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의 4중 상태 -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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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H u m a n

N a t u r e

i n

i t s

F o u r f o l d

S t a t e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토머스 보스턴 지음

스데반 황 옮김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목차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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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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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2

1부 무죄의 상태

21

1장 인간의 본성 상태의 죄악성

47

2장 인간의 본성 상태의 비참함

143

3장 인간의 본성 상태의 무능함

183

1장 중생

205

2장 신비적인 연합

259

2부 본성의 상태

3부 은혜의 상태


4부 영원한 상태 1장 죽음

333

2장 죽음에 의한 의인과 악인의 분리와 차이

353

3장 부활

389

4장 대심판

411

5장 천국

449

6장 지옥

491


청교도 대작 시리즈 발간사

한국 청교도 공부의 새로운 전환점 백금산 목사

청교도와 그 저서들 ‘청교도’라는 말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64년경으로 알려지고 있습니 다. 그러나 영국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청교도들이 주도권을 잡았던 청교 도 시대를 1558년 ( 메리

여왕의 죽음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시작 ) 으로부터

2,000여

명의 청교도 목사들이 국교회로부터 추방된 1662년까지로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청교도 시대는 100여 명의 뛰어난 목회자 겸 신학자였던 작가들에 의해 신학적 깊이와 경건한 실천을 겸비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책의 시대였습니다. 이와 같은 풍토 속에서 16~17세기 영국은 교회 역사 상 가장 영적으로 성숙한 청교도라는 걸출한 영적 거인 족들을 우후죽순처 럼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청교도의 재발견을 주도한 영어권 출판사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의 확산과 자유주의 신학 등의 영향으로 18~19세기 동안 보물 같은 청교도 저서들이 깊은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세기에 중반 이후부터 청교도 저서들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져 청교도 원전들에 대한 복간 내지 발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 어권에서는 영국의 배너오브트루스 ( Banner of Truth ) 출판사와 미국의 솔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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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4중 상태


오글로리아 ( Soli Deo Gloria ) 출판사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배너오브트 루스사는 이안 머리 ( Iain Murray ) 목사가 1957년에 설립했고, 솔리데오글로리 아사는 미국의 젊은 목사 돈 키슬러 ( Don Kistler ) 가 1988년에 설립했습니다. 청교도 저서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있어서 이 두 출판사는 가히 청교도 원 전의 광맥과도 같은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배너오브트루스사가 발간한 청교도 원전들에는 10여 명의 저 자들에 대한 전집과 수많은 단행본이 있습니다. 전집이 발간된 저자들에는 존 오웬 ( John Brooks, 6권 ),

Owen, 16권 ),

존 플라벨 ( John

Flavel, 6권 ),

토머스 브룩스 ( Thomas

존 번연 ( John Bunyan, 3권 ), 데이비드 클락슨 ( David Clarkson, 3권 ), 리처

드 십스 ( Richard Sibbs, 7권 ), 조지 스윈녹 ( George Swinnock, 3권 ), 토머스 맨톤 ( Thomas Manton, 22권 ),

조나단 에드워즈 ( Jonathan Edwards, 2권 ) 등이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솔리데오글로리아 출판사에서 발간한 청교도 원전들의 전 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리처드 백스터 ( Richard Baxter, 4권 ), 존 하 우 ( John Howe, 3권 ), 윌리엄 브리지 ( William Bridge, 5권 ), 존 보이스 ( John Boys ), 벤저 민 브룩스 ( Benjamin 스 ( Samuel Heyood ),

Brooks, 3권 ),

Davies, 3권 ) ,

토머스 케이스 ( Thomas

앤드루 그레이 ( Andrew

Gray ) ,

Case ),

새뮤얼 데이비

올리버 헤이우드 ( Oliver

에스겔 홉킨스 ( Ezekiel Hopkins, 3권 ), 에드워드 폴힐 ( Edward Polhill ), 에드

워즈 레이놀즈 ( Edward Reynolds ), 토머스 셰퍼드 ( Thomas Shepard, 3권 ). 이 외에도 지금까지 청교도와 직, 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약 200종의 단행본이 발간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청교도 저서 출판 현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청교도 저서들이 수십 권 번역되 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독자층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청 교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청교도 서적을 전문적으로 발간하려고 하는 소 형 출판사들은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백화점식의 종합 출판을 지향하는 대형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청교도 책들은 다른 책들에 묻혀 그리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아직 국내에서는 청교도 저 서들의 출판이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부족한 형편입니다. 양적인 면에서는 청교도 전문 출판사들의 경제적 뒷받침이 숙제로 남아 있고, 질

