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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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주 동안 교회에서 나누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잃어버린 기독교의 보물 교리문답 교육

기독교가 전파된 지 백 년이 훌쩍 넘으면서 한국 교회 안에서 교

(REDISCOVERING CATECHISM)

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도널드 반 다이켄 지음 | 김희정 옮김 | 신국판 | 184페이지 | 8,000원

사람들이 교리 공부를 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저 역시 교리 강사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정리하고 가장

여기저기 불려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적인 풍조들 속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리문답은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필수적이

에서도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교리에 대한 이 관심이 우

다. 그래서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일은 기독교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해 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이 책은 교리문답 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교리문 답 교육의 역사 및 실제 교리문답 교육에 필요한 방법까지 소개한다. 교 리문답 교육을 거의 접해 보지 못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부모들은

리나라에서는 지극히 “사적인 것”이 되어 있다는 현실입니다.

물론

교회 차원에서 교리문답 설교를 도입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

이 책을 통해 언약의 자녀들을 길러 내는 데 필수적인 교리문답 교육의

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한국 교회 안에서 교리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

중요성을 발견할 것이다.

을 “책으로” 배웁니다. 책이 아니더라도, 주일 예배 때 목사의 설교에서 배우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독서 클럽·스터디 그룹·소규모 모임에서

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사랑하는가 (THE GOOD NEWS WE ALMOST FORGOT) 케빈 드영 지음 | 신지철 옮김 | 신국판 | 456페이지 | 20,000원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신 앙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로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배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교리를 배우는 것은 교회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리가 진실 로 “말씀의 요약”이라면, 이 말씀의 요약은 교회에서, 공적인 설교를 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 시리즈

지만 공적인 배움이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사적인 배움은 자칫하면 “밀실의 영지”( 靈知 ) 가 되기 십상 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슬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서 성경의 진리를 밝히 보여 주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강해

게는 “교리문답을 설교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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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 이 책은 젊은 개혁주의 목회자가 자신의 교회 성도들을 위해 간략

한국 교회에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에 대한 설교집이 많지 않습니다. 미진하고 부족함

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본문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전

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교회에서 행했던 설교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것은 이 책이 교회에서 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 집이 특히 목사님들에게 많이 읽히고 여기저기에서 교리문답이 설교될 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AN INTRODUCTION TO THE HEIDELBERG CATECHISM) 라일 비어마 외 3명 공저 | 신지철 옮김 | 신국판 | 448페이지 | 20,000원

서 교리문답에 대한 글과 책이 많이 나오고, 이로 인해 한국 교회 전체가 풍성해지며 제 설교 역시 더 풍성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 지은이 서문 중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신학 적 입장을 소개하는 입문서인 이 책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해 한 세기 동안 연구되어 온 참고문헌 목록들을 제공한다. 또한 하이델베 누스의 대교리문답과 소교리문답도 함께 실려 있어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과 비교하고 대조하여 살펴볼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하이 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 상세히 이해할 수 있을 뿐 아 펴볼 수 있을 것이다.

우 리 의

하이델베르크 전경 1572년, 동판화, 채색.

위 로

Georg Braun und Franz Hogenberg, .. ≪Civitates orbis terrarum≫, Band 1, Ko ln 1572.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Heidelberg

지은이

윤석준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신학대학원 ( M.div ) 에서 공부했으 며, 2009년 11월에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서 유은교회를 설립하 여 개혁교회를 세우는 일에 진력하고 있다. 구속사적 성경해석, 교리문답 해설과 설교, 개혁교회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쓸 계획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1·2 』 , 『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1·2 』가 있고, 거트루드 훅 스마의 『 어린이 성경 이야기 』 를 옮겼다 ( 이상 부흥과개혁사 출간 ).

윤석준 지음

르크 교리문답을 작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감당한 자카리아스 우르시

니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기본적인 신학적 입장들에 대해서도 살

윤석준 지음

하면서도 정확하게 교리문답을 설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책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하 나 님 과

하여 가르쳐져야 합니다. 공적인 배움이 있는 곳에서 넘쳐나는 사적인 배움은 반가운 것입니다. 하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주로 사도신경과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해설하면

달하는 설교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삼 위

ISBN 978-89-6092-439-0 ISBN 978-89-6092-409-3 (세트) www.rnrbook.com 값 18,000원

유은교회 카페 http://cafe.daum.net/sola -  g ratia


목차

추천의 글… ……………………………………………………………………………… 7 지은이 서문… ………………………………………………………………………… 17

제 3 부 우리의 감사에 관하여

제32주일: 성도의 감사가 의미하는 것… …………………… 23

제33주일: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산다는 것… ……… 38

•십계명에 관하여

제34주일: 제1계명 -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   … …… 54

제35주일 ( 1 ) : 제2계명 - 우상 숭배와 말씀설교… ………… 68

제35주일 ( 2 ) : 제2계명 - 형상화… …………………………… 83

제36주일: 제3계명 - 입을 지으신 하나님… ………………… 97

제37주일: 제3계명 - 맹세의 경건한 사용… …………………110

제38주일: 제4계명 - 주일성수…………………………………122

제39주일: 제5계명 -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 ………………135

제40주일: 제6계명 - 인간 존재의 영광스러움… ……………149

제41주일: 제7계명 - 몸과 영혼의 순결…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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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HEIDELBERG CATECHISM

제42주일 ( 1 ) : 제8계명 - 참된 보화와 헛된 땅의 것…………179

제42주일 ( 2 ) : 제8계명 - 말세를 사는 주의 백성… …………192

제43주일: 제9계명 - 진리이신 하나님과 거짓의 마귀………205

제44주일: 제10계명 - 온 계명에 거치는 탐욕… ……………220

•기도에 관하여

제45주일 ( 1 ) : 기도자의 자세 ( 1 )… …………………………234

제45주일 ( 2 ) : 기도자의 자세 ( 2 )… …………………………249

제46주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265

제47주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되소서… ………………281

제48주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296

제49주일: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309

제50주일: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324

제51주일: 회개란 무엇인가……………………………………339

제52주일: 시험과 악에서 건지옵소서…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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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집을 저의 참된 스승이 되신 고려신학대학원 유해무 교수님께, 그리고 부족한 종의 설교를 들으며 부지런히 그리스도께 매진해 온 사랑하는 유은교회 성도들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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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추천의 글

