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대작 시리즈
청교도 대작 시리즈
청교도 대작 시리즈 Puritan Magnum Opus Series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요! 영롱하게 빛나는 이런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01 . 스티븐 차녹의 『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 Stephen Charnock ( 1628 ~ 1 680) , The Existence and
마음을 매료하고 사로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본성적으로 눈
Attributes of God
이 어두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가진 아름다움과 탁월함 02 . 스티븐 차녹의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Stephen Charnock ( 1628 ~ 1 680) , The Knowledge of God
03 . 아이작 암브로스의 『 예수를 바라보라 』 Isaac Ambrose ( 1604 ~ 1 664) , Looking unto Jesus
04 . 토머스 굿윈의 『 성령의 구원 사역 』
을 보지 못합니다. 오! 하나님의 은혜로, 속이는 정욕을 따라 부패한 옛사람을 벗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 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 마음을 새롭게 하도록 힘씁 시다. 이런 복된 변화가 당신에게 있는지, 주님 안에서 빛으
Thomas Goodwin ( 1600 ~ 1 679) , The Work of the Holy Ghost in our Salvation
05 . 토머스 보스턴의 『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 Thomas Boston ( 1676 ~ 1 732) , Human Nature in It’s Fourfold State
로 사는지, 하나님 뜻을 자기 뜻으로 받고 사는지, 마음과 삶 이 거룩한지 잘 살피십시오. 하나님을 닮고 싶다면,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부지런히 연구하십시오.
06 . 토머스 굿윈의 『 믿음의 본질 』 Thomas Goodwin ( 1600 ~ 1 679) , The Object and Acts of Justifying Faith
07 . 토머스 브룩스의 『 기독교의 영광 』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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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앙의 위대한 유산을 보여 주는
청교도 대작 시리즈
An
Illustration
of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Religion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토머스 보스턴 지음
장호준 옮김
토머스 보스턴 (Thomas Boston, 1676~1732) 비국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목사 이자 신학자다.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1699년에 심프린이라는 작은 교구의 목사가 되었다. 1707년에는 에 트릭으로 부임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목회했다. 보스턴 의 삶 전체는 설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설교에서 그의 목 적은 중생한 자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확신시키고, 중생하지 않은 자가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하게 돕는 것이었 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웨스트민 스터 소교리문답 해설』(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옮김
Thomas Brooks ( 1608 ~ 1 680) , The Crown and Glory of Christianity
1
08 . 존 플라벨의 『 생명샘 』 John Flavel ( 1628 ~ 1 691) , The Fountain of Life Opened Up
09 . 존 플라벨의 『 개인적 변화와 회심의 필요성 』
장호준 미국 트리니티 뱁티스트 교회(TBC) 회원으로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Th. M.)를 졸업하였다. 현재는 TBC 파송 교회개척 자로 용인, 동탄, 광교 지역에서 1689 런던 뱁티스트 신앙
John Flavel ( 1628 ~ 1 691) , The Reasonableness of Personal
고백에 따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고 있다(Trinity Baptist
Reformation and the Necessity of Conversion
Fellowship).
10 . 앤서니 버지스의 『 영적 품위 』
속』, 토머스 슈라이너의 『히브리서 주석』, 헤르만 바빙크의
Anthony Burgess ( ? ~ 1 664) , Spiritual Refining
『개혁파 교의학(단권축약본)』 등이 있다.
11 . 토머스 보스턴의 『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
토머스 보스턴 지음 장호준 옮김
Thomas Boston ( 1676 ~ 1 732) , An Illustration of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Religion
12 . 리처드 백스터의 『 기독교 생활 지침 』 Richard Baxter ( 1615 ~ 1 691) , A Christian Directory
역서로는 J. C. 라일의 『거룩』, 존 머레이의 『구
ISBN 978 - 89 - 6092 - 523 - 6 ISBN 978 - 89 - 6092 - 228 - 0 (세트)
값 50,000원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목차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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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10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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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
23
2장 성경의 신적 권위
●
39
3장 믿음과 삶의 규칙으로서의 말씀의 효용
●
63
4장 성경의 범주
●
69
5장 하나님의 책인 성경
●
89
6장 완전하신 하나님
●
119
7장 한 분이신 하나님
●
191
8장 성령
●
9장 하나님의 작정
●
217
10장 창조의 역사
●
241
11장 인간 창조
●
255
12장 하나님의 섭리
●
267
13장 하나님의 섭리를 지혜롭게 잘 살핌
●
277
14장 행위언약
●
15장 첫 조상들의 타락
●
341
16장 죄, 일반적인 죄
●
359
17장 아담이 처음 지은 죄
●
375
18장 아담과 함께 타락한 인간
●
19장 원죄
●
207
323
385 395
20장 자연인의 비참함
●
415
21장 영생으로의 선택
●
427
22장 은혜언약
●
445
23장 하나님이 택정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 그리스도
●
519
24장 그리스도의 성육신
●
539
25장 그리스도의 직분
●
557
26장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
567
27장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
601
28장 왕이신 그리스도
●
651
29장 그리스도의 비하
●
671
30장 그리스도의 승귀
●
689
31장 구속의 적용
●
721
32장 그리스도와의 연합
●
741
33장 효과적인 부르심
●
761
34장 효과적인 부르심의 유익
●
789
35장 칭의
●
797
36장 양자 됨
●
843
37장 사탄의 권속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
●
885
38장 성화
●
899
39장 그리스도와의 연합-성화에 이르는 유일한 길
●
911
40장 칭의와 양자 됨과 성화로부터 얻는 유익
●
925
41장 은혜가 더하고 이기기까지 견디는 일
●
945
42장 신자가 임종시에 누리는 유익
●
959
43장 부활의 유익
●
967
청교도 대작 시리즈 발간사
한국 청교도 공부의 새로운 전환점 백금산 목사
청교도와 그 저서들 ‘청교도’라는 말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64년경으로 알려지고 있습니 다. 그러나 영국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청교도들이 주도권을 잡았던 청교 도 시대를 1558년 ( 메리
여왕의 죽음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시작 ) 으로부터
2,000여
명의 청교도 목사들이 국교회로부터 추방된 1662년까지로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청교도 시대는 100여 명의 뛰어난 목회자 겸 신학자였던 작가들에 의해 신학적 깊이와 경건한 실천을 겸비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책의 시대였습니다. 이와 같은 풍토 속에서 16~17세기 영국은 교회 역사 상 가장 영적으로 성숙한 청교도라는 걸출한 영적 거인족들을 우후죽순처 럼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 청교도의 재발견을 주도한 영어권 출판사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의 확산과 자유주의 신학 등의 영향으로 18~19세기 동안 보물 같은 청교도 저서들이 깊은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세기에 중반 이후부터 청교도 저서들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져 청교도 원전들에 대한 복간 내지 발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 어권에서는 영국의 배너오브트루스 ( Banner of Truth ) 출판사와 미국의 솔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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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오글로리아 ( Soli Deo Gloria ) 출판사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배너오브트 루스사는 이안 머리 ( Iain Murray ) 목사가 1957년에 설립했고, 솔리데오글로리 아사는 미국의 젊은 목사 돈 키슬러 ( Don Kistler ) 가 1988년에 설립했습니다. 청교도 저서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있어서 이 두 출판사는 가히 청교도 원 전의 광맥과도 같은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배너오브트루스사가 발간한 청교도 원전들에는 10여 명의 저 자들에 대한 전집과 수많은 단행본이 있습니다. 전집이 발간된 저자들에는 존 오웬 ( John Brooks, 6권 ),
Owen, 16권 ),
존 플라벨 ( John
Flavel, 6권 ),
토머스 브룩스 ( Thomas
존 번연 ( John Bunyan, 3권 ), 데이비드 클락슨 ( David Clarkson, 3권 ), 리처
드 십스 ( Richard Sibbs, 7권 ), 조지 스윈녹 ( George Swinnock, 3권 ), 토머스 맨톤 ( Thomas Manton, 22권 ),
조나단 에드워즈 ( Jonathan Edwards, 2권 ) 등이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솔리데오글로리아 출판사에서 발간한 청교도 원전들의 전 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리처드 백스터 ( Richard Baxter, 4권 ), 존 하 우 ( John Howe, 3권 ), 윌리엄 브리지 ( William Bridge, 5권 ), 존 보이스 ( John Boys ), 벤저 민 브룩스 ( Benjamin 스 ( Samuel Heyood ),
Brooks, 3권 ),
Davies, 3권 ) ,
토머스 케이스 ( Thomas
앤드루 그레이 ( Andrew
Gray ) ,
Case ),
새뮤얼 데이비
올리버 헤이우드 ( Oliver
에스겔 홉킨스 ( Ezekiel Hopkins, 3권 ), 에드워드 폴힐 ( Edward Polhill ), 에드
