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운재 예술혼展
살은 죽으면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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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재 예술혼展
살은 죽으면 썩는다
목차
인사말
03
구름의 집 -편운재 예술혼展을 기념하며
05
Ⅰ. 어머니를 기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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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편운의 예술혼을 펼친 집
27
Ⅲ. 문인들의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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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편운재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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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편운재 주요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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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과 중간계,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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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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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집 한 채를 전시하여 공개합니다. 궁궐도, 사원도, 아흔아홉 간 고 래등 같은 기와집도 아닌, 작고 초라한 시인의 집 한 채를 보여드립니 다. 이름 하여 ‘편운재片雲齋’입니다. 이 집은 조병화 시인이 당신 어머님 이 작고하신 다음해, 그러니까 1963년 한식날 기공해서 1964년에 준 공한 시인 어머님의 묘막墓幕이었습니다. 효심이 지극했던 조병화 시인 은 돌아가신 어머님을 가까이서 모시기 위해 이 집을 짓고 출입문 옆 벽에는 ‘살은 죽으면 썩는다’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돌에 새겨 넣었습 니다. 시인의 말씀대로 이 집은 “당신을 지키옵는 창문/밤이면 밝히 는 등피/낮이면 여는 창문/한가로이 당신과 같이하는 이 자리/당신 을 위하여 당신 곁에/당신을 수시로 뵐 수 있는 자리 골라서/돌 모아” 세운 어머님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말 그대로의 묘막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집에서 시인은 어머님을 기리면서, 한편으로는 인생과 역사와 조국에 대한 사색을 펴 나갔습니다. 어머님의 영혼만이 곁에 있고, 대화를 나눌 그 누구도 없는 고독 속에서 시인은 그렇게 생철학을 가다듬어 나갔 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생이란 허무와 고독의 존재이고, 그 고독을 사랑으로 위안 받으며, 나아가 꿈으로써 역사에 집을 지어 영원의 생 명을 얻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처럼 이 집은 시인에게 “바람 속에 잠시 마련한 의짓간/구름 덮고 누워 눈 감으면/시는 영원 을 보는 나의 창”이 되어 참으로 많은 시를, 그림을, 서예작품을 창작 했던 곳입니다.
또한 이 집은 작품 창작의 사이사이에 문인들의 사랑방 구실도 했 습니다. 이헌구, 김광주, 이봉구, 유호, 박연희, 양명문, 오영수, 안수길 등등 이 땅의 현대문학을 이룩해 나간 시인, 소설가, 극작가들이 이곳 을 찾아 마음을 쉬고 새 작품의 영감을 받아간 곳이기도 합니다. 그 수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문필가들이 다녀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후배 문인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제자들이 이곳을 찾아 조병화 시인의 예술혼에 접하면서 감화를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편운재는 오래고 낡은 초라한 한 채 집이지만, 시인의 어머니와 시인, 그리고 수많은 예술인들의 얼이 담겨 있는 한 결코 초라한 집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허물어져 가는 이 집을 수리하고 위에 말씀드린 세 부분에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여 전시했습니다. 이 전시회가 많은 분들에게 맑은 기쁨이 되고 마음의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6년 9월 조병화문학관 관장
조진형
구름의 집 -편운재 예술혼展을 기념하며 박준 오늘은 지고 없는 능소화에 대해 쓰는 것보다 그곳에 있는 작은 집에 대해 쓰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적막으로 고요를 넓혀가고 있다는 구름 시인의 집 말입니다. 그 집의 고요는 한두 해 쌓인 것이 아닙니다. 집의 주인이었던 시인이 세상을 떠난 십여 년 전부터 아니 시인의 종교였던 어머니가 시인 곁을 떠난 후부터 시작된 오십 년도 넘은 고요입니다. 그 집의 고요 속에서는 소리가 들리는 방식이 다를 것입니다. 시인의 손을 오래 탄 물건들이 튕겨내는 빛의 기운이 다를 것입니다. ‘시’라고 발음할 때 만들어지는 입가의 모양이 더 둥글어지고 시를 대하는 마음은 더 순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 살던 구름 시인에 대해 더 깊고 오래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름 시인은 그 집을 두고 ‘생존의 숨은 주소’라 했습니다. ‘지구의 이마’라 했습니다. 자신의 ‘하늘’이자 ‘사막’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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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터’이자 ‘둥우리’라 했습니다. ‘먼 귀향’이라 하기도 했고 ‘나의 휴식’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고는 종내 ‘혼자 왔다가 혼자 떠’나는 곳이라 했습니다. 그 집에 ‘혼자 왔다가 혼자 떠’났을 시인의 모습을 생각하면 고독과 슬픔의 마음이 앞서지만 오늘은 그 집에 대해 더 쓸 것이므로 슬픔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시인이 오래전 썼던 문장들은 버려지지 않고 지금도 그 집의 고요 속으로 허정허정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오면 그 집에 ‘그저 멀리 갔다고만 해라’ ‘남은 세월을 주워먹는다’ 라는 문장도 도착할 것입니다 그 문장들은 서로의 어깨를 털어줄 것입니다 그러다 겨울의 답서처럼 다시 봄이 오고 ‘멋’, ‘사랑’, ‘꿈’, ‘어머니’ 같은 몇 개의 다정한 말들이 집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 먼 발길에 볕과 몇 개의 바람이 섞여들었을 것이나
