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 바나바라 할 수 있는 스몰리의 도움으로) 이제 평생에 걸친 연구, 묵상, 교 수, 저술의 결실인 걸작을 내놓는다. 오랜 세월 동안 신학자들 사이에 조직 신학
기독교 강요 16세기 종교개혁이 산출한 최고의 교의학
장 칼뱅
이 지적 작업인지 실천적 작업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개혁파 조직신학』은 이 모두가 맞다고 본다. 이 위대한 신학자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마음과 영과 힘을 다하지 않고, 정신만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교리를 익힌 후에도 추가로 질문을 제시한다. 모든 주제를 성경으로 풀어내 고, 온 성도가 다함께 이해하게 설명하며, 실천적 함의와 적용에 이른다. 여기에 더 깊은 성찰을 위한 질문도 있다. 이 책은 21세기 교회에 엄청난 가치를 가진 선
변증신학 강요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한 무시, 오해, 그릇된 진술을 교정한 커다란 도약
물이다. _싱클레어 퍼거슨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특임교수, 라고니어 사역회 강사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개혁파 신앙은 흔히 단지 지적인 것으로 희화화되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장에서
이론과 실천 신학 주석-교리-변증-실천에 이르는 4중적 신학 방법론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어김없이 신학을 설명한 후에는 송영으로 옮겨 감으로써 개혁신학도 철저하게 경 험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책에 담겨 있는 풍부한 자원은 지성을 가르
2
개혁파 조직신학
이미 다수의 저술로 시대를 주도하는 개혁주의 저술가 조엘 비키는 (그에게 신학
개혁주의 조직신학 전통을 이어가는 책들
2
지은이
조엘 비키(Joel R. Beeke)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화란 개혁 교회의 목 자이며,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의 학장이자 조직신 학 교수다. 또한 그는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의 편집자이고, Reformation Heritage
개 혁 파
Books와 Inheritance Publishers의 대표이며, 네 덜란드 개혁 신학 번역회의 부회장이고, Soli Deo Gloria, Banner of Truth Trust 등의 유수한 출판 사의 이사로서 출판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웨스 트민스터 신학교(필라델피아)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자 주 초청받는 강사다. 주요 저서로는 『청교도 신학의
조직 신 학
치고 마음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 틀림없다.
모든 것』, 『청교도를 만나다』, 『개혁주의 청교도 영 성』,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이상 부흥과개혁 사) 등이 있다.
폴 스몰리(Paul M. Smalley) 퓨리턴 리폼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Th. M.) 지금은
_존 맥아더
조엘 비키 교수의 강의 조교로 활동한다. 조엘 비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목회자, 마스터스 신학대학원과 마스터스 대학교 총장
의 저서 『존 번연의 경외』와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 의 공저자다.
개혁교의학 성경적, 역사적, 포괄적인 정통 개혁주의 조직신학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조직신학』은 개혁주의 전통의 역사신학에 의지하여
여덟 가지 핵심 신학 주제를 경험적으로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
조엘 비키·폴 스몰리 지음
박문재 옮김
신론
옮긴이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장로회신학대 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 학위를, 대학원에 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블리카 아카데미아에
개혁주의 조직신학 조엘 비키·폴 스몰리 지음
고전적 칼빈주의를 현대적 서사 구조로 풀어낸 조직신학
박문재 옮김
마이클 호튼
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어를 수학했다. 번역 사역에 헌신하며 수많은 책을 번역했는데, 대 표적인 역서로는 칼빈 주석, 매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이상 크리스천다이제스트), 『기독교 정치 학』, 『기독교 윤리학』, 『변증신학 강요 1』, 『이론과 실
ISBN 978-89-6092-625-7 978-89-6092-623-3(세트)
www.rnrbook.com 값 52,000원
천 신학 1』(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1장
서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변화된다. 우리는 선지자 다니 엘의 삶 속에서 그런 변화의 탁월한 모범을 발견한다. 이 사람은 어린 나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인 충격을 경험했다. 바벨론 사람들이 남왕국 유다를 정복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모독하고서는 자기를 포로로 사로잡아 이방 땅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이방 군대 를 이끌고 와서 자기 나라와 백성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바로 그 왕의 종이 되어 섬기는 일을 해야 했으므로 얼마든지 깊은 원한을 품은 냉소 적인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그것과는 반대로 출세하기 위해 바벨론의 야만적이고 이교적인 삶을 받아들여 살아갈 수도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도리어 겸손함과 믿 음과 흠 없는 행실과 기도와 의로움과 용기를 가지고서 오랫동안 한 분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다. 다니엘의 경건한 행실의 비밀은 그가 자신의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 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다는 데 있다 ( 단
2:28-30 ).
다니엘의 마음은 그가
기도하면서 첫머리에서 여호와를 찬송한 송영에 잘 나타나 있다. “영 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1장 │ 서론
33
있음이로다”( 20절 ).1 )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참 하나님과 그 밖의 다른 거짓 신들을 구별하고자 할 때 두 가지 기본적인 진리를 제 시하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은 친히 만유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이고……두 번째는 하나님에게서 숨겨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는 것이다.”2 ) 나중에 나오는 기도에서 다니엘은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해 언약을 지키시 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9:4 ) 라는 말로 자신의 기도를 시작 했다. 웨스트민스터 주석 성경은 이렇게 설명한다. 다니엘은 “참 하나 님, 언약에 의한 그의 하나님께 그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기 도했다……우리도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3 ) 하나님 백성은 자신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이 세계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한 자신의 이해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빌헬무스 아 브라켈은 “신앙의 토대는 하나님의 성품 이다”라고 말했다.4 )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닌 힘 조직신학의 대주제 중 하나인 신론은 고유한 의미에서의 신학이라 불린다. 신학이라는 단어 ( theology ) 는 직역하면 “신 ( ‘테오스’ ) 에 대한 말 들 ( ‘로고이’ ) ”을 뜻하는 헬라어에서 왔기 때문이다.5 ) 한 분 참되신 하나 1 ) 다니엘은 유다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방적인 환경에 맞게 적응시켜, 여호와는 많은 신
들 중 단지 하나의 신이 아니라 유일하게 참되고 살아 계신 신임을 보여 주려고 “여호와”라는 명 칭 대신에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지적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 2 ) Calvin, Commentaries , 단 2:20. 3 ) Annotations upon all 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 (London: Evan Tyler, 1657), 단 9:4. 이 주석 성경은 웨스트민스터 주석 성경(Westminster Annotations)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회의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니고, 영국 의회의 한 위원회가 여러 신학 자에게 위촉해 이 일을 맡긴 것이었는데, 이 일에 참여한 신학자 중에는 윌리엄 구지, 에드워드 레 이놀즈, 토머스 가태커 같은 웨스트민스터 회의에 참석했던 신학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Daniel Neal, The History of the Puritans, or Protestant Nonconformists; from the Reformation in 1517, to the Revolution in 1688, ed. John O. Choules, 2 vols. (New York: Harper & Brothers, 1855), 2:78을 보라. 4 ) Brakel, The Christian’s Reasonable Service , 1:3. 5 ) 이 책 1권 1장에 나오는 신학에 대한 예비적인 정의를 보라. 조직신학의 여러 대주제 중 하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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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님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본성과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루어진 하나 님의 삼위일체적인 신격을 통해 다른 모든 신들과 구별된다. 우리는 하 나님을 아는 지식을 탐구해 나갈 때 첫 번째로 하나님의 속성과 이름 을 살펴본 후에 신격을 이루는 삼위를 살펴보겠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 의 작정하심 또는 주권적인 계획을 살펴보겠다. 다음으로 우리는 창조 론을 다루어도 되긴 하지만, 좀 더 기다렸다가 인간의 창조를 논의하게 될 인간론이라는 대주제 아래 창조를 다루겠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이 자신의 섭리를 통해 피조세계에서 자신의 작정하심을 어떤 식으로 수 행해 가시는지를 살펴보겠다. 다니엘서의 많은 부분은 하나님의 백성 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재난을 자초했음에도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주권적인 계획을 여전히 수행해 가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계시로 이루어져 있다 ( 단
1:2; 4:34-35 ).
