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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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F a i t h

S p e a k i n g

U n d e r s t a n d i n g

Understanding

학자로 명망이 높은 케빈 밴후저는 이 책에서 기독교 신학에 관하여 생각하는 또 하나의 방 식을 소개함으로써, 2005년에 발표한 자신의 역작 『교리의 드라마』에서 착수한 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밴후저는 신학이 단순히 인지적인 신념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가 실행하 는 어떤 것으로서 언어와 행위를 모두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밴후저는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사고를 형성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극장 모델을 사용한다. 밴후저는 교회가 그 속에서 복음이 “상연되는” 극장이요 교리가 이런 상연을 지도한다고 간주한다. 교 리는 단순히 저장하고 보관하고 쌓아 두는 진리가 아니라, 따르고 실천하고 상연해야 하는

교리의 드라마 케빈 밴후저 지음 | 윤석인 옮김 | 804쪽 | 38,000원 이 책은 성경(대본), 신학(극작술), 신학적 이해(상연), 교회

가르침과 지시다. 그리스도인은 교리를 “상연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적인 제자 로 형성된다. 알기 쉽고 매력적인 문체로 쓰인 이 책은 교회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이 사명을 위하여 기독교 교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논증한다.

(연극단), 목회자(감독)를 위한 새로운 은유를 제시한다. 교 회는 복음의 연극단이요, 말씀과 성례의 연극단이요, 순교 의 연극단이요, 화목의 연극단이요, 거룩한 어리석음의 연극 단이다. 교리는 구속 드라마, 다시 말해 삼위 하나님의 삶에 적합하게 참여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성경에 뿌리를 두고 수

Speaking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케빈 밴후저가 자신의 엄청난 창작열을 쏟아부어 탄생시킨 이 책은 그와 똑같은 창작열의 산물인 『교리 의 드라마』를 기반으로, 교리도 무대 지시와 마찬가지로 복음에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준다는 사실

세기에 걸쳐 축적되어 온 기독교 지혜의 압축판이다. 또한

을 독자들이 깨닫는 데 일조한다. 밴후저는 기독교의 근본 신념이 지니는 드라마의 특성을 자세하게 밝

성부 하나님은 이야기 전개의 극작가 겸 제작자요, 성자 하

힘으로써, 그런 신념이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틀림없이 생동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이 머지않아 한 편의

나님은 그 이야기 전개의 절정이자 요약이요, 성령 하나님

고전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은 전 세계적 연출을 총관하는 총감독이다.

Faith

지은이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교 리 의

드 라 마

상 연 하 기

케빈 밴후저 지음 | 윤석인 옮김

Understanding

“‌ 이 책은 교회를 섬기려는 목적으로 신학을 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다. 신학을 하나님 드라마로 해석하

문화신학

는 것으로 정평 있는 자신의 방법론을 기초로 밴후저는 교회를 복음의 극장으로 소개하는데, 복음의 극

케빈 밴후저 지음 | 윤석인 옮김 | 472쪽 | 18,000원

장은 관객이 참여자인 장소요 신학과 윤리학, 명상과 행위, 굴복과 순종, 야고보와 요한이 더 이상 반대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문화라는 영역에서 신학적인 자세를 익히도록 가르친다. 문화신학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

자가 아니라 협력자인 장소다. 탁월한 복음주의 사상가가 쓴 훌륭한 신학 논문이다.”

_티머시 조지, 샘포드 대학교 비슨 신학부 초대 학장

실한 제자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성적이고 실제적 인 작업이다. 신학은 일요일만을 위한 게 아니다. 예수님의

케빈 밴후저 지음 |윤석인 옮김

_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 『설교자의 서재』 저자

D.)에서

공부했으

며,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부에서 8년 동안

자로 꼽히는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안

아니라 뛰어난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이 텍스트 에 의미가 있는가?』, 『제일신학』 (IVP), 『구약의 신학적 해설』, 『신약의 신학적 해설』 (CLC), 『문화 신학』, 『교리의 드라마』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옮긴이

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관심이 있는 모두를 대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Speaking

케임브리지 대학교(Ph.

수를 받은 목사이자, 미술과 문학 애호가일 뿐

지는 삶을 거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충실하게 반영한다. 밴후저는 다른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대화하는 경

작품이다!”

Div.)와

부교수로 가르쳤다.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신학

“‌ 이 책은 밴후저표 작품으로, 대단히 명료하고 놀라울 정도로 의미심장하며 복음과 교회 안에서 이루어

이 책은 위력적인 동시에 선지자의 면모를 띠는데, 이 책도 예수님처럼 진리와 은혜로 충만하다. 탁월한

현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 조직신학 연 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M.

Faith

_스탠리 하우어워스, 듀크 대학교 신학부 및 법학부 길버트 로 명예교수

케빈 밴후저 (Kevin J. Vanhoozer)

Speaking

을 졸업하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 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신학 석사 학위 (Th. M.) 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신학에 깊

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Understanding

있으며, 부흥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 기고 있다. 번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 인가』 , 『사도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 교 핵심』 ,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 『문화신학』, 『교리의 드라 마』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제자는 한 주 내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길을 걸어야 한다. 문화신학은 진리와 생명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적극 노력 하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ISBN 978-89-6092-517-5 www.rnrbook.com 값 27,000원

표지 이미지_ Designed by Freepik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Copyright ⓒ 2014 by Kevin J. Vanhoozer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as Faith Speaking Understanding b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Louisville, KY, 40202-1396, U.S.A. All rights reserved. This Korean translation edition © 2018 by Revival and Reformation Press, Seoul, Republic of Korea This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of Westminster John Knox Press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 에이전시를 통하여 Westminster John Knox Press와 독점 계약 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신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 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 하였습니다.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교 리 의

드 라 마

상 연 하 기

케빈 밴후저 지음 | 윤석인 옮김


자신을 보거나 자신을 보이는 것, 자신을 이해하거

Faith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것은 인간에게 숙명적인 굴레

Speaking

다. 그리고 연기자가 되거나 관객이 되는 것은 인생의

Understanding

조건이다. _ 샤를 가르니에, 『극장』

가장 오래된 드라마, 곧 세계를 지배하는 드라마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는 드라마다. _ 헤라르뒤스 판 델 레이우,   『신성하고 신성모독적인 아름다움』

사도행전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그 이름을 전달하고, 그분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그대들도 똑같은 무대 위에 서 있 는 연기자다. 이 땅의 모든 곳이 그대들의 무대다. 사 도들의 행동을 실연하라. _ 존 던, 버지니아 연극단을 상대로 했던   행 1:8 설교 중에서 ( 1622년 11월 30일 )


목차

서언 ·8 서론 “성경대로”: “살아 있는 성경”으로서의 지역 교회 ·19

연극 광고 전단: 지역 교회가 “살아 있는 성경”을 만들다 ·19

상연 목록 해설: 이 책과 관계된 내용 ·24

구상: 간단 개요 ·33

1부 막이 오르기 전에: 신학과 극장에 관하여 1장 ‌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 위에서” 말씀을 실행하기: 복음의 극장 소개하기 ·39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난제 ·40

말씀의 실행자로서의 증인: 야고보의 거울과 예수님의 집 ·44

복음의 “극장”: 정의와 특징 ·48

신학의 하녀로서의 극장: 은유인가 아니면 모델인가 ·56

2장 ‌ 청중의 참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진리를 실행하기, 교회가 되기 ·71 ‌ “분리시키는 장벽을 무너뜨리기”: 연기자와 청중, 목회자와 교인, 교회와 세계 사이 ·72

“진리 안에서 행하기”: 그리스도에의 참여 ·78

“그리스도의 오심을 고백하기”: 자기 수반적인 실증 ·84

“교리 안에 거하기”: 상연 공간으로서의 청중 ·90


2부 ‌ 이해를 보이는 믿음: 교리가 제자들을 양성하는 방 식, 그리고 제자들이 교리를 실행하는 방식 3장 ‌ 세계라는 대극장: 21세기 무대를 설치하기·99