청교도 발  간사 대작 시리즈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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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면에서는 청교도 관련 저서들을 전문적으로 번역할 전문 번역가의 양 성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 중반 이후부터 한국 교회에서 도 젊은 목회자와 신학생과 성도들 사이에 청교도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증가되고 있는 좋은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청교도 저서 들에 대한 발간은 점진적으로 늘어 갈 것으로 보이며, 청교도에 대한 연구 또한 깊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영 적 성숙에 대단히 고무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청교도 책을 읽어야 하는가 왜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16~17세기 청교도들의 책을 읽을 필 요가 있을까요? 40여 년 동안 청교도들을 읽고 연구했던 제임스 패커는 이 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어떤 시대가 다른 시대에게 주 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다. 또한 나는 신약 성경 시대가 모든 시대 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위한 모범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 로 청교도 시대는 20세기 말의 서양 기독교 세계를 가르칠 특별한 교훈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또한 약 120명 이상의 중요 청교도들과 청교도들의 저서를 백과사전식으로 편찬한 『 청교도를 만나다 』라는 책에서 조엘 비키 는 청교도 저서들 속에 나타나 있는 청교도들의 특징을 ‘성경으로 삶을 형 성했으며, 교리와 실천을 완벽히 결합시켰으며, 그리스도에 집중적 관심을 두었고, 시련과 시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상과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 니다. 청교도들은 교회사의 영적 거인들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성경적 기 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청교도의 저 서들은 우리가 참된 기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성경의 참고서들입니다. 청교도 저서 발간의 전환점이 될 부흥과개혁사의 청교도 대작 시리즈 부흥과개혁사는 한국에 청교도 저서들을 소개하는 데 있어 미국의 배너 오브트루스사와 미국의 솔리데오글로리아사와 같은 기수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이미 청교도 가운데서 청교도의 황태자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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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4중 상태


존 오웬 전집, 18세기에서 마지막 청교도라 불리는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등의 꾸준한 발간을 통해 그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 는 청교도 대작 시리즈는 청교도 저서 발간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청교도 대작 시리즈는 16~17세기 청교도들이 남긴 걸작 중에 서도 분량 면에서 방대한 책을 말합니다. 그동안 청교도의 책들이 한국 교 회에 여러 권 소개된 적이 있지만 탁월한 청교도의 작품 가운데서 책의 분 량이 너무 많아 출판의 엄두를 내지 못하던 대작 ( magum opus ) 이 많이 있습 니다. 이 청교도 대작 시리즈는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등의 주요 주제들에 대해 가장 대표가 될 수 있는 탁월한 작품들을 선정하여 발 간하는 것입니다. 이 청교도 대작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한 권 또는 많아야 2~4권의 세트로 구성된 조직신학 책이나 기타 분량이 적은 단행본을 통해 서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웅대한 성경 진리의 세계를 깊고 넓게, 충격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교도 대작 시리즈 발간의 씨앗 이 청교도 대작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두 분이 있습니다. 청교도 책들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 을까요?’라는 한 의사 부부의 물음에 ‘청교도 원전 번역비를 지원하면 좋겠 습니다.’라고 제 친구 박순용 목사 ( 하늘영광교회

담임 ) 가

제안하자, 이 제안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응답한 영적 분별력을 가진 한 신실한 부부입니다. 그 분들의 후원으로 이 의미 깊은 청교도 대작 시리즈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 었습니다. 앞으로 청교도 대작 시리즈가 자라 큰 나무가 되어 이 땅의 수많 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그늘에서 쉬고 안식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청교도 발  간사 대작 시리즈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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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박순용 목사

한때 나는 청교도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청교도들을 구닥다리라 고 생각했다. 현대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청교도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역을 시작할 즈음에 한 가지 질문 에 직면하였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역자가 되어야 하는가? 또 내가 일평 생 배우고 따를 수 있는 모범적인 목회 사역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청교도들을 알게 되었다. 교회사 속에서 그들 은 마치 계보를 가진 것처럼 역사 속에 줄지어 있었다. 그 중에서 영국의 청교도들과 18세기 영적 각성의 주역들 (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등 ) 을 특별히 목회의 모범으로 주목했다. 그러던 중에 주의 은혜로 영국에 유학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청교도들에 대해 자세히 연구할 수 있었다. 그 기간 잊을 수 없는 두 경험이 내게 있었다. 하나는 18세기 대각성에 대한 논문을 쓰던 때였다. 조지 휫필드에 대한 글들을 읽다가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에 사로잡혀 책을 덮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경험이었다. 다른 하 나는 청교도에 대한 논문을 쓸 때였다. 청교도들의 방대한 글들, 특히 깊이 있는 청교도들의 글을 많이 접하면서 ‘어떻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 처럼 깊고 풍성하게 묵상하고 연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은 마치 청교도라는 망망대해 위에 떠다니는 조그만 조각배처럼 보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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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4중 상태


