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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트리흐트의 『이론과 실천 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다루는 가장 포괄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
변증적, 실천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신학의 주된 내용으로서, 이 책은 교리에 대한 엄밀하고 학문적인 논의를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목회의 목 표와 결합시킨다. 학생들과 목회자들은 이것이 성경 본문에서 시작하여 교리적 형성으로 이 동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덕을 세우는 유용한 방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2권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신론을 철저하게 다룬다. 마스트리흐트는 자신의 신 학을 ‘구원하는 믿음’이라는 주제로 시작하면서, 진정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해 고민해 도 영혼의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일깨운다. 신론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한다. 하나님 의 존재와 이에 대한 지식에 이어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본질을 다루고,
헤르만 바빙크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한 분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
개혁교의학 전집 헤르만 바빙크 지음 | 박태현 옮김
“ 종교개혁 이후에 활동한 개혁신학 전통의 위대한 종교개혁 신학자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우리 시대에 점 점 커져 왔는데, 마스트리흐트는 그들 중에서도 우뚝 솟아 있는 거인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마스트리 흐트가 투레티누스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개혁교의학 1
개혁교의학 2
864쪽 | 40,000원
816쪽 | 35,000원
개혁교의학 3
개혁교의학 4
“ 네덜란드 개혁주의 번역협회와 리포메이션 헤리티지 북스는 새로운 세대의 신학생과 목회자와 신학자들을
800쪽 | 35,000원
912쪽 | 40,000원
위해 마스트리흐트의 고전을 영어로 번역해 냄으로써 기독교회 전체, 특히 신학생과 목회자와 신학자들에
_리건 던컨, 리폼드 신학교 총장, 조직신학 및 역사신학 석좌 교수
게 큰 선물을 주었다.”
개혁교의학 색인
_싱클레어 퍼거슨,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석좌 교수
224쪽 | 10,000원 “ 16세기와 17세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개혁신학자들의 저작이 번역되어 나올 때마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과거의 잊혀진 보화들의 도움을 입어 새로워질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금광 중 하나다.”
이 책은 고대 교부들로부터 중세 스콜라 신학자 들과 종교개혁자들을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기독교회사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사상,
_마이클 호튼,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신학 석좌 교수
“ 마스트리흐트의 저작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석의적이고, 교리적이며, 변증적이거나 호교론적이고, 실천적 인 접근 방법을 발전시킨 개혁파 정통 신학을 완벽하게 구현해서 보여 준 대표작이다. 마스트리흐트는 고
그리고 사회, 정치, 교육 등 문화적 이슈들을 종
이론과 실천 신학
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마스트리흐트는 모든 신학 주제를 네 가지 방식, 곧 주석적, 교리적,
도로 자세하고 세심하며 정교한 수준에서 개혁파 정통 신학 사상의 전 영역을 보여 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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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us Van Mastricht 페트루스 판
지은이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개혁파 정통주의 조직신학의 최고봉
Petrus Van Mastricht
(Petrus van Mastricht, 1630-1706)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의 뛰어난 네덜란드 신학 자로서, 히스베르투스 푸치우스와 요하네스 호 른베크 밑에서 공부했다. 마스트리흐트는 네덜 란드의 여러 교회에서 목회했고, 뒤스부르크 와 위트레흐트의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그의 대 표작인 『이론과 실천 신학』 (Theoretical-Practical Theology)은
탁월한 조직신학 저서로 많은 이들에
의해 칭송을 받았다. 이 대작은 네 가지 접근 방 식을 가지고 각각의 신학 주제를 다루는데, 성경 본문의 석의에서 시작하여 교리 형성과 변증 과
마스트리흐트의
이론 과 실천 신학
정을 거쳐 실천적인 적용으로 옮겨 가면서 신자 들의 덕을 세워 주는 훌륭한 모델을 제시한다.
옮긴이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장로회신 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블리 카 아카데미아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
등 고전어를 수학하였다. 특히 청교도 신학에
마스트리흐트
관심을 갖고 평생 신학을 연구하며 신학 서적을
리를 기반으로 진지하게 분석하고 비평적으로 대
지음
번역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수많은 책을 번
화함으로써 유기적 연관성과 논리적 통일성을 지
박문재
교개혁의 역사적 전통을 따라 “오직 성경”의 원
_리처드 멀러, 칼빈 신학교 역사신학 명예 교수
옮김
닌 교회의 교리를 정교하고 선명하게 제시했다.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지음 | 박문재 옮김 토드 레스터 영역 | 조엘 비키 편집 마이클 스팽글러 영역 및 편집 지원
ISBN 978-89-6092-632-5 ISBN 978-89-6092-572-4(세트) www.rnrbook.com 값 52,000원
역하였는데, 대표적인 역서로는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칼빈 주석(『공관복음』, 서』),
『요한복음』, 『고린도전후
매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이상
크리
스천다이제스트),
『변증신학 강요 1』, 『오직 은혜』 (이
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서문┃
편집자와 번역자 일동은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가 라틴어로 쓴 이 중요한 신학 저술을 영어권 세계에 소개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게 된 것에 주님에게 감사한다. 서문에서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몇 가지 예비 적인 설명을 하려 한다. 이 저작의 둘째 권은 『이론과 실천 신학』이 다른 조직신학 저술에 비 해 탁월한 이유를 세 가지 보여 준다. 첫째는 주제 구분과 배열에 있다. 이 둘째 권은 『이론과 실천 신학』에서 하나님론을 다루는 2권을 번역한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본질 (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을 통해 계시된 ), 하나님의 존재 방식 ( 삼위일체 ).” 이것은 하나님론을 다루는 꽤 표준화된 개요다. 하지만 하나님론에 대한 마스트리흐트의 서술을 주목하게 만드 는 것은 하나님론을 고찰하기에 앞서 먼저 꽤 긴 분량을 할애하여 별도 의 장으로 구원하는 믿음을 다룬다는 점이다. 아니, 하나님론을 다루는 2권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다루는 3-8권 전체가 구원하는 믿음이라 는 표제 아래 고찰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이다. 이것은 마스트리흐트가 1부 1권 3장에서 신학을 믿음 ( 1부, 영역본에 서는 2-6권 ) 과
실천 ( 2부와 3부, 영역본에서는 7권 ) 으로 구분한 것을 반영한 것
이고, 그가 실천적인 목표, 즉 독자로 하여금 영혼의 구원을 위해 참된 믿음으로 믿고, 하나님에 대한 겸손한 순종의 삶을 통해 믿음의 선한 열 매를 맺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서 이 저작 전체를 썼다는 것을 보여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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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 마스트리흐트가 신학을 믿음과 실천으로 구분한 것은 다른 사람 이 잘 닦아 놓은 길을 따른 것인데, 몇 명만 언급하자면 윌리엄 에임즈, 아만두스 폴라누스, 피에르 라무스가 그런 인물이었다. 마스트리흐트가 구원하는 믿음을 다루는 장을 하나님론 앞에 두고서 구원하는 믿음의 본질과 필요성을 길게 고찰하는 바람에 그가 강조한 효과적인 설교, 교리적 내용, 믿음의 실천을 한데 결합시킬 수 있게 되 었다. 반면에 마스트리흐트의 전임 목회자이자 교수였던 요하네스 호른 베크는 자신의 저서인 『실천적인 신학』에서 “프롤레고메나”( 신학 론 ) 와
서
“하나님론” 사이에 각각 영원한 구원, 신앙의 실천, 하나님의 말
씀에 대한 열심을 다루는 세 개의 장을 두고서 먼저 하나님 나라를 구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호른베크는 믿음이라는 주제를 한참 뒤에 다루었다. 즉, 그는 하나님, 율법과 양심, 죄, 은혜, 부르심, 회심, 회개를 700쪽 넘게 논의하고 나서 7권에 가서야 믿음이라는 주제를 소개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마스트리흐트가 신학 연구의 맨 처음부터 구원 하는 믿음과 믿음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서 아무리 약 한 믿음일지라도 보호하고 잘 양육해야 한다는 것을 그토록 강조한 이 유였던 것 같다. 목회자들은 자신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에게서 후자 를 허물고 전자를 세워야 한다. 둘째, 마스트리흐트는 자신이 하나님의 속성을 조금 특이하게 배열한 것을 인정한다. 그는 1부 2권 5장 VIII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적극적 속 성과 소극적 속성 또는 교류할 수 있는 속성과 교류할 수 없는 속성으 로 나누는 표준적인 구분을 인정하고 그렇게 제시하면서도, IX에서는 자기는 하나님의 속성을 “기능에 따라 배열하는 것처럼” 배열하는 것, 즉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배열하는 것 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얼마나 큰 분 인가, 하나님은 어떤 특질을 지니고 있는가?” 일련의 질문은 학계의 논 쟁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마스트리흐트가 6-23장에서 하나님 의 속성을 배열하는 데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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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2
셋째, 마스트리흐트는 자기가 24-27장에서 하나님의 위격적 존재를 좀 더 폭넓게 고찰함으로써 삼위일체적인 경륜을 더 철저하게 다룬 것 이 자신의 동시대인과 다른 점이라고 스스로 증언한다 ( 1.2.24 XI ). 그가 삼 위는 한 권속 ( 라틴어로 ‘파밀리아’, familia ) 로 영어의 family보다 더 넓은 개념 이다 ) 의 구성원으로서, 그 권속의 경륜 속에서 서로 구별되는 실재 방 식을 따라 서로 다른 경륜적 직임, 활동 시기, 속성, 예배를 지니고 있다 고 설명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그는 이 가르침을 사용해서, 삼위일체 신학에서 오늘날까지도 골치 아픈 질문에 대답하고, 신자에게 삼위의 서로 구별되는 경륜에 따라 삼위를 서로 다르게 섬길 것을 권고한다. 이 저작의 첫째 권을 읽은 독자들은 각 장의 기본적인 개요에 친숙할 것이다. 마스트리흐트는 맥락에 대해 설명하는 서론적인 단락을 제시한 후에, 주의 깊게 선택한 성경 본문에 대한 축자적인 석의로 각 장을 시 작한다. 이 부분에서 유의할 것은 마스트리흐트가 심지어 같은 단락 내 에서도 동일한 성경 본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번역하여, 그 번역이 각 장의 처음에 제시한 본문 번역과 다른 경우도 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트리흐트가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든 그런 식으로 다양한 번역 을 제시하는 것이 의도적이기 때문에 독자는 그 번역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석의 부분은 물론이고 그 밖의 다른 부분에서도 우리는 라틴어 역 본과 원어 인용 성경 본문을 직역했지만, 가능한 한 우리에게 친숙한 번 역본 성경에 맞추려고 했다. 마스트리흐트가 사용한 헬라어와 히브리어 는 해석과 어원론에 대한 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에는 음 역을 표기하고 각주 등 필요한 경우는 마스트리흐트가 표기한 대로 ( 히 브리어는 모음 없는 상태로 )
원어를 표기했다.
