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ography Journal Hiut n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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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ut no. 7 Typography Journal 2014. 7/ vol. 3

Typeface Masters – 2 Master Drawings of Textbook Type

The Modern Era of Korean Type – 2 The Enlightenment Movement of Missionaries and the Development of Korean Type


<슈에이샤

5호 한글 활자>


특집… 옛 책의 형식미 !

판식, 조판, 터잡기 심우진 026

특집… 다른 나라의 옛 책과 디자인 "

인도 문자, 글씨에서 활자로…… 바입하브 싱 050

Archive "… Master Drawings of Textbook Type 146 Archive !… The Enlightenment Movement of Missionaries and the Development of Korean Type 152 활자 기행… 백 년 전 한글 활자를 찾아서 이용제 + 박지훈 074

김민수 손동원 + 이용제 008

인터뷰 … 디지털 한글 폰트 시대의 개막

신작 … <바람체> 사용성 평가 「히읗」 편집위원회 016 백지 … 두 개의 정체성 크리스 로 + 권오현 072 생각해 보기 … 활기찬 어린이 글꼴 「히읗」 편집위원회 094 글꼴 탐방 … 신사동 편 .txt 096

Typography Journal

Hiut no. 7 2014. 7

히읗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2014년 7월 발행(연 4회)/ 3권 7호 정가 : 23,000원 연간 정기 구독 : 88,000원(무료 배송) 발행인 : 최주영+이용제 편집위원 : 박경식+이용제+심우진 디자인 : 심우진+현지희+강미연

활자 둘러보기… 손의 철학, 휴머니스트 산세리프 민본 102 책 둘러보기 … 뜻깊은 책 네 권 박경식 082 잡다한 이야기 … 타이포그라피의 정치성

뼈와 살로 아로새긴 민주주의 박경식 066

잡다한 이야기 … 편집자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단상 류인경 095 생각해 보기 … 막스 빌, 얀 치홀트 서신 논쟁 118 용어 정리 … 양장본의 요소와 얼개 최현호 + 심우진 090

도움 : 이은비(094쪽) 교정 ・ 교열 : 오윤성 인쇄 ・ 제본 : 스크린 그래픽 발행처 : (주)활자공간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

33-1, 4층

전화 : 02-336-6909 팩스 : 02-6081-3000 이메일 : hts.cjy@gmail.com 용지 : 한국제지 아르떼

105, 230g/m²

Hiut — Typography Journal

July, 2014/ vol. 3 No. 7 Price: 23,000 KRW Publisher: Juyoung Choi, Yongje Lee Editor: Fritz K. Park, Yongje Lee, Wujin Sim Designer: Wujin Sim, Gihee Hyun, Miyeon Kang Assistant: Eunbee Lee (p. 094) Copy Editor: Yunsung Oh Printing: Screen Graphic Publisher: Type Space Inc. Address: 33–1, 4th flr. Dongmak-ro, Mapo-gu, Seoul, KOREA Tel: +82-2-336-6909 Fax: +82-2-6081-3000 e-mail: hts.cjy@gmail.com support: Hankuk Paper, ARTE 105, 230g/m²


Typography Magazine Hiut back number

2012. 4/ vol. 1/ no. 1

2012. 7/ vol. 1/ no. 2

2012. 7/ vol. 1/ no. 3

• 기록 "…한글 활자의 원도

• 기록 "…교과서 활자의 원도

• 에세이…춤추는 타이포그라피

• 기록 !…새활자 시대 이야기

1

활자 견본집과

한글 새활자

• 기록 !…새활자 시대 이야기

2

선교사의

계몽활동과 한글 활자의 개발

scrapbook

• 대화…한글 폰트의 표준화와 공정거래

• 대화…한글 폰트의 사용권과 저작권

• 기사…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서체

• 증언…교과서 활자에 대한 증언

• 백지…박우혁

• 서체 이야기…디도

• 특강리뷰…섞어짜기 특강

• 인터뷰…노은유 「최정호의 한글꼴」

• 활자 이야기…우디와 윈저, 웨스와 푸투라

• 신작…Neue

• 대화…타이포그라피 교육

• 백지…안삼열

• 활자 이야기

• 수집…데이비드 피어슨의 관광호텔라벨

• 타이포그라피 메모

• 대화…타이포그라피 교육

• 백지…민본

• 서체리뷰…<바른지원체>

• 서체리뷰…<서울서체>

• 수집…샘 윈스턴의

• 책리뷰

• 전시리뷰…두 개의 전시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 텅 빈 기호들의 나열

• 습작…이음체

• 습작…피보나치 모듈러 서체

• 수집…원도

• 용어정리

이종국, 최정순

2013. 2/ vol. 1/ no. 4 • scrapbook

디자인

Haas Grotesk 기록 !…새활자 시대 이야기 3

• 백지…김기조

근대교과서의

Kid

• 인터뷰…아론 벨, 한글 디자이너

Orphan 서체리뷰…Atlas Grotesk & Typewriter

• 증언…도서출판용 활자에 대한 증언

• 용어정리

• 수집…Plastic

• 앱리뷰…타이포그라피 앱

한글 활자

• 기록 !…새활자 시대의 이야기

4

새활자

시대의 언론과 한글 활자 • 서체리뷰…<산돌고딕네오>, <산돌명조네오>

• 기록 "…도서출판용 한글 활자의 원도

• 기록 "…신문용 한글 활자의 원도

• 용어정리

• 용어정리

「히읗」 정기 구독 안내 1년 정기 구독: 88,000원 (무료 배송) 한 해에 네 호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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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vol. 2/ no. 5 • scrapbook

2014. 1/ vol. 2/ no. 6

• 신작…공간체

• 기록 !…새활자 시대 이야기

• 특집…옛 책의 형식미 "

5

근대식 활판술의

유통 • 백지…김나무

표지

Archive "…Master Drawings of Hangul Typeface Archive !…Typeface Specimen and Modern Korean Type

• 수집…여러 나라의 비자 신청 양식 • 수집…어린이 잡지 「아이들보이」

• 수집…정동훈

• 인터뷰…흔한 것보다는 낯선 것을 찾아서

• 책리뷰…Type

• 백지…이마빈

Navigator, Letter Fountain, Just My Type

엘리엇 얼스

• 글꼴 탐방…충무로 편

• 서체리뷰…<아리따>

• 신작…<오륜행실도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글 글꼴

• 기록 "…신문용 한글 활자의 원도

• 활자 둘러보기…산세리프의 맥, 그로테스크

• 인터뷰…활자디자이너 이남흥

• 책 둘러보기…뜻깊은 근간 여덟 권

• 용어정리

• 책 이야기…『위대한 개츠비』의 다양한 표정 • 습작…문장 부호와 글꼴의 유사성 • 용어…문장 부호의 의미와 쓰임새


Market Hiut Typefaces

HG꼬딕씨체

00g

20g

40g

HG꼬딕씨체

60g

80g

99g

HG씨앗체

30g

50g

70g 바 람 체

310 안삼열체

310동동체

L

M

B

TS풀잎체

TS웃는체

TS나른한바람체

TS파란구름체

TS청순반듯녀체

TS나눌체

www.market-hiut.com 365내가쓴글씨체

365심플빈티지체


2014년 여름 강의 안내 한글 디자인

이용제

"…세벌식 조합형 폰트 제작/ 일 !…완성형 글자디자인

타이포그라피

11:00~14:00 (8주)/ 9. 13개강

100자/ 토 10:00~12:00 (16주)/ 7. 19 개강

심우진

"…한글타이포그라피

1/ 토 10:00~14:00 (10주)/ 8. 30 개강

!…한글타이포그라피

2/ 토 15:00~19:00 (10주)/ 8. 30 개강

이론 강의

이용제

좋은 한글 폰트/ 일

14:30~18:00 (5주)/ 8. 3 개강

이미지 리터칭㌦박하

사진의 이해,

Raw파일 컨버팅, 리터칭 실습/ 토 11:00~14:00 (5주)/ 8. 16 개강

실크스크린 워크숍 ㌦김나연

실크스크린의 이해, 자신만의 글자로 에코백 제작/ 수

14:00~17:00 (8주)/ 7. 23 개강

할인 제도

재직자 환급과정

20% 할인 동반 수강: 10% 할인 ( 학생 할인+동반수강=30% 할인 )

비정규직: 결제 후

학생 할인:

80% 이상 출석 시 강의료 80% 환급 80% 이상 출석 시 강의료 전액 환급 ( 동반 수강 시 10% 할인 금액에서 환급 ) 정규직: 결제 후

412–20, 4층 33–1, 4층) 문의 전화…02–336–6909 이메일…hts.cjy@gmail.com 홈페이지…typoschool.com 주소…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도로명 주소: 마포구 독막로

위 작품은

2014 「전시 히읗

김주화 <삶

벗어나다」의 출품작입니다.

노래하다>, 권진희 < 하루종일 >, 문충실 <우리의 기억속에 그대로 남아있게 >, 서문섭 < 기울어진체 나는 살아간다>,

박민철 < 괜찮아요 >, 현지희 < 꽃 같은 당신 고마워요 >, 이희은 <이희은 >, 정마리아 <우물쭈물 >, 오경섭 <어둠꽃, 별 >, 이용제 < 맑은 물 >, 민다현 <왜?>, 최서훈 < 봄꽃처럼 >, 최미현 < 코스모스 >, 서정은 < 북극곰을 살려주세요 >, 손진아 < 꽃 >


2014 여름 워크숍・특강 안내 한글타이포그라피워크숍

이용제+심우진+김나연

《완성형 한글 폰트 만들기》 + 《한글 활자짜기(콤핑)와 레이아웃》 + 《실크스크린 프린팅》

2014. 6. 30 ~7. 17/ 월 ~ 목 10:00~20:30 (3주) +《목판워크숍: 고판화박물관 숲속판화학교》 +《파주활판공방워크숍》 +《정기 특강》

이용제+심우진

목판워크숍

<목판조각> + <인출 실습> + <옛책 제본>

2014. 7. 3 목

강원도 원주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숲속판화학교

www.gopanhwa.or.kr 、

정기 특강

2014. 7. 1/ 화 17:30~20:00/ 민본

2014. 7. 16/ 수 19:00~20:30/ 박우혁

김종건+민본+박우혁

2014. 6. 30/ 월 17:30~20:00/ 김종건

。 。 、


손에 들고 계시는 「히읗」 7호를 준비하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약 석 달 전, 진도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고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후에 기업과 공공기관의 비리와 나태함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을 며칠에 걸쳐 숱하게 쓰고, 다시 쓰고, 지우고

새로 시작하며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SNS에서 발견한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잊혀질까 두렵습니다.”

삶을 위협하는 존재는 물론, 삶을 지탱해주는 유산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활자를, 책을 만들며 느끼는 희미해진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잊으면 불편해지고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ʼ을 그래픽 디자인의 영역에서 되새길 것입니다.

5월 27일에는 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 1931~2014)의 타계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죽음은 어떠한 것이든 멈춰 서서 돌이켜봐야 할 무언가를 남깁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것ʼ입니다.

“If you do it right, it will last forever.” 그러니까, “제대로 하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가 곱씹어 볼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에게 쫓기는 것인지 무엇을 쫓는 것인지 모르게 급하게도 살아왔습니다.

중요한 것을 잃고, 잊고, 심지어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달렸습니다.

그리고 삶과 문화의 결은 희미해졌습니다. 이제 와 되살려 보려니 뜻대로 되지 않고 이상하게 꼬인 괴물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옛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떻게 만들고 쓰는지 경험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겠죠.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멋있다ʼ ‘재밌다ʼ에 담긴 가치와 지혜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요.

「히읗」은 창간부터 ‘수집과 기록ʼ에 힘을 쏟고 있지만, 유독 7호에서는 ‘잊지 말아야 할 것ʼ을 집요하게 다뤘습니다.

그중 하나가 옛 책의 활자 배열 방식입니다. 금속 활자 인쇄의 판면 체계를 잡기 위한 오랜 노력과 독보적인 기술,

그리고 동아시아 시서화의 문화를 관통하는 회화적 터잡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한글 활자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 여정도 담았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활자는 아니지만,

옛 활자에서 현대 활자로의 모습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그 외에도 막스 빌과 얀 치홀트의 의견 대립이 담긴 글을 ‘서신 논쟁ʼ이란 이름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막연히 알고 있던 내용을 꼼꼼히 되짚어보니 뿌연 연기가 사라진 듯 상쾌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운동가들이 수용된 교도소 벽에 아로새긴 글씨가 활자로 만들어진 사연을 다뤄보기도 했습니다.

얼핏 보면 재미난 글자꼴이지만, 살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는 활자입니다.

우리는 한때 고유문화를 빼앗겨 끊어진 것을 잇고 되새겨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으면, 결국, 다시, 더욱, 불행해질 테니까요.

「히읗」 편집 위원

박경식+이용제+심우진 올림


인터뷰 지금

20대 디자이너에게 디지털 폰트는 컴퓨터를 이용할 때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이에 대하여 의심 어린 눈으로 보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40대 디자이너에게 컴퓨터는 흥미롭고 편리한 도구였으나, 디지털 폰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너무 가까운 시기의 일이고, 당시 일했던 분들이 현재도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초기 디지털 한글 폰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기록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제대로 기록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한글 폰트가 처음 제작되었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첫 만남으로 ‘신명 서체ʼ 제작자인 김민수 씨와 대화를 나누었다.

디지털 한글 폰트 시대의 서막을 열였던 김민수 씨와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대학 초년생 때 막연히 썼던 활자의 제작 배경을 들으니 신기했고, 한글 활자 디자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뒤에 디자 이너로서 선배들의 작업을 조사하면서 궁금해했던 부분이 풀리기도 했 다. 그러나 이미 20년 전 이야기라 생소하고 낯선 부분이 있어 온전히 이 해하지는 못했고, 직접 얼굴을 보며 들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옛 자료를 검색해 가면서 일부 내용은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짧은 시간에 소화해 내기에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인터뷰 중에 나왔던 당시의 생생한 분위기를 가능한 한 그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 에,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불편할 수 있을 대목을 그대로 살리기도 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인터뷰 대상자를 만나면서 아직까지 이해가 부족한 디지 털 시대의 한글 폰트를 정확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보완 설명과 추가 조 사가 미비한 채로 싣지만, 옛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는 기분으로 읽어 주기

바란다.

!이용제

손동원

2008년에 한국폰트협회가, 2013년에 한국폰트산업협동조합 이 만들어졌는데요. 폰트 시장을 만들어 가는 환경의 주체가 디 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작년 연말에 한국폰트협회가 ‘디자이너스 데이ʼ(Designerʼs Day)라는 것을 했어요. 어디에서 폰트를 만들었다고 하면 회사의 몫이지, 디자이너의 몫은 없어 요.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랬고. 모든 결과물이 회사에 속해 있고, 해당 회사의 대표에게만 집중하게 되어 있죠. 시장이 형성 되는 초기에는 회사와 시장을 키우려면 그러한 것들이 필요했

김민수 (1959년 강원도 태생, 구 신명컴퓨터 대표)

14세의 나이에 목회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민 길에 올랐다. 미국 뉴욕에서 교육을 받고 IT의 상징인 MIT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였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 교회의 주보 만드는 일을 돕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

죠. 하지만 이제는 디자이너가 소속감,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폰트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도요.

어느새 그의 업이 되었다.

일종의 영웅을 만드는 거죠. 상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기술과 시장의 태동기에는 으레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도 극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1990년 초 그의 재기발랄하고 반짝이는 재능 DTP(Desktop Printing)의 태동기라 할

‘디자이너스 데이ʼ라고 해서 관련 유명 교수들을 초청해서 강연

역시 한껏 빛을 발했다. 그는

하고 작년에 만든 서체들을 모아 ‘회원사가 뽑은 올해의 서체ʼ라

1990년대 초부터 이후 본격적인 장이 펼쳐지고 정점을 이루는 2000년대까지 줄곧 격변하는 기술의 진보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는 당시 DTP 업계에서 자신의 역할은 코디네이터(coordinator) 와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였다고 회상한다. 그 같은 역할도 수 있는

는 행사도 하고 그랬어요. 행사를 진행하던 중에 이용제 씨가 제 게 디지털 폰트의 역사를 정리해 보자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용

그가 매킨토시 컴퓨터, 프린터, 필름 출력기와 같은 하드웨어 환경과

제 씨가 잡지를 발행하고 있고, 책으로 출판하면 효과적일 것 같

페이지메이커, 쿼크익스프레스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소프트웨어) 환경, 그리고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폰트 환경, 이 세 가지의 조합을 당시

아서 같이 하게 되었어요.