한국 교회와 교리문답 설교

유해무 ( 고려신학대학원 )

1. 한국 교회가 부흥과 성장으로 상승한 것이 세계 교회사에서 전무 했다면, 바로 그 한국 교회가 온갖 추문으로 추락하는 속도도 후무할 것이다.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이스라엘의 아름다움 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애 2:1 ). 교회에는 양 ( 量 ) 이 먼저 있 어야 질 ( 質 ) 도 수반된다고 자부하던 시절이 엊그제였는데 말이다. 한국 교회는 그간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건축 하고,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더러는 한국 교회의 쇠퇴와 감소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교회와 한국 사회가 이런 현상을 일반적으로 체감하는 정도가 되었으니 이 평가가 사실일 수 있 다. 특히 한국 교회의 노령화 현상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으며, 청장년 은 물론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의 예배 출석률은 급감하고 있다. 온통 취업과 돈벌이에 몰두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교회와 교 인들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주일 교회학교는 대안이 없을 정도로 위 기를 맞고 있고, 급기야는 주일학교를 폐지하고 부모와 함께 오전 공예 배에 참석하게 하는 새로운 몸부림도 등장한다. 가정과 부모의 신앙 교 육만이 한국 교회의 장래를 기대하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의 일부이다. 2. 한국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선물임에 틀림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것이 성장 자체에 인간적인 방법이 온전히 배제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전면적인 자기반성을 통하여 지난날의 공과 ( 功過 ) 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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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피면서 주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장래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교회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미국 교회의 영향을 모든 면 에서 받았다. 말씀을 사랑하고 전도에 열심을 내며 교회를 위하여 헌 신하고 힘써 연보하는 좋은 전통을 전수받았다. 동시에 전천년설의 영 향으로 내세 지향적이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성 경적인 삶의 자세는 약했는데, 이런 자세가 아주 묘하게 현세 지향적 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기보다는 이 땅에 서 온갖 복을 다 누리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외적으로 세력을 넓혔고 기독교적 문화도 사 회에 알렸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의 건강한 영향력이 동반 상승한 것은 아니다. 신자들이 불신자와 같은 죄목으로 언론에서 지탄을 받으 며, 심지어 목사들, 특히 대형 교회 목사들의 온갖 추문으로 인하여 “개독교”라는 말이 정착하고 말았다. 3. 상대적으로 한국 가톨릭교회는 부흥기를 맞고 있다. 특히 2014년 8월에 있었던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으로 많은 이들이 성당으로 몰 리고 있으며, 교회를 떠나 영세를 다시 받는 신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가톨릭은 반 ( 反 ) 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하면서 지난 500년 동안 자기반 성을 통하여 꾸준하게 내부 개혁을 시행하였고, 특히 한국 가톨릭교회 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 그해 8월 15일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경찰 추산 80만 명이 회집한 이른바 성모승천축 제에서 교황이 품위 있게 미사를 집전한 것은 개신교회와는 다른 차분 한 모습으로 우리 국민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대형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가 전혀 없었으며 집회 후에 거리를 깔끔하게 정리 하여 좋은 인상을 남겼다. 4. 가톨릭교회는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6개월 내지 1년간 시행한 후 에 영세를 받게 하는데, 이 교육을 맡을 수녀가 부족하다는 행복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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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들려온다. 한국 개신교회는 어떤가? 단적으로 세례를 너무 쉽게 베푼다. 특히 진중 세례와 같은 집단 세례를 통해 양적 성장을 실현하 였지만, 수세자들을 실질적인 성도로 훈련하는 질적 강화는 애초부터 없었다. 우리 개신교회가 폭발적으로 전도하여 예배당이 교인으로 가 득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한국 교회는 G20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그 것도 강력하게 성장하는 가톨릭교회와 대결하는 상황에 처했다. 고대 교회는 3년 동안 교리교육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제1, 2계명이 금하는 우상 숭배와 관련된 연극배우·우상 제작자·마술사·주술자, 또 제6계명이 금하는 살인과 관련된 검투사나 군인, 그리고 제7계명과 연관된 포주와 창녀는 그 직업을 버려야 학습교인으로 등록시켰다. 또 이들에게 성경의 기본 교리들을 차근차근 가르쳤고, 주변 이웃조차 인 정하는 믿음의 열매가 있다는 보고가 있어야 세례를 베풀었다. 로마제 국의 핍박이 알려진 바와는 달리 그리 크지 않았지만, 교인이 되려면 사회적 지위나 안정된 직업과 돈벌이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고대 교회는 현세의 고난을 기꺼이 지고 갔던, 아주 분명한 종 말론적 신앙공동체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자 점차 성인 세례는 사라지고 유아세례가 정착하였지만, 가정과 교회에서 자녀들에 게 행하는 교리교육도 동시에 약화되었다.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 하자 유럽의 기독교는 더욱 심하게 명목상의 기독교로 쇠락한다. 주후 800년의 성탄절에 교황에 의해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에 세워진 샤를마뉴가 이미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의 교육과 암송을 강조했고, 중 세에는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십계명도 교회에서 주요한 위 치를 얻었다. 하지만 공권력의 공인을 받음으로 점차 세상에 적응한 교회는 늘 나태하고 무력하게 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회중이 알지 못하 는 라틴어가 예배의 공식 언어였기 때문에, 사제들이 행하는 미사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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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하게 미신적인 방법을 동원한 사적인 경건 생활이 교인들 사이에 유행하였다. 5. 이런 상황에서 교회를 개혁한 루터 선생이 이후에 큰 관심을 기울 인 부분이 교리교육이었다. 중세 교회는 미사만을 중시하면서 성경 강 해와 교리교육을 등한시했지만, 루터는 교인들이 교리에 무지한 것을 통탄하면서 1529년에 「대소교리문답서」를 동시에 작성하였다. 「대소 교리문답서」는 설교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교리 설교를 요약하여 정리 한 것이고, 「소교리문답서」는 매일 가정에서 자녀들을 위하여 읽어줄 수 있는 교육서였다. 칼빈 선생도 두 교리문답서를 작성하여 제네바 교 우들과 자녀들을 가르쳤다. 개혁교회의 교리문답서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 1561년 ) 이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이 문 답서를 매 주일 설교하며, 교회와 가정과 학교에서 교우들을 가르친다. 왜 종교개혁자들은 교리 설교와 교리교육을 강조하였을까? 중세 가 톨릭교회는 화체설에 기초한, 보는 미사를 강조하면서 교인들이 미사 에 참여만 하여도 구원과 내세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받는다고 주장하 였다. 설교는 형편없이 약화되었고, 교인들의 성경 지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를 비판한 개혁자들은 강조점을 보는 예배에서 듣는 설교로 옮겼다. 교인들이 설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을 배워 야 하며, 또한 성경을 요약한 교리를 전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개혁자들은 오후예배를 신설하여 교리를 가르쳤다. 오후 예배는 구약 시대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이 그간 갖지 못하였던 안식일 예배를 보충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그렇지만 종교개 혁자들, 특히 개혁파 선배인 칼빈과 부처 등이 주일의 두 번째 예배로 교 리를 설교하는 전통을 세웠다. 오후예배보다 주일 저녁예배를 지킬 경 우, 그 의도는 주일을 온전하게 주님과 함께 보내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그런데 미국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주일의 두 번째 예배를 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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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찬양 예배로 바꾸면서 간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 교회는 주일에 교리문답 설교를 듣는 전통을 전수받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교인들이 쉽게 이단에 빠지거나 심지어 신앙을 잃어버리 고 마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6. 한국 교회의 위기를 여러 방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설 교의 위기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큐티 ( QT ) 같은 방식으로 성경 묵상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매일 큐티를 한다고 하 더라도, 성경 전체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큐티는 성경을 주관적이 고 임의적으로 해석하며 적용하게 만드는 습관을 조장하였다. 더구나 목사들의 설교는 한국 교회의 성장에 걸맞게 질적으로 발전하기는커녕 저하되었다. 성경 전부를 가르치는 목사가 점점 희귀하여지고 있으며, 말씀에 기갈난 자들은 교주를 목표점으로 삼아 성경을 일관되게 가르 치는 이단에 쉽게 빠진다. 여기에다 한국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설교 수준은 종교개혁 당시의 무식한 신부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 교회 목사들의 설교는 이단이나 가톨릭교회보다 질이 더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점에서 한국 교회와 목사들은 설교를 최고의 은혜의 방편으로 확신하고 교리 문답을 매 주일 가르치며 표호처럼 설교하였던 종교개혁 전통에서 한 참 벗어나 있다. 앞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성경 및 교리문답 교육, 그리 고 설교에서 이단이나 가톨릭교회와 경쟁하여 이기지 못하면 그 존립 자체가 위기를 맞을 것이다. 7. 한국 교회의 장래는 올바른 말씀 설교에 달려 있다. 부활하신 예 수님이 제자들에게 선물하신 으뜸가는 은혜의 방편이 말씀 설교가 아 닌가! 