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gazine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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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04

editor’s letter

100년의 힘 일주일 사이에 100년 축하 모임을 두 곳이 나 다녀왔습니다. 잔칫상 음식에 제일 먼 저 눈길이 갔습니다. ‘인연 그리고 정성’을 테마로 내세운 곳에서는 디저트가 피날레 를 장식했습니다. 한 뼘 크기의 노란색 사 탕 종을 각자 앞에 두고 함께 구호를 외친 뒤 자신의 포크와 나이프로 깨 먹는 이벤

08 ISSUE

16 ARCHITECTURE

오픈 하우스 서울, 그 현장을 따라

강예린 이치훈의 세상의 멋진 도서관

20 GALLERY ‘Endless Triangle with LUXTEEL’

트였죠. 모두의 참여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재미있고 의미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음식을 시(詩)적 언어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습니다. 영어로 적 힌 메뉴를 풀어보자면 ‘아침을 깨우는 이 슬방울’‘숲 속을 스치는 바람의 향기’‘순 수의 호수’‘초록 얼음’‘정글의 정신’‘달콤 한 노을’쯤 될까요. 야생 맹수가 툭 튀어나 올 듯한 자연의 분위기를 일관되게 부각시 킨 가운데, 생선 요리가 담긴 접시를 먼저 내놓고 국물을 나중에 그 위에 따르면서

22 TRAVEL

26 CARTOON

체험! 태국 치앙마이 쿠킹스쿨

30 REVIEW & PREVIEW

만화로 보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걸작선 영화 ‘메이즈 러너’

“물고기가 물을 만났다”고 설명하거나 팔 각기둥 모양의 투명 얼음 속에 초록색 조 명을 설치해 놓고 그 위에 연두색 셔벳을 담아내는 센스는 돋보였습니다. 솔내음 향

06 THIS WEEK PEOPLE

32 BOOK

6집 앨범으로 음원 차트 휩쓰는 김동률

을 뿌리고, 요리 테마에 음악을 맞추고, 음 식의 색상에 샹들리에 조명까지 매치해 오

『팝, 경제를 노래하다』

감체험을 선사하는 세심함이라니.

21 INSIGHT

33 GUIDE & CHART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34 ESSAY

은 직원이 두 줄로 도열해 환한 미소와 박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수로 환송해 줍니다. 처음엔 계면쩍어 하

파하는 시간, 행사장에서 출입문까지 수많

던 손님들도 점차 웃음이 입가에 번지며 자연스레 큰 소리로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35 PHOTO ESSAY 케이티 김의 남과 여

표지 오픈하우스 서울이 찾아간 북한산 천년고찰 진관사는 2013년 최신식 한옥으로 지은 템플스테이 공간을 갖추고 있다.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이도은 유주현 사진 최정동 김춘식 전호성 편집 임종일 디자인 전유진 통신원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구명서 김진경 박본재 마케팅 박유선 최수인 이민주 이선우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1부 1000원 /월 5000원 정기구독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세월은 더께가 아니라 저력이었습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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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EEK PEOPLE

06

연결고리가 되겠다는 뜻이다. ‘청춘’이란 곡의 가 6집 앨범으로 음원 차트 휩쓰는 김동률

푸르던 그 시절  뭐가 달라진 걸까 아직도 가슴 뛰는데

사는 이렇다. ‘언제부턴가 더는 꺼내지 않는 스무 살 서로의 꿈들.(…) 우린 결국 이렇게 어른이 되었고 푸르던 그때 그 시절 추억이 되었지. 뭐가 달라진 걸까. 우 린 아직 뜨거운 가슴이 뛰고 다를 게 없는데.’ 고전적이라 할 만큼 유려한 멜로디, 정교하면 서도 기품있는 편곡 그리고 이 웅장한 사운드를 뚫 고 나오는 압도적인 보컬까지 ‘김동률표 발라드’의 공식도 여전하다. 흥미로운 건 대중의 열렬한 반응에 비해 미적 지근한 평단의 반응이다. “실험과 변모를 하지 않 는다” “전작에 비해 퇴보한 인상이다” 등 혹평도 있었다. 가수가 늘 음악적 혁신을 도모해야 하는

데뷔 20년차 중견 가수 김동률(40)은 지금 가요

것엔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들 어떤가. 지금

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다. 지난 1일 발표한 6

의 대중은 김동률의 대단한 변신을 원치 않는다. 우

집 앨범 ‘동행’의 ‘그게 나야’는 발매 즉시 각종 음

리는 90년대와 함께 김동률을 호명했고, 그는 거기

원차트 1위를 휩쓸었다. 지난주 SBS ‘인기가요’에

에 딱 알맞은 정답을 들고 나왔을 뿐이다.

선 에일리와 소유X어반자카파를 제치고 1위 트

하나 주목하고 싶은 건 김동률의 소통 방식

로피를 받았다. 3집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이

이다. 그는 TV 출연 대신 SNS를 통해 보다 직접적

후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한 것은 12년 만이다. 다

이고 사적인 교류를 택했다. 올 봄부터 페이스북과

음달부터 시작하는 전국 투어 콘서트는 매진 기

트위터에 앨범 제작 과정을 상세히 기술했고, 앨범

록을 이어가고 있다. 전작이었던 크리스마스 앨범

에 대한 소개와 홍보도 모두 SNS로 이뤄졌다. “마

‘kimdongrYULE’(2011)을 능가하는 인기다.

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로 시작

TV 출연이나 매체 인터뷰 한 번 없이 어떻게

하는 출사표는 그 어떤 인터뷰 기사나 예능 출연보

이런 성공이 가능했을까. 결과론적이지만 김동률

다 감동적이었다(인터뷰를 못한 건 매운 섭섭한 일

에 대한 찬사와 열풍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이지만).

활동을 쉬고 있던 2012년 그의 노래는 때아닌 재

최근엔 작가 강세형씨가 새 앨범 전 곡을 듣

조명을 받았다. 1990년대 문화 코드를 적극 차용

고 에세이를 쓴 뒤, 이를 지인들이 낭독하는 이벤

한 영화 ‘건축학개론’(2012)에 데뷔곡 ‘기억의 습

트도 벌이고 있다. 첫 번째 낭독자는 가수 엄정화

작’이 삽입되면서 복고 바람에 불을 붙였기 때문

였다. 면대면 소통은 기존 팬덤을 더욱 공고하게

이다. 김동률의 목소리는 90년대 전체를 소환할

만든다. 또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끌어당기는

만큼 힘이 셌다.

측면도 있다. 왠지 30~40대가 그의 공연에 몰려갈

그는 새 앨범 발표 직전 SNS에 “전람회 시절

것 같지만, 실상 20대도 만만치 않다. 하나프리티

부터 제 음악을 함께 해준 분들이 가장 반겨주고

켓에 따르면 서울 공연의 연령별 점유율은 30대가

좋아할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올렸다. 미래를

48%, 20대가 43%였다.

겨냥하기보다 지나간 시절을 현재로 불러들이는

글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사진 뮤직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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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8

경동 교회

서울 컨벤션센터

오픈 하우스 서울, 그 현장을 따라

서울 건축의 속살, 탐하고 추구하고

숭실대 학생회관

춘원당


ISSUE

09

근대배수관

계수나무집

매년 9월 런던은 열린 도시가 된다. 평소엔 개방되지 않는 관공서와 상징적 건물들이 일반 시민들을 손님으로 맞는다. 시청은 물론이고 영국은행 본 부, 수상 집무실인 다우닝 10번지까지 예외가 없다. 도시 건축물 개방 행사, 이름하여 ‘오픈 하우스 런던’이다. 1992년 영국의 한 민간 비영리단체가 시작한 이 행사의 취지는 멋진 건축물이나 역사가 담긴 장소를 무료로 소개함으로써 도시 건물을 체험의 공 간으로까지 확장하자는 것. 그리고 이제는 런던뿐 아니라 뉴욕·로마·예루살렘 등 23개 도시가 네트워크를 맺고 같은 이름의 행사를 진행한다. 반갑게도 올해는 서울이 그 행렬에 들어섰다. 여덟 명의 국내 건축 전문가들이 2년 전부터 도모한 ‘오픈 하우스 서울’은 13일부터 일주일 간 서울 시 내 28개 공간을 네 가지 테마로 나눠 일반인과 2시간 동안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유학파 건축가들의 개성적인 건축물을 소개하는 ‘2000 년대 다양성의 출현’, 삼일아파트·세운상가 아파트 등을 답사하는 ‘1950~70년대 초기 아파트를 만나다’, 사찰·교회·성당을 둘러보는 ‘성스러움에 대한 다른 접근, 종교 건축’,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른 건축물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다시 살아나는 근대의 흔적’이다. 여기에 김인철·조병수·문훈 등 유명 건축가들이 자신의 사무실을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곁들였다. 중앙SUNDAY는 그 중 네 곳을 골라 따라나섰다. 문이 열릴 때마다 이 낯익은 도시의 감춰진 속살이 드러났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유주현 객원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김춘식 기자, 전호성 객원기자, 오픈하우스 서울

진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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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


ISSUE

10

1 1 남대문로 하수관 중 벽돌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지점. 2서울광장 지하의 하수관을 보기 위해 행사 참가자가 맨홀로 들어가는 모습. 3 을지로 입구역에서 한국은행으로 이어진 남대문로 하수관. 서울시 문화재로도 지정됐다.

을지로입구역 지하엔 100년 전 지어진 하수관

에 석재와 붉은 벽돌로 아치 모양의 하수관을 짓

13일 오전 을지로입구역 3번 출구 앞. 스무 명 남짓

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볼 하수관은 제작연도

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가로·세로가 2m 쯤 되

2

가 1910년 전후로 추정하고 있어요. 20년대 지어진

는 맨홀 뚜껑이 열려있었다. 퀴퀴한 하수도 냄새가

다른 건축물들에는 철근 콘크리트가 쓰였거든요.”

