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PNTC 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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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시리즈 서문

8

■ 저자 서문

10

■ 주요 약어

13

■ 참고문헌

29

서론

36

1. 초기 기독교 문헌에 나타난 누가복음

| 37

2. 책의 제목

| 40

3. 저자

| 41

4. 기록 시기

| 48

5. 기록 장소

| 50

6. 초기 기독교에 끼친 세 번째 복음서의 영향

| 51

7. 누가복음의 자료

| 52

8. 내러티브의 구조

| 57

9. 마르키온에 대한 에필로그

| 59

4


누가복음 주석

65

제1장 요한과 예수의 탄생에 대한 하늘의 선포(1:1-80) | 66 제2장 예수의 탄생과 소년 시절(2:1-52)

| 120

제3장 ‌ 세례 요한과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다(3:1-4:13)

| 164

제4장 갈릴리 사역의 시작(4:14-5:11)

| 202

제5장 예수 —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권위(5:12-6:11) | 236 제6장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고 가르치다(6:12-49)

| 270

제7장 갈릴리에서의 사역과 가르침(7:1-8:56)

| 300

제8장 열두 제자를 위한 예수의 자기 계시(9:1-50)

| 362

5


제9장 제자도와 선교(9:51-11:13)

| 402

제10장 제자도와 충돌(11:14-54)

| 462

제11장 제자도: 결단과 분리(12:1-59)

| 488

제12장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13:1-35)

| 522

제13장 예수: 연회의 손님과 연회의 주(14:1-35)

| 550

제14장 잃었으나 찾았다(15:1-32)

| 576

제15장 ‌ 부를 신뢰할 것인가, 신실하게 사용할 것인가?(16:1-31)

| 600

6


제16장 제자도와 하나님 나라(17:1-18:34)

| 632

제17장 왕의 도착(18:35-19:44)

| 694

제18장 성전에서 가르치는 교사(19:45-21:4)

| 730

제19장 예루살렘의 멸망과 인자의 오심(21:5-36)

| 776

제20장 마지막 만찬과 체포(21:37-22:71)

| 804

제21장 심문과 십자가형(23:1-49)

| 866

제22장 매장과 부활(23:50-24:53)

| 912

7


| 시리즈 서문 |

모든 주석은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고 이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진지한 목회자와 성경 교사를 위해 기획된 필라 주석 ( Pillar commentaries ) 은 무엇보다 도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본문의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 주석을 집필한 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당대의 최신 논의와도 소통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전문적인 내용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이상 은 성경신학 및 현대의 중요한 문제와 성경의 관련성에 유념하면서, 주석과 설교를 혼동하지 않고, 엄밀한 주해와 해설을 조합시키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을 채택하는 근본 이유는 “객관적 학문성” ( 실현 망 ) 이라는

불가능한 헛된 희

환상이 실제로는 불경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을 알 고 있다고 공언하는 자들은 적절한 방식으로 응답해야 하며, 또한 그것은 자율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학자가 취하는 자세와는 확실 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통제되지 않은 주관성에 은밀하게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리즈의 저자들은 본문에 대해서 편협하지 않은 개방성을 추구한다. 그것이 최선의 “객관성”이다. 만약 성경 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경외심과 모종의 두려움과 거룩한 기쁨과 탐구하는 자세를 갖춘 순종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 다. 그리스도인의 글쓰기에는 아무쪼록 이런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필라 주석 시리즈는 목회자, 교 8


시리즈 서문

사, 학생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뜨거운 환영을 받을 것이다. *

*

*

정경 복음서의 주석을 쓰는 것이 큰 도전임은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제임 스 에드워즈 박사의 탁월한 마가복음 주석

( 또한 PNTC 주석 시리즈 )

서문에 이

도전을 짧게 설명했다. 에드워즈 박사는 마가복음 주석에 이어 누가복음 주 석을 추가함으로써 두 가지 도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첫째, 에드워즈 박사는 누가가 마가복음을 조금 길게 진술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둘째, 에드워즈 박사는 누가복음이 두 권으 로 된 작품의 첫 번째 책이므로 독자는 누가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이 누 가복음의 곳곳에 스며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본 주석은 예수에 대한 누가의 증언을 주의 깊게 탐구하 고 있다. 우리가 저자 누가 혹은 그의 독자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해 낼 수는 있겠으나 누가의 첫 번째 목적이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 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에드워즈 박사는 성경의 본문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거듭거듭 탄탄한 주해를 보여 주고 있으며, 동시에 지식 과 신앙심을 깊게 만들어 준다. D. A. 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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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서문 |

나는 본 주석서가 교회와 신학교와 개인에게 누가복음을 이해하는 통찰 력을 제공하는 창문이 되길 소망한다. 다음의 실용적인 정보는 독자 여러분 으로 하여금 책 전체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나 는 책에 사용된 고대와 현대 자료의 문헌 정보와 약어를 표시할 때 『SBL 핸 드북의 서식』을 따랐다.1  )   독자들은 본 주석서에 사용된 모든 약어 목록을 책의 서두에 볼 수 있다. 자주 사용한 문헌의 상세한 서지 정보는 각주에 때 때로 혹은 자주 제시된다. 자주 사용한 문헌에는 저자의 성, 핵심 용어를 중 심으로 표기한 책 제목 ( 이탤릭체 ), 페이지 숫자를 기재했다. 자주 사용한 자료 를 언급할 경우에는 서지 정보 전체를 기재했다. 기원후는 ( A.D.나 C.E. 없이 ) 연 도만으로, 기원전은 B.C.로 표기했다 ( 이 번역본에서는 “BC”과 “AD”로 표기함 ). 책명을 밝히지 않고 장과 절을 ( 또는

절로만 )

다. 누가복음 외의 ( 사도행전을

포함해서 )

표기한 성경 본문은 누가복음을 가리킨 모든 성경 본문은 책, 장, 절의 순서로

표기된다. PNTC의 편집 원칙에 따라 주석에 사용된 성경 인용은,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NIV를 따른다.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고대 자료이든 현대 자료이든 외국어 자료의 영어 번역은 모두 나의 번역이다. 나는 컴퓨터 지 원 연구 자료로 바이블웍스7을 사용했다. 누가복음 1-21장 주석은 NA27판, 22-24장의 주석은 2013년에 사용이 가능해진 NA28판의 헬라어 1  )   The SBL Handbook of Style: For Ancient Near Eastern, Biblical, and Early Christian Studies (ed. P. Alexander, J. Kutsko, J. Ernest, S. Decker-Lucke, and D. Petersen;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9).

10


저자 서문

본문에 근거한다. 사실상 모든 학문 분야처럼 신약 연구 문헌은 많아졌으며, 다른 학문 분 야와 달리 신약 연구 문헌은 2천 년의 연구를 포함한다. 복음서 주석가는 수많은 지식이 흐르는 교차점에 서 있다. 이런 지식은 고고학, 고대 언어, 비문학, 고대 사본, 고대 역사와 사회 관습, 저자들의 신학적 의도에 대한 분별력, 이런 신학적 의도를 교회가 시대마다 이해한 방법을 포함한다. 주 석의 임무는 자극이 되면서도 겸손을 요한다. 위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지 식 분야인 신학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관련해서, 주석 책 분량의 한계 때문 에 지난 2천년 동안 누가복음이 수용된 다양한 방식, 일반적으로 “수용 역 사”로 불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살필 수밖에 없다. 누가복음 연구 에서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보봉 ( F.

