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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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종말론 탐구 코르넬리스 비네마 지음 | 박승민 옮김 | 624쪽 | 28,000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갈 뿐만 아니라, 성경도 단지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기 위 한 ‘증거 본문’ 정도로만 여긴다. 사실 성경은 종말을

예수님의 재림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분명한 불일치를 보이는 문제다. 이 중요한 책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이 현재의 교회 시대 동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의 통 치에 대한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무천년설의 성경적 근거를 제공한다.

포괄적이면서도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세상 끝 날’ 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태초부터 종말론적인 전망을 가지 고 계획하셨다. 이 책은 오늘날 교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말론적 입장들을 철저하게 성경적인 자세로 공정하게 다룬다.

“‌ 어떤 사람에게는 전천년설이 거의 정통 신앙이나 다름없다. 샘 스톰스는 무천년설을 단호하게 변호하면서 그런 전제에 도전장을 던진다. 스톰스는 폭넓은 영역과 분야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자기 견해를 변호하기 위해 주석적·신학적 논증을 펼친다. 스톰스의 논증을 여전히 납득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책에서 무천년

개혁주의 무천년설

설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언하는 유력한 논거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토머스 슈라이너, 서던 뱁티스트 신학교 신약 해석학 교수

킴 리들바거 지음 | 박승민 옮김 | 416쪽 | 20,000원 무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지상에 임할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한 미래적인 소망으 로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천상 통치 가운데 현재

“‌ ……W. J. 그리어가 쓴 『중대한 사건』 이후로 내가 읽어 본 다양한 천년설 관련 서적 가운데서 가장 크게 도 움이 된 작품이다. 스톰스의 작품은 관련 본문에 대한 세심한 주석을 특징으로 하며, 종말을 다루는 모든 관 련 성구들을 광범하면서도 심도 있게 망라한다.”

더글러스 켈리,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하는 실재로 믿는다. 이 책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무천년설을 천년왕국에 대한 역사적 개신교의 입장으로서 제시하고 변호한다. 특히 천 년왕국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본문들인 다니엘 9장, 마태복음

“‌ 스톰스가 쓴 이 책은 크게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서, 향후 몇 년 동안 무천년설 입장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24장, 로마서 11장, 요한계시록 20장에 대해 논의하고, 주요한 천년왕국 입

것이 확실하다. 이 책은 내가 앞으로도 개인적인 연구나 목회 사역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다시 살피고

장들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과거주의 ) 이 직면한 문제를 다룬다.

싶은 작품이다. 스톰스는 이해하기 쉽고 삶과 연결되는 온정적인 학식으로 교회를 섬기는 본보기를 우리에 게 제공한다.”

개혁주의 종말론

케빈 드영, 유니버시티 개혁교회 담임목사

앤서니 후크마 지음 | 이용중 옮김 | 454쪽 | 22,000원

“‌ ……무천년설 관점이 요한계시록을 포함하여 종말론을 이해하는 데 실행 가능한 관점임을 밝히 보이는 가

종말이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는 실재라는 명제 에 걸맞게,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부 시작

치 있는 작품이다 ……스톰스가 제안하는 무천년설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스톰스의 책에서 분명히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레고리 빌,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약학 교수

된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성취와 구속된 공 동체가 이미 누리는 복을 다루는 반면, 2부 미래 종말론은 죽음과 부활 사이

“‌ 샘 스톰스가 쓴 이 책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안에는 목회자의 마음과 경건한 예배를

의 신자의 상태, 시대의 표적,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몸의 부활, 마지막

바탕으로 하는 충실한 신학과 세심한 주석이 담겨 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스톰스 박사가 종말을

심판, 새 땅 등과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이 책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하

주제로 강의실과 교회에서 수십 년간 가르치며 정립해 온 원숙한 사상을 발견할 것이다.”

나님 나라의 현재 상태 ) 와

‘아직’( 그리스도의 재림 때 발생할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수립 ) 의 차

이를 인식하는 종말론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저스틴 테일러,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의 공동편집자 “‌ 이 책에 실린 주제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과정에서 나는 스톰스가 어려운 자료를 분별 있게 다루고 알기 쉽

만화 종말론

게 가르치는 모습에 경탄했다.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는 종말론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유용한데,

백금산 글 | 김종두 그림 | 368쪽 | 15,000원

리처드 필립스, 제2장로교회 담임목사

이 책을 소장하지 않고서는 결코 개혁주의 장서를 완비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 & 신학 만화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책은 간결하고 깊이 있는 내용과 재미있고 감동적인 그림으로, 세상의 종교·철학·과학이 그리는 잘못된 종말론이 아니라 성 경이 말하는 바른 기독교 역사관에 기초한 종말론을 다룬다. 성경이 가르치 는 역사는 시작과 마지막이 분명한데, 곧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셨고 완성 하실 것이다. 이 책은 종말과 예수님의 초림의 관계, 예수님의 재림과 그 징 조,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과 그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심오하면서도 읽

ISBN 978-89-6092-414-7

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www.rnrbook.com 값 35,000원

샘 스톰스 지음 윤석인 옮김

KINGDOM COME The Amillennial Alternative

지은이

샘 스톰스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 시티에 소재한 브리지웨이 교 회의 담임목사이자 엔조잉 갓 선교회 회장이며, 22권의 책을 저술하거나 편집했고 수많은 잡지와 신문에 글과 서평을 기고했다. 오클라호마 대학교 ( B.

A.),

댈러스 신학

교 ( Th. M.), 텍사스 대학교 ( Ph. D.) 에서 공부했다.

옮긴이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샘 스톰스 지음 | 윤석인 옮김

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 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신학 석사 학위 ( Th.

M.) 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 부하고 있으며, 부흥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 고 있다. 번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도 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교 핵심』, 『십계명의 렌 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문화신학』 ( 이상 혁사 ) 등

다수가 있다.