박준 시인. 1983년 서울 출생.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다. 제31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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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어머니를 기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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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진종 여사와 조병화,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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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片雲齋 이름하여 ‘편운재’ 당신 곁, 솔나무 밭, 낮은 언덕 당신을 수시로 뵐 수 있는 자리 골라서 당신의 묘막 깎아서 세웠습니다 남향으로 멀리 천덕산 마루 오른쪽 서편엔 아버지 할아버지 왼쪽 동편엔 떨어져서 당신이 계시옵는 자리 중 가운데 당신을 지키옵는 창문 밤이면 밝히는 등피 낮이면 여는 창문 한가로이 당신과 같이하는 이 자리 청청한 별, 우물에 괴고 너구리, 산토끼 들러서 가는 온 밤중 방에 누우면 당신의 손목 이름하며 편운재-조각 구름의 집 당신을 위하여 당신 곁에 당신을 수시로 뵐 수 있는 자리 골라서 돌 모아 세웠습니다 한 세상 조각 구름 둥둥 먼 하늘 지면 그뿐, 당신 곁에 창을 마련했습니다. - 제21숙 『어머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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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참으로 부지런하셨다. <죽으면 썩을 살 아껴서 무엇하니>라는 인생관으로 아침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시고, 밤에는 제일 늦게 주무시곤 했다. 나는 이러한 부지런한 행동에서 말없이 젖어드는 그 교훈을 얻어내곤 했다. 그 <근면성>, <성실성> 그리고 그 <정직성>. 한번은 어머님 방에 밤이 깊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건너가 보니 일을 하고 계셨다. 내가 “그만 주무세요” 했더니, “너의 방에 불이 켜져 있는데 어떻게 먼저 자니”하셨다. 이 말씀에 나는 어머님의 그 사랑을 느꼈다. 그 다음부터는 일부러 먼저 불을 끄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머님 방에 불이 꺼지면, 다시 나는 내 방에 불을 켜놓고 공부를 하곤 했다. - 조병화, 『나의 생애 나의 사상』, 도서출판 둥지, 1991,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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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
살아서 이 살 다 쓰고
말씀 중의 말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야지
죽으면 썩을 살 애껴서 무엇하니
홀로 잠자리에 드시던 당신 그 말씀 그 모습
이제 좀 쉬십시오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일 아침에는 좀 늦게까지 쉬시지요
이제 고만,
일하는 사람이 송구스러워합니다
말씀드리면
오냐 알았다
놀면 무어하니
그러나 마당이구 부엌이구 뒤뜰이구
살면 얼마나 산다고
말끔히 몽땅 치워 놓으시는 건 당신
죽으면 썩을 살
아, 날마다 날마다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을 누구보다 일찍이
때때로 생각나는 당신 말씀
밤을 누구보다 늦게
말씀 중의 말씀
하루를 온종일 - 제21숙 『어머니』에서
추운 겨울에도 무더운 여름에도 부지런하시던 당신 그 말씀 그 모습 제 방에 불이 꺼져야 불끄시고 주무시던 그 말씀 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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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자택 2층 서재에서, 1962
가정불화가 잦아 나는 2층 서재에서 자곤 했었습니다. 어떨 때 아침 일찍이 어머님이 당주동 형님 댁에서 혜화동 내 집으로 ‘이것들이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들르실 때, 내가 추운 겨울 에도 2층 방에서 누워 자는 것을 보시곤, “임마 내려가 자라, 지레 죽겠다”하시며 “남자 자식 이 기분 나쁘면 나쁘다, 하면서 허허 웃어버릴 것이지”하시곤 하셨습니다. 참으로 이런 일로 하여 어머님의 가슴을 많이도 아프게 해드렸습니다. - 조병화, 『그리다 만 초상화』, 지혜네, 1997,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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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걸러도 하루 걸러도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어 너 왔구나
당신은 그저 보고 싶은 거
자식 무심도 하지
만나고 싶은 거
어디 손 한 번 잡아 보자
같이 있고 싶은 거
이틀 걸러도
항상 옆에 있었으면 하시는 거
어 너 왔구나
없으면 섭섭한 거
자식 무심도 하지
무심한 거
어디 손 한 번 잡아 보자
혼자 떨어져 있는 생각
사흘 걸러도
서운한 거
어 너 왔구나
그저 허전한 거
자식 무심도 하지
비어 있는 거
어디 손 한 번 잠아 보자
이러다가 내가 가면
나흘 걸러도 어 너 왔구나
어 너 왔구나
자식 무심도 하지
자식 무심도 하지
어디 손 한 번 잡아 보자
얼마나 기다렸다구
닷새 걸러도
어디 손 한 번 잡아 보자
어 너 왔구나
부디 구순히 지내라
자식 무심도 하지
너만 참으면 되는 거
어디 손 한 번 잡아 보자
잠깐이다
엿새 걸러도
네 에미의 마음은 항상 줄에 앉은 새다
어 너 왔구나 자식 무심도 하지
하루 걸러도
어디 손 한 번 잡아 보자
잠시 걸러도. - 제21숙 『어머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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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경희대를 구경시켜드리고, 1961
경희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기고 어머님을 모셨습니다. 학교 구경을 시켜 드릴 목적으로. 어머님이 택시에서 내리시자마자 “네가 이렇게 큰 돌집의 선생이냐!”하고 놀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철도 나지 않았는데”하며 말을 이으셨습니다. - 조병화, 『나의 생애』, 도서출판 영하, 1994,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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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너 언제 얘, 너 언제
다 아시고 말씀하시는 당신
어른이 되니
그 말씀
철이 드니
그렇습니다
나이 사십이 적으니
사람의 자식
내일 모레면
도리가 아니지요
너두
사내 자식이 못 되지요, 하면서도 풀 곳 없는 이 덩어리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이었습니다 집안을 두루 살피러 들리신 당신
하는 수 없이
근심 되시어 들리신 첫 새벽
당신 늙은 손 잡고 내려가는
이층
계단
침대에 깊이 묻혀 있는 저를 흔들며 하시던 말씀
찬 바람
이러다간 병들어
넌 언제 철이 드니
얼어 죽겠다
어른이 되니
아무리 몸이 강철이라 해도
그 말씀
이게 무슨 꼴이냐
아, 당신이 모르시는 하나가 있습니다.