워즈 레이놀즈 ( Edward Reynolds ), 토머스 셰퍼드 ( Thomas Shepard, 3권 ). 이 외에도 지금까지 청교도와 직, 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약 200종의 단행본이 발간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청교도 저서 출판 현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청교도 저서들이 수십 권 번역되 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독자층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청 교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청교도 서적을 전문적으로 발간하려 하는 소형 출판사들은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백화점식의 종합 출판을 지향 하는 대형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청교도 책들은 다른 책들에 묻혀 그리 빛 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아직 국내에서는 청교도 저서 들의 출판이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부족한 형편입니다. 양적인 면에서는 청교도 전문 출판사들의 경제적 뒷받침이 숙제로 남아 있고, 질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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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면에서는 청교도 관련 저서들을 전문적으로 번역할 전문 번역가의 양 성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 중반 이후부터 한국 교회에서 도 젊은 목회자와 신학생과 성도들 사이에 청교도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증가되고 있는 좋은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청교도 저서 들에 대한 발간은 점진적으로 늘어 갈 것으로 보이며, 청교도에 대한 연구 또한 깊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영 적 성숙에 대단히 고무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청교도 책을 읽어야 하는가 왜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16~17세기 청교도들의 책을 읽을 필 요가 있을까요? 40여 년 동안 청교도들을 읽고 연구했던 제임스 패커는 이 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어떤 시대가 다른 시대에게 주 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다. 또한 나는 신약성경 시대가 모든 시대 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위한 모범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 로 청교도 시대는 20세기 말의 서양 기독교 세계를 가르칠 특별한 교훈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또한 약 120명 이상의 중요 청교도들과 청교도들의 저서를 백과사전식으로 편찬한 『 청교도를 만나다 』라는 책에서 조엘 비키 는 청교도 저서들 속에 나타나 있는 청교도들의 특징을 ‘성경으로 삶을 형 성했으며, 교리와 실천을 완벽히 결합시켰으며, 그리스도에 집중적 관심을 두었고, 시련과 시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상과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 니다. 청교도들은 교회사의 영적 거인들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성경적 기 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청교도의 저 서들은 우리가 참된 기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성경의 참고서들입니다. 청교도 저서 발간의 전환점이 될 부흥과개혁사의 청교도 대작 시리즈 부흥과개혁사는 한국에 청교도 저서들을 소개하는 데 있어 미국의 배너 오브트루스사와 미국의 솔리데오글로리아사와 같은 기수의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이미 청교도 가운데서 청교도의 황태자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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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존 오웬 전집, 18세기에서 마지막 청교도라 불리는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등의 꾸준한 발간을 통해 그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 는 청교도 대작 시리즈는 청교도 저서 발간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청교도 대작 시리즈는 16~17세기 청교도들이 남긴 걸작 중에 서도 분량 면에서 방대한 책을 말합니다. 그동안 청교도의 책들이 한국 교 회에 여러 권 소개된 적이 있지만 탁월한 청교도의 작품 가운데서 책의 분 량이 너무 많아 출판의 엄두를 내지 못하던 대작 ( magum opus ) 이 많이 있습 니다. 이 청교도 대작 시리즈는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교회론 등의 주요 주제들에 대해 가장 대표가 될 수 있는 탁월한 작품들을 선정하여 발 간하는 것입니다. 이 청교도 대작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한 권 또는 많아야 2~4권의 세트로 구성된 조직신학 책이나 기타 분량이 적은 단행본을 통해 서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웅대한 성경 진리의 세계를 깊고 넓게, 충격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교도 대작 시리즈 발간의 씨앗 이 청교도 대작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은 두 분이 있습니다. 청교도 책들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 을까요?’라는 한 의사 부부의 물음에 ‘청교도 원전 번역비를 지원하면 좋겠 습니다’라고 제 친구 박순용 목사 ( 하늘영광교회 담임 ) 가 제안하자, 이 제안에 대 해 기쁜 마음으로 응답한 영적 분별력을 가진 한 신실한 부부입니다. 그분 들의 후원으로 이 의미 깊은 청교도 대작 시리즈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었 습니다. 앞으로 청교도 대작 시리즈가 자라 큰 나무가 되어 이 땅의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이 그늘에서 쉬고 안식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새 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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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박순용 목사
한때 나는 청교도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청교도들을 구닥다리라 고 생각했다. 현대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청교도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역을 시작할 즈음에 한 가지 질문 에 직면하였다. ‘나는 앞으로 어떤 사역자가 되어야 하는가? 또 내가 일평 생 배우고 따를 수 있는 모범적인 목회 사역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청교도들을 알게 되었다. 교회사 속에서 그들 은 마치 계보를 가진 것처럼 역사 속에 줄지어 있었다. 그 중에서 영국의 청교도들과 18세기 영적 각성의 주역들 (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존 웨슬리 등 ) 을 특별히 목회의 모범으로 주목했다. 그러던 중에 주의 은혜로 영국에 유학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청교도들에 대해 자세히 연구할 수 있었다. 그 기간 잊을 수 없는 두 경험이 내게 있었다. 하나는 18세기 대각성에 대한 논문을 쓰던 때였다. 조지 휫필드에 대한 글들을 읽다가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에 사로잡혀 책을 덮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경험이었다. 다른 하 나는 청교도에 대한 논문을 쓸 때였다. 청교도들의 방대한 글들, 특히 깊이 있는 청교도들의 글을 많이 접하면서 ‘어떻게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 처럼 깊고 풍성하게 묵상하고 연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은 마치 청교도라는 망망대해 위에 떠다니는 조그만 조각배처럼 보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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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것없어 보였고 청교도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에 압도당 하여 밤을 지새운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청교도들의 삶을 흉내 내거나 청교도들의 설교 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청교도들이 갖고 있 었던 것을 나 또한 갖는 것, 곧 청교도들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사 로잡혀 사역하는 것이 내가 따라 가야 할 목회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 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고 부유하게 펼침으로써 독자들을 경건의 자리로 이끌었던 청교도들의 귀한 책들을 속히 한국 교회에 소개하고 싶다 는 소원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귀국 후에 청교도들의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 자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십 권의 책을 선정 및 추 천했다. 그러나 출판사의 재정적 열악함과 우리나라 기독서적 시장의 한계 로 정작 청교도의 보석 같은 대작들은 한국 교회에 소개할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청교도 책을 통해 은혜의 단맛 을 본 사랑스런 집사님 부부가 나를 찾아왔다. 그분들은 전라도의 한 섬에 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갈함과 주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으로 우리 교 회의 주일 예배에 자주 참석했다. 그런 만남 속에서 두 집사님은 주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물었고, 나는 그분들에게 청 교도들의 보고 ( 寶庫 ) 를 번역하여 한국 교회에 소개하는 복된 사역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그분들은 청교도 대작들이 한국에 번역 출판될 수 있도록 기꺼이 번역비를 감당하겠다고 했고, 평소에 청교도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백금산 목사가 그분들의 귀한 뜻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청교도 대작들을 시리즈로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재정 지 원과, 번역자의 오랜 수고 끝에 그 대작 시리즈 중에 일곱 번째로 보스턴의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권이 한국 교회 앞에 출간되게 되었다. 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의 손길이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 님에게만 영광을 돌릴지어다! 이 책이 출판되도록 헌신한 두 집사님과 부 흥과개혁사 위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풍성하기를 기도한다. 이 책을 통해 얄팍한 한국 교회의 강단과 신자들의 신앙과 삶이 일깨워질 뿐만 아니라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 주시길 기도한다.
