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230 I 2017. 02+03
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경계인(境界人) │ 헌법을 알자, 힘써 헌법을 알자 │ 신구(新舊) 학사회장을 만나다
ⓒ 이재웅 | 상명대98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 1:5)
Graduate Christian Fellowship www.onivf.com
목차 소리정음
깨끗하고 맑은 소리
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04 08 12 16
경계인(境界人)»이진경 괴담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김동문 로마서 13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을 함께 보라»안진섭 태극기 휘날리며 십자가를 지다»이강일
소리지음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
20 26 28 30 33 36 38 41
말씀산책»김유복 미생:종로모임 이야기»허지선 우리 결혼할까요?»호욱,이은경 ‘오Chef’의 오늘 뭐 먹지?»오한웅 지금 다시, 헌법이다»정한신 함께 이어달리기»손인배 재외학사통신원»김연선 쉼으로 작은 축제를 열다»국효숙
소리이음
서로의 소리를 잇는 공간
45 51 55 57 58
소리가 만난 사람»이남혁,이상엽 ‘푸른 산돌’을 마치며»김새로나,유수아 안테나 팟캐스트 편집인의 글
소리
깨끗하고 맑은 소리
정음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나라가 매우 어지럽습니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분노한 국민
정치 참여,
은 토요일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습니다. 일상을 잃었다고
그 현장에 서다
할 만큼 혼란한 시국 속에서, 과연 우리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 고 대처해야 할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과 정치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04 경계인(境界人)»이진경 08 괴담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김동문 12 로마서 13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을 함께 보라»안진섭 16 태극기 휘날리며 십자가를 지다?»이강일
4+ 5
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경계인(境界人) 이진경 ◆ 연세대86 독일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얻게 된 감리교목사이자 몽상가와 이방인으로 세 상을 살아가고 싶은 비정년 교육노동자. 현 재 협성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및 교목 으로 재직 중이다.
“나는 매학기 첫 강의마다 내 학생들에게 그들이
믿는, 그리하여 소위 자칭 애국자들로부터는 국익
나의 관점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을 해치는 이적행위자로 비난 받는 미국의 역사학
관점도 공정하게 다루도록 애쓰겠다고 분명히 말
자 하워드 진의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와 의견을 달리 하라고 격
해야 하는가? 아니, 해도 되는가? 그리스도인의 정
려해 주었다. 나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치 참여라는 다소 진부하고 고전적인 주제를 앞에
객관성을 가장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달리는 기
두고, 하워드 진은 참여를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
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하곤 했다. 몇몇은 이 은
가의 고민이 얼마나 천진하고 어리석으며 적절치
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어떤 학생들은 이
않은가를 이 말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태가
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자세히 분석해
치명적인 방향으로 움직인 순간 내 의도와는 전혀
보기까지 했다. 다른 학생들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상관없이 정치적 참여는 이미 시작된 것이기 때문
바를 바로 알아챘다. 이미 사태가 치명적인 어떤 방
이다. 이 상황 속에서 정치적이지 않을 도리는 없
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 중립적이라 함은 그
다. 어떤 입장에도 서지 않고 제3의 정치적 무풍지
방향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대에 서겠다는 중립의 선택은 불가능하다. 만일 이 때 중립을 택한다며 “나는 정치적이지 않겠어”라
중립의 허구성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조국의 치부를 가 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라고
고 선언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방향을 지지하는 가 장 정치적인 선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참여 에 대한 출발은 바로 이 지점이다. 달리는 기차 위 에 중립은 없다.
경계인(境界人)
아마도 1987년 혹은 88년쯤일 것이다. 그래도 나름
데 프레의 「생존자」라는 책 속에서 발견한 적이 있
열성 IVFer였던 나는 여름방학을 가득 채울 수도
다. 그는 정치적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정
있을 재미난 일들을 모두 제쳐두고 IVF 서울지역
치적 인간이란 그 사회 내의 다른 사람들과 드러나
수련회에 참석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방학 중
지 않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
그밖에는 거의 할 일이 없어서 갔다고 해야 맞을 것
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의식이란 다름 아닌 우리
이다.) 무려 30여 년 전이니 때와 장소에 대한 기억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다.
이야 정확할 리 없겠지만, 여러 특강 중 한 강의에 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강사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에는 없다. 그러나 내용 의 요지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주장은 물론 여러 가지 상황과 맥락과 신학을 동반하여 함 께 설명해야 할 말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 말이 영혼에 준 충격은 굉장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청년 이진경이 받은 충격의 실상을 50 대로 접어든 이진경의 입장에서 하워드 진의 언어 를 빌려 표현해 보자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사회적 약자로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 어 있다고 의식하는 순간,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확실히 달라진다. 그러나 그와는 반 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 결여되어 있을 때라 면 타인의 고통은 심지어 내 감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이 불쌍하게도 굶어 죽는데 지금 풍족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우리 처지는 얼마나 감사한가”와 같은 감사기도를 식탁에서 드 린 적이 있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죄를 짓고 있 는 것인지 수잔 손택은 그녀의 책 「타인의 고통」에 서 잘 보여 주었다.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나 자신이 불의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
와 착취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자본주의라는 기
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
차 위에 있었음을 서늘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 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
‘정치적’이라는 말의 의미 유감스럽게도 ‘정치’라는 말은 몹시도 오염되었다. ‘정치적 인간’이 뜻하는 모욕적 의미에서처럼 말이 다. 어쩌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사 실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에는 이 단어의 오염도 분명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 다. 하지만 흔히 사용되는 것처럼 정치적이 된다는 말은 어떤 특정한 입장이나 특정한 당을 지지하거 나 반대한다는 당파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 다. ‘정치적’이란 말의 바른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정치적 인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테렌스
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 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 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 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 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 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 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 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 로 우리의 과제이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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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은 그들
화와 정적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공간의
고통의 원인에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가담하고 있을
사치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내성적인 사람들을 위
지도 모른다는 의식으로 이끈다. 그것은 내가 더 가
한 영성이었다.”
지고 있기에 그가 더 가지지 못한 것이라는 깨달음 이다. 그리하여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은 우리의 연 민과 감사의 위선을 폭로하고 그것을 수치와 죄책 감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진은영 시인이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 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 다”라는 글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 었으며, 박노해 시인이 어머니의 일평생 기도에 대 한 회개를 담은 시 「감사한 죄」에서 전하고자 했던 것도 역시 그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 것, 정치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사회생활을 영위하 는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그리스도인에 게 정치적이지 않을 도리는 없다. 그러니 언제나 문 제는 정치적이어야 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인용문에서 글쓴이가 친근하게 부른 ‘구스타보’는 해방신학으로 유명한 바로 그 구스타보 구티에레 즈가 맞다. 내적인 삶을 강조한 영성에 대한 비판 과 가난한 자들과의 대면을 통해 획득된 새로운 차 원의 영성. 우리가 여태껏 영성이라고 부르고 이해 했던 태도들을 자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왠지 좌 파스러운 새로운 영성으로의 깨달음을 소개한 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 이 사람은 소위 무슨 운동권 출신의 영성가가 아니라 바로 누구나 인정하는 영 성의 대가 헨리 나우웬이었다. 해방신학의 영성을 소개했던 구티에레즈의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라는 책의 서문에서, 헨리 나우웬은 고통 받는 자들과의 연결 의식이 결여된 영성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그릇된 ‘자기 의’로 가득 찰 수 있는지를 통렬한 자기 고백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참여의 영성이라 부를 만한 이 영성의 관점에서도
참여의 영성과 경계인 “그 여름 강의기간에 그 사목 활동가들과 이야기하 면서 나는 나 자신의 영성이 얼마나 개인주의적이 고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인가를 인식하게 되었다. 많은 측면들에서 영적인 생활에 관한 나의 사고는 ‘내적인 삶’을 강조하고 그러한 삶을 발전시 키기 위한 방법과 기술들을 강조하는 북아메리카 의 주변 환경에 의해서 깊이 영향을 받아왔다는 것 은 고백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사실이었다. 나는 구스타보가 ‘가난한 자들의 역사 안으로의 돌입’이 라 부르는 것과 맞부딪혔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나 의 영성이 어떻게 ‘영성화’되었는가를 인식하게 되 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영성이란 사실상 내적인 조
결국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는 참여의 여부가 아 니라 어떻게 참여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인 셈이다. 죽음의 세력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 도인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민수기 16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민수기 16장에 나타난 이 스라엘 백성의 적반하장은 그들이 광야 생활 내내 줄기차게 보여준 적반하장 중 가히 최고봉이라 해 도 과언이 아니다.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했던 일군의 무리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자, 이번에는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여 일어난다. 더 이 상 참지 못한 하나님은 모세에게 회중을 떠나라 말 씀하시고 백성을 순식간에 진멸시키시기 위해 전 염병을 퍼뜨리신다. 그러나 모세는 예전에도 그랬
경계인(境界人)
던 것처럼 너는 비켜서 중립이나 지키고 있으라는
짓이 없었으며, 둘 다 그 자리에서 순교했다는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당장 제사장
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모른다면 그것에 대
아론을 시켜 제단의 불을 담은 향로를 들고 백성들
해 고민하기보다 우선 그저 고난의 현장으로 발을
속으로 뛰어 들어가 속죄하게 했다. 그 이야기의 끝
옮겨 그곳에 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강한 자가
을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가 죽은 자와 산
약한 자를 착취하는 현장은 어디에나 있다. 하나님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민 16:48).
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지 않았으니 어차피 불의는
성경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을 제사장이라고 선 언한다. 그리고 제사장의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 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 그 사이의 경계인으 로 서는 일, 죽음의 세력이 더 이상 퍼지지 못하도 록 몸으로 막아서는 일. 말하자면 정치 참여란 이렇 게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는 일이며 그 둘 사이 에서 경계인으로 사는 일이다. 그것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애매한 회색의 중간지대에 서 있겠다는 가능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은 중립(中立)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 사이 가운데 서는 중립(中立), 그 가운 데 서서 생명을 등지고 죽음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맞서는 중립(中立)이다.
도처에 있는 것이다. 내가 겪는 불의의 현장이든, 타인이 겪는 불의의 현장이든, 그 수많은 불의의 현 장 중 갑작스레 마음에 거룩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곳이 있다면, 어쩌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 르시는 곳이리라. 비정규직으로 주리고 목마르며, 소수자로 혐오와 차별을 받고, 부당해고로 헐벗고, 병들었으나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고, 무고하게 옥 에 갇힌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마 25:31-46)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란 그 어떤 비종교적이고 세속적인 강령의 실천이 아니라, 단지 주님이 말씀하신 저 사람들 곁에 서서 죽음이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죽음과 생명 사이에 서는 일일 뿐이다.
구체적 행동을 위한 지침
노숙자들의 아버지라 불렸던 아베 피에르 신부는
: ‘무엇을’이 아니라 ‘어디에’
천국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말을 남겼
경계인에게 보다 결정적이고 중요한 것은 무엇 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가이다. ‘무엇 을’(what)이 아니라 ‘어디에’(where)의 문제라는 말 이다. 한 사태와 사안에 대한 정치적 입장은 같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조차 극명하게 다를 수 있 다. 이질적인 두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롤랑 조 페의 영화 <미션>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포르투갈 군대의 학살에 직면한 원주민 신도들을 위해 한 신 부는 총칼을 들고, 다른 한 신부는 십자가를 든다. 그러나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사실은 두 신부 모두 그 자리에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신심과 양심에 거
다.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가장 힘센 자가 가 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 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날, 하늘나라는 이미 이 땅에 있다.” 피에르 신부의 말처럼 그리스 도인은 가운데 서야 하는 사람이다. 가장 힘센 자와 가장 힘없는 자 사이에 서야 하는 사람, 경계를 만 들어야 하는 사람, 스스로 경계가 되어야 하는 사 람이다.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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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괴담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 김동문 ◆ 외국어대81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예비 예술인이 외 대에서 아랍어를 그렸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아랍 세계와 관계이웃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괴담이 가득한 시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 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정조사특위)에 증인으로 나온 이 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모두 똑같았다. “생각이 나지 않는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식의 상투적인 거짓말이 었다. 지금 한국사회는 더 이상 진실이 의미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다. 마치 강한 것이 진실인 양, 약자의 진실은 무의미한 것인 양, 당 당하게 거짓을 만들고 유포하고 강변하는 시대인 것 같다. 거짓말 탐 지기를 갖다 놓는다 하여도 거짓으로 판명되지 않을 만큼, 거짓에 심 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괴담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대는 ‘괴담’이 가득하다. 괴담은 두 가지 측면
하는 개인 또는 단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른 한
을 갖고 있다. 하나는 힘 있는 자들이 괴담이라 낙
축으로는 극우적 성향을 물씬 풍기는 아이디를 가
인찍은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힘 있는 이들이 거짓
진 이들이었다. 교회 안팎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을 퍼뜨리기 위하여 조작한 것이다.
와 클럽은 괴담 원산지 세탁의 중요한 경로인 듯했
진실을 찾고자 합리적 근거에 바탕을 둔 의심을 제 기할 때면, 힘 있는 자들은 으레 ‘괴담’이라는 명목 의 낙인을 찍었다. 이 괴담은 아주 오래 전에 유언 비어라 불리던 ‘진실’의 다른 이름을 연상시킨다. 너
다. 한국교회의 정치적 보수화 덕분인지 괴담은 너 무 손쉽게 퍼뜨려졌다. 아니면 괴담 때문에 한국교 회가 정치적 보수화 경향이 강화된 것인지, 선후관 계는 잘 모르겠다.
무나 많은 진실이 유언비어로 내몰렸다. 진실을 알
북한의 남침 땅굴이 남한 곳곳에 존재한다는 땅굴
리고자 했던 이들은,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로 처
괴담, 좀비처럼 꾸준히 살아나는 5.18 광주민주화
벌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괴담은 유언비어를
항쟁 당시 북한군 특수 부대가 파견되었다는 괴담,
닮았다. 물론 괴담으로 내몰린 주장들 가운데는 전
국정교과서 지지 목소리 한복판에는 기독교인들이
혀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억지스러운 추론들도
자리 잡고 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의 보수성
뒤섞여 있다.
향의 단체들의 활동에도 기독교 쪽의 협력이 엿보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가 의 도적으로, 아니면 습관적으로 만들어 퍼뜨리는 괴 담이 있다. 이 괴담은 악성 괴담이다. 때때로 조악 한 괴담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진실의 모양을 완 전히 갖추고 있다. 육하원칙의 형식을 갖추고, 친절 하게 관련 증거(?) 사진까지 넣어서 퍼뜨린다. 이렇 게 정교한 괴담은 다수의 상식과 이성을 갖춘 이들 조차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
인다.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아니 극우적 보수에 힘 을 실어줄 순간이다 싶으면, 로마서 13장을 들먹이 며 정교분리를 외치는 교계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 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목소리를 퍼뜨리는 매개가 ‘카카오톡’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카카오톡에 물든 한국교회를 ‘카톡교’라고 일컫는 지경에 이르렀다.
괴담의 생성 과정과 팩트 체크
나 조악한 수준의 괴담조차도 철저하게 진실로 받
현 시국과 관련하여서도 수많은 괴담과 거짓 루머
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괴담 유포의 가장
를 퍼뜨리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오보 괴
중요한 목표물인 것 같다.
담 바로잡기: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코너를 운
그런 점에서 나는 현 사회를 괴담이 넘치는 사회로
영할 정도이다.
표현하고 싶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괴담의 생산, 유 포 과정에 가장 중요한 몫을 다하고 있는 공간이 바 로 한국교회라고 판단한다. 다소 단정에 가까운 이 같은 확신은 이슬람 괴담의 유통 경로에 대한 이해 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괴담의 진원지를 따 라가다 보면, ‘주님의 신부’ 같은 식의 이름을 사용
괴담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포되는지 가장 일반적 인 과정은 이렇다. 굳이 단계를 구분하자면 괴담 생 산자, 괴담 가공자, 괴담 유통자, 괴담 소비자 등으 로 나눌 수 있다. 괴담 생산자는 직접 생산자와 생 산, 가공을 병행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단순 괴담 유포자의 괴담을 정교하게 재가공하여
소리 정음
10+ 11
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퍼뜨리는 경우와 초기 괴담 유포자와 가공자가
서 변호사의 이 논증을 접하면서 짚어봐야 할 팩
동일 인물인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괴담
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서 변호사의 저 말이 ‘함
생산자가 누구이든, 어떤 경로이든, 가공 라인을
무라비 법’을 제대로 인용한 것인지, 실제로 ‘함
통해 괴담은 더욱 정교해진다. 그런데 무엇보다
무라비 법’을 읽고서 인용한 것인지 짚어봐야 한
중요한 과정은 괴담 유통 라인이다.
다. 이것은 글쓰기나 말 인용에 기본인 일차 자
수년 전에는 ‘다음 아고라’ 같은 공간을 통해 가 짜뉴스 또는 괴담의 출처를 세탁하고(많은 경우 초기 게시글의 링크는 사라지곤 한다), 그것을 온라인 공간에 재공유하는 식이었다. 요즘은 카 카오톡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매개 역할을
료 검증이고, 팩트 체크의 바탕인 합리적 의심 의 표출이다. 이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은 간단하다. 그러나 고 대 문헌을 짚어봐야 하는 조금 번거로운 수고는 피할 길이 없다.
하고 있다. ‘복사하기’ 기능만 활용하면 되기 때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에
문이다. 그런데 카톡 공유 과정에 오래 전 행운의
바빌론을 통치한 함무라비 왕이 반포한 고대 바
편지 같은 기법이 첨가되기도 한다. “긴급”이라
빌로니아의 법전’이다. 최대한 양보해서 서 변호
느니 “주변에 몇 사람 이상에게 퍼뜨려 주세요”
사가 함무라비 법을 알고 있다고 믿어주고 그의
와 같은 요청이 담기는 것이다. 정말이지 카카오
말을 이해한다면, 그가 흥분하거나 당황해서 관
톡이나 다른 매개를 통한 괴담의 유포 과정은 하
련 연도를 헷갈린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을
도급과 다단계 시스템이 잘 조화된 것 같다. 여기
것이다.
