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터 바순을 배웠고, 나는 ‘프렌치 혼(호른)’을 배웠다. 피아노는 5세 때부터 (왼쪽부터) 로버트 페리크-몰리나리, 데이비드 페리크-몰리나리.
연주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시켜서 시작했고, 프렌치 혼을 부는 연습을 많이 하면서 연주자가 되는, 정해져 있는 길만 가야 했다. 악기를 너무 잘 다루는 한국인들과 경쟁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처음 밴드를 시작할 때 기계적이고 딱딱한 룰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겠다는 뜻으로 ‘프렌치 혼 리벨리온’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데이비드가 먼저 음악을 시작했다면 지금쯤 ‘바순 리벨리온’으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내가 먼저 음악을 시작했으면 ‘스페이스 셔틀 어스(Space Shuttle Earth)’라는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세상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우주에 가는 거라는 생각에 우주를 참 좋아한다. 로버트 우주에 가서 외계인을 만나는 얘기의 음악을 만드는 4월 5일 오전, 홍대 와우산체육공원에서 프렌치 혼 리벨리온을 만났다. 지난
이유도 그거다. 우리의 음반 <The Infinite Music of French Horn Rebellion>
일요일에 서울에 도착해 바로 그날 밤 공연을 끝내고 뮤직 비디오 촬영까지
스토리는 정말 이상한데, 어떤 남자가 미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브라질에 여행
마쳤다기에 예민해져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들은 동양에 있는 어느
가고 또 남극으로 갔다가 우주로 날아가서 외계인을 만나고 죽는 얘기다. 이
낯선 나라의 체육공원을 보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뉴욕에서도 유행에 가장
캐릭터의 경험에 따라 트랙이 흘러간다.
민감한 리프와 리듬을 만들어내는 이 형제 듀오가 공원 중앙에 있는 역기를
사람들이 ‘프렌치 혼 리벨리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편견은? 데이비드
들고 장난을 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무척이나 초현실적이었다. 형인
우리에 관한 모든 것에 조금씩 오해가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작은 해프닝이
로버트(보컬, 신시사이저, 프렌치 혼)는 매사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다가도
있었다. 우리는 보통 실루엣을 보여주기 위해 뒤에서 비추는 조명을 좋아하는
배드민턴장 안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실력에 관심을
편인데, 어떤 팬들은 왜 조명을 앞에서 비추지 않느냐는 불만을 가진 것 같다.
보였고, 촬영 도중 동생과 배드민턴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촬영할
로버트 미국에서는 우리를 뉴 히피라고 생각한다. 트렌디한 음악을 좋아하고
때가 되자 동생인 데이비드(보컬, 프로그래밍, 키보드)는 ‘내가 신경 쓰지
자기만의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냉담한 이미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않으면 아무도 의상이나 액세서리에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투덜대면서
짜증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다. 트렌디한 문화를 따라가는 힙스터라는 얘기도
가방에서 셔츠를 꺼내 형에게 건네주고 자신도 갈아입었다. 이들의 다음
있지만, 나는 우리만의 독특한 걸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힙스터들이
음반에 서울과 배드민턴을 주제로 한 노래가 수록되지 않을지. 1월에 발매된
우리를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의 음반 <The Infinite Music of French Horn Rebellion>이 다른 나라에
음악이 직업이 되었다고 처음 생각한 순간은? 입국 수속을 할 때 직업란에는
아직 출시되지 않아 현재 국내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는 걸 보면 기대해볼
뭐라고 쓰나? 로버트 학생일 때부터 직업란에 가수라고 썼다. 데이비드 나는
만하다.
