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NICNT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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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NEW testament

NICNT 시리즈는 여러 나라의 신약 학자들의 뜻을 모아 1940년대 후반부터 저술된 주석 시리즈로서, 목사, 신학생, 학자들에게 복음주의 개신교 전통의 틀 안에서 성경적인 학문성

마태복음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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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정통 주석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 주석 시리즈는 헬라어 본문에 대한 철저 한 연구를 반영하면서도, 주석의 서론과 해설에서는 헬라어 언급을 최소화하며, 성경 본문에 나 타난 중요한 주제들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뛰어난 신약 학자였던 네드 스톤하우스(웨스트민스터 신학교), F. F. 브루스(맨체스터 대학교), 고든 피 (리젠트 대학)를

거쳐 현재는 조엘 그린(풀러 신학교)의 책임 편집 아래 집필되어 온 NICNT 시리즈

는, 동시대의 학문에 정통한 새로운 주석이 되기 위해 필요에 따라 개정되거나 신판으로 대체되 기도 했다. 성경 본문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수사법, 시대적 상황, 신학적 중요성 및 적용에 주의 를 기울이는 이 시리즈는 독자로 하여금 성경 본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지은이 R. T. 프랜스 (Richard T. France)

권대영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B. A.), 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diplom), 일반대학원에서 구약신 학을 전공했다(Th. M.).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현재 부흥과개혁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는 『NAC 창세기 1』, 『AOTC 전도서・ 아가』, 『NICOT 아가』(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황의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공부하고(B. A.), 고려신학교를 졸업했 으며(M. Div.), 현재 상도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 는 『REC 전도서』, 『REC 에스더・룻기』, 『NIV 스터디 바이 블』(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ISBN 978-89-6092-553-3 978-89-6092-457-4(세트)

www.rnrbook.com

값 68,000원

권 | 대영 황 ·의무 옮김

옮긴이

프랜스 지음

신약 학자이자 성공회 사제였다. 브래드퍼드 문법학교, 옥스퍼드 발리올 대학(B. A., M. A.), 런던 대 학교 틴데일 홀(B. D.), 브리스톨 틴데일 홀(Ph. D.)에서 공부했다. 나이지리아의 이페 대학교와 아마 두 벨로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런던 바이블 칼리지 부학장, 옥스퍼드 대학교 위클리프 홀 학장 등 을 역임했고, 말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목회 사역을 하면서 웨일스 뱅고어 대학교 명예 연구 원으로도 활동했다. NIV와 TNIV 번역위원 및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TTC 누가복음』, 『TNTC 마태복음』, 『NIGTC 마가복음』 등 여러 책을 저술했다.

R . T .

마태복음 Matthew R. T. 프랜스 지음 | 권대영·황의무 옮김


목차 ■ 편집자 서문 │ 12 ■ 저자 서문 │ 14 ■ 약어 소개 │ 17

서론

29

Ⅰ. 마태복음의 구조 │ 32 Ⅱ. 갈릴리와 예루살렘 │ 36 Ⅲ. 마태복음의 강화 │ 39 Ⅳ. 성취 — “인용-형식” │ 42 Ⅴ. “마태복음”의 기원에 대한 견해(누가, 어디서, 언제, 어떻게) │ 46 A. 저자 • 46 B. 저작 장소와 배경 • 47 C. 저작 시기 • 50 D.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의 관계 • 51

본문과 주석

57

Ⅰ. 메시아 소개(1:1-4:11) │ 58 A. 메시아의 “기원의 책”(1:1-17) • 60 B.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는 증명: 다섯 가지 성경 증거(1:18-2:23) • 75 1. 다윗의 자손 요셉이 예수를 아들로 받아들이다(1:18-25) • 81 2. 다윗 성에서 태어난 유대인의 왕(2:1-12) • 95 3. 애굽에서 불러낸 하나님의 아들(2:13-15) • 115 4. 하나님의 목적을 훼방하려는 헤롯 왕(2:16-18) • 121 5. 갈릴리 출신 메시아(2:19-23) • 128 C. 메시아의 전령(3:1-12) •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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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다(3:13-17) • 160 E. 하나님의 아들이 시험받다: 메시아는 참 이스라엘(4:1-11) • 170

Ⅱ. 갈릴리: 말씀과 행위로 드러나는 메시아(4:12-16:20) │ 184 A. 갈릴리에 빛이 비치다(4:12-17) • 187 B. 메시아 공동체가 세워지다(4:18-22) • 194 C. 갈릴리의 메시아(4:23-25) • 199 D. 메시아의 권위가 가르침으로 드러나다: 제자가 된다는 것(5:1-7:29) • 204 1. 산에서 가르치다(5:1-2) • 207 2. 선한 삶: 천국의 역설적 가치(5:3-10) • 209 3. 제자의 특수성(5:11-16) • 222 4. 율법의 성취(5:17-48) • 231 5. 진정한 경건과 거짓된 경건: 세 가지 대조(6:1-18) • 287 6. 하늘의 보물(6:19-24) • 317 7.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6:25-34) • 326 8. 비판(7:1-6) • 337 9. 하나님에게 선한 것을 기대하는 것(7:7-11) • 343 10. 율법과 예언의 성취(7:12) • 347 11. 예수의 말씀에 대한 반응: 네 가지 경고(7:13-27) • 350 12. 선생의 권위를 인정하다(7:28-29) • 365 E. 행위에서 드러나는 메시아의 권위: 권능 행사 선집(8:1-9:34) • 369 1. 치유와 회복의 세 가지 이적(8:1-17) • 372 2. 예수를 따름: 대조적인 두 사례(8:18-22) • 396 3. 추가 권위 입증 세 가지(8:23-9:8) • 405


목차

4. 예수를 따름: 세리와 죄인들(9:9-17) • 426 5. 추가 구원 이야기 세 가지(9:18-34) • 436 F. 메시아의 권위를 제자들에게도 나누다: 사역에 대하여(9:35-11:1) • 451 1. 사역 상황(9:35-38) • 452 2. 열두 제자의 사역(10:1-4) • 456 3. 사역 지침(10:5-15) • 462 4. 박해가 있을 것이다(10:16-23) • 472 5. 박해에 대한 대응(10:24-33) • 484 6. 예수의 사역이 가져올 극단적 결과(10:34-39) • 492 7. 지지자들(10:40-42) • 499 8. 예수가 사역을 재개하다(11:1) • 504 G. 메시아에 대한 다양한 반응(11:2-30) • 506 1. 세례 요한(11:2-19) • 507 2. 냉담한 갈릴리 고을(11:20-24) • 525 3. 어린아이에게 드러내다(11:25-30) • 529 H. 예수의 권위에 도전하다(12:1-45) • 543 1. 안식일 준수 논쟁(12:1-14) • 545 2. 예수가 논쟁에서 물러나다(12:15-21) • 559 3. 귀신을 힘입었다는 고소(12:22-37) • 566 4. 표적을 요구하다(12:38-45) • 581 I. 예수의 진정한 가족(12:46-50) • 590 J. 천국-선포와 반응: 비유 강화(13:1-53) • 595 1. 해변에서 가르치다(13:1-3a) • 598 2. 서론적 비유(13:3b-9) • 599 3. 비유로 가르치는 이유에 대한 설명(13:10-17) •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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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설명(13:18-23) • 614 5. 성장에 관한 세 가지 비유(13:24-33) • 621 6. 비유로 가르치는 이유(13:34-35) • 627 7. 가라지 비유에 대한 설명(13:36-43) • 629 8. 세 가지 짧은 비유(13:44-50) • 637 9. 결론적 비유: 집주인(13:51-52) • 643 10. 예수가 떠나다(13:53) • 647 K. 계속되는 적대적 반응(13:54-14:12) • 648 1. 나사렛(13:54-58) • 648 2. 헤롯 안디바(14:1-12) • 651 L. 해변에서 나타낸 권능(14:13-36) • 659 1. 무리를 먹이다(14:13-21) • 659 2. 물 위로 걷다(14:22-33) • 668 3. 많은 병자를 고치다(14:34-36) • 675 M. 계속되는 도전: 정결에 대한 질문(15:1-20) • 677 N. 이스라엘 지경 밖으로 확장된 메시아의 사역(15:21-39) • 693 1. 가나안 여자의 믿음(15:21-28) • 694 2. 다양한 치유 기사(15:29-31) • 702 3. 무리를 먹이다(15:32-39) • 705 O. 마지막 갈릴리 사역(16:1-12) • 711 1. 예수가 비판자들을 물리치다(16:1-4) • 711 2. 제자들이 깨닫기 시작하다(16:5-12) • 714 P. 제자들이 메시아를 알아보다(16:13-20) • 719


목차

Ⅲ.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메시아와 제자들이 대적과 맞설 준비를 하다(16:21-20:34) │ 738 A. 미래에 대한 일견: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16:21-17:13) • 740 1. 메시아의 고난이 도전을 받다(16:21-23) • 741 2. 제자들의 헌신과 그 결과(16:24-28) • 746 3. 변화산에서 계시된 영광(17:1-8) • 754 4. 영광과 고난: 엘리야와 요한 그리고 예수(17:9-13) • 764 B. 현재로 돌아옴: 좌절과 적응(17:14-27) • 769 1.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다(17:14-20[21]) • 770 2. 두 번째 수난 예고(17:22-23) • 777 3. 성전세(17:24-27) • 779 C. 제자들의 함께하는 삶: 관계에 대한 강화(18:1-19:2) • 787 1. 천국에서의 지위에 관한 질문(18:1) • 790 2. 어린아이에 대한 사례(18:2-5) • 791 3. 작은 자에 대한 관심: 실족하게 하는 위험(18:6-9) • 795 4. 작은 자에 대한 관심: 양 비유(18:10-14) • 800 5. 형제의 죄를 처리하는 일(18:15-17) • 805 6. 제자 공동체의 권위(18:18-20) • 811 7. 용서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18:21) • 816 8. 무한한 용서: 빚진 자 비유(18:22-35) • 818 9. 예루살렘으로 향하다(19:1-2) • 827 D. 천국의 근본적 가치: 제자들에 대한 재교육(19:3-20:28) • 829 1. 결혼과 이혼 그리고 금욕(19:3-12) • 830 2. 어린아이들(19:13-15) • 845 3. 재물(19:16-26) • 847 4. 보상(19:27-30) •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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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도원 품꾼 비유(20:1-16) • 867 6. 세 번째 수난 예고(20:17-19) • 873 7. 천국에서의 지위: 야고보와 요한(20:20-28) • 875 E. 맹인을 고침(20:29-34) • 886