석의 부분 뒤에는 교리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마스트리흐트는 보 통 다른 성경 본문에 의한 증거로 시작해서, 이성이나 본성에 의거한 확 증으로 나아간 후에, 흔히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답변하게 될 반론을 감 안하여 추가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독자는 교리 부분과 그 밖의 다른 부 분에서 마스트리흐트가 본문에서 인용한 성경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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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하면 그가 어떤 성경 구절을 인용한 이유가 언제나 즉시 분명하게 드 러나지는 않지만, 그는 언제나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 성경 구절을 선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종종 그의 의도는 다른 인용된 구절과 비교하거 나, 이 책의 끝에 있는 성경 색인을 사용하여 그 성경 구절이 좀 더 자세 하게 다루어진 대목을 찾아서 읽어 보면 분명해진다. 우리는 독자에게 성경 인용문을 직접 찾아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그 인용문은 무엇보다 도 마스트리흐트가 사용한 단어 그리고 심지어 신학 용어가 성경의 언어 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것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는 신약 성경 을 인용할 때 통상적으로 공인 본문 ( textus receptus, ‘텍스투스 레켑투스’ ) 을 사 용하기 때문에, 그가 지시한 성경 본문이 오늘날의 성경 역본에는 나오 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마스트리흐트는 본문의 이독을 놓고 씨 름하고, 70인역과 여러 판본의 불가타 역본, 트레멜리우스, 유니우스, 베 자, 그로티우스 같은 근대 초기 개신교의 여러 역본과 주해에서 발견되 는 번역상의 차이를 두고도 씨름한다. 우리는 인용문과 의역을 구별하기 위해 인용 부호를 사용했지만, 마스트리흐트는 심지어 헬라어와 히브리 어로 쓸 때조차 그런 것을 엄격히 구별하지 않았다. 또한 마스트리흐트 는 거의 언제나 히브리어 성경의 장절 구분을 따라 인용했지만, 우리는 모든 구약 인용문을 번역본 성경의 표준적인 장절 구분을 따라 표기했는 데, 시편에서는 이 둘 간의 장절 구분 차이가 제일 심하다. 성경 본문이 오늘날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마스트 리흐트가 어떤 역본을 사용한 것인지 추정해서 각주에 언급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변증 부분에 속한 각 절에서 마스트리흐트는 질문 을 짤막하게 제시한 후에, 잘못된 대답을 한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 들이 제시한 답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고서, 그들이 그런 오류를 저지르 게 된 원인과 구체적인 오류 자체를 설명한 다음에, 개혁파 정통 견해를 제시하고 반론에 대답한다. 마스트리흐트가 이 저술의 1699년 서문에 서 설명했듯이,1 ) 변증 부분의 여러 절에서는 두 극단 사이의 중용이 정 1 ) 1권 205-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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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2
통 교리로 제시된다. 전문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이 이 부분의 특징 인데, 마스트리흐트는 어떤 때는 그 전문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 지 보여 주기도 하고 ( 예컨대, “그들이 말한 대로” ), 어떤 때는 종종 짤막한 설 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마스트리흐트는 “야만적인” 라틴어 사용을 꺼리 면서도, 유용한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때는 신속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마스트리흐트에게 헬라어는 흔히 라 틴어의 연장이었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지면을 절약하고 가독성을 높 이기 위해, 원래 본문에 있던 몇몇 헬라어 용어를 각주에 표기했다. 대 부분의 경우 우리는 라틴어나 헬라어로 된 용어를 별도의 설명 없이 적 합한 영어로 옮겼지만, 그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거나 연구에 필요 하다고 생각된 경우에는 대체로 이 책에서 그 용어가 처음 나오는 대목 의 각주에 원어를 표기했다. 또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18세 기에 번역된 네덜란드어 역본과 비교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실천 부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스트리흐트의 수사의 변화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주의 깊고 세심한 분석, 교리에 대한 가르침, 논리적 추론을 통한 변증은 이제 질문, 감탄, 성경 구절, 운율이 있는 반복, 비유, 종종 단어 유희로 가득한 절절한 설득으로 바뀐다. 독 자는 이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여러 절에서 기쁨과 유익을 얻게 될 것이 고, 기독교 신학에서 이론과 실천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상 당히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독자 는 마스트리흐트의 수사적인 설득을 그의 정확한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그는 실천 부분에서 하나 님의 교류할 수 없는 속성을 신자에게 “전하며” 감동을 주는 가운데, 하 나님의 단순성 ( 1.2.6
XXVI-XXIX ),
무한성 ( 1.2.9
XIV ),
전능성 ( 1.2.20
XXXIII ) 을
인간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실천할 것을 권고하는데, 이것은 그가 1부 2권 5장 VIII과 XII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교류할 수 있는 것과 교류할 수 없는 것으로 주의 깊게 구분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완전해지는 것이 하나님을 닮는 것에 있다는 그의 반복적인 가르침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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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한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마스트리흐트는 좀 더 명료한 설명과 수사적인 효과를 위해 라틴어 사이의 어원론적 연결 관계를 자주 사용 하지만, 그런 것들은 영어로 정확하게 옮기기가 어렵다 ( 예컨대
“거룩한”을
뜻하는 ‘상크투스’[sanctus]와 “거룩하게 함”을 뜻하는 ‘상크티피카티오’[sanctificatio] ).
우
리는 그러한 연결 관계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번역 과정에 서 어느 정도 명확성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 각 장의 네 부분을 언제나 병행해서 읽으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스트리흐트는 주의 깊고 세심한 선생이지만, 지면을 절약하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많은 설명을 나중으로 넘기거나, 이전에 했던 설명을 전제하고 반복하지 않는다. 흔히 좀 더 분명한 설명은 어디 를 보라는 식으로 독자에게 말해 주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말한 곳에서 그가 지시한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를 각주에 제시함으로써 불완전 하거나 모호한 것을 좀 더 명확하게 했다.2 ) 하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하 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장을 읽다가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어도 참고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 그 장의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는 그 의문이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정통 교리에 반대하는 자 들의 반론에 답하기 위해 교리 부분의 가르침을 많이 확장한 변증 부분 에서 특히 그러하다. 또한 마스트리흐트는 좀 더 큰 주제를 여러 정리로 세분하여 각각의 정리마다 교리 부분, 변증 부분, 실천 부분을 두기 때 문에, 네 부분으로 된 구조가 더 복잡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책에 서는 3, 6, 12장이 그렇게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독자는 여러 부분과 관련된 것을 유념할 뿐만 아니라, 번역 전체와 관 련된 몇 가지 특징도 유념해야 한다. 각 절의 표제는 거의 모두 마스트 리흐트가 직접 붙인 것이지만, 원본에서는 난외주에 있었고, 절 ( 마스트리 흐트는 절을 ‘파라그라푸스’[paragraphus], 즉 “단락”이라고 불렀다 ) 을
여러 단락으로
세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읽기 쉽도록 단락으로 세분했다. 마스트리 2 ) TPT의 인용은 부, 권, 장, 절에 따랐다(예, 1.2.7 VI). 권과 장만 표시한 것은 1부를 말한다.
전체 개관은 1권 211쪽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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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2
흐트가 간결하게 쓰려고 했기 때문에, 뻔한 결론인 경우에는 종종 그 결 론을 다 쓰지 않고 생략 처리했다. 그런 경우에 통상적으로 우리는 아무 런 설명 없이 거기에 결론을 보충해 넣었다. 또한 원본에서는 종종 강조 를 표시하기 위해 대문자를 사용했지만, 여기서는 고딕체를 사용했다. 또한 본문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독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마스트리흐트 가 라틴어나 헬라어 제목으로 인용한 책들 ( 그중
상당수는 번역본이 없다 ) 의
제목은 대부분 번역해 놓았다. 우리는 그가 인용한 각 문헌을 각주에 밝 혔고, 아울러 원본 저작의 판본 그리고 가능한 경우에는 역본 또는 적어 도 비평판을 표시했다. 우리의 번역 원칙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 급한 몇 가지를 제외하면, 우리는 마스트리흐트의 원문을 분명하게 하 거나 확장하거나 최신의 것으로 수정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럴 필요가 거의 없었다. 마스트리흐트가 쓴 글은 그 자체로 이 해하기도 쉽고 매력적이며 대단히 아름다운 경우도 많기 때문에, 우리 는 이 번역본이 그런 것을 잘 담아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번역본을 통해 마스트리흐트의 설득력 있는 가르침과 권면을 받아 들이기를 소망할 뿐만 아니라, 일부는 이 번역본으로 자극을 받아 라틴 어 원문을 직접 읽고 고전적인 개혁파 정통신학이 솟아나는 샘의 더 깊 은 곳에서 물을 길어 마시게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기도는 많은 사람 이 마스트리흐트 같은 저자의 글을 읽고 그들의 가르침을 오늘의 교회 에 필요한 부분에 지혜롭게 적용함으로써 우리 시대에 참된 신학의 부 흥, 특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신학 의 위대한 목표의 부흥을 보게 해 달라는 것이다. - 조엘 비키 토드 레스터 마이클 스팽글러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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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구원하는 믿음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 셨으니. - 요한복음 1장 11-12절
신학과 영적인 삶의 첫 번째 부분은 믿음이다.
