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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EE SHEEN ‘재희신’은 디자이너 신재희가 2009년 1월에 론칭한 패션 브랜드로 2009 F/W 시즌에 피티 워모, 트라노이 옴므 파리에서 첫선을 보였다.2010 S/S 시즌에는 파리에서 개인 전시를 가졌으며 2010 F/W 시즌부터 서울 패션 위크에 참가하여 현재까지 두 차례 프레젠테이션 쇼를 선보였다. 동양 사 상을 근간으로 하는 재희신 컬렉션은 동시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 적 사유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상쇄하고 지각시키고자 하는 인간 적이며 미래지향적인 패션 디자인을 추구한다.
REBORN[RIBBON] GRAPHY ‘리본그라피’는 패션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기록,디자인,출판하며 CI, BI 등 브랜드의 시각적 이미지를 컨설팅하고 솔루션을 도출하는 패션 브랜딩 솔루션 그룹이다.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한 《패션 아카이 브》는 2009년 4월부터 1년간의 기획 단계를 거쳐 2010년 6월 처음 소 개된 책으로, 브랜드에 대한 효과적인 이해와 창의적 접근을 위한 커뮤니 케이션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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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아카이브 재희신
1권
가장 고결한 미美란 단번에 매혹하지 않으며, 격렬하고 도취적인 쇄도를 통 해서는 조금도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그러한 미는 쉽게 싫증을 불러일으 킨다). 따라서 가장 고결한 미란 서서히 침투하는 것.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함께 있는 것. 우리의 꿈속에서 어느 날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리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보잘것없는 자리를 차지했다가도 결국 에는 우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우리의 눈을 눈물로, 우리의 마음을 노스탤 지어nostalgia 로 가득 채워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를 봄으로써 일 깨워지는 노스탤지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워지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우리는 이러한 노스탤지어에는 많은 행복이 동반할 것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오류가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Human, All Too Human》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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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근원이 풍부한 물
공자는 언제나 물을 찬양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맹자》 ‘이루離婁’ 하편에는 맹자와 그의 제자 서벽 사이에 오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서벽이 맹자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자주 물을 찬양하여 ‘물이여, 물이여’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물에 취하신 것입니까?”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답했다. “근원이 풍부한 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나와서 멀리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 나 작은 도랑 같은 것은 7, 8월에 큰비가 내리면 넘쳐흐르다가도 비만 그치면 곧 말 라버린다. 그것은 근원이 없기 때문이다.” 공자는 그 물의 근원이 풍부한 것을 취한 것이다. 물의 근원이 풍부해야만 물이 마 르는 일 없이 언제나 흐를 수 있는 것처럼 도道에서도 그 근본이 확립되어야만 공 용功用이 끝이 없고 다함이 없다는 것이다. 실속 없는 명성은 실로 부끄러운 것이며 근원이 없는 물처럼 곧 잔상이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와 꼭 맞는 디자이너를 만났다. 2009년 1월 디자이너 브랜드 ‘재희신Jehee Sheen’을 론칭하고 동시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풍부
한 근원을 만들어가고 있는 디자이너 신재희. 바로 그가 이번 《패션 아카이브Fashion Archive》의 주인공이다. 신재희는 지금까지 동양 사상을 근간으로 한 네 번의 컬렉션
을 선보인 바 있으며 부의 척도로서의 패션을 넘어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상쇄하고 지각시키고자 한다. 동양의 정서와 인도주의적 신념이 담긴 그의 컬렉션은 국내외 프레스들과 바이어들로부터 큰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다. 그와의 첫 만남은 지난해 11월에 이루어졌다. 서울 패션 위크를 끝내고 묵은 피로 를 풀 틈도 없이 진행된 인터뷰라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그는 나를 진실하게 마주 했고, 시종일관 진지함과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다. 더욱 놀라웠던 건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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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대한 개요나 어떤 구체적인 언급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이 작업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진행이 무척 수월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자신의 계획을 취소하면서까지 인터뷰를 강행할 정도로 매우 적극적이었 던 신재희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의 삶과 철학에 대한 더 큰 관심으로 이어지게 했고, 이는 곧 그의 진심이 담긴 통찰로 발전되었다. 그와의 대화는 5개월간 진행 되었다. 긴 만남을 통해 느낀 그의 철학은 주체성과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과거의 우리,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우리를 담고 있는 ‘근원이 풍부한 물’과 같았다. 《패션 아카이브 재희신》 1권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는 재희신의 브랜드 철학과 2011 S/S 컬렉션 ‘절제Abstinence’, 2011 S/S 시즌 트라노이를 다루었다. 2장 에서는 2010 F/W 컬렉션 ‘중용Modesty’과 패션과 예술과의 인과관계, 2010 F/W 시즌 피티 워모를 다루었다. 3장은 파리에서 개인 전시를 했던 2010 S/S 컬렉션 ‘봄 바람Spring Breeze’, 4장에서는 2009 F/W 시즌 트라노이와 피티 워모에 선보였던 2009 F/W 컬렉션 ‘오리진Origin’과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5장 은 이탈리아 패션 스쿨 ‘이스티투토 마랑고니’ 유학 생활과 교육의 개선 방안, 6장 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재직 당시 이야기와 국내외 남성복 시장에 대한 견해, 마지 막으로 7장에서는 재희신의 시각적 이미지를 함축하는 심벌, 로고타이프 같은 브 랜드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재희신의 브랜딩과 비전을 다루었다. 늘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한 인간의 삶과 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인간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11년 3월 신동우
P RE FAC E
CONTENTS
CHAPTER 1
11
A BST I N ENCE CHAPTER 2
61
MO DE S T Y CHAPTER 3
89
S PR I N G B R E E Z E CHAPTER 4
101
OR IGI N CHAPTER 5
113
I S T I T U TO M A R A N G ON I CHAPTER 6
129
G I O RG I O A R M A N I CHAPTER 7
145
B R A N D I N G & V I S I ON
I strive to put the conflicting aspects of human into my designers.
CHAPTER 1
ABST I N ENCE
J E H E E SH E E N BR A N D PH I LO SOPH Y A RC H I V E O F P H I L O S O P H I C A L T H O U G H T 2 0 0 9. 01~2 011. 03
신동우 | 2011 S/S 컬렉션 ‘절제Abstinence’에 대한 언급에 앞서 재희신의 브랜드 철 학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 신재희 | 유학 시절 유럽 친구들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에서 기절할 만큼 감동을 받곤 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한 살을 먹는다’는 것 조차 그들은 너무나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다. 유럽에서는 세상에 나와야 그때부 터 카운트를 시작하는데 어떻게 배 속에 있는 순간부터 나이를 먹느냐는 것이다. 물론 미세한 문화적 차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 한 경외심과 삶에 대한 겸허한 태도가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서양인의 삶의 방식은 스스로를 삶의 주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한다.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적 사상으로 본다면 남의 눈을 의식하고 절제하며 겸손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너는 왜 그걸 참아? 표현해야 지”라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동양인의 정서와 행동 방식을 서양인 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나는 인간의 삶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가치라고 여긴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동양 인들의 가치관이 오히려 서양인들에게는 동양의 가장 큰 무기로 인식될 수 있으 며,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여겨왔던 것들이 이 시대가 원하는 이데올로기 나 가치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태도와 가치는 절제된 스타일과 무 드로써 표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동양 사상에서 나오는 표현법이라고 생각한 다. 그 표현의 차이만으로도 입는 사람의 생각과 태도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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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 | 재희신의 철학을 두고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어본다’는 견 해를 갖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재희 |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에 사고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분법적 논리보다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접근한다. 동양인으 로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서양을 바라보는 것 자체도 무리가 있을뿐더러 갈수록 국제사회의 문화 교류가 늘어나는 오늘날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그런 사람으 로 나뉘는 게 맞다고 본다. 앞서 동서양의 사고방식에 대한 견해를 언급했던 것은 그간 통념적이었던 사고에 근간을 둔 것임을 밝힌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다비드>(1504) 같은 르 네상스 시대의 핵심적인 작품들에서 나타나듯 서양의 복식은 ‘인체의 미’에 집중 하여 발전해왔다. 한편 동양의 복식은 동양 문화와 사상의 근간인 ‘유교’로부터 오 랜 세월 동안 풍부한 지혜와 가치를 얻으며 큰 영향을 받아왔다. 동양화의 산수화 나 사군자화 같은 그림에는 ‘산’과 ‘물’, ‘매란국죽’이 들어갔으며 세속적 이재를 멀 리하고 예禮와 의義를 숭상했던 조선 시대 선비(사대부)들의 복식에는 자연을 닮고 자연에 동화되는 멋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이를 두고 ‘동양이 우월하다’는 식의 국수주의적 견해를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만 약 여기서 이분법적 논리로 접근한다면 ‘서양은 인체의 미에 집중했다. 난 그런 것 은 안 한다’ 이런 식이 될 수 있겠지만 인체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고 패션에 접 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서양에서와 같이 인체의 아름다움에 토대를 두고 패션에 접근하지만 재희신이 여기서 한 단계 더 집중하는 것은 절제된 삶의 철학 과 신조를 가지며 자기 수양과 내면의 가치를 지닌 인간의 모습이다. 마치 불교에 서 열반에 들려 하는 인간의 모습 같은 것 말이다. 경제 발전과 맞물린 산업화와 도 시화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가치를 탐구하고 동시대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신동우 |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가치를 동시대적으로 접근한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신재희 |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원리를 접목시켜 동서양을 넘나드는 베스트셀러 로 평가받은 ‘세라젬Ceragem’ 의료기를 들 수 있다. 집에서 실제로 사용해봤는데 지 친 심신을 회복시키는 데 정말 도움이 됐다. 세라젬 의료기는 동양의학의 뜸, 지 압, 마사지 개념을 기본 원리로 한 것이다. 거기에 약 복용이나 수술 없이 척추를 비롯한 뼈와 관절, 근육 등을 손으로 만져서 치료하는 서양의학의 카이로프랙틱 chiropractic 을 접목하여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제품이다. 세라젬 의료기가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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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서양의학은 신체 각 부위를 기능별로 나누어 치료하지 만 동양의학에서는 몸 전체를 하나로 보고 치료한다’는 것을 통찰하고 두 원리와 기술을 융합해 상품화한 것이다.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을 예방하고 피부에도 자극을 주지 않는 감 염색, 쪽 염색 등의 천연 염색 공법은 세계적으로 상품화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훌 륭하다. 하지만 유럽의 스톤 워싱이나 아이스 워싱에는 엄청난 열광을 하면서 정 작 우리 것을 상품화하고 현대화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웰빙’이라는 것도 우리가 먼저 상품화할 수 있었지만 실패한 것 중 하나다. 서양인 들은 ‘자연 친화’를 콘셉트로 상품화했다. 마치 기존에 없던 것처럼 ‘자연을 집 안 에 담는다’라는 문구와 함께 엄청난 상품인 듯 포장해서 시장에 내놓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과거 우리는 주거 공간인 집을 자연과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한옥을 보면 자연과 집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한옥은 흙, 돌, 나무로 구성되었으 며 지붕은 흙을 구운 기와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마루에서는 바람을 느낄 수 있고 돌을 뜨겁게 달궈 추운 겨울을 났다. 얼마 전 ‘그린 열풍’에 관한 주제로 방송에서 보도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진부하 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 친화적 공법은 서양의 것보다 디자인적인 세련됨은 부족 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방송에서는 놓치고 있었다. ‘유럽에 서는 하고 있는데 우리는 못 하고 있다. 유럽은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하기보다는 ‘원래 우리 것이었지만 우리는 상품화하지 못했고 그들은 상품화에 성공했다’고 조명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열심히 따르고 기술력에서 앞서기 위해 부단 히 노력해왔다. 이제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탐구하고 새 로운 가치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신동우 | 앞서 유교를 언급했듯 동양 문화와 사상의 근간인 유교를 빼놓고 동양적 사상을 논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교가 낳은 여성 차별, 맹목적 충성, 수 직적 인간관계, 과거 지향적 보수성, 가족적 정실주의, 지나친 형식주의, 고식적 율 법주의 등은 줄곧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경일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 다》는 다소 거친 타이틀과 유교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대한 일갈과 지적 반 항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병폐를 안겨준 유교를 재희신은 어 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는지 궁금하다. 신재희 | 파리 트라노이Tranoi 페어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시 부스에 있다 보면 해외 시장 경험이 많은 선생님들이 응원차 방문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럼 바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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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사원의 주요 건물인 다청관(왼쪽), 공자상(오른쪽). 유교는 중 국 춘추 시대 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儒學)을 종교적 관점 에서 이르는 말이며 수천 년 동안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사상을 지배해왔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 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정치학이다.