Ⅳ. 예루살렘: 종교 당국과 맞선 메시아(21:1-25:46) │ 890 A. 대결의 시작: 세 가지 상징적 행위(21:1-27) • 894 1. 왕이 예루살렘에 오다(21:1-11) • 896 2. 메시아가 성전에서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다(21:12-17) • 907 3. 열매 없는 나무가 멸망하다(21:18-22) • 916 4. 예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21:23-27) • 922 B. 세 가지 비유로 논박하다(21:28-22:14) • 927 1. 두 아들(21:28-32) • 928 2. 포도원(21:33-44) • 935 3. 예수의 비유에 대한 반응(21:45-46) • 947 4. 혼인 잔치(22:1-14) • 948 C. 세 가지 질문과 대답(22:15-46) • 958 1. 세금에 관한 질문(22:15-22) • 958 2. 부활과 혼인에 관한 질문(22:23-33) • 965 3. 가장 큰 계명에 대한 질문(22:34-40) • 973 4. 메시아에 관한 예수의 질문(22:41-46) • 979 D. 예루살렘과 지도자들에 대한 예수의 선언(23:1-24:2) • 986 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23:1-12) • 990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미칠 일곱 가지 화(23:13-36) • 998 3. 예루살렘에 내려질 심판(23:37-39) • 1017 4. 예수가 성전을 떠나고 성전 멸망을 예언하다(24:1-2) • 1021


목차

E. 옛 질서의 종식 및 인자의 통치(24:3-25:46) • 1026 1. 제자들의 두 가지 질문(24:3) • 1030 2. 예수가 성전 멸망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다(24:4-35) • 1032 3. 예수가 파루시아와 세상 끝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다 (24:36-25:46) • 1068

Ⅴ. 예루살렘: 버림받아 죽었다가 부활한 메시아 (26:1-28:15) │ 1109 A. 배경(26:1-16) • 1112 1. 유월절(26:1-2) • 1112 2.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하다(26:3-5) • 1114 3. 한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붓다(26:6-13) • 1115 4. 유다가 제사장들에게 도움을 주다(26:14-16) • 1120 B. 예수와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함께한 시간(26:17-46) • 1124 1. 유월절 음식 준비(26:17-19) • 1125 2.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26:20-30) • 1131 3. 예수가 제자들의 배반을 예언하다(26:31-35) • 1142 4. 제자들이 잠든 동안 예수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다(26:36-46) • 1147 C. 예수를 체포하고 재판하다(26:47-27:26) • 1157 1. 예수를 체포하다(26:47-56) • 1158 2. 공회 앞에 서다(26:57-68) • 1164 3. 베드로의 실패(26:69-75) • 1182 4. 예수가 재판을 위해 로마 총독에게 끌려가다(27:1-2) • 1186 5. 유다의 후회 및 자살(27:3-10) • 1188 6. 로마의 재판(27:11-26) • 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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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예수의 죽음과 매장(27:27-66) • 1214 1. 예수가 로마 군병들에게 조롱당하다(27:27-31) • 1215 2. 십자가에 못 박히다(27:32-38) • 1218 3. 예수가 동족 유대인에게 모욕을 당하다(27:39-44) • 1224 4. 예수의 죽음(27:45-54) • 1228 5. 예수의 죽음과 장사를 목격한 여자들(27:55-56) • 1242 6. 예수의 장사(27:57-61) • 1245 7. 경비병이 무덤을 지키다(27:62-66) • 1249 E. 빈 무덤과 부활한 예수(28:1-10) • 1254 F. 예루살렘의 마지막 모습: 제사장들의 은폐(28:11-15) • 1263

Ⅵ. 갈릴리: 메시아 사역의 새로운 시작(28:16-20) │ 1267 ■ 참고문헌 │ 1281


마태복음

┃ 편집자 서문┃

R. T. 프랜스의 마태복음 주석을 교계와 학계에 소개하는 일은 나에게 특 별히 세 가지 이유로 기쁜 일이다 ( 교계나 학계에서도 이 책이 정말 특별하고 유용한 책이라 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첫째, 내가 2년 전에 필 토너 ( Phil Towner ) 의 디모데전후서 및

디도서 주석 서문에서 약속한 대로, 이 책은 NICNT 시리즈의 완성을 앞두 고 남아 있던 마지막 두 권 중 하나였다 ( 이제 남은 책은 베드로후서 및 유다서 주석뿐이 다 ).

둘째,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이 공관복음, 특히 마태복음을 연구하는

데 자신의 학문 생활을 대부분 바친 학자가 쓴 책으로 마태복음 연구에 기 여한 것이 무척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 분야를 학문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둔 학자가 마태복음에 대해 가진 성숙한 사고를 만나게 된다. 셋째로 기쁨이 되는 이유는 개인적인 것이다. 프랜스 박사는 오랫동안 알 고 지내던 사이지만, 1990년 NIV 성경 번역위원회 ( CBT ) 모임으로 특별하게 만났다. 이 위원회는 NIV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목적이었고, 새로운 인물 몇 명과 함께 프랜스 ( 그는 영국 위원회의 구성원이었다 ) 와 동석하게 되었다. 이를 계 기로 16년 동안 연례 위원회에서 성경 본문을 상세하게 작업했고, 마침내 TNIV ( Today’s New International Version ) 를 내놓게 되었다. 당시 나는

( 매우 유능하고 )

어린 학자 한 분이 NICNT 마태복음 주석 계약을 반려한 일로 좌절한 상태 여서 날을 잡아 곧 은퇴를 앞둔 프랜스 박사를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 주석 서의 집필을 요청했고, 뜻밖에 그가 제안을 수락해서 정말 기뻤다. 그리고 4년이 지났고, 지금 교계나 학계 할 것 없이 모두 이 책의 수혜자가 됐다. 12


편집자 서문

프랜스 박사는 마태복음 연구에 익숙한 이에게는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 도다. 그가 컬리와 함께 나이지리아에서는 선교사로,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 에서는 학장으로, 잉글랜드에서는 성공회 시골 교구 목회자로 사역하느라 무척 바쁘게 살아왔지만, 오랫동안 생산적인 방식으로 마태복음 연구를 수 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북웨일즈에서 은퇴 생활을 누리고 있고, 교계와 학 계는 그 은퇴의 수혜자가 되었다. 읽는 동안 나에게 순전한 기쁨을 주었던 주석이 여기 있다 ( 나의 편집 의견은 특별히 최소한도만 반영했다! ).

프랜스 박사가 마태라는 인물뿐 아니라 마태가 예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의도했던 것도 전혀 놓치지 않게 하기에 독자는 예수 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교계와 학계에 기쁘게 추천하면서, 21세기 교회에 성령이 말씀하는 것을 사람들이 듣고 배우기 바란다. 고든 피

13


마태복음

┃ 저자 서문┃

이 책은 주해를 위한 주석서로 기획되었다. 이 책의 주된 목표는 마태복 음을 읽는 독자가 본문을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도록 유익한 정보와 주석 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마태복음의 주제가 갖는 의의나 매력뿐 아니라 마태복음 저자의 통찰과 기술에 대해 깊이 이해한 것을 공유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나무에 집중하기 전에 숲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마태복음의 개별 부분을 전체 내러티브 흐름 가운데 위치시키는 일이었다. 서론에서는 마태복음의 구조에 대해 견해를 제시하면서, 본문 주석을 위한 단원 구분을 확정했다. 우선 모든 단원을 전체적으로 논의한 후에, 세부적 으로 나눈 개별 페리코프 ( 편의상 본문에서 “단위”나 단락으로 파악된 것을 가리키는 전문 용 어 ) 를

다룬다. 강조해야 할 점은 이런 작은 단락과 내러티브에서 식별되는

전체 구조는 본문에 대한 나만의 읽기를 보여 줄 뿐이지, 저자가 드러낸 형식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본문 표면에서 읽어 내는 “저자의 의도” 같은 가장 기초적인 구조 문제에도 견해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본문을 나누는 적절한 방법에 대해 대립하는 견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내가 내린 결 정에 대해서도 해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결정일 뿐이고, 본문을 사랑하는 한 독자가 본문의 역동성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본문을 임의로 나눈 각 페리코프도 우선 전체적으로 논의한 후에 각 절 14


저자 서문

주석이 주어질 것이다. 이것은 종종 본문의 의미를 찾는 일에 가장 근본적 인 문제를 특정 절에 대한 주석에서 거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 절 단 위 주석이라는 오랜 전통을 피하고 싶다 ).

그래서 나는 독자가 특정 절이나 문장에 대

한 안내를 얻고자 할지라도 먼저 해당 페리코프에 대한 주석을 전체적으로 읽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점은 영역 본문도 마찬가지여서 성경 번역문을 각 페리코프의 시작 지 점에 제시할 것이다. 성경 번역문은 내가 사역한 것이고, 번역문에 각주를 달아 특정 단어나 구문의 번역에 대해 설명할 것인데, 이어지는 주석에서는 이 내용도 감안할 것이다. 번역문은 별도의 용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석 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려는 의도로 만들었다. 현대적인 표현을 사용하려 했 고, 필요할 때는 문학적인 우아함보다 명료성을 우선시했다. 또한 번역문에 달린 각주는 해석학적 관심사가 될 수 있는 일부 원문상의 이독에 관심을 두었다. 이를 위해 전반적으로 『헬라어 신약 성경』 ( The Greek New Testament edn., Deutsche Bibelgesellschaft / United Bible Societies, 1998] ) 의

[4th

편집자들이 제시한 이

독 선택을 참고했다 ( 하지만 그들의 원문 판단에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 일부 독자들은 이미 20년 전에 더 짧은 마태복음 주석 (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 Tyndale New Testament Commentaries. Leicester: InterVarsity Press, 1985 ) 을

출간했던 내가 어떻게 다시 마태복음 주석을 쓰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본 주석은 전에 나온 주석의 개정이나 확장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작품이다. 나는 20년 전에 쓴 주석을 보지 않고 ( 또 사실 다른 주석을 살펴보 기도 전에 ),

각 페리코프를 다룬 본 주석의 초고를 작성했다. 따라서 나는 현재

의 내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을 먼저 다루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 고 싶다. 결국 이 책에서 다룬 의제는 다른 사람의 견해나 20년 전 쓴 내 견 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순전히 본문과 나의 상호 작용을 통해 결정된 것 이다. 이를 통해 내가 전에 쓴 글에 상당히 많은 부분 동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자신의 발전과 최신 논의에 대한 인식 덕분에 그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간혹 내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되 는데 ( 정말로 어떤 경우는 내가 이전에 말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다! ), 그 변화가 중요해 보 이는 곳에서는 주의를 기울였다. 다른 주석이나 주해상의 논의는 되도록 각 주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본 주석은 마태복음 주석이고, 나는 다른 주 석서의 주석을 쓰고 싶지 않다. 굳이 현 시점에서 이 매혹적인 복음서에 관 련된 광범위한 학문 분야를 죄다 다룬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내 친구 존 놀랜드 ( John Nolland ) 의 『마태복음 주석』 ( The 15


