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방찬영 카자흐 키멥대 총장
“통일하려면 北 핵심층 안심시켜라” People 12p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브레턴우즈 체제, 그후 70년
유로위안 많이 컸지만 달러 권력 여전
http://sunday.joongang.co.kr
Economy 21 p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반군들이 18일(현지시간) 동부 도네츠크주의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 여객기(MH-17)의 잔해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이 여객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중이었다. [도네츠크 AP=뉴시스]
우크라 사태 유럽에도 ‘발등의 불’ 여객기 피격 사건 ‘게임 체인저’ 가능성 <판세를 바꾸는 중대사건>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네덜란드 189명, 영국 9명, 독일·벨기 에 각 4명.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 라이나 상공에서 러시아제 SA-11 지 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것으로 추정 되는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보 잉 777-200 여객기의 유럽인 희생자 들 수다. 말레이시아 44명(승무원 15 명 포함), 호주 27명, 인도네시아 12 명, 필리핀·베트남 각 3명, 미국·캐나 다·뉴질랜드 각 1명도 사망했다. 버 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간) “300명 가까운 무고한 사람들 이 희생됐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 는 악행”이라고 규탄했다. 이번 여객기 격추 사건은 우크라 이나 사태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가 능성이 크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번 사건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판세를 바꾸는 중대한 사건)’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 단했다. 올 초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 후 이어지고 있는 동부 우크라이나 에서의 정부군과 분리주의 친(親)러 시아 반군 간의 국지적 교전이 중대 한 고비에 접어들었다. MH-17편 격
추로 다수의 유럽인을 포함해 많은 희생자를 냄으로써 우크라이나 사 태가 당사자 국가만의 일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특히 유럽 국가들로서는 ‘강 건너’ 가 아닌 ‘내 발등’의 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오바마가 “우크라 이나인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중 대한 문제”라며 “유럽인들에게는 경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 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시
러 제재에 소극적이던 유럽국 자국민 희생 많아 입장 바꿀 듯 반군 지원 푸틴에겐 부메랑 서방의 대러 공세 거세질 전망 장인 비탈리 클리치코는 이번 사건에 대해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을 선포 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한정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유럽의 한복판에 서 일어난 전면전”이라며 “국제사회 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주목하고 이해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애써 외면해 온 측면이 없지
S Magazine
반클리프 아펠 ‘포단’ 발표회 보석과 동화의 나라
않다. 미국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경제관계가 밀 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국가 들은 크림을 합병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에 소극적이었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에 대 해서도 유럽은 선뜻 목소리를 높이 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벌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18일 오바 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유럽 지 도자들은 분노를 표시하면서도 러시 아와의 갈등을 격화시키는 데는 주저 하는 분위기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 국 총리는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돼 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앙겔 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한층 수위가 높은 제재에 동참할지는 밝히지 않았 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네덜란드 와 러시아의 관계는 매우 가깝다. 네 덜란드는 러시아의 최대 무역 파트너 중 하나여서 모스크바에 대한 엄중 한 경제제재로 빚어질 후폭풍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국 국민들이 다수 희생 된 이상 계속 뒷전에 물러나 있기에 는 곤란해졌다. 어떤 형태로든 러시 아를 압박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
갈등 첨예 용산 화상경마장 제 3자 중재 ADR로 푼다 <대안적 분쟁해결>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번 사건 이 유럽 국가들엔 러시아 정책을 재 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존 허브스트 전 우크라이나 주 재 미국대사는 “결국 이는 유럽이 이 미 했어야 할 일을 이제라도 해내도 록 만드는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러시아에 대한 확 실한 제재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경 향은 여전히 강하다”며 “하지만 이 들의 입지가 이번에 좁아졌으며 유 럽의 제재 수위를 높이게 만들 것”이 라고 예측했다. 당장 첨예한 쟁점은 누구의 소행 이냐를 밝히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친러 반군 또는 러시아 의 직접 개입이 확인되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전 세계로 확대될 수밖 에 없다. 오바마는 “피격된 여객기 가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 장악 지 역에서 발사된 지대공 미사일에 맞 았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있다”고 주 장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사고기가 러시아와의 국경 인근 우크라이나의 반군 장악 지역에서 발사된 러시아 제 SA-11 미사일에 격추됐다고 결론 지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관계기사 4p
명품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이 새 하이 주얼리 시리즈 ‘포단’을 내놓았다. 당 나귀 가죽이라는 뜻의 ‘포단’은 장화신은 고양이를 쓴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로 새 컬렉션은 이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지난 6월 27일 프 랑스에서 가장 큰 샹보르 성에선 동화 속 장면을 재현한 새 컬렉션 발표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1부 1000원 / 월 5000원 | 정기구독 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갈등 당사자 들이 직접 충돌하기 전에 중립적인 제3자가 해법 모 색을 도 와 주 는 ‘대안적 분쟁해 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 서서히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가장 최근 ADR을 시도한 것은 서 울시다. 용산 마권 장외발매소(일명 화상경마장) 개설을 둘러싸고 주민 과 한국마사회가 갈등을 벌이자 제3 자인 서울시는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다. ‘성난 당사자들’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 는 갈등해결 시스템과 전문가의 중재 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가들은 첨예한 갈등 양상에 서 ADR 방식의 중재가 시작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이 번 갈등해법 모색 과정은 우리 사회 에서 ADR이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에선 1970년대부터 ADR 방 식의 분쟁해결이 도입됐지만 본격화 한 것은 1998년 클린턴 행정부가 대 통령 훈령으로 갈등관리합동기구인 ‘범정부 분쟁해결지원단’을 설치하 면서부터다. 우리의 경우 사회 갈등 해결을 위한 법적 근거는 2007년 노
무현 정부 시절 제정된 ‘공공기관의 갈등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대통 령령)이 유일하다. 하지만 의무규정 이 아니어서 강제력을 갖춘 법규 제 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 는다. 김광구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는 “대규모 사회 갈등을 예방하고 해 결하려면 갈등관리기본법 같은 법제 화를 통해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바 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각 지방자치단체가 갈등관리 기구를 신설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
주민마사회 의견 차 커 평행선 서울시, 대통합위에 중재 요청 갈등 해법 새 모델 될지 관심 한 갈등해결도 속속 성사되고 있다. 20년 묵은 국립서울병원 재건축 갈 등을 해결한 서울 광진구, 충북 청원 신중부변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해 결을 위해 상생협약을 한 주민·한국 전력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국 단위의 사회 갈등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강영진 성균 관대 갈등해결센터 소장은 “지역사 회나 국지적인 갈등은 지자체와 해당 기관에 맡기고 중앙정부는 국가적 휘 발성이 큰 사안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했다. 관계기사 3p
빌 게이츠가 꼽은 최고의 책 경영의 모험
경영의 답보다는 길을 알려주는 책 빌 게이츠가 최고의 경영 서적이라고 치켜세운 경영의 모험 (Business Adventures)을 꼼꼼히 읽어 봤다. 회사 경영은 무릇 이렇게 해야 한다며 뭘 가르치려 하지 않고 기업과 금융 시장에 투영된 인간의 본성을 역사적 의미를 담아 풀어낸 책이다. 10~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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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사설
Inside
개조의 대상 비아냥, 검찰은 알고 있나
NC 김경문 감독이 넥센전에서 승리한 후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Sports
아기 공룡 NC, 여름 사자의 질주 막을까 오는 22일부터 프로야구 후반기 일정이 시작된다. ‘2년차’ 구단 NC의 현재 성 적은 3위. 과연 1위 삼성을 뒤집고 창단 첫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프 로야구 후반기 관전포인트를 짚어봤다. 23p Focus
JTBC 기자가 본 팽목항 석 달 24일이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도 100일이 된다. 지난 석 달 동안 진도 팽목항에서 보도를 해온 JTBC 서복현 기자가 뉴스에선 다 옮길 수 없었던 현장의 생생한 뒷모습을 중앙 SUNDAY에 전해왔다. 8p Money
Column
달러 권력 70년 아직도 건재
다시 쓰는 고대사<16>
달러를 기축통화로 인정한 브레턴 우즈 체제가 70주년을 맞았다. 달러 는 세계 경제 발전에 기여했지만 금 융위기의 주범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당사자의 생각은 어떨까. 달러 화에게 고희(古稀)의 감회를 들어 봤다. 18p
천하호령 30년 미실의 색공 작전 신라의 풍습은 독특했다. 특히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여자를 바치는 ‘색공’ 은 현대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진흥·진지·진평왕 3대에 걸쳐 색공으로 권력을 휘두른 미실은 가장 드라마틱한 캐릭터다. 28p
Column
Economy
함영준의 사람과 세상<10>
정부 0.3 오명 벗기 나선 정부
6월 항쟁 때 군 출동 막은 민따로 ‘정부 3.0’의 개선을 위해 정부가 팔을 1987년 군 출동 명령을 막후서 저지한 걷고 나섰다. 공공데이터 제공 분쟁 특전사령관 출신 민병돈 장군. 무력진 조정위원회와 현장대응반을 가동해 압 자제 건의를 무시하면 쿠데타까지 민간 사업자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각오했다는데… ‘민따로’로 불렸던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 그의 군 생활을 돌이켜본다. 26p 획이다. 20p 클릭 SUNDAY 지난주 온라인 5 1 보쌈과 ‘소맥’에 빠진 영국 2 김설진을 왜 몰라봤을까 3 “장쉐량 죽을병 걸렸다” … 장제스, 부인 앞에서 싱글벙글 4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가격 거품 뺀 스마트폰 히트 … 거대한 ‘좁쌀’로 변신 5 [한국문화 대탐사] ‘좌빵우물’ 서양 예절 외우며 밥상머리 전통 예절 파괴 sunday.joins.com
ch15 하이라이트 밤 11시 집밥의 여왕
교양
다이어트에 성공한 개그우먼 이경애가 자
세월호 참사 초기, 국민들은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하는 검찰을 보며 “이번에는 달라지지 않 겠느냐”고 은연중에 기대했을 것이다. 건국 이래 초유의 참변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적폐 (積弊)를 해소하는 데 검찰이 중요한 역할을 해 줄 것이란 믿음과 함께 ‘관피아 척결’을 외 치는 검찰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 다 컸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둔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법무·검찰 간부들의 언행과 행태 에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의 인식은 “과연 검 찰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회의론적 시 각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법무부와 검 찰의 주장은 “조직 이기주의에 천착하는 세 월호 이전의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을 초래하 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핵심 쟁점인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권 부여 문제와 관련해 “헌법과 형사사
법 체계의 근거가 없기 때문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황 장관과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검찰 간부들의 의식 근 저에는 “검찰이 중심이 된 사법체계가 흔들려 서는 안 된다”는 조직논리가 굳게 박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존엄’과 ‘국가의 국민 보호 의무’라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 참사와 함께 송두리째 침몰한 상황에서 ‘사법체계’ 운운하며 법 제정에 딴지를 거는 듯한 언행은 “현 정부가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법무부와 검찰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청와대가 들어가 있는 점을 의식해 검 찰이 수사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섰다”는 시중의 비판여론을 새겨들을 필요 가 있다. 청해진해운 유병언 회장 일가에 대한 어설픈 수사와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 와중에 등장한 현직 검사의 독직 의혹, 검사의 청와대 편법 파견 등으로 인해 검찰에 대한 불
신이 가중되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놀 라 군대까지 동원해가며 유씨 검거작전을 벌 이고, 검사의 비리 혐의를 감추려다 경찰의 반 격으로 궁지에 몰리고, 관련 법과 공약까지 무 시해 가며 청와대에 검사를 파견하는 검찰을 보며 국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야말로 국가개조의 최우선 대상이 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특별법에 위법적 요소가 있다고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참사 당 시 청와대는 물론 모든 기관의 근무태만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는 것이 순리 아닌가.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이를 근거로 다시는 참사가 재연 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직도 10명의 희생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절망의 바닷속에 있다. 유 족들은 끼니를 거른 채 국회와 서울 시내를 방황하며 진상규명을 애처롭게 외치고 있다. 검찰, 이젠 발상의 전환을 보여줘야 한다.
새누리 의원 10명 중 6명꼴 친박, 앞으론 힘 못 쓴다 소속 의원 147명 중 47명 설문응답 반 이상이 친박 핵심이 그간 당 좌우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 “박근혜 정부 출범 이 후 친박 핵심 몇몇이 새누리당을 좌지우지해왔 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는 비중이 적잖은 것으 로 나타났다. “앞으로 친박은 영향력을 발휘하 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상당수 나왔다. 중앙 SUNDAY가 17, 18일 새누리당 의원들을 설문 조사한 결과다. 본지는 7·14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친박의 열세 와 관련해 새누리당 의원 147명에 대해 전수 설 문조사를 시도해 47명에게 답을 얻었다. 김무성 신임 당 대표가 “친박, 비박은 없다”고 한 뒤 “계 파 관련 설문은 하지 않겠다”는 당내 분위기가 조성된 탓에 설문 응답률은 31.9%에 불과했다. 통계적 의미엔 한계가 분명한 조사지만, 응답 자들의 답변들은 당내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 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을 몇몇 친 박 핵심들이 좌지우지해왔다는 당내 일부의 지 적에 대해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23명(57.5%) 이 “그렇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14 명(35%)에 그쳤다. 나머지는 입장 표명을 유보 했다. “그렇다”고 답한 이들은 구체적인 이유도 밝 혔다. 대구·경북(TK) 출신 4선 의원은 “친박 핵 심 몇몇이 호가호위하고 전횡을 하다 친박이 분
19일 충주 국회의원 보궐선거 새누리당 이종배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김무성 대표가 사회자의 발언에 미소를 짓고 있다.
열돼 버렸다. 많은 지지세력도 소외감을 느꼈 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방선거 후보 경선, 국회의장 경선(각 각 5월 실시)에 이어 전당대회에서까지 친박이 약세를 보인 데 대해 여러 분석을 내놓았다. 집 권 17개월여 만에 “친박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 원인(복수응답 가능)으 로는 “청와대의 인사 참사 등 정부의 실정”(16 명), “친박들의 구심력 부족”(8명), “친박 인사 개인의 능력 부족”(8명), “때마다 불리한 정치 여건 발생”(7명) 순으로 꼽았다. 김무성 대표가 서청원 전 대표를 큰 표 차(1만
[충주=뉴시스]
4413표 차, 8.1%포인트 차)로 누른 데 대해선 37명(82.2%) 이 “예상했던 결과”라고 답 했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7 명(15.5%)에 불과했다. 친박 홍문종 의원이 최 고위원에서 탈락한 데 대 해서도 “예상했던 결과”(21 명·48.8%)가 “예상 못 했다” (18명·41.8%)보다 약간 많았 다. “사필귀정, 필연지사”(서 울 출신 재선), “홍문종 의원 은 사무총장 시절 민심을 잃 었다”(초선 비례)고 답한 의
원도 있다. “김무성 대표가 친박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19명(44.1%)이 “아니다”라고 했고, “그렇다”는 15명(34.8%)이었다. 나머지는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동안 스스로 친박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응답자들은 “스스로 친박이라고 생각하느 냐”는 질문에 22명(53.6%)이 “그렇다”고 답했 고, 14명(34.1%)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나머지 는 답변을 거부했다. 몇몇은 일부 문항에 대해서 도 “예민한 문제”라며 답변을 꺼렸다. 6면으로 이어짐
신의 힐링 하우스와 특급 밥상을 공개한 다. 이경애는 베이컨과 갈비, 방울토마토 를 끼워 비밀의 특제 데리야키 소스를 고 르게 바른 숯불 모둠 꼬치를 선보여 출연진의 입맛을 자극한다.
저녁 7시30분 닥터의 승부
교양
축구대표 새 감독, 데뷔 무대는 9월 베네수엘라전 후임 미정 상태서 평가전 일정 나흘 뒤엔 우루과이와 붙을 듯
24시간 동안 스타의 일상을 관찰하는 건 강카메라에서는 판소리 명창 조통달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조통달은 혈관 건강 에 도움이 되는 자신만의 양치질 비법과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전립선암을 유발하는 산화물질을 줄일 비장의 무기를 공개한다. 채널 번호프로그램 안내는 02-75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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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차기 감독이 맞설 첫 상 대가 정해졌다. 중남미의 신흥 강팀인 베네수엘 라다. 지역예선에서 탈락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는 볼 수 없었지만, 7월 기준으로 베네수엘라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우리보다 26계단 높은 30위다. FIFA가 19일 발표한 A매치 평가 전 일정에 따르면 한국은 베네수엘라와 9월 5일 홈에서 경기를 치른다. 공식적으론 11월 14일에 요르단과의 원정 평가전도 잡혀 있다. 아직 연맹 홈페이지에 공지되진 않았지만 베네수엘라전 나흘 뒤인 9월 9일에는 우루과이와 경기를 치를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다만 우루과이의 ‘핵이빨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27)는 A매치 9경기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한 국과의 평가전에 나설 수 없다. 베네수엘라는 우리와 단 한 번도 A매치를 치른 적이 없다. 남미축구연맹 소속 10개국 가운데 유 일하게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이 없지만, 2011년 코파 아메리카(남미 축구선수권) 1차 리그에서 브라질과 비기는 등 대회 4위를 차지하며 ‘무서운 신흥 강팀’으로 떠올랐다. 지난 17일에 선임된 자 국 리그 명장 출신 노엘 산비센테(39) 감독의 어깨 도 무겁다. 내년 칠레에서 열리는 코파 아메리카 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데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기필코 진출해야 한다는 중책도 맡고 있다. 9월 5일 한국과의 평가전은 그에게도 첫 대표팀 사령탑 무대가 될 예정이다. 평가전까지 50일도 채 남지 않았지만 우리 축 구 대표팀은 여전히 선장 없이 표류 중이다. 홍 명보(45) 브라질 월드컵 감독이 사퇴한 지 열흘 이 됐지만 물망에 오른 감독 명단조차 제대로 나 오지 않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초라한 성적 표(1무2패)가 나온 만큼 차기 감독의 부담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우세하다. 한때 이 름이 오르내렸던 황선홍(46·포항스틸러스) 감 독과 최용수(41·FC서울) 감독도 “현 소속팀 경 기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News 3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전문가 중재 실험장 된 용산 화상경마장 갈등
합법 행정 vs 타당한 요구 양측 만남이 ADR 첫 단추 <대안적 분쟁해결>
이상언 기자박종화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19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청파로 52번지의 18층짜리 빌딩 앞. 중년 남녀 50여 명이 노란 우산을 받쳐 들고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있다. 우산에는 ‘학교는 마음의 등불’ 등의 문구 가 적혀 있다. “학교 앞 도박장, 엄마가 막아 낸다”는 구호도 들려 왔다. 20여 일째 이어지 는 인근 주민들의 마권 장외발매소(화상경 마장) 개장 반대 집회다. 지난 17일 서울서부 지법이 10월 말까지의 시범운영을 허용하며 100m 이내에서 영업방해 행위를 할 경우 1인 당 50만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지만 시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판결문이 아직 송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말 화상경마장 개장으로 폭발한 한국마사회와 용산구 주민의 대립은 나날이 커가고 있다. 18일엔 성심여중·고 학생 1000 여 명이 건물 앞에서 반대 집회를 했다. 주민 들은 한시적 영업 허용과 동시에 화해권고를 한 법원의 결정에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마사회 용산 마권 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앞에서 19일 한 시민이 영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사회는 주민들과 이용객의 마찰에 대비해 주변에 경비요원들을 배치했다.
주변 부동산값 하락 우려도 주민들 주장의 핵심은 ‘학습권 보호’다. 화 상경마장에서 235m 떨어진 곳의 성심여중· 고 학생을 비롯한 청소년들 교육에 악영향 을 미친다는 논리다. 등·하굣길에 도박 시설 근처를 지나는 것도 문제지만 도박꾼들로 인 해 인근이 슬럼화된다는 걱정이다. 주민 황모 (49)씨는 “술에 취해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는 이들이 늘었다.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 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주거환경 훼손으로 인한 부동산값 하락 우려도 주민들 반대에 한몫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주인은 “용산 국제업무지 구 개발 좌초로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진 가 운데 경마장까지 생겨나니 주민들의 불안 심 리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주민 윤모(45)씨 는 “집 앞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길래 동네 가 좋아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경마 장이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고 말했다. 마사회는 장외발매소는 혐오시설이 아니 다고 주장한다. 주민 중에는 찬성론자도 있 다. 학생들에게 나쁜 효과를 미치는 일도 별 로 없고, 주변 부동산값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11일 화상경마장 안에서 만난 주민 김모(32)씨는 “학교와 이곳 사이
주민 “영업 중단이 대화 조건” 반발 중립적 갈등조정위 구성부터 난항 대통합위 “일단 서로 만나자” 설득 “사법 판단보다 당사자 합의 바람직”
에 8차선 도로가 있는데, 무슨 영향이 그리 있겠나. 새 시설이 쾌적해 계속 이곳에 올 생 각”이라고 했다. 서울시와 용산구청, 그리고 국민권익위원 회의 이전 권유에도 불구하고 마사회가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절차가 합법적 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현명관 한국마사 회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7월 13 일자 20면)에서 “주민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용산 장외발매소 이전은 합법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3년이 넘는 시간과 13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들었다. … 시범운영의 결과가 나쁘면 깨끗하게 접겠다는데 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이건 법치주의가 아니다” 고 했다. 마사회와 주민의 접점 없는 대치가 지속 되는 가운데 지난 14일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중재에 착수했다. 서울시의 요청에 따른 일 이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위원회가 경북 울 진의 원전 건설과 관련한 지역 갈등 개입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하는 ‘대안적 분쟁해결’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이다. 대통합위는 마사회, 주민 대표, 조정 전문 가들이 참여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양측을 접촉 중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 록지가 않다. 협상에 참여하겠다는 마사회와 달리 주민대책위 측은 “영업을 중단하지 않 는 한 협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방 용산화 상경마장추방위원회 공동대표는 “영업을 강 행하는 것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는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볼 수 없다”고 말 했다. 갈등 조정 전문가들은 이 사태를 ‘합법적 행정’과 ‘타당한 주장’이 맞선, 해결이 쉽지 않은 갈등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폐쇄, 주민 우려 사항을 불식하는 대책 마련, 입장객 규모를 1500명에서 500명 선으로 줄이는 축소 운영 등 세가지 방안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수 있겠지만, 절충적 해결책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모교 부각은 도움 안 돼” 조정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특히 걱정하고 있 다. 하나는 주민들이 성심여중·고가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라는 것을 부각하며 청와대가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정정화 강 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대통령을 언급 하면 복잡한 정치적 변수가 등장하게 된다. 마사회가 전향적 결정을 하려 해도 ‘대통령
김춘식 기자
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다는 점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에 서 ‘대통령 모교 없는 우리 동네는 우습게 아 느냐’며 화상경마장 이전 요구를 하는 상황 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전국 구 운동세력’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강문희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변 집단이 개입해 진영 논리에 휩싸이면 힘의 대 결 국면으로 가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당 사자들의 진지한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정 치인도 나서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14일 대 통합위를 방문할 때 기자들과 함께 나타났 다. 한 조정 전문가는 “임 부시장이 신중하지 못했다. 정치적 쇼로 보일수록 중재는 그만 큼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대통합위 관계자는 “양측이 우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대로 가면 사법적 판단과 공권력 행사라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인식해야 한다. 마 사회도 주민과의 갈등 속에서는 원만하게 사 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다 보면 상생적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공 갈등 해결의 성공 사례들
중곡동 정신병원과 미국 댐 공사 갈등, 제3의 길로 돌파 성공 이상언 기자
서울의 유일한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국립 시설인 광진구 중곡동 국립서울병원에서는 지난해 5월 연구·부속 시설 증축 공사가 시 작됐다. 내년 10월에 완공되면 정신건강 연 구시설, 임상센터, 300개의 병상을 갖춘 국립 정신건강연구원이 된다. 지상 12층의 종합병 원을 만드는 사업이다. 내년에는 국립서울병 원 내 부지에 지상 21층의 고층 빌딩을 세우 는 공사도 착수된다. 2018년에 건물이 완성 되면 10여 개의 의료 관련 기관, 바이오 벤처 시설, 민간 연구소 등이 입주하는 의료행정 타운이 생겨난다. 국립정신건강연구원과 의 료행정타운을 합해 ‘종합의료복합단지’라 부른다. 현재 이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만 시작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08년 보
국립서울병원 재건축·이전 대립은 의료단지 건설로 정부주민 ‘윈윈’ 15년 중단된 미국 스노퀄미 댐 공사 전문가 중재로 넉 달 만에 해법 찾아
건복지부는 국립서울병원 재건축 계획을 세 웠다. 병원 현대화를 위한 일이었다. 계획이 알려지자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주민들은 재건축 반대는 물론이고 병원을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요구했다. 연일 시위가 벌 어졌다. 1977년에 세워진 이 병원은 주민들 의 오랜 불만거리였다. ‘정신병원’ 때문에 지 역 이미지가 나쁘고 집값에도 영향을 준다 는 게 주된 이유였다. 복지부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됐다. 복지부와 광진구청은 부랴부랴 갈등조정 위원회를 만들었다. 주민 대표, 복지부 간부, 구청 대표, 구의원, 갈등 조정 전문가 등으로 21명의 위원이 선정됐다. 2009년 2월부터 협 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재건축을 원하는 복지부와 다른 곳으로의 이전을 요구하는 주 민 대표는 평행선을 달렸다. 반년 동안 확인 한 것은 이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뿐이 었다. 그러던 중 2009년 여름 제3의 대안을 찾 는 회의에서 ‘바이오 벤처 유치’라는 새로 운 변수가 등장했다. 위원회에 조정 전문가로 참여한 이강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 련) 갈등해소센터 소장에 따르면 참고용 연 구 발표자로 회의에 참석했던 한국보건산업 진흥원의 한 연구원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 를 제시했고, 위원들이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
작했다.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바이오 벤 처 유치를 포함한 ‘종합의료복합단지’ 구성 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지역경제 발전을 원 하는 주민들의 이해에도 맞아떨어지는 일이 었다. 그해 말 주민 여론조사를 거쳐 이 안은 확정됐다. 정부와 주민의 ‘윈윈’ 협상이었다. 이 소장은 “공식회의 30차례, 실무회의 20여 차례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성실하게 대안을 모색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국립서울병원의 경우는 국내 갈등 조정의 대표적 성공 사례 로 꼽힌다. 해외에서는 미국 워싱턴주 스노퀄미강 댐 건설이 표본으로 자주 거론된다. 1959년 시애틀 동부 지역에서 큰 홍수 피 해가 나자 워싱턴 주정부는 스노퀄미강에 댐 을 짓기로 했다. 저지대의 주민들은 환영했 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강 변에서 좀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도 환경 훼손
을 걱정하며 반대했다. 강 하류 지역의 과도 한 개발 붐도 우려됐다. 그 결과 댐 건설사업 은 15년 동안 표류했다. 1974년 워싱턴주립대 의 제럴드 코믹 갈등조정연구소 소장이 나섰 다. 그는 찬반 양측 대표 12명으로 위원회를 만들었다. 4개월간의 지속적 만남 끝에 이들 은 대안을 마련했다. 당초 계획됐던 큰 댐을 짓지 않고 상류에 작은 댐 2개를 만드는 안이 었다. 대신 하류 쪽에 제방을 쌓아 홍수 통제 기능을 보완하기로 했다. 개발 붐을 막기 위 해 토지 이용 규제를 강화하는 법도 만들기 로 했다. 이 일은 미국에서 조정 전문가의 중 재에 의해 환경·개발 분쟁을 해결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강영진 성균관대 갈등해결 센터장에 따르면 그 뒤 10년 동안 미국에서 160여 건의 환경 분쟁에 조정 전문가의 중재 가 진행됐고, 그중 4분의 3 정도가 성공을 거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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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여객기 피격, 우크라 사태 ‘게임 체인저’되나
미EU, 對러 추가 제재 추진 푸틴 고립 가속화 위기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은 버락 오 바마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계획에 추진력을 더해 줄 수 있다. 300명에 가 까운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책임이 우크라 이나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에 있다 는 것이 확인될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 아 대통령을 일거에 수세에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러시아 제재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유럽 국가들을 설득해 제재 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 오바마는 18일(현지시간) 미 정보당국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러시아에 이번 사건 의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 아가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침해 하고 폭력적인 반군들을 지원해 왔다”고 말 했다. 푸틴에 대해서는 “그가 비극을 낳는 대 리전을 조종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 가장 큰 통제권을 갖 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는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일이 유럽과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에서 긴장을 고 조시킨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크라이나 문제 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 리는 경종”이라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격추된 다음 날인 18일 우크라이나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흐라보브 마을에서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오바마 “유럽의 러시아 제재 동참 중요” 미 의회는 여객기 피격과 관련해 러시아를 추가 제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크리스 머피 미 상원 유럽소위원회 위원장은 18일 새 러시아 제재 법안 제정을 논의할 계획이 라고 밝혔다. 머피 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 이 러시아에 고강도의 추가 제재를 할 계획 이라면 의회의 지원을 얻는 것도 좋을 것”이 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럽 국가들이 러 시아 추가 제재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했다. 앞서 오바마 행정부는 격추 사건 직전 러 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오바마는 사고 하루 전인 지난 16일 러시아의 핵심 에너지 기업과 금융사를 대상으로 추 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러시아의 주요 은행과 에너지·방위산업체가 미국 금융시장에 접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국영석 유회사 로스네프티와 민간 가스회사 노바텍, 러시아 핵심 국영은행 VEB와 가스프롬뱅크 가 주요 제재 대상이다. 8개 무기 생산업체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푸틴과 가까운 이고리 쇼골레프, 세르게이 네베로프 러시아 하원 부의장, 분리주의 세 력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보로다이, 연방보 안국(FSB) 직원인 세르게이 베세다 등 개인 4명도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 국 합병에 책임이 있거나 우크라이나 동부 지 역 상황을 불안하게 만든 러시아 정치인·관 리들에게 물질적·재정적 지원을 하는 개인과 단체가 제재 대상이다. 미국이 독자 제재안을 내놓은 것은 지난 3월 유럽연합(EU)과 함께 결정한 제재 조 치가 큰 효과가 없었던 데다 미국의 반복적 인 추가 제재 위협이 ‘엄포’에 그친다는 지 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크림을 병합한 이래 푸틴의 측근과 주요 기 업에 대한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 등의 제재 를 확대해 왔다. “우크라 문제 남의 일 아니다” 유럽에 경종 러시아와 긴밀한 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EU 회원국들은 추가 제재 동참에 주저해 왔다.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 사태 이후에도 유럽 정상들은 아직 추가 제재 동참에 대해 명확 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일부에선 “차제에 러시아를 확실히 고립시켜야 한다” 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럽은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
세계 주요 항공사들의 최근 유럽~아시아 항로 말레이시아항공 암스테르담
추락 지점
에어프랑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상공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파리
브리티시항공
런던
타이항공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파리
KLM
루프트한자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 러시아와 미국 간에 치열한 공 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지원한 우크라이나 반군 의 소행임이 확실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바 마 정부는 MH-17편이 반군 장악 지역에서 발사된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 됐다고 공식적으로 결론 내렸다고 뉴욕타임 스가 전했다. 오바마는 “분리주의 반군이 무 장하고 군사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러 시아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높은 고 도로 비행하는 항공기는 정밀 무기와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는 바로 러시아에서 나 온 것”이라고 적시했다. 발사 지점으로는 도 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사이에 있는 스니즈 네와 토레즈를 주목하고 있다. 한 미국 고위 관리는 문제의 미사일이 러시 아에서 친러 반군에 전달된 게 거의 확실하 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 14일 우크라이 나 수송기 안토노프-26도 MH-17편 격추 때 와 같은 종류의 러시아 영토에서 발사된 미 사일에 의해 격추됐다고 주장했다. 이 미사 일 부대가 최근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동 부 반군 지역에 침투했다는 주장도 제기했 다. 러시아는 탱크·로켓·포·방공무기 등을 분 리주의자들에게 집중 공급했다고 미 관리들 은 주장한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에 책임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푸틴은 “모든 당사자들 이 신속히 정전하고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 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가 19일 여객기 격추 사건의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 을 장악한 반군의 감시 등 제약이 많아 진상 규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엔 등 국제사 회는 객관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 지만 현장 접근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원 30명 은 18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피격 여객기 추락 현장을 방문했지만 제대로 조사 하지 못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우 크라이나 정부는 19일 반군이 러시아의 지원 을 받았다는 증거들을 없애기 위해 여객기 격추 현장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에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긴 급회의를 열어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객관 적 국제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 을 채택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그는 18 일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함께한 공동 기자회견 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최대 한 빨리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 flightradar24.com, NYT
오바마, 러시아 압박용 고삐 잡아 미 의회 對러 제재 법안 제정 논의 격추 주체 놓고 서방러시아 공방전 반군에 장악된 현장, 조사 어려워
의 개입 수준이 높아지자 점차 제재 수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U 28개 회원 국 정상들은 지난 16일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존, 독립을 침 해하거나 위협하는 기업을 제재하기로 결의 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까지 제재 대상 개인 과 기업을 선정해야 한다. EU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유럽 투자은행(EIB)의 러시아 신규 투자도 중단 하기로 했다. EBRD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 아에서 총 790개 사업에 240억 유로(약 33조 4600억원)를 지원했다. EIB는 2003년 이후 러시아에 16억 유로를 빌려줬다. EU는 이미 2단계 제재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 세력 72명과 크림반도 의 2개 에너지 기업에 대해 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제 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과 EU의 제재 수위가 높아지자 러시 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주 브릭스 (BRICs) 정상회의 참석차 브라질을 방문했 던 푸틴은 “미국의 제재는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완전히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갈 것”이 라며 “장기적으로 미국과 미국민에게도 손 해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미 국) 대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싶 어 하지만 (미국 정부의) 제재 탓에 다른 세 계적 에너지 기업들에 비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며 “우리 파트너들이 이런 길을 가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시진핑, 공정하고 객관적 조사 촉구 당장의 중대 사안은 역시 여객기 격추 사건 의 소행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일이다. 결과 에 따라 향후 국제 정세의 주도권이 좌우될
정부 북한에도 주의 환기 성명 우리 정부는 18일 피해자 유족과 피해국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했다. 정부는 외 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피해자 유족과 네덜란드 등 피해국 정부 및 국민에 대해 깊 은 애도와 위로를 표하며, 이번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국제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국제법 및 관련 협약에 따라 각국은 민간 항공기의 안 전 항행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러한 차원 에서 최근 사전통보 조치 없는 북한의 미사 일 발사에 대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는 북한에 대해 주의를 환기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한편 MH-17편에 탑승한 에이즈 전문가의 수는 애초 보도된 100명이 아닌 6명인 것으 로 확인됐다.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국제에 이즈학회(IAS) 회장은 “확인한 결과 사고기 에 탑승한 동료는 6명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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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해법 못찾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양측 지도부, 입지 강화 위해 민간인 볼모로 격한 대결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피로 물들고 있다. 이 스라엘군이 17일(현지시간) 지상군을 가자 지구에 투입한 이후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 고 있다. 19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한 이후 팔레스타인 측 사망자는 320명에 달했다. 부상자도 2200 명 이상이다. 이스라엘 측에서도 군인 1명이 사망했다. 유엔을 비롯한 미국과 아랍권 등 국제사회 가 적극 중재에 나섰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이런 가운데 외신들은 이번 이스라엘-팔레 스타인 분쟁을 민간인들의 생명을 볼모로 한 양측 지도부의 힘겨루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대규모 희생을 감수하면 서까지 휴전에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에 대해서는 그 동안 약해진 국내외에서의 정치·외교적 입지 를 강화하기 위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풀이했다. 결국 이번 사태가 악화된 것 은 양측의 전략에 따른 수순이라는 의미다.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후 희생 급증 팔레스타인 사망자 320명에 달해 하마스, 이스라엘 곤경 빠뜨리려 휴전 거부하고 자해전략으로 응수
“하마스, 공격 배제된 병원 지하서 지휘” 최근 미국의 시사월간지 ‘디 애틀랜틱’ 인터 넷판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하마스의 ‘자해(self-murder) 전략’ 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하마스가 민간인 사 상자가 급증할 것을 알면서도 휴전을 거부한 것은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라며 “이스라엘이 국제사회로부터 민간인 대량 학살범이라는 비난을 받아 고립되는 것 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마스는 로 켓과 미사일 등 공격 무기들을 학교와 사원 등에 감춰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피하고 있으 며 사망자들에 대해서도 종교를 앞세워 이스 라엘 이교도에 의한 순교라는 이름으로 포장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마스 지도부는 이스라엘군의 공 격 목표에서 배제된 병원 건물 아래 깊은 벙 커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으며 민간인 거주 지역에는 대피시설조차 마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은 하마스의 이런 전략과 관 련해 “아랍권에서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실제 하마스와 이집트의 관계는 압둘 파타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지난해 실세로 등장 한 이후 급격히 악화됐다. 하마스가 알시시 대통령의 반대파인 무슬림형제단의 분파이
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전통적인 지지세력이 었던 이란·시리아와의 관계도 최근 눈에 띄 게 나빠졌다. 하마스가 내전을 겪고 있는 시 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축출하려 는 반군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는 이란과의 관계도 자연스 레 멀어졌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고립에 빠진 하 마스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민간인 희생이 아랍권의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연정서 극우파 이탈 막기 위해 강공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 하고 있다. 지난 15일 이집트의 휴전 중재안 을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하마스가 이를 거부 하자 곧바로 공격을 재개했다. 특히 국제사회 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상군 투입까지 결정 한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 속에서 군사작전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18일자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번 이 스라엘의 군사작전에는 강경파 ‘3B’가 주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모셰 야알론 국방장관, 베니 간츠 참모총장 을 일컫는 말이다. 야알론 국방장관의 별명 이 보기(Bogie)여서 이 세 명의 이름의 첫 자 를 따면 3B가 된다. 외신들이 분석한 이들의 전략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이스라엘 국내 정치 문제다.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극우 정당들로부터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끊임없이 요구받았다. 이스라엘 베이 테이누당을 이끌며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아 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외무장관은 “강력히 대응하지 않으면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경 고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출범한 팔레스타인의 두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의 통합정부에서 하 마스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강경파인 하마스를 협 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온건한 파타와 평 화협상 등을 해왔다. 하지만 두 정파가 통합 정부를 구성한 이상 하마스도 협상의 파트너 로 테이블에서 마주하게 됐다. 이를 꺼리는 이스라엘로서는 이번 기회에 하마스의 군사 력에 타격을 입혀 통합정부 내 영향력을 약 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또 이번 사태가 아랍권에 미칠 영향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지지부진한 이 란 핵협상 등을 염두에 두고 강력한 이스라 엘을 다시 한번 보여줌으로써 향후 국제무대 에서의 입김을 강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속셈에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 대한 압박도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서 이스라엘의 많은 양보를 요구했다. “서방의 우려에도 불 구하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거침없이 공 격하는 데는 미국 등 서방을 향한 목소리를 키우려는 의도도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 석이다.
