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민란의 시대’윤종빈 감독 ‘명량’김한민 감독 ‘해적:바다로 간 산적’이석훈 감독 ‘숫호구’백승기 감독
부천에서 만난 감독들 ‘미드나잇 애프터’ 프루트 챈 ‘원 컷-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시라이시 코지
ISSN 2288-1212
VOL.74
2014.8.1~8.7 2000원
공포영화 속 오싹한 가면 7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우주를 지키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오합지졸 은하 영웅 올 여름 사극 빅3 제작기
다 같은 조선시대가 아니라오
이번 주 영화계 10 │ 지금 영화관에선 11 인터뷰 C급 영화지만 진정성 만큼은 A급 ‘숫호구’ 백승기 감독 14 Pifan에서 만난 감독들 ‘미드나잇 애프터’ 프루트 챈 & ‘원 컷-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 시라이시 코지 16 기획 보기만 해도 오싹한 공포영화 속 가면들 18
커버스토리 우주를 지키는 오합지졸 은하 영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0 특집 올 여름 사극 빅3 제작기 ‘군도:민란의 시대’ 28│‘명량’ 30│‘해적:바다로 간 산적’ 34 인터뷰 ‘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감독 38│‘명량’ 김한민 감독 40│‘해적:바다로 간 산적’ 이석훈 감독 42 극장가 소식 44 │ 완전정복 영화단어 애트모스 46 │ 스타일을 훔치다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47 캐릭터가 만난 캐릭터 ‘군도:민란의 시대’ 돌무치 & ‘신의 한 수’ 태석 48 문화인물 탐구생활 1597년 9월에 그는 49 │ 일과 이랑과 삶 50 표지 사진 7월 31일 개봉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5인조. 사진=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여름은 길고 방학은 짧다 마치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방학 숙제를 마친 듯한 기분이 듭니다. ‘군도:민란의 시대’부터 ‘명량’ ‘해적:바다로 간 산적’ 그리고 ‘해무’까지 올 여름 한국영화 기대작들을 시사회에서 차례로 미리 본 덕분입니다. 이 중에도 앞의 세 편은 굵직한 사극 대작이라는 점에서 연초부터 큰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직접 보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습니다. 과거 한국영화계에 대작 운운하는 영화가 몰려 나올 때마다 그 성과가 그리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다 보고 난 지금은 일단 모종의 안도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세 영화는 각기 다른 성격이 뚜렷합니다. 이를 위해 영화의 각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도, 관객의 정서적 반향을 불러내는 지향점도 뚜렷이 다릅니다. 이번 호 magazine M에 실린 세 영화의 제작기와 감독들 인터뷰를 보시면 이를 속속들이 짐작하실 겁니다. 물론 세 영화는 관객마다 호불호가 갈릴 지점도, 각각의 장단점도 뚜렷이 다릅니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이를 비교해 보는 데에도 재미를 느꼈습니다. 어느 한 편을 강추하는 대신 고루 관람해 보실 것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방학 숙제란 몰아서 하는 게 묘미입니다. 적어도 저 같은 세대는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림일기 숙제도 그렇게 해치웠습니다. 다만 방학 내내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구별 안 되는 나날을 보낸 탓에 매일 엇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게 힘들긴 했던 것 같습니다.
VOL.74 2014.8.1~8.7 발행인 송필호 편집장 이후남 취재 정현목 장성란 지용진 임주리 이은선 고석희 김나현 윤지원 편집 황혜민 이지영 디자인 이현민 김민선 광고문의 02-751-5555 FAX 02-751-5806 1부 2000원 발행주기 매주 금요일 등록일자 2012년 12월 14일 등록번호 서울중라00508
그 무렵의 방학이란 매일 같이 늦잠 자고, 뭔가 먹고, 나가 놀고, 실컷 TV 보는 나날의 반복이었으니까요. 주5일제 수업이 정착되면서 방학이 워낙 짧아진데다 그조차도 학원 다니느라 바쁜 요즘 어린 학생들에게 이게 웬 자랑질이냐구요.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방학이 짧아 아쉬운 이들이 학생들만은 아니랍니다. 올 여름 극장가는 세 편의 대형 사극을 중심으로 굵직한 영화가 매주 개봉하는 탓에 스크린 확보 경쟁부터 퍽 치열할 듯 합니다. 어쩌면 느긋하게 기다렸다 한꺼번에 몰아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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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쉽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집장 이 후 남
이번주 이번 주영화계 영화계
박스오피스
‘군도’ 개봉 닷새 만에 300만 돌파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새로 개봉한 ‘드 래곤 길들이기2’(7월 23일 개봉, 딘 데블로
에서 개봉한 ‘군도’는 금·토·일 주말 사흘 동
올 여름 사극 블록버스터의 첫 번째 작품
이스 감독)가 차지했다. 주말 사흘 동안 73만
인 ‘군도:민란의 시대’(7월 23일 개봉, 윤종
안 211만여 명을 동원,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여 명을 동원해 누적 관객 수 90만여 명을 기
빈 감독, 이하 ‘군도’)가 개봉 5일 만에 관객
차지했다. 누적 관객 수는 309만여 명. 특히
록했다.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
300만 명을 돌파했다. 올 들어 개봉한 영화의
개봉 당일에만 55만여 명을 동원했다. 지난
던 ‘혹성탈출:반격의 서막’(7월 10일, 맷 리
첫 주 관객 수로는 최고치다. 직전의 최고 기
해 ‘은밀하게 위대하게’(장철수 감독)의 개봉
브스 감독)은 두 계단 하락한 3위에 머물렀
록은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6월 25일 개
첫 날 관객 수 49만여 명을 넘어 한국영화 역
다. 사흘 동안 32만여 명을 동원, 누적 관객
봉)의 263만 명이었다. 전국 1250개 상영관
대 최고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수는 378만여 명이다. 고석희 기자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제목
7월 25~27일 누적 관객 수(명)
1
군도:민란의 시대
2
드래곤 길들이기2
90만2000
3
혹성탈출:반격의 서막
378만1000
4
신의 한 수
349만9000
5
주온:끝의 시작
6
트랜스포머:사라진 시대
7
프란시스 하
4만1000
8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1만3000
9
그녀
10
명량(개봉 전 유료 시사)
309만8000
39만5000 528만6000
33만8000 1만2000
※자료: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2014년 7월 27일 기준.
이은선
블링블링 기자의
강동원의 미모 ‘군도: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의 흥행 속도가 연일 화제다. 한 배우의 미모가 끌어들일 수 있는 관객 수의 최대치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례가 없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아, 강동원 홀로 200만 명은 거뜬히 모으겠구나. 화적떼를 연기한 배우들이 워낙 꾀죄죄하게 등 장해서 강동원이 상대적으로 돋보이기 쉬웠다는 점을 부인하진 않겠다. 그래도 그는 ‘군도’라는 작품에 홀로 핀 한 떨기 꽃 처럼 보였다.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장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 공연의 한 장면으로, 뜬금없이 머리를 풀어 헤치는 장면은 꽃단장한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라는 점을 배려한 감독의 혜안으로 보이는 지경이었다. 혹 그 장면이 불만이었다면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 라. 그 귀신 같은 머리(사실 우리는 강동원의 비슷한 모습을 이미 ‘형사 Duelist’를 통해 목격했다)를 하고도 굴욕당하지 않을 남자 배우가 그 말 고 또 누가 있을지를. 냉정히 말해 강동원은 잘생겼다는 수식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긴 눈매는 보기에 따라 사납고, 살짝 휜 코 역시 도도하게 잘빠 진 다른 배우들의 코에 비하면 못난 편이다. 대신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곱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얼굴이 워낙 작은데다 몸의 선이 가늘고 긴 덕분일 것이다. 강동원이 사극에서 유독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전까지는 그를 풀 샷에 더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해왔다. 틀렸다. ‘군도’ 를 보니 그는 클로즈업에도 강한 배우였다. 미모도 재능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한껏 아름답게 표현될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법이다. 부디 인 상파로 거듭나겠다는 명분으로 미모를 망가뜨리는 일은 하지 마시옵소서.
토막 뉴스 임권택·홍상수 신작 베니스에서 첫 선
다솜, ‘프랑스 영화처럼’ 출연
가톨릭영화제 단편영화 공모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8월 27일~9월 6일)에 임권택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공식
씨스타 다솜(사진)이 ‘프랑스 영화처럼’을
제1회 가톨릭영화제가 단편 경쟁 부문 상영
초청됐다.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안성기가 주연한 ‘화장’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통해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다. ‘프랑스 영화
작을 공모한다. 공모작의 주제는 ‘관계의 회
영화로 비경쟁 부문에 갈라 상영작으로, 일본 배우 카세 료가 한국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처럼’은 총 4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
복’, 상영 시간은 60분 내외여야 한다. 출품
된 일본인으로 등장하는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은 새로운 영화 흐름을 보여주는 오리
스 영화다. 다솜은 그 중 2편의 에피소드에
은 8월 14일까지 가톨릭영화제 홈페이지를
종티 부문에서 각각 월드 프리미어를 갖는다.
서 주인공을 맡을 예정
통해 할 수 있다. 공모작 가운데 시상작을 뽑
김기덕 감독의 ‘일대일’(5월 22일 개봉)은 영
이다. ‘배우는 배우다’
아 대상 200만원, 우수상 150만원, 장려상
화제 기간에 이탈리아 영화감독협회·제작가
(2013)를 연출한 신연
50만원의 상금도 수여한다. 수상작은 10월
협회가 별도로 주관하는 베니스데이즈
식 감독이 연출·제작·
30일부터 나흘간 진행되는 가톨릭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각본을 맡는다.
서 상영될 예정이다. 윤지원 기자
김기덕
10
홍상수
임권택
지금 영화관에선
이 영화, 볼만해? ★★★★★ 걸작 탄생! 죽기 전에 꼭 보길 ★★★★ 훌륭하네. 강추할 만 ★★★ 이만하면 볼만하지 ★★ 안타깝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 헐! │ ☆= ★ 반 개
명량 감독 김한민 각본 전철홍,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이정현, 권율 촬영 김태성 조명 김경석 미술 장춘섭 의상 권유진 음악 김태성 장르 액션, 드라마 상영 시간 12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일 7월 30일
●줄거리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6년째인 1597년, 왜군은 무서운 기세로 조선을 점령하
숨을 바칠 각오를 다진다. 왜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 대한 연민과 죄책감도
려 한다. 누명을 쓰고 백의종군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은 급히 삼도수군통제사로 재
그를 괴롭힌다. 상영 시간을 절반으로 나누어 그 전반부에 이 모든 드라마를 실으려다
임명된다. 그에게 남은 건 열두 척의 배와 두려움에 떠는 군사들뿐이다. 왜군은 용병
보니 연결이 튀는 듯한 부분도 더러 있다. 그래도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핵심은 모자람
구루지마(류승룡)를 앞세워 삼백 척이 넘는 배로 쳐들어온다. 이순신 장군은 모두가
없이 전달된다. 나라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장군의 고뇌가 뚜렷하다. 이는 이순신을
패배할 것이라 여기는 전투를 치르기 위해 명량 바다로 나선다.
연기한 최민식의 공이 크다. 이순신 역할에 이제 그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란 어
●별점 ★★★☆ 역사는 속일 수 없다. 명량해전의 결과는 바꿀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은
렵다. 그만큼 대단한 존재감이다. 그는 이후로도 한동안은 이순신 장군의 얼굴로 또렷
명량해전에서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왜선을 단 열두 척의 배로 격파했다. 누구나 아는
이 기억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다. 과연 이처럼 누구나 결말을 뻔히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적 긴장 감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후반부는 ‘영웅 이순신’이 그려진다. 해전에서 장군이 펼쳤던 지략은 단순한 볼거리 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극적 감동이 점차 고조되어 바다에서 정점을
‘명량’의 선택은 정공법이다. 사료로 전해져 온 그 날의 기록을 스크린에 충실하게
맞이하도록 설계된 영화의 구조 덕분이다. 전투 장면 자체도 충실하게 담았다. 회오리
펼치는 길을 택했다. 무게감 있는 소재를 딱 그만한 무게로 전달한다. 나라와 목숨을
치는 바다 위에서 배들이 충돌하고 칼과 활과 포탄으로 치열하게 맞붙는 병사들의 모습
걸고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인 만큼 극 전반에 비장함이 가득하다. 최근 한국영화계에
은 마치 지옥도를 보는 듯하다. 구루지마를 비롯한 왜군 수장들이 다소 기능적 역할에
유행처럼 번졌던 퓨전 사극의 분위기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다.
그치는 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전체의 균형을 위해서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고통받고 두려워하는 ‘인간 이순신’이 있다. 이 영화가 장군의 일생 중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장군의 말
가장 극적인 시기를 조명한 결과이자, 이를 통해 힘주어 그리고자 했던 바다. 장군은 어
이 현 시점에 던지는 울림 또한 적지 않다. 현재는 역사를 기억하게, 역사는 현재를 위
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슬픔을 느끼는 동시에 한때 자신을 죽이려던 왕을 위해 목
무하게 하는 영화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11
지금 영화관에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감독 제임스 건 출연 크리스 프랫, 조 샐다나, 데이브 바티스타, 브래들리 쿠퍼, 빈 디젤 장르 액션, SF 상영 시간 12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일 7월 31일
줄거리 우주의 좀도둑 피터(크리스 프랫)는 ‘오브’라는 물체를 손에 넣은 직후, 현상금
을 노린 로켓(브래들리 쿠퍼목소리 출연)과 그루트(빈 디젤목소리 출연), 오브를 빼 앗으려는 가모라(조 샐다나)의 공격을 받는다. 한바탕 소란을 벌인 끝에 모두 은하계 경찰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힌다. 이들은 이 감옥에서 만난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까 지 더해 5인조 팀으로 거듭난다. 별점 ★★★☆ 마블 스튜디오가 ‘어벤져스’ 시리즈(2012~)에 이어 다시 한 번 마블 만
화 속 영웅 패거리를 스크린으로 불러들였다. 다만 이들은 척 보기에도 ‘어벤져스’ 멤
이야기다. 그 과정은 그리 치밀하게 전개되지 못한다. 극 중 우주의 정세를 설명하는 방
버들과 확연히 다르다. 우선 피터는 오브가 뭔지도 모르는 채 이를 훔친 인물이다. 로켓
식도 퍽 산만하다. 이 영화의 재미라면 다른 데 있다. 어수룩하고 허튼 매력으로 무장
과 그루트 역시 피터에게 걸린 현상금이 목적이다. 너구리인 로켓은 그 중에도 꾀바르
한 캐릭터들이다. 26년 전, 1988년의 지구에서 우주 도적단에게 납치된 피터는 당시 지
게 보이지만 ‘너구리’ 소리만 들으면 꼭지가 돈다. 이들에게 우주 평화 따위는 안중에
구에서 즐겨 듣던 유행가 모음 카세트테이프를 목숨처럼 여긴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
도 없다. 그나마 가모라는 좀 낫다. 우주 악당 로난(리 페이스)의 명으로 피터에게서 오
음악에 맞춰 피터가 추는 춤은 허허실실의 웃음을 안겨준다. 특히 나무처럼 생긴 휴머
브를 빼앗으려다,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오브가 로난의 손에 들어가면 벌어질 참극을
노이드 그루트는 ‘나는 그루트다’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데, 때에 따라 다양한 의미
막아야 한다고 일찌감치 깨닫는다. 가모라를 미끼로 로난에게 개인적 복수를 하려는
로 해석되는 그 대사에 곁들여지는 천진한 표정이 일품이다. 이 영화는 결정적 순간마
드랙스 역시 힘만 셀 뿐, 말귀를 좀체 못 알아 듣는다.
다 이들의 개성을 꺼내 보이며 그 에너지로 이야기의 빈틈을 메운다. 캐릭터들의 매력
이 영화는 이처럼 서로 다른 꿍꿍이를 지닌 주인공들이 우주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만큼은 어벤져스 군단의 화려한 초능력에 견줄 만하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동경가족 감독 야마다 요지 출연 하시즈메 이사오, 유시유키 카즈코, 츠마부키 사토시, 아오이 유우 장르 드라 마 상영 시간 124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7월 31일
줄거리 섬마을에 사는 히라야마 부부(하시즈메 이사오·요시유키 카즈코)는 자식들을
보기 위해 도쿄에 방문한다. 맏이인 아들 코이치(니시무라 마사히코), 둘째인 딸 시게코 (나카지마 토모코), 막내인 아들 쇼지(츠마부키 사토시)와 행복한 만남도 잠시 뿐, 바쁜 자식들은 좀체 부모에게 시간을 내지 못한다. 부부는 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별점 ★★★★ 일본의 거장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대표작 ‘동경 이야기’(1953)를 리메
이크한 작품이다. 원작과 가장 큰 차이는 막내 아들 쇼지다. 원작에선 전쟁에서 목숨 을 잃은 상태인데, 이 리메이크작에는 무대 미술 일을 하며 그럭저럭 살고 있는 청년으
을 보내고, 노리코 역시 남자친구의 부모를 살뜰하게 챙긴다(원작에서는 죽은 쇼지의
로 등장한다. 쇼지는 제법 자리를 잡은 형이나 누나와 다르다. 아버지 슈키치는 쇼지의
아내가 노리코다). 게다가 두 사람은 대지진 당시 원전 사고가 벌어진 후쿠시마에서 봉
불안정한 삶을 못마땅해 한다. 쇼지는 큰 꿈이 없는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를 은유하
사 활동을 하다 만난 사이다. 영화 말미 아버지 슈키치는 노리코에게 쇼지와 결혼해줄
는 듯한 인물이다.
것을 당부한다. “세상은 더 험난하겠지만 당신이 쇼지 곁에 있다면 나는 안심하고 죽을
원작이 그랬듯, ‘동경가족’에는 동시대 일본의 사회상이 드러난다. 특히 2011년 발생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이 영화가 쇼지를 살아 있는 인물로 등장시킨 이유가 뚜렷해진다.
