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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반클리프 아펠 ‘포단’ 발표회

보석과 동화의 나라

http://sunday.joongang.co.kr

제384호 7월 20일~21일 값 1000원

82

July 20~21, 2014. no.384. sunday.joongang.co.kr




CONTENTS editor’s letter

06

THIS WEEK PEOPLE 84세 거장 영원히 잠들다 천재 지휘자 로린 마젤

격세 교육의 힘

ISSUE

08

명품 보석 반 클리프 아펠 동화 속 장면을 재현하다

목요일은 가장 바쁜 날입니다. S매거진 마 감 때문이죠. 보통 수요일 밤 늦게까지 일을

FOCUS

하거나목요일새벽부터일을시작합니다.

14

그런데 17일 아침에는 출근을 하려다 말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서 열린 22회 ‘백야의 별’ 페스티벌

주저앉아 TV를 보게 됐습니다. KBS-1TV

PEOPLE

‘아침마당’에 출연한 이계진 전 아나운서

16

히말라야 14좌 찍은 사진작가 이창수

(전 이 호칭이 좋더라고요) 덕분이었습니 반 클리프 아펠의 새 컬랙션 ‘포단’

PORTR AIT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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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랑이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구수한 그

건축비평가 이종건

의 말을 들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

COLUMN

21

주를 가르치는 격세(隔世)교육이 왜 중요

컬처#: ‘비정상회담’ 인기비결

한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FOOD

개똥참외가 자라는 것을 함께 보면서 참

22

을성을 가르쳐 주고 그림 속 민들레 홀씨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20> 통영 충무김밥

하나하나에 식구 이름을 빠짐없이 불러가

BOOK

며 가족애를 돈독하게 한다는 얘기는 말

26

로만 들어도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기

『대한민국 치킨展』

저귀 찬 꼬맹이 때부터 전통차 마시는 법

SOUL-SEARCHING

28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백야의 별’ 페스티벌

박정태의 고전 속 문장과 작가 <64> 『더블린 사람들』과 제임스 조이스

GALLERY

간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적 어돌아가신부모님에말씀드리듯읊는다는

29

대목에서는절로고개가끄덕여졌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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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겨줘야 할 가장 아름답고 정감 있는 인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PHOTO ESSAY

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 제사를 지내면 서 무슨 뜻인지도 모를 한문 축문 대신 1년

홍승혜 ‘회상(回想)’전

CONTE

다. 중간부터 보게 됐는데 제목이 ‘손주 돌 보니 삼대가 행복하다’였습니다. 그냥 손

류문화 중 한 가지가 대한민국의 효(孝)문 31

화와 대가족 제도”라고 했다죠.

조용철 기자의 마음 풍경

제헌절 아침에 들은 대가족 이야기는 그

※알림: 여름 휴가철 제작 시스템과 관련, S매거진

래서 많은 생각거리를 남겼습니다. ‘국가

7월 27일자와 8월 3일자는 발간되지 않습니다.

개조’ 전에 ‘가족 결합’부터 시작해야 하 는지도 모르겠습니다.

※7월 13일자 4면 ‘프로의 자격’ 중 명품(明品)은 히말라야 14좌 찍은 사진작가 이창수

명품(名品)으로 바로잡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S MAGAZINE

표지 프랑스에서 가장 큰 샹보르(Chambord)성에서 벌어진 반클리프 아펠의 새 컬렉션 출시 이벤트. 사진 반클리프 아펠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이도은 유주현 사진 조용철 최정동 전호성 편집 임종일 디자인 전유진 통신원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구명서 김진경 박본재 마케팅 박유선 최수인 이민주 이선우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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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SUNDAY MAGAZINE



THIS WEEK PEOPLE

1930~2014, 거장 로린 마젤을 보내며

말 없이도 통하는 오선지의 지배자 그를 만난 건 행운 “걱정 마, 저 분은 4악장을 워낙 느리게 지휘해서 리허 설 없이 초견(初見)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들으면 서 악보를 받아적을 수 있는 템포라니까!” 2000년 스위스 루체른.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

내가 뮌헨에서 일하던 2000년대 초, 마젤과 오케 스트라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본인은 리허설이 필요 없는 사람인데다가 자기 일만 할 뿐, 단원들과의 소통

단의 바이올린 주자인 나를 동료 연주자가 위로했다.

이라든가 연주자 개개인의 역량을 발휘할 여지를 주

걱정은 리허설 때 시작됐다.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

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상임 지휘자에게 자부심

은 1, 2악장, 3악장 스케르초, 5악장 피날레만 좀 해보

과 성취욕이 강한 오케스트라가 실망했을 거라 짐작

고 4악장은 아예 없는 것처럼 리허설을 진행하더니

한다. 더구나 임기는 2002년까지로 거의 끝나가고 있

시간이 남았는데도 무표정하게 오른손만 들어 인사

었으니 서로 데면데면 했다.

를 하고는 나가버렸다. 동료의 위안은 효과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와 말 한번 따로 해본 적 없이 오케스

여기는 루체른이고, 오늘 저녁 연주할 곡은 말러 5번

트라를 떠났다. 그러나 그와 일하면서 나는 지휘자를

이고, 연주는커녕 한두 번 들어본 게 전부였다. 당시

절대 신뢰하는 기본 태도를 배웠고, 리듬이 겹칠 때

나는 베를린에서 오페라를 일 년하고 온 게 전부인 그

음의 시간적 순서를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

야말로 초짜였다.

요한지 배웠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지금 제일 중요한

4악장 아다지에토를 안 해보고 무대에 올라가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파악해야 하고, 내가 중요할 때

게 걱정스러웠다. 느린 악장은 템포를 비롯해 호흡과

와 아닐 때의 소리는 완전히 다르게 내야 한다는 것,

프레이징, 음색, 활 속도 등이 중요한데, 그런 것들은

아무리 짧은 음이라도 그 울림에 시간과 공간을 줘야

혼자 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다는 것도 배웠다.

이럴 때 믿을 건 하나밖에 없다. 지휘자다. 4악장의

2011년 런던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말러

첫 쉼표부터 다 세면서 마에스트로를 놓치지 않고 봤

교향곡 전곡 연주에 나선 마에스트로를 객석에서 만

다. 그리고 마젤의 지휘라면 곡을 몰라도 연주할 수

났다. 그는 여전했다. 등이 곧고 양 어깨는 완벽하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프가 셋잇단음표를 연주하는

균형 잡힌 흐트러짐 없는 자세에 날이 서게 다린 맞

것도 지휘에서 보이고, 다음 마디 전에 바이올린이 약

춤 양복까지.

간 느려지는 것도 보였다. 악보를 읽고, 지휘를 보고,

하지만 지휘는 달라졌다. 전처럼 빈틈없다는 느낌

내가 연주할 순간에 연주하고, 움직임이 빨라지면 따

이 들지 않았고 자신감이 넘쳐 오만한 점도 사라졌다.

라가고, 느려지면 활을 늦추고 다음 음에 도착하기

소리는 따뜻해졌고, 가끔 음악이 신비롭게 통제를 벗

전에 기다렸다. 지휘봉이 선을 그리다가 아주 잠깐 멈

어났다. 어느덧 80세가 넘은 로린 마젤이 들려주는 말

추면 나도 숨을 쉬었다. 이후 말러 5번을 여러 번 했고

러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소리가 홀을 가득 채우고

잘 알게 됐지만 그날 무사히 연주를 마친 것이 얼마나

넘치는 순간에도 숨 쉴 여유가 있고, 더 큰 것도 넉넉

다행스럽고 행복했는지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히 품을 듯한 공간이 있었다. 8번 교향곡을 듣고 약간

마젤의 지휘는 기술적인 면과 정확도에서 최고였 다. 그와 연주한 많은 동료가 공감한다. 그는 내가 음

06 SUNDAY MAGAZINE

는 척하는 일이 없었다.

울 것 같은 마음으로 나온 것이 마지막이 될 줄 그때 는 몰랐다.

악의 흐름 속 어디에 있는지, 또 아무리 작은 음표라도

아홉 살에 데뷔해 평생 지휘를 하다 여든 넷으로

그 음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항상 보여주었다. 악보를

떠나신 분. 고맙습니다. 당신과 연주했고 또 당신의 연

사진처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드문 기억력의 소유

주를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그러나 말할

자여서 항상 암보로 지휘했다. 기억력은 완벽해서, 리

기회가 없었던 그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허설 때도 악보를 찾아본다든가 잘 모르면서 대충 아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사진 중앙포토



ISSUE

프랑스 샹보르성 르포 반클리프 아펠의 보석 ‘포단’ 시리즈 발표회

그곳에선 모두가 동화 속 주인공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은 프랑스의 하드 럭셔리(주얼리와 시계)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다. 유니콘, 용, 불사조 등 전설이나 신화의 주인공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제작을 통해 탁월한 창조성을 자랑해 왔다. ‘레 보야쥐 엑스트라오디네르(Les Voyages Extraordinaires·2010)’, ‘팔레 드 라 샹스(Palais de la Chance·2012)’, ‘피에르 드 카락테르(Pierre de Caractère·2013)’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 ‘포단’(Peau d’Âne)을 6월 27일 내놓았다. 전 세계 VIP와 각 나라 럭셔리 관련 미디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여 명의 기자를 프랑스에서 가장 큰 샹보르(Chambord)성으로 초청해 동화 속 보석 나라를 체험케 했다. 루아르(프랑스) 김성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ghee@stella-b.com, 사진 반클리프 아펠 08 SUNDAY MAGAZINE


ISSUE

행사장이었던 샹보르성의 정원에서는 ‘포단’ 영화의 결혼식 부분이 재현됐다. 각국에서 온 100여 명의 기자들은 ‘포단’의 결혼식에 초대된 하객이 됐다.