● 끝이 보이지 않는 이-팔 분쟁
팔레스타인 지역은 역사적으로 유대인과 아랍인이 번갈아 지배했던 곳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 이 현재까지 두 민족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대립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분쟁의 불씨는 영국이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승리를 위해 유대인과 아랍민족 모두에게 이 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다. ‘밸푸어 선언’과 ‘맥마흔 선 언’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이 지역을 통치했다. 1947년 영국이 물러나자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구역과 아랍인 구역으로 분할하는 방 안을 승인했다. 이때 유대인은 이를 수용한 후 이듬해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하지만 아랍 측은 거부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 아랍권은 이스라엘과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을 치렀다. 64년에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출범했으며 격렬한 반이스라엘 투쟁을 벌였 다. 이스라엘군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했지만 이 지역을 통치하는 강경파 하마 스와 이스라엘 간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마리아 알(4·오른쪽)과 미스크(3·왼쪽) 자매가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친척이 사망하자 슬퍼하고 있다.
[AP=뉴시스]
6 Focus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730 재보궐 선거 거물 4인의 유세 현장 가보니
임태희손학규김두관 ‘외지인’ 프레임 벗어날지 관심 무덤일까, 부활일까. 손학규·김두관·임태희·이정현.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거물 4인방 이다. 대권 주자, 차세대 리더 등 이름 값만 따지면 국회의원 배지를 몇 개 달아도 손색 없지만 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상대 후보에 게 압승은커녕, 박빙이거나 오히려 밀리는 형국이다. 힘겨운 초반 레이스를 벌이고 있 는 4인의 선거운동 현장을 따라가봤다.
이정현
김두관
손학규
임태희
수원·김포·순천=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이정현, 反박근혜 정서 넘어설까 “호남에서 네 번째 도전입니다. 이번에 또 저 를 쓰레기통에 집어 처넣고 호남 인재 차별한 다,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이정현 밀어 주세요, 국회의원이 뭐고 지역 발전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폼 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18일 오후 전남 곡성 군청사거리. 도로 옆을 지나던 지역주민 300 여 명이 발길을 멈췄다. 새누리당 이정현(56) 후보 목소리엔 힘이 들어갔다. “순천-곡성에 선 지난 6년간 국회의원 선거를 4번이나 했습 니다. 게다가 재·보궐선거 원인 제공자가 또 공천 받아 출마했습니다. 공천 주는 사람들 눈치만 보고, 지역주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들에게 본때를 보입시다.” 거물 4인방 중 가장 힘겨우리라 예상했던 이 후보는 의외로 선전 중이다. 공표된 여론 조사 결과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52) 후보 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뒤지나 격차가 조 금씩 줄어들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자 체 조사 결과 오차범위 내다. 처음엔 득표율 40%만 넘겨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고 무돼 있다”고 전했다. 중앙SUNDAY가 만난 10명의 지역주민 중 8명이 새정치연합에 반감을 표했다. “아 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순천역 택시기사), “새정치연합 찍어줄 봐엔 아예 투표 안 할 생 각”(왕지동 주민) 등이었다. “대학병원이 꼭 생겨야 하는데, 그건 힘 있는 이정현이 더 낫 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런 경향은 최근 선거에서 그대로 나타 났다. 새정치연합이 깃발만 꽂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당시 민 주통합당 노관규 후보가 40.6%의 득표율로 56.4%를 얻은 통진당 김선동 후보에게 패했 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순천시장은 무소 속 후보(조충훈)가 새정치연합과 통진당 후 보를 꺾고 당선됐다. 이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는 데엔 ‘조용한 선거’도 한몫 한다는 분석이다. 그는 손수 자
7·30 재·보궐 여론조사 (단위: %)
28.1
37.1
37.5
서갑원 새정치연합
홍철호 새누리당
이정현 새누리당
전남 순천-곡성
36.1 31.0 김두관 새정치연합
경기 김포
김용남 새누리당
34.7 손학규 새정치연합
경기 수원병 (팔달)
30.4
30.9
임태희 새누리당
박광온 새정치연합
경기 수원정 (영통)
*순천-곡성, 수원병 중앙일보 여론조사(10~13일). 김포, 수원정 경인일보 여론조사(12~16일).
고향 출마 이정현은 ‘친박’이 악재 자전거 몰고 다니며 조용한 운동 김두관, 진정성으로 먹튀론 차단 손학규, 경기지사 때 인연 앞세워 임태희, 30대 영통 표심 잡기 주력
전거를 몰며 지역을 누비고 있다. 60명 선거 운동원도 아침 출근길 빨간색 옷을 입고 자 전거를 타고 다닌다. 이들은 오전엔 세 시간 가량 쓰레기 줍기, 제초 작업, 노인정 방문 등 을 한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역 내 반감을 고려 해 ‘박근혜’나 ‘새누리당’은 일절 입에 올리지 않고 ‘이정현’만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지역 정서는 여전히 두터운 벽이다. “말로는 욕하지 만 투표장 가면 2번 찍을 것”(연향동 50대 주 부), “아무리 새정치연합이 미워도 박근혜를 도울 순 없지 않은가”(풍덕동 박모씨47)란 반 응이 적지 않다. 서갑원 후보 측은 “광주에서 세 번 낙마한 이 후보가 갑작스레 순천에 내려 온 게 뜬금없다”고 공격하고 있다. 김두관, 젊은층 투표 참여에 희망 “김포에 아무런 연고가 없잖아. 만만하니깐 온 거지. 당선 되면 그걸 발판 삼아 더 높은 데 가지 않겠어.”(사우동 주민 김민복씨62) 경기도 김포에 도전장을 내민 새정치연합 김두관(55) 후보를 괴롭히는 건 ‘먹튀’ 논란 이다. 경남지사·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한때 대선 주 자 물망에 올랐다는 게 오히려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당선 시켜 줘봤자 김포에 무슨 관 심을 두겠는가”라는 냉소다. 새누리당 홍철호(56) 후보도 이 부분을 집 요하게 공격하고 있다. “300년간 대를 이어 김포에 살아왔다”며 지역 밀착형 일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프랜차이즈업체 ‘굽네 치킨’를 창업한 이다. 여론조사에선 홍 후보 가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하지만 김 후보는 차분한 표정이다. 17일 아침 거리 유세에서 그는 “김포 주민 한 분씩
찾아뵙고 내 진심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김 포는 도농 복합도시다. 32만 인구 중 절반을 차지하는 한강신도시가 젊은 세대 위주라면, 월곶면 등 북부 5개 읍·면은 보수 성향이 강 한 편이다. 김 후보 측은 “투표율 35%를 넘기 면 승산은 충분하다”며 “젊은 층이 투표장 에 나오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누리당 홍 후보는 정치에 입문한 지 3개월 밖에 안 된 ‘초짜’다. 검증이 전혀 안 돼 있다. 교통·교육 등 복잡한 지역 현안을 해결하려 면 국정 경험이 풍부한, 큰 정치인이 필요하 다”고 주장했다. 손학규, 당의 부름 강조해 비난 막기 “재·보선 전문인가 보죠 뭐. 남사스럽지 않나.” 16일 새벽 수원역 건너편 매산시장. 손학 규(67) 전 경기지사의 출마에 대해 묻자 상인 임모(55)씨는 시큰둥했다. “당을 옮겨 타더 니 이젠 지역도 툭하면 바꾸는 모양”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강모(57)씨는 “그래도 경기 지사 할 때 팔달에서 4년 살았다. 낯설진 않 다”며 다른 의견을 냈다. 손 전 지사는 정치 입문도 보궐선거로 했다. 1993년 광명시 보궐선거에 민주자유당 후보 로 출마해 당선됐다. 3년 전엔 여당 강세로 평 가받던 분당 보궐선거에 나서 승리했다. 16일 수원역에서 아침 인사를 하던 손 후보는 “당 이 어려울 때마다 부름에 응해 온 것뿐”이라 며 ‘재·보선 전문가’ 지적을 일축했다. 또 주민들의 정치 성향을 감안해 ‘새정치 연합’ 대신 ‘손학규’를 강조하며 민심을 파 고들고 있다. 수원 팔달구는 보수 성향이 강 하기 때문이다. 남평우(1998년 작고)-남경필 (새누리당·현 경기지사) 부자가 22년간 국회 의원을 지낸 곳이다. 주민 중 토박이 비율이
4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권이 지만 어느 고교를 나왔는지 따질 만큼 지역 성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김용남(44) 후보는 수 원고를 나온 ‘수원 본색’을 강조하며 손 후보 를 ‘철새’라 공격하고 있다. 손 후보 측은 “2 년 전 총선에서 수원 장안에 출마했다 떨어 졌던 김 후보가 ‘팔달의 아들’ 운운하니 웃 긴다”며 맞받아치고 있다. 임태희,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 알리기 수원 영통 주민에게 과거 임태희(58)는 ‘공 공의 적’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임태희 지 역구였던 분당을에 신분당선 미금역이 생겼 다. 그 바람에 노선이 꼬였고, 지하철 개통도 늦어져 피해가 고스란히 영통에 전가됐다” 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임 후보는 “오히려 지역구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 아닌 가. 이번엔 영통을 위해 또 그렇게 뛰겠다”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평택에 출마하려다 공천에서 배제되자 영 통으로 갈아탄 점,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장 을 지낸 점은 그에 대한 야당의 집중 공격 포 인트다. 무엇보다 40대 이하가 72%에 달해 주 민 평균 연령이 32세에 불과한 게 우파 성향 인 임 후보로선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임 후보는 “영통에서 김진표 전 의원이 3선을 한 건 야당 소속이 아니라 민생 해결 능력에 따 른 것”이라며 “2층 버스 도입과 도청 유치 등 에 집중하면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정치연합 대변인을 지낸 MBC 앵 커 출신의 박광온(57) 후보와 접전 중이다. 5~10%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정의당 천호선 (52) 대표와 박 후보 간의 야권 단일화 여부 가 막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집권 2년 차에 흔들리는 친박
“친박 핵심만 청와대와 소통 대통령에 대한 실망 커 조기 레임덕 우려” ▶2면에서 이어짐 한 부산·경남(PK) 출신 재선 의원은 직설적 이었다. “친박 극소수만 청와대와 소통해왔 다. 최경환·윤상현·홍문종 세 사람밖에 없었 다. 정부의 핵심 과제를 국회에서 정책적으로 관철시키는 최일선 책임자인 (김기현) 정책 위의장조차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고 무시당 하니 소외감·좌절감·무력감을 (주변에) 절절 하게 호소하더라. 친박들도 청와대에 뭘 건 의하려 해도 채널이 없으니 소외감이 누적돼 냉소적이 되고 원심 현상이 생겼다.” 친박 주류로 불려온 수도권 재선 의원은 “친박이 정치 동지들의 모임이 아니라 사적
이해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자리 와 개인 플레이 중심이 됐다”며 “대통령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 멀 어졌다”고 봤다. TK 출신 초선 의원은 “대통 령이 친박 핵심이라 불리던 인사들만 만나면 서 의중을 전달하면, 그 인사들이 당원들에 게 그 의중에 대한 자기 의견을 말하곤 했다. 그런 일들에 대해 당원들이 불만을 가졌다” 고 말했다. 친박이 과거 집권 세력보다 빨리 힘이 쇠한 원인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이명박계(친이) 재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친박은 친이와 체질이 다르다. 친이는 계파를 자유분방하
게 운영해 자생력이 있었다. 이상득이재오 등 중간 보스급도 많았다. 하지만 친박은 관 료적 성격을 가진 이가 많다. 박 대통령을 중 심으로 수직적인 문화여서 자생력이 약하다. 박 대통령 스스로 좌장이 없다고 선언했듯, 중간 구심체도 없었다.” 박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는 이도 있었다. 당 지도부로 활동해온 친박 주류 3선 의원은 “서청원 전 대표에게 표가 안 나온 가장 큰 요 인은 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라고 주장했 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실망감이 커 서 이탈 세력이 생기고 있다. 레임덕 현상이 곧 올 것 같아 걱정이다.”
‘박근혜 키즈’로 불리던 초선 비례대표 의 원도 “친박을 계속 주장하면 몰락한다”고 했 다. PK 출신 초선은 “대통령이 깊이가 부족하 다. 당이 견제해야 한다”고 했고, 충청 출신 초 선은 “언제까지 대통령에게 의존할 것인가. 이 젠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김무성 대표가 ‘수평적 당·청(청 와대) 관계’를 주장해 왔는데 그렇게 될 거라 고 보나”라는 질문에는 31명(79.4%)이 “그렇 다”라고 답했고, “아니다”는 6명(15.3%)이었 다. 나머지는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친박의 미래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앞 으로 친박이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나”
라는 질문에 22명(62.8%)이 “아니다”라고 답 했고, “그렇다”는 7명(20%)에 그쳤다. 나머 지는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다만 응답자 중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단서 를 다는 이도 적잖았다. “박 대통령을 빙자해 사익을 챙기던 사람 들 때문에 생겼던 분열이 정리되면 다시 구심 력이 생길 거다.”(TK 출신 4선) “당에서 친박 힘이 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최경환(경제부총리)은 당 밖에서 힘을 발휘 하고 있지 않나. 친박 주류가 제대로 정치를 하면 다시 힘을 얻을 거다.”(초선 비례) 설문 도움=박종화·황은하 인턴기자
Focus 7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정부 ‘쌀시장 개방’ 선언 후 남은 과제
1986~88년 국내 쌀값 기준 없어 관세율 적용 난관 예상 세종=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관세 결정 방식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협정에 나와 있다.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 린 쌀 개방(관세화) 기자회견에서 이동필 농 림축산식품부 장관은 “WTO 회원국과 마 찰 없이 수입쌀에 대해 고율 관세를 매길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관세 율 계산 방식은 사전에 당사국들이 합의한 협정문에 나와 있으니 300~500% 관세 부 과가 가능할 거라는 낙관론이다. 이 장관 의 대답은 “미국ㆍ중국은 한국에 쌀 관세율 150~200%를 요구하고 있다”는 설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정부가 쌀 개방을 공식 선언하면서 농민 과 소비자의 관심이 수입 관세율에 쏠리고 있 다. 미국산 쌀값이 국내산의 3분의 1 수준이 기 때문에 고율 관세를 매기지 않으면 한국 쌀이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거란 우 려 때문이다. 농민들은 이렇게 되면 식량 주 권이 위협받을 거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 동안 쌀 개방에 대해 “국내 쌀 산업 보호 방 식을 의무수입에서 관세화로 바꾸는 것”이 라며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강조해 왔다. 과연 정부 뜻대로 마찰 없이 고율 관세 를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장관 말대로 관세율 을 계산하는 방식은 농업협정에 명시돼 있 다. 1986~88년 3년간 국내ㆍ국제 쌀값의 평 균치를 구한 뒤 그 차액 비율만큼을 관세율 로 정할 수 있다. 당시 국내산 쌀값은 100원 이었는데 국제시세는 20원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차액인 80원(국내 쌀값-국제 쌀값)을 다시 국제 쌀값(20원)으로 나눈 뒤 (80/20=4), 여기에 100을 곱해 %를 붙이면 400%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를 협정문에선 관세상당치라고 한다. 협정 당시 개발도상국 이었던 한국은 이 관세상당치에 0.9(선진국 은 0.85)를 곱한 수치를 관세율로 정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관세율(400%×0.9)은 360% 가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계산 방식 자체엔 국제사회에서 다툼이 없다. 이 장관이 “관세 결정 방식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관세율 결정 과정 공개되야 다툼은 계산식이 아닌, 이 식에 대입할 숫자 때문에 생길 수 있다. 당시의 국내ㆍ국제 쌀값 을 얼마로 할 거냐는 문제다. 협정문엔 관세 율 계산식에 사용할 국내 쌀값에 대해 ‘지배 적인 대표 도매가격을 사용하되 적절한 자료 가 없으면 추산치를 사용한다’고 돼 있다. 여 기서 ‘지배적인 가격’과 ‘추산치’에 대한 논 란이 생길 수 있다. 1986~88년은 통계청이 국내 쌀값을 조 사ㆍ기록하던 시기가 아니다. 이 때문에 정부
산지별 쌀 1㎏당 예상 가격
(단위: 원)
한국산 미국산 중국산
관세 없을 때
2189
791
1065
관세 300% 적용 시
2189
2373
3195
관세 400% 적용 시
2189
3164
4260
우리나라 식량용 쌀 소비량 및 1인당 쌀 소비량 추이 1인당 쌀 소비량(㎏)
식량용 쌀 소비량(t) (t) 500만
477만7000 (㎏) 120
343만5000 400만
106.5
100 80
67.2
300만
60 40 20 0
1995년
2000
2005
2010
2013
자료: 농협경제연구소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들이 18일 정부의 쌀시장 전면개방 발표에 항의하며 경찰에게 쌀을 던지고 있다.
정부선 “관세율 300~500%” 낙관론 수출국선 ‘세율 최소화’ 요구 뻔해 계산식 변함없지만 다툼의 소지 일본대만, 정액 관세 적용해 유지
는 최대한 높은 수치를 구하려 할 것이고, 미 국ㆍ중국 등 쌀 수출국은 최대한 낮은 수치를 적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제 쌀 값도 마찬가지다. 국제 쌀값 기준액은 당시 인접국의 수입가격을 쓰도록 돼 있다. 그런데 중국은 30원에 쌀을 수입했는데, 태국은 35 원에 수입했다면 여기서도 어느 나라를 인접 국으로 볼 거냐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국내
에서도 300~500%까지 다양한 관세율 예측 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 농림 축산식품해양수산위 연구에서는 510%까지 계산됐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는 계산에 쓰일 수 치 노출을 극도로 피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300~500%에 정부안이 있다”고 알렸을 뿐 이다. 농민단체나 쌀 개방 반대론자들이 “관 료들이 밀실에서 관세율 논의를 하고 있다” 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쌀 대책팀장은 “관세율 결정 과정이 공개돼야 정부가 권리 를 정당하게 행사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송 변호사 등은 지난달 정부의 관 세율 결정 내용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행정소 송을 낸 상태다. 이에 대해 김경규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현재 공식적으로 관세율 자체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결정된 게 없으니 공개할 것 도 없다는 얘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어떤 가격 자료를 관세율 계산 공식에 넣을 건지에 대한 논의 자료가 공개된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자국에 유리한 자료를 마음대로 사 용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이해하지 못 하고 ‘밀실 협의’라는 식의 지적이 계속 나오 면, 고율 관세를 매기는 게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9월까지 관세율 확정안을 내놓을
[서울=뉴시스]
계획이다. 이미 정부가 검토해둔 방안 중 하 나를 꺼내면 되는 일이지만, 9월까지 WTO 각 회원국에 나가 있는 주재원을 통해 한국 의 결정을 받아들이도록 물밑 작업을 벌이기 위해서다. 이후 10~12월 이의를 제기하는 나 라가 없으면 내년 1월 1일부터 쌀 개방이 이 뤄진다. WTO 규정엔 관세율 결정에 대해 ‘3 개월간 회원국의 이의가 없으면 인증된다’고 나와 있다. 그동안 정부는 관련 시행령을 정 비할 예정이다. 쌀의 국제시세가 크게 떨어졌 을 때 평소보다 세율을 높이는 특별긴급관세 (SSGㆍSpecial Safe Guard) 관련 내용은 관 세법 시행령에 반영된다. 일본, 시장 개방 후 수입량 제자리 내년이 되면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WTO 회원국은 필리핀 한 곳만 남는다. 일본은 1999년, 대만은 2003년 각각 쌀시장을 열었 다. 이들 나라 사정은 어떨까. 일본은 2001년 까지 쌀시장 개방 유예를 인정받은 나라였지 만, 일찍 문을 열었다. 유예기간 동안엔 의무 수입물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이 보다 개방을 일찍 하되 관세를 높게 매기는 게 쌀 농가 보호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의무수입량은 68만2000t 으로 굳어져 있다. 이 양을 초과하는 수입쌀 에 대해선 ㎏당 341엔(3500원)의 관세를 붙 였다. 쌀의 국제시세가 매번 바뀌는 것을 인 식해 정액 관세를 매기기로 한 것이다. 이는
1999년 당시 시세로 계산했을 때 1066%의 관 세를 부과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현재도 이 관세액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실질 관세율은 300~400%를 오르내리고 있다는 게 정부 설 명이다. 정부는 현재 일본이 의무수입물량 외에 추가로 수입하는 쌀의 양은 연간 500t 정도 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개방 유예를 받던 때보다 0.01% 정도 수입량이 늘어난 것이다. 대만도 개방 당시 정한 정액 관세(㎏당 45타 이완달러, 1550원)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국 제 쌀값이 낮은 수준이어서 대만도 비율이 아닌 금액 기준으로 관세를 정했다. 당시 대 만이 의무수입한 쌀은 14만4720t으로 국내 소비량의 8%에 해당했다. 현재 국내 소비량 의 9%(40만9000t)를 의무수입하는 한국과 비슷한 사정이었다. 대만 역시 개방 이후 늘 어난 수입량은 연간 500t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농민들은 외국에서도 쌀 시장 개방 이후 시장이 잠식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현상유지’(의무수입량을 유지하는 조 건의 개방 유예)라는 최선의 조건을 관철하 기 위한 노력 없이 정부가 개방 방침을 먼저 WTO에 알리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유예기간 연장을 WTO에 요청하는 방안도 있는데, 이 를 해보지도 않고 개방을 기정사실화한 정부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쌀시장 개방되면 한국 소비자 선택은
정부 “미국쌀, 모양맛 국산에 못 미쳐 개방해도 영향 없을 것” 최선욱 기자
한국은 세계에서 12번째로 미국 쌀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2012년에만 7만1864t(90 만 가마)의 미국 쌀이 들어왔다. 금액으로는 5071만 달러어치다. 그런데 시중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에서 미국 쌀을 보기는 쉽지 않다. 전문 유통업자들이 사들여 공급한 미국 쌀 을 일부 식당에서 국내산과 혼합해 사용하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한국 쌀 품질 이 좋기 때문에 외국 쌀은 가격이 싸도 많이
중국산은 안전성 때문에 소비 꺼려 부정유통 단속 체계 철저히 갖추고 관세 인하 압력 버텨내는 게 과제
미국산 칼로스 쌀.
팔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쌀 개방 이후에도 국내산 쌀이 시장에서 외국산 에 밀리지 않을 거란 낙관론을 편다. 수입쌀 에 300~500%의 관세를 매겼을 때, 굳이 이 가격을 치르면서까지 외국쌀을 사먹을 소비 자는 많지 않을 거란 판단에서다. 수입쌀은 모양과 맛에서도 차이가 난 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내산 쌀 은 자포니카(Japonica) 품종에서도 낱 알의 길이가 짧은 단립종(短粒種)이다. 자포니카는 태국ㆍ인도ㆍ동남아ㆍ남미에 서 주로 재배되는 인디카(Indica)에 비
해 밥을 지었을 때 찰기가 강하다. 세포막이 얇아서 낱알 속에 있는 전분이 밖으로 나오 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디카는 전분 배출이 잘 되지 않 아 밥을 지어도 찰기가 없는 ‘날리는 쌀’이 된다. 미국에서는 자포니카가 주로 수입되지 만 낱알 길이가 조금 길다. 소비자가 보기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밥이 지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쌀의 가격경쟁력이 고율 관세 로 무력화되면 소비자들이 등을 돌릴 것으로 정부는 예측하고 있다. 중국산은 안전성이 떨 어진다는 인식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퍼져 있
고, 가격도 미국산보다 비싸 국내 시장에 미 칠 영향이 적을 거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농 민들의 예상도 크게 다르진 않다. 쌀 개방 대 책 중 하나로 원산지 표기 위반 단속과 같은 부정유통 단속 강화를 정부가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년에 정부가 관세율을 300~500%로 설 정하더라도 이후 관세 인하를 요구하는 미국 의 통상 압력이 가해질 거란 예측도 나온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농민의 걱정을 이 해하고 있다”며 “고율 관세를 매기고 이를 지 키겠다는 정부 의지를 믿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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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팽목항 석 달 지킨 JTBC 기자가 본 세월호 참사의 현장
침몰 후 한 달, 두 달 컨트롤타워는 지금도 작동 불능 서복현 JTBC 기자 sphjtbc@joongang.co.kr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4일로 100일을 맞 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찬 바다 속 에 있는 실종자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은 여전히 진도체육 관 바닥에서 기다림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 다. 시간이 지나도 정부에 대한 불신은 가시 지 않고 확실한 실종자 수색 대책도 나오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고 발생 뒤 하루가 지난 4월 17일, 기자 가 첫 발을 디딘 진도 실내체육관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의 감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저앉아 흐느끼는 학부모들, 통곡 하다 쓰러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부 를 향한 분노도 폭발했다. “이들이 살아 있느 냐”는 질문에 정부는 확실한 답을 못했다. 뾰 족한 구조 대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합동구조팀이 선내 진입에 성공하면서 확 인된 희생자 수는 빠르게 늘었다. 사고 사흘 째 선내에서 첫 시신이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하루에 36명의 시신이 수습되기도 했다. 시 신을 운구하는 경비정이 들어올 때마다 팽목 항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임시 시신안치소에 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에 서 ‘유족’으로 신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잔인한 시간이 흘렀다. 기대는 이내 좌절 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신을 찾는 것 이 오히려 ‘축하’ 받을 일이 돼 버렸다. 세상 에서 가장 슬픈 기쁨이었다. 그리고 지금 진 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들끼리 내색은 못 하지만 진도에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내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무기력한 정부, 절박함마저 없어 세월호 사고 대응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 다. ‘전원 구조’라는 틀린 정보는 가족들에 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고, 동시에 정부 의 초기 대응을 무력화시켰다. 이것은 시작 에 불과했다. 정부의 우왕좌왕은 계속됐다. 사고 사흘째, 구조팀이 선체 식당 칸에 진 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족들이 한껏 고무됐다. 하지만 곧 잘못된 발표로 확인됐 다. 희생자의 신원이 뒤바뀌는 일도 벌어졌 다. 사고 직후 해경 3009함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크레인으로 선체를 올 리거나 창을 깨고 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다 누군가 ‘에어 포켓이 사라질 수 있다’고 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고 말했다. 당국은 명 확하지 않은 에어 포켓을 기대하며 공기 주입 을 하느라 시간만 허비했다. 해경의 구조 매 뉴얼에는 에어 포켓이 있어도 수온 15도 이 하의 바다에서는 6시간이 지나면 생존할 수
세월호 선체 언양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 바다에 뜬 이탈리아 크루즈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2012년 1월 이탈리아 남서부 지글리아 섬 연안에서 좌 초돼 침몰한 이 배는 지난해 9월 선체 외벽에 공기탱크를 부착하는 방법으로 바로 세워졌다. 그 뒤 내부 수리를 거쳐 지난 14일 지지 장치 없이도 바다에 뜰 수 있게 됐다. 4200명의 탑승자 중 32명의 희생자를 낸 이 배는 곧 제노아항으로 견인돼 재사용 가능 여부를 진단받게 된다. 지금까지의 수습 비용으로 15억 유로 (약 2조원)가 들었다.
실종자 가족이 유족으로 바뀌고 우왕좌왕 무능 공무원이 아픔 키워 가족은 지워지는 흔적에 애타는데 해경, 7월 들어 수색 않고 지휘만
서복현 JTBC 기자가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 인근 에서 수색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AP=뉴시스]
없다고 나와 있다. 당국은 사고 초기 많게는 700여 명의 구조대원이 수색을 진행하고 있 다고 발표했다. 실제 수중 수색은 100명도 채 안 되는 인원이 투입됐지만 당국은 이 사실 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은 사고 한 달, 그리 고 두 달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6월 30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중간 수색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목표했던 111개 격실의 정밀 수 색도 끝내지 못한 터라 향후 대책에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반대로 중 단됐다. 대책은 없고 수색 여건이 안 좋다는 내용만 늘어놨다는 이유였다. 실제 실종자 가 족들에게 나눠준 자료에는 깊어진 세월호 수 심, 선체 붕괴 심화, 민간 잠수사 사기 저하, 장 마 등 최악의 수색 여건이 나열돼 있었다. 그 내용만 보면 더 이상 수색 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듯했다. 설명회 하루 전에 만 난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대책이 있느냐고 묻 자 “크게 달라질 것이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고민이나 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지금도 답답한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7월 수색의 핵심은 6시간 이상 수중 수색이 가능 하다는 재호흡기 투입 여부였다. 실종자 가 족들은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미국 잠수 팀과 사전 협의가 안 된 채 현장에서 옥신각
신하다 물에 발조차 담가 보지 않고 무산됐 다. 해경은 7월부터는 수중 수색을 하지 않기 로 했다. 민간 업체가 도입한 새로운 잠수 방 식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현장에 투 입된 한 민간 잠수사는 발끈했다. “우리도 새 방식을 처음 써보는 사람이 많다. 적응 훈련 을 하며 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해경 은 수중 상황을 전해 듣고 지휘만 하고 있다. 오히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보다 한발 빨 랐다. 사고 현장에 바지선을 투입하자는 것, 야간 수색에 채낚이 어선의 불빛을 이용하는 것도 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라고 한 다. 실종자 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차단봉 설 치도 가족들의 제안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궁하면 통한다”고 말했다. 뒤집어 생각하면 정부는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관계기관간 사이 엇박자 지금도 진행 중 사고 초기 유족들을 힘들게 한 건 각 부처별 ‘따로 따로’ 브리핑이었다. 세월호 사고를 두 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해경의 중앙구조 본부, 군 합동지원본부, 해수부의 특별조사 본부 등 ‘본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거기에 법무부·교육부 등도 별도의 브리핑 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같은 내용을 두고 서로 다른 내용을 발표하면서 혼선을 빚기도
했다. 각 본부와 부처를 조율하는 ‘컨트롤타 워’가 없었던 것이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라는 조직이 생겨났 지만 기관 간의 엇박자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 다. 특히 수색의 축인 해경-해수부-해군의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해경은 수색 현장 지 휘, 해수부는 각종 지원 업무, 해군의 해난구 조대(SSU) 대원 등 잠수 요원들을 투입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해수부가 주도적으로 나섰던 원격무 인탐색기 투입은 해경이 지휘를 하고 있는 현 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해수부가 중심이 된 ‘88수중’ 업체 투입은 현장 도착 하루 전까지 도 해경은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해경과 해수부는 치열한 신경전까지 벌이 고 있었다. 해경 내부 보고 문건을 보면 재호 흡기 투입은 해수부가 주도적으로 움직였고 해경과는 사전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재호흡기 검증 잠수에 실패하자 해경은 ‘책임 전가 가능성이 농후하다. 관련 자들의 정보 파악이 필요하다’고 문건에 적 었다. 서로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정보전까지 벌였던 것이다. 해군도 범대본의 의견과 무관 하게 자체적으로 인력 축소 계획을 세우면서 논란을 불렀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문제는 사고 100일 다 되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 았다. 4월 16일에 멈춰 선 팽목항의 시계 7월 1일 범대본이 설치된 진도군청의 현수막 이 철거됐다. ‘온 국민이 세월호 피해자 분들 의 슬픔을 위로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이었다.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가득 메웠던 천막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고, 자원봉사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현장을 지키던 취재진도 대부분 돌아갔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변한 것은 없 다. 매일 배를 타고 현장에 나가 수색 상황을 점검하고 수색 브리핑을 듣는 생활을 100일 가까이 반복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 는 ‘수색구조를 위한 장비 기술 TF 회의’에 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링 거를 맞으며 내일을 버텨낼 준비를 한다. 4월 17일부터 7월 11일까지 석 달간의 진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별 인사를 했던 한 실종자 가족은 “세월호 사고 흔적을 지워 내려는 움직임을 보면 목을 조여오는 기 분이 든다. 가족을 못 찾은 것은 변함없는데 세상은 너무 빨리 잊으려 한다”고 말했다. 아 직 바다에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기 다리는 가족들이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바다를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실종자 가족 들에게 진도 팽목항의 시계는 여전히 4월 16 일에 멈춰 있다.
