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스펄전 평전

Page 1

톰 네틀즈는 『스펄전 평전』에서 찰스 해돈 스펄전에 대한 최고의 해석학적 설명을 독자들에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조지 M. 마즈던 지음 | 한동수 옮김 | 855쪽 | 30,000원

조지 마즈던은 이 책에서 최근 발굴된 자료들을 통해 18세기의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조나단 에드 워즈의 생애를 여러 각도에서 비평적으로 조망한

게 제시한다. 지난 수십 년간 스펄전이 19세기 침례파의 지도자들과 심각하게 씨름했다는 증거를 이 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내는 네틀즈는 스펄전의 수많은 저서들과 다양한 목회 사 역뿐 아니라 지도력의 발휘와 고난의 극복들을 살펴보면서 “설교의 황태자”의 여러 측면을 폭넓게 그리고 획기적으로 묘사한다. 교육적이고 덕을 세우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 방대 한 저술은 침례파의 역사와 기독교 문헌에 권위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데이비드 도커리

다. 에드워즈가 살았던 뉴잉글랜드라는 식민지 문명에서의 갈등과

유니언 대학교(테네시 잭슨) 총장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뿐 아니라, 개혁주의와 청교도의 유산을 사용 하여 근대적 전제들에 도전한 그의 폭넓고 광범위한 사상을 무게 있

찰스 해돈 스펄전은 19세기 영국에서뿐 아니라 아마 전 세계에서도 최고의 설교자였을 것

고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이다. 침례파 목사였던 스펄전의 열정적이고 호소력 있는 설교는 수많은 청중과 독자의 마 음에 복음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했다. 본서 『스펄전 평전』의 저자 톰 네틀즈 교수는 스

『로이드 존스 평전 1』

펄전의 삶을 열렬한 존경심으로 접근하면서도 구체적인 증거들에 대한 판단은 매우 조심스

이안 머리 지음 | 김귀탁 옮김 | 640쪽 | 25,000원

러워한다. 본서가 특별한 점은 네틀즈 교수가 스펄전이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의 목사

『로이드 존스 평전 2』 이안 머리 지음 | 김귀탁 옮김 | 736쪽 | 30,000원

로서 편집 출간한 월간지 「칼과 삽」을 신선한 자료의 원천으로 풍성하게 사용함으로써 스펄 전의 삶과 목회와 신학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베빙턴 스털링 대학교(스코틀랜드) 역사학 교수

『로이드 존스 평전 3』 이안 머리 지음 | 김귀탁 옮김 | 656쪽 | 27,000원

찰스 해돈 스펄전은 널리 알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진작 받았어야 마땅했던 관심을 이

한 인물의 삶을 이해하면 그의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이 책을

제야 받기 시작했다. 이제 톰 네틀즈의 역작은 스펄전의 존재와 그의 사역이 지닌 진가를

읽는 독자는 로이드 존스의 글에 감춰진 사상을 더 잘 파악할 수 있

주목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네틀즈는 중요하지만 방치되었던 원천들을 발굴함

다. 이안 머리는 이 전기에서 20세기의 위대한 목사요 설교자였던

으로써 스펄전에 대한 묘사를 선명하게 정리하였고 매우 진지하고 읽기도 좋은 글을 썼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 방식과 목회 사례를 통해 성경적 설교와 목회의

마이클 리브스

원리를 생생히 제시함으로 올바른 목회관을 정립하고 평생의 목회

UCCF 신학 분과장. 『선하신 하나님』과 『꺼지지 않는 불』의 저자

지침으로 삼을 기회를 제공한다.

스펄전 평전

LIVING BY REVEALED TRUTH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목회신학

R E V E A L E D

T R U T H 지은이

스펄전은 복음주의라는 산맥의 거대한 산 같은 인물이다.

토머스 네틀즈 ( Thomas J. Nettles )

네틀즈는 스펄전을 인간으로, 신학자로, 교회사에 가장 큰

미국 최고의 침례교 역사신학자로 인정받는 토머스 네틀

영향을 끼친 목회자로 드러내며 우리를 스펄전의 신념과 목회신학의 심장으로 인도한다. 본서를 읽는 자는 용기와

즈는 켄터키 루이빌의 남침례 신학교에서 공부했고(MDiv, PhD),

교훈과 복을 얻을 것이다.

앨버트 몰러 켄터키 루이빌 남침례 신학교 총장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미드아메리카 침례신학

교,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 남침례 신학교 등에서 38 년간 역사신학을 가르치다가 지난 2014년 은퇴했다. 침례 교의 신학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네틀즈는 침례교의 역 사에 관한 책(총

3권)을

대표작으로 썼으며, 2009년에 쓴

제임스 보이스의 전기도 유명하다.

스펄전 평전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목회신학

옮긴이

김재모 한국에서 태어나 18세에 부모 형제와 함께 미국 로스앤 젤레스로 이민을 갔다. UC 버클리(BS)와 UC 데이비스 (PhD)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후 현 코닝의 전신 삼성코닝

정밀유리에서 근무했다. 이후 총신대학교(MDiv)를 졸업했 고 안양 열린교회에서 교구 담당 목사로 섬겼다. 현재 부

임원주 안양 성결교 신학교와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공부했 고(MDiv,

톰 네틀즈

론 글리슨 지음 | 윤석인 옮김 | 624쪽 | 30,000원

지음 |

김재모·임원주

옮김

ThM)

교회사와 교리사를 강의했다. 평택과 서울

에서 담임 목회 사역을 했고 개혁주의 신학과 특수 침례 교회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순수교회

헤르만 바빙크 연구의 최고 권위자 글리슨은 위대

톰 네틀즈 지음 김재모·임원주 옮김

한 네덜란드 신학자의 생애 전반을 충실하게 소개 한다. 바빙크 가문의 풍부한 신앙 유산, 그리고 신

의 회복』 (누가), 『종교권력을 버려라』 (가나다) 등이 있고, 역 서로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예루살렘)과 스티븐 차녹 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2 』, 토머스 굿윈의 『믿음의 본

학과 정치 현장에서 쌓은 폭넓은 경험은 권위 있는 『개혁교의학』 (부

질』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저술한 인물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책은 통

전적인 칼빈주의를 삶에서 실천하여 지금까지 신학자와 목회자에게 끊임없이 감화를 주는 위대한 인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B Y

흥과개혁사 편집인이며 교회 개척을 준비 중이다.

『헤르만 바빙크 평전』

흥과개혁사) 을

L I V I N G

ISBN 978-89-6092-450-5 www.rnrbook.com 값 50,000원


목차

■ 추천사

6

■ 머리말

12

■ 들어가는 말

16

1장 출생에서 중생까지

28

2장 복음 사역으로 부르심

90

3장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

169

4장 온전한 경륜의 선포

220

5장 신학의 방법과 내용

289

6장 그리스도의 화목 제사에 대한 교리

365

7장 교회 생활과 예배

389

8장 복음은 전도다

443

9장 복음 전도자들과의 동역

503

4

스펄전 평전


10장 자선 사역의 신학적 근거

537

11장 경건서 저술에 대한 이론과 관점

618

12장 옳고 그름과 진리에 대한 문헌

675

13장 신학과 논쟁

743

14장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800

15장 내리막길 논쟁

852

16장 스펄전과 미국의 침례주의자들

914

17장 질병과 고통과 우울증

939

18장 하나님 품으로

999

5


추천사

찰스 해돈 스펄전은 19세기 영국에서뿐 아니라 아마 전 세계에서도 최고 설교자였을 것이다. 침례파 목사였던 스펄전의 열정적이고 호소력 있는 설 교는 수많은 청중들과 독자들의 마음에 복음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했 다. 본서 『스펄전 평전』의 저자 톰 네틀즈 교수는 스펄전의 삶을 열렬한 존 경심으로 접근하면서도 구체적인 증거들에 대한 판단은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본서가 특별한 점은 네틀즈 교수가 스펄전이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의 목사로서 편집 출간한 월간지 「칼과 삽」을 신선한 자료의 원천으로 풍성하게 사용함으로써 스펄전의 삶과 목회와 신학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베빙턴 ( David Bebbington ) 스털링 대학교 ( 스코틀랜드 ) 역사학 교수

톰 네틀즈는 『스펄전 평전』에서 찰스 해돈 스펄전에 대한 최고의 해석학 적 설명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지난 수십 년간 스펄전이 19세기 침례파 의 지도자들과 심각하게 씨름했다는 증거를 이 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내는 네틀즈는 스펄전의 수많은 저서들과 다양한 목회 사역뿐 아니라 지도력의 발휘와 고난의 극복들을 살펴보면서 “설교의 황태자”의 여러 측면을 폭넓 게 그리고 획기적으로 묘사한다. 교육적이고 덕을 세우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 방대한 저술은 침례파의 역사와 기독교 문헌에 권위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데이비드 도커리 ( David S. Dockery ) 유니언 대학교 ( 테네시 잭슨 ) 총장

스펄전은 복음주의라는 산맥의 거대한 산 같은 인물이다. 네틀즈는 스펄

6

스펄전 평전


전을 인간으로, 신학자로, 교회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목회자로 드러내 며 우리를 스펄전의 신념과 목회신학의 심장으로 인도한다. 본서를 읽는 자는 용기와 교훈과 복을 얻을 것이다. 앨버트 몰러 ( R. Albert Mohler Jr. ) 남침례 신학교 ( 켄터키 루이빌 ) 총장

본서에서 톰 네틀즈 박사는 칭송으로 일관하지 않고 정보를 함부로 다루 는 자의 공동 교정을 피하면서도, “설교의 황태자” 찰스 해돈 스펄전의 삶 과 목회에 대한 또 다른 유익한 작품을 복음주의 공동체에 선사한다. 설교 와 목회 사역을 통해 소위 은혜의 교리들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붙들고 간 직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은 경건 한 삶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섬김과 성화의 견인으로 고양될 것이다. 베리 드라이버 ( C. Berry Driver, Jr. ) 남침례 신학교 ( 텍사스 포트워스 ) 조직신학 교수 겸 도서관장

