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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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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하나님의 회복과 완성 프로젝트 | 14 하나님의 회복 프로젝트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남자와 여자 원죄, 그리고 저주 타락의 역사 전략 수정: 이제는 사람 중심의 하나님 계획 구약에 등장하는 지혜의 여인들 성적 타락 이스라엘의 멸망과 귀환 약속과 성취의 완성
2부 구약편 1. 창조가 궁금하다 · 35 하나님은 왜 사람을 만드셨을까?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선악과는 맛있었을까? 선악과는 어쩌다 사과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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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인간은 왜 바벨탑을 만들었을까?
2. 족장이 궁금하다 · 49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뭘까? 아브라함 언약, 이것만 알면 된다 아브라함은 왜 그렇게 사고를 많이 쳤을까? 야곱 요셉 유다, 누가 더 중요한 인물일까?
3. 정복이 궁금하다 · 60 모세는 왜 애굽에서 자라게 된 걸까?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서 애굽으로 이끄셨을까? 이스라엘은 왜 광야에서 40년이나 보냈을까? 여호수아, 왜 그렇게 땅 점령에 목숨을 걸었을까? 사사들은 왕일까, 판사일까, 선지자일까? 모세의 증손자가 이방 신을 섬겼다고? 룻처럼 착하게 살면 되는 걸까?
4. 왕정이 궁금하다 · 82 사울과 다윗 중 누가 더 잘 생겼을까? 실수에 대처하는 사울의 자세 다윗은 훌륭한 왕일까, 살인자일까? 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자였을까? 솔로몬의 후궁과 첩이 1,000명이라고? 좋은 왕과 나쁜 왕의 기준을 뭘까?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가 귀족들뿐이라고? 에스더는 어떻게 페르시아의 왕후가 될 수 있었을까?
5. 시가서가 궁금하다 · 106 시가서 큰 그림 ‘인생 교과서’ 잠언 경외한다는 것 헛되고 헛된 인생사 고난의 끝판 왕, 욥 시편, 모든 상황 속에서 아가서는 야한 책일까?
6. 선지자가 궁금하다 · 120 선지서 큰 그림 대표적인 선지자들
3부 신약편 1. 예수님이 궁금하다 · 131 예수님과 광야, 그리고 마귀 예수님은 실존 인물일까? 기적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산상수훈이 왜 중요할까?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일까?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모습 교회는 어떻게 전 세계로 뻗어 나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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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음서가 궁금하다 · 151 복음서는 왜 네 개나 될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복음서 마태복음은 정말 재미없는 책일까? 천국은 ‘하늘나라’일까, ‘하나님 나라’일까? 마가복음은 당혹스러운 복음서일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자기소개서?
3. 사도들이 궁금하다 · 178 사도 바울, 그는 누구인가? 회심, 그리고 로마서 바울은 로마에 갔을까? 이신칭의가 뭐지? 베드로는 정말 그렇게 단순한 인물이었을까?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을까? 베드로와 바울, 누가 더 중요한 인물일까?
4. 새 하늘과 새 땅이 궁금하다 · 194 종말은 무엇일까?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언제 올까?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인가? 숫자의 비밀: 14만 4천, 666, 1,260
나가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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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보였습니다. 믿음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시절의 나는 분명 바보였습니다. 믿음을 갖게 된 뒤에도 성경 말씀이 무슨 의 미를 담고 있는지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바보였습니다. 한 번 두 번 읽기는 하는데, 대체 무슨 뜻인 지, 성경책 66권은 대체 어떤 관계인지, 각 책들은 왜 그렇게 문체 도 다르고 전달 방식도 다른지,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뭔 가 분명히 좋은 내용, 의미 있는 글들인 것은 확실한데, 딱 거기까 지였습니다. 성경을 사랑하지만,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나는 그 런 면에서 여전히 바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혹시, 성경 읽기가 어려운가요? 만약 그렇 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 역시 나 같은 바보이기 때문입니 다. 적어도 성경을 배우고 익힌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럼 바보들, 특히 성경을 처음 접하는 바보들은 어떻게 성경에 다가서야 할까요? 그냥 이해가 될 때까지 무조건 읽기만 하면 될 까요? 1년에 열 번을 읽겠다는 목표, 살면서 천 번을 완독하겠다 는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 게 물리적인 시간을 들여 단순히 읽기만 하면 되는 책이 성경이라 면 성경이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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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를 위한 성경 안내서
입니다. 표면적으로 읽히는 성경 구절 이면에 감춰진 맥락이 있다 는 것이고, 이걸 알고 느끼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작 정 읽기만 해서는 제대로 알고 느끼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무작정 읽기만 했을 때 어떤 문제점이 생길까요? 여러 문제점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말씀을 하나하나 떼어 읽게 된다는 점이 아닐 까 합니다. 이렇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되면 그저 좋은 말씀으로 떼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예를 하나 들 어볼까요? 예전에 개업하는 식당에 가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 가 운데 하나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 라”(욥
8:7)라는
욥기의 말씀입니다. 저 문구만 놓고 보면 참 멋진
