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NT 시리즈에 대한 추천의 글
베드로전서
베이커 신약 주석은 신약 성경의 원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적 설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와 친밀한 주석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 I. 하워드 마셜, 애버딘 대학교
베드로전서
추천의 글 구약 성경 헬라어 역본의 전문가로서 철두철미한 주해를 거친 책이다. 베드로전서 주석으로 나온 책이 많지 않으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램지 마이클스, 사우스웨스트 미주리 주립대학교 좁스는 학문적 성과를 철저하게 참고한 후에, 전통적인 해석에 수사적이고 사회과학적인 본 문 탐구로 내린 결론을 결합시키려는 열정을 보여 준다. 앞으로 베드로전서 학계를 선도할 학 자로서 좁스가 출간한 베드로전서 주석은 학교와 목회 현장의 필수적인 자료가 되었다. -데이비드 드실바, 애슐랜드 신학교 좁스가 쓴 베드로전서 주석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좁스는 이 책에서 주석이라면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 외에도 고유의 통찰을 쏟아부어 학자든 목회자든 반드시 주목해야 할 내용 을 보태고 있다. 내용도 알차지만 실용성도 돋보인다. 헬라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댈 걱정은 하지 말라. 주해가 깊어 어느 학자라도 충분히 귀 기울일 내용이 많다. -피터 데이비즈,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교 지은이
캐런 좁스( Karen H. Jobes )
웨스트몬트 대학, 휘턴 대학에서 신약 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 했으나, 신학에 뜻을 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을 공부했다(M. A. R., Ph. D.). 박사 학위 논문으로 에스더를 연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NIVAC 에스더 주석을 시작으로, BECNT 베드로전 서, 교회서신, ZECNT 요한서신 등 주석을 저술했다. 모이세스 실바와 함께 쓴 『70역으로의 초대』를 비 롯하여 신약 성경 헬라어의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옮긴이
캐런 좁스 지음 권대영 옮김
권대영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B. A.), 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diplom), 일반대학원에서 구약신 학을 전공했다(Th. M.).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현재 부흥과개혁사에서 편집자로 일하 고 있다. 역서로는 『NAC 창세기 1, 2』, 『NAC 이사야 1, 2』, 『AOTC 전도서·아가』, 『NICOT 아가』(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ISBN 978 - 89 - 6092 - 649 - 3 ISBN 978 - 89 - 6092 - 258 - 7 (세트) www.rnrbook.com
값 24,000원
캐런 좁스
지음 | 권대영 옮김
목차
시리즈 서문_ 6 저자 서문_ 9 약어 소개_ 12 지도_ 16 서론_ 17
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 1:1-2 ) ·81 II. 편지 시작: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위안 ( 1:3-2:10 )
·103
A.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인 영광송 ( 1:3-12 )
107
B.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 1:13-2:3 )
139
C.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 ( 2:4-10 )
181
III. 하나님의 백성으로 경건한 삶을 살라 ( 2:11-4:11 )
·209
A. 하나님의 백성으로 칭찬할 만한 사회적 행실 ( 2:11-3:7 )
211
B. 의로운 삶의 내적 특징 ( 3:8-12 )
265
C.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불의한 고난을 당하는 것 ( 3:13-4:11 )
281
IV. 고난당하는 양 떼를 위한 위로 ( 4:12-5:11 )
·349
A.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마지막 두 가지 생각 ( 4:12-19 )
351
B. 공동체에 보내는 마지막 권면 ( 5:1-11 )
369
V. 편지 맺음말: 마지막 말과 인사 ( 5:12-14 )
보론: 베드로전서의 구문: 헬라어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_ 400 참고문헌_ 415
·393
| 저자 서문 |
주석을 집필하는 일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주석 집필에는 성 경 본문 자체의 맥락과 내용에 의한 제약이 따른다. 다시 말하면 주석 집필은 가능한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구성할 자유를 발휘하지 못하고 성경 본문의 구조를 따라야 하는데, 이는 본문의 의미가 난해한 경우도 모호한 경 우도 마찬가지다. 둘째, 신약 성경에 대한 연구가 2천 년 동안 누적된 마당에 독자적인 주석이라고 내세울 정도로 충분히 새롭고 그러면서 이단은 아닌 주 석이 나왔다고 말하기가 두렵다. 하지만 기독교 교회의 해석 전통을 제시하 면서 충실한 성경 독자에게 신선한 빛을 비춘다는 점은 주석의 크나큰 특권 일 수밖에 없다. 이 주석으로 기독교 교회 해석 전통에 분명하게 세 가지를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 첫째, 베드로전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전 통적인 해석은 이 서신이 사도 베드로가 회심한 소아시아의 토착 그리스도인 에게 예루살렘과 로마 사이를 여행하면서 쓴 것이라고 보거나 바울이 세운 교회 출신 익명의 복음 전도자가 쓴 것으로 추정했다. 본 주석서는 베드로가 이 서신을 쓴 상대인 그리스도인은 소아시아가 아닌 다른 곳, 아마 로마 같은 곳에서 회심했다가 소아시아로 이동했다는 추정을 제시한다. 베드로는 과거 에 이들과 교류한 적이 있었기에 이들 “외국인과 외지인 거주자”(개역개정, “나그 네와 거류민”)에게
서신을 쓰면서 이 모티프를 경건을 위해 적용하는 데 설득력
이 생기도록 이들이 처한 개인적인 상황을 이용했다. 둘째, 베드로전서를 해석하면서 독자가 70인역을 더 쉽게 활용할 수 있게 9
베드로전서
하려 했다. 70인역은 구약 성경의 고대 헬라어 번역본으로 베드로가 서신을 썼던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베드로가 구약 성경을 인용한 것은 이를 증거 본 문으로 활용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해당 구약 본문이 나오게 된 70인역의 맥락을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 독자가 처한 상황에 적용했다. 베드 로의 서신을 인용 본문이 처한 70인역의 맥락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서신의 역사적 기원에 더 맞는 주해 방법을 찾고자 했다. 셋째, 이 책은 2개 언어 간섭의 원리에 근거해서 베드로전서의 구문 분석을 제시함으로써 베드로전서 저자의 헬라어가 상당히 고급인 점에 대해 거듭 반 복되는 의견을 검토했다. 이 분석을 통해 내린 결론은 이 구문을 보면 헬라어 를 외국어로 셈어를 모국어로 둔 저자에 어울리는 요소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베이커 아카데믹의 짐 키니와 모이세스 실바가 이 주석 시리즈에 기고할 것을 제안한 것에 감사한다. 특히 웰스 터너와 로버트 야브루에게 감사하는 것은 내 저술을 관리하고 편집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평 때문에 이 책 이 최선의 모습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또 동료인 브루스 피스크, 밥 건드 리, 조지 거스리, 모이세스 실바, 프랭크 틸만, 다이애나 트러트웨인에게 감사 한다. 이들은 시간을 들여 이 주석 원고를 분담하여 읽고 개선할 점을 제안해 주었다. 이들이 때맞춰 원고에 대해 보인 평가는 내게 적절하고 큰 격려가 되 었다. 그럼에도 오류나 흠결이 남아 있다면 물론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NETS가 출간되기도 전에 앨 피터스마가 본문 인용을 허락해 준 것에 감사 한다. 1999-2000년 봄 학기에 피터스마와 함께 베드로전서를 번역할 때, 웨 스트몬트 대학의 헬라어 수업 학생들이 물었던 많은 질문이 내가 추가적인 고려를 위해 주해상의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02년 봄에 “일반 서신” 수업에 참여했던 웨스트몬트 대학 학생들과의 수업 토론으로 베드로전 서의 메시지에 대한 내 생각을 기탄없이 말할 기회가 있었다. 2002년 여름에 리젠트 대학에서 있었던 베드로전서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오랫동안 교 회 사역을 통해 체득한 견해를 가지고 본문을 보는 입장을 나누면서, 고대의 서신이 오늘의 교회에 대해 갖는 의의와 상관성에 대해 무척 난해한 질문을 제기했다. 이 모든 사람이 내 삶에 나타나 이 주석서를 저술하는 데 도움을 베푼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웨스트몬트 대학 종교학부 학과 비서 캐린 글럭은 도서와 잡지 논문을 찾 아내는 일에 시간을 절감하도록 큰 도움을 베풀었다. 글럭이 흔쾌히 베푼 전 문적인 지원에 감사한다. 웨스트몬트 대학 도서관 직원에게도 큰 도움을 받 았다. 이분들은 조언뿐 아니라 서지 사항이 헷갈린 데도 적시에 타 도서관 도 서 대출 절차까지 진행해 주었다. 특별히 감사하는 분은 루스 앤젤러스, 리처 드 번웨이트, 클로디아 스콧, 크리스틴 서먼과 아르바이트 학생들이다. 학과 10
저자 서문
동료 미카엘 좀머만과 앨리타 앤더슨이 독일어 문헌과 관련하여 크게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한다. 웨스트몬트 대학에 사의를 표하는 것은 안식년을 허락해 주어 이렇게 이 책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종교학부의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이 내가 1년 동안 학과 업무를 비운 자리를 채워 주었다. 그들에게 크게 빚을 졌다.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특별히 가장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남편은 내 가 하는 일을 꾸준히 지원해 주었다. 삶을 같이해 준 것으로도 진심 어린 감 사의 마음을 가지고 남편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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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
로도
아
기 브루
니케아
칼케돈
지중해
골로새
히에라볼리
(글라우디오) 라오디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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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도
에베소
사데
두아디라
버가모
아시
그레데
에게해
드로아
무시아
비잔티움
흑해
버가
아
다소
살라미
안디옥
길리기아
아르켈라이스
갑바도기아
글라우디오 볼리?
