ◆ 부경대98 IVF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연구원. 멸공봉사 (滅公奉私)를 좌우명 삼아 어떻게든 공적 인 시간에 사적인 일을 하려고 몸부림치는 무익한 종. 누워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쉼 중독자(restaholic).

한동안 의식적으로 TV를 멀리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무한도전>(MBC TV) 본방송을 시청했다. “토토즐”(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과 “나가수”(나 는 가수다)라는 음악 프로그램의 제목을 섞은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 수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90년대의 가수들을 모아놓고 쇼를 하다니 바로 우리 세대를 위한 기획이 아닌가! 나는 초등학교 시절, ‘뉴키즈 온 더 블록 (New Kids on the Block)’의 “Step By Step”에, 중학교 때는 ‘서태지와 아이 들’에게 열광했다(서태지가 “난 알아요”로 데뷔할 때 난 중학교 1학년이었 고, 고등학생 시절 친구 중에 ‘H.O.T.’ 지역팬클럽 회장이 있었다).

방송은 즐거웠다. 하지만 “우리 음악의 전성기 90년대” 같은 이야기가 드문드문 반복될 땐 고개를 갸웃거렸다. 출연자들의 데뷔년도를 기준으로 “90년대 가수”라고 뭉뚱그리는 게 가능할까? 그리고 거기 나온 가수들도 현역 시절엔 “아이돌 중심의 획일화된 음악”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았었나? 저것도 음악이냐, 다양성도 창조성도 없다, 이런 비판은 그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2000년대(?) 음악을 훗날 회상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우리 음악의 전성기 2000년대! (아, 실로 광범위한 세대가 등장하였도다!) 90년대 1세대 아이돌에 비해 전반적으로 가창력과


일상에서 길어낸 무규칙 이종(異種)에세이

안무능력이 향상된 아이돌그룹, 수준급의 사운드를 뽑아내는 오디오 프로듀싱, 그러면서도 ‘버스커버스커’, ‘악동뮤지션’, ‘곽진언’ 등이 등장한 다양성이라니!” 이러면서 2000년대는 참 으로 아름다운 시대였노라고 AD 3000년에 회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토토가”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의 노래 한 두 소 절은 정말 익숙하고 반가웠다. 그런데 노래 전체를 따라 부를 수는 없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난 음악을 꽤 좋아하는 편이고 음치도 그럭저럭 면한지라 노래도 많이 불렀다. 헌데 ‘터보’나 ‘S.E.S.’의 노랫말을 몰랐다. 잊은 게 아 니라 원래 몰랐다. 왜? 안 듣고 안 불러봐서 그렇다. 유독 ‘김현정’과 ‘엄정화’의 노래는 90% 이상 기억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다른 까닭이 있다. 엄정화의 전성기와 김현정이 무섭게 뜨 던 시기에 나는 군에 입대했다. 여가수가 부른 댄스 음악이 환영 받는 군대의 생리상, 고참들 을 위해 그녀들의 노래를 참 많이 불렀다. 그 덕에 두 사람의 노래는 아직도 몸에 남아 누가 빠따만 휘둘러준다면 춤도 그럴싸하게 출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음악의 전성기’ 같은 낯간지 러운 수식어를 붙인 그 시절, 왜 서태지와 뉴키즈 온 더 블록을 좋아했다던 청소년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했을까?

나는 당시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던 어느 전도사님의 주장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그래서 친구에게서 복사한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카세트테이프를 불태웠다(아마도 중 등부 수련회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피커에 마이크를 대고 조악하게 복 사한 그 테이프를 불태울 때, 나는 “다시는 사탄의 음악을 듣지 않겠습니다”라고 울며 기도했 다. 그때부터 문화적 단절을 선택했다. 그날 이후로 ‘좋은씨앗’과 ‘소리엘’의 음악을 외로이 흥 얼거리며, 친구들이 ‘터보’, ‘룰라’, ‘듀스’의 노래를 부를 때 그 자리에서 조용히 멀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자리뜨기 전에 어쩔 수 없이 들었던 딱 그만큼, 노래 시작 부분이나 후렴구 일부분뿐이었다. “나를 돌아봐 그대…”

“토토가”를 편히 볼 수 없는 까닭…… 희생양을 하나 만들자면, 그게 다 <** 울타리> 때문이 다! 아, 아니다! 어찌 그 책임을 <낮은 ***>에만 돌리랴. 문화적 폐쇄성을 순결한 신앙으로 포 장하는 것은 이원론에 찌든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말썽은 피울지언정 교회를 벗어나진 않았던 내가, 가요를 멀리하고 복음성가를 즐기는 것을 일상생활의 영성이라고 믿게 된 건 지 극히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결국 나는 내 또래가 가진 공통의 감각(commonsense)을 잃었다. 아니 그 감각을 형성할 기회 자체를 잃었다.

소리 지음


32+ 33

문화톡톡

사람들은 같이 먹고 싶어 한다 배운기 ◆ 연세대99 창조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엮어주는 게 인생의 꿈이자 낙.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트렌드를 빨리 접하고 찾

으로는 식사 때만이라도 함께 밥을 먹을 파트너를 찾

아보는 일이 많습니다. 결국 ‘트렌드’란 동시대 사람

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식사의 유익이 단순히

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내용이겠지

음식의 맛을 느끼고 영양을 섭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요. 대부분 대중의 욕망을 충족해 주겠다(며 자극하)

밥상을 사이에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함에

는 주체들이 마케팅 메시지로 무장한 상품과 서비스

있다면, 1인 가구 시대에 이러한 움직임은 당연해 보

들이 주를 이룹니다만, 그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네요. (이러한 1인 가구의 식문화를 반영한 <식샤

이 세대에 진정 필요한 ‘시대정신’을 엿볼 수도 있습

를 합시다>라는 드라마는 인기를 얻어 시즌2가 기획

니다. 그래서 ‘문화톡톡’에서는 최근의 문화 트렌드를

중입니다.)

짚어보고, 그 속에서 대안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사례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끼리 식탁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소셜다이닝”이 최근 트렌드 키

가장 먼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인 ‘먹는 것’부 터 시작합니다.

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소셜다이닝의 형태는 매 우 다양합니다. 개인의 집 주방을 정기적으로 공유하 는 형태도 있고, 가게를 매주 특정 시간마다 오픈해서

“먹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새로운 복음을 설파

식사를 나누는 형태도 있습니다. 주로 공통의 관심사

하는 어떤 광고 카피에서 보듯, 먹고 마시는 것은 변

를 가진 사람끼리 모여 식사를 나누기 때문에, 처음의

하지 않는 인간의 기본 욕망입니다. 최근 1인 가구가

어색함은 금세 사라지고 더 깊은 친교와 네트워크로

급증하면서(2013년 기준 26%) 식사문화 또한 전과는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소셜다이닝을 경험한 사람들

다른 변화들이 감지되는데요. 혼자 먹을 수 있는 1인

의 추천 이유라고 하네요.

용 식당이나 도시락들이 유행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


일상의 트렌드 속에서 다른 길을 찾다

홈파티 문화가 보편화된 외국에서는 이미 소셜다이

공동 출자로 마을 식당인 ‘동네부엌’을 시작하게 되었

닝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에

습니다. 내 이웃, 우리 아이가 먹는 음식이다 보니 유

는 SNS를 기반으로, 특정한 날 도시 전역에서 자신의

기농 식자재를 쓰게 되었고, 요리사부터 아르바이트

식탁을 공유하는 ‘Benches Collective’나 ‘Restaurant

생까지 마을공동체 주부들이 직접 나서서 일하는, 마

Day’ 같은 축제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을기업이자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지요.

한국의 경우 소셜다이닝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

2007년에 개점한 ‘문턱없는 밥집’은 일정 소득 이

다. 그렇지만 손님이 오면 상다리가 부러질 듯이 차

하의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고도 점심을 먹을 수 있

려내던 우리네 전통문화나, 찌개나 전골 등 여럿이 모

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지역의

여야 맛볼 수 있는 한국 음식의 특징들이 소셜다이닝

사람들은 누구나 형편대로 신선한 채소와 나물이 들

이 확산되기에 좋은 토양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

어간 비빔밥을 먹을 수 있으며(대신 숭늉으로 깨끗

해입니다. 이렇게 소셜다이닝이 인기를 모으다 보니,

이 밥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형편대로 돈을 냄으로

식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회사도 생겨

써 “나눔과 비움의 밥상공동체”를 구현하고 있지요.

나기 시작했는데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집밥(www. zipbob.net)’입니다. 혼자 밥 먹는 게 싫어서 페이스북

이러한 지역 협동조합 형태의 마을식당들은, 보다

에 ‘같이 밥 먹자’라고 이야기하면서 시작되었던 것

지속가능한 밥상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진일보한

이, 불과 2년 만에 매주 100여 개 이상의 다양한 밥 모

‘소셜다이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

임이 꾸려지는 대표적인 소셜다이닝 비즈니스로 발

타깝게도 ‘동네부엌’은 최근 높아진 임대비로 난항

전하였습니다.

