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23 I 2015. 12+01
체험, 삶의 현장Ⅱ
농사를 지으며 겸손을 배우고 은혜를 구하다┃그 자리에도 하나님은 함께하신다┃모험으로 살아 더욱 행복한 기독교사 부부
ⓒ 이재웅 | 상명대98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체험, 삶의 현장Ⅱ
04 09 13 18 22 26 27 30 32 34 37 41 48 50 55 58
소리정음
농사를 지으며 겸손을 배우고 은혜를 구하다»주호석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박철민 육아라는 영성 훈련장에서 만나는 우리»임하정 진짜 ‘운동’을 하는 전북학사회»오대원
소리지음 말씀산책»박창운 유금리 라이프»지은실 냉탕과 열탕사이»정영민,황선정 생활의 발견»홍정환 파란만장 직장생존기»김작가 문화톡톡»배운기 다다익책»정모세
소리이음 소리가 만난 사람»전형일,조숙진 비정규직청년선교회(NYM)를 소개합니다»우장한 함께 해요, 일삶축제!»윤한득,임지은,김미경,조준기
안테나 편집인의 글
소리정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체험, 삶의 현장Ⅱ "체험, 삶의 현장", 부산에 이어 이번에는 전북학사회를 방문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시 전주에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학사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특별하지 만 특별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삶에 위로와 격려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04 농사를 지으며 겸손을 배우고 은혜를 구하다_주호석 09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_박철민 13 육아라는 영성 훈련장에서 만나는 우리_임하정 18 진짜 ‘운동’을 하는 전북학사회_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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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Ⅱ
농사를 지으며 겸손을 배우고 은혜를 구하다 주호석 ◆ 전북대97 4년 전 결혼한 아내와 두 아들을 키우 며 살고 있다. 평일에는 농사를 짓고 주 말에는 교회 고등부 파트타임 사역을 하며 지낸다. 전북지역에 기독교 공동 체를 세워 함께 살면서 땅을 살리고 사 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
저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부모님이 농사를 열심히 많이 지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집 생계가 농사에 달려 있었기에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늘 쪼들려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자랐기에 농사를 지으려 하는 지금의 제 모습은 몇 년 전 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대반전입니다. 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그리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기도하는데, 이 전공을 살려 취업해서 살면 행복하겠냐고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곰 곰이 생각해보니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개의치 않고 다시 저 자신에 대해서, 비전에 대해서 기도하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이 저에게 ‘나를 좀 더 알아 가 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주셨던 것과 중학교에 입학하며 시작한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 며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 부모님은 불신자셨기에 신학공부에 대해서 한번 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를 계기로 신학교에 다시 가야 하는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학교 대신 저를 IVF 활동학사로, 간사로 섬길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겸손을 배우고 은혜를 구하다
간사 초기에 저는 지부 사역 이외에 대외적으로는 사회부간사로 활동했습니다. 견문도 좁고 신학적 인 견식도 좁았던 저에게 사회부 활동은 사회 곳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치는 믿음 의 선배들에 대해 듣고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 민들레공동체 같은 곳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소속 안기홍 국장님을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의 말 씀이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IVF는 참 좋은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전북지방 IVF를 졸업한 학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간사의 연차가 올라가면서 함께했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취업을 했습니다. 학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 눌 때면 대부분의 학사들이 어렵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 아 억울해 하면서도 버틸 수밖에 없고, 비전 없는 회사를 근근이 다니고, 버티다가 결국 사직을 하고, 함께 꿈꾸던 하나님나라는 학창시절의 좋은 추억으로만 남겨져 가는 듯 보이는 학사들의 모습... 혼자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힘이 없고 능력도 없어 보였습니다. 고민이 깊어졌 습니다. 아무리 공동체에 대해서 강조해도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뜬구름 잡는 격이겠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가볼만한 IVF 공동체가 거의 없어서 경남 산청의 민들레공동체에 학 생들을 인솔해서 몇 번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민들레공동체의 대표님(김인수 목사)과 사모님이 들려주신 민들레공동체 설립 이야기와 농업 체험 은 저에게 큰 도전과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지금처럼 살게끔 이끌었던 말씀이 몇 가 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 분들이 지금의 위치로 오게 된 경위입니다. 선교활동을 하며 지내다 보니 돈이 없어 점 점 도시 외곽으로 밀렸고 그래서 다시 허름한 집을 구해 이사하고, 그곳을 잘 고쳐 살다보면 다시 주인 이 내놓으라 하여 다시 쫓겨 나가는,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 분들이 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 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이스캠프를 세우고자 초기 멤버들이 모든 재정을 들여 지금의 자리에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유 업으로 주셨고 땅의 경계표를 움직이는 것은 중한 죄로 다스립니다. 그만큼 땅은 우리의 인생에 중요 한 버팀목입니다. 저희 친척 중에 서울에서 사업하다 IMF 때 파산하고 쫓기듯 고향으로 돌아오신 분 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을 기반으로 다시 농사를 지으며 그 풍파를 넘어 살고 있습니다. 그 래서 저도 땅이 참 중요한 자원임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는 도시에 대한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제자도의 모 습 중 하나는, 도시를 버리고 농촌으로 가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자, 그때 민들레공동체를 함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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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했던 학생들이 “꼭 도시를 떠나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셨다”라며 심란해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옳은 말씀이라고 제 마음 깊숙 이 새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안전과 위안을 위해 가인이 만든 것이 도시문화의 시작이 었고,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부름 받았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다 가 큰 화를 당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되었습니 다. 돌아보건대 저의 삶 곳곳에도 소비적인 도시문화의 습관이 배어 있고, 그것을 거부하며 살아 가는 것이 너무 불편하기에 많은 부분 타협하며 마음의 불편함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도 인 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이 아닌 도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움이 아닌 도시인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많은 재화와 에너지 그리고 인생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또 한 먹을거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농업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민들레공동체와 만나고 학사들의 삶을 보면서 공동체로 모여 사는 게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 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저는 전북지방이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곳이기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마음을 정하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과 만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간사 연차가 올라가면서 신학을 할 것인지 사임을 하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 것인지 고민하게 되 었습니다. 기도하고 또 주변 분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공동체로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맞겠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임 전부터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을지 알아보다가 마음이 맞는 학사들과 함께 양계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공동체가 자리 잡기까지 현실적으로 재정적인 어 려움이 참 많습니다. 그나마 양계가 다달이 수익을 낼 수 있기에 공동체 초창기에 해보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시작을 한 것입니다. 저희는 제 부모님의 과수원 한쪽 부분을 정리해서 소소하게 닭장을 지었습니다. 일단 폐사 직전의 닭 40수를 사서 길러보기로 했습니다. 달걀은 우리 식탁에 가장 빈번하게 올라오는 중요한 음식입니다. 그런데 이 달걀이 어떻게 생산되 는지 알고 나면 쉬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저처럼 마음이 여리고 비위가 약한 사람 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달걀은 A4 한 장 크기도 안 되는 케이지 속에서 평생 날 갯짓 한번 못해보고 살면서 제대로 잠도 못자고 알을 낳다가 폐기처분 당하는 닭들이 낳은 것들입 니다. 그들이 지내는 양계장의 환경이 밀식이기 때문에 열악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항생제를 많 이 투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러스 한방에 집단 폐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들이 먹는 사료는 대부분 GMO 옥수수로 만듭니다. 결국에는 우리의 식탁이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전한 달걀을 우리 가정에 공급하고자 양계를 시작한 것인데 간단하게 생각했 지만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어렵고 힘이 들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겸손을 배우고 은혜를 구하다
돈과 시간이 드는 것은 물론, 때로는 흙과 배설물로 범벅이 된 달걀을 수거하고 닦는 일도 힘들었 습니다. 게다가 달걀의 질은 닭의 먹이와 더 깊은 연관이 있는데 사료 대신 먹인 쌀 부산물과 풀에 대한 고민도 생겼습니다. 유기농으로 지은 논에서 생산된 쌀겨와 청취 및 그런 환경에서 자생하는 풀이 아니라 농약을 뿌려 관행으로 지은 논에서 나온 쌀 부산물들을 먹이로 먹인들 이것이 안전하 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바닥에 깔아준 지푸라기들에도 농약이 묻어있지 않을까... 쉽게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어렵고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1차 산업부터 제대로 되어야 그 기반 위에서 안전한 가축사육을 하고 그래야 우리의 식 탁도 안전해진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행달(행복한 달걀) 시즌II’의 후반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충북 보은의 예수마을공동체 (보나콤)에서 양계 세미나를 듣고 양계를 시작하신 교회 집사님의 도움으로 건강한 중병아리 60 수를 구입해서 새롭게 디자인한 닭장에서 집사님이 직접 만드신 보나콤식 자가 발효사료(그럼에 도 일반 배합사료가 약 30% 들어감)로 키우고 있습니다. 하루에 40~50개 정도 낳았는데 지금은 점점 산란율이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행달 시즌III’를 준비 중입니다. 양계를 하며 마음이 아팠던 순간도 있습니다. 시즌II를 시작하며 우리가 생산한 달걀을 주변의 가 족과 친척, 학사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가격문제로 외면당하거나 우리를 장사치처럼 여기기도 했 습니다. 비싸서 못 먹겠다, 더 싸게 하면 먹겠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왠지 모를 섭섭함이 몰려왔 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달걀에 비하면 비싼 게 틀림없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하고 있고 또 권할 때 가격 이면에 어떠한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 주시면 좋았을 것입 니다. 그리고 가격이 부담된다면 왜 이런 가격이 책정 되었는지 한번 물어봐 주셨으면 좋았을 텐 데 하는 서운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래봤자 한 달에 1만 원 정도의 차이인데, 과자 좀 덜 먹고 외식 한번 줄이면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이런 소비자의 양보와 희생을 통해 닭들의 복지가 좀 더 나아 지고 우리가 소비하는 양계 문화가 바뀔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간사를 사임하고 올해부터 부모님이 하시던 배 농사를 직접 짓고 있습니다. 양계를 하며 1차 산업 부터 바르게 되어야 한다 생각했기에 배를 유기농으로 짓고 싶었지만 주변에 유기농으로 과수를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네에서 친환경 저농약 인증을 받으신 분을 알게 되어 봄에는 저농약으로 배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워가며 농사를 지었고 7월 이후부터는 ‘자닮(자연을 닮은 사 람들)’을 통해 알게 된 천연자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유기농으로 가기 위해 무 농약으로 배 농사를 지어보려 합니다. 또 아시는 분의 배려로 500여 평의 밭을 경작했습니다. 봄엔 감자와 옥수수를 심어 여름에 수확했 고, 가을엔 들깨와 감자, 배추를 일부 심었습니다. 밭농사를 지어보니 제초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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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초제는 가장 독한 화학약품입니다. 농약들은 비가 몇 번 오고 시간이 지나면 씻겨 나가지만 제초제는 땅에 3년 이상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호르몬 성분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호르몬 성분 이 당장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으나 계속 집착되어 어느 순간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영 향을 미칠지 연구된 내용도 거의 없고 제초제 만드는 회사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초제 를 사용하면 당장 풀을 잡을 수 있어 편리하겠지만 이것은 땅을 망치는 것이며, 당장 나의 편안함 을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시간 제초제를 뿌리면 끝 날 일을 여름철 뜨거운 뙤약볕을 받으며 제초용 낫을 들고 며칠을 밭에 엎어져 풀을 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미련하게 그러지 말고 제초제를 뿌리라고 저를 걱정해주는 말씀을 해주셨지만 한편으 로 그런 말에 숨이 턱 막혔습니다. 아침에 낫을 들고 나설 때마다 그들의 말이 유혹처럼 제 머리에 메아리쳤습니다. 그래도 이 무식한 일에 동참해준 몇몇 후배들과 교회 큐티모임 멤버들이 있었습 니다. 그들 덕분에 끝까지 제초제 대신 낫을 들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풀을 매며 여러 가지를 배웠 습니다. 주님께 집중해 보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채 20분을 넘기지 못하고 딴 생각으 로 흘러버리는 내 자신의 옅은 영성을 알게 되었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왜 땀 흘 려 땅을 경작하게 하셨는가도 좀 알 것 같았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 여 뽑아도 뽑아도 계속 자라는 잡초에 비해 하나님 명령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쉽게 넘어지는 제가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가장 크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은혜입니다. 아무리 죽어라고 열심히 해도 인간이 작물을 키우는 데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적절한 기후와 환경이 받 쳐줘야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가뭄 때 가뭄을 일찍 타는 배나무에 물을 대기 위해 하 루 종일 노력했는데 겨우 세 그루 밖에는 물을 대주지 못했습니다. 그나마도 잘 살아나지 않았습 니다. 그런데 며칠 후 비가 내리니 모든 나무들이 다시 생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농사를 지으면 겸손을 배우고 은혜 를 구하게 됩니다. 또한 유통의 중요성도 느낍니다. 제초제나 농약을 안 쓰고 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공판장에 가면 보기 좋은 게 가장 좋은 가격을 받습니다. 우리 가족과 가족을 넘어 내 이웃들이 안전하게 먹고 건 강할 수 있도록 힘들고 수고스러워도 땀 흘리며 일했는데 공판장에서는 그런 가치가 다 뭉개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텐데, 그러려면 이런 가치를 알고 함께해줄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나라는 환경에서도 먹을거리에서도 이루어져야 합 니다. IVF 학사들이 이런 하나님나라 꿈을 함께 꾸면서, 가치를 알고 윤리적이며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다같이 성장하는 만남의 공간,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
다 같이 성장하는 만남의 공간,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 박철민 ◆ 전북대96
아내 조형순(전북대01)과 둘이 살며 위닝 스토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영어콘텐츠 를 활용하여 영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개 인 지도하는 것이 본업. 건강의 밸런스를 위해 시골 농사일도 조금씩 하고 있다. 건 강하게 성장하고 건전하게 소통하는 문화 는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는가가 요즘의 고민이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에 대해서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듭 니다. 수익성이 없는 카페가 지금까지 거의 4년간 유지가 되고 있는 자체가 그저 신기하 기만 합니다. 저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실천해 보기 위한 프로젝트로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카페는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스터디나 클럽모임에 참여하면서 건설적인 활동 을 하는 작은 커뮤니티입니다. 손님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지만 영어나 중국어가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라 영어나 중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양 한 언어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스터디를 통해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 주자는 취지입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저는 2007년에 사병생활로 시작하여 하사 그리고 장교까지, 6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취업준비도 못한 채 31살에 사회에 나오게 되 었습니다. 대학을 마칠 때까지 외국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고 그래서인지 영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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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열심히 공부해서 부족하긴 해도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진 전역 후 서울에 살고 싶어서 마지막 3년간은 군 교회가 아닌 서울에 있는 교회로 출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주시는 마음은 항상 그렇듯 제 욕심과는 달랐습니다. 부모님은 어느덧 연세가 많이 드셨고, 한 번도 함께 살지 않았던 12살 어린 여동생은 정신적인 방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가족 곁 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를 아끼는 여러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무 준비 없이, 직 장도 없이, 컴퓨터를 고치든 영어학원에서 일하든 내려가자고 맘먹고 고향에 왔습니다. 일자리를 위해 고민하며 여기저기 뒤져보았습니다. 하지만 지방에서 15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벌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죠.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주변의 도움으로 소개를 받아 영어학원과 교육관련 회사에서 각각 1년, 2년씩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앙과 가정의 우선순위 문제 그 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과로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모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3개월의 휴식 이 시작될 그 즈음, 잎이 반짝이는 커피나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제 건강이 좋지 않아서인지 반짝이 는 그 잎사귀들이 부럽고 예뻐 보였습니다. 나무에 물을 주고 한 시간 정도 가만히 바라보곤 했는데, 그 것이 3개월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그후에는 아내와 함께 18평 아파트에서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의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2년을 보냈습니다. 2년이 지나자 영어를 배우는 회원들이 늘었습니다. 60명까지 늘기도 했고, 시간이 갈수록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변화된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 사이 미분양 아파트를 구해 30평에서 살면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 아파트를 얻느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빚을 지게 되어 부담스러웠지만 회원이 꾸준하게 늘어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1년이 지나서부터는 자연스럽게 영어학원을 차릴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적, 경제 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니 교회에서 셀 리더로 섬기고 봉사도 많이 하고 저와 아내를 위한 시간도 자 주 가지곤 했습니다. 아파트를 살 때 얻었던 빚도 조금씩 원금 상환까지 할 수 있어서 부담이 줄기 시 작했습니다.