Bovon ) 의

세 권 분량의

방대하고 상세한 주석을 참고하기 바란다 ( Hermeneia 출판사 ). 나는 이 주석을 집필할 수 있는 힘과 영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집 필 과정에서 도움을 준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 PNTC 시리즈의 편집 책임인 카슨 박사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박사님은 다소 특이한 상황에서 마가복음에 이어 누가복음 주석으로 이 시리즈에 기 여할 수 있는 길을 내게 열어 주셨다. 어드만 출판사의 크레이그 놀 ( Craig Noll ) 의

최고 수준의 편집 실력 덕분에 셀 수 없이 많은 부분에서 원고가 개

선될 수 있었다. 브루너-웰치 ( Bruner-Welch ) 신학 위원회의 재정 지원을 감사 한다. 덕분에 휘트워스 대학교 ( Whitworth University ) 로부터 네 명의 우수하고 성 실한 연구 조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에이미 에릭슨 ( Amy Erickson ), 트라 비스 나일즈 ( Travis Mikelson ) 의

Niles ),

레이첼 투운 ( Rachel

Toone ),

조수아 미켈슨 ( Joshua

도움에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신학 대학의 동료들인 제리 시트

서 ( Jerry Sittser ), 아담 네더 ( Adam Neder ), 조나단 무 ( Jonathan Moo ) 는 주석을 저술 하는 내내 도움과 격려와 끊임없는 대화로 동참해 주었다. 휘트워스 대학교 에서 개설한 나의 누가복음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과 내가 수년 동안 누가 복음을 강의한 휘트워스 장로교회의 성인 성경 공부반 참여자들이 보여 준 관심과 통찰력은 이 주석이 매력적이고 실제적이 되도록, 그 내용이 훨씬 더 풍성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 책을 나의 가족에게 헌정한다. 가족의 기도와 지원과 이해심과 격려는 내게 그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딸 코 리 ( Corrie ), 사위 쉐인 ( Shane ), 손자들인 앤더스 ( Anders ), 맛디아스 ( Mathias ), 소 렌 ( Soren ) 에게 감사한다. 아들 마크 ( Mark ), 자부 재닌 ( Janine ), 손녀 아델라 11


저자 서문

인 ( Adeline ) 과 손자 엘리아스 ( Elias ) 에게 감사한다. 여동생 다이애나 ( Diana ) 와 가족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아내 재니 ( Janie ) 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 주 석을 저술하는 동안 그녀의 변함없는 헌신은 내게 은혜의 선물이었다. 제임스 에드워즈

12


34


서론

THE PILLAR NEW TESTA MENT COMMENTARY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35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누가복음은 저자의 개인적인 증언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본 주석서 의 시작 부분에서 누가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 누가는 나사렛 예수 를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믿고 있다. “때가 차서” 인간의 역사 안 에 성육신한 예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들을 성취하도록 보 냄 받았다. 그리고 누가는 하나님의 의로운 종인 예수의 죽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이해한다. 교회는 구원의 증인 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 사실은 누가가 속편인 사도행전에서 강조한다. 나는 누가가 소개하는 아름다운 복음의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최대한 통찰력 있게 설명하려고 주석과 해석 사이에 놓인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노력을 쏟았다. 주석 부분에서 나는 독자들이 본문을 적절히 이해할 수 있도록 유익한 자료를 많이 활용했다. 해석 부분에서는 본문이 신앙과 제자도를 위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찾기 위해 관련 자료를 분 석했다. 누가복음은 역사적 목적과 신학적 목적으로 기록됐기 때문에, 우리 가 누가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두 가지 목적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두 가지 목적을 모두 탐구할 때만, 예수,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을 통 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영감의 숨결과 섭리의 손길이 밝혀 졌고 밝혀질 수 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말에 수긍할 것이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눅 24:32 ). 나는 누가복음의 중요한 주제들을 주로 주석서의 서론에서 논의하겠지 만, 필요에 따라서는 주석 과정에서 보론으로 따로 떼서 논의할 것이다. 36


1. 초기 기독교 문헌에 나타난 누가복음

보론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누가의 탄생 내러티브 ( 1:5 ), 탄생 내러티브와 본 론의 관계 ( 2:46-52 ), 바리새파 ( 5:17 ), 인자 ( 5:26 ), 갈릴리 사역에 나타난 엘리 야-엘리사 모형론 ( 7:15-17 ), 그리스도/메시아 ( 9:18-21 ), 구원의 길로서의 예수 의 선교 ( 9:51 ), 누가복음의 예루살렘 ( 13:34-35 ), 누가복음에 사용되는 “짝”의 기법 ( 14:1 ), 하나님의 아들 ( 22:66-71 ),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 안티파스 ( 23:1 ), 온 세상을 포괄하는 복음 ( 24:44-49 ). 이 외에도 역사와 주석과 지형과 관련된 소 주제들은 필요에 따라 굵은 글씨체로 표시되고 간결하게 논의할 것이다. 서론에서는 누가복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본학적, 언 어학적, 역사적 이슈를 다룰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에 대한 초기 교회의 증언, 누가복음의 저자, 기록 시기, 기록 장소, 누가의 자료 사용, 누가복음 의 내러티브 구조, 마르키온에 대한 에필로그와 관련된 질문도 서론에서 다 룰 것이다.

1. 초기 기독교 문헌에 나타난 누가복음 누가복음을 확실히 언급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는 2세기 전반부에 등장한다.1  )   클레멘스2서에 기록된 일곱 개의 인용은 어법에 있어서 누가복 음에 매우 가깝다. 클레멘스2서는 120년 이후의 저술로 추정되는데, 그렇 다면 누가복음은 2세기 전반부에 알려졌고 이미 인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략 같은 시기에 마르키온 ( 160년 무렵에 사망 ) 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서 출교당한다 ( 9. 마르키온에 대한 에필로그를 보라 ). 마르키온이 나머지 세 복음서가 아니라 누가복음을 선택한 것은 네 개로 엮어진 복음서 전승이 마르키온 이 전에, 그리고 적어도 그가 가르쳤던 로마에는 이미 존재했음을 뜻한다. 마 르키온이 누가복음을 잘못 해석하자

( 그리고 그런 행위에 대한 반발로 )

2세기 후반

에 누가복음을 언급하거나 인용하는 목소리들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1  )   클레멘스2서 2:4 → 눅 5:32; 클레멘스2서 3:2 → 눅 12:8; 클레멘스2서 4:2 → 눅 6:46; 클레멘 스2서 6:1 → 눅 16:13; 클레멘스2서 6:2 → 눅 9:25; 클레멘스2서 9:11 → 눅 8:21; 클레멘스2서 13:4 → 눅 6:27, 28, 32. W. Pratscher, The Apostolic Fathers: An Introduction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10), 76을 보라. 벅은 클레멘스2서 13:2; 48:4(46:8도 추가될 수 있음)을 누가 복음의 암시로 이해한다(Bock, Luke 1:1-9:50, 5). 만일 벅의 주장이 정확하다면, 이 본문들은 누 가복음의 내용을 이미 1세기 후반에 언급한 증거로 볼 수 있다(클레멘스1서는 95년 무렵에 기록 됨). 그러나 나로서는 클레멘스1서에 있는 세 본문과 누가복음의 해당 본문 간의 언어적 유사성이 전자가 후자에 의존하고 있음을 입증할 정도로 높은지 확신하기 어렵다. 클레멘스1서와 누가복음 간의 언어적 유사성은 두 문서가 공유한 구두 전승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7


서론

이레나이우스 ( 130-200년

무렵, 『이단들을 반박함』 3.1; 3.14 ),

순교자 유스티누스 ( 100-

165년 무렵, 『제1변증』 34; 『트리포와의 대화』 78, 88, 100, 103, 105, 106 ), 에 사망, 『디아테사론』 ),

타티아노스 ( 160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 150-215년 무렵, 『스트로마타』 1.1 ), 테르

툴리아누스 ( 160-225년

무렵, 『마르키온을 비판함』 ),

무라토리안 정경 ( 170-80년

2세기에 기독교를 반대한 사람들 곧 켈수스 ( 오리게네스,

무렵 ).

『켈수스에 대항하여』 2.32 ),

영지주의자인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스트로마타』 4.9 ) 도 누가복음을 알고 있었다. 이레나이우스 이래로 요한계시록 4장 6-7절과 에스겔 1장 4-21절에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있는 네 마리의 상징적 피조물을 사복 음서에 대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계시록을 기록한 묵시자 가 사복음서를 상징할 목적으로 네 피조물을 묘사했는지 여부는 증명될 수 없지만, 네 피조물 ( 생물 ) 은 어린 양이 책 ( 두루마리 ) 을 들고 있는 장면과 함께 계시록 5장 6-8절에 다시 등장하는데, 이는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 도 공교롭게도 사복음서의 기능과 일치한다. 교회사에서 네 피조물 중 셋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을 가리킨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반면, 황소 ( 혹은 송아지 ) 만큼은 일관되게 누가복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레나이우스에 따르면 누가복음의 탕자가 돌아왔을 때 희 생된 살진 송아지처럼 황소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적이고 제사장적 직 분”을 상징했다 ( 『이단들을 반박함』 3.11.8 ). 이레나이우스의 또 다른 저술인 다음 내용은 누가복음을 언급하고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마태 역시 히브리인들 가운데서 그들의 언어로 복음서를 기록했다. 반 면 베드로와 바울은 로마에서 전하며 교회의 토대를 놓고 있었다. 그들 이 떠난 후에 베드로의 제자와 해석자 마가 역시 베드로가 전한 것을 기 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바울의 동료 누가 역시 누가가 전한 복음 을 책에 기록했다. 이후 주의 제자요 주의 품에 기댔던 요한은 아시아의 에베소에 거주하는 동안 복음서를 출간했다(『이단들을 반박함』 3.1.1).