사내자식이 말할 거 있으면 확확 말해 버리고
- 제21숙 『어머니』에서
확 마음 풀 것이지 올 때마다 네꼴 이 꼴 마음 아프다 늙은 에미 지레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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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진종 여사 장례식, 1962
왼쪽부터 조카 조우형, 조병화, 둘째형 조병기, 큰형 조병선, 장손 조기형,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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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음력 6월 3일 1962년 음력 6월 3일
하얀 새 옷 갈아 입으시고
아침 일곱 시
누워 계신 모습
맑은 아침 해가 높이 솟고 있었읍니다
일체가 고요한 고마움
당신은 그 시간
당신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시 깨시지 않는 고요한 잠에 드셨습니다
나 먼저 간다
영원하다는 건 이걸 말하는 거
얘,
그 영원한 자리로
잠깐이다
자리 옮기시어
구순히 지내다 오너라
고요히
옳지
극히 고요히
너 거 있구나
정히
곁에 있구나
눈 감으시고
고맙다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당신 깊은 잠 깨실까 당신이 이 세상에서
참는 이 마음
마지막 그 수명 거두시던 모습
아, 먼 흐느낌이었습니다.
극히 고요하셨습니다 당신이 평소에 말씀하신 대로
- 제21숙 『어머니』에서
당신이 찾으시던 그 부처님 곁으로 가심에 맑은 해 솟아 오르는 아침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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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진종 여사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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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너무 멉니다 어머님, 너무 멉니다 당신이 가신 길 따라 산을 넘음에 당신이 부르시는 곳 아득히, 너무 멉니다 봉우릴 넘으면 또 봉우리 길 무한 고독한 영원 동행턴 벗도 이젠 보이질 않습니다 철없이 애타던 거 사랑했던 거 미워했던 거 기뻐했던 거 슬퍼했던 거 고집했던 거 지키던 거 이젠 구름 남은 건 저린 가슴뿐입니다 혼잡니다 혼자 죽는 그 아픔을 가르쳐 주십시오 봉우리 봉우리, 넘어 버리고 가는 길 이건 어머님, 너무합니다. - 제21숙 『어머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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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묘소 해마다 봄이 되면 시비 앞에서,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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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되면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제21숙, 어머니,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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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팔순날, 196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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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로 81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옵니다 주시옵신 가장 낮은 목소리으로 이야기 하옵니다 참으로 <위대>하옵니다 그 마지막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그 <있음>.