무대: 교회, 세상, 그리고 진정성에 닥친 현대의 위기 ·102

무대 조명: “내 발에 등불” ·120

행위: 극장의 본질 ·124

재현: 정경의 명령법 ·134

4장 ‌ 복음의 극장: 삼위 하나님의 구속 드라마 ·137

“위에서부터” 본 극작가의 연극: 삼위일체적인 규모의 드라마 ·140

연기자: 인간과 다른 극중 인물들 ·153

“아래에서부터” 본 극작가의 연극: 나라와 친족의 법정 드라마 ·164

재현: 정통 신앙의 명령법 ·201

5장 ‌ 배역 익히기 ( 그리고 배역의 인물 되기 ): “작은 그리스도들” ·205

역할: 우리가 얼굴로 마주할 때까지 ·208

의상: 그리스도로 옷 입기 ·217

프롬프트: 비망록으로서 그리고 은혜의 수단으로서 말씀과 성령 ·234

재현: 바울의 명령법 ·246

6장 ‌ 연극단 형성하기, 교회 하기: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하는 삶을 실연하기 위한 교리의 지시들 ·253 ‌ 성도의 교제 ( Communio Sanctorum ) : 왕궁 상연으로서의 제자들의 모임-“이것을 상연하라” ·256

회중적인 삶의 장면들 ·275

교제를 시연하기: 복음의 총체로서의 성찬 ·288

재현: 보편적-복음적인 명령법 ·299


7장 ‌ 수많은 장소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복음의 연극단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을 상연하는 방법 ·303

지역 교회, 지역 극장: “그리스도 안”은 어디인가 ·306

재류 추방자와 거룩한 바보들의 소통 극장 ·320

‌ 즉흥 연기: 그리스도의 마음을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체현하기 ·337

재현: 사피엔티아의 명령법 ·364

8장 ‌ ( 찢어진 ) 휘장: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것 같이 땅에도 계신다 ·369

절정: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시다” ·372

갈등: 승리 이후에 압제받는 사람들의 극장 ·382

카타르시스: 마음의 정화 ·391

재현: 송영의 명령법 ·400

결론 ‌ 들려주고 보여라: 그리스도와 함께 복음을 전시하기 ·405

퇴장: 폐회 선포 ·410

앙코르: 영광송 ·413

부록 브로드웨이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421

극장에 반대하는 편견: 역사적인 반론에 대응하기 ·421

“연극은 실재가 아니다”: 현대의 반론에 대처하기 ·429

참고문헌 ·445


서언

교회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그들을 작은 그리스도로 만드는 일 외에는 그 어떤 다른 존재 이유도 결코 없다. 만일 교회 가 그런 일을 실행하고 있지 않다면, 그 모든 웅장한 교회 건물과 성직자와 선교 사업과 설교와 심지어 성경 자체도 한낱 시간 낭비 에 불과하다. -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그레이츠”( Greats ) 는 그리스 고전과 라틴 고전 을 4년간 연구하는 과정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인문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언어, 문학, 역사, 철학이다. 루이스 ( C.

S. Lewis ) 는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 “그레이츠”를 공부했고, 원전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옥스퍼드 대학교가 고대 정전 외에 현대 텍스트들을 포함시킬 목적으 로 2004년에 교과 과정을 수정하긴 했어도 “그레이츠”는 여전히 존재 한다. 우리는 “그레이츠”를 공부하면서 무엇을 배울까? 우리는 인문학 이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는 판에 박힌 대 답을 듣곤 한다. 옥스퍼드 고전학과 웹사이트는 회의주의자의 반발 (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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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세계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취업이 확실히 보장되지는 않는다 ) 을

예측하고 그런

반발을 일소하고자 시도한다. “사회와 문화가 급변하는 우리 세계에서 고용주들이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곧 새롭고 예측하지 못한 발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다.” 1  )   “그레이츠”를 공부하는 일이 즉흥 연기자에게는 분명히 좋은 훈련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적 절한 기회가 되면 다시 살펴볼 것이다.2  )   교회에도 “그레이츠” 교과 과정이 있다. 이 경우는 단지 인성만 아니 라 신성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칼빈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 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 3  )  을 수반하는 것으로 요약하는 연구 과정이 다. 교회의 경우, “그레이츠”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잘 알고 있었던 것처 럼 지성의 교육과 아울러 감성의 교육도 포함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독백을 사용하여 자신이 회심한 뒤에 당면한 여러 가지 근본 문제와 씨 름하는데, 독백은 등장인물이 자기 생각을 소리 내어 스스로에게 말함 으로써 청중과 공유하는 연극 장치다. 제자가 신앙적・지적 열망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참 제자의 모습은 무엇을 특징으로 할까? 아 우구스티누스는 자기 독백의 과정에서 자신의 가장 큰 소망이 “하나님 과 영혼”을 알고 사랑하는 것뿐임을 깨닫게 된다.4  )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는 제자의 직무에 제기되는 도전과 신학의 목적을 다음처럼 잘 알려진 어구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곧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이다. 이렇게 제자의 교과 과정에서 각 구성 요소가 되는 다음의 “그레이 츠”를 살펴보라. 가장 큰 계명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 하 여 주 너 의 하 나 님 을 사 랑 하 라 …… 네 이 웃 을 네 자 신 과 같 이 사 랑 하 라 ” [ 막 12:30~31] ),

대위임령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마 28:19] ),

그리고 대개념으로 부를 수 있는 것 ( “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

1  )     http://www.classics.ox.ac.uk/admissions/undergraduate/careers.html에서 인용. 2  )     뒤에서 7장을 보라. 3  )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1. 4  )     Augustine, Soliloquies 1.7.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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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삼하 7:22] ).

대개념은 완전한 존재라는 개념에 바탕을 둔 안셀무스의 유명한

신 존재 논증을 연상시키는데, 안셀무스는 “그보다 더 큰 무엇도 마음 속에 결코 생각해 낼 수 없는” 5  )   존재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 다고 단언했다. 나는 안셀무스의 단언을 약간 수정해서 하나님의 위대 하심을 복음과 관련시키고자 한다. 복음 ( 그런데 볼 주제다 ) 은

이것은 우리가 자주 다시 살펴

좋은 소식일 뿐 아니라 위대한 소식으로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하신 위대한 구원 행동, 곧 “그보다 더 위대한 무 엇도 마음속에 결코 생각해 낼 수 없는” 행위에 대한 증언이다. 행위는 실효적인 개념인데, 왜냐하면 “그보다 더 큰 무엇도 결코 마

음속에 생각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가 사랑이기 때문이며, 사랑 은 능동성을 띠는 것으로서 곧 끊임없는 자기 소통이요 자신의 전 존재 와 모든 소유에 대한 공유이기 때문이다.6  )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도 “살 아 있고 활력이 있다”( 히 4:12 ). 따라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의 본성에 기인하는데, 하나님의 본성은 내가 여기서 대개념으로 부르고 있는 것 이다. 예수님이 가장 큰 계명을 표명하신 뒤에야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 된 것 (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막 12:29] ) 을

유념하라. 명령법 (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 은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직설법 ( 하나님은

다 월등하신 존재이며 따라서 가장 소중히 여김을 받으실 대상이다 ) 에서

모든 것보

기인한다.

마가복음에서 가장 큰 계명에 관하여 질문했던 서기관은 예수님의 답 변을 이해하고 긍정한다는 인상을 주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한 분이 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12:32 ) 는 점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는 명령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 ( 12:33 ) 을 시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 지 않도다”( 12:34 ) 라고 평가하실 만큼 서기관의 반응을 칭찬하신다. 하 5  )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은 Proslogion 2 (약 1077~1078년)에 실려 있다. 6  )     나의 책 Remythologizing Theology: Divine Action, Passion, and Authorship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에서 특히 4장과 9장을 보라.

10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지만 “멀지 않다”는 것이 충분히 가깝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우 리가 누가복음에서 보듯이 가장 큰 계명을 아는 일은 그것을 실행하는 일과는 별개인데,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서기관의 질문에 대하여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10:28 ) 라고 대답하신다. 하 나님에 관한 지식은 경건한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완전하다. 제자를 가르치는 일도 자녀 양육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가 행하는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경우를 무슨 수를 써 서라도 피하고 싶어 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자녀와 제자는 본보기 를 통해서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 녀를 어떻게 양육할지 ( 대략 ) 알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따르는 성숙한 자녀인 제자는 우리가 어떻게 양육할까? 비록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도 참담할 정도로 겨우 단축된 형태 로 그것을 운용함으로써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그리 스도인들을 가르치는 일에 실패하는 교회가 많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변함없이 시급한 과제다.7  )   대위임령에 대한 어떤 번역들은 어느 정도의 허점을 무심코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절차상 문제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기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허용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중에도 서기관처럼 안전한 거리에서 예수 님을 관찰할 때만 예수님과 예수님의 명령을 준수하고 심지어 존경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가 다른 신기한 것들 ( 기괴한 행동, 문화적인 특이 성, 곡예 공연 ) 을

주시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염두에 두신 종류

의 준수가 아니다. 우리는 마음에 새김으로써가 아니라 순응함으로써 예수님의 명령을 준수한다. 제자를 양성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믿음을 지키는 법을 가르친다는 뜻 이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의 내용을 아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예수님의 7  )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The Great Omission: Rediscovering Jesus’ Essential

Teachings on Discipleship (San Francisco: HarperCollins, 2006)에서 교회가 제자를 삼고 가르치지 않는 것을 “중대한 태만”(Great Omission)이라고 명명한다.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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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따름으로써 믿음을 지킨다. 바울 사도가 생을 마감할 즈음에 자 신이 “선한 싸움을 싸웠을” 뿐 아니라 “믿음을 지켰다”고 말할 때 ( 딤후 4:7 ),

그것은 “망령되고 헛된 말”이라는 악성 종양에 감염되지 않도록

자신이 복음의 “건강한 말씀”을 지켰다는 뜻이다 ( 딤후

2:16~17 ).

