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NT 야고보서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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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NT 시리즈에 대한 추천의 글

야고보서

베이커 신약 주석은 신약 성경의 원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적 설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와 친밀한 주석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서

- I. 하워드 마셜, 애버딘 대학교

추천의 글 댄 매카트니는 야고보서에 대한 상세하고 학문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주석을 저술했다. 이 주 석은 읽기 쉽고 유익하다. 모든 충실한 주석이 포함해야 할 기반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새로 운 관점들도 가지고 있다. 또한 야고보서를 설교하고 가르치기 위한 탄탄한 기초를 다지기 원 하는 복음주의권 목회자들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다.

- 피터 데이비즈, 세인트스티븐스 대학교 성경신학 교수 댄 매카트니의 야고보서 주석은 야고보서 연구에 새롭고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는 야고보 서에서 믿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매카트니는 노련하게 다양한 해석들을 탐구하면서, 분명하고 명쾌하게 써 내려간다. 이 작품은 주석적으로 가치가 있고, 신학적으로 탄탄하고, 목회적으로 현명하다.

- 토머스 슈라이너, 남침례 신학교 신약 해석학 교수 매카트니는 원문 자체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이차 문헌에 대한 능숙한 제어 력을 선보인다. 그의 주해는 철저하고, 분명하고, 일관된 정확성을 갖추었으며, 그의 방대한 추가 주석과 특별 해설은 금상첨화다. 이 작품은 열렬히 환영받을 만하다.

- 모이세스 실바, BECNT 『빌립보서』 저자 지은이

댄 매카트니( Dan G. McCartney )

댄 매카트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 ( Ph. D.) 를 받았고, 20년 넘게 같은 신학교에서 가르 쳤으며, 지금은 댈러스에 있는 리디머 신학교에서 신약 해석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레셤 메이첸의 신 약 헬라어 입문서를 개정했으며, 저서로는 Let the Reader Understand: A Guide to Interpreting

and Applying the Bible , The Meaning of Christian Suffering 이 있다.

옮긴이

댄 매카트니 지음 강대이 옮김

강대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M. Div.) 을 졸업하고, 미국 고든 - 콘웰 신학교에서 석사 학위 ( Th. M.) 를, 골든게 이트 침례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 ( Ph. D.) 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BECNT 『야고보서』 가 있고, PNTC

ISBN 978 - 89 - 6092 - 4 1 1  - 6 ISBN 978 - 89 - 6092 - 258 - 7 (세트)

『야고보서』 가 출간될 예정이다 ( 이상 부흥과개혁사 ).

www.rnrbook.com

값 25,000원

댄 매카트니

지음 | 강대이 옮김


Copyright ⓒ 2009 by Dan G. McCartney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James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by Baker Academic, A divi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P.O. Box 6287, Grand Rapids, MI 49516, U. S. A. All rights reserved. Used and translated by the permis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Korean copyright ⓒ 2016 by The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 에이전시를 통하여 Baker Publishing Group과 독점 계약한 부흥과 개혁사에 있습니다. 신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BECNT

야고보서 댄 매카트니 지음 | 강대이 옮김


목차

시리즈 서문 _ 6 저자 서문 _ 9 약어 소개 _ 11 지도 _ 20 서론 _ 21

I. 인사말 ( 1:1 )

113

II. 신앙생활 개괄 ( 1:2~27 )

119

A. 믿음과 지혜 ( 1:2~8 )

123

B. 자랑과 부 ( 1:9~12 )

139

C. 믿음과 시험 ( 1:13~18 )

149

D.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 ( 1:19~25 )

163

E. 참 경건 ( 1:26~27 )

179

III. 첫 번째 강화: 믿음과 행동 ( 2:1~26 )

185

A. 단락 1: 믿음과 차별과 율법 ( 2:1~13 )

187

B. 단락 2: 믿음과 행위 ( 2:14~26 )

213

IV. 두 번째 강화: 믿음과 지혜와 언어 윤리 ( 3:1~18 )

241

A. 단락 1: 선생과 혀와 소란 ( 3:1~12 )

245

B. 단락 2: 위로부터 오는 지혜 ( 3:13~18 )

271

V. ‌ 세 번째 강화: 믿음이 부족하여 생기는 교회 안에서의 다툼 ( 4:1~12 )

283

A. 단락 1: 욕망과 회개 ( 4:1~10 )

285

B. 단락 2: 비방과 판단 ( 4:11~12 )

303


VI. 삽입: 두 개의 경고 신탁 ( 4:13~5:6 )

307

A. 신탁 1: 상인에 대한 경고 ( 4:13~17 )

311

B. 신탁 2: 지주에 대한 경고 ( 5:1~6 )

321

VII. 네 번째 강화: 하나님을 소망함 ( 5:7~18 )

333

A. 단락 1: 믿음과 인내 ( 5:7~11 )

335

B. 이음 구절: 맹세 금지 ( 5:12 )

343

C. 단락 2: 믿음과 기도 ( 5:13~18 )

351

VIII. 마무리 권면: 상호 책임과 축복 ( 5:19~20 )

367

특별 해설 1. 야고보서의 중심 주제로서의 믿음

372

2. 야고보서에 나타난 믿음, 행위, 칭의와 바울

378

3. 야고보서와 지혜

387

4. 야고보서와 고난

402

참고문헌 _ 412


야고보서

| 시리즈 서문 |

BECNT로 알려져 있는 베이커 신약 성경 주석의 핵심 관심사는 잘 알려진 복음주의 사상 체계 안에서 학문적 깊이와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 주석적인 세부 사실과 전체에 대한 안목, 비판적인 문제들과 신학적인 깨달음을 결합 하는 주석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본문에 대한 깊이 있 고 독립적인 검토에 주목하는 학자에서부터 내용이 충실하면서도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강해를 갈망하는, 의욕적인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독 자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석의 핵심 목적은 유일하게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 씀인 성경에 대한 설교와 강해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목사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데 있다. 이 점이 이 시리즈 주석의 직접적인 특징이다. 예 를 들어, 진지한 성경 해설자는 난해한 질문들은 다루지 않는 피상적인 주석 에 의존할 수 없고, 또는 일어날 수 있는 문제란 문제는 모두 망라하려고 애 쓰는 백과사전과 같은 주석에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 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문제들 ( 물론 선별된 전문적인 사실들은 추가 주석 부분에서 따로 다루 기는 해도 )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주석의 목표다.

