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1627-9249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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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호 / 2008년 6월 25일(수)
6 . 25와 38선 개인적으로 오래 바라보기 힘든 그림이 있다. 바로 권순철 화백의 추상화 "넋, 38선" (1997) 이다. 한참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 라면, 가슴이 돌덩이처럼 무거워 지고,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오며, 더는 아무것도 손에 잡 히지 않는다. 좋은 한 점의 그림은 책 몇 권 분 량의 설명을 생략하게 한다. 남북문제가 이야기될 때마다, 그리고 특히 6.25를 맞으며, 다 시 한번 권 화백의 추상화 "넋, 38선"이 떠오른다. 전체 푸른 회색 톤에 붉은색의 긴장감이 떠도는 바탕에, 동물인 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커다란 하나의 존재가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림의 제목에서처럼, "넋" 혹은 "영혼"이라기에는 이 존재는 커 다란 바위산처럼 무겁게 느껴져,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영혼들처럼 날기는 커 녕, 한 발자국을 옮기기도 어려 울 것 같다. 만약 이 존재를 커다란 동물이라 고 가정한다면, 캔버스 상단을 가로 지르는 기다란 철조망이 동 물의 머리에서 목을 따라 등줄기 로 지나간다. 그리고 이 철조망으로 말미암아, 이 존재는 상처를 받아 피를 흘
권순철, 넋, 38선, 1997
리는 것 같다. 언뜻언뜻 보이는 진한 선홍색은 이 상처가 오래전의 것이 아 닌 바로 현재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겨울 호수의 두꺼운 얼음이 갈라질 때 나는 소리처럼, 이 존재는 고통을 호소 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히 외워야 하는 여러 사건 중의 하나 로 되어간다. 이렇게 또다시 한 세대 두 세대가 지나 가 버리면, 어쩌면 통일 여부를 국민투 표로 물어야 하는 기막힌 현상이 생기 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6 . 25는 아직 아물지 않은 가장 커다 란 비극이며, 뼈를 깎는 한(恨)의 울음 이다. 이러한 넋을 우리는 또다시 우리들의 어린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까 ?
사랑하는 자녀에게 그림에서 보이는 우리의 영혼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투명하고 여린 영혼을 보며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미 루어 온 지 벌써 십 년도 더 되었다. 아직도 여린 그들의 영혼에 다시 한 번 망설이다가, 북쪽에 있는 나의 자 녀와 같은 연령의 또 다른 영혼들, 언 론의 자유도, 신앙의 자유도 없는 곳에 서 자라고 있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 을 생각하며, 올해는 권순철 화백의 그 림"넋, 38선"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 해 보아야겠다, 좋은 한 점의 그림은 긴 설명을 생략케 할 것이므로…. <파리지성>
올해로 6 . 25전쟁 발발 58주년을 맞 이했다. 벌써 2세대가 훨씬 지나 3세대가 되어 간다. 아물 줄 모르는 상처로 남아있는 분단 현실이 후세대들에, 특히 파리에 서 자라는 우리 자녀들에게는 과거의 일로 점점 멀어져 간다. 우리 세대처 럼 6 . 25 전쟁을 가슴으로 배우는 것 이 아니라, 교과서에 줄을 치며 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