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 送別 의 노래 레미 널 만날 생각에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해 눈만 마주치면 이별을 말하는 너지만 주린 배를 찬 바닥에 마주하고 외로움에 지쳐 쓰러진 내 모습이 안쓰러워 밤새 날 지켜준 거 다 알아 이젠 내가 없는 곳으로 널 보낼까 해 나보다 널 더 사랑할 누군가를 위해 내 깊숙한 아픔도 잊은 채 시원하게 힘 내볼게 세상사람 모두가 더럽다고 욕해도 누군가는 기다리고 있을거야 쓸모없는 것이란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야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말이야
똥 누는 모습도 예뻤다는 레미
마주 이야기 _ 똥이 좋은 이유 똥을 좋아하는 배고파 주니어
배고파
6살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 어린이집이 좀 멀어서 등원할 땐 어린이집 차로, 하원할 땐 퇴근길에 차를 몰고 가서 데려왔다. 세 살 위 누나는 초등학생이니 먼저 집에 와 있다. 누나나 다른 누구랑 함께 올 때는 싸우거나 뭔가 과시하거나 장난치느라고 바쁜데
“아빠.”
가끔 나(아버지)랑 둘이서 올 때는 말수가 부쩍 줄어든다.
“응.”
나와는 별로 할 말이 없거나 사이가 안 좋아서는 아니다.
“왠지 쓸쓸하지?”
어린이집에서 누가 싸웠다든지, 코피가 났다든지,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방귀를 짱 큰
깜짝 놀랐지만 하나도 안 그런 척 태연히 대답했다.
소리로 뀌었다든지 뭔가 ‘쩌는’ 해프닝이 있을 때는 신나서 이야기한다.
“응. 그러네. 너도 그래?”
그럴 때가 아니면 대개 뒷좌석 가운데 몸을 곧추세우고 말없이 앉아 양쪽 앞좌석에
“응.”
두 손을 얹고 앞쪽 풍경을 바라본다. 그럴 땐 이것저것 말을 걸어도 얘기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쓸쓸한 풍경 속을 지나가는 동안 둘 다 말이 없다. 동네 어귀에 접어들자 다시 부른다.
그래서 나도 그냥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라디오를 듣는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방해될까봐 굳이 물어보지는
“아빠.”
않는다.
“응.”
그날도 아이를 데려오고 있었다.
“근데 난 똥, 방구, 배꼽, 오줌, 코딱지 이런 게 좋다.”
5월 무렵, 6시 30분쯤. 날씨가 흐리고 하늘이 찌뿌둥했다.
“왜?”
시내를 지나 굴다리를 통과하면 우리 동네까지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도로.
“웃기거든.”
산동네라 이 길엔 차도, 사람도 별로 없다. 고즈넉하고 적막하다.
아이가 워낙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하는 바람에 못 웃었다.
항문에 힘준 이야기 담쟁이 오래전부터 난 아침에 일어나자말자 규칙적으로 똥을 눈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나의 항문부위를 관찰하시더니 결론을 내리셨다. 이평리 읍내
나는 점점 살아가면서 의외로 건강 체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는 입력시간은
병원에 가서 뽑아내자. 그때 병원 가는 이동수단을 경운기를 탔는지 시외버스를 탔는
종잡을 수 없지만 몸에서 내보내는 출력이 일정한 것이 나의 건강의 비결이라면 비
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점점 몽롱해진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 변비를 해결하는 기
결일지 모른다.
계에 걸터앉았다. 그런 의료기구가 있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이윽고 순간이 왔다. 기계가 작동했다. 엉덩이 아래쪽에서 강렬한 속도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힘이 느껴
그런데 초등시절에 이 출력이 안 되어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다.
졌다. 그 순간 내 몸 안에 있는 큰 덩어리가
쑤~욱 빠져나가는 그 느낌을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 나는 방학 때만 되면 강원도 철원에 있는 외갓집에 갔다. 임꺽정이
기억하고 있다. 몸의 기억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무술을 연마했다는 고석정,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인 직탕 폭포가 근처에 있는 외갓
고 나는 원래대로 외할머니가 맛나게 해주신 나물과 고추튀각등의 반찬을 섭취하기
집이었다.
