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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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성경신학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성경 문헌의 대부분을 이해

Christ-Centred Biblical Theology

하는 ‘큰 그림’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성경신학은 하나님이 하나의 웅대한 구원 계획을 펼쳐 보이시

He r m e ne uti c al Fo undati o ns and P r i nc i p l e s

는 전체 장면을 관찰하기 위해 노력한다. 성경은 더 이상 서로 무관한 본문들로 구성된 집합체가 아니 라,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사복음서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통일체로 보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성경은 창 조에서 새 창조로 나아가는 진전을 나타낸다.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모든 성경의 제일 초점으로 강조한다. 만일 성경이 참으로 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보 여 주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바로 성경신학이다. 골즈워디는 자신의 책 『복음중심 해석학』 을 보완하는 소중한 작품인 이 책에서 자신의 접근법을 위한 이론적인 근거를 변호하고 더욱 가다듬는데, 특별히 호주 성경학자 도널드 로빈슨에 의해 발전된 성경 신학에 의존한다. 골즈워디가 확신하는 것은 성경신학이 복음주의 해석학을 위한 토대며, 강해 설교에 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며, 효과적인 목회 사역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그레엄 골즈워디가 성경신학 연구에 기여한 바는 지대하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 연구에서, 골즈워디는 다양한 복음주의 접근법들을 유익하게 비교하고 자신이 도 널드 로빈슨에 의해 발전된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골즈워디는 ‘계시의 삼

그레엄 골즈워디

단 구조’(창조에서 솔로몬까지 이어지는 성경 역사, 선지자들의 종말론,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를 지지하

지음

| 윤석인

옮김

면서, 성경의 신학적 통일성을 변호하고 해설하고자 하는 자신의 열정을 고취하고 형 성해 온 영향들에 대해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여러분 중에 성경신학, 특별히 이 학문 분야에서 골즈워디가 기여한 업적에 매료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데스몬드 알렉산더(영국 북아일랜드 지방 벨파스트 소재 유니언 신학교 부교수)

지음

그레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

현직에서 물러난 그레엄 골즈워디는 예전에 무어 신학교에서 구약 성경, 성경신학, 해석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도 무어 신학교에서 시간제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골즈워디는 『복음중심 해석학』, 『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옮김

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 신학 석사 학위(Th. M.)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부흥 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도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교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지음 옮김

핵심』,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문화 신학』

그레엄 골즈워디 윤석인

할 것인가』, 『기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경 연구에 대한 세 권의 책으로 구성된 모음집 『골즈워디 삼부작』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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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788960 923218

ISBN 978-89-6092-321-8 값 1 7 , 0 0 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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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8

1:48:33


목차

저자 서문

… 8

약어 소개

… 12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14

5. 다면적인 성경신학

… 133

큰 그림과 관련된 큰 질문들 | 로빈슨-히버트 도식 | 창세기 1~11장이 맡은 역할 | 환원주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제기되는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한 문제 | 다중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학자

에 대한 문제 | 왜 성경신학이 푸대접받는 것일까

들 | 결론

2. 복음주의의 정의와 전제들

… 42

성경신학을 정의하기 위한 예비 단계들 | 성경신학이 복음에 입각해서 내세우는 신학적 전제

6. 구약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기 1: 성경 역사

… 149

어떤 종류의 시대인가 | 구약 성경 역사에서 주요 초점들 | 결론

들 | 성경신학에서 복음주의 해석학이 내세우는 전제들

7. 구약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기 2: 3. 구원과 역사

… 69

선지자들의 종말론

… 182

구원 역사라는 개념 | 구원 역사로서의 성경 역사 | 성경 안에 나타난 구원 역사: 구약 성경 |

선지자들의 종말론에 나타나는 양식 | 정경의 형태 | 선지자들의 종말론에 나타나는 주요 초

성경 안에 나타난 구원 역사: 신약 성경 | 결론

점들 | 결론

4. 복음주의의 실천

… 98

8. 신약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기

… 207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차 | 성경신학자가 되기까지: 도널드 로빈슨에게 입은 은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 해석에서 규범적인 성격을 가질까 | 신약 성경은 계시의 구조를 나타

혜 | 중요한 복음주의 성경신학자들 | 결론

내는가 | 아브라함-다윗/솔로몬이라는 축과 예언의 성취 | 여러 접근법들의 비교


목차

저자 서문

… 8

약어 소개

… 12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14

5. 다면적인 성경신학

… 133

큰 그림과 관련된 큰 질문들 | 로빈슨-히버트 도식 | 창세기 1~11장이 맡은 역할 | 환원주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제기되는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한 문제 | 다중적 접근법을 지지하는 학자

에 대한 문제 | 왜 성경신학이 푸대접받는 것일까

들 | 결론

2. 복음주의의 정의와 전제들

… 42

성경신학을 정의하기 위한 예비 단계들 | 성경신학이 복음에 입각해서 내세우는 신학적 전제

6. 구약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기 1: 성경 역사

… 149

어떤 종류의 시대인가 | 구약 성경 역사에서 주요 초점들 | 결론

들 | 성경신학에서 복음주의 해석학이 내세우는 전제들

7. 구약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기 2: 3. 구원과 역사

… 69

선지자들의 종말론

… 182

구원 역사라는 개념 | 구원 역사로서의 성경 역사 | 성경 안에 나타난 구원 역사: 구약 성경 |

선지자들의 종말론에 나타나는 양식 | 정경의 형태 | 선지자들의 종말론에 나타나는 주요 초

성경 안에 나타난 구원 역사: 신약 성경 | 결론

점들 | 결론

4. 복음주의의 실천

… 98

8. 신약 성경이 스스로 말하게 하기

… 207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차 | 성경신학자가 되기까지: 도널드 로빈슨에게 입은 은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 해석에서 규범적인 성격을 가질까 | 신약 성경은 계시의 구조를 나타

혜 | 중요한 복음주의 성경신학자들 | 결론

내는가 | 아브라함-다윗/솔로몬이라는 축과 예언의 성취 | 여러 접근법들의 비교


그림과 표

9. 모형론

… 238

| 그림 |

로빈슨이 제안한 모형론 | 모형론을 다루는 여러 방식들 | 모형론에 대한 논의에서 부각되는

1. 성경의 기본 연표

24

여러 쟁점들 | 거시 모형론

2. 계시의 구조

24

3. 구약 성경 역사의 개요

80

4. 타락 이전의 실재에 대한 성경의 견해

… 264

5.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만물에 대한 성경의 견해

… 264

6. 성경신학에 대한 주제적 접근법-성전

… 311

7. 성경신학에 대한 주제적 접근법-기도

… 313

10. 로빈슨이 남긴 유산

… 267

로빈슨이 제안하는 모형론과 성경신학의 방식 | 이스라엘과 교회 | 종말론 | 세례 | 평가

11. 성경신학을 하는 방법

… 304

성경신학에 미래가 있을까 | 성경신학의 발전 가능성 | 맺는말

|표|

참고문헌

… 326

1. 계시의 삼단 구조에 포함된 내용

25

2. 성경 이야기

77

3. 선지자들의 종말론과 역사의 재현

… 204


그림과 표

9. 모형론

… 238

| 그림 |

로빈슨이 제안한 모형론 | 모형론을 다루는 여러 방식들 | 모형론에 대한 논의에서 부각되는

1. 성경의 기본 연표

24

여러 쟁점들 | 거시 모형론

2. 계시의 구조

24

3. 구약 성경 역사의 개요

80

4. 타락 이전의 실재에 대한 성경의 견해

… 264

5.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만물에 대한 성경의 견해

… 264

6. 성경신학에 대한 주제적 접근법-성전

… 311

7. 성경신학에 대한 주제적 접근법-기도

… 313

10. 로빈슨이 남긴 유산

… 267

로빈슨이 제안하는 모형론과 성경신학의 방식 | 이스라엘과 교회 | 종말론 | 세례 | 평가

11. 성경신학을 하는 방법

… 304

성경신학에 미래가 있을까 | 성경신학의 발전 가능성 | 맺는말

|표|

참고문헌

… 326

1. 계시의 삼단 구조에 포함된 내용

25

2. 성경 이야기

77

3. 선지자들의 종말론과 역사의 재현

… 204


| 저자 서문 |

장인으로 브리타니아 호에 승선했다.2 ) 1796년에 무어는 뉴사우스웨일 스 자치령의 정식 선박 제조자가 되었다. 이후에 계속해서 시드니 남서 쪽 32킬로미터에 위치한 리버풀에서 성공적인 목회 활동 계획을 세웠 다. 1840년에 세상을 떠난 토머스 무어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뉴사우스 웨일스 자치령에 소재한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는 유지를 남겼다.3 ) 특별 히 무어는“기독교 지식의 원리로 젊은이들에게 개신교 신념을 교육하 기 위한”대학을 설립하는 데 많은 금액을 할당할 것을 지시했다. 1856년 에 2대 시드니 주교 프레더릭 바커(1808~1882년)는 토머스 무어의 유지를 받들어 리버풀에 있는 무어의 소유지에 신학교를 설립했다. 호주에서 가 장 오래된 3차 교육 기관 중 하나인 무어 신학교는 세 명의 학생으로 시 작했다. 내가 글을 쓸 시점에는 학생수가 100배로 증가했다. 1891년에 무어 신학교는 뉴타운 근교에 소재한 시드니 대학교 인근 지역으로 이전

나는 이 책을 집필하고 나서 내가 복음주의적 성공회에서 물려받은 유

했다. 바커는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는데,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산을 곰곰이 생각하며 이 서문을 쓴다. 호주에서 성공회는 1788년 1월

찰스 시므온(1759~1836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시드니에서 복음적인 기

26일에 첫 선단이 시드니 코브에 도착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선단과

독교가 언제나 순탄하게 발전된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중국 서부 지방

함께 복음적인 성공회 사역자가 목사로 부임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리

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복음적인 주교 하워드 몰(1890~1958년)이 1934년

처드 존슨 (약 1756~1827년)이었다. 같은 해 2월 3일에 존슨은 호주에서 기

에 시드니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몰은 시드니 교구에 복음주의의 특성을

독교 복음을 최초로 설교했다.1 ) 시드니 도심지에 세워진 기념비는 존슨

확립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교회 선교

이 설교한 장소를 표시하며, 이 설교가 행해진 날짜와 설교 본문이었던

회 회장이었던 토머스 채터튼 해먼드(1877~1961년)는 1935년에 무어 신학

시편 116편 12절을 기념한다. 또 한 사람의 복음적인 목사가 존슨의 뒤를

교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비록 강조점과 양식이 독특하기는 했지만, 해

이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새뮤얼 마스던(1765~1838년)이었다. 1792년에

먼드가 보여 준 단호한 복음주의적 태도는 무어 신학교와 시드니 교구에

는 경건하고 복음적인 신자였던 토머스 무어(1762~1840년)가 배를 만드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2 ) 여기서 토머스 무어와 관련된 상세한 역사적 사실 중 상당 부분은 Peter G. Bolt, Thomas Moore

1 ) 리처드 존슨을 계승한 인물들은 1825년부터 1835년까지 공식적으로 캘커타 주교의 감독을

받았다. 그해에 호주는 캘커타 주교의 감독에서 벗어났으며, 윌리엄 그랜트 브로틴을 최초의 단독 주교로 하는 호주 교구가 출범했다. 브로틴이 주교직을 맡은 동안, 호주는 1847년에 4개 의 교구로 분리되었고 브로틴은 시드니 초대 주교가 되었다.

8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of Liverpool: One of Our Oldest Colonists, Studies in Australian Colonial History 1 (Camperdown, NSW: Bolt Publishing Services, 2007)을 출처로 한다. 3 ) 아내와 의붓아들이 모두 토머스 무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무어에게는 직계 가족 이 없었다.

저자 서문 │

9


| 저자 서문 |

장인으로 브리타니아 호에 승선했다.2 ) 1796년에 무어는 뉴사우스웨일 스 자치령의 정식 선박 제조자가 되었다. 이후에 계속해서 시드니 남서 쪽 32킬로미터에 위치한 리버풀에서 성공적인 목회 활동 계획을 세웠 다. 1840년에 세상을 떠난 토머스 무어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뉴사우스 웨일스 자치령에 소재한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는 유지를 남겼다.3 ) 특별 히 무어는“기독교 지식의 원리로 젊은이들에게 개신교 신념을 교육하 기 위한”대학을 설립하는 데 많은 금액을 할당할 것을 지시했다. 1856년 에 2대 시드니 주교 프레더릭 바커(1808~1882년)는 토머스 무어의 유지를 받들어 리버풀에 있는 무어의 소유지에 신학교를 설립했다. 호주에서 가 장 오래된 3차 교육 기관 중 하나인 무어 신학교는 세 명의 학생으로 시 작했다. 내가 글을 쓸 시점에는 학생수가 100배로 증가했다. 1891년에 무어 신학교는 뉴타운 근교에 소재한 시드니 대학교 인근 지역으로 이전

나는 이 책을 집필하고 나서 내가 복음주의적 성공회에서 물려받은 유

했다. 바커는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는데,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산을 곰곰이 생각하며 이 서문을 쓴다. 호주에서 성공회는 1788년 1월

찰스 시므온(1759~1836년)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시드니에서 복음적인 기

26일에 첫 선단이 시드니 코브에 도착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선단과

독교가 언제나 순탄하게 발전된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중국 서부 지방

함께 복음적인 성공회 사역자가 목사로 부임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리

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복음적인 주교 하워드 몰(1890~1958년)이 1934년

처드 존슨 (약 1756~1827년)이었다. 같은 해 2월 3일에 존슨은 호주에서 기

에 시드니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몰은 시드니 교구에 복음주의의 특성을

독교 복음을 최초로 설교했다.1 ) 시드니 도심지에 세워진 기념비는 존슨

확립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교회 선교

이 설교한 장소를 표시하며, 이 설교가 행해진 날짜와 설교 본문이었던

회 회장이었던 토머스 채터튼 해먼드(1877~1961년)는 1935년에 무어 신학

시편 116편 12절을 기념한다. 또 한 사람의 복음적인 목사가 존슨의 뒤를

교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비록 강조점과 양식이 독특하기는 했지만, 해

이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새뮤얼 마스던(1765~1838년)이었다. 1792년에

먼드가 보여 준 단호한 복음주의적 태도는 무어 신학교와 시드니 교구에

는 경건하고 복음적인 신자였던 토머스 무어(1762~1840년)가 배를 만드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2 ) 여기서 토머스 무어와 관련된 상세한 역사적 사실 중 상당 부분은 Peter G. Bolt, Thomas Moore

1 ) 리처드 존슨을 계승한 인물들은 1825년부터 1835년까지 공식적으로 캘커타 주교의 감독을

받았다. 그해에 호주는 캘커타 주교의 감독에서 벗어났으며, 윌리엄 그랜트 브로틴을 최초의 단독 주교로 하는 호주 교구가 출범했다. 브로틴이 주교직을 맡은 동안, 호주는 1847년에 4개 의 교구로 분리되었고 브로틴은 시드니 초대 주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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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of Liverpool: One of Our Oldest Colonists, Studies in Australian Colonial History 1 (Camperdown, NSW: Bolt Publishing Services, 2007)을 출처로 한다. 3 ) 아내와 의붓아들이 모두 토머스 무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무어에게는 직계 가족 이 없었다.