더베
구브로
바보
아미소스
비두니아와 본도
(글라우디오) 이고니온 루스드라
밤빌리
비시디아
안디옥
디아 갈라 루가오니아
비두니온 글라우디오볼리
네오글라우디오볼리
아마스트리스
시노페
글라우디오 볼리?
베드로전서
아
시리
| 서론 |
서신의 의의 사도 베드로는 서신을 마치면서 서신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진술한다. “이 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그 안에 굳게 서라”( 벧전
5:12, TNIV ).
2천 년 동안 온 세상의 신자는 베드로가 1세기에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서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읽었다. 사도는 예수가 당한 고난의 의 의를 설명하고 예수를 따르는 자가 믿음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했다. 어떤 이는 베드로전서를 정확히 “신약 성경에서 기독교 신앙과 기독 교 신앙이 격려하는 행실에 대해 가장 짧게 압축한 개요”( Clowney 1988: 15 ) 라고 서술했다. 마르틴 루터 ( Martin Luther ) 는 이를 “신약 성경에서 무척 고귀한 작품” 이며 로마서나 요한복음에 필적하는 “탁월함의 귀감”이라고 묘사했다 ( Pelikan 1967: 4, 9; Blevins 1982: 401 ).
루터는 여기에 그리스도인이라면 알아야 할 필수적인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고 믿었다 ( Achtemeier 1996: 64 ). 아마도 이 서신이 보편적 으로 타당한 것은 이것이 거대한 불신앙의 사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 음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삶을 살아 내는 근본 원리가 되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베드로의 생각에 예수의 삶과 신자의 삶은 불가분이다. 베드로전서에서 예 수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대상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운명의 모범도 된다. 예수의 부활은 신자의 새 생명의 근원이다 ( 1:3 ). 예수가 자원하여 하나님 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불의하게 고통을 겪은 것은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발 17
베드로전서
자취를 따라 믿음 안에서 삶을 살아 내면서 부르심을 받는 데 따를 모범 이다 ( 2:21 ). 베드로가 편지를 쓴 직접 상대방인 독자가 보기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신 들의 정체는 큰 기쁨의 근원일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다양한 시험으로 근심 을 겪을 이유도 되었다 ( 1:6 ). 이들이 가진 기독교 믿음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 이 속한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관계에서 소외되며, 명예와 사회경제적 지위 ( 더 심할 수 있다 ) 의
상실이라는 위협을 겪었다 ( 직접 겪지 않더라도 ). 온 세상의 많은 그
리스도인은 과거 2천 년 동안 자신들이 사는 사회에 의해 자신들이 가진 믿 음에 대해 비슷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겪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위험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사도의 말은 자신들 이 속한 상황에 대해 직접 말하며, 위로와 격려와 인도를 제시한다. 현대의 독자도 베드로전서를 읽지만, 그 처한 상황에 직접 관련성이 없다. 우리가 충분히 운이 좋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전반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사회적으로 하층 계급의 신앙도 아니고, 생계에 대한 위협도 없으며, 위태롭지도 않다. 전반적으로 신앙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와 고통이 낯선 그 리스도인에게 이 고대의 서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평생 전공 분야로 베 드로전서만 연구한 어느 루터교 성경학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베드로전서를 더 연구할수록 주류 기독교의 이익과 전망에 더 낯설어 보인다”( J. H. Elliott 1998: 179 ).
베드로전서를 다룬 수업 토론에서는 아마 베드로전서는 다른 시간과 장
소를 위한 것 같다거나 베드로전서의 고난 메시지가 반드시 오늘의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온다. 설교나 성경 공부 중에 상대적으로 베드로전서를 무시하는 경향은 원칙적인 것은 아니라도 실제로 이런 생각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북미 기독교는 기독교 세계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젠킨스 ( P. Jenkins 2002: 218 ) 는 기독교 인구가 전 세계에 거대한 규모로 출현한 것에 대해 쓴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교의 박해에 직면하여 굳건하게 버틸 것을 말하는 신약 성경 본문은 사 실상 평균적인 서구인에게 직접적인 상관성이 없다……전 세계 수백만 그 리스도인은 실제로 정부나 지역 실력자에게 지속적인 박해나 강제 개종의 위험을 겪으며 살고 있다……평범한 신자는 이런 고난을 직면하는 이유를 겨우 억지로 납득하게 되고 거듭하여 이를 성경이나 초기 기독교에서나 친숙한 언어로 겪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소수자인 곳마다 베드로전서의 메시지는 거듭 타당성을 유 18
서론
지한다. 예를 들어 사도의 서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지배 하던 동독의 할레 대학교에 다니던 그리스도인 학생에게 소망과 격려의 근원 이 되었다 ( Boring 1999: 143 ). 전 유고슬라비아와 대다수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 에서는 베드로전서가 그리스도인이 가장 즐겨 읽던 책이었다고 한다 ( McKnight 1996: 35 ).
웬들랜드 ( E. Wendland 2000: 68-78 ) 도 현대 아프리카의 반투족에게 베드
로전서가 얼마나 적절할지를 논한다. 미국에서도 엘리엇 ( J. H. Elliott ) 은 정치 난 민을 보호하는 성소 운동에 베드로가 세운 원리를 적용한다 ( 1998 ). 베드로전서의 배경인 1세기 헬라-로마의 사회 정신은 의심할 것 없이 유 대-기독교 윤리 위에 세워진 오늘날의 문화 정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럼 에도 베드로가 구체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원독자에게 베푼 위로와 격려와 인 도의 원리는 모든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 가능하다. 사도는 독자 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새로운 삶에 대한 포괄적인 식견뿐 아니라 하나님 아 버지의 긍휼로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거듭났다는 것을 아는 방법과 관련한 함의도 깨닫기 원한다 ( 1:3 ). 독자는 더 이상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이 가족과 사회에 대하여 갖는 관계를 과거의 방식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 4:3 ). 맥나이트 ( S.
Mcknight 1996: 36 ) 가
말했듯이 “베드로의 의도는 독자가
하나님 앞의 존재를 이해해서 사회 안의 존재가 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의 자기 이해는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사 회와는 관계가 없다. 현대 독자를 위한 베드로전서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정체성과 이 정체성이 역사적 순 간이나 지리적 위치를 불문하고 사회와 다른 신자와 갖는 관계에 대해 어떤 함의를 가졌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변화를 겪을 필요가 있다. 베드로 전서는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를 고난의 시기에 믿음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기독교 공동체에 적용한다. 그래서 이 서신에는 그리스도인과 문화의 접촉에 대해 말할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다. 기독교의 자기 이해와 문화적 접촉이라 는 개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기든 믿음에 장성한 자든 신자의 마음과 대 화한다. 베드로전서는 복음의 근본 원리에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그 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인지를 재정립하는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변화된 이해를 권면한다. 베드로는 이 소외를 인정하면서 자신이 서신을 쓰 는 상대를 자신들이 사는 사회 속에서 “외국인과 외지인 거주자”( 2:11; 개역개정, “나그네와 거류민” )
같다고 부른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외부인으로
이 세상에 왔으나 이 세상이 거부하고 처형한 것으로 보여 준다. 폴프 ( M. Volf 1994: 17 ) 는
베드로전서의 메시지를 숙고한 후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스도인이
스스로를 외지인과 체류자로 이해하게 된 근거를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 이 19
베드로전서
야기나 이스라엘 이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숙명, 사역, 결국 그를 십자가 로 끌고 간 거부가 차지하는 지분이 더 크다.” 베드로전서에서 그리스도가 당 한 고난 사례는 믿음을 위해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설명하는 모범 이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이해와 문화적 접촉을 형성하는 근본 원리는 그리 스도와 세상 사이의 관계로 규정된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에게 권면 하여 세상에 대하여 외국인과 외지인 거주자로 관계를 가져서, 자신들이 사 는 사회와 문화를 건전하게 존중하면서 동시에 세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 하라고 한다. 외국인과 외지인 거주자 같다는 말은 베드로의 독자라면 사회 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라 해도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삼가야 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방인 가운데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이다 ( 2:11-12 ). 그리스도인과 문화 사이의 관계가 베드로전서의 지배적인 주제며, 이는 베 드로전서를 처음 썼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적절하다. J. H. 엘리 엇 ( 1981 ) 은 사회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베드로전서 저자가 기독교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주변 문화에 순응하지 않도록 막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고 주장한다. 볼치 ( Balch 1981 ) 는 같은 해에 기독교 공동체가 속한 사회사적 배경 에서 가정규범 ( 2:18-3:7 ) 을 숙고하고 기독교 공동체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논 제에 이르렀다. 볼치가 내린 결론은 엘리엇과 정반대였다. 볼치에 따르면 베 드로전서의 저자는 사실 어느 정도 사회에 대한 순응을 권면했다는 것인데, 기독교 공동체가 사회에서 지나치게 소외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폴프 ( 1994: 22 ) 가 관찰한 대로 “주변 문화의 구체적인 측면에 대해 단편적으로 거부하거나 순응할 가능성”을 요구하는 이 논점에 대해 두 입장 모두 베드로 전서에서 복잡함을 제거해 준다. 베드로전서는 문화에 순응하고, 문화를 거부 하며, 문화를 전복하고, 문화를 변형시키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중요한 사례는 2장 18-3장 7절의 이른바 가정규범인데, 이는 1세기 가정 구성원 사 이의 관계를 논하면서도 기독교 공동체가 뿌리내린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사 도의 관심도 고려하고 있다 ( 2:18-3:7 주석을 보라 ). 베드로전서가 1세기 문화에 대 해 갖는 차별화된 수용과 거부의 원리는 아마도 현대 기독교 사상이 시대에 대해 품는 생각에 이 서신이 가장 크게 기여한 측면일 것이다. 게다가 베드로 의 원리는 오늘날, 사회의 가치와 구조가 급속하게 변하는 시대의 교회에도 중요한 원리로 남아 있다. 이 서신은 특별히 제3세계와 관련이 깊다. 제3세계 에서도 기독교는 선교 종교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있으며, 유대-기독교 전통 이 형성되지 않은 문화에서도 토착화되고 있다. 베드로가 먼저 기독교의 사 회 참여를 강조한 것으로 인해 이 서신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적절하며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 되었다. 20