이레나이우스는 사복음서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이른 시기에, 아마도 1세기 후반에 이미 성립된 전통에 근거해 주장을 펼친다. 이레나이우스는 마르키온이 누가복음의 내용을 삭제해서 만든 새 로운 책, 이단에 대한 반응으로 이전부터 존재했던 사실, 즉 사복음서 전통 38


1. 초기 기독교 문헌에 나타난 누가복음

에 근거해서 비판한다. 이 전통은 이레나이우스 자신과 정통의 권위 있는 주창자들에게는 이미 정립된 것이고 변경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원칙이 었다. 또한 히브리어 마태복음이 첫 번째로 에 붙여지게 됐을 것이다 ),

( “마태”라는 이름은 이후에 첫 번째 복음서

그리고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순서로 된 이레

나이우스의 기록은 사복음서의 순서가 현재 우리에게 전달된 복음서의 순 서와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런 순서 는 3세기에는 오리게네스, 4세기에는 유세비우스와 아타나시우스, 그 이후 에는 거의 모든 교부들이 견지한 입장이었다. 4세기와 5세기의 언셜 사본 들, 곧 바티칸 사본 ( B ), 시내산 사본 ( ‫) א‬, 알렉산드리아 사본 ( A ), 에프라임 사 본 ( C ) 도 이런 입장을 유지했다. 3세기에 순서를 변경한 “서방 사본의 순 서” ( 마태복음, 요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 가 등장했으나 이레나이우스의 기록과 같 은 전통을 압도하지는 못했으며, 초기의 전통이 현재까지 기독교 역사에서 수용된 순서가 된다.2  )   두 전통에 있는 순서에서 누가복음은 “세 번째 복음 서”의 위치를 유지하며, 히브리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이후에 기록되고 두 복음서를 근거로 삼는다.3  )   누가복음은 다른 측면에서도 세 번째에 해당하는 복음서다. 인용의 빈도 측면에서, 초기 교회에서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 요한복음보다는 덜 인용 되고 마가복음보다는 자주 인용된다. 해석의 빈도 측면에서, 교부들이 저술 한 주석서에서 누가복음은 세 번째로 자주 해설되는 주석서로서 마태복음 과 요한복음보다는 적게, 마가복음보다는 자주 해석된다. 오리게네스 ( 185254년 ),

앰브로지애스터 ( 339-97년 ), 예루살렘의 키릴로스 ( 375-444년 ) 는 모두 누

가복음의 헬라어 주석서를 남겼다. 라틴어 주석서로는 네 번째 빈도의 복음 서에 해당하며, 라틴어 누가복음 주석서는 중세에 성 비드에게서 시작된 다 ( 673-735년 ). 누가복음의 헬라어 사본은 신약에서 마가복음 사본보다는 더 입증되지만 마태복음과 요한복음 사본보다는 덜 입증된다.4  )   사본학적 입 증과 관련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누가복음 사본인 가복음 1-6장의 발췌본이다. 담고 있으며,

𝔭 4 ( 200년 무렵 ) 는 누

𝔭 75 ( 200년 무렵 ) 는 복음서 전체의 상당 부분을

𝔭 45 ( 약간 후대인 3세기경으로 추정됨 ) 도 마찬가지다. 누가복음을 완벽

하게 포함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사본은 4세기와 5세기의 언셜 양피지 사 2  )   이레나이우스와 “서방 사본의 순서”에 대해서는 Hengel, The Four Gospels, 38-47을 보라. 3  )   클라로몬타누스 사본(Codex Claromontanus, D 06)과 첼튼햄-정경(Cheltenham-Canon)에서

(둘 다 4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됨) 누가복음은 복음서 배열 순서에서 네 번째로 나온다. 4  )   Kealy, Interpretation of the Gospel of Luke, 28을 보라.

39


서론

본들로서 시내산 사본 ( ‫) א‬, 알렉산드리아 사본 ( A ), 바티칸 사본 ( B[손실된 상당히 존재함] ),

부분이

에프라임 사본 ( C ) 이다.

2. 책의 제목 유대 회당의 예배에서는 성스러운 책을 읽을 때 책의 진정성과 권위를 확 인할 목적으로 책의 제목 혹은 저자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것이 관례였다. 마르틴 헹엘 ( Martin Hengel ) 의 연구에 따르면 “익명의 성스러운 문서”라는 표 현은 용어상 모순적이다.5  )   왜냐하면 문서의 권위를 보증해 주는 역할을 하 는 이름이 없는, 출처가 입증되지 않는 문서는 영감 받은 문서라고 할 수 없 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의 이름은 는 현상으로서 )

( 사복음서 모두에 나타나

복음서 자체에 없을 뿐 아니라 복음서 내용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 번째 복음서가 익명인 채로 회람된 증거는 없다. 물 론 이런 현상은 사복음서 모두 마찬가지다. 가장 이른 시기의 책 제목은 파 피루스 𝔭 75 의 끝에 ‘유앙겔리온 카타 루칸’ ( 누가에 따른 복음 ) 으로 붙어 있다. 이

와 동일한 제목이 거의 모든 언셜 사본에 있는 세 번째 복음서의 시작 부 분 ( D K L W ΓΔ Θ Ξ Ψ ) 과 끝부분 ( ‫ א‬A ) 중 하나에 사용된다. 이와 반대로 바티칸 사본 ( B ) 의 경우는 본문의 끝에 ‘카타 루칸’ ( 누가에 따른 ) 으로만 표시하며, 바티 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 둘 다 책의 모든 페이지 상단에 이와 같은 축약형의 제목을 포함하고 있다.6  )   이런 제목들에서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전부 “누가”라는 이름을 포함한다는 것이다.7  )   세 번째 복음서가 “누 가” 외의 이름으로 회람된 적이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사 실이다. 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이름으로 회람된 첫 번째와 네 번째 복음서와 달리 두 번째와 세 번째 복음서는 사도가 아닌 저자의 이름으로 회람됐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가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가 아니었다면, 초기 교회가 사도가 아 닌 사람, 즉 사도에 비해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람을 굳이 복음서의

5  )   Hengel, The Four Gospels, 37. 6  )   두 개의 소문자 사본(7세기와 13세기)에는 “누가에 따른 거룩한 복음”, 12세기의 소문자 사본 중 하나에는 “누가에 따른 복음의 시작”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7  )   복음서의 제목들과 익명 회람의 이론에 대해서는 Hengel, The Four Gospels, 48-56을 보라.

40


3. 저자

저자로 밝힐 리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8  )

3. 저자 3.1. 누가 저자설 헬라어 ‘루카스’는 헬라어 ‘루키오스’와 라틴어 ‘루카누스’ 둘 다의 단축 형이다.9  )   우리는 ‘루카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신약의 세 본문과 여섯 개의 교부 자료에서 모아야 한다.10  )   신약에서 누가는 바울서신의 말미에 기록된 지인들의 목록에 포함된다. 골로새서 4장 14에서 누가는 “사랑을 받는 의사”로 불린다. 빌레몬서 24절에서 바울은 누가를 “나의 동역자들” 목록에 포함시킨다. 디모데후서 4장 10-11절에서 바울은 “누가만 나와 함 께 있느니라”라고 쓴다. 신약의 세 자료에서 누가는 바울이 옥에 있을 때 함께 있던 동료로 언급된다. 신약에 나오는 이와 같은 적은 정보는, 몇몇의 예외는 있겠지만, 초기 기독교의 4세기 동안에 활동한 교부들의 저술에 반 복된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 대해서는 신약과 교부들의 자료는 같은 목소 리를 내고 있다. 첫째, 어떤 자료도 누가가 사도였다거나 예수를 “실제로” 만난 사람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모든 자료에서 누가에 대해 말하는 내용 에서 추정해 보거나 몇몇 자료 ( 『무라토리아 4.2.2 ) 에서

정경』, 테르툴리아누스, 『마르키온을 비판함』

명확히 언급하는 것을 보면, 누가복음은 이 복음서의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증언에 기초해서 기록한 것이다. 둘째, 누가는 바울의 제자였고 오랫동안 여정을 함께 한 함께 동료로 묘 사되는데, 이는 가장 핵심적인 교부 자료가 증언하는 특징이다 ( 『무라토리아 정 경』; 테르툴리아누스, 『마르키온을 비판함』 4.2.2; 유세비우스, 『교회사』 3.4.6; 히에로니무스, 『유명한 사람 들에 관하여』 7.1 ).