오늘날

교회에 부여된 책임이 그러한 것인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한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할 과제를 부여받았다 ( 계

1:1~3 ).

예수

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으며, 다른 사 람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교리를 크게 존중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교회도 텔레비전처럼 언제나 교육 기능을 수행 중이다. 다만 문제는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특히 교회는 자신의 은밀한 교과 과정, 곧 일을 실행하는 일상의 방식을 통하여 어떤 규범과 가치와 신념을 전 달하고 있는가? 교인들은 어떤 신념과 관례의 도식으로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가? 교회는 오로지 누구의 말에만 따르고 있는가? 기독교의 “그 레이츠” 교과 과정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영생에 관한 말씀인데, 그 것은 곧 우리가 따르는 경우에 하나님의 통치를 알리는, 생명을 주고 사 랑으로 지도하는 말씀이다. 이 책은 제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교리가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주제로 다룬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윌리엄 에임스의 말을 빌리면, “신학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기 위한 교리 또는 가르침[doctrina]” 8  )  이 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 때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것 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살 때만 복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신학은 하나 님께 대하여 복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기술이요 과학이다. 더 완전하게 표현하면, 신학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 른 사람들과 더불어 복 있게 살기 위한,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시도다. 교

리는 단순히 저장되고 보관되고 축적되어야 할 진리가 아니라, 따르고 8  )     Williams Ames, The Marrow of Theology 1.1 (Latin, 1656; ET repr., Grand Rapids, MI:

Baker,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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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실행되고 상연되어야 할 표시와 지시다. 기독교의 제자 양성은 진리를 실행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길을 익히는 관례다.

이 책은 “그레이츠” 교과 과정과 거기에 포함된 교리에 따라서 교회 를 하는 일과 관계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하셨고 지금 실행 중이시며 장차 실행하실 일에 참여함으 로써 하나님을 아는 일과 관계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유 용한 것을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각성시킴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우리 의 영적 소망을 훈련하는 일과 관계있다. 제자 양성의 “그레이츠” 교과 과정은 마음과 생각을 교육한다. 교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향한 열망은 맹목적이며, 열망 없는 교리는 공허하다. 가장 큰 계명은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열렬하게 사랑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 다 ( 막 12:30 ).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하신 일을 이해하 지 못하면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 수 없다. 제자 양성은 기독론에 달려 있으며,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분인지를 보 이고 들려줄 수 있는 역량을 요구한다.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가 현재 실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상을 포괄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이 책은 기독교 교리가 “교회를 하는 일”에 지극히 중요한 조력자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나는 교회에 부여된 사명을 극장의 각도로 논의하는데, 극장 은 교회가 그 속에서 자기 믿음을 상연하는 현장과 아울러 교회의 상연 을 지도하는 교리도 모두 강조한다. 상연 지향적인 모델을 옹호하는 것 이 분별 있는 태도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교회 지도자들은 성공적인 사업 모델을 문화의 다른 분야에서 찾아내어 자 신이 담임하는 교회의 상연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은 유혹을 느 낀다. 여기서 성공은 식별 가능한 성장의 각도로 측정되는데, “구원받 은 사람”의 숫자나 헌금 액수나 제공되는 프로그램의 다양성 등이 척도 가 된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수행해야 할 일을 교회 지도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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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에게 맡겨둔 채 성도석에 느긋하게 앉아 있으려는 유혹을 느낀다. 이 책은 상연과 제자 양성에서 무엇이 “성공”으로 간주되는지 판정하 기 위한 다른 기준을 제안한다. 이 책에서 발전시킬 극장 모델은 상연 심리와 관련된 위험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는 장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기에 가서 그 일을 실행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목회자가 “교회를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제자 양성에서 성장이 우리가 실행하는 일 ( 다시 말해, 공로적인 행위 ) 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를 원치 않는다. 교회를 하는 일은 오히려 삼위 하나님이 이전에 행하신 활동에 참여하는 문제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삼위 하나 님의 작품이요, 그 속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심”( 고후 5:19 ) 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복음의 극장이다. 신학 은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런 지식을 자세히 설명하는 동시 에 그것을 실행하려는 시도다. 교리는 교제 안에서 함께 살고 더 광범한 세상 속에서 공의와 평 화 ( shalom ) 에 기여하려는 교회의 기획에서 빠뜨릴 수 없는 조력자다. 이 책이 제시하는 극장 모델은 교리가 인성과 경건을 모두 훈련하는 일 ( 딤 전 4:7~8 ) 에서

지극히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이해한다. 신학은 단순히

이론적인 성격만을 띠는 정보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연극의 성격을 띠는 것이어서 행위 ( 다시

말해, 사랑의 행위 ) 로

이어지는 “마음의 습성”을

기르고 변화시키고 상연하는 문제다. 이 책이 앞서 발표된 『교리의 드라마』와 어떤 식으로 관련되는지 알 고 싶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교리의 드라마』는 교리와 신학의 본질 에 관한 학술적인 논의에 기여하려는 취지로 저술된 책이다. 『교리의 드라마』에서 염두에 둔 독자층은 일차적으로 전문 신학자나 신학대학 원 학생이었다. 나는 『교리의 드라마』 끝부분 ( 4부 “상연” ) 에서야 내가 제 안한 “지시적인” 교리론이 신자 개개인과 교회를 위하여 현실적으로 어 떤 중요성이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규모, 난이도, 목표 ( 특별히 밝은 주황색 표지 ) 를 감안해서 『교리의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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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라마』에 “큰 호박”이란 별명을 지어 주었다. 그에 반해, 『이해를 이야기 하는 믿음』은 평범한 그리스도인, 진지한 신학생, 목회자를 대상으로 저 술된 책이다.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세상의 소금을 위한 뿌리채 소다. 그래서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큰 호박이 아니라 상대적으 로 크기가 작은 방풍나물이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나의 전작인 『교리 의 드라마』가 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형태로 편집되어 현실에서 더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많았는데, 시간이 꽤 지체 되긴 했지만 나는 이런 요청에 부응하고자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을 집필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 세 번 중 두 번은 나쁘지 않다 ).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요약본이 아니다. 이 책은 나름의 고유한 장점이 있는 야심작인 데, 곧 제자를 양성하는 교회의 과제에서 신학이 수행하는 역할을 본격 적으로 소개하는 제안이다. 나의 견해는 신학을 극장의 각도로 처음 생각하기 시작한 때부터 12년 동안 꾸준하게 발전되어 왔다.9  )   그동안 나의 입장을 도중에 밝힐 기회가 있었다. 나는 위클리프 대학교 ( 토론토 ), 휘튼 대학교, 트리니티 복 음주의 신학교, 커버넌트 대학교, 커버넌트 신학교, 사우스이스턴 침례 신학교, 그리고 버지니아 샬로츠빌에 소재한 기독교 연구 센터에서 학 생들에게 강연하고 그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던 점을 감사하게 여긴 다. 웨스트몬트 대학교, 비올라 대학교, 휘튼 대학교, 그리고 매사추세 츠 애머스트 소재의 에라스무스 연구소와 제휴된 여러 대학교의 교수 진을 위한 연수회를 개최하는 특권도 누렸다. 또한 2006년 미국종교학 회의 연례회의에 『교리의 드라마』를 주제로 다루는 논문들을 제출한 동 료 교수들에게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나는 극장 모델이 여러 학문 분야에 끼치는 파급 효과 를 실감했다. 2007년에 나는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개최된 뮤지컬 즉 9  )     최초의 시도는 Evangelical Futures: A Conversation on Theological Method, ed. John G.