또한 섭리론 아래 우리는 하나님
이 자신의 섭리를 주관해 가실 때 부리는 종들로 사용하시는 선한 천사 들, 타락한 천사들 또는 귀신들, 어둠의 세력에 맞선 교회의 영적인 전 쟁도 고찰하겠다. 다니엘이 알았듯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한 계획 을 수행해 가시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하나님 백성을 둘 러싸고 있다 ( 단 10:13, 20 ). 우리가 신론을 연구하는 목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해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 백성이 큰 시련과 유혹을 겪 게 될 때를 미리 보았지만,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단 11:32 ) 고 말했다. 웨스트민스터 주석 성경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볼 때 이 본문은 그들이 “온갖 고문과 잔혹한 방식의 죽음 을 견디며 모든 유혹에 용감하게 저항하여 이기고”, “끝까지 순전한 마 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6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대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힘이 되어 왔고, 오늘날에도 우 리가 은혜를 힘입어 그 지식을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고유한 의미에서의 신학(신론)에 대해서는 이 책 1권 2장의 끝부분을 보라. 6 ) A nnotations upon all 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 , 단 11:32.
1장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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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되어 줄 것이다. 존 길 ( 1697-1771년 ) 은 “교리는 실천에 영향을 미치 는데, 복음적인 교리를 영적으로 깨달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능력을 실제로 체험했을 때는 특히 그러하다”고 썼다.7 )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믿는 자들에게 힘을 주는 것은 신학 자 체에 내재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감스러 운 일이긴 하지만, 머리에는 신학을 아는 지식이 많이 들어 있어도 경 건은 전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마귀들도 그런 의미에서는 하나 님을 알고 두려워 떤다 ( 약
2:19 ).
하지만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
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때, 이 지식을 통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된다.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 하나 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된다.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 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 이다”( 시
9:10 ) 라고
말했다. 매튜 풀은 이렇게 설명했다. “주의[하나님
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주의 본성과 완전하신 것들, 주의 무한하신 능력과 지혜,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철저하게 알고 제대로 마음에 새기 는 것이다……이것들은 [하나님이]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하기에 지극 히 합당한 분임을 알게 해 준다.”8 ) 따라서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은 잠재력과 위험으로 가득하다. 이 위 대한 탐구에서 우리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열심 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우리의 신학은 아무리 학문적인 것이라 해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에 맞 서는 일종의 반역이 될 수도 있다 ( 롬 10:2-3 ).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공 언해도, 우리의 가증스럽고 더러우며 불순종하는 저작을 통해 하나님 을 부정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 딛 1:15-16 ). 다른 주제를 연구할 때는 우리가 주도하여 연구하지만, 하나님을 연 구할 때는 그렇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도리어 이 위대한 주제가 우리 7 ) John Gill, A Complete Body of Doctrinal and Practical Divinity: or, a System of Evangelical
Truths, Deduced from the Sacred Scriptures (1839; repr., Paris, AR: The Baptist Standard Bearer, 1995), xxxv. 이후로는 Body of Divinity 로 표기했다. 8 ) Poole, Annotations upon the Holy Bible , 2:12, 시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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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를 주도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과학자가 어떤 종의 물고기를 연구하 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제자라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온유함으 로”( 약 1:21 ) 받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 한 걸음 한 걸 음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 고, 우리를 이 세상의 거짓 신들과 우상들로부터 건져 주실 수 있으시 기 때문이다 ( 요일 5:20-21 ).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처럼 우리는 거 룩한 땅에 서 있다 ( 출 3:5 ).9 ) 바울의 지극히 깊은 신학적 성찰이 그에게 서 다음과 같은 찬송이 터져 나오게 했듯이, 하나님을 연구할 때 우리 의 자세는 예배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신학은 송영의 연료가 되어야 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 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 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 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 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 멘(롬 11:33-36).
이것은 우발적인 감상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 경외감, 두려움이다. 도널드 매클라우드는 “신학을 할 때 요 한처럼 ‘내가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 계
1:17 ) 라고
말할 수 없다면, 신학은 이미 그 길, 아니 그 생명 자체를 잃어버린 것 이다”라고 말한다.10 )
9 )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 129. 10 ) Donald Macleod, Behold Your God , rev. ed. (Fearn, Ross-shire, Scotland: Christian Focus, 1995), 52.
1장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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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 경배하는 것이 망상이 되지 않으려면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제 대로 알고 지성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회의론자들과 불가 지론자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11 ) 어떤 사람들은 설령 하나님이 있다 해도 우리를 완전히 초월하여 존재 할 것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로버트 잉거솔 ( 1833-1899년 ) 은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서 이렇게 반문했다. “인 간의 지성이 무한한 인격을 인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인간 의 지성이 시작이 없는 존재, 무한한 능력과 지성을 지닌 존재를 상상 할 수 있는가?”12 )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알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 수는 없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 스는 교제가 이루어지려면 서로 동등해야 하는데, “신과 인간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하므로 교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13 ) 만일 신학이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추구라면, 불가지론에서 벗어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이 인 간을 찾아오심으로써 시작된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 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
은 인간보다 무한히 더 크시고,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다”( 사
40:15 ).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 28절 ).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다 ( 5, 9절 ). 이사야 43장 10절 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 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 11 )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Edinburgh: Banner of Truth, 1958), 30-34. 12 ) Robert G. Ingersoll, “Why Am I an Agnostic?,” in Essays and Criticisms (New York: C. P.
Farrell, 1897), 7. 13 ) Aristotle, The Ethics of Aristotle: The Nicomachean Ethics , trans. J. A. K. Thomson, rev. Hugh Tredennick, ed. Jonathan Barnes (London: Penguin, 1976), 8.7.1159a (270). 또한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 1:317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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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하나님 의 메시지는 온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 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45:22 ). 하나 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복음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 거 짓이라고 고발하는 것이다. 불가지론은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재창조되므로 하나님 을 아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 창 1:26-27 ). 앞에서 논의했듯이,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아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음을 의미한다.14 )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크신 하 나님의 무한한 차원을 포괄할 수는 없다 ( 시
145:3 ).
하지만 여기서 형상
이라는 것은 진정으로 닮은 것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우리로 참된 자 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 요일 5:20 ).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은 우 리의 연약한 지각의 수준에 맞춰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 러내심으로써……어린아이도 쉽게 알 수 있게 하셨으므로, 우리가 하 나님을 어느 정도 아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15 ) 인간의 타락으 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심하게 훼손되긴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게 된다 ( 골 3:10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은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즉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창조 와 섭리의 역사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쓰시고 성령이 적용
14 ) 누가 신학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이 책 1권 3장을 보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지닌 존재들
에게 행하시는 계시에 대한 논의는 이 책 1권 10장을 보라. 15 ) LW , 2:45, Scott R. Swain, “The Being and Attributes of God,” in Reformation Theology: A Systematic Summary , ed. Matthew Barrett (Wheaton, IL: Crossway, 2017), 223에서 재 인용.
1장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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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로버트 레 이먼드는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은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한다” 고 말했다.16 )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 ( 시 19:1-6 ) 와 자신이 하 신 말씀 ( 7-9절 ) 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고, 이 둘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구원과 성화를 이루어 내신다 ( 10-14절 ). 인간의 영이 하나님 을 발견해 낸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영적인 분별력을 지닌 사람 들이 받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계시하신 것이다 ( 고전 2:9-16 ). 우리는 이 책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계시론을 다룰 때 그런 사실을 확증 했다.17 )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셔서 알게 하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에 두 가지 단서를 덧붙여야 한다. 첫 번째는 하나님 을 아는 우리의 지식은 참되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우리 인간은 하나님 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둘 다 가르친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을 위 해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라고 기도했다 ( 엡 3:18 ).