그동안 학원, 교육회사, 공부방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교육회사에서 일할 때는 영어 콘텐츠를 전국에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제가 전담하다시피해서 소개 브로슈 어만 있던 상태에서 새로 기획안을 만들고 운영방식도 만들어 전북지역에 있는 대학교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년간 운영하며 역량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영어의 벽을 넘어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습 니다. 그간 500여 명의 대학생들이 공부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지방 대학생들의 큰 문제가 영어가 아 니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일이든 꾸준히 하지 못한 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도와주면 좋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다같이 성장하는 만남의 공간,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영어가 느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된 것은, 우 리가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커피나무를 키우는 것 같 았습니다. 저는 물을 주고 분갈이를 하고 햇볕을 잘 받게 하는 일만 열심히 할 수 있었고 나무를 크게 하는 분은 주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조언과 동기부여를 해주고 자신이 효과적인 방 법을 찾아서 꾸준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을 더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적인 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1년간 준비한 학원사업을 뒤로하고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를 시작했습니다. 부족 한 투자금으로 스터디카페를 시작하다 보니, 위치는 비록 대학가 근처에 인접해 있더라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낡고 오래된 건물에 세를 내어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장소가 카페 같지도 않고 어 설퍼서, 사람들은 제가 언제 그만두게 될지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커피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도 와줄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커피를 잘 아는 사람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직접 커피 관련 일도 하고 있습 니다.
카페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터디모임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초기 2년간은 제가 직접 사람 을 모아 스터디그룹을 6개 운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는 매니저도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기본적 으로 10개 이상의 스터디 모임들이 매주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어회화 스터디를 하 다가 점차 커피(핸드드립, 에스프레소, 라떼아트, 더치, 로스팅), 차, 미술(소묘), 음악(기타, 우쿨렐레, 대금), 언어(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한국어), 독서토론, 베이킹 등으로 스터디 모임을 확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두 달에 한 번꼴로, 나라별 또는 주제별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 모임은 제가 제 일 좋아하는 모임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나라에 대해 그 나라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실제 그 나라의 역사와 경제, 정치, 문화, 커피와 커피콩의 배경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는 모임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시리아’에 대한 스터디를 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였는데, 시리 아 친구가 와서 시리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금의 가슴 아픈 문제를 이야기하여 많이 배웠습니다. 게다가 참여한 사람들과 토론을 통해서 발표자와 청중들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 니다. 스터디카페를 통해서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 여러 나라 친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축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초기에는 다양한 이단 종교에서 교묘하게 들어와 서 사람을 빼가려고 하고, 관계를 형성해서 전도하려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 면 술 모임도 생겨서 나중에는 술 모임을 위해 오는 사람들도 생기기도 했죠. 손님들 사이에서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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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이루어지고 친구도 사귀자 개인의 목적을 위한 모임도 만들어졌습니다.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 는 것이야 좋지만 술 모임이 지나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사모임이 생기면 원래 스터디의 순수한 목적이 변해서 새로 온 손님들이 불편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모임을 쉬게 하여 모임이 없어지거나 다시 처음으로 새로 시작해야 할 때도 있었죠. 이런 일은 스트레스도 많 이 받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려운 일이랍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항상 큰 문제였습니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수익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3명의 매니저가 있는데, 결혼한 매니저를 빼고는 사대보험도 못주고 월급도 그냥 최저임금으로 받고 있습니다. 돈 벌기 위한 직장이라면 모두 떠났을 텐데 그래도 함께 일하려 하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제 체력이 바닥이 나는 겁니다. 두세 시간 일하면 힘들어서 몇 시간은 그냥 쉬어 야만 합니다. 한 해 한 해 넘어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습니다. 매 달 적자에, 하루 15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던 날들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제 주변의 신앙인들이 상황을 아시고 기도를 많이 해주신 덕분인 것 같습니다. 건전한 스터디 문화를 만들기 위 해서는 돈을 많이 써도 밤이 늦도록 일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잠도 오지 않을 정도 로 스트레스가 많고, 마음속으로 좌절감이 생길 때마다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 를 해주어 힘을 낸 적도 많습니다. 또한 2년이 넘어가면서 제 자리를 채워주는 동역자들이 생겼습니다. 직원이지만 주인같이 일해주고 함께 일하니 더 좋은 스터디 모임과 세미나들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4년간 카페를 하면서 얻은 결론은, 항상 마이너스 사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속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해 야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젊은이들에게 외국어나 커피, 토론 등을 이끌어주면서 도움을 준다 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제가 배운 걸 생각하면 제가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 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매니저들 그리고 손님들까지, 모두 성장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희 카 페는 이곳에서 일하든 손님으로 참여하든 모든 사람들이 건설적인 모임들을 통해 성장하여 각자의 ‘위 닝스토리(winning story)’가 만들어지도록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비즈니스란 툴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게 당연하지만, ‘위닝스토리 스터디카페’는 돈을 쓰더라도 아깝지 않 은 카페라는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이 카페 가 좀 더 성장해서 이윤이 생기고 그 이윤을 가지고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 겠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건강한 목적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육아라는 영성 훈련장에서 만나는 우리
육아라는 영성 훈련장에서 만나는 우리 임하정 ◆ 전주교대03 작년 출산 후 육아휴직 중인 초등교사. 아 내보다 더 애교가 넘치는 남편과 작년에 태 어난 정음이까지 단란한 세 식구가 알콩달 콩 산다. 평소 활동적인 성향이나 육아 때 문에 ‘집콕’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최근 육 아모임을 시작했다.
대학교 휴학 시절, 나는 아이돌보미(베이비시터)로 주부학사모임을 섬겼 다. 주부로 살고 있는 학사님들이 모임을 하는 동안 나는 다른 학생과 함께 작은 방에서 네다섯 명의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 일은 힘들었고 금세 지쳤 다.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난 아이들을 썩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임을 마치고 함께 먹었던 자장면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했던 것 같다. 당시 6~8명의 학사님들은 같이 모여 나눔을 하고 눈물로 통성으로 기도 하셨다. 모임을 위해 기꺼이 집을 오픈한 학사님,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멀리서부터 오신 학사님, 불신자 남편과의 갈등을 나누던 학사님 등, 솔직 히 그때 나는 그분들을 공감하지 못했다. ‘엄마들은 다 힘들지, 뭐’ 하며 마 치 나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그들의 어려움을 당연시했다. 그랬던 내가 이젠 엄마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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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Ⅱ
2013년, 같은 교회에 다니던 성실하고 신실한 형제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또 은 혜롭게도 작년 9월에는 깁미(God gives to me, 태명)와의 뜨거운 만남을 가졌다. 우리 부 부는 ‘진리를 외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아기 이름을 ‘이정음’이라 지었다. 간혹 여자아 이인줄 아시는데 “너니깐 정음이 키우지!”라는 우스갯소리가 뼈에 사무칠 정도로 상위 1% 를 자랑하는 아주 우람한 남자아이다. 평소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체력도 좋아 몸으로 하 는 일이라면 다 자신이 있었다. 임신 중에도 학사회 1박 MT에 쫒아갔고, 진통 3시간 만에 무사히 자연분만 했던 나다. 그런데 모유 수유와 육아의 벽에 부딪혀 아주 그냥 ‘맨땅에 헤 딩’이였다. 아니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엄마사람은 버겁다 엄마 역할은 처음이다 보니 낯설고 버겁다. 더군다나 하루 종일 아이와 단 둘이 있다 보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아이 자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물 론이고, 내 몸과 의지도 아기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문 앞에 앉아있는 아기에게 갖은 애교를 부리며 볼 일을 보거나 춤을 추면서 샤워를 한 경험도 있 다. 아,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간절하다. 아이와 거리를 둔 채 적절한 휴식을 통해 몸과 마 음이 전환해야 할 필요가 분명하다. 요즘은 아빠들도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도와주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참 여와 도움일 뿐이다. 물론 우리 남편은 일찍 귀가하여 저녁 6시부터 아이를 돌보기도 하고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많이 주는 편이다. (남편이 삐질까봐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ㅋ ㅋㅋ) 그러나 엄마에게는 그저 참여하고 도울지 말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당장 분유 를 얼마큼 먹일지, 어떤 옷을 입힐지 결정을 해야 한다. 남편은 내복 바지가 어디가 앞면인 지까지 매번 물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아기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전적으로 엄마인 나의 몫이다. 엄마는 육아에 대한 고민이 머리에서 떠날 날이 없다. 물리적인 버거움뿐만 아니라 생명을 길러내는 부담과 책임감에 갇혀 있다. 특히 아기가 아 플 때면 엄마는 죄책감까지 떠안고 지낸다. 아기가 생후 60일쯤 되었을 때, 하도 답답해서 산책을 나갔다가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너무 어려 일반 아동병원에서는 링거 꽂기 힘들 다며 안 받아주자 종합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 그 뒤로 기관지가 약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후벼 판다. ‘내가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아프지 않았을 텐 데….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난 이기적이고 철없는 엄마야!’ 인과관계가 의학적으로 뚜렷 하지는 않지만 엄마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간다.
육아라는 영성 훈련장에서 만나는 우리
엄마사람은 외롭다 9월생인 아이는 곧 첫 겨울을 맞이했다. 그 말은 곧 외출 불가라는 의미! 지난번 감기건도 있 으니 잠자코 집에 있자고 다짐한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기를 안고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을 바라보며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 눈이 내린다~”며, 이 노래를 100번은 부른 것 같 다. 소파에 앉아 모유를 수유하고 있는데 창 너머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누군가 당장 블 라인드를 내려주었으면 싶은데 아무도 없다. 괜스레 울적해진다. 이 넓은 세상에 나와 아기, 우리 둘만 외딴 섬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육아의 고통이란 게 궁극적으로는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들 친정엄마가 도와준다는데 난 그럴 형편도 아니다. 물론 시골에 계 신 친정엄마는 건강한 식재료를 늘 대량으로 공급해 주신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제일 불쌍하다고 여기며 몹쓸 피해의식까지, 정말 찌질하다. 차라리 맘 편 하게 호르몬으로 인한 통제 불가능한 변화라고 해두자. 갑자기 모든 관계가 뚝 끊긴다.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게 웬일? 휴대전 화 벨이 울린다. 전화번호 끝자리는 8803, 낯설지 않다. 남편 이외의 성인사람, 바로 택배기 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제 새벽까지 살까말까 고민하다 장바구니에서 구매결정을 한 육아용품을 받아들었다. 포장을 뜯으며 잠시나마 들뜬다.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날 생각 에 신나서 아이를 들쳐 매고 갔는데 나 혼자 아기 보기가 너무 힘들다. “얘들아 미안, 나 먼저 갈게...” 아직 미혼이거나 육아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공감대 형성이 안 되어 점 점 피하게 된다. 외로움이라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육아모임으로 만나다 도서관의 그림책 모임에 다니며 동네 엄마들을 알게 되었다. 같이 산책도 하며 그나마 숨통 이 트였다. 어느 마트 물건이 좋은지, 아이를 어느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지, 직장맘으로서 인터넷 정보에만 의존해야만 했던 데서 벗어나 알짜배기 육아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 만 채워지지 않는 내 영적인 공허함은 어쩌나. 매일 아침 매일성경 오디오를 들으며 QT했다 치고, IVF 팟캐스트로 설교 들으며 그 구멍을 메워보려고 했지만 혼자다보니 맥이 빠졌다. 거침없이 하나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영적인 친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지금은 10개월 딸아이의 엄마인 대학교 시절 간사님의 제안으로 소그룹을 시작 했다. 우리 둘이서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마침 둘째 출산 후 육아휴직 중 인 후배까지, 우리 세 사람은 처음엔 만나서 밥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하 지만 늘 겪는 일상을 나누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 2주에 한 번씩 모일 때마다 《부모학교》라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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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Ⅱ
는 책을 한두 장씩 읽어 와서 책 나눔을 하기로 하였다. 돌 전후의 아이 셋은 한 명은 누워 있 고 한 명은 기어 다니고 한 명은 걷고, 모두가 제각각이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서로 등을 맞 대고 앉아 있는 모양새다. 그 와중에 인상 깊었던 내용과 자신에게 적용할 점을 짤막하게 나 누는 것에 불과한 만남이지만,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격려는 아주 분명했다.
일 중심적이고 성취지향적인 나로서는 육아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극단적으로는 경력이 단절되고 시간이 허비되는 일이라고까지 평가절하 하기 도 했다. 그러나 저자인 게리 토마스는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은 부모들을 위한 영성 훈련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달갑지 않은데 지독히도 무력하고 혹독한 영성 훈련이로구나’하며 반 항심으로 시작했지만 한 장씩 읽어 내려가자 마음이 열렸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부딪치는 모든 경험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아들이며, 자 녀 양육의 모든 기쁨과 도전을 하나님과 함께 나눌 줄 아는 지혜를 얻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2주에 한 번이였던 모임이었는데 이제는 책 나눔과 아웃팅을 번갈아가며 매주 만나기로 했 다. 집이 더 가까웠다면 매일 만났을 텐데 무척 아쉽다. 지난 추석연휴 때는 남편들까지 합 류하여 온 가족이 번개팅을 가졌다. 그동안 아내들의 뒷담화 도마 위에 오른 남편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만났다. 남편들만의 애로사항도 나누고 공동체에 대한 마음을 함께 품고 바 베큐 모임까지 기약하며 헤어졌다. 10월말에는 한옥마을로 나들이를 가서 모처럼 분위기도 내보고 이른 단풍구경도 하고 돌아왔다. 유모차 행렬이라 몸은 고되지만 들뜬 마음만큼은 알록달록 가을 단풍 같았다.
희망을 보다 이 모임 이전에는 학부시절 간사와 리더, 리더와 멤버 그 이상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매일 캠퍼스에서 함께했지만 졸업 이후 각자의 삶에 바쁜 학사들과 띄엄띄엄 만나게 되면 어색할 때가 많다. 오랜만에 만나서 나의 속내를 드러내기에는 부담스러우니 그저 옛 추억 을 되새김질할 뿐이다. 일상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진정성 있는 관계가 지속되기는 힘든 것 같다. 우리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엄마라는 동일한 역할 속에서 내가 경험했던 육아를 통 한 기쁨과 보람 또 한편으로는 불안, 죄책감과 무기력함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어 동지애를 느꼈다. 물론 부부싸움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하고 아내라는 이름으로 더 똘똘 뭉치게 한다. 이전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얻은 것 같아 든든하다.
육아라는 영성 훈련장에서 만나는 우리
학생 시절 아이돌보미로 잠깐 섬겼던 IVF 주부학사모임은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졌다. 그 뒤 로 어떻게 된 것인지 당시 나는 어렸고 관심도 없었다. 물론 다른 주부학사들은 각자 교회에 서 성실하게 모임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공동체 속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잘 몰랐던 학부시절 과 달리 학사가 되어서는 자발적으로 모이기에 힘쓴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모임을 시작하였지만 앞으로 이런 모임을 간절히 원하는 학사가 있다면 어떨지, 모임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에 [소리] 편집위원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병선 학사님께 조언을 들었다. 체계적인 커리 큘럼을 짜서 모임을 진행하고, 리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다른 주부학사님을 초대하는 것, 그 리고 모임을 널리 알려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것 등이다. 우리의 열의와 소망이 모아질 때 그 갈망을 채워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해 본다. 가정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지속적으 로 하고 있고 또 귀여운 운동원들을 길러내는 엄마라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도록 서로 지지하 고 세워줄 수 있는 육아모임이 되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부모학교≫ 책 중에 내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는 거룩한 스승들 속에 살고 있다. 때로 그들은 자신이나 우리를 멸시한다. 성질을 부릴 때도 있고 우리를 껴안고 뽀뽀하며 사랑할 때도 있다.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그들은 우리 마음 을 빚고 우리 영혼을 성장시키며, 보다 깊고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자녀 양육의 신성한 여정 중에 눈물도 많이 흘리겠지만 길모퉁이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게리 토마스의≪부모학교≫,32쪽)
나는 엄마가 되기에는 연약하고 실수투성이다. 내 눈에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동기를 보신 다. 아버지의 흐뭇한 웃음으로 나를 품에 안아 주신다. 진짜 엄마로 성장시켜 줄 영성 훈련소 동기를 기다립니다. 전주에 살고 계신 주부 학사님들, 관심 있는 분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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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Ⅱ
진짜 ‘운동’을 하는 전북학사회 오대원◆ 전북대02
전기를 전공한 후 전기안전관리 업무를 하 며 고창, 군산, 오수, 완주, 김제 등 전북지 역 곳곳을 누빈다. 아내도 화학공학을 전공 하고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어 공장과 공 학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약간 신 기하고도 재밌는 집안이다. 사랑스럽고 귀 여우며 역동적인 2살 딸 한음이와 엄마 뱃 속의 소망이(5개월)이 자라고 있다.