시작했다. 평온한 저녁이 돌아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다.
기계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
갈 때마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할머니는 직접 조청 을 고와서 엿도 만들어주시고, 약과도 만들어주셨다. 손(씀씀이)도 크셔서 엄청난 분
난 몇 년 전부터인가 똥을 누면 일차로 휴지 그리고 이차로 물을 이용해 항문부위를
량의 엿을 만들어서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셨다. 외할머니는 당신 스
세척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는 이렇게 이 단계로 하지 않으면 불편한 느낌이 든다.
스로는 그렇게 돌보지 않으시면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주는 일을 너무나 즐거운 표
그래서 내가 완전 깔끔한 사람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샤워나 세면을 할 때
정으로 하셨던 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도 내 인생의 멘토중에 으뜸인 우리 외
비누를 되도록 안 써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물 칠만 한다는 얘기
할머니시다.
지만 항문부위도 제외시키지 않고 있다. 어린 시절 변비의 추억, 항문에 힘좀 주었던 쓰라린 기억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점점 살아갈수록 외모와 함께
초3 정도 시기였나? 나는 여름방학에 철원의 외갓집에 갔다. 그때도 나는 예의바른
생각, 내면, 항문과 같은 속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소년이라 할머니가 큰 밥그릇에 고송(밥이 그릇위로 불룩 올라오게 담음)으로 주신 밥을 다 먹어치웠다. 밥 잘 먹으면 밥을 차린 사람은 좋아한다.
외갓집에 와서 잘
먹은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사흘째가 되었다. 그런
나, 옛날에 항문에 힘 좀 줬고 지금도 항문에 매일아침 신경 쓰는 사람이다. 여러분에게도 나의 관리방법을 권한다. 끄~응.
데 똥이 안 나왔다. 나흘째가 되었다. 그래도 똥이 안 나온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 작했다. 그래도 먹는 양은 줄이지 않았다. 다섯째 날이 되었다. 배가 더부룩해지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무리 힘을 줘도 똥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화장실을 나 와 외갓집 대문앞 마당에 계시는 외할아버지와 삼촌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외할아버 지 바로 엉덩이를 까고 똥을 눠 보란다. 도시형 외모와 스타일을 가진 나로써도 이제는 더 이상 분위기 잡을 때가 아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엉덩이를 깠다. 그리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끙, 끙, 끄~응, 헉 헉…….
담쟁이를 닮은 ‘똥’
45600원. 전단비...라고 온 도시가스요금 고지서 단비 5 읽을 수 있는 한글을 발견하면 더듬더듬 읽으며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나이 다섯살. 버스에서 누군가 들고 있던 한약 쇼핑백에서 내 이름 세 글자에서 두 글자 가 있는 단어를 발견하고 엄마에게 소리쳤다!
구글에서 ‘변단비’를 검색하면 진짜 ‘변단비’가 나온다.
“엄마, 내 이름의 두 글자나 있어! 우히히‘(자랑스럽게 그 쇼핑백을 가리키며). “엄마 근데 ‘변비’가 뭐야?” 변단비라는 내 이름에서 두 글자나 있었다. 이 어려운 단어에?!
26 독립하여 나의 이름으로 된 고지서를 받게 되었을 때...
6 친구들을 사귀면서 내 이름이 많이 특이하다는 것과 ‘변’씨는 운명과 같은 별명을
“네, 고객님!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니, 오빠, 나 모두의 별명은 모두 변소, 변기, 변기통
“변단비입니다”
등등 이었고 이 모든 별명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똥’과 관련 있는 것들이었다. 옛날
“네, 전단비님이요”
에는 ‘똥장군’이 똥을 사고팔기도 하였으며 친구 집에 놀러갔다 그것이 급하면 집으
“아니요, 변!단비!요”
로 내달아 누었다고 하는데... 왜 지금 이 시대에 그것은 버튼만 누르면 사라져야 하
“아, 네....전!단!비!님이요‘
는 비웃음과 더러움의 상징이 되었단 말인가. 그 수난의 시대는 초등학교 입학부터
반복되는 상황...어찌할까 궁리하다...차마 ‘변소 할 때 변이요’라며 내 별명을 내 입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로 말할 수 없었다. ‘변’자가 들어가는 단어 중 그것과 관계없는 단어는 없나? 아....!!!
