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

Page 1

PARISJISUNG - NO. 596 SARL PARISJISUNG 63 rue gergovie 75014 Paris ISSN 1627-9249 N o siret :494 517 394 00016 Editeur : Jeong, Nack-Suck 광고문의/기사제보 01 4541 5317 06 0786 0536

2011년 11월 30일(수)

세계로 통하는 창

parisjisung@gmail.com

역사속으로 들어간 故박병선 박사 지난 25일 고 박병선 박사의 장례미사가 봉 마르쎄 백화 점 바로 앞에 있는 교회에서 있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장 례 미사는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성서사도직 총무인, 심 탁 클레멘스 신부 집도로 약 2시간동안 진행되었다. 심 신부 강론중에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 당했던 병인양 요가 일어난 배경에 대한 설 명이 있었다. 이 교회는 1666 년에 외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 으로 세워진 파리외방선교회 이며,이 교회 소속이었던 프 랑스 신부들 13명은 조선의 복음을 위해 이곳에서 예배 를 드리고 떠났다고 했다. 그중 9명이 대원군의 천주 교 박해때 순교했으며, 이사 실을 안 중국에 주둔해 있던 프랑스군은 보복하기 위해 군함을 끌고 강화도 앞바다 에 나타나 무력을 행사한 것 이 병인양요이다.이때 외규 장각 도서를 약탈해갔다.그 리고 145년이 지난 오늘 이 교회에서 외규장각 도서에 반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

파리지성 캠페인

의 장례식이 있었다. 한국과 프랑스간의.보복과 약탈, 그리고 빼앗긴 우리것 을 찾고자 했던, 그 모든 역 사속에 박병선 박사가 함께 했던 것이다.또한 한세기 반 이전에 있었던 두 나라의 역 사를 정리했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지만 그런 역사의 한가운데 박병 선 박사가 깊이 관여하고 있 었다는것은 꼭 기억하고자 했다. 그리고 부활의 신앙으로 살 자는 제목의 강론을 끝내고 성찬으로 이어졌다. 박 박사가 평소에 좋아했던 구노의 아베마리아의 음악이 파이프 오르간 음률로 흘러 나오고 있는 가운데 헌화로 이어졌다. 박흥신 대사등 각계각층 인 사 100여명의 헌화가 끝난 뒤 이종수 문화원장의 증언 이 있었다. 박병선 박사는 연구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 회고하면서 빈소가 마련 된 문화원의 조문록에 남긴 인상 깊은 글을 소개하면서

증언을 마쳤다. 박사님 보고 계시죠? 라는 문 구로 시작된 글은 우리가 이 제 알아서 잘 할테니깐 편히 쉬시라는 내용이었다. 다음으로, 미국에서 거주하 는 고인 동생의 감사 인사가 있었다. 누이는 주님께 1년 아니면 2 년만 시간을 더 달라고 기도 하며, 쓰고 있던 책을 마치고 싶다고 했는데, 주님은 이제 그만하고 오라고 하셨다면 서, 미리 떠나신 부모와 형제 들 곁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 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병선 박사는 반평생 의 궤연구에 삶을 바쳤고, 외 규장각 의궤 반환을 위해 큰 공헌을 했으며 직지 심체요절 연구 등 지대한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박병선 박사는 파리국립도 서관 창고 속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냈고, 세계최초 의 금속활자본이 '직지심체 요절'(이하 직지)이라는 사 실을 밝혀냈다. (3면으로 이어짐)

파리7구에 위치한 외방선교회에서 장례미사

장례미사에 참석한 사람들

교회를 떠나가는 故박병선 박사를 바라보며

소중한 한표로 조국의 미래에 큰 빛이 됩시다 - 관련기사 8p 한국의 전당 건립을 위한 백 천 만 운동 - 관련기사 12p


C

M

Y

M

Y

Y

Y

K


프랑스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3

Blue함대 현대차가 프랑스에 본격적으로 상륙 올해 말 판매법인 설 립 완료 후 2012년 1/1 일 기해 Blue함대 현대차 가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를 기치로 프랑 스에 본격적으로 상륙한다. 현대차가 유럽 양대 시장인 독일과 프랑스의 직영판매 체제 구축을 통해 유럽 재정 위기를 정면 돌파한다. 현대자동차(회장 정몽구)는 지난 18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현대차의 독일 및 프랑스의 현지 판매 를 담당하고 있는 스위스 프 레이 그룹(Frey)과 대리점 매매계약을 체결, 이들 국가 에서 직영 판매체제를 구축 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매계약은 유럽지역 내 양대시장인 독일과 프랑 스에서 직영 판매체제를 구 축, 전략적 거점을 마련함으 로써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

보하는 동시에 유럽재정위 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 해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직영판매체제 는 직접적인 판매거점 및 마 케팅 운영으로 대리점 체제 에 비해 중장기 전략 수립 및 추진에 용이하며, 고객 들에게 일관되고 통일된 메 시지 전달을 통해 브랜드 이 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강점 이 있다. 현대차는 기존 영국, 이탈리 아, 스페인, 폴란드, 체코(슬 로바키아 포함), 노르웨이 등 6개 국가에서 판매법인 을 설립 .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의 산업수요는 유 럽 전체 산업수요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새롭게 판매법인을 설립하 게 될 독일과 프랑스는 지난 해 각각 291만대, 225만대 의 자동차 산업수요를 기록,

유럽 전체 산업수요의 41% 를 차지한 유럽 지역 내 최 대 규모의 자동차 시장이다. 현대차는 이들 지역을 포함 해 향후 전체 유럽 산업수요 의 80%에 이르는 시장을 직 접 관리하게 되며, 이들 지 역 내 판매 및 마케팅 역량 강화를 통해 유럽 판매 강화 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는 지난 해 초부터 스 위스 프레이 그룹과 독일, 프랑스 대리점 인수를 위한 협상을 시작했으며, 지난 해 12월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판매법인 설립을 위한 초석 을 마련했다. 현대차는 올해 말 인수절차 를 종결함과 동시에 현지 판 매법인을 출범시킬 예정이 며, 양 판매법인을 유럽지역 의 주력거점으로 육성할 방 침이다.

한편, 현대차는 지난 10월 까지 유럽시장에서 전년대 비 10% 향상된 339,250대 를 판매했으며, 시장점유율 은 지난 해보다 0.3%p 성 장한 2.9%(유럽자동차공업 협회 신차등록 기준)를 기 록했다. 독일 시장에서는 유럽 재정 위기로 인해 신차 수요의 성 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i30 22,677대, i10이 11,792대, ix35 8,726대 등 i시리즈의

판매 호조로 지난 10월까지 전년 대비 29% 향상된 총 61,378대를 판매했다. 프랑스 시장에서는 올해 초 폐차지원제도 종료 및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산업수요 가 감소한 가운데 6,567대 가 판매된 ix35의 판매 견 인으로 지난 10월까지 전년 대비 12% 성장한 19,000대 를 판매했다.

(1면에서 연결됨) 프랑스에서 한국 독립운동사 를 연구한 그의 업적은 "해외 에서 우리 역사의 문화적 진 실을 밝혀낸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1928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 박병선 박사는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한국 여성 최초로 도 불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 제7대학에서 역사학박 사를 취득한 뒤 1967~1980 년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며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최초로 발견 해 세상에 알렸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한 귀퉁 이에서 '직지'를 발견한 고 박 박사는 이것이 구텐베르 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로 인쇄됐다는 점 을 증명해 냈다. '직지'가 유 네스코로부터 "지구상에 하 나밖에 없는 소중한 책"으로 "소재가 해당국가에 있지 않 다고 하더라도 세계기록으로 선정" 된 유일한 사례가 되도 록 한 것도 그였다. 그의 또 다른 업적인 의궤반

환 과정도 '21세기 독립운동' 에 다름 아니었다. 30여년 동 안 외규장각 의궤 연구에 매 달려 이를 세상 밖으로 꺼내 고자 한 그의 추적과정은 '파 란 책속에 묻혀 사는 여성'이 라는 그의 별명에도 표현된 다. 작은 체구에 큰 의궤책에 몸을 묻고 살았던 고 박 박사 는 열정은 뜨거웠다. 개인 골 동품까지 팔아가며 연구비 용을 조달했던 고 박 박사는 결국 사실상 한국에 외규장 각도서 존재를 알렸다는 이 유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으

로부터 해고 조치를 당하기 도 했다. 결혼도 포기하고 한국에서 의 교수직 제의까지도 거절 하며 온갖 박해와 설움 속에 서 반평생을 의궤 연구에 몸 바친 고 박 박사의 고귀한 연 구열정은 올 6월 외규장각 의궤의 고국반환이라는 국 가적 과업을 이뤄내고야 말 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에 대해 "단순한 문화재의 반 환이 아닌 조선이라는 국가 의 공식문서 반환이라는 역 사적 명분으로 앞으로 우리

나라와 프랑스 등 선진국 간 미래를 위한 신국제관계를 형성한 초석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24 일 고 박병선 박사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기로 결정 했다. 문화부는 고인이 국가 .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업 적을 인정해 국립묘지 안장 을 의결되어,고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 장 되었다.