서론
베드로전서는 기독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깊이 숙고한 것 외에도 두 번 째 관련 문제를 제시하는 가운데 죄를 범하기보다는 고난을 당하는 편이 더 낫다는 도전적인 원리를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죄와 관계가 끝난 사람으로 이해해야 한다 ( 4:1 주석을 보라 ). 이 말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 생긴 결과로 겪을 고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난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속 하며 ( 4:12 )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이라는 관념은 뜻밖의 생각일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은 네 삶에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다”라는 생각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대리적 속죄를 대 리적 고난과 혼동하고 예수가 고난을 당했으니 그리스도인은 고난당할 필요 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겪는 고난이라는 관념도 베드 로의 원독자를 혼동하게 했을 것이다. 사도는 이들이 겪는 경험을 예수의 모 범에 비추어 설명하고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닥쳐야 한다면 이를 담대하게 끌어안고 복음을 실천하라고 주장한다. 베드로는 사회적 기대에 순응하라는 압박에 직면하여 독자에게 선하고 경건한 삶을 살고, 그에 따른 고난을 받아 들이며, 계속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권면한다. 베드로가 서신을 쓴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겪는 중이었다. 이들이 이교도인 이웃과 다른 우선순위와 가치와 헌신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충분히 가시적이어서 불신자도 주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능욕할 정도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향한 순종으로 인 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난을 겪을 의사가 있는가? 통계가 맞다면, 오늘 날 그리스도인 대다수가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부르는 경우라도 일부 중요 한 측면에서는 불신자와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불신자와 같 은 비율로 이혼하고, 각종 중독 증세를 겪는 추세도 같으며, 원하는 오락 형태 도 비슷하고, 옷 입는 유행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불신자와 다를 게 없다. 베 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사회 규범의 수용을 재고하고 우리가 속한 사회 가 어떤 사회든 그 사회의 가치가 기독교의 가치와 충돌한다면 스스로 외국 인 방문객으로 여기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고통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 장한다. 믿음 때문에 박해를 겪지 않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자기 부정의 고난에 부 르심을 받는다. 죄의 동기를 쾌락의 유혹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 마 죄가 가진 진정한 힘은 고통과 고난의 회피에 있을 것이다. 죄를 짓는 것 보다 궁핍과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고난을 겪는 것이 더 낫다. 이것이 자기 부정이 갖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예수는 자기 부정을 자신의 발자취를 따르 는 일과 연결하면서 말한다. “내 제자가 되려는 자는 ( 개역개정, “나를 따라오려거든” )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TNIV ). 예를 21
베드로전서
들어, 거짓말하려는 유혹을 보면, 진실이 만드는 결과를 외면하고 체면을 지 키려고 애쓰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은 시험에 떨어질 경우 생기는 창피함을 비롯한 여러 결과를 겪고 싶지 않은 심리가 아닌가? 성범죄는 대부분 깊은 심리적 육체적 궁핍을 채우지 못 하는 가운데 살면서 겪는 고통을 대체하려는 행동이 아닌가? 베드로에 따르 면 자기 부정으로 생기는 고통과 고난은 경건한 고난이며, 죄에 굴복하는 것 보다 낫다 ( 벧전 4:1-2 ). 현대 사회는 그리스도인의 “이질성”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과 모순되는 가치를 수용하여 그 원리를 법제화한다. 게이드 ( S. Gaede 1993: 11 ) 는
관용을 현대에 높이 평가받는 미덕으로 보면서, “우리는 낯선 시대
에 살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사는 시대가 나 같은 사람을 낯선 사람 으로 만든 것일 텐데,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라고 적고 있다. 베드로전서는 기독교 공동체를 낯선 나라에 있는 식민지 이민자 무리로 묘사한다. 이질적 인 문화 한 가운데 있는 섬으로 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정체성과 하 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민권을 부여하는 거듭남은 우리를 어떤 문화 속에 살 게 되었든 거기서 외국인 방문객과 외지인 거주자로 만든다.
저작 시기와 저작자: 사도의 서신인가 위명 서신인가 ( 둘 다일 수도? ) 베드로전서 저작 시기 문제와 저작자 문제는 서로 꽤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서 한꺼번에 논해야 한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사도 베드로가 이 서신 을 썼는지다. 본문 스스로 반론의 여지가 없도록 베드로에게서 나온 글이라 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신은 베드로 사후 어느 시기에 위명으 로 쓰인 것일 수 있다 ( 익명의 이다 ).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동기로 베드로의 이름으로 저술했다는 말
오늘날 지배적인 견해는 AD 75-95년 무렵에 로마에 있던 베드로 추종
집단에 속한 어느 인물이 위명으로 사도 베드로의 사상을 정확하게 재현하여 베드로전서를 썼다는 것이다 ( 예, J. H. Elliott 2000: 127-30 ). 베드로 학파 가설은 베 드로의 사도적 권위가 가진 어떤 외관을 보존하려고 시도하지만, 베드로전서 의 저술 시기를 사도가 살았던 시기를 훌쩍 뛰어넘게 만든다. J. H. 엘리엇은 사회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보면 베드로 추종 집단이 실재했음을 부정할 방법이 없다고 믿는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개연성이 있다고 해서, 이런 집단 이 베드로전서에 드러나는 구체적인 형식과 용어로 저술했을 이유가 해명되 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 마가, 실루아노를 언급한 것 ( 1:1; 5:12-13 ) 도 위명으로 인한 허구의 일 환인가? J. H. 엘리엇 ( 1980: 265-66 ) 이 지적한 대로 이 서신을 쓴 사람이 베드로 22
서론
가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실루아노도 알았다고 추정할 경우, 실루아노 자신 도 실제로 서신을 전달한 사람으로서 직접 대면해야 했던 수신자에게 무슨 염치로 서신을 제시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서신 외에 베드로 추종 집단이 실재해서 사도 베드로를 대신하여 권위를 가지고 베드로의 명의를 도용했다 는 것을 보여 주는 1세기의 증거가 현존하는 경우가 없다. 마가복음을 베드로 의 증언으로 보더라도, 마가복음 저자도 베드로의 이름으로 기록하지는 않 았다. 게다가 베드로 추종 집단이 정말 실재했더라도, 이들이 가장 먼 곳인 소 아시아에 서신을 보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베드로 추종 집단의 소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이들이 기록한 보편 은혜의 범인종적이고 범지리적인 차원”을 확증하고 로마 교회의 지도권을 쟁취하려는 첫 시도를 반영한다고 말한 J. H. 엘리엇 ( 1980: 264-65 ) 의 설명도 이 집단과 소아시아 지역 사이의 구체적 연관성 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베드로가 대필자를 사용해서 이 서신을 썼다고 보는 이론은 대체로 이 서신이 베드로가 살았던 동안 베드로의 지시에 따라 기록되었다고 이해 한다. 그러나 베드로가 사망한 직후에 베드로와 아주 가까운 관계였던 사람 이 이 서신을 저술한 것이라면 더 이상 대필이 아니라 위명 저술이 되고 만다. 이 근거에서 이 서신에 대해 위명 저술이라는 주장이 많은데, 그러면서 도 베드로의 사도적 권위는 유지된다고 본다.
베드로 저작성에 대한 문제 제기 베드로전서가 위명 저술임을 보여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네 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다. (1) 지나치게 헬라어 수준이 고급이어서 갈릴리 어부 였다가 사도가 된 사람이 썼다고 보기 어렵다. (2) 서신의 내용을 보면 교회 조직 내부와 사회에서도 적대적인 태도를 겪고 있음이 암시되는데, 이는 베 드로 사후 수십 년이 흐른 시기를 반영한다. (3) 베드로전서가 이른바 제2 바 울 문헌에 대한 의존성을 보이는 것을 미루어 보면 제2 바울 문헌보다 늦은 시기인 1세기 말에 저술된 것이 분명하다. (4) 기독교는 소아시아처럼 이렇게 먼 지역에 이를 수 없었고, 기독교가 박해의 표적이 된 것도 아무리 빨라도 베드로 사후 최소 10년 이상 지나서 벌어진 일이다. 첫 번째 근거를 놓고 보면, 베드로전서의 헬라어는 분명히 베드로가 직접 썼다고 보기에 지나치게 고급의 구사력을 보인다. 그래서 베드로 저작성에 대해 대치 중인 두 견해의 학자도 모두 공통적으로 이 부분을 의심하고 있다. 베드로가 살았던 시기 중에 저술되었다는 의견을 지지하는 이도 베드로가 자 신보다 헬라어를 훨씬 고급으로 구사하는 대필자를 사용했다는 의견이다. 하 23
베드로전서
지만 헬라어 품질이라는 것은 다소 주관적인 판단이어서 몇 가지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최근 학계는 서신의 전반적인 구조가 분명히 격식을 갖춘 그 리스식 수사기법의 윤곽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 B. Campbell 1998; Thurén 1990; Thurén 1995; Tite 1997 ).
