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31 I 2017. 04+05
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 │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 EARC 2017 한국대회가 궁금하다
나의 영웅, 나의 웬수들 ⓒ 이재웅 | 상명대98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소리정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04 07 10 14 18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은 행복의 씨앗»김진경 1980년대 어느 워킹맘의 자화상»김성순 육아휴직 권장서»이지연 겁나 빡센 워킹맘의 공동육아 추천사»최효미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박소현
소리지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22 27 30 32 34 37 40 42
말씀산책»김유복 지금 다시, 헌법이다»정한신 미생:종로모임 이야기»허대리 우리 결혼할까요?»호욱,이은경 ‘오Chef’의 오늘 뭐 먹지?»오한웅 재외학사통신원»이상훈 함께 이어달리기»김종미 쉼으로 작은 축제를 열다»조창훈
소리이음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45 49 51 53 55 57 58
소리가 만난 사람»정재성 또 다른 봄, 새로운 시작»송혜원 그리스도인이자 정당원으로 사는 이유»임하은 EARC 2017 한국대회가 궁금하다»김성우 안테나 팟캐스트 편집인의 글
소리
깨끗하고 맑은 소리
정음
연초에 세 아이의 엄마였던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들, 즉 워 킹맘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죠. 한동안 워킹맘들은 이 사연에 너무
워킹+맘= 죄인인가 신(神)인가?
마음 아파하며 자신들이 “여기서도 죄인, 저기서도 죄인”이라고 자 조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또한 ‘일가정 병행 정책’이 말로만이 아 니라 현장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워킹맘들은 어떨까요? 마치 전쟁터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 고 싶었습니다.
04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은 행복의 씨앗»김진경 07 1980년대 어느 워킹맘의 자화상»김성순 10 육아휴직 권장서»이지연 14 겁나 빡센 워킹맘의 공동육아 추천사»최효미 18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박소현
4+ 5
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은 행복의 씨앗 김진경 ◆ 대구대 91 저는 여린 마음을 가진 첫째 딸 시은이 와 당찬 둘째 딸 민지의 엄마입니다. 현 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대전직업능력 개발원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직업교육 을 하는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엄마(워킹맘)”라는 단어는 나 스스로를
이렇게 엄마라는 기쁨과 행복이 꿈 같이 지나고
돌아보게 한다. 나는 ‘엄마’의 자리보다는 ‘직장인’
복직의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고민에 쌓였다. 아이
이라는 자리가 익숙하다. ‘엄마’의 자리는 왠지 나
를 돌봐 줄 곳이 필요했다. 집은 대전인데 인사이동
를 작아지게 만든다. 열심히 한다고, 경력이 쌓인
으로 대구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2살 된
다고 잘 할 수 있는 자리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혼자 대구 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생
가까스로 영동에 있는 친언니가 아이를 돌봐주겠
활 8년차가 되는 해인 30대 후반에 화려한(?) 싱글
다고 나섰다. 나는 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복직을
의 삶을 접고 결혼을 했다. 신혼 때는 남편의 임용
할 수 있었다.
고시 준비를 위해 아이 갖는 것을 보류했다가, 결혼 3년차가 되는 해에 드디어 나는 엄마가 되었다. 오 랜 시간 기다렸기에 더 감사했다.
복직하고 월요일이면 나는 대구로, 아이는 영동 으로, 남편은 대전에서 각각 한주의 삶을 시작했다.
임신 초기에는 입덧이 심해 두 달 정도 병가를 번
복직한 후 한 달 동안은 매일 저녁 눈물로 시간을
갈아 사용하며 근무를 해야 했다. 다행히 함께 일
보냈다.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
하는 교사들의 배려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책감으로 힘들었다. ‘아이를 두고 혼자 대구에서 무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직장은 다행스럽게도 육아
엇을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나 자신을 무력한 엄
휴직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출산 후에 육아휴직
마로 만들었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우리 가족은 마
을 신청했다. 1년 휴직 기간에 아이와 함께 보낸 시
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것처럼 격한 만남을 가졌
간은 너무나 행복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주께
다. 주말이면 아이는 힘든 나를 위로하듯, 그윽한
서 생명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신비에 흥분하고 감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엄마, 난 괜찮아요! 힘내세
사하며 지냈다.
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조카를 친자식처럼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은 행복의 씨앗
돌봐주는 언니가 있었기에 직장생활이 가능했다. 한
고 싶은 생각에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다. 사
국사회에서 가족의 지원이 없다면 워킹맘이 직장 일
회적으로는 출산을 장려하지만 직장에서는 육아휴
에 집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직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닌지라, 두 번째 휴직을 할 때는 동료 교사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그래도 직장
그해 겨울, 대전으로 인사이동이 있었다. 4개월의
에 눈치가 보여 출산휴가 3개월도 제대로 사용하지
이산가족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대전에서 함께 살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비하면 휴직을 한다는 것만
수 있으리라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아이를 대
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전으로 데려와 어린이집에 보내겠다는 계획이 잘 추
첫째의 육아휴직 때와는 다르게 두 명의 아이를 돌
진되지 않았다. 당시 어린이집 사건사고 소식이 연
보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둘째아이가 기
이어 들려온 탓이었다. 주위에서도 어린이집보다는
질적으로 예민한 편이어서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
이모 집이 아이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나
주는 일은 만만치 않은 노동이었다. 첫째아이는 월
와 남편은 한 해 더 아이를 언니에게 맡기기로 했다.
요일마다 가족이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엄마가 집에
이렇게 우리는 또 다시 1년 동안 주말가족의 삶을 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다. “엄마! 나 이제 이모
아야 했다. 서운했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아이를 위
집에 안 가는 거야?”라고 반복해서 확인까지 해가며
해서는 이모 집이 최상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좋아했다. 첫째의 어린이집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
어느 날, 아이가 이모에게 “엄마는 왜 나를 이모 집
여하여 엄마의 존재를 인지시켜 주었고 전업주부로
에 보내지? 엄마 미워!”라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그
의 역할에도 최선을 다했다. “시간아 멈추어다오!”를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
외치며 달렸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다. 부모로서 최상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에게는 아픔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미안했다.
다시 복직이었다. 6살, 3살인 두 아이를 두고 나는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이에게는 최상의 선택이
다시 직장에 나가야 했다. 이번에는 가족이 헤어지
아니었던 셈이다.
는 일은 결코 안 된다는 원칙으로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베이비시터에게 양육을 부탁했다. 감사하게
첫째가 3살이 되는 해에 둘째를 임신했다. 남편의
도 좋은 유치원 선생님과 베이비시터를 만나 아이들
가족계획은 ‘둘은 있어야 한다’였고, 나는 ‘하나만 낳
이 잘 적응했다. 어린 자녀를 둔 워킹맘의 간절한 소
아 잘 기르자’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 둘을 양
망은, 좋은 양육자를 만나는 것이다. 좋은 양육자를
육할 자신이 없었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은 더욱 자
만나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신이 없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모습을 한 번도 상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어서 한정된 에너
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 둘째의 임신 사실
지를 적절하게 배분하여 사용해야 한다. 직장과 가
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우울감에 빠졌다. 돌발 상황
정에서의 에너지 분배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내가
(?)을 해결할 답이 보이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은 일
하고 있는 일은 장애인들에게 직업교육을 시키고 그
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교육을 발판으로 취업을 해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
그래도 시간은 흘러 다음 해, 둘째를 출산했다. 나는
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일의 특성 상, 직장에
두 번째 육아휴직을 했다. 두 아이의 양육을 위한 시
서 많은 에너지를 소진할 수밖에 없다. 퇴근 이후에
간이 필요했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야 했다. 첫째
도 학생과 보호자와의 상담전화로 많은 시간을 써야
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한다. 집에 와서도 이어지는 직장일은 아이들과 함
소리 정음
6+ 7
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께 하는 시간을 줄어들게 만들었다. 귀가 후에는 철
주고 지지해 주는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
저하게 ‘ON/OFF’ 스위치를 바꾸라는 전문가의 말을
육아휴직 기간에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와 5
참고하여 급한 상담 이외에는 문자를 통해 안내하
세가 된 둘째와 여행을 많이 다녔다. 동네 도서관도
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보다 많은 시
같이 다니고 주요 시설 관람도 하고, 아이 학교일에
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유치원 행사는 주위의 인
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마음에 갖고 있던 엄마
력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남편과 서로의 시간
로서의 죄책감을 깨끗이 씻어 버렸다.
을 조절하여 참석했고, 야근이 필요한 경우는 베이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좋아?”하고 물어본 적이
비시터의 도움을 받았다. 부모가 좌충우돌, 허둥지
있다. 일하는 엄마가 좋다는 첫째와 집에 있는 엄마
둥 하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가 좋다는 둘째,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그러면 엄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해에 다시 대구로 발령
마가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집에 있으면 되겠다”
이 났다. 일정한 주기로 타 지역 인사발령이 이루어
라고 말해 주었다. 일하는 엄마가 좋다는 첫째에게
지는데 다시 그 시기가 된 것이다. 보살핌이 많이 필
고마웠다. 어린 시절을 이모 집에서 보내게 한 것에
요하다는 초등학교 1학년. 나는 내가 과연 직장생활
대해 무거운 마음의 짐을 갖고 있었는데, 일하는 엄
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마를 격려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직장이냐, 가족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어느덧 첫째는 4학년, 둘째는 1학년이 되었고 나
긴 고민 끝에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는 대전으로 발령을 받아 주말가족의 생활을 청산
내렸다. 대구 인사발령 직후 휴직서를 내는 것에 대
했다. 여전히 나는 워킹맘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
해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선택할
다. 친정엄마의 많은 도움과 남편의 적극적 지원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휴직밖에 없었다. 휴직으로
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인해 결원이 생겨 업무가 가중되는 동료 교사들을 배려할 마음의 여력도 없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했던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본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고, 그곳에서 에너지를 얻었고, 자신감을 찾았다. 그것이 선택의 갈림길에
난 지금도 ‘직장이냐, 가족이냐?’라는 이분법적 사 고에 갇혀 있다. 무엇을 선택해도 만족스럽지가 않
서 퇴직이 아니라 휴직을 택하면서까지 나의 일을 유지한 이유였을 것이다.
다. 일하는 엄마로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스스로 행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야기 해주
복하다 느끼며 사는 것이 여전히 나에게는 힘든 과
고 싶다. 주위 인력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직장
제이다. 그것은 아마도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은 과한
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휴가, 휴직, 시간제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근로 등등)를 최대한 이용하여 가정을 위한 시간을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나 답을 찾지 못해 직
반드시 확보하고 아이들에게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
장생활을 그만두고 싶을 때,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을
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하든지 자신이 선택한 것이
격려해 주었다.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
최상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라며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아이들은 행복한 엄마를 보면서 행복해 한다.
용기를 주었다. 게다가 가사일과 양육도 적극적으
일과 자녀양육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씨
로 도와주었다. 일을 통해 얻는 삶의 의미를 공감해
앗과도 같다.
1980년대 어느 워킹맘의 자화상
1980년대 어느 워킹맘의 자화상
김성순 ◆ 덕성여대70 두 아들을 키우며 1982년부터 현재까 지 온누리대산약국을 운영해왔다. 관 악구 약사회 자문위원이자 대한약사회 이사이며, 한국여약사회 회장으로 역할 을 감당하고 있다. 현재는 두 아들을 모 두 장가보내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저는 현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 사입니다. 학창시절엔 문과를 공부했었는데, 치과의사였던 큰 오빠가 앞으로는 여성도 직업을 가져야한다며 약대로 지원할 것을 권유해 이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1982년에 약 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니 대학원 졸업 직후부터 직장생활을 시 작한 셈이네요. 그때 제 나이가 결혼 적령기라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결혼식을 올렸고 시부모님과 시누이와 함께 살며 신혼 생활을 보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하게 되어 첫아이 를 갖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집과 가까이 있는 제약회사에 다 녔는데, 배가 부르고 아이를 낳는 날까지도 회사에 계속 나가 야 했습니다. 첫아이는 남자아이였지요. 시아버님은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분이라 첫 손주를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난 다음 다시 회사로 나가게 되어 아들은 시어머님이 돌보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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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아 주셨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둘째도 갖
주로 시어머님이 저 대신 잘 돌보아 주셨
게 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신림동으로 이
지만 아이들 소풍 때면 저는 약국 때문에
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회사가 너무 멀
따라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는 시어
어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졌고, 결국 퇴
머님이 소풍날 같이 가주셨고 어떤 때는
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따라간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같이 따라온 아이는 우리 아이밖에 없었
3개월을 쉬었는데 집에 있는 게 익숙하지
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않더군요. 결국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습니 다. 당시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많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커가는 소중한 시
지 않았지만 저희 집은 어렸을 적부터 형
절, 약국 문을 닫고서라도 아이와 소중한
제끼리 평등하게 자랐고 당연히 능력이 되
추억을 쌓았어야 했다고 크게 후회하고 있
면 여성도 직장생활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습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초등학교에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시어머님이 돌보아
다닐 때, 학교에서 학부모의 참석을 바라
주셨고 도우미 아주머니도 상주해 있었습
는 행사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던 기억이
니다. 퇴근 후 저녁이 되면 큰아이는 시부
납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치를 때는 집이
모님이 데리고 주무셨고 작은아이는 제가
아닌 약국에 조그마한 상을 펴놓고 문제
데리고 잤습니다.
집으로 공부를 시켰던 적도 있습니다. 저 녁에도 늦게 들어가다 보니 엄마 얼굴 한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다시 회사
번 제대로 못 보고 아이들이 자랐습니다.
를 그만두게 되었고 이번에는 약국을 개
그래서 엄마와의 추억은 별로 없고 음식도
업했습니다. 개인약국을 운영하면 아이들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그리워하는
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리라는
아이들이 되었네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
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도시락도 제
습니다. 약국은 잘 되었지만 바쁘고 시간
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급식을
이 없는 것은 여전해서 저와 남편은 주일
먹으니 도시락 걱정은 덜하겠지요. 옛날에
만 겨우 지키는 1시간 예배자가 될 수밖에
는 약국이 아침에 일찍 열고 밤에 늦게 닫
없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박사과정을 마치
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고 학위를 받아 전임강사가 되어 안정적인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아이는 초등학
었습니다. 안쓰러운 일이었지요. 토요일
교를 다니고 작은아이는 유치원에 다녔는
이 되어야 네 식구가 방에 모여 늦게까지
데,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가니 엄마의 손
TV를 보기도 하고 밤참을 먹으며 이야기
길이 정말 많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아
나누던 기억이 있습니다.
들만 둘인지라 딱히 까다롭지는 않았어요.
1980년대 어느 워킹맘의 자화상
큰아들이 고3이 되었을 때, 국가에 한약조
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제 시험 제도가 생겼습니다. 저는 약국 문을
없었던 지난 시간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워
닫고 나면 밤을 새우면서 공부했습니다. 어
킹맘으로서 장점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나
느 날, 늦게 귀가한 남편이 고3 아들은 쿨쿨
가정에서 남녀평등하게 서로 존중하며 생
자고 엄마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서로
활할 수 있었고 워킹맘으로서 자부심을 가
바라보면서 웃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래
지게 되었습니다.
도 지금 돌이켜 보니 두 아들은 무사히 대학 원도 졸업했고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 는 평범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이들이 일하는 엄마를 든 든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도 주지 않고 꿋꿋
지금은 아들들의 신앙이 걱정입니다. 저는
이 일하는 엄마가 버팀목이 되어주니 친구
신앙생활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 여기고 철
들이 부러워한다고 하네요. 요즘도 어떤 때
저히 주일성수를 하면서 교회를 섬깁니다.
는 시간에 쫓겨 사는 게 힘들어서 모든 것을
그러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가 약국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
하느라 주일학교에 데려다 놓고 지켜봐줄
만 정년이 70세라 생각하고 지금까지 건강
수 없어서 아이들의 신앙을 잘 챙겨주지 못
하게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
했습니다.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갔다가 그
는 앞으로도 이렇게 평생 주님과 동행하는
냥 돌아와 버리는 일이 잦았고, 지금도 스스
삶, 성경에 나오는 안나와 시므온같이 평생
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일에
기도하며 교회를 떠나지 않는 삶을 살리라
교회에서 큰아들 내외를 만나기는 하지만
꿈을 꿉니다.
아직 믿음이 없는 상태이고, 작은아들 내외 는 어쩌다 한 번 정도 교회에 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들들과 같이 있지 못 하고 믿음에 소홀히 했기에 제 책임이라 생 각하고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게 소원이 있다면 믿음생활 잘 하는 자손들이 되었으 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재의 워킹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 습니다. 직장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 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엄마의 손길이 필 요할 때 같이 있어 주어야 합니다. 그 시간은 절대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명백한 사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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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권장서 이지연 ◆ 연세대00 부부상담가를 꿈꿨으나 육아의 현실 앞 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는 5년차 연구원. 아동구호단체에 다니는 남편과 5살, 7살 자매와 함께 살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이 해하며 알아가는 시간을 좋아하고, 대안 적인 삶에 귀를 팔랑이며 살고 있다.
2013년 어느 날 A는 전업주부다. 이제 막 기기 시작한, 등에 센서 가 달린 둘째를 업어 재우고 이유식을 챙겨 먹이면 서, 틈틈이 두 살 위 첫째아이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하루가 가버린다. 두 아이의 상태가 안 좋으면 같이 울어 젖히는 통에 둘을 한 팔씩 안고 얼러주어야 하 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저녁 무렵이 될 때부터 시계 만 쳐다본다. B가 퇴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B는 종종걸음으로 퇴근 인파로 가득한 지하철을 빠져 나온다. 집에는 B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는 A와 아이들이 있다. 집에 도착했지만 문을 여는 데 머뭇거린다. 마음을 추스른다. 열린 현관문 사이로 보이는 건 소파에 축 늘어진 A의 다크서클. 격동의 하루를 증명하듯 어지러운 거실과 설거지통에 수 북한 그릇. 어느새 둘째는 B에게로 기어와 발에, 첫 째는 손에 매달린다. 2교대가 시작된다. 여기서 B는 나고 A는 남편이다.
2013년 둘째의 출산휴가가 끝났을 때부터 남편은 열한 달 동안 휴직을 했다. 그 중 반년은 첫째를 어 린이집에 보내기 전이라 남편은 하루 종일 아이 둘 과 지냈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후 남편은 부쩍 얼굴 에 그늘이 지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 자주 몸살이 나고 편도가 부었다. 감기가 심해져 급기야 입원까 지 한 적도 있었다.