하나님이 언약의 책인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언약 백성에게 신실 하게 전하는 사역자를 파송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말씀의 사역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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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기도하면서 직접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신학의 “학”은 ‘로고스’에서 왔으니, 학문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 씀”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을 말할” 수 있다. 그 러므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목사는 이런 사적 ( 私的 ) 신학의 현장인 골방 신학이 있어야 공적 ( 公的 ) 신학의 현장인 설교단에 올라갈 수 있고 공 예배 ( 公禮拜 ) 의 집례자가 될 수 있다. 설교자는 설교단에서 어떤 사적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한국 교회의 위기를 일차적으로 골방 신학에 기초한 공적 신학인 설교의 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칼빈 선생의 말처럼, 사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파할 때 회중은 그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한국 교인들이 설교를 대하는 자세 에는 고쳐야 할 바가 많다. 설교자가 교회에서 성령으로 말씀을 선포 할 때, 회중은 같은 성령 안에서 말씀을 경청하고 세상으로 파송 받아 엿새 동안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 교자는 회중이 설교를 잘 이해하도록 별도의 시간을 내어 성경을 가르 쳐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그들이 가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 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다 ( 마 28:19~20 ). 그런데 한국 교회는 세례 교인들을 주님의 명령을 따라 성실하게 가 르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말씀에 굶주릴 수밖에 없 고, 교회 안에서의 신앙과 세상에서의 삶이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다. 그런 수준에 맞추어 행해지는 주일 설교는 허하기 이를 데 없는 타 협이며 직무유기의 결실이다. 설교자와 회중은 말씀과 관련해 하향평 준화를 이루어 늘 젖만 찾으며, 딱딱한 음식은 나오지 않고 그렇기 때 문에 먹을 수도 없다. 이렇게 교인들의 성경 지식이 크게 부족함으로 딱딱한 음식인 설교를 견디지 못하고, 설교자가 강단에서 개그를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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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려 하는 못된 버릇이 교인들에게 생겼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 지 못하면 한국 교회는 이단과 가톨릭의 침투와 교인 탈취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8. 이런 상황에서 윤석준 목사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집을 준비하였다. 한국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을 채택하 고 있다. 그렇지만 청교도와 장로교회 안에는 성경 말씀이 아닌 인간 의 문서는 강단에서 설교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고, 그 의도는 좋았지만 결국 이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한국 교회는 결과 적으로 위에서 말한 악순환의 덫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덫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대안이 교리설교이다. 교리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가? 그렇지 않다. 고대 교회는 세례 청원 자에게 교리의 요약인 사도신경, 기도의 교과서인 주기도문, 삶의 표준 인 십계명을 가르쳐 암기하게 하고 이를 삶으로 증거해야 세례를 베풀었 고, 이후 삶에 신자의 증거를 나타내지 못하면 권면하고 징계하였다. 그 리고 세례 교인은 세례의 의미와 성찬을 중점적으로 배웠다. 「하이델베 르크 교리문답」은 믿음과 삶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을 아주 쉬우면서도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도록 잘 요약하여 문답 형식으로 작성하였다. 한국 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이런 교리문답 교육과 설교이다. 윤 목사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4년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세 번 이상 가르치고 설교하였고, 그 열매의 유익을 한국 교회와 함께 누리려고 이 설교집을 묶었다. 9. 윤 목사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집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 다. 첫째, 지은이는 교리문답을 교회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공부가 지적 작업에 머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말씀과 교리 공부의 일차적 자리는 예배이며 교회이고, 말씀의 직분자 가 이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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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 설교집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잘 드러낸다. 지은이는 곳 곳에서 구원 역사와 말씀의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이 앞서고 주도하고 계심을 강조하는데, 제1주일 설교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또 제9주일에 서 “성부”의 창조사역을 설명하면서도 “성자”를 통해 창조를 볼 것을 말하는 부분이나, 부활 후 승천의 유익을 말하는 18주일에서 승천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와 “성령이 우리 안에”를 동시에 보여 주는 일 이라고 잘 설명한다. 열 번째 계명을 해설하면서, 탐심을 제어하는 힘 이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성자 하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에 기초 하여 성령님의 거룩하게 의탁하게 하심을 통하여 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삼위일체적 해설이 이 책의 곳곳에 나타나는데, 이는 이 설교집 이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가령 조직신학 ( 교의학 ) 에서 말하는 각론을 따 라 정리한 셈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셋째, 이 책은 평이하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성격을 따라 구 원 역사를 성경적으로 차분하게 잘 풀어내고, 교리문답의 질문과 답변 의 논리적 순서를 존중하면서 사변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 「사도신 경」의 전반을 설명하는 제8주일 같은 곳을 보면, 「사도신경」의 뛰어남 을 “존재론적으로 말하지 않고 경륜적으로 말함”, “계시 중심적 사고 란 우리의 사유와 공상, 논리를 통해 하나님께 접근하지 않고, 하나님 이 주신 계시를 통해 접근해야 함”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 야 하는 근본적 이유를 “송영”이라고 대답한다. 논리와 사변이 성경을 앞지르지 말아야 하며, 신자가 교리를 고백하는 이유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교리 설교가 무미건조하거나 딱딱하다는 선입견과 편 견을 잘 불식시킨다. 교리문답은 성경과 경쟁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문답의 방식으로 정리한 요약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 설교집은 실천적이고 교정적이다. 곧 한국 교회가 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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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믿고 교인들이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것을 실제적으로 지적하고 인도 하고, 따라서 그릇된 관행들과 그 저변에 깔린 잘못된 믿음의 측면들 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때로는 그 비판이 상당히 강하다. 제7주일 설교 서두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적으로 이해된 전도를 비판하고, 제15주일 설교에서 고난에 대한 한국 교회의 그릇된 이해를 지적하며, 제21주일 설교에서 집사직 등 직분의 모양만 남은 제도화를 논의하는 것이 그에 대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이 책은 한국 교회의 예배 및 교회정치의 폐단이나 부족한 바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것들을 성경과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라 교정한다. 특히 설교의 회복을 강조하며, 세례와 성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고 올바른 시행을 권한다. 제27주일 설교에서 유아세례 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고, 제28~31주일 설교에서는 성찬을 바 르게 가르치면서 한국 교회가 연 1~2회 정도의 예식으로 성찬을 격하 시킨 것을 바로잡는다. 여섯째, 이 책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시편 찬송을 소개하고 도입 한다. 구약과 신약 교회, 그리고 고대 교회는 시편을 불렀다. 이것은 삼 위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성취하신 구원 사역을 체험한 언약 백성과 신자들이 그 사역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불러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찬 송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부르는 찬송이나 복음성가는 언약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보다는 개인의 체험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도 이 책은 좋은 교정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종말론적이며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 서 있다. 지은이는 내세 지향적인 천년설을 따르지 않고, 종말의 완성을 향하여 현세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교회를 육성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추천자의 책을 인용하여 부활의 내세의 소망이 내 세에 대한 관심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경성시킴을 말하는 부분이다.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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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대망이 우리를 경성시키기 때문에 항상 현실 삶에서의 충실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제17주일