추 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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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토머스 보스턴은 1676년에 스코틀랜드 버윅셔 던스에서 일곱 명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보스턴의 부모는 아홉 살부터 열세 살 때까지 그를 던 스에 있는 문법학교에 보냈다. 거기서 그는 성경 읽기를 좋아했고, 라틴어 와 신약성경 헬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 존 보스턴은 통 제조업자였고 엄격한 장로교인이었다. 존은 스튜어트가의 왕들이 스코틀랜드 교회에 부가한 예배와 교회 정치의 변화 에 복종하길 거부해 한동안 투옥되었다. 토머스의 가장 이른 기억 중 하나 는 감옥에 있는 아버지에게 면회를 갔던 것이었다. 1687년에 시행된 관용 령이 국교에 순응하지 않는 장로교인들이 사적인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허락한 이후에, 존 보스턴은 에베니저와 랠프 어스킨의 아버지인 헨리 어 스킨의 설교를 듣기 위해 가족과 함께 윗섬으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토머 스 보스턴은 열한 살 때 요한복음 1장 29절과 마태복음 3장 7절에 대한 어 스킨의 설교를 듣는 중에 영적으로 각성했다. 어스킨의 사역은 보스턴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날씨에 관계 없이, 토머스 보스턴은 자기 영혼의 양식을 얻기 위해 주일마다 약 6~8킬 로미터를 걸어갔다. 후에 그는 “겨울에 때때로 블랙에더 강을 건널 한 마리 의 말도 없이 홀로 가는 것은 내 몫이었다. 거기를 건널 때의 살을 에는 듯
12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한 추위를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 능력으로 임한 말씀의 유익 때문에 그런 추위를 겪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라고 기록했다 ( Memoirs , p. 10 ). 보스턴의 영적 삶은 십대 시기에 규칙적인 성경 읽기와 학교에서 두 소 년과의 영적인 대화 때문에 성장했다. 오래지 않아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목회로 부르시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이상의 공부의 비용을 치르 기 위해 존 보스턴은 자기 아들을 그 마을의 공증인인 알렉산더 코크번에 게 도제로 보냈다. 토머스 보스턴은 거기서 2년 동안 일했다. 후에 그런 훈 련은 그의 엄격한 연구와 장로회와 노회의 서기 일을 보는 데 큰 유익이 되 었다. 보스턴은 1691년 에든버러 대학의 학생이 되었다.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 에다가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일반 물리학 등을 공부했다. 그는 쉴 새 없이 공부했고 건강을 상하게 할 만큼 고되게 살았다. 1694년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보스턴은 던스의 장로회에서 대학 장학금 ( 일종의 재정 보조금 ) 을 받았 다. 그는 한 학기 동안 신학을 독학했고 그러고 나서 조지 캠벨 아래서 신 학을 연구하기 위해 에든버러로 돌아갔다. 보스턴은 거기서 한 학기를 보 낸 후 장로회의 감독 아래 자신의 연구를 끝마쳤다. 그 기간에 그는 중령이 었던 케넷의 브루스의 양자 앤드루 플렛처의 집에서 가정 교사로 일하며 생활했다. 이 생활은 그가 “가정 예배를 계속 인도했고, 하인들에게 교리문 답 공부를 시켰고, 부주의한 자들에게 은밀한 기도를 하도록 강권했고, 죄 악 된 행동을 비난하며 경고했고, 악한 사람의 개혁을 위해 열렬히 애썼던 것으로” 그의 목회 사역을 위한 훌륭한 준비가 되었다 ( Memoirs , p. 25 ). 보스턴은 1697년에 던스와 치른사이드의 장로회를 통해 목회 허가를 받 았다. 그의 설교의 능력과 신선함은 곧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보스턴이 바 로 교구에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그의 설교를 들은 일반 사람들은 그를 불 렀을 것이지만 그렇게 할 힘은 그 지역의 상속인 또는 지주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턴을 선택한 일곱 교구에서 지주가 개입해 교구 목사로 오 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그는 2년 이상이나 시험 중인 목사 보조로 머물 렀다. 1699년 마침내 던스의 남동쪽으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교구 인 버윅셔의 심프린의 지주가 보스턴을 청빙하는 데 동의했다. 임직 받기 전에 보스턴은 자신 스스로는 “완전히 상실되고 파멸되었고”, “구주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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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있으며, 하나님의 “언약 조건들에 동의하며 자신 의 모든 직무에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과 자신의 언약을 갱신했다. 심프린에서 보스턴의 사역은 도전적인 것이었다. 그의 회중은 영적인 진 리에 무지했고 가장 단순한 것들에 대해서도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것보다 생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보스턴은 단지 한 집만이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알고 경악했다. 더군다나 주의 만찬 은 수년 동안 시행되지 않았다. 일 년 내에 보스턴은 회중을 재조직했다. 그는 주일에 두 번의 예배를 회 복했다. 그는 아침에는 성경 한 장을 설교했고, 오후에는 다양한 개별 본문 을 설교했다. 저녁에 보스턴은 소교리문답을 가르치거나 그날 전한 설교를 확대해 상술했다. 또한 보스턴은 주중에 엄격한 일정표를 따랐다.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 나 여러 시간을 기도와 묵상에 몰두했다. 한 주 내내 계속 기도했다. 자서 전의 거의 매쪽마다 기도 가운데서 주님 앞에 한 문제 또는 또 다른 문제를 내놓는 것을 언급했다. 금식을 위해 규칙적인 시간을 떼어 두었다. 화요일 저녁을 기도와 찬양을 위한 시간으로 떼어 놓았다. 매주 수요일에 그는 공 적 예배를 인도했다. 또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불러 친밀하게 대화하고 무관심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도록’ 촉구했다. 보스턴은 신학과 언어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고전어들, 프랑스어, 그리 고 네덜란드어에 정통했다. 그는 네덜란드 의회의 명령에 따라 번역되었고 『네덜란드 주석 성경』 ( D u t c h
A n n o t a t i o n s ) 으로도
알려진 『국역 성
경』 ( Statenbijbel ) 을 자주 참고했다. 이 책은 유익한 용어 해설, 주석, 상호 참 고를 포함하고 있다. 보스턴의 회중은 교회 건물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많아졌다. 성찬식을 하 는 주일에는 특히 그랬다. 7년 후에는 한 가정도 가정 예배를 게을리하지 않 았다. 보스턴은 “심프린! 심프린에 호의를 보이신 주님은 복되시다. 나는 심 프린을 주님이 복 주신 땅으로 항상 기억할 것이다”라고 썼다. 보스턴이 에트릭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곳 사람들의 가난한 영적 상태 가 심프린을 떠나지 못하는 그의 주저함을 압도했다. 에트릭에는 4백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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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안 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길들은 통행하는 데 거의 쓸모가 없었다. 목 사관은 파손되어 있었다. 교회 예배는 불규칙적이었다. 영적 불모성, 교만, 속임수, 저주, 간음 등이 넘쳐났다. 보스턴은 교구를 재건하고 재조직했다. 처음 10년은 어려웠다. 8년이 지 났을 때, 그는 자기 아내에게 ‘나의 마음은 이곳에서 떠났소’라고 말했다. 그 러나 그는 떠날 수 없었다. 차차 성령께서 그의 사역에 복 주시기 시작하셨 다. 그의 설교는 점점 더 늘어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의 설교 중 몇 몇이 출판된 후에 에든버러에 있는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보스턴이 1716년 클로즈번에서 청빙을 받았을 때, 에트릭의 의회는 금식을 요청했다. 이런 상황이 그곳에서 보스턴의 사역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은 곧 입증되 었다. 그는 다음 16년 동안 새로운 권위로 사역하게 되었다. 심프린과 에트릭 두 곳 모두에서 보스턴은 주의 성찬을 시행하는 데 신 중했다. 그는 에트릭에서 3년 이상을 기다린 후 성찬 지원자들이 성찬에 참 여해야 되는지 어떤지를 결정하기 전에 각각의 지원자들을 사적으로 면담 했다. 보스턴이 인도한 첫 번째 성찬 예배에는 57명이 참여했다. 보스턴이 1731년에 마지막으로 집례할 때까지 성찬 자격이 있는 자들은 그의 생존 해 있는 네 자녀를 포함해 777명이었다. 보스턴은 쉬운 삶을 살지 않았다. 15세에 어머니를 잃었고, 10년 후에 아 버지를 잃었다. 