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JISUNG - NO. 561 SARL PARISJISUNG 63 rue gergovie 75014 Paris ISSN 1627-9249 N o siret :494 517 394 00016 Editeur : Jeong, Nack-Suck 광고문의/기사제보 01 4541 5317 06 0786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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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6일(수)
세계로 통하는 창
파리지성
희망으로 걸어나 올 수 있기를 일본 대지진과 해일의 참사는 미국 의 9.11 사태와 더불어 제 생애에 지 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큰 비극을 느 끼게 했습니다. 밀도 있는 보도 때문 인지 가까운 이웃나라이어서 그런지 이전에 있었던 많은 재난들보다도 훨 씬 안타까움이 심했습니다. 일본인들 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그 엄청난 비극 앞에서도 격한 감정을 울부짖 음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슬픔을 자 기 안에 가두어 두고 몇 집 건너 일어 난 비극을 말하듯 하는 그들의 모습 을 보며 오히려 제가 하염없이 눈물 이 났습니다. 내 가족 내형제에게 피 해가 없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차라 리 누구를 붙들고라도 엉엉 울 수 있 으면 좀 답답한 마음이 가실까...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는 진도 5 내외의 지진을 동경에서 체험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진으로 흔들 거리는 밤을 보내면서 정말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 만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그냥 좀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나무 가 흔들리는 정도로 생각할 만큼 지 진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에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많은 일 본인들이 자신의 생애에 처음 경험하 는 공포였다고 합니다. 그 공포는 놀 이동산의 롤러코스트를 잘 타는 사람 이라고 해서 비껴갈 수 있는 것이 아 닙니다.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말합니다. 원초적으로 파고 드는 공포는 죽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번 지진 때문에 발생한 쓰나미는
3.11 일본대지진 시속 700Km 가 넘는 속도로 파도 를 실어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렇 게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방제 시스 템을 잘 갖춘 일본도 전혀 손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못 갖고 비극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해변에 있는 가옥들을 삼키고 산 같은 파도가 마치 검은 악마처럼 내륙으로 밀려드는 모습은 영화라도 그렇게 실감나게 촬영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차동차를 타 고 도망해도 소용없고 배를 타고 있 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 힘이 얼마 나 대단한지 모든 것이 장난감처럼 넘어지고 쓸려갔습니다. 해변에 모레 성이 파도에 쓸려가는 것이나 해변 에서 떨어진 마을에 있는 집들이 쓰 나미에 쓸려가는 것이나 조금도 다 르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재난의 시간에 나타 내는 일본인의 저력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큰 어려움과 고통에 부딪쳤
어도 자기를 우선하는 이기심이 표 출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일한 일을 만났다면 우리는 어떠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나는 어 떻게 했을까 하는 것도 생각해봅니 다. 일본 사람들처럼 질서를 지키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자기감정을 절제 하면서 공동의 유익을 구할까... 솔직 히 그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자동 차에 기름을 조금 넣기 위해서 기다 려도 슈퍼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 기다려도 앞에 있는 사람이 다 사가 고 없어질지 몰라도 기다리며 또 기 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기다 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 사 가지 않는 사람들, 이것이 일본의 저 력인 것 같습니다. 아우성 하며 자기 의 절실함을 호소하고 울부짖어도 누가 뭐라고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이해하고 기다리는 그들, 반드시 슬 픔을 딛고 일어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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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통화는 창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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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우면 단숨에 달려가 조그만 도 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 만 그렇지 못해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일본이 아이티만큼 가난한 나라는 아니지만 지금 일본 은 돈의 문제를 떠나서 많은 나라들,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 각됩니다. 세계 각국에서 나설 것이고 한국에서 도 많은 기관들이 나설 것입니다. 한 국 정부에서도 흉내 내는 정도가 아 니라 일본이 놀랄 만큼 힘을 쓰면 좋 겠습니다. 정부든 민간이든 어떤 모 양으로든지 큰 재난을 만난 일본을 돕는 일에 마음을 보태는 일들에 참 여하는 것이 귀하다고 여겨집니다.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자녀들에게도 잘 설명해주고 어려서부터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함께 하도록 가르치 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이 무너지고 교량 이 파괴되고 산업 시설이 망가진 재 산상의 피해가 난 것이 아니라 수많 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 니다. 질병을 통해서 오랜 시간 죽음 을 준비해 온 것도 아니고 어느 날 한 순간에 사라진 가족을 받아드리는 것은 그렇게도 힘들다고 하는데... 많 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압 니다. 저도 그들이 어떻게든 희망으 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제가 믿는 분 께 기도합니다. <김승천 목사>
박병선 박사 인터뷰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3
박병선 박사의 아직 못 다한 이야기 마지막 소원은 파리 독립기념관 건립 보는 것 박사님, 현재 건강은 어떠 신가요. 지금 병은 없어요. 의학적으 로 말해서는 이제 괜찮은데, 이렇게 기력이 없네요. 아무 리 노력을 해도 그래요. 그 리고 다리 힘이 없어서 일어 서고 걷기가 너무 힘들어요. 외규장각 도서가 영구대여 라는 조건으로 돌아오는데. 처음에 이 도서를 어떻게 하 면 한국에 가져갈 수 있을지 그 문제를 바로 바로 서둘렀 으면 아무 문제도 없고 좋았 을 텐데. 그때는 너무 무심 했다고요. 정말 너무 무심 했어요. 처음에 책을 찾았을 때,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책이 파리 국립도 서관에 있다고만 잠깐 얘기 가 되다가 그 다음에 쏙 들 어가 버린 거예요. 더 이상 생각들도 않고. 그리고 거 의 10년이 지난 후에 그때 서야 규장각 도움으로 제 책 이 발행되고, 서울대 총장님 하고 이태진 교수님께서 상 의하셔서 반환운동을 시작 하시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외규장각 도서가 반환되기 까지 혼자서 겪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실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그 긴 세월 동안 있었던 역 사라고 할까요? 저한테는 역 사예요. 그런데 추억이라도