본서는 세계적인 역사학자 톰 네틀즈가 15년 동안 저술한 책으로, 찰스 해돈 스펄전이 1865년부터 1892년까지 매월 편집 출간했던 「칼과 삽」 전 체를 빈틈없이 참고하여 저술된 스펄전 전기로는 세계 최초이다. 전에는 몹시 외면당하고 활용되지 않았던 자료들을 통한 정보 수집과 분석 때문 에, 『스펄전 평전』은 스펄전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신선하고 독특한 본서는 평신도에게 유쾌하고 목회자들에게 유익하고 학자들에게 필수적이 다. 이미 네틀즈의 책은 “설교의 황태자”에 대한 적절한 원천들 중 가장 가 치 있는 책으로 자리매김했다. 돈 휘트니 ( Don Whitney ) 남침례 신학교 ( 켄터키 루이빌 ) 경건훈련 담당 겸 신학과 부학장

위대한 영국 목사에 대한 권위적인 전기다! 톰 네틀즈는 이전 찰스 해돈 스펄전의 전기 작가들이 못했던 것을 해냈다! 네틀즈는 역사상 가장 영향 력이 있었던 침례파 목사의 지성 안을 교회가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자신 의 언어로 스펄전을 제시한 네틀즈의 원천은 방대한 스펄전의 설교들과 서 신들이었지만 특히 스펄전이 런던 목회 기간 동안 대부분 편집 출판했던 월간지 「칼과 삽」에 들어 있는 사설들과 기사들이었다. 네틀즈는 이 원천들

추천사

7


안에 계시된 스펄전의 사상을 검토하고 배열함으로 독자들에게 신학, 목회, 교회 생활에 대한 스펄전의 관점을 보게 했기 때문에, 시간을 내어 이 놀라 운 이야기를 읽는 자는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만약 목회자가 위대한 설교 자의 전기를 꼭 한 가지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다! 제프 스트로브 ( Jeff Straub ) 중부침례 신학교 ( 미네소타 플리머스 ) 역사신학 교수

톰 네틀즈 박사는 오늘날 최고의 침례파 역사가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 으며,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다. 그의 연구는 학문적이며 신학은 고결하고 교회를 향한 마음은 분명하다. 본서에서 네틀즈는 “설교의 황태자”가 발휘 했던 목회적 탁월함을 제시한다. 찰스 해돈 스펄전의 목회 사역은 지금까 지도 세대를 초월한다. 바울 이후 최고의 설교자로 존경받는 스펄전의 삶 과 목회에 대한 흥미진진한 설명은 독자들을 격려하고 고양할 것이다. 스 펄전의 초월적 신학과 성경 진리에 대한 불타는 열정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영광을 행하는 당신에게, 목회자든 평신도든, 힘이 될 것이다. 스티븐 로슨 ( Steven J. Lawson ) 그리스도 교제 침례교회(앨라배마) 담임목사

본서는 진귀한 보석 같은 기독교 문헌으로, 탁월한 역사신학자가 저술한 위대한 인물의 인생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이 위인과 작가의 조합은 위인 의 삶과 사상에 생명을 공급한다. 톰 네틀즈의 스펄전 묘사는 현저하게 친 밀하며 역사적으로 생생하며 신학적으로 풍부하다. 신학과 목회, 복음과 삶 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하는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떻게 연합되는 지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 나는 본서를 강하게 추천한다. 로버트 콜드웰 ( Robert Caldwell ) 남침례 신학교 ( 텍사스 포트워스 ) 교회사 조교수

목사와 장로들은, 특히 젊은이들을 복음 사역으로 이끄는 자들은, 톰 네 틀즈의 『스펄전 평전』에서 목회신학의 보고를 발견할 것이다. 섬세하며 포 괄적인 본서는 어떻게 찰스 해돈 스펄전이 목회 사역 전체를 품었는지 그 리고 어떻게 그가 지금도 그의 유산을 통해 복음의 사역자들을 일으키는

8

스펄전 평전


데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놀랍게 묘사한다. 본서는 현재의 목회 자들에게 목회 사역의 모든 단계마다 동기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함으로 일대기나 목회 방법론을 넘어 복음 중심의 목회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필립 뉴턴 ( Phillip Newton ) 사우스우즈 침례교회 ( 테네시 멤피스 )

찰스 해돈 스펄전은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설교자며 교회의 선 물이며 책들과 설교집을 통해 그리스도의 위대한 아군으로 여전히 싸우고 있다. 1892년 죽음 이후 그에 대한 전기가 많이 저술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증거다. 교회사의 위대한 지도자들처럼 스 펄전은 목사-신학자였다. 목사-신학자로서 그의 목회는 성경신학에 의해 형성되었다. 톰 네틀즈는 스펄전이 어떻게 말씀의 신학자가 되려는 자의식 적인 헌신으로 그의 삶을 목회 사역에 던졌는지 보여 준다. 네틀즈에 따르 면 이 헌신은 스펄전으로 하여금 설교와 목회를 신앙고백적인 신실함으로 행하게 했다. 그는 침례주의자들과 옛 청교도들이 견지한 복음적이고 그리 스도 중심적인 칼빈주의를 옹호하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실제로 스펄 전은 칼빈주의 체계를 절박하게 성경적으로 그리고 목회 사역 전반에 실 용적인 것으로 여겼다. 네틀즈가 관철하려는 핵심은 모든 신학이 스펄전에 게는 목회신학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아무리 추천해도 지나치지 않는 책이다. 스펄전이 외쳤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다니면서 이 책에 대해 말해야 한다. 목회자들과 신학생들, 목회자 양육자 들은 모두 네틀즈가 상세히 밝혀 주는 스펄전의 생애와 사역을 상세히 배 워야 한다. 스펄전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펄전의 위대한 업적에 놀란 다. 네틀즈는 이 업적들의 신학적 토대를 이해하게 도우며,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스펄전처럼 교회의 유익에 기여한다. 톰 아스콜 ( Tom Ascol ) 그레이스 침례교회 ( 플로리다 케이프코럴 )

찰스 해돈 스펄전은 널리 알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진작 받았어야 마 땅했던 관심을 이제야 받기 시작했다. 이제 톰 네틀즈의 역작은 스펄전의 존재와 그의 사역이 지닌 진가를 주목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네 틀즈는 중요하지만 방치되었던 원천들을 발굴함으로써 스펄전에 대한 묘

추천사

9


사를 선명하게 정리하였고 매우 진지하고 읽기도 좋은 글을 저술했다. 마이클 리브스 ( Michael Reeves ) UCCF 신학 분과장. 『선하신 하나님』과 『꺼지지 않는 불』의 저자

찰스 해돈 스펄전은 19세기 후반 영어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 교자였을 뿐 아니라 옛 청교도 신학 전통의 최고 유산들을 전수하는 자로 자처했던 영향력 있는 침례파 목사-신학자였다. 스펄전에 대한 전기가 지 난 수십 년간 수없이 출판되었지만, 그의 사상이 관심과 조명을 받는 경우 는 드물었다. 이것이 바로 본서가 중요한 이유다. 톰 네틀즈는 스펄전에 대 한 기억들과 출판된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활용하여 “설교의 황태자”를 포 괄적으로 다루는 전기를 저술함으로써 스펄전과 관련된 학문에 존재했던 중요한 틈을 메웠다. 많은 목회자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개혁주의의 전망에서 바라보는 성경에 대한 높은 견해와 역사적 침례파 정통주의에 대 한 스펄전의 헌신에 고무될 것이다. 이 유명한 빅토리아 시대 목사의 신학 적 비전을 조명하려는 학자들은 이제 반드시 신학자 스펄전을 고려해야 한 다. 네틀즈는 스펄전의 신학적 비전을 회복하는 데 그의 평생을 쏟았다. 이 전기는 그가 고대했던 신학적 회복에 분명히 기여할 것이다. 나단 핀 ( Nathan A. Finn ) 남침례 신학교 ( 노스캐롤라이나 ) 역사신학 및 침례파학 부교수

내가 오랫동안 확신하던 바에 따르면 1892년에 찰스 해돈 스펄전이 죽 은 이후로 그에 대한 전기가 꽤 많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의 놀라운 사역 과 그가 살았던 고무적인 인생의 세부 사항들을 고려할 뿐 아니라 그의 신 학을 충분히 다루는 연구가 부족했다. 마침내 나의 동료 교수 톰 네틀즈는 15년 동안 수고한 대작에서 인간이자 설교자로서의 스펄전뿐 아니라 신학 자 스펄전을 공정하게 평가한다. 본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복음주의와 당시 의 세계에서 매우 중요했던 인물을 충분히 그리고 신뢰할 만하게 제공하는 “전방위적인” 연구다. 스펄전이 그의 신학의 핵심 측면들에서 옛 시대의 선 조로 여겼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주신 명령으로 내 말을 맺는다. “톨레 레 게!” 집어서 읽는 자는 복 받을 것이다. 마이클 헤이킨 ( Michael A. G. Haykin ) 남침례 신학교 ( 켄터키 루이빌 ) 교회사 및 경건훈련 교수

10

스펄전 평전


톰 네틀즈가 찰스 해돈 스펄전의 전기를 편찬한 목적은 위대한 설교자의 목회신학을 깊이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내가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힘든 연구 과정의 결과로 인해 네틀즈 박사는 이보다 좋은 보물을 교회에 줄 수 있을까? 이 전기는 이제까지 잘 알려졌던 성경의 권위와 무류 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스펄전의 헌신, 은혜의 복음 교리에 대한 열정적 인 강해, 구령에 대한 끌 수 없는 불꽃, 가난한 자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활 발한 소망, 많은 종류의 개인적인 고난에 대한 놀라운 인내 등을 기록하고 있다. 교회사에서 스펄전만큼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에게 신령한 은사를 받 았던 자는 많이 없는데, 네틀즈는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을 위한 사 람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스펄전은 우리가 닮고자 하는 모범을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신자가 충성심을 보여 주는 놀라운 사례다. 우리 모두 이 전기를 널리 읽어서, 수천 명의 남녀 신자들로 하여금 스펄전의 목회 사역의 특징 이었던 뜨겁게 달궈진 복음의 열정과 성경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구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바란다. 스티븐 패리시 ( Stephen E. Farish )

추천사

11


머리말

「칼과 삽」 ( the Sword and the Trowel ) 제20권을 제본업자에게서 받아 든 스펄 전은 “우리가 이 잡지를 처음 출판할 당시에는 제20권까지 간행하리라고 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썼다. 그러나 「칼과 삽」은 스펄전이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에서 수행한 사역의 연대기일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그 의 자서전”으로 자라났다. 1  )   이 스펄전의 생각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왜냐 하면 그의 사후에 출판된 『자서전』 ( Autobiography ) 을 편찬하기 위해 스펄전 의 아내 수잔나 톰슨 ( Susannah

Thompson ) 과

비서 조셉 해럴드 ( J.