것없어 보였고 청교도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에 압도당 하여 밤을 지새운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청교도들의 삶을 흉내 내거나 청교도들의 설교 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청교도들이 갖고 있 었던 것을 나 또한 갖는 것, 곧 청교도들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사 로잡혀 사역하는 것이 내가 따라 가야 할 목회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 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고 부유하게 펼침으로써 독자들을 경건의 자리로 이끌었던 청교도들의 귀한 책들을 속히 한국 교회에 소개하고 싶다 는 소원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귀국 후에 청교도들의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 자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십 권의 책을 선정 및 추 천했다. 그러나 출판사의 재정적 열악함과 우리나라 기독서적 시장의 한계 로 정작 청교도의 보석 같은 대작들은 한국 교회에 소개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청교도 책을 통해 은혜의 단맛 을 본 사랑스런 집사님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그분들은 전라도의 한 섬에 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갈함과 주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으로 우리 교 회의 주일 예배에 자주 참석했다. 그런 만남 속에서 두 집사님은 주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물었고, 나는 그분들에게 청 교도들의 보고 ( 寶庫 ) 를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소개하는 복된 사역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그분들은 청교도 대작들이 한국에 번역 출판될 수 있도록 기꺼이 번역비를 감당하겠다고 했고, 평소에 청교도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백금산 목사가 그분들의 귀한 뜻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청교도 대작들을 시리즈로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재정 지 원과, 번역자의 오랜 수고 끝에 그 대작 시리즈 중에 다섯 번째로 『인간 본 성의 4중 상태』가 마침내 한국 교회 앞에 출간되게 되었다. 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의 손길이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 님에게만 영광을 돌릴지어다! 이 책이 출판되도록 헌신한 두 집사님과 부 흥과개혁사 위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풍성하기를 기도한다. 이 책을 통해 얄팍한 한국 교회의 강단과 신자들의 신앙과 삶이 일깨워질 뿐만 아니라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 주시길 기도한다.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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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토머스 보스턴의 『인간 본성의 4중 상태』는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로서 스코틀랜드,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 무려 100쇄 이상 발행되었다. 대각 성 시대 ( 1725~1760 ) 의 저명한 설교자들은 자주 갓 회심한 신자들에게 『인간 본성의 4중 상태』를 읽도록 추천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이 ‘탁월한’ 책을 좋아했고, 저자를 “진실로 위대한 신학자”로 칭송했다. 조지 휫필드는 이 책을 자신의 영혼에 ‘크게 영향을 미친’ 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존 웨슬 리는 이 책의 요약본을 자신이 선정한 청교도 총서에 포함시켜 출판할 정 도였다. 보스턴의 영향력은 『인간 본성의 4중 상태』가 프린스턴 신학교 독 서목록에 들어 있던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이 책의 한 부분은 1910년 후반기에 미국 근본주의를 태동시킨 논문집 「더 푼더맨털즈」에 실 리기도 했다. 1732년에 죽을 때 스코틀랜드 변방의 작은 교회들에게 사역을 통해 미친 영향력을 크게 능가하는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거의 생각조차 못했을 토머스 보스턴에게는, 이 모든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을 것 이다. 그러나 보스턴은 한평생 그리고 흙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하나님께 “죄인들의 죄에 대한 자각 및 회심과 성도들의 교화를 위해” 『인간 본성의 4중 상태』를 사용해 달라고 간구한 기도의 응답으로서 이 책의 궁극적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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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4중 상태


공을 확신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인 토머스 보스턴은 전문적인 의미로 볼 때 청교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늦게, 또 너무 먼 곳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보스턴의 삶과 사역은 청교도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거의 설명이 될 수 없다. 보스턴에 대한 초기의 기억 가운데 하나는 스코틀랜드 교회에 강요 된 영국국교회의 주교제 예배 형식과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소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면회한 일이었다. 이 기간에 보스턴은 스코 틀랜드 맹약파인 또 다른 비국교도 헨리 어스킨의 옥외설교를 듣고 회심하 게 되었다.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한 후 보스턴은 복음 사역을 시작했다. 보스턴은 전형적인 청교도 성향을 갖고 목회 사역에 임했고, 평이하지만 성경적이고 교리적이고 실천적인 청교도 고유의 설교 스타일에 따라 설교했다. 보스턴 은 청교도 저자들 곧 윌리엄 에임스, 새뮤얼 러더퍼드, 토머스 굿윈, 토머스 셰퍼드, 존 밀턴, 리처드 백스터 그리고 존 오웬 등의 책을 포함하여 청교 도 문헌에 무척 조예가 깊었다. 그러나 보스턴이 가장 선호한 책은 한 교구 민의 오두막집에서 발견한 소책자 『최근 신학의 정수』 ( The Divinity ) 라는