역하게 올라왔다. 참가자들이 가야할 곳은 바로

장화와 방수복, 점퍼를 걸치고 장갑과 마스

이 맨홀 속.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하수관

크, 헬멧까지 착용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랜

이었다.

턴에 의지해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에 발을 디뎠

난감해 하는 이들 앞에 안창모 교수(경기대

다. 을지로에서 한국은행 방향으로 조금 걸어나가

건축대학원)가 나타났다. 체험에 앞서 배경 설명을

자 벽돌 아치 구조의 하수관이 나타났다. 어른 한

시작했다. “산업화·도시화가 이뤄지면 가장 먼저

명이 드나들면 꽉 차는 규모였지만 성곽처럼 탄탄

주택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주택 문제라는 게

해보였다. 건축학도 이동민(24)씨는 “책으로만 배

결국 하수도 문제인 겁니다. 전염병과 관계되기 때

웠던 도시 하수 체제를 직접 보니 신기하고 놀랍다”

문에 어쩌면 더 심각하죠. 그래서 물길에 대한 이

고 감탄했다.

해는 도시의 틀을 잡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행들은 지상으로 나와 두 번째 ‘문화재 하

그러면서 그는 조선 건국과 함께 500년 간 이

3

수관’으로 향했다. 서울광장 지하였다. 맨홀 아래

어져 온 옛 한성의 하수로가 근대적 지하수로로

로 내려가 보니 본선과 지선이 만나는 합류 지점

탈바꿈하게 되는 이유와 연결지었다. 일제 강점기

에 역시 아치형 하수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

중 근대화를 겪으며 서울의 하수관 역시 인구 증

이 타원이 아닌 달걀형이었다. 상부의 무게를 최대

가에 걸맞는 구조를 지녀야 했다는 얘기였다. 이

한 견뎌내고 유속이 느리더라도 퇴적물이 덜 쌓이 ●


ISSUE

11

1 1 경기도 분당구 운중동의 계수나무집 뒷모습. 2층 복층 주택의 천장 일부를 기하학적 구조로 바꿔 외관상으로도 개성을 드러냈다. 2공간의 구획을 없앤 1층. 라이프타일에 따라 소파와 테이블 등 가구 배치를 달리하기가 쉽다. 3 1층에 실린더처럼 설치된 화장실 내부. 원통 형태가 되면서 사각의 전형적 틀을 탈피했다.

도록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들려왔다. 이날 안 교

로 말이죠.”

수는 근대 하수관을 이렇게 평가했다. “합류되는

회색 벽돌로 마감한 외벽 역시 마을과의 조

물의 높이 차이까지 고려해 만든 건축물들이예요.

2

화였다. 단독주택마다 개성을 앞세우다 보면 마을

굉장히 미학적이면서 또 굉장히 과학적이고 합리

전체로는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최대한

적인 방식으로 하수관을 설계하고 시공했다는 것

무채색을 고집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개성이 된다

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는 아이디어였다. 내부로 들어갔다. ‘건축의 개념으로 접근한

판교 계수나무집, 나만의 정원 대신 가로수를 택하다

집’이라는 설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13일 오후에는 경기도 분당구 운중동 ‘계수나무집’

공간 배치와는 사뭇 달랐다. 어때야 한다는 규칙

을 찾았다. 2년 전 한 부부가 조남호 건축가에게 의

은 찾아볼 수 없었다. 1층은 벽 없는 자유로움을 최

뢰해 지은 2층짜리 개인 집이다. 지극히 사적인 공

대한 강조했다. 화장실조차 한쪽 벽에 붙이지 않고

간이 오픈 하우스 측 눈에 든 데는 이유가 있다. 집

거실 중간 원기둥 형태로 배치했다. “막지 않고 공

을 소유가 아닌 존재의 의미에서 해석하고 지었기

간을 비워두는 것, 그래서 자신들 의지대로 공간

때문이다. 건물로 들어서기 직전 조씨는 건물 옆

을 점유하고 살겠다는 게 건축주의 바람이었어요.”

에 심어진 계수나무를 가리켰다. “원래 법적으로

3

이런 배경에서 거실과 구분되는 사랑방을 두고 창

건물 옆 2.5m를 비워야 해요. 보통 이 숫자에 맞춰

호문이 벽의 역할을 하며 가변적 형태를 띄는 한

자리를 내고 주차장으로 쓰죠. 하지만 이 집은 이

옥 요소를 접목시키기도 했다.

공간을 4.2m나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계수나무를

한 시간을 넘긴 질의 응답을 마무리하며 그는

나란히 심어 놨죠. 마을을 위한 가로수의 개념으

“건강한 작은 집들이 모여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S


ISSUE

12

1 1 성공회 서울성당 전경. 유럽식 붉은 벽돌지붕과 전통 기와지붕의 조화가 성공회의 포용력을 상징한다. 2 수녀원 앞마당은 한국 전통 조경의 대가 김춘옥이 꾸민 아담한 정원이다. 3 모자이크 제단화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라틴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네 명의 성인 모습이 시실리 전통의 각석으로 제작됐다.

말을 남겼다. 단독주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그

십자가 모양의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미술사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집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

책에서 보던 동방교회식 모자이크 제단화와 지하

장시키고자 하는 건축가의 한 마디였다.

2

에서 종탑까지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 비밀스런 지 하 채플이 보는 이를 중세 유럽으로 이끈다. 십자

한국과 유럽의 전통을 함께 품은 성공회성당

가 머리 부분을 온통 차지하는 모자이크 제단화

14일 오후 덕수궁 북쪽 돌담길, 영국대사관 근처

에 다가가니 색색의 각석들로 촘촘히 새겨진 예수

인적 드문 골목 깊숙한 곳에 나이 지긋한 노부부

와 성인들이 황금빛 조명을 받아 거룩함을 더한다.

부터 어린 두 딸을 동반한 젊은 엄마까지 호기심

예식 때만 사용한다는 아름다운 나선형 돌계단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심 한복판에 비밀스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본당을 축소해 놓은 듯한

럽게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서울에 현존하는 유

미니 채플이 앙증맞다. 이 아담한 공간은 놀라운

일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인 성공회 서울성당

비밀을 품고 있으니, 바로 설립자인 조마가(Mark

이다. 이 곳에서 사역하는 정창진 부제가 안내에

N. Trollope·1862~1930) 주교의 무덤이다. 회랑

나섰다. 1926년 영국인들이 설계도를 축소해 지었

바닥 한가운데 성당을 가슴에 품고 있는 주교의

던 것을 96년 원 설계도의 긴 십자가 형태로 증축

실물크기 동판이 그것인데, 성당 안에 매장방식의

한 것이 현재 모습이란다. “포용성·다양성·개방성

3

무덤이 있는 것은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을 중시하는 성공회 건축답게 당시 영국에서 대세

성당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선 한옥은 사제

였던 고딕 양식이 아닌 조선의 환경과 조화로운 로

관과 수녀원이다. 지붕은 한국식 기와요, 벽은 유

마네스크 양식을 택한 것이 우리 교횝니다. 부드럽

럽식 붉은 벽돌로 마감된 독특한 형태가 역시 동서

고 담백한 느낌이 한국인과 잘 어울리죠.”

양을 포용하고 있다. 오늘 투어의 백미는 바로 이 ●


ISSUE

13

1 1 진관사 템플스테이 공간인 함월당 뒷태. 2 전통수행공간인 대웅전과 명부전 뒤로 보이는 응봉과 홍송이 천하의 명당임을 뽐내고 있다. 3 함월당에 앉아 미닫이 문을 모두 열면 자연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수녀원 앞마당. 잘 익은 감이 탐스럽게 열린 감나

라 칭한 지 1004년 째가 된다는 게 도운 스님의 설

무를 비롯해 목백일홍, 라일락, 소나무들이 빼곡한

명이다. “대웅전을 병풍처럼 두른 홍송 뒤로 동그

사이로 겸손히 자리 잡은 나무 십자가가 왠지 모를

2

란 봉우리 보이죠? 홍송은 기운이 좋은 곳에서만

평안을 줬다. “경주 안압지 복원공사를 맡았던 전

산답니다. 이렇게 최고 명당자리라 예부터 큰 뜻을

통 조경의 대가 김춘옥이 꾸민 정원”이라는 게 마

이루려는 사람들은 진관사를 찾았어요. 동그란 응

당을 지나던 카타리나 수녀의 자랑스런 귀띔이다.

봉의 기운을 받으면 뜻한 바를 이룬다니, 듬뿍 마 시고 받아 가세요.” 전통 수행공간에서 나와 계곡을 가로지르는

진관사속 ‘달을 품은 집’

15일 오후에는 북한산 기슭의 진관사를 찾았다. 성

다리를 건너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지난

공회 성당이 꽉 막힌 도심 속에서 숨통을 틔워주

해 완공된 템플스테이 공간이다. 산자락을 따라 오

고 있다면, 진관사는 자연과 하나 되어 산의 정기

름차순으로 규모가 큰 함월당과 중간 크기 공덕원,

를 온전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열정이 넘치는 도운

개인이 독채로 쓴다는 아담한 효림원이 살짝 나선

스님과 진관사 증축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조정구

을 그리며 배열된 구조다.

건축가가 안내에 나섰다.