7 1980년 후반 오빠의 별명이 똥과 관련이 없던 순간이 있었다. 모든 별명이 그렇듯 다행이라고 하기에 이 별명 역시 너무 강하다! 거리마다 붙은 영화 포스터...이 영화가
“네, 고객님!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연작을 내며 흥행하던 때 오빠는 똥과 관련 없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변. 강. 쇠!
“변단비입니다” “네, 전단비님이요”
8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모인 첫 교시에 항상 하는 의식. 출석 부르기! 나는
“아니요, 변!단비!요‘
이 시간만 되면 두근두근두근... 변씨도 있네, 이름은 이쁜데 성 때문에 버렸네. 아버
“아, 네....전!단!비!님이요‘
님 이름은 무엇이니..덕분에 나는 놀리는 남학생들을 쫓아다니며 응징하느라 지금의
“‘변화’할 때 ‘변’이요!”
팔뚝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에 교과서에 나오는 ‘김영희’ 이
“네, 고객님 ‘전화’ 할 때 ‘전’ 말씀하시는거죠!‘
름이 얼마나 부러웠던지...나도 흔하디 흔한 ‘성’과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나도 ‘김’
“???????....네......”
씨면 얼마나 좋을까...나는 커서 ‘김’씨 성으로 바꿔야지.
그렇다. 변화....는 전화....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9 1990년 000가요대상 대상!!! 두구두구두구...변!진!섭!!! 키약!!!! 희망사항으로
그리하여 도시가스요금 고지서와 기타 등등 상황에서 나는 전! 단비가 되었다.
1990년 가요계를 평정한 변진섭은 1위 후보곡으로 자기곡 두곡을 올려놓는 등 엄청
자기 PR시대, 한번 들으면 기억에 남는다며 누군가는 부러워도 하고 누군가는 아직
난 인기였다. 나는 변진섭을 좋아했다. 이유는 ‘변’씨였기 때문이다. 놀림의 수난의
도 웃음을 참지만....그래도 내 이름이 좋다.....라고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그러기에
역사에서 나에게 ‘단비’가 되어주었던 그다....
‘변’은.......
똥 차차 Episode1. 어릴 때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두려운 순간 best 5위 안에 드는
Episode3. 것. 그것은 작은 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둘째 고모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발견이 늦어져서 수술을 한
켓처럼 보였던 좌약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도 좌약을 넣었던 것 같다. 그
뒤에도 고모는 꽤 오래 병석에 계셨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 많은 사촌 언니와 이
게 얼마나 싫고 끔찍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좌약을 처음 넣은 것은 아주
미 꼬부랑 할머니인 고모의 시어머니가 병간호를 하셨다. 부산에서 쭉 살다가 초등학
쪼끄만 아기일 때부터라고 한다. 나는 분유를 먹고 자랐다. 남양유업에서 나오는 남
교 졸업을 앞두고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고모네 집과도 가까워져서 자주 놀러
양분유와 여전히 티비에서 광고를 하고 있는 ‘비오비타’를 함께 먹었는데 소화를 잘
갔다. 빡빡 머리에 바짝 여윈 고모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얼굴이 잘 떠오르
시키지 못해서 늘 변비에 시달렸고, 덕분에 좌약은 늘 나와 함께 했다. 분유를 끊고
진 않는다. 나를 그렇게 예뻐해 주셨는데 죄송하다. 어린 나이에 꽤나 충격적이었던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는 ‘아기밀’이라는 걸 먹었다는데 여전히 변비는 나를 따라
것은 언니가 고모의 기저귀를 갈 때였다. 어른의 기저귀를 가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다녔고 고질적인 변비는 20살, 처음으로 ‘피똥’을 싸기 전까지 익숙한 친구 같은 존
어린 여동생의 똥은 더럽지 않고 귀여웠는데 고모의 똥은 더럽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재였다. 어릴 때 나는 매일 아침 똥을 누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충격을
놀랐던 것 같다. 이후에도 똥 기저귀나 똥이 묻은 바지며 속옷을 많이 빨았지만 여
받았다. 아주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 똥을 누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한 번
전히 고모의 똥을 보았을 때만큼의 강렬함은 없었다. 왜 나에게 고모의 똥은 ‘충격’
신호가 오면 화장실에 30분은 머물렀던 것 같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으로 남아있을까? 아기 기저귀를 갈 듯, 고모의 기저귀도 갈아드릴 걸. 그렇게 오래 엄마의 병간호를 했던 사촌언니는 지금 간호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있다.
