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veller] 흰살 생선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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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환 셰프의 ‘팬프라이한 자연산 광어, 화이트 베샤멜소스, 루콜라 샐러드’ 3가지 채소를 넣어 조리한 화이트 베샤멜소스를 넉넉하게 담은 뒤 촉촉하게 팬프라이한 광어와 루콜라 샐러드를 올린다. 진한 화이트 베샤멜소스와 촉촉한 광어에 루콜라 향이 더해져 밸런스를 이룬다.

V S 이충후 셰프의 ‘광어, 감자, 허브 샐러드’ 파슬리, 처빌, 파라곤과 오븐에 구운 감자칩이 재료의 모습을 가리고 있어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흰살 생선 변주곡

허브 샐러드를 살짝 들춰내면 그 아래 으깬 감자와 팬프라이한 광어가 숨어 있다. 버터에 차이브, 샬롯, 레몬즙을 가미한 소스를 살짝 뿌렸다.

흰살 생선은 흰 스케치북 같아서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린다. 빈 공간을 어떤 색으로 채울지는 오롯이 셰프의 몫. 류니끄의 류태환 셰프와 제로 콤플렉스의 이충후 셰프가 광어를 요리했다. 두 작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THE TRAVELLER SEP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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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니끄·류태환

제로 콤플렉스·이충후 러드로 밸런스를 맞췄다. 광어 요리가 기본에 충실한 맛이라면 모시조

이충후 셰프의 요리는 섹시하다. 오늘의 생선 요리는 ‘광어, 감자, 허브

힘을 뺀 프랑스 요리예요. 찐득한 소스가 잔뜩 나와서 남은 소스에 빵

을 살았으며 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일본, 영국, 호주 등 해양 국가를

개를 사용한 요리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한 쪽이다. “KBS2 TV <굿모닝

샐러드’. 팬프라이한 광어에 으깬 감자와 파슬리, 처빌, 파라곤이 들어

을 찍어 먹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요리를 탐구합니다.” 그의 스승

옮겨 다닌 통에 늘 바다 곁에 머물렀다. 가로수길에 ‘류니끄Ryunique’

대한민국>에서 ‘자연을 담은 밥상’이라는 코너를 맡아 일주일에 한 번

간 허브 샐러드, 오븐에 구운 감자칩을 곁들인 다음 버터에 차이브, 샬

도 ‘미소 수프에 담겨 나오는 푸아그라’, ‘바삭한 고등어와 그린 타바스

를 오픈하고 오너 셰프가 된 지금이, 바다에서 가장 오래 떨어져 있는

씩 지방의 식재료를 찾아 다니고 있어요. 최근에 충남 보령에서 가까운

롯, 레몬즙을 가미한 소스를 살짝 뿌렸다. 광어와 으깬 감자가 부드럽

코 그린 페퍼, 열대 과일 리치’ 등 전위적인 요리로 명성이 자자하다.

기간이다. “어린 시절에는 해양 학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해양 연구소

원산도라는 섬에 갔는데 할머니가 모시조개로 국물을 내서 칼국수를

게 씹히는가 싶더니 감자칩의 바삭한 식감이 끼어들고 갑자기 요리가

이충후 셰프의 요리 또한 실험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는 해

의 물고기와 함께 자랐어요. 자연스럽게 물고기가 알에서 부화하고 치

만들어 주셨어요. 원산도에서 잡은 조개, 고추, 양파, 소금밖에 안 들어

반대로 몸을 뒤틀어 입안을 개운하게 깨우는 허브 샐러드가 나타난다.