바다만 바라보는 팽목항의 사람들
학생 5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기다린다 유재연 기자·황은하 인턴기자 queen@joongang.co.kr
“그대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지만 항상 마 음만은 그대 곁에 있어요. (…) 오늘도 수고했 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고(故) 이다운군이 작곡한 노래 ‘사랑하는 그대여’. 이 곡에 노랫말을 붙인 남현철(17) 군은 아직 뭍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내 심 장’이라고 여기던 아들을 기다리며 아버지 는 진도 팽목항에 아들의 기타를 가져다 놓 았다. 기타엔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썼다. 남군처럼 아직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실종
‘사랑하는 그대여’ 가사 달던 현철이 유치원 교사 되고 싶어 했던 다윤이 가족들 돌아오라며 이름만 되뇌어
자는 19일 현재 10명(단원고 학생 5명, 선생 님 2명, 일반인 3명)이다. 남군의 같은 반 친구 박영인(17)군도 여 전히 찬 바다에 있다. 박군은 사고 다음날 인 4월 17일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후 에 이다운군으로 정정됐다. 당시 이군의 주 머니에서 박군의 학생증이 발견돼 벌어진 일이었다. 박군의 축구화는 여전히 방파제
에 놓여있다. “배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어린 아이를 돌 보느라 안 오는가봐요.” 아이들을 좋아해 유 치원 선생님이 꿈이던 허다윤(17)양. 그의 아 버지 흥환(50)씨는 팽목항에 남아 딸이 좋아 하던 목캔디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집안 형편 이 어려운 걸 알고는 용돈 한번 달라고 한 적 이 없던 착한 딸이었다고 했다. 개나리색 니 트를 입은 딸의 환한 웃음은 가족사진 속에 만 남아 있다. 아침마다 볼에 뽀뽀를 하던 예쁜 딸, 조은 화(17)양의 어머니 이금희(45)씨는 한때 합 성 영상 때문에 ‘가짜 학부모 선동꾼’으로 몰리기도 했었다. 수학여행비가 32만7000원
이나 된다며 미안해하던 딸은 “배가 45도로 기울었어”라는 말만 마지막으로 남기고 아 직 돌아오지 않았다. 결혼 7년 만에 어렵게 얻은 딸을 잃었다는 황지현(17)양의 어머니 도 이들과 함께 팽목항에서 아이를 기다리 고 있다. 양승진(57) 선생님과 고창석(43) 선생님은 여전히 아이들이 머물던 세월호 4층 부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씨는 학창시절 씨 름선수를 할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인성생 활부장을 맡아 아이들을 지도하던 그다. 고 씨도 인명구조 자격증이 있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9년 전 학교에서 불이 났을 때도 가 장 먼저 아이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고 했다.
두 선생님 모두 구명조끼를 걸치고 있지 않 았다고 생존 학생들은 증언했다. 권재근(52)씨는 지난 5년 동안 건물 청소 를 해 모은 돈으로 이사를 가던 길이었다. 아 들 혁규(6)군과 함께 찬 바다에서 아직 나오 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부인 한윤지 (29)씨의 장례식은 팽목항 신원확인소에 안 치된 지 85일 만인 지난 16일에야 치러졌다. 이들 가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지연(5)양은 큰아버지가 맡고 있다. 권씨 가족처럼 제주에 새 보금자리를 얻은 이영숙(53)씨도 바다에 있다. 얼마 전에야 서 귀포시의 한 카지노에 처음으로 정규직 자리 를 구했다고 했다.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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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빌 게이츠가 꼽은 최고의 책『경영의 모험』
경영비법 아닌 인간 본성 담아 버핏, 게이츠에게 ‘강추’ 빌 게이츠가 43년 만에 책을 살려냈다. 1969년 출간된 경영의 모험(Business Adventures)이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서 경제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존 브룩스(1920~93)가 쓴 이 책은 1971년 절판됐다. 하지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경영 서적”이라고 밝히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주 e-북 형태로 재발간된 이 책은 순식간에 미국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올 상반기 신드롬을 몰고 온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물론, 대중성 있는 소설들을 모두 제쳤다. 종이책은 9월 에 재발매되는데 사전예약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경영의 모험은 브룩스가 뉴요커에 썼던 기사 12개를 모은 것이다. 기사라고는 하지만 주간지의 특성상 ‘뉴스’보다 ‘시나리 오형 심층분석’에 가깝다. 평균 길이가 30~40 페이지에 달한다. 책의 제목은 경영의 모험이지만 12장(章) 중 6장이 주식시장· 국제금융 관련이고, 세금에 관한 글도 있다. 피터 드러커나 마이클 포터의 책에서 볼 수 있는 ‘회사 경영은 이렇게 해야 한다’ 식 의 교훈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오히려 20세기 초중반 미국 신문의 1면 톱을 장식한 굵직굵직한 사건 가운데 경제·경영 관련 사건들을 모아 사회심리학적 분석과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박성우 기자차길호 인턴기자 blast@joongang.co.kr
게이츠가 이미 40여 년 전에 절판된 이 책을 ‘최고의 서적’이라고 치켜세우는 이유도 여 기에 있다. 게이츠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 문에서 “경영의 모험은 특정 산업의 세세 한 부분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어려운 상황 에 직면한 리더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책이기 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내용은 오래 됐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게 아니라 오래됐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말했다. 또 “존 브룩스 의 책은 사실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고, 바로 그래서 시간을 초월한다”고 덧붙였다. 게이츠에게 이 책을 소개한 사람은 ‘투자 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다. 1991년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게 이츠의 부탁에 버핏이 자신의 책을 선뜻 빌 려주었다. 이 책에 반한 게이츠는 브룩스의 아들과 연락해 저작권 문제를 논의하는 등 책을 재발간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게이츠는 경영의 모험에서 5장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가 가장 유익했다고 소개하고 홈페이지(www.gatesnotes.com) 에 무료로 공개했다. 그는 “(복사기 제조업 체) 제록스의 사례는 IT산업에 종사하는 모 두가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초반 제록스는 복사기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 이 없는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이 같은 R&D는 현재 인터넷 통신 망의 기반인 이더넷(Ethernet)과 최초의 그 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록스의 경영진은 이런 연구가 제록 스의 핵심 사업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판단하 고 상용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다른 사업자들이 제록스의 연구를 활용해 상품을 출시했고 큰 돈을 벌었 다. 게이츠는 MS도 제록스의 인 터페이스 연구를 활용했다고 털어놓으며 “MS를 경영하면 서 제록스가 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중앙SUNDAY는 경영의 모험 킨들 에 디션과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종이책 을 읽어봤다. 서울대 소장본은 펭귄북스가 1971년 영국에서 출간한 책인데 미국 원본과 달리 9장 ‘인생 2막: 데이비드 릴리엔설’이 없다. 1969년 초판 발간 당시엔 13장으로 구 성된 책도 나오는 등 여러 버전이 있다. 1장 ‘등락(The Fluctuation)’은 주식시 장은 폭락해도 다시 반등하게 마련이라는 다소 평이한 내용이다. 다만 브룩스는 1929 년 대공황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한 1962년 5월 28일부터 3일간 뉴욕증권거래소와 그 주변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주식시장에 투영되는지 분석 한다. 1611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와 계속 비교하는 대 목도 흥미롭다. 2장 ‘에드셀의 운명’은 미국 3대 자동차 회 사인 포드가 1955년부터 투자·디자인·홍보 등 측면에서 총력을 다해 개발한 준중형 세 단 ‘에드셀(Edsel)’이 왜 투자도 덜한 다른 모델에 비해서 흥행에 실패했는지에 대한 내 용이다. 에드셀의 실패에 대한 업계의 통상적 인 설명은 과도한 소비자 분석을 했다는 것 이다. 컬럼비아대 응용사회학연구소에 의뢰 해 소비자가 자동차로부터 받는 성적(性的) 매력을 분석하는 등 불필요한 조사로 정작 소비자의 실질적인
경영의 모험(Business Adventures) 내용 뜯어보니 1. 등락(The Fluctuation)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낙폭을 보였던 1962년 5 월 28일 뉴욕증권거래소. 이곳에서 패닉을 경험한 개인투자자증권회사브로커 등의 모습을 통해 주식시장의 발전이 가져온 사회심리학적 효과를 묘사. 2. 포드 자동차 ‘에드셀’의 운명 1955년 포드 자동차가 투자디자인홍보 등 모 든 측면에서 총력을 다해 준비한 준중형 세단 ‘에드셀(Edsel)’이 왜 참담하게 실 패했는지 분석. 3. 연방 소득세 미국과 세계 주요국에 소득세가 도입되고 발전한 역사를 풀어내. 20세기 초 국세청장을 역임한 캐플린과 코언의 캐릭터 비교를 통해 설명. 4 충분한 시간이 지난 뒤: 내부자 거래 텍사스만 화학회사의 내부자 거래 사건. 증권거래위원회는 소송에서 “미디어 등을 통해 내부 정보가 일반에게 알려졌더 라도 투자에 나서려면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주장해 승소. 5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제록스 1960년대 복사기를 발명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제록스의 사례.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사회공헌에 대한 고민이 제록스의 강점이었다. 6. 고객 구하기: 대통령의 죽음 가짜 담보로 파산 위기에 처한 증권회사 하우프 트를 둘러싸고 증권거래위원회와 변호사, 채권은행들이 각축하는 드라마. 케네 디 대통령 장례식 와중에 협상을 벌인다.
빌 게이츠 MS 창업자가 가장 좋아하는 비즈니스 서적인 『경영의 모험』을 들고 있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빌 게이츠 페이스북]
Focus 11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경영의 모험』저자 존 브룩스
타고난 스토리텔러 경제전문기자 영역 개척 박성우 기자
욕구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브룩스는 포드 경영진이 과학적인 소비자 분석 기법을 활용하는 시늉만 하고 그 분석 내용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아 에드 셀을 파국으로 몰았다고 분석한다. 모험심만 가득했던 크라피 본부장, 항상 학구적인 이 미지로 비치길 원했던 월러스 기획실장 등의 개인 캐릭터가 에드셀 개발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악영향을 끼친 것을 짚어낸다. 수천 개의 모델명 후보를 두고 포드 창업자 가족 조차 반대하던 에드셀(당시 사장 헨리 2세의 아버지 이름)을 낙점한 얘기, 워낙 많은 모델 명을 논의하다 경쟁사 모델인 ‘뷰익’까지 고 려하게 된 얘기 등은 실소를 자아낸다. 증권회사 하우프트가 1963년 케네디 대 통령이 암살된 즈음 샐러드 오일 스캔들에 연루돼 파산하게 된 내용은 이 책의 진수다. 당대의 큰 사건 세 가지를 추리소설처럼 풀 어내는 브룩스의 마력에 게이츠가 빠질 만 하다. 샐러드 오일 회사 앨라이드와의 선물 거래에서 수천만 달러를 날리게 된 하우프 트가 파산을 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모 습이 6장 ‘고객 구하기: 대통령의 죽음’의 줄 거리다. 뉴욕증권거래소 이사장과 채권단, 변호사, 증권회사 임원들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소식에 미국인 전체가 TV 앞에 모여있 던 날 하우프트 회생 계획을 논의했다. 미국 역사의 주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 우프트 파산과 함께 돈이 묶인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의 넋 나간 모습에서 50년 뒤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때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애석하게도 국내에선 경영의 모험을 읽 은 사람이 적은 것 같다. 본지가 국내 경영학 과 교수 15명에게 전화를 해 본 결과 이 책을 읽어봤다는 사람은 한 명 도 없었다. 다만 수십 년 전의 경영서적이 오히려 더 큰 통 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했다. 서 울대 이동기(경영학) 교수는 “경영학의 최신 책은 많이 출간되지만 따지고 보면 몇 십 년 전에 나왔던 이론이 변형돼 나오는 게 많다” 며 “1950~60년대 글을 찾아 읽을 때가 있는 데 그때 설명이 명쾌했고, 요즘 것은 복잡하 기만 하고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경영의 모험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40년
역경에 처한 리더의 장단점 분석 제록스포드 실패 지적은 촌철살인 절판 43년 지나 빌 게이츠 덕에 부활 아마존서『21세기 자본론』도 제쳐
워런 버핏
전이나 지금이나 기업 경영과 가치 창출 방 식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완벽 한 상품이나 생산 계획, 마케팅 방식이 있더 라도 이것을 실현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 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와 워 런 버핏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것도 이 부 분이다. “어떤 사람을 지원할 것인가. 그들의 능력이 그들의 역할을 뒷받침하는가. 그들은 성공에 필요한 IQ와 EQ를 다 갖추고 있나.” 게이츠는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빌린 책 을 보관하고 있다고 버핏에게 알렸다.
존 브룩스(사진)는 경제전문기자라는 분야 를 개척한 인물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경제기자가 하는 일은 업계 소식 을 알리는 정도에 그쳤다. 브룩스는 스트레 이트 뉴스를 발굴하는 대신 이미 나온 뉴스 에 역사적·사회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 을 했다. 그래서 브룩스의 기사는 추리소설 또는 드라마 대본처럼 읽힌다. 그는 세 권의 소설과 10권의 경영·금융 관련 논픽션의 작 가이기도 했다.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난 브룩스는 프린스 턴대를 졸업하고 1942년 공군에 입대해 3년 간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연합군의 노르망 디 상륙작전에 합류해 1944년 미1군 본부 군 함에서 승전을 맞았다. 프린스턴대 재학 시 절 룸메이트는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이었 다고 한다. 경제전문기자로 종합 주간지인 뉴요커에 서 활동한 점도 특이하다. 브룩스는 제대 후 타임지에서 2년간 일하다 보다 심층적이고 긴 글을 쓸 수 있는 뉴요커 기자로 옮겼다. 당시 경제전문을 표방하는 기자들은 월스 트리트저널 등에서 스트레이트 기사 발굴 에 몰두했다. 하지만 브룩스는 어려운 경제 용어를 남발하며 ‘경제 인사이더’들을 위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일반인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스토리텔링식 기사를 쓰자 는 주의였다. 그가 쓴 책들도 소재는 경제·경 영 관련 사건이지만 초점은 등장인물들 사 이의 갈등,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경 등에 맞춰져 있다. 브룩스는 경제뉴스를 대 중화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1960년대 주식시장의 호황을 그린 책 호 시절(The Go-Go Years)도 당대 최고의
인문학적으로 비즈니스계 묘사 경제 뉴스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 대학생 땐 조지 슐츠와 룸메이트
포트폴리오 매니저 제럴드 차이의 성격 묘 사에 집중돼 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브룩스가 말하는 것이 설 령 틀리더라도 최소한 재미있는 방향으로 틀렸다”고 평가했다. 1929년 대공황 전후 월 스트리트에서 활동한 금융인들에 대한 책 골콘다에서의 한때(Once in Golconda)에 서도 모건스탠리 펀드매니저에서 시작해 뉴 욕증권거래소 이사장까지 올랐지만 비리로 감옥에 간 리처드 휘트니의 성격과 심리를 세세하게 묘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시 서평에서 “이 책은 마치 그리스 신화 같다. 휘트니에 대한 기사와 책은 전에도 나왔지 만 브룩스의 책을 읽으면 충격을 받게 된다” 고 평가했다. 브룩스는 자신의 책과 기사에 서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 마르셀 뒤샹의 그 림, 영국의 연극평론가 케네스 타이난을 언 급할 정도로 인문학적 고찰이 깊었다. 경제 매거진 포천지의 편집장을 지내고 지금은 뉴욕타임스 기자로 활동하는 조 노
세라는 브룩스에 대해 “특종기자로 유명하 거나 기자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 다. 대신 타고난 스토리텔러였다”고 평가했 다. 특히 노세라는 “브룩스가 어떤 인물에 대해 한 문장이나 에피소드로 정의하는 재 주가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제럴 드 차이에 대해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처럼 대중의 주목을 피하면서도 인 기를 추구한 사람”이라고 쓰는 식이다. 노 세라는 “마이클 루이스(머니볼의 저자이 자 저명한 경제 저널리스트)는 비즈니스를 위트와 특유의 스타일, 품격으로 다뤘다. 하 지만 그가 있기 전에 존 브룩스가 있었다” 고 회고했다. 브룩스는 비즈니스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 도 종종 글을 썼다. 1983년 뉴욕타임스 북리 뷰 기고에서 그는 데이비드 버넘의 컴퓨터 국가의 도래에 대해 “국가의 눈과 귀가 발 전하면 국민은 무력해진다”며 ‘스노든 사건’ 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빅 브러더 국가’의 문제를 예견하기도 했다. 브룩스에게 경제뉴스는 숫자와 통계가 아 니었다.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고, 승리와 패 배로 점철된 세계였다. 그는 경제가 좋아서 경제기자를 한 게 아니다. 인간의 본성을 볼 수 있는 비즈니스의 세계가 그에게 글 쓸 거 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브룩스는 비즈니스 저널리즘계의 퓰리처 상이라고 불리는 제럴드 로브 상을 세 번 수 상했다. 1962~66년엔 국제PEN협회 부회장 을 지냈고, 1984년엔 미국역사학회 부회장 도 역임했다. 케네디 정부에서 활약했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호시절에 대해 “광기에 휩싸인 금융의 역 사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작은 고전”이라고 평 가했다.
빌 게이츠 부부가 추천하는 10권의 필독서는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1971년 출간된『경영의 모험』영국판. 서울대 도서관에 있는 이 책은 미국판과 달리 11 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인생 2막: 데이비드 릴리엔설’ 부분이 없다.
7. 꽉 막힌 철학자들: GE 사내 소통의 문제 GE의 가격담합 의혹에 대한 1961년 미 상원 공정거래 소위원회 속기록을 분석. 어떻게 사내 불통의 문제 가 도덕적 해이와 만나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 부정 스캔들로 발전했 는지 설명. 8. 최후의 주가 조작: 피글리위글리의 사례 1923년 주가 조작의 한 형태인 코너(corner)를 마지막으로 감행했던 소매점 체인 피글리위글리의 소유주 손 더스의 일화. 규제가 미비했던 20세기 초 주식시장의 혼란상을 묘사한다. 9. 인생 2막: 데이비드 릴리엔설 뉴딜정책을 이끌었던 정부 고위 관료 데이 비드 릴리엔설이 퇴임 후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해 주주의 이익과 공익을 함께 실현하고자 노력한다는 스토리. 11. ‘개도 물기 전엔 모른다’: 이직과 영업비밀 타사로 이직을 결정한 직원과 영업비밀을 이유로 이직을 제지하려는 굿리치사 간 소송 과정을 묘사. 직업 선택의 자유와 영업비밀 보호 간의 딜레마와 해결 원칙을 제시 12. 영국 파운드화를 옹호함 1960년대 중반 세계 금융체제를 뒤흔든 파운 드화 위기 때 금융질서를 지키려는 각국 간 공조와 파운드화 평가절하를 둘 러싼 미묘한 갈등 드라마.
최정동 기자
빌 게이츠(59)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 자는 소문난 독서광이다. 성공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오늘날 나를 있게 한 것은 내가 태어난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라고 답 한 건 널리 알려져 있다. 독서광답게 그는 수 시로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IT(정보 기술)업계의 거목이면서도 “훌륭한 독서가 가 되지 않고서는 참다운 지식을 갖출 수 없 다”고 말해 온 그다. 올해 3월 세계 최대의 지식강연회인 테드(TED)에 부인인 멜린다 여사와 함께 참석했던 그는 주최 측으로부 터 “테드의 청중들이 읽어볼만한 책을 추천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외가 함께 10권의 책을 추천했다. 책을 추천하면서 그는 “지금 내가 추천한 책들은 내 생각에 심대한 영향을 줬으며 실 제 업무에서도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가 장 좋아하는 책들을 추천하는 게 여러분에 게도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 다. 빌 게이츠는 테드에서 뿐 아니라 ‘올해 빌 게이츠가 추천한 책들(Bill Gates’ best books of year)이란 이름으로 양서를 추천 해 왔다. 그는 빌 게이츠@생각의 속도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빌 게이츠가 테드에 서 권한 책은 아래와 같다. 책 소개와 함께 추천 이유도 빌 게이츠 스스로 달았다. (한 국어 번역서가 없는 경우는 책의 원 제목을 그대로 소개했다.).
①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잔화심리학의 대가인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 교수의 저작이다. 책에서 저자는 인류가 수
천년에 걸쳐 덜 폭력적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했다. 빌 게이츠는 이 책에 대해 “세상을 위한 긍정적인 성과들을 어떻게 이뤄낼지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제공했다”며 “끝까지 정 독해 볼만한 책”이라고 평했다 ② Getting Better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글로벌성장센 터의 찰스 케니 선임연구원의 책이다. 케니 는 책에서 개도국에 대한 지원이 어떤 결과 를 낳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백신 이나 깨끗한 침구처럼 작은 것들이 지원된 덕에 아프리카의 최빈국이라도 삶의 질은 비 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③ 안 나 와디의 아 이들(B e hi n d t h e Beautiful Forevers)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캐서린 부가 인도 뭄 바이의 빈민가인 안나와디에서 4년간 직접 머물며 도시 슬럼가의 비통한 현실을 그려냈 다. 매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삶 속에서도 희망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아이들 의 이야기를 담았다. ④ The Man who Fed the World 개발도상국을 식량 위기로부터 구해낸 유 전학자 노먼 볼로그 박사를 소개한 책이 다. 빌 게이츠 스스로 볼로그 박사를 일컬
어 “나의 영웅 중 한 명”이라고 칭송했다. 볼로그 박사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수확 량을 10배 가량 늘린 새로운 밀을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개도국 식량 위기 해소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⑤ Energy Myths and Realities
빌 게이츠는 책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바 클라브 스밀(Vaclav Smil)에 대해 “생존 작 가 중 가장 좋아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책은 미래의 에너지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오해들을 바로잡는 데 주력한다. 예를 들어 ‘원유가 고갈되면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 하 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준다. 빌 게이츠와 별도로 그의 부인인 멜린 다 여사도 다섯 권의 책을 추천했다. 멜린 다 여사가 추천한 책은 The Last Hunger Season, However Long the Night, In the company of the poor, 디자인 에 집중하라(Change by design), 평화 는 스스로 오지 않는다(Mighty Be Our Powers)이다. 평소 ‘빌 앤 멜린다 재단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통해 활발하게 사회 참여 활동을 해온 멜린 다 여사답게 추천서 중 ‘디자인에 집중하 라’를 제외한 네 권은 가난과 여성문제 등 을 다룬 것이다.
12 People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멥대 총장
“통일 돼도 북 엘리트 몰락 없다” 확신줘야 한국에 도움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 정권이 갑자 기 붕괴하면 그 부작용은 엄청납니다. 우선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당과 군부의 핵심 엘리 트들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17일 방한한 카자흐스탄 키멥대 방찬영 (78) 총장은 서울 양재동 자택에서 중앙 SUNDAY와 인터뷰를 하며 먼저 통일 문제 를 꺼냈다. 미국 경제학 박사 출신이지만 그 는 북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미 샌프란시스 코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아시아문 제연구소장을 맡았다. 그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북조선의 대외개방 개혁정책 과 합리적 대북정책의 모색 등 북한 관련 책 도 여럿 펴냈다. 1990년대에는 북한의 나진· 선봉 경제특구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김 용순 노동당 비서를 만나 북한의 경제개혁 방안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또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분리·독 립한 카자흐스탄의 경제시스템 개혁을 주도 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 작업 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남북통일에 접목시키고 싶다고 했다. 방한 기 간 중 그는 26일 서울 양재동 K서울호텔에 서 ‘남북의 융합적 통일 모델을 준비하라’는 주제로 강연한다(주최 키멥대 한국교류센터 070-4010-2299).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는. “김정은 정권은 5~10년 안에 무너질 것으 로 본다. 현재 북한의 상황을 볼 때 최고 지도 자는 암살을 당하거나 자연사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김일성부터 이어져 온 북한의 가 문통치, 유훈통치는 끝나게 될 것이다. 북한 은 그동안 유훈통치를 통해 정권의 정통성을 담보해왔다. 하지만 김정은이 사망할 경우 더 이상 유훈통치는 북한 인민들에게 설득력 있 게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생필품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일 플랜이 있다면. “북한의 붕괴에 대비해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우선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의 엘리트들이 몰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통일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변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는 김정은 정권 붕괴 후 북한에 당과 군이 참여하는 과도정부가 수립될 경우 한국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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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이자 북한 전문가인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멥대 총장은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적대관계 탄한 평화적 통일을 일궈낼 가능성이 커진 에서 협력관계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또 북 다.” 한의 비핵화를 완료하고 119만 명에 달하는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들의 역할 북한군의 규모를 10만~15만 명으로 대폭 줄 이 중요한데. 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로 인한 유휴인력은 “현재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북한의 철도·항만·전기시설 등 인프라 건설 나라는 중국이다.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 친 분야로 돌려야 한다. 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 통일비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 만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한반도 통일로 인 만 당장 10년간 3000억 달러(약 310조원) 정 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한 도가 필요하다. 연간 300억 달러 이상을 지 반도가 완충지대(Buffer Zone)로서의 역할 원한다면 군 병력 축소로 일자리를 잃은 사 을 잃는 것이다. 이럴 경우 중국과 미국이 압 람들과 일반 인민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록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조성될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일본이 북한에 지불해 수 있다. 통일 후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남는 야 할 전후 배상금도 재원 중 일부가 될 수 다면 중국으로서는 최악이다. 중국은 결코 있다. 그리고 나진·선봉의 경제특구를 해주· 이를 원치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중 남포·원산 등으로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미국의 정책에 매우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외국 자본은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 미국 주도의 미사일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경제특구를 확대해 방어(MD) 체계도 그중 하나다. 비 / 천둥 눈 비 / 소나기 등 눈 또는 비 흐림 흐려짐것이다. 흐려져 흐린 후 갬 야 하는 이런비통일 프로세스가 자리 또 김정은 정권 붕괴 후 북한에 과도정부가 잡을 경우 남북한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 것 수립될 경우 중국은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 이며, 북한 인민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돼 순 이다.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북·
김정은 정권 5~10년 내 무너질 것 과도정부 수립되면 한국이 지원해야 119만 북한군, 10분의 1로 감축 필요 유휴인력은 인프라 건설로 돌려야 통일비용 당장 10년간 310조 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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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활동했다. 91년 카자흐스탄 대통령 경제특별보좌 관과 경제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자본주의 체 후갬 비후갬 제의안개 정착에 기여했다. 92년에는눈카자흐스탄의 인재
양성을 위해 키멥(KIMEP)대를 설립해 중앙아시아 의 명문대로 기본 사이즈키워냈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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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탄실씨 별세, 원남희(고려대 의과대학 토요일(1일) 교수)씨 모친상, 윤석웅(사북한국병원장)·이 희인(치과의사)씨 장모상=18일, 고려대 안암 (5/1) (4/-1) (9/1) 병원 장례식장, 발인 21일 오전(8/2) 7시, 02-9234442 (9/2) (8/3) ^이용곤(서일대 설립 이사장)씨 별세, 정연 (11/7) (8/6) (미래교육연합 고문)·문연(학교법인 세방학 (10/4) (8/2) 원 이사장)·무연(서일대 교수)·성연(서일대 홍보과장)·계연(농협은행 대리)씨 부친상, (11/9) (10/6) 한지광(KR상역 대표)씨 장인상=18일 오전 10시30분,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8 시, 02-3010-2631 4일(화) 5일(수) 6일(목) ^정복례씨 별세, 강현직(협성대 교수, 전 아 시아경제 논설실장)씨 모친상, 규선(STX중 공업 대리)·유현(동아일보 산업부 기자)씨 조모상=19일 오전,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103 호, 발인 21일 오전 7시, 02-2030-7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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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립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등에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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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찬영 1964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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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0일 일요일, 음력 2014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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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관계를 볼 때 과연 양국 엘리트 집단이 어 떤 방식으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통일의 방향 이 결정될 수도 있다. 중국과 다양한 분야에 서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평화통일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하 자는 데는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준비위에 대해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조직은 정치 적인 단체가 아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범 민족적인 사명을 띠고 있어야 한다. 벌써부 터 보수와 진보 인사의 위원 비중을 놓고 싫 은 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 우리 사회의 통일 을 바라보는 시야가 아직 좁은 것 같다. 통일 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이 필 요하다. 준비위 위원들에게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또 준비위가 통 일정책과 관련된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무대 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그럼 어떤 대안이 있나.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구도를 볼 때 통일은 한국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으론 얻을 수 없다.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역할은 한반도 통일에 절대적이다. 한국의 시각으로 만 통일 문제를 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준 비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주변 강대국들의 시각을 그들의 입장에서 대변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미국·중국·러시 아·일본 등에는 적지 않은 한반도 전문가들 이 있다. 우리 동포 중에도 훌륭한 학자들이 많다. 이들을 준비위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 직하다고 본다. 이럴 경우 국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준비위의 구성과 역할에 대한 논란도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통일 플랜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정치·경 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골고 루 초빙돼야 한다. 통일은 결국 단순히 국토 의 통합이 아니라 두 개의 사회가 하나가 되 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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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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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노벨상 수상자들이 보는 미래 64회 맞은 독일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 참관기 자궁경부암 발병 HPV 발견 하랄트 추어 하우젠
과학적 성과 모든 사람이 누려야
바이오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이렇 게 1주일을 보낼 수 있으면 어떨까. 우선 오전 7시에 시작되는 조찬.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왠지 낯 익다. 사회자가 DNA·
©DAAD/Nicole Markus-Trippel
하랄트 추어 하우젠(78사진)은 독일의 바 이러스 학자다. 1983년 일부 인유두종바이 러스(HPV)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는 사 실을 밝혀내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 았다. 그 덕분에 값싼 팝스미어(질세포진 검 사)로 미래의 자궁경부암 발병을 미리 알 수 있는 조기진단법과 95% 예방이 가능한 백 신 개발이 이뤄졌다. 하이델베르크대 의대 교수와 세계적인 암 연구소인 독일암연구소 (DKZF) 고문으로 일하다 2003년 은퇴해 암 관련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노화·암 전문가라고 소개한 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블랙번. 2009년 노벨 생리의 학상 수상자다. 그는 마주앉은 학생들을 로 논란이 있는데. “시장의 문제다. 기초연구를 통해 백신 개 발이 가능해졌는데도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잠재적 환자를 구 하기 위한 사회적인 결단과 지원이 필요하 다. 적절한 가격을 유지해 줘야 제약회사에 백신 개발을 독려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
-HPV가 암을 일으키는 과정을 밝혀 유방 암에 이어 여성암의 2위를 차지하는 자궁경 부암의 공포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켜준 구세 주 과학자로 통한다.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사람들을 질병에 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어 기쁘다. 그런 것 이 연구자의 보람이다.” -과거에는 자궁경부를 질내경으로 살펴 HPV 감염시 나타나는 얼룩을 확인하면 그 자궁경부암 일으키는 HPV 발견 부위를 전기로 지져 발병 가능성을 차단했 조기진단법과 백신 개발 이끌어 는데. “돈 때문에 접종 못받는 이 없어야” “기초연구를 통해 HPV16, HPV18 등 HPV의 일부 종류가 자궁경부암을 일으킨 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임상 분야에서 그러 한 차단법이 나왔다. 하지만 백신이 개발된 는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에 400달러 이상이 지금은 예방접종이 훨씬 유리하다. 수술은 들어 사회문제화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70% 정도의 발병 차단 효과만 있을 뿐인데 안타깝다. HPV의 자궁경부암 유발 과정을 백신은 예방효과가 95%에 이른다. 세계보 밝혀낸 과학자로서 백신이 누구나 이용할 건기구(WHO)가 자궁경부암을 ‘근본적으 수 있는 가격에 전 세계에 퍼져 인류가 이 병 로 1차 예방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암’으로 을 정복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과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자들이 길을 열어놓았는데도 경제적 이유 -자궁경부암은 현재 백신으로 예방이 가 로 백신 접종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능한 유일한 암이다. 하지만 백신 가격 문제 국제적·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선천적 면역 발현과정 규명 브루스 보이틀러
-신경과 전문의인 임상의사인데 기초의학 연구를 해 온 이유는. “나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생물 학을 전공하고 시카고 의대에 진학했다. 아버 지가 의대 진학을 권유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생물 연구를 즐겼는데 평생 연 구만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의 학은 폭이 넓으면서 깊이도 있는 학문이다. 현실에서의 과학에 대한 수요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의학 공부는 내게 기 초과학을 연구하는 눈을 넓혀줬다.” 그는 월반으로 대학에 조기 진학했다. 18 세 때 이미 학부를 졸업하고 23세 때 의대를 마쳤다. -어려서 어떻게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나. “혈액학자이자 유전학자인 아버지의 실험 실에서 어려서부터 연구를 도왔는데 그때부 터 생물학에 흥미를 느꼈다. 아버지 연구실 말고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기초의학인 생물학과 의학을 어떻게 접 목했나. “의대 교수로서 분자생물학과 유전자 분 석을 통해 염증 및 선천면역 분야 연구를 개 척하게 됐다. 기초과학을 의학과도 접목했 다. 쥐의 암 세포를 연구하면서 염증과 암과 의 관계를 연구했다. 이러한 분자생물학 연
©DAAD/Nicole Markus-Trippel
의학은 과학의 필요성 알려주는 역할 브루스 보이틀러(57사진)는 미국의 면역학 자이자 유전학자다. 선천적인 면역이 활성화 하는 기전을 밝혀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 센터의 숙주방어유전학연구센터 소 장이다.