한 동일본 대지진 같은 굵직한 사건이 영화 곳곳에 언급된다. 대지진이 평범한 사람들
쇼지와 노리코는 이타심·인간애처럼, 일본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함축하는 듯하
의 삶에 남긴 상처와 두려움이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담담하고도 힘 있게 묘사
다. 이는 83세의 감독 야마다 요지가 다음 세대에게 주는 메시지로도 보인다. ‘동경가
된다. ‘동경가족’은 한 발 더 나아가 ‘희망’을 이야기한다. 막내 아들 쇼지와 그의 여자
족’은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넘어 동시대 관객들에게 먹먹한 울림을 주는 새로운 이야
친구 노리코(아오이 유우)를 통해서다. 쇼지는 투덜거리면서도 부모와 제일 많은 시간
기로 완성됐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12
터키
뚜르드 프랑스:기적의 레이스
감독 지미 헤이워드 목소리 출연 오웬 윌슨, 우
감독 로렌트 투엘 출연 클로비스 코르니악, 보리
디 해럴슨, 에이미 포엘러 장르 애니메이션, 코
라네스 상영 시간 97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미디 상영 시간 91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일 7월 31일
7월 31일
●한 줄 줄거리 사이클 판매원 프랑수아(클로비
●한 줄 줄거리 칠면조 레지는 해마다 추수감사
스 코르니악)의 오랜 꿈은 사이클리스트다. 회사
절 식탁 메뉴로 오를까 두렵다. 칠면조 제이크는
행사를 망쳐 해고를 당하고 아내마저 떠나자 프
400년 전으로 돌아가 종족을 구원하려 하고, 레
랑수아는 프랑스를 3주 동안 일주하는 ‘뚜르 드
지는 그와 함께 타임머신에 오른다.
머나먼 세상속으로
프랑스’에 참가한다.
●별점 ★★★ 칠면조가 시간 여행을 통해 추수
감독 장 크리스토프 드상 목소리 출연 장 르노, 로란트 도이취, 이자벨 까레 장르 애니메이션 상영 시
●별점 ★★☆사이클 대회에 출전하는 가장의
감사절의 기원으로 돌아가 종족의 운명을 바꾸
간 95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7월 31일
이야기다. 중년 남자의 도전, 주변의 만류, 레이스
려 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성격도 외모도 정반
●한 줄 줄거리 숲에서 아버지(장 르노)와 단 둘이 사는 소년(로란트 도이취)은 다리를 크게 다친 아버
과정의 험난함, 이어지는 성공 등 스포츠 영화의
대인 두 칠면조 주인공의 입담이 시종일관 웃음
지를 살리기 위해 숲 밖으로 모험을 감행하고, 소녀 마농(이자벨 까레)을 만난다.
익숙한 패턴이 진부할 법도 하지만 코믹한 전개
을 안겨준다. 민첩하게 나무를 옮겨 다니는 선조
●별점 ★★★ 억압적인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소년의 성장담이다. 새로운 세
가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프랑수아의
칠면조들의 액션도 볼거리다. 인간 정착민들과 칠
계에 눈을 떠가는 소년의 모습이 코믹하고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소년이 ‘사랑’에 대해 자신만
허술한 매력을 생생하게 표현한 클로비스 코르니
면조의 갈등이 해소되는 결말은 다소 허무하지
의 정의를 들려주는 대목이 뭉클하다. 이야기 못지 않게 놀라운 건 손으로 그린 그림이다. 수작업으로
악의 연기는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레이스
만, 명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메시지는 어른 관객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선사하는 따뜻한 정서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떠올
도중 생기는 갈등과 오해가 결말에 너무 서둘러
에게도 짠하게 다가온다. 고석희
리게 하기도 한다. 임주리
해결되는 점은 아쉽다. 윤지원
어떤 만남
벨라 키스
드래곤 길들이기2
군도:민란의 시대
감독 리사 아주엘로스 출연 소피 마르소, 프랑수
감독 루시앙 포스트너 출연 크리스티나 크레브,
감독·각본 딘 데블로이스 목소리 출연 제이 바
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강동원, 이성민, 조진
아 클루제, 리사 아주엘로스, 알렉산드르 아스티
루돌프 마틴, 벤 벨라 봄 장르 공포, 미스터리
루첼, 케이트 블란쳇 장르 애니메이션 상영 시
웅, 마동석 장르 액션 상영 시간 137분 등급 15세
에르 장르 멜로 상영 시간 81분 등급 청소년 관
상영 시간 10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일
간 101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일 7월 23일
관람가 개봉일 7월 23일
람불가 개봉일 7월 31일
7월 30일
●한 줄 줄거리 어느덧 청년이 된 히컵(제이 바루
●한 줄 줄거리 탐관오리의 수탈이 극심하던 조
●한 줄 줄거리 소설가 엘자(소피 마르소)와 변호
●한 줄 줄거리 은행을 턴 5명의 젊은이들이 섬
첼). 그는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버크섬의 족장
선 철종 때. 백정 돌무치(하정우)는 나주 대부호
사 피에르(프랑수아 클루제)는 파티에서 만나 첫
뜩한 기운이 감도는 호텔에 피신해 서로를 의심
이 되기 싫다. 드래곤 투슬리스와 함께 섬 밖을 둘
의 서자 조윤(강동원)에게 가족을 잃고 의적떼인
눈에 서로 끌린다. 피에르는 15년째 단란한 가정
하게 시작한다. 호텔 한 켠에서는 한 남자가 희대
러보던 중 히컵은 드래곤들을 위협하는 어둠의
지리산 ‘추설’에 합류한다. 2년 후, 그는 백성을
을 꾸려오고 있는 유부남이다.
의 살인마 벨라 키스에 대한 글을 쓴다.
세력을 만난다.
잔인하게 괴롭히는 조윤을 벌하기 위해 나선다.
●별점 ★★☆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지킬 것이
●별점 ★★ 헝가리에 실존했던 연쇄살인마 벨라
●별점 ★★★☆ 스토리는 좀 아쉽다. 한쪽 다리
●별점 ★★★☆ 시원한 액션, 무협영화를 떠올
냐, 오랜만에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새로운 사랑을
키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공포영화다. 은행
를 잃은 소년과 한쪽 꼬리가 없는 드래곤이라는
리게 하는 장면들, 평범한 인물이 히어로로 거듭
택할 것이냐. 이 영화는 유부남인 피에르와 이혼
강도 5인방이 호텔에서 겪는 사건과 1912년부터
범상치 않은 짝패를 탄생시킨 전편에 비해 이야
나는 줄거리가 고루 잘 빠진 사극이다. 백정 돌무
경험이 있는 엘자 모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고
일어난 벨라 키스의 살인 이야기가 병치돼 진행
기가 도식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
치가 바보에서 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코믹
민하되, 그 고민을 사려 깊게 그리는 데까지는 나
된다. 결국 호텔의 비밀을 향해 달려가는 구성인
에도 히컵이 드래곤을 타고 바다와 하늘을 무대
하게 때로는 장엄하게 펼쳐진다. 후반부 춤을 추
아가지 못한다. 두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보다는
데, 두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벨
삼아 활강하는 장면은 어김없이 관객의 마음을
듯 장검을 휘두르는 조윤과 양손에 묵직한 칼을
그들의 만남을 통해 중년에 새롭게 찾아온 사랑
라 키스 일당이 영생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는
빼앗는다. 함께 나는 데 익숙해진 둘의 움직임은
든 돌무치의 대결이 압권이다. 문제는 조윤이 너
의 설렘을 아주 달콤하게 묘사하는 태도가 훨씬
설정은 개연성이 떨어지고, 결말은 벨라 키스를
전편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보고 나면 용 한 마리
무 아름답다는 것. 그의 사연마저 가슴 아프게 소
두드러진다. 장성란
미화하는 인상을 준다. 김나현
를 갖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애니메이션. 이은선
개되면서 돌무치보다 돋보이고 만다. 임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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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숫호구’ 백승기 감독
B급도 아닌 C급 영화지만
진정성은 A급 ‘숫호구’(8월7일 개봉, 백승기 감독)는 솔직히 말해 완성도와는 거리가 있는 영화다. 영화 문법을 잘 모르는 관객이 봐도 촬영과 편집이 모두 거칠다. 그럼에도 폭소와 동시에 애잔함을 안겨준다. 서른이 될 때까지 연애 한 번 못 해본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을 SF적인 설정까지 결합해 재기 발랄하게 담아낸 솜씨가 범상 치 않다. 주연을 겸한 백승기(32) 감독의 첫 장편이다. 미술교사 출신인 그는 이 영화로 2년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한국 독립 장편 최우수작품에 주는 후지필름 이터나상을 받았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첫 장편 연출작이다.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숫호구’를 만들 당시
“이전에 단편을 여럿 만들었지만 사실 영화라고 부르
내 손에는 100만원이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그러모
긴 힘들었다. UCC와 영화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스
아 총 500만원의 제작비로 만들었다. 독립영화 중에
스로 감독이라 하기도 민망했다. 그래서 장편을 만들
도 독립, B급도 아닌 C급이다.”
결심을 했고, 내가 당장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전략이라면.
고민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
“촬영은 구입비 100만원이 안되는 DSLR로 했고, 조
는데도 애인이 생기지 않던 시절이었다. 여러 여자에
명은 없었다. 나를 비롯해 스태프 중 누구도 영화 전
게 고백했는데도 늘 실패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나한
공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진정성이 있었다.
테 ‘호구’ 기질이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친구들이라 카메라 구도를 잡는 게 어
-호구 기질이라니. “술자리에서 난 항상 인기가 많다. 여자들이 모두 내 말에 자지러
렵지 않았다. 정면돌파하자는 게 나와 스태프들의 생각이었다. 어설픈 컴퓨터그래픽
지듯 웃는다. 그런데 끝날 때쯤엔 다른 남자랑 손 잡고 나가 있고, 계산은 내 몫이다. 항
(CG)은 아예 넣지 않았고, 세트도 거친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어설프게 때깔을 내느
상 ‘썸’은 타고 있지만 정작 애인은 없는 거다. 그런 나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으로 이 영
니 진한 이야기와 연기로 가자고 마음먹은 거다.”
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난 원준처럼 ‘숫’은 아니다(웃음).”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나를 포함해 6명의 스태프가 배우를 겸했다. 여주인
-늘 무시당하던 원준이 생명공학 박사(조한철)가 개발한 미남 아바타(손이용)를
공 박지나씨는 오디션으로 뽑았다. 아바타를 개발한 박사 역을 맡은 배우 조한철씨는
자신인 양 조종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
지인의 소개를 받았다. 아바타 역의 손이용씨는 학교 후배인데 이번이 첫 연기다. ”
간 SF ‘아바타’(2009, 제임스 캐머런 감독)를 패러디한 거다. 그런 돈도, 기술도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이야기다. “장르가 코미디로 분류된 데다, 관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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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소를 터뜨리는 장면도 여럿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슬픈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외모
짝 놀랄 정도였다. 연락을 드렸더니 흔쾌히 노래 삽입을 허락해줬다. ‘홍대 아리랑’ ‘너
를 변신시켜 연애를 도와주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굉장히 슬펐던 적이 있다. 아바타
랑 하고 싶다’ 등 네 곡이 이번 영화에 들어갔다. 차기작도 함께할 예정이다.”
에 비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의 외모를 통째로 바꾸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미술 교사로 일하고 있나. “중·고교 미술 교사로 5년 정도 일하다 지난 5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건 인간의 지극히 단순한 욕망인데, 그걸 위해 저렇게까지 해
그만뒀다. 오랜 꿈이었던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니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란 생각이 들
야 하나 생각했다. ‘숫호구’를 두고 어떤 관객이 ‘사회
어 결단이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선
적 성불구자의 이야기’라고 리뷰를 남겼더라. 그런 고
‘숫 호구’는
민을 함께 해보고 싶었다.” -결말에 원준은 영원히 아바타의 모습으로 살아 갈 기회를 얻게 되지만,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는 보여주지 않는다. “여러 가지 결말을 생각해봤지만 어떻게 해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았다. 그냥 네 모습대 로 열심히 살라는 결론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생 각했다. ‘자신감 가지고 살면 연애할 수 있어요’란 말,
나이는 서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는 원준(백승기)은 연애를 한 번도 못 해 본 남자다. 동네 헌책방 아르바이트생 지나(박지나)를 보고 첫눈에 반해 어설프게 접근하지만 지나는 원준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런 원준에게 조한철 박사가 찾아와 아바타로 영혼을 전이하는 실험에 참여하라고 제안한다. 망설이던 원준은 아바타에 옮겨 탄 뒤 지나에게 다가간다.
생님이 아니라 함께 꿈을 이뤄가는 어른이 되어 주고 싶었다.” -꿈이 영화감독이었는데 왜 미술을 공부했나. “어 렸을 때 영화감독, 화가, 댄스 가수가 꿈이었다. 하지 만 인천의 저소득층 가구에서 자란 내게 감독과 가수 의 길은 너무 멀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미술 을 하게 됐지만 점점 갈증이 생겼다.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한 장의 그림에 담을 수가 없었으니까. 영
다 뻥이니까. 그렇다고 아바타의 모습으로 살라는 말
화감독으로서 나는 자본과 기술이 없어도 상상력과
도 차마 할 수 없었다. 결국 각자의 선택이라고 본다.”
의지만 있다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감독 자신이 실제 그 상황에 놓인다면. “음…. 아주 많이 고민하겠지만, 결국 내 모
한다. 거칠지만 부담 없는 영화, ‘나도 해볼까’ 용기를 주는 영화로 말이다. 많은 사람이
습대로 살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지금 아주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웃음).”
영화를 재미있는 놀이로 즐길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영화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그는
-여성 관객들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몇몇 장면이 등장한다. “변명이 안 될 것 같
2010년 서른 살에 처음 시작하는 영화 만들기란 책을 내기도 했다).”
지만, 내가 여자를 정말 모른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여성들이 기분 나쁠 수도 있다
-차기작 제목이 심상치 않다. ‘시발, 놈:인류의 시작’이라니.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
는 걸 알았다. 앞으로 많이 배우도록 하겠다. 관객들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지 늘 궁금했다. 첫 인류의 이야기가 주제다. ‘숫호구’를 찍으며 촬영 현장에 차량 통제
-이 이야기에 맞춤인 OST가 무척 훌륭하다. 귀에 계속 맴돈다. “우연히 ‘연남동 덤
가 안 돼 너무 힘들었다. 이번엔 원시 시대가 배경이라 차량 없는 곳에서 찍을 수 있어 정
앤더머’라는 밴드를 알게 됐는데, 그들의 노래가 정말 ‘숫호구’와 딱 맞아떨어졌다. 깜
말 좋았다(웃음).” 15
인터뷰
부 천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17~27일)는 ‘융합’을 표방했다. 장르와 장르를 넘나들거나 장르의 변주를 시도한 영화들이 주요한 흐름을 이뤘다. 스릴러와 페이크 다큐의 혼성을 시도한 ‘원 컷-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과 SF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미드나잇 애프터’가 좋은 예다. 두 신작의 감독을 부천에서 만났다. 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사진=김진솔(STUDIO 706)
홍콩의 현재를 실은 심야 버스 -온라인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원작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나. “원작인 그날 새벽, 나는 몽콕에 서 타이포로 가는 빨간 미니버스에 올랐다(원제 那夜凌晨,我坐上了旺角开往大埔的红van)는 홍콩 에서 인기가 좋았다. 버스가 터널을 통과한 뒤 세상이 달라졌다는 설정도 독특했고, SF를 기반으로 미 스터리가 가미된 점도 대중적이었다. 무엇보다 홍콩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잘 포착해 낸 작품이라고 생 각했다.” -홍콩의 현재라면, 어떤 모습인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는 특색이 강했다. 하지만 중국에 편 입되면서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 그런 아쉬움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현재 홍콩 사람들은 중국 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다. 하지만 표출하지는 못한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는 설정 은 중국이 홍콩에 자행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은유다.” -그렇다면 ‘미드나잇 애프터’를 정치적인 영화로 볼 수 있나. “관점에 따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 (웃음). ‘정치적’인 접근으로 봤다면,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다. 참고로 이 영화는 홍콩에서 지난 4월 개봉했 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개봉을 못 했다.” -디스토피아적 정서가 바탕인 영화들이 보통 잿빛 화면인 것과 달리 이 영화는 화려한 색채가 돋보인 다. 정서와 배경의 대조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던데. “극 중에 유독 빨간색이 많이 등장한다. 어떤 평론가 는 중국을 염두에 둔 색이 아니냐는 해석도 내놨는데, 그렇지는 않다. 홍콩은 찬란한 불빛의 도시다. 사람 들이 사라져 거리는 삭막해졌지만, 그래도 홍콩의 생명력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화려한 불빛을 통해 보 여주고 싶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가 배경 음악으로 흐른다. 절절한 멜로디가 유독 서글프게 들리더라. “극 중 배경은 2018년이다. 멀지 않은 미래다. 영화에서는 그때의 홍콩에 법률, 교통,
‘미드나잇 애프터’ 프루트 챈 감독
의학 등 사회 체계가 모두 마비돼 있다. 사람들이 생
홍콩의 밤. 형형색색 네온사인이 거리를 밝히고, 사람들은 어딘가
존할 수 있는 질서 같은 것도 없다. 그런 시대에 사람
로 분주히 걷는다. 그리고 심야 버스에 열여섯 명의 사람들이 몸
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개가 음악
을 싣는다. 버스는 홍콩의 몽콕에서 타이포로 가는 노선을 따라
이라고 생각했다. ‘스페이스 오디티’는 멜로디는 서
질주한다. 버스가 터널을 통과하자 세상은 달라져 있다. 탑승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거리에는 무거운 침묵만 납덩이처 럼 가라앉아 있다. 탑승자들에게는 이후 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 다. ‘미드나잇 애프터’는 프루트 챈(55) 감독의 신작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거리의 사람들은 지금의 홍콩을 상징한다”는 감독의
글퍼도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정서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임달화가 극 중 전직 보스 역을 맡았다. “임달화와는 오랜 친구 사이다. 입체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데 제격인 배우다. 그동안 강한 역할을 맡아 왔지만, 그의 실제 모습은 나약한 면도 많다. 극 중 전직 보스는 화려한 과거를 살았으되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삶을 살고 있다.” -‘미드나잇 애프터’에 궁극적으로 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현재 홍콩에는 해외로 이민을 떠
말처럼, 중국에 귀속된 홍콩의 희미해진 정체성을 파고 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향을 떠나는 건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인데, 그만큼 힘든 선택을 한 거다. 이 영
특히 SF의 자장 안에서 미스터리가 흐른다는 점에서 신선한 장르
화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이별은 슬프지만, 또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이
적 쾌감을 만끽하게 하는 영화다.
기도 하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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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현장을 담은 혼돈의 원 테이크
‘원 컷-어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 시라이시 코지 감독 시라이시 코지(41) 감독은 일본에서 ‘POV의 대가’로 통한다.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는. “한국 제작사에서 의뢰를 받았다. 독특한 스릴러를 만들어보자는 요
POV(Point of View), 즉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촬영된 화면을
청에,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웃음). ‘원 컷’은 한국 제작사와 일본 제작사가 합작한 영화다. 연출은 내
통해 생생한 현장을 부각시킨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원 컷-어
가 맡고, 촬영은 한국에서 하는 조건으로 제작이 이뤄졌다.”
