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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235 I 2017. 12+01

체험, 삶의 현장 Ⅳ

나는 월급쟁이가 아닌 선생님입니다!│ 함께 이어달리기 │IVF 사역을 마무리하며, “참 잘했어요!”

“바당과 보름, 쉼팡이 이신 곳. 여기는 제주도우다.” (바다와 바람, 쉼이 있는 곳. 여기는 제주입니다.) ⓒ 이재웅 | 상명대98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소리정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체험, 삶의 현장 Ⅳ

04 09 12 16

나는 월급쟁이가 아닌 선생님입니다!»유홍렬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차희철 IVFer를 넘어 TCFer로!»현승호 간사와 장사, 그리고 학사»좌성훈

소리지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20 25 28 30 33 36 39 42

말씀산책»김유복 지금 다시, 헌법이다»정한신 미생:종로모임 이야기»허대리 우리 결혼할까요?»호욱,이은경 ‘오Chef’의 오늘 뭐 먹지?»오한웅 재외학사통신원»김성현 함께 이어달리기»장익수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김효주

소리이음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45 52 55 57 58

소리가 만난 사람»박태선,전선미 복음주의운동연구소 GLC+ ‘북한 다시보기’강좌 후기»박진우

안테나 팟캐스트 편집인의 글


소리 정음

소리

깨끗하고 맑은 소리

정음

부산과 전북 그리고 춘천에 이어, <소리>는 네 번째 “체험, 삶의 현장”으로 제주를 방문했습니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도 거센 바람을 맞으며

체험, 삶의 현장 Ⅳ

살아가는 학사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제주 속 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이들의 삶이 여러분의 터전에 스며들어 위로와 도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04 나는 월급쟁이가 아닌 선생님입니다! »유홍렬 09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 »차희철 12 IVFer를 넘어 TCFer로! »현승호 16 간사와 장사, 그리고 학사 »좌성훈


4+ 5

체험, 삶의 현장 Ⅳ

나는 월급쟁이가 아닌 선생님입니다! 유홍렬 ◆ 제주교대 05 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을 가 르치고 있다. 또한 제주TCF에 꾸 준히 참여하면서 기독교사 공동 체의 귀중함을 깊이 느끼고 있다.

제주도에서 교사로 살아온 지 어느덧 6년. 교

하루는 “혜수야, 그 아이돌 사진 있잖아. 수업

직생활은 그냥 적당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미

중에 안 하면 선생님이 컬러 스티커로 뽑아줄

교사라는 게 쉽지만은 않은 직업이라고 느끼

게”라고 제안했다. 아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

고 있었지만, 작년은 내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지 않았지만 방과 후에 출력해준다는 말이 솔

해였다. ‘교실이 이렇게까지 지옥이 될 수 있구

깃했던 것 같다. 방과 후가 되자 뽑아달라며 다

나’하며 날마다 새로운 충격을 받았고, 겨우 잠

가왔고, 나는 혜수가 사진을 출력할 수 있도록

들고도 새벽에 깨어나 미친 듯이 소리치며 기

컴퓨터 자리를 내줘야 했다. 그러나 3장으로

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던 한 해를 보냈다.

제한했고, 급한 업무가 있을 때는 뽑아주지 않 았다. 아이는 이에 불만을 가졌고 나와 늘 실랑

2공 펀치를 내 책상 위에 내려치면서 입에 거

이를 벌였다. 혜수를 따라다니는 친구 가영이

품을 물고 큰소리를 지르는 아이, 혜수. 혜수

도 수업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공

안에는 깊은 상처가 있다. 혜수는 학기 초부

작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도

터 수업을 거부하고 한 아이돌 그룹에 빠졌다.

혜수를 따라서 수업을 듣지 않을까봐 신경이

수업 중에 각 멤버들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적

날카로워졌고 어쨌든 이 문제를 이렇게 놔두

는가 하면, 멤버들의 사진으로 책을 만들곤 했

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7월이 되

다. 타이르기도 하고 화도 내보았지만 아이의

도록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고집은 완강했다. * 필자와의 협의에 따라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월급쟁이가 아닌 선생님입니다!

혜수는 힘이 엄청 셌는데, 또 다른 친한 친구인 주

어내서 일단 교실 밖으로 보낸 다음 들어오게 할 심

희를 늘 때렸다. 퍽, 퍽 큰소리가 났고, 나는 그때마

산으로 나가라고 계속 소리쳤고, 혜수도 여전히 버

다 웃는 주희가 안쓰러웠다. 주희는 웃으며 “씨xx아!

티고 서 있었다. 나는 혜수의 손목을 붙잡고 끌어냈

그만해!”하고 말했다. 그러면 혜수는 “뭐? 이 못생

다. 아이는 거세게 저항했고, 아이의 주먹이 내 가슴

긴 x이!”하면서 더 심하게 때렸다. 두고 볼 수 없어

을 내리쳤다. 혜수의 힘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

서 그만하라고 막으면 뭔데 참견이냐는 말을 들어

씬 셌다. 나 역시 굉장히 당황했지만 여기서 끌어내

야 했다.

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혜수를 뒷문 밖 으로 끌어냈다. 혜수는 다시 앞문으로 들어왔고, 끝

어느 날, 혜수의 가방이 낡아서 가방 끈 부분이 떨어

까지 버텼다.

져 나갈 것 같은 것을 발견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책 가방을 하나 사서 혜수가 좋아하는 캐릭터인 가오

나는 그날 바로 혜수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혜수에

나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오는 유령캐

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

릭터) 인형을 가방에 매달아 선물해줬다. 다음날 혜

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선생님이 실수하신 것 같다

수는 내가 사준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왔다. 나는 기

고 하시고 혜수는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아이라 이

분이 좋았다. 혜수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거 같다

번 일이 굉장히 상처가 되었을 거라고 걱정하셨다.

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기대가 커서 실망도 컸을까?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문제 해결을 위

나는 그때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했다. 혜수는

해 아이와 함께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다. 교장선생

그 일을 잊지 못하고 그 이후부터 나를 복수와 증오

님은 나에게 일을 보러 나가라고 하셨고, 교감선생

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용서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

님과 혜수가 상담을 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셨다.

금도 많이 후회가 된다. 2학기가 되자 혜수는 더 적극적으로 수업을 방해 그 일이 있던 날 아침, 혜수는 내가 사준 가방을 메

하기 시작했다. 혜수를 중심으로 주희, 가영이도 수

고 자리에 앉았다. 내 기대대로라면 혜수는 아이돌

업을 거부하고 공작활동과 잡담에 집중했다. 이제

의 사진을 꺼내면 안 되었다. 그러나 혜수는 그날도

는 수업시간에조차 들어오지 않았고 여자화장실에

역시 사진을 꺼내 가위로 오리기 시작했다. 나는 “혜

서 버텼으며 나는 늘 들어오라고 소리쳐야 했다. 혜

수야, 사진하고 가위 넣어줄래?”라고 말했다. 아이

수, 주희, 가영이는 계속해서 수업 중에 떠들었고, 수

는 내 말을 무시했고, 나는 순간적으로 화를 참을 수

업에 피해를 주었다. 몇몇 아이들은 “조용히 좀 해.

없었다. 나는 아이의 책상을 뒤엎었고, 내가 사준 가

선생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리잖아!”라고 할 정도로

방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아이에게 소리쳤

힘들어했고, 혜수는 그럴 때마다 “네가 뭔데 지랄이

다. “너 이렇게 할 거면 학교 오지 마! 나가!” 아이는

야?”라고 대꾸를 했다.

굉장히 당황스러워했고, “내가 왜 나가요? 싫어요!” 하면서 교실 뒤에 서서 버텼다. 반 아이들은 다 고

그때까지 관계가 좋았던 아이들에게는 “선생님 좀

개를 돌리고 나와 혜수를 바라보았다. 난 혜수를 끌

도와줘. 선생님이 혜수랑 다시 관계 회복할 수 있게

소리 정음


6+ 7

체험, 삶의 현장 Ⅳ

도와주렴”이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

미안하다. 선생님 너무 힘들다. 이제 그만하자”라

아이들은 점점 더 수업을 듣지 않게 됐다. 수업에

고 사정도 했다.

들어오지 않겠다며 화장실에서 버텼고, 떠들고 욕 을 하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들도 마

그 시절이 기억난다. 교실이 처참히 붕괴되었던

찬가지로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갔다. 이제 수업

시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중에 수업을 하는 사람은 나 혼자, 그리고 수업을

같았던 시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으나 한 가

듣고 싶어 하는 소수의 학생들뿐이었다. 그 중 한

정의 가장으로 재정적인 책임을 지고 있던 나는 그

아이가 “제발 수업 좀 듣게 조용히 해줘!”라고 소

만둘 수도 없었다. 운전하며 한라산 자락을 넘어가

리치면 “뭐? 이 xx야. 보라돌이 키다리 같은 x이!”

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던 그때, 학교에 도착할

하면서 욕이 돌아왔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수록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커지던 그때, 어떻

아이들은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게 잊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골고 다 언덕에 올라갈 때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날마

혜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혜수는 내 자리에

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는 것 같다는 교만

까지 나와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x. 내 연필

한 생각이 드는 그런 때였다.

왜 가져 가냐고! 내 팔목에 멍든 거 사진으로 가지 고 있어. 책임지라고 씨x!”, “우리 엄마가 핸드폰으

바로 그 시절에 딱 한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로 녹음한 거 다 들었어. 우리 엄마가 너 싸가지 없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던 사건이 일어났다. 12월 중

다고 했어.” 방과 후마다 한 시간 정도는 나를 자극

순쯤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내 수업을 준비했다.

했고, 옆에서 다른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이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

런 광경을 녹화했다. 혜수는 “내가 너 열 받게 해

면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며 최대한

서 네가 나 때리면 경찰에 신고해서 너 잘리게 할

아이들과 마찰 없이 보낼 방법을 연구하느라 날밤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가 방과 후와 쉬는 시간에

을 샜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날 자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혜수가 자기

사고가 터졌다.

분을 참지 못하고 2공 펀치를 교사용 책상에 내리 치며 거품을 물고 욕하던 그 모습이 여전히 잔상

다운 받아 놓은 ‘펭이와 솜이’라는 자연 다큐멘터

으로 남아 있다.

리가 오류가 생겨 중간에 멈추면서 문제가 생겼다. 수업시간은 20분 정도 남은 상태였다. 나는 어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을까? 아이가

할지 몰라 허둥댔고, 곧이어 아이들이 불만을 쏟아

욕을 하면 “미안하다. 선생님이 상처 줘서 진심으

냈다. “무서운 영상 틀어주세요!” 아이들이 잇달아

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혜수는 되레 더 성

뭘 틀어 달라, 뭘 틀어 달라 하며 아우성을 쳤다. 나

질을 부렸다. 도저히 못 견딜 때면 “그만해! 조용

는 일단 아이들이 보여 달라는 영상을 먼저 봤다.

히 하지 못해! 선생님한테 ‘니’가 뭐야?”하며 소리

하지만 너무 잔인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

도 쳐보고 다시 죄책감이 들어 “혜수야. 선생님이

다. 아이들은 원성을 쏟아냈다. “틀어주라고, 틀어


나는 월급쟁이가 아닌 선생님입니다!

줘!” 한 학생이 외치자 혜수가 앞으로 나왔고, 또다

같이 울어주며 기도해준 공동체였다. 혜수에게 돌

시 교사용 책상에 있는 2공 펀치를 두드리며 “너 나

돌 말린 가정통신문으로 얼굴을 맞은 날, 나는 멍한

와! 내가 틀면 되니까!”하며 소리를 쳤다. 그렇게 실

상태로 모임에 왔다. 나는 비참하게 울며 힘든 상황

랑이를 벌이던 중에 하교시간이 되었고 급하게 가

을 이야기했고, 공동체 지체들은 나의 등과 머리에

정통신문을 나눠줬다. 혜수는 자기 분을 참을 수 없

손을 올리고 함께 기도했다. 사실 나는 잘 믿지 않

었는지 내가 나눠 준 가정통신문을 동그랗게 말아

았다.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에 대해 의심한다는 게

내 얼굴에 던졌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웃

아니라 기적이라는 것을 잘 믿지 못했다. 그러나 그

었다. 나는 무력한 나 자신에 대한 창피함보다, 분노

때만큼은 구차하게 주님께 기적을 간구했다. ‘주님,

보다, 당황스러웠다.

진짜, 조금이라도 우리 애들이 나아지게 해주세요. 내 눈으로, 조금 나아지는 것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그러나 나는 그냥 넘어갔다. 이미 수없이 교장, 교 감선생님께 이야기했고 주변에 있는 동료 선생님께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자마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

이야기했지만, 내가 거듭 확인한 것은 그들이 도와

었다. 경기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내와 매일 두세

줄 수 있는 것이 없고 내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

시간씩 통화하지 않으면 그 상황을 버틸 수가 없었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교감선생님은 “선생님은 교

다. 주말부부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상황이 너

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 같아”라고 했고, 교장선

무나도 잔혹하게 느껴졌다. 아내는 꿋꿋하게 성경

생님은 “교권 침해한다고 뭐라고 하지 말고 너부터

말씀을 적어 아침저녁으로 문자를 보내면서, 주님

학습권 침해하지 마!”라고 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이 위로해주실 거라고 구원해주실 거라고 말했다.

열어달라고, 학생선도위원회를 열어달라고 말해도

아내는 나의 히스테리적인 모든 외침을 다 받아주

결국 의미 없는 말에 불과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내

었고 평안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날

상황을 안타까워했지만 자신이 맡은 학급을 건사하

저녁도 역시 쉽게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아이들

기에도, 또 많은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이미 에너지

에게 시달리는 악몽을 꾸며 새벽 3~4시경에 눈이

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교감선생님이 “그래도 학부

떠졌다. 나는 컴컴한 거실로 나가 미친 듯이 외치

모들이 들고 일어나서 민원 내지 않는 게 다행이다”

며 주님께 기도했다. 너무 힘들다고, 버틸 수 없다

라고 했을 때, 학부모들이 문제 삼지 않으면 별로 심

고, 제발 구원해주시라고, 그렇게 반복해서 외치며

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일개

기도했다. 눈물이 나오고 성령께서 함께하심이 느

교사 한 명이 잘못을 했고 학생을 함부로 대했으니,

껴졌다.

학년이 끝날 때까지는 무력하게 학생들로부터 상처 받고 무시당하고 짓밟혀도 그냥 가만히 밟혀야 하

다음날인 금요일 아침, 나는 목격했다. 주님이 살아

는 게 마땅한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계심을 말이다! 전날 목요일 종례 시간에 가정통신 문을 전달하러 왔던 6학년의 한 아이가 우리 교실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게는 하소연할 수 있는 TCF

붕괴된 모습, 내가 돌돌 말린 가정통신문으로 얼굴

공동체가 있었다. 내가 힘든 이야기를 털어 놓을 때

을 맞는 모습을 목격했고, 다급하게 교감선생님께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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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 Ⅳ

뛰어가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교감선

려버리는 부조리한 현실, 비합리적인 절차와 구조

생님은 문제가 되는 여자 아이들 몇 명을 개별적으

등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상처를 보

로 불러 다른 선생님과 일대일로 상담하게 하는 등

듬고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하고, 전문성으로 무장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주셨다. 곧바로 교장선생님

하여 준비해야 하며, 그리고 주님이 날 위해 돌아가

도 학부모들을 단체로 불러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신 그 마음으로 교단에 임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셨

고 약속을 해주셨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만약,

다. 지독하게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

다음 주에도 애들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킨다면’이

며, 어떻게든 내 힘으로 버텨보려고 했던 내가 내 연

라는 조건이었다. 이날 처음으로 ‘학교 공동체가 나

약함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사사기를 보

의 문제 해결을 도와주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

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저렇게 미련하게 주

다. 늘 상처가 되는 말을 하셨던 교감선생님은 나의

님을 잊어버리는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씀이

등을 쓰다듬으며 “선생님이 정말 마음고생이 심하

바로 나를 향한 말씀이었다.

셨겠네요. 상황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 씀해주셨다. 그날 처음으로 살아볼 만한 기분이 들

올해는 새로운 작은 학교에서 8명의 아이들과 여전

었던 것 같고, 곧이어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TCF공

히 씨름하며 나의 연약함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작

동체에 메시지를 발송했다.

년의 경험은 더 이상 나를 월급쟁이에 머물지 않도 록 해주었다. 우리 아이들 8명을 정말 사랑하고, 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목격한 것

이들의 영혼을 세심히 배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은 처음이었다. 그 다음 주 월요일에도 아이들은 잠

하지만 여전히 내가 너무 부족한 것을 깨닫고 있다.

잠했다. 1주일 정도는 교실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

그래서 더욱더 하나님 안에서 준비되어야 한다고

아오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 같다. 그후 아이들은 다

생각한다. 내 힘으로 하고자 할 때 모든 힘을 잃었던

시 예전처럼 돌아갔지만 나는 그때 하나님이 내 상

경험이 깊게 자리 잡고 있기에 늘 주님께 기대어 있

황을 그냥 놔두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깨달았

으려고 한다. 이 글을 쓰며 작년의 기억을 끄집어내

고, 하나님이 나를 그냥 월급쟁이가 아니라 교사로

는 게 정말 어려웠다. 그냥 덮어두고 잊고 꺼내고 싶

부르셨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죽

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며 깨닫게 된 게 있다.

을 때까지 마음에 간직하게 될 기억이자 값진 보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말이다. 이 기억

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이 있으므로 주님이 나를 교사로 부르셨음을 깨달 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고 하시는 선생님들 의 말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속으로 은근히 ‘왜 힘

여전히 유혹의 고리와 맘몬의 권세에 놓여 정신이

들지? 그냥 한번 윽박지르면 될 텐데’라고 생각했는

흐릿해질 때면 혜수를 포함한 우리 5학년 3반 아이

데, 그런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힘들어하는 선생님

들이 콕콕 가슴을 찌른다.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을 보면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드려야겠다

라고.