저자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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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처럼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된 유산을 시드니 교구의 일반 신

이 기간 동안 나는 로빈슨의 도식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성경신학 개론

도 및 성직자들과 공유한다. 내가 이 책을 헌정하는 도널드 로빈슨 박사

과목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학생들은 이 강의 내용을 책으로

님과 공유하는 것도 바로 이 유산이다. 나는 이 유산이 하워드 몰을 계승

출간하라고 나를 격려했는데, 애초에 내가 터무니없는 제안으로 생각했

한 대주교들과 해먼드를 계승한 학장들의 지도 아래서 발전하는 과정을

던 이 기획은 마침내 현실화되어서『복음과 하나님의 나라』(1981년)로 빛

목격해 왔다. 하워드 몰 대주교는 내가 무어 신학교의 학생이자 강사로

을 보게 되었다. 패터노스터 출판사가 이 책과 다른 두 논문을 추가로 간

있었던 1958년에 나에게 성공회 성직을 서품했는데, 해먼드가 임기를 마

행했다. 나는『복음과 하나님의 계획』(1991년)의 출판을 통해 국제 기독

치면서 했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었다. 도널드

교 출판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 인연을 계속 유지할 수

로빈슨 박사님과 나는 시드니 교구의 이런 기풍을 공유할 뿐 아니라, 케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처음에 데이비드 킹던, 그리고 더욱 최근

임브리지 대학교 신학 교수들의 기풍도 공유한다. 로빈슨 박사님은 성경

에 국제 기독교 출판사 신학 서적 선임 자문 편집인으로 있는 필립 듀스

신학을 별개의 학문 분야로 이해하는 접근법을 지지한다. 이런 접근법으

박사에게서 세심한 제안과 논평과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점에 대해

로 이 연구를 진행하도록 동기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보면 나는 로빈슨

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내가 젊은 시절에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

박사님께 신세를 진 셈이다. 로빈슨 박사님은 신학교에서 나의 은사이셨

면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시드니 교구에 있는 우리 교회와 국제 복음

고, 내가 무어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동료가 되었으며, 이후로도 줄곧

주의 학생회 호주 지부 산하 단체인 시드니 대학교 복음주의 연합이다.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친구이셨다.

시드니 대학교 복음주의 연합은 국제 기독교 출판사와 관련된 기독학생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사고와 삶을 형성하는 데 은혜를 입었고 결과

회에서 시작되었는데, 시드니 교구와 무어 신학교의 복음주의는 모두 영

적으로 나의 작품에 기여한 다른 지도자와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

국 복음주의에 공통으로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영적인 토대, 교리적 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마커스 로언, 데이비드 브로틴 녹스, 앨런

념, 기독교 정신을 공유하는 출판사와 좋은 실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콜, 브루스 스미스, 그레이엄 델브리지, 존 채프먼 등과 같이 시드니에서

서 대단히 흡족하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기획을 완성하기까지 나처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포함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럼 도널드 로빈슨 박사님을 존경하는 수많은 친구와 동료들에게서 지속

동안, 나는 피터 아크로이드, 찰리 모울, 데이비드 윈튼 - 토머스, 헨리 하

적으로 도움과 격려를 받았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별히 45년

트의 수업을 듣는 혜택을 누렸다. 이후에 버지니아 주 소재의 유니언 신

동안 내 곁에서 끊임없이 나의 사역과 연구를 내조한 나의 아내이자 복

4)

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나는 존 브라이트와 패트릭 밀러의 지도를 받으

음의 동반자인 미리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며 큰 유익을 얻었다. 1973년과 1974년에 나는 무어 신학교에서 성경신학 객원 교수를 지냈다.

그레엄 골즈워디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빌람빌 하이츠에서

4 ) 지금은 유니언 장로회 신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0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저자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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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처럼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된 유산을 시드니 교구의 일반 신

이 기간 동안 나는 로빈슨의 도식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성경신학 개론

도 및 성직자들과 공유한다. 내가 이 책을 헌정하는 도널드 로빈슨 박사

과목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학생들은 이 강의 내용을 책으로

님과 공유하는 것도 바로 이 유산이다. 나는 이 유산이 하워드 몰을 계승

출간하라고 나를 격려했는데, 애초에 내가 터무니없는 제안으로 생각했

한 대주교들과 해먼드를 계승한 학장들의 지도 아래서 발전하는 과정을

던 이 기획은 마침내 현실화되어서『복음과 하나님의 나라』(1981년)로 빛

목격해 왔다. 하워드 몰 대주교는 내가 무어 신학교의 학생이자 강사로

을 보게 되었다. 패터노스터 출판사가 이 책과 다른 두 논문을 추가로 간

있었던 1958년에 나에게 성공회 성직을 서품했는데, 해먼드가 임기를 마

행했다. 나는『복음과 하나님의 계획』(1991년)의 출판을 통해 국제 기독

치면서 했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었다. 도널드

교 출판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 인연을 계속 유지할 수

로빈슨 박사님과 나는 시드니 교구의 이런 기풍을 공유할 뿐 아니라, 케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처음에 데이비드 킹던, 그리고 더욱 최근

임브리지 대학교 신학 교수들의 기풍도 공유한다. 로빈슨 박사님은 성경

에 국제 기독교 출판사 신학 서적 선임 자문 편집인으로 있는 필립 듀스

신학을 별개의 학문 분야로 이해하는 접근법을 지지한다. 이런 접근법으

박사에게서 세심한 제안과 논평과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점에 대해

로 이 연구를 진행하도록 동기를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보면 나는 로빈슨

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내가 젊은 시절에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

박사님께 신세를 진 셈이다. 로빈슨 박사님은 신학교에서 나의 은사이셨

면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시드니 교구에 있는 우리 교회와 국제 복음

고, 내가 무어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동료가 되었으며, 이후로도 줄곧

주의 학생회 호주 지부 산하 단체인 시드니 대학교 복음주의 연합이다.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친구이셨다.

시드니 대학교 복음주의 연합은 국제 기독교 출판사와 관련된 기독학생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사고와 삶을 형성하는 데 은혜를 입었고 결과

회에서 시작되었는데, 시드니 교구와 무어 신학교의 복음주의는 모두 영

적으로 나의 작품에 기여한 다른 지도자와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

국 복음주의에 공통으로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영적인 토대, 교리적 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마커스 로언, 데이비드 브로틴 녹스, 앨런

념, 기독교 정신을 공유하는 출판사와 좋은 실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콜, 브루스 스미스, 그레이엄 델브리지, 존 채프먼 등과 같이 시드니에서

서 대단히 흡족하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이 기획을 완성하기까지 나처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포함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럼 도널드 로빈슨 박사님을 존경하는 수많은 친구와 동료들에게서 지속

동안, 나는 피터 아크로이드, 찰리 모울, 데이비드 윈튼 - 토머스, 헨리 하

적으로 도움과 격려를 받았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별히 45년

트의 수업을 듣는 혜택을 누렸다. 이후에 버지니아 주 소재의 유니언 신

동안 내 곁에서 끊임없이 나의 사역과 연구를 내조한 나의 아내이자 복

4)

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나는 존 브라이트와 패트릭 밀러의 지도를 받으

음의 동반자인 미리암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며 큰 유익을 얻었다. 1973년과 1974년에 나는 무어 신학교에서 성경신학 객원 교수를 지냈다.

그레엄 골즈워디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빌람빌 하이츠에서

4 ) 지금은 유니언 장로회 신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0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저자 서문 │

11


1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절름발이 오리로 여겨지거나 더 나쁜 경우는 일종의 망상으로 간주된다. 1960년대 즈음부터 나는 성경신학에 대한 이해를 가다듬고 발전시키 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런 이해는 내가 신학 교육에서 학생으로, 목사 로, 교사로 겪은 경험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신학 서적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에서 표현되는 이 접근법은 반대를 비롯해서 냉담함이나 열렬한 지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 접근법에 반대하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내가 제안하는 이론과 실천을 다시 생각하 게 되고, 나의 입장에 반대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애쓴다. 이 접근법에 냉담한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나는 복음주의 성경신학의 가치 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는 나의 시도를 새롭게 한다. 그리고 이 접근 법을 지지하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나는 자기만족에 빠지거나 안주하지

성경신학이 설교자와 교사와 일반 신자들의 마음을 즉시 사로잡는 매

않고 꾸준히 계속할 수 있는 기력을 얻는다. 물론 더욱 미묘한 반응을 보

력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신학이 어리둥절할 만큼 분량이 많고 다양한 성

이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내가 제안하는 개념에 즉각 반

경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큰 그림’ 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성경신학은 하

대하기보다 이런 개념을 다루는 나의 방식에 얼마간 동의하지 않을지도

나님의 계시가 펼쳐 보이는 장면 전체를 높은 지점에서 조망하고자 시도

모른다. 나는 내가 제안하는 성경신학의 여러 측면들을 인정하고 거기에

한다. 그래서 성경신학은 독수리 날개를 타고 올라가, 하나님이 창조로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제

시작해 새 창조로 끝나는 하나의 거대한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수

기하는 비판이 내 입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에 항상 충분하다고 느

있게 한다. 성경이 더 이상 무관한 이야기나 다른 작품들의 부분들로 구

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기본적 접근법에서 나와 견해를 달리하는

성된 집합체가 아니라, 이스라엘 이야기와 복음서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의 진전을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나는『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경신학에 대한 나의 중요 관점을

부활을 성경 전체의 주된 초점으로 강조하는 하나의 통일체로 보이기 시

처음으로 밝히고 자세히 설명했는데,1 ) 내용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내가

작할 때, 사람들은 대개 자리에 앉아 주의를 기울인다. 참으로 성경이 한

1970년대 초반에 무어 신학교에서 가르친 1년차 성경신학 교과목이었다.

분 하나님이 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일한 구원의 길을 보이시 는 하나의 말씀이라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 바

1 ) Gospel and Kingdom: A Christian Interpretation of Old Testament (Exeter: Paternoster,

로 성경신학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신학을

1981,『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성서유니온선교회 역간). 지금은 The Goldsworthy Trilogy (Milton Keynes: Paternoster, 2000)에 포함되어 있다.

14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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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은 절름발이 오리로 여겨지거나 더 나쁜 경우는 일종의 망상으로 간주된다. 1960년대 즈음부터 나는 성경신학에 대한 이해를 가다듬고 발전시키 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런 이해는 내가 신학 교육에서 학생으로, 목사 로, 교사로 겪은 경험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신학 서적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에서 표현되는 이 접근법은 반대를 비롯해서 냉담함이나 열렬한 지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 접근법에 반대하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내가 제안하는 이론과 실천을 다시 생각하 게 되고, 나의 입장에 반대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자 애쓴다. 이 접근법에 냉담한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나는 복음주의 성경신학의 가치 를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는 나의 시도를 새롭게 한다. 그리고 이 접근 법을 지지하는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나는 자기만족에 빠지거나 안주하지

성경신학이 설교자와 교사와 일반 신자들의 마음을 즉시 사로잡는 매

않고 꾸준히 계속할 수 있는 기력을 얻는다. 물론 더욱 미묘한 반응을 보

력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신학이 어리둥절할 만큼 분량이 많고 다양한 성

이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내가 제안하는 개념에 즉각 반

경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큰 그림’ 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성경신학은 하

대하기보다 이런 개념을 다루는 나의 방식에 얼마간 동의하지 않을지도

나님의 계시가 펼쳐 보이는 장면 전체를 높은 지점에서 조망하고자 시도

모른다. 나는 내가 제안하는 성경신학의 여러 측면들을 인정하고 거기에

한다. 그래서 성경신학은 독수리 날개를 타고 올라가, 하나님이 창조로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제

시작해 새 창조로 끝나는 하나의 거대한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수

기하는 비판이 내 입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에 항상 충분하다고 느

있게 한다. 성경이 더 이상 무관한 이야기나 다른 작품들의 부분들로 구

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기본적 접근법에서 나와 견해를 달리하는

성된 집합체가 아니라, 이스라엘 이야기와 복음서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의 진전을 드러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나는『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경신학에 대한 나의 중요 관점을

부활을 성경 전체의 주된 초점으로 강조하는 하나의 통일체로 보이기 시

처음으로 밝히고 자세히 설명했는데,1 ) 내용 면에서 보면 이 책은 내가

작할 때, 사람들은 대개 자리에 앉아 주의를 기울인다. 참으로 성경이 한

1970년대 초반에 무어 신학교에서 가르친 1년차 성경신학 교과목이었다.

분 하나님이 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유일한 구원의 길을 보이시 는 하나의 말씀이라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이 바

1 ) Gospel and Kingdom: A Christian Interpretation of Old Testament (Exeter: Paternoster,

로 성경신학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신학을

1981,『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성서유니온선교회 역간). 지금은 The Goldsworthy Trilogy (Milton Keynes: Paternoster, 2000)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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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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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교구에서 사역하는 동안, 나는 일반 신도와 목회자를 위해 더 포

하나님은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세 단계로 계시하

괄적인 성경신학 개론서를 썼다. 나는 이 책을 하나의 교과목으로 발전

셨다. 첫째 단계는 특별히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솔로몬이 성전을 봉

시켜서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교인들로 구성된 여러 그룹에게 순차적으

헌하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서 그렇게 하셨고, 둘째 단계는 선

로 가르쳤다. 그 교과목은 마침내『복음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제목

지자들의 종말론에서 그렇게 하셨으며, 셋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2)

으로 출간되었다. 이 두 책이 따르는 도식은 내가 성경신학을 더 깊이

리스도의 사역에서 구약 성경의 이 모든 기대들을 실현하시는 데서 그

탐구하는 기초가 되었다. 나의 접근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진영도 있지

렇게 하셨다.

5)

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접근법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복음주의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3 )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런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

도널드 로빈슨은 더욱 최근에 성경신학에서 자신만의 긴 모험 여행과

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성경의 구조를 다루는 아주 명확

같은 무엇을 시작했다.6 ) 로빈슨은 세 명의 비복음주의 학자 찰스 도드,

한 방식처럼 생각되는 접근법도 성경신학 연구에서 대단한 지위를 차지

오스카 쿨만, 가브리엘 히버트를 포함하는 여러 신학자에게 신세를 졌다

하지 못하고 있다.

고 밝힌다.7 ) 로빈슨은 1957년에 히버트가 브리즈번 성공회 교구의 신학

나는 이런 접근법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를 더욱 상세히 피력하고

교에서“성취자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어떻게 강연했는지를 서술한

그럼으로써 복음주의 성경신학의 대의를 진척시킬 때라고 생각한다. 내

다.8 ) 로빈슨은“이 강연에서 히버트는 성경 내용의 개요를 세 단계로 제

가 제안하는 접근법은 신학교에서 나를 가르치신 교수님 한 분이 성경

의했는데, 이 개요는 내가 무어 신학교의 교과목으로 개발하고 있었던

계시의 구조를 간략히 서술한 개요를 바탕으로 처음 윤곽을 잡게 되었음

것과 다소 유사했다.”라고 말한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쓴 작품에서, 히

을 부언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호주에서 손꼽히는 신약신학자였던 도

버트는 이 도식이 피티언 애덤스의 생각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밝힌다.9 )

널드 로빈슨이 나에게 구약신학을 가르쳤다.4 ) 성경의 다양한 부분 전체 가 어떻게 서로 조화롭게 들어맞는지를 묻는 어떤 학생의 질문에 대해, 로빈슨은 자신의 견해를 자세히 밝혔다. 이 질문에 대해 로빈슨이 말한 내용을 기억으로 더듬어 재구성하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2 ) According to Plan: The Unfolding Revelation of God in the Bible (Leicester: IVP, 1991;

Downers Grove, IL: IVP, 2002,『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성서유니온선교회 역간). 3 ) 주류에 속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비평학자들은 대체로 이런 접근법을 무시해 왔는데, 이 사실

은 전혀 놀랍지 않다. 4 ) 우리는 시드니에서 개최된 성경 연구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 회의에서 구약 성경의 특정 측

면에 대한 논문이 발표된 후에 로빈슨은 자신이 구약 성경에 계속 머물지 않아야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매우 골똘히 생각했다. 성경 전체를 사랑하는 성경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것은 신구약 성경 중 어느 한편을 전문적으로 집중하는 문제를 반영한 견해임에 분명했다.