HYUNDAI ix35

<파리지성>

<파리지성>


재외동포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4

13대 유럽한인총연합회 박종범 회장 취임

박종범 회장 유럽내 27개국 한인회를 대표하 는 유럽한인총연합회 박종범 회 장(54, 오스트리아한인연합회장) 은 지난 18일 13대 회장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조선대 학교 경영학과와 연세대학교 대 학원을 졸업했으며, 1996년 기아 자동차 상사의 오스트리아 법인 장을 지냈으며, 1999년 영산무역 을 오스트리아에 설립하고 2004 년 영산글로넷을 한국에 설립했 다. 현재는 민주평통자문위원, 오 스트리아 한인문화회관 설립위원 회 부위원장, 경상북도 투자유치

자문관 등을 맡고 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NH호텔 대회 의실에서 있은 이날 취임식에서 박 회장은 “오늘 이 시간은 정말 뜻 깊고, 자랑스런 순간이다”며 “앞으로 유럽한인총연합회의 화 합과 일치를 위해 배전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새롭게 출발한 유럽 한인총연합회의 통합 합의정신 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모 두가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할 것”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 고 열린 마음으로 여러분의 목소 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겠다” 고 강조했다. 이어 박회장은 임기동안 체육행 사와 문화행사 활성화를 통해 화 합과 친목을 도모하고, 입양인 체 육대회 지원을 강화와 유럽내 한 글학교 활성화 방안 모색 등 민 족혼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문화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리겠다고 강조했다. 또 유능한 차세대를 발굴해 청소 년 대학생 모국연수 등 모국의 각

종 행사에 적극 참여시키고, 유럽 내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한 재외 동포를 발굴해 모국에 포상을 건 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유 럽한인총연합회 홈페이지 구축 과 유럽내 각 단체별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유럽한인총연합 회의 교류증진에도 각별한 관심 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 조했다. 박 회장은 이날 13대 유럽한인총 연합회 회장 선거에서 참석 대의 원 61명중 57명의 찬성(반대 2, 무효 1, 기권 1명)으로 통합 회장 에 선출됐다. 감사에는 손성철(네 덜란드), 김이수(독일), 최명호( 스페인) 대의원이 뽑혔다. 유럽지역 한인회는 그동안 재유 럽한인총연합회와 유럽한인회총 연합회로 나뉜 채 갈등을 빚어 왔 으나 유럽한인총연합회라는 이름 으로 통합하면서 이날 회장선거 를 치렀다. 또 고문은 10명내외로 두기로 하 고 임기는 회장의 임기와 동일하 게 적용하기로 했으며 자문위원

은 30명을 두기로 했다. 전임 연 합회장을 당연직 고문으로 위촉 하고, 감사는 3명을 두기로 했다. 임원 숫자를 늘리는 문제는 집행 부에 위임하고 앞으로 개정된 정 관의 보완 수정작업을 거쳐 차기 총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총회에는 한나라당 재 외국민위원회 서병수 위원장과 민주당 세계한인민주회의 정광일 사무총장을 비롯해 재유럽한인총 연합회 김다현 회장과 이영창 초 대회장, 권영목 독일 재향군인회 장, 민주평통북부협의회 서성빈 회장과 박화출 영국협의회장, 고 광희 남부 및 아프리카협의회 회 장, 강진중 스웨덴자문위원, 황성 옥 스페인 바르셀로나 한글학교 장 등이 참석했다. 또 최병호 독일 한인연합회장, 안 헌기 그리스 한인회장, 김호현 노 르웨이 한인회장, 김태자 스웨덴 한인회장, 강성희 스위스 한인회 장, 손학순 아일랜드 한인회장, 박 영근 영국한인회장, 남창규 이탈 리아 한인회장, 정인재 체코 한인

회장, 한민수 루마니아 한인회장, 고정호 독일 두이스브르크 한인 회장, 유재헌 프랑크푸르트 한인 회장, 정정수 베를린 한인회장, 이 흥국 뒤셀도르프 한인회장, 신익 진 오스트리아 재그라츠 한인회 장, 김동하 재티롤 한인회장, 김정 순 재 찰츠부르크한인회장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태석 전 스페인 한인회장, 김기 석 전 그리스 한인회장, 곽찬순, 손성철 전 네덜란드 한인회장, 이 존택 전 덴마크 한인회장, 신부영 전 독일 함부르크 한인회장, 유상 근 전 독일 퀠른 한인회장, 안영국 전 재독한인연합회장, 김승홍 전 독일 베를린 한인회장, 윤혜숙 전 룩셈부르크 한인회장, 이봉철 전 스웨덴 한인회장, 윤세철 전 스위 스 한인회장, 이원일 전 스페인 바 르셀로나 한인회장, 서병일 전 영 국 한인회장 등 대의원 68명(위 임 7명)과 전임회장 등 120여명 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파리지성>

2011 유럽한인차세대 한국어 웅변대회 성황리 개최

2011 유럽한인차세대 한국어 웅변대회가 지난 19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오스 트리아센터에서 유럽 각국의 초.중.고등학생과 다문화 가정 자녀 40명의 연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재오스트리아한인연합회(회장 박종범)가 주최하고, 재유럽한 인총연합회가 주관한 이번 웅 변대회에서 유럽한인 차세대

들은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 기 ▲한국 전통의 우수성 ▲자 랑스러운 한국, 한국인 ▲동포 2세 및 다문화 가정의 한글과 한국 문화교육의 필요성 ▲유 럽 한인 차세대로서 우리가 가 야할 길 등을 주제로 열띤 경연 을 펼쳤다. 올해 처음으로 치러진 웅변대 회에서는 중고등부에 출전한 영국의 최성환 학생이 대상(외

(월요일 휴무)

교통상부 장관상)을 차지한 것 을 비롯해 최우수상에는 오스 트리아 김다빈, 스페인 주예랜 (이상 초등부), 스페인 하비엘 찬 포라스 리, 독일 피네 쿨만 (이상 다문화부), 독일의 김영 일, 김이재(이상 중고등부) 학 생이 각각 뽑혔다. 수상자에게는 대상 3천유로를 비롯해 총 2만유로(한화 약 3 천100만원)의 상금과 디지털 카메라, MP3, 시계 등 푸짐한 상품이 주어졌다. 이날 웅변대회의 심사는 이형 모 재외동포신문 회장, 이종환 월드코리안신문 대표, 손학순 아일랜드 한인회장, 장창기 공 주대 교수, 왕길환 연합뉴스 기 자가 맡았다. 올해 웅변대회는 유럽 전역에 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한

인 차세대 40명과 부모, 각국 한글학교 교사와 전.현직 한인 회장 등 500여명이 참가해 축 제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첫 민주당 세계한인민주 회의 정광일 사무총장을 비롯 해 주오스트리아 조현 대사, 재 유럽한인총연합회 김다현 회장 과 이영창 초대회장, 민주평통 북부협의회 서성빈 회장과 박 화출 영국협의회장, 고광희 남 부 및 아프리카협의회장, 강진 중 스웨덴 자문위원, 황성옥 바 르셀로나 한글학교장 등이 참 석해 자리를 빛냈다. 행사를 주최한 박종범 회장은 대회사에서 "올해 처음으로 치 러진 웅변대회에 유럽 각국의 한글학교 교장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한인회장들의 관심과 참여로 성대하게 치러지게 돼

감사한다"며 "오늘 한인차세대 들이 뿜어낸 꿈과 열정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 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뜻깊게 치러진 이 대회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 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후원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올해 대회는 외교통상부, 주오 스트리아대사관, 재외동포재 단, 민주평통자문회의, 전남대, 세계한인상공인연합회, 영산그 룹, 아카키코 등이 후원했다. 한편 웅변대회에 앞서 유럽한 인총연합회는 서병수 위원장과 정광일 사무총장을 초청해 재 외국민 선거와 관련한 긴급 포 럼을 개최해 유럽 한인들의 의 견을 전달했다. <파리지성>


예술칼럼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5

재불예술인 축제의 의미-2

지성의 참된 모습은 지식이 아 닌 상상력에서 드러난다고 엘 버트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날 첨단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 으로 상상력은 과거 재화의 가 치와 기술력만을 추구하던 전 통과 단절을 선언하기에 이르 렀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전혀 새로운 재화가치를 창출 하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 니다. 이러한 상상력은 이제까 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 념의 콘텐츠를 통해 가상공간 에 꿈에만 그리던 것을 실현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로 발전하

였습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상상력을 길러주고 그러한 상 상의 힘에 날개를 달아주는 분 야가 바로 예술이라는 사실이 현대사회에서 증명됨으로써 예 술은 과학과 더불어 함께 공존 하고 발전해 나가면서 상호 융 합을 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편 익과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 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실수를 해보 지 않은 사람은 한번도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사람 일 뿐입니다. 실수란 새로운 시 도, 남이 해보지 않았던 발상을 행동에 옮기는 창의성에서 무

