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시편 110편 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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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언

약 | 다윗과 아브라함

5 시편 110편 주해 131

시편 110:1a | 시편 1-2편: 시편 저자의 해석 렌즈 | 시편 1-2편과 시편 110편의

유사점 | 시편 110:1b | 시편 110:2 | 시편 110:3 | 시편 110:4 | 새로운 멜기세덱

다윗 ( 사무엘하 6장 ) | 사무엘상하의 제사장-왕 | 시편 110:5 | 시편 110:6 | 시

편 110:7 | 결론

6 왕적 제사장 메시아 사상: 중간기 문헌을 통해 본 시편 110편 185

제2성전 시대의 메시아상: 제사장, 왕과 제사장, 제사장-왕? | 하스모니아 통치 | 르우벤의 유언 | 레위의 유언 | 에녹 문헌 | 11QMelch | 요약 | 결론

| 목차 | | 시리즈 서문 8 | 저자 서문 10 | 약어 15 1 서론 19 위기에 처한 제사장직 | 주장 | 문헌들에 대한 조망 | 방법론 | 개요 2 창세기의 왕적 제사장직 49 아담 | 노아 | 멜기세덱 | 결론 3 이스라엘의 왕적 제사장직과 아론 제사장직 99 공동체적 아담 | 왕적 제사장직 | ‘왕적’ 제사장 아론 | 결론 4 다윗계 제사장-왕: 구약의 맥락에서 본 시편 110편 117 시편 110편: 마소라 본문 번역 | 시편 110편의 인접 문맥 | 문학적 구조

7 예수, 시편 110편, 마가복음

마가복음 |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제사장 예수 | 성전 내러티브 | 재판받

으시는 대제사장 | 결론

8 시편 110편과 히브리서의 기독론

히브리서 1장: 하나님의 아들의 즉위 | 히브리서 2장: 새롭고 더 나은 아담이 회

복하시는 아담의 통치권 | 히브리서 3:1-6: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다윗계 제사

장-왕 | 히브리서 4:8-5:10: 여호수아, 멜기세덱 같은 정복과 우리의 위대한 대

제사장 그리스도 | 히브리서 6:13-7:28: 멜기세덱 제사장-왕에게서 성취된 아

브라함의 복 | 히브리서 8:1-10:18: 더 나은 제사장이 더 나은 제사를 통해 더 나

은 언약을 개시하신다 | 히브리서 12장: 많은 아들과 딸을 영광으로 인도하시는

선구자이자 완성자 | 결론

9 결론 285

요약 | 신학적 함의 | 마무리 언급

| 참고문헌 297

209
237

저자 서문

이 책의 출판은 “주님, 이 책이 주님의 교회에 조금이나마 도움과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는 저자의 소박한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은혜로운 응답이라고 확신한다. 이 연구를 완수할 수 있도록 힘을 주

시고 섭리 가운데 이 책을 출판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드

린다.

이 책은 2016년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신학교에서 학생

신분으로 작성한 논문의 편집본이다. 남침례신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세계적 수준의 선생님들과 함

께 성경과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의

선물이었다. 톰 슈라이너, 브라이언 비커스, 스티븐 웰럼, 피터 젠트

리, 짐 해밀턴 교수님들에게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톰

슈라이너 교수님은 학문적 탁월함과 목회적 지혜, 진정한 겸손의 모

델이시다. 슈라이너 교수님의 영향력과 지속적인 지도에 감사한다.

브라이언 비커스 박사님은 내게 해석학을 처음 가르쳐 주셨고, 우

리가 매주 소수의 사람에게 마가복음을 함께 설교할 때 설교를 통해

해석학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비커스 박사님은 설교 원고를 낱낱이

읽으신 다음 통찰력 있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해 주셨다.

10 시편 110편 성경신학

나는 신학에 대해 스티븐 웰럼 교수님처럼 생각하고 싶어, 그분이

하는 모든 강의를 들으려고 했다. 성경의 메타내러티브에 대한 웰럼

박사님의 언약적 접근 방식은 이 책의 논지를 구축하는 데 큰 틀을

제공했다. 피터 젠트리 교수님은 성경 언어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

켰다. 젠트리 박사님의 수업은 내가 스스로 정한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었고 평생 성경을 연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다. 젠트리 박사님

은 학자들 사이에서 거인이자 훌륭한 스승이시다. 이 연구에 대한 젠

트리 박사님의 피드백은 해석을 더욱 선명하게 해 주었고 새로운 논

의를 촉발했다.

짐 해밀턴 교수님은 재능 있는 학자이자 신실한 목회자이시며, 멘

토이자 친구이시다. 해밀턴 박사님의 성경에 대한 열정은 전파력이

있다. 박사님의 가르침과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성경과 성경의 하나

님을 더 깊이 알고 싶어졌다. 해밀턴 박사님은 이 연구의 모든 단계

에서 도움을 주셨다. 박사님은 인내심을 갖고 질문에 답해 주셨고, 내 작업에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주셨으며, 가장 필요할 때 격려해 주

셨다. 박사님의 지속적인 우정에 감사한다.

돈 카슨, 톰 크리디, 몰리 바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내 작업에 대

한 카슨 박사님의 친절한 비평은 내가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책과

기사를 쓰는 데 더욱 힘쓰고 싶게 만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신학 시리즈인 NSBT에 글을 실을 기회를 주신 카슨 박사님에게 감

사드린다. 톰 크리디와 함께 작업한 것은 기쁜 일이었다. 크리디의

편집 전문 지식과 통찰력 있는 제안에 감사한다. 몰리 바커는 이 원

고를 꼼꼼하게 편집하여 명확성을 높이고 수많은 실수에서 나를 구

해 주었다. 세부 사항에 대한 바커의 능숙한 관심에 감사한다.

많은 친구가 이 연구를 지원해 주었다. 브라이언 마가냐는 평생의

친구다. 마가냐는 글쓰기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초고의 모든 문장을

저자 서문 11

꼼꼼히 읽어 주었다. 마가냐는 이 책의 스타일과 구조를 날카롭게 다

듬고 명확하게 해 주었으며 개선해 주었다. 내 친구인 조쉬 필팟, 데

이브 슈록, 브락 비트너, 바비 제이미슨, 매튜 앨버니즈는 내 글과 생

각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조쉬 필팟은 신구약 중간기 문헌에 대한

장에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빌려 주었다. 데이브 슈록은 제사장직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생각했다. 슈록은 내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

를 알려 주었으며, 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방대한 연구에서 얻은 해

석적·신학적 통찰을 주었다. 브락 비트너는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자

를 음역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원고를 읽었다. 바비 제이미슨은 연

구 초기 단계에서 히브리서에 대해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제이

미슨은 또한 내가 쓴 히브리서에 대한 초고들을 주의 깊게 읽고 신

속한 피드백과 필요한 격려를 해 주었다. 내 처남인 매튜 앨버니즈는

성경신학에 대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나와 토론했다. 앨버니즈의 생

각은 내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로라 스트릭랜드에게도 감사해

야 한다. 스트릭랜드는 내가 최종 편집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남침례신학교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주는 등 맡은 임무를 뛰어

넘는 일을 해 주었다.