Marrow of Modern

책이었다. 이 책은 신학자 간의 대화 형식을 빌려 다수의 청교

도 저자의 글을 인용한 글들을 담아 놓고 있었다. 이 책의 두드러진 강조점 은 복음의 값없는 제고, 신앙의 본질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확신, 은혜로 말 미암는 성화와 같은 복음적 교리들이었다. 비록 『최근 신학의 정수』가 신학 적으로 공격을 받는 상태 - 스코틀랜드 교회 역사상 정수논쟁 ( the Controversy, 1717~1722 ) 으로

Marrow

알려져 있는 사건 - 에 있었지만, 보스턴은 이 책에

담겨 있는 은혜의 교리들이 율법주의로의 퇴행을 방지하고 칼빈주의를 보 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토머스 보스턴은 신실한 목사였다. 비록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여러 가 지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보스턴은 30년 이상 목회하면 서 한 번도 주일 강단을 비운 적이 없었다. 보스턴은 주일에 두 번씩 설교 하는 것 외에도, 주중에는 강의를 하고, 영적으로 권면하고 교리를 가르치 기 위해 말을 타고 널리 흩어져 사는 교구민들을 심방하는 등 의욕적으로 목회 사역을 감당했다.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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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의 목회 사역의 동반자는 아내 캐서린이었는데, 그녀 역시 고질적 인 육체의 질병과 심리적인 문제들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교구 사역에서 일어나는 통상적인 시험 외에도, 보스턴 부부는 아직 어린아이들인 여섯 명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많았고, 결국 네 명의 자녀 만이 살아남아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보스턴은 자녀들의 “상실의 아 픔을 주님의 임재로 채우는” 기도의 방법을 배웠고,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 하고 생애를 마칠 때까지 “자신을 복음 사역자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 토머스 보스턴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 대한 긴 해설, 언약신학에 관한 두 권의 책, 심오한 영적 자서전을 포함하여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썼 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 있는 그의 작품은 『인간 본성의 4중 상태』로서, 이 책은 목회 사역의 경험을 토대로 쓴 인간론에 대한 대작이다. 1699년에 보스턴은 스코틀랜드의 가장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기 위해 심 프린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전체 교구민 가운데 어른이 100명이 채 되지 않았고, 새로 부임한 목사에게 처음 설교를 듣기 위해 참석한 교인은 일곱 명에 불과했다. 호세아 4장 6절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을 강론 하면서, 보스턴은 설교자는 회중의 영적 상태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져 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로 “사역자들은 이 점에 소홀할 때 교인들의 영혼 을 죽이는 자가 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보스턴은 부지런한 사역자가 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즉각 인간의 “본성의 비참한 상태”와 “인간의 비참한 상태의 치유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일 년 계획 설교를 시작했다. 보스턴은 1707년 에트릭이 라는 시골의 교구교회 목사로 청빙을 받았을 때, 이 기본 계획을 다시 실천 했고, 그때 죄와 구원에 대한 자신의 설교를 무죄 ( innocece ), 본성 ( nature ), 은 혜 ( grace ), 영원 ( eternity ) 이라는 네 개의 범주에 따라 재구성했다. 이 “4중 상 태에 대한 설교”에서, 보스턴은 창조 당시의 완전함, 죄로 타락함, 그리스 도 안에서의 구속, 천국이나 지옥에서의 영원함이라는 네 가지 상태를 통 해 인간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추적했다. 처음에 보스턴은 이 설교를 출판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동료 사역자 들이 “멸망 속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이 목사님에게 달려 있으니 책임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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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4중 상태