느 친절한 살인자의 기록’(이하 ‘원 컷’) 역시 감독의 장기가 발
-연제욱·김꽃비를 캐스팅한 계기는. “‘똥파리’(2009, 양익준 감독)를 보고 김꽃비의 팬이 됐다. 평범한
휘된 영화다. 저널리스트 소연(김꽃비)은 연쇄살인범 상준(연제
얼굴 안에 굉장히 미묘하고 다양한 감정이 있다. 연제욱은 한국 제작사 프로듀서가 ‘제2의 설경구’라며
욱)으로부터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현장을 촬영해달라는 의
추천했다. 설경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다. 연제욱을 만났더니 설경구와 느낌이 많이 비슷했다.”
뢰를 받는다. 소연은 촬영감독과 함께 현장에 가고, 그곳에서 상
-일본에서 AV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아오이 츠카사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극 중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 역할로 나온다. 과감한 노출을 감당하며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인물을 연기할 용기 있는 여배 우가 필요했다. AV 모델 중에 연기에 대한 의지가 많은 배우들을 여럿 오디션했다. 결국 아오이 츠카사가 조건에 맞았다. AV 모델이 출연하면 IPTV나 모바일에서도 반응이 좋다.” -한 컷으로만 된 POV 촬영 방식이 실험적인데.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촬영된 화면은 현실성을 더해준
준의 끔찍한 모습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원 컷’은 실험적인 촬 영 방식이 돋보인다. 상영 시간 86분이 단 한 컷으로만 촬영됐 다. 컷의 편집도, 시간의 왜곡도 없다. 9월 국내 극장가에서도 개 봉할 예정이다.
다. 관객들로 하여금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POV는 페이크 다큐에서 주 로 사용되는데, 스릴러 같은 다른 장르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POV는 극 중 인물과 관객들의 거리 감을 좁히고, 상황에 몰입을 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방식이다.” -영화 전체를 핸드헬드로 촬영한 점도 신선했지만, 화면이 너무 흔들려 몰입을 방해하는 단점도 있다. “나만의 스타일로 이해해 달라(웃음). 핸드헬드 방식을 선택한 건 극 중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어 서다. 상준이 살인을 저지르려는 긴박한 상황, 그리고 그 현장을 찍어야 하는 소연의 심리는 혼돈 그 자체 다. 핸드헬드는 그런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설정이다. 내 영화가 처음에는 겁이 나고 부담스럽지 만 한 번 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극 중 상준은 신의 존재를 근거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한다. 맹목적 믿음에서 비롯된 비극이라는 점에서 종교에 회의적인 시각이 엿보이는데. “‘우리 가 믿고 있는 것은 정말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관객 들에게 던지고 싶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 들이 가끔 발생한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신의 계 시라고 정당화하곤 한다. 종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로이’(2005) ‘나고야 살인사건’(2007) ‘오컬트’(2009) 등 잔혹한 묘사로 점철된 영화를 선보여 왔다. 표현 수위가 높은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있나. “현실에서는 영화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들이 발생한 다. 영화가 그런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현실을)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감독으로서 무책임하다고 본다. 내가 만드는 영화들은 현실을 직시한 나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이 모 티브를 준다면,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주는 거다. 참고로 ‘그로테스크’ (2007)는 일본·영국 등의 나라에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개봉이 제한된 적도 있다(웃음).” 17
기획
보 기만 해도 오싹 한 공포영화 속 가면 7
너, 도대체 정체가 뭐야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토브 후퍼 감독) 이래서 무섭다 텍사스를 여행하던 다섯 명의 남 녀가 자동차 기름을 얻기 위해 인근의 농가를 방문한다. 이들은 무시무시한 전기톱을 든 살 인마에게 도륙당하고, 살인마는 피해자의 얼굴 가죽을 가면 삼아 쓰고 다닌다. 사람의 피부로 가면을 만드는 설정은 실존 인물 에드 게인에게 서 영감을 받은 것. 희생자의 시신을 이용해 옷 과 장신구를 만들었던 연쇄살인마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 시리즈(1974~2013)는 40년 동안 총 7편이 만들어졌다. 가면의 정체 대대로 가축 도살업을 해온 가문 의 막내. 그가 살해한 희생자들은 대부분 식용 으로 쓰인다.
‘13일의 금요일3’(1982, 스티브 마이너 감독) 이래서 무섭다 호숫가 캠핑장에서 섹스와 마약 을 즐기던 청춘 남녀들이 잔인하게 살해된다. 살 인마는 거구에 흰색 하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모두 12편의 시리즈(1981~2009) 중 살인마 제이 슨의 트레이드마크인 하키 마스크가 처음 등장 한 작품이 바로 3편이다. 이 마스크는 제법 용도 가 뚜렷하다. 기형으로 일그러진 제이슨의 끔찍 한 얼굴을 감추고, 안면 보호 기능도 한다. 가면의 정체 어려서 강물에
이래서 무섭다 가족 모임이 한창인 저택에 세 명의 괴한이 들이닥친다. 늑대·호랑이·양 등 각기 다른 동물 가면을 쓴 이들은
빠져 익사한 것으로 알려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듯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에린(샤니 빈슨) 역시 남자친구의 가족 모임에 초대
졌던 제이슨. 역시 살인마
받았다가 위험에 처한다. 괴한들은 치밀하다. 어두운 덤불 속에서 석궁을 쏘며 공격하고, 침대 밑이나 벽장에 숨어 뒤를 노린
였던 어머니의 원수를
다. 혹시나 도망갈까 현관문 앞에는 함정을 설치한다. 희생자를 하나씩 죽인 뒤 그 피로 벽에 ‘다음은 너(You’re Next)’라는
갚기 위해 무차별 살 육에 나선다.
18
‘유아 넥스트’(8월 7일 개봉, 애덤 윈가드 감독)
메시지를 남기는 것도 특징. 이 영화의 제목이 뜻하는 바다. 가면의 정체 괴한들은 전문적인 살인 훈련을 받은 듯하다.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영화 후반에 밝혀진다.
공포영화의 살인마들은 곧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정체는 물론이고 표정까지 숨긴다. 그래서 희생자들에게, 나아가 관객들에게 더 무시무시하게 보인다. 큰 흥행 성공을 거둔 공포영화의 가면은 그 자체가 새로운 아이콘이 되곤 한다. 이런 고전 시리즈에서 최신작까지 인상적인 가면을 모았다. 이를 보며 잠깐이나마 더위를 식 히시길. 고석희 기자 mulderfox@joongang.co.kr
‘스마일리’(2012, 마이클 J 갤러거 감독)
‘쏘우’(2004, 제임스 완 감독)
이래서 무섭다 스마일리는 인터넷 괴담으로 떠도는 살인마다. 그를 불러내는 방법은 웹
이래서 무섭다 어찌된 영문인지 두 남자 고든(캐리 엘위스)과 아담(리 워넬)이 지하실
캠으로 화상 채팅을 하면서 ‘재미 삼아 해봤다(I did it for the lulz)’라는 문장을 세 번 입
에 감금된다. 지하실 TV화면에는 꼭두각시 인형이 등장해 먼저 상대를 죽이면 탈출
력하는 것. 여대생 애슐리(케이틀린 제라드)는 이를 확인하고자 직접 실행해본다. 소문
시켜 주겠다고 일종의 게임을 제안한다. 꼭두각시 인형 ‘빌리’는 일종의 가면이다. 범
대로 스마일리가 나타나 애슐리와 화상 채팅 중이던 상대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스마일
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인질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쓰는 도구다. ‘쏘우’ 시
리는 그 이름대로 웃는 얼굴을 가졌는데, 실은 눈과 입을 스마일 모양으로 꿰맨 얼굴이
리즈(2004~2010)는 무려 7편까지 이어졌다. 빌리 역시 시리즈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
다. 얼굴 자체가 가면이자, 척 봐도 으스스하다.
가 됐다.
가면의 정체 애슐리를 놀라게 만들 속셈으로 친구들이 꾸며낸 가짜 살인마. 문제는 진
가면의 정체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직쏘(토빈 벨). 인질들을 갖가지 끔찍
짜 스마일리가 나타난다는 것.
한 고문 도구에 가두는 이유인즉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스크림’(1996, 웨스 크레이븐 감독) 이래서 무섭다 혼자 있는 여성에게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소름끼치는 목소리의 살인마는 공포영화의 공 식에 대한 문제를 내고, 통화가 끝나면 어디선가 나 타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다. 그가 쓴 가면은 곧 캐릭터 이름인 ‘고스트페이스’다. 그 뜻대로 유령의 얼굴이 흘러내리는 듯한 모양의 이 가면은 표현 주의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에서 모티브 를 얻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크림’
‘노크:낯선 자들의 방문’(2008, 브라이언 버티노 감독)
시리즈(1996~2011)가 4편까지
이래서 무섭다 제임스(스콧 스피드먼)와 크리스틴(리브 타일러) 커플이 묵고 있는 별장
이어지면서 고스트페이스도
에 누군가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그것도 새벽 4시에. 처음에는 문을 두드리며 ‘타마라’
세계적 유명세를 얻었다.
라는 이름의 사람이 집안에 있는지 묻더니 점차 하는 짓이 심상찮다. 도끼로 현관문을
가면의 정체 시리
찍고, 전화선까지 끊는다. 문제의 손님들은 구멍 뚫린 자루를 뒤집어 쓴 남자와 각각 인
즈마다 다르다. 대부
형 가면을 쓴 두 여자다. 커플은 이들을 피해 별장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살해당
분 여주인공 시드니
한다.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희생자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
(니브 캠벨)와 가
가면의 정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세 남녀의 정체나 동기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저 재미
까운 관계에 있는
를 위해 저지르는 짓일 뿐.
인물들이다.
19
커버스토리
20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우주를 지키는 오합지졸 은하 영웅 지구는 ‘어벤져스’가 지킨다. 그럼 우주는? 그 답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원제 Guardians of the Galaxy, 7월 31일 개봉, 제임스 건 감독)에 있다. 얼핏 보면 이 영화의 다섯 주인공은 많이 모자라고 엉성하다. 우주의 영웅은커녕 떠돌이 와 범죄자로 손가락질 받던 이들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좀 더 암담하다. 스스로를 전설의 무법자 ‘스타로드’로 칭하지 만 무시만 당하는 떠돌이 피터 퀼(크리스 프랫), 눈만 마주쳐도 오금이 저리게 하는 암살자 가모라(조 샐다나), 우락부 락한 근육 외계인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는 그나마 양반이다. 말 많고 성질 더러운 너구리 로켓(브래들리 쿠퍼목소 리 출연)과 제 이름만 간신히 말할 줄 아는 식물 그루트(빈 디젤목소리 출연)까지 합세하면 이건 어디서 굴러온 오합 지졸인가 싶다. 아무도 이들에게 우주를 지켜달라 부탁하지 않았다. 한데 이들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거창한 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저 “(어쩌다) 우리한테 은하계를 지킬 기회가 왔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그러면서 이 들은 점차 서로에 대한 우정을 확인하고, 악당이 우주를 지배하게 놔둘 수만은 없다는 다짐을 새기고, 자신들도 정의 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간다. 이렇게 은하계의 영웅은 탄생한다. 이 영화는 ‘아이언맨’(2008, 존 파브로 감독)부터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2014, 조 루소·안소니 루소 감독)까지 ‘어벤져스’ 멤버들의 각개전투와 총력전 을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소개했던 마블이 그 영역을 은하계까지 넓히려는 첫 시도다. 마블은 이 ‘듣보잡’ 영 웅들을 내세워 또 한 번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아직은 조금 낯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 에 입문하기 전 꼭 알아야 할 키워드를 소개한다. 마블의 우주를 본격적으로 여행하기 위한 안내서다. 디즈니스튜디오 에서 만난 제임스 건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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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마블 은하계를 처음 여행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잘 알아두면 꿀 같은 팁, 모르면 외계 언어 같기만 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요 키워드를 모았다. 적어도 이건 알아야 입문이 쉽다.
이은선 기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
피터 퀼(크리스 프랫) 지구에서 나고 우주에서 자랐다. 자기 자신을 전설의 무법자 ‘스타로드’라고 칭한다.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주는 게 문제. 지구를 떠난 때가 1980년대라 감성 역시 그 시절에 멈춰 있다. 코믹스에 나와 있는 피터 퀼의 역사는 이렇다. 그의 아버지는 외계 종족이다. 우주선을 타고 불 원작 코믹스로 제일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
시착해 지구에 잠시 머문 동안 인간과 사랑을 나눴고, 뒤늦게 임신 사실을
31세기 우주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바
알게 된 피터의 어머니가 홀로 아들을 낳아 키웠다. 극 중 그가 어머니를 잃
둔족으로부터 살아남은 각 종족 최후의 생존자
은 사연은 코믹스와는 다르다.
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힘을 모아 바둔을 물리 친다. 2008년에는 이를 리부트한 버전의 코믹스 가 등장했다. 마블 세계에서 울트론(내년 개봉할
그루트(빈 디젤목소리 출연) 로켓이 기르는
‘어벤져스’ 속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식물이자 경호원이자 유일한 친구.
의 악당이다)이 일으킨 우주 전쟁 ‘어나힐레이션
로켓과 짝패를 이뤄 거액의 현상금이 붙은
컨퀘스트’ 이후의 이야기다. 각 종족의 평화를 유 지하면서 위기에 대처할 영웅이 필요하다고 판
가모라(조 샐다나) 우주에서 당할 자 없는 절대악 타노스(조
피터 퀼을 잡으러 나섰다가 나란히 우주
단한 스타로드가 멤버를 모아 팀을 꾸린다. 이때
시 브롤린)가 입양해 여자 암살자로 길렀다. 12건 이상의 살
감옥행 신세가 됐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팀 명을 강력하게
인을 저질러 우주에서 악명이 자자한 수배자. 타노스와 손잡
“나는 그루트(I’m Groot)”가 전부. 상황에 따라
주장한 이가 로켓이다. 영화에서는 멤버들이 우
은 악당 로난을 위해 일하고 있다. 로난의 명령으로 피터 퀼을
그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다.
잡으러 나섰다가 우주 감옥에 갇힌다. 폭력적으로 살도록 조
생각이 거의 없어 보이지만
물쭈물하는 사이 악당이 “이들이 바로 ‘가디언 즈 오브 갤럭시’”라 칭해 얼렁뚱땅 팀 이름이 붙 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는 원작의 재연이 아니다. 스타로드와 로켓 등 일부 인물과 기본 뼈대를 토 대로 새롭게 만든 이야기에 가깝다. 22
종당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실은 아주 사려 깊다.
오브(Orb) 신비한 빛을 내는 구(救). 이 영화를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오브를 둘러싼 추 격전’이다.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는 계기가 오브 그리고 그것을 훔친 피터 퀼에서 비롯된다.
우주선
마블 코믹스의 역사 안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아스가르드의 왕이 자 토르의 아버지 오딘의 보물 창고에 있는 수집품 중 하나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강력한 힘을 지닌 물체 정도로만 묘사된다. 이 안에 들어 있는 물질이 중요하다. 악당 로난의 목표는 이것을 손에 넣어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다. 오브의 힘을 미처 알지 못했던 피터 퀼은 단순히 돈을 벌 요량으로 이를 훔치고, 그 뒤 로난 일당에게 쫓긴다.
밀라노 욘두 함대의 우주선. 피터가 자신의 애 마처럼 부린다. 아홉 살이었던 피터가 지구에서
주요 장소
올 때 메고 있던 책가방을 비롯, 그가 어릴 때 쓰
악당들
던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이 진열되어 있다. 위층
로난(리 페이스)
은 갑판, 아래층은 주거 공간이다.
전쟁을 일으켜 우 주를 손에 넣으려는 야심가. 타노스의 조력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오브를 차지 해 그에게 도전하려 한다.
모라그 아무도 살지 않은 채 버려진 행성. 모래 폭풍이 부는 사막 한가운데 오브를 보관하는 신
로켓(브래들리 쿠퍼목소리 출연) 50건 이상의
네뷸러(카렌 길런)
전이 있다. 피터 퀼이 오브를 처음으로 손에 넣는
다크애스터 로난과 부하들의 전투선. 공중에서
로난의 오른팔. 타
장소.
날아다니는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처럼 보인다.
차량 절도와 탈옥 등 전과 기록이 화려하다. 귀
노스에 입양돼 가모
조종실에 앉아 있는 네 명의 파일럿이 서로 손을
여운 외모와는 달리 분노 조절 장애가 있어 성미
라와 함께 자랐다.
똑같이 움직이며 조종한다는 것이 특징.
가 불 같다. 코믹스에서는 자신의 고향 하프월드
늘 자신보다 무엇이든 앞서는 가모라의
를 지키는 특수 요원으로 활약한 적도 있다. 유
그늘에 가려 삐뚤어졌다.
전자 개조로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됐지만 버 림받아야 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머리가 좋아 위기 상황에서 쓸 만한 지략을 곧잘 짜낸다.
킬른 은하계의 경찰 집단 노바가 관리하는 감옥.
악당도 팀원도 아니지만
피터 퀼·가모라·로켓·그루트가 붙잡혀 들어가는
욘두(마이클 루커)
곳이다. 드랙스는 이미 수감 중이다. 서먹하던 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들의 사이를 묶는 것은 탈출 작전. 지략가 로켓이
어린 피터 퀼을 지구
머리를 굴리고 나머지가 돕는다. 계획은 일단, 감
에서 납치해 우주로
시 타워에 들어가는 것.
데려왔다. 약탈자 무리 ‘라버저’의 리더.
믹스테이프 피터의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
팔면 제법 값이 나갈 오브를 훔치러 홀로
품.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 1탄’(Awesome Mix
떠난 피터 때문에 골치를 앓는다.
들이 곧 영화의 OST다. ‘우가차카 우가우가’ 하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 일명 드랙스 더 디스
콜렉터(베니치오
트로이어. 코믹스에서는 타노스의 숙적, 영화에
델 토로)
서는 로난에게 아내와 딸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
우주의 여러 값진 물
는 인물이다. 오직 복수만을 위해 은하계를 휩쓸 고 다니다가 우주 감옥에 갇혔다. 외모는 그악스
Vol.1)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여기에 담긴 노래
건을 모으는 수집가. 훔친 오브를 팔아넘기러 온 피터 일행을
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블루 스위드의 ‘훅드 온 어 필링(Hooked on a Feeling)’이 첫 번째 수록곡. 노웨어 해골 모양의 행성. 모래투성이에 공기도
잭슨 파이브의 ‘아이 원츄 백(I Want You Back)’,
나쁘지만 은하계의 모든 여행자가 쉼터로 이용하
더 런어웨이즈의 ‘체리 밤(Cherry Bomb)’ 등 추
는 장소다. 콜렉터의 수집실도 여기에 있다.
억의 팝송 열두 곡이 귀를 사로잡는다. 제임스 건
맞이한다. ‘토르:다크 월드’(2013, 앨런
럽지만 속마음은 슬픔과 후회로 가득 찬 사나
테일러 감독) 쿠키 영상에서 다크 엘프족
이. 날카로운 단검 두 개가 그의 무기다.