그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 세상의 많은 인생이 그러하듯 그도 여러 난관을 겪었다.

IT 벤처 바람이 거세게 불던 2003년 무렵에는 해외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기도 했다. 그가 만들었던 NeXT 기반의 ‘뉴스맨 (NewsMan)ʼ은 당시 스티브 잡스가 화려하게 복귀한 애플사의 Mac OS팀을 경탄하게도 했다. 지금도 현존하는 페이지 레이아웃 프로그램인 ‘엠레이아웃(MLayout)ʼ은 쿼크익스프레스나 인디자인처럼 외국 프로그램 일색인 국내 DTP 환경에 적잖은 파장을 그러다

일으키기도 했다. 길지 않은 디지털 폰트의 역사에서 그는 이 업계 사람들에겐 이미 손동원 폰트협회 회장

하나의 상징이자 전설이다. 그런 그가 굴곡진 삶을 뒤로하고 청년 김민수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더 나은 새로운 환경을 개발하는 꿈을.

기사도 쓰고, 책도 쓰는 건가요?

이용제

내용이 갖춰지고 나면, 한글 폰트의 근현대사 같은 게 되겠지요.

손동원

우리나라가 기록이나 자료 취합에 약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이나 다른 나라들은 치밀하게 잘 보존하는 것 같은데, 우리

는 여러 상황이나 문제들로 인물을 조망하는 것에 특히 약한 것 같아요. 지금까지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이 최정호, 최정순 선생 정도인 것 같아요. 예전에 몇 차례 최정순 선생을 뵌 적이 있는 데, 이런 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함께 들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아

이용제 계원예술대학교

008

김민수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1. PageMaker 1.2의 인터페이스 DTP 시대를 연 알더스(Aldus)

라고 해서 옆에 뜨는 게 있었는데 이게 복사, 붙이기가 가능했 어요. 제가 만든 폰트를 비트맵(Bitmap)으로 만들고 사이드킥에

사의 페이지 레이아웃 프로그램으로 쿼크익스프레스(QuarkXPress)나 인디자인(InDesign)의 원조.

입력한 걸 복사해서, 페이지메이커에 붙이기를 하면 한글이 뜨

Mac OS

상의 페이지메이커에서 포스트스크립트

는 거예요.

폰트로 디자인하여, 애플(Apple)사의 레이저라이터(Laserwriter)로 출력할 수 있게 되면서 개인용 컴퓨터의 인쇄 환경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손동원

말씀하신 비트맵 폰트는 한글을 몇 자 정도 만드신 건가요?

김민수

아마도 200자 정도 넣은 게, 4개 테이블이 있었을 거예요. 폰토

DTP라는 용어는 페이지메이커를 출시한 알더스사에서 마케팅을 목적으로 처음 사용하였다.

256개의 코드로

그라퍼(Fontographer)라고 폰트 만

아스키 코드는

드는 프로그램이 나오자마자 사서

불렀다. 즉 김민수는

폰트를 만들었어요. 제가 4~5번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테이블이라고

800개의 낱자를

조합해서 한글을 표현했다.

째 유저인가 그랬어요. 제가 당시에 명조, 고딕 외에 아는 게 뭐 가 있었겠어요. 뉴욕에 가 보니 한국일보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당시 미국에 있는 한국 신문사 중에 한국일보가 제일 컸었는데, 그곳 사장이 한국에 한국컴퓨그래피(이하 한컴)라는 회사를 가 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타입세팅에 대해 잘 알고 있더라 쉬움이 있었고, 최정순 선생 외에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

고요. 궁금해서 기계에 대해 많이 물어 보고 그랬어요. 제가 자

어서 조금 더 객관적인 내용을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

판에 대해 잘 모르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 했는데, 다행히

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디지털 폰트의

공병우(1906~1995) 박사께서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오셨어요.

역사를 말할 때, 김민수 사장은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니 첫 번째

너무 반가워서 전화를 걸어서, 제가 이러한 것을 개발하는 사람

인터뷰를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했더니, 대뜸 “2

김민수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갔어요. 아버님이 목사님

벌식이요, 3벌식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걸 몰랐던 저는

이셨고 저는 교회에서 주보 담당이었어요. 그래서 한글 타자기

“그게 뭐예요?”라고 했죠. ‘ㄱʼ이 몇개냐고 묻길래 “하나죠.”라

를 맨날 치다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이것을 좀 쉽게 할 수 있는

고 했더니, “그건 2벌식이에요.”라고 하면서 화를 내시는 거예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IBM PC에 그래픽 모드로 워드프로

요. 그래서 제가 공병우 박사께서 얼마나 빨리 타자를 치는지 모

세서를 하나 만들었어요.

르겠지만, 남을 욕할 거라면 시합을 한번 해보자고 말했더니 웃

손동원 몇 살 때 그 작업을 시작하셨나요?

으시더라고요. 그분이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저도 관련 연구를

김민수 고등학생 때였을 거예요. 워드 프로세서에서 쓸 한글 폰트를 만

해 보니 지금은 이해가 되는데, 당시에는 황당했던 기억이 있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폰트를 6벌식으로 했다가 더 예쁘

요. 재미있었어요.

게 한다고 10벌식으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버님께

손동원

젊은 김민수와 공병우의 만남이었네요.

서 제가 만든 워드 프로세서를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면서 교회

김민수

그러던 중 한국일보에 있던 사람이 말해 주길, 한국에 최정호

에 퍼졌어요. 무엇보다 편했거든요. 84년도에 미국에서 매킨토

(1916~1988)라는 사람이 서체를 다 만들었고 일본 모리사와에

시 컴퓨터가 나왔어요. 매킨토시 유저 그룹에 갔는데, 페이지메

납품도 했는데, 그의 아들이 뉴욕에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커 1 라는 것을 데모로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찾아갔어요.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을 해 보니 맨해튼 8번가에

이거 꼭 해 봐야겠다 싶었어요. 당시에는 폰트라는 게 딱 하나였

서 가게를 하고 있더라고요. 찾아가

거든요. 시스템에 정해져 있었는데, 매킨토시에는 폰트라는 개

서는 폰트를 몇벌식으로 만들면 좋

념이 있더라고요. 페이지메이커가 3단 편집이 되고, 제목 넣고

을 것 같은지 물어봤죠. 처음엔 웃더

그림도 집어넣어서 레이저 프린터로 뽑으니까 뉴스레터가 딱

라고요. 대답하기를 한국에 사진 식

나오는 거예요. 이거 여기에 한글만 넣으면 되겠다 싶었죠. 이전

자기라는 게 있대요. 거기에는 1500

에 개발했던 것을 넣으면 당장 한국 가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자 정도의 글자가 유리판 2에 그려져

만 같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매킨

애플사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인데, 지금의 툴바처럼 여러 기능을 수행할

2.

토시를 보면 사이드킥(Sidekick)이

수 있는 보조 프로그램으로 생각됨

원도를 유리판에 입혀, 렌즈로 글자 크기를 확대・축소할 수

사진 식자 유리판

있다. 글자의 받침을 조합하여 사용한다.

있고 나머지 글자는 조합해서 만든 다는 거예요.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

009


신작 그동안 「히읗」에서 활자 비평을 몇 차례 진행하면서 비평 방법에 대한 여러 의견과 논의가 있었다. 그중 한 문제가 비평의 객관성 유지였다. 비평가와 제작자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으로 직접 또는 서신으로 대화를 시도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히읗」은 편집회의를 통해, 활자 비평을 보다 객관화하기 위한 활자 평가 기준을 마련해 보았다. 그리고 그 시도를 「히읗」의 편집위원인 이용제가 디자인한 <바람체>를 대상으로 실험해 보았다. 활자 평가에 참여해 준

〈 바 람 체 〉 사 용 성 평 가

20여 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012345

2011년

「 타이포잔치

동아시아의 불꽃 」 (예술의 전당) 전시에서 ,

「혼돈」이라는 포스터로 네 가지 굵기의 활자와 반각 활자를 선 보였습니다. 그러다 2013년 2월부터 후원으로 23,861,333원 을 받아서 가장 굵은 굵기의 한글 2,363자, 알파벳 52자, 문장 부호와 숫자 등을 포함한 3,500여 자를 10개월 동안 그려서 <바 람체>를 만들었습니다. <바람체>를 계획하고 그릴 때, 저는 옛 책에 쓰인 한글에 심취

해 있었습니다. 옛 한글 활자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옛 활자를 ‘재해석ʼ하여 전통을 잇되 지금의 활자와 다른 ‘그 무

<바람체>의 점과 획

엇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포스터 「혼돈」에 세로쓰기용 글자와 문장 부호를 그렸습니다.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개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결국 제목용 에 가까운 활자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가로쓰기 세대인 제게 세 로쓰기는 낯설었고, 세로쓰기용 활자의 균형은 학습을 통해서 만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참고했던 여러 활자가 있었 습니다. 점과 획은 붓으로 쓴 해서체 양식의 <최지혁체>의 영향 을, 글자의 골격은 <박경서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굵고 가는

「히읗」 편집위원회

줄기의 변화는 한자 폰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이원모체>의 형식을 빌려 왔습니다. 또한 세로획이 굵은 <바람체>를 전각 안

이용제 글자 디자이너 계원예술대학교

에 넣기 위해서, <이남흥체>의 획의 굵기 변화를 참고했습니다.

결국 ‘옛 활자의 멋ʼ을 ‘현대 활자의 균형ʼ에 담아 보려는 생각으로 <바람체>를 디자인했습니다. 옛 활자에는 손글씨의 특징이 많 은 필서체 계열과 인쇄에 유리하도록 글자의 공간을 넓힌 인서 체 계열이 있습니다. 이 두 계열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붓의 흔적이 획의 시작과 끝, 그리고 꺾임 등에 나타나 있으며, 세로쓰기 시대에 만들어져서 받침글자와 민글자의 높낮이 차이 가 있습니다. 현대 활자의 균형이라는 것은 최정호 활자 이후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가로쓰기에 맞춰 진화한 형태라고 생각합 니다. 받침글자와 민글자의 높이 차이가 이전 활자에 비해 줄어 들고, 가로획이 수평에 가깝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첫닿자 는 커지고 받침닿자는 너비가 넓어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016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혼돈」,

2011, 이용제


<이남흥체>,

1991

저는 옛 활자와 현대 활자의 특징을 섞어 보았습니다. 활자의 공간 구조와 짜임은 현대 활자의 틀을 따랐지만, 글자의 표현에는 옛 활자의 특징을 많이 담으려고 했고, 글자의 짜임 역시 최정호 원 도보다 더 오래된 박경서 활자에 가깝게 디자인 했습니다. 각각 디자인된 낱자를 모아 씀으로써 낱글자를 만드는 개념이 아니 라, 낱글자 자체를 하나의 형태로 보고 디자인한 것입니다. 즉, 닿자・홀자・받침은 각각 독립된 낱자이지만 이들은 하나의 글자 를 구성하는 부분일 뿐입니다. 그래서 낱글자는 글자의 어떤 한 부분(보통 한가운데)에 중심을 두고, 중심을 향해 낱자들이 모입니 다. 마치 지구의 핵을 중심으로 중력이 작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체>는 세로쓰기 문장용으로 디자인하여, 가로로 쓰면 몇 가

지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글자의 무게중심을 중 <최지혁체>,

1882

<박경서체>,

1930경

앙보다 조금 오른쪽에 놓아서, 가로로 쓰면 글자 사이가 불규칙 해 보이는 것입니다. 다행히 어도비 인디자인 등의 전문 조판 프 로그램에서는 커닝값을 인식하여 글자 사이가 조금 나은 편입 니다. 다른 하나는, 가로획 수에 따라 글자의 높이 차이가 크다 보니, 글자의 위아래 여백을 조정하여 글자 사이가 고르게 보일 수 있도록 했지만, 가로로 쓰면 글자의 높이 차이가 두드러져 조 금 어색해 보이는 것입니다. <바람체>는 책에 들어가는 짧은 글이나 제목에 쓸 생각으로 만들

어서, 16포인트 이상의 크기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글자의 균 형과 비례 등을 30~72포인트 정도의 크기에서 제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간혹 12포인트 미만 크기로 써도 문 제가 없을 수 있으나, 가로・세로획의 굵기 대비가 심하여, 작은 크기로 많은 양의 글에 쓰면 눈이 피로하므로 적당한 사용 방법 이 아닙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바람체>는 세로쓰기 문장용으로 디자인한 활자입니다. <바람체>를 그리면서 하나의 활자로 여러 상황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 으로 바람체를 수정・보완하고, 새로운 자족을 늘려 가면서, 이 러한 생각을 반영하여 진행하겠습니다. <이원모체>,

1933

017


특집 ‘옛 책의 형식미ʼ 특집의 시작으로 6호에서 ‘표지ʼ를 살펴보았고, 이번 호에서는 판식, 조판, 터잡기를 다룬다. 2014년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조선 시대 활자본을 중심으로, 달라진 것과 변치 않는 것을 살펴보았다.

옛 책에 대한 정보는 서지학계의 연구 성과에 의존하였다. 서지학자 임영란의 강의와 조언을 뼈대로 삼았고, 천혜봉의 저술과 국내 출간 서적을 많이 참고하였다. 한정된 사료를 근거로 하기에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한 사안도 있으나, 재차 고증하거나 각 의견의 타당성을 심도 있게 비교・분석하는 과정은 거치지 못하였음을 미리 밝혀 둔다.

옛 책 의 형 식 미 2

목활자 인쇄 도구

심우진 「히읗」 편집위원

먹비와 인체(문지르개), 계선용 대나무 조각,

도서출판 물고기, 그래픽 디자이너

실톱, 배자용 대나무 젓가락

널빤지에, 글자 수와 글줄 수에 맞게 틀을 만들고 그 안에 가지런 히 활자를 배열하여(排字) 인쇄할 판(印版)을 짜는 행위는, 오늘날 의 조판(typography)・터잡기(layout)와 비슷하다. 활자를 배열하여 인쇄함에는 달라진 바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역시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용 어부터 시작하여 사뭇 낯선 부분도 많다.

활자의 역사에 비하면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는 짧은 편이다. 우리 가 이 용어를 일상적으로 쓰기

미국의 활자 디자이너, 캘리그라퍼,

시작한 것도 불과 몇십 년 전의

Addison Dwiggins)가 에세이 『New Kind of Printing Calls for New Design』(1922)에서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 20세기

일이다. 디자이너라는 사람들

판 식 、 조 판 、 터 잡 기

은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 춰 숨 가쁘게 달려왔고, 이어지 는 불황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

북디자이너였던 드위긴스(William

중반부터 점차 퍼지기 시작하였다. 쓰기, 파기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graphē를 어원으로 한다.

을 고민할 여유를 갖게 되었다(그 사이에 그래픽 디자인은 ‘구식ʼ이 되어 버렸지만).

이토록 긴요한 시기에, 화려했던 고려・조선 시대의 활

자 문화와 그 토대가 된 동아시아의 쓰기・파기・찍기 문화 속에 서 무언가 밑천이 될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왠지 더 늦기 전에 알아 두어야 할 것 같다는 조바심도 있었고, 무엇을 느끼고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막상 일을 벌이고 보니 아무 것도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컸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조선 시대의 활자본(活字本)을 중심 으로 옛 책의 판짜기(組版)를 조사하고 재구성하였다. 크게 판식 (版式; format),

배자(排字; typography), 터잡기(排置; layout)로 나누어,

판형, 판면, 여백 등의 판짜기 기본 요소를 알아보고, 판식 용어, 옛 책의 판짜기와 오늘날 타이포그라피의 연관성, 터잡기의 시 대적 변천까지 훑어보았다. 현재 옛 책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실제로 보고 만질 기회도 적었기에 주로 서지학 서적을 참고하 였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하였지만, 오늘날 책의 형식을 다양한 기준 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동아시아 활자 문화와 전통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과 교류해야 할 동기와 지향점을 찾을 수 있었다.

026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16(17(89:(;<

옛 책 의

판짜기는 판형에 판면과 여백의 터를 잡는 일로 시작된다. 이 방식은 사진 식자 시대의 대지(臺紙) 작업으로 이어졌고 디지털 조판

판 식

. 항자수에 따르며, 시스템의 판면의 크기는 근간이 활자 되었다 크기와

그 결과 여백이 만들어진다. 흰 종이(白)에

6

먹을 찍어 낸 나머지(餘)가 여백(餘白)이기

版 式

때문이다. 예로부터 판짜기는 이들의 관계를

맺어 조화를 이뤄 내는, 회화적 정서를 머금은 디자인 과정이었다.