I. 성경을 준칙으로 삼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자연적이고 본 성적인 삶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로 하여금 영적으로 행할 수 있게 해 주는 첫 번째 행위는 의인이 살아가는 방식 인 믿음이고 ( 롬 1:17; 갈 2:20 ), 두 번째 행위는 믿음이 낳는 것, 즉 순종의 행위로서, 믿음은 이 행위를 통해 일한다 ( 갈 5:6 ). 따라서 영적인 삶에서 첫 번째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믿음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 째는 우리가 지닌 믿음이라는 상태를 의미하는 믿음이고, 두 번째는 우 리가 믿는 대상인 믿음이다. 이 장에서는 전자를 설명할 것인데, 요한복 음 1장 11-12절의 본문이 그 길을 밝혀 줄 것이다. 이 본문에 대한 석 의는 전자의 의미에서 믿음이 지닌 본질적인 부분 중 대부분을 보여 줄 것이다.
1장 구원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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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의 부분 본문을 열어 설명함
II. 본문은 믿음을 두 부분으로 보여 준다. A. 불 신앙: 본문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를 배척한 유대 민 족의 불신앙을 보여 준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 온다. 1. 불 신자들: “자신의 것”(‘호이
이디오이’, “자기 백성”).
는 창조와 통치로 말미암은 권리에 의거해서(요
그들은 먼저 1:3, 11),
다음
으로는 구속과 언약으로 말미암은 권리에 의거해서 그리스 도 “자신의 것”이다. 물론 그들은 구속과 언약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제시되기는 했다. 그리고 영접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오직 택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것”(‘이디 오이 투 테우’, 갈 5:24)이다.
2. 그들이 불신앙 가운데서 배척한 초대: “오매”(‘엘텐’). 그리스도 는 성육신을 통해 그들에게 와서 믿음을 통해 그를 중보자로 영접하도록 그들을 초대했다. 3. 불신앙: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카이 호이 이디오 이 아우톤 우 파렐라본’).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
주나 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를 단순히 특정 측면에서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즉, 그들은 죄 사함과 구원을 얻기 위해 실제로 그리스 도를 구주로 영접하긴 했지만(이런 어난다),
일은 외식하는 자에게서 종종 일
그리스도를 왕과 주로 받아들여서 복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눅 19:27). B. 믿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 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호소이 데 엘라본 아우톤 에도켄 아우토이 스 엑수시안 테크나 테우 게네스타이 토이스 피스튜우신 에이스 토 오노마 아우
58
이론과 실천 신학 2
투’).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 첫째로, 믿음: “영접하는 자.”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준다. a. 믿는 자들: “자”(‘호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각각의 사 람 그리고 실제로는 오직 그 사람들만. b. 믿음 또는 믿는 행위: “영접하는.”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 접한” 자들이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피의 제사 를 통해 그들을 구속하실 유일한 중보자이자 제사장으로 영접하였고, 자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그들을 다스릴 왕으로 영접하였으며, 그들을 가르칠 선지자로 영접하 였다. c. 믿음의 대상: “그를”(‘아우톤’). 믿음은 단지 그의 말씀과 복 음의 약속만을 또는 그의 은택, 죄 사함, 영생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하는 것이 먼 저다. 그런 후에 그들은 하나님이 주는 은사와 선물을 따라 온갖 은택과 좋은 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다(롬 8:32). 2. 둘째로, 믿음의 열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 여 준다. a. 믿음의 열매의 원천: “주셨으니”(‘에도켄’). 이것은 영적인 은택과 관련한 믿음의 효력을 보여 준다. 즉, 영적인 은택 은 믿음 자체가 지닌 고유한 고결함이나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공로는 하나도 섞이지 않 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과 자비로 주어진다. 하나님의 선물과 자비 없이 구원하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위해 절 대적으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b. 믿음의 열매 자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엑수시아
1장 구원하는 믿음
59
테스 휘오테시아스’).
즉, 양자 됨의 권세. 거기에는 다음과 같
은 것이 포함된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다. 우 리는 한 형제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다(요 20:17). 두 번째는 공 동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의 모든 은택에 참여하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는 상속자의 자격 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가진 모든 것을 소유하고(시 2:8), 우 리는 공동 상속자의 자격으로 그리스도가 소유한 모든 것 을 함께 소유한다(롬 8:17). 이 아들의 지위 속에는 하나님 을 최고의 목적으로 향유하는 것이 포함되기 때문에, 믿 음은 우리를 중보자인 그리스도만 아니라 최고의 목적인 하나님에게도 데려다준다는 결론이 나온다(요 14:1). c. 믿음의 열매가 주어지기 위한 필수 요건: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토이스 피스튜우신 에이스 토 오노마 아우투’). 앞에서 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라고 한 것을 여기서는 그리스도 를 믿는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것 이 두드러진다. i. 믿음의 행위: “믿는”(‘피스튜우신’). 믿음이 있는 것만으로 는 충분하지 않고, 믿음의 행위가 있어야 할 때마다 믿 음으로 행하는 것이 요구된다. ii. 믿음의 대상: “그 이름을”(‘에이스
토 오노마 아우투’).
여기
서 대명사 “그”의 직전에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기 때 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또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 킬 수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은 늘 “그는 그의 이름 이고, 그의 이름은 그다”(‘후
셰모 웨셰모 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는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름 또는 그리스 도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스 도에게 있기 때문이다(‘베키르보’,
60
이론과 실천 신학 2
출 23:21).
또는 이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리키고, 구원하는 믿음 의 대상이 목적인 하나님과 중보자인 그리스도임을 보 여 주는 것일 수 있다. iii. 믿음의 행위와 믿음의 대상 간의 관계는 전치사 ‘에이 스’(“그
이름을 믿는”에서 “~을”)에
나타난다. 이 전치사는
믿음은 단순히 지식이나 어떤 종류의 동의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신랑으로 와서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겠다고 초대할 때 다른 모든 것에 앞서 그리스 도를 중보자로 영접하는 것에 의지적으로 동의하는 것 임을 보여 준다.
교리 부분 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정의는 이 성경 본문에 의거해서 구축된다.
III. 우리는 이 성경 본문에서 구원하는 믿음의 모든 구성 요소는 아닐 지라도 적어도 그 대부분을 알게 된다. 특히, 구원하는 믿음은 이성을 지닌 영혼 전체의 행위로서, 하나님을 최고의 목적으로 그리고 그리스 도를 유일한 중보자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렇게 연합함으 로써 그리스도의 모든 은택에 참여하게 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믿음에 대한 이러한 정의의 구성 요소는 대부분 이 성경 본 문에 나와 있다. 구원하는 믿음은 “그를 믿는 자들”로 정의된다. 그리고 여기서 구원하는 믿음은 그 열매인 양자 됨을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이 해된다. 구원하는 믿음의 행위는 영접하는 것이라 불린다. 우리가 “그 이름”에서 대명사 “그”의 선행사를 바로 앞에 나온 “하나님”으로 보지 않는다면, 믿음 행위의 대상이며 최고 목적인 하나님이 본문 안에 명시 적으로 표현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믿음의 두 번째 대상을 보여 주는 “영접하는 자”라는 어구 속에 이것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확실 하다. 최고의 목적인 하나님을 먼저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그리
1장 구원하는 믿음
61
스도를 자신의 중보자로 영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요
14:6 ).
끝으로, 이
믿음이나 영접의 목적 또는 열매인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는 “양자 됨”이라는 한 단어 속에 담겨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그의 형제가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의 상속자, 즉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온갖 지복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는 각 부분을 하나하나 차례로 보여 주고 설명할 것이다. “믿음”(fides)이라는 단어의 어원
IV. 다음으로 라틴어로 “믿음”을 뜻하는 ‘피데스’는 “만들어지다, 되다, 일어나다”를 뜻하는 ‘피오’에서 왔다고 한다. 헬라어 ‘피스티스’ 는 “설득되었다”를 뜻하는 ‘페페이스타이’에서 왔고, 히브리어 ‘에무나’ 는 “견고하다”를 뜻하는 ‘나아만’에서 왔다. 라틴어 ‘피데스’는 어떤 것 이 참되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확신을 가리킨다 ( 막
15:32; 롬 14:2 ).
스’의 부차적인 용법은 어떤 것을 가르치는 논증 ( 행 자가 신뢰할 만하다는 사실1 ) ( 롬 3:23 ) 이든
3:3 ) 이든,
17:31 ) 이든,
‘피데
말하는
말하고 믿는 대상 ( 갈
1:23;
믿음을 낳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
자면, ‘피데스’는 말하는 자의 신실함 때문에 갖게 된 확신을 가리킨다. 믿음의 구분
V. 따라서 확신은 두 종류의 신실함에 의거할 수 있기 때문에 두 종류 의 믿음을 낳는다. 신적인 믿음과 인간적인 믿음.2 ) 이 성경 본문에서 말하는 신적인 믿음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가리킨다. (1) 하나님이 말씀한 것에 단순히 동의하는 것. 이것은 역사적 믿음이라 불린다 ( 이것 에 대해서는 약 2:17-20을 보라 ).
(2) 이적을 행하거나 받게 될 것이라고 한
1 ) ἀξιοπιστία 2 ) 간단히 말해서, 인간적인 믿음은 인간의 권위와 신뢰성에 의거한 믿음이고, 신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권위와 신뢰성에 의거한 믿음이다. 이것과 관련된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논쟁에 대한 유용한 개관으로는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8), 1:510–17을 보라.
62
이론과 실천 신학 2
하나님의 약속에 동의하는 것. 이것은 이적에 대한 믿음이라 불리고, 이 적을 행하는 것과 관련된 능동적 믿음 ( 마 17:20-21; 고전 13:2 ) 과 이적을 받 는 것과 관련된 수동적 믿음이 있다 ( 마
13:58; 막 5:34-36 ).
(3) 의지의 움
직임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점에서는 선한 것이긴 하지만 금방 지나가 는 동의 ( 마 13:21; 히 6:4-6 ). 이것은 일시적인 믿음이라 불린다.3 ) (4) 의지 의 움직임을 불러일으켜서 하나님을 최고의 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 스도를 유일한 중보자로 받아들이게 하는 동의. 이것은 구원하는 믿음 이라 불린다 ( 이것에
대해서는 요 1:12; 3:16; 롬 10:10을 보라 ).
