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33 I 2017. 08+09
‘THE’ 생생한 수련회
‘새벗 수련회’를 통해 이어진 하나님의 은혜│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 캠퍼스에서 하나님나라를 꿈꾸다
2008년 전국수련회 “섬광, 세상으로 스며들다”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소리정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THE’ 생생한 수련회
04 08 11 16 20
‘새벗 수련회’를 통해 이어진 하나님의 은혜»임유리 우리 둘의 연결고리였던 수련회»신상훈 폭우와 함께 부어주신 은혜, 1993년 여름수련회»한종무 지금의 나를 형성한 수련회 회고록»김용주 IVF 학생수련회의 현재 모습은?»정석률
소리지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24 29 32 34 36 39 42 45
말씀산책»김유복 지금 다시, 헌법이다»정한신 미생: 종로모임 이야기»허 대리 우리 결혼할까요?»호욱,이은경 오Chef의 오늘 뭐 먹지?»오한웅 재외학사통신원»김영진 함께 이어달리기»류혜선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서영대
소리이음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49 51 53 54
소리가 만난 사람»팽동국
안테나 팟캐스트 편집인의 글
소리
깨끗하고 맑은 소리
정음
한국 IVF는 60년을 이어오는 동안 각 세대별, 지역별로 수많은 수련 회를 열어 왔습니다. 특히 올 여름에는 17번째 동아시아 IFES 학생
‘THE’ 생생한 수련회
수련회인 “EARC”를 한국에서 개최 합니다. 여름방학 시즌을 맞아,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지난날의 수련회 이야 기를 모았습니다. 그때의 열정과 은혜가 우리 모두의 ‘오늘’에 다시 한번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04 ‘새벗 수련회’를 통해 이어진 하나님의 은혜»임유리 08 우리 둘의 연결고리였던 수련회»신상훈 11 폭우와 함께 부어주신 은혜, 1993년 여름수련회»한종무 16 지금의 나를 형성한 수련회 회고록»김용주 20 IVF 학생수련회의 현재 모습은?»정석률
4+ 5
‘THE’ 생생한 수련회
‘새벗 수련회’를 통해 이어진 하나님의 은혜 임유리 ◆ 가톨릭대07 옛날 주일학교 찬양은 모르지만 최 신 유치부 찬양은 잘 알고 있는, 10 년차 그리스도인이자 주일학교 유 치부 선생님
“마하반야 바라밀다” 초등학교 다닐 때, 또래 중에 주일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자랑하듯 주기도 문을 외우면 나는 그에 질세라 반야심경의 앞 구절을 외우곤 했다. 그렇다. 나는 7살 때 동네 큰 절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다. 1년이라는 짧은 시 간이었지만 어렸을 때 배운 것들인지라 배웠던 모든 것은 내 기반이 되었 다. 유치원 생활 이후로는 부처님 오신 날에 등 하나 켜고 오는 게 신앙생 활의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나의 종교는 불교라고 생각하며 20년을 살아 왔다.
‘새벗 수련회’를 통해 이어진 하나님의 은혜
그랬던 내가 청춘이 꽃피는 대학에 들어와서 (비
첫 날, 수련회 장소에 들어가니 우리에게 노란색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꺼리는) 기독교 동아
단체 티셔츠를 입혔다. 유치원 원복 같은 노오란
리에 들어가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아이러니
병아리색 티셔츠였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신입
한 일이다. 그만큼 그때의 내 삶은 갈피를 못 잡아
생이라고 적혀있는 듯했다. 우리가 모였던 장소
혼란스러웠고 마음은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공
는 형형색색의 풍선들로 장식되어 있었고, 리더
허했다. 재수까지 하고 대학에 들어왔건만 막상
들이 일렬로 서서 우리를 열렬히 환영했다. 병아
대학에 와보니 지난날의 고단함을 보상해줄 것
리 같은 단체 티셔츠와 뜨거운 환대는 마치 내가
이 아무 것도 없었다. 대학만 들어가면 행복해질
존재만으로도 사랑을 받을 만한 어린아이가 된
줄 알았는데 이전의 생활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삶의 어느 순간부터 더
히려 이제는 전력질주 할 목표까지 사라진 상태
어른스러워지기 위해 애썼던 것 같은데. 힘들어
인지라 나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겉으로는
도 의연해지려 노력하며 환경이 안 좋을수록 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매일 밤마다 공허한 마
이 악물고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메시지를 좇아
음을 붙들고 눈물 지을 때였다.
서 힘들게 살았던 것 같은데, 그 수련회장에서는 그동안 내가 애쓰며 살아온 게 사르르 녹아드는
그러다 우연히 같은 대학교에 다니던 고등학교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
동창의 제안으로 IVF에서 하는 신입생 환영 MT
해주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
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술 한 잔 없이도 즐겁고
에서 나의 마음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천진난만하게 놀고 티 없이 행복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충
그러나 진짜 내 마음을 두드린 순간은 조원들과
격적이었다. 이곳이라면 나도 저들처럼 웃을 수
의 만남과 저녁 말씀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난생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MT 이후로 소그
처음 보는 다른 학교 리더 언니 2명과 한 번도 마
룹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사실 성경
주친 적 없는 동급생 친구 1명과 같은 조가 되었
공부보다는 서로의 삶을 나누자는 제의가 더 반
다. 우리 조원들은 ‘나는요’를 통해 각자의 아픔을
가웠다. 알 수 없는 그 공허함을 털어 낼 수 있을
꺼내기 시작했다. 리더 언니들은 학창시절 친구
거 같아서였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새벗 수련
들 사이에서 왕따 당한 경험과 이혼하신 부모님
회(그때 당시에는 ‘해피 캠프’라 불렀다)에 가게
아래에서 외롭게 지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나
되었다. 사실 그곳에서 뭘 하는지도 잘 몰랐다. 분
누어 주었고, 그런 것 때문에 무너진 자존감이 예
명 리더 언니들이 설명을 해줬을 테지만, 기독교
수님을 만나고서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
문화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나는 들어도
다. 그런 예수님을 우리 또한 만났으면 좋겠다고
뭐가 뭔지 몰랐다. 그냥 중간에 물총 싸움도 하고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리더 언니들의 나눔과
다른 학교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정도가 내가
비슷한 맥락의 내용이 그날 저녁집회 주제로 다
이해한 전부였다.
뤄졌다. 저녁집회 시간의 설교 주제는 ‘자기 인생
소리 정음
6+ 7
‘THE’ 생생한 수련회
에서의 세 가지 피’였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지나
이런 제안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때 그 친구의
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설교내용을 되
마음에는 기도를 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았나 보
짚어보면, ‘세 가지 피’란 친구들과 다투며 보았던
다. 셋째 날인가 넷째 날인가 잘 기억은 나지 않
피, 부모님이 다투면서 보았던 피, 그리고 그 두 가
는다. 야심한 저녁에 불 꺼진 집회실에서 둘이 손
지 피를 보면서 받았던 상처들을 씻겨주시는 예수
을 잡고 기도했다. 나의 첫 마디는 “하나님”이었
님의 보혈이었다. 리더 언니들의 이야기와 간사님
다. 그때부터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눈
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내 모습이 보였다.
물, 콧물 쏟아가며 겨우 겨우 한마디 더 내뱉었다. “저 많이 힘들었어요….” 머릿속에서는 여러 말들
어린 시절부터 우리 부모님은 심하게 다투셨다.
이 생각났지만 북받치는 감정에 아무 말도 하지
폭행과 욕설이 난무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내가 할
못했다. 그렇게 우는 도중에 뭔가 ‘내가 다 안다’라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늘 쓸모없는 존재라
는 마음이 들었다. 그 뒤로는 더 말할 생각도 못하
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가득한
고 그냥 마구 울었던 것 같다. 이 정도 되면 예수님
가정에서 내가 신뢰와 사랑을 배울 리 만무했다.
을 만났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했다, 라고 생
그런 내가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확률은 더더
각할 수도 있지만 초신자인 나는 쉽게 두려움을
욱 없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종종 왕따를 당
거둘 수 없었다.
했고, 그때 느꼈던 수치심에 내 자신을 더 가리고 포장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리더 언니와 원투원을 하는데 언니가 나
대학에 와서 느꼈던 허무함은, 대학입시에 몰두하
에게 물었다. “예수님이 너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느라 가려졌던 나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수면으로
누르며 네가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어. 너는 문을
올라오면서 나타난 것이었다. 리더 언니들처럼 그
열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겠니?” 그러나 나는 예
리고 말씀을 전해준 간사님처럼, 나의 상처와 문
수님에게 문을 여는 순간, 내 인생이 내 맘대로가
제들이 예수님을 만나 해결될 수 있다면 나도 그
아니라 예수님 맘대로 마구 휘저어질 것 같은 불
분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다는
안에 휩싸였다. 두려움에 말을 못하고 있을 때 언
것이 어디 번호표 뽑고 들어가서 만나면 되는 것
니가 말했다. “혹시 예수님이 너의 집을 마구 어지
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평생을 ‘내 종교는 불교’
럽힐 거 같아 그러니?” 순간 나는 멈칫했다. ‘독심
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 와서 종교를 기독교로
술이 있는 것인가?’라고 혼자 생각했다. 언니가 계
바꾼다는 것도 너무 낯설고 이상했다. 마치 저들
속 말을 이어갔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란다.
의 착한 모습에 속아 사이비 종교인이 될 것 같은
너의 집을 더욱 깨끗이 청소해 주시고 네가 더 살
얼토당토않은 두려움이 나를 휘감았다.
기 좋은 집으로 가꿔 주실 거야.” 이미 독심술로 간 파 당한 나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고 느
같은 조 멤버였던 동급생과 이런 혼란스러운 마
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겠다고
음을 나누었고, 그 동급생은 나에게 같이 기도를
말했다. 리더 언니는 나와 영접기도문 같은 것을
해보자고 했다. 이 친구도 같은 새벗이었는데 왜
같이 읽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 소식을 들
‘새벗 수련회’를 통해 이어진 하나님의 은혜
은 간사님과 지부 리더 사람들 그리고 1학기 내내
해하시고 나와 내 가정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
나의 소그룹 리더였던 언니도 함께 눈물을 흘리
는 것을 존중해 주신다. (원래 성경책만 봐도 화
며 기뻐해 주었다. 사람들이 기뻐하니 나도 기뻤
를 내시던 아버지의 지난날에 비하면 지금의 이
고, 지금까지 고민했던 두려움들은 언제 그랬냐
런 모습만으로도 나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느낀
는 듯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내 동생도 교회를 다 니겠다며 이번 주부터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첫 수련회가 막을 내렸다. 물론 그
이제 가족 중에 믿음의 동지가 하나 더 생기게 될
수련회 이후로 더욱 치열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상황을 변화시키시진
가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은 새벗 수련회
않는다 해도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분인 것은 분
와 다르게 아주 빡세고 하드코어한 자기 직면의
명하다. 나를 주님의 자녀로 품으시고 변화시켜
연속이었다. 20년을 이방인으로 살아왔으니, 이
주님을 알게 하셨듯이, 내 동생과 부모님도 그렇
제 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쉬울
게 변화시킬 것이고 그렇게 주님의 나라가 우리
리 없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사람
가족에게도 찾아 올 것이라 믿는다.
들과 말씀이 있었고, 그리고 처음 나의 기도에 응 답해 주었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그렇
그리고 내 모든 여정의 시작이 되었던 새벗 수련
게 10년이 흘렀다.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얼마나
회와 그 수련회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거듭났는지는 모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르겠다. 솔직히 자신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처 음 나를 만나주셨던 하나님이 있기에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를 기도하게 만들었던 나의 원가정은 결국 올 해 초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동 안 부모님의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수없이 기도 했지만, 결국 가족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평화 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는 남편을 만나 새로운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가정 의 긍정적인 면을 알아가고 배우고 있다. 기존의 가정을 통해서 누릴 수 없었던 평화를 새로운 가 정에서 누리고 있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믿음이 없지만, 내가 세워가는 가정의 모습을 보며 흐뭇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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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생생한 수련회
우리 둘의 연결고리였던 수련회 신상훈 ◆ 총신대93 숭실대 97학번 김유진과 10년간 연애 한 끝에 결혼을 하고, 지금은 예쁜 딸 아이와 같이 오손도손 살고 있는 총신 IVF 학사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1999년 여름수련회입니다.
레쉬맨’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역 근처의 교
지금 생각해 보니 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
회에서 남서울지방회 말씀사경회를 했는데,
이어서, 세간에는 세상의 종말이 올지도 모
그곳에서 처음 그녀를 봤습니다. 어찌나 예
른다거나 주님이 다시 오실 거라는 이야기
쁘던지! 솔직히 인정합니다. 외모에 끌렸다
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시지 않았
고요. 뭐,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
고, 저는 기대와는 달리 보람차지도 않았던
아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2년간의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학교 에 복학하기 전에 IVF 수련회에 갔습니다. 일반 수련회 리더로 가는 것보다는 군생활 로 인한 어리숙함을 털어버릴 겸 새신자 수 련회(당시에는 EBS)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글쎄, 그 수련회에 제가 군에 가기 전부터 맘에 찍어 두었던 자매가 와있지 뭡 니까! 제가 4학년 때(제가 이래 봬도 3학년 을 마친 후 1년 동안 휴학하고 IVF만 했던 열 성 환자였습니다) 그 자매는 푸릇푸릇한 ‘후
그렇게 그 자매를 마음에만 담아두었는데, 지긋지긋한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직후 오 게 된 첫 수련회에서 바로 그 자매를 다시 만 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왜 이렇게 중요 하냐면 IVF 수련회는 종류가 많기 때문입니 다. 일반 수련회도 아니고 새신자 수련회에 서 보게 될 줄이야, 오 마이 갓! 새신자 수련회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서 서로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 았습니다. 몇 개의 소그룹이 있었는데, 우리
우리 둘의 연결고리였던 수련회
는 서로 다른 소그룹이었지만 큰 방에서 같이 조
사 하면 저도 할게요.” 이때 전도사님이 씩 웃으
모임을 하며 지내게 되었지요.
며 저에게 알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저와 자매
지금은 오래되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용감하 게 유진 자매를 불러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햇빛
는 함께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 어려운 일을 제가 해내지 말입니다. 모든 것이 주 님의 은혜죠.
이 따사로운 오후였죠. 우리는 정원에 나란히 앉
사실 그 당시 자매 주위에는 자매를 좋아하는 형
아서 관목을 보고 있었어요. 당시의 저로 말씀드
제들이 적어도 다섯은 있었을 겁니다. 지금 제 아
릴 것 같으면, 위에도 언급했듯이 따끈따끈한 예
내는 극구 부인하면서 “아니다. 한 명밖에 없었
비역! 저는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혹시
다!”며 정색을 하지만요. 그 한 명은 저한테 들켰
저렇게 풀에 삐쭉하고 나온 거 있으면 부대에서
던 적이 있거든요.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동안에
어떻게 하는 줄 아냐? 저거 다 조경 가위로 깎아
도 자매에게 관심을 보이는 형제가 있었지만 어
줘야 한다! 엄청 힘들어.” 얘기를 마치고 나서 제
찌어찌 잘 해결(?)되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제
가 “자, 이제 들어가자”라고 했다는군요. (저는 솔
가 자매 곁에서 저의 비루한 존재감을 알게 모르
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아내가 이렇게
게 어필한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주일에는
얘기하더군요.)
자매가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왔습니다. 저는 그
당시 자매는 그 상황에서 제 이야기를 듣고 생각 했답니다. ‘뭐지, 이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은?!’ 그 렇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생각해도 진짜 어이가 없네요. 인정합니다. 자매 는 제가 같이 나가서 얘기하자고 했을 때, 뭔가 의
걸 보고 “무슨 일이야, 괜찮아?”라며 걱정했는데 그날 자매는 교회에 오면서 기도했답니다. “하나 님, 제가 손가락 다친 걸 보고 걱정해주는 형제가 있다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요! 오오!
미 있게 할 말이 있거나 중요한 것을 말할 줄 알았
이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자매에 대
는데, 기껏 불러서 한다는 얘기가 잡초 얘기였으
해 결정적으로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또 다른 수
니 그럴 만도 합니다. 사실 저는 당시 자매가 이렇
련회였습니다. 그해 겨울, 우연히 둘이서 IVF 수련
게 생각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만 수련
회 ‘소망나누기’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고 아
회 내내 제가 속한 소그룹이 약간 미친 사람들처
끼던 멤버들이 잘 있나 보러 간 것이죠. 수련회에
럼 즐거워하기에, 저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이 들
가는 두어 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저는 자매와 이
긴 했다고 합니다.
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매가 “오빠, ‘보노
수련회 이후 교회를 옮기게 되었는데, 어머, 그곳 에 또 그 자매가 있었지 말입니다! (저는 그 사실 을 알고 교회를 옮긴 게 절대 아니었습니다.) 할렐 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성급하게 굴지 않 았습니다. 어느 주일, 전도사 형님이 저에게 이러 더군요. “상훈아, 주일학교 교사 하지 않을래?” 그 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유진이가 교
보노’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애 니메이션이었는데 엄청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매는 성대모사 급으로 동화구연을 시 작했습니다. 캐릭터인 포로리, 너부리, 보노보노 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면서 에피소드를 하 나하나 풀어놓는데, 저는 소망나누기에 가는 내 내 빵 터질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너부리야, 너
소리 정음
10+ 11
‘THE’ 생생한 수련회
부리야, 나 때릴 거야?”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모
짜증이 난 자매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저에게서
르는 분들은 유튜브에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엄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숨바꼭질이 시
청 재밌습니다.) 그날 저는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작되었죠. 저는 자존심을 모두 버렸습니다. 제발 나
‘이 자매와 같이 살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이 자
와 사귀어 달라고 두 달 동안 필사적인 구애를 한 끝
매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
에 드디어 교제에 성공하게 됩니다. 자매는 못 이기
했습니다.