희망이면서 위로이고 소망이면서 바람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가 한 저 말은 욥을 굉장히 비난하는 맥락에서 사용한 문구입니다. ‘네 죄가 너무 커서 네가 벌 받는 거니까 앞으로 똑바로 살면 잘 될 거야’라는 맥락과 뉘앙스가 담긴 문장이죠. 그래서 문맥을 이 해해야 성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성경의 맥락을 이해하고 성경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짧은 시간에 성경의 참뜻을 아는 단기 속성형 방식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이런 방식 좀 계발해 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이 세상에 성경을 대상으로 그런 것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습니 다. 성경의 참맛이라는 것은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맛보기 어려 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넓고 깊기 때문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을 조금 더 가까이 알려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이나 정답은 모르지만 차선의 방식과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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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시작 지점은 간단합니다. 초보자의 자세로, 바보의 자세로 성경을 배우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 서 바보라는 의미는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무신론자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실제로 시편 53편은 무신론자를 어리석 은 자[the fool]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더라도 성경을 상식적
수준으로 알려는 사람들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을 알고 싶어 하는 초심자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그런 고민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나아가 서구 철학과 세계사의 가치관 이 면에 자리 잡은 것을 파악하는 데도 성경은 필수적이므로 종교가 없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 습니다. 꼭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 의 만찬>이나 영화 <매트릭스> 같은 작품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욕심은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그렇게 단순한 의도로 쉽게 접근할 수 있 는 책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자 칫 젠체하고 접하면 체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접근하기가 간단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습니다. 열심히 읽어도 문자를 읽는 것 이상을 이해하기 어렵고, 아무리 읽어도 그 맥락을 알아 차리기 어려웠습니다.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을 봐야 하고, 왜 성경 이 66권이나 되는지, 그 66권이 어떻게 하나의 틀 안에서 궤를 같 이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시기에 처음으로 성경을 접했습니다. 성 경을 읽을 때 나무를 봐야 하는지, 숲을 봐야 하는지 그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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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한 채 무작정 덤볐습니다. 어렵더군요. 한글 성경을 보다 어려워 쉬운 성경을 보고, 그것도 어려워 어린이 성경도 보고, 이 도 저도 안 되겠다 싶어 만화성경도 봤지만, 성경은 어려웠습니 다. 조금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그런 오묘함이 성경의 매력이더군요. 그런데 참 신기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성경을 접하다 보니, 왜 성경이 어려운지 어렴풋이 느껴졌고, 이런저런 참 고서적들, 유명한 학자나 목회자들의 글을 보면서 그때부터 조금 은 새롭게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다른 책 66권이 왜 하나의 책이 될 수밖에 없는지 아주 조금씩 느끼게 되었을 때, 성 경은 진리 이상의 감동과 겸허함을 느끼게 해 주는 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성경 바보들을 위한 것입니다. 바보들은 성 경을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가는 것보다 전체의 틀 속에서 성경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전체 맥락을 알 수 있고 맥락을 알아야 세부 사항을 살필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보들의 첫 번째 미션은 하나님의 장대하신 구원 계획 부터 살피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초의 구원 계획 부터 시작해 하나님이 선택한 인물들과 하나님의 원칙들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이른바 구속사적 시각입니다. 사 실 나는 구속사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뜻조차 제대로 알 지 못했습니다. ‘죄인을 옥에 가두는 구속과 하나님이 무슨 관계 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죠. 여기서 구속은 해방, 구원을 뜻한 다고 보면 더 접근이 쉽습니다. 즉, 구속사라는 것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에 따라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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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의미하는 것이죠. 창조 때로의 회복을 위한 구원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위한 완성, 일단 이 과정을 조금씩 느끼다 보면 성경 이 66개의 개별 책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의 책이라는 점을 우선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성경이 왜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책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구속사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인류 회복과 완 성 계획 안에서 한 권의 책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나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을 순서대로 살펴볼 것입니다. 접근은 역 시 바보들을 위한 방식입니다. 바보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을 통해 궁금증을 함께 해소해 나가면 어떨까 합니다. 더러, 고대 근 동 문화의 특색을 이야기할 때는 조금 낯설고 어려울 수도 있고,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 등을 이야기할 때는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 만,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개념들을 살피며 전체 틀 속 에서 이해를 하면 유익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이 책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는 60대 중반을 넘겨서야 하나 님 앞에 서게 된 나의 어머니였습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성경을 처음 읽는 내 어머니 같은 분들에게, 성경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구절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 내가 원하는 부분만 선별해 보는 책 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이 안에 담긴 이야기들 이 놀라울 정도로 하나의 틀과 원칙 아래 진행된다는 점을 나누 고 싶었고, 그걸 알았을 때의 짜릿함을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또, 신앙생활을 해 온 분들에게는 성경 각 책의 의미를 넘어서 서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측면에서 조망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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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야기를 풀어 내려갔습니다. 