나는 루이빌에 있는 뉴하이츠침례교회( 현 안디옥교회 ) 의 교인이자 장

로로 섬기면서 이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나를 지원해 주시고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신학생에게 함께 봉사할 기회를 주신 코디 맥넛 목사님

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유타주 샌디에 있는 크로스로드교회 담임목

사로 부임한 첫 18개월 동안 집필 과정을 마쳤다. 크로스로드교회

성도들은 목회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 가족은 내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부모님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에 대한 부모님의 진실한 믿음과 사랑은

12 시편 110편 성경신학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게 했다. 아버지 사이드 에마디는 용기와

확신, 희생과 성실함을 지닌 분이다. 아버지는 에마디 가문의 아브라

함이자 그리스도의 교회의 종이시며 가족을 위해 맹렬하고 사랑스

럽게 헌신하는 분이다. 어머니 테레사 에마디는 지혜로우시며 경건

과 그리스도인 성숙의 모델이시다. 성경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누

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어머니에게서는 관대함과 친절함, 인내심

이 모범적으로 스며 나온다. 부모님이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진심

으로 사랑하셨으므로, 나는 어렸을 때 성경의 진리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내 삶에 대한 부모님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 책은 불가

능했을 것이다. 색인을 위한 정보 수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신

데 대해서도 부모님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내 형제인 샘과 마이클은 원고를 흔쾌히 읽어 주고 거기에 대해 오

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동생 샘과 함께 신학교에 갈 수 있었던 데 대

해 영원히 감사하고 있다. 샘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샘의 예리한 신학적 사고와 어려운 주제를 이해하는 능력은 나의 신

학교육을 풍성하게 해 주었고 내 삶에 수많은 영향을 미쳤다. 언젠가

는 나도 샘처럼 글을 쓰고 싶다. 형인 마이클 에마디는 언어와 해석

문제에 대해 내가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다. 마이클은 이 작업에 자

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여러 차례 내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나는 마이클과 샘의 굳건함에,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모범에 감사

한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장인 장모이신 드와이트 프랜즌과 셰릴 프랜

즌이 나와 내 가족에게 도움을 주셨다. 재충전을 위해 프랜즌 농장으

로 휴가를 떠나게 허락해 주신 두 분에게 감사드린다. 우리를 향한

두 분의 관대함이 큰 힘이 되었다.

멋진 아내 브리트니에게 어떤 말로 감사를 표현해야 할까? 아내는

저자 서문 13

내게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브리트니는 지칠 줄 모르고 희생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 무대 뒤에서 조용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

사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브리트니, 내가 내

린 최고의 결정은 당신과 결혼한 거예요! 정말 중요한 일에 인생을

투자해 줘서 고마워요. 이 책을 완성할 수 있게 해 준 당신의 지지와

희생, 기도에 감사해요. 자녀들은 당신에게 감사하고, 남편은 당신을

칭찬합니다. 당신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입니다.”

일라이자, 제러마이아, 알리야, 조사이아, 주다, 아이제이아, 나는

너희를 목숨보다 더 사랑한단다. 내 하루의 하이라이트는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 모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란다. 백 번의 삶

을 살더라도 너희 아빠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 하는 것처럼, 길

거리 농구와 끝없는 술래잡기 게임, 엄청난 레슬링 경기, 트램펄린

놀이, 책 읽기, 자전거 타기 등 궁극적으로 너희에 대한 내 사랑을 표

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함께 하면서 살고 싶단다. 언젠가

이 책이 너희가 예수를 더 사랑하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되길 바

란다. 하늘의 도성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

마지막으로 내가 하나님의 손에서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하나

님의 말씀을 공부할 수 있는 특권과 다른 사람들이 그 말씀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기회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나

는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왕이시며 나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이 책이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위대한 구원에 영광을 돌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매튜 에마디

14 시편 110편 성경신학

“멜기세덱에 대해 흥분하기”라는 제목의 시편 110편 설교에서 D.

A. 카슨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성경을 지배하는 주제 대부분은 서구의 지배적인 세속 문화와

잘 어울리지 않으며, 다른 많은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

약, 제사장, 희생, 피의 제물, 유월절, 메시아, 왕, 속죄일, 희년 등, 성경을 지배하는 많은 범주를 생각해 보라. 시카고 거리에서 “희

년이 언제 오나요?”라고 묻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1)

카슨이 설명하듯이, 제사장직과 왕직은 서구 문화와 “공명하지 않

는” 성경의 많은 지배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다. 제사장직은 세속적

감수성에는 낯선 개념이다. 게다가 왕직, 특히 성경의 왕직 개념은

포스트모던적이고 반제도적이며 자율성을 사랑하는 사회에서는 대

1) 이 인용문은 출간된 카슨의 설교 원고에서 발췌한 것이다(Carson 2013: 146).

19 1
서론

부분 낯선 개념이다.

그러면 제사장이자 왕이기도 한 멜기세덱은 어떻게 보아야 하

는가? 멜기세덱은 성경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에게 여전히 수수께끼

로 남아 있다. 멜기세덱의 이름이 구약 전체에서 단 두 번 등장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의 등장은 구속사에 대한

멜기세덱의 공헌을 설명하는 데 세 구절 전체를 할애할 만큼 중요

하다( 창 14:18-20 ). 멜기세덱의 이름은 구약에서 메시아 왕을 “멜기세덱

계열을 따른” 제사장으로 묘사한 시편 110편 4절을 제외하고는 다

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론 제사장직이 아닌 멜기세덱 제사

장직은 다윗의 메시아 소망의 중심이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필

수적이다.

구속 드라마의 무대에 이처럼 빈약하게 나타나는 멜기세덱이 어떻

게 다윗의 메시아 기대( 시 110:4 ) 에 두드러지게 등장할 수 있었을까?

또한 다윗은 어떤 근거에서 한 개인에게 왕직과 제사장직을 결합한

것일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 왕 가운데 누구도 제사장

직을 겸임했다는 증거는 없다. 모세 언약과 다윗 언약은 제사장직과

왕직을 분리해 왕과 제사장이 서로의 관할권을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대하 16:16-23 ). 시편 110편에 나오는 이런 직분들의 결합은 성경

기록에서 새로운 것으로 보이며, 일부 학자들은 다윗이 이 정보를 하

나님의 새로운 특별 계시로 받았다고 결론짓기도 한다.

다른 학자들은 시편 110편에 나타나는 왕의 제사장 역할을 설명하

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겔레만은 시편 110편을 마카베오 시대에

배정함으로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다.2) H. H. 로울리는 이 시편이

1-3절의 왕과 4절의 제사장이라는 두 사람을 따로 언급하고 있다고

2) Gerleman 1981.

20 시편 110편 성경신학

주장하면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3) F. L. 호튼 같은 다른 사람들

은 110편 4절의 “제사장”( 코헨 ) 이라는 용어가 행정 공무원을 가리

킨다고 주장했다.4) 아마도 이런 혼란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는 메시

아가 또한 영원히 제사장이 될 것이라는 시인의 믿음( 시 110:4 ) 이 단순

히 열광적인 실수였다는 A. H. 에델쿠르트의 제안일 것이다.5)

시편 110편에 대한 현대의 많은 설명은 제사장적 메시아에 대한

다윗의 소망이 성경 기록에서 예외적이며 성경신학적으로 설명할

근거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카슨은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멜기세덱은 우리가 성경을 종합하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유익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밝혀졌다”라고 주장한다.6) 과장

된 표현일까? 이 설교의 과장은 수사학 효과를 노린 것일까? 아니면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멜기세덱의 제사장직과 왕직 결합은 시편

110편의 기반인 더 큰 성경신학적 토대를 밝히는 단서일까?