부흥과개


Copyright ⓒ 2013 by Sam Storms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as Kingdom Come by Christian Focus Publication Ltd., Geanies House, Fearn, Tain, Ross-shire, IV20 1TW, Scotland, U. K.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Edition Copyright ⓒ 2016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of Christian Focus Publication Ltd.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 에이전시를 통하여 Christian Focus Publication Ltd.와 독점 계 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신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 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KINGDOM COME

The Amillennial Alternative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샘 스톰스 지음 | 윤석인 옮김


목차

■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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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12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19 2장 세대주의에 대한 정의•57 3장

다니엘 9장에 기록된 일흔 이레와 세대주의를 위한 구약 성경적 기초•93

4장 다니엘이 성경의 종말론에 기여한 점•121 5장 전천년설과 관련된 문제점•175 6장

7장

8장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교회, 그리고 “대체” 신학•231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 : 마태복음 24장과 감람산 강론 ( 1 )•301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 : 마태복음 24장과 감람산 강론 ( 2 )•341

9장 사도행전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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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KINGDOM COME The Amillennial Alternative

10장 로마서 11장과 이스라엘의 “미래”•399 11장

하나님 나라 : 지금과 아직•445

12장 하나님 나라에 대한 후천년설의 견해•481 13장 요한계시록과 성경의 종말론 : 인, 나팔, 대접 심판의 연대기•517 14장

15장

무천년설, 요한계시록 20장, 그리고 사탄의 결박•561 무천년설, 요한계시록 20장, 그리고 첫째 부활•597

16장 성경의 종말론과 적그리스도 : 요한계시록 13장과 17장에 대한 연구•629 17장 성경의 종말론과 적그리스도 :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대한 연구•691

결론 :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누적적 사례 논증•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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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

스톰스가 쓴 이 책은 크게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서, 향후 몇 년 동 안 무천년설 입장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것이 확실하다. 스톰스는 전천년설 견해들, 특히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관대한 태도로 비판하 는 데 남달리 뛰어난 재능이 있다. 스톰스는 후천년설이나 예언 성 취론과 서로 의견을 나누는 방식에서도 이지적이고 통찰력 있는 면 모를 보인다. 이 책은 내가 앞으로도 개인적인 연구나 목회 사역에 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다시 살피고 싶은 작품이다. 스톰스는 이 해하기 쉽고 삶과 연결되는 온정적인 학식으로 교회를 섬기는 본보 기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케빈 드영, 유니버시티 개혁교회 담임목사

과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지나치리만큼 강박적으로 말세에 집착 하는 과오를 범했다면,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은 말세에 너무 무신경 한 정반대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샘 스톰스가 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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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책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안에는 목회자의 심 령과 경건한 경배를 바탕으로 하는 충실한 신학과 세심한 주석이 담 겨 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스톰스 박사가 종말을 주제로 강의실과 교회에서 수십 년간 가르치며 정립해 온 원숙한 사상을 발 견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신념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 를 도전하고 격려한다. 나는 이 책이 내게 유익했던 것처럼 다른 사 람에게도 유익하기를 기도한다. 저스틴 테일러,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 의 공동편집자

복음주의자들은 종말론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 불일치는 종말까지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 떤 사람에게는 전천년설이 거의 정통 신앙이나 다름없다. 샘 스톰 스는 무천년설을 단호하게 변호하면서 그런 전제에 도전장을 던진 다. 스톰스는 폭넓은 영역과 분야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자기 견해 를 변호하기 위해 주석적 논증과 신학적 논증을 펼친다. 스톰스의 논증을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 책에서 무천년설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언하는 유력한 논거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는 베뢰아 사람이 될 것을 우리에게 다시금 새롭게 요청한다. 토머스 슈라이너, 서던 뱁티스트 신학교 신약 해석학 교수

샘 스톰스가 쓴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는 무천년설 관점이 요 한계시록을 포함하여 종말론을 이해하는 데 실행 가능한 관점임을 밝히 보이는 가치 있는 작품이다. 여러분은 종말론 주제와 관련해서 스톰스가 말하는 모든 내용에 꼭 동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책 의 전체 요지는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분석적인 논증이다. 스톰스가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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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상대는 전천년설 해석자인데, 스톰스는 전천년설 해석자가 스스로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는 데 미흡함을 발견한다. 내 생각에는 스톰스가 요한계시록 20장 1~10절 에 기록된 천년왕국에 대한 구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매력 적인 방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또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 하기 위해 성경 전반에 걸쳐 다른 많은 구절들을 통찰력 있게 검토 하고 예증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스톰스는 요한계시록 20장에 대한 어느 특정 해석이 아니라 성경의 나머지 부분 ( 예를 들 ) 이

들어, 바울이 쓴 편지

종말론을 위한 주된 해석적 렌즈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해석 방

법론을 상정하는데, 성경의 다른 곳에 나타나는 종말론을 이해하고 자 할 때 요한계시록 20장에 대한 특정 해석에 완전히 의존하는 사 람이 지나치게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스톰스가 제안하는 해석법은 확실히 옳은 것이다. 논의들 가운데서 다니엘 9장에 기록된 일흔 이 레에 대한 스톰스의 연구는 내게 특별히 유익했다. 스톰스가 제안하 는 무천년설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책에서 분명히 유익 을 얻을 것이다. 그레고리 빌,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약학 교수

샘 스톰스가 쓴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는 개혁주의 관점에서 놀라우리만큼 포괄적이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종말론 연구서다. 스톰스는 무천년설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동시에, 대안으 로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견해들에 대해서도 관대한 태도로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 책에 실린 주제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과정에서, 나는 스톰스가 어려운 자료를 분별 있게 다루고 알기 쉽게 가르치는 모습에 경탄했다.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는 종말론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유용한데, 이 책을 소장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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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고서는 개혁주의 장서를 결코 완비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리처드 필립스, 제2장로교회 담임목사

샘 스톰스가 쓴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는 W. J. 그리어가 쓴 『중대한 사건』 ( The Momentous Event ) 이후로 내가 읽어 본 다양한 천년 설 관련 서적 가운데서 가장 크게 도움이 된 작품이다. 스톰스의 작 품은 관련 본문에 대한 세심한 주석을 특징으로 하며, 종말을 다루 는 모든 관련 성구들을 광범하면서도 심도 있게 망라한다. 특정 주 제를 다루는 책들 가운데서 그 연구 범위가 완전한 경우는 결코 없 지만, 이 작품은 그런 완전함에 근접한다! 스톰스의 작품은 명쾌하 면서도 공정하다. 스톰스가 특정 관점 ( 무천년설 ) 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비판하는 견해들도 잘못 전달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하며 작품 전반에서 관대한 태도를 유지한다. 스톰스 는 천년왕국과 관련된 세 가지 주요 견해를 상세히 조사하는데 ( 내 생 각에는 치우침 없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스톰스가 크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마도 전천년적 세대주의일 것이다 ( 미국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세대주의 가 대단히 우세하다 ).