을, ‘문턱 없는 밥집’은 매출 부진으로 잠시 폐업을 했 다가 최근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다시 부활하는 등, 쉽

이러한 소셜다이닝 트렌드는, 극심한 개인주의 사

지만은 않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회에서도 밥 먹을 때만큼은 따뜻한 ‘밥상공동체’를 이 루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면, “밥상공동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

싶습니다. 물론 학부 시절, 식사와 함께 찐한 원투원

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입니다. 굳이 교회사의 전통을

을 경험하셨던 학사님들은 이런 일회적인 사교모임

들추지 않더라도, 지금도 주일마다 전국의 대다수 교

에 가까운 ‘느슨한 밥상공동체’가 왠지 민숭민숭하겠

회에서는 함께 밥을 짓고 식탁을 공유하고 일상을 나

죠. 식탁을 공유해서 더욱 긴밀한 커뮤니티를 이뤄낸

누고 있지요. 저마다의 식당 공간을 갖고 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찾자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협동조합

교회들이 만약 소셜다이닝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혹

형태의 식당들을 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

은 지역사회와 함께 식탁을 공유해 나간다면, 함께 밥

로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동네부엌’, 그리고 서교동에

먹을 사람들을 찾는 ‘나홀로족’에게는 꽤 괜찮은 복음

위치한 ‘문턱 없는 밥집’입니다.

(기쁜 소식)이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1인 가구 시대 의 밥상공동체를, 다양한 도시락과 넓어진 휴식공간

다큐 <춤추는 숲>으로도 유명한 성미산 마을공동 체는, 공동체 내 맞벌이 부부를 위한 반찬을 제공하 고, 마을 학교에 급식을 공급하기 위해 2002년부터

을 무기로 무섭게 확장해가는 편의점 네트워크에 빼 앗기지는 말았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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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책

놓치면 아까울 2014년에 나온 몇몇 책 정모세 ◆ 연세대92 연말에 넷째가 태어난 것으로 일단락된 격 동의 2014년을 보냈다. 올해가 향후 20년 의 방향이 뚜렷해지는 출발선이 되기를 바 라고 있다. 래안․지안․다안․요안 네 명의 아 이를 잘 키우는 게 그 20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10여 년 전에 일했던 IVP에 작년에 편 집장으로 복귀했고, 혁명기도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분당두레교회 협동목사 이기도 하다. 《회심》《복음주의 신앙선언》 등의 책을 번역했다.

새해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쏜살같이 도망간다. 때로는 높고 때로는 잔잔하게 끊임없는 파도와 같이 밀려드 는 업무와 일상과 씨름하는 사이, 지난해 일어난 온갖 커다란 사건들도 금세 우리 망각의 심해로 가라앉아 버 린다. 정리되지 않고 해명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들로 날마다 무감의 유리 장벽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있자 면, 결국 냉소와 좌절의 포로가 되지나 않을까 싶다. 이런 두려움이 유독 증폭되는 시절에, 지난해에 나온 책 서 너 권을 여기 지면에다 흐트러뜨려 놓는다. 그 책들이 혹 아리아드네가 건넸던 실타래가 되어 준다면, 우리가 그 가느다란 선을 붙들고 미궁 속을 걸어 나가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한 낱의 실마리가 될 수는 없을까 하고. 소설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내놓았다. 어느새 ‘사반세기 전’이라는 수식어를 새로 붙이게 되는 그때 5월 광 주의 풍경을 오늘 다시 펼쳐 놓는 이 책은, 잔인한 4월을 겪고 나머지 한 해를 그 맴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며 보내 야 했던 우리에게 그 봄날의 황망함을 해석할 단서를 제공한다. 저자는 말한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 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이렇게 그때 5월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1월을 함께 짚어 보고, 4월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 목록

피폭처럼 우리에게 오래 남을 것을 예고한다. 국가란

진 이웃들을 포착한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일

무엇인가, 라는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끈질기게 물어

말의 다른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리고 천박하고

야 하는 때를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끔찍한 괴물로 진화해 가는 주류 자본주의 경제학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을 일굴 여지를 제공하려 한다. 주

엊그제, 종교적 정체성을 핵심으로 삼는 집단이 한

류 자본주의 경제학 바깥에도 나름 타당한 수많은 다

언론사에 테러를 가했다. 그냥 두면 언젠가는 사라질

른 경제학이 존재함을 알려주고 우리의 경제학을 선

거라고 한때 여겨졌던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긍정적

택해 보자고 초청한다. 과연 우리가 그 괴물의 행보에

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점점 더 묵직해진다. 종교가 전

슬쩍 딴지를 걸어 볼 수 있을까?

에 없이 중요하고 또 골칫거리인데, 언론 지면을 곧잘 장식하는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정교하면서도 넓

정보혁명 시대에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 잠겨 있지

게 바라보고 현실 속의 바른 실천을 탐색하는 신학자

만, 오히려 그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김용규는 《생각

미로슬라브 볼프는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우리와

의 시대》에서 기원전 8세기에서 5세기까지 그리스를

정황이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우파 기독교의 왕성한

무대로 삼아 펼쳐진 ‘생각’의 탄생을 풀어나가며, 인

정치 참여 이후 시대에 종교적 다원성과 충돌의 상황

류가 문명을 건설할 때 사용한 ‘생각’이라는 도구가

속에서 제기되는 뒤엉킨 실 가닥들 같은 질문들을 하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생각의 기원을 역

나하나 헤아리며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을 해명한다. 기

사적으로 추적하고 동시에 인지과학, 뇌신경과학 등

독교의 고유한 본성들을 함부로 배제하는 잘못을 저

의 성과를 반영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

지르지 않고, 도리어 그 고유성으로 사회 속에서 제대

서 어떻게 이 시대를 생각하며 살아갈지 하는 문제를

로 기여할 방식을 건실하게 탐색한다. 매력적인 빨간

풀어 갈 유용한 도구를 제시한다. 이 책은 ‘사유’에 대

색 표지의 이 책과 함께, 까만 책 《무례한 기독교》(확

한 장대한 저술 프로젝트 제1권의 서문을 쓰다가 독립

대개정판, 리처드 마우 지음)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적인 한 권의 책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후속작들은 과

나마 기독교의 공공성에 대해 그 방향이라도 한번 감

연 어떻게 펼쳐질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그때 인류

잡아 보고, 주변의 그리스도인들과 진지하게 이야기

가 그렇게 야만을 극복하고 문명을 세웠다면, 오늘 우

해 보면 어떨까?

리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야만이 기승을 떠는 또 하나의 주 무대는 자

나이가 들수록 질문이 늘어가고 책을 집어 드는 일

본주의 체제다. 수많은 이웃이 어느 감춰진 으슥한 골

도 더욱더 뜻깊은 일이 된다. 이제 나와 공동체를 돌

목들마다 비명횡사하고 있는데, 그 사인은 주로 자살

아보겠다는 결의가 독서 행위와 좀 더 크게 얽혀 간

로 위장된 타살이다. 땅에 고인 피가 하늘을 향해 외

다. 모든 책은 읽는 사람의 오늘과 대화하지만, 작년

칠 것이라 생각하니 두렵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

에 갓 출간된 이 책들은 더더욱 우리에게 현장감 생

간》은 자본주의 속에서(그리고 또다시 ‘국가’ 속에서)

생한 이야기를 건넨다. 그래서 이 책들은 새해를 시

자기 존재감을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상실해 가

작하는 내게 도전과 도움을 줬다. 현실의 미궁 속에

는 사람들에 대한 동시간적 레퀴엠이다. 저자는 “소

용기 있게 들어가 괴물에 맞서 싸우고 있는 하늘나라

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동지들에게 내가 접한 몇몇 책들을 작은 실타래로 감

이라고 말하며, 투명인간이라는 탁월한 은유로 숨겨

아 건네 본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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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유금리에서의 느릿느릿 또렷한 하루

지은실 ◆ 동덕여대02 포토샵, 일러스트와 몇 년째 ‘밀당’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 2년전 성산동 생활을 마치고 자연과 조금 더 가까운 유금리로 왔다. 빵 굽고 커피 볶는 남 편과 밥해먹고 동네 언니, 동생들과 수다 떨고 볕 쬐며 (별 일 없이) 산다.


