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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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이 나왔다. 이 책은 성경 전권에 대한 신학적 개관으로, 정경인 최종 본문의 각 권 내용을 성경신학적 주제를 따 라 설명하면서 성경 전체의 흐름에 주목하게 한다. 저자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단일한 개념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갖지는 않지만, “하나님 나라”가 가장 포괄적으로 성경 전체의 주제를 묶어 준다고 제안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구성 요소, 즉 “주 되신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하나 님이 통치하시는 땅”이라는 주제들이 성경 전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본다. 특히 구약 시대에 성취될 것 같았던 아 브라함의 언약이 마침내 신약에 이르러 그리스도를 통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고 상세하게 성경신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

한 권으로 된 슈라이너의 성경신학은 성경 스토리텔링의 풍부한 광

책은 지적 호소력을 지님과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영예를 보여 준다

맥이다. 슈라이너는 정경 전체의 성경신학과 씨름함으로써 성경 연

는 점에서 널리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구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왕이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궁극

사이먼 게더콜, 캠브리지 대학교

적 승리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명확하고 일관되게 추적함으로써, 대단한 성과를 이뤄 냈다. 성경의 거대서사

슈라이너는 에덴 동산에서 낙원의 동산까지 구속사의 전체 이야기

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처럼 광범위하게 잘 다룬 작품은 별로 없다.

마크 스트라우스, 베델 신학교

를 통해 숙련된 솜씨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슈라이너는 정경의 모

성경신 학

철저히 학문적이면서도 신학 전공자는 물론이고 일반 성도도 쉽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는 토머스 슈라이너의 최신

A Biblical Theology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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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부분을 치밀하게 다룸으로써, 하나님 나라 또는 다스림이라는 주제 아래 성경이 어떻게 일관성을 갖는지를 보여 준다. 이 책은 신

성경의 모든 책을 훌륭하게 연결한 책이다. 이 책이 보여 주는 것처

학적이고 실제적이며 신앙적인 통찰이라는 만찬을 독자들에게 보

럼 배움의 열정과 가르침의 은사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가슴을 가

상으로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간결하고, 직접

진 저자는 별로 없다. 당신의 성경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 그리고

적이고, 용이한 방식으로 성경 전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맛을 제

당신의 영혼이 아름다움 가운데 계시는 왕에게 새롭게 사로잡히기

공할 것이다.

위해서 이 책을 음미하라.

도널드 해그너, 풀러 신학교

지은이

토머스

슈라이너 ( Thomas R. Schreiner )

로버트 야브루, 커버넌트 신학교

옮긴이

강대훈

풀러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베델 신학교를 거쳐 현재 남침례 신학

경북대학교( B.A., M.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을 졸업하고, 고

교의 신약해석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바울신학 전공자로서 많은 책을

든 - 콘웰 신학교에서 신약학 석사학위( Th.M.)를 취득한 후에 영국 브리스

저술했다. 저서로는 『 BECNT 로마서 』, 『 신약신학 』 ( 이상 부흥과개혁사 ) 등

톨 대학교 트리니티 대학에서 마태복음의 하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Ph.

이 있다.

D.) 를 받았다. 현재 개신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부흥

과개혁사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는 『하나님의 아들과 새 창 조』, 『누가신학』 ( 이상 부흥과개혁사 ) 등이 있다.

토머스 슈라이너 지음 강대훈 옮김

토머스 슈라이너 지음 ㅣ 강대훈 옮김 ISBN 978-89-6092-429-1 www.rnrbook.com 값 3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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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 서문

8

■ 서론

10

■ 약어

14

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1장 창세기

19

2장 출애굽기

41

3장 레위기

59

4장 민수기

77

5장 신명기

91

종합 :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111

2부 영토, 포로, 귀환의 이야기 6장 여호수아

117

7장 사사기

127

8장 룻기

139

9장 사무엘상하

147

10장 열왕기상하

175

11장 역대상하

201

12장 에스라 - 느헤미야

217

13장 에스더

229

종합 : 영토, 포로, 귀환의 이야기

235


3부 이스라엘의 노래와 지혜 14장 욥기

241

15장 시편

259

16장 잠언

287

17장 전도서

307

18장 아가

319

종합 : 이스라엘의 노래와 지혜

325

4부 선지서에 나타난 심판과 구원 19장 이사야

331

20장 예레미야

353

21장 예레미야애가

367

22장 에스겔

373

23장 다니엘

389

24장 열두 선지서

399

종합 : 선지서에 나타난 심판과 구원

421

구약 이야기에 대한 간단한 회고

425

신약 이야기에 대한 서론

431

5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 - 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25장 마태복음

435

26장 마가복음

455

27장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469

종합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 - 행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497


6부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에 나타난 영생 28장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

501

종합 :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에 나타난 영생

533

7부 바울 서신에 나타난 종말의 도래 29장 바울의 신학

539

종합 : 바울 서신에 나타난 종말의 도래

571

8부 일반 서신에 나타난 종말의 삶 30장 히브리서

575

31장 야고보서

589

32장 베드로전서

595

33장 베드로후서와 유다서

601

종합 : 일반 서신에 나타난 종말의 삶

607

9부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이다 34장 요한계시록

■ 맺음말

624

■ 참고문헌

639

611


| 추천사 |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고 충실하게 성경신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지적인 호소력과 하나님을 향한 영예를 담고 있으며, 따라서 널리 읽혀질 만한 가치가 있다. 사이먼 게더콜, 캠브리지 대학교

슈라이너는 에덴 동산에서 낙원의 동산까지 구속사 전체의 내러티브를 통해 숙달된 솜씨로 독자를 사 로잡는다. 슈라이너는 정경의 모든 부분을 주의 깊게 다룸으로써, 하나님 나라 또는 다스림이라는 주제 아래 성경이 어떻게 일관성을 갖는지를 보여 준다. 이 책은 신학적이고 실제적이며 신앙적인 통찰력이라 는 만찬을 독자들에게 보상으로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간결하고, 직접적이고, 비전 문적인 방식으로, 성경 전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맛을 제공할 것이다. 도날드 A. 해그너, 풀러 신학교

한 권으로 된 슈라이너의 성경신학은 성경 스토리텔링의 풍부한 광맥이다. 톰 슈라이너는 정경 전체 의 성경신학과 씨름함으로써 자신의 연구에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슈라이너는 왕이신 하나님과 하나 님 나라의 궁극적 승리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명확하고 일관되게 추적함으 로써, 대단한 일을 해 냈다. 이처럼 성경의 거대 내러티브를 처음부터 끝까지 광범위하게 잘 다룬 작품은 별로 없다. 마크 L. 스트라우스, 샌디에고의 베델 신학교

성경의 모든 책을 훌륭하게 연결한 책이다. 이 책이 보여 주는 것처럼 배움의 열정과 가르침의 은사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진 저자는 별로 없다. 당신의 성경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영 혼이 그의 아름다움 가운데 계시는 왕에게 새롭게 사로잡히기 위해서 이 책을 음미하라. 로버트 W. 야브루, 세인트루이스의 커버넌트 신학교


│ 서문 │

나는 이 책의 한계를 잘 알지만, 책을 집필하는 동안 참 기뻤다. 나의 생각을 확증해 주고 날카 롭게 교정해 준 다른 학자들에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빚을 졌다. 또한 나는 2차 자료를 거 의 수박 겉핥기식으로 소화했음을 안다. 그러나 성경의 다양한 책들이 보여 주는 신학에 대해 성 경학자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충분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각 책의 신학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성경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다고 입증된 자료들을 주로 참고했다. 나는 대학생과 평신도와 신학생과 목사들이 이 책을 충분 히 이해하기를 바란다. 이 책은 학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연구로 기획되지 않았다. 이런 범위의 연 구에 나타나는 나의 주장 중 일부에 대해 독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연구를 통해 모 든 독자가 성경의 메시지가 보여 주는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나는 이 책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언급하겠다. 나는 성경 본문에 대한 탐구에 기초하여, 다른 자료의 도움 없이 귀납적으로 첫 번째 원고를 썼다. 그 다음, 학자들의 자료를 폭넓게 읽으 면서 얻은 많은 통찰을 포함시켰다. 한 개 또는 두 개의 짧은 부분을 제외하면, 바울 신학과 신약 신학에 대해 썼던 나의 이전 책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 책의 신약 부분을 썼다. 분명 내가 전에 쓴 것과 공통되는 부분이 많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신학에 대한 내 견해가 많이 바뀌지 않 았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히 이 책을 쓸 수 있게 안식 기간을 허락해 준 남침례 신학교와 연구비를 지원해 주 신 R. 앨버트 몰러 주니어 ( R. Albert Mohler Jr. ) 총장과 러셀 무어 ( Russell Moore ) 부총장 겸 학장에게 감 사를 표하고 싶다. 또한 이 프로젝트를 격려하고 지원한 베이커 아카데믹 출판사의 짐 키니 ( Jim Kinney )와

세세하게 이 책을 편집해서 더 나은 최종본이 나올 수 있게 도와준 브라이언 볼저 ( Brian

Bolger )에게 크게 감사한다. 특히 나의 박사 과정 학생인 조슈아 그리버 ( Joshua Greever )와 개릿 펠로

우 ( Garrett Fellow )에게 감사한다. 개릿은 나를 위해 수없이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대출하고 논문들 을 복사했으며, 이 책의 수많은 각주에서 참고문헌을 취합하는 힘든 작업을 도와주었다. 조슈아 는 또한 이 책을 세심하게 읽고, 더 나은 책이 되도록 수많은 내용을 제안했다. 조슈아는 나의 연 구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으며, 나를 도우려는 그의 마음과 열의는 크나큰 격려가 되었다.