성 모양을 본뜬 샤토 앙샹테(Chateau enchante) 클립

SUNDAY MAGAZINE 09


ISSUE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결혼식 재현 행사. 하이주얼리를 착용한 모델들은 마차를 타고 등장했다.

10 SUNDAY MAGAZINE


ISSUE

1

3

동화 속 공주의 아버지가 선물한 세 벌의 드레스를 모티브로 한 보석 클립

1 로브 컬러 뒤 탕(Robe Couleur du Temps) 클립 2 로브 컬러 드 라 륀느(Robe Couleur de la Lune) 클립 3 로브 컬러 뒤 솔레이유(Robe Couleur du Soleil) 클립

2

동화 ‘포단’은 딸 하나를 둔 왕비가 남편에게 자신보다 더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와 재혼하도록 맹세케 하고 숨을 거둔다. 신부감을 찾지 못하던 왕은 조건에 맞는 여자가 친딸임을 깨닫고 딸과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다. 깜짝 놀란 공주는 요정 대모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공주가 내놓는 어려운 요구를 왕은 척척 해결한다. 변 대신 금은보화를 싸던 신기한 당나귀까지 죽여 그 가죽을 선물할 정도다. 이웃나라의 시골로 달아난 공주는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쓰고 하녀 일을 하지만 지나가던 그 나라 왕자가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아본다. 상사병이 난 왕자는 “당나귀 가죽이 빚은 과자를 먹고 싶다”고 요구하고 공주는 반죽 속에 일부러 자신의 반지를 집어넣는다. 반지를 발견한 왕자는 “이 반지가 맞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하고 결국 공주와 만나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당나귀 가죽이라는 뜻의 ‘포단’은 우리에게 ‘장화신은 고양이’ ‘빨간 모자’ 등

르네상스 풍의 웅장한 궁전이었다. 방만 440개에 이른다. 1981년에는 세계문화

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가 쓴 동화 제목(내용은 기사 참조)이다. 1970

유산으로 지정됐다. 영화 ‘포단’에서 공주가 결혼식을 올린 바로 그 곳이기도 했

년에는 프랑스 감독 자크 드미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카트린 드뇌브가

다. 파리에서 이곳까지는 차로 2시간. 리무진 안에 태블릿을 설치해 컬렉션의 모

공주역을 맡았다.

티브가 된 ‘포단’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반클리프 아펠은 정교하게 연마한 보석의 아름다운 하모니로 ‘포단’이라는

프레젠테이션은 첫 날인 27일은 VIP, 다음날은 기자들만 초청해 양일에 걸쳐

동화를 읽어내렸다. 28캐럿이 넘는 루비와 핑크 사파이어의 정열적인 레드는 왕

진행됐다. 반클리프 아펠의 CEO인 니콜라 보스(Nicolas Bos)는 성 입구에 마

자와 공주의 사랑을, 에메랄드의 녹색은 숲의 풍부함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옐

치 공주와 결혼하는 왕자님처럼 서서 하객 한 명 한 명을 맞았다. 성 안으로 들어

로우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는 태양의 눈부신 빛을 표현했다. 특히 동화 속 공

가니 신비한 나무와 꽃, 화려한 색상의 살아있는 열대조가 마법의 세상을 꾸며

주가 아버지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내세운 무리한 요구들은 반클리프 아펠

냈다. 조명이 신비함을 더욱 강조했다. 그 사이사이에 이번 행사의 주인공인 하

장인들의 손에서 멋진 주얼리로 재현됐다. 예를 들어 ‘하늘의 푸른 빛보다 더 아

이 주얼리들이 숲의 요정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름다운 드레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달빛 같은 드레스’, ‘멋진 골드와 다

컬렉션은 ‘궁전에서의 어린 시절’ ‘마법의 숲’ ‘해피 웨딩’의 세 가지 테마로

이아몬드 천으로 재단한, 가장 순수한 빛인 태양 같은 드레스’는 각각 파라이바

구성됐다. 우선 ‘궁전에서의 어린 시절’에서는 앞서 언급한, 아버지로부터 선물

투어말린을 내세운 ‘로브 컬러 뒤 탕’ 클립, 바게트 컷 사파이어를 중심으로 한

받은 세 개의 드레스 색상인 스카이 블루·블루·옐로우를 모티브로 한 주얼리들

‘로브 컬러 드 라 륀느’ 클립, 로즈 컷 다이아몬드를 강조한 ‘로브 컬러 뒤 솔레이

이 주를 이뤘다. 1940년대부터 이어져 온 ‘페어리(fèe·요정)’ 클립의 전통을 이

유’ 클립으로 탄생했다.

은 제품들로 부드러운 색상의 그라데이션이 특히 돋보였다.

프랑스 최대의 성에 꾸며진 동화속 보석 나라

는작품으로브라질이원산지인39.85캐럿의오벌컷에메랄드를중앙에세팅했다.

아름다운 성을 형상화한 ‘샤토 앙샹떼’ 클립은 공주의 행복한 시절을 상징하 르와르강 주변에 지어진 80개의 성 가운데 가장 큰 성으로 꼽히는 샹보르 성은

‘로브 컬러 뒤 탕 주얼리 세트’ 제작을 위해 메종은 페어 쉐이프로 연마된 아 SUNDAY MAGAZINE 11


ISSUE

샹보르성 내부 모습. 신비한 나무와 꽃, 화려한 색상의 살아있는 열대조가 마법의 세상을 꾸며냈다. 그 사이사이로 이번 행사의 주인공인 하이 주얼리들이 전시됐다.

12 SUNDAY MAGAZINE


ISSUE

영화속 포단 공주가 피아노 치는 모습에서

왕자와 공주의 로맨스를 상징하는

영감을 받은 아무르 아무르(Amour Amour) 링

갸토 다무르(Gateau d’amour) 링

성을 떠나는 포단 공주의 운명을 표현한 미르와 앙샹테(Miroir enchante) 네크리스의 탈부착형 클립 부분

왕자를 형상화 한

요정의 요술 지팡이를 본뜬

프린스 루즈(Prince rouge) 클립

바게트 매직(Baguette magique) 클립

쿠아 마린과 파라이바 투어멀린, 블루 사파이어를 사용했는데, 보석들은 마치 하늘의 한 부분이 막 떨어져 나온 것처럼 맑고 투명하게 빛났다. ‘아무르 아무르’ 반지는 영화 속 공주가 궁전에서 피아노 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

느껴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에 초대받은 200여 명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포단’의 결혼식에 초대된 하객, 즉 반클리프 아펠이 재현한 동화의 일부분이 됐다. 실제로 주최측

‘마법의 숲’의 작품들은 숲에서 숨어 지내는 공주의 일상과 자연을 주제로 제

은 남자들에게는 턱시도를, 여자들에게는 왕자 나라를 상징하는 블루 컬러나

작됐다. 나뭇잎과 화려한 색상의 꽃을 표현하기 위해 원색의 에메랄드나 사파이

공주 나라를 상징하는 레드 컬러 칵테일 드레스를 권유했다. 반클리프 아펠은

어, 산호 등을 사용했다. 왕자를 위해 만든 케이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갸토 다

단순히 하이주얼리 프레젠테이션 행사를 넘어 모두를 어릴 적 꿈꾸던 동화의 세

무르 반지는 소용돌이치는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가 마치 휘핑 크림 위에 초록

계로 이끌었다.

색 젤리를 얹은 것 같았다. 마지막 테마 ‘해피 웨딩’은 결혼식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는 특별한 시장을 위해 따로 디자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만의 고유한 테크

두 왕국을 상징하는 블루와 레드를 사파이어로 조화롭게 표현했다. 코끼리 등

닉과 스타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 뿐입니다.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할 때마다

위에 외국 왕들의 선물이 실린 ‘엘레팡 앙샹테’ 클립, 이국적 분위기의 ‘캬도 도

다양한 문화가 녹아든 주얼리들을 선보이는데 유럽 고객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리앙’ 반지에는 축하 분위기가 가득했다.

나 아시아권 고객들도 이국의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주얼리들을 상당히 좋 아합니다. 아마도 행복·풍요·사랑을 표현하는 주얼리들이 고객들의 개인적인 경

관람객들은 어느새 결혼식 하객으로

험과 정서에 연결되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니콜

오후 8시, 중세 복장을 한 나팔수들이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자 사람들은 성에

라 보스 CEO의 말이다.

서 나와 정원에 준비된 갈라 디너 장소로 이동했다. 잠시 후 ‘포단’ 영화의 결혼 식 부분이 깜짝쇼로 재현됐다. 귀빈들이 말과 코끼리를 타고, 성에서 봤던 하이 주얼리를 착용한 모델들은 마차를 타고 등장했다. 디너가 진행되는 동안 테이블 을 일일이 방문한 모델들 덕분에 주얼리가 의상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가까이서

‘쉘부르의 우산’을 작곡한 프랑스 음악가 미쉘 르그랑(82)의 흥겨운 재즈 연주 에 이어 성대한 불꽃놀이로 갈라 디너는 막을 내렸다. 이번에 선보인 포단 컬렉션은 대다수가 이미 판매됐다. 9월에 열릴 파리 비엔 날레에서 새 컬렉션과 함께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SUNDAY MAGAZINE 13


FOCUS

1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백야의 별’ 축제를 가다

볼레로, 전쟁과 평화  예술혼에 휩싸인 하얀 여름밤 러시아의 문화 수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이곳 백야

르기예프로서는 그야말로 날개를 제대로 달았다고

(白夜)의 밤을 음악으로 밝히는 ‘백야의 별(Stars of

할 수 있다.

하지만 첫 음이 들어갈 때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호흡은 정확히 잘 맞지 않았다. 그리고 협연자 마추예프와 게르기예프가 정확히 타이밍을

the White Nights)페스티벌’이 올해로 22회째를 맞

맺지 못한 부분도 아쉬웠다.