하라”고 압력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져 출판을 허락했다. 보스 턴은 설교를 교정하는 데 여러 해를 소비했고, 결국 그 원고는 『인간 본성 의 4중 상태』 ( 1720 )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결정판으로 출간하 려고 한 번 더 개정되어 ( 1729 ) 그가 죽기 몇 년 전에 출판되었다. 따라서 토 머스 보스턴이 거의 한평생에 걸쳐 전한 다양한 형식의 설교들이 이 책에 포함되었다. 보스턴은 『책망과 은혜』라는 책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는 능력 ( posse non peccare ) 을 주신 은혜와 천국에 있는 성도들에게 죄 를 지을 수 없는 능력 ( non posse peccare ) 을 주실 은혜 사이를 구분한 아우구 스티누스 ( 354~430 ) 를 따라 내용을 구성했다. 중세 및 종교개혁 시대의 많은 신학자들은 이 구분을 받아들여 인간을 네 가지 상태로 설명하는 데 적용 했다. 즉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 ( posse peccare ),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 태 ( non posse non peccare ),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 posse non peccare ),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 ( non posse peccare ) 가 그것이다. 이 네 개의 범주는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에 나타나 있는데, 거기서 이 범주들은 “무죄의 상태”, “죄 인의 상태”, “은혜의 상태”, “영광의 상태”로 분류되고 있다. 보스턴은 이 “네 가지 상태”를 간단하기 때문에 사용했다. 목사로서 보스 턴은 회중에게 기독교의 경험적 진리를 이해시키는 데 기억하기 쉬운 범주 를 사용하기 원했고, 이 네 가지 범주는 그 점에서 완전한 구조를 제공했 다. 보스턴이 친히 하는 말을 확인해 보자. 천국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아야 할 아주 필수적인 네 가지 사실 이 있다. 1.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셨을 때 무죄 상태에 있었다는 것 ( was ). 2.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은 부패한 본성의 상태에 있다는 것 ( is ). 3. 인간이 만약 빛 속에서 성도의 기업에 참여하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심을 받아 은혜의 상태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 ( must be ). 4. 인간은 만유의 심판자 앞에서 영원토록 완전히 행복하거나 완전히 비참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상태 속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 ( will be ).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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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의 혁명적인 생각은 이 고상한 신학적 구조를 자신의 설교를 구성 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 있었다. 보스턴은 대부분 문맹이었던 교구민들이 자기들의 기원 ( 창조 ) 과 운명 ( 영원 ) 을 알기를 원했다. 또 그는 그들이 자기들 의 죄 ( 타락 ) 를 깨닫고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 ( 은혜 ) 을 보기 원 했다. 이 모든 것을 다양하게 적용시켜 보스턴은 교구민이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보스턴은 교구민에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려 주기를 원했다. 그것 때문에 보스턴은 그들에게 모든 인생에 대한 네 가지 단순한 신학적 체계 곧 “무죄의 상태”, “본성의 상태”, “은혜 의 상태”, “영원한 상태”를 제시한 것이다. 『청교도 고전으로의 초대』  ( 부흥과개혁사, 2009, pp. 410~416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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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죄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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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 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전 7:29 )

천국을 보게 될 모든 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네 가지가 있다. 1.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을 때 사람의 무죄 상태 2. 사람이 스스로 타락함으로써 처하게 된 부패한 본성의 상태 3. ‌ 선한 일을 행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가 빛 가운 데 있는 성도의 기업에 참여하기 위한 은혜의 상태 4. ‌ 모든 자의 재판관에 의해 완벽한 행복의 상태로, 또는 철저한 비참의 상태로 거하게 될 각 사람의 영원한 상태 이 네 가지는 실천적인 경건의 핵심 부분을 언급하고 있지만 마지막 시 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심지어 많은 신자들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 내용들을 활짝 열어 우리에 게 적용하고자 한다. 필자는 네 가지 중에 첫 번째 것, 즉 무죄의 상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궁전처럼 우아했던 사람의 파멸은 우리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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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파괴를 고치시기 위해 아버지가 지명하신 비할 데 없는 그분을 더욱 귀히 여기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굳건한 결단을 내 리고 요지부동한 기초를 지닌 그 도성을 향하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본문 전도서 7장 29절은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1. 사람은 무죄의 상태로 지음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

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우리의 첫 번째 조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인류의 뿌리인 최초의 부부를 의미한다. 이후의 모든 세대들이 그 샘으로 부터 흘러나왔다. 이 구절을 창세기 5장 1~2절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 사 실이 드러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 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

5:1~2 ).

즉, 인류의

뿌리는 “사람”이며, 원어로는 우리의 본문의 “사람”( 아담 ) 과 똑같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 하나님의 속성에 잘 맞추어진 상태로 완벽하게 그리고 ) 정직하게 지음을 받았다. 그는 몸과 영혼에 있어서 결함이 전혀 없었고 아무런 부패가 없었 으며 낡아지지 않았다. 그는 “정직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그의 영혼 안에 는 아무런 불규칙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과 법에 거치는 것이 없었다. 사람 은 처음 창조될 때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아 그분을 곧바로 향하고 있었다. 이런 올곧은 성향은 그의 몸이 다른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들과는 달리 직립으로 지어진 점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다윗은 복음적인 의미 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지만, 첫 사람은 의로우며 순결하고 거 룩하여 법적인 의미에서 온전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사람을 그렇 게 지으셨다. 처음에 그렇게 짓지 않으시고 나중에 의롭게 만드신 것이 아 니라, 바로 처음 그를 만드실 때 의롭게 지으셨다. 그러므로 본래의 의가 사람과 함께 했으며, 또한 사람은 사람이 되는 순간 도덕적으로 선하고 의 로운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산 영을 불어 넣으실 때 주의 의로운 영혼을 불어 넣으셨다. 2. 여기에 사람의 타락한 상태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

니라.”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더니 자신들의 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스스로 삶을 영위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철저하게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그들의 파괴는 오직 그들 자신의 고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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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 動議 ) 로 인한 것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으신 대로 머무 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많은 꾀들을 내어 자신들을 기형으로 만들더 니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3. 이 사실들의 확실성과 중요성을 관찰하라.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