심프린에서 사역하는 동안, 보스턴은 클랙매넌 바힐의 로버 트 브라운의 다섯째 딸인 카타린 브라운과 결혼하게 되는데, 그는 카타린 안에서 ‘은혜의 불꽃’을 보았다. 보스턴의 아내는 반복되는 오랜 우울증과 정신 이상으로 고통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결혼을 주님의 선물로 생각했다. 1720년부터 카타린은 그 자신이 “내적인 감옥”이라고 부른 셋방에 자주 감 금되었다. 카타린은 “구원의 확신이나 하나님과의 화평에 대한 양자의 측 면에서 사탄의 맹공의 표적이 되어” 구조 없이 수개월 그리고 수년을 보냈 다. 보스턴은 열 명의 자녀 중 여섯 명을 잃었는데, 두 명은 심프린에 네 명 은 에트릭에 장사했다. 그리고 보스턴 자신도 건강하지 않았다. 그는 고통 과 연약함과 자주 싸웠다. 보스턴은 이런 시련을 자신의 하늘 아버지의 손에서 오는 훈련으로 보았 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아내를 “내가 열렬히 사랑하고 내적으로 존경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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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있는, 품위 있고 아름답고 알맞은 자태, 참된 경건, 그리고 하나님 을 두려워하며 우리 공통의 시련과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 가운데서 인내 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Cook, Singing in the Fire , p. 122 ). 그는 에든버러의 윌리 엄 호그에게 “고난을 언약의 훈육으로 보는 것은 고난에 대한 매우 달콤한 관점이다. 그것은 실제로 그렇다.
( 고난은 )
우리 아버지의 집에 있는 자녀들
에게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고난은 병을 고치는 역할을 한 다. 고난은 많은 은혜로운 목적으로 빛난다. 그리고 고난이 의도한 대로 좋 게 끝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신앙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썼 다 ( Memoirs , p. 499 ). 필립 라이컨은 보스턴이 “죽을 때까지 설교자”였다고 말한다 ( Thomas Boston as Preacher of the Fourfold States , p. 1 ).
보스턴의 삶 전체는 설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설교에서 그의 목적은 중생한 자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확신시키고, 중생하지 않은 자가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하게 돕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권적인 은혜, 돈 없이 대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값없는 은혜, 용서하고 양자 삼고 성화시키고 영화시키는 충만한 은혜, 율 법의 행함 없는 단순한 은혜, 영원한 언약을 통해 비준된 안전한 은혜, 말 씀과 성례를 통해 주로 지정된 통로로 오는 은혜, 실천적인 열매를 가진 은 혜”의 신학을 설교했다고 윌리엄 블레이키는 썼다 ( The Preachers of Scotland , pp. 201~202 ).
보스턴은 그 당시의 신학 논쟁에 개입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럼에도 그 는 때때로 진리를 방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러 번 다른 그리스도인 들과 자신들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는 카메론파의 오류에 반대해 설교했 다. “분리주의의 악과 위험”이라는 설교에서, 보스턴은 타락한 지도자들에 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성전과 회당에 갔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탄원했다. 보스턴은 스튜어트 왕가의 왕위 계승자인 제임스의 영국 왕위 요구를 비 난하면서, 교회와 국가 그리고 다른 관리인들이 서명하기를 요구받았던 포 기 선서에 서명하기를 거절했다. 그 선서는 통치 주권이 영국 교회의 소유 라고 주장하는 의회의 이전 조례를 재승인했다. 그것은 감독 정치 또는 주 교에 의한 교회의 통치를 승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것은 보스턴이 소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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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자 『최근 형태의 포기 선서를 거절하는 이유들』 ( Reasons for refusing the Abjuration Oath in its latest form ) 을
출판하는 것을 서두르게 만들었다.
보스턴의 대부분의 시간을 앗아 간 투쟁은 매로우 논쟁 ( 1717~1723 ) 이었다. 이 논쟁은 스코틀랜드 신학의 두 사상 학파 사이에 주된 차이점을 초래했 다. 세인트 앤드루 대학의 학장 제임스 해도우 ( 1670~1747 ) 가 이끈 율법적인 무리는 『현대 신학의 정수』 ( The Marrow of Modern Divinity ) 의 ‘반율법적’ 가르침 을 불신임하려 했다. 1645년 에드워드 피셔가 쓴 이 책은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 작품의 발췌문을 담고 있었다. 복음주의자들 또는 ‘매로우 형제’ 들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제공과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공로적인 사역을 강조함으로써, 스코틀랜드 설교에서 율법주의적 경향을 교정하려 했다.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가 아우흐터라더 장로회의 목회 지원자들에게 “아 우흐터라더 신경”이라고 알려진 어떤 명제들을 신봉하길 요구한 행동을 논의함에 따라 긴장은 증가했다. 한 부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리스도 에게 오기 위하여 우리 죄를 버려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건전하고 정 통적인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보스턴은 이런 말들이 반율법주의를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값없는 은혜를 방어하기 위한 일종의 혼란스러운 시도로 보았다. 그러나 총회는 이 진술을 정죄했다. 보스턴은 그 결정이 값 없는 은혜의 교리에 직접적인 일격을 가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총회의 결 정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교리를 위태롭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 안으로 파이프 카녹의 목회자인 제임스 호그 ( 1658~1734 ) 가 출판한 『정수』 ( Marrow ) 의 새로운 판이 들어왔다. 이 책은 즉시 반대자들에게 공격받 았다. 다량의 역설적 진술들이 제임스 해도우, 알란 로건, 그리고 로버트 워 드로우로 하여금 논쟁에 반대해 말하도록 움직였다. 그들은 이 책이 보편 속죄, 믿음의 본질로서의 확신, 구원에 내재해 있지 않는 거룩함, 그리고 반 율법주의 같은 오류를 가르쳤다고 1720년의 총회에서 확신시키는 데 성공 했다. 1721년 총회에서 매로우파 사람들은 “항의”라는 제목을 가진 문서로 응 답했다. 그것은 『정수』를 정죄하고 목회자들로 하여금 그것에 찬성해 어떤 것이라도 유포하는 것을 금지시킨 금령을 논박했다. 총회는 그 문서를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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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매로우파 사람들을 꾸짖었다. 보스턴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그 꾸짖음과 훈계를 진리의 대의를 위해 내게 입혀진 장식품으로 받 아들였다.” 보스턴은 메르스와 테비오트데일 대회의 서기로 섬겼고, 필요할 때는 총 회에도 참석했다. 1728년 존 심슨에 대한 총회의 관대함에 반대해 맞섰을 때, 그는 총회의 주의를 끌었다. 보스턴은 심슨이 단기간의 정직이 아니라 파면을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글래스고 대학의 신학 교수인 심슨은 두 번 의 이단 재판에 연루되었다. 첫 번째는 ( 1715~1717 ) 아르미니우스주의로 고소 를 받은 것과 관련되어 있고, 두 번째는 ( 1727~1729 ) 아리우스주의로 고소를 받은 것과 관련이 있다. 심슨의 가족과 친구들은 강도 높은 비난에서부터 그를 막아 주었다. 1729년 그는 영구 정직되었지만 1740년 죽을 때까지 글 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남아 있었다. 1732년 4월의 처음 두 주일에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근거해 보스턴이 마지막으로 설교한 내용은 자기 점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설교는 그의 개 인적인 삶과 그의 설교에서 전형적인 것이었다. 육신적 연약함으로 그는 “에트릭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랑하는 목회자가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설교 하는 것을 듣기 위해 목사관의 창문 주위에 모여들었을 때, 죽음의 병상에 서” 그것을 설교했다 ( Oxford DNB , 6:723 ). 그는 1732년 5월 20일에 56세의 나 이로 죽었고, 에트릭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보스턴의 저작들은 1767년에 처음 수집되어 출판되었고, 후에 1773년에 재인쇄되었다. 새뮤얼 엠밀란이 편집해 1853년에 열두 권으로 출판된 『토 머스 보스턴 전집』은 이제 텐트메이커 출판사 덕분에 재출간되었다. 우리 는 보스턴의 저작들에 대해 많은 사람이 존 던컨의 말에 동의할 것이라 믿 는다. 그는 “토머스 보스턴은 평범한 천재였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 한 천재”라고 썼다. 또는 보스턴은 “당대의 어떤 다른 단일 사역자보다 스 코틀랜드에 참된 경건에 불을 지피는 데”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말한 다른 저술가에게도 동의할 것이다. 전집의 처음 두 권은 소교리문답과 “개인적 언약의 형태들”에 대한 보스 턴의 설교를 담고 있다. 3권은 37편의 설교와 두 편의 논문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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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역경”과 “그리스도의 몸의 통일성과 지체들 상호 간의 의무들”( 고전 10:17에 대한 글 ).
