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34 I 2017. 10+11
‘빚’진 제자들
‘빚’ 속에서 나를 다시보다 │ 미생:종로모임 이야기 │ 하나님이 부르신 그 때, 그곳에서 자리를 지켰을 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 이재웅 | 상명대98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소리정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빚’진 제자들
04 08 12 16 21
‘빚’ 속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다»익명 87년생 이무성»이무성 그리스도의 ‘빛’과 나의 ‘빚’ 사이에서»익명 청춘들에게 ‘빚밍아웃’을 권함»설성호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김의수
소리지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27 31 34 36 38 41 44 46 소리이음
48 54 56 58 61 62
말씀산책»김유복 지금 다시, 헌법이다»정한신 미생:종로모임 이야기»허대리 우리 결혼할까요?»호욱,이은경 ‘오Chef’의 오늘 뭐 먹지?»오한웅 재외학사통신원»김영섭 함께 이어달리기»한형빈 쉼으로 작은 축제를 열다»최유진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소리가 만난 사람»김용범 나음누리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김영동 수도권 YGM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이에스더
안테나 팟캐스트 편집인의 글
소리 정음
소리
깨끗하고 맑은 소리
정음
우리가 사는 시대를 일컬어 ‘빚 권하는 사회’라고 합니다. 신용카드 사용과 무이자 할부, 학자금 대출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빚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에는 주택마련 대출문제가 커다란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을
‘빚’진 제자들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대출의 규모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대출의 부담을 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이 답답한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번에는 개인의 삶과 가정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빚의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막막한 고통을 버텨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04 ‘빚’ 속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다 »익명 08 87년생 이무성»이무성 12 그리스도의 ‘빛’과 나의 ‘빚’ 사이에서 »익명 16 청춘들에게 ‘빚밍아웃’을 권함»설성호 21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김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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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제자들
‘빚’ 속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다
익명 필자와의 협의로 익명을 사용합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게 될 줄 정말 몰랐다.
결혼자금을 마련했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알콩달콩한 근황 아니면 역경을 믿음으로 견
는 마음속으로 정해둔 카드 결제대금의 상한
뎌서 이겨낸 선배의 이야기…. 만약 <소리>
선이 넘을까 벌벌 떨었다. 웬만하면 현금을
에 소식을 전할 기회가 있다면 그런 이야기
썼으며, 조금 비싼 물건을 살 때만 할부를 이
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빚’에 대한 글을 써보
용하기 위해 카드를 사용했다.
겠냐는 요청이 왔을 때 마음이 힘들었다. 여 전히 진행 중이며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우
결혼을 했고 (배우자의) 부모님이 마련해
리 가정의 빚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오랜
주신 수도권의 작은 아파트에서 전세로 신
만에 만난 선배들이 자신의 실패담을 꺼내놓
혼 생활을 시작했다. 배우자가 벌어오는 돈
으며 너희는 이렇게 살지 말라고 얘기할 때
으로 저축도 하고 여행도 하고 자식을 키우
참 답답했었는데, 나의 이야기가 후배들에게
고,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렇게 비칠까 봐 좀 염려가 된다.
의 도리도 다했다. 이직과 퇴직을 거친 배우 자는 자영업을 시작했다. 몇 번의 전세 재계
나는 금융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직장 동
약과 몇 차례의 이사 후, 조금 이른 나이에 집
료를 따라가 종신보험에 대한 소개를 들은
을 장만했다.
것이 전부였다. 통장 하나, 신용카드 하나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을 받아 엄마께
자녀가 태어나 육아의 세계로 들어갔다. 유
드리면 엄마가 적금을 들어주셨고, 그것으로
모차나 카시트 같은 큼직한 용품들은 물론,
‘빚’ 속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다
옷이나 장난감, 책 같은 소소한 것들도 물려받았다.
을 할 수 없었다. 급박한 필요들 속에서 지출도 늘
그래도 귀로 재는 체온계 같은 육아 신문물은 새로
었고 저축은 확 줄어들었다. 물가가 오르고 식구도
구입해서 썼다. 기저귀며 병원비, 예방주사 등 고정
늘어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월급이 오르는
지출이 생겼다. 편리하고 예쁘고 다양한 육아용품
것에 비해 빨리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화가 나기도
들을 사들이는 것으로 육아의 고단함을 풀면서 그
했다. 기존의 전세금에 융자를 보태면 집을 살 수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에 따라 새로
있을 것 같았다. 전세를 올려줄 돈은 융자를 받기
운 필요가 생겼다. 친척들과 교회 안에서 많이 물
힘들었지만 집을 구입할 때는 은행이 융자를 잘 내
려받고 물려주며 아이들을 키웠지만, 그래도 예상
주었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게 집을 장만한다고 했
치 못한 급한 일은 언제나 생겼다. 교육에 대해 큰
다. 장기 주택담보 대출은 저축하듯 퇴직할 때까지
욕심이 없었기에 영어유치원이나 사립유치원이 아
쭉 갚아 가면 되는 거였다. 부채도 자산이고 저축하
닌, 마음에 드는 환경의 국공립기관에 보냈다. 학원
는 셈 치면 된다고 했다. 갚아가다가 힘들어지면 집
도 많이 보내지 않았다. 주말에는 나들이를 하거나
을 팔아 전세로 옮기기로 다짐하고 집을 구입했다.
다양한 체험을 시켜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조금 이른 나이에 집을 장만하 게 되었고 참 감사하게 생각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배우자는 부모님을 부양 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부양이라고 하면 좀 거창
이렇게 적고 보니, 주변에서 우리를 볼 때 부럽고
하지만, 자식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좋아보였을 것 같다. 부부 사이에 큰 문제가 있어
는 없으니 매달 전화요금과 함께 적은 금액의 용돈
보이지도 않았고, 자녀들도 건강하게 잘 자랐으며,
이라도 드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양가부모님께 똑
이른 나이에 집 장만까지 마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같이 용돈을 보내드렸고 전화요금도 내드렸다. 자
정말 보이는 것과 같았을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
식으로서 당연하다 생각했고, 금액이 적어서 민망
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 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 선물을 준비하고 부모님 용
우리는 경제와 육아 부분을 나누어 각각 전담하기
돈과 세뱃돈 등을 챙겼다. 해가 갈수록 금액을 조금
로 했다. 각자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씩 늘렸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명절 비용이 부담되
때문에, ‘외벌이 남편과 전업주부’의 형태로 살기로
기 시작했다. 명절이 지나면 적자가 확 늘었지만 그
한 것이다. 밖에서 보기엔 제법 합이 잘 맞는 부부
래도 해오던 것을 줄이거나 할 수는 없었다.
였다. 각자 전담을 했지만 경제적 부분이나 자녀 양 육에 대해서 같이 의논했고 서로 힘들다는 것을 공
이런 일들은 동시에 일어났다. 집을 옮기며 드는
감해주고 격려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
비용, 자녀양육 비용, 경조사와 명절 비용이 동시에
보니 우리는 각개전투를 하고 있었다. 각개전투를
같이 늘어났다. 전세 값은 계속 올랐다. 두 번째 전
하고 돌아온 패잔병의 모습으로 집에서 만났지만
세를 올릴 때까지는 저축과 다른 돈으로 감당할 수
서로를 돌볼 여력이 없어 혼자 힘들어했다.
있었지만, 그후로는 올라가는 전세비용만큼 저축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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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제자들
이 지면에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계기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과 빚을 계산해보 게 되었다. 배우자는 직장에서 나와 개인 사업을 했는데, 수입은 불규칙했고 예전에 만들어둔 마이너스 통장의 숫자는 점점 커졌다. 저축은 거의 없어졌고 그나마 가진 돈 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거의 다 사용되었다.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많았 다. 그래서 카드를 사용하게 되고 그 다음 달에는 카드대금과 대출 이자와 원금, 교육 비, 헌금 등을 내느라 다시 돈이 없었다. 체크카드를 사용하려고 이를 악물고 시도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끌어다 쓴 돈 을 갚아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데 가진 돈은 없었다. 패잔병 같은 부부관계도 겨우 유 지하고 있는 상태이다. 경제적 문제로 이혼하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 덕이게 되었고 실제로 우리 역시 고려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 가정의 현실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되기 시작한 걸까? 배우자가 왜 저기에 저렇게 많 은 돈을 쓰는지 답답하게 여겼던 그때부터였을까? 십일조를 드리는데 얼마를 내야할 지 고민이 되는 때부터였을까? 경조사에 드는 돈이 부담스럽기 시작하고, 부모님께 돈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기 어려울 때부터였을까?
우리 부부에게는 서로의 돈 쓰는 문제로 고민이 있었다. 상대방의 지출에 이해가 되 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덮어주었다. 왜 그렇게 자 주 나들이를 해야 하는지, 왜 사는 지역과 주택의 종류에 집착하는지, 삶의 작은 사치 가 왜 그렇게 자주 필요한지, 명절 비용과 경조사비를 줄이는 것이 왜 그리 힘이 드는 지…. 돈이 없어 걱정이 될 때, 우리는 통장을 모두 꺼내서 진실을 마주했어야 했다. 너 의 그런 소비는 적절하지 않다고, 우리는 그 집을 계약하면 안 된다고, 부모님께 죄송 하지만 돈이 없으니 명절과 경조비는 줄여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 부부의 대화는 진 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행동도 잘 변하지 않았다.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소비 습관, 이사를 해야 함에도 불안해서 떠나지 못하는 마 음, 공동체와 가족에게도 돈이 없어서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마음, 돈이 없는 문제는 돈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돈 문제로 배우자와 대화할 때 막히고 답답한 그 지점에 는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개인적인 이슈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 니 전에는 안 보이던 것이 보였다. 부부관계의 틈도 보였고, 하나님과의 틈도 보였다. 돈이 없으면 좋던 사이도 나빠진다던데, 이혼까지 고려하게 된 것은 단지 빚 때문만일 까? 아닐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벌어지고 있던 틈이 이제 보였을 뿐이다. 돈이 없 어 매일 울며 기도하기를 몇 개월, 하나님은 돈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10년을 넘게 함
‘빚’ 속에서 나를 다시 바라보다
께 해온 부부관계가 다 허물어져 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걸 보고 나니 나에게 하나님도 없었다는 것도 보여주셨다. 한 번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 지만, 나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매달 드리던 십일조 금액을 줄여야 할까 고민이 되던 그때였을까? 십일조에 각종 선 교헌금을 포함해서 내도 될 거라고 생각하던 그때였을까? 경제 상황이 달라져 헌금의 액수를 조정 할 때, 그 전에 우리는 가정의 소비에 대해서 돌아보았어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두려웠고, 대화가 막힐 것이 답답했고, 걱정하지 말 라고 했으니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연년생 남매와 터울이 많이 지는 막내를 키우 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다.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는 아이의 일 년 뒤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해 걱정이 되고 불안한데, 30년 동안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니며 그 큰 금액을 갚아가며 살 수 있을 거 란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계획하고 예상하고 추측은 했지만 믿음도 있었을까? 누굴 믿은 걸까? 무엇을 믿은 걸까?
우리는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살지 않았다. 명품을 산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남 들처럼 그렇게 살았다. 아니, 그래도 남들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이들 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주기 위해 애쓰는 다른 엄마들과 비슷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 었고, 남들처럼 교육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효도를 한 것도 아니었다. 남들 처럼 살고 싶었으나 남들처럼 살지는 않은 그 삶은 만족스러웠을까? 그 남들은 대체 누구일까?
후회와 변명으로 글이 엉망이다. 이 글을 쓰며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잘 안 된다. 돈이 없고, 돈 때문에 가정이 흔들리게 되어 무릎을 꿇었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돈 얘기는 하지 않으신다. 내 내면만 비추고 계신다. 내가 배우자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만 보여 주신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살게 하신다. 내가 무엇을 해서 해결이 될 상황이 아니라 는 걸 알게 하신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앞에 두고 살아내는 하루하루는 무 척 답답하고 고단하지만 반면 감사하다. 내가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이 빚은 우리 부부가 만들었지만, 지금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다. 내 배우자는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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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제자들
87년생 이무성
이무성 ◆ 동국대 05 아직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 느끼고 있는 사회초년생. 한 집 안의 가장으로, 삶의 혼란스러운 변화 로 인해 방황 중이다.
“전세자금 대출로 전환이 어렵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에 이무성 씨는 충격을 받았다. 이미 몇 번이고 가 능하다고 확인했던 내용이었다. 장교로 군 생활을 하던 중 결혼을 해서, 10 평짜리 빌라의 전세자금 7,000만원 전액을 지원받았다. 2015년에 전역을 하면서 지원받은 금액이 전부 신용대출로 자동 전환되어 살던 집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2016년에 전세 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에 몇 번이나 은행에 찾아가 전세 대출로 전환이 가능한지 확인했었다. 그때마다 전환이 가능하 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데 계약기간이 한 달 남짓 남은 이제 와서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당시 상담했던 대출 담당자가 바뀌어 확 인해 볼 방법이 없었다.
이무성 씨는 바뀐 은행 담당자와 함께 방법을 찾아보았다. 두 가지가 어려 웠다. 첫째, 대출이 만료되어 7,000만원 전액을 갚아야 한다는 것과 둘째, 대출금 전액을 갚은 후에만 다음 대출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면 2 주 후에야 대출금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당장 7,000만원을 모을 방법을 계 산해 보았다. 신혼여행을 국내로 가면서까지 모은 돈이 4,000만원 있었다. 집주인은 보증금 500만원을 올린다고 했으니 이무성 씨는 한 달 안에 3,500 만원을 구해야 했다.
87년생 이무성
‘한 달 안에 그 돈을 어떻게 구하지….’
는 기간제 교사였다. 이 학교에서 정교사를 뽑 게 되어 지원한다면 같은 과목을 가르치고 있
이무성 씨는 아내와 통화하며 말로는 주님께
는 이 선생님과의 마찰은 득이 될 것이 없었다.
맡기자 했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양가 부 모님이 여유가 없어 결혼도 제 손으로 겨우 해
군 제대 후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곧바
낸 이무성 씨였다. 양가 부모님이 각자 생활비
로 시작한 기간제 교사였다. 학생들을 가르치
를 벌어 생활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상황
며 보람도 얻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점
이었다. 이런 그에게 결혼 후 처음으로 맞는 전
이 기뻤다. 적성에도 맞았고 학생들도 이무성
세 계약기간 만료라는 현실은 너무 가혹했다.
씨를 좋아했다. 하지만 매년 계약 만료로 학교
가장으로서 집의 경제적 상황이 흔들리는 것
를 떠나고, 시험과 면접을 반복해서 치르는 과
만으로도 부담이 컸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에게 정을 주기 힘들었
이러다 거리로 내앉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
다. 해마다 겪는 이별에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
감만 커져갔다. 기간제 교사인 이무성 씨는 불
아서였다. 학생들도 이무성 씨가 기간제 교사
안정한 수입으로 인해 이미 경제적 부담이 큰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 사회가 살기 쉽지
상태였다. 스트레스는 건강도 해쳤다. 심장이
않다는 것을 전달할 수는 있었지만 위축되는
계속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가니 혈
마음만은 어쩔 수 없었다.
압이 너무 높게 나왔다. 의사는 안정이 필요하 다 했다.
정교사 선생님들을 대하는 것도 신경 써야 하 는 부분이었다. 이무성 씨는 같은 과목 선생님
스스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우선 동료 교
이나 부장 선생님처럼 자신의 채용과 관련될
사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한 교사는 자신이 아
수 있는 교사 앞에서 항상 긴장을 했다. 최대한
는 은행원을 이무성 씨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스스로를 지운 채 마음을 거스르는 일을 만들
상담을 받긴 했지만 뾰족한 수는 찾지 못했다.
지 않도록 늘 신경 썼다. 모든 요청 사항을 수용
군대 간 자기 아들 이름이 무성이라면서 항상
했고 항상 그 이상을 해내고자 했다. 업무 분장
이무성 씨에게 아들 같은 마음이 든다고 했던
의 불균형으로 7명 부서원 업무의 80%를 혼자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무성 샘, 내가 이 상
맡아 일하고 있어도 항상 웃으며 지냈다. 혼을
황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는데 알려줄까?”
빼놓을 정도로 바쁘게 일할 때, 같은 부서 정교
절박했던 이무성 씨는 기대에 차 물었다. “뭔가
사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방법이 있나요?” “응, 그건 무성 샘이 정교사면
떨어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교사면 지금의
가능해. 정교사가 아니어서 힘든 거야.” …어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하
라는 건가. 욕이 목까지 차올랐다. 이 인간이 도
던 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네, 그러면 가능하
대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한 마디
겠네요.” 이무성 씨는 최대한 웃으며 대답했다.
도 따질 수 없었다. 이무성 씨는 사립학교에 있
소리 정음
10+ 11
‘빚’진 제자들
교회에 손을 벌려야겠다 싶었다. 공동체를 강조한 교회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체를 도와주자는 설교를 자주 했었다. 정기적으로 헌금을 모아 급하게 돈이 필 요한 성도를 도와주는 지정 헌금 제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무성 씨는 아내와 함 께 교회관계자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절박함과 당혹감, 경제적인 불안 함까지도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새로 대출금이 나오기까지 2주 동안만 돈을 빌릴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돈이 있긴 하지만 공금이라 도와주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 었다. 어려울 수 있겠다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많이 실망스러웠다.
교회관계자는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셨다. 이무성 씨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아는 지인들에게 몇 십 만원씩이라도 빌려서 채워야 할 것 같 다고 대답했다. 그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네.” 이무성 씨는 이 일이 해결될 정도의 경제적 지원은 어렵더라도, 심리적인 절망감은 같이 짐 져 주길 기대했었다. 빈말이더라도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은 들을 줄 알았다. 모 든 이야기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한 후에야 지정 헌금으로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말 을 조심스럽게 꺼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돈은 잘 구해져서 이무성 씨는 살던 집에 계속 지내고 있다. 은행에 서 대출금을 받을 때까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제3금융권에서 카드론을 받아 해 결했다. 생활이 어려울 때, 일명 ‘카드 돌려막기’로 생활비를 유지하시던 방법이 었다. 2주간 빌리는 데 붙는 높은 이자가 흠이었지만 그 돈을 구한 게 어딘가. 한 편에 찜찜함은 있지만 뭐, 해결은 됐으니 주님의 도우심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비록 교회 공동체의 도움은 받지 못했지만 그 정도 씁쓸함이야 마음에 묻어둘 수 있었다.