는 척 받아주었습니다. 그후 10년 동안의 기나긴 교
그 이후로 저는 자매 주변에서 질척거리기 시작했 습니다. 자매에게 조금씩 다가가면서 구질구질하 게 매달리기 시작한 거죠. “밥을 사주면 뭔가 소그 룹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는 등의 말도
제 끝에 결혼에 이르렀고, 지금은 예쁜 딸아이와 함 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교제하기 전의 에피소 드보다 10년 동안 사귀면서 벌어진 일들이 훨씬 더 스펙타클합니다.
안 되는 제안도 하면서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혹시라도 제가 적은 이야기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바보 같았습니다. 자매는 ‘뭐 이런 선배가 다 있나’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에
라고 생각하면서 저를 불쌍히 여기기도 하고 멀리
피소드이고, 독자들의 삶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
하기도 했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잘해줘
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부족하고 보잘 것 없던
도 모자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왜 그랬나
제가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자매를 만
싶습니다. 마치 어린애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
나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나누었습니다. 그 속에는
에게 못되게 구는 모습의 파편인 듯도 하고, 한편으
거의 매번 수련회라는 연결고리가 자리 잡고 있었
로는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면 거리를 두거나 도망
네요. 이 글은 어떤 교훈이나 가르침을 드릴 수 있는
갈까 봐 무섭기도 했나 봅니다.
글은 아닙니다. IVF를 하면서 많은 꿈과 비전이 있
약간의 썸을 타는 기간이 지나던 어느 날, 자매가 저와 거리를 두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빠, 우
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달려오신 형제자매들에게 이 글이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리 생각할 것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저도 먹여 살리시고 지난 날
문자를 받고 다음날 결단을 했습니다. 선물을 준비
제 삶을 인도해주셨던 것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살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당시 가난했던 저는 집에 있
아 계시긴 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멍청
는 썬키스트 유리병에 곰탕을 담아 자매에게 주기
했던 한 남자가 꽤 괜찮은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차
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어이가 없고 황
근차근 인생에 대해 배웠습니다. 자매를 만난 이후
당한 선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는 자매에게
로 지금 저는 예전보다 좀 더 나은 남자이자 아빠가
프러포즈인 듯 아닌 듯 먹고 기운을 차리라며 곰탕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게 은혜가 아닌가 싶습니
을 주었습니다. 거절당할까 봐 겁을 먹은 저는, 애매
다. 지금도 살아가기 힘든 순간에 직면해 있는 모든
하게 “우리 서로를 같이 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
분들과 눈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지체들 모두에게
런데 자매는 내심 멋있고 용기 있는 프러포즈를 기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대하고 있었는데 저의 이 말을 듣고 짜증이 확 났다 고 하네요. 저는 그때 왜 그랬을까요? 도무지 알 수 가 없네요.
폭우와 함께 부어주신 은혜, 1993년 여름수련회
폭우와 함께 부어주신 은혜, 1993년 여름수련회 한종무 ◆ 동의대90 자칭 IVF의 돌연변이. 돌연변이도 모태 가 같을 수밖에 없다며 IVF 학사임을 강 조하며 살고 있다. 부산 IVF의 가장 아 팠던 손가락 중 하나인 동의대 출신이 다. 동의대는 90년에 개척을 시작했으나 94~95년을 거치며 활동이 없었고, 96년 에 재개척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3 년에 귀농한 어설픈 농사꾼. 수확철이 되 면 IVF 스승들과 학사들을 괴롭혀 여러 가지 농산물을 강매(?)한다. 이와 함께 통일 운동과 북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으 나, 운동과 연구 성과는 전무하다.
1993년 여름수련회를 앞두고 1991년 2학기, IVF는 ‘6개대 사태’라는 큰 몸살을 앓았다. 내가 IVFer가 맞긴 했나 보다. 그 후유증이 오래 갔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끙끙 앓 았다. 내가 속해 있던 동의대 IVF는 1990년 개척을 시작한 이후 2~3년 동안 놀라운 자발성과 운동성을 보여주어 다른 지부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나, ‘6개대 사태’와 한기연의 분리 이후 부산지방회에서 천덕꾸 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간사님들과 성실한 다른 지부의 눈치를 봐가며 겨우겨우 IVF 생활을 연명하던 중에, 1993년 전국수련회 소식이 들려왔다. 주강사가 무려 존 스토트 목사님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존 스토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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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생생한 수련회
멀리 영국에 살고 계신, 사진으로만 본 적 있는
게 놀았다.
이분을 자신의 혈육처럼 가까이 여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는 신입생 때부터 간사님과 선배들
개회예배에서 우리는 주제찬양을 불렀다. 바로
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당시 나는 지
“우리가 이 땅에 그루터기라!”였다. 그랬다. 동의
부에서 문서담당자였는데, 서적전시회에서 이분
대 지부와 나에게 IVF는 ‘한’과 ‘신명’의 존재였고,
의 저서를 언급하지 않았다가는 문서담당자로서
동의대 IVF와 나는 ‘그루터기’와 같은 존재였다.
의 역량이나 심지어는 IVFer로서의 정체성을 의
풍물공연을 하면서 4년간 지속해온 IVF 생활의
심받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갖은 고난(?)을 겪으
‘한’과 ‘신명’을 고백했다면 주제찬양을 하면서 나
며 IVF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내가 IVF를 포
와 동의대 IVF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의 상황
기하지 않도록 한 데에는 존 스토트 목사님이라
을 놓고 기도했다.
는 존재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러 므로 1993년 여름수련회만큼은 무조건 참석해야
수련회 핸드북을 받았다. “IVF 전국 ‘선교’수련
했다. 수련회 수개월 전부터 우리 지부 모두 참석
회”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제목이 왜 이렇게
해야 한다며 동생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어색하지? 예전처럼 그냥 IVF 전국수련회라고 하 면 안 되나?’라는 의문이 생겼다. 수련회에 ‘선교’
출발과 시작, 만남
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이 IVF의 방향성에 쐐기를 박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것 역시
그리하여 당시 3학년이었던 나는 수련회에 참석
6개대 사태의 후유증이었다. 사소한(?) 것에 목숨
했다. 개회예배 순서 중 하나를 맡은 풍물패 일원
걸지 말자고 내 마음을 다스렸다.
이었고, 소그룹 리더였다. 따라서 당일이 아닌 하 루 전에 선발대로 출발했다. 수련회가 열리는 연
드디어 첫 조별모임! 수련회 때마다 정말 기대가
세대 원주캠퍼스는 부산에서 아주 멀게 느껴졌
되는 시간이 바로 첫 조별모임 시간이다. 전국수
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었고 낯선 곳을 여
련회라서 더욱 그랬다. 사람 만나고 사귀는 것을
행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지금은 기억나
좋아하는 게 나의 천성이라 전국에서 모인 IVFer
지 않는데 다른 공연을 준비하던 어떤 선배와 함
를 만나니 가슴이 뛰었다. 이 글을 위해 그때 핸
께 출발했다.
드북을 다시 살펴보았다. 핸드북에는 5명의 조원 이 적혀 있지만, 정확히 조원은 6명이었다. 모두
수련회 당일, 부산지역 IVF 학생들을 태운 버스
92, 93학번 형제자매들이었다. 김희은(대구대 치
가 수련회 시작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수련회
료특수교육학과 93), 박윤주(고신대 식품영양학
준비모임을 하며 함께 연습한 부산지역 IVF 풍물
과 93), 전미순(울산대 일문학과 92), 이복현(강원
패를 데리고 공연장에서 리허설도 마쳤다. 그다
대 축산학과 92), 이상한(영남대 토목공 92), 성
지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으나 ‘농활’을 통해 단련
명미상의 자매(동우대 간호학 92~93). 지금은 이
된 부산지역 풍물패는 다행히도 수련회의 시작을
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풋풋하고 신실했
흥겹게 열었다. 공연을 보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던 그들의 이미지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않고, 우리는 그냥 온 몸이 땀에 젖도록 신명나
폭우와 함께 부어주신 은혜, 1993년 여름수련회
1993년 IVF 전국 선교수련회 집회모습(출처 : IVF아카이브)
보통 수련회에서 내가 조장이 되면 처음에는 조원
때문에도 여러 사람의 기억에 남았지만 또 하나는
들이 나를 매우 힘들어 한다. 왜냐하면 조원이 한
바로 날씨였다. 수련회 내내 날씨의 변덕이 심했다.
명이라도 늦으면 밥도 안 먹었고 말도 많았기 때문
장마철이라 덥고 습했으며 때로는 비를 맞아서 추
이다. 조장은 잘 들어줘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
웠다. 특히 강해설교 시간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 그래도 그때 우리 조원들은 하루 만에 나를 편
때 맞춰 내리는 비는 설교를 듣는 데 방해가 되었
하게 혹은 만만하게 대했다.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
다. 우리는 노천극장에 앉아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
고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
고 설교를 들었다. 중요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리 조(307조)와 함께 했던 형제자매들은 지금 어디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자 존 스토트 목사님
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글을 쓰
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 있자니 많이 궁금하다. 목사님 : 여러분, 설교를 마칠까요? 주제강해, 존 스토트 목사님
회중 : NO!!!! 목사님 : 여러분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는군요. 다
수련회의 백미는 아무래도 강해 설교 시간이다. 책
른 나라에서는 설교하다가 이런 상황이 생기면, 학
으로 읽었던 존 스토트 목사님의 사상을 직접 들으
생들이 설교를 듣다 말고 그냥 흩어진답니다. 자연
며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설교는 책의 내용과
스럽게 설교가 끝나요.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책으로 읽는 것과 직 접 만나 듣는 것은 달랐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상황이 두 번 정도 반복됐다. 비를 맞으며
되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현대 사회의 문제
설교를 듣는 우리가 목사님은 많이 안쓰러웠나 보
와 기독교의 답변」, 「자유주의자와의 대화」 그리고
다. 나는 조원들과 함께 앉아 설교를 들었다. 비를
그가 일부 관여한 「로잔언약 ⅠⅡ」등이 내가 접했
맞아 한기가 들어 힘들어 하는 조원들에게 “평생에
던 존 스토트 목사님의 저서다. 그가 쓴 저서와 문
한번 만나기 힘든 인물로부터 듣기 힘든 설교를 듣
서는 근본주의적이고 편협했던 신앙에서 벗어나게
는 거야. 조금만 힘내자”라며 독려하기도 했다. 전
해주었으며, 복음주의 신앙으로 삶의 방향을 일러
체적으로도 끝까지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몸
준 나침반과 같았다.
살이 나서 다음날 프로그램이나 모임에 빠지는 사 람도 생겼다. 하루의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숙소
이 수련회는 주강사가 존 스토트 목사님이라는 것
로 돌아오면 모두들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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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생생한 수련회
발까지 모두 젖어서 양말을 벗으면 숙소에 악취가
리 끝내 주지. 간사님들 너무해!” 나는 거기에 맞장
진동했다. 다른 수련회 같았으면 취침 전까지 노는
구를 치며 “맞아, 간사님들이 갈수록 모 선교단체
분위기였겠지만, 이때는 다들 피곤해서였는지 빨
와 비슷해지는 것 같아!”라고 받았다. 성숙한 설교
리 잠들었다.
에 미성숙한 적용이었다. 나는 학창 시절을 그렇게 보냈고, 여전히 그렇다. 그래도 환자에게는 의사가
셋째 날인가 넷째 날인가, 점심식사 후 자유 시간
필요하지 않겠는가? 요즘도 나 같은 환자가 캠퍼
에 존 스토트 목사님이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
스에 분명히 존재할 텐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 애
간을 내시겠다고 했다.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는 절
쓰시는 간사님들의 수고와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
호의 기회였다. 참석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를 보낸다.
갔으나 생각보다는 적었다. 나는 목사님께 이런 질 문을 던졌다 . 나 : 연세에 비해 건강해 보이시는데, 평소에 어떻
청년 정신을 배우고, 청년 정신으로 놀다 그 수련회에서 권영석 간사님의 주제 강의 또한
게 건강을 관리하십니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제목은 “복음의 능력과 우리
목사님 : 요즘 몸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많이 먹지
의 대학, IVF 운동의 역할”이었다. 잘 정리된 지식
않습니다. 아침에 과일 몇 조각과 우유를 먹고, 될
과 역사의식, 시대를 읽어 내는 능력이 돋보이는 강
수 있는 대로 적게 먹습니다.
의였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설
나 : ….
교보다도 기억나는 것이 많다. 핸드북을 펼쳐 봐도 여러 강의 가운데 가장 열심히 메모가 되어 있다.
한두 시간 정도로 기억되는 대화의 시간은 빠르게
간사님의 강의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보편적’이면
지나갔다. 여러 질의응답은 강해설교 때와 마찬가
서도 ‘젊은’ 강의였다. IVF를 시작할 때 받았던 도전
지로 그가 쓴 저서의 내용과 다르지 않았으나, 확
을 다시 떠올렸다. 보수나 진보, 전도와 사회참여를
고했다. 복음주의 신앙의 중요성과 이 신앙이 결코
떠나서 나의 좁고 편협한 시야를 깨뜨리고 넓혀 주
편협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셨던 것으로 기억한
었다. 강의를 듣고 나의 절친 이성현(동아대 90)과
다. 요즘 같았으면 같이 사진이라도 찍었을 텐데 아
함께 피드백을 나누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쉽다.
그 강의 이후 ‘권영석’ 간사님을 기억하고 있다가 페 이스북을 통해 페친이 되었고, 2~3년 전 쯤에는 직
저녁강해 설교가 끝나면 기도회 시간이 이어졌다.
접 뵙기도 했다. 선교단체 축구 대회가 있어서 여러
비오고 습하고 심지어는 춥기까지 한 상황에서 예
간사님들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정보다 기도회가 길어졌다. 회중들의 분위기가 설
선수로 뛰고 계셨다. 가끔 권영석 간사님의 페이스
교를 들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설교 시간은 잘 인
북 포스팅을 보는데 여전히 청년 정신을 지니고 계
내하다가도 기도회가 길어지면서 불만의 목소리도
시고 몸도 젊으신 것 같다. 그 수련회로부터 20년이
나왔다. 기도회를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비를 쫄
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딱 맞은 한 사람이 불만을 쏟아냈다. “기도회 좀 빨
폭우와 함께 부어주신 은혜, 1993년 여름수련회
공동체 한마당에 대한 기억도 남아있다. 계속 비
나 힘이 들었을까?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가 와서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
철저하게 준비하고 열악한 기상조건과 부족한 상
히 날씨가 좋아져서 함께 노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
황을 이겨내면서 수련회를 진행하셨듯이 간사님들
다. 다만 비가 온 탓에 운동장 상태는 엉망이었고
은 각 지부의 IVFer들을 양육하고 가르쳤을 것이다.
참석자들은 적극적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 동체 한마당 행사는 진행되었다. 그런데 차전놀이
당시 우리 동의대 지부를 맡았던 박철진 간사님을
를 하던 중, 우리 지부의 새내기 최무훈(이후 부산
비롯하여 부산지역의 김성식 간사님, 문춘근 간사
외대로 편입하여 계속 IVF를 함)이 대장으로 동체
님, 지성근 간사님, 전태영 간사님, 박태선 간사님,
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아찔한 사고가 났다. 높이
여진경 간사님, 정수애 간사님, 서진미 간사님 등
와 떨어지는 모양새로 봐서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
대부분의 간사님은 지금도 내가 스승으로 모시고
황이었다. 지켜보던 모든 간사님의 얼굴이 흙빛으
가끔 연락하며 지낸다. 부산지역은 아니지만 그 당
로 변했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멀리 있던 나는 가까
시에 스텝으로 뛰었던 김종호 간사님, 신현기 간사
이 가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열린 전국 IVF 행사를
님, 이철민 간사님, 신응종 간사님은 당시에는 서로
중상자로 인하여 망칠 뻔했으나, 최무훈 형제가 유
모르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알게 되어 만나면 기쁘
연했는지 비가 와서 땅이 물러서였는지 크게 다치
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산다. 아울러 존 스토트 목
지는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예나 지
사님은 1993년 전국수련회를 통하여 한국 IVF의 중
금이나 행사를 하면 잘 놀아야 하고, 그에 앞서 안
심을 잡아 준 큰 어른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
전이 최우선이다.
찬가지로 당시에 수련회를 섬겼던 간사님들 또한 앞으로 IVF의 중심을 잡아 줄 어른이 되실 분들이
그후, 나는
고 이미 그 역할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분들은 그때의 존 스토트 목사님보다 훨씬 젊다.
1993년 여름 수련회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한 전국 수련회다. 존 스토트라는 귀한 분이 주
1993년 당시의 IVF는 어려운 시기를 겪어내고 있
강사로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고, 여러 간사님과
었다. 그때 나는 철이 없어서 간사님들을 무던히도
목사님들로부터 좋은 강의를 들었으며, 조별모임
힘들게 했다. 애먹이던 자식과 제자가 나중에는 더
을 하며 짧지만 아름다운 만남을 누렸다. 편안한 잠
잘한다던데, 20년이 지나고 중년이 다 되어서도 나
자리와 좋은 먹을거리도 누렸다.
는 이 모양이다. 뭐라도 보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염치 불구하고 아직도 “스승님들께 배운 대로 살기
그때는 잘 몰랐지만, 당시에도 어린 IVFer들이 자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만 말씀드린다. 여전히
라는 것을 돕기 위해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섬기는
부족한 나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는 믿음이 있다.
간사님들이 계셨다. 나이가 들고 아는 것이 생겨 돌
“밤나무, 상수리 베임을 당해도 우리가 세상의 그루
이켜 보니, 수련회를 진행하는 것이 영육 간에 얼마
터기라”는 것, 복음의 발걸음이 땅끝까지 끝날까지
나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
이어지리라는 것을 말이다.