또한 주석 문제들을 그 자체의 유익을 위하여 다루는 것, 즉 전체적인 주장 의 취지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특별히 피하려고 노 력했다. 더 나아가 한 문단을 생각의 주요 단위로 다루는 강해를 위하여 한 절씩 강해하는 강해 방법을 포기하는 것도 ( 개별 저자들의 재량에 따라 ) 이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주석들은 주장의 전개 과정을 강조하고, 명백 6


시리즈 서문

히 각 본문을 이전 및 이후 본문과 관련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분명하게 문맥 속에서 본문의 역할을 파악하도록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책임 있는 주석이라면 출처가 어디든 막론하고 최근의 학문 적 연구 결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 신학 전통의 배 경 속에서 이런 시도를 하게 되면 얼마간 도전도 받게 되고, 과거의 결과가 반드시 추천할 만한 견해가 아닌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 복음주의 학자들은 비판적인 학문을 참된 교류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단 순히 깎아내리려는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이 교류가 도를 넘어 신학적 차이들이 무시되거나 억압되어 비판적인 학문과 동화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은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점을 갖고 시작한 연구의 결과가 아무 차이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이 시리즈에 주석을 기고한 학자들은 이런 함정의 마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전통적인 견해들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간주하 지 않고, 성경 본문이 이 견해를 지지하든지 지지하지 않든지 간에, 본문을 정 확히 설명하는 데 전념한다. 다른 한편으로, 오랫동안 고수되어 온 견해를 뒷 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마련되는 한 그들은 유행하는 이론들을 택하기 위해 기존의 견해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기고 자들이 성경의 신빙성과 본질적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다. 그들은 또 교회 일치 신조들이나 16세기의 종교개혁에서 비롯된 다양한 가르침들과 같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기독교 교리를 성경에 대한 적법한 이해 에서 나오는 것으로 판단하고, 따라서 이 교리를 더 깊은 성경 해석을 위한 적절한 뼈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의심할 것 없이 이런 출발점에 따 라 연구를 하게 되면, 때때로 본문에 대하여 생소한 견해를 낳기도 하는데, 그 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편견 없이 본문에 접 근하는 저자들은 절대로 이런 위험에 빠질 우려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 는 거부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학적 전제들 ( 어쨌든 주석자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을 성경 해석 의 장애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신학적 진공 상태에서 사도 바울을 이해 하기를 바라는 주석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의 전체 작품에 대한 철학적 준 거 틀 없이 또는 그의 사상을 상황 속에 의미 있게 적용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차 철학적 범주들에 의존하지 않고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은 오류에 쉽게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 주석을 기고한 학자들은 다양한 신학적 전통에 속해 있는 자들이고, 그들은 모두 이 일반 원리들을 적 절히 적용하는 데 있어서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야 한다. 결론적으로 진정 중요한 것은 이 시리즈가 원래의 본문을 정확하게, 7


야고보서

분명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현대 독자에게 성공적으로 제시하느냐의 여부다. 각 본문을 다룰 때 두드러진 부분을 독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내용을 구분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 서론적 주석, 구조에 대한 설명, 결론적인 요약이다. 헬라어 본문에 대한 사본들의 이문 ( 異文 )은 저자의 번역 속에서 관련 단어나 어구 둘레에 반 ( 半 )괄호 ( 예, 「Gerasenes」 ) 표시를 하고, 그렇 게 함으로써 독자가 사본 문제에 대한 설명을 보도록 강해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추가 주석’ 부분을 찾아보게 할 것이다. 자료 표기는 저자 - 연대 방식 을 사용할 것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기본적인 언급이 저자의 성+연도+면 수 ( 面數 )로 구성된다. 예를 들면, Fitzmyer 1981: 297이다. 이 방식에 대한 유 일한 예외로는 잘 알려진 참고문헌들이 있다 ( BDAG, LSJ, TDNT ). 참고문헌은 책 마지막 부분에 들어 있다. 로버트 야브루

( Robert Yabrough )

로버트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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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bert H. Stein )


저자 서문

| 저자 서문 |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는 선언, 그리고 행함이 없 는 “믿음”만으로는 누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은 교회의 건강에 필수적이다. 바른 실천 ( orthopraxy ) 이 없는 바른 교리 ( orthodoxy )는 무용지물이다. 예수님도 “이러므로 그들의 열 매로 그들을 알리라” ( 마 7:20 )라고 말씀하셨으며, 심판 날에 예수를 주라 부르 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 마

7:21~23 ).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분을 구원자로 여길 수 없으며, 예수님에게 순종하겠다는 다짐 없이 그분을 주님으로 여길 수도 없다. 야고보서는 말뿐인 믿음과 참된 믿음 이 별개임을 상기시켜 준다. 야고보의 주장이 바울과 반대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울도 야고보 ( 와 예수 님 )

못지않게 바른 믿음은 바른 행동을 낳아야 하며, 악한 일을 행한 자는 결

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 갈

5:21; 엡 5:5 ).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고전 13:2 ). 바울의 이 신칭의 교리를 한 번 “자기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해서 얻는 천국 입장권으 로 만드는 것은 바울을 터무니없이 왜곡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어 쩌면 바울 서신보다도 더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화재보험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말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경 고한다. 물론 야고보는 다른 사항에도 관심이 있다.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의 실제 9


야고보서

생활에 대한 많은 문제를 다룬다. 유혹, 분노, 언어, 가난한 자를 돌봄,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는 것, 교회 안에서의 인간관계, 사업 계 획, 기도, 병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흐르는 주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이와 같은 삶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야고보는 행함보다 믿음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 를 한다. 야고보가 믿음은 참되어야 하고 활동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은 그만큼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외식은 야고보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나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에도 서서히 파고 드는 위험한 문제다. 종교적인 사람이 스스로를 속여 자신이 참된 신자이며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매우 쉬운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면서도 항상 “믿 음”이 있는 것처럼 속이면서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야고보의 경고가 중요하다. 나는 우리 시대 교회 안에서 야고보서가 원래의 의도대로 명확하게 읽혀지기를 소망하는 마 음으로 이 주석을 썼다. 여기서 몇 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우선 이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배 려해 주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동료 교수들과 이사회에게 감사드린다. 두 번째로, 여름 내내 나를 도와준 연구원들, 그리고 수많은 저널과 저술들을 파 헤치며 자료들을 조사해 준 나의 동료 아드리안 스미스 ( Adrian Smith ) 박사에게 큰 빚을 졌다. 세 번째로, 오류가 없도록 인내하며 꼼꼼히 도와준 웰스 터 너 ( Wells