마태복음

Gospel of Matthew .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05 ) 이

제때 나오지 않아 이를 참고할 수 없었던 것이 특히 안타깝다. 이

책은 2005년 말, 놀랜드의 주석이 출간되기 직전에 마무리되었다. R. T. 프랜스

16


서론

성경 주석 서평이 주석 부분을 읽어서 그 내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론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 주석서도 서평할 사람 이 있을 텐데 이렇게 간편한 방식으로 서평을 한다면 상당히 실망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 주석이 짧고 피상적인 서평만 받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십육 년 전, 나는 『마태신학』 ( Matthew: Evangelist and Teacher . Eugene, Or.: Wipf and Stock, 2004 ) 이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에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연구

서를 출간했다. 그 책은 보통의 주석보다 더 긴 분량으로 전통적으로 주석 서론에서 다루는 분야를 거의 모두 다루었다. 그 이후로 신약학 연구는 한 층 더 발전했고 새로운 접근법도 등장했지만 오늘날에도 관심을 받는 논쟁 주제는 당시 내가 다루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제에 대한 관점도 그 다지 많이 바뀌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이번 에는 1989년에 했던 것처럼 그렇게 자세하게 사견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 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가 초보적인 수준의 문제도 아니고, 나도 내 입장을 똑같이 반복하는 긴 서론을 다시 쓴다고 해서 무슨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그렇게 자세하게 서론을 쓰고 싶지는 않다. 또한, 본 주석 시리즈도 나 혼자서 단행본 주석 쓰듯이 원하는 분량대 로 일반론을 길게 서술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독자들이 특정 성경 구절의 주석보다 일반적 서론의 관 점에서 서술된 내 견해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내가 과거에 출간한 책을 찾 31


마태복음

아서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앞으로 필요할 때마다 그 책의 관련 부분 을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상 그 책을 인용할 필요가 거의 없기 를 바란다. 이 책은 분명한 신학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성경 본문의 증 거를 찾아내려고 쓴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출발점으로 해서 본문의 내 용을 설명하는 주해 목적의 주석으로 쓴 것이다. 이 책은 끊임없이 변하는 학문적 논쟁 안에서 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것 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이해하고 그 뜻을 깊이 있게 묵상하는 일에 도움을 주려고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서론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주석 서론에 포함되 거나 1989년 책에서 이미 논의한 전통적 주제를 모두 다루지는 않았다. 특 히 마태의 신학적 관점을 전체적으로 개관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특정 본문에서 문제가 될 경우에만 마태의 신학적 관점을 다룰 것이다.1  )   본 서론 에서 내 유일한 목적은 여러 본문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광범위한 주제 에 관심을 갖게 해서 본 개요를 통해 충분히 이해하여 앞으로 내가 주석을 쓰면서 필요할 때마다 매번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아도 각주에서 간단하 게 해당 내용을 개관한 것을 찾아서 읽어 보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여기 나오는 글도 마태복음의 주요 주제와 학문적 연 구에 관한 종합 안내서로 작성된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I. 마태복음의 구조 마태복음 성경 본문에는 단락 구분 표시가 없어서 마태복음의 저자가 원 래 의도한 복음서 전체의 대략적 구성을 알 수 없다. 복음서 전체의 윤곽으 로 주장되는 어떤 의견도 결국 해석자가 본문에 적용한 것이지 마태복음 저자가 직접 알려 준 것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개요로 제시되 는 것도 과연 저자가 원래 의도한 내러티브의 모습을 제대로 구현한 것인 지 얼마든지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다른 신약 책처럼 마태복음의 분석 이 다양하고 심지어 전혀 상반된 결론을 낸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1980년대까지의 마태복음 분석사에 대해서는 바우어 ( D.

R. Bauer ) 가

정리를

1  )   나의 Matthew: Evangelist and Teacher 후반부는 대부분 마태 신학 관련 주제를 다루었다. 단원 제목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성취”(166-205), “마태와 이스라엘”(206-241), “마태복음과 교 회”(242-278), “마태의 예수 초상” (279-317).

32


서론 I. 마태복음의 구조

잘 해 놓았다.2  )   최근의 논의는 구조상 구분점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형식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3  )   지금까지 가장 눈에 띄는 형식은 마태가 예수 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주요 다섯 모음집을 끝내는 형식인데 사실 미묘한 차이는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7:28; 11:1; 13:53; 19:1; 26:1 ). 이 형식은 매번 강화가 끝난다는 것과 내러티브의 새 국면이 시작된다는 것 을 알리며, 베이컨 ( B.

W. Bacon ) 도

이 형식에 근거해서 마태복음 전체를 다

섯 개의 “책”으로 나눌 것을 제안했고 ( 베이컨은 그 다섯 권의 책이 마태가 일부러 논쟁 적인 의도로 모세의 책 다섯 권에 대응해서 만든 것으로 이해한다 ) 4  )   널리

수용된 것은 아니

지만 일부 대중적인 복음서에 관련 해설서에는 아직도 이 입장이 등장하 고 있다. 이 형식이 다섯 강화의 종결부를 표시한다는 것이 분명하긴 하지 만 그로 인해 바로 이들 강화가 마태복음의 중심 구조 원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학자들이 제안하는 구조 체계 중에는 “그때부터 예수께서……을 하기 시작하셨다”( 4:17; 16:21 ) 같은 다른 형식을 근거로 두는 경우도 있다. 위 에 말한 강화의 마지막 형식처럼 이 언어도 분명히 이야기의 새로운 단계 를 표시하지만, 마태복음에 겨우 두 번밖에 나오지 않는 어구를 가지고 내 러티브 전체 구조를 형성하는 근거로 두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이는 킹즈 버리 ( J. D. Kingsbury ) 와 그의 제자 D. R. 바우어를 중심으로 일부 학자들이 주 장한 것이다.5  )   두 사람은 마태복음의 구조를 예수의 인성 ( 1:1-4:16 ), 예수의 선포 ( 4:17-16:20 ), 예수의 수난 ( 16:21-28:20 ) 의 주요 단위 셋으로 나눈다. 앞의 두 단위는 사실 내가 앞으로 제안하려는 것과 매우 비슷하고, 4장 17절과 16장 21절의 “형식”은 내러티브에서 두 개의 전환점을 적절히 표시하고 있 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16장 21절 이하의 긴 단원에는 이야기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국면이 여럿 나오고 있고, 마태가 이를 같은 형식으로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국면은 내러티브 전개에 중요하고 새로운 단계를 나타내는 두세 가지 중요한 전환점을 보이는 것 같다. 2  )   D. R. Bauer, Structure (1988). 더 간략한 내용은 나의 Matthew: Evangelist, 141-153을 보라. 3  )   이어지는 개요에서는 마태복음의 구조에 대해 널리 주목받는 견해만 다룬다. 마태복음 전체를 교 차 대칭 구조로 보는 견해 등에 대해서는 나의 Matthew: Evangelist, 145-149를 보라. 4  )   B. W. Bacon, “The Five Books of Matthew against the Jews,” The Expositor 15 (1918) 5666; 더 충분히 발전된 견해로 Studies (1930). 5  )   J. D. Kingsbury, Matthew: Structure; D. R. Bauer, Structure. 이 형식에 주목해 온 다른 이들에 대해서는 나의 Matthew: Evangelist, 151-152를 보라. 뒤에 나오는 4:17 주석도 보라.

33


마태복음

마태복음의 구조에 대한 내 접근법은 마태가 마가의 전반적인 내러티브 양식을 얼마나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다가 나온 것이다. 마가 의 내러티브 양식은 광야를 배경으로 간략한 프롤로그가 나온 뒤에 ( 1:1-13 ), 예수의 공적 사역을 차례대로 갈릴리, 갈릴리에서 유대로의 여행, 예루살렘 의 세 국면으로 드러낸다. 나는 마가복음 주석서에서 6  )   이는 세례 이후 예 수가 실제로 이동한 경로를 따른 것이 아니라 마가가 조직한 지리적 틀 안 에서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마가는 우리 에게 예수가 생애 마지막 주간까지 예루살렘을 전혀 방문하지 않았던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으로 훨씬 사실에 가까운 요한복음 의 예수와 다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종교적으로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 는 다른 갈릴리 사람처럼 특히 주요 축제일이 되면 갈릴리와 유대 사이를 정기적으로 여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마가복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보낸 마지막 한 주간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수가 실제로 과거에 예 루살렘에 온 적이 있음이 분명해지는 요소가 있다.7  )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으로 한 번만 이동하는 단순화된 구조는 예수가 “생소한” 유대의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갈릴리 출신 선지자 예수를 사람들이 적대적으로 받아들였음 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마가가 고안한 것으로 보는 것이 최선이다 ( 갈릴 리와 예루살렘을 다룬 다음 단원을 보라 ).

마태도 같은 식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 9:51에서 19:28에 이르는 엄청나게 길어진 “여행 내러티브”가 나오긴 하지만 실제로 누가도 그랬다 ).

마태의 서론은 더 길고, 메시아의 기

원과 본성에 대해 성경을 기초로 묵상할 자료도 더 많다. 그러나 4장 17절 부터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려는 의도를 밝히는 16장 21절에 이르기 까지 줄곧 예수는 갈릴리나 그 주변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가 복음처럼 마태복음에도 특히 제자들의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제자 훈련 관련 자료가 상당한 분량으로 나온다. 그리고 21장 1-9절에서 드디어 예수 가 예루살렘 성벽 바깥에 도착했을 때 마태복음은 예루살렘에 처음 도착한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마가처럼 마태도 사실은 예수가 과거에 예루살렘 에 온 적이 있다는 암시를 준다 ( 예를 들어 23:37; 27:57에서 예수는 이미 확정된 도시 내 후 원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

그 시점부터 예수의 부활에 이르는 이야기는 마태

복음도 마가복음처럼 줄곧 예루살렘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비록 같은 장

6  )   나의 Mark, 11-15; C. Bryan, Preface, 85-125도 보라. 7  )   890쪽, 각주 1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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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I. 마태복음의 구조

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마태는 수난사 부분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더 확대 묘사하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26장 1절부터 시작하는 수난 내러티브를 분 리하여 독립된 단위로 취급하는 것이 더 옳다는 생각이 든다.8  )   마태복음이 지리적 윤곽을 따르는 마가복음의 궤도에서 일탈했던 중요한 출발점은 예 루살렘 이야기의 국면 끝에서 예수가 극적으로 갈릴리로 귀환한다는 점이 다 ( 28:16-20 ). 그래서 메시아의 사명은 원래 예루살렘 수난 이전에 사역을 시 작한 장소에서 다시 한 번 성공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마태의 이러한 “고 안”도 마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명확하게 두 번 ( 막 14:28; 16:7 ) 표시했던 부활하 신 예수와 제자들의 재결합이 갈릴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보 여 주는 것일 뿐이다.9  )   내 생각에 이야기의 지리적 윤곽을 따르는 것이 말로 표현된 단락 구분 표시를 찾는 것보다 내러티브 구조를 분석하는 데 더 만족스러운 방법인 것 같다 ( 사실 4:17과 16:21의 “형식”이 꼭 들어맞기는 하지만 ). 그래서 나는 주석의 목적으 로 전체를 주요 부분 여섯으로 구분했다. 목차에 나와 있는 개요에서는 주 요 단원 외에 더 중요한 작은 단원도 제시했는데, 작은 단원은 더 짧은 페리 코프로 나누어 주석했다. 이 작은 단원 중에 주요 강화 다섯 개, 즉 예수의 가르침 모음집이 있고 각 강화는 끝에서 앞서 말한 형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런 “강화”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서는 본 서론에서 다시 설명할 것 이다. 마태복음을 연속적 내러티브, 즉 고향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에 서 거부당한 일에 이르기까지 메시아가 지역적으로 이동했다가 결국에는 갈릴리의 승리 장면으로 마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연속적 내 러티브로 읽는 것은 단순히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자료를 얻기 위한 목적으 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읽어 그 힘을 깊이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이라는 용어가 시대착오 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독자로 예 정되었던 소수의 사람만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수는 이 복음서를 구전으로나 접했을 것이다. 요즘 널리 인정되는 것은 마가복음이 구전으로 소개되고, 아마도 단회적으로 소개되었을 것이 며 그 우수함 때문에 점차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걸작으로 인기를 누 8  )   내가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890-891쪽을 보라. 9  )   마태도 원래 자신의 복음서에 이런 끝맺음을 계획하고 썼을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1256쪽, 각

주 17을 보라.