W. Harrald ) 가

수집한 자료의 대부분은 주로 이 목회 월간지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칼 과 삽」의 몸통은 스펄전과 여러 목사들의 설교와 논고로 이루어져 있는 반 면 서평 부분과 “편집자 노트”( notes ) 부분은 스펄전의 생애, 견해, 신학, 목 회관을 이해하게 하는 자료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게다가 「칼과 삽」은 당 대 문헌의 논평, 당시 신앙생활의 단면, 그가 공감하고 후원하도록 독려하 고 직접 후원한 여러 자선사업들을 공유했다. 스펄전의 개인적인 일들, 기 쁘고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대부분 “사적”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된 노트 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는 스펄전의 목회신학을 이해하기 위해 1865년부 터 1892년 사이에 매월 스펄전이 약 50쪽 분량으로 편집하여 출간한 「칼과 삽」에 초점을 맞췄다. 스펄전의 아들이 수집한 편지들은 스펄전의 생애 전체를 정확하고 쾌활 하고 노련한 개인적인 필치로 보여 준다. 스펄전의 편지들은 스펄전의 걱 정거리들,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정,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애정, 복음 사역에 대한 집중, 고통에 대한 솔직함, 대립에 대한 난처함으로 가득 차 있 고 스펄전의 영혼이 스며들어 있다. 분명히 스펄전의 설교는 1855년부터

1  )  S word and the Trowel, January 1885, p. 25.

12

스펄전 평전


매월 출간되기 시작해서, 스펄전이 죽은 후에도 훨씬 오랫동안 간행되었다. 이 설교들은 스펄전의 설교학, 주석, 신학적 확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논쟁들, 교회들 간의 관계들, 당대의 사건들을 반영한다. 고백컨 대 나는 스펄전의 설교를 다 읽지는 않았다. 하지만 『뉴파크 스트리트 설 교전집』 ( New

Park Street Pulpit ),

Tabernacle Pulpit ),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설교전집』 ( Metropolitan

무게 있는 주제들에 대해 논한 상당한 분량의 설교집들, 『스

펄전 주석 대백과』 ( Spurgeon’s

Expository Encyclopedia ),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

신문에 실린 설교문을 기초로 하여 ( NPSP나 MTP에도 실리지 않은 설교들을 많이 담고 있 는 )

20권 분량으로 미국에서 편찬된 『스펄전 설교전집』 ( Spurgeon’s Sermons ) 을

어느 정도 탐독했다. 사실 스펄전이 죽은 직후에 출간된 전기 가운데 홀던 파이크 ( G. Pike ) 의

Holden

한 권짜리 전기가 가장 중요하다. 파이크가 여섯 권 분량으로 『찰스

해돈 스펄전의 생애와 사역』 ( the Life and Work of Charles Haddon Spurgeon ) 을 저술 하기 전에 출간한 이 전기는 「칼과 삽」의 공동 편집자로서 그만이 접근 가 능했던 일차 자료들을 상당 부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파이크는 스펄 전 생애의 마지막 8개월과 임종과 장례식을 둘러싼 사건들과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설교단에서 종려나무까지』 ( From

the Pulpit to the Palm Branch ) 를

저술했다. 스펄전 사망 직후 ( 1892년 ) 에 출간된 또 하나의 귀중한 전기는 로버트 쉰들 러 ( Robert Shindler ) 가 쓴 『좌석 안내에서 설교단까지』 ( From the Usher’s Desk to the Tabernacle Pulpit ) 였다.

이 책은 스펄전의 장례를 다루었던 파이크의 책에 대한

속편이면서, 파이크가 다루기 이전 시기의 스펄전을 다뤘다. 쉰들러는 「칼 과 삽」에 자주 기고했다. 실제로 그는 내리막길 논쟁 ( Downgrade controversy ) 에 대한 일련의 글을 작성한 첫 번째 저자였다. 내리막길 논쟁은 스펄전의 마 지막 5년을 바꿔 놓았고 영국 침례교회의 얼굴을 바꾼 사건이었다. 쉰들러 는 스펄전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스펄전의 개인적인 세부 사항을 채워 넣는 데 도움을 주고 이야기에 생명을 주는 사건들과 일화들을 많이 가지 고 있었다. 1920년에 풀러턴 ( W.

F Fullerton ) 은

가치 있는 전기를 저술했다. 독자들이

본서에서 자주 만나게 될 풀러턴은 스펄전이 직접 파송한 가장 걸출한 복 음 전도자였고 스펄전이 가장 어려웠던 때에 많이 신뢰했던 벗이었다. 그 래서 풀러턴은 잊힐 뻔한 일화들, 친밀하고 경탄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친

머리말

13


구의 세심한 판단 같은 귀중한 개인적인 통찰력과 인상을 제공한다. 풀러 턴의 이런 판단들을 비판력 없는 성인 열전처럼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극심 하고 혹독한 시기를 걸출한 성품으로 견뎌 낸 명민한 인물들의 평가는 진 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이들은 무엇이 그에게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기록된 문서로만 제한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 스펄전에 가장 필적하는 인물로 여겨진 러셀 콘웰 ( Russell Conwell ) 은

1892년에 『찰스 스펄전의 생애: 가장 위대한 설교자』 ( Life of Charles

Haddon Spurgeon: the World’s Greatest Preacher ) 를

저술했다. 이 책은 스펄전의 사역

가운데 전설이 되다시피 한 몇몇 측면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들을 사실에서 벗어난 편견들을 건전하게 교정하여 결합시켰다. 콘웰이 스펄전을 개인적 으로 친밀하게 알았다는 사실은 스펄전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묘사를 최상 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스펄전의 학생이었던 칼라일 ( J. 한 해석학적 전기』 ( C.

C. Carlile ) 은

1933년에 『찰스 스펄전에 대

H. Spurgeon: An Interpretative Biography ) 라는

흥미로운 책을

펴냈다. 칼라일은 스펄전을 향한 엄청난 애정뿐 아니라, 스펄전의 침례교 연맹 탈퇴와 스펄전의 격렬한 교리적 비판 때문에 여전히 통증을 겪고 있 고 쇠퇴의 길을 걸었던 영국 침례교 연맹 ( Baptist Union ) 에 대해 스펄전을 우 호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스펄전은 기생충처럼 파고들어 온 해롭고 이단적인 현대 사상에 대해 침례교 연맹이 묵인한 것 을 격렬히 비판했다. 칼라일의 진술은 간단하지 않았다. 아마 풀러턴의 서 술 방식을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칼라일과 거의 동시에 미 국인 엘즈워스 데이 ( Richard Ellsworth Day ) 는 『얼굴에 드리운 그늘』 ( Shadow of the Broad Brim ) 이라는

스펄전 전기를 출판했다. 이 책은 추천할 만한 기념비적

저술이다. 스펄전을 회고하는 책들과 장들은 귀중한 일화를 알려 주고 스펄전의 인 격과 경건의 일관적인 측면을 분명히 예증해 준다. 피터 모던 ( Peter Modern ), 아놀드 달리모어 ( Arnold

Dallimore ),

루이스 드러먼드 ( Lewis

Drummond ),

패트리샤

크루파 ( Patricia S. Kruppa ) 등도 스펄전 전기를 썼다. 이들은 모두 사실적인 내 용과 역사적 전망이라는 두 측면에서 유익하다. 이안 머레이 ( Iain

Murray ) 는

논쟁가 스펄전에 대해 날카롭게 저술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와 스펄전 목회자 대학에 있는 문헌 자

14

스펄전 평전


료들을 직접 접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 자료들을 인용한 이들의 도움을 받 았다. 이런 자료들이 귀중한 통찰력을 분명히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지속적인 수고를 통해 수집한 상당한 양의 일차 자료는 내 연구 의 주된 목적 즉 스펄전의 목회신학을 제시한다는 목적을 수행하는 데 충 분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 원고를 15년이나 기다려 준 크리스천 포커 스 ( Christian Focus Publications ) 출판사에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내 아내 마거릿도 데모스테네스처럼 놀라우리만치 인간적인 침례 교인들을 공정하 고 정확하게 그려내도록 15년이라는 인고의 시간 동안 사랑을 보여 주며 수천 시간을 희생했다.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을!”

머리말

15


들어가는 말

나는 모든 신자가 계시된 진리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소원 을 품게 하고 싶다. 비밀한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속삭이는 사람이 있 다. 비밀한 것들이 정말 비밀이라면 당신은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이 확실하 다. 그러나 계시된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계시된 모든 것은 당신과 당신 자녀 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가르치는 것을 알도록 주의를 기울여라. 심약 한 무지에 굴복하여 큰 실패를 당하지 않도록 하라. 1  )

1892년 2월 11일 찰스 해돈 스펄전을 떠나보내는 장장 8km에 달하는 장 례 행렬이 이어졌다. 뉴잉턴 ( Newington ) 의 세인트 메리 ( St. Mary ) 교회와 케닝 턴 ( Kennington ) 의 세인트 마크 ( St. Mark ) 교회에서 종을 울렸다. 심지어 술집들 이 문을 닫고 조기 ( 弔旗 ) 를 내걸었다. 검은 옷을 입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노우드 ( Norwood ) 묘원에 있는 장지까지 길을 따라 우아한 곡선을 이루며 늘 어섰다. 하늘은 청명하니 높았다. 야자 잎 사이로 관을 내려다보던 한 마리 비둘기가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에서 노우드로 날아가다가 군중 위 에서 잠깐 멈춘 듯했다. 윌리엄 쿠퍼 ( William Cowper ) 의 찬송가를 불렀다. 아치

1  )   MPT, 1891:318. 이 단락은 스펄전의 책을 출판했던 런던의 패스모어 앨러배스

터(Passmore&Alabaster) 출판사가 1861년부터 1917년까지 스펄전의 설교문들을 1년 단 위로 묶어 출간한,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설교전집』에서 발췌한 것이다. 연속으로 출 판된 설교집 시리즈의 첫 여섯 권에는 『뉴파크 스트리트 설교전집』이라는 제목을 붙였 고, 제7권부터는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설교전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본서에서 이후 로는 첫 여섯 권의 설교전집을 NPSP로, 후자를 MTP라는 약자로 표기하고, 그 뒤에 연도 와 페이지 수를 적어 놓겠다. 이 책에서 내가 사용한 것은 1975~1980년에 텍사스 패서디 나(Pasadena)의 필그림 출판사(Pilgrim Publications)가 재인쇄한 것이다.