이것이 구원하는
믿음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 믿음 자체가 구원을 만들어 내거나 구원받 을 만한 공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니라, 이 믿음이 하나님이 전적으 로 자신의 선하고 기뻐하는 뜻을 따라 구원을 수여하는 데 반드시 필요 한 선결 요건이기 때문이다. 이 구원하는 믿음은 어떤 때는 더 엄밀하고 더 철학적인 의미로 쓰여 하나의 구체적이고 단일한 행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 요 3:16 ), 어떤 때는 더 널리 더 신학적인 의미로 쓰 여 구원을 위한 선결 요건인 여러 믿음의 행위를 가리키거나 구원하는 믿음 안에서 지식, 동의, 받아들임, 구체적 적용과 동일시된다. 우리는 아래에서 구원하는 믿음을 이 후자의 의미로 설명할 것이다. 구원하는 믿음은 행위다.
VI. 우리는 구원하는 믿음을 행위라고 부른다. 이 행위는 하나님을 목 적으로 하고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영접하는 이성을 지닌 영혼의 행위 를 말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여 그리스도 를 유일한 중보자로 영접하는 최고의 행위4 ) 이고, 이 믿음의 결과와 열 매는 첫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다. 우 리는 다시 이에 대해 하나씩 간결하게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구원의 선결 요건으로 정한 믿음은 행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1) 중 3 ) fides πρόσκαιρος; 참조, 마 13:21 4 ) ὑπεροχῇ
1장 구원하는 믿음
63
생을 통해 얻는 “종자로서의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은 유아도 얻는데, 믿음의 영 또는 믿음의 씨와 뿌리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2) 유효한 부 르심 또는 회심에서 생겨나는 “성향이나 상태 ( ‘디아테시스’ ) 로서의 믿음” 이 있다. (3) 반복적인 믿음의 행위를 통해 생겨나거나 확증되는 “습관 으로서의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은 믿음의 능력이라 불리고, 신자가 잠 들어 있거나 극심한 환난에 짓눌려 있을 때조차도 흔들리지 않는다. 끝 으로 (4) 실제적인 믿음 또는 믿는 것 자체가 있다. 처음 세 유형의 믿 음은 구원을 위해 유용하고 필수적이지만, 통상적으로 성도에게는 충분 하지 않다. 성경이 한결같이 믿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과 의지를 발휘하 는 것을 구원을 위한 선결 요건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 요
1:12; 3:16; 행
10:43 ).
구원하는 믿음은 이성을 지닌 영혼 전체의 행위다.
VII. 따라서 믿음은 행위다. 하지만 무엇의 행위인가? 육체도 나름대 로 믿음과 결부되기는 하지만 ( 롬
10:10; 1:8 ),
믿음이 육체의 행위가 아
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고 ( 롬
10:10 ),
실제로는 영혼
전체로 믿기 때문에, 믿음은 영혼의 행위다.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행
8:37, 개역개정은 누락 ).
믿음은 생명의 최초 행위이기 때문
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 전체가 영적으로 살아난다 ( 롬 2:20 ).
1:17; 갈
또한 믿음은 영혼의 개별 기능, 즉 지성, 의지, 감정 등의 행위다.
지성과 믿음의 행위
VIII. 실제로 지성과 관련해서 믿음이 요구된다. (1) 복음의 약속, 하나 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요
17:3; 사 53:11; 딤후 1:12 ).
(2)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 ( 행 24:14; 눅 16:29 ), 기본적인 교리, 특히 하나 님 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 필수적인 복음의 약속에 대한 명시적 인 동의 ( 빌
3:8, 10 ).
구체적으로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전에 약속한
메시아이고, 그리스도 없이 구원에 대한 소망은 있을 수 없다는 이 위대
64
이론과 실천 신학 2
한 명제에 대한 동의 ( 요
11:25-27; 요일 2:22, 4:2-3; 행 4:12 ).
하지만 끝으로
(4) 이론적인 지식과 동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의지를 움직여 우리에게 제시된 하나님과 중보자를 붙잡게 해 주는 실천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 롬 7:18, “아노니”; 21절, “깨달았노니”; 24절, “오 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
의지와 믿음의 행위
IX. 한 마디로 말해서, 의지와 관련해서 믿음이 요구하는 것은 동 의다. 동의는 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한 하나님과 중보자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자 하는 것이고 ( 요 1:12 ), 우리가 거기에 동의했을 때 우리는 그렇 게 동의한 것을 곧 명시적으로 표현하려고 하게 된다.5 ) 감정과 믿음의 행위
X. 믿음은 감정 ( 하지만 실제로는 의지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 ) 을 불러일으킨다. (1) 하나님과 중보자에 대한 사랑 ( 마 10:37 ). (2)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 고 두 분이 약속한 은택을 향한 소원 ( 시 42:1-2 ). (3) 기쁨과 인정 ( 시 16:5; 73:25-26 ).
(4)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모든 것을 미워하고 혐오
하는 것 ( 시
139:22 ).
끝으로 이 모든 것과 관련해서 믿음은 사랑을 통해
일하고 활발하게 활동한다 ( 갈 5:6 ). 믿음의 행위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XI. 하지만 구원하는 믿음과 관련된 몇 가지 행위 ( 지식, 등 ) 가
동의, 승낙, 신뢰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행위 중 한 가지 특정한 행위가 지배적
인지를 관찰해야 한다. 그 행위가 있다면 구원도 있는 것이고, 그 행위 가 없다면 구원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하는”이라 불리는 행위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행위인가? 성경 본문에서는 “받아들이는 것”( 영접
5 ) XI
1장 구원하는 믿음
65
하는 것” ) 이라고
대답하고, 사도도 그 대답을 지지한다 ( 골
12; 갈 4:14; 참조, 마 26:26 ).
2:5-7; 빌 3:8-9,
그렇게 하기 위해 (1) 우리 하나님이자 중보자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자신을 제시하여 우리로 그를 받아들이게 한다 ( 사 55:1-2; 요 7:37-39; 계 22:17 ).
그리고 분명히 그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다 ( 요 1:12 ). (2) 그리스도는 구애자가 되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우리에게 자기를 받아들이라고 감미롭게 말씀한다 ( 계 3:20; 아 5:2; 호 2:14 ). (3) 그리스도는 영적인 혼인을 원하기 때문에 ( 호 2:19 ) 우리의 승낙을 받 고 우리와 혼인하고자 한다 ( 아 2:16 ). 그렇기 때문에 (4) 우리는 믿음으로 중보자를 영접하면서 은혜 언약과 그 언약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복음의 은택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 ( 고후 1:20; 계 22:17 ). 따라서 (5) 복음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것,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 그리스도를 멸 시하는 것,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은 동의어다 ( 요 1:11-12 ).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XII. 그리스도를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동의하는 데 있다. 동의한다 는 것은 복음에 제시된 그리스도에 대해 의지가 동의하고서, 신부가 신 랑을 받아들이듯이 복음에 제시된 그대로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 동의하는 것,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복음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 인다 ( 요 1:12; 참조, 계 22:17; 마 23:37; 22:3 ). 간절히 사모한다는 것은 이런 것 이다. (1) 어떤 조건이나 제한도 없이 절대적으로 사모하는 것 ( 시 73:2526; 마 19:16-17, 20-21 ).
(2)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아들을 주고, 그런 후
에 아들에게 속한 것들을 주듯이, 그리스도의 은택들만이 아니라 그리 스도 자신을 사모하는 것 ( 롬
8:32 ).
(3)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제사장과 구속주와 왕과 주로 주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 일부로서의 그 리스도가 아니라 그 모든 것으로서의 그리스도 전체를 사모하는 것 ( 고전 1:30 ).
(4) 부부관계처럼 그리스도 전체를 사모할 뿐만 아니라 오로지 그
리스도만을 사모하는 것 ( 시 73:25-26 ). (5) 왕인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종
66
이론과 실천 신학 2
인 그리스도도 사모하고, 그리스도의 영광만이 아니라 그의 고난도 사 모하는 것 ( 눅
9:23 ).
끝으로 (6) 그리스도가 자신을 주면서 제시한 조건
들, 즉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 같은 여러 조건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그리 스도를 사모하는 것 ( 갈 5:24; 눅 9:23 ).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하는 여러 명칭
XIII. 성경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여러 가지 방식과 용어로 표현한다. (1) 영접,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른 바 “영접”( 골 2:6-7; 계 22:17 ).
이것은 복음에 제시된 그대로의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것을 가리
킨다. (2)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 ( 마 81:12; 요 5:40 ).
23:37; 시
이것은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먼저 주
어진 초대와 설득에 따라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것을 가리킨다 ( 마 사 55:1-2 ).
11:28;
(3)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 ( 아 5:9 ).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는 눈길을 주지 않고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 요
6:68; 시 73:26-27 ).
(4) 언약을 맺는 것. 이것은 혼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 킨다 ( 호
2:18-19; 렘 31:33 ).
따라서 우리의 하나님이자 중보자인 그리스도
를 영접하는 것 없이는 구원하는 믿음의 행위는 있을 수 없고, 그리스도 에게 동의하고 그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 즉 그리스도가 자신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는 방식을 따라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것, 한 마디 로 말해서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서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받아들이는 것 없이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구원하는 믿음의 대상이 아닌 것
XIV. 이것으로부터 믿음의 대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믿음을 담당하 는 영혼이 여러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믿음의 범위도 넓고 믿음의 대상도 여러 가지다. 지성과 관련하여 믿음의 일반적인 대상은 하나님
1장 구원하는 믿음
67
의 말씀 전체이고 ( 행 24:14 ), 복음의 약속은 그 일부다 ( 행 10:43 ).6 ) 그리고 누구나 동의하듯이, 믿음의 근본적인 대상은 참된 것이나 선한 것과 관 련해서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 롬 4:21; 히 11:3 ).7 ) 따라서 (1)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겠다고 하고 실제로 좋은 것을 담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그 좋은 것을 받도록 권하는 약속은 믿음의 대상이 아 니다. 또한 (2) 우리가 영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인 하나님과 중 보자가 주는 은택 ( 벧전 1:9 ) 과 우리가 영접하고 받아들였을 때의 열매 ( 요 1:12 ) 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구원하는 믿음의 대상은 무엇인가?