그래도 모든 과정이 힘들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무성 씨에게도 감사하고 위로가 되었던 순간이 있었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소득이 적어 SH에서 저 소득자를 위한 지원을 받았다. 전세자금의 30%인 2,250만원이 해결되었다. 학자 금 대출이 아직 꽤 남아있어 많은 돈을 대출받기 힘들었는데, 이 지원을 받아 최종 적으로 은행에서 1,000만원만 추가로 대출받으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남았다. 매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이웃집 부부는 “현재 얼마가 있으니 편하게 빌려서 사용하라”고 이야기해주었고 실제로 흔쾌히 돈을 빌려주었다. 제일 고마웠던 건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해주는 말과
87년생 이무성
태도였다. 교회의 같은 소그룹에서 리더였던 한 친구는 퇴근길에 전화해 “너를 위 해서 오늘 1,000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으니 필요하면 말만 하라”는 이 야기를 해주었다. 자신도 대출이 많아서 아무리 해도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미안 하다는 투였다. 미안하다니…. 이무성 씨는 그날 좋은 친구를 얻었다.
이무성 씨가 사는 10평 빌라는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아파트로 치면 12층 정도 의 높이다. 그 집에 아내와 11개월 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생각보다 아이의 짐 이 많고 아이가 곧 걷게 되면 집이 더 좁게 느껴질 것 같다. 자동차가 없어 점점 무 거워지는 아이를 안고 매일 12층 높이의 언덕을 오르내리는 것도 부담이 크다. 이 무성 씨는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낮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당장 내년이 전세 계 약 기간 만료라 곧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패러디하여 작성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 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담담하게 제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었습 니다. 교회와 사람들에게 실망한 이야기, 동시에 사람들로부터 받은 위로를 말이 죠. 객관적으로 정리하고도 싶어 일부러 거리를 두는 형식으로 글을 썼습니다만 신앙이 어려서인지 하나님의 일하심이 제게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집을 구해야 하고 당장 매일 살아내는 데 급급한 상황에서 하나님나라가 저와 한국사 회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생 때는 하나님나라라고 하면 ‘무 엇’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제는 많이 희미해진 기분입니다. 지금은 그저 가장 으로서 우리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책임감으로 버틴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언 젠가는 한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한 복음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소리 정음
12+ 13
‘빚’진 제자들
그리스도의 ‘빛’과 나의 ‘빚’ 사이에서
익명
띠링!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일상적인 연락은 주로 메신저나 SNS를 통해 온다. 그러면 뭘까?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친절한(?) 안내문자다.
“귀하의 20XX년도 X학기 학자금 대출의 원금 납입이 X월 X일 시작되어 월별 이체 출금액이 늘어납니다.”
대학에 입학한 지 10년, 졸업한 지 5년차에 접어들었다. 최장 거치기간을 설 정해 두었던 학자금 대출 건들이 이자 납입 기간이 끝나면서 이제 하나둘 원금 납입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안내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이에 매월 납부해야 할 이자 알림 문자도 잔뜩 도착해 있다.
졸업 이후, 취업을 하고 수입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학자금 대출을 내가 직 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자금 대출을 받던 시기에나 그 이후에도 부모님은 공부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본인들이 책임지고 갚아주 겠다 약속하셨다. 하지만 글쎄,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대출금을 마음 편히 맡겨도 될 만한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대출을 선택하지 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빛’과 나의 ‘빚’ 사이에서
프리랜서와 비슷한 개념으로 일을 하셨던 아버지
첫 월급을 받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자
의 급여는 적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안정적이지
금 대출 상환 계획을 짜는 일이었다. ‘월 5~60만원
못했고, 우리 집 가계부는 롤러코스터의 궤적을 그
씩, 5년’, 그 이상 길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
리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수입이 있는 동안 모아둔
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직장은 나름 큰 회
돈을 매학기 400여만원의 등록금으로 써버릴 수는
사였고 대기업 연봉은 아니어도 안정적 수준의 급
없었기에 나는 매번 대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를 주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이 초봉에서 월
학기 초에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교재비 등이 부담
5~60만원을 제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활비
스러워 생활비까지 더해 대출을 받은 학기도 제법
를 제하고 나면 겨우 적금 하나 붓는 것도 빠듯한
있었다. 어떤 시기에는 매달 납부해야 하는 몇 만원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래저래 버티기를 1년, 다니
의 이자조차 연체되어 다음 학기 등록금 대출을 거
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와중에도 나름 조금씩 아
절당하기도 했다. 또 학기가 시작된 후 연체로 불어
껴 모은 돈이 있었고, 다음 직장을 얻기까지 생활
난 이자를 겨우 메워 갚은 뒤에야 학과 사무실을 오
을 꾸려갈 계산도 되어 있었다. 50만원까지는 아니
가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뒤늦게나마 등록을 할 수
더라도 이자 납입을 연체하지 않는 수준의 학자금
있었다. 그해 가을 학기는 시작부터 너무나 피곤했
상환 계획도 당연히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삶은
던 학기였다. 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도록 알려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않았냐며 부모님 앞에서 하루 종일 울었던 9월
지 두어 달도 되지 않아 집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
의 내 생일, 그날은 나에게 그리고 아마 부모님에게
기 위해, 모아둔 돈에 만기도 되지 않은 적금까지
도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탈탈 털어 부모님께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아왔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
그래도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다시 일을 계약해 수
었으니까.
입이 생기면 몇 달간의 문제들을 순차적으로 해결 해 갈 수 있는 때였다. 이런 상황을 반복하면서 어
회사를 그만둔 지 6개월쯤 지나 다음 직업에 대
쨌든 학자금 대출의 이자 납입 부담과 용돈을 부모
한 방향을 잡고, 일을 준비하기 위해 파트타임 아
님께 의지해 5년 반 만에 학교를 졸업했다.
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발생한 이자 연체 와 갖가지 체납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장학재단
1년 정도 지나 나는 첫 직장을 얻었다. 그리고 그
과 관계된 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들을 찾고 얼마
동안 부모님의 경제 상황은 또 변했다. 아버지가 은
쯤은 그 정책의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나누어 정리
퇴하는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아버지가 경제활동
를 해가는 중이다.
을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 같은 수입 은 기대하기가 어려워졌고 더 불안정해졌다. 부모
첫 직장에서 퇴사 후 2년 반이 지났다. 이제 새 일을
님이 해주시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더는 내 이
시작했지만 정해진 직장이 있는 업종이 아닌 관계
름에 걸린 대출을 그분들 몫으로 놓아둘 수는 없는
로 안정된 수입을 얻는 게 아직은 멀기만 하다. 일
때가 온 것이다.
을 준비하는 동안만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파트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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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제자들
타임 일이 오히려 아직까지의 주 수입원인 상황이다. 그 사이 나는 집에서 독립을 선 언했다. 보증금을 부담해준 룸메이트의 도움으로 간신히 월세나 나누어 내고 있는 처지다. 게다가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월세에 기초 생활비를 빼고 나면 예전에 회사를 다니던 때나 집에서 생활할 때보다 훨씬 빡빡한 살림이다. 어쩌 면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의 경제 상황 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지금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가 뭘 더 해서 잘 보태드렸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하는 괜한 죄책감을 느끼기 싫었다. 언젠가 내가 안정적인 경제력 을 갖게 되더라도 이전과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서는 살아갈 방도가 없겠다는 자각 을 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이런 나의 결정을 이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 겠다. 그렇지만 제대로 내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3,000만원에 달하는 빚을 내 몫으 로 가지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주변에는 학자금 대출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 대기업에서 자녀 대학 학자 금이 지급되는, 중간 직급 이상의 직함을 가진 부모님을 둔 소수의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의 경우,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는 있겠지만, 직장을 옮기며 수입 의 공백이 생기거나 지금까지 여전히 취업 준비 상태이더라도 당장 삶이 흔들릴 정 도의 위기에 봉착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삶에도 내가 모르는 그 집 나름의 문제들이 분명 있겠지만, 당장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는 내게마저 푼돈 때문에 급한 손을 내미 셔야 하는 부모님이 있는 삶보단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겠나.
그리고 국립대학 졸업 예정인 내 동생이다. 같은 가족에 속해 있어도 국립대를 선 택한 내 동생은 나와 상황이 또 다르다. 동생은 학교를 다닌 비용 전체를 보아도 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다. 얼마간 장학금을 받았던 학 기나 그나마 등록금이 적었던 추가등록 학기 등을 빼고도 5년간 거의 모든 학기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8학기 중 6학기만 대출을 받았다. 국립 대학을 다닌 동생의 등록금이 사립대학인 나의 등록금에 비하면 크게 적었던 데다 가, 이미 내 학자금 대출에 대한 부담을 느낀 부모님이 최대한 노력을 하신 결과였 다. 게다가 취업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안정적인 분위기의 학과 특성에, 칭찬을 받 아 마땅한 본인의 부단한 노력까지 얹어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직장에 취업을 확정 했다. 언제부터 근무하게 될지 미확정인 기간이 좀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기대수입 과 이런 저런 상황을 계산했을 때 일을 시작하고 1~2년 안에 학자금 대출은 해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의 ‘빛’과 나의 ‘빚’ 사이에서
친구들이야 긴 시간을 함께 해온 고마운 동역자들이요 삶의 동반자들이다. 동생 또 한 내가 누구보다 아끼는 존재이지만, 이런 그들을 바라볼 때 내 마음 밑바닥에서 불 쑥 올라오는 박탈감은 어쩔 수가 없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이었기에 출발선이 이리도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 좀 더 탁월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경제력 문 제인가? 국립대학으로, 또는 좀 더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진학하지 않은 내 선택의 문제일까? 매 학기 장학금을 받을 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던 내 나태함이 문제인가?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종종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내 부모님이 피난민 촌에서 먹고 살기 바빴던 사람들만 아니었어도, 나도 서울에 서 공부하고 떵떵거리는 직장 다니면서 더 잘 살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가랑이 찢어 지게 노력해서 서울 옆에 붙어 너희들 가르치고 키워놨으니 나보다는 낫게 살아라.”
내 부모님의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지는 경제력의 문제를 원망하자면 한도 끝도 없 을 것이다. 내 선택과 부족했던 노력을 탓하자면 조금의 여유도 행복도 추구할 수 없 을 것처럼 느껴져서 내 삶이 억울해진다.
같이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과 비슷하게 학교를 다녔고, 비슷한 시기에 취업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일을 옮겼다. 그런데 서른 즈음의 지금 내 손엔 아무 것도 쥐어진 게 없다. 매달 청구되는 학자금 대출 상환금과 월세를 빼고 나면 깃털같이 사라지는 조 막만 한 수입을 쥐고 살고 있다.
내가 너무 분수에 맞지 않게 원하는 일을 찾고 있는 걸까? 원하는 일을 찾지 않고 처 음 들어갔던 직장에서 2, 3년 버텼다면 내 삶이 지금보단 조금 나았을까? 이렇게 계 속 학자금을 갚느라 저축을 미루면 결혼은 어떡하지? 결혼하느라 빚을 얻으면, 집 은? 출산은? 자녀 교육은? 나의 노후는? 앞을 생각할수록 끝없이 이어질 빚의 굴레 를 떠올리는 내가 너무 부정적인 것일까?
빚 갚기에, 아니 연체로 이자가 발생해 빚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급급한 지금 의 나는, 결혼 자금을 모으는 게 빠듯하다는 또래의 말조차도 부러운 나는, 이러다 언젠가 주님의 빛이 비추어주시는 길이 아닌 빚이 비추어주시는 길을 따라 살게 되 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직도 이 불안한 현실을 허덕이며 끊임없이 빚 갚는 삶을 살 아가고 있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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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제자들
청춘들에게 ‘빚밍아웃’을 권함
설성호 ◆ 경희대 96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꿈꾸 며 살아가는 하나님나라 운동가. '생명 의 빛 광성교회' 목사로 사역하면서 돈 때문에 꿈을 잃는 청년들이 없도록 “청 년지갑트레이닝센터”의 재무강사이자 상담사로, “청춘희년네트워크”의 본부 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장학재단] 고객님의 20xx년 1학기 학자금
서 증가하는 추세다.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학자
대출 납입예정일이 xx월 xx일입니다.”
금 대출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상환은 얼 마나 이뤄졌을까?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2016
무심코 들여다 본 문자에 마음이 무거워졌던 경
년 학자금 대출 잔액은 11조 8천억원. 약 12조원
험…. 지금 이 글을 읽는 학사들 중에도 이 같은
에 이른다.
문자를 받았거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그땐 알지
12조원이라니…. 사실 우리는 이게 어느 정도의
못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 그
금액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이 금액을
것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 국민 수 5천만명으로 나눠보면 어떨
것인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빈곤 속
까? 그러면 각 개인당 24만원가량의 금액이 나
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우리에게 덧씌워
온다. 다시 말하면, 지금 갓 태어난 신생아부터
질 ‘대출상환’이란 굴레에 대해서 말이다.
죽기 직전의 100세 노인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 이 24만원씩 갚아주어야 상환이 완료되는 금액
지난 10년 사이, 학자금 대출을 받는 대학(원)
이다. 그것이 20~30대 청년들에게 남겨진 학자
생의 수는 2006년 약 54만명에서 2016년 약 92
금 대출 잔액의 무게다. 과연 다 갚을 수는 있는
만명으로 거의 2배가량 증가했다. 이는 계속해
건가 싶다.
청춘들에게 ‘빚밍아웃’을 권함
현장에서 청년채무자들과 재무상담을 하다 보면,
그렇게 애썼음에도 연체 독촉(문자, 메일) 등을 받
학자금대출은 기본이고 다중채무를 가진 이들도
는 날엔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빚의 무게에
많이 만나게 된다. 빠듯한 소득을 쪼개어 적게나
불안함이 엄습해오곤 한다. 뿐만 아니라 빠듯한 수
마 부채 상환을 해보려하지만 이 금액으로는 상환
입과 높은 취업준비 비용, 학자금 대출 상환에 대
완료가 이루어지기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한 압박은 추가적인 생활채무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다가 우리에게 ‘학자금대출 상환’이
많다. 하지만 저신용, 저소득인 청년들이 돈을 빌
라는 짐이 부과된 것일까?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릴 수 있는 곳은 고금리 대출시장 뿐이다.
가난해지는가」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청춘희년네크워크”를 찾았던 한 청년의 경우, 졸 “한국의 20~30대는 ‘대학’을 필수적인 생애경로로
업하고 꿈을 찾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높
여기며, ‘대학’이라는 시공간을 거친다. 대학에 입
은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방법이 없어 신용카
학함과 동시에 개개인은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드에 의존해서 생활했다. 점점 밀려가는 카드 값을
경제규모를 생산하고, 이를 부채로 생산한다. 바꿔
갚아보고자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도 했으나 오히
말하면,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 비용을
려 빚은 늘어만 갔다. 불과 2개월여 만에 신용등급
오롯이 개인의 빚으로 마련하라는 소리다. (중략)
이 10등급으로 떨어지고, 신용위기의 어려움에 처
이는 대학(원)생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이자 새로
하게 됐다. 이 청년의 꿈은 빚에 잠식되어 갔다. 어
운 빈곤층이 대학에서 출현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
디 이 청년 하나뿐이랴?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보
겨 있다.1)”
면 다양한 케이스를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IVF학 사들도 있다.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안타까운 공통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졸업생들은 평균 1,321만원 2)
점은 ‘빚’에 대한 고민을 나눌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의 빚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우리에게 이
빚의 무게가 뼈저리게 다가오는 건 졸업 이후다.
그렇다면 이미 우리에게 덧씌워진 ‘학자금 대출의
상환의 압박이 시작된 탓이다. 취업의 벽은 높기만
굴레’와 ‘빚 권하는 사회’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하고, 매달 찾아오는 상환일에 맞춰 아르바이트도
어떠해야 할까? 먼저 학생 채무자를 양산하는 거
하고 절약도 해보지만 늘 돈이 부족하다. 재정적으
대한 사회시스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로 여유가 없을 때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이게 되는
있다. 대학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빚을 강요하는 이
데, 아이러니하게도 식비를 줄이는 순간 우리는 빈
사회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 사회에 책임을
곤감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게다가 더 이상 절약
물으며 바꿔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할 곳이 없다고 느끼면, 나가던 모임을 하나둘씩 줄이게 되고 점점 고립되기 시작한다.
1) 천주희,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사이행성, 2016, p.21. 2) 잡코리아가 2015년 졸업생 1,095명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자료.
하지만 사회를 바꿔가려는 노력과 함께 당장 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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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제자들
늘도 살아야한다. 우선, 빚의 무게로 인해 힘겨워 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첫째는 너 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려워 보이더 라도 용기 내어 직면하고 하나씩 방법을 찾다 보 면 길은 있기 마련이다. 학자금대출 이외에 다중 채무가 있더라도 어디에 얼마의 빚이 있는지 파
•서민금융지원제도 ① 대학생·청년 생활자금대출(신용회복위원회) 저신용·저소득으로 긴급자금 필요시 저금리 대출이 어려운 대학생·청년층에게 생활자금 대출 지원(연간 3백만원, 최대 8백만원까지 / 금리 5.5%수준 / 상환기간 최대 5년).
악해나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둘째, 빚은 혼 자 고민할 것이 아니라 꺼내어 함께 고민할 때 해 결방법도 찾아지더라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 면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악화된 상 태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청춘희년 네트워크”에선 ‘빚밍아웃(자신의 빚에 대해 오픈 하고 함께 고민하자는 캠페인)’을 권하고 있다. 이
② 햇살론 생계자금(서민금융진흥원) 신용듭금 및 소득이 낮아 제도권금융 이용이 어려운 서민들을 대상으로 서민금융진흥원의 보증부 대출(최고 1천만원까지 / 금리 10%초반 / 3년 또는 5년 매월 원금균등분할상환). ③ 근로자 생활안정자금 대출(근로복지공단)
두 가지만 해도 빚을 다루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되
3개월 이상 근로중인 월평균 소득 239만원(세
었다고 볼 수 있다.