좋다고 느끼는 말씀만 따로 모아 성경을 보는 것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적잖은 유익이 될 것입니다. 또,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성경을 단행본 66권 각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성경을 전혀 다른 장르와 문체 등의 개성이 분명한 66권으로 우리에게 주셨는지, 이 66권이 어떻게 하나의 맥락 속에서 이어지는지를 느낄 수만 있어도 이 책은 자체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성경적 세계관을 상식 수준에서 알려 하는 분들에게 지난 2천 년 동안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서구 세계를 감싸왔는지 그 내적 힘을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혹시 이 책을 통해 성경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조금 더 관 심을 갖게 되더라도 우리가 여전히 바보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믿 음을 모르는 바보, 지적인 바보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교적 겸양의 바보로 남아, 온전히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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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회복과 완성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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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회복 프로젝트 성경을 처음 접하면 대체로 한숨부터 쉬게 됩니다. 너무 두꺼운 책이죠. 종이 재질은 얇은 데 그림 하나 없고 빽빽한 글씨로 천 쪽이 넘습니다. 구약 39권에 신약 27권, 모두 66권이 하나로 묶 여 있다 보니 그 분량 앞에서만도 기죽기 쉽지요. 그런데 성경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 아주 기막힌 점을 느끼게 됩 니다. 이 전체 66권, 저자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문체나 장르 등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66권이 하나의 궤를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말 놀라운 부분이죠. 표면적으로 너무 달라 보이는 66권을 하나로 묶는 궤는 무엇일까요? 보통 ‘구속사’라는 어려운 단어로 표현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로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 문제를 무척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 ‘구원’을 또 다 른 말로 ‘회복’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회복한다는 것은 뭔가 파 괴되었음을 전제합니다. 그러니 뭔가 좋고 나은 것이 좋지 않은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좋았던 상태로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순서를 따져 보면 ‘좋은 상태’가 ‘나쁜 상태’로 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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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회복’ 단계가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좋은 상태’, 특히 하나 님 보시기에 좋았던 상태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맞습니다. ‘하나 님 보기 좋으셨던’ 또는 ‘하나님 보기 심히 좋으셨던’ 창조의 상태 입니다. 그러면 ‘나쁜 상태’는 어떤 상태를 말할까요? 그렇습니다.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죄를 지어 타락한 상태입니다. 즉 회복이 필요한 상태가 됩니다. 문제는 하 나님의 주권적 개입으로 회복이 되더라도 다시 인간들의 타락으 로 세상은 좋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과 회복, 그리 고 이어지는 타락이 반복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인 셈이죠. 하나님은 이 회복을 위해 구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을 사용 하셨고, 최종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을 열게 하셨습니다. 회복 이후에 인간이 다시 안 좋은 상태로 돌아갈 것을 대비해 보여 주신 것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종말의 모습이지요. 그러니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그 리셨던 회복은, 먼저는 창세 당시의 보기 좋았던 모습으로의 회복 이고, 그 다음으로는 다시 죄악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도록 우리 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완전한 회복입니다. 세상을 회복하시기 위 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또한 자신의 모양과 형상 을 닮게 만드신 피조물 즉 인간을 대리자로 활용하십니다. 또한 세상을 완전히 회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다시 이 세상에 보내실 것입니다. 이런 회복과 완성의 장엄한 프로젝트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에 이어지는 성경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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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 66권은 1,189장, 31,173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자는 40여 명, 저술 기간은 1,600년 정도입니다.1 ) 이 전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하나만 꼽으라면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아마도 많 은 분이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꼽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선언문과 같은 말씀 이후 요한계 시록까지의 이야기는 태초의 천지창조부터 그 이후의 과정을 담 고 있기 때문에, 큰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 1장 2절부터 요한계시 록 22장 21절까지의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 할 수 있지요. 자, 그렇다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천지 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태초에 이 세상 모 든 만물을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성경의 첫 문을 열며 ‘하나님이 다 만드셨어’라고 한마디 툭 던지고 뭘 어떻게 만 드셨는지 죽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배경(땅과 바다 하늘 등)을 만드셨 고, 이후 배경을 구성하는 각종 동식물 등을 만드셨습니다. 그러 고 나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어요. ‘보시기에 참 좋다’라고 말이죠. 그렇게 혼돈의 세상은 질서의 세상으로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참 좋다’는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토브는 행복을 의미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세상의 모습 을 보고 행복해하셨다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창세기 1장은 이