는 결심도 하게 됐다. 학교 안에 팽배해 있는 교실이 기주의, 문제 발생 시 담임교사의 책임으로 모두 돌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 차희철 ◆ 울산과대92 92학번으로 울산과학대와 울산 대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2003년 부산에 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내 를 만났고, 현재는 2남 1녀를 둔 아빠입니다.

저희 가족은 현재 제주에 살고 있습니다. 2014년 9

그런 아이였기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같은 반 친

월에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제주로 보냈고, 2015년

구들과 어울리는 게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읽었던

에 저도 입도를 했습니다. 제주로 이주를 하게 된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거나 친구들의 틀린 부분을

것은 누군가의 상상처럼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찾는

설명할 때면 아이들이 놀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다거나, 제주의 아름다움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간

리고 아들은 또래 아이들의 장난을 이해하지 못했

혹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긴 했으나 많은 이들이 그

습니다. 이후에 아들은 쉬는 시간이면 밖에 나와서

렇듯이 언젠가 우리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상

조용히 혼자 책을 읽었고,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과

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살던 장인어른의

더 멀어져갔습니다.

음주로 인한 문제들과 그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둘째아이의 심리 상담 결과가 겹치면서, 저희 가족 은 제주로의 이주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에서 아이들의 심리관 련 조사를 하는데 둘째의 결과가 상담이 필요한 상 태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먼저 교육청이 지정한 곳

둘째아이는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번 읽은

에서 좀 더 심도 있는 심리검사를 받았습니다. 몇

책은 거의 완전히 외울 수 있으며, 특히 영화의 대

달 후 저는 아이와 함께 결과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까지 모두 외울 수 있는 아이였습니다. 너무 어리

아들은 스트레스가 왔을 때 그것을 견디는 힘이 많

기에 무엇인가 익히고 배우는 것은 전부 책을 통해

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알고 있는

서였습니다. 둘째가 주로 읽던 책은 인체와 물리 과

세상과 현재 친구들과 지내는 세상의 괴리를 아들

학 관련 책들입니다. 둘째는 머리로 세상을 먼저 알

의 이해력으로 감당하는 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상

아갔지만 마음으로는 익히는 시간이 부족했던 게

담선생님은 아들을 위해서 자연과 많이 접할 수 있

아닐까 생각합니다. 몸으로 노는 것보다도 이야기

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권했습니다.

하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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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 Ⅳ

상담 결과를 듣고 아이와 집으로 오면서 걷는 동안

고민한 이유는 어쩌면 알량한 금전적인 안전을 놓치

에, 계속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유독 아들에게 엄

고 싶지 않았던 내적 갈등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게 대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아들의 아픔이 느껴져서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입니다. 겨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로 간다고 했을 때, 직장 동료

우 겨우 눈물을 참았기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

들과 친가 어르신들은 저를 말렸습니다. 직장 동료

려는 이유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혼자 화장실에 가서

들은 “나가라고 해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직장을 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자기 발로 나가느냐”고 붙잡았습니다. 어떤 이는 지 금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도 했고, 그 나이가 먹도록

아내와 저는 거주지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때 아

철이 들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친가 어른들에게도

내가 제주로의 이주를 먼저 제안했습니다. 아내는 집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

을 알아보고 학교와 그 지역의 상황을 알아보는 등

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제주로 이주

두고 제주라니, 거기서 뭘 해먹고 살 수 있단 말이냐!

했습니다. 저는 선박 설계와 개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주도 저를 제외한 가족들이 먼저 1년 동안 제주에서 생활

에서는 그와 관련한 직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기로 했습니다. 1년이 지난 이후에도 괜찮다면 저

그땐 몸이 건강하니 몸 쓰는 일을 하면 생계에 지장

도 제주로 내려가기로 계획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금전적으로

은 정말로 제주에서의 생활을 즐거워했습니다. 평소

조금 힘들게 되더라도 가족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

낯선 곳에서 적응을 힘들어했던 아내도 더 적극적이

이 컸습니다. 처음엔 농사를 지어 볼 계획이었습니

되었습니다. 저와 연애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다. 어려서 시골에 살았고 부모님과 같이 농사를 지

아내는, 제주에서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려

어봤기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

고 노력했습니다.

모님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과 내가 직접 짓는 것은 너무나 달랐고, 결국 실패하였습니다.

되돌아보면 그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아내 와 아이들이 아니라 저였던 것 같습니다. 주말에 제

그러던 중에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로 내려간

주로 내려갔다가 주일이면 다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실을 아시고, 이전 직장에서 상사로 모셨던 분이

올라와야 하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다시 들어오라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잠깐의 고민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계속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

있었지만 정중히 사양의 뜻을 알렸더니 그분이 작은

말에만 가족들을 만나는 주말부부 생활을 할 것인지,

회사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회사는 새로운 선박의

아니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제주에서 새롭게 시작할

개발과 영업을 확대하고자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 업

것인지를 말이죠. 계속 직장생활을 한다면 금전적인

무를 담당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업무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사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조건도 있었습니다.

는 것과 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같이 하 지 못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뻔한 결과를 가지고

처음 제주도로 와서 둘째와 다툼이 있으면 화난 이


우리 가족의 제주행(行)

유가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혼자 힘들어

유용한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주님을 인

하지 말고 어떻게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것인

격적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제게 살짝 고

지, 무엇보다 비록 우리가 지금 다퉜지만 엄마아빠

백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웠고, 얼마나 하나님

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렇게까지 하는 데 2시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 다. 오랫동안 함께 조용히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그

결혼을 앞두고,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신앙적으로

러나 반복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도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께 청첩장을 가지고 인사를 드

둘째는 예민하긴 합니다. 하지만 저와 아내를 찾아

리러 갔습니다. 제 아내가 이전에는 신앙생활을 하

와 뽀뽀도 하고 안기기도 하며 무엇보다 사랑의 감

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수님은 짐짓 놀라셨습니다.

정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그럼에도 제게 “무엇보다 아내의 신앙을 자라게 하

전에는 아이들 모두가 와서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는 데 힘써야 한다. 그러려면 최소 10년 동안은 네가

서로 안아줍니다.

하는 교회 일들을 모두 내려놓더라도 기다리고 내려 놓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없었

요즘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고민은 큰딸의 중학교

다면 아마 결혼생활 동안 신앙 때문에 아내와 많이

입학에 따른 고민과 아내의 학교생활입니다. 내년에

싸웠을지도 모릅니다. 가끔 아내와 저는 앞으로 하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데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상황을 보여주실지, 또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많아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들을 맡기실지 궁금하다는 대화를 나눕니다. 아내

래도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큰딸이 현재의 시

는 이전에는 알 수 없는 미래로 인해 불안해했지만

간을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길을 보여주

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각종 대회와 행사를 적극적

실 것을 믿습니다.

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쁩니다. 요즘 아내 와 저는 만약 학교생활이 힘들다면 홈스쿨링도 가

저는 얼마 전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에서 선박의

능하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

복원성과 관련해 자문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아 이

고 있습니다.

번 달부터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있는 지식이나 우리의 작은 힘이 하나님 나라

아내는 이번 학기부터 ‘Word of Life Bible Institute’

를 위해 사용되길 소망합니다. 때론 우리가 이해할

라는 곳의 제주 캠퍼스에서 1년 과정의 학업을 시작

수 없는 일이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했습니다. 뉴욕에 있는 신학교 개념의 학교로 1학년

하지만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때마

을 제주에서 하고 2학년부터는 뉴욕으로 가는 구조

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저희에게도 그

인데, 아내는 일단 이곳에서 1년 동안 공부하기로 했

러실 것임을 믿기에 두려움보다 기대를 품고 생활

습니다. 전적으로 아내가 원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하고 있습니다.

곳에 다니면서부터 아내와 저는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에 성경의 내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IVF 공동체에서 받은 훈련이 얼마나

소리 정음


12+ 13

체험, 삶의 현장 Ⅳ

IVFer를 넘어 TCFer로! 현승호 ◆ 제주교대 97 제주에서 세 아이의 아빠로, 전국 TCF 공동대표로, 교육팟캐스트 ‘샘 샘샘’의 진행자로, CCM찬양 ‘주님 은 나를’의 가수로,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는 제주 촌놈입니다.

121회. 내 항공권에 찍힌 대한항공 탑

대학시절이던 90년대 말, 대학가에는 데모와 운동

승 횟수다. 아마 다른 항공사의 탑승횟

권이 사라진 시대였지만 유독 교대에는 데모가 많

수까지 합하면 300회를 넘기지 않을

았다. 교대와 일반대 통폐합 문제와 교원임용 문제

까 싶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도 아

등으로 수업을 거부하고 방학을 반납하며 투쟁이

니고, 항공사와 관련된 사람도 아니고,

이어졌다. 그런 덕분에 IVF에서 세계관 공부를 하

그저 초등학교 교사에 불과한 내가 어

던 나로서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80년대 선배들

떻게 비행기를 이렇게 많이 타고 다녔

이 했던 고민을 조금은 맛볼 수 있었다. 일반대 학

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생들과 함께 LGM을 드리던 시절이었는데, “교육

제주도에 살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

부 장관은 자폭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그리

는 내가 TCFer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독교적으로 데 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교사대 통폐합은 성경적

1997년, 제주교육대학교에 입학하고 교대IVF를

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더 나아가서 ‘인본주의

개척했다. 내가 교대IVF를 개척한 것이 아니고 교

교육과정으로 가르치는 것이 맞나? 기독교적으로

대IVF가 나를 개척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물론 나 자신조차 잘 모르던

가? 대안학교는 어떠해야 하나?’ 등, 시대에 어울리

내가 IVF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또 나를 찾아갈

지 않는 고민으로 혼자 심각했던 것 같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도 IVF 를 통해 만났다. 그리고 대학 4학년 무렵에 한국기

그러다가 4학년을 앞두고 참가한 IVF 학사회 평생

독교사회(TCF)를 알게 되어 그후로 16년째 IVFer

동역자 수련회 선택강의 시간에 서울 TCF 선생님

를 넘어 TCFer로 살고 있다.

을 처음 만나게 되었고 거기서 기독교사 신문도 보


IVFer를 넘어 TCFer로!

게 되었다. 당시 기독교사 신문에는 2000년 여름에 전국기독교사대회가 열린다는 광고가 대문짝만하 게 실려 있었다.

그해 여름, 4학년으로 열심히 임용고시를 준비해 야 할 때였지만 나는 제주교대 IVF 후배를 데리고 교원대학교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세 계를 만나게 되었다. 전국에서 기독교사로 살고 계

라났다고 한다. 이후 IVF 학사회 안에서 기독교사

신 교사 1800명을 만난 것이다. 나의 고민을 이미

모임으로 모이다가 OMF에서 파송 받은 호주 초등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선배 교사들과 그들

교사 출신의 나덕영 선교사님 소개로 호주 TCF를

의 이야기를 만났다. 그때 그곳에서 나는 기독교사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TCF라는 이름으로 새로

운동으로 부르심에 확신을 얻었다. 지금도 나는 수

운 학사운동이 개척되었다.

련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임용고시를 앞두고 수련회에 참가하여 두려워하고 있는 내 손

90년대에는 성장기를 거치며 서울, 대구, 부산, 전

을 잡고 기도해 주신 옆자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주 등등 전국 곳곳에 모임이 생겨났지만, 제주에는

그 기도가 나에게 큰 평안을 주었다. 주님이 나를

그때(2001년)까지 TCF 모임이 없었다. 당시 제주

기독교사로 부르셨으니 임용고시에 지금 당장 합

에는 TCF뿐만 아니라 지금의 (사)좋은교사운동 소

격하고 안 하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자신감

속의 어떤 기독교사 단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부연

까지 얻었다.

설명을 하자면 CCC, IVF, SFC, ESF, UBF 등의 학 생 선교단체가 있고 이런 선교단체들이 연합해서

그러다 보니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내가 바로 3

2년에 한 번 선교한국대회를 연다. 이처럼 우리나

월 1차 발령을 받은 것은 제주도에서 빨리 기독교

라에는 TCF, TEM, GT, GVF, 기윤실교사모임 같은

사 운동을 시작하게 하기 위한 주님의 계획이라고

기독교사 모임이 있고 이 단체들이 연합하여 2년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2001년 함께 교직을 시작한

에 한 번씩 기독교사 대회를 연다. 그 연합운동의

3명의 선생님이 작은 내 자취방에 모이면서 제주의

이름이 바로 “좋은교사운동”이다. 제주에는 그때까

첫 번째 전문학사운동인 제주TCF가 시작되었다.

지 이런 연합운동을 하는 건강한 기독교사 단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한국기독교사회(TCF)의 시작도 그랬다. 1980년 서울 서대문 미동아파트 8층 IVF 사무실에서 IVF

그러니 대학시절 기독교사 대회의 맛을 본 나로

출신 교사 6명이 모이면서 TCF운동은 태동했다.

서는 목마름이 있었다. 전국에 많은 교사 단체가 있

당시 송인규 목사님이 IVF에서 훈련받아 졸업한

는데 제주에는 없다니, 꼭 만들어야지! 물론 내가

교사들을 모아놓고 기독교사 모임을 시작하라고

IVF 출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TCF가 눈에 들어

등 떠민 게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사 모임으로 자

왔고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교단에 선다는 것은 아

소리 정음


14+ 15

체험, 삶의 현장 Ⅳ

프리카 오지에 해외선교사로 파송되는 것과 하등

제주 TCF를 잘 이끌어야 했기에 처음에는 여름,

다를 것이 없다’는 TCF의 신념이 나를 사로잡았다.

겨울 수련회만 쫓아다니다가 언제부터인가 봄, 가

그래서 TCF 공동체를 제주에 만들고 싶었다. 처음

을 리더모임에도 올라가게 되고 나중에는 매월 하

에는 ‘후배들을 위해서 공동체를 만들어야지. 교대

는 훈련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결국 작년부터는 한

IVF 아이들이 졸업 후에 이런 공동체가 있으면 기

국기독교사회 TCF 공동대표 간사를 맡아 섬기는

댈 수 있는 있는 언덕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한 달에도

막상 공동체를 만들고 나서 가장 큰 유익을 맛 본

5~6번씩 비행기를 타고 TCF 사역을 한다. 이번 달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아마 제주TCF가 없었다면 지

만 해도 6번의 비행 계획이 있다. TCF는 벌써 36년

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가

이나 되었고 전국에 29개 지역모임을 갖고 있는 단

장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 것이 바로

체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교육에 하나님나라

TCF 공동체였다. 후배보다 선배 누나가 많았던 이

운동’이라는 가치에 헌신한 이 단체에, 나 같은 제

공동체에서, 나는 나의 온갖 어려움과 실패와 좌절

주도 촌놈이 대표간사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을 나누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 이 한 가정의 영광으로 직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제주 TCF 16년 역사 가운데 약 10년 정도는 내 가 대표를 맡아 했던 것 같다. 워낙 사람이 없었기

우리 가정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아들

에 부득이하게 장기집권을 했다. 이후에 교대IVF

그리고 또 아들이 있다. 아들만 셋! 아니 나를 포함

를 졸업한 후배 교사들이 감사하게도 TCF 공동체

넷이 있다. 아내와 아들 셋을 놔두고 자유로운 비

를 찾아주었고, 또 시간이 지나니 이런 저런 방법

행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지금까진

으로 공동체를 알고 찾아오는 분들도 계셔서 지금

그렇게 했다.) 게다가 초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은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든든한 공동체로 성장해

가르치면서 동시에 이 일을 해야 하기에 무리가 따

나가고 있다.

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올해는 휴직을 했다. 육아 휴직을 받아 육아와 TCF 사역에만 전념하기 위해

그렇게 TCF 사역에 발을 담그면서부터 나의 비

서다. 이 사역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행(?)은 늘어만 갔다. 사실 대학시절에도 제주IVF

느꼈다. 휴직을 하고 전국 곳곳의 지역모임을 찾아

는 지방회로 독립되기 이전이라 늘 영남동부지방

돌아다녔다. 한국지리에 꽝인 제주촌놈이 이젠 전

회나 광주지방회와 수련회를 같이 했고 그때마다

국 곳곳의 지명을 다 외우고 다닌다. 충북과 충남

여름, 겨울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늘 수

을 구분할 줄 알게 되고 세종시가 어딘지도 가보

련회비보다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는 것이 생활화

고 알게 되었다.

되다 보니 졸업해서도 비행기를 타고 전국 곳곳에 서 열리는 TCF 수련회에 참가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사실 TCF는 정말 많은 사역을 하고 있는 단체 다. 전국 29개 지역모임 운영 - 온라인 디아스포 라 TCF - 여름겨울 3박4일 수련회 - 여름 R국, 겨


IVFer를 넘어 TCFer로!

울 아프리카 MK 학습캠프 - 정기적인 해외교육탐

마든지 함께 바꿔 갈 수 있다. 내가 너무 무리한 요

방 - 기독특수교사모임 - 1박2일 봄, 가을잔치 - 격

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월 소식지 발행 - 팟캐스트방송 샘샘샘 - 티시핑스

IVF출신의 교사들은 소비주의 신앙생활은 하지 않

쿨(리더십학교)운영 - 말씀과 성장학교 운영 - 학

는다고 생각한다. 쇼핑하듯이 모임에 갔다가 마음

교 기독학생회 및 신우회 지원 - 수업 전 10초 기도

에 드는 물건이 없으면 다른 마트로 가는 그런 신앙

운동 - 기독교사를 위한 PBS 교재 발간 등, 그외에

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드리는 제안이다. 인

도 수많은 사역으로 TCF는 ‘교육에 하나님나라 운

구절벽, 임용절벽의 시대에 나는 모든 IVF 출신 교

동’을 펼치고 있다.