의 무기 에테르를 넘겨받은 바로 그 인물.
감독은 “영화 속 기이한 세계가 한편으로는 우 잔다라 우주 평화의 상징 같은 행성. 로난은 이
리가 사는 세계와 닮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
곳을 파괴해 우주를 손에 넣으려 한다. 노바가 지
치”라고 설명한다. 감독은 배우들에게 영화의 정
키고 있지만 역부족.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
서를 설명하기 위해 촬영장에서 이 노래들을 반
버들이 힘을 모아 지켜야 할 곳이다.
복해서 틀었다. 23
커버스토리│‘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화의 핵심은 우주, 80년대 그리고 카세트테이프 지난 7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 있는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기자회견이 열렸다. 크리스 프랫·조 샐다나·빈 디젤은 영화의 공을 제임스 건 감독에게 돌렸고, 감독은 배우들에 대한 신뢰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전한다. 버뱅크=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rachel@joongang.co.kr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마블 코믹스 중에도 덜 알려진 작품이다.
계속 좋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건 “오히려 그래서 자유로웠다. 마블의 세계관에 이야기를 끼워 맞추려 했다면
제임스 건 “프랫을 만나기 전 20명이 넘는 배우들이 스크린 테스트를 거쳤다. 몇몇은
힘들었을 것이다. 코믹스의 장점을 뽑아내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봤다. 내 영화
꽤 잘했지만 나를 완전히 사로잡진 못했다.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
인생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시도였다. 어린 시절부터 난 태양계 행성에 완전히 매료돼 있
어가 그랬듯 시나리오를 넘어설 수 있는 배우를 원했다. 프랫이 그랬다. 자기 자신을 연
었다. 각기 다른 외계 종족과 그들의 주거 환경이나 애완동물을 상상해 그림으로 그려보
기하는 것 같기도 했고 피터, 즉 스타로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배우와 캐릭터가 서로를
곤 했는데, 이 영화는 마치 그때로 돌아가 재미있는 우주를 창조하는 기분이었다.”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체격이 퉁퉁하긴 했지만 누구보다 월등했다. 이제 세
-피터 퀼 캐릭터가 흥미롭다. 역할에 어떻게 접근했나.
상도 조금은 퉁퉁한 영웅을 맞이할 때가 된 것 같다(웃음).”
크리스 프랫 “그저 열린 마음을 갖고 제임스 건 감독을 따랐을 뿐이다. 과감한 시도도
-극 중 멋진 액션이 많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도 많다.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때론 민망함도 극복해가면서 그를 따랐다. 블록버스터 주인공
제임스 건 “제일 먼저 피터의 어머니와 피터의 관계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관계
에 도전한 게 처음이다 보니,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기는 시행착오를 통해
가 피터의 삶에 미친 영향이 영화의 감정적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또 모두가 쿨하고 냉 소적인 요즘 시대에 이 영화가 조금 편하게 풀어져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역할 을 했으면 했다.”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제임스 건 “감독으로 합류하기 전 완성된 시나리오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고쳐 쓰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였다. 피터와 지구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이 두 가지를 쓰고 싶었다. 영화의 감정적 핵심에 바로 음악이 있 다. 시나리오 작업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게 됐다.” 크리스 프랫 “음악이 워낙 큰 부분을 차지하다보니 미리 익숙해지고 싶었다. 감독에게
영화에 나올 음악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해서 듣고 또 들었다. 어릴 때부터 반복해 들어 서 모든 노래의 가사를 달달 외웠던 것처럼 연기하고 싶었다. 원래 좋아하던 곡인데 하 도 들어서 정이 떨어진 몇몇 곡도 있다. 특히 운동하면서 들었던 것들은 힘든 기억이 떠 올라서 더 싫어지더라(웃음). 더 파이브 스테어스텝스의 ‘우-차일드(O-o-h Child)’는 내가 뛰는 속도와 박자가 잘 맞아 즐겨들었던 곡이다.” -가모라는 ‘아바타’(2009, 제임스 캐머런 감독)에서 연기했던 네이티리처럼 강인 한 여전사다. 조 샐다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은 것 같다. 가모라는 어릴 때부터 강제로 끌려와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고,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희망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반면 네이티리는 가족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캐릭터다. 네이 티리는 거짓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성격인데 반해 가모라는 거침없다.” [로이터=뉴스1]
-가모라의 액션 스타일도 특이하다. 조 샐다나 “가모라가 전형적이고 평범한 액션을 선보이는 건 싫었다. 우아하고 고풍스 조 샐다나
러운 느낌의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연히 남편의 동료가 찍은 투우사의 경기 장면 동영상을 보곤 ‘이거다’ 싶었다. 부드럽고 매혹적인 춤과 같은 그 동작이라면 좋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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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터=뉴스1]
크리스 프랫
[ 로이터=뉴스1]
같았다. 이미 액션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동작이 있어 조심스럽긴 했지만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들이 내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줬다.” -몸을 만들고 액션을 익히는 과정이 힘들진 않았나.
빈 디젤
조 샐다나 “캐스팅 전 운동을 잠시 쉬고 있던 중이었다. 그동안 액션영화를 너무 많이
제임스 건 감독
[ 신화=뉴시스]
했다 싶었고, 한창 사랑에 빠져 있던 때다. 그저 오래 쉬면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파스타나 실컷 먹을 생각을 했다(웃음). 한데 제임스
이 영화에 합류했던 작년 12월은 내게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소중한 이의 죽음(‘분노
건 감독이 전화해서 ‘내가 찍는 영화에 온몸이 초록색
의 질주’ 시리즈에 함께 출연한 동료 폴 워커의 사망)을 경험하고 다시 일하기 위해 돌
인 여전사가 등장하는데 혹시 생각 있냐’고 묻더라. 또
아온 첫 현장이었다. 그루트처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역할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게 큰
외계인 역할에 주 6일 촬영인가 싶어 한숨이 나왔는
의미로 다가왔다. 내겐 심리 치료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아이
데, 가모라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고 나서 마음이 움직
들이 이제 나무만 보면 ‘아빠의 형제 아니냐’고 묻는다. 참 아름다운 경험이다.”
여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한동안 쉬고 있었지만 다시
-대사는 “나는 그루트”가 전부였는데.
시작하니 지난 7~8년간 해 온 것들을 몸이 기억하고
빈 디젤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은 없지만, 시나리오를 보면 대사마다 그 대사가 무엇을
있더라. 예전보다 훨씬 편하고 쉽게 동작을 익힐 수 있
의미하는지 장문의 설명이 쓰여 있다. 제임스 건은 그만큼 캐릭터의 아주 작은 부분까
었다.”
지 꼼꼼하게 신경을 써주는 감독이었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이 정도로 배우를 사랑해
-나무 외계인 그루트를 연기한 소감이 궁금하다.
주는 감독을 만나긴 어렵다. 그 사랑이 영화에 다 녹아들어 빛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빈 디젤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대표가 전화해서
제임스 건 “빈 디젤이 그루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불어넣었는지 상상조차 못할 거다.
캐스팅 제의를 할 때만 해도 어떤 역할인지 전혀 몰랐
영화를 만들며 수없이 다양한 목소리로,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목소리를 총 동원해 대
다. 나중에 그가 컨셉트 아트를 보내줘서 아이들과 함
사를 녹음해봤다. 한데 빈 디젤이 와서 대사를 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컴퓨터그래픽
께 보며 ‘아빠가 무슨 역을 맡았으면 좋겠냐’고 물었
(CG) 캐릭터가 확 살아나며 순식간에 완성되더라. 그루트가 가진 신비한 에너지와 감
다. 대뜸 그루트를 고르더라.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정을 살리는 빈 디젤의 연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25
특집
군도:민란의 시대 올 여름 사극 빅3 제작기
조선시대와 서부영화가 짜릿하게 만났다. ‘군도:
다 같은 조선시대가 아니라오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는 시대적 사실성과 장 르적 유희의 결합을 위해 미술·분장·음악에 고루 큰 공을 들였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여름 극장가가 한껏 달궈졌다. 올 여름은 무엇보다 국산 사극 블록버스터의 흥행 대결이 큰 관심사다. ‘군도:민란의 시대’(7월 23일 개봉, 윤종빈 감독), ‘명량’(7월 30일 개봉, 김한민 감독), ‘해적:바다로 간 산적’(8월 6일 개봉, 이석훈 감독)은 모두 순제작비만 135억~150억 원이나 들인
미술·분 장 강동원 상투 가발만 일곱 개
대작들이다. 모두 조선시대가 배경이되,
“기존 사극이 궁중 생활과 양반가의 풍속을 화려한 볼
곳간을 털어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이라는 점에서
스크린에 펼쳐지는 이야기와 캐릭터는 물론이고
거리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군도’는 가난한 백성의 삶
백성과 양반의 중간 느낌을 기본 분장으로 삼았다. 여기
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박일현 미술감독의 말
에 인물 각각의 개성을 더했다. 추설의 대장 격인 대호(이
이다. 극 중 배경은 19세기 중반인 조선 철종 때. 탐관오
성민)는 정교한 수염으로 위엄을 표현했고, 땡추(이경영)
리와 세도가의 횡포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져, 곳곳에서
는 완전한 삭발 대신 흰 머리를 짧게 깎아 파계승의 면모
도적떼가 출몰하고 민란이 벌어졌던 무렵이다. 박일현
를 드러냈다. 힘이 장사인 천보(마동석)는 저고리 옷섶을
미술감독은 당대 일반 백성들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풀어헤쳐 근육이 잘 보이도록 했다. 극 중 별천지처럼 묘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이들의 주거·의상 등 미술 작업
사되는 추설의 지리산 요새는 강원도 영월에 25채 규모
전반에서 고증을 철저히 따랐다. 색감 역시 붉은색·황토
의 세트를 지어 찍었다. 박일현 미술감독은 “티벳의 부족
색·검정색 중심으로 제한했다. 그는 이를 “땅의 색”이라
공동체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일부러 비탈길에 대규모
설명한다. “땅에 가까운 사람들, 백성들의 이야기를 잘
세트를 짓느라 애를 좀 먹었다”고 들려준다.
시각적 요소 역시 뚜렷한 차별점을 보여준다. 그 제작 과정의 면면을 소개한다.
추설 무리 중에도 돌무치(하정우)는 극적 변화를 겪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군도’의 중심 인물은 도적떼 추설의 무리들이다. 수많 은 백성들도 단역으로 등장한다. 이들을 조선시대 사람
해 쌍칼을 휘두르는 정예요원이 된
처럼 꾸미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양반이라면 머리
다. 이름조차 ‘도치’로 바뀐다. 백정
모양·피부 표현·수염 등 분장에 30~40분 정도
돌무치일 때는 퍽 바보스러운 모습
가 걸리는 반면 백성들은 그 곱절 정도가 걸
이다. 분장 역시 야크 털로 만든 삐
린다. 못 먹고 지저분한 느낌
쭉빼쭉한 가발로 부스스한 느낌
까지 더해야 하기 때
28
는 인물이다. 조윤에게 가족을 잃은 뒤 추설에 합류
을 더하고, 눈꼬리를 일부러 아래로 그
문이다. 추설 무
려 순박함을 강조했다. 의적 도치일 때의 분장
리는 양반들의
은 더 복잡했다. “민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
음악 전자 기타로 서부영화 느낌을 음악은 ‘군도’에서 서부영화의 느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다.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에서 같이 작업했던 조영욱 음악감독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 마카로니 웨스턴 풍의 음악을 만들 어 달라고 부탁했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이탈리아를 중심 으로 유럽에서 만들어진 서부영화로, 이전의 미국 서부영 화가 영웅주의와 개척정신을 부각시켰던 것과 달리 잔혹한 묘사를 등장시켜 이후 미국 서부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 1
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그 음악적 특징을 “전자 기타의 가 공하지 않은 소리”라고 설명한다. 그는 “전자 기타의 소리
일 같이 면도를 하고, 특수분장으로 머리에 문신 같은 화
봤다. 덕분에 기존 한국 사극에서 보지 못한 환상적인 액
상을 만들고, 수염을 붙이는 데 2시간 정도 걸렸다. 수염
션이 나왔지만 한필남 분장실장은 아쉬움이 남는다. 대
끝을 뾰족하게 꼬아 돌무치에게 없던 날카로운 이미지
호의 칼에 조윤의 상투관이 잘리는 장면이 편집된 것 때
를 더했다.” 최혜림 분장실장의 말이다.
문이다. “상투가 잘린 게 아니라 상투관이 부서졌기 때문
반면 추설과 맞서는 악당 조윤은 분장도 확연히 달랐 다. 조윤의 분장은 한필남 분장실장이 따로 담당했다. 그
에 그렇게 긴 머리가 흘러내리는 것인데, 그걸 잘 모르고
말했다. 엔리오 모리코네는 하모니카·구금(口琴)·팬플루트 에 여러 금관 악기를 더한 연주와 여성 소프라노의 노래로 구슬프고 장중한 서부영화 음악을 여럿 만들어냈다.
음악이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추설 무리가 돌무치를 말에 태워 자신들의 요새에 데려가는 장면, 도치가 대나무 숲에
백해지는 악당”으로 설정했다. 영화 내내 조윤이 땀 한
서 혼자 훈련하는 장면에서 반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대
방울 흘리지 않는 이유다. 조윤의 매서운 느낌을 완성한
표적이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이를 비롯한 음악을 모두 새
데는 진하고 날카롭게 그린 눈썹도 한몫했다. 조윤은 나
로 작곡했는데, 유일한 예외가 있다. 바로 추설 무리가 말
주 최고 부호의 서자이기도 해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을 타고 벌판을 달리는 장면에서 말발굽 소리와 비슷한 박
세련되고 정교한 차림새를 뽐내는 인물이다. 분장팀은 2
강동원의 유난히 작은 머리 크기에 맞춰 상투 가발만 일
자로 깔리는 음악이다. 이는 본래 이탈리아 영화 ‘황야의 분노’(1967, 토니노 발레리 감독)의 주제곡이다. 윤종빈 감
곱 개나 제작한 것은 물론이고 망건에 달린 관자, 상투 위
독이 콕 집어 ‘군도’에 쓰고 싶다고 해서, 저작권자의 허락
에 씌우는 상투관 등도 차가운 악당의 느낌을 살리기 위
을 받아 새로 편곡한 곡이다.
해 광택 없는 금속 소재로 맞춤 제작했다.
‘군도’는 영국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녹음하
조윤은 특히 영화 중반에 대호의 공격을 받고 상투
고 믹싱했다. 비틀즈나 핑크 플로이드 등이 음반을 녹음했
가 잘린 듯 긴 머리를 휘날리며 싸우는 아름다운 액션 3
을 선보인다. 원래는 머리가 풀린 조윤이 급히 옷을
을 설득한 것은 한필남 분장실장의 확신이었다. 그는 강
네 식의 악기 구성을 가미해 ‘군도’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이 결과 ‘군도’에는 전자 기타 사운드가 멋지게 들리는
보면 너무 비현실적으로 보일 것 같다.”
는 조선 최고의 무예 실력을 갖춘 조윤을 “싸울수록 창
찢어 머리를 묶고 싸운다는 설정이었다. 윤종빈 감독
를 날것 그대로 살려 주 멜로디를 연주하고, 엔리오 모리코
1 추설 무리가 말을 타고 벌판을 달리는 장면은 전북 새만금 방조 제 일대 평원에서 촬영했다. 2 극 중 돌무치는 집이 불타 화상을 입고 추설에 합류한다. 이후 머리에 화상 분장을 하고 나온다.
던 이름난 스튜디오다. 여기서 한국영화의 음악 작업을 진 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이 연주하고 믹싱한 만큼 소리의 질감이 다르다” 고 자부했다. “음악이 배우들의 대사나 효과음과 섞여도
동원의 주먹만한 얼굴과 가녀린 몸매에 찰랑거리는 긴
3 극 중 추설 무리가 출동하는 장터. 기존의 조선시대 세트를 리모
전혀 뭉개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군도’의 OST 앨범은
머리가 어우러지면 신비한 액션 장면이 완성될 거라고
델링해 만들었다.
두 장의 CD에 37곡으로 담아 8월 초 출시될 예정이다. 29
특집│올 여름 사극 빅3 제작기
명량 ‘명량’은 역사적 명량해전을 소재로 삼은 만큼, 고증과 재현에 들인 노력도 각별하다. 전반에는 영웅이 처한 난관과 고뇌가, 후반에는 해전의 치열함이 무게 중심을 잡는다.
액션 비좁은 배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백병전
30
특히 상영 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해상 전투 장면은
한 액션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이순신
‘명량’을 본 누구라도 혀를 내두를만 하다. 컴퓨터그래
장군(최민식)이 탄 대장선에 왜군들이 올라타 벌어지는
픽(CG)으로 구현한 울돌목의 회오리치는 바다, 300척
싸움이 대표적이다. “좁은 공간에서 조선군은 어떻게든
이 넘는 왜군과 12척에 불과한 조선 수군이 대치하는 전
장군을 보호하려 했을 것이고, 왜군은 장군을 끌어내기
경 등이 해전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볼거리라면, 조선군
위해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래서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과 왜군이 배 위에서 직접 부딪쳐 싸우는 백병전이야말
화려하게 연출하기보다는, 서로 밀고 밀어내는 모습으로
로 해전의 치열함을 구체적인 극대치로 느끼게 한다. “가
만들었다.” 이 처절한 싸움의 와중에 바다로 떨어지는 병
장 중요한 건 화려함보다 리얼함이었다.” 신재명 무술감
사들도 여럿이다. 이 장면을 찍을 때는 모두 각오를 단단
독의 말이다. ‘쌍화점’(2008, 유하 감독) ‘혈투’(2011, 박
히 해야 했다. 실제 바다에서 촬영한 데다, 갑옷이 워낙
훈정 감독) 같은 사극은 물론이고 숱한 현대극의 액션을
무거웠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갑옷 안에 부유물을 넣고
맡아온 그다. 그는 ‘명량’의 액션을 두고 “참고할 수 있는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봐 모두
자료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실제 바다 위에서 일어날 법
긴장했다.” 조선군과 달리 왜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
미술 조선 화포인 지자총통도 실제처럼 제작 해상 전투와 백병전의 주요 무대는 배다. 미술팀은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모두 여덟 척의 배를 만들었다. 조선 수군이 1555년 개발한 전투선인 판옥선 두 척과 왜군의 장수들이 탄 안택선 두 척 그리고 일반 병사들이 타는 전투선 네 척이다. 철저한 고 증은 기본이었다. 장춘섭 미술감독은 “판옥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선의 무기 체계를 정리한 각선도본을 참고하고, 박물 관 등에 재현된 판옥선도 고루 찾아 살펴봤다”고 설명한다. 사전 조사만 1년, 실제 건조 작업에 4개월이 걸렸다. 완성된 판옥선은 360도로 회전 가능한 짐벌(바다나 공중에 떠 있는 구조물을 고정시키는 지지 장치) 위에 올라 전투의 주 요 배경이 됐다. 물론 모든 것이 기록과 꼭 같지는 않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판옥선 내 장군의 지휘 공간은 한 사람이 서 있기 도 힘들만큼 좁다. 영화에서는 제법 여러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정자처럼 생겼다. “이순신 장군의 지휘 장면을 우아하게 표 현하기 위해 공간을 넓히고 정자 모양으로 디자인했다”는 게 장춘섭 미술감독의 설명이다. 갑판 아래에 노를 젓는 격군실이 있는 모습은 기록에 따른 것이다. 이곳에서도 이름 없는 병사들과 민초들의 활약이 벌어진다. 조선군의 판옥선에 비해 왜군의 지휘선인 안택선은 화려한 장식과 선명한 색감이 두드러진다. 여기에도 고증을 거쳤다. 안택선은 망루가 2층으로 되어 있는 호화로운 배다. 외관에는 십자무늬를 입히는 등 화려하게 표현됐다. 극 중에는 총 15종의 무기가 등장한다. 발사 방식, 포의 매듭, 질감까지 고증대로 제작한 것이다. 특히 지자총통이
드는 모습은 여러 자료를 참고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다.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화포 중 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총통이다. 안전을 고려해 무게는 고증
당시 일본의 해적들이 상대를 겁주기 위해 소리를 지르
과 달리 가볍게 만들었지만 질감은 거친 무쇠 느낌을 살려 옛 모습을 그대로 연출했다.