았다. 보통 5월 하순부터 7월 말까지(올해는 5월 28일부

파격적 디자인 돋보인 마린스키 극장

터 7월 31일까지)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이탈리아 베로

6월 22일 밤 10시 공연에 맞춰 마린스키 극장 2관을

첫 곡을 연주한 후 거의 쉬지도 않고 마추예프는

나의 아레나 페스티벌(6월 초~9월 초)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았다. 기본적으로 오페라 극장이지만 콘서트도 치

무대에 다시 등장해 두 번째 협연곡인 그리그 피아노

긴 축제다.

를 수 있는 곳이다. 내부가 러시아의 대표적 보석인 호

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두 곡 모두

특히 금년은 이 러시아 최대의 음악축제에서 열리

박(琥珀)색으로 장식돼 있으며 동선이 매우 독특하

백야가 있는 북구의 두 나라 러시아와 노르웨이의 피

는 공연이 처음으로 200개를 넘어선 원년이다. 그것

게 꾸며져 있었다. 넓은 창과 개방적인 스타일로 바깥

아노 협주곡들로, 공연장에 들어오기 전 아직도 해가

이 가능해진 이유는 1860년 세워진 전통적인 마린스

경치를만끽하게해주는파격적인디자인이돋보였다.

지지 않았던 백야의 바깥 풍경과 어울려 기막힌 정서

키 오페라 극장에서만 공연을 14년 간 치러오다가 화

이날의 주인공은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두 거물, 게

적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재로 2006년 현대식 마린스키 콘서트홀을 짓고 페스

르기예프가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

마지막 곡은 라벨의 볼레로였다. 게르기예프는 본

티벌의 규모를 늘렸으며 지난해부터는 2000석 규모

가 협연하는 콘서트였다. 게르기예프 공연 치고는 준

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이쑤시개 같이 생긴 작은 지

의 초현대식 마린스키 극장 제 2관을 개관해 외연을

수하게 오후 10시 10분에 시작했다. 마추예프는 이날

휘봉을 손에 쥐고 독특한 떨림의 지휘법으로 이 남녀

더욱 넓혔기 때문이다. 하나의 극장에서 진행할 때보

무려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먼저 라흐마

의 성을 묘사한 작품을 에너지 넘치게 이끌어나갔다.

다 더욱 다채롭고 화려한 무대를 다양한 시간대에 진

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는데, 1번은 2번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가르시아 나바로가 이끌고 세

행할 수 있게 되었기에 마린스키 극장과 ‘백야의 별

나 3번에 비해 자주 연주되지 않지만 이 곡 역시 명곡

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던 바르셀로나 심포니 오케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자1 상임지휘자인 발레리 게

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설득력있는 연주였다.

스트라의 볼레로 이후 최고의 볼레로 실연이었다.

14 SUNDAY MAGAZINE


FOCUS

2 1 발레 ‘안나 카레니나’ 중 브론스키 공작 (알렉산드르 세르계예프)과 안나(아나스타샤 마트비옌코)의 처절한 2인무.

2 ‘백야의 별’ 축제에서 선보인 발레 ‘실비야’. ©N. Razina 3 2013년 개장한 마린스키 제 2극장. ©Danila Shklyar

3

꾀하고 있음을 증명해준 공연이었다.

마트비옌코의 ‘안나 카레리나’ 발군

의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안나의

최근 게르기예프가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예술적 방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이 무대 스크린 위에 커다랗게 떴

올해 ‘백야의 별’ 페스티벌에서는 프로코피예프

향 중 하나는 소비에트 러시아 시절 작곡가들의 재

다. 올해 페스티벌에서는 마린스키의 간판 발레리나

가 톨스토이의 대하소설을 다룬 오페라 ‘전쟁과 평화’

발견이다. 어떤 면에서는 푸틴이 추구하는 소비에트

인 울리야나 로파트키나와 아나스타샤 마트비엔코

가 그래험 빅의 새로운 연출로 상연되는 것이 큰 화젯

적 ‘강한 러시아’로의 회귀와 궤를 같이한 듯 보인다. 두 명이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했는데, 이날 마트비옌

거리다. 또 음유시인인 알레그 파구진의 콘서트, 발레

지난해에 이어 현대 소비에트 작곡가인 로지온 쉐드

코의 미모는 아주 빛났다. 9등신의 마트비옌코는 사 ‘돈키호테’ ‘가야네’ ‘스파르타쿠스’, 오페라 ‘이고르

린의 작품을 다시 리바이벌하고 있었는데, 모스크바

랑에 빠져 자신의 감정대로 살았으나 사회의 억압과

볼쇼이극장의 주요 레퍼토리였던 그의 발레 작품 중

규율, 냉대와 질타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예브게니 오네긴’ 등 매일같이 3~4개의 공연이 세 개

공’ ‘투란도트’ ‘피가로의 결혼’ ‘마담 버터플라이’ 의 공연장에서 번갈아 열린다.

‘카르멘 모음곡’과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을

19세기 러시아 여성 안나 카레니나 역을 매우 빼어나

올리고 있었다. 알렉세이 라트만스키가 2010년 새롭

게 소화해냈다. 기차 장면에서 기차를 한바퀴 무대

페스티벌은 7월 31일 끝나지만 만족을 모르는 게

게 안무한 ‘안나 카레니나’를 22일 오후 7시에 역시

위에서 회전시키면서 객실 내부를 보여주는 연출도

르기예프는 8월 6일까지 오페라와 발레를 매일 밤

마린스키 제 2극장에서 감상했다.

기발했다.

마린스키 1, 2극장에서 올리며 기나긴 백야의 밤을

작품 속 19세기 풍 귀족들의 의상은 에르미타주 박

라트만스키의 안무는 특히 2막에서 빛났다. 브론

예술혼으로 불태운다. 휴가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물관에서 특별전시하고 있는 로마노프 왕조의 의상

스키가 낙마하게 되는 경마씬을 과연 어떻게 풀어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

들이 살아서 나온 듯 화려하고 패셔너블했다. 명쾌한

지 매우 궁금했는데 남성군무 장면을 경주마들처럼

는 듯.

연출과 빠른 극 전개는 쉬는 시간 포함 1시간 50분의

역동적으로 풀어냈다. ‘백조의 호수’ ‘돈 키호테’ ‘지

러닝타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젤’ 같은 고전 발레에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온 러

막이 열리면 기차역에서 몸을 던져 죽고마는 비운

시아 발레가 드라마 발레로의 새로운 변신과 진화를

상트 페테르부르크(러시아) 글 장일범 음악평론가·KBS 클래식FM ‘장일범의 가정음악’ 진행자 ilya25@hanmail.net 사진 백야의 별 조직위원회 SUNDAY MAGAZINE15


PEOPLE

사진작가 이창수의 ‘히말라야 14좌 사진전’

대자연 품에서 700일  살아있음을 노래하다

16 SUNDAY MAGAZINE


PEOPLE

창체, 에베레스트, 눕체(왼쪽부터) 연작.

“작은 한 점 되어 걸었다. 길을 걷다 보면 앞에 있는 산이, 그 산을 감싸는 구름이, 그 구름 사이를 비집는 빛이, 꿈틀대고 넘실대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다.” 사진작가 이창수(54)가 히말라야에서 느낀 것은 바로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이었다. 한 생명이 우주 와 소통하는 그 순간의 열락을 그는 고스란히 마음에, 그리고 카메라에 기록했다. 하여 ‘히말라야 14좌 사진전-이창수, 영원한 찰나’(6월 28일~8월 11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는 단순 한 풍경 사진전이 아니다. 2011년 12월부터 700여 일간 에베레스트·K2·칸첸중가·로체·마칼루·초오유· 다울라기리·마나슬루·낭가파르바트·안나푸르나·가셔브룸 I·브로드피크·가셔브룸 II·시샤팡마에 이르 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의 속살을 하나하나 파고들어가 대자연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만 난 경건하고도 따뜻한 감상문이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밀레문화사업단 SUNDAY MAGAZINE 17


PEOPLE

콩코르디아 광장을 지나가는 포터, 1200 x 1800 mm, 디지털 C프린트

K2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달빛, 1200 x 1800 mm, 잉크젯 피그멘트 프린트

18 SUNDAY MAGAZINE


PEOPLE

얌드록초 호수, 1500 x 4300 mm, 잉크젯 피그멘트 프린트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먼저 맞는 것은 거대한 눈(眼)사진이다. 주제로 구성돼 있다. 거대한 자연속으로 다가가는 인간을 그린 ‘한 에베레스트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 스투파(탑)에 그려진 부처님 얼

걸음의 숨결’에 이어 이제 ‘신에게로’ 코너다. ‘랍룽가 패스에서 펠

굴에서 눈만 클로즈업했다. “내 안의 나를 보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쿠초 호수 가는 길’이라는 길이 4m80cm 짜리 작품은 눈 덮인 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담겨있다는 부처님의 눈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평원 위에서 풀 뜯어먹는 양떼와 양치기의

보자는뜻이죠.”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의 대립각이

수염이 여전히 덥수룩한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이창수 작가가 설

느껴졌다.

명을 시작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상서로운 기운 가득한 ‘임자

그 옆으로 온몸을 대지에 던져 불법승 삼보에 대한 존경을 표하

체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서 본 로체 남벽’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장

는 ‘오체투지’ 장면이 이어졌다. “히말라야를 찍으면서 감동으로

엄하다. 높이 185cm, 가로 7m50cm에 달하는 크기다. 그 옆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두 번 있습니다. 이때는 땅에 엎드려서 사진을 찍

해발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봉우리 14개의 사진이 거대한 그

는데 정말 눈물이 그치질 않더라고요. 사람이 자연과 하나가 되려

림 지도가 되어 벽면 한쪽을 채우고 있다. “봉우리가 보이는 사진은

는 노력에 감동했기 때문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기뿐이에요. 이제부터는 풍경이 아니라 제가 히말라야에서 느낀 순간을 잡아낸 모습들입니다.”