었다. 작은 수련회도 그러한데 전국 수련회는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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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형성한 수련회 회고록 김용주 ◆ 서강대75 졸업 후 5년간 협동간사로 사역했고, 현 재는 GLC+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남은경(이화76)과 결혼하여 세 딸과 손 자손녀를 두었다. 잡다한 책읽기와 책 구 입, 영화보기, 여행, 클라리넷, 골프‘연습’ 등을 좋아하며 앞으로 글을 ‘조금이라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소리>에 서 다룬 ‘교회’ 기획을 통해 산오름교회 를 알게 되어 2016년부터 다니고 있다.
수련회와 한국 IVF 나는 1976년 3월, 2학년 때부터 1979년 2월 졸업할 때까지 학부 학생 으로 IVF 활동에 참여했다. 그 학창시절의 3년 동안 크고 작은 IVF 수 련회에 셀 수 없이(?) 참석했다. 큰 수련회란 전도수련회(EC: Evangelistic Conference), 제자도수련회(DGC: Disciple Group Conference) 와 같이, 보다 공식적이고 기간도 최대 5박6일 정도로 길며 전국 또는 권역 단위로 열리는 제법 큰 규모의 수련회를 말한다. 작은 수련회는 큰 수련회의 준비를 위한 조장훈련 수련회, 학교별 수련회 등, 필요에 따라 보통 1박2일 기간으로 열렸다. 학창시절에 내가 참석한 모든 수 련회를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고, 1977년 12월~1978년 10월 기간에 내가 참석했던 IVF 수련회만 그 예로 들어보겠다. 이렇게 많은 수련회 에 참석했던 이유는, 내가 특별히 열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에 어 느 정도 성실한 IVF 리더라면 대체로 참석하던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수련회 회고록
1977
12.26.~12.30.
겨울 전도수련회 (용인 낙원수양관)
02.08.~02.10. 부산 개척수련회 (부산 동래 미화농원) 02.15.~02.18.
겨울 제자도수련회 (임마누엘수도원)
03.24.~03.25. 서강대 부활절/신입생환영수련회 (서울기도원) 1978
06.06. 07.10.~07.14.
여름 전도수련회 조장훈련수련회 (서울기도원) 여름 전도수련회 (용인 낙원수양관)
08.19.~08.20. 79그룹(79년 졸업생) 수련회 09.01.~09.02. 서강대 리더수련회 (서울기도원) 10.27.~10.28.
겨울 제자도수련회 조장훈련수련회 (임마누엘수도원)
이 기간은 한국 IVF의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1977년 2학기 이후 수년간의 수련회, 특히 방학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1977년 여름, 한국
중에 하는 큰 수련회들은 한국 IVF의 온캠퍼스
IVF는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그때까지 해오던
운동 전략이 잘 뿌리내릴지를 시험하는 시금석
‘주일회관모임’ 방식을 포기하고 그해 2학기부
이었다. 큰 수련회는 각자의 캠퍼스로 흩어져 고
터 ‘주중온캠퍼스모임’ 방식으로 운동 전략을 전
군분투하던 멤버들이 모처럼 함께 모여서 그 분
환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주일회관모
투의 열매(전도 또는 제자훈련의 열매)를 확인
임’은 (서울지역의) 모든 IVF 학생들이 오전에
하고, 감사하고, 격려와 위로를 주고받으며, 각
는 각자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오후
자의 캠퍼스와 다른 캠퍼스로의 확장을 위해 다
에 IVF (서울)회관에 함께 모여서 예배와 성경
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온캠퍼스 운동
공부, 기도회를 하는 방식이었다. ‘주중온캠퍼스
의 정착으로 이후 한국 IVF는 양적으로나 질적
모임’은 주중에 각자의 캠퍼스로 흩어져 각 캠퍼
인 면에서 획기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스의 상황에 맞게 전도, 예배, 성경공부, 기도회 등을 하는 방식이다.
이제 나의 학창시절 수련회가 나 자신에게 주 는 의미를 먼저 살펴보고, 나의 신앙과 인생 여
애초에 주중온캠퍼스모임이 진정한 IVF의 운 동철학 “온캠퍼스(on campus)와 학생자발성”
정에서 큰 의미와 영향을 주었던 두 수련회를 회 고해보겠다.
에 부합되는 운동 전략인데 그때에야 비로소 실 천에 옮기게 되었다. 모임 방식의 갑작스런 전
학창시절의 수련회는 책읽기와 같다
환으로 그해 2학기는 IVF 학생들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 되었다. 어떤 캠퍼스는 모임이 거의 없어
나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장르를 별로 가리지
지다시피 하였으나, 살아남은 캠퍼스는 제대로
않으며 잡다한 주제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된 모임이 세워져서 학생자발적인 리더십으로
책을 읽을 때에는 자주 밑줄을 긋고 표시도 한
성장하여 캠퍼스에 자리 잡았다.
다. 좋은 구절은 책 뒤편 내지에 메모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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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생생한 수련회
다. 하지만 책 내용을 따로 노트에 체계적으로 정
함께한 그 모든 것들이 학창시절 나의 신앙을 이루
리하지는 않는다. 다만 읽으면서 그때그때 표시할
는 데 책읽기만큼이나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수
뿐이다. 가끔씩 표시한 부분만 찾아가면서 대충대
련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내게 일어났던 그 많
충 되새김질하기도 한다. 어떤 책은 시간 간격을
은 일들이 다양한 텍스트가 되고, 등장인물이 되
두고 여러 번 다시 읽기도 한다. 그때마다 처음 읽
고, 삽화와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세부적인 것을
는 기분이 든다.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세부적인
일일이 다 기억할 수는 없어도 지금의 나 자신을
내용(문장, 낱말 등)을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지
형성하고 나의 신앙을 이루는 데 크게 유익한 재료
만, 어느덧 그 책이 나의 정신과 영혼의 한 부분을
들이 되었다. 책읽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처한 환경과 분
리고 그 재료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위기에 따라 같은 책이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가장 큰 그림(또는 큰 책)의 일부를 이룬 것이다.
학창시절의 수련회는 나에게 마치 책읽기와 같았
수련회#1 거듭남의 감격
다. 그 시절의 수련회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수련회 체질(?)은 아니
때는 바야흐로 4학년 여름방학이었던 1978년 7월
었다. 몸이 약하기도 했고 다소 내성적인 기질 상
10일(월)~14일(금). 용인 낙원수양관에서 “도피하
여러 날 동안 24시간 내내 나를 다른 사람들 앞에
는 현대인”이라는 주제로 여름 전도수련회가 열렸
노출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유 없는 피로감이 한
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때는 1977년 2학기에 온캠
번씩 몰려왔다. 게다가 나의 회심은 수련회를 통해
퍼스모임으로 전환한 지 약 1년이 되는 시점이었
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학기 중에 했던 IVF 성경
는데, 전환하기 이전보다 수련회 참석자가 많아져
공부와 기독교서적(존 스토트의 「기독교의 기본
서 각 학교의 리더들과 간사님들은 상당히 고무된
진리」, 펄 리틀의 「이래서 믿는다」 등) 읽기를 통
상태였다. 전환 후 처음으로 1학기를 맞아서 학생
해서였다. 이런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내가 구원
자발적인 리더십이 자리를 잡은 학교에서는, 신입
을 확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2학년 때
생 전도와 유치 그리고 재학생에 대한 적극적인 홍
의 일이었다.
보를 통해 각 학교에 새로운 멤버들이 갑자기 많이 들어오는 바람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동
비록 수련회가 나에게 회심의 경험을 주지는 않 았지만, 내가 참석했던 많은 수련회는 훌륭한 ‘텍
시에 이들을 감당할 새로운 리더들을 양성해야 하 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스트’가 되어 나의 신앙을 자라게 해주었다. 여러 가지 책을 읽듯이 그 많은 수련회가 나에게 다양
수련회의 주요 내용으로는 송인규 간사님의 이
한 텍스트가 되어주었다. 수련회에서 피로감을 느
사야서 성경강해, 그리고 여러 특강(강사: 권영석,
끼긴 했지만, 동시에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
정옥숙, 주상윤 간사)들이 있었다. 이 수련회에 총
의 회심과 변화, 분위기, 강해 설교, 성경공부, 강
210명이 참석했으며, 이들 중 30명 이상이 거듭나
의, 간증, 찬양시간과 찬양의 가사, 즐거운 촌극시
는 열매를 맺었다. 나는 4조 조장이었고 우리 조
간, 캠프파이어, 크고 작은 에피소드, 결단의 시간,
원은 모두 8명이었다. 나와 부조장이었던 조한미
물놀이, 심지어 오후의 낮잠시간 등등, 수련회에서
(동덕3), 유영미(연세1), 양능우(성심1), 김남영(연
지금의 나를 형성한 수련회 회고록
세2), 이경희(숙명3), 오창건(고려1), 김미현(경희
함)이 참석했다.
의3)이었다. 우리 조는 4명이 불신자였는데 성경공
나는 학생이 아니라 간사로서 학생들에게 ‘캠퍼스
부와 일대일 면담을 통해 모두 예수님을 영접했다.
에서의 이성교제’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
특히 두 자매가 조한미 자매의 인도로 마지막에 결
내용은 나의 연애와 실연의 경험, 성경적 지침, 선
신하게 되었다.
배의 조언, 미국 IVF 자료의 내용 등을 버무려서 정 리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강의 내내 초집중해서 듣
이 수련회에는 불신자 친구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느라 자신들이 열기에 들뜬 것도 잊고 있었다. 거기
그들 대부분이 예수를 영접하기로 결단했다. 마지
에다 추운 날씨에 실내에 피워놓은 난로의 열기까
막 밤에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앞에 나와서 자신
지 더해서 강의가 끝났을 무렵에는 다들 얼굴이 빨
의 결단에 대해 간증하고 새로운 믿음을 공개적으
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로 나누었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격 려를 받은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지난 1년 동안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졸업직전까지 2년여 동안
각자의 캠퍼스에서 변화된 새로운 전략에 맞춰 애
한 여학생과 연애를 하다가 실연을 당했다. 언급한
쓰며 학생 리더십을 일으켜 세웠던 각 학교의 멤버
이성교제 강의를 하기 1년 전쯤이었다. 수련회가 시
들과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작되는 스산한 월요일 저녁, 나는 마장동 버스터미
크게 칭찬받고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
널에서 수련회 장소가 있는 경기도 광주행 완행버
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무엇보다 이
스에 올라탔다. 맨 뒷줄 좌석 중앙에 앉아서 버스가
수련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결신자들이라는 열매와
어서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이 거의
각 캠퍼스 모임의 양적, 질적인 성장을 통해 그동
없는 버스의 맨 앞쪽을 멍하니 바라보는 중이었다.
안의 수고를 인정하시고 갚아주신다는 사실에 모
그때 운전석 맞은편 앞문으로, 일행으로 보이는 두
두들 감격했다.
사람이 동시에 버스에 탔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몸 을 돌리며 내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향하는 순간,
수련회#2 나만의 여인을 만나다
나는 그녀에게서 ‘아우라’를 보았다. 나흘 후 그녀 는 내가 했던 이성교제 강의를 들었다. 다섯 달 뒤
나는 1979년에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협
나는 그녀의 직장이 있는 도시로 그녀를 찾아가서
동간사로 사역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에 얘기
만났다. 나는 지금 그녀와 삼십 오년 째 만족스런
할 수련회는 학창시절의 수련회는 아니고 협동간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에게서 세 딸이 태
사 초년시절의 수련회다. 바로 제 1회 IVF 동계선
어났고 손자손녀까지 얻어, 나는 행복한 남편이자
교수련회로, 1980년 1월 7일(월)~12일(토)에 경기도
할아버지로 살고 있다.
광주 충현기도원에서 개최되었다. 주강사는 이동 원 목사(히브리서11장 강해)였고 강사는 조동진 목 사(선교 특강)와 하도례 목사(평신도 선교)였으며, 간사 특강은 주상윤 간사(불신 친구)와 현수일 간 사(시간 사용), 박영덕 간사(장래 문제), 김용주 간 사(이성교제)였다. 학생은 130명(불신자 10여명 포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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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생생한 수련회
IVF 학생 수련회의 현재 모습은? 정석률 간사 ◆ 캠퍼스사역연구소장 IVF 캠퍼스사역연구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격월간 QT지「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기획, 편집하는 일도 맡아서 하고 있다. 1남 2녀 다자녀가정의 아빠 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2017년 여름수련회 공동체훈련 모습 (출처: IVF 남서울 지방회)
수련회는 IVF 사역 중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신입생들에게는 첫 수 련회인 여름수련회는 IVF가 어떤 곳인지를 가장 깊이 경험하게 하는 장이며, 겨울수련회는 보다 깊이 하나님과 공동체를 만나도록 돕는 장입니다. 사실 수련회는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를 알리며 공동 체의 유익을 경험하게 하는 유익한 도구입니다. IVF 수련회는 시대에 맞게, 그 시대의 학생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왔으 며, 그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소리>의 지면을 통해 요즘 IVF 수련회의 모습에 대해 한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각 지방회가 특별히 많은 신경을 쏟는 수련회가 여전히 여름수련회이므로, 이 여름수련회 의 모습을 주로 정리하려 합니다.
IVF 학생 수련회의 현재 모습은?
많은 배려를 했고, 또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름수련회 이모저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림은 대 (1) 수련회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나요?
략적으로나마 우리 수련회가 여전히 어디에 중점
캠퍼스사역연구소에서는 매년 각 지방회의 수련
을 두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도록 합니다.
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조사를 토대로 정리한 각 지방회 수련회의 평균적인 프로
(2) 수련회 기간은 어떤가요?
그램은 아래와 같습니다. 각 지방회 별로 강의 시
전국 18개 지방회의 올해(2017년) 여름수련회 기
간대도 다르고 GBS 시간대도 다양하지만, 다수의
간을 살펴보면 약간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2014년
지방회가 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엮은 대략적
여름수련회 조사까지만 해도 모든 지방회의 수련
인 수련회 패턴입니다.
회 기간이 5박 6일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조 사에서는 7개 지방회의 수련회가 5박 6일이었고,
시간대 오전
프로그램 QT와 조별 나눔 강의(연차별 강의, 선택식 강의, 전체특강) 자유 시간 & 원투원
오후
놀이마당(혹은 장터) GBS 찬양 & 성경강해 & 기도회
저녁
조별모임 조장(리더) 모임
[표1] 전국 18개 지방회 여름수련회의 평균적인 프로그램 구성
나머지 11개 지방회의 수련회는 4박 5일이었습니 다. 수련회 기간이 점점 4박 5일로 변화하고 있음 을 알 수 있습니다. (3) 여름수련회 성경강해자는 주로 누구입니까? 2015년에 캠퍼스사역연구소는 최근 5년간 (2010~2014) 전국 18개 지방회의 여름수련회와 겨울수련회를 전수 조사하였습니다. 이 5년간 총 280회의 수련회가 있었으며, 약 280명의 성경강 해자가 있었습니다. 이 성경강해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들은 현직 IVF 간사였습니 다. 4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
현재 IVF 수련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
으로는 IVF 간사 출신 목회자로 33%였습니다. 그
역은 ‘성경강해’와, 소그룹 성경공부시간으로 묶
다음이 IVF 간사 출신 비목회자로 14%를 차지했
일 수 있는 ‘성경교육’ 혹은 ‘성경훈련’이라고 할
습니다. 최근 2년간(2016~2017)의 수련회도 살펴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성경강해는 저녁시간에
보면 비슷한 비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
이루어집니다. 몇몇 지방회는 오전에 성경강해를
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각 지방회가 주강사로 현직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방회의 성경강해
IVF 간사 혹은 IVF 간사 출신 목회자를 선호한다
시간은 주로 저녁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학생들
는 것입니다. 이 비율이 79%로 압도적으로 높았
의 참여활동 여부에서 볼 때는, 강의나 성경강해
습니다. IVF 간사 혹은 간사 출신을 가장 선호한
같은 강사 중심적인 소통방식의 프로그램 비중이
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IVF 운동을 잘 이해하
더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수련회마다
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것 아닐까요? 이
오후 시간은 휴식 혹은 원투원 시간을 주기 위해
를 볼 때, 각 지방회가 우리 공동체 고유의 가치를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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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생생한 수련회
지키는 장으로서 수련회를 활용하는 측면이 강
으므로 이 통계를 살펴보면 현재의 IVF가 어떤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슈에 가장 민감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참고 로 선택식 강의에서는 ‘이성교제와 성’, ‘자아상’,
(4) 학생들은 주로 어떤 강의를 들을까요?
‘자기계발’ 주제(범주)가 각각 10.4%로 가장 높은
수련회에서는 여전히 선택식 강의, 연차별 강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선택식 강의는 정말 그 주
의, 전체 강의가 진행됩니다. 이 강의시간을 통
제가 다양하고 많습니다.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은
해 많은 지방회들은 IVF 공동체의 정신을 이야
2017년 여름수련회에 여성주의 관련 강의와 토
기하며, 현재 학생들의 흐름에 맞는 주제를 다루
론들이 부쩍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IVF가 우리
려 애를 씁니다. 물론 강의 제목은 예전과 비슷할
가 살아가는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담아내기 위
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다루는 내용은 이전에 비
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해 여러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5) 수련회의 하루는 어떤가요? 그렇다면 요즘 학생들은 수련회에서 어떤 주제
수련회에서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오전 7시에
로 강의를 많이 들을까요? 먼저 연차별로 정리
기상합니다. 그리고 밤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
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1년
에 주로 취침합니다. 멤버들은 하루 평균 6개의
차가 수련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강의주제는 ‘복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리더들은 평균 7개의 프
음과 교리(27.9%)’, ‘신앙과 일상(16.3%)’입니다.