陳 鐘(진종), 佛名(불명)陳 遠行心(진원행심) 1982.12.28 - 1962.7.4 영원한 침묵 어머님께
제10숙, 낮은 목소리로,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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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편운의 예술혼을 펼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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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29년 이 고장에서 떠나 1962년까지 서울에서 살면서 방학 때마다 그리 운 정으로 한번씩 내려가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1962년 6월 3일, 어머님이 세 상을 떠나신 뒤론 어머님 산소 옆에 작은 묘막을 세우고 자주 시골에 내려가곤 했 다. 묘막 이름은 편운재(片雲齋)라 했다. 어머님 제사는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 조병화, 『나의 생애 나의 사상』, 도서출판 둥지, 1991,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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片雲齋 記 보이는 곳엔
가벼이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떠나려 했어요
눈이 오가는 곳엔
번창의 폐허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이 이웃의 부근, 버려진 영혼의 의자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시간에 앉아
無常
작별이 바쁜 이 무상
부근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보이는 곳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하늘 한 자리 한 생각 묻어 있을 수 있는 동안, 그냥
눈이 오가는 곳엔
떠 있으려 했어요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차례가 있는 자리, 차례 속에
사람의 목소리 들리는 곳엔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차례,
집을 짓지 않으려 했어요 - 제13숙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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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1964.7.31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살고 싶었다.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다. 서대문에 있는 미동 공립 보통학교에 다닐 때도 나는 전교 에서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소년이었다. 5학년 때 그린 크레파스 그림이 교장실에 걸릴 정도였다. 그리고 학교를 대표해서 그 림을 출품하기도 했다. 상공회의소인가 하는 전시장에서 나의 그림이 전시된 걸 보고 기쁨에 가득차기도 했다. 그리고 경성 사 범학교에 입학을 해서도 미술부에 들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때 선배로서 5학년에 고 이봉상님이 있었다. 손일봉 선생은 대선배 로서 선전에 특선을 했다는 수채화·풍경화만이 미술부실에 걸려 있었다. 일본인 학생, 한국인 학생, 많은 부원들이 있었다. - 조병화, 『왜 사는가』, 자유문학사, 1986,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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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부처는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곳에 인생이 있다. - 제13숙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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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1992.7.12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천적은 자기 자신인 적이다. ... 따라서 살려면 자기 자신의 그 천적을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 그 천적을 잘 알고 그걸 이겨가며 스스로의 생애를 스스로의 꿈대로 잘 이끌어 가는 사람이야 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 조병화, 『어머니 방의 등불을 바라보며』, 삼중당, 1987, 127~128쪽
33
천적天敵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 제29숙 『해가 뜨고 해가 지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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ê¿&#x2C6;, 19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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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내 손길이 네게 닿으면 넌 움직이는 산맥이 된다 내 입술이 네게 닿으면 넌 가득찬 호수가 된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내가 가라앉아 돌면 넌 눈을 감은 하늘이 된다 어디선지 노고지리 가물가물 먼 아지랑이 네 눈물이 내게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된다. - 제23숙 『창안에 창밖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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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끼리 모여 산다, 19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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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 제2숙 『하루만의 위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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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199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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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 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 잊어 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는 날이 하루 이틀 사흘 - 제1숙 『버리고 싶은 유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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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이유, 19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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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이유 · 12 깊이 사귀지 마세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생애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가벼운 정도로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사귀세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악수가 서로 짐이 되면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것을
작별을 하세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어려운 말로
작별이 올 때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세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너만이라든지
작별을 하며
우리들만이라든지
작별을 하며 사세
이것은 비밀일세라든지 같은 말들은
작별이 오면 잊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하지 않기로 하세 악수를 하세 - 제11숙 『공존의 이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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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19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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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사랑하시오 사랑하시오 서서히 사랑하시오 시간과 사귀며 서서히 사랑하시오 이 세상 끝까지 서서히 시간과 사귀며 뜨거이 사랑하시오 오래 감사히 사랑하시오 - 제13숙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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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199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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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해서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 제13숙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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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생애 마지막 저작물, 편운재에서의 편지 문학수첩, 2003.2.8