우선은 이런 의문이 든다. 시편 110편의 왕적 제사장에 대한 메시

아적 묘사가 해석사에서 왜 그토록 문제가 되었을까? 이 질문의 답

은 현대 성경 연구에서 제사장직 개념을 둘러싼 혼란과 부분적으로

관련이 있다.

위기에 처한 제사장직

크리스핀 플레처-루이스는 “현대 성경 연구에서 제사장직은 무시 되어 왔다”라고 말한다.7) 피터 라잇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이런 무시

3) Rowley 1950.

4) Horton 1976: 47-48.

5) 에델쿠르트의 이 관찰은 Paul 1987: 200에서 발췌한 것이다. 폴은 Edelkoort 1941:330340을 인용한다.

6) Carson 2013: 147.

7) Fletcher-Louis 2006: 156.

1. 서론 21

는 20세기 철학과 사회학, 신학에서 제사장이 받은 “심한 매질”에 해

당할 수 있다.8) 칸트의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 제사장이 행

하는 의식들은 고대의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9) 전등과 라디오, 더 나

아가 휴대폰과 인터넷이 있는 세상에서 신성한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성직은 미개한 시대의 산물이거나 권력에 굶주린

개인이 종교를 이용해 사회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일 수밖에 없

었다. 플레처-루이스에 따르면 제사장직에 대한 현대의 무관심은

“예전을 중시하는 신앙에 대한 깊은 반감”을 반영한다.10)

따라서 현대 구약학이 이스라엘의 제사장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종교사적 접근 방식을 취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플레처-루이

스에 따르면 구약학계는 출애굽기-민수기, 에스겔, 요엘, 스가랴

3-6장, 말라기 등에 나타난 제사장직에 대한 묘사를 “이스라엘의 신

앙이 선지자들과 신명기 저자의 순수한 믿음에서 떠나 유배 이후의

제의와 제도적 종교성에 대한 집착으로 애석하게 쇠퇴한 것”이라고

판단해 왔다.11) 율리우스 벨하우젠의 원문비평 프로그램은 ‘제사장

본문’( ’P’로 표시 ) 을 정경의 맥락에서 떼어내 권력에 굶주린 제사장 종

파를 위해 정치 선전물을 제작하는 일을 한 유배 이후의 편집자들

손에 넘겨주었다.12) 그 결과 일관된 제사장 신학에 도달하는 작업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의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에 자리를 내

주었다. 따라서 리처드 넬슨은 이렇게 비판한다. “금세기[20세기]의

8) Leithart 1999: 3.

9) 앞의 논문, 1-7.

10) Fletcher-Louis 2006: 156.

11) 앞의 논문.

12) JEDP 이론으로 알려진 가설은 율리우스 벨하우젠과 가장 많이 연관되어 있다. JEDP 이론

은 오경이 네 가지 다른 자료의 편집물이라고 주장한다. ‘여호와’ 문서(‘여호와’의 J)는 하 나님에 대해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엘로힘’ 문서(E)는 하나님을 엘로힘으로 지칭 한다. ‘신명기 사가’(D)는 신명기(아마도 여호수아-열왕기)를 썼을 것이고, ‘제사장’ 문

서(P)는 유배 이후 이스라엘의 제사장직과 관련이 있다.

22 시편 110편 성경신학

학술 문헌은 거의 전적으로 역사적 재구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성경의 제사장 신학은 성경 역사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13)

신약학은 구약 제사장직의 본질에 대한 현대주의 가정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알렉스 청은 보수 학계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을 “현대 복음주의 학문의 아이러니”라

고 지적한다.14) 일부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에게 제사장 자의식이 있

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위르겐 베커는 복음서에 대해 이렇게 말

한다. “예수 자료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와 예루살렘 제사장직에 대한 신학적 자기 이해 사이에 조금도 연관

성이 없다는 것이다.”15) 시편 110편과 멜기세덱 제사장직이 기독론

논증의 중심인 히브리서는 어떤가? 2008년에 에릭 메이슨은 히브리

서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동안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인 대제사장 예수에 대한 글은 상대적으로 거의 쓰이지 않

았지만, 이전 수십 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16)

다행히도 성경학은 문학적·신학적·정경적 성경 해석을 통해 부

활을 경험했다.17) 앤드루 멀론의 2017년 NSBT 『하나님의 중보자들』

은 포괄적인 성경적 제사장 신학의 최근 시도로서 주목할 만한 가

치가 있다.18) 성경의 제사장 신학을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검

토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성경적 제사장 신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

13) Nelson 1993: ix.

14) Cheung 1986: 265.

15) Becker 1998: 215.

16) Mason 2008: 7.

17) 이 책의 원고를 쓴 이후 제사장직에 대한 책 몇 권이 출판되었다.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Malone 2017; Perrin 2019; Schrock 2022.

18) 『하나님의 중보자들』(God’s Mediators, 2017년 출판) 서문에서 카슨은 “내가 아는 한 이

책 이전에 제사장직에 대한 책 길이의 정경적 연구는 없다”라고 언급했다(Malone 2017, ix; 강조는 원래의 것).

1. 서론 23

편 110편에 나오는 제사장직과 왕직의 결합이 성경 정경의 맥락에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고찰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연구는 다음

과 같은 중요한 큰 그림의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

내러티브에서 제사장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멜기세덱 제사장직과

아론 제사장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론 제사장직은 어떤 의미에

서 ‘왕적 제사장직’인가? ‘왕적 제사장’( 출 19:6 ) 이라는 이스라엘의 정

체성이나 제사장-왕이라는 아담의 역할은 시편 110편의 왕적 제사

장 메시아론과 예표론적으로 연결되는가? 히브리서가 예수를 멜기

세덱 제사장직의 성취라고 말하는 동시에 아론 제사장직의 의무에

따라 예수의 속죄 사역을 묘사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까? 예수는 지상 생애 동안 제사장이셨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

은 시편 110편을 성경신학적이고 정경적인 맥락에 둠으로 다른 성경

자료와 조화시킬 때 드러날 것이다.

주장

이 책의 목표는 다윗이 어떻게 메시아가 멜기세덱 계열을 따르는

왕적 제사장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성경신학적

논거를 개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시편 110편의 멜기세덱 제사장직

이 창조 때 하나님 나라 설립에 있어 아담이 지녔던 왕적 제사장직

의 의미와 목적을 기반으로 하며 아브라함의 언약 및 구속과 관련된

제사장직 질서를 담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다시 말해 멜기세덱은

아담이 되어야 했던 섬기는 왕( servant-king ) 의 예표이며, 따라서 멜기

세덱 제사장직은 한시적인 레위 제사장직과 달리 아브라함 언약의

약속을 열방에 중재할 수 있다.19) 창세기 문맥에서 멜기세덱과 아

19) 이 주장은 제사장직을 구성하거나 정의하는 기본 요소, 즉 언약 중재(중개자 역할)와 하

24 시편 110편 성경신학

브라함 언약의 밀접한 연관성은 메시아에 대한 다윗의 확신을 뒷받

침하는 성경적 논리를 해독하는 데 필수적인 단서다( 참고. 시 110:4 ). 시

편 110편 4절은 다윗이 자신의 후계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삼하 7:816 ) 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통해 열방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

님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는 증거다( 참고. 창 12:1-3 ).

