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 상세한 설명과 생생한 자료를 통해 종합적이면서도 쉽게 성경에 접근할 수 있게 돕는 성경 주석!
성경주석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성경에 달린 간단
구약편
한 설명만으로는 충분한 이해와 통찰을 얻기 어렵다. 이 주석은 그런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베이커 성경주석』 은 목회자 및 신학자는 물론 모든 성도를 위한 책으로, 성경 전체를 단락별로 정리하고 설명한다. 43명의 복음주의 학자들이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신뢰할 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성경을 해석해 줄 뿐 아니라, 본문 설명을 위한 사진·지도·연표 등이 생생하게 제시되어 있다.
THE BAKER ILLUSTRATED BIBLE COMMENTARY
이 주석에 수록된 풍부한 정보는 개인의 성경 공부 또는 강의 준비를 위해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하며, 독 자들이 논쟁적인 질문과 씨름하고 성경 메시지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측면들에 주의를 집중하고 성경신학의 요점을 파악하는 가운데 깊은 성경 연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게리 버지·앤드루 힐 엮음
|
정옥배 옮김
베이커 성경주석 구약편
엮은이
• 500개 이상의 컬러 일러스트, 지도, 사진 수록
개리 버지 ( Gary M. Burge; PhD. 애버딘 대학교 ) 휘튼 대학의 신약 교수다. 저서로는 『고대의 신약 성
• 66권 성경 전체에 대한 단락별 주해
서』, 『성경과 땅』, 『예수, 중동의 스토리텔러』, NIV 적용주석 시리즈의 『요한 서신』, 『요한복음』 등이 있다.
• 40여 명 이상의 탁월한 복음주의 성경학자들의 집필
앤드루 힐 ( Andrew E. Hill; PhD, 미시건 대학교 ) 휘튼 대학의 구약 연구 교수다. 저서로는 앵커 바이블 주석 시리즈의 『말라기』, NIV 적용주석 시리즈의 『역대기』 등이 있다.
옮긴이
정옥배
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과 미국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
교에서 신학을, 캘리포니아 풀러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 IVP간사를 역임했고, 현재 강변교회 교육 전도사이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SV 스터디 바이블』 , 『선교사 바울』 , 『개혁주의 성경 강해 주석 시리즈: 야고보서』 ( 이상 부흥과개혁사 ) 등 수많은 책을 번역했다.
ISBN 978-89-6092-426-0 ISBN 978-89-6092-425-3 (세트) 값 60,000원
게리 버지·앤드루 힐 엮음 정옥배 옮김
베이커 성경주석 구약편
게리 버지, 앤드루 힐 엮음 | 정옥배 옮김
Copyright ⓒ 2012 by Baker Publishing Group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The Baker Illustrated Bible Commentary by Baker Books, A divi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P.O. Box 6287, Grand Rapids, MI 49516, U. S. A. All rights reserved. Used and translated by the permis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Copyright ⓒ 2016 by The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 에이전시를 통하여 Baker Publishing Group과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신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 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 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목차 서문
5
시가서
487
기고자
7
욥기
489
10
시편
535
잠언
583
전도서
630
아가
661
약어
구약 서론
11
오경
13
창세기
15
선지서
681
출애굽기
66
이사야서
683
레위기
104
예레미야
746
민수기
135
애가
800
신명기
167
에스겔
810
다니엘
854
역사서
199
호세아
870
여호수아
201
요엘
892
사사기
235
아모스
902
룻기
266
오바댜
919
사무엘상하
279
요나
927
열왕기상하
342
미가
936
역대상하
387
나훔
949
에스라 - 느헤미야
429
하박국
958
에스더
474
스바냐
968
학개
980
스가랴
987
말라기
1011
서문 복
음주의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말씀이 우리의 필요를 다
믿는다. 이것은 성경을 성령의 역사와 결합
루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한 목적이라고 여겼다.
해서 주의 깊게 읽을 때(고후 3:16~18), 그 성경이
이 주석은 조직신학 교과서는 아니지만, 성경신
힘과, 지혜와, 하나님의 길에 대한 교훈의 비할 데
학의 중요한 사항들을 다룬다. 창조, 구속, 성화,
없는 원천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시 19:7~8; 딤
부활 등과 같은 문제들과 관련된 신앙의 중요한
후 3:16). 각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재검토하고,
교리들을 적절한 곳에서 논한다.
그 말씀이 현존하는 구체적 필요들에 어떻게 효과
저자들은 도움이 될 만한 곳에서는 그들이 최근
적으로 적용되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 일을
에 연구한 내용에서 나온 자료들을 포함시킨다. 그
돕기 위해, 여러 주석이 쓰여졌다. 주석은 성경을
래서 여기서는 독자에게 흥미롭고 유익한 새로운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이해를 도우려는
자료와 개념들을 찾아볼 수 있다.
것이다. 그것이 이 주석의 목적이다. 이 주석은 일
저자 선정 기준은 그들의 교단적 관점이 아니
반 독자가 성경 본문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라, 성경 본문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다. 그래서 이
돕기 위해 쓴 것이다.
책에는 다양한 신학적 관점들을 대표하는 저자들
이 주석을 쓴 모든 저자는 자기 분야의 전문적
이 포함되어 있다. 특정한 사항들에 대해 의견의
학자인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모두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 나오는 내용을 인위
본문의 원어를 알고 있으며, 본문을 광범위하게 연
적으로 통일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구했다. 많은 사람은 이미 다른 곳에서 이 책에서
삶에는 그냥 넘어가도 무방한 의견 불일치가 많이
다룬 것과 똑같은 자료에 대해 쓴 바 있다.
있으며, 이 책에서는 그런 불일치들이 발견될 것이
주석가들은 또한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
다. 모든 저자를 하나로 묶어 주는 한 가지는 하나
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끔 이 주석을 썼다. 학
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공통적인 충실함이다. 이
자들이 쓴, 학자들을 위한 탁월한 책들은 많다. 하
주석 저자들의 진지한 바람은 이 주석을 사용함으
지만 이 책은 그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다. 분명 학
로써 사람들이 성경을 더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고,
자들이 이 주석을 읽는다면, 이 책 배후에 학적 토
하나님의 말씀을 앎으로써 신자들이 하나님과 하
대가 자리하고 있음을 볼 것이다. 하지만 이 주석
나님의 목적들에 대해 더 통찰력 있고, 의미 있고,
은 주로 목사, 학생, 교회 교사, 또는 성경의 의미
삶을 변화시키는 이해에 이르게 되었으면 하는 것
를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데 관
이다.
심이 있는 평신도를 돕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월터 얼웰(Walter Elwell) 박사가 편집
이 주석은 쟁점이 되는 질문들을 붙잡고 씨름하
하고 거의 25년 전에 출간한 『복음주의 성경 주
지만, 또한 성경 메시지의 영적 인격적 측면에도
석』(Evangelical Commentary on the Bible;
주의를 기울인다. 저자들은 분명 기존의 난점들을
Grand Rapids: Baker, 1989)을 대폭 개정한 것이
명확하게 해결하려 했지만, 그 자체가 충분한 목표
다. 이 책에 담겨 있는 모든 주석 부분은 개정하고
5
서문
새롭게 갱신했다. 하지만 그에 더해, 성경에 대한
의 선교가 강화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견고한 믿
전문 지식과 그리스도에 대한 활발한 믿음을 가진
음은 우리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 하나님을 제대로
것으로 잘 알려진 새로운 학자들을 포함시켰다. 이
따르게 해 줄 독실하고 진지한 성경 지식으로써
개정판에서는 시각적 관점에서 성경 본문 분석을
확립된다고 믿는다.
보완하여 개인 연구를 더 풍성하게 하고 더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지도, 표, 사진, 도해들을 풍성
앤드루 힐 ( Andrew E. Hill, PhD ), 구약 편집자
하게 보충해 놓았다.
게리 버지 ( Gary M. Burge, PhD ), 신약 편집자
우리는 이런 노력을 통해 교회와 세상에서 교회
6
기고자 구약 게리 롱(Gary A. Long, PhD, 시카고 대학교), 베 델 대학교 구약학 교수-욥기
마크 보다(Mark J. Boda, PhD, 케임브리지 대학 교), 맥마스터 신학 대학 구약학 교수-역대상하
게리 스미스(Gary V. Smith, PhD, 히브리어 및 동
머빈 브렌맨(Mervin Breneman, PhD, 브랜다이
종 언어 연구를 위한 드랍시 대학), 유니온 대
스 대학교), 코스타리카, 산호세 ESEPA 신학
학교 기독교학 교수-호세아, 아모스
교 교수-에스라・느헤미야
그레고리 웡(Gregory T. K. Wong, PhD, 에든버
배리 데이비스(Barry D. Davis, PhD, 트리니티 국
러 대학교), 에반젤 신학교 구약학 조교수-여
제대학교), 중국 국제교회의 복음주의 자유교
호수아, 사사기
회 담임목사-시편
도나 L. 페테르(Donna. L. Petter, PhD, 토론토 대 학교), 고든 콘웰 신학교 구약학 조교수-룻기
빅터 해밀턴(Victor P. Hamilton. PhD, 브랜다이 스 대학교), 애즈베리 대학교 구약학 명예 교 수-창세기, 에스겔
로버트 홈스테드(Robert D. Holmstedt, PhD, 위 스콘신 매디슨 대학교), 토론토 대학교 근동 및 중동 문화학 조교수-사무엘상하
셰리 클라우다(Sheri L. Klouda, PhD, 사우스웨스 턴 침례교 신학교), 테일러 대학교 성경학 조 교수-요엘, 요나
로이 게인(Roy E. Gane, PhD,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앤드루스 대학교 히브리어 성 경 및 고대 근동언어학 교수-레위기, 민수기
앤드루 힐(Andrew E. Hill, PhD, 미시간 대학교), 휘튼 대학 구약학 교수-아가, 오바댜
리처드 슐츠(Richard L. Schultz, PhD, 예일 대학
엘레인 필립스(Elaine Phillips, PhD, 히브리어 및
교), 휘튼 대학 칼 애머딘과 허드슨 애머딘 성
동종 언어 연구를 위한 드랍시 대학), 고든 대
경학 교수-잠언, 전도서
학 성경학 교수-출애굽기
리처드 D. 패터슨(Richard D. Patterson, PhD, 캘
엘머 마튼스(Elmer A. Martens, PhD, 클레어몬트
리포니아 대학교 LA 캠퍼스), 리버티 침례신학
대학원), 메노나이트 형제 성경 신학교 구약학
교, 명예 석좌 교수-하박국
명예 교수 및 명예 학장-예레미야, 애가
7
기고자
월터 카이저 2세(Walter C. Kaiser Jr., PhD, 브랜
성경학 교수-미가
다이스 대학교), 고든 콘웰 신학교 명예 학장 및 콜맨 마클러 구약학 석좌 교수-신명기
허버트 M. 울프(Herbert M. Wolf, PhD, 브랜다 이스 대학교), 휘튼 대학 신학 전(前) 조교수-
윌렘 벤게메렌(Willem A. VanGemeren, PhD, 위
사무엘상하
스콘신 대학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구 약 및 셈어학 교수-이사야, 다니엘, 스바냐, 말 라기
헤르만 오스텔(Hermann J. Austel, PhD, 캘리포 니아 대학교 LA 캠퍼스), 노스웨스트 침례교 신학교 구약 및 성경 강해 석좌 교수-나훔, 학
키스 보드너(Keith Bodner, PhD, 애버딘 대학
개, 스가랴
교), 크랜달 대학교 종교학 및 스튜어트 머레 이 기독교학 교수-열왕기상하
`ne Dallaire, PhD, 히브리 유 헬렌 달레이어(He' le
니온 대학), 덴버 신학교 구약학 조교수-에 트램퍼 롱맨 3세(Tremper Longmans III, PhD, 예일 대학교), 웨스트몬트 대학 로버트 군드리
8
스더
기고자
신약 개리 버지(Gary M. Burge, PhD, 애버딘 대학교), 휘튼 대학 신약학 교수-요한복음
애버딘 대학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신 약학 교수-로마서
더글러스 무(Douglas J. Moo, PhD, 세인트 앤드
자넷 메이어 에버츠(Janet Meyer Everts, PhD,
루스 대학교), 휘튼 대학 블랑샤르 신약학 교
듀크 대학교), 호프 대학 종교학 조교수-빌립
수-야고보서
보서
데이비드 파오(David W. Pao, PhD, 하버드 대학
제임스 데이비스(James A. Davis, PhD, 노팅엄
교),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 신약학 조교
대학), 텍사스 풀러 신학교 신약학 부교수-고
수-사도행전
린도전후서
레기 키드(Reggie M. Kidd. PhD, 듀크 대학교),
제임스 에드워즈(James R. Edwards, PhD, 풀러
리폼드 신학교 신약학 교수-디모데전후서・
신학교), 위트워스 대학교 브루너 웰치 신약학
디도서
교수-마가복음
로버트 레이번(Robert S. Rayburn, PhD, 애버딘 대학교), 페이스 장로교회 목사-히브리서 리처드 에릭슨(Richard J. Erickson, PhD, 풀러 신 학교), 노스웨스트 풀러 신학교 신약학 조교
지니 브라운(Jeannine K. Brown, PhD, 루터 신학 교), 베델 신학교 신약학 교수-마태복음 진 그린(Gene L. Green, PhD, 애버딘 대학교), 휘튼 대학 신약학 교수-데살로니가전후서
수-에베소서 토머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 PhD, 풀 린 코힉(Lynn H. Cohick, PhD, 펜실베이니아 대 학교), 휘튼 대학 신약학 조교수-골로새서 맥스 리(Max J. Lee. PhD, 풀러 신학교), 노스팍 신학교 신약학 조교수-요한계시록
러 신학교), 남침례교 신학교 제임스 부캐넌 해리슨 신약 해석학 교수-누가복음 폴 앤더슨(Paul N. Anderson, PhD, 글래스고 대 학교), 조지 폭스 대학교 성경 및 퀘이커학 교 수-요한1・2・3서
스콧 맥클러랜드(Scott E. McClelland, PhD, 에든 버러 대학교), 웨스트몬트 대학 샌프란시스코 도시 프로그램 책임자-갈라디아서
피터 데이비스(Peter H. Davids, PhD. 맨체스터 대학교),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교 성경신학 교 수-베드로후서, 유다서
스티븐 모티어(Stephen Motyer, PhD, 런던 신학 교), 런던 신학교 신약학 및 해석학 강사-베드 로전서
헨리 응우엔(V. Henry T. Nguyen, PhA, 애버딘 대학교),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교 조교수빌레몬서
에크하르트 슈나벨(Eckhard J. Schnabel, PhD,
9
약어 ANET Ancient Near Eastern Texts
i.e.
that i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
KJV
King James Version
Edited by J. B. Pritchard. 3rd ed.