이라.” 이 사실들을 믿으라. 이 사실들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깊은 연구 와 신중한 조사를 통해 알아낸 것들이다. 본문 앞에 있는 두 구절을 보면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선을 찾는 자로 자신을 묘사한다. 하지만 그의 문제 는 그가 아무리 선을 찾아도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데 있었다. 아무리 수고스러워도 그는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였다”( 전

7:27 ).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이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본 문인 29절에서 언급된다. “내 마음이 계속 찾아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솔로몬은 자신의 조사를 마무리해 줄 수 있는 만족할 만한 해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선한 것은 천 사람 가운데 한 사람밖에 없 을 정도로 매우 희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솔로몬의 원대한 물음인 “어디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 었는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이 점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솔로 몬의 경험과 상반되기 때문에 그의 통찰력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따라 서 그의 원대한 질문은 전혀 해답을 얻지 못한 채 마지막 날까지 미해결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 모든 불확실함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후 확증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당 신은 “이것”을 가장 분명한 진리로 알고 의지할 수 있으며 그 진리 안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보라. 이것을 깨달았노라.” 당신의 가장 깊고 신중 한 관심을 이 진리에 두고 당신의 눈을 그것에 고정하라. 그 진리는 지금 사람의 본성이 부패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기” 때문에 이 부패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꾀들은 냄으로” 그 자신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교리: 하나님은 사람을 전적으로 의롭게 지으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 세상에 두실 때 사람은 무죄의 상태에 있었다.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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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상태와 비교하여 무죄의 상태를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다. 무죄 상태는 사람이 자유의지를 남용함으로써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마치 금세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필자는 I. 사람이 지음을 받았을 때 있던 무죄 상태의 의를 살펴보겠다. II. 의의 ‌ 상태와 동반했던 몇 가지 행복한 여건들과 결과들을 당신에게 보 여 주겠다. III. 이 전체를 적용해 보겠다.

I. 사람의 본래의 의에 대하여 무죄 상태의 의에 대해서는 피조되지 않은 의, 곧 하나님의 의가 최고의 척도다. 사람의 의든 천사들의 의든 피조된 모든 의는 그 척도로서 법을 지 니며 그 법에 순응해야 한다. 피조물은 자연세계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피조물은 도덕적으로도 그 행동과 힘에 있어 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다. 피조물은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뜻을 최고의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피조물은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직 그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분의 뜻에 따 라야 한다. 하지만 법이 계시될 때까지는 아무런 법에 구속되지 않는다. 그 러므로 이성적인 피조물인 사람은 지음받았을 때부터 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 법은 사람에게 계시되었다. 본문은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이 지 음받았을 때 순응해야 할 법이 있음을 전제한다. 무엇이든 규칙적이거나 규칙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법은 영원하며 없애서는 안 될 의의 법으로서, 사람의 육적인 지 각 ( 知覺, mind ) 은 거절한 법이지만 둘째 아담은 모든 사항을 완전히 준행하신 법이라는 사실이다. 이교도들에게도 이 법에 대한 부분적인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된다”( 롬 2:14 ).

즉, 이 법은 우리가 도덕법이라고 부르는 십계명으로 요약되어 나중에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되었다. 사람의 의는 이 율법 또는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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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에 순응하는 데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순응이 필요하다. 하나 는 율법에 그의 영혼의 능력이 순응하는 것으로 특유의 의라고 불리고, 다 른 하나는 사람의 모든 행동이 그 법에 순응하는 것으로 실제적인 의라고 불린다. 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특유의 의를 지닌 존재로 지으셨다. 이에 사람은 스스로 의롭게 행동해야 했다. 특유의 의는 하나님이 사람의 손에 쥐어 준 자본이었다. 사람은 특유의 의를 사용하고 발전시켜서 실제 적인 의를 만들어 내야 했다. 필자가 말한 것을 요약하면, 사람이 지음받았 을 때 지녔던 의는 그의 영혼의 모든 기능과 능력이 도덕법에 순응하게 하 는 의였다. 우리는 사람이 지음받았을 때 맨 처음 부여받은 이 의를 본래의 의 ( Original Righteousness ) 라고 부른다. 이 의는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루어 볼 수

있다. 1. 사람의 이해력은 빛의 등불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형상의 일부분인 지식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다. 따라 서 율법과 그 율법에 따르는 의무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새 사람을 입었으 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 은 자니라”( 골 3:10 ). 실제로 그가 보편적인 순종을 하려면 완벽한 지식이 필 요했다. 하나님의 계명을 알지 못하면 율법에 따라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물론 아담은 돌에 새겨진 율법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지음받았을 때 그의 지각에 율법에 대한 지식이 쓰여 있었다. 하나님은 율 법을 아담의 영혼에 새겨 넣으셨고 그가 자기 자신에게 율법이 되게 하셨 다. 이 사실은 이교도들에게도 그 흔적이 남아 증거 되고 있다 ( 롬