스톰스는 관련된 대다수의 성경 본문을 진지하게 받

아들일 경우에 전천년적 세대주의 ( 예를 들자면, 천년기 전 휴거에 대한 믿음 ) 를 고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많은 구절을 열 거한다. 나는 참으로 스톰스가 성경의 가르침 앞에서 겸손하며, 기록 된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분명한 가르침을 바란 다고 생각한다. 다니엘 9장에 기록된 일흔 이레에 대한 스톰스의 해 석은 명료한 주경 신학의 본보기인데, 오늘날 ‘대체 신학’으로 불리 는 견해에 대한 스톰스의 이해도 마찬가지로 그런 본보기다. 나는 현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스톰스의 논의가 분별 있고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스톰스가 종말과 관련해서 말하는 모든 내용에 꼭 동의할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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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는 없지만, 이 탁월한 작품을 진심으로 추천하는 바다. 나는 내 가 가르치는 수업에서 이 책을 활용할 생각인데, 종말론을 가르치는 다음 기회가 오기 전에 이 책이 출간되어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다 면 크게 기쁠 것이다. 더글러스 켈리,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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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KINGDOM COME The Amillennial Alternative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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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예수님의 재 림에 대해 심사숙고했던 기억이 없다. 물론 내가 출석하던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었다. 나는 남침례교 전통에서 성장했는데, 이곳 저곳에서 재림을 내용으로 다루는 설교를 듣거나 주일학교 수업에 끝까지 앉아 있어야 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1968년 후 반이나 1969년 초반에 오클라호마 주의 덩컨 시에 소재한 제일 침 례교회에서 열린 부흥 집회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그 문제에 대해 깊 이 생각했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부흥 집회 기간을 기 억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는 미래를 약속한 특별한 여인과 나란히 앉 아서 목사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인데, 나는 우리가 데이 트했던 시간대를 참으로 매우 뚜렷하게 기억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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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부흥회에 초청된 강사 목사님은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열 정적으로 이야기했고, 그 사건들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전조로 믿 었다. 나는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적그리스도를 추종하 는 무리의 이마에 666이라는 숫자를 강제로 표시할 때가 임박했다 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오클라호마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해인 1970년 여름에 나는 네바 다 주 레이크 타호에 살았는데, 대학생선교회 ( CCC ) 가 주관하는 복음 전도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그때는 예수 운동 ( the Jesus movement ) 이 처 음 등장한 시기일 뿐 아니라 베트남전 반대 시위가 많은 대학 캠퍼 스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시기였다. 또한 핼 린지 ( Hal Lindsey ) 가 쓴 『대 유성 지구의 종말』 ( The

Late Great Planet Earth ) 이

출판된 시기이기도 했

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우리 모두는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였고 휴거가 어느 때에 일어나더라도 늘 준비된 상태로 있기 위해 기도했는데, 물론 우리 모두는 휴거가 언제라도 일어나리라고 ( 아니면 적어도 그럴 수 있다고 )

믿었다.

나는 그해 가을에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스코필드 관주 성경』 ( Scofield Reference Bible ) 을

구입해서 거기에 기록된 주석들을 그 주석들이 해설

하는 성경 본문을 읽는 것보다 더 열정적으로 파고들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말세나 성경의 예언과 관련해서 다른 견해가 있다고 제안 하는 사람이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입장들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환난 전에 휴 거가 이루어진다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스코필드 관주 성경』에서 신학적으로 처음 배웠다. 거기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 라도 성경의 무류성을 믿지 않는다는 의심을 받았다. 나는 오클라호마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오클라호마 시티에 소재한 메트로폴리탄 침례교회에 출석했는데, 댈러스 신학교 출신 목사님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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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이 그 교회에서 사역했다. 수요일이면 인근 도시의 유명한 신 학자들이 교회에 와서 저녁 내내 강연을 했다. 나도 댈러스 신학교 교수가 종말론을 주제로 강연하는 것을 듣는 데 완전히 이골이 났 다. 세대주의 학설은 갈수록 더 깊이 나에게 스며들었는데, 다시 말 하지만 나는 다른 견해들이 정통 신앙의 범주 안에 들 수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환난 전 휴거나 스코필드 성경의 정확 성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자유주의자 로 간주되거나 아니면 자유주의 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73년에 오클라호마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신학 석사 학 위를 받기 위해 댈러스 신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도한 교수들은 존 월부르드 ( John 리 ( Charles

Walvoord, 당시 댈러스 신학교 총장 ),

찰스 라이

Ryrie,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 [Dispensationalism Today] 와 『라이리 스터디 바이

블』 [The Ryrie Study Bible] 의 저자 ),

J. 드와이트 펜터코스트 ( J. Dwight Pentecost, 아

마도 그 당시에 종말론과 관련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이었던 『세대주의 종말론』 [Things to Come] 의 저자 ) 였는데,

그들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옹호하는 대표적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 ( Lewis Chafer ) 가

Sperry

쓴 『조직신학』 ( Systematic Theology ) 에 나타나 있고 댈러스 신학

교의 많은 강의에서 배운 세대주의 전천년설 관점을 제외한 어떤 것 도 결코 복음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내가 무천년 설에 대해 들은 말 가운데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무천년설이 성경 을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자유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무천년설이 대단히 위험한 견해라는 것이었다. 강의 중에 있었던 한 사건은 1970년대에 댈러스 신학교의 분위기 가 어땠는지를 구체적으로 잘 보여 준다. 교수님 가운데 한 분 (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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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밝히지 않겠다 ) 이