NASB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rinceton, 1969
NEB
New English Bible
BDAG Bauer, W., F. W. Danker, W. F.
NET
New English Translation
Arndt, and F. W. Gingrich. Greek-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
(2011 edition)
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NIV 1984 New International Version
Literature. 3rd ed. Chicago, 1999
(1984 edition)
ca.
circa (about, approximately)
NJB
New Jerusalem Bible
cf.
compare
NJPS The Tanakh: The Holy Scriptures:
chap(s). chapter(s)
The New JPS Translation according
COS The Context of Scripture. Edited
to the Traditional Hebrew Text
by W. W. Hallo. 3 vols. Leiden,
NKJV
New King James Version
1997?
NLT
New Living Translation
e.g.
for example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RSV
Revised Standard Version
HALOT Koehler, L., W. Baumgartner, and J.
TDOT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J. Stamm. The Hebrew and Ara
Testament. Edited by G. J.
maic Lexicon of the Old Testa
HCSB
10
Botterweck and H. Ringgren.
ment. Translated and edited under
Translated by J. T. Willis, G. W.
the supervision of M. E. J. Richard
Bromiley, and D. E. Green. 8 vols.
son. 5 vols. Leiden, 1994~2000
Grand Rapids, 1974?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TNIV 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
구약 서론 구
약은 천 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쓰였고 수집
고대에 쓰인 다른 책들-그 중 일부는 구약에 언
된 39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 유대인들과 그
급되어 있다(예를 들어, 수 10:13에 나오는 야살의
리스도인들이 모두 신성하게 여기는 이 모음집은
책)-이 많이 있지만, 그런 책들은 보존되어 있지
예수님, 바울, 초대 교회가 사용한 성경이었다. 최
않았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성한 문헌으로 사
초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교리의 원천으로 삼
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 아래, 하나
은 것은 바로 이 구약이었다. 그들은 구약을 자신
님이 영감을 주신 책들은 마침내 한데 모여 완성
의 삶의 기초로 삼았고, 그 안에서 예수님과 자신
된 글 모음이 되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들에 대한 선지자들의 말을 발견했으며, 거기에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야 한다.
위로, 힘, 격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이끌어 냈다. 각 책들의 길이는 균일하지 않으며(오바댜서는 겨우 한 쪽이고, 시편은 150개의 장으로 되어 있
개신교 성경에 나오는 책들(로마 가톨릭 성경에 는 위경이라는 또 하나의 작은 모음이 더해져 있 다)은 율법-역사-시-예언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다), 대부분 히브리어로 쓰여져 있다. (에스라서,
율법적 역사적 자료(창세기~에스더)는 세상의
예레미야서, 다니엘서 일부분은 히브리어와 비슷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영고성쇠를 따라
한 언어인 아람어로 쓰여져 있다). 이 책들은 이야
계속되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칠십년간 포로생
기, 시, 설교, 대화, 기도, 찬송, 노래, 편지, 예언 등
활을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을 포함해서 대단히 다양한 문학 형태를 보여 준 다. 그 책들은 또한 언어학적으로도 대단히 다양 하다.
신 광야,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 동안 여행했던 장 소 ( 예를 들어, 민 20:1 ). 이스라엘 역사의 이 핵심 기간 은 구약 전체를 통해 되풀이해서 나오는 주제다.
구약 서론
글을 보면 약간 중복되는 부분이 있으며, 자료는
나님은 그 민족을 통해 누구든 기꺼이 구원을 받
정확하게 연대적인 순서로 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
아들이는 사람에게 그 구원을 주실 것이다. 구약에
만 그것은 가장 충실한 의미에서 역사다. 여기에는
서 발견되는 많은 신학적 주제들은 모두 이같이
종종 민족들의 융성 쇠퇴를 다루는, 민족적 규모에
하나님을 세상의 창조주, 유지자, 구속자로 제시하
서 광범위하게 진술된 삶의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는 것의 일부다.
또한 개인들의 믿음과 용기 또는 교만과 속임수
신약 저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예시하고
등에 초점을 맞추는, 개인적 차원에서 본 사건들도
실로 예언하는 것으로써, 구약을 되돌아본다. 하나
나온다.
님은 이전 시대에 사용하셨던 예표와 그림자들에
시가서(욥기~아가서)는 주로 그 책들이 거의
서,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시적인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로
하나님 자신을 온전히 최종적으로 계시하실 것을
묶여 있다. 이 책들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부터 믿
준비하고 계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을 “옛적
음의 시련들, 인간의 사랑, 죽음의 불가피성에 이
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르기까지 대단히 개인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예언서들에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의 복합적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메시지들은 긴급하고, 직
니”라고 표현한다(히 1:1~2). 예수님은 이전에 일
접적이고, 동시대적이고, 도덕적 정보에 근거하고,
어났던 모든 일의 이루심이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
경고, 약속, 또는 심판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그
의 모든 조치의 요약이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예언서들에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민족들에게까지
은 옛 시대의 종말과 새 시대의 시작을 표시해 주
해당되는 보편성이 있다. 실로 그 책들은 모든 시
었다. 구약은 직접 예수님을 가리켰으므로, 초대
대 모든 민족에게 해당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을 그들 자신의 성경으로 사
구약 책들은 대단히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여전
용했으며 구약의 영적 가르침에 따라 삶을 구성했
히 심오한 통일성 역시 지니고 있다. 구약에 초점
다. 이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성경을 구성하며, 인
을 부여해 주는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에 대한 교
간의 죄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되찾
리다. 그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세상이
고, 회복하고, 다시 살도록 하는 하나님의 구속 역
죄 때문에 자신에게서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 이야기를 말한다. 놀랍고도 신비롭게, 하나님은
상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자
‘내부자’로서, 메시아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이
애로운 관심은 한 민족을 선택하신 것으로 표현되
일을 하기로 하셨다. 예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
었다. 그 민족은 인류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
시는”(계 21:5) 분이다.
12
오경 ‘오경’(Pentateuch)은 문자적으로는 ‘다섯 개의
원시 인간 역사, 이스라엘인들의 삶의 족장 시대
책’이라는 말로, 고대 히브리인들이 ‘토라’(또는
를 다루며, 이집트에 사는 열두 지파 이야기로 끝
‘율법’)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헬라어 이름이다.
난다. 출애굽기는 어떻게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
하지만 그 헬라어 단어는 ‘교훈’을 의미한다고 보
지파들이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며 40년에 이르는
는 것이 더 적절하다. 오경에는 히브리인들의 언약
광야 경험을 통한 하나의 언약 민족으로 형성되어
적 삶을 확립하는 것에 대한 법적, 교리적, 의식적
가는지 말한다. 레위기에는 공동체 삶을 위한 규
기초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경을 다섯 개의
정들과 함께, 희생제사에 대한 상세한 규정들이
책으로 구분하는 것은 약간 인위적이다. 그 저작은
포함되어 있다. 민수기는 광야생활 전체를 대표적
하나로 통합된 문학적 통일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으로 묘사하기 위해 광야 기간의 시작과 끝에 일
낫기 때문이다. 오경은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다
어난 사건들을 다룬다. 신명기는 시내 산 언약이
섯 권짜리 책, 다섯 부분으로 된 미니시리즈다. 그
이스라엘 민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세히 묘
것은 창조, 인류의 타락, 인간의 곤경에 대한 하나
사하는 언약 갱신 문서다.
님의 심판과 해방의 반응 등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 다섯 책은 함께 우주의 유일한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나로 통합해 주는 주제는 언
유지자이신 하나님을 보여 준다. 토라는 인류가
약 관계에 의해 인류를 회복시키시겠다는 하나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먼저 노아와, 그 다음에는
창조되었다고 가르친다. 특히 히브
아브라함 및 그의 후손들
리인들이 어떻게 세상에 하나님의
과, 그리고 궁극적으로
존재와 권능을 증언하기
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
위해 모든 민족에게 선택
세의 영도 아래 출애굽
받았는지 설명한다. 히브
한 후 시내 산에서 이스
리인들의 생활방식은 하
라엘 민족과, 일련의 언
나님의 숭고한 도덕적 영
약 또는 협정들을 맺으
적 특성들을 반영해야 했
신다. 오경은 산문적 이
으며, 그들은 특히 제사장
야기, 고상한 시, 법적
나라와 거룩한 나라답게 행
협약 문서 등을 포함한
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양한 문학 장르를 사 용해서, 역사적 보고와 신학적 해석을 솜씨 있 게 섞어 놓는다. 창세기(기원)는 창조,
1740년대의 손으로 쓴 토라 두루마리. 이스라 엘 ‘아크레’( Acre ) 의 ‘람 할’( Ramhal ) 회당에 전 시되어 있다.
13
오경
미신에 사로잡힌 이교 사회에서, 히브리인들은 한
들은 히브리 지혜 전통의 교훈들을 뒷받침했으며,
분 참되신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계시하신 뜻에
구속하시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포함해서 모든
대한 순종과 신실함의 본을 보여야 했다. 이렇게
선지자적 가르침의 기초를 놓았다. 예수님은 사역
행동하면 그들은 풍성한 복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을 하시면서 율법과 선지자가 예수님에 대해 말한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할 것이다.
모든 것을 이루셨으며,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장
오경은 히브리 역사 전체의 역사적, 종교적, 신 학적 기초를 형성한다. 그것의 법적, 도덕적 함축
14
사 지냄과 부활에서 제정하신 새 언약은 모든 기 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었다.
창세기 빅터 해밀턴 ( Victor P. Hamilton )
서론
복음주의권에 속하지 않은 대부분의 비판적 성 경학자들은 위의 결론이 설득력도 없고 받아들일
저자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그들은 문서설, 또
창세기에는 오경의 다른 네 책에 나오는 것처럼
는 JEDP 이론을 제시하는데, 그 이론은 창세기(그
모세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는다. 또한 다른 저자의
리고 나머지 오경)가 모세의 저작이라는 것과 그
이름이 나와 있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것이 문학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거부한
말해 창세기는 저자 미상의 책이다. 이것을 인정하
다. 그들은 하나의 이야기에 (1) 서로 모순되고 상
는 데 실제적 문제는 없다. 구약의 책들은 대다수
호 배타적인 정보를 포함한 두 개의 이야기들이
가 저자 미상이기 때문이다. 열왕기서는 누가 썼는
나온다는 것(두 창조 기사, 두 홍수 이야기, 하갈과
가? 사사기는 누가 썼는가? 모른다. 구약에는 수많
이스마엘의 두 추방), (2) 뚜렷이 다른 문체와 신
은 저자 미상의 책이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누가
학적 개념들이 몇 개 나온다는 것, (3) 신에 대해
그것을 썼는가보다는 거기 무엇이 쓰여져 있는가
다양한 이름들(엘로힘, 야훼, 야훼-엘로힘)을 사용
에만 집중하게 된다. 내용이 출처를 능가한다.
한 것은 저자가 여러 명임을 나타낸다고 추정한다.
유대 전통과 기독교 전통은 둘 다 창세기를 모
구체적으로, 그들은 네 개의 문서가 있다고 가
세가 쓴 것으로 보았다. 이런 입장은 창세기에 나
정한다. 첫 번째는 J로 (거기에서는 신의 이름이
오는 분명한 본문상의 자료에 근거하기보다는, 추
야훼/여호와[Yahweh/Johovah]이기 때문이다),
론에 근거하거나 아니면 더 호소력 있는 대안이
그것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쓰여
없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신약이 “모세와 모든
졌다. 두 번째 문서는 E로 (여기서는 신의 이름이
선지자”(눅 24:27)라든가 “모세와 선지자”(눅
엘로힘[Elohim]이다), 약 일 세기 후에 북 이스라
16:29) 등의 문구를 사용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엘 어디에선가 쓰여졌다. 이 두 문서가 합쳐진 후
세 부분으로 된 히브리어 성경(율법, 선지자, 성문
에 D(신명기[Deuteronomy] 또는 신명기의 일부
서)의 처음 두 부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를 나타내는)가 BC 8세기 후반이나 7세기에 나왔
“선지자”가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
다. 마지막으로 바벨론 유수 무렵 또는 그 직후에
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그리고 열두
(BC 550~450년), P(제사장 문서[priestly]를 나타
소선지서를 나타내듯이, “모세”는 창세기부터 신
내는) 자료가 추가되었다. 그 후에 누군가가 모든
명기에까지 이르는 토라를 나타낸다. 예수님은 이
문서를 편집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오경을 만들었
처럼 창세기를 모세가 쓴 것으로 보신다.