‘달을 품은 집’이라는 함월당은 특이하게 뒷

진관사는 천년 고찰과 최신식 한옥이 어우러

3

태를 먼저 만나게 되는데, 원경의 산봉우리부터 첩

져 한국 건축의 어제와 오늘을 품고 있는 흥미로

첩이 겹쳐진 기와지붕, 암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운 곳이다. 대웅전과 명부전 등 사각의 경내에 지

장독대까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천장에 커

어진 전통 수행공간은 고려 8대 임금 현종이 수행

다란 호박 모양 조명등이 따뜻하게 비추는 함월당

하던 곳으로, 왕이 된 뒤 스승의 이름을 따 ‘진관사’

에 앉아 문을 모두 여니 거대한 풍경화 액자 5개가 S


ISSUE

14

서울 컨벤션센터

바람을 머금었다. 이 방에서 500명에게 동시에 설 ◇오픈 하우스 서울 2014

법을 베푼단다. 함월당의 비밀은 숨겨진 1층이 있

13일 월

17일 금

다는 것. 무심코 길을 따라 내려가니 식당, 주방을

오전 9시 서울의 100년 된 근대 하수구

오후 2시 춘원당(황두진)

갖춘 현대식 건물이 한옥 아래 기단처럼 ‘짠’하고

오후 2시 계수나무집(조남호)

오후 2시 1950~70년대,

오후 2시 선벽원(이충기)

나타나 잠시 홀린 기분이다.

14일 화

꼭대기 효림원에 올라 내려다보니 함월당 용

오후 2시 아름지기 사옥 1차(김종규) 오후 3시 서울 성공회성당

마루 곡선이 뒤로 보이는 산의 라인을 닮았다. ‘자

오후 4시 아름지기 사옥 2차(김종규)

연의 선을 모방하면 가장 오래 살아남기에’ 기울

초기 아파트를 만나다 1차(정다은) 오후 3시 질병관리본부(현 서울혁신파크) 오후 3시 오픈 스튜디오(문훈) 오후 4시 오픈 스튜디오(조병수) 오후 5시 청담동 비트윅스(조병수)

기를 맞춘 것이란다. 집과 누각이 더해진 효림원

15일 수

18일 토

오후 3시 이태원 이슬람사원

오후 1시 오픈 스튜디오(황두진)

누마루에 앉아 사방의 문을 열고 풍경을 품으니

오후 3시 진관사 템플스테이(조정구)

오후 2시 1950~70년대,

전망대가 따로 없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피 터 쥼터도 하룻밤 묵어 가며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오후 3시 오픈 스튜디오(최욱)

초기 아파트를 만나다 2차(정다은)

오후 4시 숭실대 학생회관(최문규)

오후 3시 오픈 스튜디오(민성진)

오후 4시 오픈 스튜디오(김찬중)

오후 3시 한국정교회 서울 성니콜라스 대성당

오후 5시 오픈 스튜디오(커튼홀)

투어를 마치고 오솔길을 내려오다 문득 뒤돌 아 보니 지나온 건물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

19일 일

16일 목

오후 12시 오픈 스튜디오(김승회)

오후 12시 경동교회

오후 2시 오픈 스튜디오(김인철)

이 가야 보이고 멀리서는 잘 노출되지 않는 것이 집

오후 3시 약현성당

오후 3시 라파엘 센터(김승회)

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 전통건축의 미학이란다. 튀

오후 4시 서울컨벤션센터(김헌) 오후 4시 오픈 스튜디오(와이즈건축)

는 외관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묻어가는

오후 5시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조성룡)

최신 건축 트렌드가 이 천년고찰에 있었다. ●


ISSUE

15

경동 교회

오픈하우스 서울 기획한 임진영씨

“우리 이야기 담긴 곳 찾아내고 싶어요” ‘오픈하우스 서울’을 총괄기획한 이는 건축전문기자인 임

“전업으로 몸담은 사람이 혼자이기 때문에 홀로 기획하는

“질병관리본부는 충북 오송

진영(사진)씨다. 그는 문화기획자 배지운, 건축가 염상훈·

데 자칫 방향이 잘못되거나 균형을 잃을 수 있어 다른 공

으로 기관이 이전하고 서

임여진·최춘웅 등 7명을 공동기획자로, 건축가 승효상·배

동기획자들과 함께 정한다. 어떤 주제가 흥미로울지 정하

울 건물이 그냥 비어있는

형민 교수 등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2012년부터 준비해 왔

고 거기에 맞는 건축물이 무엇일지 함께 토론한다.”

데 가보니 정말 독특했다.

올해 4개의 테마로 나눈 이유는.

다. 지난해에는 서촌 주민들이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는 ‘오픈하우스 서촌’을 기획하기도 했다.

많은 동물들, 곤충들이 실

“무엇보다 한국 건축가들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승효상

험 대상이 돼 바이러스를

이후의 세대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기는 하지만 어떤 사

연구하는 곳이라 공간 구

“처음 하는 행사인 만큼 사실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시

상그룹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그들을

분 자체가 색다르다. 실험동의 시약 다루는 곳, 동물 사체

작부터 판을 벌여 서울 시내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보다 데

‘다양성의 출현’이라는 이름으로 시대 좌표, 계보로 자리매

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게 먼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김시켰다. 1950~70년대 지어진 아파트는 우리가 정작 옛

이번에는 건축에 한정했다. 내년부터는 예술가의 집, 디자

날 아파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데 착안했다. 과거

“형식은 같지만 도시를 발견하는 측면이 다를 것이다. 뉴

인 공간 등으로 주제를 넓힐 생각이다.”

아파트는 지금보다 오히려 공공성을 반영하는 부분이 있

욕 같은 곳은 자체 콘텐트가 풍부하지만 서울은 더 발견하

다. 종교별로 미묘하게 다른 양식도 비교해보면 좋겠다고

고 발굴해야 할 곳이 많은 잠재적 도시다. 우리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서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친한 서촌 동네 분

여겼다. 근대의 흔적은 당시 건축에 대해 유산으로서의 보

말해주는 곳을 더 많이 찾아나서야 할 것 같다.”

들이 먼저 제안해주셨다. ‘서촌’의 경우 주체가 주민들이

호 장치도 없고 가치도 잘 모른다는 점이 이유가 됐다. 그

라는 게 ‘서울’과 확연히 다르다. 형식이 같기 때문에 작은

시대만의 재료나 디테일이 묻어나는 공간이 나중에 어떻

“문화기금이나 기업 후원에 상당부분 기대야 한다. 하지만

규모에서 테스트하는 기회로 삼았다.”

게 변화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그것만을 바라는 건 너무 위험하다. 행사를 소재로 어떤 작

가장 흥미롭다고 보는 곳은.

업을 해서 아트상품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생각 중이다.”

올해 행사를 ‘프리뷰’라고 하는 이유는.

서촌’에서 ‘서울’로 확대된 것인가.

개방 대상 선정은 어떻게 하나. S

실 등은 이 건축물의 내력을 그대로 말해준다.” 오픈하우스 서울만의 특징을 꼽는다면.

비영리단체로 운영을 어떻게 하게 되나.


ARCHITECTURE

16

기둥의 크기를 고려해 적절히 공간을 구분했다.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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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가운데 천장에는 빛이 들어오는 천창이 있어 자연광이 도서관 건물 깊숙이 유입된다.

강예린 이치훈의 세상의 멋진 도서관 <2> 바르셀로나 폼페우 파브라 대학도서관

분수용 물 창고가 지혜의 샘으로

건축가 부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도서관 산책자』 『세도시 이야기(공저)』를 썼다.

S


ARCHITECTURE

메자닌 윗쪽의 낮은 열람공간은

18

두꺼운 벽기둥 사이 공간은

아치벽이 머리에 닿을 듯하여

벽의 두께에 맞도록 제작한 가구가 놓여

아늑한 독서공간이 된다.

작은 규모의 분리된 열람공간이 된다.

요세프 폰트세레Josep Fontserè(1829-1897)는 바르셀로 나 현대 도시계획(Eixample)의 도시계획가 일데폰스 세르다

메자닌의 아래 공간은

(IlDefons Cerda)의 조수였다. 도시계획과 엔지니어기술의

높이 2.3m정도의 낮은 서가가

전통을 계승한 건축가로서 시우타데야 공원의 주요 건물을

연속되어있고 주로 열람공간보다는

디자인 하기도 하였다. 또한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가인

서가를 배치해 두었다.

가우디가 저수조 건물을 계획할 당시 요세프 폰트세레의 조 수이기도 했다. 루이 클로에와 이나씨 파리찌오Lluís Clotet and Ignasi Paricio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1998년에 만들어 진 건축가 파트너쉽으로 폰트세레의 저수조를 도서관으로 재생한 공으로 스페인 국가 문화유산 상을 수상하였다.

기존 바닥에서 메자닌으로 계단이 연결 되는 모습.