어나서 90도로 인사를 한다. 그 광경을 본 유럽인들은 ‘지금 엄청난 퍼포먼스가 일 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들이 지금 우리를 의식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어른을 공경한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우리의 습속習俗에 그들 은 굉장히 놀란다. 직접 고개 숙여 따라 해보기도 하고 “당신들은 왜 그렇게 인사 하나? 항상 그렇게 인사를 하는가?”라고 묻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수직적 인간관계나 맹목적 충성을 낳은 유교의 병폐’라고 단정 짓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 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어~ 왔습니까?” 하면서 손 흔들 순 없는 일이니까. 나는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유교라고 본다. 동시에 유교가 현 사회에서 장애가 되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할 수 없는 것들, 기쁠 때 시원하게 웃을 수 없는 것 들. 거기서 엄청난 쾌락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면서도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되고 내면에서 크게 갈등했던 부분이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돼’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점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도덕적 굴레가 엄청났기 때문에 뭔가 시원하게 소리 지를 수 없었고 반 항할 수 없었다. 내면에서는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는데 밖으로 소리 낼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그건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선생님 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아버지의 권위에 맞설 수 없다. 밖에 나갈 때도 올바 른 사람으로 비쳐져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동 화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때려서 넣어야 하는 게 한국 사회 이지 않은가. 반면 유럽은 모두 다 튀어나와 있다.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뼈 속 깊이 뿌리내린 유교의 습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유학을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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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돌아오니 또다시 창의성과 자신감을 잃어가고 자꾸 타협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천 년 동안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사상을 지배해왔던 유교의 가장 진부한 것을 쭉 끄집어 내놓고 ‘유교는 이런 병폐가 있어’라며 일방적으로 배 척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수직 구조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 저력으로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삼성이라는 굴지의 기업이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유교에 있다고 본다. 춘추 시대 말기에 공자가 주창한 사상을 지금 그대로 따른다면 나라를 말아먹을 수 있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의 유교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우리에게 시대착오 적인 병패를 안겨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동서양 사상에 대해 극단적인 대립 구 도를 취한다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유교의 가치는 시대가 흐르면서 변해 가는 사회적 기능과 함께 변모해가는 것이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계몽으로 갑자 기 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동우 | 최근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사실 그 책은 베스트 셀러에 오를 정도의 대중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인문서로는 이례적으로 많 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었던 건 정의, 도덕, 윤리 같은 ‘인간의 참다운 도리’가 전 세계 주요 현안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폐허된 땅에 서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한국의 급속한 경제 몰입 사회가 너무 많은 도덕적 가치를 상실시켰다고 많은 지식인들이 우려한다. 이 같은 현상을 어 떻게 바라보는가? 신재희 | 한국 사회의 도덕적 가치 상실의 원인은 ‘비도덕적 소재’를 무분별하게 다 루는 매체의 영향과 서양의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동경하는 이분 법적 사고에 있다고 본다. 20세기 이후 단순한 예술의 한 장르를 넘어 문화를 총체 적으로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발전한 영화를 놓고 볼 때, 비도덕적 소 재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영화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대표적인 예로 <아내가 결혼했다>나 최근 개봉한 <상하이>를 꼽을 수 있다. <아내 가 결혼했다>는 결혼 후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며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 아내 로 인해 혼란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로 ‘일처다부’라는 소재를 발랄하고 유머러 스하게 묘사한 영화다. <상하이>는 얼마 전 아내와 함께 극장에서 봤는데 “1941년, 진주만 공격의 거대한 음모가 밝혀진다”라고 해서 ‘그 거대한 음모가 뭘까? 역사 다 큐멘터리 영화인가?’ 하고 궁금해서 봤더니 서사 구조의 핵심은 ‘사랑’이었다. 그 러 브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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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마피아 보스, 앤소니)과 공리(저항군, 애나)는 부부이고 주윤발에게는 두 명의 정부情婦가 있다. 그리고 존 쿠삭(미국 정보부 요원, 폴 솜즈)은 공리와 사랑에 빠진다. 그사이 존 쿠삭은 남편에게 맞은 눈을 선글라스로 가리고 그를 찾은 독일 인 친구(레니)와 동침한다. 영화를 보면서 ‘남편이 때렸어? 그럼 넌 바람피워도 돼. 남편에게 정부가 있어? 그 럼 부인도 바람 피워도 괜찮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합리화시켜버렸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와 아내에게 ‘난 이런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것이 너무 불쾌하다’며 영화에서 느낀 불쾌감을 토로했다. 영향력 있는 매체라 할 수 있는 영화에서 이렇게 당위성과 변명거리를 던져주는 순간 우리는 이런 상황을 여과 없이 너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 생 뭐 별거 있어? 쿨하게 살아야지. 성은 지킬 필요 없어. 젊을 때 즐겨야지. 오늘 만났어도 사랑하는 느낌이 들면 자”라면서 주변의 소위 좀 ‘논다’는 친구는 ‘실제 로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올수록, 사회 풍조가 그렇게 흘러갈수록 나이트에서 여자 를 꾀고 원 나이트 하기가 너무 쉬워진다’고 말한다. 비단 영화만이 아니다. ‘안방극장’이라 불리는 드라마의 소재 또한 불륜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아침 드라마까지 불륜을 다루니 이미 허용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에 대한 심각성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비도덕적이다’라고 단편적 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남녀 간의 교제나 성性에 대해 너무 닫혀 있고 일상 생활에서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극 중 내용과 현실을 혼동할 우려가 있으며 가치관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이 대중에게 전달 되기까지 전혀 필터링되지 않기 때문에 대중 매체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보다 절 실히 요구된다. 얼마 전 어느 주간 신문에서 ‘한국은 원 나이트 스탠드 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에서는 ‘한국 여성들은 외국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아하는 여성이 많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굉장히 충격 적이었던 것은 외국인들이 한국 여성을 이지 걸easy girl, 옐로 택시yellow taxi(동양인 을 가리키는 ‘옐로’와 쉽게 타고 내린다는 뜻의 ‘택시’의 결합어)에 비유한 것이다. 심 지어 ‘한국 여자, 너무 쉬워요’라는 내용의 글이 블로그나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에 나돌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일부 여성들 때문에 생긴 인식이겠지만 유교 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섹스하기 쉬운 국가다?’ 이건 괴 리감이 너무 심하지 않나. 유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섹스하기 쉬운 국가다?’ 이건 괴리감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동안 우리는 ‘유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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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쓰고 스스로 도덕적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여기진 않았는지 냉정하게 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정조나 지고지순한 사랑, 순결을 주장하는 건 아 니다. 문제는 이들의 행동이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나온다는 데 있다. ‘너는 외국에 서 생활하고 왔잖아. 그러면 생각이 깨어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서양의 생각이 무 조건 옳아. 우리도 그렇게 해야지’라는 문화 사대주의적인 생각 자체가 도덕적 균 형을 무너뜨리는 원흉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문화가 들어오지만 그중 가장 쉽게 유혹될 수 있는 게 클럽, 원 나이트 같은 밤 문화다. ‘서양은 섹스를 즐겨. 그러니까 그것에 대 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거야’라는 그릇된 인식과 지나친 동경으로 우리가 그 선 을 넘을 때는 확 넘어버리고 그것이 ‘성적 방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그런 논리는 상당히 극단적인 결론을 초래하게 되며 지금 우리는 그 값을 톡톡히 치르 고 있다.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 저출산율 1위라는 수치는 한국의 상실된 도 덕적 가치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각종 지표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우리 사회는 솔직하고 개방적인 가치관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상실된 도덕적 가치 에 대한 복원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고 본다. 그리고 산업의 가장 첨병에 서 있는 패션 또한 그동안 상투적이고 권위적으로 부를 과시하던 수단을 넘어 도덕적 가치를 상쇄하고 지각시킬 필요가 있고 본다. 신동우 |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치장하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자기 도락과 지나친 소비 간의 모순은 현재 명품 비즈니스에서 풀어야 할 난제로 나타난다. 쉽게 인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미적 영역에서 가장 상업성 이 짙은 패션이 어떻게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상쇄하고 지각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신재희 | 한 여성이 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3캐럿짜리 최고급 다이아몬드 반지가 껴져 있다. 그녀가 과연 무인도에서도 그 반지가 주는 가치에 대해 만족할 수 있을 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인 도락은 사회가 가져다주는 것이며 그들은 사회에 의해 철저히 우롱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캐럿짜리 최고급 다이 아몬드 반지는 굉장히 비싸다’는 사회적 통념에서 시작된 자기 도락이라는 것이다. 세계 3대 도자기 명가인 영국 웨지우드사의 창업주 후손인 토머스 웨지우드는 명 품의 조건으로 역사, 품질, 철학을 꼽는다. 그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 품질이 오랫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때, 곧 ‘역사 속에서 축적된 이야기’가 구전될 때 명품 이 된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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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명품 비즈니스는 어떤가.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춘Fortune》은 ‘명품의 대중 화’를 일컬어 ‘맥럭셔리McLuxury’라고 한 바 있다. 오늘날의 명품을 맥도날드 햄버거
에 비유한 것이다. 과거 명품의 시발점이 되고 명성을 얻게 한 ‘장인 정신’은 대중 을 설득하는 도구일 뿐 중국과 동남아 등지의 공장에서 조립 라인으로 대량생산되 며 그 가치는 많이 퇴색되었다고 본다. 원가 절감과 저임금의 노동력을 요하는 제 품에 브랜드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만으로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 분야에서는 ‘럭셔리’에 대해 이렇게 일축한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폈을 때 끊임없이 노출되는 광고로 하여금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가도 소비 충동을 일으키 는 것이 럭셔리 제품의 특징이다. 우리가 사는 물건 중 90%는 없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불필요한 제품들이다.” 결국 제품에 대한 소유욕을 부추겨 우리 로 하여금 불필요한 소비를 하게끔 유도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사회적 병인이라고 여겨지는 건 그러한 소비에서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10명 중 1명이나 그 제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지 않 을까? 강남에 메르세데스 벤츠 S600이 이렇게 많이 필요할까? 대학교 1학년생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게 그 학생에게 정말 필요할까? 재원과 가격을 보 여주는 광고의 등장으로 ‘너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사회는 그들을 인정한다. 이러 한 모습에서 배금주의(물질만능주의)에 깊게 물든 우리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패션은 매스미디어와 프로파간다 운영 전략을 통해 스쳐가는 말초적인 자 극으로 끊임없는 소비와 계층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다. 1990년대 닉 스Nix, 스톰Storm 같은 브랜드는 광고로 우리를 현혹해 엄청난 양의 소비를 발생 시켰지만 두 번 다시 입을 수 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태생부터가 사회적인 영 향으로 탄생된 제품은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걸 학습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소 비자들은 국내 패션 브랜드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었고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로 소비가 쏠리게 되는 현상을 겪었다. 또한 H&M(Hennes & Mauritz AB)이나 자라Zara와 같은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의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 로 다양한 감성을 채워주지만 그만큼 싸기 때문에 쉽게 불필요한 소비를 발생시킬 수 있다. 쉽게 사서 한 번 입고 옷장 깊숙이 처박아두는 것. 그런 소비 행태 또한 비 윤리적 산업 구조가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환경 파괴로까지 이어진다. 그렇다고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쓰겠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짚을 엮어 신발을 만들 순 없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오랫동안 신을 수 있는 잘 만든 제품이라 면 그 또한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본다. 수공예로 장식부터 꼼꼼히 잘 만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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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 어머니가 쓰다 딸에게 전해지고 그게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듯 말이다. 예전에는 베지테리언의 움직임이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능동 적으로 그 형태가 많이 바뀌었듯 앞으로 모피를 입으면 천박하게 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사회의식’과 ‘도덕적 가치’를 충분히 담 아냈을 때 명품 기업,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매 시즌 새로운 콘셉트로 대중의 소비를 부추겨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패션 디 자이너로서 이 같은 표현은 자가당착적인 발언으로 비쳐질 수 있겠다. 그러나 디자 이너 이전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윤리 의식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동우 | 진정성과 명품 간의 인과관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신재희 | 지나가다가 너무 예쁜 옷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전혀 들어보지 못한 브 랜드였다. 그런데 가격은 이브생로랑Yves Saint Laurent과 비슷하다. 잘 만들어졌고 느낌이 좋아서 샀다. 그렇게 구입한 제품은 그 사람에게 오랜 시간 동안 명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경우다. 굉장히 저렴한 옷이다. 그렇지만 너무 편해서 즐겨 입 게 되고 명품 이상의 가치를 느낀다. 나는 그 또한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적으로 많은 이들이 입는 유니클로Uniqlo 제품도 그 제품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면 명품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제품이 내게 얼마나 합리적이고 에 센스 있는 소비를 이끌어냈는지, 이 제품에서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느껴지는지가 명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라 제품을 명품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건 제품에서 완벽한 퀄리티와 오리지널리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식과 가격을 떠나 구 매한 브랜드의 제품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면 샤넬Chanel, 디올Dior과 같이 럭 셔리하다고 인식되는 브랜드의 제품을 입는 사람보다 더 큰 자기만족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일단 이것은 완벽한 퀄리티와 오리지널리티가 전제됐을 때 가능하다. 이제는 구찌Gucci 신발, 구찌 옷을 입은 친구를 보고 ‘어, 명품 입었네?’ 하지 않는다. 구찌가 더 이상 명품으로 각인되지 않는 것은 제품의 진정성 문제다. 브랜드에 오리지널리티가 있으면 타 브랜드와의 경쟁 구조에서 빠져나와 자신과 의 경쟁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이며 소비자와 일대일로 얘기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뀐다. 오리지널리티가 뚜렷한 대표적인 브랜드로는 1937년부터 지금까지 클래식한 디 자인과 렌즈에 관한 기술력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안경 브랜드 레이밴Ray-Ban 을 들 수 있다. 레이밴 같은 ‘소리 없는 리뉴얼’은 매우 바람직하다. 반면 문어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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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을 하거나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심하게 변화하는 브랜드는 지 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으며 진정성이 없는 거대 명품 기업들이 일침을 맞 을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브랜드는 자연 친화적인, 철학적 인, 인간적인, 예술적인 가치에 대한 진정성을 고루 담아냈을 때 비로소 소비자에 게 진정한 의미의 명품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본다. 신동우 | 최근 어떤 현상에 주목하는가? 신재희 | 얼마 전 가로수길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자전거에서 내리는 한 남자 를 보았다. 이탈리아 수제 로퍼를 신고 타탄체크 슈트에 발목까지 오는 면바지를 입고 모자랑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 남자를 보면서 ‘저 친구는 드라마에서 튀 어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이상했다. 예전에는 그런 스타일이 유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렵다. 그건 헤리티지heritage가 되어버린 패션이다. 유산처럼 되어버린 패션을 그대로 답습하기에는 이 시대 패션은 새로운 것이 굉장히 많다. 나는 크리에이티브하고 이노베이티브한 것이 이 시대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 각한다. 이메일 전송이 가능하고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수많은 콘텐츠와 서비 스를 즐길 수 있는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니까 문자 전송과 전화 통화만 되는 버튼 식 핸드폰은 아날로그로 전락했다. 심지어 버튼만 눌러지는 ‘멍청한 기계’라고 생 각한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멍청한 기계’는 ‘혁신적인 디지털 제 품’이었다. 이제 또 다음 세대 핸드폰이 나오면 스마트폰을 두고 “핸드폰 좀 바꿔 라. 너무 구닥다리야”라고 얘기할 것이다. 우리는 엄청난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기술 집약적 산업 으로, 지식과 정보가 산업을 이끄는 지식 정보화 시대로 이행하고 단계적으로 발 전해나가면서 발전 속도와 사회 구조는 더욱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 에 어느 누구도 ‘오늘 잘되고 있으니까 내일도 잘되겠지’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 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개념은 시대 변화에 따라 빠르게 바뀌고, 오늘의 아방가 르드는 내일의 클래식이 될 것이다. 미래주의(퓨처리즘)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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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 I NG 2011 SEOU L FA SH ION W E E K PR E S E N TAT I ON S H OW, S E T E C , S E O U L 2 010 .10 . 3 0
신동우 | 2011 S/S 컬렉션 ‘절제’에 관한 질문을 하겠다.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주 력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신재희 | 2010 F/W 컬렉션을 두고 토템Totem과 뢰클레르L’Eclaireur 측은 ‘너무나 아름다운 남성복’이라고 평가했지만 일부에서는 ‘마초적이고 공격적인 남성복’이 라고 평가했다. 2011 S/S 컬렉션에서는 ‘재희신은 마초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이 런 섬세함도 가지고 있다. 악함과 선함이 공존하는 인간적인 브랜드다’라는 메시 지를 주고 싶었다. 2010 F/W 컬렉션이 기대 이상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게 사실 이다. 그렇지만 한 걸음 후퇴해서 좀 더 큰 그릇의 재희신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하 고 준비했다. 재희신의 첫 페이지를 2011 S/S 컬렉션이라 생각할 만큼 브랜드 철 학의 기본을 세우는 데 주력했던 컬렉션이다. 신동우 | 동양의 많은 무도 가운데 ‘검도’로써 절제를 표현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신재희 | 누가 봐도 피상적으로 영감을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이 필요했다. 휴머니즘 을 내포한 재희신만의 철학을 어떻게 컬렉션에 담아낼까 고민하다가 동양의 무도 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양의 많은 무도 중 검도는 상대방에게 타격을 가하기 보다는 자기 수양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절제를 매우 중요시한다. 실제로 검도 복을 착용해보니 옷 자체가 굉장히 딱딱하고 끈을 묶는 부분, 겹쳐 입고 강하게 조 이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그렇게 검도복을 입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검도 라는 무도 자체에 그대로 묻어났고, 재희신은 그런 감성을 옷에 담아내 정신세계 를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재희신이 표현하려는 자연을 닮은 여유로운 실 루엣과 부피감, 여밈 디테일과 같은 요소가 검도복에 많이 적용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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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신 쇼룸의 인테리어로 활용된 철제 기둥(왼쪽),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오른쪽). 재희신은 2011 S/S 시 즌 서울 패션 위크에서 ‘철’이라는 브랜드의 상징적인 소재로 제작 한 기둥을 무대 중앙에 세웠다. 이를 통해 유럽의 고딕 성당이나 신 전 같은 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기둥 옆을 걸을 때 느껴지는 리 듬감과 율동감을 전하고자 했다. 이때 제작한 철제 기둥은 쇼가 끝 난 뒤 재희신의 쇼룸 인테리어(행어)로 활용되고 있다.
신동우 | 무대에 사용한 철제 심벌과 기둥은 어떤 요소로 활용된 것인가? 신재희 | 재희신의 철학을 확립시키는 단계에서 ‘재희신의 철학을 상징하는 소재 로는 과연 어떤 것이 적당할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가공되지 않은 철, 돌, 물, 바람 같은 원초적인 것을 찾게 되었다. 그중 ‘철’이라는 소재를 이번 쇼 에 활용했다. 무리해서까지 설치미술을 했던 것은 분명한 동기가 없었다면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무나 플라스틱에 페인트칠해 철제 느낌을 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철을 고집했던 건 실제 철이 아니면 절대 사실적인 철제 느낌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녹슨 철제 느낌을 통해 재희신의 철학을 강하게 어필하고 싶었고, 무대 를 걸어 나오는 남자의 모습에서 유럽의 고딕 성당이나 신전 같은 곳에 일정한 간 격으로 놓인 기둥 옆을 걸을 때 느껴지는 리듬감과 율동감을 전해줄 수 있다고 생 각했다. 또한 정확한 좌우 대칭으로 걸려 있는 심벌은 교회나 성당의 중앙에 걸린 십자가 같은 종교적 의미를 담아 재희신 컬렉션을 보러 오신 분들에게 마치 신전 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기둥 쪽으로 은은하게 조명을 비춘 것은 쇼 장에서 기둥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재희신 쇼 룸 인테리어도 중간 중간에 굵은 기둥을 넣어 마치 성당이나 신전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느낌을 전달할 생각이다. 신동우 | 어떻게 재희신의 패션을 종교적인 느낌과 연관 지을 생각을 했나? 신재희 | 절대적인 믿음과 깊이 있는 철학으로 무장된 브랜드의 제품이라면 종교에 서 얻는 평안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샤넬Chanel을 좋아하는 사람은 샤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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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브랜드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내가 믿고 의지하는 어느 대상에 의해 마음 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종교와 패션이 비슷한 맥락에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종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주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지침이 되 기도 한다. 나는 종교가 지닌 여러 가지 부분 가운데 평안함에 주목했던 것이다. 종교적인 성향은 고객의 믿음과 충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 이며 최근 나타나는 흐름이기도 하다. 이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지방시 Givenchy 를 꼽을 수 있겠다. 여태까지 우리는 클래식이라고 하는 과거의 복식을 응
용해왔고, 그렇게 응용하다가 이젠 지쳐가고 있다. 전체 그림을 새로 그려야 하는 상황에 온 것이다. 껍데기만 건드리는 게 아니라 아예 개념 차체를 바꿔야 하는 시 점인데 그런 건 종교적인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신동우 | 불교 복식인 승려복에서 모티브를 얻은 드레이프 바지나 티셔츠를 통해 담아내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신재희 | 목사나 신부는 단정하고 딱딱한 이미지로 인식되는 반면 스님은 ‘땡중’이 라는 말도 있듯이 다분히 인간적이고 친근한 존재로 인식된다. 재희신의 옷은 대 부분 직선적이거나 사선 형태를 띤다. 하지만 입으면 드레이프가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직선적이면서 곡선적인 콘트라스트가 공존 하는 남성상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임과 풀어짐의 대립을 드레이프 바지 나 티셔츠에 응용했고, 승려복이라는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옷에 직접적으로 적용 했지만 원단은 굉장히 모던한 것을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아날로그적이면서 미래 지향적인 감성이 공존하는 옷을 선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신동우 | 재희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핏감은 어떤 것인가? 신재희 | 단순히 패턴적인 핏보다는 패브릭의 느낌, 그것이 표면적인 느낌이 될 수 있고 무게감, 습도, 터치감과도 연관된다. ‘대립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라는 재희신 의 철학에 맞게 항상 대립되는 두 가지가 옷에 같이 적용된다. 어깨를 조인다면 어 딘가는 풀어주는 데가 있다. 또 반드시 담아내려 하는 것이 ‘긴장감’이다. 긴장감 이 있으면서 편안한 옷 말이다. 힙합 바지 입은 친구들이 껄렁껄렁해질 수밖에 없 고 넥타이에 베스트, 재킷을 차려입고 외출하면 걸음걸이가 달라지는 것처럼 옷에 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유러피언의 공식이 아닌 재희신만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장치를 한다. 어깨를 조인다든가 가슴을 조인다든가 옷자락을 풍성하게 해서 걸을 때 바람을 느끼고 자연을 느끼면서 드라마틱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디테일에 신경 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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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계 연대기를 다룬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다이 기사 메 이스 윈두(왼쪽), 오비완 케노비(오른쪽). <스타워즈>에 등장한 기사 들의 의상은 재희신의 2011 S/S 컬렉션 ‘절제’의 영감이 되었다.