어릴 때 엄마한테 받은 압박 때문에 불안해서 그런 걸 쓰지 못했는데…
사진 HWANG HYE JEONG 통역 WOO GA HEE
‘스스로 작곡가다’라고 생각했을 때부터 좋은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못 말리는
형제
로버트와 데이비드 형제로 이루어진 일렉트로 팝 듀오 프렌치 혼 리벨리온(French Horn Rebellion)이 4월 초 공연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그들은 아직도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듣지만 모험적이고 즉흥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E D I TO R
K
I
M
Y
O
O
N
J
U
N
G
친구들에게 한국에 간다고 얘기했나? 데이비드 얘기했더니 친구들이 엄청
아직까지 부모님에게 듣는 잔소리가 있다면? 데이비드 부모님은 우리가 하는
부러워했다. 그들도 한국에 오고 싶어 했다. 로버트 우리에게 한국은 굉장히
일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멀고 이국적인 나라다. 꼭 상상 속에만 있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랄까.
때문에 어릴 적부터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멀긴 진짜 먼 것 같다. 데이비드 옛날에 코리아 타운 근처에서 일했는데 동료
하거나, 형이 광고 음악을 한다고 했으면 어머니가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중에 존이라는 한국 사람이 있어서 맛있는 식당과 소주를 소개해줬고,
모른다. 하지만 그건 창조적인 음악인에게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자기 잔은 스스로 채우면 안 된다는 것도 알려줬다.
어릴 적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나? 로버트 농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가
지난 일요일 홍대 롤링홀에서 열린 공연은 어땠나? 데이비드 에너지가
지휘자를 꿈꾸기도 했다. 데이비드 축구를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농구가
굉장했다. 관객과 스태프 모든 게 어우러져서 너무 좋았다. 우리가 한 것 중
하고 싶었고 다시 야구로 바뀌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야구 카드가 인기였기
최고로 꼽힐 만한 콘서트였다.
때문에 그 카드에 얼굴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건
그 자리에 있었던 관객들의 점수를 매긴다면? 로버트 10점 만점에 12점!
미식 축구 선수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 팬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이곳에서 우리에게
음악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로버트 서핑과 비디오 게임도
관심을 보일 사람들이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우리가 만드는 음악은
한다. 요즘은 늑대가 세상을 구하는 게임에 빠져 있다. 게임을 완결짓는 데
굉장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팬들을 그냥 친구로 생각한다. 데이비드 음악을
50시간 정도 걸렸다.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는 건 나에게서 중요한 걸 보여주는 거다. 그렇기
데이비드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본다. 최근엔 영화사와 관련된 클래식 영화를
때문에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 신이
보는 걸 좋아하는데 히치콕 영화에 완전 빠졌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대부분
난다. 그리고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좋아할 만한 사람들’
형과 따로 시간을 보낸다. (웃음)
이라는 게 스스로 솔직하고 진실한 음악을 만든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다. 이번 아시아 투어를 하면서 곡을 쓸 만한 경험이 있었는가? 로버트 어제 곡을 썼는데 피터 앨런의 영향을 받은, 펑키하고 유치(?)한 곡이다. 서울에 머무는
radar
동안 VJ 영삼과 ‘What I Want’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 그동안 그가 소개해준 빠른 템포의 음악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 그들과 함께 보낸
+
시간에서 영감을 받았다. 데이비드 지난 일요일 공연을 하고 나서 막 밴드를
스마트폰으로 옆의 QR코드를 비치면 뉴욕의 천재 형제 듀오 프렌치 혼 리벨리온의 ‘This Moment’ 뮤직 비디오를 볼 수 있습니다. 또, ‘This Moment’가 수록된 음반 <The Infinite Music of French Horn Rebellion>은 향뮤직이나 대형 음반 매장 또는 아이튠즈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시작하는 여자애들을 만나 즉석 연주를 하기 시작했는데 멜로디가 점점 바뀌었다. 노래에 그녀들의 스토리와 감정을 넣어 부르다 보니 처음 시작한 노래와는 영 달라졌다. 우리는 이런 일을 자주 한다. 보통은 형이 아이디어와 중심적인 콘셉트를 제시하면 내가 그걸 가지고 프로듀싱하고 조금씩 바꾼다. 어릴 적부터 클래식 음악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로버트 데이비드는 7세 때
ns24 프렌치인터뷰-ok.indd 1-2
people
2011.6.24 2:19:1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