서 겨자씨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떠오른다. 한 사 람이 뿌린 괴담 하나가 순식간에 수십만 명, 수백 만 명에게 전파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런 감싸기도 근거가 없다. 그것은 두 번 째 문헌 확인을 통해 나오는 가볍게 나오는 결론 덕분이다. 함무라비 법은 모두 282조항으로 구
이제 잘 알려진 괴담에 대한 ‘팩트 체크’와 사실
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재판정 관련 조
발굴을 통해 확인한 괴담의 예를 들어 보고자 한
항은 1-5항에 강조되고 있다.
다. 괴담에 대한 팩트 체크 과정은 합리적 근거에 바탕을 둔 의심을 제기하는 연속과정이다.
# “피해자에게는 무죄추정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저 기원전 2700년 함무라비 법정에서도 인정되 고 있다”는 주장 왜곡 의혹
1.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소하여 그를 살인자로 지목하였지만,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을 때는, 그 의 고소인은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2.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고발하면 그 피고소인이 강으로 가서 그 강을 껑충 뛰었는데, 그가 강에
지난 1월 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
빠진다면 고소인은 그의 집을 재산을 취할 것이
핵심판사건 2차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
다. 그러나 강이 그 피고소인의 무죄를 증명하
핵심판사건 법률대리인단 중 한 명인 서석구 변
면 그는 해를 당하지 않으며, 그를 고소한 사람
호사의 발언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은 사형에 처해질 것이고, 강을 껑충 뛴 사람은
괴담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고소인에게 속한 집의 재산을 취할 것이다.
3. 사람이 한 경우에 거짓 증거를 하였고 그가 한 그 말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 그 경우가 목숨에 관 련된 경우라면 그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
적인 과정이다. 맹목적 지지 또는 반대가 일상화 된 지금, 우리에게는 사실 확인을 위한 완충지대 가 필요하다. 괴담이 가득하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거짓이 넘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합 리적 의심, 회의하는 용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4. 그가 곡식이나 돈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면, 그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영혼 없는 퍼 나르기를 멈
는 그 경우의 손해를 물어야 할 것이다.
춰야 한다.
5. 재판관이 결정된 판단을 내렸다가 또 그 판결
‘괴담’에 속지 않고 괴담을 퍼뜨리지 않기 위한 작
을 문서로 남겼는데 이후에 그 판결을 변경했을
은 아이디어를 제안해 본다. 정보의 원 출처를 확
때, 그들은 재판관이 판결을 번복했음을 입증할
인하자. 정보 공유자에게 앞선 출처를 확인하자.
것이다. 그는 원고에게 12배로 갚을 것이며, 그들
일단 정보를 전달 받으면 전달 경로를 거꾸로 거
은 그 재판관을 공히 재판관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슬러 올라가, 최소한 전승 과정 3단계 윗선까지는
재판을 담당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확인해 보자. 사실과 해석을 구별하자. 주장과 사
이 조항들 안에, 서 변호사의 말처럼 ‘무죄추정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 조항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함무라비 법’의 나머지 275 개 조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도 구별하자. 해석과 주장의 근거가 타당한지 따져보자. 공유 속도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자. 그 사이에 팩트 확인을 위한 공동체적 수고를 하 자. 구글링과 영어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혹시 그 비슷한 주장이 국내 또는 해외에 있었는지 짚어
이런 논증은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익숙한 고대 문
보자. 공동체 안에서 약속을 하자. 괴담 또는 과장
헌의 권위에 빗댄 자기주장의 전형이다. 권위에
된 내용을 3회 이상 공유할 경우, 신뢰 대상에서
의존한 거짓 논증의 오류를 보여준다. ‘함무라비
배제한다는 공동체적 서약을 하고 서로 점검하자.
법’을 확인도 안하고 인용하였다면 거짓 논증이 고, 읽었는데도 이런 식으로 인용했다면 난독증 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 변호사는 무죄추정 주장 논증의 예로 왜 뜬금없이 함무라비 법전을 잘못 인용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괴담 앞에 선 그리스도인의 자세와 태도
불완전한 세상에 괴담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괴담을 의도하고 가공하고 퍼뜨리는 것은 주의하 고 경계하자. 거짓의 아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일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더 이상 괴담의 진원지, 최대 유통망의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유되는 정보의 정교함 또는 허무맹랑함을 넘어서서,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괴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출발점은 합리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교양과 상식을 회복할 수
인 의심이다. 합리적 의심은 누군가의 말을 반대
있기를 바란다. 사실과 진실, 합리적 의심, 근거에
하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무조건 지지하기 위해
바탕을 둔 정보를 통해, 맹목적 보수성에 갇히지
서 취하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팩트 체크는 중립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리 정음
12+ 13
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로마서 13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을 함께 보라 안진섭 침례신학대학교 학부와 신대원을 졸업 하고 미국 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성서사본학으 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는 대 전에 있는 새누리2교회를 담임하면서 다 양한 저술 활동과 강의를 통해 한국교회 의 강단을 성경적으로 회복하는 일에 헌 신하고 있다.
최근에 대통령과 여러 참모들, 그리고 비선 실세들
첫째로, 로마서 13:1에 있는“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의 국정 농단으로 위정자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
누구를 가리킬까? 일차적으로 여기서 위에 있는 권
노는 극에 달해 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계 내부
세들이란 공권력을 가진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 바
에서는 이 문제가 신약성경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
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때로 말하면 당시 로마 황제
석 논쟁으로 번졌다. 어떤 이들은 로마서 13장을 문
와 여러 왕들, 그리고 황제의 명을 받아 일하는 고
자적으로 해석하여 무조건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위 관리들을 가리킬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 이 단어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그 말씀은 왕
를 적용할 때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고대
정시대에 주어진 것이므로 민주공화국 시대에 문
왕정시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현대국가들은 삼권분
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펼친
립이 정착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은 공권력을 가
다. 그렇다면 과연 로마서 13장의 말씀을 어떻게 해
지고 있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모든 관리들을
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옳은가? 먼저 학자들 사이에
위에 있는 권세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는 몇 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로마서 13장을 살펴보자.
둘째로,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말 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1절 하반절을 보면 “권세는
로마서 13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을 함께보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이
그것은 바로 선을 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악을 행하
말씀에서 공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이고,
는 자를 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권력자는 자신
모든 공권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천명
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공적인 이익을
한다. 언뜻 보면 이 말씀은 권력을 절대화하는 것
위해 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민의 공적인 이익을
처럼 보인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많은 독재자들이
위해 일하는 사역방식이 바로 선을 행하는 자를 칭
이 말씀을 자신의 독재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
찬하고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게
야 비로소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부역하던 친일파들은 이 말씀을 이용하여 일본에
공익을 이룰 수 있다.
저항하던 기독교인을 탄압했다. 과연 이런 적용이 옳은 것일까?
넷째로, 국가제도나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명 령은 과연 절대적인 명령일까? 만약 이 명령이 절
결론부터 말하면 결단코 그렇지 않다. 로마서 13장
대적인 명령이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공
의 내용은 독재자들의 권한을 강화시켜주기 위한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 명령이 원
말씀이 아니다. 도리어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
론적인 차원의 명령이라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터 난다는 이 말씀은 권력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말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앞에서 언급한
씀이다. 당시는 모든 권세가 황제로부터 난다고 생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4절에서
각할 때이다. 로마 황제가 신격화되던 시대이다. 그
바울은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했다. 공
런 시대에 사도 바울은 모든 권세는 황제가 아니
직자가 칼을 찬 이유, 곧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
라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따라
진 이유는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보응하기 위해서이
서 이 말씀을 이용하여 자신의 독재 권력을 합리화
다. 공직자가 할 일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
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오용을 넘어서 말씀을 악
고 악을 행하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용하는 것이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데 만약 공직자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지 않
것”이라는 말씀은 그 권세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
고 벌을 준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이
는 말씀이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권세는 그 기원
말씀을 절대적인 명령이라고 해석한다면 백성들은
이신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말씀이
일제강점기에도 무조건 일본 제국주의에 복종해야
기도 하다.
하고, 히틀러의 만행에도 말없이 복종해야 한다는
셋째로, 공권력을 가진 자는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할
결론에 이르게 된다.
까? 로마서 13:4은 권세자를 “하나님의 사역자”라
과연 이 말씀이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명령일까? 어
고 표현한다. 따라서 공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이 절
떤 엄혹한 독재를 하고 어떤 악한 일을 해도 공직자
대 권력자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종, 하나
들에게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씀일까? 만약 공권
님의 사역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한다. 권력
력을 가진 자들이 공의를 저버리고 불의의 편에 선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그
다면, 그리하여 치명적일 정도까지 공의가 집행되
소리 정음
14+ 15
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지 못한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로마서 13장은 이 문제에 명확한 답을 제공하지 않 는다. 이런 경우에는 성경의 다른 본문을 참고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3장은 이런 질문에 좋은 해답을
력한 제국을 이룬 로마는 어느 순간부터 여신숭배 와 황제숭배를 결합하여 제국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하였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도 역시 사 탄의 하수인들이다.
제시한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등장한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 13장은 타락한 권력자들을
다. 한 짐승은 바다에서 나오고, 다른 짐승은 땅에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표현한다. 로마서에서 사도
서 올라온다. 요한계시록 13:1을 보자. “내가 보니 바
바울은 권세자를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불렀지만
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권세자들을 사탄의
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하수인이라고 묘사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이 말씀은 바다
까? 이런 차이가 발생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에서 나온 짐승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번에는 요한 계시록 13:11을 보자.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 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이 말씀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 습을 묘사한다. 이 두 짐승은 사탄의 하수인들이다. 사탄은 자신을 따르는 악한 대리자들을 내세워 하 나님의 교회를 공격한다. 예수님에게 패배한 사탄 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짐승은 무엇을 가리킬까? 첫 번째 짐승은 일차적으로 로마제국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는 대략 주후 90-96년 사이었고, 그때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로마제국을 다스리던 시절이다. 당시 로마제국은 철저히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믿는 사람들을 박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나오는 짐승이 항상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짐승은 수많 은 강력한 국가들의 모습으로 역사 속에서 다채롭 게 등장하였다. 20세기에는 히틀러가 지배했던 독 일, 천황을 숭배하던 일본 등이 이런 짐승이 되었 다. 계시록 본문에서 두 번째 짐승은 일차적으로 로 마제국의 여신숭배와 황제숭배를 전파하는 데 앞 장섰던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정치적으로 강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이 의도한 것은 그리스도인 의 삶의 바른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 로 공직자들은 선한 자를 칭찬하고 악한 자를 벌하 는 공권력을 집행하기 위해 세워진 존재들이다. 따 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공직자들에게 복종해야 마땅하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납세의 의무를 다 하는 모범 시민이 되어야 한다. 로마서는 단지 그리 스도인들이 공직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원리적 측면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다르다. 요한계시록은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사탄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부활하 신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가르 쳐 주는 말씀이다. 그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 사 도 요한은 당시 로마제국과 거짓 선지자들이 어떻 게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악한 일을 도모하는 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사탄적 악에 굴 복하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라고 성도들에게 촉구 한다. 정리하면 로마서가 원론적인 측면에서 공권 력을 집행하는 공직자들에 대해 취할 태도를 보여 준다면 요한계시록은 실제 상황에서 그들의 부정 하고 악한 실상을 드러내어 그 악에 굴복하지 않도 록 성도들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13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을 함께보라
그런데 이런 악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실재한다. 물 론 지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식민지 상태가 아 니다. 군사 독재 치하도 아니다. 대놓고 기독교를 탄 압하는 시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하고 불의한 일들은 여전히 이 나라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아니, 아마도 악하고 불의한 일은 우리 예수 님이 재림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결 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13장에서 그런 악의 실체를 고발한 이유가 무엇인 가? 그것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그런 악의 실체를 바르게 알고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누구 든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고 불의를 일삼는 자들에게 굴복하지 말아 야 한다. 그 악의 실체인 사탄과 사탄의 종노릇하며 이 땅에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저항해야 한다. 물 론 그와 동시에 우리는 로마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나라의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 세금을 성실하 게 납부하고, 일상에서 법을 지키는 일에 마땅히 힘
은이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어떤가? 이런 시국에도 여 전히 어떤 목회자들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무조 건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과 적용이 아니다. 로마서 13장은 무조건 권세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한 말씀이 아니다. 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법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시 민이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씀이다. 로마서에 서 그런 말씀을 주신 이유는 우리가 단정한 그리스 도인의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복 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을 주신 성령 하나님은 로마서와 계시록을 같이 그의 교회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말씀에 순 종하는 것처럼 계시록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로마제국과 그에 부역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비판한 사도 요한의 말씀에 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써야 한다. 우리가 법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시민이
우리 한국교회가 편향되거나 왜곡된 해석으로 말
되는 것과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가
씀을 가르치고 권력자들에게 부역하는 악의 하수
치를 추구하는 모순된 일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벌
인이 된다면, 지금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었
어지는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중요한 목적은 이 나
을 때 한국교회는 이 나라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라를 공의의 법이 살아있는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그 말
있다. 주기도문에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이루어진
씀으로 이 땅의 현실을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악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하기 위한 것이다.
은 도처에서 우리를 공격한다. 온갖 다양한 궤변으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이 나라가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나라가 더 이상 정의 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 한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 백성들을 섬기 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또 재벌과 결탁하여 악 의 카르텔을 만들어 대다수의 국민을 착취하고 있 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이 나라의 젊
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거짓 선 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우리를 사탄 에게 종노릇하게 만든다. 그런 거짓된 가르침에 속 지 말자. 악한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지 말자. 오히 려 이 악의 실체를 분별하여 이 땅에서 불의하고 악 한 일들을 몰아내고 정의롭고 공평한 나라를 만드 는 일에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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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태극기 휘날리며 십자가를 지다? 한국개신교의 보수적 정치참여의 역사 이강일 ◆ 고려대88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 소장. 1993년 부터 캠퍼스 간사를 시작했고, 종교학으로 학위를 받은 2015년부터 제 정신을 차리고 연구소 사역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공부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을 위한 수단과 방법이라 면 가리지 않고 모색 중. 책장을 넘기며 왁 자지껄 토론하는 독서모임이 전국에 가득 하기를 기도한다. 회사를 다니며 집안을 살 리는 아내, 대학 와서 IVF도 하는 큰딸, 맛 난 음식을 보면 기분이 업!되는 고1 둘째딸 과 서울 홍제동에서 살고 있다.
뉴스앤조이, 2017년 1월 14일자(http://www.newsnjoy.or.kr)
2016년 연말에 시작된 대통령 퇴진요구 촛불시
라 교회 신자들에게 호소하는 데 쓰였습니다. 과
위는 연인원 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실제 국민
거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정
5명 중 1명이 이번 집회에 참여했다는 설문조사
치사회적 활동은 민주화 이후 계속된 보수정권
도 있습니다.1) 믿기지 않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
의 집권 실패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적 개
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촛불시위
신교인들을 세상으로 이끌어냈습니다.3) 그러다
에 맞불을 놓겠다고 나선 탄핵반대그룹에, 성가
보니 ‘보수적 개신교인들의 정치적 행동주의’가
대 가운을 입고 대형 십자가를 메고 태극기를 흔
종교사회학자들의 연구 주제로 떠오르기도 했
드는 기독교인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습니다.4) 이번 기회에 한국개신교 주류를 차지
“보톡스 안 맞은 자 있습니까?”라며, 할 말을 잃
하고 있는 보수그룹이 언제부터 어떻게 정치적
게 만드는 구호를 외치는 목사도 있었습니다.2)
보수성을 형성하고 세상과 관계 맺어 왔는지 알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공개적인 정치참여는 그
아보려고 합니다.
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전도 집회 등을
개화기 한국개신교는 당대 핵심 과제였던 근대
크게 치른 적은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개신교
화와 독립을 이루는 데 앞장서면서 진취적 면모
의 정치적 메시지는 사회에 직접 알린 것이 아니
를 보였습니다. 이런 진취성의 이면에는 ‘사회진
1) 서울신문, 2017년 1월 1일자 (http://seoul.co.kr/news) 2) 오마이뉴스, 2017년 1월 14일자 (http://www.ohmynews.com) 3) 강인철, 「개신교와 반공주의」, 중심출판, 2007, p.32. 4) 같은 책, p.6.
한국개신교의 보수적 정치참여의 역사
화론’과 ‘국가유기체론’이라는 근대의 이데올로
1910년 조선 강제병합이 완성된 후, 일제는 ‘포교
기가 깔려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유행하던
규칙’(1915년)을 앞세워 미션스쿨의 종교교육을
생물진화론의 적자생존 현상처럼 강자만이 살
금지하였고, 총독부의 기획에 의해 조선에 들어
아남는다는 생각과 국가는 개인을 넘어선 독립
온 일본조합교회는 ‘조선인을 동화시켜 우리의
적인 생명체라는 생각을 뜻합니다. 이런 사고는
충성스런 신민들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활동을
산업혁명에 성공해서 대자본을 갖춘 선진 근대
시작했습니다.8) 1920년부터는 기독교단체들에
국가들과 후발 근대국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게 법인설립을 허용하여 재산권을 보호하고 세
자기정당화 논리였습니다. 일본도 이런 사상을
금감면도 해주었지만, 대신 재산 상황이 총독부
수용하면서 국가 주도의 근대화를 추진했고 제
의 통제 속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선교사들에
국주의적 근대국가로 변모했습니다. 한국의 근
게서는 대표적으로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대화론자나 민족주의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의
나온 것이니 권세자에게 굴복하라”9)는 로마서
사회진화론과 국가유기체론을 그대로 받아들
13장의 오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제도에 편입된
여 국민계몽을 통한 부국강병 전략을 생각했습
기독교로서 국가권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니다. 동시에 일본의 폭압적인 식민통치를 자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조직의 생존과 확장에
법칙인 양 합리화하고 약자였던 조선의 무능을
만 큰 관심을 두는 경향’10)과 다르지 않습니다.