Format

20 、

=>9判型@

지면의 크기로, 판면과 여백을 합한 영역이다. 옛 책의 판형에는 일정한 규격이나 체계가 없다. 종이 규격이 표준화되지 않았고, 활자 크기가 매우 컸으므로, 종이를 절수(折數) 단위로 절반씩 줄

14

인다 해도 작은 크기의 활자를 여러 종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있

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국서지학원론』은 다음과 같이 옛 책 의 판형을 분류한다(필사본과 활자본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필사본의 판 형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띠지만, ‘조선 시대 활자본은 대부분 대형ʼ이다).

• 대형…국배판(A4) 정도 이상(대표적인 예로 『조선왕조실록』)

8 、

• 중형…대형의 1/2 정도 • 소형…중형의 2/3 정도 • 특대형…대형보다 훨씬 큰 것

8

• 특소형…소형보다 훨씬 작은 것

、 =79版面@

인쇄판을 찍어 먹이 묻는 곳으로, 판형에서 여백을 제한 영역이 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판의 기본이 되는 개념으로, 판면의 면적은 ‘글줄당 글자 수×총 글줄 수ʼ로 결정된다. 서지학에서는 이를 항자수(行字數)라고 하며 판식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으로

2 、

간주한다. 옛 활자본의 판형이 주로 대형인 이유는 활자가 커서 자연스럽게 판면도 넓어지는 데에 있다. 한글을 포함한 한자 문 자권에서는 모아쓰기를 기본으로 하는 특성상 풀어쓰기의 라틴 문자에 비해 크기가 클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각 문자의 특성은 조선 시대의 활자 인쇄 장인들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工典)에,

조선의 인쇄・출판 담당 관서인 교서관

오늘날의 조판에도 이어져 한자 문자권의 판면과 라틴 문자권

4

의 판면은 그 밀도와 질감이 사뭇 다르다.

(校書館)의 장인과 인원수가 규정되어

있다. 쇠를 녹이는 야장(冶匠) 6명,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각자장(刻字 匠)

14명, 활자를 주조하는 주장(鑄匠) 8명, 활자의 기울기와 높낮이를 고르게 조판하는 균자장(均字匠) 40명, 판을 종이에 찍어 내는 인출장(印出匠) 20명, 나무에 그림을 새기는 조각장(雕刻匠) 8 명, 나무를 자르고 다루는 목장(木匠) 2 명, 종이를 마르는 지장(紙匠) 4명 등 총 8분야, 102명의 장인이 있었다.

AB9餘白@

인쇄판을 찍어 먹이 묻고 남은 곳으로, 판형에서 판면을 제한 영 역이다. 판면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 남겨진 백의 흐름이 결정된

40

다. 한자 문자권의 옛 책은 위 여백을 넓게 잡았다. 아래 여백을 넓게 잡는 라틴 문자권의 옛 책과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027


특집

다른 나라의 옛 책과 디자인 ①

6호의 특집 시작으로 발맞추지 못한 글을 이번 7호부터 시작한다. 우리 옛 책의 형식미를 앞에서 살펴봤다면 두 번째 특집에서는 해외로 시야를 넓힌다. 그러나, 으레 서양의 것이 아닌

1. 2001년 인도 인구조사에 따른 것으로, 22개의 ‘규정ʼ 언어와 100개의 ‘비규정ʼ 언어가 열거되어

다른 지역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도착지는 인도다. 깊고 풍부한 인도 문자 진화의 역사,

있다. ‘규정ʼ 언어란 인도 공용어가 언급되어 있는

그리고 혹독한 식민지 시기를 거쳐 ‘문명화ʼ된

인도 헌법 제8 규정을 지칭한다.

이 거대한 대륙의 글자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2.

티베트 버마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인도 전체 인구 중

1%밖에 되지 않지만, 해당어는

인도의 어족 중에서 가장 많은 언어(66개)를 포함하는 어족이다. 물론 여기에 포함된 언어가 모두

인 도 문 자 、 글 씨 에 서 활 자 로 ⋮ ⋮ 바입하브 싱

Vaibhav Singh 번역 김설경, 임유나

티베트 문자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문자를 채택한 경우 지리적으로 각 문화의 지배에 영향을 받았다.

3.

『아시아 문자 편람』(R. F. 호스킹

& G. M. 1969)

메레디스 오웬스 편저, 런던, 영국 박물관,

27~34쪽 참고. 배경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파벳: 인류 역사의 열쇠』(데이비드 디링거, 뉴욕,

철학도서관,

1948) 328~399쪽 참고

Indian scripts and their transition into print 인도 아대륙에서는 매우 다양한 언어 및 문자가 사용되고 있다. 광 활한 인도 아대륙 전역에서 1500개가 훨씬 넘는 언어가 사용되 고 있고, 이 중 20여 개는 각각 100만 명 이상이 사용 1 하고 있 다. 인도의 공용어는 스물두 가지이며, 이를 10개의 문자로 표 기한다. 즉, 다수의 언어가 동일한 문자 체계를 이용한다. 10개 의 문자는 지역적으로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그림 1] 북부에서 는 데바나가리, 구르무키, 구자라티, 벵갈/아쌈, 오리야 문자를 사용하고 남부에서는 타밀, 텔루구, 칸나다, 말라얄람 문자를 사용한다. 페르시아 아랍 문자도 인도 내의 여러 지역과 아대 륙 일부, 즉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까지 광범위하게 이용 된다. 이와 더불어 티베트 문자 2 도 인도 북부 및 동북부에서 많 이 사용한다. 실제 사용되는 언어와 문자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 다. 조사자가 일부 언어를 간과할 가능성 때문에 상황이 확고하 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집단, 특히 소수민족이 최근에야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자신들이 채택한 문자로 더 큰 규모 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놀랍게도 인도에서 사 용되고 있는 언어와 문자의 수는 앞으로 더 증가하리라 예상된 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도 언어와 문자를 단독으로 사용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문자 사용에서 라틴 알파벳 말고도 두 개 이상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인도 아대륙의 문자는 주로 이 지역의 원시 문자인 브라흐미(Brahmi)3 로부터

유래한다.[그림 2] 물론 영국 통치에 앞서 이슬람 지

배자들의 긴 식민 역사에 걸쳐 강세를 띤 페르시아 아랍 문자 는 브라흐미와는 다른 원시 문자로부터 기원했고 다른 전통을 가진다. 페르시아 아랍 문자를 제외한 이들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읽으며, 라틴어나 그리스어처럼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자음과 모음을 합하여 합자를 형성하고, 자 음과 자음을 결합할 수 있는데, 이렇게 새롭게 이루어진 단위는

050

1. Based on the Census of India (2001), which lists 22 scheduled languages and 100 non-scheduled languages: a ‘scheduled’ language refers to the Eighth Schedule of the Indian Constitution which lists officially recognised languages in the country. 2. Of all the language families in India, Tibeto-Burmese in fact comprises the maximum number of languages (66), though the native speakers amount only to 1% of the country’s total population. Not all languages use the Tibetan script, however, other script adoption being based on the geography of cultural dominance. 3. R. F. Hosking & G. M. Meredith-Owens (eds.), A handbook of Asian scripts (London: The British Museum, 1969) pp. 27–34. For a more detailed background see David Diringer, The alphabet: a key to the history of mankind (New York: Philosophical Library, 1948) pp. 328–399

The Indian subcontinent is home to a rich diversity of languages and scripts — well over 1500 languages are spoken within its wide expanse, with more than twenty of these possessing upwards of a million speakers each.1 There are twenty-two officially recognised languages in the country, written mainly in ten scripts (i.e. many languages often share the same script). These scripts can be broadly divided into two geographical groups: northern and southern.fig.1 The northern Indian scripts are Devanagari, Gurmukhi, Gujarati, Bengali/Assamese, and Oriya. Southern Indian scripts comprise Tamil, Telugu, Kannada and Malayalam. Perso-Arabic is used extensively in many parts in India and across the subcontinent, in Pakistan and Bangladesh. In addition to this, Tibetan is very much a part of the script cultures of the north and north-eastern parts of India.2 The actual number of both languages and scripts tends to be much larger: a surveyor is constantly on slippery ground with the possibility of overlooking one or the other. Varied communities, especially those belonging to minority groups within the population, are only now beginning to receive cultural recognition, allowing for communication on a larger scale in their preferred medium, so incredibly enough, an increase in language — and script — diversity may be expected. What is of greater significance in this context, however, is that none of the regions are exclusive in their use of languages and scripts — it is certainly not unusual to find more than two scripts in use in these visual environments, besides the Latin alphabet. The scripts of the Indian subcontinent are known to have largely originated from one source, the proto-script of the region: Brahmi.3 fig.2 Perso-Arabic, of course, derives from a different source and has different traditions, having been strengthened by the long history of Islamic rulers of India prior to its British colonisers. The scripts, apart from Perso-Arabic, are read from left to right, top to bottom, and are mostly syllabic in nature, not alphabetic like Latin or Greek. They possess vowels and consonants, which combine to form ligatures, consonants combine with other consonants to form conjuncts, units that can have a significantly different graphic representation than the shape of the component characters. Additionally, combinations can be made in multiple ways to produce different representations for the same sound. This means that the basic number of characters in many of these scripts are not limited or easily definable, and depend largely on language use and regional preferences. The fact of the common origin links these scripts at a basic, structural level, though each of these has undergone separate processes of development in its historical trajectory leading to widely different forms.

각 문자의 본 모양과는 상당히 다른 시각적 형태를 띠게 된다.

다. 이렇게 인도 문자는 역사적 맥락에서 각각 독립적인 발달 경

게다가 똑같은 소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기할 수 있다. 즉, 여

로를 거쳐 형태가 서로 많이 다르지만, 같은 어원으로부터 유래

러 문자에서 기본적인 글자 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쉽게 규정하

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

기도 어려우며, 언어 사용 및 지역적 선호에 따라 차이를 보인↗

인도 문자의 다양성은 길고 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다양성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구르무키 Gurmukhi

페르시아 아랍 Perso-Arabic

티베트 Tibetan

데바나가리 Devanagari

아쌈 Assamese

벵갈 Bengali

구자라티 Gujarati

오리야 Oriya

텔루구 Telugu 칸나다 Kannada

타밀 Tamil 말라얄람 Malayalam 신할라 Sinhala

인 도 아 대 륙 의 여 러 문 자

그림 1. 이 지도는 구획에 따라 나뉜 각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문자를 표시한 것이다. 경계는 대략적인 것이며 거의 모든 지역에서 하나 이상의 문자를 사용한다(지도의 척도는 정확하지 않음. 일부 국경과 지방 구획이 편의에 따라 변경되었을 수 있음).

fig. 1 Scripts in the Indian subcontinent The map gives only a broad indication of the scripts predominantly used in the various regions thus delineated. The boundaries are purely schematic, more than one script is used almost in every area. [Map not to scale. Moreover, certain national and international boundaries may have been conveniently modified.

051


잡다한 이야기

타이포그라피의 정치성

‘아는 것이 힘이다ʼ라는 현자의 말에 이번 호부터 시작하는 ‘타이포그라피의 정치성ʼ 연재의 의도가 숨어 있다.

아는 것, 즉 힘이 텍스트를 통해 얻어진다면 타이포그라피는 정치적이다. 지식의 전달, 달리 말해 힘의 분배는 글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글자의 모습에는 읽는 이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1994년에 흑인 차별 제도를 철폐한 남아공에서 권력의 전복이 가져온 상징적인 글자체로 다소 어려운 논제를 쉽게 시작하고자 한다.

대서양과 태평양이 만나는 곳 희망봉, 작년에 별세한 인권 운동가 넬슨 만델라, 흑 백 격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등의 키워드를 가진 나라이자 영국 연방국에서 만 이해되고 행해지는 스포츠 ‘크리켓ʼ 강대국, 그리고 2010 월드컵 개최지인 남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1994년

남아공 역사상 첫 민주주의 선거가 이루어지면서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

델라가 등장했고, 그때 50년간 이어져 온 흑인 차별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 나라 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듬해에는 과거 청산을 위한 진실 화해 위원회 가 설립되었고, 으레 예상되는 시위나 폭력, 유혈 사태 없이 노예였던 흑인과 주 인이던 백인이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인간의 기본권인 인간 존중이 남아공에서 잠시나마 실현되었고, 인종 차별을 마침내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이 희 미하게나마 보인 때였다. 남아공 헌법에는 이와 같은 노력이 직접적으로 명시되 어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헌법재판소가 이번 글의 현장이다. 남아공 요하네스 버그 콘스티투션 힐(Constitution Hill)에 위치한 이 건물은 본래 교도소였다. 수많 은 흑인 인권운동가들, 그리고 한때 남아공에서 활동했던 마하트마 간디도 수용 되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곳에서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혹독한 박해와 고문을 받았으며, 차가운 시체로 이곳을 떠난 이들도 많았다. 남아공은 이 부지에 세워 지는 헌법재판소 건물을 전 세계 건축가, 비건축가 모두에게 공개 모집해 ‘민주 적ʼ으로 짓기로 했다.

건물이 완성되어 갈 즈음, 재판소 정문 외벽 및 내부 사인물에 쓸 서체를 개발하 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보통 서양 법원 건물에는 위엄 있는 세리프 로만체 가 사용되지만,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이 건물에서는 그 어떤 강압이 나 위계를 허용하지 않고, 서방 국가의 상징 체계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재판 관들과 정부 기관들이 원했던 것은 회복된 남아공의 민족적 다양성(남아공의 공식 언어는 11개인데, 대표 부족에 따라 정해진 언어들이다)을 보여 주는 독특한 민주주의적 서 박경식 「히읗」편집위원

체였다. 로만체라는 신고전주의적 권력의 상징 대신 아프리카 민주주의만의 상 징을 요구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글꼴 안에 그런 무형의 가치인 ‘평 등ʼ, ‘민주주의ʼ, ‘다양성ʼ, ‘권력ʼ 등을 실제로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런 글꼴 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쉽게 떠올릴 수 있는가? 다르게 생각해 보 자. 1927년에 발표된 에릭 길의 <길 산스>를 흔히 영국 적인 서체라고 하고, 영국국영방송 BBC에 서도 마치 그 말을 신뢰하듯 전용 서체로 사 용하고 있다. 하지만, <길 산스>의 어디가 왜 영국적인지 알려 주는 이는 없다. 미국 사람 이나 타국 방송에서는 이 서체를 쓸 수 없는 것일까? 좀 더 최근 예로 <서울서체>를 들 수 있다. 서울을 대표한다는 의도를 갖고 서체 를 디자인한다는 발상부터 의아하지만, 그 런 점은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서체에 서울 을 담아낼 수 있을까. 국가색이나 도시색이 소유권이나 지원금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

066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닐 것이다. 흔히 <헬베티카>를 중립적인 서체, 스위스를 대표하는 서체라 칭한다. 그런데 그것들은 어째서 그러한가? <헬베티카>는 브랜드 로고에 제일 많이 쓰이 는 서체이다. 그런 로고들에서 ‘스위스ʼ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러나 글자는 고유의 형태를 지니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에게 인지되는 인상이 있 다. 예를 들어, Power라는 단어를 세리프체인 <가라몽>과 산세리프체인 <헬베티 카>로 쓰면 각기 느낌이 다르다. <가라몽>이 가진 세리프와 붓으로 쓴 느낌의 획 굵기 변화들은 둔탁한 <헬베티카>가 가진 묵직한 느낌과 사뭇 다 르다. 이 단어를 대문자로 쓰면 공간을 차지하는 비율이 실로 육 중하다. 블렉레터체인 <페트 프락투르>로 쓰면 왠지 독일스럽 고, 독재, 특히 나치 독재가 연상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당원이자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세프 괴벨스의 영향이 큰데, 후에 거론할 중요한 인물이다. 아무튼, 산세리프 서체가 갖고 있는 힘은 분명 세리프체나 블랙레터체와 다르다.

남아공 헌번재판소에 사용될 전용 서체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 숙제는 결 국 가스 워커(Garth Walker)에게 맡겨졌다. 1994년에 ‘오렌지주스 디자인 스튜디 오ʼ(Orange Juice Design Studio)를 시작한 그래픽 디자이너 가스 워커는 백인으로 남 아공 토박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흑인들의 격하된 계층을 보고 자랐으며, 넬슨 만델라가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환호성을 외쳤다. 그는 인권 운동가 가 아니다. 비밀리에 아파르트헤이트를 반대하며 시위를 하거나 흑인들을 지지 하거나 돕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는 백인인데 아프리 카 사람이고, 사회적 부조리가 철폐되었을 때 아프리카 사람으로서 기뻐했다.