로그램(식사 시간 제외)에 참여합니다. 아침은
2년차는 ‘IVF 운동론(28.2%)’, ‘영성훈련(20.5%)’
QT로 시작합니다. 마무리는 조별나눔으로 끝납
입니다. 3~4년차는 ‘영성훈련(25.7%)’, ‘소명과
니다. 꽤 많은 지방회에서 수련회를 위한 기도팀
진로(20%)’입니다. 이 주제들은 실제의 강의제
이 따로 운영되고 있으며, 여전히 수련회 전에
목을 가지고 통계를 낸 것이 아니라, 그 강의가
리더들이 함께 모여 수련회를 준비하고 있습니
속하는 대충의 범주로 나름대로 나누어서 통계
다. 최근 여름수련회 GBS는 1학년에 초점을 맞
를 낸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
추어 ‘복음’에 대해 높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습
는 대충의 범주 상위 두 개만을 기술하였습니다.
니다. GBS에서는 복음을 다루고 전체모임에서 는 총체적 복음과 하나님나라를 다루는 방향이
전체강의로 가장 많이 듣는 주제(범주)는 ‘총체
평균적인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
적 복음’으로 25.7%를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 높
습들은 현재 IVF가 수련회를 통해 다루고자 하
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하나님나라’로 20%
는 주요 이슈들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였습니다. 연차별 강의와 전체강의는 주로 IVF
것입니다.
의 정신과 공동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주제가 많
IVF 학생 수련회의 현재 모습은?
(6) 여름수련회 참석인원 변화 추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6년간 여름수련회 참석인원의 변화는 어땠을까요? IVF 멤버십 감소와 더불어 여름수련회 참석인원도 꾸준히 감소추세에 있습니다.
연도
수련회 참석인원
2011년
3,461명
2012년
2,867명
2013년
2,763명
2014년
2,466명
2015년
메르스로 인해 집계되지 않음.
2016년
1,669명 [표2] 여름수련회 참석인원(2011~2016년) 추이
2015년은 전국적인 메르스 사태로 인해 수련회가 많이 취소되었습니다. 이로 인 해 집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올해(2017년)는 아직 집계 이전입니다. 이상으로 현재 IVF 수련회의 모습을 보여 드렸습니다.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네’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거고, ‘여러 변화가 있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IVF 수련회는 여러 면에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직 프로그램 의 많은 부분이 한 방향 소통 방식이긴 하나, 각 지방회 별로 쌍방 소통 방식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련회 때 듣는 강의 주제들도 현 시대 대학생들의 이슈를 담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 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음’을 강조하기 위해 그 비중을 점점 높이고 있는 흐름도 주목할 만합니다. 각자 수련회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해드린 정리가 수 련회의 추억을 떠올리고, 또 수련회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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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산책
어마어마한 대적과 싸워 이기려면 (삼상 17장)
김유복 ◆ 영남대84 캠퍼스 간사로 14년을 섬긴 후, 뼈를 묻 으려 했던 IVF를 떠났다. 대구에서 대 학생들과 ‘기쁨의 교회’를 개척했고, 현 재까지 15년 간 사역하고 있다. 다음 세 대에서도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열 매를 맺어갈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싶 다. 저서로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 음」이 있다.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 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삼상17:40). 상식적으로 이건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다. 누가 봐도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 있다. 그렇다고 물러서거나 포기할 수도 없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을 만날 때가 있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 같은 대 적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콤 글래드웰이 쓴「다윗과 골리앗」은 이런 싸움에서도 이기는 사람들이 있 다고 말한다. 좀처럼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의 규칙을 따르 지 않는다. 오히려 게임의 규칙을 새로 만든다. 틀을 깨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승리를 꿈꾸며,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전략으로 전장 에 선 강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승리를 쟁취한다.
말씀산책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들이 있다. 예수님은 우
전쟁터의 영웅이었다”는, 사기를 떨어뜨리는 소문
리가 어둠을 이기는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이 영내에 돌고 있었다. 창날의 무게만 11kg인데다
우리에게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다. 교회는 세상
가 57kg의 갑옷만 바라보아도 그에게 대적할 생각
의 어둠과 악을 이기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부르심
을 감히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의 마음은 승리가
을 받았다. 세상에서는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 계속
아닌, 온통 골리앗에게 점령당했다. 그들이 골리앗
되고 있고, 교회는 어마어마한 세상의 공격에 직면
을 이긴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 있다. 때때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싸움 은 과연 승산이 있을까? 우리는 과연 정의가 승리하
승리는 승리를 꿈꾸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승리할
고 불의가 패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교회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골
공중권세 잡은 적의 공격을 이기고 어둠 속에서 그
리앗의 거대함과 강력한 힘에 마음을 빼앗기면 두
찬란한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
려워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과 함께 승리하기를 원하신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임금님의 승리를 소리 높여 기뻐하고,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상상력뿐 아니라 전장의 규 칙까지 지배했다.
을 높이 세워 승리를 기뻐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임 금님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합니다”(시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
편 20:5).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우리가 어떻게 승
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
리할 수 있을지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전투
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
경험이 없는 다윗이 어릴 때부터 전쟁의 영웅이라
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삼상 17:8-9).
고 불렸던 전설적인 전사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 까? 보통사람의 거의 두 배 크기의, 보기만 해도 두
골리앗은 싸움의 규칙을 스스로 정했다. 1대1로 붙
려움에 떨게 만드는 이 괴물 같은 장수를 어떻게 이
자는 것이다. 이 싸움의 규칙은 절대적으로 자신에
길 수 있었을까? 이 싸움을 잘 보고 배우자. 그리고
게 유리한 것이었다. 3m에 육박하는 사람과 1대1로
우리도 이기자.
싸우면 누가 유리하겠는가? 사울과 이스라엘은 골 리앗이 정한 싸움의 규칙 너머를 상상하지 못했다.
1. 창조적 상상력
부족을 대표하는 전사를 뽑아 그들이 싸우게 함으 로 대리전을 벌이는 것이다. 선발된 전사들끼리 맞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앞에 우뚝 선 골리
붙어 육탄전을 통해 승부를 가리게 된다. 이는 당시
앗의 모습을 보고 완전히 압도당했다. 그들의 마음
일반적인 전쟁의 규칙이기도 했으므로 이스라엘은
은 골리앗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럴
그 이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수밖에 없었다. 골리앗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어떤 번역본은 2m가 넘는다고 쓰고 있고 다른 번역본은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은 그들의 무의식까지도 지배
3m 가까이 된다고 했다. “골리앗은 어린 시절부터
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용사라.” 그는 한 번도 져
소리 지음
26+ 27
말씀산책
본 적이 없는 타고난 전사였다. 이스라엘은 이 말
꿀 수 있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을 내면화했다. 그들은 골리앗을 이길 수 없을 것 이다. 골리앗의 전설은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신
2. 거룩한 분노
화가 되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타고난 전사이
에 의해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
므로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믿음
다. 다윗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하나님
을 믿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했다. 다윗
의 이름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능욕하는 골
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묻는 내용을 살펴보라. “이
리앗에 대해 분노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과 그
기면 왕이 무엇을 준다고 말했는가?” 그의 모습은
의 백성들을 위한 거룩한 분노가 있었다. 26절에서
거만하리만치 자신만만했다. 그는 이길 것을 상상
다윗은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했다. 그는 승리할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 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유진 피터슨이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에서
군대를 모욕하겠느냐?”라고 말한다. 그의 마음에는
하는 말을 들어보자.
거룩한 분노가 불타고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가 그깟 골리앗 따위에게 모욕을 당하다니, 그
“평상시 늘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경배해 온 그에
것은 다윗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는 곰의 사 나움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었다. 기도하고 노래하
분노는 에너지다. 분노하라.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며, 묵상하고 찬미하는 가운데 형성된 그의 상상력
위해. 자신을 위해 분노하지 말고 하나님과 그의 백
속에는 양, 곰, 사자를 모두 압도하는 더 크고 거대
성들을 위해 분노하라. 엉뚱한 일에 분노를 쏟아내
하며 강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하나
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위해 분노하라. 거
님이었다.”
룩한 분노는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와 정의를 위한 전장에 뛰어드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준다.
다윗이 골리앗의 신화와 압도적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상을 통해 기
분노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자기 파괴
도하고 노래하며 묵상하고 찬미하는 가운데 형성된
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사울은 자신을 위해 분
‘믿음의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상상력’
노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분노했다. 그 결과
속에는 골리앗이 아닌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울은 미치광이에 살인마가 되었지만 다윗은 승리
그의 상상력은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하나
한 왕이 되었다. 우리는 분노하지 않아야 할 일에 분
님을 체험함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이러한 상상력
노하고, 정작 분노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분노하지
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철저하게 훈련한
않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분노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즉, 세상에 압도
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겠는가? 하나님
당하지 않고 하나님께 사로잡혀 거룩한 승리를 꿈
이 그에게 승리를 주시지 않겠는가?
말씀산책
하나님을 위한 순수한 동기를 상실하는 순간 우리
다윗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는 실패하고 만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우리 자신의
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몽상가가 아니었
탐욕을 위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 이겨도 이긴
다. 승리해 본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사람
것이 아니다. 사울은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위
이었다. 결국 누가 믿음의 승리를 쟁취하는가? 지
대한 장수였으나 그는 자신의 동기를 지키지 못했
금의 삶 속에서 작은 승리를 축적해가고 있는 사
다. 우리의 동기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선한 동기로
람일 것이다. 다윗이 처음부터 사자와 곰을 쳐 죽
시작했다가 악한 동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목회자,
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
선교사, NGO단체 등, 예외란 없다. 선한 동기로 시
서 더 많은 승리를 경험하면서 그는 승리를 확신하
작했다가 추하게 막장으로 치닫는 인사들과 단체
게 되었을 것이다.
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는 추하게 늙어가 는 것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라면 삶의 작은 일에서부터 말씀 따라 살아보는 것이 중요하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순
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실 것
종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사울이 아
을 기대한다. 부흥이 ‘나로부터 시작’되기를 소망하
말렉을 진멸하고 좋은 가축을 남겼을 때 하나님을
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익숙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위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고 핑계를 댔다. 그
작은 일들에 대해서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다
는 자신의 동기가 순수했음을 호소했다. 동기가 순
윗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에
수하다고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 예수님을 죽인 유
최선을 다해 순종했다. 맹수가 찾아오면 돌을 던졌
대 지도자들의 동기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 우
고, 막대기로 짐승의 콧등을 때려 물리쳤다. 그의
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고
힘이 자랐을 때에는 그 스스로가 승패를 가늠했을
순종해야 할 일에 순종해야 한다.
것이고, 해볼 만하다 판단이 서면 도전했고 이겼을 것이다. 다윗의 승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우리의 동기는 때때로 요동친다. 순수하다고 믿었
아니다. 객기 부리다 죽을 수 있다. 다윗의 결정적
던 우리의 행위 속에 불순한 동기가 숨어있을 수
인 승리는 일상에서의 작은 승리의 경험들이 축적
도 있다. 수시로 변화하는 동기를 하나님의 뜻에 비
된 결과였지 그날 갑자기 생긴 믿음의 결단 때문
추어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 아니었다.
서 우리의 동기를 새롭게 해야 한다. 반대로, 불순 한 동기가 섞여 있을까 염려하면서 아무런 시도조
토라진 친구나 배우자에게 먼저 다가가 커피 한 잔
차 하지 못하는 ‘순수한 사람’도 있다. 걱정하지 말
내밀기, 까닭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
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라. 불순한 동기가 올
려놓기, 사무실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
라올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복하고 마음을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저항해보기, 주위의 결손가
새롭게 하라.
정 아이를 찾아 멘토가 되어주기, ‘읽씹’ 당하고 있 는 카톡에 반갑게 댓글 달아주기, 소비를 줄여 필요
3. 승리의 경험
한 형제에게 익명으로 헌금하기, 악을 악으로 갚지
소리 지음
28+ 29
말씀산책
않고 선으로 되돌려주기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승
용하기로 한다. 물맷돌을 잘 던지려면 갑옷은 오히
리할 수 있는 하나님나라의 작은 일들은 많다.
려 방해가 된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싸웠다. 전장에 이끌려 다니지 않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에도
거대한 대적 앞에 섰을 때 축적된 승리의 경험들
구애받지 않았다. 다윗은 전장을 주도했다.
은 자신감과 지혜를 제공해줄 수 있다. 그때 무엇으 로 이겼는지, 어떤 방법으로 이겼는지, 시간은 얼마
둘째, 다윗은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골리
나 걸렸는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승리하게 하셨
앗은 무거웠고 다윗은 가벼웠다. 게임의 룰이 바뀌
던 경험을 되살려보라. 하나님은 또 다시 이기게 하
면 강점이 약점으로 바뀔 수 있다. 백병전에서야 무
실 것이다.
거운 갑옷과 무기가 최고의 작전이겠지만, 투석전 에서는 가벼운 것이 최고다. 무거운 칼과 창을 휘두
4. 다윗의 물맷돌과 골리앗의 칼
르려면 거구가 신체가 강점이지만 원거리에서는 무 용지물이다. 다윗은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사울은 다윗을 위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갑옷과 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고 성공했다.
기를 주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 성경책을 보면 커 다란 갑옷을 뒤집어 쓴 다윗의 그림이 종종 나온다.
셋째, 다윗은 자신에게 맞는 목표와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성경은 사울의 갑옷이 컸다고 쓰지 않고 “익
물맷돌로 적을 기절시킨 후에 골리앗의 칼로 그의
숙하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다윗의 신체는 사울만
목을 벤다. 칼로 싸워 누가 골리앗을 이기겠는가?
큼이나 건장했다. 문제는 다윗에게는 불편한 복장
다윗은 이길 수 있는 목표를 선택했고, 바로 그 목표
이었던 것이다. 다윗은 그것을 벗어버린다. 그리고
를 이루기 위한 작전을 수립했다. 남이 만들어준 목
자신이 잘 다룰 수 있었던 물맷돌을 선택한다.
표, 남이 짜준 계획과 방법은 그 사람의 것이다. 사 울의 갑옷은 사울에게 돌려주라. 과거 승리의 경험
고정관념이 우리의 강점과 잠재력을 구속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전투를 하려면 갑옷을 입고
을 바탕으로 승리할 수 있는 목표와 작전을 수립하 고 실행하라.
칼을 들고 나가 상대와 싸워 이겨야 한다. 누가 정 했는지는 모르지만 철저하게 골리앗 중심의 이러한
나는 이기고 싶다. 어둠을 이기고 빛을 비추고 싶고,
룰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사울도 그렇게 생각
탐욕으로 찌든 세상에 사랑으로 가득한 진짜 세상
했다. 전투에 나가는 사람은 갑옷을 입고 칼이나 창
인 교회를 세우고 싶다. 잠시 존재하다가 소멸할 교
을 들고 나가 싸우는 것이었다. 반면, 다윗은 어떻
회가 아닌 이기는 교회를 세우고 싶다. 우리끼리 행
게 싸웠는가?
복했던 교회가 아닌 역사의 물꼬를 트고 도도히 흐 르는 강물 같은 흐름을 만들어내는 그런 교회를 세
첫째, 다윗은 주도적으로 싸웠다. 다윗은 주도적으
우고 싶다. 이길 수 있을까? 다윗은 이겼다. 우리도
로 전투의 방식을 결정한다. 다윗의 시대에도 물맷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을 통해 승리하는 그
돌 부대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원거리 전투에 활용
리스도인, 승리하는 교회를 꿈꾼다.
되었다. 하지만 다윗은 물맷돌을 일대일 대결에 활
지금 다시, 헌법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헌법 네 번째 이야기 : 존엄한 삶을 위한 기본적 인권, 기본권과 기본권 보장 체계의 이해-
정한신 ◆ 부산대94
소리 지음
IVF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아내(한은 정, 동아대 99학번)와 두 아들과 더불 어 성숙하는 가정을 꿈꾸며 살고 있 다. 캠퍼스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으 며, IVF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기획연 구 위원이자 ‘일상학교’ 대표 겸 프로그 램디렉터다. ‘일상학교’의 법/제도 과정 의 일환으로 “전 국민 헌법 읽기 프로젝 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속 기획 강 좌 “대한민국 헌법을 말하다”를 기획하 여 진행하고 있다. peacemaker99@ hanmail.net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표제가 붙은 헌법
가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제대
제2장(헌법 제10조~제39조)은 흔히 기본권에
로 향유할 수 없다. 그래서 현대 헌법은 인권
관한 장이라고 한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 조항
을 기본권으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제38조, 제39조)을 제외하고, 헌법 제10조에
시스템에 의해 이를 확인하고 보장할 뿐만 아
서 헌법 제37조가 국민의 권리, 즉 기본권을 규
니라, 국가권력 등의 부당한 간섭과 침해로부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권 보장 체계 를 구축하고 있다.
인간의 권리를 인권이라 부른다. 인권을 국가 제도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체계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
적으로 규범화하여 헌법에 규정한 것이 기본
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
권이다. 보통 인권은 국가가 부여해 주는 권
써 모든 기본권을 포괄하면서도 기본권 규정
리가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가지
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선언하고 있다. 또한
는 권리로 이해된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는 국
같은 조항의 행복추구권도 다른 기본권의 기
30+ 31
지금 다시, 헌법이다
초가 되는 근본 가치를 표현하는데, 일반적 행
헌법은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 즉 인간
동자유권 등이 파생된다고 보기도 한다. 헌법
의 존엄을 명시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 속에
제11조는 평등권에 관한 일반조항이고(특히
인간 권리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해
제1항), 헌법 제32조, 제36조 등에서 평등과 관
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기본권은 인간의 존
련된 개별적인 내용을 규정한다. 그리고 헌법
엄성에서 출발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존
은 인신의 자유(신체의 자유, 제12조, 제13조),
재한다.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 직업의 자유(제15 조), 주거의 자유(제16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
인간 존엄성은 인간의 가치가 최우선이어야
유(제17조), 통신의 비밀(제18조), 양심의 자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국가나 사회의 제
(제19조), 종교의 자유(제20조), 언론·출판·집
도보다 인간이 우선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
회·결사의 자유(표현의 자유, 제21조), 학문과
체가 목적이며 결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예술의 자유(제22조), 재산권(제23조), 선거
안 된다. 따라서 우리 헌법은 인간을 국가나
권(제24조), 공무담임권(제25조), 청원권(제
특정 세력의 수단으로 삼는 전체주의를 부정
26조), 재판을 받을 권리(제27조), 형사보상청
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모든 제도나 행위
구권(제28조), 국가배상청구권(제29조), 범죄
는 인정하지 않는다.