전) 이하인 근로자들 대상으로 혼례비, 의료비, 부모요양비, 장례비, 소액생계비 등을 저금리
자, 준비가 되었다면 다음과 같은 지원제도와 기
로 대출하는 제도(소액생계비 200만원을 제외
관들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고 나머지는 1000만원까지 / 연 2.5% / 1년 거 치, 3년 매월 균등분할상환).
•각 지방자치단체별 지원제도 ① 대학생 학자금대출 이자지원 제도
④ 새희망홀씨(국내은행) 소득이 적거나 신용이 낮아 은행에서 대출받
각 지역별로 대학생 학자금 대출 이자지원 정
기 어려웠던 계층을 위해 별도의 심사기준을
책을 시행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 정책은 대
마련하여 대출해주는 은행의 서민 맞춤형 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
출상품(최대 2500만원까지 / 연 6-10% 수준 /
의 움직임이 제도를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하자.
2020년까지 한시적 운영).
각 지자체에 민원을 넣을 수도 있고, 각 지역별 로 운영 중인 ‘청년정책네트워크3)’를 통해 지 자체의 정책을 직접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저금리 전환대출 제도 ① 대학생·청년 햇살론고금리전환대출(신용회 복위원회) 연 15%이상의 고금리채무를 부담하는 대학생·
3) 청 년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해법을 시도하는 능동적인 시민참여플랫폼. 서울지역이 가장 활발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운영 중인 지역들이 있다.
소리 정음
청춘들에게 ‘빚밍아웃’을 권함
청년에게 신용보증을 제공하여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상품. 신청일 기준 6개월 이전에 연 15%이상 의 고금리대출을 받아 정상 상환중인 자로 대학(원)생이거나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인 29세(군필자는 31 세) 이하 성년자와 6개월 이내 대출연체일 수 90일 이하인자 신청가능(전환대출 원금 100% 단, 1천만원 한도 / 연 5.5% 수준 / 거치기간 최대 4년, 최대 7년까지 원금균등분할상환). ② 바꿔드림론(국민행복기금) 국민행복기금의 보증을 통해 신용도가 낮은 서민의 고금리대출(연20%이상)을 은행의 저금리대출로 전 환시켜주는 상품. 연소득 3천만원 이하 근로자(신용등급 무관) 신청가능(최대 3천만원, 고금리대출 원금 범위 내까지 / 연 6.5~10.5% / 근로자 한정 최대 5년 원금균등분할상환). ③ 햇살론 대환대출(상호금고-신협,새마을금고 등) 서민들의 고금리부담 해소를 위해 연이율 20% 이상의 고금리 채무를 정상상환 중인 서민을 대상으로 하 는 보증부 대환대출. 연소득 3천만원 이하 또는 신용등급 6~9등급이면서 연소득 4천만원 이하인 근로자 (3개월 이상 근로) 신청가능(1500만원까지 / 연 7% 수준 / 3년 또는 5년 원금균등분할상환).
•채무조정제도 현재의 소득으로는 본인의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없는 채무자를 대상으로 채무를 일부 조정해 주는 제도. ① 대학생·미취업청년에 대한 채무조정제도(신용회복위원회) 소득원이 없거나 불안정하여 채무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생 및 미취업 청년을 채무조정을 통해 재기 지원. 금융회사의 대출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하고 대학(원)생 및 미취업 청년 신청가능. 대학(원) 졸업 시 까지 채무상환을 유예, 졸업 후 미취업자에게는 구직 시까지 매 6개월 단위로 채무상환 유예(최장 4년). ② 그 외 채무조정제도 구분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
개인회생
개인파산
운영주체
신용회복위원회
신용회복위원회
법원
법원
대상채권
협약가입 금융기관(3600개) 채권 연체 30일 이상
대상채무자
3개월 미만 단기 연체자 연체이자 감면
채무조정 수준
약정이자 50%감 면, 원금감면 없 음, 최장 20년 분 할상환
제한 없음(사채 포함)
연체 3개월 이상
과다채무상태인
연체자
봉급생활자
연체 및 약정이 자 감면, 원금 3060%감면, 최장 20년 분할상환
파산원인 해당자
최대 5년 동안 소 득에서 최저생계 비의 150%를 제외 청산 후 전액 면책 하고 나머지를 채 무상환
20+ 21
‘빚’진 제자들
•채무조정 실행 중인 자에 대한 지원 ① 한강론(신용회복위원회) 만 40세 미만, 신용회복지원 절차를 밟는 자 중 채무조정 변제금을 9회이상 상환한 자 (최대 1000만원 이내 / 연 3%, 5년 분할상환). ② 소액금융지원(신용회복위원회) 신용회복지원을 받아 9개월 이상 또는 개인회생 2년이상 성실하게 채무상환을 하는 자(학자금 1000만원, 생활안정자금, 고금리차환자금 1500만원까지 / 연 3-4% / 5년이 내 분할상환).
• 자산형성지원 제도 ① 청년내일채움공제(근로복지공단)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청년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로, 2년 동안 매 월 125,000원씩 적립하면, 정부와 기업이 성과보상금 형태로 1600만원을 지급. ② 매칭형 적립적금(각 지자체 별 운영) 저소득 청년의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제도로 매월 정해진 금액에 따라 2년~3년 동 안 적금형태로 적립할 경우, 자신이 적립한 금액의 2배에서 3배가량으로 돌려줌(서 울시-희망두배 청년통장, 경기도?일하는청년 통장, 부산·청년희망날개 통장 등). •알아두면 유용한 기관 - 서울시 복지재단(금융복지상담센터) : 부채상담, 회생 및 파산 상담 - 신용회복위원회(www.ccrs.or.kr) : 다양한 신용회복지원, 생활안정자금 지원 - 근로복지공단(희망드림근로복지넷) : 저소득 근로자 긴급자금대출, 자산형성 지원 - 국민행복기금(www.happyfund.or.kr) : 저금리전환대출 - 주택금융공사(www.hf.go,kr) : 전세자금 대출 - 대한법률구조공단(www.klac.or.kr) : 무료법률상담 - 청춘희년네트워크(www.youthjubilee.net) : 금융지원, 채무교육·상담 -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moneyhabit.kr) : 재무교육 및 상담 -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www.lifewayfund.net) : 저소득층 무이자 소액대출 지원 - 희년은행(jubileetogether.tistory.com) : 자조금융, 고금리부채전환대출, 주거비지 원대출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김의수 ◆ 경성대 87 “돈 걱정 없는 우리집 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빚 권하는 사회의 현실 사례1) 신혼부부가 긴급한 재정상담이 필요하다며 사무실로 찾아왔다. 형제 급여가 300만원으로 적지 않은데도 매월 120만원씩 적자가 난다고 했 다. 모아둔 돈도 다 까먹고 몇 개월 전부터는 리볼빙, 현금 서비스를 받 아 생활비로 쓰고 있다. 3년 전 까지만 해도 맞벌이를 해서 소득이 550 만원이었다. 그걸 믿고 전세자금 대출 1억을 받아 24평 아파트를 얻었 고 중형 자동차도 48개월 할부로 구입했다. 아이를 낳고 외벌이가 되면 서 모든 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사례2) 2년 전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자매는 급여 260만원을 받는다. 그런데 매월 저축할 돈이 한 푼도 없다며 찾아왔다. 본인은 대 출 이자와 월세 때문에 저축할 돈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과는 달랐다. 학자금 대출 원리금 2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내고, 십일조와 후원금 30만원을 내고 나면 160만원이 남는데, 실제 이 돈을 다 쓰고 있는 것 이다. 물론 자매는 본인이 어디에 이 돈을 다 쓰는지 알지 못한다. 모 든 게 신용카드로 지출되고 260만원 소득에 월 저축액은 20만원이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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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제자들
사례3) 작년 12월, 교회후배 자매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아이를 데리고 하루 종일 전셋집 을 알아보고 있는데 전세 값이 너무 올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아이 양육비에 대출 원리금 내고나면 저축할 돈이 많지 않다. 거기다 2년 후 또 전세가격이 오를 텐데 이렇게 저축해서 오르는 전세가격을 따라 잡을 수 가 없다며 너무 답답해서 전화를 했단다. 그냥 2억 이상을 대출 받더라도 집을 장 만하고 싶다고 했다. 전세도 오르고 아파트 가격도 올라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구입해 두면 2년마다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신자유주의 경제, 빚 권하는 사회 -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IVF에서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졸업을 했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대부분 의 학사들이 탐욕으로 가득해서 돈을 다 써버려 빚을 지는 게 아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3명 중 1명은 당장 직장을 구할 수 없다. 힘들게 직장을 구해도 얼마 되지 않는 급여로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결혼 준비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엄청난 전세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결혼 하면 빚은 더 늘어나게 되고, 2년 뒤 전세자금 대출을 갚아야 할 때가 오면 전세자금이 수천만 원씩 올라 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빚지고 사는 인생이 되었을까? 경제적 발전으로 만들 어 놓은 문화적 풍요로움 속에 함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이 선택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먼저 미국 상황을 이 해하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 표에 나타난 것처럼 신자유주의 이 전은 한사람의 소득으로 내집마련, 자녀교육, 노후준비까지 가능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번 의 오일쇼크가 오면서 세계경제가 어려워졌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경제가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생산성이 증가해도 중산층의 실질소득은 증가하 지 않았고, 그로 인한 차이는 자연스럽게 맞벌이와 대출로 메우게 되었다. 미국 중산층의 삶이 1980년 신자유주의 이후에 무너졌다면 대한민국은 그 시발점이 IMF였다.
소리 정음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A B C D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GDP는 2만6,000달러 인데(B) 기업총소득(A)은 경제성장지표보다 35% 높다. 경제성장지표에 비해 가계총소득(C)은 1 만8,600달러인데 대한민국 가구 평균소득(D)은 9,000달러이다. 3만불 시대가 무서운 건 3만불 시 대에 맞추어서 자산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도 IMF를 벗어나면서 계속 경제성장을 했지 만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로 인해 대부분의 국민 들이 빚을 내서 살 수 밖에 없는 경제구조가 만들 어진 것이다. 한평생 죽어라 일해도 내집마련, 자 녀교육, 노후준비 등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생 활 자체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여기에다 내 소득과 상관없이 GDP 3만불 시대에 부응하는 문화생활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우리에 게 있다. 이러니 주님이 주시는 소득에 자족하지 못하고 빚을 내어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빚 권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빚 없이 살 아 갈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다양 한 환경에서 빚 문제로 힘들어 하는 학사들의 이야 기를 통해 어떻게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보자.
주님이 허락한 재정 상황에 맞추어 산다 사례1의 경우 재무상담을 통해 이들 부부가 빚으 로부터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24평 아파트에 서 나와서 방 2칸의 빌라로 이사 가는 것이다. 다 들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빚으로부 터 고통당하는 것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이땅에서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과 다 른 것을 구해야 한다. 사례1 가정의 경우 전세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2억이라는 큰돈이 준비되 었지만 2억에 맞는 집을 알아보지 않고 1억을 대출 받았다. 문제는 자매가 아이와 3년 이상을 보내는 것이 비전이라고 생각했기에 외벌이 소득으로 1억 의 대출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맞벌이를 계속해서 전세자금 대출 1억을 상환할 수 있는 현 금 흐름이 되면 문제가 없지만 외벌이 300만원으 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몇 개월 후 이 부부는 24평 아파트를 나와 21 평 빌라로 이사를 갔다. 준비된 금액에 맞는 집을 선택해서 이사했다. 전보다 좁아진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게 처음엔 힘들었지만, 대출 없이 살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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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예찬
다. 이사를 하면서 빚지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신
사례2 자매는 우선 밀린 신용카드 대금부터 상환하
용카드도 없애고 체크카드를 사용하면서 생활비도
기로 했다. 기존의 예·적금을 모두 해약해서 신용카
많이 줄였다. 소득 300만원으로도 매월 돈이 부족했
드 빚부터 갚았고, 이후 다시 예산을 세웠다. 학자금
는데 이사 후에는 월 80만원을 저축할 수 있게 되었
대출 20만원, 십일조 및 후원금 30만원, 월세 50만
다. 이 중 50만원으로는 2년 후 전세자금 상승을 위
원, 보험료 5만원, 청약저축 5만원 등, 고정지출 110
해 적금을 들었다. 또한 2년 후 자매가 다시 일하게
만원을 제외하고 본인의 ‘용돈 체크카드’에 매월 50
되면 저축여력이 좋아져 몇 년 후에는 더 좋은 집으
만원을 넣어 활동경비로 사용하면서 월 100만원을
로 이사를 갈 수 있다.
저축했다. 빨리 목돈을 모아서 전세자금을 마련하 기 위해서다. 자매가 구입하고 싶은 전자제품은 1년
사례1 가정의 경우, 결국 주님이 허락한 재정 상황
후 적금이 만기되면 그 안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이
에 맞추어 전세를 구하고 외벌이 소득에 맞추어 계
전에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할부
획을 세우고 소비했다면 카드 리볼빙에 현금서비스
로 구입했을 것이다. 사람 마음은 똑같은데 빚내서
까지 받아가며 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전세자
구입할 수 없는 시스템(체크카드, 현금)을 만들어
금 대출은 누구나 있는 것이니 빚내서 살아라”, “맞
놓아야 통제가 가능하다.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기
벌이 소득 550만원이나 되는데 중형 자동차 할부 정
에 학자금 대출이나 전세자금 대출은 어쩔 수 없이
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하는 메시지가 들려온다.
일어난다고 해도, 오늘 소비하는 것들은 빚지지 않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우리들조차 빚 권하는 사회의
고 현금(체크카드)을 써야만 한다. 이 글을 읽고 있
조류에 휩쓸려가고 있다. 빚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
는 학사들도 본인들의 지출 패턴을 확인하고, 할 수
한 시대이다. 빚 권하는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는 방
만 있다면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를 사용하길 권
법은 빚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주님이 허락한 범위
유한다. 나의 재정에 희년을 선포하고 빚 권하는 사
내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회에서 주님이 허락한 현금을 쓰는 학사들이 되자.
나의 재정에 희년을 선포한다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자
- 돈 관리도 훈련이 필요하다
사례3 이야기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추운 겨
하나님이 많든 적든 매월 우리에게 급여를 주시지
울에 휴가를 내고 아이와 함께 하루 종일 이곳저곳
만 우리는 그 급여 안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빚지고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니면서 얼마나 힘들고 서러웠
산다. 물론 여기에 학자금 대출, 전제자금 대출, 내
을까? 사례3의 자매 부부와 상담을 하면서 자매가
집마련 대출은 예외로 불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많이 울었다. 나는 뭐라 할 이야기가 없었다. 이럴
먹는 밥, 커피, 마트에서 구입하는 물품 등 이런 소
줄 알았으면 남들처럼 전세를 끼고 갭 투자를 하지
비는 신용을 사용해서 구입하면 안 된다. 결국 크리
않은 게 후회가 된다고 했다. 사실 4억 아파트에 전
스천은 주어진 소득 안에서 빚지지 않고 소비하는
세를 끼고 대출을 좀 받으면 본인 자본 없이도 내집
훈련이 필요하다. 신용카드를 쓰지 말고 체크카드
마련이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는 마지막 2~3년 동
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 대부분의 부동산 규제를 다 풀고 기준금리까지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1.25%까지 내렸기 때문에 전국 아파트 가격이 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신용카드를 쓰지 않았기 때문
올랐다. 하지만 현장에서 재무상담 15년을 하다 보
에 빚지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몇 년 후, 하나님이 컴
면,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리
퓨터 강사로 인도하셨고 내 급여는 150만원 정도가
한 대출로 가정이 파탄에 이르게 되고 빚으로 고통
되었다. 150만원을 벌어오면 아내는 100만원을 쓰
받는 가정도 많다.
고 월 50만원은 저축을 했다. 2년 후 1,000만원을 모았다. 전세 값은 3천만원이 올라, 우리는 또 돈에
자고 나면 수천만원씩 올라있는 부동산 가격을 보
맞추어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집은 3층 빌라였다.
면 내집마련이 요원할 것 같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너무 작아 가족이 함께 잘 수가 없어서 작은 방 두
있는 것은 때를 기다리고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하
칸에 나누어서 잤다. 이사를 갈수록 집은 좁아졌지
는 것이다. 사례3의 자매는 올 가을 국민임대 청약
만 아버지 회사의 보증으로 인한 빚 외에는 빚을 만
이 되어 23평 아파트로 들어간다. 주위에서는 아이
들지 않았다. 전세자금 대출도 없었고 소비로 인한
두 명이라 더 큰 평수를 이야기했지만 부부가 준비
신용카드 빚도 없었다. 전세금이 계속 올라 2년 후
된 돈과 감당할 수 있는 대출 안에서 23평을 선택
에는 방 한 칸짜리로 이사를 갔다.
했다. 자매의 울음소리를 주님이 들어주셨는지 모 르겠지만 때를 따라 돕는 주님의 손길을 기대하며
하지만 돌아보면 그곳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선교
기도하자. 그래도 주어지지 않으면 때를 기다리고
모임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여러 가지 불
자족하며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자.