Turner )에게

매우 감사드린다. 네 번째로, 처음에는 나의 스승이며 지

도교수였고, 지금은 나의 동료이자 친구가 된 모이세스 실바 ( Moises Silva )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는 더 깊이 연구하도록 격려해 주었고, 전에는 생각하 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아내인 케 시 ( Kathy )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할지 모르겠다. 나의 아내는 소중한 동반자이 고 믿음직한 조언자이자 신실한 기도 동역자이며, 때때로 연구원으로 수고해 준 가장 좋은 친구다. 남편으로서 나는 진심으로 아내를 신뢰한다.

10


20

레기온

멜리데

수라구사

시칠리아

보디올

아해

스르디스

리 아드

AD 1세기의 로마제국

압비오 광장

로마 트레이스 타베르네

탈 베뢰아

구레네

에베소

라새아

그레테

지중해

미항

겐그레아

아덴

네압볼리

트라케

밀레도

살모네

로도

암비볼리 사모드라게 아 아볼로니아 시 무 드로아

빌립보

고린도

데살로니가

도냐

마게

아갸야

무라

버가

알렉산드리아

루기아

이집트

바보

구브로

유대

예루살렘

가이사랴

시돈

살라미

리 다메섹

안디옥

갑바도기아

이고니온 니아 길리기아 루스드라 다소 더베

밤빌리

안디옥

아 기 르 비시디아 부

비두니아와 본도

흑해

야고보서


서론

| 서론 |

야고보의 서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책은 신약 성경 내에서 독특한 목소 리를 낸다. 실천신학적 지향, 참 경건의 지혜와 그리스도인의 한결같은 행동 에 대한 관심, 그리고 실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러 면을 요약하는 기억할 만 한 구절들과 격언 ( aphorism )들은 도덕적 권면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매우 유용 하다. 그러나 야고보서는 교회의 신학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 으며, 최근까지 다소 무시됐다. 더욱이 야고보서 2장 후반부는 얼핏 보기에 바울의 이신칭의에 대한 특정 서술들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야고보서의 덜 발달된 기독론과 더불어 이것으로 인해 마르틴 루터 ( Martin Luther )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 1)이라 고 칭할 정도로, 야고보서가 예수의 복음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지에 대해 의 문을 가졌었다. 그러나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대부분의 교회가 그랬던 것처 럼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 심지어 루터의 제자였던 멜란히톤 ( Melancthon, 『 신학 총론 』 9.5.12 )조차도

더 냉철한 관점을 취했고 야고보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

1) 이 유명한 표현은 루터의 1522년판 독일어 성경 ( 영어 번역은 LW 35:362에서 볼 수 있음 )에 나타난 다. 그러나 루터가 야고보서를 신약 성경에서 제외했던 것은 아니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히브리 서 ( ! ), 유다서, 요한계시록과 함께 덜 중요한 책으로 분류했다. 사실 루터의 신학은 자신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야고보서에 가깝다.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루터는 진정한 믿음은 “살아 있고 부지런하며 활동적이고 힘이 있는 것이며, 이 믿음이……끊임없이 선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믿음 은 결코 선을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믿음은 질문이 나오기 전에 선을 행해 왔으며, 지금도 선을 행한다. 그런 행함이 없는 사람은 누구나 불신자다……따라서 불에서 열과 빛을 분리하 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LW 35:370~371 )라고 말한다.

야고보도 분명히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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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야고보와 바울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야고보서와 바울 신학의 관계 에 대한 문제는 서론과 야고보서 2장 해설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실제 로 야고보서를 면밀하게 연구하면 야고보가 행위를 주장하는 것은 믿음이 중 요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삶이 결여된 믿음이다. 구원받을 만한 살아 있는 믿음은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 에, 한 사람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사실 야고보서를 거짓 믿음에 반대하는 참된 믿음에 대한 책으로 봐야 한 다는 것이 이 주석의 논지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믿음을 축소하기보다 오히 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한 사람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속인다. 사실 위선을 떨며 믿음 있는 것처럼 스스로 생 각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자기기만 ( self-deception )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야고보서는 1장에서만 세 개의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1장 26절의 ‘플라 나오’ ( plana¿w, 미혹시키다 ), 1장 22절의 ‘파랄로기조마이’ (paralogi z¿ omai, 속이다 ), 그리고 1장 26절의 ‘아파타오’ ( ajpata¿w, 속이다 )다. 사실 이 문제는 야고보서 전 체에 걸쳐 나타난다. 1장 6~8절에 있는 의심하는 자의 두 마음, 1장 26절에 있는 텅 빈 종교성, 2장 8~9절에 있는 차별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가식, 2장 20절에 있는 텅 빈 죽은 믿음, 3장 9절에 있는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동시 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모순, 3장 14절에 있는 진 리에 대해 거짓을 말하면서 동시에 자랑하는 모순, 그리고 4장 13절에 있는 상인의 가식 등, 이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기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야 고보서는 그리스도를 믿어 진정한 제자가 되기 원한다고 공언하는 사람을 원 하며, 살아 있는 믿음을 명백히 나타내는 사람을 원한다. 또한 야고보서는 스 스로를 신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신자처럼 행동하지 않는 자들 ( 다시 말하면 스스로 를 속이는 자들 )을

일깨우려 한다. 더 나아가 핍박, 질병, 주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 등에서 올 수 있는 신앙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인 내할 것을 권면한다. 사실 야고보서는 전체적으로 참된 믿음에 대한 책이다. 오늘날만큼 야고보서가 주장하는 참된 믿음이 필요한 시대는 확실히 거의 없 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해석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들, 저 자, 연대, 원래 독자, 신학적 하위구조, 체계성 ( 또는