이 주장은 성경의 메타내러티브 구조에서 하나님 나라와 언약의

밀접한 관계에 크게 의존한다. 피터 젠트리와 스티븐 웰럼은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를 세우는 인류의 역할 사이의 관계가 언약이라는 개

념으로 통합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입증했다.20) 하나님 나라는 인

간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들을 통해 임한다. 이런 언약들은 하나님이

피조물( 아담 ) 과 맺으신 언약에서 시작되는데, 그때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인간에게 에덴동산에서 땅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영속시키며 예배하라고 명령하셨다( 창 1:26-28; 참고. 창

2:15 ). 이 사명의 성공 여부는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의 아들로서 순종

하며 왕적 제사장직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 달려 있었다. 결국

아담의 실패는 인류의 하나님 형상을 훼손시켰고,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되었을 때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아담의 제사장적 접근 권한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아담의 역할과 제사장적 통치자 지위는 구속사

의 다양한 언약의 인물들( 예. 노아, 아브라함, 멜기세덱, 모세, 이스라엘, 다윗 ) 을 통

해 계속 나타났으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에 이르렀다. 예수는

아담과 달리 자신이 맡은 직분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순종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하늘 장막에서 언약적 자기

희생과 중재를 통해( 제사장으로서 ) 하나님의 통치( 왕으로서 ) 를 확립함으로

나님의 임재에 대한 접근을 기반으로 한다. 참고. Gentry and Wellum 2012: 318–324.

성경에 나타나는 제사장직의 의미와 설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Wellum 2013을 보라.

20) Gentry and Wellum 2012.

1. 서론 25

순종하는 아들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눅 22:20; 히 1:5-13; 8:1-2; 9:11-17 ). 예

수는 하나님 나라를 온 세상에 확장할 권세를 가진 새로운 제사장-

왕들을 다시 세울 권리를 얻으셨다( 참고. 마 28:18-20; 벧전 2:9; 계 1:6; 5:10 ).

그러므로 개인( 또는 공동체 백성 ) 에게서 제사장직과 왕직이 결합하는

것은 성경의 언약 이야기의 기본이다.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와

나중의 “구속 프로젝트”는 왕적 제사장 직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21)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담의 제사장적 통치는 구속사에서 왕적 제사장직을 위한 궤도를

설정한다. 이 책은 시편 110편의 제사장직과 왕직의 결합이 이 큰 이

야기의 줄거리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성경신학의 실천으로서 이 연구의 목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

할 수 있다. 첫째, 해석학적 관점에서 시편 110편에 대한 정경적 해

석이 성경의 메타내러티브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즉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에 대한 이 시편의 개념이 다윗이 평생 접

근하고 인식할 수 있었을 정경 전반에 걸쳐 발전하는 통일된 이야기

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둘째, 이야기 자체의 관점에서

볼 때, 시편 110편의 멜기세덱 제사장직이 성경 이야기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둘의 차이는 각 과제의 성

격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과제가 방법론적

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설명적인 작업이다. 이 책의 논증은 설명적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시편 110편을 왜

정경적으로 읽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시편 110편을 어떻게 정경적으

로 읽어야 하는지를 논증하겠다. 본문 자체가 내 전제를 확증한다는

21) “창조 프로젝트”라는 문구는 Alexander 2009: 76-97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알렉산더의 이 문구를 빌려 사용한다.

26 시편 110편 성경신학

것을 입증하고 싶지만, 나는 설명적 결과라는 면에 주장의 범위를 한

정시켰다. 이런 접근 방식은 특정 성경 저자의 사고 구조와 성경 전

체를 관통하는 성경적 주제를 명확히 설명하려는 NSBT 시리즈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목표에 밀접하게 부합한다.

문헌들에 대한 조망

시편 110편에 대한 문헌을 조사하려면 이 주제를 한 권의 책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 시편의 해석사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들

이 있다.22) 시편 110편을 다룬 방대한 문헌이 있는 이유는 이 시편이

신약 기독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구약의 맥락에서 다

른 어떤 시편보다 더 많은 해석적 추측과 가설을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연구의 목적을 위해 방대한 문헌을 요약하는 일은 필요하지

않다. 대신 이 단락에서는 현대 문헌을 조사해, 이 시편이 왕직과 제

사장직을 한 인물에게 명시적으로 결합한 것을 학자들이 어떻게 다

루었는지 요약해 보겠다. 이 문헌 조사의 목표는 각 주장의 타당성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 조사는 연구의 성격( 역사적

이거나 정경적인 ) 이 어떻게 해석 작업을 통제하고 해석 결과를 형성했는

지 보여 주겠다.23) 이런 조사의 결과는 시편 110편을 성경신학적이

고 정경적인 맥락에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입증할 것이다.

22) 예. Hay 1973.

23) 월트키는 시편 110편에 대한 현대 학계의 해석적 접근에 대해 유용하게 요약해 준다. “현

대 학계는……이 시편의 예언에 대한 신약의 이해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

학자들은 다윗의 초자연적이지 않은 아들들이나 포로 이후 제사장을 위한 대관식에서 쓰 였다고 추론하는 역사적 사용에 우선순위를 둔다. 대부분 학자는……신약이 이 시편의 원래 의도를 재해석한다고 본다. 그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유배 이전 왕정 시대의 다윗

의 인간 아들만이 이 시편이 찬양하는 군주이자 제사장-왕이며, 이 시편은 실질적인 예

언이 아니라 궁정 풍의 과장을 사용한다. 대부분은 다윗이 저자임을 부인하고, 일부는 시

편의 통일성을 부인한다”(Waltke 2008: 63).

1. 서론 27

왕적 제사장직: 이스라엘 왕직의 역사적 재구성

버나드 둠은 자신의 저서 『시편』( 1899 ) 에서 시편 110편이 마카베오

시대 ( BC 141년 ) 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둠에 따르면 시편 110편

1-4절은 ‘시몬’이라는 이름에 대한 이합체( acrostic ) 시인데, 이 시몬은

제사장 출신의 하스모니아 통치자 시몬 마카베오를 가리킨다.24) 하

스모니아 사람들은 리더십과 전장에서의 승리로 왕과 같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둠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시편 110편은 하스모니

아 제사장-왕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는 마카베오 시대의 계획 일

부다.

H. H. 로울리는 자신의 논문 “멜기세덱과 사독 ( 창 14장과 시 110편 ) ”

( 1950 ) 에서 시편 110편이 예루살렘의 사독 제사장 직분을 정당화하려

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울리는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 이야기가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멜기세덱의 제사장직과

연결하려고 편집되었으며, 멜기세덱의 “여부스 제사장직 후계자가

사독이었다”라고 제안했다.25) 로울리는 이렇게 말한다.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의 성소가 세워질 때까지 이스라엘의 언

약궤를 사독의 성소에 가져다 두어야 했다면, 이스라엘의 첫 조

상 아브라함의 모범의 권위를 상기시키는 원인론적 이야기를 통

해 사독의 위치가 이스라엘에게 정당화되어야 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26)

24) Davidson 1900: 447–448에서 인용. 비슷한 주장은 Treves 1965를 보라. 트레브스도 시

편 110편에서 언급된 사람이 왕이 아니라고 제안한다. “우리의 전사가 왕이었다면 시인

은 그렇게 말할 기회를 찾았을 것이다”(앞의 논문, 86). 트레브스의 논문에 대한 반박은

Bowker 1967을 보라.

25) Rowley 1950: 470. 비슷한 주장은 Johnson 1955:43을 보라.

26) Rowley 1950: 468.