피해자구조청구권(제30조), 교육을 받을 권 리(제31조), 근로의 권리(제32조), 노동3권(단
한편, 우리 헌법상 존엄성을 갖는 인간에는
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제33조), 인간
어떠한 차등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연인으로
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환경권(제35조)
서의 인간은 장애나 기형의 여부 등 어떠한 조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렇게 열거된 기
건도 불문하고 존엄성을 갖는다. 이러한 인간
본권 외에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실현에 필요
의 존엄성을 구체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
하거나 시대 변화에 따라 반영되어야 할 기본
개별적인 기본권들이다. 그리고 헌법 제10조
권도 보장하도록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기본
에 따르면 이러한 기본권은 국가에 의해 ‘확
권(휴식권 등)도 보장한다(제37조 제1항).
인’되는 것이며, 국가는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 를 진다. 기본권은 국가가 부여한 것이 아니
이와 같이 헌법에 열거된 기본권과 열거되지
라 인간으로서의 본질 그 자체에서 인정되는
않은 기본권을 포함하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
것이고, 국가는 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는 기본권들은 매우 많지만 이 모든 기본권들
또한 국가는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진
이 수렴되는 헌법 제10조의 의미는 특히 중요
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
하다.
하기 위한 것이고,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국 가 기구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
구해야 하며, 만약 기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
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
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기본권을 침해하는
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국가의 행위는 헌법적으로 부인된다.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지금 다시, 헌법이다
이와 같이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권에 대한 제한이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
를 정점으로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그리고 개
미이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해도 기본
별적인 기본권 조항들에 의해 구체화되는 기
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발생하는 사적 불이
본권 보장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익과 피해가 공익보다 크다면 위헌적인 기본
러한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권의 침해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헌
조항이 있다. 바로 헌법 제37조 제2항이다.
법 제37조 제2항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 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 즉 핵심 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 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다양한 법
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
률을 만들어서 시행한다. 이러한 법률이 기본
을 침해할 수 없다.”
권 제한의 한계를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위헌적인 기본권의 침해가 된다. 이러한 법률
이 조항은 국민이 그 자유와 권리를 안정적
에 대해 헌법소원이 청구되거나 일정한 경우
으로 누리기 위해 필요한 공동체적 질서를 위
에 위헌법률심판이 청구되면 헌법재판소가
한 조항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무제한적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기본권 제한의 목
으로 허용된다면 개인들의 권리가 충돌하고,
적에 부합하는지, ‘필요한 경우’인지, 기본권
공동체의 이익과도 충돌하게 되어 결국 개인
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지 등을 심사하여
의 권리도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다. 따라서 헌
기본권 침해 여부를 결정한다.
법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제한 을 가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제한이 적정할
기본권이 인간 존엄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것
수 있도록 제한에 한계를 두고 있다. 특히 기
인 만큼 국가는 기본권 제한에 신중을 기해야
본권의 제한이 필요하더라도 이를 빌미로 국
한다. 그러나 국가 목적을 내세우며 기본권을
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오히려 침해할 위험이
경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기본권 보장
있으므로 기본권 제한의 요건과 한계를 규정
체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해
하고 있는 것이다.
야 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기본권 보장에 있고, 인간의 존엄성 보장에 있다는 헌법 정신
우선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그 목적이 분명
을 주장해야 한다.
해야 한다. 즉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 복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목적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
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국민의
진다! 국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
대표자인 국회가 만든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
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하되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 ‘필요한 경 우’란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공 의 이익이 아주 중요한 경우이어야 하고, 기본
소리 지음
32+ 33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기도하는 직장인
허 대리 ◆ 동아대05 서울살이 3년차인 부사니언(Busanian)으 로, 사역자인 남편과 재작년에 결혼하고 상 경했다. 현재 충정로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 서 근무하고 있다.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대리님, J씨가 출근을 안 했어요.”
전날 J씨가 아파서 119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었다. 지 금 중환자실에 있으며 상황도 썩 좋지는 않다고 했
7월의 첫 번째 월요일이자 내 업무 중 가장 중대한
다. 연락이 되지 않은 오전에는 세상이 흉흉하니 별
업무를 처리하는 ‘월급날’이었다. 대표님의 결재를
의 별 생각을 하며 마음을 졸였는데, 오후에는 병원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책상 하나가 비어있는
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게 보였다. J씨의 책상이다. 팀장에게 메신저를 보내
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타국에서 혼자 지내며 마주
니 J씨가 출근을 안 했다고 한다. 벌써 11시 반, 점심
하게 된 어려운 상황을 혼자 감당했을 외로운 마음
시간이 다 되도록 어떤 연락도 되지 않는 상태란다.
과, 자녀의 비보를 들은 J씨 부모님의 찢어지는 마음 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
J씨는 3월에 입사한 외국인 직원으로 평소에 지각
냥 J씨의 건강에 대해 걱정을 하고 지인들에게 “우리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친하게 지내던 직원이라 이렇
회사에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정말 안타깝지?” 정
게까지 연락 없이 늦을 J씨가 아니었기에 고개를 갸
도의 이슈거리로만 이 사건을 대했다.
우뚱했다. 주말에 늦게까지 놀고 나면 폰 배터리가 꺼져서 알람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겠지, 우선 조금
일 잘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친절하며 거룩하고 성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오후가 돼서도 연락이 오지
실하게 살아가는 것. 이 정도면 크리스천 직장인으
않자 J씨의 팀장은 너무 걱정이 되니 집에 한번 찾아
로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직
가봐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집으로 찾아간 팀장님
장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알게
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표님이 심각한 목소리로 전
되었다. 회사에는 하나님을 몰라도 자기가 맡은 일
화 받는 것을 옆에서 듣게 되었다.
을 참 잘하는 직원들, 손익계산 없이 많이 베풀고 나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눠주는 것을 잘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러면 나는 대
의 상황을 알게 된 소수의 직원 중 한 명이 되었다. 수
체 그들과 뭐가 다른 걸까? 크리스천이라는 옷을 감
요예배를 마치고 하나님께 J씨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추려 한 적은 없는데 과연 크리스천 직장인으로서 내
기도드렸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무감각한 내가, 다른
정체성은 무엇인지, 이 고민은 마음 한 편에 늘 자리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고 고
잡고 있었다.
작 3개월 같이 일한 회사 동료를 위해서 말이다. 지금 이 친구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었다. 학창시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
절에는 혼자서 뭐든지 잘했다. 매점도 혼자 잘 갔고.
게 기도하고 나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혼밥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식당에 가서 혼
하나님은 그 기도가 직장에서 너의 정체성이라고 말
자 밥도 잘 먹었다. 왕따는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에
씀하시는 듯했다.
친구들이 많아 관심을 많이 받았고, 관계가 풍요로웠 기에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는 직원이다. 다른 직원들과 크게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잘나고 높아지려는 마음도 있었
다를 것도 내세울 것도 없지만, 나는 다른 직원들을
다. 또래 친구들은 나에게 마음을 주었지만 그에 비해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와 상관
내 마음을 온전히 내어준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혼
없는, 어쩌면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타인
자가 뭐 어때서?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 남에게
의 아픔과 고통에도 더 극진하게 공감하는 사람이 되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피해만 안 주고 살면 되지’라고
었다. 혹시 직장에서 나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없는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공동체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지, 그 기도의 끈을 붙드는 사람이 내가 되어보는 것
도 잘 알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은 어떤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그런 모습이 하나님 이 우리에게 정말로 바라시는 직장인으로서의 모습
회사 동료는 그냥 동료일 뿐 더 이상의 깊은 우정 관
은 아닐까?
계는 될 수 없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게도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동료들이 있
이 글을 <소리>에서 읽을 즈음엔 ‘내가 이런 걱정을
었다. 회사 사람들과 업무적인 관계만 유지해야 하고,
했었나?’하고 과거형으로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감
서로의 개인 프라이버시는 존중을 넘어서 무관심해
사할까? 쳇바퀴 굴러가듯 회사 생활은 반복된다. 그
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게 편하다고 말하지만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 속에 나의 동료 J씨가 아무 일
우리는 이 속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도 느낀다. 그러
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나 하루에 8시간 이상을 한 공간에 있고, 가족보다 더
많이 울었으니 하나님이 이제 함께 더 많이 웃고 감사
많이 만나고, 더 많은 식사를 함께 하는 ‘직장’은 하나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셨으면 한다. 부디 하나
의 공동체이다.
님이 J씨를 지키고 보호하시고, 꼭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빈다.
회사 동료가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사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직원들도 많다. 나는 그이
소리 지음
34+ 35
우리 결혼할까요?
신혼여행 표류기 호욱 ◆ 연세원주04 원주 IVF 6년차 간사이자 하루 빨리 한량으 로 살고 싶은 1인.
#1. 산티아고? 포르투? 우리는 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를 가기로 했다. 순 례길 전체는 800km지만 그중에서 100km 정도만 걷 기로 했다. 조금 힘들어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 았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 았다. “욱아, 너는 그렇다 치고 은경이가 갈 수 있겠 어?” “그러게요.” 그러나 먼저 제안을 한 건 은경이었다. 나도 걱정이 되기는 했다. 산티아고는 고사하고 은경이는 홍제 천을 걷는 것도 힘들어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운동 을 하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기로 했다. 스 페인 마드리드 행 항공권도 결제했다. 그러나 일도 많고 결혼 준비도 바빠서 운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몇 달 뒤, 결국 우리는 목적지를 변경해야만 했다. 나는 솔직히 은경이가 야속했다. 비싼 돈 주고 산티 아고로 갈 생각이었으면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지 그랬냐며, 상황이 안 되면 결정했던 것을 쉽게 바꾸 는 모습이 짜증난다고 투덜댔다. 게다가 다시 제안 한 장소는 포르투였다. 스페인의 포르투가 아니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였다. 마드리드에서 포르투로 가 려면 비행기를 1시간 더 타야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 로 인아웃을 결정했으면 스페인의 다른 곳으로 가 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포르투라니…. 신혼여행을 어 디로 갈지 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2. 사진기사 이은경 나는 사진 찍는 걸 즐기지 않는다. 은경이는 나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잘 찍는 편이다. 포르투는 사
진을 찍을 만한 풍경이 많았다. 도오루 강변, 동루이 스 1세 다리, 대서양, 소박한 집과 갈매기들이 만들 어낸 풍경. 우리는 가는 곳마다 감탄했다. 그래선지 은경이는 사진을 계속 찍었다. 그리고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계속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계속…. 사진 찍는 것도 좋지만, 나는 적당히 찍으며 우리끼 리 이야기도 하면서 걷고 싶었다. 밤이 되어 식당을 찾다가 밥 먹을 시간을 놓쳐 버렸다. 몸도 마음도 지 쳐갔다. 나는 사진을 너무 찍어서 시간이 늦었다며 은경이를 원망했다. 은경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네가 3시까지 자지만 않았어도 여유로웠을 거야!” 라고. 결국 우리는 포르투 한복판 벤치에 앉아 심각 한 원투원을 했다. #3. 오버부킹은 처음이지? 아쉬움을 뒤로하고 신혼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항공사의 오버부킹으로 타야 할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결국 만 하루를 공항에서 대 기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항공사 직원은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어디서 대기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요구해야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 다. 귀국해서 나는 러시아 항공으로 3차례에 걸쳐 항의 메일을 보냈다. 항공사는 400유로짜리 본사 항 공권 쿠폰 2장을 주겠단다. 꼴도 보기 싫은 그 항공 사를 다시 이용하라고? 나는 다시 흥분해서 투덜댔 다. 은경이는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만하 면 되었다고 다독였다. 나는 지금도 고민 중이다. 이 걸 받아, 말아?
우리 결혼할까요?
Back To The Real Life 낭만 가득 신혼여행
이은경 ◆ 숙명여대05 음악, 공연, 영화를 좋아해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IVFMEDIA에 정착한 영상팀 간사
이거다! 내가 꿈꾸던 신혼여행의 로망. 평소 자주 보
욱이는 내내 잠만 잤다. 아침 먹고 다시 잠 들어서 정
던 웹진에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가 실렸다. 40여
말이지 오후 3, 4시까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다시
일 동안 묵묵히 걸으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우연
없을 신혼여행에서 한 시간도 아쉬운 법이거늘 잠으
한 만남을 누리는 낭만 가득한 여정. 물론 힘들고 고
로 보내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겨우 겨우 달래고
되겠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
보채서 깨워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으면 욱이는
리고 그런 여행을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간다니! 신이
또 아무 데나 가자고 하는 통에 김이 샜다. 결국 어두
나서 욱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워진 길 한복판에서 다퉜다.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에
산티아고로 신혼여행을 가겠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
대해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욱이의 태도에 화가 났다.
은 손사래를 쳤다. “결혼식 끝나면 굉장히 피곤해. 편
(반면 포르투에서 열리는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경기
하게 쉬고 오는 게 좋을 텐데….” “겨울이라 너무 춥지
예매할 때는 그렇게 열심이었으면서….)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오히려 어깃장이 생 기면서 기필코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 갔다. 그런데 비행기가 오버부킹 되어 하루를 꼬박 공항에서 대기할 수밖에
그러나 결국 이런 다짐은 처참히 무너졌다. 웨딩 촬
없었다. 처음 겪는 일에 당황스럽고 막막했는데, 욱
영을 해보니 너무 피곤했다. 결혼식 이후에도 이런
이는 계속 직원에게 묻고 항의하며 공항 내 캡슐호텔
몸 상태라면 산티아고는커녕 공항조차 기어갈 것만
숙박권과 식사권을 받아왔다. 나 같았으면 진작 포기
같았다. 욱이에게 신혼 여행지를 바꾸는 게 좋겠다고
하고 공항 의자에만 앉아 있었을 텐데, 덕분에 대기하
말했다. 순례길을 마치고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
는 동안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욱이가 인내심을 갖고
시를 여행하기로 했는데 아예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그렇게 멋지고 든
그랬더니 욱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원래 산티아고
든할 수가 없었다.
가기로 했잖아. 평소에 운동이라도 열심히 하든가.” 욱이는 여행 계획이 바뀌자 매우 힘들어했다. 난 우 리의 상황에 맞게 계획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한 건데, 내 탓을 하 는 것 같아 서운했다.
연애하고 결혼을 준비하며 욱이를 많이 안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신혼여행에서의 모습은 또 새롭고 낯설 었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욱이지만 여행에 대한 감성 은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이 남자랑 여행 가면 재미 는 하나도 없겠구나’ 싶었다. 포르투는 아름다웠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포르투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
여행은 한가로웠고, 우리는 다투고 화해하고 돌아왔
였다. 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펼쳐진 풍경은 눈으로
다. 자, 이제 친근하고도 낯선 이 남자와의 리얼 라이
만 담기에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프가 시작되었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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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Chef’의 오늘 뭐 먹지?
긴급하게 고급스러운 요리가 필요하다면? 연어 통조림 오일 파스타 타임어택! 오한웅 ◆ 서울대99 한마리곰미디어 대표이자 PD. DIA TV 크 리에이터. IAM 카드게임 개발자. 창의적이 면서 좋은 영향력을 주는 미디어들을 만들 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중이다. 사람 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함께 보드 게임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다.
“따가당 따따따따따딴 딴 따따따”
수 있으면서 뭔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없을까? 수납장을 열어보니 눈에 들어오는 스파게티 면과 연
단잠을 깨우는 벨소리. 알람일까? 차 빼달라는 전화
어 통조림. 그래, 이거다.
일까? 오늘은 무슨 요일이지? 아, 그래. 토요일. 베개 밑에 파묻힌 휴대전화를 끄집어낸다.
15분을 남기고 시작한 요리. 우선 물부터 불에 올려 놓고 재료들을 준비한다. 찹찹찹 채소들을 썰고, 물이
“오~ 한웅 형제, 좀 전에 출발했는데, 20분 정도 뒤에
끓는 대로 면을 투하하고, 면이 익는 순간을 맞춰 후
도착할 것 같아요. 이따 봐요.”
다닥 볶아 완성! 그릇에 담아 식탁에 놓고 자몽에이드 까지 만들어놓으니 벨 소리가 들린다. 세이프!
헉! 오늘은 목사님의 심방이 있는 날. 점심을 대접하 기로 했는데, 늦잠을 자다니!
흔히들 오일 파스타가 어려운 요리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까르보나라나 볼로네제보다 더 빨리 그리고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려 보자. 남은 시간은 19분. 장
쉽게 만들 수 있다. 심지어 맛있는데다 고급스러운 느
볼 시간은커녕 밥할 시간도 없다. 일단 머리 감는 건
낌까지 주니, 이것이야말로 집들이계의 참된 ‘치트키
생략하고, 급한 집 청소부터 한다. 대충 치우고 청소
(cheat key, 컴퓨터 게임에서 제작자들만이 알고 있는
기를 돌리고 나니 16분 남았다. 시켜 먹을까? 아니야.
비밀키 또는 속임수를 의미-편집자 주)’가 아니면 무
그건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지. 짧은 시간 안에 할
엇이겠는가?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 연어 통조림 오일 파스타 재료 (2인분) 파스타 면 250g, 연어 통조림 1캔, 마늘 2개, 청양고추 1~2개, 올리브 유, 굵은소금, 맛소금, 후추 (원래 파스타 면 1인분에 100g계산하던데, 전 좀 모자라더라고요….)
우선 큰 냄비에 굵은소금 2스푼과 올리브유 2스푼 정도를 넣고 물을 끓 입니다.