“통일성”은 성도의 교제에 대해 탁월하게 다루는데, 65쪽 분량이나
되므로 단행본으로 출판될 가치가 있다. 4권은 40편의 다양한 설교를 담고 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대한 여덟 편의 설교는 그리스도의 탁월함과 그분을 존경해야 하는 신자의 의무에 대 한 뛰어난 해설이다. 또한 이 책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는 성격 들”에 대한 짧은 논문을 수록하고 있다. 5권은 “참 신자들을 구별하는 특징 들”과 “신자들의 상태와 특징들”이라는 두 편의 긴 논문으로 이 주제를 확 장시킨다. 보스턴은 하나님과 신자들의 관계, 교회, 교제, 대적들, 악한 시 대, 행함, 그리고 다가올 세상에 대해 저술한다. 또한 이 책은 “사람을 낚는 기술”을 수록하고 있다. 6권은 280쪽에 걸쳐 “다방면에 걸친 질문들”과 “다방면에 걸친 소논문 들”을 담고 있다. 그 중에서 거의 100쪽이 세례라는 주제에 할애되었다. 또 한 이 책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16편의 설교를 포함한다. 그중에 자기부인 과 회개에 대한 설교들은 걸작이다. 7권은 소교리문답 1부에 대한 보스턴의 간단한 해설을 수록하고 있고, 보스턴의 주석이 딸린 에드워드 피셔의 『현대 신학의 정수』 ( The Modern Divinity ) 아홉
Marrow of
편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영원한 결혼식”( 호
2:19 ) 과
“종의 형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 빌 2:7 ) 라는 보스턴의 설교는 매우 추천할 만하다. 8권은 “인간 본성”과 “은혜 언약”을 담고 있다. 9권은 55편의 다방면에 걸친 설교를, 10권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속성에 대한 18편의 설교, 그리스 도인의 삶에 대한 다섯 편의 설교와 열 편의 다방면의 설교를, 11권은 기도 에 대한 여섯 편의 강론, 행위 언약에 대한 한 편의 긴 논문, 그리고 자신의 삶과 가정에서의 금식과 겸비에 대한 논문들을 각기 수록하고 있다. 마지 막 책은 보스턴의 유명한 『회고록』 ( Memoirs ) 을 담고 있다. 보스턴의 전집은 읽을 만한 것이며, 특히 복음 사역자들이 읽을 만한 탁 월한 전집이다. 보스턴의 설교들은 건전한 주석과 경험적 경건과 훈계가 결합된 설교의 모범이 된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은 처음에 『기독교 교리 해설』 ( 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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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of the Doctrines of the Christian Religion ) 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 권으로 출
판되었고, 보스턴 전집 처음 두 권에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웨스 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을 해설한 90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성경적, 교리적, 경험적, 실천적인 측면에서 최상의 보스턴을 보게 된다. 특히 언급할 것은, “마귀의 집에서 떠나라는 신적인 부르심”, “칭의, 양자, 성화에서 흘러나오는 이익들”, “다스리는 장로들과 사람들의 의무”, “복음적 부름에 응하지 않는 위험”, 그리고 “질병과 죽음의 때의 바른 활 용”에 대한 장들이다. 이 설교들에서 보스턴은 인간의 타락의 깊이, 하나님 의 은혜로운 주권, 인간의 완전한 책임성, 그리고 은혜의 무조건적인 제공 에 대해 두려움 없이 설교한다. 이 작품은 현재보다 더욱 고전이 될 가치가 있다. 『청교도를 만나다』 ( 부흥과개혁사, 2010, pp. 650~658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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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An Illustration of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Religion
An Illustration of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Religion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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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전 10:31 ).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 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 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 시 73:25, 26 ).
믿음과 거룩함은 지식이라는 토양에서만 자랍니다. 무지한 사람의 마음 과 삶은 모든 것이 모호하고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 게는 진리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방편이 있 습니다. 그 중에서도 1640년부터 1648년 어간에 경건한 목사들이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모여 당시 세 나라 간의 일치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엄숙 한 동맹과 언약을 추구하는 가운데 작성한 소교리문답 ( Shorter
Catechism ) 은
으뜸으로 여겨집니다. 저는 이제 당신이 이 교리문답이 밝히 보여 주는 하 나님의 진리를 바로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이 교리문답을 가장 간명하게 설명하려 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배교의 위험으로 이끄는 많은 올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시험의 때에 당신의 지성이 굳
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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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하게 진리에 터를 잡기 위해서라도 이 일은 꼭 필요합니다. 위의 첫 번째 본문은 다음을 말해 줍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이야말로 인간 삶의 최고 목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 삶의 모든 것이 수렴되는 중심축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 동하고 추구하는 그 어느 것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2. 또한 어느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할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 다. 우리 행실의 일부가 아닌 모든 행실이,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바 로 이 목적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최고 목 적입니다. 두 번째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시편 기자의 가장 간절하고도 중심 되는 갈망과 그의 유일하고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할 수 있습니다. 2. 그 이유는 ( 1 ) 하나님이 없는 피조물은 몸과 영혼 모두가 공허할 뿐 ( 25절 ) 이기 때문입니다. ( 2 ) 하나님만이 그 모든 공허함을 흡족하게 채우 고도 남을 만큼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충만함은 영원한 충만 함입니다. “나의 영원한 분깃이시라.” 이 두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교리가 필연적으로 도출됩니다. 교리.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 워하는 것입니다.”