수히 발생하게 되는 시련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마침 내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기 발한 발상으로 새로운 툴과 콘 텐츠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탁월한 지성과 보잘것없는 인 격이 결합된 것만큼 나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 성을 요구하지만 그것을 담아 놓은 것이 곧 인격이므로 결함 이 많은 인격은 아무리 좋은 지 성을 지니고 있다 해도 자신과 사회에 공헌하고 이바지하기 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듯, 인 격을 고양시키고 삶의 질을 높 여줄 수 있는 것이 곧 예술과의 대화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반복적인 일상성 속에서 예술이라는 것이 없을 때, 그 공허하고 무료함을 대신 채워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란 굴레 안에서만 그 삶이 가능합 니다. 어느 누구도 시간과 공 간을 벗어나서는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 과 공간 속에 표현된 형식이 곧 예술일 것입니다. 잘 알고 있듯, 예술의 표현형식을 말할 때, 그 예술의 표상(表象)이 시간적 계기(繼起) 형식으로 나타나 는가, 또는 한 공간에 같이 있 는 공간적 병렬(竝列)형식으로

나타나는가에 따라, 시간예술( 時間藝術)과 공간예술(空間藝 術)로 나뉘게 됩니다. 시간예술은 문학 . 음악 . 연극 등을 포함하고, 공간예술은 회 화 . 조각 . 건축 등을 포함합 니다. G.E.레싱은 《라오콘 Laokon》에서 문학과 회화 의 표현상의 특질을 비교해 서 연속적 또는 계기적(繼起 的:nacheinander)인가, 병렬적 (竝列的:nebeneinander)인가 의 구별을 가려낸 것에서 시작 하면서 이러한 예술양식에 정 의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20세기의 예술학자 L.데스와 르는 이것을 다시 운동과 계기 의 예술, 정지(靜止)와 병렬의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여러 예 술의 분류를 시도하였습니다.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이라고 하 는 구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분류에서 발전한 뮤즈적 예술(Muse的 藝術)과, 조형예 술이라고 하는 대립개념(對立 槪念)과도 내용적으로 일치하 고 있습니다. 또 이것을 더 세분해서 시간예 술(음악 . 문학), 공간예술(회 화 . 조각 . 건축), 시간 . 공간예 술(무용 . 연극)로 나누거나, 또 는 E. 하르트만과 같이 시간예 술(음악), 공간예술(회화 . 조 각), 시간 공간 예술(무용 . 연

EPS여행사 - 대한항공 대리점 / 아시아나 및 전세계항공권판매

극), 상상가상예술(想像假象藝 術:문학)로 나누기도 하는 것 입니다. 이번 재불예술인들의 축제에서 펼쳐질 예술작품들은 바로 시 간예술과 공간예술의 만남, 그 어우러짐으로 한껏 크로스오 버의 각 예술장르간 협업이 이 루어질 것입니다. 2010년 제 4 회 제르칼로 안드레이 타르코 프스키 국제영화제에서 특별 상과 감독상을, 2009년 아미엥 국제영화제에서 황금 유니콘상 을 수상한 바 있는 전 수일 감 독, 2011년 설악영화제 홍보대 사이며 제 16회 부산 국제영화 제 비아시아권 경쟁부문 플래 시포워드 심사위원인 그의 영 화 <검은 땅의 소녀와> 상영을 필두로 첫 예술인의 축제의 막 이 오르게 됩니다. 영화예술과 대금연주, 드로잉 과 마임, 성악과 기악의 앙상 블 등으로 펼쳐질 이 예술인 축 제가 이 해의 끝에 서서 걸어온 뒷모습을 바라볼 많은 분들에 게 삶의 자양분과 소망의 빛으 로 밝아지기를 기대해 보는 것 입니다. www.jungtakyoung.com greatart@hanmail.net <정 택 영(화가, 재불예술인총연합회 회장)>

프랑스 일주 (5박6일) 초특가 숙식, 가이드 등 포함

일인 580유로 자세한 사항은 전화 문의

01.5602.6080

Entre Paris et Seoul : 90 Rue de la victoire 75009 Paris M(3,9) Havre Caumartin / M(7) Chaussee d'Antin / RER(A) Auber

오페라 라파이에뜨 백화점 뒤

http://www.eparisseoul.com eps@eparisseoul.com HnbWda ad\d

최고의 요리사가 선보이는 한정식

기본형

오도리 "넓고 여유로운 좌석" 응용(천막용) 1

80 RUE DE LA PROCESSION 75015 PARIS (M) 6 PASTEUR

월요일 점심 휴무

샹젤리제 옆 위치

숯불갈비. 삼계탕 차육회밥, 알밥

www.restaurantsoon.com

점심메뉴

응용(천막용) 2

TEL: 01.4577.8812 18, rue Letellier 75015 Paris (6.8.10) La Motte-Piquet 에펠탑에서10분거리 (월휴무)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6

故박병선박사를 회상하며

르몽드, 한미 FTA는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것

르몽드지가 지난주 화요일 한미 자유 무역협정이 강행처리되고 난후 "관세 하락으로 한국 기업은 미국 시장을 향 해 고속도로가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었다. 현대[HYUNDAI]라고 영문으로 크게 쓰인 거대한 컨테이너가 선박에 실리 고 있는 장면을 기사 컷으로 담았던데, 농촌에 피해가 돌아갈수 있는 한미 자 유 무역 협정의 현실을 신랄하게 보여 주는듯한 사진이었다. FTA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찬성하고 반대하는 입장을 파악하여 작성한 기 사이다. 11월 22일 국회의 소란스런 분위기속

에서 통과된 한미 자유협정 비준 동의 안에 대한 묘사부터 했다. 국회밖에서는 경찰이 반대하는 이들을 막고 있었고, 내부에서는 반대하는 이 들의 봉쇄 형태가 최루가스를 사용하 는데까지 갔다고 전했다. 한동안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던 한 나라당은 통과시키는데에 성공했고, 2007년에 협정에 싸인하며 강하게 지 지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안심이었 다고 했다. 청와대 최금락 대변인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적용된것을 반가워했고, 10 월 12일 미국은 협정을 비준했고, 미국 무역 대표부의 론 커크는 두 나라에 경 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윈 윈하는 협정 임을 상기시켰다고 밝혔다. 한미 FTA라고 명명된 이번 비준안은 2012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되 며, 미국 농산물 제품 3분의 2에 대해 관세가 없어질것이고, 한국 가공상품 의 95% 이상이 15년동안 점차적으로 관세가 줄어들것이라고 했다. 한국 무역협회는 기울어져 가고 있었 던 대기업 경제의 경쟁력을 개선할수

있는 기회이고, 수입품에 대한 가격이 내려가면서 인플레이션 압박을 줄일수 있는 수단이라고 했으며, 한국 상공회 의소는 더 직접적으로, 비준은 한국 기 업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고속도로 를 연것이고, 한국은 북미와 아시아, 유 럽간의 상업 농축기가 될수 있을것이 라고 했음을 밝혔다. 정부 산하에 있는 한국 개발 연구원에 따르면 비준 동의는, 특히 전자제품과 자동차의 수출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했다. 7월에 한국은 유럽연합과 동일한 협정을 체결했고, 칠레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과도 계약을 맺었으며, 나라 상업의 36%가 지금부터 자유무역협정 으로 이루어질것이라고 했다. 미국쪽에서 보자면 비준은, 매년 7만개 의 일자리가 창출시키고, 백억 내지 백 십억 달러의 수출증가를 가져올것이라 고 했다. 이는 미국 수출의 5배를 늘리 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 향력을 강화 시키려는 오바마의 정책 에 기록되는것이라고 밝혔다.한국에는 미국을 향한 어떤 적대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면서, 2008년 미국소 수입건

으로 강하게 반발했던 것과 그 안건의 최종 채택은 반대하는 이들을 진정시 키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번 비준에 반대하는 이들은 2027년 까지 8천 5백억원의 감소와 함께 수많 은 일자리를 잃게될 농촌이 받을 타격 을 걱정하고 있고, 중소 규모의 제약업, 직물업, 화장품 회사. 서비스업계도 근 심스러워하고 있으며 정부의 보호 정 책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의 김진표 의원은 부의 불평등 을 강화시킬것이라고 했으며, 반대하 는 이의 분노는 비준이 2012년 예산 집행에 복잡할것 같으니 더이상 국회 토론에 참가시키지 않은것이라고 전했 고, 이번 강행 처리는 시민들의 시위를 동반하고 있다고 했다. 긴장은 계속 강화된 채로 있을 것이 라고 했다. 왜냐하면 2012년은 4월에 는 총선, 12월에는 정권이양을 앞두 고 있는 중요한 해라면서 기사를 마무 리했다.

