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 「금주의 서평」 - 대통령의 욕조 :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이흥환 저, 2015) -
홍원기 국회기록보존소 기록연구관
“What is Past is Prologue.” 지난 과거는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의 한 구절이자,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 이하 NARA) 건물을 방문하는 이용자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조형물에 새겨진 유명한 경구(警句) 중 하나 이다. 과거는 미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과거에 쓰여진 기록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구는 다가올 미래를 과거 속에서 찾고 더 나아가 기록을 통해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NARA의 기관 사명을 대변하는 일종의 ‘사명문 (Mission Statement)’인 셈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NARA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내포하는 상징적인 기록물 즉, 독립선언문, 미국 헌법, 권리장전 등을 영구적 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기록보존소이자, 전 세계 연구자들이 각자의 학문 분야에 대한 기록물을 열람‧활용하기 위해 방문하는 기록정보 서비스 기관 이다. 특히,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NARA는 해외의 여러 국립기록보존소 가운데 한국 근․현대사 자료를 가장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는 기관 중의 하나 이다. 소장기록물의 내용면에서는 한․미관계를 중심으로, 한‧일관계, 대 북한 관계 등 한국의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있거니와, 시기적으로도 대한제국기 부터 우리의 현대사 까지를 두루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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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욕조는 한마디로 미국의 국가기록을 견본으로 삼은 기록 이야기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대통령과 욕조라니, 책 제목으로는 다소 생뚱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곧 NARA에서 공식적으로 소장‧관리하고 있는 국가 기록물에서 착안한 제명임을 눈치 채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위싱턴 D. C. 소재의 코리아정보 서비스넷(Korean Information Service on Net : KISON)의 선임편집위원이자, 국립중앙도서관 워싱턴 현지 해외기록 수집팀을 이끌어 온 연구자이다.
저자는 저서를 통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NARA와 인연을 이어오면서 몸소 체득한 미국의 기록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아카이브즈 Ⅰ․Ⅱ로 구성된 NARA, 즉 내셔널 아카이 브즈의 역사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을 담고 있는 국정 핵심기록물 ‘대통령기록물’을 보존․관리하는 대통령 도서관을 다루고 있다. 또한, NARA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 관련 기록물 중 저자가 발굴한 기록물의 원문을 제시하고 기록의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나간다.
한편, 대통령의 욕조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진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요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국립기록보존소 설립 법안에 서명한 이래, 기록 관리의 역사가 채 100년도 안된 NARA가 전통적인 기록관리 선진국을 뛰어 넘는 방대한 양의 소장기록을 갖추게 된 강점은 무엇인지, 또, 국립기록보존소, 대통령 도서관, 연방레코드센터(FRC) 등으로 대표되는 기록물관리기관이 국가 기록관리 시스템 내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상호작용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말이다. 더 나아가 NARA가 왜 기록물을 영구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객체로만 인식하지 않고, ‘개방과 공개’라는 대 원칙 아래 정부에서 생산한 모든 기록은 공공재로서 관리하고 시민들에게 조건 없이 제공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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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다른 관점, 즉, 기록관리를 업으로 하는 기록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에 소개된 한국 관련 기록물에 대한 상세한 출처정보를 기입해 준 저자의 기록학적인 마인드에 깊은 감사를 보내고 싶다. 일반적으로 기록물은 진본성과 무결성을 온전히 유지하고 이용자가 원하는 기록물을 쉽게 찾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기록물의 출처나 원질서에 따라 여러 계층으로 조직화 하여 관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각각의 기록물에 부여된 기록물 군(Record Group, RG), 기록물 계열(Series) 또는 엔트리 넘버(Entry Number), 심지 어는 기록물이 담겨진 해당 상자번호까지 기재해 준 것은 연구자의 입장에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작지만 소중한 배려는 연구자에게 기록물을 하나의 유기적인 집합체로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각각의 기록물 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개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NARA 건물의 또 다른 한 켠에 자리 잡은 조형물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새겨져 있다. “Study the Past.” 과거로부터 배우라. 과거는 단순히 흘러 가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고 계훈(鑑古戒訓)’ 이라는 커다란 교훈을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도 애석 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우리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록물을 단지 정쟁 (政爭)의 도구로 활용되는 성숙치 못한 민낯을 마주했었다. 이제 현재를 살아 가는 우리의 선택이 남은 셈이다. 기록을 통해 지나간 역사와 과거를 다시금 마음에 새겨 ‘기록(record)’할 것인지, 아니면 기록을 ‘불화와 다툼(discord)’의 소재로 소비하고 영원히 박제하고 말 것인지를 말이다. 이제라도 지나간 역사가 기록이라는 거울을 통해 조심스럽게 들여다봐야 할 우리의 새로운 미래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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