설교 중에서 ).

교회는 중요하지만, 교회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모범적인 일원이 되지 못하면, 자기 목적의 덫에 빠지는 교회주의가 되고 만다. 지은이는 한 국 교회의 이런 폐단을 잘 지적하고 교정한다. 10. 추천자는 제자 윤석준 목사가 이 땅에 개혁교회를 건설하기 위 하여 수고하면서 펴내는 설교집의 출간을 크게 기뻐한다. 이 설교집이 널리 읽혀서 한국 교회와 설교자, 그리고 교우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 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네[이스라엘]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 호와께서 내[모세]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셨도다”( 신

4:10 ) 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

듯이, “모으다”에서 “교회”가 왔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부르시고, 설교 자를 세워 자기 말씀을 들려주시고,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하신다. 그리고 백성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말씀과 하나 님을 경외함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만이 교회를 존재하게 하며 보존한 다. 이 책이 한국 교회의 존속과 보존에 기여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우 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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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지은이 서문

개혁 교회들은 오래전부터 주일의 두 번의 설교 중 오후예배의 설교는 교리문답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까이는 도르트 회의 ( 1618~1619년 ) 를 통해 규정된 것이지만, 실은 종교개혁의 초기부터 있었고, 더 정확하게 는 루터로부터 유래했습니다.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종교개혁이 발흥한 지 10년 후인 1527년 에 교회 시찰단을 조직해 종교개혁의 진행을 살폈고, 이때 수많은 지역의 교회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있음을 발 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루터가 만든 것이 「대교리문 답」 ( 1529 ) 이었습니다. 루터는 성경교육의 부재, 설교의 미비에 대한 대안 이 교리문답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1533년의 비텐베르크 교회법 의 교리문답 설교에 대한 지침으로 이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츠빙글리 진영은 1532년의 목회 규례에서 “목사가 오후예배에 기독교 신앙의 한 조항에 대해 설교해야 한다”고 했고, 칼빈은 1541년의 교회법에서 교리 문답 설교의 시행을 규정했습니다. 1  )    교리문답 설교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는 대단히 낯선 것이지만 보 편 교회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전통이며, 이런 전통은 다름 아니라 교 리문답의 내용들을 차례로 설교하는 것이 “성경을 잘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1  )     교리문답 설교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내용들은 고재수 교수가 1993년 ICRC 회합(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Reformed Churches September 1~9, 1993 Zwolle, The Netherlands)에 제출한 논문에서 참고하였으며, http://www.spindleworks.com/library/wcf/ catech.htm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글에 의하면 교리문답 설교는 루터를 넘어 종교개혁 보다 훨씬 더 이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지은이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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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전파된 지 백 년이 훌쩍 넘으면서 한국 교회 안에서 교리 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교리 공부를 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저 역시 교리 강사로 여기저 기 불려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적인 풍조들 속에서 도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교리에 대한 이 관심이 우리나 라에서는 지극히 “사적인 것”이 되어 있다는 현실입니다. 물론 교회 차원에서 교리문답 설교를 도입하는 곳이 많이 있지만, 대 개의 경우 “책으로” 배웁니다. 책이 아니더라도, 주일 예배 때 목사의 설 교에서 배우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독서 클럽·스터디 그룹·소규모 모임에서 배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교리를 배우는 것은 교회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리가 진실로 “말씀의 요약”이라면, 이 말씀의 요약은 교회에서, 공적인 설교를 통하 여 가르쳐져야 합니다. 공적인 배움이 있는 곳에서 넘쳐나는 사적인 배움은 반가운 것입니다. 하지만 공적인 배움이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사적인 배움은 자칫하면 “밀실의 영지”( 靈知 ) 가 되기 십상이라는 점에 서, 한편으로는 슬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교리문답을 설교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 책에 담긴 설교들은 제가 섬기고 있는 유은교회에서 2009년 11월 부터 2013년 8월까지, 약 4년 동안 총 세 번에 걸쳐 설교했던 내용들 중 에서 간추린 것입니다. 저도 회중들도 교리문답 설교를 듣고 자라지 못 했기에 여기저기서 구해 읽은 글들로 그 주간의 설교를 위해 분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설교들을 통해 회 중들의 마음속에 진리의 빛을 심어 주셨고, 신자의 신자됨과 교회의 교 회됨, 그리고 삼위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심어 주셨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유은교회의 회원이 겨우 50명 정도인 데 전체 회원이 1,500명이 넘는 것은 제 첫 번째 책 『한국 교회가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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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