<박언영/파리지성>

파리의 독립기념관 건립,이젠 국가가 나서야 파리에 독립기념관이 반드시 세 워져야 한다. 1919년 3월 28일부터 1920년 4월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파 리대표부 청사로 사용되었고,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 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박사의 집 무실이기도 한 역사적 장소인 파 리9구 샤또덩(Chateaudun)가 38번지, 바로 그 자리에 독립 기 념관이 설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 우리의 소중한 역 사적 문헌이 비치 되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한 개인이 홀로 모든 어려움을 겪 으며 평생을 받쳐 이를 위해 노 력해 왔다. 바로 직지심경의 대 모로 불리우는 박병선 박사가 그 사람이다. 한국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재불 학자 박병선 박사는 평생 문화재 연구를 위해 노력해 왔으 며, 이로써 세계 최고(最古)의 금 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직지심

경)과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내 었다. 그는 한국 근대사의 대모 이며, 우리 재불 후손들에게 참된 한 연구자 모습, 그리고 진정한 한 애국자의 좋은 모범을 보여준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처럼 잘 알려진 박 박 사의 실생활은 그의 유명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의 작은 아파트는 이미 수많은 자료로 뒤 덮여 있어 손님 초대하기도 힘들 정도이고, 프랑스 정부가 주는 연 금으로 자신의 생활을 쪼개 살아 왔다. 적당한 연구실도 없는 그에 게 다행히 2005년 주철기 주불 대사의 배려로 대사관에서 작은 연구실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곳 에서 업무에 필요한 전화도 사용 할 수 있고, 필요한 자료를 복사 할 수 있다며 좋아하셨던, 그렇게 청렴한 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올해 안으로 비워져야 할 형편이 다. 연구실이 없어진다면, 무엇보 다 그곳에 쌓아둔 자료들을 어디

로 옮겨야 할 지 난감하다고 걱정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이 가 들어 힘도 부치고, 시간도 많 지 않다고 하셨다. 또한 «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 (태 학사)라는 귀한 책을 소중한 자 료들과 함께 발간하였으나, 배포 할 예산이 없어서 창고에 쌓여있 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이러한 그가 사료 수집 차 한국 을 방문했다가 암으로 쓰러져 한 국 수원 성 빈센트 병원에서 홀 로 암 투병 중에 있다. 그는 81세 에 암 투병생활로 쇠약해진 상태 에서도 파리에 독립기념관을 세 우고, 그곳에 우리의 소중한 자료 를 두어야 한다며 간곡히 부탁하 셨다. 이젠 박병선 박사의 마지막 소망을 귀담아 듣고, 국가가 적극 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가 그 일 에 삶 전체를 받쳐 연구하지 않 았다면, 외규장각 도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파리에서 독립운동의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홀로 외로운 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한국 텔레비전 등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져, 많은 사 람들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이어 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 은 한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모 금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청주 시도 박 박사를 돕기 위해 공식 모금 운동에 나서며 관심을 표하 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의 활동무대인 파리에서는, 재 불한인들을 중심으로 파리에 독 립기념관을 세우기 위한 건립 위 원회가 설립되었고, 지난 한가위 축제 때 이를 위한 첫 모금을 실 시하면서 가시화 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번 12월5일 한인회 송년 행사에도 서명을 받으며 모금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각계각층 (各界各層) 재불 한인들의 건립 위원회 참여가 절 대적으로 요구되며, 후세에게 남 겨줄 자랑스런 독립기념관을 세 우는데 집중해서 국가가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들을 수 있 도록 파리독립기념관 건립을 위 해 큰소리로 외치며 서명운동 등 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재불한인들은 지금까 지 박병선 박사가 가져보지 못했 던 가족이 되어 그를 보살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국가를 위 해 헌신해 온 것처럼, 이제는 우 리가 그의 따뜻한 가족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소망인 독립기념 관 설립 추진과 함께 박병선 박 사가 기적적으로 암을 이기고 다 시 일어나기를 재불한인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 2006년 샤또덩가 38번지에 현 판을 건 후 제자리에 있는 것은 국가가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국 가는 한국의 바른 역사를 프랑스 에 알려줄 의무가 있으며, 후세에 한국정신을 그 자리를 통해서 보 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7

故박병선박사를 회상하며

영원히 잊혀질 것인가, 영원히 기억될 것인가 마지막 소원은 파리 독립기념 관 건립 보는 것 박사님, 현재 건강은 어떠신가 요. 지금 병은 없어요. 의학적으로 말해서는 이제 괜찮은데, 이렇 게 기력이 없네요. 아무리 노력 을 해도 그래요. 그리고 다리 힘 이 없어서 일어서고 걷기가 너 무 힘들어요. 외규장각 도서가 영구대여라는 조건으로 돌아오는데. 처음에 이 도서를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가져갈 수 있을지 그 문 제를 바로 바로 서둘렀으면 아 무 문제도 없고 좋았을 텐데. 그때는 너무 무심했다고요. 정 말 너무 무심했어요. 처음에 책 을 찾았을 때, 병인양요 때 프 랑스가 약탈해간 책이 파리 국 립도서관에 있다고만 잠깐 얘 기가 되다가 그 다음에 쏙 들어 가 버린 거예요. 더 이상 생각 들도 않고. 그리고 거의 10년 이 지난 후에 그때서야 규장각 도움으로 제 책이 발행되고, 서 울대 총장님하고 이태진 교수 님께서 상의하셔서 반환운동을 시작하시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외규장각 도서가 반환되기까지 혼자서 겪어내야 했던 그 시간 들을 되돌아보실 때 어떤 기분 이 드시나요. 그 긴 세월 동안 있었던 역사라 고 할까요? 저한테는 역사예요. 그런데 추억이라도 심한 추억 이죠. 처음에 한국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었다면, 또 당시 정세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정부에서 조금 더 이쪽으 로 힘을 실어주었다면 일은 참 순조롭게 해결되었을 텐데. 지 금의 '대여' 라는 말도, 소유권이 불란서에 있지도 않을텐데. 제 생각에 그렇게 힘들지 않게 해 결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파지로 분류된 책 가져 가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겠 어요. 결국 그거예요. 외규장각 도서를 찾고 나서 도 서관 측과의 갈등으로 결국 도 서관을 떠나게까지 되셨죠. 그 때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그 당시 도서관하고 한국 정부, 대사관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것을 밖에 사람들은 모르죠. 참 복잡해요. 내가 시간적으로 정 리를 한 번 해봤는데, 그래도 참 복잡해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저렇게 사건이 너무 많 았기 때문에, 무엇을 어디에 정 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주 미묘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초 기에 외규장각 도서를 찾았을 때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제목을 종류별로 모두 정리해 서 기자들에게 보고를 해줬어 요. 그랬더니 기자들이 거기에 다가 제멋대로 '발견'이라는 말 을 썼다고요. 당시 도서관에서 한국에서 나온 신문을 일일이 최악으로 번역을 해가지고, 물 론 가짜로 꾸밀 순 없지만, 똑같 은 말마디라도 어떻게 해석하 느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그래 서 규장각 도서가 있는 것을 네 가 찾은 거지, 어떻게 그것이 네 가 발견한 것이냐, 이것을 가지 고 도서관에서 트집을 잡기 시 작했다고요. 그래서 기자 분들 께 사실 찾은 거지 발견이 아니 다, 발견 소리 좀 쓰지 말아달라 고 하니까, 한국에서는 그 말 밖 에 다른 말이 없다고,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냐고 말하는 거예 요. '찾음'이라고 쓰면 맥이 없는 것 같고, '발견'이란 단어도 한 국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으 니까 해석하기에 달렸는데 말 이죠. 결국 제가 발견이라고 해 서 마치 최초로 찾아낸 것처럼 얘기를 했다고 그것을 가지고 달달 볶았어요. 외규장각 도서 에 관한 언급은 제일 먼저 모리 스 쿠랑이 했어요. 당시 모리스

쿠랑도 책 제목과 왕립도서관 (Bibliothèque Royale)에 있다 고만 썼지, 책 내용에 대한 구체 적인 설명은 못하고, 제목과 크 기에 대한 정도만 이야기를 했 다고요. 도서관은 모리스 쿠랑 이 이미 발표한 것을 네가 다시 발표한 것이지, 왜 네가 발견한 것이냐고 문제를 삼았어요. 그 래서 나는 다른 것 발표한 것 없 다, 이 책이 어디에 있고, 그 제 목이 무엇이다만 알렸다 뿐이 지 더 구체적으로 말한 것도 없 다고 말했죠. 직접적으로 도서관과 갈등을 일으킨 계기가 있나요. 도서들이 오래되다 보니 몇 권 만 표지가 제대로 남아있었지, 대부분은 모두 상해서 수선을 하게 되었어요. 의궤 표지들이 두꺼운 종이에다가 비단으로 싸여져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어디서 누가 한 일인지 모르지 만, 수선을 맡긴 사이에 누가 의 궤에 있는 그림을 면도칼로 잘 라갔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조 금 똑똑했으면, 제본을 한 것이 기 때문에 장을 모두 빼갔으면 잘라버린 지도 모르고 지나갔 을 텐데, 그 옆에 도막을 남겨 두고 그림만 가져간 거예요. 당 시 무엇보다 도서관 측에서 예 민했던 부분은 한국 대사관 사 람들이 알게 될 까봐, 그것을 무 척 신경을 썼던 가봐요. 저는 내 용적으로 그들이 겁냈던 것을 알 수 없었죠. 그들은 그것을 수 선을 해서 파리 국립 도서관으 로 옮겨오겠다고 계획을 짰겠 지요. 그 당시 수선을 한 다음에 종이에 싸 놓은 것을 제가 제일 먼저 열었다고요. 내용을 보는 데 그림이 잘려 있으니까 이건 수선소에서 잘린 것 같다고 바 로 말을 해줬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잘라간 것처럼 오해를 받 을 테니까요. 도서관 쪽에서는 이게 국제문제가 되면 사고다. 그것을 제일 겁을 낸 거예요. 그