시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씀만 하시고, 남편에게는 어서 복직하라고 종용하신다. 친정 부모님도 젊을 때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며 혀 를 끌끌 차신다. 남편 회사에서는 수시로 언제 복귀 하느냐는 전화가 걸려온다. ‘남성의 육아휴직’과 같 은 캠페인에서 종종 보이는, 귀여운 아이의 손을 잡 고 행복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아빠의 현실은 결국 이런 것이었다.
육아휴직 권장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남편의 육아휴직 계획은 첫째가 태어난 후 1년 뒤, 내가 취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둘째를 낳으면 본인이 꼭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 했다. 가장 큰 이 유는 ‘육아는 부부 공동의 몫’이라는 생각 때문이었 다. 남편은 남녀 역할에 대해서 구분을 두지 않는 편 이다. 물론 능력의 차이에 따라 일을 분담해야 한다 는 생각은 있었다. 예를 들어 병 따기나 고장 난 집 기 수리 그리고 요리는 소근육과 미각이 발달한 남 편이, 재정 관리나 정보 수집 등은 간발의 차이로 더 꼼꼼한 내가 맡았다. 하지만 그밖에 청소나 설거지, 빨래, 짐을 옮기거나 바느질을 하는 일 등의 모든 영
하고 미래를 고민해보고 싶어 했다. 아이를 유모차 에 태우고 동네를 거니는 여유를 상상하며 육아휴 직을 기다렸다고 했다(그래서 육아 현실은 더욱 참 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도 첫째를 낳고 1년 동안 오롯이 아이와 함께 보 냈던 시간이 힘들긴 했지만, 뒤돌아보니 그만큼 보 람도 있었고 소중하게 느껴져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 저변에는 ‘육아가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당신도 한번 느껴 보라’는 음흉한 의도도 있었다.
육아휴직을 하기까지
역은 공동의 책임이었다. 그래서인지 양육 또한 공
사실 남편은 NGO에서 일하고 있어 일반 회사보다
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
육아휴직이 쉬운 편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물론 여기서 신념이 체력을 앞서지 못하는 경우
남자 직원 중 육아휴직이 끝난 뒤 복직한 직원은 거
가 많았다는 점은 밝혀둔다. 주말 요리는 아빠 담당
의 없었고, 그나마 돌아온 직원도 원하는 보직으로
임에도 늦잠을 자느라 내가 밥을 짓게 되기 일쑤였
복귀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남자 직원이 육아휴
고, 밤새 아이의 울음을 못 듣고 태평하게 자는 남편
직을 고려한다는 것은 잠정적 사직 의사와 비슷하
에게 나는 따가운 눈총을 보내기도 했다).
게 받아들여졌다. 급기야 휴직 직전 남편의 상사는 ‘조직을 위할 줄 모른다’라든가 ‘개인주의적’이라는
그리고 남편은 나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이
둥, 이러저러한 훈계로 남편의 휴직을 만류하려 했
가 예뻐 어쩔 줄 몰라 하고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다. 당시 남편이 팀 내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원이기
나보다 훨씬 더 속상해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나
도 했고 팀장 제의를 받은 직후였기에 휴직을 한다
의 모성 부족을 의심하기도 했다. 아이와 해보고 싶
는 것이 더더욱 조직을 등지는 것처럼 보이는 분위
은 것도 많은 남자라, 수유와 같은 엄마만이 할 수 있
기가 되어버렸다.
는 육아 영역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부쩍 커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휴직기간만큼이라도 아 이들과 실컷 부대끼며 지내보고 싶다 했다.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도 있었다. 어르신들의 생각 으로는 일하는 사람이 ‘고생하는 사람’, 아이를 보는 사람은 ‘집에서 쉬는 사람’이다. 특히 남편이 집안의
이와 함께 일을 잠시 놓고 재충전을 하고 싶다는 원
경제를 내게 맡기고 집에서 ‘쉬기로’ 결정했다고 느
대한 꿈이 있기도 했다. 미뤄뒀던 취미생활도 다시
끼시는 양가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경제적인 이
시작해보고 짬을 내어 무언가를 배워볼 수 있지 않
유도 컸다. 한창 같이 벌어 돈을 모아야 할 젊은이들
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막연히 현재의 삶을 평가
이 번갈아 가며 쉰다니.
소리 정음
12+ 13
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하지만 남편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하는 특성 은 뚝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가치에 헌신하
모임들을 통해 남편의 중요감과 소속감이 채워질 수 있었던 듯하다.
는 스타일의 사람이라 그 일이 옳다고 여기면 무모 하리만큼 앞뒤를 재지 않는다. 그래서 진심인 듯 아 닌 듯 ‘안 되면 퇴사하지 뭐’라는 말과 함께 휴직계 를 냈고, 부모님께 육아휴직이 왜 우리 가정에 중요 한지 설명하며 설득을 가장한 통보를 드렸다. 남편 의 휴직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육아휴직 기간에 남편은 무엇을 했나 당연히 남편의 24시간은 육아로 점철되었다. 남편
육아휴직 후 남은 것 결국 회사의 부름에 못 이겨 1년을 한 달 남기고 복직하면서, 남편은 두 가지를 아쉬워했다. 육아를 너무 힘들게만 느끼며 보내느라 아이들과 실컷 놀 지 못한 것과 자기만의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이 좀 더 큰 후에 다시 한 번 더 육아휴직을 시도해보 려 하고 있다.
이 누린 유일한 호사는 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뒤 잠 깐의 산책이 전부였다. 여느 전업주부들이 그렇듯,
휴직을 통해 얻은 것도 있다. 일단 살이 빠졌다. 그
다음 날 종일 피곤해질 걸 알면서, 아이들을 재우고
동안 숱한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해왔지만, 육
난 뒤의 자유시간이 아까워 평소엔 눈길도 주지 않
아만큼 효과가 크진 않았다. 회사에서 습관처럼 먹
던 드라마를 밤늦도록 보기도 했다.
던 간식이 빠지기도 했고, 아이들을 보면서 입맛인 지 식욕인지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줄기차게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모임을 찾
집 밥을 먹게 되니, 외식을 하면 오히려 배탈이 나
아다니기도 했다. 나보다 아줌마들과 더 쉽게 친해
는 건강한 위장을 갖게 되었다(회사에 복귀하면서
지는 그는 주부모임에 끼어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금방 나트륨에 단련된 몸으로 돌아갔지만).
모여 일상을 나누는 주부 모임에서 위로와 격려를 받았고, 모처럼 아이와 함께 편하게 외출하는 그 날
그리고 주부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깊어졌다. 남
이 기다려진다고도 했다. 주부모임에 다녀온 날은
편의 잦은 출장이나 야근으로 독박육아를 하는 주
얼굴에 생기가 돌며 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부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곤 했다. 스스로 휴직
쏟아내곤 하였으니, 육아에 찌든 남편에게 활력소
전 ‘아무 생각 없이’ 야근했던 것을 무척이나 민망해
가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했고, 조금이라도 칼퇴를 못하는 날에는 걸려오는 전화에서 미안함이 넘쳐흐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
집에서 가까운 대학의 IVF 예비졸업생들을 초대
였다(물론 이전에도 퇴근이 늦는 것을 미안해하긴
해 소그룹 모임도 시도했다. 그네들에게 실제로 유
했지만, 나는 뒤늦게 그것이 온전하지 않은 사과였
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그들의 고민을 같
음을 알게 되었다). 집에 와서 아이를 재운 뒤 일을
이 고민하며 도움을 주려는 모습은 진지했다. 사람
하는 날이 많아졌고, 팀 내 눈치를 받으면서도 야근
의 자존감을 세우는 두 가지가 중요감과 안정감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라고 했던가. 육아에 지친 와중에 이러한 크고 작은
육아휴직 권장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남편이 육아와 살림을 온전
더불어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한
히 자신의 몫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전
다는 죄책감이 컸는데, 남편의 휴직이 이를 많이 덜
에도 내가 ‘상위 3프로 남자’라고 인정할 정도로 남
어주었다. 한창 엄마아빠를 찾는 아이들에게 아이
편은 살림에 적극적이었다. 겉으로는 가사와 양육
아빠가 함께 있어준 것, 그리고 아이를 돌보시느라
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미묘하게
힘드셨던 어머님에게 쉬는 시간을 드린 것 모두 누
집안일의 주 담당자는 나, 그리고 이를 돕는 남편으
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아파도, 아
로 구분되어 있었다. 애초에 1년간 전업으로 첫째
이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도, 제3자에게 부탁
를 키우면서 내가 살림과 육아의 원칙과 노하우를
하며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니 보다 가벼운 마음으
더 많이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렇게 저
로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게 되고, ‘입 아프니 내가 하 자’ 싶어 남편에게 부탁하기보다 내가 나서서 후다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휴직은 특혜와 같은 시간이
닥 해치우기도 했다. 그럴수록 남편은 지시를 기다
었을 것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아빠를 둔 덕에, 그
리는 수동적 가사참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휴직 기
시기 아이들의 사진이 가장 많다. 첫째가 어린이집
간 살림의 주 담당자가 남편으로 바뀌면서 남편의
에 적응할 때 아빠가 곁에 있어준 것도 아이에게 큰
눈에도 살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외출할
힘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기질적인 부분도 있겠지
때 아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챙겨달라고 요청하
만, 아빠가 주로 키운 둘째는 첫째보다 훨씬 더 많
거나, 세탁기 돌릴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거나, 아이
이 아빠를 찾는다. 유독 아빠에게 살가운 둘째는 아
들 양치를 시켜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남편은 어
빠에게도 큰 기쁨이다.
느새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나와 전적으로 대체가능 한 가사 인력으로 변모해 있었고, 좀 더 바지런한 남 자가 되어 있었다.
남편이 말하기를, 휴직으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한 사람이 자라는 데 누군가의 전폭적인 수고와 헌 신이 따른다는 것을 몸소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는
나도 변한 게 있다. 남편들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점이라고 한다. 이는 육아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되었다. 왜 가끔 남편이 퇴근 후 카페에 있으면서 업
태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회사 동료나 아래 직
무 때문이라고 둘러댔는지, 왜 그렇게 아이가 어린
원들을 대할 때도 그 사람을 키우는 데 든 수고를
남편들이 야근에 매달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
헤아리며 상대를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한다. 그래
을 것 같았다. 퇴근 후 문을 열자마자 밀려드는 육
서인지 그는 남자가 석 달만이라도 육아휴직을 하
아와 지칠 대로 지쳐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남편을
도록 법제화된다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입버릇처
보기만 해도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럼 말하면서 다른 아빠들에게 열심히 육아휴직을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런저런 잔소리까지 해댔으
권하고 있다.
니 남편에게 얼마나 집이 쉴 수 없는 공간이었을까 싶어 미안해졌다.
소리 정음
14+ 15
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겁나 빡센 워킹맘의 공동육아 추천사 최효미 ◆ 이화여대99 40개월 사춘기 여아 나옹 엄마. 긴 여행 을 다녀와 다시 긴 시간 준비한 스타트업 을 말아먹고, 엄청난 대출을 갚느라 ‘열일’ 하는 생계형 어미. 느슨한 마을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량처럼 어울려 사는 날 을 꿈꾼다.
안녕하세요, 워킹맘 동지 여러분! 더럽게 빡센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 다. 저는 종일 서울 명동에 서식하는 삼십대 후반의 평범한 직장인 엄마 최 과장입니다. 보통의 회사에서 여기저기 가장 써먹기 좋은 연차라, 상당 히 숨가쁘게 일하는 직장인 축에 듭니다. 광화문의 한 스타트업에 서식하 는 동갑내기 팀장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40개월짜리 딸 하나, ‘나 옹’이 있습니다. 육아에 있어 양가 부모님 도움은 거의 받을 수 없는 상황 에서, 나옹의 터전(공동육아 어린이집 공간을 이르는 말) 스케줄에 출퇴근 시간을 맞춰 매일 근근이 지탱해가고 있습니다. 숨만 쉬어도 부지런히 쌓 이는 각종 집안일을 챙기고 나면 세수할 기운조차 남지 않아 잘 씻지도 않 고 삽니다.
씻지도 않고 사는 와중에, 첫 이사회에 다녀와 자정이 넘은 밤 이 글을 씁 니다. 어디의 이사냐고요? 장면을 바꾸면, 저는 서울 모 공동육아 어린이집
겁나 빡센 워킹맘의 공동육아 추천사
의 아마(공동육아에서 ‘아빠와 엄마’를 줄여 부르
부모 공동체 안에서 내 아이 네 아이 구분 없이 같
는 말), ‘나무’입니다. 올해 교육이사를 맡았습니다.
이 아이를 키우는 거라는 아주 표피적인 인상만을
남편은 ‘바위'라고 불립니다. 아, 공동육아에서는
가지고 말이지요.
교사와 부모를 모두 별명으로 부릅니다. 특정 호칭 으로 규정되기 전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아
제 이야기에 앞서, 최근 회자되는 ‘공동육아’ 의
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함이지요. 덕분에 아이들
두 가지 갈래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은 저를 누구 엄마나 아줌마가 아닌 저이들 터전의
좋겠습니다. 먼저,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이라는
어른 친구 ‘나무’로 여깁니다. 하루에 약 2만 마디를
전국 단위 조합에 속해 있고, 정부 보조금을 받는
하는 나옹은, 통통방 친구들에 대해 말하듯 스스럼
시스템 내에 있으며, 부모 아닌 풀타임 교사 조합
없이 기린, 눈송이, 달팽이 등 아마들에 대해 이야
원이 교육을 담당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습
기합니다. 아마와 교사, 아마와 아마 간의 관계에서
니다. 2016년 말 현재 전국에 67개가 있지요. 저희
도 별명은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어린이집은 이쪽에 속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 스템의 도움 없이 부모들의 고민과 품앗이로 이루
호칭 문화에서 느껴지듯, 공동육아는 일반적인 보
어지는 ‘풀뿌리 공동육아’입니다. 대체로 교회나 성
육기관과는 조금 다릅니다. 공동체 교육, 생태 교육
당, 혹은 모여 살기로 결심한 마을 공동체 이웃들
을 지향하고, 한글, 영어 등 프로그램화된 교육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런 그룹이 전국에
지양합니다. 아이들의 갈등과 문제를 다루는 방식,
얼마나 있는지 집계 자료는 없습니다.
부모들의 참여 방식 등에 고유한 교육 철학과 습관 과 분위기가 있지요. 하필 유기농 먹거리만 고집하
굳이 이 둘을 구분 짓는 건 시작부터 제가 겪은 이
는 듯한 인상이 도드라지게 미디어에 소개되기도
상과 현실의 차이를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공동육
하고, 일반 보육시설에 비해 비용이 더 든다는 사
아 아마가 되기 전 주변에서 보아 왔고 더 이상적
실 때문에 ‘중산층의 귀족 육아'라는 오명을 안고
이라고 느꼈던 공동육아는 대체로 후자였습니다.
있기도 합니다.
이미 부모들의 삶이 섞여 있고 서로 이해하고 용납 하는 훈련이 된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열매인 아
저는 저희 가정의 재정 상황이나 라이프 스타일
이들을 ‘함께’ 키우는 이상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
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신념으로 공동육아를 택했
로 와보면 이 팀에 직장인 엄마가 함께 할 수 있는
습니다. 주변에 입양 가정도 많고, 같이 집 짓고 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어떻게든 함께 해볼
는 이들 몇 팀과 교사 없는 엄마들의 ‘쌩 레알’ 공동
수 없을까, 시간 대신 다른 방식으로 더 기여할 수
육아도 두세 그룹 있고, 대안학교 선생님과 재학생
는 없을까, 마지막까지 한 팀과 같이 고민에 고민
도 드물지 않은데다가, 홈스쿨링 끝에 올해 수능을
을 거듭했습니다만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불가
본 친구까지 있는, 소위 ‘대안’의 문화에 익숙해서
능한 일이라는 데 동의하고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
아이를 낳기 전부터 공동육아 아닌 다른 방식의 보
러니 제가 설명하는 ‘공동육아’는 전자에 한정된 이
육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동육아란 그저
야기가 되겠습니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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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공동육아는 일단 바쁩니다. 매달 있는 또래 방모
많이 아프다면서요?”하고 같은 반 아이 안부를 물
임, 운영/홍보/재정 등 자신이 속한 소위원회 참
으니, 즉각 “아, 어머니, 옮는 병이 아니에요. 염려
여, 일 년에 한두 차례 있는 전체조합원 교육, 개원
마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궁금해서 질문하면, 친
잔치, 들살이, 연말행사, 졸업식 등의 행사, 거기에
절하지만 방어적이고 원론적인 답이 돌아왔습니
휴가를 써야 하는 일일 선생님 등, 기본만 나열해
다. 백인백색 ‘교육 소비자’의 민원과 항의, 질문을
도 숨이 턱에 차는 기분이 들지요. 부모들이 아이
모순 없이 받아내는 ‘원장님’의 노련한 처신에, 저
를 함께 키우기 위해 어린이집을 함께 운영한다는
는 곧 대화의 시도를 줄이고 서비스에 감사하는
건, 방식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터전의 재정, 구
인사와 미소로 선생님들을 대하게 됐습니다. 평
매, 홍보, 시설 관리, 하다못해 청소에 빨래에 김장
일 브런치 시간 없이 엄마들과 유대를 쌓는 건 거
까지 부모들이 도맡아 챙긴다는 뜻입니다. 거기
의 불가능한 일이었고요.
에 교회에서도 일 좀 하신다고요? 그럼 정말 죽을 지경일 겁니다. 일 년 내내 투잡을 뛰는 기분. 회사
공동육아의 교사들은 교사만 처리 자격이 있는
다니며 IVF 개척 지부 리더를 하는 기분이라면 이
행정 업무를 제외하곤 교육, 아이들 관찰, 교육에
해가 쉬울까요?
관한 소통에 집중합니다. 매일의 기록인 ‘날적이’ 를 통해 아마와 직접 소통하고, 터전 운영을 함께
그러나 아이를 재우다 잠든 바위가 밤 12시에 벌
하며 ‘한 팀'이라는 의식 속에서 아이와 교육에 대
떡 일어나 터전 청소를 위해 나서는 모습을 보며,
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으니 훨
저는 문득 나옹의 이전 어린이집을 떠올렸습니
씬 편안합니다. 일하는 엄마라 얼굴 마주할 시간
다. 공동육아 합류 전 9개월간 가정 어린이집을
이 상대적으로 적어도 교사나 다른 부모와 충분
다닌 나옹은 일곱 시 반에 어린이집 문을 따고 들
히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공동육아에는 있습니
어가는, 가장 체류 시간이 긴 아기였습니다. 친구
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고
들의 등원까지 두 시간을 혼자 지냈지요. 매일 그
해야만 하니, 남편과의 육아 팀워크도 훨씬 좋아
두 시간 동안 아기가 말 그대로 ‘혼자’ TV 앞에 앉
졌습니다.