16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5 ) 이것은 내가 50년이 지난 과거에 들은 말을 기억으로 더듬어서 재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로빈슨이 더욱 최근에 진술하고 발표한 여러 저서들의 내용과 실제로 일치한다. 비록 엄밀한 의미에서 인용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부분을 인용문으로 표시했다. 로빈슨이 이 기본 개념을 자신의 말로 표현한 부분은 9장과 아 래의 18~19쪽에 인용되어 있다. 6 ) Donald W. B. Robinson,“Origins and Unresolved Tensions,”in R. J. Gibson (ed.), Interpreting God’ s Plan: Biblical Theology and the Pastor (Carlisle: Paternoster, 1997), pp. 1~17. 7 ) 가브리엘 히버트는 성공회 고교회파 수도사였는데, 한동안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에 소재 한 성 마이클 하우스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이 시기 동안 히버트는 로빈슨과 친분을 맺었는 데, 무어 신학교에 가끔씩 방문해 강연을 했다. 아마 이들을 모두 복음주의자로 말할 수는 없 겠지만, 이런 인물들은 고등한 성경관을 지니고 있었다. 8 ) A. G. Hebert, Christ the Fulfiller: Three Studies on the Biblical Types as They Are Presented in the Old and New Testaments (Sydney: Anglican Truth Society, 1957). 9 ) Robinson,“Origins,”p. 5.『성취자 그리스도』에서 히버트가 시도한 분석은 세 종류의 신앙 고백을 밝히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는 아브라함의 선택에 기초하는 이스라엘의 중요 이야기에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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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교구에서 사역하는 동안, 나는 일반 신도와 목회자를 위해 더 포

하나님은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세 단계로 계시하

괄적인 성경신학 개론서를 썼다. 나는 이 책을 하나의 교과목으로 발전

셨다. 첫째 단계는 특별히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솔로몬이 성전을 봉

시켜서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교인들로 구성된 여러 그룹에게 순차적으

헌하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에서 그렇게 하셨고, 둘째 단계는 선

로 가르쳤다. 그 교과목은 마침내『복음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제목

지자들의 종말론에서 그렇게 하셨으며, 셋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2)

으로 출간되었다. 이 두 책이 따르는 도식은 내가 성경신학을 더 깊이

리스도의 사역에서 구약 성경의 이 모든 기대들을 실현하시는 데서 그

탐구하는 기초가 되었다. 나의 접근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진영도 있지

렇게 하셨다.

5)

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접근법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복음주의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3 )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런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

도널드 로빈슨은 더욱 최근에 성경신학에서 자신만의 긴 모험 여행과

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성경의 구조를 다루는 아주 명확

같은 무엇을 시작했다.6 ) 로빈슨은 세 명의 비복음주의 학자 찰스 도드,

한 방식처럼 생각되는 접근법도 성경신학 연구에서 대단한 지위를 차지

오스카 쿨만, 가브리엘 히버트를 포함하는 여러 신학자에게 신세를 졌다

하지 못하고 있다.

고 밝힌다.7 ) 로빈슨은 1957년에 히버트가 브리즈번 성공회 교구의 신학

나는 이런 접근법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를 더욱 상세히 피력하고

교에서“성취자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어떻게 강연했는지를 서술한

그럼으로써 복음주의 성경신학의 대의를 진척시킬 때라고 생각한다. 내

다.8 ) 로빈슨은“이 강연에서 히버트는 성경 내용의 개요를 세 단계로 제

가 제안하는 접근법은 신학교에서 나를 가르치신 교수님 한 분이 성경

의했는데, 이 개요는 내가 무어 신학교의 교과목으로 개발하고 있었던

계시의 구조를 간략히 서술한 개요를 바탕으로 처음 윤곽을 잡게 되었음

것과 다소 유사했다.”라고 말한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쓴 작품에서, 히

을 부언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호주에서 손꼽히는 신약신학자였던 도

버트는 이 도식이 피티언 애덤스의 생각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밝힌다.9 )

널드 로빈슨이 나에게 구약신학을 가르쳤다.4 ) 성경의 다양한 부분 전체 가 어떻게 서로 조화롭게 들어맞는지를 묻는 어떤 학생의 질문에 대해, 로빈슨은 자신의 견해를 자세히 밝혔다. 이 질문에 대해 로빈슨이 말한 내용을 기억으로 더듬어 재구성하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2 ) According to Plan: The Unfolding Revelation of God in the Bible (Leicester: IVP, 1991;

Downers Grove, IL: IVP, 2002,『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성서유니온선교회 역간). 3 ) 주류에 속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비평학자들은 대체로 이런 접근법을 무시해 왔는데, 이 사실

은 전혀 놀랍지 않다. 4 ) 우리는 시드니에서 개최된 성경 연구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 회의에서 구약 성경의 특정 측

면에 대한 논문이 발표된 후에 로빈슨은 자신이 구약 성경에 계속 머물지 않아야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해 매우 골똘히 생각했다. 성경 전체를 사랑하는 성경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것은 신구약 성경 중 어느 한편을 전문적으로 집중하는 문제를 반영한 견해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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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5 ) 이것은 내가 50년이 지난 과거에 들은 말을 기억으로 더듬어서 재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로빈슨이 더욱 최근에 진술하고 발표한 여러 저서들의 내용과 실제로 일치한다. 비록 엄밀한 의미에서 인용문이라고 할 수 없지만,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부분을 인용문으로 표시했다. 로빈슨이 이 기본 개념을 자신의 말로 표현한 부분은 9장과 아 래의 18~19쪽에 인용되어 있다. 6 ) Donald W. B. Robinson,“Origins and Unresolved Tensions,”in R. J. Gibson (ed.), Interpreting God’ s Plan: Biblical Theology and the Pastor (Carlisle: Paternoster, 1997), pp. 1~17. 7 ) 가브리엘 히버트는 성공회 고교회파 수도사였는데, 한동안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에 소재 한 성 마이클 하우스 신학교에서 가르쳤다. 이 시기 동안 히버트는 로빈슨과 친분을 맺었는 데, 무어 신학교에 가끔씩 방문해 강연을 했다. 아마 이들을 모두 복음주의자로 말할 수는 없 겠지만, 이런 인물들은 고등한 성경관을 지니고 있었다. 8 ) A. G. Hebert, Christ the Fulfiller: Three Studies on the Biblical Types as They Are Presented in the Old and New Testaments (Sydney: Anglican Truth Society, 1957). 9 ) Robinson,“Origins,”p. 5.『성취자 그리스도』에서 히버트가 시도한 분석은 세 종류의 신앙 고백을 밝히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는 아브라함의 선택에 기초하는 이스라엘의 중요 이야기에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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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은 교과목을 개발하면서“염두에 둔 목적은 전반적인 신학 연구

(4) 출애굽/구속 그리고 땅/기업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에 대한 논의.

와 특별히 성경 연구에 착수하는 작업에서 [학생들을] 돕는 것”이라고

(5) 약속과 성취에 대한 선지자들의 관점.

설명한다.

10 )

로빈슨은“성경이 무엇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지를 찾아내

기 위해, 다양한 측면(신조 교리, 교회사, 기도서를 포함)에서 이뤄지는 기독교 연

(6)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신약 성경의 주장. (7) 성경 해석의 원리들.

구를 성경 고유의 관점으로 이뤄지는 성경 연구와 구별했다.”라고 부언 한다.1 1 ) 나는“성경 고유의 관점으로 이뤄지는 성경 연구”(강조는 필자의 것임)라는

이 어구가 로빈슨의 성경신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이라

고 생각한다. 그 관점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완전한 합의가 도출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로빈슨은 자신이 개발한 교과목에서 다음의 일곱 가지 주요 쟁점을 다 룬다.

여기서 로빈슨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하게 논평한다.

12 )

성경이 무엇에‘대한’것인지를 지금까지 이해한 바에 기초해서, 우 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성취되는 과정에서 세 가지 단계 를 사용하는 성경적‘모형론’ 을 밝혔는데, 이 세 가지 단계는 (1) 아브 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출애굽을 거쳐 약속의 땅에서 다윗 의 아들의 왕국에 이르러 성취되는 역사적 경험, (2) 이런 성취를 쇠퇴

(1) 성경의 특성: 범위와 구조.

와 몰락과 추방과 귀환의 시기 동안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여호와의

(2) 하나님의 백성. 성경의 언약들에 대한 연구를 포함.

날이라는 미래로 투영, (3)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3)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지니는 중요성. 이것은 아브라

죽음과 부활과 높아지심에서 함께하신 성령 안에서, 그리고 새 하늘과

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성취되는 성경 이야기를 다루며, 이 이

새 땅에서 재판장과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재림(강림)에서의 진정

야기는 다윗 및 솔로몬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한 성취다.

대한 바벨론 포로기 이전 신앙고백이다. 이 중요 이야기는 출애굽 사건으로 시작해 예루살 렘 성소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기록을 남긴 선지자들의 작품에 기초한 포로기 이후 신앙고 백인데, 이 신앙고백은 첫 번째 신앙고백을 재차 단언하면서도 하나님이“선택하신 자기 백 성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첫 번째 신앙고백에 덧붙인다(앞의 책, p. 11). 히 버트는 여기서 더욱 위대한 제2출애굽 사건과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을 언급한다. 세 번째 는 기독교 신앙고백인데, 이 신앙고백은 처음 두 신앙고백을 재차 단언하고 두 신앙고백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명확히 한다. 앞의 책, pp. 9~13를 보라. 자신의 작품 The Authority of the Old Testament (London: Faber and Faber, 1947)의 pp. 51~52에서, 히버 트는“이런 삼중 도식의 개념이 Church Quarterly Review, No. cclxix (Oct. 1942), p. 3 이 하에 게재된 피티언 애덤스의 견해에서 착상한 것”이라는 각주와 함께 이와 똑같은 논제를 피력한다. 10 ) Robinson,“Origins,”p. 6. 11 ) 앞의 책, p. 7. 12 ) 앞의 책, pp. 7~9.

18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13 )

50여 년 전에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이 같은‘큰 그림’ 과 모형론의 역할에 대한 깨달음이었는데, 이런 깨달음은 그때부터 지금까 지 성경신학에 대한 내 생각에서 중심을 차지해 왔다. 내가 이 책에서 검 토하고 변호하려는 것이 바로 이 도식이다. 나는 이 기본 도식을 보완하 고 개선하는 나의 작업이 가장자리를 다듬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다. 기본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13 ) 앞의 책, p. 9.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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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은 교과목을 개발하면서“염두에 둔 목적은 전반적인 신학 연구

(4) 출애굽/구속 그리고 땅/기업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에 대한 논의.

와 특별히 성경 연구에 착수하는 작업에서 [학생들을] 돕는 것”이라고

(5) 약속과 성취에 대한 선지자들의 관점.

설명한다.

10 )

로빈슨은“성경이 무엇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지를 찾아내

기 위해, 다양한 측면(신조 교리, 교회사, 기도서를 포함)에서 이뤄지는 기독교 연

(6)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신약 성경의 주장. (7) 성경 해석의 원리들.

구를 성경 고유의 관점으로 이뤄지는 성경 연구와 구별했다.”라고 부언 한다.1 1 ) 나는“성경 고유의 관점으로 이뤄지는 성경 연구”(강조는 필자의 것임)라는

이 어구가 로빈슨의 성경신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관건이라

고 생각한다. 그 관점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완전한 합의가 도출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로빈슨은 자신이 개발한 교과목에서 다음의 일곱 가지 주요 쟁점을 다 룬다.

여기서 로빈슨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하게 논평한다.

12 )

성경이 무엇에‘대한’것인지를 지금까지 이해한 바에 기초해서, 우 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성취되는 과정에서 세 가지 단계 를 사용하는 성경적‘모형론’ 을 밝혔는데, 이 세 가지 단계는 (1) 아브 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출애굽을 거쳐 약속의 땅에서 다윗 의 아들의 왕국에 이르러 성취되는 역사적 경험, (2) 이런 성취를 쇠퇴

(1) 성경의 특성: 범위와 구조.

와 몰락과 추방과 귀환의 시기 동안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여호와의

(2) 하나님의 백성. 성경의 언약들에 대한 연구를 포함.

날이라는 미래로 투영, (3)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3)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지니는 중요성. 이것은 아브라

죽음과 부활과 높아지심에서 함께하신 성령 안에서, 그리고 새 하늘과

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성취되는 성경 이야기를 다루며, 이 이

새 땅에서 재판장과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재림(강림)에서의 진정

야기는 다윗 및 솔로몬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한 성취다.

대한 바벨론 포로기 이전 신앙고백이다. 이 중요 이야기는 출애굽 사건으로 시작해 예루살 렘 성소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기록을 남긴 선지자들의 작품에 기초한 포로기 이후 신앙고 백인데, 이 신앙고백은 첫 번째 신앙고백을 재차 단언하면서도 하나님이“선택하신 자기 백 성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첫 번째 신앙고백에 덧붙인다(앞의 책, p. 11). 히 버트는 여기서 더욱 위대한 제2출애굽 사건과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을 언급한다. 세 번째 는 기독교 신앙고백인데, 이 신앙고백은 처음 두 신앙고백을 재차 단언하고 두 신앙고백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명확히 한다. 앞의 책, pp. 9~13를 보라. 자신의 작품 The Authority of the Old Testament (London: Faber and Faber, 1947)의 pp. 51~52에서, 히버 트는“이런 삼중 도식의 개념이 Church Quarterly Review, No. cclxix (Oct. 1942), p. 3 이 하에 게재된 피티언 애덤스의 견해에서 착상한 것”이라는 각주와 함께 이와 똑같은 논제를 피력한다. 10 ) Robinson,“Origins,”p. 6. 11 ) 앞의 책, p. 7. 12 ) 앞의 책, pp. 7~9.