신입생 시절, 저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농구, 축구, 야구, 탁구, 당구, 족구 등
그중에서도 특히 IVF를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었
안 해본 스포츠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운동을 함께
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운동’이었습니다. (하나님
즐겼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깊이 느낀 점은, 운동
나라 운동 말고 그냥 운동입니다.) 아마 저와 똑같
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소중한 도구가 된
이 생각하는 지체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침
다는 점이었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닌 친구들과도
기도모임과 큰모임 시간에는 못 만나도 운동장에
쉽게 어울려 함께 운동을 했습니다. 운동이 몸만 건
서 보는 건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으니까요.
강하게 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를 하나 되게도 한다
당시에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선후배들이 참 많
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땀 흘리며, 넘어졌을 때
았습니다.
서로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고, 다리에 쥐가 났을
특히 전북대학교에는 ‘대동제’라는 축제가 있는데, 수많은 강팀 속에서도 전북IVF가 4강에 오르는 놀 라운 업적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상금은 타 지 못했지만요. 또한 전북지역을 방문하는 다른 지 방회의 간사님에게는 골프접대가 아닌 축구접대 (?)가 기다리고 있어서 간사님들이 좋아하셨다는 소문이 파다했을 정도죠.
때는 마사지(?)까지 해주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 면서 다시금 뛰게 만들었던 운동 정신은 다시 생각 해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우리는 학생운 동, 복음운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기본적으로 육체 운동을 잘해야 진정한 운동권(?)에 들어갈 수 있다 는 말을 간사님들과 재미삼아 주고받기도 했었죠. 어느덧 전북지방회에도 많은 학사들이 배출되었습 니다. 평소에는 각자 사는 일에 바빠 자주 못 봐도
진짜 운동을 하는 전북학사회
명절에는 학사들이 고향을 찾아옵니다. 그러던 차
말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왕년(?)에 정말 날아다
에 명절맞이 축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 나
니던 학사에게 “너 왜 이렇게 못 뛰고 있냐?” 물으
왔습니다. 그래서 7~8년 전쯤부터 설날이나 추석
니, “형, 저 반년 만에 공차는 거 같아요. 체력이 완
이 되면 학생, 학사들이 모여 명절맞이 축구를 하
전 바닥이에요.”하더군요. 안쓰러웠습니다. “세상
게 되었습니다. 수도권학사회는 수도권 출신 뿐 아
속에서 참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라며 등을 두
니라 타 지역에서 온 분들도 많아서 명절에 모이는
드려 주었습니다. 많은 선배들이 저에게 그랬듯이
것 자체가 힘들겠죠. 그러나 전북학사회는 90%정
말이죠. 이렇게 오랜만에 봐도 서로의 건강을 걱정
도의 학사들의 고향이 전북지역입니다. 직장이나
해 주고,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고 해줄 수 있는
진로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떠나더라도 부모님이
전북학사회, 저는 이 공동체를 참 좋아합니다.
여기에 계시는 경우가 많아서 명절에 모이는 게 비 교적 쉽습니다.
현재 전북학사회에서는 이전에 [소리]에 소개했던 홀리민턴(배드민턴)과 라이딩 클럽 등의 활동을 하
보통 OB(졸업생), YB(재학생)로 나뉘어서 공을 차
고 있습니다. 명절맞이 축구만 기다리다가는 목 빠
는데, 지난 추석에는 4:4 동점으로 비겼습니다. 재
질 거 같아서 만들었는데,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시
학생들은 유니폼까지 맞추고 정기적으로 공을 차
간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가끔 운동을 하고 있습니
며 기술연마(?)까지 해서 하마터면 졸업생이 질 뻔
다. 다만,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했는데, 다행히 노련미로 무승부까지는 만들었습
서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 상황입니다. 책모
니다. (웃음) 예전에는 아무 초등학교나 빌려서 했
임이 활발한 지방회도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전북
는데, 요즘에는 전용구장을 빌려서 경기를 합니다.
학사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학사임원들이 자발적으로 명절맞이 축구포스터를 제작하고 제가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하고 있습니 다.
축구를 비롯한 여러 운동을 통해 하나됨을 경험한 우리들, 진정한 영육 간에 하나됨을 경험했던 전북 학사님들! 모두 보고 싶습니다. 2006년쯤이었던가
예전에 캠퍼스 시절에는 매일 공동체 사람들을 봐
요?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전북 학생학사 가
도 좋았습니다. 학사가 되고 나니 한 달에 한두 번
을체육대회의 일정을 마치고 모두가 손을 잡고 ‘왕
학사큰모임에서 볼까말까 하는 상황입니다. 서운
국과 소명’ 찬양을 불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손
했습니다. 그래서 선후배 학사님들을 보면 제발 학
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서있었는데 운동장이 꽉 찼
사큰모임 좀 나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물론 나오
던 거, 기억하시죠?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
지 못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 교회 목장
지네요. 여러 지역에 흩어져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
모임과 겹치고, 육아, 일 등... 그나마 제가 학사큰모
님나라 운동을 하시는 학생, 학사, 간사님들, 어떻
임을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시골교회를 다니고 있고
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을 보시고 명절축
청년들이 거의 없어 주 교제권이 학사회이기 때문
구 나간 지 좀 오래되었다 싶은 선후배 학사님들,
입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보는 것도 어쩌면 저
2016년 설맞이 축구 경기에서는 꼭 얼굴을 뵈옵기
만의 욕심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축구장에
를 소망합니다.
서 1년에 한두 번 보는 학생, 학사들과의 만남이 정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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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종말 The End of Memory
잊히지 않는 기억, 치유받지 못한 깊은 상처와 포옹하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상처, 치유받지 않은 기억에 대해 성찰하다. 십자가에 나타난 용서의 신학을 따라, 희생자의 아픈 기억과 가해자의 슬픈 현실을 면밀하게 숙고한 끝에 볼프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망각은 과거에 대한 배신이 아닌 과거와의 화해라고! “이 정도로 흡인력 있는 심리학 책이나 신학 책은 아직 없었다.” _위르겐 몰트만 미로슬라브 볼프 | 홍종락 옮김 320면 | 18,000원(예상)
‡ IVP가 펴낸 볼프의 책들
배제와 포용 정의와 화해의 길에 대한 신학적 비전 박세혁 옮김 | 양장 560면 | 26,000원
광장에 선 기독교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김명윤 옮김 | 240면 | 13,000원
알라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같은가? 백지윤 옮김 | 400면 | 20,000원(예상)
www.ivp.co.kr
소리지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소리 지음
22 말씀산책_박창운 26 유금리 라이프_지은실 27 냉탕과 열탕사이_정영민,황선정 30 생활의 발견_홍정환 32 파란만장 직장생존기_김작가 34 문화톡톡_배운기 37 다다익책_정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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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산책
부활을 살라 마태복음 28장 16-20절을 중심으로
박창운 ◆ 계명대83 1983년 계명대 IVF를 개척했고, 졸업 후 대 구에서 전임간사를 역임했다. 서울영락교 회 청년부목사를 거쳐 지금은 대구제일교 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 아내와 딸 예은, 아들 예찬이랑 재미나고 행복하게 살 아가고 있다.
정말 이상한 문구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말씀은 누구나 잘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자세 히 살펴보면 정말 이상한 구절이 있다. 16절을 읽어보라. “뵙고... 경배하 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고 경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다 음 구절이 이상하다.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이상하지 않은가? 부활 하신 주님을 뵙고 경배까지 했는데,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니? 더욱이 주 님이 부활하신 후 지금까지 행하신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 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 씀하시니라.”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에 얽힌 구속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 리고 이제 하늘로 올라가시는 시간이다. 그런데 제자 중에 의심하는 자 가 있다니!
말씀과 함께 걷는 우리의 삶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바가 부활 자체를 의심했다는 단순한 말은 아닐 것이다. 이는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실 마태복음에서 ‘의심’이라는 단어는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 따라오는 일관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제자들이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 고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도전하며 살겠습니다. 제자로서 십자가의 사람으로 살 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때, 도리어 믿음을 보이지 못한 서글픈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 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는 말이다. 두려운 세상 속에서 부활의 주님의 권능을 부여잡고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대목이 불편하다 이 본문은 부활 자체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따라 살 용기가 없음을 보이는 대목이기에 불편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제자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점이 우리를 더 욱 불편하게 만든다. 사실 우리도 주님의 능력을 믿고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을 믿는다. 그러나 권능을 믿는 것과 내 삶 속에서 부활을 살아가는 것이 서로 다른 영역에 머무는 것을 볼 때 우리 는 주눅이 들고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맛본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의 문을 두드릴 때부터였는지 모른다. 세상 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세상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신과 삶의 환경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겪는 전투 같은 분주함도 그렇다. 옆 사람을 동료이면서도 경쟁자로 보아야 하는 이중 적인 모습에 힘겹기도 하다. 이곳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부활을 믿는 것과 다르게 느 껴져서 불편하다.
주님은 더 이상하시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보다 더 이상한 행보를 펼치시는 것 같다. 이렇게 연약한 제자들에게 온 세 상을 의탁하시니 말이다. 의심하고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 온 세상으로 나아가 모두를 제자 삼 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복음서의 내용을 잘 아는 이들이라면 위에서 본 내용보다 더 충격적 으로 주님의 이 말씀을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지금껏 세상이 두려워, 유대당국이 두려워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숨죽여 있던 자들이 아니던가! 자,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세상을 맡기신다! 그 말씀을 NIV로 보자.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여기에는 동사가 4개가 나온다. “가서, 제자로 삼 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에서 주된 동사는 제자를 삼으라는 것(make discipls) 이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에서 아쉬운 것은 “가서(go)”에 대한 번역이다. 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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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산책
것은 “baptizing, teaching”이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나아가 “가서”도 “going”으로 번역을 했으면 더 좋을 뻔하였다. 사실 이는 이런 뜻이다. “너희는 가고 있는 동안에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한다!” 주님 은 우리가 어떤 장소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는 뉘앙스라기보다는, 온 세상을 향하여 가고 있는 내내 제자 삼는 일에 너희의 삶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네가 두려워하고 부활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의심하는 그 장소에서 부활의 의미를 살아가라는 것이다. 주님은 어떤 의미에서 믿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제자들에게 세상을 맡기고 있는 것이다. 움직일 수도 없는, 두려워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맡기신다! 참 이상하지 않는가?
주님은 부활을 가르치신다 주님은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신다. 먼저, “나아와”라는 말을 주목하라. “예수를 뵈옵고 경 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마 18:17-18).” 이는 예수님이 산으로 나왔다는 말이 아니다. 산에서 이미 경배를 받으신 분으로 성경은 묘사하였다. 그 렇다면 이는 예수님이 의심하는 자들에게 나아오셨다는, 그들에게 다가가셨다는 말이다. 이렇듯 주님은 부활을 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아오신다. 주님은 믿음 없는 이들에게로 나아오셔서 무 언가를 말씀하신다. 주님은 나아오셔서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 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 부활의 의미를 조금 더 생 각해 보아야 한다. 부활은 하나님의 ‘Yes’ 사인이 아닌가! 그 주님의 말씀은 떨어짐이 없고, 하나님 의 말씀은 언제나 성취된다는 것을 확증한 사건이 아닌가! 그렇다면 부활의 객관적 사실로 인해서 주님이 지금 들려주시는 말씀은 사실이 된다. 주님의 약속은 사실이 된다! 이분은 누구신가? 온 우주를 우리에게 맡기신 이 분은 누구신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 으니”라고 주님은 그렇게 당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그리고 부적절한 제자로까지 느껴 지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러한 주님이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신앙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의 가장 간단한 표현은 우리가 그분을 어떤 분으로 인식 하느냐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현실이 나의 현실이 될 수 있는가를 믿는 믿음에 달려있다. 지난 호에서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간략히 다루었다.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 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실상”이라는 말이 재미나다. 이것은 “있는지 혹은 없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대상이 아니다. 도리어 이것은 분 명히 실재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것은 변함없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우리 곁에서 세상을 변화시키 는 동인으로, 아니 주체로 우리와 함께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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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붙들라는 격려 부활을 사는 것에 대해서 디모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디모데후서를 읽다 보면 디모데의 삶 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 수 있다. 에베소교회를 담당하던 그가 처한 상황은 만만하지 않았다. 시대적 환경에 맞물려 많은 이들이 믿음을 포기하고 돌아섰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모든 지표는 마이너스 를 가리켰고,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디모데는 두려워 했고 불안해했다. 그래서 바울이 펜을 들었고 디모데를 격려한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딤후 2:8).” 여기서 ‘살아나신’이라는 단 어는 아주 중요한 말이다. 역사의 한 기점 속에서 살아나신 일회적 사건만을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 말은 “그때 살아나신 주님은, 지금도 네 곁에 생생히 살아계시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지금 네 곁에 계시다.” 이것이 디모데에게 가장 강력한 위로의 말씀이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마태복음도 실은 이 약속을 강조하는 복음서이다. 1장 서두에서 임마누엘을 강조한 메시지는 마지막에서 다시 “임마누엘,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강조하 고 있다. 복음이 우리에게 와 닿는 아주 중요한 사실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산다는 것, 그것은 ‘믿음의 삶’이다. 누누이 강조하는 성경의 메시지처럼, 모든 것 이 힘들어도 환경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의 응답 열왕기하 6장은 믿음의 눈이 어떠한 것인지 보여준다. 엘리사로 인해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야욕 을 채우지 못한 시리아의 왕은 화가 단단히 났다. 그래서 엘리사를 죽이기로 했고, 그가 도단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청난 군대를 보내어 그 도시를 에워쌌고 이제 그는 분풀이를 할 기회를 잡았다. 다음날 아침, 엘리사의 사환이 일어나 그 군대를 보고 애가에 가까운 탄식을 늘어놓 는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엘리사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적들의 광대함에 장탄 식이 절로 나왔다. 이제 죽었다는 탄식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엘리사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리고 사환을 향하여 말한다. “걱정 말아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 엘리사 가 기도하자, 사환의 눈이 열렸다. 그곳에는 정말 하나님의 불 병거가 온 산을 두르고 있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신다. 그래서 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부활을 살아간다. 힘겨워도, 어려워도, 절 망의 상황이 와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위대한 사건, 부활을 부여잡고 달려가야 한다. 어차피 연약 한 우리가 붙잡을 수밖에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그 주님을 믿고 붙잡으며 달려간다. 우리도 이 렇게 부활을 살아야 한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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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유금리에서의 느릿느릿 또렷한 하루
지은실 ◆ 동덕여대02
유금리 라이프
포토샵, 일러스트와 몇 년째 ‘밀당’하는 프리랜 서 디자이너. 2년전 성산동 생활을 마치고 자연 과 조금 더 가까운 유금리로 왔다. 빵 굽고 커피 볶는 남편과 밥해먹고 동네 언니, 동생들과 수다 떨고 볕 쬐며 (별 일 없이) 산다.
냉탕과 열탕사이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는 부부 정영민(열탕, 그) ◆ 인제대99 9년의 연애 끝에 그녀와 결혼, 4년째 충성 스런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는 전(前) 경남 IVF 간사. 지금은 아들 연우에게 더없이 좋
소리 지음
은 아빠이며 청소년들의 꿈을 찾아주는 진 로 전문 강사. 황선정(냉탕, 그녀) ◆ 동아대00 평범하게 살고 싶으나 평범하지 않은 남편 때문에 흥미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연 우엄마.
꽃다발에 대한 견해
열탕(그)
나는 연애시절부터 깜짝 선물을 자주 하곤 했다. 예기 치 못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선물을 건네는 일은 언제
나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물론 그 즐거움의 중심에는 당연히 그녀가 좋 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몇 번, 아름 다운 꽃다발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갔다. “여보, 짜잔~ 예쁘지! 당신 생 각나서 사왔어~ 어때? 우리 안방 분위기랑 어울리지 않아?” 그럴 때마 다 그녀의 반응은 매우 일관성이 있었다. “아... 꽃다발... 예쁘지... 그런 데 그거 그냥 거실에 놔두면 안 될까? 벌레 생긴단 말이야...” 그녀는 꽃 다발이 싫은 걸까, 벌레가 싫은 걸까, 아니면 내가 싫은 걸까. 설마, 세 번 째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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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과 열탕사이
냉탕(그녀)
나는 그에게 늘 말했다. 깜짝 선물을 하지 말고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라 고 말이다. 그런데도 그의 깜짝 선물은 계속 되고 있다. 그 중에서 빈도
가 높은 것은 꽃다발이다. 물론 고맙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받는 기쁨은 잠깐이고 벌레 가 생기면 어쩌나, 꽃이 마르면 어떻게 버릴까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그 런 생각 때문인지 늘 그가 기대한 만큼의 리액션을 보여주지 못했고, 준비한 그는 섭섭해 했다. 일단 꽃을 받으면 고맙고 기쁘다는 마음부터 표현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 니 큰일이다. 그러면서도 기념일에는 또 은근히 꽃다발을 기대하는 나를 본다.