XV. 그렇다면 구원하는 믿음의 대상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중보자 자신이다. “영접하는 자”( 요 이다 ( 요
12:44; 14:1; 시 78:22 ).
1:12 ).
따라서 구원하는 믿음의 대상은 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
에게 올 수 없기 때문이다 ( 요 14:6 ). 최고의 일차적인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은 그토록 자주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다음
6 ) 라틴어: objectum … inadaequatum; 네덜란드어: het ondergeschikte voorwerpen. 참조,
Johann Heinrich Zedler, Grosses vollständiges UniversalLexicon aller wissenschaften und Künste (1731–1754), 25:199의 “Object Adäquates”와 “Object Inadäquates.” 요 컨대, 믿음의 “일반적인 대상(라틴어: objectum adaequatum)은 믿음의 대상의 활동과 보 전(독일어: Würckung und Erhaltung eines zweckes)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대상 전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대상의 구성 요소나 활동이나 성향의 한 부분을 통해 그 대상을 이해하는데, 그러한 부분이 라틴어로 objectum inadaequatum이다. 또한 체틀러는 “대상 전체”(objectum totale)와 “대상의 일부”(objectum partiale)라는 동의어를 제시한다. 7 ) sub ratione veri…sub ratione boni. 참조, Bernard of Clairvaux, De consideratione ad
Eugenium V, 5.14.31 in S. Bernardi Opera, ed. J. LeClercq and H. M. Rochais (Rome, 1963), 493.20–23. 여기서 마스트리흐트가 사용한 표현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의 표현과 유사하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묵상의 삶에서 묵상의 대상은 네 종류가 있다(하나님의 약 속에 대한 묵상, 하나님의 은택에 대한 기억,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묵상,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묵상). 이 묵상의 대상들은 사랑에서 시작해서 경외에 이르기까지 신앙에 고유한 복 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영혼을 참된 것과 선한 것으로 이끈다. 따라서 “참된 것(sub ratione veri)과 “선한 것”(sub ratione boni)에 대한 신앙적인 묵상은 믿음과 일치하고, 각 각에 고유한 신앙 감정과 행위로 이끈다.
68
이론과 실천 신학 2
으로 이차적인 대상은 그리스도지만, 오직 중보자인 그리스도다. 왜냐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고 ( 벧전 1:21; 롬 6:11 ),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갖기 때문이다 ( 고후 3:4 ). 하나 님은 목적으로서의 대상이고, 그리스도는 수단 또는 중보자로서의 대상 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삼중 직임에 따른 중보자로서 믿음의 대상이다.
XVI. 하지만 믿음은 죄인의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의 고유한 대상은 중보자 그리스도이고 ( 행 10:43; 요 1:11-12; 2:23; 행 4:12; 딤전 2:5 등 ), 오직 하나 님인 그리스도이거나, 오직 사람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의 중보 사역 에 의해 구별되는 하나님이자 사람인 그리스도이며 ( 딤전 2:5 ), 그의 직임 의 이런저런 기능에 따라 오직 선지자인 그리스도나 제사장인 그리스 도나 왕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삼중 직임 전체를 담당한 그리스도다. 그 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그”( 요
1:12; 3:16 )
또는 “예수 그리
스도”, 즉 인격과 직임이 결합된 그리스도 ( 행 8:37 ) 또는 삼중 직임을 하 나로 묶은 “중보자”( 딤전
2:5; 히 9:15 ) 를
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 마 23:8, 10 )
17:5 )
믿으라고 명령한다. 따라서 우리
선생인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며 ( 마
그리스도에게 복종함으로써 ( 고후
10:5 )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영
접한다.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구속주인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 사 10:20 ), 죄 사함과 구원과 모든 것을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구하며 ( 창 8:56 )
49:18; 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자원해서 그리스도에게 드림으로 ( 빌 3:7-9 )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영접한다. 끝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주라는 것 을 인정하고 ( 롬
14:8 )
그리스도와 그의 뜻에 복종하며 ( 시
2:11-12 )
도와 그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 전체를 바침으로써 ( 롬
그리스
14:7; 고후 5:15 )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한다.
1장 구원하는 믿음
69
특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속주로 영접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 로도 영접한다.
XVII.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죄에 대한 형벌과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를 건져 주는 구속주로 영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우리가 순종을 드려야 하는 주로도 영접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부른다 ( 딤전 1:1; 딛 1:4 ). 또한 성경은 그리스도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르고, 신자들에게도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골
2:6 ).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와서 자신을 왕과
주로 영접할 것을 요구한다 ( 슥 9:9 ).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를 완전한 중 보자로 영접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구주이자 주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완전한 구속주로 영접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죄로 말미암은 죄책만이 아니라 그 흔적에서도 우리를 속량하여 우리에게 “의로움”만 아니라 “거룩함”도 되었기 때문이다 ( 고전 1:30 ). 신자는 그리스도를 영접 할 때 먼저 구속주에게서 오는 칭의를 구하긴 하지만 ( 빌
3:8-9 ),
자신의
믿음을 발휘할 때는 먼저 주로서의 그리스도가 갖는 능력인 “거룩함”과 “순종”의 능력을 지각하고 경험한다 ( 시 2:10-12 ).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구원의 방식으로 정한 것은 그리스도의 대 권에 의한 것이다.
XVIII. 구원하는 믿음을 일반적인 믿음과 아주 확실하게 구별시켜 주 는 이러한 영접을 통한 구원의 방식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 지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최고의 목적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단지 하나의 중보자가 아니라 유일한 중보자로 영접한다. 즉, 우리는 다른 어 떤 존재도 아닌 하나님과 중보자를 영접하고, 이 두 분을 다른 어떤 것 보다 더 경외하며 ( 마 10:37; 눅 14:26, 33 ), 이 두 분을 먼저 구하고 ( 마 6:33 ), 다른 모든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 빌 3:7-8 ), 이 두 분을 위해서라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잃는 일이나 수치나 감옥이나 심지어 죽음까지도
70
이론과 실천 신학 2
기꺼이 받아들인다 ( 행
20:23-24; 히 10:32-34; 참조, 23절 ).
이렇게 우리는 이
런 식으로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는 반면에 ( 요일 4:4; 계 2:7, 11, 17, 26 ),
5:4-5;
위선자 ( “외식하는 자” ) 는 세상에 의해 패배당하고 정복
당한다 ( 벧후 2:19 ). 믿음의 결과 또는 열매
연합
XIX. 믿음과 구원을 위한 영접의 결과 또는 열매는 두 가지다. 그리스 도와의 연합과 그리스도의 좋은 것들에의 참여. 사도는 이것을 빌립보 서 3장 8-9절에서 보여 준다.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모시게 되거나 ( 시
73:25-26 )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
는 우리 안에 ( 엡 3:17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 엡 1:13 ) 있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교제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 스도와 함께 구원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온갖 좋은 것을 얻게 된다 ( 롬 8:32 ).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으로부터 은혜 위에 은혜를 받
고 ( 요 1:12; 참조, 16절 ) 부부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공유하여 그리 스도 안에서 완전해진다 ( 골 2:9-10 ). 그래서 성경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 는 생명이 있다”라고 말한다 ( 요일 5:12 ). 칭의, 양자 됨, 성화, 영화
신자가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좋은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칭의 ( 빌 3:9; 행 10:43 ). (2) 양자 됨 ( 요 1:12; 갈 3:26 ). 우리가 믿음으로 그 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 하 나님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 ( 요 20:17 ). (3) 성화 ( 행 15:9 ). 우 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 그의 부활 능력을
1장 구원하는 믿음
71
경험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고” “그의 죽으심을 본 받게” 된다 ( 빌 3:9-10 ).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음으로써 우리를 거룩 하게 하는 그의 피를 얻게 된다 ( 히 9:13-14 ). 끝으로 우리는 우리 속에서 거룩함에 대한 열심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딛 2:14; 고후 5:15 ). (4) 영화 ( 벧전 1:3-5, 9 ). 먼저 우리는 믿을 때 최초 의 영화를 경험한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장차 구원받게 될 것이 확실함을 알게 되고 ( 갈 되며 ( 사 5:1 ),
10:20; 렘 17:7 ),
5:5; 고후 5:1 ),
하나님을 담대하게 의지하게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롬
8:23 ),
영적인 평안 ( 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 ( 벧전 1:8; 롬 5:2 ), 곤경 속에서 영혼의 위로
와 고요함 ( 골
2:2 ),
하나님의 자비 ( 롬
5:1; 참조, 3절; 벧전 2:2-3 ) 를
맛보게
된다. 이 영화는 장래에 완성된다 ( 요 3:16; 벧전 1:9 ). 믿음의 정도
XX. 믿음의 정도에 대한 논의가 있다. 성경은 어떤 때는 믿음이 크다 고 말하면서 ( 마 15:28 ) 어떤 사람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 행 6:5-8 ),
어떤 때는 믿음이 아주 작다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작
은 자 ( 마
6:30; 8:26; 14:31 ) 나
믿음이 약한 자 ( 롬
14:1 ) 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떤 때는 믿음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아주 작은 경우를 두고 겨자 씨만한 믿음이라고 말한다 ( 마 냐”( 막
4:40; 눅 8:25 ).
17:20; 눅 17:6 ).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
또한 성경이 믿음이 자란다고 말하거나 ( 고후
믿음을 굳게 하라고 말하거나 ( 골
2:7 ),
10:15 ),
믿음이 아주 많이 자랐다고 말하
거나 ( 살후 1:3 ), 그렇게 해서 결국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는 것 ( 히 10:22 ) 도 믿음의 정도와 관련된 것이다. 믿음의 정도와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어떤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믿음이 견고하다고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믿음이 약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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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2
음 ( 마
8:26 ),
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 ( 마
15:28 ),
백부장의 믿음 ( 마
8:10 ) 을
비교해 보면 분명해진다. 제자들이 수로보니게 여자나 백부장보다 그리 스도와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을 “믿음이 작은 자”라 부르 고, 수로보니게 여자와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기이하게 여긴다. 둘째, 믿음의 크고 작음은 서로 다른 대상과 관련해서만 아니라, 동일 한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시기와 관련해서도 언급되는데, 이 것은 다윗 ( 시 30:6-7; 시편 전체, 예컨대 3:6; 18:1-2; 13:5과 42:5-7, 11; 43:5을 비교해 보라 ) 과
베드로 ( 마 16:17과 26:70-72 ) 를 보면 분명해진다.