말로만 듣던 과학 대가들과 1주일
구를 통해 류머티스성 관절염, 희귀병인 크 론병, 건선 등을 치료하는 약물도 개발했다.” -기초와 임상을 넘나들었다. “그러다 루푸스병 등 자가면역 질환이 감 염에 의한 염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 하게 됐다. 이런 연구를 통해 인간의 선천성 면역을 파헤치게 됐는데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게 됐다.”
상대로 ‘과학과 여성’을 주제로 열변을 토 한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서 말이다.
린다우=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오
전 9시부터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2013년 노벨 생 리의학상 수상자인 랜 디 셰크먼으로부터 바 이오의 기본인 유전자와 단백 질, 2011년 수상자인 줄스 호 프먼으 로부터 린다우 인간과 파리의 선 천성 면역력, 2005 년 수상자인 베리 마셜로부터는 헬리코박터에 대한 특강 등 을 각각 30분씩 연속으로 8차례 듣는다. 점심 식사 후 오후 3시30분부터는 2013 년 수상자 아리에 와셸과 2007년 수상자 마틴 에반스 등 7명 중 한 명을 골라 연구 분야의 궁금증부터 실험 과정의 효율을 높 이는 방법, 과학자로서의 길, 진로 상담 등 다양한 분야의 대화를 90분 동안 나눈다. 오후 5시30분부터는 2004년 수상자인 아 론 시샤노버의 ‘의학연구에서의 생물학’, 1996년 수상자인 롤프 칭커나겔의 ‘대규 모 질병 유행의 위협’ 등 3가지 주제 중 하 나를 골라 1시간 30분간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다. 마스터 클래스는 35세 이상의 젊은 연구자들이 주제에 맞춰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노벨상 수상자 및 다른 참 석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행사다. 오후 7시30분부터는 노벨상 수상자들 과 나란히 앉아 음악 공연을 들으며 뷔페 식사를 즐긴다. 과학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자리다. 사이사이에 해양생물학을 비롯한 독특 한 분야의 연구 경향을 소개하는 짤막한 프 레젠테이션도 등장한다. 뿐만 아니다. 최신 과학 토픽에 대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강의 를 듣는 중간중간 휴식시간에는 신문·방송 에서만 보던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줄을 서서 커피를 따라 마신다. 장애인 학생에겐
38명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참가
생물학자로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아 각국 과학도 600여 명과 토론상담 닌 화학상을 받은 이다 요나는 최신 과학토 픽을 발표하는 말미에 가사와 육아도 함께 과학의 새 길 개척 위한 영감 찾아 하는 여성과학자로서 어려움을 털어놨다. 전쟁 상처 극복하려 1951년 시작 그는 “나는 노벨상보다 내 손녀가 손으로 적어 준 ‘올해의 할머니 상’이 더 좋다”고 말해 좌중을 한바탕 웃겼다. 앞줄에 서 있던 노벨상 수상자가 직접 커피 를 따라 주기도 한다. 수상자와 함께 사진을 노벨상 수상자가 직접 커피도 따라줘 찍거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질문은 물론 젊은 과학자들에겐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 대화도 가능하다. 나란히 앉아 저녁을 함께 인 이런 일정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 벌어진 먹고 한 방에 모여 과학 공부나 실험 과정에 일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4일까지 독 서 생긴 의문점도 함께 물어본다. 노벨상을 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소도시 린다우에서 받게 된 과정에 대한 생생한 증언도 듣고 과 열린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Lindau 학연구자로서 고민 상담도 할 수 있다. 세포 Nobel Laureate Meeting)’의 하루다. 올 해로 64회를 맞는 이 행사에는 38명의 노 벨상(올해는 대부분 생리의학상) 수상자 들과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찾아온 600 여 명의 젊은 연구자들(35세 이하의 자연 과학 전공학생),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 행사의 집행위원장인 베티나 베르나 도테 여백작은 “이 행사는 세대와 문화 차 조직위원장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이 연설 이를 뛰어넘어 과학자들이 서로 열린 교류 을 하고 있다. 그는 ‘교육하고 영감을 얻고 연결 를 이루는 게 목적”이라며 “배움에 열심이 하라’라는 행사 정신을 강조했다. 고 새로운 생각에 마음이 열려 있는 학생들
세계의 연구중심국가 꿈꾸는 독일
지난해 R&D 투자에 105조원 다국적 과학자 불러 기초과학 연구 위해 임상 공부 신경과 의사 된 뒤 선천면역 연구 기초과학·의학 결합해 약품 개발
-영어 이름(Beutler)이 독특한데 어떻게 읽는 게 정확한가. “내 성은 영어식이 아닌 독일식으로 보이 틀러라고 발음한다. 과학의 나라 독일 출신 이민자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의 조부모와 부모는 독일 베를린에서 살 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전후 복구가 채 끝나지도 않은 1951년부터 노벨상 수상자 초청으로 국제학술교류와 과학에 대한 열정을 복돋웠던 독일. 지금 의 연구 상황은 어떨까. 독일은 현재 유럽은 물론 세계최고 수준 의 연구 업적을 자랑한다. 투자 규모부터 다 르다. 독일은 지난해 755억 유로(약 105조 2500억원)를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 다. 이 가운데 67.7%가 기업, 17.8%가 대학, 14.5%가 비영리·공공 연구소에서 쓰여졌다. 기초과학 연구는 대학과 비영리·공공 연 구소가 주로 맡고 있다. 독일은 연구의 나 라를 지향하는 국가답게 공공모금으로 운
영되는 800여 곳의 연구소가 가동 중이다. 연구 인력도 56만7000명에 이른다. 전국 단위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100여 개의 네트워크나 클러스터가 있다. 유럽연합(EU)이나 다른 나라와 공동 운 영하는 곳도 40여 곳이나 된다. 공동 연구 를 통해 시너지를 얻어 연구 생산성을 높이 자는 취지다. 독일에서 이제 기초연구라고 하면 곧 국제공동연구, 해외 인재를 불러모 아 함께 작업하는 협력연구가 대세다. 독일 연방정부가 ‘아이디어의 나라 독일에서 연 구하세요(Research in Germany, Land of Ideas)’라는 캠페인을 펼쳐온 결실이다.
어느 연구소에 가도 해외에서 온 연구자 들이 수두룩하다. 튀빙겐대 연구동 입구의 벽에는 세계 지도가 걸려 있다. 연구원들 은 지도에 나오는 자신의 고향에 핀을 꽂게 돼 있는데, 지도는 이미 꽂아둔 핀으로 빽 빽했다. 한국에도 1개가 꽂혀 있었지만, 그 직원은 떠나고 없었다. 개별 연구소의 수준도 높으며 과감한 과 제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의 연구도시 튀빙겐에 있는 자연의과학연구 소(NMI)는 나노단위로 세포 활동 조절을 연구하는 곳으로 이름 높다. 이 연구소의 율리아 쉬테 박사는 “특정 장기의 기능과
Special Report 15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창조 DNA 전수의 현장
에이즈바이러스(HIV) 첫 규명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
돌연변이로 에이즈 재창궐 가능성
3 1 199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롤프 칭커 나겔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왼쪽)가 지난달 30 일 린다우 옛 시청에서 열린 ‘대규모 질병 유행 의 위협’ 주제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발표 학생 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2 행사장인 인젤할레의 로비에서 노벨상 수상자 와 학생들이 격의 없이 커피 타임을 갖고 있다. 3 지난달 30일 아침에 열린 ‘여성과 과학’ 주제 의 조찬 강좌. 린다우 모임은 오전 7시 이같은 주 제 강연으로 시작한다. 1
이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 해 영감과 꿈을 얻어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 해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린다우 정 신은 ‘교육하고 영감을 얻고 연결하라’라 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며 “젊은 연구자들 이 학술 교류를 통해 재능과 새로운 통찰력 을 최대한 키워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린다우 행사는 지금의 독일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게 우연이 아니라 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독일학술 교류처(DAAD)의 마케팅 담당 루트 안드 레는 “독일 연방정부 교육연구부는 2006 년 11월부터 ‘아이디어의 나라 독일에서 연구하세요(Research in Germany, Land of Ideas)’라는 캠페인을 앞세워 국제교류 와 협력을 통한 과학연구와 지식산업을 강 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200개국 이상에서 연구자·과 학자뿐 아니라 과학정책 담당자, 투자자, 미디어 종사자 등이 매년 100만 명 넘게 독 일 과학계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입국 의 살아 있는 사례다. 린다우의 모임에 참 석하기 위해 멕시코에서 온 생의학 박사 라 우라 바르가스프라다는 “과학에 대한 열 정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이자 과학자로서 자신의 미래상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교
류행사”라고 평가했다. 청년에 용기 주려 두 의사가 창설 이 행사는 독일이 전화의 상처에서 미처 회 복되지 못했던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 독일의 남쪽 끝, 보덴 호숫가의 항구도 시 린다우는 호수 건너 스위스·오스트리아 와 마주보는 국경도시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교적 피해를 덜 입었다. 야간에 불 을 훤히 켜두면 연합군 폭격기 조종사들이 스위스인 줄 알고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 다고 한다. 1951년 이 도시의 의사인 구스타프 파라 데와 프란츠 카를 하인은 전쟁의 상처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과 학입국의 꿈을 심어주기 위한 정기 모임을 구상했다. 전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매년 불러 모아 독일 학생들과 만나게 해주 면 과학지식의 교류를 하면서 젊은 과학 전 공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전쟁의 혼란 속에 독일은 과학 교류 에서 오랫동안 제외돼 세계적 흐름을 놓치 고 있었다. 패전 직후 먹고 살기도 힘든 시 절에 과학 전공자들의 사기를 북돋우면서 최신 과학기술을 흡수하게 할 이런 아이디 어를 낸 것이다.
[©Lindau Nobel Laureate Meeting]
두 의사는 마침 인근 성에서 살고 있 던 스웨덴 백작 레나르트 바르나도테 (1909~2004)를 찾아가 후원을 부탁했다. 공작의 장남인 그는 평민과 결혼하는 바람 에 작위가 강등되고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 었다. 그는 1905년 제1회 노벨상을 시상한 구스타프 5세 스웨덴 국왕의 손자라 노벨 상과 인연이 있었다. 백작은 좋은 아이디어 라며 이를 받아들여 자신의 성에서 가까운 린다우로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청했다. 초 청 받은 수상자들은 젊은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독일 과학의 재건을 도울 기회라며 흔 쾌히 참석했다. 현재는 매년 특정 분야에서 30여 명의 수상자와 600여 명의 젊은 연구자들을 초 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70년대부 터는 경제학상 수상자도 때때로 초청하다 가 지금은 과학 분야와는 별도로 2년에 한 번씩 교류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54년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 초대 집 행위원장을 맡았던 레나르트 백작은 89년 물러나고 부인인 소냐 베르나도테 백작부 인이 뒤를 이었다. 2004년 백작부인도 세상 을 떠나자 딸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 이 자리를 물려 받았다.
모아 시너지 노려
독일 튀빙겐 의대의 카를디트리히 지버트 교수 가 수술용 로봇인 다빈치를 활용한 암 수술을 하 고 있다.
[©DAAD]
반응을 손톱 만한 전자칩에 축약해 각종 실험을 함으로써 실험용 동물이 필요 없는
장기 칩 연구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같은 도시의 허티임상뇌연구소의 마티 아스 융커 교수와 다니엘라 베르크 교수는 분자 단위의 연구를 통해 각각 알츠하이머 와 파킨슨병 정복에 도전하고 있었다. 융커 교수는 “노인 인구가 늘고 있어 알츠하이 머와 파킨슨병에 대한 연구 수요는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 분야에서 활발한 국제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 했다.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는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를 중심으로 5곳에서 EU 차원의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러 나라의 관련 분야 인재를 집중해 다 양한 연구를 하는 것이 시너지를 높인다 는 생각에서 1975년 들어선 국제공동연구 소다. 이곳에선 연구·생활·발표가 모두 영 어로 진행되고 있었다. 과학 연구의 국제 적 중심 역할을 하는 데 영어는 기본이다. 루마니아에서 온 연구자 파울 코스테아는 “이제 기초과학 연구를 개별 나라 단위로 해서는 인력·장비·예산 등 모든 면에서 불 리하다”며 “집중 공동연구로 연구 시너지 를 살려 경쟁력을 높이자 는 게 EMBL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많은 연구와 약물 개발로 이제 에 이즈는 만성병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 다. HIV감염자도 에이즈로 이어지지 않고 삶 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에이즈는 이제 거의 정복된 것인가. “그렇다. HIV감염이나 에이즈는 이제 치 명적인 질병이 아니라 평생 안고 살아가는 만 성병의 하나가 됐다. 유엔은 지난 10년 간 에 이즈 신규 발병이 이전의 3분의 1로 줄었으 며 2030년까지는 완전 퇴치의 희망이 보인다 고 보고했다. 과학자, 그리고 사회적 편견과 싸워 온 사회운동가가 힘을 합치면서 가능해 졌다고 본다.” -이제 에이즈 퇴치를 위해 무엇이 가장 중 요하다고 보는가.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약물을 동시에 복 용해 HIV에 감염되더라도 에이즈가 발병되 지 않도록 돕는 방식으로 에이즈를 줄여 왔 다. 앞으로는 에이즈를 백신으로 미리 막는 게 중요하다. 전 세계를 돌며 이를 강조하고 있다. 질병은 과학의 힘에다 사회적·제도적· 정치적 노력이 보태져야 극복할 수 있다. 최 근 에이즈가 거의 정복될 것 같으니까 백신 접종에 대한 투자가 줄고 있는데 환자는 언 제라도 다시 늘 수 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바이러스는 쉽게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 존의 약에 얼마든지 내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유전자가 변이된 돌 연변이 HIV에 감염된 환자가 주변 사람에게 이를 전파해 나가면 기존 약물로는 통제가 힘들다. 자칫 방심하면 과거처럼 에이즈가 다 시 창궐할 수 있다. 끊임없이 HIV에 대한 연
내성 키운 HIV 바이러스 나올 수도 접종 강화로 인체 면역성 높여야 질병 퇴치엔 과학·사회의 협력 필수
구를 지속하면서 새로운 약물을 계속 개발 해야 하는 이유다. 내성 문제를 극복하지 못 하면 에이즈 정복은 힘들다.” -2012년부터 국제에이즈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어떤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 “에이즈를 퇴치하려면 과학적 연구와 함 께 사회적 활동이 제대로 결합돼야 한다. HIV 감염자나 에이즈 환자가 인간적인 삶을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
면역세포의 작동과정 규명 롤프 칭커나겔
항생제 남용은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 롤프 칭커나겔(70사진)은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로 실험면역학자다. 1996년 인간의 면역 시스템이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내 파괴하는지를 밝힌 공로로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에 들어가 그 안에서 번식한다. 그런데 킬러 T세포는 이렇게 감염 된 세포를 찾아내 파괴함으로써 바이러스가 더 이상 번식할 수 없도록 한다. T세포의 표 면에 있는 수용체가 감염 세포를 찾는 역할 을 한다는 사실과 그 기전을 밝힌 것이 그의 공적이다. 그는 사이토톡신(세포에 독성이 있는) T세포 연구의 개척자로 통한다. 그가 개척한 분야는 바이러스성 질환은 물론 암 정복에도 유용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T세포의 역할을 규명함으로써 현대 면역 학의 기초를 닦았다. 면역학은 어디까지 발 전할 수 있을까. “면역학과 바이러스학이 더욱 발전하면 인 체에 침범한 바이러스를 소멸시키는 것은 물 론 암도 막는 등 다양한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암 백신을 다양하 게 개발하는 데 최근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수많은 연구로 인류는 감염질환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러 가지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약이 듣지 않는 수퍼 박테리아, 즉 다제 내성균이 많아져 인간과 미생물과의 관계가 다시 역전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어 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건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인간은 과 학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으면 여기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는 자연과 생명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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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AD/Volker Lannert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67사진)는 1983년 에 이즈를 일으키는 HIV(인면역결핍바이러스) 를 발견한 공로로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면역학자 겸 바이러스학자다. 과학자로 서의 업적은 물론 에이즈 퇴치를 위한 사회운 동가로서도 유명한 그를 린다우에서 만났다.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 대비해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성균 문 제로 앞으로 결핵을 비롯해 거의 사라졌던 질 병들이 새롭게 창궐할 가능성이 있다.” -의사 출신으로 기초연구 분야에서 평생 일해 왔다. “임상연구에 탄탄한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 기초연구를 하는 의학자의 힘이다. 면역 학과 바이러스학 등 기초 연구에 꾸준히 투
암 백신 등 면역학 지평 넓어지지만 내성균 탓에 결핵 등 다시 번질 수도 지식 안주 말고 끊임없이 연구해야
자하면 인류는 보다 행복한 미래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행사장에서 이스라엘 출신 노벨상 수상 자 아다 요나 박사의 강연을 경청하던데, 어 느 내용에 관심을 뒀나. “다른 사람들의 강연을 들으며 최신 연구 경향을 계속 따라가는 건 학자의 의무다. 아 까 조금 늦게 들어갔더니 자리가 없어 맨 뒤 에 서서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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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다툼 없는 곳으로
찌그러지고 불탄 말레이시아 여객기 잔해 위에 누군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야생화를 올려놓았다. 러시 아제 미사일이 격추시킨 것으로 알려졌지만 누가 미사일을 발사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지역은 친러시 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어 사건의 조사를 맡은 국제조사단이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 군 수중에 들어간 여객기의 블랙박스가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도네츠크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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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브레턴우즈 체제 70주년 기축통화 달러의 고백
“위안·유로, 자네들 그동안 많이 컸지만 아직은 멀었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나를 소개할까 하네. 가로 15.5㎝, 세로 6.5 ㎝. 어른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만큼 몸집이 작지. 재질도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면(綿) 섬유이지. 그래도 전 세계인들은 나를 숭배 하지. 어떤 이는 나를 미국이 낳은 최고의 상 품이라고 불렀어. 그래 나 달러일세. 앞면 에 미국 대통령 얼굴이, 뒷면에 ‘In God We Trust(우리는 신을 믿습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미국의 공식화폐 그 달러 말일세. 요즘 날 두고 말이 많더군. 간만에 나도 속 좀 털어놔야겠네. 7월은 내 탄신월이니 생일 선물 주는 셈 치고 좀 들어주게. 난 사실 두 번 태어났어. 미국 공식화폐로 지정된 게 1785년 7월 6일, 브레턴우즈에서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얻은 건 1944년 7월 22 일. 그러고 보니 모레가 기축통화로 다시 태 어난 지 70주년 되는 날이군. 칠순 기축통화 의 얘기를 들어봐. ‘팍스 달러리움 (Pax Dollarium)’의 영광 브레턴우즈 얘기가 나오니 기분이 좋아지는 군. 그때 얘기 먼저 하지. 2차대전이 막판으 로 치달을 때였지.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 우즈(Bretton Woods)에 44개국의 대표들이 모였어. 1930년대의 경제적 혼란이 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졌다는 반성 아래 전후 통화, 무 역 안정 같은 국제경제 질서를 새로 구축하 자며 모인 거지. 7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했지 만 사실 영국과 미국의 양자구도였다네. 영 국이 자랑하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 와 미국 재무부 차관보 해리 덱스터 화이트 가 각각 내놓은 안을 두고 3주간 격론을 벌였 다네.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이 이미 초강대국이 된 상태였으니 결론은 뻔할 수 밖에. 새로운 국제통화를 창출하고 변동환 율제를 도입하자는 케인즈 주장은 힘을 잃었 지. 그래서 나온 결론이 미국 달러만 금과 일 정한 비율로 바꿀 수 있고, 각국 통화가치는 달러와 고정시키는 거였지. ‘금 1온스=35달 러’로 정해졌어. 숫자가 인쇄된 섬유 조각에 불과했던 달러가 금으로 가치를 보장받으면 서 세계 경제의 수퍼 파워가 된 거야. 당시 미 국이 세계 산업 생산의 절반을 맡았고, 세계
금 보유고의 3분의 2를 확보한 덕이었지. 국 제통화와 금융제도 안정을 위해 국제통화기 금(IMF)과 세계은행(WB)도 설립됐지. 이런 체제는 27년간 잘 돌아갔어.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어. 금이 화폐 가치를 보장하려면 보유한 금의 양만큼만 달러를 발 행해야 하는데 이게 골치였어. 세계경제가 급 성장하면서 달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아졌 는데 금은 그만큼 늘지 않았거든. 더구나 1960 년대 후반부터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 고 베트남 전쟁을 치르기 위해 달러 찍는 윤전 기를 최고 속도로 돌려 댈 수밖에 없었지. 결국 1971년에 닉슨 대통령이 “달러를 금 으로 바꾸어주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어. 형식상으로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한 거 지. 뭐 그래도 버틸 방법은 있었다네. 금만큼 이나 중요한 원유가 있었으니까. 1975년이었 지.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를 수출할 때 달 러만 받겠다고 동조해줬다네. 원유는 산업화 의 필수품인데 거래를 하려면 달러가 필요하 니 세계 각국이 달러를 확보하지 못해 안달 이 났지. ‘금 달러’가 아니라 ‘석유 달러’시대 가 왔어. 이걸 ‘브레턴우즈 체제 2.0’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돌아보면 참 좋은 시절이었지. 세계에 달 러가 돌게 하려면 미국은 항상 경상수지 적 자를 봐야 했지. 미국에서 돈을 풀어줘야 했 거든. 미국이 수출보다 수입을 많이 해서 세 계 곳곳의 공장들이 돌아간 거야. 국제수지 적자, 그건 문제가 안 됐다네. 기축통화 좋다 는 게 뭔가. 다른 나라가 달러를 한 바구니 쌓 아놔도 미국이 그만큼을 더 찍어내면 그 나 라 돈 가치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미국의 부 채 부담도 절반으로 줄었지. 1달러어치의 종 이와 잉크를 사용해 10달러짜리 지폐를 찍어 내면 9달러의 이익을 보는 ‘주조차익(시뇨 리지) 효과’도 짭짤했지. 게다가 다른 나라가 상품을 수출해 번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서 보유하기 때문에 결국 달러는 고스란히 미 국으로 되돌아 왔지. 그러니 샘 많은 일부 경 제학자들은 “미국이 기축통화 지위를 앞세 워 세계의 물건을 공짜로 사 쓴다”고 열을 올 리더군. 그래 인정하네. 세계 경제 질서를 내 가 주도한다고 해서 ‘팍스 달러리움 (Pax Dollarium)’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으니
달러가치 떨어지고
120.53
달러 인덱스 *미국 교역대상 중 주요 6개국 통화와 비교한 달러화의 평균 가치
1971년 1월 4일
1980년
1944년 금값 연동해 기축통화 등극 세계로 퍼지며 금융 질서 주도 위안 등 도전 거세 위상 흔들리지만 미 경제력·군사력 여전 건재할 듯
마음껏 누린 건 사실일세. 그런데 요즘은 퍽 힘들다네. 내 위상이 예 전만 못하다고 많이들 수군거린다지. 미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전체의 20% 남짓한데 세 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의 비중은 70%에 이 른다고, 한마디로 너무 많이 풀렸다고 말들 이 많더군. 그런데 돈이 풀려야 세계 경제가 돌아갈 거 아닌가 말일세. 미국이 막대한 경 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건 운명이야. 적자 국이 있으면 흑자국도 생기는 법일세. 중국 등 신흥국은 엄청난 흑자를 올려. 이게 글로 벌 불균형(imbalance) 이거든. 불균형이 심 해지면 주기적으로 금융시장이 위기에 빠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런 문제 때문 에 발생한 거라는 분석이 많아. 이 말은 단일 기축통화는 항상 위기의 씨앗을 간직하는 시스템이란 뜻이지.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건 당연한 거야. 2008년 금
1990년
융위기 때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달러 단일 지배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 (新)브레턴우즈 체제(브레턴우즈 체제 3.0) 논의를 하자고 합의한 게 대표적이야. 기축통화 수명은 100년 안팎 선배 기축통화들의 운명을 보니 100년 안팎 이면 수명을 다했더군. 15세기 말 포르투갈 화폐가 약 80년, 이후엔 스페인 화폐가 110 년, 해가 지지 않을 것 같던 영국 파운드도 105년을 지배하는데 그쳤지. 나도 그래서 걱 정이야.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네. 기축통 화 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지. 우선 돈을 풀어 적자를 봐도 버텨낼 체력 이 있느냐고. 80년대 일본 경제가 한창 좋던 시절 엔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노렸지만 실 패했잖아. 수출을 많이 해 돈을 벌어들이는 나라는 기축통화국이 되기 어렵다네. 유로
브레턴우즈 체제 탄생시킨 두 전설
세계적 학자 케인즈와 가난한 이민자 화이트의 승부 <영국>
김종윤 기자 yoonn@joongang.co.kr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는 날씨가 선선 하고 건조해서 휴양지로 인기 높은 곳이다. 1944년 전 세계 44개국 700여 명의 대표들이 마운트워싱턴 호텔에 모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금융질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모임의 화제의 인물은 영국 대표로 참석한 존 메이너드 케인즈였다. 고용 이자 및 화폐 에 관한 일반 이론등의 책을 써 세계적인 경 제학자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지출을 확대해 고용을 일으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정부가 통화 및 재정정책 을 쓰는 밑바탕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 국 정부는 이런 케인즈의 유명세와 지식을 활 용해 미국의 독주를 막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케인즈에 비해 무명 이었다. 당시 미국 재무부 차관보였던 그는 미 국 대표로 회의에 참석했지만 알아 주는 사람 이 드물었다. 하지만 화이트는 매우 유능한 사 람이었다. 1892년 러시아 이민자 부부의 7남 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집안이 가난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차 대전 때 자원 입대했다. 전쟁이 끝나자 화이트는 참전용사 지원프로
<미국>
국제금융질서 주도 놓고 대립 회담 후 케인즈는 건강악화로 사망 화이트는 소련간첩 몰린 뒤 돌연사
존 메이너드 케인즈
해리 덱스터 화이트
그램 덕에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 다. 경제학 박사학위는 하버드대학에서 받았 다. 그의 나이 38세 때였다. 화이트는 위스콘 신주의 작은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잠깐 한 뒤 재무부에 취직하게 된다. 당시 재무부장관이 었던 헨리 모겐소가 화이트의 능력을 알아 봤 다. 화이트는 승승장구해 재무부장관 보좌관 겸 차관보에 오른 뒤 브레턴우즈 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석하게 됐다. 화이트는 케인즈에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케인즈를 압도했다고 볼 수 있다. 케인즈는 금 본위제도를 ‘야만의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 나라가 금을 너무 많이 보유하면 국 제적으로 균형이 깨져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 진다고 보았다. 금이 많은 나라가 한꺼번에 금 태환(금을 돈으로 바꾸는 것)을 요구하면 국 제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케인즈 는 금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국제통화단위 (방코르)를 도입하고, 세계중앙은행을 설립 하자고 제안 했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금이 많은 나라였던 미국은 케인즈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타협책으로 화이트는 달러화만 금과 교환할 수 있고, 다른 주요 통화들은 달러에 대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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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옐런 vs 앨런
돌발변수
에이프노믹스(Apenomics):불황탈출2
다음 주 preview
옐런 Fed 의장, 이례적으로 SNS·바이오 버블 경고.
누가 왜 쐈는지 불분명한 민항기 피격. 5년 만의 이스
아베노믹스(Abenomics)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에이
우크라이나 리스크 경계경보 가운데, 기업실적 발표
1996년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
라엘 지상군 가자지구 진입. 수니파ㆍ시아파 대치의
브노믹스’의 패러디인 ‘에이프노믹스(Apenomics)’
주목. 윈도XP 종료 수혜주 마이크로소프트(22일)와
라고 시장에 은유적 경고를 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
이라크. 벌처펀드가 뒷다리를 문 아르헨티나 국가디
가 회자 중. 엔저만 반짝했을 뿐, 소득세 인상의 여파
애플· 포드(23일), 페이스북(24일) 등 줄줄이 예정.
장보다 훨씬 미시적. 그린스펀의 수사학, 버냉키의 안
폴트 시비. 각 사안이 국제금융 시각에서는 치명적이
인 물가상승률 2% 상회를 두고 “목표달성”이라고 자
24개월 연속적자 우려 속 일본의 6월 무역수지 발표
액티스 캐피털
개 화법과 대비해 논쟁을 부추기는 옐런 스타일.
진 않으나, 높아진 돌발 빈도에 장외변수 경계경보.
화자찬한 건 코메디. 몽키노믹스로 불리지 않기를.
(23일) 및 미국 6월 내구재 수주실적(25일)도 관심.
아시아 본부장
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한국 상장사들, 배당 늘릴 때 됐다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재계와 증권시장이 기업 사내유보금 과세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최경환 신임 경제부 총리가 기업들이 쌓아놓은 현금을 배당· 투자·임금 등으로 돌리도록 유도하기 위해 필요하면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까지 검 토하겠다고 밝혀서다.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사내유보금이란 게 이미 공장 설비나 토지 등에 투입돼 있 고, 실제 현금 비중은 20~30%에 불과하다 고 항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보금을 배 당 등에 쓰도록 압박하면 오히려 투자가 위축되고, 국내 우량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진 외국인들 배만 불릴 것이라고 주장한 다. 일견 타당하게 들리는 얘기다. 실제 정 부의 사내유보금 과세 방침도 기업들에게 돈을 좀 풀라는 엄포용이지 실행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기업이 자초한 사내유보금 과세 압력 그럼에도 이번 논란은 곱씹어봐야 할 가치 가 충분하다. 무엇보다 증시 전문가와 투 자자들이 정부 방침에 손뼉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증시 참여자들은 쥐꼬리 배당을 참아 왔다. 상장사들이 투자와 연 구개발(R&D)에 매진해 미래 기업가치를 키우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한 주가 상승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기업 투자가 우선이다. 배당을 압박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 다. 상장사들이 현금을 쌓아놓고도 투자와 배당 모두를 소홀히 했고, 그게 한국 증시 의 고질적 침체(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초 래했다고 보게 된 것이다. 그나마 시장의 기대에 부응한 것은 삼성과 현대차 그룹 정 도였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5년 새 상장사 사내 유보금(약 500조 원)은 두 배, 보유 현금(200조 원)은 세 배
위안화 등 세 확장하며 국제 무역 결제 비중 (단위: %)
위안 결제 비율 늘리는 중국 (2014년 5월 현재)
29% 유럽
2012년 1월 대륙별 위안화 결제 비율
12.0%
3%
북미
7.7% 중동
달러 81.08
2 유로 7.87
위안 8.66
3 엔 1.94
유로 6.64
4 위안 1.89
엔 1.36 자료: SWIFT(국제 은행간 통신 협회)
66%
23% 아시아· 태평양
1 달러 84.96
5 아랍에미리트 디르함 0.76 사우디아라비아 리얄 0.33
2013년 5월
58%
2013년 10월
중남미
외환보유고 비중도 감소 세계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 (단위: %) 71.5 65.9
2001년
2004
64.1 2007
61.3
60.9
2010
2013 자료: IMF
도 한 때 기축통화 깃발을 들었지만 재정위 기가 오면서 지금은 자신들 살 길 찾기 바쁘 잖아. 요즘 위안 성장세가 눈에 띄지만 그래 도 달러를 끌어내리진 못할걸세. 기축통화가 되려면 국제 사회에서 믿음이 쌓여야한다네. 중국이 완전한 변동환율제를 실시하지 않는 한, 그러니까 당국이 환율에 개입하는 한 위 안이 기축통화가 되긴 어려울걸세. 중국은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뒷받침한 IMF와 WB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금융기 구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지. 지난 15일 브 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 아프리카공화국) 정상들이 브라질에 모여 합의한 신개발은행(NDB)과 위기대응기금 (CRA) 설립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야. 브릭 스 5개국의 인구를 더하면 30억여 명으로 세계 인구의 약 43%를 차지해. 국내총생산 (GDP) 비중은 21%에 이른다고.
정환율제를 유지하는 안을 제시해 반영시켰 다. 미국 달러는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했 다. 화이트는 또 국제수지에 문제가 생기는 국 가는 특별인출권(SDR)이라는 가상의 통화 로 수습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이 다. IMF는 이후 국제 환율 안정과 유동성 확 대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세계은행(WB)도 당시 설립했는데 역할은 가맹국의 정부 또는 기업에 대한 융자, 개발도상국 기술 지원 등이 었다. IMF와 WB라는 옥동자를 낳은 케인즈 와 화이트의 여생은 순탄치 않았다. 브레턴우
2014년 7월 17일
하지만 덩치가 크다고 기축통화가 되는 게 아니야. 달러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린다는 건 미국 경제가 위기를 겪는다는 뜻인데, 미국 에 위기가 오면 그 영향을 누가 가장 많이 받 겠나. 미국과 교역해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는 중국이란 말일세. 지난해 중국이 미국에 수 출한 상품의 액수가 무려 4400억 달러라네.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갖춰 국가의 존망 자체가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도 달러를 믿음 직하게 하는 요소야. 생각해보게 지금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치면 각 나라들이 어떤 화폐를 보유하려 들겠나. 바로 달러일세. 가장 안전한 자산이란 뜻일세. 그러니 여보게, 썩 내키지는 않겠지만 내 고희(古稀)를 축하해주게나.