런데 내가 도서의 존재를 기자 들에게 얘기했기 때문에 이것 이 터졌다 해서 그 당시 과장이 내가 국제 문제를 발생하도록 일으켰다고 책임이 저한테 전 가된 거예요. 그 전에는 과장님 과 아주 가까이 지내고 친했다 고요. 그런데 하루 사이에 사람 이 싹 변하는데, 저 멀리에서 나 를 보면 돌아서서 딴 길로 가고 그 정도로 냉담해졌어요. 그리 고 또 한국 외무부에서는 저보 고 가만히 있지 않고 이런 것을 자꾸 끄집어 내서 자기네들 골 치 아프게 한다고 제발 좀 가만 히 있으라고 했다고요. 당시 의 궤를 찾았을 때에 대사관에 제 가 매일 같이 출근하다시피 했 어요. 대사님께 지금 이것이 창 고 속에 있으니 우리가 가져가 는 것은 문제가 간단하다, 보통 서적도 아니고 파지로 분류되 어 있으니까 찾는 것이 간단할 테니 어떻게 좀 힘을 써달라고 했죠. 그런데 대사님 말씀은 한 불관계가 지금 묘하고 그리 좋 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들 비위 를 건드릴 수 없으니까 당신이 말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 요. 개인적으로 저한테 참 잘해 주신 분인데, 그 문제만큼은 본 인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 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요. 사실 우리가 가난하고 그럴 때니까 문화재 같은 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죠. 대사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본국에 보고를

하셨는데 본국에서 묵살을 했 는지, 그 분께서 지금은 때가 아 니라고 생각하시고 가만히 계 셨는지 그건 몰라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씀하지 않으셨거든요. 당시 제가 매일 대사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니 까, 대사님께서는 '병선이 왔으 니까 나랑 가서 점심이나 먹어' 하시면서 매일 같이 쌩 미쉘에 있는 우동집에 간다고요. 가서 먹으면서 저는 또 '대사님, 이 우동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이 문제가 중요한데 어떻게 하 시겠어요' 하면, '그 얘기는 그만 하고 밥 좀 먹자' 하시면서 넘어 가시고 (웃음). 당시 적극 움직였다면 외규장 각 도서를 쉽게 되찾을 수 있 었을까요. 도서관 쪽에서는 계속해서 문 제가 나니까 자꾸 신경이 예민 해지고, 저는 대사님을 재촉했 죠. 당시 국립도서관이 문교부 에 소속이 되어 있었는데, 문교 부 장관 비서실에 제가 아는 분 이 한 분 계셨어요. 그래서 사건 이 이런 게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으니까, 불란서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는 한마 디 말이 써있긴 하지만 다른 기 록은 없으니 움직이려면 지금 움직이라고, 그 다음에는 어려 울 것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런데 대사님이 움직이지 않 는데 제가 어떻게 움직이겠어 Restaurant coréen

HANSUNG 5, rue Argenteuil 75001 PARIS M. Pyramides (7-14)

T. 01 42 86 11 85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8

故박병선박사를 회상하며 요. 당시 한국은 가난하고 삼시 밥 먹기가 힘들 때니까. 제 생각 에 그때만해도 한국은 불란서 눈치만 보고 살 때가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건 들면 안 된단 말씀한 하시지 않 았을까. 그때를 이해할 순 있죠. 하지만 전 안타까우니까, 이때 놓치면 안 되는데, 이 때 놓치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쪽으 로 자꾸 졸라댔고, 대사님께서 는 또 어떻게 하실 수 없으셨던 거겠죠. 대사님께서도 입장이 참 거북하셨을 텐데, 대사님 혼 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 니고요. 그때는 제가 철부지 없 이 대사님이 움직여주시지 않 으니 답답하고 원망스럽고 했 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 무 지독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요. 왜냐면 도서 관 측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 고, 저 핍박 받는 거 그까지 일 은 문제가 아닌데, 우리 쪽에서 는 죽은 듯 가만히 있으니까 저 는 화가 났던거죠. 당시 저는 젊 은 기분으로, 또 일을 하는 사람 으로써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이쪽에서는 또 다른 사정이 있 으니까 할 수는 없고. 이쪽에서 자꾸 조른다고 대사님도 거절 할 수도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 도 없으니까 애꿎은 우동만 맨 날 사주신거죠 (웃음). 당시 대사님의 입장도 쉽지만 은 않았을 것 같네요. 그 대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저 에게 참 잘해주셨어요. 내가 화 가 나서 우동 안 먹겠다고 하면, '그러지 말고 가자, 그래야지 내 가 우동도 먹잖아' 하고 타이르 신다고. 그러면 또 할 수 없이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또 그 얘기가 나오죠. 대사님 도 대체 어떻게 해요, 왜 가만히 계 세요, 그러면 '먹는 것 체해, 가 만히 있어' 하세요 (웃음). 그런 데 지금 생각하면 대사님께서 얼마나 힘드셨고 어려우셨을 까 알겠어요. 그 때는 내가 그걸 모르고 졸라만 댔지, 또 빨리 해 결을 안 해주시니까 원망스럽 고. 도서관에서 냉대를 당할 때

마다 저는 대사님께 원정이 가 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 사님 하실 일도 많고, 다른 일도 많으셨을 텐데, 내가 너무 철부 지 없이 굴었다는 것을 알겠더 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저로서는. 또 주위사람들이 너희 나라 대사 관이 있잖냐, 대사님이 움직이 기에 달렸으니, 대사님께 매달 려 보라고 자꾸 또 옆에서 충동 질을 해주는 교수님들도 있고 하니까 제가 더 용기를 내서 매 일같이 출근을 했죠. 도서관에서 나오시게 된 것은 그 후에 일인가요? 그 때에도 보도 기관 사람들이 '발견' 소리를 빼달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그 말을 쓰는 거예요. 난 그 말 때문에 있는 대로 당하 고 있는데. 그리고 나서 도서관 내에서 냉전이 일어난 거예요. 도서관 측하고 나하고. 도서관 에서는 나를 반역자 취급을 했 어요. 국립도서관의 비밀을 외 부에다 누설시켰다는 죄목이었 어요. 그런데 저는 백 번 생각 해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도서 관에 책이 있다는 것은 될 수 있 는 대로 공고를 해서 모든 사람 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 서관의 임무라 생각하는데, 제 가 반역을 한 것도 아니고, 또 도서관에 있는 책이 있다고 말 을 한 건데 그것이 왜 비밀이냐, 뭐 때문에 비밀이라고 하는 것 인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리고 당시 도서가 있으면 카드가 있 거나 대장이 있어야 하는데, 당

www.minanee.com 리용에 위치한 한국식당

TEL. 04 7827 3549

13, quai de la Pêcherie 69001 Lyon

시 카드도 없고 대장도 없고 아 무것도 없었다고요. 그런데 한 국 기자들은 강화도에서 가져 간 외규장각 도서가 국립도서 관에 있다고 떠들기 시작하고, 한국에 신문기사가 하나라도 또 나면, 그 신문을 번역을 해서 도서관 내 보도 담당실(service de presse)에 보고가 된다고 요, 이런 기사가 또 나왔다고. 이 사람들은 이를 계속해서 문 제로 삼으려고 충동을 한 거예 요. 이렇게 몇 달이 계속 됐어 요. 그 다음부터는 제가 도서관 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일 거수일투족을 다 감시를 하는 거예요, 뭘 어떻게 하는지. 그것 까지도 좋아요. 제가 뭐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문제 될 것은 없었죠. 그런데 하루는 관장님께서 저를 호출을 하시 더라고요. 생각해보세요. 도서 관에는 천 여명이나 되는 직원 이 있고, 나는 당시 정식직원도 아니고, 말단에 말단, 그야말로 임시기간 직원(saisonnier)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 데 관장님이 직접 호출을 해서 사표를 내라고 하는 소리를 하 는 것은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 었던 거죠. 직원이라도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비 서를 시켜서 해결을 했겠죠. 호 출을 해서 갔더니, 이 사건이 어 떻게 된 거냐고 직접 물으시더 라고요. 과장도 같이 갔는데, 과 장이 제가 오랫동안 그 책을 찾 았다는 것을 말하고, 동시에 이 것을 도서관 측과 상의하지 않 고 외부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듣고 있다가, 도서관에 책이 있는 것 을 보고, 어떤 책이 있다는 것 을 얘기하는데 일일이 과장하 고 상의를 해야 하느냐, 또 어떻 게 그것이 도서관 비밀로 들어 갈 수 있느냐, 나는 이해를 못하 겠다고 하니, 관장님도 머리골 치가 아프신 모양이에요. 옆에 있는 관장님 비서도 진정하라 고 말로 쟁투하는 것이 아니고 결국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그 리고 일을 좋게 해결하기 위해 서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래서 처음부터 내가 그 책을 찾 고 있는 것을 과장이 알았으면, 이 책을 찾으면 자기한테 먼저 말을 해달라든지, 또는 외부사 람한테 말을 하면 안 된다든지 했다면 나도 말하지 않았을 거 다, 그런데 그런 말은 일언반구 도 않고 자기도 함께 협조해주 면서 그 책을 같이 찾았던 사람 이 나를 반역자로 모니까 얼마 나 어처구니가 없어요. 그 때 도 서관 측에서는 저에게 다른 취 직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일년 봉급을 준대요. 그것도 그때서 알았죠. 그런데 저는 그 때 이미 꼴레쥬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 문에 필요 없다고 했어요. 비서 는 나보고 실직자가 아니고 옆 에 다른 직장이 있으니 다행이 라고 위로하더라고요. 말은 사 표지만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 지죠 (웃음). 후에 의궤를 연구할 상황이 더 욱 여의치 않았을 것 같네요. 책을 자른 범인을 찾는다는 구