8


서문

나는 이 책을 최근 자전거 사고로 거의 죽을 뻔하다 살아난 사랑하는 아내 다이앤 ( Diane )에게 헌정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아내의 사랑과 헌신은 다비다와 같았고, 정말 다비다처럼 죽 은 자 가운데서 일어났다 ( 행 9:36~41 ). 다이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결코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다.

9


│ 서론 │

하나의 주제만으로는 성경의 메시지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공통된 입 장이다. 1 ) 나는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2 ) 왜냐하면 어떤 중심을 선택해도 거 의 한 주제나 다른 주제만 원하는 대로 다루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의 줄거리와 신학을 타당 성 있게 종합하는 데는 여러 다른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의 주제가 전체 를 담아낼 수 있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중심’이라는 단어는 모호하다. 우리는 이야기 의 중심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야기의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3 ) 이 책은 내러티브 안에 있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의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이유에 대 해 집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4 ) 이 책의 의도는 이야기가 드러내는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다. 이렇게 도출된 주제는 성경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몇 가지 다른 주제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유연하게 성경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요약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가 충분한 유연성을 보여 주는 단어이므로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5 ) 먼저 말하고 싶 은 것은 나의 주장이 단어 연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의 많은 책 에 전혀 사용되지 않은 “왕”, “나라”, “통치”, “재위”라는 단어들이 사용된 횟수에 집중한다면, 하 나님 나라는 분명 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6 ) 그러나 이 책의 논점은

1 ) 성경 전체의 성경신학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벅찬 작업이다. 하나의 최종적 단어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 책의 목적 은 그것에 있지 않다. 나는 성경 전체의 성경신학이 상이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여러 각도에서 쓰여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많은 학자가 성경 전체의 성경신학을 저술해 왔고 나에게 도움을 주었 다. 다음과 같은 학자들을 보라. Childs, Biblical Theology; Fuller, Unity of the Bible; Scobie, Ways of Our God; VanGemeren, Progress of Redemption;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Beale, Biblical Theology ;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2 ) 이 책에서 나는 다양한 관점을 가진 여러 학자들을 인용한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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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통상적으로 이 학자들이 인상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에 그 들의 자료를 인용한다. 그러나 이들을 인용했다고 해서, 내가 생 각하는 큰 그림의 틀에 나타난 나의 견해에 이들이 반드시 동의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저자든지 나와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 3 ) 베른 포이트레스(Vern Poythress)는 “Kinds of Biblical Theology” 에서 다양한 관점들이 성경신학 연구에 채택될 수 있다고 옳게 주장한다. 4 ) Schreiner, Paul; New Testament Theology을 보라. 5 ) 나는 성경에 일관된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 빌의 의견 (G. K. Beale, Biblical Theology, pp. 168~184)에 동의한다.


서론

11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가 성경신학의 관점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주제라는 것이다. 이 제 나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의 영광과 찬송을 위해 그의 나라를 가져오신다는 것을 곧바로 추가 하려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며, 하나님의 영광은 이 이야기의 이유 다. 7 ) 이 책에서 나는 이 이야기의 중심 주제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간단히 설명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는 하 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시며, 세상 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인간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의 통치 는 무시당해 왔으며, 성경은 이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나님 나라를 중심 주 제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주제가 잠언과 같은 히브리 성경의 시가서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나라”라는 용어가 잠언에 실제로 나오지는 않지만 잠언과 구약 시가서의 다 른 책들도 이와 같은 주제에 적합하다는 점을 적절한 때에 주장할 것이다. 나는 지혜 문헌이 매 일의 삶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는 점을 말할 것이다. 우리는 잠언, 욥기, 전도서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왕이 신 하나님에 대한 초점은 성경,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을 주와 동일시하는 일정한 후렴구에 분명 하게 나타난다. 여호와 하나님은 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찬양과 순종을 받아야 하는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주제를 하나님의 왕 되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가 되신다는 일관 된 후렴구에 의해 입증되고 확언된다. 8 ) 인간을 제외하고 관념적으로만 왕이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왕 되심의 범위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9 ) 왜냐하면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 조된 인간 ( 창조의 절정 )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10 ) 하나님은 왕이자 주이시므로, 만물 안에서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며 계획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을 자아도취에 빠진 존재라고 불평하지만, 이것은 핵심을 놓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왕이신 하나님 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써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 은 영광 받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사랑을 따로 떨어진 두 방에 우겨넣지 말아 야 한다. 하나님은 주로서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영광 받으신다. 11 ) 하나님의 주권과 왕 되심은 역 사 속에서, 즉 성경에 설명된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 안에서 최고

6 ) 이 부분에 대해서는 Goldingay, Israel’s Faith, pp. 59~60을 보라. 7 ) 나는 이미 저술한 두 책에서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이유를 풀려는 시도를 했다. Schreiner, Paul; New Testament Theology. 또한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을 보라. 8 ) 성경에 나타난 주 되심이 갖는 중심성에 대해서는 Frame, Doctrine of God을 보라.

9 ) Goldingay, Israel’s Faith, pp. 59~83을 보라. 10 ) 다른 학자들은 성경의 주요 주제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것이 라고 올바르게 주장하고 있다. Scobie, Ways of Our God , pp. 469~651; Martens, “People of God”을 보라. 11 )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주의 깊게 설명 하는 글로는 Childs, Biblical Theology , pp. 356~358을 보라.


12

성경신학

로 드러난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언약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2 ) 놀랍게도, 하나님의 언약들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수단이다. 13 )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운 현존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주 되심이 실현된다. 14 ) 이는 “성경의 거대 이야 기를 이해하는 데는 땅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주제가 특히 중요하다”라고 한 데스몬드 알 렉산더 ( Desmond Alexander )의 주장과 일치한다. 15 )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맺은 언약 안에서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 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 되심은 하나님의 사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이 야기의 다른 측면도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원수들을 벌하심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저항하는 자들을 심판하심으로써 왕 되심을 보이신다. 16 )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도 어떤 이 들은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와 주권적 사랑에 반역한다. 그들의 반항과 반역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성경의 줄거리는 악이 괴멸되며 진압될 것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절하기를 거절하는 백성은 심판받을 것이며,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은 심판을 통해서 도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이해할 때 다른 개념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분 명히 천사들과 인간에 대한 통치를 포함하지만, 통치에 대한 강조로 인해 이 나라에 영역이 있다 는 사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초현실적인 영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주 되심과 인간과의 관계는 이 땅에서 나타난다. 이 이야기에서 장 소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 세상과 우주의 왕이시다. 그러나 역사는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주 되심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악의 습격은 하나님의 주권을 위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무효 화하려는 반역적인 나라를 나타낸다. 세상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악의 공격을 받는다. 왕이 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인간에 대한 드라마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특정 장소에서 전개된다. 성 경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우주와도 관련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 상의 운명은 무엇인가?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하나님의 영광이 우주를 비추게 될 새 창조가 있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세 가지 측면을 갖고 있으며 왕이신 하나님, 이 왕의 백성인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왕 되심이 실현되는 우주에 초점을 맞춘다. 마지막으로 이 책 12 ) 언약은 관계를 의미하며, 이 관계에는 맹세로 체결된 여러 규 정들이 있다. 언약의 정의에 대해서는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132~133을 보라. 13 ) 메러디스 클라인은 “언약이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를 집행하 는 수단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한다(Meredith Kline, Kingdom Prologue , 3). 또한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p. 42을 보라.

언약에 대한 자신의 제안과 함께 성경에 나타난 언약을 살핀 글 로는 Hahn, Kinship by Covenant 을 보라. 14 ) 이 주장은 Martens, “People of God,” p. 230에서 옳게 제시되 었다. 또한 Terrien, Elusive Presence 을 보라. 15 )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 pp. 14~15. 16 )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 pp. 37~65을 보라. 해밀턴 은 하나님의 영광이 “심판을 통한 구원에” 표현된다고 주장한다.


서론

13

의 접근법에 대해 논해 보자. 이스라엘의 역사나 문헌의 비평적 재구성에 반응하는 것은 나의 목 적이 아니다. 똑같은 접근법이 신약의 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재구성에 신중하게 응답하 는 것은 학문적으로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달성할 수 있는 책은 없다. 17 ) 또한 특정한 책들이 정 경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18 ) 물론 나는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로 어느 글이 권위 있는 성경 목록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내가 추구하는 목표는 최종적 형태인 정경의 책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19 ) 덧붙여서 우리는 구약 성경과 관련된 중요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정경을 분석할 때 히브리 성경의 순서를 따라야 하 는가 아니면 기독교 성경의 순서를 따라야 하는가? 20 ) 어떤 학자들은 어느 순서를 따르느냐가 성 경신학에서 주요 쟁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순서가 지니는 의미를 과장하고 있다. 21 ) 나는 구약신학의 중심 주제들이 히브리 식 순서를 따르느냐 아니면 영어 성경의 순서를 따르느냐에 크 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영어 성경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 일반 독자들이 히브 리 성경의 순서를 모른다고 해서 구약신학을 이해하는 데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다양한 책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겠다. 나는 어떤 책들은 연 대기적으로, 어떤 책들은 주제별로 검토할 것이다. 시편의 경우에는 다섯 권을 정경적 순서대로 분석할 것이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 책에 사용된 접근법이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제안하지 않 는다. 나는 단지 이 접근법이 성경의 메시지를 검토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17 ) 나는 대부분의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우리가 창세기에 대해 말하든 복음서에 대해 말하든,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역사적 인 사실로 믿는 것에 동의한다. 나의 입장이 책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 책의 목표는 나의 입장을 변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의 목표는 성경을 최종 형태, 즉 정경의 형태라고 받 아들이면서 성경신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18 ) 이 주제에 대한 중요한 연구인 Kruger, Canon Revisited을 보라. 19 ) 정경적 접근법은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Childs)의 기념비적 인 작업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비슷한 접근법으로 Rendtorff, Canonical Hebrew Bible 을 보라. 매우 다른 해석 방법으로 Brueggemann,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을 보라. 브루 그만(Brueggemann)은 포스트모던적인 접근법을 사용하는데, 이 방법은 기독교적인 해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해 서, 본 연구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브루그만의 연구는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통찰을 제시하지만, 그의 책에는 수많은 실증주의적이고, 교의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진술들이 담겨 있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 니즘의 의제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드러내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 린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진리와 성경의 권위와 완전한 진리성을