아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때도 선생님들이 나빠서라 여기진 않았지만 공동육아
일하는 엄마인 제게 공동육아가 가장 크게 주는
를 해 보니 더욱 그게 교사를 탓할 수 없는 일이었
가치는 ‘안심'입니다. 약속된 시간(아침 7시-저녁
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부모들이 나누어 하
7시) 동안 내 아이가 방치되는 일 없이 살갑고 촘
는 모든 일을 여기보다 두 배 많은 아이들을 돌보
촘한 돌봄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리라는 안심. 오
는 교사가 직접 한다면 과연 교육을 고민할 시간
해하면 어쩌나 아이에게 해가 되면 어쩌나, 하는
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에너지가 얼마나 남을까,
두려움 없이 아이에 대해 터전에 대해 궁금한 것
싶어서요.
들을 묻고 의견을 내고 같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는 안심. 워킹맘도 정보와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
소통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듣고 “OO가
으리라는 안심. 거기에 까다로운 기준 덕에 터전
겁나 빡센 워킹맘의 공동육아 추천사
에서 워낙 질 좋은 음식을 골고루 잘 먹으니 피곤한
우리 나옹 왔구나!”하며 두 팔을 벌리자 아이는 기
저녁엔 좀 대충 먹여도 돼, 하고 서로 다독이는 불
괴한 익룡 소리를 내며 달려가 폴짝 뛰어 안깁니다.
량 부모로서의 안심까지!
아이 말이 맞다 생각했습니다. 거대 도시 서울의 점 하나인 외로운 핵가족, 허덕허덕 사는 워킹맘과 워
아이에게만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금요일 밤, 아
킹대디에게도 이곳은 ‘우리의 터전'입니다.
이 재우고 나온 엄마들과 새벽까지 마신 술로 쌓은 우정이 제법 돈독해졌습니다. 내 남편 내 아이 흉을
다만 맞벌이 부부의 일상적인 부담 측면에서 공동
실컷 봐도 그게 정말 흉이 될까 걱정되지 않는 마
육아는 결코 대안이 아닙니다. 하다못해 지금 터전
음이 때로 신기합니다. 지난 연말 통통방 다섯 가
에서 엄마가 교사이거나 아빠가 시간 사용이 자유
정이 함께한 모꼬지에서 아이들이 (정말로!) 미치
롭거나, 아니면 아이돌보미 이모님 혹은 조부모님
광이처럼 굴어도, 잘 놀다 갑자기 투덕거리며 싸우
의 등하원 도움을 받거나 하지 않고 공동육아를 소
고 울고불고 해도 부모들이 요동 없이 편안함을 확
화하는 맞벌이 부모는 저희뿐입니다. 엄마인 제 입
인하면서, 저는 이렇게까지 우리가 아이에 대해 ‘놓
장에서는 비록 아이가 잠든 후 밤새서 일할지언정
아도’ 좋은 공간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육아를 하
8시 출근 5시 퇴근을 용인해 주는 회사가 있고, 이
며 무의식중에 쌓여온 고립감, 벽, 개인주의, 교육
심전심에 육아와 가사가 완벽하게 대체 가능한 남
소비자스러운 사고방식 등이 공동육아 덕에 슬슬
편이 있는 운 좋은 케이스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깨지니 아이 키우는 게 한결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생각합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아이 등원을 시키는 길에, 신
어차피 워킹맘의 삶은 출근의 연속입니다. 무거운
나서 앞서 뛰는 아이를 추키느라 과장스럽게 외쳤
몸 일으켜 회사로 출근하고, 일 끝나면 집으로 출근
습니다.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빡센 워킹맘의 삶에 구태여 터전으로 출근하는 부담을 하나 더 얹고 구시렁대
“아이고 다 왔네, 다 왔어. 여기가 누구네 터전이 야? 우리 나옹 터전 아니야?”
는 제게, 저희 엄마는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 어. 힘들어도 재미있으면 그걸로 됐어”라고 하시더 군요. 쉴 틈 없는 스케줄이 제게 주어진 삶이지만
아이가 뛰던 발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보더니 또 랑또랑 대꾸합니다.
그게 제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공동육아를 통해 저 는 제가 가치 있다 생각하는 삶을 조금이나마 몸으 로 사는 기쁨을 느낍니다. 공동육아는 제게 ‘어쩔
“아닌데? 여기 우리 가족 터전인데? 엄만 아직도 그걸 몰라아아?”
수 없다’는 말 대신 책임지는 어른으로서 자라가는 한 방식,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한 방식입니 다. 돈 내고 시간 내고 마음 내고 몸을 내는 재미있
다시 총총 뛰어 들어가는 아이를, 먼저 등원시키 고 나오던 아마 ‘해바라기'가 맞았습니다. “아이구
는 개미지옥, 공동육아로 초대합니다. 흐흐.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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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
박소현 ◆ 서울여대 99 전 IVP 간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과 국문학을 전공한 후 출판편집자로 일하 다가 아이를 낳은 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간간이 글도 쓴다.
출산을 앞두고 회사 선배가 점심을 사준다기에 함께 식당에 갔다. 선배는 출산 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복직을 한 케이스였는데, 밥을 먹는 도중 나에게 복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한 번도 복직을 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는 그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왜 그런 질 문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까지는 아이를 낳은 이후의 상황과 복 직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었다. 당시 나는 입덧이 극 심했고 임신 중 수술까지 한 터라 만삭이 되도록 잘 먹지도 못했고 몸 상태 도 좋지 않았다. 당시로선 하루 빨리 휴직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 리 배가 고파도 종자 씨앗은 먹지 않고 남겨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 는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먼저 휴직을 했다. 몸도 안 좋은데 아직 태어나지 도 않은 아이를 키운 이후의 상황은 당시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 대부 분 선배들이 출산 후 복직하는 분위기였으므로 나도 당연히 복직을 하겠거 니 막연히 생각하는 정도였다.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
아기가 태어나고 육아가 시작되었다. 정신없
을 내렸다. 사실 그것은 결정이 아니었다. 사회
이 아기를 키우며 계절이 몇 번 바뀌자 어느새
는 아이 엄마가 회사로 돌아가기 어렵도록 판
복직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1년간 자리를 비우
이 짜여 있었다.
기로 했었는데 한 달 먼저 휴직을 했기 때문에 11개월 아기를 두고 회사를 가야 했다. 생각해
아이를 키우며 2년 정도 지나자 다시 일을 해
보니 아기를 맡아 줄 사람이 없었다. 양쪽 어머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출판 편집자로
니 모두 상황이 여의치 않으셨고 거리가 가깝
일했었기 때문에 원고 교정 일을 받아 집에서
지도 않았다. 남은 건 베이비시터에게 아기를
일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가 하나이고, 남편이
맡기는 방법이었다.
육아와 살림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으므로 일 을 하는 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비좁고 답답해서 매일 미
다만 나는 남편과 아이가 없는 자투리 시간에
역국을 먹으며 아기와 좁은 집에 갇혀 지내던
일을 해야 한다. 수입이 없는 것보다야 낫고 경
나는, 지인들에게 <올드보이 2>를 찍는 기분이
력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정도가 있
라는 농담을 하곤 했었다. 나조차 힘든 환경에
을 뿐 소득이 많지도 않다. 만일 이 일을 풀타임
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 집에서 아기와 함께 지
으로 한다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장사인 셈이
내라고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아
다. 이 일은 보수가 크진 않으나 파트타임으로
주는 사람도 환경이 쾌적해야 몸도 마음도 편
라도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최적화된 일이다.
할 것이 아닌가.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긴다든지 돈이 많이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
든다든지 하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내고 오전 살림을 하면 12시가 되어서야 책상
규모가 되며 쾌적한 환경이 조성된 집이 갖추
앞에 앉을 수 있다. 대체로 카페에 가는 편이
어져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아이 때문에 회
다. 일을 하다가 집중이 될 만하면 어느새 오후
사를 그만두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제야
3~4시가 되는데 아이를 데려와야 할 시간이 가
남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여겨지면서 밤
까웠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초조한 마음이 들기
잠을 못 이루며 고민에 빠졌다.
시작한다. 평일엔 집중해서 온종일 일을 할 수 가 없다. 오히려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
복직한 여자 선배들은 처음 1년은 힘들지만
고 일을 하면 능률이 오른다. 평일엔 5시쯤 되
포기하지 말고 복직을 하라고 권했다. 집에서
어 아이를 데리고 와 아이 짐을 정리하고 옷을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나 남자 지인들의 경
갈아입히고 씻기고 먹인다. 남편은 일이 밀려
우 존 볼비의 애착 이론 등을 언급하며 아이는
종종 늦는다. 아이를 재우고 다시 책상에 앉아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불리
보지만 못 다한 집안일이 눈에 띈다. 그런 무미
한 상황과 내가 불리한 상황 중 하나를 골라야
건조한 일상이 몇 년째 계속되었다. 제대로 일
했으므로 복직을 하지 않기로 어렵사리 결정
하고 싶은 마음에 사업자 등록도 해보았다. 대
소리 정음
20+ 21
워킹+맘=죄인인가 신(神)인가?
표라는 이름을 달자 한동안은 심리적으로 의
중 누군가의 도움이 없는 이상 풀타임으로 복
욕적인 마음이 일었지만 이내 시들해졌다.
직하는 일은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 를 낳는다는 것은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모 중
다행히 일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자영업자와 같은 처지라 언제 일
누군가는 이 아이를 맡아 책임지고 키워야 한 다는 의미다.
이 끊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 손님이 많았다 고 해서 오늘도 많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
나는 풀타임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
다. 감정의 널뛰기가 계속되었다. 일이 들어오
하기 때문에 일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언제든
면 안도하다가도, 외주 작업자로서 회사의 상
쉴 수 있다. 물론 쉬는 동안에는 돈을 벌지 못
황에 맞춰 보조적으로 일하다보면 서글픈 마
하는 무급 휴가다. 프리랜서는 어쩔 수 없이 돌
음도 들고 나도 직원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마
아가는 러닝머신 위에서 일을 하며 육아를 감
감을 하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이 드
당하는 풀타임 노동자로서의 워킹맘과는 다른
는 것도 잠시, 다시 일이 들어올까 조급한 마음
성격의 고충을 갖는다. 따라서 일의 과중함이
이 든다. 그러다 얼마 후 새로운 일이 들어오
나 육아와 일을 동시에 병행하는 어려움보다
면 다시 안도하는 것이다. 프리랜서를 택한 건
는 내 정체성의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 또 출퇴근의 개념
나 내가 워킹맘인 것은 분명하다. 하루에 세 시
이 없으니 평일 밤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일을
간씩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 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지내느니 다시 취직을 하
마가 있다고 하자. 그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력이 부족한
갖는 고충이란 무엇일까. 적은 소득과 지위, 장
것도 아니고 책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으니 마
기적인 진로, 사회적 박탈감, 외로움 혹은 이러
음만 있으면 조그마한 출판사 정도는 갈 수 있
저러한 진상 손님들로 인한 피로감 등이 고민
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
일 것이다. 그 역시 워킹맘이다. 우리가 쉽게
니다. 나는 아이 엄마이고, 아이를 두고서 회사
떠올리는 일하는 엄마는 맞벌이 부부이며 일
를 다니는 일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대부분
과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느라 허덕이는 이미
의 회사가 최소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지다. 그러나 워킹맘의 범주에는 다양한 분야
인 나라에서 조그만 아이를 그 이상의 시간 동
에서 파트타임, 단기 계약직 등 다양한 방식으
안 보육 기관에 맡겨둔다는 게 안쓰러웠다. 그
로 보수가 적은 일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미
뿐 아니라 피로한 몸으로 퇴근을 한 후 아이를
래 그리고 외로움 등과 씨름하는 사람들 역시
돌보고 살림까지 해야 하는 삶은 상상이 가지
포함된다.
않았다. 싱글 때도 나는 퇴근을 하고 나면 완
한국 사회는 남성 중심의 야근 문화라는 특
전히 지쳤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역시나 가족
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부부의 경
참으로 해방된 워킹맘
우 여성은 제대로 된 정규직 풀타임 직장인으로
키우면서 집안일까지 소화하고 부부 모두가 직
재진입하기가 어렵다. 남성은 초과 근무를 하며
장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려면, 여성 남성
회사에 올인하고, 여성은 아이와 살림을 맡으며
모두의 절대적인 근무 시간이 줄어야 한다. 여
부차적으로 파트타임 등을 통해 약간의 돈을 벌
남 모두 9시 출근 6시 퇴근이 지켜져야 하며, 남
수 있는 정도다. 부부가 둘 다 야근도 종종 수반
성도 자유롭게 육아 휴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되는 풀타임 직장을 다니는 경우, 그리고 아이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려면 어린 아이를 키우는
를 챙겨줄 친족이 가까이 없는 경우, 아이는 보
동안 여성의 근무 시간이 줄어야만 한다. 또한
육 기관에서 온종일 지내거나 베이비시터가 돌
보육 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처우 개선 등
보아야 한다. 여성의 번듯한 사회활동은 그것을
을 통해 직업 만족도를 높임으로 아이를 안심하
감수하느냐 감수하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며, 감
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이 더 많아져야 한다. 빠른
수한 경우 아이를 희생시킨 엄마가 되고 감수하
시일 내에 필부필부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정부
지 못한 경우 꿈을 펼치지 못한 한 맺힌 엄마가
가 출범하고 그러한 정책이 마련되어 누구든 아
된다. 어느 쪽도 행복하지 않다.
이를 낳아 행복하게 키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제도가 마련되고
나는 차선책으로 지금의 방식을 택한 것이지,
실제로 작동한다면 직장으로 돌아가 일을 할 것
아이 때문에 프리랜서로밖에 일할 수 없는 현
이다. 아이를 키워보니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실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나에게는 사회적으로
은 총 2년까지 가능해야 안정적인 복직이 가능
부차적인 역할이 주어졌으며 나는 제한적인 일
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1년은 여성이 휴직을 하
만을 할 수 있다. 나는 나를 둘러싼 현실이 나를
고, 이후 1년은 남성이 휴직을 하는 것이 좋다고
제한하거나 억누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있는
본다. 만 2세 정도부터는 대부분의 아이가 어린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이집을 다닐 수 있다. 만 2~3세 시기는 아직 아
하나님나라는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회복된
기 티가 나고 말도 못하는 아이들이라 내 경험
제각기 다른 모자이크 조각들의 총합이다. 한국
으론 종일반은 버겁다. 따라서 복직 이후 2년 정
의 모든 엄마들이 아이와 자아실현과 노동 사이
도는 하루 6시간 혹은 가능하다면 그 이하로 근
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할 수 있도록 탄력 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극복하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
탄력 근무 역시 1년은 여성이, 1년은 남성이 하
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
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4년이 지나면 이제 아이
님나라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는 한국 나이로 5세가 되고 유치원에 입학한다. 이 시기는 대부분의 아이가 9~18시까지 기관에 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결국 아이를 1명 이상
소리 정음
22+ 23
말씀산책
불안한 세상속에서 평안하려면 (삼상 16:14-23)
김유복 ◆ 영남대84 캠퍼스 간사로 14년을 섬긴 후, 뼈를 묻 으려 했던 IVF를 떠났다. 대구에서 대 학생들과 ‘기쁨의 교회’를 개척했고, 현 재까지 15년 간 사역하고 있다. 다음 세 대에서도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열 매를 맺어갈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싶 다. 저서로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 음」이 있다.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삼상16:23)"
우리는 불안하다. 사랑받는 존재가 되지 못할까
자들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하는 비천한 존재로 낙
봐 불안하고, 지금 서있는 토대가 무너져 내릴까
인찍히고 만다. 그리고 이는 사랑받을 수 없음을 뜻
봐 불안하다. ‘알랭 드 보통’의 말에 따르면, 지위가
한다. 부자들이라 할지라도 경쟁과 변화가 극심한
결정되어 있었던 옛날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지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성취한 지위
를 획득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불안이 증가한다
가 언제 곤두박질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불
고 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능력
안해진다.
으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운이 뒤따르지 않는 한, 이
청년들은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갑
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소위 ‘속물’들의
질하는 사람들에게 인격을 부정당해야 하는 세상,
사회는 오직 한 가지 가치척도, 즉 돈으로 사람들
가치와 존엄을 거부당한 채 오로지 상품처럼 가격
의 가치를 평가한다. 속물들의 세상에서 가난한 자
이 매겨지고 기계적인 성능으로 취급받는 이 세상
는 무책임하거나 무능력한 자로 평가절하 되며, 부
은 분명히 지옥에 방불할 만하다. 돈이나 건강을 잃
말씀산책
을까 봐 두렵고, 기업에서 퇴물처리 될까 불안하다.
만큼이나 컸다. 그런 그가 짐짝들 사이에 숨었다. 겸
그래서 안정적인 일자리처럼 보이는 대기업 입사를
손하다 못해 귀엽기까지 하지 않은가? 사무엘은 그
목표로 유년과 청춘을 희생한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
가 겸손했기에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셨다고 말했다.
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이런 불안을 이기고
“임금님이 스스로를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던
왕 노릇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무렵에, 주님께서 임금님께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게다가 그는 유능했다. 그
불안으로 목이 졸리다
는 첫 전투에서부터 대승을 거두었다. 사울은 왕이 된 후 사방에 있는 적들 즉 모압, 암몬, 에돔, 소바, 블레
사울은 불안에 의해 목이 졸려 질식당하고 말았다.
셋등과 싸웠는데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천하무적의
사실 상황만을 두고 본다면 다윗이야말로 불안해야
전사였다. 또한 그는 너그러웠다. 첫 전투에서 대승을
할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불안에 정복당했고, 다른
거둔 후, 백성들이 사울 앞에 나아와 “어떻게 이런 사
사람은 불안을 정복했다. 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진
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느냐”고 빈정대던 불량배들
왕이었으나 노예처럼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모든 것
을 죽이자고 했다. 그때 그는 주님이 주신 승리의 날
이 불확실한 광야에서도 왕 같은 인생을 살았다.
에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아량을 베풀었다. 그 런데 사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지
사울은 불안했고 두려웠다. 버림받았다는 감정과 미
나치게 사람들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외모와 달리 그
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경
의 내면은 허약했다.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 했고 사
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을 사로잡아서 고
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렸다. 크고 우람했던 신체와 대
통스럽게 했다고 쓰고 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조적으로 그의 마음은 콩알만 한 새가슴이었다. 하나
영”이라는 말의 뜻은, 비록 악한 영일지라도 하나님
님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눈을 더 의식했다. 칼
의 통치영역 속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
과 창으로 무장한 장수들의 함성보다 여자와 아이들
님은 스스로 강퍅하게 만든 사람의 마음을 그냥 그 상
의 노랫가락에 더 마음을 졸였다. 실상은 사람들이 그
태로 내버려두신다. 사울은 그의 마음을 방치했다. 하
의 마음에 들려고 애를 썼을 텐데 말이다. 두려움 없
나님을 떠나 비어있었던 그의 마음이 우울과 두려움
이 적을 무찌른 위대한 전사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너
으로 가득 찼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질 수도 있구나 싶다.