지자총통
고 과장된 몸동작을 보여줬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조선
각 군의 수장이 머무는 곳도 미술팀이
군 중에서는 승려들도 활약을 보여준다. 정식 군사 훈련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이순신 장군의 거
을 받은 적 없는 이들이 무기 대신 농기구를 들고 싸움에
처는 몸을 간신히 눕힐 수 있는 작은 공간
나서는 것도 사료에 기초한 설정이다. 이 치열한 백병전
이다. 어머니 위패만이 쓸쓸하게 한 구석을
의 와중에 이순신 장군은 직접 칼을 휘두르고, 활시위를
차지한다. 반면 왜군 총대장 도도(김명곤)
당긴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싸움을 홀로 최전방에서 이
의 거처는 화려하고 웅장하다. “일부러 화려하게 만들었다. 당시 왜군은 전쟁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고, 그런 자부심이 세
끄는 장군답게, 이런 장면에서도 고뇌와 위엄이 고루 묻
트를 통해 느껴지도록 설계했다.” 장춘섭 미술감독의 설명이다.
이순신 장군 거처
왜군 총대장 도도의 거처
어난다. “장군이 이리저리 칼을 휘두르며 수많은 적을 베
전투나 행진 장면에는 깃발이 빠지지 않는다. 조선군의 초요기, 왜군 수장 구루지마(류승룡)의 삼자 무늬 깃발, 총대장 도
어나간다면 여느 액션영화와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딱
도의 원형 깃발, 또 다른 장수 와키자카(조진웅)의 둥근 고리 깃발 등이다. 장춘섭 미술감독은 “일본은 전장에 참여한 가문마
한 번을 휘두르더라도 표정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다 가문기가 따로 있다. 구루지마, 도도, 와
하는 게 중요했다. 활을 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키자카의 깃발은 각각의 가문에서 사용하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던 것을 그대로 재연했다”고 설명한다. 윤지원 기자 knjes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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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올 여름 사극 빅3 제작기
명량 의상·분 장 장군의 갑옷은 위엄 있게, 왜군은 화려하게 ‘명량’ 의상은 고증에 따르면서도 영화적 멋을 잃지 않
모든 갑옷은 당시대로 재현하되, 무게만큼은 다소 가볍
는 데 초점을 맞췄다. 권유진 의상감독은 ‘최종병기 활’
게 만들어졌다. 실제 갑옷은 무게가 50~60㎏이나 된다.
(2011, 김한민 감독)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가볍게 만들었다고 해도 영화 속 갑옷 역시 20㎏쯤이나
(2011, 김석윤 감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김주호
된다. 눈여겨 보면 갑옷 형태가 독특하다. 그동안 숱한 TV
감독) 등 여러 사극을 거친 베테랑이다. 그는 이순신 장군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비늘 갑옷, 즉 가죽 위에 물고기
이 너무 화려하지 않되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장군
비늘 형태의 얇은 철판을 붙인 갑옷이 아니라 묵직한 쇠
의 갑옷에 황금색 용 무늬 견장이 달린 이유다. 실제 장군
판을 이어 붙인 찰갑 형태다. 권유진 의상감독은 “비늘 갑
의 갑옷에 있었던 무늬 없는 견장에 포인트를 준 것이다.
옷도 실제 존재했던 옷이지만 전시에 입지는 않았다. 과
견장을 제외하면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없는 이순신
시용이었던 셈이다. ‘명량’은 전투 장면이 중요했기에
장군의 갑옷과는 달리, 왜군 장수들의 모습은 화려하기
단단한 찰갑 갑옷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
이를 데 없다. 먼저 구루지마. 뿔처럼 생긴 투구에 면갑
를위해 제작진이 만든 옷만 1000여 벌이 넘는다.
(마스크)까지 쓰고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구루지마에
확연히 다른 이순신 감독의 얼굴도 포착할
은 일본 전국시대 장수 다케다 신겐의 모습을 참고했다.
수 있다. 이경자 분장감독은 “극 초반
“명량해전 당시로부터 7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은 오랜 고문과 유배
그를 구루지마가 숭상했을 것이라고 봤다.” 구루지마가
생활로 피폐해진 상태다. 눈 밑을
쓴 투구의 검정 털은 다케다 신겐의 투구가 흰 털로 뒤덮
검게 하고, 볼을 파이게 해 고단한 심
였던 것을 변형한 것이다. 구루지마가 면갑으로 얼굴을
적 상태를 나타냈다. 극이 진행될수
가리는 설정은 일본 영주들이 전장에 나갈 때 위장용 면
록 포탄 가루와 핏자국을 이용해
갑을 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삼았다.
전장에 있는 이순신의 용맹한
“일본 영주들은 황금색으로 자신의 높은 지위를 과시했
의 옷은 붉다. 호전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민 모습으로 등장한다. 와키자카 역의 조진웅은 아예 삭발을 감행했다. 반면 구루지마는 회색 빛이 도는 긴 곱슬머리다. 오랜 해적 생활로 햇볕에 머리가 탈색되고 거칠어졌을 것이란 이경자 분장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일반 병사들도 왜군이 화려하긴 마찬가지다. 조선군이 어두운 색 갑옷을 입었다면, 왜군은 빨간색이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전장에 나선다. 피폐한 조선군에 비해 왜군은 생기가 넘친다. 이경자 분장감독은 햇볕에 그을린 피 부색, 아이라인 분장을 더해 그 심리를 표현했다. 32
2 깃발을 들고 행진 중인 왜군. 3 붉은 색 갑옷과 화려한 투구를 쓴 왜군 장수 와키자카. 4 용 무늬 견장으로 통제사의 지위를 부각시킨 이순신 장군. 5 왜군 용병 구루지마의 의상은 일본 장수 다케다 신겐의 옷을 참고했다.
4
5
윤지원 기자
금색으로 제작했다”는 설명이다. 구루지마와 와키자카
일이 더해졌다. 와키자카와 도도는 머리 한가운데를
1 결전 직전 피난짐을 지고 이동하는 조선 민초들.
모습을 연출했다”고 말했다.
다. 왜군의 총대장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도도의 의상은
권유진 의상감독이 디자인한 것이다. 여기에 헤어스타
2
눈밝은 관객은 극 전반부와 후반부의 모습이
관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터라 권유진 의상감독
의상의 색깔은 총대장 도도가 유일하게 황금색이다.
1
3
이순 신과 함께 ‘명량 ’을 빛낸 캐릭터들
‘명량’은 물론 이순신 장군(최민식)에 의한, 이순신 장군을 위한 영화다. 그러나 카리스마 넘치는 적군, 눈물 쏙 빼게 하는 조선의 백성 등 다른 인물들이 전하는 에너지도 상당하다. 임주리·윤지원 기자
이순신의 적들 도도(김명곤) 도도 다카도라도 당시 왜 수군
하루(노민우) 구루지마의 오른팔 격인 명사
을 이끌었던 실존 인물이다. 구루지마의 상관
수. 꽃미남 락커 겸 배우 노민우는 얼굴을 반
인 셈이지만, 해적 출신인 구루지마는 도도
쯤 가리고도 인상적으로 멋지게 등장한다.
의 말을 온순하게 새겨듣는 인물이 아니다.
퇴장은 그리 멋지지 않다.
도도는 황금색 옷이 단연 눈에 띄는데, 그 화 려함에 비해 특별한 활약이 없다는 게 함정.
와키자카(조진웅)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시 실존 인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여러 해전에 서 승리를 거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총애 를 받았다.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 게 대패한 이후로 이순신에게 두려움과 경외
구루지마(류승룡) 해적 출신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발탁돼 명량해전에서 왜군을 이끈다.
감을 품고 있다. 구루지마와 같은 왜적이면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동생을 잃은 복수심이 가득한 인물이다. 실존 인물인 구루지마
서도 갈등 관계.
미치후사는 이순신에게 형을 잃었지만, 영화에선 복수심을 더 뜨겁게 묘사하기 위해 동생을 잃은 것으로 설정했다. 류승룡은 김한민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2011)에서 청나라 장군 쥬신타 역을 맡았던 데 이어 또 한 번 적군의 수장을 연기했다. 김 감독이 적극적으로 구애했다는 후문. 대사도, 액션도 많지 않지만 구루지마가 놓인 상황과 야심은 또렷이 드러난다.
젊은 패기는 내가 보여준다
눈물 담당 조선 민초
이회(권율) 이순신의 아들. 임금에게 버림받고 모
수봉(박보검) 대장선에 오른 수군 중 가장 어리
임준영(진구) 일본군의 진영에 침투해 기밀을 빼
정씨 여인(이정현) 임준영의 아내인데, 말을 못하
진 고초를 당한 아버지가 이제 육군에 합류하라
다. 아버지는 왜군에게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
오는 조선 탐망꾼. 누구 하나 이순신을 지지하지
는 여인이다. 탐망꾼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집
는 임금의 명에도 불구하고 왜군에 맞서려는 이
그 갑옷을 소중히 건네주는 이순신과 만난 뒤 대
않는 마당에 이순신의 지시라면 죽음을 각오하
을 떠난 남편을 애끓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극의
유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이회가 아버지
장선에 오르기를 자청해 격실에서 노를 잡는다.
고 행동에 옮기는 충직함이 강하게 돋보인다. 진
후반부, 남편 임준영의 뜻을 눈으로 읽고 이순신
에게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관객이 이순신에게
박보검은 TV 드라마 ‘참 좋은 시절’(2014, KBS2)
구의 연기 역시 충직하다. 자잘한 사연 없이 대장
장군을 돕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오랜만에 상업
묻고싶은 것이다. 아버지를 지키려다 부상을 입
을 통해 얼굴을 알린 신인. 수봉의 해맑은 투지는
선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만으로도
영화에 얼굴을 비친 이정현은 대사 없이 오직 표
어 명량해전에는 직접 참여하지 못한다.
관객의 마음도, 이순신 장군의 마음도 풀어준다.
확연히 기억에 남을 인물.
정과 괴성만으로 울컥함을 자아낸다. 33
특집│올 여름 사극 빅3 제작기
해적:바다로 간 산적 아쿠아리움과 롤러코스터를 번갈아 맛보는 기 분이다. ‘해적: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은 조선의 국새를 삼킨 고래를 찾아나선 해적과 사적의 모험을 해양 액션과 코미디로 풀어낸다.
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으로 만들어냈다. “벽란도를
C G 헤엄치는 고래부터 새벽녘 바다까지 종횡무진
언덕이 있는 지형으로 설정했는데, 이 조건을 만족하는
‘해적’은 제목처럼 바다를 무대로 삼은 해적의 모험, 나
도는 속도감 있게 표현해야 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바다
실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CG
아가 해적과 산적이 육지와 바다에서 좌충우돌하며 고
에서 헤엄치는 거대한 고래는 온전히 CG로 만들어졌다.
를 통해 창조한 셈”이라는 설명이다. 벽란도 장면
래 사냥에 나서는 모험기다. 이 영화의 바다 장면은 거의
그는 “움직이는 고래의 형상이 예상보다 현실감 있게
에는 덱스터 스튜디오가 작업했던 ‘미스터 고’
세트에서 촬영됐다. CG의 비중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
표현되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는 영화다. “고증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
특히 벽란도 추격전은 어드벤처물의 재미를 담기
며 장면을 만들었다. 어드벤쳐물이라는 점에서 주인공
위해 큰 공을 들였다. 산적 두목 장사정(김남길)은 해
들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과 사건이 재미있게 전달
적들의 무기를 실은 수레를 빼앗아 장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CG를 담당한 덱스
터를 내달리고, 그를 쫓는 해적 우
터 스튜디오 강종익 대표의 말이다. 극 중 등장하는 고래
두머리 여월(손예진)은 마치 롤러
나 상어 같은 살아 있는 생물은 물론이고 바다의 거센 물
코스터를 타듯 긴 수로에 몸을 싣
결, 극 중 국제 무역항인 벽란도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액
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이들 모두
션 등이 모두 CG 작업을 거쳤다. 그는 “장면마다 작업의
를 향해 거대한 물레방아가 굴러
주안점과 방식이 모두 달랐다”며 “고래는 고래의 감정이
오는 장면이다. 각각의 모습을 따로
나타나도록, 바다는 물결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벽란
촬영한 뒤 CG 작업을 통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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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김용화 감독)의 고릴라 링링도 깜짝 출연한다. “벽란도는 세계의 보물들이 모이 는 항구 도시니까 희귀한 동물도 있
거대한 물레방아 폭파 장사정이 여월 일당의 화포를 훔쳐 벽란도 장터로 달아난다. CG팀이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이자 문자 그대로 롤러코 스터식 추격전이 벌어진다. 그 끝에 거대한 물레방아가 폭파되는 모습, 직전에 여월이 수로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 일부가 CG로 처리됐다.
망루 해적의 일원 참복(이이경)이 망루에 서 있다. 새벽녘의 붉은 태양이 비치는 바다와 하늘도 CG로 작업했다. 물결의 일렁임은 물론 빛깔까지 정교하게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을 만들었다.
여월의 배 배와 바다가 함께 나오는 전경 숏의 경우 바다는 물론, 돛의 80% 이상을 CG로 만들었다. 실제 돛은 높이 20m가 넘어 예산 과 안전 문제 등으로 제작하지 못했다.
을 거라 생각했다. 링링은 어엿한 주연 배우였으니 크레 딧에 우정출연으로 올려달라고 제안했다(웃음).” 강종익 대표는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장면으로 바다 에 처음 도착한 산적 일당의 작은 어선이 상어에게 끌
고래와 여월의 조우 바다에 떨어뜨린 아기 불상을 줍기 위해 물에 뛰어든 여월은 어린 시절 자신이 구해준 고래와 재회한다. 고래와 교 감하는 서정적인 장면이다. 실제 촬영은 그린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실내 수영장에서 진행됐고, 고래 이미지는 CG로 덧입혔다.
려가는 장면을 꼽았다. “작은 배가 통통 거리며 물 위를 빠르게 질주하는 장면인데, 배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는
‘해적’의 바다를 완성한 기술, 제피로스 덱스터 스튜디오가 ‘해적’의 CG 작업을 위해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 특히 바다 장면 연출에
물의 모양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까
효율적이다. CG로 바다를 만들 때 거쳐야 했던 복잡한 공정과 하드웨어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기존 CG 기술로 바다를 만들려
다로웠다.”
면 파도의 너울거림이나 파도 위의 물방울을 하나하나 만드느라 한 숏 당 1테라바이트라는 큰 용량이 필요하다(1테라바이트는 1024기
그는 ‘해적’의 CG 작업을 두고 “만화적 상상이 결
가바이트. 보통 2기가바이트 정도인 장편영화 한 편의 동영상 파일 512개에 해당하는 크기). 반면 제피로스를 사용하면 큰 용량이 필요
합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리얼
하지 않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바다 장면의 CG 일부를 선택·복제해 바다 수면을 무한대로 연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큰 파일을 불러
리티만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어려웠
내는 데 걸리던 시간도 절감됐다. 강종익 대표는 “제피로스를 통해 전체 작업 시간을 1/10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 ‘해적’은 CG 비중이 큰 영화지만 그보다는 영화 자 체를 재미있게 봐주길 바란다. CG는 영화를 이루는 하 나의 요소일 뿐이니까.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다행일 따름이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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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올 여름 사극 빅3 제작기
해적:바다로 간 산적
국새로 얽힌 관계
의상·캐릭터 고증 대신 판타지에 방점 ‘해적’은 기발한 상상이 미덕인 영화인만큼 의상 역시 고 증보다 상상에 무게를 실었다. “사극이 보통 고증에 중점
조정과 관군
대립과 동맹
이성계(이대연)
정도전(안내상)
한상질(오달수)
군권을 장악한 뒤
사라진 국새를 해적의
명나라에 사신으로
조선 개국을 주도한
탓으로 돌리고
가서 국호와 국새를
인물. 국새가 사라지자
모흥갑을 이용해
받아오다 국새를
노발대발한다.
국새를 찾는다.
잃어버린 장본인.
해적
을 두는 반면, ‘해적’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상상력을
소마(이경영)
자극하는 판타지잖나.” 권유진 의상감독의 말이다. 공교
무자비한 해적 대장. 자신의
야망을 쫓다 번번이 실리도
사리사욕만 챙기는 냉혈한이다.
명분도 못찾는 비극적 인물.
롭게도 앞서 ‘명량’의 의상 역시 담당한 그다. 그는 ‘해적’ 에서는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해적의 차림새 역시
모흥갑(김태우)
장사정과의 악연이 깊다.
야심을 위해 수시로 관군과 거래하고 손잡는다.
상상으로 빚어냈다. 해적단을 이끄는 여월은 “카리스마 가 드러나는 강인함과 평소의 아름다움이 비칠 수 있게”
산적
산적단을 이끄는 장사정은 “저돌적이만 단순하고 귀여 운 모습을 내비칠 수 있게” 의상을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국새
그럼에도 해적은 극 중 시간적 배경이 뚜렷하다. 영화 초반에는 고려 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장면이 나온다. 이성계는 이후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성공하고, 이 나라는 건국 초기에 국새가 없었다는 것도 실제 역사와 부합하는 설정이다. 이후로 펼쳐지는 건 모두 상상의 산 물이다. 명나라에서 ‘조선’이라는 국호와 국새를 받아오 던 사신단의 선박이 고래와 출동하고, 이 와중에 고래가
여월(손예진)
장사정(김남길)
다부진 카리스마와 뛰어난 칼솜씨로 해적단을 이끈다.