즈 회의 당시 심장 질환을 앓았던 케인즈는 이 후 건강이 악화돼 2년 뒤인 1946년 62세의 나 이로 생을 마쳤다. 화이트는 더 비극적이었다. 1945년 IMF가 출범한 뒤 초대 상무이사로 활 약하던 화이트는 갑자기 매카니즘에 휩싸여 소련 스파이 혐의로 FBI의 조사 대상자가 됐 다. 화이트는 1948년 반미국적활동조사위원 회에 나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정신적육 체적 충격으로 건강이 나빠진 화이트는 뉴햄 프셔주로 요양을 떠났다가 갑자기 심장마비 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였다. 화 이트의 혐의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투자 기대하며 쥐꼬리 배당 참아 한국 기업 투자자 인내 위에 성장 배당 늘리는 글로벌 추세 따라야
이상 늘었다. 거기에는 국민과 시장의 희생 과 양보도 적잖게 작용했다. 정부가 반대를 무릅쓰고 법인세를 내려주고 고환율 정책 으로 수출을 전폭 지원했다. 증시는 낮은 배당을 감수했다. 결과는 어떤가. 지금 기 업들은 돈은 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 배당이라도 늘 리는 게 도리 아닌가.” 국내 상장사들의 배당은 창피한 수준이 다. 일반 주주는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해 순이익 중 배당으로 돌린 배당성향은 15%, 주가와 비교한 배당 수익률은 1.1%에 불과했다. 근래 세계 각국 기업들은 주주 배당을 부쩍 늘리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함 께 견뎌준 주주들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 다. 주주들도 기업이 현금을 쌓아놓는 것 을 용납하지 않는다.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배당으로 풀라고 압박한다. 독일 상장기업의 평균 배당성향은 금융 위기 전 37%였다가 현재 48%로 올라갔다. 순익의 절반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셈이 다. 그러다 보니 증시의 배당수익률이 3%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
도움말 주신 분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안유화 자 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장, 주명건 세종연구원장, 차현진 한국은행 커뮤니케이 션 국장(가나다 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한국 철수설 불식시켜
중앙포토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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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24
일러스트 강일구
kikwk@joongang.co.kr
나 된다. 독일 국채 10년물(현재 연 1.3% 선)보다 2배 이상 높다. 독일 증시의 DAX 지수가 7월 초 대망의 1만 선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비결 중 하나다. 한국증시 배당수익률 세계 꼴찌 미국도 엇비슷하다. 뉴욕 증시의 배당수익 률은 현재 2.3%, 배당성향은 35% 선이다. 독일에 다소 못 미친 것이지만, 미국 기업들 은 강력한 주주보상 수단을 또 하나 가동한 다. 자사주 매입이다. 최근 1년간 미 상장사 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무려 5000억 달러 (500조 원)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30%나 늘어난 규모다. 배당에 자 사주 매입 효과까지 더해 미국 주식투자자 들은 매년 5% 정도의 안정적 수익을 사실 상 보장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교 대상 인 미 10년물 국채수익률은 연 2.5% 선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한국 증시의 배당수익률은 올해 약간 올 라 1.25% 선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 은 내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과 신흥 국 증시를 통틀어 세계 최하위권이다. 중 국(3.6%)·인도네시아(2.0%)·인도(1.6%)는 물론 필리핀(2.1%)에도 뒤진다. 코스피 지 수가 몇 년째 1700~2000포인트 박스권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기업의 배당 확대는 바람직하다. 증권업 계에선 벌써 올해 코스피 지수 상한선을 기 존 2200에서 2400으로 올리는 곳까지 나 왔다. 배당주 펀드에 대한 투자문의가 부 쩍 늘고 돈이 몰리고 있다. 일부 상장사가 외국인 주주 몫 때문에 배당 늘리기가 힘 들다고 하는 건 궁색한 변명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클 자격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 다. 배당이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보유 현금을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연구개 발(R&D) 등에 투입하면 될 일이다. 이는 투자자들도 원하는 바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작은 배당이 모여 증시의 투자심리를 살리는 단비가 되길 기 대해 본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한국GM이 노동조합에 상여금을 통상임 금에 포함하겠다고 제안했다. 자동차 업 계에서 사측이 통상임금 확대 방침을 밝 힌 것은 한국GM이 처음이다. 이번 결정 은 국내 다른 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결정은 세르지오 호샤(사진) 사장 이 이끌어 냈다. 2006년 당시 지엠대우 제 품기획 총괄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2012년 한국GM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 랐다. 호샤 사장이 결정을 서두르도록 만든 건 이달 초 한국GM 노조의 파업 결정 이다. 파업이 강행될 경우 한국GM은 회 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다. 올 상반 기 판매량(32만7280대)이 전년 동기보다 18.5% 줄어든 상태다. 한국GM의 모기업 인 제너럴모터스(GM)는 전 세계 160여 개 공장의 경쟁력을 따져 생산물량을 배
정한다. 판매량이 줄어든 한국GM으로 선 어떻게든 노조의 파업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GM은 이미 지난해 생산성 저하를 이유 로 호주 공장을 폐쇄하기로 한 바 있다. 호 샤 사장은 이번 결정과 관련해 GM 본사 에도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일단 환영 의사를 밝혔다. 상 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생산직(1만 1000여명) 직원들의 연봉은 연 평균 10% 가량 오른다. 한국GM은 이번 결정이 항간에 꾸준히 나돌고 있는 ‘한국 철수설’을 불식시키 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19일 한국 GM 관계자는 “최근 400억원을 들여 인 천 부평공장 디자인센터를 7640㎡(2315 평)에서 1만6640㎡(5042평)으로 2배 이 상 확장했다”며 “어떤 기업이 철수할 사 업장에 거액을 투자하고, 노조의 파업을 막기 위해 인건비 인상이란 힘든 길을 가 겠나”고 반문했다.
20 Economy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정부 3.0 제 궤도 올라설까
“맞춤형 공공데이터 제공” 정부 3.0 개선 나섰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지난 4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 개발사인 록앤올(제품명 ‘국민내비 김기사’)은 국토교 통부에 도로이정표 데이터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 화에 관한 법률’(공공데이터법)에 따른 것이 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의 답 은 ‘노(No)’였다. 선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 다. 갈림길이나 교차로에서 효과적인 길 안 내를 하기 위해선 이정표 데이터의 확보가 필 수적이었다. 록앤올은 한국정보화진흥원을 통해 ‘공 공데이터제공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 청했다. 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해당기관 이 참여한 몇 차례의 조정협상 끝에 관련 데 이터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록앤올 정광현 이사는 “분쟁조정위에 가 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분쟁조정 절차 를 밟은 뒤에는 비교적 순탄하게 일이 진행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기업들이 공공데 이터를 제공받으려면 어떤 기관에 문의해야 하는지도 막막한데 공공데이터포털(www. data.go.kr) 등 컨트롤 역할을 하는 사이트 들이 생겼고 분쟁조정 절차도 자리를 잡고 있어 앞으로는 좀 더 쉽게 공공데이터에 접 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공공데이터 민원 해결 기미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정 부 3.0’은 순항하고 있을까. ‘정부 3.0’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공공데이터를 민간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 공공데이터법의 시 행에 들어갔다. 법 시행 초기만 해도 시행착 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와 언 론의 지적이 계속되면서 변화의 모습이 감지 된다. ‘김기사’ 사례에서 본 공공데이터제공 분쟁조정위원회 활동이 대표적이다. 분쟁조정위원회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공 공데이터 제공을 거부하거나 중단했을 때 국 민들이 복잡한 행정소송 절차 대신 간단한 분쟁조정 절차만 밟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공데이터 제공 거부 통보를 받으면 60일 이내에 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 할 수 있다. 위원회는 당사자 진술을 청취한 뒤 사실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조정안을
공공데이터 개방·활용
2014년 6월 기준
공공데이터 오픈API
포럼단을 통한 유망기업 선정 수
실시간 활용수(월평균) 개방률(월평균) 법시행전 → 법시행후
50.5% 증가
42개
현장대응반(PSC) 해결 건수
법시행전 → 법시행후
공공데이터 분쟁 상담 및 조정 수
6건 해결 4건 진행중
115% 증가
활용기업 수(누적)
활용률(월평균)
공공데이터 이용 기업 상담(누적) 법시행전
26건
법시행전 → 법시행후
법시행후
42개 300개
349% 증가 법시행전 → 법시행후
6.4배 증가
2013년 10월 31일
2013년 11월 4일
2013년 12월 12일
2014년 4월 16일
2014년 5월 21일
공공데이터법 시행
공공데이터 활용지원센터 개소
공공데이터 제공 조정 분쟁위원회 출범
공공데이터 현장대응반(PSC) 출범
공공데이터 이용 활성화 포럼단 출범
분쟁조정위·현장대응반 성과 가시화 정부 직접 서비스 부작용도 개선 민간, “돈 되는 데이터 제공해 달라”
제시한다. 조정이 성립되면 공공데이터법에 따라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지난해 12월 출범 이후 분쟁조정위는 ‘김 기사’ 건을 비롯해 모두 26건의 분쟁을 해결 했다. 조정위 관계자는 조정위를 통해 데이 터 제공과 관련한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인 식이 높아지면서 민간 사업자들의 모의와 참 여가 크게 늘고있다고 말했다. 안전행정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운 영하는 ‘원스톱서비스 현장대응반(PSC Problem Solving Coordinator)’도 가동 중 이다. PSC는 공공데이터가 원활하게 제공되 지 못해 민원이 발생했을 때 상담부터 현장간
담회까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기구다. 통합콜센터(1566-0025)로 민원을 접수하 면 현장대응반이 바로 출동해 문제를 해결한 다. PSC는 민원해결 뿐 아니라 민간 건의사 항을 공공기관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도 맡고 있다. 현장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분쟁조 정위원회에서 조정절차를 밟을 수 있게 도와 준다. 출범 이후 6건의 민원을 해결했고 현재 4건이 진행 중이다. 미세 먼지농도와 자외선지수 등을 실시간 으로 볼 수 있는 앱 ‘하이닥’ 개발사인 엠서 클은 PSC의 도움으로 민원을 해결한 경우다. 처음에는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데이터 제 공에 난색을 표했던 기관들은 PSC의 중재를 거쳐 데이터를 제공하기로 했다. 엠서클 서정 호 부장은 “공공데이터를 제공받아 서비스 한 후 트래픽(데이터 이동량)이 10배 이상 늘 었다”고 말했다. 정부-민간 역할 가이드라인 8월 확정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민간 사업자들 사
공공데이터 포털(2014현재) 전년대비 월평균 데이터
오픈API
925% 증가
117% 증가
이에선 “쓸모없는 데이터는 넘쳐나는데 정 작 ‘돈이 될 만한’ 데이터는 제공받기 어렵 다”는 불만도 있다.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는 A사 관계자는 “정보화진흥원 등을 통해 필 요한 공공데이터를 제공받는 사례가 늘었 지만 정부가 보유 중인 데이터가 일목요연 하게 정리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 다. 그는 “데이터 제공 요청을 받은 다음에 야 일선 공무원들이 며칠씩 고생해 가며 정 리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정부가 보유하 고 있는 데이터에 자유롭게 접근해 활용하 자는 ‘정부 3.0’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데이터 제공을 넘어 서 비스 개발에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민간 업체 를 고사시킨다는 지적도 많았다. (본지 4월 13일자 1면)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관의 직 접 서비스 제공의 부작용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국민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유지·보 수비용이 많이 들고 공공과 민간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등 단점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안행부와 정보화진흥원은 지난 5월 세 차 례의 민·관 합동토론회를 열었다. 공공서비 스와 민간서비스 간 충돌이 가장 많은 기상 관련 민간사업자는 토론회에서 “기상청의 오 픈 API서비스 이후 회사의 신규 구매가 10% 이상 하락하는 등 매출에 타격이 있었다”며 “재난 서비스 등 공공성격이 강한 서비스는 기상청이 맡고 그 외 상업 서비스는 민간에서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토론회 이후 ‘공공데이터 제공 및 시장 공정경쟁 지원을 정부가 맡고, 개방된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민 간에서 담당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부와 민간 역할에 대한 최종 가이드라인은 오는 8 월 중 확정할 예정이다. 김진형 공공데이터 전략위원회 위원장은 “문제가 된 직접 서비스는 점차 줄여나가고 ‘정부 3.0’의 취지에 맞게 정부는 맞춤형 공공 데이터 제공, 우수한 창업 아이디어 지원 등 의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상품과 서비스 운영 을 통해 축적되는 빅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 석해 언제 어디서나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알아내고, 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원 매니저는 “소비자가 미처 기대하지 않던 서비스까지 먼저 내놓을 수 있 는 역량을 쌓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이 가장 고심한 것 중 하나가 ‘사 회와 함께 나누는 가치 공유’란 목표다. ICT노 믹스를 통해 얻는 ‘과실’을 다른 사업자는 물 론 일반 국민과 함께 나누겠다는 것이다. 궁극 적으로는 ICT를 활용해 사회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ICT노믹스 시대’ 의 부작용인 스마트폰 중독과 사이버 범죄를 줄이는 일에 주력하기로 했다. 또 ICT 솔루 션을 활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사회문
제를 해결한다는 목표가 있다. 예를 들어 빅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과 요 구사항을 분석한다면 전통시장의 침체를 막 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데이터가 충 분히 축적된다면 조류독감(AI)과 구제역 확 산 같은 사회적 재난을 예방하는 일에도 ICT 가 기여할 수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ICT 교 육을 확대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정보격차 해 소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사회와 함께 성장하겠다는 SK텔레콤의 의지는 상당 부분 가시화돼 있다. SK텔레콤 은 현재 전자부품연구원(KETI)과 함께 정 책과제인 개방형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인 ‘모비우스(Mobius) 플랫폼’개발에 참여 중 이다. 또 SK텔레콤은 지난 4월 출범한 ‘한국 사물인터넷협회’의 초대 회장사로 국내 민간 30여개 기업·기관과 함께 사물인터넷 생태계 를 구축 중이다.
Biz Report
SK텔레콤 ICT코리아 실현, 세 가지 목표 내놨다 이수기 retalia@joongang.co.kr
SK 텔레콤 이‘IC T(I n for mation a nd communications technology·정보통신기술) 코리아’의 경쟁력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는 ‘ICT노믹스’시대 를 맞아 그간 쌓아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 회 전반의 ICT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 이다. 이 계획은 지난 5월 하성민(57) 대표가 ‘ICT발전 대토론회’에 참석해 ^새로운 가치 창출(Value Creation) ^최적화된 가치 전 달(Value Delivery) ^사회와 함께 나누는 가치 공유(Value Sharing) 등 ‘ICT노믹스 추진 방향’을 제시하면서 구체화됐다. 계획에 따르면 ‘새로운 가치 창조’란 ICT 를 활용해 새로운 상품과 가치를 만들어 내 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ICT가 저(低)성장의 늪에 빠진 지
SK텔레콤 하성민 사장이 지난 5월 ‘ICT 발전 대 토론회’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SK텔레콤]
구촌에 신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 이가 많다. SK텔레콤이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에 너지 관리 및 효율화(원격검침·BEMS)사업 과 헬스 케어 비즈니스도 ‘새로운 가치’에 속한다. 대형건물과 공장 등에 설치된 냉·난 방 장비와 전기 조명 등의 다양한 설비를 종
합적으로 컨트롤해 에너지 소모량을 줄이 는 BEMS(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와 FEMS(Factory Energy Management System) 서비스도 마찬가지 다. 스마트폰과 연결해 초소형 빔프로젝터로 쓸 수 있도록 한 스마트빔 역시 새롭게 생겨 난 ‘가치’의 한 예다. 스마트빔은 2012년 출시 이래 9만여 대의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두 번째 목표는 ‘최적화된 가치 전달’이다. ICT를 통해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 치를 창출하고, 이를 소비자들이 마음껏 누 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SK텔레콤 원 종록 매니저는 “모든 기기가 상호 연결되는 초(超)연결 사회가 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일반 소비자들은 이 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며 “여기서 발생하는 혼란과 스트레스를 줄 여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게 우리의 목표”라
Economy 21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다시 불거진 기업 과세 논란
사내유보금 과세, 소비투자 모두 놓치는 악수될 수도 <惡手>
김영욱
국내 대기업 사내 유보금 증가 추이
한국금융연구원 상근 자문위원
(단위: 원, 30대 기업 기준)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 또 시작됐다. ‘또’라고 쓴 건 이 논란이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논란은 3년 전 인 2011년이었다. 당시 국회는 공청회를 열어 “대기업 사내유보금이 2009년 28조원에서 지난해 57조원으로 늘었다”며 “좋게 볼 수가 없다”고 질책했다. “대기업 곳간은 돈더미가 쌓여 터지기 직전”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 창 출에는 인색하고 사내현금유보율을 사상 최 대 수준으로 쌓아놓기 바쁘다”는 지적도 잇 따랐다. ‘10대 기업 곳간에 100조원이 쌓여 있다’는 요즘과 똑같다. 그렇다면 왜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걸까. 대기업의 사내유보에 대한 비판은 타당한 것 일까. 먼저 기업들의 사내유보가 증가한 이유를 살펴보자. 2000년대 중반은 투자 때문이었다. 2001~2005년 연평균 설비투자 증가율은 1.1% 에 그쳤다. 반면 사내유보금은 급증했다. 10 대 그룹의 평균 사내유보율은 1997년 336% 에서 2004년 600%, 2007년 700%로 높아졌 다. 2009년과 2011년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2008~2009년 설비투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비슷하다. 지난해 투자가 감소한데 다 올해에도 그 회복세가 미약하다. 여기에 민간소비 부진이 추가됐다. 물론 민간소비 부진은 심각한 문제다. 2003년 이후 지난해 까지 민간소비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앞지른 건 2005년 딱 한 번 뿐이 었다. 민간소비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곧 감소한 이유다(2002년 57%에 서 지난해 49%). 여기에 가계 저축률마저 계 속 하락하고 있다(2004년 8.1%에서 2012년 4.7%). 소비도 줄고, 저축도 주는 이유는 뭔가. 경 제전문가들이 최근 찾은 해답은 가계소득의 증가세 둔화다. 가계가 차지하는 소득(정확
443조 4000억
400조
300조 2008년
2009
2010
2011
2012
※자료: 국회기획재정위원회
가계 저축률 추이 (단위: %)
4.5
5
2 2005년 06
07
08
09
10
11
12
13
※자료: 한국은행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반복된 논란, 사내유보 이해 부족 탓 소비·투자와는 연관성 없는 개념 기업이익이 가계로 흘러가려면 양극화 완화, 불확실성 해소가 정답
히 말하면 가계의 처분가능소득)이 국민이 벌 어들이는 총소득(국민총처분가능소득) 중에 서 차지하는 몫이 줄어드니까 소비와 저축이 모두 부진하다는 주장이다. 맞는 얘기다. 가 계소득의 비중은 2003년 60.7%에서 2012년 58.1%로 줄었다. 반면 기업소득의 비중(법인 기업 처분가능소득/국민총처분가능소득)은 2000년 12.8%에서 2012년 18.7%로 높아졌다. 그럼 가계소득은 왜 줄고 기업소득은 왜 늘었을까. 가계소득의 원천은 크게 네 가지 다. 임금과 자영업자 소득이자배당금이다. 이 가운데 사내유보와 직접 관련 있는 건 임 금과 배당이다. 배당소득은 2007년 가장 많 았고, 이후엔 계속 줄었다. 임금도 마찬가지
다. 늘긴 하지만 일한 만큼 받진 못한다. 경제 학적으로 말하면 임금증가율이 노동생산성 증가율보다 낮다. 물론 그 차액은 기업이 가 져간다는 얘기다. 최경환 경제팀은 이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 다. 최 부총리의 생각은 이렇다. ‘우리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계소득이 늘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투자도 하지 않고 임금과 배당 도 적게 준다, 그러면서 사내유보금만 쌓고 있 다.’ 그러니 사내유보금에 손대겠다는 거다.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과연 그렇게 될까. 여기엔 이견이 있다. 우 선 사내유보금이 소비부진의 원인이냐에 대 한 이견이다. 가계소득 증가가 부진했기에 소 비도 부진했다는 진단은 부분적으로만 옳 다. 2000년대 이후 그런 추세임에는 맞다. 그 러나 이게 소비부진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 다. 가계소득은 2010년 바닥을 친 후 증가하 고 있고, 기업소득은 그 반대로 줄고 있는데 도 민간소비는 계속 하락했기 때문이다. 실질임금도 마찬가지다. 2008~2010년은 연평균 1.9% 증가에 그쳤지만 2011년 4.6%,
오종택 기자
2012년 9.6%로 확 뛰었다. 노동생산성 증가 율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도 민간소비 비중 은 줄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경환 경 제팀이 사내유보금을 확 줄여 기업소득을 가 계소득으로 환류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자. 그래도 소비가 기대만큼 늘지 않을 수도 있 다는 의미다. 그럼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지목되는 것은 역시 양극화다.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이 고소득층보다 높은 건 검증된 사실이다. 만 일 최근 2~3년 간 늘어난 소득이 저소득층보 다는 고소득층에게 집중됐다면 소비가 그리 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 다. 그렇다면 정부는 사내유보 줄이기에 전념 할 일 아니다. 다른 걸 희생해서라도 소비부 진을 해결하는 게 목적이라면 저소득층의 소 득 증대에 주력하는 게 순서다. 둘째 사내유보금과 투자 부진의 관련성이 다. 사내유보금이 많다고 투자가 부진해지는 건 명백히 아니다. 사내유보금의 개념 상 그 렇다. 말이 사내유보금이지, 회사 안에 현금
을 쌓아두는 게 아니다. 기업은 유보금(잉여 금)으로 공장과 기계설비 등 투자자산을 구 입하고, 재고자산을 늘린다. 유보금을 늘리 려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학자들의 검증 결과도 그렇다. 내부 유보 율이 높은 건 대기업이 아니라 중견기업이다. 중소기업들이 현 정부의 사내유보 과세 방침 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도 그렇다. 2006~2007년에도 유보율은 늘었 지만 설비투자 역시 연평균 9% 증가했다. 굳이 투자와 비교하겠다면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현금(현금+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 품)에 주목하는 게 낫다. 하지만 이것 역시 투 자 부진과 큰 관련이 없다. 현금 자체가 미래 투자를 위해 갖고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게 다가 현금은 사내유보금의 15.2%(2012년 기 준)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대 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외국보다 많지 않다. 재벌에 비판적인 경제개혁연구소가 2009 년 발표한 보고서가 단적인 증거다. 이 자료 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자산 대비 현금자산 비율은 30개 국가 중 10번째다. 미국·일본·중 국은 물론 경쟁국인 대만·싱가포르·홍콩보 다 낮다. 또 우리와 비교되는 나라들에서도 현금자산 비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그 런데도 설비투자 증가율은 나라마다 다르다. 현금자산을 늘렸기 때문에 투자가 감소했다 는 주장은 맞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 연구소 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실물투자의 불확실 성이 감소하지 않는 한 현금자산은 실물투자 로 활용되지 않는다”고. 요약하면 이렇다. 사내유보금은 소비 부진 과 투자 부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약 이 아니다. 자칫하면 한 마리 토끼도 잡기 어 려울 수 있다. 소비 부진을 해결하려면 저소 득층의 소득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 이, 투자 부진을 해결하려면 불확실성을 해 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잘못된 진단에 따 른 처방은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 오히려 또 다른 병을 키운다. 사내유보금이 그렇다.
22 Health Plus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베스트 닥터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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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박상윤 센터장
말기 난소암도 그가 고치면 5년 생존률 60%
강동우백혜경 성의학전문가
無성애와 성욕저하증
일러스트 강일구
“나는 성욕이 없는 무성애자라니까. 꼭 섹스를 하고 살아야 돼?” 여자 친구의 끈질긴 요구에 진료실을 찾은 30 대 중반의 남성 J씨는 불만과 퉁명스러움이 하 늘을 찔렀다. 마른 체격에 다소 예민해 보이는 J 씨는 나름 성공한 커리어에, 깔끔하고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 등 겉으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어 필할 법한 남성이었다. 그는 사실 한번 이혼 경 력이 있었다. 성격 차이라고 주장하나 필자의 눈엔 성(性)적인 그늘로 가득했다. J씨가 주장하는 무성애(asexuality)는 이성 이건 동성이건 어떤 대상에도 성적인 끌림이나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무성애자에 대한 보고는 킨제이 보고서가 처 음이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알프레드 킨제이 박 사는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들을 이성애와 동성 애 성향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X등급으로 분류했 고, 이들을 무성애자라고 불렀다. 1980년대 스 톰즈 박사가 킨제이의 등급을 개정, 성적 기호 에 따른 새로운 분류를 제시하면서 무성애에 대 한 이론이 확립됐다. 이후 1994년 영국에서 실 시된 연구에선 조사 대상자의 1.05%가 무성애 자로 분류됐다. 무성애자들은 성욕이나 성적 끌림이 없음에 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고 싶거나 사랑하는 사 람을 위해 일시적으로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성애는 성욕저하증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성욕저하
증 환자는 스스로 불편해하는데 비해, 무성애 자는 그런 자각증상이 없고 평생 지속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처음엔 너랑 성관계도 했었잖아. 근데 이젠 너한테 매력도 못 느끼고 욕구가 안 생기고 반 응도 없는데 어쩌란 말이야?” J씨는 이렇게 항변한다. 사실 무성애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 표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그친다. 초기 성관계 외엔 궁극적으론 섹스리스(sexless) 문제로 빠져든 다. 그런데 무성애 당사자는 이게 고통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부정한다. 배우자 입장에선 깊이 있는 감정 교류와 정서적 유대감 없이 겉돌고, 남과 별 다를 바 없는 거리감에 고통 받는다. 결 국 무성애자의 성적 기피는 그의 표면적 인간관 계를 대변하는 셈이다. 무성애자의 성적인 기호와 정신건강과의 연 관성을 분석한 1983년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 다. 여기서 무성애자는 자존감이 낮고 더 쉽게 우울증에 빠지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실제 이들 이 심리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 하다. 학계에선 무성애가 강박증·불안장애·분 열성 성격장애·우울증, 과거의 부정적인 성경험 에 따른 회피나 혐오반응, 발달장애·성격문제· 심리적 거세 같은 정신분석적 갈등에서 비롯되 는 증상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진단을 해보니 J씨는 강박증, 사정이 쉽 지 않은 지루와 이에 동반된 성 기피가 있었다. 이전 결혼에서도 이로 인한 섹스리스가 이혼의 큰 원인이었다. J씨처럼 자신의 성욕저하증, 상 대와의 갈등, 본인의 심리적 문제, 성기능 문제,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에서 도망가기 위한 또 다 른 방패막이로 무성애를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 무성애자라며 섹스리 스를 정당화하려는 상당수는 바로 치료를 받아 야할 대상이다.
중앙SUNDAY와 건강포털 코메디닷컴이 선정하는 ‘베스트 닥터’의 부인종양 치료 분야에선 국립암센터 박상윤 센터장(61)이 선정됐다. 이는 중앙 SUNDAY와 코메디닷컴이 전국 11개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의사 41명에게 “가족이 자궁경부암·자궁내막암·난소암·융모상피암 등 부인과 종양에 걸리면 믿 고 맡길 수 있는 의사”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기본으로 하고, 코메디닷컴 홈페이지에서 전문가들이 추천한 점수와 환자들이 평가한 체험점수를 보태서 집계 한 결과다. 이번 조사에선 서울아산병원의 남주현, 김영탁 교수와 삼성서울병원의 김병기 교수, 세브란스병원의 김영태 교수 등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진료실에선 외과 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장은 서울에서 온 수련의를 반갑게 맞더 니 갑자기 “위암 환자가 소변이 안 나오니 컷다운하고…”란 지시를 내린 뒤 귀가해버 렸다. 국립암센터 자궁암센터 박상윤 센터장 은 인턴 첫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1979년 2 월 28일 오후 5시 청주의 충북도립병원 외 과 진료실이었다. 머리는 깜깜해졌고 몸은 얼어붙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컷다운이 뭐였더라?’ 얼른 책장 에 꽂힌 교과서를 뺐다. 팔의 정맥을 절개한 뒤 도관을 넣어 부 은 폐의 압력을 낮추는 것이지, 이렇게, 이 렇게…. 그런데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환자는 눈을 껌뻑거리고, 간호사는 메 스와 수술가위 등을 준비한 채 ‘젊은 의사’ 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턴의 머리에서 불현 듯 “왜?”가 떠올랐다. 말기 환자인데…. 인 턴은 20대인 아들을 불러 “아버지가 임종 을 피할 수 없어 댁으로 모시는 것이 좋겠 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들은 부친이 병원 보다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을 선호했기 때 문에 반색했다. 의사가 택시를 부른 뒤 환자를 현관까지 배웅하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한 마디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턴의 머리가 또다시 깜 깜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는 조심 스럽게 “병원에서 줄 수 있는 약들은 모두 챙겨 드렸다. 혹시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병 원으로 오시면 된다”고 입을 뗐다. 인턴은
환자의 얼굴에서 안심하는 표정을 읽으며 비로소 자신이 의사가 됐음을 실감했다. 박 센터장은 누군가를 도우면서 보람을 찾는 직업을 찾다가 의대로 방향을 틀었 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박 센터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 과 정을 마치고 강원 사북 소재 동원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면서 복강경 수술을 익혔다. 첫 직장인 차병원에서 복강경 시술 실력을 보여주자 이 병원 차경섭 이사장이 독일 킬 대학의 셈 교수가 저술한 ‘복강경 수술’이란 책을 건네주며 일독을 권했다. 박 센터장이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가 각
15%만 넘어도 수준급으로 평가 세계 고수 찾아 다니며 비법 익혀 환자의 80%는 다른 병원서 의뢰 치료 성적 너무 좋아 의심 받기도 문파의 비기(秘技)를 익히는 여정이 시작 된 첫 단추였다. 박 센터장은 1987년 당시 ‘암 치료 의사 의 로망’이던 원자력병원으로 자리를 옮겼 다. 이 무렵 셈 박사가 싱가포르에서 특강 한다는 소식을 듣고 휴가를 내 현지로 달 려가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박 센터장은 91년 미국 예일대의 피터 슈 왈츠 교수의 문중에 들어가 난소암의 세 계를 탐닉했다. 이듬해 3월 미국 샌안토니 오에서 열린 미국부인종양학회에서 자궁 내막암을 복강경으로 수술하는 턱슨 대학 교 조엘 칠더 교수, 수술방사선 동시요법
(CORT)의 대가인 독일 마인츠 대학교 마 이클 헤켈 교수를 만났다. 그는 다시 그들 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199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암연 구학회 학술대회에서 워싱턴암센터의 폴 슈거베이커 박사를 만났다. 그는 암이 내장 에 번졌을 때 복막을 떼어내 치료하는 ‘복 막절제술’의 최고수였다. 박 센터장이 가만 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2년 뒤 슈거베이 커의 교실을 찾아가 내공을 전수받았다. 귀 국 후 세계 처음으로 이 비기를 난소암에 적 용했다. 2000년 문을 연 국립암센터는 세계 최고 수들의 비기를 고스란히 체득한 박 센 터장을 자궁암센터장으로 영 입했다. 최근 발행된 경제협 력개발기구(OECD) 건강 관리 보고서에서 우리 나라 자궁경부암 환 자의 5년 생존율은 76.9%로, 회원국 평균(66%)보다 월 등히 높은 1위였다. 박 센터장은 ‘1위 중 1위’라는 평가 를 받고 있다. 난소 암의 경우에도 세 계적으로 5년 생존 율이 3기 40%, 4기 15% 이상이면 수준급 으로 평가받는데, 박 교 수는 둘 다 60%에 가깝다. 박 센터장 의 환자 는 80% 이상이 다른 종합병원
에서 의뢰한 환자들이다. 그는 10~12시간 에 걸쳐 외과·흉부외과·정형외과 의사들 과 함께 복막과 장기를 절제하며 수술하 는 경우도 많다. 국제학계에서 한때 “치료· 수술 성적이 너무 뛰어나 진위가 의심스럽 다”며 논문 게재가 거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미국 메모리얼 슬론 캐터 링 암센터의 데니스 지 박사가 국립암센터 에 다녀간 뒤 미국 학계에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국제학술지의 환영 저자가 됐다. 박 센터장은 산부인과 명의지만, 외과 환자 환자도 본다. 복막절제술에서 좋은 성적을 보 이자 외과 의사들이 그에게 의뢰 하기 때문 이다.
박상윤 박사가 말하는 난소암 ^난소암의 종류=상피세포암·배세포 종양·기질세포종양 등이 있다. 난소암 의 주류인 상피세포암은 배란이 많을 수록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배세포종 양은 10, 20대에서 잘 생기며 항암제 가 잘 듣는다. 기질세포종양은 치료만 잘 받으면 예후가 좋다.
^난소암의 예방법 ①금연절주운동균형잡힌 식생활 ②임신·출산 경험이 많고 모유를 오래 먹여 무(無)배란 기간이 길면 난소 상 피세포암이 덜 생긴다. ③피임약을 복용하면 난소 상피세포 암이 줄어든다.
④난소암유방암 가족력이 있으면 유 전자 검사를 받도록 한다. ⑤유전자 이상이 있는 여성은 출산이 끝나면 난소 절제술을 권고받는다. ^난소암의 치료 1기 초 이외에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병행한다. 캐리커처=미디어카툰 김은영
더위 이기는 전통 음식의 세계
복달임 음식 으뜸은 민어 병후 회복식으로도 좋아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지난 18일(초복)을 기점으로 내달 7일(말 복)까지 삼복 더위가 이어진다. 삼복은 무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초복ㆍ중복ㆍ말복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양기(陽氣)가 성(盛) 한 날이다. 조선 선조 때의 실학자 이수광이 저술한 지봉유설엔 “복날은 양기에 눌려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 쓰여 있다. 복날 보양식으로 주로 쓰이는 식재료는 닭고기ㆍ개고기ㆍ오리고기ㆍ흑염소고기ㆍ돼 지고기ㆍ소고기 등 육류다. 이들은 하나같 이 고단백 식품이다. 주로 찜ㆍ탕ㆍ구이 등 으로 가열 조리돼 이열치열의 효과를 준다 는 것도 공통점이다. 복날,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닭고기는 삼 계탕ㆍ닭죽ㆍ초계탕·임자수탕에 들어간다.