사들이 TCFer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감히 이렇 게 말할 수 있는 것은 TCF 사역이 내가 배운 IVF 사

그 중에 특히 요즘 내가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사

역의 연장선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은 다름 아닌 예비교사 사역이다. 지난여름에는 일부러 IVF 학생수련회를 찾아다니면서 TCF를 알

나의 온라인 ID는 ‘IVF1997’이다. 비밀번호는 바

리고 홍보했다. 막상 사역을 하다 보니 많은 예비

뀌어도 아이디는 늘 똑같다. ID 즉 나의 ‘정체성’은

교사들이 TCF를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교대나 사

IVF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1997

대 IVF 출신 학생들은 졸업 후 적절한 공동체를 찾

년, IVF라는 공동체를 통해 형성되었다. 그 정체성

지 못하여 각개전투를 벌이거나 새로운 단체를 만

은 제주교대IVF가 개척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여전하다. IVF에서 4년 동안 배운 것으로 나는 40

주변에 TCF 모임이 없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개척

년 동안 교사사역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속

을 하기는 부담스럽거나 TCF 지역모임을 찾아갔

한 TCF사역은 IVF 학사운동의 일환이다. 나는 감

다가 실망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TCF는

히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교·사대를 나온 IVFer들

IVF처럼 지방회 성격이 매우 강한 단체이며, 무슨

이 모두 다 나와 같이 TCFer로 살아가길 원한다.

훈련이나 커리큘럼이 빡빡한 단체가 아니다. 지역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나라 운동’이 교실 속

모임이 없다면 지역을 개척하면 된다. 그러면 TCF

의 하나님나라 운동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나아가

가 가서 도와줄 것이다. 기존의 TCF모임이 실망스

길 소망한다.

럽다면 다른 방안을 제시하고 바꾸어 나가자고 하 면 될 것이다. TCF 선생님들에게는 젊은 신규들이

오늘 저녁에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TCF 모임에

모임에 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기 때문에 얼

IVF 학사운동 하러 나가야겠다.

소리 정음


16+ 17

체험, 삶의 현장 Ⅳ

간사와 장사, 그리고 학사 좌성훈 ◆ 제주대 00 제주 토박이인 아내와 결혼하여 아 이 셋을 둔 아빠. 9년간의 제주IVF 간사사역을 마치고 현재는 제주특 산품&기념품 판매장 ‘오달콤 제주’ 를 운영 중이다. 제주도 서쪽 외곽 지 '협재'에 5가정과 함께 모여서 대 안공동체를 이루고자 6년 째 고군분 투 중이다.

‘오달콤 제주’를 방문하신 선배 간사님과 함께

# 간사가 장사를 시작하다 9년간의 IVF 간사 사역을 마무리하고 무엇을 해 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다. 때마침 지역특산품 을 판매하는 협동조합의 창립멤버로 참여할 기회 가 생겼다. 나는 간사사역 마지막 학기에 6개월 동 안 틈틈이 시간을 내어서 제주서문시장에 위치한 협동조합 특산품 판매장에서 일을 해보았다. 캠 퍼스에서 신입생들을 만나듯 고객들을 만나는 일 이 좋았고, 캠퍼스에서 복음을 소개하고 전하듯 다양한 제주특산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이 즐 거웠다.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제주특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장사를 시 작하기로 결심했다.

# 간사로 지낸 경험 제주동문시장 부근에 괜찮은 조건의 매물이 나

와서 임대차계약을 했다. 막상 특산품 판매장을 시작하려 하니 고민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 었다. 일단 가게 이름을 정하는 ‘작명’부터 난관이 었다. 또한 가게이름과 컨셉에 맞추어 인테리어 를 해야 하는데 나는 작명의 은사도, 인테리어나 디자인 감각도 없는 사람이었다. 간사시절 수련 회 주제를 정하기 위해 간사들이 협력했던 시간 이 생각났다. 그래서 간사사역하면서 가깝게 지 내게 된 분들 중에 작명과 디자인에 감각이 있으 신 분을 제주도로 모셨다. 영남동부 대표간사로 섬기셨던 정동철 간사님인데 현재는 ‘디자인잇다’ 를 운영하면서 ‘몸된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멘 토와 같은 선배님이셨다. 이분은 작명, 디자인, 인 테리어, 장사기법 등 나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갖 춘 분이었다. 당시 목조주택을 짓는 일을 하고 있 었던 내 남동생도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는 함께 모여 마치 간사사역 시절에 ‘어떻게 하면 신


간사와 장사, 그리고 학사

입생들을 IVF에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

는 모습에서 캠퍼스 간사 시절 “IVF 공동체에는 사

하는 것처럼 ‘어떻게 하면 관광객들이 우리 매장에

랑이 없네요?”라고 말하며 공동체를 떠났던 학생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여러

의 모습이 겹쳐졌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우리

현장을 돌아다니며 회의를 했다.

매장을 찾는 고객들과 짧게나마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 매장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찾는 물건이

많은 논의와 아이디어 회의 끝에 지금의 ‘오달콤

있는지, 어떤 물건들을 찾는지 고객들에게 여쭤보

제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수련회 주제와 전체적

고 초콜릿을 나눠주면서 조사했다. 그러한 과정을

인 프로그램이 어우러지듯 가게 이름과 인테리어,

통해 우리 매장을 찾는 손님의 90%이상이 20~30

판매상품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신경 썼다. 그리고

대 여성고객이라는 사실과 감성적인 기념품을 많

IVF에 연결된 신입생들이 공동체에 잘 정착할 수

이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다른

있도록 그들에게 무언가를 계속 주려 했던 것처

직원이 근무하는 동안 시간을 내서 제주도에 알려

럼, ‘오달콤제주’에 찾은 손님들에게 어떠한 혜택

진 감성기념품 샵들을 돌아보고 감성기념품을 파

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캠퍼스 상황과 학생들

는 플리마켓을 찾아다녔으며, 그러한 기념품을 우

의 필요를 살피듯 제주동문시장을 찾은 관광객들

리 매장에 들여놓았다. 그랬더니 매출이 올라가는

의 필요가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곳은

게 아닌가! ‘할렐루야~~!’

굉장히 주차하기가 힘들어서 대부분 유료주차장 을 이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부분의 렌터카가 우리 매장 앞을 지나게 된다는 것을 포착했다. 그 리하여 나는 주변 유료주차장과 공영주차장을 찾 아가 주차권을 구입해서 ‘오달콤제주’를 찾는 고객 들에게 ‘무료주차권’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고객들 은 좋아했고 ‘무료주차권’ 지급한다는 홍보문구를 보고 찾는 손님도 많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 제 막 시작한 장사가 자리 잡을 리 만무했다. 손님 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냥 나가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마치 신입생들이 IVF 선배가 밥도 사주고 같이 보드게임도 하면서 즐겁게 해줘서 좋았지만, IVF 활동은 안 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빈손 으로 나가는 고객들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도 지 었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 대표간사로서의 경험 나는 제주IVF의 두 번째 전임간사였다. 그만큼 제주IVF는 개척지부처럼 열악한 인프라로 사역 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간사를 사임하기 전 3년 간 대표간사로 섬기게 된 것도 선배간사님이 3년 간 신학연수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신학연수도 하 지 않은 저년차였던 내가 그 자리를 감당해야만 했다. 게다가 제주IVF는 재정을 담당해주는 사무 간사를 세우기 어렵기 때문에 중앙회 재정담당 간 사님의 도움을 받으며 대표간사가 일정부분 역할 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작은 규 모이긴 했지만 수입 지출이 오가는 재정 관리 과 정을 배우게 되었다. 장사를 시작하니 홍보, 마케 팅, 매장관리, 신제품 컨택, 재정 관리 등 모든 것 을 내가 해야 했다. 그중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재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손님이 “여기에는 내가 찾는 000 상품이 없네요?”라고 이야기하며 나가

정 관리였는데 대표간사 3년간의 경험을 도입하 여 우리 지방회 재정을 관리하듯이 비슷한 포맷으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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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삶의 현장 Ⅳ

로 재정 관리를 시작했다. 간사 시절 재정관련 전문

과 함께하지 않고 오히려 학살을 강행하는 무리들

적인 영역은 중앙회 간사님 도움을 받았듯이 내가

편에 섰던 제주기독교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당시

감당하기 힘든 재정관리 영역은 개인세무서의 도

제주천주교는 아픔과 고통을 겪는 도민들과 함께

움을 받았다. 모든 경험이 이토록 깨알같이 쓰임 받

하였기에 지금도 제주도민들에게 존경받으며 활발

다니, 참으로 놀라우신 하나님이다!

한 포교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 역사 의 부끄러운 모습이 제주강정마을에서 반복되었음

# ‘오달콤제주’의 홍보대사 제주특산품 매장 ‘오달콤제주’는 제주도민들을 대 상으로 하는 매장이 아니다. 즉, 제주도에서의 인 맥보다는 타지역 인맥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와 비 슷하게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사업체들은 타지역에 자신들을 알리고자 SNS나 인터넷 홍보 마케팅 비 용을 많이 지출한다. 그런데 IVF는 전국구 단체 아 닌가! 간사 시절에도 SNS를 애용했던 나는,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기

을 캠퍼스 학생들과 함께 현장을 찾아다니며 목격 하기도 했다. 제주기독교는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 어서면 많은 군인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여 인구가 늘어나게 될 것이고 교회가 부흥할 것이라는 이야 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강력한 군사력, 즉 힘 에 의한 평화를 제주기독교 교계가 주장하였던 것 이다. 그러면서 샬롬을 잃어버린 제주강정마을 사 람들의 고통과 눈물을 외면하고 있음을 처절히 보 게 되었다.

시작했다. 전국 각 지역의 IVF 지인들이 ‘좋아요’나 ‘공유하기’를 한 번씩만 해줘도 금방 우리 매장이 알려지고 확산되었다. 사람 만나기 좋아했던 내가 IVF 간사로 섬기면서 각종 수련회, 세미나, 대회들 을 통해 맺어진 전국 각지의 인연들(학생, 학사, 간 사, 그리고 그분들의 지인들)은 대부분 타 지역 사 람들이었다. 특히 대표간사로 섬겼던 마지막 3년간 은 전국 각 지역의 대표간사님들을 만나 교제하며 다양한 지역의 학사님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얻 었으니, ‘오달콤제주’는 막대한 홍보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 이 먼저이고 사람이 재산이다.

장사를 하면서 경험한 제주도의 실상은 더욱 참혹 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국내 최고의 여행지 에 살고 있는 제주도민들은 여행 없는 삶을 살고 있 다. 제주도는 지난 5년간 전국 최고의 부동산 상승 률을 기록했다. 제주시내도 올랐고 외곽지는 관광 지여서 같이 올랐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부동 산 투기꾼들이 제주도에 달라붙었으며, 중국투기 꾼들은 제주도를 구워먹고 삶아먹고 있다. 그런데 제주도는 근로자 평균임금 수준이 전국에서 제일 낮은 곳이다. 국내외 관광객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관광객들로부터 번 돈은 당일 송 금되어 제주도를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

# 제주도의 실상 간사 시절에는 복음화 비율이 전국 최저인 ‘제주도’ 라는 독특한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 성경을 연구했고 역사를 공부했다. 그러 면서 4.3사건 당시 억울하게 죽어가는 제주도민들

적인 곳이 제주도의 대기업 면세점들이다. 그들은 그날 매출을 당일에 본사로 송금한다고 한다. 대규 모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숙박, 식당, 면세 점, 폐쇄형 특산품매장을 돌리면서 돈을 벌어들인 다. 도민들은 대부분 그들의 업장에서 허드렛일을


간사와 장사, 그리고 학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주살기를 하겠다며 서 울에서 오신 여러 사모님들은 외제차를 끌고 다니 면서 제주 외곽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안주인 행 세를 한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다니는 초등학 교도 아담하고 작은 학교인데 학생들의 60%가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의 아이들이다. 생각과 가치관 이 바로잡혀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화가 난다. 제주도민 을 먹여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자연환경인데,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며 자연유산 인 구럼비를 시멘트로 뒤덮어 버렸다. 사드 때문 에 주춤했지만,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들을 받아야 하기에 공항을 지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을 한순 간에 내쫓는다. 곶자왈과 같은 세계자연유산에 등 재된 곳들이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무참히 짓밟히 고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가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도 도민들이 감당한 다. 제주도민들은 개발의 주체도 되지 못하고, 개 발 이익을 나눠 갖는 일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미 개한 원주민 취급만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주도에서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학사들의 삶은 참으로 팍팍했다.

# 간사와 장사, 그리고 학사

서 임원들과 여러 차례 만나며 우리가 왜 존재해 야 하는지 묻고 답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통해 제주지역교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많은 영역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 학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주 도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IVF 학사들도 함께 하기 위한 시도들도 해보기로 했다. 제주도라는 지역성 을 활용하여 ‘지역학사그룹’을 형성했고 한 달에 한 번은 지역모임으로, 한 달에 한 번은 큰모임으 로 모여서 제주지역교회가 다루지 못하는 이슈들 을 담았다. 학사들이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이 슈들이지만 교회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쉬쉬 하는 이슈들 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뤄가는 것처럼, 제주도 곳곳에 흩어져 사는 학사들이 거 주 지역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일 수 있도록 플랫폼 역할을 학사회가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10 년 정도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캠퍼스 시절은 짧

작년 11월 장사꾼이 되어가고 있던 나에게 제주학

았지만 우리가 터 잡고 살고 있는 곳에서는 꽤 긴

사회 회장이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 누구도 선

시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해결

뜻 회장으로 섬기려 하지 않았다. 교회생활도 힘

되지 않더라도 당장의 가시적 성과를 바라지 않

든데 IVF 학사회는 왜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는 학

고 길~게! 반복적으로 시도하기로 했다. 캠퍼스 시

사들이 많았다. 그렇다. 일상생활도 힘들고 주일

절에는 졸업하면 학사가 되지만, 학사를 졸업하는

교회생활에서도 많은 갈등과 고민이 넘쳐나는데

때는 죽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 살다

IVF 학사회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

죽을 인생, IVF를 통해 품은 하나님나라 소망을 펼

도 우리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부터

쳐보기 위해 시도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이 땅을

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

떠나는, 그런 학사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소리 정음


20+ 21

말씀산책

거룩함과 선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그리스도인 (삼상 25장)

김유복 ◆ 영남대84 캠퍼스 간사로 14년을 섬긴 후, 뼈를 묻 으려 했던 IVF를 떠났다. 대구에서 대 학생들과 ‘기쁨의 교회’를 개척했고, 현 재까지 15년 간 사역하고 있다. 다음 세 대에서도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열 매를 맺어갈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싶 다. 저서로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 음」이 있다.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가 그대의 말대로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삼상25:35) 위기는 뜻밖에도 아주 작은 사건을 통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큰일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대처해왔으면서도 작은 일에 쉽게 무너질 수 있 습니다. 창을 던져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을 용서한 다윗이었습니 다.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그일라 거민을 구출한 다윗이었습니 다. 그러나 그를 거의 침몰하기 직전까지 몰고 갔던 위기는 뜻밖에도 음식 때문이었습니다. 1. 나발의 어리석음 다윗은 아둘람으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선한 일을 기획했습니다. 당시에는 고용된 목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목장주와 계약을 맺고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계약 기간 중에 양을 잃어버리거나 하면 그 양


말씀산책

값을 제하고 삯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도적과 짐승들에게서 양을 보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과 함께 그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 일은 목동과 가축들을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도피 생활 중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 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의 동기는 선했습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양털을 깎는 때였고 이때는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주인은 목동들을 위 해 양을 잡고 포도주를 베풉니다. 아주 기분 좋은 날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좀 나 누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소년들을 보내어 아주 겸손하게 나발의 호의를 요청했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나발 은 양을 보존할 수 있고 목동들도 안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요청은 과한 것이 아 니었습니다. 떡 몇 덩이와 양 몇 마리 그리고 포도주 몇 부대면 충분한 것이었습니다(삼 상 25:6-8).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 때 문에 양 한 마리 서리해 먹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그저 잔칫날의 풍성함, 그 한 귀퉁이의 즐거움을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나발이 먼저 다윗을 챙겨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요청은 무시당했고 그는 모욕을 받았습니다. 다 윗이 해온 일은 목동들조차 칭송하는 일입니다. 다윗 덕분에 목동들이 안심하고 양을 칠 수 있었던 것이죠. 다윗은 왕이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삼상 25:15-16). 나발. 거부인데다가 아내는 소문난 미인에 지혜까지 겸비한 여자였습니다. 겉으로만 보 면 그는 성공한 부자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실패한 사람 이었습니다. 인색한데다가 편협했고 은혜를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들에게도 신뢰 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아내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의아할 때가 많습 니다. 성격도 지랄 같고 답답한 사람이 출세하고 돈도 많이 버는 것을 보면 이해가 잘 가 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미덕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사람이 멋진 아내와 집을 가지고 잘 사는 꼴을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나발은 아주 꽉 막힌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대화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 니다. “사태가 이렇게 위급한데도 바깥주인은 고집만 세울 뿐, 어느 누구의 말에도 귀 기 울이지 않기 때문에 이리로 달려왔습니다”(삼상 25:17).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혀 경청할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그는 교만했습니다. 인색할 뿐더러 은혜라고는 눈곱만큼 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합니다. 나발은 다윗을 화나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경우 없는 태도에 놀라고 당황했으며 분노에 치를

소리 지음


22+ 23

말씀산책

떨었습니다. 한마디로 다윗의 반응은 ‘뭐 이런

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발이 그렇게 한 것입

놈이 다 있나’였습니다. ‘이게 감히 나를 무시

니다. 다윗을 무시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

해? 다 죽여 버리겠어!’

의 분노를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우 리 자신조차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할

2. 다윗의 분노 우리도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을 만납니 다. 배은망덕한 사람, 은혜를 모르는 경우 없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이성의 기능이 멈춰버 리는 것 같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 생각 도 나지 않습니다. 다윗이 딱 그랬습니다.