전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입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위해 Frame, Knowledge of God ; Word of God 을 보라. 나는 이 책 에서 구약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 여부를 조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연구는 브루그만의 연구와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구약 성경이 역사적인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20 ) 현재 성경신학의 흐름은 구약을 히브리 성경의 순서에 따라 탐 구하는 것이다. 이 추세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는 자이츠다(Seitz, Fellowship of the Prophets ). 또한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 pp. 59~63;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95 각주 308을 보라. 모든 목록에 시가서들이 같 은 순서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순서가 어떤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핵심적인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21 ) 차일즈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의 견해로는, 이 쟁점에 지 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주장과 이 쟁점의 전제가 되는 많은 가 정이 입증되지 않았다. 구약 성경의 한 책을 읽을 때 정경적인 순서가 보여 주는 결과와 히브리 성경과 헬라어 구약 성경의 정 경적인 순서 배합이 드러내는 신학의 차이를 탐구하는 것이야 말로 매우 생산적인 조사 방법이다.”(Childs, Old Testament as Scripture , p.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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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어 │

성경 본문과 번역본 HCSB KJV LXX MT NIV NRSV NT OT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King James Version Septuagint Masoretic Text New International Version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ew Testament Old Testament

외경과 70인역 1–4 Macc. Sir. Wis.

1–4 Maccabees Sirach Wisdom of Solomon

구약 위경 Pss. Sol.

Psalms of Solomon

랍비 문서 m. ʾAbot Sukkah

Mishnah ʾAbot Sukkah

정기 간행물, 주석, 시리즈 AB AUMSR BibJudS BibOr BibSem BST B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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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hor Bible Andrews University Monographs: Studies in Religion Biblical and Judaic Studies Biblica et orientalia Biblical Seminar The Bible Speaks Today Biblical Theology Bulletin


약어 BTNT BZAW CBQ CC CEP ConBNT ExpTim FBBS FFNT GDNES GTJ HBSt HS HSM IBC Int ITC JBL JETS JPSTC JPTSup JRH JSNTSup JSOT JSOTSup LS NAC NICNT NICOT NIVAC NovT NSBT NTS NTT NVBS OBT OTL PBM RB SBJT SBLAB SBLDS SBLSymS SBT

Biblical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Beihefte zur Zeitschrift fu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Catholic Biblical Quarterly Continental Commentaries Contemporary Evangelical Perspectives Coniectanea biblica: New Testament Series Expository Times Facet Books: Biblical Series Foundation and Facets: New Testament Gorgias Dissertations: Near East Series Grace Theological Journal Herders biblische Studien Hebrew Studies Harvard Semitic Monographs Interpretation: A Bible Commentary for Teaching and Preaching Interpretation 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entary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JPS Torah Commentary Journal of Pentecostal Theology: Supplement Series Journal of Religious History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Supplement Serie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Supplement Series Louvain Studies New American Commentary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NIV Application Commentary Novum Testamentum NovTSup Novum Testamentum Supplements 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New Testament Studies New Testament Theology New Voices in Biblical Studies Overtures to Biblical Theology Old Testament Library Paternoster Biblical Monographs Revue biblique Southern Baptist Journal of Theology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Academia Biblic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Dissertation Series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ymposium Series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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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SJT SNTSMS SNTW TJ TOTC TynBul VT VTSup WBC WTJ WUNT ZECNT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 Monograph Series Studies of the New Testament and Its World Trinity Journal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ies Tyndale Bulletin Vetus Testamentum Supplements to Vetus Testamentum Word Biblical Commentary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en zum Neuen Testament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New Testament


17

Part

1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18

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1장 창세기

1장

Chapter

창세기

19

1

창조 이야기는 하늘과 땅의 창조를 기록한 창세기에서 출발한다 ( 1:1 ). 1 )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이 창 조 이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알려 주지 않으며, 천사의 창조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사변적인 쟁점들은 창세기 저자의 관심이 아니다. 2 ) 첫 번째 창조 이야기 ( 1:1~2:3 )는 말씀으로 엿 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우신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장엄한가를 알린다. 움베르토 카수 토 ( Umberto Cassuto )는 하나님의 세상 창조가 주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많은 신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신다. 하나님에게는 가계도가 없으므로 신들의 계 보도 없다. 여러 의지 사이의 전쟁이나 분쟁이나 충돌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하나의 의지 만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모든 것을 다스린다. 자연과 결합된 하나님은 없고, 부분적으 로나 전적으로 자연과 동일시되는 하나님도 없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자연 위에 계시며 자연 너머에 계신다. 태양과 다른 모든 천체를 포함하는 자연과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는 결코 높임받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다. 3 )

1 ) 창 1:1을 이와 같이 해석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Cassuto, From Adam to Noah , p. 20; Wenham, Genesis 1~15 , pp. 11~15. 또한 von Rad, Genesis, pp. 48~49을 보라. 폰 라트(Von Rad)는 “작은 민족인 이스라엘이 우주와 신에 대한 신화들로 가득 했던 당시의 지배적인 환경에서 경계선을 분명하게 정한 것은 놀

라운 일이다”(p. 49)라고 평가한다. 2 ) 하나님은 분명히 지혜로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다(잠 8:22~31). Goldingay, Israel’s Gospel, pp. 43~49을 보라. 3 ) Cassuto, From Adam to Noah, p. 8.

19


20

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이 지닌 단순성과 깊 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4 ) 시편 33장 6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 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5 ) 만유의 창조자는 만유의 주가 되시므 로, 하나님의 우주 창조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 되심을 전한다. 또한 창세기에는 한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주변 고대 근동 문명에 나타난 창조 기 사들과 다르다. 6 ) 여호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심으로써 모든 권세와 신을 지배하는 주권을 나타내 신다 ( 시 74:12~14, 89:5~13 ). 7 ) 폴 하우스 ( Paul House )가 확신하는 것처럼, 창조의 함의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에게 맞설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창조된 모든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관할권을 갖고 계 신다.” 8 )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 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 렘 10:11 )라고 선언한다. 시편 96장 5절도 “만국의 모든 신 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라며 같은 주제를 암시한다. 만유의 창조자는 또한 만유의 왕이시며, 그의 주 되심은 장소, 즉 왕국으로 확대된다. 게르하르 트 폰 라트 ( Gerhard Von Rad )의 말처럼, “만일 세상이 하나님의 자유의지로 존재하게 되었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은 세상의 주가 되신다.” 9 ) 하나님은 피조 세계인 우주의 왕이 시다. 그러므로 우주의 창조는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의 주가 되시며 그의 주 되심이 이스라엘에 게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0 )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므로 “피조 세계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한다”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11 ) “땅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므로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 시 24:1 ). 12 ) 다시 말해서, 하 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우리가 기뻐하고 묵상하고 즐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이다. 13 )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은 “창세기가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창조 를 왕의 작품으로 묘사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 14 ) 세상을 창조함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입증한다 ( 시 145편을 보라 ). 창조 기사에서 1장 26절 의 “우리가……하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학자들은 권위의 복수형 ( pluralis majestatis )이라고 주장하거나, 천사들이나 하늘의 총회를 포함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15 ) 삼위일체가 신약 성경

4 ) 폰 라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를 표 현할 때 간결하고 언제나 직설적인 언어가 사용되는데, 이 언어 속에 신학적이고 우주론적인 입장이 농축된 결과로 나타난다” (Israel’s Historical Traditions, p. 141). 또한 142쪽에 있는 그의 논평을 보라. 5 )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권능에 대해서는 Goldingay, Israel’s Gospel, 49~52을 보라. 6 ) House, Old Testament Theology , p. 60. 이 문제에 대해 자 세히 다룬 글로는 Waltke, Old Testament Theology , pp. 197~203을 보라. 또한 Collins, Genesis 1~4 을 보라. 브루그만 (Brueggemann,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pp. 158~159)

의 주장과 달리,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의 창조를 의미한다. 7 ) Goldingay, Israel’s Gospel, pp. 64~75을 보라. 8 ) House, Old Testament Theology. 9 ) Von Rad, Israel’s Historical Traditions, p. 143. 10 ) Childs, Old Testament as Scripture , p. 155을 보라. 11 ) C. Wright, Old Testament Ethics , p. 114을 보라. 12 ) 위의 책, p. 115. 13 ) “그러나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만 선포하지는 않는다(시 19:1). 창조의 충만함은 이 영광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기도 한다”(위의 책, p. 116). 14 ) 위의 책, p. 121.