다. 현재는 JEDP 순서를 변경한 것들이 여러 개
15
창세기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은 J 문서를 제일 나중에
는 내용을 소개하는 말인지(표제) 아니면 바로 앞
놓고, 또 어떤 것은 D와 P의 순서를 바꾼다(즉 신
에 나온 내용에 대한 결론인지(기명 동의 또는 끝
명기: 제사장 문서에서, 제사장 문서: 신명기로).
마무리)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첫 번째 해석을 지
창세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복음주의
지해 주는 것은 그 문구 다음에 언제나 조상의 소
적)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창세기 1~50장은
유격이 나오며(예를 들어,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
원래 서판 형태로 존재했을 것이다. 모세가 이 서
라, 11:10) 절대 자손의 소유격은 나오지 않는다는
판들을 연대적 순서로 정리하고 요셉에 대한 자료
사실이다. 두 번째 해석을 지지해 주는 것은 종종
를 추가했다. 이렇게 되면 모세가 창세기 편집자
(예를 들어, 5:1; 37:2) 그 문구에 거명된 사람에
(저자가 아니라)가 된다. 둘째, 창세기는 출애굽
대한 정보 대부분은 그 문구 뒤가 아니라 그 앞에
무렵 이집트에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창세기는
나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족
추가로 우리는 창세기가 1~11장에서는 여러 세
장들의 기원을 강조하므로, 지파들이 시내 산을 향
대를 다루지만, 12~50장에서는 단 네 세대만 다룬
해 떠나기 전에 읽어 주기에 적절한 저술이었을
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족장 역사는 더
것이다. 그런 저술의 저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중대한 부분이며, 그래서 더 광범위하게 다루어진
사람들은 그들을 시내 산으로 인도하도록 임명된
다. 마찬가지로, 창조 이야기에 대해서는 단 두 장
사람, 바로 모세일 것이다.
만 할애되는 반면(1~2장),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열세 장 반이 할애된다(12:1~25:11). 왜 아브라함
구조와 내용
에 대해서는 아담과 하와보다 여섯 배나 많은 지
창세기 안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구조는 서론
면을 할애하는가? 또는 왜 타락 이야기는 한 장뿐
(1:1~2:3) 다음에 열 개의 부분(2:4~50:26)이 나
인 반면(3장),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로 이어
오는 것으로, 각 부분은 “족보는 이러하니라”라는
지는 계열에 들어가지 않는 주변 인물인 요셉에게
표현으로 시작된다(2:4; 5:1; 6:9; 10:1; 11:10;
는 열두 장(37; 39~48; 50)을 할애하는가?
11:27; 25:12; 25:19; 36:1+9; 37:2). 다섯 번은 그
이것은 창조 이야기가 아브라함 이야기보다 덜
표현 다음에 이야기가 나온다(2:4; 6:9; 11:27;
중요하다거나, 타락 이야기가 요셉 이야기보다 덜
25:19; 37:2). 이 구절들에서 NIV는 이해할 만하게
의미 있다는 뜻은 아니다. 더 길다고 해서 더 중요
도 “족보”라는 말을 “이야기”로 번역한다. 다섯
한 것이 아니다. 더 짧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아
번은 그 표현 다음에 족보가 나온다. 수직적 족보
닌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은 초점과 강조점
(후손들의 한 혈통에 집중하는 족보: 5:1; 11:10)
에 대해서는 뭔가를 말해 준다. 아마 창세기 1~2
또는 수평적 족보(하위집단들을 강조하는 족보:
장에 국한되어 있는 창세기 이야기를 열두어 장
10:1; 25:12; 36:1)다. 이야기와 족보 둘 다를 통해
정도로 길게 늘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창세기는 한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의 반영으로
렇게 하지 않았다. 창세기는 ‘인류는 무엇인가? 또
서 아담에서 야곱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의 특정한
는 인류의 기원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질문을 남
혈통을 추적해 간다. 열 번 나오는 이 문구 중 첫
김없이 다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 그 책은 ‘사람
번째 것(2:4)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 이름으로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
끝난다(아담, 노아 등). 이에 반해, 첫 번째 것은
가? (그래서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또
“하늘과 땅”이라는 말로 끝난다. 하늘과 땅이 인
는 하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한 사람의 삶
간들과 함께 결합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족을
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그래서 요셉 이야기가
형성한다.
나온 것이다)’ 등과 같은 질문들을 다룬다.
“족보는 이러하니라”라는 말이 그 다음에 나오
16
창세기는 그 제목이 시사하듯 시작에 대한 책이
창세기
주니우스 바수스 ( Junius Bassus ) 의 석관 ( AD 4세 기 ) 에서 나온 장면으로,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자신들 의 모습을 가리는 것을 보여 준다.
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동산에서 내쫓으시고, 가인 에게 피난처를 만들어 주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내쫓으시기 전에 그들에 게 옷을 입히신 것을 주목하라. 가인을 추방하기 전에 하나님은 가인에게 보호의 표를 주신다. 하나
님은 홍수를 보내시기 전에 노아에게 그 홍수 바로 뒤에 맺을 언약에 대해 알려 주신다. 창세기 3~11 장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심지어 족장 부분 전체(창 12~50장)도 창세기 3~11장의 죄에 물든 세상을 위해 하나님이 한 가 족(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가족에서 나온 한 사 람)을 통해 갖고 계시는 구속 계획으로 읽을 수 있 다. 그 책은 특히 인류의 시작(창 1~11장)과 한 가
을 것이다. 이처럼 창세기 3~11장은 문제로, 창세
족의 시작(창 12~50장)을 말한다. 창세기 1~11장
기 12~50장은 해결책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은 죄로 물들지 않은 세상에서 시작한다. 그런 원
그렇게 하기 위해, 족장 이야기 전체에 나와 있
래의 상황은 요한계시록 21장에 이르기까지 다시
는 것은 약속이라는 주제다. (1) 아들에 대한 약속,
나오지 않을 것이다.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더럽
(2) 후손에 대한 약속, (3) 땅에 대한 약속, (4) 하
혀지지 않은 세상은 아담과 하와가 피조물이라는
나님 자신의 임재에 대한 약속, (5) 열방 가운데
자신의 지위에 불만을 가지고 하나님과 같은 능력
영적 영향력에 대한 약속 등이다. 모든 중대한 지
을 갖기를 탐하면서 망가져 버렸다. 죄가 하나님이
점마다 족장들은 “내가 하리라”(I will)는 하나님의
확립하신 관계들을 비집고 들어온다. 인간과 하나
말을 듣고 다시 기운을 차린다. 하나님이 족장들과
님 간에, 인간과 동물 간에, 남자와 여자 간에, 사람
맺은 언약은 일차적으로 상호적이기보다 일방적이
과 땅 간에, 사람과 그 자신 간에 소외가 일어난다.
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신 맹세를 통해 이 언약과
4~11장에서 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창세기
이 약속들을 이루시는 일에 헌신하시는 분이다. 오
3장은 죄의 원인으로, 4~11장은 죄의 결과로 읽을
직 이차적으로만 인간의 행동이 부수적 요소로 소
수 있을 것이다. 가인, 라멕, 하나님의 아들들, 노
개된다. 창세기 12~50장에서 “너는 하라”(You
아 당시의 사람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모두
will)는 “내가 하리라”라는 말보다 하위에 있다.
아담과 하와의 발자취를 따른다. 형제 살해, 일부
창세기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다처, 정욕, 폭력, 자기 권력의 강화 등은 하나님을
외부적인 것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분명히 밝힌다.
불순종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에 가장 해로운 위협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이 될 만한 것은 그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예
말한다(롬 5:20). 분명 창세기 3~11장에는 풍성한
를 들어, 창세기 12~50장에서 속이는 장면이 얼
죄가 나온다. 은혜 역시 풍성한가? 바울의 금언은
마나 자주 나오는지 보라. 아브라함과 바로, 아브
창세기 3~11장 그 너머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 하
라함과 아비멜렉, 이삭과 아비멜렉, 야곱과 에서,
17
창세기 1:1~2:3
야곱과 이삭, 야곱과 라반, 라반과 야곱, 요셉의 형
J.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 20:1~18 )
제들과 그들의 아버지, 유다와 다말, 요셉과 그의
K. 가족 안팎의 불화 ( 21:1~34 )
형제들 등이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해 다툼과 소외,
L. 아브라함의 시험 ( 22:1~14 )
그리고 많은 불안한 순간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아
M. 사라의 죽음 ( 23:1~20 )
브라함이나 야곱은 절대 아담과 하와 또는 가인이
N. 이삭과 리브가 ( 24:1~67 )
받았던 것과 똑같은 벌을 받아 가나안에서 추방되
O. 아브라함과 이스마엘 ( 25:1~18 )
지는 않는다. 그들은 대단히 의심스러운 행동과 전
3. 야곱 ( 25:19~36:43 )
술을 구사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의 견책을
A. 에서와 야곱 ( 25:19~34 )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은 창세기 12~50장
B. 이삭과 아비멜렉 ( 26:1~35 )
의 일차적 초점이 무엇인지는 나타낸다. 그것은 하
C. 야곱의 속임수 ( 27:1~40 )
나님이 세상의 구속을 위한 수단으로서 한 가정을
D.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함 ( 27:41~29:14 )
택하시고 그 가정에 헌신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
E. 야곱, 레아, 라헬 ( 29:15~30:24 )
은 교회를 버리고 대용 제도를 설립하지 않으실
F. 야곱과 라반 ( 30:25~31:55 )
것처럼, 자신이 택하신 도구인 아브라함의 가족을
G. 야곱과 에서 ( 32:1~33:20 )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H. 디나가 강간당함 ( 34:1~31 ) I.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다 ( 35:1~29 )
개요
J. 에서의 후손들 ( 36:1~43 ) 4. 요셉 ( 37:1~50:26 )
1. 원시 역사 ( 1:1~11:32 )
A. 요셉과 그의 형제들 ( 37:1~36 )
A. 세상 창조 ( 1:1~2:3 )
B. 유다와 다말 ( 38:1~30 )
B. 아담과 하와 ( 2:4~25 )
C.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 39:1~23 )
C. 타락 ( 3:1~24 )
D. 요셉의 꿈 해석 ( 40:1~41:57 )
D. 가인과 아벨 ( 4:1~26 )
E. 애굽에 있는 요셉의 형제들 ( 42:1~38 )
E. 아담부터 노아까지 ( 5:1~32 )
F. 애굽으로 가는 두 번째 여행(43:1~34 )
F. 홍수 ( 6:1~8:22 )
G. 유다의 간청 ( 44:1~34 )
G. 홍수 이후의 노아 ( 9:1~29 )
H. 요셉이 자신을 알림 ( 45:1~28 )
H. 열방의 표 ( 10:1~32 )
I. 애굽에 간 야곱 ( 46:1~50:14 )
I. 바벨탑 ( 11:1~9 )
J. 요셉이 안심시킴 ( 50:15~21 )
J. 셈의 후손들 ( 11:10~32 )
K. 요셉의 죽음 ( 50:22~26 )
2. 아브라함 ( 12:1~25:18 ) A. 아브람을 부르심 ( 12:1~9 )
주석
B. 애굽에 있는 아브람 ( 12:10~20 ) C. 아브람과 롯이 갈라섬 ( 13:1~18 )
1. 원시 역사 ( 1:1~11:32 )
D. 아브람이 롯을 구출함 ( 14:1~24 )
A. 세상 창조 ( 1:1~2:3 ).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
E.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음 ( 15:1~21 )
를 증명하려 하면서 시작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
F. 하갈과 이스마엘 ( 16:1~15 )
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
G. 할례의 언약 ( 17:1~27 )
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을 묘사하는 것으로
H. 탄생과 죽음의 여호와 ( 18:1~33 )
시작하기는 한다(1:1~2). 이 문구는 반대되는 것
I.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19:1~38 )
을 이용해서 전체를 표현하는 상극법(merism)에
18
창세기 1:1~2:3
배제한다. 여기서 깊음은 하나님이 창
이 앗수르 서판에는 ‘마르둑’ ( Marduk ) 신이 혼돈의 여신 ‘티아맛’ ( Tiamat ) 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글 이 나와 있다.
조된 질서를 가져오시기 전에 세상을 덮은 비인격적인 많은 물 같은 것이 기 때문이다. 이 깊음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한다. 여기에 나오는 동사
대한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는 다른 곳에서는 새들에 대해 사용
래서 1절은 그냥 하나님이 모든 것
된다(신 32:11). “하나님의 영”이라
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
는 번역은 “하나님의 바람”이라는
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번역보다 낫다. 전통적인 해석은 26
할 때, 태초에 라는 말은 “오래전
절에 나오는 “우리”라는 말을 더 이
에”라는 말을 그것이 얼마나 오래
해하기 쉽게 해 준다. 만물을 유지되게
전이었는지 명기하지 않고 말하는
해 주는 것은 그 영이다.