Stackhouse (Grand Rapids, MI: Baker Books, 2000), 61~106에 수록된 “The Voice and the Actor: A Dramatic Proposal about the Ministry and Minstrelsy of Theology”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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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연기자들의 연례회에 참석하여 “신학과 즉흥 연기”를 주제로 강연하 기도 했다. 훨씬 더 놀라운 사실은, 에릭 존슨이 2008년에 개최된 기독 교 심리학회 연례회에 참석하여 “연기자들을 형성하기: 우리가 우리의 ( 하나님 드라마적인 )

의식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정경적

의식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기조연설을 해 달라고 나 를 초청한 것이었다. 이 논문은 결국 여덟 명의 기독교 심리학자들의 논 평을 덧붙여서 기독교 심리학 정기 간행물에 게재되었다.10  )   지난 몇 년 사이에 『교리의 드라마』에 대한 수많은 평론이 발표되었는 데, 그중에는 비판적인 경우도 더러 있다. 여기는 부당한 논평에 대한 푸 념을 늘어놓거나 울분을 해소하는 자리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다. 나 는 앞으로 이 책에서 나를 부당하게 비판한 학자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는 경우가 거의 없겠지만, 이것은 내가 그들의 우려를 일축한다는 뜻이 아 니다. 비록 그들은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는 상태로 대기 중이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더욱 엄정하게 생각하도록 자극받았다. 이 런 이유로, 나는 웨슬리 밴더 러그트처럼 나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에게 감사하듯이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의를 표하는데, 러그트 는 나의 『교리의 드라마』를 토대로 그의 박사 논문을 썼지만 그의 논문 도 이 책의 경우와 같이 『교리의 드라마』를 넘어서는 것이었다.11  )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신학의 방향을 ( 적어도 당분간은 ) 철학에서 연극학으로 돌리기 위한 성경적인 기초를 명확하게 밝힌다. 나는 아래 에서 이런 이유에 관하여 더 자세히 말할 텐데, 여기서는 이 작품이 사 도행전을 정경적인 본보기로 취한다는 점만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행위 ( 하나님의 행위, 사도들의 행위, 오늘날 우리의 행위 ) 는 핵심 용어다. 나는 신 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실행하신 일에 대한 이 해를 추구하고 실증함으로써 교회를 가장 잘 섬긴다고 주장한다. 그러 10  )     Edification: The Transdisciplinary Journal of Christian Psychology 4 (2010): 5~46을 보라. 11  )     간행본 Wesley Vander Lugt, Living Theodrama: Reimagining Theological Ethics

(Farnham, Surrey, UK: Ashgate, 2014)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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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므로 이 책은 복음에서 제 위치를 확인하는데, 복음은 아버지가 그리스 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자신 의 통치권을 확립하셨다는 좋은 소식이다. 끝으로,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교리가 교회를 양육하는 데 수 행하는 역할이나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 치를 실연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수행하는 역할 중 어느 것도 결코 망각 하지 않는다. 이 책의 논제는 교회가 똑같은 것을 말할 때, 곧 교회가 예 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실할 때, 세계가 가장 크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 교회 및 지역 교회의 본질과 목적은 『교리의 드라마』가 다 룬 것보다는 이 책에서 훨씬 중요하게 부각된다. 지역 교회는 바로 이것 인데, 곧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그리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상연하는 법을 배운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세계 속으로 관입하 고 세계를 변화시키기 시작하는 자리 또는 장소다. 나는 이 책의 여러 장에 대한 최종 시연에서 지인들에게서 받은 지원 과 의견과 평가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는데, 그중에 특별히 제임스 고든, 아이크 밀러, 스티브 파듀, 알렉스 퍼스, 데릭 리쉬모이, 조쉬 로드 리게스, 밥 라트클리프, 출판사 담당 편집인, 또한 특별히 나의 아내 실 비, 그리고 나의 두 딸 메리와 에마를 빼놓을 수 없다. 디어필드 저녁 토 론 모임의 회원들에게도 이 책의 4장을 인상적으로 훌륭하게 소화한 것 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특별히 목회자와 신학자를 위 한 연구소 ( 목회

신학 발전회의 후신 ) 를

설립한 두 학회와 그 학회장인 제럴

드 히스탠드 목사와 토드 윌슨 목사에게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 연구소의 취지는 목회자들이 다시 한 번 교회의 번영을 위하여 신학을 하는 과제를 새롭게 시작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쓰는 것 도 특별히 그처럼 열정 있는 목회자-신학자들 ( 교회의 구성된 지역 연극단의 감독인 목회자들 ) 이

의사요 또한 신자들로

교회에 만연한 신학적인 빈혈증과

신학계에 만연한 교회적인 빈혈증을 다루기를 소망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 인물들이 갈수록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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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Speaking Understanding


서론

“성경대로”

“살아 있는 성경”으로서의 지역 교회

교회가 기도하며 고난을 겪고, 섬기며 순종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념하며 기다리는 동안에 믿고 가르치고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 교리다. - 야로슬라브 펠리컨

연극 광고 전단: 지역 교회가 “살아 있는 성경”을 만들다 이 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를 밖으로 연기하기 위해서 교리를 배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그것을 제자 양성의 드라마라고 부르자. 세 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기획은 없는데, 그것은 곧 “성경대로”( 고전 15:3 )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알고 표현 하게 되는 방식이 이것인데, 곧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 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자기 삶 (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 막 12:30 ) 을

하나님의

서론 “성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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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에 순응시키는 것이다. 교리는 진실하게 증언하고 이해를 이야기하기 위한 지시를 제공한다. 그뿐 아니라, 행위가 말보다 더 큰 소리로 “이야 기한다면”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말과 행위라는 언어적인 의사소 통 양식과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양식을 동시에 수반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중요성에 대하여 권위 있는 증언을 제공한다. 따라서 제자들은 “성경대로” 말하고 행동할 때 이해를 이야 기한다. 그래서 성경대로 사는 것 ( 성경적으로 되는 것 ) 은 제자에게 가장 중 요한 사명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성경을 따르는 사람이 된다는 뜻인데, “따르다”는 단어에 담긴 세 가지 의미 곧 ( 1 ) 그 리스도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의 의미를 이해하고, ( 2 ) 그리스도 의 가르침에 순응하고, ( 3 ) 그리스도를 뒤따르거나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에서 그런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경적으로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의 권위와 관련해서 특정 견해를 지지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거기에 담긴 진리를 조직적으로 궁리하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또한 그런 진리를 진술하는 일도 그것을 실행 하거나 체현하는 일과는 별개의 문제다. 성경대로 신학을 수행하는 작 업이 이처럼 진리의 실행이나 체현이라는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도 아주 많다. 내가 제안하는 입장은 성경적으로 된다는 표현과 관련하 여 세 가지 차원을 모두 포함하는 확고한 의식을 갖고 작업하는데, 그 세 가지 차원은 곧 성경에 대한 고등한 견해를 견지하는 것, 성경을 기 독교 교리의 전거와 규범으로 사용하는 것, 성경을 일상생활의 형식으 로 체현하는 것이다. “성경대로” 신학을 수행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 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을 성경에 순응시키기 위하여 성령으로 말미암 아 변화되는 문제인 만큼, 성경적으로 되는 일은 참으로 우리의 존재 자 체와 관계된 능력의 문제다. 교회사는 본질적으로 성경 해석의 역사라고 알려져 왔다.1) 교회사에 서 많은 전환점이 특정 성경 텍스트를 둘러싼 상충된 해석을 수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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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견해도 어떤 면에서는 일리가 있다 ( 가령, 아리우스 논쟁은 아들이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라는 표현의 진의에 대한 견해차가 특징이다 ).

교회의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성경을 “몸으로” 해석하려는 교

회의 시도, 곧 성경을 삶의 형태로 동시에 보여 주려는 시도에 대한 이 야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런 진술은 다른 면에서도 일리가 있다. 그러 므로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말씀을 체현하여 살아 있는 주석이 되고자 노력할 때, 교회는 성경적으로 된다. 따라서 교회는 “책의 사람들”일 뿐 아니라 “책의 ( 삶으로 구현된 ) 해석”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의 기도 (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에

반응하여 성경적으로 되기를 추구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으 로 표현되는데, 성경에서 상연을 목적으로 하는 대본과 가장 닮은 부분 은 아무래도 율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적인 지혜도 하나님의 백성 의 삶 속에서 체현되기를 요구하는 만큼 대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참으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마

6:10 )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일과 관련해서 본디 상연의 성격을 띠고, 따라서 드라마의 성 격을 띠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것 같이”는 교회의 체현된 해석이 하 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고유 영역에서 이루어진 그대로 땅 위에서도 나타내고자 시도하는 일종의 상연으로 생각하기 위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성경대로” 상연해야 할까? 일리노이 주의 리버티빌에 위치한 제일 장로교회는 1985년에 처음으 로 성경을 공개적으로 상연했다. 제일 장로교회는 일 년에 한 차례씩 수 년에 걸쳐서 저녁 시간 동안 그런 기획을 진행했다. “리빙 바이블”은 지 역 사회 전체가 고대하는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기본 개념은 간단 하다. 관람객은 교회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13개의 재현 장면을 관 람할 수 있는데, 그런 재현 장면들은 교회 건물 주위의 세 블록에 걸쳐 1  )     Gerhard Ebeling, “Church History Is the History of the Exposition of Scripture,” in The

Word of God and Tradition: Historical Studies Interpreting the Divisions of Christianity (Philadelphia, PA: Fortress Press, 1968), 11~32.