때문입니다. 저

희 교회에서 교리문답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책 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주셨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설교집이 많지 않습 니다. 미진하고 부족함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교회에서 행했던 설 교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것은 이 책이 한국 교회에 조금이라도 도움 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집의 출간이 교회에서 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간 절히 바랍니다. 이 설교집이 특히 목사님들에게 많이 읽히고 여기저기 에서 교리문답이 설교될 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교리문답에 대 한 글과 책이 많이 나오게 되고, 이로 인해 한국 교회 전체가 풍성해지 며 제 설교 역시 더 풍성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경공부로 목회를 시작한 제가 교리문답 설교를 시작하면서 신학 의 뼈대로 삼은 분은 고려신학대학원의 유해무 교수님입니다. 신대원 시절에 강의실 한쪽에서 들었던 위대한 진리들이 제 글 곳곳에 서려 있고, 제 책상에서 성경과 『기독교강요』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교과서 가 된 것이 유 교수님의 『개혁교의학』입니다. 제가 신학적으로 그분께 의지해 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며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목사의 설교를 몇 년간이나 끈기 있게 들으며 자란 우리 회중, 제게 참된 스승이 되어 주신 유해무 교수님과 사모님, 그리고 부실한 남편 을 뒷바라지하느라 항상 동분서주하는 사랑하는 아내, 첫 번째 책을 낼 때 는 아기였는데 이제는 불쑥 자라 늘 아빠 곁을 지키고 있는 한빈이와 한슬 이, 이 모든 이에게 말로 할 수 없는 큰 감사를 전합니다. 2015년 10월 23일 딸 한슬이의 생일 하루 전에 윤석준 목사

지은이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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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설교의 성경 본문은 각 설교 앞부분에 실었습니다. 이 책에서 사용된 성경 본문은 대한성서공회의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입니다. 2. 이 책은 예배에 직접 사용한 시편 찬송을 함께 표기했습니다. 시편 찬 송의 장절은 국내에 나와 있는 시편 찬송마다 다른데, 여기서는 시 편찬송가 편찬위원회 ( 서창원 ) 의 『칼빈의 시편찬송가』 ( 진리의 깃발, 2009 ) 를 따릅니다. 3. 교리문답 본문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성약출판사, 2004 ) 에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가져와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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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제3부

우리의 감사에 관하여

지은이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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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주일:

성도의 감사가 의미하는 것 골 3:1~17; 고전 6:9~10

골 3:1~1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 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 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 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 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 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 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 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

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제32주일: 성도의 감사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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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주일 86문: 우리의 공로가 조금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또한 선행을 해야 합 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덕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찬양받으시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 각 사람이 그 열매로써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얻고

경건한 삶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87문: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음란한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하는 자, 강도질하는 자나

그와 같은 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찬송 경배 찬송 - 시 48편 1, 3, 4 성경봉독 후 찬송 - 시 33편 1, 4, 5 설교 후 찬송 - 시 32편 1, 3, 4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신자의 삶에서 “감사”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라고 생각 하십니까? 혹은 신자가 하는 “선행”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 십니까? 로마교회에서는 감사나 선행을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보 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협력하여 구원을 이루는데, 이때 사람 편 에서의 협력이 바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견해가 틀렸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삼위 하나님이 단독으로 행하신 일이지, 우리가 힘을 보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감사가 어떤 것이라고 믿을까요? 구원은 이미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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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것이고, 그렇다면 감사나 선행이란 이루어진 구원에 뿌리는 양념과 같 은 것입니까? 아니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오늘날 교회들

이 구원과 행위의 관계에 대해 갖는 잘못된 견해는 두 가지 정도의 방향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1 ) “은혜로 받는 구원”이 너무 강조되어 신자의 삶에서 나타나야 할 행위적 증거를 무시하거나, ( 2 ) 오히려 신자의 생활에 대한 강조가 너무 지나쳐서 교회가 민주 화 세력이 되고 정치의 장이 되는 양상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 다. 우리가 구원을 명확하게 이해했을 때 감사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일까요? 우리는 제32주일과 함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제3부에서 “감사”라는 주제를 접합니다. 이미 배웠듯이 「하이델베르크 교리문 답」은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첫 부분이 “비참”을 다루 고, 두 번째 부분이 그 비참으로부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분이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이 살아갈 방식으로서의 “감사”를 다룹니다.

왜 “감사”를 다루는가 신자인 우리는 이렇게 제3부의 내용으로 들어가면서, 왜 「하이델베 르크 교리문답」은 굳이 세 번째 부분에서 “감사”를 다루는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문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신자의 삶 에서 왜 감사가 필요한가?”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가 이 교리문답을 펼쳐 읽을 때 제일 처 음 만나는 제1주일의 내용, 그러니까 이 교리문답의 전체 틀을 제공 해 주는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전체 구 조는 사실 제1주일의 2문답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2문답을 보십시오.