체계성의 결핍 ),

전체적인 목

적 ( 특히 바울 신학의 어떤 형태에 대한 반작용인지 아닌지 ), 통일성, 그리고 심지어 몇몇 단 어 . 구절 . 문장의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고, 많은 문제들이 학문적으로 일치를 보지 못한 채 남겨져 있다. 서론, 저자, 연대, 원래 독자, 본문, 장르, 정경적 수용에 대한 이 모든 문제 들은 서로 얽혀 있으며, 심지어 본문의 의미 및 서론의 질문과도 연결된다. 그 22


서론

결과 무엇을 출발점으로 삼든지, 그것이 단독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게 된다. 예를 들면, 저자 문제는 이 서신의 연대와 교회에서 사용된 역사에 따라 달라지고, 연대는 원래 독자와 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며, 원래 독자 는 저자, 연대, 장르뿐 아니라 야고보서의 특정 구절이 갖는 의미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퍼즐에서 하나의 조각을 바꾸면, 전체 퍼즐이 완전히 다르게 조 합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이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어느 정도 제공해 준다. 만약 우리가 야고보서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귀를 기 울이고 이 서신이 쓰인 시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이 많은 질 문들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답변할 수 있다. 이 서신이 어떻게 시작되었 는지에 상관없이, 다행스럽게도 중심 메시지는 파악할 수 있다.

특성 존슨 ( Johnson 1995: 3~4 )의 선례를 따라 우리는 우선 짧게 이 서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시작할 것이고, 이 음성이 초기 교회 역사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이 서신의 연대를 잠정적으로 알 수 있 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 음성이 저자로 추정되는 사람과 어떻게 일치하 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서신은 자체적으로 저자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 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밝힌다. 우리가 간단히 살펴보겠지만, 이 저자는 사도 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이며, 사도 바 울이 “주의 형제” ( 갈 1:19 )로 부르는 야고보와도 같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1. 야고보는 주로 실천적 기독교에 관심이 많다. 야고보는 기독교 복음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구원의 능력을 인정하지만 ( 1:21, 아래 “신학”을 보라 ), 그 의 주된 관심사는 복음이 어떻게 삶 속에서 나타나는지에 대한 것이 다. 따라서 그는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을 꾸짖었다. 야고보는 또한 이 서신에 경건에 대한 격언들을 많이 담고 있는데, 이런 격언들은 뜻 이 깊고 인상적이어서 지혜와 관련된 기독교 어휘에 많은 기여를 했 다. 이 서신에는 명령법이 매우 많은데, 대략 54개의 명령법 동사 ( 이외 에도 금지를 나타내는 몇몇 부정과거 가정법이 사용됨 )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권면의

어조가 주를 이룬다. 서구 기독교 전통은 필사적으로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명 제적 진리가 기독교의 정체성에서 핵심임을 강조해 왔다. 왜냐하면 행동이나 관계,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상이나 사고에 의해 달라 23


야고보서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기독교 교훈의 궁극적 목적이자 교리 의 목표는 경건한 성품과 의로운 행동임을 주지시키고 있다. 이 목적 은 예수의 가르침과 심지어 바울의 가르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롬 8: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빌 2:12~13 ).

그러나 치열한 교리 논쟁

속에서 그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어 왔다. 야고보는 참된 믿음 이란 단순히 올바른 개념을 이해하는 것 이상임을 우리에게 주지시키 고 있다. 참된 믿음은 바른 개념과 일치하는 바른 삶이다. 2. 야고보서는 어휘에 있어서나 개념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유대적 ( Jewish ) 성향을 나타낸다. 많은 학자들은 야고보서와 유대 지혜 문학, 특히 집 회서 ( Sirach )의 유사점에 주목해 왔다 ( 특별 해설 3 “야고보서와 지혜”를 보라 ). 어 떤 학자들은 야고보의 헬라어 수준이 몇몇 단락에서는 주목할 만한 문 학적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표현이 명백한 셈어 형태임을 강 조한다 ( MHT 4:116~120을 보라. 아래 “유대 문학적 배경”도 보라 ). 또 야고보는 구약 을 인용할 때 유대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해석 방법을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한 본문을 해석할 때 다른 본문을 언급하는 방식이다 ( 약 2장은 창 22장을 언급하면서 창 15:6을 해석한다 ).

2)

야고보서에는 통상적인 헬라어 문체보

다 셈어적인 특징들이 더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1장 25절의 “잊음 의 듣는 자” ( =“듣고 잊어버리는 자” )처럼 한정적 소유격 ( attributive genetives, 한정 을 받는 명사의 속성과 타고난 자질을 나타내는 소유격 - 편집인 )이

사용되며, 1장 21절

의 “악의 풍부” ( =“넘치는 악” )와 1장 11절의 “얼굴의 아름다움” ( =“아름다운 모양” [ 개역개정 “모양의 아름다움” ] )처럼

한정된 소유격 ( attributed

genetives, 의미상

한정적 소유격과는 반대로 한정을 받는 명사가 소유격의 속성을 나타낸다 - 편집인 )이

사용

된다. 심지어 고대 주석가들 중에서도 야고보의 병렬법 사용 ( “그리고”를 사용하여 두 문장을 연결하는 것인데, 헬라어 문학에서는 종속절을 사용할 때 주로 사용된다 )

을 언급했다 ( Theophylact, Commentary on James [ PG 125:1152 ] ). 더 나아가 하나 님의 율법을 “왕의 법” ( 더

적합하게 표현하면 “왕국과 관련된 법” )과

“자유롭게

하는 법”으로 칭한다. 야고보서는 구약의 윤리적 관심을 반영하는데, 특별히 선지서와 지혜 문학에 나오는 윤리적 관심을 반영한다. 마태복 음과 마찬가지로 야고보서는 율법에 대해 한결같이 호의적이다. 야고 보서에는 율법을 “원수”로 취급하는 바울 서신과 같은 내용이 나오지 않으며 그런 내용에 대한 암시조차 없다. 그렇다고 야고보서가 할례, 음식법, 안식일 준수와 같은 유대인들만의 특수한 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야고보서는 반차별주의, 이웃 사랑, 자비, 고아와

2) 제이콥 ( Jacob 1975 )은 마카베오1서 2:52; 집회서 44:20~21과의 유사점을 언급한다.