하지만 베드로전서가 이런 수사 구조로 구성된
것이 분명하다 해도, 저자가 의도적으로 격식을 갖춘 수사 원리를 따랐기 때 문은 아닌가? 아니면 저자가 구성이 잘된 논증을 제시한 것이 단순히 당대의 일반 관례에 부합한 것은 아닌가? 서신의 여러 단원에 라틴어 수사학 용어를 붙인다고 해서 저자가 정식으로 헬라 수사학을 배워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수사 구조 외에 “세련된 아테네식 문 체, 고급 어휘……수사법의 수준 같은 것 때문에 베드로전서는 신약 성경에 서 무척 품위 있는 저술이 되고 있다”( J. H. Elliott 2000: 120 ) 라는 주장이 있다. 베 드로전서에는 분명히 발음이 비슷한 단어, 다수의 동의어, 대용어, 대조 평행 법과 종합 평행법, 먼저 부정이 나오고 긍정이 나오는 대등 평행 표현, 운율 구조도 있으며, 접속 분사와 관계절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 Achtemeier 1996: 3 ). 하 지만 베드로전서는 히브리서 정도로 수준 높은 수사 장식이 있는 책은 전혀 아니다. 현대 영어에서도 정식 헬라 수사법의 일반적 윤곽을 따르면서 탁월 한 논증이 담긴 강화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베드로전서에서 드러나는 특성으로 미루어 저자가 정식으로 헬라 수사법 교 육을 받은 것이 분명한지, 다른 한편으로 사도 베드로 같은 인물이 정식 교육 을 받았는지를 불문하고 이 정도 수준의 능숙함을 얻을 수 있는지다. 구문론 차원에서 베드로전서의 헬라어는 거의 틀림없이 헬라어가 외국어 인 셈족 저자에게서 볼 수 있는 이중 언어 사용 장애를 보인다 ( 책 끝에 나오는 보 론을 보라 ).
이는 아마도 베드로전서의 헬라어가 가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
이다. 서신의 구문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저자의 언어 능력에서 비롯되기 때 문이고, 이는 의도적인 강화 구성, 내용, 장식과 다르다. 셔터 ( Schutter 83 ) 도
1989:
베드로전서의 헬라어에서 구체적인 셈어의 추세를 발견했다. 베드로전
서를 요세푸스 ( Josephus ) 나 폴리비오스 ( Polybius ) 와 비교하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베드로전서의 구문이 모범적인 저술가 폴리비오스 아니 심지어 팔레스 타인의 유대인 작가 요세푸스 정도로 능숙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는 “능숙하다”라는 말을 헬라어 문체나 구문이 모국어 수준으로 능통하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조건을 두었을 경우에 한한다. 구문 비평 ( 보론을 보라 ) 을 해 보면 베드로전서 저자가 최소한 네 가지 분야에서는 요세푸스만큼 헬라어 에 숙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a) 외국어를 익히면서 숙달하기가 어 렵기로 유명한 분야인 전치사의 사용. (b) 속격 인칭 대명사 사용. (c) 한정 형용사의 위치 선정. (d) 전치사 ‘엔’( evn ) 에 여격 명사를 사용한 경우. 그래서 24
서론
수사법을 어느 수준으로 배웠는지와 무관하게 베드로전서 저자는 헬라어가 외국어인 셈어를 쓰는 화자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셈어가 1세기 팔레스타 인과 그 인접 지역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저자는 아마도 헬라어 나 라틴어를 쓰는 로마인도 아니고 간혹 나오는 의견대로 소아시아의 장로도 아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이 서신을 직접 쓴 것인지의 문제도 몇 가지 핵심 적인 문제를 비평적으로 탐구하지도 않은 채 서신의 헬라어가 가진 품질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베드로전서가 베드로가 죽은 지 한참 지난 후의 기독교 교회 발전 시기에 가장 어울리는 ‘짓츠 임 레벤’( Sitz
im Leben, “삶의 정황” ) 을
반영한다는 주장에는
1)
대체로 세 가지 논지가 남아 있다. 이 논지는 보통 세 가지 근거를 두고 있다. (1) 베드로전서에 반영된 박해는 1세기 말과 2세기 초 수십 년간의 박 해와 부합한다. (2) 교회 구조는 1세기 말에 이르는 발전상을 반영한다. (3) 베드로전서는 바울의 저술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전서의 박해. 베드로전서의 저술 시기를 교회를 박해한 것으로 알려 진 로마 황제 셋 중 하나의 통치 시기로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네로 ( AD 68 ),
도미티아누스 ( Domitian,
81-96 ),
트라야누스 ( Trajan,
98-117 ).
54-
하지만 최근에 해
석가는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박해의 본질이 베드로전서의 저작 시기 설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세대 독일 학자는 베드로전서 4장 12절의 “불 시험”이 서신이 앞에서 언급한 잠재적인 박해보다 더 가혹한 실제 박해 시기를 알린다고 주장했다 ( 아 래, “문학적 통일성과 장르” 단원을 보라 ).
박해의 강도가 커지는 것을 이렇게 인지한 것
은 베드로전서의 앞부분 장들이 초기에 쓰였다가 결국 뒷부분의 장들과 결합 된 것으로 이해하는 자료비평 이론과 깊이 연관되어서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수정 작업 이전에 박해가 발전할 여지를 만들었다 ( Cross Preisker 1951; Windisch 1930 ).
1954; Perdelwitz 1911;
그래서 두 가지 상이한 소규모 박해를 배경으로 둔
상태에서 둘 이상의 자료가 결합하고 이후에 큰 박해가 있었다고 추정한 것 은 트라야누스 치하에 있던 비두니아의 기독교 박해를 배경으로 보고 읽은 것이다 ( Beare 1970: 32 ). 비두니아의 상황은 비두니아로 파견된 로마 관리 소플 리니우스 ( Pliny the Younger ) 가 보고한 것인데, 소플리니우스는 3년 동안 ( AD 10911 )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60통 정도의 서신을 보냈으
며, 여기에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그리스도인 문제를 처리할 방법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 Pliny, Letters
10.96–97 ).
베드로전서의 편집을 이렇게 해석하면 베
1) 사도 베드로가 60년대 중엽 네로(Nero) 황제 치하에 로마에서 죽었다는 점은 사실상 만장일치로 인 정한다. 램지(Ramsay 1893: 282-83)만 유일하게 베드로가 실제로는 1세기 말까지 넉넉하게 생존 했다고 주장하면서 베드로전서의 베드로 저작성과 후기 연대를 모두 옹호한다.
25
베드로전서
드로전서의 최종 형태가 트라야누스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최근에 베드로전서의 통일성이 충분히 입증되어 해석가 대부분 베 드로전서가 긴 시간을 두고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점 에 동의하고 있다 ( 아래, “문학적 통일성과 장르” 단원을 보라 ).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전 체적으로 나오는 박해의 성격은 이 서신이 어느 한 시기에 기록되었음을 말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베드로전서 전체적으로 나오는 구체적 박해 는 비방의 말, 욕설, 거짓 비난에 제한되는 것으로 보인다 ( 1:6; 2:12, 15; 3:9, 16; 4:12, 16 ).
순교 시대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겠지만, 베드로전서의 상황은 이런 위협
이 아직 그 정도까지 심해지지 않은 상황을 반영해서 플리니우스의 서신이 말하는 시기 이전의 소아시아를 가리키는 것 같다. 플리니우스는 심지어 회 심한 지 20년이 더 지난 그리스도인도 말하는데, 그렇다면 이 시기는 AD 90년 정도인 셈이다 ( Letters
10.96.6 ).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상황이 AD 90년 소
아시아의 상황보다 심각하지 않다면, 이 서신이 소아시아에 살던 그리스도인 에게 전해진 일이 그보다는 과거였다는 것이고, 결국 이들 그리스도인이 “여 러 가지 시험”에 빠져 고통을 겪은 것은 장차 도래할 더 가혹한 박해의 예고 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 4장 12절의 “불 시험”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어구는 보통 네로가 로마에서 그리스도인을 무시무시하게 박해한 일을 암시하는 것 으로 읽었지만 ( 예, Robinson 1976: 159 ), “불이 금을 연단하고, 고통이 강한 사람을 시험한다”(Ignis aurum probat, miseria fortes viros; Ep., On Providence
5.10 ) 라는
세네카의
2)
잠언과 아주 비슷한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시험을 금을 녹이는 것에 비유한 것은 베드로전서의 특징이다. 그래서 “불 시험”은 아마 네로가 그리스도인을 불에 태운 것 같은 육체적인 박해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지조에 대 한 시험을 가리킬 것이다 ( 동의, Best 1971: 162; Davids 1990: 164–65 ). 셀르윈 ( Selwyn 1958 ) 의 시대에 사실상 모든 주석가가 베드로전서에서 말하는 박해를 그리스도인이 다양한 강도로 겪었던 것으로 사회적인 차원에서 벌어 진 체계적이지 않고, 산발적이며, 사적인 배척이었고, 모든 계급의 로마 관리 가 점차 의혹을 키워가면서 지역적인 수준에서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이해 한다 ( Achtemeier 1996: 35–36; Best 1971: 42; J. H. Elliott 2000: 103; Kelly 1969: 10; Perkins 1995: 15–16; Richard 1986: 127; Robinson 1976: 153; Selwyn 1958: 55; Sleeper 1968: 271; van Unnik 1980: 113 ).