제32주일: 성도의 감사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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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러한 위로 가운데 복된 인생으로 살고 죽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답: 다음의 세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나의 죄와 비참함이 얼마나 큰가? 둘째, 나의 모든 죄와 비참함으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셋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즉, 교리문답 전체의 내용은 “우리가 참된 위로 가운데 살고 죽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 리가 이 위로 가운데 살고 죽기 위해 필요한 지식으로는 사실 첫 번째 와 두 번째 대답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참된 위로 가운데

살고 죽기 위해서는, 첫째로 자신이 지독한 죄인이기 때문에 비참한 상황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시하며, 둘째로 그러한 비참함으 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 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까? 사실 세 번째 부분인 “그러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 를 드려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구원 이후의 문제입니다. 즉 우리가 구원받고 어떻게 우리의 삶을 가꾸어 나가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입 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구원받은 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내가 참된 위로 가운데 살고 죽는 데 별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죄인이었다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게 되었다는 사실만 제대로 잘 기억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구원받 을 것이고, 이 사실은 우리에게 충분한 위로를 줍니다. 따라서 그다 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의 문제는 그저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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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하나님께 돌려 드릴 것, 말하자면 “덧붙여진 부록”이라는 생각이 듭 니다. 이는 “동반되어야 할 요소”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어 떻게 우리에게 위로 가운데 살고 죽는 것 자체를 제공해 주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증거로서의 감사 여기에 우리가 믿는 교리의 탁월함이 있습니다. 사실 “감사가 왜 필수적인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감사가 “덧붙여진 부록”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구원이 무엇인지” 탁월하게 보여 준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는 구원을 “한 번 일어나는 신분의 변화”로만 보기 쉽습니다. 즉 “이전에는 불신자로서 하나님의 원수로 살다가 이제 예수 그리스 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구원 의 전부로 이해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교회 안에는

유달리 “첫사랑을 회복하자!”는 말이 많습니다. 신자가 끝없이 구원 의 첫 순간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을 단순히 불신자에서 신자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는 한순간으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만큼 너 의 구원을 위해 일을 했으니, 이제 스스로 네 길을 걸어가도록 해라” 1  )    라고 말씀하는 분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신자에게도 여전히 죄의 유 혹이 도사리고 있고, 아무리 믿은 지 오래된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끊임없는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한순간 에 이루어지고 끝나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 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의 구원은 “성령께서 우리

1  )     허순길, 『교리문답 해설 설교』(사랑과 언약, 2010), II, p. 625.

제32주일: 성도의 감사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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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계속해서 역사하심을 증거하시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

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그런 일이 일어났었 지……”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 실을 계속 보여 주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제기한 질문에 이 감사의 삶이 포함됩 니다. 우리가 설교의 서두에 했던 질문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런 위로 가운데 살고 죽기 위해 왜 굳이 감사를 다뤄야 합니까? 감사는 구원받은 ‘후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덧붙여진’ 것이지, 그것 자 체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훌륭한 위로 를 줍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여전히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훌륭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신자 가 죄의 비참을 깨달았습니다. 구원의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 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이후의 삶을 메마른 사막 같은 세상 속에서 혼자 걸어가야 한다면 어떻게 삶 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 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와 발걸음을 맞추어 함께 걸어가고 계시다

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삶 속에서 받을 수 있는 참된 위로이며, 성 령께서 우리와 나란히 걷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바로 내가 지금 삶 속에서 행하는 선행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어진 구원 을 우리가 굳게 붙잡고 사는 것이 바로 감사이다” 2  )   라고 표현했습니 다. 즉 감사는 구원의 은덕이 지금도 나에게 지속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표”입니다! 개혁신앙을 가진 분들조차도 선행이나 감사를 공로주의적으로 생 각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선행이나 감사가 “구원을 위한

2  )     앞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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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수단”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의 열매”라는 것을 잘 배워 놓고도, 마 지막 부분에서 잘못 생각하면서 다시 공로주의에 빠집니다. 선행이 나 감사를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보답”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 하는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보답이 될 수 있습니 까? 우리가 선행을 하고 감사한다고 해서 그것이 구원을 주신 하나

님께 대한 보답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의 선은 한낱 풀과 같은 것입니다. 온 인류가 행할 선을 내가 혼 자서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에 대한 대가가 될 수 없다는 사 실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공로주의자가 아니지 않습 니까? 구원은 거저 받은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해서 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구원까지는 은혜의 신앙을 견지하다가, 구원 이후에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지점에 서 공로주의로 빠지기 일쑤입니다. 감사는 절대로 구원받은 것에 대 한 대가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의 감사나 선행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 다. 우리가 감사의 삶을 사는 것조차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감사는 “우리가

주어진 구원을 붙들고 살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내 편에서 보면 ‘받는 것’이고, 감사는 내 편에서 보면 ‘주는 것’이다”라 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도 역시 받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을 성령께서 내 삶에서 확인시키시는 방 편입니다.

제32주일: 성도의 감사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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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에서 제가 방금 말씀드린 이 모든 내용을 바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 답」 86문답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설명은 단지 이 86문답의 해설 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왜 선행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는 86문을 보십시오. 바로 우리가 제일 처음에 했던 질문이 아닙니까? 그리고 교리문답이 답을 이어가는 방식을 보십시오. 첫 번째 문장 의 중간에 “뿐 아니라”에 동그라미를 해 두십시오. 이 “뿐 아니라”가 바로 우리가 고백하는 구원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를 잘 보여 주는, 제가 조금 전에 설명했던 내용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교리문답이 보여 주는 우리의 구원은 ( 1 ) 그리스도께서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 신 것뿐 아니라, ( 2 )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 그의 형상을 닮 게 하시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자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고, 성령 께서 우리의 삶에 그 구원을 적용하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구원을 첫 출발점에 선 것에 제한해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구원 가운데 살고 있습니 다. 성자께서 우리를 구속하셨다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열매를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적용시키셔서 우리가 죄 가운데 살지 않고 은혜 가운데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 도께서 죄를 이기시고 생명을 수여하신 일이 단 한 번 일어난 일이 라면, 성령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신자가 삶 속에서 죄를 이기며 살게 하시는 일은 우리의 삶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내용에서 이 감사가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교리 문답이 절대로 이 감사를 “하나님께 대한 보답” 같은 것으로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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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않음에 주의하십시오! 교리문답이 그리고 있는 감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덕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며, “그 열매 때문에 ‘자신의’ 믿음 에 확신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나 선행을 의무처