로가온 사원에서 타초르(만국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자 연에 대한 인간의 자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색색 깃발마다 불

그의 설명 뒤로 명상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가 히말라야에서 매

경이 적혀 있는데 색깔별로 뜻이 있습니다. 파랑은 하늘, 하양은 설

일 새벽 5시면 일어나 들었다는 음악이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산, 빨강은 흙, 녹색은 숲, 노랑은 사람을 의미하죠. 바람이 세게 부

느낌이 들었다. 마칼루 베이스캠프에서 본 참랑 산줄기나 이탈리아

는 만큼 깃발에 적힌 부처님의 진리가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라는

베이스캠프에서 본 다울라기리의 산줄기 사진은 한 폭의 수묵화가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따로 없다. “이걸 보면서 겸재가 떠올랐다”고 했다. 반면 ‘콩고르디

히말라야 자락에 사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나마스떼, 신의 은

아 광장에서 발토로 빙하를 따라서 브로드피크와 K2로 가는 길’이

총이 당신에게’에서는 비록 옷차림은 남루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

라고 이름 붙인 작품은 마치 물감을 덕지덕지 바르는 작가 오치균

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았다. 양떼를 풀어놓고 잠시 쉬고 있는

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눈더미 사이로 동그

목동의 미소, 포대를 베개처럼 베고 누워있는 할머니, 모닥불에 주

마니 앉아있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바위 하나. 그는 “이게 바로 (자연

전자를 올려놓고 하루의 쉼을 얻은 할아버지의 느긋한 표정이 대표

과 하나가 된) 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적이다. 그런가 하면 무거운 짐을 지고 산등성이를 넘는 포터의 발

그런가하면 ‘곤도고르 패스에서 달삼파로 가는 길’ 연작은 거의 탈진 상태에서 가까스로 손가락만 움직여 찍은 작품. 흰 눈과 검정 돌들의 조화가 오묘하다.

에 초점을 맞춘 ‘쇼티콜라의 포터’는 우리 삶의 무게를 새삼 가늠하 게 했다. ‘별이 내게로’ 코너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별 사진을 모아놓

자연의 조화는 이 작가가 즐겨 추구하는 장면이다. 기존에 가졌

은 곳. 30초간 열어놓고 별의 온전한 모습을 최대한 담아낸 모습들

던 사진전 ‘움직이는 산-智異’나 ‘Listen-숨을 듣다’에서도 작가가

이다. 더 이상 노출을 주면 궤적이 나타나 별이 별처럼 보이지 않는

눈길을 준 것은 풀 한 포기의 흔들림과 따뜻한 한 자락의 볕이었다.

다고 했다. 사진 뒤에서 빛을 쏘아 화려하게 꾸민 ‘초오유 베이스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대상을 마음으로 꿰뚫어보는 것입니다. 빛

프에서 바라본 초오유 정상’은 별과 설산과 정상에서 내려오는 랜

이 쨍하고 퍼지는 것처럼 마음이 움직이는 찰나적 순간, 앞도 뒤도

턴의 빛과 아래에서 야영하는 텐트가 맞물려 마치 히말라야 현

과거도 미래도 없는 그 순간의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죠.”

장에 서 있는 듯했다.

‘뎅 마을에서 본 테와 산의 산 그림자’나 ‘딩보체의 저녁 빛’ 같은 장면은 그에게 비로소 ‘하나 건졌다’는 느낌을 준 사진이다. 110여 점의 사진과 공예품을 볼 수 있는 전시는 크게 다섯 개의

사진을 보던 관람객들이 주고 받는 얘기가 뒤쪽까지 들렸다. “야, 이렇게 사진으로 다 봤으니 이제 히말라야엔 안 가도 되겠다.” “나 는 이 사진들을 보니까 히말라야에 꼭 가보고 싶어졌어.” SUNDAY MAGAZINE 19


PORTRAIT ESSAY

권혁재 기자의 不-완벽 초상화

무관심 파괴자 이종건 <건축비평가>

“저더러 ‘건축계의 독설가’라 합니다. 맞습니다. 공적인 분노, 그 대가로 얻는 외로움과 고달픔, 오히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이 없으면 문화도 없습니다. 문화를 가장 위협하는 게 비평 없는 무관심입니다. 창조는 공적인 분노에서 나옵니다. 비평이 초대받지 못하는 건축계에 독설가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20 SUNDAY MAGAZINE


COLUMN

컬쳐#: JTBC ‘비정상회담’의 인기 비결

심심풀이 수다 넘어 토론으로 진화 외국인 출연 프로 ‘비정상의 정상화’

첫 방송부터 소위 ‘대박’을 예감케 한 JTBC 의 ‘비정상회담’은 몇 년 전 화제작이었던 ‘미녀들의 수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미녀들의 수다’가 이전의 외국인 등장 프로 그램들과 다른 점은 ‘시선의 방향’이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명절 때 외국인 노래자랑이 나 사투리를 쓰는 외국인, 제사상 잘 차리는 외국인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은 ‘우리’ 가 ‘그들’을 ‘구경’하는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한국 문화에 얼마나 동화되었나를 보 고 ‘우리’의 영역에 안착한 가상한 노력을 신 기해하는 것이었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외국

외국인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참 다른 사

변해야 할까. 아직은 매번 각국의 국기를 들

인이 쉽게 뚫기 어려운 마음의 장벽을 우리가

고방식이네’라는 느낌과 ‘사람 사는 거 어디

고 ‘어느 나라 사람’‘어느 나라의 생활’임을

가졌었다는 뜻일게다. ‘미녀들의 수다’는 ‘그

나 다 똑같지’라는 엇갈린 느낌을 가지게 한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 국적을 모두 지우고 그

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받아들이겠

다. 자식의 독립과 혼전 동거에 대해 다수결

저 한 곳에 같이 살고 있는 ‘세계인’으로 만나

다는,우리의자폐적인모습에서벗어났다는약

표결 결과로는 역시 우리보다는 훨씬 개방적

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이 되면 더 바람직하

간의 성숙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방송이었다.

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한국사람보다 더

지 않을까.

‘비정상회담’에서는 시간이 더 흘러, 이제

보수적인 미국, 터키, 중국 남자의 사고방식을

또 지금처럼 한국말 잘하고 똑똑하고 스

는 ‘우리와 그들’이 아니라 서로 얽혀 살면서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 아니라는 것 역시 느

펙 좋고 잘생긴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같이 앉

자연스럽게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난

낄 수 있다. “동거 안 하는 사람 이상하게 생

아서 서투르면 서투른 대로 구박하지 않고 서

상수다가 가능해진 글로벌한 한국의 현실을

각해요”(제임스 후퍼, 영국), “동거하면 부모

로 배려해 줘가며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

읽게 한다. 이견 없이 모두 놀라는 것은 너무

님한테 맞아 죽어요”(샘 오치리, 가나)처럼 뭔

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에서 가

나 능숙한 한국말 실력이다. 같은 곳에서 같

가 국가나 민족적 차이가 있다고 보려하다가

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그러나 우리

은 언어를 저렇게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면, 도 “그런데 저는 했죠. 동거”라는 샘의 고백

와 동등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동정’ 아니면

이제는 한국사람 외국사람의 구분이라는 것

에 웃음이 터지게 된다. 섣부른 ‘전형’의 틀로 ‘배척’의 시선에 갇혀있는 동남아 지역 외국인

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 사자성어를 척

누군가를, 어느 국가인가를 집어넣는다는 것

들이 웃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척 쓰는 유창한 실력이면 신기해서 즐겁고,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며, 그러니 각 집단의

캐릭터가 매력 있어 스타도 되고 하는 모습

‘결혼이 망했다’처럼 아직 어설프면 어설픈 대

고유한 습성과 문화를 인정하더라도, 결국에

같은 것이 이런 프로그램의 조만간 미래의 모

로 색다른 웃음을 유발하는 재미가 외국인

는 개개인의 ‘다양성’과 ‘특수성’이 있다는

습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시청률을 놓고 경쟁

프로그램에는 있다. “한국 인구 줄어든다 걱

더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받아들

정할 게 아니라 동거를 법적으로 제도화해야

주는 지점이다. 내가 만약 외국의 이런 프로

이지는 않을 현실이긴 해 보여도.

죠”라는 의외의 돌직구 시선, 거기에 먼 타향

그램에 한국의 대표로 나가서 내 라이프 스

글 이윤정 칼럼니스트 filmpool@gmail.com

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한순간에

타일을 말할 때, 그것이 한국 사람 전체를 대

사진 중앙포토

찡하게 만드는 요소도 있다. 어찌그리 샤방

변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런 프로

샤방한 미남들만 골라놨는지, 아무리 숨기려

그램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때야 하는지 알 수

해도 잘난 외국인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있을 것이다.

점 역시 돌풍 같은 인기의 비결일 것이다.