18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13 )

50여 년 전에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이 같은‘큰 그림’ 과 모형론의 역할에 대한 깨달음이었는데, 이런 깨달음은 그때부터 지금까 지 성경신학에 대한 내 생각에서 중심을 차지해 왔다. 내가 이 책에서 검 토하고 변호하려는 것이 바로 이 도식이다. 나는 이 기본 도식을 보완하 고 개선하는 나의 작업이 가장자리를 다듬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다. 기본 구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13 ) 앞의 책, p. 9.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19


이런 설명을 기술하면서 내가 염두에 두는 목적은 성경신학을 연구하

있는 방식으로 전체 구조를 식별할 수 있을까? 도널드 로빈슨의 간단한

는 위와 같은 접근법에 정당한 이론적 근거를 확립하는 것이다. 나는 복

설명을 접하고 내가 발전시킨 이 도식은 대단히 인상적으로 나의 마음을

음주의 진영에서도 성경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유용한지에 대해 완전

사로잡았다. 이 도식은 내가 성경을 이해하고 읽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히 확신하지 못하는 성경학자와 신학자가 더러 있음을 알고 있다. 성경

바꾸었다. 이 도식을 처음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미 이 도식

신학을 따르고 적용하는 방식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성경학자와 신학자

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수정 보완하고 이 도식의 효력이 성경에 반하는

가 있는가 하면, 성경신학의 방식이 기초로 삼는 기본 가정들 자체를 의

지를 검사하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심하는 성경학자와 신학자도 있다. 그러한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나는 시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생각이나 개념

하며 성경신학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시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단순성

한다. 하지만 나는 성경신학이 절름발이 오리라는 견해를 결코 수긍하지

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법한 세부 항목들을 회피하는 위험이 여기에

않는다. 오히려 나는 성경신학이 복음주의 해석학의 중심이며, 강해 설

잠재해 있음을 나도 잘 안다. 그렇더라도 내가 성경 계시를 설명하기 위

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성경신학이 효과적인

해 그림들을 그리면서 성경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은 바로 성경 계시를

목회 사역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1 4 )

이처럼 세 단계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나는 일단 기본 형태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그 그림들을 교육 도구로 활

큰 그림과 관련된 큰 질문들

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성경 메시지의 전체상을 소개하기 위 해, 내가 구상한 그림들의 기본 형태를 다양한 상황에서 헤아릴 수 없을

성경의 전반적 메시지를 하나의‘큰 그림’ 으로 요약하려는 시도는 우

만큼 자주 사용해 왔다. 그림을 활용하는 방식을 정당화하는 가장 중요

리가 답변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질문들을 얼마간 제기한다. 무엇을 근

한 이유를 꼽으라면, 내 생각에는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는다는 전

거로 그렇게 하던 간에 만일 우리가 성경의 통일성을 가정한다면, 다음

제 아래서 그림이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것은 분명하다. 과연 우리는 하나의 도식을 제안

사람이 다양한 장르의 성경 문헌을 모두 결합해서 일관성 있는 통일체로

할 때 이런 통일성을 왜곡하지 않고 도식으로 표시할 수 있을까? 이를테

이해하는 어떤 방식을 손에 넣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거의 감당할 수

면 구제불능의 환원주의에 빠지는 일 없이 하나의 도식으로 표시될 수

없는 경험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위험이 존재한다. 그림을 활용하 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전연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을 항상 면

14 ) 이 주제에 대해서는 Graeme Goldsworthy,“ The Pastoral Application of Biblical

Theology,”in David Peterson and John Pryor, eds., In the Fullness of Time: Biblical Studies in Honour of Archbishop Donald Robinson ( Homebush West, NSW: Lancer, s 1992), pp. 301~317;“The Pastor as Biblical Theologian,”in Gibson, Interpreting God’ Plan, pp. 110~129;“Biblical Theology as the Heartbeat of Effective Ministry,”in Scott J. Hafemann, ed., Biblical Theology: Retrospect and Prospect (Downers Grove, IL: IVP; Leicester: Apollos, 2002), pp. 280~286를 보라.

20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모든 성경이 단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서로 어떻게 조화롭게 들어맞는지를 보여 주는 이런 방식에 열정적으로 반응 하는 사람이 많음을 안다. 물론 나는 사람들이 특정 도식에 열광한다고 해서 그 도식이 꼭 정확하다거나 옹호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1


이런 설명을 기술하면서 내가 염두에 두는 목적은 성경신학을 연구하

있는 방식으로 전체 구조를 식별할 수 있을까? 도널드 로빈슨의 간단한

는 위와 같은 접근법에 정당한 이론적 근거를 확립하는 것이다. 나는 복

설명을 접하고 내가 발전시킨 이 도식은 대단히 인상적으로 나의 마음을

음주의 진영에서도 성경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유용한지에 대해 완전

사로잡았다. 이 도식은 내가 성경을 이해하고 읽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히 확신하지 못하는 성경학자와 신학자가 더러 있음을 알고 있다. 성경

바꾸었다. 이 도식을 처음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미 이 도식

신학을 따르고 적용하는 방식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성경학자와 신학자

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수정 보완하고 이 도식의 효력이 성경에 반하는

가 있는가 하면, 성경신학의 방식이 기초로 삼는 기본 가정들 자체를 의

지를 검사하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심하는 성경학자와 신학자도 있다. 그러한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나는 시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생각이나 개념

하며 성경신학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시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단순성

한다. 하지만 나는 성경신학이 절름발이 오리라는 견해를 결코 수긍하지

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법한 세부 항목들을 회피하는 위험이 여기에

않는다. 오히려 나는 성경신학이 복음주의 해석학의 중심이며, 강해 설

잠재해 있음을 나도 잘 안다. 그렇더라도 내가 성경 계시를 설명하기 위

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성경신학이 효과적인

해 그림들을 그리면서 성경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은 바로 성경 계시를

목회 사역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1 4 )

이처럼 세 단계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나는 일단 기본 형태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그 그림들을 교육 도구로 활

큰 그림과 관련된 큰 질문들

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성경 메시지의 전체상을 소개하기 위 해, 내가 구상한 그림들의 기본 형태를 다양한 상황에서 헤아릴 수 없을

성경의 전반적 메시지를 하나의‘큰 그림’ 으로 요약하려는 시도는 우

만큼 자주 사용해 왔다. 그림을 활용하는 방식을 정당화하는 가장 중요

리가 답변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질문들을 얼마간 제기한다. 무엇을 근

한 이유를 꼽으라면, 내 생각에는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는다는 전

거로 그렇게 하던 간에 만일 우리가 성경의 통일성을 가정한다면, 다음

제 아래서 그림이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것은 분명하다. 과연 우리는 하나의 도식을 제안

사람이 다양한 장르의 성경 문헌을 모두 결합해서 일관성 있는 통일체로

할 때 이런 통일성을 왜곡하지 않고 도식으로 표시할 수 있을까? 이를테

이해하는 어떤 방식을 손에 넣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거의 감당할 수

면 구제불능의 환원주의에 빠지는 일 없이 하나의 도식으로 표시될 수

없는 경험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위험이 존재한다. 그림을 활용하 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전연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을 항상 면

14 ) 이 주제에 대해서는 Graeme Goldsworthy,“ The Pastoral Application of Biblical

Theology,”in David Peterson and John Pryor, eds., In the Fullness of Time: Biblical Studies in Honour of Archbishop Donald Robinson ( Homebush West, NSW: Lancer, s 1992), pp. 301~317;“The Pastor as Biblical Theologian,”in Gibson, Interpreting God’ Plan, pp. 110~129;“Biblical Theology as the Heartbeat of Effective Ministry,”in Scott J. Hafemann, ed., Biblical Theology: Retrospect and Prospect (Downers Grove, IL: IVP; Leicester: Apollos, 2002), pp. 280~286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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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모든 성경이 단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서로 어떻게 조화롭게 들어맞는지를 보여 주는 이런 방식에 열정적으로 반응 하는 사람이 많음을 안다. 물론 나는 사람들이 특정 도식에 열광한다고 해서 그 도식이 꼭 정확하다거나 옹호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1


알고 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성경을 읽어 온 사람들이 어째서 예전에

성전을 건축하는 시기까지의 역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는 이와 같은 접근법을 소개받지 못했는지를 크게 의아해하기 시작할

의 복에 대한 계시가 전반적으로 진전되거나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때, 나는 이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서 내가 제안하는 접근법의 효용성을

만, 솔로몬이 배교한 때 (왕상 11장)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추방

더욱 면밀히 조사한다. 도표를 사용해서 큰 그림을 제시하는 접근법이

되는 시기까지의 역사는 언약의 저주가 전반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 준

환원주의의 성격을 갖는지를 점검하는 참된 시금석은 이 접근법이 본문

다. 심지어 바벨론으로 추방되었다가 귀환한 사건도 기대했던 참된 복을

을 자세히 읽는 데서 파생되는 상세한 분석에도 견딜 수 있느냐 그렇지

가져오지 못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서 비틀거리지만 충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된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만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구약 성경은 약속과 복에 대한 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로빈슨-히버트 도식

약속과 복은 약속의 땅의 중심인 다윗의 예루살렘 성에서, 다윗의 상속 자인 솔로몬에게서, 그리고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이처럼 내가 이해해서 내 것으로 발전시킨 로빈슨의 도식은 어떤 형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솔로

를 취할까? 로빈슨과 히버트는 처음에 각자의 견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

몬이 배교한 후에는 구약 성경이 주로 심판을 보여 주는 역사인데, 이런

켰고 그 후에 비로소 서로 의견을 주고받은 것 같다. 히버트는 또한 피티

심판은 장차 여호와의 날이 임하고 최종적인 복과 심판을 가져올 것이라

15 )

는 선지자들의 약속으로 덧씌워져 있다. 특히 4백 년에 걸친 신구약 중

빈슨과 히버트는 모두 계시의 삼중 구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모형론 개

간기에서 이스라엘의 국운을 쇠락시키는 심판의 시나리오가 고착화되

언 애덤스에게서 이 삼중 구조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고 시인한다. 16 )

이 두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나는 창조에서 새

는 상황을 감안하면, 성경 이야기는 실패로 끝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

창조로 이어지는 성경의 기본 연표로 시작하고 계시의 세 가지 주요 단

른다. 성경 이야기는 하나님의 원래 약속에 대한 소망을 회복하는 예수

계를 거기에 표시하는데, 이 세 가지 단계는 창조, 특히 아브라함에서 솔

님과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사도들의 선포를 다룬다.

념을 계속 발전시켰다.

로몬까지 이어지는 성경 역사와 예언을 기록으로 남긴 선지자들의 종말

아래의 그림 1은 성경 계시의 가장 기본적인 개요를 나타낸다. 성경

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의 성취다. 선지자들의 사역과 특히 종말에

이야기는 창조로 시작하고 새 창조로 종결된다. 창조와 새 창조 사이의

대한 선지자들의 진술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발생한다. 특별히 이런

어느 지점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이 위치한다. 만일 다른 무언가를

선지자들의 사역은 솔로몬 사후에 반역과 불순종 때문에 이스라엘의 국

의미하지 않는다면, 이 진술은 계시를 역사 속에 한정시키는 필수 요소

운이 퇴조하는 것과 동시에 이뤄진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솔로몬이

들과 계시가 주어지는 이야기의 통일성을 표현한다. 이 그림이 그 자체 로는 성경신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지표에 불과하다. 그런 다음에 우

15 ) 위의 각주 9를 보라. 16 ) Hebert, Christ the Fulfiller, pp. 13~17. 여기서 히버트는 하나의 예로 출애굽 사건의 모형론

을 개설한다.

22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리는 이 계시의 구조로 넘어가야 한다. 그림 2에 설명된 계시의 기본 구조는 각 단계를 다른 단계들과 연관된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3


알고 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성경을 읽어 온 사람들이 어째서 예전에

성전을 건축하는 시기까지의 역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는 이와 같은 접근법을 소개받지 못했는지를 크게 의아해하기 시작할

의 복에 대한 계시가 전반적으로 진전되거나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 주지

때, 나는 이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서 내가 제안하는 접근법의 효용성을

만, 솔로몬이 배교한 때 (왕상 11장)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추방

더욱 면밀히 조사한다. 도표를 사용해서 큰 그림을 제시하는 접근법이

되는 시기까지의 역사는 언약의 저주가 전반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 준

환원주의의 성격을 갖는지를 점검하는 참된 시금석은 이 접근법이 본문

다. 심지어 바벨론으로 추방되었다가 귀환한 사건도 기대했던 참된 복을

을 자세히 읽는 데서 파생되는 상세한 분석에도 견딜 수 있느냐 그렇지

가져오지 못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서 비틀거리지만 충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된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만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구약 성경은 약속과 복에 대한 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로빈슨-히버트 도식

약속과 복은 약속의 땅의 중심인 다윗의 예루살렘 성에서, 다윗의 상속 자인 솔로몬에게서, 그리고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이처럼 내가 이해해서 내 것으로 발전시킨 로빈슨의 도식은 어떤 형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솔로

를 취할까? 로빈슨과 히버트는 처음에 각자의 견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

몬이 배교한 후에는 구약 성경이 주로 심판을 보여 주는 역사인데, 이런

켰고 그 후에 비로소 서로 의견을 주고받은 것 같다. 히버트는 또한 피티

심판은 장차 여호와의 날이 임하고 최종적인 복과 심판을 가져올 것이라

15 )

는 선지자들의 약속으로 덧씌워져 있다. 특히 4백 년에 걸친 신구약 중

빈슨과 히버트는 모두 계시의 삼중 구조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모형론 개

간기에서 이스라엘의 국운을 쇠락시키는 심판의 시나리오가 고착화되

언 애덤스에게서 이 삼중 구조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고 시인한다. 16 )

이 두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나는 창조에서 새

는 상황을 감안하면, 성경 이야기는 실패로 끝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

창조로 이어지는 성경의 기본 연표로 시작하고 계시의 세 가지 주요 단

른다. 성경 이야기는 하나님의 원래 약속에 대한 소망을 회복하는 예수

계를 거기에 표시하는데, 이 세 가지 단계는 창조, 특히 아브라함에서 솔

님과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사도들의 선포를 다룬다.

념을 계속 발전시켰다.