서론 “성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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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련된 무대 위에서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

( 염소, 말 등을 실은 )

노아의

방주,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처형, 부활 등을 포함하는 성경 이야기의 중요 순간을 연출한다. 그런 연출에는 6백 명 이상의 연기자들, 그리고 무대 뒤에서 작업하는 2백 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동원되었다. 각 장면 마다 감독, 무대 장치 설치가, 연기자, 무대 책임자, 소품 제작자, 미술 가, 의상 제작자, 음향 및 조명 담당자 등이 배정되었다. 리빙 바이블 상연은 사흘간 매일 밤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그 사 이에 연기자들이 번갈아 교체된다. 연기자들은 말해야 하는 대사가 없 는데, 음악 반주와 미리 녹음된 성경 구절에 맞춰서 무언극으로 자기 배 역을 분연한다. 이런 재현 장면들 중에 절정은 성찬을 묘사하는 장면인 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유화를 본떠서 똑같이 연출된다. 머리 모양, 식기류, 음식이 다빈치의 화폭에 담긴 것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세 심하게 주의를 쏟는다. “식탁 위에 놓인 둥근 떡덩이에 이르기까지 모 든 것이 그림에 묘사된 그대로일 것이다. 다빈치의 작품은 예수님이 자 기 제자들에게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 직후의 순간을 포착하도록 기획된 것이었다. 우리 연기자들은 제자들의 얼굴에 나타난 불신의 표정을 되도록 가장 정확히 표현하고자 한다.” 2  )   그 장 면에서 13명의 연기자는 돌아다니면서 몸짓을 하다가 느닷없이 동작을 멈추는데, 그 순간 다빈치의 화폭 속에서 발견되는 제자들의 동작과 표 정을 거의 똑같이 모사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것은 대단히 효과적인 순간이어서, 관람객의 마음에 종종 깊은 전율을 전달하기도 한다.3  )   리빙 바이블은 효과적인 복음 전도의 수단이요, 동시에 기본적인 성 경 이야기의 추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하나로 결합되는 방식 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리빙 바이블 2  )     H. Lee Murphy, “Cast of Hundreds Celebrates Bible in Church’s Tableaux,” 1987년 9월

18일자 Chicago Tribune에서 제임스 글렌 목사와의 인터뷰를 기록한 것. http://articles. chicagotribune.com/1987-09-18/entertainment/8703100871_1_scenes-painting-lagrande-jatte. 3  )     제일 장로교회는 2012년 9월에 리빙 바이블 프로그램을 새롭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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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은 일종의 성공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성경을 상연하는 그런 모델을 다른 방향에서 취한다. 나는 대위임령의 후반부, 곧 사람들을 그리스도 께로 회심시키기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기르기,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최고 권위를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 치기”( 마 28:20 ) 라는 의미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교회는 살아 있는 성경이 되어야 하지만, 성경의 장면들을 글자 그대로 재현한 연극 ( 복사물 ) 을 무대에 올리는 식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것도 일종의 충실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진술에서 말하는 복제의 충 실성과는 다르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장기적인 목표는 과거 장면들을 문자 그대로 복제하고자 애씀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충실한 동시에 ( 마땅히 ) 창작적인 방식으로 현재에까지도 예수님을 계속 따름으 로써 복음을 표상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원상 복구 ( “죽은” 극장 ) 와 적 합한 참여 ( 곧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극장 ) 간의 차이다. 성경적으로 되는 것은 성령의 활동으로 가능해지는 존재 방식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되고 지배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되는 것 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함 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문제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존재 하고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이렇게 하는 목적은 제자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신학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 게 하라”( 골 3:16 ) 는 바울의 명령에 대한 반응이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 은 이런 요구에 부응하려는 시도다. 1부에서는 극장 모델이 성경적으로 되는 일에 대한 도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수단을 제공하는 이유를 설 명할 것이다. 2부에서는 몇 가지 교리를 검토하고, 살아 있는 성경 ( 또는 더 나은 표현으로 바꾸면,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몸 ) 으로

자기 배역을 연기하

도록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데 있어서 그런 교리가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는지 설명할 것이다.

서론 “성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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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 목록 해설: 이 책과 관계된 내용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이해를 구성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다양한 방식을 논의하기 위해서 극장 모델을 사용한 다. 신학은 이해를 이야기하고 보여 주며, 성경적인 기독교에 활기를 불 어넣는 믿음의 사명에 기여한다. 이 책은 이처럼 교회의 건강에 아주 중 요한 기획을 증진하려는 시도다. 이것은 여러 가지 상관된 문제를 수반 하는 녹록치 않은 과제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아홉 가지의 관련 주제가 있는데, 각 주제는 이 책의 주요 논제에 기여한다.

그것은 성경적으로 되는 일과 관계있다 교회는 역동적인 방식으로 “책의 백성”이어서, 성경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히

1:1 )

증언하는 그리스도의 드라마에 참여함으로써 성

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 HansGeorg Gadamer ) 가

텍스트의 “놀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의 해석에

관하여 이야기한 내용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텍스트의 놀이는 “언제 나 드라마 상연과 같은 무엇을 수반하는데, 왜냐하면 놀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참가자는 그 놀이에 속하여 그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 함으로써 그 놀이를 내부에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4  )   성경적으로 된다는 것은 부분뿐 아니라 전체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전 체와 부분 사이의 관계에도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특정 구절에 초 점을 맞추는 그런 종류의 학문적인 분석을 평일 일상복의 성경적 추론 이라고 부르자. 자신에게 부여된 과제를 성경 자료 연구라고 이해하는 신학자들에게는 성경 전체가 특정 주제와 관련하여 마땅히 이야기하는

4  )     Joel Weinsheimer, “Hermeneutics,” in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ed. G. Douglas

Atkins and Laura Morrow (Amherst, VA: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89), 126. 또한 Hans-Georg Gadamer, Truth and Method 2nd rev. ed. (New York: Continuum, 2002), 147~148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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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것을 찾아내는 데 익숙한데, 그들에게 성경 전체는 부분들의 집합을 의 미한다. 그렇지만 종합 ( 전체상을 염두에 두는 것 ) 만큼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 며 종합에도 상상력이 필요한데, 상상력은 성경의 개별 부분들을 통일 된 양식 속에 통합시키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조물주의 창조성에 넋을 잃고 경탄하는, 주일 성장 ( 盛裝 ) 의 성경적 추론이다. 성경적으로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데 지극히 중요한 수단 이다.

그것은 신학과 관계있다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일과 관계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과학이지만, 과학이 이런 지식을 가장 훌륭하게 서술한다거나 교리가 제자에게 중 요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명칭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반 영역에서 과학은 일정한 지식 체계로 요약되는 특정 분야에 대한 통달 을 의미한다. 무엇을 과학적으로 안다는 것은 그것을 통제하여 우리에 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른 사람들과 더불어 복 있는 삶을 영위하는 기획을 “통달하는” 것이 아 니다. 신학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 대목에서 신학은 일차적으로 지혜를 추구하여 찾아낸 뒤에 그 지혜를 실증하는 과정과 관계있다. 교 리 자체가 이론과 실제 간의 상호 연결성을 약화시키는 분리를 극복하 도록 돕는 다리로 여겨질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교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은 제자들이 삶으로 구현된 복음의 지식, 곧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체현되고 그 안에 깊이 뿌리내린 그리스도의 마음을 드러 내는 데 도움을 준다. 신학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 람을 대상으로 상연하는 기술이자 과학이다.

