數 수 의 시선
유현미 전을 열며
2017년 사비나미술관의 첫 번째 전시로 유현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립니다. ‘수(數)의 시선’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번 개인전에서 유작가는 숫자의 숨겨진 의미 와 상징, 비밀을 탐색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예술가인 그녀가 수학의 영역인 수(數) 를 주제로 선택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숫자는 단순히 수량을 표시하는 기호에 그 치지 않습니다. 시간, 날짜, 기온, 생일, 나이, 키, 몸무게, 주민등록과 전화번호, 통 장번호, 물건의 가격, 바코드, 숫자 마케팅 등 일상생활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 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행운과 불행을 가져오는 숫자, 악마의 숫자, 성스러운 숫 자, 마법의 숫자에서 나타나듯 인류의 역사, 문화, 언어, 무의식, 인생관에도 커다 란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 문명을 뛰어넘는 소통의 수단이 되기도 합 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공통언어인 수(數)를 아는 것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것 이 되지요. 한편으로 숫자는 우주의 원리,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철학적 도구이기도 합니다. 독일 출신의 언어학자인 하랄트 하르만은 인간은 숫자를 기록할 만한 문자가 없었 을 때조차도 동물의 뼈에 눈금을 새기는 행위를 통해 수 개념을 표현했다며 ‘숫자가 추상적 사고’를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인류는 복잡하고, 혼 돈스럽고, 무질서한 현실세계를 순수하고, 간결하고, 질서 있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수(數)를 발명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꼽히는 헝 가리 출신의 폴 에르디쉬는 ‘수가 아름답지 않다면 도대체 아름다운 것이 어떤 것 인지 난 정말 모르겠소’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하니까요. 예술의 목표도 질서와 균형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에 있습니다. 예술과 수(數)는 ‘아 름다움의 추구’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관객이 유현미 작가의 개인전에서 발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7년 3월 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
예술가가 바라본 수(數)의 시선 강재현 / 사비나미술관 전시팀장
유현미 작가의 사비나미술관 전시는 선과 면, 흑과 백을 중심으로 한 조형언어의 기본요 소로 공간을 구성해 무한히 확장되어가는 수(數)의 세계를 보여준다. 수는 우리의 일상 에서 말하기나 걷기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에 관한 것이며, 과학, 수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미술, 음악, 건축, 철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온갖 유형으로 활용되고 표현되어지고 있다. 작가에게 수는 우리의 사유에 깊 숙이 관계되어 있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으로의 의미로, 지난 몇 년 동안 ‘수(數) 의 육체(Physical Numerics)’를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일련의 작품은 숫자의 입체적인 형태와 철학적인 개념에 초점을 맞춰 생경한 풍경을 만들고 사진으로 완성된다. 이번 전 시에는 ‘수(數)의 시선’ 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낸 바와 같이 수에 대한 무형적이고 유기적 인, 그리고 보다 정신적이며 영속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자 사유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수(數)의 육체’ 연작중 대표적인 사진작품과 입체 설치작업, 그 리고 새롭게 시도된 영상드로잉 연작은 숫자에 대한 그동안의 탐구를 함축적으로 담아 낸다. 전시된 주요 작품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1층 전시장에는 입체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작품 <1984>는 자유롭게 배열된 네 개의 숫자 가운데 8을 90도 회전시켜 설치함으로써 이번 전시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무한한 숫자의 세계를 상징한다. 동시에 빅 브라더의 통 제와 감시의 사회상을 비판하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1984」를 연상 시키며 우리가 인식하는 숫자에 대한 의미와 상징을 보여준다. 작가는 전시장을 수학자가 바라 본 공간, 그가 그려놓은 세상을 상상해 설치 작품으로 펼쳐 놓는다. 천고가 6미터 이상 인 미술관 1층은 벽과 바닥까지 흰색으로 칠해지고 그 위에 숫자 조각과 의자와 사다리 모양의 오브제, 검은 선이 예기치 못한 형태로 구성되어 마치 2차원 평면에 그려진 드로 잉의 세계에 들어온 듯 생경한 체험을 유도한다. 관객의 개입이 가능한 이 공간은 관객 이 전시장 바닥에 놓이거나 구조물에 매달린 숫자 사이를 산책하듯 거닐며 개인의 기억 에 존재하는 수에 대한 탐색, 그리고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작가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숫자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고유 의 상징과 은유가 숨어있다. 지하 전시장은 공간 드로잉 제작과정을 담은 9점의 영상 작품으로 구성된다. 검은 선이 끊임없이 생성과 해체를 반복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드
