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오직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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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에 대한 찬사 “트루먼은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복잡한 개념들을 가져와서 우리에 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준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죄악으로 인한 우 리의 곤경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으로 성경적인 경건의 핵심에 있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교회, 설교, 성례전, 기도와 관련시 켜서 이 주제를 전개해 나간다.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이 책에서 트루 먼이 그려 낸 성경적 경건에 깊이 공감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 권에 대한 그의 강조와 설교 사역에 대한 그의 감동적인 설명 등과 같은 다른 많은 보화도 발견했다. 이 책은 은혜가 풍성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 매튜 레버링, 먼델라인 신학교 신학 석좌교수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은혜’는 거의 진부한 상투어에 가까울 만 큼 아주 흔히 사용되는 단어다. 하지만 복음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곧 은혜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 트루먼은 우리 모두가 은혜와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동적인 임재, 구약의 약속과 신약에서 이루어진 성취, 초기 교부들의 옛 신앙과 후대의 개신교 종교개혁, 은 혜와 관련된 풍성한 신학과 그것이 경건과 예배에서 지니는 필연적 인 함의를 서로 연결시키는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하는 것을 도와준다. 이 책은 성경적이고 역사적이며 목회적으로 중요하지만 흔히 모호했 던 관점을 진정으로 놀라운 실체로 드러내 준다.” - 마이클 앨런,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이 책은 비상한 주제를 다룬 뛰어난 책이다. 은혜의 성경적 토대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대단히 흥미로울 뿐 아니라 아주 해박한 지식 을 가지고 ‘은혜’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책의 여러 장점 중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은혜를 개인과 교회에 실 천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나 는 이 책이 쓰인 것을 감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할 바 없는 은혜 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한다.” - 조나단 매스터, 케언 대학교 신학부 신학 교수 겸 학장

“기독교 전통의 역사적인 텍스트를 이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와 연 결시켜 실체적인 삶에 적용시키는 데에 대가인 트루먼은 아우구스티 누스, 아퀴나스, 루터, 칼빈이 성경의 토대를 이루는 은혜 개념을 그 들의 시대에 어떤 식으로 적용했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런 후에, 그러한 분석을 토대로 해서 오늘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성례전, 신자들의 기도를 통해 은혜가 교회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 는지 생생하게 파헤친다. 이 책을 통해서 트루먼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생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하나님이 죄악 된 세상을 다루는 틀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여 줌으로써, 은혜 개념이 21세 기에도 여전히 그 중요성을 잃지 않고 있다고 단언한다.” - 로버트 콜브, 세인트루이스 컨콜디아 신학교 조직신학 명예교수


“은혜는 어디에 있는가? 은혜란 무엇인가? 누가 은혜인가? 은혜는 어떻게 우리에게 수여되는가? 나는 오늘날 상당수의 기독교 문헌에 서 은혜가 공허한 감상이 되어 버렸다는 트루먼의 탄식에 공감한다. ‘오직 은혜’라는 종교개혁의 외침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리고 왜 그것이 오늘날 그토록 중요한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트루먼은 은혜와 관련된 역사와 신학을 둘 다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 는 은혜가 우리와 맞서 싸우고자 하는 ‘대결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 문에, 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는 은혜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 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직 은혜’를 믿는 교회가 어떤 것들을 진지하 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으라.” - 에이미 버드, 『하찮은 여자는 없다』 ( No Little Women ), 『주부 신학자』 ( Housewife Theologian ) 의 저자, 복음주의자 연맹 여성분과 위원장

“칼 트루먼의 글은 늘 읽을 가치가 있지만, 나는 ‘오직 은혜’라는 개신교의 전투 구호를 다룬 이 탁월한 책을 특히 적극적으로 추천한 다. 이 책은 그가 단지 신학자일 뿐만 아니라 실제의 삶을 다루는 목 회자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책을 펴자마자 사람들의 마음에 도 전을 던지고, 그런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장엄 한 주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 준다. 이 책은 깊은 향취를 지니고 있어서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할 책이다.” - 토드 프루이트,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에 있는 언약장로교회 목사