몇 년 뒤의 외국인 프로그램은 또 어떻게 SUNDAY MAGAZINE 21


food

난 더위를 많이 탄다. 그냥 “더위를 많이 탄다”고 이 야기하기 민망할 정도로 많이 탄다. 7월 초부터 등에 땀띠가 나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는 이마까지 땀 띠가 났다. 항상 땀방울이 맺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 런 상황에서 습도까지 높아지면 삶의 의욕을 잃을 정 도로 지치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허기는 느껴진다. 다만 그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밥을 해먹는 과정도 더위 속에서 는 고난으로 바뀌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뭔가 사먹는 쪽으로 관심이 기울 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먹는 것들이 다 그렇듯이, 몇 번 먹다 보면 물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배달되는 음식이 한정적이다 보니 전화기를 들 고 메뉴를 고를 선택의 자유마저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럴 때는 귀찮더라도 나가야 한다. 귀찮음 때문에 발 생하는 짜증이 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짜증보다는 좀 더 참을 만 하니까. 만사 귀찮을 때 떠오르는 메뉴 아기를 돌보미 선생님께 맡겨두고 아내와 이른 저녁 을 먹으러 나섰으나 무얼 먹을지 정하지는 않았다. 차 에 올라 시동을 켠 후에도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뜨 겁지 않고 간단하고 느끼하지 않고 부담 없는 음식.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이 조건 을 충족시키는 것은 결국, 충무김밥이었다. 통영에 살 면서 충무김밥을 외식 메뉴로 선택하는 일은 참 재미 없어 보일 게 틀림없다. 하지만 거기에 ‘스토리’가 더 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충무김밥은 명동에 있는 게 제일 맛있는 거라 생각 했는데…기억 나?” “그때야 우리가 통영 내려와 산 지 아직 일 년도 안 1

됐을 때였으니까.” 조수석에 앉아 아마도 웃는 얼굴이었을 게 틀림없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20> 통영 충무김밥

옛날 맛, 깊은 맛 토박이 줄서는 집 찾아가는 맛 쏠쏠

었을 아내의 대답에 우리가 이곳에 내려온 지 벌써 3 년이 됐다는 생각이 스치며 새삼 시간의 빠른 흐름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난 통영 사람들이 그렇게 충무김밥을 많이 먹을 줄은 몰랐어.” 아내의 말에 이번엔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광지의 명물이라 불리는 것들 중 많은 수는 정작 현지 주민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무김밥은 통영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있는 메뉴였다. 점심시간에 충무 김밥집을 찾으면 외지가 아닌 근처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가게가 채워지는 모습을 보고 깜 짝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용하 게 되면 무엇보다 품질이 좋아진다. 뜨내기가 아니라 단골을 보고 장사해야 하는 모든 집이 그렇듯 작은

22 SUNDAY MAGAZINE


food

부분 하나 허투루 내놓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 러니 통영의 충무김밥들은 그 맛에 ‘다름’은 있어도 ‘틀림’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그 수준이 상향평 준화되어 있다. 물론 우리 부부 역시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 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작게 말아놓 은 김밥과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린 오징어와 어묵들, 아무렇게나 썰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무김치까지 어 디 하나 크게 식욕을 잡아끄는 부분은 없어 보였으니

1 우리 부부가 즐겨먹는 충무김밥. 깔끔한 뒷맛이 좋다.

2 여객선터미널 맞은 편의 충무김밥집들. 미묘하지만 맛에는 모두 차이가 있어 더 재미있다.

3 전통방식은 일일이 꼬치에 꽂아두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4 옻칠한 쟁반 위에 올려진 충무김밥은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까. 그래서 서울에서 친구들이 내려올 때마다 충무 2

김밥을 사주면서도 크게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재미 있는 건 더 이상 서울에서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던 계절, 그러니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슬슬 충무김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충무김밥의 맛에 길들 여져 버렸다. “그럼 어디로 갈까?” 내 질문에 아내는 잠시 생각을 하는 눈치였다. 사 실 우리는 통영에서 내로라하는 집들의 충무김밥은 한 번씩 먹어봤다. 뿐이랴. 아예 다양한 참가자들을 모아 유명 충무김밥집들의 김밥을 모아 시식회까지 한 경험이 있으니 어느 곳의 맛이 어떻다는 것은 기억 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아

3

내의 입장도 이해는 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징 의 차이는 있어도 수준의 차이는 없으니까. 해산물 꼬치 원형 간직한 집 두곳 뿐 물론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우리가 가장 많이 찾던 곳이었다. 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 위치한 그 충무김 밥집은 다른 곳에 비해 단맛이 조금 더 강하고 뒷맛 이 깔끔한 편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손님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맛이 산뜻한 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충 무김밥의 원형도 놓칠 수는 없는 일. 원래 충무김밥 은 꼬치에 여러 해산물을 꽂은 후 그것을 고춧가루

4

양념에 버무려 무김치와 함께 팔았다고 한다. 당연히 다른 곳에 비해 해산물 본래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 다. 안타까운 것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이제 그렇

좋은 것은 아니다. 맛 역시 깊은 편이라 특히 어른들

게 만들고 있는 곳은 통영에서도 단 두 곳에 불과하

에게 잘 어울린다.

짧으나마 고민의 시간을 거쳐 우리는 드디어 오랜 만에 충무김밥을 먹었다. 갓 말아놓은 김밥과 양념

다는 점. 그리고 그곳이 여객선터미널과 멀지 않은 곳

깊은맛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십여 미터 옆에 있는

이 잘 배어 있는 해산물들, 시원한 무김치가 애써 나

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집도 여느 곳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가장 앞에 서야

온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간단하지만 만족스러웠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한다 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먼저 충무김밥을 만들

고 특별하진 않았지만 기분전환도 되었다. 오랫동안

그런데 통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또 따

어온 곳이라 자부하는 곳이니까. 그래서인지 그곳의

한 가지에 정진해온 노력이 담긴 음식이었기 때문이

로 있다. 거북선과 판옥선이 전시되어 있는 강구안 맞

김밥에서는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오래된 맛이라

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통영을 떠나 다른

은편에 위치한 그 충무김밥집은 통영 시내 이곳저곳

할 수도 있겠지만 변치 않는 맛이라 할 수도 있겠다. 어딘가에서 살게 되더라도 반드시 기억날 맛이라는

에 지점을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통영의

전통과 자존심이 살아 있는 곳이니만큼 언제나 사람

자랑 중 하나인 옻칠로 장식한 쟁반에 김밥을 내놓는

이 많아 주말엔 줄을 서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수고스

투박하고 거칠어 보여도 깊은 정에 이끌리게 되는 통

게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그런 겉보기만

러움을 감수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영사람들처럼 말이다. 『서울부부의남해밥상』저자

데에 나와 아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공감을 했다.

SUNDAY MAGAZINE 23


REVIEW & PREVIEW

뮤지컬 ‘프리실라’ 7월 8일~9월 28일 LG아트센터

함께 산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 아름다운 일인가

코 음악이 세대를 넘어 모든 관객을 들썩이

기 다른 환경에서 지내온 지구촌 사람들이

게 만드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무대다.

함께 살기가 얼마나 어렵고도 또한 아름다

시드니의 게이가수 틱은 별거 중인 아내로 부터 시골마을 앨리스 스프링스의 카지노 쇼

강도 높은 퍼포먼스와 연기는 물론 짙은

출연 제의를 받고 왕년의 드랙퀸 스타인 트랜

메이크업과 여장, 과감한 노출까지 불사하는

스젠더 버나뎃과 트러블 메이커지만 늘 당당 ‘드랙퀸’ 역할에 몸을 던진 배우들의 투혼이 한 신세대 게이 아담과 함께 길을 떠난다. 시

볼 만하다. 특히 노년의 트렌스젠더 ‘버나뎃’

드니에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 2876km에

역을 감칠맛 나게 소화한 조성하에겐 기립박

이르는 긴 여정을 함께 하는 고물버스의 이

수가 아깝지 않다. TV와 영화에서 선굵은 연

름이 ‘프리실라’다.

기를 보여줬던 그의 ‘귀여운 할머니’ 변신은

트렌스젠더와 게이를 주인공 삼아 성 소수 ‘호주에서 가장 성공한 뮤지컬’ 프리실라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마이클 리·김다현·

자들의 애환을 그린 또 하나의 뮤지컬이지만, 조권·이지훈·김호영 등 재기 넘치는 스타들

개막했다. 길이 10m·무게 8.5t의 실물크기 ‘헤드윅’ ‘라카지’등 같은 계보의 전작들보다

이 총출동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지만 너무

버스 세트가 3만 개의 핫핑크빛 LED조명을

훌쩍 진화한 형태다. 이들에게 정체성에 대

가볍고 번쩍번쩍해 자칫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달고 무대 위를 누비고, 총천연색 의상 500여

한 고민이나 세상을 향한 울분 같은 것은 없

무대에 든든히 무게 중심을 잡아줬다. 종종

벌과 가발 60여 개, 신발 150켤레가 동원되

다. 세상이 뭐라고 손가락질하건 툭툭 털고

뮤지컬 무대에 나들이 나와 감초 역할을 했

는 블록버스터다. 1994년 칸영화제 관객상을

자기네 인생을 산다. 성 소수자라고 해서 다

던 중견배우들의 존재감을 훨씬 뛰어넘는 그

수상한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무비컬’이

같이 뻔한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디

의 연기력은 단연 이 무대의 ‘갑’이었다.

자 80년대 추억의 팝송을 대거 투입한 ‘주크

테일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아쉬움도 있었다. 귀에 익은 디스코 메들

박스 뮤지컬’. 요즘 뮤지컬 산업의 주요 트렌

한때 여자와 결혼해 낳은 아들과의 첫대면

리는 더없이 흥겨웠지만 극의 흐름과 유기적

드 두 가지를 절묘하게 빚어내 2006년 초연

을 앞둔 틱, 노년에 배우자를 잃고 상실감에

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드랙퀸쇼를 재현하다

이래 “‘맘마미아!’ 이후 최고의 쇼”라 극찬받

빠진 버나뎃, 그리고 부모에게 버려진 상처를

보니 주요 곡 대부분을 천장에 매달린 3명의

으며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이탈리아, 스

뒤로 한 채 세상의 중심에 나서길 원하는 아

디바가 소화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이 립싱크

담은 취향도 성격도 제각각이다. 긴 여정 속

를 연출하는 광경도 낯설었다. 좋아하는 배

웨더걸스의 ‘It’s Raining Man’, 마돈나

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각자의 문제를 극

우의 열창에 환호하고 싶은 일념으로 공연장

의 ‘Like a Virgin’, 신디 로퍼의 ’Girls Just

복해 간다. 저들의 문제가 꼭 특별한 소수의

을 찾는 팬들로선 적잖이 실망스러운 요소다.