개고기는 개장국(보신탕)의 재료다. 동 양 의학에선 개고기를 성질이 매우 더워 서 양기를 돋우고 허(虛)를 보충하는 식품 으로 여긴다. 개고기를 못 먹는 사람을 위 한 육개장은 과거 한양(서울) 사람들의 복 날 음식이다. 보신탕의 원래 이름이 개장국 이며 육개장은 ‘소고기’로 끓인 ‘개장국’ 이란 뜻이다. 소고기를 닭고기로 대체하면 닭개장이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는 “육 개장은 더운 여름에 떨어진 원기 회복을 돕 는다”며 “육개장 한 그릇엔 탄수화물ㆍ지 방ㆍ단백질이 각각 18~20g 가량 들어 있다” 며 영양 균형식이라고 평가했다. 민어 매운탕은 서울 양반의 복날 음식이 다. 복날이 제철인 민어를 손질해 토막 내 고 애호박ㆍ파ㆍ마늘ㆍ생강으로 양념한 뒤 고추장으로 간을 해서 얼큰하게 끓인 탕이 다. 복더위에 ‘민어찜은 일품, 도미찜은 이
품, 보신탕은 삼품’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한방에선 민어를 식욕을 북돋아주고 배 뇨를 돕는 생선으로 친다. 민어는 살이 후 (厚)해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큰 놈은 길 이가 1m에 달하고 무게가 15㎏ 안팎이니 집안 잔치를 할 만한 크기다. 소화도 잘된 다. 어린이ㆍ노인의 보양식이나 큰 병을 치 른 환자의 병후 회복식으로 권하는 것은 그래서다. 조상들은 삼복 중에도 땀을 흘려가며 더 운 음식을 즐겨 먹었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내과 고석재 교수 는 “기온이 올라가면 양기와 체열이 몸 표 면을 통해 많이 빠져나가 몸 안에선 오히려 양기가 허해지고 체열이 떨어진다”며 “닭 고기ㆍ개고기ㆍ인삼ㆍ대추 등 성질이 따뜻 한 음식을 즐겨 먹어야 몸 안이 데워져 여 름 나기를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삼복에 더운 음식만 즐긴 것은
아니다. 임자수탕(荏子水湯)과 초계탕(醋 鷄湯)은 냉탕이다. 개성의 양반들은 복날, 시원한 임자수탕을 즐겨 먹었다. 이 음식은 흰 참깨(임자)와 영계를 재료로 해서 만든 냉 깻국탕이다. 푹 삶아서 기름을 걷어낸 닭 고기를 사용하므로 맛이 느끼하지 않다. 초 계탕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닭 육수에 잘게 찢은 닭 살코기를 넣어 먹는 전통음식 이다. 원래는 북한의 함경·평안도에서 추운 겨울에 먹던 별미다. 신선한 채소, 전복·해 삼 등 해산물, 참깨ㆍ실백 등 양념을 넣어 조 리하면 담백한 맛과 독특한 향을 만끽할 수 있다. 이 국물에 삶은 막국수(메밀국수)를 담가 먹으면 여름 더위를 잠시 잊게 된다. 삼복에 조상들이 즐겨 먹은 증편(기주 떡)은 맵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한 뒤 적당히 발효시킨 떡이다. 발효 음식이어 서 잘 상하지 않고 맛이 새콤해서 무더위에 잃은 입맛을 되찾는데 이롭다.
Sports 23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22일 플레이볼, 프로야구 후반기 전망
김응용이만수, 한달 내 극적 반전 못하면 자리 위태 <한화>
<SK>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올스타전 휴식기를 마친 2014 프로야구가 22 일 후반기 일정을 시작한다. 정규시즌 경기는 총 217경기(전체 일정의 38%)가 남았다. 삼성 이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향해 달리고 있고, 넥센 박병호는 홈런 신기록(56개·삼성 이승 엽)에 도전하고 있다. 야구공은 둥글고, 배트도 둥글다. 최대 승 부처인 한여름을 지나고 시즌을 마칠 땐 무 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현장 분위기와 각종 사례를 통해 프로야구 후반기 를 내다봤다. 임창용 부진에 뼈아픈 여름 사자 삼성은 2위 넥센에 3.5경기 차 앞선 선두로 전 반기를 끝냈다. 3위 NC는 넥센에 0.5경기 차 뒤진 채 함께 ‘3강’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은 나바로부터 시작해 최형우·박석 민·채태인·이승엽으로 이어지는 막강 타선을 갖췄다. 전통적으로 여름에 강한 면모도 있 다. 문제는 마운드다. 원투펀치 윤성환과 밴 덴헐크가 건재하지만 삼성의 최대 강점이었 던 불펜이 불안하다. 일본으로 떠난 오승환 (한신) 대신 영입한 마무리 임창용의 부진이 뼈아프다. 임창용은 17세이브를 올리는 동 안 블론세이브도 6개나 했고, 평균자책점이 5.40에 이른다. 삼성은 4연패를 당한 채 전반 기를 끝냈다. 넥센과 NC도 완성된 전력은 아니다. 상승 여력을 보면 삼성과도 해볼 만하다. 넥센은 다승(13승)·평균자책점(2.81) 1위 밴헤켄의 원맨팀이었다. 다른 투수가 나오는 날엔 타격 으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그러나 새 외국인 투수 소사가 지난 5경기에서 4승을 거두며 힘을 보탰다. 박병호·강정호가 주축인 타선 은 시즌 끝까지 식지 않을 것 같다. 6월 초까지 삼성과 선두를 다퉜던 NC는 여 름 들어 체력이 떨어졌지만 그런대로 잘 넘겼 다. NC 이재학과 찰리는 9개 구단 중 가장 안 정적인 1, 2선발이다. 기복이 있는 에릭과 웨 버가 힘을 보태면 더 강해질 수 있다. 테임즈 와 나성범이 이끄는 타선의 폭발력도 좋다. 넥센·NC가 삼성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서는 맞대결 성적이 좋아야 한다. 삼성과의 상대전적에서 넥센은 4승1무6패, NC는 2승6 패로 밀렸다. 지난 3년간 최강의 팀이었던 삼 성은 올해 짜임새가 약해졌다. 끝까지 독주하 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박병호가 6월27일 시즌 29호 홈런을 터뜨 렸을 때만 해도 60홈런까지 가능할 것 같았
18일 오후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13-2로 승리를 거둔 서군 박병호와 봉중근이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광주=뉴시스]
팀 성적 최하위 두 감독 가시방석 삼성, 불펜 약해 독주 쉽지 않을 듯 주춤한 박병호, 50홈런 사냥 관심 이재원은 4할 타자의 꿈에 도전
다. 그러나 박병호는 지난 3주 동안 홈런 1개만 추가했다. 전반기를 30홈런으로 마친 박 병호는 여전히 50홈런을 겨냥 하고 있다. 시즌 끝까지 페 이스를 올리기 위해서 힘과 기술 말고도 필 요한 게 있다. 이승엽이 1999년 54홈런을 때렸을 때 우즈(당시 두산), 2003년 이만수 56홈런을 기록했을 때 심정수
(당시 현대)라는 걸출한 라이벌이 있었다. 이 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홈런을 주고 받으며 시 너지 효과를 냈다. 지난 2년 동안 홈런왕을 차 지했던 박병호에겐 특별한 라이벌이 없었다. 현재 2위 강정호(26개)는 박병호를 넘긴 어렵 다. 홈런 45개 안팎에서 박병호의 레이스가 끝날 가능성이 크다. 올해는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打高投低) 현상이 나타 나고 있다. 전반기 리 그 전체의 평균자 책점은 5.28이었 고, 타율은 0.291 에 이르렀다. 규 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타율 3할 타 자가 37명이나 된다. 4 할 타율을 넘보는 타 자들까지 생겼다. SK 김응용 이재 원은 전반기를
0.394로 마쳤다. KIA 김주찬(0.389)과 한화 김태균(0.378)도 맹타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4할 타자가 탄생할 가능성은 1%도 되지 않는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1941년 테드 윌리엄스(보스턴)가 0.406를 기록한 뒤 로 70년 이상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았다. 일 본에서는 누구도 기록하지 못했다. 한국에선 1982년 백인천이 처음이자 마지 막으로 0.412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첫 시즌 에 일본 프로야구 출신 강타자가 압승한 ‘불 공정 경쟁’이었다. 1994년 해태 이종범이 막 판까지 4할을 치다 0.393으로 시즌을 끝냈다. 2012년 7월까지 4할 타율에 도전했던 김태균 의 타율은 결국 0.363까지 하락했다. 이종범은 복통 때문에, 김태균은 체력이 떨어져 4할에 접근하지 못했다. 4할 타율을 위해선 짧은 슬럼프도 겪어선 안 된다. 경기 수가 적고, 투수력이 약했던 ‘옛날 야구’라면 몰라도 현대 야구에서는 4할 타율은 정복 가 능한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엘롯기’ 동맹은 누가 깰까 서울의 맹주 LG, 구도(球道) 부산의 팀 롯데, 10회 우승에 빛나는 KIA 등 세 팀을 묶어 ‘엘 롯기’로 부른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돌아 가면서 최하위를 했다. 올해는 중위권에 모여 있다. 롯데가 4위, KIA와 LG가 각각 6,7위다. 이 가운데 가장 활력 있는 팀은 LG다. 5위 두산(2.5경기 차)까지는 가시권에 두고 있다. 4 위 롯데와 5.5경기 차이다. LG는 4월23일 김기 태 감독의 자진사퇴로 크게 흔들렸다. 당시 불 과 17경기만 치른 시점이어서 반격할 시간이 있 었는데도 감독이 떠났다. 양상문 감독 부임 후 LG는 25승1무21패를 기록하며 빠르게 전력을 정비했다. 특히 7월 11경기에서 8승을 올리며 9 개 구단 중 가장 높은 승률(0.727)을 찍었다. 시즌 초 LG는 류제국과 리오단이 부진해 고전했다. 리오단은 투수 전문가 양상문 감독 을 만난 뒤 5승1패,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하 며 에이스로 성장했다. 류제국도 등판을 거 듭할수록 안정을 찾고 있다. ‘큰’ 이병규(등번호 9)의 부상 공백을 ‘작 은’ 이병규(등번호 7)가 잘 메우면서 득점력 도 개선됐다. LG는 지난해 7월부터 상승세 를 타며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했다. 올해 출 발은 더 나빴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지난해와 비슷하다. 김응용 한화 감독과 이만수 SK 감독은 가 시방석에 앉아 있다. 해태에서 9차례, 삼성에서 1차례 한국시리 즈 우승을 이끈 김응용 감독은 한화에선 2 년 연속 꼴찌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 겨 울 한화는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이용규와 정근우를 동시에 영입했지만 나아진 게 별로 없다. ‘투수 돌려막기’에 급급한 나머지 마운 드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 경기 중 외국인 타 자 피에가 강석천 코치와 말싸움을 벌였고, 김응용 감독이 피에를 향해 물병을 던지는 등 더그아웃 분위기도 좋지 않다. 반등 동력 이 보이지 않는다. 8위 SK 분위기도 무겁다. SK 외국인 타자 스캇은 지난 15일 이만수 감독에게 공개적으 로 대들었다. 감독과 언쟁 끝에 “Liar”라고 소리쳤다. ‘Liar’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말쟁 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매우 능멸하는 말이다. 외국인 선수를 잘 뽑았던 SK는 올해 이들 3명이 모두 속을 썩였다. 스캇과 레이예 스는 퇴출됐다. 김응용 감독과 이만수 감독에게 시간이 많 지 않다. 8월 안에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지 못 한다면 시즌 중에라도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
성호준의 세컨드샷 동서양 프로 문화 차이
필드의 인간 승리 PR하는 서양 프로, 피하는 한국 프로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올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자인 모 마틴 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어릴 적 뒷마당에 그물을 치고 골프를 연습했다고 한다. 19살에 고아가 됐다는 얘기도 공개됐다. 디 오픈에서도 그런 감동 스토리는 이어졌 다. 합성수지 공장에서 일하는 존 싱글턴이 부상과 좌절을 이겨내고 다시 골프에 도전하 는 인간승리의 모습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없다. 최경주박세리 신지애 등 오래된 얘기 말고는 별로 등장하 지 않는다.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아주 드 라마틱하지도 않다. 실제로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의 성공한 골
퍼들 대부분은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올랐다. 유복하게 자란 박인비가 성 공한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절 대 다수는 페어웨이가 아니라 러프를 걸어온 선수들이다. 그들의 얘기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 다. 사연을 찾아서 소개해야 할 기자들의 책 임도 있다. 더 큰 이유는 선수들이다. 선수들 은 자신들의 어려웠던 과거를 공개하기를 꺼 린다. 기자가 아는 프로 중 고아로 자란 선수가 있다. 목욕탕 때밀이를 하면서 돈을 모아 프 로 골퍼가 된 사람도 있다. 본인은 레슨을 돕 고, 부인은 찬모로 가는 조건으로 전지훈련 팀에 낀 선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을 남의 집에 맡겨야 했다. “남의 아이들 밥 먹일 때 정작 우리 아이들은 챙겨주지 못했지만 남편
을 도와 여기까지 왔다”는 부인의 얘기를 들 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알리지 못한다. “창피하니까 그런 얘기를 절대 쓰지 말아 달라. 우리 망신 주려고 그러 는 거냐”고 애원한다. 선수가 어렵던 시절을 숨기는 가장 큰 이유 는 한국의 체면 문화일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 도 내색을 하지 않고, 밥을 굶어도 양반처럼 위신을 지켜야 한다는 딸깍발이 정신 말이다. 스포츠에서 그건 체면 상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것은 골프로 치 면 오버파를 안고 시작한 것과 같다. 그 오버 파는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것도 아니다. 오 버파 출발 선수가 이븐파(평범한 환경)나 혹 은 언더파(매우 유리한 환경)에서 시작한 선 수들보다 좋은 성적을 낸다면 훨씬 더 가치 가 크다. 단거리 육상으로 비교한다면 다른
선수가 100m나 90m를 달리는 시간에 110m 이상 뛴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어려웠던 환경이 창피가 아니고 자랑이다. 그런 선수는 대중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더 큰 스폰서를 얻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프로 골퍼들의 권위 의 식이다. 몇 년 전 한 유명 선수가 큰 대회에 서 우승한 후 나이트클럽에서 잠깐 웨이터를 했었다고 공개했다. 이후 선배들에게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고 한다. “창피하게 왜 그런 얘기를 해서 프로들을 망신시키느냐. 프로면 프로답게 입 조심해라.” 프로 골퍼들을 귀족으로 여기는 듯 한데 실 상을 얘기한다면 하면 골프 초창기 때는 ‘프 로=캐디’였다. 아마추어 골퍼들 신발을 닦아 주고 스핀이 잘 걸리라고 침을 공에 묻혀 티에 올려주곤 하던 사람들이다. 뛰어난 골퍼 중 캐
디 출신이 꽤 된다. 골프 스윙을 잘 한다고 해 서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거나 가난한 사람 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가 고귀하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 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회에 던져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리라. 사회구조는 점 점 공고해지고 신데렐라 스토리는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에선 계속 희망의 메시 지가 나온다. 스포츠 무대는 공정하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아들도 농구 선수로 성 공하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스포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듯 하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보는 본질적인 이유 는 스윙머신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하 는 사람을 보고 희망과 위안을 찾으려 하는 것 일 것이다. 골퍼들이 그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또 다른 희망의 출발점이다.
24 Column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김미경의 마이웨이
‘수학 힐링’ 장우석 숙명여고 교사
3
문제 풀기 전 이야기 보따리 풀었다 ‘수포자’가 변했다 <수학 포기자>
지, 수학사와 수학철학에 관한 흥미로운 이 야기를 줄줄이 꿰고 있다. 수업 중 학생들이 지친 표정을 보일 때면 그는 어김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둘씩 풀어놓는다. “로그(log)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식인 줄 아니? 16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 때 배에 실 을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었고, 항해 기간 을 맞추지 못하면 꼼짝없이 굶어죽어야 했거 든. 이걸 막기 위해서 두 명의 수학자가 만든 공식이 바로 로그야. 이 공식 덕에 수많은 사 람들이 살 수 있었지.” 그러면 열에 아홉은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집중한다. 어렵게만 보이던 수학 공식이 재미 있는 옛날이야기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더러 는 수포자의 길로 빠졌다가 이야기에 이끌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
대학 입시에서 불문율로 통하는 말이 있다. 영어를 잘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 고, 수학을 잘하면 대학을 고를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어만 간다. 이유는 하나, 너무 어렵기 때문 이다. 나는 중학교 때 일찌감치 수포자가 됐다. x 와 y가 어쩌고, 로그가 어쩌고, 함수가 어쩌 고…. 새로운 공식이 등장할 때마다 해석 불 가능한 외계어를 보는 것 같았다. 열심히 풀 면 15점, 한 번호로 찍으면 25점이 나왔는데, 노력할수록 떨어지는 수학 점수를 보면서 상 처를 넘어선 혐오감을 느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더는 마주칠 일이 없 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악연은 생각보다 질겼 다. 아들딸이 나와 비슷한 수학 성적을 받아 오면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학을 알아야 논리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혹시 내 강의 에 논리적 맹점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고 불안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급한 대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제목은 수학, 철학 에 미치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두 가지 만남을 안겨줬다. 하나 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수학과의 만 남, 다른 하나는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 기 길을 걷고 있는 수학교사와의 조우다. “음악이나 문학은 왜 공부해야 하냐고 묻 지 않아요. 들으면 이해가 되고 많이 알수록 교양으로 쌓이니까요. 그런데 수학은 반드시 질문하게 만들어요. 미분·적분을 왜 배워야 하느냐, 행렬을 왜 배워야 하느냐, 안 배워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없지 않느냐고 말이에 요. 학생들 입장에선 당연한 물음인데 답을 주기가 쉽지 않아요. 수학사와 수학철학을 공부하는 건 그래서예요.” 올해로 16년째 숙명여고에서 수학을 가르 치고 있는 장우석(45사진) 선생님은 다른 수학교사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유명한 수학자의 일화부터 공식 뒤에 숨겨진 역사까
학자들 일화부터 공식 뒤 역사까지 이야기 곁들여 수학의 즐거움 전파 일반인 수학힐링 모임에서도 강의
구사일생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 덕에 그는 학교에서 제법 인기 있는 교사로 손꼽힌 다. 하지만 그에게도 흑역사는 있었다. 재수 도 모자라 삼수를 하던 시절, 내년에는 대학 생이 되려나, 이번에도 떨어지면 군대를 가야 하나, 불안과 공포가 그를 엄청나게 짓누르 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 수학 선생님 이 던진 말이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수학은 신과 대화하는 학문이다. 철학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바로 수학이다.” 그 순간 수학은 그에게 전혀 새로운 무언가 가 됐다. 단순한 암기 과목이 아니구나, 공식 말고 다른 뭔가가 있구나,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먼지처럼 떠돌던 삼수생에게 그때부터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2년간 연달아 지원했 던 해양생물학과 대신 수학교육과로 진로를 바꿨고, 대학생활 대부분을 수학사와 수학철 학에 관한 책들을 탐닉하면서 보냈다. 하지만 그의 지적 호기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학철학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 기 위해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했고, 탈레스 와 플라톤부터 러셀과 힐베르트에 이르기까
사진작가 김도형
은퇴 후엔 추리소설 작가 도전할 것
지 당대의 시대정신을 리드한 철학자와 수학 자들을 두루 섭렵했다. 같은 기간 배우고 익 힌 동양철학도 그의 이론적 바탕이 됐다. 이 후에도 공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는 현 재 수학교육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그는 그렇게 수학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 을 것이다. 공부가 좋아서 교사를 그만둘 수 도 있었고, 책의 반응이 좋아서 학교를 뛰쳐 나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 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에게 가장 적 합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 길이 아닌 곳에 기웃거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고 있다. 내가 본 그는 수학도 좋아하지만 가르치는 걸 더 좋아한다. 수학으로 사고하고 수학으 로 상상력을 키우고 수학으로 힐링하는 방법 을 가르치고 싶은 열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
가 2년 전 학교 밖 교실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 다. 학창시절 수학에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 수학을 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 자녀에게 수학 못하는 유전자를 전해준 것 같아 낙심한 사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수학 하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모인 ‘수 학에 미친 사람들’이라는 공부 모임에 강사 로 참여한다. “사실 처음엔 얼마나 모일까 했는데 대학 생, 가정주부, 직장인 등 열 명 남짓한 분들 이 찾아 오셨어요. 평생 안고 살아온 수학에 대한 상처와 스트레스를 이번 기회에 없애 고 싶다면서요. 어려워하시면 어쩌나 걱정했 는데 참석률도 높고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어 요. 끝날 즈음엔 오히려 제가 더 뿌듯하더라 고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어른들을 위한 수학 힐링 모임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혹자는 다 늙어서 무슨 수학 공부냐고 타 박할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학교에 들어갈 것도 아니고, 수학을 배운다고 해서 살림살 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무슨 쓸모가 있 어서 굳이 수학을 배우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모임의 진짜 매력을 알면 180도 달라진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시험 걱정이 없다. 틀릴까봐 불안해 할 필요도, 상처받을 이유도 없다. 둘째, 정해 진 기한 없이 이해될 때까지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셋째, 암기에 대한 부담 없이 공식에 얽힌 철학과 역사를 함께 배우면서 인문학적 사유를 즐길 수 있다. 넷째,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다. x, y, z나 1, 2, 3은 아무 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뜻이 없으니 오해 할 것도 다툴 일도 없다. 그래서 수학 문제를 많이 풀다 보면 생각과 생각을 보다 정교하게 연결하고, 모순 없이 논리적으로 결론을 끌어 내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된다. 당신이 가장 여 유 있고 가장 철학적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공부가 바로 수학인 것이다. 장우석 선생님은 여느 수학교사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존재조차 낯선 수학사 와 수학철학을 20년 가까이 공부했고, 공부 한 내용을 두 권의 책으로 펴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학 강의를 했다. 은퇴 후 계획도 이미 세워놓은 상태다. “수학자 힐베르트가 수학을 그만두고 시 를 쓰겠다는 제자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어 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어차피 자네 에게 수학을 할 정도의 상상력은 없었으니까 말이야’라고요. 역설적인 말이죠? 그러나 사 실입니다. 수학은 현상을 보고 규칙을 상상 해 내는 어마어마한 학문이니까요. 수학공부 가르치면서 제가 배운 건 바로 ‘상상력’입니 다. 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은퇴 후엔 추리소 설을 쓰고 싶어요.” 그는 수학을 사랑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더 사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사 랑하는 것은 ‘수학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일’이다. 아마도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써내 려갈 마이웨이의 기본공식은 수학에 대한 애 정이지 않을까. 그의 수학사랑이 무수한 상 상으로 분화되어가는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 된다.
김대수의 수학 어드벤처
계몽주의산업혁명기술혁신은 미적분 발견 덕분 [문제 1] 천칭저울의 왼쪽에는 참외 2개가 올려
김대수 교수
져 있고, 오른쪽에는 사과 3개가 올려져 있을
한신대 컴퓨터공학부
때 평형을 이룬다고 한다. 만약 참외의 무게가 150g이면 사과 한 개의 무게는 얼마일까요?
[문제 2] 다음 도형의 변화를 살펴보고 물음표 에 들어갈 도형을 고르시오.
? (1)
(1)
(2)
(2)
?
(3)
(4)
(3)
(4)
[문제 3] 다음과 같은 수 추리에서 규칙을 판단 3
4
6
7
4
7
5
하여 물음표에 적당한 숫자를 넣으시오. 3 3
4 3
6 6
7 6
6
?
10 4
7 10
5
6
?
미분과 적분을 통틀어 미적분이라 하는데, 고 등학교 시절 어렵고 복잡한 미적분을 왜 배워 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생각이 날 것이다. 미적분학(Calculus)은 미분·적분·극한·무 한급수를 다루는 기초 수학의 한 분야로서 현대 수학과 응용 과학의 초석이 되고 있다. 물체의 이동·가속도·거리·부피 등이 미적분 을 이용하여 계산될 수 있으며, 그것은 일상 생활용품에서 우주선의 발사와 설계 등에 이 르기 까지 매우 광범위한 분야들에 응용되고 있다. 이러한 미적분의 기본 개념을 처음으로 확 립한 사람은 누구일까? 영국 사람들은 만유 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업적으로 유명한 영국 의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라 주 장하고, 독일 사람들은 자기 나라 사람인 라 이프니츠(Gottfried Leibniz, 1646~1716)라
고 주장해왔다. 이런 일로 동시대에 살던 당대의 최고의 수 학자들인 뉴턴과 라이프니츠 사이에 심각한 불화가 있었으며, 두 나라 사이의 자존심 문 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분석에 따르면 둘 다 자신 의 방법대로 미적분 개념을 독자적으로 확립 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미적분 개념의 최초 아이디어는 뉴턴이 10 년쯤 앞섰지만, 정작 아이디어를 책으로 출판 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10년 정도 앞섰기 때문 에 두 사람 모두 미적분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미분이란 x-y 평면에 있는 곡선 위의 한 점에서 접선의 기울기를 구하는 것이다. x 를 변수로 하는 접선의 기울기를 나타내는 식 을 도함수라 부르며 f′ (x)라 표현한다. 한편 적분은 미분 과정을 거꾸로 수행하는 것으로서 면적이나 체적을 구하는데 매우 유 용하다. 그림의 왼쪽은 미분 개념을 나타내 고, 오른쪽은 적분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뉴턴은 20대가 되어서야 천재성이 드러났
으며, 27세 때에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됐 다. 그는 과수원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 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또한 그는 물질·에너지·운동에 관한 중요한 법칙들을 발견했다. 한편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의 창안 이외에 도 물리학 분야에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예 견했으며, 지질학, 생물학, 역사학에 대해서 도 연구했다. 17세기 미적분 개념의 탄생으로 수학식을 이용한 운동 법칙과 이성적인 계몽주의의 바 탕이 마련됐으며, 이후 18세기에 접어 들어 산업 혁명과 기술 혁신의 바탕이 됐다.
본다. 참외 2개의 무게는 300g이며, 사과가 3 개로서 평형을 이루므로 사과 1개의 무게는 100g이 된다. [문제 2]에서는 기준으로부터 시계 방향으 로 노란색을 한 칸 추가한 뒤, 그 두 칸이 각각 반대 방향으로 벌어지며 이동하는 규칙을 찾 아낸다면 쉽게 알 수 있다. [문제 3]에서는 위의 두 수를 곱한 값의 각 자리의 수를 더한 값이 아래에 있는 수임에 착안한다. 즉 3×4=12에서 1과 2를 더한 값 이다. 정답 1. 100g 2. (4) 3. 5×6=30에서 3과 0을 더한 값이므로 3이다.
서울대 사대 수학과·동 대학원 수료,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대 컴퓨터 공학 석·박사, 인공지능과 신 경망 등을 연구해 온 컴퓨터공학자이자 두뇌 과학
[문제 1]에서는 천칭저울에서 균형을 이루 는 그림을 머리 속에 개략적으로 스케치해
자다. 창의 수학 콘서트와 컴퓨터공학 관련 1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Science 25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김대식의 Big Questions 28 인간과 운명
예슈아가 생각 바꿨다면 막달레나와 조용히 살았을까 <예수>
<마리아 막달레나>
김대식 KAIST 교수뇌 과학자 daeshik@kaist.ac.kr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낳은 어머 니와 결혼할 거란다. 아들이 어머니와 부부 가 돼 아이를 낳고 죽은 아버지의 나라를 다 스릴 거란다. 테베(Thebe)의 왕 라이우스는 경악한다. 이보다 더 잔인한 예언이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먼 과거 자신의 제자 크리시스 푸스를 납치하고 강간한 죄의 대가라는 걸 편리하게도 잊은 왕은 아들을 산 속에 버리 도록 명령한다. 하지만 버려진 백설공주와 마찬가지로 라이우스의 아들 오이디푸스 역 시 구해져 (꼭 기억할 것, 전설에선 산에 버 려진 아이는 살아남는다), 먼 나라 왕과 왕비 에게 입양된다. 아이는 청년이 됐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답은 하나뿐이었다. 멀리, 가능한 한 멀리 도 망가야 한다. 그 ‘멀리’는 테베였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괴팍한 노인을 죽인 청년은 테 베를 괴롭히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왕이 된다. 얼마 전 숨진 왕의 부인을 왕비로 삼고 말이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봤자 결과 는 뻔하다. 아니,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더 좋을 뻔 했을까? 아니, 가만히 있었더라도 어 차피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같은 아 리아(Aryan) 민족 후손들이던 고대 그리스· 로마·게르만 인들은 ‘모이라이(Moirai)’, ‘파 르케(Parcae)’, 또는 ‘노른스(Norns)’라 불 리는 늙은 여신들이 어디선가 마치 실을 뽑 듯 인간의 운명을 뽑고 있다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에서 보여주듯, 아리아인들 의 세계관은 냉소적이었다. 즉 인간은 흠투 성이고, 인간을 만든 신들 역시 흠투성이라 고. 운명은 정해져 있기에, 삶은 마치 술에 취 한 작가가 쓴 드라마와 같다고. 하지만 인간 의 삶이 막장드라마라 해서, 배우가 대본을 무시하고 혼자 잘난 척 한다면? 배우들은 혼 란에 빠지고 연극은 망치며 관객들은 환불을 요구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질 거다. 인생도 비슷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을 무시하는 순간, 세상은 우리를 비웃을 것이 다. 시학(詩學) 1권에서 주로 비극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그 의 시학 2권에서 아마도 희극의 의미와 구 조를 다뤘을 것이다. 희극이란 무엇인가? 코 미디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메난드로스(Manandros)의 ‘신(新) 희극’은 ‘고집스런 노인’, ‘교활한 노예’, ‘인 색한 사람’같은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 은 삶을 그렸다. 반면 아리스토파네스, 헤르 미푸스, 에우폴리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구 (舊)희극’ 작가들은 인간·신·국가 같은 거대 한 것들을 주제로 삼았다. 구희극 작품들을 주로 예로 들었을 시학 2권에서 아리스토 텔레스는 정해진 운명과 일치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eironeia’, 그러니까 ‘아이러니’라고 정의했을지도 모 르겠다. 그리스로마인에게 운명은 만물의 갑 피할 수 없는, 그리고 피해서도 안 될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만물의 미래. 고대 그리 스·로마인들에게 운명이란 만물의 수퍼갑 (甲)이었다. 그렇다면 운명을 조금이나마 바 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바로 튀케(Tyche) 또는 포르투나(Fortuna)라고 불리던 ‘행운’ 이 있다. 행운은 하지만 언제나 눈을 가리고 있다.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연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우연에만 맡기기 에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소중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내 아이의 미래를 이미 정해진 운
‘부모님 집에서의 예수 그리스도’. 존 에버레트 밀레(John Everett Millais, 1849-50).
인간의 완벽한 자유 의지는 불가능 운명 벗어나려 애쓰는 어리석음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아이러니’ 인류가 행한 모든 선택을 연결한 가상의 선이 ‘인간의 운명’ 아닐까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귀스타브 모로(Gusta ve Moreau, 1864).