35


마태복음

렸을 것이라는 점이다. 마태복음은 훨씬 길고 더 복잡한 작품이고, 예수의 가르침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상당히 긴 부분도 있기에 아무리 열의가 있 어도 한 자리에 앉아서 마태복음 전체를 한 번에 다 들었을 것이라고 상상 하기가 쉽지 않다. 마태복음의 단원 ( 강화일

가능성이 크다 ) 은

각각 별도로 구전

으로 공연하도록 고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이야기의 상이한 국면을 현 대의 텔레비전 연속극 같은 방식으로 한 이야기를 연속된 여러 에피소드로 나누어 보여 주는 것 역시 가능하다.10  )   하지만 그렇더라도, 세심한 청중은 내가 서술한 대로 플롯의 연속성과 힘을 알아차리고 이야기가 놀라운 결말 로 가까워지면서 극적 긴장감이 증가하는 것과 신학적 도전이 점점 강해지 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II. 갈릴리와 예루살렘 신약을 읽는 현대 독자는 1세기 팔레스타인의 지정학적 환경에 대해 아 는 것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보통 “유대인”이란 우리가 오늘날 “거룩한 땅”이라고 부르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미분화된 공동체로서 모두 가 똑같이 로마 통치의 정치적 압제에 대한 분노로 하나가 되었다고 추측 한다. 최근 신약 연구의 중요한 소득으로 이런 추측이 역사적 문화적 실재 에 대한 심각한 왜곡임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었다.11  )   특히 1세기 갈릴리가 솔로몬의 사망 이후 줄곧 그랬던 것처럼 남유다 지역과 결정적으로 구별되 는 역사와 정치적 위상과 문화를 지닌 구별된 지역이었다는 것도 이제는 널리 인정된다. 비록 남유다 지역에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동 일하게 예배하는 일에 자연스러운 충성을 느끼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있었지만 말이다. 예수 시대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단순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종적으로, 이전의 북이스라엘 왕국은 BC 8세기에 앗수르에게 정복된 이

래 더욱 혼합된 인구 집단이 되었다. 그 속에서

( 나사렛이나 가버나움 같은 )

더보

10  )   A. J. P. Garrow, Revelation, 특히 35-53은 (이보다 상당히 짧은) 요한계시록이 흥미진진한 구전

부분 여섯으로 고안된 것임을 증명하려고 했다. 마태복음도 비슷한 시도(혹은 의도)가 있지 않았 을까? 11  )   G. Vermes, Jesus, 42-57은 특히 마태복음 독자의 관심을 끈 것이 갈릴리의 독특함이었다고 본 다. 더 깊이 있는 내용은 S. Freyne, Galilee from Alexander to Hadrian; idem, Galilee, Jesus and the Gospels; R. A. Horsley, Archaeology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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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II. 갈릴리와 예루살렘

수적인 유대인 지역은 이방 도시에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 1세기에 이런 이 방 도시의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 문화 중심지인 디베랴와 세포리스다. 지리 적으로, 갈릴리는 비유대 지역인 사마리아에 의해 유대 지역에서 분리되어

있었고, 그리스인 정착지인 데가볼리에 의해 남동쪽에 있는 베레아와도 분 리되어 있었다. 정치적으로, 갈릴리는 BC 10세기 이래로 기간을 제외하고는 )

( 마카비 왕조의 “재통일”

거의 모든 역사에서 유대와 분리된 통치권 아래 있었다. 예

수 시대에 갈릴리는

( 아마도 )

지역 출신 헤롯 왕의 통치 아래 있었던 반면에,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은 AD 6년 이후에 로마 집정관의 직접 통치를 받았 다. 경제적으로, 갈릴리는 유대의 산악 지대보다 농업 자원과 어업 자원이 풍부했고, 일부 갈릴리인의 부유함은 남쪽 이웃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문화적으로, 유대인은 북쪽 이웃을 시골뜨기라며 경멸했고, 북쪽은 유대교

의 세련미도 부족했는데, 여기다 헬레니즘의 영향에 대한 개방 폭이 커서 격차는 더 심화되었다. 언어적으로, 갈릴리 사람들은 독특한 형태의 아람어 를 말했고, 부주의한 자음 사용 ( 그들은

h 발음을 빠뜨리고 발음했다! ) 은

유대인에게

유머의 대상이었다. 종교적으로, 유대인이 보기에 갈릴리인은 의식을 제대 로 지키지 않았고, 이 문제는 갈릴리 지역이 성전이나 예루살렘에 집중된 신학적 지도력과 거리가 먼 만큼 더 크게 악화되었다. 이해가 어렵다면, 한마디로 말해 아무리 흠잡을 데 없는 유대인이라고 해 도 갈릴리 출신으로서 1세기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면, 이질감을 느끼지 않 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사람은 마치 런던에 있는 아일랜드 사람이나 뉴욕 에 있는 텍사스 사람 같을 것이다. 그의 억양은 즉시 그가 “우리와 같지 않 다”는 것을 드러냈을 것이고, 추측건대 수도 예루살렘의 우월한 문화에 대 한 집단적 편견 때문에, 갈릴리 출신이라면 유대 고유의 명칭인 “메시아”는 두말할 것도 없고 선지자로 인정하기도 싫었을 것이다 ( 참고, 요 7:40-42 ). 이런 실제 사정을 인정하면 나사렛 예수가 자기 지역에서 야기했던 열광 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 또는

그때문에 )

남쪽 지역에서 확실히 “메시아”로 받아

들이지 못했던 장애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우리는 21장 1-11절, 특히 예수가 예루살렘 성 밖에 처음 도착한 이야기에서 이 요소에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이 요소는 이후 갈릴리 출신 선지자와 예루살렘 당 국자 사이에 발생한 대립에서 계속해서 전제 요소가 될 것이다. 마가복음의 지리적인 틀이 이 남북의 구별을 강조한다는 점은 오랫동안 인정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마가가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전하기 로 결정한 데는 단지 역사적인 근거만 아니라 신학적인 근거도 있다고 주 37


Matthew

본문과 주석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I 메시아 소개 ( 1:1-4:11 )

“메시아” 칭호 ( 번역본이라면

“그리스도” ) 가

1장 1, 16, 17, 18절, 2장 4절에서

눈에 띄게 반복된 것은 마태복음의 이 시작 단락에서 관련 칭호 ( “다윗의 자손”, 1:1, 20; “유대인의 왕”, 2:2 ) 가 수 ) 뿐

반복된 것과 더불어 마태가 역사적 인물 ( 나사렛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자에 대한 기

사를 제시하려는 의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태는 이스라엘에 대한 메시 아의 계시 이야기와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백성이 보인 방식에 대해 4장 17절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인데, 4장 17절에는 예수가 갈릴리에서 공 적으로 선포를 시작한 것이 나온다. 이 공적인 출현은 빛이 비친 것이 갈릴 리에서 일어나야 했던 이유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 4:12-16 ) 이야기의 첫 번째 주요 국면이 시작하고, 이 국면은 16장에서 갈릴리 사역이 끝날 때까지 계 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지점에 이르기 전에 마태는 긴 전문 ( preamble ) 을 두어 메시아를 소개할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관련된 여러 접근법을 사용하여 마태는 1장 1절-4장 11절에서 풍부한 장면과 반성을 엮어내고, 이는 한데 어우러져 나 사렛 예수의 오심 안에서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뜻이 구약 성경 과 이스라엘 역사 기록을 통해 선포되고 묘사되었다가 어떻게 정해진 성취 에 이르는지 독자가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부분은 예수 탄생 전후의 사건과 예수 스스로 선교 사역을 위해 준비한 것에 대한 다양한 내러티브 요소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전기적 정보가 아니라 성경의 빛 아래 마태가 이제 막 관련시키려는 이야기의 신학적 의의에 대한 지시자로 58


I. 메시아 소개 ( 1:1-4:11 )

드러난다. 1장 18절-2장 23절의 구조적인 기초를 형성하는 다섯 인용문이나 시작 장면보다 앞서 성경에서 유래한 명단이 나온 것처럼 성경에 대한 호소가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는 이야기가 서술되는 방 식 속에 엮인 경우가 더 많아 결국 그 중요성은 성경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암시를 파악하거나 적절한 결론을 끌어내는 독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이어 질 주석에서 나는 이 암시적인 자료를 설명하고,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탕에 놓인 성경 본문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것이다. 분명히 마태복음 저자는 성 경의 사건과 인물이 가진 중요한 특징뿐 아니라 더 모호한 부분까지 구약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비록 우리가 그 대다수를 어떠한 도움 없이 모 든 상세한 뉘앙스까지 인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저자는 자신의 독자 가 적어도 합리적인 성경의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느꼈다. 마태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 대부분이 글을 몰랐고, 심지어 글을 읽을 수 있 는 사람도 구약 성경 개별 두루마리에 접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 이다. 오늘날에도 인쇄된 구약 성경이 잘 구비되어 있지만, 마태복음 독자 대부분 마태가 성경에서 끌어낸 논지의 모든 세부 내용까지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만큼 본문을 충분히 이해했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가진 자가 더 갖게 될 것이고” 아마도 당시 마태의 문서는 단순히 홀로 작업할 대상이 아 니었고 표면상으로는 나사렛 예수의 초기 경험과 가족 배경에 대한 간단한 기사인 것처럼 나타날 수 있는 것과 관련하여 성경적 배경을 확인하는 일 을 기뻐하는 교사와 배우는 자처럼 교회 내에서 신학적 가르침을 위한 근 거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여러 장을 나누었던 단원 머릿글 ( 4-5쪽 목차를 보라 ) 은 이 서론의 다양 한 부분이 어떻게 상호 관련되고 함께 모여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하 나님의 아들도 되는 메시아에 대한 세련된 묘사에 이르게 되는지를 밝힌 다 ( 이

주제는 22:41-46에서 명시적으로 다시 거론할 것이다 ).