그것은 교회 교리와 관계있다 교리가 제자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볼

서론 “성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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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으려면, 우리는 교리에 대한 심상을 바꿀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5  )   교리는 교회의 보살핌에 위임된 권위 있는 가르침의 축적물을 가리키 지만 ( 딤전

6:20, 딤후 1:14 ),

일련의 지식 이상의 의미를 함축한다. 교리는

제자들을 훈련하고 지도하여 그리스도가 하신 방식대로 이야기하고 행 동하고 생각하는 실행자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가르침이다. 교리는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셨듯이 제자들도 자기 삶을 위대한 구속 드라마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도움으로써, 제자들을 위한 예비 신부 학교의 역할을 한다.6  )   그래서 교리는 단순히 생명 없는 일련 의 지식이 아니다. 오히려 교리는 적극적인 신체 활동을 목표로 한다. 자신을 지도할 교리가 없는 교회는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진다. 그렇지 만 자기를 체현할 교회가 없는 교리는 무미건조하고 공허하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계있다 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 보임 으로써, 옛 죄들을 용서하고 ( 사 31:33 )

창조를 새롭게 할 것 ( 사

53:5 )

새로운 마음을 주며 ( 겔

65:17, 66:22 ) 이라는

36:26, 렘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좋은 소식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어떤 일들을 행하셨다는 즐거운 선포다.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행하셨 다. 그래서 구속 드라마는 아들이 자기 생명을 십자가 위에서 쏟아부으

시는 대목 ( 행 2:23 ), 아버지가 아들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대목 ( 행 2:24 ), 아들이 다시 자기 영을 부어 주시는 대목 ( 행 2:33 ) 에서 절 정에 이른다.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들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기 죄에서 구원받고 그리스도의 5  )     Matthew Myer Boulton, Life in God: John Calvin, Practical Formation, and the Future of

Protestant Theolog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11)도 비슷 한 주장을 제기한다. 6  )     변화가 교리 공부보다 더 많은 활동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성도라고 해서 항상 훌륭한

학생은 아니다(그리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와 동시에, 교리는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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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생명과 아들의 신분에 관여한다 ( 행 2:38 ).

그것은 생명과 관계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도 마치 논리가 믿음을 공격하지 않 을 수 없는 것처럼 교리도 무미건조하고 애매하며 실생활의 잡다한 상 황과는 무관하며 어쩌면 교회 내에서 분리를 조장하기도 하는 만큼 약 간은 영적인 것이 못 된다고 ( “생각

없이 믿는 사람이 복이 있도다”는 식으로 )

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감스러운 사실은, 이런 과장된 왜곡도 나름 대로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은 교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 라, 교리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오해에 있다. 교리를 따분한 것으로 호 도하는 잘못된 인상이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교회의 여러 부분을 장악 해 왔다. 교회는 다른 기관들이 말하거나 실행할 수 없는 무엇을 말하고 실행 해야 할까? 자연과 사회는 모두 공백의 상태를 아주 싫어해서, 부동층 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장악하려고 대기 중인 많은 이념과 의제가 존재한다. 교리는 생활 방식과 삶의 목표를 교회에 가르침으로써 교회 의 삶에 방향을 제공한다. 참으로 교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존 재하는 풍요롭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교회를 인도한다. 왜냐하 면 생명은 생물학의 문제나 순전히 물질적인 존재 이상의 의미를 함축 하기 때문이다. 곧 생명은 삼위 하나님과의 친교 안에 존재하는 문제다.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연출하도록 교회를 도울 때 제자를 양성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리가 실생활에서 제거되기는커녕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알려진 어느 것만큼이나 실제적이고 강력한 에너 지와 사건들과 관련됨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곧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에너지와 사건들이다 ( 행 17:6 ).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관계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사도들의 선포와

서론 “성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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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있었다.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행 17:7 ). 그리스도의 주권은 데살로니가 너머로까지 파괴적인 효력을 꾸준히 발휘하여, 이념 적인 억압을 중단시키고 왜곡된 충성을 타파하고 우상숭배를 폭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나님 나라는 어두움과 무질서의 세력을 무찌르는 하나님의 통치의 관입이다.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특징적인 표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사로잡힌 자들을 자유롭게 하시는 사건은 하늘과 땅을 모두 포함하는 무대 위에서 사탄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에 드라마처럼 벌어지는 충돌의 최고 대목이다.7  )

그것은 교회와 관계있다 교회는 예수님이 자기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장소인데, 그리스도의 말 씀은 제자들의 마음속에 내주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미치는 영역이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스리고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경 계 지역이다. 이렇듯 교회는 왕립 극장으로서, 진리와 은혜와 사랑의 말 씀이 생생하게 현시된다. 특히 교회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자유와 기쁨으로 실행하는 특이한 장 소다.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점이 너무나 명백하고 교회를 직접 겪으면서 실망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에, 이것은 과감하면서도 종종 반직관적인 신앙고백이 다. 그러나 교회의 실재에 대한 담대한 신앙은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날 에도 중요하다.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의 가시적인 현존이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유형적인 체험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 이……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 우리는 교회를 믿지 않을 수 없 는데, 왜냐하면 교회는 성부 하나님이 우리 주님의 기도와 청원에 대한 7  )     티모시 곰비스(Timothy Gombis)는 통치자와 권세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가 우주적인

범위에 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The Drama of Ephesians: Participating in the Triumph

of Go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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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응답으로 주신 첫 열매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교회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또한 소속 회원이 되어 교회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이런 활동의 본질은 무엇일까? 교리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말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 들을 식별하는 과정에서 제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적실하면서도 그만큼 이나 과감한 주장에 대해서는 나중에 부연하여 설명할 텐데, 그것은 곧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가장 가시화하는 장소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를 지금 있는 옛 창조의 한가운데 서 실연할 때, 지역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가 된다. 나중에 살 펴보겠지만, 교회는 빈 공간 ( 피터 브룩이 제안한 극장 은유 ) 이 아니라 하나님 이 자기 복음을 현시하시는 사람들로 채워진 장소다.

그것은 공적인 신학과 관계있다 공적인 신학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삶, 곧 하나님의 영광과 세상 을 위하는 삶에 대한 교회의 실증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풍성한 삶을 드러낼 때, 하나님을 영화롭 게 하는 동시에 복음의 능력과 지혜를 세상에 실증한다. 이런 이차 주제 는 “이 책과 관계된 내용”에 대해서 지금까지 제시한 일곱 가지 주장을 포괄한다. 종교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며 기독교는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 와 상관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이 그저 신자 개개인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복음을 극단적으로 축약하는 태도요 심지어 복음을 왜곡하는 처사다. 좋은 소식은 단지 각각의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나라 를 세우셨고 ( 벧전

2:9. 출 19:6, 계 1:6 참조 )

켜 사회적인 평화를 확립하셨다 ( 엡

유대인과 이방인을 서로 화해시

2:14 ) 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는 공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죄에 대한 자신의 진노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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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드러내셨다는 점과, 그와 동시에 “통치자들과 권 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 기셨다”( 골 2:15 ) 는 점이다. 킹제임스 성경에 표현된 대로, 하나님은 “통 치자들과 권세들을 공개적으로 웃음거리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공적인 차원이 존재한다. 기독교 교리를 성도들과 의 교제에 참여함으로 배우기보다 오히려 교과서를 통해서만 배우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을 읽기만 하고 실제로 상연을 전혀 관람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으로도 지식을 쌓을 수야 있겠지만 인격의 변화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 제자들은 파이데 이아 ( paideia ) 를 통해서 교리적인 진리를 실행하는 법을 가장 훌륭하게

배우는데, 파이데이아는 수련에 기초한 교육법으로서 자기보다 앞선 다 른 사람들의 본보기를 따르는 일 ( 곧 모방하기 ) 을 수반한다. 끝으로, 신학은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 속에서 실증하고 확장하는 데 참여하기 위해 애쓰는 만큼 공적인 성격을 띤다. 신학은 아주 중요한 이 과제를 어떻게 성취해야 할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실제 상연이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기준을 사용할 수 있 을까? 이런 질문은 도전의 성격을 띠는데, 이에 대해 간략하게 답변하 면 교리가 그러한 실제 상연들, 그러한 제자의 공동 직무에서 빠뜨릴 수 없는 조력자라는 것이다. 교회의 복음 실증이 과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 면 이런 작업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과 관계있을까, 아니면 사 회 구조나 이념이나 제도를 바꾸는 일과 더 관계있을까? 자신의 책 『기 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에서,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 ( James Davison Hunter ) 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단순히 원대한 사상을 지닌

위대한 인물들이라기보다 오히려 문화를 창출하는 단체들 속에 깊이 뿌리내린 사상들이라고 주장한다. 좋든 싫든 간에, 미국 교회는 그런 단체들의 목록에서 더 이상 맨 앞 칸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걱 정할 필요는 없다. 헌터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교회는 사회적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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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력을 확보하는 일보다 신실하게 존재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 다. “교회에 부여된 사명은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체현 하는 것이다.” 8  )   여기서 핵심 단어는 증언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존재 자체가 복음의 진리에 대한 영속적인 증언을 표시한다면, 교회의 활 동 ( 곧

교회의 신체적인 움직임 ) 은

훨씬 더 그렇다. 진리를 이야기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복음의 진리를 실증하려면, 교회는 자신 의 이해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보여 주어야 한다. 문화를 창출하는 힘은 “무엇이 실재하는지를 정의하는 능력” 9  )  이다. 교회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연함으로써 이런 일을 하는데,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무엇이 실재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말씀을 다른 사 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과 세계의 실재를 바라보고 해석하기 위한 자신의 체계로 받아들인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제자가 이야기하고 실행하는 모든 것은 새로워진 생각과 변화된 마음을 증언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 곧 우리가 세상 속에서 지각하고 명 명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10  )   교리의 드라마가 가장 잘 드러

나는 때는 제자들이 자기 삶 속에서 “세상 안에서 그리고 세상을 위해 서 하나님의 생명인 생명” 11  )  을 전달하고자 애씀으로써 변화된 생각과 마음의 증거를 보이는 순간이다.