편함이 있었지만 그 불편함이 우리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깨뜨리지 못했다. 빚지지 않고 살았을 때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학사들을 기대하며 잠시 우리 가정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 부부 는 87학번, 90학번으로 학부 때 IVF에서 만나 결 혼했다. 하지만 행복한 신혼을 보내야 할 때 큰딸 희은이가 중증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곧이어 아 버지 회사가 부도났다. 결혼하며 장만한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고 우리는 거리로 쫓겨났다. 1998년, 2천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당시 김서 택 목사님이 계시던 제자들교회 공동체에서 생활 했다.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나는 10억이 넘는 빚보 증으로 파산에 이르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교 회 청년부 간사와 전단지 및 신문 돌리기가 전부였 다. 당시 교회 간사의 사례비로 40만원, 전단지를 돌려 40만원으로 총 80만원을 벌었다. 우리 가정 은 8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
우리 삶에는 자유함이 있었다. 이 광야의 시기를 지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돈이 없으면 죽을 것 이다! 한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라는 메시지가 거짓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 는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돈이 없는 것으로 비참해 지지 않는다. 돈의 문제는 현실이지만 실제 이 현 실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들의 생각과 세계관이다. IVF 학부 때 배운 것이다. 물론 현실에 모두 적용하 긴 어렵지만 믿음을 사용하여 하나님나라를 기억 하고 살아야 한다. 빚 권하는 사회에서 우리 IVF 학 사들은 하나님나라를 생각하며, 세상을 거슬러 살 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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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ㅣ 백지윤 옮김 ㅣ 176면 ㅣ 11,000원
기도는 보이지 않게 흐르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을 새롭게 해주는 비밀의 시냇물과도 같다. 그러나 그 것은 언제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그것이 실 재임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기도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기도들을 외워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길을 걷거나 버스를 기다릴 때, 감자를 깎거나 잠자리에 들 때, 언 제든 그 기도 안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 기도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탱해 주는 숨은 음악이 될 수 있 으며, 우리는 곧 거기에 화음이나 새로운 리듬을 추가해 즉흥 연주를 하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_ ‘들어가는 말’ 중에서
본서는 『신약의 모든 기도』를 제목과 본문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재출간한 책입니다.
www.ivp.co.kr
말씀산책
영적 우정, 광야를 건너게 하는 힘 (삼상 18:1-5, 삼상 20장, 삼상 23:14-18)
김유복 ◆ 영남대84
소리 지음
캠퍼스 간사로 14년을 섬긴 후, 뼈를 묻 으려 했던 IVF를 떠났다. 대구에서 대 학생들과 ‘기쁨의 교회’를 개척했고, 현 재까지 15년 간 사역하고 있다. 다음 세 대에서도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열 매를 맺어갈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싶 다. 저서로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 음」이 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호레스로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삼상 23:16) 광야같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소명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친구 가 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그런 친구였다. 진실한 친구 요나단이 없었다 면 다윗은 광야를 지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고단한 도피생활 중에 왕의 길 을 포기했거나 타락했을지도 모른다. 요나단의 진실한 우정은 다윗이 광야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한 결정적 이유였다. 이런 우정이 없이 광야의 시간을 제 정신으로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진실한 친구는 그리스 도인들이 광야 같은 인생길을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갈 수 있게 한다. 광야를 지나려면 친구가 필요하다. 사람은 물이 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서 영향을 받는다. 지혜의 보고인 잠언에는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말고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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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산책
은 친구를 사귀라”는 경고가 자주 나타난다. 바울도
바울 서신 맨 뒷부분에는 항상 바울의 동역자들의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
이름과 그들에게 문안하라는 인사가 나온다. 그들은
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고, 바울을 대신해 교회
라”고 했다.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내 안에 있는 악
를 돌보기도 하며, 바울의 선교사역을 물질과 기도로
을 억제하고 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가 누구인
돕기도 한다. 심지어 함께 감옥에 가기도 했다. 함께
지를 망각하지 않도록 소명을 일깨워줄 수 있는, 그
감옥이라도 갈 수 있는 우정, 강도와 맹수의 위협이
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길을 함께 동행할, 그런 친구
있는 광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동행했던 우정이 있었
가 필요하다.
기 때문에 바울은 기쁨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이 한 사람을 당신은 가졌는가? 당신은 누
1.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친구(삼상 20:14-16,
군가에게 이 한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가?
23:17) 2. 내 안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친구(삼상 18:3-4)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참다운 우정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신 그
다윗을 만난 요나단은 입고 있던 겉옷과 칼, 활과 허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서로 매어주시기 때문
리띠까지 다 내어주었다. 이것들은 왕자의 표식이었
에 가능하다”고 했다. 참된 우정은 같은 마음에서 시
다. 요나단은 왕자의 의복을 다윗에게 입힘으로써 이
작된다. 다윗과 요나단은 동일한 마음으로 연결되어
스라엘의 다음 왕이 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다윗이
있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마음이었
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요나단은 하나님 안
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
에서 다윗을 보았다. 다윗에게서 한 왕을 보았다. 사
해 싸우는 전사들이었다. 두 사람 다 올바른 일에 헌
울이 다윗을 위험인물로 본 것이나 가족들이 다윗을
신했고 하나님의 백성을 뜨겁게 사랑했다. 두 사람의
하찮은 어린아이로 본 것과 달리, 요나단은 하나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서로 매어 있었다. 요나단이
이 다윗 안에서 발견하신 그것을 보았다. 진정한 친
다윗에게 왕위를 양보했던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구는 그렇게 한다.
뜻이었기 때문이다. 요나단은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 름 부어 왕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23:17).
진실한 친구는 우리 안에 있는 왕을 본다. 세상이 보
반대로 요나단이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지 못하는 내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주목한다. 사
면 다윗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윗은 잡혀죽어야 할 미친 개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다윗은 사울의 세상에서 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안위와 성공보다 하나님나라
재해서는 안 될 불필요한 존재요 절삭되어야 할 잉여
를 먼저 구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같은 마음에서 시
에 불과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그런 방식으로
작되었다. 이익이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맺어진 관
보지 않았다. 사실 다윗의 등장으로 가장 위험에 빠
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동일한 마음에서
진 사람은 요나단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향
비롯된 것이었다.
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윗을 평가했던 것이다.
말씀산책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도 비슷한 취급을 받
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 기도에서의 악은 악
는다. 사람들은 우리를 자본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한 자들이다. 요나단과 같은 진실한 친구는 친구를
우리는 연봉 얼마짜리, 어느 지역의 대학교가 생산
악한 자들에게서 구원한다.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
한 제품, 상품성이 있는 외모와 기술력으로 평가받는
다. 우리는 친구가 힘없는 위치에 있고, 권력자들과
것이다. 월터 브루그만은 “세상이 보라고 하는 방식
함께 선 세상이 모두 그를 대적할 때, 선뜻 나서서 그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이라고 했
의 선의와 좋은 점들을 변호할 수 있을까? 세상의 약
다.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우정은 그러한 우상숭배에
자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친구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한다. 세상의 시각이 아닌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진실한 내 친구다. 하나님이 보시는 방식으로 나의 소명을 귀
뿐만 아니라 요나단은 다윗을 악 그 자체로부터 보
하게 여겨 존중하며,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신뢰하
호했다. 분노한 자의 얼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동
며 바라봐주는 친구, 그런 친구는 세상에 저항해 우
일한 분노로 물들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웃는 얼굴은
리 안에 있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가능성을 실현할 수
마주보는 사람의 마음을 미소 짓게 한다. 르네 지라
있게 한다.
르는 이것을 관찰하고 ‘거울이론’이라 이름 붙였다. 다윗이 여러 번 사울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할 기회가
내게는 예수님이 그런 분이다. 예수님은 내 안에 있
있었지만 차마 실행하지 않았던 것은 요나단이 보여
는 왕다운 면을 보시고 그 왕을 끌어내어 주시는 분
준 사심 없고 정의로운 우정이 맑은 거울처럼 다윗을
이다. 내가 나의 한계와 실패에 집중하고 있을 때, 세
비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이 보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루저’로 바라보고 있 었을 때, 예수님은 내 안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하셨
사울이 지배하는 세상은 사울의 거짓말이 지배한다.
다. 예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 안에서 찾으시는
그 세상에서 의로운 다윗은 반역자로 낙인찍힌다. 요
것은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우리는 누군
나단은 사울의 거짓말을 붕괴시킨다. 권력자의 거짓
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한다.
말이 진실한 친구의 증언으로 무너진다. 요나단이 있 는 한,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교회는 핍박당하
3.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친구(삼상 19장, 20장)
는 의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분노와 절망 으로 일그러진 세상 앞에서 순결한 미소를 비추는 수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에게서 다윗을 보호
정처럼 맑은 거울이 되어야 한다.
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다윗에게 알려주 어 위험을 피하게 했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사울
4. 소명을 일깨우는 친구(삼상 20장, 삼상 23:15-18)
앞에서 다윗의 결백을 변호했고 그가 사울을 위하여 행한 좋은 점들을 과감히 말했다(19:4-5). 요나단은
다윗이 울었다. 친구 앞에서. 나는 아직 친구 앞에서
다윗을 악인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20장).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내 친구들도 내 앞에 서 울지 않았다. 골리앗 앞에서도 쫄지 않았던 다윗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
이었다. 전장에서도 두려움을 모르던 전사였으며 패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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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산책
배를 모르던 장수였다. 그러나 그런 다윗도 친구인 요나단 앞에서는 자신의 연약 함을 드러내며 울었다. “다윗이 그 숨어 있던 바위 곁에서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면서 세 번 큰 절을 하였 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끌어안고 함께 울었는데, 다윗이 더 서럽게 울었다.”(20:41) 요나단 앞에서 다윗은 울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 다윗에게 요나단은 하나님이 다 윗과 함께 계셔서 반드시 그를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 일깨운다(20:11-16). 요나단은 그의 두려움에 공감하고 그가 어떻게 행할지를 알려준다. 요나단은 다윗의 숙명, 즉 왕이 되어야 할 그의 소명을 일깨운다. 소명은커녕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 에 떠는 이들이 많다. 요나단은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고 하나님 을 힘입어 일어서도록 격려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호레스로 다윗을 찾아와서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도록 격 려하였다. 그는 다윗에게 말하였다. ‘전혀 두려워하지 말게. 자네를 해치려는 나의 아버지 사울의 세력이 자네에게 미치지 못할 걸세. 자네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왕 이 될 걸세.’”(23:16-17) 진실한 친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 그리고 그의 소명을 일깨운다. 하나님은 이 각박한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우리를 부르신 소명을 이루게 하신다. 세상을 두 려워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왕이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포기하지 말라. 우 리는 이런 친구를 갖고 싶어 한다. 나를 위해 자신의 왕관마저도 포기할 수 있는 친 구,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고 비난할 때라도 나를 위해 변호하며 지켜주는 친 구, 내 마음 저 밑바닥에 있는 연약함을 내어보여주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친구,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친구, 하나님을 의지하라 촉구하며 우리를 일으켜 줄 그 런 친구를 말이다. 우리는 요나단 같은 친구를 구하지만 요나단 같은 친구가 되려 하지는 않는다. 오 늘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걷는 젊은 다윗들에게 누가 요나단 같은 친구가 되어줄 것 인가.
지금 다시, 헌법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 헌법 다섯 번째 이야기 : 국민을 위한 권력의 자리매김을 위하여 -
정한신 ◆ 부산대94
소리 지음
IVF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아내(한은 정, 동아대 99학번)와 두 아들과 더불 어 성숙하는 가정을 꿈꾸며 살고 있 다. 캠퍼스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으 며, IVF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기획연 구 위원이자 ‘일상학교’ 대표 겸 프로그 램디렉터다. ‘일상학교’의 법/제도 과정 의 일환으로 “전 국민 헌법 읽기 프로젝 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속 기획 강 좌 “대한민국 헌법을 말하다”를 기획하 여 진행하고 있다. peacemaker99@ hanmail.net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액톤(Acton)경의 경고다.
선실세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고, 정경유착 권
권력이란 부패하기 마련이며 이것이 권력 자
력구조를 구축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국
체의 속성이다. 또한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민 위에 군림하려 한 권력자들의 부패상이 하
게 권력이 집중되고, 권력이 적절하게 통제되
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지 않는다면 이러한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 하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의 부패 현상은 역
권력의 부패를 막고 권력을 적절하게 통제하
사 속에서 꾸준히 반복되어 왔다. 멀리 갈 것
여 국민을 위해 복무하도록 일찍이 권력분립
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통제되지 않은 독재
의 원리가 주창되었고, 이는 현대 헌법의 기본
권력들이 어떻게 부패해 왔는지 확인할 수 있
원리로 자리 잡았다. 권력분립의 원리란 국민
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민을 위해 행사되어야
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권력
할 권력을 사유화하여 스스로의 이익 내지 비
을 분할하고, 이들 권력을 각각 분리·독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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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헌법이다
별개의 국가기관들에 분산시킴으로써, 특
다. 또한 국회는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국
정의 개인이나 집단에게 국가권력이 집중
정감사·조사 등을 통하여 법원을 통제한다.
되지 않도록 하여 권력 상호간에 균형이 유
한편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 행사, 국가안
지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삼권분립
위에 관한 중요정책의 국민투표 회부 등으
이라고 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한 형태로서
로 국회를 통제한다. 아울러 법원은 명령·
국가권력을 입법권·집행권·사법권으로 나
규칙·처분의 위헌·위법 심사를 통하여 국
누어, 각각 분리·독립된 입법부·집행부·사
회·정부·헌법재판소를 통제하고, 헌법재
법부에 귀속시키고, 이들 기관은 자신에게
판소는 위헌법률심판·권한쟁의심판·탄핵
귀속된 권력만 행사하고 다른 기관의 권력
심판·정당해산심판·헌법소원심판 등을 통
은 행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 상
하여 국회·대통령·정부·법원을 통제한다.
호간에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관계를 형성하여 어떤 기관도 국가의 모든
물론 엄격한 권력분립 원리에 따라 권력의
권력을 장악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분할과 권력 상호간의 견제가 제대로 이루 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과
현행 헌법은 이러한 권력분립 원리를 채택
거 독재정권들의 권력 집중형 헌법에 비하
하고 있다. 우선 국가권력을 분할한다는 점
면 상대적으로 권력분립 원리에 따른 헌법
에서 입법권은 국회에(헌법 제40조), 집행
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에게 권력
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제66
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되고
조 제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
있다. 이렇게 현행 헌법 하에서도 대통령에
에 속한다(제101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게 집중된 권력구조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또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겸직을 금지하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패
고 있는 규정(제43조, 제83조)도 있다. 한편
권집단이 출현하고 이들에 의해 국정이 좌
헌법은 국가기관 상호간에 견제와 균형의
지우지되는 폐단을 초래했다. 심지어 여당
원리에 따라 권력을 통제하는 장치를 광범
도 대통령의 정책을 함께 추진해 나가는 파
위하게 채택하고 있다. 우선 국회는 국무총
트너이긴 하지만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기
리·국무위원의 해임건의, 대통령 기타 고
본적인 자세마저도 저버린 채 대통령의 ‘의
위직 공무원에 대한 탄핵소추, 국정감사·
중’에 좌우되고 비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
조사,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이 법률의
았다. 그간 의원내각제나 이원정부제 등으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할 경우 그 내
로 정부형태를 바꾸자는 개헌 논의도 있었
용을 소관 중앙행정기관장에게 통보, 선전
고, 책임총리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같은 논
포고 등 외교행위에 대한 동의, 대통령의 긴
의도 구체화되고 있는데, 이런 논의들은 대
급명령과 긴급재정경제처분·명령에 대한
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방
승인, 계엄해제요구,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
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정안의 의결, 대통령의 일반사면에 대한 동의 등에 의하여 대통령과 정부를 통제한
한편,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헌법상 권력
지금 다시, 헌법이다
분립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
스템을 교묘하게 약화시키려는 입법이나
문이 든다. 국회를 무시하고 힘의 논리로 추
정부 정책, 헌법 개정 시도 등은 없는지 살
진해 온 정책들, 비대해진 경찰 권력에 의한
펴봐야 한다. 언론은 이러한 국민의 감시가
인권 침해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에 의한
가능하기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기관
각종 폐해, 통제받지 않고 마음대로 불법사
의 부패와 전횡을 드러내며 비판한다는 점
찰과 선거개입 등 민주주의 유린 행위를 자
에서 매우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이러한 기
행한 국가정보원의 행태, 너무나도 자주 흔
능이 마비될 정도로 망가져버린 주요 언론
들린 사법부의 독립, 그리고 정부를 견제해
들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야 할 국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스스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로 권력기관화 되어 ‘그들만의 리그’에 몰두 하는 등, 헌법상 권력 시스템의 오작동 사례
권력이 집중되고 통제되지 않을 때 어떤 일
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발생하는지, 또한 그러한 전횡이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파괴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
이러한 문제에 대해 최근 고위공직자 비리
유를 침해하는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이
수사처 설치, 국정원 개혁, 검찰-경찰 수사
익들이 권력자들에게 돌아감으로써 국민
권 조정 등, 권력의 분산과 통제를 강화하려
의 삶이 얼마나 피폐하게 될 수 있는지 우
는 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권력의 문제는 일
정부형태의 변화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이
상의 문제와 직결된다. 권력을 감시하고 통
개헌 과제로서 논의되고 있다. 물론 정부형
제하는 일에 국민이 나서야 한다. 제대로 된
태를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만으로 권
언론을 후원하고, 이슈별로 직접 목소리를
력의 통제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내고, 불충분한 헌법의 권력 규정들을 개정
있을 수 있다. 대안적인 정부형태나 제도도
하고, 권력을 위임받는 사람을 선거를 통
또 다른 권력집중이나 부패의 가능성을 내
해 검증하고 심판하는 등, 이런 일들을 통
포하기 마련이다. 또 제도를 개선한다 해도
해 권력이 온전히 국민을 위해 존재하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일 수 있다. 그
해야 한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
래서 권력을 분산하고 통제하는 제도를 설
그 썩은 과실은 결국 우리의 생명을 위협함
계할 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살피고 치밀
을 잊지 말자.
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와 같이 권력 기구의 통제 시스템을 제대 로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외부에서 권 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 다. 권력의 분할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권 력 상호간에 통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또한 권력분립의 시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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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신앙생활도 ‘욜로’족처럼?
허 대리 사랑받는 딸, 여동생, 그리고 아내라는 이 름으로 살아가는 서울살이 3년차 직딩이 자 새댁(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 용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맞이 ‘특새’의 첫날이었다. 평소에는 거리가 멀어서 가지 못했던 본교회 새벽기도회였다. 이번에는 ‘특별’이라는 이름으로 한번 가보리 라는 굳은 다짐을 하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교회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 데 집으로 오는 길…. 두둥! 출근길 차량과 겹쳐 무려 1시간 10분을 도로 위에서 보냈다. ‘그래, 이렇게 매일 러쉬아워를 겪으며 출근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집에 도착해서 바쁘게 출근준비를 마치고는 다시 회 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9시 10분. 그런데 아…. 출근 전에 이미 너무 많 은 일을 한 느낌이다.