누가는 바울이 칭찬한 사람이었고 (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석』 [유세비

8  )   F. F. Bruce,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Greek Text,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51; repr., 1984), 4. 9  )   Deissmann, Light from the Ancient East, 435; Lagrange, Luc, 1; Fitzmyer, Luke (I-IX), 42를

보라. 10  )   골 4:14; 딤후 4:11; 몬 24; 『무라토리아 정경』(170-80년 무렵), 이레나이우스(130-200년 무렵, 『이단들을 반박함』 3.1.14), 테르툴리아누스(160-225년 무렵, 『마르키온을 비판함』 4.2.2), 『반 마르키온 서문』(약 3세기 초), 오리게네스(185-254년 무렵, 유세비우스 『교회사』 6.25.6에 인용 된 『마태복음 주석』), 유세비우스(260-340년 무렵, 『교회사』 3.4.6-7), 히에로니무스(345-419, 『유명한 사람들에 관하여』 7).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교부 자료를 위해서는 SQE 532-48을 보라.

41


서론

우스, 『교회사』 6.25.6] ) 4.2.2 ).

바울보다는 낮은 위치였다 ( 테르툴리아누스,

『마르키온을 비판함』

이레나이우스는 누가와 바울의 결속력을 “뗄 수 없는” 관계로 묘사한

다. 테오도르 잔 ( Theodor Zahn ) 은 만일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가 바울의 제자 로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마르키온이 누가복음을 선호했을 리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의 결론은 정확히 맞다.11  )   또한 이레나이우스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우리”-본문들 ( “we”-passages: 28:16 ) 은

16:10-17; 20:5-15; 21:1-18; 27:1-

바울의 선교 여행에 누가가 참여했음을 입증하는 것임을 주장한 첫

번째 사람이다 ( 『이단들을

반박함』 3.14.1 ).12  )

이레나이우스의 주장에 근거해서 유

세비우스와 히에로니무스는 누가는 자신이 듣고 본 것에 기초해서 복음서 를 기록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들은 또한 누가는 복음서의 내용을 바울에게 서 배웠기 때문에 바울서신에 나오는 “나의 복음” ( 롬 2:16; 16:25; 딤후 2:8 ) 은 바 울의 선언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내용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 유세 비우스, 『교회사』 3.4.7; 히에로니무스, 『유명한 사람들에 관하여』 7.4 ),

이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내용을 거의 싣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부활의 예수를 통해서 바울에게 계시된 것이기 때문에 ( 갈

1:12 )

바울은 그런 것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 고후

5:16 ).

현대 학자들은 누가와 바울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 도행전에서 바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바울 신학, 특히 바울의 자연 신학, 율법, 기독론, 종말론의 특징들이 침묵하거나 아니면 없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서 내가 여기서 설명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반박하고 있다.13  )   나는 다만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 간의 차이점들은 역으로 누가와 바울의 관계가 밀접함을 지지하는 것일 수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14  )   현대 학자들은 바울을 주로 서신서의 정보에 11  )   Zahn, Lukas, 2. 12  )   『신곡』의 연옥편(Purgatorio, 29곡, 133-41행)에서 단테는 누가와 바울을 하늘 행렬의 절정에 있는 두 인물로 묘사한다. 교회의 승리 이후에 그리폰(신과 인간인 그리스도의 상징), 세 개의 신 학적 덕목(믿음, 소망, 사랑-옮긴이), 네 개의 기본 덕목(지혜, 용기, 정의, 절제-옮긴이), 일곱 장로들(신약의 나머지 책을 상징), “다른 옷을 입고 / 둘씩 나란히 오고 있다 / 둘 다 / 똑같이 너무나 위엄 있는 모습으로. / 그중 한 사람은 그가 위대한 히포크라테스의 예술의 추종자였음을 보여 주었다 / 자연은 히포크라테스를 그녀의 마음에 존귀한 피조물들을 치유하도록 만들었다 / 다른 한 사람은, 그와 같이 있는 사람은 검을 들고 있었는데 / 그것을 보니 너무나 예리하고 빛 나서 / 강 건너편에 있는데도 나는 두려웠다”(영문 번역: John Ciardi). 13  )   예를 들어, Ellis, Luke, 44-51; Fitzmyer, Luke (I-IX), 47-51을 보라. 14  )   엘리스(Ellis, Luke, 50)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누가처럼 바울을 알았던 사람이라

면, 사도 시대 이후의 사람보다는 사도 바울에 대한 독립적인 증언을 더 명확히 제공할 수 있었

42


3. 저자

기초해서, 즉 신학자로 알고 있지만, 누가는 현대인들이 더 이상 만날 수 없 는 바울을 목사로, 그리고 선교지에서 기독교 공동체를 영적으로 세운 사람 으로 알고 있었다.15  )   사도행전에는 바울을 목사와 영적 설립자로 보는 관점 이 강하다. 이 관점은 당연히 선교지에서 누가가 경험한 바울에 근거한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교부들은 누가에 대한 또 다른 정보들을 제공 하고 있다. 누가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복음서를 기록할 때 바울뿐 아니라 “다른 사도들”에게서 도움을 얻었다는 사실은 다음에서와 같이 널리 주장되는 것이다 ( 1:2 ).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들을 반박함』 3.14.1, 『반마르키온 서문』,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3.4.6』, 히에로니무스의 『유명한 사람들에 관하여』 7.5, 아마도 테르툴리아누스의 『마르키온을 비판함』 4.2.2. 사람들은 사도행전을 누가복음의 속편으로 추정하기도 하며 이는 다 음에서와 같이 널리 인정되는 견해다.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들을 반박함』 3.14.1, 『반마르키온 서문』,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2.22.1; 3.4.6, 히에로니 무스의 『유명한 사람들에 관하여 7.2』. 다음의 교부들 몇 명은 골로새서 4장 14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누가를 의사로 묘사한다. 『무라토리아 정경』, 『반마르키온 서문』, 유세비우스 『교회사』 3.4.6, 히에로니무스 『유명 한 사람들에 관하여』 7.1. 마지막으로, 『반마르키온 서문』, 유세비우스 ( 『교회 사』 3.4.6 ),

히에로니무스 ( 『유명한 사람들에 관하여』 7.1 ) 는 누가를 안디옥 태생으로 밝

힌다. 누가가 안디옥 태생이라는 부분은 신약에는 없는 것으로 처음 주장한 내용이거나 사도행전에 있는 “우리”-본문들 ( “we”-passages ) 에서 추론한 것 일 수 있다.16  )

3.2. 초기 교회의 외적 증언과 누가-행전의 내적 증언 비교 앞에서 다룬 내용은 전반적으로 세 번째 복음서와 긍정적으로 연결된다. 누가복음의 프롤로그는 교부들의 증언이 말하던 것을 선언하고 있다. 말하 을 것이다. 15  )   이것은 헹엘이 제공한 통찰이다. M. Hengel, Between Paul and Jesu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3), 110. 16  )   베자 사본(D)은 행 11:28에서 “우리”-본문을 포함하고 있다(고딕체 부분): “그때 선지자들이 예 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다. 그리고 큰 기쁨이 있었다. 우리가 함께 모였을 때, 선지자들 중에 서 아가보라는 이름의 선지자가 말했다…….” 만일 “우리”-본문이 누가를 포함하고 있다면, 이 본문은 누가와 안디옥의 관계를 연결시킨다. 만일 유세비우스와 히에로니무스가 베자 사본에 기 록된 형태의 사도행전에 근거해서 누가와 안디옥의 관계를 생각했다면 누가가 안디옥 태생이라 는 그들의 주장은 신약에서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43


서론

자면 누가는 사도가 아니었으며, 예수의 지상 생애 동안 직접 예수를 만난 적은 없으며, 복음서에 있는 내용은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 ( 1:2 ) 의 증언에 의존한다. 누가와 바울의 관계는 이와 비슷하게 입증될 수 있다. 바 울은 세 차례에 걸쳐서 누가가 자신의 여정 가운데 함께 있었음을 밝힌 다 ( 골

4:14; 몬 24; 딤후 4:11 ).