28 시편 110편 성경신학

로울리는 왕직과 제사장직을 엄격하게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윗을 제사장-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멜기세덱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정을 종합한 결과, 로울리는 시편 110편에 두 명의 다른 저자

를 배정했다. “처음 세 구절에서는 사독이 왕에게 말하고, 네 번째 구

절에서는 왕이 사독에게 말하면서 사독의 제사장직을 승인한다.”27)

일부 학자는 이스라엘 왕의 제사장 기능은 순전히 이스라엘이 정

치적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고대 근동 이웃 국가들에서 왕의 정체성

을 빌린 결과라고 주장한다.28) 이런 해석의 밑바탕에는 이스라엘 백

성이 왕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신념이 자리하

고 있다. 지그문트 모빙켈은 자신의 저서 『이스라엘 예배의 시

편』( 1962년에 영어로 처음 번역 ) 에서 이런 적대감이 “종교적 동기에서 비롯

되었으며, 결국 왕직이 여호와의 주권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

었다”라고 주장했다.29) 왕의 직무와 종교적 직무를 결합한 새로운

왕직의 이상만이 백성의 지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모빙켈에 따르면, 왕의 권력과 제사장의 권력의 결합은 고대 예루살렘의 “엘 엘욘”( El Elyon ) 왕들의 특징이었다( 참고. 창 14:18 ). 다윗 왕권은 예루살렘을 권력

의 기초로 삼았다. 왕의 종교 권력을 제사장들이 위협하는 것을 상쇄

하려면 “옛 권리”에 대한 여호와의 약속이 필요했다.30) 존 에머튼은

“창세기 14장의 수수께끼”( 1971 ) 라는 논문에서 왕의 특권과 제사장의

특권의 결합에 대해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18-20절의 멜기세덱 구절은 아마도 다윗 통치기에 추가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숭배와 엘 엘욘 숭배의 융합

27) 앞의 논문, 470.

28) 참고. Mowinckel 2004: 50.

29) 앞의 책, 58-59.

30) 앞의 책, 64.

1. 서론 29

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종교적·정치적 수도로서 예루살렘의

위치를 인정하며, 왕으로서의 다윗의 지위 뒤에 고대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신분이 있음을 인정하도록 장려하기 위함

이었을 것이다.31)

발터 아이히로트는 이스라엘 국가 정치의 환경을 이해하려고 고

대 근동의 관습에 의존하는 유사한 해석 틀을 사용했다. 『구약신학』

( 1961 ) 에서 아이히로트는 “시편 2편, 45편, 110편 같은 제왕시는 이

스라엘이 처한 이교적인 환경에서 이스라엘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

던 궁정 양식과 왕실의 특징을 보여 준다”라고 결론지었다.32) 시편

110편 4절에 나오는 왕의 제사장적 특성은 “대중의 비판을 무장 해

제하고 왕의 권력과 권위를 확대하기 위해 제의적 신격화를 사용하

려는 유혹”의 결과였다.33)

마찬가지로 존 데이는 “이스라엘 왕정의 가나안 유산”( 1998 ) 이라는

논문에서 가나안 문화를 통해 다윗 왕조를 이해했다. 데이는 시편

110편이 “가나안 문화가 이스라엘 왕정에 미친 영향을 보여 주는 가

장 분명한 증거”라고 주장한다.34) 데이에 따르면 시편 110편 4절은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이 여부스족의 엘욘 숭배와의 혼합주의로 이

어졌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시편 110편에 나오는 다윗의 왕적 제사

장직은 여부스족의 엘 엘욘 숭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여부스

의 제사장-왕인 멜기세덱이 이스라엘 이전의 원형이었다.

형식비평의 가정에 크게 의존한 H.-J. 크라우스는 『시편 신

학』( 1979년에 독일어로 처음 출간 ) 에서 시편 110편이 이스라엘의 전통과 여

31) Emerton 1971: 437. 비슷한 해석은 Day 1985: 130–131을 보라.

32) Eichrodt 1961: 125.

33) 앞의 책.

34) Day 1998: 73.

30 시편 110편 성경신학

부스 왕의 도시 국가인 예루살렘의 전통을 결합한 즉위식 축제 의식

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35) 크라우스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즉위

한 통치자는 여러 직책을 자신에게 하나로 통합했다. 따라서……즉

위 행위에서 그의 직책에 대한 몇 가지 가정과 전통을 고려해 통치

자에게 그 권위를 부여해야 했다.”36) 이런 직분은 다윗의 왕권 전

통( 삼하 7장; 시 132편 ) 과 멜기세덱( 창 14:18; 시 110:4 ) 에게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예루살렘의 왕-제사장 전통의 혼합을 포함했다. 크라우스는 멜

기세덱 계열을 따라 통치자가 제사장으로 취임하는 것은 “이스라엘

본래의 진정한 전통이 아니었다”라고 분명히 말한다.37) 그렇다기

보다 이는 예루살렘의 문화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레스터 그래비도 마찬가지로 시편 110편의 의미와 제사장적 왕에

대한 묘사에 정치적 의제를 부여했다. 『제사장, 선지자, 점술가, 현

자: 고대 이스라엘의 직업 종교인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 1995 ) 에서

그래비는 구약에서 제의적 왕직이 발달한 것은 “미래의 군주가 제의

문제에서 자신들에게 종속되기를 원했던” 제사장적 편집자 때문

이라고 제안한다.38) 그래비는 이스라엘 왕들의 제의적 기능을 재구

성하려고 시도한다. 그래비는 왕이 궁극적으로 제의를 책임졌다고

결론짓는다.39)

마이클 굴더는 『귀환의 시편: 5권, 시편 107-150편』( 1998 ) 에서 시

편 110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한다. 굴더

는 시편 110편이 유배 이후의 시이며, 유배에서 귀환할 당시 유일한

찬양대인 아삽 자손( 스 2:41 ) 공동체에 속한 시인의 작품일 가능성이

35) Kraus 1986: 111–116.

36) 앞의 책, 112.

37) 앞의 책, 115.

38) Grabbe 1995: 39.

39) 앞의 책, 35-40.

1. 서론 31

크다고 주장한다.40) 이런 맥락에서 스가랴 6장 9-14절은 이 시편의

제사장적 메시아론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굴더에 따르

면 다윗의 주는 제사장 여호수아다( 슥 6:9-14 ). 시편 110편이 유배 귀

환 시기에 기록되었다면, 굴더의 주장대로 다윗의 주는 근본적으로

왕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제사장으로 생각해야 한다. 굴더는 “‘주’는

사실 국가의 세속 지도자로서 특별한 소명을 받은 제사장”이라고 말

한다.41) 그러므로 시편 110편 1절은 “다윗 왕직의 모든 조건을 갖추

고 있지만 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 될 직

책에 임명된” 여호수아를 가리킨다( 참고. 느 6:6 ). 42)

또 다른 관점에서 데보라 루크는 “제사장직으로서의 왕직: 대제사

장직과 왕정의 관계”( 1998 ) 라는 논문에서 왕적 제사장직과 ‘일반’ 제

사장직의 차이점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43) 루크는 이스라엘 역사의

여러 지점에서 제사장직과 왕정의 본질을 정의하려고 하면서 제사

장 편집자( P ) 를 전제한다. 루크의 연구는 “왕은 왕직의 본질 때문에

제사장 의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대제사장은 제사장직

의 본질 때문에 왕이 될 수 없으며 메시아적 인물과 혼동되어서도

안 된다”라는 결론에 이른다.44)

나중에 쓴 논문인 “왕적 제사장 예수: 히브리서 7장의 멜기세덱 전

통 해석에 대한 고찰”( 2000 ) 에서 루크는 왕적 제사장직과 일반 제사

장직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요약한다. 루크는 왕의 제사

장직을 “존재론적”이라고 설명한다. 즉 왕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아들인 왕의 정체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루크는 이렇게 말

40) Goulder 1998: 146.