ARCHITECTURE

19

건물 주변을 두세 바퀴는 돈 것 같다. 높다란 벽

대변하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둥 사이 창으로 안을 들여다 보니 도서관이 확

이 육중한 구축물 사이사이 작고 노란 탁자등 아

실한데 입구를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지나가던 학

래로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생에게 물으니 도서관 옆 건물의 지하로만 출입

위대한 역사적 도시유산을 가진 유럽이 건축

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이라곤 세 채밖에 되지 않

을 다루는 방식이 그러하듯, 기능적으로 전혀 도

은 대학에 도서관 입구를 왜 이렇게 만들어놓았

서관에 적합하지 않은 돌덩어리 공간을 대학의 중

을까. 힘들게 찾은 지하 입구에 도착하니 이번엔 제복 차림의 경비 둘이 막아선다. 출입증이 있어

앙도서관으로 전용하기 위해 대학본부는 건축가· 도서관 외부

도시계획가·도서관 전문가·법률 전문가로 이루어

야 들어갈 수 있다며 완강하다.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선배

진 임시 협력조직을 꾸렸다. 학교 프로젝트를 수행해본 루이스 클로에/이냐

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대학에서 공부했던 선배는 짧은 스페인어 문장 하

시 파리씨오(Lluís Clotet and Ignasi Paricio)를 책임건축가로 선임하고 첫

나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폼페우 파브라 대학에서 공부한 졸업생입니다. 이

단계 개관이 이루어진 1999년까지 7년여 시간 동안 스터디했다. 여러 주체들

친구들은 한국의 건축가이자 도서관 건축에 큰 관심을 가진 전문가들입니

이 이견을 조율하는 가운데 모두가 공감한 한 가지 원칙은 기존 건축물의 아

다. 멀리 한국에서 온 이들이 도서관을 둘러볼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휴

름다운 구조와 공간조직, 재료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전화를 들이밀며 문자를 보여주니 그제야 문을 열어준다. 방문하려는 곳은 현대 카탈루니아 언어의 표준을 마련했다는 언어학

메자닌 설치로 내부 공간 효율적 구분

자이자 엔지니어 폼페우 파브라(Pompeu Fabra)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근대 이전의 건축이 가지는 기술적 한계이기도 했지만, 저수조를 도서관으

대학이다. 1990년 문을 연 이 대학은 한 때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장 큰 녹

로 바꾸는 작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두꺼운 기둥과 구조벽이 내부 공간의

지였던 시우타데야 공원의 북서쪽 세 개의 블록(L’Eixample)을 캠퍼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구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기에 기존의 바

일부로 사용하고 있다(바르셀로나의 현재 도시 모습은 일데폰스 세르다라

닥면적 만으로는 대학도서관이 요구하는 규모의 공간을 얻을 수 없었다.

는 도시계획자에 의해 고안됐고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거쳐 완성됐다. 가로

이를위해건축가는4m모듈의두꺼운벽기둥사이에메자닌(Mezzanine)

세로 130~140m 크기의 모서리 잘린 4각형 블록이 반복되며 도시를 만들

을 설치하기로 했다. 내부 공간의 중앙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2.8m 높이

고 있다. 이 도시 블록의 단위를 ‘어잠플레 L’Eixample’라고 부르는데, 이

의 중이층 바닥을 걸어 모자란 바닥면적을 보충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면적을 늘려주기도 했지만 17m가 넘는 높은 공간을 다양한 높이

는 ‘확장’이라는 뜻의 카탈루니아어다).

의 독서공간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아이디어였다. 메자닌 층을 기준으로 하 150년의 시간을 떠받들어온 벽 기둥

면 머리가 닿을 듯한 낮은 공간, 중간 높이의 공간, 천정까지 트인 높은 공간

이곳은 특히 물을 저장하는 저수조 건물을 개조해 만든 도서관으로 유명하

이 생겨났다. 원래 바닥을 기준으로 하면 메자닌이 걸린 높이의 공간, 원래

다. 건축가 요셉 폰트세레(Josep Fontserè)는 인접한 시우타데야 공원 분수

천정까지의 가장 높은 공간까지 다양한 천정고가 만들어졌다.

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조 건물을 설계, 1874년 건설됐다. 분수대의 물을 뿜

덕분에 공간의 크기뿐 아니라 천창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다양한 자

기 위해 높은 곳에 저장된 물의 낙차를 이용한 것인데, 이를 위해 17.5m 높

연광 조건을 연출하는 효과도 얻게 됐다. 또 도서관 자료 보관에 중요한 실

이의 저수조를 고안했다.

내기후 조절을 위한 기계 및 전기 설비, 소음을 줄여주는 재료까지 세심하게

건물 모서리에 네 개의 탑과 벽 기둥이 연속된 네 면의 똑같은 파사드

고려한 바닥을 설치하면서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입면)를 가진 정사각형 건물. 약 1만t 가량의 물을 17.5m 높이 위에 지지해

어떤 위치에 앉아 보아도 아늑한 느낌을 얻게 되는 이 장소는 세상과 단

야하는 이유로 내부에는 90cm 정도의 두꺼운 벽 기둥에 의해 4m 간격으

절된, 오직 독서만을 위해 만들어진 타임머신 속 같다. 서가와 책상, 조명 등

로 칸막이처럼 나뉜 공간이 존재한다. 도서관으로 사용하기 전에는 피난시

모든 건축적 요소들이 치수·재료·색상 면에서 100여 년 전 만들어진 공간적

설, 형사법원의 아카이브, 전시 공간, 영화 촬영장 등으로 사용됐다.

질서와 완벽한 조화를 연출한다. 1999년 도서관 전체 크기의 3분의 1에 해

삼엄한(?) 경비를 뚫고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지하 통로를 지날

당하는 1차 개관을 시작으로 도서관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35만 권을 소장

때는 마치 비밀기지 혹은 숨겨진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도서관

할 수 있는 9km 길이의 서가와 600곳의 독서 공간, 스터디룸 20여 개를 구

출입구를 지하에 품고 있는 이 건물에는 인류학·정치학·사회과학 학과 사무

비하게 된다고 하니, 저수조에서 도서관으로의 성공적인 변신이 아닐 수 없다.

실도 있다.

돌아보니 묵직한 구조적 공간으로 인해 소리와 빛이 침묵과 고요의 상

평범한 열람실 공간을 지나 지하에서 두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를 따라

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성당이나 수도원 같았다. 돌조각에 불과한 재료의 집

가다 보면 어느새 150년의 시간을 간직한 벽돌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어

합이 연출하는 이 극적 상태는 괴테의 말처럼 ‘동결된 음악’이다. 밖에서 입

디서도 만나기 힘든 고요하고 묵직한 공간과 극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구를 찾을 수가 없고 오직 하나로 연결된 지하 출입구로 드나들어야 하는 것

오직 엄청난 양의 물을 떠받치기 위해 존재하던 두꺼운 벽과, 기둥, 볼트로

도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물의 저장고는 정지된 오케스트라의 한 장면으로

구성된 이 공간은 그 존재만으로 중력에 저항하는 순수한 구축에의 의지를

지식의 보고가 되어 그렇게 침묵과 고요를 간직하고 있다.

S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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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에도 색이 있었네 강철이 색을 품으면 얼마나 요염한가. 고품격 건축내외장재 브랜드 럭스틸(Luxteel)을 생산하는 유니온스틸은 강인하면서도 유연한 철의 속성을 예술로 풀어내기 위해 ‘LUXTEEL MEETS ART’라는 주제로 국내 유망 건축가들에게 럭스틸 제품을 후원해 왔다. 그 두 번째 전시인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건축가 이정훈이다. 그는 철이 가진 물성을 초컬릿색 럭스틸을 이용해 삼각형 구조와 삼차원적 순환체로 구현했다. 오프닝에서 잠시 선보인 다양한 럭스틸의 질감과 색감은 철판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뒤엎어버린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송원아트센터

‘Endless Triangle with LUXTEEL’ 10월 16~27일 서울 종로구 화동 송원아트센터, 문의 02-735-9277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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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6> 아날로그 결핍증

닭다리 네 개 그리는 아이들 동물원에는 동물이 없고 채소가게엔 채소가 없다

아시아라는 말에는 아시아가 없다고 하더니

거야.”(웃음)

이번에는 “동물원엔 동물이 없다”는 말로 화

설마 싶다가도 우리 아이가 그렇게 되

두를 꺼낸다. 또 선문답인가.

면 어쩌나 싶어서 물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북극에만 사는 백곰과 남극에만 사는 펭

자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귄이 한 장소에서 사는 곳이 동물원 아닌가. 진짜

“아날로그 결핍증에 걸리게 되겠지.”

생태계에는 그런 동물은 존재하지 않지. 백화점도 마

비타민 결핍증이면 몰라도 아날로그 결핍증이란

찬가지야. 식품 매장에 가면 과일과 야채가 같은 코너에 있잖아.

말은 처음 듣는다. 과연 여기는 지(知)의 최전선이다. 당연시되

생산지와는 상관없이 바나나와 복숭아가 어깨 동무를 하고 있

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허공에 붕 떠서 신기루처럼 보인다.

어. 그런데 동물원과 백화점이 생긴 것은 모두 같은 시기였어요.

“초등생이 커터 나이프로 친구의 목을 벤 사건이 생겼어.

도시화 산업화와 함께 그런 탈(脫) 자연의 비현실 공간들이 등

일본에서 말야. 찔린 아이가 피 흘리며 죽었는데도 보호소에

장하게 된 거라고. 서구 근대의 지적 시스템이 만들어 낸 산물

감호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아이 만나면 미안하다고

이지.”

전해 주세요’라고 했다는 거야.” 남을 찌르고서도 그가 아파할

때묻은 생각을 씻어내는 말의 샤워가 계속된다. “농산물 파는 슈퍼에 가봐요. 거기 자연이 있나. 오이는 비

것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이상감각은 아날로그의 현실감각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뚤어진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그런데 요즘 반듯한 오이가 아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구를 죽이고도 죄책감이 없

니면 상품가치를 잃어. 특히 미국이나 일본이 심해. 규격이 똑

다니. 기자 근성으로 되물었다. “전쟁터에서 칼로 적을 죽인 사

같아야 값도 똑같이 매길 수 있기 때문이지. 그게 어디 농산물

람과 화살을 쏘아 죽인 사람은 느낌이 다르거든. 미사일로 보이

인가, 공산품이지. 생물은 원래 불규칙한 것인데, 그래서 자연

지 않는 도시를 공격할 때 군인의 마음과도 비교해 보세요. 그

은 직선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슈퍼에서는 반대지.”