1장 창세기

21

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이유로, 창세기 저자가 이 표현을 사용할 때 특별히 삼위일체를 생각 했거나 고대 이스라엘 독자들이 삼위일체를 고려하면서 본문을 읽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 만, 최근 해석학 분야에서는 저자의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던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교정하는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16 )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성경 전체의 정경적인 모습도 고려해야 한 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인간 저자뿐 아니라 신적인 저자에 대해서도 신중하고 진지하게 고려해 야만 한다. 17 ) 신적인 저자를 고려하자고 해서 이 주장이 독단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문을 열어 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적인 저자의 의미는 성경의 말씀들과 정경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 이다. 신적인 저자의 의미는 인간의 창조적 활동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라 본문을 통해 결정되고 제한된다. 정경적인 접근은 삼위일체적인 읽기를 지지하는데, 실제 단어들이 이런 방식의 읽기를 제안하 고 정경 전체가 이를 확증해 준다. 18 )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창 1:2 )라는 표현은 창조에 관련된 성령의 역할을 의미한다. 19 ) 위에서도 인용한 것처럼 “성령” ( 히. 루아흐 )을 가리키려고 “기 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시편 33장 6절은 성령의 사역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저자 는 세상의 창조를 성령의 사역으로 돌린다. 20 ) 성령의 신성에 대한 신약 계시의 관점에서 보면, 성 령을 창조자로 보는 것은 확실해진다. 성자가 가진 창조자로서의 역할도 정경적인 관점에서 분명 해진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 요 1:1 )로 시작하는데, 이는 틀림없이 창세기 1장 1절을 암시한다. 창 세기에 대한 요한복음의 다른 암시가 요한복음 1장 3절에 곧이어 나타나는데, 요한은 태초에 “말 씀” ( Word )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말씀”이신 아들에 의해 “만물이 지은 바 되었다고” 강조한다. 피조세계의 존재를 명한 “말씀” ( 창 1:3, 6, 9, 11, 14, 20, 24, 26 )은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 ( 요 1:14 )다. 따라서 정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가……하자”는 삼위일체와 관련

된 표현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21 ) 창세기 1장 1절~2장 3절에 묘사되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창조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님의 형상인 남자와 여자의 창조다 ( 1:26~27 ). 분명 이는 창조의 절정이며, 이전의 날들은 여섯째 날 인 간의 창조를 기대한다. 22 ) 특히 놀라운 사실은 “사람” ( 히. 아담 )이 하나님의 형상인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것이다 ( 1:27 ). 신학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의 의미와 중요성에

15 ) 견해들에 대해서는 Waltke, Old Testament Theology , pp. 212~215을 보라. 본문이 하늘의 총회를 가리킨다는 주장을 지 지하는 글에 대해서는 Gentry, “Kingdom through Covenant” 을 보라. 16 ) 예를 들어 Hays, Echoes of Scripture 를 보라. 17 ) Poythress, God-Centered Biblical Interpretation 을 보라. 18 ) 해석학적으로, 나는 본문의 의미도 반드시 정경적으로 분석되어 야 한다고 제안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모세나 원래 독자들도 본 문에서 뜻하는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19 ) Von Rad, Genesis , p. 49와 Goldingay, Israel’s Gospel , p. 82 의 입장과는 다르다. 20 ) 다시 한 번, 나는 정경 전체의 관점에서 이 해석을 지지한다. 21 ) House, Old Testament Theology , pp. 61~62을 보라. 22 ) 그러나 라이트(C. Wright, Old Testament Ethics , pp. 126~127)는 만일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을 창조의 중심 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이해라고 정확하게 언급하며, 안 식일의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절정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22

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본문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본문의 초점은 인간이 창조의 부왕들 이라는 점에 있다. 1장 28절은 인간을 향한 명령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 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다 스리는 존재로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이 형상이 가진 왕의 속성을 고대 근동에 나타난 형상의 용법이 확증해 준다. 고대 근동에서 “통치자는 그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 역에 자신의 형상을 세워 자신의 권위가 그곳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알렸다.” 23 ) 다스리라는 명령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이 지니고 있는 다른 요소들을 암시해 준다. 24 ) 그러나 성경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정복하는 책임과 특권을 가진 존재라고 강조한다. 스티 븐 뎀스터 ( Stephen Dempster )의 말처럼, “창조 세계의 왕과 여왕인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영역, 온 땅에 해당하는 곳을 통치하는 연습을 하게 되어 있었다.” 25 ) 피터 젠트리 ( Peter Gentry )는 세밀한 연구를 통해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기능적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이라고 주장한다. 왜 냐하면 인간은 섬기는 왕들이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형 상으로 지음 받은 결과로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26 )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 조된 인간의 중요성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 책의 중심적인 세 주제가 바로 여기 나타난다. 하나님은 왕권을 이 세상에 확대하는 전능하신 창조자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곧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세상을 다스리는 자들을 사용해 자신의 통치를 확장하신 다. 폰 라트의 언급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한 권위를 나타내는 표시로 인간을 이 세상에 두 심으로, 하나님 자신이 주가 되신다는 주장을 인간이 지키고 강조하도록 하셨다.” 27 ) 그리고 하나 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창조 세계에 대한 통치는 공간과 시간의 세계에서 시행되는 것이므로 인간 의 통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뎀스터는 창세기 1장의 주제들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연결 한다. “인간의 영토와 왕조에 대한 강조를 묘사하는 또 다른 방식은 ‘하나님 나라’라는 간단한 표 현이 될 것이다.” 28 ) 그렇다. 인간은 제사장-왕의 기능을 수행한다. 29 ) 아담은 땅을 “경작하며 지 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 2:15 ). 이 두 동사는 제사장들과 성막/성전에서 행하는 그들의 사역을 위해 자주 사용된다 ( 민 3:7~8, 8:25~26, 18:5~6; 대상 23:32; 겔 44:14 ). 아담은 하나님을 위해 동산을 다스림으로 써 이 명령을 시행했고 아마도 온 땅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30 )

23 )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 p. 78. Mathews, “Genesis,” p. 142;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 p. 34 도 보라. 24 )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613~616을 보라. 25 ) Dempster, Dominion and Dynasty , p. 59; 『하나님 나라 관점 으로 읽는 구약신학』(부흥과개혁사, 2012). 라이트는 “피조물 에 대한 인간의 권세는 하나님의 왕권을 반영한 왕권을 연습하

는 데 있다”(C. Wright, Old Testament Ethics , p. 121). 또한 Levenson, Persistence of Evil , pp. 112~117을 보라. 26 ) Gentry, “Kingdom through Covenant,” pp. 22~33. 27 ) Von Rad, Israel’s Historical Traditions, p. 146. 참고, von Rad, Genesis , pp. 59~60. 28 ) Dempster, Dominion and Dynasty , p. 62. 29 ) Beale, Church’s Mission , pp. 66~70을 보라. 30 ) 위의 책, pp. 82~83.


1장 창세기

23

창조의 일곱째 날 ( 창 2:1~3 )은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완성하시고 나서 창조를 하지 않고 쉬셨으 므로 다른 날들과 다르다. 31 ) 주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안식은 성경의 이야기 전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안녕을 위해 지금 창조 세계를 다 스리고 계심”을 의미한다. 32 ) 여호수아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약속된 땅을 소유할 때 원수들에 게서 안식을 누리게 된다 ( 수 23:1 ). 이스라엘의 안식일 준수는 일곱째 날에 하신 하나님의 안식을 모방한 것이다 ( 신 5:12~15 ). 일곱째 날의 끝이 결코 없으므로, 안식이라는 주제는 하나님의 임재 안 에서 얻게 된 회복과 기쁨을 의미한다. 33 ) 히브리서에 따르면, 하나님의 안식일 안식은 새 창조에 서 성취되는데, 새 창조에서 믿는 자들은 종말의 때에 하늘의 영원한 안식을 즐기게 될 것이다 ( 히 4:1~11 ).

메러디스 클라인 ( Meredith Kline )은 최종적인 안식이 사탄적인 원수들을 괴멸하는 주님의 승

리 이후에 주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 계 19~20장 ). 34 ) 그때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며 그의 아름다움 가운데 계시는 왕 ( the King in his beauty )을 보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창조 기사 ( 창 2:4~25 )는 남자와 여자의 창조와 그들에게 부여된 책임에 관심을 집중하 면서 첫 번째 창조 기사를 보충한다. 첫 번째 창조 기사가 우주의 창조를 설명하면서 규칙적으로 “하나님” ( 히. 엘로힘 )을 사용하는 반면, 두 번째 창조 기사에서 사용된 “여호와”라는 용어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언약적 사랑을 강조한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사용된 용어들은 인 간을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려 준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 어 넣으셨다 ( 2:7 ). 또한 하나님은 남자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다 ( 2:21~22 ). 창세 기 1장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인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의 형 상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었다. 창세기 2장에서 인간의 통치는 하나님이 만드신 동산에서 시작한다. 뎀스터가 말한 대로 동산 은 “나라의……보좌가 있는 공간”이다. 35 ) 남자와 여자는 이것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받 았다 ( 2:15 ). 여러 학자들의 주장처럼, 동산은 성막을 예상하게 한다 ( 출 25~31장 ). 따라서 “동산은 인 간이 하나님의 현존을 누리는 곳이었다.” 36 ) “낙원은 성소였고, 성전의 뜰이었다.” 37 ) 데스몬드 알 렉산더는 성막/성전과 에덴 동산 사이에 나타나는 수많은 유사점을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38 ) ( 1 ) 여호와는 두 곳을 거니신다 ( 창 3:8; 레 26:12 ). ( 2 ) 에덴과 성막은 그룹들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31 )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마치셨기 때문에 쉬셨다(Goldingay, Israel’ s Gospel , p. 127). 32 ) Hafemann, “Covenant Relationship,” p. 40. 또한 Kline, Kingdom Prologue , p. 23을 보라. 33 ) Dumbrell, Faith of Israel , p. 40. 34 ) Kline, Kingdom Prologue , p. 23. 35 ) Dempster, Dominion and Dynasty , p. 62. 36 ) Sailhamer, Pentateuch as Narrative , p. 98. 참고, 겔 28:13. 37 ) Kline, Kingdom Prologue , p. 31. 클라인은 이어서 “에덴 동산 은 우주적 성전을 땅에 세운 소우주이며, 하늘 성전을 가시적 투