셋째, 믿음이 강하다거나 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좀 더 분명하고 명료한 지식, 좀 더 견고한 동의, 좀 더 확고한 신 뢰, 구원에 대한 좀 더 견고한 확신에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특히 믿 음으로 말미암은 원함, 즉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복종하는 정도가 강한 지 또는 약한지와도 관련 있다. 왜냐하면 믿음의 행위, 적어도 구원하는 믿음의 행위는 지식이나 동의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에 있기 때문 이다. 믿음의 일차적 원인과 기원
XXI. 우리가 지금까지 설명해 온 믿음의 일차적 원인은 빛들의 아버 지인 하나님이다. 구원과 관련된 모든 좋은 것 ( 약 오고, 믿음의 영 ( 고후
4:13, “믿음의 마음” ) 도
성령의 열매 중 하나다 ( 갈
5:22 ).
1:17 ) 은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에게서 오는데, 믿음은
믿음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곳에서 우
리에게 올 수 없다. 우리의 총명은 눈멀어 있고 ( 엡
4:18 ),
마음은 돌같이
굳어 있으며 ( 겔 11:19 ), 우리 자신이 죄 가운데 죽어 있기 때문이다 ( 엡 2:12 ).
또한, 첫째로, 하나님은 중생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 안
에 믿음이 생겨나게 한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의 씨를 주고 중 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적절한 때가 되면 우리가 믿을 수 있게 된다. 이미 말했듯이, 이 중생 이전에 우리는 모든 영적으
1장 구원하는 믿음
73
로 좋은 것에 대해 죽어 있다. 둘째로, 하나님은 회심과 관련해서 우리 에게 역사하여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나게 한다. 즉, 하나님이 믿음의 씨에서 가지가 나오게 하면, 우리는 실제로 믿게 되고, 그리스도를 우리 의 유일한 중보자로 붙잡고, 그리스도에게 이끌려 그리스도에게 가 고 ( 요
6:44 )
달려가서 ( 아
1:4 )
기댄다 ( 아
8:5 ).
셋째로, 하나님은 성화와 관
련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나게 한다. 이러한 하 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믿음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사랑으로 일하게 된다 ( 갈 5:6 ). 도구적인 원인(도구인)
앞에서 말한 중생과 회심과 성화와 관련해서 믿음이 생겨나게 하는 역사에서 하나님은 말씀, 즉 율법과 복음을 도구로 사용한다. 하나님은 율법을 사용하여 우리 속에 우리가 비참하다는 인식과 우리가 구원자 를 영접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주입한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그 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 갈 3:24 ) 라 불린다. 또한 하나님은 복음 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우리가 붙잡아야 할 중보자를 보여 주고, 아울러 중보자를 붙잡아야 할 동기를 부여해 준다 ( 고전 1:23-24 ).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 말씀의 효력은 도덕적이고 도구적인 효력일 뿐이다 ( 고전 3:6-8 ).
변증 부분 1.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지성의 동의에 있는가?
XXII. 첫 번째 질문은 구원하는 믿음이 오직 지성의 동의에 있는 것인 가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교황주의자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 하기 때문에 개신교에서 받아들여지는 견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신교에서는 구원하는 믿음은 각 사람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속주라고 확신하고서 자신의 마음을 드려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 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교황주의자는 신자는 하나님을 향해 의지를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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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2
는 어떤 소질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믿을 만한 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구원하는 믿음은 지성의 일반적인 동의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황주의자는 이 동의는 의지의 온갖 경 건한 움직임과 분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상당수의 개신교인도 교황주 의자처럼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지성의 동의에 있다고 말하지만, 구원 하는 믿음은 계시된 것에 대한 일반적인 동의나 의지의 온갖 경건한 움 직임과 분리된 동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속주라 는 것을 확신하는 살아 있고 유효한 동의에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 로 영국의 실천적인 저술가는 대부분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의지에만 있다고 말한다. 즉,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신 뢰하려고 하는 우리의 의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 유는 지성의 동의만으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견해의 중간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 은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지성에만 있거나 오직 의지에만 있지 않고, 한 사람의 영적인 삶 전체에 있다고 말한다. 즉, 구원하는 믿음은 근본적으 로는 지성에 있지만, 그 믿음에 의지도 상당 부분 관여하고, 영혼의 다 른 기능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적어도 내게는 가장 신중하고 주의 깊은 견해로 여겨지는데, 그 주된 이유는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믿음은 인간의 모든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삶의 최초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거한 증명
어쨌든 구원하는 믿음이 오직 지성의 동의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첫 째로 성경의 증언에 의거해서 증명할 수 있다. (1) 성경은 우리에게 단 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 니라,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한다 ( 왕하
17:14; 롬 10:11; 요 14:1; 3:16; 벧전 2:6 ).
(2) 성경은 다음과 같은 것을 믿음이라고 부르거나, 믿음의 속성으로 언급한다. 신뢰 ( 고후 3:4 ), 용기 ( 마 9:2; 고후 5:6 ), 담대함 ( 엡 3:12 ), 온전한 확
1장 구원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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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 롬 4:21; 골 2:2; 히 10:22 ), 실체 ( 히 11:1 ), 나아감 ( 롬 5:2; 엡 2:18; 3:12 ). (3) 성 경은 믿음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시 78:22; 25:2; 사 50:10 ). (4) 성경 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말한다 ( 사 16:8 ).
10:20; 50:10; 대하
(5)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
기라고 말한다 ( 시 37:5; 잠 22:9 ). (6)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떠나지 말 고 꼭 부여잡고서 붙어 있으라고 말한다 ( 신
4:4; 왕하 18:6; 시 119:31 ).
하나
님을 마음으로 의지하고 의뢰하라고 말하는 모든 구약 본문도 구원하 는 믿음이 지성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신약 성경은 이 구 약 본문에서 말한 것을 믿음으로 지칭한다. 예컨대 요한복음 1장 12절 은 시편 33편 21절에서 말한 것을 믿음이라고 지칭하고, 사도행전 8장 37절은 잠언 3장 5절에서 말한 것을 믿음이라고 지칭하며, 로마서 10장 11절은 시편 31편 1절과 25편 2절에서 말한 것을 믿음이라고 지칭 한다. 이 모든 증언은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지성의 동의에 있지도 않 고, 믿음의 행위는 단순한 동의가 아니며,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을 아무것이나 믿는 것에 있지도 않다는 것을 대낮보다 더 밝게 보여 준다. 이성에 의거한 증명
둘째, 다음과 같은 것도 구원하는 믿음이 오직 지성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1) 우리가 앞에서 이미 보여 준 대로, 구원하는 믿 음의 대상은 모종의 공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중보자다. (2) 복음이 우 리에게 하나님과 중보자를 보여 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 미암아 이 두 분을 영접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3) 우리는 믿음으로 하 나님 앞에 나아간다 ( 사
55:1; 마 11:28; 벧전 2:4; 계 22:17 ).
(4)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는 의심할 여지없이 믿음으로 말미암는데, 이것들은 단지 모종의 동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5) 그리스도를 사모하지 않는 것 ( 마
23:37; 요 5:40 ),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는 것 ( 마
22:5; 행 13:46 ),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것 ( 요 1:11; 5:43-44 ) 은 믿지 않는 것이다. 따라 서 어떤 명제가 참이면 그 역도 참이기 때문에, 앞에서 이미 증명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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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2
이, 믿음은 그리스도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다 ( 계
22:17 ).8 )
그 밖에도
다음과 같은 것을 근거로 들 수 있다. (6) 구원하는 믿음은 오직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있는데 ( 살후 3:2 ), 교황주의자가 말하는 그런 믿 음은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 요 12:42 ). (7) 구원의 약속은 구원하 는 믿음에 주어지는데 ( 요 3:16; 행 10:43 ), 교황주의자가 말하는 그런 믿음 에는 그런 약속이 주어지지 않는다 ( 약 2:1; 고전 13:2 ). (8) 앞에서 이미 보 았듯이9 ) 구원하는 믿음의 열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 ( 빌 3:9 ), 칭 의, 양자 됨, 성화, 영화인데, 교황주의자가 말하는 믿음은 이 중에서 어 느 것과도 관련이 없다. 반론
우리의 대적이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기 위해 (1) 성경이 한결같이 믿 음을 성경에 나와 있는 진리에 대한 지성의 동의에 있다고 말한다 ( 요 1:50 ) 고
주장한다면,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a) 우리는 지성의 동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원하는 믿음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미 인정했 고, 교리 부분에서 그것을 증명했다.10 )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믿음은 오직 지성의 동의일 뿐인가 하는 것이고, 우리는 믿음이 그런 것임을 부 정한다. 다음으로 (b)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을 마음이나 의 지로 의뢰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적으로 동의해서 행한 행위 이면서도 마음으로 의뢰하는 것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전제되는 행 위에 대해 한 말씀들에 의해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우리의 대적이 (2) 철학자는 모든 믿음이 지성의 동의라는 말에 동의할 것이라고 주장 한다면 ( 데카르트처럼
자신의 가설을 밑받침하기 위해 판단하는 것은 의지의 소관이라고
주장하며 의지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믿음을 철
학적으로 고찰하는 경우에는 이성을 지닌 영혼의 어떤 특정한 행위를 8 ) 위 XII 9 ) 위 XIX 10 ) 위 VIII
1장 구원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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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없이 믿음은 오직 지 성의 동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 고찰하는 경우에는 여러 행위, 즉 지식, 동의, 신뢰, 구체적인 적용을 가리키는 것 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 후자의 의미로 우리는 믿음에는 지성의 동의 외 에도 신뢰나 의지의 동의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2. 지식도 구원하는 믿음 속에 포함되어 있는가?