41) 앞의 책, 145.

42) 앞의 책, 148.

43) Rooke 1998: 187.

44) 앞의 논문, 208.

32 시편 110편 성경신학

한다.

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사장적인 중재 책임의 수행 여부를 선

택할 여지가 없었다. 왕은 신이 부여한 아들 신분으로 말미암

아……영원히 제사장이었다……왕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그의 정체성 일부였으며, 그의 존재 자체의 일부로서 ‘존

재론적’이었다.45)

루크의 분석은 왕이 레위인이 맡았던 직분을 실제로 맡지 않고도

제사장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는 견해에 역사적 신빙성을 부여

한다.

이즈리얼 크놀은 “멜기세덱: 히브리 성경과 11QMelch, 히브리서

에 나타나는 왕직과 제사장직 결합의 모델”( 2009 ) 이라는 논문에서

토라는 제사장직과 왕직의 “완전한 분리”를 묘사하는 반면, 나머지

성경 전통에서는 왕이 왕과 제사장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한다.46) 크놀에 따르면 비이스라엘 왕인 멜기세덱은 “토라가 이스라

엘 왕에게 둔 제한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왕직과 제사장직 결합의

모델이 될 수 있다.47)

호스펠트와 쳉어는 2011년에 출판된 시편 주석에서 왕의 제사장

역할( 시 110:4 ) 이 편집자를 위한 홍보 활동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호

스펠트와 쳉어는 “왕직의 제사장 차원은 시편 나머지 부분에서 지배

적인 군사적 차원을 상대화하거나 수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

45) Rooke 2000: 82. 루크 주장의 이 측면은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논하겠지만

성경 내러티브에서 아들 됨과 왕직, 제사장직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46) Knohl 2009: 258.

47) 앞의 책, 259.

1. 서론 33

한다.48) 시편 110편 4절은 “새로운” 왕직에 일종의 존엄성을 부여하

는 편집 주석이다.

학자들은 고등비평의 가정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시편 110편의 왕

직과 제사장직 결합에 대한 연구를 주로 역사적 재구성 렌즈를 통해

진술하는 경향이 있다. M. J. 폴은 “멜기세덱 계열 ( 시 110:4와 히

7:3 ) ” ( 1987 ) 이라는 논문에서 시편 110편에 나오는 제사장직과 왕직의

결합을 연구했다. 폴은 역사적 탐구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직과 제사

장직 분리가 이스라엘을 주변 국가와 근본적으로 구별한다는 결론

에 도달했다. 이스라엘은 먼 과거에 왕이자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

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시편 110편은 이스라엘 왕 가운데

한 사람을 언급하는 것일 수 없다. 이 시편은 미래의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했다.49)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사장-왕에 대한

역사적 전례를 찾을 수 없었던 폴은 메시아의 제사장직에 대한 다윗

의 통찰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였다고 결론지었다. 폴은 “어느 때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여호와가 다윗에게 다윗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계시하셨다”라고 말한다.50)

이런 진술이 함축하는 의미는 시편 110편 4절에는 창세기 14장의 멜

기세덱 내러티브 외의 성경적 자료나 예표적 구조가 없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앤더슨의 저서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시편 110편의 왕제사장』( 2001 ) 은 그리스도의 현재 사역의 본질에 대한 세대주의 신학

자와 언약 신학자 사이의 신학 논쟁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51) 앤더

슨은 시편 110편에서 왕의 제사장 역할을 분석한다. 왕의 제사장 기

능에 대한 앤더슨의 연구의 초점은 역사적인 것이다. 앤더슨은 이렇

48) Hossfeld and Zenger 2011: 150.

49) Paul 1987: 200.

50) 앞의 책, 209.

51) Anderson 2001: 3.

34 시편 110편 성경신학

게 결론 내린다.

이스라엘 왕정에서 초기의 왕-제사장 직분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므로, 전적으로 아론 계열에 국한된 제사장직에 대

한 전통적 이해가 선호된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와 숭배의 수장

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사장 직분을 가졌다는 의미

는 아니다.52)

대니얼 블록은 『성경과 사해 두루마리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메

시아』에 실린 “나의 종 다윗: 메시아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의 시

각”( 2003 ) 이라는 논문에서 비슷한 주장을 편다. 블록은 이스라엘 역

사에서 왕직과 제사장직을 엄격하게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

록은 “신명기 역사와 역대기 저자가 다윗계 왕들이 행한 제의 행위

를 말하고 있지만, 이 내러티브들은 제사장직과 왕직을 혼동하거나

융합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53) 블록이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구

약이 제사장직과 메시아를 구별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시편 110편도 예외가 아니다. 블록에 따르면, “시편 110편은

제사장 특권을 왕정에 부여하지만……아론 계열과 다윗 계열의 구

분을 훼손하지 않는다.”54) 시편 110편은 아브라함 시대에 존재했던

유형의 왕직에 호소하고 있으며, 따라서 아론-사독 제사장직과 다윗

계 메시아를 구별하는 구약의 일관된 구분을 유지한다.55) 그렇다면

52) 앞의 책, 57-58. 나는 이 책에서 앤더슨의 역사적 분석에 동의하지 않으며, 단지 시편

110편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 현대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53) Block 2003: 34.

54) 앞의 책, 43.

55) 앞의 책, 42. 같은 책에서 J. 대니얼 헤이즈는 블록에게 응답하는 장을 기고한다. 헤이즈는 블록이 성경 내러티브가 왕직과 제사장직을 혼동하거나 융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 자

신의 주장을 과장했다고 주장한다. 헤이즈는 다윗의 제사장 활동이 아론 제사장직의 활

동과 완전히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족장 시대 이스라엘의 오래된 제사장-왕 패턴을 반

1. 서론 35

시편 110편 4절에서 왕의 제사장적 역할은 무엇일까? 블록에 따르

면 왕의 제사장적 특권은 중재자 역할이다. 왕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

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통치와 복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56)

성경신학 문헌

이 연구와 관련된 문헌에는 성경의 메타내러티브나 성경의 메타내

러티브 안의 지배적인 주제를 설명하려는 성경신학 저서들이 포함

된다. 내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주목할 만한 성경신학적 연구

로는 뎀프스터,57) 빌,58) 알렉산더,59) 해밀턴,60) 슈라이너의 저서가

있다.61) 이 책들은 왕국, 언약, 성전, 왕권, 제사장직 같은 성경 이야

기의 주요 주제들을 강조함으로 성경의 메타내러티브를 설명한다.

이 책들은 모두 창조 당시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 명령이 성경 이야

기에서 구속의 패턴으로 작용한다는 데 동의한다. 아담은 성경의 전

형적인 제사장-왕이며, 아담의 임무는 하늘의 통치를 이 땅에서 중

재하는 것이었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이 지녔던 하나님의 지상 통치

확립의 책임은 인류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으로

서 통치하는 인류의 최종 회복에서 절정에 이르는 구속의 목표를 위

한 무대를 마련한다( 계 5:10; 참고. 계 1:6 ). 흥미롭게도 뎀프스터만이 시편

110편의 메시아적 제사장-왕과 창세기 1-2장의 아담의 임무 사이의

영한다”라고 제안한다(Hays 2003: 66-69).