루이스 벌코프는 “기독교회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
는 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고백한다”고 말 했다.18 ) 두 번째는 하나님을 아는 모든 참된 지식은 죄인들에게 주어지 는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외에는 아 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 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7 ) 고 말씀하신다.
16 )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 153. 17 ) 이 책 1권 10-25장을 보라. 하나님의 계시의 세 가지 형태는 이 책 1권 10장에 소개되어 있다. 18 ) Berkhof, Systematic Theology , 29.
40
개혁파 조직신학 2
참 하나님을 배척하는 사악함 지혜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믿음이다. 히 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 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한다. 하나님 은 “그가 계신 것”을 차고 넘치게 나타내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일반 계시 ( 시 1:20 ) 과
19:1 ) 는
그가 창조하신 보이는 피조세계에 의한 외적인 증언 ( 롬
인간의 양심에 의한 내적인 증언 ( 2:14-15 ) 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또한 교회의 증언이 닿는 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기록 된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존재하 신다는 믿음은 자의적인 가정도 아니고 어둠 속에서의 맹목적인 도약 도 아니며,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지혜로운 응답이다. 매클라우드 는 이렇게 쓴다. “성경은 결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창 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사람 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안다는 것을 전제한다.”19 ) 그렇다면 우리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공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성경은 그것은 인간의 사악하 고 기만적인 마음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은 “그들은 속임으로 말 미암아 나를 알기를 거부한다”( 렘
9:6 KJV ) 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하나
님의 말씀이 주어지지 않은 열방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 시 79:6; 렘 10:25 ). 그렉 니콜스는 이렇게 쓴다. “하나님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증명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짓말 쟁이다.”20 )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은 무신론의 어리석음 을 드
19 ) Macleod, Behold Your God , 9. 20 ) Greg Nichols,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 Volume 1, Doctrine of God, ed. Rob Ventura, 7 vols. (Seattle: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2017), 97.
1장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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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낸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시
14:1 ).
“어리석은 자”로 번역된 단어 ( ‘나발’ ) 는 지적인 능력이 결
여되어 있는 것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을 멸시하는 것 을 통해 드러난 도덕적인 지각의 결여를 가리킨다 ( 74:18, 22 ). 스티븐 차 녹이 말했듯이,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는 지능이 결여되어 있는 자가 아 니라, 자신의 지능을 악용하는 자다.21 )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 는 것은 무신론의 공개적인 태도가 아니라, “그의 마음”의 실제적인 태 도일 수 있다. 도덕적인 어리석음의 뿌리는 마음눈이 멀어 하나님의 영 광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94:6-11;
참고, 36:1-2; 92:5-8 ).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게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죄인들은 하 나님이 자신들의 죄악을 알지 못하거나 심판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사 탄의 거짓말을 위안으로 삼아 자신을 달랜다.22 ) 그들은 하나님이 곤경 에 처한 자신들을 도울 수 없다고 확신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짓 신들에게로 향한다 ( 왕하 1:3, 6, 16 ).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거 부하면, 그들의 마음은 영적인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우상숭배와 사악 함에 사로잡힌다 ( 롬 1:21-25 ). 이렇게 사악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 를 범하게 되는 게 열방의 특징이다 ( 엡 4:17-18 ). 존 프레임은 “오늘날 많 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어떤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거의 없고,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정을 내리고 행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고 말한다.23 ) 이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대한 이런 불신앙의 반응으로 말미암은 도덕적 인 결과는 무신론의 사악함을 보여 준다. 다윗은 실제적인 무신론의 어 리석음을 단언한 후에,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 21 ) “따라서 어리석은 자는……이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을 악용하는 사람이다.” Charnock,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God , 1:23. 22 ) 시 10:11, 13; 59:7; 94:7. 23 ) Frame, The Doctrine of God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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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1 ) 라고
말한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의로움의 원천이듯이, 마음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죄의 원 천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구원하실 때까지는 죄 의 권능 아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이 본문을 인용한다 ( 롬 3:10-12 ). 시 편 10편 3-4절에서는 무신론적인 생각을 내면의 도덕적 부패와 연결 시킨다. “악인은 그의 마음의 원하는 것을 자랑하고 여호와께서 혐오하 시는 탐욕스러운 자들을 축복하며,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미암 아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고 그의 모든 생각에는 하나님이 없다”( KJV ). 히브리어 본문에는 “~에는”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으므로, 마지막 구절 은 “하나님이 없다가 그의 모든 생각이다”( KJV의 난외주, ESV ) 라고 번역할 수 있다. 악인이 자신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교만 과 탐욕을 마음껏 자유롭게 충족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든, 아니면 마치 하나님이 존재 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든 무신론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나 지적인 확신이 없어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하 나님을 거슬러 반기를 드는 인간 내면의 어둠 때문에 생겨난다. 무신 론자들은 많은 다양한 죄악 된 열매를 만들어 내지만, 그 모든 것을 만 들어 내는 독이 있는 뿌리는 교만이다. 로자리아 버터필드는 자신의 회심 체험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의 가장 깊은 죄는 동성애가 아니라, LGBTQ ( LG=동성애자,
B=양성애자, T=성전환자, Q=성정체성이 불확실한 자-옮긴이 )
동체가 떠들고 다니는 교만임을 보여 주셨다고 말한다.
24 )
공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주권을 교만하게 거부하는 이 끔찍한 죄악을 공유한다. 스티 븐 차녹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죄의 토대는 은밀한 무신론이고”, 모 든 죄가 말하는 것은 “나는 내 자신에게 주가 될 것이고 내 위에 하나 님이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는 것이다.25 )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악임을 알았다 해서 그리스도인들은 24 ) Rosaria Champagne Butterfield, Openness Unhindered: Further Thoughts of an Unlikely
Convert on Sexual Identity and Union with Christ (Pittsburgh: Crown and Covenant, 2015), 24-25. 25 ) Charnock,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God ,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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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보다 낫다고 기뻐해서는 안 되고, 도리 어 낮아져야 한다. 우리의 모든 죄는 “하나님이 없다”는 은밀한 단언에 서부터 생겨난다. 조지 스위녹 ( 1627-1673년 ) 은 “모든 죄는 하나님을 죽이 는 것이다”라고 말했다.26 ) 모든 사람 중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마음 과 삶 속에 실제적인 무신론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에 대해 가장 슬퍼 해야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의 최우선성 하나님을 부정하면 온갖 종류의 독이 있는 열매가 맺히는 반면, 우 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은 진정한 인간 실존의 핵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가 우리를 결정한다. 칼빈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다음 질문으로 자신의 교리문답을 시작했다. “인간의 삶의 으뜸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대답 을 제시했다.27 ) 인간은 본성적으로 신학적이다. 진정으로 인간이 되려 면 그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우리가 자기중심적이거나 인 간 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해 살아가는 게 아 니라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항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 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자신을 위해 지으셨으므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쉼을 발견할 때까지는 쉴 수 없다”고 말 했다.28 )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간의 모든 삶에서 중심이고 가 장 중요하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의 정점이라는 것 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26 ) George Swinnock, The Incomparableness of God , in The Works of George Swinnock (1868; repr., Edinburgh: Banner of Truth, 1992), 4:459. 27 ) Reformed Confessions , 1:469.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의 1문과 아주 비슷하다. 28 ) Augustine, Confessions , 1.1.1, in NPNF 1,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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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지 말라”( 렘 9:23 ). 하나님은 사람이 자랑하는 것을 금지하시는 게 아니라, 자랑해야 할 것을 자랑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지식과 힘과 부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면,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 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 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 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절 ). 하나님을 아는 것 은 일류 대학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은 것보다 더 지혜롭게 만들어 주 고, 큰 군대보다 더 큰 힘을 갖게 해 주며, 보물창고에 가득한 황금보다 더 부유하게 만들어 준다. 세상적인 삶은 사람의 영혼을 약화시켜 사람 을 초라해지게 하는 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들어 준다. 찰스 스펄전은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대상을 지 속적으로 간절하게 탐구하는 것만큼 인간의 지성을 넓혀 주고 인간의 심령 전체를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29 ) 휴이가 지적했듯이, 예레미야 9장 24절에 나오는 “사랑과 정의와 공 의”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경건을 둘 다 나타내는 것으 로서,30 )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게 되고,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31 ) 지적이고 경험적이며 실천적으로 하 나님을 알 때 하나님의 백성은 가장 큰 복을 받고 하나님은 가장 큰 영 광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복 음을 계획하셨다. 복음은 인간을 낮추고, 오직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 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 ( 고전
1:30-31; 참고, 고후
10:17 ).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더 낫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 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29 ) Charles H. Spurgeon, “The Immutability of God,” in The New Park Street Pulpit
(Pasadena, TX: Pilgrim Publications, 1975), 1:1, Mark Jones, God Is: A Devotional Guide to the Attributes of God (Wheaton, IL: Crossway, 2017), 17에서 재인용. 30 ) 창 18:19; 잠 21:21; 사 57:1; 렘 2:2; 22:3, 15-16; 겔 18:5, 19; 호 4:1; 10:12; 12:7; 미 6:8을 보라. 31 ) F. B. Huey, Jeremiah, Lamentations , The New American Commentary 16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3),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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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4:6-7 ).