심한 추억이죠. 처음에 한국 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 었다면, 또 당시 정세가 어 땠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정부에서 조금 더 이쪽으로 힘을 실어주었다면 일은 참 순조롭게 해결되었을 텐데. 지금의 '대여' 라는 말도, 소 유권이 불란서에 있지도 않 을텐데. 제 생각에 그렇게 힘들지 않게 해결할 수 있 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파지로 분류된 책 가져가는 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겠어 요. 결국 그거예요. 외규장각 도서를 찾고 나서 도서관 측과의 갈등으로 결 국 도서관을 떠나게까지 되 셨죠. 그 때 이야기를 좀 들 려주세요. 그 당시 도서관하고 한국 정 부, 대사관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것을 밖에 사람들은 모르죠. 참 복잡해요. 내가 시간적으로 정리를 한 번 해 봤는데, 그래도 참 복잡해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저렇게 사건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무엇을 어디에 정리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주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초기에 외규장각 도서를 찾 았을 때 구체적인 내용은 모 르지만 제목을 종류별로 모 두 정리해서 기자들에게 보 고를 해줬어요. 그랬더니 기 자들이 거기에다가 제멋대 로 '발견'이라는 말을 썼다고
요. 당시 도서관에서 한국에 서 나온 신문을 일일이 최악 으로 번역을 해가지고, 물론 가짜로 꾸밀 순 없지만, 똑 같은 말마디라도 어떻게 해 석하느냐에 따라 다르잖아 요, 그래서 규장각 도서가 있는 것을 네가 찾은 거지, 어떻게 그것이 네가 발견한 것이냐, 이것을 가지고 도서 관에서 트집을 잡기 시작했 다고요. 그래서 기자 분들께 사실 찾은 거지 발견이 아니 다, 발견 소리 좀 쓰지 말아 달라고 하니까, 한국에서는 그 말 밖에 다른 말이 없다 고,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냐 고 말하는 거예요. '찾음'이 라고 쓰면 맥이 없는 것 같 고, '발견'이란 단어도 한국 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으 니까 해석하기에 달렸는데 말이죠. 결국 제가 발견이 라고 해서 마치 최초로 찾아 낸 것처럼 얘기를 했다고 그 것을 가지고 달달 볶았어요. 외규장각 도서에 관한 언급 은 제일 먼저 모리스 쿠랑 이 했어요. 당시 모리스 쿠 랑도 책 제목과 왕립도서관 (Bibliothèque Royale)에 있다 고만 썼지, 책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못하고, 제 목과 크기에 대한 정도만 이 야기를 했다고요. 도서관은 모리스 쿠랑이 이미 발표한 것을 네가 다시 발표한 것이 지, 왜 네가 발견한 것이냐 고 문제를 삼았어요. 그래서
박병선 박사 자택 앞에서 나는 다른 것 발표한 것 없 다, 이 책이 어디에 있고, 그 제목이 무엇이다만 알렸다 뿐이지 더 구체적으로 말한 것도 없다고 말했죠. 직접적으로 도서관과 갈등 을 일으킨 계기가 있나요. 도서들이 오래되다 보니 몇 권만 표지가 제대로 남아있 었지, 대부분은 모두 상해서 수선을 하게 되었어요. 의궤 표지들이 두꺼운 종이에다 가 비단으로 싸여져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어디서 누가 한 일인지 모르지만, 수선을 맡긴 사이에 누가 의궤에 있 는 그림을 면도칼로 잘라갔 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조 금 똑똑했으면, 제본을 한 것이기 때문에 장을 모두 빼 갔으면 잘라버린 지도 모르 고 지나갔을 텐데, 그 옆에 도막을 남겨두고 그림만 가 져간 거예요. 당시 무엇보 다 도서관 측에서 예민했던 부분은 한국 대사관 사람들
이 알게 될 까봐, 그것을 무 척 신경을 썼던 가봐요. 저 는 내용적으로 그들이 겁냈 던 것을 알 수 없었죠. 그들 은 그것을 수선을 해서 파 리 국립 도서관으로 옮겨오 겠다고 계획을 짰겠지요. 그 당시 수선을 한 다음에 종이 에 싸 놓은 것을 제가 제일 먼저 열었다고요. 내용을 보 는데 그림이 잘려 있으니까 이건 수선소에서 잘린 것 같 다고 바로 말을 해줬죠. 그 렇지 않으면 내가 잘라간 것 처럼 오해를 받을 테니까요. 도서관 쪽에서는 이게 국제 문제가 되면 사고다. 그것 을 제일 겁을 낸 거예요. 그 런데 내가 도서의 존재를 기 자들에게 얘기했기 때문에 이것이 터졌다 해서 그 당시 과장이 내가 국제 문제를 발 생하도록 일으켰다고 책임 이 저한테 전가된 거예요. 그 전에는 과장님과 아주 가 까이 지내고 친했다고요. 그 런데 하루 사이에 사람이 싹
박병선 박사 인터뷰 변하는데, 저 멀리에서 나를 보면 돌아서서 딴 길로 가고 그 정도로 냉담해졌어요. 그 리고 또 한국 외무부에서는 저보고 가만히 있지 않고 이 런 것을 자꾸 끄집어 내서 자기네들 골치 아프게 한다 고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요. 당시 의궤를 찾았 을 때에 대사관에 제가 매일 같이 출근하다시피 했어요. 대사님께 지금 이것이 창고 속에 있으니 우리가 가져가 는 것은 문제가 간단하다, 보통 서적도 아니고 파지로 분류되어 있으니까 찾는 것 이 간단할 테니 어떻게 좀 힘을 써달라고 했죠. 그런데 대사님 말씀은 한불관계가 지금 묘하고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들 비위를 건 드릴 수 없으니까 당신이 말 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 요. 개인적으로 저한테 참 잘해주신 분인데, 그 문제만 큼은 본인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씀 하시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가난하고 그럴 때니까 문화 재 같은 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죠. 대사님께서 이 부 분에 대해 본국에 보고를 하 셨는데 본국에서 묵살을 했 는지, 그 분께서 지금은 때 가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가 만히 계셨는지 그건 몰라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 구 말씀하지 않으셨거든요. 당시 제가 매일 대사관에 출 근하다시피 하니까, 대사님 께서는 '병선이 왔으니까 나 랑 가서 점심이나 먹어' 하 시면서 매일 같이 쌩 미쉘에 있는 우동집에 간다고요. 가 서 먹으면서 저는 또 '대사 님, 이 우동이 중요한 게 아 니고, 지금 이 문제가 중요 한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 면, '그 얘기는 그만 하고 밥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4 꾸 또 옆에서 충동질을 해주 는 교수님들도 있고 하니까 제가 더 용기를 내서 매일같 이 출근을 했죠.
좀 먹자' 하시면서 넘어가시 고 (웃음). 당시 적극 움직였다면 외규 장각 도서를 쉽게 되찾을 수 있었을까요. 도서관 쪽에서는 계속해서 문제가 나니까 자꾸 신경이 예민해지고, 저는 대사님을 재촉했죠. 당시 국립도서관 이 문교부에 소속이 되어 있 었는데, 문교부 장관 비서실 에 제가 아는 분이 한 분 계 셨어요. 그래서 사건이 이런 게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 느냐고 물으니까, 불란서 국 립도서관에 기증했다는 한 마디 말이 써있긴 하지만 다 른 기록은 없으니 움직이려 면 지금 움직이라고, 그 다 음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대사 님이 움직이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움직이겠어요. 당시 한국은 가난하고 삼시 밥 먹 기가 힘들 때니까. 제 생각 에 그때만해도 한국은 불란 서 눈치만 보고 살 때가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건들면 안 된단 말 씀한 하시지 않았을까. 그때 를 이해할 순 있죠. 하지만
전 안타까우니까, 이때 놓 치면 안 되는데, 이 때 놓치 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쪽으로 자꾸 졸라댔고, 대사 님께서는 또 어떻게 하실 수 없으셨던 거겠죠. 대사님께 서도 입장이 참 거북하셨을 텐데, 대사님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요. 그때는 제가 철부지 없 이 대사님이 움직여주시지 않으니 답답하고 원망스럽 고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지독하게 하지 않 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요. 왜냐면 도서관 측은 계속해 서 움직이고 있고, 저 핍박 받는 거 그까지 일은 문제가 아닌데, 우리 쪽에서는 죽은 듯 가만히 있으니까 저는 화 가 났던거죠. 당시 저는 젊 은 기분으로, 또 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이쪽에서는 또 다른 사정이 있으니까 할 수는 없 고. 이쪽에서 자꾸 조른다고 대사님도 거절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도 없으니 까 애꿎은 우동만 맨날 사주 신거죠 (웃음). 당시 대사님의 입장도 쉽지
만은 않았을 것 같네요. 그 대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저에게 참 잘해주셨어요. 내 가 화가 나서 우동 안 먹겠 다고 하면, '그러지 말고 가 자, 그래야지 내가 우동도 먹잖아' 하고 타이르신다고. 그러면 또 할 수 없이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또 그 얘기가 나오죠. 대사님 도대체 어떻게 해요, 왜 가 만히 계세요, 그러면 '먹는 것 체해, 가만히 있어' 하세 요 (웃음). 그런데 지금 생 각하면 대사님께서 얼마나 힘드셨고 어려우셨을까 알 겠어요. 그 때는 내가 그걸 모르고 졸라만 댔지, 또 빨 리 해결을 안 해주시니까 원 망스럽고. 도서관에서 냉대 를 당할 때마다 저는 대사님 께 원정이 가는 거예요. 지 금 생각해보면 대사님 하실 일도 많고, 다른 일도 많으 셨을 텐데, 내가 너무 철부 지 없이 굴었다는 것을 알겠 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어 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저로 서는. 또 주위사람들이 너희 나라 대사관이 있잖냐, 대사 님이 움직이기에 달렸으니, 대사님께 매달려 보라고 자