신동우 | 승려복을 리서치하기 위해 모아놓은 자료에서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 는 전사의 모습이 비쳤다. 이는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 신재희 |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미래적인 기계나 로봇 같은 것에 집중해서 옷이나 디테일은 신경 써서 보지 못했다. 최근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서양인이 본 동양 철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워즈>의 초기작은 1970년대에 제 작되었는데 그 당시 광선 검이나 로봇 같은 미래적인 요소를 넣기 위해 엄청난 고 민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주목할 건 기사들의 의상을 과거 동양 의 복식에 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정확히 중국이나 일본, 한국의 것이라고 규정하긴 어렵지 만 그 모태가 승려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걸 보면서 결국 미래의 새로운 가치는 디테일이 단순화되고 사치스러움에서 벗어난 정신적인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야 내가 럭셔리해 보일까’에 대해 고민했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종교인이 입는 옷’이라는 관념이 점점 사라지고 옷에 도덕적이 고 철학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동우 | S/S 컬렉션인데 아이템 구성이 다소 무겁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신재희 | 사실 S/S 컬렉션은 정말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공을 들이려 한다. 세계적으로 온난화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코트를 선보인 건 다소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분명 한국의 여름으로 볼 때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에는 선선 한 곳이 많기 때문에 코트까지 선보이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이번 컬렉션은 아이 템 자체보다 재희신이라는 브랜드에서 느껴지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텍스처를 전 달하는 데 주력했고 이를 위해 모델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최대한 내추럴하게 연출 했다. 음악을 즐기고, 무대를 즐기고, 재희신의 옷을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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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목적은 번뇌가 업을 일으켜 괴로움의 업보를 받는 미혹, 업, 고의 삼도 윤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또한 불교 에서 붉은색은 푸른색과 함께 단청의 주조를 이루는 색이며 대자대 비한 법을 닦아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자비와 정진을 뜻한다.
신동우 | 그중 붉은색 트렌치코트는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컬러감 또한 돋보였다. 신재희 | 컬렉션에서 레드 컬러는 딱 한 번만 쓰고 싶어서 마지막에 강하게 보여 줬던 것이다. 불교에서는 붉은색을 매우 신성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붉은색 원 단은 일본에서 다양한 소재와 컬러를 소량으로 수급할 수 있는 스톡 서비스Stock Service
원단을 소싱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소재의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컬 러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그레이 컬러 울 소재는 광택도 없고 너무 거칠어 아예 쓸 수도 없었고, 블랙 컬러도 쓰기 어려운 게 대부분이었다. 원하는 컬러의 소재를 구 하려고 아주 오랫동안 찾아다녔다. 반면 실크류는 염색이 굉장히 잘되고 물이 빠 졌을 때 워싱감이 아주 좋기 때문에 면 실크나 울 실크는 전부 염색해서 컬러를 만 들어내고 있다. 신동우 | 최근 컬렉션들이 클린하고 군더더기 없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재희신 컬 렉션은 유독 빨리 끝났다는 반응이었다. 신재희 | 쇼를 보는 사람이 짧게 느끼도록 빠르게 전개했다. 실제로 시간은 10분이 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쉽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고, 오늘 재희 신을 다 보는 게 아니고 내일의 재희신이 기다려지는 그런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 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는 다음 컬렉션을 기다리게 되고 다음 컬렉션이 나오면 꼭 챙겨 본다.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진부한 밥상 을 차려놓으면 설렘이 없듯이 ‘다음 시즌에는 정말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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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S/S 컬렉션 룩북 촬영 전 의상을 매만지는 디자이너 신재희(왼
쪽), 룩북 촬영 모습(오른쪽).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 습과 인간 내면의 악한 부분을 이성적인 노력으로 순화시킨다는 촬 영 콘셉트로 진행되었다. 이날 룩북 촬영은 김영준 사진작가, 박인혜 수석 어시스턴트, 원조연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함께했다.
신동우 | 룩북 촬영에서 얼굴 전체를 하얗게 칠한 모델의 메이크업은 어떤 시도로 보면 되는가? 신재희 | 지난 컬렉션이 인간이 가진 공격성 자체를 그대로 표현했다면 이번 컬렉 션은 악에 물들었지만 여전히 그 자체로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 에 둘을 같이 본다면 대립되는 컬렉션이다. 혼란스럽게 마구 칠한 듯하게 얼굴 전체 를 덮은 거친 붓의 느낌을 통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과 인간 내 면의 악한 부분을 이성적인 노력으로 순화시킨다는 의미를 담아보려 했던 것이다. 신동우 | 룩북 작업은 어떤 분들과 함께 진행했나? 신재희 | 런던에서 공부하고 온 원조연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그리고 김영준 사진작가와 함께 작업했다. 원조연 아티스트는 김영준 사진작가에게 소개받았는 데 아주 능력 있는 분이다. 촬영 전 미팅에서 내추럴한 느낌을 원한다고 말했는데 내가 원하는 느낌을 정확하게 연출해주셨다. 그리고 모델은 원래 외국 모델과 작 업하려 했다. 그런데 스튜디오에 온 외국 모델이 우리 옷을 소화하기 힘든 근육질 남자라서 돌려보냈다. 나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느껴지는 남자 모델을 원했다. 다 부진 남성적인 골격에 인체의 선이 부드러운 듯 단단한 모델이어야만 재희신의 강 하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의 남성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정에 메이크업을 끝내고 새벽 2시가 돼서야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영준 사 진작가는 아침 6시에 일본 출장을 떠나야 해서 중간에 박인혜 수석 어시스턴트가 작업을 이어받았고 오전 10시에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다 같이 술 한잔씩 하고 오전 12시에 헤어졌다. 굉장히 재미있었던 촬영이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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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의 생전 모습과 그의 작품 <Untitled>[White, Blacks, Grays on Maroon](1963).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 출생의 미국 화가이다. 1940
년대에 들어서면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의 길로 들어섰고, 1947년경부터 큰 화면에 두세 개의 색면을 수평으로 배열한 작품을 제 작했다. 윤곽이 배어든 색면이 배경으로 떠돌듯이 융합하는 작품으로 그
는 이로써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널리 알려졌다.
신동우 | 길쭉한 페인팅이 된 티셔츠를 보고 있으니 마치 색면 추상 화가 마크 로스 코의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신재희 | 피티 워모Pitti Uomo에 나가기 전이니까 2009년 1월쯤일 거다. 스칼라 극 장La Scala Theatre 뒤편에 자주 가는 책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마크 로스코의 화집 을 산 적이 있다. 그걸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색감이나 표현 방식이 상당히 동양적으로 느껴졌는데 ‘이게 서양에서 바라본 동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 도였다. 그의 작품에는 형태가 많지 않다. 하지만 컬러 프레임만으로도 충분히 메 시지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컬러가 주는 깊이감, 그 절제된 느낌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고, 재희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와 잘 맞아떨어졌다. 중앙에 보이는 검정 색면은 티셔츠에 직접 페인팅 한 것이 아니다. 올을 풀어 날카 로운 외곽선의 느낌을 무너뜨리고 패치워크한 것이다. 흰 바탕에 접어서 봉제하지 않았던 것은 주변에 묻히면서 외부와 공존하는 느낌을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신동우 |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갤러리에서 직접 봐야 그 깊이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쇼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이 옷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신재희 | 나도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전시장에 가서 직접 보았다. 컬러에서 오는 깊 이감과 그 거대함은 정말 대단했다. 무엇보다 재희신이라는 브랜드를 외부의 눈으 로 바라봤을 때 패션과 예술이 50대 50으로 비쳐졌으면 좋겠다. 입는 사람은 옷을 입지만 느끼는 감성은 마치 갤러리에서 옷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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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면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재희신의 2011 S/S 시즌 서울 패션 위크 초대장. 초대장 중앙의 검 정 색면은 텍스처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프린트를 하지 않고 패브 릭을 직접 종이 위에 붙인 것이다.
신동우 | 초대장 또한 콘셉트와의 연관성이 뚜렷했는데 프린트를 하지 않고 패브 릭을 그대로 종이에 붙인 것이라 작업량이 상당했겠다. 신재희 | 컬렉션에 필요한 수량을 다 잘라서 붙였으니까 직원들이 정말 고생을 많 이 했다. 아무래도 인쇄를 사용하면 제대로 느낌이 살지 않을 거 같았다. 신동우 | 티저 영상 같은 경우는 영상미도 훌륭했지만 음악 선곡이 상당히 돋보였 다. 어떤 곡인가? 신재희 | 영국 그룹 로 피델리티 올스타스의 ‘Extended Spirit-Caprice’라는 곡으 로, 재희신이 생각하는 종교적인 느낌과 잘 어울려 선곡하게 되었다. 티저 영상은 김영준 사진작가가 룩북 촬영을 할 때 옆에서 캠코더로 찍은 것이다. 그렇게 찍은 영상을 편집해 티저로 내보내기로 했다. 중점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부분은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 하는 듯한, 무언가를 초월하는 듯한 ‘너바나Nirvana(열반)’와 같은 느낌이었다. 발뒤꿈치를 쭉 들어 올리는 것에서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하고 싶었고, 그 의지와는 정반대의 콘트라스트를 하늘거리는 옷으로 표현했다. 불교적인 음악, 인간의 강한 의지, 대자연을 느끼는 듯한 하늘거리는 옷, 이 삼박자가 어우러지면 서 아주 편안하고 고뇌에서 승화된 듯하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단단한 자아가 존 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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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ee Sheen, 2011 S/S Teaser Film <Abstinence>(2010)
SPR I NG 2011 T R A NOI HOM M E PA R I S E X H I B I T I ON , PA L A I S DE L A B O U R S E , PA R I S 2 010 . 0 6 . 2 5~ 0 6 . 27
신동우 | 다양한 해외 비즈니스를 경험하고 최근에는 트라노이 페어에 집중하고 있다. 밀라노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실무를 익혔으니 당연히 이탈리아에 비즈니스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어떤 이유로 파리 트라노이 페어를 선택하 게 되었나? 신재희 | 시장에 진입하기 전 시장조사 차원에서 거의 대부분의 페어를 둘러보았다. 2009년에는 피티 워모에 참가했고 같은 시기에 트라노이에도 참가했다. 당시 두 페어에 모두 참가했던 건 재희신을 서로 다른 두 시장에서 테스트해보고 싶었기 때 문이다. 그 결과 파리가 재희신의 역량을 발휘하기에 더 좋은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쉽게 생각하면 밀라노와 파리를 옆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바이어들이 움직이는 전혀 다른 시장이다. 피티 워모는 상업적 비즈니스 감 각을 중요시하고 재희신이 추구하는 성향보다 좀 더 클래식한 성격을 띤다. 바잉 되는 옷도 클래식한 옷 위주다. 반면 트라노이는 크리에이티브와 실험 정신을 강 조하는 페어다. 페어라는 건 많이 나가면 나갈수록 다양한 바이어들을 만나고 시 장을 확장시키는 데 이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제한된 예산 안에서 여러 가지 상 황을 고려한다면 한 곳에 집중하는 게 옳다고 본다. 지금은 신인 디자이너로서 재 희신을 유니크한 정체성을 지닌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 게 목표다. 정체성이 분 명한 브랜드로 정착하기에는 파리가 가장 핵심적인 무대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 고, 그중 트라노이 페어가 디자이너로서 자질을 테스트받을 수 있고 재희신을 그 대로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트라노이에 맞는 디자인을 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할 것이고, 특별히 시장 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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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쇼 ‘트라노이’가 열리는 팔레 드 라 부르스(Palais de la Bourse, 왼쪽), 특별 기획전 ‘트라노이 서울(Tranoi Seoul)’이 개최되었던 크링 (Kring , 오른쪽). 서울시는 서울 패션 위크에 참가하는 디자이너 가운데 10명을 선정하여 6월과 10월 파리에서 열리는 트레이드 쇼 트라노이 참 가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 프로젝트 ‘Seoul’s 10 Soul ’의 2011 S/S 시즌에는 강동준, 김재현, 신재희, 임선옥, 이석태,
이승희, 주효순, 최지형, 최범석, 홍혜진이 선정되었다.
신동우 | 트라노이 페어는 개최된 지 얼마나 되었으며 어떻게 운영되는가? 신재희 | 트라노이는 사실 10년 정도 된, 오래되지 않은 페어다. 뢰클레르 사장 아 르망 아디다Armand Hadida의 아들 미셸 아디다Michael Hadida가 트라노이를 운영하 기 때문에 뢰클레르에 어울리는 디자이너를 선호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신동우 | 뢰클레르는 어떤 성향을 띠는 숍인가? 신재희 | 전체적인 컬러감은 블랙을 띠며 굉장히 아방가르드한 콘셉트의 숍이다. 어 번 캐주얼urban casual이나 전위적인 성향의 디자이너 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 에 포함되는 디자이너로는 다미르 도마Damir Doma,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릭 오웬스Rick Owens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의 구두나 니트 브랜드도 상당히 많이 들 어가 있다. 핸드메이드로 공을 많이 들인 제품이 주류를 이루는 숍이다. 신동우 | 유럽 경제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상황에서 패션 시장도 예외 없이 상 업적인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파리 시장도 그 상황은 마찬가지일 텐데 이 번 트라노이 페어에는 어떤 옷이 주류를 이루었는지 궁금하다. 신재희 | 트라노이에도 예외 없이 경제 위기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상업적인 디자 인의 영향뿐만 아니라 최근 남성복의 유행이 ‘클래식’과 ‘아웃도어outdoor’로 바뀌 면서 트라노이도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페어에 비해 크리 에이티브가 강조되는 페어인데 이번에 가보니 크리에티브한 옷보다는 상품성이 강한 옷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전개하던 벨기에 출신 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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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들이 이번 트라노이 페어에 전부 빠졌기 때문이기도 한데, 최근 그런 것이 문 제가 되고 있어 트라노이도 큰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새로 대체될 만한 콘텐츠가 한국 디자이너에게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 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신동우 | 이번 2011 S/S 시즌 트라노이 페어에는 개인으로 참가했던 2010 F/W 시즌과는 다르게 서울시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 프로젝트인 ‘Seoul’s 10 Soul’ 로 참가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게 많이 달랐을 거 같다. 신재희 | 트라노이 측과 서울시가 사전에 개런티 된 부분이 있어서 좀 더 많은 관 심을 가졌던 거 같다. 신동우 | ‘Seoul’s 10 Soul’이라는 네이밍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신재희 | 앤트워프 6Antwerp Six 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소울 10’으 로 묶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아니라 외부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보고 묶었을 때 의미 가 있다고 본다. 시장에서 우리를 ‘소울 10’으로 불러줄 때까지 기다려줬으면 한다. 신동우 | 디자이너 10인 선정과 그 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재희 | ‘10인’이라는 것에 너무 집중된 게 사실이다. 나를 포함해 디자이너를 선 택하는 데에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인들은 아직 테스트가 안 됐고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온 건 정말 운이 좋은 경우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국가적 손해일 수 있다. 답을 너무 빨리 얻으려 하지 말고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데 좀 더 시간을 갖고 최소한 네 번 정도는 컬렉션을 보고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게 좋을 거 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시가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 트라노이 페어 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신동우 | 아무쪼록 ‘Seoul’s 10 Soul’ 프로젝트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좋은 성과가 있길 기대한다. 파리 외에 관심을 두는 시장이 있다면 어디인가? 신재희 | 독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 독일은 프랑스와는 엄연히 다른 시장이다. 하지 만 베를린 패션 위크와 같은 기간에 개최되는 ‘더 프로젝트 갤러리The Projekt Galerie’ 는 이름부터가 갤러리로 예술적인 느낌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 다. 이번에는 준비하지 못했는데 다음 컬렉션부터는 트라노이와 병행할 생각이다. 베를린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엄청난 내수 시장 때문이다. 내수 시장 때문에라도 베를린은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욕도 직접 가지 않으면 비즈니스가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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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뉴욕도 같이 한번 해볼 생각이다. 반면 일본과 영국은 바이어가 직접 움직이는 곳이라서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현재는 파리, 베를린, 뉴 욕, 이 세 군데 마켓으로 압축하고 있다. 그중 독일은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고 싶다. 재희신의 옷이 드레이프된 부분을 제외하면 다부지고 딱딱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독일인의 감성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동우 | 페어에 언제까지 참가할 계획인가? 신재희 | 페어라는 것은 바이어와의 약속이다. 운이 좋아 바로 바잉으로 연결될 수 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좋은 컬렉션을 보여주면서 바이어와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페어 참가는 제품력을 테스트하고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나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과정이고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가는, 해외 비즈니스를 위한 기 반을 다지는 단계라고 본다. 일종의 수험료를 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 브랜드라면 반드시 졸업은 해야 한다. 오랜 기간 페어에 참가하다 보면 페어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고, 트레이드 쇼 특성상 바이어들에게 제품력으로 승 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한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길어도 2~3년은 넘기지 않고 그 안에 다음 단계의 비즈니스로 넘어가야 한 다고 생각한다. 신동우 | 다음 단계의 비즈니스라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구상하고 있는가? 신재희 | 페어장을 찾는 바이어들의 취향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 문에 페어에 참가한 신인 디자이너 한두 명이 시장의 트렌드를 바꿀 순 없다고 본 다. 하지만 패션쇼로는 가능할 수 있다. 페어는 참가하는 게 끝이 아니라 그다음 에 쇼룸 비즈니스로, 그다음은 해외 패션쇼로 이어지고, 그다음은 디스트리뷰터 distributor 를 만나 해외에서 역량 있는 비즈니스를 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외부적으
로 경험을 쌓고 내부적인 인원들의 노하우나 지식이 충분히 쌓여야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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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MODE ST Y
FA L L 2010 SEOU L FA SH ION W E E K PR E S E N TAT I ON S H OW, S E T E C , S E O U L 2 010 . 03 . 2 9
신동우 | 2010 F/W 컬렉션 ‘중용Modesty’은 서울 패션 위크에 처음으로 세우는 컬 렉션인 만큼 부담감과 과정상 어려움이 상당히 많았을 것 같다. 신재희 | 피스 하나하나에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던 컬렉션이다. 사람들이 익스트 림은 기억을 잘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많이 빠질 수 있겠다는 부분이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표현 자체는 시원시원하게 했던 거 같다. 첫 번째 컬렉션이다 보니 작 은 것 하나도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당시 멋진 옷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철학적 깊이가 있는 옷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부분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컬렉션이다. 신동우 | 조명으로 연출한 쇼장 배경의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신재희 | 처음에는 회색 벽으로만 가려고 했다. 그래서 회색 천을 무대에 붙였는데 쇼 연출을 맡으셨던 더 모델즈The Models의 정소미 선생님이 초반에 조명을 이용해 번뇌하는 느낌을 연출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 결과가 상당히 좋았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신동우 | ‘중용’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뉘앙스에 비해 재희신의 2010 F/W 컬렉 션은 굉장히 마초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2010 F/W 컬렉션을 통해 재희신이 담으 려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신재희 | 인간 내면의 도덕성에 관한 갈등이나 혼란, 악함을 형상화하기 위해 초현 실주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표현법을 참고하기도 했고, 현대인에게 발생 하는 모든 악함을 필터링 없이 상쇄시키고 싶었던 컬렉션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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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상처를 입고 붕대를 두른 군인들(왼쪽), 검은색으로 염 색하고 칠을 한 붕대와 레이스를 얼굴에 두르고 있는 모델(오른쪽).