성경을 깊이 파헤치되 특별히 종말과 관련된 구절들을

그렇게 하고 문학을 폭넓게 읽으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셨다. 바로 그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학생 ( 마찬가지로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 이 손을 들더니 “만약에 저희가 교수님 말씀대로 했는데 환난 전 휴거 개념을 옹호 하는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아닌 다른 견해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교 수님은 그래도 저희가 제때에 졸업하도록 약속해 주실 수 있나요?” 라고 질문했다. 교수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계시더니 “아니, 그것은 장담할 수 없네”라고 말씀하셨다. 신학교 마지막 해에 내 친구 한 명 은 자신이 언약 신학을 믿는다는 소신을 밝혔는데, 그는 교수회로부 터 종말론 교리를 올바로 이해했다고 확신할 때까지 학위가 보류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내 기억이 옳다면, 그 친구는 댈러스 신학교 를 그만두고 결국 리폼드 신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1973년에 로버트 건드리 ( Robert Church and the Tribulation ) 이

Gundry )  의

책 『교회와 환난』 ( The

출판되었다. 나도 같은 해에 댈러스 신학교

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마치 신학 분야의 원자탄이 캠퍼스에 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그 책을 읽고 있었는데, 휴거의 시기 와 관련해서 휴거가 환난 뒤에 일어날 것이라는 관점에 끌리는 사람 도 꽤 있었다. 강의실과 카페와 곳곳에서 많은 논쟁이 일어났고 그 런 논쟁들은 상당히 과열되었다. 우리 중에는 대니얼 풀러 ( Daniel Fuller ) 의

박사 학위 논문을 입수한 학생도 있었는데, 풀러는 그 논문

에서 세대주의 해석학을 비판함으로써 결국 불에 기름을 끼얹는 역 할을 했다. 나는 1977년에 댈러스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종말론 학설들과 종말론 사상의 온갖 측면을 연구하는 데 지체 없이 몰입했다. 하지 만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고 설득력 있는 책은 단연코 조지 엘든 래드 ( George Eldon Ladd ) 가 쓴 『미래의 현존: 성경적 사실주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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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종말론』 ( The Presence of the Future: The Eschatology of Biblical Realism ) 이었 는데, 래드는 당시에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소재한 풀러 신학교 의 신약학 교수였다. 래드의 작품과 래드가 나의 사고에 끼친 영향 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많이 언급해야겠지만, 여기서는 세대주의가 크게 의존하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이 래드의 사정없는 맹공을 견뎌 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 래드 ( 또한 로버트 건드리와 몇몇 다른 학자도 함께 ) 는 교회가 환난 전에 휴거된 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성경적 근거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나에게 납 득시키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  )   많은 사람의 눈에 그것은 불쾌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참으로 나는 내가 환난 전 휴거라는 개념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밝힌 순간에 교회 안에서 느꼈 던 공포 ( “공포”라는 표현은 정말이지 내가 당시에 받은 반응을 과장해서 묘사하는 단어가 결 코 아니다 ) 를

뚜렷이 기억한다. 적잖은 사람이 내가 신학적 자유주의로

꽤 많이 넘어간 상태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에 내가 모든 형태의 전천년설을 포기하자, 사람들이 내가 용서받지 못할 죄 를 범했다고 단언할 정도로 주위의 반응은 대단했다. 나는 오늘날의 모든 세대주의 전천년주의자나 심지어 다수의 세대주의 전천년주의 자가 이런 식으로 느낀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분위기가 일반적으로 인정된 종말론적 믿음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음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종말론을 주제로 연구를 계속했고, 결국

1  )   내가 환난 전 휴거라는 개념에 의심을 품게 만드는 데 기여한 또 하나의 영향력 있는 작품은

윌리엄 E. 벨 주니어(William E. Bell, Jr.)가 댈러스 신학교 박사 학위 논문으로 작성한 글이 다. 벨이 1967년에 뉴욕 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제출한 학위 논문의 제목은 “기독교 종말론에 서 환난 전 휴거 교리에 대한 비판적 평가”(A Critical Evaluation of the Pretribulation Rapture Doctrine in Christian Eschatology)였다. 내가 아는 한 그 논문은 아직까지 정식으 로 출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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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1985년에 지금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의 초고를 쓸 수 있었 다. 이 책의 초고는 주로 전천년설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었으며 감 사하게도 앤서니 후크마 ( Anthony Hoekema ) 가 서문을 써준 덕분에 빛이 났는데, 후크마가 쓴 『개혁주의 종말론』 ( The Bible and the Future, 어드만 출판 사, 1979년, 부흥과개혁사 역간 ) 은

내가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그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지 않고 더욱 완전 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때가 오기를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그 모 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은혜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 다. 여러분이 예상할 수 있듯이, 나는 지난 사반세기가 이 문제에 대 한 나의 이해가 성장하고 향상된 기간이었기를 바라는데, 나는 최종 적인 형태로 출판될 이 책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유익을 끼치고 바른 성경적 사고를 함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점에 있어서 판 단은 오직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이 책은 말세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 모든 쟁점이나 성경 본문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그런 책은 지금까지 결코 저술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이 나의 설명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이는 수많은 구절과 주제를 내가 여기서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하더 라도, 나는 그런 비판을 언제라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 내가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목적은 흔히 무천년설로 알려진 견해를 뒷받 침하는 성경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또한 모 든 형태의 전천년설, 특별히 팀 라헤이 ( Tim

LaHaye )  와

제리 젠킨

스 ( Jerry Jenkins ) 가 쓴 꽤 유명한 『레프트 비하인드』 ( Left Behind ) 시리즈 에 나타나듯이 환난 전 휴거를 특징으로 하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단점들을 부득이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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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특별한 미래가 있는지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바를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나는 또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 는 짐승에 대한 성경적 관점뿐 아니라, 천년설 가운데 선택할 수 있 는 세 번째 항목, 곧 후천년설로 알려진 견해도 아울러 살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분명해지겠지만, 이 책은 종말론을 이해하기 위한 정 보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주요 성경 본문들에 대한 심층 분석을 중심 으로 구성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참으로 중요한 것은 텔레비전 설교 자의 신학이나 「뉴욕 타임스」 특집 기사나 우리가 성장한 교단 전통 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라는 점에 우리 모두가 동감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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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01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