소리이음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38 소리가 만난 사람 »이대행

44 나음누리, 새 인물을 소개합니다 »백성대 48 새로운 학사회사역 네트워크 구축을 준비하며 »이시종 51 정의로운 사회, 행복한 공동체: 즐거운 시민운동을 꿈꾸다 »최삼열 53 ‘완생’을 향한 직장멘토링 »이동훤

55 안테나 58 편집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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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연결하고 소통하는 선교의 플랫폼이 되고파 한국교회에서 해외선교 동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선교한국’ 운동이 출범한 이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합운동으로서의 선교한국이 출 범한 이후 91년부터 약 25년간 실무자로, 지금은 상임위원장으로 그 현장을 지켜온 이대행 학사를 만났습니다. 현재 선교 동원 운동의 상황과 과제뿐 아 니라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해온 어려움과 현재 처한 긴장 등, 현실적인 삶 의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이대행 ◆ 숙명여대87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 먼저 옛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학부시절 참여했던 IVF 선교부 모임 부터, 어떻게 선교 동원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추억을 되살려 보시 겠어요? 대학 2학년 때였어요. 이득수 선교사님이 선교지로 떠나시기 전 선교 세미나를 여셨는데, 당시 제 동기 임수경이 열심히 참여했어요. 그때까 지만 해도 저는 선교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말, 필리 핀에서 EARC가 열렸습니다. 88년부터 해외여행이 허용되면서 학생들 도 해외에 나갈 수 있게 되었죠. 개인적으로는 그때의 해외경험이 인상 깊었어요. 타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게 신기했죠. 선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한 건 그때 가 처음이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1988년에 제1회 선교한국이 열렸고, 저는 90년 대회

안을 받아 8월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

에 처음 참석했어요. 신선했습니다. 선교가 새롭게 다

은 반대했는데 부르심이 있다면 가겠다고 생각했어

가왔어요. 당시에 고직한 선교사님이 기도합주회를

요. 그곳이 아니라면 준비했던 대로 9월에 선교를 나

인도하셨는데, 기도회가 그렇게 역동적인 건 처음이

가겠다 생각했고요. 선교한국이 연합운동으로서 초

었어요. 강의로 들은 지식이 기도로 엮이는 경험을 하

창기라는 점이 행정학을 전공한 제게 중요하게 보였

면서 선교사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습니다. 전문영역이 구조적으로 정착하는 걸 돕고 싶

고 생각했죠. 금요일, 한참 졸고 있었는데 이동원 목

었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의 안정화에 관심이

사님이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들은 일어나라고 ‘콜링’

있었다고 할까요?

을 하셨어요. 벌떡 일어났는데 졸다가 일어난 사람은 앉으라고 하셔서 다시 앉았죠. (웃음) 얼마 전에 이사 하면서 짐을 정리하다 보니까 이때 작성했던 헌신서

* 선교한국이 작년에 14회를 맞이했죠. 1회 대회 빼

가 있더라고요. 현장에는 나가지 않아도 선교라는 영

고 모두 참석하신 셈인데요. 모든 대회가 각별하겠지

역을 나의 삶에 깊이 품겠다고 적었더군요. 실제로 지

만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대회를 꼽아보신다면 언제

금 그 일을 하고 있네요.

인가요?

선교한국 대회 이후, 졸업하고 선교사로 나갈 준비

모든 대회가 기억에 남아요. (웃음) 그중에서도 처

를 했어요.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그냥 추진했어요.

음 스텝으로 참여했던 92년 대회를 잊을 수 없어요.

장기선교를 나가기 전에 현지를 방문해야겠다고 생

Joy선교회가 선교한국대회의 포문을 열고 IVF가 선

각하던 중, 김중안 간사님이 연락을 하셨어요. 학사

교한국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교두보를 놓았다면, 92년

몇 명이 인터서브 프로그램을 통해 중동지역에 가니

대회를 준비한 예수전도단은 선교한국의 기틀을 마

함께 가자고 하셨죠. 저까지 여섯 명이 두 달 동안 이

련했다고 봅니다. 돌아보면 그 대회를 준비한 분 중

집트, 터키 등을 다니며 이슬람권 사역에 대해 이야기

에 탁월한 분들이 많았어요. 이때 시스템이 구비되지

를 나눴어요. 여행 이후에 김중안 간사님을 중심으로

않았다면 일반 수련회와의 차별성을 마련하지 못했

IVF 선교부 모임이 시작되었어요. 뭐, 별로 한 일은 없

을 겁니다.

어요. (웃음) 볼링 치러 다니고 선교한국 사무실에서

92년 대회의 주제는 “2000년을 향한 한국 청년 학

우편 발송 돕고 그랬죠. 굉장히 느슨한 모임으로 관계

생들의 책임!”이었는데, 핵심 화두는 ‘선교 동원운동

를 만들어 갔어요. 그 흔한 스터디도 하지 않았고 정

(mission mobilizer)’이었어요. 그때부터 선교 동원이

말 즐겁게 지냈어요. 모여서 서로 사는 이야기 나누며

라는 개념이 한국교회에 자리 잡았죠. “모든 족속마

놀다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했고요. 모임은

다 교회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이라는 주제로 열

그저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확인하는 시간이었

린 94년 대회에서는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어요. 그러다 IVF 선교부는 학생 중심 사역으로 김종

이라는 개념이 확산되었고요. 이 개념은 1974년 로잔

호 간사님이 이어받았습니다.

대회에서 랄프 윈터 박사가 소개하여 선교사역의 획 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죠. 이 두 가지가 한국교회의 선

졸업을 하고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선교한국의 제

교운동을 이삼십 년간 이끌어 온 중요한 개념이었습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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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니다. 초반의 두 대회가 우리의 방향성을 설

눈을 뜬 사람과 자기 문제에 갇혀 있는 사

정한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선교에서 중요

람은 기본적으로 삶의 풍성함이 다르죠. 학

한 게 동원, 미전도 종족, 연합, 이 세 가지인

생단체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선교적 비전

데, 한국교회는 초반부터 세 가지가 모두 자

을 학생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

리 잡은 거죠. 이건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

다. 그런 면에서 선교한국은 준비가 잘 되어

기 힘든 사례입니다.

가고 있어요. 그 어디보다 선교한국에 왔을 때 학생들의 시각이 바뀔 거라고 자부합니 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 한국교회의 침체 흐름과 학생 선교단체의

하면 되겠더라고요. 홍보를 열심히 했다면

쇠퇴기를 겪으며 학생 선교 동원도 어려워

참가자에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학

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선교한국의 참여

생단체도 과거와 비교해 줄어드는 수를 걱

자 수도 대폭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의

정할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사람들이 오고 있

흐름은 어떤가요?

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할 바를 다 한 것이겠죠.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전체적인 참가자의 수가 줄더라도 학생 선

위기가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참가자

교단체의 참석비율이 유지된다면 괜찮다

가 많았을 때 홍보를 지금보다 더 전략적으

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으니 성과

로 하고 훨씬 잘 준비된 건 아니었어요. 하

면에서도 동력이 크게 일어나진 않더군요.

나님이 그때는 우리의 몸을 만들기 위해 일

지금 개신교의 행태에 문제가 있으니 선교

하신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간사들이 조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방향을

를 짜서 일주일에 두 번씩 교회를 돌아다니

정확히 잡으면 현세대도 충분히 함께할 수

며 홍보를 하는데도 잘 안 되더라고요. 결

있습니다. 동력이 사라진 채 조직만 남는다

국 홍보의 문제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

면 더 이상 운동체가 아니겠죠. 결국 단체의

가 필요한 것이겠죠.

리더들이 감당해야할 요소라고 봅니다. 자 신이 리더인가, 매니저인가를 고민하며 방 향성을 설정해야겠습니다.

선교현장에서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아무런 안전장 치 없이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참가자 수가 줄어드는 건 사실 굉장한 스

국에서 최소한의 복지시스템이라도 활용

트레스에요. 그렇지만 그 자체보다는 정체

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고요. 접근 전략

성의 혼란이 위기죠. 소수의 사람들이 미래

도 기존과는 달라져서, 지역 특성에 맞춘 프

에 감당해야할 몫을 생각하면 숫자는 비교

로젝트를 개발해 활용할 수 있는 자금에도

대상이 아닙니다. 개인의 문제에만 매여 있

주시하고 있습니다. 선교라는 영역을 총체

는 사람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과감히 내

적으로 이해하며 진정성을 갖춘 사람들이

려놓는 전략도 필요하겠고요. 선교사역에

현장에 갈 수 있도록 하고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한편, 중국, 인도, 대만, 몽골, 인도, 에티오

흐르고 보니 서로 관점이 달랐던 거였어요.

피아 등에서 선교한국과 같은 동원운동이 일 어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때 외국인이 개

연합운동은 사실 백조와 같아요. 우아하게

입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스

호수를 누비지만 물밑에선 엄청난 발차기를

스로 만들어가도록 스피릿을 전수하는 것이

하고 있죠. 스트레스가 극심합니다. 제가 여

중요해요. 저희는 다만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성이라서 연합운동을 할 때 장점과 단점이

겪지 않도록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고 있죠.

모두 있어요. 한국사회의 소위 ‘사우나 문화’

그래야 각 나라에 적합한 운동이 될 수 있으

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단점이라 볼 수 있

니까요. 우리의 노력과 별도로 하나님이 사

겠죠. 남성과 여성이라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람을 보내기도 하고 이야기할 기회도 만들어

다른 문화가 있고요. 한국교회가 남성중심의

주셔서 지경을 넓혀 가신다고 생각해요.

문화라 불편함도 있죠. 어떨 땐 “여자가 무 슨!”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냥 ‘영적으로’ 느껴 져요. (웃음)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니 유

* 선교동원 현장도 거친 현장이라고 봅니다.

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문화를 넘어서긴 어렵

문화가 다른 여러 단체와 함께 일해야 하는

더군요.

데, 연합운동을 하는 사역자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그 어려움 을 감당하신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처음 상임위원장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한국문화에서 여성이 리더십으로 버티기 어려우니 거절하라는 조언도 들었습니다. 그

실제로 보통일이 아니에요. 스스로 신기할

때 부르심의 확신이 생기더군요. 여성이라서

정도죠. 어떤 분은 저에게 약간 남성적인 성

못한다는 건 하나님이 여성을 만들 때 실수

향이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그렇진 않아요.

하신 거라고 들렸어요. 저의 능력이 부족하 다면 받아들이겠으나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 다는 것을 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죠.