16

스펄전 평전


발드 브라운 ( Archibald Brown ) 이 설교를 하고 아서 피어슨 ( A. T. Pierson ) 이 기도 를 하고 로체스터의 주교가 축도를 했다. 스펄전을 회심하게 했던 본문이 보이도록 펼쳐놓았던 성경책을 치우고 흙을 덮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지 않기 때문이다. 스펄전의 회심 본문은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 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는 구절이었다 ( 사 45:22 ). 이와 동시에 프랑스 멘톤 ( Mentone ) 2  )  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스펄전은 12일 전 멘톤에서 운명했었다. 펠프스 ( Austine Phelps ) 는 멘톤에 모인 사람들 에게 그 전날 받았던 질문 즉 스펄전이 가졌던 능력의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펠프스는 “스펄전의 능력의 비결은 두 가지입 니다. 첫째, 스펄전은 언제나 단순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의 존재와 그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전함으로써 영혼들을 하나님 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에 대한 스펄전의 인격적인 믿 음은 언제나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삼았습니다”라고 대답했 다. 펠프스는 스펄전의 삶과 메시지에서 그리스도가 중심이었으며 “성경 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고 계속해서 강조했 다. “스펄전의 주제는 언제나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러나 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그리스 도였습니다. 태양은 언제나 똑같은 태양이지만 햇빛은 날마다 새로운 것처 럼 말입니다.” 3  )   펠프스는 스펄전의 삶의 추진력을 매우 간결하게 포착했다. 평생토록 스 펄전은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지각하면서, 그가 완성한 사 역에 대해 성령이 증언하시는 영적 자양분을 매 순간 그리고 설교 때마다 2  )   “멘톤”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곳으로 스펄전이 가장 좋아한 휴양지였다. Mentone은 멘톤

의 영어식 철자다. 프랑스어를 표기할 때는 직접 인용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어식 철자 로 표기하겠다. 3  )   S&T, April 1892, p. 154. Charles Spurgeon, The Sword and the Trowel (London: Passmore & Alabaster, 1865~1892). 「칼과 삽」이라고 번역한 이 월간지는 스펄전이 편집 하여 월 단위로 발행한 뒤에 일 년 단위로 묶은 잡지다. 스펄전이 죽은 뒤에도 여러 해 동 안 계속해서 출판되었다. 「칼과 삽」은 종종 해마다 편찬한 스펄전 설교전집에는 없는 설교 와 해석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집필한 기고문, 선교 및 전도에 대한 소식, 교리 관련 논 고,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의 월간 동정을 실었다. 게다가 각 호마다 50개가량의 서 평을 실은 서평란이 있었는데 대부분 스펄전이 집필했다. 이 책에서 나는 연 단위로 제본 된 것을 사용했다. 스펄전의 생애와 매우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의 사상을 알기 위해, 이 시리즈에 실린 공지와 평론을 참고했다. 다음부터 각주에서 표기할 때 S&T, 월, 연도, 페이 지 순으로 표시하겠다.

들어가는 말

17


얻었으며 온 힘을 다해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를 경험한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나 진술 가운데 어떤 것도 계시된 진리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지 않았다. 교회사에는 풍성한 관계성과 튼실한 명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체계화하여 풍성한 체험과 거역할 여지가 없도록 규정된 예배를 뒷받침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영과 진리의 아름다운 조화를 아 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 칼빈, 번연, 에드워즈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영과 진리의 아름다운 연합을 추구하고 자연스럽게 표출하 는 데에서 스펄전을 능가하지 못했다고 나는 장담한다. 본서는 스펄전이 어떤 사역이든 계시된 진리와 일관된 두 가지 즉 잘 발 전되고 명확하게 체계화된 조직신학과 회심 사역에 대한 헌신 때문에 앞으 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내리막길 논쟁 초기에 스펄전의 대적들은 “명백하게 계시된 것을 뛰어넘는 거만한 행보의 복잡성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한 스펄전의 응답을 이끌어 냈다. 스펄전의 신학은 시계와 일 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에 의해 통제되었다. 4  )   스펄전의 설교, 기관 및 예배의 발전, 출판, 교회 생활에 대한 인식, 전도, 고통, 스펄전이 역할을 감당한 논쟁, 이 모든 것은 성경에서 개진되었는데, 오웬, 차녹, 번 연, 뉴턴, 휫필드, 로메인, 브룩스, 맨턴, 십스 같은 청교도들과 복음주의자 들이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진리 체계에 스펄전이 헌신했음을 보여 준다. 교파적인 면과 신학적인 면, 양쪽에서 스펄전은 자신을 1689년 『런던 신앙 고백서』가 정의한 특수 침례교회 ( Particular Baptist ) 의 신자로 여겼다. 스펄전이 힘을 기울인 모든 사업은 영국 특수 침례교회 신학의 일부분을 특수하게 성취하려는 자의식적 헌신으로 출현했다. 이 점은 스펄전의 회심 방식뿐 아니라 평생 동안 회심과 관련을 맺은 방 식에서 나타난다. 또한 이는 유아세례를 받았더라도 신자가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조용한 자각에서도 나타난다. 스펄전은 평신도 복음 전도 사역에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에 진리와 삶의 요소들이 융합했던 반면에 그 의 설교자로서의 소명은 영감 받은 성경을 통해 옛 성도들에게 전달된 신 앙을 선포함으로써 영존하시며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싶은 열망을 품게 했다. 고아원, 구빈원 등의 자선 기관을 설립할 때 스펄전은 철저한 성경 지식과 교리적 원리들을 실행하려는 완전한 헌신으로 시작했

4  )   S&T, December 1883, p. 650.

18

스펄전 평전


다. 목회자 대학 ( Pastor’s College ) 은 성경에 입각한 조직신학, 건전한 주석, 강 해 설교, 성경적으로 규정된 목회신학에 철저히 기반해야 한다는 스펄전의 신학적 헌신과 한 개인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사가 결합되어 발전되었다. 1886년에 스펄전은 아우구스투스 스트롱 ( Augustus Hopkins Strong, 1836~1921년 ) 의 『조직신학』을 평하는 글에서 신학의 가치에 대해 무게 있는 의견을 표출했 다. 그는 신학을 성경의 명료성에 기여하는 도구며 계시된 진리의 무오성 에 대한 일관적인 확신을 낳는 도구라고 여겼다. 스펄전은 “만일 젊은 사 역자들이 신학을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면 유식한 척하는 자들에게 속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계시된 진리에 대한 철저하고 조직적인 연구 를 매도함으로써 자기들의 무지를 옹호합니다”라고 역설했다. 5  )   정치와 이념 같은 변수들 속에서 스펄전의 정신적 흐름은 이음새가 없었 다. 이 특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명확해졌다. 스펄전은 수상 ( 首相 ) 과 국 회의원들의 정치 문제와 정책 가운데 성경적 및 복음적 논란거리들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관련되면서도 자신이 보기에 자명하게 진실이며, 따라서 부 정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고 권모술수며 직관에 상충한다고 여겨지는 사안 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기탄없이 드러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 운 관찰력과 더불어, 원기 왕성한 천성은 신학적, 복음 전도적, 도덕적 적용 을 폭포수처럼 쏟아 냈다. 스펄전은 모든 자연적 관찰, 인간적인 부딪힘, 개 인적인 행동 양식에 대한 신학적 반추를 지속적으로 다각도로 검토하는 것 을 싫어하거나 부담이나 저주로 느낀 적이 전혀 없었다.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은 영원 속에서 이미 구속 언약을 세워 놓았음에도 아담이 타락했을 때 세상을 저주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성경에서 점진 적이고 단계적으로 계시했다. 결국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모든 것을 다 말 씀해 주셨다. 성경의 충분성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의 최종성은 만물에 대한 스펄전의 이해를 지배했고, 스펄전의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진리였다. 성경이나 주권적 은혜의 복음에 대한 도전은 실제로 균열을 야기했고 무지, 사고력의 붕괴, 불합리성, 자멸, 죽 음,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분노라는 무한한 공포의 나락으로 끌어들 였다. 스펄전은 성경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고차원적인 지식이라고 곳곳에

5  )   S&T, November 1886, p. 598.

들어가는 말

19


서 표명했다. 그는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급성장한 과학 정신에 대한 책자들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다. 『청년을 위한 지질학과 성 경의 역사에 대한 교리문답서』 ( A People ) 라는

Catechism of Geology and Sacred History for Young

책의 서평에서 스펄전은 성경의 역사를 “지질학이라는 유치한

학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과 학이 충분하고 훌륭한 성과를 이뤘을 때 스펄전은 “성경에는 추론 결과들 로 이해하기보다는 계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신비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고 주장했다. 스펄전은 “성경의 진술을 받아들이는 일”에 믿음을 발휘하기 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성경의 주장에 대한 별개의 확증은 전혀 필요 없었 다. 왜냐하면 성경의 권위는 인간의 이성과 탐구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 다. 성경의 증거는 그 자체에 있고, 인간 영혼의 필요에 대한 증언에 있으 며, 구속적 진리의 전체 구조를 통해 해석되고 성경을 계시로 받아들일 완 전한 근거가 된다. 스펄전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것을 육적인 추 론에 의해 쓸모없는 수준의 판단으로 환원시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기 독교 이성주의”는 유행에 지나지 않고, 이는 성경을 성경 자체의 권리 주 장, 내재적 탁월성,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에 입각해서 받아들이게 하는 교리의 필요성을 매우 위태롭게 한다. 6  )   스펄전은 초기에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사역했다. 깨어 있는 시간은 설 교와 저술 일정으로 가득 찼다. 정신과 육신은 1856년 10월 19일 이후에 급격하게 노쇠했다. 이날 발생한 서리 음악 홀 ( Surrey Music Hall ) 참사는 스펄 전의 영혼을 짓눌렀고, 이후로 그는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세상의 식자 들과 종교인 양쪽이 던지는 조소, 비웃음, 질투는 빠르게 늘어나는 스펄전 의 인기와 나란히 보조를 맞췄다. 목회자 대학에서 시작해서 자선 기관들 의 연결망이 늘어났고, 이 기관들을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책임은 스 펄전을 압박했다. 이 때문에 스펄전의 정신력과 체력은 지쳐 갔다. 설교를 준비하고 전달하는 한 주간의 압박, 숨 막힐 듯 답답한 기후, 런던의 하늘에 드리운 두터운 오염층, 서더크 ( Southwark ) 의 빽빽한 빈민 지대 꼭대기까지 땅과 하늘에 켜켜이 쌓인 침울한 회색의 환경을 떠나 있도록 시간을 조절 할 필요가 있었다. 스펄전에게 신학적으로 불쾌함을 느낀 동시대인들은 스 펄전이 기력 저하와 질병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을 스펄전의 신학적 대결

6  )   S&T, February 1881, p. 84.