우선 그는 공사 현장을 방문하고, 교도소 부지를 견학했다. 그는 수감자들이 생활했 던 공간에 직접 들어가 보고, 그들이 고문당하거나 처벌받은 방에 있는 흔적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곳 벽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가스 워커는 수용자들이 긁고, 파고, 새긴 글자를 하나씩 사진에 담아 정리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사용될 전용 서체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067


백지

두 개의 정체성

지난 호까지 「히읗」에서는 ‘백지ʼ 꼭지를 무작위로 디자이너들에게 맡겨 왔다. 오랜 고민 끝에 지난 6호를 바탕으로 7호에서 하나의 맥을 이어 볼까 한다.

6호의 이마빈은 전통 기법인 탁본을 현대의 ‘유적ʼ, 즉 버려져 폐기된 간판에 적용시키는 방식의 작업을 소개했다. 이는 성장기를 타국에서 보내고 성인이 되고서야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디자이너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이질감ʼ을 이번 호 「히읗」 뿐 아니라 금년의 남은 기획에도 이어 가려고 한다. 디자이너이자 홍익대학교에서 수업하는 크리스 로와 서교동에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권오현에게 바톤을 넘긴다.

시애틀 × 서울

크리스 로, 그래픽 디자이너

Chris Ro, graphic designer, www.adearfriend.com

1.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는가?

그리고 어느 문화를 더 친숙하게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마 이 단순한

느끼는가?

사실이 내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시애틀 사람들은 대개 마음가짐이 편하고 서두르지 않는다. 간혹 스트레스도 받 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사고와 넓은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생 각해 보면 내 속이 엉망진창이 된 것 같다. 한국에 몇 년간 살다 보니 서로 상이한 문화들이 드디어 내 마음속에서 연결된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은 한국과 미국 문화 의 중간지대에 놓인 기분이며 어느 한쪽에 더 치우쳐 있지 않다. 어릴 적에는 나 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과, 익숙하지만 집처럼 친근하지는 않은 어중간한 느낌의 장소 사이에서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중간지대 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낯설었던 한국에 대해, 나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나라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있다.

2.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매일같이 변하는데, 한국에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인상은 어떤가?

점과 나쁜 점이 함께 보인다. 일상의 대화에 드러 나지 않는, 수면 밑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드디어 나에게도 보이는 것 같다. 그리 고 그러한 것들이 매우 흥미롭다. 좋든 싫든, 한국 문화는 ‘빨리 빨리ʼ 근성과 아 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끝내고 싶어 하지 꾸물거리 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대화나 만남, 그리고 매일의 업무에 스며있는 것 같다. 아주 흥미롭다. 또 한국 문화는 아주 끈적끈적한 것 같다. 상징적으로도, 실 제로도 말이다. 같이 움직이고, 같이 생각하고, 심지어 같이 걸어 다니기도 하는 데, 미국과는 달리 이러한 관계에 여러 층위가 있다. 이 점이 가장 와 닿는데, 개 인적으로 미국에서는 아주 독립적으로 생활을 한 반면, 한국에서는 그러지 못한 다. 여러 일을 빨리 끝내기에는 이런 방법이 좋은 것 같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 은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어 능률 면에서는 좋지만, 창의적인 생각과 독창성 을 위해서는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

3.

국내 디자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디자인 역시 ‘빨리 빨리ʼ 근

전망해 본다면?

성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

로 변화가 급격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빠른 변화가 디자이너에게 좋은 기회인 것 같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할 일들이 많다. 지루해하거나 한숨 돌릴 틈조차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기 있는 동안 깨달은 또 다른 사실이다. 우리 모두 앞만 보고 마구 달려가고 있으며, 페달을 힘껏 밟고 전진하 는데, 목적지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 또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같 이 마구 달리고 있다. 한편으로 가슴 설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숨이 막힌다. 디자이너와 디자인 시장이 막 달리고 있는데, 일반인, 대중, 우리가 일을 해 줘야 하고 우리 작업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그렇다. 한국 디자이너가 진보하려는 속도에 발맞춤하거나 동감 할 사람을 찾는 일은 무척 어렵다.

072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1. Where did you grow up? And which culture do you relate to most? I was born and raised in Seattle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is probably had quite a bit to do with my personality. If I can generalize and stereotype, people from Seattle are typically quite relaxed and not so much in a hurry. Although I do get stressed from time to time, I generally try to stay as optimistic as possible and open minded about things. I really think these days though my insides are all messed up. After being here for a few years now all these strange cultural connections have actually connected. I think more than anything, I am pretty much in the middle now between two worlds and I can’t say which culture I relate to most. As a kid I always felt like I was in some kind of in-between state between a place I knew nothing of and a place that never quite felt like home. I think things have not changed that much. I am still in-between but now I have a greater sense and understanding of this once mysterious place that had indirectly raised me. 2. What is your impression of Korea, or Korean culture? This is changing everyday and it seems the longer I am here the more I see both good things and bad things. I think I am just now beginning to see the sort of invisible things, the hidden communication that takes place underneath our surface level dialogues. And it is pretty fascinating. I think Korean culture for better or worse has a lot of influence from speed and the concept of speed. Everything here has some inter-connectedness to this idea of speed. People just want to get things done and not really dilly dally. And this seems to define everything from our interactions with other people to the daily things we do in our jobs. Its quite fascinating. I also think Korean culture is very sticky both literally and figuratively. Korean people move together, think together, walk together and unlike the States, there are many layers to these connections. This is sometimes one of the things I feel the most because in the States, I was an extremely independent person and I cannot really live like that here. I think this is particularly good to get a lot of things done very fast. Many people can simultaneously mobilize. But I think sometimes for creativity and being different, this is not the environment for that. 3. Also, what is your impression of the design scene here in Korea? Where do you see it going? I think the design scene here is similarly influenced by speed as well. The rate at which things change here is really mind-boggling. And I think because of this change it is really a nice time to be a designer here. Lots of things going on and lots of things to do. There really is never a dull moment. Ever. But where is it going? I have no idea. I think that is one thing I’ve noticed since I’ve been here. There is a mad rush to go someplace. Everybody is in a hurry. And they are driving ahead at full force. But it seems nobody knows where they are going? It is kind of like a blind dash. I have no idea where I am going either but I keep charging forward at full speed as well. It is both exhilarating and suffocating at the same time. But as fast as the design industry is changing, I can’t help but notice that the general public, our clients, the people who are often in charge of the shaping of visual culture here are still somewhat hesitant in many ways. Especially when it comes to change or things that are unfamiliar. And this is sometimes a struggle. As fast as designers want to move the people who will accept such rapid pace are sometimes very hard to find.


4.

돌이켜 보면, 당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자신에게, 자신의

분명히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내 작업에 여실

작업에, 혹 디자인을 바라보는

히 드러나는 것 같다. 나만의 스타일이나 작업 방

시각에 영향을 주는가? 이러한 정체성이 작업에 비춰지는가,

식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한국에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지

연고가 없는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흐름에 따라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갈 의향이 있고, 어디로 갈지 기다려 볼 마음도 있 다. 이런 마음가짐 때문에 내 작업은 항상 유동적

이다. 이런 작업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때로 미국에서 자라면서 얻은 생각이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지키려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 고집스럽게 계속 버티다가 작업을 완료하곤 한다. 이런 고집은 나뿐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 도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역시 이도 장단점이 있다.

4. In hindsight, how does your cultural identity — for lack of a better word — effect you, your work or your approach to design? Does this ‘identity’ reflect in your work, could you describe or explain how it does? I think it definitely affects my approach to design. And for better or worse, you can probably see it in my design work. I don’t think I have a set style or set way of doing things and I think this is somehow reflective of my roots here. I go with the flow and where the water carries me, I am willing to see and find out. So this results in work that is constantly in flux. And I think this is both good and bad. I think though that I have some things that are definitely from my American thoughts and upbringing. I do not want to give up sometimes. I will keep pushing and pushing and pushing and it is kind of a non-sensical stubbornness that guides some of my work as well. And this is not easy for myself or for clients either. And this is both good and bad as well.

베를린 × 서울

권오현, 그래픽 디자이너

Ohyun Kwon, graphic designer, www.guteform.kr

1.

어디서 태어나고 자랐는가?

30년 넘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문화를 더 친숙하게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거기서

느끼는가?

이미 성인이 된 후에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다. 독 일 문화에 더 친숙하다.

2.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아주 빠르고, 아주 트렌디하고, 아주 실용적이고, 아주 맛있고, 아주 마음이 넓다.

3.

국내 디자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한국에 와서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났다. 그

전망해 본다면?

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똑똑하고 열

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과 ‘빨리 빨리ʼ 근성 때문에 조만간 한국의 디자인 이 조망받기 시작할 것 같다. 아니,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웹이나 잡지에 한 국 출신 디자이너들이 적지 않게 소개되고 있으며 얼마 전에 독일 학생들이 우 리 스튜디오를 견학하고(다른 스튜디오도 방문했지만) 한국 디자인을 보러 직접 방문 도 했다. 대기업에 일하는 디자이너들의 경우엔, 애정을 갖고 디자인하기는 어려 운 것 같다. 뭐 독일도 마찬가지지만(독일뿐이겠는가 전 세계적으로 그렇다) 이곳 한국 은 특히 더 힘겨운 것 같다. 한국 사람, 그리고 한국 회사들은 서열을 아주 아주 중 요시하고 있는 것 같다.

4.

돌이켜 보면, 당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자신에게, 자신의 작업에, 혹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는가? 이러한 정체성이 작업에 비춰지는가,

아마 한국 사람들은 나에게 독일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 적으로 내가 일하는 방식, 내 작업은 내가 좋아하

그렇다면 어떻게 그러한지

는 디자이너, 디자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다.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말이다.

내 작업이 ‘독일ʼ스러워 보이는, 또는 ‘비한국적인ʼ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될 수 있으면 한글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글이 필요할 때 나는 고딕 계 열 서체 딱 하나만 사용한다. 또는 아예 타이포그라피와 무관하게 손글씨로 한글

1. Where did you grow up? And which culture do you relate to most? I was born in Berlin (Germany) and lived there for over 30 years. That means I started living in Korea when I was already an adult, so I have to say I relate to the German culture the most. 2. What is your impression of Korea, or Korean culture? Very fast, very trendy, very pragmatic, very tasty, very big hearts. 3. Also, what is your impression of the design scene here in Korea? Where do you see it going? I had the chance to meet some very good Korean designers here and I found out that they were very passionate & very smart. I believe that these two qualities combined with Korea’s hunger for speed will put Korean design on the map pretty soon. Actually I already see it happening right now, when Korean designers are being featured in publications/websites around the globe and we had a design class from Germany come to to our studio — and other ones — to get to know Korean designers. For the Korean designers working in big companies, i think it seems to be hard for them to produce work they love. Which is the same case for Germany, — or everywhere else for that matter — but here it seems to be a tick harder, as Koreans — and therefore Korean Companies — are also VERY VERY hierarchical. 4. In hindsight, how does your cultural identity — for lack of a better word — effect you, your work or your approach to design? Does this ‘identity’ reflect in your work, could you describe or explain how it does? Koreans probably think that i might have a ‘German style’, and maybe i have. But I think my work/approach to design is influenced & fueled by designs & designers i love and which i don’t choose by nationality. Maybe what makes my ‘Design style’ seem German, — or non-Korean — is that i try to avoid korean typography whenever it is possible. If I have to, I only use one gothic-typeface for almost everything Korean. Or I put myself in a position where i don’t have to deal with the typo e.g. when i use scanned handwriting — not my own. Since I don’t know how to swim well in the Korean-typography-ocean, I just play in shallow water.

을 사용하곤 한다. 물론, 내 손글씨는 아니다. 한글이라는 바다에서는 수영을 못 하기 때문에 그냥 해변가 얕은 물속에서 물장구를 친다.

073


활자 기행 이번 꼭지는 「히읗」에서 새로 시작한 주제다. 옛 활자에 대한 호기심과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 것으로, 이 땅 여기저기에 옛사람이 남겨 놓은 흔적을 찾아다닌 경험을 주제로 삼았다. 매 호 활자 기행문을 담기는 어렵겠지만, 한글 활자의 흔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눈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목적지는 지난 2월에 방문한 일본의 인쇄 회사,

DNP이다.

100C(DE(FG()*(HI(JK2345

놋쇠활자

1850년 즈음, 서양의 주조술이 동양으로 전래하면서 동양의 활 자 1 주조 방식은 큰 변화를 맞는다. 서양 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옹기활자

일본은 ‘명조ʼ 한자 활자를 주조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에 수출했 무쇠활자

다. 일본의 활자 주조소 츠키지활판제조소는 한자와 함께 한글 활자도 주조했는데, 가장 먼저 만든 활자가 <최지혁체> 2호와 <한성체> 4호 2였고, 이들 활자는 국내에서도 가장 널리 사용되

나무활자

1.

동양의 전통 활자

었다. <최지혁체>는 비교적 큰 활자로 당시 여러 성서와 교과서, 출판 인쇄물에 쓰였고, 상대적으로 작은 <한성체>는 최초의 한 글 신문인 「한성주보」와 다양한 인쇄물에 두루 사용되었다. 이

2.

두 활자가 1950년대에 출판된 인쇄물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보

2호(『성경직해』, 1892)와 4호(「한성주보」, 1886)

<최지혁체>

<한성체>

면 국내 인쇄소에 상당히 널리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츠키지활판제조소 외에 슈에이샤와 아오야마진행당 등, 활자를 주조하고 유통한 일이 활자 주조소가 발행한 활자 견본집에는 이 두 활자 외에도 한글 활자가 더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이 만든 활자가 모두 국내에서 쓰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며, 견

3. 4.

「매일신보」(1940. 「동아일보」(1933.

7. 27) 4. 1)의 <이원모체>

5.

「조선일보」(1922.

5. 16)의 ‘모ʼ 부인의 글씨를 바탕으로 한 활자본

본집에 수록되지 않아 주조 시기와 제작처를 모르는 활자도 많 이 있다. 그중에서 1920년에 발행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본문에 쓰인 활자는 「조선일보」에서 쓰기 이전에 이미 일본인 에 의해 발행된 한글 신문 「매일신보」 3에 쓰였고, 일본에서 발 행된 인쇄물에서도 발견된다. 추측하건대, 이 활자는 일본에서 주조되어 한국으로 들어온 활자라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가 일본 이와타모형에 제작을 의뢰해 만든 <이원모체> 4가 일본에 서 쓰인 사례를 발견하기 어렵고, 견본집에도 나타나지 않은 반 면, 「매일신보」 활자는 일본 내에서 쓰였던 점을 미루어 보아 국 내 회사가 제작을 의뢰한 것이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조선일보

이용제

이 시기에 한글 활자는 주로 일본에서 주조되었는데, 중국에서 제

씨를 잘 쓰는 ‘모ʼ(某) 부인의 글씨 5를 받아 활자를 제작했다고

작된 한글 활자로 1922년에 출간한 김두봉의 『깁더 조선말본』

만 기록되어 있을 뿐, 관련 기록이 없어 조선일보사에서 주문한

에 쓴 것이 있다. 이 활자는 분합식(조합식)으로 제작한 듯한데,

계원예술대학

활자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매일신보」 활자처럼 ‘궁서ʼ 활자는

책 서문에 열악한 조건이지만 책을 인쇄하기 위해 활자를 만들

박지훈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잡지와 단행본에도 쓰였기 때

었다고 했다. 이렇듯 100년 전의 한글 활자는 우리 스스로 주조

문이다.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글자 디자이너

활자 역사 연구가 그래픽 디자이너

074

사에서 전용 서체로 개발했다고 전해지는 ‘궁서ʼ 활자 역시 붓글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6.

일본

DNP 소장의 <슈에이샤 5호 한글 활자>의 전태자모, 주조된 납활자, 납활자 인쇄 DNP의 협력과 소개로 도쿄 사사키활자점(佐々木活字店)에서,

납활자 주조는

인쇄는 파주 활판공방에서 이루어졌다.(모두 실제 크기)

100C()*L(MNO(PQ

에 대해서 기초적인 연구는 모두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현재 진

디자이너 안삼열 씨가 나에게 상당히 오래

행 중인 관련 연구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

되어 보이는 한글 자모 사진 한 장을 보내

켜보고 있었다. 사사키 씨는 보관하고 있는 견본집을 보여 주

줬다. 그의 일본인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

며,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전태자모는 <슈에이샤 5호 한글 활

린 사진이었는데,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자> 6를 만들 때 썼던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에게

1880년 즈음부터 활자 주조에 쓰였던 전태자모로 보였다. 글자

는 일이 활자주조회사 슈에이샤보다 일본을 대표하는 활자 중

꼴 또한 정방형에 가까운 모습이나 글자의 획이 붓글씨의 형태

하나인 ‘수영체ʼ(<슈에이체> 秀英體 )로 더 잘 알려져 있을 듯하다.