* 남자였다면 오히려 못 버텼을지도 모르겠 습니다. (웃음)

제가 여성이라서 갖는 장점은, 사람들의 경 계심이 없다는 점이에요. 제 앞에서 속의 말

제가 남자가 될 순 없으니 답변 드리기가 어

을 모두 하고, 힘들면 도와주겠다는 말도 선

렵네요. (웃음) 다만 남자였다면 지금보다 빨

뜻 하시죠. 오히려 참여적인 마음이 생기는

리 리더십 그룹에 섰겠죠. 저에겐 보수적인

것 같아요. 경계심 없이 명제 중심으로 일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요. 예전에

니 장점이죠. 그리고 남성 리더에게는 하지

는 ‘나는 왜 계속 틀리지?’라고 생각했어요.

않았을 불평불만을 제게는 모두 쏟아놓으니

20대 후반부터 40대 남성들과 일하다 보니

서로 투명하게 대화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간이

만 사실 정말 힘들어요. 제가 성인(聖人)은

소리 이음


42+ 43

소리가 만난 사람

아니니까 스트레스도 가끔 풀

에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죠.

고요. (웃음) 물론 시댁에서 사는 건 힘들었어요. 문화충격이 었죠. 불필요한 오해도 생기고요. 그런데 남도 섬 * 가족 이야기를 해주세요. 결

기는데 친척을 섬기지 못하랴, 모르는 사람에게 복

혼하고 아내와 엄마로서 살면

음도 전하는데 시부모님에게 일에 대해 설명하지

서 조직에서 활동하는 것이 쉽

못하겠나,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남편

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육아나 가사분담과 같은 실

이 중간에서 절대적으로 제 편이 되어주었죠. 아주

제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서로 배려하고 계신가요?

온유한 사람이에요. 저와는 기질적으로 다르지만 저를 잘 보필해주었어요. 올해 저희 아이가 중학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제

교에 입학하고 남편도 2013년에 교회 개척을 하게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제 시간은 출퇴근 시

되었어요. 모든 상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

간뿐이었죠. 그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지금은 여

서 새로운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유가 생겨 어느 정도 극복했고요. 만약 싱글이었 다면 지금보다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었을지는 몰

하나님은 제가 모든 상황에 여유 있게 대처할 수

라도, 결혼해서 하나님이 가정사를 절묘하게 이루

있도록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만들어 놓으셨어요.

어 가시는 경험을 했어요. 결혼 이전에는, 결혼한

선교한국에서 10년 일하고 결혼했는데, 그때는 사

다면 가사에 전념하며 교회 일에 헌신하고 싱글로

무실에 매이지 않아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던 때

살아간다면 싱글 여성들의 건강한 모임을 만들어

였죠. 그래서 아이가 아프다거나 사무실에 늦게 오

가겠다고 기도했죠. 결혼 자체보다는 결혼 여부에

더라도 일이 잘 돌아갔어요. 10년 동안 전문적인

따라 삶의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했어요.

정보와 선교계의 인맥을 자산으로 확보했고요. 일 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완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개

결혼 이후에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공

인적으로도 준비되었고 대가족이라는 환경적인

부했습니다. 결혼하고 1년 안식년 기간에 아이를

도움도 받아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어요.

가졌고요. 시부모님과 시할머니, 그리고 저희 아 이까지 4대가 함께 생활했어요. 게다가 저는 종갓 집 맏며느리였어요. 명절 때면 삼사십 명의 손님을

* 학사님의 장기적인 삶의 전망은 어떤가요?

치르고, 한 달에 두세 번씩 친척들이 할머니를 뵈 러 방문했어요. 녹록하지 않았죠. 그런데 출산 후

옛날에는 멀리 보며 살았는데요, 지금은 하루하

선교한국에서 저를 필요로 했고, 신학을 하는 남편

루를 소중하게 살아요. (웃음) 2016년이 선교한국

이 제가 일을 하는 걸 좋아했어요. 시부모님도 어

에 중요한 때입니다. 2014년에 선교동원이 나름 최

느 정도 개방적이시라 제가 일 하는 걸 반대하시지

저점을 찍었으니 어느 정도 다시 올라서는 기반을

않았어요. 대가족인 덕분에 아이가 정서적으로도

마련한다면 좋겠어요. 그렇지 못하고 계속 저점을

안정적으로 자랐어요. 가족의 탄탄한 울타리 덕분

찍는다면 존재 자체를 고민하게 되겠죠. 패러다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을 전환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사역도 깊어질 거라고

* 마지막으로 IVF 학사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전해주

봅니다. 선교사나 선교적 맥락에 있던 사람이 하나님

시면 좋겠습니다.

께 돌이켰을 때 부흥의 물꼬가 트이죠. 30년간 한국교 회와 선교단체가 선교운동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면,

90년대에 선교현장에 나간 학사님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선교한국이 이런 물꼬를 터주는 역할로 전환

또 선교운동 영역 곳곳에 IVF 출신이 많아요. 이런 사

하면 좋겠습니다. 선교운동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촉

실에 우리가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발점이 되도록, 하나님이 반전을 이뤄주시도록 기도

와 함께 책임감도 가져야겠죠.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하고 있어요. 근거 없는 낙관론은 아니에요. 대안 없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역할을 다한다면 좋겠고요.

는 비관이 더 힘드니, 대안을 만드는 낙관이랄까요?

본인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소망의 물꼬가 되면 좋겠

(웃음) 어떤 과제가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졌는지 예

습니다. 학부 때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심겨줬지만 졸

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업 후 많이 잊어버리고 사는 게 현실이에요. 학생들은 수련회에서 열심히 내공을 쌓으면 좋겠어요. 수련회

얼마 전에 학생 때 했던 PBS 노트를 들춰 봤는데

처럼 집중적으로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는 인생에 있

요, 하나님이 그때 저희가 기도했던 것을 들어주셨더

어서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특권입니다. 지나보면 알

라고요. 기도했던 대로 살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

겠지만 다시 오지 않는 기회죠. 학사들은 학생 시기에

죠. 그래서 기도는 함부로 하면 안 돼요. (웃음) 어려

배운 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적용하려 애쓰며 하루

움도 많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길게 바라보며 일하고

하루를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싶어요. 2010년에 상임위원장을 맡으면서는 키워드 를 “Facilitate”의 ‘F’로 잡았어요. 네트워크를 넘어 시 너지가 날 수 있도록 제가 연결하고 돕는 역할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죠. 올해 다시 상임위원장을 맡으며 제 가 왜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기도하며 고민했습 니다. 그러다가 <플랫폼의 혁명>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이거다 싶었죠. 중국의 샤오미가 어떻게 대두됐 는지, 미국의 애플이 어떤 개념으로 세계를 장악하는 지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선교한국도 하나의 플랫폼 이죠. 누구나 와서 놀 수 있고, 기여한 만큼 만족감을

* 학사님의 하나님의 뜻을 향한 진지하고 열정

누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

그래서 이번 임기 동안의 키워드는 “Platform”의 ‘P’로

다. 선교영역의 새로운 동력을 위하여 분투하는

잡았어요. 하지만 이런 일이 임기 내에 승부를 보는

학사님의 비전과 운동을 응원하겠습니다.

일은 아니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즐겁게 관계 를 만들고 일하고 싶어요.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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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이음

나음누리, 새 인물을 소개합니다

1. 우선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백성대 ◆ 숭실대91 올해부터 나음누리 대표간사로 새로운 사 역을 시작한 백성대 간사와 서면 인터뷰를 나누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숭실대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17년째 사역 하고 있는 백성대 간사라고 합니다. 경기남 지방회 대표간사로 일하다가 올해부터 나음누리 대표간사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소리]를 통해 전 국의 학사님들께 첫 인사 드립니다.

2. 그간 IVF에서 어떤 사역을 해오셨나요? 1998년에 숭실대와 중앙대 활동학사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99년에 남 서울 지방회 소속 간사로 임명된 후 숭실대와 중앙대 전임으로 총 3년을 일했습니다. 두 지부를 섬기면서 야근(?)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했지요. 2001년부터는 중앙회 총무실로 옮겨 인사/기획 담당간사로 2년을 섬겼 습니다. 그 당시 중앙회관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중앙회관 관리 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 덕에 엘리베이터관리 자격증과 소방관리 자격증 까지 취득했지요. 그때 이미 노후대비를 다 해둔 셈이 되었습니다. 간사 로의 부르심이 끝나면 건물관리인으로 취직할 수 있는 자격을 다 갖추어 놓았으니까요.(웃음)


나음누리, 새 인물을 소개합니다

중앙회에서의 2년 사역을 마쳐 갈 무렵 향후

사실 수원개척 지방회로 있을 때는 사무실도, 사

캠퍼스사역에 대한 자신감이 더 이상 생기지 않

무간사도 없었던 터라 저희 집이 사무실이 되었

아 사임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고, 제가 대표간사, 사무간사의 역할을 모두 감당

IVF 총무이셨던 신웅섭 간사님이 수원지방 개척

해야 했습니다. 지방회 물품을 저희 집에 보관해

사역을 제안하셨고, 함께 기도하고 대화하면서

야 했고, IVP 신간 서적도 집으로 배송되었습니

수원개척 지방회로 자리를 옮겨 2003년부터 아

다. 수련회 때가 되면 수련회 필요 물품들을 집에

주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수원으로 옮길 때 저

서 꺼내와 작은 티코에 가득히 실어 나르고 수련

희 어머니께서 “네가 뭘 잘못했기에 서울에서 수

회가 끝나면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놓는 일을 반

원으로 좌천된 거니?”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복했습니다.