히브리식 표현이다. 요한은 똑같은
창조의 각 날에는 몇 가지 공통적 요소
전치사구로 요한복음서를 시작한
가 있다. (1) 서론: “하나님이 이르시되.”
다(요 1:1). 하지만 그 말은 분명
(2) 창조의 말씀: “……하라 하시니.” (3) 말
뭔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
씀을 이루심: “그대로 되니라.” (4) 이름을 줌/
전체는 1:2~2:3에 상세하게 묘사
복을 줌: “하나님이 부르시고.” (5) 하나님의 인
된 한 가지 행동의 실상에 대한 진
정: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6) 결론을
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NIV
짓는 표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째
는 “천”(heavens)에 해당하는 히
날이더라” 등이다.
브리어를 창세기 다른 곳에서는
실제로는 빛 하나만 오직 명령으로 창조되
“하늘”(sky)이라고 번역하며
었다(1:3~5).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다른 모
(1:8~9; 14~15, 17), “지”(earth)
든 것은 명령에다가 하나님의 어떤 행동 유
에 해당하는 단어를 “땅”(land;
형이 더해진 것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어
1:10~12, 24)이라고 번역한다. 이것으로 보아 창
둠이 “좋았더라”고 나오지 않는 것, 그리고 우주에
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sky)과 땅
햇빛(넷째 날) 외에 빛의 원천들이 있다는 것(첫
(land)을 창조하시니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째 날)을 주목하라. 빛이신 분(요일 1:5)이 자신의
땅(earth)은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되어 있다. 혼
첫 번째 창조 행위로 어둠을 꿰뚫고 밀어 낼 빛을
돈과 공허라는 이 한 쌍의 단어는 예레미야 4장
불러일으키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23절과 이사야 34장 11절에서만 다시 나오는데,
하나의 히브리 단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
둘 다 신적 심판이라는 맥락에서 나온다. 하지만
과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을 둘 다 지칭한다
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이 하나님의 격노의 결과인
(1:6~8). 여기서는 두 번째 의미가 사용된다. 그
어떤 것을 말한다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히브리어 단어는 “궁창”(expanse), “창공”(fir
그 두 단어는 하나님이 세심한 역사를 하시기 전
mament), “천장”(vault)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의 질서가 없는 물질의 상태, 사람이 없는 광야를
하늘의 물을 지상의 물과 나누는 것은 바로 그 성
지칭한다.
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깊음”을 아카드의 혼돈의 여신
두 번째로 나뉜 것에서는 땅이 바다와 나뉜다.
티아맛(Tiamat)과 연결시켰다. 이것은 언어학적으
6절에서 물과 물이 나뉜 것과 마찬가지다
로 미심쩍을 뿐 아니라, 창세기 1장 자체가 그것을
(1:9~13). 초목이 즉시 창조된다 -“땅이 풀……을
19
창세기 1:1~2:3
내라.” 땅의 생산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자”(1:26)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을 구약에서 본질
특정한 이유 때문에 달은 (여기서만) 작은 광명
적으로 침묵하는 주제인 삼위일체에 대한 명쾌한
체라고 불리며, 해는 (역시 여기서만) 큰 광명체라
진술이라고 선뜻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또한 그것
고 불린다(1:14~19). 이스라엘의 이웃들에게는 해
을 신화적으로 (하나님이 다른 신들에게 말씀하셨
와 달이라는 말은 신성을 나타내는 호칭들이었다.
다) 또는 천사와 관련된 것으로 (하나님이 천사에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실상 해와
게 말씀하셨다) 해석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신적
달은 빛 그 자체가 아니고, 빛을 전달하는 존재다.
존재에서 인격들의 구분이 있음을 시사한다. 말하
해와 달은 등불이며, 그것들이 종의 지위를 갖고
자면 하나님이 자기 밖으로 한 걸음 나오셔서 자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그 의무가 간결하게 설명
기 자신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어 있다. 그것들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
자신의 영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가(1:2)? 1장 26
가 아니다.
절 전반에 나오는 신적 복수는 1장 26절 후반의
다섯째 날은 둘째 날과 병행을 이룬다. 둘째 날 에 서식지가 창조되었다(하늘이 물들을 나누면
남자와 여자라는 인간적 복수를 내다보고 있을 가 능성이 높다.
서). 그리고 병행을 이루는 날에 그 서식지에 사는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 그분의 모양대로 사람을
생물들(새와 물고기)이 창조되었다(1:20~23). 땅
창조하신다. 인간은 동물이다. 하지만 동물 이상이
은 식물(1:11)과 동물(1:24)을 “낼”(produce) 수
다.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다. 하지만 하나님 이하
있다. 하지만 바다는 물고기를 “내지” 못하며 하늘
의 존재다. “형상”(image)이라는 말은 인간이 하
은 새들을 “내지” 못한다. 오직 땅(히브리어에서
나님과 매우 유사한 점을 강조하는 한편 “모양”
여성형 단어)만이 생명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여기
(likeness)이라는 말은 이 유사점이 정확하지는 않
서 우리는 처음으로 ‘창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
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과 인간은 구분할 수
리어 동사가 구체적 피조물에 적용되는 것을 본다.
없는 것이 아니다. 27절은 성별 구분(남성과 여성)
이 동사를 선택한 것은 그것이 독특하게 신적인
역시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분명히 진술한다.
행동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그 동사는 사람을 주
어떤 사람의 성별은 생물학적으로 우연히 결정되
어로 갖는 적이 절대 없다. 이에 반해, 창세기 1장
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은 또한 하나님에게 ‘만들다/만들었다’라는 말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의
사용한다(1:7, 16, 25~26, 31). 이 동사는 인간을
나머지 창조 질서를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이것
주어로 갖는 경우가 흔하다. 전자(창조하다)는 창
은 환경 속의 모든 것을 약탈하고 파괴하라는 허
조주 하나님의 유일무이하심을 강조한다. 후자(만
가증이 아니다. 심지어 여기서도 만물의 주가 될
들다)는 하나님의 생산성과 인간의 생산성 간의
존재인 인간은 만물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유사한 점에 주의를 돌린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지닌 존재를 채식주의자
셋째 날은 환경을 조성한다(땅과 식물). 여섯 째 날은 그 환경에 거하는 존재들(동물들/인간)이
로 만드신 사실에서 무엇보다도 잘 나타난다 (1:29~30).
생겨나게 한다(1:24~31). 다른 날들과는 달리 여
하나님이 지금까지 만드신 모든 것은 “좋았더
섯 째 날에만 정관사가 붙어 있다. “여섯 째 날”
라” 또는 “심히 좋았더라”라고 나온다. 일곱째 날
(“the” sixth day). 그리고 그날 이 끝났을 때 하나
하나만 “거룩하다”고 나온다(2:1~3). ‘거룩하다’
님은 이날에 된 일만 (심히 좋았더라)고 평가하신
라는 말이 성경에서 처음에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다. 이 두 사실은 여섯 째 날이 절정이라는 것을
개념에 적용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교의 사
나타낸다.
고방식은 공간과 거룩한 장소를 높이 평가하곤 한
인간을 창조하기에 앞서 “우리가 사람을 만들
20
다. 시간과 역사는 순환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창세기 2:4~25
일곱째 날 후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
는 열 부분 중 첫 번째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은 하
째 날이니라”는 말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은 하나님
늘과 땅의 자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땅은 지
이 지쳐서 쉬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창
하의 안개만 빼고는(2:6), 채소도 물도(2:5) 없는
조의 일을 중단하고 계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
땅이다.
은 하나의 날짜이기보다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
하나님은 토기장이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흙으
이다. 일곱째 날은, 남자와 여자처럼(1:28), “복되
로 사람을 지으신다. 아마 우리는 흙(dust)이라는
게” 된다. 1장 28절에 나오는 ‘복 주다’는 말이 새
말을 ‘진흙(mud) 또는 ‘찰흙’(clay)으로 번역해야
생명을 낳을 권능을 부여받는다는 의미였다면, 2
할 것이다. 토기장이는 흙먼지를 가지고 작업하지
장 3절의 ‘복되게 하다’라는 말도 같은 의미일까?
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흙에서 사람을 창조
B. 아담과 하와 ( 2:4~25 ). 창세기 1장은 하나님
한다는 생각은 구약 다른 곳에도 나와 있다(욥
이 어떻게 인간을 만드셨는지는 거의 말하지 않는
4:19; 10:8; 시 90:3; 103:14; 104:29); 146:4). 하
다. 그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말하
나님은 토기장이이실 뿐 아니라 또한 생기를 주시
며, 그들과 나머지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해 몇 가
는 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
지 더 말한다. 창세기 1장은 권위를 가지고 창조된
어넣으신다.
(created with) 존재인 인간을 강조한다. 창세기 2 장은 권위 아래(under) 있는 인간을 강조한다.
에덴동산(2:8~14)은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하 지만 분명한 위치는 나와 있지 않다. ‘에덴’이라는
이 부분(2:4~7)은 “하늘과 땅의 내력”이라고 소
단어는 수메르-아카드어인 에디누(광야, 평지)와
개된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의 내력”(또는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 단어는 세 번에 걸쳐
“……의 이야기, ……의 후손”)이라는 말로 소개되
(2:8, 10; 4:16) 동산의 지리적 위치를 언급한다. 사람이 창조된 이후에 그 동산이 창설되었다는 사
아마도 생명을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 ( ‘님루드’ [Nimrud], 앗수르, BC 865년 ). 창세기 2장 9절에 나오는 생명나무 와 비슷함
실은 여호와 하나님이 거기 사시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21
창세기 2:4~25
이 동산의 나무들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낸다.
모든 것을 의미하며(상극법), 여기서 금지된 것은
하지만 두 나무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전지함을 얻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다. 구약과(잠
면 3장 22절은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했을 때, 실제
3:18; 11:30; 13:12; 15:4), 신약에는(계 2:7; 22:2,
로 전지하게 되었다고 가르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
14, 19) 생명나무에 대한 언급이 단 몇 번만 나온
께 불순종하면 이득이고 유리할 뿐이라는 뱀의 말
다. 인간들의 생명은 이 나무에 의존하고 있지 않
은 옳은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다. 그들은 이미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사
세 번째 가능성, 그리고 여기서 받아들이는 해
람은 생명나무[2:9] 전에 이미 “생령”[2:7]이었
석은 선악을 아는 것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
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과의 적절한 관계에 의
한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권능을 의미한다는
존하고 있다. 따라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을지 모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만의 특전이다. 하나님
르지만, 이 살아 있는 최초의 인간 부부는 즉시 생
은 자신의 어떤 피조물에게도 도덕적 자율성을 위
명나무를 먹을 필요는 없는 듯하다.
임하신 적이 없으셨다. 이 주장은 “선악”이라는 문
일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다. 육체 노동은 타락
구가 구약에서 모종의 결정이나 분별이 요구되는
이전부터 있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동산을 경작하
곳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다는 사실 때문에 신뢰성
고 지키도록 하기 위해 그를 동산에 두신다
을 지닌다(신 1:39; 왕상 3:9).
(2:15~17). 하나님이 지금까지 일을 해 오고 계셨
흥미롭게도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으며, 이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지닌 존재와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2:18~25). 아담 자
그 책임을 나누신다. 그렇다면 심지어 창세기 3장
신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는 표시는
도 되기 전에 성경적 일 윤리가 나온다.
없다. 하나님은 평가를 하신 후에 해결책을 제안하
이런 임무와 함께 하나님의 추가적 말씀이 임한
신다(2:18).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돕는 자를 제공
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 제도를 창조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아담을 돕는 분이다
하신다. 첫째는 율법이다. 그 율법의 목적은 사람
(하지만 우월하신 돕는 분). 동물들 역시 아담의
들이 권위 아래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둘째는
돕는 자다(하지만 열등한 돕는 자). 그렇다면 이
결혼이다. 그 결혼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자신 아닌
돕는 자는 아담과 대등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다. 게다가 여자는 아담에게 배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배필”(suitable), 곧 어울리는 존재라는 말은 양극
풍성한 공급을 상기시키신다. “동산 각종 나무의
을 완성하는 어떤 것을 시사한다. 북극이 남극에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여호와는 인색하신 분
‘어울리는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다. 둘 중 하나가
이 아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단 하나의 금지사
없으면 불완전하다.
항을 말씀하신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아담 앞에 동물들이 죽
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지나가게 하신다(2:19~20). 이것의 취지는 아담
(2:17). “선악을 알게 하는”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
자신이 누가 자신의 상대자가 될지 선택한다는 것
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한 가지 일반적인 제안
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결정을 강요하는
은 이 지식이 성적 지식이라는 것이다. 그 부부는
대신, 남자가 자유롭게 결정하게 하신다. 남자는
이 나무에서 먹을 때 자신들이 벗었다는 것을 즉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자유는 없지만, 평생의 반
시 깨닫기 때문이다(3:7). 하지만 하나님이 왜 방
려자를 선택할 자유는 있다.
금 자신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사람들이 성적
동물들이 지나가는 장면이 끝난 후에, 하나님은
지식을 갖지 못하도록 막으려 하신단 말인가? 그
아담을 마취시키신다. 그리고 남자가 깊은 잠에 빠
문구에 대한 두 번째 일반적인 해석은 “선악”이
져 있는 동안 하나님은 남자의 갈빗대(부수적으로
22
창세기 3:1~24
말하면, 이 말은 구약에서 이 말이 나오는 모든 곳
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 하나님과 동격이 아니라
에서 ‘옆구리’[side]로 번역되어 있다) 하나로 여
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강조한다.