는 사람, 대화라고는 전혀 통하지 않는 꽉 막 힌 사람, 사람의 진심을 무시하고 자신의 잣 대로 평가해버리는 사람, 은혜 혹은 친절을 베풀지 않고 사람의 자존심과 마음을 무너 뜨리는 무례한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 런 사람을 만날 때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보복입니다. 특히 무시당하고 모욕을 받고 부 당한 대우를 받으면 울화가 치밉니다. 되갚아 주고 싶습니다. 똑같이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르는 청년 사백 명을 무장시킵니다. 그들을 데리고 도에 넘치는 보복을 하기 위해 달려갑 니다. 열이 머리끝까지 뻗친 다윗은 요샛말로 뚜껑이 확 열린 상태였습니다. 이때 그 뚜껑

보복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 다윗 앞을 아 비가일이 무릎을 꿇고 막아섭니다. 아비가일 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사울의 길을 걸었을 것 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했던 다윗이었지만 지금은 분노하고 있는 자아로 충만해 있습니 다. 엔게디에서 다윗은 사울 내면에 있는 거 룩함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었지만 지금 그 의 눈에는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 윗이 사울이 되려는 찰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십니다. 우리는 그 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경청하지 않 으면 탈선합니다. 그리고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을 닫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3. 아비가일의 아름다움 사울에게는 잘 참았던 다윗이 나발에게는 참

순수하고 신실했던 형제가 어느 순간 능글맞

지 못합니다. ‘나쁜 새끼, 죽여 버리겠어. 다 죽

고 탐욕이 가득한 모습의 어른이 되어 있거

여 버리겠어.’ 뚜껑 열린 다윗은 앞뒤를 분간

나, 참하고 아름다웠던 자매가 어느 순간 독

하지 않고 사울처럼 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거만한 사람이 되어 있는 모습을 우리는

위기는 생각지 않은 때에 생각지 않은 방식

자주 목격합니다. 한 순간의 탈선에서 돌아오

으로 찾아옵니다. 다윗은 전혀 이런 일이 일

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다윗도 그

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분노가

렇게 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은

터져 나오는 것은 대부분 우리 속에 있는 상

사울이 되려는 다윗을 막아섰습니다. 아비가

처를 건드릴 때입니다. 다윗은 가정에서 막내

일은 다윗 안에 있는 거룩함을 일깨웠습니다.

로 무시당하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사울은 지

육신대로 행하려 하는 다윗 안에 있는 사울

금 자신을 떠돌이 개 취급하며 잡아 죽이려 하

을 잠재우고 다윗 안에 있는 선함을 일깨웠습


말씀산책

니다. 다윗을 일깨워 그가 하나님을 바라볼

점에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왔습

수 있게 했습니다. 다윗의 신분과 하나님이

니다. 다윗은 어리석은 자 나발에게 화가 났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지만, 아비가일은 나발은 어리석은 자이므로

아비가일은 외모만이 아닌 속사람의 아름다

그리 화내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움을 지녔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울 뿐만 아 니라 지혜로웠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 아비가일은 분노에 지배당하고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우리는 아비가일의 말에서 우리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 자신을 어떻 게 다루어야 할지 배우게 됩니다. 어리석고 교만한 사람과 맞서는 것은 그와 똑같아지 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은 이런 어리석은 자를 만나거든 피하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잠 17:12). 분노가 우리를 사로잡아 괴물로 만들 려고 할 때 우리는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실 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이 어떻게 침몰의 구덩이를 벗어날 수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일단 멈춤. 아비가일은 급히 음식을 준 비해 다윗에게로 갑니다. 그리고 다윗을 만 나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 서”(삼상 25:24). 분노가 우리를 뒤덮을 때는 일단 멈춤 신호를 지켜야 합니다. 분노가 지 시하는 말이 아닌 다른 음성을 듣기 위해서 지요. 둘째, 다른 관점으로 보기. 아비가일은 지 금의 황당하고 분노가 일어나는 상황을 다 른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다윗을 돕습니다. “그는 나발이란 이름 그대로 어리석고 미련 한 사람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다른 관

뜻을 구하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다윗 은 왕이 될 것이므로, 지금 순간적인 분노 때 문에 왕이 될 미래에 흠집을 내지 말라는 것 입니다. “이제 곧 주님께서 장군께 약속하신 대로 온갖 좋은 일을 모두 베푸셔서 장군님 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워 주실 터인데, 지금 공연히 사람을 죽이신다든지, 몸소 원 수를 갚으신다든지 하여 왕이 되실 때에 후 회하시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 시기 바랍니다”(삼상 25:30-31). 우리가 무엇 인가에 홀린 듯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려 할 때, 우리가 누구인지를 상기하는 것은 대단 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 순간 의 분노로 불살라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소중 하니까요. 넷째, 돌이키기.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 고 돌이킵니다(삼상 25:32-34). 우리는 아비 가일 같은 사람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발은 듣지 않았기 때문에 파멸했 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들었기 때문에 구원 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아비가일의 지혜를 듣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요? 아마도 다윗은 그 놈의 양고기 몇 조각과 포도주 때문에 사람들을 학살한 치졸한 사람 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아

소리 지음


24+ 25

말씀산책

비가일 같이 다가오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들어가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을 때 용감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마십시 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세요. 또한 우리는 아비가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비가일의 지혜와 아름다움은 사울로 변해가는 다윗을 멈추게 했으며,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과 내면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다시 일깨우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 안에 있는 악 을 부추깁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마귀가 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분노하게 하고 편을 가르게 하며 보복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아비가일 같은 이들은 다릅니다. 비록 그들이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 때라도 사람들 안에 있는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화평케 하 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악과 악이 부딪쳐 충돌할 때에 그 사이를 막아서서 사람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악인 은 사람들을 요동케 하여 그 안에 있는 악과 분노를 일깨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들은 사람들 안에 있는 거룩함과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일깨웁니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그 작은 것들을 통해 우리의 통제력을 빼앗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하며, 악한 감정에 붙들려 소명을 놓치게 만듭니다.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에 퍼져 전체를 부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은 공동체에 작은 악을 허용할 때 전 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였지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요? 그 작은 것들은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엎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 작은 것 이란 우리의 취미활동, 여가시간에 하는 게임과 검색, 좋아하는 물건과 액세서리, 별 로 해로워 보이지 않는 잡담과 스킨십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작은 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를 아 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액세서리들은 그리 큰 것이 아닙니다. 빛나는 보석, 작고 영 롱한 진주, 센스 있게 목에 두른 스카프 같은 것들이죠. 주님도 작은 일에 충성된 자 가 큰일에도 충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일은 우리의 인생을 파멸 시키기도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게 만들기도 한답니 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작은 일은 무엇이며,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할 작은 일은 무 엇일까요? “아비가일, 도와줘요!”


지금 다시, 헌법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개헌을 위하여 - 헌법 여섯 번째 이야기 -

정한신 ◆ 부산대94

소리 지음

IVF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아내(한은 정, 동아대 99학번)와 두 아들과 더불 어 성숙하는 가정을 꿈꾸며 살고 있 다. 캠퍼스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으 며, IVF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기획연 구 위원이자 ‘일상학교’ 대표 겸 프로그 램디렉터다. ‘일상학교’의 법/제도 과정 의 일환으로 “전 국민 헌법 읽기 프로젝 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속 기획 강 좌 “대한민국 헌법을 말하다”를 기획하 여 진행하고 있다. peacemaker99@ hanmail.net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일에 헌법 개정을 위

현행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된 9차 개정헌법이

한 국민투표가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 만약 내년에 개헌이 된다면 10차 개정헌법이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개헌

된다. 헌법은 현실을 규율하는 것이고 현실은

을 공약한 바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

부터 여러 차례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이 지나면 헌법과 현실간의 간격이 벌어지게 된

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아울러 국회 헌법

다. 변화된 상황에 따라 헌법도 수정되어야 하

개정특별위원회도 2018년 2월말까지 개헌안을

기에 헌법 개정은 필요하다. 1987년 헌법이 민주

도출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논의를 진행 중이

화 시대를 열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사

다. 이에 사회의 각계에서도 헌법 개정안에 대

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에 맞는 정치 체제

한 논의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어느 때

를 새롭게 구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다 온

보다도 개헌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고 논의의

전히 보장하며,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미래

내용도 구체적인 만큼, 지금부터라도 개헌의 쟁

를 대비하는 측면에서도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점들을 파악하고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는 점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26+ 27

지금 다시, 헌법이다

헌법의 개정 절차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 또는

남용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국회의원은 헌법 개정안을 발의(제안)할 수 있

미국의 4년 중임 대통령제의 경우, 첫 임기 동안

는데,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거쳐야 하고, 국회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책임을 선거를 통해

의원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함에는 재적의원 과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임제에 비해 대통령에

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개정안은 20일 이

게 더 큰 정치적 책임성을 부과할 수 있다.

상 국민에게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

이원정부제는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대통령

개정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과 의회에서 선출되는 총리에게 집행권이 분산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국회가 의결한

되는 정부형태이다. 대체로 이원정부제의 대통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회부해야 하며, 헌

령은 외치를 담당하고 총리는 내치를 담당하며,

법 개정은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대통령은 의회해산권을, 의회는 내각불신임권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확정된다. 대

을 통해서 서로를 견제한다. 이원정부제는 권

통령은 국민투표 결과를 통보받은 즉시 공포해

력을 분점함으로써 대통령의 독재나 권한 남용

야 한다.

을 견제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총리의 소 속 정당이 다를 경우 심각한 정치적 교착 상태

그렇다면 제10차 헌법 개정의 주된 쟁점은 무

에 빠지고, 양자의 정당이 같을 경우 대통령의

엇일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정부형

권한이 막강해져서 이를 견제하기 어렵다는 문

태, 지방분권, 국민 기본권을 3대 의제로 설정

제가 발생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하고 개헌 논의를 진행 중이다.

입장에서는 보통 의회 선거 주기와 대통령 선거 주기를 일치시켜 책임성을 보완하고, 국회 권한

우선 정부형태에 대한 논의는 권력분립 원리

을 강화하며, 총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

의 구현 형태에 관한 것으로 대통령제, 의원내

여 대통령에 대한 권력집중 문제를 해결할 수

각제, 이원정부제 등을 의미한다. 현행 헌법상 5

있다고 본다. 반면 이원정부제를 도입하려는 입

년 단임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권력이 대통령에

장에서는 집행권을 대통령과 총리에게 분산시

게 과도하게 집중되고,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키는 강력한 헌법적 처방이 있어야 대통령의 권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여 대통령의 권력

력집중과 남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남용이나 권력형 부패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 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해 탄핵 사태에서 확

정부형태에 대해서는 주로 집권 가능성과 정

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

국 운영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이해관

시키거나 견제장치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 국민

계에 따라 논의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지난 국정농단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데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대안적 정부형태로 주

대통령 개인을 제대로 선출하는 것만큼이나 대

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4년 중임 대통령제와 이

통령의 권력을 통제하면서 민주적 정부 운영을

원정부제이다. 대통령제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국민들의

이 가능하지만 대통령의 심각한 실정이나 권력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다시, 헌법이다

정부형태 논의를 정치권에만 맡겨두지 말고

정을 삭제하고, 군인·군무원 등의 국가배상

국민 스스로 각 정부형태의 장단점을 검토하

청구권을 제한하는 규정을 삭제하며, 타인의

고 외국과 다른 우리의 실정에 맞는 정부형태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

를 채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를 받은 국민에 대한 범죄피해자 구조청구권 의 범위를 ‘정신적·재산적 피해’까지 확대하

한편, 제10차 개헌에 관한 기본권 분야의 주

자는 논의도 있다.

된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기본권은 국민의 삶에 직결된 것이지만 개헌 논의에서 상대적

근대 국가의 동원체제를 반영하는 ‘근로’라

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개헌의 역사를

는 용어 대신 ‘노동’이라는 용어를 쓰자는 논

살펴보면 주로 권력자들의 정권 연장을 위한

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명시, 파

개헌이거나 권력구조에 관한 개헌에 치중하

업 등 단체행동권을 포함하여 공무원의 근로

여 상대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소홀했

삼권을 강화하자는 논의 등은 노동 기본권과

다. 이번 기회에 87년 헌법에서 제대로 규정

관련하여 토론되고 있다. 현행 헌법에 규정되

하지 못한 기본권들과 그간 헌법재판소 결정

어 있지 않은 기본권으로서 생명권을 명시하

과 학계의 노력으로 새롭게 규명되고 있는 기

고, 자연재해나 전쟁·사고 등 위험으로부터

본권들,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본권들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권을 기

을 개정헌법에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

본권으로 신설하자는 논의도 있다. 정치적으

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로 박해받는 자(정치범·피난민 등)가 외국에

기본권 관련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보호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 망명권을 기본 권으로 신설할지 여부도 문제되고 있다. 특히

우선 헌법 제11조의 평등권 규정에서 ‘누구

알 권리,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정보문화향유

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권, 국가의 정보격차 해소 의무 등을 내용으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차별금지 사유

로 하는 정보기본권을 신설하자는 논의는 정

에 ‘인종’, ‘언어’, ‘장애’같은 차별금지 사유를

보 사회의 발전에 맞춰 매우 활발히 이뤄지고

추가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이는 우리 사

있다. 기타 현행 헌법상 해석을 통해 인정되

회의 구성원들이 다양해지고 있는 점과 지속

던 사상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소비자권, 보건

적인 차별이 이뤄지고 있는 부분을 헌법에 반

권 등을 명문화하자는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영하려는 논의이다. 또한 현행의 평등권 조항 들 외에 ‘양성 평등 조항’을 별도로 신설하고,

개헌은 바로 나와 우리 미래 세대가 살아가

임신·출산·양육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공

는 국가 공동체를 새롭게 구성하는 중대한 과

직 진출 등에서 남녀의 동등한 진출 기회를

업이다. 개헌이 권력자들만의 것이 되지 않

보장하는 규정을 명시하자는 논의가 있다. 이

도록 치열하게 토론하고 숙고하며 합의를 이

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에 의

뤄내야 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

한 차별 문제를 강조하고 평등권을 실질화하

한 개헌을 위해 다시 한 번 힘과 지혜를 모아

자는 것이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

야 할 때다.

소리 지음


28+ 29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

허 대리 사랑받는 딸, 여동생, 그리고 아내라는 이 름으로 살아가는 서울살이 3년차 직딩이 자 새댁(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 용합니다.)

회사에서 신입직원을 뽑을 때 이력서를 본다. 한번은 우리 회사와 인 연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자기소개서의 글귀가 인상 깊어 그 내 용을 따로 메모해 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출근한 신입직원이 그 자기소개서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외 대학의 입시 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대학을 못 가게 됐다고 한다. 이것 저것 시도하다가 적지 않은 나이에 우리 회사 신입으로 지원했다. “회사 에서 일하게 되면 성실하겠고, 성장하겠고, 또 성공하겠다”고 썼다. 그 글귀가 내 맘에 참 와 닿았다. 29살의 나는 무엇인가 쌓아왔다는 착각에 당당했던 것 같다. 저 직원은 경력도, 대학 졸업장도, 사실 파릇한 젊음 도 없지만,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회사인 이곳에서 성장하고 성공하겠 다고 이야기한다. 신선하다. 아, 오늘따라 이 글귀가 너무 신선하다. 나 에게는 없는 청춘의 패기에 살짝 당황했다. 성실, 성장, 성공. 생각해본 다. 아…. 나는 우리 회사에서 감히 성공을 꿈꾼 적이 있었나? “스물아홉 살. 스물아홉 살이 참 위험한 나이죠? 사회생활을 5년 정도 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다 알 것 같은 나이죠. 근데 앞으로 펼쳐질 엄청난 수업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건 마흔둘이 되어야 또 알죠.”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 22회 中)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평소 즐겨듣는 팟캐스트 진행자의 한마디에 크게

요즘 청년들은 전문직을 선호한다. 공무원 시험

공감했다. 실제로 내가 29살에 저런 생각을 했기

도 몇 년씩 공부한다. 이맘때쯤 되면 수험생을 위

때문이다. 29살에 직장생활 5년차, 청년부 회장 2

한 기도와 취업준비생들의 각종 시험 합격을 위한

년, 이제는 그만두어도 될 셀 리더. 서른이 내일모

기도들이 들려온다. 교회 청년부에서 매년 얼마나

레이고 사회생활도 좀 했으니 내 인생은 이미 결정

챙기고 기도하는가? 그러나 그것만이 가치 있다고

되어버린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20대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에는 중대한 시험

에 가진 직업을 정년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이 많기

한 번 쳐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도 하니까. 본격적인 인생수업은 어쩌면 이제 시작

그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사람들

이겠지만, 저 시절에는 그 뒤에 펼쳐질 엄청난 수

도 귀하고 멋지다. 20대는 학벌이 참 중요했는데

업에 대해서는 정말 몰랐다.

30대는 경력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30대에 경력 없이 학벌만 있는 친구들도 꽤 많다.

“하기 싫어야 직업이지, 좋으면 취미지.”

이 중에 누가 제일 성실했을까? 모두 다 성실했다.

(유병재의 블랙코미디 <직업> 中)

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심히 살았 다. 모두가 수고했고 그래서 각 사람의 모든 삶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는 ‘내가 어떤 일이든 꿈

아름답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 성실은 무엇이든

꿀 수 있다’는 뜻도 있지만 ‘내가 하기 싫은 일도 할

할 수 있는 용기가 포함 되어있을 것이다. 하기 싫

수 있다’는 뜻 역시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직

은데 해낸 것이 직장에서의 견딤 일 수도 있고, 길

장을 구할 때 하기 싫은 일을 택하라는 것은 아니지

어진 수험기간에서의 재도전일 수도 있겠다. 누가

만, ‘꼭 이런 것이어야만 하고 여기여야만 하는 회

우리 인생을 직업이나 회사의 이름으로 결정짓고

사가 과연 있을까?’하는 이야기다.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 든지 이후의 성장과 성공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

사회에서 회사가 가지는 브랜드 가치가 내가 다니

법대로 허락해주신다고 믿는다.