로 접근했지만 컬렉션에는 여성스러운 요소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 람들은 내 옷을 상당히 마초적이고 공격적으로 풀어냈다. 호스템Hostem과 넘버 4Number 4를 운영하는 바이어 마크 퀸Mark Quinn은 ‘너의 느낌을 제대로 포장할 수 있는 숍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했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옷이 라는 건 만든 사람 의도대로 해석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이 가 능한데 많은 사람들이 내 의도와는 다르게 재희신 컬렉션을 펑크, 데스록, 헤비메 탈 같은 공격적 성향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에게 내 옷은 트렌디하고 커머셜한 옷 으로 비쳐졌다. 내 손을 떠난 작업에 대해서는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작업은 내 몫이지만 해석은 그들 몫이라고 생각하며 내 옷에 대한 해석조차 컨트 롤하고 싶지 않다. 제삼자 입장에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새롭게 재해석 될 수 있다고 본다. 신동우 | 자카드 원단으로 얼굴을 두른 건 어떤 메시지를 주려 했던 것인가? 신재희 | 전쟁터에서 얼굴에 상처를 입는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붕대를 감는다. 이 를 통해 물리적인 상처뿐만 아닌 상처받은 영혼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흰 색 붕대를 감고 나오면 진짜 다친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을 텐데 겉만 다친 것 이 아닌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붕대와 레이스를 검은 색으로 염색하고 그 위에 다시 칠을 해서 얼굴에 감싼 것이다. 신동우 | 레이스를 조각난 느낌으로 표현했던 디테일은 어떤 시도로 보면 되는가? 신재희 | 혼란스러운 이 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매트 하고 깊이감 있는 블랙을 표현하여 무겁고 진지한 느낌을 주기 위해 레이스에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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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내재된 악을 여과 없이 상쇄시키고자 했던 2010 F/W 컬 렉션의 디테일. 신재희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나 악의, 충돌하는 자아 의 모습 같은 추상적이고 형태가 없는 것을 시각화하기 위해 초현실 주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표현법을 참고하기도 했다.
색을 하고 다시 페인팅을 하고 폴리우레탄을 발라 건조했다. 레이스는 부분적으 로 들어갔을 때보다 전체로 들어갔을 때 오히려 내추럴한 느낌이 날 거라고 생각 해 과감하게 슈트 앞판 전체라든지 바지 앞판 전체에 조각난 느낌으로 표현했다. 2010 F/W 컬렉션에는 불규칙한 디테일이 상당히 많았다. 끈이 정신없이 빠져나 오게 했던 것도 번뇌와 혼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인데 정말 많은 양의 끈을 사용했다. 아마 50~60미터는 됐을 거다. 목도리 같은 경우 일반 밧줄을 사용 하면 우리가 원하는 컬러감이나 무게감을 표현할 수 없을 거 같아 티셔츠나 카디건 에 사용하는 원단을 전부 꼬아서 다양한 두께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2010 F/W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인간의 복잡한 심리나 악의, 충돌하는 자아의 모습 같은 추상적이고 형태가 없는 것을 시각화하는 부분이 굉장히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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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ee Sheen, 2010 F/W Teaser Film <Modesty>(2010)
신동우 | 티저 영상에는 어떤 콘셉트를 담았나? 신재희 | 재희신의 옷을 단순히 상품으로 보이기보다는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옷 안에 담긴 ‘중용’이라는 재희신만의 콘셉트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인간이 태 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공격성이나 악함으로 고뇌하고 삶의 무게를 느끼며 혼란 스러워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필터링해서 내보내려 하다가 필터 링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한 이유는 재희신의 옷을 입음으로써 그런 성향이 오히려 상쇄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동우 | 당시 화보를 보면 모션이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신재희 | 밧줄이 날리는 이 포즈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백 번 포즈를 취했다. 움직 이라 하고 찍고, 움직이라 하고 찍고. 당시 남성지, 여성지 할 것 없이 반응이 너무 좋아서 빼달라고까지 요청했다. 재희신 컬렉션에 밧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그만 나갔으면 좋겠다고.(웃음) 신동우 | 아이템 자체가 워낙 독특하고 이미지가 강해서 화보로 쓰기 좋았던 게 아닐까? 신재희 |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했던 거 같다. 근데 재희신이 매일 감초 역할만 하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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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ee Sheen, 2010 F/W Art Work <Modesty>(2010)
신동우 | 2010 F/W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작업한 이 그림은 그린다기보다는 세상 에 대한 분노를 캔버스에 대고 화풀이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처 토해내지 못한 욕설처럼 말이다.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신재희 | 가장 먼저 브론즈를 금이라 생각하고 칠했다. 병든 인간성을 생각하며 굉 장히 어지럽게 칠했다. 일종의 분풀이였다. ‘이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내가 이 시대에 느끼는 감정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신동우 | 시즌마다 틈틈이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아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본다. 루이뷔통Louis Vuitton은 ‘일본의 앤디 워홀’ 로 불리는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컬래버레이션한 ‘미소 짓는 체리 핸드 백’ 하나만으로 2005년 1사분기 매출을 두 자리 수로 늘렸으며 이후 엄청난 부가 가치를 만들어냈다. 만약 재희신이 현대미술 작가와 협업을 구상하게 된다면 어떤 작가와 함께 해보고 싶은가? 신재희 | 예술가와의 협업은 브랜드에 예술적인 부분을 결합시킬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는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섣불리 진행할 일은 아니라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가 순수한 예술을 더럽히는 일이 될 수 있 기 때문이다. 우선 ‘작가와 디자이너의 오리지널리티가 잘 융합되는지’를 고민해 본 뒤 시도하게 된다면 작품의 프린트를 활용하기보다는 설치나 행위 미술, 현대 무용과 접목해서 옷으로써 못다 한 이야기나 옷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신동우 | 좋아하는 현대미술 작가는 누구인가? 신재희 | 지금까지는 색면 추상 화가 마크 로스코나 이브 클라인의 작품에 나타난 색의 영역에 굉장히 심취해 있었다. 형태 왜곡이 심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 에 대해서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최근 퐁피두센터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미셸 레리의 초상Portrait of Michel Leiris>(1976)을 실제로 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내면세계와 심리 상태를 느낄 수 있었으며 다음 컬렉션에 응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동우 | 패션과 예술은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신재희 | 예술가들은 동시대적 인간상을 담아내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이 미래주의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는 그를 앞서 간 예술가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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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샬라얀의 2009 S/S 컬렉션 ‘관성’. 후세인 샬라얀은 21세기 미래 주의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이며 20세기부터 시작된 미래파 화가들 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는다. 미래파 화가들의 사유는 ‘시간의 흐름과 운 동의 연속성’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기계문명의 움직임과 속도를 찬 미하여 역동적인 운동 표현을 회화와 조각에 도입하고자 했다.
이탈리아 미래파의 거장 움베르토 보초니의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 들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1913)과 후세인 샬라얀의 2009 S/S 컬렉션 ‘관 성Inertia’은 ‘공간 안에서 지속성을 갖는 움직임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 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 미래주의 화가들의 역동적인 회화와 조각에는 움직이는 시간을 적극적 으로 끌어들이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것을 함께 화 면에 담아내려고 했다. 다이너미즘dynamism(역동설)은 그들의 최종 목표였으며 시 대가 요구하는 기계, 운동, 힘, 속도에 집중했던 것이다. 예술가들은 인간에게 관심이 많다. 그것도 어제의 인간의 모습보다는 오늘과 내일 의 인간의 모습에 관심이 많다고 여겨진다. 패션 디자이너들 또한 내일의 트렌드 를 셋업하기 위해 고민한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상업 예술의 최전선에 있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의 고민은 패션 디자이너들도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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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berto Boccioni,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1913)
Mark Rothko, <White Center>[Yellow, Pink and Lavender on Rose](1950)
신동우 | 2009년에도 이와 비슷한 주제로 서울예술종합학교에서 강연한 바 있는 데 당시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신재희 | 디자이너마다 자신이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패션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비즈니스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언 가가 될 수도 있다. 당시 학생들을 상대로 ‘패션과 예술’에 대해 언급했던 건 브랜 드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술로서의 패션 이냐, 상업으로서의 패션이냐 이런 개념이 아닌 전혀 다른 장르에서 패션에 접근 했고 강연에서 전제로 깔았던 건 바로 ‘진지함’이었다. “기존의 장식적 미술이 정서적 미술로 흐름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앞으로 패션 이 나아갈 방향은 가격, 디테일, 미적 완성도,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옷을 입는 사 람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영역으로 확대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어떤 신인 디자이너가 나오건 인간을 무시한 상태에서 좋은 패션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반드시 동시대적인 모습과 고민을 충분히 담아내야 할 것이다”라는 강연을 했다. 신동우 | 1975년 미국 현대미술 최전성기에 발표해 미국 미술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톰 울프의 《현대미술의 상실The Painted Word》은 지나치게 이론화되어가는 현대미술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 책으로, 가장 성공적인 현대 사회 비평서로 평 가받고 있다. 또한 많은 이들이 “현대미술은 어렵다”, “더 이상 그림 자체는 중요하 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듯한, 그러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미술 이론이 전면에 부상했으며, 이 새로운 이론에 얼마나 잘 부합되는 그림을 그리느냐가 화가의 성 공 여부를 결정짓게 돼버렸다”고들 말한다. 이러한 평가를 안고 있는 현대미술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신재희 | 현대미술은 커다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즉흥적이고, 마치 누구나 할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준다. 발상 자체가 신선하지 않으면 현대미술 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이제는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발상이 더 특이한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얼마나 명확한지’가 굉장히 중요해진 시대다. 오히려 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1503~1519)보다 마크 로스코의 <화이트 센터>(1950)가 더 이해하기 쉽다. 도대체 이 눈썹 없는 여자는 어떻게 이 해해야 될지 모르겠다. 현대미술품에서는 더 많은 게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 다.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읽어나가기보다는 보는 이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 같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에서 숨은 재미를 찾는 것도 있겠지만 두세 개의 색면으 로 구성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내가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해석 이 조금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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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파(물파物派)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이우환(Lee U Fan) 작가 (왼쪽), 이우환의 설치 작품 <관계항>(오른쪽). 이우환은 한국의 현대 미술 작가이다. 일본의 획기적 미술운동인 모노파의 창시자이며, 동 양 사상으로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극복하여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 다. 한 미술 잡지의 설문에서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한국적인 작 가’로 꼽힌 바 있으며 주요작품으로는 〈선으로부터〉(1984), 〈동풍〉 (1974), 〈조응〉(1988), 〈점에서〉(1975), 〈상응〉(1998) 등이 있다.
현대미술은 과거 작품들에 비해 의미 부여가 많고 무거워진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퐁피두센터에 다녀왔는데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 예술이라기보다 철학 에 가깝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모노파의 이론과 실천을 주도한 이우환 작가의 작품도 색이나 형태의 아름다움보다는 ‘메시지’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 다. 한 권의 책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개념과 철학을 가지고 생각하게 만들 고 진지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매우 필요하고 잘 부합하는 예술 방식이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여기기 쉬울 만큼 지금은 ‘크리에이터들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그 안에서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신동우 | 오는 2012년에는 파리 서쪽 외곽 지대의 불로뉴 숲Boulogne Forest에 모에 헤네시 루이뷔통Moet Hennessy Louis Vuitton, LVMH 그룹의 문화예술재단 사옥이 들 어선다. LVMH 회장 겸 CEO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을 설계했던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에게 문화 예술재단 사옥 설계를 맡겨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거대 패션 기업의 문 화예술 진흥을 위한 각종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재희 | 이제는 구찌나 루이뷔통 로고를 보면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그것들은 너 무나 진부해졌으며 이미 소비자들은 수준이 높이 올라와 있다. 거대 패션 기업들 이 확장, 이벤트, 파티에 쓰던 판매 수익을 예술에 투자하고 협업을 하는 것은 브랜 드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될뿐더러 명품의 진부한 가치에 질려버린 소비자들에게 새 로운 접근 방식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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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U Fan , <Correspondence>(1996 )
토즈는 세계 3대 극장 중 하나인 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의 공연 제작비를 후원하기 시작한 것을 기념하여 <An Italian Dream>이라 는 예술 영상를 제작했다. 라 스칼라 극장 전체를 배경으로 한 이 영 상는 독일 감독 마티아스 젠트너(Matthias Zentner)가 감독을 맡았 고, 라 스칼라 극장의 발레리나 열세 명이 다양한 스텝의 댄스로 토즈 의 고미노 슈즈를 제작하는 과정을 표현했다.
예술과의 소통으로 단연 돋보이는 브랜드는 토즈Tod’s다. 얼마 전 토즈는 <An Italian Dream>이라는 예술 영화를 제작했는데 토즈의 대표적인 아이템인 고미노Gommino 슈즈의 제작 과정과 ‘고무 페블rubber pebble’의 특징을 담아냈다. 작고 둥근 모양으로 올록볼록 튀어나온 미끄럼 방지 고무 밑창인 고무 페블의 특징을 열세 명의 발레리 나가 다양한 댄스 스텝으로 표현한 영상은 예술 그 자체였다. 완벽하지 않으면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시도였지만 그들은 이것을 환상적으로 표현해냈다. 만약 토즈가 ‘장인 정신’을 가지고 진부하게 밀어붙였다면 지금의 명성을 누릴 수 있을지 의문이 다. 토즈가 예술에 바치는 헌사, 고미노 슈즈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한 토즈의 노력 을 직접 확인하며 많은 패션 브랜드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느꼈다. 점점 많은 브랜드들이 예술에 근접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경쟁 브랜드를 따돌리기 위한 유일한 돌 파구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패션에 예술혼을 불어넣는 작업은 지금 이 시대 소비 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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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â&#x20AC;&#x2122;s, Arts Film<An Italian Dream>(2010)
FA L L 2010 7 7 T H PI T T I UOMO E X H I B I T I ON , F ORT E Z Z A DA B A S S O, F I R E N Z E 2 010 . 01.1 2~ 01.15
신동우 | 피티 워모Pitti Uomo는 어떤 성격의 페어인가? 신재희 | 캐주얼부터 최고급 하이엔드 맞춤 슈트 브랜드까지 다양한 남성복 브랜 드가 참가하는 페어로, 브랜드 퀄리티 면에서 본다면 ‘세계 최고의 남성복 페어’라 고 볼 수 있다. 또 상당히 이탈리아적인 감각의 페어이며 피티 워모에 참가하면 브 랜드의 모든 아이디어와 정체성이 상업적으로 맞물려갈 수 있다. 그만큼 바잉도 활성화되어 있고 지금도 수많은 바이어들이 페어에 참여한다. 신동우 | 2009년 신인 디자이너 초청으로 피티 워모 뉴 비트New Beat에 참가한 데 이어 이번에는 어떤 존으로 참가한 것인가? 신재희 | 이번에는 컨템퍼러리한 브랜드가 주류를 이루는 랄트로 워모L’altro Uomo 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만 전혀 다른 성격의 컬렉션을 선보여서 프랑 스 친구들이 우리 옷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어떻게 이런 성향의 브랜드가 피티 워모에 참가할 수 있었냐, 당신의 컬렉션이 가장 좋다, 이탈리아보다는 파리와 맞 지 않겠느냐’며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게다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당히 고가 였음에도 불구하고 판매도 잘되었다. 사실 현판도 준비하지 못해 쇼핑백으로 대 체했었다.(웃음) 신동우 | 쇼핑백으로 현판을 대체했던 건 굉장한 센스였다고 본다.(웃음) 사실 이 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눈에 띈 건 ‘한국인 최초로 피티 워모 참가, 피 티 워모 디자이너 신재희’라는 타이틀이었다. 국내 무대에 데뷔하면서 컬렉션 자 체보다는 피티 워모에 관심이 집중됐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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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 | 사실 한국에 와서 피티 워모가 이슈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서 말을 안 하고 있었다. 대기업에서도 계속 시도했지만 참가가 쉽지 않았다고 한 다. 그런데 개인이 떡하니 참가하니까 주목했던 거 같다. 개인적인 생각은 ‘피티 워 모가 정말 주목할 만한 페어인가’라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으로 굴지의 맞춤 슈트 브랜드가 대거 참가하는 게 사실이지만 수많은 페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인 최초로 피티 워모 참가’, ‘피티 워모 디자이너 신재희’보다는 신인 디자이너로서 나에게 기회를 준 페어였다는 데 의미가 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내 정체성과는 잘 맞지 않는 페어인 것 같다. 신동우 | 피티 워모는 어떤 성향의 브랜드가 참가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신재희 | 실제로 바잉되는 브랜드를 보면 상당히 클래식한 감성의 브랜드가 대부 분이고, 피티 워모에는 절대 싸구려 옷은 나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제품의 퀄리 티가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유럽은 완성된 옷의 후가공 수준이 대단하다. 예를 들 면 차를 샀는데 새 차 느낌이 아닌 3년 정도는 굴린 듯한 느낌? 빈티지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인지 몰라도 워싱된 느낌부터 입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까지 많은 차이 가 있다. ‘그런 것이 유럽의 감성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도시 자체가 오 래된 곳이다 보니 깨끗한 옷보다는 워싱되고 헐은 듯한 느낌의 옷이 잘 어울린다. 반면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짱짱하다. 코엑스 같은 곳에서는 모던한 옷이 어울리 는 것처럼 환경에 따라 어울리는 옷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후가공이 뛰어난 유럽 의 옷을 보며 어떻게 하면 시중에 나올 때부터 에이즈드한 느낌을 주는 옷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국내에도 피티 워모와 성격이 맞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흔히 ‘데일리 클래식’이나 ‘데일리 캐주얼’로 불리는 중저가 브랜드가 피티 워모에 참가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고, 지속적으로 좋은 컬렉션을 선보인다면 언 젠가는 세계적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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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SPR I NG BR EE ZE
SPR I NG 2010 PA R I S SOLO E X H I B I T ION E X H I B I T I ON , 76 RU E Q U I N C A M PA I X 750 03 , PA R I S 2 0 0 9. 0 6 . 24 ~ 0 6 . 2 9
신동우 | ‘봄바람Spring Breeze’이라는 주제로 여성스러운 디테일에 컬러 톤도 상당 히 부드럽게 느껴졌던 컬렉션이다. 신재희 | 컬렉션을 준비하던 당시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공항 검색이 심 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며 무언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컬 렉션을 해보고 싶었다. 그레이시한 파스텔컬러와 밀리터리적인 요소의 디테일을 믹스하여 시적으로 풀어내보았다. 바람이나 공기가 느껴지는 여유로운 실루엣을 바탕으로 파스텔 톤을 내는 데 적당한 얇고 투명한 실크 소재를 주로 사용했던 컬 렉션이다. 신동우 | 전시 장소는 어디였나? 신재희 | 퐁피두센터 뒤쪽, 우리나라로 치면 인사동 예술의 거리 같은 곳으로 보면 되겠다. 그곳 전시장을 일주일간 빌려 프레스들을 부르고 전시와 파티를 열었다. 신동우 | 그런 장소라면 대관료가 상당했을 것 같다. 전시 구성은 어떻게 했나? 신재희 | 1층에는 옷을 전시하고 지하 1층에는 영상을 준비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재희신만이 가진 전체적인 느낌을 보여줄 수 있도록 했고, 어두운 공간을 만들어 인간의 악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대관료는 하루에 2500유로였으니까 원화로는 하루 4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박람회만으로는 재희신의 콘셉트나 철학을 충분히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욕심을 많이 냈던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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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을 희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커다란 다이아몬드 프레임의 반지(왼쪽), 실제로 굉장히 큰 사이즈이며 브라질에서 직접 만들어 온 코르사주(오른쪽).