도서관에서 나오시게 된 것 은 그 후에 일인가요? 그 때에도 보도 기관 사람들 이 '발견' 소리를 빼달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그 말을 쓰 는 거예요. 난 그 말 때문에 있는 대로 당하고 있는데. 그리고 나서 도서관 내에서 냉전이 일어난 거예요. 도서 관 측하고 나하고. 도서관에 서는 나를 반역자 취급을 했 어요. 국립도서관의 비밀을 외부에다 누설시켰다는 죄 목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백 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 었어요. 도서관에 책이 있 다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공고를 해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 서관의 임무라 생각하는데, 제가 반역을 한 것도 아니 고, 또 도서관에 있는 책이 있다고 말을 한 건데 그것 이 왜 비밀이냐, 뭐 때문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인지 이 해할 수 없었죠. 그리고 당 시 도서가 있으면 카드가 있 거나 대장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카드도 없고 대장도 없 고 아무것도 없었다고요. 그 런데 한국 기자들은 강화도 에서 가져간 외규장각 도서 가 국립도서관에 있다고 떠 들기 시작하고, 한국에 신 문기사가 하나라도 또 나면, 그 신문을 번역을 해서 도서 관 내 보도 담당실(service de presse)에 보고가 된다 고요, 이런 기사가 또 나왔 다고. 이 사람들은 이를 계 속해서 문제로 삼으려고 충 동을 한 거예요. 이렇게 몇 달이 계속 됐어요. 그 다음 부터는 제가 도서관에 출근
박병선 박사 인터뷰 해서 퇴근할 때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시를 하는 거 예요, 뭘 어떻게 하는지. 그 것까지도 좋아요. 제가 뭐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문제 될 것은 없었 죠. 그런데 하루는 관장님 께서 저를 호출을 하시더라 고요. 생각해보세요. 도서관 에는 천 여명이나 되는 직 원이 있고, 나는 당시 정식 직원도 아니고, 말단에 말 단, 그야말로 임시기간 직원 (saisonnier)이라고 해도 과 언이 아니죠. 그런데 관장님 이 직접 호출을 해서 사표를 내라고 하는 소리를 하는 것 은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었 던 거죠. 직원이라도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비서를 시켜서 해결을 했겠 죠. 호출을 해서 갔더니, 이 사건이 어떻게 된 거냐고 직 접 물으시더라고요. 과장도 같이 갔는데, 과장이 제가 오랫동안 그 책을 찾았다는 것을 말하고, 동시에 이것 을 도서관 측과 상의하지 않 고 외부사람들에게 말했다 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듣고 있다가, 도서관에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책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데 일 일이 과장하고 상의를 해야 하느냐, 또 어떻게 그것이 도서관 비밀로 들어갈 수 있 느냐,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 고 하니, 관장님도 머리골치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5 가 아프신 모양이에요. 옆에 있는 관장님 비서도 진정하 라고 말로 쟁투하는 것이 아 니고 결국 나를 도와주기 위 해서, 그리고 일을 좋게 해 결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부 터 내가 그 책을 찾고 있는 것을 과장이 알았으면, 이 책을 찾으면 자기한테 먼저 말을 해달라든지, 또는 외부 사람한테 말을 하면 안 된다 든지 했다면 나도 말하지 않 았을 거다, 그런데 그런 말 은 일언반구도 않고 자기도 함께 협조해주면서 그 책을 같이 찾았던 사람이 나를 반 역자로 모니까 얼마나 어처 구니가 없어요. 그 때 도서 관 측에서는 저에게 다른 취 직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일 년 봉급을 준대요. 그것도 그때서 알았죠. 그런데 저는 그 때 이미 꼴레쥬 드 프랑 스(Collège de France)에 소속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요 없 다고 했어요. 비서는 나보고 실직자가 아니고 옆에 다른 직장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위로하더라고요. 말은 사표 지만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 지죠 (웃음). 후에 의궤를 연구할 상황이 더욱 여의치 않았을 것 같 네요. 책을 자른 범인을 찾는다는 구실로 도서관에서 책을 열
람 중지를 했고, 그것이 몇 달 계속됐어요. 그런데 몇 달 동안을 내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가서, 오 늘은 책을 볼 수 있냐고 매 일 같이 물었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손을 들었대요. 매번 안 된다고 하면 웬만한 사람 들 같으면 기권을 하고 말겠 거니 했던 거예요. 열람 중 지니까 당분간은 내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보통 때와 똑같이 매 일 아침 와가지고 오늘 책 을 볼 수 있소 없소 하고 묻 고, 안 된다고 그러면 할 수 없지 하고 돌아가서는 다음 날 또 찾아오고. 나중에는 그 책을 중요도서목록으로 분류해 놓았더라고요. 그리 고 그 잘린 부분을 조사한다 고 하면서 책에 페이지 수가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책 에다가 연필로 한 장 한 장 기록하라고 직원들에게 시 켜서 그것을 해놓았어요. 그 렇게 준비해준 것은 고마운 데, 나는 직접 보았으면 좋 겠는데 볼 수 없으니 답답했 죠. 한 쪽에서는 매일 와서 보겠다고 그러고, 한 쪽에서 는 보여주기는 싫고 하니까 그 사이에 갈등이 대단했고, 몇 달이 지속됐어요. 그러다 가 나중에는 그럼 책을 보여 주겠다, 그런데 하루에 책을 몇 권 이상은 못 준다는 조 건을 붙이더라고요. 그래서
몇 권 줘 봤자 나 보지 못하 니까 한 권만 줘도 된다 했 죠. 그 대신 내가 무슨 책을 봤고, 몇 시에서 몇 시까지 봤다는 것을 일일이 과장한 테 허가를 맡아야 한다고 했 어요. 그 책을 그냥 갖다 주 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신 청서를 내면, 이것을 과장한 테 가지고 가서 과장이 도장 을 찍어줘야만 그 책을 보여 줬다고요. 그런데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려고 문의를 하 면 어떤 때는 과장이 그 자 리를 피한다고요, 그러면 사 인을 못해주잖아요. 몇 시간 동안 과장이 어디에 갔는지, 회의에 갔다고 하고 자리에 없으니까, 도장을 받을 수 가 없는거죠. 나중에는 책임 지고 맡아주는 사람한테 막 대들었다고요, 이런 법이 어 디 있냐고. 그랬더니 알았다 고 또 자기가 사인을 해줘서 책을 보기도 하고 그랬다고 요. 생각해보세요. 매일같이 아침에 가서 책을 보려는데 책은 못 보게 하지, 나는 빨 리 봐야겠고, 빨리 해치워야 겠는데 그 때 심정이 어떠했 을지. 그런데 거기에다가 일 일이 며칠 몇 시에 와서 무 슨 책을 보고 몇 시에 간 것 까지 보고를 하도록 했다고 요. 나중에는 너무 기가 막 한 것이, 그 직원들이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라 사이 도 좋았어요. 식구도 몇 사
람 밖에 안되니까 서로 친하 게 잘 지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명령을 하기를, 절대로 나를 도와주면 안 된 다고 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책이 이상스러운 데 다른 책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이 사람이 나한테 말 을 하기를 '미안해, 내가 어 떻게 할 수가 없어, 지령을 받았기 때문에 너하고 이야 기 할 수가 없어' 한다고요. 그래서 밖에 나와서는 이야 기 할 수가 있으니 밖에 나 와서 이야기하는데, 그 때 하는 얘기가 우리들 모두한 테 너를 도와주지 말라고 지 령을 내렸다고, 그래서 우리 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그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 정 도까지 저를 핍박했어요. 그 런데 그것이 몇 해 계속되 니 나중에는 기권을 하더라 고요. 일일이 도장 받고 하 는 것도 다 없어지고, 그 다 음에는 맘대로 다 볼 수 있 게 해주고, 하루에 두 번도 보고 세 번도 볼 수 있게 되 었어요. 그 동안에 과장도 그만두고, 관장도 그만두게 되었고, 다른 과장이 왔으니 까,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그런 구속을 해야 되는지 못 알아 듣겠다는 거죠. 도서관 에 중요도서가 있고, 보통중 요도서가 있고 그래요. 그런 데 이 책을 중요도서에서 보 통중요도서로 분류한 거죠.
문화원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6 데 툴툴거릴 수는 있잖아요,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그러니까 회의에 갔 다가 나와서 내가 옆에 있으니까 '골 치 아파' 그러면서 혼자서 툴툴거리 더라고요. 그러니까 나를 보고 말하 지 않고 자기가 툴툴거린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그 사람도 비밀을 지키 라는 것 위반한 거 없고요.
"재불예술인 총연합 발족선언문" 반세기에 달하는 재불한인의 역 사와 더불어 재불예술인들의 괄 목할 활동을 통해 한국인의 위 상을 드높이고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재 불 예술인들은 각 장르간의 연 대와 예술활동 교류 등 예술인 들의 중론을 대표할 대외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할 대표 조직 이 없어 보다 폭넓고 원활한 예 술활동을 펼치지 못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중요도서는 창고 속에 넣어야 하는 데 보통중요도서는 서고 속에 놓아 도 되요. 그 동안에 자리가 여러 번 바뀐 거예요. 처음에 파지로써 창고 에 있던 책이 중요도서로 등장을 했 고, 그 다음에는 보통중요도서로 등 록을 한 거예요 지금까지 보통중요 도서로 되어있어요.