로 된 것으로 보아 100년은 된 듯했다. 그동안 옛 한글 활자 자

이 활자는 100년 동안 지속적으로 다듬어져 온 활자로, 국내 인

료를 찾아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아직 이와 비슷한 자료를

쇄 출판에서도 많이 쓰였다.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호기심이 생겨 수소문해 보니, 일본 도쿄 DNP(Dai Nippon Printing) 슈에이샤(秀英舎, 1876년 창업)와 닛신인쇄(日清印刷)의 합병(1935)으로

의 DNP 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태자모

*X:(YZ(W([\*XE(D]*XE(I^*X

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심우진 씨가, 페이스북

활자를 주조하기 위해 만드는 자모(모형)는 크게 세 가지 7로

에 한글 자모 사진을 올렸던 DNP의 사사키

구분할 수 있다. 그중 펀치자모는 서양에서 초기 알파벳

木愛) 씨와 연락하여, DNP 방문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활자를 만들 때 주로 사용한 방법이다. 단단한 금속에 글

더 기쁜 일은 DNP 측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글 자모로 활자를

자를 볼록하게 새겨 부형을 만들고, 이를 자모에 대고 두

주조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2014년 2월 11일, 100년

드려 글자 모양을 음각으로 만드는, 비교적 간단한 자모

전 한글 활자를 만나러 간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제작 방식이다. 동양에서는 펀치자모보다 전태자모, 조

만들어진, 일본을 대표하는 인쇄 회사

아이(佐

각자모에 의한 주조법이 성행했다. 알파벳보다 획이 많 DNP(RST(UV(W201462612

은 한자나 한글 역시, 펀치식으로 자모를 만들기는 어려

너무 넓어서 몇 평이 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1,000평은 넘는

워 전태법으로 자모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후

듯했다. 자모, 원자판, 활자, 자모조각기 등 100년도 더 된 오랜

개발된 자모조각기는 알파벳이나 한자 그리고 한글까지

유물이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었다. DNP 직원들이 이 수장고에

정교하게 자모를 조각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자모를 조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자신들이 해 온 일

각하기 위해서, 글자를 확대해 그린 원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각각의 자모 특징을 보면 펀치자모(펀치를 망치 로 쳐서 만듦)와

조각자모 (자모조각기로 새긺)는 몸체(마대)에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전태자모는 음각이기는 하지만 몸체 부분과 다른 색을 띤다. 이는 전태법으로 만 든 글자 부분을 자모의 몸체에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7.

펀치자모, 전태자모,

조각자모(本木昌造・活字復 元プロジェクトの成果を展示

nagasaki-pia.org/cgibin/datahokanko/img/3. pdf)

왼쪽부터, 안삼열, 사사키 아이, 이용제, 심우진

075


책 둘러보기 다시 양보다 질로 돌아왔다. 기억에 남는 책 네 권이다. 한 권은 고개를 갸우뚱, 다른 한 권은 설레설레, 나머지 두 권은 고개를 절로 끄덕끄덕하게 만들 것이다. 특히, 『능동적 도서』는 이번 호에서 다루는 ‘얀 치홀트, 막스 빌 서신 논쟁ʼ에서 평행선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번역자와의 짧은 인터뷰에서 디자인서 번역의 어려움도 잠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16(Lord(of(Logos(_(Designing(the(Metal(Underground 지은이 Christophe

Szpajdel

출판사 Gestalten 디자인 Daniella

Burger

쪽 238

서평은 주로 최근에 나온 책을 다루 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무려 5년 전 인 2009년에 출간된 이 책을 이번

호에서 다루기로 한다. 출간 당시에도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2년 미국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에서 기획한 「그래 픽 디자인: 나우 인 프로덕션」(Graphic Design: Now In Production) 순 회 전시에 작업이 소개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해 소개해도 무관 하다는 생각에서다.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인 데스메탈 또는 블랙 메탈은 안 그래도 소 음 같은 헤비메탈 음악보다 더 암울하고 시끄러운, 포악한 음악 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밴드 맴버들은 헝클어진 머리에 검은

1. Lord of Logos – Designing the Metal Underground 2. 능동적 도서: 얀 치홀트와 새로운 타이포그라피 3. Type Only 4. 30 Years of Swiss Typographic Discourse in the Typografische Monatsblätter

옷을 입고 분장도 무섭게 한다. 앨범 표지들도 같은 분위기를 띠 며 음산한 자연 설정이나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블랙메탈 팬들에게 ‘로고의 군주ʼ(책 제목을 이 별명에서 따왔다)로 알 려진 크리스토프 슈파이델은 벨기에에 거주하는 평범한 가장이 다. 그는 블랙메탈은커녕 아예 악기를 다룰 줄 모른다. 전업으로 메탈 밴드 로고 디자인을 하기 전 그는 배관공이었다. 1990년대 부터 무명밴드의 로고를 하나둘 그려 주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10,000개에 육박하는 밴드 로고가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그 중에 엄선된 로고들이 이 책에 정리되어 있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음악 장르, 그것도 대중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장르의 밴드 로고 작업에 대한 책이라니, 왜 이런 책을 만드는지 말이다. 더 욱이 저명한 독일 디자인 출판 사 게슈탈텐에서 발행하다니 더 욱 의아해할 수 있다.

박 경 식 ︱ ﹁ 히 읗 ﹂ 편 집 위 원

082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고백하면, 필자는 전부터 블랙메탈을 들어 왔다. ‘즐겨 듣는ʼ 게 적

이 책은 전반적으로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그 목표를 군더더기 없

합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아이폰에 앨범 몇 개를 넣고 다닌

이 달성한 책이다. 슈파이델 자신에 대한 약력이나 배경 설명까

다. 일종의 젊은 날의 열기와 반항에 대한 추억으로 주로 헬스

지 배제한 정도니 군더더기가 없다기보다 ‘아쉽다ʼ고 할 정도

장에서 운동할 때 듣는다. 자주 듣는 밴드의 로고가 개인적으로

다. 책 디자인도 기도문에서 착안되었다고 출판사 측에서 이야

마음에 들어,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작가가 바로 슈파이델이다.

기하는데, 금박의 표지 제호나 검은 인조 가죽 양장 표지가 그런

그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었고,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다른 로

특징들이라면 그렇다. 내지 전문에는 블랙레터체를 사용했으

고 작업에 대해서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방대한 작업량에 놀라

며, 심지어 저작권 페이지에도 사용했다. 이 역시 블랙메탈 장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고, 한 우물을 파도 ‘지존ʼ으로 파는 슈파

르에서 직접 따온 디자인적 요소라 할 수 있겠다. 블랙레터체에

이델의 집념에 놀랐다.

대한 특별한 반감은 없다. 그러나 이 서체의 쓰임에 대한 불만

이 책의 로고들을 하나씩 보다 보면 중국 진시황릉의 병마용이 떠

은 몇 가지 있다. 우선 작은 크기의 글, 이를테면 이 책의 캡션에

오른다. 검은 펜으로 덕지덕지 그린 장식적인 로고들은 마치 흙

는 블랙레터가 효과적이지 않다. 각 글꼴이 화려한 나머지 작게

으로 빚은 병사들처럼 똑같이 생겼지만 미미하게 다른 디테일

조판될 때 뭉쳐지고 잘 읽히지 않는다. 책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들을 갖고 있다. 로고 자체는 아르데코 양식에서 시각적인 특징

봐야 할 정도이다. 두 번째는 소문자 k 글꼴이 모호해 다른 글자

을 많이 빌려 오고 있으며, 중간에 간지처럼 들어간 음산한 풍경

와 구분이 안 된다. 대부분의 텍스트가 밴드 이름의 고유명사로

사진들은 작가가 자연에서, 이를테면 나뭇가지나 얽힌 뿌리, 울

되어 있어 더욱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 이런 종류의 서체

창한 숲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책

를 사용하기로 했는지 디자이너에게 물어야 할 사항인 것 같다.

에 실린 사진들은 슈파이델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작게 조판될 텍스트는 깔끔한 산세리프나 <장송> 같은 옛스러 움을 풍기는 휴머니스트 서체를 사용해도 블랙메탈의 분위기 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결과론적이어서 대수롭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비 오는 우중충한 날에 기분도 울적할 때 이 책을 꺼내 로 고들을 하나씩 보고 있으면 음산한 분위기가 돌 것이며, 레터링 의 또 다른 묘미를 맛볼 것은 틀림없다. 끝으로 이러한 하위문 화의 디자이너를 조명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 책을 들여다 볼 충분한 이유가 된다. 자기 작업에 몰두하는, 진정 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작가들은 파헤쳐 볼 만한 주제일 테니까.

083


용어정리 덧싸개

형태란 어떤 사물의 모양, 보이는 것의 구조・배열 형태라 할 수 있다.

Dust Jacket

넓은 의미로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 방식이자 일어나는 방식이며, 사물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의 형태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책의 ‘구조ʼ를 살피고 ‘무엇ʼ이 책을 이루고 있는지 알아본다. 책을 어떻게 장정하는가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양장본(case

binding, hardback book)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뒤표지 후면 판지

Back board

책등

앞표지 후면 판지

최현호

Spine

Front board

윤디자인 연구소 그래픽 디자이너 표지 싸개

Cloth covering

심우진 「히읗」 편집위원

그래픽 디자이너 면지

Endpaper

꽃띠(꼬리띠)

권두 卷頭

b

89(`a

Tailband

Front Matter

덧싸개 Jacket…16세기부터 책이 더러워지거나 상하지

내지 첫 쪽부터 본문 전까지의 모든 요소를 일컫는다. 책 제목과 저자, 책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않게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현대에는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저술 목적・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홍보 목적까지 추가되었다. 날개 …덧싸개의 좌・우 양끝의 접힌 부분으로 책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면지를 감싼다. 일반적으로 날개에는 저자 약력과 요약한 내용, 서평을 넣는다. 표지 Cover…판지를 천이나 종이로 감싸서 만든 딱딱한 표지(Hard

cover). 업계에서는 감싸는 재료나 행위를 싸바리라고도 한다. 판지를 넣지 않은 표지(Soft cover) 도 있으나 양장본에서는 하드커버가 일반적이다. 책등 서배書背,

Spine…제본한 쪽의 겉면으로 책 제목,

글쓴이 이름, 출판사 로고나 이름을 넣는다. 업계에서는 세나카(등을 뜻하는 일본어인 세나카背中에서 유래)로 부르기도 한다. 책배 서구書口,

Fore edge…책등의 맞은편 면 책머리 서두書頭, Head edge…책의 윗면 책밑 서근書根, Bottom edge…책의 아랫면. 제책 현장에서는 꼬리라고도 한다. 면지 Endpaper…표지와 내지를 연결하여 책의 내구성을 높이고 내지의 첫 쪽과 마지막 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장식적 요소로도 사용되었다. 한 쪽을 커버면에 붙이고, 남은 쪽을 내지에 이어 붙인다. 내지 Text

block…책의 몸통이라 할 수 있으며 표지와

내지를 제외한 인쇄된 종이의 묶음 머리띠 Headband…꿰맨 내지의 책머리・책밑에 붙여

약표제지 略標題紙

Half-title page…축약된 제목만

일반적으로 표제지 다음 장(홀수면)에 위치한다.

쪽). 내지 첫 쪽에 온다.

추천사 Foreword…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비평가 혹은

유래 1…제본 전에 책 제목을 내지 첫 !에 넣어 책을

관련 전문가, 스승, 선배 등)이 쓴 서문으로 보통 홀수

식별하고 표제지를 먼지와 손상으로부터 보호한 것에서

면에서 시작한다.

유래. 전집의 경우 저자 이름(주로 성만)이나 축약된

서문 Preface…저자가 출간 목적, 책 내용에 관한 소개

제목을 넣는다

『Designing

books』, 87쪽

등을 서술한 글로 보통 홀수 면에서 시작한다.

유래 2…내지 첫 쪽과 면지를 접착제로 붙이면 첫 !"

감사글 Acknowledgements…저술에 도움받은

당연히 완전히 펼쳐지지 않게 되어 그다음 장을 정식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글로 약소화하지 않고

표제지로 사용하게 됨 약표제지 뒷면 Facing

필 베인즈(Phil

Baines)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머리말 말미에 넣기도 한다.

title page…보통은 비워 두지만

시작하며 장 제목, 쪽수를 표시한다. 책의 내용을 개괄할

(Frontispiece; 초상화, 지도, 도판 등)을 넣기도 한다.

필요가 없는 (주로 문학 서적) 경우, 권말에 싣기도 한다.

표제지 Title

도판 목록 List

page…기본적으로 제목, 부제목, 편저자,

출판사가 들어가며, 출판사 로고, 출판연도, 출판사가

of illustrations, figures, and maps…도판 번호, 명칭, 쪽수를 표시한다. 도판이 많지

위치한 도시가 추가되기도 한다.

않은 책에는 생략한다. 그림 차례가 덜 중요하거나

판권지 copyright

내용이 많지 않은 경우에는 차례가 들어가는 펼침면의

page…저작권 사항, 판수, 쇄수,

발행일, 발행자, 출판사명(발행처), 출판사 주소, 가격,

왼쪽 면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CIP, ISBN, (번역서의 경우) 원서 제목, 출판사, 저작권

• 약어표 List

계약 정보 등을 기재한다. 서양에서는 일반적으로 표제지

목록.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은 꼭

뒷면을 판권지로 사용하나 동양에서는 간기, 인기, 판권

이곳에 포함되는데, 잘 알려진 단어나(AD,

등의 정보는 권말에 실었다.

와 같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포함하지

c

16세기

도구를 고안한 것에서 유래하며, 중세 유럽에서는

of abbreviations…책에 사용된 약어의 BC, UK

않는다.

꽃띠라고도 한다. 말경, 내지를 손상하지 않고 읽은 쪽을 표시하기 위한

목차 Contents…기본적으로 서문 이후의 홀수 면에서

전집 목록, 출판사・저자의 다른 책 목록, 권두 그림

제본 상태를 견고하게 하고,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띠. 책갈피 Bookmark…책이 매우 귀했던

헌사 Dedication…저자가 은인에게 저서를 바치는 글.

기재하고 기타 정보를 생략한 표제지(제목을 드러내는

본문 Body

Matter

내지에서 권두와 권말을 제한 부분으로 책의 본래 내용에 해당한다. 보통 장(Chapter)과 절(Verse)로 구분한다.

주로 양피지 조각을 나뭇잎 끝에 붙이거나 긴 노끈 한 가닥을 머리띠에 붙여서 사용했다. ‘가름끈ʼ 혹은 ‘갈피끈ʼ이라고도 부른다.

d

권말 卷末

End Matter

본문을 보충하는 내용・자료. 본문과 구별하여 부수적인 요소임을 나타내기 위해 활자 크기를 다소 작게 쓰기도 한다. 부록 Appendix…본문에 넣기 여의치 않은 내용이나

용어 풀이 Glossary…관련 전문 용어의 간단한 설명・

형식의 정보, 참고로 알아 두면 좋을 정보

정의 목록

참고 문헌 Bibliography…본문에서 인용・참고된 문헌의 목록으로 먼저 저자 성의 순서로, 나머지는 알파벳 (가나다) 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090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찾아보기 Index…본문에 사용된 용어를 찾기 쉽게

정리한 목록. 색인(索引)이라고도 한다.


권두 卷頭

b

책갈피

Front Matter

Bookmark

약표제지 꽃띠(머리띠)

책 머리

책배

내지

약표제지 뒷면

표제지

판권지

헌사

Headband

Head(Top edge)

Head(Fore edge)

Text block 목차

c 책밑

d

본문 Body

Matter

Tail(Bottom edge)

권말 卷末

장 표제지

본문

용어 풀이

찾아보기

End Matter

참고 문헌

091


생각해 보기

2013년 12월 16일부터 한 달간 6~10세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제2회 「어린이 타이포그라피전」 미술공모전이 딸기아트센터 주최,

C&P 아동교육연구소 주관, 「히읗」 후원으로 진행됐다.

「히읗」은 멀리 보았을 때, 한글 타이포그라피를 더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작업 또한 아울러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낱말의 의미 표현하기

사물

장수풍뎅이, 사과, 꽃, 구름처럼 아이들에게 친근한 자연물이 자주 등장한다.