1 ) 가스펠서브, 『라이프 성경사전』(서울: 생명의말씀사, 2006), 1102~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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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행복의 정의를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던집니다. 피조물인 우 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의 정의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죠. ‘어떤 것 이 진짜 행복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성경을 읽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 행복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아니라면 그건 고통 또는 고난이 되는 것이겠죠. 즉, 행복하 지 않은 상태는 회복 즉 구원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회복되어야 다시 ‘토브’의 상태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남자와 여자 하나님이 보기에 좋으신 것이 많았는데, 그중 ‘보기에 심히 좋으 셨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게끔 창조하신 것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는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세상을 다스리게 하자고 말씀 하셨습니다(창 1:26).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고 하 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본떠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 해, 하나님의 권한과 능력을 위임받은 존재로 창조된 것이죠. 형 상과 모양이 다른 짐승들에게는 대리권을 줄 수 없으니, 하나님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인간에게 통치권을 위임하신 것입니 다. 이런 측면에서 피조물인 우리는 정말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렇게 대단한 권한을 받았지만 그리 대단히 잘 살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지만 정작 인간은 권능 의 대리자답게 살지 못한 것이죠. 이런 점은 태초에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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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능인 걸까요? 사람들은 항상 하나 님의 능력에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고, 하나님이 원 하시는 일보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릴 줄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인간적 본능일지도 모릅 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으셨’을까요? 아 닐 겁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지 않은 삶’ 그러니까 토브가 없 는 삶의 모습이 그때 그들의 삶이고 지금 우리의 삶인 것이죠. 창세기 1장과 2장은 모두 천지창조의 시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방점이 조금 다릅니다. 창세기 1장이 세상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2장은 인간 창조에 초점이 찍혀 있습 니다. 쉽게 말해 1장은 세상이라는 ‘배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보여 준다면, 2장은 남자와 여자라는 ‘인물’이 어떻게 만들 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죠. 창세기 첫 두 장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창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독자들에게는 조 금은 다른 관점에서 더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셈이죠. 이어서 3장에서는 선악과 ‘사건’이 발생하면서 창세기 1~3장을 통해 배경, 인물, 사건 3가지 요소가 모두 등장합니다. 소설의 3요소를 말할 때 흔히 인물 사건 배경을 언급하는데, 그런 면에 서 창세기는 소설적 구성 요소를 그 옛날 옛적에 구비한 셈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흥미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 겠죠. 자, 이제 창세기 2장에 담긴 최초 인류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태초의 시대는 ‘토브’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창 세기 1장과 2장에서는 ‘토브’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토브’가 없다는 표현이 딱 한 번 나옵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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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은 어떤 상황에서 ‘토브’ 하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바로, “사람 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였습니다. 아담 혼자 있 는 모습이 영 외롭게 보이고 불완전하게 보이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돕는 배필”(18절)을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사용 된 돕는 배필은 히브리어로 ‘에제르 케네그도’, 영어 성경에는 헬 퍼(helpe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에제르 케네그 도’는 그냥 돕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돕는 사 람, 즉 나보다 강하고 뛰어난 돕는 사람의 의미입니다. 특히, 이런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룰지로다”(24절)라고 말씀하시면서 남자 와 여자는 서로 보완하고 협력해야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으로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성경은 남녀가 부부가 될 때 안정, 질서, 토브의 상태 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불안정 무질서의 상태라고 보는 것이겠죠. ‘남녀가 연합해 한 몸을 이룰지라’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부부관계의 최종 결정권자로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지만, 태초의 상황을 보면 남편의 현명한 결정을 돕는 존재(helper)로서 여성의 존재 이 유에서 적잖은 무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여성적 특성을 통 해 남성의 부족한 점을 채워서 남녀는 더 완벽한 상태가 될 수 있 게 설계하신 것이 인간이라는 점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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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 그리고 저주 ‘돕는 배필’로서 여성이 가진 이런 특성 때문일까요? 