신동우 | 프레임이 굉장히 큰 반지도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어떤 메시 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신재희 | 서울산업대 서민희 교수와 협업하여 제작한 반지다. 2010 S/S 컬렉션은 ‘봄바람’이라는 주제 아래 ‘도덕성의 붕괴’를 소주제로 삼았다. 자국의 이익 때문 에 발생하는 전쟁 모습,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려고 했다. 그런 사회적 문제를 인간 중심으로 풀어나가다 보니 ‘탐욕’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탐욕을 대변하는 것이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했다. 당시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영화를 보면서 다이아몬드를 향한 인간의 광기 어린 모습, 동족 간
의 처절한 총부림과 살육전을 통해 얻은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인 시에라리온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다이아 몬드 산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곳 광부들에게 다이아몬드는 ‘신의 축복’이 아니 라 ‘신의 저주’다. 내전으로 인한 고통뿐 아니라 휴일도 없이 하루 두 컵의 쌀과 50센 트의 돈을 받으며 캐낸 다이아몬드 원석은 밀반출된 후 정교하게 다듬어져 고가에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인간의 탐욕에 대한 부분을 재희신 컬렉션에 담아내고 싶었고, 다이아몬드라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주 고 싶었다. 신동우 | 코르사주, 스카프도 컬렉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보인다. 신재희 | 코르사주는 실제로 굉장히 큰 사이즈이고 브라질에서 직접 다 만들어 왔 다. 스카프는 정확한 컬러를 뽑아내기 위해 이탈리아로 보내 제작했는데, 바람에 날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기 위한 영상에 많이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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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ee Sheen, 2010 S/S Teaser Film <Spring Breeze>(2009)
신동우 | 영상은 어떻게 구성한 것인가? 신재희 | 동양적인 요소를 담아 영상의 흐름을 기승전결로 나누었다. 고민하면서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괴로움을 날려버리는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다. ‘새로운 방식 의 프레젠테이션이 흥미로웠다’는 평이 있었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알릴 수 있 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재희신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기초 철학을 만 들어가는 시기였다. 어떻게 하면 옷에 휴머니즘을 담아낼 수 있고 재희신만의 소 재, 핏감 등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신동우 | 흑과 백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신재희 | 만물은 음과 양의 융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남과 여, 낮과 밤, 흙과 물 등 모든 사물은 극단적인 대립 관계로 존재하며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 립은 갈등의 시작이 아닌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지닌 양면적인 모습에 대해 어떠한 부정적인 의견도 없다. 그 자체가 인간 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흑과 백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 지닌 양면성 의 공존, 조화의 중요성이다. 그런 것을 통해 인간다운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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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 |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원단 소싱은 대부분 어디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신재희 | 원단은 대부분 스위스에서 소싱한 것이고 종이 털 같은 느낌이 나는 소재 는 프랑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재를 결정하기 위해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소재나 컬러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디테일은 심플하게 했다. 신동우 | 스위스는 울과 실크에선 단연 최고의 원단을 자랑하는 나라지만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다. 혹시 어떤 이유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대자연과 맞바꾼 것일까?(웃음) 신재희 | 눈앞에 펼쳐진 장관이 너무 대단해서 더 예쁜 것을 만들 수 없다? 가능성 있는 얘기인 거 같다. 사실 스트레스도 받고 해야 좋은 게 나온다. 스위스는 정말 오르골과 빅토리녹스 칼, 스와치 시계만 팔더라.(웃음) 신동우 | 2010년 11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개최된 스위스 텍스타일 어워즈Swiss Textile Awards 의
파이널리스트로 준지Juun.J가 선정돼 이슈가 되었다. 그 외 다미
르 도마Damir Doma, 듀로 올로Duro Olowu, 메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 애덤 키멜 Adam Kimmel,
제이슨 우Jason Wu까지 총 6명이 후보에 올랐다(우승은 메리 카트란
주). 파리, 밀라노, 뉴욕 혹은 런던에서 공식적인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어야 하며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1차 지원 자격을 보고 재희신의 해외 컬렉션 계획이 궁금해 졌다.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있는가? 신재희 | 비즈니스 계획상으로는 2012~2013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파리, 밀라 노, 뉴욕, 런던 중 파리 컬렉션을 생각하고 있다. ‘나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았다. 이 게 재희신이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장 다음 컬렉션이라고 하고 싶다. 물론 금전 적인 부분을 고려해야겠지만.(웃음) 그런 것들이 고려되고 흔들리지 않는 오리지 널리티를 만들어 그걸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도구와 방법을 찾는다면 그때는 무 리를 해서라도 진행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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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ews from the Pompidou Center in Paris
CHAPTER 4
OR IGI N
FA L L 20 09 T R A NOI HOM M E PA R I S & 75 T H PI T T I UOMO E X H I B I T I ON , PA L A I S DE L A B O U R S E , PA R I S 2 0 0 9. 01. 2 2~ 01. 2 5 E X H I B I T I ON , F ORT E Z Z A DA B A S S O, F I R E N Z E 2 0 0 9. 01.13~ 01.16
신동우 | 2009 F/W 컬렉션 ‘오리진Origin’은 브랜드를 론칭하고 처음 준비한 컬렉 션인 만큼 굉장히 신중하고 어느 것 하나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신재희 | 2007년부터 짬짬이 준비했다. 패턴부터 봉제까지 직접 하느라 아주 오 랜 시간 동안 준비했다. 이 컬렉션에서는 슈트의 개념을 바꾸는 데 집중했다. 분명 세련되고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선보인 재희신 컬렉션 가운데 가장 유니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컬렉션으로 피티 워모와 트라노이에 초청받아 데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신동우 | 2007년부터라면 2년 정도의 시간인데 정말 굉장히 오랜 시간 준비했다 고 느껴진다. 신재희 | ‘재희신’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책을 읽고 마음을 정 리하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을 들인 거지, 디자인하고 옷 만드는 데 들인 시간은 불 과 3개월 정도다. 이탈리아에서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몸소 느끼면서 한국 전통 의상에 관한 책, 한국사 관련 책 등을 읽었다. 그런 책을 읽기 시작했던 건 아르마 니에 근무하며 해외 출장과 편집 숍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현대 서양 복식에는 기원과 역사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회 사에서 디테일만 디자인하는 게 ‘수박 겉핥기’라고 생각되었고 디자인에 대한 염 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 한국 복식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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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국 전체에 관한 통치권을 완전히,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넘겨주는 국권피탈(한일합방)로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국권을 완 전히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 패해 항복하게 되면서 한반도 는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되지만 곧이어 6·25라는 슬픈 초연의 역사 를 맞이하게 된다. 3년간 지속되어온 전쟁은 휴전되고 미국에서 유 입된 양복이 대중화되면서 급기야 평상복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 다. 급격한 서구 문명의 유입과 함께 우리 고유의 한복은 비활동적이 며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겨우 의례복으로서 의 역할만 이어오다가 최근에는 그마저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우리의 복식은 서양의 복식 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 생시키지 못하고 완전히 단절돼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가정을 해보았다. ‘국권을 피탈당하지 않았다면, 문호를 개방하는 과정에 서 우리 것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의 개량 한복이 코스튬costume이 아니라 우리의 주체성을 담은 복식 문화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가까운 일본과 같이 우리도 복식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단절되지 않았다면 현대 우리의 복식은 어떤 형태를 띠었을까?’ 이런 물음을 갖고 접근했던 컬렉션이다. 신동우 | ‘한국 복식의 형태’를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영감이 되었던 것은 무엇이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는가? 신재희 |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함께 태국에 간 적이 있었는데 하늘을 찌를 듯한 처 마, 크기로 압도하는 웅대한 규모와 화려한 기교의 건축물들이 정말 대단했다. 그 리고 일본의 건축은 완벽에 가까운 표현주의적 인공 미감을 지향한다. 한편 한국 의 건축은 절제와 검약을 바탕으로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지만 ‘담백한 미감’이 담겨 있다. 그런 한국적 미감을 옷에 담아내고 싶었다.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관련 서적과 함께 한국 근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근대기의 대표적 화가 이중섭의 <소>다. 정중동. 즉 요약과 과장, 폭발하는 내면의 격정을 표현한 힘찬 화법은 정지된 그림 속에서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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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인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왼쪽), 조선 왕조 제4대 왕 세종대왕 영정(오른쪽). 2009 F/W 컬렉션 ‘오리진’은 옛 선조들의 복식에서 나타나는 숄 라펠, 브이 네크라인, 곤룡포 등의 디테일을 응용하여 전개했다.
신동우 | 그러한 것을 표상하기 위한 디테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신재희 | ‘우리 것, 동양의 것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디자인은 뭘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다가 기억 속에서 잊혀진 한복의 형태를 이용해보기도 했다. 겁 없 이 곤룡포(두루마기와 같은 모양으로 임금이 시무복으로 입던 정복正服)에 들어가 는 자수를 옷에 새겨 넣기도 하고, 갓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누빔 옷으로 표현되도 록 스티치를 넣어보기도 하고 라펠리스lapeless, 숄 라펠shawl lapel, 숄 칼라, 브이 네 크라인 셔츠 등을 선보였다. 그리고 한복의 동정을 라펠에 적용하는 등 거부감 없 는 선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신동우 | 한글의 조형미, 한복의 디테일·배색·실루엣 등을 활용해 한국의 미감을 재해석하고 동시대적으로 풀어내는 시도는 국내외 패션업계에서 더 이상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그런 시도에 대한 결과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컬렉션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본다. 신재희 | 굉장히 많은 시도를 한 게 사실이다. 인터뷰에 응할 때도 ‘컬렉션에 한국 적 미감을 담아냈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유는 ‘한국적 미감을 담아냈다’는 말을 함으로써 컬렉션을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을 나 스스로 제한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내 컬렉션을 보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고 나 스스로 내 컬렉 션을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 도쿄의 다마 미술대학에서 교수를 지내고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이우환 작가는 “나는 작가 이우환일 뿐이며 ‘우리’보다 ‘나’에 착목한다. 따라서 나의 생물 학적 배경인 한국이나 동양 같은 공동체 언어를 내세우길 싫어한다. 국제성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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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 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고정 되고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해 지역성을 팔지 않는다. 순종보다는 오히려 혼종을 지향한다. 나와 타자가 시적 으로 악수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이고 예술의 지표다”라고 말했다. 사실 동양적인 것을 거론할 때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동양에서 그 가치 는 대단하며 내가 봐도 다분히 동양적인데 그는 그렇게 말한다. ‘일본이나 한국이 나 근대화의 뿌리는 유럽이고, 다문화 국가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해야 된다’는 그의 작품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국 문화에 대 한 호기심과 로망이 존재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인상파 화풍은 일본의 우키요에Ukiyo-e(일본판화) 화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과거 유럽인들은 동양의 그림, 도자기, 향신료, 차 등을 가져가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이탈리아에 있을 당시에도 재미난 상황을 목격했다. 미국인 친구가 한자로 ‘外國人’ 이라고 쓰여 있는 티셔츠를 ‘멋지다’며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단어의 의미가 ‘외국 인’이란 것을 알고 입었을까? 아마 그 의미를 알았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그는 한자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매력에 끌렸다고 본다. 최근 디올 옴므Dior Homm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 밴 어쉬Kris Van Assches 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풀었다. 디올 옴므는 콘셉트나 디테일은 동양적인 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왔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입는 슈트나 셔츠의 소재로 컬렉션을 전개했다. 실제로 잘했고 큰 반향이 있었다. 크리스에게 영감을 주었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이 탈리아 4대 공중파 TV에서 방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는 정신 못 차리게 좋아하는 영화다. 지금도 꽤 높은 차트에 올라 있다고 알고 있다. “너 그 영화 안 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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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넌 그럼 동양을 몰라” 할 정도로 그 영화의 인기는 대단하다. 나는 아직까지는 동서양의 융합에 대해 얼마만큼 얘기할 수 있을지 의심을 품고 있다.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도 65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지금 나오는 것들이 세계가 같이 공감할 수 있다고 본다. 신동우 | 탁석산 저서 《한국의 정체성》에서는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한 기준을 ‘현 재성, 대중성, 주체성’으로 두고 있다. “과거의 것도 재현되어 현재에 존재한다면 현재의 것이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시원을 탐구하여 우리의 것을 찾는 것 은 무의미하다. 재현된 과거만이 현재이고 우리의 정체성 판단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다”라고 일갈한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신재희 |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의 귀족 궁정에서 문학가와 음악가들이 의견을 모아서 옛날 그리스극의 부흥을 기도한 데서 시작된 오페라는 현재까지도 그 공연 을 즐기는 이들은 일부이며 대중적으로 즐기는 예술 장르가 아니다. 우리나라 국 악도 일부만 즐기는데 국가나 문화의 정체성을 대중성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얼마 전 TV에서 은장도 장인, 나전칠기 장인이 나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과거 정조나 절개를 지키기 위해 호신용으로 사용하던 은장도가 지금에 와서 장식용으 로 용도가 바뀌고 그 제품을 절대 다수가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의 정체성을 담고 있지 않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동우 | 그렇다면 재희신은 ‘한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신재희 | 나는 한국을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재희신 컬 렉션은 누아르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 그건 한국인의 전통 사상에 대한 한恨 때문이지 않나 싶다. 가끔은 정말 소리를 막 지르고 싶고 디자인을 하면서 절제해 야 한다고 생각할 때 ‘내가 왜 절제를 해야 되지?’ 하고 폭발할 때가 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자신이 굉장히 억눌려 있다고 느낀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데 스스로 벽을 치고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회적인 평가에 흔들릴 수 있는 것에 가끔 화가 날 때가 있다. 유럽 친구들은 한국 하면 ‘파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그들이 볼 땐 다분히 파괴적인 민족으로 보이나 보다. 유럽 친구들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를 보 고 대한민국 남자들은 전부 산 낙지를 씹어 먹고 매일 사람들을 두들겨 패는 줄 안 다. 옷을 디자인할 때 의도치 않게 그런 공격적인 요소가 드러난다. 정말 시작은 그 게 아니었는데 옷에 날이 서 있다. 그게 ‘한국의 정체성’이라고 정의 내리긴 어렵겠 지만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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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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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I L A NO I S T I T U TO M A R A NG ON I B A S I C FA S H I ON DE S I G N 2 0 03 . 0 8~2 0 05. 07 M A S T E R FA S H I ON DE S I G N 2 0 05. 0 9~2 0 0 6 . 07
신동우 | 이스티투토 마랑고니Istituto Marangoni 패션 스쿨을 선택한 이유부터 들어 보고 싶다. 신재희 | 유학을 준비할 당시 나는 굉장히 감상적이었다. 내겐 상업적이고 에센셜 한 디자인을 뽑아낼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부분을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랑고니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중·고등학교에서 교육받을 때 어김없이 나오는 게 이탈리아 디자인이다. 전화기, 조명등, 책상, 의자 같은 제품 디자인은 물론 패션 분야에서도 구찌Gucci, 프라다Prada, 베르사체Versace,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등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브랜드가 상당히 많았다. 그 런 디자인 천국 이탈리아에서 패션을 배운다면 내가 가진 장점은 유지하면서 부족 한 부분을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신동우 | 일반적으로 상업적인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선택하는 곳은 이탈리아보다 뉴욕 아닌가? 신재희 |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당시 미국은 원리는 없고 기술과 제조만 존재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수천 년의 뿌리를 갖고 있는 유럽의 역사와 전통을 따라 갈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유럽에서도 파리와 밀라노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밀 라노를 선택했다. 이유는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디자인을 뽑아내야 한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다. 또 마랑고니에 가서 좋은 성과를 얻으면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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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티투토 마랑고니는 1935년 설립된 이탈리아 명문 패션 학교이며 2004년부터 인테리어, 그래픽, 제품 디자인과 같은 디자인 과정을 확