탓하는 친일 세력을 형성시켰습니다.5)
반(反)기독교운동을 벌이던 사회주의 세력과
초기 미국 선교사들은 학교, 병원 등 근대적 제
대립을 시작한 개신교 측은 1932년 9월 총회에
도를 전수했습니다. 개신교인들은 서구 열강과
서 ‘사회신조’를 발표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
일본의 식민지화 시도를 저지할 수는 없었지만,
되, “일체의 유물교육, 유물사상, 계급적 투쟁,
국권을 되찾는 저항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
혁명수단에 의한 사회개조와 반동적 탄압에 반
습니다. 3.1운동이 대표적입니다. 무려 7979명
대한다”11)는 문구를 넣어 반공적 태도를 명백히
이 살해되고, 1만 5961명이 다쳤으며, 4만 6948
했습니다. 이렇게 반공주의는 한국전쟁 훨씬 이
명이 검거되는 등, 3월과 4월 사이 전국에서 지
전인 1930년대부터 주류 기독교권에 퍼져있던
속된 독립청원시위 에 개신교는 적극적으로 참
생각이었고,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일본 제국주
여하였습니다. 당시 가장 유력한 종교였던 천
의의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기독교계와
도교의 경우, 전체 종교인 2만여 명의 참가자 중
사회주의계의 살기어린 갈등은 이미 한 세대 전
11.8%(2297명)였으나 아직 신생 종교였던 기독
부터 축적되어 온 것이었습니다.
6)
교는 17.6%(3236명)였습니다. 시대정신에 부 7)
응하는 개신교의 사회참여는 안타깝게도 거기 까지였습니다.
또한 1930년대 한국개신교는 신학적으로 근본 주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근본 주의 지도자인 그레샴 메이천을 따르던 북장로
5) 전복희, 「사회진화론과 국가사상」, 한울아카데미출판, 2010, p.28, p.157,
8) 강성호, 「한국기독교흑역사」, 짓다출판, 2016, p.29. 9) 같은 책, p.35.
6) 역사학연구소 저, 「강좌 한국근현대사」, 풀빛출판, 1997, p.134.
10) 같은 책, p.38.
7)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의 역사 2」, 기독교문사출판,
11) 강인철, 앞의 책, p.59.
1997. p.39.
소리 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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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참여, 그 현장에 서다
교파 선교사들이 ‘조선복음동지회’를 만들고 근
리 일제 시기 한국개신교는 정교분리라는 전통
본주의적 관점으로 당시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적 원칙을 깨고 타협했습니다. 타협의 근거가 무
다양한 신학적 시도를 비판하였습니다.12) 독립
엇이었을까요?
을 확보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시대적 과제와는 동떨어진 흐름이었습니다.
3년간의 한국전쟁에서 무려 5백만 명이 죽거나 다침으로써, 남한 사회에서 반공주의는 당연한
한편 일본은 1930년대부터 국가주의로 무장한
정서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반공이
청년장교들의 구테타 시도에 민주정부가 무너
구원의 교리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휴전보다는
지고 군부가 주도권을 쥐면서, 만주사변(1931)
북진통일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했고, 반공을
과 중일전쟁(1937)을 감행했습니다. 동아시아
위한 희생적 순교의 각오를 미국 트루만 대통령
의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일본의 위력을 절감
과 맥아더 사령관에게 밝히려는 기독교 지도자
한 한국기독교는 일본 식민통치에 완전히 순응
들도 있었습니다.14) 북한이 빠르게 전후복구사
하기 시작했습니다. 1938년 장로회 총회에서 공
업을 통해 경제개발을 해나가자, 남한의 반공주
식 결의한 신사참배는 일제통치에 대한 한국개
의는 체제경쟁을 위한 승공론(勝共論)으로 발전
신교의 최종적 항복 선언이었습니다. 원래 신사
했고, 한국개신교는 인권을 제한하는 독재정치
참배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조선의 병참기
를 하나님이 허락한 권세로 수용했을 뿐 아니라
지화를 노린 내선일체 전략의 하나였습니다. 그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이런 지지를 받은 독
러므로 국민의례처럼 했던 천황 배례는 천황으
재정권들은 경제규모를 급격히 키웠으나, 독점
로 대표되는 일본 국가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숭
재벌과 유착하여 기득권 연합을 공고히 하면서
배로 평가해야 합니다. 이로써 사회주의운동세
사회적 양극화를 낳았고, 이로 인해 인권과 사
력과 대립하며,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과 국가주
회적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상황에 이르
의 사회관을 갖춘 한국개신교의 보수적 모델이
렀습니다.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1970년대 초반, 반공주의적 국가주의 체제가 위
한국개신교의 당시 결정을 부끄럽게 하는 독일
협을 받게 됩니다. 미국과 중공(중국) 사이에 화
교회의 사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나치의 국
해무드가 조성되면서, 한국은 물론 한국개신교
가통치를 정면으로 거부한 독일 고백교회는 ‘바
는 심각한 긴장상태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박
르멘 선언’(1934년)을 발표합니다. “국가는 세상
정희는 영구집권을 통해 더욱 강력한 반공주의
속의 정의와 평화를 확립해야 할 과제를 맡았다.
국가체제를 만들 목적으로 유신체제를 강행했
(중략) 교회는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쌍방의 의
고, 한국개신교 보수진영은 지지선언을 했습니
무를 일깨워준다. 국가가 교회가 해야 할 일까
다. 1974년에는 ‘민청학련’ 가담 혐의자로 1024명
지 해버릴 경우, 우리는 이것을 배격한다. 반면
을 조사하고, 7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등 저
우리가 국가의 어느 한 기관이나 된 듯이 국가의
항세력을 강력히 탄압하였습니다. 반면 그해 여
위엄을 가져서는 안 된다.” 독일 고백교회와 달
름에는 복음전도운동인 ‘엑스플로(explo)74’대
13)
12) 박용권, 「국가주의에 굴복한 1930년대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역사」, 그리심출판, 2008, p.309. 13) 같은 책, p.428. 14) 김양선,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종교교육부출판, 1956, pp.89-90.
한국개신교의 보수적 정치참여의 역사
회(연인원 665만 명)가 정권의 지원 속에 개최
이 곧 신앙과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되었습니다.15)
이해하고 있고, 이 가치를 지켜 줄 수 있는 체제
유신정권을 이어받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 독재 정권도 역시 강력한 반공주의 국가주의 노선을
에는 타협하고,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체제에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방식입니다.
취하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민주화 투쟁의 성
그 내적 동기가 어떠하든, 한국개신교는 지난
과가 나올 무렵이었던 1988년, 한국교회협의회
백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
(KNCC, 이하 교회협)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회를 세우고 구제하고 교육하는 등의 사회적 통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한 바 있습니다. “남
합기능을 감당해왔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불의
한의 그리스도인들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종교
한 권력과 교회생존과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타
적인 신념처럼 우상화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적
협했고, 적대세력을 용서하지 않으며, 새로운
대시한 나머지 북한 동포들과 우리와 이념을 달
시대적 과제를 과거의 세계관으로 재단하는 행
리하는 동포들 저주하기까지 한 죄를 범했음”
동도 보여 왔습니다.
을 공적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한국개신교 사상 최초로 반공주의에 대한 확실한 참회를 표명함 으로써 반공주의는 이제 보수적 개신교의 전유 물로 남게 되었습니다.16) 이에 ‘격분’한 보수 개 신교 그룹은 ‘교회협’과 별도로 한국기독교총연 합회(1989, 이하 한기총)라는 거대한 조직(2003 년 현재, 61개 교단, 16개 단체, 1200만 명)을 세 워 반공주의 입장을 지켜가게 됩니다.17) 이 조직 을 기반으로 해서 2000년대에는 ‘기독교사회책
이런 보수적 태도는 윤리적, 영적 각성으로 쉽 사리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관적 층위의 사상부터 꼼꼼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이 들의 신앙적 혹은 선교적 확신 기저에 깔려있는 사회진화론과 국가주의 같은 근대 이데올로기 들이, 사실은 군사력과 자본력을 확보한 근대국 가들의 자기정당화 논리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임’, ‘기독교 뉴라이트’ 등을 중심으로 보수적 정
성경은 제국 이집트의 노예적 삶을 거부하면서
치참여를 이어온 것입니다.
만들어진 이스라엘의 기억과, 로마제국에 살면
일제 시기부터 형성된 기독교의 사회관은 사회 진화론을 기반으로 한 반공주의적 국가주의로 형성되었습니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통해 남한 체제의 주류세력의 하나 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개신교 보수 세력의 정 치참여는 단순히 보수우익 정당의 행동과는 다 소 다른 양상을 띱니다. 보수주의 국가를 세우 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 회의 생존과 성장을 명분으로 행동합니다. 그것
서도 자신의 주인은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 스도라고 고백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하나 님나라 백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18) 하 나님의 권세를 남용하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 는 세상 권력들의 추악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국개신교의 보수적 사회참여의 논리가 얼마 나 힘과 국가 자체를 숭배하는 모습을 띠고 있 는지 깨끗하게 인정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 대해봅니다.
15) 강인철, 앞의 책, 131. 조병호, 「한국기독청년 학생운동100년
17) 같은 책, p.33.
사 산책」, 땅에쓰신글씨출판, 2005, p.130.
18) 톰 라이트, 순돈호 역, 「바울」, 죠이선교회출판, 2016, p.125.
16) 같은 책, p.89.
소리 정음
20+ 21
말씀산책
하찮은 일과 소명 사이에서 (삼상 16:11-13)
김유복 ◆ 영남대84 캠퍼스 간사로 14년을 섬긴 후, 뼈를 묻으 려 했던 IVF를 떠났다. 대구에서 대학생들 과 ‘기쁨의 교회’를 개척했고, 현재까지 15년 간 사역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서도 지속적 으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싶다. 저서로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음」이 있다.
내 직업은 목사다. 우리 교회는 상가건물 2층에 있다. 주일마다 50리터짜리 쓰 레기통이 가득 차는데, 양복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뒤로 돌려 매고 넘치는 쓰 레기를 꽉꽉 눌러가며 치울 때마다 ‘내가 이러려고 목사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헌데 이런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나뿐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엄 마들이 아기 똥 기저귀를 갈 때의 표정을 보면 쓰레기 치우는 내 표정과 흡사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나?’ 그들의 마음속 소리가 다 들리는 듯하다. 쓰레기를 치우거나 똥 기저귀를 가는 것보다 더 중 요한 일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하찮은 일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느 껴지기 때문이다.
말씀과 함께 걷는 우리의 삶
다윗의 직업은 양치기였다. 당시 양치기라는 직업은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일과 존재는 어떠한가? 그
하찮은 일에 속했다. 첨단 직업이었던 농업을 위해서
리스도인은 자신의 일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는 많은 도구와 경험 그리고 기술이 필요했던 반면,
가?
목축업의 규모는 작았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아무 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집안에서 양치기의 일을 맡
하찮은 일은 없다
았다는 것은 다윗이 그 집안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터는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성취되는 장소다. 성경의 맨 처음 책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일을
게다가 다윗에게 양치기 일을 맡긴 것은 나이가 어렸
맡기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에게 맡겨진 책임은 에
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사무
덴 동산을 지키고, 하나님을 대신해 피조세계를 잘 다
엘이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을 선택하기 위해 모
스리고 정복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아담은 하나님의
두를 불러 세웠을 때도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다. 남
통치를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실현할 통치자로 지음
은 아들이 더 이상 없느냐는 선지자의 물음에 이새는
을 받았다. 아담의 일은 ‘에덴 동산을 지키고 가꾸는
다윗을 ‘막내’라고 불렀다. 막내라 번역된 단어의 원
일’,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과 같은 것들이
래 뜻은 ‘하찮은 이’라는 뜻이다. 그는 아들을 모두 불
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로서 피
러오라는 사무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예 초대조
조세계를 보존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계승해 문화를
차 받지 못했다.
발전시키는 일이다. 성경은 이를 왕노릇이라 칭한다.
사람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지낸다는 것은
다윗이 양떼를 몰아 쉴 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데
대단히 기분 상하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리고 가서 풀을 뜯게 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는
을 버는 능력으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런 세상
일은 바로 하나님의 일이었다.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
에서는 돈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으면 하찮은 사람
매를 수확해 포도주를 담그는 일, 씨를 뿌리고 곡물과
인 것인 양 취급당할 때가 있다. 기기나 시스템의 성
열매들을 결실하는 일, 시를 쓰고 곡을 붙여 노래하는
능을 의미하는 ‘스펙’이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일, 악기를 제작해 연주하는 일, 가축을 기르고 새끼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거나, ‘잉여’ 같은 단어로
를 치는 일 등의 모든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대리통
자신을 가치 없는 싸구려 상품으로 격하시킨다. 게다
치자로서 행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일’을
가 여기에 인공지능이 발전하여 기계들이 사람들의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 속에서 실현한다.
일자리를 대체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나 둔다는 바둑 계를 평정하고, 의사 대신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것을
일은 예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또 다른 방
보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하찮은 일이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일과 예배가 하나님을 섬기는 동일한
하찮은 존재로 받아들이라는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목적을 지녔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소리 지음
22+ 23
말씀산책
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일해서 하나님
터, 다윗이 양떼를 치던 광야에서였다. 그는 ‘하찮
의 통치를 이 세상에 실현해야 한다.
은 일을 맡은 하찮은 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일을 마치 왕의 일인 것처럼 해냈다. 위대한 사람
초대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노예들도 있었다. 당대
은 하찮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 일을 위대하게 행
의 기준으로 보아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들을 향해
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이렇게 썼다. 그곳에 두신 이유가 있다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걱정하
하나님이 일터의 주인이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
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거든 차
금 거기에 두신 목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 생
라리 그 길을 찾으십시오.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
애가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
람은 종도 주님께 속한 자유인이며 부르심을 받을
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때 자유인이었던 사람도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 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으니 사람의
첫째, 일터는 다음 단계의 소명을 위해 우리를 구비
종이 되지 마십시오”(고전 7:21-23).
시키는 훈련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다윗이 양을 지 키기 위해 익혀야 했던 돌팔매질은 후일 골리앗을
무슨 말일까? 노예의 자리에 있든 자유인의 자리에
무너뜨려 블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
있든, 우리의 신분과 처한 위치가 어떠하든지 간에
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윗은 광야에서 양떼를 몰며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바울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꼴을 뜯게 했다. 이런 경험은
에게 일터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하찮은 일
훗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그를 찾아온 사람들을 안
을 하는 하찮은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다윗은
전하게 인도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우리가
양을 물고 달아나는 맹수들의 뒤를 쫓았고, 돌팔매
일터에서 배우게 되는 능력에는 직업적인 전문성
를 던져 그것들을 쓰러뜨렸다. 다윗은 사람들이 하
과 기술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능력, 문제해결 능력
찮게 여기는 자기 일을 위대하게 수행했다. 잠언은
등,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일터에서 배운 이런 다
이런 사람이 존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한 능력은 후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중요한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다.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을 네가 보았을 것이다. 그 런 사람은 왕을 섬길 것이요, 대수롭지 않은 사람을
데이비드 부소는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으로 세계
섬기지는 않을 것이다”(잠언22:29).
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돕고 부유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가 벌인 사업으로 300만 개의 일
당시 양치기의 일은 비록 하찮은 일에 속했지만 다
자리가 창조되었고 가난에 찌든 많은 이들이 가난
윗은 그 일을 하나님이 시키신 일인 것처럼 최선
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아홉 살의 나이, 추운
을 다했다. 하나님은 다윗 안에 “왕”이 들어있음을
겨울날에 고아원에 맡겨졌다. 열세 살 때 하루 일
보셨다. 어디에서 그것을 확인하셨겠는가? 바로 일
과는 새벽 5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아침을 먹기 전
말씀과 함께 걷는 우리의 삶
닭 모이를 주고 나면 산더미 같은 세탁물을 빨고
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극한의 순간에
다림질을 해야 했다. 그리고는 저녁준비와 식사 후
도 그를 미워하지 않으려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 하
청소와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학교
나님을 신뢰함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 동안
그는 일터에서 아름다워졌다.
일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그 시절의 경험을 이렇 게 말한다.
우리도 일터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까닭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까닭이 있겠
“멀리 내다 볼 때, 우리가 했던 일은 좋은 훈련이
지만 과도하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들도 있다. 기
되었습니다. 농장을 운영하고 집안을 경영하는 데
질이나 성격이 너무나도 까다로워 함께 지내기 어
필요한 일들을 배웠지요…. 어쨌거나 우리는 그 일
려운 사람도 있다. 무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을 견뎌냈고, 그 결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습
되는 사람도 만나고, 내가 하는 일마다 딴지를 거는
니다.”<네가 선택한 길에서 뒤돌아보지 마라, 포이
이들도 만나게 된다. 다윗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에마>
사울은 다윗의 진심을 끝까지 알아보지 못했다. 군 대를 동원해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비록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
님을 의지하였다.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
서 낙심하지 말라. 당신을 거기에 두신 분은 하나
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시편 11편은 이런 그
님이시다. 언젠가 당신을 거기에 두신 이유도 알게
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다.