소리 지음 물이 끓는 동안 마늘은 편 썰고, 청양고추도 송송 썰어놓으세요.
물이 끓으면 파스타면을 넣어주세요. 면은 딱 8분만 끓일게요. 많이 익히고 싶으면 이따가 볶을 때 익히시면 돼요.
면이 익는 시간을 기다리며 연어 통조림을 체에 걸러 기름기를 빼 줍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2스푼 정도 두르고 중불에서 마늘을 볶아 줍니 다. 마늘에 살짝 갈색 기운이 돌면 기름을 뺀 연어통조림과 고추를 넣고 살짝 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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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Chef’의 오늘 뭐 먹지?
8분이 지났습니다! 면을 꺼내기 전에 먼저 컵으로 면수(면 끓인 물)를 떠 놓습니다.
체에 걸러 면을 분리한 뒤
프라이팬에 넣고 볶아줍니다. 퍽퍽해진다 싶으면 아까 따라 놓은 면수를 부어주고요, 맛소금으로 간 을 합니다. 꺼내기 직전에는 후추를 뿌려주세요.
TIP. 연어 통조림은 없고 참치 통조 림만 있으면 그걸 넣어도 돼요. 물론 모시조개를 넣어서 봉골 레 스파게티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죠?
재외 학사 통신원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
소리 지음
김영진 ◆ 카이스트98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 하고, 아이들을 싫어했지만 아들바보가 되 어버린 남자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위치한 ‘GOOGLE’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김영진이라고 합니다. 2007년 여 름,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목표로 유학을 왔고, 2009년 6월부터 구글에서 근무 중입니다.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가정까지 이루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21세기를 이끄는 하이테크의 중심이라 불리는 ‘실리콘 밸리’에서의 삶은 꽤 역동적일 것 같지만 사실 평온하고 단순합니다. 평일에는 오 전 8시쯤 일어나 출근하고 5시쯤 퇴근하여 가족과 함께 식사합니다. 저녁에 잠시 운동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거나 일을 한 다음 12시에서 1시쯤에 잠자리에 들곤 합니다.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해서 20대에는 조기축구회까지 참석했지만, 이제는 땀 흘리기 전에 심장이 터질 것 만 같아서 골프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퇴근 후 친구 들과 커피 마시며 치즈케이크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주로 주 말에 친구들을 만납니다.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다 보니 대부분의 친 구들은 종로에서 강남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교 통 체증은 서울만큼 심한데 지하철이 없어서 주중에는 만날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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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학사 통신원
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단순한 삶이 되
은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축구나 골프 같은 구
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동료 한 분은 ‘미
기운동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참 좋은 환경인 것
국은 심심한 천국,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
같습니다.
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로 물질적으로 크게 부족함 없이 살아 비록 심심해보일지라도 이곳에서의 삶은 일단
가고 있습니다. 비록 외국인 노동자지만 엔지니
겉으로 보기에는 참 복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로서 일을 하니까 문화나 언어의 장벽이 비교
무엇보다도 먼저,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합니
적 낮습니다. 그래서 크게 차별 대우 받지 않으
다. 일과 가정의 균형 잡힌 삶을 당연하게 여기
며 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성공한 아시아
는 문화 덕분에 매일 가족과 함께 저녁 시간을
인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저 같은 사람들이 그
보낼 수 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회식은 딱 두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번 있었습니다. 그중 한 번은 저희 팀 상무가 회 사를 떠날 때이고, 다른 한 번은 뉴욕에 있던 저
이렇게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 없이도 행복하게
의 팀원들이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두 번 모두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실리콘 밸리’에서의 삶을,
저녁식사만 하고 8시쯤 마무리하여 모두 가정
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소리 없는 총성이 가 득한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 9시나 10시부
사실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터 2~3시간 정도 집에서 더 일을 하기도 합니다.
바로 ‘돈’입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 면 대부분의 주제가 주식, 스타트업 대박, 집값
두 번째로는, 좋은 날씨를 누리면서 살아가고
등,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에 관한 것입니
있습니다. 여름에는 약 30~35도 정도로 덥긴 하
다. 특히 최근 5년 사이에 집값이 약 2배가량 폭
지만 습하지 않아서 크게 더위를 느끼지 못합니
등했습니다. 그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
다.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또 1년
적인 갈등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내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덕분인
세상에 보내신 사명을 따라 행복하게 잘 사는
지 어렸을 때부터 저를 괴롭혔던 비염이 지금
삶이 아니라, 돈이 많은 삶을 향해서 다들 달려
재외 학사 통신원
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집값이 얼마가 올랐 느냐, 주식이 어떻게 대박을 쳤느냐, 이러한 이야기 를 ‘삶 나눔’이라고 많이들 합니다. 비성경적인 가치관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두드러 지게 확산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동 성애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동성애를 어떻게 대 할 것인지에 관해 존 스토트 목사님의 「현대사회 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의 16장에 찬성하는 입장입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
니다. 이제 초중고교에서는 당연히 동성애를 정상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또 찬송 한 구절도 떠
적인 것이며 괜찮은 것이라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올랐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
하지만 현재 이 지역의 교회나 기독교 단체는 급격
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게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대응에 한 발자국 느리다는 느낌이 듭니다.
2016년 한국에서 가장 유행한 단어 중 하나가 ‘헬 조선’이라고 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불안한 신분과 성공·목표
는 실리콘 밸리가 21세기의 ‘소돔과 고모라’라는 말
지향주의적인 삶 가운데에서 유목인처럼 떠돌아
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느
다니며 사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8년간
냐가 아니라 지금 누구와 함께 걸어가고 있느냐를
한인교회를 출석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고민합니다. 그리고 거기가 어디든 그곳에 하나님
이곳에서 3년 이상 정착하는 사람들은 10~15% 정
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학사님들
도고, 4년 이상 정착하는 경우는 약 5%로 떨어지는
이 거하시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참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교회 청년부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의 5년 전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있었던 25명 중에 지금은 4명만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 다. 신분의 문제 때문에 떠나는 친구들도 있었고, 세상적으로 보기에 더 좋은 기회가 생기면 뒤돌아 보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꼭 오래 함께해야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랜 시간 깊이 교제하는 지체들의 숫자가 적다는 것은 아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사는 동안 두 가지 상반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렇게 좋은 것들을 허락하셨나요?”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거친 광 야와 같은 곳에 보내셨나요?” 2년 전쯤 그렇게 기 도할 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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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어 달리기
‘회복적 정의’가 살아 있는 공동체를 꿈꾸며
류혜선◆ 단국천안08 여성, 피스빌더, 아내,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 운 시간을 지날 때 옳은 길, 좁은 길을 걷 는 사람을 보고 힘을 냈던 것처럼, 누군가 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정의로운 평 화를 일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rea Peacebuilding Institute; KOPI)’에서 일하고 있는 류혜선입니다. 작년 9월에 출산해서 현 재는 육아휴직 중에 있습니다. ‘KOPI’는 한국사회에 ‘회복적 정의’를 소 개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으며, 저는 청소년교육팀의 연구원으로 일 하고 있습니다.
단체의 중심인 ‘회복적 정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복음과 상황」에 실 린 KOPI 이재영 원장님의 글을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회사 가 극심한 노조 파괴로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저희 가족은 그 갈등으 로 인한 고통의 당사자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법과 제도 마저 무용지물이었고, 그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떠맡고 있는 상황에 서 그동안 정의라고 믿었던 사법 제도의 한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설 령 법적 소송에서 이기게 되더라도 극심한 갈등으로 갈라진 사람들의 관계와 그 사이에 남은 상처는 법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 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회복적 정의는, 사법 제도의 한계 를 보듬는, 사람을 향한 정의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회복적 정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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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하나님이 말하는 의, 즉 율법의 한계를 넘어
과 분쟁으로 얼룩진 사회 속에서 비폭력을 실천하고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것도 알
갈등을 전환하여 공동체의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수 있었죠. 예수님이 부정의한 일을 율법의 한계를 넘
내용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
어 정의롭게 해결하셨던 여러 사건이 말씀에 나옵니
한 평화학을 더 공부해보고 싶었고, 더불어 평화를 실
다. 그것은 당시 고통 받던 저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천하고 있는 현장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자
복음이었습니다.
연스럽게 KOPI와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정의는 죄에 상응하는
제가 속해 있는 청소년교육팀은 회복적 정의를 교
벌을 받는 것입니다. 죄의 무게만큼 정당한 벌을 받았
육현장에 적용한 ‘회복적 생활교육’, ‘평화교육’을 학
을 때, 우리는 ‘정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평화감수성, 서클 프로
러한 정의에 대한 관점을 ‘응보적 정의’라고 합니다.
세스, 또래 조정 훈련 등을 통해 학생들이 공동체에
하지만 회복적 정의에서는 응보적 정의로는 온전한
서 겪는 또래 갈등을 건강하게 다루고 풀어갈 수 있도
정의를 이룬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가해
록 합니다. 학생들이 있는 ‘교실’은 가정 다음으로 자
자에 대한 처벌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는 아무런 연
주 만나는 공동체이자 우리 사회의 작은 축소판입니
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로 그 책
다. 짧게나마 제가 만나는 학생들이 갈등을 부정적으
임을 다하더라도, 피해자가 입은 고통을 회복하는 것
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게 전환하고 그 과
은 오로지 피해자의 몫으로만 남게 되는 ‘피해자 소외
정을 통해 배움을 얻고 안전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피해’가 회
도록 교육합니다. 학생들을 만나며 그들의 다양한 이
복되도록, 가해자가 잘못을 직면하여 스스로 ‘자발적
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롭고도 가슴이 뛰는 일입니다.
책임’을 지도록 이끌고, 가해자와 공동체가 피해자의
하지만 구조적, 문화적 폭력 속에서 관계 맺기를 어려
피해가 회복되도록 돕는 과정을 통해 깨어진 ‘관계’
워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올 때면, 그들이 변화하는 과
가 연결되고, 그로 인해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온전
정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아팠
히 ‘정의’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
던 적도 많았습니다.
은 제가 처했던 상황과 고통에 대한 위로이자 답변이 었고, 세상의 많은 문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
학생들과의 경험이 축적되자 ‘교육’에 대해 근본적인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을 나의 길로
고민이 들었습니다. 저는 계급화되고 구조화된 한국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사회에서 ‘교육’은 최소한의 보루, 즉 누구나 평등하 게 시작하고 만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
때마침 제가 속한 충남 IVF의 여름 수련회 강사로 오
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과 부모의 소득에 따라 기회
신 이재영 원장님의 강의를 들으며 더욱 깊은 관심을
와 경험이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지향하
갖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저는 이 단체의 동북
는 교육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고민이 생겼
아시아 국제프로그램인 ‘NARPI’를 소개받아 참가하
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회복적 정의가 아이들에게 또
면서 ‘평화학’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폭력
하나의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까?’를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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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어 달리기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
된 그룹이 ‘메노나이트’라는 한국교회에는 다
다. 지식이 아닌 가치를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
소 생소한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을 따르는 공
하면서 ‘평화교육’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체인데, KOPI는 그들의 지혜인 ‘제자도’, ‘평
있습니다. 저는 교육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현
화’, ‘공동체’의 가치를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장에서 마주하는 질문들을 통해 더욱 공부해
장이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장 기적으로는 이런저런 경험들과 더불어 제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시 돌아갈 수 없을 정
만난 교실 현장을 학문적인 언어로 정리할 수
도로 치열하게 싸우고 갈등하고 갈라서지만,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회복
저는 회복할 수 있고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적 정의 운동과 평화 실천에 더 기여하고 싶은
있는 관계를 만드는 ‘회복적 정의’가 작동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꿈꿉니다. 회복적 정의가 우리 사회 에서도 통용되는 문화가 될 수 있게 씨앗을 뿌
이렇게 저는 KOPI에서 일하며 남편을 만나
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음의 빚으로 남
결혼했고 작년에는 윤슬이도 태어나서 새로
아 있는 개인적인 경험이 나의 자양분이 되었
운 가족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제가 일
듯이, 앞으로 아픔이 있는 공동체에 발을 내딛
하고 있는 KOPI는 단순히 일을 하는 장소를
고 회복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평화 실천가로
넘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살아
살고 싶습니다.
가며 평화의 가치를 짓고 세워가는 ‘피스빌딩’ 공동체입니다. 회복적 정의 운동이 처음 시작 한국평화교육훈련원 KOPI - www.kopi.or.kr - facebook.com/korearj (회복적 정의)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즐거운 그러나 어려운 취미, 나의 물생활 서영대◆ 한국항공대02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매일 ‘고딩’들과
소리 지음
숫자로 씨름하는 학사입니다. 아내와 이제 막 돌이 지난 말썽꾸러기 아들,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공부방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강아지, 모란앵무새, 구피, 새우, 물달팽이등을 키우고 있는 동물 애 호가입니다.
물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것은 6~7년 전쯤이다. 항공대 IVF 선배 에게 ‘막구피’ 치어 몇 마리를 얻었다. 제대로 된 어항이나 장비도 없이, 안 쓰는 뚝배기에 키우기 시작했다. 난태성 어종인 구피는 돌고래처럼 뱃속 에 알을 품었다가 한 달에 한 번씩 30~10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 모습 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 물생활(물고기 키우는 취미를 일컫는 말)에 빠 져들게 되었다. 그 후 어항의 개수와 용품이 늘어갔다. 키우는 구피의 종 류도 다양해졌고 점점 더 아름다운 구피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미처 먹지 못한 구피의 먹이와 어항의 이끼를 처리해 주는, 그야말로 청소부 역할을 하는 새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 이새우’, ‘체리새우’라는 아주 부담 없는 분양가의 친구들을 같이 키우기 시작했다. 새우를 키운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그거 먹을 수 있는 새우 냐”라는 소리를 한다. 많이들 그 새우를 대하로 생각하는데, 식용이 아 닌 관상용 민물새우다. 새우젓만한 크기(3cm이하)로 생이새우는 투명한 색, 체리새우는 빨간색을 띤다. 여간 귀여운 친구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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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초기에는 물생활에 빠져서 밤늦게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방의 불을 끄 고 어항 조명만 바라보곤 했다. 구피와 새우들만의 작은 물속 세상은 하 루 일과로 지친 나의 마음에 꽤 큰 위안을 주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 이 꼭 날아다니는 듯해서 참 아름다웠다. 새우는 ‘펀치질’이라고 해서, 아 주 작은 집게발(가재의 큰 집게발이 퇴화한 듯 아주 작은 집게발을 가지 고 있다)로 먹이를 집어 펀치하듯이 자기 입으로 넣는데, 관찰하고 있으 면 무척이나 귀엽다.
그러다가 일본사람이 개량하여 만든 CRS(crystal red shrimp)를 알게 됐 다. 흰색,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듯한 매혹적인 색감에 빠져들어 이 친구들 을 입양하게 되었다. CRS는 등급과 외형의 상태에 따라 한 마리에 100만원 이 넘기도 한다. 나는 수족관과 같은 업자가 아니라 개인이 취미로 키워 분 양하는 곳에서 아주 저렴하게 받아왔기에 부담 없이 시작했다. 20마리에 3 만 원 정도 하는 등급이 낮은 새우였다. CRS는 바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 니었다. 생이와 체리새우는 생존력이 높아 구피와 합사가 가능했지만, 이 CRS들은 단독사육을 해야 했다. 새우는 갑각류라서 몸이 성장하려면 탈 피를 해야 한다. 탈피를 하기 위해선 꽤 긴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는데, 이 때와 탈피를 완료한 후가 가장 몸이 약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누군가 건드 리면 죽기 십상이다. 그런데 구피가 새우 친구들을 가만히 두질 않기 때문 에 단독사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물고기를 키울 때와는 달리 어항 바닥재에 소일을 깔고 물을 잘 잡 아야 했다. 물을 잡는다는 건 쉽게 설명하면 수중생물이 살아갈 수 있을 만 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뜻이다. 수온과 pH등을 조절하여 새우가 살아갈 환경을 잘 조성하는 것인데, 새우는 특히 더 예민한 생물이어서 쉽지 않은 편이다. 기본 세팅을 마친 어항에 여과시스템을 돌리면서 물 잡는 기간으 로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그 기간을 견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 니었다. 빨리 생물을 어항에 넣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물이 잘 잡히지 않 은 어항에 입수시키면 결국 생물은 용궁으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물 이 잘 잡힌 어항에서 자라는 새우는 폭발적으로 번식한다. 나 같은 경우, 새 우의 어항 준비를 적당히 했음에도 새우들이 잘 적응해서 1년 뒤 대략 200 마리 넘게 번식을 했다. 이 폭발적 번식의 경험은 새우를 키우는 재미와 기쁨을 주었지만 자만심도 갖게 되어 나중에는 결국 재앙으로 돌아왔다.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다른 새우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킹콩’이라는 새우를 키우기 시작 했고 고가인 ‘핀토’까지도 손을 댔다. 비싼 새우들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키우는 것과 번식시키기가 어렵다. 새우 친구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에 힘쓰고 꾸준히 관찰하 여 적절히 대처해 주었어야 하는데, 어설픈 물생활 지식과 실력으로 여러 종의 새우를 마구 사들여 키우다 보니 결국 많은 새우 친구들을 용궁으로 보내버렸다. 어항 속 물세 상의 조화를 하루하루 즐겁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새우가 안 죽고 잘 살 아 있나 확인하는 사람으로 전락해 버렸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욕심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새우를 생명으로 존중하고 지켜주 기보다는, 잘 번식시켜 개체수를 늘리고 분양을 보내 재테크로 삼아보고자 했던 마음 속 깊은 욕심이 물생활의 즐거움을 스트레스로 바꿔버렸다. 생명을 키운다는 건 올바 른 사육 지식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 존재에 대한 사랑을 동반해야만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부지런히 관찰하며 보살필 수 있는 성실 함이 필요하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들의 성장 을 지켜보는 과정은 참 즐겁다. 번식시켜 분양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은근한 욕심만 버 린다면 생명을 키우는 것만큼 행복한 취미가 어디 있을까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나의 어항 속 새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샘솟는다. 또 하나의 새로운 어항을 세팅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이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게도 물생활 중 새우 키우기의 즐거움 을 추천한다!