게다가 각 단원마다 나사렛

예수를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이해하게 특별히 기여한 부분에 대한 해석은 해당 본문의 서론에 나올 것이다.

59


마태복음

A. 메시아의 “기원의 책”( 1:1-17 )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 1)

도의 계보   라 2

아브라함 2) 이 이삭을 낳고 3)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 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 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 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 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 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 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 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 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 를 낳고 8 아사 4) 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 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 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 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 는 아몬을 낳고 아몬 5) 은 요시야를 낳고

The book of origin of Jesus the Messiah,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2  Abraham was the father of Isaac, and Isaac was the father of Jacob, and Jacob was the father of Judah and his brothers, 3 and Judah was the father of Perez and Zerah by Tamar, and Perez was the father of Hezron, and Hezron was the father of Ram, 4 and Ram was the father of Amminadab, and Amminadab was the father of Nahshon, and Nahshon was the father of Salmon, 5 and Salmon was the father of Boaz by Rahab, and Boaz was the father of Obed by Ruth, and Obed was the father of Jesse, 6 and Jesse was the father of King David. David was the father of Solomon by the wife of Uriah, 7 and Solomon was the father of Rehoboam, and Rehoboam was the father of Abijah, and Abijah was the father of Asaph, 8 and Asaph was the father of Jehoshaphat, and Jehoshaphat was the father of Joram, and Joram was the father of Uzziah, 9 and Uzziah was the father of 1

1  )   70인역 창 2:4에 하늘과 땅의 “기원에 관한 기사”(개역개정, “내력”)와 70인역 창 5:1에 아담의 “후손 목록”(개역개정, “계보를 적은 책”)에 Bi,bloj gene,sewj가 나온다. 이 어구는 70인역의 다른 본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본문에서 사용된 것은 의도적으로 창세기 시작 부분과 공명을 이루기 위 함이다. 2  )   마태의 목록은 구약 성경의 인명을 보통 70인역에 나오는 명칭으로 쓴다(70인역에 여러 사본이 존

재함에도). 이 책의 사역에는 히브리어를 반영하여 더 친숙한 형태로 된 영어 인명을 사용했는데, 이는 ‘아사’와 ‘아몬’을 제외하고(아래 각주를 보라) 구약 성경을 통해 알려진 것이다. 3  )   마태가 사용하는 동사 genna,w(룻 4:18-22 같은 구약 족보 몇 가지의 용어 사용을 반영)는 출산 과 정에 남성이 수행하는 역할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족보 형식에서는 이 단어가 반복되면 8절 같은 경우 삼대를 건너뛴 것을 포함하여 직접 관계가 부정될 수도 있다. 이 족보가 어느 정도까지 생물학적 후손에 관한 기록으로 의도된 것인지, 그리고 공식 (왕족) 지위는 어느 정 도나 인정할 수 있는지는 아래의 논의를 더 보라. 4  )   본문상의 증거를 보면 마태가 7절과 8절에서도 VAsa,f 형태를 사용했음이 강하게 암시된다. 시편 기자 아삽을 아사 왕과 연결하는 것에는 역사적 근거가 없지만, 마태(혹은 그의 자료)는 이름이 비 슷하다는 점이 이를 암시한다고 본 것 같다.

60


I. 메시아 소개 ( 1:1-4:11 )  A. 메시아의 “기원의 책”( 1:1-17 )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

는 여고냐 6) 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

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 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 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 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 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 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 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 았으니 마리아에게서 7) 그리스도라 칭 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

Jotham, and Jotham was the father of Ahaz, and Ahaz was the father of Hezekiah, 10 and Hezekiah was the father of Manasseh, and Manasseh was the father of Amos, and Amos was the father of Josiah, 11 and Josiah was the father of Jeconiah and his brothers at the time of the exile to Babylon. 12  After the exile to Babylon Jeconiah was the father of Shealtiel, and Sheal-

tiel was the father of Zerubbabel, 13 and

Zerubbabel was the father of Abiud, and

Abiud was the father of Eliakim, and Eliakim was the father of Azor, 14 and Azor

was the father of Zadok, and Zadok was

the father of Achim, and Achim was the father of Eliud, 15 and Eliud was the father

5  )   7-8절의 A v sa,f처럼, 본문상의 증거는 마태가 여기서 A v mw.j를 사용했음이 암시되어 므낫세의 평 범한 아들 아몬이 아니라 선지자를 생각나게 만들지만, 물론 역사적 연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 부 70인역 사본은 왕에게 A v mw.j를 사용하지만, 이는 마태의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6  )   마태는 70인역을 따라 Iv econi,aj라는 이름을 쓰는 데, 이 이름은 간혹 구약에서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의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렘 24:1 등; ‘고니야’라는 축약된 형태로도 나온다, 렘 22:24 등). 아마 ‘여고냐’가 본명이고, ‘여호야긴’은 존호였을 것이다. 여고냐는 마태 자료의 원천으로 추 정되는 히브리 성경과 70인역 대상 3:16-17 족보에 ‘여고냐’라는 방식으로 표기되어 있다. 70인역 의 경우 여호야김(마태 족보 목록에서 생략된)과 여호야긴을 구별하지 못하고, 양자 모두 Iv wakim 이라 기록한다. 따라서 Iv econi,aj는 70인역에서 이 왕을 지칭하는 유일한 이름이다. 몇몇 후대 사 본과 역본(q S f1 등)은 요시야와 여고니야 사이에 여호야김을 추가하기도 한다. 7  )   이 번역은 예수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출생한 것과 앞의 모든 세대가 남성의 관계로 표현 한 것 사이에 마태가 신중한 구별을 둔 것을 그대로 보존하려 했다. 여성 대명사 evx h-j는 영어의 성 이 없는 관계사가 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이 요지를 전달하고, genna,w의 수동태는 지 금까지의 이 목록 양식을 뚜렷하게 파괴해서 “세대”의 유형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evk는 3-6 절에 언급된 네 어머니에게 사용된 형식을 이용한 것이다. 사본과 역본을 불문하고 요셉이 예수 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데 합의하고 있으며, 유일한 예외가 시나이 시리아 역본인 데, 여기서는 “처녀 마리아가 약혼한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고 읽는다. 이 역본이 마리아를 요셉에 게 “약혼한” 것으로 그리고 “처녀”인 것으로 언급한 것은 번역자/필사자가 이어지는 이야기를 알 고 있음을 보여 주고, 그가 요셉에게 동사 “낳았다”를 쓴 것은 그래서 요셉이 생물학적으로 부성 을 가진 것인지 단언하려는 의도적인 욕망이 아니라 의도 없이 정형화된 형식을 반복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참고, B. M. Metzger, Textual Commentary, 2-7. 헬라어 본문에 문제는 없고, 가장 중요한 이독은 일부 고대 라틴어 역본과 소수의 헬라어 사본이다. w-| mnhsteuqei/sa parqe,noj Maria,m evge,nnhsen VIhsoun…. 이는 교묘하게 예수의 초자연적 임신을 더 강조하려고 했다. 이 이 독은 시나이 시리아 역본의 어법과 가까워서 그 자료였을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J. Nolland, CBQ 58 (1996) 665-673을 보라.

61


마태복음

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 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 지 열네 대더라

of Eleazar, and Eleazar was the father

of Matthan, and Matthan was the father of Jacob, 16 and Jacob was the father of

Joseph the husband of Mary who was the mother of Jesus who is called the Messiah.

So there were fourteen generations in all from Abraham until David, and fourteen generations from David until the exile to Babylon, and fourteen generations from the exile to Babylon until the Messiah. 17

마태복음의 처음 두 단어는 문자적으로 “기원의 책”( 개역개정, 8  )

한다 ( 위의 각주 1 참고 ).

“계보” ) 을

유대인 독자에게 미친 영향은 요한복음 도입 어구인

“태초에……”와 견줄 만하다. 성경의 성취라는 주제는 극히 초기부터 알려 졌고, 이 도입 어구는 지금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성취 라는 이 특별한 관념은 복음서의 모든 곳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 니지만, 예수가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어떻게 절정으로 이끌었는가에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세계사의 시작을 알리는 이 짧은 울림은 아마 도 특별히 예수의 출생으로 귀결될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동에 비추어 보면 이를 충분히 생각하기를 바라는 이에게 한층 암시적인 차원을 더한다.9  )   마태의 “기원의 책”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 의 자손” 메시아가 올 때까지 하나님 백성의 역사에 대한 실제적인 개관이 다. 마태는 각각 14대씩 조화롭게 셋으로 나눔으로써 역사의 완성을 강조 하며,10  )   실제 역사를 이 양식에 맞추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은 저자 로서 이것이 통계 조사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 되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반성임을 암시한다. 이제 준비 기간이 마무리되었 고, 이 단계는 약속된 메시아의 도래 가운데 성취의 때가 동트기 시작한다 8  )   이미 AD 1세기 무렵 모세의 첫 번째 책(창세기)에 사용한 헬라어 제목이 Ge,nesij였다는 증거에 대

해서는 Davies & Allison, 1:151을 보라. 9  )   W. D. Davies, Setting, 67-73는 새 창조에 관한 주제가 도입 어절뿐만 아니라 1장 전체에서도 암 시되고 있음을 찾아냈다. J. Nolland, NTS 42 (1996) 463-471는 회의적이지만 마태가 족보의 1:1, 18에서 ge,nesij를 사용한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 두 용례는 창세기를 암시하거나 새 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 5:1에서 ge,nesij가 기능하는 것처럼) 틀을 형성한 것이다. 10  )   참고, m. ’Abot 5:2에 나온 관찰. 여기서는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10 대다. 마태가 균형 잡힌 구조, 특히 셋씩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나의 Matthew:

Evangelist, 130-132를 보라.