1  )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다음 두 가지 중 어느 한 관점을 반영하는 입장에 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편으로, 예언을 담은 본문이 미래에 일어날 사실에 대한 구체적 세부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 수정구슬 같은 무엇을 제공한다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경 본문은 새 집을 위한 청사진과 유사한 역할을 해서, 미래에 대해 가장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아우 르는 “명세”와 특징들을 제공한다. 다른 한편으로, 예언은 마치 스테 인드글라스 창문 같아서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이 세상을 완성으 로 이끄시는 방법을 좌우할 일반 원리를 개괄적 필치로 표현하도록 1  )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면, 해석학이란 해석의 학문이나 연

구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해석학은 우리가 성경 본문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 는 원리 및 분석 양식들과 관계있다.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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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두 접근법은 저마다 진리의 일면이 있지만 어느 쪽도 완전히 충분하지는 않다. 첫 번째 접근법 을 지지하는 사람의 경우는 대체로 상징성을 띤 구절에서 거의 사진 처럼 객관적인 정확성을 요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에, 두 번째 접근법을 지지하는 사람의 경우는 성경을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다루는, 믿기 어려운 주관성으로 쉽게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번 장에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체의 원리들을 뚜렷하게 밝히기를 시작할 수 있는 듯이 종합적 해결 책을 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여러분 이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듣게 될 내용들을 뒷받침하고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다섯 가지의 기초적인 해석학적 가설을 제시하는 것이다. 나 는 이런 원리들을 일일이 변호하지 않고 ( 그렇게 하는 작업 자체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써야 할 것이다 ),

오히려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 ( 비록 설득력은 담보하지 못하더라도 ) 으로 설명하는 일에만 전념할 것이다.

✽✽✽✽✽✽✽

1. 내가 생각하기에 성경 본문이 보증하는 중심적이고 지배적인 논제는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예언적 소망에 대한 성취 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그리고 믿음 있는 남은 자들, 곧 예수님이 초림 때 설립하신 교회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가 모든 예언의 중심점이자 종결점이 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진술이 다소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어쨌거나 대다 수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모든 성경 계시의 중심 혹은 초점이라 는 점, 구약 성경이 예수님의 인격 및 사역에 대한 전조라는 점,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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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고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 게 하려는 것”( 엡 1:10b ) 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점에 즉시 동의한다. 그 러나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구약 성경이 어떻게 예수님의 인격과 그분의 몸인 교회에서 완전한 성취를 발견하는지와 관련해서 훨씬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성전이시다 내가 인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예들 중 하나를 들면, 많은 그리스 도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참된 성전이시며 구약 시대 성전의 물리 적 구조가 예수님 안에서 완벽하게 구현된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이 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종말에 나타날 사건들과 더불어서 또 하나의 ( 제3의 ) 물리적 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승인하고 감독하시리라 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해석 원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기 위해 이 주제를 잠시 검토하겠다. 2  )   이 중대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은 구약 성경의 서 사 ( narrative ) 인데,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광휘, 하나님의 장엄하고 빛나는 영광이 자기 백성 중에서 가시화되는 광경, 곧 하나님의 ‘쉐 키나’를 목격한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광휘와 영광, 즉 ‘쉐키나’가 없다면 이스라엘 자손은 이방 세계를 특징짓는 어둠 속에 있었을 것 이다.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 하나님은 모세가 지은 장막 곧 성막에서 자기 영광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시고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고 자기 백성을 더불어 만나시려는 곳이 바 2  )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논의의 상당 부분은 내가 쓴 A Sincere and Pure Devotion to Christ:

100 Daily Meditations on 2 Corinthians (Wheaton, IL: Crossway, 2010)를 바탕으로 한 것 이다.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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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성막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 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게 할지니라”( 출 25:8 ) 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곳에서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섰고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 씀하셨다”( 출

33:9 ).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

한”( 출 40:34 ) 곳이 바로 성막이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 님 앞에 서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었다 ( 참고, 레 9:23; 민 14:10 ).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머무는 동안 성막에 적용된 원리는 솔로 몬 성전에 훨씬 잘 적용된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 소, 곧 본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로 메어 들였을 때”( 대하 5:7 ),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는데, 왜냐하면 여 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했기 때문”( 대하 5:14 ) 이다. 바로 이런 예비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는 사도 요한의 다음과 같 은 놀라운 선포를 듣는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

“거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 스케누 ) 는 문자적

으로 “장막을 치다” 또는 “천막에 거하다”라는 뜻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가 지은 천막 곧 이동식 성막과 최종적으로 솔로몬 성전 을 처소로 삼았던 구약 성경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사도 요한이 말하려는 요지는 하나님이 이제 자기 백성과 함께 거 하시되 더 인격적인 방식으로, 곧 육신이 되신 말씀으로 ( 예수님 안에서! )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말씀이신 나사렛 사람 예수는 하나님의 참되고 궁극적인 ‘쉐키나’ 영광, 곧 자기 백성 중에서 하나 님의 현존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나타내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영광 스러운 거처는 자기 아들의 육신이다! 지금 성육신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로 구체화된 대단히 탁월한 영광에 비하면, 과거에 신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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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운 구름으로 가려진 천막/성막/성전 안에 간직되었던 그 영광은 단 지 예시적으로 깜빡거리는 램프의 불빛에 불과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 이다 ( 참고, 골 1:19 ). 하나님은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 지은 천막이나 장막에 거하시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분 명한 현존은 대리석과 황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전에서 발견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예수님은 인 간의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며, 하나님이 그 안에서 최종 적으로 완전하게 자기 장막을 치시는 분이다. 요지는 옛 언약에 속한 성전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모형 또는 전조였다는 것이다 ( 모형론에 대해서는 아래서 좀 더 살펴볼 것이다 ). 성전은 바로 모세 율법이 보관된 장소였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그 율법의 성취이 시다. 성전은 계시와 관계의 장소였는데, 하나님은 성전에서 자기 백 성과 함께 만나시고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과 만난다. 성전 은 제사의 장소였는데, 죄 용서는 성전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는 죄 용서를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다 ( 막 2:1~12을 보라 ). 이스라엘 자손은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에서 예배하고 절기를 기념했다. 오늘날 우 리는 지리적 장소와 상관없이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 ( 참고, 요 4:20~26 ).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만나고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예 배하기 위해 사람의 손으로 지은 특정 건물이나 장막이나 구조물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간다! 예수님이 하 나님의 성전이시다! 게리 버지 ( Gary M. Burge ) 의 다음 진술은 옳다. “신 성한 공간은 더 이상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있다.” 3  )