한 가정에 서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아내의 판단력이 중요하게 작용할 때 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으로서 남편의 결정권에만 의존했을 때보 다 여성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의견이 더해졌을 때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결론 도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릅니 다. 이런 점은 태초부터 돕는 배필(helper)로 설계된 여성의 특성과 여러 모로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의 세상에 등장한 사탄이 인간을 유혹할 때 접근한 것은 아담이 아닌 하와였습니다. 어쩌면, 돕는 배필을 설득해 남편을 돕지 못하도록 만들려 했던 것이 사탄의 전 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하와는 사탄에게 마음을 빼 앗겼고, 하나님이 절대로 넘어오지 말라고 하셨던 피조물의 경계 를 넘어서, ‘먹음직하게’ 보인 선악과를 주저 없이 따 먹게 됩니다. 넘지 말라는 경계를 넘어선 인간,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 어졌던 창조의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창조의 질서가 깨지니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들의 질서에도 문 제가 생깁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분열이 생기고, 사람과 창 조주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그 렇게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창조의 질서는 이제 혼돈 속으로 빠져 들게 되는 것이죠. 이 타락의 순간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것은 뱀과 여자를 놓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 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어야 합니다. 이제 뱀은 여자와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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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되었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도 원수가 됩니다(창 3:14~15). 이 패러다임, 즉 여자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 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구도는 이후 진행되는 인류사에서 커다 란 패러다임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구도를 세례 요한이 잘 보여 줍니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독사의 자식들 아”(눅
3:7)라고
외치며 세상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교회와
세상, 신자와 불신자, 선택받은 사람들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의 대립 구도임을 상기시킵니다.1 ) 또 하나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 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으로 상징되는 사탄 마귀를 정복하실 것이고 뱀은 예수님을 십 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 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므로 ‘발꿈 치를 상하게’ 하는 정도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런 부분은 성경의 여러 말씀 가운데에서도 특히나 더 놀랍게 느껴집니다.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을 통한 구원의 계획까지 이미 태초 시대부터 다 짜여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의 이미지가 창세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설계하신 구속사의 회복과 완성 프로젝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 또 하나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가 결국 부활을 통해 회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뱀은 끝내 회복하
1 ) 『ESV스터디바이블』, 김귀탁 외 4인 공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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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를 위한 성경 안내서
지 못하고 패배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단 한 구절을 통해 이토록 원대한 세상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하나님 말 고는 없을 것입니다.
타락의 역사 하나님의 저주 이후 인류의 역사는 타락의 역사입니다. 오죽 하 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으면’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빼고 온 인류를 다 없애 버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악 이 후, 온 인류와 세상에 죄악이 전염되었고 넘쳐흘렀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다시 회복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노아의 방주 사건은 하나님의 회복 프 로그램 1단계 가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주는 어떻게 보면 세 상의 축소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에덴동산, 즉 창조 때의 모 습을 담은 축소판이죠. 그렇게 하나님은 세상을 다시 한 번 재창 조, ‘리셋’ 하시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이후 인류는 어땠습니까? 인류는 또 정신을 차리 지 못하고 타락의 길을 자처했습니다. 세상 인류를 흩어지게 하면 서 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인류는 거 절했고, 흩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기로 합니다(물론 ‘하늘까지 닿는’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말을 의미하지 요. 실제로 그들이 쌓은 탑은 고대 중동의 지구라트의 일종이었을 거예요).
그것
이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선악과 사건과 많은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선악
1부 하나님의 회복과 완성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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