미디어기술의 급진적 발달이 낳 은 소셜 네트워크 사회로 진입한 세계의 환경은, 과거 예술활동의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지 않으면 그 존립이 어 려운 미디어환경 아래 놓여 있 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재불예술인 총연합>은 재불예 술인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부각 시키며 창작활동을 고취시키고 지원하는 동시에 다양한 장르간 의 협력과 협업을 통해 예술가들 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며 각 분야별 정 보공유와 프랑스 예술계와 세계 예술계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예 술인의 결집으로 총합을 이루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설립하여 발 족함을 선언합니다. 2011년 3월 10일 재불예술인총연합회 회장 정 택 영
처음 반환 교섭이 어떻게 진행되었 는지 아시나요? 그 도서에는 카드도 없고, 대장도 없 어요. 그것만은 알아야죠. 처음에 프 랑스에 반환 교섭을 오신 다기에 그 분께 그것을 충고해 드리고 싶었다 고요. 왜냐면 아무 소리 말고 도서관 에 가서 너희들 카드 좀 보자 하면, 없는 카드를 어떻게 갑자기 만들어 주겠어요. 그리고 대장은 외부사람 들한테 안보여주는 것이지만 대장 좀 보자, 그렇게 하라고 부탁을 하 려고 했는데 그분이 저를 만날 필요 없다고 안 만나고 그냥 갔다고요. 그 러니까 처음에 교섭을 하러 오신 분 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내용은 모르 지만 나는 이쪽 사람들한테 간접적 으로 들었어요. 교섭 온 분이 책 내 용도 모르고 와서 책만 내놓으라고 그러니 말이 되냐, 그러면서 툴툴거 리는 소리를 제가 들었거든요. 그래 서 이게 또 무슨 말인가 했어요. 한 국 측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은 것이 없어 모르고, 이쪽 사람들을 통해 들 은 것이죠. 당시 회의에 있었던 사람 들은 절대 내용을 외부에 말하지 말 라고 그렇게 규칙을 세웠대요. 그런
지금은 외규장각에 대한 관심이 높 지만, 그 긴 시간을 혼자 이겨내시면 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 학자들의 냉대. 그리고 불란서 도서관 쪽에서 당한 냉대는 정말 지 독했어요. 제가 잠을 참 잘 자는 사 람이에요. 불면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인데, 그 때는 정말 잠이 안 오 더라고요. 그래서 불면증이라는 것 이 이렇게 힘든 거구나, 그 때 처음 으로 경험해보고 알았어요. 주변에 계신 분들도 많이 안타까워하시고 저 때문에 고생들 많이 하셨죠. 한국 에 가면 한번씩은 예전에 저한테 그 렇게 냉대하신 분들께 전화를 드렸 어요. 그러면 한번 만나자 하셔서 다 방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그 때는 커 피를 마셔도 커피 맛이 나지가 않아 요. 그 교수님도 그 때 얘기는 꺼내 시지도 않고 지금 뭐하고 있고 앞으 로 어떻게 할 것인지만 물으시죠. 그 래서 한번은 제가 그랬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말씀 드리면 전과 똑같이 말씀하실 것 아녜요 하고 웃 었다고요. 그러니까 그건 잊어버려 그러고 마시더라고요. 어떻게 하겠 어요. 그게 세상이고, 그게 인심인가 그렇게 생각해요. 박사님 제일의 마지막 소원은 파리 독립기념관 건립이라고 들었어요. 이제 갈 때도 됐고, 빨리 빨리 일을 정리하고 원고도 마쳐야죠. 그런데 가기 전에, 제가 눈감기 전에 한가지 소원이 있어요. 샤또덩 가에 독립기 념관을 만들어 놓고, 아니면 만드는 기세라도 보고 죽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몇 십 년 동안 입이 마르도록 독립기념관 만들어야 된다고 했는
데, 이제까지는 파리 교민들이 너무 도 냉정했다고요. 거기에 대해 알려 고 하지도 않고, 만들어 뭐하냐는 식 으로 그랬었죠. 그대도 지금은 조금 이나마 독립기념관이 있으면 좋겠 다는 말이 시작되어 다행이에요. 독립기념관 설립은 왜 중요한가요. 김규식 박사의 활동이 외교 활동의 시초라 할 수 있어요. 파리에 오셔 서 몇 달 밖에 안 계셨지만, 같이 일 하시던 분이 샤또덩 가의 그 집에서 2년간 버티셨잖아요. 집세가 없어서 방 한 칸에서 지내시면서, '자유한 국'도 발행하시고, 꾸리에와 팜플렛 도 발행하시고, 회의에도 참석하시 고 하셨다고요. 불어를 한마디도 못 하시는 분들이. 제 추측인데 여기 사 용했던 사무실이 크지도 않았을 거 예요. 낮에는 사무실로 쓰고, 저녁에 는 그곳에서 주무시고 그러시지 않 았을까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 분들 이 그렇게 활동하지 않았다면 불란 서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리지 못 했을 거예요. 한국을 처음으로 소개 하고 한국을 알리신 분들은 그분들 이에요. 나는 그렇게 봐요. 더군다 나 구라파 쪽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독일에도 가셨었고, 영국, 이태리에 도 가셨어요. 이곳 저곳 다니시면 서 회의에도 참석하시고 한국을 알 리셨죠. 이런 일들을 잊지 않아야 해 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아요. 제 제일 큰 소원 이 바로 이러한 것들을 한 데 모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파리 독 립기념관을 건립하는 거에요. 우리 가 움직인다면 틀림없이 정부도 도 와줄 거예요. 정부가 저한테 말하기 를, 너희들이 협력해서 뭘 하나 만들 어라, 너희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우 리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달라 면 말이 안 된다, 그것이 그분들의 웅변이었어요.
<파리지성>
문화 / 국내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7
제 28회 프랑스 청년작가협회 정기전 "INTIME/EXTIME"
*참여작가 : 김남영, 김효진, 노치욱, 민항기, 박자용, 박정윤, 이다연, 이 은화, 이영인, 이화진, 장광범, 정인 수, 진효석, 주명선, 정다정, 최토지, 최하영, 한요한, 허경애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원장 최준호) 은 오는 3월 9일부터 30일까지 프 랑스 청년작가 협회의 28회 정기전 "INTIME/EXTIME"을 개최한다. 프 랑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재 불작가 협회중의 하나인 청년작가회 (Association des Jeunes Artistes Coréens) 는 한국과 프랑스의 예술교류와 상호 협력에 바탕을 둔 다양한 활동을 펼치 고 있으며, 30년 가까이 매년 문화원 에서 정기전을 개최하고 있다. 예술활동의 터전으로 프랑스를 선택 한 청년작가회의 열 아홉명 작가들 은 회화, 데생, 사진, 조각, 설치 등 다 양한 테크닉을 통해 한국 컨템포러리 미술의 단면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INTIME/EXTIME은 이들 작 가들이 추구하는 내면세계와 이의 극 대화 또는 표면화, 외부화하는 성향을 표현한 것으로 시인이자 화가인 미쉘 시카르가 만든 신조어이다. 그에 따르 면 Intime은 '욕망과 기대, 반영이 섞 인,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몸 속 깊 은 곳에서 뿜어 나오는 내심 '이다. 작 가들은 바로 이런 내면의 세계에 본
연의 예술적 충동으로 작업을 한다. Intime은 우리를 평범하지 않고 독특 한 개성을 가진 비밀스런 존재로 만드 는가 하면 더 흥미롭고 개방적이게도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길을 잃고 그 안에 안주하며 스스로를 가두게도 한 다. Extime은 바로 이런 미로에서 탈 출하여 밝은 미래를 향한 계획과 희망 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각 작가들의 독특한 내면세계의 표출을 '공간(espace)'이 란 코드로 보여주고자 한다. 공간은 우선 물리적, 기하학적 개념으로 정의 할 수 있는데 추상적 또는 비 추상적 ' 범위'를 지칭하는가 하면 이의 인지능 력을 뜻하기도 한다. 메르디유는 그의 저서 "L'histoire matérielle et immatérielle de l'art moderne et contemporain"에서 공 간개념의 모순적인 성향을 논한다. 공 간은 부피, 중력, 무게와 밀접한 관계 의 촉지할 수 없는 '물질적' 요소임과 동시에 생물체와 오브제에 부여된 가 장 기본적인 범위의,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비물질적' 요소이기도 하다. 이 런 공간은 대기와 섞이며 하나의 투명 한 빈 공간으로 감지된다. 우리가 여 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간은 물질 적 또는 비물질적인 이중성을 가진 도 구 또는 재료적 측면의 공간이다. 각 기 다른 표현방식과 컨셉의 작업들이 보여주는 공간과의 관계성 그리고 다 양한 해석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회화나 평면작업의 제한성과 잠 재성에 중점을 둔 물리적인 공간표현 으로, 안과 밖을 잇는 연결고리로써 그림표면의 마티에르를 이용해 회화 공간의 확장을 꾀하는 허경애, 장광범 은 겹겹이 발라진 마른 물감을 글라인 딩하여 다양한 모티브를 얻는데, 이는 물리적인 물감의 두께뿐 아니라 시간 의 축적 또는 지형도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공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 한 극도의 사실적 표현을 통해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영원한 삶을 역설적 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영인은 현실 의 이미지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회