ⓒ 2017 by Carl R. Trueman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as With: Grace Alone by Zondervan, Nashville, TN, USA.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translation edition © 2018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Zondervan Corporation L.L.C.,a division of HarperCollins Christian Publishing, Inc.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 에이전시를 통하여 Zondervan과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신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 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 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오직 은혜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

칼 트루먼 지음 박문재 옮김


목차

총서 편집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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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휴즈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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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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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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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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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솔라 그라티아’ 1장 성경과 ‌ 은혜

• 23

2장 ‌ 은혜 서사: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 69

3장 ‌ 은혜 논쟁: 아우구스티누스 대 펠라기우스

• 103

4장 의외의 ‌ 우군: 토마스 아퀴나스

• 139

5장 ‌ 은혜로 말미암는 칭의: 마르틴 루터

• 171

6장 ‌ 은혜 개혁: 존 칼빈과 개혁교회 전통

• 207


2부 교회와 ‘솔라 그라티아’

결론

7장 ‌ 교회

• 243

8장 ‌ 말씀

• 267

9장 ‌ 성례전: 세례와 성찬

• 301

10장 ‌ 기도

• 333

•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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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S

총서 편집자 서문

복음적인 개신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관련해서 종교개혁의 다섯 ‘솔라’보다 더 기본적인 교리들이 있을 수 있는 가?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오늘날 복음적인 교회에 속한 신자들 중에는 ‘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 ),

‘솔라 그라티아’( 오직

은혜 ),

‘솔라 피데’( 오직 믿음 ), ‘솔루스 크리스투스’( 오직 그리스도 ), ‘솔리 데 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의 영광 ) 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물론 그들은 이런 표현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지만, 각각의 ‘솔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 주는 교리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서 알고 있을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기를 기도한다. 하지 만 내게는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다섯 ‘솔라’의 내용에 대해서조차 알지 못하고 있고, 좀 더 심하게 말해서 거부감을 느 끼고 있다는 의구심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가 의심받고, 구 원을 위한 믿음의 필요성과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라는 것이 다원론적인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말로 들리며, 우리의 직업 속 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오늘날의 문화 에 대한 적응으로 말미암아 약화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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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래서 우리는 이 다섯 ‘솔라’가 오늘날의 교회에는 맞지도 않고 유 익도 없는 지난 시대의 유물로서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제격이라 고 생각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솔라’들은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에게 필 요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2017년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이것 을 기념해서 오늘날 최고의 신학자들에 의해 쓰인 이 다섯 권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우리의 목적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직시하는 가운데 우리의 올바른 신학을 회복하고 영적으로 새로운 힘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다섯 ‘솔라’의 우물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어둠 뒤의 빛 ( Post tenebras lux )  총서 편집자 매튜 바렛

총서 편집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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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 휴즈 서문