될 것이다. “내가 주님께 피하였거늘, 어찌하여 너희는 나에게 둘째, 우리가 일터를 통해 얻는 또 다른 유익은 영
이렇게 말하느냐? ‘너는 새처럼 너의 산에서 피하
적 성숙이다. 교회와 더불어 일터는 영적 성숙을 위
여라. 악인이 활을 당기고, 시위에 화살을 메워서
해 매우 훌륭한 훈련의 장이다. 다윗은 일터에서 성
마음이 바른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쏘려 하지 않느
숙해갔다. 양떼를 몰며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냐?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이 마당에 의인인들
인도하시며 자신을 기르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광야의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세상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미
악인들이 세상을 장악해 버려서 정의의 기초가 무
했다. 정신적으로 극도로 불안한 직장 상사인 사울
너져 내리고 있는 마당에 하나님이 웬 말이며 정의
을 진심으로 섬겼다. 사울이 정신이 나가 다윗을 벽
롭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주변
에 박아버리려고 그를 향해 창을 던졌음에도 다윗
사람들의 비관적인 질책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은 그를 위해 수금을 연주했다. 사울이 자기를 미 워하고 죽이려 할 때조차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끝
“주님께서 그의 성전에 계신다. 주님은 그의 하늘
까지 사랑하려 하였다.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그
보좌에 앉아 계신다. 주님은 그의 눈으로 사람을 살
는 미치광이가 되어가는 사울의 모습에서도 일말
피시고 눈동자로 꿰뚫어보신다. 주님은 의인을 가
소리 지음
24+ 25
말씀산책
려내시고, 악인과 폭력배를 진심으로 미워하신다.
다윗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았다. 다윗은 왕이 되
불과 유황을 악인들 위에 비 오듯이 쏟으시며, 태
기 위해 편법을 쓰지 않았다. 그는 선으로 악을 이
우는 바람을 그들 잔의 몫으로 안겨주신다. 주님은
겼다. 그의 선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 뿐만 아니
의로우셔서, 정의로운 일을 사랑하는 분이시니, 정
라 그의 대적들에게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리스
직한 사람은 그의 얼굴을 뵙게 될 것이다.”
도인은 일터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일터는 우 리가 그리스도를 증거할 최상의 장소다. 세계선교
다윗은 타락한 일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를 위한 복음주의자들의 합의문인 케이프타운 선
그리고 그는 타락한 마음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언문에서는 일터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걸었던 것이다. 우리가 일터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일, 그것이 선한 일이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일터는 복음전도와
든 부당한 일이든,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끈
변혁을 초래할 중요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소수
다. 일터는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딱 좋은 장소다.
의 교회만이 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신자들을 구 비시키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셋째, 일터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일터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다윗은 진정한 친
우리는 일터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복음을
구인 요나단을 그의 일터인 왕궁에서 만났다. 다윗
‘말’로 선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은 요나단과의 우정을 통해 원수인 사울을 용서하
그 복음을 ‘살아냄’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 사랑할 힘을 얻는다. 요셉은 감옥에서 성실히
증거해야 한다. 일터는 우리의 선교지이며, 우리
일하며 사람들을 진심으로 섬겼기에 자신을 이집
는 일터의 자비량 선교사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
트 왕에게 천거해줄 고위직 관리를 만날 수 있었
리를 일터에 두신 이유와 목적이 있음을 믿자. 지
다. 우리는 일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기
금 우리가 하는 ‘하찮은’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
도 하며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던 새로운 재능을
운데 있음을 믿자. 지금 당장은 왜 이런 시답잖은
발견하기도 한다. 다윗은 양을 훔쳐 달아나는 맹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수들을 추격해 제압함으로 자신에게 그런 ‘무공’이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신뢰하자. 광야의 다윗처
있음을 발견한다. 그가 골리앗 앞에서도 전혀 주눅
럼 성숙한 사람이 되고 정의로운 리더십을 배양하
들지 않고 승리를 낙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
기 위해, 때로는 아하수에로 왕 앞에 선 에스더처
터에서 발견한 자신의 재능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럼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우리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를 지금의 일터에 두신다. 또한 우리는 말과 삶으 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증언하기 위해 일터
뿐만 아니라 일터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
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을 증거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며 우리의 선의를
있는지 잘 모를 수 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
드러낼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나님은 곤경에 빠
적을 믿으라. 하나님이 당신을 거기에 두신 이유
진 다윗을 여러 번 구원하셨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 있다. 일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말씀과 함께 걷는 우리의 삶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기
도문은 법조계의 잔다르크라고 알려진 임은정 검
우리는 일하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함으로 하나님
사가 쓴 기도문이다.
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지 않 을 때 비극적인 일들이 발생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
일한다는 것은 정의롭게 일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습니다. 고통 받는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따뜻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맥락을 잘 살펴야만 한다.
한 손길이 되겠습니다. 고통 받는 피해자의 마음을
대통령이나 대학총장 같은 높은 자리에 앉는 것만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이 되겠습니다. 비뚤어진 영
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
혼이 돌아설 수 있도록 다독이는 따뜻한 손길이 되
리가 그 일을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이다.
겠습니다. 잔인한 정의가 아니라 따뜻한 정의가 실 현되도록 마음과 능력을 다하겠습니다. 지치지 않
군사정권 아래서 무고한 시민들을 고문하거나 살
을 수 없겠지만 조금은 덜 지치고, 지치더라도 다시
해한,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
기운 낼 수 있도록 주님 지켜주세요.”
들이 있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부패한 권력 에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
그는 정의로운 소신에 따라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
도 보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자원을 약탈하다시피
저항해 무죄구형을 했고, 검사의 품위 손상 등을 이
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경제를 무너뜨리는 다국적
유로 4 개월 정직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스도 안에
기업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충성을 바치는 그
서 일할 때 고난을 받을 수 있다.여기 다윗이 쓴 시
리스도인들도 있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으로 직원
편을 함께 읽어보자.
들을 착취하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소명이라고 믿 고 있는 크리스천 기업가들도 있다. 교회도 마찬가
“남들이야 어떠했든지, 나만은 주님께서 하신 말
지다. 일부 교회의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전임사역
씀을 따랐기에, 약탈하는 무리의 길로 가지 않았
자들은 새벽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해 살인적인 스
습니다. 내 발걸음이 주님의 발자취만을 따랐기에
케줄에 따라 밤늦게까지 일하며 착취당하다가 어
훌륭한 그 길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습니다”(시편
느 날 갑자기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 모든 부패
17:4-5).
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서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와 기업체의 고위직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최순실 사태 같은 일은
나치에 충성했던 자들은 한결같이 ‘나는 내게 주어 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일뿐 아니라 그 일이 가진 의미와 목적 그리고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인지 아니면 불의를 조 장하는 일인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아래의 기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 지음
26+ 27
미생 : 종로모임 이야기
또 하나의 공동체, ‘종로 IVF 직장인모임’ 허대리 ◆ 동아대 05 서울살이 3년차인 부사니언(Busanian)으 로, 사역자인 남편과 재작년에 결혼하고 상 경했다. 현재 충정로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 서 근무하고 있다. (필자와의 합의에 따라 필명을 사용합니다.)
기혼녀인 내가 취업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면서 29년간 살며 사랑했던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근 30년을 부 산에 살았으니 교회, 직장 할 것 없이 그곳에 잘 정착한 상태였다. 그런 부산을 떠나 서울 로 온 것이 나에게는 결혼에 버금가는 도전이었다. 서울로 올라와서 적응기간을 보내고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든 생각 은 ‘나 같은 유부녀를 써줄 회사가 어디 있으려나….’ 하는 마음뿐이었다. 나이 서른에 기 혼, 게다가 언제 아기를 가질지 모르는 여성을 어떤 회사가 고용해 주겠냐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통해 얻는 물질적 보상을 떠나, 남편 따라 올라온 내 생활에 직장생활은 새로운 활기를 부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단조로운 일상을 떠나 하루하 루를 건강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다. 첫 번째 광고대행사 면접 탈락 이후 의기 소침해진 나는 두 번째 찾아온 사회복지 기관의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기독교 정 신으로 세워졌다는 사회복지 기관에 11개월 계약직 신분으로 ‘재취업 뽀개기’에 성공했다.
일자리만 구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부산에서 회사를 다니던 거의 5년 동안, 나는 야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 울에서 경험한 첫 직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인수인계에만 3개월이 걸렸고, 업무량은 업 무시간 안에 한 사람이 해내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야근은 일상이 되었다. 감사를 준비
매일 전쟁터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종로모임 이야기
하거나 예, 결산 시즌에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일했다.
또 버텼다. 퇴직금 없는 11개월의 계약기간에 마침표
지난 시절, 청년부 모임에서 사람들이 직장생활에 대
를 찍고 마침내 나는 무사히 퇴사했다.
한 어려움이나 애환을 이야기할 때 크게 공감하지 못 했던 나는, 이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고 밀려
또 하나의 공동체 ‘종로 IVF 직장인모임’
오는 업무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계속되는 야근으
남편에게 직장에 대한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남
로 삶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대체 하나님은 왜 나를
편은 직장인도 아니었거니와 아내인 내가 힘들다고
이곳에 보내신 걸까? 모든 타이밍이 완벽하다고, 하나
하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니, 사실 구조적으로는 그만
님이 인도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는 지금 이곳에
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참 난감했다. (남편에게는
서 힘들기만 할까….
내가 혹시 이 직장에서 계약을 연장하려고 한다면 꼭 말리라는 당부를 해놓은 상태였다.)
더 힘들게 하는 기독교 기관과 크리스천 상사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졌다는 그 기관에서는 월요일은 예배로 시작하고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성탄절에도 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직원들이 특송도 하고 이것 저것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업무가 너무 많아 오 히려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 로 마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매주 아침 예배 때 “우리 는 선교사적 소명의식 계승하여~”라는 선언문을 외쳤 지만,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대체 어디에 계신지 찾 곤 했다. 모든 직원들이 야근과 더불어 정말 힘들게 일
그날도 퇴근 후 피곤함에 절어 있었는데, 우연히 [소 리]지에서 ‘직장인 대회’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무턱 대고 참가 신청서를 냈다. 아마 내 안에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리라. 타지인 서울 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그것도 기독교 정신을 지향한 다는 기관에서 일하며 받았던 스트레스와 분노!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내고 있는 다른 직장인들은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 또 내 직장 생활의 경험이 다른 사 회초년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 까, 이런저런 기대감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해서 그런지 동료애만큼은 정말 끈끈했다. 그러나 정 규직과 계약직 간의 급여에 차별대우가 심했다. 게다 가 힘들게 하는 상사는 크리스천이었다. 여러 가지 사 건사고가 많았던 그 기관은 신앙이 없는 직원들에게 덕이 되지 않아서 그것도 마음을 힘들게 했다. ‘내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니 더 성실하게 열심히 해야지!’ 하 는 각오는 그곳에서 일을 하며 분노로 변했다. 당장이 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계약기간을 채워야 업무진행 에 피해가 없었기에, 그 책임감으로 함부로 그만두지 도 못했다. 중압감으로 인해 내 삶은 행복하지도 평안 하지도 않았다. 퇴사하는 날이 곧 해방의 날이라며 휴 대폰에서 디데이를 셌고, 퇴사 직전까지 휴가조차 반 납한 채 업무 마무리를 위해 야근을 자처하며 버티고
직장인 대회 후, ‘종로 IVF 직장인모임’을 통해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모여서 책 나눔도 하고 직장에 대 한 이야기, 현재 직장에서의 고민 등을 털어놓는다. 경 험하는 바는 모두 다르기에 대안을 제시하진 못하더 라도, 서로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이 모임 안에 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크리스천 직장인이 있고, IVF 출신이 아닌 사람도, 잠시 쉬며 충전의 시간을 가 지고 있는 예비 취업자들도 있다. 우리는 ‘직장생활’이 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내야 할지 함께 고민한다. 다음 호에서는 ‘종로 IVF 직 장인모임’의 에피소드를 나누고자 한다.
소리 지음
28+ 29
우리 결혼할까요?
“안녕하세요, 간사님!” 호욱 ◆ 연세원주04 원주 IVF 6년차 간사이자 하루 빨리 한량으 로 살고 싶은 1인.
때는 바야흐로 2015년 7월, ‘전국리더대회’가 열리고
다리면서 우리는 서로가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나
있는 때였다. 나는 같이 점심을 먹자고 진행팀 간사님
눴다. 매드맥드의 기타맨이 너무 좋다며 흉내 내던 간
들께 연락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다들 바쁘다며 따
사님의 모습이 선하다. 얌전한 줄 알았던 간사님의 이
로 먹겠다는 것이다! 남은 사람은 나까지 2명. 나 빼고
미지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만나봐
남은 사람이 바로 이은경 간사였다. 평소 비즈니스 관
야 아는 것 같다. 이후 우리는 애프터의 애프터를 거
계(?)라 조금 어색했지만 그날 같이 밥을 먹었고, 그
듭했다. 내가 좋아하는 샤브샤브를 먹고, 간사님이 좋
밥이 결국 나의 ‘인생 식사’가 되었다. 즐거운 식사 자
아하는 ‘가을방학’의 공연도 보러 갔다. 통화하는 시
리였고, 기회만 된다면 그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같
간은 점점 길어졌다.
은 해 11월, 나는 주변의 도움으로 이은경 간사와 소개 팅을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간사님!” 안국역 4번 출구 앞에서 첫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내가 미리 계획하고 알아 놓은 동선으로 걸어가서, 예 약해둔 작은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간사님 은 생각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했고,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었다. 난생 첫 소개팅이라 많이 긴장했지만, 그
“간사님, 우리 연애할래요?” 두 달이 지난 2016년 1월. 여전히 호칭은 간사님이었 지만 나는 사귀자고 고백했다. “왜 이렇게 늦게 말했어요?” 의외의 반응이었다. 보통 소개팅을 하면 두세 번 정 도 만난 후에 결정하는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내서 ‘썸’만 즐기는 나쁜 남자인 줄 생각했다고 한다.
래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칠 수 있었다. 헤어지기 전, 평소 야근이 많은 간사님에게 비타민과 초코우유 를 건넸다. 평소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스초코를 원 샷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준비했다.
“잘 되든 안 되든 계속 볼 사이니까 더 신중하려고 했어요.” 종종 간사 공동체 안에서 마주칠 것이기 때문에, 두 세 번 만에 결정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애프터를 신청했다. 간사님은 흔쾌히 받아주었고 한 주 뒤, 우리는 다시
리고 간사님이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확신이 생기 면 고백하고 싶었다. 이런 내게 은경 간사는 말했다.
신촌에서 만났다. 역대 ‘멜로영화 TOP10’ 안에 든다 는 <이터널 선샤인>이 재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보러 갔다. 기분이 좋았다. 영화를 보자는 제안 을 은경 간사님이 먼저 해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기
“여자는 마음이 없는 남자랑은 카톡도 안 하고, 공 연도 안 봐요!!” “아….”
연애부터 결혼까지, 그들의 백년가약
‘이 남자, 뭐지?’ 이은경 ◆ 숙명여대05 음악, 공연, 영화를 좋아해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IVFMEDIA에 정착한 영상팀 간사
‘전국리더대회’ 이후 주변에서 호욱 간사 어떠냐는 이
너무 정석이잖아? 한두 번 더 만나보고 얘기하겠지….’
야기를 많이 들었다. 당시 진행팀에서 혼기가 꽉 찬 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날은 옷도 정성껏 차려입고 공
사가 우리 둘 뿐이라 으레 하는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대
들여 화장도 했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이 왠지 아쉬웠다.
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막상 그와 소개팅 제안을 받았을 때, 같은 간사 공동체에서 만난다니 여간 부담 스러운 게 아니었다. 잘 돼도 걱정, 안 되면 더 걱정이었 다. 잘 안 되면 얼굴을 어떻게 보나, 간사수련회에서 같 은 소그룹이 되면 어쩌나, 아직 소개팅은 하지도 않았는 데 불발됐을 때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2015년 11월, 우리는 만났다. 조용 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사근사근 질문을 던지고 자 기 이야기도 잘했다. ‘역시 학생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대화를 잘 하는구나!’ 그래도 나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그를 관찰하고 대화하며 첫 만남을 마무리했다. 전철을 타려는데 줄 게 있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아직 선물은 부담스러운데….’ 난감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그가 건넨 것은 비타민과 200ml 초코우유였다. (요즘 고급 초코우 유도 많지 않은가, 그 소박함이라니!) 순간 “풉!”하고 웃 음이 나왔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나의 말을 기억해 준 그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게 싫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이어갔다.
그리고는 열 번도 넘게 만났다. 그 사이 우리는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크리스마스에도 만났다. 통화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만나는 횟수도 늘어 가는데 정작 사귀자 는 말은 안 한다. ‘이 남자, 뭐지?’ 썸을 타거나 즐길 만 한 위인은 못 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 어 말을 안 하는 건지 내 속은 점점 타들어갔다. ‘그래,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심산으로 밀당 아닌 밀당을 하 며 만남을 이어갔다. 결국 2016년 1월의 어느 날,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날, 나는 살며시 그의 어깨에 기댔다. 내가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그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랬 더니 웬걸, 그날 바로(!) 고백을 받았다. (하긴, 말 안 했 으면 정말 다시 생각했을 것 같다.) 왜 이렇게 늦게 말하 느냐는 나의 항의(?)에 그는 원래 2월에 고백하려 했다 고 말하는데 참 기가 막혔다. 우리가 11월에 만났는데 2 월이라니…. 내 마음에 확신이 들 때까지 신중하려고 했 단다. 아니, 밤늦게까지 통화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 화와 공연을 함께 보고 선물과 편지도 줬는데, 그 이상
세 번째 만남. 난 당연히!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같이 이
의 확신을 어떻게 준단 말인가! 그건 신중한 게 아니라
야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어느 정도의 호감이 있으
배려가 없는 거라고 핀잔을 줬지만 그의 입가에는 이미
므로 그 관계는 당연히! ‘연애’일 거라고 김칫국을 마셨
미소가 번졌다. 우리의 연애는 긴 가을을 지나 한겨울에
다. 집에 갈 때가 되었는데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순
시작됐다. 그렇게 가을, 겨울, 봄, 여름, 1년을 함께 보내
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아니야, 세 번은
고 2017년 2월, 우리는 마침내 결혼을 한다.