는 책임지기보다는 스스로 자기연민의 늪에 빠져 들 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결정적인 사건은 아말렉과의 전투 후에 발생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여호와의 심판의 대리자로서 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사울이 왕이
쟁을 수행하라고 명령하셨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된 이유는 그가 겸손한데다 유능했기 때문이었다. 사
출애굽할 때, 여자들과 아이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
무엘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불러 주님 앞에 모아놓
이 있는 후미를 쳐서 약탈을 감행했던 족속이었다. 하
고 제비를 뽑았다. 하나님이 사울을 뽑으셨을 때 사울
나님은 사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행할 것을
이 어디에 있었는가? 짐짝들 사이에 숨어있었다. 그
명령하신다. 이 경우에는 그 어떤 사람도 살려두면 안
를 데리고 나와 세워보니 그의 키는 남들보다 어깨 위
되고 어떤 전리품도 취해서는 안 된다. 사무엘은 사울
소리 지음
24+ 25
말씀산책
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다. “만군의 주
임명 받은 다윗이 맨 처음 한 일이었다. 다윗의 연주
가 말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아말
는 불안에 떠는 사울의 마음을 치유했다. 유진 피터슨
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일 곧 길을 막고 대적한 일 때
이 말하길 그것은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한 대단히 좋은
문에 아말렉을 벌하겠다. 너는 이제 가서 아말렉을 쳐
훈련이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은 작고
라. 그들에게 딸린 것은 모두 전멸시켜라. 사정을 보
초라했다. 하나님이 떠나버린 영혼이 얼마나 비참해
아주어서는 안 된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젖먹
질 수 있는지, 또 그 영혼이 어떻게 지옥을 경험하게
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 등 무엇이든 가릴 것 없
되는지도 깨달았을 것이다. 다윗은 왕이 아닌 인간으
이 죽여라”(삼상 15:2~3). 그런데 사울은 아각 왕을 살
로서의 사울을 대면했고 그에게 연민과 긍휼을 느꼈
려두고, 가축들 중에 좋은 것들을 살려두었다. 사울이
을 것이다. 사울이 그토록 악독하게 다윗을 파멸하려
그렇게 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탐욕 때문이
했을 때도 다윗이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불쌍히
었고, 다른 하나는 함께하는 군인들 때문이었다. 사무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긍휼히
엘은 말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 순종하지 아
여길 때 그가 용납이 된다.
니하고 약탈하는 데만 마음을 쏟으면서, 주님께서 보 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삼상 15:19). 그 는 하나님의 정의의 전쟁을 부패하게 만들었다.
다윗은 상처 입은 영혼을 위해 수금을 연주했다. 언 제 미치광이로 돌변할지 모르는 사울 곁에서 그를 섬 겼다. 사울이 겪었던 우울과 두려움은 지금도 많은 사
불안한 영혼을 위한 부르심
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버림받은 느낌, 실패 감, 홀로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 비관적으로 다가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 때
오는 미래에 대한 염려 등,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의
로는 강단 있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은 불안하고 고독하다. 하나님이 차지하던 공간
잘 휘둘렸다. 이 점이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 이
이 비어버렸으니 그 공허가 얼마나 크겠는가.
유다. 이상한 것은 사울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도 변화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죄책감을 느끼고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부르심을 받는다. 그리스도
는 그만 거기에서 멈췄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나님
인들이 세상의 불안한 영혼들을 위해 들려주어야 할
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울을 떠나셨다. 텅 비어버
연주는, 바로 우리들의 아름다운 행실이다. 우리는 다
린 그의 마음에 악령이 찾아왔다. 사울은 가끔씩 악령
윗이 왕으로 부르심을 받아 처음 시작한 일이, 온 세
에 사로잡혔고 그럴 때마다 깊은 우울감과 두려움에
상을 바꾸는 것이 아닌 상처 입은 가련한 한 영혼을
시달렸다. 사울이 누구던가? 분열된 이스라엘을 하
섬기는 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
나로 통일시킨 위대한 왕, 싸웠던 전투마다 이긴 무적
지 못하면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상처 입은 한 사
의 전사, 모든 이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왕이 아니었던
람부터 사랑하자. 그를 위해 우리의 삶을 연주하자.
가?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떠나자 그는 악령에 시달
한 영혼을 위해 우리의 수금을 들자.
리는 가여운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다윗은 그런 사울을 위해 수금을 연주했다. 왕으로
어떤 이는 그리스도인이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고 말
말씀산책
하고, 또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하나님이 쓰실 것이
부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 그
라고들 한다. 힘이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논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입니다. 바로
리일 것이다. 우리 선조들도 그렇게 믿었다. 어릴 적,
이것을 위하여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
장로님들이 기도하실 때 빠지지 않는 구절이 있었
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다.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게 하
여러분이 자기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습니다”(벧
옵시고….” 그래서였을까? 우리 교회 장로님들의 자
전 2:20~21).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아름다움으로 사
녀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머리가 되
람들과 세상을 변화시켰다. 알렌 크레이더의 「회심
기 위해서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의 변질」을 보면, 초기 기독교가 박해 속에서도 놀
머리가 되었다. 높은 자리에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
랍게 성장했던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매력적
다. 국회의원의 과반, 대학 총장들의 대다수, 장관 중
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매료되
에도 크리스천들이 많단다. 초대 대통령도 크리스천
어 나아온 추구자는 신앙문답 교사와 몇 년 동안을
이었고, 장로 대통령도 두 분이나 계셨다. 유수한 대
함께하며 복음을 배웠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자신의
기업의 사장들 중에도 크리스천들이 많다. 기독교
삶을 드리려고 침례를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교
기업을 표방하는 큰 기업들도 많다. 소원대로 되었
사가 보여준 아름다운 삶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
다. 그렇다고 세상이 더 좋아졌는가? 아니 교회라도
가 목자이시며 감독이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더 나아졌는가?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 도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고위 공직에 오르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다.
것은 꿈도 못 꿨다. 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그 리스도인인 것이 발각되면 직위를 박탈당하는 것은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사는 삶의 불안
물론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방인 가운데서 도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의
하지만 불안과 염려로 가득 찬 사람을 섬기는 일
제자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은 쉽지 않다. 처음에 사울은 다윗을 너무나 사랑해
지위가 낮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
그의 무기를 드는 최측근으로 삼았다. 그러나 좋았
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매
던 시간은 잠시, 곧 바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창
료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을 던져댔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린 사울은 불안 했고 두려웠다. 게다가 자신을 떠난 하나님의 영이
하지만 힘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 힘
다윗과 함께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울은 다윗이 자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무용
기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다윗만 제
지물이다. 오히려 악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더욱 고
거하면 자신의 왕좌를 보존하고 미래도 보장받으리
통에 빠지게 할 뿐이다. 과연 무엇이 세상을 변화시
라 여겼다. 사울을 움직이는 내적인 힘은 불안과 두
켜 왔을까? 아름다움이다. 물론 힘이 있으면 좋다.
려움이었다.
그러나 그 힘이 아름다움과 결합하지 않으면 파괴적 인 힘이 될 뿐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
사울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윗을 찾아 없애려
소리 지음
26+ 27
말씀산책
한다. 제사장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먹을 것을 주었
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다는 이유로 제사장들을 몰살시키려 한다. 그들이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시편 131:2-3).
다윗 편에 서서 자신을 대적할까 두려웠기 때문이 다. 그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정의의 나라를 세우
두려움은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다윗을
겠다는 꿈을 오래 전에 버렸다. 불안과 두려움이 그
제거한다고 해서 사울의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은
가 살아가는 동기가 되었다.
아니다. 혹시 다윗을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사울은 또 다시 자신의 왕좌를 위협할 것처럼 보이는 이들
사울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비
을 향해 창을 던져댔을 것이다. 두려움은 자신의 내
전을 위해 살지 않고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산다.
면에서 올라온 것이므로 그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
사랑받지 못할 게 불안하고 미래가 불안하고, 홀로
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의지하
남겨질 게 두렵고 가난과 질병이 두렵다. 자신도 깨
기로 작정했다. 사람들도 세상도 우리를 불안과 두
닫지 못한 채 꿈을 좇기보다 불안을 제거하는 것을
려움에서 건져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삶의 목표로 삼는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전력 질
때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을 얻는다.
주한다. 대기업에 들어가려 하거나 공무원, 교사가 되려는 이유, 성형과 다이어트에 과도하게 몰두하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는 이유도 가만히 따져 보면 불안 때문인 경우가 많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다. 당신이 살아가는 동기는 무엇인가? 당신이 지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대적자들, 나의 원수들,
금 그것을 선택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소
저 악한 자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다가왔다가 비
명 때문인가, 불안함 때문인가? 소명을 이루는 것
틀거리며 넘어졌구나.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
이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살고 있
도, 나는 무섭지 않네. 용사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지는 않은가?
일어날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려네. 내가 여 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
고요하고 평온한 영혼
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 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
불안한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다. 상황으
라”(시편 27:1-4).
로만 보자면 다윗의 인생은 사울의 몇 배는 더 불안 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광야를 살면서도 우
사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피할 곳이 없다. 사울은
리가 평안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군대를 가졌으나 다윗은 달랑 수금 하나다. 기름부
이다. 주님의 집에 살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
음을 받기는 했으나 왕이 되기는커녕 생존조차도
고, 그를 사모하며 사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온
불확실해 보인다. 당장 내일 아침에 머리가 붙어있
전히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을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윗
의 영혼은 평안하다.
은 노래한다.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 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
지금 다시, 헌법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헌법 두 번째 이야기 : 민주주의, 국민주권의 회복과 헌법 제1조의 재생 -
정한신 ◆ 부산대 94 IVF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아내(한은 정, 동아대 99학번)와 두 아들과 더불
소리 지음
어 성숙하는 가정을 꿈꾸며 살고 있 다. 캠퍼스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으 며, IVF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기획연 구 위원이자 ‘일상학교’ 대표 겸 프로그 램디렉터다. ‘일상학교’의 법/제도 과정 의 일환으로 “전 국민 헌법 읽기 프로젝 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속 기획 강 좌 “대한민국 헌법을 말하다”를 기획하 여 진행하고 있다. peacemaker99@ hanmail.net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최근 가장 많이 거론된 헌법 조항은 단연 헌법
갈망이었다. 대통령 탄핵소추의 첫 번째 사유가
제1조이다. 비선실세와 대통령에 의한 소위 국
바로 헌법 제1조의 위반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농단 사태와 부정부패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
최근 정국의 한가운데에서 헌법의 대명사가 된
하자, 시민들은 헌법 제1조를 광장으로 소환하
헌법 제1조의 의미는 무엇일까?
였다. 이 문제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정체 성을 흔들고, 국민주권주의를 심각하게 침해하
헌법 제1조는 헌법 본문의 첫 번째 조문이다.
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수많
많은 국가의 헌법에서 첫 조문은 해당 국가의
은 시국선언에서 헌법 제1조가 언급되었고, 민
핵심 정체성과 가치를 밝히는 것으로서 매우 중
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절박한 심정이 여기저기
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헌법은 첫 조문에서
에서 표출되었다. 촛불로 드러난 민심은 농락당
민주공화국으로서의 국가정체성과 국민주권주
한 주권자의 분노였고 국민주권의 회복을 위한
의를 강조하고 있다.
28+ 29
지금 다시, 헌법이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국’이
다음으로, 헌법 제1조는 국민주권주의를
결합된 용어이다. ‘공화국’은 한 사람의 군
규정하고 있다. 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최
주에 의해 지배되는 군주국이나 전제국
종적·전반적으로 결정하는 최고 권력이
가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다수에 의한 공
다. 헌법은 이러한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
적 결정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를 의미한
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에 따르면 모
다. ‘민주주의’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
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
지만 기본적으로 ‘시민에 의한 권력’, ‘시
다. 이때의 ‘모든 권력’은 입법권, 행정권
민에 의한 정치’,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
(집행권), 사법권 모두를 의미한다. 다시
치체제’를 의미한다. 헌법 제1조에 따르면
말하면 이들 권력은 주권자가 주권을 현
대한민국의 국가형태는 ‘공화국’이며, ‘민
실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주권자에 의해
주’는 그 공화국의 내용이 민주주의에 입
조직되고 주권에 의해 위임된 권력이다.
각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
따라서 권력자나 특권 계층이 국익과 시
사에 구속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
민의 권익을 무시하고 정치과정에서 시
므로 중요한 국가정책을 결정할 때 주권
민과 그 대표자들을 배제한 채 공적 결정
자인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정부는 국
과정을 무력화 시키면서 독단적으로 국
민주권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적법한 선
정을 좌지우지한다면 이는 민주공화국
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
규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지 않은 권력과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 은 결코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한편,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 치체제이므로, 특정 권력자나 집단이 시
이러한 권력은 위헌적인 권력이기 때문 에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민들을 폭력적·자의적으로 지배하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 법치와 권력분립에 의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 헌법상 민주
한 권력 통제 시스템을 그 본질적 요소로
공화국의 내용과 국민주권주의가 현실에
한다. 또한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 보장을
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
기본원리로 하고, 시민들의 기본적 인권
하고 싶다. 민주주의를 위한 오랜 투쟁의
을 존중하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수를
결과 헌법과 법률에 입각하여 민주 정치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것을 강
제도가 어느 정도 구축되었다. 그러나 여
조한다. 특히 민주주의는 정치적·사회적
전히 국가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으로 평등한 시민들이 상호 토론과 합의
의사는 배제되고 국민의 이익과 국민에
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
게 돌아가야 할 몫은 도외시되는 경우가
서 사회적인 불평등 구조로 인하여 시민
많다. 오히려 비선과 권력기관들이 국민
들 간에 계층적 분리가 나타나고, 특정 계
위에 군림하고,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
층에 의한 일방적인 지배가 이루어지면
며,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일이 비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일비재한 것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다시, 헌법이다
일찍이 장 자크 루소는 “영국 국민은 선
니라 평상시에도 정치 과정과 정책 및 대
거 때만 자유롭고 그밖의 경우는 노예 상
표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거
태에 있다”고 일갈한 바 있다. 국민들은
기간에는 후보자들에게 국민의 권익 신
선거 때만 주권자로 대우받는다. 확실히
장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각
선거기간에는 민주주의가 확립된 것처럼
종 현안과 미래 비전에 대한 관점과 의지
보이고, 국민들도 스스로 주권자가 된 것
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선거 이후에는
같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
공약 이행 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체크
면 국민의 자리는 사라지고, 국민에 대한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차기 선거에서 반드
수많은 약속도 사라진다. 생명과 신체의
시 심판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각
안전이 위협받을 때, 인간다운 생활을 위
종 현안에 대해 대표자에게 온·오프라인
한 기본적인 조건조차 확보되지 못할 때,
으로 의견을 제시하거나 적극적으로 대
그래서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안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시민 스스
는 거리가 먼 생활을 이어갈 때 민주공화
로가 정당에 참여하거나 시민사회단체를
국과 국민주권은 어떤 의미일까? 국민들
통해 정치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일상 속
을 ‘개돼지’로 인식하는 상황 속에서 국민
에서 민주주의를 교육하고 실천하는 일
주권은 그저 이념적 수사에 그치는 것은
도 중요하다. 학교와 가정, 조직 속에서
아닐까?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선거일
민주적 의사결정과 합리적 토론, 소수자
에 투표하는 행위에 국한시킬 때 헌법 제
에 대한 존중 등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
1조는 현실의 모순을 무마하는 선언문이
는 일을 할 수 있다.
되고 만다. 지금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회복해 선거권은 국민주권을 현실적으로 행사
야 할 때다.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주의
할 수 있는 수단이자 국민의 의사를 국정
가 헌법의 텍스트를 장식하는 수사가 되
에 반영할 수 있는 필수적인 장치일 뿐만
지 않고, 오늘의 현실 속에서 살아 있게 하
아니라, 국가권력을 구성하고 통제하는
는 것은 전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
방편이다(헌재 1989. 9. 8. 88헌가6 참조).
다. 이 땅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
따라서 국민주권의 구현에 선거는 매우
이 진정한 주인으로서 존엄하게 살기 위
중요하다. 선거가 권력을 정당화 해주는
해 헌법 제1조를 되살리자. 봄날의 새순처
방편이 아니라 실질적인 심판의 기능을
럼 재생하고 생동하게 하자.
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주권자의 힘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 이다. 선거기간에만 국민을 주권자로 대 우하는 것에 더 이상 속지 않아야 한다. 투 표를 한 것으로 주권자의 역할을 다했다 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선거기간뿐 아
소리 지음
30+ 31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일 못하는 크리스천 직원, 혹시 나? 허 대리 ◆ 동아대 05 서울살이 3년차인 부사니언(Busanian)으 로, 사역자인 남편과 재작년에 결혼하고 상 경했다. 현재 충정로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 서 근무하고 있다.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직원 30여 명 중에 나는 유일무이한 크리스천이다. 그런 내가 섬김 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지는 못할망정 부장님께 한소리 들었다. 최근 업무 처리를 좀 수동적으로 했더니 “요즘 무슨 일 있냐?”는 지적이 바로 날아왔다. 알바, 인턴, 이전 직장, 교회생활을 하면서,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는 나인데, 인생에서 처음 접하는 이 상황과 감정이 상당히 낯설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둘러대자면 이 렇다. 최근에 급하게 이사를 준비하느라, 회사 다니면서 이것저것 알 아보느라(부동산, 은행, 도배, 이 사업체, 인터넷 설치 등등) 전화 받 으러 밖에 나가는 일이 좀 잦았던 건 사실이다. 아마 그로 인해 분주 한 내 마음도 업무 처리에 묻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대표님 눈에 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남직원들은 담배 피 우러 하루에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데?) 나름 회사에서 ‘수고’를 하 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방심한 사이에 이런 지적을 당했다. 기분 이 뒤숭숭했다. 회식자리에서 술 안 마신다고 받았던 핀잔은 잘 넘기 고 마음에 잔재가 남지 않았는데, 업무에 관한 지적에는 이상하게 마 음에 큰 진동이 일었다.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점심시간에 식사기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도하고 회식자리에서 술 안 마시는 것은 기본, 더
바로 그 성실함이다. 성실함으로 쌓은 연륜은 시
불어 직장에서 업무에 대한 탁월함이 있어야 한다
간이 지나면서 탁월함이라는 이름이 되기도 한다.