실로 도서관에서 책을 열람 중 지를 했고, 그것이 몇 달 계속 됐어요. 그런데 몇 달 동안을 내 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 가서, 오늘은 책을 볼 수 있냐고 매일 같이 물었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손을 들었대요. 매번 안 된다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 같 으면 기권을 하고 말겠거니 했 던 거예요. 열람 중지니까 당분 간은 내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보통 때와 똑 같이 매일 아침 와가지고 오늘 책을 볼 수 있소 없소 하고 묻 고, 안 된다고 그러면 할 수 없 지 하고 돌아가서는 다음날 또 찾아오고. 나중에는 그 책을 중 요도서목록으로 분류해 놓았 더라고요. 그리고 그 잘린 부분 을 조사한다고 하면서 책에 페 이지 수가 없고 아무것도 없으 니까 책에다가 연필로 한 장 한 장 기록하라고 직원들에게 시 켜서 그것을 해놓았어요. 그렇 게 준비해준 것은 고마운데, 나 는 직접 보았으면 좋겠는데 볼 수 없으니 답답했죠. 한 쪽에서 는 매일 와서 보겠다고 그러고, 한 쪽에서는 보여주기는 싫고 하니까 그 사이에 갈등이 대단 했고, 몇 달이 지속됐어요. 그러 다가 나중에는 그럼 책을 보여 주겠다, 그런데 하루에 책을 몇 권 이상은 못 준다는 조건을 붙 이더라고요. 그래서 몇 권 줘 봤 자 나 보지 못하니까 한 권만 줘 도 된다 했죠. 그 대신 내가 무 슨 책을 봤고, 몇 시에서 몇 시 까지 봤다는 것을 일일이 과장 한테 허가를 맡아야 한다고 했 어요. 그 책을 그냥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신청서를 내면, 이것을 과장한테 가지고 가서 과장이 도장을 찍어줘야 만 그 책을 보여줬다고요. 그 런데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려 고 문의를 하면 어떤 때는 과장 이 그 자리를 피한다고요, 그러 면 사인을 못해주잖아요. 몇 시 간 동안 과장이 어디에 갔는지, 회의에 갔다고 하고 자리에 없 으니까, 도장을 받을 수가 없는 거죠. 나중에는 책임지고 맡아 주는 사람한테 막 대들었다고

2012년 1월 개강일 2012년 1월 9일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9

故박병선박사를 회상하며 요,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그 랬더니 알았다고 또 자기가 사 인을 해줘서 책을 보기도 하고 그랬다고요. 생각해보세요. 매 일같이 아침에 가서 책을 보려 는데 책은 못 보게 하지, 나는 빨리 봐야겠고, 빨리 해치워야 겠는데 그 때 심정이 어떠했을 지. 그런데 거기에다가 일일이 며칠 몇 시에 와서 무슨 책을 보 고 몇 시에 간 것까지 보고를 하 도록 했다고요. 나중에는 너무 기가 막한 것이, 그 직원들이 같 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라 사이 도 좋았어요. 식구도 몇 사람 밖 에 안되니까 서로 친하게 잘 지 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명령을 하기를, 절대로 나를 도 와주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어떤 때는 책이 이상 스러운데 다른 책으로 바꿔달 라고 하면, 이 사람이 나한테 말 을 하기를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지령을 받았기 때 문에 너하고 이야기 할 수가 없 어' 한다고요. 그래서 밖에 나와 서는 이야기 할 수가 있으니 밖 에 나와서 이야기하는데, 그 때 하는 얘기가 우리들 모두한테 너를 도와주지 말라고 지령을 내렸다고, 그래서 우리가 어떻 게 할 수 없다고 그 소리를 하더 라고요. 그 정도까지 저를 핍박 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몇 해 계 속되니 나중에는 기권을 하더 라고요. 일일이 도장 받고 하는 것도 다 없어지고, 그 다음에는 맘대로 다 볼 수 있게 해주고, 하루에 두 번도 보고 세 번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동안에 과

장도 그만두고, 관장도 그만두 게 되었고, 다른 과장이 왔으니 까,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그런 구속을 해야 되는지 못 알아 듣 겠다는 거죠. 도서관에 중요도 서가 있고, 보통중요도서가 있 고 그래요. 그런데 이 책을 중요 도서에서 보통중요도서로 분류 한 거죠. 중요도서는 창고 속에 넣어야 하는데 보통중요도서는 서고 속에 놓아도 되요. 그 동안 에 자리가 여러 번 바뀐 거예요. 처음에 파지로써 창고에 있던 책이 중요도서로 등장을 했고, 그 다음에는 보통중요도서로 등록을 한 거예요 지금까지 보 통중요도서로 되어있어요. 처음 반환 교섭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아시나요? 그 도서에는 카드도 없고, 대장 도 없어요. 그것만은 알아야죠. 처음에 프랑스에 반환 교섭을 오신 다기에 그 분께 그것을 충 고해 드리고 싶었다고요. 왜냐 면 아무 소리 말고 도서관에 가 서 너희들 카드 좀 보자 하면, 없는 카드를 어떻게 갑자기 만 들어 주겠어요. 그리고 대장은 외부사람들한테 안보여주는 것 이지만 대장 좀 보자, 그렇게 하 라고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그 분이 저를 만날 필요 없다고 안 만나고 그냥 갔다고요. 그러니 까 처음에 교섭을 하러 오신 분 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내용은 모르지만 나는 이쪽 사람들한 테 간접적으로 들었어요. 교섭 온 분이 책 내용도 모르고 와서 책만 내놓으라고 그러니 말이

되냐, 그러면서 툴툴거리는 소 리를 제가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또 무슨 말인가 했어요. 한 국 측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은 것이 없어 모르고, 이쪽 사람들 을 통해 들은 것이죠. 당시 회의 에 있었던 사람들은 절대 내용 을 외부에 말하지 말라고 그렇 게 규칙을 세웠대요. 그런데 툴 툴거릴 수는 있잖아요,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그러니까 회의 에 갔다가 나와서 내가 옆에 있 으니까 '골치 아파' 그러면서 혼 자서 툴툴거리더라고요. 그러니 까 나를 보고 말하지 않고 자기 가 툴툴거린 것을 제가 들은 거 예요. 그 사람도 비밀을 지키라 는 것 위반한 거 없고요. 지금은 외규장각에 대한 관심 이 높지만, 그 긴 시간을 혼자 이겨내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한국 학자들의 냉대. 그리고 불 란서 도서관 쪽에서 당한 냉대 는 정말 지독했어요. 제가 잠을 참 잘 자는 사람이에요. 불면이 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인데, 그 때는 정말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불면증이라는 것이 이 렇게 힘든 거구나, 그 때 처음 으로 경험해보고 알았어요. 주 변에 계신 분들도 많이 안타까 워하시고 저 때문에 고생들 많 이 하셨죠. 한국에 가면 한번씩 은 예전에 저한테 그렇게 냉대 하신 분들께 전화를 드렸어요. 그러면 한번 만나자 하셔서 다 방에서 얘기를 나누는데, 그 때 는 커피를 마셔도 커피 맛이 나

지가 않아요. 그 교수님도 그 때 얘기는 꺼내시지도 않고 지 금 뭐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만 물으시죠. 그래서 한번은 제가 그랬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말씀 드리면 전 과 똑같이 말씀하실 것 아녜요 하고 웃었다고요. 그러니까 그 건 잊어버려 그러고 마시더라 고요. 어떻게 하겠어요. 그게 세 상이고, 그게 인심인가 그렇게 생각해요. 박사님 제일의 마지막 소원은 파리 독립기념관 건립이라고 들었어요. 이제 갈 때도 됐고, 빨리 빨리 일을 정리하고 원고도 마쳐야 죠. 그런데 가기 전에, 제가 눈 감기 전에 한가지 소원이 있어 요. 샤또덩 가에 독립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아니면 만드는 기 세라도 보고 죽었으면 좋겠어 요. 제가 몇 십 년 동안 입이 마 르도록 독립기념관 만들어야 된다고 했는데, 이제까지는 파 리 교민들이 너무도 냉정했다 고요. 거기에 대해 알려고 하지 도 않고, 만들어 뭐하냐는 식으 로 그랬었죠. 그대도 지금은 조 금이나마 독립기념관이 있으 면 좋겠다는 말이 시작되어 다 행이에요. 독립기념관 설립은 왜 중요한 가요. 김규식 박사의 활동이 외교 활 동의 시초라 할 수 있어요. 파리 에 오셔서 몇 달 밖에 안 계셨지 만, 같이 일하시던 분이 샤또덩

가의 그 집에서 2년간 버티셨잖 아요. 집세가 없어서 방 한 칸에 서 지내시면서, '자유한국'도 발 행하시고, 꾸리에와 팜플렛도 발행하시고, 회의에도 참석하 시고 하셨다고요. 불어를 한마 디도 못하시는 분들이. 제 추측 인데 여기 사용했던 사무실이 크지도 않았을 거예요. 낮에는 사무실로 쓰고, 저녁에는 그곳 에서 주무시고 그러시지 않았 을까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 분 들이 그렇게 활동하지 않았다 면 불란서에 한국이라는 나라 를 알리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 을 처음으로 소개하고 한국을 알리신 분들은 그분들이에요. 나는 그렇게 봐요. 더군다나 구 라파 쪽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독일에도 가셨었고, 영국, 이태 리에도 가셨어요. 이곳 저곳 다 니시면서 회의에도 참석하시고 한국을 알리셨죠. 이런 일들을 잊지 않아야 해요. 아직 드러나 지 않은 참 아름다운 이야기들 이 많아요. 제 제일 큰 소원이 바로 이러한 것들을 한 데 모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파 리 독립기념관을 건립하는 거 에요. 우리가 움직인다면 틀림 없이 정부도 도와줄 거예요. 정 부가 저한테 말하기를, 너희들 이 협력해서 뭘 하나 만들어라, 너희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우 리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도와 달라면 말이 안 된다, 그것이 그 분들의 웅변이었어요.