24


서론

과부를 돌봄, 비이기주의와 정직, 기도로 인내하는 것 등에 초점을 맞 춘다. 즉 야고보서에 나타나고 있는 유대적 성격 ( Jewishness )은 민족성 이나 의식 ( ritual ) 면에서 언약을 보는 배타적 차원이 아니라 경건한 행 실과 관련된 것이다. 3. 야고보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언급하는 경우가 두 번밖에 없지만, 야고보서는 분명히 기독교적이다. 이 서신 여러 곳에 기독교적 구성이 암시되며, 이 책 전체는 기독교적인 견해를 표현한다 ( Cranfield 1965: 182~193 ).

특히 야고보서는 기독교 종말론적 성향을 보이는데, 심

판하러 오실 주의 임박한 재림이 윤리에 대한 주된 동기로 분명히 제 시된다 ( 1:9~10, 5:7~8, 아래 “종말론”과 “윤리”를 보라 ). 예수의 가르침과 공통되 는 수많은 본문들 ( 아래 “야고보서와 예수의 지혜”를 보라 ) 가운데 어떤 것은 유 대인들이 공동으로 물려받은 유산일 것이라고 설명될 수도 있겠지 만, 두 자료가 전적으로 상응하는 경우가 매우 많고 때로는 그것이 너무 분명해서 공관복음 전승과 야고보서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 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학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비록 그들이 인 정하는 둘 사이의 연결이 간접적인 것일지라도 말이다.3) 야고보서에 서 복음서 본문을 인용한 곳은 오직 한 군데뿐이다 ( 약 5:34~37의 어휘와 매우 흡사하며, 고후 1:17과도 비슷하다 ).

5:12의 어휘는 마

그러나 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교훈적인 자료와 내용 면에서 일치한다는 것은 명백하 다 ( Hartin 1991을 보라 ). 4. 야고보서의 특징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이 서신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단조롭게 토론하지 않는다. 이 서신은 마치 신실한 삶 에 대한, 즉 믿음으로 가득한 생활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권면 들을 모아 놓은 문집과도 같다. 이 문집은 단조롭게 구성되어 있지 않 다. 대신 야고보서 1장에서 소개된 여러 주제들을 서로 엮어서 하나로 묶고, 그 문제들을 다방면으로 다룬다 ( 아래 “구조”를 보라 ). 5. 야고보서는 분명히 기독교적이지만, 기독론적인 전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야고보서에는 바울 서신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과 같은 내용이 없고, 구속사적인 내용도 거의 없다. 비록 하나님이 자 비로우시다는 사실이 중심이긴 하지만 ( 2:13 ), 하나님의 자비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와 연결되 는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와 비슷하게 야고보서에는 3) 어떤 주석가들은 유사점들을 열거하고자 하는데, 이 유사점들은 학자들마다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그 주석가들 중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도 대개 야고보서의 20구절 이상이 공관복음 전승에 있는 예수 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본다 ( Deppe 1989 ). 특히 산상설교와의 일치는 놀랄 만하다.

25


I. 인사말 ( 1:1 )  II. 신앙생활 개괄 ( 1:2~27 ) III. 첫 번째 강화: 믿음과 행동 ( 2:1~26 ) IV. 두 번째 강화: 믿음과 지혜와 언어 윤리 ( 3:1~18 ) V. 세 번째 강화: 믿음이 부족하여 생기는 교회 안에서의 다툼 ( 4:1~12 ) VI. 삽입: 두 개의 경고 신탁 ( 4:13~5:6 ) VII. 네 번째 강화: 하나님을 소망함 ( 5:7~18 ) VIII. 마무리 권면: 상호 책임과 축복 ( 5:19~20 )


I. 인사말 ( 1:1 ) 이 서신을 여는 야고보서의 “문안”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표준적인 인사 말 형태를 따른다. 야고보서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며 “문안하노라”로 끝낸다. 이런 형태가 세속 헬라 문헌 ( 참조, 행 23:26~30의 글라우디 오 루시아가 벨릭스에게 보낸 편지 )에서는

보편적임에도, 신약에 등장하는 기독교의

편지 가운데 이런 형태를 따르는 것은 사도행전 15장 23~29절에 기록된 짧 은 편지뿐인데 ( 행 15:23을 보라 ), 이것 역시 야고보가 쓴 것이다. 후기 기독교 서 신들은 “은혜,” “자비,” 그리고/또는 “평강”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사용하는 것을 지향했고 ( 모든 바울 서신, 베드로전후서, 요한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 따라서 우리는 1장 1절이 야고보서가 기독교 특유의 문안 형식이 표준화되기 이전에 기록되 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야고보서의 인사말은 베드로전서 1장 1절처럼 “디아스포라” ( 또는 “흩어 짐” )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밝힌다. 또한 이 인사말은 저자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나 “노예”로 밝힌다는 점에서 베드로후서 1장 1절 및 유다서 1절은 물론, 바울 서신 가운데 있는 두 서신의 시작 ( 롬 1:1; 딛 1:1 )과도 비슷하다 ( 갈 1:10과 골 4:12도 보라 ).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 은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야고보서가 특정 교회나 개인들을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 환경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일반 적인 권면으로 의도되었음을 나타낸다.

|

주해 및 설명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

1

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 안하노라

|

James, servant of God and the Lord Jesus Christ, to the twelve tribes in the Diaspora, greetings. 1

[1:1] “야곱”과 성경적으로 동일한 이름인 “야고보”는 신약 성경에서 흔한

이름이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외에 자신의 호칭을 추가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저자 문제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은 이 주석의 서론에 나타나 있지만, 이 야고보가 예수의 형제임을 추론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사도행전 12장 2절에 따르면, 헤롯 아그립바가 요한의 형 제인 사도 야고보를 44년에 죽였다. 이 연도는 이 서신의 연대로 보기에 너무 이르다. 열두 사도 가운데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인물인 알패오의 113