20

스펄전 평전


의 진지함을 제거하는 데 이용했다. 하지만 스펄전의 지적 예리함이나 완 전한 건전성이 육신의 쇠약함 때문에 위협을 받았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스펄전은 자신에게 “전면적인 수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달려간다면 우리의 정신은 지쳐가고 우리 의 영은 억눌리고 우리의 심장은 무기력해지고 우리의 눈은 총기가 흐려진 다.” 스펄전은 정신 노동이 “쇠바퀴가 마찰로 마멸되는 것”만큼이나 확실 하게 우리의 뇌를 지치게 한다고 확신했다. “규칙적인 휴가 없이 일하는 것 은 지혜롭지 않다.” 7  )   이것은 스펄전이 육신의 약함에 최종적으로 굴복하기 22년 전이었다. 스펄전은 사랑했지만 미워했고, 거의 예외 없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와 동시에 복음의 명료함과 순수함과 능력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하는 종교 체계와 정치를 참으로 미워했다. “오류를 완벽한 미움 으로 미워하면서도 오류를 일으킨 자를 사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 나 성령은 우리가 이 일을 하도록 도우신다.” 8  )   스펄전은 오류를 범한 사람 들에 대해 전혀 원한을 품지 않았다. 주권적 은혜가 진리의 빛을 향해 자신 의 생각과 마음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주교들 을 사랑했다. 하지만 주교 정치 제도는 미워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을 포용했던 반면 아르미니우스주의의 특색들이 파괴적이라는 사실 또한 깨 달았다. 토리당원들에 대해 애정을 품었지만 단지 태생적으로 획득한 억압 적 권력과 특권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비웃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존중했지 만 가난과 가난을 야기하는 경솔함을 경멸했다. 일을 잘하고 번영을 누리 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칭찬했지만 세속적인 영달을 추구하는 것에는 저 항했다. 스펄전이 후원하고 지지한 광범위한 자선사업 계획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경이적인 포용력과 자신의 비전을 충분히 승인하도록 부자들을 매혹시킬 능력이 스펄전에게 없었더라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 다. 샤프츠베리 ( Shaftesbury ) 백작은 스펄전이 많은 곳에서 수행한 영향력 있 는 자선 사역 때문에 스펄전이 존경을 받는다고 잘 표현했다. 샤프츠베리 는 타버나클 교회에서 모인 빈민학교 사역자들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이 지방에서 누가 이 문제에 대해 말할지라도 나는 친구 스펄

7  )   S&T, August 1869, p. 358. 8  )   S&T, January 1883, p. 28.

들어가는 말

21


전 선생보다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샤프츠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빈민학교를 위해 약 40년 동안 수고한 뒤에 내놓는 사람의 귀중한 증거와 조언은 내게 비상한 즐거움을 줍니다. 말씀을 그토록 많이 그 토록 잘 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말씀과 행동을 그토록 실천 적으로 결합한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스펄전 목사를 마음 깊 이 칭찬하고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스펄전 목사보다 신실하고 순 전한 주의 종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은사들이 올바르 게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9  )

스펄전은 그의 재치조차도 낭비하지 않았다. 재치를 성경 진리를 가르치 는 일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윌리엄스 ( W. Williams ) 는 14년 동안 스펄 전의 금요 강좌를 수강했고 종종 목요일 저녁 예배에도 참석했으며 스펄전 의 가정에 상시적으로 초대를 받았다. 윌리엄스는 “나는 이 특권을 양심이 허용하는 만큼 활용했다”고 고백했다. “스펄전의 재치는 유명했다”고 수 천 명의 관찰자들의 말에 부합하는 보고를 했다. 윌리엄스는 스펄전을 “유 머가 솟아나는 샘”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때보다 스펄전과 어울릴 때 더 웃 었다고 고백했다. 스펄전은 웃음 자체는 좋은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 때문 에 우리의 경험 속으로 들어온 매력적인 많은 부조화를 받아들이도록 마음 을 부드럽게 해 준다고 확신했다. 스펄전은 “예수교는 무죄하고 건강한 쾌 감에 어떤 제한도 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  )   명언이나 일화, 익살이 교훈 을 주는 핵심이 양심에 자리를 잡고 머물도록 붙잡아 주는 바늘이 된다면 한층 더 좋은 것이다. 스펄전은 책방을 기웃거리다가 유아세례를 다룬 어 떤 책의 추천사를 무심코 보게 되었다. “자 스펄전은 당신에게 육체의 가시 입니다”라는 신랄한 언사가 눈에 띄었다. 그러자 스펄전은 서슴없이 “형제 여, 나를 들이받은 사탄의 메신저여! 말을 끝내게나”라고 대꾸했다. 11  )   스 펄전은 많은 필명을 사용했는데, 가장 유명한 필명은 “존 플라우만”( John Ploughman ) 이었다.

이런 필명들을 통해, 익살스러운 풍자와 꿀에 식초를 섞

9  )   S&T, December 1882, p. 632. 10  )   W. Williams, Personal reminiscences of Charles Haddon Spurgeon (London: the

Religious Tract Society, 1895), p. 171. 11  )   앞의 책, p. 162.

22

스펄전 평전


은 도덕적이며 신학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위대한 사상가는 자신을 위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제목의 글에서는 가짜 위대함에 대해 그리고 작은 것들을 위대함의 표징으로 여기는 지성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 신랄 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물구나무를 서서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기 때 문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내기 시합에서 다른 사람을 때려 눕혔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거짓 위인들 가운데 가장 나쁜 유형 은 자기가 영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 을 때는 백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거위다. 영리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쁜 유형은 “성경보다 똑똑하고 세상에는 조물주가 없고 사 람은 꼬리가 닳아서 떨어져 나간 원숭이일 뿐이라고 믿을 정도로 박식한 사람들”이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정신병자가 아니라 “영리한 사람들에 게서 배운다. 만일 상황이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간다면 가난한 시골뜨기 는 어느 쪽이 미쳤고 어느 쪽이 철학자인지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스펄전 은 계속해서 존 플라우만으로 하여금 영리함에 대한 논의의 핵심에 도달하 게 한다. 많은 양의 고깃국을 만들 때 오래된 솥단지를 사용한다. 수많은 달 콤한 위로는 오래된 교리에서 나온다. 내가 처음 눈을 뜬 이후에 수많 은 개가 죽었다. 모든 개는 저마다 전성기가 있다. 그러나 이 개들은 평생 사냥을 했지만 성경에서 실질적인 흠을 찾아낸 적도 없고 그 자 리에서 선한 일을 시작한 적도 없다. 이들은 매우 영리할 수 있다. 그 러나 하나님이 가르치신 진리보다 확실한 진리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 다. 예수가 가져다주는 구원보다 좋은 구원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바로 복음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복음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이 장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12  )

하지만 핵심 없는 유머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다. 사역자들은 “생명력 없는 농담과 심심풀이 이야기를 늘어놓아 단지 청중을 즐겁게 할 뿐인 재 담꾼”이 되서는 안 된다. 목사들 때문에 오락장이 되어 버린 곳은 징계의

12  )   C. H. Spurgeon, John Ploughman’s Pictures (Christian Focus Publications, 1989), pp.

80~84.

들어가는 말

23


채찍을 가해야 한다. “종교적 교훈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든다는 것은 목표 나 목적 없이 실없는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것과 전혀 다르다.” 13  )   스펄전은 자신의 사역을 계시된 진리에 의거해서 해석했다. 인간의 죄에 대해 성경이 묘사한 내용은 스펄전 자신의 의식에 인 쳐졌고, 이에 대한 복 음의 응답은 혼란에 빠진 스펄전의 양심을 충족시켰다. 스펄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성경의 모든 명제가 위로의 말씀, 교훈, 깨달음, “교훈과 책 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 달았다. 결과적으로 스펄전은 성경의 진실성을 자신의 경험 속에서 그리 고 성경 자체의 내적 일관성에 의해 확증했고, 따라서 외적 실증을 전혀 필 요로 하지 않았다. 스펄전은 어느 누구와도 성경 본문상의 혹은 기독교 신 앙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 이런 논의에서는 유익 한 것이 나올 리 없었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은 죄의 무게나 구속자 를 필요로 하는 심각성을 아직 느끼지 못한다. 지성의 결투만으로는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성경은 반항적인 지성인들이 공허 한 철학적 트집을 해소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양심에게 완 전한 구속자를 보여 주기 위해 성경이 주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에 비춰 볼 때 스펄전이 설교, 토론, 자선사업을 수행하면서 행한 모든 것은 계시된 진 리에 대한 지각에서 나왔다. “우리는 계시된 진리의 확실성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에 대해 사람들이 세운 이론에 굴복하지 않는다.” 스펄 전은 논쟁하지 않았지만, “벗어날 경우 파멸에 이르게 되는 확실한 진리 즉 본질적이고 항존적이고 영원한 진리들이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신학에서 새롭기만 한 것은 거짓이다. 그래서 스펄전은 오류에 빠지게 하는 목소리 보다 옛것의 메아리 즉 성경적인 옛것과 청교도의 옛것이라고 간주되는 것 을 좋아했다. 14  )   현대 사상이나 신학을 전혀 기독교라고 간주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종파로 여겼다. 선한 의도에서 스펄전은 자신을 인간의 모든 경험에 대한 보편적인 여과 장치로 그리고 청중을 대신하는 대리자로 여겼다. 철학자들과 회의론자들 은 지적이며 영적인 혼란을 겪는 회심 이전 시절에 자기 영혼 깊은 곳에서 자신을 압도한 적이 없는 질문을 제기할 수 없다. 스펄전의 분투와 비교해 13  )   S&T, October 1879, pp. 492~493. 14  )   Charles Spurgeon, An All Round Ministry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78), p.