럼 생각해서 억지로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네가 이만큼 받았으니 이 정도는 해 줘야 되는 것 아니냐”가 아니라, 감사 나 선행이 나타나고 있는 삶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골로새서에서 우리가 오늘 본문으로 읽었던 골로새서 말씀을 보십시오. 골로새 서 3장의 말씀은 신자가 삶 속에서 행하는 선행들이 얼마나 우리의 공로와 상관이 없으며, 그것이 진짜로 표시하는 것이 “천상의 삶”인 지를 잘 보여 줍니다. 1절에 요지가 나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그렇습니다. 신자가 땅에서 구원받았지 만, 구원받은 이후에는 사실상 하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후의 말씀에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2절 ) 고 하면서 죄와 감사의 목록이 나옵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죽이라”( 5절 ),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 운 말을 벗어 버리라”( 8절 ), “거짓말을 말고 옛 사람과 행위를 벗어 버리라”( 9절 ), “너희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함을 입은 자니라”( 10절 ), 그 러므로 너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 라”( 12절 ),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용납하고 용서하라”( 13절 ). 이 내용들이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율법주의적 성향이 많은 사람들은 이 내용들을 행해야 할 과업으로 인식할 것입니다. 이런 사 람들은 신자가 되었으면서도 “자유로 은혜의 일을 행하는 것”이 아 니라 “무거운 짐에 깔린 듯한” 모양이 됩니다. 신자가 되어 죄에서

제32주일: 성도의 감사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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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어 사는 삶이 이전의 죄 가운데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입니까? 골로새서 3장 말씀이 쓰고 있는 이 모든 내용은 과업이 아니라 “우 리가 하늘에 속했으므로 나타나는 필연적인 삶의 모양”입니다! 비록 우

리가 살며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우리 편에서 억지로 무 언가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양태”이지, “되지 않는데도 억지로 수고롭게 해야 할 일”이 아닙니 다. 물론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고통스럽게 할 일이 아닙니다! 제가 팔복에 대해 자주 말씀드리지만, 팔복은 “너희가 억지로 심 령이 가난해지도록 노력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팔복의 내용은 “너희는 이미 심령이 가난한 자이므로 복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팔복은 “이렇게 하면 너희가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지 않고, “복 있도다, 너희여!”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위”를 보여 주는 것이지, 지키기 어려운 것을 노 력으로 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장 말씀도 같은 맥락 입니다. 이 내용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행위 규범이 아니라, “신자라 면 누구나 하늘에 속한 자이므로 이것이 그들의 속성이다”라는 것을 말

해 줍니다. 이 골로새서 본문의 마지막 부분이 어떻게 장식되고 있는지를 보 십시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위의 것을 입으라”는 명령들, 그래서 “악한 정욕과 마음들을 쫓아내라”고 한 말씀의 결론부가 이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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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 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 께 감사하라 ( 골 3:15~17 ).

그렇습니다! 신자의 삶은 한마디로 “감사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이것이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왜 성경은 악한 행위들을 구원의 여부와 결부시키는가 이런 맥락에서 감사와 선행을 이해할 때 비로소 왜 성경이 악한 행위들을 언급할 때 “구원”의 여부와 결부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습 니다. 여러분은 혹시 87문답이 언급하는 성경 본문들을 보면서 의아 하지 않으셨습니까? 87문의 답 부분에 보면 “음란한 자, 우상 숭배 자, 간음하는 자, 도둑질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욕 하는 자, 강도질 하는 자” 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 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창작이 아니고 성경 구절들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두 번째 본문으로 읽 었던 고린도전서 6장에 이 내용이 나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 고전 6: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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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 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 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갈 5:19~21 ).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서 의아하지 않으셨습니까? 성경을 문자적 으로 읽으면, 술 취해 본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이 말씀 그대로라면, 도둑질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천국에 들 어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이런 구절들을 읽으면서 두 가지 극단이 존재합니다. 한쪽은 진짜 이런 범죄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을 막아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 다른 쪽은 예수 믿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지 행위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 구절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첫 번째의 경우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까?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음에도 거짓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과장하고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분이라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접할 때, 율법주의적으로 해석해서 이런 “행위들”이 우리를 구원받지 못하게 한다고 잘못 생각해서 도 안 되지만, 반대로 이것들을 너무 가볍게 여겨서 성경에 이런 말이 있 으나 마나 상관없는 것처럼 만들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 양극단의 해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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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모두 공통의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시각에서 비롯된 잘못 입니다. 감사나 선행을 “단지 행위적으로만” 이해한다는 점에서 그 렇습니다. 즉, 둘 다 어떤 행위들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만 초점을 맞 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적 입장은 “이런 행위들을 하지 않 으면 천국이 없다”고 하는 것이고, 반대편의 입장은 “이런 행위들이 의미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들은 말씀을 잘 이해한다면 성경의 이 구절들 이 가리키는 지향점을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즉 고린도전서나 갈라디아서의 “이러이러하게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은 “어떤 행위들을 했느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시민들의 정체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음란하거나, 탐심을 가지거나, 투기하고 술 취하 는 사람”은 그 일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오늘 교리문답의 가르침입니다. 특별히 87문을 보십시오.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즉 “음란, 탐심, 투기, 술 취함, 분쟁, 당 짓는 일을 하는 사람”은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어떻다고 했습니까? 왜 이들의 삶에 감사나 선행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 습니까? 성령께서 그의 삶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 구원이 외면적으 로 드러나는 것이 성도의 삶에서 나타나는 감사와 선행입니다. 그렇 다면 그가 감사치도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다는 것 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그에게서 성령의 행위가 나타나지 않