윌리
엄 에임스는 이 본문에 대해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세에서 사 람들의 최고의 복은 물질에서 얻어질 수 없다. 우리의 참되고 가장 고 귀한 복은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교제하는 것에 있다.” 우리가 하 나님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그 달콤함에서 인간의 모든 즐거움과 행복을 능가한다.”32 ) 둘째,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언약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이 언약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 이다 ( 렘 9:3; 호 4:1, 6 ). 하나님은 새 언약 ( 이전의 은혜 언약을 회복하고 더 확대한 계 시 ) 을
놀라운 약속으로 장식하셨는데, 그 핵심에는 “나는 그들의 하나
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그들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 ( 렘 31:33-34 ).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기록한 때는 이스라엘이 타락하여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하고” 있을 때였다 ( 6:13 ).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역전시키실 것이었다. 하나님 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를 알게 하시면 사람들은 언약의 참된 지체가 되고 언약을 지키는 자들이 된다. 그래서 이 언약의 핵심에는 새로운 마음에 대한 약속, 즉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라는 약속이 있다 ( 24:7 ). 토머스 굿윈과 토머스 볼 ( 1590-1659년 ) 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수단 이다……우리가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속으로 들어가 계속 하나님을 알아 가고 점점 더 깊은 교제를 누리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따라서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것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다.”33 )
32 ) William Ames, A Sketch of the Christian’s Catechism , trans. Todd M. Rester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08), 7-9. 33 ) Thomas Goodwin and Thomas Ball, “The Epistle Dedicatorie,” in John Preston, Life
Eternall, or, A Treatise of the Divine Essence and Attributes, 2nd ed. (London: by R. B., 1631), A5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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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영생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 는 것이니이다”( 요
17:3 )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지 영생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 지만, 그리스도는 이 지식이 영생 자체, 즉 이 땅에서 시작된 하늘의 영 광의 삶 자체라고 하신 것이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영생에 대한 다른 가르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리스도가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 각을 조명해 주고, 그들의 삶을 인도해 주며 ( 요 1:4; 8:12 ), 그리스도를 믿 는 믿음을 갖게 해 주고 ( 3:15-16; 며 ( 3:15-16;
10:28 ),
6:47 ),
그들을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 주
정죄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 3:36;
5:24 ),
그들의 가장 깊
은 소원을 만족시켜 주며 ( 4:14; 6:35 ),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해 주 고 ( 5:26 ), 그들이 장차 영생으로 부활하는 것을 보장해 줄 것임을 의미 한다 ( 6:40; 11:25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얼마 나 놀랍고 기이한 선물인가! 넷째, 하나님을 아는 것은 거룩함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에 대한 무지는 사람들을 우상숭배 ( 갈 전 4:5 ) 으로
4:8 ) 와
불의와 사악함 ( 호
4:1-2; 살
몰아간다. 타락한 인류는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수많은 다양
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인류의 궁극적인 질병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다. 죄가 없으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을 아는 사 람들은 죄를 멀리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 요일 3:5-6; 4:7-8 ). 새뮤얼 에일스 피어스 ( 1746-1829년 ) 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발견되고 나타날 때 마다 우리 마음은 뜨거워지고 우리 지성은 불타오르며 우리 의지는 감 화를 받고 우리 판단은 올바르게” 되므로 “우리는 하나님 백성을 사랑 하게 된다”고 말했다.34 )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가 다시 반전을 이루게 되는 계기는 흔히 하나님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게 34 ) Samuel Eyles Pierce, An Exposition of the First Epistle General of John (London: James
Nisbet and Co., 1835),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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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영광을 보게 해 주고 듣게 해 주셨는데, 그것은 욥의 불평을 잠 재웠고, 욥의 영혼을 만족시켰다 ( 욥 42:1-6 ). 아삽은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고 분노함으로써 영적으로 점점 더 퇴보했지만,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정의로우심과 선하심을 재발견하고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시 73:17-18, 25-28 ). 시편 102편을 쓴 기자는 자신의 환 난과 괴로움을 탄식하는 데 처음 열한 절을 사용하지만, 12절에서 “여 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라는 고백을 통해 반전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은혜와 평강이 커지게 한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2 ).
토머스 애덤스 ( 1583-1652년 ) 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마음에서 은혜와 평강이 커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그런 지식은 우리 에게 “생명수”를 끌어다 주는 “수도관 또는 두레박”이다.35 ) 베드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는”( 3절 ) 것임을 상기시킨다. “모든 것”이라는 어구 는 우리로 하여금 경건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동기와 능력과 방향을 부 여하는 데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충분함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학적인 것인 동시에 영적인 것이다. 하나님 은 자신의 말씀에 담겨 있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통해 이 지 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 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신다 ( 벧후 1:4 ). 피터 데이비스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는 이 세 상의 “썩어질 것”이나 “정욕”과 반대되는, 우리 안에서 새롭게 된 하나 님의 윤리적인 형상을 가리킴을 보여 준다.36 )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권 장하는 지식은 “열매 없는”( 8절 ) 세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효한 부르심을 통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3절 ) 주어지는 지식이라는 것은 35 ) Thomas Adams, An Exposition upon the Second Epistle General of St. Peter , ed. James
Sherman (Edinburgh: James Nichol, 1862), 23-24. 이후로는 Exposition of 2 Peter 로 표기 했다. 36 ) Davids, The Letters of 2 Peter and Jude ,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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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신학적인 지식, 즉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객관적인 내용에 대한 지식이다 ( 2, 3, 8절 ). 따라서 하나님은 성경의 신학을 능력으로 사용하셔서 거룩한 삶을 만들어 내 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기를 열망하는 게 마땅하다 ( 3:18 ). 그렇게 하 려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거짓된 가르침을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 한 거짓된 사고는 천박하고 혼합주의적인 영성을 만들어 내고, 하나님 을 아는 참된 지식은 제대로 된 심오한 경건을 만들어 낸다.37 ) 인간의 삶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 더 중 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없다. 바울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이 가장 고상하므로” 이 세상의 모든 영예와 고상한 것을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 빌 3:8 ).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당신의 가장 큰 특권 으로 여기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을 얻어 하나님과의 참된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 있는가? 당신은 이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고, 이 지식에서 자라 가기를 간절 히 사모하고 있는가? 당신의 경우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교만은 분쇄되고, 당신의 정욕은 굴복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고, 이것이 당신의 선한 행실 을 통해 증명되고 있는가?