래도 잘 모르겠으면 캐나다에서 대학 강의실에 들어와 여학생

나도 들은 적이 있다. 일정한 규격에서 벗어난 농산물들은 폐기처분 한단다. 굶주리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영화 ‘파이 이야기’ 봤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정신 으로 돌아온다. “바나나가 물에 뜬다는 말을 아무도 안 믿잖아

들을 모아놓고 쏘아 죽였던 범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고. 총 으로 죽였을 땐 태연하던 범인이 저항하는 여학생을 칼로 찔렀 을 때는 당황해 하면서 자기도 자살해 버리거든. ‘이것이 살인 이구나’라는 아날로그 감각이 되살아난 거지.”

요. 그런데 실제로 목욕탕에 바나나 송이를 넣어봐. 정말 뜨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후 2000년 넘게 쌓아 온 형이상

든. 그런데 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으려 하지 않을까. 현

학은 피가 흐르는 정육점 살덩어리의 아날로그 감각을 빼앗아

대인들은 피가 흐르는 현실이 아니라 고정 관념을 믿으니 그래

갔다. 그들과 싸우다 보면 광장에서 채찍질 당하던 말의 목을

요. 정 부장은 쇠고기를 어디에서 사나. 정육점이야, 슈퍼야?”

끌어안고 통곡을 하다 미쳐버린 니체처럼 될지도 모른다.

말꼬리를 흐렸더니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정육점에 통째

“정 부장. 니체가 되어도 좋다면 종군기자 한번 해볼래요?

로 매달린 쇠고기를 사세요. 그래야 자기가 먹는 쇠고기의 모

지금 지식인들은 붕대로 머리를 싸매고 후방 병원에 입원 중이

양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지. 슈퍼에 진열된 고기들은 무슨

라는데, 그걸 사람들은 연구실이라고 부르고.” 농을 하듯 웃으

고기던 똑같이 썰어서 비닐 포장되고 바코드가 찍혀 있어요. 그

며 말하는 이 교수의 얼굴에는 일말의 쓸쓸한 빛이 감돌았다.

래서 요즘엔 다리가 네 개 달린 닭을 그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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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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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태국 치앙마이 쿠킹스쿨

맵고 짜고 시고 달고 ‘맛 중독’ 세계 태국 음식은 맛있다. 각종 향신료와 허브의 진 한 맛과 향이 만들어내는 맵고, 짜고, 시고, 달 달한 맛은 가히 중독적이다. 이런 매력적인 태 국 음식을 현지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다면 어 떨까. 여행 가서 요리 실습이라니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무척 새로운 경험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지친 입맛을 돋우어 주는 기대 이상의 맛이었다. 치앙마이·방콕(태국) 글·사진 정근영 기자 jjkkyy@joongang.co.kr

5개의 카레 메뉴 중 생칠리고추를 사용해 제일 매콤한 그린카레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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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해발 335m의 산들로 둘러싸인 치앙마이(Chiang Mai)는 날씨가 방콕보다 선 선한데다 특색있는 고산족 문화와 코끼리 트래킹·쿠킹 스쿨 같은 독특한 프로 그램 덕분에 일 년 내내 인기 있는 여행지다. 내가 체험한 쿠킹 스쿨(Asia Scenic Cooking School)은 코스가 두 가지다. 반나절 짜리(오전 9시~오후 1시, 오후 5시~9시, 인당 800바트·약 2만 6000원)와 하루 짜리(오전 9시~오후 3시, 인당 1000바트·약 3만3000원)다. 홈페이지에서도 예약이 가능하며 호텔에서 픽업 서비스도 해준다. 오전 반나절 코스를 선택한 나는 좀 일찍 도착했다. 시골 식당처럼 푸근 하고 소박했다. 한쪽에 도마와 칼과 앞치마가, 그 옆에는 조리대가 준비돼 있 시장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게스트 하우스와 식당이 즐비하다.

었다. 볶음요리·애피타이저·수프·디저트·카레의 5가지 카테고리 중 만들고 싶 은 것을 고르면 된다. 볶음요리로는 타이의 대표적 요리인 파타이(phat thai) 를, 디저트로는 바나나 튀김(Deep fried banana)을 골랐다. 기본 요리인 카 레는 마사만(massaman) 카레로 했다.

재래시장에서 신나는 장보기

태국 음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허브로 팍치(고수), 레몬그라스. 바질, 민트 가 있다. 대표적인 향신료는 후추, 계피, 마늘, 고추다. 강사는 우리를 뒤뜰 텃밭 으로 데려가 허브 잎사귀를 뜯어주며 향을 맡게 했다. 초록색 잎에서 느껴지 수강생들이 강사의 지시에 따라 재료를 다듬고 있다.

는 자극적인 향이 절로 태국 음식을 떠올리게 했다. 시장가는 길은 신이 절로 났다. 재래시장에 도착했다. 옷가게, 쌀가게, 반 찬가게, 식료품점들은 상품 진열을 가지런히 해놓아 한눈에 들어왔다. 비닐 봉 지에 국물 요리를 사가는 현지인도 종종 보였다. 태국에는 외식문화가 발달했 는데 이렇게 음식을 사서 집에 가져가 먹는단다. 요리 시작 전에 태국의 전채요리 중 하나인 미양캄(Meang Kum)을 먹 었다. 라임·샬롯·땅콩·생강·구운 코코넛·칠리고추 등을 이파리(betel-leaves) 에 넣고 단맛의 소스를 부어 쌈 싸먹는 디저트다. 짠맛·신맛·단맛·매운맛 등 태국의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수강생 대부분은 고추를 넣지 않았다.

재료를 썰고 있는 모습

향신료와 허브를 돌절구에 넣고 빻는 모습

달고 고소한 맛과 잎사귀의 강한 맛이 어우러져 계속 손이 갔다. 5분 만에 태국 요리 하나가 뚝딱

수업이 시작됐다. 식재료를 제공받아 기본 준비를 하고 조리대로 이동해 강사의 시범을 보고 각자 자리에서 요리를 한다. 우선 파타이 요리. 식용유를 두 국자 떠서 마늘을 넣고 볶은 후 닭고기를 넣는다. 닭고기가 하얗게 익어가면 야채 와 두부를 넣고 볶다가 달걀을 하나 깨뜨려 넣 고 설탕 한 스푼과 피시소스 두 스푼과 굴소 수강생이 후라이팬으로 카레를 조리하는 모습

S

스 세 스푼을 넣은 뒤 센 불에 재빨리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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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태국 여행을 위해 자유 여행의 기본인 에어텔 상품을 선보인 익스피디아(www.expedia. co.kr)는 방콕, 치앙마이, 크라비, 후아힌 등 태국 내 7개 메인도시에 총 4500개의 호텔을 갖고 있다. 호텔과 항공이 정해진 일반 여행사 패 키지 상품과 달리 취향과 예산에 따라 호텔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장 점. 세일 프로모션을 이용하면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GPS 기능 이 탑재된 모바일 앱을 이용하면 실시간 호텔 예약 상황 확인 및 예약 이 가능해 자유여행 시 편리하다. 항공편은 타이에어아시아엑스(TAAX·인천~방콕), 타이에어아시아 (TAA·방콕~치앙마이)가 대표적. 한국에서 방콕까지는 5시간 30분,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는 1시간 걸린다. 우기(6∼8월)엔 한 달에 20 일 이상 비가 내리지만 건기(10∼2월)에는 비가 안 내리고 기후도 온 화해 여행하기에 좋다.

4성급 호텔 추천 3곳 방콕 마이트리아 호텔 수쿰빗 18-차트리움 컬렉션 (Maitria Sukhumvit 18 hotel - A Chatrium) 방콕의 수쿰빗 18에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해 요즘 가장 핫한 곳인 통 로-에까마이 지역을 방문하기 편리하다. 방콕의 스카이라인을 즐길 수 있는 야외수영장이 호텔 안에 있다. 11월 말 기준으로 하루 7만원 대. 갤러리아 10 호텔 방콕 (Galleria 10 Hotel Bangkok) 손꼽히는 디자인 호텔. 188개의 독특한 객실을 가지고 있다. 수쿰빗 10에 위치해 ‘시암 파라곤 몰’이나 ‘센트럴 엠바시’ 같은 유명 쇼핑센 터를 방문하기 좋다. 조식에서 일리 커피 제공. 11월 말 기준으로 하루 7 만원 대. 푸라마 치앙마이 (Furama Chiang Mai) 치앙마이의 가로수길 ‘님만헤민’ 지역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선 대형 쇼핑몰 ‘마야몰’이 가깝다. 호텔 안에 풀 사이드 바 및 야외 수영장을 갖췄다. 11월 말 기준으로 4만원 대. ‘도이스텝’ 내부의 황금 불탑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칼래 나이트 바자 야시장에서 판매하는 수공예 향초

도이스텝의 옥불상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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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소스는 태국음식 특유의 향미를 만들어 내는데, 우리나라 멸치 액젓과 비슷하다. 후라이팬을 앞쪽으로 기울여 볶은 야채는 위로 올리고 아래쪽에 면과 약간의 물을 넣고 익힌다. 면이 어느 정도 익었으면 볶아놓은 야채와 섞어 익 힌 후 접시에 담는다. 만드는 시간도 5분 정도로 간단했고 또 맛있었다. 이제 카레를 만들 차례. 카레는 5가지 종류 중 고르고 들어갈 식재료를 돌절구에 정성스레 빻아 카레 페이스트를 만든다. 마트에서 가루나 고형분 카 레를 사서 야채와 넣고 끓여 먹던 내게 재료를 직접 빻아 만드는 경험은 신선 했다. 재료에 따라 다양한 색의 카레가 만들어지며 양을 달리해 매운 정도를 볶음요리인 팟타이

만든다. 베이비섹시, 미디엄섹시, 수퍼섹시 등의 단계로 구분한다. 이렇게 만든 카레 페이스트에 코코넛밀크, 야채, 고기를 넣고 익히면 된 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걸쭉하지 않은 국물요리 느낌이다. 좀 매콤했지만 코코 넛밀크 덕분에 부드럽고 담백했다. 후식으로 선택한 바나나 튀김. 밀가루에 코코넛밀크와 팜슈거를 넣고 튀 김옷을 만든다. 바나나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튀김옷을 입히고 낙낙히 넣은 식용유에 튀겨내면 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달콤하다. 다들 만든 음식의 사 진을 찍고 서로 음식 평도 해가며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했다.