2:14~15 ).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가운데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만물의 입이 되었다. 이를 근거로 우리는 아담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 에 대한 정교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증거로서 아담이 들판의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 및 생물들에게 그것들의 본성에 따라 이름을 지어 준 사건을 들 수 있다. “아담이 각 생물 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 2:19 ). 하나님은 아담의 의지가 하 나님의 뜻에 여전히 복종하는 상태에서 그가 자신의 뜻에 따라 진지하게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셨다. 이는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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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물의 본성에 대한 지식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율법에 대한 그의 완벽한 지식은 사회질서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을 입증한다. 이 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의로운 자는] 그 일을 정의로 행하기”( 시 112:5 ) 때문이다. 2. 사람의 의지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과 잘 어울렸다 ( 엡 4:24 ). 그의 의지

에는 부패가 전혀 없었으며 악을 향하는 성향도 전혀 없었다. 이는 정확하 게 말하면 죄가 없었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7절에서 “율법으 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 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고 말한다. 악을 향하 는 성향은 참으로 죄의 원천이며 그 성향은 본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처 럼 사람이 지음을 받을 때 지녔던 올바름 또는 정직과 어긋난다. 그때 사람 의 의지는 비록 변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라도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선을 향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이 원래 지어진 사 람의 의지는 창조주의 뜻을 그대로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즉, 선과 악에 대해 균등한 성향을 지닌 상태가 아니었다. 만일 조금이라도 그가 올바르 지 않거나 율법에 순응하는 특유함이 부족해지면, 어느새 사람은 그의 주 요 목적이신 하나님을 향하는 성향을 잃을 것이며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할 것이다. 율법은 아담의 영혼에 새겨졌다. 이 사실은 지금 새 언약에 따 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상태에서 볼 때 두 가지를 포함한다. (1) 지각 ( mind ) 에 율법이 새겨졌다는 것은 율법에 대한 지식이 새겨진 것을 나타낸다. (2) 마음 ( heart ) 에 율법이 새겨졌다는 것은 의지에 있어서 율법의 명령에 호응하려는 성향을 지닌 것을 나타낸다 ( 히 8:10 ). 우리가 은혜에 의해 새롭게 된 사람의 의지를 고려할 때, 그 의지는 자연스럽게 모든 면에서 율법이 요 구하는 대로 거룩을 향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지으셨을 때 아 담의 의지 역시 율법이 명하는 모든 것을 행하려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부 여받았다. 만일 중생한 사람이 베드로후서 1장 4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 것이 분명하다면, 그리고 이 신성한 성품이 사람의 마음에 거룩을 향하는 성향을 들여놓을 수 있다면 분명히 아담의 의지도 이런 성향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담 안에 있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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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의 형상이 완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서 2장 14~15절에서 “[이 방인들은]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말한 내용은 옳 다. 하지만 이는 단지 율법에 대한 그들의 지식에 있어서 그렇다는 의미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8장 10절에서 마음과 생각을 서로 뚜렷하게 구 별하여 언급하면서 하나님은 새 언약 안에서 “그분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고 말한다. 이는 이방인들이 비록 그들의 생각으로는 율법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의지는 율법과 정반대로 향하는 편향과 취향을 지닌 것과는 달리, 중생한 자들의 마음에는 전혀 다른 성향이 들어 온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마음을 나타내는 “그분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사람의 생각 안에 있는 율법에 대 한 관념뿐만 아니라 그 관념과 함께 갈 의지의 성향도 부여하셨음을 의미 한다. 이 성향은 중생한 영혼 안에서는 부패와 섞여 존재하지만 처음 지어 진 정직한 아담 안에서는 부패와 섞이지 않고 온전히 순결했다. 요약하면, 아담은 어떤 의무를 감당해야 그의 주인의 기쁨이 되는지 알고 있었으며 아담의 의지는 그가 아는 바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3. 사람의 감정은 정연하고 순결하고 거룩했다. 사람은 정직하게 지음을 받