야고보서

아들 야고보는 초대 교회에서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으며, 만약 그가 야고보 서의 저자였다면 그는 자신의 신원을 더 충분히 밝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 나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기독교 공동체의 지도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사도행전에서 여러 번 언급되며,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서 바울은 이 야고보를 부활한 예수가 자신을 특별히 보인 자로 언급한다. 또한 이 야고보는 기독교 사회 밖에서조차 경건하고 독 실한 자로 크게 존경받았다 ( 요세푸스는 예수보다 야고보를 더 주목한다 ). 예수의 형제 야 고보는 때때로 “의인 야고보”( “James the Just” 또는 “James the Righteous” )로 불렸다. 심지어 의인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주석가들조차 도 야고보서의 첫 절에서 저자로 지칭된 자가 의인 야고보라는 점에는 동의 한다. 비록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야고보서의 저자라는 것에 약간의 어려움 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야고보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야고보서 의 내용과 매우 잘 들어맞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야고보서가 신약에서 의인 야고보가 기록한 것으로 여겨 지는 유일한 편지는 아니다. 사도행전 15장 23~29절은 야고보가 교회에 보 내는 짧은 회람 서신의 내용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 편지는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 편지에서 야고보는 바 울과 마찬가지로 할례에 대한 요구 없이 이방인 회심자를 새 언약 공동체의 온전한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지지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들에게 음행 과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피, 목매어 죽인 것들을 먹는 일과 같은 이방인의 특정한 행동 양식들을 삼가라고 지시했다.1) 실천적인 기독교에 대한 이런 관 심은 우리가 야고보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매우 비슷한 그림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10절에서 언급하는, 가난한 자들을 기억 하는 것에 대한 야고보의 강조는 야고보서의 관심사와 잘 어울린다.2) 그러나 이 서신에서 야고보는 자신을 간단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종”이라고만 밝힌다. 이 단어들에는 어떤 정관사나 부정관사도 없기 때문 에 이 문구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주의 종”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단순히 두 명사를 밀접하게 결합시키고 있는 것 ( 즉 하나님” )일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떤 경우든 유대인이 “하나님”과 “주”를 함께

1) 이 책은 사도행전 주석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특별한 금지가 왜 사도행전 15장의 야고보 서신에 포함되었는지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음행이 이방인 사이에 특별한 문제였음 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방인의 성윤리는 오늘날 우리 시대와도 비슷하다. 또 금지된 식습 관은 이교도 예배 의식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행동임을 알 수 있다. 더 자세한 것은 서론의 “내적 증거: 팔레스타인에 대한 언급”의 거의 마지막 부분을 보라. 2) 야고보서와 행 15:23~29에 기록된 짧은 서신 사이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연결점이 있다. 이에 대해 서론의 “저자 및 연대”에 포함되어 있는 “증거” 부분을 보라.

114


I. 인사말 ( 1:1 )

쓸 때 “주”는 오직 하나님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1:7의 “주께”가 “하 나님께”를 의미하는 것을 참조하라 ).

이 문구를 어떻게 읽든 야고보는 매우 고차원적인

기독론을 제시한다. 야고보는 예수가 그리스도 ( 메시아 )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주라고 밝힌다. 더 나아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세상 임금이나 주 인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라고 이해했고, 디벨리우스 ( Dibelius )가 지적한 것처럼 ( 1975: 65 ), “종”이나 “노예” 3)라는 용어는 “한 사람이 제의를 드리는 데 있어 하나님과의 한정된 관계를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주 예수의 “노예”라 는 야고보의 선언에는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인정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야고보가 예수의 형제임에도 자신의 육신적인 관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다는 점은 흥미롭다.4) 만약 이 서신이 위서라면 저자가 야고보와 예수의 독특 한 관계에 대해 더 많이 말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을 텐데, 실제로 교회의 특정 집단들이 수 세기에 걸쳐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 야고보는 스스로를 예 수의 형제가 아니라 예수의 종이라고 밝힘으로써 자신을 자신의 모든 독자들 과 다를 바 없는 자로 분류한다.5) 야고보가 섬기는 예수는 한층 더 나아가 그리스도로 밝혀진다. 1세기 유대 인들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이름이 아니라 “기름부음 받은 자” ( 메시아 )를 의 미하는 칭호였다는 사실을 잊기 쉬운데, 유대인들은 이 그리스도가 구원자와 왕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라는 문구가 문자적으로 여 겨지든 은유적으로 여겨지든 관계없이,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 게 편지한다는 사실은 야고보에게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기대 되는 자를 의미했다는 생각에 힘을 더한다.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는 당연히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다. 많은 유대 인들이 자신이 속한 지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했지만 ( 예, 베냐민 지파의 바울, 레위 지파의 시므온 ),

유대교 내에서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는 단위나 부족으

로서의 열두 지파는 과거의 일이었고, 유래되었지만 )

( 비록 사마리아인들이 주로 북이스라엘 자손에게서

특히 “북쪽” 지파들에게는 더 그랬다. 그러나 구약과 후기 유대 문

헌은 때때로 열두 지파를 회복된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말한다 ( 겔 47:13; T. Benj. 9.2 ).

이 개념은 쿰란에서도 분명하며 ( 1QM

2.1~3 ),

예수가 열두 제자를 특별히

3) 헬라어 단어 ‘둘로스’( douvloß, 종)는 “노예”로 번역될 수도 있다. 영어 단어 “servant”는 이따금씩 (스스로를 “관리”[public servant]로 언급하는) 행정관이나 통치자를 묘사할 때도 사용되지만, ‘둘로 이’( douvloi )가 속한 사회 계층은 일반적으로 최근 몇 세기의 노예들이 가진 것보다 약간 더 많은 것

에 불과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4) 흥미롭게도 자신을 단지 “종”으로 표현한 다른 신약 저자는 야고보의 형제 유다뿐이다. 5) 70인역은 모세, 다윗, 선지자를 하나님의 “노예들”로 지칭한다 ( 말 3:24 [ 개역개정 4:4 ]; 겔 34:23 ). 이것은 독특한 관계를 함축한다. 그러나 기독교 배경에서 이 호칭은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된다 ( 참 조, 롬 6:16~22 ).