영한 장소다”(p. 32)라고 표현한다. 38 ) Alexander, Paradise to the Promised Land , p. 21~23; Eden to the New Jerusalem , pp. 21~23. 또한 다음 책들, Beale, Church’s Mission , pp. 66~80; Dumbrell, Faith of Israel , pp. 19~20; Waltke, Genesis , pp. 57~75;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pp. 211~216; Levenson, Sinai and Zion , p. 129을 보라. 레벤슨(Levenson)은 “성전은 소우주, 하나의 작은 세상으로 인식되었고” “거대한 성전인 세상은 모 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하나님의 궁전”이라고 설명한다 (Persistence of Evil , p.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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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동쪽으로 접근하게 되어 있다. ( 3 ) 등대는 생명나무를 상징한다 ( 창 2:9, 3:22; 출 25:31~35 ). 39 ) ( 4 ) 창 세기 2장 15절에 사용된 동사들은 성소에서 레위인들이 사역하는 것을 묘사할 때도 사용된다 ( 민 3:7~8, 18:5~6 ).

( 5 ) 에덴에서 나오는 강은 에스겔 성전에서도 흘러나온다 ( 창 2:10; 겔 47:1~12 ). ( 6 ) 에

덴에 있는 보석들이 성막에도 있다 ( 창 2:11~12; 출 25:7, 11, 17, 31 ). ( 7 ) 에덴과 성막은 산에 있는데, 고 대 근동에서 산은 성스러운 곳이다. 성전의 이미지는 “하나님이 세상을 자신의 거처가 되도록 의 도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40 )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통치를 자체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 에 예속되어 있다. 41 ) 하나님은 자양분을 공급하는 파릇파릇한 나무들로 이뤄진 목가적인 동산에 그들을 살게 하시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어 주셨다. 동시에, 남자와 여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있는 열매를 먹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주 되심에 복종하는 것을 보여 주도록 되어 있었 다 ( 창 2:17 ). 정말로, 선악과를 취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명나무” ( 창 2:9, 3:22, 24 )는 여호와를 아 는 인간이 누리게 될 종말의 즐거움을 예견한다 ( 계 22:2, 14, 19 ). 순종으로의 부르심은 모세 언약을 전망하는데, 모세 언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보여 주도록 불 러 모아진다. 42 )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은 언제나 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은 필수적으로 그의 백성에 대한 통치와 관련이 있다. 43 ) 더 나아가 성경에 흐르는 후렴들 중 하나는 언약적이다.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요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 이다”라고 맹세하시면서, 하나님의 언약과 통치가 인격적임을 보여 주신다. 44 )

타락과 홍수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자신들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 되심을 거절한 것을 뜻한다 ( 창 3장 ). 45 )

창세기 저자는 뱀이 어디서 왔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어떻게 뱀이 악으로 변했는지

도 독자들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46 ) 뱀이 하나님과 동등한 힘을 가졌는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 조물이 ( 창 1장을 보라 ) 실제로 악했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다. 47 ) 뱀은 하와와 대화를 했기 때문에 39 ) Jenson, Graded Holiness , p. 112. 40 )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 p. 26. 41 ) “한편으로 전능하신 왕은 자신의 권위 아래 있는 인간에게 통 치권을 위임하셨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것 은 하나님에게 순종할지 불순종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도덕적인 판단력이 인간에게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Waltke, Old Testament Theology , p. 259; 『구약신학』[부흥과개혁사, 2012). 42 ) 학자들은 아담과 하와가 맺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언약적인지 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해 왔다. 언약적이라는 견해를 지지하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Gentry, “Kingdom through Covenant,” pp. 19~22;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177~221;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 pp. 15~26을 보라. 반대 입장으로는 Williamson, Sealed with an Oath , pp. 52~58, pp. 69~76을 보라. 43 ) 신약에서 이 관계는 가족적이라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진다. Hahn, Kinship by Covenant , pp. 59~67을 보라. 44 ) Martens, “People of God,” p. 225을 보라. 45 ) 선악과 열매를 먹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오만했음을 의미한다. von Rad, Israel’s Historical Traditions , p. 155; Waltke, Old Testament Theology , pp. 257~258;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 pp. 37~38. 46 ) Waltke, Old Testament Theology , p. 261을 보라. 47 ) House, Old Testament Theology , p. 64가 정확히 지적한다.


1장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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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며, 대화는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48 ) 2장 19~20절 을 보면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동물들에 대한 통치권을 상징한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뱀은 다른 동물들과 상당히 다르다. 클라인은 이름을 짓는 일은 지혜를 의미하므로 49 ) 창조 기사에서 이미 지혜와 관련된 주제와 주 되심이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동물들은 “간교하지” 않았고 ( 3:1 ) 아담과 하와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50 ) 그들은 “동산을 지키고 보호해 서 거룩하게 보존”해야 했다. 51 ) 그러나 그들은 뱀의 감언이설에 넘어갔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여 호와의 명령을 어겼다. 52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면서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완악함과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을 드러냈다 ( 3:5 ). 폰 라트의 언급처럼, “생각할 수 없이 끔찍한 사건이 흥미를 자극하 지 않는 가장 간결한 표현으로 소개된다.” 53 ) 이제까지 그들이 즐겼던 하나님과의 교제는 산산이 부서졌다.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와는 “선과 악을 판단하고 일반적인 실재의 의미를 규 정하며 최종적인 판결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특권을 가로챘기 때문에 자신과 사탄을 우상숭배 한 것이 되었다. 하와의 새로운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는 억측 속에 드러난 다.” 54 ) 그들이 하나님의 주 되심을 거절한 결과는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상시킨 것만이 아니 었다. 창조의 모든 아름다움을 지닌 피조세계 역시 바울의 기록처럼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 다 ( 롬 8:20 ). 열매 맺는 나무들로 비옥했던 땅은 이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다 ( 창 3:18 ). 세상을 통치하는 연습은 죄 때문에 망가졌고 좌절과 고통과 무료함이 일의 핵심이 되어 버렸다. 또한, 자 녀를 가지는 기쁨은 출산의 고통과 더불어 변색되었다 ( 3:16 ). 아담과 하와는 동산에서 쫓겨나 동 산의 동쪽에 살게 되었다 ( 3:22~24 ).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다스리게 되어 있었으나, 이제 인간과 세상이 모두 죄로 엉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서광이 내러티브를 통해 비춰지고 있다. 여호와는 미래에 등 장할 여자의 후손이 뱀을 이기게 될 것을 약속하신다 ( 3:15 ). 55 ) 하지만 승리는 뱀의 후손과의 격렬 한 충돌을 겪으면서 오는 것이기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성경의 줄거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서 예언하는 후손으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과 싸워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 갈 3:16을 보라 ). 48 ) 뎀스터(Dempster, Dominion and Dynasty , p. 67)는 당시 사 람들이 말을 할 수 있는 뱀이 있다고 믿었다는 주장에 대해 옳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 p. 103을 보라. 49 ) Kline, Kingdom Prologue , p. 48. 클라인은 “사람의 문화가 영 광의 원형(Glory-Archetype)에 나타난 신적인 왕권을 인간으 로 하여금 모사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p. 49). 50 ) Kline, Kingdom Prologue , pp. 54~55, p. 77; Beale, Church’s Mission , 87;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 p. 75. 클라 인(Kline, Kingdom Prologue , p. 75)은 동산에서 이루어진 뱀 의 심판이 미래에 천사들을 심판할 인간의 책무(고전 6:2~3)를 예고한다고 주장한다.