베드로는 고통과 고통을 유발한 박해를 전 세계적인 것으로 기술하면
2) 간혹 잠 27:21을 이 암시가 말하는 전거로 인용하지만, 성경 본문이 은이나 금을 녹이는 것을 말하 더라도 히브리어 본문이든 70인역이든 모두 사람의 성품에 대한 시험이 아니라 찬사를 말한다.
26
서론
서 ( 5:9 ),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박해의 위협이 있 을 것이지만, 어디에서든 로마의 공식 정책 차원에서 박해가 벌어지지는 않 을 것이라고 한다. 악트마이어 ( Achtemeier
1996: 35-36 ) 는
베드로전서의 박해를
이렇게 설명한다. 공식 정책보다 비공식적 폭력이 컸고, 지역적으로도 큰 지역보다는 작은 지역이 심했으며, 그리스도인을 수색하여 처벌하려는 국가 정책 차원에서 로마 관리가 주도했다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양식에 대 한 반감에서 우러나와 주도한 성격이 더 컸다. 이렇게 보면 박해가 제국 전 영역에 걸쳐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히 박해가 있었으 나, 돌발적인 것이어서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터졌고, 그 결과 로마 관 리가 국가 정책을 정식으로 이행하는 데 가담한 측면보다는 지역적인 혐 오가 표출된 측면이 컸다.
이런 박해 유형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생긴 시기부터 시작되었을 수 있다 ( 행 많다 ( Moule 4:13 ),
11:26 ) .
초대 교회에 이런 적대감을 보여 주는 비슷한 사례가
1955–56: 7–9; Robinson 1976: 151 ).
벧전
2장 14–16절, 3장 3절 ( 참고, 벧전 2:21 ), 3장 4–5절 ( 참고, 벧전 2:20 ), 사도행전
4장 21절, 5장 40–41절 ( 참고, 3:15 ),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 ( 참고,
벧전 4:13–14 ),
마태복음 10장 16–20절 ( 참고,
벧전
갈라디아서 4장 29절 ( 참고, 벧전 4:3–4 ). 박해의 범위가 분명히 광범위하고,
기간도 길었으며, 상대적으로 정도가 가벼웠다는 것을 보면, 베드로전서의 기 록이 공식적으로 국가가 후원하는 박해 시대에 있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Achtemeier 1996: 36; Best 1971: 42; Boring 1999: 33 ). 그렇다면 베드로전서는 네 로가 그리스도인을 고문하기 전 ( Bigg 30 )
1956: 33; Hillyer 1992: 5; Hort 1898: 3; Kelly 1969:
또는 플리니우스가 20년 전에 발생한 것이 어느 정도 확실해 보인다고 기
록한 박해 전에 소아시아가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되었던 시기 동안 기록 되었다 ( Pliny, Letters
10.96.6 ).
베드로전서를 위명 저술 서신으로 보는 해석가는
대부분 베드로전서가 81-96년 사이에 황제였던 도미티아누스가 시작한 박해 전 AD 70년 이후에 저술되었다고 본다 ( Achtemeier 1996: 50; Best 1971: 63–64; Boring 1999: 33; Blevins 1982: 411; Brown and Meier 1983: 130; J. H. Elliott 2000: 138; cf. also Ramsay 1893: 282 ).
하지만 고펠트 ( Goppelt ) 는 베드로전서 4장 15절을 그리스도인이 단순히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체포되었다는 증거로 여 긴다. 고펠트에 따르면 이런 일은 네로 통치 이전에는 생길 수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베드로전서의 저술 시기를 AD 65년과 90년 사이로 본다 ( Goppelt
1993:
39, 43, 45 ).
27
베드로전서
결국 서신에 나오는 상황을 공식적으로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세 박 해 중 어느 것에도 연결할 수 없고 기독교 초기 200년 동안 전반적인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이 박해는 서신의 시기를 설정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 한다. 베드로전서의 교회 구조. 베드로전서가 반영하는 교회론적 발전 시기가 언 제인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고, 서신의 시기를 설정하는 데에 도 더 이상 결정적이지 않다. 5장 2절의 ‘에피스코푼테스’( evpiskopou/ntej, “감독하면 서” ) 라는
용어의 용법은 2세기 군주 유사의 주교 직무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
되었다. 별도의 근거를 가지고 이 서신의 저작 시기를 2세기로 볼 경우, 이 단 어의 모호함은 당연히 2세기로 추정되는 용례를 통해 해결된다. 하지만 이 단 어는 주교를 가리키는 공식 용어로 수용되기 전부터 보다 일반적인 용례를 보여 주는 긴 역사가 있다 ( 5:2 주석을 보라 ). 게다가 이 분사는 당시 최고위 권위 자인 것으로 보이는 ‘프레스뷔테로이’( presbu,teroi,
“장로들” ) 의
활동을 묘사하고,
분명히 ‘프레스뷔테로이’는 2세기에 와서 주교에 종속되었다. 게다가 베드로 전서가 지역 단일체를 대상으로 쓴 것도 아니고 아마도 주교 두 명 이상의 영 역이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지역에 보낸 것이기에, ‘에피스코푼테스’라는 용 어가 주교의 의미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에피스코포스’( evpi,skopoj, “주 교” ) 라는
직무의 발전이 아마도 베드로전서 5장 2절에 나오는 분사 ‘에피스코
푼테스’가 누락된 이독의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관사가 주변 문맥에서 어느 정도 불필요한 요소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 5:2 추가 주석을 보라 ). 현재 해석가가 합의하는 것은 5장 2절이 소아시아 교회의 구조를 반영한다 면, 그 구조는 ‘프레스뷔테로이’( “장로들” ) 로만 구성된 상대적으로 미개발된 구 조라는 것인데, 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바울의 사역으로 생긴 초대 교회 구조에 어울린다. 고펠트 ( 1993: 338 ) 는 “목회서신에서 이미 추가로 성직의 발전 단계가 더 나왔다”라고 주장하고도 베드로전서의 저술 시기를 베드로 사후로 주장하면서 장로가 감독으로도 기능한 이 조직 단계는 “AD 65-80년 기간에 로마에서 소아시아까지 이르는 지역에 전형적인 형태”였다고 한다. 고펠트 ( 1993: 47 ) 는 사도행전에 기술된 교회 구조가 최초 수십 년간 교회의 실 제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후대인 사도행전이 기록될 당 시의 상태를 반영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고펠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교회론 때문에 베드로전서를 65년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보지 못할 이유 가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 시점 ( 始點 ) 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악트마이어 ( 1996: 37 ) 는 베드로전서 5장 2절의 교회 질서가 교회 직무 발전 의 후기가 아니라 초기를 반영한다는 데 동의하고, 심지어 고펠트 ( 1993: 46 ) 는 베드로전서를 유일한 바울 이후 저술로서 4장 10절처럼 아직 은사주의 직무 28
서론
형태를 인정하고 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은 이 단계가 언제 발생했는지와 무 관하게 북부 소아시아 기독교 교회의 초기 발전 단계를 가리킨다. 기독교와 무르익은 교회론이 동시에 모든 곳에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기 때 문이다. 하지만 제국의 다른 지역에 있던 모든 교회가 베드로전서가 기록될 당시 고도로 발전된 주교직을 가졌다면,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수신자에게도 이 구조를 권면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교회 증거 와 관련하여 베드로전서의 후대 저작설을 지지하는 근거로 인용된 적이 있는 증거는 실제로는 그 반대 사실을 가리켰던 셈이다. 베드로전서의 바울 의존성. 20세기 전반부에 활동했던 독일 자료비평 초기 세대는 공통적으로 베드로전서가 실제로 문학적인 의존까지는 아니라 해도 바울의 사상에 의존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로마서나 에베소서보다 일찍 쓰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의존성은 아마 도 위명 저술을 암시하고 그것도 베드로 학파가 아니라 바울 학파에서 나온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베드로전서의 내용이 실제로 바울을 그토록 많이 닮았고 실제로 바 울의 제자가 쓴 위명 서신이라면, 이 서신을 바울이 아니라 베드로의 이름에 귀속시켜야 했던 이유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충분히 심각한 것이 어서 어느 학자는 1장 1절에 나오는 사도의 이름이 원래는 헬라어 ‘파울로스’ 의 약칭 PS ( PS ) 로 기록된 것인데 후대에 필사자가 잘못 읽어 ‘페트로스’로 기 록했다는 의견을 제시할 정도였다 ( Boring
1999: 42에서 재인용 ).