로몬까지 이어지는 성경 역사와 예언을 기록으로 남긴 선지자들의 종말

아래의 그림 1은 성경 계시의 가장 기본적인 개요를 나타낸다. 성경

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의 성취다. 선지자들의 사역과 특히 종말에

이야기는 창조로 시작하고 새 창조로 종결된다. 창조와 새 창조 사이의

대한 선지자들의 진술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발생한다. 특별히 이런

어느 지점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이 위치한다. 만일 다른 무언가를

선지자들의 사역은 솔로몬 사후에 반역과 불순종 때문에 이스라엘의 국

의미하지 않는다면, 이 진술은 계시를 역사 속에 한정시키는 필수 요소

운이 퇴조하는 것과 동시에 이뤄진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솔로몬이

들과 계시가 주어지는 이야기의 통일성을 표현한다. 이 그림이 그 자체 로는 성경신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지표에 불과하다. 그런 다음에 우

15 ) 위의 각주 9를 보라. 16 ) Hebert, Christ the Fulfiller, pp. 13~17. 여기서 히버트는 하나의 예로 출애굽 사건의 모형론

을 개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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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리는 이 계시의 구조로 넘어가야 한다. 그림 2에 설명된 계시의 기본 구조는 각 단계를 다른 단계들과 연관된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3


것으로 나타내는 부가적 이점이 있다. 각 단계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표 1. 계시의 삼단 구조에 포함된 내용

순간들을 요약해 보면, 둘째 단계(선지자들의 종말론)가 첫째 단계를 재현하

창조에서 솔로몬까지의

고 셋째 단계(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첫째 단계와 둘째 단계를 모두 재현함 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각 단계는 계시를 더 높은 수준의 실

성경 역사

선지자들의 종말론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

18 )

창조

새 창조

새 창조이신 예수님

아브라함 언약

새 언약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재로 옮긴다는 점에서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 안

새 언약

에서 이런 구조들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선지자들의 종말론적 관점에 자

노예 상태와 출애굽 사건을

새로운 노예 상태와

리를 내어 주며, 선지자들의 종말론적 관점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통한 구속

새로운 출애굽 사건을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신

통한 구속

예수님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

처소로서의 성막과 성전

처소로서의 새 성전

거하는 처소임: 우리와 함께

궁극적 실재에 자리를 내어 준다. 표 1에 나타나듯이 각 단계에서 구원 계시의 중요 순간들을 함께 나열하면, 재현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를 파 악할 수 있다. 다른 측면들도 덧붙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성경적 양식

‘장막을 치고 거하시는 ’ 말씀

의 일반형을 보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땅의 소유

새로운 땅의 소유

예수님은 그 땅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성취하심

그림 1. 성경의 기본 연표 ( 개략적인 것임 ) 창조

새 창조 예수 그리스도

그림 2. 계시의 구조

유월절 어린 양이며

다윗의 왕권

다윗 왕가의 새로운 왕

새 다윗이신 예수님

예루살렘(시온)

새 예루살렘

새 성전, 새 예루살렘이신

성전

새 성전

예수님

17 )

창세기 1~11장이 맡은 역할

신약 성경

열왕기상 11장에서 말라기까지

창세기 1장에서 열왕기상 10장까지

3

장래에 영화롭게 된 이스라엘의 형태로 선 지자들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 나라

2

1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구약 성경 역사에 계시 된 하나님 나라

2a

삼단 도식이 창세기 12장 이후에 전개되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 창세기 1~11장을 방치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 신학의 대단히 많은 측면이 창세기 1~11장에 토대를 둔다는 점을 감안 하면, 그렇게 이해하는 태도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17 ) 이 그림은 Goldsworthy, Goldsworthy Trilogy 에서 Gospel and Kingdom (p. 124)에 수록

된 그림과 유사하다. 18 ) 창조와 타락은 아브라함의 역사와 언약에 대한 전제다. 창 1~11장의 역할에 대한 아래의 논

창조 아브라함

24

다윗 선지자들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예수님

새 창조

의를 보라.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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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으로 나타내는 부가적 이점이 있다. 각 단계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표 1. 계시의 삼단 구조에 포함된 내용

순간들을 요약해 보면, 둘째 단계(선지자들의 종말론)가 첫째 단계를 재현하

창조에서 솔로몬까지의

고 셋째 단계(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첫째 단계와 둘째 단계를 모두 재현함 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각 단계는 계시를 더 높은 수준의 실

성경 역사

선지자들의 종말론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

18 )

창조

새 창조

새 창조이신 예수님

아브라함 언약

새 언약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재로 옮긴다는 점에서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 안

새 언약

에서 이런 구조들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선지자들의 종말론적 관점에 자

노예 상태와 출애굽 사건을

새로운 노예 상태와

리를 내어 주며, 선지자들의 종말론적 관점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통한 구속

새로운 출애굽 사건을

새로운 출애굽 사건이신

통한 구속

예수님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

처소로서의 성막과 성전

처소로서의 새 성전

거하는 처소임: 우리와 함께

궁극적 실재에 자리를 내어 준다. 표 1에 나타나듯이 각 단계에서 구원 계시의 중요 순간들을 함께 나열하면, 재현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를 파 악할 수 있다. 다른 측면들도 덧붙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성경적 양식

‘장막을 치고 거하시는 ’ 말씀

의 일반형을 보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땅의 소유

새로운 땅의 소유

예수님은 그 땅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성취하심

그림 1. 성경의 기본 연표 ( 개략적인 것임 ) 창조

새 창조 예수 그리스도

그림 2. 계시의 구조

유월절 어린 양이며

다윗의 왕권

다윗 왕가의 새로운 왕

새 다윗이신 예수님

예루살렘(시온)

새 예루살렘

새 성전, 새 예루살렘이신

성전

새 성전

예수님

17 )

창세기 1~11장이 맡은 역할

신약 성경

열왕기상 11장에서 말라기까지

창세기 1장에서 열왕기상 10장까지

3

장래에 영화롭게 된 이스라엘의 형태로 선 지자들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 나라

2

1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구약 성경 역사에 계시 된 하나님 나라

2a

삼단 도식이 창세기 12장 이후에 전개되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 창세기 1~11장을 방치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 신학의 대단히 많은 측면이 창세기 1~11장에 토대를 둔다는 점을 감안 하면, 그렇게 이해하는 태도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17 ) 이 그림은 Goldsworthy, Goldsworthy Trilogy 에서 Gospel and Kingdom (p. 124)에 수록

된 그림과 유사하다. 18 ) 창조와 타락은 아브라함의 역사와 언약에 대한 전제다. 창 1~11장의 역할에 대한 아래의 논

창조 아브라함

24

다윗 선지자들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예수님

새 창조

의를 보라.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5


함축된 모든 신학이 심지어 창세기 1~11장에 토대를 둔다고 제안해도

주의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 그러한 도전과 대면하는 일을 피하는 한 가

무방할 것이다. 창조, 타락, 심판, 악의 진전, 하나님의 은혜의 현시, 선

지 방법은 각 부분이나 책이나 언어 자료를 다른 부분이나 책이나 언어

택, 언약, 주권, 구원 역사 등 모든 것이 창세기 1~11장에서 기원한다. 나

자료들과 분리해서 다루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을 하나의 성경

는 구원 역사의 개념을 검토하는 부분에서 이 점을 더 자세히 다룰 것이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이것은 성경신학에서 수행된

다. 지금으로서는 창세기 1~11장이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단편적 연구들을 모아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시는 은혜 언약에 대한 이론적 근거와 배경을

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사람들은 성경의 다양성, 특별히 성경 메

제공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창세기 12장 1~3절에서 하나님

시지의 다양성을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게 의식한 나머지 사실상 그 어떤

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조건들은 창세기 1~11장에 기록된 이야기

일체감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환원주의가 본질상 꼭 나쁜 것은 아니

와 떼어서 생각하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한다. 환원주의는 기본 구조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창세기 1~11장에는 의도적이면서도 중요한 구조 배치가 나타나는데,

않는데, 이런 기본 구조는 대단히 다양한 문학 장르와 신학 주제들로 덧

이런 구조 배치는 아담으로 시작해 셋과 노아와 셈을 거쳐 아브라함으로

씌워져 있다. 이런 지적들을 바탕으로 볼 때, 내가 이해하는 성경신학은

이어지는 하나의 혈통을 선택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고 있

성경의 다양성 속에서 성경 메시지의 통일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진행

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19 )

이 혈통은 타락한 인간의 불경건함을 나타내

되는 성경 연구임에 분명할 것이다. 이런 연구에서는 성경을 관류하는

는‘혈통’ , 곧 가인으로 시작해 라멕을 거쳐 노아의 홍수로 전멸되는 인

역사 연표의 존재가 인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구상이 이야기 부

류로 이어지는 혈통과 대비된다. 불경건한 두 번째 혈통은 노아의 아들

분에서는 명시적으로 나타나고 비서사적 자료에서는 함축적이라고 이

함에게서 생겨나는데, 바벨탑을 쌓아 올린 세대에서 중요한 정점에 도달

야기할 수 있다. 복음주의 성경신학을 추구하는 작업은 성경 문헌과 성

한다. 경건한 혈통에 속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타락한 상태에 있다는 것

경의 역사적 구상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 및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은 늘 분명한 사실이며 이런 사실 때문에 모형론이 힘을 얻는데, 모형은

전달하기 위한 매체를 제공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가 등장할 때까지 확실한 실재가 될 수 없는 구원의 그림자다.

엑스선 사진이 몸의 구조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것과 거의 같은 방 식으로 환원주의가 타당함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환원주의에 대한 문제

상세한 부분들이 특별한 답변 없이도 꼭 들어맞을 경우에만 적합할 것이 다. 가령 구체적 사항들을 언급하지 않고 성경 전체 내용을 단지 약속(구

이 접근법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대처해야 하는 명백한 문제들 이 있다. 그중에서 특히 환원주의 혹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은 각별히

약 성경)과

성취(신약 성경)로만 도식화하는 경우처럼 환원주의가 상세한 부

분들에 대한 문제를 조금도 유발하지 않을 만큼 규모가 매우 크다면, 환 원주의는 최소한도의 가치만 지닐 것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도식은 거기

19 ) Goldsworthy Trilogy, 6장 pp. 64~66에서 Goldsworthy, Gospel and Kingdom 을 보라.

26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에 무엇이 있는지를 설명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상술되어야 하며, 성경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7


함축된 모든 신학이 심지어 창세기 1~11장에 토대를 둔다고 제안해도

주의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 그러한 도전과 대면하는 일을 피하는 한 가

무방할 것이다. 창조, 타락, 심판, 악의 진전, 하나님의 은혜의 현시, 선

지 방법은 각 부분이나 책이나 언어 자료를 다른 부분이나 책이나 언어

택, 언약, 주권, 구원 역사 등 모든 것이 창세기 1~11장에서 기원한다. 나

자료들과 분리해서 다루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을 하나의 성경

는 구원 역사의 개념을 검토하는 부분에서 이 점을 더 자세히 다룰 것이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이것은 성경신학에서 수행된

다. 지금으로서는 창세기 1~11장이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단편적 연구들을 모아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시는 은혜 언약에 대한 이론적 근거와 배경을

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사람들은 성경의 다양성, 특별히 성경 메

제공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창세기 12장 1~3절에서 하나님

시지의 다양성을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게 의식한 나머지 사실상 그 어떤

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조건들은 창세기 1~11장에 기록된 이야기

일체감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환원주의가 본질상 꼭 나쁜 것은 아니

와 떼어서 생각하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한다. 환원주의는 기본 구조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에 지나지

창세기 1~11장에는 의도적이면서도 중요한 구조 배치가 나타나는데,

않는데, 이런 기본 구조는 대단히 다양한 문학 장르와 신학 주제들로 덧

이런 구조 배치는 아담으로 시작해 셋과 노아와 셈을 거쳐 아브라함으로

씌워져 있다. 이런 지적들을 바탕으로 볼 때, 내가 이해하는 성경신학은

이어지는 하나의 혈통을 선택하는 과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고 있

성경의 다양성 속에서 성경 메시지의 통일성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진행

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19 )

이 혈통은 타락한 인간의 불경건함을 나타내

되는 성경 연구임에 분명할 것이다. 이런 연구에서는 성경을 관류하는

는‘혈통’ , 곧 가인으로 시작해 라멕을 거쳐 노아의 홍수로 전멸되는 인

역사 연표의 존재가 인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구상이 이야기 부

류로 이어지는 혈통과 대비된다. 불경건한 두 번째 혈통은 노아의 아들

분에서는 명시적으로 나타나고 비서사적 자료에서는 함축적이라고 이

함에게서 생겨나는데, 바벨탑을 쌓아 올린 세대에서 중요한 정점에 도달

야기할 수 있다. 복음주의 성경신학을 추구하는 작업은 성경 문헌과 성

한다. 경건한 혈통에 속한 사람들이 그럼에도 타락한 상태에 있다는 것

경의 역사적 구상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 및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은 늘 분명한 사실이며 이런 사실 때문에 모형론이 힘을 얻는데, 모형은

전달하기 위한 매체를 제공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가 등장할 때까지 확실한 실재가 될 수 없는 구원의 그림자다.

엑스선 사진이 몸의 구조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것과 거의 같은 방 식으로 환원주의가 타당함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환원주의에 대한 문제

상세한 부분들이 특별한 답변 없이도 꼭 들어맞을 경우에만 적합할 것이 다. 가령 구체적 사항들을 언급하지 않고 성경 전체 내용을 단지 약속(구

이 접근법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대처해야 하는 명백한 문제들 이 있다. 그중에서 특히 환원주의 혹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비판은 각별히

약 성경)과

성취(신약 성경)로만 도식화하는 경우처럼 환원주의가 상세한 부

분들에 대한 문제를 조금도 유발하지 않을 만큼 규모가 매우 크다면, 환 원주의는 최소한도의 가치만 지닐 것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도식은 거기

19 ) Goldsworthy Trilogy, 6장 pp. 64~66에서 Goldsworthy, Gospel and Kingdom 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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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에 무엇이 있는지를 설명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상술되어야 하며, 성경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7


가르치고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일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야 한

복음주의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복음주의자도 성경의 다양한 부분들이

다. 예를 들어 구원 역사를 설명하는 특정 도식이 구약 성경에 포함된 지

서로 조화롭게 들어맞는 방식을 소개받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내려

혜 문학을 수용할 수 없다면, 구약 성경 혹은 구약 성경과 지혜 문학을

고 시도한 적은 결코 없다. 이렇게 되면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이 오늘

이해하는 데 무언가 미흡한 점이 있다.2 0 ) 지혜 문학에 문제가 있다고 추

날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찾는 일이 되는데, 이것은 본문

정하는 사람들은 지혜서에 구원 역사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을 지적한

이 문맥 속에서 실제로 말하는 내용이 전혀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2 2 ) 이

다.2 1 ) 이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지혜 문학의

런 통일성은 본문 안에 존재하는 객관적 통일성이라기보다 오히려 개별

작품에는 뚜렷한 구원 역사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구원 역사에는 지혜

신자 안에 존재하는 실존적 경험과 더 큰 관계가 있다.2 3 )

문학의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열왕기상 3~10장은

성경신학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회의론은 비단 성경의 통일성을 주의

중요한 지혜 구절인데, 여기서는 솔로몬이 지혜를 얻는 사건과 솔로몬의

해서 다루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통치 및 구원 역사의 정점인 성전에서 이 지혜가 발휘되는 사건을 이야

이전에 가르친 사람들 중에 지금은 목회자가 된 학생이 있는데, 한번은

기한다.

나에게 연락이 와서 사무엘상 17장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을 주제로 자신이 전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는 성경신학의 적절성이나 유용성과 관련해서

한 설교에 대해 조언과 논평을 부탁했다. 이 학생은 본문의 사건을 그리

어느 정도 상반된 감정이 존재한다. 성경신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타당성

스도에 대한 모형론으로 다룸으로써 성경신학의 관점으로 설교에 접근

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한적으로 지지

하고자 했다. 이후에 이 설교와 관련해서 어떤 나이 지긋한 은퇴 목회자

하면서도 성경신학에 내포된 위험성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가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이 목회자는 복음주의자가 분명했으나 모형

성경신학이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반응일 뿐이라고

론적 접근법과 전반적인 성경신학에 대해 다소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24 )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일관성 있는 성경신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설교에서 다윗이 무기력하고 두려움에 사

학의 부재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복

로잡힌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한 사건이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예표하

음주의자 중에는 성경을 다루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을 배운 적은 있어도

는 모형으로 강조되는지, 혹은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기독교 신앙

포괄적인 성경신학을 하나의 대안으로 접한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의 모범으로 강조되는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흑백논리의

성경이 하나의 통일체며 성경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인정하는 20 ) 지혜 문학을 구원 역사의 양식에 포함시키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성경신학자가 많지만, 나는

구원 역사와 지혜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Goldsworthy s Wisdom Literature in the Christian Life 와 The Trilogy 에서 Gospel and Wisdom: Israel’ Tree of Life: Reading Proverbs Today (Sydney: Anglican Information Office, 1993; rev. ed., Sydney: Aquila, 2011)를 보라. 21 ) 이런 연유로 G. Ernest Wright, God Who Acts: Biblical Theology as Recital, SBT 8 (London: SCM, 1952), pp. 102~105.