Tip. 개인 간 분양 거래 사이트를 소개합니다. (분양가는 저렴하나 개개인이 다양한 사육환경 속에서 키운 것들이라 복불복이 심할 수 있습니다.) - 담뽀뽀의 물생활 http://www.dampopo.com/ - 작은 개울 물속 세상에 손을 담그다 http://cafe.naver.com/hby - 새우를 사랑하는 사람들 http://cafe.naver.com/choishrimp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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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순전한 교육
탁월한 교사이자 작가이며 문학 비평가였던 C. S. 루이스. 그가 남긴 작품과 글을 통해 우리 시대를 위한 교육 철학 및 통찰을 이끌어 낸다. 오늘날 교육에서 등한시되었던 성품과 영성 및 기독교 교육을 다루며, 성과 시민 윤리, 교사의 자
. .
질과 온전한 리더십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온전하고 인격적 인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는 모든 교사와 학부모에게 따뜻한 격려와 본질적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35년간 교사로 생활하면서 내가 고민해 온 모든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를 비롯한 모든 교사와 학부모에게 귀한 통찰을 전해 주고, 지혜의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신병준 소명중고등학교 교장, 좋은교사운동 이사장
“‘깨어나라, 사랑하라, 생각하라, 말하라!’ 아슬란의 포효가 실현되는 교육 현장을 꿈꾸게 하는 책이다!” 이종태 기독교 영성학 박사 김태현 백영고등학교 교사 신병준 소명중고등학교 교장, 좋은교사운동 이사장 이종태 기독교 영성학 박사 정인영 소요초등학교 교사 마크 파이크 ㅣ 송은정 옮김 ㅣ 무선 신국 292면 ㅣ 14,000원
www.ivp.co.kr
소리가 만난 사람
캠퍼스에서 하나님나라를 꿈꾸다 ‘하나님나라 운동’은 정신과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에 다 닐 때 IVF 활동을 했든지 아니었든지 상관없이, IVF 운동의 목표와 정신을 공유한 사람들이 동역할 때 하나님나라의 가치는 캠퍼스와 세상 속에서 더 욱 전략적으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이번 ‘소리가 만난 사람’에서는 학부 시절에 IVF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졸업 이후 IVF 운동에 참여하여 우리 와 함께 하나님나라 운동의 비전을 공유하고 동역하는 분을 소개합니다. 팽동국 ◆ 제주대학교 교수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하시는 일과 가족
산의 샛골이라는 곳이 고향인데 16가구밖에 없는 작
도 소개해주세요.
은 마을이었습니다. 12살에 서울로 왔고 서른 즈음에 유학을 떠나 현재는 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안녕하세요, 저는 팽동국입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
덧 제 인생에 제주가 가장 오래 산 지역이 되었네요.
대학에서 음향학 분야로 박사학위를 마친 후 2003년 에 교수에 임용되어, 지금은 제주대학교 해양과학대
* 신앙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학 해양시스템공학과에서 수중음향에 관해 가르치 고 있습니다. 또한 ‘의공학 협동과정’이라는 대학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서울에 살게 되면서 교회에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어서 의료초음파를 연구하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시골 분위기가 그랬듯이
나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해양 공부로 시작했는데 지
서울로 유학을 온 셈이었죠. 친척집 근처에서 살게 되
금은 수중음향, 생명, 인체, 의료까지 관심이 이어져
었는데 친척들이 신앙생활을 하셨어요. 연세가 많으
서 흥미로운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 고종사촌 누님이 일요일 아침에 100원을 주셨는
교수직을 햇수로 15년 정도 해왔고 앞으로도 15년 정
데 당시에는 풀빵 12개를 사먹을 수 있는 굉장히 큰
도 남은 상황이라 딱 절반 정도 지나온 셈이네요. 전
돈이었어요(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제 또래의 자녀
반전을 마친 후 연구년을 가졌고 작년 가을부터 후반
들에게 교회 가서 헌금 하라고 주시면서 제게도 주
전을 시작했습니다.
신 거였죠. 교회에 갔더니 이름을 적고 출석을 부르 기에 ‘매주 나가야 하나 보다’ 하고 나가기 시작했습
가족으로는 아내와 대학생인 쌍둥이 두 딸, 그리고 중학생인 막내딸이 있습니다. 딸부자입니다(웃음). 막내 덕분에 집안에 즐거움이 많습니다. 충청북도 괴
니다. 그렇게 중고등부 시절을 교회에서 보내며 신앙 의 틀을 잡았어요.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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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대학에 와서는 교회가 독재와 부정부패, 언론통제 등
가 질문하고 있던 것 하나하나에 명확하게 답을 주셨
의 사회문제들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습니다. 목사님이 소개해주신 책들을 읽으며 신앙의
서 방황했습니다. 제가 85학번인데 시국이 아주 어수
기초를 쌓았습니다.
선할 때였거든요. 시국이 이렇고 나라가 이런데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
* 학부 때부터 IVF를 하신 것은 아니지만, 졸업 후 IVF
다.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어요. 물론 신앙의 끈은 놓지
와 여러 활동을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IVF와는 어
않았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쯤, 후배들을 데리고 전
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도서를 영어로 읽어보기도 했어요. 동아리 활동에는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IVF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선교단체 중 에서는 예수전도단에 친구와 선후배가 많은 편이었어
그러다가 90년도에 ‘남서울 교회’에 출석하게 됐습니
요. <대우조선>에 취직했을 무렵에 연수원에 간 적이
다. 나름대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
있어요. 주일이 끼는 바람에 예배 모임에서 묵상을 하
는데, 저는 선배들에게 굉장히 어렵고 대답하기 곤란
고 짧게 말씀을 나눴는데 제게 IVF 출신이냐고 물어
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제 스스로 신앙에 대한 의문
보더라고요(웃음). 그때 처음으로 IVF와 제 생각이 닮
점들이 소화가 안 되니까 궁금한 부분이 너무 많았거
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후 미국 코스타에
든요. 그런데 그분들은 참 스펀지 같았습니다. 강펀치
서 IVF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함께 교제했습니다.
를 치면 반발이 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명확한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았지만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이
그러다가 제주에 와서 제주 IVF 출신의 김기훈 간사
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 신기하다. 이분
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김기훈 간사의
들과 같은 신앙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초청으로 IVF 지도교수를 맡게 되었고, 이사회까지 연
교회에 있으면서 기도하고 성경 보는 훈련도 하게 되
결되었습니다. 시작할 당시에 명목상의 지도교수는
었고, 하나님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간섭하신다는 것
하고 싶지 않아서 ‘내 역할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도 깨닫게 되었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
했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학생들과 자주 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고 싶었는데 그럴 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간사 와 학생들은 저를 언제 불러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근원적인 질문들이 여전
고, 저도 모든 활동에 전부 참여할 수는 없으니까요.
히 남아 있었습니다. 성경과 사회문제가 통합되지 않
교수실에 혼자 있다 보니 저도 신앙적으로 척박하기
은 상태였고요. 그러다가 교회에서 진행한 93년도 여
도 하고, 교제를 하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었는데 한계
름수련회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궁금증에 답을
가 있더라고요. 지도교수에게 주어진 정확한 역할이
얻었습니다. 김윤기 목사님의 말씀이 뚜렷하게 기억
없다보니 수동적으로 요청이 올 때만 도울 수 있어서
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
아쉬웠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의하는 부
데 모두 R로 시작한다. 혁명(Revolution)과 개혁(Ref-
분은 좋았던 것 같아요. IVF 이사로서도 수동적인 활
ormation).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역사에서 부분적으로
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했을지 모르나 완벽하지 않다.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부흥(Revival)이다.” Revival이 얼마나 영광스러
* 제주대학교의 교수 신우회가 세워지는 데 많은 역할
운 것인지 여섯 번의 시리즈를 통해 강해를 들었고, 제
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참 좋아 보이던데
소리가 만난 사람
어떻게 모이고 있는지 들려주세요.
신우회에 몇 가지 활동이 있는데, 학기에 한번 학생 들과 연합 예배를 드리거나 기독교 동아리 간사님들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하시면 과장이고요(웃음), 처음
을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합니다. 4년 전부터는 ‘토평교
제주대에 왔을 때 교수들끼리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회’라는 서귀포 지역의 작은 교회와 연결되어서 중고
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반에는 굉장히 외로웠거든요.
등부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지역을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연구할 때 크리스천만이 가지고
마음에 품은 한 교수님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특강
있는 고민이 있는데 나눌 수가 없어서 답답했어요. 뜻
을 하거나 예배를 도왔습니다. 지금은 교수 신우회가
이 맞는 3~4명 정도의 동료와 함께 수요일 점심을 먹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주씩 중고등부 예배에서 말씀
으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을 전합니다. 교수 신우회의 경우, 각자 섬기는 교회가 따로 있지만 사역으로 함께 돕고 있는 것이죠. 몇 명 되
저는 이 모임에서 두 가지가 충족되기를 바랐습니다.
지는 않지만 좋은 모델입니다. 이러한 사역이 제주 전
한 사람이 리더가 되면 잘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장점
역으로 퍼지고, 신우회가 어려운 지역교회들을 도우
이 있는 반면 그 사람이 빠지면 언제든지 와해될 수
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있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리더십을 공유하는 모임 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것과, ‘비그리스도인도 쉽게 올
* 캠퍼스에서 유학생을 돕는 사역도 하고 계시다고요.
수 있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
유학생들과 어떤 만남을 이어가고 계신가요?
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아서 편하게 자신이 가진 고민 을 나누고,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누구든지 쉽
현재 캠퍼스에는 수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있습니
게 올 수 있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다. 제주대에도 중국인 유학생만 600명 정도 되고요,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 등에서 온 대학원생이 100여
그렇게 5~6년 정도 모였을 때 성경공부모임에는 나
명 있습니다. 연구를 하는 이과 대학원 쪽에 유학생
오지 못하지만 헌신되었던 한두 분과 신우회를 재건
이 많고, 힌두교도가 2~30명 정도이며 무슬림도 비슷
하게 되었습니다. 학기 중 매주 화요일 아침에는 신우
합니다.
회로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5~6명이 모 이고, 적게는 3명부터 많게는 10명까지도 옵니다. 제
유학생 사역은 처음 제주대에 왔을 때인 2003년부터
주대학의 교수 신우회나 성경공부모임은 작은 모임이
해온 사역입니다. 제주대에 외국인 유학생이 있을 거
라서 형식을 배제하고 기도와 말씀에 더 집중하고 있
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열댓 명이 보이더라고요. 저도
습니다. 신우회에도 회장, 부회장 등 직책이 있지만,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돌아가면서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다만 신우회는 기
친해진 후에는 창세기, 요한복음, 요한1서, 에베소서
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기존의 교수 모임은 대화, 혹
등의 성경을 영어로 함께 읽었어요. 영어가 되지 않으
은 성경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교수 신우회에서는
면 유학을 오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학생은 영
단과대학마다 혹은 건물마다, 기도모임이든 찬양모임
어를 할 줄 알았거든요.
이든 성경모임이든 학생이나 교수들의 모임이 생겼으 면 좋겠다는 기도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몇 명이 모
아쉽게도 제가 연구년을 가면서 모임이 중단되었습
이지 않아도 교수 신우회나 성경공부모임이 귀하다고
니다. 그런데 작년 7월에 학교로 복귀하자마자 대학
생각합니다.
원생 중심의 영어예배가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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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었습니다. 인도 여학생과 한 부부가 중심이 되어 자체
무슬림들이 한국에 정말 많이 찾아옵니다. 그 사람들
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더라고요. 너무나 귀한 사역
을 잘 도울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
이어서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주로 인도 학생이 많이
요. 유학생은 굉장히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에
참석하고요, 중국 학생도 조금 있습니다. 초반에는 예
게 제일 다가가기 좋은 사람은 학생들이에요. 유학생
배 형식으로 인도 자매가 말씀을 5분 정도 전했는데,
들끼리만 모이면 한국말도 안 늘고 수업도 잘 못 따라
너무 은혜가 됐습니다. 웬만한 목사님보다 훨씬 낫더
가요. 유학생과 대화할 때 언어문제에 대한 부담도 많
라고요. 훈련이 잘 된 귀한 자매였습니다. 6개월 정도
겠지만 사실 쉬운 한국말로 대화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난 뒤부터는 성경공부 형식이 더 많아졌습니다. 지
단기선교로 해외에 나가는 것에는 관심이 많아도 우
금은 성경을 읽고 묵상한 것을 나누고 같이 기도하는
리나라로 들어온 외국인을 현장에서 만나는 데에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모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친구만 잘 맺으면 자체로 선교가 될 수도 있거든요. 성안교회뿐
중국인 유학생도 많이 도왔는데 교회와 협력한 사역
아니라 IVF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사역을 여러 번 제시
도 있습니다. 지금 섬기는 성안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했으나 쉽지는 않았습니다.
서, 교회의 요청으로 연변과기대 출신의 학생과 함께 중국인 유학생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인
공부도 하고 준비도 해서 천천히 관계로 접근하려고
사역은 몇 년 동안 소규모로 진행되었다가 현재는 조
합니다. 학생이 학생을 돕고, 교수와 학생이 연계되
선족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중국어
고, 거기에 지역교회까지 함께 하면 굉장히 좋을 것
가 안 되니까 한계가 있더라고요. 할 수 있는 역할이
같습니다. 학생과 교수와 사역자들이 잘 협력해야 할
특별하게 없어서 연구년 이후에는 역할을 고민하며
것 같아요. 이 협력체계가 잘 되면 무슬림도 만나볼
쉬고 있는 중입니다. 캠퍼스에도 중국인 유학생 모임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갖고 기도하는 그룹이나 교회가
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캠퍼스 내에 중국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까지 열매가 많지 않고 저도
유학생 모임이 자체적으로 생겼었는데, 중국어 예배
부족하지만 조금씩 꾸준하게 하고 있습니다.
가 시작되고부터 자연스럽게 시들해졌습니다. 최근 에는 중국어 예배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다시 캠퍼
* 기독인 교수로서의 삶도 궁금합니다. 교수이자 학자
스 모임이 시작되었어요. 교수 신우회에서 기도하며
로서 동료교수 및 학생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계신
바라던 모임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요.
지, 강의와 교육을 하며 학문적인 성과를 내는 데에 어 려움은 없는지 들려주세요.
아쉬운 점은 무슬림을 위한 모임이나 사역이 별로 없 다는 점입니다. 꾸준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알
대학교에 다닐 때 두 부류의 기독인 교수를 보았습
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예수전도단 열방학교에 계
니다. 한 분은 인성이 훌륭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실력
신 한 분과 인도 학생이 무슬림을 품고 있다고 하더
이 너무 없어서 무시를 받는 교수였고요, 또 한 분은
라고요. 무슬림은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으니까 기
실력은 탁월하지만 기독교인인지 알 수 없는 교수였
숙사에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도록 식당을 제공해줍
습니다. 이 두 가지가 잘 균형 잡힌 교수가 되는 것이
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점심에 같이 요리도 하고 대
어려운 일 같아요. 저는 교수로서의 정체성을 잘 지
화도 하고 파티도 열면서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감사
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복음
한 마음이 들어서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소리가 만난 사람
가르치는 일과 연구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맡은
학하기 때문에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경
일을 균형 있게 감당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는
우가 많거든요. 출석만 체크해서 졸업장이나 따겠다
상황입니다.
는 학생도 많고요. 우리나라 대학의 흐름이 점점 더 어 려워지고 있어요. 사실 교수들 사이에서는 “학생들이
저는 제가 크리스천임을 드러내는 편인데, 오히려 그
고등학교 1,2학년 정도의 수학을 할 수만 있어도 잘 가
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은 아닌가
르칠 수 있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상황이
하는 우려도 많습니다. 그래도 크리스천임을 드러냄
심각합니다. 대학 신문에서도 공공연하게 이와 관련
으로써 수업에 충실하게 되고,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
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지 않게 되고,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목적에 맞게 사 용하려고 애쓰게 된답니다. 연구비를 집행하거나 학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대부분의 학생이 내용을 전혀
생들에게 월급을 주는 등 돈을 사용할 때는 원칙을 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수들은 굉장히 많은 자
지고 집행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
괴감을 느낍니다. 교수라는 직업이 겉으로 보기엔 좋
럽지 않게 써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니까 ‘이건 아니
아 보이지만, 실제 이렇게 수업을 하다보면 정말 절망
다’ 싶을 때는 사용하지 않게 되는 거죠.
이 되고 자괴감이 크게 몰려오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 한명 한명을 인격체가 아니라 피교육자인
학문적인 고민도 많습니다. 요즘 사회는 수업 평가 때
비인격체로 보기가 쉬운데, 적은 수라도 인격체로 만
문에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성과 때문에 연구를 할 수
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게 참 자존심이 상합니 다. 본질적으로 교수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
제가 속해있는 해양대학 중 몇 학과는 전 세계적으
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충
로 알려져 있을 만큼 열심히 연구하는 편이지만, 연구
실하게 교육할 수 있을 것인가, 지방대에서 적은 인
의 대부분은 유학생들이 진행합니다. 대학원 학생의
원을 데리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연구 중에서 의미
80~90퍼센트가 유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대에서
있는 일은 어떤 부분인가, 이런 일들에 하나님의 은
연구를 열심히 하는 교수는 대부분 외국인 유학생과
혜를 구하고 있고요, 맡은 일을 해나가는 훈련을 하
연구를 해 나갑니다. 한국인 학생들은 거의 오지 않아
고 있습니다.