화작업을 통해 또 다른 공간성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한다. 이은화는 다양한 마티에르를 표현하 기 위해 오브제의 형상만을 도용하여 재질을 표현하는데 이런 마티에르 효 과는 반대로 회화의 평면성을 두드러 지게 한다. 각기 다른 '속도감'이 느껴 지는 재질과 제스처를 통해 회화의 사 각공간의 다양한 구성을 시도하는 이 화진, 현재와 근 과거, 본체와 반사된 인체 등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 는 회화작업을 하는 민항기는 작품을 보는 이와의 인체를 통한 공감대 형성 으로 '존재감'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 업을 한다. 정인수는 생물체의 세포조 직이 담고 있는 미세한 유기적 형상을 물감의 번지는 효과와 다양한 붓터치 로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visible/ invisible), 출현과 소멸(apparition/ disparition) 등 시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에 호소하는, 상반된 현상의 경계 를 초현실적이고 클리닉한 건축공간, 특히 기본적 건축요소인 창문을 통해 표현하는 박자용의 사진작업, 오브제 가 놓임으로 해서 빈 공간보다 더욱 비어 보이는 최하영의 공간 사진작품 도 흥미롭다. 형이상학적 개념의 공간표현으로서 사물이나 얼굴형상을 통해 사회적 기 준이 되는 '표면적' 미에 대한 비판적 사진작업을 하는 이다연의 작품은, 일 그러지고 변형된 얼굴을 통해 자신과 타인간의 관점의 거리로서의 공간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또한 김남영의 해체되고 여과된 인체는 구조적 요소 로서의 흰 여백을 통해 마치 물리적이 고 심리적 또는 도덕적 개념의 '투명 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듯 하다. 정다정은 가는 섬유질의 노끈이나 거 즈를 사용하여 반복된 제스처와 기억 의 축적을 표현하는데, 주로 쓰는 나 선형은 지나간 추억을 간직하기 위 한 작은 공간을 이루고 이런 기억을 담기 위한 일종의 의식(rituel)이 된 다. 박정윤이 그리는 굴곡진 모양의
침상은 고국의 산야를 닮았는가 하면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람의 흔적을 의 미한다. 작가는 이부자리라는 소재를 통해 아늑하고 친밀한(Intime), 그리 움을 달래는 치료의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부엌이라는 공간이 떠오르 게 하는 다양한 경험과 상징성을 찾는 작업을 통해 추억을 재구성하는 주명 선, 기억의 흔적, 상흔을 나무의 나이 테형상에서 찾는 김효진, 휘고 상하면 서 질겨지고 두터워진 나무는 작가자 신의 기억과 아픔을 담고 있는 기록의 장소가 된다. 입체와 설치작업에서의 공간표현으 로, 단순한 기하학적 형상을 이용하여 공간과 테두리간의 관계에 따른 착시 현상을 노린 설치작업을 선보이는 노 치욱, 진효석은, 이런 기하학적 도형 을 통해 입체적 공간의 도식화, 평면 화를 꾀한다. 한요한의 조각에서는 공 간과 인체의 흥미로운 조합을 볼 수 있는데, 겹쳐진 동일한 인체들은 또 다른 하나의 형상을 만들며 공간을 구 성하는 도구로써 작용한다. 모조보석 과 반짝이를 붙인 조형물을 통해 시각 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미각에 호소하 는 최토지의 작품은 현란하고 매혹적 인 오브제를 통해 미각의 충만감을 표 현하는데, 작가는 이를 행복의 개념에 비유한다. 큐레이터: 전상아
기간 : 2011년 3월 9일-30일 개막행사 : 3월 11일 (금) 18시 부터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 2, avenue d'Iéna, 75116 Paris Tel. 01 47 20 83 86 www.coree-culture.org 매주 월요일~금요일 (9시 30분~18시) 단, 매주 목요일은 20시까지, 토요일은 13시~17시 <파리지성> Restaurant coréen
HANSUNG 5, rue Argenteuil 75001 PARIS M. Pyramides (7-14)
T. 01 42 86 11 85
인터뷰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8 프랑스 전 여성 장관이자 전문의학 박사, 유럽 최초의 여성 우주인 클로디 에네레(Claudie Haigneré) 그녀가 힘주어 말하는 미래의 여성상
'꿈은 그것을 위해 살아갈 때 현실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꿈일 따름이지요.' CNES(우주항공학 프랑스
하던 시절이 결국 내 2번째
이 시점을 기준으로 그녀
본부)에서 지정한 첫 여성
커리어로 연결이 된 것이
의 삶이 2번째 기간을 열게
우주인 후보로 선정, 유럽
아닌가 합니다."
되었다고 말한다. 1999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우주 탐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라
것일까?
는 우리의 옛말이 있다. 무
50을 갓 넘긴 나이에 정계
슨일이든 신중을 기하라는
고위직을 2번 역임하고 첫
지혜를 담은 말이다. 그에
유럽 여성 우주인으로서의
반해 유럽에서는 너무 지나
명칭까지 쥐고 있는 클로디
치면 곤란한 것 3가지로 소
에네레(Claudie Haigneré)
금과 이스트 그리고 주저함
여사는 위의 두가지 현명한
을 꼽는다. 신중함도 중요
문장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하지만 너무 망설이다가 호
삶의 주인공이다.
기를 놓치거나 용기를 잃을
2008년 4월, 한국 최초
수 있음에 대한 각인이다. 동서 선조들의 삶이 농축된 두 가지의 속담, 어찌보면 상반되어 보이는 옛말이지 만 둘다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시시각각이란 표현이 부족할 만큼 빨리 변화하는 21세기에 정녕 필요한것은 신중과 민첩한 결단중 어느 최고의 요리사가 선보이는 한정식
RESTAURANT COREEN
오도리
여성 우주인이란 타이틀 로 세계를 들썩인 이소연 씨의 동(同)분야 대선배라 고 해도 무리가 없는 에네 레 여사는 15세에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시험(바깔 로레아-BAC) 통과 이후 관절 전문의, 신경의학 박 사로 활동 중이던 28세에
"넓고 여유로운 좌석" 숯불갈비. 냉면. 육회. 삼계탕, 차육회밥. 알밥.
점심메뉴 TEL: 01.4577.8812 18, rue Letellier 75015 Paris (6.8.10) La Motte-Piquet 에펠탑에서10분거리 (월휴무)
러시아와의 협력하에 진행
사 연구에 참여한 바 있다
그녀의 말처럼 호기심이
(2001년-이 탐사에서 그
넘치는 성격 탓이었을까?
된 두 가지의 미션(Mission Cassiopée-1996년 8월과
녀는 지구관찰, 이온-전리
1969년, 역사적인 암스트
Mission Andromède-
층 연구, 과학의 본질 및 과
롱의 달 착륙은 12살의 어
2001년 10월) 에 유럽 우
학성분에 대한 프로그램을
린 클로디에게 무한한 상
주행성 에이전시의 선발대
성공리에 마쳤다.) 이 고무
상력과 꿈을 심기에 충분한
원 자격으로 참여한데 이
적인 결과에 힘입어 2002
사건이었다. 그 순간 이후,
어 한국의 이소연이 일주일
년에는 프랑스 정보통신
우주에로의 여행은 그녀가
간 머무른 국제 우주 정거
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었
장에 첫 발을 내 딛는 유럽
어 2004년, 유럽사업부 장
다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 최초 여성이 된 것도 바
관의 임기를 역임했으며 현
한참 전문의학 연구원으로
로 이 기간(2001)이기 때
재 유럽 우주 에이전시의
활약하던 1985년, 간절히
문이다. 명망있는 전문의학
일급 고문과 프랑스 기술
바라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
박사에서 유럽 최초의 우주
아카데미의 평생회원으로
온다는 것을 확신시켜준 기
인으로 변모한 전일후무한
활발하게 활동중인 그녀를
회가 그녀에게 찾아오기에
케이스. 현재 CNES에서의
만났다.
이른다. CNES(우주항공
일급 고문이란 직함은 그
학 프랑스 본부)에서 우주
러므로 그녀와 떼어 놓을수
Bac +19란 별명(프랑스
탐사에 대한 희망자를 선
없는 사이가 되었다.
의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출한다는 공문을 접하게 된
Bac이라고 하는데 그 이
것. 오랜 기간 우주여행이
혼자서 성취하는 일보다 다
후 여사가 취득한 타이틀만
꿈이기만 했던 에네레 여
른 이들과의 협력과 공동연
19개가 된다는 뜻)을 자랑
사에게 이 같은 소식은 전
구를 통한 성과에 더 중요
스럽게 여기는 이 작은 체
후를 살필 필요도 없는 기
성을 두는 에네레 여사는
구의 여성이 그 수많은 타
회였단다. 서류시험-기초
현재까지도 본업인 신경학
이틀을 감당하게 된 경위가
체력평가-필기시험-종합
치료연구에 온 노력을 다하
궁금하지 않을수 없다.
평가-기본 신체검사에 이
는 한편, 매해 열리는 인터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
르는 우주인 선발 공식시험
넷 정보 페스티발과 씨테크
을때부터 호기심이 충만했
을 거쳐 1/140이란 치열한
걸(Scitech Girls)의 대모
던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
경쟁을 뚫고 오른 7명의 후
(代母)역 수행, 그 밖에 여
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
보 중 한 명이 되었다.
성들을 위한 대소단체의 후
금까지의 내 인생을 정리해
당시만 하더라도 정식으
원자로 24시간이 모자라는
보면 3기간으로 이루어져
로 우주탐사가 예정되어
워킹 우먼이다. 개인 커리
온 것 같아요. 그 처음이 고
있던 한 대원(현재의 남편
어 형성만으로도 벅찬 그녀
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의
이자 전직 프랑스 공군 사
의 다이어리 일정을 살피노
로 활동한 시기겠지요. 관
령관-쟝 피에르 에네레)
라면 끊임없이 후원하는 단
절과 신경학 전문의로 동료
의 예비후보에 불과했었다
체들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
들과 여러 연구결과를 발표
고 밝히는 여사는 그러나
까하는 생각마져 드는데…
인터뷰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9
그런 궁금증에 여사의 답변
는 2008년에 아직까지 이
에네레 여사는 그와 함께
이 정확하다.