62


I. 메시아 소개 ( 1:1-4:11 )  A. 메시아의 “기원의 책”( 1:1-17 )

는 것을 보여 준다. 마태가 족보를 14대씩 셋으로 나눈 것이 단순한 역사 관찰의 문제가 아 니라는 것은 관련 실제 역사 기간의 측면에서 세 기간 사이의 불균형으로 드러난다. 아브라함이 살았을 시기에 대해 논쟁이 되고 있지만 아브라함이 적어도 다윗보다 7-8백 년 전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족장이 장수 한 것으로 보고된 것을 고려하더라도 14대를 채우기에는 긴 기간이다. 다 윗부터 포로까지 약 400년이며, 앞으로 보게 될 것처럼 심지어 이렇게 상대 적으로 적절한 기간도 14대에 맞추느라 누락시킨 역대 왕조 계승자도 겨우 네 명뿐이다. 포로부터 예수 탄생까지 추가로 600년이 걸려서, 결국 마태복 음은 이 기간 전체에 13명의 이름을 써서 다시 한 번 “세대”가 너무 길어져 개연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 같은 기간에 누가복음이 22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 ). 일부 다 른 성경 족보처럼, 마태의 목록도 선별한 것으로 보이고, 14대씩 3분하는 구도도 통계 기록이라고 볼 수 없는 다른 작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4대씩 3분하여 나누는 효과는 다윗 시대와 포로 시대에 두 번 있었던 전환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윗이 “왕”( 6절 ) 이었다고 언급한 것은 이렇게 구분한 것이 갖는 의의를 암시하는데, 이 부분은 이 목록의 중 심 부분으로서 다윗의 영도 아래 이루어진 통일 왕조의 설립과 바벨론 포 로기 유다 왕조의 마지막 소멸을 잇고 있다. 그래서 다윗과 여호야긴은 유 다 왕조의 첫 왕과 마지막 왕을 대표하며 (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는 왕하 24:17에서 진정한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유다 왕조와 관련 없는 잉여로 취급된다 ),

그들의 역사

적 왕위 계승이 족보 목록의 중심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마태는 이것 이 왕실 목록임을 알리면서, 실질적으로 왕조가 쇠퇴했지만 이 왕실 계보에 서 메시아가 출생함으로써 예정된 “다윗의 자손”에 이르기까지 왕위 계승 이 계속되었을 개연성을 암시한다. 이 핵심이 10절 이하에서 어떻게 유지 되는지 보게 될 것이다. 다윗부터 여호야긴까지 14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마태는 구약 역사에 기 록된 5명의 실존했던 왕을 생략했다. 마태는 함하여 )

( 권력을 찬탈한 왕의 모친 아달랴까지 포

아하시야, 요야스, 아마샤를 생략하여 요람에서 웃시야로 바로 연결

한다. 그리고 요시야와 여호야긴 사이에서 형제인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을 생략한다. 앞의 생략은 아하시야와 아사랴 ( 웃시야 ) 의 헬라어 이름이 혼동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11  )   또한 뒤의 생략은 여호야김과 여

11  )   마태가 요람 다음에 기록한 이름인 VOzi,aj는 히브리 이름인 웃시야를 70인역 표기 방식에 따라

63


마태복음

호야긴의 이름이 비슷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 70인역은 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위 각주 6을 보라 ).

반면에 여호야김의 형제 여호아하스는 겨우 3개월을 통치했으

며 분열 “세대”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간 단락에 “열넷”이라는 수가 형성된 원인을 다행스러운 두 사건 때문인 것으로 설명해도 12  )   세 부분이 평등한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첫 번째 부분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포함하여 이름 열넷이 나온다. 두 번째 부분도 다윗을 다시 포함시키지 않을 때 이름이 열넷이 되지만, 여호야긴 이후로 요셉까지 는 이름이 열둘뿐이다. 그래서 심지어 마리아의 아들을 넣더라도 여호야긴 을 다윗처럼 두 번 세지 않을 경우 세 번째 부분은 13세대뿐이다.13  )   만약에 17절에 나오는 마태의 관찰이 단순한 수학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면, 혹시 “열넷”이라는 수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어 마태가 이렇게 구조상 균형을 이루기 위해 세대 수를 열넷에 맞출 정도로 가치를 지닌 것인가? 14  )   이것은 히브리어 철자가 나타내는 수의 가치에 의존하는 유대식 해석 기 법 게마트리아의 사례라고 심심치 않게 설명되었다. “다윗”이라는 이름 ( 목록 에 있는 14번째 이름 ) 은

세 개의 히브리어 자음 DWD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가진 수의 값은 각각 4, 6, 4로 모두 더하면 14의 숫자가 나온다. 그러므로 14는 다윗을 상징하는 수다. 헬라어 마태복음의 독자는 이 모든 수의 상징 을 인지하기 위해 히브리 수비학에 대한 꽤 복잡한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간혹 히브리어 문자나 헬라어 문자를 포함하여 유대교와 초 기 기독교 문헌에 게마트리아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지만,15  )   이는 보통 기록한 것이다. 반면 같은 왕의 다른 이름인 아사랴는 Azaria로 표기한다. 요람의 친아들 아하시 야는 70인역에서 Ocozia로 나오는데, 이를 Oziaj로 잘못 읽은 것 같으며, 일부 70인역 사본에도 실제로 이렇게 나온다. M. D. Johnson, Genealogies, 181-182는 70인역 본문상의 혼동을 근거 로 3명의 왕이 빠져 있는 것은 원래 우연한 일이었지만, “그 사건으로 오히려 전화위복되어” 결 과적으로 마태의 열넷-도식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12  )   마태가 이념적 이유로 악행을 일삼은 왕을 일부 누락했다는 주장(예, M. D. Goulder, Midrash, 229)을 보면, 요아스의 경우 종교적 정화 작업(왕하 11:17-18)으로 자신의 통치를 시작하고 성 전 쇄신(왕하 12:4-16)도 주요 업적으로 알려졌으나 배제된 반면, 악명 높은 므낫세가 이 목록에 보존된 사실을 보면 적절하지 않다. 훨씬 개연성이 떨어지는 관점은 생략의 동기를 아합 집안에 대한 저주로 보는 것인데(왕상 21:20-22), 이 저주가 아합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 랴를 거쳐 4대에 이르도록 유다 왕실에 영향을 미쳤다고 믿는다. 13  )   H. C. Waetjen, JBL 95 (1976) 209-215는 “예수 그리스도가……족보의 세 번째 묶음에서 13대 와 14대 세대를 대표한다”라고 주장한다(214). 이 의견은 스텐달(K. Stendahl)에게서 나온 것인 데, 이를 D. Johnson, Genealogies, 221-223이 논하고 있다. 14  )   여러 주장에 관한 연구 조사로 M. D. Johnson, Genealogies, 189-208을 보라. 15  )   가장 분명한 신약 성경 사례는 계 13:18에 나타나는 숫자 “666”인데, 이에 대한 한 가지 인기 있 는 해석은 이것이 ‘네론 카이사르’의 헬라어 이름 철자를 히브리 문자로 썼을 때의 값으로 환산 하여 모두 합산한 수라는 해석이다. Barn 9:8은 아브라함의 용사 318명(창 14:14)을 표현한 3가

64


II 갈릴리: 말씀과 행위로 드러나는 메시아 ( 4:12-16:20 )

1장 1절-4장 11절에서는 예수를 나사렛 출신이며 이스라엘의 메시아이 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풍부한 성경 인용과 암시를 통해 다양한 예언 주제와 예표론적 연결이 드러났고, 이것들은 한꺼번에 예수의 도래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래도록 품은 의도를 성취할 때가 왔음을 알린다. 예수가 등장한 장면은 세례 요한의 열광적인 부흥 운동이 있던 상황이었고, 예수는 요한의 사역을 하나님이 약속한 실질적인 심판과 구원의 시대로 이 끌 바로 그분으로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광야에서 겪은 준비 기간은 하나님 의 아들인 그의 신실함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드디어 메시아 사역이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된다. 마태는 2장처럼 성경을 근거로 이 사역의 지리적 상황이 어떠한지를 설 명한다.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갈릴리가 나와야 한다 ( 4:12-16 ). 하지만 마 태복음 2장 5-6절에서 제사장과 서기관이 표현한 관점과 요한복음 7장 41-42, 52절에서 인용한 유대인의 견해에 따르면 표준적인 시각에서는 갈 릴리가 부정된다. 따라서 갈릴리와 그 주변 지역이 메시아가 사역을 펼치는 장이 되고, 이것이 거의 복음서의 절반을 차지하다가 16장 13-20절에 가서 빌립보 가이사랴 ( 아마도 예수가 다닌 것으로 기록된 장소 중에 최북단일 것이다 ) 에 가까워지 면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간혹 예수가 갈릴리 바깥으로 이동하는 경우 도 있지만 ( 8:28-34; 184

아마 14:13-21; 15:21-39; 16:13-20 ),

줄곧 북쪽에 머물러 있게 된


Ⅱ. 갈릴리: 말씀과 행위로 드러나는 메시아 ( 4:12-16:20 )

다. 16장 21절에서만 예수는 유대를 향해 출발하는데, 거기서 마태복음의 절정을 이루는 장면이 있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28장 16-20절에서 갈릴리 로 승리의 귀환을 할 것이다. 내러티브는 16장 21절부터 28장 15절까지 북 에서 남으로 편도 여행을 했다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한 주간 절정을 이룰 것이다. 그에 반해 마태복음의 갈릴리 단원에는 명확하게 규정된 시공간적 틀이 없고 ( 그래도 일부 단원에서는 일관성 있는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 전반적으로 북쪽에 서 특정되지 않은 시기에 대부분 공적인 활동으로 보이는 것을 내용으로 의도된 사건과 가르침의 모음집을 이룬다. 이 단원에서는 예수가 전반적으 로 자기 고향 지역 안팎으로 사역을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16장 21절 부터 예수는 남쪽으로 가서 유대 영역으로 들어가 예루살렘 권위자와 만나 그의 사역을 역설적인 절정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이 북쪽 단원은 마태가 기록한 예수의 말과 행동의 대 부분을 차지하고 특별히 공적인 상황으로 보이는 경우는 그 자리를 찾아야 한다. 마태는 이렇게 이질적인 자료를 배치하는 데 고유의 방법을 가졌다. 마태의 강화 모음 다섯 중에 셋 ( 39-41쪽을 보라 ) 이 이 단원 ( 5-7, 10, 13장 ) 에 나온 다. 이 중 첫 둘 사이에 예수의 권위 있는 행동을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구 성한 모음집이 나온다 ( 8-9장;

해당 단원 서론을 보라 ).