요. 공부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박사만 마치 면 대기업으로 많이 취직할 수 있는 편인데도 그 기간
대학의 상황 자체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국의 지
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전국적으로 이런 흐름이 편
방대학, 특히 이공대가 참 어렵습니다. 지방대학의 큰
만해 있어서 대학이 무척 어렵습니다.
어려움 중 하나는 학생 간의 실력 편차입니다. 대학에 들어오지 않아야 할 학생들까지 대학에 들어오니까
물론 그런 중에도 은혜가 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수업 진행이 어려운 것이죠. 고등학교에는 이과생보
동기부여도 안 되고 환경이 어려워서 공부를 못하던
다 문과생이 더 많기 때문에, 학과를 정할 때 문과였던
아이들이, 대학에 와서 생각이 바뀌고 도전을 받아 인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이과를 선택하는 경
생을 다르게 사는 경우를 적게나마 봐왔습니다. 그것
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과를 선택한 문과생의 대부
에 감사하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버텨왔다고 생각
분이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것입니다. 지방 대학
합니다. 수업내용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그런 학생을
의 경우에는 이과생이라도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입
버리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과 책임
소리 이음
54+ 55
소리가 만난 사람
을 통해 의미 있는 것을 전해주려고 고민합니다. 학생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임을 건강하게 만
들이 “선생님은 공부도 많이 시키지만 우리 전체를 끌
들어 가면 되는데 모임 자체가 차단되고 있으니까요.
고 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코멘트를 줄 때 힘
교수 신우회나 성경모임을 해도 굉장히 제한되는 편
이 납니다.
이고 한계가 많습니다.
* IVF 공동체는 교수님처럼 학부 이후에 운동에 참여
IVF는 소극적이나마 나름대로 지도교수 역할을 했음
하신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학교 안
나라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는 분들이 함께 연대하고
에서 교수의 영향력이나 고민을 같이 나눌 단체가 필
동역하고자 할 때, 어떤 부분을 고려하면 좋을까요?
요하고, 그런 모임을 돕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IVF 이든 다른 단체이든, 교회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
교수들 중에는 꽤 많은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그러 나 캠퍼스의 교수 신우회나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
할 수 있는 모임이 더 많이 생겨나고 더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는 교수들은 극히 적습니다. 한국은 지역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교회에서 직분을 받
저 역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으면 많은 일을 해야 하기에 캠퍼스에서 또 다른 뭔가
가려고 합니다. 있으라고 할 때까지는 맡은 자리를 감
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
당하며 있으려고요. 지금은 정말 잘 버텨야 하는 시기
교나 직장 등 주어진 곳에서 모여 기도하고, 어떻게 하
같아요. 잘 버티다 보면 하나님이 어느 순간, 90년대
면 우리 자리에서 제대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
에 경험하게 하셨던 작은 단체들의 회심을 통해 부흥
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교
을 일으켜주시지 않을까요? 어렵고 외롭지만 옆에 동
회 나름대로 해야 할 역할이 있지만, 교회에서만 머무
료들이 있기에 위로를 받습니다. 캠퍼스 간사들이 얼
르면 한계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회의 맡겨진 일
마나 어렵게 살아가는지 저도 잘 압니다. 간사들도 각
을 하고, 캠퍼스나 직장에서도 적극적이고 활동적으
자가 맡은 자리를 잘 버티면서 은혜의 때를 구하면 좋
로 참여할 수 있는 모임에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꼭
겠습니다.
IVF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최근 신천지와 이단의 활동이 많아지면서 교회에서 는 캠퍼스나 직장에서의 성경공부에 참여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회의 장로들과도 못하게 하니까요. 물론 위 험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얘기를 듣고 나면 위 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원적인 이유는 이단이지만, 사실 교회가 평신도를 충분히 인정할 만큼 성숙한 사 람으로 세울 수 없다는 고백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개인
어느 자리에서든지 하나님나라 운동을 펼치시는
의 신앙과 개인의 묵상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교회
교수님의 삶이 정말 귀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앞
생활이 바로 한국의 교회생활입니다. 단체와 프로그
으로도 한 공동체로서 친밀한 교제를 이어갔으
램에 의해서만 돌아가고 있어요. 장려해도 부족한데
면 좋겠습니다. 교수님이 계신 자리마다 하나님
계속해서 주의시키고 심지어 금지까지 하니 훨씬 더
의 은혜가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8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 동서울학사회
1. 6월 18일(일), 7월 17일(월)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 사
강좌 및 팟캐스트 안내입니다.
무실에서 실행위원회가 있었습니다. 2. 7월 10일(월)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 사무실에서 GLC+ 운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 6070학사회 창립 8년을 맞는 2017년을 “IVF 6070학사회 성장 도약의 해”로 정했습니다. 1. 임원 9명, 기별대표 12명, 자문위원 10명, 중앙학사회 담 당간사 1명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2. 6070학사회 수련회 안내(이웃과 함께 오셔도 좋습니다) 일시 8월 25일~26일(금~토) 1박 2일 장소 광림세미나 하우스(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 456) 주강사 한철호 목사(강원대75) 주제 길 위의 영성(3강의, 골로새서 1장 12~23절) 문의 김재원 학사(010-4329-0823)
● 수도권YGM 학사회 1. 수도권 YGM 모임이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중앙 회관 지하 좋은땅에서 있습니다. 수도권지역에 거주하는 학 사님들은 언제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입 학 사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모임문의 이철민 간사 070-8275-6363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ivfygm
2. 수도권 YGM 8~9월 모임일정입니다. 8월 01일(화) 여름휴가로 인한 휴강 8월 08일(화) 성경강해 & 수련회 소망나누기 8월 15일(화) 광복절 : 소그룹 데이 8월 22일(화) 성경강해 8월 29일(화) 성경강해 9월 05일(화) 진로와 소명-강의(1) 9월 12일(화) 진로와 소명-강의(2) 9월 19일(화) 진로와 소명-워크샵(1) 9월 26일(화) 진로와 소명-워크샵(2)
3. 수도권 YGM 여름수련회를 7월21일(금)~22일(토) 1박 2일 간 광림세미나 하우스에서 진행했습니다. “하늘에 물든 우 리 오늘을 살다”라는 주제로 김유복 목사님을 모시고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 팟캐스트 6월 7일 직장생존기_ 전문성 2부 6월 18일 아덕_ 공포영화 덕질 7월 3일 직장생존기_ 나는 신입사원이다 1부 7월 29일 아덕_ 팟캐스트 예정 · 학사회
7월 7일 학사임원모임
● 경인학사회 1. 7월은 경인학사회가 없고, 8월에 새롭게 모입니다~!! 함께 말씀과 삶을 나누는 자리에 여러 학사님들을 초대합 니다~~^^ · 8월 학사큰모임
일시/장소 8월 31일(목) 19:00 / 경인IVF 회관
● 경기남학사회 1. 사역 보고 6,7월 둘째 주, 넷째 주 수요일 19:00~22:00시에 경기남 IVF 사 무실에서 학사모임을 진행했습니다.
2. 학사모임 안내 · 8월 하반기 학사모임 기획 및 준비모임 예정
일시 : 추후 페이스북 경기남 IVF 학사회 그룹에 공지 예정 장소 : 경기남IVF 사무실(수원시 영동구 인계로 259-2, 2층) 문의 : 김원석 010-8720-3660 기남 출신 학사님 외에 수원/용인 지역에 거주하는 학사님께도 열 경 려 있으니 관심 있는 학사님은 위 연락처로 문의해주세요.
● 강원(춘천)학사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 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 춘천 (엄마들 모임-아이야) 일시 매달 첫주 목요일 오전 11:30 문의 사공은혜(한림대95) 010-5367-9120 · 춘천 (학사모임) 일시 매주 화요일 19:00 / 은혜교회 문의 김아주(한림대05) 010-6381-1635
57 ·수원
+
일시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문의 최경순(한림대94) 010-9536-0703
● 충남학사회 1. 충남학사모임을 천안과 서울 두 곳에서 진행하고 있습 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 천안 이준희(단국대06) 010-5171-0569 · 서울 손윤형(백석대02) 010-9154-1160
2. 사역 안내 · 9월 학사 LGM 일시/장소 9월 7일 19:00 / 천안천성교회 두란노하우스
● 전북학사회 1. 학사모임 학기 중 정기 큰모임은 종강하였습니다. 8월 24~26일 학사들을 위한 강의를 준비 중입니다.
2. 사역 안내 · IVFC 축구모임 전북출신 학사님이 아니어도 관심 있으신 학사님들은 오셔서 함 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일시/장소 매주 토요일 아침 07:00~09:00 / 전주 덕진 체련공원 문의 전성진 010-7448-0255 · 마더와이즈 : 초보엄마, 예비엄마들을 위한 모임 일시/ 장소 매주 수요일 11:00~15:00 / 이 집 저 집에서 만나요 (한 달에 한 번 학사모임 참여 예정) 문의 임하정 010-4696-8050 · 징검다리 캠프 일시 : 6월 23일~24일 장소 : 고산 자연휴양림
● 영남동부학사회 · 경주-포항 빨래터 주부모임 일시 매주 화요일 오전 10:30 문의 신지은 010-3120-1146 · 울산 주부 학사모임 일시 격주 목요일 오전 10:30 문의 박경아 010-6572-2176 · 8090울산대 학사모임 일시 매주 수요일 / 영남동부IVF회관 문의 진동일 010-6560-2176
● 대구학사회
1. 대구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 IEF(교대학사 교사모임) 매주 월요일 오후 18:00 · 가정피움팀(가정사역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20:00 · 사회복지팀(사회복지관련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19:30 · 평신도 지도자 남편모임 매주 수요일 오후 20:00 · 예사모 아내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 10:30 · inG 수료자 모임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19:00
2. 대구학사회 사역보고입니다. (6~7월) · 의미경영 콘서트 22회 일시/장소 6월 18일(일) / 공간울림 · 가정피움 공개강좌 일시/장소 7월 4일(화)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비전캠프 83기(인간도서관 멘티3기) 일시/장소 7월 4일(화)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비전캠프 84기 (제주IVF) 일시 7월 13일(목) 주강사 신응종 간사
3. 대구학사회 사역계획 안내입니다.(8~9월) · 비전캠프 85기(인간도서관 멘티4기) 일시/장소 8월 8일(토)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커플피움학교 23기 일시/장소 9월 1일(금) 5주간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비전캠프 86기(인간도서관 멘티4기) 일시/장소 9월 2일(토)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의미경영 콘서트 23회 일시/장소 9월 17일(일) /아멘교회 · 가정피움 공개강좌 일시/장소 9월 19일(화) / 르호봇센터 주강사 정희돈 간사
● 경남학사회 1. 사역 보고 · 경남IVF 학사수련회 일시 6월 5일(월)~6월 6일(화) 장소 김해 야훼동산 주제 ㄱ.ㄱ.ㄱ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주강사 이시종 간사 참석인원 학사 70명 + 동반가족 29명 / 총 99명 참석
2. 행사 안내 · 진주교육대학교 학사수련회 일시 8월 1일~2일 장소 산청 글로리펜션 문의 이주희 학사
● 제주학사회 1. 제주학사회 정기모임 안내입니다 · 학사 큰모임 일시 격월(8월, 10월) 넷째 주 토요일 13:00 문의 좌성훈(제주대00) 010-4699-3282 · 지역 학사 모임 일시 격월(7월, 11월) 중 주말에 모임 문의 좌성훈(제주대00) 010-4699-3282
팟캐스트 IVF 학사들을 위한, IVF 학사들에 의한, IVF 학사들의 팟캐스트! 학사님들을 위한 팟캐스트를 소개합니다.
아학팟 IVF 학사회 팟캐스트. 본격 기독B
● 나음누리 1.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에 함
급 팟캐스트를 지향합니다. 3월 25 일부터 새롭게 시작된 <덕후방송>
께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
과 <직장생존기>를 진행하고 있습
고해주세요.
니다.
모임문의 백성대 간사 070-8275-6345 ·서울지역(삼성병원모임)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 삼성서울병원 문의 이은경 010-8892-8076 ·서울지역(아산병원, 강동지역 모임)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강필제 010-2710-7851 ·경기지역(수원, 용인, 원주지역 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 송재현 010-2231-1424 ·인천지역(강서, 경인, 부천지역 모임)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강의혁 010-8898-2498 ·영남지역(대구모임) 일시/장소 한달에 한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설기호 010-2866-2697 · 부산모임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장소 별도 공지 문의 이은정 010-3862-4189
2. 2017 나음누리 여름 수련회 일시 8월 13일(일)~8월 15(화) 장소 대전 헬몬수양관 주강사 이재천 목사 주제 ‟가장 느린 자의 속도로, 가장 낮은 자의 자리로” * 어린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여름성경학교>가 열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책나눔 -복팟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복팟'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책모임을 지원합 니다!
퇴근하고 뭐할래?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루어보는 방송입니다. 취미, 일, 가정생활 등등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시도 하고 적용하며 공부합니다.
맑은물소리 하창완 목사와 함께 <시냇가에 심 은 나무(시심)>(IVP)의 진도를 따 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묵 상도우미.
말씀으로 여는 하루 IVF 출신 목회자들의 설교 팟캐스트
소리 지음
58+ 58
편집인의
메아리
수련회를 떠나던 날 아침, 20년 만이라는 대대적인 폭 설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가는 길목이 얼어붙어 버 스는 수련회장으로 진입할 수 없었고 미리 선발대로 떠났던 찬양팀과 자봉마저 고립된 상황이었습니다.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 작비로 사용됩니다.
당연히 모든 일정이 취소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 련회에 대한 소망은 폭설도 이겨내더군요. 버스의 진 입이 가능한 새로운 장소가 당일에 급히 섭외되었고, 리더들의 자원을 받아 찬양인도자와 음향담당자를 세웠습니다. 수련회장에 고립된 자봉들은 기도부대 가 되어 영적 싸움을 지원했고, 반대로 현장의 기도부 대는 자봉이 되어 공동체를 섬겼습니다. 새로운 장소 에서 하루를 보낸 학생들은 다음 날, 고립된 선발대가 기다리는 수련회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재해조차 덮을 수 없었던 ‘하나님을 향한 공동체 의 열망’은 저에게 있어 큰 은혜의 경험이 되었답니다. 독자 분들께도 특별한 의미와 기억을 남긴 각자만의 수련회가 있으시겠죠? 수련회는 주기적으로 찾아오 는 일상이었지만, 돌아보면 우리의 삶에 ‘은혜의 흔적’ 을 남긴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유리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2017년 5~6월 후원자 명단 곽지영(*2) 국효숙(*2) 권도균(*2) 김선미(*2) 김재원(*2) 김종기 (*2) 김종수-구한나(*2) 김지은 나현순(*2) 남은경(*2) 민은혜(*2) 박애숙(*2) 박정현(*2) 박창재(*2) 손정엽(*2) 송인규(*2) 여운성 (*2) 오규덕(*2) 윤정범-지은실(*2) 이상엽(*2) 이원경(*2) 임정하 (*2) 임종학 장은숙 전선애(*2) 정민경(*2) 정성구-윤정은 정재성 (*2) 조창훈-민혜경(*2) 최수연(*2) 허성호(*2) 황진욱(*2) 익명 강릉(*2) 경기남(*2) 경남(*2) 경인(*2) 남서울(*2) 대구(*2) 대전 중부(*2) 동서울(*2) 부산(*2) 북서울(*2) 서서울(*2) 영남동부(*2) 원주(*2) 전북(*2) 춘천(*2) 충남(*2)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학사님의 마지막 인사처럼, IVF 60주년의 역사 속에 서 수련회를 위해 헌신하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 음을 전합니다. 여름이 무덥습니다. 때문에 간간히 내리는 비 소식이 더욱 반갑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귀퉁이에서 전해지 는 <소리>가 비처럼 반가운 소식이 된다면 좋겠네요. 종종 페이스북을 통해 컬러풀한 영상으로도 찾아 뵐 테니 기대해주세요!
김기인│편집인│sori@ivf.or.kr
제35권 제4호 통권233호 발행일 2017년 8월 1일 발행처 (사)한국기독학생회 학사사역부 주소 (0403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서교동) IVF 중앙회관 전화 070-8275-6313 팩스 02-333-7361 발행인 주상윤 편집장 이시종 편집인 김기인 김경아 편집위원 국효숙 김지은 박정현 오한웅 조창훈 허영신 허지선 편집디자인 김아롬새미 문이선 표지 이재웅 제작 김효영 인쇄 예원프린팅
/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기본 진리 /
인간이 만들어낸 거짓 진리를 무너뜨릴 망치, 교리 살아 있고 역동적인 교리 공부를 위한 검증받은 안내서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 그러나 올바
기 독 교
른 삶은 올바른 교리 위에서 가능하다. 우리나라를 포함
교
념을 깊이 있지만 명료하게 다룬다. 신학 교수, 목회자,
리
핸 드 북
해 전 세계 교회와 신학교에서 중요한 참고서로 쓰이는 이 책은 조직신학의 구성에 따라 기독교 교리의 핵심 개 선교사로 두루 사역하며 연마한 저자의 폭넓은 지혜와 균형 잡힌 관점은, 교리 공부를 통해 거룩하고 충만한 삶 으로 나아가도록 독자들을 안내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나 오랜, 여전히 새로운 아름 다움이시여!’라고 고백했다. 이 책은 하나님에 대한 탁월한 가르침에도 그러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_ 우병훈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기독교 신앙에서 올바른 진리야말로 올바른 삶을 사는 근본과 기초다. 이 귀한 책이 널리 읽혀서, 삶에서 거룩을 증진하는 일에 복되게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_ 화종부 남서울교회 담임목사 송인규(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송태근(삼일교회 담임목사) 이상웅(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백충현(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웨인 그루뎀(피닉스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제임스 패커(『하나님을 아는 지식』 저자) 외 추천
브루스 밀른 | 안종희 옮김 | 양장 584면 | 27,000원 Know the Truth
최신판! www.iv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