참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는 경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하나님을 더 잘 알려면 하나님과 함께 하나 님의 길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관계로서의 성격을 지 닌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다. 그것 은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응답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구 하는 거룩한 추구다. 우리는 “여호와를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 호
6:3
37 ) Erickson, Christian Theology ,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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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V ).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를 구해야 하는가? 앞에서 우리는
영적인 활동임과 동시에 학문 분과인 신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개 략적으로 살펴보았다.38 ) 여기서는 신론이 요구하는 경건의 구체적인 응답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우리는 의지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기를 구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만 하나님 을 알 수 있다 ( 마 11:27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주 도적으로 자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실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발견해 낼 수는 없고, 오직 받을 수만 있을 뿐 이다.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 이다”( 삼상 3:9 ) 가 되어야 한다.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인 게 아니라, 의지 하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간절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 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침 받는 것을 떠나 하나님 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말해서는 안 된다 ( 롬 10:14 ). 윌리엄 퍼킨스는 “무 엇보다도 먼저 말씀의 사역을 통해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게 된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39 ) 신학자들은 마치 우물의 밑바닥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듯이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깊은 사고는 그들 자신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우리의 모습을 따라 하나님을 만들 어 내지 말라. 신학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좋아하거나 선택하는 것을 설 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과 우리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를 설명하는 것이다. 교사의 혀를 갖고자 한다면, 제자의 귀를 가져야 한다 ( 사 50:4 ). 벌코프는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자 기계시를 통해서만, 오직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그 계시를 받아들이 는 사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40 ) 둘째,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알기를
38 ) 이 책 1권 8장, 9장을 보라. 39 ) Perkins, Exposition of the Symbol , in Works , 5:22. 40 ) Berkhof, Systematic Theology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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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안다는 것은 하나 님을 경외한다는 것이다 ( 잠
2:5; 9:10 ).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는 죄
를 미워하여 죄에서 떠날 수밖에 없고 ( 욥
28:28 )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
나님께로 향할 수밖에 없다 ( 신 10:12 ).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신 앙이나 경건이 없는데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내가 말하는 ‘경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택들을 알 고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41 ) 따라서 하나 님을 아는 지식을 구할 때는 반드시 우리 자신이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사야가 발견했듯이 ( 사 6:1-5 ), 우리 자신, 즉 우리 자신의 죄악 됨 과 우리가 처한 곤경을 알지 못하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 사
6:1-5 ).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자
한다면 “통회하고 겸손한 심령”( 57:15 KJV ) 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헤르만 바빙크는 “모든 신학자의 첫 번째 의무는……겸손하고 삼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42 ) 브라켈은 “이것은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감 당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경고했다.43 )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기를 구 한다. 우리는 죄 가운데 타락한 사람들이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 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까지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다 ( 엡 2:13 ). 우 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즉 성경의 복음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기를 기대할 수 없다. 주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 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마지막 어구는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가르치셔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셨음 ( 직역 하면 “석의하다” ) 을 보여 준다 ( 요 1:18 ). 계속하여 주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
에게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14:7 ) 고 말씀하셨다. 빌립이 예수님
41 ) Calvin, Institutes , 1.2.1. 42 ) Bavinck, Reformed Dogmatics , 2:239. 43 ) Brakel, The Christian’s Reasonable Service ,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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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리스도는 “나를 본 자는 아 버지를 본” 것임을 강조하셨다 ( 8-9절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영광”이 나타났다 ( 요 1:14 ).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려면 은혜 언약의 중보자
이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끊임없이 사용해야 한다. 믿음은 단지 그리스도를 의지해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려 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수단이 아니다. 믿음으로 시작했다면 계속 믿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 골 2:6 ). 그리스도인의 일생은 그리 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 갈 2:20 ).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신실하신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의지함으로써 그들 속에 있 는 빛이 점점 더 커지게 해야 하고 그리스도 없이 어둠 속을 헤매서는 안 된다.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인 우리는 누구라도 그리스도 없이는 감 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마크 존스는 이 렇게 말한다.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 는 분이다……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본다.”44 ) 넷째, 우리는 거룩한 소원을 통해 하나님을 알기를 구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우리의 목숨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 욕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세처럼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 참고, 출 33:18 ).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한도 안에서 우 리는 하나님을 꼭 붙들어야 한다 ( 신 10:20; 11:22; 13:4 ). 우리는 하나님을 아 는 지식을 단순히 유익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여겨야 하고, 하나님을 가장 아름다우시고 지극히 사모해야 할 분으로 여겨야 한다.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 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 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 27:4 ) 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보는 것이 당신이 사모하는 “한 가지 일”인가? 그 렇다면 당신은 신학을 연구하기에 합당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신학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종종 자기 자신을 잊는다. 하나님이 44 ) Jones, God Is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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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은 하나님이 우리가 사랑할 만한 분임을 우리로 알게 하시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내가 지금까 지 경험한 가장 달콤한 기쁨과 즐거움은 내 자신의 처지가 좋아질 것 이라는 소망에서 온 것이 아니라, 복음의 영광스러운 것들을 직접 보게 된 것에서 온 것이었다”고 말했다. 에드워즈는 일단 내가 “하나님과 인 간을 이어 주는 중보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 그리스도의 놀랍고 크며 충만하고 순전하며 달콤한 은혜와 사랑,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인 자하신 낮아지심”을 보게 되자……그리스도는 내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신 분으로 보였고,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은 내 모든 생각 과 지각을 다 삼켜 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크셨다”고 썼다.45 ) 그런 특 별한 경험은 모든 참된 신학을 하는 데 필수적이다. 다섯째, 우리는 의로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알기를 구한다. 우리 는 우리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에는 어떤 선한 행위도 할 수 없기 때문 이다 ( 엡 2:8-10 ).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분 리될 수 없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여야 한다 ( 약 1:22-25 ). 하나 님은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변호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 이라고 선언하신다 ( 렘 22:16 ).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요일
2:3 ).
하나님의 뜻
을 기꺼이 행하고자 하면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 ( 요 7:17 ).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순종하여 행하는 자에게 점점 더 많 이 그리스도를 나타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 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21 ). 우리가 사랑과 순종함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을 아는 우리 지식 은 점점 깊어진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더 잘 알기를 원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가운데 더 많이 순종하 기 위해 애쓰라. 그러면 하나님이 거룩함의 달콤한 길에서 당신을 만나 45 ) Edwards, Personal Narrative , in WJE , 16:800.
1장 │ 서론
53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우리 순종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자신의 신학자들을 환난의 학교에서 훈련 시키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시편 기자는 “고난당하기 전 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 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시
119:67-68 ) 라고
고백했다. 그는 몇 절 뒤에 같은 취지로 또다시 이렇게 고백한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 었나이다”( 71절 ). 시편 기자는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자 녀들이 경험하는 현실이다. 토머스 맨턴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늘 자기 백성에게 선하시지만, 그들은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 의 선하심을 가장 분명하게 느낀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은 그들을 가혹 하게 다루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환난 가운데 있는 내내 그들에게 복을 주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환난 가운데 두시고서 거룩 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 주시는 것보다 더 큰 자비와 긍휼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46 ) 당신이 신론을 계속 연구해 나갈 때 불같은 시련이 닥쳐온다 해도 이 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시련은 하나님이 당신을 거룩하게 하셔 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려고 사용하시는 수단이다. 그 십자가의 길에서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자신의 영광을 더 많이 보여 주실 것임을 믿고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믿음 가운데서 계속 밀고 나가라.
46 ) Thomas Manton, Several Sermons upon the CXIX Psalm , in The Complete Works of Thomas Manton (London: James Nisbet, 1872), 7: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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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묵상과 토론을 위한 질문 1. 다니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의 모범인 이유는 무엇인가? 2. 하나님은 우리보다 무한히 더 크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3.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달려 있는 이유는 무 엇인가? 4. 무신론이 어리석고 악한 이유는 무엇인가? 5. 실천적인 무신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6.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7. 그리스도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 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보라. 8. 이 책의 저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추구할 때 중요한 것으로 강조한 경건의 다 섯 가지 특징은 어떤 것인가? 9. 그중에서 어떤 특징이 지금 당신에게 가장 관련이 있는가? 어떤 식으로 당신은 하 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기를 구하려는가?