115


야고보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는 마태복음 기록 ( 마 10:5~6 )의 배후 에도 이 개념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6) 예수를 따르는 ( 마 19:28 ) 초기 그리스 도인들 ( 행 26:7 )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 공동체를 회복의 약속이 성취된 것으 로 여겼기 때문에, 야고보는 회복된 이스라엘 ( 참조, 스 6:17 )에 대한 이 구약 명 칭을 자신의 독자들에게 적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는 문자적으로 “흩어짐” 또는 “분산” 또는 씨 “뿌림”이다. 헬 라적 유대 문학 배경에서 “디아스포라”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유다 가 포로로 끌려간 후, 민족적 유대인/이스라엘인이 중동 지역 도처에 “흩어졌 던” 것과 뒤이은 수 세기 동안 심지어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흩어 졌던” 사실을 가리키는 방식이었다. 신명기 28장 25절의 헬라어 번역은 이스 라엘이 땅의 나라들 도처에 흩어질 것이라는 ( 히브리어 본문은 이스라엘이 땅의 모든 나라 에게 “공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예언에서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1세기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 단어는 팔레스타인 밖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잘 알려져 있었다 ( 요 7:35를 보라 ). 따라서 문자적으로 본다면, 야 고보는 팔레스타인 밖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는 것 같다. 그러나 야고보는 일반적인 의미의 유대인이 아니라 ( 특정적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 이든지 아니면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든지 )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어떤 학자들은 야고보서가 원래는 비기독교적 유대 서신이었는데 나중 에 1장 1절과 2장 1절이 첨가되면서 “기독교화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 서론 에 있는 “독자는 그리스도인이었는가 비그리스도인 유대인이었는가”를 보라 ),

야고보서에 나타나

는 몇몇 측면은 분명하게 기독교적 기원을 나타낸다. 하지만 야고보서가 특 정하게 유대 그리스도인들, 어쩌면 여전히 자신들의 지역 회당에서 활동하고 있었을 자들에게 기록되었을까? 야고보서에 유대적 성향이 있는 것은 매우 분명해 보이지만, 야고보서는 기 독교 공동체를 하나님의 백성의 현재적 발현으로 여기는 것 같다. 따라서 야 고보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편지는 이방 그리스도인에게 배타적이지 않으며, 야고보서의 어떤 내용도 반드시 유대인 만 야고보의 청중이어야 한다는 암시를 주지 않는다. 어떻든지 간에, 이 서신 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자들에게 말하는 것만큼이나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도 말한다. 그러나 최소한 청중의 상당수는 민족적 유대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좋은 제 안들이 있어 왔다 ( 예를

들면, 그들의 모임은 여전히 “회당”으로 불리는데 [ 2:2 ], 이는 이 단어가

6) 제2성전기 유대인이 소망하는 회복된 이스라엘로서의 “열두 지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JacksonMcCabe 1996을 보라.

116


I. 인사말 ( 1:1 )

신약의 서신서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경우다 ).

최초 단계의 교회는 ( 사도행전에서처럼 ) 대부분

유대인 신자들로 구성되었고, 스스로도 자신들이

( 민족적 )

이스라엘과의 밀접

한 연속성 가운데 있다고 여겼지만, 동시에 그들은 예수가 성취했던 것이 이 7)

스라엘을 구성했던 것에 대한 개념에 변화를 가져왔음을 알고 있었다. 새 이 스라엘에게는 더 이상 종교적 헌신이나 신앙에 있어서 민족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 참조, 롬 2:28~29; 고전 10:18; 갈 6:16; 빌 3:3 ). 그러므로 수신자를 가리키 는 “열두 지파”라는 호칭 안에 민족성에 대한 의미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야고보서가 ( 이방인과 대조되는 ) 문자적 의미에서의 일반적인 유대인을 위 한 것이 아니라 (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라면, “열두 지파” 는 은유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도 은유적인 것인가? 다시 말해 서, “디아스포라”가 지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지중해 세계에 흩어진 것을 가리키는가? 8)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는 베드로전서 1장 1절에 도 나온다. 베드로전서가 거의 확실히 이방 그리스도인에게 보내졌음을 감안 할 때,9) 초대 교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세상에 퍼뜨려 이방의 소금과 빛 이 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언급하기 위해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를 사용했 다. 우리는 이 사건을 사도행전 8장 1절에서 볼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 그리 스도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에 “흩어졌다” ( diespa¿rhsan,

디에스파레산 ).

그리고

사도행전 8장 4절에서 이들은 “흩어진 자들” ( diaspare¿nteß, 디아스파렌테스 )로 불 린다. 베드로전서도 그리스도인이 “거류민과 나그네,” 즉 이 세상이 참 고향 이 아니기 때문에 외인임을 강조한다 ( 벧전 2:11 ). 야고보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 고 이 용어를 사용했든 아니든 간에, 고난받는 자로서의 그리스도인 ( 1:2를 보라 ) 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 ( 1:18 )에 대한 야고보의 관심은 적어도 야고보가 베 드로전서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7) 이것은 야고보서가 초기 서신이며 어쩌면 신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증명하는 다른 많은 증거 들과도 부합된다 ( 서론의 “저자와 연대에 대한 네 가지 견해”에 있는 견해 1을 보라 ). 8) 비드 ( Bede )는 현존하는 야고보서 주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신의 주석 ( super divi Jacabi epistolam , [ PL 93:10 ] )에서 디아스포라가 특별히 스데반의 죽음 후에 일어난 박해 ( 행 8장에 언급 ) 때 문에 “흩어진”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은 언급 대상을 너무 제한하는 것이다. 9) 베드로전서의 몇몇 본문( 1:14, 18, 2:9b~10, 4:3~4 )은 베드로전서가 원래 적어도 주로 이교도 배경 에서 개종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됐다고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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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사말 ( 1:1 )

II. 신앙생활 개괄 ( 1:2~27 )  III. 첫 번째 강화: 믿음과 행동 ( 2:1~26 ) IV. 두 번째 강화: 믿음과 지혜와 언어 윤리 ( 3:1~18 ) V. 세 번째 강화: 믿음이 부족하여 생기는 교회 안에서의 다툼 ( 4:1~12 ) VI. 삽입: 두 개의 경고 신탁 ( 4:13~5:6 ) VII. 네 번째 강화: 하나님을 소망함 ( 5:7~18 ) VIII. 마무리 권면: 상호 책임과 축복 ( 5:19~20 )