3  )   Gary M. Burge, Jesus and the Land: The New Testament Challenge to “Holy Land”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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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회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성전으로 여겨진다.

여호와 하나님의 ‘쉐키나’는 이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영구적으 로 능력 있게 깃들인다. 바울은 에베소의 신자들에게 쓴 편지에서 이 사실을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 엡 2:21~22 ).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처소는 “예루살렘에 세워진 문자적인 성전도 아니고 단순히 하늘도 아니며, 소아시아에 있는 이방인 신자들이 일부를 이루는 교회다.” 4  )   이 성전의 설립은 계속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프로젝트이며 지 속적인 과정이다 ( 또한 엡 4:15~16을 보라 ). 비록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하 는 “건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바 울은 우리가 교회를 유기체로 이해하기를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 베 드로도 다소 역설적인 어법을 사용해서 신자들을 “살아 있는 돌 들”( 벧전 2:5 ) 이라고 언급한다는 점을 상기하라! 바울은 이 진리를 근거로 고린도의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다시 호소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 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 바울은 성적 순결을 요청하는 대목 에서도 다음과 같이 거듭 호소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 Theology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0), p. 52(강조는 원저자의 것임). 4  )   Andrew T. Lincoln, Ephesians , Word Biblical Commentary (Dallas, TX: Word Books,

1990), p.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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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 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또한 이 진리를 생생하게 묘사 하는 벧전 2:4~10을 보라 ).

우리는 이 모든 논증을 통해 고린도후서 6장 16절 후반부에 나타 난 바울의 최종 선포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 전이라!” 바울은 이런 논지를 보강하기 위해 장차 올 성전에 대해 예언한 구약 성경의 여러 본문 ( 레 7:14 ) 을

26:11~12; 사 52:11; 겔 11:17, 20:34, 41; 삼하

종합하는데, 그중 하나인 에스겔 37장 26~27절에서 하나님

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 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 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 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 리라.” 거두절미하고 요지를 말하겠다.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히 거하실 종말론적 성전에 대한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하 여 부활에서 완성함으로써 성취하고 계신데,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 도의 몸인 교회를 점진적으로 세우는 일이 포함된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세워진 문자적이고 물리적인 성전은 어떻게 될 까?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정하신 구속 목적에서 영적인 중요성 을 상실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는 마태복음 23~24장에 기 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검토해야 한다 ( 나는 이어지는 두 장에서 이에 대해 많이 언 급할 것이다 ).

예수님이 유대 백성에 대해 심판하실 때, 성전 건물들은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가기 위해 떠나시는 그 순간에 물리적・영적 측면에서 모두 주님께 버림받는다. 예수님은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마 23:38 ) 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기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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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그친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성소 휘장이 위로부 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을 때”( 마 27:51 ), 하나님은 성전을 자기 현존으로 축복하거나 성전을 이가봇 ( 영광이 떠났다 ) 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하기를 영원히 그만두신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성전에 극적으로 들어가신 것 ( 마 소위 “개선 입성식” ) 과

21:1~7.

똑같이 극적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을 떠나신다. 한

때 웅장하고 영화로웠던 이 하나님의 집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완전 히 넘겨진다 (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너희에게 버려진 바 되리라” [마 23:38]. 강조는 필자 의 것임 ).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성전을 떠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우

리 주님이 하신 말씀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 겔 11:22~23을 보라 ).

10:18~19,

주후 70년에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물리적으로 최종

파괴되는데, 이로써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영적인 유기가 외형적으 로 완결된다. 이제 예수님은 성전을 떠나서 결코 되돌아가시지 않는 다. 참으로 성전을 떠나 감람산에 앉으시는 ( 마 24:3 ) 예수님의 행동은 에스겔 11장 23절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 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 이것은 오늘날 바위 돔 사원이 서 있는 장소 근처인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는 미래의 성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성전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종교 활동 을 재개하는 일도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 일이 가져오게 될 종교적 열광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함축된 정치적・군사적 파장 또한 명 백하다. 이 일이 앞으로 언제 발생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비록 실제로 발생하더라도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세우는 일 외에 다 른 어떤 종말론적·신학적 의미는 전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현재와 미래에 영원히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유일한 성전은 예수님 과 그분의 영적인 몸인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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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하나님이 장차 성전 재건을 승인하시리라고 제안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구속과 관련해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퇴행을 나타내는 터 무니없는 발상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 데 거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태도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교회를 부인하는 처사가 될 것이며, 그리하 여 고린도후서 6장의 이 대목과 다른 곳에서 바울이 명시적으로 단 언하는 내용을 모욕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5  )   마지막으로,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6장의 이 구절에서 밝히는 현실적인 주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상 숭배와 관련된 어 떤 표현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교회로서 하나님의 현 존을 오늘날 세상에 나타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또 하나의 문화 단체나 우리 이웃의 “체감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회봉 사 집단”이 아니다. “대신에 교회는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으로서, 예수님 안에서 공통의 신원으로 연합되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을 다 같이 예배하고 경외하는 일을 중심으로 모이는 ‘하나님의 가 족’이다.” 6  )   우리의 삶이 그처럼 영광스럽고 고상한 신원을 늘 반영 하기를 기원한다.