장 개설했다. 이태리 밀라노에 본교가 있고,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신동우 | 영어권대가 아니라 적응이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신재희 | 이탈리아어는 처음 시작할 때가 어렵다. 하지만 두세 달 후부터는 어렵지 않다. 정말 어학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이탈리아어를 쉽게 말하는 걸 많이 봤다. 쓰 여 있는 그대로 읽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회화가 굉장히 빨리 되는 언어가 이탈리아어다. 신동우 | 어떤 코스로 입학했나? 신재희 | 패션 디자인 베이식 코스 2학년으로 편입했다. 한국에서 배운 것도 있어서 4년제 코스 2학년으로 편입했는데 얼마 전부터 이탈리아 정규 대학의 학제가 3년제 로 바뀌면서 편입이 불가능해졌다고 한다. 막상 편입하고 나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벌써 다 사회 초년생이 돼서 돈을 벌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유학을 와서 뒤처진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1년짜 리 단기 코스로 바꿨다. 그런데 그 코스는 패션에 관해 너무 기초적인 부분을 가르 쳤고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문화와 패션에 대해 간략하게 배우는 정도랄까? 분위기 자체도 자극되지 않았고 패션을 심도 있게 접 근하려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코스였던 것이다. 그렇게 패션을 배워서는 안 되 겠다고 생각해 다시 4년제 코스로 바꿨다. 신동우 | 코스를 바꾸는 게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을 텐데. 신재희 | 불가능한 일인데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서 무릎 꿇고 무조건 바꿔달라고 사정했다. 당시 이탈리아어도 잘 안 됐는데 ‘정말 잘할 자신 있다.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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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4년제 코스 2학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과정 이 너무 많이 지나 있었다. 정말 막막했었다. 신동우 | 패션 디자인 베이식 코스의 커리큘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신재희 | 2학년 과정은 패턴 디자인, 패션 디자인, 복식사, 예술사, 컨템퍼러리 패 션 분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이 수업에서 따로 가르쳐주는 게 없다. 패턴 수업도 우리나라는 어떤 공식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지만 유럽은 공식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저쪽 행어에 재킷 기본 패턴이 걸려 있으니 가져가 복사해서 마네킹에 입혀라. 그 리고 각자 원하는 디자인을 해서 패턴을 떠라. 몸은 입체인데 종이와 원단은 평면 이다. 평면을 몸에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트를 잡아라. 그런 다음 몸에 붙 여라. 그게 패턴이다.” 이게 수업의 시작과 끝이다. 복식사 수업도 마찬가지다. “80년대 복식사는 모더니즘적인 사고의 틀을 거부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패션의 흐름을 지배했다. 90년대에는 리사이클 패션이 나타났 다”라는 말을 수업 시간에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80년대 복식사가 왜 그랬 는지 깊이 탐구하면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80년대의 대 표적인 영화 한 편 보고 와서 디자인하는 친구와 80년대의 이미지를 몇 개 찾아보 고 디자인하는 친구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깊이 있게 공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자기 몫이다. 그런 수업 방식에 정말 깜짝 놀랐다. 이탈리아어도 미숙한데 모든 걸 혼자 알아서 해나가야 해서 정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부터 독학으로 거의 죽어라 했던 거 같다. 하나가 부족해서 이거 하나만 메우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총체적으로 다 부족했던 것이다. 전부 수준 이하였다. 이제까지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걸 느끼고 내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 신동우 | 국내에서도 교육을 꽤 받고 가지 않았나? 신재희 | 3학년 1학기 과정까지 마치고 갔다. 유학 학원도 다녔고. 하지만 막상 가 서 보니까 일러스트 조금 할 줄 아는 게 전부였다. 신동우 | 유학 당시 이야기를 들려달라. 수업에 관해서도 좋고 어떤 이야기든 좋다. 신재희 | 1학기에 했던 작업을 2학기에 전 과목 선생님이 평가하는데 30점이 만점 이다. 1학기 때 25점을 받았는데 내게 너무 과한 점수였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 평가에서는 “네 점수는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1학기 때 작업과 지금 작업을 비교 해봐라. 많이 노력했고 굉장히 빨리 성장했다”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면서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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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점수를 적으라는 거다. 그래서 26점을 적었다. 26점이면 상위 30% 정도에 들어가는 점수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정말 많이 울었다. 그렇게 펑펑 울었던 이유 는 솔직히 내 점수가 26점은 아닌 거 같았기 때문이다. 18점을 받으면 낙제다. 내 가 봤을 때 19점 정도 되는 거 같았다. 그것도 노력 점수로. 그러고 나서 방학이 시작되었고 방학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기초보다 중요 한 건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기초만 했다. 포토샵, 일러스트 프로그램…. 조금 할 줄 안다고 유세 떨고 하는 것도 다 버렸다. 그런 것은 기술이나 도구에 불과하고 나 에게 진정 필요한 건 멘탈이고, 크리에이티브고, 무엇이든 빨아들일 수 있는 스펀 지 같은 자세와 열린 사고, 풍부한 경험과 학식, 옷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다. 진 짜 실력은 나에게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머지 것은 학업에 필요한 만큼만 했다. 이탈리아어도 조 금, 영어도 조금,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만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디자인 을 이해하는 데 할애했다. 서양 예술사와 복식사 관련 교제는 앞뒤로 헤질 때까지 보고, 잘 때는 항상 머리에 베고 잤다. 서양 예술사를 공부하다 보니 패션에 대한 원리가 거기 숨어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안에 적힌 예술가들의 이름을 디자이너 이름으로 바꾸면 디자인사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정말 노는 시간 없이 공부만 했다. 며칠 밤을 새워서 몸이 찌뿌드드해 씻기는 해야겠는데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까워 목욕탕 에 물 받아놓고 들어가 선반 위에 올려놓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침대에는 원단과 책을 깔아놓았다. 침대에서는 아예 잘 수 없도록 말이다. 잠은 책상에 엎드려서 잤 다. 5년 가까이 그런 생활을 해서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사람이 아니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학교 갈 때는 항상 깨끗하게 씻고 갔다. ‘나는 밤 안 새웠다. 나는 준 비된 사람이다’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이탈리아 애들도 만점을 받지 못하는 과목이 서양 예술사인데 시험 방식은 이렇 다. 중세 시대 서양 예술사에 관련해서 시험을 본다면 삼백 권 정도 되는 책을 쭉 쌓아놓는다. 그러고는 선생님이 아무 책이나 집어서 펼친 다음 “얘기해봐” 이런 식 이다. 나이가 80세인 선생님이었는데 서양 예술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전혀 없 는 분이라고 보면 된다. 하나둘 평가가 끝나고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선생님이 책을 펼쳤는데 다행히 내 가 아는 예술가의 작품이 나왔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성모의 승천Assunta>(1518) 이었다. 티치아노는 피렌체풍의 입체적인 형태주의에 대립하는 베네치아파의 회화 적인 색채주의를 확립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 로 산치오 같은 거장의 바로 다음 세대 예술가다. 그는 당시 레오나르도, 미켈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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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라파엘로를 비롯한 엄청난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영 역을 만들어나갔다. 평소 나는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요지 야 마모토Yoji Yamamoto,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칼 라거펠 트Karl Lagerfeld 등 수많은 거장들 속에서 살고 있지만 내가 그들을 능가하지 못할 이 유는 없다.’ 그만큼 티치아노는 내게 굉장히 희망적인 메시지를 줬던 예술가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해봐”라고 하셨다. 이럴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몇 년도 누구의 작품이고, 주제는 뭐고, 구도는 이러저러하다’라고 답변한다. 그렇 게 설명한 뒤 하나가 틀리면 1점씩 깎는다. 정말 잘한 애들이 28점, 29점 나온다. 나는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 선생님이 펼친 책을 덮고 ‘나는 티치아노 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왜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 답했다. “티치아노는 지금의 나와 같다. 거장의 세대에 살고 있으며 절망적이고 희 망이 없고 겁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고 자기 색깔을 만 들어나가는 걸 보고 굉장히 큰 매력을 느꼈다. 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그는 나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티치아노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선생님은 나에게 박수를 쳐주셨다. 그리고 나는 A+를 받았다. 그런 다음 바로 복식사 시험이 있었다. 서양 예술사 선생님이 복식사도 가르치셨다. 복식사도 A+를 받았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단순 암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할 수도 없었다. 언어가 달라서 무조건 보고 이해하는 쪽으로 공부했다. ‘나는 이걸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 보여줄 수 있도록. 그래서 불철주야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3학년 1학기가 되었는데 중간 중간 점수를 체크했다. 1차 10점, 2차 10점, 3차 10점, 총 30점이 만점이다. 가장 먼저 사회 현상을 조사해서 주제를 정 하고 영감이 되는 이미지를 매핑해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마랑고니는 프레 젠테이션 능력을 중시하는 학교다. 프레젠터(디자이너)는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해 야 하며, 말을 잘 못한다면 이미지로써 자신의 의도나 디자인 콘셉트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다음 자신이 구상한 디자인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그림 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림은 그 사람의 외모랑 같다고 한다.(웃음) 장돌뱅이같이 생긴 사람이 디자인한다고 하면 ‘무슨 장돌뱅이가 디자인을 해?’라며 쉽게 받아들 이지 못하는 것처럼 일러스트도 마찬가지다. 일러스트가 엉망이고 그림에서 디자 인이 잘 느껴지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8점이 나왔다. 그 다음 소재와 컬러를 정하고 디테일을 만든다. 그 디테일을 바탕으로 최종 평가를 위한 옷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 그림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가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네가 그렸던 일러스트의 디자인이 이런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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낌의 이런 옷이었나? 그렇다면 내가 널 잘못 봤다”라고 말씀하시면서 1차, 2차 때 점수를 만점으로 고쳐주셨다. 최종 결과가 좋다고 과정이 무시되는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번 브라보는 영원한 브라보.’ 한번 브라보가 아니면 다시 브라보가 되기는 어렵 다는 얘기인데, 나 같은 경우는 운 좋게도 시작은 브라보가 아니었지만 뒤집어엎 어 브라보가 될 수 있었다. 드문 행운이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쉽게 믿음을 갖 지 않지만 한번 가진 믿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믿음을 얻기란 굉장 히 어렵지만 정말 열심히 했을 때는 믿어준다. 선생님이 나를 높게 평가해주셨던 건 다름 아닌 ‘노력 점수’였다. 솔직히 마랑고니에서 잘할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 고 실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신동우 | ‘마랑고니식 패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랑고니는 패턴 부분에서 굉 장히 인지도가 높은 학교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주는 이미지도 그 렇고 말이다. 신재희 | 패턴을 선생님과 함께 풀어간다. 디자인한 옷이 학생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정형화된 패턴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바로 응용으로 들어간다. 수업에서는 패턴을 이해하는 능력, 핏을 보는 능력이 주가 된다. 국내 교육은 아직까지 가슴둘 레 재고, 상동에서 얼마, 이런 식으로 패턴에 공식을 부여한다. 하지만 마랑고니에 서는 혼자 하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패턴 선생님이 와서 시간에 구애 없이 같 이 잡아나간다. 차이라면 굉장히 라이브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이너 는 사회에 나와도 패턴을 직접 뜨지 않는다. 모델리스트Modelist와의 컬래버레이션 이 더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한다. 니트 디자이너가 니트를 다 짜는 게 아닌 것처 럼. 한번은 내가 직접 봉제를 해 갔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학 생이 이렇게 봉제를 잘하니?” 학생이니까 봉제를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다. 중요한 것은 크리에이티브다. 졸업 작품 쇼에서도 학생이 봉제를 하면 안 된 다. 전문 업체에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신동우 | 컨템퍼러리 패션 분석Analysis of Contemporary Fashion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 는지 궁금하다. 신재희 |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업이 있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쇼를 보고 그 쇼의 콘셉트와 인스피레이션을 알아맞힌다. 디테일을 보는 게 아니라 ‘인스피레이션이 뭐다’라고 집어내고 비평하기 시작한다. ‘지난번 쇼보다 이번 쇼가 좋았네, 나빴네. 이 쇼는 너무 리핏이네. 컬러감이 좀 떨어지지 않니? 이번에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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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았는데 뭐가 좋고 뭐가 아쉽다. 이 디자이너는 정말 아닌 거 같다’ 등 권위 있는 디자이너든 아니든 엄청나게 비평을 한다. ‘이게 정말 2학년 수업 맞아?’ 할 정도로 말이다. 비평 또한 상당히 자율적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걸 가지고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가 볼 땐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가끔은 컬렉션의 인스피레이션이 되 었던 영화 한 편을 틀어주기도 한다. 수업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컨템퍼러리 패션 분석 수업에도 테스트가 있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뉴욕, 밀 라노, 파리, 런던 할 거 없이 웬만한 컬렉션은 거의 다 봤던 거 같다. 인스피레이션 을 찾아내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잘 보이지 않고 문화권이 다르다 보니 정말 이해 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 시대를 공부해서 이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패 션쇼 분석 수업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 방식은 아무 자료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 서 선생님이 질문을 한다. “2003 S/S 시즌 잭 포즌Zac Posen 여성복 컬렉션에 대해 서 얘기해봐.” “2004 F/W 시즌 돌체 앤 가바나Dolce & Gabbana 남성복 컬렉션에 대해 얘기해봐.” 이런 질문을 받고 브랜드의 정체성과 연관시켜 얘기할 수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패션쇼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컨템퍼러리 패션 분석 수업 또한 특별히 가르쳐주는 게 없다. 분석 방법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굉장히 좋았던 수업 중 하나다. 신동우 | 리서치 방법론Research Method은 어떤 수업인가? 신재희 | ‘패션 트렌드는 어디서 시작하느냐’에 대해 브랜드별로 나눠서 분석했다. 선생님은 브랜드 정체성을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어떤 브랜드는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제안하는 반면 어떤 브랜드는 대중 사이에 존재하는 트렌드를 하이엔드 시 장으로 끌어올린다. 거기에 따라 브랜드의 정체성이 나뉜다’고 설명해주셨다. 예를 들면 디 스퀘어드2 D Squared2, 돌체 앤 가바나 같은 경우는 트렌드를 제안하 기보다는 대중 사이에 존재하는 스트리트 마켓을 좀 더 고급스럽고 스타일리시하 게 만들어 패션쇼에 올린 것이다.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이 전개했던 디올 옴므 컬 렉션은 70~80년대의 대중적인 스타일을 하이엔드 시장으로 끌어올린 케이스이 고 최근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크리스 밴 어쉬로 바뀌면서 브랜드 정체성이 트렌드를 이끌고 제안하는 브랜드로 바뀌었다. ‘동양’이라는 새로운 트 렌드를 제안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행했던 이론 수업이다. 신동우 | 당시 선생님들이 ‘좋은 디자인’과 ‘그렇지 못한 디자인’을 구분했던 기준 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재희 | 이탈리아는 좋은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에 대해서 명확하게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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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심지어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학생 앞에서 일러스트를 찢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마스터 코스 과정에 있을 때 일러스트를 정말 잘 그리는 브라질 친구가 있었는데 정말 3분이면 기가 막힌 일러스트 한 장을 그려낸 다. 선생님은 그 친구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이게 뭐냐, 너는 디자이너가 아니고 일 러스트레이터다”라고 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매번 화려하고, 디테일을 생 각하지 않고, 외곽선도 멋있게 해서 80년대 크리스찬 디올 드레스나 존 갈리아노 드레스 같은 옷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선생님과 정말 싸우기도 많 이 했는데 수업도 자주 늦고 성실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자신보다 그림을 못 그리는 친구들이 훨씬 좋은 점수를 받고 자신은 무시를 당하니 너무 괴로워하다 결국 자퇴를 선택했던 것이다. 선생님들은 50년 이상 패션을 분석해오면서 시대적 흐름을 꿰고 있는 분들이다. 모든 컬렉션과 웬만한 디테일은 다 보았다. 그분들은 잘못된 디자인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그런데 학생들 대부분이 자기 소신이 너무 강해 선생님과 자주 충돌한 다. 처음에는 자신의 디자인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다가도 막상 만들고 나면 ‘내 옷 은 예뻐’라고 합리화하게 된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그림을 찢어버리고 학생과 싸 우기 시작한다. ‘왜 이 디자인이 나쁘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그 이유를 제시하지만 학생이 그 이유를 인정하지 않고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디자인에는 보이지 않는 ‘개연성’이라는 게 있다. 디테일 간의 개연성, 소재가 지 닌 개연성이 있는데 그런 개연성이 없이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학 생이다 보니까 실험적인 디자인을 해보겠다고 과장을 하거나 얼토당토않은 디자 인을 그려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인스피레이션이 어떻든, 소재가 어떻든 간에 좋은 디자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 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단어로 정의 내리기 어렵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BMW와 아우디가 나왔을 때 자동차 시장을 석권 했다. ‘굿 디자인good design’을 바라보는 전 세계의 시각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선생 님은 단순히 과장된 디자인인지, 아니면 과장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인지, 즉 크리에이티브하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객관적 잣대를 가지고 있었다. 신동우 | 마랑고니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는가? 신재희 | 마랑고니는 100장의 작업에서 한 장만 잘못되더라도 0점 처리할 만큼 작 업의 완벽함을 중시하는 학교다. 세 달 후 시험인데 두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다가 벼락치기해서 결과를 보여주면 그것도 0점이다. 중간 과정이 생략되면 마지막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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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은 보지 않는다. 마랑고니에서는 크리에이티브가 우선이 아니다. 열정과 성실, 그게 1등이고 그다 음 크리에이티브를 본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성공하려면 기본적인 소양부터 갖춰 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패션 해’라면서 패션 피플처럼 겉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그건 패션을 하는 게 아니라 패션을 즐기는 패션 빅팀Victim(희생양)으로 구분한 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무대 인사를 하는 패션 디자이너를 많이 봤을 것이다. 패션 을 하느냐, 아니면 패션을 하는 척하느냐에 대해서는 엄격한 구분이 있다. 물론 진 실되고 멋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마랑고니에서는 멋만 부리는 친구들이 굉장히 괴 로워하고 적응하지 못한다. 평상시 수업 태도나 자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진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랑고니는 실험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디자인을 배우 기 위해서는 마랑고니가 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무한한 크리에이티브나 아티스 틱한 옷을 만들고 싶다면 마랑고니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마랑고니는 업계의 스페셜리스트와 준비된 디자이너를 양성한다. 다른 학교 출신들에 비해 크리에이 티브한 면이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마랑고니는 시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디자이너를 많이 배출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신동우 | 유학을 통해 느낀 이탈리아는 어떤 나라였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도 있을 법하다. 신재희 | 한번은 수업 시간에 보라색 드레스를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서 보라색은 장례식에 입는 옷 색깔이었던 것이다. 그런 문화적 차이로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이탈리아는 프렌들리하면서 굉장히 엄격하다. 한국과도 많이 닮았다. 또한 이탈리아는 매우 클래식한 감성을 지닌 나라다. 일요일 아침에 장을 보러 나 올 때도 슈트를 차려입는다. 밖에서 반바지를 입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다. 밖에서 슬리퍼를 신는 것 또한 개념 없는 행동이다. 연령에 상관없이 전통을 중 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 나라는 문화유산이 상당히 많다. 그 어떤 유럽 국가보다도. 신동우 | 유학 시기가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라 반한反韓 감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웃음) 신재희 | 굉장히 심했다. 선생님들까지도. 하지만 그런 건 본인 하기 나름이라고 생 각했다. 