「어린이 타이포그라피전」에 참여한 이들은

6~10세

정도의 나이

로, 이제 막 한글을 깨치고 문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단계의 어린이이다. 기호와 상징, 그것이 담은 의미를 파악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의 글꼴은 단순하고 직접적이어서 말 그대로 ‘어려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접근 방식은, 어른이 작업하면서 풀어 가는 방식 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어른이 상상하지 못할 자 유로움과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 미숙하나마 스스로 이해한 세 상의 의미나 이미지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어린이들 의 한글 타이포그라피 작품은 감상하기에 충분히 즐겁다.

티셔츠 디자인, 책 표지 디자인, 동시 표현하기 등 한글을 비롯한 숫자, 심벌, 기호들을 활용한 400여 점의 다양한 작품이 공모전 에 제출되었고, 「히읗」은 출품작 중에서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한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을 따로 선별해 보았다. 이름 글자로 심벌 만들기

아이들의 작업을 통해서, 어른이 잃어버린 순수함을 다시 한 번

자기 이름에서 연상되거나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어른들이 보여 주

좋아하는 이미지를 글자의 원리로 조합하였다.

어야 할 작업과 교육에 대한 논의도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수상자

낱말의 의미 표현하기

추상

계절같이 추상적인 낱말들을 관련된 사물이나 행위에 빗대어 표현했다. 선택한 이미지와 글자 요소의 조합이 재미있다.

094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정민주

임지현

신민경

최지훈

박누리

임선우

강민규

정지우

이가희

곽도현

박주은

임송현

배건우

최우주

임동현

권태경

석지윤

전민기

정현욱

최지안

이상효

구윤지

심종선

조현일

차유나

김서하

이시은

김진하

오서연

주유담

강은채

김하은

이은호

김하은

윤소윤

최다은

노유지

박서연

이한준

김해나

이나연

최지안

박민준

박정연

양은우

노아정

이예원

홍태경

이가은

박지수

정연아

명민정

이정민

이지희

박진우

정지영

민관식

임려은


잡다한 이야기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하면 ‘아~ 책 만드는 일,ʼ이라고 간단하게들

한다면 그것은 그저 예술에 머물 뿐입니다. 책을 보는 독자 한

말합니다. 또 편집을 한다고 하면 ‘글 고치는 일,ʼ 이라 편히들 말

명 한 명에게 디자이너가 일일이 표지 속에 담긴 깊은 속뜻을 설

합니다. 하지만 책을 만드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고, 편집은

명해 주는 서비스를 할 것이 아니라면, 표지는 직관적으로 메시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편집은 글만 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글

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 이미지를 보기 좋게 만들고 다듬는 중요한 일입니다. 편집자

네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직관적인 이미지 안에 위트와 세

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텍스트와 함께 기

련된 비틀기가 더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디자이너와 편

획대로 구현되는 과정, 즉 디자인에 대해서도 많은 신경을 씁니

집자의 아이디어와 디자이너의 기량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

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출판하는 데 있어 내용보다 중요

에 없는 항목이 되겠네요.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하지만 알고

한 것은 어쩌면, 디자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면 작은 위트나 은유가 숨어 있는 디자인이라니, ‘예쁜데 똑똑

편집자(라고는 해도 어쩔 수 없이 필자 개인의 취향과 기준이 적용되겠지요)가

하고 웃기기까지 한 여인을 소개시켜 달라ʼ는 어느 노총각에게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텍스트와 잘 어울리면서도 그보다 더 나

대답 대신 날리곤 하는 헛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입니다. 하지만

아간, 텍스트가 가진 퀄리티 이상의 큰 의미를 함유하고 있(을 것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책이 가장 아름답고

만 같은)는 것입니다. 네, 편집자들은 늘 무조건 더 나은 디자인을

좋은 책이길 바라는 편집자와 디자이너들이라면 이러한 비현실

원합니다. 인정합니다. 마치 인쇄소에 가서 ‘진짜 나무처럼 보

적인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야 합니다. 명확한 기획,

이도록 생생하게 인쇄해 주세요.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막연함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끊임없는 의견 교환과 자료 수집, 그리고

(사실은 구체적인 농도나 수치를 요구해야 합니다)과

디자이너의 열정이 있다면 얼마든지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다.

이상을 담은 불확실

한 요구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때 편집자가 생각하는 ‘좋

다섯 번째는 (되도록) 편집자, 디자이너, 저자 모두의 협의하에 탄

은 디자인ʼ에 대한 정의는 분명히 있습니다.

생한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이 항목은 좋은 디자인보다는

우선, 당연하게도, 텍스트와 내용에 위배되지 않는 디자인이 좋

완벽한 디자인 항목에 가깝겠네요).

은 디자인입니다. 제아무리 완성도 높은 서체, 아름다운 서체라

져 채택된 표지는 대중들의 반응이 좋고 나쁨을 떠나 만든 이들

도 글의 내용,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쓸모없지요. 제아무

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만든 사람도 보는 사람도 좋은 디자

리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 디자인에 레트로한 색상으로 완벽

인을 위해서는 서로 양보하는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디자이너

하게 ‘세련된ʼ 분위기의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글의 내

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하는 A시안을 편집자와 저자가 마음에

용과 맞지 않는다면 아마추어가 한 개인 작업에 불과합니다. 그

들어 하지 않는다면

렇기에 텍스트와 내용에 걸맞은 디자인을 위해선 디자이너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체적인 이유를 파악하고 그 점이 보완 수정

편집자만큼 글을 읽고 이해할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것이죠.

된 A–2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무조건 A시안, 무조건 B시안을

두 번째로 갖춰야 할 항목이 있다면 보기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집해서는 어느 쪽이든 ‘될 대로 돼라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게

그것은 아마도 상당 부분 ‘정돈ʼ의 의미를 담고 있겠지요. 정돈

되어 있습니다. 자포자기라는 건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되지 않은 디자인은 텍스트까지 산만하게 보이게 만들뿐더러

떠 안긴다는 의미이고, 그렇게 되면 더 나은 책이 만들어질 가

독자의 주의를 흐트러지게 하여 가독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 습니다. 이때 이미지의 배치나 그리드는 기본이고 자간과 장평 의 균형과 일관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미지나 디자인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 ‘왠지 더 좋아진 것 같다ʼ고 느껴지는 경우 의 대부분은 사실 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 섬세하게 다듬

류 인 경 ︱ 한 스 미 디 어 편 집 자

그 누구 하나의 의견에 밀어붙여

(물론 안타까운 마음이야 그지없겠지만)

A시안이

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겠지요. 조율과 협의는 디자인에 있어 가 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편집자 입장에서 좋은 디자인은 출판물이 좋은 반응을 얻어 많이 팔리고 사랑받도록 하는 디자인입니다. 그것은 예술성이나 심미성으로는 부족한 제3의 어떤 재료가 필

어지고 정돈된 경우일 것입니다. 이렇게 세심하고 꼼꼼하게 정

요한 일입니다. 고도의 전략과 기획, 예측되는 대중성에 기반해

돈된 디자인은 그 질적 수준을 떠나서 일단 보는 사람에게 편안

탄생한 디자인이라도 실패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편집

한 느낌을 줍니다.

자와 디자이너는 그저 최선의 결과물을 향해 끊임없이 생각을

세 번째는 대중(디자인 비전공자)들이 보기에도 이해하기 쉬워야 한

나누고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양보하며, 최대한 정돈

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글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더 나아가

되고 아름답지만 과하지 않고, 절제되어 있지만 위트나 감각을

디자인적 재능까지 갖춘 뛰어난 디자이너가 글 속에 내재된 은

담은 디자인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편집자에

유와 함축을 가득 담은 표지를 완성했다고 할 때, 편집자와 디자

게 좋은 디자인이란, 좋은 디자이너와 함께여야 가능한 디자인

이너의 입장에선 세기의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완벽한 표지가 나

입니다.

왔다고 자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독자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 095


이번 호에는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의 거리ʼ로 이름난 신사동 일대로 향했다. 신사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로수길과, 가로수길 사이 골목으로 가게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세로수길을 탐방했다. 일전에 가로수길을 들렀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떠오르는 글꼴들을 상상해 봤는데, 대형 업체의 매장이 즐비한 소비문화의 중심지라 낯익은 서체들만 가득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글꼴만으로 다른 지역과 다른 분위기를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채로 길을 나섰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 편집숍, 카페, 맛집들이 늘어선 신사동 가로수길의 글꼴들은 그 모양새가 집집이 풍기는 분위기에 잘 묻어나는 듯했다. 소비자는 문자를 통해 그 가게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게 되므로, 가게가 담고자 하는 개성이 글꼴에 녹아 있다면 브랜드 인지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신사동의 가로수길과 세로수길은 영문자가 쓰인 곳이 많아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길 이 를 늘 려 다 양 한 표 현 을 해 보 려 는 시 도 도 눈 길 을 끌 었 다 。

오새날, 최서훈 .txt (텍스트:

type x typography 의

준말로, 계원예술대학교 졸업/재학생으로 구성된 타이포그라피 소모임)

096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간 판 집 사 장 님 의 안 목 인 지 모 르 겠 지 만 、 글 자 의 크 기 를 키 우 거 나

보 였 다 。 한 글 은 주 로 고 딕 체 계 열 보 다 는 부 리 가 돋 보 이 는 글 꼴 이 사 용 되 었 다 。

살 아 나 는 글 꼴 들 도 있 었 다 。 글 꼴 들 은 가 게 의 분 위 기 나 인 테 리 어 와 도 잘 어 울 려

사 장 님 이 쓴 것 같 은 손 글 씨 부 터 、 다 양 한 바 탕 위 에 글 자 가 얹 어 져 서 질 감 이

소 규 모 개 인 매 장 위 주 인 세 로 수 길 은 아 주 다 양 한 로 고 타 입 들 이 눈 에 들 어 왔 다 。

프 랜 차 이 즈 업 체 가 주 를 이 루 는 가 로 수 길 과 는 상 반 되 게 、


매직으로 희미하게 ‘주차금지ʼ라고 써 놓은 것으로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나 보다. 그 위에 청테이프로 굵게 ‘NOʼ라고 붙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떨어져 가는 중이다!

입간판만큼이나 많은 것이 주차금지 표지판이다. 가로수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문구는 바로 ‘No

Parkingʼ.

글자가 떨어져 나간 자리를 대신한 녹슨 흔적으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1ʼ이 흔적 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유성매직으로 보충해 주었다.

좁은 거리에 입간판들이 줄줄이 서 있는 모습은 다른 동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어느 가게나 작은 입간판이 가게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다른 집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노력인 것 같다. 입간판 하나만으로도 그 집의 색깔이 충분히 나타난다.

성실한 스태프가 절실해 보이는 ‘구함ʼ

대형 매장의 화려한 간판과 인력 시장 전단 스티커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다양한 재료와 바탕 위에 여러 가지 기법으로 글자를 입혔다. 스탠실부터 글자 파기까지, 같은 글꼴이라도 표현되는 방법은

이 꽃집에 정말 화사한 꽃들이 가득할지

각양각색이다.

의심을 품게 하는 ‘Flowerʼ 간판.

타일 위에 유성매직으로 채운 블랙레터. 함께 그려 넣은 일러스트에 잔가지까지 더해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097


활자 둘러보기 지난 6호에서는 본문용과 디스플레이용 서체를 간단히 설명하고, 이 구분을 그로테스크 산세리프 양식의 서체들에 대입해 보았다. 이를 통해 비슷한 형태를 가진 <악치덴츠 그로테스크>・<헬베티카>・<유니버스>를 비교하고, 그들이 가지는 디스플레이 기능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본문처럼 작은 사이즈로 쓰였을 때 보다 강점을 보이는 휴머니스트 산세리프 양식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한다. 대신 이번에는 해당 양식의 세 서체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세 서체에 각각 대응하는 세리프 서체들과 비교할 것이다. 이 비교를 통해 두 양식이 가지는 공통점은 무엇이고, 이들은 어떠한 환경에 어울리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Frutiger, Frutiger Frutiger 55 Roman, Meridien Roman

배제하였음을 나타내는 데에 반해, 그 대상이 되는 양식은 오히 려 세리프가 발달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으로써 기하학적이고 원소적인 형태를 제시한다면, 휴머니스

(

트 산세리프 양식은 세리프라는 양식이 자리 잡기 전부터 이어

(

James Mosley, The Nymph and the Grot: the revival of the sanserif letter, p. 10, London: Friends of the St Bride Printing Library, 1999

(

용어는 세리프가 있는 서체들이 발달한 이후에야 이 세리프를

(

문 1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엄밀히 말해 ‘산세리프ʼ라는

⮁ ▖ ␚ ❓ ⪕ ⛇ ⛷ ╱ ⬆ ⠢ ⛷ ╱ ⬆ ⟞ ❝ ⡺ ⋤ ⥦ ⢲ ⟶ ⛨ 、

(

비해, 그 원류는 인쇄가 시작되기 한참 전인 그리스 시대의 금석

≴ ⑟ ⛵ ⭑ ☷ ╩ ⡚ ⬖ ⢘ ⧌ ≴ ⒎ └ ⎗

(

연히 장식을 배제한 청결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에

리프 양식이 ‘세리프를 배제ʼ함

Palatino Regular, Optima Regular

(

가지는 상당히 포괄적이고 모호한 용어이다. 또한 이 단어가 막

테스크 , 또는 지오메트릭 산세

Zapf, Zapf

(

하위개

념(그로테스크, 지오메트릭, 휴머니스트, 컨트라스티드 등)을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로

Gill Sans MT Pro Book, Perpetua

(

로 쉬이 통용되고 있으나, 사실 이는 다양한 유의어 (리니얼, 고딕, 안틱, 이집션, 고짓구, 헤이티 등)와

Gill, Gill

(

( 산세리프라는 단어가 ‘세리프가 없는 서체ʼ라는 뜻으

한 사람의 일관된 철학과 방식에 의해 디자인된

휴머니스트 산세리프, 세리프 서체 조합

(

(

ef(1ghijkl(mnop:(qZ

2.

⛇ ⛷ ╱ ⬆ ⟞ ❝ ⡺ ⡢ ┆ ␍ 、

(

⠕ ⮚ ┦ ⛷ ╱ ⬆ ≴ ☀ ␩ ⬔ ⌓ ⡿ ⢯ ♍ ⩖

ef(2gPr9(stL(uF(hijkl(mn

op:(S\

한편, 사람의 손맛이 남아 있는 휴머니스트 산세 리프를 잘 살펴보기 위해서는 비슷한 구조를 가지 는 세리프 양식과의 비교가 도움이 된다. 세리프 없이도 가독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장치들을 세리프 서체들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지 확연 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리프와 산세리프가 짝을 이루는 경우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한 디자이너(혹은 하나 의 디자이너 그룹)가

따로 세리프, 산세리프 서체를

디자인했으나 일관된 디자인 철학과 방식 덕분에 둘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는 경우이고, 다른 하 나는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짝을 염두에 두고 하나 의 뼈대로 둘을 디자인한 경우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 2로, ‘에릭 길(Eric Gill), 헤르만 차프(Hermann Zapf), 아드리안 프루티거(Adrian Fru-

져 온 ‘쓰기ʼ나 ‘파기ʼ 등 인간이 오랜 시간 글자를 쓰며 쌓아 온

tiger)의

전통을 상대적으로 많이 보전하고 있다. 따라서 말 그대로 인간

ard Meier)의

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고, 산세리프 서체에 역사적인 맥락을

<스칼라>(Scala), 피터 발락(Peter Bil ʼak)의 <페드라>(Fedra), 최근의

부여한다고도 할 수 있다.

<가디언>(Guardian)과 <르몽드>(Le Monde) 서체ʼ에 이르도록 다양

작업ʼ을 제시하려고 한다. 후자는 ‘한스 마이어(Hans Edu<신탁스>(Syntax)부터 마르틴 마요르(Martin Majoor)의

하다. 이들은 다음 호에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민본 글자 디자이너 애플사 폰트팀

1. 산세리프 형태의 그리스 금석문 Mummy Label with Greek Inscription Egypt, late Ptolemaic-early Roman Period (100 BCE~100 CE), perhaps reign of Augustus (30 BCE~41 CE)

전자의 예들은, 세리프와 산세리프 서체가 독자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는 장점이 있고,

후자는 더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1. 소문자 a, g의 단층, 이층 구조를 명쾌히 구분 2. 글자의 뼈대와 획의 굵기 등을 정밀하게 통일 3. 로만(정자체)과 이탤릭(흘림체)을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전통에 따 라 확실하게 구분 등의 특징이 있다. 이 또한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102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 명히 구분되는 직업이지만, 사실 역사 속 다수의 타입 디자이너

있다.