개인의 위생 취향
(그)
열탕
우리 부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가사노동의 분담이 잘되어 있었다. 누구 나 그렇겠지만 내가 어쩌다 그녀의 할 일을 대신 해주면 그녀는 하지 말라
고 말리면서도 은근 좋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거기에 예외가 있었다. 그건 바로 설거지. “여보 오늘은 내가 설거지 할게.” “아냐, 아냐. 그러지 말고 쉬어. 오늘 하루 종일 밖에서 힘 들었잖아. 내가 할게.” 처음엔 진짜 나를 위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눈치 더듬 이를 통해 알아차린 것은 그녀가 나의 설거지를 별로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릇을 깼었나? 아니면 설거지한 그릇이 지저분한가? 암튼 그걸 알 고 나니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근데 정말 신기한 게 있다. 그렇게 그릇의 위생 상태를 신경 쓰는 그녀가 싱크대 위는 전혀 닦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싱크대는 내가 청소한다. 그리고 그녀의 특이한 위생관념이 하나 더 있는데, 화장 실 바닥에 떨어진 건 다시 쓰지 않는다. 칫솔이 떨어지면 그것이 새것이라고 해도 버린다. 그렇게 해서 버린 칫솔이 너무 아깝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다가 욕실 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헹군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신기한 건 그러면서도 화장실 청소는 전혀 하지 않는 다는 점! 그래서 화장실 청소는 4년 동안 나 혼자 하고 있다. 그녀가 신기하다. 그리고 그녀 의 생각이 궁금하다.
냉탕(그녀)
그는 나의 위생관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 한다. 나는 일단 설거지는 천천히 그리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가 가끔
설거지를 하는데 그릇을 헹구는 시간이 짧고, 그릇을 정리할 때도 블록놀이 하듯이 그릇을 쌓기 때문에 떨어져서 깨질까봐 불안하다. 그래서 설거지는 내가 해야 마음이 편안하다. 그 런데 그릇은 깨끗하게 닦아도 이상하게 싱크대는 닦기가 싫다. 그래도 그가 잘 닦아주니 고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는 부부
마울 뿐. 어느 날은 화장실에서 칫솔을 떨어뜨렸다. 칫솔을 버리겠다고 하니 씻어서 다시 쓰라고 한다. 화장실 바닥에 칫솔모가 닿아서 도저히 입에 못 넣겠다고 말하자 그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그러면 평소에 화장실 청소를 좀 하라고 한다. 나에게 는 그게 화장실이 깨끗하고 깨끗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더군다나 연애시절, 결 혼하면 화장실 청소는 자기가 맡겠다고 멋지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 약속은 지금도 잘 지키 고 있기에 가끔씩 하는 잔소리는 귀여운 투정으로 넘기고 있다.
육아방식의 차이
열탕(그)
우리에게는 천사같이 귀여운 아들 연우가 있다. 나는 연우랑 노는 것이 너 무 좋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들과 노는 시간이 즐겁다. 내가 아버지와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일까. 나는 연우와 함께하는 시간이 연우에게도 즐거움이 되길 바란 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즐겁게 노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연우의 입이 귀에 걸리고, 까르륵 웃음소리로 숨 넘어 가듯 웃어주면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춤도 추고, 공놀이도 하고, 헹가래 쳐주고, 거꾸로 들어서 돌려주기도 하고, 팔로 안아서 그네도 태워주고, 의자 위에 서 나를 믿고 뛰어내리는 연우를 받아주기도 하고, 연우를 내 발 위에 올리고 이리저리 흔 들기도 하고... 물론 안전하게 놀아야 되겠지만 놀다가 다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면 서 자라는 게 아이니까. 그녀는 내가 연우와 함께 노는 모습을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 본다. 나는 그녀가 연우에게 쉽게 만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 걱정인데.
냉탕(그녀)
연우와 나는 하루 종일 함께 있다. 밥과 간식을 먹이고 낮잠을 재우는 똑같은 일상 외에 일주일에 두 번은 도서관에 연우 수업을 들으러 외출
하고, 어떤 날은 연우가 좋아하는 경찰차와 소방차를 보러 가고, 또 다른 날은 놀이터에 가 거나 동네를 돌아다닌다. 집에서는 퍼즐을 맞추고, 책도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렇 게 놀다가 심심하면 연우가 만화를 보여 달라고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보여주는 편이다. 연우가 원해서이기도 하고, 나도 좀 쉬고 싶기 때문이다. 연우의 낮잠 시간이 유일한 자유 시간인데 빨리 밥을 먹고 설거지 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연우가 깬다. 저녁에 그가 돌아왔을 때 연우가 만화를 보고 있으면 “또 만화 보여주는 거야? 언제부터 본 거야?”라고 그는 차갑게 말한다. 만화를 보여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이 나에 게 쉼이 될 때가 있다는 걸 그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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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수컷의 방 홍정환 ◆ 부경대98 IVF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연구원. 멸공봉사 (滅公奉私)를 좌우명 삼아 어떻게든 공적 인 시간에 사적인 일을 하려고 몸부림치는 무익한 종. 누워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쉼 중독자(restaholic).
여느 때처럼 일마치고 늦게 귀가한 어느 날이었다. 아내는TV를 켜놓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짐을 풀어놓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아이들이 오늘은 무슨 일로 속을 뒤집어 놓았는지, 최근에 시작한 일이 힘들지는 않은지, 내년엔 뭘 먹고 살지 등 등……. 그리고는 아내의 다리를 베고 누워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특 별히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없었다. 매달 인터넷과 IPTV 요금으로 지출한 것의 본전 생각이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던 중 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을 보고는 채널 순례를 멈추었다. 파 격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시험판 방송 갈무리 사진을 SNS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남자들을 위해, 그들 이 원하는 콘셉트로 집을 수리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소한 문제가 있 다면 수리(!) 결과물이 의뢰인들의 상상을 지나치게 많이 뛰어넘어버린 다는 점이다(낚시 애호가인 의뢰인을 위해 아파트 거실을 실내 낚시터 로 바꾸는 정도).
일상에서 길어낸 무규칙 이종(異種)에세이
그날 아내와 함께 보게 된 것은 정규편성 후 첫 번째 방
아무튼 나는-아직까지는-집에 내 방이 있다. 귀가 후
송분이었다. 초반 10분여를 놓쳐버린 터라, 나는 아내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지 못한 지
에게 “황당하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라는 말을
인들은 나를 무척 부러워한다. ‘온전한 나’를 확인할
덧붙여가며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설명해주었다. 그렇
공간이 없는 어떤 선배는 화장실을 활용하고 있다. 집
게 우리는 당구마니아의 의뢰와 MC들의 반응을 키득
에 도착하자마자 맥주 한 캔과 태블릿 PC를 들고 화
거리며 보기 시작했다. 고단한 하루 마무리로 나쁘지
장실로 돌진해서 두세 시간쯤 보내는 게 삶의 큰 기
않은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그와 함
쁨이 되며, 그 자리에서 얻은 에너지로 둘째, 셋째를
께 재미있는 것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선배의 말에 “‘깊이 있는 친 교를 경험하려면 창조적인 고독을 먼저 맛보아야 한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소파를 비롯
다’*는 폴 투르니에의 이야기가 물리적 차원에서 적
한 거실 가구 일체를 아내 몰래 들어내 버린 후 카펫
용된 사례”라고 과장되게 반응했다.
을 깔고 그 위에 무게 1톤가량의 ‘국제식 대대(大臺)’를 설치한 장면, 벽에 점수판 역할을 하는 벽걸이 주산대
하지만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에
를 설치하는 장면, 자기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될 순
서 맛보는 창조적 고독은 남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
간을 걱정하면서도 개인 큐 보관함에서 큐를 꺼내 공
니다. 홀로 머물 장소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스
을 치는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해하던 의뢰인의 표
물 네 시간, 어느 장소에서건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요
정, 결정적으로 그 장면들을 보며 낄낄거리던 나를 보
즘엔 더더욱 그렇다. 남자건, 여자건 자신의 방이 필
며 아내는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남자들은 왜?”라
요하다. 그것이 꼭 배우자를 경악하게 할 정도로 집을
는 말과 함께!
발칵 뒤집어서 만든 물리적 공간일 필요는 없다. 제제 (Zezé)에겐 밍기뉴(Minguinho)의 그늘이 그런 공간이
그래서 나는 “난 절대 의뢰 안할 테니 걱정 마”라는 말
되었다. 모든 이에게 자신의 방, 자신을 덮어줄 그늘
을 반복했다. 물론 진심이었다. 내 주변의 보통 기혼남
이 필요하다.
들과 달리, 나는 작으나마 ‘공부방’이란 이름의 내 공간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크면
“나의 가장 좋은 피난처는 밍기뉴의 그늘이었어요. 난
딸이나 아들 중 하나를 위해 공부방을 내어주어야 할
밍기뉴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밍기뉴도 그런 나를
것이지만 거기에 대한 대책은 오래 전에 세워두었다.
가만히 지켜만 봤어요.”**
대학 강의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체형 책상-의자를 하나 구입해서 베란다에 둘 생각이다. 겨울엔 춥겠지 만, 뭐 상관없다. 원래 좀 추워야 머리도 잘 돌아가니 까, 등산용 방한복 입고 나가있으면 되겠지.
* 폴 투르니에, 《고독》, 윤경남 역 (서울: IVP, 1998), p. 10. ** J.M.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한국 독서 토론회 편역, 예반 그림연구회 그림 (서울: 혜성 E&P, 2012), p.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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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직장생존기
그 자리에도 하나님은 함께하신다 김작가 ◆ 필명, J대06 올해로 학사 5년차이자 하나님나라를 청 소년들과 함께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은 청 소년 활동가.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 용합니다.)
지난 달,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친한 언니가 대리에
서야 퇴근을 하고 성경 한 장 읽을 시간도 없이 기절
서 팀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5년 차, 나와 거의 비슷
해서 잠에 드는 지친 일상은 정규직이나 계약직이나
한 시기에 취직한 언니다. 언니가 수습사원에서 정규
똑같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사무실 안에
직이 되고, 대리가 되고, 다시 팀장이 되는 동안에 나
서 계약직 사원의 불리한 위치나, 연말이 되면 찾아
는 여전히 말단에 불과한 계약직 사원이었다. 요즘은
오는 계약 만료에 대한 두려움은 오롯이 계약직 사
노동환경이 많이 바뀌어 정규직 전환이 쉽다고들 하
원의 몫이다.
지만 내가 담당한 사업은 기간이 정해진 한시사업인 지라 나는 정규직 전환대상자에서 제외되어 있다. 본
1년간 관계를 맺고 함께 활동해온 청소년들은 연말이
래 2016년 2월까지가 만기였던 사업의 기한이 연장되
되면 꼭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 몇 년 더 이 사무실에 몸담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기는 했지만,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경력으로 팀장
“선생님, 내년에도 이 프로그램 맡아서 저희랑 같이
이 된 언니를 보니 내심 부러운 게 솔직한 마음이다.
활동하실 거죠?”
계약직이라고 해서 근무조건이 정규직과 크게 다르
나는 단 한 번도 “그래! 내년에도 같이 해보자!”라고
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계약직이라도 4대보험이 똑
속 시원히 대답해 준 적이 없다. 당장 몇 개월 뒤에 이
같이 보장되고, 야근 수당이나 출장비도 확실히 챙겨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주고, 1년 동안 주어지는 연차 일수도 비슷하게 사용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고 11시가 되어
직장에서 겪는 하루하루의 분투를 담은 에세이
재계약은 연말에 계약직에게 가장 중요한 화제다. 재
겠지만, 나는 이것을 ‘일개 계약직의 마음에 하나님
계약이 되지 않으면 어떤 커다란 계획과 꿈을 가지고
이 감동을 주셨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물론 계약직과
있더라도 펼쳐볼 기회조차 없다. 학부시절 기대하며
정규직의 문제는 마음의 감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
기도했던 ‘직장속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고사하고 당
는 현실적인 문제이고, 계약직에게 연말은 어떤 보람
장 내일이 막막해지고 만다. 가끔은 내 자신이 1년 단
이나 감동이 있더라도 여전히 두려운 계절이다. 나이
위로 태엽을 감아줘야만 정해진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는 들어가고 다시 직장을 구할 때 많은 나이가 걸림돌
태엽인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되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기회가 닿는다면 당 연히 정규직의 자리로 이동하고 싶고, 안정적인 직장
해가 갈수록 더 조급해졌다. 나이가 더 들어 취직이
을 선택하고 싶다.
어려워지기 전에 빨리 계약직의 자리를 떠나서 어느 곳이든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팀
그러나 나는 이 평가회 이후 내년에도 계약직으로 남
장으로 승진한 언니에 대한 부러움, 연말이 주는 압박
는 것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다. 단순히 내가 일하는
감, 그리고 끊임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에 시달려 지쳐
자리에서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
버린 마음이 뒤섞여, 나는 결국 내년에는 이 회사를
는다. 계약직 태엽인형 같은 자리일지라도 누군가에
그만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 영향을 끼치고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 기 때문이다. 계약직, 정규직을 떠나서, 어느 위치에
그 결심을 팀장님에게 말씀드리기로 마음먹은 날이
서나 어느 자리에서나 하나님나라 운동을 꿈꾸고 싶
었다. 그날은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던 ‘마을 축제’에
다고 고백했던 학부시절의 기도가 어떤 뜻이었는지
대한 평가와 소감을 청소년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가
입사 5년차가 되어가는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마련되어 있었다. 그 축제의 담당자는 다름 아닌 나였 는데, 계약직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행사였고, 청소
청소년들이 입으로 고백한 그들의 변화는 계약직이
년들과 함께 진행하다 보니 허술한 부분이나 문제도
라는 내 발등에 떨어진 당면과제를 해결해주지는 못
많아 부정적인 평가와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거의 회
했다. 하지만 정해진 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태엽
의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갑자기 청소년들이 나서서
인형에 즐거움과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금의 내 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축제 준비를 하면서 본인들이
리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계약직이
변화한 부분에 대해서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30
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명 남짓 되는 청소년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축제
있는 정규직이 되고 싶다. 내가 있는 자리가 수습사원
를 하며 자신들이 어떤 부분에서 성장했고 어떤 부분
이든 계약직이든, 혹은 정규직이나 CEO의 자리이든,
에서 변화되었고 어떤 부분에서 어른들의 도움에 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감동이 이 땅을 살아가는 모
사했는지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같이 웃었고, 같이
든 직장인의 마음에 위로가 되기를 기도한다.
울었고, 내년에는 어떻게 이 교육공동체를 이어갈지 함께 이야기했다.
직장인들이여, 지난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파이팅!
누군가는 이것을 ‘일하는 보람’이라고 칭할지도 모르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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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톡톡
어느 광고인의 구인광고 배운기 ◆ 연세대99 창조적인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엮어주는 게 인생의 꿈이자 낙.
지금은 광고일로 먹고 살긴 하지만, 제가 원래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터 광고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학부 때 만 해도 영화제작자나 음반기획자가 되고 싶었
광고, 문화 콘텐츠가 되다
지요. 그러던 것이 현실적인 고민과 수차례의 이 직을 거쳐 어느덧 8년차 광고인이 되었네요.
광고의 본질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인식시키는 마케팅 콘텐츠입니다.