자를 만드신다. 사실상 본문은 여호와가 여자를 “지으셨다”(built)고 말한다.
뱀의 첫 번째 전략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사악하 다고 넌지시 말하는 것, 사실상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이 여자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기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1절에 나
라”(2:23)고 말할 때, 그는 우리 식으로 하면 ‘약할
오는 뱀의 질문의 취지다. “하나님은 너희에게 이
때나 강할 때나’라는 말을 고대적 방식으로 표현
나무들을 보고 만지게(즉, 욕구가 일어나게) 하고
하고 있는 것이다. ‘뼈’라는 히브리어 명사 배후에
는, 그 중 어떤 것도 먹지 못하게 하실까? 그런 일
있는 동사의 의미 중 하나는 ‘강하다’는 것이다. 다
을 하는 하나님이라면 분명 너를 사랑하지 않는
른 한편 살은 사람의 약함을 나타낸다.
게 틀림없어.” 하와는 하나님을 변호하면서 약간
남자는 부모(아담에게는 부모 중 어느 한쪽도 없다!)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해야 한다. 구약 다
의 과장을 섞어서 대답한다(“너희는 만지지도 말 라”, 3:2).
른 곳에서 이 말은 언약 용어다. 이스라엘이 하나
뱀의 두 번째 방침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님의 언약을 버릴 때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다.’ 그
부인하고(3:4) 불순종하면 전혀 불리할 것이 없고
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할 때, 그들
도리어 유리하다고 시사하는 것이다 -“너희가 하
은 하나님께 ‘합한다.’ 이미 창세기 2장 24절은 단
나님과 같이 되어”(3:5). 하나님이 이미 자신의 형
순히 언약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결혼이 하
상으로 그 부부를 만들었다는 것(1:26)은 고려할
나의 언약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가치가 없다. 뱀은 또 다른 종류의 같음, 자신을 높
창조의 절정은 이것이다. 남자와 그의 아내가
이는 같음을 시사하고 있다.
둘 다 벌거벗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적절한가! 육
그 둘 사이에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는다. 6절은
체적 벌거벗음? 그렇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벌거
그 시험이 다음과 같은 순서로 호소한다는 것을
벗음도 있다. 이 구절은 이 최초의 부부간에 완전
말해 준다. (1) 하와의 육체적 식욕에, (2) 하와가
한 투명함을 주장하고 있다.
볼 수 있는 것에, 그리고 (3) 하와의 상상력에 호
C. 타락 ( 3:1~24 ). 성경에서 사탄이 세상에 암
소하는 것이다. 이 시험의 취지를 주목해 보라. 뱀
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은 단 네 장뿐이다. 처
은 하와에게서 충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보다 뱀
음 두 장과 마지막 두 장이다. 성경은 사탄으로 시
은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부터 하와 자
작하고 사탄이 멸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창
신의 뜻을 행하는 것에 헌신할 것을 간접적으로
세기 3장과 요한계시록 20장 사이에서, 사탄은 고
시사한다.
려해야 할 하나의 요소다. ‘뱀’에 해당하는 히브리
하나님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 부부를 추적하
어는 ‘청동’(뭔가 번쩍이는 것을 시사하는)을 의미
여 잡아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저 바람이 불
하는 형용사/명사와 연관되어 있거나, 아니면 ‘점
때 동산에서 거니신다(3:8~13). 그들은 하나님의
을 치다’라는 의미의 동사와 연관되어 있다. 뱀에
소리를 듣고 하나님을 피해 숨는다. 이것은 요나와
대해 두 가지가 나온다(3:1~7). 첫째, 뱀의 성품에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다. 요나는 자신이 여호
대한 단어다 -그는 간교하다, 교활하다. 이 용어들
와의 임재로부터 실제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했
은 구약에서 칭찬할 만한 특성(잠 12:16, 23에 나
다. 나무들도, 먼 거리도 “하늘의 사냥개”가 미치
오는 “슬기로운 자”)을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비
지 못하는 곳으로 가게 해 줄 수는 없다. 도망갈 수
난할 만한 특성(욥 5:12와 15:5에 나오는 “교활
는 있지만, 숨을 수는 없다.
한”)을 말할 수도 있다. 둘째, 뱀의 기원에 대한 말
여호와는 먼저 뱀이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이 있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셨다. 이 점은 뱀이
하신다. “네가 어디 있느냐”(3:9)라는 것이다. 이
23
창세기 3:1~24
질문은 하나님이 아담의 소재를 모른다는 의미는
을 먹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곳마다, 그
아니다. 그보다 그것은 아담을 숨어 있는 곳에서
것은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한 반응이다. 하나님
나오게 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 스스로 하나
이 복을 주시는 곳마다, 그것은 통상 하나님의 은
님을 직면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혜로우신 뜻에서 흘러나오는 행동이다. 성경은 하
하나님은 그저 우리를 향해 독백을 하시지는 않는
나님이 저주하신다고 말하는 것보다 몇 배 더 많
다. 하나님은 질문을 던지시며, 우리가 드리는 대
이, 하나님의 복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답을 주의 깊게 들으신다. 아마도 하나님은 때로
하나님은 또한 뱀에게 뱀이 전투에서 질 것이라
정말로 들으시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제한하시는
고 말씀하신다. 여자의 후손과 뱀 자신 때문이다.
것처럼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을 아는 사람들은 좀
이 최종적인 마지막 결전에서 뱀의 머리는 여자의
처럼 잘 듣지 않는다. 그들은 듣기보다는 차라리
후손에 의해 상하게 될 것이다. “후손”(seed)이라
말할 것이다.
는 말은 집합 명사인가 단수 명사인가? 히브리어
아담은 두 가지 잘못된 일을 행한다. 첫째, 아담
로는 두 가지로 다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칠십인
은 진리에 직면하기보다 숨는 편을 택한다(3:10).
역에서는 ‘그’라고 번역한다(라틴어 불가타 성서
아담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로 가기보다 하나
는 심지어 ‘그녀’라고 번역한다!). 나름대로의 이
님에게서 멀어진다. 둘째, 아담은 자신의 배우자와
유를 가지고, 많은 사람은 창세기 3장 15절이 원
하나님을 비난한다. 아
시 복음, “최초의 좋은 소
담은 공모하는 것도 악
식”이라고 말했다. 아직 신
행에 연루되는 것임을
원은 알 수 없지만 여자의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후손이 전투에서 뱀과 교
하와도 자기 남편보다
전을 벌여 승리하게 될 것
나을 게 없다. 하와 역
이다. 하와는 이 말을 이
시 속죄양을 찾는다
해하지 못한 듯하다. 하지
(뱀, 3:13). 아담과 하
만 뱀의 정체는 드러난다.
와의 공통점은 자신들
뱀은 저주를 받아야 하고,
의 행동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받아들이려 들지
앞다리가 두 개 달린 뱀같이 생긴 생물인 ‘바쉬무’ ( Bashmu ) 가 신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원통 인장의 날인
않는다는 것이다.
기어다니며, 상하게 된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나온 말과 신약에서 가장 가까운
죄의 결과는 3장 14~19절에 자세히 나와 있다.
표현은 그리스도가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뱀만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창
에 둘 때까지”(고전 15:25) 왕 노릇 하신다는 것이
조하신 사람들은 저주하지 않으신다. “배로 다니
다. 또는 심지어 더 나은 것으로, “평강의 하나님이
고”와 “흙을 먹을지니라” 같은 말은 뱀의 복종을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롬 16:20)는 바울의 말이다.
(이 말을 시 72:9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메시아적
하나님은 하와에게 어머니와 아내로서 하와의
왕에 대한 말과 비교해 보라. “그의 원수들은 티끌
역할에 대해 말씀하신다(3:16). 성경적 사고에서
을 핥을 것이며.”) 이제 뱀 자신이 종이다. 그래서
볼 때 여자는 바로 이 두 부분에서 최고의 성취를
뱀들은 이동할 때 실제로 “배로 다닌다”(아마 후
경험한다. 그리고 이 두 부분에는 고통과 예속이
대의 성경 율법이 바다 바닥에 기어다니는 해양
있을 것이다. 우리는 16~19절에 나오는 이 말을 규
생물을 먹지 말라고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때
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분리된다
문일 것이다. 레 11:10; 신 14:10). 하지만 뱀은 흙
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24
시가서 고
대 히브리인들은 강력하고 우아한 시를 쓰
극히 중요한 도구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시편을
는 데 능한 백성이었다. 히브리 성경의 거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는 그 민족의 믿음과 역사
의 삼분의 일은 실제로 그런 시 형식으로 쓰여져
를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시편의 다른 기
있다. 예를 들어, 선지자들은 언약 신학을 가르치
능은 경건함을 위한 것이었다. 그 시편들은 하나
기 위해 시적 신탁을 사용했으며, 불순종하는 이스
님과 인간 간의 관계를 삶의 다양한 환경(특히 신
라엘에게 닥친 멸망을 선포하고 또한 선포된 심판
정설, 세상에 있는 악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하나
이 이루어졌을 때 그 황폐함을 애도하기 위해 강
님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환경)속에서
력한 키나(qinah) 또는 애도가를 사용했다. 구약의
검토하기 때문이다. 경건을 위한 이런 시들은 이
한 부분은 특별히 시가서라고 불린다. 이 책들 중
스라엘의 하나님의 최고의 힘, 그 하나님이 죄를
시편, 잠언, 애가는 전체가 다 시적 형태로 되어 있
미워하신다는 것, 언약 관계의 책임들, 그리고 민
다. 정경의 이 갈래에 속한 다른 두 책인 욥기와
족이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전도서는 시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겪는 운명 등을 강조했다. 시편은 또한 자기 백성
영어의 시가 종종 각운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에게 대단히 마음을 쓰며 그들에게 자신의 언약
달리, 히브리어 시는 운율이 특징이다. 소리의 운
사랑을 퍼부어 주기를 열망
율(강세가 있는 음절과 강세가 없는 음절, 유운과 두운, 언어유희를 포함해서)과 생각의 운율(다양
하는 신을 보여 준다. 노래로 불리는 기도 모음
한 유형의 대구법이 특징인) 둘 다
집인 시편은 고대 이스라엘
이다. 시적 대구법은 여러 형태
의 찬송가책이 되었다. 선
를 띠는데, 거기에는 동의어, 서
지자의 신탁들이 이루어지
로 쌍을 이루는 단어, 반대말,
고, 이스라엘 민족이 오래
진행적 또는 연속적인 단어와 문
전에 뿔뿔이 흩어진 후에도,
구 등이 포함된다. 히브리어 시
시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는 마음의 언어다. 그것은 비유
옛 백성에게 도움을 주고
가 풍성하며, 생동감 있는 묘사
지금도 유대인들의 예배의
로 활력이 넘친다.
중심에 있다. 기독교 교회는
시는 산문보다 유리하다. 고
이 귀한 유산을 다양한 방식으
동치는 운율을 통해, 우아함,
로 예배에 통합시켰으며, 계속
감정, 강조 등을 지닌 메시지
해서 시편의 풍성한 경건을 기뻐한다.
를 잊을 수 없게끔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 기 때문에 시는 가르치는 데
이 고대의 작은 상은 시편에서 자주 언급되는 악기인 수금을 타는 사람을 묘사한다.
487
시가서
시가서에는 또한 지혜 문학이라고 알려진 수많
문학의 기초를 이룬다. 이스라엘에게 지혜와 하나
은 글들, 특히 잠언, 시편, 전도서가 포함된다. 히
님을 아는 지식은 불가분리다. 하나님은 통찰과 이
브리 지혜 문학은 여러 면에서 고대 근동의 지혜
해의 원천이며 이것을 나눠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
문학과 비슷하다. 모든 사회들은 경험과 관찰의 축
다. 히브리 지혜 중 많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안
적된 지식을 전달함으로 인간 실존의 불확실함에
전하고 성공적으로 인생을 항해하도록 돕기 위해
대처하고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려 애쓰기 때문이
만들어진 모세 율법에 대한 가르침이자 실제적 해
다. ‘여호와를 경외함’이라는 개념이 히브리 지혜
설이다.
488
욥기 게리 롱 ( Gary A. Long )
서론
도 놀라서는 안 된다. 고난은 보편적인 것이고, 자 신이 신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믿었는
얼핏 보기엔 욥기는 간단한 이야기다. 경건한
데 예기하지 않게 만나게 된 고난을 깊이 묵상하
사람인 욥이 인생의 전성기에 무너지고, 욥과 그의
는 것은 분명 메소포타미아적이다. 욥기는 일부 메
친구들은 욥이 왜 비운에 처하게 되었는지 이해하
소포타미아 문학과 비슷한 점들을 갖고 있지만, 욥
려 애쓰며,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욥은 회복된다는
기 전체와 비교할 만한 것은 없다.
것이다.
욥기와 메소포타미아의 유사한 문학에 나오는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왜 이 책이 학자들, 목
대화들을 살펴볼 때, 중요한 한 가지 특징을 분명
사들, 관심 있는 독자들의 주의를 끄는지 재빨리
히 알 수 있다. 저자는 세련된 정교함과 고도의 문
알게 된다. 흐름을 역류하는 경향들, 복잡함, 모호
학적 기술을 가지고 하나의 요점을 여러 상세한
함, 모순 등이 펼쳐진다. 그것은 우리의 아픔을 진
사항들로 다시 탄생시키는 솜씨를 가지고 있는 듯
정시키기도 하고, 우리를 좌절시키기도 한다. 이
하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음악적으로 여러 변주곡
책은 성경 지혜 문학 안에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
을 만드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다. 분명 이야
지만, 부분적으로는 잠언에서 전개되는 경건 및 죄
기는 발전된다. 하지만 그 핵심에는 반복이 있다.