지지하는 사본 증
거나 필사 동기도 전혀 없는 가운데, 당연히 이런 생각은 거부당했고, 베드로 저작성은 이 이론의 결함으로 남았다. 보링 ( Boring 1999: 43 ) 은 베드로전서가 베 드로와 바울의 전통 “융합”을 대표하고 “바울의 여러 전통이 이제 베드로의 이름 아래 드러나게 되었다”라고 본다. 베드로가 로마의 제1 사도로 드러나 게 되었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바울 모두 로마 교회의 존경을 받았으나, 베드 로가 주도권을 쥔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그러나 이 논지는 베드로전서의 저술 시기가 늦어도 현대 학계의 최종 시한인 80년이 되기 전에 있었을 경우 두 사도가 죽은 지 20년이 지나기 전에 베드로의 주도권이 발전했다고 추정 한 것이 분명하다. 모든 학자가 베드로전서의 바울 저술 의존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셀르윈 의 주석 부록 ( Selwyn 1958: 488 ) 에서 도브 ( Daube ) 는 베드로전서의 문학적인 바울 의존성을 의심하면서 질문한다. “베드로전서가 헬라어 문장도 그렇게 훌륭한 데 무슨 이유로 더 명쾌한 바울의 정식 명령법을 명령법 분사로 바꾸겠는 가?” 슐라터 ( Schlatter 1999: 64 ) 는 보다 고도로 발전된 바울의 신학적 반성에 비 해 베드로의 문장이 “구식인 것”을 발견한다. 베드로전서에서는 바울을 언급 29
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 1:1-2 )
II. 편지 시작: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위안 ( 1:3-2:10 ) III. 하나님의 백성으로 경건한 삶을 살라 ( 2:11-4:11 ) IV. 고난당하는 양 떼를 위한 위로 ( 4:12-5:11 ) V. 편지 맺음말: 마지막 말과 인사 ( 5:12-14 )
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 1:1-2 )
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1:1-2 )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은 괴로운 시기에 직면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 는 믿음 때문에 사회의 배척이라는 박해를 당했다. 비방과 욕설은 우정과 가 족 관계를 손상시키고, 공동체에서 누리는 명예를 위협하며, 아마 생계도 위 태롭게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생사가 걸린 믿음을 어떻 게 유지하느냐 그리고 이런 불의한 대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가 이들 을 압박했다. 베드로는 이들 그리스도인에게 소망과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 해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정체성과 이 정체성에는 어떻게 고난이 필 수적인지를 설명하면서 편지를 썼다. 사도는 도입부의 문안 가운데 그리스도 인이 하나님과 사회와 하나님의 역사적 민족인 고대 이스라엘과 갖는 관계를 서술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A. 저자와 수신자 ( 1:1 ) 1. 외국인 ( 1:1a ) 2. 디아스포라 외국인 ( 1:1b ) 3.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 1:1c ) B.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 ( 1:2 ) 1.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 1:2a ) 2.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 1:2b ) 3.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 1:2c ) C. 인사 ( 1:2d )
| 주해 및 설명 |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
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 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 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 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 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 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This letter is from] Peter, apostle of Jesus Christ to the chosen, foreigners of the Diaspora of Pontus, Galatia, Cappadocia, Asia, and Bithynia, 2 [chosen] according to the foreknowledge of God the Father, by the consecration of the Spirit, for [the purpose of] obedience and sprinkling of the blood of Jesus 1
81
베드로전서
Christ. Grace to you and may peace be multiplied.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A. 저자와 수신자 ( 1:1 ) 베드로는 독자를 부르면서 구약 전통에서 나온 용어를 사용하여 이들을 하 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묘사한다. 이 문안에서 베드로는 독자에게 (1) 선택과 (2) 디아스포라뿐 아니라 헬라어 구약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을 묘사하는 데 썼던 형용사 같은 언약 언어를 적용한다. 게다 가 베드로는 시내산에서 체결한 고대의 언약을 암시하는 “순종과 예수 그리 스도의 피 뿌림”( 참고, 출 24 ) 을 말한다. 그러면서도 베드로는 독자가 참여한 언 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으로 규정한다. 베드로는 헬라의 표준 편지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독자를 외국인 ( parepi,dhmoi, ‘파레피데모이’; 개역개정, “나그네” ) 으로
부른다. 베드로는 독자가 처한 상황을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비유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이해하면서 하 나님의 옛 언약 백성이 스스로 흩어진 땅에서 외국인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임을 암시한다. 디아스포라 경험은 스스로 겪는 경험에 틀을 세 우는 관점을 제시한다. 베드로는 독자의 정체성 근거를 하나님과의 관계 측 면에 두면서 성부, 성령, 예수 그리스도가 독자가 회심하여 언약 백성에 들어 서는 데 수행한 역할을 규정한다. 베드로는 편지의 맨 처음 문장에서 먼저 하 나님과의 관계에 근거를 두고 이어 세상과의 관계에 근거를 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개념을 소개한다. 헬라 시대의 사적 편지를 시작하는 형식적 요소가 여기에 모두 나온다. 발 신자 이름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 ),
편지를 받는 수신자 ( 본도,
아시아, 비두니아의 디아스포라 외국인, 곧 택하심을 받은 자들 ),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은혜와 평강을 구하는 그리
스도인의 기도로 형성된 인사. 이 문안과 베드로전서 5장 12-14절의 맺음말 은 저자가 이 작품을 사적인 연락으로 읽기를 의도한 것임이 드러난다. 편지 도입부는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가 보낸 것이니 ( 1:1 ), 그 렇게 알고 읽어야 할 것이라고 진술한다 ( 서론, “저작 시기와 저작자” 단원을 보라 ). 베드 로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 5:12 ) 를 제시하고 있고 자신 의 말이 사도의 권위를 가졌다고 적는다. 1세기 기독교 교회의 사도가 갖는 일차적인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의의에 대한 진정한 증명을 품을 수 있는 권위였다. 사도는 이그나티우스, 폴리카르포스 ( Polycarp ), 로마의 클레 멘스 ( Clement
of Rome )
같은 위대한 초대 교회 지도자들과도 구별되는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그나티우스 ( Ign. Rom . 4.3 ) 는 로마인에게 보내는 편 82
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 1:1-2 )
지에서 “저는 당신들에게 베드로나 바울처럼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사도지만,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적었다 ( Lightfoot 1893 ). 그리고 다시 이렇게 적 었다 ( Ign. Trall . 3.3 ). “그리고 제 생각에 제가 죄인이면서 마치 사도인 것처럼 당 신들에게 지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Lightfoot 1893; 비슷한 표현으 로 Ign. Eph . 3.1; Ign. Magn . 6.1 ).
게다가 사도들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와 동급의 권
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받았다. 폴리카르포스 ( Phil . 6.3 ) 는 이렇게 적었다. “두려 움으로 그분을 섬깁시다. 완전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때 그리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와 미리 주님의 오심을 선포한 예 언자가 ( 우리에게 비슷한 것을 가르쳤을 ) 때에도”( Lightfoot 1893 ). 베드로전서 저자는 이 런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설득을 구했다. 일부는 이 편지의 원수신자가 유대인 회심자였다고 주장했다. 갈라디아서 2장 8-9절이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였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 튜어트-사이크스 ( Stewart-Sykes
1997 ) 는
이 편지의 위명 저자가 사도 베드로의
명의를 도용한 것은 유대교에서 회심한 그리스도인에게 편지를 썼기 때문 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갈라디아서의 진술을 베드로와 바울 사이에 절대적 이고 침범할 수 없는 합의를 둔 것으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 바울의 사역이 주로 이방인 선교로 인식되지만,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으로 데살로니가 ( 행 17:2 ),
베뢰아 ( 17:10 ), 고린도 ( 18:4 ) 로, 3차 전도 여행으로 에베소 ( 19:8 ) 로 다니면서
계속해서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했다. 베드로도 비슷하게 이방인에게 설교하 는 경우가 많았고, 이교에서 회심하도록 사역했다 ( 10:1-11:18 ). 베드로전서의 사도는 스스로를 헬라어 별칭인 ‘페트로스’( pe,troj, 했는데, 이 이름은 베드로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 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했을 때 ( 마
16:18 )
“반석” ) 라고
1:42 ) 와
베드로가
주 예수에게 직접 받은 이름이었다.
“반석”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페트라’( pe,tra ) 가 문법적으로 여성이지만, 사람 을 가리킬 때에는 남성형 어미가 붙어 ‘페트로스’로 적을 것이다. 쿰란 문 헌 ( 4QM [ilik]130 ) 에 이것이 그리스도 이전의 유대식 이름이었고 예수가 독특하 게 자기 사도를 위해 만들어 낸 별명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있는 것으로 보 인다 ( Charlesworth 1992 ). 예수가 준 이 별명은 아마 아람어 ‘케파’( ap'yKe, “반석” ) 였을 것이다. 간혹 베드 로의 이름이 헬라어 음역으로 ‘케파스’( khfa/j ) 라고 나오기 때문이다.1) 이 아람 어 형태는 요한복음 1장 42절에 보존되었고, 바울이 베드로를 부를 때 자주 나와서 ( 고전 1:12; 3:22; 9:5; 15:5; 갈 1:18; 2:9, 11, 14 ) 초대 교회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1) 이 이름이 신약 전체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 것에 대한 논의는 J. K. Elliott 1992: 126– 38을 보라.