예수님은 절기들을 성취하신다 그런데 이런 해석의 작용 원리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는 예수님

5  )   재건된 성전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겔 40~48장)이 여기서 밝히는 관점과 어울린다는 점을

훌륭하게 설명한 글을 위해서는 G. K. Beale, The Temple and the Churchʼs Mission: A

Biblical Theology of the Dwelling Place of Go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pp. 335~364를 보라. 6  )   Scott Hafemann, 2 Corinthians ,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0), p. 292.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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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를 자신의 인격과 사역에서 성취하시는 방 법에서 발견된다. 이에 대한 한 가지 구체적 사례는 요한복음 7장 37~44절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초막절이 비록 옛 언약 시대 동안 이 스라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절기는 아니었어도 가장 기쁨을 주는 절 기임은 분명했다. 초막절은 추수가 끝나고 농작물을 곳간에 저장한 뒤인 초가을에 지켜졌다. 유월절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와 달리, 초막절은 큰 축제와 기쁨의 기간이었다. 유대인들은 일주일간 예루살 렘에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만든 초막이나 장막에 거주했다. 초막절 은 참으로 기쁨과 춤과 노래와 환호가 가득한 때였다 ( 레 23:40을 보라 ). 초막절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 전통적으로 초막절 참가자들은 버드나무와 종려나무에서 하나씩 취하여 묶은 화석류나무 가지인 룰 라바 ( lulabha ) 를 오른손에 들었다. 그들은 감귤나무 가지를 한데 묶은 에트로그 ( ethrog ) 를 왼손에 들었다.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이 손에 금

으로 된 물동이를 들고, 실로암 못으로 가는 축제 행렬에서 피리와 나팔의 반주에 맞추어 사람들을 인솔했다. 제사장은 그 물동이에 실 로암 못의 물을 채운 다음, 절기에 참석한 사람들의 행렬을 다시 성 전으로 인솔했다. 제사장은 제물을 드린 제단에 곧바로 나아가서 제 단 밑으로 이어지는 고랑에 그 물을 부었다. 제사장이 그런 행동을 마치면, 모든 참석자는 피리 반주에 맞추어 오른손과 왼손에 든 룰 라바와 에트로그를 흔들면서 시편 113~118편을 교창 형식으로 불 렀는데, 이 찬송은 시편 118편 24~29절을 함께 낭송하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물을 붓는 의식은 초막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으로 생각되는데, 그 의식이 지니는 상징적 목적은 농작물이 자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땅에 비를 주셨다는 사실뿐 아니라, 광야에서 지낸 시기 동안도 하나님이 물을 제공하셨던 사실을 참가자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 민 20:7~11; 느 9:15, 19~20을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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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물을 붓는 의식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 생생한 바로 그때, 나사 렛 출신의 한 청년이 눈에 잘 띄는 높은 곳에 서서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쳤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 7:37~38 ).

간단한 어구지만 그 깊은 의미를 풀어서 표현하면, 예수님

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셈이다. “이 절기는 모두 나에 대한 것이 다! 광야에서 반석으로부터 흘러나온 그 물은 나를 상징한 것이었 다! 제단에 드려진 제물은 나와 관계있다! 금 물동이에 든 물은 나를 가리킨다! 생기를 주는 구원의 물에 대한 약속은 나를 나타낸다! 내 가 주는 물은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보다 더 낫고, 너희가 농작물을 기르기 위해 하늘에서 내리는 비보다 더 나으며, 실로암 못에서 방 금 길어온 물보다 더 낫다. 나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휴식, 영원한 기쁨을 주는 물이다! 너희는 더 이상 성전에 갈 필요가 없다. 너희는 더 이상 초막절을 기념할 필요가 없다. 나를 기념하라! 나에게 와서 나를 마셔라!”

예수님은 우리의 안식이시다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밀 이삭을 자름으 로써 안식일을 범한다는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예수님이 대응하신 방식 ( 막 2:23~28 ) 에도 이 원리가 나타남을 목격한다. 그 이야기에 대한 마태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주님의 놀라운 선포가 포함되어 있다.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 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5~6 ).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비 난을 반박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다윗보다 더

1장 종말론과 해석학 : 예언을 해석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초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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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이다! 내가 성전보다 더 큰 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 시지 않는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다시 말해, 사람의 유익과 영 육의 안녕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 이 아니니[안식일에는 사람이 채울 수 있는 아무런 부족도 전혀 없 으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7~28 ). 여러분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이해하는가? 이것은 일차적으로 안식일 규정에서 빠져 나갈 구멍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 기가 아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안식일에 수확하고 먹기 위한 전례 를 찾아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심지어 그것은 일차적으로 여러분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침으로써 선행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 것은 일차적으로 유대인과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예수 님과 관계있다. 나는 다윗보다 더 큰 자다. 나는 다윗이 모형으로 보여 준 모든 것을 성취하는 자다. 나는 성전보다 더 큰 자다. 나는 성전이 모 형으로 보여 주고 상징한 모든 것을 성취하는 자다. 나는 안식일보다 더 큰 자다. 나는 심지어 구약 시대의 안식일도 제공하지 못한 만족과 안식 을 너희에게 가져오는 자다. N. T. 라이트 ( N. T. Wright ) 의 말대로, “만일

예수님이 걸어 다니고 살아 있고 숨 쉬는 성전이시라면, 예수님은 또한 걸어 다니고 기념하고 승리를 거둔 안식일이시기도 하다.” 7  )   하나님이 안식일을 이스라엘 자손과 맺으신 옛 언약에 대한 징표 로 제정하셨음을 기억하라 ( 출 31:12~13, 16~17을 보라 ). 하지만 바울이 골로 새서 2장 16~17절에서 분명히 밝히듯이, 예수님은 구약 성경이 예 언하고 예표하고 전조로 보여 준 모든 것에 대한 성취다. “그러므로

7  )   N. T. Wright, Simply Jesus: A New Vision of Who He Was, What He Did, and Why He

Matters (New York: HarperOne, 2011), p.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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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개혁주의 종말론 탐구 코르넬리스 비네마 지음 | 박승민 옮김 | 624쪽 | 28,000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갈 뿐만 아니라, 성경도 단지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기 위 한 ‘증거 본문’ 정도로만 여긴다. 사실 성경은 종말을

예수님의 재림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분명한 불일치를 보이는 문제다. 이 중요한 책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이 현재의 교회 시대 동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의 통 치에 대한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무천년설의 성경적 근거를 제공한다.