최근까지도 저는 스스로를 ‘광고인’이라고 부르
기존에는 광고콘텐츠라고 하면 TV나 인쇄광고
는 게 민망했습니다. 여태 빼어난 광고 기획 역
들이 대부분이었지요. 하지만, 스마트폰의 대중
량을 갖추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IVF 시절 접
화로 소위 스낵컬처콘텐츠(스마트폰 유저들이
했던 “광고는 마케팅을 위해 소비자를 현혹시키
틈날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짧게 만든 온라인 영
는 도구”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이겠
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네이버에
지요. 하지만 세상에 필요한 제품을 효과적으로
서는 거의 모든 TV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장면
알리고, 이를 위해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모이
을 3분 내외로 편집하여 올리고, 온라인 전용 웹
는 곳이 또한 광고 분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드라마(‘도전에 반하다’), 웹예능(‘신서유기’) 등
‘의미’와 ‘재능’과 ‘현실’을 고민했던 시간들을 거
이 수백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게 되었죠. 그러
쳐 온 지금, 예전보다는 좀 더 희망적인 변화들이
다 보니 광고콘텐츠 또한 기존의 15초 TV영상이
광고계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광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온라
고업계의 거대한 트렌드이면서 동시에 저의 꿈
인 영상의 형태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몰래
일상의 트렌드 속에서 다른 길을 찾다
카메라를 통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삼성생명의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이나, 김광석의 유작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보는 SK텔레콤의 “연결의 신곡발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대중들은 이제 TV에서 나오는 고퀄리티 광고에는 현혹되지 않지만, 재미있는 스토리만 있다면 기꺼 이 2-3분짜리 광고 영상을 문화콘텐츠로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고의 문화콘텐츠화는 2가지 긍정적 전망을 갖게 하는데요. 먼저 기존의 광고 인력이 아닌 시나리 오 작가나 영화 제작자, 뮤지션 등,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또 한 수십억을 써서 고퀄리티의 TV광고를 하지 않아도, 제품의 특징이 재미있는 스토리와 함께 녹아있 는 콘텐츠를 통해 소규모 기업도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죠.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예능인 유세윤의 <광고백>입니다. 유세윤은 부족 한 예산 때문에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100만원이라는 최소 제작비로 임팩트있는 광고를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뮤직비디오 감독, 라디오 작가들과 함께 올해 초 <광고백>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영상 자체는 저퀄리티였지만 B급 유머를 갖 춘 독창적인 아이디어 때문에 광고백에서 만든 영상들은 크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한 광고효과도 톡톡히 거둬 광고백은 6개월 만에 100개의 광고주를 유치했다고 하네요. 물론 유세 윤이라는 연예인이 있었기에 주목받을 수 있었고 여성비하적인 영상 표현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적어도 중소기업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저비용 영상 컨텐츠 제작시스템을 성공시켰다는 점에 서 인정할 만합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된 스낵컬쳐콘텐츠인 <72초TV>는, 공연기획자였던 성지환 씨가 동 료 예술가들과 함께 올해 초 창업한 스타트업의 작품입니다. 일상에서 찾아낸 공감 스토 리에 감각적인 편집이 덧붙여진 <72초TV>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으 며, 희소성 있고 매력적인 콘텐츠 포맷으로 인해 다수의 기업에서 콜라보레이션 영상 제 작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삼성전자와 함께 합작한 “삼성 레벨U”, “삼성 페 이” 편은, 무리하게 제품 노출을 요구하는 광고주의 횡포를 비꼬는 역발상적인 내용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콘텐츠의 힘이란 결국 스토리에서 나온다는 걸 여실히 느 끼게 해주는 케이스였죠.
광고, 공공서비스가 되다 수많은 광고들 속에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디어 발상법 책들이 광고계에서 나올 정도이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공익적 목적을 위하여 광고계의 아이 디어를 빌리는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익광고를 제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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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톡톡
편의를 위한 공공서비스에까지 확장하고 있습
의미 있는 방향성으로의 전환임에는 분명합니
니다. 예전에는 정부나 NGO의 영역이라고 생
다. 서두에서 제 스스로를 ‘광고인’이라고 부르
각되던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보다 창의적인
는 것이 민망하다고 했지만, 머지않아 많은 광
솔루션을 위해 광고회사들의 아이디어를 빌리
고업계 사람들이 그럴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고 있는 것이죠.
카피라이터나 광고 기획자가 아니라, 스토리작 가나 크리에이터로 자신을 명명하는 사람들이
2013년 IBM이 광고대행사 ‘오길비’와 함께 진
생기기 시작했으니까요.
행한 “Smart idea for Smart cities” 캠페인이 대표적인 공공서비스 케이스입니다. 도시 곳곳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광고/홍보업에 종사하는
에 붙어있는 옥외광고판들의 형태를 변형시킴
크리스천들이 함께 모인다면, 자신의 창의적
으로써 시민들이 비를 피하거나 벤치로 사용할
인 재능을 의미 있게 나눌 네트워크를 지속적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죠. 광고적
으로 만들어간다면. 단순히 ‘소비자를 현혹시
인 발상전환을 통해서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
키기 위해’ 야근과 스트레스에 쩔어있는 지금
도 제공하고, IBM의 브랜드 이미지도 높인 성
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공적인 사례입니다.
혹시라도 [소리] 독자들 중에 – 광고/홍보업계 종사자든, 혹은 위 사례들에 대한 단순 관심자
더욱 적극적으로 공공 정책에까지 참여하는 케
든 - 저와 같은 꿈을 품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이스는 서울시가 매년 운영하고 있는 ‘서울크
만나보고 싶네요. 뭐 거창한 프로젝트를 당장
리에이터즈SYNC’입니다. 2013년 서울시가 광
벌이기보다는, ‘의미’와 ‘재능’, ‘현실’에 대한 이
고/홍보 분야 사람들과 협력하여 만든 재능기
야기를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에서건 나누는 것
부 단체인데요. 매년 새로운 광고인들이나 예
만으로도 좋은 밑거름이 될 테니까요.
비광고인들을 ‘씽커’로 선정하고, 씽커들은 1년 동안 서울시의 공공정책수립에 창조적인 아이
사람을 찾습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디어를 제안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SYNC는 노
엮어주는 것이 인생의 ‘꿈’이자 ‘낙’을 넘어, ‘업’
숙인 카페 ‘별인인가’를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이 될 때까지요.
수 있도록 하였고, 학교 화장실을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함께꿈’프로젝트
배운기skydrawer@hanmail.net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올해도 어린이 놀이터나
(페이스북도 동일한 메일주소입니다)
공중전화부스 등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가 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하네요. 보다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공공서비스까 지 제안하는 광고계의 진화. 점점 축소되는 기 존 광고 시장의 대안을 찾기 위한 광고회사들 의 자구책이기도 합니다만, 보다 창의적이고
다다익책
삶과 신앙의 문해력 형성을 위한 C. S. 루이스의 소설들 정모세 ◆ 연세대92
소리 지음
연말에 넷째가 태어난 것으로 일단락된 격 동의 2014년을 보냈다. 올해가 향후 20년 의 방향이 뚜렷해지는 출발선이 되기를 바 라고 있다. 래안․지안․다안․요안 네 명의 아 이를 잘 키우는 게 그 20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라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10여 년 전에 일했던 IVP에 작년에 편 집장으로 복귀했고, 혁명기도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분당두레교회 협동목사 이기도 하다. 《회심》《복음주의 신앙선언》 등의 책을 번역했다.
이 꼭지에 글을 쓰는 마지막 기회인지라, 무엇을 써야
그도 범위가 너무 넓어서 대표적 기독교 소설가 중 한
할지 고민을 했다. 글감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막
명인 C. S. 루이스가 쓴 소설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초
상 쓰려고 하면 그래도 이걸 쓸까 저걸 쓸까 하는 생
점을 맞추겠다고 마음먹었다.
각이 드는 것이다. [소리] 편집인과 식사를 하면서 만 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 김에 처음에는 만화에 대
C. S. 루이스는 30여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의
해서 글을 써 볼까 하는 생각도 한동안 했다. 그러나
절반가량이 소설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나
결국 (다카하시 신의 《최종병기 그녀》, 하라 히데노
니아 연대기》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있고, 아마
리의 《겨울이야기》,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 같
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는 소설 중에서는 가장
은) 만화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 글의 주요 독자들이
나중에 쓰인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가 있다. 별
그 만화들을 접할 가능성이 무척 낮기 때문에 포기했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책을 읽는 편인데도 이럭
다. 만화라는 것도 유행이 있어서, 쉽사리 찾기 어려
저럭하다 루이스의 소설들은 《순례자의 귀향》을 빼
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왕 이쪽(?)으로 빠
고서는 다 읽었으니, 이 기회에 한번 간추려 볼 만하
졌으니 기독교 소설 이야기나 해 보려고 하다가, 결국
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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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책
그런데/그래서 먼저 나는 좀 더 실한 글을 써야겠다는
없는 《페렐란드라》(1943)에서는 금성에서의 모험을,
생각에, 그리고 드디어 읽을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오
그리고 《그 가공할 힘》(1946)에서는 지구에서의 모험
래전에 사두었던 릴런드 라이큰의 《상상의 승리》(성
을 다룬다. 루이스의 이 우주 3부작을 읽으면, 기독교
광, 1982년)를 서가에서 빼 들고 말았다. 그리고 실은
신학적 상상력이 어떻게 허구의 세계로 뻗어 나가는
그 책을 읽느라 결국 마감 기한이 한참 지난 다음에 원
지를 생생하게 맛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
고를 넘겨 편집인을 심각하게 괴롭히고 있는 상황에서
어,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외계인도 만드셨을까 하는
이 글을 쓰고 있다(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달고서, 매
재미있는 상상을 가끔 해 보기도 하는데, 이 책을 보면
번 그렇기는 했다). 기독교 문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루이스는 진지하게 하나님이 외계인을 만들지 않아야
온 대표적인 학자라고 할 라이큰은 《상상의 승리》에서
할 이유가 있는지를 우리에게 물으면서, 그렇다면 성
기독교인에게 문학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즉 창작
경 속의 구원 계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의미를
자나 독자나 비평가 각각이 문학을 어떻게 바라볼 수
지니겠는지까지도 흥미롭고 나름 설득력 있게 짚어 본
있는지를 잘 개괄해 준다. 오래전에 나온 책이고 구하
다. 이 3부작은 판타지 소설들의 큰 특징인 다른 세계
기도 어렵겠지만, 문학 분야를 좀더 깊이 있게 탐구해
에 대한 낯설고 신비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실은 어느
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통찰력 넘치는 책
세계나 마찬가지인 진실, 곧 빛과 암흑 사이의 투쟁을
이다. 입문서로 제격인 이 책을 읽다 보면, C. S. 루이스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을 그 저작 배경으로 해서 읽어
의 《문학 비평에서의 실험》이나 노스럽 프라이의 《문
보는 것도 재미를 증가시킬 것이다.
학 구조와 상상력》 같은 책들을 마음에 담아 두고 읽을 기회를 노리게 만드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1942년에는 그의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책이라 할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출간된다. 사실 소설이라고
루이스는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한 지 몇 년 되지 않
하기에는 그의 문학적 상상력이 가장 적게 반영되어
은 때에, 처음으로 《순례자의 귀향》(1933)을 쓴다. 이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의 신앙 여정에서 흔하게 겪
책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의 후속편 격으로 쓴 것
는 온갖 신앙 체험에 관해 유머와 위트를 담아 재미있
이라고 한다(읽은 책이 아니므로 이렇게 간단 언급만
게 잘 표현하고 있다. 노회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조
해 두자). 그러고 나서 어른을 위한 판타지, 소위 ‘우주
카인 젊은 악마 웜우드에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들
3부작’의 첫 번째 책인 《침묵의 행성 밖에서》를 쓴다
을 신앙의 각 단계마다 효과적으로 유혹할 것인가 전
(1938). 이 책에서는 말라칸드라(화성)에서의 모험 이
략을 가르쳐 주는 31통의 편지를 보내는데, 그로써 자
야기를 다루고, 각각 별도의 책으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연스럽게 우리가 어떻게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 목록
생생하게 가르쳐 준다. 1945년에 출간된 《천국과 지
것인지를 말하면서 참된 자아를 찾아 가는 여정을 그
옥의 이혼》에 대해서는 특히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리
린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루이스가 어떻게 고대
는 편이지만, 어쨌든 루이스가 쓴 소설의 신학적 상상
신화를 탈이교화하고 그 본연의 가치를 잘 찾아내는
력이라는 지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책도 꽤나 좋
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아한다.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는 기이한 여행기를 다 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루이스는 나름 천국과 지옥
소설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 하는 질문은 고래로부터
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은 아마도 어떤 것일지를 그
계속 제기되었다. 하지만 특히 오늘날 불통의 시대에,
의 문학적 표현력을 잘 발휘해 실감나게 그려 준다.
말이 말 같지 않게 돼 버린 시대에, 우리는 빛나는 이
어쩌면 우리의 단편적인 천국/지옥관에 좋은 해독제
러한 소설을 통해서 말이 가능함을, 즉 어떤 진실에 대
가 될 것이다.
한 전달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다시 희망을 갖는다. 이 번에 소개하는 루이스의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사실 기독교인들을 제외한다면, 일반 독자에게 가장
문해력(literacy)이, 책뿐 아니라 삶과 신앙에 대한 문
잘 알려져 있는 루이스의 책은 《나니아 연대기》일 것
해력이 정말 높아지면 좋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
이다. 루이스는 1950년부터 1956년에 이르기까지 한
은 언제나 그게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에 한 권씩 이 시리즈에 속하는 책을 총 7권 출간한
성경에 대한 문해력, 이웃과 사회에 대한 문해력을 높
다. 어린이를 위한 판타지라고 할 이 책들에서 루이스
이기 위해 소설 한 권을 다시 들어보자.
는 나니아 왕국이라는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아이들 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여러 가지 경험
“나는 예술이 사회 문제의 해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
을 잘 전달한다. 루이스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감
다는 통념을 반박하고 싶다.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일
탄하게 되는 그 특유한 표현력, 즉 우리가 지닌 신앙
어나는 정확한 원인은 우리의 사회가 시간과 정력을
의 비밀스러운 순간들에 대한 탁월한 문학적 묘사, 예
진정으로 예술적인 일에 쏟지 못하고, 미의 가치를 충
를 들면 주로 사자 아슬란에게서 드러나는 그 오싹 짜
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
릿 친근한 그 체험에 대한 서술은 이 소설들에서도 빛
히 소박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일
을 발한다.
부 도시의 내면적 문제들이 오직 심미적 기반 위에서 만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루이스는 (《개인 기도》를 뺀다면) 마지막으로 《우리
이다. 만일 우리의 사회가 미를 깨뜨려서는 안 될 가치
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1956)를 우리에게 선물하는
로 존중한다면 우리들의 도시는 콘크리트 건물의 밀
데, 루이스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어떤 문학적 깊이
림이 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시냇물이 오염되지도
에 대한 아쉬움을 한방에 날려주었던 책으로 내게는
않을 것이다.”
남아 있다. 그만큼, 그가 남은 생애 동안 이런 책을 두 세 권만 더 써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 도 크다. 큐피드와 프시케의 신화를 토대로 삼아 새로 운 이야기로 탄생시킨 작품으로, 진정한 사랑이 어떤
- 릴런드 라이큰 《상상의 승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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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이음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41 소리가 만난 사람 » 전형일,조숙진
48 비정규직청년선교회(NYM)를 소개합니다 »우장한 50 함께 해요, 일삶축제! »윤한득,임지은,김미경,조준기
55 안테나 58 편집인의 글
소리가 만난 사람
모험으로 살아 더욱 행복한 기독교사 부부 자녀를 둔 학사들에게 교육문제는 가장 큰 관심사이자 고민거리입니다. 최근에는 기존 교육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다양한 대안교육이 시도되기도 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일반학교와 기독교학교에서 교사 생활의 경험이 있는 전형일, 조숙진 학사 부부를 만났습니다. 두 분은 한국 기독교사회(이하 TCF)에서도 열심히 활동하며 동료 교사들을 섬기고 있 는데요. 교육현장과 교사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형일 ◆ 전북대90 조숙진 ◆ 전북대91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이시종(이하 시종) 두 분 모두 전북IVF에서 활동하셨는데요. 그때의 이 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전형일(이하 형일) 전북IVF는 1989년 여름수련회에 전북대 학생들이 참 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존 교회와 캠퍼스의 여러 상황 속에서 고 민하고 있던 몇몇 형제들이 최재철 교수님의 소개로 IVF 수련회에 참가 하게 된 거죠. 시종 저도 그때 참여했던 형제들이 기억납니다. 형일 그래서 그해 2학기 때부터 기존멤버들이 IVF 이름을 걸고 모이게 되었습니다. 90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했고 제가 첫 멤버였습니다. 저 역 시 선배의 소개로 큰모임에 참석했죠. 그때는 간사님이 안 계셔서 순전 히 학생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최 교수님이 도와주셨 고, 다른 지방회 간사님들이 번갈아가며 큰모임에서 설교를 하셨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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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억이 납니다. 한철호, 문춘근, 전두선,
그래서 실제로 IVF 활동을 같이하지는 않았어요. 대
김병년, 김중안, 박태선 간사님 등 전국
신 당시 남편이 교회오빠였는데, 그 오빠가 저에게 큐
각지에서 와주셨죠. 큰모임이 끝나면
티를 하냐고 물었고 저는 큐티가 뭐냐고 되물었어요.