51 )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 p. 26. 52 ) 빌(Beale, Biblical Theology , p. 35)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 이 왕들의 사법적 기능이라고 본다(삼하 14:17, 19:35; 왕상 3:9; 사 7:15~16). Clark, “Yahwist’s Use of ‘Good and Evil’” 을 보라. 53 ) Von Rad, Genesis , p. 90. 54 ) Kline, Kingdom Prologue , p. 78. 55 ) 폰 라트(Von Rad, Genesis , p. 93)의 주장과 달리 본문에 나 타난 예언에는 메시아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Hamilton, “Skull Crushing Seed”;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 p. 106은 옳게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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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하나님은 동물의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를 입히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 창 3:21 ). 이 옷은 아담과 하 와의 “왕적인 권위”를 의미한다. 56 ) 이런 옷을 입혀 주신 것은 제사를 위한 짐승의 죽음을 알린다. 정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옷은 자기 백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약속의 성취가 절정 에 이르게 될 것을 보증한다. 아담은 분명히 3장 15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뜻하는 의미를 이 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될 하와의 자녀를 통해 미래에 주어질 소망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 3:20 ). 57 ) 성경의 줄거리는 어떻게 본문에서 선언된 저주가 아브라함 에 약속된 복을 통해 역전될 것인지를 구체화한다. 58 ) 케네스 매튜스 ( Kenneth Mathews )의 지적처럼, “복”의 동사형과 명사형은 창세기에 88회 나타나며, 복이 창세기의 주요 주제임을 보여 준다. 59 ) 새 에덴, 새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올 것이다. 60 )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끔찍한 악을 가져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와는 가인이 뱀과 뱀의 자손을 이길 약속의 아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 4:1 ). 그러나 가인은 약속된 구 속자가 아니었다. 반대로, 가인은 뱀 편에 선 것이 분명하다. 뱀의 후손들과 여자의 후손들 사이 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 반면, 가인의 제사는 거절당 했다 ( 4:2~7 ). 히브리서는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이유는 그것이 믿음으로 드려졌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 히 11:4 ). 이는 아벨이 죄 용서를 위해 여호와를 찾았음을 의미한다. 가인이 자기의 직업을 따라 곡식의 열매를 여호와께 드렸다는 이유로, 또는 짐승 제사를 드리지 못했다 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는 가인이 최고의 소산을 자신을 위해 보관해 두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 창 4:3~4 ). 어떤 경우든, 히브리서는 가인이 믿음으로 제물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가인의 제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기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의 시작부 터 기계적인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은 믿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 종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본다 ( 롬 1:5, 16:26을 보라 ). 가인은 여자의 후손인 아벨을 죽임으로써 자신이 뱀의 후손에 속했음을 드러냈다 ( 요일 3:12. 참고, 요 8:44; 계 12:15~17 ). 61 ) 이처럼 뱀에 대한 승리는 손쉽 게 오는 것이 아니며, 여자의 후손이 가져올 승리는 오직 격렬한 충돌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분명 하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를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승리는 엄청난 비용이 지불되고 나 서야 실현될 것이다. 한편, 여호와는 가인을 멸하지 않고 긍휼을 베푸심으로 가인의 죄에 인내와 은혜로 반응하셨다.

56 ) Beale, Biblical Theology , p. 228. 57 ) 렌토르프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경의 원시 시대 역사는 독자들에게……창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에 의해 목적에서 벗어나 위험에 빠진 창조 세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역사는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를 보존 하고 유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재확인시킨다.” (Rendtorff, Canonical Hebrew Bible , p. 20).

58 ) Mathews, “Genesis,” p. 143; Hamilton, “Seed of the Woman”은 정확하게 언급한다. Sailhamer, Pentateuch as Narrative , p. 301의 입장과는 다르다. 59 ) Mathews, “Genesis,” p. 141. 60 )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포함한 땅에 대한 약속이 창조 전체를 아우를 것이라는 의미다. (Williamson, “Promise and Fulfillment,” p. 27). 61 ) 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pp. 107~108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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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술, 개선된 목축은 가인의 가계를 통해 소개되지만 ( 창 4:20~22 ), 동시에 가인의 후손들이 가진 도덕성은 퇴보하며, 이런 현상은 특히 라멕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 ( 4:19, 23~24 ). 인간의 문 화, 예술, 기술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선이 아닌 악의 증진을 위해 사용되었다. 62 ) 인간의 문화가 가진 부요함과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에, 우리는 자행되고 있는 악을 인식하지 못한 다. 여자의 후손은 셋을 통해 지속되고 있으나 ( 4:25~26 ), 궤도는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한다. 사람 의 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결혼하기 시작했다 ( 6:1~4 ).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논 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귀신들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63 ) 뱀의 영향력이 이제 온 땅에 퍼져서 땅은 타락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 6:5, 11 ). 데이비드 클라인 스 ( David Clines )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의 ‘눈사태’가 계속 커지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균열 은 끝없이 넓어진다.’ 불순종에서 살인으로, 무자비한 살해로, 엄청난 성욕으로, 전적인 부패와 폭 력으로, 인간의 완전한 붕괴로 이동하고 있다.” 64 ) 클라인스는 이어서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가 확장됨에 따라 더 강력한 징벌로 반응하신다. 처음에는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셨으나 이제 는 경작할 땅에서 추방하시고,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시고, 인간을 거의 진멸하시고, 인간의 일체 감을 해체하신다.” 그러나 클라인스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다고 바르게 이해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벌하기도 하셨으나, 위협하셨던 죽음의 형벌을 유보하신다. 하나님은 가인을 쫓 아내셨지만, 보호하는 표도 주셨다. 홍수를 내리셨으나, 노아와 그의 가족을 보존하심으로 인류 가 살아남게 하셨다.” 65 ) 폰 라트는 홍수 심판에 대한 평가에서 클라인스와 같은 주장을 한다. “이 것은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시는 분임을 보여 주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말하는 영 원히 타당한 말씀으로서 성경의 시작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것은 이어지는 은혜의 말씀이 무죄상 태 ( verharmlosung )에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 주며, 이로써 하나님의 뜻을 전적인 기적으로 이해 하게 한다.” 66 ) 홍수 심판 이후 여자의 후손은 노아와 그의 가족으로 제한된다. 하나님 나라가 승리할 것이라 는 약속은 요원하고 불가능해 보인다. 홍수 심판의 세대에 대한 설명은 인간의 죄가 얼마나 깊고 끔찍한가를 강조한다. 인간은 작은 결함으로 얼룩진 존재가 아니다 ( 8:21. 참고, 6:5 ). 인간을 괴롭히 는 죄는 인류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홍수 세대의 이야기는 인간이 버려 진 존재로서 폭력과 악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가 저지른 잔혹한 사건들이 일어난 20세기를 산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인간을 악마처럼 만드는 악이 무엇인 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이다. 홍수를 통한 모든 인류의 심판과 파멸은 또한 뱀의 자녀들이 궁극적으로 승리하지 못할 것을 62 ) Kline, Kingdom Prologue , p. 113을 보라. 63 )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살피려면 Mathews, Genesis 1:1~11:26, pp. 323~332을 보라. 64 ) Clines, Theme of the Pentateuch , p. 70. 클라인스는 1976년

에 처음으로 인식한 것보다 1996년에 이 책을 다소 다르게, 보 다 시험적으로 기술했다고 책 후기에서 밝힌다. 65 ) 위의 책. 66 ) Von Rad, Genesis , p.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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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알린다. 하나님 나라는 구원뿐 아니라 심판을 통해서도 실현된다. 67 ) 뱀의 머리는 박살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원수를 제거하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신다. 덧붙이자면, 노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그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소수의 남은 자라 할지라도 구원하시고 구출하신다는 진리를 설 명한다 ( 벧전

3:20. 벧후 2:5을 보라 ).

세상에 내려진 구원의 놀라움과 은혜는 세상에 내려진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배경을 이해할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홍수로 인해 땅은 정결하게 되고 심판을 받았 다. 68 ) 아브라함 헤셸 ( Abraham Heschel )의 지적처럼,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행동과 관련 없이 일 어나는 맹목적이고 맹렬한 폭력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 때문에 의도적으로 계획되어 시작된 것이다.” 69 ) 악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악이라는 헤셸의 주장은 옳다. 70 ) 여자의 후손인 노아와 그의 가족은 뱀의 후손을 이겼다. 하나님은 노아를 비롯해 모든 인류와 언약을 맺으시면서 ( 창 9:8~17 ), 71 ) 세상이 다시는 물로 심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72 ) 세상 을 보존하시는 것은 세상을 향한 구원의 약속들이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실현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멸망하는 세상에서 진행된 실패한 실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늘 에 두신 “활”은 언약의 표시이며,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의미의 전 쟁 무기로 사용된다. 73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피 터 젠트리 ( Peter Gentry )와 스티븐 벨룸 ( Stephen Wellum )이 정확히 말했듯이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인간의 상태는 홍수 심판 이후에도 이전과 같다. 심판이 인간의 마음 상태를 개조하거나 바꾸지 못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대심판으로 인간의 모든 세대를 쓸어버리셨어도 하나님의 심 판은 정당했을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심판하지 않으시는데, 그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때문이다. 인간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땅은 유 지되고 보존된다. 따라서 노아와 맺어진 언약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시작 하는 역사의 견고한 토대가 된다.” 74 ) 창세기 저자는 노아로 시작되는 새 출발과 아담과 하와의 처음 창조를 의도적으로 평행 배치 한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과 홍수 심판 이후에 새 창조와 같은 무언가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암시한다. 75 ) 병행 배치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76 ) ( 1 ) 물과 혼돈에서 창조된다 ( 1:2, 67 ) 이것은 Hamilton, God’s Glory in Salvation 이 중요하게 연구한 주제다. 68 ) 알렉산더(Alexander, Eden to the New Jerusalem , pp. 28~29) 는 심판을 낮게 평가하며, 심판의 역할을 정결로 이해한다. 69 ) Heschel, The Prophets, p. 282. 헤셸은 하나님의 분노가 “결코 지배적인 감정이 아니라 이차적인 감정이며, 사람을 대하시는 하 나님의 방식 중 일부만 드러낸다”라고 설명한다(pp. 282~283). 70 ) 위의 책, p. 284. 헤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나님은 오랫 동안 고통하시며, 동정하시며, 사랑하시며, 신실하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요구하시며, 주장하시며, 무서우시며, 위험하시 다”(p. 285). 71 ) 젠트리와 벨룸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8~17절에 나타난 진

술은 서구인들에게 매우 반복적이며 단조롭다. 이 반복은 땅이 존재하는 한 살아 있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위해 헌신하신 다고 미래를 향해 큰 소리로 반복하여 울리는 대성당의 종소리 와 같다. 언약에서 당사자들이 명기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p. 168). 72 ) 그런데, 언약들은 평등하게 맺어지거나 위계적으로 맺어질 수 있었으므로, 언약의 용어가 한 가지 뜻으로만 사용되었다 고 말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Goldingay, Israel’s Faith , pp. 183~184. 73 )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 170. 74 ) 위의 책, p. 169. 75 ) 덤브렐(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 pp. 25~26)은 노


1장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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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12, 17~24 ). ( 2 )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이 번성하기 위해 땅으로 인도된다 ( 1:20~21, 24~25, 8:17~19 ).