주님은 금식을 하더라도 드러나지 않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 라 하셨는데, 나는 특새만 다녀오면 그렇게 티가 날 수가 없다. 아침부터 눈꺼 풀이 감기고 얼굴이 퀭해서 누가 봐도 아침에 뭔 일이 있었던 사람처럼 보인 다. 차라리 새벽기도를 안 가고 잠을 푹 자고 상쾌한 컨디션으로 회사에 출근 했다면, 그렇게 일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살 짝 스쳐 지나갔다.
캠퍼스에서나 교회 청년부에서, 누구든 한번쯤은 경험해본 전성기가 있을 것 이다. 쌩쌩 날아다니던 그 시절에는 대체 그 많은 모임을 어떻게 하고 다녔는 지 모르겠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싶다. 청년부 회장으로 섬길 때 리더들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에게 “리더로 섬기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가?”
참석했고 예배는 온전히 내 선택이 되었다. 그런다
라는 질문을 했었다. 많은 20대 후반과 30대의 청년
고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도 아니고, 셀 리더들이 다
들이 “건강과 체력”이라고 대답했다. 그 당시 상대적
독여주는 것도 아니다. 생일이면 쉬지 않고 울려대던
으로 젊은 리더였던 나는,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하는
그 흔한 단체카톡방도 자연스레 사라졌고, 딱히 어울
데 체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 하나님이 다
리는 모임도, 그리고 모임에 안 온다고 뭐라고 하는
힘주시고 은혜 주시는데….’라고 생각했다. 피곤해서
사람도 없다. 쫓아다니면서 떠먹여주는 사람도 없다.
이번 주는 모임에 못 나오겠다던 리더 언니, 오빠들을
내가 알아서 찾아서 먹어야 한다. 먹고 힘내고 견뎌
보며 자기관리 부족이라고만 판단했다. 너무 교만했
야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에서 때 되면 엄마가 밥
다. 이제는 나도 그때의 언니, 오빠들의 답변을 충분
을 차려주셨지만, 결혼 후에는 몸이 천근만근이더라
히 이해하는 직장인의 몸 상태가 되었다. “아, 너무 피
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입에 쌀 한 톨 안 들어온다.
곤해서 모임을 못 가겠어요!”
신앙도 비슷한 것 같다. 더 큰 자유로움이 주어지니 더 태만해지는 것 같다.
이전 직장에서 야근을 너무 많이 했을 때, 기독교 직 장임에도 불구하고 내 신앙은 바닥을 쳤고 주중의 피
신앙의 욜로족으로 살았던 나, 그동안 행복했나? 질
로로 인해서 주일 아침에 눈뜨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
문하게 된다. 행복하고 편했지만 그야말로 평안함이
다.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럴 것이다. “그렇게 피곤하
내 삶에 있었나? 뭔가 찜찜하고 왠지 모를 내일에 대
면 주일에 교회가지 말고 쉬어! 하루 안 나간다고 큰
한 불안감이 있다. 욜로로 살면서 삶에 어떤 회복이
일 나냐?” 몸이 쇠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기 십상이
일어나긴 했나? 욜로의 반대말은 ‘골로’라고 하던데,
다. 야근으로 고된 삶이 너무 측은해서 내 몸을 아끼
욜로욜로 외치다 골로 간다고, 이러다가 내 신앙이 작
고 돌본다는 명목으로 하나둘 타협한 것이 지금의 그
은 흔들림에도 뚝, 무너져버리진 않을는지….
저 그러한 상태로 자리 잡았다. 피곤함에 밀려서 하 나님께 “저 좀 쉴게요”라고 요구했다. 현재는 업무 강
하나님 앞에 잠잠히 침묵할 시간을 현대인은 그마저
도가 그렇게 높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내 행
스마트폰에 빼앗겨 버렸다. 새벽시간에 갖는 주님 앞
복을 위해서 더 예배에 게을러졌다. 주중에 멀리 버
에서의 고요한 침묵은 어쩌면 이 바쁜 서울에서의 직
스 타고 가야하는 예배의 자리까지 내 몸을 옮겨놓기
장생활을 견뎌내게 하는 큰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가 참 힘들었다. 점점 하나씩 밀려난 그 타협의 자리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주님께 깊이 감사하는 시
에 지금은 무엇이 자리 잡았을까?
간에 더 즐거이 나아가야 할 텐데, 아직은 새벽기도를 향하는 눈꺼풀이 무겁고 입은 힘들다고 오두방정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욜로(YOLO-You Only Live
다. 내가 너무나도 작고 연약한 자라는 걸 깨닫는다.
Once)’라는 말이 유행이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힘겹지만 이렇게라도 하나님 마음에 내 삶의 초점을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뜻한다. 문득 ‘혹시 나는
맞추는 그 시간이 있어서 마음은 한결 뿌듯하다. “하
신앙의 욜로족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
나님, 저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지요?^^”
부 때는 너무 빡셌나 보다. 결혼 후에는 장년 예배만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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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할까요?
나는 ‘아들남편사위’ 입니다 호욱 ◆ 연세원주04 원주 IVF 6년차 간사이자 하루 빨리 한량으 로 살고 싶은 1인.
# 1+α
카톡도 드리고 잘 지내고 있던 차에 은경이가 위장 염으로 병원에 가는 일이 생겼다. 은경이는 응급실
나는 은경이‘와’ 결혼했지만 단지 은경이‘만’ 내 가
로 가서 치료를 받았고, 3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족이 된 것은 아니었다.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 그
우리는 둘 다 정신이 없었다. 빠뜨린 일들이 많았는
리고 은경이의 친척들도 가족이 되었다. 그분들은
데 그중에 하나가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는 일이었
진심으로 나를 환대해주었다. 고마웠다. 하지만 동
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나에게 살짝 핀잔을 주
시에 고민도 있었다. ‘나를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
셨다. 그런데 그 순간 울컥해서 나도 어머니께 한마
까? 얼마나 친하게 지내야 하지? 이런 말을 해도 되
디 했다. “근데 왜 아빠는 은경이한테 한 번도 연락
나?’ 단순히 처음 만났다는 이유로 생긴 질문들은
을 안 해?”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어 버렸다. 필터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서 다양한 필터가 작동하고
가 고장 났다. 어머니는 단단히 토라지셨다. 은경이
있었다. 거르고 걸러서 하는 말이, “네”, “아니요”, “
는 왜 그런 말을 했냐며, 내 입장이 뭐가 되냐며 나
잘 먹어요”, “괜찮아요” 같은 말들이었다. 내 성격
에게 하소연했다. 그 후로 2~3주 동안 어머니는 내
탓도 있겠지만, 아내의 가족이기에 나는 신중을 기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다행히 은경이의 전화는 받
했다. 그분들과 친밀함의 수위를 정한다는 건 쉽지
으셨다. 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너무나 후
않았다. 후배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시부모님
회스러웠다. 그냥 앞으로는 적당히 맞춰드리고 살
과 가족같이 지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이해
아야겠다. ‘며느라기(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웹
가 된다. 나도 가까운 관계를 맺고 유지할 힘이 없
툰-편집자주)’ 보고 많이 배워야지!
다. 다만 은경이와 예의는 지키자고 약속했다. 한 주 에 한 번, 서로의 부모님에게 카톡하고 전화하는 것.
# 애물단지 TV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 게 시작했다.
우리는 TV를 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부모님이 TV와 에어컨을 사주셨다. 우리 집에 오셨
#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을 때 TV와 에어컨이 없는 걸 보고 우리 모르게 이 미 주문까지 마친 상태였다. 난감했다. 필요를 보고
“아버지한테는 연락을 자주 해줬으면 좋겠어.”
사주신 부모님의 마음에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TV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 어떡하지?
결혼하면서 어머니가 나에게 하셨던 당부의 말씀 이었다. 당신은 괜찮으니, 아버지께 연락을 자주 하 라는 말씀이다. 결혼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와
우리 결혼할까요?
새롭고 낯선 세계, 시월드와 친정 이은경 ◆ 숙명여대05 음악, 공연, 영화를 좋아해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IVFMEDIA에 정착한 영상팀 간사
# 하나라도 더
# 넌 남편이 더 좋지?
양가 부모님 댁을 오갈 때마다 반찬은 물론이고 세간
25년 넘게 살던 홍제동 우리 집은 이제 ‘친정’이 되었
살이까지 한가득 챙겨주신다. 덕분에 맛난 반찬과 식
다. 일 때문에 서울에 올 때면 친정에서 하루나 이틀
재료를 먹을 수 있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난감한
자고 간다. 원주로 갈 때마다 엄마는 “내일이면 또 올
경우도 있다. 외삼촌이 농사를 지었다며 감자를 보내
것 같은데 훌쩍 가버린다”라며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
주셨는데, 이웃과 나누고도 40여 개가 남았다. 그날
을 내비치셨다. 난 여전히 엄마 딸인데 시집보낸 부모
부터 우리는 감자를 먹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다.
님 마음은 그게 아니신가 보다. 다시 집으로 가는 것
각종 찌개에 감자를 넣고 감자조림, 감자볶음, 감자
뿐인데 “남편이 그렇게 좋으냐”라며 핀잔인지 서운
전, 심지어 감자옹심이까지 해먹었다. 아직도 10여 개
함인지 모를 농담도 자주 하셨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
가 남았다. 싹이 나기 전에 먹어야 할 텐데···.
럽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느라 애
# 너희에겐 이게 필요해
를 썼다. 결혼을 준비하며, 자녀를 결혼시키는 부모의 마음도 진통을 겪는다는 걸 부모님을 보며 느꼈다. 엄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일부러 구입하지 않았다. 좀 더 서로에게 집중하고 대화하는 시공간을 꾸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서 가전매장에 들러 TV와 에어컨을 구입하셨다. 거실에 비해 훨씬 큰 TV와 에어컨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 다. 부모님 입장에서 TV 없는 집은 상상할 수 없으셨 나 보다. 이미 주문하신 것을 물리는 것도 예의가 아 닌 것 같았다. 에어컨은 구석에 설치했지만 TV는 영
마는 우리에게 연락을 자주 하시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번 등산을 하는데 주로 산 사진을 보내신다. 10장, 20장씩 보내시는데 그때마다 메시지 알람이 연속으 로 울린다. 남편은 “어머니, 산이 참 예쁘네요”, “얼굴 예쁘게 잘 나오셨어요”처럼 늘 친절하게 반응해 주는 데, 노력하는 그 모습이 가끔 짠할 때도 있다. # 시간이 필요해
화 볼 때 가끔 사용하다가, 결국 지금은 창고에 두었
우리 모두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새롭게 맺어진 가족
다. 그후 부모님이 오실 때 다시 꺼내 놓긴 했지만 어
과 변화된 관계에 대한 적응 기간도 필요하고, 변화를
찌해야 좋을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 우리 나름대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다. 가족이 되었다고 저절로
로 삶의 기준과 규모를 생각한 결정이었는데 부모님
친해지는 건 아니다.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차근차근
은 그걸 부족함과 결핍으로 느끼고 채워주시려는 것
쌓여가는 세월도 필요하다. 우리 부모님, 또 나와 욱
같았다. 부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또 감사하
이가 이 시간을 잘 겪어갔으면 좋겠다. 오늘 저녁 메
다. 하지만 독립한 가정으로서 우리가 결정한 방식이
뉴는 남은 감자로 감잣국이나 끓여야겠다.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돌봄이 필요하 다고 느끼시는 듯해서 기분이 묘하다.
소리 지음
38+ 39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추억의 맛, 계란과자 만들기 오한웅 ◆ 서울대99 한마리곰미디어 대표이자 PD. DIA TV 크 리에이터. IAM 카드게임 개발자. 창의적이 면서 좋은 영향력을 주는 미디어들을 만들 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중이다. 사람 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함께 보드 게임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다.
나는 홍보영상을 주로 제작하는 프로덕션을
계란과자 먹어 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
운영한다. 오늘도 영상을 찍기 위해 업무 차
지. 계란 과자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지 않
인천광역시의 교동도를 방문했다. 클라이언
을까?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역시나 인터넷
트와 주민들에게 거하게 점심을 얻어먹고 무
에는 온갖 종류의 레시피가 넘쳐났다.
엇을 홍보해야 하나 마을을 둘러본다. ‘이런, 생각보다 쉽잖아!’ 시장 골목을 중심으로 펼쳐진 복고 분위기 의 상점들. 페인트로 직접 그린 옛날식 극
빵을 만들 때처럼 발효를 해야 하는 것도 아
장 간판 그림들에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도
니고, 머랭을 만들 필요도 없고, 정말 손쉽게
찍고 돌아다닐 수도 있는 사진관, 모양대로
만들 수 있는 계란과자. 바나나맛 우유 대신
잘 뜯어내면 한 판을 더 주는 달고나 뽑기,
진짜 바나나를 우유와 함께 갈아 곁들여 마
내가 어릴 때도 안 가봤을 법한 이발소까지.
셔볼까? 어렸을 때의 맛은 솔직히 기억이 잘
7~80년대 우리네 시장의 모습을 잘도 복원
안 나는데, 왠지 내가 만든 게 더 맛있는 것
해놓았다.
같다.
이런 풍경을 보니 어렸을 적이 생각난다. 공 중목욕탕에 갔다가 나와서 바나나맛 우유랑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 계란과자 재료 버터 90g, 설탕 90g, 소금 3g, 계란 1개, 노른자 2개, 박력분 130g, 아몬드가루 20g, 바닐라 익스트랙 조금, 우유 65g
계란과 버터를 1시간 정도 실온에 놓아둔 뒤 버터를 먼저 풀어줍니다.
소리 지음
거기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섞은 뒤
계란을 한 개씩 넣고 휘핑합니다.
밀가루와 아몬드가루, 바닐라 익스트랙을 넣고 또 섞어 줍니다.
점도에 따라 양을 조절해가며 우유를 넣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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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Chef’의 오늘 뭐 먹지?
짤주머니에 담아주세요. 짤주머니에 담을 때는 큰 컵에 짤주머니를 씌 워놓고 담으면 편해요. (짤주머니가 없으면 지퍼백에 담은 뒤 한 쪽 모서리를 잘라 사용하시면 돼요)
1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로 반죽들 사이가 너무 가깝지 않게 짜 주세 요. 너무 가깝게 짜거나 많이 짜면 자기들끼리 다닥다닥 붙어버려요.
170℃로 예열된 오븐에 12분간 구워주시면 완성! (오븐이 없으시면 후라이팬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후라이팬과 같은 크기로 종이 호일을 잘라 넣은 뒤 반죽을 짜고 뚜껑을 덮어 약불에서 구우면 돼요)
TIP. 보통 집에서 제과제빵을 안 하 시면 아몬드가루가 없으실 텐 데요, 그냥 밀가루로 대체하셔 도 됩니다. 바닐라 익스트랙도 없으시면 안 넣어도 되고요. 물 론 두 가지 재료가 풍미를 더하 긴 하지만, 안 넣어도 맛있으니 까요:) 완성된 계란과자를 진짜 바나나우유와 함께 먹으니 정말 고급지네요!
재외 학사 통신원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례자로 살다 서종현 ◆ 서강대96
소리 지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HERE”라는 회사 의 Principal Software Engineer로 근무한 다. 아내 김지연과 은규, 새빛, 유빛, 세 자 녀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어려운 말씀인지 또한 얼마 나 감사한 말씀인지 깨달으며 치열하게 살 아가는 중이다.
독일에 가기까지 뒤늦게 석사를 하던 2006년, 독일에 인턴으로 나갈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나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일하고 싶은 나 자신을 스스로 검증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만약 ‘이 달의 인턴 상’이라는 게 있다면 받아 오겠노라고 다짐하며 독일로 떠났다. 아쉽게도 실제로 그런 상은 없 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고, 그렇게 독일과의 인 연은 끝인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년 후 인턴 때 함께 일했던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 금의 회사로 나를 추천하면서 다시 독일에 올 생각이 있는지 내 의견 을 물었다. 1초의 고민 끝에 답을 했다. “OK.” 그리하여 2008년 11월 27일, 나는 아내와 함께 5년 정도 살 거라 예상하며 독일로 왔다. 9년 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사이 3명의 아이들까지 더해져 우리 가족 5 명은 여전히 독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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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학사 통신원
만약 업무량이 너무 많아 지나치게 일하는 상황 이 벌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정부가 알게 되 면 회사 측에 엄청난 벌금을 부과할 수 있고, 노조 에서 알게 되면 그렇게 일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 을 수 있다. 사측에서 알게 되면 업무량 조절이나 인력 추가 또는 그외의 다른 대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두말할 것 없이 개인과 가정의 삶이 보장되는 구조다. 물론 타이틀이 업그레이드되고 역할에 대한 책임이 커질수록 일하는 시간이 많아 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다. 미친 듯이 일에 빠져 살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만들 어버릴 수 있는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가장 큰 이 유는 바로 ‘이런 삶’을 위해서였다. 독일은 어떤 나라인가 ‘독일’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다. 맥주와 소시 지, 어느 대회든 4강을 보장하는 믿고 보는 축구, BMW, Mercedes-Benz, AUDI 같은 프리미엄 자동 차, 칼 같이 시간 맞춰 운행되는 기차 시스템(실제 로 꼭 그렇지는 않다!!), 수많은 음악가와 철학자, 마틴 루터와 종교개혁, 히틀러 등이다. 그런데 실 제로 살면서 느끼는 독일의 매력은 ‘개인과 가정의 삶이 보장되는 삶의 패턴’과 ‘보편적 복지’다. 개인과 가정의 삶이 보장된다는 게 무엇일까? 내 가 일하는 환경을 설명하면 간단하게 전달 될 것 같다. 주당 40시간 근무에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 금지, 유급 휴가는 최소 24일인데다가 본인이나 자녀가 아프면 2일까지는 그냥 통보만으로 병가 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회사도 많지만 우리 회 사는 IT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저녁 10시면 보안요 원이 건물을 아예 잠가버린다. 주말에는 당연히 출 입이 불가능하다. 재택근무로 주말에도 일을 할 수 있지만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보편 적 복지다. 대학까지의 모든 공교육은 무료다. 배 움의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 이다. 이런 혜택을 누리는 많은 수의 외국인 유학 생들과 이런저런 다른 이유를 들어 정책이 몇 번 오락가락했지만, 결국 다시 모든 주가 교육은 무 료라는 원래 방침으로 돌아왔다. 세금을 내는 누구 나 적지 않은 자녀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고, 대부 분의 의료 혜택이 무료이고, 추가 비용도 실제 질 병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나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 다. 이런 보편적 복지와 그 정신은 독일 사회전반 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한동안 국제사회의 이슈 였던 난민문제를 봐도 그렇다. 반대 여론도 많았지 만, 결국 상당한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독일은 난 민을 수용하도록 유럽을 주도하고 실제로 앞장서 서 실천하고 있다. 이런 독일의 보편적 복지는 기 독교 정신, 강성했던 노동자 계급의 정치운동, 전 쟁 이후의 사회보장 정책 등의 영향에서 비롯되었 다고들 한다.