그래서 마태복음의 갈릴리

단원 첫 부분은 명확한 구성도가 나온다. 4:18-22

처음 제자들을 부르심, 핵심 청중을 구성

5:1-7:29

제자도를 가르침, 메시아의 권위를 드러냄

8:1-9:34

메시아의 권위를 드러내는 행위 모음집

9:35-10:42

메시아의 권위를 제자들과 나눔

그 후 일부 의도적인 양식과 전개를 확인할 수 있지만 ( 11:2-16:20에 단원 머리글을 보라 ),

내가 붙인

포괄적인 구도를 보여 주는 징표는 없으며, 간혹 자료가 거

기 위치한 것이 단순히 마태가 공적 사역의 북쪽 시기 내에 둘 만한 곳을 발견했기에 거기 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 단원 전체가 대체로 마가복음 기사의 첫 주요 단원 ( 막 1:14-8:30 ) 에 대응 하지만, 몇 가지 지점에서 비마가 자료를 상당한 규모로 확장하기도 했다. 마가복음의 갈릴리 단원에는 가르침이 나오는 핵심 부분이 하나뿐이고, 4장에 나오는 비유 강화는 해당 단원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서 예수가 하나 님 나라를 선포한 것이 갖는 함의나 그로 인한 반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185


마태복음

기회를 준다. 마태복음 13장은 마가복음 4장을 상당히 확장한 것이면서, 11-12장에 기록된 예수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따라 비슷한 목적에 기여한 다. 그러나 마태는 이 단원의 도입부 ( 5-10장 ) 를 신중하게 구성해서 예수의 권위가 갖는 인상을 상당히 강화했고, 그래서 비유 강화에 이를 때 생각할 거리를 더 충분하게 허락한다. 이 효과를 누리기 위해 마태는 상당 부분의 강화를 거의 전체적으로 비마가 자료를 토대로 구성했을 뿐만 아니라 ( 5-7장 ) 8-9장에서는 주로 마가의 두 단원 ( 막

1:29-2:22; 4:35-5:43 ) 을

조심스럽게 엮어

서 마가와 공통되는 내러티브 페리코프를 대규모로 재조직하기도 했다.

186


Ⅱ. 갈릴리: 말씀과 행위로 드러나는 메시아 ( 4:12-16:20 ) A. 갈릴리에 빛이 비치다 ( 4:12-17 )

A. 갈릴리에 빛이 비치다 ( 4:12-17 )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 1) 을 들으시 2) 13

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 3) 에 있 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 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 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 4) 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 5) 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6)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

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7) 천국이 가까이

When Jesus heard that John had been arrested, he withdrew to Galilee. 13 He left Nazareth, and went and settled in Capernaum, beside the lake in the territory of Zebulun and Naphthali. 14 This was to fulfill what had been declared through Isaiah the prophet, who said, 15  “Land of Zebulun and land of Naphthali, the way of the sea, beyond the Jordan, Galilee of the nations: 16  the ‌people who sat in darkness have seen a great light, and ‌on those who sat in the land of the shadow of death light has risen.” 17  From that time Jesus began to pro12

1  )   paradi,dwmi(“넘겨주다”)는 주어도 없고 그가 무엇을 넘겨받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14:3-4에서 설명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위협적인 동사(예수의 체포와 유죄 선고의 연속 사건에 빈번하게 사용될)는 위험의 의미를 충분하게 전하고 있다. 2  )   마태가 위험한 곳을 빠져나오는 데 avnacwre,w를 자주 쓰는 것에 대해 2:14(“도망치다”; 참고, 2:22,

“안전하게 떠났다”)의 경우 115쪽, 각주 135를 보라. 여기서 요한에 대한 안디바의 적개심은 요한 의 “승계자”라면 요단강 곁에서 요한 운동 가운데 있는 것보다 노출이 적은 곳으로 떠나는 것이 현 명함을 암시한다. 그리고 예수가 체포에 대해 “들었다”고 말한 것은 이 소식이 예수 운동에 영향을 미쳤음을 말한다. 3  )   문자적으로 “바다.” 아래 13절 주석을 보라. 4  )   이 히브리어 숙어는 아마도 “바다를 향하여”일 것이겠지만, 마태는 70인역을 문자적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 같다. 아마도 가버나움을 거치는 주요 도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주 석을 보라). 5  )   마태가 재현하는 70인역 구절은 문자적으로 “죽음의 땅과 그늘”이다. 이것은 히브리 숙어 ‘에레 츠-찰마베트’를 말하는데, 전통적으로 “죽음으로 그늘진 땅”으로 번역되지만, 현대 역본은 “깊은 흑암의 땅”이나 “죽음처럼 어두운 땅”을 선택한다. 6  )   마태의 그리스어 역본은 불필요한 auvtoi/j를 추가하여 히브리어 구문을 반영하지만, 70인역은 절 전체를 2인칭 화법으로 두고 흑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evfV u`ma/j 가 나온다. 7  )   고대 라틴어 역본 하나와 복수의 고대 시리아 역본이 metanoei/te(그리고 이어지는 ga,r)를 빠뜨렸 다. 헬라어 사본의 경우 모두 이 단어가 나온다(하지만 헬라 교부 몇은 이를 빼거나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일부 사본에는 이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일에 이것이 3:2에 근거한 공관복음 조화를 위한 추가라면 상당히 초기부터 있던 셈이다. 비평가는 대부분 이것을 원본이라고 결론 내린다. 누 락 자체가 흥미로운데, 세례 요한의 설교가 부정적인 것을 감안하여 예수의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차별화하려는 시도였을까? 10:7에서 사도들이 전하는 유사 메시지에도 회개의 요청이 빠져 있다.

187


마태복음

claim this message,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has arrived.”

왔느니라 8) 하시더라

마태는 마가보다 더 신중하게 지리적 장면을 배치한다. 둘 다 예수가 나 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물러갔다고 하지만 9  )   마태는 여기에 인용-형식을 하나 더 사용해서 신학적 의의를 부여한다. 이렇게 마태가 이사야 9장 1-2절을 가리킨 효과는 갈릴리를 도피처로 여기게 만드는 것으로 이는 결 국 유대에 자리 잡게 될 흑암에 반대된다. 예수의 선포에는 새벽 여명이 전 해지고, 이어 복음 단원이 시작하며, 갈릴리 주위로 본질적으로 빛과 소망 이 되는 이가 있어서 마치 모든 백성에게 빛이 비치고 백성은 이에 기쁨으 로 응답하는 것 같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이해관계로 인해 이 분을 환영하지 못하는 적대가 일부 있을 것이다. 갈릴리는 열정적인 사역으로 출 발하고 발전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 유대의 갈등과 거부가 있은 후에 온 세상에 이를 것 이다, 28:16-20 ).

본문이 비록 앞부분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예수의 메시아 사

역이 이스라엘을 넘어 확장될 것이라는 암시가 나오고, 이는 이사야의 표현 “이방의 갈릴리”에도 나온다. 17절에서 새 단원이 시작한다는 관점은 17절 주석을 보라. 17절은 전환 구절로서 선행하는 갈릴리의 새벽 여명 ( 4:13-16 ) 뿐만 아니라 후행하는 4장 18절-16장 20절에 배치된 갈릴리 선포 전체에도 관련된다. 18절에는 분명 히 새로운 내러티브의 시작이 나오고, 그래서 17절을 그 자체로 독립한 단 락으로 둘 것인지 아니면 12-16절의 갈릴리 계획에 연결된 것으로 인정하 고 같은 도입 단락 내에 포함시켜 전반적인 개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볼 것 인지 정해야 한다. 후자로 둘 경우 얻을 것이 더 많아 보인다. 12절 이번에도 ( 참고,

3:1 )

마태는 3장 1절-4장 11절의 사건과 예수가 갈릴

리로 돌아온 사이에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 또 여기에 서술된 복귀를 촉발했던 요한의 체포 시기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 14:3-4를 보라 ). 복음서 뿐만 아니라 요세푸스도 요한의 공적 사역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예수가 한동안 남쪽에 머문 것도 요한복음 3장22절, 4장 1-3절에서 말한다. 요한과 예수 사이의 연속성이 여기서 만들어진 연결로 확인되지만 그럼 8  )   hg ; giken의 의미는 137쪽, 각주 3과 3:2 주석을 보라. 9  )   마가는 여기서 단순히 갈릴리를 언급하기만 하고 이야기가 호숫가 지역에서 전개될 때 독자는 예 수가 이제 가버나움에 정착했다고 알아서 추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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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갈릴리: 말씀과 행위로 드러나는 메시아 ( 4:12-16:20 ) A. 갈릴리에 빛이 비치다 ( 4:12-17 )

에도 불연속성에 대한 명확한 느낌도 있는데 새로운 위치에서 다른 새 사 역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 “물러남”( 위 각주 2를 보라 ) 은 어느 정도 정치적 지 혜 문제였다. 요한과 안디바 사이의 갈등의 관점에서 ( 요한이 안디바의 베레아 영토 내에 위치했을 개연성에 대해 3:1 주석을 보라 )

요한의 “계승자”도 같은 지역에서는 안

전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고, 요세푸스가 말하듯이 ( Ant .

18.118 ),

안디바가

세례 운동을 잠재적인 선동의 근원으로 보았을 경우 특히 그랬다. 물론 갈 릴리도 안디바가 다스렸으나 순회 설교자가 갈릴리 촌락을 다니는 것은 요 한의 활동 거점이 요단강 근처인 것에 비해 뚜렷한 표적이 될 가능성도 작 았다. 요한의 운명에 대한 소식은 14장 13절에서 다시 예수를 “물러나도 록” 만들 것이다. 13절 예수는 자리를 옮겨서 ( ‘카탈레이포’와 ‘카토이케오’가 조합된 것은 새로운 고향을 찾아 떠날 것을 결심했음을 암시한다 )

다소 멀리 떨어진 언덕 마을에 있게 되는데, 여기서

예수가 성장하여 ( 나사렛에 대해 2:23 주석을 보라 ) 10  )   주변에 번창하는 마을이 많은 호숫가 붐비는 성읍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은 주로 갈릴리 호수의 어업에 의존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더 대중적인 선포 강단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동네 소년으로 유명인이 될 경우 의심을 사는 일도 피할 수 있었 다 ( 13:54-58

주석을 보라 ).11  )   마태는

나사렛으로 한 번만 귀환한 것으로 기록하

지만 가버나움과 이웃 호숫가 공동체는 갈릴리 사역 대부분의 배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예수가 그렇게 많이 있기를 원하던 가버나움 마저 11장 23-24절에서는 완고함으로 질책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가버나움은 북서쪽 호반의 중요 정착지였고, 거기에는 백부장 ( 8:5 ) 과 세 관 ( 9:9 ) 도 있어서 지역 행정 중심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1세기 인구는 아마 1만 명 정도 되었을 텐데 12  )   이는 나사렛보다 상당히 큰 수였다. 가버나움 에 로마 관리가 상주하고 있었으나, 원래는 전통적으로 유대인 마을이었고, 서부 호반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신흥 헬라 도시 디베랴와는 무척 10  )   신약 본문에는 이름의 형태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이형이 존재한다. Nazara,라는 형태가 본문과 눅 4:16에서 상당히 입증되고 Nazare,t나 Nazare,q 같은 알려진 이형도 분명히 존재한다(M. D. Goulder, NovT 45 [2003] 366-371을 보라). 셈어 어미의 음역 부분에서 비슷한 이형이 나오는 것에 대해 BDF 39(2)를 보라. 참고, B. D. Chilton, God in Strength, 311-312. 11  )   G. D. Kilpatrick, JSNT 15 (1982) 3-8은 마가복음을 가지고 예수가 가버나움에 살러 간 것이 나