는다는 말입니다. 즉 외면적으로 신자라고 할지라도 그가 행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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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이나 탐심이나 술 취함이나 분쟁을 계속해서 나타낸다면, 그의 속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며 신자가 아닌 것입니다. “열매 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0 ) 고 하신 분은 주님이시고, 따라서 이 말씀 은 진리입니다. 87문답은 “이러이러한 사람들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 하게 이야기합니다. 이 교리문답의 가르침이 행위구원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 이 없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타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정리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구원과 행위”에 대한 여러 종류의 그릇 된 이해가 공존하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구원 따로, 행위 따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정반대로 “( 잘못된 입장에서, 사회 복음적 입장에서 ) 행위가 없으면 구원이 가짜다”라고 말합니다 ( 물론 바른 의미에서 행위가 없으 면 구원은 가짜입니다 ).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말할 때 언제나 이 “행위”에는 “구원받은 자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이 제외되거나 등한시된다는 점을 우리가 분명

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1 ) 신자의 삶은 더 이상 율법주의적 인 삶이 아닙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신자는 어떤 행위를 통해서도 구원에서 이탈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선한 모습을 보이는 것 도 구원에 보탬이 되지 않고, 어떤 악한 행위도 구원을 상실하게 할 수 없습니다. ( 2 ) 하지만 동시에,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가짜 입니다. 악을 여전히 행하면서도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 신의 착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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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많은 사람이 이것을 단순히 “구원과 행위의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이해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시도했기 때문에 자 꾸 율법주의가 되거나 사회 복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따라서, 신자의 삶에 동반되는 행위를 구원받은 자의 삶 속 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과 관련하여 이해합니다. “우리 속에 성령께서

계셔서 우리를 만드시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나 선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이해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감사 때문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 착합니다. 내가 내 손과 발로 선행을 행하면서도, 내가 내 입술로 감 사와 찬송을 드리면서도,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감사 하게 됩니다. 내가 날마다 행하는 이 감사와 선행이 바로 성령께서 내 속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의 신자가 살아가는 삶은 언약적입니다. 이 말은 여러 가 지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언약이 “하나님으로 말미 암아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가 언약을 유지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함으로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욱 깊이 깨 닫고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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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주 동안 교회에서 나누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잃어버린 기독교의 보물 교리문답 교육

기독교가 전파된 지 백 년이 훌쩍 넘으면서 한국 교회 안에서 교

(REDISCOVERING CATECHISM)

리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도널드 반 다이켄 지음 | 김희정 옮김 | 신국판 | 184페이지 | 8,000원

사람들이 교리 공부를 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저 역시 교리 강사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정리하고 가장

여기저기 불려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망적인 풍조들 속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리문답은 신자들의 신앙과 삶에 필수적이

에서도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교리에 대한 이 관심이 우

다. 그래서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일은 기독교 교육의 핵심이라고 말해 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이 책은 교리문답 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교리문 답 교육의 역사 및 실제 교리문답 교육에 필요한 방법까지 소개한다. 교 리문답 교육을 거의 접해 보지 못한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부모들은

리나라에서는 지극히 “사적인 것”이 되어 있다는 현실입니다.

물론

교회 차원에서 교리문답 설교를 도입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

이 책을 통해 언약의 자녀들을 길러 내는 데 필수적인 교리문답 교육의

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한국 교회 안에서 교리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

중요성을 발견할 것이다.

을 “책으로” 배웁니다. 책이 아니더라도, 주일 예배 때 목사의 설교에서 배우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독서 클럽·스터디 그룹·소규모 모임에서

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사랑하는가 (THE GOOD NEWS WE ALMOST FORGOT) 케빈 드영 지음 | 신지철 옮김 | 신국판 | 456페이지 | 20,000원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신 앙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로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배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교리를 배우는 것은 교회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리가 진실 로 “말씀의 요약”이라면, 이 말씀의 요약은 교회에서, 공적인 설교를 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 시리즈

지만 공적인 배움이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사적인 배움은 자칫하면 “밀실의 영지”( 靈知 ) 가 되기 십상 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슬프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서 성경의 진리를 밝히 보여 주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강해

게는 “교리문답을 설교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3

서인 이 책은 젊은 개혁주의 목회자가 자신의 교회 성도들을 위해 간략

한국 교회에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에 대한 설교집이 많지 않습니다. 미진하고 부족함

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본문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전

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교회에서 행했던 설교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것은 이 책이 교회에서 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 집이 특히 목사님들에게 많이 읽히고 여기저기에서 교리문답이 설교될 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AN INTRODUCTION TO THE HEIDELBERG CATECHISM) 라일 비어마 외 3명 공저 | 신지철 옮김 | 신국판 | 448페이지 | 20,000원

서 교리문답에 대한 글과 책이 많이 나오고, 이로 인해 한국 교회 전체가 풍성해지며 제 설교 역시 더 풍성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 지은이 서문 중에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신학 적 입장을 소개하는 입문서인 이 책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 대해 한 세기 동안 연구되어 온 참고문헌 목록들을 제공한다. 또한 하이델베 누스의 대교리문답과 소교리문답도 함께 실려 있어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과 비교하고 대조하여 살펴볼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하이 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기원과 성격에 대해 상세히 이해할 수 있을 뿐 아 펴볼 수 있을 것이다.

우 리 의

하이델베르크 전경 1572년, 동판화, 채색.

위 로

Georg Braun und Franz Hogenberg, .. ≪Civitates orbis terrarum≫, Band 1, Ko ln 1572.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

Heidelberg

지은이

윤석준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려신학대학원 ( M.div ) 에서 공부했으 며, 2009년 11월에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서 유은교회를 설립하 여 개혁교회를 세우는 일에 진력하고 있다. 구속사적 성경해석, 교리문답 해설과 설교, 개혁교회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쓸 계획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 한국 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1·2 』 , 『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1·2 』가 있고, 거트루드 훅 스마의 『 어린이 성경 이야기 』 를 옮겼다 ( 이상 부흥과개혁사 출간 ).

윤석준 지음

르크 교리문답을 작성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감당한 자카리아스 우르시

니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기본적인 신학적 입장들에 대해서도 살

윤석준 지음

하면서도 정확하게 교리문답을 설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책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입문

하 나 님 과

하여 가르쳐져야 합니다. 공적인 배움이 있는 곳에서 넘쳐나는 사적인 배움은 반가운 것입니다. 하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주로 사도신경과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해설하면

달하는 설교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삼 위

ISBN 978-89-6092-439-0 ISBN 978-89-6092-409-3 (세트) www.rnrbook.com 값 18,000원

유은교회 카페 http://cafe.daum.net/sola -  g ra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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