의 신학(욥의 친구들의 말로 대표되는)과 대조를
수메르 문학. “사람과 그의 하나님”(Man and
이룬다. 우리는 실질적인 형태로 성경의 요점(대
His God) 또는 “수메르인 욥”(Sumerian Job, COS
조점)을 만나게 된다.
1.179:573~575)은 경건한 사람들이 겪는 사회적
우리는 이제 욥의 세계에 들어간다. 문학 작품
육체적 고난에 대해 탐구하는 가장 초기 메소포타
으로서의 욥기와 욥이라는 인물의 세계다. 여기 서
미아의 예다. 마귀 남타르(Namtar)와 아삭(Asag)
론에서, 앞으로 할 일은 먼저 욥기와 같은 문학이
은 한 원기왕성한 젊은이가 고난에 빠지게 하는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그 남자는 “절대 죄 없는 아
그 책의 해석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살펴본 후, 그
이가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적이 없다”(104행)
런 장애물들에 비추어 성경에 나오는 최종적 형태
고 단언하고 난 후에야, 그리고 성문에서 자신의
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죄를 공개적으로 선포한(115행) 후에야 복권이 된다. 신은 이 고난을 받는 자의 기도를 받아들여,
메소포타미아의 유사한 문학들
그를 ‘기쁨으로’ 온전히 회복시키며 그에게 수호
욥기 외에 욥기와 비슷한 문학이 있는 것을 봐
의 영을 보내 보호해 준다. 수메르인 욥은 결국에
489
욥기
가서 응보적 신학에 대한 전통적인 또는 정통적인
한 고통에 시달린다. 그의 재앙은 마르둑 신의 벌
이해(선인은 번성하며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를
로, 그 신은 후에 그를 완전히 회복시켜 준다. 찬
받아들인다. 이 이야기에는 대화-성경 욥기에서
양-재앙-회복-찬양이라는 줄거리에는 욥기에 나
독백과 해설자의 음성을 통해 말하면서 백분 활용
오는 것과 같은 결백한 자의 항변이라는 수사학은
하는 것-가 없다. 성경의 욥기와는 달리, 이 이야
들어 있지 않다.
기는 전통적인 응보 신학에 아무런 도전도 가하지 않는다.
“고난을 받는 자의 구원”(A Sufferer’s Salvation,
COS 1.152:486)은 조각조각 나뉜 악갓어 본문
악갓 문학. “한 남자와 그의 하나님 간의 대화”
(Ras Shamra 25.460)으로 청동기 후기(약 BC
(Dialogue between a Man and His God, COS
1550~1200년)에 수리아의 지중해 해안 인근에
1.151:485)는 인간 고난에 대해 알려진 최초의 악
있는 우가릿 도시 국가에서 나온 것이다. “의로운
갓어 탐구로, 옛 바벨론 시대인 약 BC 1800~1600
고난을 받는 자의 시”(또는 “루드룰 벨 네메키”)
년에 나온 것이다. 그것은 조각조각 나뉘어 있기
와 비슷한 맥락으로, 주인공-단 한 명의 목소리-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나, 분명 병으로 고생
이 고난을 받고, 거의 죽을 찰나에 마르둑을 통해
하다가 결국에는 신적 은총으로 회복된 사람에 대
소생된다. 이로 말미암아 감사의 찬양을 한다. “나
해 탐구한다. 카시트(Kassite) 시기인 약
는 찬양하네, 나는 찬양하네, 주님이신 마르둑이 행하신
BC 1600~1200년에 나오는
일을……그는 나를 쫓아내
“의로운 고난을 받는 자의
고 그 다음에 나를 거두어들
시”(Poem of the Righteous
였네. 나를 넘어뜨리고 그 다
Sufferer)는 첫 줄의 단어를
음에 높이 올리셨네”(29,
따서 루드룰 벨 네메키(내가
38~39행).
지혜의 주님을 찬양하리라,
“바벨론 신정론”(The
COS 1.153:486~492; 사진
Babylonian Theodicy, COS
을 보라)라고도 알려져 있
1.154:492~495)은 약 BC
다. 시 전체에는 고난을 받
1100~1000년의 본문으로 후
는 자인 전도유망한 신사 슙
에 셀류시드(Seleucid) 시대
시-메시르-샤칸의 독백이
(BC 300년 이후)의 주석이 바
나온다. 첫줄은 참으로 적절
벨론 근처 십파르(Sippar)에
하다. 그의 이야기는 찬양
서 발견된 바 있는데, 보통 시
으로 시작되고 끝나며, 그
형태로 된 욥기 핵심부(3:1~42:6)
어느 것도 진정한 경배를
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간주된다.
손상시키지 않는다. 슙시-
형식 면에서 바벨론 신정론은 한 고난을 받는
메시르-샤칸은 지위, 존경,
자와 한 친구 간의 대화다. 고난을 받는 자는 기존
재산을 잃는다. 그의 몸은
의 이해와 거리를 두면서, 신이 선한 자를 상 주고
쇠약하게 하는 질병과 격렬
죄를 범한 자를 벌준다는 개념을 거부한다. 고난 을 받는 자 자신의 삶이 그의 주장을 입증한다. 그
오스납발의 서재에서 발견된 ( BC 7세기 ) 바벨론의 “의 로운 고난을 받는 자의 시” ( “루드룰 벨 네메키”라고도 불림 )
490
는 젊을 때부터 “기도와 간구로” 신의 뜻을 추구 했으나, 고난을 받는다. 친구는 고난을 받는 자가 멀리 하는 오랜 전통을 결연히 단언한다. 내용상
욥기
욥기(특히 3~27장)와 바벨론 신정론은 비슷한 수
의 삶이 나올 수 있으며, 욥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
사학을 공통적으로 지닌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런 질문들과 쟁점들을 특별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은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정론과
랍비적이고 초기 기독적인 견해에서는 욥기 연
욥기가 그들 각각의 사회에서 알려진, 학자들이 지
대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이 제시된다. 바벨론 탈
혜 전통이라 말하는 공동의 지적 추구를 하는 것
무드의 바바 바트라(Baba Batra) 15a~b절에 나오
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는 데 동의한다.
는 랍비의 발언에 대한 논의는 이것을 예시해 준 다. 한 가지 견해는 욥이 야곱 시대에 살았고 그의
연대
딸 디나와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랍비 조슈아 벤
히브리 성경 안에 있는 책의 연대를 말할 때는
레비 벤 라마는 욥이 모세와 동시대 사람이었다고
복잡한 문제들이 없지 않다. 첫째, 연대라 함은 이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은 “욥의 일생은 이스라엘
야기의 기원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책이
이 애굽에 들어갈 때부터 그들이 애굽을 떠났을
마지막으로 쓰인(이전의 구전이나 기록된 단계들
때까지였다”고 말한다. 라바는 욥이 정탐군들의
에서 얻거나, 수집하거나, 편집하여, 사해 두루마
시대에 살았다고 말한다. 랍비 나단은 “스바 사람
리나 마소라 본문처럼 본질적으로 현존하는 사본
이 갑자기 이르러”(욥 1:15)라는 말에 기초해 욥
형태로 보존된) 날짜를 의미하는 것인가?
이 “스바 왕국 시대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현
이야기들은 유동적일 수 있다. 시간상의 어떤 한
자들은 욥이 갈대아 시대 사람이었다고 본다(욥
단면에서 보면 그 이야기들은 여러 다른 변형들,
1:17). 랍비 요하난과 엘르아살은 둘 다 욥이 바벨
다양한 이야기를 지닐 수 있다. 게다가 그 이야기
론 포로에서 돌아와 디베랴에 살고 있었던 사람
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다니면서 변화될 수도
중 한 명이었다고 진술한다. 랍비 조슈아 벤 고라
있고 다른 세부적 사항들을 포함하게 될 수도 있
는 욥이 아하수에로(바사) 시대 사람이었다고 본
다. 기독교 정경에서도 그런 차이들을 분명하게 볼
다. 한 랍비는 심지어 “욥은 절대 없었으며 절대
수 있다. (1) 디모데후서 3장 8절에서는 모세와 싸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상징적인 인물일 뿐이다”
운 이집트 요술사의 이름을 말한다. “얀네와 얌브
라고 주장했다.
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하지만 히브리
지난 세기부터 금세기까지의 학자들은 일반적
성경 어느 곳에도 이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
으로 BC 6세기에서 4세기의 연대를 선호한다. 연
다. 그 요술사들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출 7:11,
대를 생각해 보자.
12). 하지만 다메섹 문서(Damascus Document)에
이른 연대. 본문 안에 나오는 욥이 사는 세상은
서는 “얀네와 그의 형제”가 모세를 대적하여 폭동
고색창연한 고대를 나타낸다. 성경에 나오는 족장
을 일으켰다고 나오며(5:17~19), 탈굼 위경-요나
들 시대보다 이전은 아닐지라도 그와 비슷한 시대
단(Targum Pseudo-Jonathan)은 두 이름을 모두
다. 욥의 재물은 대부분 그의 소유, 곧 짐승과 종들
언급한다(출 1:15). (2) 유다는 미가엘과 마귀가
로 측량된다(1:3; 42:12; 참고. 창 12:16; 32:5~6).
모세의 시체를 놓고 싸운 것에 대해 그냥 있는 그
화폐 단위는 후대에 사용되던 세겔이 아닌 케쉬타
대로 말한다(유 9절).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그런
(42:11; 창 33:19)다. 욥은 제사장 계층이 개입하
세부사항들에 대해 읽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 않은 채 제사를 드린다. 욥의 수명은 족장들의
그 논쟁은 후대의 문서에서 입증된다. 알렉산드리
수명보다 길다. 아브라함, 출애굽, 가나안 정복, 또
아의 클레멘트(Fragments on the Epistle of Jude),
는 바벨론 포로 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분명히 중
오리게네스(On First Principles 3.2.1), 그리고 유
요한 사건들과 개념들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
다서 9절에 대한 외쿠메니우스 위경(Pseudo-
는다. 또한 군주정, 성전, 선지자 등의 개념도 나오
Oecumenius) 등이다. 이야기들에는 다양한 사람
지 않는다. 분명 이 특징 중 서너 가지는 연대기가
491
욥기
아니라 지리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가릿 성(city)은 또 다른 다니엘을 소개한다. 그것
결국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은 대략 BC 1550~1200년에 쓰인 이야기인 아캇
라는 말로 시작된다.
의 전설(Legend of Aqhat, COS 1.103:343~356)
욥이라는 이름은 BC 2000년의 같은 어원을 가
에서 발견된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다니엘과 정확
진 말에서 나오는 듯하며, 그래서 “오래된” 이름이
하게 똑같은 자음들로 철자가 되어 있는(다니엘서
다(1:1~5에 대한 주석을 보라). 이집트의 저주 본
에 나오는 철자에는 자음이 추가되어 있다) 다니
문(BC 2000년 초), 마리 본문(18세기), 알라라크
엘은 성문에서 그가 내리는 의로운 판결로 유명한
본문(17세기와 15세기 둘 다), 우가릿(14세기)에
경건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다. 이것이 에스겔이 염
서 비슷한 변형들이 발견된다.
두에 두고 있는 다니엘이라는 사실이 에스겔 28장
선지자 에스겔은 분명 ‘의인’과 동의어가 된 세
3절에 더 시사되어 있다. 여기서 에스겔은 두로(우
명의 이름을 열거한다. 그것은 노아, 다니엘, 욥이
가릿은 두로의 문화적 조상이다)에게 반대하는 발
다. 그 선지자는 땅이 짐승들을 통해, 그 다음에 칼
언을 한다.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우냐?” 대부
을 통해, 그 다음에 전염병을 통해 황폐하게 된 환
분의 학자들은 이제 에스겔이 고대의 유명한 세 인
상을 본다(겔 14:15~19).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은
물에게 의지한다고 생각하며 욥이 그 중 하나라고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신다. “비록 노아, 다니엘,
본다.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
이 특징들은 욥기가 이른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겔 14:14). 그
시사하며, 아마 긴 세월 동안 내려온 이야기 또는
리고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
한 이야기의 적어도 일부분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도……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
이것이 늦은 시기의 글임을 가리키는 다른 요소들
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겔 14:20). 전후 문맥
도 있다.
은 이 사람들이 다 자기 자녀들까지도 구원한 의
늦은 연대. 아비 후르비츠(Avi Hurvitz)는 이야
를 갖고 있었다고 시사한다. 이것은 대수롭지 않은
기의 시작부와 끝 부분(1:1~2:13; 42:7~17)에 나
문제는 아니지만, 여기서는 연대를 나타내는 데 도
오는 개념들 및 통사형태론적(morpho-
움이 되는 것으로만 이 이름들에 초점을 맞을 것
syntactic) 언어학적 한정사를 밝혀내면서, 우리가
이다.
받은 이야기 형태는 바벨론 유수(BC 6세기) 이전
언뜻 보아, 성경의 정경을 염두에 둘 때, 세 사람
의 것이 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Hurvitz, 30).