는 게 내가 정해놓은 전제조건이었다. 그런데 이
물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씨름할때
런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했으니, 오, 주여, 저는 어
하나님이 반드시 그 직장생활 가운데서 성장시켜
쩌면 좋을까요!
주시리라 믿는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나의 고민
지난 번 종로 직장인 모임에서 “크리스천은 어떻
에 동참하여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게 해야 직장생활을 잘 하는 걸까?”라는 주제로 이
나는 일단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난 후 ‘아니, 큰
야기를 나누었다. 크리스천이 넌크리스천 직원들
실수는 아니었잖아. 사람이니 한두 번 놓칠 수도
에 비해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점수를 얻지 못하는
있지!’라는 그 안일한 생각부터 고쳤다. 내 마음의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업무적인 것은 탁
중심을 다시 점검해보았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일
월하더라도 업무 외적인 것들, 예를 들면 회식자리
하자. 인정받아 승진하고 더 부유한 삶을 살기위해
술 권유에 뻣뻣한 반응을 보이거나, 싫은 소리 하
서가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이 직장에서
면 표정관리 안 되고, 또박또박 옳은 소리 하는 거,
의 모습으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주일 근무에 비적극적인 것 등 여러 부분에서 어
다짐이다. 때로는 편안한 곳에서 칭찬 열매 따먹으
려움이 있었다. 순둥이 크리스천 여직원이 혹독한
며 일하는 나날도 있고, 때로는 정글 같은 곳에서
직장에서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지혜가 필요했다.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날도 있는 것이다. 어찌
하나님이 각 사람을 특별하게 창조하셨으니 세
됐든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지는 않을 거다. 나 또한 완
부장님께 답변을 보냈다. “무슨 변명을 하기보다
전하지 않은 존재이다. 톡톡 튀는 매력이 반짝이는
는 제가 업무를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한 점 인정합
직원도 있고,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승부하는 우직
니다.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 다음 날, 나는 다
한 직원도 있다. 계산기 두드려가며 동전 하나 손
이어리에 전투적으로 업무 리스트를 적어가며 초
해 안 보려는 직원도 있다. 크리스천의 직장생활이
집중해서 일했다. 높은 연봉과 좋은 인사평가 등에
란 뭐니 뭐니 해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면서 업
는 욕심이 없었지만, 업무로 인해 흠 잡히고 싶지
무적인 성과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아닐까?(완
는 않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일주일 집
벽하게 채워질 수 없는 업무 외적인 부족함이 있더
중했더니 업무적인 성취감은 물론 다시 평온한 시
라도 말이다.) ‘술은 절대 못 마시겠는데 업무처리
간이 찾아왔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 회사에서 내
도 하나 두 개쯤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지’라고 스
가 근무하는 동안 여름날 냉수같이 속 시원하게 일
스로에게 관대했던 지난 어느 때의 타협이 떠올랐
잘하는 직원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상황을
다. 무던한 사람은 채용 면접 시에는 매력적으로
마주하더라도 매끄럽게 대처하고 반응할 수 있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조직에 자연스럽게 잘
지혜와 여유를 갖기를 다짐한다. 오늘 하루도 수
묻어나는 장점이 오히려 실제 근무할 때 조직을 지
고했어, 허 대리!
탱하는 힘이 된다. 성실한 사람은 특기도 없고 감 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의 무기는
소리 지음
32+ 33
우리 결혼할까요?
니 머릿속의 지우개 호욱 ◆ 연세원주04 원주 IVF 6년차 간사이자 하루 빨리 한량으 로 살고 싶은 1인.
“공일공! 어…, 어…, 뭐였지?” 내 번호로 현금영수증을 해달라는 부탁에 은경이 는 머뭇거렸다. 그날은 우리가 사귄 지 200일이 되 는 날이었다. 초밥을 맛있게 먹고 좋았던 기분은 진 즉에 날아갔다. ‘아니 200일이 다되도록 내 핸드폰 번호를 모르다 니…. 우리가 남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원주로 돌아와 한 학생에게 물 어봤다. “너는 남자친구 핸드폰 번호를 얼마 만에 외웠어?” “음…. 간사님 저는 진짜 암기를 잘 못해요. 그래서 한 달 정도?” ‘아니야. 넌 정말 암기의 달인이구나’라고 칭찬해주 고 싶을 정도였다. 은경이는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리고 세 심하지 않다. 좋게 말하면 무던하다. 나는 연애하면서 은경이가 나에 대해서 세심하게 기억해주길 바랐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는지 알아줬으면 했다. 자 주 카톡도 하고 전화해주길 원했다. 이것이 내가 ‘가 슴형 2번, NF’ 남자여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으 나, 암튼 그랬다. 그런 마음이 쌓이면서 서운한 일들 이 종종 발생했다. “은경아. 일과 중에 바쁘겠지만 나한테 가끔 연락 좀 해줘.” “알겠어! 근데 나는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면 아침 이랑 밤에만 연락해도 상관없는데….”
“응!?” 조금 어이가 없었다. 뭔 놈의 연애를 하면서 아침이 랑 밤에만 연락하는지! 평소에 페이스북은 시도 때도 없이 들어가면서 말이다. 허허. 반달처럼 예쁜 눈웃음 을 짓는 이 친구가 그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 지만 어쩌겠나. 그게 은경이인 걸. 우리는 비슷한 문 제로 자주 다퉜다. 지금도 이 간극이 완전히 메워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연애하면서 서로의 이런 차이 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상대방이 원하는 소원을 들어 주려고 노력했다. 일이 바빠도 연락했고, 연락이 없어 도 바쁜 상황을 이해했다. 다툼을 통해 서로의 진심 을 조금씩 확인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은경이가 세심하지 않아서 좋을 때도 있었다. 이기적이지만, 내가 그녀에게 이따 금씩 세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여보, 사랑 해!) 언젠가 내가 행사 때문에 바빠서 은경이에게 연 락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은경이는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은경이가 나와 같 지 않아서, 은경이여서 다행이었다. 내가 힘들어했던 그녀의 모습이 때로는 나에게 자유를 준다는 걸 깨달 았다.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무던함은 영원한 단 점도, 또 장점도 아니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아침, 은경이는 서울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많이 바쁜지 하루 종일 연락이 없다. 어서 밤이 되길 기다려야겠다.
우리 결혼할까요?
섬세함과 예민함, 그 한끗 차이 이은경 ◆ 숙명여대05 음악, 공연, 영화를 좋아해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IVFMEDIA에 정착한 영상팀 간사
나는 다정한 사람이 좋다.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면
슨 소리인가? 내가 마음대로 끌고 온 것도 아니고 분
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필요나 주변의 필요를
명히 의사를 물어봤고 감자탕은 양이 많으니 뼈해장
챙기는 사람을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호감도가 상승
국을 시킨 건데…. 내 잘못인양 느껴져 억울하고 분이
한다. 욱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첫 만남 때 지나가는
났다. 식어가는 뼈해장국을 앞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
듯이 했던 말을 기억해 초코우유를 내밀고, 피곤하다
다. 욱이는 “감자탕 먹을래?”라고 물었을 때 ‘은경이
고 무심코 꺼냈던 말에 예정도 없이 데리러 와서 비
가 감자탕이 먹고 싶은가?’ 생각했단다. 난 분명히 의
타민을 건네고는 했다. 물론 연애 초반의 열정 덕분
견을 물었는데 그 순간에서조차 상대방의 의중에 마
이겠지만, 그는 사람의 정서와 필요를 잘 살피고 반
음이 쓰였다는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 욱이는 상대의
응하는 사람이었다.
기호를 파악하고 맞춰주는 게 본능에 가까운 사람이
문제는 나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욱이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것, 우리 둘의 사건이나 추억을 잘 기 억하지 못하는 것을 서운해 했다. 사실 난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가 쌓이면 적극적인 표현이나 관심 이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욱이는 좀 더 표현해주고 기억해주길 바랐다. 연애를 시작하
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인 것에 놀랐고, 참 피 곤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 기 쉬운 그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졌다. 또 다른 하나 는 감자탕과 뼈해장국은 전혀 다른 음식이라는 거다. 푸짐한 감자탕을 생각하고 들어온 그는 한 그릇 뼈해 장국에 두 번 실망했단다. (이 부분은 조금 웃겼다!)
며 우리의 신앙관, 정치적 성향, 삶의 지향성 등이 비
욱이를 통해 마음을 표현하고 전하는 데 서툰 나 자
교적 일치하기에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
신을 본다. 그리고 이런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주고 함
나 그 생각은 금방 산산조각 났다.
께한 이들이 불쑥 생각나기도 한다. 어느 날 친구에게
어느 주말 데이트 때,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동네 치킨 집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감자탕집이 보 여 “욱아, 감자탕 먹을래? 밤에 치킨 먹으면 자기 속 안 좋을까봐….” 욱이가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게 마 음에 걸렸다. 자리에 앉으며 “여기 뼈해장국 둘이요.” 수저를 놓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다. 알고 봤더니 치 킨 집을 안 가고 감자탕을 먹으러 오고, 감자탕이 아 닌 뼈해장국을 시킨 것에 마음이 상했다. 응? 이게 무
고백했다. “네가 말은 안 했어도 나 때문에 참 많이 서 운했겠다. 미안하다.” 친구는 그걸 이제 알았느냐며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연애의 장점은 둘의 관계를 통 해 자신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를 향한 성찰, 이웃과 공동체와의 관계가 연애를 통해 확장될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사람으로 인해 내 인생이 풍성해진다는 것을! 또한 감자탕과 뼈해장국은 다른 음식이라는 사실을!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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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Chef’의 오늘 뭐 먹지?
다이어터를 위한 닭 가슴살 찹스테이크 오한웅 ◆ 서울대99 한마리곰미디어 대표이자 PD. DIA TV 크 리에이터. IAM 카드게임 개발자. 창의적이 면서 좋은 영향력을 주는 미디어들을 만들 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중이다. 사람 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함께 보드 게임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다.
친한 후배의 결혼식. 모처럼 차려입을 요량으로 정 장을 꺼낸다. 그런데 아뿔싸, 정장 바지가 맞지 않는
왔으면…. 나는 여기서 뭔가, 뭔가 다른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다! 우선 급한 대로 비교적 색이 진한 검정 면바지를 찾아 입고, 사이즈가 큰 셔츠 위에 단추가 많은 조끼
인터넷 검색 중 눈에 들어온 “닭 가슴살 찹스테이크”
를 입어 배를 압박한다. 그렇게 식이 끝나고 잘 넘겼
재료는 이미 집에 다 있고, 조리시간도 그리 길지 않
다고 안도한 순간.
다. 즉시 썰고 볶고 후다닥 만들어 맛을 보았다. 그토 록 질기게 느껴졌던 닭 가슴살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아기는 언제 나오나요?”
내 배를 만지며 누군가 던진 한마디. 헉! 이대로는 안
향도, 맛도 여느 레스토랑에 뒤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매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되겠다. 이제 옷으로도 숨길 수 없는 계절이 다가온 다. 다이어트.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이걸 만드느라 사용한 소스에 문득 눈길이 갔다. 게 다가 와인까지. 칼로리가 좀 될 것 같다. 그래도 평소
서둘러 헬스장에 등록하고, 닭 가슴살을 주문했다.
에 먹던 것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니 이 정도면 괜찮다
격렬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시작한 지 3일째. 끼니때
고 타협한다. 기왕 먹은 거, 오늘은 좀 더 먹어야지. 그
마다 풀 쪼가리와 닭 가슴살 위주로만 먹다 보니 턱
리고 다짐한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근육이 당긴다. 평소에 얼마나 부드러운 음식만 먹어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 재료 닭가슴살 2조각, 양파 1/3개, 빨간 파프리카 1/4개, 노랑 파프리카 1/4 개, 피망 1/4개, 마늘 조금, 레드와인 4스푼, 스테이크소스 6스푼, 간 장 1스푼, 올리고당 1스푼, 올리브유 1스푼, 케찹 1스푼, 소금, 후추, 우 유한컵
닭가슴살에 우유를 부어 잠기게 한 뒤 30분 정도 재워놓습니다. 비린내를 빼는 과정인데, 우유가 아까우면 안 하셔도 돼요.
소리 지음
닭가슴살을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소금 한 꼬집, 후추 적당량, 올리브유 1 스푼과 함께 버무려 또 살짝 재웁니다.
양파는 깍두기 모양으로, 마늘은 편 썰어주고, 파프리카와 피망도 비슷한 크기로 썰어줍니다. 빨강, 노랑, 초록색 채소들이 참 예쁜데 여러분에게 는 그냥 흑백으로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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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Chef’의 오늘 뭐 먹지?
분량의 스테이크소스, 레드와인, 간장, 올리고당, 케찹을 섞어 소스를 만듭니다. (스테이크소스가 없으면 돈가스소스, 레드와인 대신 맛술, 올리고당 대신 물엿을 넣어도 됩니다.)
재워놓은 닭 가슴살을 먼저 어느 정도 익힌 뒤 마늘 → 양파 → 파프리카, 피망 순서로 투하하며 익혀줍니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소스를 붓고 졸이면서 볶아주면 완성!
TIP. 닭 가슴살은 생고기로 하는 것 이 맛있지만, 집에 먹다 질린 훈 제 닭 가슴살이 있다면 그걸 사 용하셔도 됩니다. 그렇게라도 소비하는 걸로. 재료로 쓰고 남은 와인은 버리면 아까우니 잔에 따라 곁들여 마십니다. 아, 분위기 죽이네요!
재외 학사 통신원
브렉시트 이후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소리 지음
이상훈 ◆ 서강대 97 영국 에딘버러와 애버딘에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최근 런던에서 전도사 사역을 시작 했다.
런던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8년 동안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 버러에서 살았다. 에딘버러는 겨울에는 오전 9시 정도나 돼야 날이 밝기 시작하고 오후 3시쯤 해가 져서 어둡고 침침하고 축 축하다. 날씨 탓인지 겨울에는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는다. 4월 이 되어야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초록색 이파리와 가녀린 꽃을 피워낸다. 여름이면 따뜻한 햇살이 푸른 잔디와 나무들 속에 자 리 잡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잘 말려 준다. 그쯤이면 도시 곳곳 에 킬트를 입은 남자들의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에딘버러 성은 도시 중앙로 서쪽의 높은 암벽 위에서 도시 전 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에딘버러 성에서 로얄 마일을 10분쯤 걸 어내려 오다가,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빠지면 카우게이트(Cowgate)라는 길이 나온다. 중세 시대에 장이 열리면 그 길로 사람 들이 소를 몰고 다녔다고 해서 이름이 카우게이트다. 주말 밤이 나 새벽이면 술 먹는 사람들의 고성방가, 왁자지껄 떠드는 소 리, 유리 병 깨지는 소리 등으로 주변 사람들이 잠을 설친다. 이 길에 홈리스(homeless)들이 머무는 호스텔도 하나 있는데, 거 기서 나는 5년 반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공부하면서 일 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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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학사 통신원
카우게이트에서 본 스코틀랜드의 사회
더 장기적으로, 최소 1~2년 정도 살 수 있
보장제도
는 곳을 알아봐 준다. 물론 월세는 각 지역 시청이 내고 영국 중앙정부에서는 생활비
나는 오전과 이른 오후까지 학생으로 살
일부도 부담한다. 호스텔에서 그들은 혼자
다가 저녁이 되면 카우게이트의 한 호스텔
사용할 수 있는 방을 제공받고, 방에는 침
파란 문으로 들어가 바깥세상과는 조금은
대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옷장, 서랍장, 개
다른 삶을 만났다. 활기찬 에딘버러의 바
인 화장실과 개인 샤워 부스까지 갖춰져
깥 공기와 달리 파란 문 안의 공기는 대체
있다. 이 나라에서는 홈리스라고 하더라도
로 무겁다. 알코올이나 마약 문제, 깨어진
이정도의 삶이 보장된다. 그들을 위한 의
가정의 학대, 자살 시도 등이 그곳에서는
료 서비스도 무료이고, 정신과 상담 및 재
낯설지 않다.
활 교육도 무료이다.
한국의 노숙인들에 비하면 그나마 에딘
그곳에서 내가 맡은 일은 간단한 행정과
버러 홈리스의 삶은 좀 낫긴 하다. 그들은
재정 업무였다. 계약직이긴 했지만 그렇지
홈리스(homeless)지만 노숙을 하지는 않
않은 직원들과 별다른 차별을 느끼지는 않
는다. 적어도 에딘버러에서 홈리스를 노숙
았다. 계약직도 보통 일 년에 6주 정도의
인으로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들
유급 휴가가 주어진다. 몰아서 휴가를 사
에게는 오늘밤 당장이라도 문을 두드리면
용하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도 다녀
침대를 제공해 줄 쉘터(shelter)가 있다. 다
올 수 있다. 병가도 받을 수 있는데 여전
음 단계로는 최소 3개월 정도 머물 수 있는
히 유급이다. 물론 나중에 규정이 바뀌어
호스텔이 있다. 그곳에서는 홈리스들이 좀
서 월급의 100퍼센트를 받을 수는 없었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학사들의 일상
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육아휴직은 너무 당연한
부에 내는 세금이 잉글랜드로 상당 부분 흘러들어
권리이다. 아이를 낳으면 보통 1년이나 그 이상을
간다고 느낀다. 이러한 불만이 스코틀랜드 독립에
쉬기도 한다. 월급도 나오고 불이익이라는 것은 생
대한 열망에 불쏘시개가 되는 듯하다.
각지도 못할 일이다. 2016년 영국은 국민 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선
모닝사이드에서 경험한 스코틀랜드의 의료와
언했다. 하지만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코틀
교육
랜드는 유럽연합에 남기를 원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마음이 서로 엇갈린 것이다. 브렉시트
카우게이트에서 서쪽으로 자전거를 쭉 타고 가
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에서는 다시 독립의 목소리
다보면 유니온 카날이 나온다. 보트 타는 아이들
가 불거져 나온다. 2014년 국민투표에서 아쉽게 놓
과 오리와 백조들을 지나, 수로 옆으로 난 산책길
쳐 버린 독립의 꿈을 이번에는 실현해 보겠다는 분
을 10분 정도 따라가면 모닝사이드의 끝자락이 나
위기다. 유럽연합을 탈퇴한 잉글랜드와 연합을 유
온다. 내가 살던 곳이다. 그곳에서 둘째가 태어났
지하느니, 차라리 이 기회에 잉글랜드로부터 독립
다. 전에 경험한 미국의 의료서비스에 비하면 영
을 하고 유럽연합에 남겠다는 생각이다. 한편 잉
국의 의료체계는 매우 만족스럽고 고마운 부분이
글랜드에서는 브렉시트가 웨일즈와 북아일랜드
많다. 나처럼 돈 없는 유학생도 무료 의료 혜택을
의 독립도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받을 수 있고, 병원에서 빈부격차를 느낄 수 없다.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옛날 대영제국의 영광을 회 복하겠다는 꿈과는 매우 멀어지게 된다.