56) 블록은 이 점에 대해 루크의 논문 “제사장직으로서의 왕직”에 호소한다(Block 2003: 43 n. 94).

57) Dempster 2003.

58) Beale 2004.

59) Alexander 2009.

60) Hamilton 2010.

61) Schreiner 2013. 나는 이 원고를 데이브 슈록의 저서 『왕적 제사장직과 하나님의 영광』 (2022)이 출판되기 전에 넘겼다.

36 시편 110편 성경신학

연관성을 언급한다.62)

피터 젠트리와 스티븐 웰럼의 구약 성경신학, 『언약과 하나님

나라: 언약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 2012 ) 는 구약 메타내러티브의

왕적 제사장직에 대해 가장 철저하게 다룬 책 가운데 하나다. 젠트리

와 웰럼은 왕적 제사장직 개념이 주요 언약 인물인 아담과 노아, 아

브라함, 이스라엘, 다윗, 예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 준다. 젠트

리와 웰럼은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피조물을 섬기는 왕과 성전

제사장으로서 수행해야 할 책임을 규정하는 창조 언약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담의 언약적 임무는 노아와 아브라함, 이스라엘, 예수에

게 주어진 언약적 책임의 패턴이 된다. 시편 110편이 그들의 연구 범

위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젠트리와 웰럼은 제사장직과 왕직을 결합

한 메시아 본문들은 “도래할 인물이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

담의 역할, 즉 피조물을 다스리는 인간의 역할을 성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제안한다.63) 또한 왕의 제사장 역할을 이스라엘의 정체

성과 연결하여 “이 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려는 목적을 자신을 통해 성취할 것”이라고 제안

한다.64)

유진 메릴의 “왕의 제사장직: 구약의 메시아 모티브”( 1993 ) 라는 논

문은 시편 110편에 대한 고전적인 예표론적 접근을 대표한다. 메릴

은 사무엘하 6장과 시편 110편, 히브리서에 근거해 다윗이 원형적인

왕적 제사장이었으며, 따라서 예수의 우월한 왕적 제사장직에 대한

예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65) 시편 110편 4절에서 다윗의 주를

62) Dempster 2003: 200.

63) Gentry and Wellum 2012: 515.

64) 앞의 책, 422.

65) 메릴은 시 110:1의 “내 주”는 다윗을 지칭하는 경칭이라고 주장한다(Merrill 1993: 55–57).

1. 서론 37

멜기세덱 계열을 따르는 제사장으로 명시한 이유는 다윗 언약과 아

브라함 언약의 연결 고리를 확립하기 위해서다. 멜기세덱과 모세 이

전의 족장인 아브라함과의 연관성( 창 14장 ) 은 아론 제사장직보다 멜기

세덱 제사장직이 우월함을 입증한다. “멜기세덱-다윗-예수 제사장

직은 아론과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며 그것을 벗어

나 작동하는 일직선으로 연결된 제사장직이다.”66) 그렇다면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의 관계는 무엇일까? 메릴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세상에 중재하도록 부름 받은 제사장 나라였으며, 다

윗의 임무는 제사장-왕으로서 이스라엘이 그들의 고귀하고 거룩한

소명을 온전히 성취하게 이끄는 것이었다”라고 말한다.67)

메릴과 마찬가지로 로빈 라우틀리지도 “시편 110편, 멜기세덱과

다윗: 아브라함( 의 자손들 ) 에 대한 축복”( 2009 ) 이라는 논문에서 창세기

14장 내러티브를 배경으로 시편 110편 및 제사장직과 왕직의 결합

을 해석했다. 라우틀리지는 창세기 14장 18-20절에 ‘축복’ 개념이

널리 퍼져 있다는 점에 비추어 시편 110편 4절(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히 제사장이라” ) 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 라우틀리지는 “다윗

계 왕은 창세기 14장 18-20절에서 멜기세덱이 제사장으로서 기능하

는 방식으로, 즉 아브라함( 의 자손들 ) 을 축복하는 수단으로 제사장 기

능을 한다”라고 결론 내린다.68)

브루스 월트키는 “시편 110편: 해석적이고 정경적인 접근”( 2008 )

이라는 논문에서 시편 110편에 대한 정경적 해석을 제시했다. 월트

키는 시편 110편의 왕적 제사장직에 대해 멜기세덱에서 다윗의 주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예표론적 접근 방식을 취한다.

66) 앞의 논문, 59.

67) 앞의 논문, 61.

68) Routledge 2009: 14.

38 시편 110편 성경신학

따라서 시편 110편에 대한 월트키의 해석은 정경을 가로지르지만, 월트키의 분석은 주로 멜기세덱-예수 예표론에 제한된다.

시편 110편에 대한 가장 발전된 정경적 해석 가운데 하나는 스코

트 한의 『언약에 따른 친족 관계: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성취에 대한

정경적 접근』( 2009 ) 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한의 주요 목표는

“친족 용어와 언약 용어를 연관시키는 신약의 세 본문인 누가복음

22장, 갈라디아서 3-4장, 히브리서 1-9장에 나타난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언약적 해석을 구축하는 것”이다.69) 한의 연구는 언약의 아들

문제와 관련해 왕적 제사장 개념을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목적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편 110편과 관련하여 한의 해석은

시편 110편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맹세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은 창세기 14장, 사무엘하 6-7장, 시편 89편, 시편 132편에

비추어 이 맹세를 평가한다. 한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 맹세의 내

용은 하나님이 입양하신 아들을 통해 다윗 왕조를 세우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아들은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왕으로 통치할 권한을 갖는다.”70) 메릴 그리고 젠트리와 웰럼과 마

찬가지로, 한은 다윗의 더 위대한 아들이 “상속받은 왕적 제사장 신

분”이 이스라엘의 제사장 나라 소명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71) 한은

히브리서에 대한 논증에서 시편 110편의 논리를 발전시켜 왕적 제사

장 신분이 히브리서 저자의 기독론의 근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72)

예수가 장자이자 왕적 제사장으로 높임을 받으시는 것이 멜기세덱

을 통해 예표되었으며, 따라서 “원래 아담과 이스라엘에게 의도되었

69) Hahn 2009: 22.

70) 앞의 책, 193.

71) 앞의 책, 213. 놀랍게도 한은 논란이 되는 아담-창조 언약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단지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한다. 따라서 창세기 1-2장에 나타나는 제사장-왕으로서의 아담의 역할은 이후의 성경 본문에서 왕적 제사장 신분을 다루는 한의 논의와 관련이 없다.

72) 앞의 책, 278-331.

1. 서론 39

고 시내산 반역 이전에 어느 정도 실행되었던 언약 중재가 더 완전

한 형태로 회복되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73)

요약 및 관찰 사항

성경학 분야에서 학자들은 한 인물에게 왕직과 제사장직을 결합한

것을 설명할 때 두 가지 궤도 중 하나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역

사 재구성 관점에서 시편 110편에 나오는 제사장직과 왕직의 결합에

초점을 맞추거나, 아담의 제사장-왕 직분이 토라에서 발전하고 예수

와 교회에서 그 직분이 성취된다고( 벧전 2:9 )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

해 멜기세덱-다윗-예수 예표론은 아담, 이스라엘, 예수, 교회를 통해

추적하는 왕적 제사장직의 발전과 거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74) 성

경신학 연구는 창조-타락-구속-완성이라는 틀을 통해 왕적 제사장

직을 살펴보고 아담, 이스라엘, 예수, 교회에 나타나는 주요 발전 지

점을 강조한다. 역사적 연구는 다윗이 메시아를 영원한 제사장으로

묘사한 데서 이해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신성한 왕권에 대한 증거를

찾아 이스라엘 역사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표 1.1은 현대 학계가

토라와 시편 110편에 나타난 왕적 제사장직 개념에 접근하는 일반적

인 방법론적 경향을 보여 준다.