소리 지음
30+ 31
‘오Chef’의 오늘 뭐 먹지?
“직접민주주의”맛 모닝빵 샌드위치 오한웅 ◆ 서울대99 한마리곰미디어 대표이자 PD. DIA TV 크 리에이터. IAM 카드게임 개발자. 창의적이 면서 좋은 영향력을 주는 미디어들을 만들 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중이다. 사람 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함께 보드 게임하고 노는 게 제일 즐겁다.
아직은 날이 선선했던 토요일. 제3차 촛불집회에 가
어차피 차갑게 식을 것이라면 김밥보다는 샌드위치
는 길은 무척이나 붐볐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한
가 나을 것이고, 식빵보다는 모닝빵이 더 간편할 것
정거장을 걷고, 뒷길로 돌아 인파를 헤치고 걸어가서
이다. 그래, 이번 기회에 직접 만들어 보자. 기왕이면
야 무대가 보이는 곳에 겨우 도착. 공연도 감상하고
빵까지!
소리도 지르다 보니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 내가 저녁을 안 먹었구나.’ 행진을 시작하면서 뭔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근 처를 돌아보았으나, 대부분의 식당은 식재료가 떨어 졌거나 손님이 많아 진입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심지 어 편의점에도 빵이나 김밥 같은 요깃거리는 이미 떨 어진 지 오래였다. 다시 한참을 걸어 을지로입구역. 남자 화장실조차 길게 줄이 늘어선 그곳을 떠나, 주린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빵은 자주 만들어 먹었지만, 모닝빵은 처음이다. 레 시피를 검색해 보니 식빵과 거의 비슷하지만 이스트 가 적게 들어가고, 모양을 공굴리기 하는 것이 다르 다. 어렵지 않게 만들고 속까지 채워 완성! 이렇게 처 음 만들어 본 모닝빵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감탄이 솟구쳤다. “와 이런, 직접민주주의 같은 맛이라니!” 빵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는 생각 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정치에 유의미한 영향
아무래도 다음번 집회 때는 먹을 것을 준비해서 나가
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꿈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야겠다. 도시락을 싸되 펼쳐놓고 먹어야 하는 밥 종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당신은, 우리는, 빵을 만
류보다는 걸어가면서도 하나씩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들 수 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이제 해보자. 직접.
‘오Chef’가 소개하는 오늘의 요리
* 재료: 강력분 350g, 버터 20g, 우유 180g, 연유 15g, 설탕 30g, 소 금 5g, 드라이이스트 6g, 계란 1개
1. 분량의 밀가루를 체에 쳐서 반죽용 볼에 담고, 설탕, 소금, 이스트가 직접 닿지 않도록 구멍을 파 넣습니다.
소리 지음 2. 그 위에 우유, 연유, 계란을 넣고 고무주걱 등으로 잘 섞어줍니다. 5분 정도.
3. 실온에 꺼내놓아 말랑해진 버터를 넣고 본격적으로 반죽을 합니 다. 손으로 눌러 펴고 다시 치대어 한 덩어리로 만드는 과정을 15분가 량 합니다. 손반죽하는 것이 좀 힘든데, 그래서 저는 한두 번 해보고 제 빵기를 샀어요.
4~5. 랩을 덮어 따뜻한 곳에 두어 40분간 발효합니다. 밥통이나 오 븐, 제빵기 등의 발효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면 활용하세요. 손가락으로 찔러보아 푹 들어간 그대로 있으면 발효가 잘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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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Chef’의 오늘 뭐 먹지?
6. 12등분해서 탁구공 크기로 동그랗게 성형하여 2차 발효를 합 니다. 40분간.
7. 180℃로 예열된 오븐에서 20분간 굽습니다. 9개의 모닝빵과 1 개의 왕꿈틀이가 만들어졌네요.ㅎㅎ
8. 속에 넣을 재료는 원하는 대로 준비하세요. 저는 양상추, 계란 프라이, 치즈, 슬라이스 햄, 허니 머스터드소스로 한 종류, 크림치 즈만 넣은 것 한 종류를 만들었습니다.
9. 크림치즈가 듬뿍 들어갔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네요.
TIP. 빵을 만들고 싶지만 오븐도, 오븐 살 돈도 없는 분들은 제빵기 를 고려해 보세요. 저렴한 것은 인 터넷에서 8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각종 쿠폰과 포인트 를 사용해서 4만원에 구입했는데, 그것을 이용하면 반죽과 1차 발효 까지 가능합니다. 모양은 별로지만
10. 이렇게 담아놓으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네요.
빵을 구워주기까지 하니 꽤 사용할 만합니다.
지금 다시, 헌법이다
헌법을 알자, 힘써 헌법을 알자. - 전 국민 헌법 읽기, 헌법 알기 운동을 제안하며 -
소리 지음
정한신 ◆ 부산대94 IVF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아내(한은정, 동아 대 99학번)와 두 아들과 더불어 성숙하는 가 정을 꿈꾸며 살고 있다. 캠퍼스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IVF 일상생활사역연구소 의 기획연구 위원이자, ‘일상학교’ 대표 겸 프로그램디렉터다. ‘일상학교’의 법/제도 과 정의 일환으로 “전 국민 헌법 읽기 프로젝 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속 기획 강좌 “대한민국 헌법을 말하다”를 기획하여 진행 하고 있다. peacemaker99@hanmail.net
“전 국민 헌법 읽기 프로젝트”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대한민국 헌법 전문(全文)을 함께 읽고 이야 기하는 작은 모임을 진행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작년부 터 지금까지 카페와 캠퍼스에서, 교회와 가정에서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헌법을 읽고 나누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헌법을 읽고 아는 일 은 이 땅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헌법을 읽고 알아야 하 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정치 공동체인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 는 매우 중요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34+ 35
지금 다시, 헌법이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통치구조에 관한
국은 군주국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기본법이며 최고법이다. 다시 말해서 헌법은 국민
이며,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권인 주권이 국민에
이 누리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규정하고, 이
게 있다. 또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정당성
러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조직
과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국민적 합의가 담겨 있는
과 그 운영에 관한 기본 틀을 규정하는 법이라고
것이다. 또한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
할 수 있다. 또한 헌법은 실정법상 최고법으로서,
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
모든 법령과 공권력은 헌법에 근거해야 하고 헌법
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
에 위배되는 법령과 공권력은 더 이상 효력을 유
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지할 수 없게 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전체의 핵심 가치를 규 정한 이 조항과 더불어, 앞서 열거한 기본권 조항
헌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에 이르는 제반 영역
들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최고의 가치이자 국가
과 일상에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규정
의 존재 목적으로 설정한다는 국민적 합의의 표
한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
현이다.
등권,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 의 자유, 주거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
그렇다면 국민들 중에서 헌법을 아는 사람은 얼
비밀에 관한 권리,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
마나 될까? 헌법이 이토록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표현의 자유), 학문·
우리나라 의무교육 과정에서는 헌법을 체계적으
예술의 자유, 재산권, 선거권, 공무담임권, 청원권,
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헌법은 대다수
재판을 받을 권리, 형사보상청구권, 국가배상청구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법에
권,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노동 3권, 인
관한 것은 전문 법조인과 권력기관들만 다룰 수
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환경권 등의 기본권을 명
있다는 전문가주의와 특권의식도 이런 현상을 심
시하고 있다. 아울러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
화시켜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헌법은 권력자들의
로서 생명권 등도 인정된다. 또한 헌법은 국회, 대
전유물이었고, 헌법 개정을 비롯한 헌법 논의에서
통령 및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와 같은 국가조직
국민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더구나 헌법을 아
에 관한 사항과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및 헌법
는 것은 곧 국민의 각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
개정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 특히 국가기관들의
에 이를 원치 않는 권력은 헌법 교육에 소극적일
권한과 그에 대한 통제 제도를 규정함으로써 권력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헌법에 대한 무관심과 이
이 부패하거나 남용되지 않고 국민을 위하여 행사
해 부족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권력이 헌법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두고 있다.
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고 일반 국민이 헌법에 규 정된 바를 알지 못하면, 최근 우리가 목도하고 있
한편,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과 지향 가치 및 비전
는 바와 같이 국가 정체성이 훼손되고 국민의 삶
에 관한 국민들의 근본적 합의를 규정한다. 예컨
은 피폐해 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은 선거 때만
대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꼭두각시가 될 뿐
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
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보장
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
받지 못한다.
헌법을 톺아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헌법에 대한 관심이 고
나빠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국민의
조되고 있다.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탄생한 현행
권리와 복지를 제공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헌
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조직된 이래로 헌재가
법 규정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국민
사회적으로 중요한 결정들을 내놓을 때마다 헌법
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과 정부의 책
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결정적으
무를 규정하는 헌법의 내용들을 가지고 세월호 참
로 최근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반헌법적 행태들이
사, 메르스 사태, 지진 위기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비판과 저항이 계속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국가의 존재 이유에
되었고, 급기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에 대한 탄핵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심판을 심리하면서 국민들은 헌법을 재발견하고 헌법의 역할에 대해 각성하게 되었다. 광장에서는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우선 헌법을 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의 선언이
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자. 현행 헌법은 전문(前文)
구호가 되었고, 숱한 시국 선언들 속에는 국민주권
과 부칙을 제외하고 130개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
의 정신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선언들은 국민이
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한글로 된 헌법 조문을 30
주인이 되고 국민으로부터 적법하게 권한을 위임
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홈
받은 대표자들의 공적 결정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
페이지에서 ‘대한민국헌법’을 검색하면 헌법 전문
어야 한다는 헌법상 민주공화국 규정과 국민주권
을 구할 수 있다. 혼자 읽기 어려우면 가족 단위로,
규정 및 대의민주주의 원리에 위반하여 대통령이
혹은 소그룹에서 돌아가면서 헌법을 소리 내어 읽
그 권한을 비선 실세에게 넘겨주고 국정을 좌지우
으면 된다. 물론 헌법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려면
지하게 함으로써 헌법과 국민을 무시한 처사에 대
역사적, 철학적, 법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
한 준엄한 평가였다. 그리고 이제 시민들은 헌법을
은 국민이 헌법 조문 자체의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
가지고 시국을 평가하고 권력과 기득권에 대항하
도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
며 현실의 모순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는 방
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악한 구조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근원적 변화를 바라기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전 국민이 헌법을 알
위한 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헌법을 아는 것은
고, 잃었던 국민의 권리를 되찾으며, 미완의 민주
꺼지지 않는 촛불을 밝히는 운동이다. 그러하기에
주의를 완성하고, 헌법적 가치를 회복하기를 원한
헌법을 알자, 힘써 헌법을 알자.
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뿐만 아니라 재벌 및 기득 권 세력들이 돈과 이권을 매개로 연결되어 특권적 지위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법 위에서 군림하며 갑질을 하는 이 나라에서 법 앞의 평등
* 헌법 조문을 읽으면서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을 규정하고 특권계층을 금지하며 정의롭고 공정
차병직 외, 「지금 다시, 헌법」, 로고폴리스출판, 2016.
한 시장경제질서 및 법치주의를 규정하는 헌법 정
이 책은 헌법 조문별로 그 내용을 알기 쉽게 해설하면
신이 회복되어야 한다. ‘금수저/흙수저’ 구조가 고
서 최근의 관련 이슈나 사례들을 곁들여 이해를 돕는
착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갈수록 삶의 질이
시민 교양서이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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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어 달리기
평화로운 통일을 향하여 “한반도평화연구원” 손인배◆ 명지대99 아내와 다섯 살 된 딸과 함께 양평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나라, 경제 정의, 평화, 통일, 국가폭력과 사회적 치유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한반도평화연구원 팀장으로 근 무하고 있다.
생각보다 복잡해요, 통일!
보면 통일에 대한 기본 지식은 더 이상 전문가 집단에 서만 제한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
제가 통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경제 정의에
나 접할 수 있는 어떤 것 같습니다. 반면, 어떤 부분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토지로 인
있어서는 아주 복잡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
한 부의 편중과 경제 양극화 사이에는 매우 높은 상관
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통일 이후 북한의 토지를 무
일을 위해 어떤 지식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면, 먼저
분별하게 사들인다면 한국사회에 만연한 경제 문제
한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남남갈등’ 사안
가 통일 이후까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습니다. 그
에 대한 관점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렇기 때문에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충격이 최
2016년 남북 관계를 돌아보면 한반도에 평화가 다시
소화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겠구나 생각
찾아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
했습니다.
다. 북한이 4차, 5차 핵실험을 했고, 이십여 차례 이상
그런데 막상 석사과정에 들어가서 보니 통일이 여간
의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개성공단은 폐쇄되었기 때
복잡한 게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체제가 합쳐지는 것
문입니다. 또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북한 수
이기에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군사 등의 영
해에 대한 지원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 하는 일들이
역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고, 남북한뿐 아니라 국제 정
있었습니다.
세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미국의 트
가끔 택시기사 분들과 시사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럼프 대통령 당선, 미국과 일본 혹은 미국과 러시아
나누면 그 깊은 식견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기
의 공조체제 강화, 미국과 중국의 경제 대결 구도가
사님들의 연륜도 있는데다가 라디오 뉴스를 계속 들
눈에 띕니다.
으면서 준전문가가 되신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살아가는 학사들의 일상
요? 그리고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우리나라 안에 있
통일이 주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
는 탈북자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
문에 자기 자신과 평화를 이루고, 다른 이들과 평화
갈 수 있을까요?
를 이루어가는 삶의 과정이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라
북한은 돈이 없어서 인민들의 굶주림도 해결 못하는
고 생각합니다.
데,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핵을 만들고 미사일을 만 들어서 계속 발사했을까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
‘한반도평화연구원’
면 통일 이후 그것이 한반도의 핵이 될까요?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제가 일하고 있는 ‘한반도평화연구원’을 소개합니다.
도서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그럼 북한이 붕
이 연구원은, 수없이 많고 복잡한 사안 속에서 어떻
괴되었다고 하면 우리나라가 바로 북한에 들어갈 수
게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
있을까요? 그리고 북한이 붕괴되었다는 것은 누가 선
면 이러한 현실을 정책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연구
포할 수 있을까요?
하고, 정책 현장에 참여하고, 특별히 기독교적인 관
위의 예시들은 통일을 생각할 때 직접적으로 고려해
점으로 통일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
야 할 부분인데, 이것에 답하기 위해서는 국제 정세
한 현안을 분석하고, 헌법에 명시된 평화로운 통일을
이해, 탈북자들의 이해, 북한의 경제 구조 및 경제 성
준비하는 지식이 한국교회로 흘러가도록 돕는 일을
장률, 북한의 대외 무역 구조, 북한과 핵의 역사, 국제
합니다.
사회에서 핵을 보유하려고 했던 국가들의 사례, 정전
2007년 창립된 이래로 현재까지 13권의 단행본이 본
협정 체제와 평화협정 체제 등을 다각적으로 살펴보
연구원에서 발간되었고, 출판된 책 중의 2권은 “통일
아야 합니다.
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성 찰” 이라는 기독교적 관점을 담은 내용입니다. 그 외
평화를 지향하는 열망과 실천 필요
에도 95회의 원내세미나, 51회의 공개포럼을 개최하 였고, 20회에 가까운 씨네 토크(통일이나 평화와 관
지금까지는 통일을 생각할 때 필요한 지식들을 간단
련된 영화를 보고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
히 살펴봤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지식이 부족해서 통
누는 시간)를 진행하였습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시
일이 되지 않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거나 메일을 주시면 소식지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통일연구원 자료 목록만 살펴봐도 통일에 대한 거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모든 학사님의 삶에 평화가 넘
모든 연구를 했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의 방대한 연구
치고, 그 평화가 통일로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자료가 쌓여 있습니다. 또한 매주 “주간통일정세”라
감사합니다.
는 자료를 통해 일주일간의 북한방송 내용, 남북관계, 주요 국가들의 대외정책들을 누구나 살펴볼 수 있도 록 정보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한 지식은 평화를 위한 발판과 같은 것이 고,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향한 열망과 실천의 결과로
한반도평화연구원 - 홈페이지 : www.koreapeace.or.kr - 메일주소 : koreapeace@paran.com - 후원계좌 : 신한은행 100-023-836269 (사) 한반도평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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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학사 통신원
미국의 평등과 존엄의 뒷모습
김연선◆ 연세대87 1995년 미국에 건너가 New York School of Interior Design에서 유학하였다. 같은 유학생이었던 남편과 결혼하여 미국에 정 착한 후, 인테리어 관련 직종으로 18년째 일하고 있다. 올 9월에 아들 David을 대학 에 보내면 드디어 일과 육아 중 하나에서는 자유롭지 않을까 꿈꾸고 있다.
나는 미국, 자세히 말하자면 미국 동부 뉴저지 지역에 살고 있다. 미국 이라는 나라는 하도 넓은 곳이라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내 가 사는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미국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 내용일 수도 있다. 또한 아무래도 트럼프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개인적인 정치 색과 무관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시작한다.
“여보, 어떡해…. 트럼프가 당선된 것 같아.”