는 회사를 부러워하거나 우러러보는 정도가 아니 길 바란다. 혹은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 핵심동기가

사실 글을 쓰는 나도 직장생활 7년차면 뭐 좀 되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지

줄 알고 글을 쓰긴 했다. 마흔 다섯 살쯤 생각해보

않기를, 우리 삶의 멋이 그것으로 결정되지 않기를

면 지금의 서른둘 허 대리가 얼마나 웃길까? 너무

바란다. 멋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보면

심각하지 말자. 오늘 하루 그냥 성실하게 걸어가련

어떨까? 내가 오늘 하루 주어진 삶에 성실했다는

다. 성장은 하나님이 시켜주시고 성공도 주님이 거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상 가운데에서 노력

두시는 것이므로. 지난 1년 동안 나의 글을 읽고 공

했고 신앙의 양심에 근거하여 애썼던 그 부단한 움

감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직임과 고민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그 수 고를 다 아시지 않을까?

소리 지음


30+ 31

우리 결혼할까요?

손님, 음악, 꽃 호욱 ◆ 연세원주04 원주 IVF 6년차 간사이자 하루 빨리 한량으 로 살고 싶은 1인.

양가 부모님을 시작으로 우리 집에 손님이

손님을 초대할 때마다 은경이에게 고맙다.

찾아오기 시작했다. 은경이의 어릴 적 친구

은경이는 내 지인들을 자신의 손님으로 생각

들, IVF 친구들, 동기 자매간사들이 다녀갔

해준다. 그리고 웬만하면 밖에서 만나지 말

다. 그리고 내 친구들과 IVF 학생, 학사들도

고 집으로 초대하라고 먼저 제안한다. 여행

우리 집에 와주었다. 우리 집을 찾아주는 것

중인 내 친구 부부에게 자고 가라고 말할 정

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손님들이 찾아오실

도였다. 그리고 내가 계획한 음식의 가짓수

때마다 휴지를 선물해주셔서 우리 집은 휴지

보다 항상 한 개 더 하자고 말한다. 선뜻 그렇

공장이 되었다. 당분간 휴지 걱정은 없겠다.

게 말해줄 때마다 난 참 좋은 사람과 결혼했 다는 생각이 든다.

양가 부모님이 오실 때만 해도 어떤 음식을 대접해 드릴지 일주일 동안 고민했다. 부모

결혼 전, 우리는 ‘손님, 음악, 꽃’ 이 3가지가

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못 드시

항상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는지, 메인 요리를 무엇으로 할지, 반찬을 몇

그리고 이 약속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5

가지를 할지, 무엇 하나 쉽게 결정하지 못했

월에 1000원 주고 산 아름다운 시네신스 한

다. 인터넷을 찾아보며 레시피를 저장해 두

줌이 식탁 위에 놓여있는데 어느새 우리의

고, 그것을 봐가면서 요리했다. 덕분에 요리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은경이가 선곡하는 음

하는 시간도 많이 걸렸다. 그래서 손님이 오

악은 때와 분위기에 잘 어울리고 귀와 마음

는 날 아침이면 항상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을 잘 감싸준다. 그리고 이곳에 우리와 손님

이제는 둘 다 제법 능숙해졌다. 자신감이 생

까지!

겨서 메뉴 선정이 빨라졌다. 덕분에 장보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손님을 초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우리의 사랑스

대한 사람이 좀 더 요리에 힘을 쏟곤 한다. 우

러운 공간에 누군가가 와서 밥상을 누리고

리에게도 나름 패턴이 생긴 것이다.

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얼마 전, 우리 집을 다녀간 손님이 우스갯소리로 “너무 편안해


우리 결혼할까요?

서 자고 갈 뻔 했어요”라고 카톡을 남겨주었다. 초대

워지고 있다. 작디작은 시네신스가 우리의 일상을 든

한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든히 지켜주고 있다. 우리 주변의 벗들과 함께하는 삶 을 지향할 때 평범한 일상은 의미가 되고, 마음에 오

그러나 앞날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아이 낳

래 기억되는 게 아닐까···.

으면 이럴 정신이 있을까? 간사 그만두고 다른 밥벌 이를 하다 보면 이런 삶이 가능할까?’ 나도 걱정이 된

“지금 행복하자.”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언젠

다. 시절이 바뀌어 우리에게도 삭막한 계절이 온다면,

가 찾아온다는 빛날 미래보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았

꽃 한 송이에 감탄할 여유도 없고, 음악에 몸을 맡길

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배워가

지금 행복하다. 아내와 함께 앞으로도 꿋꿋이 이런 선

고 있다. 살 만한 일상이어서 손님을 초대하는 게 아

택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소리 지음

니라, 손님을 초대하기로 결정한 순간 일상이 아름다

단순한 삶, 가벼운 집 이은경 ◆ 숙명여대05 음악, 공연, 영화를 좋아해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IVFMEDIA에 정착한 영상팀 간사

원주에 온 지 9개월이 되어간다. 25년 이상을 서울에

는 이 때문이었다. 일이 일상을 지배하고 해야 할 일

서만 살다가 결혼하고 강원도로 오다니…. 나의 인생

에 끌려다니는 삶의 모양을 바꿔보고 싶었다. 물론 여

에는 없는 시나리오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낯

기서도 여전히 야근을 하고 미디어사역으로 2~3주에

선 풍경이 많았다. 우선 밤 9시면 문 닫는 상점이 많

한 번씩 서울을 오가며 지낸다. 하지만 적어도 삶의

다. 시내를 제외하고 동네 슈퍼나 가게들은 해가 지

호흡이 다른 것만은 확실하다. 느리고 허전한 이곳이

면 문이 잠겨 있다. 밤 10시 반이 넘으면 터미널에서

아직까진 마음에 든다.

집에 가는 버스가 끊긴다. 배차 시간 10분은 기본이 다. 서울에서는 2~3분에 한 대씩 오고 새벽 1시에도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곤 했는데, 원주에서는 하루가 빨리 마무리된다. 그래서일까? 하루의 변화를 온몸 으로 느낀다. 서울을 떠나 원주에서 신혼을 시작하기로 한 이유

오늘은 뭘 먹을까? 메뉴를 정하고 간단히 장을 본다. 손질하고, 데치고, 볶고, 끓인다. 이전에는 몰랐다. 한 끼의 식사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수고를 해야 하는 지, 요리시간보다 식재료를 다듬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만든 음식을 통해,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내가 건강


32+ 33

우리 결혼할까요?

해지는 것 같다. 빨래를 개고, 집안 구석구석을

다. 뭔가를 이루고 성취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쓸고 닦으며 여기저기 흐트러진 물건을 제자

우리 주변의 물건, 주변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

리에 둔다. 먼지가 이토록 성실하게 쌓일 줄이

기고 돌보며 가꿔가고 싶다. 다만 우리의 ‘주변’

야! 걸레질을 하며 우스갯소리로 “먼지처럼만

이 계속해서 넓어져 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

살고 싶다” 말하기도 했다. 살림을 통해 사람답

게 함께해가는 공간과 사람들도 인생의 손때

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가 묻어 윤이 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며 집에 물건을 많이 두

결혼 후 가장 좋은 점은 이러한 생각을 남편

지 않기로 약속했다. 소유하고 보관하기보다

과 나누고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겁도 생각

는 나누고 비워가자고 다짐했다. 화려하고 커

도 많아 혼자서는 막연해 했을 일들을 남편과

다란 집은 아니지만, 남편과 함께 꾸린 집을 소

꿈꿀 수 있어 행복하다. 물론 현재 이러한 삶이

중하게 돌보고 가꾸는 일을 통해 분명 난 성장

가능한 이유는 간사라는 직업의 특수성과 아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낡

직 아이가 없고 식구가 적기 때문임을 알고 있

았음에도 여전히 깨끗하고 반질반질 윤이 나

다. 언젠가는 다시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 찾아

는 공간을 본 적이 있는가? 무심코 지나간 그

올 테지. 그러나 그때의 건조함을 끌어안고 꿈

곳은 사실 누군가가 오랫동안 공들여 길들이

꾸고 싶다. 가벼운 집, 단순한 삶의 풍요를 맛

고 가꿔온, 성실과 돌봄의 결과라는 걸 이제야

보는 꿈 말이다.

깨닫고 진가를 알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 스레 남편과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

에필로그.

<소리>를 통해서 우리 부부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소리>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재밌게 잘 살겠습니다! - 호욱 아직 감자탕과 뼈해장국 논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서운하고 황당하 고 사과하고 화해하며 살고 있네요. 좋은 선물을 준 <소리>와 독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이은경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치즈가 좋아. 그래서 많아. 치즈 등갈비 만들기! 오한웅 ◆ 서울대99

소리 지음

한마리곰미디어 대표이자 PD. DIA TV 크 리에이터. IAM 카드게임 개발자. 창의적이 면서 좋은 영향력을 주는 미디어들을 만들 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중이다. 사람 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함께 보드 게임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다.

오랜만에 만난 고마운 친구. 맛있는 것 사주

냉장 제품이 저 가격이면 싸다는 생각에 냉큼

겠다고 큰맘 먹고 내가 좋아하는 치즈 등갈비

사 왔다. 모차렐라 치즈 한 봉지와 함께.

집을 찾아갔는데, 세상에! 등갈비 집은 어디 가고 그 자리에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다. 한

치즈 등갈비를 파는 가게에 가면 보통 치즈량

때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치즈 등갈비였

을 손님이 선택할 수 있는데, 치즈 덕후인 나

지만, 유행이 지나고 나니 버티기 힘들었던 걸

는 이것이 항상 고민이었다. 치즈를 적게 넣으

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유행이 빨리 지나

면 맛이 덜하고, 많이 넣으면 비싸고. 그래서

갈까’하는 생각을 하며, 하는 수 없이 주위에

이번에는 넣었다. 치즈를 아주 많이.

있는 곱창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치즈가 다 녹고 드디어 완성! 흐흐흐, 치즈를 며칠이 지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장 정

듬뿍 묻혀서 한 입. 치즈 등갈비 집에서 팔던

육점에 붙어 있는 세일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좀 덜 자극적이다. 만 드는 데 핏물 빼는 시간까지 포함해 두 시간

“국내산 돼지 등갈비 500g에 만원!”

정도는 걸리지만, 가끔 생각날 때 해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치즈 걱정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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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Chef’의 오늘 뭐 먹지?

* 치즈 등갈비 재료 : 등갈비 500g, 떡볶이떡 한 줌, 모차렐라치즈, 대파 1대, 양파 1/2 개, 월계수 잎, 통후추, 맛술, 고춧가루, 간장, 고추장, 물엿, 다진 마늘 1스푼, 생강술, 후추

우선 등갈비를 물에 담가 핏물을 뺍니다. 1시간 정도 담가 놓으세요.

핏기가 빠진 등갈비를 냄비에 넣고, 대파, 양파, 월계수 잎 5장, 통후추 1 스푼 정도를 넣고 물을 충분히 부은 뒤 끓여주세요. 물이 끓고 나면 맛술 을 조금 넣고 약한 불로 줄여 40분 정도 올려놓습니다.

고기가 삶아지는 동안 양념장을 만들게요.

고춧가루 2큰술, 고추장 2큰술, 간장 1.5큰술, 물엿 2큰술, 다진마늘 1.5큰 술, 맛술 2큰술, 생강술 1큰술을 넣고 잘 섞어 주세요.

잘 익은 등갈비를 프라이팬에 놓고 양념장과 함께 등갈비 삶았던 물(육 수)을 두세 국자 정도 넣어 볶아 주세요.

어느 정도 양념이 고기에 베었다 싶으면 떡볶이 떡을 넣고 떡이 익을 때까지 볶아 주세요.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깨끗한 팬을 더 준비해 반쪽엔 등갈비와 떡을, 나머지 반쪽엔 모차렐 라 치즈를 놓습니다.

모차렐라 치즈의 양은 먹는 사람의 치즈 덕력에 맞추면 됩니다. 일반인 은 100g 정도면 되고요, 전 200g 정도 넣은 것 같네요.

소리 지음 아, 체다 치즈도 한 장 찢어 넣었군요. 여하튼 약불에서 치즈가 녹을 때까지 가열하면 완성! (프라이팬 뚜껑을 덮으면 치즈가 더 빨리 녹아요.)

TIP. 고기 삶을 때 넣는 월계수 잎은 고기 냄새를 없애 주는데요, 없 으면 집에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들을 넣어 주세요. 생강 이나 마늘도 괜찮아요.

역시 치즈 등갈비는 비닐장갑 끼고 손으로 먹는 게 제맛이죠! (앗 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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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학사 통신원

일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다! 김성현 ◆ 홍익대05 일본생활 4년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 인가 고민 중이다.

일본에 온 지도 벌써 4년차입니다. 3년 전 늦겨울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는 데 벌써 일본에서 맞는 네 번째 겨울이 다가오네요. 제가 일본에 오게 된 계기를 얘기하고 싶은데요. 졸업 직전, IVF를 통해서 참가했던 GLT(지금은 EGG)프로그램을 수료하며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생활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 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해외로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확신이 있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 이외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 IVF를 통해 배운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 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그런 제게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현재 이곳 도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일을 시작 할 때는 어떤 시스템을 다루게 될지 몰랐지만, 지금 제가 주로 다루는 시스템 은 연금이나 퇴직금 등 일본인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일입니다. 사실 그다지 재미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재외 학사 통신원

일본 생활의 편한 점 사실 저의 경우, 사회생활을 일본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에 비해 무엇이 좋고 나쁜지 정확히는 모를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좋은 점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일본은 한국보다는 야근이 적은 것 같습니다. 물론 바쁠 때는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적 어도 일이 없는데 상사 눈치를 봐서 퇴근을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신입사원 때부터 상사에게 자주 듣는 말은 “할 거 다 하면 빨리 집에 가라”였습니다. (야근을 하게 되면 야근수당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늦게까지 일하면 효율이 제대로 안 나온다는 인식 일본 도쿄의 모습

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혼자서 밥을 먹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입 니다. 요즘은 한국도 많이 바뀌었다고는 들었습니다. 사실 혼자 살면 퇴근 후에 집에서 뭔가를 해먹기가 상당히 귀찮기 때문에 밖에서 먹 고 들어가고 싶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먹기에는 여 러모로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가고 싶은 식당이 있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저녁에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더라도 혼자 먹는 사람이 꽤 있는 편이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눈치 보 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일본 생활의 불편한 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한국에 비해서 일본은 개인주의가 강한 편입니다. 저도 일본에서 몇 년째 생활하다 보니 너무 많이 익숙해져서 제가 해야 하는 일, 제 가 책임져야 하는 일 외에는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 습니다. 또한 아무래도 외국인 노동자이다 보니 생기는 불편이 있긴 합니다. 한번은 설계 팀이 작성한 설계서를 바탕으로 저희 팀이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 밑에 있는 한국인 팀원이 설계서 를 가지고 코드를 작성하는데 설계 담당자가 조건문을 틀리게 작성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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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학사 통신원

해 놓은 겁니다. 그래서 “A가 아니고 B지 않

나도 편하게 잘 지냈지만 일본에 오기전 생각

느냐”라고 물어봤는데 “원래가 맞다”며 박박

했던 선교적 삶에서는 많이 멀어졌다는 걸 절

우기는 겁니다. 재차 확인해봤지만 아무리 봐

실히 느낍니다.

도 이상해서 벤다이어그램까지 그려가며 다 시 설명을 했는데, “일본인이 아니니까 이해

한국에서는 IVF공동체,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할 수 없을 거다”라고 하니 할 말이 없더군요.

격려 받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의 친구들

제가 일본인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 답답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현지교회

했습니다. 한국이었으면 본인에게 직접 꼬치

를 다니기는 해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지 않

꼬치 따졌을 텐데 외국인 노동자이다 보니 아

고 다른 사람의 삶에 관여하기 꺼려하는 일본

무래도 좀 눈치가 보여서 저에게 우호적인(?)

인의 특성 상, 권면하고 자극을 주는 사람이

다른 일본인 직원을 통해서 조정해야 하는 경

없습니다. 그래서 진로와 삶의 방식에 대하여

우도 있었습니다.

이래도 되는 건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마땅히 출구

그 외에 아예 저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은

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연중에 깔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 분의 일본인은 최소한 겉으로는 친절하며 자

그러던 중 저와 함께 교회를 다니고 IVF활동

기가 맡은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합니다. (물

을 하던 형님 한 분이 이전부터 일본에 관심이

론 어디서나 예외는 있습니다.) 이제는 일을

있었는데 결국 일본으로 취업해 오게 되었습

시작한 지 몇 년 이상 되었기에 눈치가 생겨서

니다.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있어 일본으로 올

제 스스로 그럴 일이 생기기 전에 차단할 수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치 않았는데 감사하게

있게 되었지만 이전에는 별로 인식하지 못했

도 올해 취업이 확정되었습니다. 앞길이 잘 보

던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불편함을 자각

이지 않았는데 함께 격려해갈 동료가 생기는

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게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의 삶

여태까지는 일본에서 기반을 다지는 시간이 었던 것 같습니다. 4년 동안 일본 사회에 잘 적

누군가 “일본 생활이 할 만하냐”고 물어보면

응해서 오히려 개인주의적인 생활패턴이 굳

저는 매우 만족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지고 초심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내년부

그것은 일상생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

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위에 씨를 뿌리

다. 일본에 오기 전에는 막연하게나마 많은 꿈

고 잎이 자라나는, 이곳 일본에서 하나님나라

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배워왔던 것

를 구체적으로 실현해가는 해가 되기를 소망

들을 적용해가며 일본에서도 한국에서와 같

합니다.