Episode2. 어릴 때 우리 집 화장실에는 책이 참 많았다. 변기 바로 앞에 2단 벽걸이 책꽂이가
Episode4.
있었고 거기에는 엄마가 생각하기에 읽으면 좋은 책이 엄청 많이 있었다. 가장 흔하
20살,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다시 수능 준비를 할 때였다. 생각보다 엄청난 스트
게 있던 것은 ‘좋은 생각’ ‘샘물’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작은 잡지였다. ‘좋은 생각’
레스에 시달리며 처음으로 피똥을 싸게 되었다. 피가 조금 묻어 나오는 정도가 아니
은 여전히 우리 집에서 굴러다니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잡지는 짧은 이야기여서 화
라, 시커먼 피만 쏟아내는 거였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도 뭔가 잔뜩 긴장하
장실에 앉아 읽기가 참 좋았다. 엄마는 항상 책을 읽다 만 것처럼 펼친 채 뒤집어 두
거나 스트레스에 휩싸이면 이렇게 피를 쏟았다. 그래서 단식을 하고 대학 시절 내내
었는데 이것도 다 작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책이 ‘장미의 이름’ ‘추락
먹는 것도 가려먹었다. 덕분에 참 날씬했었는데. ㅎㅎ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속이
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아이들이 심판한 나라(앵무새 죽이기)’ ‘깊은 슬픔’ ‘삼국지’
편해졌고, 한동안 관리를 잊고 살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임용
그리고 역사 책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버거웠지만 가만히 있으면 심심
을 준비하면서 몇 달 간을 초콜렛과 우유로 거의 식사를 대신했고, 졸업 후 사회생활
하니까 뭐라도 들고 읽다보니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화장실에 있던 어려운 책을
을 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음주량은 다시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물론 예전만큼
몽땅 읽어버렸다. 물론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이걸 그
피를 자주 쏟지는 않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설사’ 덕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때 무슨 생각으로 읽었을까 싶다. 더 어릴 때는 디즈니 동화책을 꼭 챙겨서 화장실에
두려운 때도 있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기저귀를 구입하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갔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화장실에 갈 때면 책이든 스마트폰이든 꼭 읽을 것을 가
‘설사’와 친하다. 그런데 요즘은 관리도 잘 하지 않는다. 10여 년간 함께 한 지병과
지고 간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아무튼 그 때 우리 집에 놀러왔던 사람들은 하나같
너무 친해져서 이제 익숙한가보다.
이 그런 말을 했다. “화장실에 책이 참 많네. 이러면 변비에 걸리기 쉬운데.”
...
걸려서 책을 많이 본건지 책을 많이 봐서 변비에 걸린 건지 잘 모르겠다.
변비에
변비에서 설사까지, 내 ‘똥’은 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똥의 선물 허실 누구나 똥을 눈다. 그리고 똥을 눌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묘하면서도 극단적인, 은밀
서 똥을 누는 것보다 화장실 간다고 손을 드는 것이 더 부끄럽게 생각했나보다. 불
한 쾌감을 느낀다. 해방!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는 잘 몰라도 우리는 똥을 누는 순
행 중 다행인 것은 위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똥을 싫어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하고 시원한 해방감을 느낀다. 똥이 주는 이 배설
다. 오히려 나에게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던 것인지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어느
의 카타르시스는 인류 유전자에 각인된 위대한 자산이다. 이건 선물이다. 냄새 나는
곳에 가서도 똥을 잘 누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동물들이 영역 표시를 하는 것처럼
선물.
낯선 곳에 가면 꼭 똥을 누고 온다. 똥똥똥 거리며 글을 끄적이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똥이 마렵다. 흠... 잠시만..