명과 예측 불가능한 행운에만 맡길 순 없지 않은가? 아름다운 호수가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 서 목수(tekton)로 일하던 아버지. 항상 피곤 한 늙은 아버지를 돕는 착한 다섯 명의 아들 인 야코브, 요세스, 유다스, 시몬, 그리고 예 슈아(Yeshua). 갑자기 비명이 들린다. 나무 에 찔린 예슈아의 손바닥 가운데서 붉은 피 가 난다. 하루 종일 나무와 못과 대패와 씨름 하는 텍톤의 손은 언제나 상처투성이다. 아 버지는 말한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손 은 다시 아물고 피는 마를 것이라고. 하지만 왜 그런 걸까? 미리암(Miryam, 고대 이집트 어 ‘myr’는 ‘사랑스런’이란 뜻)의 가슴은 불 길한 느낌으로 멈추는 듯 했다. 다른 아이들 보다 더 진지하기에 더 사랑스러운 예슈아.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며 꿈 꾸는 듯한 예슈 아. 사랑스런 아들의 운명을 지금 이 순간 아 이의 손바닥에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운명의 본질은 우연과 행운인가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에게 ‘운명의 의미’는 무의미한 개념이었다. 왜 오이디푸스는 그런 운명을 타고났을까? 크리시스푸스를 납치 한 건 아버지 라이우스 아니었던가? 왜 아버 지의 죄를 아들의 운명으로 풀어야 할까? 정 답은 ‘그냥 그렇다’다. 운명의 본질은 우연과 행운이기에, 그리스·로마인들은 자신이 그저 오이디푸스 같은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걸 고 마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게르만 야만인들의 칼과 창에 서서히 망해가던 후기 그리스·로 마 시절. 천재 조각가 피디아스와 리시포스 의 아름다운 조각을 부숴 성벽을 쌓고, 거대 한 신전들이 거품같이 무너지던 시대. 최고 의 지식과 문명이 미개함에 무릎 꿇던 순간 사람들은 묻는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냐고? 모든 게 어차피 의미 없고 관심 도, 동정도 없는 운명과 우연의 결과물이라 기엔, 나약한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서글펐다. 인간은 희망이 필요했고 새로운 종교는 희 망을 주었다. 손바닥에 커다란 못이 박히기 위해 예슈아는 나사렛에서 태어났다고. 그의 운명을 통해 인간은 구원될 수 있다고. 운명 이란 질투와 성욕(性慾)으로 가득 찬 올림포
스 신(神)의 유치한 장난이 아니라 갈릴리 호 수 근처 부모님 집에서 안아주던 어머니의 품 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이라고. 초기 기독교를 그리스 철학과 단단히 결합시킨 고 대 로마의 종교철학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최 고 기여는 바로 이거였다. 운명 그 자체에 의 미가 있을 수 있다는. 그렇기에 운명의 본질 을 위해 사는 것이 유일한 참된 삶이라고. 참 으로 참신하고 놀랄 만한 가설이었다. 비슷 하게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먼 훗날 삶의 의지야말로 운명의 본질이라 고 명시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통치한 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롭지 못한 인간 운명이란 과연 무엇일까? 존재의 미래는 정 해져 있는 것일까? 개인의 의지를 통해 운 명을 통치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의 본 질은 결국 이거다.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은 자유롭지 않다. 지 금 이 순간에도 중력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우리 몸 분자구조들은 전자기장(場)을 통해 정해지며, 강한 핵력(electro strong force) 과 약한 핵력(electro weak force)이 있기 에 몸의 약 7×1027 개 원자들을 구현하는 쿼 크와 전자입자들이 존재한다. 지구는 적도 기준으로 시속 1670㎞로 돌고 있다. 위도 38 도에 자리 잡은 한반도는 시속 약 1316㎞로, 지금 이 순간에도 돈다. 동시에 지구는 시속 1만8000㎞로 태양을 돌고 있고, 태양계 그 자체는 시속 82만8000km로 은하수 중심을 돌고 있다. 인간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하기에 인간은 적어 도 물질적으론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PierreSimon, Marquis de Laplace, 1749∼1827) 가 주장했듯 결정론적인 기계일 뿐일까? 물 론 아니다. 자연의 확률적인 기본구조 덕분 에 완벽한 예측도, 자연의 법을 무시하는 완 벽한 자유도 인간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그 렇다면 적어도 물질적 자유가 아닌 정신적 자유만큼은 가능할까? 생각만 바꿨다면 예 슈아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결혼해 평범한 인
생을 살 수 있었을까?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삶은 생각과 선택의 꼬리 물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인생은 물론 생각과 선택의 꼬리 물기다. 선택과 생각은 뇌로 하 는 것이고, 뇌는 수천억 개에 달하는 신경세 포들의 합(合)집합이다. 그 수많은 신경세포 들을 단순히 ‘내가 원한다’란 의지 하나로 제 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매우 순진해 보 인다. 완벽한 자유 의지는 불가능할 수 있다 는 말이다. 물질적 실체를 가진 신경세포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이 단순히 과거와 현재의 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정해진다는 결정론적 주장 역시 라플라스 식 (式) 착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겠다. 당구공 같은 하나 의 이유가 다른 당구공을 치는 기계적 인과 관계는 인생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이란 수많은 요소들(물리 법칙·유전·경험·학습· 우연…)로 구성된 ‘선택의 풍경’을 통해 확률 적으로 만들어진다. 선택의 틀은 정해져 있 지만, 선택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 면 우리는 왜 완벽한 ‘자유 의지’를 통한 완 벽한 ‘선택의 자유’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을 까? 어쩌면 ‘나’란 존재가 선택하는 게 아니 라, 선택들을 통해 ‘나’란 존재가 만들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택이란 실질적 점들을 연결해 뇌가 그린 가상의 ‘선’이 바로 ‘나’란 존재이며, ‘나’란 허상은 ‘선택의 자유’란 그 럴싸한 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 하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선택들을 연결한 가상의 선이 바로 ‘나’라면, 어쩌면 인류의 모든 선택들을 연결한 가상의 선이 바로 ‘운명’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운명이란 존재의 본질적 우연 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한 인류가 다 함께 꾸는 하나의 꿈에 불과할 수 있겠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 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 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26 Column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함영준의 사람과 세상 10 FM 군인 민병돈
629 직전 軍 출동, 쿠데타 각오하고 막후서 저지 함영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전무 jmedia21@naver.com
1987년 6·29 선언으로 26년간의 군사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국가안 보라는 명분 하에 ‘최고 실세’로 군림하던 군 의 안하무인(眼下無人)은 여전했다. 88년 8월 현직 언론인에 대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오홍근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의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란 칼럼에 불만을 품 은 군 정보부대 요원들이 출근길 그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그런 와중에 89년 1월 나는 군 취재를 맡게 됐다. 국방부 출입기자는 ‘3실(室) 출입기자’ 로 불렸다. 기자실화장실대변인실 외에는 출입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나는 군사보안을 이유로 과도하게 취재금지를 시키는 관행을 깨뜨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대표적 보도금지(embargo) 사항이 ‘3군 본부 계룡산 이전 계획’이었다. 서울 도 심의 육·해·공 3군 본부를 3월 말부터 충남 신도안(현 계룡대)의 새 건물로 이전하는 계 획인데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이미 수년간 공사가 진행돼 천하가 아는 사실이요, 외신 에서도 줄곧 보도되는 데도 말이다. 나는 89년 3월 1일자 초판에 1면 톱으로 보도했다. 군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격 렬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아침 서울에 배포 되는 신문에는 기사가 통째로 날아갔다. 군 은 조직적으로 내 집에 전화를 해 “빨갱이 새 끼” “구속시킨다”고 협박했다. 실제 군사기 밀누설죄로 나에 대한 구속을 검토했다. 테 러나 연행에 대비, 결국 이틀간 나는 집에 들 어가지 못했다. 노태우 대통령 앞에서 북방정책 비난 89년 3월 21일 육사 제45기 졸업식. 민병돈 교장은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은 채 식사(式辭)를 통해 노대통령의 북방 정책 및 대북 유화 기조를 직설적으로 비판 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우 리의 적이 누구인지조차 흐려지기도 하며, 적성국과 우방국이 어느 나라인지도 기억에 서 지워버리려는, 매우 해괴하고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직 육군 중장의 이 발언은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화 추진 과정에서 소 외감을 느끼는 군부 강경세력의 집단 반발로 인식됐다. 민병돈은 신군부 핵심세력인 ‘하나회’ 출신의 육사 15기 대표 주자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인물. 강직하고 소신 이 강한 무장(武將)이란 평과, 상관도 못 말 리는 독선적 인물이란 평이 엇갈렸다. 결국 민 교장은 스스로 사의를 표한 뒤 군복을 벗 었다. 몇 달 뒤 나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의외로 동네 아저씨 같이 순박하고 수수한 모습이었 다. 그는 졸업식 당시 자기 행동에 대해 밝혔 다. “대통령이 ‘북한은 적이 아니라 동반자’ 라고 해 전방 군인들이 혼란에 빠졌다. 주적 이 북한이 아니라면 왜 엄동설한에 이 고생 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이런 여론을 직접 전하 고 싶었다.” 그는 또 대통령에 대한 경례는 행사 시작 시 ‘임석상관에 대한 경례’ 한번으로 족하다 고 했다. “순서 단계마다 상급자에 대한 경례는 과 공(過恭)이다. 난 과거부터 군의 이런 형식주 의적 관행은 따르지 않았다.” 군 주변에서 민병돈은 ‘민따로’라는 별명 으로 유명했다. 대세나 관행에 따르지 않고 ‘따로’ 행동함으로써 사서 고생한다는 뜻이 다. 확실히 그의 군 생활을 보면 그런 소리를
1989년 3월 21일 육군사관학교 제45기 졸업식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만난 민병돈 육사 교장(오른쪽). 그는 이날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 및 대북 유화 기조를 직설적으로 비판해 파문을 일으켰다.
특전사령관 시절 6월 항쟁 맞아 상황 급박 “군부 나서면 다 망한다” 동기 통해 전두환에게 자제 건의 사단장 땐 ‘부정 선거’ 거부해 좌천 관행 거부하고 따로 행동 ‘민따로’ 계급사회에서도 아래 살피며 살아 들을 만 했다. 상명하복(上命下服)과 위계질 서가 투철한 군대에서 그는 소신에 따른 ‘특 이한’ 행동을 많이 했다. 60년대 군에는 식량과 군용품을 빼돌려 팔아먹는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초급장교 시 절부터 그는 상관에게 이를 지적하고 항의했 다. ‘상납’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선거 때가 오면 공개적으로 여당 후보를 찍는 부정선거가 자행됐다. 그러나 그는 “민 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 을 찍는 것”이라며 부대원들의 비밀투표를 독려했다. 부대원에 방탄복 입히고 실탄 사격훈련 민병돈은 전형적인 ‘FM(Field Manual야 전교범) 군인’이었다. 특전사 대대장 시절, 작 전에 나가면 ‘폼나는’ 지휘관 텐트를 마다하 고 허름한 사병텐트 속에서 함께 뒹굴었다. 지휘관이 적에게 노출되면 안 된다는 교리를 철저히 지킨 것이다. 훈련도 실전을 방불케 혹독하게 실시했다. 특전사령관 시절 88서울올림픽 테러에 대비,
전두환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과(왼쪽대령 보직) 과 민병돈 제2대대장(맨 오른쪽)이 1972년 지리산 훈련 상황을 참관하기 위해 헬리콥터에 타고 있다.
즉응력(卽應力)을 기른다는 명분하에 부대 원들 상호 간에 방탄복을 입혀놓고 실탄 조 준 사격을 하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부대 원들이 동료를 겨냥, 사격할 것을 주저하자 사령관인 그가 시범 케이스로 직접 방탄복을 입고 부대원들이 자신을 쏘도록 했다(이 훈 련은 너무 위험하고 무자비하다는 여론에 따 라 후임 사령관 때 폐지됐다). ‘민따로’의 원칙주의는 85년 2·12 총선 때 빛을 발한다. 당시 연금에서 풀려난 YS와 DJ 등 민주화 세력이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자 전두환 정권은 총력전으로 맞섰다. 그러나 수 도권 20사단장으로 근무하던 민병돈 소장은 평소 소신대로 ‘부정 선거’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육사 후배인 김진영 수도기계화사단 장도 동참케 했다. 군에서는 난리가 났다. 원래 20사단장은 수방사령관(중장)으로 영전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그러나 민병 돈은 준장 보직(육본 정보참모부차장)으로 좌천됐다. 김진영도 경북 영천의 육군3사관 학교 교장으로 밀려났다.
-발포 명령은 선(先) 육본 건의 후, 승인하 조치…
여차하면 청와대 점령계획까지 세워 87년 6월 중순 전국은 폭풍 전야였다. 6·10 항 쟁을 계기로 전국이 준(準)소요상태로 접어 들었다. 곧 군이 출동하고 위수령(衛戍令)이 발동될 것이라는 풍문이 퍼져나갔다. 민병돈 특전사령관은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만약 군 이 출동한다면 그의 특전사가 최첨병으로 나 설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군이 나서면 내란 상황이 될 것이다. 7년 전 광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사태가 초래될 것이며 대한민 국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이런 우려는 비단 민병돈만의 것이 아니 었다. 드디어 6월 19일 육군참모총장 발(發) ‘작 전명령 제87-4호’가 떨어졌다. 내용은 충격 적이었다.
상황은 급박해졌다. 이제 대통령 한 마디 면 전군이 출동, 유혈충돌→무력진압→내전 상태로 번질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민병돈은 즉시 육사 동기인 고명승 보 안사령관을 만났다. “군이 출동하면 다 망한다. 자네가 각하를 만나 명령 취소를 건의하게. 만약 누가 대표 자라고 묻는다면 내 이름을 대게.” 고명승도 동감을 표시하고 즉시 청와대로 올라갔다. 민병돈은 만약 대통령이 건의를 무시한다 면 즉시 휘하 707대대로 청와대를 점령하는 쿠데타를 감행할 계획이었다. 이미 도상 연 습도 마쳤고, 방송용 대국민 성명서도 작성 한 상태다. 당시 가까운 후배들로 이뤄진 수도 권 부대 지휘관들의 동조도 자신했다. ‘문제 는 대통령과의 의리(義理)다. 그러나 대한민 국 장군으로서, 특전사령관으로서 개인적 인 간관계보다는 국가와 국민의 안전이 먼저다.’ 그는 실패할 경우 총살이나 자결을 각오했다. 고명승 보안사령관이 전 대통령을 만났다. “각하. 군 출동 명령을 재고해달라는 군내 여론이 높습니다.” “누가 주도하는가.” “민병돈 특전사령관입니다.” “뭐야 민병돈이?…” 순간 전 대통령의 얼굴에 뜻 모를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알았어. 가봐.” 전 대통령은 사실 ‘엄포용’으로 작전명령 을 시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민병돈 의 사람됨을 알고 있었다. 염려하던 군 출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며칠 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전폭적으로 받아 들이는 역사적인 ‘6·29 선언’이 발표됐다.
-전군, 87.6.○일, ○시부로 소요 진압작전 실시 -4개 사단, 6개 특전여단, 4개 군단 특공연 대, 해병 2개 연대는 수도권 및 후방에 배속 -부산·경남과 충남·북지구, 계엄사 운용 -육군 예비: 특전사, 수기사, 항공여단
가난한 휴가병 보면 여비 쥐어줘 보내 민병돈은 퇴임 후 일체의 공직 제의를 뿌리친 채 40여 년 전 마련한 서울 양천구 목동 집에 서 중풍 걸린 아내를 수발하며 산다. 그리고 늘 허름한 점퍼를 걸치고 보수단체 모임에 나 가 묵묵히 도와주고 나라 사랑을 실천한다.
[중앙포토]
그는 타고난 군인이다.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 서울 출신인 그는 만 15세(휘문 중 3)때 6·25가 터지자 학도병으로 참전, 총 상을 입기도 했다. 고된 군대생활도 그에게는 낙(樂)이었다. 그는 부하들을 엄하게 다뤘다. 원칙에 어 긋나거나 꾀를 부리면 가혹하게 처벌했다. 그 러나 가난한 휴가병에게는 주머니를 털어 차 비와 닭 한 마리 사갈 돈을 쥐어줬다. 연대장 시절 참모들이 만들어준 기념패에는 ‘차갑 고도 뜨거우며, 무섭고도 인정 많은 연대장 님께’라고 씌어 있었다. 그의 집에는 지금도 수십 년 전 부하들이 찾아온다. 채소나 곡식을 가져오기도 하며, 자식 주례 부탁도 한다. 인간 민병돈을 볼 때마다 나는 하심(下 心)을 느낀다. 불교 용어로 하심은 ‘자기 자 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다. 그는 위 만 바라보기 쉬운 군대 계급 사회에서 드물 게 아래를 보고 살아온 사람이다. 어떻게 하 면 부하들이 제대로 대우받고, 원칙에 맞게 살며, 전투를 잘하는 군인으로 만들 것이냐 가 그의 주관심사였다. 3성 퇴역 장성인 그는 골프도 안 친다. 자동차도, 휴대폰도 없다. 잘 난 체 하지도, 무용담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와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10년 전 신문사를 나와 고생하고 있을 때 어느 날 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요즘 얼마나 힘들어. 식사나 해.” 우린 식당에서 설렁탕과 소주 한 병을 나 눠 먹었다. 그날 그 점심이 지금도 내겐 잊혀 지지 않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저녁 무렵 그는 40년 전 대대장 시절 따르던 하사관(부 사관)이 왕십리 지하철역 부근에서 라면집을 개업해 축하해주러 간다고 일어섰다. 육십 넘 은 부하의 새 길을 격려하기 위해 시청 전철 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팔순 퇴역군인의 뒷모습…. 순간 내 마음속에 뭉클한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함영준 조선일보 사회부장·국제부장 등을 역임하 고 국민대 겸임교수를 거쳐 청와대 문화체육관광 비서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 냈다. 저서로 마흔이 내게 준 선물 등이 있다.
Column 27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삶과 믿음
멋지게 지는 법 차동엽 신부 ip81335@hanmail.net
1939년 9살의 로린 마젤이 고교 오케스트라(The National High School Orchestra )를 지휘하고 있다.
詩人의 음악 읽기 지휘자 로린 마젤 타계
음악으로 평화의 씨 뿌린 우리 시대의 거장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7월 13일 미국 지휘자 로린 마젤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4세. 그만 하면 천수를 누렸 다. 무려 200여 군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 고 음반 발매량도 카라얀의 700장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300장이 넘는다. 미국식 재 기발랄로 레너드 번스타인을 따를 인물이 없지만 그 다음 순서에 로린 마젤을 놓아도 좋으리라.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왔었다. 10여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서울시향과 말 러 1번 교향곡을 연주했는데 뚜렷한 인상이 남았다. 어느 매체엔가 ‘소리의 건축가’ 운 운하는 소감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난삽하게 다가오기 일쑤인 말러 곡의 윤 곽을 건축 골재 쌓아올리듯이 정확하고 선 명하게 그려 놓는 지휘자였다. 소리가 차곡 차곡 쌓이는 느낌. 그 바람에 그 교향곡이 흡사 쉬운 곡처럼 다가왔다. 그의 부음 앞에 한 세기가 저물었노라 운운하는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대중의 환호를 크게 받았던 20세기 음악환경의 대 표적 인물 하나가 떠난 것은 틀림없다. 그는 마에스트로 지위를 부여받은 대스타급 지 휘자 몇몇 가운데 하나였다. 로린 마젤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이 있다. 하 나는 좀 우스꽝스러운 사건. 1989년 베를린 필하모닉 종신지휘자 카라얀이 사망했을 때 후임이 누가 될지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단원 투표로 이루어지는 선발인 데 세상의 유명 지휘자는 다 거론됐다. 그만 큼 비중 있고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였다. 이 때 로린 마젤의 유명한 김치국 사건이 터진 다. 언론의 대세가 마젤이었고 본인도 확신 을 가졌던 것 같다. 단원투표 전에 성대한 당선 파티를 미리 준비했고 세계 주요 매체에 화려한 프로필
을 배포해 두었다. 결과는 뜻밖에도 이탈리 아 사람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실제로 예 상 밖의 결과였다). 열한 살에 토스카니니 의 NBC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미국인 최초 로 바이로이트 음악제 지휘라는 영광을 거 머쥐었던 천재소년 출신이다. 그때 분노한 마젤의 처신이 이제는 귀엽게까지 여겨진 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모두에게 편 지를 띄운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당신들 과 일을 함께 하지 않겠노라고. 물론 실패담만 있었을 리 없다. 레너드 번 스타인과의 빛나는 시절 이후 뉴욕 필하모 닉은 피에르 불레즈, 주빈 메타, 쿠르트 마 주어를 거치면서 성과가 영 신통치 않게 되 었다(이들 지휘자의 뛰어난 역량을 의심할 바 없지만 조직 운영상의 여러 문제가 게재 된 것 같다). 면모 일신을 결심한 뉴욕필이 선택한 인물이 바로 로린 마젤이었다. 이미 노경에 접어든 나이여서인지 계약기간은 2 년 여에 불과했지만 한국인에게 잊을 수 없 는 기억을 남긴다. 2008년 2월 단원을 이끌
고 평양공연을 성사시킨 것이다. 미국 내 반 대가 엄청 심했다는데 그는 개의치 않고 양 국 국가까지 연주했다. 음악으로 평화에 기 여할 수 있다는 소신 행보였다. 그의 출발점으로 가본다. 프랑스 태생의 미국인 지휘자 로린 마젤. 그는 지휘뿐만 아 니라 작곡도 꽤 했고 소설, 영화대본도 썼던 재사풍 인사다. 이른 나이의 성공으로 거만 하다는 세평을 달고 살았지만 뮤직 비즈니 스와 타협을 잘한 편으로 본다. 수많은 악 단을 전전했는데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와 함께 했던 시절 음반이 가장 좋다. 특히 서방취향의 감성적 차이콥스키를 구현하는 데 뛰어나다. 그의 연주는 그리 별나지 않으 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안겨준다. 안심하 고 음반을 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로린 마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클래식 음악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고 문 화계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미 저물어 버린, 되돌아 올 수 없는 시대의 자취를 그의 부 음을 통해 새삼 느낀다.
2008년 뉴욕필하모닉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마젤(1930~2014). 공항청사의 김일성 초상화가 보인다.
각본 없는 드라마. 올 여름은 브라질 월드 컵 중계 덕에 스릴있게 지냈다. 며칠 전 영 국의 한 신문이 이번 대회에서 나온 ‘베스 트 골’ 11개를 추려 명장면으로 보도했다 는 기사를 접했다. 국내 방송사도 명장면을 ‘TOP7’으로 엮어 방영하기도 했다. 내게도 하나 꼽으라면 즉시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멋진 골 영상도, 화려한 개인 기나 인상적인 응원도 아니다.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가 맞붙은 8강전에서 연장전 혈 투에 이은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가 골을 차 고 4 대 3으로 희비가 갈리던 순간! 승리의 여신은 네덜란드 편을 들어줬다. 바로 그 찰나, 코스타리카의 한 선수가 십 자성호(가톨릭 신자들의 손짓 기도)를 크 게 긋는 모습이 카메라에 클로즈업됐다. 이 는 내게 무언의 감동을 안겨줬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만일 월드컵 8강전 승부차 기에서 대한민국이 상대팀에 졌을 경우 나 는 과연 어떤 식으로 반응했을까. 사제인 나, 더구나 그 무엇보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 한 책 천금말씨의 지은이지만 그 순간의 돌발반응이 어땠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예단할 수 없다. 어쨌든, 방송 화면에서 목 격한 패자의 십자성호는 지금도 내게 그 어 떤 위대함으로 각인돼 있다. 상징 행위 속에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차 제에 저 코스타리카 선수의 통 큰 상징 행위 에서 깨달음의 꼬투리를 주워봄은 어떨까. 우선, 패배자가 그은 십자성호는 ‘감사’ 의 몸짓으로 읽힌다. 패배의 잔을 마시는 것 은 누구에게나 쓰다. 석패한 직후 저절로 분 노나 통한의 감정이 생기는 게 범부의 상식 이다. 그러기에 저 반사적인 십자성호는 오 히려 통쾌한 반전의 묘를 연출한다. 모르긴 모르되, 그것은 “감사합니다, 하느님. 여기 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었습니 다”라는 눈물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이는 신앙을 넘어 고수의 지혜이기도 하다. 왜? 한계와의 싸움에서 ‘플러스 알파’로 작
용하는 단초는 결국 ‘감사’를 아는 마음이기 에 그렇다. 감사는 자신의 실존과 성취가 누 군가의 도움에 신세지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 이다. 그러기에 실패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현 하는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가 능성에 미래를 열어두는 격이 된다. 다음으로, ‘승복’의 몸짓으로 읽힌다. 이 사회에서 패자로 남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 도 없을 것이다.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우 리는 어떻게든 이기는 걸 ‘성공’으로 여긴다. 하지만 ‘자~알’ 지는 것도 성공이다. 패 자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줄 줄 아는 승 자가 진정한 승자며, 승자의 손을 치켜세워 줄 줄 아는 패자 역시 진정한 승자다. 전자 가 승부에서의 승자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 생에서의 승자인 것이다. 이런 안목에서 보
내가 본 브라질 월드컵 최고 장면은 8강전에서 패한 선수의 ‘십자성호’ 감사승복축복의 몸짓 아니었을까 건대, 저 십자성호는 필경 “졌다! 승부차기 도 결국 실력이다”라는 깨끗한 시인이었을 터다. 이로써 그는 더 아름답고 멋진 승리를 기약받은 셈이다. 그리고, ‘축하’의 몸짓으로 읽힌다. 인생 에서의 패자는 승부에서의 승자를 죽었다 깨어나도 축하해주지 못한다. 때문에 최상 의 명승부는 승자와 승자의 포옹으로 끝나 는 법이다. 승부에서의 승자와 인생에서의 승자의 격렬한 스킨십! 상상만 해도 흐뭇해 지는 그림이다. “축하합니다, 당신네들 따봉! 4강전 승리를 기원합니다”는 호기로운 선의 의 축원이었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공연한 억지일까. 아닐 것이다. 벌써 브라질 월드컵 의 열기는 전설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한 순 간 포착된 코스타리카 선수의 십자성호가 내 심금에 드리운 깨달음은 날로 새롭다.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 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 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千丈之堤 潰自蟻穴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중국 전국(戰國)시대의 사상가 한비자(韓 非子)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다. 그러나 그 는 노자(老子)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천 장(千丈) 높이의 둑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 진다(千丈之堤 潰自蟻穴)’는 유명한 말 역시 노자의 영향을 받아 나왔다. 이는 그의 사후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된 책 한비자의 유로(喩老)편에 등장한다. 유(喩)는 비유(比 喩)를, 로(老)는 노자를 말한다. 비유를 들어 노자의 말을 풀이한다는 것이다. “형체가 있는 것 중에 큰 것은 반드시 작 은 것에서 생긴다(有形之類 大必起於小). 오 래 존속하는 것 중에 많은 것은 틀림없이 적 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行久之物 族必起 於少). 따라서 노자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기고 천하의 큰 일은 언제나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고 했다(故 曰 天下之難事必作於易 天下之大事必作於 細). 그래서 사물을 제어하려는 자는 그 사 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법이다(是以欲制物 者於其細也). 노자는 또 ‘어려운 것을 도모 하려면 쉬운 것부터 하고 큰 것은 사소한 것
<천장지제 궤자의혈>
에서부터 시작한다(故曰 圖難於其易也 爲 大於其細也)’고 말했다. 천장 높이의 둑도 개미구멍으로 말미암아 무너지고(千丈之 堤 以螻蟻之穴潰), 백 척짜리 큰 집도 굴뚝 틈에서 나온 불똥으로 인해 타버린다(百尺 之室 以突隙之烟焚). 그러므로 치수(治水) 의 명인 백규(白圭)는 둑을 순찰할 때 구멍 을 틀어막았고, 집안의 노인들은 불을 조심 해 굴뚝의 틈을 흙으로 발랐다(故曰 白圭之 行堤也塞其穴 丈人之愼火也塗其隙). 그래 서 백규가 있을 때는 물난리가 없고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화재가 없다(是以白圭無水難 丈人無火患). 이는 모두 쉬운 일에 주의를 기 울임으로써 재난을 피하고 사소한 일을 조 심함으로써 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다(此皆愼易以避難 敬細以遠大者也)”. 여기서 나온 ‘천장지제 궤자의혈(千丈之 堤 潰自蟻穴)’은 모든 큰 일은 다 사소한 게 원인이 되고 있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세월 호 참사나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등 잇따라 터져 나오는 사건 사고가 다 그렇다. 평소 조 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예방할 수 있었을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다 보니 결국엔 큰 일 을 자초하고 만다. 우리 사회의 풀려버린 나 사가 한 둘이 아닌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러울 뿐이다.
28 Column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다시 쓰는 고대사
16
신라의 색공지신
진흥진지진평왕에게 색공한 미실, 30년 간 천하 호령 <높은 사람에게 여자를 바침>
이종욱 교수 leejw@sogang.ac.kr
신라의 미실(美室)은 한국 역사상 가장 아 름다운 여인 중 한 명이었다. 화랑세기 11 세 하종 조는 미실을 가리켜 “용모가 절 묘하여 풍후함은 옥진(玉珍·외할머니)을 닮 았고, 환하게 밝음은 벽화(할머니의 어머 니)를 닮았고, 빼어나게 아름다움은 오도 (외할머니의 어머니)를 닮아서 백화(百花) 의 신묘함을 뭉쳤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수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 다. 미실의 외할머니 옥진은 “이 아이(미실) 는 우리의 도(道)를 일으킬 만하다”고 말하 고 좌우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미도(媚道, 교태를 부리는 방법)와 가무(歌舞)를 가르 쳤다. 이는 색공(色供)을 위한 교육이었다. 색공은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여자를 바치 는 일을 뜻한다. 그렇게 색공 교육을 받은 미실은 한 평생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 그는 제24 대 진흥왕과 그의 큰아들이었던 동륜(銅輪) 태자,진흥왕의 작은 아들로 동륜의 동생인 제25대 진지왕(금륜), 동륜태자의 아들인 제 26대 진평왕(백정) 등 3세대에 걸친 성골(왕) 에게 색공을 했다. 미실의 생존연대는 정확 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546년에서 550 년 사이에 태어나서 619년에서 622년 사이 언 제인가 죽었다고 추측된다(이종욱, 색공지 신 미실, 2005). 미실이 처음 관계를 가졌고 평생 남편으로 삼았던 사람은 6세 풍월주(화랑도의 수장) 세종(世宗) 한 사람뿐이다. 신국(神國), 즉 신 라의 도에는 일부일처(一夫一妻)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세종의 어머니 지소 태후(제23대 법흥왕과 보도왕후 김씨의 딸 이며, 법흥의 동생인 입종 갈문왕과 혼인해 진흥왕을 낳았음)는 진골정통(眞骨正統)이 었기에 대원신통(大元神統)인 미실을 좋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은 신라의 대 표적인 두 인통(姻統)이다. 인통은 왕비(왕 후 또는 황후)를 배출하던 계통이다. 아버지 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계승을 거울에 비춘 것과 같은 원리로 인통은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모계계승으로 이어졌다. 인 통에는 왕비가 되지 못한 여자들도 모두 속 하였다. 다시 미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세종의 어머니 지소태후는 미실을 좋아하지 않았지 만 세종은 미실을 너무 그리워하여 궁으로 불러들였다. 미실이 세종을 모신 지 얼마 되 지 않아 상통했다. 그 때 지소태후는 진흥왕 의 왕비인 사도(思道)왕후를 폐하고, 자기의 딸이자 세종의 누나인 숙명을 왕비로 삼으려 했다. 그러한 사정을 미실이 이모인 사도왕후 에게 알렸고, 그 사실이 알려져 지소태후가 노했다. 이에 지소태후는 미실을 출궁시켰다 (화랑세기 6세 세종). 출궁한 미실은 5세 풍월주 사다함(斯多含) 과 서로 사랑했다(화랑세기 6세 세종). 사 다함이 561년 9월 가야의 반란을 진압하러 갈 때 미실은 향가인 ‘풍랑가(風浪歌)’를 지 어 위로해 보냈다. 그런데 세종이 너무 괴로 워하자 두려워 한 지소태후가 미실을 다시 입 궁시켜 세종의 부인으로 삼았다. 전쟁에서 돌아온 사다함은 ‘청조가(靑鳥歌)’를 지어 슬픔을 이야기했다. 사다함이 친구인 무관랑 의 죽음을 슬퍼하여 죽게 되었을 때 6세 풍월 주로 세종을 추천했다. 풍월주가 된 세종의 부인 미실은 이모인 사도왕후의 명으로 진흥왕의 큰아들인 동 륜에게 색공을 하여 아이를 임신했다(화랑 세기 6세 세종). 동륜이 언젠가 왕위계승을 하면 미실을 왕후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대
신라시대에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여자를 바치는 일을 뜻하는 색공(色供)은 에로티시즘이 아닌 고도의 정치 행위였다. 신라의 생활 풍습이 담겨 있는 국보 195호 토우장식 장경호.
교태가무 교육받아 陰事에 능해 왕의 총애 받으며 정사에도 관여 신라의 색공은 고도의 정치행위 왕비 배출 계통이라야 색공 자격 원신통의 우두머리 사도의 지휘 하에 미실 의 색공 일생이 시작된 것이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그 무렵 미실은 진흥 왕을 사모하여 애를 태웠다고 한다. 그러한 마음이 진흥왕에게 전달되었다. 진흥왕은 사 도왕후에게 “너의 조카는 하늘 높은 줄 모르 는 미녀인데, 어찌 너의 잉첩(媵妾, 사도왕후 에 달린 첩)이 되지 못하고 다른 데로 시집갔 는가”라고 물었다. 사도왕후는 이에 미실을 진흥왕에게 추천했다. 진흥왕이 미실과 한번 교합한 후에는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 게 했다. 미실은 음사(陰事)를 잘하여 총애가 날로 중하여 황후궁 전주(殿主, 황후와 같은 지위)로 발탁되었다. 진흥왕이 조정에 나가 정사(政事)를 볼 때 미실이 옆에서 모시며 문 서를 읽고 옳고 그름을 판결했다. 이로써 조
색공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상통(相通)하는 남녀.
진흥·진지·진평왕 3대에 걸쳐 색공한 미실은 할머 니 옥진에게 미도(교태를 부리는 방법)와 가무를 배웠다. 사진은 신라인이 악기를 다루는 모습.
야의 권세가 옥진궁(대원신통을 뜻함)으로 돌아갔다고 한다(화랑세기 11세 하종). 옥 진은 미실의 외할머니였다. 옥진-묘도·사도· 흥도-미실 3대로 이어지는 대원신통은 탁월 한 색공지신(色供之臣,색공을 하는 신하)들 이었던 것이다. 576년 진흥왕이 죽었을 때 사도와 미실, 그 리고 미실의 동생 미생은 왕의 죽음을 비밀 로 하고 일찍 죽은 동륜의 동생 금륜태자(진 지왕)와 미실이 통하게 만들었다. 금륜이 왕 위에 오르면 미실을 왕비로 삼기로 약속케 하고 금륜을 즉위시켰다(화랑세기 11세 하 종). 그런데 왕위에 오른 금륜은 이 약속을 지 키지 않았다. 이에 진지왕의 어머니인 사도태 후와 미실 등이 진지왕을 폐위시켰다(화랑 세기 13세 용춘공). 579년 사도태후와 미실은 동륜태자의 아 들 백정(진평왕)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 때 진평왕은 13살이었으나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넘쳤다. 사도태후는 보명과 미실에게 색 을 가르치도록 했다. 미실은 골품이 낮다고 핑계를 대며 양보했으나, 보명은 임신 3개월 이라 미실이 먼저 색공을 했다. 색을 알게 된 진평왕은 스스로 보명궁에 찾아가 보명과도 상통했다. 진평왕은 즉위 1~2개월만에 미실 을 우후(右后)로, 보명을 좌후(左后)로 임명 했다(화랑세기 22세 양도공). 이로써 진평 왕 대에도 색공을 한 미실은 그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미실은 진흥왕의 총애를 믿고 방탕해져 7 세 풍월주 설원랑은 물론이고 자신의 동생 인 미생과도 사통(私通)했다(화랑세기 10 세 세종). 미실은 여러 왕이나 태자에게 색공 을 했고, 설원랑과도 사통을 했기에 자녀들 이 많았다. 미실은 왕들에게 색공을 하여 30 년 동안 천하를 호령하고 일족이 부귀를 누 린 것이 사실이다(화랑세기 10세 미생랑). 여기서 신라 사람들의 색공은 에로티시즘 (eroticism)의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정치행 위였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 역사가 중에는 이러한 연유로 미실과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화랑세기를 위작 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신라의 역 사를 옳게 알고 인통과 색공을 이해하면 미 실이야말로 신국의 도를 치열하게 산 인물임
미실이 색공한 왕실세력들 22 지증왕
[사진 권태균]
※22~26 신라 왕의 대수. ■은 동일 인물
연제왕후
(500~514)
23 법흥왕
보도왕후
입종
지소태후
이사부(태종공)
지소태후
(514~540)
지소
24 진흥왕(2)
사도왕후
세종
(540~576)
미실
(6세 풍월주)
동륜(1)
만호
26 진평왕(4)
25 진지왕(3)
하종
(576~679)
(11세 풍월주)
마야
(579~632)
세종(6세 풍월주)=미실: 정식 부부관계 동륜(1), 진흥왕(2), 진지왕(3), 진평왕(4): 미실이 색공한 성골의 순서 그 밖에 사다함(5세 풍월주), 설원랑(7세 풍월주), 미생(미실의 동생, 10세 풍월주)과도 사통(私通)한 것으로 나옴
을 알 것이다. 화랑세기 6세 세종 조에는 인 통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제13대)미추대왕(262~284)이 광명(光 明)을 황후로 삼으며 후세에 알려 말하기를 ‘옥모(玉帽)의 인통이 아니면 곧 황후로 삼 지 말라’했다. 까닭에 세상에서 이 계통을 진골정통이라 한다. 옥모부인은 곧 조문국 의 왕녀인 운모(雲帽) 공주가 구도공에게 시 집가서 낳은 사람이다. 옛날부터 진골(眞骨) 이 아니다.” 이를 보면 인통은 왕비를 배출하는 계통 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옥모부인이 낳은 딸들, 그리고 그들의 딸들로 이어지는 진골정통의 여자들이 대를 이어 왕비를 배출 했다. 옥모의 딸 홍모(골정 갈문왕의 부인), 홍모 의 딸 아이혜(제11대 조분왕의 왕비), 아이혜 의 딸 광명(미추왕의 왕비), 광명의 딸 내류, 내류의 딸 아노(제19대 눌지왕의 왕비), 아노 의 딸 조생(제22대 지증왕의 아버지 습보갈 문왕의 부인), 조생의 딸 선혜(제21대 소지왕 의 왕비), 선혜의 딸 보도(법흥왕의 왕비), 보 도의 딸 지소로 이어지는 진골정통의 계보를 재구성할 수 있다. 미실의 인통인 대원신통은 눌지왕(417~ 458)의 동생 복호의 첩인 보미(宝美)를 시조 로 하였다. 라이벌이었던 진골정통은 미추대 왕 대(262~284)에 옥모부인을 시조로 하였 다. 대원신통이 진골정통보다 늦게 시작된 것 을 알 수 있다.