그런 감정을 표출시키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잘 융화될 것인지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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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것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긴 하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버스도 안 태워주 고, 담배도 안 팔고.(웃음) 어찌 보면 굉장히 순수하고 담백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순수하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겠나.(웃음) 신동우 | 유학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경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재희 |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친구들 만나서 나누었던 얘기는 구찌, 프라다 같은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제품에 관해서였다. 마랑고니에서 만난 친구들은 존 갈리 아노를 비롯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 대해 비평하고, 듣도 보도 못한 일본 디자 이너들을 비평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패션 얘기밖에 하지 않고, 옷 하나를 보면 서 벌벌 떨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정말 이 정도 열정이 아니고서는 패션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내가 섬세하고 여성스럽다고 해서 주변 친구들이 “사내새끼가 왜 그러냐”라는 말을 많이 했고 나는 그런 성향을 죽이려고 꽤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그런 친구들을 보니까 그건 죽일 게 아니라 엄청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 섬세하고 꼼꼼하고 까다로운 성향을 발전시키고 더 많은 박수 를 받았어야 했는데 한국에서는 “사내새끼가 원단 따지고 컬러 따지고, 쫀쫀하게 그게 뭐냐” 이렇게 됐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장점으로 바뀌는 걸 경험했다. 신동우 |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유학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거나 자신에 게 맞는 학교를 선택하는 데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정진시켜줄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신재희 | 시간이 난다면 어느 나라가 나랑 맞는지 최소 한 달 정도는 그곳에서 지 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유학이라는 건 자기 인생에서 최소 3~5년을 투자하는 것이다. 평생을 두고 본다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기간이지 만 그 기간 동안 배운 이탈리아 디자인은 나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적지 않 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두세 개 학교 중에서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 학교 가 있는 도시에서 한두 달 정도 살아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신동우 | 한국은 패션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정부 각처는 물론 서울특별시, 기업 할 것 없이 굉장히 많은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글 로벌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는 박수 쳐줄 만한 일이지만 정작 등잔 밑에 있는 ‘패 션 교육’은 여전히 깜깜하다. 국내 패션 교육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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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 | 패션은 살아 있는 학문이다. 어떤 이론을 공부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과 거에서 배울 건 과거에서 배우고 오늘의 디자인과 내일의 디자인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이론화되고 공식화된 패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 대부분의 대학 교육에는 ‘사회의식’이 빠져 있다. 패션이 하나의 코 스튬으로 인식되고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흐르는 건 이 시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 야기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교를 부리거나 단순히 미에 접근하는 방식으로는 사회의식을 담아내기 어렵다. 패션에 사회의식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교 육은 이런 식이었다. “크리스찬 디올의 뉴룩에 대해 설명해봐.” 이런 접근으로는 이론화된 것을 학습하는 데 머무르기 쉽다. 반면 “크리스찬 디올은 이런 식으로 디 자인이 발전되어왔어. 네가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가정하에 앞으로 디 올이 어떤 룩을 보여줄지 네 생각대로 전개해봐”라고 한다면 현 사회의식을 동반 한 상태에서 패션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션과 사회는 인과관계의 연쇄 속에서 발전되어왔다. “나 패션 해”, “나 패션 디자 이너야” 하는 친구들이 너무 패션만 알고 나머지 것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며 통찰 력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공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통찰력은 이 시대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이를 위한 보다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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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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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I L A NO G IORG IO A R M A N I G I O RG I O A R M A N I M E N ’ S W E A R DE S I G N E R 2 0 0 6 . 0 9~2 0 0 9. 01
신동우 |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어떤 패션 브랜드인가? 신재희 | 1974년에 론칭해 올해로 37년 된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다. ‘더 이상 아르 마니 같은 브랜드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할 만큼 시대의 흐름에 잘 맞아 떨어졌던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각 잡힌 영국식 슈트, 비스 포크bespoke, 포멀 슈트에서 탈피해 이탈리아 캐주얼 슈트를 만들어낸 디자이너이 고, 현대인들이 매일 입는 슈트 스타일은 대부분이 아르마니 슈트 스타일을 토대 로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맞춤 정장을 기성복화해서 시스템화한 게 이탈 리아 패션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였던 것이다. 그만큼 남성복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브랜드였으며 지금은 전환기를 겪고 있는 단계다. 신동우 | 마스터 아르마니는 어떤 디자이너이고, 그에게 무엇을 배웠나? 신재희 |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등 자기 관리가 엄격한 사람이다. 그 런 부분은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농담도 잘하고 굉장히 검소하 며 여행을 즐길 줄 알고, 일에 대한 열정이 정말 대단한 워커홀릭이다. 아르마니를 보면 거대한 물줄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깊고 빠르며 거대하게 흐르지만 소리 는 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더욱 아름답 게 만드는 천재적 재주가 있다. 나는 그에게서 패션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인체의 아름다움을 옷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 그는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명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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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75년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 니가 세르지오 갈레오티(Sergio Galeotti)와 함께 설립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로 과장된 기교 없이 정수만 압축시킨 단순함과 우아 함을 디자인 철학으로 한다. 현대적이고 화려하지만 절제되고 차분한 재킷으로 기술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동우 |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많은 라인 가운데 조르지오 아르마니 남성복 컬렉 션 디자이너로 근무했는데 근무 여건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신재희 | 일단은 너무나 완벽한 회사다. 1년에 연차가 3개월 정도 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에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패턴이나 소재 소싱 같은 업무도 각 부서 간에 유기적인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몇십 년 이상 된 경력의 베테랑들이 패턴을 뜨고 직접 핏을 보기 때문에 염색에 따라, 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핏감을 정확하게 찾아낸다. 이탈리아 국민 성향 자체가 완벽함을 중시한다. 놀 땐 제대로 놀고 일할 땐 정말 최 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다. 그러니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분위 기가 조성되지 않았나 싶다.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외의 업무가 없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서류 업무 같은 걸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많은 시간을 빼앗겨 실질적으로 디자인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브랜드를 직접 운영한 뒤로는 잠들기 전에 조금 생각해두었다가 출근해서 바로 디자인하지 않으면 디자인을 할 시간이 없다. 물론 그런 것은 운영 자금을 통해 인프라를 만들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워낙 돈이 많은 회사이기도 하지만 직원들 복지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R&D(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 개발) 비용이나 디자이너가 샘플을 구입하고 해외 출장 가는 비용을 아낌없이 지원해준다. 또 휴먼 리소스human resources(인적 자원)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회식은 1년에 한 번밖에 없다. 다
들 집에 가서 여가 생활을 즐긴다. 그래서 회사 분위기가 항상 좋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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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수평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 인턴 디자이너든 신입 디자이너든 직원 한 명 한 명 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한다. 나는 그런 부분을 정말 높이 평가한다. 내가 콘셉트 를 잡고 디자인한 컬렉션을 아르마니에게 직접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다. 우리처럼 ‘막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물론 막내라는 거 다 알지만 막내라고 해서 말도 못 하고 디자인을 못 하고 그러지 않는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라는 브랜드에 들어 가려고 얼마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지원했겠는가. 아르마니는 뽑을 때부터 기본 자 질을 갖춘 사람을 뽑기 때문에 굳이 상하 관계가 필요 없고 크리에이티브한 면에 서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반면 한국은 대부분이 학교에서 실무 에 필요한 실질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졸업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가르쳐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하 관계가 생기게 된다. 아르마니는 트렌드를 팔로워하는 회사다. 트렌드를 셋업하지 않고 트렌드를 따르 는 경향이 강하고 기본 핏감부터 전반적으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핏을 개발하거나 하지 않는다. 기존에 쓰고 있는 핏감, 컬러, 원단 등이 바뀌면 전 세계 가 들썩들썩할 수밖에 없는 거인이 돼버린 것이다. 신동우 | 그런 부분은 디자이너로서 창의력과 도전에 한계를 느끼도록 작용했겠다. 신재희 | 아르마니는 그동안 히스토리가 굉장히 많이 축적되어 있고 브랜드의 정 체성이 확고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어떤 것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규모 또한 워낙에 크다 보니 세일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스니 커즈가 유행한다고 치자. 아르마니는 받아들이는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 이미 스 니커즈는 유행을 했는데 뒤늦게 후발 주자로 스니커즈 시장에 뛰어든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이 담긴 스니커즈를 만들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말 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기 어려운 것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그동안 만들어놓은 히스토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지 못하 고 도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브랜드이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 래서 지금은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다른 브랜드를 카피하는 브랜드로 전락했다. 디 올 옴므가 유행하면 스키니한 재킷을 만들고 랑방이 유행하면 랑방의 실루엣을 그 대로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르마니는 분명 아르마니 슈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니트, 슈트, 재킷, 셔츠에 대한 브랜드의 정체성은 확실했지만 지금은 다른 브랜드들이 더 확고한 정체성으 로 시장을 형성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는 더 이상 아르마니가 새롭지 않다. 아르마니는 ‘지는 해’다. 브랜드를 사람의 나이로 친다면 여든 살을 넘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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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인테리어, 하위 브랜드 할 거 없이 이미 너무 많은 라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좀 더 젊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엠포리오 아 르마니Emporio Armani, 아르마니 익스체인지Armani Exchange, 아르마니 진Armani Jeans 등 하위 브랜드가 너무 많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 바운더리를 자체적으로 만들 어야 하기 때문에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젊어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엠포리오 아 르마니만 젊어져서 그 라인만 판매가 잘된다. 반면 프라다는 여성복과 남성복, 스포츠, 젊은 층을 겨냥한 미우 미우Miu Miu 가 전 부다. 아직까지도 라인을 크게 확장하지 않고 있다. 한 럭셔리 전문가는 “샤넬이나 루이뷔통을 10~20대로 본다면 아르마니는 80대다. 아르마니는 이제 죽을 날만 남았다”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생각보다 겁이 많다. 변화를 두려워해 시 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층의 소비자들이 많이 떠나간다. 이제 30대에게 아르 마니 슈트는 더 이상 로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동우 | 반면 프라다 같은 경우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브랜 드라고 생각된다. 신재희 | 프라다는 보톡스를 맞고 30대로 젊어진 케이스가 됐다. 프라다 같은 경우 는 공격적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니까 매년 이미지가 급상승한다. 오히려 1980년 대에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포코노 나일론Pocono Nylon(폴리에스 테르, 나일론에 스판덱스를 섞은 합성 소재) 백을 선보였을 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좋다. 경희궁 앞뜰에서 6개월간 진행했던 설치 프로젝트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이나 거침없는 변화와 도전이 기본 슈
트에도 관심을 갖게 한 것이다. 신동우 |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들은 아직까지도 ‘패밀리 비즈니스’를 고수하고 있 다. 능력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브랜드에 날개를 달아주는 경우도 많은데 아르마니에서 그런 시도를 해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나? 신재희 | 우선 아르마니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자식이 없다. 그래서 여동생이 브 랜드를 이어받는다고 한다. 총주주 역할을 패밀리 일원이 맡는다는 건 긍정적이지 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가족이 도맡아 하는 것은 이탈리아 브랜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여겨지며, 그 브랜드에서 열심히 일하는 디자이너들을 상당히 비관적 으로 만든다. 결정적으로 내가 아르마니를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가 여기 서 7~8년 동안 열심히 잘하면 회사에서 내 브랜드를 하나 내주고 내가 이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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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디렉터가 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보여야 되는데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 이다. 랑방, 이브생로랑, 디올, 이렇게 세 군데를 돌면 디올의 수석 어시스턴트가 되는 게 가능한데, 아르마니는 그게 안 된다는 게 아쉬웠다. 현재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이사회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게 봉급을 주면서 운영하는 브랜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디 자이너 브랜드라는 가풍이 중요하게 자리한다. 고객과의 믿음을 걸고 하는 것이라 는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면 브랜드의 정체성이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르마니가 죽은 뒤에는 브랜드가 베르사체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조르지오 아르 마니는 디자이너의 외적인 이미지가 너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브랜드 아이덴 티티와 디자이너의 이미지가 상당히 동일시되었다. 브랜드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 로 했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신과 브랜드 아이덴티 티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이너 아르마니와 브랜드 아르마니가 계속 같 이 가기 때문에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 같은 사례를 낳을 수 있다. 지아니 베 르사체도 조르지오 아르마니처럼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굉장한 스타 디자이너였 다. 브랜드 베르사체는 지아니 베르사체가 죽으면서 결국 같이 죽어버렸다. 발렌 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bani,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li 도 아르마니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디자이 너 아르마니가 죽으면 과연 브랜드 아르마니는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것이다. 이제 다 들 죽을 나이가 되었는데 그들이 다 죽으면 이탈리아 패션은 어디로 갈지 염려된다. 마르니Marni 같은 경우 자리를 잡은 브랜드지만 디자이너 자체가 스타가 아니기 때문에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 디자이너는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신과 브랜드 를 분리시켜야 한다. 지금이라도 능력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두고 분리시키 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르마니를 마지막까지 본 모습은 어떻게 변화할지 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곳은 워낙 머리 좋은 친구들이 모여서 일하고 있 으니 잘하겠지만 염려되는 게 사실이다. 신동우 | 그동안 아르마니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신재희 | 이탈리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조르지오 아르마니다. 아르 마니는 일간지에 ‘아르마니’가 아니라 ‘Il Re’라고 나온다. 이탈리아어로 ‘황제’라 는 뜻이다. 아르마니는 이탈리아에서 황제인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조르지오 아르 마니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르마니 제품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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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즉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교복’이다. 아웃렛에 넘치고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벌씩은 산다. 자라 가격에도 팔리고 하니까. 그만큼 아르 마니는 내수 시장이 엄청나다. 그런 게 참 많이 부러웠다. 아르마니 슈트 한 벌에 1800~2000유로 정도다. 이탈리아 물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한 달 월급 정도 되 는 수준이다. 초봉이 우리나라 돈으로 400만 원 정도니까. 우리나라에서 명품이 그 정도 가격이면 굉장히 싼 거다. 한국으로 치면 명품 슈트 한 벌에 90만~150만 원 정도다. 이탈리아는 우리보다 몇 배는 잘사는 나라이니 그런 걸 계산해보면 절 대 비싸지 않은 가격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유럽인이 체감하는 명품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따라서 국가 경제력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아르 마니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견인차 역할을 한 건 다름 아 닌 그 나라 국민, 내수 시장이었던 것이다. 이세이 미야케,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cons,