가 커터와 캘리그라퍼를 직업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을 쉽게

(

( 혁(인쇄 발명, 디지털 발명)에도 여전히 견고하다. 라

이른 후 오늘날에 이르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본문에서 살펴볼 세 명의

20세기 타입 디자이너로 시야를 좁혀 보

면, 길은 둘 사이의, 그러나 커터에 조금 더 가까운 석공 출신이 요, 차프는 캘리그라피에 정통한 인물이고, 프루티거는 공간을 주무르는 커터에 해당한다 . 이 세 디자이너가 그려 낸 세리프와 산세리프 서체들을 묶어서

Robin Kinross, Unjustified Texts: Perspectives on Typography, Hyphen Press, 2002

살펴봄으로써 휴머니스트 산세리프 양식을 입 체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한다.

(

쇄 발명 전후의 필사본에서 이미 아름다운 경지에

(

석 3 이나 건축면 등에서, ‘쓰기ʼ는 구텐베르크 인

글자를 만든다는 점이다.

(

틴 알파벳의 역사 속에서 ‘파기ʼ는 로마 시대의 비

(

는 정보 매체가 겪어 온 최소한 두 번의 커다란 변

내는 반면, 커터는 물체 표면에서 획의 안과 밖의 공간을 파내며

(

의 형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

(

해 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글자

(

며 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글자의 형태를 결정

(

이 두 가지 행위는 오랜 시간을 두고 무수히 반복되

차이점이 있는데, 캘리그라퍼는 획을 구성하며 글자를 만들어

(

있다.

(

쓰는 행위에서 그 출발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

매체가 개발된 후 이들을 이용해서 손으로 글자를

{ (

서, 후자는 필기도구와 안료, 그리고 종이와 같은

(

고 평평한 면을 의도한 형태대로 파내는 행위에

볼 수 있다. 이 둘 사이에는 글자에 접근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

들이 단단하고 날카로운 물체를 손에 쥐고 무르

⧡ ╱ ⌈ ⓺ ⫂ ␍ ⭜ ⡮ ⋩ ⛵ ⬔ ▪ ⌌ ⢍ ╩ ╻ ⒒ ⟥ ⎨ ␍ ◾ ▬ 、

(

전자는 정교한 필기도구가 개발되기 전 시대의 인간

{ (

• 손으로 ‘쓰는ʼ 행위

⧪ ⩖ ␍ ◑ ⦉ ⫪ ▬ ⟶ ⛨ ⭜ ⡺ ⋋ ≶ ⡮ ⪫ ⎨ ▪ ⌌ ⢍ ╩ ╻ ⒐ ␤

(

• 손으로 ‘파는ʼ 행위

(

는 불분명하게나마 글자를 사용하는 두 가지 행위가 연계되어

⡺ ⢇ ⦉ ⢮ ⡿ ⬝ ╩ ❜ ⑞

(

‘캘리그라퍼ʼ라고 한다. 현대 인쇄업에서는 ‘타입 디자이너ʼ와 분

{ (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타입 디자인에서 ‘휴머니스트ʼ라는 용어에

z

이 행위에 관련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영어로는 ‘커터ʼ,

z

ef(3gvwx(yz9cutter@{|(v}x(yz9calligrapher@{

(

Cutter)의 작업 모습 ⓒZiko

(

석공(Stone

Giuliantonio Hercolani, Lo Scrittor ʼVtile et brieue Segretario, 1574

(

( 줄리안토니오 헤라콜라니의 『캘리그라피 교과서』

(

(( z ⮁ ▖ ␚ ❓ ⪕ ⛇ ⛷ ╱ ⬆ ⟞ ❝

⛩ ⋋ ⦯ ❞ ⟶ ╲ ⌗ 、 ⧡ ╱ ⌈ ⓺ ⫂ ⬱ ╦ ╻ ⥦ ⬆ 、 ␔ ✲ ⬖ ⧪ ⩖ ⬆ ╌ ⪣ ⊘ ⡺ ⛨ ⦉ ╩

(

(

◎ ⟥ ⛨ ☼ ⡫ ┳ ❺

자주 타입 디자인의 표본 역할을 한다. Alan & Rita Greer, An Introduction to Lettering, Penguin Books, 1972

ABCDEFGHI JKLMNOPQR STUVWXYZ Adobe Trajan Pro 3 Regular 트라야누스의 비문을 바탕으로 만든 서체 <트라얀>(Trajan)

inscriptional capitals)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비문(트라야누스 원주; Trajanʼs Column), 기원전 113년 3.

로마 대문자 양식(Roman

휴머니스트 산세리프 서체의 뼈대에서도 트라야누스의 비문과 같은 로마 대문자 양식의 비례를 참고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03


생각해 보기 이번 호부터 2회에 걸쳐

1946년에 벌어진 막스 빌과 얀 치홀트의 서신 논쟁을 번역・연재하기로 한다. 1948년에 파울 레너가 발표한 글 「현대 타이포그라피에 관하여」는 다음 호에 실을 예정이다. 다음 호까지 이어지는 이 논쟁을 「히읗」에 연재하도록 허락한 크리스토퍼 버크(파울 레너의 글 영역)와 로빈 킨로스(막스 빌의 글 영역)에게, 아울러, 지나가는 말을 기억해 영국 여행 중에 사본을 찾아서 보내 준 채혜선, 생소하고 어려운 원문을 한글로 번역한 임유나(막스 빌)와 성예지(얀 치홀트)에게 감사를 전한다.

국문 번역 막스 빌, 「타이포그라피에 관하여」 얀 치홀트, 「믿음과 현실」

임유나

진행

박경식

정리

오윤성, 현지희

내용 감수

성예지

심우진

영문 번역 막스 빌

로빈 킨로스(Robin

얀 치홀트

Kinross) McLean)

루아리 매클린(Ruari

!"#$%&'(&)

크리스토퍼 버크의 번역본에 의존한 것은 추가된 파울 레너의 글

1946 년 , 스위스 잡지 「스위스 그래픽 소식지」 (Schweizer Gra-

때문이기도 하다. 자료 대부분이 막스 빌과 얀 치홀트 간의 내용

phische Mitteilungen)에

회화, 건축, 조각, 그래픽 디자인을 망라

에 집중했다면, 레너는 세세한 부분보다 큰 윤곽을 정리해 두 입

하는 전방위 예술가인 막스 빌(Max Bill, 1908~1994)과, ‘신 타이

장 간의 변증법적 논제를 존중하고자 했으며 개입자, 또는 ‘심

포그라피ʼ 운동의 선두주자였지만 이를 저버리고 더 폭넓은 다

판ʼ으로서 논쟁을 마무리한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내

원적 타이포그라피 양식으로 돌아선 얀 치홀트(Jan Tschichold,

용으로 역시 버크가 쓴 『파울 레너: 타이포그라피 예술』(워크룸,

1902~1974)

간의 서신 논쟁이 실렸다. 두 사람에 대한 설명이 길

고 장대하지만, 그만큼 타이포그라피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라피 페이퍼스」 이후 서신 논쟁을 다룬 책이 두 권 더 출

역사에 큰 획을 남긴 인물들이다. 이를 신・구, 진보・보수, 또는

간되었다. 독일의 디자인 교육자이자 디자이너인 한스 루돌프

독재・민주주의 사이의 논쟁으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타이

보서드(Hans Rudolf Bosshard)가 정리한 『타이포그라피의 모더니

포그라피의 자연스러운 진화로, 세대 간의 당연한 ‘마찰ʼ로 보는

즘에 관한 논쟁: 막스 빌 대 얀 치홀트』(Der Typogra

이들도 있다.

erne: Max Bill kontra Jan Tschichold, Niggli, 2012)와

70여

(Stichting de Roos)에서

년이 지난 지금 이 논쟁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estreit der Mod-

스트흥 데 루오스

집필한 『막스 빌과 얀 치홀트의 논쟁』(Het

있을까. 그것도 비라틴어권인 한국에서 말이다. 이 논쟁의 구도

dispuut tussen Max Bill en Jan Tschichold, 2010)이

는 ‘사회적 맥락의 예술 운동으로서의 당위적 타이포그라피ʼ와

는 치홀트의 글 두 편이 추가되었다. 각각 「북아트와 시각 예술」

‘활자와 책 디자인이라는 읽기 환경을 둘러싼 고전적 방법론으

(Graphik und Buchkunst, 1946),

로서의 전문적 타이포그라피ʼ라는 두 입장 간의 충돌로 볼 수 있

황은 무엇인가?」(Wirken sich gesellschaftliche und politische Umst

다. 타이포그라피라는 용어가 갈수록 다양한 의미로 확장・파생

der Typographie aus?, 1948/50)인데,

되는 현시점에서도, 이 사건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되지 않았다. 또한, 2007년 「아이디어」(IDEA) 321호에도 이 서

「히읗」에 싣기로 하였다.

신 논쟁에 대한 에세이를 찾을 수 있다.

디자인사, 타이포그라피 관련 책・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막스 빌과

아래 참고문헌 목록은, 크리스토퍼 버크가 제공한 것으로, 이 글에서 언급한

얀 치홀트의 서신 논쟁의 실제 원문을 읽어 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원문이 독일어인 이유도 있지만, 이에 대한 자료도 많지 않다. 서신 논쟁이 있은 지 2년 후 파울 레너(Paul Renner)는 막스 빌과 얀 치홀트의 이견을 중재라도 하듯, 같은 간행물에 글을 기 고했다. 그리고 2000년, 세 사람의 글을 「타이포그라피 페이퍼 스」(Typography Papers)(제4호, 영국 레딩대학교)에서 하나로 묶어 출간 했다. 이 글의 번역자이자 진행자인 크리스토퍼 버크에 의하면, 1948년 파울 레너의 글 이후에는 거의 언급이 없다가 얀 치홀트 가 타계한 197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관련 연구 자료가 나타나 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도 서신 논쟁 원문보다 그 논쟁에 대한 견해가 대부분이었다.

118

2011)을 참고하기 바란다.

타이포그라피 교양지 「히읗」

7호

그것이다. 여기에

「타이포그라피의 사회적, 정치적 상 nde in

아직 영문이나 국문으로 번역

문헌들을 추가했다. • Jan Tschichold’ (special issue). Typografische Monatsblätter, 1972, no.4 • Ruari McLean, Jan Tschichold: typographer, London: Lund Humphries, 1975 • Jan Tschichold: Typograph und Schriftentwerfer 1902–1974: das Lebenswerk, Zurich: Kunstgewerbemuseum, 1976 • Jan Tschichold, Leben und Werk des Typographen Jan Tschichold, Dresden: VEB Verlag der Kunst, 1977 • Jan Tschichold: typographer and type designer 1902–1974, Edinburg: National Library of Scotland, 1982 • Jan Tschichold, Die neue Typographie, 2nd ed. • Jan Tschichold, Schriften 1925–1974, 2 vols, Berlin: Brinkmann & Bose, 1991–2 • Jost Hochuli, Buchgestaltung als Denkschule, Stuttgart: Edition Typografie, 1991 • Robin Kinross, Modern typography: an essay in critical history, London: Hyphen Press, 1992 • Jost Hochuli, Buchgestaltung in der Schweiz, Zurich: Pro Helvetia, 1993 • Jost Hochuli, Book design in Switzerland, Zurich: Pro Helvetia, 1993 • Paul Rand, ‘Typography: style is not substance’, AIGA Journal, vol.12, no.1, pp.37–41 • Paul Barnes (ed.), Jan Tschichold: reflections and reappraisals, New York: Typoscope, 1995 • Jan Tschichold, The new typography, [1928],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 • ‘Confrontation entre Max Bill et Jan Tschichold’, Revue suisse de l’imprimerie, 1995, no.1, pp.1–16 • Jost Hochuli & Robin Kinross, Bücher machen: Praxis und Theorie, St Gallen: VGS, 1996 • Jost Hochuli & Robin Kinross, Designing books: practice and theory, London: Hyphen Press, 1996 • Paul Rand, From Lascaux to Brooklyn,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96 • ‘Max Bill’ (special issue), Typografische Monatsblätter, 1997, no.4 • Christopher Burke, Paul Renner: the art of typography, London: Hyphen Press, 1998 • Max Bill: Typografie, Reklame, Buchgestaltung, Sulgen: Niggli, 1999 • Robin Kinross (ed.), Anthony Froshaug: typography & texts/ documents of a life, 2 vols, London: Hyphen Press, 2000 • Taro Yamamoto, ‘Considering the Dispute between Jan Tschihold and Max Bill, Tokyo, IDEA #321 (2007. 03) pp.175–188 • Het dispuut tussen Max Bill en Jan Tschichold, Stichting de Roos, 2010 • Hans Rudolf Bosshard, Der Typografiestreit der Moderne: Max Bill kontra Jan Tschichold, Niggli, 2012


Max Bill, 1908–1994

수학적 사고에 기초한 논리적 전개가 갖는 보편성에 큰 가치를 둔 전방위 예술가로서, 국제 타이포그라피 양식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바우하우스에서 수학하였고 울름조형대학 초대학장을 역임하였다.

독일어 텍스트는 「스위스 그래픽 소식지」

1946년 6월호 193~200

쪽에 처음 실렸다. 빌은 대문자를 쓰지 않았다. 영역본에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지만, 독어본은 원본 그대로 수록했다. 빌의 텍스트 디자인은 수록된 지면의 레이아웃 방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원본에서는 왼쪽 정렬한 산세리프체 텍스트를 회색으로 인쇄했다.

!"#1$「%&'()*+#,-./

우리는 다시 한 번 타이포그라피의 상황에 대 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히, 짧은 시기에 유 행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유령들보다는 그 시대의 양식적 특징에 더 관심을 두는 외

부인이라면, 그리고 타이포그라피를 문화적 기록을 생산하는 수단이자 당대의 상품을 문화적 기록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이 해하는 사람이라면, 타이포그라피의 재료와 요건, 디자인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편견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저명한 타이포그라피 이론가 한 명이 1925~33년에 독일에 서 성행했던 ‘신 타이포그라피ʼ가 주로 광고에 어울렸으며 이제 는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선언했다. 책, 특히 문학 류의 단행본 디자인에는 부적절하며 자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논지, 진부한 근거가 문외한에게는 충분히 그럴싸 하게 들릴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몇 년 동안이나 골칫거 리였기 때문이다. 현재 비판받는 운동을 과거에 실천했거나 유 행을 좇는 무리는, 진보에 대한 열의와 믿음이 가시면 ‘내가 해 봐서 아는 데ʼ라며 꼭 이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다행히 줏대있고 낙관적인 젊은이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들은 이런 주장에 무턱 대고 동의하거나 방해받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어 렵게 얻은 기본 원칙을 한층 더 발전시키려 한다.

역류는 모든 영역에서, 특히 예술에서는 항상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당대의 세계관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흥미로운 시도 이후 반동적 형식으로 돌아선 화가들을 안다. 건축을 예로 들면, 진보적 통찰로 작품을 발전시키지 않고, 장식적 해결과 동시에 반동적인 변화를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 례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하이마트 슈틸(heimat-stil)ʼ이 라는 용어로, 이른바 ‘토착 양식ʼ이다.

über typografie es lohnt sich, heute wieder einmal die situation der typografie zu betrachten. wenn man dies als außenstehender tut, der sich mehr mit den stilmerkmalen der epoche befaßt als mit den kurzlebigen modeerscheinungen kleiner zeitabschnitte, und wenn man in der typografie vorwiegend ein mittel seiht, kulturdokumente zu gestalten und produkte der gegenwart zu kulturdokumenten werden zu lassen, dann kann man sich ohne voreingenommenheit mit den problemen auseinandersetzen, die aus dem typografiischen material, seinen voraussetzungen und seiner gestaltung erwachsen. kürzlich hat einer der bekannten typografietheoretiker erklärt, die «neue typografie», die um 1925 bis 1933 sich in deutschland zunehmender beliebtheit erfreut hatte, wäre vorwiegend für reklamedrucksachen verwendet worden und heute sei sie überlebt; für die gestaltung normaler drucksachen, wie bücher, vor allem literarischer werke, sei sie ungeeignet und zu verwerfen. diese these, durch fadenscheinige argumente für den uneingeweihten anscheinend genügend stichhaltig belegt, stiftet seit einigen jahren bei uns unheil und ist uns zur genüge bekannt. es ist die gleiche these, die jeder künstlerischen neuerung entgegengehalten wird, entweder von einem früheren vertreter der nun angegriffenen richtung, oder von einem modischen mitläufer, wenn ihnen selbst spannkraft und fortschrittsglaube verlorengegangen sind und sie sich auf das «altbewährte» zurückziehen. glücklicherweise gibt es aber immer weider junge, zukunftsfreudige kräfte, die sich solchen argumenten nicht blind ergeben, die unbeirrt nach neuen möglichkeiten suchen und die errungenen grundsätze weiter entwickeln. gegenstrOmungen kennen wir auf allen gebieten, vor allen dingen in den künsten. wir kennen maler, die nach interessantem beginn, der sich logisch aus dem zeitgenOssischen weltbild ergab, sich später in reaktionären formen auszudrücken begannen. wir kennen vor allem in der architektur jene entwicklung, die anstatt der fortschrittlichen First published in Schweizer Graphische Mitteilungen, Jhg 65, Heft 4, April 1946, pp. 193–200. Bill’s use of Kleinschreibung (no capital letters) has not been carried over into this English translation, but it has been retained in the original German text below. Two typographical errors in the original German text have been invisibly corrected. The design of Bill’s text was a departure from the customary layout of the journal, with a single column of ranged-left sanserif text, printed in a dark grey.