로잉’은 빈 공간에 채워지는 선과 선의 관계망 속에 존재하는 예측 불허한 현상에 대한 다층적인 물음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의 작업은 사비나미술관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강 의실과 복도, 욕실, 주방과 같은 각기 다른 생활공간 안에서 진행되었다. 빈 공간에 놓인 다소 엉뚱한 오브제, 그 안에 놓인(그려진) 숫자와 바닥과 벽면에 그어지는 추상적인 검 은 선은 무한히 확장되는 세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다. 이 드로잉 작업에서 주목할 지 점은 ‘즉흥성’이다. 영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작가와 퍼포머 두 사람의 선택과 갈등 에 의해 즉흥적으로 그어지는(검은색 테이프를 이용해 붙여진다) 예측할 수 없는 선과 선의 만남이 하나의 형상이 되어가고 흐트러지는 과정에서 세상의 우연한 질서와 이치 를 발견하게 한다. 이러한 영상 드로잉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사비나미술관의 지하 전 시장은 거대한 드로잉 북 개념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2층 전시장에는 대표적인 ‘수(數) 의 육체(Physical Numerics)’ 시리즈가 전시된다. 테이블 위에 올려 지거나 떠받치고 있 는 숫자는 여성적이고 우아한 형태가 돋보인다. 동시에 일상의 공간 안에 들어온 숫자 는 초현실적인 풍경을 이루며 보는 이에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는 숫자를 매개 로 세상을 미시적이자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며 보다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것 에 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보다 끊임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유현미 작가는 지난 10여 년 동안 사진, 화화, 설치, 영상이 혼재된 형식의 작업을 이어왔 다. 2007년 전시 <Still Life> 로 시작된 공간과 사물에 색(빛)을 입혀 현실을 사실적인 그 림으로 만드는 작업은 또 다시 사진으로 완성되며 실재와 환영, 평면과 입체, 시간과 공 간의 경계를 경험하게 한다. 작가의 작업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2009년 이러한 제작과정 을 드러낸 단편영화 ‘그림이 된 남자’를 발표한 바 있으며, 필자는 지난 2013년 사비나미 술관의 기획전시 <Artist PortfolioⅠ>에서 그림이 되어가는 과정과 작품을 함께 공개함으 로써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감상과 이해가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작 가는 서양미술에서처럼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형식으로의 접근 방식을 보여 왔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수의 무한한 세계에 집중해 형태와 색을 최소화하고 명암을 넣지 않음 으로써 보다 직관적이고 공감적인 측면으로의 변화를 시도한다. 특히 영상 드로잉의 제 작 방식에서처럼 사람과 사람의 즉흥적인 행위를 통해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발생적인 현상에 대한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에서의 이번 전시는 유현미 작가의 작 업세계가 보다 확장되어지는 지점을 보여주는 전시이자 작가가 실험해 나갈 다양한 작 업방식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Drawing for entermity,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1,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6,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infinite,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433,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moment,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4,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chaos, 영상드로잉, 2017
Drawing for 365, 영상드로잉, 2017
1984, mixed media, installation view, 2017
installation view
installation view
“텅 비었다는 것은, 즉 0을 뜻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지금 자네 안에는 0이 존재하는 셈이로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실감이 필요했다. 나도 소수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사랑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사에게 소수는 말 그대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는 소수를 아끼고 어루만지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존경했다. 때로는 애무도 하고 때로는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수학의 진리는 길 없는 길 끝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는 법이지, 수식앞에서 그가 내쉬는 감탄의 한숨 소리,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언어와 빛나는 눈동자는 그 자체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주 조심성이 많은 숫자라서 말이야, 눈에 띄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분명히 있어, 그리고 그 조그만 두 손으로 이 세계를 떠받들고 있지”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중에서
“오억의 별들을 가지고 뭘 하는거지?” “오억 일백육십이만 이천칠백삼십일 개야. 나는 지금 중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정확한 사람이지.” “조그만 종이조각에다 내 별들의 숫자를 적어 그것을 서랍에 넣고 잠근단 말이야” 「어린왕자」 중에서
유현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학사를, 뉴욕대학(NYU)에서 석사를 받았다. 조각과 회화를 거쳐 사진으로 완성되는 작품을 하고 있으며, 소설과 영상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영국 리버플 비엔날레,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대구사진 비엔날레등에 참가했으며, 런던, 뉴욕, 싱가폴, 이태리 등 국내외에서 15차례 개인전과 130여회의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일우사진상, 모란미술상을 수상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일민미술관, 아모레퍼시픽, 포스코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 되어있다. 저서로는 「Cosmos」(핫제칸츠), 「아트맵」(청어람)과 「나무걷다」(분홍개구리)가 있다.
數 수 의 시선 2017. 3. 8 - 4. 7 총 괄 이명옥 관장 책임진행 강재현 전시팀장 교육/홍보 박민영 에듀케이터 진 행 최재혁 큐레이터 보조진행 김명희, 권지수 설치 어시스턴트 김민수 사진촬영 박애란 테크니션 박노춘 발행처 발행인 디자인
사비나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49-4 이명옥 KC communications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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