근처 여관에 숙소를 잡은 간사님들과
(웃음) 그래서 저를 데리고 매주 큐티 훈련을 해줬어
밤새 이야기를 나눴고요. 담당 간사님
요. 오빠를 알아갈수록 신앙이 정말 좋았고 닮고 싶다
은 없었어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
는 생각을 하며 인간적인 호감이 생겼죠.
임을 진행하며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론 위기도 많았어요. 그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한 건 제가 4학년 때였는데, 남
러던 차에 이춘태 간사님이 간사훈련
편이 제대를 4개월 앞둔 때였어요. 저는 당시 IVF와
을 마치고 91년 2학기부터 오셨습니다.
교회에서 군에 있는 형제에게 편지를 보내는 담당자 였어요. 제가 여우였는지 다른 오빠들에게는 편지를
시종 진정한 개척시대셨군요. 고생은 많았겠지만 그
한 장만 써줬는데 남편에게는 한 장 반씩 써줬죠. (웃
때의 전북지방회를 돌아보면 매해 성장하는 게 눈에
음) 제 편지 담당이 끝난 후에 편지가 왜 안 오나 궁금
보였던 것 같습니다. 20명에서 40명이 되고, 이듬해
해져서 저에게 면회를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면회
엔 70명이 되고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같은
도 다녀오고 휴가 나오면 만나고 그러다가 자연스럽
시기에 활동을 하셨나요?
게 교제로 이어졌어요.
조숙진(이하 숙진) 저는 92년 여름수련회부터 참여
IVF 활동이 아니었다면 아마 흐지부지 살았을 텐데,
를 했어요.
IVF를 통해 제 세계관의 기초를 닦았죠. 지금 돌아보 면 이춘태 간사님과 학생들이 나이차이도 별로 없었
형일 이춘태 간사님과 광주의 이승훈 간사님, 대전의
고 심지어 간사님은 제 동기와 결혼하셨죠. (웃음) 그
전두선 간사님 세 분이 거의 같은 시기에 사역을 시작
런데도 영적 아비와 같은 권위가 있었어요. 그 밑에서
하셨어요. 그래서 수련회를 연합으로 했고, 아내가 그
저희가 잘 배울 수 있었고 추억을 많이 쌓았죠. 그게
연합수련회에 처음 참여한 거죠.
자연스럽게 TCF와도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숙진 당시 교회선배이자 전북IVF 개척 멤버였던 88
시종 공립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나눠
학번 임경아 언니가 저에게 수련회를 권유했고, 후배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공립학교
전수진 학사가 가자고 해서 참여했어요. 교회는 다녔
를 떠나게 되었는지,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
지만 사실 저는 EBS 멤버였는데요, 수련회에서 이문
니다.
식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뒤통수 맞는 경험을 했어요. (웃음) 그러면서 비로소 믿음이 생겼고 이후 열심히
숙진 남편은 순창에서 6년간 있다가 전주로 나와 명
훈련에 참여했어요. 그때의 말씀이 제 마음을 후벼 파
문 고등학교에서 근무했어요. 저는 원래 음악교사를
기도 했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지원했으나 잘 안됐고 초등학교 임용고시에 합격했 어요.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오기 전에는 5년간 육아
그후 저는 대표를 맡았고 그즈음 남편은 군대에 들어 갔어요. 남편은 제대하고 복학한 후 대표를 맡았고요.
휴직을 했고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이 학교는 국가에서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엄밀히 말
었는데, 많은 교사들이 교육의 본질보
하자면 대안학교는 아니에요. 대신 국가 지원을 전혀
다는 승진과 같은 외적인 것에 집중하
받지 않고 수업료로만 운영하죠. 처음 이 학교로 옮긴
는 상황이었어요. 저도 그 길을 갈 것
다고 했을 때 시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남편이 첫
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죠. 물
째이자 외아들인데, 시아버님이 지역 명문학교에 오
론 승진의 유익이 있죠. 어떤 권력을 가
래 근무하시다 교장으로 퇴직하셨고 지금도 시골 작
지고 학교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고
은 학교에 상담실장으로 계세요. 게다가 의도하지 않
요. 하지만 저는 거기에 동참하고 싶진
았으나 공립학교에서 남편이 쌓아놓은 점수와 탄탄
않았어요.
한 인맥도 있었죠. 이런 배경이 있으니 마음먹으면 얼 마든지 잘 나갔을 거예요.
그리고 교사생활을 30년 정도 한다고 볼 때, 공교육에 10년 이상 있었으니 나
사실 저도 처음엔 반대했어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
머지 기간에는 다른 학교에 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
는 게 쉽지 않았죠. 지금은 광교신도시가 들어왔지만,
이 들었어요. 그래서 기독교학교에 오기로 결정했죠.
그때만 해도 학교 주변이 전부 논밭이었어요. 저뿐 아
마침 중학교 개교를 준비하던 시기였고, 교장선생님
니라 주변 사람들이 전부 말렸어요. 심지어 이 학교
이 TCF멤버였어요. 함께 스텝을 했던 경험도 있어서
의 선생님들과 전주에 함께 간 적이 있는데 왜 이렇게
학교를 세우는 데 팀워크가 맞아 좋겠다며 제안을 해
좋은 곳을 두고 오셨냐고 묻더군요. (웃음) 전주가 고
주셨죠. 그래서 학교를 세운 후 1년 정도 되었을 때 이
즈넉하고 살기 좋은 도시이니까요. 제가 계속 반대하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니 한번은 어느 주말에 학교에 데려와서 구경을 시켜 주더라고요. 제가 교사이다 보니 게시판을 눈여겨보
사실 저도 고민이 많았죠. 공무원은 소위 철밥통이
았는데 아이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게 느껴졌어요. 그
니까요. (웃음) 아내뿐 아니라 주변에 찬성하는 사람
게 참 좋았어요. 그러면서 제 맘도 바뀌어 같이 오기
이 아무도 없었어요.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지만 교육
로 결정했죠. 그리고 이런 큰 결정을 할 때 남편에 대
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해보고 싶었고 기독교교육
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요. 그냥 한번 이야기해보는
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은 맘도 들었습니다. 안정적
게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으
인 자리보다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모험에 뛰어들
니까 결정할 수 있었죠.
기로 마음먹었죠. 학비로만 운영되는 사립학교다 보 니 혹시 있는 사람들의 자녀만 가르치는 건 아닌가 생
형일 공교육에서 12년 일했는데요, 나름대로 정말 열
각도 들었지만, 밖에서 보는 거엔 한계가 있으니 직접
심히 했어요. 학교문화를 바꿔보려고도 하고, 아이들
뛰어들어 경험하고 일 해보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
을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위로하고 도와주었죠. 조금
했어요. 마침 초등학교에도 자리가 비어서 아내와 같
열심히 했는데도 좋은 선생님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
이 일할 수 있었고요.
었어요. 학생들도 저를 좋아했고 학교에서도 성실한 교사로 인정받으며 잘 나가는 교사였죠. 제가 근무한
이 학교에서 7년째 일하는 중인데요. 지금 생각으로
학교가 지역에서 명문이었어요. 모든 사람이 보내고
는 교사생활 30년 중 공립에서 1/3을 보냈으니 기독교
싶어 하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를 이 학교
학교에서 10년 정도 일하고 나머지는 또 다른 부르심
에 보낼 자신이 없더라고요. 당시 제가 30대 후반이
이 있을 것 같아요.
소리 지음
44+ 45
소리가 만난 사람
시종 안정적인 삶의 큰 변화였을 테니 쉽지
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리 가족만 이곳에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후에 어려
내던져진 느낌, 게다가 우리끼리만 함께 지
움이 없으셨나요?
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그것도 낯설었어요. 서로 자기가 더 위로 받고 싶은 맘이 컸죠. 당
숙진 전주 TCF에서 함께하던 사람들과 헤어
시 아이들도 어렸는데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지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너무 그리웠고 향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게 몇 년을 보냈어요.
수병도 생겼어요. 부모님이 오랫동안 그 터 에 사신 분들이라 저희도 모르게 그 덕을 많
게다가 저는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옮겨온
이 봤는데 여기에 오니 존재감이 없더라고
것이라 모든 수업준비를 다시 해야만 했죠.
요. (웃음) 거리로는 두 시간 떨어진 곳인데
사실 제가 공립학교에서는 수업을 잘하는 교
도 문화가 정말 달랐어요. 학교가 미국 분위
사였거든요. 문제집과 분필만 있으면 한 시
기도 섞여 있어서 자유로워요. 공립학교와는
간 동안 아이들과 정말 재밌게 문제를 풀 수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요. 이런 거에 적
있었어요. (웃음) 그런데 이 학교는 창의적,
응하는 게 처음엔 정말 힘들었지만, 책 나눔
기독교적, 협동적 수업을 요구하다 보니 완
을 하고 생일 축하하고 서로 먹여주는 교사
전히 새로 준비를 해야만 했죠. 제가 과학을
협의회는 정말 새로웠죠.
담당하는데 이전에는 문제풀이 위주로 수업 을 준비했다면 이젠 실험도 하고 창의적인
사실 남편보다 제가 여기에서 정말 많이 배
수업방법을 다양하게 고안해야 했어요. 중
웠어요. 동료 교사들에게서 어떻게 아이들을
학생이라는 새로운 종족을 만나야만 했고요.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성경적으로 가르치는
막상 와서 보니 개교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행
지 배울 수 있었고요. 사실 장애아동과의 통
정적으로도 부족한 게 많았죠. 행정 일에 수
합학급을 처음 맡아본 저보다 다른 학생들이
업 준비까지, 매일 야근하며 1년 이상을 살았
그런 아이를 더 잘 돌봐주기도 했죠. 당황해
어요. 아내도 그렇고요.
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게 이럴 땐 이렇게 하 면 된다면서요.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집
시종 공교육에 계실 때와 비교하여서, 이 학
에서 빨래를 개다가 집어던지며 울기도 했어
교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요. 남편은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 고요. 모든 게 생소하고 힘들었는데 지금 돌
숙진 자유로운 분위기요. 교과를 가르칠 때
아보면 저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라고 생각
도 교사가 자유롭게 재구성해서 가르쳐요.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결정하고 적응하는
정부가 제시하는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다
과정에서 남편에게 더 잘해줄 걸, 지금은 참
양한 자료를 사용해 수업을 할 수 있죠. 가령
미안해요. (웃음)
한 학기에 많게는 서너 권, 적어도 두 권 문 학책을 다뤄요. 선생님들끼리 자유롭게 이야
형일 고향을 떠나니 저도 모든 게 낯설었어
기 나누고 연구하며 수업을 준비하는 분위기
요. 전주에서는 모든 걸 친분관계로 해결할
에요. 때로 음악이나 미술과 연계 수업을 하
수 있었죠. 그런데 여기서는 모든 관계를 새
면 담당 교사들이 적극 협조해 주시죠. 교육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과정을 짤 때도 어떤 핵심주제를 넣을 것인
것이라 생각해요.
지,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협력해서 결정한 답니다.
교사로서 힘든 건 부모님들이 신앙과 교양으 로 포장하지만 그 속에 있는 성공지향적인
시종 전체적으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
마음이 드러날 때에요. 물론 교사로서 아이
기를 느낄 수 있네요. 요즘 대안교육에 학사
가 성공하고 탁월한 리더가 되길 바라지만,
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그게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대안학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
웃을 섬기는 아이가 되길 바랍니다. 성공과
죠. 물론 워낙 대안교육의 범주가 다양하다
출세를 위한 도구로서의 공부가 아니라 공
보니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두 분이 경험
부하는 즐거움 자체를 배웠으면 하고요. 우
한 한계나 보완할 점이 있다면 나눠주시면
리의 마음은 이런데 부모님에겐 다른 욕심
좋겠습니다.
이 있고 또 그게 위장되어서 나타날 때 마음 이 어렵죠.
형일 외부에서 이 학교에 견학을 오는 분이 연간 천 명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우
숙진 그런데 사실 엄마인 저에게도 그런 마
리학교의 시스템이 기독교학교뿐 아니라 혁
음이 있어요. 그래서 이해는 되죠.
신학교나 일반학교에도 확산되는 경향이 있 어요. 우리 학교 같은 좋은 학교가 많이 생겨
시종 전형일 학사님은 올해까지 TCF 대표를
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맡고 계시죠? TCF 이야기를 나누어 주세요.
교육형태가 시도되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나 중에 기회가 되면 공동체 마을교육기관 등에
형일 졸업 후 바로 임용에 합격했어요. 그래
기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서 3월부터 근무를 시작했죠. 며칠 놀지도 못 하고요. (웃음) IVF 졸업예배를 드릴 때 박영
한계도 분명 있습니다. 아무래도 정부 보조
덕 목사님이 설교자로 오셨어요. 제가 임용
가 없으니 교육과정에 간섭은 없지만 학비
에 합격했다고 하니 TCF 모임과 수련회에 가
가 높죠. 경제력이 어느 정도 되는 분들이 아
보라고 하셨죠. 학생시절부터 IVP에서 출간
이를 보내요. 학교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기
된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시리즈를 보고
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비의 문턱이 낮아
TCF를 알고 있었기에 첫 학기를 마치고 수련
지면 좋겠어요. 공립에서 이런 학교들이 만
회에 참가했죠. 전국에서 100명 정도 모였는
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
데 전라도에서 온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한
서 이런 모델이 많이 생겨야 공교육에도 변
학기동안 27살 초임교사가 또래도 없는 시골
화가 올 수 있겠죠. 그리고 아무래도 여기에
학교에서 홀로 분투하는 것 같아 외로웠는
서 초-중을 다니면 온실에서 자란 것 같은 면
데, 학교에 대해 고민하고 기도하는 분이 이
이 있기도 합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처음엔
렇게 많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정말 힘들어 해요. 문화가 다르니
전주에 TCF 모임을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하
까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좋은 씨앗을 심는
며 돌아왔습니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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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시종 학부시절의 개척 스피릿을 발휘하신 거군요.
떤가요? 현재의 고민은 무엇이며 어떤 대안을 만 들어 가는지 궁금합니다.
형일 배운 게 그거니까요. (웃음) 주변의 교사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제 동생과 동생의 친구, 아내
형일 최근 몇 년 사이에 수련회 참석 인원이 급격
와 또 그 친구 이렇게 서너 명이 전주IVF 회관에서
히 줄고 있습니다. 지역모임에 참여하는 수도 줄
모이기 시작했죠. 그런데 금요일에 수업을 마친
고요. 지역모임도 35개에서 25개로 축소되었죠.
후 저녁도 먹지 못하고 순창에서 전주까지 올라
공립학교의 경우 지역을 옮기니 그에 따라 모임
가면 아무도 없어서 저 혼자 라면 끓여먹고 다시
이 변동되기도 하고요. 젊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
내려가기를 반복했어요. 그러다 점점 사람이 모이
아요. 선교단체 인원이 줄어든 것도 영향이 큰 것
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전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모
같아요. 또 교사들이 워낙 바빠요. 학교에서의 압
임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당시 제가 전북학사
박도 세서 실적을 내고 교육도 받아야만 하고요.
회의 대표도 하던 시기라, 일주일에 두 번씩 순창 과 전주를 오갔죠. TCF 모임의 규모가 점점 커지
그리고 교사들의 관심사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
자 전북 학사회가 TCF를 학사운동의 하나로 인정
요. TCF가 중점을 두었던 건 성경연구였어요. 기
해주셔서 온전히 TCF 모임에 집중할 수 있었죠.
독교사의 능력은 수업 스킬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에서 온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요즘은 PBS보다는
전주에서만 TCF를 12년간 했어요. 전주의 선생님
수업을 잘 하고 아이들을 잘 다루는 전문성에 관
들을 보면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제 인생의 열
심이 점점 옮겨지고 있어요. 사실 TCF에서 그런
매인 것 같아요. 제가 이곳으로 오는 날 파송예배
걸 가르쳐주진 않아요. 선생님들과 오래 교제하다
를 해주셨는데 50명 가까이 오셔서 함께 울며 안
보면 자연스럽게 전수되곤 했죠. 그런데 이런 관
아주었죠. 마치 해외로 파송 받는 기분이었어요.