17.

24

스펄전 평전


볼 때 지금 의심하는 자들의 이의 제기는 사소한 문제들일 뿐이었고, 스펄 전의 청중은 스펄전이 이미 답변한 것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다. 책들에 대한 스펄전의 논평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될 것이다. 스 펄전이 배울 만한 것이 없는 책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시간을 허비할 책일 것이다. 스펄전은 고통을 받는 동료들에게 확실한 안내자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 이 직접 경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고통과 정신적 피로에 대해 충분히 알 았다. 스펄전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완전한 목사의 삶은 자기 청중의 삶의 전형이 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다윗의 시편을 볼 때처럼, 목사의 설교를 통해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목사의 설교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슬픔을 바라보게 해야 한다. 회중의 결핍은 목사가 슬퍼해 야 하는 이유다.” 15  )   폭스 ( Fox ) 가 매우 통렬하게 보도하는 보편교회의 순교사화는 언론 매체 가 끝없이 성가시게 만드는 잘못된 묘사와 많은 동료 성직자의 천박한 정 신에서 비롯된 반대를 통해 일상적인 경험 속으로 파고들었다. 창피를 주 는 능력으로 유명한 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희희낙락하면서 비웃고 조 롱할 때 스펄전은 이런 반대 증거들을 큰 스크랩북에 모았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멸시를 견디며 이룬 기념비적 업적이었다. 영문 밖에서 그 리스도와 함께 인내하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자신의 청중을 위해 성경 교리의 진실성을 확증했다. 성경 교 리는 참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경론, 기독론, 구원론, 이 모든 것은 스펄전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스펄전의 말을 듣고 글을 읽는 모든 사 람들에게 흘러갔다. 성경의 능력과 거룩하게 하는 영향력에 대한 확신은 성경의 정직함에 대해 스펄전이 철저히 검증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신뢰 할 수 있다. 스펄전은 지적 곤란을 겪는 질문자에게 “당신이 나를 거짓말쟁 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믿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증언하고, 내가 봤고 맛보았고 다뤄 보고 만져 본 것 을 진술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의 증언을 믿어야 합니다. 내게는 당신을 기만할 어떤 그럴싸한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16  )

15  )   S&T, May 1876, p. 197. 16  )   Charles Spurgeon, The Soul Winner (Chicago: Fleming H. Revell, 1895), p. 110.

들어가는 말

25


스펄전의 회심은 스펄전을 인간의 모든 경험을 전달하는 통로로 만들었 을 뿐 아니라 모든 지식에 대한 열쇠를 스펄전에게 주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곳, 모든 민족의 가장 유명한 지혜, 정치, 예술, 과학, 철학 즉 계시된 진리라는 보고에서 나오지 않은 모든 것보다 무한히 높았 다. 십자가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는 참된 신자는 “다른 어떤 학문 분야를 유리하게 추구할 수 있는 올바른 위치에” 있다. 스펄전에게 이것은 사실이었다. “고백컨대 지금 내 머리맡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선반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읽든지 어디에 둬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내가 무 엇을 배우든지 간에 그것을 어디에 담아서 치워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스펄전이 읽고 주목한 모든 것이 함께 소용돌이를 쳐서 부주의한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이후에 나는 그리스도를 나 의 중심에 태양처럼 모셨습니다. 각각의 학문은 행성처럼 그리스도의 주변 을 돌고 작은 학문들은 위성이 되어 행성들의 주위를 돕니다.” 스펄전은 그 리스도를 자신의 인격이라는 우주의 중심으로 삼은 뒤에 확신에 차서 “나 는 이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라고 선언했다. 17  )   스펄전이 설교 사역을 수행하면서 두드러지게 보여 준 것은 그의 생각과 마음이 계시된 진리의 지속적인 출납을 위한 창고와 관리소가 되었다는 사 실이다. 일주일, 그다음 일주일, 이런 식으로 스펄전은 성경 본문 속에 스며 들어 있고, 죄인의 영혼을 사로잡고, 심령을 다듬고 구원하는 능력을 쏟아 냈다. 스펄전의 삶에서 살인적인 횟수의 설교 사역은 스펄전을 사실상 죽 음으로 내몰았다. 왜냐하면 가차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계시된 진리가 그 생기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이다. 영적이며 구원 하는 생명을 성령의 복을 받으며 죄인 안에 불어넣어 주는 수단이다. 스펄 전의 입은 계시된 진리가 생명수의 물줄기처럼 흘러나가는 통로가 되었다. 스펄전은 성경 본문이 고유한 해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전체 진리로 들어가는 진입구로 봤다. 그는 고유한 문맥에 주의를 기울였을 뿐 아니라, 선택한 본문으로 설교의 표현을 만들 때 역사적 신앙고백을 염두 에 두었다. 스펄전에 따르면 성경은 책마다 혹은 시대마다 분리된 신학적 전망이나 신학의 개별화된 발전으로 조각내서는 안 되며, 구속자의 구속에 서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이생에서 가능한 가장 온전히 펼치는 방향으로

17  )   NPSP, 1855, p. 60.

26

스펄전 평전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없이 성경 본문을 다루 는 것은 천박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계시된 모든 진 리의 총합은 그리스도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런 스펄전의 설교관은 스펄전의 신학적 관심사를 일관되게 표현한다. 스펄전이 회심한 이후의 초창기부터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고귀하게 여긴 구속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와 아멘이 되었고 하나님의 모든 “내가 하 겠다”는 것을 구체화했다. 영원한 언약보다 계시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계 시의 취지를 잘 요약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스펄전 자신의 경험과 사역에 서, 이런 언약을 아는 지식이 가져다주는 안정감보다 확실한 것은 없었다. 언약을 아는 지식은 계시된 진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경계에 있었고, 삼 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자기 지식 속으로 성경의 다른 어떤 개념 보다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진리의 본체에 있는 다른 항목을 수용하게 하 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었다. 언약을 아는 지식은 모든 신학과 신앙고백 표 현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스펄전은 1689년의 『침례교 신앙고백서』를 출간 하면서 다음과 같은 간략한 진술을 덧붙였다. 이 옛 문서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믿는 것들에 대한 탁월한 개요 입니다. 신앙에 대한 권위주의적 규정으로나 법전으로나 족쇄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의로 교육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문서는 영감을 받은 문서는 아니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탁월한 진술이기 때문에 모든 신앙고백은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채택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멸망에 처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라는 진리를 겸손하게 붙듭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으며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이것은 스펄전이 항상 제시했던 증언의 일부다. 스펄전에게 이것은 성경 의 메시지였다. 이것은 계시된 진리 안에서 우리에게 해설된 구속자의 주 권적 사역이었다.

들어가는 말

27


1장

출생에서 중생까지 한때 나는 마제파 ( Mazeppa ) 와 다름없었습니다. 꼼짝달싹 못하도록 손발이 꽁꽁 묶 인 채, 나 자신의 탐욕이라는 야생마의 잔등에 매여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 는 나를 실은 야생마의 뒤를, 지옥의 사냥개가 내 육신과 영혼을 자신들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먹잇감으로 삼키려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강한 손길이 다가와, 이 야생마 를 세우고 내 결박을 끊고, 말에서 나를 끌어내려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여러분! 능 력이라는 것이 존재합니까? 능력은 존재합니다. 능력을 느껴 본 사람은 능력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죄악이라는 강한 옛 성채 안에서 살면서, 행위에 의존하 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팔수가 문 앞으로 와서는 내게 문을 열라고 명령했습니다. 나 는 화가 나서 현관에 버티고 서서는 그 나팔수에게 들어오면 안 된다고 쏘아 댔습니 다. 어떤 멋진 풍모의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얼굴에는 사랑이 넘치고 두 손에는 못이 박힌 흉터가 있었습니다. 양쪽 발에도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치켜들 더니 망치처럼 내리쳤습니다. 처음 내리쳤을 때 나의 편견이라는 문이 흔들렸습니다. 두 번째 내리쳤을 때 문은 더욱 흔들렸습니다. 세 번째에 드디어 문이 부서졌습니다. 그분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라, 네 두 발로 서라. 내가 너를 영원한 사랑 으로 사랑했다”고 말했습니다. 능력! 아! 이것이 능력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여기서, 이 마음으로 그 능력을 느꼈습니다. 내 안에는 성령의 증거가 있습니다. 나는 이 증거 가 강한 것임을 압니다. 증거가 나를 정복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굴복시켰습니다. 1  )

찰스 해돈 스펄전은 개인적인 은혜 체험의 능력과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고 19세기 후반부에 등장했다. 스펄전은 성경이 계시된 것이며, 그리 스도가 이 땅에 오셨으며, 성령이 아버지가 택한 모든 자들로 하여금 이런 경험을 확실하게 갖도록 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 문 제에서 스펄전이 합리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현대 사상가들, 수단과 공덕 을 주장하는 자들, 성공회 내의 가톨릭파를 자신의 뜻에 굴복시키지는 못 했을지라도 분명히 스펄전은 이들에게 조금도 순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서 자신의 힘이 미치는 만큼 이들의 독수 ( 毒手 ) 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 1  )   Charles Spurgeon, Sermons of Rev. C. H. Spurgeon, 20 volumes (New York: Funk &

Wagnalls, 1857~1892년) 1:104~105. 이 시리즈에는 NPSP와 MTP를 통해 출판되지 않은 설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시리즈를 앞으로는 (스펄전의 설교[Spurgeon’s Sermons]를 의미하는) SS로 그리고 그 뒤에 권수와 쪽수를 표기할 것이다. 때때로 설교 제목이나 성경 본문을 참고 문헌 표기에 포함할 것이다. 이 설교문을 NPSP 1855, pp. 57, 58에서 찾아볼 수 있다.