그리고 사도행전에 있는 “우리”-본문들은 누가 자

신의 생생한 증언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증언은 누가의 여행 일기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이다.17  )   우리는 누가복음의 어휘, 주제들, 신학적 강조 점들이 바울의 문헌과 상당히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명확하게 일치하고 있 는 사실을 본 주석서에서 수없이 살펴볼 것이다. 이처럼 누가-행전은 누가 와 바울의 관계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합의점을 지지하는 중요한 내적 증 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도행전이 누가복음의 속편이라는 사실은 사실상 고대와 현대의 기독교 학문에서 주장해 온 확고부동한 결론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모두 “데오빌로” ( 1:3;

행 1:1 ) 를

언급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을 먼저 쓴 글

이라고 한다 ( 행 1:1 ). 누가-행전의 어휘가 보여 주는 통계학적으로 대단히 높 은 유사성은 저자가 같다는 점을 입증한다. 매우 비슷한 주제와 구성이 누 가복음에서 사도행전으로 발전되고 있으며, 이는 동일 저자를 지지하는 증 거가 된다. 누가가 의사였다는 점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의사로 밝히는 내용은 골로새서 4장 14절에 나오며, 『무라토리아 정경』, 히 에로니무스, 유세비우스가 확인해 주는 것이다. 백여 년 전에 하르낙 ( Har­ nack ) 은

누가복음의 전체 내러티브는 의학적 주제들로 구성됐으며 세 번째

복음서 저자의 이야기와 어휘의 많은 부분이 의학적 전문 용어로 채색됐다 고 주장했다.18  )   그의 주장은 누가가 의사라는 점을 너무 과장하는 것이 다.19  )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의 직업이 의사라는 견해를 반대하는 사람들 은 이처럼 의사라는 점을 과장하는 점을 문제 삼고 있거나 데이터 자체를 분석하기보다는 확실성의 정도를 지적하고 있다.20  )   물론 누가가 의사였다

17  )   누가와 관련된 “우리”-본문을 비평적으로 논의한 내용과 지지하는 내용으로는 Tannehill, Luke,

21-24를 보라. 18  )   Harnack, Luke the Physician, 특히 175-98. 19  )   예, “세 번째 복음서의 저자가 마가복음의 내용에 추가하고 변경을 가한 것은 거의 대부분 의사 의 직업을 가진 사람의 관심을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명료하고 확실히 설명될 수 있다”(Luke the

Physician, 187). 20  )   H. Cadbury, The Style of Literary Method of Luke (HTS 6;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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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르키온에 대한 에필로그

누가복음 주석

THE PILLAR NEW TESTA MENT COMMENTARY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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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spel according to Luke

제1장 요한과 예수의 탄생에 대한 하늘의 선포(1:1-80)

프롤로그(1:1-4) 누가는 신약에서 최고의 헬라어 수준으로 프롤로그를 기술하면서 복음서 를 시작한다. 이 프롤로그는 누가복음의 나머지 부분에 나타나는 언어와 문 체와는 눈에 띄게 구별된다.1  )   누가복음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헌정은 헬라 의 학술적인 작품들, 특히 역사와 과학에 등장하는 서론과 여러 면에서 유 사하다.2  )   누가는 신약의 복음서 저자 중에서 유일하게 이런 식의 서론을 제시한다. 누가복음의 프롤로그는 1세기 당시 복음서 이전의 역사를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증언이며,3  )   저자이면서 전도자인 누가의 문학적 기교에

1  )   프롤로그의 43개 단어 중에서 열두 개는 헬라어 저술의 서론에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Grundmann, Lukas, 43). 2  )   헬라어 저술의 서론을 보여 주는 예들과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다음의 자료를 보라. Klos­

termann, Lukasevangelium, 1-2; Marshall, Luke, 39; Klein, Lukasevangelium, 76-78; 특히 L. Alexander, “Luke’s Preface in the Context of Greek Preface-Writing,” in Orton, Composition of Luke’s Gospel, 90-116을 보라. 누가복음의 프롤로그와 매우 비슷한 (혹은 누가복음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은 2세기의 Diogn. 1이다. 이 작품은 눅 1:1-4처럼 수신자에게 기독 교 신앙의 핵심들을 가르칠 의도를 알리고 있으며 이 수신자를 “각하”(‘크라티스테’)로 부른다. 3  )   B. Gerhardsson, “The Gospel Tradition,” in The Interrelations of the Gospels: A Symposium Led by M.-E. Boismard, W. R. Farmer, F. Neirynck, Jerusalem 1984 (ed. D. Dungan; BETL 95; Leuven: University Press, 1990), 5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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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 : 1

대한 독특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누가는 다른 저자들과 달리 복음으로 시작 하지 않고 자신보다 먼저 해석학적 과업을 수행한 내용을 언급한다. 누가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이전에 기록된 자료들에 근거하고 있으며, 글의 수신자 의 이름을 “데오빌로 각하”로 밝힌다 ( 3절 ). 복음의 의미 있는 모든 선포를 이해하려면 해석자가 있어야 하고, 누가는 자신의 자료들과 청중 사이에서 해석학적 교량 역할을 한다. 1절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 개역개정: 1-2절 ). 누가복음은 이루어진 사실을 쓴 첫 번째 저술이나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누가 앞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 의존한다. 속사도 시대에 복음을 중개한 사람들처럼, 누가 역시 복음의 내러티브를 작성하기 위해 권위 있는 전승을 사용한다. 누가는 자신 앞의 “많은” 사람들이 누구 인지 밝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서론에서 언급했고 본 주석에서 반복 적으로 살펴볼 것처럼 누가가 활용한 자료 중 두 개는 의심할 여지없이 마 가복음과 히브리 복음서다. 초기 교회의 몇몇 교회 지도자들은 1절을 이전 의 전승을 폄하하는 표현으로 해석했고, 현대의 주석가도 이런 이해를 종종 따른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프롤로그는 이전의 내러티브들이 결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는다. 이전의 내러티브들 역시 “목격자와 말씀 의 일꾼 된 자들” ( 2절 ) 의 자료를 사용했으며, 누가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이 다. “내력을 저술”하는 것 ( 개역개정: 2절 ) 의 헬라어는 완전하고 질서 있는 기록 으로 구성하는 것, 이해하기 쉽도록 잘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중간 태 부정사인 ‘아나탁사스다이’는 이런 의를 강조하며, 이는 구두 전승을 기 록된 전승으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헌신했음을 뜻한다.4  )   헬라어 명사인 ‘디에게시스’ ( 내력 ) 는 신약에서 이곳에만 등장한다. 이 단어 가 단수인 점은 중요하다. 누가는 “많은 내력”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하나의 복음 내러티브가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의 복음에 대한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명사 ‘디에게시스’와 누가의 독특한 단어인 동사형 ‘디에게이스다이’ ( 8:39;

9:10; 행 8:33; 9:27; 12:17; 신약의 다른 곳에는 단 세 번만 사용됨 ) 는

“내러티브를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5  )   ‘디에게시스’는 “유대-헬라 문헌 4  )   G. Delling, anatassō , TWNT 8:32-33. 5  )   이 동사는 다른 형태로 행 15:3에 사용되고, 마찬가지로 사건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 다. G. E. Lessing, “New Hypothesis on the Evangelists as Merely Human Historians,” in

Philosophical and Theological Writings (trans. and ed. H. Nisbet; Cambridge Texts in the History of Philosop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45-47. 레싱은 프롤로그의 첫 번 째 두 동사는 히브리 복음서의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 가운데 성취

67


누가복음 1 : 2

과 헬라 저자들 가운데 나타나는 역사적-문학적 용어”이므로,6  )   이 단어는 기록된 내러티브를 가리킨다. 따라서 누가와 데오빌로에게 알려진 이야기

는 다양한 버전으로 기록됐다. 누가가 전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다. 누가복 음은 누가의 생각을 증언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그의 신앙을 증언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복음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들, 즉 예수 그리스도 안 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구체적이면서 구원을 베푸는 행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복음은 고상한 윤리의 선포가 아니다. 추상적인 가르침과 진리로 축 소될 수도 없다. 복음은 누가나 다른 어떤 목격자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이 아니다. “이루어진”으로 번역되는 수동태 헬라어 동사가 사용된 것은 하 나님이 행하신 역사를 의미한다. 이 역사에 대해서 사람들은 믿고 전하는 것

으로 반응해야 한다. 누가는 자신은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이 아니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 2절 ), 1-2절의 “우리”와 관련된 내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뤄진 일들”을 의미할 것이다.7  )   2절 누가복음 이전의 내러티브들은 누가복음보다 먼저 기록됐다. 왜냐 하면 이 내러티브들은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우리” 에게 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전하다” ( ‘파라디도마이’ ) 의 헬라어 단어는 초 기 기독교에서 권위 있는 구두 전승을 지칭할 때 사용한 표준적 용어였 다.8  )   절대적으로는 아니라 할지라도 “목격자들”은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9  )   따라서 2절은 “성경과 전승”, 즉 목격자의 증언과 이 증언에 바탕을 둔 참 된 전승을 암시하며, 이 둘은 중요한 자료로서 기독교의 주요 세 분파에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10  )   누가가 의존하는 목격자들은 “처음부터” ( ‘아프