28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22 ) 조지 애터스는 이 접근법을“성경과의 자기애적인 접촉”으로 적절하게 묘사한다. George

Athas,“Reflections on Scripture Using the Distinction Between Jews and Gentiles as an Exegetical Key,”in Peter G. Bolt and Mark D. Thompson, eds., Donald Robinson: Selected Works. Appreciation (Camperdown, NSW: Australian Church Record; Newtown, NSW: Moore College, 2008), p. 125를 보라. 23 ) 독자 반응 해석학은 해석학 이론으로 정형화되기 훨씬 전부터 경건주의자와 다른 복음주의자 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24 ) 이 목회자는 또한 성경신학이 최근에 무어 신학교가 배출한 모든 것 중에 화근이라고 생각한 다는 견해를 밝혔다.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29


가르치고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일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야 한

복음주의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복음주의자도 성경의 다양한 부분들이

다. 예를 들어 구원 역사를 설명하는 특정 도식이 구약 성경에 포함된 지

서로 조화롭게 들어맞는 방식을 소개받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내려

혜 문학을 수용할 수 없다면, 구약 성경 혹은 구약 성경과 지혜 문학을

고 시도한 적은 결코 없다. 이렇게 되면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이 오늘

이해하는 데 무언가 미흡한 점이 있다.2 0 ) 지혜 문학에 문제가 있다고 추

날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찾는 일이 되는데, 이것은 본문

정하는 사람들은 지혜서에 구원 역사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을 지적한

이 문맥 속에서 실제로 말하는 내용이 전혀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2 2 ) 이

다.2 1 ) 이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지혜 문학의

런 통일성은 본문 안에 존재하는 객관적 통일성이라기보다 오히려 개별

작품에는 뚜렷한 구원 역사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구원 역사에는 지혜

신자 안에 존재하는 실존적 경험과 더 큰 관계가 있다.2 3 )

문학의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를테면 열왕기상 3~10장은

성경신학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회의론은 비단 성경의 통일성을 주의

중요한 지혜 구절인데, 여기서는 솔로몬이 지혜를 얻는 사건과 솔로몬의

해서 다루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통치 및 구원 역사의 정점인 성전에서 이 지혜가 발휘되는 사건을 이야

이전에 가르친 사람들 중에 지금은 목회자가 된 학생이 있는데, 한번은

기한다.

나에게 연락이 와서 사무엘상 17장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을 주제로 자신이 전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는 성경신학의 적절성이나 유용성과 관련해서

한 설교에 대해 조언과 논평을 부탁했다. 이 학생은 본문의 사건을 그리

어느 정도 상반된 감정이 존재한다. 성경신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타당성

스도에 대한 모형론으로 다룸으로써 성경신학의 관점으로 설교에 접근

을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한적으로 지지

하고자 했다. 이후에 이 설교와 관련해서 어떤 나이 지긋한 은퇴 목회자

하면서도 성경신학에 내포된 위험성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가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이 목회자는 복음주의자가 분명했으나 모형

성경신학이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반응일 뿐이라고

론적 접근법과 전반적인 성경신학에 대해 다소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24 )

이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일관성 있는 성경신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설교에서 다윗이 무기력하고 두려움에 사

학의 부재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복

로잡힌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한 사건이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예표하

음주의자 중에는 성경을 다루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을 배운 적은 있어도

는 모형으로 강조되는지, 혹은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기독교 신앙

포괄적인 성경신학을 하나의 대안으로 접한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의 모범으로 강조되는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흑백논리의

성경이 하나의 통일체며 성경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인정하는 20 ) 지혜 문학을 구원 역사의 양식에 포함시키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성경신학자가 많지만, 나는

구원 역사와 지혜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Goldsworthy s Wisdom Literature in the Christian Life 와 The Trilogy 에서 Gospel and Wisdom: Israel’ Tree of Life: Reading Proverbs Today (Sydney: Anglican Information Office, 1993; rev. ed., Sydney: Aquila, 2011)를 보라. 21 ) 이런 연유로 G. Ernest Wright, God Who Acts: Biblical Theology as Recital, SBT 8 (London: SCM, 1952), pp. 1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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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22 ) 조지 애터스는 이 접근법을“성경과의 자기애적인 접촉”으로 적절하게 묘사한다. George

Athas,“Reflections on Scripture Using the Distinction Between Jews and Gentiles as an Exegetical Key,”in Peter G. Bolt and Mark D. Thompson, eds., Donald Robinson: Selected Works. Appreciation (Camperdown, NSW: Australian Church Record; Newtown, NSW: Moore College, 2008), p. 125를 보라. 23 ) 독자 반응 해석학은 해석학 이론으로 정형화되기 훨씬 전부터 경건주의자와 다른 복음주의자 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24 ) 이 목회자는 또한 성경신학이 최근에 무어 신학교가 배출한 모든 것 중에 화근이라고 생각한 다는 견해를 밝혔다.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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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으로 주장하는 태도가 가장 유익한 접근법이 아님에 분명하다. 그

모든 약속과 예언의 제일 목표다. 예수님을 새 이스라엘로 먼저 강조하

목회자는 히브리서 11장과 같은 구절들을 근거로 들면서, 모범적 설교가

지 않고 교회의 역할을 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강조하

만족스러운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더라도 다윗은 모든 기독교 신자

는 것은 일부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범하는 잘못 중 하나다.2 6 ) 이런 관점

의 모형이 될 수 있는 까닭에, 내가 보기에는 이런 모범적 설명도 모형론

이 개인주의의 형태를 취하면, 우리 자신을 모든 성경의 일차적 주제로

의 한 형태인 것 같다. 이런 접근법에 내재된 문제는 예수님의 중보자 역

이해하는 사고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자신

할을 신중히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 대한 것임을 보이셨으므로, 구약 성경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일차

이 학생의 문의에 대해, 나는 이것이 꼭 흑백논리로 접근할 상황이 아

적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2 7 )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이 결여되면 종말

니며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 성경의 증언이 현대 세계에서 진실한 그리스

론과 관련해서 불확실성으로 나아가게 되며, 특별히 성경신학의 중심인

도인의 삶에 대한 증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신약 성경의 압도적 증거라

예수 그리스도를 퇴색시킨다.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이 결여되면 지금도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경의 인물들을 우리의 모범

여전히 많이 존재하는 세대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되는데, 세대주의자들

으로 사용할 때, 이 모범이 훌륭한지, 의심스러운지, 모호한지, 아니면 바

은 교회를 새 이스라엘이라고 받아들이는 보편적 개념을 부당한‘대체

람직스럽지 못한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가 항상 뒤따른다. 이 점이 항상

신학’ 으로 일축한다. 세대주의자들이 이렇게 주장할 때 타당성이 없는

명확한 것은 아니다.

25 )

이런 접근법은 또한 중심점인 그리스도에게서

것은 아니지만, 대체라는 용어는 다소 경멸적 어감을 지니는 탓에 이 문

해당 본문을 떼어 내고 윤리주의와 심지어 율법주의로 이어지는 경향을

제를 모호하게 만든다. 나는 오히려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비록 우리가 성경에서 비서사적인 부분도

중심에 두는‘성취 신학’ 을 강조하고 싶다.2 8 )

이해할 수 있는 체계 안에서 구원 역사의 이야기를 따르기는 하지만, 예

성경신학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11장이 신구약 성경 사이에

수 그리스도를 단지 현재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 약속과 예언을 성취

서 주로 모범적 관계를 확립하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에는 문

할 수 있는 예언된 분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제가 있다. 히브리서 11장 39절~12장 2절 상반부는 옛 성도들이 모범으

말하려는 취지는 성경 이야기가 예수님을 약속과 예언의 성취자로 예시

로 보여 준 특성에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하며, 또한 그런 분인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성취를 가 능하게 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자기 안에서 친히 성취가 되시는 예수님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제시된

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25 ) 하나의 대표적 사례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 주는 역할을 했던 양털일 것이

26 ) 교회가 새 이스라엘로 불릴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는 차후에 특히 10장에서 살펴볼 것

다(삿 6:36~40). 이 사례는 종종 영적으로 해석되어서,‘ 양털’ 은 표징을 위해 하나님을 시험 하는 어떤 수단으로 탈바꿈한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드온의 접근법에 기뻐하셨는지 혹은 이 사건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행동 양식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전 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30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이다. 27 ) 눅 24:25~27, 44~45; 요 5:39, 45~47. 28 )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관계 그리고 이스라엘과 교회 간의 관계에 대한 쟁점들은 도널드 로빈슨이

크게 관심을 보인 문제이기도 한데, 이런 쟁점들에 대해서는 10장에서 더 자세히 검토할 것이다.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31


관점으로 주장하는 태도가 가장 유익한 접근법이 아님에 분명하다. 그

모든 약속과 예언의 제일 목표다. 예수님을 새 이스라엘로 먼저 강조하

목회자는 히브리서 11장과 같은 구절들을 근거로 들면서, 모범적 설교가

지 않고 교회의 역할을 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강조하

만족스러운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더라도 다윗은 모든 기독교 신자

는 것은 일부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범하는 잘못 중 하나다.2 6 ) 이런 관점

의 모형이 될 수 있는 까닭에, 내가 보기에는 이런 모범적 설명도 모형론

이 개인주의의 형태를 취하면, 우리 자신을 모든 성경의 일차적 주제로

의 한 형태인 것 같다. 이런 접근법에 내재된 문제는 예수님의 중보자 역

이해하는 사고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자신

할을 신중히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 대한 것임을 보이셨으므로, 구약 성경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일차

이 학생의 문의에 대해, 나는 이것이 꼭 흑백논리로 접근할 상황이 아

적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2 7 )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이 결여되면 종말

니며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 성경의 증언이 현대 세계에서 진실한 그리스

론과 관련해서 불확실성으로 나아가게 되며, 특별히 성경신학의 중심인

도인의 삶에 대한 증언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신약 성경의 압도적 증거라

예수 그리스도를 퇴색시킨다. 그리스도 중심적 관점이 결여되면 지금도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경의 인물들을 우리의 모범

여전히 많이 존재하는 세대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되는데, 세대주의자들

으로 사용할 때, 이 모범이 훌륭한지, 의심스러운지, 모호한지, 아니면 바

은 교회를 새 이스라엘이라고 받아들이는 보편적 개념을 부당한‘대체

람직스럽지 못한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가 항상 뒤따른다. 이 점이 항상

신학’ 으로 일축한다. 세대주의자들이 이렇게 주장할 때 타당성이 없는

명확한 것은 아니다.

25 )

이런 접근법은 또한 중심점인 그리스도에게서

것은 아니지만, 대체라는 용어는 다소 경멸적 어감을 지니는 탓에 이 문

해당 본문을 떼어 내고 윤리주의와 심지어 율법주의로 이어지는 경향을

제를 모호하게 만든다. 나는 오히려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비록 우리가 성경에서 비서사적인 부분도

중심에 두는‘성취 신학’ 을 강조하고 싶다.2 8 )

이해할 수 있는 체계 안에서 구원 역사의 이야기를 따르기는 하지만, 예

성경신학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서 11장이 신구약 성경 사이에

수 그리스도를 단지 현재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해 약속과 예언을 성취

서 주로 모범적 관계를 확립하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에는 문

할 수 있는 예언된 분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잘못이다. 오히려 이 책에서

제가 있다. 히브리서 11장 39절~12장 2절 상반부는 옛 성도들이 모범으

말하려는 취지는 성경 이야기가 예수님을 약속과 예언의 성취자로 예시

로 보여 준 특성에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하며, 또한 그런 분인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성취를 가 능하게 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자기 안에서 친히 성취가 되시는 예수님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제시된

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25 ) 하나의 대표적 사례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 주는 역할을 했던 양털일 것이

26 ) 교회가 새 이스라엘로 불릴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는 차후에 특히 10장에서 살펴볼 것

다(삿 6:36~40). 이 사례는 종종 영적으로 해석되어서,‘ 양털’ 은 표징을 위해 하나님을 시험 하는 어떤 수단으로 탈바꿈한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드온의 접근법에 기뻐하셨는지 혹은 이 사건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행동 양식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전 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30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이다. 27 ) 눅 24:25~27, 44~45; 요 5:39, 45~47. 28 )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관계 그리고 이스라엘과 교회 간의 관계에 대한 쟁점들은 도널드 로빈슨이

크게 관심을 보인 문제이기도 한데, 이런 쟁점들에 대해서는 10장에서 더 자세히 검토할 것이다.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31


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러

우리가 거기에 반대하는 것은 온당하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된다는 것이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일면임을 인정하지만, 본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기로서의 예수님은 우리 구원의 유일한 창시자와 완성자로서의 예수님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강조는

에게서 파생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복음의 중심이며, 그

필자의 것임).

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나 동기다. 예수님이 성령에 힘입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은 복음에서 기인하며, 복음이 아니고서는 효력

이후에 추가된 장절 표시를 제거하면,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믿음의

을 나타낼 수 없다.

모범들이 속한 더 큰 맥락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믿음은 옛 시대에도 유

그렇다면 구약 성경을 모범의 각도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방식을 지

효한 원리였으나 신약 성경에서 작용하는 원리가 없으면 불완전한데, 신

나치게 강조하는 태도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구약 성경

약 성경에서 작용하는 원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곧 예수님과 예수

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본받거나 피해야 할 모범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

님의 복음을 의지하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창시자인

이런 인물들은 어떤 역할을 하며 우리는 이런 인물들이 지닌 중요성을

동시에 완성자다. 다윗의 믿음을 주제로 하는 모범적 설교는 위대한 다

어떻게 간파할까?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선택할

윗의 더 위대한 자손에게로 우리를 이끌지 않으면 불완전하고 오해의 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구원 역사적 접근법임을 보인다.2 9 ) 나는 구원 역

지가 있는데, 진실한 믿음의 대상과 목적은 바로 다윗의 더 위대한 자손

사적 접근법이 모범적 접근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범적 접

이다. 구약 성경의 특정 인물이 지닌 중요성이 어떻게든 복음이라는 프

근법을 통제하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구원

리즘을 통해 굴절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특정 인물을 단순히 모방만

역사적 접근법은 성경에 포함된 모든 본문이 종합적으로 정경의 맥락에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신약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일차적으로 요구

속한다는 사실을 대단히 명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진정한 의

하는 것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 어떤 영웅을 더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

미에서 정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와 같은 정경의 맥락이 파악되

라, 그리스도를 더 닮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담당하

면,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법에 나타난 탁월성은 쉽게 이해된다. 이것은

신 고유한 대리 속죄와 대표 역할에서 이 토대가 상실된다면, 심지어 그

다양성 속에서 성경이 지닌 통일성의 본질, 모든 성경이 지향하는 중심

리스도를 본받는 일도 유해한 개념이 될 수 있다.

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관련해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

이런 강조에도 불구하고 모범적 설교와 가르침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

런 질문들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쓰는 취지다.

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모범들로 가득하다. 복음주의자는 예수님 의 삶과 죽음을 단순한 본보기로 격하하는 자유주의의 가르침에 마땅히 반발할 것이다. 예수님이‘훌륭한 교사’ 의 역할만 맡으시거나 예수님의 죽음이 단지 자기희생적 사랑을 보여 주는 최고의 본보기로만 이해될 때,

32

│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29 ) Sidney Greidanus, Sola Scriptura: Problems and Principles in Preaching Historical Texts

(Toronto: Wedge, 1970,『구속사적 설교의 원리』, SFC 출판부 역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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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러

우리가 거기에 반대하는 것은 온당하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는 자가

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된다는 것이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일면임을 인정하지만, 본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기로서의 예수님은 우리 구원의 유일한 창시자와 완성자로서의 예수님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강조는

에게서 파생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복음의 중심이며, 그

필자의 것임).