기록이라는 것은 든든한 인생의 저축입니다. 기록이 없는 인생은 뜬 먼지와 같은 겁니다. 인생 그 자체가 허 무한 것이지만, 저축이 있는 인생은 충만한 허무이고, 저축이 없는 인생은 텅 비어 있는 허망한 허무입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당신과 나는 글로, 생각으로, 남기는 기록의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위안과 구원이 있을 겁니다. - 조병화,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도서출판 둥지, 1996,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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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 편지는 나의 편운재에서의 편지의 제3집이 되는 수필집입니다. ... 이제 더 계속할 힘이 없어서 제120신으로, 이번 편운재에서의 편지를 마감합니다. 2003년 1월, 조병화
제120신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지나갑니다. 무료한 시간이 무섭게 흘러갑니다. 시간의 적막 속에서 속수무책,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아, 이 공포, 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 고독이 전율처럼 머물고 있습니다. 그럼. - 조병화 수필집 『편운재에서의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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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문인들의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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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병화, 유호, 김광주, 한로단, 이봉구, 1967.4
경희대 국문과 1학년, 4학년 야유회, 1967.4.23
경희대 국문과 1학년, 4학년 야유회, 1967.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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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협 낚시대회를 마치고, 1968
경희대 교수들과, 1969
이헌구, 김광주, 이봉구, 유호, 박연희, 양명문, 오영수, 안수길과 함께,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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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 김소운과 함께, 1970
선우휘와 함께, 197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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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실리 뒷산 저수지에서 서울문인협회 낚시대회 조연현, 최영해와, 1972.6.25
서울고 5회 졸업생들과 가족들, 197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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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재에서 이인수, 전봉건, 성혜련, 조병화, 1973. 4
한국시인협회 회장 시절 야유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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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인협회 야유회, 모윤숙 시인과, 1982.5.23
한국시인협회 야유회, 19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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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국문과, 국어교육과 교수 일동 신창순, 남광우, 성기열, 김문창, 이철수, 정기호, 김재홍, 최인학과, 1984.5.5
세계시인회의 회원들과, 1987.2.15
김후란 시인 등 편운재 방문, 1987
57
좌로부터 조병화, 한무숙, 전숙희, 香里, 이바라기 노리꼬, 오오쿠보 켄이치, 1988.3.31
예술원 회원 야유회, 1993.5.21
좌로부터 맏사위 양찬기, 마종기 부인, 조병화, 마종기, 199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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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단 극작가, 1965.6
장만영 시인, 1965.7.5
유호 극작가, 1967.5.1
이봉구 소설가, 1967.5.11
유경로 과학자, 1968.4.7
허영자 시인, 1971.1.18
김선영 시인, 1971.1.18
김후란 시인, 1971.1.18
조해일 소설가, 1971.6.13
김영태 시인, 1972.6.25
유안진 시인, 1972.6.25
한국시협야유회, 1978.5.21
김유신 시인, 1978.5.21
김규동 시인, 1978.5.21
성춘복 시인, 1978.5.21
정한숙 국문학자, 1970년대
박연희 소설가, 1970년대
조연현 국문학자, 평론가,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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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원 시창작반 방문 및 식수기념, 1987.4.12
제46회 미래시낭송회, 1987.4.19
한무숙, 전숙희 이바라기 노리꼬 방문시, 1988.3.31
전숙희 수필가, 198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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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시인, 1988.3.31
서울고등학교 제자들, 1999.8.21
제자 박순백, 2000년대
최동호, 2000.4
최문자 시인, 2000.5.10
김종규, 김기수, 2000.6.4
신봉승 극작가, 2000.6.4
삼성의료원 이시형, 2000.6.4
안성문인협회 이갑세, 2002.6.24
박명용 시인, 200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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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편운재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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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중인 편운재, 1963
형님들과 진위천에서 돌을 날라다 직접 집을 지으며, 1963
준공된 편운재에서, 1964
고향 난실리에 편운재를 짓고, 1964
편운재 내부, 1970년대
편운재 벽난로와 책상, 1970년대
편운재 내부, 1970년대
편운재 내부,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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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재 내부 책상과 침대, 1990년대
편운재 내부 벽난로, 1990년대
편운재 내부 창문, 1990년대
편운재 내부 복도,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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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재, 2004 봄
편운재 집필실 내부, 2003
조병화 시인 작고 이후 혜화동 집필실 재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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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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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재 집필실, 2016
편운재 화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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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주요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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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이광달作, 1990
시인 조병화, 백문기作,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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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이영학作, 1998