83
베드로전서
실증한다. 베드로가 출생 시 받은 이름은 아람어 이름 시몬이었다. 이 이름이 그의 별명과 결합하여 시몬 베드로가 된 것은 공관복음과 베드로후서 1장 1절 ( 시므온 ) 에만 나온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신약 성경 전체적으로 간단히 “베 드로”라고 불린 경우가 가장 많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새 이름을 주어 그리스 도의 사도면서 초대 교회에서 그토록 근본적이었던 역할을 맡은 베드로의 새 로운 지위를 상징했다. 교회의 초기에 “반석”으로서 이 사도가 누렸던 명성이 초기 케리그마에서 부활한 그리스도가 가장 먼저 만난 사도로 불린 것으로 증명되었다 ( 고전 15:5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택하심을 받은 자 ( evklektoi/j, ‘에클레크토이스’ ), 이 제는 현대의 터키가 된 소아시아 중부와 북부의 광대한 고원 지대를 이룬 여 러 지역의 디아스포라 ( diaspora/j, 스’ )
‘디아스포라스’ )
외국인에게 ( parepidh,moij,
‘파레피데모이
편지를 쓴다 ( 서론, “수신지” 단원을 보라 ). 베드로가 수신자를 택하심을 받은 자
면서 외국인이라고 묘사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과 가진 관계와 이들이 각자 살던 사회와의 관계에서 이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1. 외국인 ( 1:1a )
현대 해석가는 대부분 베드로의 독자를 “외국인들”( 개역개정, “나그네” ) 로 부른 것을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갖는 관계를 묘사하는 은유라고 이해한다. 그리스 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고향은 하늘이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외국인으로서 이 세상을 지나갈 뿐이다 ( 서론, “수신자” 단원을 보라 ). ‘파레피데모스’( 복수형은 ‘파레피 데모이’ ) 라는
용어가 1세기에는 거주하는 곳에서 시민권을 갖지 못해서 외국인
으로 보이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시민권이 없다는 것은 이런 사람이 시민권이 주는 권리와 혜택을 전부 누리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외국 인이면 자신들이 있는 곳의 문화 관습을 실천하거나 가치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 때문에 외국인은 자주 확립된 사회 질서에 대한 잠재적인 반역자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J. H. 엘리엇 ( 1981 ) 은 이 용어를 베드로의 편지 상대가 그리스도에게 회심하 기 전에 처했던 실제 사회 정치적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이라고 주장한다. 회심이 일어난 후에 이들은 지배 사회에서 더 멀어지게 됐 을 뿐이라는 말이다. 해석가는 대부분 엘리엇의 주장을 납득하지 못하지만, 수신자가 처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상황과 편지를 쓰게 된 동기 문제에 관 심을 일으켰다 ( Achtemeier
1984; Chin 1991; Clowney 1988: 228; Dalton 1983; Danker 1983;
Hemer 1985; Porter 1993; 홀로 엘리엇을 따르는 경우로 McKnight 1996: 48–51 ).
본 주석서는 베드로가 편지를 쓴 상대가 로마 출신 그리스도인으로서 1세 84
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 1:1-2 )
기에 있던 몇 차례의 추방으로 소아시아의 로마 식민지로 강제 이주를 당했 던 사람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 서론, “로마의 식민화와 베드로전서의 기원” 단원을 보라 ). 로 마와 관계가 있던 사도 베드로는 이들의 혼란스러운 경험을 사용하여 이들에 게 교훈과 격려로 그리스도인의 가치와 관습이 지배 사회의 가치나 관습과 충돌할 때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살든 그 거주하는 곳에서 진정으로 외국인이 된 느낌 가운데 있게 된다는 통찰을 준다. 베드로는 2장 11절에서 다시 독자를 ‘파레피데모이’라고 부른다. “사랑하 는 자들아 외지인 거주자 ( ‘파로이코이’; 개역개정, “거류민” ) 와 외국인 ( ‘파레피데모이’; 개역 개정, “나그네” )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
하라.” 이 단어는 70인역에는 두 번만 나온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23장 4절 70인역에서 헷 족속 가운데 살면서 스스로를 외지인 ( ‘파로이코스’; 네” ) 과
외국인 ( ‘파레피데모스’;
개역개정, “거류하는 자” ) 으로
개역개정, “나그
묘사한다. 시편 기자도 시
편 39편 12절 ( 70인역 38:12; 마소라 본문 39:13 ) 에서 비슷하게 스스로를 주님에 대하 여 외국인 ( ‘파레피데모스’; “나그네” ) 이라고
개역개정, “떠도나이다” ) 뿐
아니라 외지인 ( ‘파로이코스’;
개역개정,
부른다. 이렇게 ‘파레피데모스’가 구약 성경에 두 번 나온 것이
베드로가 독자에게 전하는 성경의 은유를 구성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아마 ‘파로이코스’에 대해 다른 주장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이 단어는 도입 진술에 나오지 않는다. 2:11 주석을 보라. )
1장 1절의 ‘파레피데모스’를 신자가 하늘의 본향으로 향하는 여행인 지상 의 덧없는 삶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인과 불신 사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고펠트 ( 1993: 67-68 ) 는
설명한다.
외국인이 된다는 것의 사회학적 효과를 논한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거 리를 두고 전래된 삶의 방식을 거부하는 자가 된다(1:17f.). 그래서 그리스 도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게 “거리를 느낀다”(4:3f.). 그리 스도인과 그 주변 사람들 모두 이런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영향을 느 낄 수 있고 그러게 마련이다. 편지는 가르침 가운데 이를 말한다. 그러나 외국인이 된 것은 선택에 의한 것이다.
이들 외국인은 단일의 집단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베드로는 바울과 달리 독자를 구체적인 어느 지방의 ‘엑클레시아이’( evkklhsi,ai, “회중들, 교회 들” ) 라고
뚜렷이 부르지 않는다. 고펠트 ( 1993: 64 ) 는 이를 다음과 같이 본다.
주변 세계와의 관계에 비추어 수평적인 관점에서 이들을 특징지어 보자
85
베드로전서
면, 이들은 선택에 의해 세상의 국가와 구별되었고, 그들 가운데 흩어져 살면서 외국인으로서 이곳에는 고향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바로 이 호칭이 편지의 주제를 가리킨다. 그것은 사회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특정 교회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고 이웃하는 동료 인간 에 둘러싸여 일상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을 생각한 것이다.
베드로는 “외국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독자를 사회가 그들에게 미칠 영향력에서 떨어져 거리를 두게 한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독자에게 사회에서 나오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베드로는 오히려 자기 뿌리의 정체성을 유지하 기 바라는 외국인에게 기대할 만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를 제시 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외국인은 각자 자기가 속한 나라에 머물지만 그곳 의 문화에 참여하는 것은 그 가치와 관습이 스스로 보존하기 원하는 본래 자 기 고향의 가치나 관습과 일치하는 한도 내에서만 참여할 뿐이다. 이런 식으 로 편지의 문안 인사는 사회에 대한 차별화된 참여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완 전한 동화도 철저한 이탈도 부정하는 측면에서 이 참여는 후에 확장될 것 이다. 2. 디아스포라 외국인 ( 1:1b )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는 단순히 외국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의 “디아스포라”( diaspora,j, ‘디아스포라스’ ) 외국인이 었다. 이는 아마도 부분 속격이 아니라 질적 또는 설명적 보족 속격으로 소아 시아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들 지역에서 디아스포라를 구성하는 자들로 읽 어야 할 것이다. 명사 “디아스포라”는 언어학적으로 헬라어 동사 ‘디아스페이 로’( diaspei,rw,
“흩어지다” ) 와
관련 있지만, 헬라 시대 유대 문헌에만 나오는 전문
용어로 바벨론 포로기 이후 팔레스타인 바깥에 사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2) BC 3세기 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코스 3세 시대 이후로 유대 디아스 포라 중 상당히 큰 수가 소아시아에 정착했는데, 유대인 인구가 거주한 중심 지로서 바벨론과 애굽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였다 ( Mitchell 1990: 46n3 ).
1993: 2.32; Davids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보통 모든 형태의 피추방민 집단을 가리
킬 수 있다. 하지만 5장 13절에서 “바벨론”이라고 말한 것은 1장 1절의 “디아 스포라”라는 용어와 수미상관을 이루고, 베드로가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가리 키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2) 요세푸스도 필론도 명사 ‘디아스포라’를 쓰지 않았으나, 70인역에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팔레스 타인 바깥으로 흩어 버리는 것을 가리켰다. 신 28:25; 30:4; 느 1:9; 시 147:2[146:2]; 사 49:6; 렘 15:7; 34:17[41:17]; 단 12:2; 외경 중에는 마카베오2서 1:27; 유딧서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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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 1:1-2 )
이렇게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말한 것을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그리스도인 이 유대교에서 회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이는 은유적으 로 기독교 교회를 여러 나라에 흩어진 공동체로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이 세 상을 순례하는 중이라고 묘사한 것인가? 후자, 즉 은유적 해석이 현대 주석가 가 합의하는 것이지만,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제외한 고대 해석 가 대부분 베드로전서가 소아시아에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교 인구 중에 회심 한 그리스도인에게 편지로 쓴 것이라고 이해했다 ( Kelly 230 ) 은
1969: 40 ).