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나 동기다. 예수님이 성령에 힘입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은 복음에서 기인하며, 복음이 아니고서는 효력

이후에 추가된 장절 표시를 제거하면,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믿음의

을 나타낼 수 없다.

모범들이 속한 더 큰 맥락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믿음은 옛 시대에도 유

그렇다면 구약 성경을 모범의 각도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방식을 지

효한 원리였으나 신약 성경에서 작용하는 원리가 없으면 불완전한데, 신

나치게 강조하는 태도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구약 성경

약 성경에서 작용하는 원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곧 예수님과 예수

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본받거나 피해야 할 모범 이상의 의미가 있다면,

님의 복음을 의지하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창시자인

이런 인물들은 어떤 역할을 하며 우리는 이런 인물들이 지닌 중요성을

동시에 완성자다. 다윗의 믿음을 주제로 하는 모범적 설교는 위대한 다

어떻게 간파할까?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선택할

윗의 더 위대한 자손에게로 우리를 이끌지 않으면 불완전하고 오해의 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구원 역사적 접근법임을 보인다.2 9 ) 나는 구원 역

지가 있는데, 진실한 믿음의 대상과 목적은 바로 다윗의 더 위대한 자손

사적 접근법이 모범적 접근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범적 접

이다. 구약 성경의 특정 인물이 지닌 중요성이 어떻게든 복음이라는 프

근법을 통제하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구원

리즘을 통해 굴절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특정 인물을 단순히 모방만

역사적 접근법은 성경에 포함된 모든 본문이 종합적으로 정경의 맥락에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신약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일차적으로 요구

속한다는 사실을 대단히 명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가장 진정한 의

하는 것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 어떤 영웅을 더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

미에서 정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와 같은 정경의 맥락이 파악되

라, 그리스도를 더 닮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담당하

면, 그리스도 중심적 접근법에 나타난 탁월성은 쉽게 이해된다. 이것은

신 고유한 대리 속죄와 대표 역할에서 이 토대가 상실된다면, 심지어 그

다양성 속에서 성경이 지닌 통일성의 본질, 모든 성경이 지향하는 중심

리스도를 본받는 일도 유해한 개념이 될 수 있다.

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관련해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

이런 강조에도 불구하고 모범적 설교와 가르침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

런 질문들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쓰는 취지다.

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모범들로 가득하다. 복음주의자는 예수님 의 삶과 죽음을 단순한 본보기로 격하하는 자유주의의 가르침에 마땅히 반발할 것이다. 예수님이‘훌륭한 교사’ 의 역할만 맡으시거나 예수님의 죽음이 단지 자기희생적 사랑을 보여 주는 최고의 본보기로만 이해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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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29 ) Sidney Greidanus, Sola Scriptura: Problems and Principles in Preaching Historical Texts

(Toronto: Wedge, 1970,『구속사적 설교의 원리』, SFC 출판부 역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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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경신학이 푸대접받는 것일까

재량에 달려 있다. 내 소견으로는 이런 가정이 늘 사실에 근거를 두는 것 은 아닌 듯하다. 성경 연구 과목들은 일차적으로 주석 및 본문 정독과 함

『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를 쓰기 시작할 무렵, 나는 설

께 개론적 질문들 (문헌의 연대와 저자를 포함하는 문학적 문제들)과 관계된 경우가

교를 주제로 다루는 서적들 사이에서 성경신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일반적이다. 이런 작업도 훌륭하지만, 특정 본문의 주석은 그 본문이 포

조사했다. 나는 설교에서 성경신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징후를 발견할

함된 정경적 맥락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므로 그 본문이 수행하는 성경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설교와 관련된 상당수의 서적들을 검토했다. 하지

학적 역할도 당연히 수반한다.3 1 ) 그러나 분업이 심화되고 개별 책이나

만 심지어 강해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서적들 사이에서도

언어 자료에 집중하면 할수록, 종합적인 성경신학을 염두에 둘 가능성은

성경신학이 설교 준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경

그만큼 더 낮다. 이런 가정은 규정에 의해 대체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

우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성경신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되살아나고 있

해 성경 연구 교육 과정은 성경신학의 주제들을 명시할 필요가 있을 것

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여전히 먼 것 같다. 이 조

이다. 나는 가급적 별개의 과목으로서 성경신학이 따르는 방법과 적용에

사를 통해, 나는 신구약 성경에 대한 연구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하나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런 규정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없다고 생각

교과목으로서 성경신학에 대한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신학교나 성경학

한다.

30 )

교가 얼마나 많을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특별히 미국이나 영국의 신학 환경과 관련지어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나

구약 성경 연구와 신약 성경 연구의 분리

는 나의 모교인 무어 신학교가 호주에서 이런 교육 과정을 수행하는 유일

성경신학을 소홀히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앞서 설명한 첫 번째 이유와

한 교육기관이던 시기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복음주의적이고 개혁

밀접히 연관된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분리해서 가르치는 것은 통

주의적인 설교자와 교사들 사이에서 성경신학에 대해 상반된 감정이 존

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인데, 이는 신구약 성경 간의 관계에 대한

재하고 신학교에서 기본적인 성경신학 개론 과목들을 소홀히 하는 데는

문제들이 면밀히 고찰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적어도 19세기

적어도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이후에는 신학 교육 과정이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 중 어느 한쪽을 학 문적으로 전공하는 것을 계산에 넣는 방식으로 과목들을 분류한다. 이런

성경 연구 교육 과정과 관련된 가정들

경향은 19세기 이후에 저술된 대부분의 성경신학 책들이 구약 성경이나

첫째, 성경신학 교육이 기존의 성경 연구 과목들에서 이뤄진다고 가정

신약 성경 중 어느 한쪽에 치중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3 2 ) 비록

한다면, 성경신학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킬지의 여부는 교수의 개인적인 31 ) Kevin J. Vanhoozer,“Exegesis and Hermeneutics,”NDBT, pp. 52~64와 특히 p. 62를 보

라. 거기서 밴후저는“일련의 확장된 해석 체계”를 제안한다. 30 ) Graeme Goldsworthy, Preaching the Whole Bible as Christian Scripture (Grand Rapids,

32 ) Hans- Joachim Kraus, Die Biblische Theologie: Ihre Geschichte und Problematik

MI: Eerdmans; Leicester: IVP, 2000,『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성서유니온선교 회 역간).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70); Wilfrid Harrington, The Path of Biblical Theology (Dublin: Gill & Macmillan, 1973)를 보라. 우리는 서점에서 성경신학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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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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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경신학이 푸대접받는 것일까

재량에 달려 있다. 내 소견으로는 이런 가정이 늘 사실에 근거를 두는 것 은 아닌 듯하다. 성경 연구 과목들은 일차적으로 주석 및 본문 정독과 함

『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를 쓰기 시작할 무렵, 나는 설

께 개론적 질문들 (문헌의 연대와 저자를 포함하는 문학적 문제들)과 관계된 경우가

교를 주제로 다루는 서적들 사이에서 성경신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일반적이다. 이런 작업도 훌륭하지만, 특정 본문의 주석은 그 본문이 포

조사했다. 나는 설교에서 성경신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징후를 발견할

함된 정경적 맥락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므로 그 본문이 수행하는 성경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설교와 관련된 상당수의 서적들을 검토했다. 하지

학적 역할도 당연히 수반한다.3 1 ) 그러나 분업이 심화되고 개별 책이나

만 심지어 강해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서적들 사이에서도

언어 자료에 집중하면 할수록, 종합적인 성경신학을 염두에 둘 가능성은

성경신학이 설교 준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경

그만큼 더 낮다. 이런 가정은 규정에 의해 대체될 필요가 있다. 다시 말

우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성경신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되살아나고 있

해 성경 연구 교육 과정은 성경신학의 주제들을 명시할 필요가 있을 것

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여전히 먼 것 같다. 이 조

이다. 나는 가급적 별개의 과목으로서 성경신학이 따르는 방법과 적용에

사를 통해, 나는 신구약 성경에 대한 연구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하나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런 규정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없다고 생각

교과목으로서 성경신학에 대한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신학교나 성경학

한다.

30 )

교가 얼마나 많을지가 궁금해졌다. 나는 특별히 미국이나 영국의 신학 환경과 관련지어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나

구약 성경 연구와 신약 성경 연구의 분리

는 나의 모교인 무어 신학교가 호주에서 이런 교육 과정을 수행하는 유일

성경신학을 소홀히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앞서 설명한 첫 번째 이유와

한 교육기관이던 시기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복음주의적이고 개혁

밀접히 연관된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분리해서 가르치는 것은 통

주의적인 설교자와 교사들 사이에서 성경신학에 대해 상반된 감정이 존

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인데, 이는 신구약 성경 간의 관계에 대한

재하고 신학교에서 기본적인 성경신학 개론 과목들을 소홀히 하는 데는

문제들이 면밀히 고찰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적어도 19세기

적어도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이후에는 신학 교육 과정이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 중 어느 한쪽을 학 문적으로 전공하는 것을 계산에 넣는 방식으로 과목들을 분류한다. 이런

성경 연구 교육 과정과 관련된 가정들

경향은 19세기 이후에 저술된 대부분의 성경신학 책들이 구약 성경이나

첫째, 성경신학 교육이 기존의 성경 연구 과목들에서 이뤄진다고 가정

신약 성경 중 어느 한쪽에 치중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3 2 ) 비록

한다면, 성경신학을 교육 과정에 포함시킬지의 여부는 교수의 개인적인 31 ) Kevin J. Vanhoozer,“Exegesis and Hermeneutics,”NDBT, pp. 52~64와 특히 p. 62를 보

라. 거기서 밴후저는“일련의 확장된 해석 체계”를 제안한다. 30 ) Graeme Goldsworthy, Preaching the Whole Bible as Christian Scripture (Grand Rapids,

32 ) Hans- Joachim Kraus, Die Biblische Theologie: Ihre Geschichte und Problematik

MI: Eerdmans; Leicester: IVP, 2000,『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성서유니온선교 회 역간).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70); Wilfrid Harrington, The Path of Biblical Theology (Dublin: Gill & Macmillan, 1973)를 보라. 우리는 서점에서 성경신학의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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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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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들어서 대단히 훌륭한 작품들이 발표되고는 있지만, 성경 전체를 다루는 신학 서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33 )

방식이 오직 하나뿐이라고 제안하거나 심지어 비복음주의 성경신학자

특히 역사비평의 원리가 당대

들에게서는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없다고 제안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에 유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철학의 관점에 따라 형성될 때, 분업은 때로

오만한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지향하는 주목표는 성경

이념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목적이 있으며 이 목적

의 전제들과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루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

이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적 이야기에 정확히 계시된다는 개념은 17세기

는 접근법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후에 지속적인 공격에 직면해 왔다. 정경에는 식별 가능한 신학적 통 일성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경신학은 많은 사람에게 무익

서로 다른 신학 분야들과 관련된 명확성의 부재

한 활동처럼 여겨지게 된다. 복음주의 신학교는 성경 연구에서 내세우는

성경신학을 소홀히 하는 네 번째 이유는 현시대에 성경신학이 다소

전제들에 대해 반대하거나 신중한 태도로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경

새로운 것으로 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있다. 대체로 요한 필립 가블

연구는 성경신학을 종교 사상사에 대한 질문으로 격하하는 경향을 보인

러(1753~1826년)가 성경신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교의학과 대비시켜서 최

다. 그렇지만 많은 신학교는 신구약 성경 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초로 정의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수 있게 하기보다 오히려 베를린 장벽에 가까운 해석학적 장벽을 강제하

1787년에 스위스 알트도르프에서 행해진 가블러의 연설에서 몇 가지 중

는 종래의 신학 교육 과정을 이어받고 있는데, 어쩌면 대다수 신학교가

요한 구분이 강조되었을 수도 있으나, 가블러가 성경신학이라는 독특한

이렇게 할지도 모른다.

명칭으로 정의한 학문 분야는 계몽주의에서 유래한 것이며 실제로 우리 가 복음주의자로서 관심을 갖는 성경신학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교의

원칙과 방식에 대한 합의의 부재

학과 성경신학을 의식적으로 구분하는 경향은 가블러 이전에 뚜렷이 감

셋째, 복음주의 신학교들 사이에는 성경신학의 본질, 원칙, 방식과 관

지되지 않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구분이 항상 도움이 된 것은 아니라

련된 합의가 부족하다. 가령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포괄하고 설교자나

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초기의 신학자들과 후기의 중세 신학자들, 루

교사들에게 필요한 실용적 지도를 제공하는, 1년 단위 입문 교육 과정을

터와 칼빈 같은 개신교 종교개혁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방식으로 구

어떤 식으로 구상할까? 우리는 성경신학을 다루는 복음주의 접근법과 더

분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증인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수적인 접근법을 다양하게 살펴보고, 각 방식과 서로 간의 차이점들을

구약 성경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이른 시기부

평가하려고 애쓰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정당한 성경신학

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논의된 것도 분명하다. 일단 가블러가 제안한 구 분이 받아들여지고 계몽주의가 내세운 철학적 전제가 성경 연구를 지배

연구한 작품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 문제를 개괄하지 않을 것이다. 33 ) 해링턴은“현실적으로 성경 전체를 통괄하는 신학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중요한 문 제인데, 학자들이 신구약 성경 중 어느 한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로 완 전히 해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구약 성경 간의 복잡한 관계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듯 느 껴질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Harrington, Path, p.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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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언제나 성경 연구의 일부분이었던 이런 종류의 성경신학이 크게 퇴색된 것 같다.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37


근래에 들어서 대단히 훌륭한 작품들이 발표되고는 있지만, 성경 전체를 다루는 신학 서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33 )

방식이 오직 하나뿐이라고 제안하거나 심지어 비복음주의 성경신학자

특히 역사비평의 원리가 당대

들에게서는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없다고 제안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에 유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철학의 관점에 따라 형성될 때, 분업은 때로

오만한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지향하는 주목표는 성경

이념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목적이 있으며 이 목적

의 전제들과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루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

이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적 이야기에 정확히 계시된다는 개념은 17세기

는 접근법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후에 지속적인 공격에 직면해 왔다. 정경에는 식별 가능한 신학적 통 일성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경신학은 많은 사람에게 무익

서로 다른 신학 분야들과 관련된 명확성의 부재

한 활동처럼 여겨지게 된다. 복음주의 신학교는 성경 연구에서 내세우는

성경신학을 소홀히 하는 네 번째 이유는 현시대에 성경신학이 다소

전제들에 대해 반대하거나 신중한 태도로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경

새로운 것으로 현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있다. 대체로 요한 필립 가블

연구는 성경신학을 종교 사상사에 대한 질문으로 격하하는 경향을 보인

러(1753~1826년)가 성경신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교의학과 대비시켜서 최

다. 그렇지만 많은 신학교는 신구약 성경 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초로 정의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수 있게 하기보다 오히려 베를린 장벽에 가까운 해석학적 장벽을 강제하

1787년에 스위스 알트도르프에서 행해진 가블러의 연설에서 몇 가지 중

는 종래의 신학 교육 과정을 이어받고 있는데, 어쩌면 대다수 신학교가

요한 구분이 강조되었을 수도 있으나, 가블러가 성경신학이라는 독특한

이렇게 할지도 모른다.