<파리지성>

골프렛슨 초급에서 중급 골프렛슨관련 클럽, 장비 무료대여

강앤리 미용실 COIFFURE - kang & Lee 일요일 휴무

Tel. 01 4567 7071 H.P. 06 2842 7887

파닭, 갈비전골 사랑방 - 8인실 오픈

15주년 기념 컷트 15유로

19, rue Daniel Stern 75015 Paris

(월, 화요일에만 할인)

Metro 6. Dupleix

TEL 01 4578 6033

지하철 Dupleix 바로 옆에 위치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10

故박병선박사를 회상하며

슬픔이여 안녕 ! 1월 22일, 기자가 성빈센트 병 원 9층 박병선 박사의 입원실 을 찾았을 때 그녀는 긴 잠에서 막 깨어난 무렵이었다. 시간이 벌써 정오를 넘어가고 있었으 니 그녀는 아침도 거른 채 잠을 잤던 것이다. 작은 입원실에는 그녀의 쾌유 를 비는 동양란 화분 서너 개가 창가에 놓여져 있었고, 책상 위 에는 안부를 묻는 편지와 엽서 들이 가지런히 그녀의 손길을 잠에서 깬 그녀는 한참 말이 없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암 제거 수 술을 받고 입원한 그녀다. 눈만 뜨면 의식하게 되는 육체적인 고통은 이미 정신적인 고통을 압도해버린 후였다. 이윽고 입을 떼어 내뱉은 첫 마 디는 "몸이 이럴 때는 아무 것 도 하기 싫어". 지난 2주간 중환자실에서 홀로 참아내야 했던 아픔의 무게가 목소리에서 무겁게 묻어났다. 첫 대면 치고는 너무 쉬웠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인 직지를 최초로 한국에 알 려 동백장까지 수상한 "직지의 대모", 6.25 내전 직후 프랑스 로 건너간 한국인 프랑스 유학 생 제 1호, 재불 유학생들에 물 질적, 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유학생들의 어머니"인 그녀지만, 어떤 경계의 기색도 없이 침상에 누운 채 쾌유를 비 는 기자에게 주저 없이 손을 내 어주었다. 수녀님이 점심상으로 갖다 놓 은 무우국의 향긋한 내음이 병 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살면서 후회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한 가지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

u

ia

er

e

ru

Em

M

수원 성빈센트 병원에서 필자 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한국 에서 교수 제의가 들어왔을 때 귀국하지 않은 것이다. 일생을 바쳐 자료를 수집하고 역사를 파헤친 결과, 조국에 잃 어버린 역사의 한 조각을 찾아 주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성과 가 큰 만큼 그의 반대급부도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결혼을 하고 한국에 교수 가 되어 귀국 했더라면, 그녀는 어쩌면 지금 결혼을 한 것과 연 구를 끝내기 전에 프랑스를 떠 나온 것을 후회하고 있을런지 도 모른다. 1955년 시대를 앞서는 도전정 신으로 홀홀 단신 파리행 비행 기에 올랐던 대범한 소녀는 50 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욕심이 많다. 그녀는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독립을 호소했던 김규식 박사 일행의 독립운동을 기념 하는 독립기념관 건립을 꿈꾸 고 있으며, 또한 '왜 한국 사람 들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하는지 등을 프랑 스어로 자세히 설명한 '조선조 (朝鮮朝)의 의궤(儀軌)' 증보 판을 준비하고 있다. 연내에는 건강을 회복하는대로 프랑스 로 돌아가 일제침략기 당시 독 립운동가들이 머물렀던 샤또

덩(Chateaudun)에 작은 사무 실을 하나 마련해서 역사 연구 를 계속할 작정이다. 소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 녕은 Au revoir가 아니라 Bonjour이다. 슬픔에서 헤어나오기보다 슬 픔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청춘 의 발칙함이다. 50여 년의 재불생활은 박병선

expo

기다리고 있었다.

박사에게 보람과 열정의 시간 만큼 많은 시련을 안기기도 했 다. 하지만 그녀는 병상에 누워 서도 프랑스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수술이 잘 되어 차도가 상당히

30 NOV. > 26 FEV. 2012

좋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몸이 약할 때는 무엇 하나 쉽지 않음 에도 그녀의 가슴은 뜨거운 열 정으로 타오르고 있다. 어차피 힘들지만 혼자 걸어온 길이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 관에서 근무하던 중 의궤를 찾 아냈을 때는 '비밀을 누설했다' 는 질책을 받아 파리국립도서 관을 그만두기도 했었고, 직지 를 처음으로 한국에 알리고 국 가의 지원 없이 혼자서 외규장 각 도서를 발견해냈던 그녀다. 그래서 그녀는 외칠 수 있다. 슬픔이여 안녕이라고! <정락석/파리지성>

COMMANDERIE DES TEMPLIERS DE LA VILLEDIEU ROUTE DE DAMPIERRE / ELANCOURT / SAINT-QUENTIN-EN-YVELINES www.commanderiedelavilledieu.sqy.fr

(QWUHODFV [ FP FRWRQ DFU\OLTXH 3KRWRV ¬+HUYp %DFTXHU HW 7FKHO\ 6KLQ + & (GLWp SDU OD &$64< RFWREUH /LFHQFH Q 6,5(7


공지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11


한인/공지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12

우리모두 하나되어 파리중심에 한국의 전당을 겁립합시다. 개인

기업

이름 직업 최찬욱 OECD 조관주 대사관 이세주 LG전자 노양옥 개인사업 박언영 주부 김정순 개인사업 나은주 회사원 이치환 사진작가 앙드래 신문배달 심은록 미술비평가 이미정 권순철 화가 김언중 개인사업

2011년 11월 29일 현재 합계

후원금 20 20 20 10 200 100 100 20 10 20 20 200 100

840

이름 업체 최병원 한불여행사 이철종 한림식당 라병국 송산식당 김정은 만트래불 여행사 정락석 파리지성 권영철 비빕밥 식당 유성은 DFM 정상두 아씨 식당 장인성 장인성치과 윤인노 오도리식당 정낙환 신정식당 김정규 소반식당 회로비 권 개인사업 서동화 서도인쇄 임태규 세종식당 박혜정 쌩태낱 김덕용 키 멕스코 조만기,김정순 우정식당 박윤수 국일관 2011년 11월 29일 현재 합계

후원금 500 500 400 500 500 300 200 200 500 500 500 200 1 000 100 200 300 300 1000 200 7 900

캠페인 기간(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 매주 추가되는 후원자분들의 명단을 공개합니다. 문의: 한매협 06 83 86 42 45 파리지성 06 07 86 05 36. 입금구좌 : 파리외환은행(keb) : aalecp 2900373 1100-69 /수표보내실곳 aalecp.5 rue de Wallonns 75013 paris

파리지성 600호 기념

Smart Home/Office 콘트롤 (아파트/식당) 서울에서 스마트폰으로

제2회 그림이 있어 행복한 파리 전

파리집관리를 원격조정가능?? 세큐리티,경보,난방,에어콘,조명, 스토어,오디오,TV등을 원격조정할수 있는 콘트롤 시스템 설치 (전기,리노베이션 공사 동시 실행)

<수익금은 한국의 전당 건립기금으로 기부> 일시 : 2011년 12월 26일 ~ 31일 장소 : 에스파스 5 에뚜왈

무료방문 > 07.61.53.35.40

문의> lgmparis@gmail.com

주일 예배 : 오후 5시 30분 화요 예배 : 오후 8시 새벽 예배 : 오전 6시 30분 수요학부모기도회: 오후 2시 u

ia

er

e

ru

Em

M


공지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13

파리 풍물패 얼쑤 제 6회 정기 공연 파리 풍물패 얼쑤는 여느 해와 다름없이 신 명나는 풍물과 사물놀이로 여러분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자 합니다. 올해는 멋들어진 춤

일시 : 2011년 12월 3일 토요일, 저녁 7시30분-9시 장소 : Halle des Epinettes,

45/47 rue de l’Egalité 92130 Issy-les-Moulineaux

로그램으로 여러분을 찾아 뵙습니다. 부디 많

입장료: 어른 (13세 이상) : 5유로, 5세-12세 : 3유로, 5세 미만 : 무료 예약 및 문의 : contact@olsou.fr

이 오셔서 한국의 정취를 가득 느껴 보시기

renseignements en français : 06 89 69 53 46

이 공연은 Issy-les-Moulineaux시의 후원으로 이

바랍니다.