기억이 납니다.(웃음) 아주대 사역을 시작한 지

그때 저희 집이 1층인 것이 천만다행이었지

한학기가 지났을 때 당시 대표간사님의 갑작스

요.(웃음) IVP 책들도 더는 집에 둘 곳이 없어

런 사임으로 제가 대표간사와 아주대 담당 사역

베란다에 놓아두었는데, 어느 날 책표지들이 다

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참 어려운 시

색이 바래버린 것을 보고 무척이나 당황했던 기

간들이었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가장 많이 경험

억이 납니다. 당시 안정적으로 간사모임을 할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수 있는 장소도 없었는데, 경희대 뒤에 있던 명 선교회 목사님의 배려로 한 공간을 얻어 매주

2006년부터 3년 동안 대전침례신학대학원에서

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과 성

신학연수를 마친 후 2009년에 복귀했고, 지난해

도들 간의 의사소통 부족으로 모임하다가 다른

까지 경기남 지방회 대표간사와 재(在)수원학사

곳으로 옮겨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간사

회 담당 간사로 6년간 섬겼습니다.

모임 하다가 밥 먹으러 나갈 때면 ‘티코’에 다 타 지 못해서 형제 간사 둘은 늘 걸어가야 했지요.

3. 경기남지방회에서 가졌던 특별한 추억과 고마운 분들을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시에는 서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던 시간 이, 지방회가 창립된 후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 았답니다. 지방회를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간사

경기남 지방회에서 사역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

회와 학생들이 모여 마음을 다해 기도했던 시간,

는 것은, 2005년 9월 중앙회에 속해있던 수원개

어려운 아주대 상황 때문에 모임 때마다 한 시간

척 지방회가 독립하여 경기남 지방회로 창립된

씩 일찍 모여 학생들과 기도했던 시간, 간사회의

일이었습니다. 이사장님과 이사회를 구성하고,

동역자들과 울고 웃었던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

여러 번의 창립 준비회의를 거치고 학사회와 지

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후배 간사들

방회 내에서 창립에 대한 마음을 모아 아주대에

과 학생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서 창립총회와 감사 예배를 드렸는데 얼마나 감

경기남 지방회 사역에 있어 잊지 못할 특권이었

격스럽고 기쁨이 넘쳤는지 모릅니다.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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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이음

아주대 사역 시작할 때부터 경기남 사역

광범위하고 전문화된 영역들이라서, 어떤

마무리 할 때까지 너무나도 신실하게 섬겨

통일된 관점과 일정한 커리큘럼을 토대로

주셨던 김용주 이사님, 남은경 사모님, 지

사역할 수가 없습니다. 각각의 현장에 있

방회 창립하면서 기쁨으로 초대 이사장으

는 학사들이 IVF 운동의 비전과 정신을 저

로 섬겨주신 김상훈 목사님, 같은 교회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의 방향과 목적을

섬기며 IVFer라는 이유로 저와 지방회를

세우고, 전략까지 고민해야만 가능한 사역

위해 헌신해 주었던 김재선 학사, 송재현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학사

현 이사장님, 정성구 이사님, 그리고 오랜

사역은 상당히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시간 함께 해 준 박정호, 박한, 권오윤, 문

있고, 캠퍼스 시절보다 더 기꺼이 손해를

종하, 박지연 이사님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감수하고자 하는 학사들의 창의성과 자발

싶습니다. 지방회를 많이 사랑했기에 재정

성이 최대한 발휘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

과 기도로 헌신했던 많은 학사님들과 숭실

는 사역이라고 봅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에

대 선후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

대한 열정과 자신이 서 있는 현장에서 하

다. 무엇보다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다

나님나라 운동의 모델을 만들어 내려는 선

받아내면서도 저를 신뢰하고 동역해 주었

배 학사들의 자발성으로 한국 IVF 학사운

던 후배간사들, 정말 잊지 못할 소중한 사

동이 시작된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었나

람들입니다.

생각합니다.

저는 올해부터 학사 사역을 본격적으로

4. 캠퍼스 사역과 학사 사역의 차이는

시작하게 되는데, 그동안 조금 고민하고

무엇일까요? 이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

기도는 했지만 솔직히 실제적인 준비를 많

고 계신가요?

이 하진 못했습니다. 지난 학기 경기남 지 방회 말년이어서 캠퍼스 사역에서 나음누

캠퍼스 사역은 캠퍼스를 벗어난 사역 형

리 사역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는데, 말

태가 있긴 하지만 주로 캠퍼스라는 제한된

년에 완전 꼬여서(?) 지방회에서 더 많은

공간에서 캠퍼스와 캠퍼스 구성원들을 타

사역을 하느라 사실 모드 전환이 되지 못

깃으로 이루어지는 사역입니다. 늘 변화를

한 채 학사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참 송구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예측이 가능한 영역

하네요. 그래도 지난 6년간 2-30대 젊은 학

이 많기 때문에 각 캠퍼스 상황에 맞는 일

사들과 계속 학사모임을 하면서 교제해 왔

정한 커리큘럼과 안정된 공동체를 기반으

던 경험이 앞으로 학사 사역에 도움이 되

로 학생들과 간사들이 자발성을 가지고 수

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미 발행된 [소

월하게 사역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학사 사

리]도 다시 꼼꼼히 읽고 있고요. 앞으로 나

역은 그 사역의 장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음누리 학사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많은 대


나음누리, 새 인물을 소개합니다

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상황을 알고, 관계가 쌓

만드는 한국 의료계의 잘못된 구조를 작게나마

여야 동역이 가능하겠지요.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음누리가 좋은 의사, 간호사들을 이 사

5. 앞으로 나음누리가 IVF 내에서 그리고

회에 배출하기를 소망합니다. 내외국의 가난

넓게는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

한 자들도 고귀한 생명으로 대우 받고 치료 받

길 기대하시나요?

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의료 계의 잘못된 구조와 여러 현안에 대해 목소리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당장 하고 있는 생각

를 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그룹이 되면 좋겠습

은, 나음누리가 IVF 내에서 학사운동의 좋은 모

니다. 그리고 그 모델로 하나님나라 가치관을

델이 되면 좋겠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세상의

기초로 세워진 공동체 병원들을 곳곳에 세워

가치관을 거슬러 십자가의 길을 몸소 실천하여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 나

공동체에 도전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또한 재

음누리 학사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하나님

정적으로도 IVF 운동에 든든한 후원자 그룹이

이 의료계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발견하고,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어떻게 동참하기 원하시는지 함께 고민 하고 기도하고 행동하고 싶습니다.

3년 전에 저희 장인어른께서 암으로 서울에 있는 모병원에 입원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레 지던트 선생님이 아버님을 돌보았는데, 한번

6. 끝으로 학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나

은 저희 장모님의 어떤 요구에 그분이 엄청 짜

눠주시기 바랍니다.

증을 내더군요. 제가 그분을 따로 밖으로 데리 고 나가서 먼저 제 소개를 하고 왜 그러는 건지

정말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나라 가치관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담당한

을 붙들고 기꺼이 고난 받고 손해를 감수하는

환자가 너무도 많아서 자기가 홀로 감당하기에

학사님들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게다가 캠퍼

는 너무 버겁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다 연구까

스운동을 위해 후원과 기도를 아끼지 않는 학

지 해야 해서 이틀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하면서

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고통을 토로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본인도 크리

막막해 보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스천이라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죄책감은 들

분의 일하심으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나

지만, 의사로서의 마인드보다는 그저 자신이

라를 날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흔들리지

지위 상승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 지금 홀로 외로이 싸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거라 했습니다. 그분의 말

우고 계신가요? 여러분 가까이에 같은 뜻을 품

을 들으면서, 그분의 성품과 가치관의 문제뿐

은 동지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연대하시길 간

만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환자로 볼 수 없도록

곡히 부탁드립니다.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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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사회사역 네트워크 구축을 준비하며 이시종 ◆ 서강대88 IVF학사사역부 총무

201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로 마음의 끈을 더 조이게 됩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 침체도 이유가 되지만, 더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은 한국 교회의 어두운 전망 때문입니다. 통계청은 10년마다 인구와 관련한 광범위 한 기초조사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종교인구 현황 조사입니다. 그 조사가 올해 다시 시행됩니다. 이미 1995년에서 2005년 동안 3대 종교 중 유일하게 감소세였던 개신교는, 이번 조사에서 더 심각한 성적표를 받을 것이 확실시 됩니다. 한국개신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신뢰를 거의 잃었습니다. 그것은 우 리의 종교성이 약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우리의 신앙이 삶에 건강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는 하나님나라 복음에 큰 걸 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IVF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리의 소명은 무엇일까요? 말 씀을 배웠고,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공유했고, 일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 정하는 삶을 살도록 도전받았던 IVF 학사들은 한국교회라는 더 큰 공동체 안 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고 해 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학사회사역 네트워크 구축을 준비하며