조병화, 김래환作,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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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진종 여사가 즐겨 보시던 ‘천수경’ 표지 제목 어머니 친필
어머니 진종 여사가 즐겨 보시던 책, 구호선육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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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조두원)의 유품, ‘해명결’ 표지 제목 아버지 친필
조병화시인 호적등본, 195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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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인지용 인장, 1949. (우)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최초의 인감, 1927.
글씨에 주로 사용한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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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 및 서화에 주로 사용한 낙관
시화 및 서화에 주로 사용한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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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몸에 지니시던 볼펜
아일랜드에서 편운재로 보낸 엽서, 1990.7.13
편운재원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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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편운재로 직접 보낸 엽서, 1994.11.30
편운문학상운영위원회 원고지
「그리운 것이 있다는 것은」 육필원고, 1997
「외로우며 사랑하며, 편운재에서의 편지」 육필원고,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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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걸이와 붓들
벼루
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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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구 장
이젤
파레트 그림도구 가방
앞치마 그림도구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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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파이프 소제기구
파이프 담배
여행에서 가져온 성냥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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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마지막까지 착용하였던 안경
조각가 윤영자에게서 선물 받은 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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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바느질함
가방
카메라
베레모
우산
승마용 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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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편운재 건립 당시 조명
석유 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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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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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과 중간계,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조병화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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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과 중간계,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금은돌 구름은 발이 없다. 있다 해도 내릴 수 없는 발이다. - 「구름」 1985. 9. 23. 오전 이태리 상공에서
구름은 중간계에 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이것은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하다. 파드마삼바바가 쓴 「티벳 사자의 서」 에 따르면, 중간계는 일종의 틈과 같다. 티벳어로 ‘바르도bardo’라 한다. 낮과 밤의 사이, 생生과 사死의 중간 상태의 어느 지점인 셈이 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떠 있는 곳. 구름은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에 떠도는 존재이다. 그 틈이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을 게다. 구 름은 과도기의 형상을 띤다. 먹구름이 되었다가, 비로 내렸다가, 뭉게구름이 되기도 한다. 쉽게 뿌리내리지지 못하고, 떠돈다. 그 렇기에 쉽게 ‘발을 내릴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떠도는 영혼들을 위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는 죽은 자 들은 물론, 살아있는 사람 역시 온전하게 들어야 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잘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퇴돌Thos-grol’이다.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를 수 있다. 구름은 또 다른 목소리를 담는 그림자를 거느린다. 이 그림 자는 지상의 사슬을 아주 끊어내지 못한 상태이다. 그리하여, 구름은 세계를 떠도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 된다. 조병화 시인은 일찍이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생각해 보 아야 한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노마드 시대를 살고 있다. 여행을 할 때 구글Google 지도를 다운 받아, 낯선 곳에서 그 앱app을 따라가 며 여행을 한다. 앉아서 호텔을 예약하고 비행기 표를 검색한다. 젊은이들은 구름처럼 세계를 떠돈다. 떠도는 게 당연하다. 떠돌 다가 현실에 쓸쓸하게 귀착한다. 당연히 이들을 위한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여러분들도 호모 모빌리스Homo Mobilis라는 신조어를 들 어보았을 게다. 아마도 조병화 시인이 살아있다면, 그는 당연히 스마트 폰에 시를 쓰고 메모하고, 웹진에 시를 발표하는 활동을, 매일매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따라, 일기를 적듯이, 시를, 썼을 게다. 최신 버전의 스마트폰을 구입하여, 그 기계를 가장 잘 활용하는 시인이 되었을 게다. 그 방법도 어렵지 않다.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온몸으로, 직감적으로 아는 분이기에, 생존하셨을 때보다 훨씬 더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시인이 되었을 게다. 아니면, 매일매일 시를 연재하는 독자적인 웹진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인터넷을 이용한 라디오 팟캐스트podcast나 아프리카 방송과 같은 대중 매체를 적극적으 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높다. 조병화 시인의 코스모폴리탄적인 면모는 단지, 여행이나 떠도는 행위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시가 생겨나는 발화지점과 시인 의 위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시적 주체의 위치가 구름처럼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조병화 시인은 허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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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눈동자의 시선으로, 사람과 자연과 인연의 관계들을 본다. 여행 도중에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늙은 부인’을 본 시인은 그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는 그녀의 시간성을 펼쳐놓는다. (「늙음」) ‘늙음’에서 젊음을 찾고, 더 나아가 그녀를 스쳐지나갔을 남자들까지 헤아려 본다. 소년에게는 직접적으로, 아니, 아예 노골적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너는 무엇보다도 먼저 죽음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네가 죽음이 와서 이제 가자, 하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노력한 만큼 밝은 곳으로 갈 것이 아닌가 -「소년에게」(1985. 