XXIII. 두 번째 질문은 구원하는 믿음 속에는 지식도 포함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를 추종하는 철학자와 신학자는 믿음 속에 지식 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지식은 믿음의 본질 속에 포함되어 있다기보다는 믿음에 의해 전제되는 지식이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주의 자는 믿음 속에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한다. 좀 더 정확하 게 말하자면, 그들은 믿음은 무지라고 설명하는 쪽을 선호 한다 ( Bellarmine, On Justifying Faith , bk. 1, ch. 7 ).11 ) 물론 그들이 그렇게 주장 하는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암묵적 믿음 또는 광부의 믿음을 옹호하 기 위한 것이다.12 ) 어떤 사람이 교회가 믿는 것을 믿는다면, 교회가 무
11 ) 로베르토 벨라르미노(1542-1621)는 De fide justificante, bk. 1, ch. 7, in Disputationes
Roberti Bellarmini … de controversiis Christianaefidei (Lyon: Jean Pillehotte, 1610), 4:948-951에서 칼빈에 반대해 “믿음은 지식(notitia)이 아니라 동의(assensus)다”라고 주장했다. 네 번째 책에는 세 가지 일반적인 논쟁이 나온다. 인류의 시조에게 수여된 은 혜, 상실된 은혜, 회복된 은혜. 그중에서 마지막 논쟁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은혜와 자유로운 선택, 경건하지 않은 자의 칭의, 선행과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열매. De fide
justificante는 다섯 권으로 된 네 번째 책에서 세 번째 논쟁의 세 번째 부분을 다룬다. 12 ) 일반적으로 개신교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교리인 fides carbonaria(직역하면 “목탄과 관
련된 믿음”)를 “암묵적 믿음”으로 번역한다. 개혁파의 저작 중에는 Thomas Cartwright,
Thomae Cartwrighti … harmonia evangelica commentario analytico, metaphrastico, practico (Amsterdam: Ludovicus Elsevier, 1647), 188; 루터파의 저작 중에는 Johannes Eisenhart, De fide historica commentarius (Helmstadt: J. M. Sustermann, 1702), 14를 보라. 항변파의 저작 중에는 Étienne de Courcelles, Opera theologica (Amsterdam: Daniel Elsevier, 1675), 458을 보라. “따라서 교황주의자들이 광부가 로마 가톨릭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를 알지 못하더라도 교회가 믿는 것을 암묵적으로 믿는다면, 그의 믿음은 참 된 믿음이고 구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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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2
엇을 믿는지 모른다고 해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야 교황의 독재가 훨 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근거
개혁파는 ‘스키엔티아’( scientia ) 라 불리는 지식과 ‘노티티아’( notitia ) 라 불리는 지식을 구별하는데, ‘스키레’( “알다” ) 는 어떤 것을 그 원인이나 결과에 의거해서 아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파는 믿음 에서 ‘스키엔티아’가 필수적이라고 믿지 않지만, 원인이나 결과에 대한 지식을 포함하지 않는 ‘노티티아’는 믿음에서 필수적이라고 가르친다. 그 근거는 이러하다. (1) 성경은 믿음과 관련해서 지식을 명시적으로 요구한다13 ) ( 신
4:6; 시 32:9; 단 9:22; 골 1:6; 2:2; 딤후 3:7 ).
(2) 성경은 구원을
믿음과 결부시키기도 하고 지식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 사
53:11; 요 17:3 ).
(3) 성경은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것을 명령하고, 신앙 고백은 지식을 전제한다 ( 롬 10:10; 벧전 3:15 ). 또한 (4) 우리는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과 중 보자를 사모할 수 없고, 사모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중보자를 영접 할 수 없다. 반론
다음과 같은 반론은 유효하지 않다. (1) 믿음은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 또는 수단이다 ( 형편없이
번역된 사 7:9를 근거로 ).
왜냐하면 암묵적 믿음
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이끌어서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을 분명하게 알 게 해 주어서 명시적인 믿음으로 그것들에 동의하게 해 줄 수 있기 때 문이다. (2) 고린도전서 13장 2절을 근거로 지식은 믿음과 구별된다고 주장하는 것. 왜냐하면 그 본문에서 논의되는 것이 구원하는 믿음에 대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적의 믿음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만두고라 도, 지식은 믿음 전체의 일부로서 구별될 수 있고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
13 ) 이 단락과 다음 단락에 언급된 “지식”은 모두 notitia를 가리킨다.
1장 구원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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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믿음 전체로부터 배제될 수 없고 배제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3)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이성적 추론을 사로잡아서 우리의 지성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라고 명령한다 ( 고후
10:5 ) 는
것을 근거로 지식은
믿음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왜냐하면 우리가 사로잡 아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하는 것은 이성 전체가 아니라 부패하 고 타락한 이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과 이성적 추론은 서로 다르고, 성경은 모든 지식을 믿음에서 배제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3.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 있는가?
XXIV. 세 번째 질문은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는 데 있는가 하는 것이다. 교황주의자는 사람이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주장을 좀 더 수월하게 옹호하기 위해 믿음은 선행이라 고 말할 뿐만 아니라, 칭의 문제와 관련해서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말 한다.14 ) 항변파도 동일한 취지에서 믿음은 온전한 순종은 아니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칭의 문제에서 하나님이 온전한 순종으로 여기고 인 정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15 ) 소키누스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속과 14 ) 참조, Bellarmine, De fide justificante, 1.13. 15 ) 라틴어: per acceptilationem a Deo; 네덜란드어: door ene aannemende schatting van
Godt. 여기서 “여기고 인정해 주는 것”으로 번역한 라틴어 acceptilatio는 로마법에서 imaginaria solutio, 즉 채권자가 채무자에게서 온전한 변제를 받는 대신에 아무것도 받 지 않거나 덜 받고서 “변제했다고 간주하는 것”을 가리킨다(Justinian, Institutes, 3.29.1). 그로티우스(1583-1645)는 Defensio fidei catholicae de satisfactione Christi adversus
Faustum Socinum (Leiden: Joannes Patius, 1617), 80에서 이 개념을 활용해서 그리스 도의 대속은 “solutio”, 즉 온전한 변제가 아니라 “acceptilatio”, 즉 변제로 간주된 것으로 이해했다; 또한 Grotiana, 38, no. 1 (2017):1-27에 나오는 “Acceptilatio. Hugo Grotius on Satisfaction”도 보라. Philip van Limborch(1633-1712)는 Commentarius in Acta
Apostolorum et in epistolas ad Romanos et ad Hebraeos (Basel: Johann Rudolph, 1740), 293에서 롬 4:3을 주석하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의 믿음 과 불완전한 순종을 “모든 점에서 온전하고 완전한” 것으로 받아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는 결코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고 단언 하고, 다만 “그리스도 덕분에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거나, 우리의 믿음이 의로서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참조,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898), 3:188-189.
80
이론과 실천 신학 2
공로를 구원하는 믿음과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좀 더 효과적으로 제거 하기 위해,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 령을 지키는 것을 통해, 그들이 좋아하는 표현을 사용하자면 “복음적 행위”를 통해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 도의 명령을 지키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개혁파는 믿음을 그 자체나 내용적으로 고찰해 보면 일종의 행위이고 ( 요 6:29 ) 순 종의 행위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칭의 문제에서 순종의 행위라는 것을 부정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분명하게 설명할 것이다.16 ) 또한 개혁파는 믿음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는 것임을 부정하고, 믿 음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최초의 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유 일한 중보자로 영접하는 데 있다고 단언한다. 근거
어쨌든 성경은 믿음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 있지 않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렇게 가르친다. (1) 성경은 믿음과 행위를 정의할 때 이 둘을 구별해서, 믿음은 그리스 도를 영접하는 것이고 ( 요 1:12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히 11:1 ) 인 반면에, 행위는 “율법의 완성”( 롬 13:10 ) 이라 고 말한다. (2) 성경은 믿음과 순종을 구별해서, 믿음은 원인이고 순종 은 그 결과라고 말한다 ( 갈
5:6; 딤전 1:5 ).
(3) 성경은 믿음과 순종의 결과
가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믿음의 결과는 칭의 ( 롬 3-4장; 갈 2-3장; 엡 2:8 ), 양자 됨 ( 요 1:12 ), 그리스도와의 연합 ( 엡 3:17 ) 이지만, 순종 또는 선행의 결 과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 갈
3:2, 5 ).
(4) 또한 성경은 믿음과 순종이 사
용하는 준칙이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믿음은 복음을 준칙으로 삼지 만 ( 막 1:15 ), 순종은 율법을 준칙으로 삼는다 ( 마 22:37; 롬 13:8-10 ). 사실 (5) 적어도 칭의 문제에서 성경은 믿음을 순종이나 선행과 대립시킨다 ( 롬
16 ) 1.6.6 XIV, XXII, XXVI, XXVIII
1장 구원하는 믿음
81
3:20; 갈 2:16 ).
(6) 소키누스주의자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그리스도인에게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어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a) 믿음을 논 의할 때 그리스도의 대속을 배제한다. (b) 사람이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것도 배제한다 ( 롬
10:3; 갈 5:4-6 ).
(c) 그리스도에게 구속의 온전한 영광
을 돌리지 않는다. 구속과 관련해서 우리가 행한 것은 우리의 의이기 때 문에,17 ) 구속의 영광이 오직 그리스도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d) 구원의 모든 소망을 모든 사람에게서 빼앗아 버린다. 믿음으로 그리스 도를 영접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은 존재하지 않 기 때문이다 ( 행
4:12; 요 14:6; 3:16 ).
(e) 그리스도인의 모든 경건을 불가능
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경건은 오직 믿음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 요 15:4-5 ). (f) 그들의 견해는 결국 우리를 이끌어서 행 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교황주의로 돌아가게 만든다. 반론
다음과 같은 것은 믿음이 순종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 (1) 성경은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약속 했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구원받지 못 한다고 말한다는 것 ( 히
12:14 ).
이것은 순종 자체가 믿음이라는 것이 아
니라, 순종이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만을 보여 줄 뿐이다 ( 갈
5:6 ).
(2) 야고보가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 약 2:26 ). 야 고보가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한 것은 생명이 있는 것에서 행위가 흘러나오듯이 믿음에서 행위가 흘러나온다는 의미일 뿐이다. (3) 성경은 경건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믿는 자라고 부른다는 것 ( 히 11장 ).
이것은 믿음과 순종이 동일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17 ) δικαίωμα
82
이론과 실천 신학 2
4. 구체적 적용은 구원하는 믿음의 핵심인가?