칼 트루먼이 종교개혁의 두 번째 ‘솔라’인 ‘솔라 그라티아’( sola gratia ) 에

대한 해설을 다각도로 풍부하게 제시해 놓은 이 책은 독

자들을 아주 묘하게 사로잡아서 은혜에 대한 쉽게 잊혀지거나 지 워지지 않을 깊고 오래가는 이해를 그들의 마음속에 남겨 놓을 것이다. 이 책이 그런 결과를 낳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핵심적인 성경 본문에 대한 트루먼 박사의 해설은 은혜론 에 대한 오늘날의 이해의 상당 부분을 뒤덮고 있는 감상적인 추 상물의 안개를 깨끗이 걷어 준다. 트루먼은 구약과 신약의 피에 물든 땅이라는 토대 위에 이 교리를 견고하게 세우는 방식으로 그 작업을 해낸다. 먼저 그는 창세기 서사 속에서 인간의 타락으 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역사의 첫 시작, 즉 하 나님이 짐승을 죽여서 피 묻은 그대로의 가죽을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서 이 죄악 된 부부의 수치를 가려 주는 장면을 우 리에게 설명해 준다. 그런 후에, 트루먼은 족장사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친히 껍질이 벗겨진 피투성이의 희생제물 사이를 지나 가면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 이 최초의 역사가 또다시 반 복해서 나타났음을 보여 주고, 이 언약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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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무조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중에 시내산에서 제정된 희생제사 제도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이었다. 하나님은 은혜를 토대로 해서 자신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주도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와서 희생제사 제도를 새 롭게 창설하고 견고히 하며 주재했다. 이 희생제사 제도의 뿌리가 시원사와 족장사에 있다는 것은 희생제물이 피투성이의 날 것으 로 드려지는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트루먼의 도발적인 표현 을 빌려서 말하자면, 구약에서 우리가 배우는 신학적 교훈은 이것 이다. “죄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으로서 죽음을 불러 온 폭거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날 것 그대로의 피투성이의 격렬한 반응이다.” 이렇게 해서 피에 물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신약의 기사 는 구속사 속에 우뚝 솟은 중심이고 하나님의 최고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의 최고 현현에 대한 기사가 된다. 그리스도 없이는 은혜를 언급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할 수조차 없 다. 이것은 은혜가 죄를 너그럽게 눈감아 주는 것이라거나 비인격 적이고 기계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감상적인 인식을 영원히 잠들게 만든다. 이 책이 은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넓혀 주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적용할 수 있게 해 주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아우구스티누 스의 『고백록』에서 시작해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로 끝나는 매 혹적인 신학적 순례를 통해, 은혜가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이해 되고 실제의 삶 속에 적용되어 왔는지를 트루먼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례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 1 ) 지진 이 일어난 것 같이 이루어졌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격렬한 회심, 하 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대한 그의 체험, 하나님이 자기를 회심시

켄트 휴즈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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켰다는 그의 이해, 그러한 이해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타오르게 된 펠라기우스의 불,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가 펠 라기우스를 반박하는 글들을 쓰게 되고, 거기에서 은혜론의 석의 적이고 신학적인 토대가 만들어지게 된 것, ( 2 ) 중세 시대에 토마 스 아퀴나스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계승하고 심화시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사용하여 예정론을 토대로 은혜에 대 한 풍성한 성경적 이해를 정형화해 내는 기여를 한 것, ( 3 ) 마르 틴 루터가 중세 후기의 신비주의적인 환경과 대세 가운데서 믿음 의 행위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은혜의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자신의 성숙한 이해를 바탕으로 은혜로 말미암는 이신칭의론을 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 ( 4 ) 루터는 예정론을 고 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정론을 둘러싸고 루터교 내에서 분열이 일어남으로써 은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주도권은 개혁교회로 넘어갔고, 존 칼빈은 아무런 혁신도 더하지 않고 단지 이 교리를 명료하게 했을 뿐이지만, 택정과 예정과 은혜는 오직 그리스도 안 에서만 고찰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켄트 휴즈 일리노이주 휘튼 대학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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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그동안 도움을 준 분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먼저 이 다섯 ‘솔라’ 총서 중 한 부분을 내게 맡겨 준 매튜 바렛에게 감사한다. 토머스 슈라이너, 데이비드 반 드루넨, 스티븐 웰럼, 매튜 바렛 같은 분들이 이 총서를 맡아 훌륭 한 책들을 집필해 주어서, 나는 여러 해 동안 그 책들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어 왔는데, 이제 그분들과 더불어 이 총서의 일익을 담 당하게 된 것은 내게 영광이다. 또한 원고 마감 기한을 여러 번 넘겼는데도 잘 참아 주고, 나의 원고를 정성껏 편집해서 책으로 나올 수 있게 잘 다듬어 준 라이 언 패즈더를 비롯한 존더반 출판사의 편집부 직원들에게 감사한 다. 아울러 나의 초고를 읽고서 큰 도움이 된 평을 해 준 코너스톤 대학교의 마이클 위트머, 매튜, 라이언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표한 다. 또한 나의 원고를 읽고서 아퀴나스를 다룬 장에 대해 중요한 평을 해 준, 먼델라인 신학교에 재직 중인 내 친구 매튜 레버링에 게 감사한다. 끝으로, 변함없이 내 옆에서 나를 격려해 준 내 아내 카트리오 나와 지금은 집에서 떠나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지지해 주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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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는 나의 두 아들 존과 피터에게 감사한다. 2015년 12월에 펜실베이니아주 올랜드에서 칼 트루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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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어