요지 야마모토도 일본이라는 거대한 내수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국민적 관심이 좀 더 필요하지 않 나 생각한다. 신동우 | 한번은 서울 패션 위크 관련 기사나 사진을 살펴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 는데 셀러브리티들이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 프런트로에 앉아 있는 모습의 사진이 대부분이었고 몇몇 블로그에서 그 후기를 살펴보는 것이 전부였다. 파급력이 큰 온라인 매체에 제대로 노출되지 못하는 것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패션에 대 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신재희 | 서울 패션 위크 기간만이라도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 창에 노출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스타일닷컴처럼 컬렉션이 끝나면 바로 리뷰가 올라오는 온라인 매체가 없는 상황이고 콘텐츠를 만들 사람도 부족하다. 제조업이 발전하려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하청업자, 협력 업체, 기술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분들인지에 대해 국가적으로 국민을 계몽할 필요가 있 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보면 두드리고 만드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구두 만드는 장인이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올 수 도 있고, 한 사람의 소소한 삶이 비쳐지곤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죄다 검사 와 깡패다. 우리나라는 검사와 깡패밖에 없는 나라인가? 미디어는 대상을 탐구하 고 한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한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 기본적 인 것이 밑바탕 되지 않고 계속 양념만 바꿔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최근 패션업계에서 붐처럼 일어나는 다양한 시도에는 박수 쳐줄 만하지만 바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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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바람만 불어서는 절대 쓰나미는 오지 않는다. 밑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대중적인 계몽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패션이 현대사회에서 올바르게 자리 잡긴 어려울 것이다. 신동우 | SPA 브랜드의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디자인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스며 들었다. 이에 디자이너 브랜드는 어떤 차별화된 전략을 세워야 할까? 신재희 | 그들과의 퀄리티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10만 원짜리를 만드는 데 3만 원이 든다고 해서 100만 원짜리가 90만 원이 드는 건 아니다. 실질적인 가격 차이는 90만 원이지만 100만 원짜리의 제작 단가는 30만 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파이널 프로세스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고 그것이 SPA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 와의 차이를 만든다. 30만 원을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노력이 가장 큰 차이 를 만들고 SPA 브랜드와 비교될 수 있는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SPA 브랜드 가 우리 시장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역으로 더 잘된 일일 수도 있다. 분 명히 시장은 양극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티크의 바운더리가 생기게 된다. 그 래서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하는 브랜드도 많이 있다. 아르마니 같은 경우도 좀 더 값 어치 있는 옷에 포커스를 맞췄다. SPA 브랜드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좀 더 많은 디테일을 넣는다. SPA 브랜드에 의해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브랜드는 구찌, 돌체 앤 가바나같이 심 플하고 따라 하기 쉬운 옷을 디자인하는 브랜드다. 최근 돌체 앤 가바나는 부도 위 기를 맞았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상황이 최악이라고 한다. 아예 보테가 베네타 Bottega Veneta 처럼
최고급 전략으로 가든지 해야 하는데 돌체 앤 가바나는 아직까
지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D&G(돌체 앤 가바나의 하위 브랜드)와의 경 계도 상당히 애매한 상태다. 옛날에는 100만 원짜리 옷을 만드는 데 들이는 비용을 줄이고 줄여 20만 원 정도 들였다면 지금은 30만 원 이상 들여야 판매된다. 한번은 백화점에 갈 기회가 있었 는데 국내 여성복 내셔널 브랜드들의 디자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정말 내셔 널 브랜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디테일이나 이것저것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정도 안 하면 안 팔리는 시장이 왔구나. 제대로 옷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 각으로 굉장한 노력을 하는 게 보였다. 예전에는 매출이 3000~5000원이었다면 이제는 500원만 해도 박수 치고 좋아할 만큼 마진을 줄이고 있고 시장이 무척 어 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만큼 소비자의 인식 자체가 격상되었다. 이제는 브랜드의 명성만 가지고는 옷을 사지 않는다. 자신만의 멋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보니까 자기 소신에 따라 소비하는 것으로 많이 바뀐 거 같다. 돈 쓰는 방법을 알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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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과감히 투자한다. ‘무조건 고 급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많이 무너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오페라, 연극, 뮤지컬 같은 문화도 대중과 많이 가까워졌다. 돈 쓸 데가 정말 많아진 것이다. 고정비만 해 도 통신비부터 어마어마하다. 그런 여러 가지 사회적인 면을 봤을 때 이제는 아르 마니 같은 브랜드가 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동우 | 그동안 많은 브랜드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주목하 는 브랜드가 있었다면 어떤 브랜드인가? 신재희 | 이브생로랑이다. 항상 시대를 리드해왔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늘 젊어지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며 ‘이브생로랑만의 무언가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희신에게 벤치마킹이 필요하다면 릭 오웬스나 메종 마 틴 마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 앤 드뮐미스터가 아닌 이브생로랑이라 고 본다. 마르지엘라라는 브랜드를 옆에서 꾸준히 지켜보니 반짝이는 재치는 훌륭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순간의 재치로 사 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그 값을 지불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여러 가지 면에서 이브생로랑이 가장 주목할 만한 브랜드라고 본다. 물론 이 브생로랑화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브생로랑만의 클래식이 갖는 깊이감은 갖추 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브생로랑 제품을 보면 모든 게 참 잘 만들어져 있다. 한 번 생각해서 나온 제품이라기보다는 두 번, 세 번, 그 이상을 생각해서 나온 것이라는 게 느껴진다. 신동우 | 국내 남성복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신재희 | 백화점 안에 입점된 브랜드 제품들의 상표를 다 떼어내면 어느 브랜드 옷 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의 다 비슷하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이는 유일한 시 장이 대한민국 남성복 시장이다. 흔히 ‘은갈치 원단’으로 불리는 반짝반짝한 TR 원 단(폴리에스테르, 비스코스 레이온 섬유를 혼방 또는 혼직한 소재)이 주류를 이루 고, 허벅지는 붙고 종아리는 일자로 나팔바지 형태를 띤다. 구두는 20년 전이나 지 금이나 반짝반짝한 유리 막 처리가 되어 있다. 멋스러움과 여유를 동시에 즐길 수 있 는 옷이 없다. 국내 남성복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다각 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신동우 | 앞으로는 어떤 브랜드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보는가? 신재희 | 이제는 전문성 있는 브랜드가 주목받을 것이다. 예전에는 인지도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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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에서 토털 패션으로 승부하는 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어렵다. 샤넬에 서는 가방이나 슈트만 사고, 수영복은 수영복 전문 브랜드에서, 스키복은 스키복 전문 브랜드에서, 등산복은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에서 산다. 소비자들이 굉장히 스마트해졌고 그들은 이미 준비가 된 상태다. 가격이든 제품이든 홍보든 무엇이 든 간에 뭔가 제대로 된 콘셉트로 꾸준히 지속한다면 지금 그 시장은 ‘블루오션’ 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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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BR A N DI NG & V I SION
J E H E E SH E E N BR A N DI NG & V I SION A RC H I V E O F B R A N D I DE N T I T Y 2 0 0 9. 01~2 011. 03
신동우 | 어떤 결심으로 브랜드를 론칭했는지 궁금하다. 신재희 | 브랜드 론칭은 단지 자신의 재주만을 믿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은 날의 호기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르마니에 재직하면서 기회가 좋았던 게 해 외 출장이 많았다. 당시 멀티숍이 굉장한 붐이었고 신인 디자이너도 한창 많이 나 오는 시기였다. 세계적인 신인 디자이너를 멀티숍에서 만났을 때 그루핑grouping이 가능할 정도로 그들 나름의 색깔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것이 나에게 굉장히 큰 자 극이 되었다. 정체성이 뚜렷한 미국의 릭 오웬스나 일본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누 구의 아류가 돼서는 안 되겠다는 심각한 자기 고민도 했다. 그러면서 ‘나만의 뚜렷 한 뭔가가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클로Uniqlo 같 은 SPA 브랜드는 못 만들어도 ‘재희신’은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그려놓고 시작할 순 없을 것이다. 하면서 만들어나가 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 근본은 가지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본의 해 체주의라든가 미국의 팝적인 요소, 유럽의 중세 시대를 계속 반복하는 듯한 요소 말고 내가 속한 문화권, 한국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공부하며 내 안에 지닌 정체성 과 내가 그리는 남성상은 남성복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뿌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내가 옷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 금까지 패션이 탐욕과 사치를 조장하는 인간의 욕구를 잘 포장해줬다면 나는 그런 욕구를 진지하게 성찰하며 치유할 수 있는 옷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주의 조화와 휴머니즘을 내포하는 옷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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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ntity Image Research
Identity Development Process
circle
nine
verification
harmony
material
신동우 | 9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재희신의 심벌에 담긴 의미가 평소 굉장히 궁금했다. 신재희 | 인간미가 느껴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고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는 심 벌이 필요했다. 휴머니즘을 담을 수 있고 작은 형태 속에서 인간의 미미함과 경외 스러움을 담을 수 있는 심벌을 생각하다가 ‘원圓’과 ‘9’를 생각하게 되었다. 원과 9는 우주를 뜻한다. 인간은 우주 만물의 근원이며 우주는 개척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포용의 대상, 이해의 대상, 잉태한 공간이다. 따라서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 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원은 곡선 형태를 띤다. 하지만 재희신이 추구 하는 절제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로는 직선 형태가 더 좋을 거라고 판단했 다. 정사각형은 원만큼이나 균형감이 훌륭하다. 그래서 9개의 정사각형을 만들고 이들을 합치면 다시 정사각형이 돼 완벽한 조화와 중용의 의미가 담긴 심벌을 만 들게 된 것이다. 즉 재희신의 심벌은 ‘우주의 조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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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ge
Identity
Background Color Application
Minimum print size
Description
Headline Typeface
Minion is the name of a typeface designed by Robert Slimbach in 1990 for Adobe Systems. The name comes from the traditional naming system for type sizes, in which minion is between nonpareil and brevier. It is inspired by late Renaissance-era type.
ABCDEFGHIJKLM NOPQRSTUVWXYZ abcdefghijklm nopqrstuvwxyz
123456789
Minion Pro Medium
ABCDEFGHIJKLM NOPQRSTUVWXYZ abcdefghijklm nopqrstuvwxyz
123456789
Minion Pro Semibold
Description
Secondary Typefaces
Helvetica is a widely used sansserif typeface developed in 1957 by Swiss typeface designer Max Miedinger with Eduard Hoffmann.
ABCDEFGHIJKLM NOPQRSTUVWXYZ abcdefghijklm nopqrstuvwxyz Helvetica Neue Reg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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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S T I N E NC E COTTON / LINEN 30X 25CM
Color Palette Extraction
2011 S/S ‘Abstinence’ Lookbook
2011 S/S ‘Abstinence’ Lookbook Color Decomposition
Identity Color Palette
Secondary Color Palette
C85 M88 Y87 K76 R18 G5 B5
C55 M84 Y77 K29 R111 G53 B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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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3 M 10 Y11 K0 R227 G226 B224
C63 M58 Y58 K5 R113 G106 B100
C67 M58 Y55 K5 R104 G105 B106
C43 M36 Y29 K0 R160 G158 B165
신동우 | 마지막 질문이다. 재희신은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갈 생각인가? 신재희 | 얼마 전 뢰클레르 사장 아르망 아디다가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당신 이 이걸 시장에 선보였는데 반응이 없어. 그럼 바꿔. 지금 바꾼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다른 거 해봐. 바꿨는데도 안 돼? 그럼 당신이 잘못된 거니까 바꿔.” 나는 그 말에 100% 동의하진 않는다. 사람들에게 나의 패션을 꾸준히 설득할 수 있는 거니까. 내가 귀담아들은 얘기는 “나에게 서프라이즈를 줘. 우리는 너무 지겨 워. 내가 패션을 60년간 봐왔지만 다 거기서 거기야. 디테일을 이렇게 바꿨다가 저 렇게 바꿨다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했는데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패션이 너무 진부해.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줄 생각을 왜 못 하나? 우 리는 기다리고 있어. 바이어, 프레스 전부 기다리고 있어”라는 것이다. 말은 쉽지, 나쁜 놈.(웃음)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아르망의 조언은 ‘유리로 옷을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라 가레스 퓨Gareth Pugh처럼 호평 반 혹평 반으로 평가되지만 세계 패션 시장에서 ‘Something New’가 되라는 것이었다. 재희신 부스를 찾은 바이어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이 컬렉션이 정말 당신의 첫 번째 컬렉션인가, 두 번째 컬렉션인가?” 그 말은 ‘벌써부터 완숙미가 느껴지고 틀 이 잡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너무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소신을 지키기 어렵고 조심스러워진다. 순수한 예술가로 서, 신념 있는 철학자로서 시장에 자리 잡기에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스마트 해야 할 부분도 있고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조바심이 많이 난다. 비즈니스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더 투자하고, 가격은 낮추고, 프로모션하고, 연예인 더 입히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 단기간에 매출을 끌어올리고 시장에 빨리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자꾸 그런 걸 의도적으 로 피하게 된다. 그런 것을 피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유혹이 워낙 많고 달콤하지만, 가장 멀 리 돌아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인물에 대한 탐구를 몇 년에 거쳐 계속 진행하고 반복한 것처 럼 인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하고 ‘전시’를 통해서도 재희신의 감성을 전달 하고 싶다. 어제도 급하게 그림 한 점을 그렸다. 시간이 없이 달리다 보니까 역량이 따라주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작품 활동에 집중하려 한다. 그게 나중에는 단편 영 화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건 아니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 들과 연결돼서 영화에 들어가는 의상,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분위기를 담아보 고 싶다. 클라이맥스가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담아도 좋을 거 같고.(웃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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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패션을 하고 있지만 재희신의 철학 안에서 풀어낼 수 있는 제품군은 다른 것도 꼭 해보고 싶다. 인테리어 사업이나 궁극적으 로는 디자인 전문 회사도 하고 싶다. 그러려면 모태가 되는 패션을 잘해야 하고 이 시기를 참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 번의 컬렉션을 전개한 지금은 뭘 해도 많 이 팔리지 않고 손해를 보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뒤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소신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볼 것이다. 신동우 | 이것으로 인터뷰를 마치겠다. 시종일관 편안한 모습과 진지한 답변으로 인터뷰에 응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신재희 | 이번 《패션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 2년 동안 전개했던 네 번의 컬렉션을 담았다. 앞으로 50~60년이 지나 이 책을 다시 들춰봤을 때 나의 말이 당위성도 없 고 횡설수설했더라도 그 안에 나의 굳은 심지나 갈등이 그대로 묻어난 진심이 담 겨 있으면 좋겠다. 이번 작업이 앞으로 더 나은 컬렉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 면 하며 독자들이 나의 삶과 철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봐주면 좋겠다.
BR A N DI NG & V 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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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 마이클 샌델, 《왜 도덕인가?》, 안진환·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0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김중웅 옮김, 청림출판, 2006 에리히 폴라트·알렉산더 융 외, 《자원전쟁》, 김태희 옮김, 영림카디널, 2008 아브람 노엄 촘스키, 《불량 국가》, 장영준 옮김, 두레, 2001 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김성기·이한우 옮김, 민음사, 2002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 에코의 서재, 2007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김영사, 2001 이어령, 《젊음의 탄생》, 생각의나무, 2009 이어령, 《디지로그》, 생각의나무, 2006
BR A N D H I S TO RY 2010. 10
Presentation Show, Seoul Fashion Week, Seoul 2011 S/S Collection ‘Abstinence’
2010. 06
Exhibition, Tranoi Homme, Paris 2011 S/S Collection ‘Abstinence’
2010. 03
Presentation Show, Seoul Fashion Week, Seoul 2010 A/W Collection ‘Modesty’
2010. 01
Exhibition, Pitti Uomo 77th, Firenze 2010 A/W Collection ‘Modesty’
2009. 06
Solo Exhibition, Paris 2010 S/S Collection ‘Spring Breeze’
2009. 01
Exhibition, Tranoi Homme, Paris 2009 A/W Collection ‘Origin’
2009. 01
Exhibition, 75th Pitti Uomo, Firenze 2009 A/W Collection ‘Origin’
WO R K E X P E R I E N C E S 2010. 03
Film <Psychic> Costume Design, South Korea
2009. 03
Design Consulting of ‘Umberto Severi’, Brand Design and Consulting
2006
Giorgio Armani Men’s Wear Designer, Milan, Italy
E DU C AT I O N 2005. 09
Graduated MA Fashion Design, Marangoni, Milan, Italy
2003. 08
Graduated BA Fashion Design, Marangoni, Milan, Italy
1998. 03
Withdrew from 4th Year, BA Fashion Design, Konkuk Univ., Seoul, South Korea
S H OW RO OM N.401, Songwoo B/D, 525-19 Sinsa, Gangnam, 135- 888, Seoul, Korea 82 -2 -548 -3212 info.jeheesheen@gmail.com pr.jeheesheen@gmail.com www.jeheesheen.com
PRESS OFFICE M.Public Yun-kyoung Park(Press manager) yun1602@hotmail.com 82 -2-3442-3012
SA LES Offâ&#x20AC;&#x2122;s for Men, Berlin, Germany Poison Angel, London, UK Mens, Montreal, Canada Lab 5, Seoul, South Korea Flow, Seoul, South Korea 12953 Atelier, Busan, South Korea
FASHION ARCHIVE
JEHEE SHEEN VOLUME ONE. SPRING 2011 -- FALL 2009
I N T E RV I E W I N F O. 인터뷰어
신동우 (리본그라피 대표)
인터뷰이
신재희 (재희신 대표)
1차 인터뷰
2010년 11월 05일 금요일 오후 2시~
2차 인터뷰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오전 10시~
3차 인터뷰
2010년 12월 08일 수요일 오후 2시~
4차 인터뷰
2011년 01월 05일 수요일 오후 11시~
5차 인터뷰
2011년 02월 08일 화요일 오후 2시~
6차 인터뷰
2011년 02월 19일 토요일 오후 1시~
7차 인터뷰
2011년 03월 11일 금요일 오후 5시~
장소
신사동 ‘재희신’ 아틀리에
P U BL I S H I NG I N F O. 발행처
리본그라피
발행일
2011년 3월 23일
제작
재희신
편집
신동우
교열
한정아
디자인
리본그라피
인쇄
중화인쇄
문의
rbgraph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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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P R I N G 2 011 <A B S T I N E N C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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