분야의 여성인구가 한 명
2007년 10월, 우리나라의
"여성들의 신뢰회복이 가
에 불과하다니요! 20년 전
최초의 여성 우주인인 이소
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터 여성들의 사회의식이
연씨를 국제 우주 콩그레를
바깔로레아에서 수학점수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
통해 마주친 적이 있다며
17점(20점 만점)이란 우
었습니다. 그러나 보다시
상대적으로 육체조건이 뛰
수한 성적을 획득한 소녀
피 현실은 멉니다. 아직까
어난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들이 12점을 얻고도 만족
지 남성들의 자신감에 비해
우주탐사 준비 테스트와 훈
하는 소년들에 비해 믿음이
뒤쳐지는 실정이지 않나요.
련을 젊은 나이의 여성이라
모자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
과학분야는 말할것도 없고
는 신분에 굴하지 않고 이
이지요. 여성들은 마치 스
세계적으로 유명을 떨치는
겨낸 용기와 자부심을 높이
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컴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들
평가했다.
렉스에 시달리고 있는것 같
이예요. 신뢰 저하때문에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
아요. 완벽이란 말은 끝이
야기되는 여성들 스스로의
는 한국의 우주에 대한 관
없기때문에 존재하는 것입
능력평가 절하는 이제 막을
심과 기술은 세계의 주목을
니다. 정말 완벽해 버리면
내려야지요. 발전을 위한
이끌기에 충분합니다. 세계
그 말 낱말은 의미를 잃고
화합은 여성들이 끌어낼수
에서 우주탐사를 위한 국제
말지요. 여성들이 너무 완
있는 최상의 잇점입니다."
회의가 총 여섯개 국에서 주최되는데 미국, 러시아,
벽하고자 해서 오히려 그 안에 갇혀버리는 반면, 남
여사는 또 국제 우주인 콩
유럽, 일본, 중국 그리고 한
성들은 완벽이라는 개념을
그레에서 남성들이 쉽게 결
국이 그 나라들이예요. 대
덜 의식하는지도 모르겠어
론내리기 어려운 해결책에
단하지 않습니까 ? 앞으로
요. 그들이 사회전반에 걸
무리없이 도달할수 있었던
이소연씨 같은 자신감과 자
쳐 여성들보다 우월한 위
것이 참여했던 27명 중 상
치에 있는것은 어쩌면 완벽 에 대한 의문을 여성들보다
레여사, 재치있으면서도 가
않고도 존재 자체로 페미니
부심있는 여성들이 계속 꿈
볍지 않고, 성의를 다하지
스트를 실천하는 클로디 에
당수를 차지했던 여성 장관
을 가지고 노력해 주어야
만 결코 으시대지 않는 그
네레여사야 말로 이 시대가
들의 부드러운 대화의 힘의
합니다."
녀와의 대화속에 바로 작은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이
우주가 있다. 2천년에 걸친
아닐까 ?
적게 품는것 때문 아닐까요
일조 덕분이라며 이러한 여
? (웃음)."
성의 장점을 살린다면 남성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기
남성 지배구조에서 여성임
세계와의 조화에서 훨씬 더
위해선 그 꿈을 위해 살때
을 후회하지 않는 용기있는
<오윤경/파리지성>
완벽을 꿈꾸지 말라는 에
고무적인 결과를 얻어낼수
라고 거듭 강조하는 에네
그녀, 페미니즘에 도취되지
사진/에네레여사기획부제공
네레 여사, 아이러니하게
있을것이라고 확신한다. 유
도 그녀야말로 타인이 말하
럽의 우주 연구분야에서 유
는 완벽한 여성상이 아닐런
일하다시피 한 여성 인력인
지… 15세에 수재소리 들
그녀의 역할도 그와 맥락을
으며 들어간 의과대학 졸업
같이 한다.
이후 의학과 우주인이란 공
"내 강의를 들은 어느 젊은
통분모 위에 두차례의 장관
여성이 그러더군요. 자기가
역임까지, 수퍼우먼이란 명
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내가
칭이 무색하지만 에네레 여
이 자리에 있는것만으로 여
사에게 지금까지의 화려한
성으로서의 자부심이 채워
커리어는 앞으로 여성에 대
진다고요. 99.5%가 남성들
한 사회의 패러다임을 변화
인 이 분야에서 당장에 절
시킬 작은 걸음에 불과하
반 가까운 인력을 여성으
다. 과학연구 분야로의 권
로 교체한다는 것은 현실적
위로 유럽에서 인정받는 벨
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
기에 몽스의 대학의 60여
자인 내 존재로 인해 동료
명의 남성들 중 그녀가 이
들과 사회가 여성들의 존
분야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재를 한번 더 상기할수 있
박사라는 인식은 여사를 자
다면 내 주위가, 나아가 나
랑스럽게 하기보다 대단한
를 모델로 삼는 다른 여성
아쉬움과 실망으로 이끌기
들의 의식이 변화하지 않겠
에 충분했다.
어요? 여자가 준비하는 미
"세계의 남녀비율이 반반이
래, 분명히 우리에게 필요
라면 60명 중 적어도 20명
한 부분이라고 나는 믿고
의 여성박사는 기대해야 하
있습니다."
는것 아닌가요 ? 21세기라
박종철교수의 김치 카메라산책
일본 달력에도 김치 등장 미국식육(食肉)수출연합회에서 일본인을 위해 제작한 달력의 11월달에는 '아주 매 운 찌개가 식욕을 돋구며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냄비메뉴'란 설명으로 '미국 산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소개한다. 미국산 수입 고기를 홍보하는 달력에 우리 김 치찌개가 들어있으니 일본 소비자들도 얼마나 김치를 좋아하는지 짐작이 간다.(일 본 도쿄) 글ㆍ사진 박종철 교수 / 국립순천대학교 김치연구소
한식으로 세계를 개척하는 사람들 "푸른사막" - 12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10
금강산
KUMGANGSAN
북미/미국/뉴욕 Menu : 금강산 특갈비 / 유산균 김치 / 전주 비빔밥 / 설렁탕
138-28 Northern Blvd. Flushing, NY 11354 전화번호: 718-461-0909 영업시간: 24시간
식 때 100여명의 관계자들과 이곳에서 행사를 가지기
유지성 사장과의 인터뷰
도 했다. 블룸버그 시장은 참가 기관장들에게 직접 김
뉴욕에서 가장 큰 한식당이기도 한 '금강산'은 그 큰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음식 종류, 음식의 맛에서 다시 한번 손님들을 놀라게 한다. 특히 많은 외국 인들이 한국 음식을 맛보기 위해 '금강산'을 찾는 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의 재료 선정에서부 터 매일 직원들의 서비스 교육을 할 만큼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완벽함 때문에 10년 이상을 꾸준히 뉴욕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한식당으로 꼽히는 것이다. '금강산'의 맛을 잊지 못해 이를 가 정에서도 맛보고 싶어하는 일반 손님들을 위해 금 강산에서 운영하는 '잔치잔치'에서는 고기류, 반찬 류, 김치류, 떡 등이 인기가 좋다.
치와 한식에 대해 소개하며 '금강산' 음식에 대한 애정 을 보여주었다고. '금강산'은 직접 김치공장과 두부공장을 운영하고 있 다. 손님들에게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건강식품만을 내놓고자 연구한 끝에 유산균을 이용한 특별 재료를 사 용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유산균 김치'를 따로 찾는
뉴
사람들이 많아 이를 반찬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급 한식당으로 유명하다. 연회장만 350석,
헌해왔다. 96년부터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에게 음
일반테이블 400석을 갖춘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식을 통해 모국을 알리고자 매달 30-40명씩을 초대
늘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보면 '금강산'의 인기를 짐작
하여 요리 강좌를 운영해왔고, 또한 그 아이들과 가족
하게 한다. '금강산'은 그동안 뉴욕 총영사관 행사나 대
들을 모아놓고 매년 잔치를 열어주고 있다. 지금은 성
사관 행사 등 각종 중요 행사에서 요리를 담당해왔고,
인이 된 아이들이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할 때마다 유
때문에 비즈니스 미팅이나 중요한 손님 접대 시 '금강
지성 사장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산'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그는 '뉴욕 한식세계화추진위원회' 미동부
1977년 미국으로 이민 온 유지성 사장은 가장 다양한
한식세계화 회장직을 맡아 한식 알리기에도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2010년 7월에 열린 '한국 음식 . 문화
욕 퀸즈(Queens) 노던 블러바드(Northern Blvd.)에 자리한 '금강산'은 뉴욕의 고
유지성 사장은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인 교포 사회에 공
민족이 거주하는 뉴욕에서 한국인으로서 한국 문화를 음식을 널리 전파하고자 1992년 '금강산'을 열었다. 점
페스티발'에서 50,000여명의 방문객들에게 각종 한식 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 밖에도 6 . 25 참
차 맛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뉴욕 데일리 뉴
전 미군용사 초청행사나 워싱턴 D . C 대사관 개천절
스, 뉴욕 포스트 등 주요 저명 일간지에도 '금강산'이 소
행사 등 굵직한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다
개되었고 이후 더욱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특별히
양한 한국 정부기관과 손을 잡고 한식 알리기에 큰 힘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이 곳의 단골 손님으로 시청 시무
을 쏟고 있다.