8  )     James Davison Hunter, To Change the World: The Irony, Tragedy, and Possibility of

Christianity in the Late Modern Worl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기독교 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새물결플러스 역간, 2014), 95. 9  )     앞의 책, 178. 10  )     Mark Labberton, The Dangerous Art of Loving Your Neighbor: Seeing Others through

the Eyes of Jesu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10), 23. 11  )     앞의 책,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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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가 세상을 뒤엎도록 교회를 지도하는 방식이 이것인데, 곧 자기 가 아는 바를 실행하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제자들의 삶과 지 역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다.12  )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 존재하는 좋은 소식과 지고한 선을 드러 내는 공개 전시장이다 ( 아니

공개 전시장이어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삶으로 구현하는 것, 이것은 애초부터 교회에 부여된 직 무였다. 그 결과로 복음의 “정치”가 생겨나는데, 교회는 복음의 정치를 통해서 공익을 위하여 공공 관례들에 관여하며 그런 관례들은 장래에 펼쳐질 하나님의 통치에서 권력의 독특한 용도 ( 이를테면 함께 모이기, 예수님 을 고백하기, 중재하기, 진리 말하기, 공의를 행하기 ) 를

특징짓는다.

그것은 실재와 관계있다 세상에는 많은 교리가 존재하고 다양한 대의를 내세우는 많은 신자가 있다. 하지만 기독교 교리가 지닌 독특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님과 우리 자신을 아는 일에만 전심으로 초점을 맞추며 이런 궁극의 실 재에 대한 이해를 실증하도록 제자들을 지도하는 데 있다. 기독교 교리는 복음의 실재를 실증하는 방식으로 지각하고 명명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를 이야기하고 보임으 로써 제자들을 성장시킨다. 교회에 부여된 사명의 공적인 측면인 동시 에 바울이 강조한 측면도 이것인데,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 곧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난 비밀 인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 골

1:25~27 ) 이다.

교회는 구원의 비밀에 대

한 공개 계시다. 교리는 교회와 제자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데, 교리의 존재 목적은 그들을 세상에서 빼내어 그들만의 은신처에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실재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12  )     이 효과에 대한 추가적인 논증을 위해서는, C. Kavin Rowe, World Upside Down:

Reading Acts in the Greco-Roman Ag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9)에서 특별히 4장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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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사용하고 있는 의미로의 공적인 신학이라는 용어는 실재에 이르는 것,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를 드러내는 것을 제일 목표로 삼는다.

구상: 간단 개요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1부 “막 이 오르기 전에”는 내가 극장 모델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함께, 교리와 신학에 관해 생각하기 위한 극장 모델의 개요를 설명한다. 나는 우선 이 책의 제목을 소상히 설명하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믿 음은 이해를 이야기함으로써 말씀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이야기-행동 은 극장의 언어다. 이야기-행동은 또한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 니라 행하는 사람이 되라는 성경의 명령과도 부합한다. 믿음의 순종과 이해에 대한 믿음의 실증은 언어와 행위를 모두 수반한다. 그다음으로, 나는 극장 비유를 더욱 본격적으로 발전시켜서 핵심 용어를 정의하고 특히 성경과 “대본” 사이에 존재하는 몇 가지 중요한 개념적인 차이를 구별할 것이다. 또한 나는 이 책의 부제도 설명할 생각인데, “교리의 드 라마”에 함축된 상이하면서도 연관된 세 가지 의미를 식별할 것이다. 그런 뒤에, 나는 “연극적인” 신학이 단지 하나의 은유로 쓰이도록 의도 된 것인지, 아니면 신학의 본질과 소재를 설명하는 유비적인 모델로 쓰 이도록 의도된 것인지의 여부를 음미할 생각이다. 나는 극장 모델에 제 기되는 두 가지 반론을 검토할 텐데 ( 그리고 논박할 텐데 ), 이것은 내가 『교 리의 드라마』에서 펼친 논증을 넘어서는 여러 중요한 발전을 이루어 내 는 과제다 ( 아래의 1장 ). 그다음 장에서는 극장 모델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 는 문제를 다룰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문제 때문에 교회를 스스로가 분리된 세계를 위해 상연하는 연기자들로 생각하든지 아니면 마찬가지 로 끔찍한 수동적인 관객들의 모임으로 생각하도록 유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 나는 우리가 교회를 소통 극장으로 간주하다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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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할 텐데, 소통 극장에서는 연기자를 청중과 분리시키는 “제4의 벽”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수동적인 관객을 조장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나 는 교리가 단지 진리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도 머물도 록 ( 그런데

이것은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함 )

제자들을 어떻게 권면하는지 보여

주는 본보기로 요한2서를 사용할 것이다. 이처럼 청중 자체가 연기를 위한 상연 공간이요 드라마의 장소인데, 왜냐하면 시급한 사안인 동시 에 연극 전체 ( 삶 자체 ) 를 좌우하는 문제는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 리를 명심할 것인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리의 고유 영토인 데, 그 이유는 바로 교회 안에서 교리의 진리가 학습되고 실증되기 때문 이다 ( 2장 ). 이렇게 신학을 극장의 각도로 생각하는 입장에 대한 나의 논 증은 1부에서 마무리된다. 2부에서는 교회 안에서 제자 양성 과정에 교리가 수행하는 역할을 건 설적으로 제안할 것이다. 모든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와 그리 스도 안에서 발생 중인 일들을 교회가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어떤 식

으로든 기여한다. 2부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바로 교회의 사명 ( 그리스 도 드라마에 적합하게 참여하는 일 ) 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지혜롭고 사랑

넘치는 관례의 형태로 실증하도록 제자들을 세우기 위해 교리를 활용 하는 것이다. 2부는 우리가 있는 장소, 곧 21세기 무대 위에 서 있는 교회로 시작하 며, 진정성에 닥친 현재의 위기를 검토한다. 누구의 말과 행동이 중요할 까, 어째서 그럴까? 교회는 세상에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나는 교회가 창조 질서 ( 즉

실재 ) 와

조화되는 언어와 행위를 제안함으로

써 삶의 의미에 대한 참된 증언을 제공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칠 것이다 ( 3장 ). 교리는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바 라보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돕는 다. 인간에 관한 교리와 죄에 관한 교리는 드라마의 성격을 띠는 투쟁, 곧 유한한 자유와 무한한 자유 사이의 충돌, 인간의 불성실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사이의 충돌이 지니는 정확한 본질을 명료화하는 데 도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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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준다. 타락한 창조는 신적 극작가가 자기 구원 계획을 한 편의 드라마로 실행하기 위하여 역사의 무대로 들어가기 위한 배경이다 ( 4장 ). 여기까지는 교리가 제자와 제자의 본질 및 목적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에 치중했다. 2부의 나머지 부분은 제자가 교리를 실행하거나 상연하는 방식을 다룬다. 나는 극장 모델에 대해 제기되는 가장 분명한 반론 ( 극장 모델은 가장하기나 위선을 조장한다 ) 을

우선 검토하고, 여기에 대응하여 기독

교 교리가 도리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자기 정체성을 우리에게 보 여 준다고 주장할 것이다 ( 5장 ). 내가 이미 주장한 대로, 기독교 신앙은 개인을 위한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획이다. 따라서 다음 두 장에서는 개별 신자들에게서 눈을 돌려 교회론에 주의를 집중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교리가 수행하는 역할은 목회자와 다른 교회 지 도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생한 비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 상 연을 무대에 올리도록 돕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특별히 구속 드라마의 주요 대목을 시연하는 두 중심 장면인 세례와 성찬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실연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자신이 배우는 바를 실행하기 위하여 모이는 장소다 ( 6장 ). 말씀과 성례의 사역 은 교회 회원들을 양육할 뿐 아니라, 특별히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 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진리의 말씀과 사랑의 사역을 자연스럽게 실행함으로써 더 넓은 세계에 그리스도의 통치를 증언하도록 제자들을 준비시키기도 한다 ( 7장 ). 여기서 2부의 구성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문 법에서 동사가 사실에 대한 단순 진술을 표현할 때 그것을 직설법이라 고 부른다 ( 이를테면,

“그녀는 그 열매를 따서 먹었다”나 “예수님이 우셨다” 등 ).