심사가 채워지지 않으면 모임에 남질 않아요. 아
(웃음) 감사패도 만들어주셨고요. 전주모임이 이
무래도 타격이 있어요. 제가 대표를 맡고 있으니
후에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제가 세웠던 리더들이
공동체가 약화되는 것 같아 자책감을 느낍니다. (
자리를 잘 지켜주어서 지금은 안정되었어요. 누구
웃음) 이렇다 보니 선배교사로서의 노하우를 전
한사람에게 의존하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 잘 지탱
수하는 강좌를 안 할 순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필
해 주는 것 같아요.
요에 따라 수련회에서 이런 강좌를 열고 있어요.
숙진 모임에 둘이 함께 참여했어요. 초반에는 저
시종 학생들도 너무 바빠 IVF에서도 PBS의 비중
희 신혼집에서 매주 밥을 해먹었죠. 퇴근해서 정
이 많이 줄었어요. 모임을 다양화할 필요성이 있
신없이 밥을 하면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곤 했
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요. 그 좁은 집에서 1년 반 정도 모였는데, 더 이 상 인원을 감당할 수 없어 교회에서 모이기 시작
숙진 TCF 리더모임에서도 GIBS를 배우며 성경공
했죠.
부 방법을 바꿔보려 시도하고 있어요. 선생님들 은 예습을 안 해도 된다고 좋아하시더군요. (웃음)
시종 한국교회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대부분의 기독인 모임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TCF는 어
시종 학사들의 직업군 중 교사의 비중이 가장 높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습니다. 이들이 TCF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
숙진 홈페이지(www.tcf.or.kr)에 방문하면 다양
을까요? 소속하지 않더라고 동역할 수 있는 방
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답니다.
안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시종 두 분이 같은 단체와 같은 학교에서 활동하 형일 TCF 수련회에 오시는 게 동기부여에 가장
고 계십니다. 장단점이 고루 있을 것 같은데요.
도움이 됩니다. 전국 어디에나 모임이 있는 것은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시나요? 서로 만족스러
아니라서, 일단 수련회에 오셔서 다른 선생님들
우신지 궁금합니다.
을 만나고 고민을 나누며 공동체가 있다는 걸 확 인하면 고단한 교사생활을 버티는 데 힘이 되죠.
숙진 남편이 가사에 많이 참여해요. 요리는 제
그리고 가능하면 가까운 지역모임에 참여하시
가 전담하다시피 하지만 나머지는 역할에 구분
는 게 좋겠습니다. 한 학기 만에 TCF의 진가가
없이 많이 하죠. 그러니까 살 수 있는 것 같아
드러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최소한 5~10년
요. 저희가 올해 결혼 17년차인데요, 10년이 넘
간 해야 다른 교사들과 함께 자신이 성장하는 경
어가니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는단 걸 절감하며
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절망스러웠어요. 내가 변하지 않는 건 생각하지 않고 남편이 변하지 않는 것에 절망했죠. 15년이
예비교사의 경우 저희 단체에서 기꺼이 도울 마
지나니 이젠 불쌍하더라고요. 미소년 같던 예전
음이 있습니다. 사실 저희가 캠퍼스에서 직접 사
얼굴이 사라지고 흰머리도 많아지고요. 자고 있
역을 하긴 어려워요. 저희 영역도 아니고요. 그
을 때 보면 애처로워요. 그런 단계로 넘어왔어
렇지만 적어도 3, 4학년 학생들 중 교직생활에
요. (웃음)
관심이 있다면 수련회 참가비를 지원합니다. 예 비교사에게도 열려있고, 이를 위한 기금도 마련
시종 안주할 만한 상황에서도 개척정신을 잃지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수련회 참가비와 교대
않고 계속 모험하는 삶을 사시는 것이 인상적이
와 사범대의 간사님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죠. 또
었습니다. 좋은 학교를 만들고자 애쓰시며 주변
학생들 모임이나 LGM에 불러주시면 강의도 할
에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시는 모습이 보기
수 있습니다.
좋았습니다. 두 분의 모습이 바로 IVF의 열매라 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만남, 감사드립니다.
소리 지음
48+ 49
소리이음
비정규직청년선교회(NYM)를 소개합니다 우장한 ◆ 영남대00 미인의 남편. 6년간의 캠퍼스 사역 이후, 현재는 경북 청도에서 ‘더함공동체’ 식구 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집 근처 감말랭이 공 장에서 일을 하며 NYM 사역을 병행하는 중이다.
“우리는 개인화된 사회에 살고 있어요. 문제는 사회에
립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하는 것일
서 만들어졌지만 각자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
까.... 이런 의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쉽게 내리는 결론
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에게 함께 싸
은, ‘그래 나 때문이야,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뭐...’입
워야 한다고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니다. 혹은 좀 신앙적 고민을 하는 친구는 ‘내가 하나 님께 뭘 잘못했지? 하나님도 너무하시네, 참...’ 이 정
2015년 성서한국 대회에서 박득훈 목사님이 인용하신
도이죠. 하지만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사
지그문트 바우만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회에서 만들어졌다”라는 사실을요.
저는 6년간의 캠퍼스 사역을 마치고, 올해 초 여러 학
우리는 ‘함께’ 대화하고 소통을 이어가는 가운데 많은
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현실의 무게와 마주한 채 아
위로와 공감을 주고받았습니다. “너 혼자만의 잘못이
파하고 있는 그들을 말이죠. 그리고 그들과 함께 대구
아니야. 너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불안과 고통도 아니
에서 NYM(Non-regular worker Young people Mis-
야.”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sionary fellowship: 비정규직청년선교회)이라는 모임
대해 ‘함께’ 공부하고 자기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을 만들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내 한계와 게으름에서부터 찾고 그러 니 문제의 해결 또한 자기계발과 자기노력의 극대화
내가 비정규직이 된 이유, 아니 꼭 정규직이나 비정규
로만 풀려고 했던 이전의 태도를 바로잡게 되었습니
직으로 구분 짓지 않더라도, 우리네 세상살이가 이처
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럼 팍팍하고 불안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이렇게 고
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할까요.
비정규직청년선교회(NYM)를 소개합니다
우리 선배들에게는 사회 문제를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영성’, ‘성경적 노동관’, ‘재정 컨설팅’, ‘공동체’, ‘연애와
여러 통로가 있었습니다. 노동현장에는 ‘노조’가 있었
결혼’ 등입니다. 강의와 소그룹, 페이스북 연재 및 인
고, 지역에는 탄탄한 ‘교회공동체’가 있었습니다. IMF
터뷰, 소식지 발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의식을
이전에는 상처 입고 깨어진 ‘가정’이 지금처럼 많지는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않았다고 하죠.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학사 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 그 어느 곳도 자신을 든든
간혹 단체 이름만 듣고는 “거기 비정규직들 모여서
히 지탱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운동하는 곳이야?” 혹은 “거기 선교회인데 전도 는 안하니?”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저희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고리들을 풀어
는 복음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조금은 복잡해 보일지
가기 위해 약자들과 함께 싸우고 연대하자는 이야기
라도 ‘일상의 모든 구체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살 것
나, 혹은 급진적이고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새로
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성경적 대안을 찾는 것이랍
운 삶을 살아가자는 요청도 누군가에는 부담스러울
니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의 ‘어른’들은 너 희가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 능동적으로 세
다만 조금은 더 분명한 스피릿과 정체성을 위한 해결
상을 바꾸어 나가라고 이야기하지만, 심장이 오그라
주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현재는 협동조합 설립을
들 대로 오그라든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
목표로 지역의 사회적기업 지원단체와 연계해서 준
안에 담긴 희생과 헌신이 너무 두렵고 부담스럽기만
비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구 YMCA, 대구 청
합니다.
년유니온 등과 같은 지역 청년단체들과의 연대사업 도 진행 중이고요. 현재 저를 비롯해 두 명의 사역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와 5명의 핵심그룹, 30명 정도의 회원과 40여명의 후
만은 없겠죠? NYM은 복음주의 청년운동입니다. 구
원자들이 저희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
조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개인
근에는 서울에서도 모임이 시작되어서 정기적인 모
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자본
임을 갖고 있습니다.
주의라는 거대한 제국에서 ‘함께’ 작은 변화를 꿈꾸 며 살려합니다.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블로그에서 ‘NYM’을 검색해보 시면, 저희가 그동안 함께해온 이야기들을 읽으실 수
그래서 복음주의적 관점으로 현상과 문제를 진단하
가 있어요. 대구 근처에 사시는 분들은 우정임 간사
고 성경적 대안을 찾는 중입니다. 청년 비정규직 문제
(010-8927-6537)에게, 서울에 계시는 분들은 김요한
를 구조와 사회적 이슈로 접근하고 인식하되, 그 대안
모임장(010-4155-3413)에게 연락을 주시면 오프라인
은 개인의 본질적 회심과 유기적 공동체의 회복을 지
에서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전국에 계신 많은 학사
향함으로써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님들의 관심과 후원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특별히 저희가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주제는 ‘통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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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요, 일삶축제! 지난 10월, 세 번에 걸쳐 ‘일삶축제’가 열렸습니다. 여름에 계획되었다가 취소 되었던 일삶축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관심분야 별로 세 번의 만남의 장이 펼쳐진 것인데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는지 참가자들의 후기를 전합니다.
#미디어 테이블 윤한득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영상에 담아 세상을 바꾸는 착한 영상 프로모션 기업, <시리얼 컴퍼니>의 대표
밤새 영상기획을 하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잠재우
다 소위 초띄기를 해야 하는 처지... 이런 영상제작의
려고 페북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중 내 눈길을 사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나는 점점 멀어져가는 삶의 비
로잡은 푸른 빛 포스터, <기독미디어인 컨퍼런스>!
전을 넋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과연 이 길이 하나님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매일같
이 내게 원하시는 길일까? 아니 이런 삶이 정말 나에
이 밤샘편집을 하면서 내가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해
게 가치를 주기는 하는 걸까?
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나요?”라는 문구에 그만,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던 와중에 이름조차 생경한 <기독미디어인 컴퍼 런스>에 참석하게 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기독미디
3년 전, 나는 선한 영향력을 나누는 사회를 만들겠다
어에 발을 담가오신 백승국 목사님, 기독미디어 아카
는 비전으로 소셜벤처에 선발되어 <SEEREAL(가치
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유지은 PD, 거점을 통해 건강
를 보는) COMPANY>라는 공익캠페인 및 사회공헌
한 공동체를 만들고 계신 김지언 대표님과 오한웅 대
기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젊고 푸르던 마음도
표님의 최신 영상트랜드 MCN을 통한 공동체의 이야
잠시, 갑을병정 중에 정의 위치에서 항상 데드라인에
기까지 들었다.
일삶 테이블 후기
어찌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신의 자리에
어 테이블을 통해 만난 이들을 통해 보다 가치 있는 그
서 영상이라는 그릇을 통해 더 가치 있게 만들고 계
리스도인의 공동체적 사고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벌
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 함
써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
께, 미디어를 통한 공동체의 기틀을 만들어가려는 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도들이 돋보였다.
있느니라. (마18:20) 바야흐로 우리는 영상의 시대에 산다. 스토리텔링으 로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규정하는 이런 시대에, 미디
#공동육아 테이블 김미경 ◆ 숭실대00 자연을 사랑하며 도시 속 친환경 살림 (save)을 모색하며 생명과 지구의 살림에 대해 공부하는 주부라 하여 ‘살림공주’라 는 별칭으로 활동하고 있다. 37개월 아들 과 순백의 남편과 자연과 벗하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4명의 동네 맘과 4명의 아이들과 함
가치를 세우는 것과 함께하는 사람(공동체)이 얼
께한 짧은 공동육아의 경험을 돌아보며, 향후 육아
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와 자녀교육에 있어서 어떤 가치와 교육관을 가져 야할지 좀 더 명확해져가는 시점에 공동육아/자녀
오전 강의 후 소그룹으로 모여 자기소개 하는 시간
양육 관심자들과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 열린다는
을 가졌다. 모두 공동육아 관심자들이었다. 세 아
것은 희소식이었다. 그래서 관심자겸 부족하지만
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온종일 돌보는 가정,
발제자겸 참석하게 되었다.
아빠가 육아휴직으로 두 아이를 돌본 가정,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공동육아를 하는
오전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의미 있고 가
가정, 공동육아에 대한 관심으로 어린 아이를 데리
치 있는 일을 하다보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갈 수
고 온가족이 총출동한 가정... 그냥 그 자체로 감탄
있다’, ‘뜻이 맞는 사람과 5년이나 10년을 지속하면
이 절로 나왔다. 자녀양육에 있어서 저마다의 가치
그 공동체는 꼭 성공할 것이다. 기회보다는 사람이
실현을 위해 쉽지 않은 선택을 하고 용기를 내어
다.’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살아가는 일상의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용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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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만으로도 나에게 도전이 되었다.
로서는 그들의 용기와 의지를 조금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함께 지지고 볶고 하면
사례발표를 들으면서도 감탄이 이어졌다. 나는 동
서 엄마들의 성장을 경험하고, 또 아이들을 통한 열
네엄마들과 함께하는 작은 형태의 공동육아였지만
매와 기쁨을 맛보며, 날마다 도우시는 성령님의 임
내 뒤의 사례들은 갈수록 스케일이 커졌다. 교회와
재를 경험하면서 힘든 상황에서도 또다시 힘을 내
지역사회까지 아우르며 우리아이뿐 아니라 지역의
며 달음질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공동육아모임의 사례를 들으며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면 안 해도 될 육체적, 정신적
나는 이번 모임을 통해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누
수고와 희생을 감당해내는 엄마들이 참 대단해보
군가와 함께 가치를 담아내는 육아와 교육을 할 수
이면서도 고생스러워보였다. ‘엄마들의 인생은 무
있겠다는 격려를 얻었다. 일삶축제에서 만난 용감
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자
한 학사님들처럼 가치를 위해 나의 것을 내어주는
신의 인생을 내어주는 길을 걷는 엄마들이 마치 십
일에 용기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앞으로도
자가를 짊어진 예수들 같았다. 겉으로는 손해도 많
용기 있는 학사님들을 만나고 삶을 듣게 되는 또 다
고 피곤한 삶 같아 보이지만 작은 모임을 경험한 나
른 장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자녀교육 테이블 임지은 ◆ 한국해양대97 가현, 가율 오누이를 둔 ‘아이들 바라기’ 엄마
열 살, 일곱 살의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분
들을 주변에서 너무나 흔히 봅니다. 이건 아니지 싶
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내어 좋은 강연이나
으면서도 비슷하게라도 따라가야만 덜 불안한 이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현재
중적인 제 모습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제일 관심 갖는 분야는 다름 아닌 교육입니다. 무엇
를 나눌 장이 필요했습니다.
을 교육시킬지, 무엇을 교육시키지 않을지 고민하 는 게 어디 저뿐이겠어요? 교육이라는 마라톤을 마
지난 호 [소리]를 통해, “일삶축제” 자녀교육 테이
치 100미터 달리기하듯 하는 초등학생들과 그 엄마
블이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얼른 신
일삶 테이블 후기
청을 했죠. 토요일 하루 남편이 아이들과 잘 놀아주
확 틀어서 아주 다른 길을 갈 용기는 없더라도 끊임
기로 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아주
없이 책을 읽고, 객관적인 사고력을 기를 수 있어야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들이 참 반가웠고 멀리서 왔
겠다고 느꼈습니다. 건강한 생각을 가진 엄마들을
으니 좋은 시간 되라고 격려해주신 간사님들도 참
자주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갈 수 있다
감사했습니다.
면 더욱 든든하겠습니다.
오전에는 ‘행복한공부연구소’의 박재원 소장님 강
오후에는 여러 사례발표자 분들 중에 특히 ‘산별아’
의를 들었습니다. 두 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이 짧게
의 오명화 학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사님
느껴질 만큼 흥미로웠고 수많은 자료들은 놓칠까
의 이야기는 그저 고민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몸
봐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고성장
을 던져 살아내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아이들
기에서 저성장기로 변화하는 변동기에 있는데, 학
이 학령에 맞는 학습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부모들의 고성장기 ‘교육 출세론’은 변하지 않고 여
놀 친구와 골목과 놀이터도 그만큼 중요한 것 같습
기에 사교육산업이 한몫을 해서 더 견고하게 자리
니다. 학사님이 꾸리시는 마을공동체, 전래놀이터,
잡고 있다고 합니다. 이 현상은 너무 흔합니다. 아
참 귀하고 부러우면서도 녹록하지 않은 내 삶터에
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하교 후의 거의 모든 시간
서 비슷하게라도 어떤 걸 시작할 수 있을까 고민이
을 학원에서 보내고 있죠. 엄마들은 자기 아이의 필
되었습니다.