APW ‌ Saint Augustine: Anti-Pelagian Writings. Edited by P. Schaff. New York: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1887.

LW ‌ Luther’s Works. 82 vols. projected. St. Louis: Concordia; Philadelphia: Fortress, 1955–86; 2009–.

ST

Thomas Aquinas’s Summa Theologiae.

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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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은혜와 관련된 표현은 성경과 모든 전통의 기독교 신학에 아주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말 하는 것은 사실상 어떤 실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을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말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차이를 알 수 없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가브리엘 비엘 ( Gabriel Biel ), 마르틴 루터와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 Desiderius

Erasmus ),

윌리

엄 퍼킨스 ( William Perkins ) 와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 James Arminius ) 사이의 차이도 알 수 없다. 이 사람들의 차이는 은혜를 어떻게 이 해했느냐에 있었다. 그러므로 은혜라는 말이 단지 신학적 수사의 공허한 단편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은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 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 “오직 믿음”과 달리 “오직 은혜”라는 어 구는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 큰 논쟁을 불 러일으키지 않는다.1  )

1  )   ‘솔라 피데’를 다룬 것으로는 Thomas R. Schreiner, Faith Alone—The Doct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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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나는 몇 년 전에 TV에서 “모닝 조”( Morning

Joe ) 라는

뉴스 프로

그램을 보면서 그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날 그 프로 그램에 출연한 사람들 중에는 미국 장로교회의 유명한 목사도 있 었는데, 사회자는 은혜에 대해 그가 최근에 쓴 책과 관련해서 인 터뷰를 진행했다. 이 목사는 대략 8분가량 은혜에 대해 말했지만, 은혜가 무엇인지를 정의해서 말해 주지도 않았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 라서 그 인터뷰가 끝났을 때, 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은혜는 마치 아이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 주는 부모가 말썽쟁이 자녀를 대하듯이 하나님이 사람들의 죄를 너그럽게 눈감아 주는 것 또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나 하나님의 그러한 정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 인터뷰는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의 반역에 대해 눈감아 주고 모르는 척하는 것일 뿐이고 그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우리 뜻대로 어떻게 행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다 받아 주는 것이 하나 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앞으로 성경이 은혜에 대해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를 살펴보 고, 기독교 전통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이 은혜를 어떻게 정의하 고 정형화했는지를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만, 은혜는 단순히 하나 님의 어떤 태도나 정서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반역에 대해 눈을 감고 마치 못 본 척하지 않고, 그런 것과는 반대로 하나 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속에서 그 문제를 정 면으로 다룬다. 성경은 끊임없이 은혜를 그리스도와 연결시키고, 기독교 신앙의 최고 신학자들은 언제나 그런 연결 관계를 은혜에