On typography It is worth considering once again the situation of typography. If one does this as an outsider — someone who concerns himself more with the stylistic features of the epoch than with the short-lived fashionable apparitions of brief sections of time — and if one sees typography predominantly as a means of making cultural documents and of letting products of the present-day become cultural documents, then one can without prejudice come to terms with the problems that arise from the typographic material, from its requirements and its design. One of the well-known typographical theorists has recently declared that the ‘neue typografie’ (new typography), which from 1925 to 1933 enjoyed growing popularity in Germany, was suitable primarily for advertising matter and is now outdated; for the design of normal printed matter, such as books, and especially literary works, it is inappropriate and to be rejected. This thesis, with its threadbare arguments, apparently proves convincing enough for the uninitiated. We know it well enough: it has been causing us trouble for some years. It is the same argument that is made against every artistic innovation, either by former practitioners of the movement that is by then under attack, or by fashionable fellow-travellers, when their own vigour and belief in progress are in decline, and as they look back to the ‘tried and tested’. But happily there are always young people, strong and optimistic, who do not blindly give in to such arguments, and who, undeterred, look for new possibilities, developing further the hard-won basic principles. We find counter-currents in all spheres, above all in the arts. We know painters who, after an interesting start that followed logically from the contemporary view of the world, went on later to express themselves in reactionary forms. In architecture, particularly, we know those tendencies that, 119


Archive ! From last issue, we will be publishing in English past articles of Hiut. Last year’s theme was Master Drawings and focused on the development of typefaces in Korea from a technical and type-designer perspective. The following article is part 2 of a 5 part series which will be published into book format once completed.

Typeface Masters – 2

Master Drawings of Textbook Type Yong-je Lee (Kaywon School of Art and Design) English Translation by Eun-hye Kim English Edit by Fritz K. Park, Niki Stamatelos Among the abundance of reading material that we go through, textbooks stand out in that they involve our minds deeply, even without us being fully aware of it. Anyone member of society with a basic level of education has experience studying and reading from textbooks. It is unlikely that anybody remembers what the fonts looked like then, but there have been a few people, whether recognized by the public or not, who have refined the typefaces for textbooks. In this article, we will consider the situation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occupation in which the Korean government manufactured typefaces for textbooks, and during which the first Korean typeface masters were created after much trial and error. There were mainly two types of type masters for textbooks: one for the state-designated textbook, and the other for the Daehan textbook. The font called Gukjeong-gyo-gwa-seo, or Gukgyo, meaning “textbook designated by the state”, was developed for state-designated textbooks by the Daehanmungyo Corporation before the First Curriculum was drafted according to the orders of the Minister of Education. In 1954, after the Korean War, Lee Impung and Bak Jeongrae, who had been trained in cutting type with the Benton engraving machine, developed a font with the support from the UNKRA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Since the State-Designated Textbook Corporation (as

The needed facilities and technology, however, were operated and appropriated by the Japanese. Moreover, it happened around the emancipation that Korean type was used to supply lacking ordnance. During that time, a number of printing houses such as Mae-il-sinbosa and Hanseong-doseo were continuing their presswork under humble circumstances. The Korean War interrupted national efforts for stability, and it became even harder to publish textbooks in a time when type, paper, printing houses, and professionals in the field were scarce. This is why copies of textbooks printed during this period often contain numerous different fonts in the same text. Type Used in Textbooks before Gukgyo Before the Minister of Education developed the textbook type, the unregulated printing system led to the use of types from the modern era of Hangul type. These include the Hanseong and Choijihyeok fonts as well as Dokbon, which was developed in the later years of the Joseon Dynasty. In textbooks, the text was mostly in Myeongjo (which may have been called Haeseo in the past) and titles in Gojit-gu or Dokbon. Sunmyeongjo (which may have been called Myeongjo then) was used to indicate loanwords. The small fonts in the Haeseo style and newspaper fonts were also used in textbooks, but for most of the fonts, the year of creation is not clear.

the Daehanmungyo Corporation was known after August 1st, 1961) had the copyrights for publishing and reprinting state-designated textbooks for primary school students, the fonts were used in them. For Daehan textbooks, there was another font called Daehan-gyo-gwaseo, or Daegyo. The Daehan Textbook Corporation was established in 1948 from the support of Munhwadang (Corps.), and mainly republished state-designated textbooks for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on subjects such as Korean and Ethics. In 1958, they started making type masters and textbook printing proceeded smoothly. According to existing documents, they continued to refine and improve the masters until the mid-seventies. Fortunately, the documents on Daegyo and its type masters have been preserved, but those about Gukgyo and its masters were lost, and their form can only be assumed by examining the printed materials of the time.

The Reality of Textbook Printing after the Liberation After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alism in 1945, textbook printing was important for national 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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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etype of Textbook Type It is a well-known fact that Gukgyo, the first type based on the typeface master, was created by Lee Impoong and Choi Jeongsoon. There are also many documents claiming that Gukgyo was based on hand-written type masters by Park Gyeong-seo. Unfortunately, due to a lack of information about Park Gyeong-seo, it is difficult to determine the historical truth. At least Jang Bongseon left a large amount of records about Park. In the Information on Korean(vol. 4), Jang Bongseon introduced samples of four point types as Park’s textbook types. However, records about the typeface culture of 1900s Korea generally do not exist or, if they do, are not reliable. In the Dictionary of Font, the same samples had already been introduced as part of the types made by Baek Hakseong. There is little information about Baek, and the only information we can glean from Kim Jinpyeong’s report is that the typefaces of Joseonmal Keunsajeon (The Comprehensive Korean Dictionary) were designed based on Baek’s typeface masters. On the contrary, Jang Bongseon received the relevant data directly from Park since the 1940s, kept in touch with

Jang, and preserved the photos they took together, making his assertion more trustworthy. When compared to the typefaces from 1955, the samples Jang provided are significantly different in space distribution and the shape of each character. Rather, they are more similar to fonts from before 1954, so the textbook Jang referred to is likely to be the one before the year. Developing and Improving Gukgyo Gukgyo reportedly started to be produced in the beginning of 1954 and was in use in autumn of the same year. According to The 35-Year History of State-Designated Textbook, the font was developed in 1945 and was in use in 1955. Preserved textbooks published in 1954 do not use Gukgyo, and those containing the font have yet to be discovered. On the passport Choi Jeongsoon carried during his trip to Japan for training, a 1954 departure date is indicated. (See page OO for more information.) If the newly developed type of Gukgyo was used in textbooks in 1954, it might have been only for a few volumes as a trial. The experts, returning from Japan after learning typeface master and typeface manufacturing, lacked the time to study and develop the set of types for textbooks. They could only complete the set for the Myeongjo font and produced its sets, but for the Gothic fonts they made rough sketches and manufactured the type by drawing a single stroke with the thick needle of the Benton engraving machine. This is why each stroke of the characters has a rounded beginning and end, and rolling edges. The Second Curriculum was the period in which Gukgyo, first created by Choi Jeongsoon, was improved. According to records, Choi, who opened his studio in 1960, did not participate in the work related to Gukgyo, so it seems that a typecasting foundry was in charge of the project. When Choi was working for the Gukjeong-gyo-gwaseo Corporation, he was assumed to have been supported by an art team, and it is said that one of the members of the team was designated as his successor. Type Development of the Daehan Textbook Corporation The watershed moment in type development by the Daehan Textbook Corporation is the year 1955, when the company printed the report of Ministry of Education, illuminating the frequency of each Korean character in texts. The book consisted of up to 15,000 sheets of square manuscript paper for 200 characters. To print it, the company needed to be able to hold and operate an enormous set of types. The corporation started to develop its own types in order to meet the supply so that it could publish a large series of textbooks. In 1958, the Daehan Textbook Corporation purchased two Benton engraving machines and a grinder for the engraving needle, and began to manufacture its own types. After that, the company made the first modifi-


Science Textbook 4–1, 1949 In the first part of the textbook, the titles and the questions were printed in Dokbon and Hanseong, while in the latter part Choijihyeok and Dokbon were used.

Hangul Cheot-Georeum, 1945, was written by the Joseon Language Society and published by the Education Department of the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After attaining independence, Korea started trying to develop its own textbook. The result was Hangul Cheot-Georeum (textbook for beginner Korean learners). The book used the font Hanseong in one size only, whereas books printed under the Japanese occupation used a variety of fonts in different sizes. This suggests that circumstances made it difficult to produce textbooks after Korea regained its independence. Hanseong was one of the new metal types manufactured by means of the galvanic method. It is known that Hanseong was also made using the lightweight matrix.* * Lightweight matrix: Until now, there is no reference to the lightweight matrix in dictionaries or books. Basically, it is known as a temporary matrix which is made from the existing galvanic matrix and then altered.

International Life Styles 3–2, 1952 The ‘ㅌ’ and the final ‘ㅈ’ consonant are similar to those in the textbook by Park.

Social Studies 3–2, 1955 A textbook printed in the Gukgyo font that was created in 1955. The space distribution and symmetry of the letters are precarious.

from the top (1:1 scale) Elementary Civic Education, 1946 Ethics 2–2, 1960 Social Studies 5–5, 1947 Social Studies 4–2, 1953 Selected Classic, 1951 Social Studies 5–2, 1954 Korean Middle Scholl 3, 1947 Korean Middle School 2–1, 1954 Korean Middle School 1–2, 1955 International Life Styles 3–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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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dern Era of Korean Type – 2

The Enlightenment Movement of Missionaries and the Development of Korean Type Ji-hoon Park (Musashino Art University) English Translation by Yu-na Lim English Edit by Fritz K. Park, Niki Stamatelos It is hard to discuss the history of print without mentioning the Joseon dynasty. Succeeding Goryeo, Joseon globally excelled in print and produced high-quality publications. However, it was not traditional printing but typography stemming from Europe that brought together Korea’s use of letters from the early modern age to the present day. Joseon’s printing culture could not survive to our time due to circumstances — society prohibited lower classes from using written letters and traditional convention gave superiority to Chinese characters. This supports the fact that “transplant of a new medium” inevitably includes “transplant of a new culture.” In this regard, it could not be a coincidence that the introduction of European modern typ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its enlightenment took place at the same time. I started my studies in typography with two questions in mind: Were new typefaces and typography introduced simply for commercial profit? Why did we have to import them from outside Korea’s borders? Let me start with the social factors that led to the import of modern typography. First, we can take a look at the missionaries and their efforts. In this case, the transfer of the new medium was driven by proselytization, a highly humane purpose, and not by objectives such as the pursuit of profit or government policies. The spread of media through missionary movements is universal: Western typography was imported to China after the Opium War. This second series will look into the development of Korea’s modern type from different perspectives: focusing on missionary movements and the role of printing at the end of the Joseon Era, and examining the manufacture and use of the modern type of early Hangul. Religious and Enlightenment Movements of Missionaries The Christian values brought into Korea in the 19th century did not fit the traditional norms of the Joseon society. This resulted in the persecution of Christians and the placing of strict restrictions on missionary movements in Korea. As it was impossible for the missionaries to openly evangelize, they turned to indirect methods using text. Unable to enter the Korean Peninsula, the missionaries from the West dwelled in neighboring countries and planned on publishing a Korean Bible. In the Ch’ing Dynasty, where evangelism was spread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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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form from early on, most Bibles were translated and published in Chinese characters. But what the missionaries needed for their mission in Joseon was an easy-to-read Korean Bible for the common people. The most urgent challenge they faced was the import of moveable type printing for mass production and the development of Hangul type. Though parts for printing equipment were imported from South Asian countries where modern typology was already distributed, they had to develop their own Hangul type exclusively for use on the Korean Peninsula. Despite their humble circumstances, Western missionaries moved to print shops in neighboring countries in an attempt to develop Hangul type. Their efforts resulted in the dissemination of published works of enlightenment such as the Bible and medical books and brought a great change to the printing culture in the age of enlightenment. Evangelism outside the Korean Peninsula occurred in Manchuria and throughout Japan. Hangul type was manufactured mostly in private typesetting shops in Japan. At the time, Koreans who were baptized by Western missionaries provided the original handwriting which was then commercialized into Hangul type by Japanese typographers. They also helped the missionaries learn Hangul and translate the Bible, and carried forward the plan to create Hangul type. Some of them were even in charge of carving the matrices. These baptized Koreans were not professionals and their work was very crude. Likewise, their original handwriting, although in correct form, was not exactly ideal for type manufacturing. The Hangul type manufactured through this process, however, became the basis for the modern printing culture of the Korean Peninsula. Christian missionary forces at the time can be divided into Catholicism and Protestantism. Catholic missionaries published the Bible in Japan while Protestant missionaries did so in Manchuria. Father Félix Clair Ridel, a French bishop who served as the 6th Joseon Catholic diocesan before his deportation to Manchuria in 1878, went to Japan to publish his book, which he had spent a long time preparing, for learning the Joseon language. In Yokohama, he worked with Father Eugene Jean George Coste to create a Korean dictionary. They printed the manuscript which he had started preparing in 1866 and published Dictionnaire Coreen-Francais (1880) and Grammaire Coréenne (1881). The two books were printed by L’Écho du Japon (The Sound of Japan), a French press located in

Yokohama. The type was presumably manufactured at Yokohama Hirano Type Studio (the former Tsukiji Type Studio). However, it was a Korean Catholic named Joseph Choi Jihyeok who produced the original handwriting for the type. It is said that there were three kinds of type — large, medium, and small — manufactured from his original handwriting. Of the three sizes, the smallest (no. 5) was used for Dictionnaire Coreen-Francais and Grammaire Coréenne, while the medium size was known as ‘no. two size type’ was presented in the sampler from Tsukiji Type Studio. However, existence of the large type has not been verified yet. At the end of 1881, Father Ridel established Seongseo Hwalpan-so (Bible Printing Shop), a modern print shop, in Nagasaki and began publication. When the France-Korea Treaty was established in 1886, the 7th Joseon Catholic diocesan, Father Marie Jean Gustave Blanc, had Father Coste bring the machines and type from Seongseo Hwalpan-so in Nagasaki to Jeongdong in Seoul. After they moved Seongseo Hwalpan-so to Korea, publishing of the Bible started in full force; books including Syeongsyang-gyeong (1886; silent prayers for the suffering of Christ), Syeongmo-syeongwol (1887; praises for the Virgin Mary), Syeong-yosep-syeongwol (1887; praises for Saint Joseph), and Tyeonjyu-syeong-gyo-yegyu (1887; on common Catholic rituals) were published one after another.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Myeong-dong Cathedral was completed in 1898, the printing facilities were moved into the cathedral, signaling a fresh start under a new name: Catholic Publishing House. The Catholic influence on the introduction of moveable type printing became a significant impetus, not just for publication of the Bible, but for a variety of media including journalism and textbooks as well. It also had a great effect on today’s Hangul type for body text. In order to look more closely into Choijihyeok type, which formed the basis for the Catholic printing industry, I have listed the following types (large, medium, and small) that are believed to have come from Choi Jihyeok’s original handwriting. Small Size Type Small type (no. 5) is used in Dictionnaire Coreen-Francais and Grammaire Coréenne. Records and data prove that the small type best represents Choi Jihyeok’s original handwriting. Small type is also the first modern Hangul type on record and was manufactured for horizontal typesetting. In fact, the type for both Hangul and the Latin alphabet are set horizontally in Grammaire Coréenne. [fig. 1, 2] What is more intriguing is that Hangul and the Latin alphabet have notable similarities, not just in the molding, but also in the structure of the type. Considering that Hangul was written vertically as Chinese characters were, maintaining the width of each syllable was very practical for vertical typesetting. On the other hand, Choi Jihyeok’s no. 5 size type comes in various widths depending on the size of each letter, as the Latin alphabet does; the type was manufactured


fig. 1 Dictionnaire Coreen-Francais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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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코 잊 어 서 는 안 되 는 것 들

04600 979–11–951852–3–8 979–11–9518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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