세계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를 생각하다가 우리의
2011년 4월 학기 개강일 2011년 3월 28일
'금강산'만의 특별 식품이 있다고 하는데 무엇인 가요? 음식은 먹는 사람들이 건강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 금강산'이 다른 식당과 가장 차별화 되는 점은 '금강 산'만의 '건강식 브랜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랜 기 간 연구를 거쳐 만든 '뉴욕 유산균 김치'는 외국인들 이 싫어하는 특유의 김치 냄새(젓갈, 마늘냄새)를 최 소화하고, 유산균 함유량은 일반 김치에 비해 100배 이상 높아 오래 숙성시켜도 아삭한 맛이 살아 있습니 다. 맛 김치부터 깍두기, 오이소박이까지 그 종류만 도 8가지입니다. '텐더 스마일(Tender smile)'이라는 이름의 유산균 두유는 직접 운영하는 공장에서 콩의
한식으로 세계를 개척하는 사람들 "푸른사막" - 12 영양소와 유산균을 배합하여 만든 두 유로 아침 식사 대용으로 간단하게 먹 을 수 있습니다. 유산균 요구르트인 '아 이스 빈(Ice bean)'은 유산균과 배합된 콩에 딸기향, 고구마향, 허브향을 첨가 하여 디저트로 인기가 많습니다.
에 내놓고 있어 정통 전주비빔밥의 맛 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 의 전문분야에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어느 식당보다도 음식에 대한 전문성 은 자신 있습니다.
'금강산' 맛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손님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기 위 해 에피타이저부터 바비큐, 전골요리 까지 500여가지 이상의 메뉴가 있습니 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만들지 않습니다. 각 요리마다 그 분야의 최고 실력자를 한국에서 직접 초빙하고 총 책임을 맡게 하여 한국에서의 맛 그대 로를 재연하고 있습니다. 전주비빔밥 의 경우에는 전주시청 내에 있는 한식 과에서 직접 비법을 전수받아 손님상
'금강산'은 단연 뉴욕의 대표 고급 한 식당으로서, 일하는 직원들 모두 깔끔 한 수트 차림과 친절한 서비스를 갖추 고 있음은 물론이다. 외국인들에게 어 떻게 하면 한국음식을 더욱 잘 알릴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는 유지성 사 장.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 계적' 이라는 신념을 늘 잊지 않고 머 지 않아 외국인의 식탁에도 김치와 된 장찌개가 차려질 날을 그려본다.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11
퀸즈 노던 블러바드(Northern Blvd.) 138가는 한인 비즈니스가 활발한 유니온 가(Union Street)와 근접해 있다. 퀸즈 플러싱의 중심가인 메인 가(Main Street) 와도 가까워 많은 유동인구와 활발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많은 한인 상점들 과 식당들이 밀집해있는 이 곳에서 유난히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이 '금강산'이다. 노던 블러바드 초입부에 위치한 '금강산'은 중심에 식당과 함 께 좌로는 연회장, 우로는 '금강산'에서 직접 운영하는 반찬가게인 '잔치잔치' 가 자리하고 있다.
2011 재유럽한인, 차세대 문화행사 및 체육대회
재외동포언론인들이 선정한 세계 한식당 93選
행사개요 -기간 : 2011년 05월 13일(금)~15일(일) 2박3일 -장소 : 이탈리아 로마 (행사장 - Tennis Club Garden / 호텔 - Antonella) -주최 : 재이탈리아 한인회, 사단법인) 세계씨름연맹 -주관 : 재유럽 한인총연합회 -참가비 : 1인당 100유로 (2박3일 숙박비. 유적지 문화체험비) 교통비본인부담(항공권 발권을 미리 하셔서 참가에 차질 없으시길 바랍니다.) **재불한인회에서 참가비 50% (50유로) 지원** - 프랑스 한인 축구선수모집 : 출전 가능하며 관심 있으신 단체/ 개인 신청바 랍니다. 3월20일 마감 (팀 추후결정)
체육행사 -축구 : 1등 - 5000유로와 트로피 2등 - 3000유로와 트로피 3등 - 2000유로와 트로피
문화행사 -차세대(청소년) 만남의 장 -대구시립국악단.국제교류 전통예술단 초청공연 -비보이 초청공연. 로마성악인연주. 로마대학교 "소녀시대클럽"공연 -교류의장 (노래자랑.장기자랑.행운권추첨) -유적지 문화체험(바티칸.콜로세움.진실의입.스페인광장 트레비분수 등) * 신청마감일 : 2011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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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seas Korean Media Association
재외동포언론인들이 지난
이 책은 각 식당 대표 음
1년 여 동안 아시아와 유
식의 종류와 고객 평가, 요
럽, 미주, 대양주 등 4개 대
리사, 영업시간, 장소 등의
륙의 한인 언론인들이 취
기본 정보는 물론 식당 대
재한 내용을 토대로 한식
표의 경영 노하우와 이민
을 통한 한류 전파에 앞장
땅에서의 삶을 빠짐없이
서 온 식당 93곳을 선정, '
소개하며, 이민땅에서 열
한식으로 세계를 개척하는
심히 살아온 사장님들의
사람들-푸른사막'이란 제
삶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
목으로 소개서를 펴냈다.
에게 큰 용기를 주고있다.
구입문의 : 파리지성 - 20유로 63 rue de gergovie 75014 Paris H.P 06 0786 0536 e-mail : parisjisung@gmail.com HnbWda a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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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12
천안함 46용사들의 넋을 기리며 벌써 일년이란 세월이 흘렀
들이 대화를 제의하기만 하
다. 우리의 영해에서 정상적
면 우리는 감지덕지해야 한
으로 작전 중이던 군함이 불
다는 것인가? 천안함과 연평
의에 북한의 어뢰공격을 받
도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얼
고 두 동강이 났던 그날 밤,
굴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온 국민은 차디찬 물속에서
데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
몸부림치면서 숨져갔을 46
그들에게 그저 대화를 제의
명의 꽃다운 생명들을 가슴
해주어서 고맙다고 해야 한
에 묻고 통곡해야 했다. 우
다는 것인가?
리의 금쪽같은 아들들과 생
그래서 정부가 '원칙'이 지
때같은 남편들은 그렇게 짧
켜지는 남북관계를 요구하
은 인생을 조국에 바치고 이
고 있는 것이다. 설령 저들
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암
사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
관광을 계속해야 하는가? 얻
초들은 우리 내부에 있다.
책이란 세 가지 원칙을 요구
어가면서도 고맙다는 인사
천안함 피격 후 일년을 되돌
하는 것을 빼면 지난 정부의
는커녕 협박과 공갈을 일삼
아보건대, 가장 아픈 기억으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으면서 절차를 무시하는 국
로 남아있는 것은 역시 우리
굳이 학술적으로 분류하자
가에게 무한정 끌려 다니면
내부의 분열상이다. 도발자
면 '봉쇄정책'도 '무시정책'
서 원조를 지속해야 옳은가?
를 규탄하고 재도발을 막는
도 아닌 '조건부 접촉유지'정
우리가 보내는 쌀을 먹는 인
데 국력을 모아야 할 시기
책이라 할 수 있다. 세 가지
민군대가 우리가 보내는 돈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
에 우리 국민의 1/4은 정부
원칙만 준수하면 과거와 마
으로 만든 핵무기로 서울 불
들이 원했던 '호혜적' 남북관
의 합동조사를 신뢰하지 않
찬가지로 지원도 하고 교류
바다를 협박해도 대북지원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우
계, 남북이 서로 존중하면서
았다. 확실한 정황에 결정적
도 하겠다는 정책이다.
을 계속해야 하는가? 이래도
리 국민이 이런 뜻을 헤아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절차
인 증거까지 확보한 과학적
세 가지 원칙이란 "방북하거
남북관계 냉각의 책임이 우
리고 단결할 수 있다면, 그
에 따라 줄 것은 주고 받을
인 조사를 놓고도 남도 아닌
나 북한에 체류하는 우리 국
리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라
것이 일년전 오늘 국가방위
것은 받는 그런 남북관계는
내국민이 불신한 것이다. 국
민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 "
는 것인가? 이런 문제를 놓
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비명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정상
민적 단결을 선도해야 할 정
교류에 있어 국제적인 기준
고 벌이는 우리 내부의 부질
속에 산화한 천안함 용사들
적인 남북관계로 가는 길에
치권에서도 때아닌 '네탓' 공
과 절차를 준수해줄 것," "대
없는 분열상이야말로 정상
의 넋을 기리는 올바른 방법
는 아직도 많은 암초들이 도
방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
북지원에 있어 투명성을 제
적인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일 것이다.