28

스펄전 평전


려 했다. 만일 이들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고 복음의 대의에 기여한 다면 스펄전은 화합했을 것이다. 스펄전은 어떤 사역이 이 복음의 명확한 선포와 광범위한 유포를 증진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사역을 시작하고 지속했을 것이다. 스펄전은 자신의 교파를 이런 진리의 능력에 충실하도록 죽도록 애썼을 것이다.

스펄전의 아동기 스펄전은 1834년 6월 19일 영국 에식스의 켈버돈 ( Kelvedon ) 에서 존 스펄 전과 엘리자 자비스 스펄전 ( Eliza

Jarvis Spurgeon )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펄전

은 자녀 중 첫째였다. 존과 엘리자는 열일곱 명의 자녀를 낳았고 이 가운데 여덟 명만이 유년기를 넘겼다. 스펄전의 아버지는 장남 스펄전보다 10년 을 더 살고, 1902년에 91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스펄전의 부모는 그가 한 살이 되기 전에 콜체스터 ( Colchester ) 로 이사했다. 스펄전은 50세가 되던 1884년에 “은혜는 혈통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종종 혈통과 나란히 달린다” 고 썼다. 스펄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혈통을 이어받은 것, 특히 비국교파 의 후손이라는 것을 큰 명예로 여겼다. 2  )   이런 종교적 진취성이 유전적인 것은 아닐지 몰라도 환경적인 것임은 분 명했다. 스펄전 가문은 16세기 말에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건너왔다. 피 의 여왕 메리의 남편이요 스페인 국왕인 필립 2세가 강직한 네덜란드 사람 들을 강제로 가톨릭에 복속시키기 위해 잔인한 알바 공작을 보냈을 때 스 펄전의 선조들은 양심을 지키기로 했다. 필립 2세에게 굴복하기를 거절했 던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선조 좁 ( Job ) 스펄전은 찰스 2세의 통치기에 영국 청교도의 한 사람으로서 양심을 지키다가 투옥되는 핍박을 받았다. 말썽 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즉 비국교파로 처신하기를 중지하겠다고 약속한다 면 방면해 주겠다는 조건부 타협안을 거절했다. 그래서 병든 몸으로 혹한 의 겨울을 감옥에서 보냈다. 3  )   스펄전은 70대에 들어선 아버지의 특성을 묘 2  )   S&T, September 1884, p. 471. 3  )   Pike 1:1~5. G. Holden Pike, The Life and Work of Charles Haddon Spurgeon, 6 vols.

London: Cassell and Company Limited, nd. 파이크는 스펄전의 좋은 친구로서, 유명한 설 교자 스펄전의 전기를 세 차례 저술했다. 그 마지막 전기가 여기에 인용된 6권짜리다. 이 전기의 흥미롭고 유익한 부분은 전 생애에 걸쳐 스펄전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자의 일차 적 경험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과 스펄전보다 오래 산 워터비치의 친구들이 관찰한 실질적

1장 출생에서 중생까지

29


사할 때 자신의 옛 선조들을 “우리 아버지의 정신 속에는 강직하고 확고한 신념이 있다. 아버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해서 확신을 버리도록 하는 데에는 영원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묘사했다. 4  )   스펄전은 시대의 허구적 인 사실에 흔들리지 않았다. 스펄전은 두 명의 삼촌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 한 사람은 외가 쪽의 찰 스 자비스 ( Charles Spurgeon ) 이다.

Javis ) 고

다른 한 사람은 친가 쪽의 해돈 스펄전 ( Haddon

스펄전의 부모가 콜체스터로 이사한 지 네 달 뒤에 조부

모는 스펄전을 할스테드 ( Halstead ) 와 하버힐 ( Haverhill ) 사이에 있는 스탬 본 ( Stambourne ) 이라는 마을로 데려가서 살았다. 조부는 1810년 이후부터 스 탬본의 독립파 회중을 이끄는 목사로 봉직했고, 실질적으로 마을의 현자였 으며 심지어 국교회의 사역자인 제임스 홉킨스 ( James

Hopkins ) 와도

좋은 관

계를 유지했다. 스펄전은 “두 목회자는 같은 복음을 전했다. 자신들의 원칙 을 포기하지 않은 채 멋진 교제를 나눴다”고 기록했다. 5  )   영국 여러 곳에서 일어났던 국교회와 비국교파 사이의 갈등은 스탬본에서는 두드러지게 나 타나지 않았다. 6  )   젊은 스펄전은 어느 월요일에 자신의 조부와 홉킨스 목사 가 주일이면 양쪽 교회에 참석하는 어느 사무관과 교제하는 모임에서 버터 를 바르고 설탕을 친 빵과 “짙은 갈색” 각설탕이 나란히 소찬으로 나왔던 장면을 회상했다. 7  )   스펄전은 할아버지의 집에 대한 인상, 다윗과 골리앗 그림, 창문세 ( window tax ) 를

피하기 위해 회반죽을 바른 어두운 창문들, 국회의원도 올라앉기를

원했을 흔들 목마 등에 대해 매우 세세한 것들까지 회상했다. 여우 사냥은 스펄전을 매료시켰다. 화려한 광경, 속도, 신비로움 때문이었다. 그는 찬송 가 암기와 쥐잡기로 돈을 벌었다. 쥐잡기가 찬송가 암기보다 벌이가 좋았 인 자료들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전기에는 당대의 언론 기사를 인용한 것들이 많 다. 모호한 것들도 있고 찾기가 어려운 것들도 있지만, 파이크의 전기에 흥미를 더해 준다. 4  )   S&T, September 1881, p. 471. 5  )   Charles Spurgeon and Benjamin Beddow, Memories of Stambourne (London: Passmore and Alabaster, 1891), p. 10. 6  )   이것은 제임스 스펄전의 전임 목사인 베도우의 손자 벤자민 베도우가 『스탬본의 추 억』(Memories of Stambourne), p. 39에서 한 주장이다. 7  )   C. H. Spurgeon, Autobiography, first published in 4 vols, 1897~1900, rev edition, 2 vols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2 [vol 2, 1973]), 1:8. 이 다음에 각주 를 달지 않고 제시한 몇 개의 인용문들은 이 책의 3~13쪽에서 발췌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인용해 온 자료를 중간에 삽입할 때는 주기를 달겠다. Banner of Truth Trust의 두 권짜리 Autobiography, 권수, 쪽수 순으로 표시하겠다.

30

스펄전 평전


다. 그러나 스펄전은 청중과 마찬가지로, “찬송가 암기가 한층 더 지속적으 로 수지가 좋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건, 모든 항목, 모든 대화, 모든 관계는 종국에는 스펄전에게 영적 및 교리적 교훈들이 되었다. 스펄 전은 자연의 작지만 기막힌 요소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온통 둘러싼 매 혹적인 이적들에 경탄했다. 사과를 담은 병, 침대 바로 옆의 회반죽 벽에 있 는 참새들, “아이”에게 줄 구운 과자를 넣는 선반이 달린 나무 반죽 통, 마 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 세탁물 탈수기, 이 모든 것은 스펄전에게 유쾌한 추억이 되었다. 그는 “이 시골 생활 전체”를 좋아했다. 8  )   스펄전이 사역 전 체에 걸쳐 공유한 많은 영적 및 신학적 교훈은 자연과 교리적 진리 사이의 유사점들을 발전시키는 방식에서 나왔다. 스펄전은 조부의 시골 생활 이야기와, 인간적으로 말해서 너무 궁핍한 환 경에 처한 자신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공급해 주셨는지에 대해 말하기를 좋 아했다. 스펄전의 조부는 스펄전을 데려와서 함께 살기 전에는 농장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많은 자녀들을 먹일 우유를 공급하는 젖소가 한 마 리 있었다. 어느 날 젖소가 주저앉더니 죽어 버렸다. 식구를 부양하는 큰 부 분이 사라진 것이다. 조부 존 스펄전은 괴로워하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원 하신다면 우리에게 젖소 쉰 마리를 주실 수 있어!”라고 말했다. 바로 이날 가난한 목회자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실행 위원회가 런던에서 모였다. 기 금을 요청한 사람들에게 전액을 분배한 뒤에 5파운드가 남았다. 위원 중 존 스펄전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존의 고결한 성품과 존의 고군분투에 대해 알고 있던 한 위원은 남은 5파운드를 에식스의 스탬본에 있는 독립파 목사에게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다른 의원이 5파운드로 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니 5파운드를 보탰다. 그러자 다른 두 위 원도 동참했다. 다음날 아침 스펄전 가족은 죽은 소를 벌충하는 20파운드의 돈을 하나님에게서 우편으로 받았다. 존은 문서를 펴서 돈을 보고는 아내에 게 “자 당신은 죽은 소에 대해 하나님을 의지하는가?”라고 말했다. 9  )   시골 마을 사람들이 젖소의 건강, 태양과 비의 균형, 쟁기의 날카로움, 매 일의 건강과 고통에 대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의지한 것은 속담을 잘 인 용하는 습관과 섭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낳았다. 스펄전이 사용한 필명

8  )  M emories of Stambourne, p. 98. 9  )   MTP, 1875, p. 657.