모닝사이드에서 아이들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보냈다. 그곳의 교육제도나 분위기에 매우 만족했
런던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나는 이러한 복잡한
다. 일단 아이들 사이에 경쟁의식이 없다. 아이가
상황에서 한두 걸음 물러나 있다. 자국민들처럼 내
공부를 잘 한다고 해서 선생님의 특별한 관심을
가 목에 핏대를 세울 일은 없다. 다만 브렉시트를
받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나 학부모 사이에서 더
계기로 점점 비자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과외 활동으로 첫째아이는
는 것이 부담스럽다. 런던에 와보니 여기저기서 비
바이올린과 기타를 3년 이상 배웠다. 비용은 시에
자 문제로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당장 짐을 싸서
서 후원을 해주어 무료이고, 악기도 1년간 빌려준
귀국해야 하는 한인들도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 무
다. 잉글랜드와 달리 스코틀랜드에서는 대학 교육
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까지 무료이다. 석사이상의 교육은 학비를 지불해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외국인에게는 의료보험비도
야 하지만 그마저도 자국민은 유학생의 1/3에 해당
받기 시작했다. 런던은 집값도 비싸고, 잉글랜드
하는 정도만 내면 된다.
에서는 아이들 대학등록금도 내야 하고, 여러 가 지 면에서 복지 혜택이 좀 줄어든 느낌이다. 에딘
브렉시트 이후 런던에서 스코틀랜드 보기
버러로 돌아가야 하나? 그럴 수 있을까? 아님, 한 국? 분주한 런던의 삶을 즐기면서도, 출렁이는 상
그런데 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신들이 세금만 큼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중앙 정
황 속에서 과연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지 나는 여 전히 고민하고 있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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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어 달리기
고통 받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종미◆ 상명대00 경영을 전공했음에도 회계업무를 하게 되 리라 생각지 못했다가 의외로 소질에 맞아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여 회원들에게는 한없는 친절을 베풀고(가족 에게는 못하면서), 거친 현장에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거친 비바람을 좋아하는 태 백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IVF 00학번 김종미입니
참여했고 지금의 단체를 만났어요. 의욕이 충만할
다. “개혁연대 회원담당 김종미 협동실장입니다”라
때라 제가 먼저 봉사를 하겠다고 자원했죠. 그렇게
고 하다가 이렇게 소개하는 것도 오랜만이라 감회가
시작해서 1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무실
새롭네요. 저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교회개혁실천
이 작아서 누군가 교회 상담을 하면 옆에서 들을 수
연대(이하 개혁연대)에서 회원사업/회계/홍보를 담
밖에 없었어요. 교회분쟁으로 고통 받는 성도들의 한
당하고 있습니다.
숨과 눈물을 듣다 보니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졸업하면서 사실 저는 활동학사를 해보고 싶었어 요. 공동체에 계속 머물고 싶었나 봐요. 그렇지만 공
일임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 확신은 흔들리지 않 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체에 필요한 리더십이 제가 아니었기에 포기하고
개혁연대는 2002년, 한국교회의 회복을 간절히 소
다른 진로를 찾았습니다. 일반회사에 가는 것보다는
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창립했어요. ‘한국교회의 개
NGO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IVF에서 농활과 빈활을
혁과 건강한 교회를 통한 사회개혁’이라는 미션을 가
경험하면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
지고, 교회 내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할 대안을 연
이 강하게 들었고, 이런 고민을 공동체에 나누었는
구하여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구조개혁운동), 교
데 그게 참 제게 어울리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
회 상담과 이에 따른 개 교회 및 교계 현안에 대응
함께 고민해주었던 공동체가 참 고마워요. 제가 무
하고(현안대처운동), 성도 안에 자리 잡은 왜곡된 기
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IVF를 통해 많이 발
독교 본질을 성경적인 틀로 교육하는 일과 개인·교
견했어요.
회들 간의 네트워킹(협력지원운동), 세 가지 방향으
공동체적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길을 나섰습니다.
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
아는 NGO가 적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기독
해 피켓도 들고, 상담도 하고, 연구물도 내고, 교육
청년아카데미에서 사회선교단체 탐방프로그램에
도 하고 있어요.
함께 이어 달리기
교회 상담을 하고자 언론을 통해 알게 되어 저희 단
어떤 교회나 단체의 비리를 접할 때 아주 신중하게
체에 전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 문제로 혼자 끙
접근합니다. 셀 수 없는 많은 노력이 듭니다. 회개하
끙 앓다가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발견
라고 권면하고 또 권면합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교회분쟁을 겪어보
지 않은 사람들, 그를 옹호하는 특정 집단들이 있어 문
지 않은 분들은 모를 수도 있을,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제제기를 하는 분들이 상처를 받고 떠나기도 하지요.
간절한 심정이에요. 전화나 대면상담을 하자면 1박 2
만날 기회가 되면 피해자의 눈물을 보고 제발 잘못을
일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
인정하라고, 예수를 제대로 믿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소할 곳 없는 성도들의 한숨과 눈물을 닦아주고, 함께
교회개혁운동을 하다 보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
고민하고 대응해나가는 것이 저희가 가진 가장 큰 소
시는데요. 저는 교회의 빛과 어두움을 다 볼 수 있다
명입니다.
고 답해요. 교회 비리를 많이 접하지만 그만큼 교회의
개혁연대는 권력에 대해 견제하는 일의 특성상 큰
회복을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함께하는 사람들, 대안
교회의 후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풀뿌리 개인들과 교
적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교회들을 만나기 때
회들의 후원으로만 운영해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
문이지요.
가 없냐”라는 영화 대사처럼, 돈은 없어도 가오가 살
저에게 개혁연대는 스승이자 학교에요. 이곳에서 배
아 있는, 가진 것은 없지만 한국교회의 회복을 향한 진
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죠. 보통 회사에서 회의하는 것
정성을 가지고 오늘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중
별로 안 좋아할 텐데, 저는 회의 때 나누는 대화 속에
입니다.
서 마음속 깊은 곳이 뜨거워져요. 자신은 죽고 타인을
여기서 일하면서 한국교회의 어두움을 적나라하게
살리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분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봅니다. 2016년 동안 162차례 교회 상담을 했는데, 상
내놓는 분들, 한국교회를 위해 대가 없이 자신의 물질
담 주제 중 재정 전횡(30%), 독단적 운영(15%), 목회자
과 시간, 마음을 내어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서 희망
성폭력과 성적 비행(15%), 목회 부실과 표적 설교, 이
을 봅니다. 또한 저에게 개혁연대는 일터이자 놀이터,
단 매도(7.5%)가 주를 이룹니다. ‘목사가, 장로가, 집사
공동체에요. 박봉이지만 그 돈 모아 인간답게 살아가
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저들은 나와 다른 하나님
고, 3년마다 주어지는 안식월을 통해 쉼도 누렸고, 여
을 믿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교인을 상
러 도시를 방문하면서 좋은 분들도 만났어요. 10년 이
대로 성범죄를 일으킨 전병욱 목사, 그리고 피켓을 든
상 된 회원들과는 서로 안부를 묻고 챙겨주는 가족 같
우리를 조롱하고 욕하고 때리는 그의 추종 세력, 명성
은 느낌이 들어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
교회 세습반대운동을 할 때 내 피켓을 빼앗아 찢어버
은 자기성찰이에요. 이 시대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
린 성도의 분노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누
로 살아가려면 나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공동체의
가 예수일까요? 예수의 자리에 대신 앉아있는 권력자
소리를 듣고,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들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볼 때 교회라 할 수 있
고 생각해요.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게 참 어려운 시대
을까요? 여의도순복음교회 재정비리 의혹을 밝혔을
에 살고 있으니까요.
때 사무실로 걸려오는 항의 전화를 받았던 한 간사님 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럼 조용기 목사님이 예수입 니까?”
* 홈페이지: www.protest2002.org * Facebook: https://www.facebook.com/churchreform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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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보드게임, 사람과 사람을 잇는 또 다른 즐거움 조창훈◆ 한양대 02 보드게임은 아무리 모아도 부족하게만 느 끼는 30대 직장인. 집에서 4인플을 해보고 싶어서 얼른 아이 가 오길 바라는 남편. 천국에도 보드게임이 있을 거라 확신하는 아직은 철없는 어른.
보드게임을 아시나요? 바둑이나 장기, 체스와 같이
멀었습니다. 그리하여 보드게임의 열기는 부흥 속도
판을 깔고 하는 놀이를 보드게임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이나 빠르게 식어갔습니다. 소수 마니아들 만이
래서 보드게임을 쉽게 번역하면 ‘판 놀이’가 됩니다.
관심을 이어나가고 있던 중, 2013년 ‘상속자들’이라는
2000년대 초반에 보드게임 카페를 가보신 분은 젠가
드라마에 보드게임이 PPL로 들어갑니다. 또 ‘지니어
나 할리갈리, 카탄이나 뱅 같은 게임에 익숙하실 것입
스’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드게임의 규칙을 그대로 적
니다. 사실 보드게임은 영역이 매우 넓어서 전 세계에
용한 게임을 다루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보드게임
알려진 보드게임만 7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몇 개의
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게임만으로 보드게임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 넓은 보드게임에 대해 오늘 소개 해 볼까 합니다.
지금은 많은 부모님들이 교육을 목적으로 보드게임 에 관심을 보이거나 자녀와 함께 하고 싶은 부모들
90년대 후반에 PC게임의 조상이 되는 보드게임을
에게 좋은 대안이 되기도 합니다. 또 초등학교 방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부 동호
후 수업에 보드게임반이 생겼고, 교실에 비치해서 학
회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천천히 전파되는 중이었
생들이 직접 노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
죠. 2000년대에 들어와 PC방에 대한 대안 겸 창업 열
사 교사가 참여해서 만들어진 게임도 있고, 수학이나
풍이 합쳐지면서 1차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보드게
지리 등을 이용한 교육적 목적의 보드게임도 인기가
임방 문화가 생겼습니다. 이때는 젠가, 할리갈리 같
있습니다. 성인들 사이에서도 술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은 가벼운 게임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쉬운 게
이 커지면서 보드게임이 술 없이도 즐겁게 놀 수 있
임은 보드게임에 낯선 사람도 쉽게 흥미를 가질 수는
는 문화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커플들에게 보드
있었지만 보드게임의 핵심인 ‘두뇌싸움’과는 거리가
게임방은 데이트 코스의 하나로 추천됩니다. 술을 마
두 번째 놀이, 보드게임
시지 않고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장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 는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느낍니다. 대학에 다닐 때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시간을 보
이렇게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보드게임의 매력은
내며 이야기할 주제도,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쉬는데도 머리를 써
회사에서 지내다 보면 그런 시간을 가질 기회도, 시
야 하냐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볍
간도 거의 없습니다. 친구들과도 점점 관심사가 달
게 머리를 쓰며 경쟁하는 것을 즐깁니다. 물론 시간
라지면서 이야기를 길게 이어나가기 어려울 때가 있
이 오래 걸리는 전략게임에서는 큰 그림을 그리는
습니다. 그럴 때마다 보드게임은 친밀감을 높일 수
게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런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게임 속에서 다양한 이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야깃거리가 생기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삶 나눔으로
하면서 다른 사람의 전략에 맞춰 자신의 전략을 수
이어지기도 합니다.
정해 나가고, 인풋과 아웃풋에 대한 고민, 효율성에 대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게 됩니다. 게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드게임은 게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기업이나 국가를 경영하다 보면 효율성을 따
부정적인 눈총을 받습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지고 있는 자기의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게임을 하냐?”와 같은 얘기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됩 니다. 여행, 독서, 음악 감상과 같은 고급(?)취미로 대
그러나, 두뇌싸움보다 더 큰 보드게임의 매력은 사
우 받지 못하는 것이죠. 인식이 좋아지곤 있지만 아
람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프라모델, 음악감
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듯합니다. 명절에 부모님과
상, 낚시 등 많은 취미들은 혼자 할 수 있거나 혼자
보드게임을 하면서 부정적 시각이 조금씩 나아지기
가 더 좋습니다. 그렇지만 보드게임은 게임의 특성
를 기대해 보려고요. 다행히 제 또래에게 게임은 인
상 혼자는 할 수 없고,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해야 합
생의 낭비가 아닌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취미의 한
니다. 때로 사람들과 협상도 하고, 경쟁과 협력을 해
종류로서 인정받습니다. 모니터만 보며 하는 PC게
야만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하다 보면 협상
임보다 더 선호합니다. 이제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하는 법, 대화하는 법을 배우며 점점 성장하는 모습
몇 가지 게임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
을 볼 수 있습니다. 혼자 놀면서는 절대 배울 수 없
겠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각각의 게임에 대해 자세
는 능력이죠. 또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각자의 성격
히 알려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자세한 정보는 인터
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넷을 이용하세요!)
잘 주고 잘 요구하며 게임을 시원스레 이어갑니다. 이기는 게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죠. 꼼꼼한 사람
▶ 어린 자녀와 즐길 수 있는 게임 : 루핑루이 / 흔들흔들 해적선 /
은 1원까지 따져가며 번거로운 계산을 하지만 지지
▶ 초등 이상 자녀와 즐길 수 있는 게임 : 우봉고 / 루미큐브 / 젝
않는 게임을 합니다. 게임을 통해 알게 된 서로의 성 격을 감안하여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금상첨 화 아닐까요?
빙산 위의 펭귄 스님트 ▶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 : 카르카손 / 딕싯 / 뱅 / 텔레스트 레이션 / 달무티
소리 이음
깨
어
진
세
하 나 님 을
상 보 는
에
서 법
Simple Spirituality
우리의 영성 추구는 왜 이토록 복잡한가? 예배당 밖에서 우리 영성은 왜 이토록 무력한가? “현실에 타협하고 안주하려는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
선교 현장에서의 밑바닥 경험을 통해 예수님
스도인의 정수리를 때리는 통렬한 비판이며, 복음을
의 말씀을 몸으로 깨달은 저자는, 우리의 영
따라 사는 길을 보여 주는 따뜻한 안내서다.” -신한열 (때제 공동체 수사)
김경은(장신대 실천신학 교수) 월터 브루그만, 장 바니에, 셰인 클레어본 추천
적 시야를 가로막아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의 가치로 교만, 개인주의, 과잉, 통제, 승리주의를 지목한다. 이 골리앗을 쓰 러뜨릴 물맷돌로 겸손, 공동체, 단순함, 순종, 깨어짐이라는 다섯 가지 단순한 영성을 제시
크리스토퍼 휴어츠 | 양혜원 옮김 무선 210면 | 11,000원
하는 저자는, 독자를 참되고 능력 있는 그리 스도인의 삶으로 안내한다.
www.ivp.co.kr
소리가 만난 사람
손으로 만들고 몸을 쓰는 일의 즐거움
최근 한국사회에서 기술직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취업난으로 인해 사무직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직업은 점차 세분화되고 있기 때문입 니다. 아예 진로의 방향을 기술직으로 잡는 대졸자들이나 퇴직 후 적정기 술을 익히고자 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학사들에게도 큰 관 심사입니다. 이번에는 인테리어 시공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정재성 학사의 이야기를 통해 실제로 기술직으로 사는 삶은 어떤지 들어보려고 합니다. 정재성 명지대 95 ◆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 [소리]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죠. 졸업 후 2년간은 활동학사 로 섬기기도 했어요.
저는 명지대 95학번 정재성이라고 합니다. 저를 닮 은 8살 큰아들 의현이, 아내를 닮은 5살 작은아들 제
* 부부가 모두 간사 생활을 했는데 힘들지는 않으셨
현이, 그리고 아내와 함께 네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나요?
IVF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군대를 제대한 직후입 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던 차
저는 활동학사를 마치고 사역을 내려놓았고, 아내
에 IVF 원주춘천 연합 여름수련회에 가보지 않겠냐
는 결혼 후에도 간사로 섬겼습니다. 저도 활동학사
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주강사님이 김병선 목사님이
를 해봤던 터라 아내의 사역을 전폭 지지하는 마음
셨는데 복음의 기초에 대해 말씀해주셨어요. 그 설교
이었어요. 힘들었던 부분은 출퇴근입니다. 신혼생활
를 듣고 영접을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IVF
을 캠퍼스와 가까운 용인에서 시작했는데, 제가 근
가 없어서 가까이 있는 강남대를 찾아갔어요. LGM
무하게 된 회사가 홍대 근처여서 이동하는 데만 4시
에 참석하고 리더 모임도 들어가면서 캠퍼스 개척시
간씩 걸리곤 했거든요. 아내가 임신하고 사임하면서
기를 함께했습니다. 아내인 한세희 간사도 그때 만나
광명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지금은 서울시 구로동에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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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 학부 때는 어떤 전공을 하셨나요? 진로를 인테리어
많죠. 하지만 현장이 작아지면 상대적으로 관리할 일
로 결정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이 줄어들기 때문에 제가 직접 작업할 수 있는 일들 이 생기게 됩니다.
전공은 건축공학입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집안에서 반대가 컸습니다. 과를 고민
* 주로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할 때 공대이면서 미술이 섞인 과를 찾다보니 건축과 가 좋겠더라고요. 그렇게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습니
예를 들면, 공장에서 1차로 방음 자재를 만들어요. 가
다. 당시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설
조립이라고 해서 시험 삼아 만든 것을 현장에 가져가
계사무소나 시공사 쪽으로 진출했어요. 저도 처음부
서 맞춰보기도 하고, 틀을 제작해서 붙박이로 설치하
터 인테리어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요. 활동학사를
기도 하고요. 차로 자재를 실어 와서 순서에 맞게 배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관련 분야에 계신 이남
열하고 나사못과 볼트, 너트를 이용해서 조립도 하는
혁 학사님이 떠올랐어요. 조언을 얻어야겠다는 생각
데 이건 철강 쪽의 일이에요. 목공 쪽의 일도 있는데
이 들어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선배님의 회사에서
나무를 재단하고 까는 일입니다. 내부 배선 전기 작업
경동시장 환경개선사업 하고 있을 때였는데, 마침 현
도 해야 하고, 바닥도 마감해야 해요. 타일 카펫이라
장에 알바가 필요하다며 일자리를 제안해주셨어요.
든가 롤 카펫, 데코타일 등 바닥재 까는 기술도 있어
그렇게 시작해서 직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인테리
야 하고, 칠보수나 유리도 끼울 줄 알아야 해요. 한 사
어 쪽의 일을 해보니 현장의 직원들과 부대끼며 같
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아요. 여
이 하는 작업이 많더라고요. 그런 점이 좋았고 제 적
러 가지 일을 다 잘하는 사람이 드물고, 잘한다 할지
성에도 맞았습니다.