이 교리를 다루면서, I.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의 최고 목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과, II.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행복이고, 사람이 추구해야 할 최고선이라는 사실을 밝히 보이겠습니다.
I.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먼저, 인간의 최고 목적의 한 부분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2. 어떤 측면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목적인지,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의 범위와 정도가 어떠한지, 4. 하나님 영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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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인간의 최고 목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 은 그것을 영화롭게 만들거나, 아니면 이미 그것이 가진 영화로움에 대해 그렇다고 인정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스스로 무한히 영화로우신 하나님께 손톱만 큼이라도 영광을 더할 수 없습니다 ( 욥 35:7 ).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를 거룩하 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최상의 일을 한다 해도, 우리의 그런 행위 때문에 하나님이 더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 행 17:25; 시 16:2 ). 하나님은 오직 선언적인 의미에서만 영화롭게 되실 뿐입니다. 다시 말하 면 하나님께 있는 영광이 선포됨으로 영화롭게 되십니다. 두 가지 방식으 로 그렇게 됩니다. 소극적으로는, 생명이 없고 지각이 없는 피조물들이 하 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 시 19:1 ). 피조물들이 그렇게 합니다. 연주자가 연주를 해 야 음악이 될 수 있지만, 어쨌든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가 음악을 위해 만들 어진 것처럼,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연주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사 람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되, 적극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 1 ) 중심으로 그렇게 합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전 6:20 ).
마음이 없이 입술로만 하나님께 찬사를 돌리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가진 지각으로 성 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 모든 다른 존재와 피조물보다 하나 님을 더 존귀하게 알고 드높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 마땅합니다 ( 시 73:25 ).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을
뿐더러,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다른 사물이나 피조물 에게 돌리거나,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높여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합 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러신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과 최고선으로 택하는 우리 의지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또한 다른 무엇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우리 정서로도 하나님을 영 화롭게 합니다.
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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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입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 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 50:23 ). 시편 기자가 자기의 혀를 자신의 영광이라고 한 것은 ( 시 16:9 ), 말 못하는 금수와는 달리 혀로 금수보다 더 고상한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찬사를 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거스르는 말을 하지 않게 혀를 재갈 물려야 합니다. ( 3 )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 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 게 하라”( 마 5:16 ). 거룩한 삶이 곧 빛 된 삶입니다. 거룩한 삶은 어둠 가운데 있어 보지 못하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밝히 비춰 주 는 빛입니다. 죄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어 보지 못하게 합니다. 다윗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원수들의 훼방거리가 되었습니다. 거룩함을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절감합니다. 죄에 미끄러질 때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흠이 없으신지 깨닫습니다. 안팎의 모든 삶에서 거룩하게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과연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가정이 경건하게 잘 다스려지고 있다는 말은 가장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어떤 측면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목적인가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최고 목적입니까? ( 1 )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1]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온 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잠 16:4 ).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 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 11:36 ). 세상 모든 이성적인 존 재들은 무슨 일을 하든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도 가장 완전하고 고 상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완전한 존재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피조물 의 가장 고상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로부터 적극적으로 영광 을 받지 않으십니다. 애초에 그렇게 정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을 통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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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을 받으시든지 간에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인간을 지으신 것이 사실입 니다.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들은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형벌과 고 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아도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목적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전 7:29 ).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지으셨을 때는 잘 조율된 악기와도 같았습니
다. 안락하게 잘 지어진 집과도 같았습니다. 짐승들은 땅을 기어다니는 반 면, 하늘을 향해 직립하는 인간의 모양 자체가 암묵적으로 이런 사실을 대 변합니다. [3]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됩니다. 쏜 살들이 하나 같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 고전
10:31 ).
다윗이 그런 것처
럼, 무엇을 하든 우리 목전에는 항상 우리가 지음 받은 위대한 목적인 하나 님의 영광이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 여”( 시 16:8 ). ( 2 )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정하신 중심 뜻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 람의 최고 목적이므로, 하나님의 중심 뜻을 우리의 최고 목적으로 삼는 것 이 마땅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땅과 바다와 공중에 있는 다른 피조물을 지 혜롭고 진지하고 관대하게 다스리고 사용하고 부리도록 인간을 지으셨습 니다 ( 창 1:26 ).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위해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것은 합당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최고 목적에 부합해야 합니다. 앙갚음을 하고 정욕과 탐심을 채우는 것과 같이 그 자체로 합당하지 않 은 목적을 가진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의 최고 목적인 하나님 의 영광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번제를 드린답시고 도둑질을 할 수는 없 는 일이 아닙니까? 또한 그 자체로 불법적이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하나님 의 영광이라는 인간의 최고 목적을 수종드는 자리에서 벗어난다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다 갖추어진 행위라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우리가 하는 어떤 행동도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이 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몸의 영양을 위해 먹고 마시는 행위조차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
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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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될 수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단지 몸의 영양만을 위한 것이라 면, 이 또한 죄악 된 것이며 하나님의 바른 질서 가운데 된 것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의 목적일 뿐 아니라,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최고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을 위한 모 든 다른 목적은 좀 덜 중요한 것이 될 것입니다. 모든 다른 볏단은 하나님 의 영광이라는 볏단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부지런한 종이 자신의 주 인과 그 주인 밑에서 자기를 관리하는 청지기 모두를 기쁘게 하길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역시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몸을 위해 먹고 마 시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 행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 4절은 이런 행위를 가리켜 “쾌락을 사랑 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합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이고 완 전한 최고 목적이 될 때, 다른 모든 목적은 이 목적을 돕는 방편이 됩니다. 몸으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먹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건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 광을 받으시도록, 자신의 구원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안전 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큰 목적으로 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의 범위와 정도가 어떠한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최고 목적으로 삼되, 어느 정도까 지 그래야 하는지 보겠습니다. 음식마다 소금이 안 들어가는 것이 없는 것 처럼, 우리의 모든 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 다. 우리 삶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의 첫 창조와 두 번째 창조에서 모두 동일합니다. “이 백성 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 호 세아 3장 3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 을 바라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목적이 되어야 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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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 1 ) 먹고 잠자고 걷는 것과 같은 본성적인 행위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영 화롭게 하는 것이 최고 목적이어야 합니다 ( 고전
10:31 ).
자신의 만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먹고 마시는 것도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 슥 7:6 ). 이런 행위들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이런 일들이 필요하고, 이렇게 이어져 가 는 우리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영원토록 하나님 의 영광을 누리는 천국에 이르면 우리의 생존을 위한 이런 일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2 ) 일을 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일상의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 엡 6:7; 잠 21:4 ).