매사에 낙천적이고 의욕적이되 다소 엉뚱한 두목.
해적과 바다에 대한 의리가 뚜렷하다. 알고 보면 잔정도 많고
허당 기질도 있다. 본래 고려 말 이성계 휘하의 관군 출신.
국새를 삼켜버리는 것도, 문책이 두려웠던 사신이 정도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위화도회군 당시 그 명분에 동의하지 못해
전과 의논해 고려 잔당들인 해적이 국새를 강탈했다고
실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해적.
부대를 이탈하고 산적이 됐다.
음모를 꾸미는 것도 그렇다. 태조 이성계는 해적·산적을 가리지 않고 소탕하고, 국새를 되찾아 오라고 명한다. 정
산적이 된 해적
철봉(유해진) 극심한 멀미 때문에 해적을 관두고 산적이 된 남자.
도전의 사주를 받은 관군은 해적을 시켜 고래 사냥에 나
유해진 특유의 화려한 입담은
서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첩보에 산적까지 가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코미디의 중심.
한다. 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용갑(신정근)
춘섭(김원해)
여월의 오른팔.
거칠고 신경질적인 산적단의 2인자.
여월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다 여월이 망설이는 순간이면 주저 없이
극 중 고래가 혹등고래의 모습인 까닭은 ‘해적’의 또 다른 주인공은 고래다. 제작진이 처음 모티브로 삼은 건 귀신 고래다. 실제로 동해안에 출몰하는 한국 토종고래다. 새끼에 대한 보호 본능이 강해 때로는 공격적인 성향을 띈다. 극 중 고래가 선박을 공격하 는 설정은 그런 실제 특성에 착안했다. 하지만 극 중에 등장하는 고래의 생김새는 귀신고래가 아니라 혹등고래의 모습을 참고했다. 귀신고래의
산적 두목 장사정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나서 그 존재감을 또렷이 드러낸다.
참복(이이경)
스님(박철민)
훤칠한 외모와 근육질 몸매를
불량스럽고 괴팍하지만,
자랑하는 해적단의 꽃미남.
때때로 기지를 발휘한다.
한때 여월을 마음에 품었다.
박철민은 유해진과 더불어 이 영화의 코미디에 주로 기여한다.
바위 같은 생김새가 관객의 감정이입을 끌어내기 힘들다
흑묘(설리)
고 봤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노예로 팔려가다 여월에게 구조돼
바다에 뛰어든 여월이 거대한
해적단 합류를 자처했다.
고래와 마주하는 장면은 신비
외모는 예쁘장한데 기질은 거칠다.
로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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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해적 참복과 사귀는 분위기.
산만이(조달환) 단순하고 무식하지만 충심은 강직하다. 2인자 자리를 두고 철봉과 신경전을 벌인다.
미술 어드벤처에 더해진 상상력 독특한 모양의 해적선부터가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공간이다. 여기에 이국적인 공간도 등장한 다. 김지아 미술감독의 설명과 컨셉트 아트를 곁들여 ‘해적’의 미술을 소개한다. 김나현 기자
중국풍의 해적선 여월(왼쪽)·소마(오른쪽)의 해적선은 영화의 핵심 이미지다. 제작진은 당대의 해적선을 고증할 자료를 찾을 수 없어 난 관에 직면했다. 김지아 미술감독은 두 달간의 선박 연구 끝에 여월 일당이 중국 배를 빼앗아 타고 다닌다는 설정을 가미했다. “여월의 배 는 밑이 뾰족하고 뱃머리가 날카롭게 솟아 있는 중국 배의 형태를 참고했다. 소마의 배는 보다 화려하고 강렬한 장식을 더했다. 여월을 죽이려는 소마의 광기를 담아 전체적으로 어두운 빨간색을 사용했다.”
신비로운 고래 김지아 미술감독은 극 중 고래의 생김새 구상을 위해 실제 귀신고래를 찾아 보고 크게 놀랐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섭게 생겼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실제 귀신고래 모습보다는 극 중 고래 의 캐릭터를 살리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극 중 고래가 인간에게 공격받으면서도 새끼를 지키려 애쓰는 가련한 존재라는 점에서 실제보다 신비롭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역동적인 장터 액션 어드벤처의 면모가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난
로맨틱한 동굴 장사정과 여월의 감정이 싹트는 무인도 장면. 소마
좌충우돌 상어잡이 바다를 본 적 없던 산적 일당이 상어가 고래인
장면이다. 제작진은 배경이 되는 벽란도에 언덕이 있는 것으로 설
에 의해 수장당한 두 사람이 목숨을 건져 이 섬에 이른다. 김지아
줄 알고 잡으려는 장면. 산적들은 고래가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작은
정했다. 그 결과 여월이 장사정을 쫓는 상황에서 화포가 담긴 수레
미술감독은 이곳이 산적들이 머물던 송악산과 비슷하되, 훨씬 로
어선에 작살 몇 개를 싣고 바다에 나간다. 영화에서 손에 꼽히는 코
등이 굴러 떨어지는 역동적 장면이 탄생했다. 도망가는 장사정의
맨틱한 공간으로 보이길 바랐다. 이를 위해 숲이 울창하게 어우러
믹한 장면이다. 김지아 미술감독은 이 장면의 코미디를 극대화하기
모습에서는 시장의 왁자지껄한 풍경이 함께 보이도록 연출했다.
진 따뜻한 열대 기후의 섬으로 공간을 가정하고 세트를 제작했다.
위해 배, 뜰채 등 소품을 작고 귀엽게 디자인했다고 귀띔했다. 37
인터뷰
‘군도:민란의 시대’ 윤종빈 감독 -첫 사극인데. “사극을 촬영할 수 있는 곳이 너무 없어 전국을 돌아다녔다. 장면마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하지 만 사극이라서 연출이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다른 차이가 더 컸다. 이전에 연출한 세 편이 한국 사회를 사실 적으로 들여다보는 작품들이었다면, 이 영화는 철저히 오락적인 액션 활극으로 연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 발했다.” -왜 오락적 영화를 만들고 싶었나. “‘용서받지 못한 자’ 의 군대, ‘비스티 보이즈’의 강남, ‘범죄와의 전쟁’의 아버 지 세대를 통해, 내가 본 한국 사회의 폭력성과 그 근원 에 대해 다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의 모순 에 대해 더 이상 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이상을 영화 에 담으면 대중과 멀어질 것 같은데, 그게 내가 원하는 것 일까. 장면마다 앵글과 카메라 움직임의 이유를 찾고, 그 게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영 화를 찍는 방식에 지치기도 했다. 그렇다면 10대 시절 내 가 순수하게 좋아했던 스파게티 웨스턴과 무협과 만화 의 흥을 담은 영화, 나 스스로 즐기면서 찍을 수 있는 작 품을 찍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부영화·무협영화·만화의 요소를 어떻게 혼합했나. “스파게티 웨스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장고’ (1966,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에서 주인공 장고(프랑크 네로)는 관을 끌고 다니다 거기서 총을 꺼내 쏜다. 그걸 탈바꿈한 것이 백정 돌무치가 수레를 끌고 다니는 모습 이다. 후반에 돌무치는 수레에서 대포를 꺼내 쏜다. 돌무 치라는 인물은 이두호 만화 ‘머털도사’의 순박하고 귀여 운 머털도사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조윤이란 인물을 만 들 때는 신일숙 만화 ‘리니지’의 서늘하면서도 아름다운 악당 반왕을 참조했다. 등장인물들이 칼싸움하는 장면 에서는 무협영화의 쾌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무협의 쾌감을 담는 장면의 컨셉트는 어떻게 잡았
조윤을 죽인다고 백성이 편안해질까 윤종빈(35) 감독이 달라졌다.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이하 ‘범죄와의 전쟁’) 같은 전작이 사실적 묘사로 한국 사회의 민낯에 접근했다면,
나. “최근 쏟아지는 액션영화에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었 다. 액션 장면에서 인물을 너무 가까이 잡고, 핸드헬드 기 법을 많이 쓰고, 컷을 너무 잘게 자르다 보니 인물들이 어떻게 싸우는 건지 알 수 없더라. 그래서 ‘군도’는 액션 이 잘 보이도록 카메라를 고정해 찍었다. 무협영화식의
‘군도:민란의 시대’(7월 23일 개봉, 이하 ‘군도’)는 그가 작정하고 만든 오락영화다. 조선 철종 때의
과장된 액션도 군데군데 넣긴 했지만, 너무 과장된 와이
백정 돌무치(하정우)가 도적떼 추설에 합류해, 백성을 괴롭히는 양반 서자 조윤(강동원)에 맞서는
어 액션은 피했다. 특히 강동원은 키도 크고 비율이 워낙
이야기를 액션 활극으로 그려낸다. 왜 달라지려 한 걸까, 정말 달라진 걸까, 감독에게 들었다.
좋은데다 칼을 잘 쓰니, 전신이 다 보이는 화면으로 동작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을 길게 잡아 액션의 우아함을 살렸다.” -‘범죄와의 전쟁’처럼 ‘군도’ 역시 개성 뚜렷한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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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들의 조화가 흥미롭다. “영화를 만들 때 두 가지
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키 감독) 같은, 별다른 주제가 없는 순수한 오락영화를
시선을 겸비하려 한다. 하나는 관객의 시선으로, ‘극의
-조윤의 인간적 면모가 부각되면서 그를 벌하는 통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난 그런 영
흐름에서 이 순간 관객은 무엇을 보고 싶어 할까’를 고민
쾌함이 반감되는 듯한데. “못된 양반을 벌하는 통쾌함
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
한다. 다른 하나는 감독의 시선으로 ‘이 캐릭터를 소비하
은 마지막 장면 직전, 광장에서 도치가 대포를 쏘고, 당
았다. 영화에 담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가 하나둘 생기더
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순간순간 그
하기만 하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 때 극대화된다고 봤
라. ‘군도’를 끝낸 지금, 앞으로 내가 어떤 영화를 연출할
두 시선 중 어떤 것을 따를 것인지 결정한다.”
다. 그 뒤 펼쳐지는 돌무치와 조윤의 대결은 슬프게 그리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내 다음 영
-이야기의 흐름을 5개의 장(‘지리산 추설’ ‘죽음의 행
려 했다. 조윤을 죽인다고 나주 백성들의 삶이 편안해질
화가 어떤 작품이 될지 나도 궁금하다(웃음). 그 답을 빨
렬’ ‘신세계’ ‘백성을 구하라’ ‘뭉치면 백성 흩어지면 도
까. 어차피 양반과 평민,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눠진 세
리 얻었으면 좋겠다.”
적’)으로 나눈 이유는. “극 중반, 돌무치가 추설에 합류
상인데. 제2의 조윤이 금방 나타나겠지. 사회 구조를 바
한 뒤 조윤이 나주 백성들의 땅을 수탈하는 장면이 이어
로잡지 않는 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 좌와 우의 대
진다. 그 순간 관객은 추설의 정예요원으로 거듭난 돌무
립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만 봐도 그렇지 않나.
치와 조윤의 대결을 보고 싶을 텐데, 그와 다른 이야기가
돌무치와 조윤의 마지막 대결이 슬픈 건 그 때문이다. 영
나오니 지루해 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정보를 내레이션
화 내내 노을의 이미지가 반복되는 것 역시 그런 대립의
으로 확 축약해 전달했다. 그 장면에만 내레이션이 깔리
시대가 저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면 이상할 것 같아 첫 장면부터 군데군데 집어넣었다. 그
-철저한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영화에 숨긴
걸 하나의 스타일로 완성하려면, 이야기를 장으로 구분
사회적 메시지가 퍽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를 시작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우영 만화처럼. 그의 만화
때만 해도 ‘미션 임파서블’(1996, 브라이언 드 팔마 감
는 늘 장이 나뉘고 해설자가 등장하지 않나.”
독)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2003, 고어 버빈스
-내레이션이 비장한 장면에 유머를 더하는 역할도 한 다. “주로 지루한 장면의 길이를 줄이면서 유머를 집어넣 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다. 다른 느낌으로 쓴 대목도 있 다. 추설의 지리산 요새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내레이 션이 장면의 판타지적인 느낌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순수한 오락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지리산 추설은 조선시대에 실존했던 의적 집단이다).” -조카를 죽이려던 조윤이 마지막에 그의 보호자처럼
‘군도’를 찍으면서도 담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가 생기더라
변하는데. “영화 초반 조윤의 성장사를 굳이 집어넣은
다음 영화가 어떤 작품이 될지 나도 궁금하다
것이 바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소년 조윤은 갓 난아기인 배다른 동생을 제 손으로 죽이려다 들켜 생모 를 잃고 아버지 눈 밖에 난다. 그것이 그에게 엄청난 상처 로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조윤은, 제 손으로 는 결코 아기를 죽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극 초반에 조카를 임신한 제수(弟嫂)를 돌무치에게 죽이라고 시키 는 것이다. 2년 뒤 추설의 지리산 요새를 치러 가서 조카 를 발견했을 때, 대규모 액션 장면 중간에 조윤의 멍한 얼 굴을 한참 보여준 것도 그가 느끼는 당혹감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 아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으로 조윤 을 바라본 순간,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고 봤다. 도치와의 마지막 결투에서 아기를 보호하는 건 그 본능에 따른 것 이다. 갓난아기 앞에서 무장해제 되는 건 사람이라면 누 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액션 활극으로 풀다 보니 이런 감 정선을 친절하게 그리지는 않았지만, 관객이 쉽게 받아 39
인터뷰
‘명량 ’ 김한민 감독 -왜 지금 이순신인가. “모두가 이 나라에서 살기 힘들다 고 말하는 때다. 계층간 갈등은 심화되고 교육은 왜곡됐 다.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특정 인물의 이야기라면 그 힘이 더 강력해질 거라 생각했 다. 이순신 장군이 떠올랐다. 그를 이야기하면 이 사회를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될 것 같았다.” -명량해전을 고른 이유는. “워낙 극적인 전투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절박했다는 것이다. 절박한 순간에는 인 간의 순수한 정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명량해 전은 자기 극복과 희생이라는 장군의 본질이 드러난 전 투다. 많은 사람이 그를 통해 진심으로 감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민식은 끝내 이순신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어 답답했다고 하던데. “난 내가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가지 는 경외감을 어떻게 잘 증폭시켜 전달할 수 있을지만 고 민했다. 장군은 삶과 죽음에 초연한 분이었다. 삼도수군 통제사직을 박탈당하고 재임명된 뒤,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황을 수습하고 왜적에 대항한 그 정신 은 생사관에 초연한 이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굳은 의지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부였을 거다. 그런 인물을 제대로 그리려면 정공법뿐이었다. 이것 말 고 어떻게 다르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단지 이 무 거운 주제를 되도록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인물의 위엄을 한껏 강조하는 카메라 앵글이 유독 많다. “제작진끼리도 현장에서 매번 ‘이거 완전 광화문 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앵글인데?’ 하며 웃었다. 너무 성웅으로 그리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들었다. 한 데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그리됐다. 애써 달리 찍고 싶진 않았다. 지나치게 교훈적 느낌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치 진 않았으면 한다.” -시사회 직후부터 해전 장면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
위대한 정신은 절박한 순간에 빛난다 ‘명량’(7월 30일 개봉)의 촬영 현장에는 두 명의 장군이 있었다. 그 하나는 물론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최민식이다. 다른 하나는 하루하루가 전장 같은 현장을 이끌었던 김한민(45) 감독이다. 그에게
다. “우려와 오해가 많았던 장면인데 의도대로 잘 받아들 여진 것 같아서 기쁘다.” -우려와 오해라니. “영화의 절반을 해전으로 만들겠 다고 했을 때, 지루할 것 같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 다. 상상이 잘 안 된다는 반응도 많았다.”
‘명량’은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온 작품이자 ‘최종병기 활’(2011)에 이은 두 번째 사극이다.
-촬영 전부터 영화의 절반을 해전으로 만들겠다고
그는 앞으로 ‘이순신 영화 감독’으로 불려도 불만이 없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만
공공연히 밝힌 데는 어떤 확신이 있었나. “장군의 전술
여러 편을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한 건지 들었다.
을 충분히 보여주려면 그 정도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사진= 김진솔(STUDIO 706)
각했다. 드라마와 해전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싶진 않았 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 어차피 그 둘은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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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인물이 완성되는 건 결국 해전에
불가능한 전쟁’이 어떻겠냐고 했다. 왜 자꾸 본질을 흐리
량해전은 각기 다른 의미가 있다. 한산은 조선군이 54척
서다. 그 순간의 이순신을 통해 관객이 감흥을 받고 그를
냐며 다 거절했다(웃음).”
의 대규모 판옥선과 거북선 그리고 정규편제를 갖추고
온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해전은 그저 볼거리라고
-만드는 내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남달랐던 것 같
왜군과 싸우는 전투다. 노량은 가장 격렬한 해전이었고
생각하는 데서 이 영화에 대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다. “그보다는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에
또 밤에 벌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장군이 돌아가신 전투
-배와 배를 부딪쳐 침몰시키는 전술인 충파(衝破) 장
가까웠다. 표현하고자 하는 장군의 정신이 워낙 분명했
이기도 하다.”
면이 신선하다. “정말 애먹었던 장면이다. 극 중 장군의
기 때문에 솔직히 못 만들 것 같진 않았다. 스태프들에게
-영화로 다룰 만한 다른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도 많
대사처럼, 스태프들에게 ‘된다고 말하게!’를 수없이 외
도 틈만 나면 ‘앞으로 이 영화로 이순신 장군을 기억할
지 않나. “이순신만큼 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
쳤다. 그럼 스태프들은 겁에 질려 도망가려는 병사들처
초·중·고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 없는 것 같다. 강감찬이나 을지문덕을 다룬다고 하면
럼 ‘그러다 다 죽을 수도!’ ‘영화가 패망할 수도!’라고 했
으름장을 놨다. 작품에 참여하는 모두가 이 말에 자극받
교훈적인 영화만 될 것 같다. 이순신은 그보다 영화적인
다(웃음). 설계부터 촬영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갑
고 또 알게 모르게 힘을 얻은 것 같다.”
깊이가 있는 인물로 느껴진다.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나
판 위의 소품 하나하나를 와이어로 연결해 밑에서는 짐
-극 중 마지막 장면에 거북선의 위용을 드러낸다. 시
아가 국제 정세까지 요즘 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벌(gimbal)로 흔들고, 위에서는 줄을 당기면서 찍는 식
나리오에는 이미 한산대첩으로 표기된 장면이다. “영화
같다. 한동안은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인물은 이순신일 것
이었다. 바닷물이 회오리치는 컴퓨터그래픽(CG)을 입히
에서도 한산을 의미한 게 맞다. 게다가 이순신 영화를 만
이다.”