( 3 ) 하나님이 날과 계절을 만드신다 ( 1:14~18, 8:22 ). ( 4 ) 육축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

을 받는다 ( 1:22, 8:17 ). ( 5 )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이 반복된다 ( 1:28, 9:1, 7 ). ( 6 ) 세상에 대한 통치 권이 주어진다 ( 1:28, 9:2 ). ( 7 )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채소를 준비하신다 ( 1:29~30, 9:3 ). ( 8 ) 인간은 여 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다 ( 1:26~27, 9:6 ). 이 모든 특징들은 죄와 뱀에게서 인류를 구원하는 계획이 끝 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물론, 태초의 창조는 저주가 없는 것인 반면, 노아의 세상은 여전히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아담의 날들과 노아의 날들 사이의 평행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바벨과 아브라함 노아의 구원과 그의 가족으로 시작된 새 출발이 낙원으로의 복귀는 아니다. 죄는 여전히 편만 하다 ( 6:5, 8:21 ). 에덴 동산에 있던 아담처럼 노아도 포도나무에서 난 열매를 먹고 취해 동산에서 죄 를 지었다 ( 9:21 ).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죄로 인해 벗었음을 부끄러워한 것처럼 ( 3:7 ), 노아도 벌거벗 는 수치를 겪었다 ( 9:21~23 ). 아버지에게 불명예를 안겨 준 함의 행동 ( 9:22~25 )은 뱀의 후손이 홍수 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구에 살아 남아 건재함을 말해 준다. 77 )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쓸어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며, 무지개라는 언약의 표로 약속을 맺으신다 ( 9:8~17 ). 78 ) 하나님은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전쟁의 활을 남겨 두신다. 79 ) 인간을 위한 정부가 악을 제지하기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 9:6 ), 인간 사회는 무정부 상태로 내려가지 않는다. 80 ) 하지만, 이것이 인 간의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충격적이게도, 악의 세력은 기하급수 적으로 증가하여 바벨의 시대에 인간의 오만은 다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 11:1~9 ). 아마 지구라 트 ( ziggurat )였을 이 탑은 신 중심주의가 아닌 인간 중심주의의 극치를 대변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이름을 내려고 살기보다 “우리 이름을” 내려고 ( 11:4 ) 바벨탑을 쌓아 올렸다 ( 11:4 ). 81 ) 인간은 아 마도 땅에 퍼져 나가기보다 한 곳에 모이면서 죄를 지었을 것이다. 여호와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자로서 언어를 다양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온 세상에 흩으시는 심판을 행하셨다. 82 ) 아의 언약이 현존하는 언약이며 아담과 맺은 언약을 재확인하는 것이지 새로운 언약이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같은 입 장으로 Hahn, Kinship by Covenant, p. 95을 보라. 여러 비판에 대해 응답하면서 더 단단한 기초에 놓인 덤브렐의 관점을 확증 하려면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155~161을 보라. 76 ) G. Smith, “Genesis 1~11,” pp. 310~311을 보라. 또한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pp. 161~165을 보라. 77 ) Kline, Kingdom Prologue , pp. 161~162을 보라. 78 ) Williamson, Sealed with an Oath , pp. 64~65, 67~69을 보라. 79 ) Von Rad, Genesis , p. 134;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pp. 29~30을 보라. 한(Hahn, Kinship by Covenant , pp.

50~59)은 언약이 맹세와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정확 하게 강조한다. 80 ) Kline, Kingdom Prologue , p. 160을 보라. 81 ) 하나님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Goldingay, Israel’s Faith , pp. 106~108을 보라. 82 ) 폰 라트는 프록쉬(Procksch)를 인용하면서 바벨에서 무슨 일 이 벌어지는가를 보려고 내려오시는 여호와에 대해 언급한다. “여호와는 가까이 오셔야 했다. 이는 하나님의 시력이 약해서 가 아니라, 하나님은 엄청나게 높은 곳에 거하시는데 인간들의 작품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움직임은 인 간의 행위에 대한 놀라운 풍자로 이해되어야 한다”(von Rad, Genesis , 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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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노아로 시작된 새로운 출발은 옛 세계와 점점 더 닮아 갔다. 이제 인류 전체가 뱀의 후손이다. 악의 촉수들은 모든 인간을 꼭 움켜쥐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악의 유혹을 이겨 낼 수 없었다. “바 벨은 인간의 성취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순진하고도 철저한 확신을 보여 준다……바벨은 인간 이 언제나 열망하는 유토피아를 향한 인본주의적인 꿈의 시작이었다.” 83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 말이 난 것은 아니며, 하나님 나라가 여자의 후손을 통해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은 철회되지 않았 다. 84 ) 폰 라트는 창세기 초반에는 은혜에 대한 약속이 심판을 가리키는 각 단어를 뒤따라 나오지 만 바벨 이후에는 은혜에 대한 말씀이 표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열방과 하나님의 관 계가 이제 결국 깨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참으심이 이제 끝난 것은 아닌가, 하 나님은 분노로 열방을 영원히 거절해 버리셨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제기된다. 85 ) 아브라함의 부 르심은 이 질문들에 답한다. 마크 스트롬 ( Mark Strom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브라함은 바벨 사 람들이 붙잡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이름을 얻게 될 것이며, 아브라함은 열방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온 땅에 미치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 다. 바꾸어 말하면, 여호와는 창조와 인류를 향한 그의 목적들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을 따르는 자들을 통해 유지하실 것이다.” 86 ) 결국,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 3:15 ). 모든 것 을 잃었다고 느꼈을 때,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으로 부르셨다. 인간의 죄가 아무리 강하 다 해도, 또는 하나님이 좋게 만드신 것을 파괴해서 세상을 비창조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해 도,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죄가 만든 결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것에 결코 실패하지 않는 다.” 87 ) 그런데, 아브라함이 보여 준 순종은 자신의 선이나 지혜 덕분이라고 할 수 없다. 아브라함 자신은 우상숭배자들의 가문 출신이며 ( 수 24:2 ), 따라서 아브라함은 “경건하지 않은” 부류에 속했 다 ( 롬 4:5을 보라 ). 88 )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끌어” 내셨다 ( 수 24:3 ). 89 ) 아브라 함은 세상에 맞선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긍휼로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세상의 사람이었다. 또 한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긍휼로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사건인 출애굽을 내다보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강조가 아브라함이 보여 준 순종의 행위를 무용지물로 만들지는 않는 다. 90 ) 그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는 아브라함이 보인 순종의 근거다. 아브라함은 가야 할 목적지를

83 )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 p. 63. 84 ) Clines, Theme of the Pentateuch , pp. 84~86을 보라. 또한 클 라인스(p. 74)는 최종 단어가 심판이라는 견해를 막기 위해 열 방에 대한 목록(창 10장)이 바벨탑 사건(11:1~9) 앞에 배치되 어 있다고 주장한다. 85 ) Von Rad, Genesis , p. 153. 86 ) Strom, Symphony of Scripture , p. 26. 열방과 여호와의 관계 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Goldingay, Israel’s Faith , pp.

732~833을 보라. 87 ) Clines, Theme of the Pentateuch , p. 83. 88 ) Hafemann, “Covenant Relationship,” p. 43의 입장은 옳다. 89 ) 수 24:3에서 “이끌다”(히. 라카흐)는 선택을 의미한다(Goldingay, Israel’s Gospel, p. 196). 아브라함의 선택은 성경의 이야기 속 에 분명하게 나타난다(또한 창 18:19, 느 9:7; 사 41:8, 51:2을 보라). Rendtorff, Canonical Hebrew Bible, p. 21;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pp. 57~58을 보라.


1장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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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한 채 나라와 친척과 가족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다 ( 12:1 ). “첫째, 하나님이 하신 약속들의 성취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조건으로 한다”라고 한 알렉산더의 주장은 옳다. 91 ) 아 브라함은 여기서 새 아담의 역할을 하며, 아담과 달리 여호와께 순종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 갔으며” ( 히 11:8 )라고 기록한 히브리서에 따르면, 이 순종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 러므로 아브라함이 노력해 약속들을 성취했다고 말한 알렉산더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92 ) 아 담은 범죄 이전에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아담과 아브라함의 불연속성 도 강조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아담과 달리 여호와께 순종했지만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 다. 아브라함이 두 번에 걸쳐 사라에 대한 거짓말을 했던 것 ( 창 12:11~20, 20:1~18 )과 자녀를 갖기 위 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보다 하갈을 대안으로 삼았던 것 ( 16:1~16 )으로 볼 때, 여전히 하나님의 용 서를 필요로 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순종이 처음으로 언급됨에도 불구하고 ( 12:4 ) 창세기 저자 가 아브라함의 순종을 그의 의와 동일시하지 않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화자는 아브라함이 하나 님과의 관계에서 의로운 이유가 아브라함의 순종이 아닌 믿음에 있다고 본다 ( 15:6 ). 93 ) 바울은 아 브라함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점을 강조하면서 창세기의 흐름을 따른다 ( 롬 4:1~25; 갈 3:1~9 ). 하나님의 은혜가 차지하는 중심성은 인간의 타락에 대한 답으로 다시 나타난다. 94 )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하나님이 아담에 의해 초래된 파멸을 해결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는 수단들이었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땅, 자녀, 복을 약속하셨다 ( 12:1~3 ). 95 ) 아담에게 주어졌던 복과 통치는 이제 아브라함의 것이다. 96 ) 아브라함에게서 “큰 민족”을 만드시겠다는 하 나님의 약속은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97 )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아담에 게 주신 명령 ( 1:28 )이 이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으로 주어진다 ( 17:2, 5, 6, 22:17, 26:4, 24, 28:3, 35:11, 47:27, 48:4 ). 98 )