이 도표는 토라와 시편 110편에 사용된 다양한 방법론적 접근이

어떻게 토라의 왕적 제사장직 발전과 시편 110편에서 발견되는 메시

아의 왕적 제사장직 사이에 단절을 만들어 냈는지를 보여 준다. 성경

73) 앞의 책, 280. 또한 창 14:18-20과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철저히 분석한 조슈

아 매튜스(2013)의 멜기세덱 연구도 주목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의 집필을 끝낸 다음에야

매튜스의 연구를 알게 되었지만, 우리 둘은 각자의 책에서 여러 지점에서 비슷한 논리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둘 다 창 14:18-20을 창세기 내러티브의 원래 부분으로 보 며, 멜기세덱이 아브라함 및 아브라함 언약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멜기세덱을 중요하 게 평가한다.

74) 이 두 가지 성경신학적 궤적을 구분하지 않는 최근의 두 저작은 다음을 보라. Hahn 2009; Gentry and Wellum 2012.

40 시편 110편 성경신학

신학 연구는 토라에서 왕적 제사장직을 발전시키고 메시아 본문을

뛰어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역사 연구는 토라라는 토대를 제외하

고 메시아의 제사장적 기능( 예. 시 110:4 ) 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시편

110편에 대한 성경신학적·정경적 성찰이 부족한 비평적 가정이 현

대 학계의 많은 부분에 널리 퍼져 있어서, 많은 해석가는 멜기세덱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정의 부흥기에 창세기 내러티브에 삽입되었다고

본다. 시편 110편은 현대 학계의 역사비평 방법과 형식비평 방법에

서부터 끊임없는 조사를 받아 왔다. 따라서 보수 학계에서 시편

110편에 대한 예표론적이고 신학적인 해석을 택해 왔지만, 시편

110편의 의미를 성경신학적 맥락에서 풀려면 더 많은 작업이 이루어

져야 한다.

표 1.1 왕적 제사장직(제사장-왕)에 대한 방법론적 접근 방식

정경 단락 사용된 주요 방법론 구속사적 발전

토라 성경신학 아담, 이스라엘, 예수, 교회

시편 110편 역사 재구성 멜기세덱, 다윗(메시아), 예수

이 책은 창세기 14장을 넘어 토라가 시편 110편의 메시아에 대한

다윗의 이해에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시편

110편에 대한 예표론적 접근과 정경적 접근을 바탕으로 다윗의 메시

아 기대가 어떻게 초기 성경 문헌의 결과물인지를 보여 주겠다.75)

75) 아마도 성경학에서 시편 110편의 왕직과 제사장직 관계에 대한 해석상의 불일치는 제러 미 트리트(2014: 28)가 조직신학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상태와 직분 같은 특정 교리의 지나친 체계화”라고 한탄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트리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도의 사역을 비하와 승귀라는 두 범주로 깔끔하게 나누어 십자가를 비하의 신분으로만

본다면, 그것이 어떻게 왕국과 관련될 수 있는지 전혀 알기 어렵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제사장직 관점에서만 해석한다면 십자가와 왕국을 연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스도의

1. 서론 41

방법론

이 책은 성경신학의 실천으로서 시편 110편에서 제사장직과 왕직

을 한 인물에게 결합한 것에 대한 성경 내부의 논리를 탐구하겠다.76)

성경신학적 접근은 본래 저자 문제나 이 시편의 역사성을 옹호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으며, 본문의 최종 형태가 해석을 좌우한다. 나는

토라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관련 구절을 선택하면서 단어 연구 접

근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 ‘왕적 제사장’[“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문구는 성경에서 단 두 번 등장하며( 출 19:6; 벧전 2:9 ), ‘제사장-왕’이나

‘왕적 제사장’이라는 구체적인 칭호를 찾으려는 시도는 헛되다는 것

이 드러날 것이다. 같은 인물이나 단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왕’

과 ‘제사장’이라는 개별 단어를 검색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오히

려 나는 ‘왕적 제사장직’과 ‘제사장-왕’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서 인류의 역할과 관련된 중요한 성경신학적 주제를 포착

한다는 의미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다.77)

신분과 직분에 대한 교리 자체는 잘못이 없지만, 이 교리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왕 사역과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사이에 굵은 교리적 선을 긋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조직신학에 서 그리스도의 왕 사역과 속죄 사역 사이에 “굵은 교리적 선”을 긋는 것은 아마도 성경 이야기에서(다시 말해 시 110편에서) 제사장-왕이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에 대한 성경신 학적 성찰이 부족한 것이 원인(또는 결과?)일 것이다.

76) ‘성경 내부의 논리’란 성경 저자들이 자기 이전의 성경 본문을 자기 상황에 맞춰 해석하

고 적용한 과정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성경 내부의 논리는 빌이 “성경 내부의 해석”

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동의어다. 성경학에서 ‘간본문성’(intertextuality)이라는 용어의 사

용을 비판하면서 빌은 “성경학에서……때때로 ‘간본문성’은 단지 나중 성경 본문이 이전

본문을 참고하는 과정이나 이전 본문이 나중 본문의 의미를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나중 본문이 이전 본문의 의미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지를 지칭하는 용어로만 사용 된다. 이런 점에서 ‘간본문성’은 성경 내부나 성경 내적인 해석 절차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성경신학을 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Beale 2012: 40). 77) 이 논증은 ‘하나님 나라’라는 문구 자체와 관련 단어가 성경에서 드물지만 ‘하나님 나라’가 성경의 중심 메시지라는 토머스 슈라이너의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Schreiner 2013: xiii). 또한 Wright 1997: 225를 보라.

42 시편 110편 성경신학

전제

나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성경 자체의 증언을 인정한다. 하

나님은 자신의 영으로 인간을 감동하셔서 성경 말씀을 저술하게 하

심으로 성경의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오류가 없게 하셨다.

성경의 기원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은 필연적으로 정경 전체에 걸친

본질적인 통일성을 동반한다. 성경은 다양한 저자가 쓴 다양한 장르

의 개별 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 저자이신 하나님의 통일된 계시

로 우리에게 다가온다.78) 따라서 성경의 다양성 가운데서도 성경 자

체의 ‘거대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다. T. D.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 한다.

간본문적 관련성이 풍부한 선집 자체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문학적 맥락을 보여 준다. 모음집 전체 가운데 어

떤 책도 다른 책들과 분리하여 만족스럽게 해석할 수 없다. 각 책

은 거대담론에 특별한 무언가를 제공하고, 거대담론은 다시 각

책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오랜 원칙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79)

선집이 지닌 수많은 간본문적 관련성은 성경 저자들이 성경 본문

을 해석하고 자신들의 상황에 적용할 때 이전 성경 본문에 의존했음

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어진 성경 구절에 대한 내 해석은 성경의 거

대담론에 비추어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가 될 것

이다.

또한 이 연구는 성경 저자들의 해석적 입장을 채택하려고 노력할

78) Gentry and Wellum 2012: 84.

79) Alexander 2009: 10.

1. 서론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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