홍수 이전의 옛 세상에서는 먹는 것도 사람들이 짓는 여러 가지 죄의
목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짐승들이 먹이를 먹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그저 먹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결혼 역시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 3 ) 도덕적이고 신앙적인 행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 슥 7:5 ).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모든 것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목적 삼지 않는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 앞에 선하거나 받 으실 만하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 영광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 있 게 하는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 슥 7:5 ).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 지 않으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아닙니다. 종이 자신을 위해 한 일을 가지고 주인을 위해 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목적 삼지 않는 일에는 어떤 상급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온 나라에 아무 리 많은 집을 지었다고 한들, 저를 위해 단 한 평도 할애하지 않았다면 제 가 그 사람에게 빚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한들 잘못된 목적으로 그렇게 하다가 결국 멸망당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입 니까? 하나님 영광을 우리 행실의 목적으로 삼고 있음이 자주, 그리고 분명하 게 드러나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행실에서 그렇게 한다 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꼭 그런 식으로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 게 하면, 바로 그 목적 때문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바로 그 또 다른 일
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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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목적 때문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어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상 습관적으로 포괄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모든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일은 ( 1 ) 하나님 영광을 향해 우리 삶이 방향지어지고 ( 시
1편 ),
( 2 )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그 규례를 따라 살고, ( 3 ) 하나님 뜻이 우리 행실의 원리가 될 뿐 아니라 목적이 되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므로 그 말씀을 진리로 믿고, 하나님이 하신 명령이므로 그 명령을 본분으로 삼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해 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고, 우리 역시 헛된 수고를 하게 됩니다. 4. 하나님 영광이 인간의 최고 목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 영광이 인간의 최고 목적인 이유는, 가장 으뜸 되는 원리이신 하 나님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요,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우리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 합니다 ( 롬 11장 ). 사람은 상대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 시요, 보존자시요, 은혜를 베푸시는 자입니다. 태양에서 비롯된 햇빛처럼, 우리의 존재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있는 자 ( I AM ) 라 일컫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에게 있는 온전한 것은 하 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홀로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 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나누어 주셔서 우리로 그 렇게 살게 하십니다. 대양의 물이 땅을 적시고, 개울과 강을 통해 그 물이 다시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가 받아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서 오고, 우리는 이런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누림으로 하나 님께 다시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목적 삼고 살아가는 사 람은 스스로를 신으로 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 의 중심이 될 때,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 요 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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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II.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 행복이 자 최고선 이제 두 번째로 사람이 최고의 선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 행복인 하나님 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세 가지입니다. 1. 이 즐거움의 본질, 2. 이 즐 거움의 순서, 3. 사람이 가진 최고의 행복. 1. 이 즐거움의 본질 이 즐거움의 본질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데는 완전한 즐거움과 불완전한 즐거움, 두 가지가 있습니다. ( 1 )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을 가리키는 불완전한 즐거움 이 있습니다. 불완전한 즐거움 역시 두 가지로 구성됩니다. [1]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자들이 누리는 하나 님을 향한 특별한 마음으로서, 이를 통해 하나님은 언약으로 그들의 하나 님이 됩니다. 이 연합을 통해 신자와 그리스도가 서로 연합해 한 영이 되 고, 신비한 한 몸이 됩니다.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진 전인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이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과 연합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누 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은 바로 여기서 솟아납니다. [2] 하나님과의 친교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구원의 관계에서 흘러나오 는 은택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친교를 통해 신자는 자기가 받은 은 혜, 그 중에서도 특별히 믿음과 사랑을 발휘함으로 그 받은 은택을 다시 하 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하나님과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방편인 기도와 묵상 과 같은 신앙의 의무를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은혜와 호의와 사랑 을 나타내시고, 그들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시고, 그들을 향한 인애의 많은 증거를 보여 주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희락과 평강으로 채우십니다. ( 2 ) 이 세상이 사라지고, 천국에서 누리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즐거움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영광 가운데 하나님과 친근히 거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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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이 있나이다”( 시 16:11 ).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 역시 하나 님의 영화로운 임재를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이끌려 그 앞에 서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참 모습을 그대로 봅니다 ( 요일 3:2 ).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화 로운 완전하심과 탁월하심을 온전히 보고 흡족해하며, 그 광경의 황홀함에 뛸 뜻이 기뻐하는 일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입니다. [3]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을 누립니다 ( 계 21:3 ).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믿음으로 연합을 이루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 살아가지만, 부분적 으로 그렇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누립니 다. 하나님과 그 백성이 더 이상 긴밀하고 친근히 할 수 없는 완전한 연합 을 누립니다. 결코 다함이 없는 영광스럽고 가장 완전한 연합으로 하나님 이 그들 안에, 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4]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누렸던 모든 친교와 연합보다 무한히 탁월한 즉각적이고 온전하고 자유롭고 위로가 넘치는, 도무지 누구도 형언할 수 없는 연합과 친교를 누립니다. [5] 이런 모든 사실에서 비롯된 온전한 희락과 만족을 영원토록 누립니 다 ( 마 25:21 ). 하나님과 하나님의 어린 양과 누리는 희락 넘치는 삶은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영원토록 희락의 대양에서 헤엄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황홀한 기쁨을 주는 것뿐입니다. 이런 기쁨은 세세무궁토록 새롭게 계속될 것입니다 ( 천국에서 성도가 누리는 희락에 대해 더 자세히 보기를 원하는 독자는 본 저자의 책, 『인간의 4중 상태』에서 말하는 네 번째 상태를 보십시오 ).
2. 이 즐거움의 순서 그러면 이제 이 즐거움의 ( 순서와 ) 즐거움의 좌소가 어딘지 보겠습니다. ( 1 )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더불어, 사람의 최고 목적의 한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한 가지로 서술 된 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선과 행복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은 결코 하 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2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보다 선행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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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니다. 피조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의 복락이 있기 전에 먼저 이 땅에서의 거룩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 히 12:4 ). 이 둘 사이에는 수단과 목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 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 땅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 님이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없이 다른 하나를 누릴 수 있 는 길은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광과 존귀와 영생으로 옷 입지 못할 것입 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하고,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을 영화롭 게 하는 사람들만이 하늘의 극락 가운데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3. 사람이 가진 최고의 행복 이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도 최고 목적이 고,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인 것을 보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 1 ) 사람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사람은 이런 존재입니다. [1]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입니다. 행복을 향한 갈망은 사람의 본성 깊이 자리하고 있어서 결코 없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행복을 갈구하는 것은 호흡을 하는 것만큼이나 지극히 자연스럽습 니다. [2] 사람은 결코 자충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많 은 것을 필요로 하는지 본성적으로 압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 밖에 있 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3] 무한한 선 외에 그 어떤 것도 불멸하는 영혼의 갈망을 흡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 가운데서 선을 발견해 봐야 선에 대한 갈망만 더해 갈 뿐입니다. 무한한 선을 찾지 못하는 인간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복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피조 된 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2 )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최고선입니다. 천사들과 같은 인격체들이나 은혜와 영광처 럼, 어떤 것들은 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최고선입니다. 하나님
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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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선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물의 근원이 가까운 상류로 갈수록 더 좋은 물을 얻는 법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선은 다 이 최고선에서 흘러나 오는, 의존적인 2차적 선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파생되지 않은 모든 선의 근원이고, 천지간에 모든 선의 시작이요 원천입 니다. 선이 더할수록, 더 추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의 원천 이신 하나님을 보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선이요, 그런 하 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최고 목적입니다. [2] 하나님은 온전히 선하십니다. a. 하나님께는 선한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함이나 흠이 없이 온전히 완전하십니다. b.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찾 는 영혼은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갈 망을 흡족하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토록 열망하는 행복을 주실 수 있 는 하나님을 찾기까지는 그 무엇, 그 누구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쉬지도 못 합니다.