더 깊은 성찰을 위한 질문 10. 어떤 이웃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하나님은 정말 지극히 크셔서, 우 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진정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에 대해 말하려 하는 것인가? 나는 불가지론이 종교와 신 앙에 대한 최고의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겸손하다면 그렇게 할 수밖 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11. 사람이 하나님을 알면 거룩해진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신학을 잘 아는 그리스도 인 중에 그토록 많은 위선자가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반론을 제기
1장 │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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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12.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신학자들은 마치 우물의 밑바닥을 뚫어져라 내 려다보듯이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깊은 사고는 그들 자신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이것과 관련해 당신은 어떤 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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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서론(1부) 성경의 가르침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했을 때, 그들 중에 있던 레위인들은 그 백성을 이끌어 그들의 하나님께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고 고백하게 했다. 그들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선택하셔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 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의로운 율법을 주시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후히 베풀어 주셨다고 찬송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은 의로우시지만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찬양했다. “우리 하 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 는 하나님이여.”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화로운 이름”은 그들이 드 리는 “모든 송축이나 찬양”을 훨씬 뛰어넘어 높이 계신다는 것도 인정 했다 ( 느 9:5-15, 17, 32 ). 최고의 찬송과 찬양을 드린다 해도, 그것으로도 하 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피조물로서 우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에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탁월하신 것들을 찬송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 벧전
2:9 ).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을 보고서 하
나님의 선하심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기를 열 망한다. 신학은 송영을 풍부하게 해 주고, 송영은 신학으로 일깨워진
2장 │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서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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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을 만족시켜 준다. 교회의 가장 초기부터 성도들은 하나님의 신적 본성에 따른 여러 속 성에 비추어 하나님을 믿는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해 왔다.1 ) 테르툴리 아누스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 영원하심, 능력, 유일무이하심에 대해 썼다.2 )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주는 가장 참된 의미에서 살아 계시고, 모든 것을 인식하시고 아시며, 죽거나 쇠하거나 변화되실 수 없고, 몸 이 아니고 영이시며, 지극히 능력이 크시고, 지극히 의로우시며, 지극 히 아름다우시고, 지극히 선하시며, 찬송받으시기에 지극히 합당하신 분”이라고 고백했다.3 ) 그로부터 8세기도 더 지나, 보나벤투라는 아우 구스티누스가 한 이 말을 사용해 하나님의 “가장 탁월하신 것들”을 설 명했다.4 ) 4차 라테라노 공의회 ( 1215년 ) 에서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한 분 유일하게 참되신 하나님이 계심을 확고하게 믿고 무조건적으로 고백한다. 그는 영원하시고, 헤아릴 수 없으며, 전능하시고, 변함이 없 으며, 불가해하시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 령이시고, 삼위이시지만 절대적으로 단일한 한 본질과 본성을 지니고 계신다.”5 )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는 1,500년에 걸쳐 내려온 하나님에 대한 정 통적인 기독교 전통을 취합하여 첫 부분에 나오는 신앙 조목에서 천명 하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 1.2 ) 에서는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물질이 아니시며, 구분되실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능력과 지혜와 선 하심을 지니고 계신다”고 선언한다.6 ) 벨기에 신앙고백 ( 1조 ) 에서는 “우 리 모두는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한 분 유일하신 단일하고 영적 인 분이 존재하시고, 그는 영원하시고, 불가해하시며, 보이시지 않고, 변하실 수 없으며, 무한하시고, 전능하시며, 완벽하게 지혜로우시고 의
1 ) T he Apology of Aristides , sec. 1, in ANF , 9:263-264. 이 문서의 저작 시기는 AD 125년경이다. 2 ) Tertullian, Against Marcion , 1.3, in ANF , 3:273. 3 ) Augustine, On the Trinity , 15.4.6, in NPNF 1, 3:202. 4 ) Bonaventure, Breviloquium , 1.2.5, in Works , 1:37. 5 ) T he Christian Theology Reader , ed. Alister E. McGrath, 5th ed. (Chichester, England: Wiley Blackwell, 2017), 462에서 재인용. 6 ) T he Book of Concord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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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로우시며 선하시고, 모든 선이 흘러넘치는 원천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고 말한다.7 )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신학자들은 속성, 완전하신 것, 미덕, 고유한 것, 탁월하신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 왔다.8 ) 속
성은 어떤 존재와 영속적으로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어서 그 존재의 정 체성을 규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특질이나 특징이다. 따라서 우리가 속성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철학자들이 어떤 대상의 본질이나 본성에 필수적이지 않은 우연한 특질과 반대되는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불러 온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에게는 우연한 특질이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 의 모든 속성은 본질적인 속성이다. 하나님이 지니고 계시는 속성 중 어느 하나라도 잃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실 수 없다.9 ) 하나님의 속성은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일 것이라고 생각해 하나 님께 돌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시려 고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를 계시하신 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 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과 능력”을 “돌릴” 때 그것은 단지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 시 29:1-2 ). 하지 만 계시된 진리로서의 속성은 인간이 알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표현된 것이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낼 수는 없다.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 스는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 려고 하나님이 피조물과 어떤 점에서 구별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제 시하신 본질적인 특성이다”라고 말했다.10 ) 또한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것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것은 하나님이 모든 선하고 훌륭한 특질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지니 고 계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종종 하나님의 미덕이라고도 불린다. ‘미덕’은 라틴어에서 ‘탁월함’을 의미하는 ‘비르투스’ ( virtus ) 에
7 ) R eformed Confessions , 2:425. 8 ) P RRD , 3:196, 214-216. 9 ) John S. Feinberg, No One Like Him: The Doctrine of God , Foundations of Evangelical Theology (Wheaton, IL: Crossway, 2001), 234. 10 ) Turretin, Institutes , 3.5.1 (1:187).
2장 │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서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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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온 단어다 ( 참고, 벧전 2:9 불가타 ). 자주는 아니지만, 하나님께 고유한 것 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고유한 것이라는 표현도 종종 사용된다. 하 나님에게 본질적인 고유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 모두에 공통 적인 반면, 하나님의 각 위격의 고유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루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어떻게 서로 구별되는지에 대해 말해 준다. 끝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의 탁월하신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각각의 속성에 반영되어 있는 신적이고 완전한 특질을 강조하는 것 이다. 우리는 명료성과 일관성을 위해 하나님의 본질적인 완전하신 것, 미덕, 고유한 것, 탁월하신 것을 가리키는 데 일반적으로 속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하나님의 유일한 본성에 대한 성경의 증언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 존재성을 증언한다. “하나님이 모세에 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출 3:14 ). 하나님은 “스스로 있 는” 분이다.11 )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사 48:12 ). 선지자들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단언했지 만 ( 40:18 ), 하나님의 존재는 절대적인 신비이고 불가사의하므로 누구도 그것을 알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했는데, “이름”은 단지 일련의 음이나 문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명칭, 속성, 규례, 말씀, 행위”, 즉 하나님이 계시하신 하나님 자신의 모든 영광과 명성을 비롯해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기 위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 출 9:16; 참고, 창 11:4 ).12 ) 시편 76편 1절에서는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알 려지셨도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 출 33:18-19; 시 102:15 ). 하나님의 이 름은 기도와 예배의 대상이다 ( 창
4:26; 시 7:17 ).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11 ) Calvin, Institutes , 1.10.2. 12 )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Q. 54-55, in Reformed Confessions , 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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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한 것처럼 ( 창
16;13 ),
사
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은 하 나님의 이름에 집약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부른 하나님의 이름은 “영 원하신 여호와”( 21:33 ) 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원토록 자신을 기억하기를 바라셨다 ( 출 1880년 ) 는
3:13-15 ).