재외 학사 통신원
디아스포라로서의 삶
독일 땅에 있으면서 자연스레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을 배우게 된다. 한국인이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이렇게 좋은 곳(?)에 살면서 출애굽기를 보는 나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이땅에서 어
의 관점이 달라졌다. 애굽이라는 다른 나라에서 이
떻게 순례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 한
방인으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민족, 어릴 때부터 철
국에서 힘이 되어 주던 IVF와 GCF가 없어서 걱정
저히 애굽 왕가의 자식으로 자라고 교육받은 히브
했지만, 너무 감사하게도 복음 안에 서있는 젊고 건
리인 모세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 그가 겪은 실패와
강한 교회를 만났다. 그 안에서 예배드리고, 교제하
이후에 찾아온 부르심, 애굽을 떠나 하나님의 땅 가
고, 훈련 받고, 사역할 수 있어 큰 힘을 받는다. 한
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모습…. 예전에는
국에서는 가까운 아시아로 단기선교를 가듯, 우리
그 메시지들을 묵상하고 감격했다면, 이제는 장면
교회에서는 매년 가까운 아프리카 여러 나라로 단
마다 나를 이입하여 지금의 내 삶과 오버랩해서 더
기선교를 간다. 보고 오는 것이 위주인 비전트립이
실제적으로 보게 된다. 아직은 어리기만 한 내 아이
라기보다 실제적인 사역을 하고 돌아오는데, 나는
들도 벌써부터 이중문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
카메룬, 에티오피아, 우간다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
회에서 교포들, 중고등부나 청년들과 교제를 하다
다. 지금이야 독일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내려 하고
보면, 이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어렵지
있지만, 기회가 있을지조차 모르는 실제 선교현장
않게 들을 수 있다. 아무리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에서의 삶을 시험해 보고 준비하는 좋은 훈련이 되
교육을 받고 자라도 이곳에서는 독일어를 잘하고
고 있어 감사하다.
독일 교육을 받은 ‘외국인’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동행하시는 하나님 이와 반대로 한국에 가면 말과 생김새는 같아도 한국문화가 어색하고 불편한 외국 교포로 취급을
출장이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비행기가 프랑
당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 집에서 정착 1세대인 내
크푸르트 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항상 스스
가 겪게 되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
로 묻는다. “내가 왜 이곳에 오는 거지? Why am I
에 있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문제도 여기
here?” 이 질문은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
서는 방법이 다르거나 아예 몰라서 헤매고 어려움
으로 살아가는, 내가 속할 곳이 아닌 곳 같은 이곳
을 겪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교육이 그
에서 살아가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
렇다. 한국이었다면 내가 그 시스템을 뻔히 알겠지
성과 부르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 나는 애
만, 독일의 교육은 받아본 바가 없으니 어떤 학용
굽을 떠났지만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인 광야에 머
품이 필요한지 알아내는 것부터가 큰일이다. 심지
무는 중인 듯싶다. 성막 위 구름이 이동하기 시작
어 뭐 다를 것이 있겠냐 싶었던 사칙연산조차 가르
하면 나 또한 미련 없이 이동해야 할지 모른다. 이
치는 방식이 한국과 다르다! 그때마다 낯선 광야에
게 순례자의 삶이다. 광야에서의 삶이 낯설고 불안
서 생존의 문제를 걸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던 이
하고 위태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스라엘처럼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고 그 도우심
와중에도 하나님은 동행하신다. 그 하나님으로 말
을 경험하게 된다.
미암아 기쁘게 살아내는 지금이 참 감사하다.
소리 지음
44+ 45
함께 이어 달리기
이주여성들의 언니로 살 수 있어 감사해요! 윤선숙◆ 제주대97 동갑내기이자 동역자인 남편 현승호(교대 97)와, 세 명의 개성만점 아들들과 함께 선흘리 촌에서 살고 있다.
“안녕하세요? 한국어 공부해요~!”
2004년 봄. 센터에서 한국어 강좌를 열고 사람들을 모집했다. 첫 수업을 하는 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사람들을 부른다. 이곳은 이
모두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자기를 소개하는 시
주여성 쉼터, “쉴만한 물가”다. 오늘은 누가 아프다
간을 가졌다. 10명이 넘는 사람들의 국적은 다양했
고, 기분이 안 좋다고 공부를 안 하는지 혹은 새롭게
는데 중국, 일본, 몽골 그리고 베트남 등에서 온 이
입소한 분들은 없는지 한 분 한 분 동정을 살피며 수
주여성들이었다. 당시 결혼이민자 중 베트남 여성은
업을 준비한다.
거의 없었기에 제주에서 베트남 사람을 만나게 된 상황이 너무 놀라웠고 소름이 돋았다! 그분은 베트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3년 1월, 베트남으로 향
남 시골 출신에 학력도 높지 않아 영어를 거의 모르
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베트남에서 6개월을 보내고
기 때문에 베트남어로 간단한 이야기를 해주기만 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단기선교의 실패감(?)을
도 너무 재미있어 하고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하
안고서, 도대체 왜 나를 베트남으로 보내셨는지 답
나님에 대해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왜 그곳으로 가
답한 마음으로 귀국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해 가을,
야했는지 답답해했던 나를 그곳으로 보내셨던 이유
우연히 ‘한국어 강사 양성과정’을 알게 되어 수료했
가 이때를 위함이었나 생각하며 감사할 수밖에 없었
다. 그냥 즉흥적으로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한
다. (실제 그해부터 베트남 결혼 이민자가 늘었다.)
것이다. 수료 후 곧바로 제주 이주민 센터에서 자원
하지만 결혼과 계속되는 출산으로 10년의 육아 대환
봉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 모든 것이 1년 동안 일어
란(?)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난 일이었다.
것 같은, 아니 오히려 뒤쳐져 있는 듯한 불안함도, 주
함께 이어 달리기
부로 몇 년을 지내고 나니 그냥 익숙하고 편해지
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속으로 간절히 바란다. ‘얘
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주민센터에서
들아 제발 잘 살아라, 그리고 쉼터에서 만나지 말
같이 일했던 소장님을 마주쳤고 반갑게 인사를 나
자….’ 조금만 언어가 되면 일을 해서 돈을 벌려는
누었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 “한국어 자원봉사 좀
그녀들에게 제발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서 빨리
해~!”라고 하셨다.
국적을 취득하라고 간곡히 권한다. 쉼터에서의 아 픔을 가진 여성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기대와
그분의 말씀에 다시 지금의 “이주여성 쉼터-쉴만
설렘 가득한 모습을 보면 쉼터에 계신 분들도 처
한 물가”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
음에는 이런 모습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
는 그야말로 한 달만 하려고 했는데, 그후로 지금
프다. 가끔 내게 고민을 얘기하고 들어줄 때 많이
까지 계속 수업을 하고 있다. 대학이나 큰 센터의
조심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없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 앞에서 그럴 듯하게 수업을 하는 것
나는 내 자리를 잘 지키려고 한다. 한국어를 잘 가
보다, 책상 대신 밥상 펴놓고 삼삼오오 모여 공부
르쳐서 타국에서의 녹록지 않은 그들의 삶에 작은
하는 쉼터의 수업에서 정말 큰 보람을 느꼈다. 젖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싶다.
먹이 아기도 엄마 품에 안겨서 같이 수업을 듣는 다. 우는 아이는 달래고, 졸린 아이를 재우며, 또는
지금은 결혼이민자(이주여성) 외에도 이주노동
엄마가 쓰기를 할 때는 내가 아이를 안아 주기도
자, 중도 입국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한다. 가끔 수
다. 이주여성들, 중도 입국 자녀들을 만날 때 그들
업을 받다가 말고 이주여성인 자신의 상황이나 남
에게 해줄 말이 있어서 감사하다. 12년 동안 세 아
편 때문에 속상해서 울기도 한다. 한국 국적이라
들과 박진감 넘치게 지내온 삶이 헛된 것이 아니
도 취득했으면 그 불안함이 덜하겠지만 아직 결
었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선배로서, 언니로서 해
혼 이민자 비자인 상태에서 이혼을 하면 본국으로
줄 말이 있어서 감사하다. 뒤늦은 공부와 위킹맘
가야 한다. 아이라도 있는 경우는 아이 양육문제
으로서의 삶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 자리에 있
로 머리가 아프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는 싶지만
게 하신 주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시간
지금의 남편하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이런 불안
이 흘러 돌아보면 모든 퍼즐이 다 맞춰진 것을 볼
한 상황 속에서 한국어 수업 시간에 억지로 앉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이주민들 앞에 서
있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
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마음과 지혜
만 그들도 한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를 구하며 오늘도 또 수업을 시작한다.
알기에 억지로 공부라도 하면 잠시나마 불안함을 잊을 수 있다. 제주 이주여성 쉼터 “쉴만한 물가”
쉼터에서의 자원봉사를 계기로 하나님은 다시 나 를 이곳저곳에서 수업하도록 인도하셨다. 한국에 코리언 드림을 안고 처음 온 새내기 이주여성들에
- http://www.jejupeace.net -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의 부설기관으로 가정폭력 등의 피해로 인해 상처 입은 이주여성 및 동반 아동에게 숙식과 보호, 상담 등의 일을 하는 쉼터입니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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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목공의 즐거움 차병호◆ 한남대 99 학원복음화협의회 간사이며, 전도사다. 잡 다한 사람. 공동체, 청년, 캠퍼스, 연합, 교 육, 자급자족, 생태, 커피, 나무, 산, 축구 그 리고 아내 문혜인을 좋아한다. (본 글은 「복음과 상황」 2015년 12월호에 게재한 필자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나무와의 인연 제대 후 복학하기 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작은 가구 회사에서 1년 정도 일을 했다. 그때 나무 만지는 기술 을 쌓았는데, 힘은 들었지만 몸을 쓰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대학 시절 만난 나무는 밥벌이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사회 인이 되어 다시 만난 나무는 취미였다. 집 근처에 있 는 목공방을 기웃거리며 사장님과 친해졌고, 예전의 목공 경험을 어필해서 저렴한 회비로 공방에 등록할 수 있었다(실제 공방의 회비는 저렴하지 않다). 그렇 게 나의 취목(취미목공)생활은 시작되었고 어느덧 6 년차가 됐다. 목공의 유익 나무와 함께 하면 우선 육체적으로 피곤하다. 나무 자체가 무겁고 작업 과정에는 크고 작은 위험요소들 이 있다. 더불어 소목(小木)1)은 나무끼리의 결합오차
높다. 또한 나무를 다루는 공구들은 대부분 철로 되어 있어서, 그 공구들을 수시로 갈아줘야 하는데 쉽지 않 다. 하지만 그 여정이 좋다. 일주일에 한두 번 퇴근 후 공방을 찾는데, 가구가 탄생되는 결과물도 좋지만 만 드는 과정이 내겐 의미가 더 크다. 가공 된 판재를 사 서 작업하면 쉬울 수 있지만 판재는 가격도 비싸고 다 양한 나무(나무의 무늬와 결, 색감 등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를 접할 수 없다. 그래서 원목을 주 로 취급하는데, 무엇보다 직접 제재소에 가서 나무를 보고 만지고 가져온 후 작업하는 수고를 기꺼이 즐 긴다. 톱질, 대패질, 끌질, 사포질과 무수하게 많은 결 합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은 인내와 창조의 즐거움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무수히 대패질을 반복하거나 장 부2)의 결합을 위해 끌로 세심하게 다듬고 있으면 신 기하게도 정신이 맑아진다. 또 디자인과 조립 방법을 고민한 후 완성품이 나왔을 때의 만족감이란! 물론 설계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마음이 힘든 게 사 실이다. 다른 취미도 그렇겠지만 나무와 함께하는 시
가 거의 없어서 매우 집중을 해야 하는데 피로도가 꽤 1) 나무로 가구나 문방구 따위를 짜는 일(*대목:나무로 큰 건축물을 짓는 일) 2) 한 부재의 구멍에 끼울 수 있도록 다른 부재의 끌을 가늘고 길게 만든 부분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소반 다리를 깎고 있는 모습. 이렇게 앉아 몇 시간을 깎아야 아름다
다리가 개의 다리처럼 안쪽으로 구부러진 '구족반'이며, 개다리소
운 곡선이 탄생한다.
반이라고도 불린다. 사람과 마주하여 차 한잔, 탁주 한잔 하면 즐 겁겠다.
간은 마음의 번민과 삶의 복잡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
자인과 형태를 바꿔가기도 한다. 그렇게 내 몸과 마
준다.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고 내 안에 있는 창조
음을 조금이나마 타인에게 사용함으로써 주는 기쁨
성을 발견하게 해준 나무가 나는 참 좋다.
은 그나마 나를 회복시키고 버티게 하는 동력이 된다.
깨달음을 넘어 작은 행동으로
작은 꿈
나무는 아주 작은 자투리 조각부터 대팻밥과 톱밥가
공방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나무 자체를 만지고 그
루까지 전부 사용할 수 있다. 피조세계의 모든 것이
숨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물론 필요한 가구도 만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는다. 아낌없이 주는 나
다. 그런데 내가 만든 가구를 받는 사람들의 기쁨을
무는 하나님의 섭리와 다르지 않다. 그 깨달음을 통
보면서 내가 오히려 회복되는 복을 누렸다. 그래서 하
해 자투리 나무나 버려지는 가구의 목재를 재활용해
고 싶은 일이 또 생겼다. 어디에 살든지 그 동네에서
서 다시 짜보기 시작했다. 버려지는 나무들이 아까워
목공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사실
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냥 버려져 썩어갈 나무들이
목공을 취미로 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 대안으
새것처럼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감격이다. 또
로 ‘함께함’을 실천해보려고 고민 중이다. 그렇게 목
한 가구를 하나 완성할 때마다 환경단체를 통해서 나
공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고 또 넘어 다른 무언가를 해
무를 한 그루씩 심고 있다. 가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용되는 나무가 자라는 시간과 에너지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지만 이런 작은 행위로 위안을 삼고 있다.
분주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취미 란 어쩌면 여유 있는 사람들의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다른 즐거움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선물’하는 기쁨
있다. 하지만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며 피
이다. 완성도나 수준이 미흡하지만 받을 때 좋아하는
조세계를 넉넉히 누리는 것, 우리의 또 다른 즐거움이
모습들은 내게 기쁨이다. 더 즐거운 것은, 받는 이를
아닐까 한다. 공방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무와 가구
생각하며 디자인하고 나무를 고르고 작업을 하는 내
를 연구하고 친해지면서, 그리고 만든 가구를 누군가
내 그 사람을 묵상하는 기쁨이 있다는 점이다. 작업
에게 전해주면서 기쁨을 만끽하며 살고 싶다.
중에 받는 이의 성격이나 삶의 모습에 따라 가구 디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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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하나님이 부르신 그때, 그곳에서 자리를 지켰을 뿐 대부분의 IVF 학사들은 졸업 후 곳곳으로 흩어져 ‘세상속의 하나님나라’ 운동원으로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IVF 가까이에서 공 동체를 직접적으로 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경인지방회 개척멤버로, 대학원 시절에는 활동학사로, 그리고 졸업 이후에는 지방회 의 이사와 이사장으로, IVF와 30여년을 함께해온 김용범 학사를 만났습 니다. 김용범 ◆ 인하대88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 먼저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참석했던 ‘평생동역자 수련회’에서 같은 조의 조장이 었던 아내를 만났습니다. 대학교 4학년부터 교제를
안녕하세요, 인하대학교 88학번 김용범입니다. 비즈
시작해서 3년 반 후에 결혼했죠. 아내는 지금 전업주
니스 컨설팅 일을 하고 있는데, ‘엑센츄어’라는 회사
부로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고요, 두 아이는 다행
에서 17년 정도 근무했고, 작년에 ‘EY’라는 회사로 이
히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건강하게 잘 자랐다
직하여 9개월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컨설
고 생각합니다.
팅이란, 기업체가 가지는 어려움이나 문제점, 업무상 에서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 인하대학교 IVF의 개척멤버이자 대표였다고 들었
생산성을 높이도록 가이드하거나 IT 같은 시스템의
습니다. IVF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개척
도입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주로 맡았던 일은 서플라
당시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이체인, 즉 ‘공급망’이라고 이야기 하는데요, 연구개 발, 영업, 구매, 생산, 물류 영역의 컨설팅입니다. 지금
인하대 IVF와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 우연이고, 어떻
도 ‘서플라이체인 오퍼레이션(SC&O)’이라는 조직의
게 보면 필연이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제
리드를 맡고 있습니다.
가 다니던 교회에 인하대학교 선배가 있었어요. 배 종우라는 형이었죠. 형은 87학번이었고 당시 2학년
가족으로는 가톨릭 대학교(옛날 성심여대) 91학번인
이었는데, 1학년 가을부터 혼자서 ‘지부개척 연합모
아내와 고3 아들, 중3 딸이 있습니다. 제대하자마자
임’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형은 겨울수련회를 다녀와
소리가 만난 사람
서 IVF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교회의 후배
사실 개척 당시에 어려움이 참 많았어요. 동아리로
였던 제가 눈에 띄었다고 해요. 그렇게 형의 제안으
인정받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죠. 모임방이 없어서
로 IVF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종교
전전하기도 했고요. 공간만 생기면 들어가서 집을 짓
서클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큰 거부감은 없었어
고 살았습니다. 당시 학교 바깥에 가건물을 지어놓은
요. 미션스쿨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
곳이 있었는데, 꽹과리를 치는 등 소음을 많이 일으
들과 예배를 드리곤 했거든요.