of Justification (Grand Rapids: Zondervan, 2015)을 보라.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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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그들의 이해와 설명의 중심에 두었다. 은혜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내가 본 그 뉴스 프로그램 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했던 목사가 “은혜”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 은 그가 성경적인 “은혜” 개념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 는 단서일 것이다. 종교개혁의 다섯 ‘솔라’를 다루는 총서의 일부인 이 책에서 나 는 성경에서 은혜를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개관함으로써 은혜 개 념을 천착할 것이다. 그런 후에,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교회사 속에서 은혜가 어떤 식으로 설명되었는지 살펴보는 데 상 당한 시간을 들일 것이다. 이 책에서 이러한 역사적 논의를 종교 개혁에서 끝마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종교개혁을 교회생활의 순 수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준 황금시대 또는 전성기라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개신교와 복음주의의 이해의 기 본적인 형태들이 종교개혁 속에서 충분히 드러나고 발전된 까닭 에, 우리 시대를 위한 교훈을 거기에서 이끌어 내는 데 아무 문제 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성경적인 은혜 이해와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은혜론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다룬다. 1장에서는 먼저 은혜에 대한 성경적 전거들과 가르침을 간략하 게 개관함으로써, 성경적 은혜 이해를 위한 필수적인 토대를 마련 할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행위, 그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 안 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세워진다. 2장과 3장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필두로 해서 역사적 은혜 이해를 살펴보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걸작인 『고백 록』을 검토해 볼 것인데, 이 저작은 죄와 은혜에 대한 직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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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이해라고 규정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한 자서전이다. 이 저작이 단지 기독교 진영 내에서만이 아니라 심리 적 자서전이라는 장르 및 자아 이해와 관련해서도 아주 큰 영향 을 미쳐 온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본서에서는 이 저 작을 죄와 은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와, 그 저작으로 인 해 촉발된 웨일스인 수도사 펠라기우스 및 그의 추종자들과의 논 쟁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 펠라기우스 논쟁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자신의 은혜론을 더 욱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그의 은혜론 이 서양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중에 벤저민 워필드 ( Benjamin Warfield ) 가 말했듯이, 종 교개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론에 대한 그의 은혜론의 승리 였다. 4장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살펴볼 것이다. 아퀴나스 의 은혜 사상은 성례전론을 포함하고 있어서 방대하고 복잡하지 만, 여기서는 그의 전체적인 은혜론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아퀴 나스는 은혜는 인간이 단지 자신의 본성만으로는 이룰 수 없고 또한 타락한 존재로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인 “영광”으로 인간을 데려다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아퀴나스는 많은 개신교인 들에게는 미지의 낯선 땅이기는 하지만, 그의 은혜 이해는 하나님 의 절대주권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가 중세 시대에도 여 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5장과 6장에서는 종교개혁 시대를 다루는데,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노예의지와 관련해서 벌어진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충돌, 예 정론에 대한 칼빈과 하인리히 불링거, 개혁교회 신앙고백들의 견 해다. 종교개혁에서 아주 중요했던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구원의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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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라는 새로운 목적을 위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론과 예 정론을 가져와서 어떤 식으로 사용했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경험적 통찰이었다 고 할 수 있다. 6장에서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도래로 인해 개신 교의 반 ( 反 ) 펠라기우스적인 전통이 끝난 것에 대해서도 다룰 것 이다. 본서의 나머지 절반인 2부에서는 은혜와 교회를 다룬다. 7장부 터 10장까지 종교개혁의 은혜 이해가 지닌 실천적인 함의를 살펴 보는 데 할애될 것인데, 교회와 은혜의 수단들이 차례로 검토될 것이다. 7장에서는 교회가 하나님이 행하는 그 무엇이고, 새로운 피조물이며,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서의 행위 ( 우리가 본능적으로 생각하듯이 ) 가

흔히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

라는 것을 살펴볼 것이다. 8장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이 루는 수단으로서 말씀 선포를 다룰 것이다. 9장에서는 성례전을 좀 더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 다. 그리고 10장에서는 왜 기도를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으로 보 아야 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결론에서는 우리가 본서를 통해서 지금까지 알게 된 것들을 종합해서 몇 가지 실천적인 교훈을 이 끌어 낼 것이다. 은혜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고, 은혜론은 하나님의 심장 자체 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줄 뿐 아니라 타락으로 인해서 너무나 비극적으로 상실해 버렸던 하나님과의 저 귀한 교제 속으로 우리 를 다시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인간 실존의 깊이를 다루는 교리 다. 나의 소망은 이 작은 책으로 인해 여러분이 이 문제를 교리적 으로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여러분이 예배하 는 하나님에 대해 더 영광스러운 비전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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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1 부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솔라 그라티아’ G R A C E