니 볼만하게 완성되지 않았나 싶다. 난 이 영화의 해전 장
들면서 거북선은 한 번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
면은 우리나라 CG 기술 도약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로 넣은 장면이다.”
그게 이순신 영화, 특히 그의 정수인 명량해전을 다룬 영
-이순신 장군의 다른 해전을 영화화할 생각이 있나.
화에서 보인다는 게 뜻깊다.”
“‘한산’과 ‘노량’을 만들고 싶은 포부가 있다. ‘명량’의
-후반 작업에만 1년이 넘는 시간을 쏟았다. 가장 고심
속편 개념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산대첩과 노
한 부분은. “역시 CG다. 언론 시사회 끝나고도 계속 수 정해서 이제야 작업을 끝냈다. CG 업체 매크로그래피가 정말 고생 많았다. 긴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내겐 굉 장히 짧은 시간이었다. 극 중 인물의 대사처럼 ‘끝이 없 구나, 끝이 없어’를 중얼거리던 작업이 이제 완전히 끝났
‘명량’의 해상 전투는 그저 볼거리가 아니다
다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왜군 수장 구루지마(류승룡)와 그를 위시한 일본 장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완성되는 건 결국 해전에서다
수 도도(김명곤)·와키자카(조진웅)의 비중은 시나리오
그 순간의 이순신을 통해 관객이 그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에 묘사된 분량과 일치한다. 그런데도 영화에서는 그들 의 존재감이 유독 작아 보인다. “이순신 장군의 존재감 때문 아닐까. 그들은 이 정도 비중으로 그리는 게 적당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대결 구도는 이순신과 왜군 집단이다. 이순신과 구루지마의 투 톱 구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 게 본질이다. 배우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류승룡 역시 그 부분에 있어 불만이 전혀 없다. 영화를 보고 ‘딱 생각한 대로 나왔다’고 하더라.” -평소 ‘본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고 들었다. 이 영화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하나. “제목 그 자체다. 지 역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장군의 고뇌와 의지가 있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통렬한 울림을 주는 단어 라고 생각한다. 그 본질에 집중하고 싶어서 ‘회오리바다’ 라는 부제를 뺐다. 그랬더니 누군가는 제목을 ‘명량대 첩’이라고 바꾸면 어떻겠냐고 하고, 또 누군가는 ‘명량: 41
인터뷰
‘해적:바다로 간 산적’ 이석훈 감독 -고래의 등장, 대규모 해상전투 등 부담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2년 반 전 모니터 차원에서 시나리오를 처음 봤다. 재미는 있지만 과연 한국에서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애니메이션이라면 모를까, 무모한 시나리오처럼 보였다. 하지만 6개월 뒤 정식으로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땐 ‘제가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면 해보겠습니다’라는 말 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미스터 고’(2013, 김용화 감독)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덱스터 스튜디오가 있었기에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가장 신경쓰인 부분은 뭔가. “대규모 무역항인 벽란 도를 어떻게 구현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 공간에서 여월 (손예진)과 장사정(김남길)의 추격 액션 등 다양한 상황 을 연출해야 했다. 다섯 개의 공간에서 나눠찍은 걸 한 장 소에서 찍은 것처럼 합성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가장 어려웠다.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나왔던 해상전투나 항 해 장면으로는 관객이 새로움을 느낄 수 없지 않나. 새로 운 볼거리를 선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게 벽란 도 장면이다.” -벽란도 추격신도 그렇고, 할리우드 영화의 장르적 관습이 눈에 많이 띈다. “초등학생 때부터 ‘레이더스’ (198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구니스’(1985, 리처드 도너 감독) ‘백 투 더 퓨처’(1985,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같은 스필버그 사단 영화를 보며 자랐다. 관객의 눈높이에 맞 는 대중적 감성의 영화를 추구하다보니 할리우드 장르영 화의 느낌이 많이 묻어난 것 같다. 뇌리에 남아 있던 ‘인디 아나 존스’ 시리즈의 추격신이 벽란도 장면에 영향을 준 것 같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201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나왔던 추격신도 참고했다.” -극 중 배경인 조선 건국 당시 해적에 관한 자료가 있 나. “당시 해적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배의 디자인 등에 관한 자료가 아예 없어서 배우와 스태프들은 익숙한 서
코미디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한 느낌 이석훈(42) 감독은 ‘방과후 옥상’(2006) ‘두 얼굴의 여친’(2007) ‘댄싱퀸’(2012) 등을 통해 코미디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의 첫 블록버스터인 ‘해적:바다로 간 산적’
양식으로 가자고 했다. 난 동양적인 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균형점을 찾는 게 관건이었고 힘들었다. 당 시 우리 배가 네모난 돛을 달고 있었다는 건 근거 없는 주 장이라고 전문가들이 그러더라. 그래서 좀 더 다양한 모 습의 배를 등장시켰다.”
(8월 6일 개봉, 이하 ‘해적’)도 기상천외한 상황과 찰진 대사를 비롯해 코미디가 빛을 발한다.
-CG로 만들어 낸 고래가 제법 사실적이라는 평가다.
옥새를 삼킨 고래를 쫓는 산적과 해적, 관군의 물고 물리는 추격전이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특수효과 전문가들이 고래는 털이 없어서 고릴라보다
그는 “연출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는 쉽다고 했다. 하지만 고래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배로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돌진하는 장면, 눈동자를 움직이며 감정을 표출하는 장 면이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 귀신고래는 바위 같
42
은 느낌이어서 관객이 감정이입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
많이 하더라. “그가 망가지는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걱정
떨까, 농담처럼 얘기하기도 했다.”
래서 익숙한 혹등고래 모양으로 변형시켰다. 고래의 눈은
했는데, 몇 번 만나보니 허당 같은 모습이 보였다. 노출 장
-차기작은 뭔가. “‘히말라야’란 영화다. 2004년 에베
실제보다 더 크게 묘사했다. 고래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
면 때문에 다이어트 한다더니 며칠 안 돼 짜장면 곱배기
레스트에서 하산하다 숨진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
는 걸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 있다. 마치 송아지처럼 어미
를 먹고 있더라. ‘이것만 먹고 다이어트 한다’며 씩 웃는
기 위해 산악인 엄홍길이 원정대를 꾸려 떠났던 사연을
젖을 빨고, 젖이 물에 번지는 게 무척 신기했다. 그런 디테
데, 정말 장사정 같았다. 짜장면을 엄청 좋아한다.”
다룬다. 황정민이 엄홍길 대장 역을 맡는다. 이런 영화일
일한 부분도 영화에 집어넣었다.”
-마지막에 장사정이 태조 이성계에게 가르침을 주는
수록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홍길과 박무택이 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싸움
장면은 사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처음 시나리오의 결
형제처럼 가까워지는 계기를 유쾌한 느낌으로 표현하려
과 새끼를 구하려는 고래의 모성애가 대비된다. “고래의
말이 마음에 안 들어서, 주제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생
한다. 위트 있는 대사와 상황, 산악인의 유머도 잘 살리고
모성애에 감정이입하는 관객이 많을 것 같아 음악감독에
각할 거리를 주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
싶다. 영화에 코미디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한 느낌이 들
게 감동적인 음악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장면에서 처
지다’(2012, 김주호 감독)도 조선시대 얼음 얘기를 하면서
어 허전하다.”
음 음악은 사람의 입장에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였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통쾌함을 주지 않았나. 그리고 이성
는데, 고래의 감정을 담은 음악으로 바꿨다. 비올리스트 리
계를 나쁜 사람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드 용재 오닐의 슬픈 선율이 고래의 테마곡이 됐다.”
-시나리오엔 여월과 장사정이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해상 장면을 전부 육지에서 찍었는데, 어려움은 없
에필로그가 있는데. “속편을 염두에 둔 투자사가 그런 식
었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위대한 정복자’(2003, 피터
으로 유쾌하게 끝내달라고 했는데, 제작비 등의 문제로
위어 감독)라는 해양영화의 제작기를 봤더니 ‘바다영화
찍지 못했다. 속편이 나올 수 있는 영화를 하는 게 소원이
를 찍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다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라
다. 속편의 연출을 내가 안해도 큰 영광이라 생각한다. 속
는 말이 있더라. 그만큼 바다에서 찍는 게 힘들다는 얘기
편을 만든다면 여월이 왜구를 물리치는 얘기를 하면 어
다. 대규모 해양신은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에 32m 길이의 대형 선박 두 척을 만들어 배경을 합성하는 식으 로 촬영했다. 작은 배가 항해하는 장면은 수영장 크기의 수조에 배를 띄운 뒤 파도를 인공적으로 만들면서 찍었 다. 짐벌과 강풍기는 나중에 배경을 합성할 때 실감나게
대규모 무역항인 벽란도를 어떻게 구현할까 많이 고민했다
해주는 유용한 장치지만 촬영 때는 방해가 됐다. 소음 때 문에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을 못했다.” -바다로 나간 산적들의 좌충우돌이 웃음을 자아낸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나온 항해 장면으로는 관객이 신선함을 느낄 수 없을테니까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게 벽란도 장면이다
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바다에 대해 무 지한 산적들이 고래 잡으러 간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웃 음 포인트다. 해적과 산적을 오가는 철봉(유해진) 캐릭터 가 가장 코믹하다. 해적 역을 맡은 배우들이 불만이 많았 다. 제목은 ‘해적’인데, 웃기는 건 산적들이 다 차지했다면 서(웃음).” -여월 역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손예진을 어떻게 설 득했나. “손예진 외엔 대안이 없었다. 몸 쓰는 영화를 많 이 한 하지원이 또 액션영화를 선택할 리 없기 때문이다. 부담을 느끼는 손예진에게 아쉽거나 어려운 게 있으면 시 나리오를 바꿀 수도 있다며 설득했다. 영화 초반에 여월 이 우연히 고래와 만나는 장면은, 여월과 고래의 교감 장 면이 있으면 좋겠다는 손예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집어넣 은 것이다.” -김남길은 실제로 장사정 같은 캐릭터라는 말들을 43
라보엠
열대야를 쫓아줄 밤의 여왕 한여름에 즐기는 클래식 공연 세 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라보엠’과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마술피리’, 베를린 필
딸인 파미나 공주를 구하러 모험을 떠난 타미노 왕자의 이야기다. 밤의 여왕의 아리
하모닉의 ‘2014 발트뷔네 콘서트’까지, 이름만으로도 클래식 팬들을 설레게 하는 공연
아 ‘지옥 같은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는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이번 공
3편이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한다. 현지에 가지 않고도 시원한 영화관에서 생생하게
연에서는 밤의 여왕 역을 맡은 소프라노 로라 클레이콤의 목소리로 이 곡을 들을 수
즐길 수 있는 기회다.
있다. 메가박스 코엑스·센트럴·목동·킨텍스·해운대·광주·대구·대전·전주점 등 9개 지
8월 2일 개봉하는 ‘라보엠’은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1830년대 파리 뒷골목에 사는 시인 로돌포와 아름다운 여인 미미의
점에서 상영된다. 8월 4일에는 ‘2014 베를린 필하모닉 발트뷔네 야외 콘서트’가 개봉한다. 베를린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가난한 예술가들
야외 원형극장인 발트뷔네에서 펼쳐지는
의 삶을 그린 오페라다. 뉴욕 메트로폴리
이 콘서트는 전통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탄 오페라의 이번 무대는 ‘작은 파바로티’
오케스트라가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공
로 불리는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가 로
연이다. 이번 실황은 올해 6월에 공연된 콘
돌포를,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서트로, 지휘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맡는
아니타 하팅이 미미를 연기한다. 영화 ‘로
다.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청소년들을 위
미오와 줄리엣’(1968)의 감독이자 세계적
한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출신으
인 오페라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프랑
로,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휘자다.
코 제피렐리가 제작을 맡았다. 메가박스
이번 콘서트에서는 차이콥스키의 환상서
코엑스·센트럴·동대문·목동·킨텍스점 등 5개 지점에서 개봉한다. 같은 날 개봉하는 오페라 ‘마술피리’는 지난해 8월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공연
곡 ‘템페스트’와 ‘로미오와 줄리엣’,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을 연주한 다. 메가박스 코엑스·센트럴·목동점 등 3개 지점에서 볼 수 있다.
된 실황이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오스트리아 보덴 호숫가의 야외 무대에서 매년 여
모든 공연은 일주일에 2회 상영한다. 티켓 가격은 일반 2만원, 학생 1만원. 대학생
름 열리는 오페라 축제다. 화려한 무대 연출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도 현장에서 학생증을 제시하면 학생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다. 메가박스 VIP 회원은
있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작곡한 작품으로, 중간에
10% 할인받을 수 있다. 자세한 상영 일정 및 상영관 정보는 메가박스 홈페이지(www.
연극처럼 대사가 들어 있는 독일어 노래극 징슈필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밤의 여왕의
megabox.co.kr)에서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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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y Weaver
뉴스
완전정복 영화단어
애트모스
[Atmos]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으로 극장 예매를 하다 보면 ‘애트모스(Atmos)’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다. 사운드의 혁신인 애트모스는 ‘돌비’에서 2012 년 4월에 선보인 사운드 시스템. 가장 큰 특징은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를 리얼하게 재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애트모스’가 이처럼 간단하 게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이 소리를 얻게 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만만치 않으며, 애트모스 사운드의 장점은 단지 ‘오버헤드 (overhead)’ 사운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895년 영화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소리
이 스토리3’(2010, 리 언크리치 감독)에서
는 없었다. 영화 이전에 이미 축음기가 발
7.1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메리다와 마법
명(1877년)되었음에도 1927년까지 무성
의 숲’(2012, 마크 앤드류스·브렌다 채프
영화 시대가 이어진다. 즉 영화가 30년 가
먼 감독)이 애트모스 방식을 들려 주면서
까이 침묵의 시대를 견딘 건 기술적 문제
사운드에 대한 논의는 일단 어느 정도 종
가 아니었다. 새로 등장한 매체인 영화는
결된 듯하다.
어쩌면 소리를 배제하고 비주얼 이미지에
극장 천장에 스피커를 설치하는 애트
집중하는 것이 자신들의 미학적 정체성
모스 사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소리가
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영
‘흐른다’는 점이다. 기존의 채널 방식에
화는 점점 리얼리티를 중시하게 되었고,
선 소리가 스피커를 옮겨 다녔다면, 애트
유성영화 시대가 열리면서 ‘사운드’는 영
모스의 ‘팬-스루 어레이(pan-through
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지
array)’ 방식에선 개별 스피커 사이를
만 ‘소리가 난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애트모스 방식으로 녹음된 첫 영화 ‘메리다와 마법의 숲’.
사운드가 유동적으로 부드럽게 이동한 다. 그 결과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좀 더
두었던 것 같다. 1940년에 디즈니의 ‘판타 지아’가 스테레오 사운드를 선보이긴 했
에 와서 스테레오의 시대가 열린 건 그런
처럼 울리는 소리를 선사했다. 리처드 마
밀도 높은 사운드로 가득 차게 되며, 자연
지만, 1950년대가 오기까지 대부분의 영
이유였다. 스테레오 영화들이 좋은 흥행
퀀드 감독은 ‘제다이의 귀환’(1983) 때
스럽고 리얼한 사운드에 의해 액션과 사
화는 모노(mono) 사운드였다. 즉 하나
을 거두자 많은 극장들이 이 시스템을 갖
THX 시스템을 통해 녹음된 소리를 최
운드의 조화는 한층 더 강화된다. 게다가
의 마이크로 녹음한 사운드를 극장에서
추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려 했다. 그
음질의 손색도 줄어들며, 흘러 다니는 소
도 하나의 스피커로 내보냈던 것이다. 이
이때부터 사운드의 발전은 가속이 붙
리고 ‘배트맨2’(1992, 팀 버튼 감독)는 돌
리 덕에 극장의 어느 좌석에 앉더라도 큰
번에도 기술적 문제가 아니었다. 사운드
기 시작하며, 1970년대엔 가히 빅뱅이 일
비 스테레오 디지털(DSD) 사운드를 선
손해 보지 않고 소리를 경험할 수 있다.
를 좌우로 분리해서 녹음하는 스테레오
어난다. 1971년에 ‘시계태엽 오렌지’(스탠
보이는데, 이로서 드디어 ‘5.1(five point
한국영화도 지난해부터 애트모스를 시
사운드 기술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중요
리 큐브릭 감독)가 ‘돌비 서라운드(dolby
one)’ 채널 시대가 열린다. 총 6개의 채
도했는데 ‘미스터 고’(2013, 김용화 감독)
한 건 극장이었다. 그렇게 녹음된 소리를
surround)’를 내놓는다. 4개의 채널(왼
널로 녹음한 것으로, 좌우와 중앙 그리
가 첫 작품. 현재 애트모스로 즐길 수 있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극장이 거의 없었
쪽, 오른쪽, 정면, 주변)로 녹음된 소리였
고 좌우로 분리된 서라운드 사운드까지
는 극장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할
다. 이처럼 영화 사운드의 역사는 발명가
다. ‘대지진’(1974, 마크 로브슨 감독)의
5개의 채널에, 중앙에 설치된 우퍼 사운
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이 방식으
의 능력만큼, 극장 시스템이 얼마나 따라
‘센서라운드(sensurround)’는 거대한
드까지 더해 5.1 채널이었다. 이후 소니가
로 작업되고 있다.
가 주느냐의 문제도 중요했다. 1950년대
저음 스피커(우퍼)로 정말 지진이 난 것
7.1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돌비에서도 ‘토
3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1 ‘라이프 오브 파이’도 애트모스 방식을 통해
좀 더 충실한 바다 사운드를 재현할 수 있었다. 2 ‘그래비티’의 생생함엔 애트모스 사운드도 크
게 기여했다. 3 애트모스는 블록버스터가 아닌 드라마의 섬세한 소리에도 강점이 있다. 사진은 1
46
2
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타일을 훔치다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언더 더 스킨 7월 17일 개봉,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
많은 남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꾸미지 않
스키니 실루엣은 다리를 짧아 보이게 한다.