명칭으로 정의한 학문 분야는 계몽주의에서 유래한 것이며 실제로 우리 가 복음주의자로서 관심을 갖는 성경신학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교의

원칙과 방식에 대한 합의의 부재

학과 성경신학을 의식적으로 구분하는 경향은 가블러 이전에 뚜렷이 감

셋째, 복음주의 신학교들 사이에는 성경신학의 본질, 원칙, 방식과 관

지되지 않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구분이 항상 도움이 된 것은 아니라

련된 합의가 부족하다. 가령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포괄하고 설교자나

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초기의 신학자들과 후기의 중세 신학자들, 루

교사들에게 필요한 실용적 지도를 제공하는, 1년 단위 입문 교육 과정을

터와 칼빈 같은 개신교 종교개혁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하는 방식으로 구

어떤 식으로 구상할까? 우리는 성경신학을 다루는 복음주의 접근법과 더

분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증인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수적인 접근법을 다양하게 살펴보고, 각 방식과 서로 간의 차이점들을

구약 성경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가장 이른 시기부

평가하려고 애쓰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을 사용할 것이다. 정당한 성경신학

터 끊임없이 제기되고 논의된 것도 분명하다. 일단 가블러가 제안한 구 분이 받아들여지고 계몽주의가 내세운 철학적 전제가 성경 연구를 지배

연구한 작품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 문제를 개괄하지 않을 것이다. 33 ) 해링턴은“현실적으로 성경 전체를 통괄하는 신학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중요한 문 제인데, 학자들이 신구약 성경 중 어느 한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로 완 전히 해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구약 성경 간의 복잡한 관계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듯 느 껴질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Harrington, Path, p.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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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언제나 성경 연구의 일부분이었던 이런 종류의 성경신학이 크게 퇴색된 것 같다.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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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성경신학 방식들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바는 최종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데, 북미학파가

이처럼 성경신학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다섯 번째 이유는

완전히 무가치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존 브라이트의 탁월한 고전인

신정통주의의 영향 때문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닌데, 미국에서 신정통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북미학파에 얼마나 많은 신세를 지고 있는지

의는 소위 미국 성경신학 운동으로 이어졌다. 현대의 복음주의 성경신학

를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다.3 6 )

이 이 운동에 큰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브레버

성경이라는 대단히 크고 복잡한 문헌 전체를 조사하는 작업에서 자료

드 차일즈가 논증하듯이, 바르트와 바르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유주

를 정리하는 관점과 방법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에 충실

의가 제기한 문제들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배격하는 자유

하다는 점에서 똑같이 정당한 관점과 방법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의의 주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자유

이런 관점과 방법들이 성경 계시의 내부 구조를 밝히는 작업에서 다 똑

주의와 복음주의, 특히 자유주의와 소위 근본주의 간의 교착 상태에서

같이 유용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이나 자신이 속한 교파의 하

탈출로를 제공하려던 신정통주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실제로 북

위문화에서 파생된 선입관들을 강제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복음주의

미학파가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은 차일즈 자신이 정경적 성경신학에서 제

성경신학이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것으로 판명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

언한 해법이 효과를 발휘해서가 아니다.3 4 ) 차일즈가 더 광범한 성경신

다. 개혁주의의 언약적 성경신학과 세대주의를 비교하면, 우리는 이런

학계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차일즈는 역사비평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혁주의의 언약적 성경신학과 세대주의는

방식이 주창한 많은 교리를 받아들였으며 차일즈의 공헌도 상대적으로

모두 성경신학이고 복음주의의 성격을 띠지만, 도달하는 많은 결론과 구

유용성이 적은 교리들의 영향을 받았다. 제임스 바 등이 북미학파를 잠

상되는 구원 역사관은 완전히 상반된다. 이것은 해석학적 문제, 특히 신

재웠을 때, 많은 학자들이 보기에는 성경신학 전체가 종말을 고하는 것

구약 성경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 해석에서 기본 전제들에 대한 문제를

같았다.

35 )

G. E. 라이트와 존 브라이트가 진지한 성경 연구에 거의 공헌

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오리를 우리에게 맡겼다고 생각한 학자도 실제로

제기한다. 차일즈가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묘사한 성경신학이 누군가에게는 절 름발이 오리를 우리에게 물려주는 것처럼 보인다면, 확고하고 건전하고

34 ) 차일즈의 공헌은 의미심장하다. 1972년에 차일즈가“정경과 비평: 교회의 경전으로서의 구

약 성경”이라는 제목으로 제임스 스프런트 연례 강연에서 강의했을 때, 나는 버지니아 주 유 니언 신학교 대학원생이었다. 이 강연에서 차일즈는 자신의 정경적 성경신학에 대해 사전 진술했다. 도널드 로빈슨과 차일즈는 얼마 동안 면식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강연의 강의 록을 로빈슨에게 보냈다. 로빈슨은 차일즈와 차일즈의 작품에 대해 언제나 높이 평가했다. 나는 로빈슨에게 다음과 같은 답신을 받았다.“친애하는 그레엄 군, 강의록을 보내 줘서 고 맙네. 원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나는 차일즈가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드네. 내년에 구약 성경 이해에 대한 세미나를 전담할 직원(무어 신학교 교수)이 있으면 좋을 듯싶네. 나는 차일즈에게 편지를 써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격려했다네. 하나님 의 은혜가 자네와 함께하기를 비네.” 35 ) Brevard S. Childs, Biblical Theology in Crisis (Philadelphia, PA: Westminster, 1970,『성경 신학의 위기』,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 역간), pp. 65~66,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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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실행 가능한 성경신학이 지금도 존재할까? 만일 이런 성경신학이 존재 한다면, 그리고 이런 성경신학이 하나님의 계시의 본질 자체에 충실하 다면,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손에서 가공할 무기가 될 가 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성경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단일한 말 씀으로 일반 신자들에게 돌려줄 수도 있을 텐데, 일반 신자들은 성경이 36 ) John Bright, The Kingdom of God (New York: Abingdon, 1955,『하나님의 나라』, 크리스

챤다이제스트사 역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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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성경신학 방식들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바는 최종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데, 북미학파가

이처럼 성경신학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 다섯 번째 이유는

완전히 무가치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존 브라이트의 탁월한 고전인

신정통주의의 영향 때문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닌데, 미국에서 신정통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북미학파에 얼마나 많은 신세를 지고 있는지

의는 소위 미국 성경신학 운동으로 이어졌다. 현대의 복음주의 성경신학

를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다.3 6 )

이 이 운동에 큰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브레버

성경이라는 대단히 크고 복잡한 문헌 전체를 조사하는 작업에서 자료

드 차일즈가 논증하듯이, 바르트와 바르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유주

를 정리하는 관점과 방법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에 충실

의가 제기한 문제들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배격하는 자유

하다는 점에서 똑같이 정당한 관점과 방법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의의 주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자유

이런 관점과 방법들이 성경 계시의 내부 구조를 밝히는 작업에서 다 똑

주의와 복음주의, 특히 자유주의와 소위 근본주의 간의 교착 상태에서

같이 유용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이나 자신이 속한 교파의 하

탈출로를 제공하려던 신정통주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실제로 북

위문화에서 파생된 선입관들을 강제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복음주의

미학파가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은 차일즈 자신이 정경적 성경신학에서 제

성경신학이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것으로 판명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

언한 해법이 효과를 발휘해서가 아니다.3 4 ) 차일즈가 더 광범한 성경신

다. 개혁주의의 언약적 성경신학과 세대주의를 비교하면, 우리는 이런

학계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차일즈는 역사비평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혁주의의 언약적 성경신학과 세대주의는

방식이 주창한 많은 교리를 받아들였으며 차일즈의 공헌도 상대적으로

모두 성경신학이고 복음주의의 성격을 띠지만, 도달하는 많은 결론과 구

유용성이 적은 교리들의 영향을 받았다. 제임스 바 등이 북미학파를 잠

상되는 구원 역사관은 완전히 상반된다. 이것은 해석학적 문제, 특히 신

재웠을 때, 많은 학자들이 보기에는 성경신학 전체가 종말을 고하는 것

구약 성경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 해석에서 기본 전제들에 대한 문제를

같았다.

35 )

G. E. 라이트와 존 브라이트가 진지한 성경 연구에 거의 공헌

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오리를 우리에게 맡겼다고 생각한 학자도 실제로

제기한다. 차일즈가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묘사한 성경신학이 누군가에게는 절 름발이 오리를 우리에게 물려주는 것처럼 보인다면, 확고하고 건전하고

34 ) 차일즈의 공헌은 의미심장하다. 1972년에 차일즈가“정경과 비평: 교회의 경전으로서의 구

약 성경”이라는 제목으로 제임스 스프런트 연례 강연에서 강의했을 때, 나는 버지니아 주 유 니언 신학교 대학원생이었다. 이 강연에서 차일즈는 자신의 정경적 성경신학에 대해 사전 진술했다. 도널드 로빈슨과 차일즈는 얼마 동안 면식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강연의 강의 록을 로빈슨에게 보냈다. 로빈슨은 차일즈와 차일즈의 작품에 대해 언제나 높이 평가했다. 나는 로빈슨에게 다음과 같은 답신을 받았다.“친애하는 그레엄 군, 강의록을 보내 줘서 고 맙네. 원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나는 차일즈가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드네. 내년에 구약 성경 이해에 대한 세미나를 전담할 직원(무어 신학교 교수)이 있으면 좋을 듯싶네. 나는 차일즈에게 편지를 써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격려했다네. 하나님 의 은혜가 자네와 함께하기를 비네.” 35 ) Brevard S. Childs, Biblical Theology in Crisis (Philadelphia, PA: Westminster, 1970,『성경 신학의 위기』,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 역간), pp. 65~66, 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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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실행 가능한 성경신학이 지금도 존재할까? 만일 이런 성경신학이 존재 한다면, 그리고 이런 성경신학이 하나님의 계시의 본질 자체에 충실하 다면,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손에서 가공할 무기가 될 가 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성경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단일한 말 씀으로 일반 신자들에게 돌려줄 수도 있을 텐데, 일반 신자들은 성경이 36 ) John Bright, The Kingdom of God (New York: Abingdon, 1955,『하나님의 나라』, 크리스

챤다이제스트사 역간).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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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상이한 가치를 지니는 대단히 잡다한 본문들의 모음집

실천신학에 견실한 토대를 제공하는 견실한 성경신학을 추구하는 작업

이라고 간주하는 듯한 경우가 많다. 이론적으로는 성경을 통합된 정경으

에서 로빈슨 -히버트 도식에 대단히 큰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 줄 수 있기

로 받아들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친숙한 성경

를 기대한다.

구절들을 원래의 문맥에서 단편적으로 발췌해서 구성한 정경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대단히 많다. 따라서 복음주의 성경신학이 당면한 과제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진 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성경의 본질과 관련해 수용 가능한 일련의 작업 전제들을 설정하기. ●우리가 성경신학이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하기. ●우리가

성경신학을 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성경의 본질이 갖는 의

미를 이해하기.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이 지닌 우월함에서 비롯되는 해석학적

절차들을 확정하기. ●성경신학이

조직신학이나 다른 신학 분야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

지에 대한 이론적 고려 사항들을 명확하게 하기.

이런 노력에서 생기는 현실적 쟁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모든 단계의 기독교 교육에서 성경신학이 수행하는 역할. ●성경신학의 기초 학문 교육 과정의 형태. ●가정과 지역 교회에서 성경신학의 목회적 적용.

나는 다음에서 전개되는 논의들이 이런 문제들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나는 온갖 종류의 교리 공식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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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중심 성경신학

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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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상이한 가치를 지니는 대단히 잡다한 본문들의 모음집

실천신학에 견실한 토대를 제공하는 견실한 성경신학을 추구하는 작업

이라고 간주하는 듯한 경우가 많다. 이론적으로는 성경을 통합된 정경으

에서 로빈슨 -히버트 도식에 대단히 큰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 줄 수 있기

로 받아들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친숙한 성경

를 기대한다.

구절들을 원래의 문맥에서 단편적으로 발췌해서 구성한 정경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대단히 많다. 따라서 복음주의 성경신학이 당면한 과제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진 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성경의 본질과 관련해 수용 가능한 일련의 작업 전제들을 설정하기. ●우리가 성경신학이라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하기. ●우리가

성경신학을 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성경의 본질이 갖는 의

미를 이해하기.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이 지닌 우월함에서 비롯되는 해석학적

절차들을 확정하기. ●성경신학이

조직신학이나 다른 신학 분야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

지에 대한 이론적 고려 사항들을 명확하게 하기.

이런 노력에서 생기는 현실적 쟁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다.

●모든 단계의 기독교 교육에서 성경신학이 수행하는 역할. ●성경신학의 기초 학문 교육 과정의 형태. ●가정과 지역 교회에서 성경신학의 목회적 적용.

나는 다음에서 전개되는 논의들이 이런 문제들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나는 온갖 종류의 교리 공식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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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신학: 절름발이 오리인가 독수리 날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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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성경신학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성경 문헌의 대부분을 이해

Christ-Centred Biblical Theology

하는 ‘큰 그림’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성경신학은 하나님이 하나의 웅대한 구원 계획을 펼쳐 보이시

He r m e ne uti c al Fo undati o ns and P r i nc i p l e s

는 전체 장면을 관찰하기 위해 노력한다. 성경은 더 이상 서로 무관한 본문들로 구성된 집합체가 아니 라,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사복음서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통일체로 보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성경은 창 조에서 새 창조로 나아가는 진전을 나타낸다.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모든 성경의 제일 초점으로 강조한다. 만일 성경이 참으로 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보 여 주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사실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바로 성경신학이다. 골즈워디는 자신의 책 『복음중심 해석학』 을 보완하는 소중한 작품인 이 책에서 자신의 접근법을 위한 이론적인 근거를 변호하고 더욱 가다듬는데, 특별히 호주 성경학자 도널드 로빈슨에 의해 발전된 성경 신학에 의존한다. 골즈워디가 확신하는 것은 성경신학이 복음주의 해석학을 위한 토대며, 강해 설교에 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며, 효과적인 목회 사역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그레엄 골즈워디가 성경신학 연구에 기여한 바는 지대하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이 연구에서, 골즈워디는 다양한 복음주의 접근법들을 유익하게 비교하고 자신이 도 널드 로빈슨에 의해 발전된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골즈워디는 ‘계시의 삼

그레엄 골즈워디

단 구조’(창조에서 솔로몬까지 이어지는 성경 역사, 선지자들의 종말론,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를 지지하

지음

| 윤석인

옮김

면서, 성경의 신학적 통일성을 변호하고 해설하고자 하는 자신의 열정을 고취하고 형 성해 온 영향들에 대해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여러분 중에 성경신학, 특별히 이 학문 분야에서 골즈워디가 기여한 업적에 매료된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데스몬드 알렉산더(영국 북아일랜드 지방 벨파스트 소재 유니언 신학교 부교수)

지음

그레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

현직에서 물러난 그레엄 골즈워디는 예전에 무어 신학교에서 구약 성경, 성경신학, 해석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금도 무어 신학교에서 시간제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 골즈워디는 『복음중심 해석학』, 『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옮김

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 신학 석사 학위(Th. M.)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부흥 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도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교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지음 옮김

핵심』,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문화 신학』

그레엄 골즈워디 윤석인

할 것인가』, 『기도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성경 연구에 대한 세 권의 책으로 구성된 모음집 『골즈워디 삼부작』을 저술했다.

0 3 2 3 0

9

788960 923218

ISBN 978-89-6092-321-8 값 1 7 , 0 0 0원

.indd 1

2013-04-18

1: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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