A L O N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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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OLAS SERIES

Sola Scriptura 오 직

성 경

Solus Christus 오 직

그 리 스 도

Sola Gratia 오 직

은 혜

오 직

믿 음

Sola Fide Soli Deo Gloria 오 직

하 나 님 의

영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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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은혜 장

I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 디도서 2장 11절

나는 교회사 교수와 지역 교회의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 기 때문에, 본서의 상당 부분은 나의 강점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 지만 어쨌든 적어도 나로서는 가장 자신 있는 역사와 교회론의 분야에 할애될 것이다. 게다가 본서의 주제가 “오직 은혜”라는 점 에서, 우리는 역사와 실천의 문제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고, 무엇 보다도 성경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나는 개신교인이자 종교개혁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단 지 “오직 은혜”라는 원리만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도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고 있다.1  )   그러므로 모든 신학은

1  )   ‘솔라 스크립투라’를 다룬 것으로는 Matthew Barrett, God’s Word Alone—The

Authority of Scripture (Grand Rapids: Zondervan, 2016)을 보라.

1장 성경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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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해야 하고 그 가르침에 의해 규제되어 야 한다. 내가 본서에서 들려주고자 하는 역사적인 신앙 영웅인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의 동기도 하나 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이 은혜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이해하고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은 혜에 대한 성경 자체의 가르침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우리 의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중요하다. ESV ( English

Standard Version ) 에서

“은혜” 및 그것과 동일한 어원

에서 나온 단어들을 찾아보면, 신구약 전체에 걸쳐 150번 이상 나 오고, 그중 대다수는 신약에 나온다. 하지만 “은혜”라는 단어 자 체가 구약에서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온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 조 악한 접근 방식에 휘둘려서 오도되어, 은혜 개념이 성경 전체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서 는 안 된다. 예컨대, “삼위일체”라는 단어 자체를 성경에서 찾아 보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정통 그리스도인들 중에 서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성경의 가르침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은혜”의 경우에 도 마찬가지다. 은혜는 하나님 및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 간의 관 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로서 성경 전체에 스며들 어 있다. 사실 우리는 은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마자, 은혜가 성경에서 신학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곧바 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로, 가장 전형적인 의미에서 은혜는 값없 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합당 한 공경심을 갖추고서, 은혜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피조물과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아무런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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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가 없을 것이다. 개혁신학자들은 이런 의미에서의 은혜에 대해 고 찰하면서 그것을 좀 더 세분해서 일반 은혜 ( 또는 일반 은총 ) 와 특별 은혜 ( 또는

특별 은총 ) 로

구분했는데, 일반 은혜는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에게 구원과 상관없는 값없는 은총을 베풀어서 이 땅에서 악 을 억제하고 사람들이 번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키고, 특별 은혜는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안에서 및 그 사역으 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값없이 베푸는 구원의 은총을 가리킨다. 둘째로, 은혜는 교회와 신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 이 능동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은혜라 는 말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 대해 구원의 은총의 태도를 가 지고서 그들 속에서 역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 를 우리 죄에서 구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믿음 안에서 성숙시 키고 사용해서, 여기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그의 이름에 영광 을 돌리게 한다. 하지만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 사다. 이렇게 은혜의 이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그 후에는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영위된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 과 신약 모두에 해당된다.2  )

2  )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은혜를 성례전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켜서 은혜가 성례