사리고 있다. 북한정권이 변
부의 대북 강경책 탓"이라는
고해줄 것" 등이다. 몇 가지
암초들이다.
해야 가능하다면, 아직도 갈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를
만 반문해보면 이것들이 정
남북대화 문제도 그렇다. 앞
길은 너무나 멀다. 그럼에도
지켜본 북한은 연평도에다
상적인 나라들이 준수하는
에서 대화를 하면서 뒤통수
분단국인 우리가 정상적인
포탄을 쏟아댔다. 정말 그런
보편타당한 원칙이라는 사
를 치는 공산주의자들의 '
남북관계를 위한 발걸음을
가? 정말 우리 측에 책임이
실이 명백해진다. 우리 국민
담담타타(淡淡打打)'전술은
<김태우(한국국방연구원
포기할 수는 없다. 이를 위
있는가?
이 총에 맞아 죽어도 금강산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다. 저
책임연구위원)>
승을 떠나갔다. 그로부터 6 개월 후 우리는 또 한 번 저 들의 무도한 도발에 치를 떨 어야 했다. 이번에도 북한은 우리의 영해에서 실시하는 우리군의 포격훈련을 시비 하여 민간인이 사는 섬을 향 해 무차별 포격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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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발하여 불편이 초래된 다 하더라도 멀리 보면 그것 이 지속력이 있는 남북관계 를 위해 바람직하기 때문이 다. 국민이 이런 의미에 공 감하고 단합할 때 점진적이 나 북한의 태도는 달라질 것 이며, 달라지는 북한의 태 도는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문화/국내
NO. 561 / 2011년 3월 16일(수) - 13
창작 판소리 <사천가 > 출판 기념회 3월 21일(월), 문화원에서… 주불한국문화원 (원장 최준호)은 프랑스에서 최
유미씨가 공동 번역한 <사천가>의 작업 소개와
초로 소개되는 이자람의 <사천가> 공연을 계기
더불어, 몇몇 중요부분 낭독이 예정되어있다.
로 프랑스어로 발간된 희곡집, <사천가> 출판 기
이 출판기념회에는 소리꾼 이자람과 <사천가>의
념회를 개최한다.
연출을 맡은 남인우씨가 자리를 함께하여 관객들
올해 파리시립극장 (Les abesses) 및 리옹 국립
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민중극장(TNP Villeurbanne)에서 초청을 받은 이 작품은 3월 13일부터 18일까지, 총 다섯 번의
판소리 <사천가> 출판 기념회
공연을 통해 프랑스 관객들을 만나게 되며, 13일
일시 : 3월 21일 (월), 18시30분
에 있었던 파리 공연을 비롯하여 리옹에서 개최
장소 : 주프랑스 한국 문화원 2, avenue d'Iéna - 75016 Paris /
될 모든 공연이 이미 매진되었다. 3월 21일(월), 18시30분에 문화원에서 열릴 이
01 47 20 83 86 /
행사는 에르베 뻬죠디에 (Hervé Péjaudier)씨와 한
www.coree-culture.org
아시아나, 日 재난지역 주민에 온정 전한다 - 14일, 후쿠시마 지점에 기내담요 1,500장 전달 - 생수 및 컵라면 등 구호 물품도 함께 전달 아시아나항공(대표: 윤영 두)이 금번 일본 대지진으 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 본 재난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품을 긴급 전 달한다. 아시아나는 14일 오전 10 시 인천~후쿠시마를 운항 하는 OZ156편에 기내담요 1,500장 및 컵라면과 생수 등 구호물품을 수송할 예정 으로, 작은 정성이지만 실 의에 빠진 일본 재난지역
주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 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 다고 밝혔다. 금번에 제공되는 기내담요 는 아시아나항공 기내에 제 공되는 제품과 동일한 제품 으로 보온성이 매우 뛰어나 면서도 가벼워서 휴대하기 좋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아시아나는 지난 12 일부터 나리타 지점에 생수 및 컵라면 등 긴급구호 물 품도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 지역본부 및 재난 지역 지 점을 중심으로 복구에 필요 한 지원에 힘쓸 예정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한국
~일본 항공편 중 인천~센 다이(1일 1회), 인천~이바 라키(1일 1회) 노선은 공 항 폐쇄로 인해 결항 중이 나, 공항시설이 복구되는대
로 운항을 재개한다는 방침 이며, 원활한 고객 안내를 위해 콜센터 직원들을 추 가로 배치하고, SNS 및 홈 페이지를 통해 금번 지진과
관련된 사항을 신속하게 안 내하고 있다.
<파리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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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목양장로교회
주일예배 : 오후 2시 주일예배 : 오후2시 수요찬양예배 : 오후8시
청년부예배
: 오후7시 30분 (토)
주일학교
: 오후2시
문화교실
: 오후4시(토)
중고등부
: 오후1시
새벽기도회
: 오전6시30분
청년회 모임 - 토 오후4시 새벽예배 - 6시 30분 월요성경공부 - 오후 8시 30분 수요성경공부 - 오후 8시 주일성경공부 일요일 - 오후 6시 30분
TEL 01 4525 0467 / 06 2775 4417 담임목사 : 이종선 / E-mail : parismy@hanmail.net 17, rue des Petits Hôtels - 75010 Paris 파리목양장로교회는 지방사역, 불어권선교와 밀알(장애우) 사역을 위해 기도하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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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글자 마당 조성관련 재외동포 참여자 모집
2011년 세계한인 청소년 . 대학생 모국연수 참가자 모집 1. 재외동포재단에서는 세계 각국 재외동포 청소년․대학생들
1. 서울특별시에서는 세계적 문화유산인 한글을 문화 상품화하여 대한민국의 문화경쟁력을 강화하기 위 하여 주시경 집터, 세종대왕 생가터 등 한글 관련 시 설이 풍부한 광화문광장 주변 세종대로 일대를 대상 으로 한글 마루지(랜드마크)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동 사업의 일환으로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사이에 위치한 세종로 공원 내에 국민(내국인, 재외 동포 등 포함) 11,172명이 1인이 1글자씩 직접 손 으로 쓴 글씨를 돌에 새겨 한글 11,172자로 구성되 는'한글 글자 마당'을 조성할 계획임 - 국가별 참여자 수 및 배정글자 : 프랑스 3명, '퓟, 퓨, 퓬'3글자
의 글로벌 코리언으로서의 자긍심과 글로벌 시티즌쉽, 리 더쉽 함양을 위해 '2011년도 세계한인 청소년․대학생 모 국어 연수'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ㅇ 연수기간 - 1차(초,중,고등학생) : 2011.7.12-18(6박 7일) - 2차(예비대학생, 대학생) : 2011.7.26-8.1(6박 7일) ㅇ 연수대상 : 만 10세-23세(2011.3.1 기준) ㅇ 연수인원배정 : 유럽지역 60명(프랑스 지역 초등학생 1, 중 학생 1, 고등학생 1, 대학생 1명 총 4명) ㅇ 연수내용 : 한국어캠프, 전통문화체험, 자원봉사활동, 도시 탐험, 주제강연, 글로벌유스포럼, 리더쉽 포럼 등 ㅇ 지원서류 : 연수참가신청서, 자기소개서, 기타활동 입증서 류(한국어능력시험 성적표, 상장 사본 등) ㅇ 지원내용
2. 동 사업에 참여를 원하시는 재불동포께서는 별첨 양 식을 작성, 4.25(월)까지 대사관 영사과로 우편 송부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참여신청서에 프랑스에 배정된 글자인'퓟, 퓨, 퓬'1글 자씩을 직접 손글씨로 써서 3매 제출
- 항공료 자비부담 원칙, 국내연수 참가경비 재단 부담
2. 제출서류 등 상세사항은 재단사이트(www.korean.net) 공지 사항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상기 행사에 참가를 희망하시 는 분은 2011.4.4(월)까지 참가신청서를 대사관 영사과로 우편 또는 방문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프리카 사랑 파리장로교회의 사랑 나눔 바자회 올해도 파리장로교회 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사랑 나눔 바자회를 마련합니다. 저렴하고 맛갈스러운 고향의 정취를 이웃과 풍성하게 나누는 자리가 되도록 저희들의 손맛과 정성을 모았습니다. 일시: 2011년 4월 2일(토) 오전 10시- 오후 4시 장소: 파리장로교회 (Bon Secours) 20 rue Titon, 75011 PARIS M⑧ Faidherbe-Chaligny, M⑨ Rue des Boulets 문의전화: 06 10 50 37 64 일일식당 김밥(1줄) 2.5€ / 장터국수 3.5€ / 해물파전 2€ / 떡볶이 3€ / 호떡 1€ / 양념치킨 / 호박죽 / 김말이 / 순대
판매식품 순대 / 돈까스 / 무말랭이 / 양념깻잎 / 김치(1kg) 6.5€ / 게장 / 수정과 / 오징어젓갈 / 묵 / 모든떡 (무지개떡, 인절미) / 떡국떡 / 떡볶이떡 / 김밥 / 건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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