재료에 따라 다른 색상의 카레 페이스트

태국 북부의 전통 음식과 맥주를 만나는 기쁨

이젠 치앙마이를 둘러볼 시간. 도이수텝산 중턱에 자리 잡은 왓 프라탓 도이스 텝(Wat Phrathat Doi Suthep) 사원은 1383년 세워졌다. 해발 900m에 위치 해 더운 태국 날씨를 깜빡 잊게 해줄 만큼 시원하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300개가 넘는다. 다행히 옆에 케이블카가 있 다. 비용은 편도 20바트. 올라갈 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땐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며 경치를 구경하면 좋다. 올라가면 치앙마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 인다. 신발을 벗고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기자기하면서 화려한 내부를 감 상할 수 있다. 특히 황금 7톤이 들어간 불탑 주변으로 금불상과 짙은 초록의 매콤 부드러운 맛의 마사만 카레

옥불상이 빛나고 있었다. 처마 끝에 종 모양이 촘촘히 매달려 있어 매력을 더 한다. 내려오는 계단 양쪽엔 용의 몸통처럼 된 구불구불한 난간이 독특했다. 님만헤민(Nimmanhaemin) 거리는 우리의 가로수길과 비슷한 곳으로 현지의 상류층(하이쏘)이 주로 방문해 요즘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곳이다. 매 장은 오전 10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수공예품 파 는 공방들이 많다. 커피 애호가라면 와위(Wawee) 커피와 Ristr8to 커피숍을 추천한다. 망고탱고라는 유명한 디저트 카페도 이 거리에 있다. 칼래 나이트 바자(Ka La Re Night Bazaar)는 치앙마이의 대표적인 야 시장. 고산족들이 직접 제작해 파는 수공예품이 많다. 태국 북부의 전통 음식

찹쌀로 만든 망고밥 디저트는 달고 쫀득하다.

S

과 맥주 등을 즐기며 이곳 사람들의 삶을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S


SCENE

28

숙명여대 정영양자수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전통 자수에서 쏙쏙 뽑아낸 현대 의상의 영감

신주영 작가의 드레스 ‘무궁’(왼쪽)과 시에나 마르츠의 드레스 ‘River of Red Silk’.

8일 오후 4시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정영양자수

장하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며 “앞으로도 문화예

풀어냈으며 동양철학에 근원을 두고 문화유산을

박물관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관 10주년

술의 중심기관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치하했다.

재해석해온 신주영 디자이너는 두 겹의 서로 다른

기념전 ‘예술을 입다: 실과 나(Wearable Art:

워싱턴 텍스타일 박물관 리 탈봇 큐레이터는

소재에 무궁화를 프린트해 선보였다. 미국에서 활

Inspiration in Thread)’(10월 8일~12월 30일)의 개

“정영양자수박물관의 뛰어난 다문화 컬렉션은 과

동 중인 시에나 마르츠는 중국 전통 단추의 짜임

막을 알리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를 위해 미국에

거와 현재 다양한 민족들의 텍스타일 전통에 대한

새와 자수 매듭의 기법을 결합해 조각적인 드레스

서 귀국한 정영양 박사(78)는 감개가 무량한 표정

이해와 감상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며 “영리한 옷

를 만들어냈다. 또 이진윤 디자이너는 실크 오간

이었다.

감이 체온을 조절하고 착용자의 맥박을 체크하는

자를 활용해 ‘주름’이라는 화두를, 이명옥 디자이

시대에 텍스타일 아트 박물관들은 변화무쌍한 응

너는 ‘구름’이라는 문양을 형상화했다. 미국의 저

답들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명한 태피스트리 작가 존 에릭 리스가 홍색학문

그는 1960년대부터 한국 자수(刺繡)의 아름 다움을 세계에 알려온 인물로 70년대 도미, 뉴욕 대에서 미술교육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79년

이번에 열린 개관 10주년전은 박물관의 주요

출간한 『동양자수의 기술(The Art of Oriental

소장품과 거기에서 영감을 얻은 12명의 국내외 예

Embroidery)』은 8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

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전체 주제이기도 한

정영양 박사는 “뉴욕에서는 정신수양에 큰

관에 의해 ‘올해의 미술서적’으로 선정됐다. 뉴왁

‘예술을 입다: 실과 나’에서는 청나라 왕자가 입었

도움이 된다며 어린 학생들에게 자수를 배우게 하

박물관은 지난 9월 21일 정 박사를 한국인 최초

던 용포와 60세 생일선물로 드리던 백수문포, 중

려는 미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소개하고 “국

의 ‘명예의 날(Honoring Day)’ 수상자로 선정한

국 여성들이 주요 행사때마다 입던 하피, 어깨 부

내에서 손재주 있는 젊은이를 뽑아 큰 세상에 내

바 있다. 그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평생 모은

분이 톡 튀어나온 몽골포, 학과 소나무 등 장수 상

보내는데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600여 점의 자수 유물과 작품을 숙명여대에 기증

징물을 새긴 일본 에도시대 홍색학문 우치카케,

이날 행사에는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했고 숙명여대는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설립해

그리고 1967년 일본 전시회를 마친 후 청와대의 요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 천진기 국립민

2004년 5월 문을 열었다.

청으로 정영양 박사가 제작한 자수 병풍 ‘통일’도

속박물관장, 토마스 허바드 한국소사이어티 이사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전시본으로, 처음 만든 원본

장, 이경숙 전 숙명여대 총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

은 청와대가 소장하고 있다.

들이 참여했다.

황선혜 숙명여대 총장은 축사에서 “지난 10 년간 여성 생활사 및 풍속사 자료 수집과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문화예술 체험의 장을 확

디자이너 이상봉은 무궁화 문양을 도안으로 ●

우치카케에서 영향을 받아 제작한 ‘근육문양 기 모노’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숙명여대 정영양자수박물관


SCENE

29

전시장 풍경

S


REVIEW & PREVIEW

30

영화 ‘메이즈 러너’

‘메이즈 러너’는 제목만으로는 속 사정을 알기가

인기에 힘입어 영화 역시 개봉 한 달 만에 300만

아무 것도 모르고 맞닥뜨려야 맛있는 영화

힘든 영화다. 물론 미로를 달리는 사람이라는 정도

가까운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는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슨 미로를 얘기하는 것일

‘헝거게임’ 등처럼 이 영화도 SF다. 특히 10대

까.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

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시

르고 시작하면 좋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딱 맞

리즈가 이어지면서 이 아이들은 20대로 성장하고

닥뜨리는 게 훨씬 흥미진진할 때가 많은 법이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커 나갈 것인데, 배우들의

‘메이즈 러너’는 최근의 할리우드가 선보이는

실제 이미지가 그렇게 변화될 것이다.

새로운 경향성을 많이 답습하고 있다. 이 영화 역

아이들이 주인공이니 그렇고 그런 모험담, 진

시 ‘헝거게임’ 그리고 ‘다이버전트’처럼 애초부터

부한 성장 스토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면 살

시리즈물을 예고하고 시작됐다. 이 영화가 제일 후

짝 오산이다. 이상하게도 이들 시리즈에는 요즘 아

발 주자인 셈인데, 다른 작품처럼 모두 원작소설이

이들의 불만과 좌절, 미래세계에 대한 불안이 짙

인기를 모았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제임스

게 깔려 있다. 애들 영화임에도 유토피아가 아니라

대시너의 3부작 소설이 원작이다. 이 소설은 현재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계속해서 그려내는 것이야

젊은 층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소설의

말로 2010년대의 할리우드가 2000년대의 할리우

‘안숙선 명창 토끼타령’, 10월 22~26일

창극의 참 멋을 찾아 국립국악원이 초기 창극의 원형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02-580-3300

을 재현한다. 5월 초연 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관

소리꾼의 숨소리와 땀방울

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낸 화제작으로 최근 전

창극의 원형을 느끼는 무대

주세계소리축제에도 초청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한옥 형태의 작은 소극장과 한 소리꾼이 여러 배역을 맡아 노래하는 ‘분창’이 시도된다. 서구식 공연과 달

리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은 원래 ‘창자(唱者)’가 음색과 기량에 따라 동시에 다양한 역할을 맡아 연기하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전자 음향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풍류방 형태 130석 규모의 소극장 ‘풍류사 랑방’은 관객이 맨발로 방석 위에 앉아 즐기는 형태로 소리꾼의 숨소리와 땀방울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 창극의 원형과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자라 어머니와 아내 역을 동시에 맡은 안숙선 명창을 비롯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비교해 보는 재미, 능글맞은 용왕과 익살스런 용궁 신하들의 연기 등 다채로운 볼거리 가 가득하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국악원


REVIEW & PREVIEW

31

달리는 친구를 ‘러너’로 만들어 매일 아침 미로에 집어넣는다. 영화의 주인공 토마스(딜런 오브라이 언)가 그런 친구다. 그러나 미로 안에는 그리버라 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돌아다닌다. 토마스는 다른 러너들과 함께 그리버와 싸우며 길을 찾으려고 혼 신의 힘을 다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미로의 벽을 둘러싸고 어마어마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게 된다. 지구는 멸망했는가. 이번 1부의 엔딩 부분을 보면 그런 일이 있었던 듯 싶다. 그리고 특출한 몇 명의 아이들을 통해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듯싶다. 그러나 그것 또한 모 두가 다 의식의 조작일 수도 있다. 아직은 아무런 드와 다르게 가는 전법 중 하나다. 이제 ‘해리 포터’

다. 자본주의를 살려 내기 위해 자본주의를 없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2부와 3부가 더욱더 흥

시리즈는 허황된 마술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자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

미진진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메이즈 러너’ 주인공들이 10대 전 혹은 초반

는 것이다.