아르케

된 사건들의 이야기,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들과 사역자들이었던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게 내려 온 것.” 히브리 복음서에서 증언을 전해 준 “많은” 사람들은 열두 사도이며, 3-4절은 누가를 구체 적인 중개자로 소개한다. 레싱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곧 누가는 히 브리어 문헌, 나사렛 사람들의 복음서를 확보했고, 이 복음서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을 자신 의 복음서에, 순서를 약간 달리하고 더 나은 언어를 구사해서 포함시켰다”(§48). 6  )   Hengel, The Four Gospels, 100, 415; G. Delling, “anatassō,” TWNT 8:32-33. 7  )   Lagrange, Luc, 4. 8  )   “예수 전승과 이 전승을 전달하는 구체적인 전수자들 혹은 어느 정도 강조해서 전하는 그들의 기 억과 선교 목적의 설교 간에 맺어진 인격적 연결 고리는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M. Hengel, The Four Gospels, 143). 9  )   보컴은 1:2의 명확한 의미는 저자가 설정하는 역사의 처음부터 사건들이 일어나는 동안 목격 자들이 살아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언급한다. R. Bauckham, Jesus and the Eyewitnesses: The Gospels as Eyewitness Testimony (Grand Rapids: Eerdmans, 2006), 119. 10  )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아타나시우스는 눅 1:1-4를 그의 유명한 『서른아홉 편의 절기 편지』 서문(367년)에서 명확하게 모방한 것 같다. 여기서 그는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신약의 2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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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 : 3-4

스’ )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해 준다. 유사한 표현이 사도의 자격을 언급하는

사도행전 1장 21절에 등장한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 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처음 부터”는 여기서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며, 예수의 지상 사역에 목격자들로 참여한 사실을 의미한다.11  )   만일 목격자의 증언이 마가복음을 포함한다면, 마가복음의 증언은 사도 베드로의 권위와 관련이 있게 된다. 사도가 아니었 던 마가복음의 저자는 자신의 복음서를 위해 사도 베드로의 권위를 활용한 다. 목격자의 증언은 또한 히브리 복음서도 포함할 것이다. 초기 교회의 역 사에서 이 복음서는 사도 마태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었다. “목격자들과 말 씀의 일꾼들” ( 1:2 ) 은 따로 떼지 말고 한 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해돼야 한다. 그리스도 사건을 목격했다고 해서 누가가 말하는 목격자의 일행에 자 동으로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헤롯 안티파스, 빌라도, 산헤드린 공회원들, 셀 수 없이 많은 개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목격했으나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고 말씀의 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의 종이 된 목격 자들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수의 “말과 일”을 의미하는 말씀 ( 24:19; 또한 요 15:27; 행 1:21-22를 보라 ) 을 보았을 뿐 아니라, 말씀의 종이 됨으로써 말씀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마 찬가지로 사도행전 6장 4절에서 누가는 열두 제자들의 사명을 “말씀 사역” 으로 묘사한다. 복음의 말씀이 신자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복음 에 속해 있고 복음을 섬긴다 ( 롬 6:17 ). 증인은 말씀을 지배하기를 추구하지 않 고 말씀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내어드린다. 3-4절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 있는 자료를 만든 사람도 자료에 대한 권 한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는 해석의 끈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다. 사도 행전 1장 1절에서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저술인 세 번째 복음서를 언급한 다. 헬라어 중간태인 ‘에포이에사멘’ ( “내가 쓴” ) 은 데오빌로에게 보낸 마지막 저술에 대한 누가 자신의 엄중한 책임감을 의미한다. 처음으로 누가는 3절 에서 문자적으로 “내게도 좋게 보였다” ( NIV:

“이것을 유념하여” ) 는

뜻의 헬라어

‘에독센 카모이’를 사용해 복음서와 관련된 자신의 역할을 언급한다. 이는

(그리고 이 책들만) 전부를 권위 있고 정경에 해당하는 것으로 언급한다. 이 책의 본문은 Kealy, Interpretation of the Gospel of Luke, 72에서 보라. 11  )   요세푸스는 예수에 대한 그의 유명한 증언에서 예수가 말한 것과 비슷한 전승을 근거로 제시한 다(요세푸스, 『고대사』 18.64).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했을 때 “처음에 (예수를)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그를 향한 그들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69


누가복음 1 : 3-4

우리가 신적 영감으로 간주하는 것을 매우 겸손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는 “내게도 좋게 보였다”는 표현이 “머뭇거리는” 혹은 “불확실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에독세’는 헬라 세계의 공적인 비문에 널리 사용된 용어로서 ( 예, “의회와 시민을 기쁘게 했다[‘에독세’]……” ) 국가의 권위를 증명하는 기능 을 했다. 따라서 누가는 이 용어를 머뭇거리는 상태가 아니라 다섯 가지 확 신의 토대가 든든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12  )   첫째, 누가복음에 들어 있는 자료는 누가가 “자세히 미루어 살핀 것”을 증명하고 있다. 헬라 어 동사 ‘파라콜루데인’은 “누군가를”, 특히 권위 있는 인물을 “따르는 것” 을 의미한다. 누가는 영감이 번뜩이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주 도면밀하게 살피면서 일어난 사건들을 주의 깊게 추적했다. 둘째, 누가는 “모든 일”, 즉 역사 자료로서 타당한 모든 증거를 살폈다. 셋째, 누가는 “근 원부터” 살폈다. 누가가 증언하는 사건들은 상당한 시간의 간격을 포함하 고 있으며, 그는 이 사건들을 처음에 일어난 사건부터 서술했다. 넷째, 누가 는 ‘아크리보스’, “주의 깊게” ( 개역개정 “자세히 미루어” ), 보다 적절한 번역으로는 “정확하게” 살피는 것을 복음서 저술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이 용어는 완전성과 정확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누가는 “차례대로”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밝힌다.13  )   이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논 쟁되는 부분이다.14  )   여기서 누가가 내러티브의 적절한 차례와 순서를 의미 하는 ‘카데크세스’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누가는 사 도행전 11장 4절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 누가는 파피아 스가 마가복음에 대해서 말한 것과 같은 특징을 자신의 복음서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다. 즉 누가복음의 주된 기여는 자료의 “배열” ( ‘쉰타세인’ ) 과 관련 이 있다.15  )   현대의 자료 분석에서 보면, 누가의 표현은 마가복음과 히브리 복음서를 융합하는 것도 포함한다. 누가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사도 전통 에 기여한 점은 무엇보다도 내용과 자료보다는 순서와 배치에 있다. 누가복 음은 이질적인 정보를 연결시켜 놓기만 한 기록이 아니라, 독자들이 예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예수의 일생을 나타내는 글이다.

누가가 앞에서 말한 것은 복음서의 수신자인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바

12  )   누가는 동일한 용어를 행 15:22, 25, 28, (34)에서 비슷한 효과를 위해 사용한다. 13  )   ‘카덱세스’(차례대로)에 대해서는 Tannehill, Narrative Unity of Luke-Acts, 9-12를 보라. 14  )   J. V. Bartlet, “The Sources of St. Luke’s Gospel,” in Studies in the Synoptic Problem (ed. W.

Sanday; Oxford: Clarendon, 1911), 354; Marshall, Luke, 43; Klostermann, Lukasevangelium, 3. 15  )   유세비우스, 『교회사』 3.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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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 : 3-4

를 더 확실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 4절 ). 기독교 신앙의 권위 는 그 뿌리를 신자의 신앙이나 주관적 상태가 아니라 역사 기록의 진실성에 둔다. 이 기록은 진리의 객관적 잣대에 의해 입증될 수 있다. 누가는 사람들 이 누가복음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저자의 종교적 영감이 아니라, 역사적 인 검증을 거뜬히 이겨 낼 수 있는 역사의 기록에 둔다.16  )   따라서 누가는 데 오빌로에게 이제까지 나온 “많은” 이야기들의 진실성을 확신시킨다. 이 이 야기들은 데오빌로가 처음에 복음에 대한 지식을 얻게 해 준 자료였다. 데오빌로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정보는 없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뜻하는데, 교부들은 자주 이 이름을 독자를 지칭하는 하나의 은유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앰브로지애스터는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기록된 것이다”라 고 말했다.17  )   그러나 만일 누가가 실제로 있었던 특정 독자가 아니라 은유 적인 독자들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누가가 1-3절에서 변증적인 방식으로 복음서를 시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고대 세계에서 상상 속의 독 자들에게 책을 헌정하는 것은 관례가 아니었다.18  )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저 자가 추적이나 핍박으로부터 수신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사용한 익명이었을 수는 있지만, 그는 분명히 실존 인물이었을 것이다.19  )   “각하” ( ‘크라티스테’ ) 는 높은 지위와 영예로운 위치의 사람을 가리킨다. 부유한 계층에 속한 사람이 었을 수도 있다. 고대 세계에서 후원자들에게 저술을 헌정하는 일은 관례였 다. 후원자들의 역할에는 저술의 출판과 보급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포함됐다. 각하라는 극존칭은 데오빌로가 로마의 고관이었음을 의미할 수 도 있으나 ( 예,