지난 십여 년을 돌아보면, 2006년 IVF는 50주년을 맞아 비전을 새롭게 하는 작업 을 진행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50년간 쌓아온 인적 자산과 사역의 역량을 보다 적극 적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나누어야 할 때라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그 판단의 결과 로 여러 연구소들이 발족하였고, 특별히 학사회에서는 학사들의 재정과 재능 기부를 발판으로 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가능성을 보였던 리더십 센터 모델을 따라 GLC(GLeadership Center)를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한국사회에는 리더십과 멘토링, 코칭과 같은 좋은 리더를 만들고자 기획된 리더십 강좌가 큰 호응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 나 크리스천 마인드가 중심이 된 리더십 강좌가 많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인들의 필요 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기독교 세계관 훈련과 성경연구 경험이 많은 IVF 간사진 과 리더십 경험이 많은 학사들이 협력하여 리더십 훈련 과정을 만든다면 많은 도움 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여러 분야 중 저희가 가장 잘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연구와 영성훈련, 그리고 리 더십 훈련 파트였습니다. 특별히 이춘태 간사의 ‘기도강의’와 이재천 간사의 ‘성경의 맥과 얼개’, 그리고 유재필 학사의 ‘리더십 강좌’가 지속적인 호응을 얻었고 유익을 주 었습니다.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노하우가 축적된 강좌를 기획하여 진행 했는데, 그 결과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강의실 부족과 강좌의 다양성 부족이 겹치면서 점차로 동력이 약화되어 갔고, 서울권을 제 외한 지역에서 강좌에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관계로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학사들이 균등하게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큰 제약이 있다는 문제가 계속 부각되었 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서 우리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적극적으로 학사회 사역을 다시 검토하면서, 리더십 센터 모델 이 갖고 있는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에 있는 학사들의 삶을 지원할 수 있는 보다 다양한 내용과 소통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래 서 우리는 학사들의 다양한 이슈들을 함께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교육 플랫폼으 로 GLC를 확대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내용에 있어서, 기초 영성에 한정된 강의를 넘어 일상생활의 다양한 이슈들을 다룰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종교성은 극대화시켜서 예배당 중심의 기독교를 만들었지만, 현실 속에서 영향을 발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드는 데는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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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녀교육과 재정관리, 그리고 정치참여와 시민사회운동과 직장생활 과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발휘해야 하는지, 원론을 넘어선 실재적 고민과 다양한 대응들이 논 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맞물린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학 사들의 삶의 이야기가 가장 좋은 소재가 될 것입니다. 육아, 자녀교육, 부부생활, 재무관리, 직장생 활, 시민사회운동 참여와 같은 학사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소통되도록 하고자 합니다.

소통의 방식으로는, 강좌를 기본으로 하되 팟캐스트와 IVF미디어를 통한 영상물 제작, 배포 등 의 방식으로 온라인 매체를 적극 활용하여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합니다. 또한 중앙회 중 심의 강좌 진행의 한계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주요 도시마다 IVF 플랫폼을 만들어서, 각각의 플랫 폼이 강좌를 기획하고 강사자원을 공유하여 지방에서도 다양한 강좌가 개설될 수 있도록 할 계 획입니다. 부산GLC, 대구GLC, 광주GLC, 경남GLC 등과 같은 방식으로 각 지역에 독자적인 플 랫폼이 만들어지면, 수도권에서만 수강하던 강좌를 지방에서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또 다양한 지역별 이슈와 그에 따른 논의들이 강좌나 스터디, 혹은 세미나, 북토크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가능한 많은 학사님들이 자기 경험과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 되리라 기대합니다.

중앙회를 플랫폼으로 하는 강좌는 기본적으로 직장생활, 가정생활, 시민사회운동, 진로구직프 로그램, 주거공동체 운동, 기독인문학 강좌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지금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 다 기획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분야별로 기획팀이 준비하고 있고, 직장생활과 기독인문학 강좌는 3 월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여기에 지속적인 호응이 있었던 ‘성경의 맥과 얼개’와 ‘에니어그램’과 같 은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집니다.

저희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학사들이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자신의 고 민을 나누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과 협력하여 대안을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IVF 학사회 범위를 넘어서 일상의 삶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에 대해 한국교 회 평신도들에게 흘러가는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과정을 진행하면서 가능한 많은 학사들에게 유익이 돌아가게 하며, 가능한 많은 학사들이 강 사이자 청중으로, 또 후원자로, 문제제기 하며 대화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동역자로 참여했으 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이 세상으로부터 효용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를 받고 있는 이 때에, IVF 학사들이 개인의 삶에 연연하는데서 벗어나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주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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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 행복한 공동체 : 즐거운 시민운동을 꿈꾸다

최삼열 ◆ 고려대92 한국교회탐구센터 대표간사 영원히 철들기를 거부하며 ‘지랄총량’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 2 회 완주, 아블로3 정복자 레벨을 180까지 찍었다. 올해는 사회인 야구를 시작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21세기는 시민사회의 시대입니다. 이 말은 앞으로

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시민사회운동/단체

국가가 필요 없다거나 시장의 힘이 약화될 것이라는

를 통해서입니다. 이미 많은 학사들이 공적 영역에 관

의미가 아닙니다. 국가와 시장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심을 갖고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과시하고 있습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폭주하고 있

고 들었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우리가 배운 신앙훈련

는 국가와 시장을 바르게 견인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의 성격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

역할, 조직된 시민사회의 힘이 꼭 필요한 시대라는 의

니다. 단순한 관심과 참여를 넘어 시민사회운동단체

미입니다. 시민사회는 또 다른 섹터이지만 자신만의

의 직원/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학사들도 제법 됩니

이익으로 다른 섹터(국가, 시장)와 경쟁하지 않습니

다. 또 IVF 학사운동을 발판으로 삼아 시작한 기독시

다. 국가와 시장의 본연의 목표, 즉 공동선(common

민단체도 꽤 됩니다.

good) 혹은 공익(public good)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사회 내 ‘기독시민사회운동’ 그룹은 바로 이런 문 제의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시민으로서 공적 영역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부르심은 성도로서의 삶

에 참여하는 우리의 부르심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이미

뿐만 아니라 공적 시민으로서의 삶에도 적용되어야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사들의 존재, 이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이 부분에서 실패를 하고

두 가지를 매개로 하여 시작하였습니다. 학사운동의

있기 때문에 사적인 이익집단처럼 비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개편을 논의하는 시점에서 이 그룹을 시작

IVF학사들이 가정, 직장, 교회를 넘어 사회와 공동체

하기로 하고, 2014년 10월에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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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 행복한 공동체

재 이 그룹의 기획준비위원은 저를 포함해 IVF 중앙

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각자가 품고 있는

지원부의 이철희 IVF 행정총무(경희대93), IVF 사회

공적 이슈에 대한 감각들을 어떻게 조직화된 시민 활

부의 안성영 간사(인하대94), 한반도평화연구원의

동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소개할 계획입니다. 영역별

손인배 팀장(명지대99), 기윤실의 조제호 사무처장

로 어떤 시민단체들이 있는지, 어떤 단체들이 건강

(아신대94), 그린피스의 최효미 팀장(이화여대99),

한 단체인지, 후원자/회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것

이렇게 6명입니다. 간사 3명에 학사 3명이며 시민사

도 얘기해 보면 좋겠지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

회운동을 전공했거나 오래 참여하고 있는 분들로 구

를 대상으로 한 강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

성되어 있습니다.

도들의 대부분의 자원(돈, 시간)을 이전 받아 다시 사 회로 재분배하는 역할만 잘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

평균 3주에 한 번씩 모여 논의를 했고, 이 글을 쓰고

을 텐데요.

있는 1월 중순 현재 4차 모임까지 진행했습니다. 목표 와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는

세 번째는 시민사회운동입니다. 네트워킹과 시민교

어떤 것이 있을지, 학사들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어떤

육을 통해 오리엔테이션과 참여가 충분히 이루어졌

필요가 있는지, 우리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 있는 기

다면, 이제는 주요 기독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것도 가

여를 해야 하는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

능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주요 이슈에 대한 연대 운동

인지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아직도 이 논의는 계속

도 이때쯤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학사들의 공적 관

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학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

심사에 따라 이슈별로 역동적 관계를 맺는 것을 상상

문조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을 시작하면서

합니다. 기존 단체들이 다루지 못한 이슈가 있다면 학

내세운 방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사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운동, 새로운 단체를 창립하 는 것도 왜 안 되겠습니까? 만약 그런 움직임이 자발

첫 번째는 네트워킹입니다. 말씀드렸듯이 IVF 출신 시민사회단체 운동가/활동가/스텝들이 이미 존재하

적으로 일어난다면 준비단계에서부터 지원과 협력 이 가능하겠지요.