II. 신앙생활 개괄 ( 1:2~27 ) 야고보서 1장 전체는 신앙생활이나 믿음의 삶에 대한 야고보의 관심을 개 괄한다. 야고보서 2~5장에서 전개될 모든 관심사들을 여기서 소개한다. 즉 요동하지 않는 참된 믿음의 중요성, 지혜의 본성과 장점,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행함, 자기절제의 중요성, 자기기만의 문제, 부의 위험과 가난한 자에게 따 르는 복, 기도의 중요성 등이다. 전체를 아우르는 두 관심사인 믿음과 지혜 가 1) 첫 단락에 나온다. 야고보는 특별히 참된 믿음과 굳은 신념의 중요성 및 필요성에 관심이 있고, 이 관심이 야고보서 전체에 흐른다. 그러나 이 첫 단락 에는 야고보의 독자가 참된 믿음을 시험하는 문제들, 즉 지혜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야고보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협하는 고난, 시련, 유혹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이 서신을 쓴다. 삶의 공포는 신자에게 혼란, 불확실, 이해 불가, 당 황스러움을 줄 수 있다. 기쁨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매이고 지혜는 삶을 다루는 능력이다. 이 둘은 너무 멀고 도달하기 어려워 보인다. 야고보는 독자 에게 시험은 믿음이라는 꾸러미의 한 부분이며 결국에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지혜가 야고보서의 관심사이긴 하지만, 야고보에게 있어서 훨씬 더 큰 관심 사는 독자들의 믿음이다. 진술이 시작되는 이 부분에서 검증받는 것은 “너희 의 믿음”이고, 믿음이 없이 구하는 사람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하 는 자는 반드시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 야고보는 믿음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 에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과 태도는 분명하게 비난받아야 함을 되풀이해 서 확실하게 말한다. 야고보서는 종종 행함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신약 성 경으로 여겨지지만, 야고보서의 관심은 참된 믿음에 있다. 행함은 분명히 중 요한 것인데, 이는 참된 믿음과 행함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믿음의 백성으로 불리는 고난당하 는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개괄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면에서 야고 보서는 또 한 번 베드로전서와 비슷하지만, 베드로전서는 주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덕분에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역들을 언 급함으로써 믿음과 고난당함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 야고보서는 예수의 가르 침 가운데 있는 “지혜” 전승을 언급함으로써 이 문제들을 다룬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을 “디아스포라” 가운데 있는 자들로 칭함으로써

1) 특별 해설 1과 3을 보라. Mayor 1897: 209~213, Lenski 1938: 538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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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자신의 편지가 갖는 전체적인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이미 소개했다. 그리스도 인들은 말씀의 씨앗을 세상에 가져가기 위해 “흩어진” 고난당하는 공동체다. “디아스포라 가운데” 있다는 것은 야고보의 독자들이 삶의 많은 문제와 과업, 특히 고난당할 가능성, 믿음과 지혜의 필요성, 교만과 부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야고보는 자신의 진술을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공동 체가 만날 수 있는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시험 ( 1:2~3 ), 인내 ( 1:3~4 ), 지 혜 ( 1:5 ), 인내하는 믿음 ( 1:6~8 ). 이어서 야고보는 교만 및 겸손 ( 1:9~10 ), 부 ( 1:10~11 ) 와 같은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을 소개하고 다시 시험 ( 1:12 )으로 마무리한다. 이 것들은 이 서신의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는 주제들로서, 단순한 순서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적용을 수반하는 다양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 들은 모두 지혜 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들이고, 실제로 야고보서 는 종종 신약의 “지혜서”로 여겨진다 ( 특별 해설 3 “야고보서와 지혜”를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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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NT 시리즈에 대한 추천의 글

야고보서

베이커 신약 주석은 신약 성경의 원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적 설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와 친밀한 주석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서

- I. 하워드 마셜, 애버딘 대학교

추천의 글 댄 매카트니는 야고보서에 대한 상세하고 학문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주석을 저술했다. 이 주 석은 읽기 쉽고 유익하다. 모든 충실한 주석이 포함해야 할 기반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새로 운 관점들도 가지고 있다. 또한 야고보서를 설교하고 가르치기 위한 탄탄한 기초를 다지기 원 하는 복음주의권 목회자들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다.

- 피터 데이비즈, 세인트스티븐스 대학교 성경신학 교수 댄 매카트니의 야고보서 주석은 야고보서 연구에 새롭고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그는 야고보 서에서 믿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매카트니는 노련하게 다양한 해석들을 탐구하면서, 분명하고 명쾌하게 써 내려간다. 이 작품은 주석적으로 가치가 있고, 신학적으로 탄탄하고, 목회적으로 현명하다.

- 토머스 슈라이너, 남침례 신학교 신약 해석학 교수 매카트니는 원문 자체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이차 문헌에 대한 능숙한 제어 력을 선보인다. 그의 주해는 철저하고, 분명하고, 일관된 정확성을 갖추었으며, 그의 방대한 추가 주석과 특별 해설은 금상첨화다. 이 작품은 열렬히 환영받을 만하다.

- 모이세스 실바, BECNT 『빌립보서』 저자 지은이

댄 매카트니( Dan G. McCartney )

댄 매카트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 ( Ph. D.) 를 받았고, 20년 넘게 같은 신학교에서 가르 쳤으며, 지금은 댈러스에 있는 리디머 신학교에서 신약 해석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레셤 메이첸의 신 약 헬라어 입문서를 개정했으며, 저서로는 Let the Reader Understand: A Guide to Interpreting

and Applying the Bible , The Meaning of Christian Suffering 이 있다.

옮긴이

댄 매카트니 지음 강대이 옮김

강대이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M. Div.) 을 졸업하고, 미국 고든 - 콘웰 신학교에서 석사 학위 ( Th. M.) 를, 골든게 이트 침례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 ( Ph. D.) 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BECNT 『야고보서』 가 있고, PNTC

ISBN 978 - 89 - 6092 - 4 1 1  - 6 ISBN 978 - 89 - 6092 - 258 - 7 (세트)

『야고보서』 가 출간될 예정이다 ( 이상 부흥과개혁사 ).

www.rnrbook.com

값 25,000원

댄 매카트니

지음 | 강대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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