Want to Have Fun’등 흥겨운 25곡의 디스

그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란 은유일 뿐, 제각

‘쇼는 쇼일 뿐’이었지만 각각의 쇼는 그 자

웨덴 등 세계를 순항중인 작품이다.

24 SUNDAY MAGAZINE

운 일인지에 대한 노래인 것이다.


REVIEW & PREVIEW

제 18회 SICAF 7월 22~27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CGV명동역 등, 문의 02-3455-8428

여름 바캉스, 만화와 애니의 바다로 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올해로 18번째를 맞았다. 크게 만화전 과 애니메이션 영화제의 두가지 트랙으로 진행된다. 만화전에서는 ‘김동화 특별전’ ‘열혈강호’ 20주년 특별전, ‘맛 일번지’의 작가 쿠로다 요시미 만화전, 이토 준지 공포 만화 체험전 등이 준비돼 있다. 또 명동 중앙로를 25일부터 3일간 만화애니메이션 거 리로 조성하고, 8월 말까지 주요 전시와 이벤트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애니 영화제에서는 43개국 362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개막작은 ‘소중한 날의 꿈’을 버나뎃 역을 멋지게 보여준 조성하

만든 ‘연필로 명상하기’의 안재훈·한혜진 감독작 ‘메밀꽃, 운수좋은 날 그리고 봄 봄-한국단편문학애니메이션’(사진)이다. 미국 독립 애니메이션의 거장 빌 플림튼의 신작 ‘아내의 유혹’,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유미 감독의 ‘연애놀이’ 등도 놓칠 수 없다.

체로 완성도가 있었다. 2막 끝 부분, 로드무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SICAF 조직위원회

비의 종착역이자 극의 귀결점인 카지노 쇼는 그 절정이다. 주인공 3명만 등장하는 무대에

국립현대무용단 렉처 퍼포먼스 ‘우회공간’

모든 앙상블을 총동원해 ‘15초 의상체인징

7월 25~26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문의 02-3472-1421

신공’을 구사하며 압축해 보여주는 드랙퀸 쇼

국내 현대무용가 1호들의 어제 오늘 내일

의 진수에, 실제 이런 쇼를 볼 수 있다면 호주 여행길에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무릎을 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컨템포러리’는 오늘날 모든 예술의 가장

‘나 호주에서 왔어요’ ‘호주로 놀러오세요’라

뜨거운 담론 대상이다. 그럼 한국 현대무

고 유혹하는 은근한 손짓이랄까. 관객을 제

용에서 ‘컨템포러리’란 뭘까. 올해 국립

일 먼저 맞는 것도 막에 그려진 호주 지도다.

현대무용단은 ‘역사와 기억’을 시즌 프

시드니부터 앨리스 스프링스까지, 반짝이는

로그램 주제로 삼아 그 답을 모색하고 있

꿈의 버스를 타고 호주 구석구석을 누비는 설

다. 동시대성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레는 여정에 캥거루, 코알라 등 호주를 상징

과거와의 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는 동물들이 총출동하고, 급기야 세 주인

1980~90년대 예술가들의 사랑방으로

공이 입은 드레스가 나란히 서면 시드니 오

기능하며 현대무용 대중화에 앞장섰던 소

페라하우스가 되는 커튼콜까지 호주 관광청

극장 ‘공간 사랑’을 소환하는 것도 그래

에서 만든 홍보물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

서다. ‘우회 공간’은 오늘날 현대무용 혹

무대는 브로드웨이도 웨스트엔드도 아닌 호

은 창작춤의 의미와 위치, 실천을 말하기

주 뮤지컬이며, 호주에 오면 이런 볼거리와 즐

위한 출발점으로 ‘공간 사랑’이라는 과거

거움이 가득하다’는 이미지의 향연이다. 우

를 점검하고 재해석하는 시도다.

리만의 정체성을 외치며 외국인들은 관심도

이번 무대는 당시 공간 사랑 무대에 섰고 국내 현대무용가 1호에 해당하는 이정희· 남

없는 민족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보

정호· 안신희 세 명의 안무가가 렉처 퍼포먼스 형식으로 당시를 회상하고 증언한다.

다 훨씬 세련된 마케팅 아닌가. 세계 진출을

이정희의 ‘실내’, 남정호의 ‘대각선’, 안신희의 ‘교감’ 등이 재구성되어 공연되며, 이

노리는 토종 콘텐트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들이 당시 시도했던 무용의 의의와 혁신성을 재탐색하고 이후 자신들의 행보를 재점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검한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사진 설앤컴퍼니 SUNDAY MAGAZINE 25


BOOK

『대한민국 치킨展』

치킨 공화국 이면의 눈물 젖은 사연들

대한민국 정치

의 경험 속에 녹아나는 생활사”라는 그의 한

한국에서 치킨집 사장님으로 산다는 것에 대

도, 경제도 아닌

마디에는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한 신랄한 보고서를 펼쳐 놓는데, 실제 창업

치킨이다. 장난

예를 들어보자. 소풍날·생일날에나 먹던

예비자로 가장해 가맹점 신청을 해 보고 교

같이 들리지만

치킨을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산다. 축제의 음

육을 들으면서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꼬

누가 반박할 수

식이 일상의 먹거리가 돼 간다. 일 년에 한두

집어 낸다. 또 점주 인터뷰를 통해 운영에서

있을까. 우리 삶

번만 백숙을 먹었던 더 이전을 생각하면 실로

드러나는 불공정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한

에 정치·경제만

놀라운 변화다. 이처럼 귀했던 음식이 흔해지

국이 세계 최고의 자영업자 수를 기록 중이

큼 중요한 존재

는 건 음식 산업화의 필연적 결과다. 60년대

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도 어느 날 갑자기

가 바로 치킨이

당시 원조와 차관 형태로 복합 사료 공장이

그 대열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상상

라는 것을. 1997년 이후 줄곧 외식 메뉴 1위를

만들어지고 밀가루를 싼값에 수입하면서 닭

하면, 이런 국내 프랜차이즈 사업의 맹점들이

지켜 왔고, 한 해 닭 4억 마리가 소비된다. 치

은 농가 양계가 아닌 산업 양계의 영역으로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킨집은 3만5000~5만 개로 ‘추정’하는 정도

바뀐 것이다.

거대한 자본의 힘을 이용해 농가를 ‘하청 업

다. 식성 제각각인 다수를 만족시킬 무난한

요즘 음식 한류의 주인공으로 조명받는

체’로 만들고 있는 육계 업체에 대한 고발에

메뉴로, 밥 대신 먹을 만한 안주로, 늦은 밤 출 ‘치맥’은 한국 어른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선 한숨을 쉬게 된다. ‘프랜차이즈로 닭이 길 출할 때 먹을 야식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입맛이 아무리 서구화돼도 적응 안 되는 치킨

러지고, 그 닭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점에서 닭

음식이다 보니 그 존재감이 말 그대로 ‘치킨

의 느끼함을 맥주의 탄산은 잠재워주기에 충

이 튀겨지는 현실’ 탓이다.

느님’이다. 그런데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치킨은 ‘문 제적 음식’이다. ‘물에 빠진 닭’ 백숙과 결별

분했다. 특히 맥주는 탄산이 강한 술 중 하나

그 무거움에 비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고

인데다, 결국 모든 모임의 끝은 한 잔으로 끝

싶은 말은 별 게 아니다. 남길 것 같으면 무도

나는 ‘친 주류의 문화’가 힘을 보탰다.

많이 달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어떤 치

한 1960년대 초반부터 파닭·마늘닭·닭강정

‘치킨의 사회학’이 가장 빛을 발하는 건 97

킨을 시켜야 하는가에 대해선 “배달 앱 대신

등등의 메뉴로 확장된 지금까지, 치킨 변천사

년 외환 위기 시점이다. 이때를 계기로 KFC 같

동네 단골 치킨집에 전화로 주문하라”고 당

가 바로 대한민국 사회상과 맞물리기 때문이

은 해외 브랜드가 ‘외화 낭비’라는 이유로 힘

부한다. 지금 뜯고 있는 치킨 한 마리에 얼마

저자: 정은정

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고 말한 미식

을 쓰지 못하게 됐고, 갑자기 실직한 가장들의

나 많은 사연과 눈물이 배어있는지도 한번쯤

출판사: 따비

철학자 브리야사바렝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

창업 열풍이 치킨 시장의 판도를 바꿔놨다.

은 생각하라며.

가격: 1만4000원

도 “한국 후라이드 치킨의 역사야말로 각자

신간 안내

역사를 소비하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현미경을 들이댄다.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창의수학 콘서트

저자: 제롬 드 그루트

저자: 주기중

저자: 김대수

역자: 이윤정

출판사: 소울메이트

출판사: 리더스하우스

출판사: 한울

가격: 1만8000원

가격: 1만6000원

가격: 5만6000원

26 SUNDAY MAGAZINE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30년 가까이 사진기자

두뇌 과학자이자 컴퓨

대중문화 속에 녹아있

로 현장을 누빈 저자가

터 공학자, 수학 연구자

는 역사에 주목하며 이

이론 공부만으로 알기

인 저자가 수학의 본질

를 ‘소비’의 관점으로 풀

힘든 사진의 본질을 알

적 재미와 지적 자극을

어낸 책. 컴퓨터 게임부터 TV역사물, 베스트셀

려준다.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친 기존 사진 서

자극하는 ‘두뇌 개발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놀

러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상품을 대상

적과 달리 시·음악·미술·과학 등과의 연관성을

이로 즐길 수 있는 수학 문제들을 초등학생 수

으로 삼아 그 속에서 역사가 어떻게 이해되고,

통해 복합예술로서의 사진을 소개한다. 또 초

준부터 단계별, 주제별로 제시함으로써 자연

어떻게 대중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파

보자를 위해 카메라 메커니즘에 대한 상세한 설

스럽게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도록 돕

헤친다.