투표일이 지난 새벽 1시반 경, 설핏 잠들었던 나는 남편의 말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마음에 온갖 뉴스를 뒤져보느라 결 국 밤을 홀딱 지새우고 출근을 했다. 기사와 댓글이 무성한 온라인 세 계와는 달리, 일터는 오히려 정치적 언쟁이 될 만한 이야기는 서로 주 의하며 삼가는 분위기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부분 적극적으로 실 망을 표현하는 것에 비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그들의 지지와 당선의 기 쁨을 조심스레 표현하는 편으로 보였다. 이는 아마도 내가 민주당이 우 세인 미동부 도시 외곽에 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학사들의 일상
이런 실제 삶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Heil,
20여년을 미국에 살면서 평등과 차별 그리고
Trump!”나 “Make America White Again!” 같
편견에 대해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은 구호들이 등장했고, 갑자기 늘어난 혐오범
미국은 유치원 때부터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
죄와 인종범죄들이 신문지면을 채우기 시작했
그것의 공평한 중요성과 존중을 배우며 성장
다. 가깝게는 브룩클린의 식당에서 식사하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사는 어느 누
여성이 (아마 트럼프를 반대하는 발언을 한 모
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차별 당하고 차
양이다) 옆 테이블에서 이 대화를 들은 남성에
별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인종적 편견
게 갑작스런 폭행을 당했다. 멀리 캘리포니아
과 호불호를 가지고 살아간다.
에서는 역사 선생님이 트럼프를 히틀러와 비 교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기사를 읽게 되었
꼭 백인만이 다른 인종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
다. 그러나 선거 후 불과 두 달이 지난 지금, 대
다. 흑인, 히스패닉, 중국인, 인도인, 러시아인,
부분의 미국 시민은 좋든 싫든 선거의 결과를
유대인, 유럽인, 동유럽인, 아랍인, 동남아인,
받아들이고 트럼프의 행보를 주시하며 재빠르
그 안에서도 더 세분화 될 수 있는 다양한 인종
게 자신의 삶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들이 내심 서로를 차별하고 무시한다. 소수민 족끼리 더 무시하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받은
1995년 유학차 미국에 왔다가 이곳에 정착하
차별을 다른 이에게 되돌려 주기라도 하듯이.
면서, 나는 3명의 대통령과 3번의 대통령 선거
무시와 차별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때론 대
를 경험했다. 2001년에 민주당의 알 고어가 더
놓고 무식하게 인종차별을 당한다. 언어가 익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선거에 탈락한 것과 그
숙하지 않을 때는 당연히 더 억울함을 당한다.
결과를 국민들뿐 아니라 본인도 순순히 받아
수준이 좀 있는 사람들은 배운 게 있어서인지
들이는 모습, 그리고 끝없이 달아오를 것 같던
겉으로는 존중해 주는 듯 보이지만 왠지 ‘그래
정치적 열기가 곧 식으며 일상이 이어지던 모
도 내가 너보다는 낫지’ 하는 태도가 느껴지기
습이 나에게는 문화충격이었다. 과연 이번 선
도 한다. 물론 ‘이 사람은 날개만 없지 천사가
거도 지난번 경험했던 것처럼 한 정당이 이길
아닐까’ 싶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또 약자나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역사 속 과정에 불과한
자선기관을 돕는 일에 자기 삶의 일부분을 지
것일까. 아직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않은 상
속적으로 바치는 사람들과 일할 기회도 있어
황에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차
서, 미국인들의 시민의식에 존경과 감탄을 보
별이라는 말이 예민한 이 땅에서 마이너리티
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주 가끔, 그 따뜻함과 배
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트럼프의 리더십과 영
려 속에 여유 있는 자의 동정심이 깃들어 있음
향력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보이기도 한다.
소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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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 학사 통신원
그럼에도 마이너리티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소위 이런 ‘Political Correctness(PC)’나 교육에 의한 다양성의 계몽이, 인종차별의 불이익 에 대한 어느 정도의 완충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으 로 이젠 차별의 극복은커녕 대놓고 혐오까지 서슴지 않는 물꼬를 터주 는 게 아닐까 염려된다. 혐오범죄가 일어나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활 동이 공공연해지는 현상을 보면서 미국 공교육에서 좋은 의도로 가르 치려 했던 평등과 다양성의 한계를 보게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체 화되지 않고 각성되지 않은 가르침이었을 것이고, 교양과 매너라는 이 름 아래 얄팍하게 갇혀 있다가 누군가 힘을 실어주면 이때다 하고 튀 어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주님 외에 누가 우리에게 체화된 평등과 존엄성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싶다. 수많은 인종과 문화 속에서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평등하게 존중하려면, 양파 껍질 까듯 수없이 까고 뒤집어 봐도 감춰 진 편견과 교만이 없어야 하리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나도 나를 되돌 아보려 하지만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편견을 없애는 일이란 결코 쉬 운 일이 아니다. 내 안에도 똑같이 존재하는 얄팍함과 추함이 언제 무 슨 계기로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소수민족으로, 다양한 사람들 중 의 하나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 일터와 가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곳에서는 늘 약자이자 나그네 인 삶이었기에 아마 조금 더 내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았나 싶어 이민의 삶의 고단함에서 작은 위로를 찾는다.
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뉴욕, 일상의 변주
소리 지음
국효숙 ◆ 시립대 94 16년차 직장인이자 40대 싱글이다. 빨간 구두와 부드럽고 진한 연필, 그리고 문구점 쇼핑을 좋아한다. 규칙을 잘 지키며 수다스 럽지는 않다.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나를 설명하는 일을 어려워한다.
많은 직장인이 그러하듯, 나도 연초에 달력을 펴고 올해의 휴일들을 확 인한다. 휴가는 언제가 좋을까. 한여름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관심도 없 으면서 명절 때면 습관처럼 듣는, 시집은 언제 갈 거냐는 소리도 피할 겸 추석 연휴에 휴가를 붙여서 쓰자고 결정했다.
몇 해 전 경주를 여행할 때 만난 프랑스인 이본느 할아버지를 파리에서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지금까지의 여행지 중 최고는 어디였냐고 질문했 더니, 할아버지는 많은 곳을 여행했고 각각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고 했 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미국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뉴욕은 과연 뉴 욕이더라고 하셨다. 가고 싶은 여행지로 한 번도 미국을 꼽아본 적이 없 었는데, 그때 처음 뉴욕을 여행지 후보에 올려놓았다. 게다가 뉴욕에는 일 년 전 재즈를 배우겠다고 교회 동생이 가있던 터라 그 친구 위로 방문 겸 1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오랜 친구도 만나고 싶다는 이유까 지 덧붙여 마침내 나는 뉴욕행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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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작은 축제를 열다
일반적으로 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보기도 하면서 살금살금 여행을 준비했다.
것보다는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면서 만들어낸 문
그러는 사이, 좋은 소식이 들렸다. 한국에 연주하
화 속 틈바구니에 살짝 들어가 보는 것을 더 좋
러 왔을 때 교회 동생의 소개로 만나 안면이 있는
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어
재즈 베이시스트 친구가 내가 여행하는 그 기간
울려있는 뉴욕도 재미있겠구나 싶었다. 이러쿵저
에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가서 집이 빈다고 했다.
러쿵 딴소리에 계획이 흐트러질까봐 9월에 떠날
그 친구 덕분에 숙박비가 만만찮은 뉴욕에서 꽤
거면서 일찌감치 2월에 비행기 티켓도 예약해버
저렴한 비용으로 묵을 수 있게 되었다.
렸다. 야근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곳을 잠시 멈추고 드 어떤 사람들처럼 시간별, 날짜별로 가야할 곳, 해
디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야밤이 되어서야
야 할 일의 목록을 빼곡히 준비하지는 않는다. 고
공항에 도착했고 시차 적응도 어려웠다. 뒤척이
비용, 제한된 시간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경험을
며 새벽녘에야 잠들었다가 11시가 넘어서 겨우 눈
해보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는 가지만 정신없는
을 떴다. 곧장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내가 뉴욕에
일상의 숨구멍으로 선택한 여행인지라 가급적 여
오긴 왔구나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어
유를 많이 가지려고 마음먹었다. 급하게 준비해
이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 틈바구
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서 간간히 지도를 펼쳐
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한순간 사람들의 흐름에
놓고 여기에 이게 있구나 하는 딴 생각도 하고, 연
휩쓸려 움직이게 되었다. 복잡한 그곳을 얼른 벗
필 덕후들이 말하는 연필 가게는 또 어딘가 찾아
어났다.
첫 번째 놀이, 여행
일단 Strand Bookstore로 피신. 책 만드는 사람이 휴
를 더 신나게 하고 더 배우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
가 와서 쉬겠다고 들어간 데가 또 서점이라니! 그런 내
는 일에서 벗어나 여행을 왔지만 기존의 삶과 이어진
가 참 우습지만, 읽기 힘든 영어책으로 가득한 뉴욕의
어떤 것에 자꾸 시선이 가는 걸 보면 말이다.
서점일지언정 책 냄새 맡으며 책 쓰다듬고 있으면 괜 히 마음이 놓이는 걸 어쩌겠나.
평소 대단히 사교적인 사람이 아닌 내가 여행지에서 는 이상스레 용감해진다고나 할까. 가끔 낯선 사람들
많이 알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모마, 구겐하임, 휘트
과의 만남, 이야기도 참 즐겁다. 추석날 하이라인을
니 등의 뮤지엄들을 한 곳 한 곳 들러보는 것도 즐거
산책하면서 커다란 망원경을 들고 나와 보름달을 보
웠다. 그중에 The Morgan Library & Museum이 참 인
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거기에 꼽사리 껴서 달 구
상 깊었다. 금융업자 JP 모건의 개인 장서를 보관하기
경도 했다. 혼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 모임에 찾아
위해 세운 도서관이었는데 후대에 일반인에게도 공
가 오래 전에 배워두었던 탱고도 추었다. 뉴욕이 삶
개한 것이다. 한 개인이 소장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
의 터전인 그들과 이야기도 나누다보니 뉴욕도 꽤나
도로, 도서와 편지, 악보 그 외 회화 등 그 양이 실로 어
친근해졌다.
마어마했다. 게다가 전 세계에 50권정도 남아 있다는 「구텐베르크 성경」을 세 권이나 보유 중이라고 한다.
이런 만남이 한 번의 조우로 끝나기도 하지만 그중 어
아름다운 책들이 주는 묵직함에, 오랜 기록 유산들을
떤 이들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7년 전 산티아고에서
귀하게 여긴 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
만났던 친구들과 여전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주에
다 문득, 지금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들은 과연 나중에
서의 만남이 파리에서의 재회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
어떤 형태로 남겨지게 될까 궁금해졌다. 엄청나게 많
이다. 물론 이들이 내 삶에 대단한 영향을 주는 관계
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시시각각 버려지고, 운 좋게
가 될 수는 없겠지만, 신림동에서 합정동으로 출퇴근
살아남아 저장되더라도 손에 잡히는 물성이 아닌 데
을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도 생각만큼은 조금 더 먼 곳
이터로 변환된 어떤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까지 갈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나와 바로 이어져 있는 전시장도 둘러본
깨끗하지도 않고, 중간에 운행이 멈춰 버스로 갈아타
다. 내가 방문했을 때 마침 「제인 에어」의 저자 샬롯
야 하고, 지하로 들어가기만 하면 핸드폰은 먹통이 되
브론테의 다양한 필사본들과 브론테 자매들이 사용
는 뉴욕의 못된 지하철! 그것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했던 물건, 의복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겨우 손가락
멍 때리며 누워 구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하늘을
한마디만한 쪼그마한 필사본들 안에 심지어 일러스
오래 바라보기도 하고, 4, 50년 이상 연주해 온 할아
트까지 들어 있었는데, 그 깨알 같은 디테일을 들여다
버지 연주자들의 재즈 연주에 울컥하기도 하면서, 이
보느라 꽤 시간을 보냈다.
렇게 보낸 뉴욕에서의 열흘은 일상을 벗어났지만 일 상과 이어진 변주들 덕분에 아주 흡족하고도 즐거운
이런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건, 완전히 낯선 것이 아니 라 내가 갖고 있는 것에서 조금 더 확장된 경험치가 나
시간이었다.
소리 지음
SIMPLY GOOD NEWS
44+ 45 복음이란 무엇인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전부인가?
이것이 복음이다
톰 라이트 | 백지윤 옮김 무선 272면 | 13,000원
우리 시대 예언자적 신학자 톰 라이트가 던지는 본질적 질문 복음이란 지옥에 갈 우리가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간다는 소식인가? 존경받는 신학자 이자 저자 톰 라이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소식이며, 그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것이다. 본서 는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잘못 알고 있는지, 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왜 그리스도 인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지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소식의 실체를 맛보길 기도한다. 세상의 온갖 우상과 권세를 거뜬히 이기고도 남 을 복음의 능력을 선명하게 깨닫고 그 능력을 토대로 현재를 살아가도록 커다란 도전을 줄 것이다.” -이찬수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
권연경(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김종호(IVF 대표), 송태근(삼일교회 목사) 외 추천!
www.ivp.co.kr
소리가 만난 사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신구(新舊) 학사회장을 만나다 변화가 많은 계절입니다. IVF 학사회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지난 10년 간 학사회를 섬겨온 이남혁 학사님이 회장직을 사임하고, 이상엽 학 사님이 신임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두 분을 모시고 10년 동안 중 앙 학사회는 어떻게 움직여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 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남혁 ◆ 홍익대 87 이상엽 ◆ 중앙대 90 진행 이시종 / 정리 편집부
* [소리] 독자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남혁(이하 남혁) 저는 홍익대 87학번 이남혁입니다. 2000년에 창업 해서 현재까지 (주)플러시드라는 실내건축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철 도공사의 기차 개조나 대학 내의 항공 실습실 제작, 공동주택 건축 등이 전문분야입니다. 1995년에 간사 출신인 공숙영 학사와 결혼해서 21살과 17살 두 아들까지, 네 식구가 단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레 하우스의 두 번째 보금자리인 ‘공간은택과 공간윤택’을 지어서 새 터전 을 이루었어요. 이상엽(이하 상엽) 저는 중앙대 90학번 이상엽입니다. 1997년에 졸업 한 이후로 계속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네요. 삼성전자와 일본계 반 도체회사를 거쳐, 현재는 미국계 반도체회사에서 9년째 일하는 중입니 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 들을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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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혁 학사님은 10년이나 학사회장을 하셨
시작했고, 2009년 8월에 취임식을 거쳐 현재
는데요. 학사사역에 동참하게 된 계기가 있었
에 이르게 되었어요.
나요? 당시의 상황도 궁금합니다. 상엽 90년대 후반에는 학사회라는 조직도 졸 남혁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졸업하
업생을 위한 하나의 부서로 인식될 뿐, 운동
면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
성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당시 IVF 학
부시절에 IVF 운동은 평생운동이라고 배웠
사회의 방향성은 5개의 전문사역 분야에 집
거든요.(웃음) 당시에는 그 단어의 참뜻을 몰
중하는 것이었죠. 그 외에는 연결될 만한 조
랐지만, 이때 배운 게 자연스럽게 저를 학사
직체가 마땅치 않았고, 학사들은 모여서 활동
활동으로 이어준 것 같아요.
하기보다는 배운 것을 기반으로 사회에 흩어 져 각개전투를 했어요. 2000년대 초반부터
제가 졸업할 당시에는 학사회 모임이 활발
지금과 같은 형태의 학사회가 시작되어 보다
했어요. 선배님들을 따라 대전에서의 1박 캠
독립적인 모임이 되었습니다. 운영위원회와
프도 자주 참석했고, 경주나 수안보, 도고에
실행위원회 같은 조직도 생겨났습니다. 서울
서 수련회도 열렸었어요. 그러나 IVF의 규모
권의 3개 지방회와 학사모임을 통합하여 현
가 커지고 회관 중심의 모임에서 지방회 중
재 YGM의 전신인 수도권학사모임이 시작되
심의 모임으로 변화하면서 학사회도 어려움
었고요. 실행위원회는 준이사회 성격으로 학
을 겪었어요. 학사는 많이 배출되는데 잘 모
사회 자체의 의사결정권이 보다 강화되었지
이지 못하고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는 안타까
요. 그런 시기에 이남혁 학사님이 학사회장
운 시기였죠.
이 되신 겁니다.
신입 학사들이 학사사역에 연결되는 것이 쉽
*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학사회의 팀워크가
지는 않아요. 직장도 초년병인데다가 결혼하
참 좋았습니다. 함께 했던 팀들이 있었지요?
고 육아하고 양가의 문제를 처리하는 일들이 사실 처음에는 만만치 않거든요. 심적으로나
남혁 제가 학사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시간적으로 학사모임에 갈 만한 여유가 없는
은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모든 사역은
게 현실이에요. 저도 학사사역에 동참하기 시
한 사람이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팀으로
작했을 때 결혼 초기였고 막 아이가 태어난
이뤄졌을 때 가능하거든요. 아프리카 속담에
시기였어요. 전직 간사로 헌신된 아내조차도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 가려면 함께 가
제가 학사모임에 가는 것을 힘들어 했어요.
라”는 말이 있어요. 혼자라면 잠시는 잘할 수
빨리 퇴근해서 가사와 육아를 분담해 주길 바
있겠으나 사역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더불어
랐던 거죠.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함께해야 하죠. 이레하우스나 직장인 사역팀
남편 대신 홀로 그 시기를 견뎌야 했던 일은
과 더불어 학사회를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큰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 되었을 거예요. 그래서
행운이고 정말 감사한 일이었어요.