이 동일하게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겠다고 말이죠.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 된 지금 저의 삶을 돌아보면, 제 한 몸은 너무


함께 이어 달리기

지역문화를 바꾸기 위한 문화 및 미디어활동가

소리 지음 장익수 ◆ 인하대90 인하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성공회대학교 아시아시민사회지도자과 정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지역문화 활 동가 및 미디어 활동가로 일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만난 하나님을 통해 자신이 아 닌 타자를 위한 삶을 살아가려 하는 남양 주 시민이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내 인생을 바꾼 일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IVF를 통 해 하나님을 만나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을 하나님나라로 보 낸 일이다. 두 사건은 내 삶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나였다. 그런 나를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평생 살아보겠다’ 고 다짐하게 만든 것이다.

결혼 후 서울 생활을 접고 남양주라는 도농복합도시로 이사했다. 서울과 분위기가 무척 달랐다. 서울에는 무슨 활동을 하려고 할 때 인재와 시민단 체가 넘쳐난다. 그런데 막상 남양주로 내려오니 지역 활동을 추진할 때 어 려움이 많았다. 처음으로 정을 붙인 곳이 ‘화도사랑’이라는 온라인 커뮤니 티였다. 그곳에서 자원봉사 교사를 구한다는 공지를 보고 신청했다. 담당 과목은 영어였다. 야학교사에 대해 간직해왔던 꿈을 우연히 그곳에서 시 작했다. 소소하게 시작하여 공부방 학교장까지 책임을 맡아 아이들과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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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어 달리기

‘남양주 교복문화제’의 모습

구가 되어주는 교육 활동을 했다. 화도사랑 공부방은 누군가의 필요가 있 는 일을 추진할 수 있었던 삶의 자양분이었고 이 활동을 시작으로 살고 있 는 지역 문화를 바꿔보고자 여러 가지 일을 시도하게 됐다. 그 중의 하나가 지역문화공연 활동가로 지역 문화 공연기획을 하는 일이었다.

남양주에서 추진했던 지역 활동에는 창의체험학습센터, 다산마을학교, 마 을미디어교육 진행 (남양주YMCA연계사업), 다산마을자치연구소, 화도 사랑자람센터(2009년~2011년), 남양주청소년꿈설계멘토단, 역사문화탐 방 프로그램, 세계문화체험부 방과 후 교실(마석초등학교), 소셜미디어 특 강(화도복지회관) 등과 지역청소년 문화제(교복문화제, 송년문화제, 독서 논술토론대회, 청소년UCC영화축제), 아리랑 작은음악회 추진 등이 있다.

지역 내 행사는 관이나 특정 기업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원으로 진행해 왔 기 때문에 축제에 관련한 제반 재정은 관에서 지원해 주는 것으로 인식하 는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동원된 형태의 시민들만 참여하고, 공연시 간에 참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런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어 시 민들의 실질적 참여도가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져 왔다. 이런 문화적 현상 을 바꿔보고자 지난 2013년 11월 30일, 시민들이 모아준 기금을 바탕으로 전국 최초로 ‘제1회 교복문화제’를 열었다. 현재까지 총 5회의 청소년문화 제를 개최하여 남양주 지역권에 ‘작은음악회’ 및 문화제를 정착시켜 왔다. 작은음악회를 통해 힐링도 하고, 작은 기부금으로는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 을 전달할 수 있었다. ‘화도우리동네작은음악회 기획위원회’에도 참여하여 공연 섭외도 함께 진행했다. 세월이 차근차근 저절로 쌓여지듯이 하루하루 를 좋은 문화공연으로 쌓다보면 원하는 결실을 맺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 이어 달리기

지역운동을 하다보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 없이 많은 갈등이 일어난 다. 가장 중요한 인적 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신경 쓰며 활동하는 것이 필 요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절감했다. 그것 때문에 소중했던 몇 가지 일들을 내려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역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활동력 있게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관계적 요건이 필요하다. 정치권력을 가진 지 역 정치인은 물론 공무원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 정주부 네트워크다. 그들과 맺어온 원활한 관계 덕분에 교복 물려주기 사업 인 ‘남양주교복은행’이 탄생했고, 이는 경기도 조례로 재정되어 모범 지역 활동 사례로 활발히 운영 중에 있다.

지역 활동가로 살아가는 것은 궁핍하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그리 고 나를 위한 행복보다는 이웃을 위한 행복을 우선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러다 보니 가정에 소홀하게 될 때도 있었고, 경제적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자신의 수입을 가지고 십일조를 하려는데, 제비뽑기 했더니 내가 선택되었다며 활동에 보탬이 되라고 후원금을 보내 왔다. 평생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매달 소소한 금액을 “익수야응원해”라는 이 름으로 보내오는 동역자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나를 믿고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에게 늘 감사 한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듯이 지역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그리 스도인으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한다. 우리가 속했던 IVF라는 그룹에 서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웃 을 향해 끊임없이 베푸는 삶을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오늘도 소소히 불어 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누군 가의 안식이 되고,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그런 사람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충분히 잘 살았다 할 것이다.

시민문화촌 - 웹사이트: http://www.culturenvillage.net - E-mail : jangiksu@gmail.com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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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온전히 그대의 것, 포기하지 않는다면.” 김효주◆ 고려대99 여우같은 마누라 1ea, 토끼같은 딸 1ea를 보유한 가장. 풀코스 마라톤을 10번 완주하 면 세계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오 늘도 달리는 중. 좌우명은 “Born To Run.”

사이먼 사이넥은 그의 저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

없는 인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전에 고기를 먹기 위

가>에서 “What보다는 How가 중요하고, 그보다 Why

해서는 어떻게 했을까? 영양 떼에서 한 마리를 격리

가 제일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What”은 마라톤이

시켜서 온 부족이 몰아, 그 영양이 지쳐 쓰러질 때까

다. 이 무식한 짓을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 얘기

지 달리기를 했다는 부족이 있다. 그때는 쿠션 좋은

해보자.

운동화도 없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인간은, 지구상 에서 죽도록 오래달리기를 하기에 가장 좋은 신체구

먼저, 왜 마라톤을 하는가? 3km도 10km도 아니고

조를 가진 종족이라는 말이다.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은

42.195km를 달리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우선 거

60대가 되어도 20대 못지않은 기량으로 마라톤을 할

창하게 인간 존재의 본성과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수 있다. 젊을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운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나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기 위

동이라는 점에서, 조금 오버해서 말하면 인간은 달리

해서가 아닌, 순전히 놀이의 이유만으로 몇 천 명 이

기 위해 태어났다고도 할 수 있다.

상이 달리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뿐이다. 치타나 말 은 인간보다 빠르지만, 몸에 털이 많기 때문에 달리면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이유가 아무리 좋아도, 달리

서 열을 배출하는 능력이 인간에 비해 떨어진다. 인간

기를 하는 건 역시 하나의 개인이다. 때문에 개인적으

은 달리면서 수만 개의 구멍에서 땀으로 열을 배출하

로도 달리면서 얻는 유익이 있어야 취미생활이 가능

며 몸의 온도를 조절하기 때문에 훨씬 오래 달릴 수

하다. 나는 보통 일주일에 2~3번 정도, 하루 한 시간

있다. 러닝머신 위에서 치타를 계속 달리게 하면 폐

정도를 달린다. 10km 정도를 뛰고 나면 상쾌하고 뿌

의 온도가 일정수준을 넘어가면서 달리기를 멈춰버

듯함도 있다. 그런데 풀코스는 평소에 연습할 수 없는

린다는 실험도 있다. 두꺼운 피부나 날카로운 이빨이

거리다. 30km 이상 연속으로 달리고 있으면, 그보다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더 적은 거리를 달릴 때에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 놀라 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흔히 ‘러너스 하이’라고 얘 기하는 극한의 행복감. 기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세 상과 나는 간 데 없고 내 안에 바람만 느껴지도다” 정 도일까. 이때의 상태가 엔도르핀이 많이 분비되어 고 통을 잊게 한다는 학자들도 많다. 확실한 건, 엔도르 핀에 대한 기사를 겁나게 검색하는 것보다는 달리기 를 하는 게 훨씬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풀코 스 마라톤을 6번 완주했다. 뛸 때마다 기록 욕심도 내 곤 했지만 기록과는 관계없이 완주 자체가 스스로 대 견하기도 하고, 42.195km 구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 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을 받는다. 참고로 ‘러 너스 하이’는 다른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경 기에서는 느끼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연구결과도 있 다. 오롯이 나 자신과 하는 운동이고,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으며, 게다가 다른 운동에 비해 비용이 싼 편이 다. 안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제 마라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간단히 얘 기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그대가 완전히 초보라 는 전제 하에, 한 번 뛸 때 3~5km 정도를 80% 정도 의 에너지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뛰어볼 것을 권한 다. 보폭은 짧게, 발바닥 뒤에서부터 앞까지 전체를 쓴다는 느낌으로 밟는다. 그런 자세가 무릎에 무리가 안 가기 때문에 오래 뛸 수 있다. 어깨를 들썩이지 않 는다. 팔은 앞뒤로만 자연스럽게 흔들리게 하고 옆으 로 튀어나가지 않게 한다. 익숙해지면 더 많은 거리 를 더 오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뛰기 전엔 스트레칭 을 땀이 날 정도로 충분히 하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좋은 어플이 많기 때문에 취향에 맞게 이용하면 도움 이 된다. 나는 10km 정도를 천천히 뛰거나 8km 정도 를 빠르게 뛰는 정도가 좋다. 핵심은, 자신에게 맞는 달리기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라는 점이다. 세

상 모든 게 그러하듯이,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으면 달 리기도 발전이 빠르다. 하지만 독학으로 했다고 해서 그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다리근육의 움직 임을 느끼고, 숨소리를 듣고, 땀 냄새를 맛보고, 날아 가는 바람을 보는 그 모든 시간을 즐기면 된다. 몇 백 번을 달려도 처음 달리는 것처럼 새롭다. 또 한 번을 달려도 그건 내 지난 인생들과 온 인류의 달리기들을 다 업고 달리는 것이다.

풀코스에 나갈 때마다 매번 죽도록 힘들고 또 죽을 만큼 행복하다. 인생의 행복은 고통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증가되는 고통을 훨씬 넘어서는 은혜가 찾아 오는 것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 시간씩 달리고 일 년에 한 번씩 풀코스를 완주한다 면 이 세상은 확실히 더 행복해질 것이다.

최근에 난 이상한 경험을 했다. 춘천에서 열리는 마 라톤 대회에서 11km 지점을 지나면서 알 수 없는 음 성이 들렸다. 나는 질문했다. “이번 대회 기록이 어떨 까요?” 내가 아닌 어떤 존재가 내 안에서 말했고, 난 그 소리를 마음으로 정확히 들었다. “넌 네 시간 안에 들어올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때문인지 아 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3시간 58분 45초의 기록으 로 완주했다. 핵심은 기록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았다 는 점이다. 인생도 달리기도 그대 자신도, 온전히 그 대의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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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루터 개혁과 건설에 온 삶을 건 십자가의 신학자

뼛속까지 개혁파인 한 소장 신학자의 제대로 된 루터 신학 입문서!

500년 전 마르틴 루터와 우리 사이에 신학으로 다리를 놓다!

“원고를 읽고는 한참을 울었다. 책상 위에 수북이 화장지가 쌓였다. 추운 겨울밤에 한 동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김남준 | 열린교회 담임목사

“『처음 만나는 루터』를 읽고 나는 감탄했다. 이 명료함은 루터를 꾸준하게 연구해 온 학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상규 | 고신대학교 교회사 교수 김요섭(총신대신대원 역사신학), 이규현(부산 수영로교회) 이승구(합동신학교조직신학), 이찬수(분당우리교회) 강력 추천! 우병훈 | 무선 320면 | 값 15,000원

www.ivp.co.kr


소리가 만난 사람

IVF 사역을 마무리하며, “참 잘했어요!”

IVF에서 25년 동안 간사로서 사역하며 수많은 간사와 학사들에 박태선 ◆ 부산대 86 전선미 ◆ 부산대 86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게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주신 박태선 간사님 부부를 만났습니 다. 게다가 직접 집을 짓고, 손님들을 환대하여, ‘물리적 공간’까 지 베풀며 살아가시는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 <소리>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는 참석하지 않았죠. 겨울쯤 되어서 정신 차리고 신 앙생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다

박태선(이하 태선) 부산대학교 86학번 박태선입니

시 가보니까 종강예배를 드리더라고요(웃음). 수련

다. 졸업 후 현재까지 IVF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회 팸플릿을 전부 들고 와서 그 뒤로는 방학 내내 쫓

IVF와 관계를 맺은 시간이 어느새 30년이 넘었습니

아다녔죠.

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교회 대학부 전도사님이 부산 지방회 IVF 간사여서 저도 자연스럽게 IVF를 알게 되

태선 저희 두 사람은 IVF에서 만나 결혼했어요. 교제

었고, 입학하자마자 함께하게 되었네요.

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1학기 마치고 여름방학 부터였던 것 같아요.

전선미(이하 선미) 저도 86학번이고요, 제 경우에는 1 학년 겨울부터 IVF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하

선미 아니야. 교제를 시작한 것은 10월의 마지막 날이

창완 목사님의 아내인 친구와 미술학부 디자인과를

에요. 가을이었죠.

함께 다녔는데, 그 친구가 IVF를 하고 있었어요. 같 이 가보자고 해서 1학년 2학기 개강예배를 따라갔지

태선 아내가 정확한 날짜 담당입니다(웃음). 햇수로

만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느라 그 뒤로

8년 정도 교제했어요. 그 사이에 한번 헤어져서 1년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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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만난 사람

정도는 그냥 친구 사이로 지내기도 하고, 저는 군대

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5년 동안 하게 됐네요.

도 다녀왔어요. 아내는 졸업하고 나서 1년간 수산대 개척을 함께 하며 전담보조간사(지금의 활동학사)

부산대 사역을 마친 후에는 신학연수로 고신대에

를 하기도 했고요. 22년 결혼생활 동안 딸 셋을 두었

입학했어요. 학교는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특히

습니다. 첫째는 재수해서 대학교 2학년이고, 둘째가

교수님들과 관계 맺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대학교 1학년, 막내는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첫째와

일이 좋았습니다. 교수님들은 학생들과 함께하는 학

둘째는 동아대와 부산교대에서 IVF를 하고 있어요.

풍이나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어요. 밥을 사거나 집에 불러 대접하기도 하시고, 학생들

선미 딸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문제 등으로 고

의 문제 제기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으려 하셨죠.

민하고 어려워하면 계속 IVF를 가야한다고 꼬셨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말이에요. 신학생활을 하

요. IVF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요. 나중에는 딸이 “엄

면서 2년 정도는 가족들과 다함께 천안에서 살기도

마는 나를 대학에 보내려는 거야, IVF에 보내려는 거

했어요.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어

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IVF를 보내려는 거라고 했

요. 부산 지방회의 도움과, 교회사역을 하지 않고 공

죠(웃음).

부에 집중하는 학생에게 지급되었던 목양 장학금 덕 분이에요. 학비가 장학금으로 다 나오는데다가 간사

* 박태선 간사님은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IVF와

월급까지 있으니 충분히 이사를 갈 수 있겠다고 생

함께하며 간사로 섬겨주셨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오

각한 것이죠.

셨는지 궁금합니다. 선미 저희 둘 다 평생 부산에서만 살다가 딱 2년을 바 태선 처음에 간사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아버님이

깥에서 살았던 셈이에요. 하지만 멀리는 못 갔네요.

크게 반대하셨어요. 지금도 교회를 잘 다니지 않는

처음 1년 동안 부산과 천안을 오갈 때는 애들도 3살,

분이라 이해하실 수 없었던 거죠. 군대를 가기 전이

5살로 어렸고, 남편은 집안의 일원이 아니라 손님이

었는데, 간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한마디

된 느낌이 든다며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로 “집을 나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대 후

가 감사하게도 기회가 생겨서 좋은 모양으로 올라

에도 여전히 간사를 할 생각이라고 답했더니 반대

가게 된 것이죠. 신대원은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학

를 안 하셨어요. 먹고 살수는 있겠냐고 하시기에 굶

생들이 없어서 학교가 비어요. 그러면 저희 가족들

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무 말씀 안 하시더

이 신대원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고, 도서관에 앉아

라고요. 그때 반대하셨으면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

서 책도 보고, 수위아저씨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기

에요(웃음).

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 담당했던 캠퍼스는 경성대입니다. 그때는 출

태선 천안에서 보낸 시간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천

신학교로 가서 사역을 한다는 개념이 없었고, 3년마

안으로 이사한 첫해에는 매주 교회를 어디로 갈 것

다 캠퍼스를 바꾸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마침 사역

인지 고민했어요. 지도를 찾아보면서 이곳저곳을 다

자가 비어있던 곳이 경성대였기에 그곳을 맡아 3년

녔는데, 반년 정도 되니까 설교가 아무리 좋아도 공

간 사역하게 된 거죠. 그 다음으로 간 곳이 부산대입

동체가 없다는 점이 힘들더라고요. 아내는 유령이

니다. 부산대 역시 3년간 사역하기로 하고 들어갔는

된 기분이라고 했어요. 때마침 기회가 닿아 용인에


소리가 만난 사람

있는 ‘항상 교회’에서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워

보되는 경향이 있었어요.