직설

법에 사용된 동사는 표시한다 ( indicate ). 곧 직설법에 사용된 동사는 무엇 을 보여 주기 때문에 그 무엇에 대한 표시다. “표시하다”를 뜻하는 단어 는 “가리키다”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 indicare ) 에서 파생되었는데, 검지 를 뜻하는 단어 ( index

finger ) 도

여기서 기원한다. 보여 주기나 진술하기

외에도, 표시하다라는 동사는 특별히 의료 환경에서 특정 행동 방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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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하다라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 예를 들어, “x라는 증상의 존재는 y라는 치료를 제안한다” ).

2부의 각 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의 일정 측면을 표시하는 하나 이상의 교리를 제시한다. 바울 사도가 본을 보인 대로, “재현”이라 는 항목에서 이런 각각의 교리에는 검토 대상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 재의 일정 측면에 이미 내포된 것을 명시하는 명령이 뒤따른다. 명령법

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를 가리키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유형 의 행위에 대한 진술일 뿐이다. 이 여섯 가지의 명령은 일상생활 속에서 교회의 자기표현을 위한 지시, 복음의 진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지 시 ( 갈 2:14 ) 를 제공한다. 이런 명령들은 또한 근본적인 논증을 더욱 전통

적인 ( 곧 비연극적인 ) 용어로 재진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2부는 드라마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드라마의 절정 ( 그 리스도 안에서 얻은 승리 ) 에

비추어 검토하는 차례로 끝맺을 텐데, 마지막까

지 기쁨으로 인내하기 위해서 교리 안에 머물 것을 제자들에게 권고한 다 ( 8장 ). 이 책은 믿음의 이해를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실증하는 일을 지배해야 하는 두 가지 권유와 함께, 제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잠든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 창조의 나라에 대하여 각성시키 는 일을 수반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감사의 사실주의에 대한 호소 로 마무리한다. 교리를 드라마의 각도로 연구하는 방법론의 장점을 추 가로 확인할 필요가 있는 독자들을 위해, 나는 극장의 우물에서 신학의 물을 길어 올리는 작업에 대해 제기되는 역사적 반론과 현대의 반론을 모두 검토하는 부분을 부록으로 실어 두었다.

36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U


Faith

F a i t h

S p e a k i n g

U n d e r s t a n d i n g

Understanding

학자로 명망이 높은 케빈 밴후저는 이 책에서 기독교 신학에 관하여 생각하는 또 하나의 방 식을 소개함으로써, 2005년에 발표한 자신의 역작 『교리의 드라마』에서 착수한 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밴후저는 신학이 단순히 인지적인 신념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가 실행하 는 어떤 것으로서 언어와 행위를 모두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밴후저는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사고를 형성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극장 모델을 사용한다. 밴후저는 교회가 그 속에서 복음이 “상연되는” 극장이요 교리가 이런 상연을 지도한다고 간주한다. 교 리는 단순히 저장하고 보관하고 쌓아 두는 진리가 아니라, 따르고 실천하고 상연해야 하는

교리의 드라마 케빈 밴후저 지음 | 윤석인 옮김 | 804쪽 | 38,000원 이 책은 성경(대본), 신학(극작술), 신학적 이해(상연), 교회

가르침과 지시다. 그리스도인은 교리를 “상연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적인 제자 로 형성된다. 알기 쉽고 매력적인 문체로 쓰인 이 책은 교회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이 사명을 위하여 기독교 교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논증한다.

(연극단), 목회자(감독)를 위한 새로운 은유를 제시한다. 교 회는 복음의 연극단이요, 말씀과 성례의 연극단이요, 순교 의 연극단이요, 화목의 연극단이요, 거룩한 어리석음의 연극 단이다. 교리는 구속 드라마, 다시 말해 삼위 하나님의 삶에 적합하게 참여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성경에 뿌리를 두고 수

Speaking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케빈 밴후저가 자신의 엄청난 창작열을 쏟아부어 탄생시킨 이 책은 그와 똑같은 창작열의 산물인 『교리 의 드라마』를 기반으로, 교리도 무대 지시와 마찬가지로 복음에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준다는 사실

세기에 걸쳐 축적되어 온 기독교 지혜의 압축판이다. 또한

을 독자들이 깨닫는 데 일조한다. 밴후저는 기독교의 근본 신념이 지니는 드라마의 특성을 자세하게 밝

성부 하나님은 이야기 전개의 극작가 겸 제작자요, 성자 하

힘으로써, 그런 신념이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틀림없이 생동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이 머지않아 한 편의

나님은 그 이야기 전개의 절정이자 요약이요, 성령 하나님

고전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은 전 세계적 연출을 총관하는 총감독이다.

Faith

지은이

이해를 이야기하는 믿음 교 리 의

드 라 마

상 연 하 기

케빈 밴후저 지음 | 윤석인 옮김

Understanding

“‌ 이 책은 교회를 섬기려는 목적으로 신학을 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다. 신학을 하나님 드라마로 해석하

문화신학

는 것으로 정평 있는 자신의 방법론을 기초로 밴후저는 교회를 복음의 극장으로 소개하는데, 복음의 극

케빈 밴후저 지음 | 윤석인 옮김 | 472쪽 | 18,000원

장은 관객이 참여자인 장소요 신학과 윤리학, 명상과 행위, 굴복과 순종, 야고보와 요한이 더 이상 반대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문화라는 영역에서 신학적인 자세를 익히도록 가르친다. 문화신학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

자가 아니라 협력자인 장소다. 탁월한 복음주의 사상가가 쓴 훌륭한 신학 논문이다.”

_티머시 조지, 샘포드 대학교 비슨 신학부 초대 학장

실한 제자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성적이고 실제적 인 작업이다. 신학은 일요일만을 위한 게 아니다. 예수님의

케빈 밴후저 지음 |윤석인 옮김

_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 『설교자의 서재』 저자

D.)에서

공부했으

며,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부에서 8년 동안

자로 꼽히는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안

아니라 뛰어난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이 텍스트 에 의미가 있는가?』, 『제일신학』 (IVP), 『구약의 신학적 해설』, 『신약의 신학적 해설』 (CLC), 『문화 신학』, 『교리의 드라마』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옮긴이

윤석인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관심이 있는 모두를 대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Speaking

케임브리지 대학교(Ph.

수를 받은 목사이자, 미술과 문학 애호가일 뿐

지는 삶을 거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충실하게 반영한다. 밴후저는 다른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대화하는 경

작품이다!”

Div.)와

부교수로 가르쳤다.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신학

“‌ 이 책은 밴후저표 작품으로, 대단히 명료하고 놀라울 정도로 의미심장하며 복음과 교회 안에서 이루어

이 책은 위력적인 동시에 선지자의 면모를 띠는데, 이 책도 예수님처럼 진리와 은혜로 충만하다. 탁월한

현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 조직신학 연 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M.

Faith

_스탠리 하우어워스, 듀크 대학교 신학부 및 법학부 길버트 로 명예교수

케빈 밴후저 (Kevin J. Vanhoozer)

Speaking

을 졸업하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케 빈 밴후저 교수의 지도로 조직신학 석사 학위 (Th. M.) 를

받았다. 개혁신학과 청교도신학에 깊

은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Understanding

있으며, 부흥과개혁사의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 기고 있다. 번역서로는 『은혜의 복음이란 무엇 인가』 , 『사도신경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기독 교 핵심』 ,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 『거룩하신 하나님』, 『윤리실종』, 『위대하신 그리스도』 , 『문화신학』, 『교리의 드라 마』 (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제자는 한 주 내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길을 걸어야 한다. 문화신학은 진리와 생명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적극 노력 하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ISBN 978-89-6092-517-5 www.rnrbook.com 값 27,000원

표지 이미지_ Designed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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