키는 동아리의 공간을 분리하는 장소였다고 해요. 다 른 동아리들은 그 가건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
그때부터 몇몇 친구들과 함께 지부개척 연합모임에
습니다. 그들이 학교와 실랑이를 벌이는 타이밍에 방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지부개척 연합모임에
이 하나 비었고 그 틈에 우리가 들어가 6개월 간 눌
는 총신대, 인하대, 한양대, 수원대, 아주대 등이 참여
러앉았어요. 나중에 동아리 등록 신청에 실패하면서
했어요. ‘사랑의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 LGM을 했
방에서 쫓겨나게 됐죠. 돌아다니면서 다른 공간을 찾
는데, 김상훈 목사님의 말씀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
다가 8층 시계탑의 꼭대기를 발견했어요. 원래는 비
분이 폴라 티를 자주 입으셨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둘기들이 사는 곳이었고 지붕도 없었죠. 그곳에 토목
그러면서 학교에 소그룹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2학
공학과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서 널빤지와 판넬로 지
년이었던 배종우 선배가 리더를 했고, 밑으로 저와
붕을 만들어 지내곤 했어요. 기독교 동아리에 관심
한성식, 최성민, 송현식이라는 친구들이 함께했어요.
을 가진 교수님들이 보시고는 위험하다며 고쳐주기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DPM도 시작했죠. 따로 동아
도 했습니다.
리방이 있었던 게 아니라서 그냥 잔디밭에 앉아 기도 모임을 하곤 했어요. 여름 수련회에는 7~8명 정도 참
* 인하대 지부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도권에
석했던 것 같고요.
서도 아주 활발한 지부로 성장했는데, 개척멤버들의 자발성과 헌신이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학사님도 대
초기에는 몇 명 없다 보니까 재미가 없었어요. 공동
학원에 진학해서 활동학사를 하셨다고요.
체성도 잘 생기지 않았죠. 그래서 1학년 때는 자주 피 하거나 도망 다녔습니다(웃음). 학교가 있는 인천에
저에게 IVF를 제안했던 선배는 “나는 전공을 포기했
서부터 서초동까지 지부개척 연합모임에 참석하려
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헌신했어요. 그래서
고 오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결국 1학년 겨울방학
모임이 생겨날 수 있었고, 모임은 역시 학생자발성에
때 겨울수련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보통 겨울수련회
의해 지속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2학년이 됐을 때 1
에 참석해야 멤버십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겨울수
학년이 들어왔는데 리더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련회를 안 갔으니 공동체를 안 하겠다는 의미나 다름
래서 저도 2학년 1학기부터 BBS 리더를 맡게 되었어
없었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방학 중 모임에는 열심
요. 스스로 공부하고 준비해야 했기에 정말 많이 배
히 참석했어요. 겨울수련회에 가지 않았던 일이 미
우고 성숙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3학년이 되
안했던 것 같아요(웃음). 잠시의 반항이었습니다. 저
었을 때쯤부터 공동체가 탄탄해지면서 성장을 많이
는 혼자서도 QT는 계속 훈련했었는데, 방학 때 모임
했습니다. 89학번, 90학번 후배들과도 끈끈해졌고,
에서 PBS 훈련도 하고 말씀도 보면서 그때부터 열심
그들이 들어오면서 공동체 분위기도 좋아졌어요. 수
히 했던 것 같네요.
적으로는 97년도 이후에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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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IVF는 간사님들이 개척한 것이 아니라
고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거기서도 IVF를 했을
학생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모임에 참석하
지는 잘 모르겠어요. 또 그랬다면 제 인생은 어
면서 시작됐어요. 1학년 때는 지부에 간사님이
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해요(웃음). 제가 인
안 계신 채로 지부개척 연합모임에 나갔던 것이
하대 IVF에 있을 수 있어 감사하죠. 정말로 하나
고요. 이후에도 간사님들이 몇 분 계시긴 했지만
님의 은혜였습니다.
겸임을 하거나 신입간사훈련 등으로 자리를 비 우실 때가 많았거든요. 제가 대표를 했던 시기도
* 이후에 경인지방회가 만들어지면서 이사로 참
간사님이 없는 시기였어요. 한 학기동안 휴학을
여하게 되셨습니다. 지금까지 이사장으로 섬기
하고 대표로 섬기게 됐죠. 이후에 군대를 다녀왔
고 계신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는데, 돌아왔을 때도 간사님이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한 최진원 학사가 활동학사로 섬
경인지방회는 원래 남서울지방회 소속이었어
겼고, 이후에는 제가 대학원에 진학해서 활동학
요. 졸업 이후에는 남서울 학사모임에 참여했고
사를 이어갔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이유
남서울이사회에도 이사로 소속되어 있었죠. 그
중에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절반정도 작용
러다가 2002년도에 경인지방회로 독립을 하게
한 것 같아요.
되었어요. 따로 떨어져 나오는 것에 두려움은 있 었지만 독립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활동학사를 한다는 게 쉬
아요. 거리상으로도 남서울은 상당히 먼 곳이었
운 일은 아니었어요. 학부 때는 공부에 소홀해
고 대부분의 학사와 간사들도 자연스럽게 독립
도 티가 별로 안 나는 편인데 대학원 공부는 그
을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렇지가 않거든요. 학생도 얼마 없는데다가 수업
당시 이미순 간사님이 지부가 독립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교수님들이 엄청 야단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독립을 하면서 회관도 구
을 치셨어요. 한번은 발표를 하고 있는데 “니가
매했는데, 필요한 재정의 절반 이상을 남서울지
대학원생이야!? 니가 하는 소리 하나도 못 알아
방회와 이미순 간사님의 지인들이 부담해주셨
듣겠다!”하며 화를 내신 적도 있어요. 대학원에
습니다. 정말로 감사하죠.
서는 수업 때마다 준비와 발표가 필요했고, 때 문에 수업 때마다 안 좋은 소리를 들어서 무척
지방회가 독립을 하면서 저는 독립된 지부의 이
힘들었습니다.
사장이 되었습니다. 지방회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나이 많은 학사들이 별로 없었거든
돌아보면 참 감사해요. 사실 인하대에서 IVF 운
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동을 시작한 것은 저와 그 선배가 처음이 아니었
제가 이사회에 나가고 이사장을 맡고 있는 데는
어요. 그보다 5년 전, 10년 전에도 그 운동을 해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 전, 교회 주보에
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제가 있었을 때
올라온 한 청년의 글을 본 적이 있어요. IVF라는
에 와서야 공동체가 세워지고 성장할 수 있었던
선교단체를 소개 받아서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
것이죠. 그저 하나님이 생각하신 타이밍에 제가
어 감사하다는 글이었는데, 이 청년의 경험이 우
거기에 있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
리 아들의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제가
내가 다른 대학교에 입학했다면 어땠을까?’하
IVF 이사회에서 섬김으로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소리가 만난 사람
돕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의 헌신을 통해 우리 아이들도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 어요. 제가 여전히 IVF 공동체를 섬겨야 할 중요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캠퍼 스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간사님들은 나를 대신해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했어 야 하는 일, 우리 모두가 했어야 하는 일을 그들이 대신해서 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 가지 모 양으로 간사님들을 후원하고 돕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이사회는 세대교체가 많이 된 편이에요. 6~7년 전까지만 해도 매번 보던 사람이 많았 는데 지금은 나이가 어리고 잘 모르는 학사들도 많이 있어요. 그 친구들과는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새롭게 만나 교제하는 셈이죠. 이사회는 1년에 서너 번 정도 모이고 주로 토요 일 아침에 만납니다. 1시간 정도는 사역보고를 하고, 1시간 정도는 삶을 나누며 서로를 깊이 알 아가며 친해지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경인지방회는 이사들이 헌신과 후원도 많이 하는 편입 니다. 전체 후원의 16%를 이사들이 담당하고 있어요. 굉장히 감사해요. * IVF를 섬기면서 동시에 교회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교회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개포동에 있는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앞서 말했던 학교 선배도 함께 다 니는 교회였고, 부모님도 현재까지 다니고 계세요. 하지만 결혼하면서 산본에 있는 교회로 옮 겼습니다. 저에게 있어 교회를 옮긴다는 것은 독립의 마지막 절차였던 것 같아요. 막 결혼해서 는 가진 돈이 없었기에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출장이 잦았고, 부모님 과 함께 지내는 아내가 많이 힘들었거든요. 결국 이사하고 교회도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저 나 부모님은 20년 넘게 다닌 교회였지만 아내는 외부에서 혼자 온 것이니 얼마나 외로웠겠어 요. 우여곡절을 겪으며 분가를 하여 산본으로 이사했고, 그로부터 얼마 후 교회도 옮겼습니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교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유년부와 초등부를 맡았는데, 지금은 아내와 함께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성가대 대장을 맡았어요. 그런데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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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자와 당회의 중간에서 여러 가지 조율을 맡는 등 어려움도 많습니다. 성가대도 하나의 공동체라는
컨설팅이 성사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
생각이 듭니다. 찬양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함
다. 고객 쪽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제안하여 연결
께 교제하고 나누며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
이 되는 경우와, 제가 아는 임원들을 찾아다니며
가 되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이런 일을 해보십사 제안하는 경우입니다. 젊었
돼요. 우리 교회는 공동체성이 탄탄한 공동체는
을 때는 정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위치였는
아닙니다. 목사님이 카리스마도 있고 설교도 잘
데, 지금은 세일즈 영업을 통해 일을 만들어야 하
하시지만 성도들 간에 친밀함은 좀 부족해요. 그
는 입장입니다. 제가 일을 만들어 와야 제 아래 직
래서 교제와 나눔을 위해 작은 단위의 노력이 필
원들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들
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교회에 들어
과의 관계를 잘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
가는 에너지가 적지 않아요. 공동체를 만들어야
니다. 저는 옛날부터 형들과 지내는 걸 잘 못하는
하고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봉합해야 하니까요.
편이었는데, 제가 현재 관계를 맺어야 하는 분들
요즘에는 ‘찬양대가 어떻게 찬양하는 게 맞나? 역
은 주로 기업체 임직원들로 저보다 나이가 많은
할이 무엇인가?’와 같은 고민도 하고 장로님들과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
모여서 논쟁도 벌이곤 합니다.
지 고민이 됩니다.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도전해 볼 만한 것 같아요.
* 직장 생활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직장 생활이 쉽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어려 처음 직장생활은 IT회사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울 때마다 좀 더 겸손해지게 되었고 기도하게 되
러다가 2000년에 같이 근무하던 직장선배를 따
었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혼
라 ‘앤더스 컨설팅’이라고 하는 회사로 이직을 했
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 직장으
습니다. 컨설팅을 하는 회사였는데 후에 ‘엑센츄
로 이직하고 보니, 이곳에는 신우회가 있더라고
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어요. 그곳에서 17년 정
요. 지난주에 처음으로 참석해서 인사를 드렸는
도 일을 했습니다.
데 한 열 분 정도 모이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활 동은 없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 평소보다 한 시간
앞서 말씀드렸듯이 지금은 새로운 회사로 옮겼 고, 이직한 지 9개월 되었습니다. 컨설팅은 무형
일찍 출근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앞으로 도 함께할 생각이에요.
의 서비를 제공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야근도 많 고 스트레스도 많기에 쉽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 학사님의 인생을 돌아보니 경인지방회에서는
컨설팅이라는 게 모든 내용을 잘 알고 시작하는
맏형의 역할, 이사회에서는 이사장으로서, 또 교
게 아니라서 어려움도 많았어요. 잘 모르는 영역
회와 직장에서도 맡은 공동체를 책임져 오신 것
이 있으면 공부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
같아요. 이후에도 경인지방회 학사공동체와 함께
기도 해야 합니다. 고객 중에는 까칠한 사람도 많
하고 싶은 운동이 있나요?
습니다. 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을이고, 그들은 돈 낸 만큼의 가치를 받아야 하는 갑이기 때문에
후배 학사들 중에 IVF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정말 많아요.
생활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제법 있습니다. 생각
소리가 만난 사람
이 저와 다른 학사들도 많고요. 사실 학사회의 분
어려운 타이밍에 이렇게 버티는 간사들이 참 위
위기 자체가 예전 같지는 않아요. 그간 학사운동을
대하고, 그분들의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 는데, 지금은 ‘왜 굳이’라는 질문을 많이 강조합니
커다란 조직이나 성장하는 조직, 잘 나가는 회사
다. 물론 옛날과 같은 방식의 학사운동과 현재 학
에 있으면 편합니다. 하지만 회사 매출이나 규모
사운동의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진짜 힘들죠. 누가 뭘 해도
저는 후배들과 함께 서너 달에 한번 씩 모여서 커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역량과 관련
피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물론 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간사들이 좀 더 위로를 받았
나는 사람들 모두 IVF 후배들이고 학사들이지만,
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이 줄어드는 것 때문에 힘
꼭 ‘IVF 학사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도
들어하는 간사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제가 그
있어요. 다만 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얘기하고 대화
자리에 있었어도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예
하다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나 가야 할 방향성
요. 참 어려운 국면입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헌신
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구체적이지는
자가 나타나는 부분이 신기하고, 또한 진심으로
않지만요. 다만 분명한 것은 이런 만남이 후배들과
감사합니다.
학생들을 잘 세우는 일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대표와 활동학사를 거쳐 이사와 이사장으로, 계 속해서 IVF를 지켜보셨습니다. 현재 규모로 보면 IVF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공 동체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가끔 간사, 학사, 이사들과 같이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간사들이 간혹 학생 수 감소에 대한 얘기 를 해요. 간사들은 분명 학생이 줄어드는 것에 대 한 스트레스가 있고, 그것은 간사들에게 큰 부담 일 것입니다. 제가 활동할 당시에는 공동체가 갑자기 부흥했고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저나 누
30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이, IVF의 곁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할을 감당해 주신 학 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학사님이 몸담고 있 는 모든 곳에서 ‘세상속의 하나님나라 운동’ 이 활발해질 것을 응원합니다!
가 잘해서 부흥한 게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하시 는 타이밍에 제가 거기 있었을 뿐이에요. 간사들 이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런 타이밍에 그 친구 들이 거기에 있을 뿐인 거죠. 그곳을 잘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캠퍼스에서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충분 히 감사한 일이에요. 간사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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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음누리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
가장 느린 자의 속도로, 가장 낮은 자의 자리로 - 나음누리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 -
김영동◆ 동우대 01 강원도의 영동지방을 사랑하는 영동자매 입니다. 나음누리 학사로 참여하고 있습 니다.
* 나음누리란, ‘의료사회의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는 학사회 공동체 입니다.
2017 나음누리 여름수련회 모습
2017 여름 나음누리 수련회 주제는 “가장 느린 자의
이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그만큼 집은 거의 휴식
속도로, 가장 낮은 자의 자리로”였다. 2박3일의 짧은
공간으로만 활용할 정도이고 집안일은 남편과 잘 분
시간이었지만,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
배해서 서로 도우며 살고 있다.
가오시는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성 경강해는 지금까지의 신앙생활 중에 들어본 것과는
나음누리 수련회는 2011년에 학사로서 처음 참여했
다른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분명 성경에
었고, 결혼 후에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2012년 4월
기록된 말씀인데, 깊은 묵상을 통해 때에 따라 새롭게
에 결혼해서 사랑의 결실인 남편과 두 아이까지 수련
알게 되는 하나님의 특징인 것 같다.
회에 함께했으니 인간적으로도 무척 풍성한 시간이 었다. 행복한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나는 현재 대학에서 보건실 운영을 하며 겸직으로 학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시나브로 내 마음
생상담센터 업무를 하고 있다. 구내식당 관련 업무 및
의 한 구석 어딘가에 자리 잡아 있는 나음누리를 사랑
장애 학생과 다문화가정 학생 지원업무, 학생증 관련
하는 가족과 나눌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나이를 한
업무도 맡았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근처 대학원에서
살 더 먹을 때마다 ‘좋은 것은 정형화 되는 것이 좋다’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있고 또 남편과 함께 사이버 대
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매년 여름휴가는 나음누리 수
학에서 청소년코칭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다. 일이 없
련회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행
어 한가한 편도 아니거니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직
운을 얻은 것 같아 감사하다.
장이라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다 보 니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게 가능하냐고 질문을
이번 수련회를 통해 모세에게 나타나서 직언하신 하
한다. 아마 내 삶을 들여다보면 가능하겠구나 싶을 것
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나음누리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
형태로서의 신앙생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혜인 것 같다. 아이들로 인해 철부지 엄마가 더 성숙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 알아 갈 수 있었으며 하나님
한 여인으로서 자라나는 것 같고, 우리 두 딸도 서로
의 존재가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항
돕고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더 배워나가는 것 같다.