윌리엄 플러머 ( 1802-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탁월하신 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알고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을 영적으로 분별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고 썼다.13 )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성 자체이므로, 하나님이 이름을 알려 주셨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존 프레 임은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역사 를 수행한다”고 말한다.14 ) 하나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지키고 ( 시 20:1 ) 구원한다 ( 20:1; 54:1 ).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두려워함으로 공경해야 할 것이다 ( 111:9 ).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 자체로서 심판하고 구 원하는 역사를 수행한다 ( 왕상
8:29; 사 30:27 ).
하나님의 임재가 복을 주기
위해 가까이 올 때조차도,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온전히 알게 하시 지 않으므로 여전히 신비로 남는다 ( 창 32:29 ). 헬라어 신약 성경은 “본성”( ‘퓌시스’ ), “신적인 것”( ‘테이오스’ ), “신격, 신 성”( ‘테이오테스’ 또는 ‘테오테스’ ) 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용어를 통해 하나님 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본성은 하나님을 모든 피조물 위로 높여 주고, 우상들의 교만한 속임수를 무너뜨린다. 바울은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 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갈 4:8 ) 라고
썼다. 거짓 신들에게는 그들을 하나님이 되게 하고 진정으로
예배를 받을 만한 존재로 만들어 줄 “본성”( ‘퓌시스’ ) 이 결여되어 있다. 리처드 롱네커는 “‘퓌시스’라는 명사는……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본
13 ) William S. Plumer, Studies in the Book of Psalms (Philadelphia: Lippinscott, 1867), 138. 14 ) Frame, The Doctrine of God , 348.
2장 │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서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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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인 특성이나 성향을 가리킨다”고 쓴다.15 ) 바울의 이 말은 하나님 은 명확한 본성을 지니고 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본성을 아는 것은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본성을 모르면 우상숭배에 빠지 듯이, 하나님의 본성을 알 때만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 때문 이다.16 ) 하나님의 본성은 신적인 것이다. “신적인 것”으로 번역된 단어 ( ‘테이오 스’ ) 는
누가가 헬라의 우상숭배를 비판한 바울의 변론을 기록한 본문에
서 실명사 “신격”( KJV ) 또는 “신적인 존재”( ESV )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하나님 ( 즉 신격 ) 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행 17:29 ). 이것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하는 명백히 형이상학적인 단언 이다. 사도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헬라의 이방인들에게 전하면서 창 조주의 주권, 어디에나 계심 ( 편재 ), 독립성, 섭리, 의로우심, 부활하신 그 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자비와 긍휼을 제시했다 ( 24-31절 ). 하나님의 본성은 특별한 특질을 지닌다. 바울은 참 하나님을 우상 들과 구별하는 또 다른 본문에서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통 해 “신격”( KJV ) 또는 “신성”( ESV ) 을 계시하셨다고 말할 때 앞에서 말한 ‘테이오테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 롬
1:20 ).
바울은 “신성”이라는 단어
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 20절 ) 및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 광”( 23절 ) 과 병행적으로 사용한다. 신성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차 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의 본성은 하나님에게 존재하는 윤리적 으로 완전한 것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신적인 본성”( ‘테이아스 퓌세오스,’ 개역개정에는 “신성한 성품” ) 을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과
대비시키고, 그리스도인들은 본성적으로가 아니라 거듭남을 통해 새로 워져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이 신적인 본성에 참여하는 자 들이 되기 때문이다 ( 엡 4:23-24; 벧후 1:4 ).
15 ) Richard N. Longenecker, Galatians , Word Biblical Commentary 41 (Dallas, TX: Word, 1990), 179. 예컨대 롬 1:26; 2:14; 11:21, 24; 약 3:7을 보라. 16 ) Frame, The Doctrine of God ,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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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이 신적인 본성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분은 “신격”( ‘테오테스’,
KJV )
또
는 “신성”( ESV ) 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는 주 예수시다 ( 골 2:9 ). 예 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분이고, 성부와 함 께 만유를 창조하신 분이다 ( 1:15-16 ). 하나님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 도의 신적 충만함으로부터 충만함을 받는다 ( 2:10 ). 이것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본체[‘모프페’]”( 빌
2:6 ) 로
존재하시는 이유다. “하나님의 본
체”라는 것은 워필드가 말했듯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만드는 모든 속성을 온전히 소유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17 ) 존 길은 “하나님 은 눈에 보이는 형체를 지니고 계시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본체”는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적인 영광, 탁월하심, 본성, 완전하신 것들”을 가리킨다고 썼다. 그리고 “이 본성은 하나님을 이루는 삼위 모두에게 공통적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18 ) 이 본문의 가르침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최고 의 존재와도 구별되는 유일무이한 본성을 지니고 계심을 알게 된다. 볼 프강 무스쿨루스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 안에는 모든 피조 된 것들과 다른 어떤 특질이 존재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본성을 지니고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특질은 우연히 생겨난 것도 아니고, 노력에 의해 어떤 다른 존재로부터 가져온 것도 아니며, 변할 수 있는 것도 아 니고, 본성적이고 특유하며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9 ) 또한 하나님 의 이 유일무이한 본성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형 상을 지니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신적인 본성의 모든 충만을 지니고 계시는 분인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실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의 본성을 아는 지식을 계시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하셔서 자신의 충만 속으로 들어오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17 ) Benjamin B. Warfield, “The Person of Christ According to the New Testament,” in The
Person and Work of Christ , ed. Samuel G. Craig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50), 39. 18 ) Gill, Body of Divinity , 1:30. 19 ) Wolfgang Musculus, Common Places of Christian Religion , trans. John Man (London: Henry Bynneman, 1578), 888. 또한 PRRD , 3:210을 보라.
2장 │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서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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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적인 본성을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인의 경건에서 필수적 이다.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본분 전체를 일반적으로 말하 자면 하나님의 본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출 20:2; 사 42:8; 신 28:58; 롬 1:21 ).”
하나님은 자신을 아는 지식을 명료하고 구체적으
로 주시기 위해 특정한 속성을 보여 주시는 방식으로 자신의 본성을 계 시하셨다. 오웬은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계시 하셨을 뿐 아니라, 서로 구별되는 많은 개별적인 속성으로 자신의 존재 를 계시하셨는데, 이렇게 계시된 모든 속성은 하나님에 대한 이런저런 구체적인 본분을 제시해 줌으로써 우리 지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 한 우리의 본분 전체를 알게 하기에 적합했다”고 말했다.20 )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몇몇 중요한 성경 본문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통해 하나님을 알도록 가 르치셨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자신을 믿고 감 사할 수 있도록 자신이 “긍휼”과 “진실하심”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 셨다 ( 창
24:27; 32:10 ).21 )
모든 말씀이 하나님을 계시하시만, 존 칼빈이 말
했듯이 하나님을 “이미지로 그려 내듯이” 우리에게 묘사해 주는 몇몇 성경 본문이 있다.22 ) 출애굽기 34장 6-7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가운데서 가장 의미심장한 것 들 중 하나는 시내산에서 일어났다. 모세는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 20 ) Owen, An Exposition of the Epistle to the Hebrews , 4:365. 21 ) 창 24:27과 32:10에서 “긍휼”로 번역된 단어인 ‘헤세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여러 가지로 번역되는데, 우리는 이 책 16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이 단어의 의미와 신학적 의의를 설명하겠다. 22 ) Calvin, Institutes , 1.10.2. 칼빈도 출 34:6-7; 시 145편; 렘 9:24가 하나님의 속성을 논의할 때 핵 심적인 본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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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2
서”라고 기도했고, 여호와는 모세에게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 으로 지나가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 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경고하셨다 ( 출 33:18-20 ). 이튿날 아침에 모세는 반석의 틈새에 몸을 숨겼고, 하나님은 지나가시면서 “여 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 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 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 까지 보응하리라”( 출 34:6-7 ) 고 선포하셨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 330-389년 ) 는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장면 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이신 반석 안에 숨겨져 있을 때만 하나님을 알 수 있지만 ( 출 33:22-23; 참고, 고전 10:4 ), 그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자신의 존재를 보여 주는 징표인 등만을 보여 주실 뿐인 데, 이것은 우리의 눈이 약하여 우리가 해 자체를 정면으로 볼 수 없어 서 물에 비친 해의 모습만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23 ) 하지 만 “하나님의 등”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이름, 속성, 하나님을 설명하는 구절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되는 지식은 참된 지식이다. 출애굽기 34장에 나오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거의 일종의 신조같 이 되어, 우리는 이 말씀이 성경 전체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24 ) 칼빈은 이 본문을 “성경의 다른 곳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것 못지않게……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명료하고 만족스럽 게 설명하고 있는 본문”이라고 불렀다.25 ) 출애굽기 34장 6-7절에서는 하나님을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 두
번 ) 와
“하나님”이라고 밝히신 후
에, 자신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가운데 자신의 도덕적인 성 품의 여러 측면 또는 특징을 열거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자세한 23 ) Gregory of Nazianzus, Theological Orations , 28.3, Christopher A. Beeley, Gregory of
Nazianzus on the Trinity and the Knowledge of God: In Your Light We Shall See Light, Oxford Studies in Historical Theolo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90에 서 재인용. 또한 NPNF 2, 7:289를 보라. 24 ) 민 14:18; 대하 30:9; 느 9:17, 31; 시 86:15; 103:8; 111:4; 116:5; 145:8; 욜 2:13; 욘 4:2; 나 1:3. 25 ) Calvin, Commentaries , 시 145:8.