았기 때문에 감정 부분도 온전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5절 에서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를” 청원한다. 즉,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곧게 해달라는, 또는 그들의 마음 이 하나님의 사랑을 똑바로 향하도록 만들어 달라는 간구다. 우리의 본문 은 사람이 정직하게 지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 함으로 지음을 받았다”( 엡 4:24 ). 이제 의와 구별되는 이 거룩함은 순수하고 정연한 감정을 들여놓는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다툼 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 딤전 2:8 ) 고 당부한다. 이는 거칠게 요동 하는 물이 태양의 모양을 비추기에 적절하지 않듯이 더럽고 무질서한 감정 으로 가득 찬 마음은 하나님과 교통하기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의 감성적인 욕구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그 감성을 만족시켜 줄 대상을 향 하게 된다. 사람이 몸과 영혼으로 지어진 점과,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과 즐 거움을 위해 사람을 지으셨다는 점,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그분의 선한 피 조물들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시는 점을 고려할 때 사람이 자연스럽게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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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선과 감성적인 선을 향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사람 의 궁극적인 주된 목적은 영적인 선이다. 그러므로 그의 감성의 움직임과 성향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그의 이성과 의지에 복종함으로써 조금도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모순된 상태로 지어 졌을 것이다. 즉,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의 영혼의 우등한 부분은 자연스럽 게 하나님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주께로 향하겠지만, 그의 영혼의 열등한 부분은 피조물을 주요 목적으로 삼아 그것들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 람이 동시에 두 개의 주된 목표를 지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때 사람의 원래 상태의 감정은 그 어떤 더러움도 없는 순결한 것이었 고 모든 무질서와 모든 병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이유는 사람의 감정의 모든 움직임이 자신의 맑은 이성과 거룩한 의지에 마땅히 순복했기 때문이 다. 사람은 또한 자신의 의지에 응답할 수 있는 실행 능력을 지니고 있었 다. 즉,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선을 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아가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심지어 율법 전체를 다 이루고자 하는 성 향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완벽한 순종 을 요구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 신다”고 말하는 것은 선하고 풍성하신 하나님을 대항하여 악한 마음이 던 지는 모독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 마 25:24~26 ).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으로부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성경에서 설명된 본래의 의는 보편적이며 자연적이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변할 수 있었다는 사 실이다.

1. 본래의 의는 그 주체에 있어서 전인 ( the whole man ) 이며 그 대상에 있어 서는 전체 율법이라는 면에서 보편적이었다. 필자가 보편적이라고 하는 것 은 주체와 관련하여 언급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본래의 의는 전인 안에 골 고루 퍼져 있기 때문이다. 본래의 의는 마치 복된 효소처럼 전체 덩어리를 부풀게 했다. 하나님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성막을 세우실 때 그 안에는 잘 못된 핀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 흐트러져 있다. 그때 사람은 영과 혼과 몸에 있어서 거룩했다. 영혼은 오염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 몸은 더럽혀지지 않은 채 깨끗했다. 몸의 지체들은 거룩한 그릇으로서 의의 도 구였다. 육체와 영 사이의 갈등, 이성과 욕구, 즉 죄를 지으려는 가장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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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 또는 영혼의 열등한 부분에 있는 육체의 정욕과의 갈등은 사람이 원 래 지음받은 정직함과는 완전히 모순되었다. 이런 갈등설은 사람의 본성의 부패를 숨기기 위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 리기 위해 고안되어 왔다. 이 갈등설은 타락한 아담이 그의 창조주 앞에서 자신의 죄를 두고 던진 말과 흡사해 보인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 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 나이다”( 창 3:12 ). 하지만 주체에 있어서 본래의 의가 보편적이었던 이유는 그 의가 사람의 전인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상에 있어서는 거룩한 율법이 보편적 이었다. 지금은 죄 때문에 사람이 율법과 불화하지만 그때는 율법 안에 하 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이성과 의지에 어긋나는 것이 전혀 없었다. 사람의 영혼은 율법의 명령에 잘 따를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 고, 그 범위가 무한할지라도 얼마든지 지킬 수 있었다. 이에 사람의 본래의 의는 각 부분에 있어서도 완벽했을 뿐만 아니라 정도에 있어서도 완벽했다. 2. 무죄의 상태에서 본래의 의는 보편적이었고, 또한 초자연적인 것이 아 니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의는 사람 그 자체처럼 본질적인 것은 아니 었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그 의를 잃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의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웠다. 그는 그 의와 함께 지음을 받았고, 사람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사람의 의는 그의 온전함에 꼭 필요했다. 또한 온전한 상태에 계속 있기 위해서도 그 의 는 사람에게 필요했다. 3. 하지만 그 의는 변할 수 있었다. 슬픈 사건에 의해 드러난 것처럼 그 의는 잃어버릴 수 있는 의였다. 사람의 의지는 선과 악에 대해 완벽하게 무 관심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를 오직 선을 향하도록 정하 셨지만 그 성향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시거나 그렇게 확정하신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온전한 상태에 굳건히 설 수 있 는 충분한 힘을 주셨더라도 사람의 의지는 그가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악 을 향해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점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일로 아무도 하나 님과 다투지 않도록 하라. 그 이유는 만일 아담이 불변하는 의를 지녔다면 본성적으로나 거저 주는 선물에 의해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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