모두 “의인”의 자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
이런 언어학적 특징은 한가운데 있는 시적 부분
아와 욥은 명백히 그렇다고 선포된다(창 6:9; 욥
(3:1~42:6)에는 나오지 않는다. 가운데 부분에는
1:1). 같은 이름의 성경책에 나오는 인물인 다니엘
명확한 진술을 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나름의 언어
은 명백히 의인이라고 선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적 수수께끼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우리는 주의
그의 성향과 행동으로 보아 다니엘은 그런 호칭을
를 해야 한다. 어떤 언어도 시간상의 어떤 순간에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셋 중에
도 동일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특징이
서 노아는 분명 고대의 의인이며, 욥기 본문에 나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다는 모든 주장은 가설적
타난 세상에 비추어 볼 때, 욥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인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을 염두에 둘 때,
다니엘은 분명 그렇지 않다. 바벨론에서 포로생활
전반적인 증거로 보아 중간의 시적 부분(또는 그
을 하던 그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것의 일부)은 산문 부분보다 더 이른 시기의 것인
하지만 삶과 문화와 문학은 절대 진공 상태에서
듯하다.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학자들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대적(히브리어 하싸탄
다니엘을 점점 더 다른 사람으로 이해해 왔다. 우
[hassatan], 욥기에서 그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492
욥기
정관사 하[ha]와 함께 나오는 명사 사탄[satan]이
욥기 6장 19절에서는 “데마의 떼”와 “스바의 행인
다)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포로기 이후 시대
들”을 비교한다. 무역, 특히 BC 8세기에서 5세기
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이 주제는 1장
의 무역을 지배하던 데마는 ‘향로’라고 알려진 주
6~12절 주석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다.
요 간선도로 선상에 있었다. 그 길은 남서 아라비
“갈대아 사람”(1:17)이라는 말이 늦은 연대를
아의 스바 지역을 수리아 및 지중해와 연합시켰다.
나타낼 수도 있다. 백성으로서의 갈대아인들은 BC
욥기에 나오는 스바는 이런 남서 아라비아 지역일
9세기 본문에 처음 나오는데, 남쪽 유프라테스-티
것이다. 똑같이 그럴듯한 것은 그 이야기가 데마에
그리스 유역과 엘람 쪽에 사는 것으로 나온다. 시
서 320킬로미터 떨어진 남서 아라비아의 와디-에
간이 흐르면서 성경은 그 호칭을 신바벨론 제국
스-샤바 인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마빈
및 나보폴라살 및 느부갓네살과 관련된 지역과 동
포프(Marvin Pope)는 앗수르인 디글랏 빌레셀 3
의어로 사용할 것이다. 욥기에서 갈대아 사람은 약
세와 사르곤 2세(BC 8세기 중반에서 말)가 이 북
탈자다. 그들이 서로 똑같은 사람들인가? 확실히
부 스바를 언급한다고 믿는다. “사바(saba)는 아랍
알 수는 없다. 그들은 9세기에 ‘나타났을’ 때, 확실
사람들과 동맹을 맺은 사람들로 앗수르 연대기에
히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서 국경 침략자로 나온다”(Pope, 13).
선사 시대에도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추정할 수 있
그렇다면 정경 형태의 욥은 서술형으로 되어 있
다. 그렇긴 하지만, 성경 도처에서 ‘갈대아 사람’이
는 양쪽 끝 부분과 시로 되어 있는 중심부로 완성
라는 말을 BC 1000년대 사람들과 지역을 나타내
되는 것으로, 부분적으로 포로생활 또는 포로생활
는 말로 사용한다는 것과, 그 말이 갈대아 우르(창
이후 세계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는 BC 2000년대
11:31)를 말할 때는 연대를 잘못 기록한 것이라는
또는 1000년대 중반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점이 욥기에서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초기 이야기이지만 최신 특징들을 갖춘 이야기인
“스바 사람”(1:15)과 “스바”(6:19)는 BC 1000
가 아니면 후기 이야기이지만 창조되고 고문체로
년의 실물 교재를 표현할 것이다. NIV에는 다르게
씌어지고, 족장 같은 사회, 그 이후의 역사는 없애
되어 있지만, 그 말은 히브리어에서는 똑같은 철자
버린 이야기인가? 에스겔 14장은 욥이라는 인물이
로 되어 있다(sheba). 욥기 1장 15절에서 스바 (sheba)가 공격하여 욥의 가축들을 빼앗아 간다.
니느웨의 북왕궁에서 나온 이 부조에서는 앗수르 군인들 이 낙타를 타고 도망하는 아라비아 사람들을 쫓고 있 다 ( BC 645~635년 ).
493
욥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시사한다. 하지만 그
분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들
말이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이야기와 그 전통이
은 잘 확증된 전통적인 유명한 지혜를 줄줄 이야
완전히 동일하다는 말은 아니다.
기하지만, 책망을 받는다. 욥은 점점 더 인내심을 잃고 하나님께 매몰차게 군다. 하지만 욥이 결백하
구성
다는 것이 증명된다. 서언에서는 대적이 등장하지
욥기가 성경의 책에 포함되는 여정은 중요하고,
만, 그 다음 단계들에서는 사라져 다시는 보이거나
극히 복잡하며, 불확실성에 가려져 있다. 구성과
언급되지 않는다. 네 번째 친구인 엘리후는 서언에
출처를 살펴볼 때 기초가 되는 방법론적 원리들을
서 완전히 간과된다. 이해할 만한 반응은 시간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첫째는 사실을 가설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를 삽입되고 삭제
과 구별하는 것이다. 둘째는 오캄의 면도날
함으로써 발전된 이야기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
(Occam’s razor: 어떤 사항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
지만 한 세기 동안 구성적 요소들이 두드러졌다는
체계는 간결해야 한다는 원리-옮긴이)로, 가설들
것이 점점 있는 그대로 단언되고 있다. 그런 강조
을 필요 이상 늘리지 말라는 것이다. 현존하는 정
는 그 구성 역사가 어떻게 되든, 욥기는 우리가 진
경 형태의 욥기는 모두 합해서 한 책이다. 이것이
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최종적, 정경적 형태를 가
사실이다. 입증 책임은 구성 단계들을 찬성하는 가
지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 것이다.
설들에 있으며, ‘가설’의 표현은 겸손하고 신중해 야 한다. 하지만 과정에 대한 고지식함도 똑같이 환영받지 못한다.
구조 욥기 앞뒤에 나오는 서술적 부분들-서문(1~2
지난 세기 동안, 학자들 사이에서는 욥기가 단
장)과 결어(42:7~17)-과 가운데 있는 시적인 부
계별로 발전되었다는 것에 대해 점점 더 합의가
분(책의 나머지 부분) 간의 관계는 분명 복잡하다.
이루어져 왔다. (1) ‘원래의’ 욥기는 한 경건한 사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긴장된 관계라고 말할 수
람에 대한 구전 이야기였다. 현재 이야기 양쪽 끝
있을 것이다. 욥기가 전반적으로 하나의 통일체라
에 나오는 부분은 이 초기 이야기의 잔존물일 뿐
고 주장하는 저술들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주커만
이다. 잃어버린 중간 부분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
(Bruce Zuckerman)의 다음과 같은 말은 학자들의
지 않으나, 아마도 세 친구가 하나님에 대해 비판
이해를 요약해 준다.
적으로 말하고, 욥은 어떤 불친절한 말도 입 밖에 내기를 거부하는 내용일 것이다. (2) 이야기 양쪽
욥기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와 불화
끝 부분을 그대로 둔다면, 더 야심적인 줄거리는
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의 모순적 특
세 친구가 전통적인 지혜를 단언하는 한편 욥은
성을 해결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결과는 결코
하나님께 왜 자기를 이렇게 대하시는지 항변한다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물과 기름처럼,
는 개념을 탐구한다. 지혜시(28장), 욥의 마지막
산문 형태의 이야기와 시는 그것들을 균질화
독백(29~31장), 하나님의 말씀(38:1~42:6)이 대
하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로 유리되
화 이후 결어가 나오기 전에 삽입되었다. (3) 아마
지 않는 듯하다(Zuckerman, 14).
욥에 대한 더 결정적인 논박으로 여겨지는, 엘리후 라는 인물이 그 다음에 소개되었다(32~37장). ‘단계별 욥기’는 욥의 고뇌 중 일부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뒤의 ‘구
데이비드 클라인스(David Clines)는 욥기 전체 에 대해 가장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성찰 중 하나 를 제시한다.
조’ 항목에서 더 상세히 논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이야기 양쪽 끝과 가운데의 시적인 부
494
욥기는 독자들에게 불신의 유예(suspen
욥기
sion of disbelief: 의혹을 자발적으로 보류하는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은 하나님을 오로지 하나
일-옮긴이)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타의 추종
님 자체로만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것
을 불허한다. 우리는 그 주인공이 대단히 큰
은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인가? 아
오해를 받으면서 열심히 애쓰는 것을 알면서
니면 번창하기 위한, 그리고 그 번창함을 유지하기
도 그에게 갈채를 보낸다. 우리는 하나님이
위한 수단으로서의 헌신인가? 후에 닥치는 두 차
그를 자랑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알지만 그가
례의 재난에도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
하나님께 극악한 죄인으로 선포되고 있다고
(1:22)하거나 “입술로”(2:10) 범죄하지 않았다. 결
믿기 때문이다. 줄거리 차원에서의 그런 불신
어에서 대적은 사라지며, 위로하던 세 명의 친구는
의 유예는 윤리 차원에서도 유사한 점이 있
책망을 받고, 욥은 다시 회복된다. 이제 막을 내릴
다. 근본적으로 우주적 도덕에 관심을 가지고
수 있다.
있는 책의 몇몇 핵심 순간에 매우 괴로운 윤
하지만 시적 중심 부분을 강조한다면, 그 이야
리적 난점들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에는 회의주의가 난무하며, 그 이야기는 고결한
이 책에서 참으로 놀라운 것은 대부분 독자
사람들과 악인들이 예상된 결과를 얻는지 탐구한
들은 뭔가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
다. 욥은 자신이 경건하다고 주장한다. 엘리후를
리지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욥기에 대해 연구
포함한 친구들은 욥이 당한 재앙은 욥이 경건하지
한 수많은 책은 전체 드라마의 출발점, 곧 욥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침묵하
에 대한 엄청난 신적 불의의 행동(하늘이 욥
고, 침착하고, 참을성 있는 욥은 거칠고 침착하지
개인과 그의 재산에 대해 아무 이유 없고 정
못한 욥으로 변신한다. 욥은 내내 하나님께 부당하
당화될 수 없는 공격을 하는 것)을 한번 제대
게 괴롭힘을 당하며 하나님이 자기 말을 듣지 않
로 보지도 않고, 그 책의 신학적 깊이와, 우주
으신다고 느낀다. 24장에 나오는 욥의 말은 사실
를 지배하는 그 책의 웅대한 환상에 대해 열
상 부당하게 또는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광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책이 제
번영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의를 제대로 처리하지
기하는 서너 가지 윤리적 문제 중 하나에 불
않으심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하나님은 마
과하다(Clines 2004, 248~250).
침내 나타나신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욥의 말을 제 대로 멈추게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듯하다. “무
그 모든 웅대함에도 불구하고, 욥기는 어렵고도,
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항상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를 몇 가지 제시한다.
(38:2).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
(1) 왜 정말로 욥은 그런 고난을 겪는가? (2) 왜
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40:8). 하나님은 말
욥은 자신이 고난을 받는 이유에 대해 잘 모르는
씀하시는 내내 욥도 그의 친구들도 정당화하지 않
채 있어야 하는가? (3) 왜 하나님은 그렇게 저항할
으시면서, 인간의 이해가 혼돈에 빠져 있고 근시적
수 없게 강렬한 방식으로 반응하시는가? (4) 왜 그
임을 강조하신다.
책은 끝에 가서 분명 욥이 대항해 싸웠고 친구들
하지만 전체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고 특히
이 찬성했던 응보의 원리를 재단언하는가(Clines
시적 중심부에서 최종 부분으로 넘어가 보자. 하나
2004, 233~250)?
님은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만을 기소하신
마찬가지로, 책 양쪽 끝을 읽고 시적 중심부를
다. “내가……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읽어 보면 약간 공통점이 없는 이야기들인 것처럼
말한 것이 내 종 욥이 말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보인다. 책 양쪽 끝을 강조하면, 욥기 이야기는 주
(42:7). 이것은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하나님
인공의 흠 없는 행동 배후에 있는 동기에 대한 시
은 전에 욥을 책망하셨다. 둘째, 친구들은 잘못되었
험이다. 서언은 대적과의 한 가지 논전을 중심으로
다고 단언하지만, 그들이 말한 응보의 원리는 옳다.
495
욥기
욥은 무죄하다. 그리고 그는 상을 받는다! 그것은
말해, 등장인물들은 완전한 주체들로 존중되
그들이 주장한 바와 같다. 의인은 번성한다.