낙 건강한 교회였고 목사님도 참 좋으셨어요. 목회 를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배우기도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저희 큰아이가 학교를 그만 두기로 결정했을 때에요. 혼자서 일주일 내내 마음

복귀한 후에는 서부산 대표간사로 섬겼습니다. 당

을 졸여야 했거든요. 중요한 타이밍에 의논할 상대

시의 상황이 쉽지는 않았어요. 동서부산에서 통합에

가 없다는 점이 무척 힘들더라고요. 집안을 전부 혼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기였거든요. 지난 3~4년

자서 끌고 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의 집으로 이

동안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통합에 대한 이야기를

사하던 첫 해에는 아직 집의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

해왔다고 했어요. 간사들의 사역적인 모델을 어떻게

데 공사를 하다가 말고 들어가더라고요. 저는 다른

할 것인가, 이사회를 어떻게 묶을 것인가, 학사회는

학사님과 함께 새벽 두시까지 작업하며 나머지 공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온 거죠. 이사들도 지쳐

사를 마무리해야 했어요. 그 다음 해에는 ‘이 동네에

있고 간사들도 지쳐있었어요. 그림만 수십 개 그렸

사람이 살긴 사나? 우범지대는 아닌가?’하는 안전에

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통합을 해놓고 생각해보

대한 걱정이 컸어요. 아파트에서 살다가 주택으로

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제가 대표간사가 된 지 1년 만

이사를 왔는데 동네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으니까요.

에 드디어 동서부산이 통합을 하게 된 것이죠. 여러

다행히 아이들과 관계가 좋으니까 남편이 없는 시기

논의 끝에 제가 통합 지방회의 대표간사까지 맡게

에도 의지가 되었어요. 무엇보다 ‘슈퍼스타 K’라는

되었어요. 이후에 대표간사를 사임하면서 훈련사역

프로그램이 있었어요(웃음). 항상 시즌이 시작되면

부의 간사로 섬기게 됐습니다.

남편이 가고, 결승전이 끝나면 돌아왔거든요. 묘하 게 저를 위로해주는 방송이었네요.

* 훈련사역부의 간사로 정말 오랫동안 사역하셨는데 요, 얼마나 오래 일 하신 거죠? 1년에 3~4개월 정도

사실 생활을 꾸려야 하기에 외롭고 쓸쓸할 틈이 없

는 집을 비우셨을 텐데 가족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합

었어요. 친정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서 주간보호센

니다.

터에 다니셨는데, 아침에 준비시켜서 보내드리고 또 오후에 돌아오시면 모시고 들어오고를 반복했죠. 당

태선 훈련담당 간사로 7년 동안 섬겼습니다. 연차로

뇨도 있어서 정확한 시간에 식사를 하셔야 했고 아

하면 8년차네요.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어요. 저

이들 세 명이 전부 학생인데다가 저는 편집 일도 하

는 무척 재미있게 했고 공동체에도 나름대로의 유익

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를 보내는 게 너무 바빠서 정

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없었어요.

선미 7년 동안 남편은 추석쯤 훈련을 위해 집을 떠

태선 아내는 어떤 일이 결정되면 빠르게 받아들이

났다가 연말쯤에 돌아오곤 했어요. 저희 부부는 워

는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 단호한 부분이 있어서 도

낙 관계가 좋기 때문에 보고 싶은 마음이 크긴 했지

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나이가 들고 십대

만, 남편은 본인이 부재하면 제 영성이 더 좋아진다

를 넘어선 것도 큰 도움이었어요. 예전처럼 많은 시

고 해요. 남편이 없으면 불편하고 안 좋은 점이 있는

간을 들여서 돌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대화도 되니

반면, 묘하게 제 생활에서 물리적인 공간이 생기거

까 서로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 함께 고민하게 되었

든요. 그래서 말씀보고 기도하는 시간은 오히려 확

거든요.

소리 지음


48+ 49

소리가 만난 사람

* 간사 사역을 올해로 마무리하시게 되었어요. 삶의

고요. 말씀을 통해 신앙적 고민들을 해결 받았다면서

방향이 큰 터닝을 하게 되었네요. 요즘 어떤 생각을 하

요. IVF 사역이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복음

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 전파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헌신하 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20년 동안 해온 일들이 헛되

태선 최근에 간사들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지내냐고

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재밌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

자꾸 물어서, 저는 벌써 사임식의 예행연습을 한 기분

요. 물론 IVF 하면서 성적 떨어지는 것을 보면 걱정되

이에요(웃음). 요즘 감사한 일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기도 하지만요(웃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조금 더 젊은 나이도 아니고 조 금 더 나이 든 후도 아니고 50대 초반이라는 시기에

* 두 분이 IVF를 하던 시절과, 자녀들이 IVF를 하는 모

간사를 사임하는 것에 대해서 주변에서 걱정이 많습

습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니다. 그러나 불만이나 불평보다 감사함이 훨씬 많습 니다. 25년이라는 세월을 공동체가 참아주고 인내하

태선 동일한 부분도 있어요. 특히 하나님에 대한 진지

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사람들에게

함이나 은혜를 경험하는 본질적인 부분은 지금도 살

인정과 칭찬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무엇보다

아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생으로서 가지는 고민이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남았습니다. 잠시 만났다가

관계의 어려움도 여전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기본

금방 헤어질 관계가 아니니까요. 정말 감사한 시간을

적인 문제의식은 비슷한 것 같아요. 어른이 보기에는

보냈구나 싶어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될 일인데 아이들은 그것을 끌어 안고 고민하며 끙끙거리고 긴장하기도 하고 풀리면

선미 옆에서 남편을 지켜보면서, 큰 굴곡 없이 한 가

좋아하기도 하는 모습이 참 똑같은 거 같아요.

지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 각을 했어요. 감정의 기복 없이 큰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부분이면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숫자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부분이 남편의 장점인 것

에 위축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신입생이 들어올 때 많

같아요. 저 역시도 대학 때부터 IVF와 관계를 맺었고,

이 들어왔다고 기뻐하는데, 우리 시대의 기준에서는

IVF에서 남편도 만났고, 간사 사모로 살게 되었습니

많이 들어온 게 아니거든요(웃음). 다만 우리 때보다

다. 저는 IVF에서 헌신하고 옆에서 도울 수 있다는 게

는 상황이 어렵기에 많이 짓눌려 있다는 생각도 들

참 좋았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어요. 우리는 어렵다고 해도 뭐든 먹고 살 수 있었고 길이 보이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무척 억눌려 있는

저희 아이들도 지금 IVF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

것 같아요.

이를 보면서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아요. 큰아이는 본 인이 지금 간사인지 학생인지 헷갈릴 정도에요(웃

선미 교회에 IVF 활동을 열심히 하는 자매들이 있어

음). 소그룹 멤버들과 원투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

요. 오히려 우리 때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밥

다는 얘기도 하고, 가끔은 엄마에게 어떤 고민이 있

한번 먹자고 해도 스케줄을 보면 거의 매일 IVF 모임

냐며 제게 원투원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둘째도 대학

이 있더라고요. 큰모임, 작은 모임, 선교부모임, 가계

에 들어간 직후에 신앙생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부모임 등 다양한 모임이 생겨나고 있어요. 훨씬 학

하루는 내천을 혼자 거닐고 있다고 전화가 온 거예

생 자발적입니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

요.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묵상하는 중이라고 하더라

고 하면 스스로 책모임을 만들어서 나눔도 하고 토론


소리가 만난 사람

2층 게스트하우스의 테라스에서

도 하며 애를 쓰고, 외부 강사님이 강의를 하시면 학

요. 그러다가 40평에 4천이라는 주택의 공고를 보게

생들은 모여서 그에 대해 피드백도 나눠요. 우리 때는

됐어요.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무시했는

간사님이 하시는 이야기니까 당연히 그런가 보다 했

데, 며칠 지나니 어떤 집이기에 값싸게 파는지 궁금해

던 부분들을, 지금의 학생들은 나름대로 고민하고 자

졌어요. 화창한 날에 집을 보러 갔더니 생각보다 멀쩡

신들이 가진 생각으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대단하다

하고 괜찮더라고요. 후배를 불러서 수리하는 데 얼마

고 생각해요. 일면에는 여전히 힘들어 하는 부분도 있

가 들겠느냐고 물어봤어요.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정

어요. 재정적인 부분을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자매들

도라고 생각해서 계약을 했죠. 하지만 나중에 비가 오

도 많고요. 지금 애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똑똑하고

는 날 가봤더니, 그때는 완전히 흉가더라고요(웃음).

뛰어난 것 같은데, 우리보다 훨씬 어렵게 사는 것 같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모든 벽은 곰팡이 때문에 새카

아 안타까워요.

만 상태였어요. 역시 가격은 정직했던 거죠.

* 간사님 부부는 공간을 만드시는 분인 것 같아요. 지

저희는 아는 형의 도움을 받아 집을 수리하기로 했

금 살고 계신 집의 공사에도 직접 참여하셨다고요. 집

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집을 지을 때 공동체를 만들

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집을 짓게

고 싶다든지 대의를 가지고 시작하던데, 사실 당시 저

되셨나요?

희에게는 그렇게 하는 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이었어요.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도와주

태선 사실 돈이 없어서 그런 거죠(웃음). 원래 저희는

신 분께 은혜를 많이 입은 것이죠. 평생의 은인입니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집을 옮겨야하는 상황이 되

다. 가진 돈에 비해서 저희가 원하는 바가 높았기 때

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으로

문에, 대신 기간을 길게 잡고 인건비가 들지 않도록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아파트는 어림도 없

직접 공사에 참여하는 방법으로 진행했어요. 아내와

었고 빌라는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안 되거나 마음에

구조를 재고, 그림을 그리고, 원래 있던 가구들이 들

드는 장소가 없었어요. 대범하게 평지에 있는 주택을

어갈 수 있는 크기까지 계산해서 공사를 시작했어요.

봤더니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비싸더라고

골격을 제외한 전체 벽을 다 뜯어냈고, 생각하는 구조

소리 이음


50+ 51

소리가 만난 사람

대로 다시 맞췄습니다. 공사에 들어가는 모든 자재를

요. 아이들도 손님을 환대하는 상황을 어색해 하지 않

옮겨야 했는데 집이 언덕이라 차가 들어올 수 없었어

아요. 오히려 자신들도 기회가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요. 찻길에 내려놓은 자재를 전부 짊어지고 계단을 올

하더라고요.

라야 했죠. 많을 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갔어요. 죽겠더라고요. 당시에는 아무 것도 몰랐고 하지 않으

*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면 안 되는 상황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직접 집 을 지었기 때문에 집의 구조를 이해하게 된 것이 의미

태선 하나의 큰 방향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계속 하

있고 좋은 부분이에요.

는 것입니다. 교회를 시작했고, 목표를 20년으로 길게 보고 있어요. 두 번째는 사역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

선미 만약 저희가 평지의 좋은 곳에다가 화려하게 집

어요. 결국 청년 사역을 해야 할 것 같고, 사역자 중심

을 지었다면 사람들이 올 때마다 괜히 미안했을 것 같

으로 코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인격과 사역

아요. 하지만 저희 집에 오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기

은 지속적으로 길게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오면서 마음이 가난해져요. ‘차도 안 들어오는

간사 훈련을 하면서 이 부분이 참 아쉬웠어요. 사역자

이런 골목에 사는구나’하고 생각하다가 문을 열고 들

는 부교역자로 사는 기간 동안 거의 내팽개쳐진 대로

어오면 크지는 않아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공간

살아가곤 해요. 자기 발전도 없고 목회를 배우는 것

을 만나게 돼요. 고난 뒤의 영광인 집이죠. 이곳은 서

도 아니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뒤치다꺼리만 하는 거

사가 있는 집이고 이야기가 있는 집이에요. 공유할 수

죠. 그러다가 담임목사를 맡게 되면 대책이 없습니다.

있는 간증이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집이고요. 돈 자 랑하는 집이 아니라는 게 참 좋습니다.

저는 많은 수가 모이기보다는 5명~10명 정도의 청년 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성경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특히 작년에 만든 2층의 게스트하우스 공간은 처음

키우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

부터 공유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지었어요. 간사들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면서요. 결국 미래의 한국

이 부산에 놀러오면 쉬고 기도할 만한 공간을 제공해

교회를 생각할 때 이런 부분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와서 누릴

생각합니다. 실제로 해보면서 방향을 맞추어 가는 부

수 있는 공간이 됐다는 부분이 너무 감사하고 좋은 것

분도 필요할 것 같아요. 현실 속에서 부딪쳐가면서 해

같아요. 부산은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는 제주도 다음

야겠죠. 또 일상사역연구소와도 함께하려고 생각중

으로 매력적인 곳이잖아요.

이에요. 일상연구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역들 과 제가 가지고 있는 사역을 두고 함께 이야기 해봐

태선 사실 2층의 게스트하우스 공간은 눈으로 와서

야 할 것 같아요.

보기 전까지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집으로 오라고 하면 ‘민폐가 될 텐데’하고 생각하는데, 와서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보고 나면 ‘이 정도면 편히 있겠구나’하고 이해를 합

을 적어봤는데 제법 많더라고요. 그런데 아내가 한마

니다. 우리 가정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편히 쉴

디 하더군요. “돈 되는 것은 하나도 없구만!”이라고요

수 있거든요. 뒤에는 산책길도 있고 앞에 나가면 자

(웃음). 그게 풀어야 하는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갈치 시장이나 남포동, 부평동 시장 등이 있어서 동 네를 돌아보기도 좋고, 그저 쉬기만 하는 것도 좋아

* <소리> 독자들과 전국의 학사들에게 남기고 싶은


소리가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해주시지요.

희에게 ‘너희의 삶의 기반이 IVF냐?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냐?’하는 말씀을 주셨어요. 물론 IVF를 통해 감사

태선 저는 학사들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

한 시간도 많았지만, 저희의 기반은 예수 그리스도고

게 보면 삶에서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규범적인 생

지금도 사명으로 부르고 계세요. 사실 처음에는 걱정

각 때문에 ‘이렇게 살아도 되나’ 혹은 ‘이렇게밖에 못

이 많았는데, 남편이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들 만나서

사나’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사역에 조언도 구하고 사업자 등록도 하는 등 진행하

러나 세상 속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버텨내며 살아

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더라고요. 저도 본격적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입니다. 학사들이 너무 죄

디자인과 편집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하

책감을 느끼거나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사

나님이 길을 더 열어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간사

는 힘들고 어려운 삶이니까요. 신입간사 훈련에는 간

의 사모로 살면서 간이 커진 것 같아요. 지금은 훨씬

사들이 1주일씩 현장 학습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

편안하고요,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요. IVF를 통해 크

어요. 현장 학습에 다녀온 간사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고 좋은 남편도 만났고 자

중요한 순간마다 IVF 학사들이 있다는 것에 많이 놀

녀들도 잘 훈련받고 있죠. 지난 25년 간 학사님들이

라고 있습니다. 이름도 없고 유명하지 않음에도 불구

후원해주신 금액을 생각하면 정말 엄청나요. 우리는

하고 너무나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있더라는 것이죠.

늘 부족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후원해주신 덕분에 지

우리가 보고 아는 것보다 학사들이 훨씬 잘 살고 있구

금까지 풍성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참 감사합니다.

나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 역시 자부심도 느 끼고 있어요.

남편이 간사로 살았던 세월에 대한 총평은 앞으로 20년 정도 지난 후에 하고 싶어요. 아직 사역할 날이

* 마지막으로, 25년간의 사역 기간 동안 지지하고 응

많이 남았기 때문이죠. 대신 중간평가를 할게요. “참

원하며 여기까지 오신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잘했어요!”

가 있을까요? 태선 가정이 안정되지 않았거나 가족에 대한 기본적 인 신뢰가 없었다면 오랫동안 사역을 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간사훈련부에서 사역을 할 때는 따져보면 1 년에 6개월 가까이 집을 비운 것인데, 아내가 저를 신 뢰하고 또 끊임없이 믿어주었기에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나가서 사역하다 보면 고맙 다는 이야기는 제가 다 듣거든요. 하지만 실제적인 사 역은 아내가 다 했어요. 집에 올 때도 다들 저를 보

<소리>를 환대해 주신 두 분의 집은 정말

고 방문하지만 갈 때는 아내에게 인사하고 가더라고

따뜻하고 풍성했습니다. 25년이라는 긴 세

요(웃음). 선미 처음에 IVF 사역을 마무리한다고 했을 때,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

월동안 IVF를 섬겨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사명으로의 부르심 을 <소리>도 응원합니다!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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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며 - 복음주의운동연구소 GLC+ ‘북한 다시보기’ 강좌 후기 -

박진우◆국민대 08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종종 전공과 거리가 먼 분야에 뛰어들곤 하는 5년차 학 사. 12월부터는 일본 도쿄에서 프로그래머 로 근무할 예정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며칠 앞둔 주일 오후였습니다. 책을 사 기 위해 광화문 쪽을 지나던 중, 미국 대사관 앞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확성기로 무언가를 외치는 무리를 보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보 수 단체의 집회려니 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그들이 내건 플랜카드의 문구를 보고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Mr. Trump, We are not afraid to die. We want you strike North Korea NOW.”