아이들이 조금 컸을 때쯤 학사회장을 맡게 되 었어요. 2008년 12월부터 학사회장의 역할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레하우스는 의도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를 갖고 만든 공동체예요. 학사들이 여러 지
아내인 공숙영 간사와의 동역도 언급하고 싶
역에 흩어져 살다 보니 서교동에 위치한 중
어요. 최근에 차인표씨가 “남편은 아내를 이
앙회관에 모이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채 2시
길 수 없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맞는 이야기
간이 되지 않는 실행위원회 회의를 위해 3시
입니다.(웃음) 저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받
간여를 이동해야 했고, 피로도가 높아 회의
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고, 아
에 집중이 되지 않았어요. 우리가 인근에 모
내도 제 얘기를 많이 받아주었어요. 저는 졸
여 산다면 시간과 거리의 비효율적인 면을 개
업 직후부터 서서울 모임이나 실행위원회를
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
통해 학사회 모임을 지속했는데, 아내는 간사
유로 이레하우스가 서교동에 자리를 잡은 것
를 사임한 후에는 육아에 전염하느라 초기에
이고요. 함께 모여 살면서 자주 만나게 되니
는 사역을 함께 할 수 없었죠. 그러나 이레하
학사사역에 대한 안건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우스로 모여 살게 되고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되었고 이는 학사사역이 활발히 움직이는 계
아내도 공동체와 교제하며 사역에 합류할 수
기가 되었어요. 2002년에 전국학사수련회가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잠시 중단되었다가 2003년에 가족 캠프와 직 장인 캠프라는 두 가지 형태로 다시 진행되었
* 학사회장을 사임한 이후에는 어떻게 학사
는데, 이를 이레하우스가 담당했어요. 학사사
운동을 이어 갈 계획이신가요?
역을 논의하고 추진하는 데 있어 이레하우스 가 토대가 되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거죠.
남혁 먼저, 전임학사회장으로서 학사회의 뒤 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이 저의 첫 번째 역
직장인 사역팀은 2012년 전국학사수련회 이
할이라고 생각해요. 학사회에서 진행되는 귀
후 1년 반의 준비 기간을 거쳐 태동했어요. 현
한 일들을 지원하고 싶네요. 학사회장 출신이
재는 ‘직장인 대회’라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지속적으로 남아 학사회의 든든한 후원구조
있고요. 과거에는 법률인, 의료인, 교사 등 몇
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안정적으로 사역이
개의 굵직한 전문인사역에 초점을 두고 있었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는데, 학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직장 인을 도울 만한 사역은 없는 상황이었죠. 안
다음으로는, 직장인 사역과 지속적으로 함께
타까운 마음에 이상엽, 한병선 학사님을 중
할 계획이에요. 그간 꾸준히 기업인 모임에
심으로 의기투합하여 스터디 모임을 시작했
참여했는데, 제가 올해부터 신임회장의 역할
고, 현재는 20명 정도의 핵심멤버가 모여 본
을 맡게 되었거든요.(웃음) 기업인으로서 어
격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특히 이상엽 학
떻게 회사를 세우고 올곧게 살아가야 하는지,
사가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며 쌓아온 철
어떻게 학사회와 연결하며 운동성을 가질 것
학이 잘 녹아들고 있어서 직장인 팀에 좋은
인지 논의하는 이 모임에 저의 시간과 가치를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직장인 팀에서도
투자하려 해요. 기업인 모임이 단순히 후원하
실행위원으로 참여해서 현장의 운동가인 분
는 사조직이 아니라 학사회와 함께 시너지를
들이 합류하게 된 셈이라 학사사역은 더욱 탄
일으킬 수 있는 관계가 되고 싶어요.
력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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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함께 살며 떠나보내고 떠나
만나면서부터예요. 2012년도 전국학사수련
는 부분까지 살피는 것이 정말 평생운동 아
회를 마치고 직장인 사역에 대한 의기투합
닐까하는 생각 속에서 ‘학사회 장례공동체’
이 일어나면서 이남혁 학사님을 전격 영입
를 꾸려가고 싶어요. 서교동 이레하우스 시
하게 되었죠. 직장인 사역이 소규모의 교제
절에는 육아와 교육이 저희의 중요한 이슈
모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앙 학사회 차
였다면, 이제부터는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
원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데는 남혁 학사님
게 대비하고 살아갈 것인지가 중장기적 과
의 도움이 컸습니다. 덕분에 저는 학사회 전
제가 될 것 같아요.
체를 보는 관점도 배우게 되었죠.
* 이상엽 학사님은 이남혁 학사님과 어떻게 함께하게 되셨나요?
* 상엽 학사님은 학사 사역에서 정말 다양 한 역할을 맡아오셨어요. 직장인 사역에 [소 리] 편집위원, GLC 운영위원, 학사회 실행
상엽 남혁 학사님과의 추억은 학부로 거슬
위원, 남서울지방회 이사장 등, 어떻게 이렇
러 올라가네요. 남서울과 서서울이 92년 겨
게 하실 수 있었나요?
울수련회를 함께 했는데, 홍익대와 중앙대 가 방을 함께 썼어요. 그 일을 계기로 인사
상엽 결혼을 안 해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를 나누게 됐죠. 이후에 남혁 학사님이 저
요?(웃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소리] 편집
희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위원이었습니다. 남서울에서 편집위원이
자주 마주치게 되었어요. 남혁 학사님과 숙
보강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졸업 후 바
영 간사님의 러브스토리도, 저희가 커피 사
로 시작하게 되었죠. 덕분에 학사회에서 일
달라고 하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어
어나는 일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
요.(웃음) 이레하우스를 세우는 과정도 멀
어요. 간사님, 학사님들과 편집회의를 하면
리서 지켜봤습니다. 본격적으로 사역을 함
서, 학부에서 배운 이론을 어떻게 현실에 적
께하게 된 건, 졸업 이후 직장인 사역으로
용해야 하는지 훈련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학사와의 인터뷰
제 의견이 엄청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는 구조입니다. 활동영역으로는 직장인 사역
하지만 편집위원들과 함께 논의하다 보니 제 대
팀, 주부모임, YGM 등이 있죠. 이 구조를 이어
답은 이론적이며 실제 적용하기 어려운 지점이
가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사들이 자발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어떤 사역을 제안하면 그것이 반영될 수 있는 환 경을 만들고자 해요. 학사들이 동참하여 필요한
직장인 사역팀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1박으로 모
사역을 제안하고, 그 모임이 학사회 구조 안에서
였습니다. 직장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접근이 필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요하다고 생각해서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어떻
실어주는 것이죠.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직장
게 할 것인가, 등에 칼을 꽂은 동료를 어떻게 대
인 사역도 처음에는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
할 것인가, 월급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등의
했으나 현재는 학사회의 구조 안에서 확장되어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어요. 보통 밤 12시가
운동성을 지니게 되었으니까요.
넘어가면 싸움에 이르고 새벽 3시쯤 되어야 정 리가 됐죠. 이때의 논의들은 저에게 자산이 되었
현재의 직장인 사역은 일반 직장인들의 일상에
습니다. 집중토론은 자신이 가진 디테일한 생각
초점을 두고 있는데, 추후에는 일터에서 명백한
과 마음을 전달하고 스피릿을 하나로 모으는 유
비전과 소명의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더 나
익이 있어요. 향후 직장인 사역에서도 직장인들
아가 노동문제나 고용문제 등을 기독교인의 관
과 함께 집중토론을 시도하고 싶어요.
점에서 바라보는 고민까지 이어가고 싶어요.
남서울 이사는 1999년부터 시작했는데요, 당시
* 두 분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와 당부가 있다
지방회 대표간사님이셨던 이미순 간사님이 학
면요?
교별로 1명씩 대표성을 띤 이사로 이사회를 구 성하려고 하셔서 연결되었어요. 남서울회관 모
남혁 학사회장은 본인의 역할을 정하기 나름이
금을 하던 시기였는데 제가 여자 친구도 없고 돈
에요. 소극적으로 한다면 정말 할 것이 없고, 약
쓸 곳이 없어서 헌금을 많이 했거든요.(웃음) 남
간의 회의만으로 임기를 매듭지을 수도 있어요.
서울 이사회는 정관작업에 맞춰 후원과 모금사
그러나 학사회는 IVF 정신을 공유한 멤버들이
업을 하면서 간사님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배출되는 구조 속에 있어요. 때문에 학
돕는 역할을 했는데, 이사님들과 다양한 경험을
사회는 캠퍼스 때 배웠던 가치관을 공유하고 그
공유하면서 이사회와 간사회의 역할과 협력에
것을 삶에서 지속적으로 펼쳐가도록 도울 수 있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연
는 매우 중요한 구심점에 있습니다. 학사회장이
차가 되어 짧게나마 이사장을 맡게 된 거고요.
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귀하고 중요한 사람이 라고 생각해요. 신임회장님은 다양한 경험을 통
* 향후 이어갈 유산과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
해 준비된 분이기에 학사회가 성장할 수 있게끔
하시나요?
틀을 더욱 견고하게 세울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 선상에서 두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네요.
상엽 현재의 학사회는 실행위원회의 자발성을 기초로 하여 간사회와 연계하며, GLC+가 함께
가장 우려되는 것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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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일 지난 아이가 있다는 점이에요. 가정에
문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학사회장이 바뀌고,
서의 시간을 잘 분배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어
실행위원 또한 더 젊고 스마트하게 꾸려집니
려움이 될 거 같아요. 남편과 아빠의 역할 외에
다. 지속적으로 이분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운
도 직장에서의 역할, 학사회장으로서의 역할
동에 동역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
이 있을 텐데, 어떤 사역에 집중할지 가정을 배
길 부탁드려요.
려하면서 지혜롭게 결정하면 좋겠어요. 상엽 오랫동안 직간접적으로 학사회에 발을 담 또한 학사회장의 임기가 그리 긴 편이 아니기
구면서, 중앙 학사회는 전체 학사들을 대표할
에 여러 사역을 동시에 펼쳐나갈 수 없을 거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요. 실행위원회를 통해 잘 논의해서 핵심가치
분들은 학사 운동과 학사회 운동은 다르다고
를 결정하고 그것에 집중하여 사역을 이뤄나
도 하셨는데, 그 말이 주는 의미와 울림이 있
갔으면 해요.
습니다. 이런 부분을 고민하면서 중앙 학사회 활동이 모든 학사님들을 아우를 수 있는 운동
상엽 이남혁 학사님이 학사회장이 되신 후, 불
이 되도록 힘을 다하겠습니다. 중앙회 학사회
안정했던 학사회를 안정되게 하셨어요. 그 결
는 언제나 열려있어요. 어떤 모임이든, 어떤 생
과 학사회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고민
각이든, 그것이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
할 수 있게 되었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인
든지 중앙회로 가져오실 수 있습니다. 함께 고
프라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전체 학사를 대표
민하며 학사회 모임을 만들어 갔으면 해요. 장
하여, 가장 어려운 시기에 학사회장으로 헌신
래에는 각처에서 각개전투하며 복음전도 하시
하시고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섬기신 것 참
는 학사님들까지 도울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
감사드려요. IVF 운동은 떠남으로 끝나는 것이
지도록 고민하며 노력하겠습니다. 의견이 있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계속되는 것이라고 배
으면 언제든지 부탁드려요. 모든 학사님들께
웠어요. 학사회장이라는 역할은 내려놓지만,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계속해서 저희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학사 회 운동에 함께 해주시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전국에 계신 학사님들께 인사 부 탁드려요. 남혁 지난 10년 동안 적극적인 참여로 동역해 주신 전국의 모든 학사님들께 깊이 감사드립 니다. IVF는 60살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커 다란 열정으로 젊음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각 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본인의 역할을 감당하 고, 캠퍼스에서 배운 가치관과 기준을 놓지 않 으며 올곧게 걸어가신 학사님들이 계셨기 때
‘푸른산돌’을 마치며
마음이 설레는 곳, ‘푸른산돌’에 가다 김새로나 ◆ 전북대 95 어느덧 10대가 된 두 아이(딸 14살, 아들 10 살)의 엄마. 전주 토박이로 30년 이상을 살 다가, 남편의 신대원 진학을 시작으로 남양 주로, 또 천안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 었다. 집안 살림, 아이들 살림, 함께 하는 청 년들 살림. '살림'이 주로 하는 일이자 목표.
그날, 마음이 설렜다. 늦지 않게 도착하려고 함께
교제와 진로, 요즘 젊은이들이 직면한 여러 문제와
가기로 한 같은 교회 부부와 일찌감치 서둘렀다.
사회적 현상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었다.
토요일이라고 늑장부리다 일어날 아이들을 위해 간단히 아침식사를 준비해 두고 집을 나섰다. 주
그럼에도 이따금씩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왔
말에 홀로 집을 나서는 이 홀가분함이라니! 전날
다. 이곳에 올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딸이 이제
잠을 설친 것도 소풍가는 심정이었던 것일까. 대
중학생이 되면서,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리는 고민
체 ‘푸른산돌’에 대한 이런 유난한 기대는 어디서
을 함께 나눌 또래가 있었으면 했다. 아이들을 공
부터 왔을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홈스쿨링에 대한
교육에 의탁하고는 있으나 앞으로 부모로서 학습
대단한 열정보다는 모처럼 나를 위한 시간, 나 자
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또 다른 가정은 신앙교
신에게 필요한 공부시간이 주어진 것이 더 설렜던
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궁금했다. 명절에 고향에 가
것 같다.
면 학생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그들의 아이들 과 만난다. 그러고 돌아올 때면 ‘이렇게 마음과 생
천안에서 만 6년을 살았다. 휴게소에나 잠시 들렀
각, 가치를 공유할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면 얼마
던 이곳이 생활터전이 되었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많아졌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풋풋했던 대학생들 이 이제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들과 사귀
이번에 나와 ‘푸른산돌’에 동행한 부부는 뱃속에 4
고 함께 보낸 시간이 참 귀하다. 이 친구들 덕분에
개월 된 아이가 있는 부부였다. IVF 출신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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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산돌’을 마치며
만 교회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같은 정신을 공유
소중히 여기고 더 깊이 맺어가는 법을 배워왔다고 생
하게 되었다. 몇 년째 청소년부 교사를 하고 있는 이
각한다. 힘겨울 때 신앙으로 그 중심을 지킬 수 있었
들은 교육에도 관심이 있어서 기꺼이 걸음을 함께해
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참 사랑스러웠다.
주었다. 내가 아무리 마음이 있었다 해도 이렇게 같이 가는 부부가 없었다면 망설였을 것 같다.
‘푸른산돌’에 다녀온 후에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감회 를 나누었다(아마 그 감흥 덕분에 깊이 생각하지도
주로 수련회 마지막 날 밤, 우리는 평생 같이 살고 같
않고 이 글을 써보겠다고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교육하자며 막연한 로망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공
그리고 자녀가 좋아하는 일에는 한계를 두지 않았으
동체 하우스, 공동육아, 그리고 홈스쿨링 등등. ‘푸른
면 좋겠다는 그들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에게 좀 더
산돌’에 참여하면서 그저 꿈이 아닌 현실에서 함께 살
자유를 주고 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정기적으로
고 있는 공간에 초대되었고, 홈스쿨링을 하는 두 가정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묵상하고 본문으로 대화를 나
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누는 시간을 갖는다.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딸내미 는 최근에 또래들도 모두 다 같은 시기를 보내다 보
8, 9년간 함께했다는 활동과 커리큘럼에 감탄이 절로
니 정서의 진폭이 너무 커서 친구관계를 힘들어 했었
나왔다. 그 결과물은 그야말로 부모, 특별히 엄마와
다. 그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
아이들의 일상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아이와 함
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께 오랜 시간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매일 매일이 얼마
말씀을 나눈 효과를 보아서인지 말씀을 나누는 일에
나 많은 씨름의 연속인지 잘 안다. 따라서 이들이 얼
비교적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서로를 ‘best friend’로
마만큼의 시행착오와 힘겨운 시간들을 겪었을지 눈
여기는 ‘푸른산돌’의 남매가 부러워서 매일 티격태격
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도 너희를 위한 새로운 기도제 목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더니, 우리 아들은 “그건 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보다 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무래도 좀 힘들 것 같은데….”라고 말하지만 이 소망
듣는 시간이었다. 청중들의 궁금한 점을 받아서 아
역시 놓지 않으리라.
이들이 답변하였는데, 질문자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 지 잘 알고서 답변하는 것처럼 보였다(읽고 쓰고 듣
아이들의 학령기가 막 시작될 때쯤 낯선 지역에 오게
고 발표하는 훈련의 효과이지 않을까 싶다). 나와 동
되어서, 그때는 살아남기와 적응 자체가 목표였다. 함
행한 부부도 자신들이 매주 만나는 청소년들과 이 아
께할 공동체가 있었다면 대안적인 여러 시도를 해 볼
이들이 너무 달라 신선했고, 각자의 개성이 잘 살아있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렇게 먼저
으며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삶으로 실험해 주신 분들이 계시니 자녀교육 네트워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고 있
크가 이루어지면 많은 학사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는 것 같았다. 그 외 사춘기 시절이나 친구 가족 간의
것 같다. 천안지역에서도 몇몇 가정이 길잡이가 되어
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아이들의 성숙한 답변을
함께 길을 내는 이들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들을 수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관계를
마음이 설레는 곳, ‘푸른산돌’에 가다
유수아 ◆ 수원대 98 화성시 팔탄, 작은 시골마을에서 남편(김 윤), 두 딸(예인, 다해)과 함께 전업맘으로 살고 있다. 도서관을 좋아하고, 그림책이 너무 좋아서 딸이 아닌 자신을 위해 그림 책을 사며, 대안공동체를 꿈꾼다.
2010년 4월에 태어난 큰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
에 그냥 호기심 정도로 참석했다.
학한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동안 딸아이의 진학에 대 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놀이와 관련된 책들을 읽
차가 막혀서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벌써
으면서 적어도 저학년까지는 학업과 관련된 사교육
그룹별로 나눔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은 시키지 않겠다는 생각과, 실제로 그렇게 했을 때
반가운 얼굴들이 생각보다 눈에 많이 띄었다. 내가 속
학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올 수도 있는데 그것을
한 조의 조장님은 박상수 학사님이었다. 예전에 IVF
우리 부부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여
중앙학사회 사무간사를 하면서 여러 번 뵌 적이 있었
러 가지 고민이 있었다.