진흥왕의 왕비 사도왕후와 진지왕의 왕비 지도왕후는 모두 대원신통이었다. 진평왕의 왕비 마야왕후는 진골정통이었다. 여기서 진 골정통과 대원신통이 왕비나 태자비를 배출 하기 위해 경쟁했던 사정을 알 수 있다. 더 나 아가 왕의 후궁을 배출하는 경쟁도 했다. 이 경쟁에서 이긴 인통은 일족들이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 신라 인통은 색공(色供)과 뗄 수 없는 관계 에 있었다. 그런데 색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통이 있어야 할 수 있던 것이었 다. 화랑세기 10세 미생랑 조에 묘도(妙 道)가 “우리 집은 대대로 색공지신으로 총 애와 사랑이 지극했다”라 나오고 있어 그러 한 사정을 알 수 있다. 묘도는 사도왕후의 언 니로 대원신통이었고, 색공의 대표적 인물인 미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미실이 색공을 하던 시기에도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은 왕비나 왕비의 잉첩을 배출하기 위한 색공 경쟁을 벌였다. 당시 진골정통은 지소태후를 종(宗, 우두머리)으로 삼았고, 대 원신통은 사도왕후를 우두머리로 삼았다( 화랑세기 11세 하종). 사도왕후는 대원신통 의 번성을 위해 조카인 미실로 하여금 왕들과 태자에게 색공을 하도록 적극 지원했다.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졸, 문학박사, 서강대 사학 과 부교수교수서강대 총장 역임, 현재 서강대 지 식융합학부 석좌교수. 신라국가형성사연구 등 22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음.
Column 29
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3>
장쉐량 사진 보고 침 삼킨 ‘마지막 황제’의 제수 탕스샤 탕스샤(唐石霞·당석하, 1904~?). 중국인들에 게도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1949년 홍콩으 로 이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홍콩 생활이 어 땠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가명으로 서화전을 연 것 외에는 언제 죽었는지도 불분명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탕스샤의 산수화와 글씨들이 돌아다녔다. 그래도 주목은 받지 못했다. 91년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의 입에서 탕 스샤로 추정되는 여인의 이야기가 튀어나왔 다. “젊은 시절 푸제(溥杰·부걸)와 친했다. 어 쩌다 보니 그의 부인과 가까워졌다. 한때 은 밀한 사이였기에 누구라고 이름은 밝히지 않 겠다. 서장대신(西藏大臣, 티벳의 행정장관) 의 딸이었던 그 여인은 한때 푸이(溥儀·부의) 의 부인이 될뻔한 적도 있었다. 평소 아버지 는 ‘음탕한 여자가 매력은 있지만, 잠시라면 몰라도 오래 만날 건 못 된다’는 말을 자주했 다. 내게 아버지의 말이 맞다는 걸 일깨워 준
푸이와 결혼할 뻔하다 암투에 밀려 스무살에 황제의 동생 푸제와 결혼 “방탕한 게 흠 황후감 못된다” 평가 장쉐량 흠모하다 파티서 만난 뒤 여자였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교양만 가득차 있었다. 지혜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총명 이 극에 달했지만 몸가짐은 형편없었다. 몰 래 만나는 남자가 나 말고도 많았다. 나를 갖 고 놀려고 했다.” 장쉐량의 말이 입소문을 타자 싱거운 호사 가들이 분주해졌다. “탕스샤가 분명하다. 아 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생 겼기에, 민국 4공자 중 두 사람인 장쉐량과 루샤오자(卢筱嘉·노수가)의 정부(情婦)였는 지, 한번 봤으면 원이 없겠다. 장쉐량과의 인 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 황제 푸이와 동생 푸제의 여인들이 화제의 인물로 등장했다. 세 살 때 황위에 오 른 푸이는 광서제(光緖帝)의 황후 융유태후 (隆裕太后)와 태비(太妃)들 틈에서 성장했 다. 자식이 없던 태후는 푸이에 대한 정이 각 별했다. 항상 혼자서 끼고 돌았다. 태비들은 융유의 기세에 눌렸다. 젖먹이 황제에게 장난 감 쥐어줄 때도 태후의 눈치를 봤다. 태후가 세상을 떠나자 4명의 태비들이 푸 이를 놓고 각축전을 벌였다. 근비(瑾妃)가 나 이도 많고 친정이 든든했다. 근비는 친정 조 카들을 궁궐로 끌어들였다. 조카들 중에는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다. 탕스샤가 돋보이자
완룽(뒷줄 왼쪽 두번째), 원슈(뒷줄 왼쪽 세번째), 탕스샤(오른쪽 첫번째)를 데리고 꽃구경 나온 근비(瑾妃). 1921년 무렵. 자금성 어화원(御花園)으로 추정.
다른 애들은 출입을 금지시켰다. 탕스샤는 시(詩)·서(書)·화(畵)에 능했다. 요리 솜씨도 뛰어났다. 근비는 소문난 미식가였다. 궁중에서 자란 탕스샤는 어릴 때부터 푸 이와 친했다. 푸이도 두 살 위인 탕스샤를 누 나라 부르며 잘 따랐다. 푸이가 결혼할 나이 가 되자 태비들은 긴장했다. 근비가 건재하 는 한, 황후감은 탕스샤가 가장 유력했다. “탕스샤가 황후가 되면 자금성(紫禁城)은 근비의 손에 들어간다”며 3명의 태비가 힘을 합쳤다. 근비는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다. 생 각지도 않았던 완룽(婉容·완용)을 황후에 추 천했다. 태비들은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푸 이는 같은 날 완룽과 원슈(文繡), 두 명의 여 인과 결혼했다.
근비는 황후를 꿈꾸던 탕스샤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너는 방탕한 게 흠이다. 황후감은 아니다. 너보다 세 살 정도 어린 남편감을 구 해주마.” 약속도 지켰다. 탕스샤가 20세가 되 자 푸제에게 출가시켰다. 당시 푸제는 열 일 곱살이었다. 탕스샤는 동서들(푸이는 같은 날 완룽과 원슈 두 명의 여인과 결혼했다)끼리 원만하 게 지냈다. 남편과는 결혼 첫날부터 삐걱거 렸다. “황실은 망해 싸다. 무슨 남자들이 쓸 데없는 교양으로만 가득차 있다. 게을러 터 진 것들이, 먹고 마시고 치장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조상들에 게 물려받은 골동품 들고 황제에 복귀할 꿈 만 꾸는 한심한 사람들”이라며 투덜거렸다.
난세에는 총 가진 사람이 제일이었다. 신문에 서 청년 원수 장쉐량의 사진을 볼 때마다 침 을 꼴깍 삼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결혼 2년 후 인 1926년 봄, 푸제와 함께 베이징 반점에 춤 추러 갔다가 28살짜리 장쉐량이 들어오는 것 을 먼발치에서 봤다. 동북군들의 경호가 어 마어마했다. 살벌할 정도였다. 다가갈 엄두 도 못냈다. 장쉐량이 제 발로 인사하러 오자 당황했다. 남편이 장쉐량과 친구 사이인 줄 을 비로소 알았다. 탕스샤가 장쉐량을 집으로 초청했다. 장 쉐량은 이 날의 일을 구술로 남겼다. 푸제도 이 날을 잊지 못했다. 훗날 회고록에서 상세 히 기술했다. <계속>
주요국 중에서 수도와 같은 인구 밀집지역이 적의 다연장 로켓이나 야포·박격포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된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 딱 둘이다. 한국은 북한의 방사포(다연장 로 켓)와 장사정포(장거리포) 공격에 속수무책 이다. 북한이 연평도에 발사했던 게 방사포 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장악한 팔레스 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로부터 다연장 로켓 이나 박격포 공격을 수시로 받는다. 그런 의 미에서 한국과 이스라엘은 안보환경이 비슷 하다. 환경은 비슷하지만 대비 태세는 완전 딴판이다. 이스라엘은 적극적·독자적 대비 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있는데 한국은 그야 말로 무방비 상태다.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이라는 대공 무기체 계로 팔레스타인 측의 로켓포 공격을 대부분 막고 있다. 이 달 초 시작된 팔레스타인의 이 스라엘에 대한 로켓 공격은 지금까지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 숫자는 아직까지 0명에 머물고 있다.
아 이언돔 은 군사 용 어로는 C-R A M (Counter Rocket, Artillery, and Mortar)으 로 분류되는 무기체계의 하나다. 날아오는 로 켓탄과 야포 포탄, 박격포탄을 근거리에서 공 중 요격하는 대공 방어 시스템이다. 탄도 미사 일을 요격하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과는 근본 적으로 다르다. 안보환경이 다르다 보니 미국· 영국·러시아·중국 중 어느 나라도 이를 개발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기존 대공무기를 개량해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아이언돔은 이미 실전에서 효력이 입증됐 다. 2012년 11월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하마스 최고지도자 아마드 알 자바리를 공격해 살해 하자 하마스는 보복으로 나흘간 다연장 로켓 로켓 737발을 이스라엘로 발사했다. 이스라 엘군은 공터로 날아와 위협이 되지 않는 464 발은 내버려 두고 나머지 273발을 아이언 돔 으로 요격해 이 가운데 245발을 공중에서 차 단했다. 요격률이 90%에 이른다. 이렇게 로 켓을 쏘지 않은 것만 못해지자 하마스는 추
가 발사를 포기했다. 이번에도 거의 마찬가지 의 양상이다. 이스라엘의 방공 시스템은 3단계로 이뤄 졌다. 적이 사거리 250㎞ 이상의 장거리 미사 일로 공격해오면 ‘화살(Arrow)’이라는 미 사일로 잡는다. 사거리 70~250㎞의 중단거리 미사일이 날아오면 ‘다윗의 무릿매(David’s Sling)’라는 미사일로 막는다. 로켓포·야포· 박격포 등 사거리 4~70㎞의 단거리 추진체 공격을 차단하는 게 아이언돔이다. 5만 달러 정도인 카심 미사일을 발사해 원가 수 천 달 러짜리 로켓포를 막는다. 하지만 5만 달러는 이스라엘 국민의 목숨 값과 비교하면 싼 편 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방어’에 중요하다 고 미국을 설득해 미사일 값의 일부를 지원 까지 받는다. 한국은 북한의 값비싼 탄도 미사일과 비 교적 값싼 방사포와 장사정포 모두에 취약하 다.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탄도 미사일은 미 해군 순양함·구축함과 일본 해상자위대 이
[사진 김명호]
푸제(왼쪽)의 젊은 시절.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요격률 90% 아이언돔 효과
지스 구축함에 장착된 요격미사일 SM-3로 만 90% 정도의 확률로 차단 가능하다. 우리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이 있지만 SM-3가 없 다. 우리 해군이 보유한 SM-2 미사일로는 마 하 1미만의 아음속으로 비행하는 순항 미사 일 정도나 떨어뜨릴 수 있다니 기가 찰 노릇 이다. 수도권을 노린 적의 방사포나 야포를 중간 에 차단할 방법은 전혀 없다. 수도권이 불바 다가 된 다음에 연평도 때처럼 대응사격만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군사전문가에 따르면 적 장사정포 기지를 5분 내에 90% 무력화할 대응 시스템 설치에 약 5000억원, 날아오는 포탄을 공중에서 잡을 아이언돔에 5000억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형 아이 언돔 개발과 배치는 예산이나 기술의 문제라 기보다 의지와 관심의 문제다. 국민의 안전을 누가 챙길 것인가.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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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1914년의 유럽, 2014년의 동아시아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지난달 28일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 년을 맞는 날이었다.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 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사라예보 사건 이후 한 달여 만에 독일·프랑 스·러시아·영국·이탈리아 등이 각자의 동맹 관계에 따라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다. 급기 야는 미국과 일본도 참전하면서, 이 전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최초의 대전쟁 (Grand War)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식자들은 왜 사 라예보 사건이 극히 짧은 시일 내에 대규모 전쟁으로 확산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유럽 왕조국가들 의 비밀 외교, 상호 군비 경쟁, 그리고 민족주 의 분출 등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미 MIT 대학 교수인 베리 포젠은 독일과 프 랑스 같은 유럽 주요국들이 쉴리펜 플랜 등 상호 공격적인 군사 독트린을 채택하고 있었
기 때문에 전쟁이 불가피했었다고 분석했다. 다른 학자들은 기존 강대국인 영국에 대해 후발 주자인 독일이 급속하게 국력을 증대시 키면서, 상호 긴장과 두려움을 유발시킨 것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석에 따라 구미 국가들은 제1차 대전 종전 이후 국제연맹을 만들어 국가 간 의 외교를 공개하고, 국제적인 군비 축소를 추진하고,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동유럽 과 중동에 신생 국가들을 독립시키면서 전쟁 원인을 감소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평화구축 노력에도 불구,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과연 전쟁의 위 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일까. 러시아의 크림 합병으로 촉발된 동유럽의 민족 분쟁, 혹은 중동지역에서 격화되고 있는 수니파와 시아 파 간의 분쟁들은 21세기의 국제질서에도 여 전히 대규모 국제분쟁의 요인들이 잠복해 있 음을 보여준다. 특히 현재의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전개되 는 상황에 눈을 돌리면, 마치 제1차 세계대전 의 전야를 방불케 한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
독일도 부러워하는 개성공단 한경환 칼럼 외교안보 에디터 helmut@joongang.co.kr
7선의 독일 연방하원(분데스타크) 의원인 하르트무트 코쉬크(55) 한독포럼 공동대표 는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이다. 지난주 서 울에서 열린 제13차 한독포럼에 공동대표 로 참석한 코쉬크 의원은 남북한 관계 개선 을 위해 여러 가지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개성공단 활성 화 및 확대 필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고위급 북한 인사들과 함께 평양에 서 출발해 개성공단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고 한다. 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 한 명 한 명이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폐쇄적 공산주의 사회인 북한의 주민들이 첨단 시설의 공장에서 세계 경제의 경쟁체제에 맞춰 일하는 생생한 체험 의 기회를 갖는 것은 장래의 남북한 통합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코쉬크 의원은 고도로 산업화된 남한 사 회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북한 노동자들에 게 혁명적인 변화를 준다는걸 확신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동행한 북한 측 고위간부들 이 남북한의 젊은 남녀들이 한 자리에서 함 께 일하는 장면을 직접 보고 많은 것을 느꼈 던 것 같다고 전했다. 독일인이 찾아낸 개성 공단 가치의 재발견이다. 통일을 우리보다 철저히 준비했다고 자 부하며 실제로도 위업을 성취해낸 독일에 서도 개성공단과 같은 자본주의·자유주의 학습장은 없었다. 코쉬크 의원은 “독일에 개성공단이 있었더라면 동서독 경제·사회 통합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적었고 충격도 완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개성공단에 대한 특별 한 느낌은 우리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지 모른다. 사실 한국에서 코쉬크 의원처럼 개성공단을 그렇게 대단한 학습장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늘 삐걱거 리는 남북관계 위에 불안하게 서 있는 또 하 나의 실존 정도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합작의 경제특구인 개성공단은 긴장 완화와 통일, 그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의 상 징으로서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 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지난해 초 북한의 개성공단 일시 폐쇄 조
계의 기조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전략경제대 화 등을 매년 개최하고 있지만, 부상하는 신 흥 강국에 대한 기존 강대국의 불안감이 결 국 상호 전쟁을 유발하게 된다는 투키디데스 의 함정을 과연 회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은 새로운 안보전략서에서 중국의 센 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주장 과, 해·공군력 활동 확대를 잠재적 위협요인 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이에 대응하는 형태로 그동안 금기시돼 온 해병대 전력 보 유를 명시하기 시작했고,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이라는 루비콘 강도 건넜다. 중·일 간 신 뢰구축을 위한 정상회담 및 안보협의가 중단 된 지도 오래다. 이에 더해 핵과 미사일 등 대 량살상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대남 공세전 략을 포기하지 않은 북한의 동태도 동아시아 역내의 잠재적 분쟁 유발 요인 가운데 하나 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잠재적 분쟁의 요인 들이 잠복한 동아시아 역내 질서에서 우발적 사건이나 충돌이 발생한다면, 100년 전 사라 예보 사건 이후의 유럽이 그러했듯이 지역 전체로 분쟁이 확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100년의 시간차 무색할 정도로 우발적 분쟁 위험 잠복 닮은꼴 한국, 강대국 사이 균형 잘 잡아야
성장을 바탕으로 해·공군 중심의 원거리 투 사능력을 확대하면서, 아시아·태평양 방면 에서의 군사활동을 증대시키고 있다. 중국 은 동중국해에서는 일본 및 한국의 기존 구 역과 중첩되는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했고, 남중국해에서도 구단선(九段線) 을 주장하면서 베트남 및 필리핀과 대립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아시아·태평양 지 역을 중시해온 기존 강대국 미국의 세계전략 과 부딪치고 있다. 비록 양국이 신형 대국관
해외 만평
없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 선생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15년 한국통사 에서 한국이 스위스나 벨기에처럼 독립을 유지하려면, 일본·중국·러시아 등 열강들 간 에 세력 균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갈파 하였다. 과연 우리는 동아시아 대국들 간에 박은식 선생이 강조한 균형 외교를 제대로 하 고 있는 것일까. 나아가 전후의 유럽국가들 이 그러했듯이, 국가들 간의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역내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다자 안보협의체 구축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일까. 6자회담도 재개되지 못하고, 기존에 구 축해 놓은 한·중·일 협력 관련 협의체도 원활 하게 가동되지 않는 최근의 현실을 타개하는 것에서부터, 역내 분쟁을 억제하기 위한 21세 기 균형외교 및 동북아 평화협력의 길을 모 색해야 할 것 같다. 박영준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 초빙교수, 주요 저서 제3의 일본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등.
“무고한 양민의 피를 증오와 복수의 악순환이 중동지역에서 민간인의 대규모 희생을 초래.
치로 받았던 우리의 충격은 작지 않았다. 북 한의 변덕에 분노 수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 었다. 북한은 우리가 모든 원인 제공자라고 덮어 씌웠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 에 일단 가동이 정상화된 개성공단 만큼은 외풍 변수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그런대로 굴러가는 편이다. 북한의 제4차 핵 실험이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이다 하는 소용돌이 속에도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 전에도 천 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독일에 비해 경제력이나 기술력 등 여러 면에서 불리한 조건에 있다. 독일이 통일 후 혼란을 잘 극복해냈으니 우리도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버려야 한다. 코쉬크 의원의 지적처럼 개성공단 경험을 확대발전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원산이 나 남포·함흥·신의주 등에도 남북합작 공단 을 조성해야 한다. ©CLEMENT/Cartoon Arts International www.cartoonweb.com
독자 옴부즈맨 코너
북 주민 자유자본주의 학습장 역할 개성의 경험은 통일의 소중한 자산
새 역할 찾는 주요국 중앙은행 실상 생생히 전달
남포함흥에도 합작공단 더 세워야
물론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면 공 단 추가 건설은커녕 기존의 것을 현상유지 하기도 버거워 보인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로켓·방사포 발사 도발과 함께 9월 아시안 게임 대규모 선수단응원단 파견 제의 등 강 경·유화책이 뒤섞인 복잡한 신호가 교차하 고 있다. 그야말로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 운 상황이다. 하지만 남북한 공동경제구역 건설은 장 기적인 과제이므로 양측이 모두 하루하루 의 공방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준 비해야 한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 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에 이어 통일준비위원회가 공식 발족됐다. 개성공 단의 활성화 및 확대가 남북 통일 준비에 둘 도 없이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한다. 남북한이 소중한 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개성공단 사 업을 상호 신뢰 회복과 화해·협력의 모태로 삼아 그 기반을 튼튼히 다져야 할 것이다.
7월 13일자 중앙SUNDAY에서는 단연 1면 의 ‘독립군 중앙은행 DNA가 달라졌다’는 기사가 주목을 끌었다. 물가안정과 경기회 복이란 두 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 는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18, 19면까지 3개면에 걸쳐 심층 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했다. 특히 그동안 물가안정을 통해 국민경제 에 공헌해 온 한국은행이 이젠 미국과 유럽· 일본의 중앙은행들처럼 행동 반경을 확대 해야 할 때라고 진단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말을 인용한 것도 이미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20 세기의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역할을 모색 하고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 무제한 양적 완화에 따른 통화 증발과 대규모 재정적자를 무릅쓴 공공지 출 확대로 20년 장기불황을 극복하려는 아 베노믹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우고, 어떤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지 곰곰히
따져봐야 할 때다. 7·30 재·보선과 관련해 ‘보은 공천’ 논란 에 휩싸인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후보에 대한 3면 기사를 보면서는 만감이 교차했 다. 서울 동작을에서 20년 지기의 진흙탕 싸 움이 빚어지는 등 야당의 공천 파동을 계기 로 운동권 출신의 정계 진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같은 운동권 출 신인 권 후보의 공천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 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더욱이 권 후보는 국 정원 댓글 사건 수사 축소·은폐 의혹의 내부 고발자였다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정치에 관심이 있는 공직자들에게 ‘내부 고발=정계 진출’이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 기된다. 올바른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공직 자의 내부 고발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돼 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치권력의 포퓰리 즘에 악용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5면의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과정에 관한 기사도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다만 피 해자 가족들의 입법과정 참여에 관한 요구
는 신중히 다루어야 할 사항이라고 보았다. 법을 만드는 것은 오직 국회의 책임이며 권 한임을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 포플리즘이나 감 정을 배제시킨 가운데 냉철한 이성적 판단 으로 먼 훗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귀감 의 선례가 될 수 있도록 국민적 지혜와 슬기 를 모아주기를 기원한다. 12면의 이스라엘 안보전문가 에프라임 인바르 인터뷰는 한반도 안보 상황에 시사 하는 바가 컸다. 특히 답보 상태에 빠져 있 는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안보 위기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적극 나서서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그의 진단에 우리 안보 책임자들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광문 예비역 육군소장. 한국위 기관리연구소 기조실장으로 활 동하는 가운데 국가위기관리의 법적·제도적 측면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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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
시진핑 방한 때 못 본 것들
반듯한 독일, 삐딱한 일본
조홍식의
시대공감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통합의 상징 과거사 반성과 국제사회 기여 덕에 경제 리더십도 발휘하며 유럽 견인 일본의 양심은 언제나 움직이려나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2014년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국운 상승 의 대미를 장식하는 사건이다. 서양식으로 ‘케이크 위의 체리’이고, 동양에선 화룡점 정(畵龍點睛)이다. 기묘하게도 독일의 월 드컵 우승 역사는 평화로운 강대국의 부 상을 기념하는 계단의 모양이다. 나치즘을 청산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립했던 1954 년, 라인 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 발전에 성 공했던 1974년, 그리고 동·서독이 하나로 통일됐던 1990년에 이어 2014년은 성숙하 고 모범적인 강대국으로의 완성을 알리는 듯하다. 축구처럼 행운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목에서 결과론적인 의미 부여는 조심 스럽다. 그러나 독일은 21세기 들어 열린 네 번의 월드컵에서 매번 4강 이상을 달 성하는 데 성공했다. 2002년 준우승에 이 어 2006년과 2010년에는 모두 3위를 차지 했다. 경쟁이 치열한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서 2008년의 준우승과 2012년 4강 진출을 따낸 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증명한 다. 이번 우승이 행운이 아니라 실력의 확인 이라는 뜻이다. 희한하게도 2014년 월드컵은 강한 상징 성을 지녔다. 독일은 역사상 가장 다문화 적인 팀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독일의 국 가대표 ‘만샤프트’는 이웃 폴란드 출신 의 클로제와 포돌스키, 터키의 외질, 튀 니지의 케디라, 가나의 보아텡 등 유럽·아 시아·아프리카 세 대륙 출신을 아우른다. 덕분에 독일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의 우승을 차지한 최초 의 유럽 국가가 되었다. 세계가 독일로 향 하고, 독일이 세계를 제패한 모양새다. 게 다가 결승전에서 연장전 극적인 한 골로 아르헨티나를 무릎 꿇게 한 것은 1992년 에 태어난 ‘통일둥이’ 괴체라는 어린 선 수다. 21세기 들어 독일 축구가 세계 정상 수 준을 지켜 왔듯이 독일 경제 역시 최고의 경쟁력으로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독일은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독보적으 로 잘 나가는 수출경제로 떠올랐다. 무엇 보다 독일 경제의 성공은 공룡과 같은 대규 모의 다국적 기업보다는 ‘미텔슈탄트’라 불리는 다수의 중소기업이 그 기초를 형성 한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다. 세계 각국이
미텔슈탄트 모델을 배우기 위해 앞다퉈 독 일로 몰려들고 있다. 특히 중국은 풍부한 자금으로 독일 중소기업 쇼핑에 나섰다고 한다. 2010년 이래 세계 경제위기가 유로화 위 기로 확산되면서 독일은 유럽의 최강대국 으로 올라섰다. 독일의 자본 없이 유로를 살 리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프랑스 와 공유하던 유럽의 리더십은 독일로 확실 히 넘어왔고 이제는 메르켈만이 ‘유럽의 여 제’로 군림하고 있다. 프랑스가 개혁에 실패 하고 불황의 늪에서 계속 허우적대는 동안 독일은 유럽 경제 중심의 자리를 확실하게 꿰찼기 때문이다. 독일은 또 성공적인 정치의 모델을 제공 한다. 2005년부터 집권해 온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으로 통일의 성공을 상징한다. 그 는 우파 기민당과 좌파 사민당의 대연정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화합의 정치를 주도하 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도 우파 메 르켈 총리는 좌파인 가우크 대통령과 나란 히 참석했다.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순간에 도 통합의 정치를 생각한 셈이다. 독일 국민 이 메르켈을 ‘민족의 어머니’라 부르는 이 유다. 지구촌에서 독일은 인기 최고의 소프트 파워다. 영국 BBC는 매년 국가 영향력에 대 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25개국 2만6000 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독일은 지 난해와 올해 잇따라 캐나다와 영국을 제치 고 국제사회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 는 국가로 선정됐다. 20세기 두 차례 세계 대전을 일으키면서 전범국가로 낙인 찍혔 지만 21세기에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세 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 는 나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결과다. 이 조사에서 나타난 또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에 대한 독일 국민의 평가다. 2013년 조사에서 독일은 중국(74%)과 한 국(67%)에 이어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의 견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혔다. 독일인 가 운데 46%가 일본의 영향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28%만이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 로 집계된 것이다. 그만큼 독일에서는 과거 에 대한 반성이 국가의 정책일 뿐 아니라 전 국민이 공유하는 양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버틸 피터슨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방한했다. 시 주석은 한 국으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박근 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하지만 눈에 띌 만한 뉴스를 내놓지는 못했다. 정작 일본 의 우경화 등 중요한 이슈들은 양국 정상이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빠졌다. 시 주석의 방한 활동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 국영 CCTV는 시 주석이 내년에 중국 의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공동 개최할 것을 제안했 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4일 서울대 강연 에서 “과거 일본 침략에 양국이 함께 대처했 으며 극복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반도 의 분단을 고착화시킨 6.25 전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 핵 문제와 관 련, 두 정상은 막연하게 ‘한반도의 비핵화’ 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시 주 석은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중국과 북한이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던 것을 의식한 것이다. 중국 초대 국가주석인 마오쩌둥(毛澤東)은 예전에 북한과의 관계 를 ‘입술과 치아’ 만큼 가깝다고 말했다. 시 주석 방한 이튿날인 4일에는 양국 기 업인 400여 명이 참석하는 ‘경제통상협력포 럼’이 열렸다. 양국 정상은 포럼에서 기조연 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 대기업 최고 경 영자(CEO)들은 중국의 알리바바, 바이두 같은 신흥 기업의 CEO들에게 자세를 낮췄 다. 오영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사장은 “중국의 기업인들의 태도가 몇 년 전 과는 사뭇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 은 “수교 이후 양국 정상이 자리를 함께 한 최초의 비즈니스 포럼”이라고 강조했다. LG 는 특히 이번 시 주석의 방한에 큰 의미를 부 여했다. 시 주석에게 전략 제품과 신기술을 설명하는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시 주석 은 LG의 77인치 곡면 올레드 TV를 보고 “스 크린이 정말 얇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시 주석의 방한 직전부터 중국에 서는 한국의 카카오톡·라인 등 소셜네트워 크서비스(SNS)가 중단됐다. 천안문 사태 25주년(6월 4일) 3일 전에는 구글 검색, G
메일, 유튜브 등의 서비스가 중단됐다. 하지 만 이에 관심을 갖는 이는 거의 없었다. 문제 는 여기에 있다. 중국은 현재 세계를 변화시 키는 데 선두에 서 있으면서도 그 체제와 통 치방식은 그다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중국 지도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리방화벽 (Great Firewall)’을 운용하고 있다. 이는 만리장성과 컴퓨터 방화벽의 합성어로 사 회 안정을 명분으로 인터넷을 검열하기 위 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중국 국내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중국은 끊임없이 종교를 탄압하고 정치범을 박해하고 있다. 또 북한 정권도 중 국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불행히도 큰 이익이 개입될 경우 인권은 종종 무시된다. 시 주석과 그의 측근들은 부유하지만 비열한 모습을 보이는 친척에 비유될 수 있다. 다른 친척들은 이들이 막대 한 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항할 엄두를 내
한·중 정상회담 등 화기애애했으나 분단 고착시킨 6.25엔 한 마디 없어 중국, 인권 침해 지적에 귀 기울여야
지 못한다. 중국 정부의 언론을 억압하려는 정책은 공산당 리더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과 중국 정부 사이의 대화는 솔직하고 직설적이어야 한다. 양국은 오랜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한 국은 중국에 비해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라 는 측면에서 훨씬 앞서 있다. 톈궈리(田國 立) 중국은행장은 “중국과 한국은 가까운 이웃이고 그 관계는 입과 혀와 같다”고 말 했다. 아마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혀는 항상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말해야 한다. 또 입은 떠들기 위해서 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말하기를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버틸 피터슨 보스톤 글로브 등 미국의 주요 신문사 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집트 미국상공회의소가 발간하는월간 비즈니스편집장을 지냈고, 2012년 부터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On Sunday
말말말
진실보다 높은 불신의 벽
“수사권 보장돼야 죽은 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다” 세월호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지상준 군 어머니 강지은 씨,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 호특별법 촉구 대회에서 특별법에 수사권이 포함돼야 한다고 호소하며.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 offramp@joongang.co.kr
A변호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이런 표 정을 짓는 건 뭔가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뜻 이다. 손가락 사이의 담배는 푸른 연기를 피 워 올리며 하얀 재로 변해갔다. “유령 같아요. 보이진 않는데 누군가는 존재를 믿는…” 지난해 봄, A변호사는 오랜 공직을 떠나 고향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모처럼의 저녁자리에서 그는 현직에 있을 때만큼이 나 유쾌했다.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입담도 여전했다. 그의 표정이 굳어진 건 누군가 무 심코 던진 질문을 듣고서였다. “그래, 향판(鄕判)들 위세가 실제로도 대 단합디까.” 그가 술 한 잔을 들이킨 뒤 말을 이었다. “진실보다 높은 건 ‘불신’의 벽이겠죠. 누 군가는 있다고 믿고, 누군가는 통한다고 생 각합디다. 그게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지난해 3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
청 토론회’에 참석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 역법관(향판)의 폐해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년에 1000명이나 되는 법관이 전국 순 환근무를 합니다. 제가 인사권자지만 원시 적인 제도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독특 한 서울집중 현상에 모두 서울에서 근무하 고 싶은 욕구가 있다 보니 그렇습니다. 업 무 담당자가 자꾸 바뀌니까 소송이 자꾸 지 연되고, 지역사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재 판하게 되면 지역사회의 감정을 제대로 반 영하지 못합니다. 한 줌 밖에 안 되는 (비리) 지역법관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모든 지 역법관의 명예에 상처를 줘서 가슴이 아픕 니다. 그런 기사가 회자될 때마다 사기가 떨 어지지 않게 특별히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최근 지역법관제도를 폐지할 뜻을 밝혔다. 2004년 도입된 지 10년 만이 다. 같은 지역 근무 희망이 계속 받아들여진 ‘비공식 향판’이 과거에도 있었던 점을 감 안하면 사법부의 인사제도 자체가 송두리 째 바뀌는 것이다. 잇단 추문 속에서도 대법원은 최근까지
‘일부 개인의 잘못’이라며 지역법관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 교비를 횡령한 이홍하 서남대 이 사장에 대한 보석허가 논란에 이어 3월 허 재호 대주그룹 회장에 내린 일당 5억원 짜 리 ‘황제노역’ 판결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백기를 들었다. 향판과 향판 출신 변호사들의 ‘커넥션’ 은 분명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A변호 사의 말처럼 진실보다 높은 건 불신의 벽이 다. 판사들만 탓할 순 없을지 몰라도 그 벽 을 쌓아 올린 책임에서 그들이 결코 자유로 울 순 없다. 제도를 없앤다 하여 불신의 벽이 하루 아 침에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올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절망의 재판소(絶望の裁 判所)’ 저자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교수는 일본의 판사들을 일컬어 ‘정신적 수용소 군 도의 수감자들’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 사법부는 어떠한가. 정의의 최 후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 판사들이 ‘불신 의 벽’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건 아니겠 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정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 “야당이 시대의 양심·용기·정의라며 공천한 권은희 후보가 석사 논문 표절에 이어 재산 축소 신고 의혹까지 받고 있다”며.
“야구계에 의(義)과 애(愛)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야구선수 박찬호, 18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후배 선수들이 나 를 위해 만들어 준 자리라 더 영광”이라며.
Numbers
억 달러
올 1분기 미국 내에서 모바일 기기를 이 용한 온라인 쇼핑 규모. 시장 조사회사 인 컴스코어에 따르면 올 1분기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쇼핑액은 73억 달러(7조 5190억원)로 전년 동기(59억 달러)보다 24% 가량 늘었다. 전체 온라인 쇼핑에 서 모바일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3 년 1분기 10.5%에서 올 1분기 11.5%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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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호 2014년 7월 20일~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