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곳에서나 또는 어느 상황 가운데에서나 나와 동행하기를 원하
이 세상 모든 것이 거저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하나
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들이었
님은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심으로 이길 힘을 미리 주
다. 목사님을 통해 말씀하여 주신 시편의 기도는 우
시고 여러 고쳐나가야 할 문제를 하나하나 터뜨려 주
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
셨다. 나음누리 수련회 이후 2주 동안 울고 웃는 일이
눌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를 통해 하늘의 비밀
많이 생겼다. 그 의미를 그냥 내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열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수련회 마
묵상하며 내 인생의 밑거름으로 삼을 때 내가 이 세상
지막 시간의 소망 나누기처럼, 2박3일을 함께한 사랑
에서 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그 분의 나라에
하는 지체들과 손에 손을 마주잡고 천국을 향해 가
들어가는 시민권자로서의 자격에 좀 더 가까워지는
리라는 것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수련회는 우리 가족에게도 터닝포인트가 되었
‘기도하지 않으면서 내가 잘 살 수 있기를 바라거나
다. 우리 가족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좋은 것은
내가 하나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이 모순 아닐까?’라
빠르게 잘 흡수하는 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는 생각을 한다. 대학에서 근무하다 보니 진로에 대
은혜라고 생각한다. 수련회에서 거의 모든 지체들이
해 고민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내 이야기
직장에 대한 진로 고민을 나누었다. 남편 또한 지금
를 나누다 보면 “선생님 이야기는 드라마와 같네요”
하는 일을 병행하며 다른 공부를 더 집중하는 시간을
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삶 가운데 펼
가지려고 기도했다. 그런데 수련회를 마치고 사흘 후
쳐지는 드라마의 소재는 내가 만든다. 하나님은 감독
에 기도 응답을 받게 되었다. 그간 우리는 주말부부를
이요, 나는 주연 또는 조연의 역할을 맡는다. 내 이야
하게 되는 것과 말씀 중심의 생활을 위해 다른 지역으
기를 통해 학생들이 내리는 결론은, 하루하루 충실하
로 교회를 옮기는 것을 놓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아직
게 살다 보면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이루신다는 사실
최종 목표까지 이루어진 상황은 아니지만 이 기도 응
이다. 나를 쉴 만한 푸른 초장으로 옮기실 때도 있고
답을 통해 직장으로 인한 고민은 해결이 된 셈이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하실 때도 있지만 항 상 하나님이 하신다. 다양한 가치관으로 복잡한 이 시
지금은 주말부부 3주차로서 힘든 점이 이만저만이
대를 사는 이때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진리가 성
아니다. 남편이 육아의 절반 이상을 감당해 주었는데
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명심해야겠다. “나는 부활이요
그것이 10% 이하로 줄어들면서 나와 두 딸은 정말 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바빠졌다. 물론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사하지만 4살, 5살 두 딸이 아빠 없는 빈자리를 잘 이
믿느냐.”(요11:25~26)
겨내며 엄마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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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YGM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
회복하고 소명을 확인한 수련회 - 수도권 YGM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 -
이에스더◆ 이화여대 09 학부에서 경제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 고, 모금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다리 역할을 본인 의 사명이라 여기며 일하는 중이다. 자전 거 타기와 그림그리기, 나무와 여름, 비를 좋아한다.
* YGM 이란, 수도권에 거주하는 젊은 학사(Young Graduates)들을 위한 모임입니다.
정신없이 분주한 일상이었다. 학사수련회 데코를 맡은 나는 수련회 전날 퇴 근하자마자 급하게 재료를 준비하러 돌아다녔다. 전날까지 이리 분주했으니 수련회를 맞이하는 마음준비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수련회 당일, 선발대 는 이른 아침에 모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포천의 광림세미나하우 스. 일상에서 잠시 떨어진 한적한 자연 속에 와서야 비로소 숨 고르기를 했다.
수련회를 열며 이철민 간사님이 전해주신 말씀은 ‘엘리야의 회복’이었다. 로 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청하며 잠든 엘리야, 그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로 기운 나게 하시는 장면에서 따뜻한 집밥의 위로처럼 몸과 마음의 허 기를 달래시는 주님의 섬세함을 느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주님은 우리에 게 가야할 곳이 있음을 알게 하셨고 우리를 다시 일으키셨다. 부드럽고 조용 한 음성으로, 우리가 홀로 분투하는 것 같은 때에도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음 을 일러주셨다.
수련회 성경강해는 기쁨의교회 김유복 목사님이 전해주셨다.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절망을 말
수도권 YGM 학사회 여름수련회 후기
2017 수도권 YGM 학사회 여름수련회 모습
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조차 절망이 정답인 것처럼
주일씩 수련회를 하며 하나님과 나, 삶과 공동체에 대
살아가고 있었다. ‘가나안성도’ 현상은 교회에도 희망
해 돌아보았던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시간
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이었는지! 지금은 그때처럼 긴 시간을 내기는 어렵지
의 삶은 천국이 임할 것을 희망하며 포기하지 않는
만, 학부 때의 은혜를 기억하고 또 지금 다시 은혜를
삶이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이며, 우리는 그리
고백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리
스도를 닮은 공동체를 세워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한다.
공동체가 더욱 친밀해진 것도 감사하다.
하나님나라 백성은 그분의 통치 아래 이루어갈 새로
YGM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 중앙회관 좋
운 창조를 위한 동역자들이다. 사명 없이 욕망의 충
은땅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학부 때에 비하면
족만 원하는 신앙을 경계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공의
충분치 않은 시간이지만, 같이 배우고 같은 소망을 이
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야 할 사명 아래
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는 게 든든한 버팀목이 된
있다. 목사님은 교회공동체가 함께 소외된 청소년을
다. 또한 YGM에서는 책모임, 전공모임, 사회모임 등
돌보는 이야기를 나누셨다. 한 생명을 살리는 은혜의
으로 학사 자발의 운동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험을 들으며, 나 자신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주시는 사명은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세상 속에서 분주히 살
때로 학사의 삶을 일컬어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
다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헷갈리기 쉽지만, 하나님이
히 격려 받을 만하다’고도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그의 백성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분명히 있고
않고 역동적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학사들이 각
이를 위해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신다.
자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다. 그들의 삶에 하나님 의 위로와 격려가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그들이 속
1박2일의 수련회를 마쳤다. 엘리야를 회복시키셨듯
한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기쁘게 이
이 나의 몸과 마음도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또한 우리
루어 가시길.
에게 주신 소명이 있음을 다시 기억했다. 학부 때 일
소리 이음
10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10월 10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2)
1. 8월 27일(일)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 사무실에서 실 행위원회가 있었습니다.
10월 24일(화) BAM(Business As Mission) :
2. 9월 18일(월)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 사무실에서 GLC+ 운영위원회가 있었습니다. 3. 9월 9일(토)에 IVF 6층 세미나실에서 주부학사회 강좌가 진행되었습니다. 신응종 간사님을 모시고 “엄마의 인생설 계”라는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4. 매달 주부학사회 기도회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일시 매월 2번째 주 화요일(10/10, 11/14) 장소 IVF 중앙회관 문의 한선미 간사(카카오톡 ID 검색 : lovelyant)
10월 17일(화) 성경강해 : 이희열 간사 조샘 선교사(인터서브) 10월 31일(화) 가을사경회 11월 07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3) 11월 14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4) 11월 21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5) 11월 28일(화) 특강 : 일상영성
3. 수도권 YGM 가을사경회가 진행됩니다. 일자 10월 30일(월)~31일(화) 장소 IVF 중앙회관 지하 좋은땅 강사 조샘 선교사(인터서브)
● 6070학사회
● 동서울학사회
창립 8년을 맞는 2017년을 “IVF 6070학사회 성장 도약의 해”로 정했습니다.
1. 8~9월 사역보고
1. 6070학사회 수련회를 은혜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8월 25일(금)~8월 26일(토) 이틀간, 주강사인 한철호 목사님 을 모시고 광림세미나 하우스에서 “길 위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2. 6070학사회 야외 행사 안내입니다. 일시 10월 28일(토) 09:30 장소 강원도 춘천(김유정역, 강촌역 일대) 집합 28일(토) 7호선 상봉역(춘천행) 문의 김재원 학사(010-4329-0823)
● 수도권 YGM 학사회 1. 수도권 YGM 모임이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중 앙회관 지하 좋은땅에서 있습니다. 수도권지역에 거주하 는 학사님들은 언제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10 월 말에는 가을사경회가 마련되어 있으니 많은 참여 바랍 니다! 모임문의 이철민 간사 070-8275-6363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ivfygm
2. 수도권 YGM 10~11월 모임일정입니다. 10월 03일(화) 추석연휴로 인한 휴강
8월 아덕 팟캐스트 :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 9월 학사회 세미나 : 시간관리 팁
2. 11월 중 학사회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 경인학사회 1. 이번 학기 경인학사회 모임은 책나눔으로 진행합니다! 이 가을 “주님과 거닐다”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를 고민하고, 서로의 삶을 세워주는 모임을 함께 만들어가 려고 합니다. 대상 경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학사님 일시 9월 28일(목) 19:00 장소 경인IVF 회관 문의 경인IVF 사무실(070-8223-6192)
● 경기남학사회 1. 사역 보고 8월 29일 화요일 19:00~20:00에 경기남IVF 사무실에서 하반 기 학사모임 기획 및 준비를 위한 학사모임을 진행했습니다.
2. 학사모임 안내 일시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 19:00 장소 경기남IVF 사무실(수원시 영동구 인계로 259-2, 2층)
문의 김원석 010-8720-3660
일시 매주 토요일 아침 07:00
경기남 출신 학사님 외에 수원/용인 지역에 거주하는 학사님께도
장소 전주 덕진 체련공원
열려 있으니 관심 있는 학사님은 위 연락처로 문의해주세요.
문의 전성진 010-7448-0255 · 마더와이즈 : 초보엄마, 예비엄마들을 위한 모임
● 강원(춘천)학사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 춘천 (엄마들 모임-아이야) 일시 매달 첫주 목요일 오전 11:30 문의 사공은혜(한림대95) 010-5367-9120 · 춘천 (학사모임)
일시 매주 수요일 11:00~15:00 문의 임하정 010-4696-8050 · 책읽기 모임 : 책을 읽고 나눔을 가질 예정입니다. 일시 매주 또는 격주 1회 모집 9월에 참석자를 모집하여 10월부터 시작합니다. · 중보기도모임 : 캠퍼스 사역과 학사들의 삶, IVF 학사출신 선 교사를 위한 기도회
일시 매주 화요일 19:00 / 은혜교회 문의 김아주(한림대05) 010-6381-1635 ·수원
● 영남동부학사회 · 경주-포항 빨래터 주부모임
일시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일시 매주 화요일 오전 10:30
문의 최경순(한림대94) 010-9536-0703
문의 신지은 010-3120-1146 · 울산 주부 학사모임
● 충남학사회
일시 격주 목요일 오전 10:30
1. 충남학사모임을 천안과 서울 두 곳에서 진행하고 있습 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 부탁드립니 다. · 천안 이준희(단국대06) 010-5171-0569
문의 박경아 010-6572-2176 · 8090울산대 학사모임 일시 매주 수요일 / 영남동부IVF회관 문의 진동일 010-6560-2176
· 서울 손윤형(백석대02) 010-9154-1160
● 대구학사회
● 전북학사회 1. 지난 8월 25~26일 여름 세미나와 홈커밍데이를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관심 갖고 참석해주신 학사님들 께 감사드립니다.
1. 대구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 IEF(교대학사 교사모임) 매주 월요일 오후 18:00 · 가정피움팀(가정사역자모임) 매주 화요일 19:30 · 사회복지팀(사회복지관련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19:30
2. 학사큰모임 안내 일시 매달 둘째, 넷째 주 목요일 19:30 장소 전주 소망장로교회
· 평신도 지도자 남편모임 매주 수요일 오후 20:00 · 예사모 아내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 10:30 · inG 수료자 모임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19:00
2. 대구학사회 사역보고입니다. (6~7월)
3. 사역 안내 모든 학사모임의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는 전북IVF 학사회 페 이스북, 네이버 밴드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IVFC 축구모임 : 전북출신 학사님이 아니어도 관심 있으신 학 사님들은 오셔서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 비전캠프 85기 일시 8월 11일(금)~8월 12일(토) 장소 아멘교회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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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미경영 1회 비전여행
· 지역 학사 모임
일시 8월 18일(금)~8월 19일(토)
일시 격월(11월) 중 주말에 모임
장소 보현연수원
문의 좌성훈(제주대00) 010-4699-3282
· 비전캠프 86기(인간도서관 멘티4기) 일시 9월 2일(토) 장소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청년사역전문가 과정(청사모 6기)
● 나음누리 1.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에 함께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고해주세요.
일시 9월 7일(목) 12주간
모임문의 백성대 간사 070-8275-6345
장소 남부교회
·서울지역(삼성병원모임)
· 의미경영 콘서트 23회 일시 9월 17일(일) 장소 아멘교회 · 가정피움 공개강좌 일시 9월 19일(화) 장소 르호봇 센터 주강사 정희돈 간사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 삼성서울병원 문의 이은경 010-8892-8076 ·서울지역(아산병원, 강동지역 모임)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강필제 010-2710-7851 ·경기지역(수원, 용인, 원주지역 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 송재현 010-2231-1424
3. 대구학사회 사역계획 안내입니다.(10~11월) · 비전캠프 87기(인간도서관 멘티5기) 일시 10월 14일(토) 장소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커플피움학교 23기 일시 10월 12일(목) 6주간 / 화원교회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의미경영 콘서트 24회 일시 10월 15일(일) 장소 아멘교회 · 비전캠프 88기(인간도서관 멘티6기) 일시 11월 4일(토) 장소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인천지역(강서, 경인, 부천지역 모임)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강의혁 010-8898-2498 · 강원지역(원주모임) 일시/장소 한달에 한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홍진용 010-6272-3794 ·영남지역(대구모임) 일시/장소 한달에 한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설기호 010-2866-2697 · 부산모임 일시/장소 한 달에 한 번/ 장소 별도 공지 문의 이은정 010-3862-4189
2. 나음누리 여름수련회를 은혜가운데 마쳤습니 다. 8월 13일(일)~8월 15일(화)에 대전 헬몬수양관에서 이재 천 목사님을 모시고 “가장 느린 자의 속도로, 가장 낮은 자
● 제주학사회 1. 제주학사회 정기모임 안내입니다 · 학사 큰모임 일시 격월(10월, 12월) 넷째 주 토요일 13:00 문의 좌성훈(제주대00) 010-4699-3282
의 자리로”라는 주제 아래 진행했습니다.
팟캐스트 IVF 학사들을 위한, IVF 학사들에 의한, IVF 학사들의 팟캐스트! 학사님들을 위한 팟캐스트를 소개합니다.
아학팟 IVF 학사회 팟캐스트. 본격 기독B급 팟캐스트를 지향합니다. 3월 25일 부터 새롭게 시작된 <덕후방송>과 <직장생존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책나눔 -복팟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복팟'입니다. 그리 스도인들의 책모임을 지원합니다!
퇴근하고 뭐할래?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루어보는 방송입니다. 취미, 일, 가 정생활 등등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시도하 고 적용하며 공부합니다.
맑은물소리 하창완 목사와 함께 <시냇가에 심은 나무(시심)>(IVP)의 진도를 따라 성 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묵상도우미.
말씀으로 여는 하루 IVF 출신 목회자들의 설교 팟캐스트
소리 지음
62+ 62
편집인의
메아리
‘빚만 없어도 부자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그만큼 빚 없이 살기가 어렵다는 의미인 듯합니다. 도박에 손 을 댄 것도 아니고 큰 사업을 벌인 것도 아닌데, 그저 살아가다보니 빚 위에 앉게 된 경험은 이제 누구에게 나 찾아올 수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번 기획의 원고를 읽으며 마음이 무척 무거웠습니 다. 삶을 옭아매고 있는 빚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마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무 게이겠죠. 비록 지금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고통을 헤맬지라도, 우리가 함께함으로 어둠을 이길 작은 ‘빛’ 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마주하기 어려웠을 빚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어주신 모든 필자 분들께 진 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계절이 빠르게 돌아 다시 가을이 다가옵니다. <소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 작비로 사용됩니다.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2017년 7~8월 후원자 명단 강의혁 곽지영(*2) 국효숙(*2) 권도균 김선미(*2) 김재원(*2) 김종 기(*2) 김종수-구한나(*2) 김지은(*2) 나현순(*2) 남은경(*2) 민은 혜(*2) 박정현(*2) 박창재(*2) 손정엽(*2) 송인규(*2) 신은정 여운 성(*2) 오규덕(*2) 윤정범-지은실(*2) 이상엽(*2) 이원경(*2) 이은 원 임정하 장은숙 장은숙(*2) 전선애(*2) 정민경(*2) 정성구-윤정 은(*2) 정재성(*2) 조창훈-민혜경(*2) 최수연(*2) 허성호(*2) 황진 욱(*2) 익명
를 받아보실 즈음이면 긴 연휴가 지나고 있겠네요. 하 단에 <소리>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블로그를 소개합 니다. 귀성길 오가며 생각나실 때 종종 찾아와주세요.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졌지만 가족과 함 께, 또 이웃과 함께 따뜻한 나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강릉(*2) 경기남(*2) 경남(*2) 경인(*2) 남서울(*2) 대구(*2) 대전 중부(*2) 동서울(*2) 부산 북서울(*2) 서서울(*2) 영남동부(*2) 원 주(*2) 전북(*2) 춘천(*2) 충남(*2)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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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락 옮김 | 양장 520면 | 26,000원
정의로운 사랑은 가능한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정의에 충실한 사랑, 사랑이 충만한 정의는 가능한가? 사랑이란 모호한 단어에 숨어든 불의를 해부한다!
“사랑과 정의가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의 또는 사랑을, 혹은 둘 모두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이들이 갈등을 보았다고 생각한 곳에서 나는 조화를 보여 주려 한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사랑과 정의, 정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듯한 문제에 직면해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모호한 사용에 숨어든 인간의 불의하고 악한 관행과 폐단을 정면으로 해부하고, ‘정의로운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사랑에 대한 현대 기독교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책!”
“이 책은 월터스토프의 또 다른 고전이 될 것이다.”
_임성빈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_존 위티 주니어 에모리 대학
고세훈(고려대), 김회권(숭실대), 손봉호(서울대), 신국원(총신대), 미로슬라브 볼프(예일대) 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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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20만 독자에게 사랑받은 빌 하이벨스의 인격 계발서 완결편!
세상의 시선이 모두 거두어졌을 때 나는 누구입니까?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진정한 인격이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20주년 기념 확대개정판에서는 개인의 인격뿐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키는 부르심에 관한 가슴 뛰는 이야기를 더 새롭고 알찬 내용과 더불어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선보입니다.
저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람을 얼마나 매력적인 인격과 미덕으로 성숙시키는지에 대해 독자를 부드럽게 설득합니다. 이 중요한 책이 새로운 옷을 입고 더 풍성한 내용으로 세상에 나온 것을 반기며 축하 합니다.
_김영봉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이 책은 구체적이고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깊이로 읽는 이를 기쁘 게 합니다. 겸손하고 친절하게 일러 주는 저자의 설법은 잘 숙성된 포 도주의 향기처럼 독자들의 내면에 스며듭니다.
_이해인 시인
원서 자체의 전면 개정판으로 초판 한정 양장본입니다! 빌 하이벨스 지음 ㅣ 박영민 · 김명희 옮김 ㅣ 284면 ㅣ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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