III. 결론 이런 논의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1. 그렇다면 우리를 사람의 최고 목적에서 멀어지게 하는 죄는 사람의 영 혼을 얼마나 왜곡시키는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최고 목 적으로 삼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온통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되고 함 몰되어 한 발짝도 자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금수와 다를 바 없이 온통 자 신에게만 집중하고,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고, 이 땅의 것들이 주는 쾌락만 을 추구하며 살 뿐, 하나님을 찾는 일은 없습니다 ( 빌 3:19 ). 그들의 본성적이 고,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행동의 유일한 목적과 동기는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 명예나 영광과 같은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인 것들일 뿐, 무엇을 하든 무한하신 하늘 지존자의 이름이나 영광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2. 죄는 가장 탁월한 행동마저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우 리는 마음과 입술과 삶으로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지요! 우리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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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는 최선의 행동조차 자신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공명심으로 오염되어 있습 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에는 그렇게 굼뜨면서도 물질과 같이 피조 된 것들을 추구하는 데는 얼마나 민첩한지요! 얼마나 부조리한 일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너무 큰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 면전에 대고 하나님은 최고선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영혼을 만족시킬 만한 기업이 아니라고, 피조물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하는지요! 우리 안에 있는 이런 죄를 볼 때, 우리의 모든 행실에서 하나님을 최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삼기 위해 싸워야 할 싸움이 얼마나 치열할지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3. 온 땅의 만물을 능가하는 인간에게 있는 탁월함을 보십시오! 모든 피 조물은 인간을 위해 지어진 반면,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 하는, 훨씬 고상한 일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팽개치 고, 자기를 섬기도록 지어진 것들을 섬깁니다. 얼마나 통탄할 현실입니까! 하나님을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최고의 행복을 하나님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와 정욕과 우상을 하나님 삼은 채, 주정꾼이 술에서, 부정한 자가 창녀의 품에서, 구두쇠가 재물에서, 야심에 찬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는 데서 행복을 찾는 것처럼, 감각적이고 육신적인 쾌락을 만족시키는 데서 지복을 찾고 있으니, 참으로 비통하고 참담한 현실입니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 마음을 두고, 하늘을 향해 딛고 올라서야 할 것들을 목적으로 추구합니다. 마음의 이런 부조리를 바로잡고, 훨씬 더 탁월한 것들을 향해 우리 마음이 돌아서도록, 이 땅의 체질이 풀어 질 때 시간과 더불어 소멸되지 않고 죽음도 어찌하지 못하는 영원한 즐거 움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이 누리는 궁극적인 최고 행 복이라는 사실을 보면 사람의 영혼이 불멸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영혼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불멸하는 존재만이 영혼을 만 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인간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실 수 있 는 분이고, 전인이 받아 누릴 기업이신 것을 보면, 인간의 육신 역시 다시 살아나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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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하나님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을 갈망하게 하고, 불멸하시는 하 나님에게서만 만족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생각과 비물질적인 실체가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사그라질 수 있습니까? 무덤이 인간의 이런 생각과 갈망의 종착지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최고 행복은 영 원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연합한 몸과 영혼은 부활 후에도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구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 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5. 하나님과 피조물이 맞설 때마다 피조물을 거부하고 하나님께로 나아 가야 합니다 ( 눅
14:33 ).
하나님은 최고의 선입니다. 항상, 범사에, 모든 시험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위대한 의무로, 반 드시 그래야 합니다. 언제고 피조물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나 소유나 심 지어 목숨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포기할 것인지 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면, 반드시 전자를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그것들을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최고 목적이요, 자신이 누리는 최고의 행복과 기쁨으로 힘써 배우고 알아 야 합니다. 6. 여기 교리와 실천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과 같은 원리가 있습니 다. 무슨 교리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 이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말미암은 것으로 받으면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행실이든 이와 같은 경향성이 있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고 본받는 것이 마 땅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고 그 영광을 다른 것에게 돌리고 피조물을 영화롭게 하고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폄훼하고 펠라기 우스주의자들이나 교황주의자들이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하는 것처 럼, 저항할 수 없고 효과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와 본 성의 능력을 고양하는 가르침은 하나같이 하나님에게서부터 온 것이 아닙 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진 본질적 존엄과 탁월함과 독립성과 성부와의 동등성을 훼손하는 어떤 교리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런 가르침은 성부를 영화롭게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으로 성자를 영화롭게 하게 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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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7.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당신의 제일 되고 중심적인 일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 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얼마나 절실한지 아십시오.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요일 2:23 ). 아들을 통하지 않고 는 아버지를 즐거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이라는 제단 위에 드려지 는 제물이라야 아버지께서 받으십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 님을 뵙지 못합니다.
1장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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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대작 시리즈
청교도 대작 시리즈
청교도 대작 시리즈 Puritan Magnum Opus Series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지식과 의로움과 거룩함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요! 영롱하게 빛나는 이런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01 . 스티븐 차녹의 『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 Stephen Charnock ( 1628 ~ 1 680) , The Existence and
마음을 매료하고 사로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본성적으로 눈
Attributes of God
이 어두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가진 아름다움과 탁월함 02 . 스티븐 차녹의 『 하나님을 아는 지식 』 Stephen Charnock ( 1628 ~ 1 680) , The Knowledge of God
03 . 아이작 암브로스의 『 예수를 바라보라 』 Isaac Ambrose ( 1604 ~ 1 664) , Looking unto Jesus
04 . 토머스 굿윈의 『 성령의 구원 사역 』
을 보지 못합니다. 오! 하나님의 은혜로, 속이는 정욕을 따라 부패한 옛사람을 벗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 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 마음을 새롭게 하도록 힘씁 시다. 이런 복된 변화가 당신에게 있는지, 주님 안에서 빛으
Thomas Goodwin ( 1600 ~ 1 679) , The Work of the Holy Ghost in our Salvation
05 . 토머스 보스턴의 『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 Thomas Boston ( 1676 ~ 1 732) , Human Nature in It’s Fourfold State
로 사는지, 하나님 뜻을 자기 뜻으로 받고 사는지, 마음과 삶 이 거룩한지 잘 살피십시오. 하나님을 닮고 싶다면,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부지런히 연구하십시오.
06 . 토머스 굿윈의 『 믿음의 본질 』 Thomas Goodwin ( 1600 ~ 1 679) , The Object and Acts of Justifying Faith
07 . 토머스 브룩스의 『 기독교의 영광 』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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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앙의 위대한 유산을 보여 주는
청교도 대작 시리즈
An
Illustration
of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Religion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토머스 보스턴 지음
장호준 옮김
토머스 보스턴 (Thomas Boston, 1676~1732) 비국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목사 이자 신학자다.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1699년에 심프린이라는 작은 교구의 목사가 되었다. 1707년에는 에 트릭으로 부임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목회했다. 보스턴 의 삶 전체는 설교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설교에서 그의 목 적은 중생한 자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확신시키고, 중생하지 않은 자가 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하게 돕는 것이었 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웨스트민 스터 소교리문답 해설』(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옮김
Thomas Brooks ( 1608 ~ 1 680) , The Crown and Glory of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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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 존 플라벨의 『 생명샘 』 John Flavel ( 1628 ~ 1 691) , The Fountain of Life Opened Up
09 . 존 플라벨의 『 개인적 변화와 회심의 필요성 』
장호준 미국 트리니티 뱁티스트 교회(TBC) 회원으로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Th. M.)를 졸업하였다. 현재는 TBC 파송 교회개척 자로 용인, 동탄, 광교 지역에서 1689 런던 뱁티스트 신앙
John Flavel ( 1628 ~ 1 691) , The Reasonableness of Personal
고백에 따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고 있다(Trinity Baptist
Reformation and the Necessity of Conversion
Fellowship).
10 . 앤서니 버지스의 『 영적 품위 』
속』, 토머스 슈라이너의 『히브리서 주석』, 헤르만 바빙크의
Anthony Burgess ( ? ~ 1 664) , Spiritual Refining
『개혁파 교의학(단권축약본)』 등이 있다.
11 . 토머스 보스턴의 『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
토머스 보스턴 지음 장호준 옮김
Thomas Boston ( 1676 ~ 1 732) , An Illustration of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Religion
12 . 리처드 백스터의 『 기독교 생활 지침 』 Richard Baxter ( 1615 ~ 1 691) , A Christian Directory
역서로는 J. C. 라일의 『거룩』, 존 머레이의 『구
ISBN 978 - 89 - 6092 - 523 - 6 ISBN 978 - 89 - 6092 - 228 - 0 (세트)
값 5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