대사관 앞에 걸린 시위대의 문구에 트럼프 대통령이 반응할 리는 만무 *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의 관점으 로 ‘북한 다시보기’> 강좌는 복음주의 운동연구소 GLC+의 주관으로, 북한 을 다시 대면하여 평화의 길을 고민하

했지만, 타국의 수반을 향해 전쟁을 구걸하며 조아리는 그 모습을 보면 서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정말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일까 하는 생각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고자 진행된 강좌입니다. ‘북한의 꿈 과 현실’과 ‘북한의 현실과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주제로 2회에 걸쳐 진행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장면이 북한을 대하는 우리 모습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북한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며

‘북한 다시보기’ 강좌 모습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린 여운형 등 중도파들의 통일운동 노력, 그리고 전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북한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성립된 북한 체제가 북한 민중의 삶과 사고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북한 사람들을 섬세히 이해하려는 데

만들어갔는지 보여주시면서, ‘이념과 체제의 관점을

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쟁

고집하지 말고 민족의 관점,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이 되었든 협상이 되었든, ‘이해’에 앞서 ‘대처’만이 화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두에 오르곤 하지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강의 중 인용되었던 백기완 북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통일 문제와 연결되곤 합

선생의 김구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그는 김구를 존경

니다. 통일은 헌법에 명문화된 오랜 가치이기도 하

함에도 불구하고 “외세와 맞서 싸울 줄은 알았지만

지요.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분단이 고착화되고 생

외세를 이용할 줄은 몰랐다”고 평하였는데, 이는 오

존 이산가족의 숫자도 갈수록 줄어들면서, 지금 세

늘날의 정세 속에서도 새겨둘 말이란 생각이 들었습

대에게 통일의 당위를 호소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

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의 외교가 중요

이 현실입니다. 저 역시 학부 시절 IVF를 통해 통일과

시 될 수밖에 없는 한국이지만, 정작 외교적 이슈를

관련한 강의를 듣곤 했지만, 당위만으로는 마음이 잘

두고서는 감정적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광경을

움직이지 않던 것이 사실입니다. ‘왜 통일을 해야 할

종종 목도하곤 합니다. 외교라는 것을 어떤 단면이나

까?’ 이 질문이 저를 복음주의운동연구소(이하 복연)

결과물로만 판단하기보다, 그 과정의 세세한 결을 보

강의로 이끈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아가며 평가하는 자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연 강의는 2회로 나누어서 진행되었습니다. 1강에 서는 김성보 교수님(연세대 사학과)이 <북한의 꿈과

2강 <북한 현실과 21세기 통일>은 탈북자 출신인 주

현실 : 해방, 분단, 인민민주주의>라는 내용으로 강의

성하 기자님(동아일보)이 맡아주셨습니다. 김일성종

를 해주셨습니다. 사학과 교수님답게 한국전쟁 전후

합대학까지 졸업한 소위 엘리트 계층 출신이기도 하

로 진행된 북한 체제의 형성 과정, 그리고 북한 민중

고 평소 페이스북의 분위기로 보아 조금 딱딱한 분이

의 삶에 대해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을 해주셨

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위트 넘치고 상

습니다. 신탁통치를 둘러싼 국내 반탁운동의 여파가

상력이 풍부한 분이셨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

분단에 미친 영향, 좌·우간 극한 대립 속에서 잊어버

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북한 사회 내부의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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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통일을 꿈꾸며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해주셨는데, 이 지면에

없다”는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

다 담아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

면서 국가 대 국가 간의 물리적 통합만을 통일

기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로 여기는 지금의 사고를 벗어나 다양한 길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조하시며, 지금 세대가 통

주성하 기자님은 지난 정부가 주장한 ‘통일대

일을 두고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보길 바란다

박론’의 허구, 중국이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려

는 당부와 함께 강의를 맺으셨습니다.

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통일 논의 방향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특

복연에서의 북한 강의를 듣고 난 뒤에도, 강

히 제게 인상 깊었던 부분은 체제 뒤에 가려

의를 듣기 전 처음 들었던 통일에 대한 질문

진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였습니

이 명료하게 해결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다. 흔히 북한이라고 하면 자유라고는 전혀 찾

렇지만 다른 수확이 하나 있었다면, 제 안에서

을 수 없는 경직되고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리

북한이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

지요. 하지만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 일이 북한

다. 미디어를 통해 다뤄지는 딱딱한 모습이나

에서는 흔히 일어난다고 합니다.

단편적인 모습의 북한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 이 다양한 모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북한으

가령 한국에서는 불합리한 지시를 하는 상사

로 말이지요. 세상사에 100% 선이나 악이 존재

에게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개진한다든가

하기 어려운 것처럼,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자

하는 일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듭니다. 상사 내

세 역시 그러한 다면성과 복잡성을 전제로 해

지 조직의 평가가 개개인의 생계까지 위협하

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야만 통일을 향한 길이든, 혹은 제3의 다른 길

만 북한에서는 노동자들이 상사의 불합리한

이든, 다음 세대가 이 땅에서 전쟁의 위협 없

지시에 맞서 싸우는 것이 전혀 낯선 일이 아니

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초석을 다질

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고용

수 있지 않을까요.

되어 일해야 하고, 일터를 사인(私人)이 아닌 국가가 소유하면서 개개인에 대한 해고가 어 렵기 때문에 벌어지는 풍경이지요. 체제의 합 리성이야 북한이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겠지 만, ‘정치적으로는 폐쇄적일지라도 어떤 부분 에서는 남한보다 더 자유롭다’는 설명이 단순 한 역설로만 들리지는 않는 대목이었습니다.

주성하 기자님은 통일에 대한 의견을 묻는 참 석자의 질문에 “나 역시 통일을 위한 논리가


12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1. 10월 23일(월)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 사무실에서 실행위원회가 있었습니다. 2. 11월 18일(토)에 IVF 중앙회관 좋은땅에서 ‘IVF운동가대 회’가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영역과 방식으 로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고 있는 IVF출신 학사들의 사례 를 발표하고 교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 매달 주부학사회 기도회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모임 매월 둘째 주 화요일(12/12) / IVF 중앙회관 문의 한선미 간사(카카오톡 ID 검색 : lovelyant)

3. 수도권 YGM 송년회가 열립니다. 2017년을 돌아보며 한 해를 뜻 깊게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이날 수익금은 이 웃을 위해 사용합니다. 모임 12월 19일(화) 19:30 장소 IVF 중앙회관 지하 좋은땅(홍대입구역 3분 거리)

● 동서울학사회 1. 8~9월 사역보고 11월 3일(금)에 ‘임사체험이란?’을 주제로 [아덕] 팟캐스트 녹 음을 진행했습니다.

● 6070학사회

● 경인학사회

창립 8년을 맞는 2017년을 “IVF 6070학사회 성장 도약의 해”로 정했습니다.

1. 10월 28일(토)에 경인IVF 회관에서 인하대 92~99학번 학사모임을 가졌습니다. 캠퍼스 시절 함께 하나님나라를 고민했던 학사님들이 이번에는 가족들도 함께 모여 즐거 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1. 10월 28일(토)에 강원도 춘천에서 6070학사회 야외행 사가 진행되었습니다. 21명의 학사님들이 참가하여 풍 성한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2. 6070학사회 신년예배 및 정기총회 안내입니다. 일시 2018년 1월 15일(월) 19:00 장소 IVF 중앙회관 지하 좋은땅 문의 김재원 학사(010-4329-0823)

● 수도권 YGM 학사회 1. 수도권 YGM 모임이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중 앙회관 지하 좋은땅에서 있습니다. 수도권지역에 거주하 는 학사님들은 언제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분주 해지기 쉬운 연말연시를 YGM과 함께 해요! 모임문의 이철민 간사 070-8275-6363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ivfygm

2. 수도권 YGM 12~01월 모임일정입니다. 12월 05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5) 12월 12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6) 12월 19일(화) 송년회 12월 26일(화) 연말로 인한 휴강 01월 02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7)

2. 이번 학기 경인학사회 모임은 책나눔으로 진행합니다! 「주님과 거닐다」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민 하고, 서로의 삶을 세워주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 인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학사님들을 초대합니다. 모임 12월 21일(목) 19:00 / 경인IVF 회관 문의 경인IVF 사무실(070-8223-6192)

● 경기남학사회 1. 10월 학사모임은 26일 저녁 7시, 이강일 간사님을 모시 고 “행복한 책읽기, 나를 찾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특강 을 진행했습니다. 2. 11월 학사모임은 30일 저녁 7시, 특강을 토대로 토스카 리의 「데몬: 악마의 회고록」이라는 책을 읽고 간단한 서 평 나눔을 할 예정입니다. 3. 학사모임 안내 경기남 출신 학사님 외에 수원/용인 지역에 거주하는 학사님 께도 열려 있으니 관심 있는 학사님은 문의주세요.

일시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 19:00 (12월은 마지막 주가 수련회인 관계로 12/21에 진행합니다.)

01월 09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8)

장소 경기남IVF 사무실(수원시 영동구 인계로 259-2, 2층)

01월 16일(화) 특강 : 말씀묵상의 여정

문의 김원석 010-8720-3660

01월 23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5) 01월 30일(화) 성경강해 : 성령의 열매(10)


● 강원(춘천)학사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 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 춘천 (엄마들 모임-아이야) 모임 매달 첫주 목요일 오전 11:30

· 울산 주부 학사모임 모임 격주 목요일 10:30 문의 박경아 학사 010-6572-2176 · 8090울산대 학사모임 모임 매주 수요일 / 영남동부IVF회관 문의 진동일 학사 010-6560-2176

문의 사공은혜 학사(한림대95) 010-5367-9120 · 춘천 학사모임 모임 매주 화요일 19:00 / 은혜교회 문의 김아주 학사(한림대05) 010-6381-1635 · 수원 모임 모임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문의 최경순 학사(한림대94) 010-9536-0703

● 충남학사회 1. 충남학사모임을 천안과 서울 두 곳에서 진행하고 있습니 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 천안 이준희 학사(단국대06) 010-5171-0569 · 서울 손윤형 학사(백석대02) 010-9154-1160

● 전북학사회 1. 학사큰모임 안내 일시 매달 둘째, 넷째 주 목요일 19:30 장소 전주 소망장로교회

2. 사역 안내 모든 학사모임의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는 전북IVF 학사회 페이 스북, 네이버 밴드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I VFC 축구모임 모임 매주 토요일 아침 07:00~09:00 / 전주 덕진 체련공원 대상 전북출신 학사님이 아니어도 환영합니다. · 마더와이즈 : 초보엄마, 예비엄마들을 위한 모임 모임 매주 화요일 문의 임하정 학사 010-4696-8050 · 책읽기 모임 모임 매주 또는 격주 1회 내용 책을 읽고 나눔을 가질 예정입니다. · 중보기도모임 내용 캠퍼스 사역과 학사들의 삶, IVF 학사출신 선교사를 위한 기도회

● 영남동부학사회 · 경주-포항 빨래터 주부모임 모임 매주 화요일 10:30 문의 신지은 학사 010-3120-1146

● 대구학사회 1. 대구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 IEF(교대학사 교사모임) 매주 월요일 오후 18:00 · 가정피움팀(가정사역자모임) 매주 화요일 19:30 · 사회복지팀(사회복지관련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19:30 · 평신도 지도자 남편모임 매주 수요일 오후 20:00 · 예사모 아내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 10:30 · inG 수료자 모임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19:00

2. 대구학사회 사역보고입니다. (10~11월) · 청년사역전문가 과정(청사모 6기) 모임 매주 목요일 12주간(9월~12월) / 남부교회 · 관계학교 모임 10월 12일(목)~11월 09일(목), 5주간 / 화원교회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비전캠프 85기 모임 8월 11일(금)~8월 12일(토) 장소 아멘교회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의미경영 콘서트(25회), 인간도서관(26회) 모임 10월 29일(일), 11월 19일(일) / 아멘교회 주강사 손동호 목사, 멘토팀 · 비전캠프 87기(인간도서관 멘티5기) 모임 11월 04일(토)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

3. 대구학사회 사역계획 안내입니다.(10~11월) · 비전캠프 88기(인간도서관 멘티6기) 모임 12월 02일(토)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가정피움 공개강좌 모임 12월 12일(화)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의미경영 송년회(27회) 모임 12월 17일(일) / 아멘교회 · 비전캠프 89기(인간도서관 멘티7기) 모임 01월 09일(토) / 르호봇센터 주강사 신응종 간사, 정희돈 간사 · 의미경영 인간도서관(28회)


모임 01월 14일(일) / 아멘교회 주강사 멘토팀

● 부산학사회 1. 부산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 E.M.포럼 모임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10:30 문의 박철진 학사 010-3578-7086 · 마마클럽(주부학사모임) 문의 임지은 학사 010-4143-4926

팟캐스트 IVF 학사들을 위한, IVF 학사들에 의한, IVF 학사들의 팟캐스트! 학사님들을 위한 팟캐스트를 소개합니다.

● 제주학사회 1. 제주학사회 정기모임 안내입니다 · 학사 큰모임

아학팟 IVF 학사회 팟캐스트. 본격 기독B

모임 격월(12월) 넷째 주 토요일 13:00

급 팟캐스트를 지향합니다. 3월 25

문의 좌성훈 학사(제주대00) 010-4699-3282

일부터 새롭게 시작된 <덕후방송>

· 지역 학사 모임 모임 격월(01월) 중 주말에 모임 문의 좌성훈 학사(제주대00) 010-4699-3282

● 나음누리 1.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에 함 께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을 환영합니다. 모임문의 백성대 간사 070-8275-6345 ·서울지역(삼성병원모임) 모임 한 달에 한 번 / 삼성서울병원

과 <직장생존기>를 진행하고 있습 니다.

그리스도인의 책나눔 -복팟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복팟'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책모임을 지원합 니다!

문의 이은경 학사 010-8892-8076 ·서울지역(아산병원, 강동지역 모임) 모임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강필제 학사 010-2710-7851 ·경기지역(수원, 용인, 화성지역 모임) 모임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송재현 학사 010-2231-1424 ·인천지역(강서, 경인, 부천지역 모임)

퇴근하고 뭐할래?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루어보는 방송입니다. 취미, 일, 가정생활 등등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시도 하고 적용하며 공부합니다.

모임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강의혁 학사 010-8898-2498 · 강원지역(원주모임)

맑은물소리

모임 한 달에 한번 / 장소 별도공지

하창완 목사와 함께 <시냇가에 심

문의 홍진용 학사 010-6272-3794

은 나무(시심)>(IVP)의 진도를 따

·영남지역(대구모임)

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묵

모임 한 달에 한번 / 장소 별도공지

상도우미.

문의 설기호 학사 010-2866-2697 ·부산모임 모임 한 달에 한번 / 장소 별도공지 문의 이은정 학사 010-3862-4189

말씀으로 여는 하루 IVF 출신 목회자들의 설교 팟캐스트


58+ 58 편집인의

메아리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아직은 선선했던 10월의 어느 날, <소리>의 편집위원 들과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탁 트 인 도로와 무르익어가는 귤나무가 저희를 환영하더군 요. 작은 오름에 올라 시야를 뒤덮는 하얀 억새의 품 에도 안겨보았어요. 바람이 연주하는 억새의 나부낌 을 들으며 제주를 바라보니, 한없이 평화롭고 아름다 웠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제주의 이면에는 그곳에서 살아가 는 사람들의 분투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제주 학사님 들은 여섯 명의 편집위원을 IVF 회관에 초대해 살아가 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몰 려든 사업가들과 이익싸움에 밀려난 토착민, 높은 물 가와 부족한 일자리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민, 관광도시라는 화려함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 그 속 에서 하루하루를 분투하는 학사님들의 삶을 나누었습 니다. 진솔한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고 또 한편으로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기획회의에 함께 해주신 좌성훈 학사님과 유홍렬 학사님께 진심 으로 감사드립니다.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 작비로 사용됩니다.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2017년 9~10월 후원자 명단 곽지영(*2) 국효숙(*2) 김선미(*2) 김재원(*2) 김종기(*2) 김 종수-구한나(*2) 김지은 나현순(*2) 남은경(*2) 민은혜(*2) 박 정현(*2) 박창재(*2) 손정엽(*2) 송인규(*2) 신은정(*2) 여운 성(*2) 오규덕(*2) 윤정범-지은실(*2) 이상엽(*2) 이원경(*2) 임정하(*2) 장은숙(*2) 전선애(*2) 정민경(*2) 정성구-윤정은 (*2) 정재성(*2) 조창훈-민혜경(*2) 최수연(*2) 허성호(*2) 황 진욱(*2) 익명 강릉(*2) 경기남(*2) 경남(*2) 경인(*2) 남서울(*2) 대구(*2) 대 전중부(*2) 동서울(*2) 부산(*2) 북서울(*2) 서서울(*2) 영남동 부(*2) 원주(*2) 전북(*2) 춘천(*2) 충남(*2)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소리>의 편집인이라는 옷을 입은 지도 벌써 1 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편집인의 글을 쓰던 날도 눈이 내렸는데, 오늘도 첫눈이 내리고 있네요. 익숙해진 것 도 있고 여전히 서툰 부분도 있습니다. 부족했던 편집 인이지만, 2018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올 한해 <소 리>와 함께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연말연시 되세요! 김기인│편집인│sori@iv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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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권 제6호 통권235호 발행일 2017년 12월 1일 발행처 (사)한국기독학생회 학사사역부 주소 (0403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서교동) IVF 중앙회관 전화 070-8275-6313 팩스 02-333-7361 발행인 주희재 편집장 이시종 편집인 김기인 김경아 편집위원 국효숙 김지은 박정현 오한웅 조창훈 허영신 허지선 편집디자인 김아롬새미 문이선 표지 이재웅 제작 김효영 인쇄 예원프린팅


참석자 분들에게 『IVP 소책자 세트 특별판』을 드립니다.


우리 시대 청년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CBS, 기독교보, 뉴스앤조이, 아이굿뉴스, 크리스찬저널 등 언론사 집중 보도!!

청 년 트 렌 드 리 포 트

학원복음화협의회 엮음 무선 392면 | 20,000원

기독교계를 넘어 일반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 청년 생활 및 의식 조사 최신판! 우리 시대 청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표와 미래 청년 사역을 준비하도록 도울 전문가들의 분석과 적용!

기독교계뿐 아니라 일반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던 2012년 조사에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오늘날 청년들의 생활 및 의식, 그리고 시대 이해를 담았을 뿐 아니라 일반 청년과 기독 청년들의 생활 및 인식차 등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알차게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와 선 교단체 사역 방향과 전략을 새롭게 제시한다. “이 조사 연구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분석하면서 대학생들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 탄식과 침묵까지도 들으려고 애를 썼다. 이 책이 이 땅의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청년 사역 자들에게 현실 인식과 더불어 비전과 열정을 점화시키는 불쏘시개가 되기를!” _장근성 학원복음화협의회 상임대표 www.i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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