9. 6) 시인이 구름과 같은 시적 위치를 갖는 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자유로운 넘나듦을 갖게 한다. 다시 말해 시인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구름과 같은 위치에서 바라본 시간은 상대성의 원리로 설명가능하다. 소년에게 죽음 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늙음 속에서 젊음의 시간이 빛날 수 있는 법이다. 시간은 직선적인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이들은 다른 차원의 시간을 가지고 산다. 현실에 발을 내딛지 못하는, 약간은 다른 제3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제3의 시간 덕분에 여행자들은 지속적으로 떠나야만 한다. 구름은 비를 내리기도 하고, 해를 가리기도 하고, 흙 빛을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잠재성을 안고, 자신의 시간과 타자의 시간을 응시하는 제3의 눈을 갖는다. 따라서 시간의 순환과 흐 름이 돌고 도는 형태를 온몸으로 감지해낸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돌다’라는 서술어를 필요로 한다. 죽음 역시 사라지는 형태의 에너지가 아닌 것이다. 존재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있었던, 어느 다른 차원으로, ‘돌아가는’ 일을 행할 뿐이다. 우리가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가야하는 일이다. 지금 우주 어드메쯤에서 한 마리의 벌레가 죽어 가고 있다 예수도 그곳으로 갔다 마호메트도 그곳으로 갔다 석가모니도 그곳으로 갔다 지구는 지금 텅 빈 자리 그곳에 캄캄히 내가 누워 있다 이승을 바라보며. - 「입원일기-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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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벌레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 것처럼, 한낱 미물이 사라지는 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존경하는 성인들 역시 마찬가지 이다.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역시 죽음의 세계로 돌아간다. 나 역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담 담한 어조로 조병화 시인이 발화할 수 있는 이유도 그의 시적 위치가 허공에 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땅에 바투 붙어 아 비규환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극사실주의 화풍과는 거리가 멀다. 시적 대상과 시인의 거리는 완만하고 아득하고 멀다. 시적 대상 의 주름과 주근깨, 고단한 핏줄을 노래하지 않는다. 조병화 시인이 만났던 인물에 대한 시편들을 보아도 그러하다. 하나의 장면을 크로키 하듯, 펼쳐놓는다. 시적 대상과의 조응이 심심하고 허전하다. 거리를 스스로 벌리면서, 시인은 홀로 멀어져간다. 그렇기 때 문에, 객관적이고 담담한 어조로 술회한다. 소년에게 죽음을 가르쳐야 하고, 죽음을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지, 과감하게 진술한다. 이런 시야 덕분에 시인은 종으로, 횡으로 마음껏 여행한다. 권위와 신분을 넘어선다. 그 자신 역시 담담하게 ‘돌아간다’는 사 실을 알기에, 너그럽게 관망한다. 시인의 위치는 지구 바깥으로 벗어나기도 한다. 지구를 내려다보는 일을 누워서 상상한다. 본인이 사라진 곳, “지구는 지금 텅 빈 자리”이다. 조병화 시인의 자존감이 극대화되는 발화지점이다. 시인은 사라졌지만, 늘 지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편운片雲이 지만 편운片雲이 아니었다. 캄캄한 곳에 홀로 누워있지만, 지구의 중심이기에, 시적 주체는 더욱 단단해진다. 더 단단한 상태에서 유유자적, 돌고 돈다. 흙바람이 몰아치는 경인 하이웨이 트럭에 실려 서울로 달리는 소들 눈에 생존이 돈다 내가 돈다 하늘이 돌고 구름이 돌고 바람이 돌고 나무가 돈다 부처가 돌고 예수가 돌고 사바세계가 돌고 돌다 지친 곳에 눈물이 돈다 -「사바세계」에서 이런 모든 깨우침은 ‘여행’이 가르쳐 준 진리이다. 시인은 일찍이 “여행은 이동하는 나의 작업실”(「여행」)이라 밝힌 적이 있다. 구름의 존재 방식이자 작업방식이 여행이었던 셈이다. 구름은 틈과 틈 사이에 낀 존재로서, 중간 상태를 향유한다. 이런 향유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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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조병화 시인의 시적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특성이 된다. 그렇기에 그 어디에도 쉽게 ‘발을 내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관찰 하고 바라본다. 서울로 가는 트럭에 실린 소 한 마리의 눈으로 이 세상의 부조리를 더 적확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생존이 돈다 / 내가 돈다 // 하늘이 돌고 / 구름이 돌고 / 바람이 돌고 / 나무가 돈다” 평범한 것을 호명하면서, 비범하게 처리한다. 이 지구 위에 존재 하는 모든 사물은 지구가 공전하듯이, 같은 속도로 돈다. 삶과 죽음의 순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어떤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를 제압하지 않고, 질량불변의 법칙을 갖고 흐르듯이, 돌아간다. 이 사바세계에 커다란 집착을 할 필요가 없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 신성한 방을” 비워주는 것처럼. 삶이라는 시공간을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매개체는 오로지 ‘어머니’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이자, 영혼의 동반자인 어머니의 목소리이다. 그 분께서 저 세상에 계시니, 그 어머니를 부르며, 다시 떠나고 다시 돌아온다. 시인의 시를 조심조심, 더 낮은 마음으 로, 더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 본다. 조심조심, 더 진실된 마음으로 음미해 본다. 나는 어떤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인가? 하는 질 문도 더불어, 던진다. 천막에서 같이 살다가 죽음을 예감하면 죽을 자리를 찾아서 집을 떠난다는 이야기 몽고 어느 초원 지대에선가 알래스카 에스키모 어느 촌락에선가 죽는 자가 산 자에게 신성한 방을 비워 준다는 이야기 동물의 신비한 본성 같기도 하고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 광경을 연상할 때마다 찌릿찌릿하다 한없는 초원, 혹은 사막을 가다가 맥 떨어져 쓰러져 가는 그 마지막, 그 혼자 끝없는 얼음 벌판을 가다가 맥 떨어져 쓰러져 가는 마지막, 그 혼자 -「죽음을 예감하면」에서
금은돌 2013년 『현대시학』으로 시 데뷔. 1인 잡지 <무크 돌> 발행 중. 현재 중앙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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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연보 1921.
부 난유蘭囿 조두원, 모 진종의 5남 2녀 중 막내로 출생(5월2일). 아호는 편운片雲.
1928.
부 조두원 별세, 용인의 송전공립보통학교 입학.
1929.
모친을 따라 서울로 이사. 미동공립보통학교 2학년 편입.
1936.
경성사범학교 보통과(5년제) 입학.
1941.
경성사범학교 연습과(2년제) 입학.
1943.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이과(물리, 화학) 입학.
1945.
상교 3학년 재학 중 귀국. 경성사범학교 교유로 근무 중 김준과 결혼
1947.
인천중학교(현 제물포고등학교) 교사로 전직
1949.
서울중학교 교사로 전직, 제1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출간
1950.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 출간
1952
제3시집 『패각의 침실』 출간
1954.
제4시집 『인간고도』, 제5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 출간
1957.
국제 P.E.N. 동경 대회에 참석, 제6시집 『서울』 출간
1958.
제7시집 『석아화』, 수필집 『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 출간
1959.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조교수로 전직, 제8시집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출간
1960.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제9시집 『밤의 이야기』 출간
1962.
모 진종 여사 별세, 제10시집 『낮은 목소리로』 출간
1963.
편운재 기공, 제11시집 『공존의 이유』, 제12시집 『쓸개포도의 비가』 출간
1964.
제13시집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출간
1965.
제14시집 『來日 어느 자리에서』 출간
1966.
제15시집 『가을은 남은 거에』 출간
1967.
시론집 『슬픔과 기쁨이 있는 곳』 출간
1968.
제16시집 『가숙의 램프』 출간
1969.
제17시집 『내 고향 먼 곳에』 출간
1971.
제18시집 『오산 인터체인지』 , 제19시집 『별의 시장』 출간, 중화민국 신시학회로부터 두보상패 받음.
1972.
제20시집 『먼지와 바람 사이』 출간
1973.
제1회 유화 개인전(9. 22~29 신문회관), 제21시집 『어머니』 출간
1974.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중국문화대학 중화학술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음
1975.
제22시집 『남남』 출간
1976.
제23시집 『창안에 창밖에』 출간, 국민훈장 동백장 받음
1977.