포괄적이면서도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세상 끝 날’ 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태초부터 종말론적인 전망을 가지 고 계획하셨다. 이 책은 오늘날 교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말론적 입장들을 철저하게 성경적인 자세로 공정하게 다룬다.

“‌ 어떤 사람에게는 전천년설이 거의 정통 신앙이나 다름없다. 샘 스톰스는 무천년설을 단호하게 변호하면서 그런 전제에 도전장을 던진다. 스톰스는 폭넓은 영역과 분야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자기 견해를 변호하기 위해 주석적·신학적 논증을 펼친다. 스톰스의 논증을 여전히 납득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책에서 무천년

개혁주의 무천년설

설 해석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언하는 유력한 논거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토머스 슈라이너, 서던 뱁티스트 신학교 신약 해석학 교수

킴 리들바거 지음 | 박승민 옮김 | 416쪽 | 20,000원 무천년주의자들은 천년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 지상에 임할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한 미래적인 소망으 로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천상 통치 가운데 현재

“‌ ……W. J. 그리어가 쓴 『중대한 사건』 이후로 내가 읽어 본 다양한 천년설 관련 서적 가운데서 가장 크게 도 움이 된 작품이다. 스톰스의 작품은 관련 본문에 대한 세심한 주석을 특징으로 하며, 종말을 다루는 모든 관 련 성구들을 광범하면서도 심도 있게 망라한다.”

더글러스 켈리, 리폼드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하는 실재로 믿는다. 이 책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무천년설을 천년왕국에 대한 역사적 개신교의 입장으로서 제시하고 변호한다. 특히 천 년왕국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본문들인 다니엘 9장, 마태복음

“‌ 스톰스가 쓴 이 책은 크게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서, 향후 몇 년 동안 무천년설 입장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할

24장, 로마서 11장, 요한계시록 20장에 대해 논의하고, 주요한 천년왕국 입

것이 확실하다. 이 책은 내가 앞으로도 개인적인 연구나 목회 사역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다시 살피고

장들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과거주의 ) 이 직면한 문제를 다룬다.

싶은 작품이다. 스톰스는 이해하기 쉽고 삶과 연결되는 온정적인 학식으로 교회를 섬기는 본보기를 우리에 게 제공한다.”

개혁주의 종말론

케빈 드영, 유니버시티 개혁교회 담임목사

앤서니 후크마 지음 | 이용중 옮김 | 454쪽 | 22,000원

“‌ ……무천년설 관점이 요한계시록을 포함하여 종말론을 이해하는 데 실행 가능한 관점임을 밝히 보이는 가

종말이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는 실재라는 명제 에 걸맞게,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부 시작

치 있는 작품이다 ……스톰스가 제안하는 무천년설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스톰스의 책에서 분명히 유익을 얻을 것이다.”

그레고리 빌,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약학 교수

된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성취와 구속된 공 동체가 이미 누리는 복을 다루는 반면, 2부 미래 종말론은 죽음과 부활 사이

“‌ 샘 스톰스가 쓴 이 책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안에는 목회자의 마음과 경건한 예배를

의 신자의 상태, 시대의 표적,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몸의 부활, 마지막

바탕으로 하는 충실한 신학과 세심한 주석이 담겨 있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스톰스 박사가 종말을

심판, 새 땅 등과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이 책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하

주제로 강의실과 교회에서 수십 년간 가르치며 정립해 온 원숙한 사상을 발견할 것이다.”

나님 나라의 현재 상태 ) 와

‘아직’( 그리스도의 재림 때 발생할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수립 ) 의 차

이를 인식하는 종말론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저스틴 테일러, 『하나님 중심적 세계관』의 공동편집자 “‌ 이 책에 실린 주제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과정에서 나는 스톰스가 어려운 자료를 분별 있게 다루고 알기 쉽

만화 종말론

게 가르치는 모습에 경탄했다.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는 종말론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특별히 유용한데,

백금산 글 | 김종두 그림 | 368쪽 | 15,000원

리처드 필립스, 제2장로교회 담임목사

이 책을 소장하지 않고서는 결코 개혁주의 장서를 완비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 & 신학 만화 시리즈 중 하나인 이 책은 간결하고 깊이 있는 내용과 재미있고 감동적인 그림으로, 세상의 종교·철학·과학이 그리는 잘못된 종말론이 아니라 성 경이 말하는 바른 기독교 역사관에 기초한 종말론을 다룬다. 성경이 가르치 는 역사는 시작과 마지막이 분명한데, 곧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셨고 완성 하실 것이다. 이 책은 종말과 예수님의 초림의 관계, 예수님의 재림과 그 징 조, 예수님의 재림의 목적과 그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심오하면서도 읽

ISBN 978-89-6092-414-7

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www.rnrbook.com 값 35,000원

샘 스톰스 지음 윤석인 옮김

KINGDOM COME The Amillennial Alternative

지은이

샘 스톰스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 시티에 소재한 브리지웨이 교 회의 담임목사이자 엔조잉 갓 선교회 회장이며, 22권의 책을 저술하거나 편집했고 수많은 잡지와 신문에 글과 서평을 기고했다. 오클라호마 대학교 ( B.

A.),

댈러스 신학

교 ( Th. M.), 텍사스 대학교 ( Ph. D.) 에서 공부했다.

옮긴이

개혁주의 무천년설 옹호 샘 스톰스 지음 | 윤석인 옮김

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 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신학 석사 학위 ( Th.

M.) 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 부하고 있으며, 부흥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 고 있다. 번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도 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교 핵심』, 『십계명의 렌 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문화신학』 ( 이상 혁사 ) 등

다수가 있다.

부흥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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