은 털털한 여자가 좋아요. 청바지에 티셔츠
그 단점을 보완해주는 것이 바이커 부츠
만 입어도 예쁜 여자 있잖아요.” 그들은 이
다. 스키니진의 부록처럼 요 몇 년 함께 유
게 여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말인지 모른
행하고 있는 아이템으로, 굽이 넓어서 높이
다. 여자들에게는 몸매의 결점을 가리기 위
에 비해 편하고, 발목 부위가 헐렁해 바지
한 위장술이 셀 수 없이 많다. 예컨대 남자
를 집어넣음으로써 다리 길이를 애매하게
들이 ‘좀 꾸몄군’ 생각할 법한 H라인 원피스만 해도 그렇다. 가슴과
감출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체형은 여전히 스키니진을 위한 이상
엉덩이는 빈약하고 허리는 일자인 아동용 몸매에, 혹은 팔다리 가
형인 조건처럼 보이지 않는데, 간단한 끈나시 한 벌이 모든 것을 해결
늘고 배만 볼록 나온 마른 비만 체형에 H라인 원피스만큼 좋은 게
해준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로 향한
없다. 모두 한국 여성에게 흔한 고민이다. 그 밖에도 패션계는 하체
다. 여기에 거칠고 풍성한 갈색 인조 털 재킷, 헝클어진 검은 머리, 번
비만을 위한 헐렁한 바지, 처진 엉덩이를 위한 풍성한 치마, 다리 짧
진 아이라인, 빨간 립스틱이 더해지자 치명적인 남자 사냥꾼의 모습
은 여자들을 위한 하이웨이스트와 높은 구두, AA사이즈 가슴을 위
이 완성된다. 입고 있는 건 분명 청바지와 티셔츠인데, 느낌은 보디컨
한 ‘뽕브라’와 프릴 블라우스 등 다양한 눈속임 수단들을 여자들에
셔스(몸매에 딱 달라붙는 실루엣을 뜻하는 패션 용어) 드레스 같다.
게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청바지와 티셔츠(특히 남자들이 이상적으
말만 들어선 모른다. 스키니진과 바이커 부츠, 퍼 자켓, 검은 단발 웨
로 생각하는 타이트한 청바지와 티셔츠)의 경우 도무지 결점을 숨
이브는 1970년대 믹 재거가 추구했던 스타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
길 곳이 없다. 뚱뚱한 다리, 처진 엉덩이, 크거나 작은 가슴, 팔뚝살,
런데 그것이 스칼렛 요한슨을 만나자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뱃살, 민자 허리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실루엣에 반영된다. 그러니까
로라의 차에 탄 남자들은 그렇게 섹시한 여자가 자신에게 추파를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예쁜 여자’란 사실은 ‘꾸미지 않은 털털
던지는 것에 대해 거의 감지덕지하는 분위기다. 로라는 그런 그들 앞
한 여자’가 아니라 ‘몸매 좋은 여자’를 뜻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이
에서 한 겹씩 옷을 벗어 던진다. 남자들은 홀린 듯 로라에게 다가가
성에 대한 바람이 각양각색인 것 같아도 결국은 얼굴과 몸매로 수렴
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른다. 스칼렛 요한슨은 이 영화에서 헤
된다는 불편한 진실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어누드까지 감행했다. 과연 당장 발밑이 꺼져가도 눈을 떼기 힘든 모
‘언더 더 스킨’의 스칼렛 요한슨은 청바지와 티셔츠가 몸매에 따
습이다. 하지만 옷을 입고 있을 때도 그녀는 섹시하다. 이 영화 속 그
라 어디까지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는지, 그 극한을 증명해 보인다. 주
녀의 모습은 2006년 화제가 됐던 ‘베니티 페어’ 잡지 표지 사건을
인공 로라(스칼렛 요한슨)는 식량을 구하러 지구에 온 외계인이다.
연상시킨다. 스칼렛 요한슨과 키이라 나이틀리가 전라로 포즈를 취
그녀는 가구 운반용 밴을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남자들을 유혹
했는데, 사람들에게 더 많이 회자된 쪽은 스칼렛 요한슨이었다. 그
한 다음 집으로 데려가 육즙을 짜낸다. 영화 초반, 로라는 이 임무를
녀의 누드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풍만한 여체의 아
위해 백화점에 들른다. 짐차 운전사답게 거칠면서 팜므파탈 같은 분
름다움을 상기시켰다. ‘언더 더 스킨’에서 그녀는 청바지와 티셔츠
위기를 내기 위해 선택한 옷은 청바지다. 일명 ‘돌
를 소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면서 또 한 번 시선을 자극한다.
청’이라 불리는 애시드-워시 데님(불규칙한 모
모델이 옷발 받은 게 아니라 옷이 모델발 받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
양으로 워싱한 청바지)으로, 허리부터 발목까지
는 것이리라.
전혀 여유라곤 없이 몸에 꽉 끼는 스키니한 실루 엣이다. 사실 이건 스칼렛 요한슨처럼 키 작고 엉덩 이 큰 여자라면 절대 기피해야 할 종류의 옷이 다. 밝은 색상은 하체를 더 굵어 보이게 하고,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잡지 ‘엘르’ ‘싱글즈’를 거친 현 독립문 한량. 샤브샤브 국물을 스치는‘제비추리살’ 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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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만난 캐릭터
울 엄니랑 동상 죽인 조 도령 그 잡것 나가 그 놈 모가지를 들고 올라요
태석 우리 처지가 비슷하지? 난 예전에 프로 기사였어. 형이 내기 바둑판에 끼었다가 비참하게 세상을 떴고, 난 형을 도우려다 감옥에 갔었지. 돌무치 시상에 워쩌케 그런 일이? 대체 뭔 일이다요? 태석 억울하고 기막힌 일이지. 우리 형을 내기 바둑판에 끌어들여 죽인 후 판돈을 가로 챈 놈이 살수라고, 그 판에서 최악질이야. 돌무치 이잉, 그놈이구마이. 그놈이 시킨 짓이구마이.
나도 형을 잃었지 우린 처지가 비슷하군 그 놈 나한테 데려와 딱밤 열 대 때려줄게
태석 그래서 복수하려고. 근데 그쪽 사연도 꽤 기구하다며? 돌무치 긍께 고것이, 전남 나주 최고 부자 조 나리(송영창) 댁 서자인 조윤이란 놈이 문 제여라우. 집안 후계자인 저그 동상(이다윗)이 죽었는디, 그 임신한 처(김꽃비)를 낼더 러 도륙하라는 거여. 조 도령 지가 조씨 집안을 삼켜 불라고요. 내가 쇠백정이니께 그 처자도 쇠, 돼지라고 생각하믄 어려븐 일도 아니라는 기지. 태석 그 인간, 나한테 딱밤 열 대 맞아야겠는데? 열 대 모두 눈에 때려주지. 돌무치 오메! 그자는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이어라. 태석 그럼 같이 바둑을 둘까? 바둑 두다가 바둑판 확 엎고 칼부림하는 게 내 특기거든. 돌무치 생긴 건 이뻐서 말은 허벌나게 무서브쇼잉. 암튼 내가 쪼까 껄쩍지근해 갖고 당
‘군도:민란의 시대’ 하정우 극 중 이름:돌무치
최 못허겄는 거여. 그래서 송구스럽지만 못허겄소 했더니, 조 도령 부하들이 오밤중에 나랑 울 엄니, 여동상 곡지를 가둬놓고 우덜 집에 불을 질렀어라. 이런 잡것들이!
‘신의 한 수’ 정우성 극 중 이름:태석
태석 가족들은 무사해? 설마…. 과거 쇠백정.
돌무치 정신 채려보니께 사방천지가 싹 타버렸당께요? 내가 “오메 엄니! 엄니, 눈 쪼까
과거 프로 바둑 기사.
현재 의적단 ‘추설’의 일원. ‘도치’로 개명.
떠보시오! 언능 인나야 곡지야! 어째 눈 쪼까 감아브렀어?” 했는디 아무리 불러싸도…
현재 무직. 교도소에서 막 출소해
목표 어머니(김해숙)와 여동생 곡지(한예리)를
으흐흐흑….
죽인 조윤(강동원)에게 복수한다.
태석 그래. 실컷 울어. 나도 형을 잃어서 그 마음 알아. 그래도 혼자 살아난 이유가 있는
특기 여간 해서 안 죽기. 쌍칼 휘두르기.
거야. 대마는 쉽게 죽지 않는 법이거든. 복수해야지.
다른 바둑꾼들 모집 중.
돌무치 말해 뭐 허요. 나가 살아서가 아니믄 구신이 돼서라도 꼭 복수한다고이….
목표 형(김명수)을 죽인 내기 바둑꾼 목표 살수(이범수)와 그의 부하들에게 복수한다. 특기 바둑 두다 바둑판 엎고싸우기. 특기 엎고 싸우기. 딱밤 때리기.
태석 그러려면 일단 싸움을 배워야지. 백정의 칼을 그냥 휘두를 순 없잖아. 나도 원래 허우대 멀쩡한 약골이었는데, 교도소에서 조폭 두목(최일화)을 만나서 바둑 가르쳐주 는 대신 싸움을 배웠어. 근육질 완전체로 거듭났다고. 돌무치 내도 거시기, 황천길 가는 줄 알었는디 누가 구해줬어라우. 추설이라고 의적단 인디 날 신입 멤버로 영입했다니께요. 형제의 연을 맺고 우덜끼리 의적질 해먹응께 흥 도 나고 신도 났어라. 대나무밭에서 틈날 때 쌍칼 수련도 팍팍 해브렀지요. 태석 맞아. 제대로 싸우려면 개인 수련 하면서 팀을 꾸려야지. 나도 재야의 고수인 주님(안 성기), 꽁수(김인권) 등등을 모아서 작전을 짰어. 살수를 상대하려면 계획이 필요했거든. 돌무치 인자 때가 됐으니 나가 갈라요. 나가 기어이 그놈 모가지를 들고 올라요. 태석 복수 성공하거든 꼭 연락해. 다음 거사는 나와 도모하자구. 네 몫으로 30억원 줄게. 돌무치 30억원? 그게 얼만 게라우? 괴기 400근에 내장 250근어치는 되는갑소잉. 태석 그 정도가 아니지. 네 꾀죄죄한 의적 스타일을 싹 바꿔서 웰메이드하게 만들고도 남아. 멋진 옷이 필요할 때 가는 곳도 소개시켜줄게. ‘즐거운 곳! 즐거운 옷! 국민의 옷
돌무치 몰러라우. 근데 흰 돌, 검은 돌 튕겨서 그르케 솔찬이 벌 수가 있구마이. 역시 윗 전부터 아랫것들까지 도적질 안 하는 넘들이 없어라. 안 하믄 빙신이랑께? 김혜 선 방송작가. 영화 보다가 허리가 휘는 여자. 기능성 의자가 정신적·육체적 지주. 48
일러스트=신용호
집으로~!’ 웰웰웰웰 웰메이드하게 만들어주는 데가 있다니까. 잘 모르지?
송원섭의 문화가이드
이순신
문화인물
李舜臣
탐구생활
(1545~98)
1597년 9월에 그는 충무공 이순신은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으로 직진했다. 해류의 불리함이고 뭐고
선에 합류, 기적 같은 승리를 합작해냈다.
없는 인물이다. 그 일생을 간략하나마 한
압도적인 규모를 이용해 뭉개버리겠다는
일본 수군은 구루지마가 전사하는 등
페이지로 정리한다는 것은 감히 저지를
자세. ‘명량’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구루
31척을 잃고 후퇴했다. 임진왜란 7년 동
수 없는 불손한 짓 같다. 그래서 영화 ‘명
지마가 왜군의 선봉에 섰다. 전날 밤 이순
안을 통틀어 다이묘(大名, 지방 영주)급
량’(7월 30일 개봉, 김한민 감독)에 등장
신이 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필생즉사,
지휘관이 전사한 것은 명량의 구루지마
하는 ‘1597년 9월’이란 제한한 시간 안에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을 부르짖
가 유일하다. 반면 조선 수군은 단 한 척
서, 각종 기록에 담긴 이순신의 전적을 다
어 투지에 불을 질렀지만, 막상 일본의 대
도 잃지 않았다. 대장선에서는 사망자가
뤄보고자 한다.
함대를 마주한 장졸들은 겁을 먹고 앞으
두 명, 부상자가 세 명 나왔을 뿐이었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개전 한 달
로 나가지 못했다. 특히 이순신이 일기에
(이런 피해라면 ‘명량’에 그려진 백병전이
만에 일본이 조선의 수도 한양을 빼앗는
서 “저런 자가 어떻게…” 하고 한탄했던
대장선에선 펼쳐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
등 파죽지세의 면모를 보였으나 이후 명
전라우수사 김억추는 800m나 뒤처져 눈
다). 이것이 명량대첩의 개략적인 결과다.
의 원군이 참전하고 강화 논의가 시작되
치만 보고 있었다.
왜적 함대 규모는 기록에 따라 좀 다르 다. 난중일기에 130척으로 기록된 규
며 긴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화의가 깨지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격분했고,
명량대첩 승리에는
모는 점점 부풀려져 19세기의 이긍익은
1597년 정유재란이 시작됐다. 그해 3월,
조선의 전투 과학 기술도 한몫
“600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를 회복해 이듬해 2월에야 고금도에 진을
일본 측은 전투에 참여한 장군들이 당시
치고 전남 서부 해안을 확보하게 된 것도
거느렸던 병력 규모로 볼 때 “다 해봐야
사실이다. 하지만 명량해전 이후 일본 수
고작 수십 척”이라고 맞선다.
군이 서해를 통해 한양에 진출하려던 계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 난 이순신은 7월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
하지만 홀로 최전방에 선 이순신은 대
하고 전사함에 따라 통제사에 복귀하게
장선의 앞선 화력을 이용해, 왜선들의 접
된다. 하지만 남은 전선은 겨우 열두 척.
근을 막으며 꿋꿋하게 버텼다. 영화 ‘명
일본 측 해석에 따르면 명량해전은 대
획을 포기했다는 점, 이후 단 한 번도 이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량’에선 그리 강조되지 않지만, 당시 조선
첩도 아니요, 전체 판세에 영향을 주지 못
순신 수군을 박멸하기 위한 군사 행동을
난중일기의 9월은 우울하기만 했다.
의 전투 과학 기술은 이순신의 전술과 울
한 국지적 교전이다. 비록 일본이 선봉을
재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은 일본의 주장
가까스로 남해의 서쪽 끝, 벽파진에 본부
돌목의 해류 못잖게 이날 전투에서 큰 역
격파당했지만 조선 수군은 명량에서의
이 얼마나 억지인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를 차렸지만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몰라
할을 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일본의
교전 직후 후퇴했고, 다음날 일본의 본진
이순신의 전적은 한일 간의 역사적 자
불안하기만 했다. 말단 병졸은 물론 지휘
주력함인 세키부네에 견고함이나 규모에
이 명량을 지나 서해로 진출하는 데 성공
존심이 가장 팽팽하게 맞서는 부분이다.
관들도 공포에 질렸다. 9월 2일, 전체 조선
서 비교가 되지 않았고, 조선의 천지현황
했으므로 “전략적으로는 일본이 승리한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 역시 한국 측
수군의 서열 2위라고 할 수 있는 경상우
총통도 사정거리나 파괴력에서 조총을
전투”라는 것이다.
은 “대승했지만 충무공이 유탄에 맞아
수사 배설이 전투를 피해 탈영할 정도였
압도했다.
실제로 이순신은 전투 직후 일본의 추
서거” 했다고 보는 반면 일본 극우 세력은
다. 9월 7일에는 왜 수군의 척후대가 방어
일본 수군은 갈고리를 걸어 상대 배에
격을 피해 9월 21일에는 군산 앞바다까지
“이순신이 죽었고 일본군의 주력이 한반
태세를 살피기도 했다. 9월 14일, 왜군이
뛰어드는 전술에 능했으나, 조선군은 현대
일시 후퇴했다. 일본군이 물러난 뒤 군세
도 탈출에 성공했으니 일본의 승리”라고
마침내 한 줌 남은 조선 수군을 섬멸하고
전의 크레이모어를 연상시키는 대인살상병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한양으로 진공하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
기 조란탄(鳥卵彈, 작은 탄두 수십개를 동
전혀 좁혀지지 않을 해석의 차이가 한일
왔다. 결전이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시에 산탄처럼 쏘아 보내는 포탄)을 활용
간의 심리적 거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음력 9월 16일의 기록도 평소보다 길지
해 접근전을 원천봉쇄했다. 물러섰던 부하
않다. 130여 척의 일본 함대는 명량해협
들도 이순신의 눈부신 투지에 하나 둘씩 전
송원섭 블로그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운영자. 모든 종 명량
류의 구경과 참견이 삶의 보람. ‘오지라퍼’라는 말을 만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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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우리 올해는 계속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즐겁게 살자’. 도무지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매일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즐겁게 살자고 마음은 먹는데도 즐겁지 않았다. 이번엔 뭘 하면 즐거울까를 생각했다. 혼자 생각하고, 친구를 만나 묻 고 얘기하며 다시 생각한 결과,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라는 결론 이 나왔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금방 좋아하곤 했다. 그렇게 연인도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접근 방식은 조금 유아적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안녕, 난 네가 좋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한다. 이 말을 했을 때 통하는 사람과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것 같다. 예전엔 좀 더 쉽게 모두와 친해졌던 것 같은데. 얼마 전에는 친구 이두원의 전시회 오프닝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수묵화 개인전 ‘수묵유 정만리도’에서였다. 8년 전 학교 앞 옥탑방에 살 때 옆 옥탑에 살던 인연으로 만난 친구다. 우리 집은 보증금 120만원에 월세 15만원이었고 그의 집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이었다. 그 때는 그의 집 월세가 우리 집보다 5만원 쌌던 것이 부러웠다. 두원이의 옥탑에 놀러 갔을 땐 방 에 책상과 거울만 있는 것에 놀랐다. 그 어둡고 작은 방에서 그는 알록달록한 그림을 수백 장씩 그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그림을 보여주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그리 고 헤어질 때 골목 앞에서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인사를 나눴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다음 해 그는 서울 상수동의 작은 공간에서 첫 개인전 ‘슬프게 화가 난다’를 열었다. 포스터에 는 슬프게도 보이고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옛날 화가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얼마 뒤 나는 같은 제목의 곡을 만들어 그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두원의 전시회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 손님을 맞느라 정신 없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일찍 전시회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연락을 받고 두원을 다시 만났다. 그가 ‘이랑소규모수고비’라고 쓴 봉투를 건 넸다. 5만원권 지폐 몇 장이 들어 있었다. 그의 바이크를 함께 타고 멋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이 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어른이 된 우리’였다.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서로의 그림을 보여주던 때 를 지나, 강남의 멋진 갤러리에 커다란 그림을 걸고 전시회를 여는 우리. 옥탑방 옥상에서 친구 들을 모아놓고 노래 부르던 때를 지나, 앰프에 마이크까지 갖추고 공연하는 우리. 수백만 혹은 수천만 원에 그림을 팔고, 친구에게 수고비를 건네주는 어른이 된 우리. 친하게 지내자고 소리 지르며 헤어지지 않는 우리에 대해서.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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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학생이었을 때가 가장 마음 편했던 올타임 아티스트. 이랑은 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