똥은 ‘똥’이란 무엇인지 아직 철학적 고찰이 되지 않은 어린 나에게 갑작스레 찾아와 서 당신의 존재를 나에게 깊이 각인시켰다. 초등학교 2학년, 조용히 교실에 앉아서
... 이 세상에 똥을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모두가 똥을 필요로 한다. 똥을 배설함
자습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하필 그 순간에 똥구멍이 간질간질거리면서 불안한 신호
으로서 우리는 몸 내부에 있는 노폐물을 제거하며 신체적 건강을 유지한다. 또한 똥
가 오기 시작했다. 창가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에 코가 간질거리는 그 느낌처럼 똥
을 배설함으로서 찾아오는 무한한 카타르시스 덕분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정신적
은 그렇게 살금살금 야속하게 내 대장을 밀어내고 점점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똥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를 누가 연구해 본다면 분명 똥은 상
난 그 똥을 막아내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대장에게 명령을 내려 똥을 막아내
담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똥의 선물이다.
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분의 사투 끝에 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그 땀이 엉덩이 골에 모여 축축해지기 시작할 때쯤 결국 난 똥에게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래, 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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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야.. 뿌지..지직.. 몽글몽글 내 엉덩이골 사이를 점점 차오르는 똥의 향연에 나의
항문의 끝 | 권혁진
바지는 점점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나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내 뒤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 “선생님, 이상한 냄새가 나요” 난 기억력이 짧다. 일주일 전은 물론이고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쩔쩔매곤 한다. 그런 내가 20년도 넘은 일을 위에 쓴 것처럼 자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거짓말 이다. 당연히 위에 쓴 내용은 ‘교실 수업 중에 앉은 자리에서 똥을 누었다’라는 사실 을 제외하고는 거의 내 상상의 산물이다. 하지만 왠지 그랬을 것 같다. 똥을 참을 때 의 인간의 본능적 반응은 남녀노소 모두 똑같으니까. 지금 나도 똥을 참을 때는 위 와 비슷한 증상이 일어난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비슷한 증상이 일어날 것이다.
입에서 항문까지는 참으로 멉니다. 나의 평생은 이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일입니다. 한 올의 광명도 없는 좁은 터널을 고통스럽게 지나가는 일입니다. 끝내는 명부(冥府)로 이어지는 이 길은 깊어질수록 숨막힙니다. 침에 젖고 피가 묻어 나는 천하게 하강합니다. 구불텅구불텅 만신창이로 흘러갑니다. 한치 앞이 두려운 동굴 밑에서 익사는 죄악입니다. 죄악의 긴 세월 미로 속에서 나의 눈 나의 귀는 퇴화합니다. 코가 지워지고 팔다리가 떨어지고 똥처럼 오줌처럼 변해갑니다. 평생의 눈물 평생의 절망과 오욕 마침내 나는 똥이 되고 오줌이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화장실 좀 다녀오고 싶다고 말하면 될 것을 왜 앉아서 그 상
그리고 참을 수 없이 항문 끝에서 나의 한 생은 끝이 납니다.
황까지 가게 만들었는지 내 스스로에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 때는 앉아
털썩.
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는 그것 이리 이제 그 시절로부터 5년이 지났다. 어느새 2008은 과거의 숫자가 되었고 2013이라는 새로운 숫자는 기세등등하게 얼굴 을 내밀고 실컷 자기를 뽐내고 있다. 이 익숙한 숫자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존재를 과시한다. 때로는 멋쟁이의 맵시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2014, 2015,.. 점점 숫자들이 바뀌어 갈 때 그 싱싱하고 도도했던 기세는 풀이 죽어 어딘가를 뒤적거려야 볼 수 있는 희미한 시 절의 한 켠이 될 것이다.
변비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가수) 노라조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지구는 돌고 수많은 밤들은 나를 침대위로 쓰러뜨린다. 2008년 모월, 모일, 모시에 뜨거운 물을 틀어 목줄기에 대었을 때 선명하게 느꼈던 아찔함도, 내 뇌의 골수도 하수구에 같이 빨려 들어갔으면 하고 소망했던 그 심정도 이미 희미 해져버렸다.