칼빈 ( 1963:
이 전통을 유지하고 1장 1절의 “외국인”이 은유적 의미를 갖는다는 주
장을 논박한다. 경건한 사람은 세상에서 외지인이기에 모두 이른바 외국인이고 은유적으 로 천상의 나라를 향하여 계속 간다고 보는 자들은 크게 실수한 것이다. 이 실수는 바로 뒤에 나오는 확산이라는 말로 반박할 수 있다. 이 말은 유 대인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 (강조는 원문)
최근에 판 위닉 ( van Unnik 1980: 95-105 ) 은 “디아스포라”는 기독교 교회를 하나 의 실체로 두고 적용하는 것이 적절할 수 없는 용어여서 이 용어는 유대교에 서 회심한 자들만 적용해야 한다고 격렬하게 주장한다. 이 관점은 베드로가 수 세기 동안 소아시아에 살았던 유대인 공동체에서 회심한 자들을 “외국인” 이라고 불렀던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베드로의 의도가 이들을 유대 인 회심자로 인정하려는 것일 뿐이라면 이들을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중 에” 선택받은 자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 을 “디아스포라”와 더불어 연어로 병치한 것은 베드로의 독자가 실제로 흩어 진 것이 바벨론이나 셀레우코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계승자인 로마 때문이 었을 가능성을 높인다 ( 참고, 5:13; 서론, “로마의 식민화와 베드로전서의 기원” 단원을 보라 ). 이 편지의 틀을 1장 1절의 “디아스포라”와 5장 13절의 “바벨론”으로 구성 하는 것은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 “외국인”에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하나 님의 백성인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비슷하게 여기게 한다. 그래서 1장 1절 의 “디아스포라”는 이중 의미를 가진다. 첫째, 아마 베드로의 독자가 실제로 경험한 일을 암시할 것이다. 둘째, 독자를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으로 규정하 는 일환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이 경험을 해석 한다. 이 편지가 원독자에게서 나와 회람될 경우, 첫 번째 의미는 필연적으로 사라지고, “디아스포라의 외국인들”이라는 은유적 의미가 중심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 해도 그리스도인은 어느 정도까지 자신들의 삶 의 경험을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관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역사를 통 87
베드로전서
틀어 유대인은 다양한 이유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여러 목적지로 갔다. 그러 나 디아스포라가 발생한 원래의 동력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BC 6세기에 포로 로 끌려가면서 한 나라가 그 범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포로” 와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사실상 동의어였던 적이 있다.3) “디아스포라”는 상징으로 언약 실패를 말한다. 그래서 유대인의 디아 스포라 경험이 무슨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자기 이해로 적절한 개념이라는 것인가? 댄커 ( Danker 1967: 100 ) 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 이스라엘의 경우 고난은 자주 불순종의 결과로 이해되었고, 이스라 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진 가치는 의심받았다.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에도 같은 추론이 내려지는가? (베드로전서) 기자는 이를 힘주어 부정한다. 새로운 공동체의 고난은 불순종 때문이 아니라 순종하는 중에도 생긴다. (강조는 내가 추가한 것)
T. 마틴 ( 1992a ) 은 디아스포라가 베드로의 교훈적인 편지에서 지배적인 은 유라고 생각한다. 마틴이 그리스도인과 상관있다고 본 디아스포라의 한 가지 측면은 그리스도인을 거듭남으로 시작한 “종말론적 여정 가운데 방랑하는 하 나님의 백성”으로 해석한 것이다 ( T. Martin 1992a: 154 ). 이것이 상징에 대한 현대 의 은유적 설명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지만, 디아스포라 모티프가 필연적으로 여정의 관념을 수반한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것은 유대인이 자신들의 디아 스포라 처소에 재정착하면, 이들은 그곳에 기한 없이 거주한다는 점 때문 이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상관있는 디아스포라의 측면 또 하나는 “이교 환경 에 대한 동화의 위험”과 그로 인한 믿음에서의 이탈이다 ( T. Martin 1992a: 156 ). 이 는 편지에 드러난 베드로의 관심사에 더 근접한 것이다. 셀란 ( 2001:
256 ) 은
베드로가 독자를 ‘파레미데모이’와 ‘파로이코이’로 부른
것은 “베드로가 자신의 그리스도인 수신자가 속한 사회 세계에 대해 가졌던 생각에서 수신자의 사회적 지위가 유대인 개종자 ( 유대교로 개종한 자 ) 와 비슷하게 된 것”을 보여 준다고 주장하면서 마틴의 디아스포라 개념을 더 다듬으려고 한다. 셀란은 이 묘사를 땅 위에서 벌어진 천상의 순례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그리스도인과 디아스포라 유대교 개종자의 사회적 지위 사이에 비 유를 그려내서 이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것에 사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극화하려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셀란 ( 2001: 261 ) 은 필론의 저
3) 이런 언어학적 접촉 현상 때문에 일부(예, NRSV)는 1:1을 “디아스포라 포로민에게”로 번역하기도 했다.
88
I.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인사 ( 1:1-2 )
술에 주의하는데, 이는 “유일신론을 향해 다신론을 떠난 것이고, 나라와 가족 과 친족을 버리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가족과 벗의 대적이 되는 것이며, 허구적인 친족성과 형제애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런 강 조점 중 일부는 실제로 기독교로 회심한 자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 베드로전 서는 실제로 단 한 번도 독자를 ‘프로셀뤼토이’( prosh,lutoi,
“회심자들” ) 로
부르거
나 언급한 적이 없다. 게다가 셀란이 베드로가 사용한 용어가 ‘프로셀뤼토이’ 와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고 주장하기 위해 70인역에서 의심스러운 어휘 증거 를 사용한 점이나 필론에 의존한 점은 그의 주장에 의혹만 일으킬 뿐이다. 그 럼에도 베드로가 용어 ‘파레피데모이’와 ‘파로이코이’를 사용하여 독자가 지 상의 순례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사회적 지위를 말한다 고 주장한 것은 꽤 적절하다. “디아스포라”가 죄에 대한 언약 심판으로 적절한 상징일지라도, 베드로전 서에서 이 모티프를 사용한 용례 중에 정죄를 암시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베 드로가 1장 3-9절에서 직접 설명한 것처럼, 디아스포라와 관련한 심판의 부 정적 함의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삼켜 버린다. 예수의 부활은 이 들에게 거듭남을 주고 ( 1:3 ), 거듭남은 새로운 정체성과 새로운 “시민권”을 암 시한다 (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 나라”라는 어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
그래서 베드로전서의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디아스포라 개념은 이들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갖는 유 산을 가리키고,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이해할 수 있는 종교적 관점을 제시 한다. 고펠트 ( 1993: 65 ) 는 설명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다니엘서에 나온……전설이 보여 준 모습에 따라 그 들이 처한 환경 가운데 거래와 생활에 참여했다. 자신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회에서 사는 삶은 유대인에게 지상의 사회에 대한 “주님”의 보편 주권을 개념적으로 보여 줄 변증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베드로의 청중인 그리스도인은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에 속한 자 들로 1세기 사회에 대해서는 외국인이었다. 이것은 실제로 이주의 경험을 암 시하는지를 떠나 베드로는 이를 사용하여 이들의 정체를 하나님이 선택한 자 들로 설명하고, 이들이 결과적으로 겪게 되는 사회 정치적 소외를 개념화 한다. 3.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 1:1c )
편지를 받는 디아스포라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의” 디아스포라였는데, 소아시아에서 이 지역들이 베드로의 원수신자가 머물 89
BECNT 시리즈에 대한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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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신약 주석은 신약 성경의 원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대한 세밀한 주석적 설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독자와 친밀한 주석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 I. 하워드 마셜, 애버딘 대학교
베드로전서
추천의 글 구약 성경 헬라어 역본의 전문가로서 철두철미한 주해를 거친 책이다. 베드로전서 주석으로 나온 책이 많지 않으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램지 마이클스, 사우스웨스트 미주리 주립대학교 좁스는 학문적 성과를 철저하게 참고한 후에, 전통적인 해석에 수사적이고 사회과학적인 본 문 탐구로 내린 결론을 결합시키려는 열정을 보여 준다. 앞으로 베드로전서 학계를 선도할 학 자로서 좁스가 출간한 베드로전서 주석은 학교와 목회 현장의 필수적인 자료가 되었다. -데이비드 드실바, 애슐랜드 신학교 좁스가 쓴 베드로전서 주석은 신선하고 흥미롭다. 좁스는 이 책에서 주석이라면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 외에도 고유의 통찰을 쏟아부어 학자든 목회자든 반드시 주목해야 할 내용 을 보태고 있다. 내용도 알차지만 실용성도 돋보인다. 헬라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댈 걱정은 하지 말라. 주해가 깊어 어느 학자라도 충분히 귀 기울일 내용이 많다. -피터 데이비즈,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교 지은이
캐런 좁스( Karen H. Jobes )
웨스트몬트 대학, 휘턴 대학에서 신약 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 했으나, 신학에 뜻을 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을 공부했다(M. A. R., Ph. D.). 박사 학위 논문으로 에스더를 연구한 것이 계기가 되어 NIVAC 에스더 주석을 시작으로, BECNT 베드로전 서, 교회서신, ZECNT 요한서신 등 주석을 저술했다. 모이세스 실바와 함께 쓴 『70역으로의 초대』를 비 롯하여 신약 성경 헬라어의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옮긴이
캐런 좁스 지음 권대영 옮김
권대영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B. A.), 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diplom), 일반대학원에서 구약신 학을 전공했다(Th. M.).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현재 부흥과개혁사에서 편집자로 일하 고 있다. 역서로는 『NAC 창세기 1, 2』, 『NAC 이사야 1, 2』, 『AOTC 전도서·아가』, 『NICOT 아가』(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ISBN 978 - 89 - 6092 - 649 - 3 ISBN 978 - 89 - 6092 - 258 - 7 (세트) www.rnrbook.com
값 24,000원
캐런 좁스
지음 | 권대영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