고 있습니다. 비슷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서 로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는데 이들끼리의 협력, 연대

이 운동‘만’이 중요하다거나 이 운동이 ‘제일’ 중요하

만 잘 이루어져도 상당한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합

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입은 근질근질합

니다. 실제로 학사회의 도움을 받아 파악해보니, 전국

니다만). 하지만 현재 이 운동이 ‘매우’ 중요하다는 주

적으로 140명이 넘는 학사들이 활동가로 살아가는 것

장은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가정이 중요하지

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내 주요 기독교시민사회단

만 가족주의는 안 됩니다. 일과 직장이 중요하지만 경

체들의 현황도 파악할 예정입니다. 이 단체들을 교회

쟁과 야망의 성공주의는 거부합니다. 교회는 중요하

에 잘 소개하고 연결해서 서로 협력지원이 가능하게

지만 집단주의와 샤머니즘적 종교심은 배격해야 합

끔 노력하려고 합니다. 기독활동가 컨퍼런스, 기독시

니다. 시민으로서의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공

민사회단체 대회라는 아이디어도 나왔습니다.

적 영역에서도 적용하길 원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공동선입니다. 행복하고 정의로운 사회 공동체를 만

두 번째는 기독시민교육입니다. 사실 드러내 놓고 참여하지 못해서 그렇지 대부분의 학사들도 여러 공

들기 위한 선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이 일에, 많은 학 사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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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생’을 향한 직장멘토링 이동훤 ◆ 건국대02 5년차 직장인으로, ‘인생은 복리’라는 신념 을 지닌 채 매일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 니다. 졸업 이후 사회에서 홀로서기가 결 코 쉽지 않음을 느끼면서 다른 학사들의 삶 에 관심을 갖던 중, ‘직장멘토링’에 참여하 게 되었습니다.

‘직장멘토링(이하 직멘)’은 CAR2012(전국학사수련회)에서 한병선(성신여대84), 이남혁(홍익 대87), 이상엽(중앙대90), 세 학사가 주도하여 직장인 학사운동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시작되 었습니다. 직멘이 추구하는 바는 직장 내 사역이라는 거창한 플랜이 아니라, 일하는 그리스도 인으로서의 가치를 재생산해내는 직장인 또는 직업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 준비모임 참여를 권유받았을 때, 멘토링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습니다. 제 신 앙이 그럴 만큼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모임을 하면 할수록, 제가 끝까지 거절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직멘에는 다른 곳에서 쉽게 꺼내지 못하는 현실적 이고 실질적인 직장인의 삶을 나누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생 활 또는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한 어떤 방법을 알려주는 것보다 일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공유하는 데 직멘은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2013년 가을, 직멘 1기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2기와 3기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각 모임은 기수별 반장을 중심으로 작지만 단단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2015년 봄과 가을에 각각 4기, 5기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고, 연말에는 전체 기수를 아우르는 장을 마련할 계획입 니다. 이와 동시에 올해 3월 21일에는 ‘직멘OPEN프로젝트’의 일환인 ‘직장인대회’가 열립니다. 이 대회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깨닫고 지키기 위해 더 많은 학사들이 서로의 동역자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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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생’을 향한 직장멘토링

직멘을 거쳐 간다 한들 직장생활에는 큰 변

했었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잠시 중

화가 없습니다. 더 좋아지길 원하나 더 안 좋

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꾸준하

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멘을 거쳐 간

게 진행되는 직멘을 보면서 함께하는 학사운

학사들의 내면에는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이

동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든 세상

우리가 기대하는 바입니다. 여전히 많은 학

속, 직장에서의 삶을 다른 학사들에게 나누는

사들이 변화를 필요로 하므로 이 활동은 결

일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코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학사운동은 몇 몇 학사들에 의해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

3월 21일 토요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

다. 실제로 직멘은 더 많은 역할을 맡고 있는

까지 소박하게나마 ‘직장인대회’가 열립니다.

한병선, 이남혁, 이상엽, 오한웅(서울대99)

직장에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여러분이 절대

학사와 작지만 귀한 역할을 맡고 있는 수많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입

은 학사들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됩니다. 오히

니다. 그동안 IVF에서 고민했던 것들을 직장

려 우리의 활동에 의해 자극받은 수많은 학사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실천해 나가야 하

들이 자발적으로 직장 내 학사운동을 펼치는

는지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제

것이 직멘의 지향점이고, 그때까지 이 운동

대로 자리매김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 직멘의 의지입니다.

‘직장인대회’는 가장 먼저 자신이 직장생활 속에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고민들을 말

직장에서의 삶은 외롭고 힘들기 그지없습니

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미생>에 나온 다

다. 하물며 IVF에서 배웠던 대로 직장 내 생활

양한 고민과 문제들을 풀어내고 그것에 대한

을 해낸다는 것은 목표가 되기는 쉬워도 현실

해법들을 같이 찾아가다 보면, 나약하기 그지

이 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선임은 술을 강

없는 한 명의 미생에 그치지 않고 ‘완생’으로

요하고, 동기는 자기 살 길이 바쁘거나 신세

나아가는 길을 함께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

타령만 늘어놓고, 후임에게 잘해주기에는 내

다. 김근주 교수님의 말씀, 현장을 살아낸 선

앞가림할 시간도 부족합니다. 이 정도라면 조

배들의 도전, 그리고 다양한 토크쇼 등이 준

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착각 속에 빠져 세월

비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나의 고민을 말하

아 네월아 하며 시간만 보낼지도 모릅니다.

고 함께 모여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입

하지만 직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상황 속에

니다. ‘직장인대회’는 일회성 대회로 끝나지

서 우리는 길 잃은 어린양처럼 혼자 눈물을

않습니다. 후속 모임을 통해 직장 속의 하나

흘리지 않았습니까!

님나라 운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계속 도울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학사운동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

살아가는 직장인을 함께 만드는 것, 그것이

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2013년에 열정적

이번 ‘직장인대회’의 목표입니다. 많은 분들

으로 원투원 활동(일명 “이동훤이 간다”)을

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1. 1월 30~31일 이틀 동안 제6차 중앙학사운영위원회 를 진행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학사사역을 위해 힘쓰 고 있는 학사들과 간사들이 모여 교제하는 시간이었습 니다. 서로의 사역을 돌아보고 비전을 공유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2월 24일 신입학사환영예배 3월 3일 성경강해 3월 10일 성경강해 3월 17일 성경강해 3월 24일 성경강해 3월 31일 성경강해

2. GLC 운영위원회가 1월 14일(수), 기획모임은 1월 16 일(금)에 있었습니다.

● 북서울학사회

3. <GLC 뉴브랜드네이밍 공모전>을 마감했습니다. 응 모해주신 여러 간사 및 학사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1. 겨울수련회 1주차, 2주차 소망나누기에 참석해주신 그리고 치킨 후원으로 함께해주신 모든 학사님들께 감 사드립니다.

● 60-70학사회 1월 22일(목) 저녁 7시에 IVF중앙회관 좋은땅에서 신년 회 및 총회로 모였습니다. 1부 신년예배에는 김태정 목 사(서강대77)가 말씀을 나누었으며 2부에는 2014년의 사업계획을 확정하는 총회를 열었습니다.

2. 제1회 북서울 학사수련회에 약 60여명의 학사님들께 서 참석해주셨습니다. 강의와 말씀으로 도와주신 신호 기 목사님, 김혁수 대표간사님, 양여주 전(前)간사님, 안 현문 전(前)간사님, 이재근 학사님, 문선민 학사님, 그리 고 북서울 협동간사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3. 1월 27~28일에 강원도 일대로 신입학사를 위한 졸업 여행을 떠납니다. 2월 중에는 졸업앨범을 제작할 계획 입니다. 신입학사를 위한 격려와 후원에 동참해주실 학 사님들 많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 YGM(수도권지역 학사회) 1. 수도권 YGM이 매주 화요일 저녁 7시30분 IVF중앙 회관 좋은땅에서 있습니다. 수도권지역에 거주하고 있 는 학사님들은 언제나 YGM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 문의 : 유신석 간사 070-8275-6343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ivfygm

2. 2월 10일(화)에는 총회로 모입니다. 지난 2년간 학사 회장으로 수고한 송혜원 학사와 5기 운영위원이 임기를 마치고 새로운 학사회장과 운영위원이 인준됩니다. 3. 2월 24일(화)에는 신입학사환영예배가 열릴 예정입 니다. 서동성 학사(EDM 유학원 대표)의 메시지와 신입 학사들을 환영하고 축복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졸업 이 후 학사의 삶을 시작하는 신입학사들에게 YGM을 소 개해주세요. 4. 자세한 일정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2월 3일 성경강해-김혁수 간사(북서울지방회 대표간사) 2월 10일 총회

● 강원(춘천)학사회 1. 2월 7일(토) 오후 3시, 회관에서 정기총회가 열립니 다. 학사님들에게 도전이 되는 강의와(김복기, 메노나이 트 한국 선교사) 지난 1년간의 강원(춘천)IVF 사역과 살 림을 보고하고 식사와 교제의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2.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 은 아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춘천 엄마들모임 매달 첫주 화요일 오전 11시 30분 사공은혜(한림대95) 010-5367-9120 춘천학사모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 회관 김아주(한림대05) 010-6381-1635


·수원 매달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최경순(한림대94) 010-9536-0703 ·부천 매달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박은혜(한림대00) 010-9703-8815 ·평촌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6시 / 평촌성심병원 김태준(한림대99) 010-5136-5877

● 원주학사회 원주지역 학사모임 “카페인”을 소개합니다. 매월 둘째, 넷째 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양은진 010-6668-5487