라도 속도가 중요한 현장에서는 불리하죠. 하지만 저 는 속도가 늦더라도 꼼꼼하게 일을 했어요. 그렇게 하
* 첫 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어떤 부분에서 도움
는 게 전체적인 경비도 줄일 수 있고요.
이 되었나요? * 회사에서 독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안정 다양한 일을 했는데, 특이하게 기차 제조 관련 일을 하게 되었어요. 기차 제조는 인테리어라고 부르기가
적인 직장생활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 데 사업을 시작하셨을 때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애매해요. 왜 인테리어 회사에서 기계 쪽 일을 하냐 며 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는데 저는 재미있었어요.
아내가 간사를 사임하고 아기도 있을 때라 독립이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준전문가가 되더라고요.(웃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 성향 자체가 스스
음) 당시 기차 제조를 하면서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에요. 집 짓는 일도 하
방음 분야의 일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고 싶었고 무엇보다 ‘제 일’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어 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죠.
현장을 관리하는 일도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현 장이 크면 관리를 잘 해야 해요. 관리를 못하면 실수
처음에는 제가 타겟으로 선정한 동네에서 이미 사업
가 생기고 그래서 다시 작업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거
을 시작한 업체들을 찾아다녔어요. 제가 경쟁업체가
든요. 재작업을 하게 되면 기존의 작업을 뜯어내야
되는 건데도 흔쾌히 맞아주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
하고 자재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게 되니까 어려움이
주시더라고요. 조언을 바탕으로 사업계획서도 세우
소리가 만난 사람
고 나름대로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잘 안됐습니다.
토하기도 하는데, 저는 작업이 진행될 때는 현장을 지
3개월간 잔고를 까먹었어요.(웃음) 잔고가 내려가니
키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까 점점 초조해지는 거예요. 괜히 독립했나 하는 후회
아프지만, 이건 그냥 적응하는 수밖에 없겠죠.
도 밀려왔죠. 다행스럽게도 방음회사 인테리어를 소 개받으면서 일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지인들과 교회
* 이야기를 듣다보니 하시는 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를 통해서도 소개되고, 조금씩 주변에 소문도 나면서
전문성이 느껴져요.
안정적으로 일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속도가 떨어지더라도 전문성은 유지하자 * 인테리어 작업은 기술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는 생각으로 일을 해요. 가전제품 청소 같은 경우에는
가는 노동인데요, 작품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속도가 생명이에요. 예를 들어 세탁기라면 하루에 세
는 데서 오는 보람도 클 것 같아요. 반면에 현장 일에
집 정도를 돌아야 벌이가 되기 때문에 한 대당 두 시
많아 어려움도 있을 것 같고요.
간을 넘기면 안돼요. 그러려면 일을 대충할 수밖에 없 죠. 뜯어보면 부품을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경우도 많
건축은 결과물을 보기까지 기간이 길잖아요. 하지
아요. 저는 꼼꼼하게 하기 때문에 세 시간 반 정도가
만 인테리어는 보통 2주 정도 걸리니까 눈에 보이는
필요해요. 양심상 대충 할 수는 없고 비용으로 볼 때
결과물이 금방금방 나와서 재미있죠. 건축 일은 크게
그 일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판단
설계와 시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설계는 도면을 그려
이 들어서 지금은 접었습니다. 분야를 넓힐 때는 하고
주는 역할을 하고 시공은 현장이 도면대로 차질 없이
있는 일과 관련성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관련성이 있
진행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설계한 도면대
는 분야로 넓혀야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전문성을 넓
로 작업이 잘 이루어졌을 때 큰 보람을 느껴요. 큰 일
힐 수 있어요.
이 들어올 때보다는 작은 일이 들어올 때가 더 반갑고 요. 큰 일을 할 때는 다른 직원에게 맡겨야 하는 부분
가구를 제작할 때도 큰 회사가 만드는 금액에 맞춰
이 많은데, 작은 일은 제 손을 써서 제 마음에 들게 끝
서 만들어요. 대량으로 체계화된 공방 장비가 갖춰진
을 낼 수 있거든요. 최근에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인테
회사에서는 저렴하게 자재를 활용하기 때문에 같은
리어를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잘 안 보이는
금액이라도 큰 이윤이 남지만, 저는 개인 사업자기 때
부분도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편이라 저와 잘 맞는 고
문에 남는 금액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공정소비의 개
객들도 있고요. 그래서 가구를 만드는 일이 저와 잘
념을 갖고 저와 같은 사람이 만든 물건을 사겠다는 분
맞는 것 같아요. 건축은 1cm의 오차, 인테리어는 5mm
들이 있어요. 보답하는 마음으로 시중가격에 맞추려
의 오차, 가구는 1mm 이하의 오차가 생긴다는 말도
애를 쓰고 있죠. 물론 가구제작 만으로는 당장의 수
있듯이 가구 제작은 정밀하고 세밀한 작업이거든요.
익이 나지 않으니까 지금은 여러 가지를 실험해보면 서 앞으로 어떻게 시장성을 넓혀갈지 고민하는 중입
현장은 의외로 험하지 않아요. 작업이 제대로 안 되
니다. 금액과는 점점 멀어지고 최대한 제 마음에 만
어 있는 경우에는 험한 말이 나기도 하지만, 상식적인
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려는 저를 보고 아내는 인간문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다만 체력적으로 힘든
화재 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해요.(웃음) 잘 만들
순간은 좀 있어요. 보통의 관리자들은 반장을 통해 작
었는데 이걸 어떻게 돈 받고 팔지 하는 마음이 들 때
업지시를 하고 차 안에서 쉬기도 하고 다른 자료를 검
도 있어요.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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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 최근 사회 초년병이나 전업을 하고자 하는 학사들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안전의식이 있는 팀과 일을 해
이 기술직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해주실 조
야 다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배우고 싶다면 와서 해
언이 있다면요?
보면 좋겠어요. 저에게 현장이 많이 맡겨져서 덩달아 주변 사람들이나 같이 일하는 협력체, 작업팀과 일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길은 학원이 가장 쉽습니다. 정 부 지원프로그램도 많고 직업 전문학교를 이용할 수 도 있죠. 목공은 서울 남부기술교육원이 가장 유명하 고, 이 학교 출신들이 서로를 잘 끌어줘요. 학원을 나 온다고 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팀을 찾아 소속되는 것이 관건입니다. 기술 자체를 배우면서 그 일이 자기 적성에 맞는가 경험해 보는 것도 중요해요.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고 있어요. 제 손으로 직 접 작업을 하려면 현장이 작아져야 하는데 많은 사람 들에게 혜택을 주려면 큰 일을 맡아야 하네요.(웃음) 작은 회사들과 연대해서 큰 일을 맡아볼까 하는 기획 도 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와 계획이 있다면요?
공동체로 함께 모여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 임금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목수나 백화점 타
고 있어요. 지금은 척박한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일 기술자는 몸값이 비싼 편이지만 일반 가정집 타일
훗날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누군가가 퇴직 후에 연착
기술자는 높은 임금을 못 받아요. 제가 하고 있는 공방
할 수 있는 회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구에
일도 여유 있게 재정을 벌어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에
게나 퇴직 시기가 있고 한번쯤은 몸으로 일하는 기술
요. 그래서 나중에는 시골에 내려가 작업을 하고 싶다
직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앞
는 소망도 있어요. 아이들이 공방 한쪽에서 시간을 보
서 길을 닦아놓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내고 제가 거기서 일을 할 수 있는 개인 작업장이 있다 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직업 선 택이라기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삶의 방식을 다르게 살고 싶을 때 중요하게 여기는 가 치를 따라 선택하는 거죠. 물론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
아이템 자체를 여기에 국한하고 있지는 않아요. 당장 은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고 가구 제작에 조금씩 무게 를 실어가고 있지만, 또 다른 아이템이 생긴다면 앞으 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느냐에 따라 수익을 많이 낼 수도 있습니다. * 그간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학사들을 많이 도우셨 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찾아와서 상담을 할 수도 있을 까요? 현장에 와서 같이 일을 해보고 본인이 기대하는 것처
스스로 제작해 낸 생산물에 대한 자부심과 노동
럼 할 만한지 경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단순보조
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가 필요할 때 교회 청년들을 연결해주기도 했어요. 같
기술직으로 살아가는 학사님의 삶이 아름답습니
은 팀에 있는 형제도 방음 현장에서 보조로 일하면서
다. 밥벌이를 넘어서 가치를 담은 라이프 스타일
적성을 확인해보는 시기를 거쳤죠. 함께 일할 팀을 잘
로서의 노동을 하려고 애쓰는 학사님을 응원합
고르는 게 중요합니다. 인격적으로 대우해줄 수 있는
니다.
또 다른 봄, 새로운 시작
또 다른 봄, 새로운 시작 - ‘IVF 학사총회’를 마치며 -
송혜원◆ 총신대97 중앙학사회 실행위원이자 남서울 지방회 실행이사. 현재 11년차 대학 강사로 근무 하고 있다.
IVF 중앙회 ‘좋은 땅’에 들어서니 박스 안에 가득 담
수도권YGM 회장으로의 임기는 이미 끝났음에도 불
긴 한라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구하고, 또 학사회장이 바뀌는 이 시점에도 여기에 여
학사님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우리들은 새로운 봄을
전히 머물고 있다. 중앙회 실행위원회는 학사회의 큰
맞이하고자 이곳에 모였다.
이슈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고, 각 사역(지방회 및 영 역별)을 지원하고 점검하며, 또한 학사회의 중요한
2017년 2월 4일 오전 11시. ‘좋은 땅’에서 IVF 학사
사안들에 대해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법적
총회가 개최되었다. 전국 각 지방회의 학사대표, 대
인 승인은 중앙이사회에서 받는다. 그래서 학사회장
표간사, 중앙회 간사 그리고 실행위원 등이 봄이 온
은 중앙이사회에 당연직으로 들어가 논의에 참여하
다는 것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立春)에 새로운 시즌
고 있다. 실행위원회의 구성원은 각 학사활동의 영역
의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얼
별 대표자들(GLC+, 6070학사회, 기업인모임, 공동체
굴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처음 보는 이들은 서
이레하우스 팀, 나음누리, 직장인 사역, 재경학사회,
로를 소개하며, 삼삼오오 모여 커피와 차를 들고 담
YGM 등)과 사역의 필요도에 의해 선임된 학사님들
소를 나누었다. ‘좋은 땅’은 이렇게 조금씩 온기를 더
이 자리를 맡고 있다.
해가고 있었다. 나는 2012년 8월 전국학사수련회 이후 수도권YGM
이번 총회는 학사회장과 신응종 간사님의 이취임식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와 동시에 당연직으로 중앙
을 겸하여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총 3부로 진행되었
회 실행위원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는데 먼저 이희열 간사님의 찬양인도로 예배의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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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봄, 새로운 시작
두 분의 수고와 오랜 사역에 대한 헌신, 그리고 열 매. 두 분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 한 감사가 넘쳤고 특히 동역자들과 가족에 대한 감 사로 가득했다. 학생사역부터 학사사역까지 아우르 며 대구지역에서 애쓰신 신응종 간사님의 열정적 인 시도와 열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지속적이 고 아름답게 재창조되길 소망한다. 끝으로 수도권 열었다. 현재 직장인 모임과 직장인 대회를 이끌고
지역YGM 이철민 대표간사님의 기도회로 모든 영
계시는 한병선 간사님의 대표기도, 그리고 김종호
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렸고, 학사회 총무로 섬기고
IVF 대표님의 말씀으로 1부 예배를 마쳤다.
계시는 이시종 간사님의 광고로 마무리했다. 이후 3부에는 식사교제를 하며 서로의 사역과 앞길을 축
2부 순서에는 본격적인 이취임식이 진행되었다. 이
복했다.
남혁 학사회장님의 사회로 각 지방회에서 오신 분 들을 환영하는 시간을 가졌고, 신임 학사회장님에
지금까지의 실행위원회는 이남혁 학사님을 필두
대한 소개와 인준으로 이어졌다. 10년 전 대전에서
로 80년대 학번 학사님들이 주축이었다. 그간 학사
열렸던 총회에서 학사회장 되신 것을 축하드렸을
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동체를 안정적으로 구축
때 다소 쑥스러운 미소를 짓던 이남혁 학사님의 모
하기 위해 많은 수고와 헌신을 하셨다. 그러나 앞으
습이 기억났다. 새로운 회장에 대한 낯선 마음과 지
로 새롭게 바뀌는 실행위원은 이상엽 학사님과 90
나온 세월의 익숙함이 교차하는 분위기 속에서 IVF
년대 학번을 중심으로 밀레니엄 학번들까지 아우르
학사회를 향한 아름다운 발걸음에 동행한다는 생각
며 기능별 형태에서 전체적인 네크워크의 중심인
에 마음이 설렜다.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기존 선배 학 사님들도 몇 분 남아계신다. 전국에 계신 학사님들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임회장님을 박수로 환영했
개인의 일상과 공동체의 필요도를 효과적으로 아
다. 신임회장으로 인준된 이상엽 학사님의 취임사
우를 수 있는 새로운 모형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기
와 6070학사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김용주 학사
존에 하고 계시는 모임들에 대해서는 더욱 지지해
님의 격려사가 이어졌고, 마지막 순서로 사역을 마
드릴 것이다. 학사회라는 넓은 판에는 아직도 들어
무리하시는 이남혁 학사회장님과 신응종 간사님께
가야 할 퍼즐들이 많다. 어떤 형태로 드러나며 구축
감사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동안의 사역을 격려하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학사님들의 동역
고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전달하는 시간
이 필요하다. 각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
도 가졌다. 함께 참석한 가족 및 지인들이 꽃다발을
는 활동도 많이 소개해주시고 좋은 모임들은 공유
전하며 이 분들이 지난 시간 섬겼던 사랑의 향기를
해주시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
공유할 수 있었다.
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가 되기를 간절 히 소망한다.
이웃 사랑을 위한 가장 전략적 방법, “그리스도인이자 정당원으로 사는 이유”
이웃 사랑을 위한 가장 전략적 방법, “그리스도인이자 정당원으로 사는 이유” - ‘민주 시민강좌’를 마치며 -
민주시민강좌는 ‘시민으로서의 성도, 성도로서의 시민’의 정 임하은◆ 고려안암09
체성을 확립하고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 지
소셜 벤처를 통한 세상 속 하나님 나라 운
점을 비판적으로 판단하여, 공적 가치와 공공선을 위해 적극
동을 꿈꾸며 실천 중인 젊은 학사입니다.
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자리로 기획되었습니다.
학부시절 우리 지부 LGM에는 특유의 분위기
재 정당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학사님들이 참
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LGM 장소나 참여
여해주셨다. 정의당 활동을 하시는 임형석 학사
하는 사람이 늘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님은 발제와 패널 토크를 위해 멀리 전남 광주에
늘 어떤 ‘향기’가 있었다. 이는 재현하기 힘든 따
서 와주셨다. 또한 민주당 활동 중인 강요셉 학
뜻함, 주제를 편히 녹이는 함수였다. 이번 강좌
사, 녹색당 활동 중인 김형수 학사님이 패널로
에서도 그랬다. 강좌 시작 전, 지부 동기와 중앙
나오셨다.
회 ‘좋은 땅’에 앉아 배경찬양을 들으며 김밥을 먹을 때 바로 그 향기가 느껴졌다. 강의가 끝난
민주시민 강좌는 ‘어쩌다 정당인’을 표방하신
후, 오늘 강좌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며 즐거운
임형석 학사님의 간단한 정당 활동 이력과 이야
수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IVF를 통해 복잡
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학사님은 원래는 정
하고 어려운 주제를 흥미롭게 접하며 또 다른 시
치에 관심이 없었으나(물론 구제 차원의 봉사는
야를 넓혀간다.
꾸준히 많이 해오셨다) 차츰 사회적 책임을 각성 하게 되었다고 했다. 2008년의 촛불집회가 그 계
이번 2017년 민주시민 강좌 주제는 “그리스도
기였다고 한다. 집회가 뜨겁고 긍정적이었던 점
인이자 정당원으로 사는 이유”였다. 패널로는 현
은 중요했지만, 광장의 열정이 정치 제도 안으로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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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랑을 위한 가장 전략적 방법, “그리스도인이자 정당원으로 사는 이유”
수렴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무기력함을 느꼈다
정당 활동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청중들을
고 하시며 정치 참여의 이유를 말씀하셨다. 또 정
위한 정보도 많이 제공되었다. 정당에 아주 쉽게
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기득권 의 체제를 공고
가입할 수 있다는 것, 매달 약간의 회비만 내면
히 하게 된다며 참여의 필요성을 논하셨다. 어쩌
된다는 것, 정당 사람들끼리 취미생활을 공유하
다 보니 정당인이 되셨다며 겸손하게 이야기하
는 모임도 있다는 것 등 매우 소소하지만 쏠쏠한
셨지만, “이웃사랑의 가장 전략적인 방법은 정당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패널들이 각 당
활동이다”라는 말로 학사회 총무 이시종 간사님
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 이슈
을 사로잡았다는 후문이 들렸다. 학사님은 이번
나 상황에 대해 다른 시각을 보여준 것도 흥미로
강좌를 기획하도록 불씨를 당기실 만큼 정당 활
웠다. 각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었기에 딱딱
동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 않았다.
발제 후 송하진 학사님의 사회로 패널 토크가
하나님을 만난 후 내게 ‘이웃 사랑’이라는 말은
시작되었다. 토크는 소수당인 정의당, 녹색당과
늘 무겁긴 했지만 기대되는 도전이었다. 누가 이
다수당인 더민주당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서 은
웃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할지, 어떤 방
근히 뜨겁고 재미있었다. 간단히 패널들을 소개
법이 효과적일지, 그리고 무엇이 최선일지를 고
한다. 녹색당 당직자 김형수 학사님은 창조세계
민하고 궁금해 하고 있다. 올해는 민주시민강좌
에 대한 관심과 기득권 정당들에 대한 아쉬움이
를 통해 정당인으로 약자를 위한 정책을 정책에
겹쳐 녹색당을 선택했다고 한다. 토크 동안 차분
반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각자
하고 이성적으로 자연스럽게 주제를 이끌고 정
의 답을 내린 선배들과 친구들의 길을 보며 나도
리하는 촌철살인의 말솜씨를 보여주셨다. 강요
내가 찾은 답 위를 걷고 싶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셉 학사는 젊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세상이 바뀐
소양을 매개체로 이웃 사랑을 새롭게 보여 줄 앞
다는 말을 듣고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요즘
으로의 강좌들이 기대된다.