행 23:26; 24:3; 26:25 ),

이는 학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확실

한 주장은 아니다. 이 칭호는 정치 지도자에게만 사용된 것은 아니라 중요 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사용된 것이었다. “데오빌로”는 이방인들만 사용한 이름은 아니다. 가야바의 후임자로 30년대 후반에 대제 16  )   몇몇 라틴 필사자들은, 누가가 신적 영감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다 음과 같이 3절에 “et spiritui sancto”(그리고 성령)를 첨가한다. “나와 성령께 좋은 줄 알았노 니…….” 이와 같이 성령이 포함되는 표현은 행 15:28에 나타난다(B. Metzger, TCGNT, 108). 17  )   Exp. Luc. 1.12 (A. Just, Luke, 4에서 인용함). 18  )   L. Alexander, The Preface to Luke’s Gospel: Literary Convention and Social Context in

Luke 1.1-4 and Acts 1.1 (SNTSMS 78;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188. 19  )   헹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M. Hengel, The Four Gospels, 40). “‘데오빌로’, 곧 “하나님의 친구”는 유력한 로마인으로, 그의 실명은 비밀로 유지됐을 것이다. 이는 왜 누가가 바울이 로마 에 도착한 장면으로 속편인 사도행전을 끝맺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이제 데오빌로는 그날부 터는 로마에서 일어나는 모든 내용을 직접 파악할 수 있었다.”

71


누가복음 1 : 3-4

사장의 직위에서 산헤드린 공회를 주재했고 이후 제거당한 인물의 이름도 데오빌로였다.20  )   3-4절은 데오빌로가 회심자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관찰자 였는지 명확히 알려 주지 않는다. 신약에서 “가르쳤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인 ‘카테케인’은 정보를 주는 것 ( 행 21:21 ), 혹은 신앙의 내용을 가르치는 것 ( 갈 6:6 ) 을 의미한다. 교회 전통에서 교리 교육은 신자들에게 신앙의 본질 과 의미를 가르치는 것을 말하지만, 이런 의미는 누가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는 아직 생기지 않았다. 누가는 신앙보다는 역사적 탐구와 증거에 근거해서 프롤로그를 전개하기 때문에, 데오빌로를 복음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볼 필 요는 없으며 복음에 열린 마음을 지닌 구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21  )   누가복음의 잘 짜인 프롤로그에서 강조하는 것은 저자의 역사적 탐구다. 이 탐구는 신적 영감, 기독교적 용어, 혹은 종교적 주장을 근거로 삼기보다 는 인간의 증언에 의해 입증될 수 있다. 누가복음의 속편인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부활한 예수를 “확실한 많은 증거” ( ‘폴로이스 22  )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분으로 묘사한다.

테크메리오이스’, 행 1:3 ) 로

누가는 프롤로그에서 이 용

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복음서에 담긴 목격자들의 자료들이 이와 동등한 수 준의 진실성을 담보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기독교 선교와 선포의 본질적인 토대는 신화나 철학이 아니며 종교적 혹은 도덕적 체계도 아니다. 예수 그 20  )   데오빌로(히. ‘예디디아’)는 수리아의 로마 총독이었던 비텔리우스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 돼 37년부터 41년까지 재위했다. 이후 그는 아그립바 왕에 의해 축출됐다(Ant. 19.297). 데오빌 로 이전에는 그의 형제 요나단이 비텔리우스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돼 36년부터 37년까지 재위한 후 물러나고 말았다(Ant. 18.123).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아그립바는 요나단의 제사

장직을 회복시킬 것을 제안했으나 요나단은 이 제안을 거부한 대신 데오빌로의 아들인 마타디아 스를 추천했다. 마타디아스는 66년에 로마에 저항해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직위를 맡았다(Ant. 19.313-16). 요나단은 유대의 로마 총독이었던 쿠마누스(48-52년)에게 총독이 사마리아 지역 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이유로 격렬히 항의했고( J.W. 2.240) 이후 로마의 가이사 앞에 송환됐다 ( J.W. 2.243). 요나단은 시카리(유대의 무장 암살단)에 의해 살해당한 첫 번째 고위직이었다( J. W. 2.256). 요세푸스에 따르면(Ant. 20.162-65), 요나단이 로마 당국에 “끊임없이 항의”하자, 로 마의 유대 총독 벨릭스(52-60년)가 시카리를 자극해서 요나단을 살해하게 만들었다. 요나단의 재위를 요약한 내용으로는 E. Schürer, Jewish People in the Age of Jesus Christ, 1:459를 보라.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누가의 저술 시기와 일치하는 때에 있었던 대제사장 데오빌로가 누가 복음의 수신자일 가능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제안하는 것이다. 누가가 의존하고 있는 히브 리 복음서는 데오빌로와 같은 사람에게 특별한 증언을 전달했을 수 있다. 대제사장 데오빌로는 아그립바 왕에 의해 대제사장직에서 축출되고, 그의 형제인 대제사장 요나단은 로마에 송환되어 이후 유대 혁명주의자들의 손에 암살당했고, 아들인 대제사장 마타디아스는 유대 전쟁이라는 비 극을 겪어야 했으므로, 하나의 대안인 기독교 복음에 대해 일반 유대 지도자보다는 더욱 열린 마 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21  )   Schlatter, Lukas, 16; H. Beyer, “katēcheō,” TWNT 3:638-40. 22  )   헬라어 ‘테크메리온’은 요세푸스의 『고대사』 5.39, 17.128에 비슷하게 사용되며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72


누가복음 1 : 3-4

리스도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인간의 증언이다 ( 24:48;

행 1-8 ).

러브데

이 알렉산더는 누가가 과학 논문에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학술적 언어로 프 롤로그를 작성했다고 주장한다.23  )   누가는 복음서 저자로서의 자신의 역할 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역사에서 행하신 것을 증 언할 책임을 수행하는 것임을 프롤로그에서 증언한다.24  )

보론: 누가의 탄생 내러티브 ( 1-2장 ) 프롤로그에서 누가는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것으로 밝힌다 ( 1:3 ). 누가는 이 말에 걸맞게, 인간 역사에서 최고로 광범위한 가계도, 아담부터 예수에게 이르는 가계도를 묘사한다 ( 3:23-38 ). 가계도에 반영된 신 적 계획의 구체적 장면들은 요한과 예수의 탄생 내러티브로 절정에 이르고, 이들의 등장으로 구원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누가는 새로운 시도 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몇몇 영웅, 곧 에녹 ( 1 En . 106 ), 모세 ( 출 2:110; 요세푸스, Ant . 2.215 ),

사무엘 ( 삼상 1-3 ), 삼손 ( 삿 13; 요세푸스, Ant. 2.276-85 ) 의 탄생 내

러티브가 존재했지만, 구약 정경에서 어떤 선지자를 탄생 내러티브로 묘사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25  )   정경 복음서에서 누가복음 외에 예수의 계보와 탄생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책은 마태복음이다. 마태복음이 요셉의 관점에 서 내러티브를 시작하는 반면,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관점에서 전개한다. 마 태복음에 비해 누가복음의 탄생 내러티브는 세례 요한과 예수의 탄생 모두 를 포함하고 있으며, 누가복음의 10퍼센트 분량을 차지한다. 누가복음 1-2장은 언어와 구성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문학적 기교를 보여 준다. 만일 마리아가 1장 2절에 언급된 목격자의 자료에 포함된다면, 마리아의 증언은 누가의 손을 거치면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본문에 깊숙이 녹아들었다. 누 23  )   “누가복음의 서론에 나오는 단어를 하나씩 분석해서 단어의 특징과 과학적 전통 간의 유사점을 찾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다”(Loveday Alexander, “Luke’s Preface in the Context of Greek Preface-Writing,” in Orton, Composition of Luke’s Gospel, 102). 24  )   눅 1:1-4에 대해서는 다음 자료를 보라. Cadbury, Making of Luke-Acts , 194-204; 특히 M.

Hengel, “Der Lukasprolog und seine Augenzeugen: Die Apostel, Petrus, und die Frauen,” in Memory in the Bible and Antiquity: The Fifth Durham-Tübingen Research Symposium (Durham, September 2004) (ed. S. Barton, L. Stuckenbruck, and B. Wold; WUNT 212; Tü bingen: Mohr Siebeck, 2007), 195-242. 25  )   Grundmann, Lukas, 46; Schweizer, Lukas, 11. 예레미야의 소년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지는 않지만 부름받을 때 그는 소년(개역개정 “아이”)이었다(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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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 : 3-4

가는 요한과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평행으로 배열하며, 각각의 탄생 예고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평행적인 특징이 특히 부각된다 ( 요한,

1:5-25; 예수, 1:26-38 ).