XXV. 네 번째 질문은 구체적 적용 또는 확신이 구원하는 믿음의 핵심 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구체적 적용 또는 확신이라는 것은 한 개인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중보자라고 확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펠라기우스주 의자, 교황주의자 등은 자유로운 선택의 독립적인 중립성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통상적인 수단으로 구원에 대한 무오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개신교는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낸다. 그중 대다수는 지식, 동의, 신 뢰18 ) 가 구원하는 믿음의 핵심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어떤 사람은 신 뢰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은택을 구체적으로 확신하고 자신에게 적 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신뢰는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의 지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이해한다. 전자는 신뢰를 지성과 결 부시키고, 후자는 의지와 결부시킨다. 또한 신뢰를 남편과 아내로서 서 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즉, 어떤 법에 의거하여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의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우리 자 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는 것이 신뢰라는 것이다 ( 아 2:16 ). 그리고 이 신 뢰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고, 그의 온갖 좋은 것은 우리의 것이라 는 구체적인 적용과 분명한 확신을 낳는다. 따라서 이 확신은 공식적으 로는 구원하는 믿음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결 과다. 적어도 내 판단으로는 이것이 가장 안전한 견해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는 이 구체적 적용과 관련해서 양쪽의 극단적인 견해는 죄를 짓 는 것이다. 첫째, 교황주의자 등은 이 구체적 적용을 믿음과 신앙으로부 터 완전히 분리시킴으로써 성경의 명시적인 증언을 빼는 죄를 짓 는다 ( 갈
2:20; 롬 8:38; 고후 5:1; 딤후 4:8; 시 103:1-3; 삼하 12:13 ).
나중에 우리는
18 ) fiducia: 참조, Question 21, “What is true faith?” in German Reformed Church in the
USA, The Heidelberg Catechism in German, Latin, and English, with an historical
introduction (New York: Charles Scribner, 1863), 152–53; certa fiducia, “a hearty trust,” hertzliche vertrawen.
1장 구원하는 믿음
83
구원의 확실성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별도로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문 제를 살펴볼 것이다.19 ) 둘째, 아주 많은 개신교인은 성경의 증언에 더하 는 죄를 짓는다. 그들은 구체적 적용이 구원하는 믿음의 행위 자체라고 말하고, 구체적 적용이 존재할 때 구원도 존재하고, 구체적 적용이 존재 하지 않을 때 구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런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증명한다. (1) 성경에서는 이 구체적 적용에 칭의나 구원의 약속을 돌리지 않는다. 성경은 어디에서 도 단어로든 내용상으로든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이고, 자신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 등을 확신한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거나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2) 우리는 구원하는 믿음에 의거해서 그리스 도가 우리의 구주이고,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구체적인 확신은 오직 구원하는 믿음의 행위 가 전제될 때만 존재할 수 있다. (3) 구체적 적용에서 동의가 신적인 믿 음이 되려면 동의의 대상, 즉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는 곳에서는 믿는 것도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서도 “베드로야 ( 또는 아 ),
바울
그리스도는 너의 구주이고, 그가 너를 위해 죽었으니, 너의 죄가 사
함을 받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4) 이 추론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유 기된 자를 위해 죽었거나, 아니면 그들 중 다수는 신적 믿음을 통해 거 짓된 것을 믿은 것이다. 그리스도가 말씀하는 것을 들은 사람 ( 그중에는 버 려진 자도 아주 많을 것이다 ) 은
때문이다 ( 막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이 추론이 말하기
16:14; 요 6:28-29, 64-65; 12:36 ).
(5) 그러한 구체적 확신은 적
어도 그 행위의 핵심과 관련해서는 중생하지 않은 자와 외식하는 자에 게도 존재할 수 있고 ( 눅 18:11-12 ), 심지어 더 분명하게 존재할 수 있다 ( 시 78:34-36 ).
역으로 이 견해에 따르면, (6) 구원하는 믿음이 결여된 신자
가 존재할 것이다. 이 구체적 확신이 모든 신자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19 ) 1.6.1 XXII; 참조, 아래 LV–LVI
84
이론과 실천 신학 2
언제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시 77:7-9; 시 88편; 롬 7:24 ).
반론
반대의 견해를 밑받침해 주는 것으로 흔히 제시될 수 있고 실제로도 제시되는 성경 본문 ( 갈 등 ) 은
2:20; 롬 8:38; 고후 5:1; 딤후 4:8; 시 103:1-3; 삼하 12:13
특별 은혜에 대한 확신은 신자에게 드물지 않고, 아울러 신자는
통상적인 수단 ( 방편 ), 특히 구원하는 믿음을 위한 수단의 도움을 받아 이 확신을 얻을 수 있으며, 얻기 위해 크게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만 말 해 줄 뿐이다. 반면에 이들 본문이 구원하는 믿음은 특별 은혜에 대한 바로 이러한 확신에 불과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믿음은 오직 신뢰에 있는 것도 아니다.
XXVI. 한편 일부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분명히 신뢰나 다른 어떤 의 지에 따른 행위가 구원하는 믿음의 본질 전체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왜 냐하면 VIII에서 보았듯이 믿음이 지성의 활동인 지식과 동의를 포함 한다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흔히 반론으로 제기되는 근거들은 주 의 깊게 살펴보면 신뢰가 믿음의 전부가 아니라 믿음의 본질 속에 포함 된다는 것만을 증명해 줄 뿐이다. 또는 신뢰가 구원하는 믿음의 본질 전 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처럼 보이고, 신뢰를 품는 자에게 구 원을 돌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 시 2:12; 렘 17:7-8 ), 우리는 그것을 비유적인 것, 즉 부분으로 전체를 대신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과 구주를 아는 지식 ( 삼하 1:12; 욥 19:25 ) 없이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 한 동의 없이 그러한 신뢰는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롬 4:20-21 ). 5. 신적인 믿음이 거짓된 것을 토대로 할 수 있는가?
XXVII. 다섯 번째 질문은 신적인 믿음이 거짓된 것을 토대로 하는 것 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의 의미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1장 구원하는 믿음
85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마스트리흐트의 『이론과 실천 신학』은 기독교 교리를 다루는 가장 포괄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
변증적, 실천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신학의 주된 내용으로서, 이 책은 교리에 대한 엄밀하고 학문적인 논의를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목회의 목 표와 결합시킨다. 학생들과 목회자들은 이것이 성경 본문에서 시작하여 교리적 형성으로 이 동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덕을 세우는 유용한 방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2권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신론을 철저하게 다룬다. 마스트리흐트는 자신의 신 학을 ‘구원하는 믿음’이라는 주제로 시작하면서, 진정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에 대해 고민해 도 영혼의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일깨운다. 신론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한다. 하나님 의 존재와 이에 대한 지식에 이어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본질을 다루고,
헤르만 바빙크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한 분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
개혁교의학 전집 헤르만 바빙크 지음 | 박태현 옮김
“ 종교개혁 이후에 활동한 개혁신학 전통의 위대한 종교개혁 신학자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우리 시대에 점 점 커져 왔는데, 마스트리흐트는 그들 중에서도 우뚝 솟아 있는 거인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마스트리 흐트가 투레티누스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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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4쪽 | 40,000원
816쪽 |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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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마스트리흐트의 고전을 영어로 번역해 냄으로써 기독교회 전체, 특히 신학생과 목회자와 신학자들에
_리건 던컨, 리폼드 신학교 총장, 조직신학 및 역사신학 석좌 교수
게 큰 선물을 주었다.”
개혁교의학 색인
_싱클레어 퍼거슨,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석좌 교수
224쪽 | 10,000원 “ 16세기와 17세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개혁신학자들의 저작이 번역되어 나올 때마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과거의 잊혀진 보화들의 도움을 입어 새로워질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금광 중 하나다.”
이 책은 고대 교부들로부터 중세 스콜라 신학자 들과 종교개혁자들을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기독교회사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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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트리흐트의 저작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석의적이고, 교리적이며, 변증적이거나 호교론적이고, 실천적 인 접근 방법을 발전시킨 개혁파 정통 신학을 완벽하게 구현해서 보여 준 대표작이다. 마스트리흐트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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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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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자세하고 세심하며 정교한 수준에서 개혁파 정통 신학 사상의 전 영역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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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rus Van Mastricht 페트루스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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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개혁파 정통주의 조직신학의 최고봉
Petrus Van Mastricht
(Petrus van Mastricht, 1630-1706)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의 뛰어난 네덜란드 신학 자로서, 히스베르투스 푸치우스와 요하네스 호 른베크 밑에서 공부했다. 마스트리흐트는 네덜 란드의 여러 교회에서 목회했고, 뒤스부르크 와 위트레흐트의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그의 대 표작인 『이론과 실천 신학』 (Theoretical-Practical Theology)은
탁월한 조직신학 저서로 많은 이들에
의해 칭송을 받았다. 이 대작은 네 가지 접근 방 식을 가지고 각각의 신학 주제를 다루는데, 성경 본문의 석의에서 시작하여 교리 형성과 변증 과
마스트리흐트의
이론 과 실천 신학
정을 거쳐 실천적인 적용으로 옮겨 가면서 신자 들의 덕을 세워 주는 훌륭한 모델을 제시한다.
옮긴이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장로회신 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블리 카 아카데미아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
등 고전어를 수학하였다. 특히 청교도 신학에
마스트리흐트
관심을 갖고 평생 신학을 연구하며 신학 서적을
리를 기반으로 진지하게 분석하고 비평적으로 대
지음
번역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수많은 책을 번
화함으로써 유기적 연관성과 논리적 통일성을 지
박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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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이상
크리
스천다이제스트),
『변증신학 강요 1』, 『오직 은혜』 (이
상 부흥과개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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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지음 | 박문재 옮김 토드 레스터 영역 | 조엘 비키 편집 마이클 스팽글러 영역 및 편집 지원
ISBN 978-89-6092-632-5 ISBN 978-89-6092-572-4(세트) www.rnrbook.com 값 52,000원
역하였는데, 대표적인 역서로는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칼빈 주석(『공관복음』, 서』),
『요한복음』, 『고린도전후
매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이상
크리
스천다이제스트),
『변증신학 강요 1』, 『오직 은혜』 (이
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