지만 자녀들이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나 눔 시간에 간단한 자기소개와 어떤 마음으로 참석하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홈스쿨링에 대해 관심이 있었
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함께 홈스쿨링을 할
지만 막상 독박육아를 하면서 함께 홈스쿨링을 할 수
수 있는 가정이 없고, 친구를 너무 좋아하는 딸아이의
있는 사람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일찍이
성향도 있고, 우선 시골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나을 것
마음을 접었다. 그래도 딸아이가 입학할 학교는 한 학
이라는 기대로 초등학교는 입학시킨 뒤 홈스쿨링은
년에 한 반밖에 없고 정원도 20명이 안 되는 시골학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니까 다른 학교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로 우선 초등학교는 공교육에 보낼 생각이었다.
박상수 학사님은 내 이야기에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홈스쿨링을 하든 안 하든, 고등학교 입학 전에는 아
그러다 우연히 샬롯메이슨의 교육에 대한 책을 가지
이가 자신의 삶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고 공동체 사람들과 스터디를 하게 되었고, 홈스쿨링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가서 하려면 늦
에 대해 다시 매력적으로 생각하며 이 정도는 나도 할
는다는 것이다. 학교를 한 해 쉬는 한이 있어도 그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IVF 학사회
에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중학생 정도의 나
의 ‘푸른산돌’ 홍보소식을 접했다. 사실 정말 홈스쿨
이까지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했
링을 할 생각이 있어서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다. 그 전에는 사실 학교를 다니든 아니든 학교를 한
아이를 공교육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데다가 주변
해 쉬든 아이의 삶이 크게 잘못 되지는 않는다고도 했
에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도 보지 못했고, 출석하고 있
다. 사실 홈스쿨링을 생각하고 있음에도 이런 생각은
는 교회도 홈스쿨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기
해보지 못했다. 학교를 가면 당연히 성실하게 학교생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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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산돌’을 마치며
활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 해 쉴 수도 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 내면에는 나의 결정이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네 명의 학생은 내가 보기
아이의 삶을 크게 좌지우지 한다는 큰 부담감이 있
에도 자기주도학습이 잘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세 번
었다. 물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한
째는 아이들과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것은 힘들 것
편으로는 너무 신중하기에 쉽게 아이의 삶에서 대안
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답변은 ‘힘들다’였다. 실제 홈
적인 삶을 제시해 주지 못한 것 같다.
스쿨링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에너지를 많이 쏟은 두 어머니는 힘들어서 집을 나가거나 아이들을 쫓아낸
이후 두 가정이 홈스쿨링 사례발표를 했고, 홈스쿨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그
링 경험자인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시간을 통해 본인도 아이들도 더 성장하고 더 깊이
사례발표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전에
있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홈스쿨링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세 가지가 내 마 음에 크게 남았다. 첫째는 홈스쿨링을 하면 엄마가
마지막으로 ‘푸른산돌’ 네트워크에 대한 설명이 있
옆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
었는데, 사실 난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둘째와 놀아
각이었다. 그런데 사례발표를 들으면서 요즘 시대
주다가 잘 듣지 못했다. 다만 홈스쿨링 네트워크를
는 꼭 그렇지 않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예전과 다
하려고 하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모인다는 얘기였
르게 요즘에는 배움의 통로가 매우 많아졌다는 것
다. 사실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다. 문화센터와 EBS 강좌, 무료 온라인 대학교육
홈스쿨링이 하나님 뜻이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
(MOOC)등 가정에서 온라인을 통해 공부할 수 있
을 붙여달라는 기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게 내 기
는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그러면 오전에는 아이들
도의 응답인가? 근데 난 이미 학교에 보내기로 마음
과 예배와 학습에 중점을 두고 오후에는 문화센터나
을 먹었는데…. 집으로 돌아와 고민이 시작됐다. 그
악기를 배울 수 있는 학원 정도는 보낼 수 있겠다는
리고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학교를 보낼 것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홈스쿨링을 하다가 일반 학
인가 말 것인가. 세미나에서 받았던 자료를 봤다가
교에 진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네 명의 학생 중 대
내려놨다가를 반복했다.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할
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다시 중
수 있지 않을까, 근데 매주 1시간 30분을 걸려서 공
학교 혹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상황이었다. 이럴 경
간은택에 갈 수 있을까, 금요기도회도 1시간 30분 걸
우 내가 가장 걱정 되었던 것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려서 가는데 갈 수 있지 않을까 등등. 사실 이 글을
지낸 아이들이 과연 구조화된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쓰고 있는 지금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입학날짜는
있을지, 또 친구들과 사귀는 데 어려움은 없을지 하
다가오고 있다.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푸른산돌’
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의 질문에 학생들은 재치 있
세미나로 인해 막연했던 생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월요일은 학교가기가 너무
기도하며 홈스쿨링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어떤 결
힘든데 수요일쯤 되면 적응이 된다는 말과, 친구들
정을 내리게 될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늦었다고 생각
과 지내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깊게 사귀기는 어려
했을 때가 가장 빠른 거라고 믿고 있다.
운 것 같아서 아쉬움은 있다는 답변이었다. 그리고
2월 안테나 ● 중앙사무국 1. 2월 4일에 IVF 중앙회관 좋은땅에서 총회 및 신임 학사 회장 취임식이 있었습니다. 2. 1월 23일에 IVF 중앙회관 학사사역부에서 GLC+ 운영 위원회가 있었습니다. 3. 2017년도 직장인 대회가 열립니다. 주제 :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까요? 내용 : ‘이직’을 주제로 한 다양한 나눔의 장 세바시 60분(이직, 재정, 직장사역 이야기) 특강(문애란, G&M문화재단) 비전제시(한병선, “기독 직장인의 이상과 현실”) 말씀선포(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혜미야) 일시 : 3월 25일(토) 10:00~16:00
3월 14일(화) 캠퍼스 추억(2):김성우 간사(동서울 대표간사) 3월 21일(화) 캠퍼스 추억(3):김혁수 간사(북서울 대표간사) 3월 28일(화) 학사 특강 4월 04일(화) 캠퍼스 추억(4):신교일 간사(남서울 대표간사)
● 서서울학사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 주부학사모임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 좋은땅 공숙영 010-2405-9928
● 동서울학사회 2~3월 강좌 및 팟캐스트 안내입니다.
● 6070학사회
· 결혼준비학교 5기 일시 : 2월 11일, 18일, 25일(매주 토요일, 10:00~13:00) 장소 : IVF 중앙회관 좋은땅 강사 : 주희재 목사 외
1. 1월 19일(목) 저녁 7시에 IVF 중앙회관 좋은땅에서 신년
· 3월 페미니즘 팟캐스트 런칭(예정)
장소 : 성락성결교회 5층
회 및 총회가 있었습니다. 1부 신년예배에는 김종호 간사 (연세대87)가 말씀을 나누었고 2부에는 2017년의 사업계 획을 확정하는 총회를 열었습니다.
● 수도권YGM 학사회 1. 수도권 YGM 모임이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IVF중 앙회관 지하 좋은땅에서 있습니다. 수도권지역에 거주하 는 학사님들은 언제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문의 이철민 간사 010-8716-4934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ivfygm
2. 2~3월 모임일정입니다. 2월 07일(화) 특강-하나님 나라와 제자도(1):노종문 간사 2월 14일(화) 특강-하나님 나라와 제자도(2):노종문 간사 2월 21일(화) 신입학사 환영회 2월 28일(화) 성경강해-에베소서 3월 07일(화) 캠퍼스 추억(1):홍순주 간사(서서울 대표간사)
● 경인학사회 신입학사 졸업축하 및 환영회로 1월 학사모임을 갖습니 다. 기존의 학사님들도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세요~ · 신입학사환영회 일시 : 2월 16일(목) 저녁 6시
● 강원(춘천)학사회 정기 학사모임 안내입니다.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래 일정을 참고해 주세요. · 춘천 (엄마들 모임-아이야) 일시 : 매월 첫주 목요일 오전 11시 30분 문의 : 사공은혜(한림대95) 010-5367-9120 · 춘천 학사모임 일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 회관 문의 : 김아주(한림대05) 010-6381-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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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일시 :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문의 : 최경순(한림대94) 010-9536-0703 ·부천 일시 : 매월 1회 토요일 저녁 / 순회 문의 : 박은혜(한림대00) 010-9703-8815 ·평촌 일시 :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 6시 / 평촌성심병원 문의 : 김태준(한림대99) 010-5136-5877
● 원주학사회 · 청년 카페인 일시 : 매월 2,4째 주 목요일 7시 반 문의 : 표영민 010-5117-0715
* 시니어 카페'인 모임은 지방회로 문의주세요:)
● 충남학사회 1. 충남학사모임을 천안과 서울 두 곳에서 진행하고 있 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 부탁드 립니다. · 천안 이준희(단국대06) 010-5171-0569 · 서울 손윤형(백석대02) 010-9154-1160
2. 2월 이후의 다양한 사역 안내입니다. · 2월 사역(학사 LGM) 일시 2/9일(목) 7시 장소 천안천성교회 · 3월 사역(신입학사환영LGM) 일시 3/9일(목) 7시 장소 천안천성교회 · 5월 사역(충남학사수련회) 일정 5/4(목)-5/6(토)
● 대구학사회 1. 2~3월에 열릴 다양한 강의에 학사님들을 초대합니다. · 대구 경북 청년 멘토 100명을 위한 의미경영 콘서트 내용 : 주 안에서 달려온 인생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인 생을 함께 계획하며, 더 나아가서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한 인간 도서관을 준비하는 모임입니다. 일시 : (17회) 1월 22일(주일) 저녁 7시 (18회) 2월 19일(주일) 저녁 7시 장소 : 아멘교회 3층 드림홀
· 비전캠프 80기 (경남ivf) 내용 : 비전발견 및 실제적인 인생결계를 내용으로 하는 프로그램 일정 : 2월 10(금)~11일(토) (2일세미나) 장소 : 경남ivf 강사 : 신응종 간사
2. 대구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하기 원하는 학사님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IEF(교대학사 교사모임) 매주 월요일 오후 6시 · 가정피움팀(가정사역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8시 · 사회복지팀(사회복지관련자모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 평신도 지도자 남편모임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30분 · 예사모 아내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 inG 수료자 모임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저녁 6시 30분
● 부산학사회 부산학사회 정기 소모임 안내입니다. 모임에 함께 참여 하기 원하는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을 참고해주세 요. · TGIM(Thanks God It’s Monday) (1달에 2번 일상생활영성과 보냄 받은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모임) 부산대점 양말희 010-2061-5260 창원점 정수정 010-3620-9495 · E.M.포럼(복음주의목회자포럼)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문의 박철진 010-3578-7086 · 마마클럽(주부학사모임) 일시 : 매월 1회 문의 : 임지은 010-4143-4926
● 경남학사회 4월 한 달간 학사방문달을 가집니다. 각기 각처로 흩어져 있는 학사들을 오랜만에 만나 소통 하고 서로 동역하는 시간입니다.
● GLC+ 강의 일정입니다. 더 다양한 강의와 자세한 안내는 IVF 학 사회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 니다. · 성경의 맥과 얼개 신약1 일시 : 2월6일(월)~3월6일(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5강) 장소 : IVF 중앙회관 좋은땅 강사 : 이재천 목사 · 에니어그램과 영성 1단계 일시 : 3월 24일(금) 저녁7시30분, 25일(토) 오전10시 장소 : IVF 중앙회관 좋은땅 강사 : 이재천 목사
팟캐스트 IVF 학사들을 위한, IVF 학사들에 의한, IVF 학사들의 팟캐스트! 학사님들을 위한 팟캐스트를 소개합니다.
아학팟 IVF 학사회 팟캐스트. 본격 기독B급 팟캐스트를 지향합니다. 책을 읽고
· 협동조합과 공동체 일시 : 3월 중 (세부 일정 추후 공지) 장소 : IVF 중앙회관 좋은땅 강사 : 김종수 목사
나누는 신나는 수다 <북잡담회>와
· 결혼예비학교 일시 : 2월 11일, 18일, 25일(매주 토요일, 10:00~13:00) 장소 : IVF 중앙회관 좋은땅 강사 : 주희재 목사 외
그리스도인의 책나눔 -복팟
자녀교육에 대한 <요람에서 취업까 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IVF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복팟'입니다.
● 나음누리
그리스도인들의 책모임을 지원합 니다!
의료인 학사들이 지역별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임에 함께하기 원하는 의료인 학사님들은 아래 모임 일정 을 참고해주세요. 모임문의: 백성대 간사 070-8275-6345
퇴근하고 뭐할래? 직장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루어보는 방송입니다. 취미, 일,
·서울지역(삼성병원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 삼성서울병원 문의 : 이은경 010-8892-8076 ·경기지역(수원․용인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 장소 별도 공지 문의 : 송재현 010-2231-1424 ·영남지역(대구모임) 일시/장소 : 매주 토요일(10:00~12:00) / 동신교회 필로세카페 * 마지막주 토요일(11:30~14:30)은 각 가정에서 모입니다. 문의 : 설기호 010-2866-2697 · 부산모임 일시/장소 : 한 달에 한 번/ 장소 별도 공지 문의 : 이은정 010-3862-4189
가정생활 등등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시도 하고 적용하며 공부합니다.
맑은물소리 하창완 목사와 함께 <시냇가에 심 은 나무(시심)>(IVP)의 진도를 따 라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묵 상도우미.
말씀으로 여는 하루 IVF 출신 목회자들의 설교 팟캐스트
소리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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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메아리
처음으로 편집인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깥에는 눈 이 내리고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인데도 눈이 오면 괜 스레 포근한 느낌이 드네요. 편집인이라는 단어에 긴 장했다가, 포근한 눈을 보며 큰 숨을 한번 내쉬었습니 다. 안녕하세요. 2017년부터 소리 편집인으로 찾아뵙게 된 김기인입니다.
[소리]는 (수준 높은 수다로 꼬드기고 등 떠미는) 잡지입니다. [소리]의 볼륨을 높여주세요! 홀로 씨름하며 분투하는 동역자에게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외칠 것입니다. 후원금은 전액 [소리]의 제 작비로 사용됩니다.
폭풍 같았던 마감일과 함께 편집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지만, 아직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기 만 하네요. 서투른 점이 많더라도 넉넉하고 포근한 마 음으로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위시리스트도 작성하고 새로운 계 획도 짜면서 희망으로 가득 찬 일 년을 준비하곤 했는 데요. 올해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국정농단 사태가 이 사회에 준 충격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겠죠. 뉴 스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소식을 쏟아내고, SNS에
후원계좌 [우리] 1005-000-990258 [국민] 760-01-0038-627 예금주 (사)한국기독학생회 2016년 11~12월 후원자 명단 곽지영(*2) 권도균(*2) 김선미(*2) 김재원(*2) 김종기(*2) 김종수구한나 김지은(*2) 김철호 나현순(*2) 남은경(*2) 민은혜(*2) 박정 현(*2) 박창재(*2) 손정엽 송인규(*2) 여운성(*2) 오규덕(*2) 윤정 범-지은실(*2) 이상엽(*2) 이원경(*2) 이지원 임정하(*2) 임종학 장은숙(*2) 전선애(*2) 정민경(*2) 정성구-윤정은(*2) 정재성(*2) 조창훈-민혜경 최수연(*2) 허성호(*2) 황진욱(*2)
서는 각종 의혹이 떠돌고, 1월 중순이 지난 지금도 국 민들은 여전히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듭니다. 이번 겨울 에는 영화 예매율조차 뚝 떨어졌다고 하니, 이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보이
강릉(*2) 경기남(*2) 경남(*2) 경인(*2) 남서울(*2) 대구(*2) 대전 중부(*2) 동서울(*2) 부산(*2) 북서울(*2) 서서울(*2) 영남동부 원 주(*2) 전북(*2) 춘천(*2) 충남(*2)
는 것 같네요. [소리]는 앞서 ‘교회의 공적 책임(통권220호)’과 ‘정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월 후원하시는 분은 중앙지원부(070-8275-6303)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적 이견차이(통권211호)’에 관한 이야기의 장을 마련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는 현 시국과 관련하여 ‘개인의 삶 에 맞닿은 정치 참여’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단순히 현재의 국정농단 사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 라 학사님들의 일상에 비집고 들어온 ‘정치’를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봄이 틔어나는 시기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에는 작금의 혼란도 끝을 맺어, 모든 학사님들의 삶에 새해 소망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김기인│편집인│sori@ivf.or.kr
제35권 제1호 통권230호 발행일 2017년 2월 1일 발행처 (사)한국기독학생회 학사사역부 주소 (0403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서교동) IVF 중앙회관 전화 070-8275-6313 팩스 02-333-7361 발행인 주상윤 편집장 이시종 편집인 김기인 김경아 편집위원 국효숙 김지은 박정현 오한웅 조창훈 허영신 편집디자인 김아롬새미 문이선 표지 이재웅 제작 김효영 인쇄 예원프린팅
나우웬과 함께하는 아침
Mornings with Henri J. M. Nouwen
새로운 하루를 열어 주는 신비로운 묵상의 시간
헨리 나우웬 지음 | 에벌린 벤스 편집 양장 128면 | 8,000원
인생과 신앙에 내재된 모순을 해결하고 진정한 마음의 고향을 찾으려 한 영성가.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예기치 않은 통찰을 예찬한 상처 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의 소중한 선물! “하나님의 움직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고독과 침묵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외치거나 소리치지 않으시고 몰아붙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작은 목소리나 미풍처럼 부드럽고 온화하십니다.” _헨리 나우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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