애들 영화에 어른들이 너무 흥분할 일이 아

의 유소년이 아니라 10대 중후반, 곧 어느 정도 자

‘메이즈 러너’의 내용은 시대와 공간이 불확

니라고 하겠다. 그런데 옆에서 긴장감에 몸을 떨며

의식이 발달한 청소년들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

실한 어딘가가 배경이다. 아이들은 이유도 없이, 기

보고 있는 어린 관객들과는 달리 일부 성인 관객

요가 있다. 이 아이들은 부모 세대의 모순을 어느

억이 삭제된 채 미로의 벽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

은 이 영화가 자꾸 옛날에 봤던 문호 윌리엄 골딩

정도 인식하고 있는 나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아

는 초원 한가운데로 버려진다. 아이들은 생존을 위

의 걸작 ‘파리대왕’이 떠올려져 점점 차분하게 생

이들은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안다. 정확하게

해 자율적으로 스스로들을 조직하고 위계와 질서

각에 잠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골딩도

논리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이 세상을 어떻게든

를 세운다. 아주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비교적 ‘능

세상의 밑바닥을 목도하고 그럼으로써 인류의 재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나이인 것이다. 예

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커뮤니

탄생을 생각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도 기성세대

를 들어 월 스트리트를 점령해서라도 그렇다. ‘메

티가 만들어진다. 문제는 그들의 미래를 막고 있는

의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었다.

이즈 러너’를 즐길 만한 아이들은 ‘Occupy Wall

저 미로의 벽을 넘어, 어떻게 바깥 세상으로 나아

‘메이즈 러너’는 10대들을 위한 2010년대 판 ‘파리

Street’의 시대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며 영화

가느냐의 문제다.

를 ‘파는’ 할리우드는 정확히 그것을 간파하고 있

아이들은 자신들 중 가장 명민하고, 가장 잘

김영재 사진전, 10월 15~20일

부산에서 울산, 포항, 영덕, 삼척, 강릉을 지나 고성까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02-736-1020

지 이어지는 길이 7번 국도다. 동해안의 아름다운 풍

동해 풍경 고이 담은 7번 국도

광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37년째 사진을 찍

시멘트로 더 덮이기 전에 

고 있는 사진작가이자 중견기업 새한루체의 대표 김 영재(67)씨가 이곳에서 4년째 작업을 하고 있는 이유 는 단순히 풍광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시멘트가

덕지덕지 덮혀있는 해변을 문득 보았습니다. 파도 소리가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을 원망하는 듯 했지요. 더 망가 지기 전에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풍이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더욱더 바다로 달려갔다. 차에 밧줄을 연결해 허리에 묶고 바다로 나갔다가 큰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지기도 했다. 77년 카메라를 구입한 그는 8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25년간 전국의 장터를 돌며 사람들의 정을 카메라에 담아오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묵화 같은 풍경사진 20여 점을 볼 수 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가나인사아트센터

S

대왕’이다.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사진 영화인


BOOK

32

책 엘불리의 철학자 저자: 장 폴 주아리 역자: 정기헌 출판사: 함께읽는책 가격: 2만1000원

스페인의 엘불리 는 세계 최고의 레 스토랑으로 꼽히던

저자: 임진모 출판사: 아트북스 가격: 1만5000원

곳이다(지금은 잠시 문을 닫았다). 페란 아 드리아라는 걸출한 요리사의 남다른 안목 과 재주 덕분이다. 프랑스의 진보성향 주간 지 ‘레볼루시옹’의 편집장을 지낸 저자는

수많은 유행가가 뜨고 지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위대

같은 소재가 대중음악에 어떻게 다르게 반영되는지

이 책에서 한 천재 요리사가 주방에서 자신

한 히트곡은 흔치 않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아메리칸 드림=캘리포

의 요리를 어떻게 예술로 만들어 왔는지 미

세계인들에게 널리 애창되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보

니아의 풍요’로 통했던 60년대 비치보이스는 경제성

자. 1930년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강

장을 대변하는 신종 산업으로 떠오른 캘리포니아 서 핑붐을 노래하며 미국의 대표

아지에게 불러주던 이 동화적 인 노래가 작곡가들 사이에서

『팝, 경제를 노래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꼽 힐 정도로 숭배되는 이유는 뭘 까. ‘우리가 감히 꾸었던 꿈들 이 정말 이루어질’ 거라며 암 울한 대공황 탈출이라는 희망

경제로 푸는 히트곡의 비밀

저자: 시릴 페드로사

들어선 70년대 이글스는 캘리

출판사: 미메시스

포니아가 상징하는 미국의 실

가격: 2만2800원

상이 낭만적 환상과 동떨어져

2007년『세 개의

있다며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그림자』 로 앙굴렘

적 공감대를 만들었기 때문이

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당

『팝, 경제를 노래하다』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

국제만화페스티벌

을 뼈아프게 고백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

대함을 낳는 법이다.

포르투갈

성을 획득했지만, 장기불황에

의 빛줄기로 전국민에게 정서

다. 대중음악은 예술성과 시대성이 ‘합’을 이룰 때 위

학적으로 고찰한다.

에서 에 상시엘상 을 받은 작가 시릴 페드로사가 5년에 걸쳐 완성한 그래픽 노블. 개인적 실화를 토대

신이 처지고 고통스러울 때…눈을 감고 나를 생각해

로 3대에 걸친 이민가정의 모습을 통해 자

요”라며 고통과 관련된 어휘를 노골적으로 사용해 황

신의 기원과 가족, 혹은 국가에 대한 소속감

량한 70년대의 정서를 다독인 ‘힐링’ 테마송으로 길

모가 1930년대 대공황기부터 2000년대 세계금융위

이 전해진다. 하지만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이후 뉴

기까지 세계 경제사의 주요 변곡점을 풍미한 팝의 명

욕에만 1000곳 이상의 디스코텍이 개업했을 정도로

곡들을 분석한 책이다. 뜻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팝송

동시기 소비 향락의 극치인 디스코 댄스 음악이 미국

들을 시대별 경제상황과 대중의 정서를 반영해 해부

사회를 강타한 것을 보면, 경제불황에 대중이 원하는

하니, 과연 모두가 사랑하는 ‘불후의 명곡’이 될 수밖

것은 희망과 현실도피 양쪽 다인 모양이다. 2012년 전세계를 휩쓴 ‘강남스타일’ 열풍도 향

에 없었던 저마다의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2013 앙굴렘 독자 상, 2012 프랑스 만화전문 서점상 등을 수 상했다.

베스트셀러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야말로

락적이고 경박한 말춤으로 세계적 경제 한파의 체감

시대성과 절묘히 합을 이룬 케이스다. 대공황과 2차

온도를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같은 해 리얼리즘의 아

대전을 거쳐 비로소 경제적 여유를 누린 50년대, 베이

이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점령하라’ 시위에 발맞춰

비부머들의 소비풍조와 전국적인 TV보급은 당시 유

월가의 탐욕스러움을 비판하며 민중에게 도전과 응

04 비밀의 정원

행하던 아이템 테디베어를 안고 나와 ‘그대의 테디 베

원의 메시지를 직설한 ‘레킹 볼’ 앨범은 『롤링스톤』

05 원피스 75

어가 될게요’를 부르는 이 ‘비주얼가수’를 전설로 만

지가 선정한 그해 최우수앨범이 됐다. 싸이와 브루스

들었다.

스프링스틴, 훗날 어떤 노래가 위대한 노래로 기억될

60년대 비치보이스의 ‘캘리포니아 걸스’와 70 년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경제상황에 따라

작가·출판사

01 여자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02 창문 넘어 도망친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03 21세기 자본(양장본)

06 싸드 07 메이즈 러너

토마 피케티 글항아리 조해너 배스포드 클

에이치로 오다 대원씨아이 김진명 새움 제임스 대시너 문학수첩

08 나미야 잡화점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지는 작금의 경제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09 어떤 하루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10 스코치 트라이얼

자료=교보문고

순위 책명

신준모 프롬북스 제임스 대시너 문학수첩


GUIDE & CHART

영화

33

공연

클래식

전시

우리는 형제입니다

연극 ‘황금연못’

쇤베르크 ‘달에 홀린 피에로’

정민수 개인전

감독: 장진

기간: 9월 19일~11월 23일

일시: 10월 23일 오후 8시

기간: 10월 17~26일

배우: 조진웅, 김성균, 김영애

장소: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장소: 금호아트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등급: 12세 관람가

문의: 1544-1555

문의: 02-6303-1977

문의: 02-580-1300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생이별한 후 30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부부의 가족 사

피아니스트 이대욱이 20세기 음악의

작가 정민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혼자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형제 상연과

랑을 그린 연극. 전화 한 통 걸려오지

대표작 ‘달에 홀린 피에로’를 연주한

별보기를 즐기다가 급기야 미 항공우

하연. 하지만 30년 만에 만났다는 기

않는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노

다. 쇤베르크가 기존의 조성을 깨뜨

주국(NASA) 도서관에서 우주를 본격

쁨도 잠시, 만난 지 30분 만에 엄마가

먼과 에셀 부부에게 어느 날 불쑥 의

리고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

연구하기 시작한다. 별들의 바다를 형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엄마를 봤다

절한 외동딸이 찾아와 손자를 맡기면

낸 앙상블 작품이다. 소프라노 김수정,

상화하기 위해 작가가 사용한 것은 편

는 제보를 따라 형제는 전국 방방곡곡

서 갈등이 시작된다. ‘국민배우’ 이순

바이올린 웨인린 등이 함께한다. 이 밖

백나무 가루. 캔버스 표면에 가득 뿌려

을 헤매기 시작한다.