1장 출생에서 중생까지

31


인 존 플라우만과 다른 가명의 등장인물들은 시골인 스탬본에서 만난 인물 들을 조합해서 만든 것이었다. 그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스 펄전이 사랑한 할아버지와 윌 리처드슨 ( Will

Richardson ) 이라는

속담에 능한

농부였다. 때때로 젊은 스펄전은 쟁기질을 할 때 리처드슨과 함께 걸었다. 리처드슨은 “알아듣기 어려운” 속담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새신자 입장에서 젊은 설교자를 평가하 면서 “아 젊은이! 자네는 설교자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넘어야 할 울타리가 상당히 많다네!”라고 말하고는 했다. 10  )   스펄전이 보통 사람들에 대해 품은 사랑, 건전한 상식에 대한 확신, 정직 하고 오랜 수고에 대해 품은 방침은 시골 생활에 대한 관찰 결과들과 파산 을 가까스로 면하는 정도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에서 나 왔다. 스펄전은 헨리 커웬 ( Henry Curwen ) 이 쓴 『천천히 꾸준히 걸어야 성공한 다』 ( Plodding On; or, the Jog-trot to Fame and Fortune ) 라는 책을 천재적 승리에 대한 해설로 젊은이들에게 건전한 야망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책이라고 추천했 다. 천재적 승리를 거둔 사람은 다 느리되 꾸준히 걷는 사람들이었고 모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스펄전은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기어 올라가 면 되는지 여기서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약간의 지혜롭고 슬픈 관 찰 사항을 배경에 깔아 둔 채, 계속해서 “1리터짜리 통과 지혜롭지 못한 결 혼의 공통점은 사다리의 맨 아랫단에 사슬로 묶어 두지 않으면, 방종을 몰 아낸답시고 위로 기어 올라가서 힘을 발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 했다. 스펄전은 천천히 걸어서 성공한다는 개념을 도입하여 천재를 다시 정의해 보았다. “천재가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류다. 내 생 각에 천재는 대개 어떤 방면에서든 두 배로 땀을 흘리는 성향 및 태도를 가 진 사람이며, 이렇게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열심히 일하는 천재가 스펄전이 생각하는 유일한 천재였다. 근면과 상관이 없다고 가정되는 천재성에 입각해서 성공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스펄전 의 평가 목록에 낄 자리가 없다. 스탬본에 대한 스펄전의 회고는 아동기 초기와 청소년기에 걸친 추억에 서 나왔다. 그는 콜체스터 ( Colchester ) 의 친가로 돌아간 뒤에도 특히 휴일마

10  )   이 일화는 스탬본에서 제임스 스펄전의 후임 목사인 허친슨이 전한 것이다. Memories of

Stambourne, p. 141.

32

스펄전 평전


다 스탬본에 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스펄전의 아버지는 이 시기에 대해 이 런 말을 남겼다. 스펄전을 키운 것은 스펄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스펄전이 태어난 지 14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를 보러 오셨고 그때 스펄전을 데려가 키우셨다. 스펄전은 네 댓 살이 될 때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머물다가 콜체스터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그 후에도 종종 스펄전은 조부모의 집을 방 문해서 휴일을 보내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 스펄전을 매우 예뻐하셨다……스펄전은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결코 다른 아이들처 럼 텃밭을 일구거나 비둘기를 지키거나 하지 않았다. 책에서 눈을 뗀 적이 없었다. 아내는 스펄전을 찾고 싶으면 내 서재로 갔다. 그러면 스 펄전은 틀림없이 내 서재에서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11  )

청교도 정신을 들이키다 스펄전이 스탬본 방문 기간에 얻은 특별한 유익은 직접적이고 능동적으 로 교리를 접할 기회가 무수히 많았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친구들만이 아 니라 조부의 집에서 벌어진 토론은 스펄전으로 하여금 신학적 논증의 본질 에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스펄전은 “아이들도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 실을 나는 입증했다. 나는 어렸을 때 난해한 신학 논지들에 대해 토론했고 아버지의 친구들이 자유롭게 개진한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주장 했다. 12  )   게다가 존 스펄전이 앞에서 언급한 독서에 대한 열정은 찰스 스펄 전이 평생토록 견지한 본성적인 지적 호기심을 반영했다. 그런데 스펄전의 독서열은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돌연 생명력을 얻었다. 창문에 회반죽을 바 른 방 가운데 하나는 진정한 애서가의 황금 광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 스펄전은 영국 종교개혁의 순교자들과, 피의 메리 치하에서 200명 이상의 교구민을 화형에 처한 런던 주교 “늙은 보너”( Old Bonner ) 를 만났다. 또한 평 생을 친하게 지낸 번연과 평생토록 백 번 이상을 읽은 『천로역정』도 만났

11  )   Pike, 1:17. 12  )   SS, 2:347, “Teaching Children.”

1장 출생에서 중생까지

33


톰 네틀즈는 『스펄전 평전』에서 찰스 해돈 스펄전에 대한 최고의 해석학적 설명을 독자들에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조지 M. 마즈던 지음 | 한동수 옮김 | 855쪽 | 30,000원

조지 마즈던은 이 책에서 최근 발굴된 자료들을 통해 18세기의 신학자요 목회자였던 조나단 에드 워즈의 생애를 여러 각도에서 비평적으로 조망한

게 제시한다. 지난 수십 년간 스펄전이 19세기 침례파의 지도자들과 심각하게 씨름했다는 증거를 이 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내는 네틀즈는 스펄전의 수많은 저서들과 다양한 목회 사 역뿐 아니라 지도력의 발휘와 고난의 극복들을 살펴보면서 “설교의 황태자”의 여러 측면을 폭넓게 그리고 획기적으로 묘사한다. 교육적이고 덕을 세우며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 방대 한 저술은 침례파의 역사와 기독교 문헌에 권위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데이비드 도커리

다. 에드워즈가 살았던 뉴잉글랜드라는 식민지 문명에서의 갈등과

유니언 대학교(테네시 잭슨) 총장

일상생활에 대한 묘사뿐 아니라, 개혁주의와 청교도의 유산을 사용 하여 근대적 전제들에 도전한 그의 폭넓고 광범위한 사상을 무게 있

찰스 해돈 스펄전은 19세기 영국에서뿐 아니라 아마 전 세계에서도 최고의 설교자였을 것

고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이다. 침례파 목사였던 스펄전의 열정적이고 호소력 있는 설교는 수많은 청중과 독자의 마 음에 복음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했다. 본서 『스펄전 평전』의 저자 톰 네틀즈 교수는 스

『로이드 존스 평전 1』

펄전의 삶을 열렬한 존경심으로 접근하면서도 구체적인 증거들에 대한 판단은 매우 조심스

이안 머리 지음 | 김귀탁 옮김 | 640쪽 | 25,000원

러워한다. 본서가 특별한 점은 네틀즈 교수가 스펄전이 메트로폴리탄 타버나클 교회의 목사

『로이드 존스 평전 2』 이안 머리 지음 | 김귀탁 옮김 | 736쪽 | 30,000원

로서 편집 출간한 월간지 「칼과 삽」을 신선한 자료의 원천으로 풍성하게 사용함으로써 스펄 전의 삶과 목회와 신학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베빙턴 스털링 대학교(스코틀랜드) 역사학 교수

『로이드 존스 평전 3』 이안 머리 지음 | 김귀탁 옮김 | 656쪽 | 27,000원

찰스 해돈 스펄전은 널리 알려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진작 받았어야 마땅했던 관심을 이

한 인물의 삶을 이해하면 그의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이 책을

제야 받기 시작했다. 이제 톰 네틀즈의 역작은 스펄전의 존재와 그의 사역이 지닌 진가를

읽는 독자는 로이드 존스의 글에 감춰진 사상을 더 잘 파악할 수 있

주목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네틀즈는 중요하지만 방치되었던 원천들을 발굴함

다. 이안 머리는 이 전기에서 20세기의 위대한 목사요 설교자였던

으로써 스펄전에 대한 묘사를 선명하게 정리하였고 매우 진지하고 읽기도 좋은 글을 썼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 방식과 목회 사례를 통해 성경적 설교와 목회의

마이클 리브스

원리를 생생히 제시함으로 올바른 목회관을 정립하고 평생의 목회

UCCF 신학 분과장. 『선하신 하나님』과 『꺼지지 않는 불』의 저자

지침으로 삼을 기회를 제공한다.

스펄전 평전

LIVING BY REVEALED TRUTH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목회신학

R E V E A L E D

T R U T H 지은이

스펄전은 복음주의라는 산맥의 거대한 산 같은 인물이다.

토머스 네틀즈 ( Thomas J. Nettles )

네틀즈는 스펄전을 인간으로, 신학자로, 교회사에 가장 큰

미국 최고의 침례교 역사신학자로 인정받는 토머스 네틀

영향을 끼친 목회자로 드러내며 우리를 스펄전의 신념과 목회신학의 심장으로 인도한다. 본서를 읽는 자는 용기와

즈는 켄터키 루이빌의 남침례 신학교에서 공부했고(MDiv, PhD),

교훈과 복을 얻을 것이다.

앨버트 몰러 켄터키 루이빌 남침례 신학교 총장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미드아메리카 침례신학

교,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 남침례 신학교 등에서 38 년간 역사신학을 가르치다가 지난 2014년 은퇴했다. 침례 교의 신학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네틀즈는 침례교의 역 사에 관한 책(총

3권)을

대표작으로 썼으며, 2009년에 쓴

제임스 보이스의 전기도 유명하다.

스펄전 평전 찰스 스펄전의 생애와 목회신학

옮긴이

김재모 한국에서 태어나 18세에 부모 형제와 함께 미국 로스앤 젤레스로 이민을 갔다. UC 버클리(BS)와 UC 데이비스 (PhD)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한 후 현 코닝의 전신 삼성코닝

정밀유리에서 근무했다. 이후 총신대학교(MDiv)를 졸업했 고 안양 열린교회에서 교구 담당 목사로 섬겼다. 현재 부

임원주 안양 성결교 신학교와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공부했 고(MDiv,

톰 네틀즈

론 글리슨 지음 | 윤석인 옮김 | 624쪽 | 30,000원

지음 |

김재모·임원주

옮김

ThM)

교회사와 교리사를 강의했다. 평택과 서울

에서 담임 목회 사역을 했고 개혁주의 신학과 특수 침례 교회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순수교회

헤르만 바빙크 연구의 최고 권위자 글리슨은 위대

톰 네틀즈 지음 김재모·임원주 옮김

한 네덜란드 신학자의 생애 전반을 충실하게 소개 한다. 바빙크 가문의 풍부한 신앙 유산, 그리고 신

의 회복』 (누가), 『종교권력을 버려라』 (가나다) 등이 있고, 역 서로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예루살렘)과 스티븐 차녹 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2 』, 토머스 굿윈의 『믿음의 본

학과 정치 현장에서 쌓은 폭넓은 경험은 권위 있는 『개혁교의학』 (부

질』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저술한 인물의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책은 통

전적인 칼빈주의를 삶에서 실천하여 지금까지 신학자와 목회자에게 끊임없이 감화를 주는 위대한 인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B Y

흥과개혁사 편집인이며 교회 개척을 준비 중이다.

『헤르만 바빙크 평전』

흥과개혁사) 을

L I V I N G

ISBN 978-89-6092-450-5 www.rnrbook.com 값 50,000원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