명을 더한다.

는다.


GUIDE

금주의 문화행사 영화

행사

클래식

공연

군도

권영민 교수와 함께 오감도 다시 보기

서울바로크합주단 여름축제 콘서트

빠삐에 친구 인형뮤지컬

감독: 윤종빈

일시: 7월 24·25일 오후 7시

일시: 7월 22일 오후 8시

기간: 7월 23일~8월 17일

배우: 하정우, 강동원, 조진웅

장소: 서울 통인동 이상의집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장소: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70-8837-8374

문의: 02-592-5728

문의: 02-3274-8600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서울바로크합주단이 여름 밤에 어울리

EBS에서 방영되며 화제를 모은 ‘빠삐

철종 13년, 나주 대부호의 서자로 조선

운영·관리하는 문화공간 ‘이상의 집’에

는 곡들을 연주한다. ‘정화된 밤’은 서

에 친구’가 이번에는 인형 뮤지컬로 관

최고의 무관 출신인 조윤(강동원)은 극

서 ‘오감도’ 탄생 80주년 기념 특별 강

양 음악의 수천년 체계를 바꿔놓은 쇤

객과 만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크

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해 대부호

연을 연다. 근대 문학 최고의 문제작이

베르크의 개혁이 예고돼 있는 작품이다.

프라하 피디바들로 극장에서 초청 무대

가 된다. 백정 돌무치(하정우)는 끔찍한

자 시인 이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아르보 패르트의 ‘브리튼을 추모하는

를 가졌던 작품이다. 아바, 리코, 테오 세

일을 당한 뒤 의적떼인 군도에 합류, 핵

연작시를 이상 문학 연구의 권위자인 서

성가’는 20세기 후반기 음악의 경향을

친구가 사라진 나뭇잎을 찾아 여행을 떠

심적 존재인 도치로 거듭난다.

울대 권영민 교수가 강의한다.

보여준다.

난다. 전석 2만원.

드래곤 길들이기2

세상에 이런 날!

차이콥스키와 함께 하는

제 22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감독: 딘 데블로이스

일시: 8월 4일

한여름 밤의 콘서트

기간: 7월 22~31일

등급: 전체관람가

장소: 남촌 컨트리클럽 미술관

일시: 7월 24일 오후 8시

장소: 예술의전당 등

바이킹과 드래곤이 친구가 되어 평화롭

문의: 02-735-1083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의: 02-580-1300

게 살아가는 버크섬. 청년이 된 히컵은

출판·전시·디자인 업체인 수류산방은

문의: 02-3487-0678

매년 개최되는 아동청소년 연극제. 8개

아버지 스토이크의 바람과 달리 족장이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주제로 지난 10

이지혜가 차이콥스키의 주요 작품을 들

국 12편이 소개되는 이번 축제는 빛의 소

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오히

년간의 작업을 전시 중이다. 7월 8일부

려준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

중함을 잊어가는 지금 다양한 빛의 알

려 버크섬 밖의 더 넓은 세상을 보는 게

터 8월 17일까지 열리는 행사. 이날 하루

로네이즈로 시작해 ‘로코코 주제에 의

레고리를 체험할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

소원이다. 어느 날 신비로운 얼음 대륙

는 클럽 회원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너른

한 변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협

된다. ‘덴마크 주간’에는 덴마크 최고의

을 탐험하던 히컵과 드래곤 투슬리스는

잔디밭을 공개한다. 녹음과 함께 특별한

주곡 1번을 차례로 연주한다. 크누아 페

아동청소년극단 메리디아노의 ‘빅토리

드래곤 사냥꾼들이 쳐놓은 덫에 걸린다.

출판작들을 구경하는 기회다.

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함께한다.

아의 100번째 생일’ 등이 이어진다.

THIS WEEK CHART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01 미 비포 유

자료=교보문고

영화 예매

작가·출판사 순위 영화명

04 어떤 하루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주연 순위 공연명

유시민 돌베개 03 좋은 친구들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02 뮤지컬 캣츠 오리지널 내한공연(서울)

자료=풍월당

음반사

지성 주지훈 이광수 03 뮤지컬 헤드윅

02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모음집

박건형 조승우 송용진 03 브루크너: 교향곡 9번-아바도

RCA Warner DG

신준모 프롬북스 04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마크 월버그 니콜라 펠츠 04 뮤지컬 드라큘라 김준수 류정한 조정은 04 비트윈 월드-아비 아비탈 만돌린 연주곡 DG

05 해커스토익 보카 데이비드조 해커스어학연구소 05 군도: 민란의 시대 하정우 강동원 이성민 05 뮤지컬 번개맨의 비밀3 ‘스페이스 번개맨’ 06 해커스토익 리딩 데이비드조 해커스어학연구소 06 주온: 끝의 시작 사사키 노조미 아오야기 쇼 06 뮤지컬 싱잉인더레인 07 원피스 74 오다 에이치로 대원씨앤씨 07 프란시스 하 그레타 거윅 믹키 섬너 07 뮤지컬 레베카 08 나만 알고 싶은 유럽 

클래식 음반

출연 순위 음반명

조조 모예스 살림 01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앤디 서키스 게리 올드만 01 뮤지컬 모차르트! 임태경 박은태 박효신 01 물망초 앨범-페루치오 탈리아비니

02 창문 넘어 도망친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02 신의 한 수 03 나의 한국 현대사

자료=맥스무비

05 슈만: 숲의 정경 & 야나첵

Hyperion

규현 백현 제이 06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소나타  Hyperion 오만석 엄기준 옥주현 07 스카를라티: 건반 소나타 전집

ERATO

정여울 홍익출판사 08 끝까지 간다 이선균 조진웅 정만식 08 연극열전1st ‘사랑별곡’ 이순재 고두심 송영창 08 루아조뤼르 레이블 박스: 바로크 시대 Decca

09 해커스 토익 리스닝 데이비드조 해커스어학연구소 09 산타바바라

이상윤 윤진서 이솜 09 뮤지컬 캣츠 오리지널 내한공연(대구)

10 내가 공부하는 이유 사이토 다카시 걷는 나무 10 엣지 오브 투모로우 톰 크루즈 에밀리 블런트 10 뮤지컬 위키드

09 율리안 프레가르디엥: 멀리 있는 Hyperion

김선영 박혜나 김소현 10 안동림의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Universal SUNDAY MAGAZINE 27


soul-searching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64>『더블린 사람들』과 제임스 조이스

삶이란 누군가와의 애틋한 추억을 쌓아가는 일

So she had had that romance in her life: a man had died for her sake 그래, 아내의 삶에도 그런 로맨스가 있었구나. 한 남자가 아내 때문에 죽었어.

신문에 실린 인사동정 난에서 동창생의 이름

구성인데, 여느 단편소설들처럼 극적인 반전

다. 워낙 병약했던 그는 아내가 수도원으로

을 발견하곤 혹시 내가 뒤처지고 있는 게 아

이 있다거나 잔잔한 재미를 주는 건 아니지만

떠나기 전날 밤 비를 맞으며 찾아왔다가 일주

닌가 하는 기분에 사로잡힌 적 있었을 것이다. 한 편 한 편마다 가슴 뭉클한 깨우침 같은 것 일만에 죽었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아내의 나보다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친구였는데, 그 러면서 부질없이 자신의 불운을 탓해보기도

을 선사한다. 조이스는 영국의 식민 지배 아래서 무기력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인생에서 남편인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 였는지 되돌아본다.

했을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하게 살아가는 더블린 사람들의 마비된 삶을

그러고는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

그렸다고 했지만, 굳이 식민지 상황을 전제하

미 쳐다보며 막 피어나던 처녀 시절 아내의

『더블린 사람들』은 제임스 조이스의 첫 번

지 않더라도 이들의 적나라한 일상은 오늘을

아리따운 모습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

째 소설로 20세기 초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러자 아내가 가엾어지면서 따뜻한 동정심이

열다섯 편의 이야기를 묶은 것인데, 챈들러는

바 없다. 『더블린 사람들』은 그래서 꼭 100

우러난다. “그래, 아내의 삶에도 그런 로맨스

아일랜드 태생의 시인이 자 소설가. 더블린의 유니

에 나오는 챈들러처럼 말이다.

‘작은 구름’편의 주인공이다. 서른두 살의 시

년 전인 1914년에 발표된, 멀리 아일랜드를

가 있었구나. 한 남자가 아내 때문에 죽었어.”

인 지망생 챈들러는 8년 만에 옛 친구 갤러허

무대로 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

그 연인은 떠나는 아내에게 자기는 더 이

를 만난다. 런던에서 기자로 성공한 갤러허는

지 않다.

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 과 언어학을 전공했다. 대

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는 그

표작으로는 의식의 흐름

짝사랑하는 이웃집 누나에게 줄 선물을

의 마지막 눈길을 오랜 세월 마음속에 소중

이라는 혁신적인 소설 기

사러 동전 몇 푼 들고 바자회에 달려가는 소

히 간직하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법과 실험적인 언어 구사

“자신의 삶과 친구의 삶이 완전히 딴판이

년, 가난에 찌든 삶을 벗어나려 하면서도 가

누군가와의 애틋한 추억들을 쌓아가는 것임

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뭔가 불공

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탈출

을 가브리엘은 깨닫는다. “사람은 모두 하나

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러허의 가문이나

의 기회를 끝내 붙잡지 못하는 처녀, 경제력

씩 하나씩 그림자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그

학력은 자기보다 못했다. 도대체 나의 길을

이 있는 남자를 유혹해 결혼으로 옭아매려

렇다면 늙어서 기력이 쇠해 쓸쓸히 사라지는

겉만 번지르르한 속물이지만 챈들러는 그래 도 친구가 부럽다.