산물을 가장 혁신적으로 구워삶는 요리사다. “저는 해산물과 육류를

어가 성어로 자라는 과정을 지켜봤죠.” 아버지의 권유로 셰프가 된 이

갔는데도 너무 맛있더라고요.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요리로 만들게 됐어

어제의 생선 요리인 ‘광어, 토마토, 모차렐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한 접시에 담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어서 소고기 스테이크에 성게를

후 어린 시절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생선은 종류별로 습성과 생김새

요. 모시조개, 호랑이콩, 연두부, 타피오카 등으로 섬을 만들고 멸치 빵

만큼 감쪽같이 모습을 바꿨다. 그 전에 광어는 ‘광어, 셀러리액, 마스카

올리거나 돼지고기와 조개를 매치하거나 대구간 크림을 소고기와 함

가 천차만별이라 다듬고 조리하기가 까다로운데 그는 셰프가 되기 위

가루로 백사장 같은 느낌을 연출했습니다.” 그는 접시에 모시조개 즙

포네치즈’ 또는 ‘광어, 호박, 리코타’인 적도 있었다. 그의 요리는 다양

께 서브하는 식으로요.” 달리 말하면, 그는 육류 요리를 가장 파격적으

한 조기 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런 인연이 차례차례 쌓이더니 최근에

을 부어 바다를 만든다. 접시 안에는 이내 원산도 앞바다가 담긴다.

한 종류의 식감으로 입안을 긴장시킨다.

로 선보이는 요리사라고도 할 수 있다. “제로 콤플렉스에서 기존에 접

는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 홍보대사까지 맡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 전통 요리를 변주해 자신의 스타일로 만드는 것이 류태

레스토랑 내부에도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서비스 테이블부터 식탁, 창

하지 못했던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익숙한 식재료를 낯선 방법으

류태환 셰프를 만나기 위해서 류니끄를 방문했다. 류니끄는 자신의 성

환의 특기다. 류니끄의 시그니처 디시인 ‘돼지 삼겹+가오리 날개’가 대

문막이까지 스테인리스 재질의 번쩍이는 쇠붙이에 둘러싸여 잠시 낯

로 조리하기도 하고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기도 하죠.” 그의 식탁에선

‘Ryu’와 영어 단어 ‘unique’를 조합해 만든 이름. 초록에 핑크로 포인트

표적인 요리다. 전라도의 홍어삼합을 모티브로, 홍어 대신 가오리, 돼

선 혹성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온 느낌이다. 그 흔한 배경 음악도 없다.

가지가 디저트로 오른대도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포크를 든 식사의 주체는 자연스럽게 음식과 맞은편 사람에 집중하게

씩 메뉴를 바꾸고 있는데 앞으로는 2~3일 간격으로 다른 메뉴를 선보

된다. 이 미스터리한 레스토랑은 오직 저녁 시간에만 운영하며 메뉴는

이는 게 목표예요.”

코스 요리 하나뿐이고 A4 용지에 재료의 이름만 명시되어 있다.

메뉴 선택권이 없는 대신 셰프가 코스 중간, 어딘가에 숨겨둔 선물을

점점 이충후 셰프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한 네오비

기대하라. 이름 하야 히든 디시hidden dish. 생선 요리든, 고기 요리

스트로 ‘르 샤토브리앙’과 ‘르 드팡’에서 이나키Inaki Aizpetarte 셰프

든, 샐러드든, 메뉴판에 기재되지 않은 요리가 깜짝 등장한다. “솔직히

와 함께 일했었다. 르 샤토브리앙은 <레스토랑> 매거진이 선정한 월드

말해서 히든 디시야말로 눈치 보지 않고 맘대로 만들 수 있는 요리예

50 베스트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몇 년째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제

요. 가장 호불호가 갈렸던 요리는 ‘고등어, 천도복숭아, 참깨’였는데 생

치고 상위에 랭크되어 파리 미식계를 들썩이게 한 곳이다. 르 드팡은

고등어를 초에 절여서 토치로 겉만 살짝 그을린 다음 천도복숭아 피클

르 샤토브리앙에 이은 이나키 셰프의 두 번째 레스토랑이다. 7월 초에

과 참깨를 함께 냈죠.” 손님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이 메뉴는 다음

오픈한 제로 콤플렉스가 미식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이유 또한 한

주에 ‘이베리코 등심, 천도복숭아, 참깨’로 변주되어 메뉴판에 올랐다.