수필집 『시인의 비망록』 , 시론집 『시인의 편지』 출간
1978.
수필집 『낮달』 , 제24시집 『딸의 파이프』 출간
1979.
제4차 세계시인대회 집행(대회장, 7.2~8 롯데호텔)
1980.
수필집 『안개에 뿌리내리는 나무』 출간
1981.
인하대학교 문과대 학장 취임
1981.
회갑 기념집 『편운 조병화 시인』, 제25시집 『안개로 가는 길』 출간
제5차 세계시인대회에서 계관시인으로 추대됨
대한민국 예술원정회원에 피선,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82.
중앙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받음, 한국시인협회 회장에 피선
1983.
수필집 『흙바람 속에 피는 꽃들』, 제26시집 『머나먼 약속』 출간
1984.
세계 여행 소묘집 『그때 그곳 Times & Places』 출간
1985.
수필집 『저 바람 속에 저 구름 속에』, 시론집 『순간처럼 영원처럼』 출간
제27시집 『나귀의 눈물』, 제28시집 『어두운 밤에도 별은 떠서』, 제29시집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출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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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수필집 『마지막 그리움의 등불』, 수필집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출간
인하대학교 대학원 원장으로 정년 퇴직,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음.
정년 퇴직 기념 논문집 『조병화의 문학세계』, 어록집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출간
수필집 『왜 사는가』, 『고독과 사색의 창가에서』 출간
제9차 세계시인대회에서 Tagore 문학 기념패를 받음.
1987.
청와헌 준공, 제31시집 『길은 나를 부르며』 출간
수필집 『너와 나의 시간에』, 『어머님 방의 등불을 바라보며』, 『내일로 가는 길에』 출간
수필집 『추억』, 『홀로 지다 남은 들꽃처럼』, 칼라시화집 『길』 출간
1988.
수필집 『사랑, 그 홀로』, 『사랑은 아직도』, 『새벽은 꿈을 안고』, 『꿈과 사랑, 그리고 내일』 출간
제32시집 『혼자 가는 길』 출간
1989.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당선
수필집 『떠난 세월, 떠난 사람』, 『하늘 아래 그 빈 자리에』, 제33시집 『지나가는 길에』 출간
1990.
삼일문화상 수상, 고희기념유화전, 고희연, 편운문학상 제정.
제34시집 『후회 없는 고독』 출간
1991.
제35시집 『찾아가야 할 길』 출간, 제1회 편운문학상 시상(조태일, 김재홍, 신창호)
자서전 『나의 생애 나의 사상』, 수필집 『꿈은 너와 나에게』 출간
1992. 1993.
제36시집 『낙타의 울음소리』, 제37시집 『타향에 핀 작은 들꽃』, 제38시집 『다는 갈 수 없는 세월』 출간 시와 수필집 『시의 오솔길을 가며』, 수필집 『꿈이 있는 정거장』 출간, 대한민국문학대상 수상 편운회관 준공, 시화집 『그리움』, 제39시집 『잠 잃은 밤에』 출간
스웨덴어 역시집 『꿈 Dröm』, 수필집 『집을 떠난 사람이 길을 안다』 출간
1994.
사진과 대표작을 묶은 『나의 생애』, 수필집 『버릴 거 버리고 왔습니다』 출간
제40시집 『개구리의 명상』, 제41시집 『내일로 가는 밤길에서』 출간
1995.
시로 쓰는 자서진 『세월은 자란다』, 제42시집 『시간의 속도』 출간
제27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피선
1996.
수필집 『너를 살며 나를 살며』 서간집, 『편운재에서의 편지-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출간
제43시집 『서로 따로 따로』 출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받음
1997.
제44시집 『아내의 방』, 제45시집『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제46시집 『황혼의 노래』 출간
5・16민족상 수상
1998.
처 김준 사망, 제47시집 『먼 약속』, 제48시집 『기다림은 아련히』 출간
서간집 『편운재에서의 편지』 (외로우며 사랑하며) 출간
1999.
수필집 『내게 슬픔과 기쁨이 삶이듯이』, 제49시집 『따뜻한 슬픔』 출간
캐나다 빅토리아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받음
2000.
제50시집 『고요한 귀향』 출간
2001.
제51시집 『세월의 이삭』 출간
2002.
제52시집 『남은 세월의 이삭』 출간
2003.
서간집 『편운재에서의 편지』 출간
영면(3월 8일), 원불교식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룸
2005.
제 53시집 『넘을 수 없는 세월』 출간
2013.
『조병화 시전집』 6권 출간
『조병화의 문학세계 II』 출간
2014.
『조병화의 문학세계 Ⅲ』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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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재 예술혼展
살은 죽으면 썩는다 2016. 9. 20TUE - 11. 20SUN 시인 조병화의 집, 편운재
기획총괄
조진형·김용정
진
김영은·장우덕·배주원
행
발 행 일
2016년 9월 20일
발 행 처
조병화문학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길 14-1(난실리 337)
tel. 031-674-0307, 02-762-0658
e-mail. poet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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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자 인
편집전문회사 꿈과놀다
tel. 02-2277-3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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