며, 단번에 자신들의 역할에서 완전하게 알려
깔끔하고 통합된 메시지를 얻고 싶은 마음은 이
지는(그러고 나서는 소비해도 좋은 것으로
해할 만하다. 신학적으로 명료한 본문은 하나님이
버려지는) 객체들이기보다는 절대 완전히 정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저자라는 개념을
의내리거나 자세히 규명될 수 없는 ‘의식’으
단언하는 듯하다. 철학적으로, 그런 본문은 진리는
로 여겨진다……훌륭한 소설에서는 모든 것
논리적이고 모순되지 않는 가설을 통해 가장 잘
을 하나의 통합된 그림으로 조화시키고 독자
전달된다는 전제를 지지한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
가 그 그림을 보는 것을 돕도록 저자가 온갖
는 유사한 역사적 기사들에서 발견되지 않으며, 잠
기술을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다(Bakhtin,
언 대 전도서의 메시지에서도, 그리고 욥기에서도
xxii~xxiii).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는 욥기 전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책의 최종 배역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시간이 흐르면 성경학자들이 바흐친에게서 지 나치게 많은 것을 끌어내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될
브레버드 차일즈(Brevard Childs)는 중요한 틀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 작품인 욥기와 다성은 서
을 제안한다. (1) 욥기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있다
로 양립할 수 있다. 캐롤 뉴솜(Carol Newsom)은
해도, 그 부분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총체적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한다. “어떤 한 음성도 진
으로 취급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총체적 취급
리를 전부 다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 경건함, 인
에 대한 모든 해석은 반드시 긴장을 유지해야 한
간의 고난, 하나님의 성품, 우주의 도덕적 질서에
다(Childs, 543~544).
대한 진리는 서로 제한을 두지 않는 대화를 나누
최근 들어,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성
는 가운데 합병되지 않은 다양한 의식들로만 제대
경 연구에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인간의 경험이
로 다룰 수 있다”(Newsom 2003, 24). 다성에서
원심력과 구심력 둘 다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
저자, 독자, 등장인물들은 “진리의 주장들을 계속
뿌리박은 그의 ‘다성’(polyphony) 개념이 그렇다.
해서 열정적으로 고수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
원심력은 우리를 몰아내어 더욱더 많은 다양성, 더
다. 하지만 그런 주장들을 펼칠 때는 다른 사람의
욱 다양한 음성, 더욱더 많은 복잡성을 만나게 한
관점에서는 어떻게 다른 입장이 나올 수 있는지 보
다. 구심력은 우리를 하나로 모아들여 동일함과 연
는 훈련을 하면서, 겸손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
합을 강조한다. 인생은 다성적이다. 바흐친에게 있
(Newsom 2003, 262). 실로 지혜 문학의 책들 중
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다성적 이상을 이루
에서도 특히, 잠언과 전도서의 인생에 대한 목소리
었다. 웨인 부스(Wayne Booth)는 바흐친의 눈을
가 각각 다른 것은 다양한 음성들의 상호작용을 더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통찰을
보여 준다. 욥기에서 우리는 하나로 잘 정리된 목
제공한다.
소리를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 욥기에서 는 재앙 때문에 흐트러진 모습을 경험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진정 자신의 인물들에 굴복하고 그들이 자신의 방식 아닌 다른 방
우리는 힘든 환경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식으로 말하도록 허용한다. 주인공들은 더 이
거기에서 우리는 이 책의 핵심 가치를 발견한다.
상 저자를 지배하는 의식으로 축소되지 않는
그것은 무죄한 자가 고난을 받는지 아닌지 또는 왜
다. 조연들은 더 이상 주인공에게-또는 저자
그들이 고난을 받는지에 대해 주로 다루지는 않는
에게-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것에 포위당하거
다 -이런 것들에 대해 말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우
나 그런 유용함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간단히
리는 하나님과 고난의 관계에 대한 명확하고 모든
496
욥기
것을 포괄하는 통찰을 만나지는 않는다. 그보다 그
( 4~27장 )
친구들이 차례로 이런 말로 조언한다. “정직한 자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 은 악몽같지 않다.” 소심하게, 반항적으로, 그들은 재잘거린다. 그들의 지껄임은 분개하게 된다.
( 28장 )
친구들과 자신에게 찍힌 낙인에 지쳐, 욥은 지혜의 수수께끼를 숙고한다.
( 29~30장 )
과거의 기쁨과 현재의 슬픔
( 31장 )
욥 자신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법정
( 32~37장 )
하나님을 대신한 음성, 건방진 엘리후가 친구들이 제공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통 찰을 제공함.
책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죄한 자-적 어도 이 모범적인 무죄한 자-가 비극이 닥칠 때 무엇을 하는지 보여 준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욥의 평탄하지 않은 행동 및 욥이 들으며 욥 자신 이 말하는 다성적 말과 개념들을 들여다봄으로써 얻게 되는 통찰 및 평가적 사색이다. 욥과 그의 여 정이 초점이다.
개관 ( 욥 1~2장 )
( 3장 )
온전하고, 정직하고, 재물이 많은 욥은 가 족, 가축떼, 건강을 가지고 있었다. 신의 자랑, 도전자의 도전: “욥의 미덕은 무너질 것이다. 그냥 그에게 서 모든 것을 벗겨 가 보라!” 도전이 받아들여지고, 재앙이 만연한다. 병든 목숨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세 친구가 도착한다. 애도하는 침묵. 밤낮 으로, 아무 말이 없다. 공감
( 38장~42:6 ) 하나님의 음성이 포효하면서 하나님이 온 세상의 과정들을 안다는 것을 표현함. 베헤못, 리워야단, 혼돈의 짐승들. 인간들 이 질서를 갈망함. 그들은 자신들이 상관 이라고 생각함. 하지만 질서와 혼돈이 인생의 힘이다. 욥은 조용히 앉고, 하나님의 음성을 찬 성한다. ( 42:7~17 )
“내 생일을 저주하라!” 침묵이 깨진다.
세 친구가 기소를 당한다. 욥은 하나가 되고, 회복되고, 완전히 올바 르게 된 새로운 삶을 얻는다
개요 책의 개요
두 번째 주기, 15~21
세 번째 주기, 22~27
엘리바스, 4~5 욥, 6~7 빌닷, 8 욥, 9~10 소발, 11 욥, 12~14
엘리바스, 15 욥, 16~17 빌닷, 18 욥, 19 소발, 20 욥, 21
엘리바스, 22 욥, 23~24 빌닷, 25~26(?) 욥, 27:1~12 소발(?), 27:13~23(?)
지혜 28
엘리후 32~37
하나님 과 욥 38~42:6
결어 42:7~17
첫 번째 주기, 4~14
욥의 마무리 독백, 29~31
욥의 시작 독백, 3
서언 1~2
시적 핵심부
양쪽 끝 서술부
주석 개요
2. 욥의 시작 독백(3:1~26)
1. 서언과 결어(1:1~2:13; 42:7~17)
3. 세 차례에 걸친 대화(4:1~14:22; 15:1~21:34;
A. 서언(1:1~2:13) B. 결어(42:7~17)
22:1~27:23) A. 엘리바스의 말(4~5; 15; 22)
497
욥기 1. 서언과 결어
B. 빌닷의 말(8; 18; 25~26)
다(1:2; 42:13).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서론에서, ‘구
C. 소발의 말(11; 20; 27:13~23?)
성’과 ‘구조’라는 제목 아래, 이미 책 양쪽 끝과 시
D. 욥의 말(6~7; 9~10; 12~14; 16~17; 19;
적인 중심 부분 간에 명백한 불협화음이 있다는
21; 23~24; 27:1~12)
것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것은 양쪽 끝을 더욱더
4. 지혜: 그것은 어디 있는가(28:1~28)?
하나로 묶어 준다.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 아닌
5. 욥의 마무리 독백(29:1~31:40)
가 하는 우려는 있지만, 많은 불협화음은 욥이 다
6. 엘리후의 말(32:1~37:24)
시 전권 위임을 받는 것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
7. 하나님의 말씀(38:1~41:34)과 욥의 반응
다. 그것은 시적 중심부보다는 양쪽 끝 서술적 부
(40:3~5; 42:1~16) 8. 마지막 말
분의 도덕적 세계와 더 조화를 이룬다. 결말은 시 적 중심부에서 전개된 복잡한 것들과 충돌한다. 하지만 우리는 앞에서 언급된 차일즈의 조언을
주석
받아들인다. 욥기에는 구성 부분들이 있지만, 그 부분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총체적으로 취
이 주석은 욥기를 장별로 탐구하지 않는다. 모
급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총체적 취급에 대한 모든
든 독자들은 그 책을 장별로 살펴볼 수도 있을 것
해석은 반드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 부분과 등장인물들에 초점
(Childs, 543~544).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욥기
을 맞추어, 독자들이 이야기에 나오는 배경보다는
형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든, 결어는
조금 더 통합된 배경에서 전체를 볼 수 있게 해 주
대단원 역할을 한다. 양쪽 끝 부분의 이야기가 대
려 한다. 그러고 나면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장별
응을 이루게 하기 위해, 결어는 약간 단순하고, 매
읽기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끄럽고, 예상된 운명의 역전을 제시한다. 욥기 전 체로 보자면 그것은 앞에서 서너 번 이야기한 것
1. 서언과 결어 ( 1:1~2:13; 42:7~17 )
처럼, 많은 세부사항과 예기하지 않은 부조화를 이
이 두 양쪽 끝 사이에 중대한 시적 이야기가 나
룬다.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보통 그리고 이해할
온다. 하지만 욥기의 서언과 결어 사이에 밀접한
만하게도 “결국 [욥의 복을] 욥을 향한 하나님의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유로운 행동으로 해석해야 한다”(Janzen, 267)
그리고 여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둘 다 산문
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그 부조화들을 유화시키
으로 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맥락으
거나 해명하려는 노력을 만나게 된다.
로 되어 있다. (1) 대적과 이야기할 때는 하나님은
그 부조화를 받아들이면(이야기에 퍼져 있는 다
욥을 “내 종 욥”(1:8; 2:3)이라고 말씀하신다. 세
성을 유념하라) 책 전체가 고난과 신인 간의 관계
친구에게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은 정확하게 같은
라는 복잡한 기반의 여러 측면을 탐구하는 것이다.
문구를 네 번 사용하신다(42:7~9). (2) “어리석은
“그 부조화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그것이 제기한
여자”라는 말은 자기 아내의 반응에 대한 욥의 고
쟁점들을 명확하게 해결하려는 독자의 바람을 인
발이다(2:10). 이것은 욥기 42장 8절에서는 어리
정하면서도 거부한다”(Newsom 1996, 634). 독자
석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3) 결어에 나오는 잔치
는 이 책의 쟁점들에 대해 더 많은 묵상을 하게 된
비슷한 모임(42:10~11)은 서언에 나오는 비슷한
다. 이야기는 독자의 사고 과정에서 정식 식사가
절기와 같은 맥락이다(1:4~5). (4) 동정과 위로가
아니라, 단지 식욕을 돋우는 맛보기일 뿐이다.
되풀이된다(2:11; 42:11). (5) 가축의 수는 결어에
A. 서언 ( 1:1~2:13 ). 1:1~5. 장면: 땅. 여기서는
서 정확히 두 배로 늘어난다(1:3; 42:12). (6) 둘
욥과 그의 모범적인 경건함을 소개한다. 그런 경건
다 자녀의 숫자에 대한 기준선을 염두에 두고 있
함은 심지어 가족을 위한 행동까지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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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상세한 설명과 생생한 자료를 통해 종합적이면서도 쉽게 성경에 접근할 수 있게 돕는 성경 주석!
성경주석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성경에 달린 간단
구약편
한 설명만으로는 충분한 이해와 통찰을 얻기 어렵다. 이 주석은 그런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베이커 성경주석』 은 목회자 및 신학자는 물론 모든 성도를 위한 책으로, 성경 전체를 단락별로 정리하고 설명한다. 43명의 복음주의 학자들이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해 신뢰할 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성경을 해석해 줄 뿐 아니라, 본문 설명을 위한 사진·지도·연표 등이 생생하게 제시되어 있다.
THE BAKER ILLUSTRATED BIBLE COMMENTARY
이 주석에 수록된 풍부한 정보는 개인의 성경 공부 또는 강의 준비를 위해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하며, 독 자들이 논쟁적인 질문과 씨름하고 성경 메시지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측면들에 주의를 집중하고 성경신학의 요점을 파악하는 가운데 깊은 성경 연구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게리 버지·앤드루 힐 엮음
|
정옥배 옮김
베이커 성경주석 구약편
엮은이
• 500개 이상의 컬러 일러스트, 지도, 사진 수록
개리 버지 ( Gary M. Burge; PhD. 애버딘 대학교 ) 휘튼 대학의 신약 교수다. 저서로는 『고대의 신약 성
• 66권 성경 전체에 대한 단락별 주해
서』, 『성경과 땅』, 『예수, 중동의 스토리텔러』, NIV 적용주석 시리즈의 『요한 서신』, 『요한복음』 등이 있다.
• 40여 명 이상의 탁월한 복음주의 성경학자들의 집필
앤드루 힐 ( Andrew E. Hill; PhD, 미시건 대학교 ) 휘튼 대학의 구약 연구 교수다. 저서로는 앵커 바이블 주석 시리즈의 『말라기』, NIV 적용주석 시리즈의 『역대기』 등이 있다.
옮긴이
정옥배
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를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과 미국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
교에서 신학을, 캘리포니아 풀러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했다. IVP간사를 역임했고, 현재 강변교회 교육 전도사이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SV 스터디 바이블』 , 『선교사 바울』 , 『개혁주의 성경 강해 주석 시리즈: 야고보서』 ( 이상 부흥과개혁사 ) 등 수많은 책을 번역했다.
ISBN 978-89-6092-426-0 ISBN 978-89-6092-425-3 (세트) 값 60,000원
게리 버지·앤드루 힐 엮음 정옥배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