많은 영어 번역과 달리, 아브라함은 12장 2절에서 복이 되라는 명령을 받았

기 때문에 아담처럼 세상에 복을 가져오는 자에 속하게 되었다. 99 )

90 ) 월트키(Waltke, “Phenomenon of Conditionality”)는 언약이 변경 불가능하면서 조건적이라고 정확하게 언급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의 의로움의 근거를 순종에 두는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의 세대를 통해 성취되지는 않을 것이다. 91 ) Alexander, Paradise to the Promised Land , p. 50. 92 ) 위의 책, p. 55. 아브라함의 순종이 믿음에 기초해 있다고 한 폰 라트의 관찰은 옳다(von Rad, Genesis , p. 161). 93 ) 위의 입장은 아브라함이 창 15:6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이해하는 골딩게이(Goldingay, Israel’s Gospel , p. 266)의 견해 와 반대다. 94 ) 이것은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믿은 때가 아니라 이미 소유하 고 있던 믿음을 확증하고 재확인하는 것이었다(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 p. 56을 보라).

95 ) 클라인스(Clines, Theme of the Pentateuch )는 족장들에게 주 어진 약속이 오경의 주제라고 주장한다. 96 ) N. T. Wright, Climax of the Covenant , pp. 21~26; Beale, Biblical Theology , p. 4. 97 )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243~245. 98 ) 위의 책, pp. 226~228. 99 ) 위의 책, pp. 230~234을 보라. 젠트리와 벨룸의 설명처럼, 두 명령은 세 가지 약속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 명령들은 하나 님의 은혜와 능력을 통해 성취될 것임을 보여 준다. 골딩게이 (Goldingay, Israel’s Gospel , pp. 201~202)는 창 12:2에 있 는 명령형을 약속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윌리엄슨(Williamson, Sealed with an Oath , p. 79)과 테리언(Terrien, Elusive Presence , pp. 74~75)은 이를 명령으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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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창조에서 가나안 목전까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은 가나안이고, 후손은 이삭이고, 복은 온 세상에 대한 것으로 세상의 모든 민족을 포함한다 ( 12:3 ). 그때 뱀은 아브라함의 자손에 의해 패배할 것이다. 이 이야기 에서 여자의 후손 ( 3:15 )이 아브라함의 가족에게서 나오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여호와가 아브라함 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은 왕과 연관되며 ( 12:2. 참고, 11:4; 삼하 7:9 ), 왕들이 아브라함 에게서 나오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가리킨다 ( 17:6, 16. 참고, 35:11 ). 100 ) 세상을 위한 약속은 왕과 같은 인물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다스릴 새 에덴을 나타낸다. 101 ) 약속의 땅은 가나안이지만, 이 땅은 온 세상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 ( offspring, 개역개정 “씨” )이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22:17 ). 아브라함을 통한 복 이 보편적인 것처럼, 땅도 온 세상을 포함할 것이다 ( 롬 4:13; 히 11:13~16; 계 21:1~22:5 ). 102 ) 복은 가나안 에서 시작하는데, 잘못된 길로 가 버린 세상에서 가나안은 하나님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여호와는 한 사람에게 복을 약속하심으로 시작하셨지만, 이 복은 모든 곳에 살고 있는 모든 민 족을 위해 주어지도록 의도되었다. 한 사람의 자녀들을 통해 세상이 새롭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구원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 전적으로 그의 은혜로 인한 것이라는 진리를 각인시킨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뱀의 편에 선다. 그러나 여호와는 악을 이기시고 그의 영광과 인류의 선을 위해 이 세 상을 되찾으실 것이다. 은혜가 갖는 중심성은 아브라함과 체결된 언약을 통해 강조되며, 이는 하 나님 나라가 언약을 통해 실현될 것임을 보여 준다. 103 ) 땅, 씨, 온 세상의 복에 대한 약속들은 언 약의 약속들이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조건적인가 아니면 무조건적인가? 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 언약은 아 브라함의 순종에 의존하므로 조건적이다. 창세기 26장 4~5절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 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 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이 본문은 특별히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계명을 “지켰기 때 문에” 하나님의 복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104 ) 하지만 더 깊은 의미에서 보면 이 언약은 무조건적이다. 105 ) 이 논의에서 결정적인 본문은 창세기 15장이다. 여호와는 아브라함 에게 그의 자녀들이 별처럼 셀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세기 15장의 후반부에 서 우리는 여호와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리라고 약속하시는 언약 체결 예식을 보

100 )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 236을 보라. 101 ) 땅의 주제에 대해서는 C. Wright, Old Testament Ethics, pp. 76~99을 보라. 102 ) Williamson, “Promise and Fulfillment,” pp. 18~20;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708~709, 711. 103 )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을 보라.

104 ) 클라인(Kline, Kingdom Prologue, pp. 198~199)의 주장과 달 리, 아브라함의 순종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로의 보고로 이 해되어서는 안 된다. 105 ) 젠트리와 벨룸(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608~611)은 어떤 언약은 무조건적이고 어떤 언약은 조건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정확하게 주장 한다.


1장 창세기

33

게 된다. 아브라함은 육축을 끌고 와서 그들을 반으로 잘랐다. 밤과 어둠이 아브라함에게 내려왔 다. 전형적으로 언약의 당사자들은 반으로 분리된 동물들 사이를 함께 걸어 통과한다. 이 예식은 그들이 만일 언약의 규정을 어기게 되면 동물들처럼 잘리게 될 것을 상징한다. “주검들 사이를 걷 는 것은 언약을 깰 경우에 도살된 동물의 운명처럼 자신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106 ) 위의 경우와 같은 언약 체결 관례를 반영하는 예레미야 34장은 언약의 규례를 어긴 자들에게 내려지는 심판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내가 그들을 둘로 쪼개서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갔던 송아지처럼 만들 것이다” ( 렘 34:18, ESV “I will make them like the calf that they cut in two and passed between its parts” ).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에서 여호와는 홀로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

이로 지나셨다” ( 창 15:17 ). 여호와 하나님이 홀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 것은 언약의 성취가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 의존한다는 점을 상징한다. 107 ) 예레미야 34장 18절에 있는 병행 본문을 아 브라함의 언약에 적용해 보면, “만일 하나님이 언약을 성취하는 것에 실패하면 하나님이 자신에 게 저주를 내리실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108 ) 궁극적으로, 언약은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 자신 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맹세하셨다. 언약의 무조건성이 인간의 순종을 불필요하게 만들지는 않는 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언약의 복을 누리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순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약의 요구들을 그의 은혜로 성취하실 것이므로, 인간의 순종 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언약의 중심으로 남게 된다. 한편, 창세기 17장에서 언약은 할례를 요구하는데 할례의 언약이 창세기 15장에서 체결된 언 약 이후에 나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참고, 롬 4:9~12 ). 109 ) 이 순서는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가지 는 우선성을 강조한다.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언약에 은혜가 빠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 라함과 사라가 하갈을 통해 약속을 성취하려는 잘못된 시도를 했을 때 ( 16장 ), 17장은 “나는 전능 한 하나님이라” ( 17:1 )라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시작하며, 이는 언약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성취될 것 임을 의미한다. 110 ) 할례라는 언약의 표는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 ( 열방의 아버지 )으로 바뀌면서 주어졌는데, 111 ) 이 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브라함 자신의 생식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질 것임을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각인시키는 기능을 한다. 더 나아가 이 언약 예식은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에게 거룩하게 구별되었음을 알린다. 112 )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여자의 후손을 통해 실현될 것을 보았고 ( 3:15 ), 창세기 12장은 여자의 후

106 ) Waltke, Old Testament Theology, p. 319. 107 ) 또한 Williamson, Sealed with an Oath , p. 86을 보라. 여기 서 언약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pp. 251~256을 보라. 108 ) Wenham, Genesis 1~15, p. 332. 109 ) 윌리엄슨(Williamson, Sealed with an Oath , pp. 89~90)과 반대로, 이것을 창세기 15장에서 맹세한 언약과 분리되고 구 별된 언약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pp. 263~270, 275~280도 옳게 주장한다. 110 ) 이런 통찰을 제공한 조슈아 그리버( Joshua Greever)에게 감사 한다. 111 ) 나는 표현을 간결하게 할 목적으로 아브라함의 이름이 바뀌기 전에도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용한다. 112 ) Gentry and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 pp. 272~275(존 미드[ John Meade]의 연구를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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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 콘웰 신학교에서 신약학 석사학위( Th.M.)를 취득한 후에 영국 브리스

저술했다. 저서로는 『 BECNT 로마서 』, 『 신약신학 』 ( 이상 부흥과개혁사 ) 등

톨 대학교 트리니티 대학에서 마태복음의 하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Ph.

이 있다.

D.) 를 받았다. 현재 개신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부흥

과개혁사 전문 번역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는 『하나님의 아들과 새 창 조』, 『누가신학』 ( 이상 부흥과개혁사 ) 등이 있다.

토머스 슈라이너 지음 강대훈 옮김

토머스 슈라이너 지음 ㅣ 강대훈 옮김 ISBN 978-89-6092-429-1 www.rnrbook.com 값 3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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