사렛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과도 단절하기로 결심했음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서 마태복음 에서 이 관점의 확증을 찾아내는데, 특히 본문이 그에 해당한다(앞의 책, 8-9). 12  )   마이어스(E. M. Meyers)와 스트레인지(J. F. Strange)는 식별 가능한 건물 지대와 거주 밀도를 기 초로 12,000-15,000명으로 추산한다(Archaeology, 58). 다른 이는 신중하게 1,000명 정도의 낮 은 추산치를 보여 준다. Keener, 145, n. 210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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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달랐다. 누가와 요세푸스가 갈릴리를 “호수”라고 정확히 말하지만, 마태와 마가와 요한은 계속해서 이 내륙의 담수호를 “바다”라고 부른다 ( 구약 나오는 이름 ‘얌-킨네레트’를 반영한 것, 민 34:11 등 ). 보라 ) 과

하지만 내 번역 ( 15절은

성경에

제외, 아래 주석을

주석에서는 현대 독자라면 “호수”라고 쓰는 것이 오해를 줄일 것이

라 여겼다. 정복 이후 전통적인 지파 배치에서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는 갈릴리 호수 와 지중해 해변을 따른 아셀 영역 사이를 공유했다. 호반 지역은 원래 납달 리의 땅이었으나 나사렛은 스불론 땅이었다. 하지만 지파 영역이 신약 시대 에 와서는 실질적인 타당성이 거의 없어졌다.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되풀 이 하느라 두 지파를 한꺼번에 말하고 있다. 14-16절 이 페리코프에 중심 강조점이 다시 성경의 “성취”로 모인다. 예

수가 가버나움으로 이동한 것이 마태복음에서 무척 긴 인용-형식의 신호가 된다. 인용-형식에 대해서는 1장 22절 주석, 특정 선지자에게 귀속되는 것 에 대해서는 2장 17절 주석을 보라. 마태는 이사야 8장 23절-9장 1절 ( 역본 9:1-2 ) 을

축약 인용하여 70인역보다 히브리어 본문에 더 가까운 형태를 보여

주지만, 두 본문 중 어느 한 가지 의미가 충분히 반영된 것은 아니다.13  )   70인역처럼 인용문 첫 행의 동사를 모두 누락시켜 지리 용어만 연달아 나 와 상황을 제시하지만 이어지는 문장과 문법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는 “흑암에 앉은 백성”의 정체를 확인해 준다. 마태의 축약은 지리 용어에 초 점을 두고 있으며, 이는 나사렛보다는 예수의 새 고향인 가버나움에 적절하 다 ( “해변 길”에 주목하라 ). 이는 또한 예수가 갈릴리에 있다는 것과 새벽 여명사 이의 연결도 강조하는데, 이사야의 문맥에서 “우리에게 태어날” 아이 “기 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 라 불릴 아이의 위대한 메시아 예언에 서곡이 된다. 그리고 이 예언은 의외 로 신약 성경에서는 직접 언급된 사례가 없다.14  )    13  )   G. M. Soares Prabhu, Formula-Quotations, 86-104는 인용문이 히브리어 본문, 70인역, 탈굼 역본 본문과 관련해서 갖는 본문상의 특성을 힘겹게 탐구했다. 소아리스 프랍후는 결론 내리기를 “특히 기독론에 맞추어 번역한 것인데, (원-마소라) 히브리어 원본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지만, 언어만큼은 70인역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R. Beaton, Isaiah’s Christ, 110(자신의 본

문 분석에 의존하여, 앞의 책, 97-102)은 “마태의 인용문 4:15-16은 아마도 문맥과 지나치게 어 울려서 어느 정도 편집 작용이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결론 내린다. M. J. J. Menken, Matthew’s Bible, 15-33은 (자신의 전반적인 논지에 따라) 70인역 본문에서 일탈하는 현상은 마태가 (가설 적인) 종전 70인역 개정판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데, 이 개정판은 그리스어를 히브리 어에 더 가깝게 동화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는 것이다. 14  )   W. Carter, JBL 119 (2000) 513-518은 마태가 이 본문을 선택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사 7-9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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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갈릴리: 말씀과 행위로 드러나는 메시아 ( 4:12-16:20 ) A. 갈릴리에 빛이 비치다 ( 4:12-17 )

이사야의 지리 용어는 흥미로운 질문을 낳는다. 마태가 분명히 “바닷길” 을 갈릴리 호수와 연관 짓지만 ( 그래서 마태가 가버나움을 문자 그대로 “바다 곁에” 있는 것으 로 묘사한 것 ),

더 가능성이 큰 것은 이사야가 다메섹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주

요 경로를 언급한 것이고 이는 갈릴리 호수 북서쪽 호반을 따라 달리다 가 버나움을 지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 길이 이사야 시대에 “바닷길”로 알려진 것이었다면 ( 로마인은

후에 이를 ‘비아 마리스’[“바닷길”]라고 불렀다 ),

이 “바다”는

지중해였을 것이다. 이사야 본문에 나오는 세 용어인 “바닷길, 요단 너머, 여러 나라 ( 이방 ) 의 갈릴리”는 서로 병렬로 나열되지만, “스불론과 납달리의 땅”과 대조를 이룬다. 마태의 축약에도 이 네 용어가 병치된다. 물론 “요단 너머”는 이 강 어느 쪽에서 말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통 팔레스타인 관점에 서 25절처럼 동쪽을 의미할 것이지만, 여기서 마태는 분명히 본문이 서 쪽 ( 스불론과

납달리의 영역 ) 15  )  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거기에 가버

나움이 있었다. 그렇다면 마태는 이사야가 팔레스타인 관점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침략자 앗수르의 관점에서 말한 것으로 이해했을까? 관련 문제가 19장 1절에 나온다. 해당 주석을 보라. 이에 근거해서 마태의 복음이 트랜 스요르단에 기원을 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16  )   마태가 4장 25절 ( 그리고 아마도 19:1에서도 ) 에서

이 본문을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면 이사야를 인용한 본

문에 들어간 한 어구에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지우는 셈이다. “여러 나라 ( 이방 ) 의 갈릴리”는 이 지역이 주변 이방인에게 크게 개방되어 있음을 반영하고 아마도 특별히 앗수르인이 정복 전후로 ( 왕하

15:29; 17:24-34 )

갈릴리에서 이스라엘인을 이주시켜서 이방 인구로 대체했던 것을 이사야의 유대에서도 알았음을 반영할 것이다. 신약 성경 시대에 남부의 유대인은 갈 릴리의 혼합 인구에 의혹을 품었고, 실제로 마카베오 시대에 이 지역은 상 당히 이교화되어 남은 유대 인구가 유대로 대피할 정도였다 ( 마카베오1서 23 ).

5:14-

이후 갈릴리가 유대 하스몬 왕국에 편입되어 다시 유대인 인구가 상당

전체 문맥에 관심을 두고서 이것이 이사야의 해당 단원에서 공식적으로 두 번째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참고, 1:23; 93쪽, 각주 63을 보라). 1:23처럼 여기서도 카터는 대체로 마태의 선택에서 정 치적이고 반제국적인 동기를 찾아낸다. 15  )   70인역은 아마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pe,ran tou/ VIorda,nou 앞에 kai,를 넣어서 이를 독 립 지역으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마태는 여기서 분명히 70인역이 아니라 히브리어 본문에 의 존했고, 그래서 이 편리한 해결책은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16  )   H. D. Slingerland, JSNT 3 (1979) 18-28. P. Luomanen, Entering, 275-277도 같다. 슬링거랜드 는 마태가 pe,ran tou/ Iv orda,nou를 더 관례적으로 사용하여 4:25에서 베레아를 가리키는 “반(半) 전문” 용어로 쓴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를 “단순히 간접적으로 관련되는”(각주 22) 것 으로 가볍게 무시한다. 슬링거랜드에 대한 답변으로 D. C. Sim, Gospel, 41-45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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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Nt

nicNt

on the NEW testament

NICNT 시리즈는 여러 나라의 신약 학자들의 뜻을 모아 1940년대 후반부터 저술된 주석 시리즈로서, 목사, 신학생, 학자들에게 복음주의 개신교 전통의 틀 안에서 성경적인 학문성

마태복음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nicNt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정통 주석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 주석 시리즈는 헬라어 본문에 대한 철저 한 연구를 반영하면서도, 주석의 서론과 해설에서는 헬라어 언급을 최소화하며, 성경 본문에 나 타난 중요한 주제들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뛰어난 신약 학자였던 네드 스톤하우스(웨스트민스터 신학교), F. F. 브루스(맨체스터 대학교), 고든 피 (리젠트 대학)를

거쳐 현재는 조엘 그린(풀러 신학교)의 책임 편집 아래 집필되어 온 NICNT 시리즈

는, 동시대의 학문에 정통한 새로운 주석이 되기 위해 필요에 따라 개정되거나 신판으로 대체되 기도 했다. 성경 본문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수사법, 시대적 상황, 신학적 중요성 및 적용에 주의 를 기울이는 이 시리즈는 독자로 하여금 성경 본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지은이 R. T. 프랜스 (Richard T. France)

권대영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B. A.), 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거쳐(diplom), 일반대학원에서 구약신 학을 전공했다(Th. M.).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법학을 수학하고, 현재 부흥과개혁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는 『NAC 창세기 1』, 『AOTC 전도서・ 아가』, 『NICOT 아가』(이상 부흥과개혁사) 등이 있다.

황의무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공부하고(B. A.), 고려신학교를 졸업했 으며(M. Div.), 현재 상도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역서로 는 『REC 전도서』, 『REC 에스더・룻기』, 『NIV 스터디 바이 블』(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ISBN 978-89-6092-553-3 978-89-6092-457-4(세트)

www.rnrbook.com

값 68,000원

권 | 대영 황 ·의무 옮김

옮긴이

프랜스 지음

신약 학자이자 성공회 사제였다. 브래드퍼드 문법학교, 옥스퍼드 발리올 대학(B. A., M. A.), 런던 대 학교 틴데일 홀(B. D.), 브리스톨 틴데일 홀(Ph. D.)에서 공부했다. 나이지리아의 이페 대학교와 아마 두 벨로 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런던 바이블 칼리지 부학장, 옥스퍼드 대학교 위클리프 홀 학장 등 을 역임했고, 말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목회 사역을 하면서 웨일스 뱅고어 대학교 명예 연구 원으로도 활동했다. NIV와 TNIV 번역위원 및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TTC 누가복음』, 『TNTC 마태복음』, 『NIGTC 마가복음』 등 여러 책을 저술했다.

R . T .

마태복음 Matthew R. T. 프랜스 지음 | 권대영·황의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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