요에 따라 공부시키기보다는 온갖 정보와 엄마의 불안감을 섞어서 어릴 때부터 ‘뺑뺑이 돌리기’를 주
일삶테이블 이후에도 고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저 없이 하고 있습니다. 엄마들의 그런 모습을 사회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뭐라
흐름과 결부지어 듣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했고, 나
도 바꾸어 해야 한다는 마음이고, 같은 마음을 가진
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반성도 되었습니다. 노선을
엄마들과 함께하려는 용기인 것 같습니다.
#공동체 집짓기 테이블 조준기 ◆ 서경대01 자연을 사랑하며 도시 속 친환경 살림 (save)을 모색하며 생명과 지구의 살림에 대해 공부하는 주부라 하여 ‘살림공주’라 는 별칭으로 활동하고 있다. 37개월 아들 과 순백의 남편과 자연과 벗하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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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알고 지내고 2년 동안 지척에 모여
우물모델에 가깝다고 한다. 낮은 주택비용으
살던 세 가정이 있다. 한 달에 두 번 이상 비
로 구성원을 모으고 소개하면서 공동체 규모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우리는 드디어 지난 4
가 커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 우물모델은 울
월, 같은 건물에서 살아보기로 의기투합을 했
타리모델에 비해 경계가 없기 때문에 구성원
다. 8월에 신축하는 빌라에 입주하는 것을 목
이 확실치 않고, 이동도 잦으며, 그런 이유 때
표로, 연봉과 자본 및 부채 금액, 출퇴근 시간,
문인지 실제 인터넷에서 이 공동체의 공식 명
자녀교육 환경 등 각 가정의 필요와 기대치를
칭을 검색할 수가 없었다. 대신, 재정(수입, 지
이야기했다. 지역과 최대 가용금액을 바탕으
출, 차량 등)을 공유하는 세 가정이 이 공동체
로 빌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의
의 핵심 구성원이었다.
신축빌라들은 매입 시 초기 감가삼각비용이 공동체로 누릴 미답지로의 가치획득보다 더
죄가 구조화된 세상에서는 공동체 없이 하나
욱 커 보였다. 게다가 우리 세 가정이 그것을
님나라를 만들어 가기가 어렵고, 그래서 공동
뛰어넘을 만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충분치
체 구성원들이 함께 존재할 공간이 필요하다.
않았다. 결국 우리는 6월에 같이 살기로 했던
그 공간이 공동주택이 되고 교회가 되는 것이
계획을 멈추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 지난 6월, 우리는 각 가정이 자신의 편의/ 즐거움/개인가치만을 좇아 공동체를 이루려
하지만 아쉬웠다. 공동체적인 삶을 놓아버리
했기 때문에 비용이 문제되었을 것이다.
기가 싫었다. 나는 한줄기 소망을 찾을까 싶 어 “일삶축제” 공동체 테이블에 참가했다. 10
계속 ‘누구와 함께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살이 넘은 ‘이레하우스공동체’가 2기를 준비
해왔다. ‘더함공동체’는 “사랑하는 남녀가 만
하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
나 하나님나라를 만드는 것이 결혼이라면, 가
다. 또한 집짓기 강의 내용을 원칙적으로 적용
정과 가정이 결혼하여 하나님나라를 만드는
하여 공동체 하우스를 지은 ‘그루터기공동체’
것이 공동체다.”라고 말했다. 결국 공동체는
는 그 자체로 이번 테이블의 완성이었다. (테
다른 가정을 향한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하고,
이블 이름 자체가 ‘공동체 집짓기’ 아니던가).
다른 가정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사랑하는 것
그러나 32평형 아파트 전세가가 3천만 원에
이다. 누구와 함께 공동체를 할 것인지에 대
불과한, 지나치게 저렴한 주택가로 테이블 전
한 고민이 해결됐다. 호감 가는 가정, 그리고
체를 흔든 ‘경주 공동체(가칭)’는, 공동체 모델
호감 밑에 숨겨진 죄를 볼 때에도 함께 가고
링 이야기-우물모델vs울타리모델-로 4개 공
싶은 가정이 있다면 그게 바로 공동체로 함께
동체 패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할 수 있는 가정인 것 같다.
공동주택을 짓고 시작하는 울타리모델(경계 모델)의 고위험/고비용에 비해 경주공동체는
12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 서서울학사회
1. ‘일삶축제’가 10월 한 달 동안 세 번에 걸쳐 일일대회 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일 터와 삶터의 여러 이야기들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었 습니다. 참여해주시고 함께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 사드립니다. 2016년의 일삶축제도 기대해주시고 기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2. 11월 6-7일 학사회 실행위원회가 있었습니다. 2016년 의 사역을 준비해갈 실행위원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십시오.
● 북서울학사회
3. 11월 3째 주부터 5주간 GLC+의 공간신학을 위한 강의 가 진행 중입니다. 2016년에 있을 강의도 기대해주세요
● 60-70학사회 1. 지난 10월 24일(토) 가을야외행사가 있었습니다. 서울 대 정문 앞 만남의 광장에 모여서 출발하여 관악산 산 행, 산상 예배,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2. 2016년 신년회 및 총회가 열립니다. 많은 참여를 부 탁드립니다. 2016년 신년회 및 총회 일시: 2016년 1월 14일(목) 오후 7시 장소: 서교동 IVF중앙회관 지하 좋은땅 내용: 2016년 신년회, 6070 학사회 총회
● YGM(수도권지역 학사회) 1. 수도권 YGM 모임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중 앙회관 지하 좋은땅에서 있습니다. 수도권지역에 거주하 는 학사님들은 언제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문의: 윤혜정 간사 070-8275-6343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ivfygm
2. 12월 일정입니다. 12월 1일 성경강해 12월 8일 성경강해 12월 15일 나눔의밤 (12월 22,29일은 예배가 없습니다.)
주부학사모임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 좋은땅 공숙영 010-2405-9928
1. 지부별 홈커밍데이가 진행 중입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학사님들, 감사드립니다. 2. 11월 30일(월) 저녁 7시에 북서울IVF 총회가 IVF중앙회 관 좋은땅에서 열렸습니다. 3. 학사 기도부대가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4. 12월 5일(금)에 신입간사 수료식이 있습니다. 북서울 IVF는 이지현(성신여대), 한성원(경희대) 간사가 새롭게 새워집니다. 5. 소망나누기를 겸한 북서울지방회 학사수련회가 열립 니다. 회비 및 상세 일정은 추후 북서울 페이스북, 블로그 및 메일링 알람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일시: 2015년 12월 31일(목)~2016년 1월 1일(금) 장소: 천안고신대학원 주강사: 이강일간사 문의: 윤명은 간사, 070-8275-6328, nsgcf@ivf.or.kr
6. 학생 수련회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1년차 멤버들과 함 께하는 겨울수련회, WAC(winter advanced course)와 LTC가 아래와 같이 열립니다. · WAC&LTC 1주차 일시: 2015년 12월 28일(월)~2016년 1월 1일(금) 장소: 천안고신대학원 · LTC 2주차 일시: 2016년 1월 4일(월)~2016년 1월 8일(금) 장소: 경기도 양주시 예닮원
● 춘천학사회
● 영남동부학사회
1. 학교별 ‘가족의 날’에 참석해주신 학사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기 모임 안내입니다.
2.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춘천 엄마들 모임(아이야) 매월 첫주 목요일 오전 11시 30분 사공은혜(한림대95) 010-5367-9120 춘천 학사모임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 회관 김아주(한림대05) 010-6381-1635 ·수원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최경순(한림대94) 010-9536-0703 ·부천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박은혜(한림대00) 010-9703-8815 ·평촌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6시 / 평촌성심병원 김태준(한림대99) 010-5136-5877
● 원주학사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일 정을 참고해주세요. 카페인 매월 2,4째 주 목요일 장소와 시간 그 주에 공지 표영민 010-5117-0715 시니어 카페인 매월 한 번 장소와 시간 그 주에 공지 서동일 010-5332-0662
● 전북학사회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하늘가족교회 에서 학사 정기모임이 있습니다. 아래는 12월에 예정된 정기모임입니다. 일시: 12월 11일(금) 저녁 7시 30분 장소: 하늘가족교회(전주 덕진 파크볼링장 옆)
포항 주부모임(빨래터)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경주위덕삼성타운 김언정 010-4532-3980 울산 주부 학사모임 격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박경아 010-6572-2176 8090 울산대 학사모임 진동일 010-6560-2176
● 대구학사회 1. ‘inG school 4기’가 지난 9월 16일부터 11월 25일까지 11주 간 진행되었습니다. 수료식을 앞둔 참석자들을 위해 꾸준 한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inG school 4기’ 수료식 일시: 2015년 12월 5일(토) 오후 3시 장소: 대명동 계명대(미정)
2. ‘대구, 경북 청년 멘토 100명을 위한 의미경영콘서트’가 지난 11월 1일 저녁에 아멘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주 안에서 달려온 인생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 계획하 며, 더 나아가서 다음 세대를 살리기 위한 인간도서관을 준 비하는 모임으로, 이번이 세 번째 콘서트였습니다. 제4회 는 12월에 열리니 아래의 일정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2015년 12월 6일(일) 저녁 6시 30분 장소: 아멘교회
3. ‘커플피움학교 20기’의 수료식이 11월 14일(토)에 열렸습 니다. ‘행복! 그 이상의 꿈’을 주제로 5주간 진행된 이번 20 기에는 9커플이 참여했습니다. 4. 대구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IEF(교대학사 교사모임) 매주 월요일 오후 6시 · 가정피움팀(가정사역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8시 · 사회복지팀(사회복지관련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 평신도 지도자 남편모임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30분
· 예사모 아내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 나음누리
· 부부성경공부모임 격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에 함께 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 inG 수료자 모임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6시 30분
● 경남학사회 지역별로 정기모임이 있습니다. · 창원지역 책읽기 학사모임 매월 둘째, 넷째 주일 오후 5시~8시 김지현 010-2967-6959 · 창원지역 학사모임 매주 화요일 오후 7시~9시 30분 / 경남IVF 사무실 정은총 010-2418-2414 · 진주지역 학사모임 매주 주일 오후 7시~9시 류재한 010-8529-8216 · 인제대 동창회 모임 매월 1회(유동적) 박춘원 010-2578-1582 · 진주교대 동창회 모임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오후 7시 신상운 010-3137-5379
● 부산학사회 부산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 참여하 기 원하는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고해주세요. · TGIM(Thanks God It’s Monday) (1달에 2번 일상생활영성과 보냄 받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모임) 창원점 정수정 010-3620-9495 서면점 송민규 010-6774-5079 센텀점 최진욱 010-9677-8613 대구점(주부모임) 정수미 010-7538-7757 · E.M.포럼(복음주의목회자포럼) 매월 첫째 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해운대미래교회 문춘근 010-5504-5790 박순흠 010-8586-2535 · 마마클럽(주부학사모임) 매월 1회 임지은 010-4143-4936
·서울지역 삼성병원모임 한 달에 한 번 / 삼성서울병원 이은경 010-8892-8076 ·영남지역 대구모임 매주 / 장소 별도 공지 최선미 010-6248-8708 · 부산모임 한 달에 한 번/ 장소 별도 공지 이은정 010-3862-4189 · 모임문의 백성대 간사 070-8275-6345
58 편집인의
메아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지난 10월 9일, 한글날. [소리]의 편집위원들과 이전부 터 계획했던 전주로의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출발했는데, 맙소사! 도로가 꽉꽉 막혀 평소 보다 두세 배 걸려서야 겨우 전주에 도착했고, 약속 시 간에 간신히 맞춰 전북의 학사님들과 만날 수 있었습 니다. 그렇게 편집위원 8명, 전북의 학사님 5명이 북 적대며 전북IVF회관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서먹 서먹하던 분위기도 잠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사이 기획회의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죠. 특별한 이야 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 신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학사님들 한분 한분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작비로 사용됩니다.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2015년 9~10월 후원자 명단 곽지영 국효숙 권도균(*2) 김선미(*2) 김재원 김종기 김종수-구 한나(*2) 김지은 남은경(*2) 명관선(*2) 민은혜(*2) 박정현(*2) 박 창재(*2) 송인규(*2) 여운성(*2) 오규덕(*2) 윤정범-지은실(*2) 이상엽(*2) 이원경(*2) 임정하(*2) 전명환 전선애(*2) 정민경(*2) 정성구-윤정은 정재성(*2) 조창훈(*2) 최수연(*2) 허성호(*2) 황 일규-이은원(*2)
이 반짝반짝 빛나 보였습니다. 그후엔 따뜻한 콩나물 국밥을 나누고, 가이드를 자청한 학사님을 따라 고즈 넉한 한옥마을의 야경을 누렸습니다. 다음날 숙소에 서 본 옥정호의 일출도 참 근사했죠. 귀한 연휴의 시간을 쪼개어 기획회의에 참여해주셨던 주호석, 임하정, 오대원 학사님은 이번호의 필자로도 참여해주셨습니다. 기꺼이 전주의 이곳저곳을 소개해
강릉(*2) 경기남(*2) 경남(*2) 경인(*2) 남서울(*2) 대구(*2) 대 전중부(*2) 동서울(*2) 부산(*2) 북서울(*2) 서서울(*2) 영남동부 (*2) 원주(*2) 전북 춘천(*2) 충남(*2)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주시고 맛난 ‘길데리아’ 버거까지 대접해준 문성실 학 사님도 계셨죠. 우르르 몰려간 편집위원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환대해주시고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 리고 2015년을 함께 달려와 주신 모든 필자 분들의 수 고에 감사의 맘을 꾹꾹 담아 전합니다. 그때 나눈 이야기 중 자신의 가치를 따라 다른 길을 선택한 학사들의 이야기를 보며, 자신의 선택 또한 격 려 받는다던 학사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 을 것 같습니다. 2016년에도 학사님의 삶을 풍성히 길 어올려 전하는 [소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도 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살이 속에서 누군 가에게는 한줄기 빛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민혜경│편집인│sori@ivf.or.kr
제33권 제6호 통권223호 발행일 2015년 12월 1일 발행처 (사)한국기독학생회 학사사역부 주소 (0403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서교동) IVF 중앙회관 전화 070-8275-6313 팩스 02-333-7361 발행인 주상윤 편집장 이시종 편집인 민혜경 김경아 편집위원 국효숙 김기인 김지은 박정현 오한웅 이상엽 조창훈 한병선 편집디자인 문이선 김아롬새미 표지 이재웅 제작 김효영 인쇄 예원프린팅
2016년,
시심이 격월간으로 발행됩니다! 시심 독자님, 안녕하세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시심을 통한 말씀 묵상으로 일터와 가정, 그리고 각자 부르신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당신을 격려하고 축복합니다! 내년부터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합니다. 97년 창간부터 월간으로 발행되던 시심이 2016년부터 격월간으로 발행됩니다. 시심의 변함없는 동행자로 함께해 온 독자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다가오는 새해에도 새로워진 시심과 함께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평안을 빌며, 감사합니다. 2015년 가을 드림
달라진 시심 정기구독하고,
시심 한 권 더 받으세요! ■ 2016년 시심 격월간 발행 기념 이벤트! 1년 이상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는 분(구독 연장 포함)중 선착순 300분께는 구독기간을 2개월(1권) 연장해 드립니다.
■ 정기구독료 □1년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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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로운 시심의 정가는 권당 4,000원입니다. www.ivp.co.kr/tree 에서 신용(체크)카드로 결제 가능합니다.
■ 기간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입금 완료 기준). ■ 문의 02-338-9825, sisim@ivp.co.kr, facebook.com/withsisim, www.ivp.co.kr/tree
・IVF시심사역부
2015년 ECPA Christian Book Award 어린이 도서 부문 최종 후보 선정작! 편지 받는 것을 싫어할 아이가 있을까요? 아이들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 그림책을 통해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이야기들을 듣고 또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내신 편지를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매혹적인 18개의 성경 이야기가 하나씩 눈앞에 펼쳐질 때마다,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특별한 사랑의 메시지를 읽을 순간을 흥미진진하게 기다릴 것입니다. “하나님께 보내는 사랑의 편지”라고 적힌 마지막 편지 봉투를 열고서는 직접 하나님께 편지를 적어 보는 즐거운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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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니스 넬리스트 지음 | 소피 올소프 그림 홍종락 옮김 | 양장 76면 |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