막고 있는 건 뭐란 말인가?” 그는 아내가 부탁한 커피를 사오는 것도 잊 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할부로 구입한 가구

는 하숙집 모녀, 직장과 술집에서 참담한 수

것보다는, 한창 불타오르는 넘치는 정열을 안

모를 겪고는 집으로 돌아와 어린 아들에게

고 대담하게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것이 더

화풀이하는 형편없는 가장.

나을 것이리라.”

로 유명한 『율리시즈』와 『피네건의 경야』가 있다.

대금도 다 갚지 못한 처지, 갤러허처럼 대담

열다섯 편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길고 여

창문 밖에는 눈이 내린다. 살아있는 모든

하게 살아보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래

운도 제일 오래 남는 마지막 중편 ‘죽은 자’를

사람과 죽은 사람들 위로 소리없이 눈이 쌓

도 시집을 한 권 출판하면 길이 트일 것도 같

보자. 크리스마스 만찬에 참석한 뒤 호텔로

여간다.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모

다. 그는 바이런의 시를 읽으며 몇 시간 전 느

돌아온 가브리엘은 아내에게 육체적 욕구를

두 이렇게 상징적인 장면과 함께 끝난다. 그

꼈던 시상을 떠올린다. 그 순간 잠에서 깬 갓

느끼지만 머뭇거리며 망설인다. 그런데 아내

래서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빛 바랜 흑백사진

난아기가 울기 시작하자 도저히 시를 읽을 수

가 갑자기 그를 껴안으며 키스를 한다. 그는

처럼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가 없다. 그는 버럭 고함을 지른다. 아기는 자

행복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아내

그리고 앞서가는 동창생들도 어느새 그저

지러지면서 비명을 지르고 숨조차 제대로 쉬

는 만찬에서 들었던 노래를 떠올리며 눈물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마치 내가 좋

지 못한다. 아내가 아기를 겨우 진정시키자

흘린다. “아주 옛날에 그 노래를 부르던 사람

아하는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처럼 스스로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

그는 뉘우침의 눈물을 흘린다.

이 생각나서요.”

를 위안하게 되는 것이다.

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

가브리엘은 아내의 옛 연인에 질투를 느끼

“친구들이 나보다 훌륭해 보이는 날은/ 꽃

은 수록 순서에 따라 주인공들의 유년기와

며 분노한다. 그런데 그는 열일곱 나이에 죽었

사 들고 돌아와/ 아내와 즐겼노라.”(「나를 사랑

청년기, 성년기를 보여주는 일종의 연작소설

단다. 그것도 아내 때문에 죽은 것 같다고 한

하는 노래」 가운데)

뭔가 느껴지지 않는가? 『더블린 사람들』

28 SUNDAY MAGAZINE

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 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 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GALLERY

Organic Geometry(2014), inkjet print, 40x40cm_black

반듯함의 미학 홍승혜(55·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과 교수)는 ‘네모’의 작가다. 컴퓨터 포토샵을 이용해 만드는 그의 네모 는 평면으로, 입체로, 설치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작은 창문이 집이 되고 건물이 된다. 이번 전시는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작품의 궤적을 살펴보는 회고전이다. 평면과 회화 작품에 이어 6편의 플 래시 애니메이션도 마련했다. 작가는 “결국 이것은 시간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시간에 의해 변화 하는 모든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국제갤러리

 테블릿 PC 중앙 SUNDAY APP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홍승혜 ‘회상(回想)’ 7월 10일~8월 17일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문의 02-735-8449

SUNDAY MAGAZINE 29


CONTE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내의 ‘의부증’ 수밖에 없다. 남편이 담당하고 있는 광고에

“난 안 가져갔어. 설마 날 의심하는 거야?”

결국 광고의 문제로 귀결된다. 남편은 아내의

“아침에 비닐봉지 소리가 난 거 같은데.”

문자에 답을 하지 못한다. 여보, 지금 치즈 빵 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남편에게서 아무런 아내는 혼자 아침을 먹는다. 오전 회의가 있 는 남편은 사무실에서 대충 때우겠다며 평 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아들은 방에서 자고

답이 없자 아내가 다시 문자를 보내온다. “왜 대답이 없어? 내 문자 못 봤어? 치즈 빵 어디 뒀느냐고?”

있다. 밤낮이 바뀐 아들은 아마 새벽까지 잠

개인이든 기업이든 당면 과제는 먹을거리

을 안 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다. 먹을거리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누구나

그리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봤을 것이다. 흥분한다. 그것은 절실하고 절박한 문제다. 날이 밝을 때쯤 잠자리에 들었을 테니 이 시

“강이는 치즈 빵 싫어한다니까.” “그래도 한번 물어봐.” “절대 안 먹는다니까. 치즈 맛없다고. 자기 는 치즈 정말, 정말 싫어한다고 그랬단 말이 야.” “그래도 모르니까 한번 물어봐.” 아까부터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남

간이 아들에겐 한밤중이다. 항상 아내는 혼

“냉장고에 없어? 잘 찾아봐.”

자 아침을 먹는다. 혼자 먹는 아침이니까 아

“찾아봐도 없으니까 그렇지.”

하면서도 전혀 새롭게 보이고, 업의 본질에

무래도 대충 먹게 된다. 오늘 아침은 커피와

“그럼 강이가 먹었겠지.”

충실하면서도 업에 대한 소비자의 고정관념

함께 치즈 빵을 먹을 생각이다. 하나 남은 치

광고는 비유하면 축구 같다. 누구나 전문

을 깨는 그런 광고 전략을 찾아보라는 것이

즈 빵을 냉장고에 넣어두라고 어젯밤 남편에

가라서 한마디씩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 남편은 절대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게 당부했다. 아내는 빵을 좋아한다. 그 중에

누가 어떤 주장을 하든 다 말이 된다는 것이

것은 현실에는 결코 실재하지 않는 ‘둥근 삼

서도 치즈가 들어간 빵을 특히 좋아한다. 남

다. 바꾸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일관성을

각형’ 같은 형용모순이라고.

편이나 아들은 치즈 냄새를 싫어하지만 아내

유지하자는 주장도 그럴듯하다. 이럴 때일수

긴 회의가 끝날 때쯤 아내에게서 문자가 온다.

는 치즈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

록 업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말도 적절하고

다. 마치 카메라 앞에서 “치즈” 하듯 올라간

이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제안

“치즈 빵 강이가 먹었다네. 새벽에 출출해

입꼬리를 하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연다.

도 타당하다. 그래서 광고에 대한 말은 항상

서. 정말 희한한 일이네. 치즈라면 질색했는

설득력이 있다. 남편은 모든 비난을 수긍하는

데.”

회의 중이던 남편은 아내가 보내온 문자를 확인한다. 회의 주제는 무려 하반기 광고 마 케팅 전략에 대한 것이다. 심각하고 진지할

30 SUNDAY MAGAZINE

남편은 할 수 없이 짧게 답 문자를 보낸다.

“식탁에 봉지가 있길래 치우느라 그런 거지. 그러니까 강이가 먹었을 거야.”

편을 노려보고 있다. 그러니까 일관성을 유지

“내 치즈 빵 어디 있어?”

들숨날숨

지 뒤지고 그러지 않아. 혹시?”

대한 신랄한 비난이 쏟아진다. 모든 문제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점점 산으로 가는 배를. 아내는 계속 문자를 보내온다. “강이는 치즈 빵 안 좋아하고 또 냉장고까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 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 『슈 슈』를 썼다.

삼각관계는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게임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반드시 삶을 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이기려고만 하

▶“삼각관계에서는 무엇을 바라고 얻고 싶다

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세계는 모

지 자기를 ‘이해’하려 하지는 않는다. 자기 극

는 불분명한 희망보다는 무엇을 확실하게 포

든 것이 대립적이지요. 사는 것만을 생각한

복이 있다면 자기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게

기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좋다. 삼각

다면 삶 자체가 지지부진하게 펼쳐지는 것처

내 생각이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자기 극

관계는 무엇을 얻는 게임이 아니라 무엇을 포

럼 보입니다. 삶이 재미없지요. 그런데 여기에

복만 있다. 자기를 이기는 것만 중시한다. 그

기하는 게임이다. 즉 명쾌한 선택을 하기 위

딱 죽음이 관계되면 탄성이 생기고 삶이 긴

런데 아는가. 자기를 이해한 사람들은 남도

해서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를 명

장합니다. 그 탄성이 우리네 삶을 의미 있게

이해하려 하지만 자기를 이기려고 하는 사람

확히 해둬야 한다. 그리고 그럴 각오가 되어

만들고 거기에 생기도 넣어줍니다.”

은 남도 이기려 한다는 것을.”

있다면 선택은 오히려 쉬워진다.”

-최철주 『이별서약』

-변상규 『때로는 마음도 체한다』

-황하영『내안의천사와악마를다루는심리게임』


photo ESSAY

조용철 기자의 마음 풍경

제비의 주택난 농촌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제비 아슬아슬 전구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이 지지배배 지저귀는, 친환경 마을 이장집엔 제비집만 열두 채더군요. 처마마다 이웃사촌 날갯짓 바쁜 제비 마을. 혹여 새끼들이 백열등에 화상 입을까 커가는 몸집에 제비집 무너질까 노심초사 흥부님 실로 묶었네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조용철 기자의 포토에세이 ‘마음 풍경’은 세상의 모든 생명과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경이로운 삶의 의지에서 내일의 꿈과 희망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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