한국어 문의 : 06 68 88 92 29

루어집니다.

사위와 시나위 연주로 더욱 더 풍성해진 프

박종철교수의 김치 카메라산책 - 42

김치담그는 닥종이 인형 서울국제식품전'에 닥종이 인형작가 최옥자 씨가 출품한 닥종 이 인형. 깨끗하게 씻은 당근, 배추, 무를 쌓아두고 동네아주머니들이 모 여 즐겁게 얘기하며 김치를 버무리고 있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 현하였다. 김장하는 어른들 한쪽에서 무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 내아이 모습이 귀엽다. (경기도 고양) 글ㆍ사진 박종철 교수 / 국립순천대학교 김치연구소

A

v. M

ar

ce

au

주일예배 : 오후2시 수요찬양예배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예배

Tel. 01.4687.2351 / 06.8033.3545

: 오후8시 분 (토) : 오후2시 문화교실 : 오후1시 : 오후7시 30새벽기도회

: 오후4시(토) : 오전6시30분

(좌석이 많지 않은 관계로 예약을 해 주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생활광고

NO. 596 / 2011년 11월 30일(수) - 14 파리지성 광고신청

매주 월요일 오후 2시까지 전화 또는 메일, 우편으로 접수: Tel. 01 4541 5317 HP. 06 0786 0536 parisjisung@gmail.com / 63 rue gergovie 75014 Paris 에 광고 내용과 Cheque를 함께 보내주시면 됩니다. cheque ordre : PARISJISUNG

파리지성 생활광고 3개월 6개월

1단 27*40 집수리

100 560

우리건축

각종 건축 장식에 관한 모든일 도배, 타 일, 페인트, 모케트, 목수, 전기, 가구조립, 가스, 용접, 이사짐, 파출 부, 성심 성의껏 해드립니다. Tel. 0618371551/0157423782

mm

1주

2주

3주

4주

1주

2주

3주

4주

1단 광고

40 x 50

40

70

90

100

1/4면광고 105 x 150 150

200

250

300

2단 광고

80 x 50

60

105

135

150

반면 광고 210 x 150 350

650

900

1100

3단 광고 120 x 50

80

140

180

200

전면 광고 210 x 300 700

1300 1800 2200

4단 광고 160 x 50

100

175

225

250

1면 표지 하단광고 210 x 80

400

5단 광고 200 x 50

120

210

270

300

150

1년 250

크기

베스트 2404

번역과 통역 책임있는 통역과 깔끔한 번역으로

대, 중, 소규모 화물/이사 이사 전후 집 수리/공사 best2404@live.co.kr

빠리에서의 업무 수행을 도와드립니다

09 8106 8530 / 06 5063 6692

aunomdelarosenoire@gmail.com

tel: 06 2012 5337

567

가정집, 식당, 상점, 이사짐, 전기, 가구, 수도, 도배, 용접, 등 사소한 집수리의 모든것, 정직한 가격 깔끔해 해드립니다 - HP. 06 2054 3289

영어 와 불어 개인강습

영국 과 프랑스 태생 언어 전문가 들이 8월1일 부터 영어와 불어 일기 쓰기 회화를 책임지고 가르칩니다. 강습료는 한시간에 15유로 입니다. www.idnetwork.org/ research and training 국제개발원(internat. development network) Tel : 33(0)979353492 / Email : idnetwork@wanadoo.fr

Uncle JIM Service

민박-빠리가자

파리하나 익스프레스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H.P 06 6862 2424

프랑스풍 주택 우아한 침실쾌 적 편리, 지하철근접, Tel. 01 4893 9680 06 0340 6848 M(8).Maison-Alfort-Stade

01.4935.0501 / 06.1749.4334

다와식당 구인

성업중인 한식당

다와식당에서 홀 지배인 및 주방 보조 구함 (노동신고 가능자)

인수하실분

tel: 01 4577 3711

tel: 01 4577 3711

mm

전문 국내외 포장이사 (공무원.주재원.학생귀국이사) 면세서류서비스 / 각종그림 IKEA운반,배달 paris-hana@hotmail.fr

s.a.r.l 아이에펠 콘도

300

500

600

연간 회원 및 비영리단체는 25% 할인

책임과 전문성의 이사공사

가봉 집수리

짐에 관한 다양한

크기

ASIE CONTACT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부터 중년사이의 프랑스 남자들과의 진실하고 지속적인 만남 을 만들어 드립니다

TEL 01.42.25.15.24

103 rue de sèvres 75006 PARIS

통역,번역,논문지도및 교정 (프랑스 상업등기부 등록회사) tel/ 06 73 65 77 57 e-mail/ mhassug@tahoo.co.kr

www.graphipro.fr 서도출력 인터넷으로 가격과 부수를 확인후 주문할 수 있어 편리합니다.

현수막 (프랭카드 ) , 대형인화지 , 카달로그 , 엽서 , 포스터 , 명함 , 메뉴판 , 테이블시트 , T - S h i r t , 전단지 , 논문 , 포토폴리오 , X b a n n e r 심플배너 ( 2 9 . 7 c m x 1 2 0 c m ) = 1 0유로

T. 01 467 000 63

(한국어). 06 17 98 62 01 (중국어). 06 10 41 91 77 1-3 rue Baudin 94200 Ivry sur Seine (Périphérique).Porte d'Ivry (M).7 Pierre et Marie Curie (Tram).3. Porte d'Ivry


재불한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포2세들의 한글교육과 재불한인들의 공간

한국의 전당 CBMC는 Connecting Business & Marketplace to Christ약자입니다. CBMC의 비젼은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며,

파리지성 캠페인 - 한국의 전당 건립을 위한

1 0 0 , 1 0 0 0 , 1 0 0 0 0운동

경제 단체중 가장 영향력있는 사명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CBMC 사명은 실업인과 전문인을 전도하고 양육하며,성경의 리더쉽을 개 발하여 영적비즈니스 리더로 육성하여,일터현장에서 성경적 경영을 적용

우리모두 하나되어 파리중심에 한국의 전당을 건립합시다 . 재불동포 사회의 오랜 염원인 한국의 전당 건립목표가 1년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지난 10년여 간에 천명 이상의 재불동포들이 동참하여, 지금까지 28만유로가 모금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결실을 맺을 때입니다. 이 공간이 마련되면, 한글학교를 위시하여 한인회관, 각종 전시회 및 공연 등 한인행사를 치를 수 있는 '재불동포 종합센터'가 될것입니다. - 파리지성 캠페인 우리 모두 하나되어 힘을 모으면 한국의 전당은 세워집니다. 한국의 전당건립, 백천만운동

이를 이루기 위해 파리지성은 1년 동안 100, 1000, 10000 캠페인을 펼칩니다.

으로 조찬모임을 가지며,유럽,미주,아시아 대회등 각 대륙별 대회와,한국 대회,세계대회와 CMMC대학등을 통해 CBMC 영적 재충전을 위해 학습 하며,하나의 비젼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파리cbmc 매월 정기모임 강연에 누구나 참석하실수 있습니다.

발표 매주 파리지성 12면 문의 모금협회 : 06 83 86 42 45 파리지성 : 06 07 86 05 36 parisjisung@gmail.com

프랑스에서 자라나는 우리들의 아이들, 프랑스로 꿈을 펼치고자 올 미래의 우리 동포들, 그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질문/답변 www.parisjisung.com 게시판 이용 입금구좌 : 파리외환은행(keb) : aalecp 2900373 1100-69

우리 모두 하나되어 파리중심에 한국의 전당을 건립합시다.

수표보내실 때 aalecp 5 rue de Wallonns 75013 paris

St-Anne 골목내에 문을 연, 새로운 분위기 저렴한 가격의 전통 한식당

Restaurant

이러한 비젼과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회원들은 각 지회별로 매주 정기적

기간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100 : 재불동포 100개 기업 300유로이상, 1000 : 재불동포 1000인 100유로이상, 10000 : 재불동포 10000인 1유로 이상 모금과 서명

우리는 할수 있습니다.

하여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입니다.

AHSSI

12월 29일 저녁 만찬 / 비빕밥 식당 19시30분

진병철,정택영 회장간증(두번째) 정기모임 : 매주 목요일 7시 30분 Arno Cafe(14구 새벽기도회 장소 옆)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19시에는 강연 및 만찬 모임이 있습니다. 파리 cbmc회원가입 및 문의 : 06 07 86 05 36

21년 전통의

만 트레블

여행의 모든 것, 지금부터 만 트레블과 상의 해주세요. '이제 오페라에서 여러분을 모십니다" 7, 14번선 Pyramides역 2분 거리

Reservation : 01 42 60 95 54 14 rue Therese 75001 Paris Metro 7, Pyramide, Opera

루브르 박물관&오페라 각 5분 거리

Tel. 01 4279 0103 / resa@mantravel.com Man& Travel 16 rue Therese 75001 Paris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