길지는 않았지 너와의 시간 하지만 넌 지금도 내 안에 뿌리를 내린 듯 움직이지 않는 너를 이제 보내려 해
언제나 그렇지 담배를 물고 길게 내 뿜는 한숨은 길고 끊길 듯 끊길 듯 너와의 인연은 나를 아직 이 자리에
왠지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왠지 오늘은 나를 아프게 항상 하던 이별이 오늘따라 왜 이리 힘겨워 눈물이 난다
왠지 조금은 숨쉬는 것조차 왠지 오늘은 벅차 올라
그때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똥이었는지 아니면 붙들어야 하는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나라고 해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간절함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똥이었어도 아니면 붙들어야 하는 내 존재였어도, 그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그 시절의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빼내려고 애쓰고 또 붙들어보려 고 애썼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아주 단순하게 시간이 뒤로 밀려난다. 월화수목금토일. 그리고 다시. 그래서 가끔 그 때를 떠올린다. 간절함이 있었던 순간을, 버려야 할지 붙들어야 할지 몰랐던 그 심정을. 과거는 생각하기에 따라 힘이 세다. 그리고 현재는 지나가버린다.
밀어낸다 내 안의 너를 힘이 들지만 너를 보내련다 아마 나도 쉽진 않을거야 힘내 숨이 꽉 막혀도 숨이 꽉 막혀도
밀어낸다 내 안의 너를 힘이 들지만 너를 보내련다 아마 나도 쉽진 않을거야 힘내 멈추지 않도록 멈추지 않도록 돌아가는 너를 보내며 멀어져가는 네게 안녕하며 이제 나도 야채 먹을거야 우유 요구르트 고구마 안녕 내 변비여
똥싸기 그리고 글쓰기
#. 똥과 글은 정보와 컨텐츠의 덩어리닷!
#. 똥이 마렵듯 글이 마려울 때가 있다. 한번 놓친 글과 한번 놓친 똥은 모두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 똥과 글, 이들의 탄생을 위해선 일정한 공간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타이밍의 문제를 우리는 글에서도 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담든, 닦든, 묻든, 날리든... #. 글이 잘 안 써지는 때가 있둣이 똥을 잘 눌 수 없는 때가 있다. 나오지 않는 글 #. 똥싸기,
에 애도하듯 나오지 않는 똥에도 애도를 표한다.
글쓰기 모두 우리를 어떤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격렬함을 동반할 때가 있다. #. 누군가에겐 글쓰기가 괴로움이듯 똥 싸기도 그러하다. #. 똥과 글 모두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과 한계에 따라 존재한다. 조용하거나 쾌적하거나 한적하거나 또는 익숙하거나 독립적인 공간...
내 맘을 온전히 글로 전할 수 없는데 하물며 누가 내 똥을 대신 눌 수 있으랴... 글쓰기가 때로는 사람을 외롭게 하듯 똥 싸기도 때로는 우리를 외롭게 한다.
하루 중에 어떤 무렵, 무엇을 하고 나서, 무엇을 하기 전에 또는 반복적인 어떤 시간... 특정 공간과 특정 시간, 똥과 글에게 시간과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 내 몸의 괄약근을 잘 조이고 잘 푸는 것이 중요하듯 내 마음과 생각의 괄약근을 잘 풀고 잘 조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 똥과 글은 일종의 단서다. 똥과 글에선 똥 눈이와 글쓴이의 개성과 성격, 심리가 드러나 있다. 나만의 글쓰기 습관과 문체가 있듯 똥에도 똥 눈이의 습관과 캐릭터가 있다. 글이 글쓴이를 닮듯이 똥도 그 주인을 닮는다, 아니 할 수 없다.
화투를 칠 때면 ‘똥’에 집착하게 된다는 돌고래 #. 쾌변이 주는 쾌감! 내 글이 누군가에 통하는 쾌감! 자주 만나고 싶다! #. 편안한 글쓰기와 똥싸기를 위해선 적절한 휴식과 이완이 필요하다. 조바심과 긴장 은 둘 모두를 해친다. #. 한번 쓴 글을 주워 담을 수 없고 똥은 더더욱 그렇다. #. 설익은 똥이 코를 찌르듯 설익은 생각과 고민으로 내놓은 글은 그 잔향이 오래도 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