2장 │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 서론(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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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바나바라 할 수 있는 스몰리의 도움으로) 이제 평생에 걸친 연구, 묵상, 교 수, 저술의 결실인 걸작을 내놓는다. 오랜 세월 동안 신학자들 사이에 조직 신학
기독교 강요 16세기 종교개혁이 산출한 최고의 교의학
장 칼뱅
이 지적 작업인지 실천적 작업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개혁파 조직신학』은 이 모두가 맞다고 본다. 이 위대한 신학자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마음과 영과 힘을 다하지 않고, 정신만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교리를 익힌 후에도 추가로 질문을 제시한다. 모든 주제를 성경으로 풀어내 고, 온 성도가 다함께 이해하게 설명하며, 실천적 함의와 적용에 이른다. 여기에 더 깊은 성찰을 위한 질문도 있다. 이 책은 21세기 교회에 엄청난 가치를 가진 선
변증신학 강요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한 무시, 오해, 그릇된 진술을 교정한 커다란 도약
물이다. _싱클레어 퍼거슨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특임교수, 라고니어 사역회 강사
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개혁파 신앙은 흔히 단지 지적인 것으로 희화화되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장에서
이론과 실천 신학 주석-교리-변증-실천에 이르는 4중적 신학 방법론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어김없이 신학을 설명한 후에는 송영으로 옮겨 감으로써 개혁신학도 철저하게 경 험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책에 담겨 있는 풍부한 자원은 지성을 가르
2
개혁파 조직신학
이미 다수의 저술로 시대를 주도하는 개혁주의 저술가 조엘 비키는 (그에게 신학
개혁주의 조직신학 전통을 이어가는 책들
2
지은이
조엘 비키(Joel R. Beeke)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화란 개혁 교회의 목 자이며,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의 학장이자 조직신 학 교수다. 또한 그는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의 편집자이고, Reformation Heritage
개 혁 파
Books와 Inheritance Publishers의 대표이며, 네 덜란드 개혁 신학 번역회의 부회장이고, Soli Deo Gloria, Banner of Truth Trust 등의 유수한 출판 사의 이사로서 출판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웨스 트민스터 신학교(필라델피아)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자 주 초청받는 강사다. 주요 저서로는 『청교도 신학의
조직 신 학
치고 마음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 틀림없다.
모든 것』, 『청교도를 만나다』, 『개혁주의 청교도 영 성』,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이상 부흥과개혁 사) 등이 있다.
폴 스몰리(Paul M. Smalley) 퓨리턴 리폼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Th. M.) 지금은
_존 맥아더
조엘 비키 교수의 강의 조교로 활동한다. 조엘 비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목회자, 마스터스 신학대학원과 마스터스 대학교 총장
의 저서 『존 번연의 경외』와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 의 공저자다.
개혁교의학 성경적, 역사적, 포괄적인 정통 개혁주의 조직신학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조직신학』은 개혁주의 전통의 역사신학에 의지하여
여덟 가지 핵심 신학 주제를 경험적으로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
조엘 비키·폴 스몰리 지음
박문재 옮김
신론
옮긴이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장로회신학대 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 학위를, 대학원에 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블리카 아카데미아에
개혁주의 조직신학 조엘 비키·폴 스몰리 지음
고전적 칼빈주의를 현대적 서사 구조로 풀어낸 조직신학
박문재 옮김
마이클 호튼
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어를 수학했다. 번역 사역에 헌신하며 수많은 책을 번역했는데, 대 표적인 역서로는 칼빈 주석, 매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이상 크리스천다이제스트), 『기독교 정치 학』, 『기독교 윤리학』, 『변증신학 강요 1』, 『이론과 실
ISBN 978-89-6092-625-7 978-89-6092-623-3(세트)
www.rnrbook.com 값 52,000원
천 신학 1』(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적인 바나바라 할 수 있는 스몰리의 도움으로) 이제 평생에 걸친 연구, 묵상, 교 수, 저술의 결실인 걸작을 내놓는다. 오랜 세월 동안 신학자들 사이에 조직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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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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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신학 강요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한 무시, 오해, 그릇된 진술을 교정한 커다란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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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키스쿠스 투레티누스
개혁파 신앙은 흔히 단지 지적인 것으로 희화화되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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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조직신학
이미 다수의 저술로 시대를 주도하는 개혁주의 저술가 조엘 비키는 (그에게 신학
개혁주의 조직신학 전통을 이어가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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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조엘 비키(Joel R. Beeke)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화란 개혁 교회의 목 자이며,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의 학장이자 조직신 학 교수다. 또한 그는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의 편집자이고, Reformation Heritage
개 혁 파
Books와 Inheritance Publishers의 대표이며, 네 덜란드 개혁 신학 번역회의 부회장이고, Soli Deo Gloria, Banner of Truth Trust 등의 유수한 출판 사의 이사로서 출판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웨스 트민스터 신학교(필라델피아)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자 주 초청받는 강사다. 주요 저서로는 『청교도 신학의
조직 신 학
치고 마음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 틀림없다.
모든 것』, 『청교도를 만나다』, 『개혁주의 청교도 영 성』,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이상 부흥과개혁 사) 등이 있다.
폴 스몰리(Paul M. Smalley) 퓨리턴 리폼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Th. M.) 지금은
_존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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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목회자, 마스터스 신학대학원과 마스터스 대학교 총장
의 저서 『존 번연의 경외』와 『은혜로 말미암은 준비』 의 공저자다.
개혁교의학 성경적, 역사적, 포괄적인 정통 개혁주의 조직신학
헤르만 바빙크
『개혁파 조직신학』은 개혁주의 전통의 역사신학에 의지하여
여덟 가지 핵심 신학 주제를 경험적으로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
조엘 비키·폴 스몰리 지음
박문재 옮김
신론
옮긴이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장로회신학대 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 학위를, 대학원에 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비블리카 아카데미아에
개혁주의 조직신학 조엘 비키·폴 스몰리 지음
고전적 칼빈주의를 현대적 서사 구조로 풀어낸 조직신학
박문재 옮김
마이클 호튼
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어를 수학했다. 번역 사역에 헌신하며 수많은 책을 번역했는데, 대 표적인 역서로는 칼빈 주석, 매튜 헨리 주석, 스펄전 설교 전집(이상 크리스천다이제스트), 『기독교 정치 학』, 『기독교 윤리학』, 『변증신학 강요 1』, 『이론과 실
ISBN 978-89-6092-625-7 978-89-6092-623-3(세트)
www.rnrbook.com 값 52,000원
천 신학 1』(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