전을 통해 개별 그리스도인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언급 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이해는 은혜를 성령의 주관적 역사로 이해해서 가톨릭교 회와는 달리 성례전과 밀접하게 결부시키지 않는 개신교의 은혜 개념과 아주 다 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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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 나타난 은혜 구약을 영어로 번역한 역본들에서 명사 “은혜”( grace ) 는 드물게 나오고, 형용사 “은혜로운”( gracious ) 이 더 흔하게 나온다.3  )   이것 은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전능성이나 전지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성의 한 속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은혜는 인류가 타락 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 된 사실과 밀 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가 인간의 반역에 대 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들의 반응 또는 적용이라고 말할 수 있 을 것이다. 은혜는 보존을 위한 일반 은혜이든 구원을 위한 특별 은혜이든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자신의 반역한 피조물에게 복 주 기 위해 행하는 측면을 보여 준다. “은혜”는 어떤 자들이 하나님 을 자신들의 창조주이자 주권자로 섬기기를 거부함으로써 하나 님에게서 그 어떤 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여전히 복 주고자 하여 그들을 다루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특히 구원에서 은혜의 이런 특성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랑의 하 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의 반역에 직면해서 그들을 다시 되돌려서 자신과 교제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으로 인해 그들의 죄를 다루지 않고 그냥 못 본 척 넘어갈 수가 없다. 만일 하나님을 배척한 우리의 불경건을 하나님 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용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 을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은혜다. 즉 은혜는 이런 상황에서 사랑의 동기에 의해 유발

3  )   일반적으로 “은혜”(grace)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헨’은 동사 ‘하난’ 및 그 동일 어

원의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은총”(favor)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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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되고 거룩함에 의거하여 그 형태가 갖춰진 하나님 편에서의 조치, 한편으로는 죄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도 다른 한편으로는 죄인들을 하나님과의 교제로 되돌아오게 하 기 위해 하나님이 먼저 나서 행한 조치다. 요컨대, 만일 세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타락하지 않았더 라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전 세대의 신학자들이라면 은혜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 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속성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관 계적 속성”이라고 지칭했을 것이다. 이렇게 은혜라는 말은 타자 에 대한 하나님의 능동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출애굽기 34장 6~7절에서 여호와는 시내산에서 모세 앞을 지 나갈 때 자신을 은혜로운 이로 선포한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 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 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여기에서 여호와는 자신을 “은혜롭고” “자비로운” 이로 소개하 는데, 이 둘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호와 가 이렇게 선포하는 이유를 주목하라. 인간의 죄와 반역에 직면해 서, 여호와는 얼마든지 공의를 집행하는 쪽을 택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 대신에 “은혜롭고” “자비로운” 쪽 을 택했다. 달리 말하면, 여호와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 을 향해 값없는 은총을 베풀기로 작정했고, 모세에게 한 말씀을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바로 그러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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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우신 성향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 위에 선포된 성경의 수많은 복 선언문의 중심에 놓여 있다.4  )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죽지 않고 계속해서 살게 한 것 을 시작으로 해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반역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 라엘을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여 보존한 것은 물론이고,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낸 것에 이르기까지, 자기 백성에 대한 하 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는 구약의 서사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선지 자가 하나님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아 토라져서 심술을 부린 것을 보여 주는 가장 유명한 일화들 중 하나에서도 그 배경에는 은혜가 자리 잡고 있다. 요나는 마지못해 니느웨로 가서 니느웨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했고, 여호와는 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한 니느웨와 그 주민에 대한 심판을 거두게 되었는데, 이것을 본 요나는 화를 낸다. 그런데 그가 화를 낸 이유가 묘하다. 즉 그 는 마치 출애굽기 34장 6절을 달달 외워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 욘 4:2 ) 여호와가 그렇게 할 줄을 알았다고 말하면서 화를 내지만, 사실 요나 자신이 여호와의 교제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 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는데도, 요나는 하나 님이 자신에게 은혜로우신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 들에게 은혜로우신 것에 대해서는 불만을 품었다는 점에서, 이것 은 아이러니다.

4  )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비”와 “은혜”를 구별해서, “은혜”는 사람들이 실제로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느냐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베 푸는 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자비”는 범죄하여 죄책이 있는 자들에게 하나 님이 값없이 베푸는 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구별에 의하면, 이 둘의 차이는 세부적인 면에서의 차이인데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자비가 은혜의 구체적인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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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은혜


I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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