재, 신구, 나문희 출연.

에도 브람스 트리오 등을 들려준다.

진 나무 가루는 곧 우주의 심연이 된다.

나를 찾아줘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라카토시 앙상블

석은 변종하 판화전

감독: 데이비드 핀처

기간: 10월 11일~2015년 1월 4일

일시: 10월 25일 오후 5시

기간: 10월 6일~11월 28일

배우: 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장소: 세종문화회관

장소: 서울 성북동 변종하 기념미술관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문의: 02-6391-6333

문의: 02-3487-0678

문의: 02-764-2591 (예약 필수)

누가 봐도 완벽한 커플 닉과 에이미.

19세기 말 가장 화려했던 합스부르크

헝가리의 대표적 집시 바이올리니스

석은 변종하(1926~2000) 화백은 서

하지만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에이

왕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뮤지컬

트 로비 라카토시가 연주단과 함께 내

양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 판화

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경

‘황태자 루돌프’가 2년 만에 돌아왔다.

한한다. 라카토시 가문은 8대째 집시

계 1세대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

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

초연 당시 실화에 바탕한 흥미진진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이번 내한

시는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작품

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발견되

스토리와 프랭크 와일드혼의 드라마틱

에서는 더블베이스ㆍ피아노ㆍ기타 등

들로 구성했다. 판화와 유화 기법을 병

는 단서들로 남편 닉을 용의자로 지목

한 음악으로 사랑 받았다. 안재욱, 임태

과 함께 재즈ㆍ클래식을 집시 음악에

행한 작품이나 전통 민화적 기법을 현

한다.

경, 팀이 3인 3색 황태자를 연기한다.

접목해 연주한다.

대 판화에 접목한 작품을 볼 수 있다.

공연 예매

클래식 음반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순위 영화명

주연

01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민아 조정석

02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03 제보자 04 노벰버맨

01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안재욱

02 뮤지컬 레베카

오만석 엄기준 옥주현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

03 뮤지컬 올슉업

손호영 김동준 산들

피어스 브로스넌 프레데릭 벨

06 슬로우 비디오

차태현 남상미

08 애나벨

출연

루크 에반스

05 컬러풀 웨딩즈 07 메이즈 러너

자료=인터파크

순위 공연명

딜런 오브라이언 애나벨 월리스 워드 호튼

09 비긴 어게인

키이라 나이틀리

10 킬 유어 달링

다니엘 래드클리프

자료=풍월당

순위 음반명

음반사

가요 음원 순위 노래

01 마리아칼라스:스튜디오 Warner Classics

01 그게 나야

02 오르페우[스]: 

02 Home

Harmonia Mundi

03 13개의 왈츠

04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조승우 류정한

04 코렐리: ‘아시시’ 소나타

05 뮤지컬 그날들

유준상 이건명

05 바흐: 푸가의 기법

La Dolce Volta Glossa Hyperion

03 시간과 낙엽 04 손대지 마 05 틈

자료=가온차트

가수 김동률 로이킴 악동뮤지션 에일리 소유 권순일 박용인

06 뮤지컬 조로

김우형 휘성 양요섭

06 시네마 세레나데: 존 윌리암스  SONY

06 소격동

07 연극 황금연못

이순재 신구 나문희

07 브람스: 현악 6중주

굿인터내셔널

07 걱정말아요, 그대

곽진언 김필

08 매트너&라흐마니노프:피아노 Hyperion

08 내 마음이 뭐가 돼

윤하

08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

옥주현

09 NT Live 프랑켄슈타인 베네딕트 컴버배치

09 하이든 & 모차르트 : 피아노  ERATO

09 DAY N NIGHT

10 뮤지컬 라카지

10 슈베르트: 즉흥곡 & 환상곡-유센  DG

10 신촌을 못가

S

정성화 김다현 이지훈

아이유

허각 포스트맨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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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조지 클루니같은 완벽남의 10가지 조건

지성과 야성 섹시함과 유머의 결정체 미남 배우들 결혼소식에 술렁이는 여자들을 비웃어 왔지만 조지 클루니 장

받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서 섹시한 매력

가 간다는 소식에는 나도 마음이 쓰렸다. ‘세계 최고의 엑스(ex-) 보이프렌드’

을 뽐내다가도 감독으로서는 미국의 1950년대 빨갱이 사냥 매카시즘의 광

니 ‘가장 섹시한 남자’같은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남자라면 조니 뎁도

풍을 고발하고 바보 상자가 되는 TV를 비판하는 지성미를 갖추고 있다. 동

있고 브래드 피트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배우들을 거쳐 조지 클루니가 나만의

시에 상업영화로서 벌어들인 돈을 인디펜던트 영화 제작에 쏟아붓는 자유

조지 클루니가 된 건 나만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로운 영혼을 가진 영화인이다.

12년 전 ‘오션스 일레븐’의 영화홍보 인터뷰 때였다. 할리우드 통신원으

줄리아 로버츠의 이혼에 원인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땐 톰 크루

로 일하던 때라 영화 프리미어 행사에 종종

즈와 니콜 키드먼 결혼을 파탄 내느라 시간

참가했다. 그런데 그날 LA에서 제일 큰 호텔

이 없었다”고 말하고 수단 대사관 앞에서 반

의 스위트룸에 들어가 보니 ㄷ자로 놓인 소

조지 클루니같은 완벽남이 되는 10가지 조건

파에 감독과 출연진들이 빙 둘러 앉아 있는

전 시위를 하다 잡혀가면서도 “내 이름은 브 래드 피트”라고 지껄이는 여유와 유머를 장

1. 100만 와트 짜리 미소를 곁들인 조각 이목구비

것이었다. 눈에서 지성의 레이저를 쏘는 듯

2. 137억 원짜리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재력

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흰 양복에 흰 구두

3. 자기 분야에서 아카데미 수상자급의 성취

까지 신고 시가를 척 물며 폼 잡고 있는 앤디

착한 그다. 하지만 약혼자의 집안이 극단주의 이 슬람 교도라는 타블로이드 보도에 “내 약혼

가르시아, 왠지 기자들은 귀찮다는 표정을

4. 체제를 인정하되 체제의 변화를 추구하기

짓는 매트 데이먼 등으로 둘러싸인 한쪽 소

5.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가볍게

만 종교에 대한 무지는 참을 수 없다”며 일침

파에 기자 셋이 앉았다. 살짝 보니 백전노장

6. 진짜 똑똑하고 예쁜 여자를 찾아내는 안목

을 가하는 뚝심은 어떤가. 뿐만 아니다. 세계

할리우드 기자들도 덜덜 떨고 있는 게 보였

7. 그러나 옛 여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함

적인 헤지펀드 투자자인 댄 롭이 소니 영화

다. 내 자리는 ㄷ자로 연결되어 조지 클루니

8. 자유로운 영혼 vs.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

사가 큰 영화로 수익을 못 올린다며 분사 운

와 잘하면 무릎이 닿을락 말락하는 자리였

9. 섹시함은 기본 옵션

운하자 “웬 뜨네기가 영화도 모르면서 큰 소

다. 그렇다. 그게 다다. 나는 그와 무릎이 맞

10. 유머, 유머, 그리고 유머

닿을 뻔했던 사이다.

녀가 임신을 했다고 써도 아무 말 않겠다. 다

리냐”며 독설을 날리는 호기마저 빛난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용기는 아프리카

하지만 그 남자의 매력은 무릎이 다가

수단 다르푸르 지역의 분쟁으로 희생되는

아니었다. 바짝 얼어붙은 기자들을 위해 그가 쏟아낸 과장된 너털웃음과 자

생명을 위해 직접 전장으로 날아가 이들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찍고 인공위

학개그, 유머에 묻어났던 진정한 배려심을 잊을 수가 없다. 스타의 무게감을

성으로 화면을 찍어 고발하는 사회운동가로서의 모습을 보일 때다.

뿜어내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너무 떨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조차 기 억하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다.

말하자면 이 남자는 그것이 상업주의든 자본주의든 자신이 속한 시스 템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

하지만 소문대로 그가 대선에 나가 미국 대통령이라도 된다면 나는 그

스템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던질 줄 아는 남자다.

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그의 부드러운 배려를 받으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

할리우드의 초호화 파티장과 아프리카의 전쟁통 그리고 시위장을 자유롭게

누었노라고, 내가 촌뜨기 티 나는 동양 기자만 아니었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오가는 이 지성과 야성은 더할 나위 없이 섹시하다.

잠깐이라도 서로 반하지 않았겠느냐고 구라로 점철된 판타지 소설이라도 쓰 며 내 인생 최고의 취재원이었던 그를 그리고 싶다.

그러니 그가 열일곱 살이나 어린, 지성과 미모와 날씬함과 부까지 겸비 한 최고의 인권변호사와 마침내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아쉽지만 할말이 없

나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의 연인이 돼버린 그에게서 완벽남의 조건을 생각한다. 그는 우선 자신의 분야에서 아카데미 상(남우 조연상, 각본상)을

지 않겠나. 물론 그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라고 간절히 원하는 일은 차마 진 심으로 하지 못할지라도.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PHOTO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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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김의 남과 여

나도 따라갈래

Boulevard de la Croisette, Cannes 2010

햇살은 따사롭고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두 남녀의 발걸음도 가볍다. 나 역시 자석에 끌려가듯 이들을 따라 내려갔다. 아보카도와 새우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5월의 칸에서는 사진가에게도 사치가 필요하다.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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