● 강릉학사회 매월 서울, 원주, 강릉에서 학사회 정기모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릉IVF학사회 밴드에 매월 모임 일정과 장 소가 공지되고 있습니다. 밴드로 확인이 어려운 분들은 아래로 문의해 주세요. · 영동지역 학사모임 매월 둘째 주 월요일 저녁 7시 / 강릉IVF센터 이상걸(강릉학사회 회장) 010 9440 6224 · 재경 학사모임 IVF중앙회관 6층세미나실 이상석(삼척90) 010-3923-7273 김정기(강릉91) 010-2359-7951 · 원주지역 학사모임 강호석(관동85) 010-7346-7846 김남학(강릉90) 010-9053-5017

● 영남동부학사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 울산 주부학사모임 격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박경아 010-6572-2176

· 포항 주부학사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 경주 위덕삼성타운 최유정 010-3450-3172 · 포항 싱글학사모임 격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김정우 010-9287-7411

● 대구학사회 1. 대구 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 하 기 원하는 학사님께선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대구교대 IEF모임 매주 월요일 조현진 010-3536-9814 · 사회복지팀 모임 매주 목요일 김희연 010-6295-0179 · 가정피움팀 모임 매주 목요일 정희돈 010-9775-4209 · 평지 모임 매주 월요일 신응종 010-4513-1391 · 예사모 모임(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내모임(평지모임의 아내모임)) 매주 목요일 inG 수료자 모임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2. 중등 inG school (M-inG) 1기가 진행 중입니다. 아래 일정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 1월 9일~4월 10일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1시까지 2월 13~14일 1박 캠프(두려움극복(스킨스쿠버), 포항공대, 한동대 등등) 4월 17일 오전11시 수료식 장소 : 대구 아멘교회 교육관 및 수성구청 교육센터

3. 비전캠프(inG school Live up class) 64기가 열립니다. 비전을 발견하고 실제적인 인생설계를 함께합니다. 일정 : 2월 11일(수)~2월 12일(목)(1박2일 출퇴근) 장소 : 대구IVF센터 꿈땅 강사 :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4. inG School Build up Class 4기의 일정입니다. 일시 : 2월 16일(월) 오후6시 inG school 설명회 2월 25일(수) 오후6시 4기 선발캠프 3월 10일~6월 15일 매주 화요일 오후6~10시(12주간) 3월 31일(화)~4월 1일(수) 1박 캠프 (두려움극복(스킨스쿠버), 포스코 견학 등) 6월 13(토) 오후3시 수료식 계명대학교 대명동캠퍼스 시청각실 장소 : 대구IVF센터 꿈땅

5. 대구지방회 온라인 소식지로 학사님과 소통하려 합니 다. 스마트폰으로도 접속이 가능하오니 많은 관심과 방 문 부탁드립니다. dg.ivfnews.org 로 놀러오세요^^

● 부산학사회 부산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 참 여하기 원하는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고해주 세요. · TGIM(Thanks God It’s Monday) ( 1달에 2번 일상생활영성과 보냄 받은 의식을 고취하기 위 한 모임) 진주점 류재한 010-8529-8216 창원점 정수정 010-3620-9495 서면점 송민규 010-6774-5079 센텀점 최진욱 010-9677-8613 대구점(주부모임) 정수미 010-7538-7757 · E.M.포럼(복음주의목회자포럼)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해운대미래교회 문춘근 010-5504-5790 박순흠 010-8586-2535 · 마마클럽(주부학사모임) 매월 1회 임지은 010-4143-4936

● 나음누리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에 함 께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 고해주세요. ·서울지역 평촌한림대병원 모임 격주 수요일 6시 / 이레미즈외과 정성구 010-635-2491 삼성병원 모임 매주 수요일 / 삼성서울병원 이은경 010-8892-8076 아산병원 모임 격주 수요일 / 서동대 학사 집 민수정 010-8938-3417 대학로 모임 격주 금요일 / 정지영 학사 집 박현덕 010-8950-8903 서울대병원 모임 매월 둘째 주 금요일 / 서울대병원 장예림 010-8632-4597 ·강원지역 춘천·원주 모임 한 달에 한 번 / 원주 지역 학사 집 박인성 010-4148-0902 ·경기지역 (용인)수도통합병원 모임 매주 수요일 / 장소 미정 이은주 010-5075-0704 일동병원 모임 첫째 셋째 화요일 / 국군병원교회 허난설 010-3060-4046 ·영남지역 대구 모임 매주 금요일 / 배기헌 학사 집 최선미 010-6248-8708 부산 모임 매월 둘째 주 목요일 / 장소미정 최정빈 010-5165-9170 · 모임 문의 양미희 간사 010-4226-0396 인터넷카페 http://club.cyworld.com/ilgfwork


58 편집인의

메아리

새해를 맞아 세웠던 결심들을 차근히 이뤄가고 계신가 요? 계란 한판을 채운 올해도 역시나! 저는 경건의 시간 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을 중요 목표로 삼았습니다. 여 러 말씀을 통해 마음의 찔림(!)이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신앙인으로서의 내실이 중요하다고 여겨 영성의 근육 을 단련하고 싶어졌어요. 마침 학사님들의 경건생활을 엿보며 매일 성실하게 시간을 지키는 건 누구에게나 어 렵구나 싶기도 하고 제 생활방식에 적합한 영성훈련이 무엇인지 고민도 했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찾아 뵌 [소리]를 흡족하게 즐기셨 는지 궁금합니다. 1년간 함께 ‘소리지음’을 꾸려갈 필자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 작비로 사용됩니다.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들도 인사드렸는데요.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꼭지들

2014년 11~12월 후원자 명단

이 꾸려졌다고 자부합니다. ‘소리이음’에서는 학사사역

강상선(*2) 국효숙(*2) 권도균(*2) 김계숙(*2) 김선미 김재원(*2) 김 종기(*2) 김종수-구한나(*2) 남은경 명관선 민은혜(*2) 박애숙 박정현 (*2) 박창재(*2) 송인규(*2) 여운성 오규덕(*2) 오대원 윤창근(*2) 이 상엽(*2) 이원경 이은원 임정하(*2) 장은숙(*2) 전명환 전선애(*2) 정 민경(*2) 정성구 정재성(*2) 조창훈(*2) 차성원 최말숙(*2) 최수연(*2) 허성호(*2) 황일규 강릉(*2) 경기남 경남(*2) 경인(*2) 남서울(*2) 대구(*2) 대전(*2) 동 서울(*2) 북서울(*2) 부산(*2) 서서울(*2) 영남동부(*2) 원주(*2) 전북 (*2) 춘천(*2) 충남(*2)

부의 다양한 사역들과 학사운동의 면면을 만나실 수 있 습니다.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시며 유익한 재미를 맛 보시길 바랍니다. 아참, 학사사역부 블로그(http://ivfgcf.tistory.com/)에서 지난 [소리]를 만날 수 있답니다. 놓쳐서 아까웠던 이야 기나 다시 보고 싶은 글이 있다면 방문해주세요. 그리 고 독자들의 메아리를 기대하며 설문조사를 진행할 예 정이니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려요. (참여 한 분들을 위해 푸짐한 선물도 준비했답니다!) 앞으로도 [소리]와 소통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으니 애정과 관심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지속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015년의 [소리]는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며 아름다운 연 대를 만들어갈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한 해 동 안 학사님들과 함께 삶의 문제를 고민할 [소리]를 기대 해주세요. 학사님들이 올해 뜻한 바를 이뤄 가시고 삶의 기쁨을 만나길 응원하겠습니다. 또 다른 질문을 안고 4 월에 찾아뵐게요, 얍! 민혜경│편집인│sori@ivf.or.kr

제33권 제1호 통권218호 발행일 2015년 2월 1일 발행처 (사)한국기독학생회 학사사역부 주소 (121-838)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서교동) IVF 중앙회관 전화 070-8275-6313 팩스 02-333-7361 발행인 주상윤 편집장 이시종 편집인 민혜경 김경아 편집위원 국효숙 김고운 김기인 김지은 박정현 오한웅 이상엽 조창훈 한병선 편집디자인 문이선 김아롬새미 강은아 표지 이재웅 제작 김효영 인쇄 예원프린팅


더 이상 교회에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 교회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일상 교회 세상이 이웃 삼고 싶은 교회

교회에 대한 성경적 비전과 저자들의 실제적 경험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이 시대의 나그네 된 하나님 백성을 향한 부르심을 탐구하고 일상의 교회에서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원리들을 얻게 될 것이다.

팀 체스터, 스티브 티미스 지음 신대현 옮김|256면|13,000원

“일상 속에 스며들어 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사랑하라고 촉구하며 교회의 소명을 다시금 깨우쳐 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나아가 땅에 떨어져 버린 교회에 대한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_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

강자와 약자 강자의 불안과 약자의 절망 넘어에 존재하는 희망! 인간은 비난과 허세와 폭력에 강하게 반응을 하는 사람, 수치심과 강박감과 우울증에 약하게 반응을 하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폴 투르니에는 강자의 불안과 약자의 절망, 예지치 않은 승리와 실패,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인생 넘어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한다. 폴 투르니에 지음|정동섭 옮김 388면|15,000원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하나님이 생각났다. 모든 인간은 강하거나 완벽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품안에서만 온전해질 수 있다.”_독자 서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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