들어서는 20대에게도 찾기 쉽지 않다던 꿈과 야 성이 느껴졌다.
EARC 2017 한국대회가 궁금하다
EARC 2017 한국대회가 궁금하다 EARC란 “East Asia Regional Conference”의 약자로, 3년 김성우◆ 서울시립대90
에 한 번씩 열리는 동아시아 IFES 학생 수련회입니다. EARC
EARC 2017 한국 준비위원장이자 동서울
가 시작된 1972년 이래 처음으로 이 수련회를 올해 한국에서
지방 대표간사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Q. 어쩌다 EARC2017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게
Q. 그렇군요. EARC2017에는 몇 개국이 참석하
되었습니까? 제 말은 요즘 캠퍼스 상황도 어렵
나요? 주제나 진행의 특이점이 있나요?
다는데 동아시아에서 제일 큰 국제대회를 개최 한다고 하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A. EARC2017 대회는 16개 ‘운동체’들이 참석합니다. 동아시아 특성상, 국가로 분류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
A. 처음부터 세게 나오시네요.^^ 캠퍼스 상황이 어려
라서 ‘Movement’로 부르고 있습니다. EARC는 참 독
운 건 사실입니다. 10년 전 캠퍼스 활동 규모에 비해서
특한 대회입니다. 동아시아 IFES 운동체 대표들이 모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니까요. 단지 기독교 동아리
여서 수련회 주제와 강사, 주요 내용들을 결정하고,
뿐 아니라, 일부 취업을 준비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대
프로그램들도 단체별로 나누어서 담당자를 세웁니
부분의 동아리 회원 모집이 어렵습니다. 청년대학생
다. 개최국은 동아시아 대표단이 결정한 주제와 강사,
들의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EARC(East
내용을 토대로 각 국, 각 운동체들과 소통하며 대회를
Asia Regional Conference)는 동아시아 IFES의 학생
꾸려가게 됩니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Hostile Times,
수련회인데, 지금까지 3년 단위로 15차례 진행되었습
Prophetic Pilgrims”로서, 번역하면 “역경의 시대, 예
니다. 그동안 한국은 한 번도 EARC를 개최하지 않
언자적 순례자들”입니다. 동아시아지역 전체가 ‘역경
았어요. 아마 언어적 한계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
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가 온 것 이지요.
소리 이음
54+ 55
EARC 2017 한국대회가 궁금하다
Q. 이번에 성경 강해자가 팔레스타인 분이던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이번에 400명의 외국
데 흥미롭습니다. 어떤 분이신가요? 또 다른
학생들과 200명의 한국 학생들이 참가할 것으로
강사님들은 어떤 분이 계신가요?
예상하는데, 동아시아지역 나라들 중에 한국 입
A. 성경 강해자는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신학 교 교수이자 팔레스타인 IVF 이사 문터 아이삭 (Munther Isaac) 교수님입니다. IFES 국제총회인 월드 어셈블리에서도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 번에 예레미야 강해를 하시는데, 팔레스타인이라 는 역경의 지역에서 기독인으로 살아오신 교수님 의 말씀을 통해 예레미야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 게 전달되리라 기대합니다. 저녁시간에는 미국 트 리니티 신학교 교수이신 피터 차 교수님, IFES 인 게이징 사역 부총무인 비노스 라마찬드라 등이 강 의를 맡습니다.
국 자체가 어려운 나라들이 많습니다. 필리핀의 경우에는 7~8개의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서류를 다 갖춘다고 해도 비자가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고 합니다. 회비는 각 국가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180~$270로 차등 책정되어 있지만, 비행기 표까 지 생각하면 동아시아 학생들이 한국에 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Q. 끝으로 대회를 통해 소망하시는 바는 무 엇인가요? A. 그간 EARC 대회는 동아시아 대학생 선교에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각 단체에 제한되어 있던 학
Q. 오, 강사님들이 대단하시군요. 학사들도
생들의 시각이 동아시아지역의 다른 나라, 단체들
EARC에 참가할 수 있나요? 장소가 가까우
에게로 확대되는 통로가 되어왔습니다. 몽골, 캄
면 저녁강의라도 듣고 싶은데요.
보디아, ‘Movement C’ 같은 개척 사역도 EARC의
A. 죄송하지만, 학사님들은 동아시아 학사대회인 EAGC 대회가 따로 있어서 EARC에 멤버로 참석 하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로 신청하 실 수는 있습니다. 특별히 영어를 잘하시는 분들 환영합니다. 2017년 8월 3일부터 8월 9일까지 진 행되고, 장소는 인천 송도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입니다.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IVF 가족들을 위해서 오전 성경강해와 저녁 주제강의 는 인터넷 생방송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부분은 차차 안내해 드릴게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ARC 2017을 통해서 16 개의 단체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힘을 얻어 역경의 시대를 이겨내고, 예언적 순례자들로서 하 나님나라 복음을 선포하며 살아낼 수 있기를 소망 합니다. 또, 아직 개척단계에 있는 운동체에서 온 학생 리더들이 도전받고 돌아가 각 운동의 기둥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국 학생들과 간사들 도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시는 크신 하나님을 체험 하고, 캠퍼스에서 용기를 내어 복음의 삶을 살아 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학사, 이사를 포함한 한 국 IVF 모든 가족들에게 섬김과 위로의 기쁨이 넘 치는 대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Q. 학사들이 대회를 위해 특별히 무엇을 기도 해야 할까요? A. 무엇보다 동아시아 학생들이 순탄하게 참석할
4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1. 3월 6일(월)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 사무실에서 실행 위원회가 있었습니다. 2. 3월 11일(토)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 사무실에서 GLC+ 운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3. 3월 25일(토)에 성락성결교회에서 제 3회 기독 직장인대 회가 열렸습니다.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까요?’라는 주 제로 고민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지역 별 모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 부탁 드립니다.
● 6070학사회
5월 16일(화) 특강 : 청춘의 연애 5월 23일(화) 워크샵 : 결혼의 실제 5월 30일(화) 특강 : 페미니즘
● 동서울학사회 강좌 및 팟캐스트 안내입니다. · 주부학사모임 3월 중순부터 다시 개강했습니다. · 페미니즘 팟캐스트 런칭 3월 25일에 <덕후방송> 첫 녹화를 시작했습니다. <직장생존기>도 진행 중입니다.
● 경인학사회 매달 넷째주 목요일 저녁 7시에 경인지방 학사모임이 있
창립 8년을 맞는 2017년을 “IVF 6070학사회 성장 도약의 해”로 정했습니다.
습니다. 경인IVF 학사님들,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학사님들
1. IVF 6070학사회 확대개편안 추진 중앙학사회와 6070학사회가 2018년 하반기 개편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 강원(춘천)학사회
2. 봄 신앙특강이 열립니다. 일시 : 4월 20일(목) 19:00 장소 : IVF 중앙회관 지하 좋은땅 강사 : 오창섭(경북84)
을 학사모임에 초대합니다.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 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 춘천 (엄마들 모임-아이야) 일시 : 매달 첫주 목요일 오전 11:30 문의 : 사공은혜(한림대95) 010-5367-9120
3. 운영위원회 구성 임원 9명, 기별대표 12명, 자문위원 10명, 중앙학사회 담당 간사 1명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 춘천 (학사모임) 일시 : 매주 화요일 19:00 / 은혜교회 문의 : 김아주(한림대05) 010-6381-1635
● 수도권YGM 학사회
·수원 일시 :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문의 : 최경순(한림대94) 010-9536-0703
1. 수도권 YGM 모임이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중앙 회관 지하 좋은땅에서 있습니다. 수도권지역에 거주하는 학 사님들은 언제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입 학 사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모임문의 이철민 간사 070-8275-6363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ivfygm
2. 4~5월 모임일정입니다. 4월 04일(화) 성경강해 4월 11일(화) 봄 MT로 대체 4월 14-15일(금-토) 봄 MT 4월 18일(화) 대선 세미나 : 선택 2017 4월 25일(화) 특강 : 촛불, 그 이후 5월 02일(화) 성경강해 5월 09일(화) 소그룹 데이
·부천 일시 :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문의 : 박은혜(한림대00) 010-9703-8815 ·평촌 일시 :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18:00 / 평촌성심병원 문의 : 김태준(한림대99) 010-5136-5877
● 충남학사회 1. 충남학사모임을 천안과 서울 두 곳에서 진행하고 있습 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 천안 이준희(단국대06) 010-5171-0569 · 서울 손윤형(백석대02) 010-9154-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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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역 안내 · 4월 LGM 일시 : 4월 6일(목) 19:30 장소 : 천안천성교회 두란노하우스 강사 : 이시종간사님 · 5월 사역(충남학사수련회) 일정 : 5월 4일(목)-5월 6일(토) 장소 : 대전 헬몬수양관 주강사 : 김병년 목사님
● 전북학사회 1. 전북학사회의 다양한 사역을 소개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전북IVF 학사회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학사큰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시 : 매달 둘째 주, 넷째 주 목요일 19:30 장소 : 전주 소망장로교회 · IVFC 축구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전북출신 학사님이 아니어 도 관심 있으신 학사님들은 오셔서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일시 : 매주 토요일 아침 07:00~09:00 장소 : 전주 덕진 체련공원 문의 : 전성진 010-7448-0255 · 아볼로스터디에 초대합니다. 일시 : 4월부터 실시 예정 내용 : 함께 책읽고 토론하는 모임 · 마더와이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시 : 매주 수요일 11:00~15:00 (한 달에 한 번 학사모임 참여 예정) 장소 : 이 집 저 집에서 만나요 내용 : 초보엄마, 예비 엄마들을 위한 모임 문의 : 임하정 010-4696-8050
● 영남동부학사회 · 경주-포항 빨래터 주부모임 일시 : 매주 화요일 오전 10:30. 장소 별도공지 문의 : 신지은 010-3120-1146 · 울산 주부 학사모임 일시 : 격주 목요일 오전 10:30. 장소 별도공지 문의 : 박경아 010-6572-2176 · 8090울산대 학사모임 일시 : 시간/장소 별도공지 문의 : 진동일 010-6560-2176
● 대구학사회 대구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하기 원 하는 학사님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IEF(교대학사 교사모임) 매주 월요일 오후 18:00 · 가정피움팀(가정사역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20:00 · 사회복지팀(사회복지관련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19:30 · 평신도 지도자 남편모임 매주 화요일 오후 20:30 · 예사모 아내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 10:00 · inG 수료자 모임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19:00
● 부산학사회 부산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 TGIM(Thanks God It’s Monday) (1달에 2번 일상생활영성과 보냄 받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모임) 부산대점 양말희 010-2061-5260 창원점 정수정 010-3620-9495 · E.M.포럼(복음주의목회자포럼) 일시 :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오전 10:30 문의 : 박철진 010-3578- 7086 · 마마클럽(주부학사모임) 일시 : 매월 1회 문의 : 임지은 010-4143-4926
● 경남학사회 1. 사역 안내 · 4월 한 달간 학사방문달을 가집니다. 기간 : 4월 중 대상 : 경남지방회 학사들 · 경남IVF 학사수련회 일시 : 6월 6일(화) 장소 : 미정 주체 : 인제대 학사회
2. 지역별 학사모임 안내 · WOW(Women On the Way) 일시 : 매주 화요일 19:00~21:00 · 진주지역 정기모임 일시 : 매주 주일 19:00-21:00
· 진주교대 동창회 학사모임 일시 : 매달 셋째 주 금요일 19:00
● GLC+ 강의 일정입니다. 더 다양한 강의와 자세한 안내는 IVF 학 사회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 니다. · 협동조합과 공동체 일시 : 4월 15일(토) 10:00~18:00 장소 : IVF 중앙회관 좋은땅
팟캐스트 IVF 학사들을 위한, IVF 학사들에 의한, IVF 학사들의 팟캐스트! 학사님들을 위한 팟캐스트를 소개합니다.
강사 : 김종수 목사 · 성경의 맥과 얼개 구약2 일시 : 5월 7일(월)~6월 12일(월) 매주 월요일 19:30 / 5강 장소 : IVF 중앙회관 좋은땅 강사 : 이재천 목사
● 나음누리 1.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
아학팟 IVF 학사회 팟캐스트. 본격 기독B 급 팟캐스트를 지향합니다. 3월 25 일부터 새롭게 찾아갈 <덕후방송> 과 <직장생존기>를 진행하고 있습 니다.
에 함께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 정을 참고해주세요. 모임문의: 백성대 간사 070-8275-6345
그리스도인의 책나눔 -복팟
·서울지역(삼성병원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 삼성서울병원 문의 : 이은경 010-8892-8076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
·서울지역(아산, 강동 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 강필제 010-2710-7851
니다!
·경기지역(수원․용인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 송재현 010-2231-1424 ·영남지역(대구모임) 일시/장소 : 매주 토요일(10:00~12:00) / 동신교회 필로세카페 * 마지막주 토요일(11:30~14:30)은 각 가정에서 모입니다. 문의 : 설기호 010-2866-2697 · 부산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장소 별도 공지 문의 : 이은정 010-3862-4189
2. 2017 나음누리 여름 수련회 일시 : 8월 13일(일)-8월 15(화) 장소 : 대전 헬몬수양관 주강사 : 이재천 목사 주제 : "가장 느린 자의 속도로, 가장 낮은 자의 자리로" *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성경학교가 열립니다.
진행하는 팟캐스트 '복팟'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책모임을 지원합
퇴근하고 뭐할래?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루어보는 방송입니다. 취미, 일, 가정생활 등등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시도 하고 적용하며 공부합니다.
맑은물소리 하창완 목사와 함께 <시냇가에 심 은 나무(시심)>(IVP)의 진도를 따 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묵 상도우미.
말씀으로 여는 하루 IVF 출신 목회자들의 설교 팟캐스트
소리 지음
58+ 58
편집인의
메아리
30대가 되니 또래 친구들로부터 결혼 소식이 자주 들 려옵니다. 축하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으레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생기면 회사는 어떻게 하지?”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문제는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 큰 고민거리가 된 것 같아요.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 작비로 사용됩니다.
이번에는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어떠 셨는지요? 많은 회사가 출산과 육아휴직을 장려한다 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입니다. 다음 세대 를 양육하는 일은, 엄마 뿐 아니라 아빠와 공동체, 그 리고 사회전반이 함께 수고하며 책임져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이번 기획이 이 땅의 수많은 ‘워킹 맘’과 ‘예비 워킹맘’에게 작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부터 페이스북과 학사회 블로그를 통해서도 [소 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출퇴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2017년 1~2월 후원자 명단 곽지영(*2) 국효숙(*2) 권도균(*2) 김선미(*2) 김재원(*2) 김종기 (*2) 김종수-구한나(*2) 김지은(*2) 나현순(*2) 남은경 민은혜(*2) 박정현(*2) 박창재(*2) 손정엽(*2) 송인규(*2) 여운성(*2) 오규덕 (*2) 윤정범-지은실(*2) 이상엽(*2) 이우림 이원경(*2) 임정하(*2) 장은숙 전선애(*2) 정민경(*2) 정성구-윤정은 정재성 조창훈-민혜 경 최수연(*2) 황진욱(*2)
근을 하면서, 길을 걷다가, 혹은 문득 생각이 날 때, 언 제든지 만나실 수 있도록 업데이트 하고 있으니 [소 리]의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실 때 찾아오시면 좋겠습 니다. 햇살 좋은 봄과 함께 탄핵 인용 소식이 들려왔네요. 길
강릉(*2) 경기남(*2) 경남(*2) 경인(*2) 남서울(*2) 대구(*2) 대전 중부(*2) 동서울(*2) 부산(*2) 북서울(*2) 서서울(*2) 영남동부(*2) 원주(*2) 춘천(*2) 충남(*2)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었던 겨울을 끝낸 한국사회가 한층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하며, 저는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에 다 시 찾아뵙겠습니다.
김기인│편집인│sori@ivf.or.kr
제35권 제2호 통권231호 발행일 2017년 4월 1일 발행처 (사)한국기독학생회 학사사역부 주소 (0403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서교동) IVF 중앙회관 전화 070-8275-6313 팩스 02-333-7361 발행인 주상윤 편집장 이시종 편집인 김기인 김경아 편집위원 국효숙 김지은 박정현 오한웅 조창훈 허영신 편집디자인 김아롬새미 문이선 표지 이재웅 제작 김효영 인쇄 예원프린팅
2017 Hostile Times, Prophetic Pilgrims 역경의 시대, 예언자적 순례자들 날짜 : 2017.08.03(목)~08.09(수) 장소 :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옫 사이트 : http://earc2017.com
성경강해 (Bible Exposition) 본문 : 예레미야 강사 : Munther Isaac (베들레헴 신학교 교수, 전 팔레스타인 IVF 간사)
주제강의 (Plenary Session) 4일(금) Crisis : 김종호 (한국IVF 대표) 5일(토) Cries : Peter Cha (미국 Trinity 복음주의신학교), Annette Arulrajah (IFES 동아시아 부총무) 7일(월) Christ : Vinoth Ramachandra (IFES 인게이징 디렉터)
EARC(East Asia Regional Conference)는 3년마다 열리는 IFES 동아시아 학생 수련회로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게 됩니다. 문화와 상황이 다른 여러 나라로부터 온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공부하며 소그룹 모임과 교제를 통해 연대를 다지는 특별한 기회가 EARC 안에 펼쳐집니다.
가이사가 아니라 예수가 주님이시며 제국이 아니라 천국이 우리가 살아야 할 나라다! 그리스도 외에 우리에게 왕은 없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 단순한 신앙고백 하 나로 박해와 순교를 당했다. 예수가 주님이시라는 고백은 가이사의 나라, 곧 제국의 가치를 거부한 다는 엄청난 정치적 의미였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은 끊임없이 가이사의 나라를 하나님 나라와 대 조시킨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는 로 마 제국과의 싸움이 아니라 죄와 죽음을 휘두르 는 사탄의 나라에 대한 승리임도 분명히 한다. 본 서는 신약성서에 대한 반제국적 성경 읽기의 가치 와 공헌과 한계를 보여 주는 균형 잡힌 교과서다.
“가치 있는 책이다. 현재 인기 있는 신약성서의 반제국적 해 석에 대한 훌륭한 안내 및 적절한 평가를 제공한다.” -김세윤 (풀러 신학교)
벤 위터링턴(애즈베리 신학교) 폴 트레빌코(오타고 대학교) 피터 옥스(맨체스터 대학교) 헬렌 본드(에딘버러 대학교) 외 추천
스캇 맥나이트, 조지프 모니카 편집 | 홍성수 옮김 무선 340면(예상) | 17,000원(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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