예를 들어, 요한과 예수의 탄생은 둘 다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예고된다. 이 들의 탄생은 기적이다. 둘의 부모는 고통스러운 처지에 이르렀을 때 천사의 선언을 들었고 이 선언을 듣자 충격을 받는다. 둘의 이름과 하나님이 결정하 신 운명이 알려진다. 둘의 부모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묻는 다. 부모는 이 사건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임을 확신한다. 부모는 아이의 탄생에 따르는 표적을 본다. 천사의 예고를 믿고 자신들의 집 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부모가 탄생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없 다. 요한과 예수의 탄생 예고는 개별적으로 주어지지만, 마리아가 엘리사벳 을 방문하면서 서로 연결된다. 이때 두 모친은 자신들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 응을 보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동일한 중개자로서 그들 안에서 일하심 을 깨닫는다 ( 1:44! ). 이처럼 각 탄생 예고는 다음과 같이 도식화된다. 요한의 탄생이 스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예고된다(1:5-25)

예수의 탄생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예고된다(1:26-38)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함께 기뻐한다(1:39-56) 26)

누가복음의 탄생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두 번째 핵심 단락이면서 평행으 로 배열된 본문에서 요한과 예수의 탄생은 다음과 같이 구성될 수 있다. 요한의 탄생, 할례, 이름(1:57-66)

예수의 탄생, 할례, 이름(2:1-21)

영감 받은 사가랴가 요한을 맞이함(1:67-80)

영감 받은 시므온과 안나가 예수를 맞이함(2:22-40) 성전에 있는 소년 예수(2:41-52) 27)

26  )   Wolter, Lukasevangelium, 71은 눅 1에서 다음과 같은 교차대구의 구조를 발견한다.

A1 요한의 탄생이 사가랴에게 예고(1:8-23) B1 예수의 탄생이 마리아에게 예고(1:26-38) AB 요한과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방문에 반응(1:40-45) B2 마리아가 찬송시로 반응(1:46-55) A2 사가랴가 찬송시로 반응(1:67-79). 27  )   이 구조는 (성전에 있는 소년 예수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 디벨리우스의 견해를 따른 것이 다. M. Dibelius, “Jungfrausohn und Krippenkind: Untersuchungen zur Geburtsgeschichte Jesu im Lukas-Evangelium,” in Botschaft und Geschichte: Gesammelte Aufsä tze von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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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 : 3-4

또 다른 특징들이 요한과 예수의 탄생 이야기에 다음과 같이 공통적으로 포함된다. 두 사람의 탄생은 큰 기쁨으로 이어진다. 둘의 탄생에 대해 제삼 자가 놀라운 반응을 보인다. 둘을 위해 사람들은 복을 빈다. 둘은 하나님의 힘과 뜻 안에서 자란다. 그러나 탄생 예고에 나타난 이런 평행적인 구도는 탄생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요한의 할례와 이름에 대 한 이야기 이후 탄생 내러티브는 전적으로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고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포함한다. 예수의 초라한 탄생과 가이사의 과대망상증이 대 조된다. 목자들이 등장하고 천사들의 찬송이 울려 퍼진다. 성전에서 놀라운 예언이 선포된다. 12년 후에 예수가 성전에서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처럼 이전에 나타난 요한과 예수 간의 평행 구도 는 사라진다. 이런 비대칭은 누가의 실수 때문도 아니고 요한과 예수 간의 경쟁 관계를 제거하기 위한 의도 때문도 아니다. 신학적 목적 때문이다. 요 한은 “예비”하는 사람 ( 1:17 ), 곧 하나님의 아들과 구주의 선구자다. 요한은 예수와 등등할 수 없다. 예수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질 수 없다. 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요한은 “쇠하여야 하리라” ( 요 3:30 ).28  )   탄생 내러티브의 목적은 요한과 예수의 탄생이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의 흐름에 있다는 것과 예수의 탄생이 구원 역사의 성취임을 나타내는 데 있 다. 누가복음의 문체에는 유대적 특징이 스며 있으며, 탄생 내러티브는 구 약의 암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29  )   늙은 부부에게서 한 아이가 태어나는 이 야기는 아브라함과 사라 ( 눅 1:7; 창 18:11 ) 의 사건을 떠올린다. 엘리사벳의 불임 은 사라의 불임 ( 눅 29:31; 30:1 ),

1:36; 창 11:30; 16:1 ),

마노아 아내의 불임 ( 삿

리브가의 불임 ( 창

13:2 ),

25:21 ),

한나의 불임 ( 삼상

라헬의 불임 ( 창

1:2 ) 을

떠올린다. 엘

리사벳이 자신의 예상치 못했던 잉태에 반응한 모습은 라헬이 요셉의 탄생 에 대해 반응했던 장면과 같다 ( 눅 1:25; 창 30:23 ). 천사들이 요한과 예수의 탄생 을 예고한 것은 구약에서 주어진 예고들을 연상시킨다 ( 눅 1:8-20, 26-38; 2:8-14; 창 18:1-15; 단 9:21 ). 30  )

10 ).

마리아의 찬가는 한나의 노래를 떠올린다 ( 눅 1:46-55; 삼상 2:1-

이처럼 누가의 탄생 내러티브는 구약에 나타난 기대의 문학적이고

신학적 맥박으로 두근거린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끝내지 않은 채 Dibelius (Tübingen: Mohr, 1953), 1:1-78. 28  )   탄생 내러티브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으로는 A. Plummer, Luke, 6-7; E. Klostermann, Lukas­ evangelium, 3; J. Fitzmyer, Luke (I-IX), 313-21; F. Bovon, Gospel of Luke 1:1-9:50, 29를 보라. 29  )   누가복음에 나타난 유대적 특징에 대해서는 Edwards, Hebrew Gospel, 292-332를 보라. 30  )   Wolter, Lukasevangelium,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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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 : 5-25

두며, 커다란 문제들과 역설들의 결말을 내리지 않고 끝난다. 집행되지 않 고 실패했던 기대가 누가복음 1-2장에서 가브리엘의 탄생 예고를 통해 되 살아난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알리기 때 문에 탄생 예고는 큰 기쁨과 소망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만 개입하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경험한 역사적 성취를 통해 온 인류의 역 사에도 개입하신다. 그러나 탄생 내러티브에서 사용한 암시들은, 예를 들어 호머가 트로이의 몰락을 각색한 올림포스산의 예언처럼, 이전의 이야기들 과 결과를 단순하게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가 사용한 암시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전달한다. 탄생 내러티브는 운명주의를 벗어나 기대와 소망을 품 도록 독자들을 일깨운다. 이 암시들은 흑암과 죽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 람들이 위태로운 영토에 들어갈 때 그들의 발걸음을 비추는 밝은 불빛이 다 ( 1:79 ). 이 영토는 그리스도 주가 되시는 구주의 탄생으로 로마의 세계에 강력히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영토다 ( 2:11 ).

요한의 탄생(1:5-25) 5-7절 “유대 왕 헤롯 때에……” ( 5절 ). 에피파니우스 ( 315-403년

무렵 ) 에

르면 히브리 복음서는 이와 똑같은 표현으로 시작했다. 히브리 복음서는 예 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 첫 번째 복음서였을 것이다.31  )   누가가 히브리 복음서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는 누가복음 전체에 흐르고 있지만, 히브리 적 특징으로 가득한 1-2장보다 히브리 복음서의 영향이 선명한 본문은 없 다.32  )   헤롯은 이두메 태생이지만 종교적으로는 유대인으로서 BC 34년부터 AD 4년까지 팔레스타인을 통치했다. 로마는 통상적으로 식민지의 통치자 들이 “왕”의 칭호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헤롯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 에 그의 경우만 예외로 두었다.33  )   헤롯은 강하고 열정적이었고 명민했으 며, 위기 전술을 구사해서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는 소질을 타고 났으며, 건 31  )   Epiphanius, Pan . 30.13.6; 30.14.3. 히브리 복음서에 대한 에피파니우스의 증언에 대해서는 Edwards, Hebrew Gospel, 65-76을 보라. 32  )   그룬트만(Grundmann, Lukas, 23)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프롤로그(1:1-4)에서 5절부터 시

작되는 탄생 내러티브로 전환되는 것은 누가 자신보다 앞선 저자들의 내러티브 문체를 상당히 많이 유지하고 유대적 요소를 강하게 표현하게 될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33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헤롯에게 왕위를 부여했고, 아우구스투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 우스에게서) 승리 이후 그의 권력을 키워나갔다”(Tacitus, Hist.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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