국에서 처음 접하는 네오비스트로이기 때문. “네오비스트로는 어깨에

앞으로도 이충후 셰프의 화려한 변주곡은 계속될 예정이다.

를 준 외관이나 로고가 이름처럼 유쾌하다. 여기서 그만의 ‘류니끄한’

지 수육 대신 돼지 삼겹살, 김치 대신 알배추, 쌈장 대신 그린칠리살사

메뉴를 만나볼 수 있다. 그가 정의하는 류니끄의 요리는 일본 요리의

를 이용해 만들었다. “가오리살을 떠서 돌돌 말아 진공 포장한 뒤 저온

기본과 프렌치의 기본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퓨전. 이는 일본에서 스시

에서 부드럽게 익힙니다. 삼겹살 역시 돌돌 말아서 4시간 정도 푹 삶은

와 가이세키 요리에 정진하고 호주와 영국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뒤 팬에 살짝 구워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하게 두 번 조리합니다. 그

서 일했던 이력에서 기인한다. 거기다 바다라는 영감의 원천과 그가

리고 알배추를 소고기 육수로 글레이징하고 일본 된장과 고추장, 여러

경험했던 얘기들을 가미하면 어느새 훌륭한 요리 한 접시가 완성된다.

가지 허브로 맛을 낸 그린칠리살사를 넣어서 각 재료의 맛을 조화롭게

오늘의 요리인 ‘팬프라이한 자연산 광어, 화이트 베샤멜소스, 루콜라

만들죠.” 그가 많은 곳을 돌아다닌 만큼 우리는 류니끄에서 다양한 식

샐러드’와 ‘익힌 모시조개, 비트 피클, 멸치 빵가루, 타피오카 펄, 미역

재료와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퓌레, 모시조개 국물’도 그런 요리 철학과 경험 아래서 탄생했다. 일본

셰프는 언젠가 부산에 내려가 선박 엔지니어가 되길 꿈꾼다. 요트를

에서 익숙하게 칼을 다루던 솜씨로 광어를 손질한 다음 3가지 채소를

타고 유유자적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

넣어 조리한 화이트 베샤멜소스로 부드러운 맛을 강조하고 루콜라 샐

는 삶이 제2의 인생이 되길 바라면서. 바다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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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힌 모시조개, 비트 피클, 멸치 빵가루, 타피오카 펄, 미역 퓌레, 모시조개 국물.’ 서해의 원산도 백사장을 모티브로 만든 요리다. 그릇에 모시조개 국물을 서서히 부으면 백사장에 밀물이 밀려오는 장면이 연출된다.

2 류니끄의 오너 셰프, 류태환. 낚시, 다이빙 등 바다와 함께하는 거라면 뭐든 사랑하는 바다 사나이다. 얼마 전 남해로 자료 조사를 떠났으니 류니끄의 새로운 요리를 기대해도 좋다.

에디터 김윤정 포토그래퍼 서지연 촬영 취재협조 협조류니끄 류니끄02-546-9279 02-546-9279제로 제로콤플렉스 콤플렉스02-532-0876 02-532-0876

류태환 셰프는 바다 사나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과 남해에서 20년

1 제로 콤플렉스의 오너 셰프, 이충후.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 이름인, 제로 콤플렉스의 해석을 전적으로 손님들에게 맡긴다. 어떤 이는 ‘콤플렉스가 없는’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영의 집합’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2 ‘오징어, 청경채, 율무, 게버터.’ 촉촉한 오징어와 청경채, 게버터에 익힌 율무의 조화가 새롭다. 옆에 레몬 크림도 살짝 곁들였다. 쫀득쫀득한 오징어와 통통 튀는 율무가 번갈아가며 씹히는 재미를 느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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