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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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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뉴욕의 가을 뉴욕에 왔습니다. 출장 일정 사이 잠깐 비 는 시간에 센트럴 파크에 갔습니다. 오락가 락하는 가을비에 우산을 쓸까 말까 하다 가 그냥 걷습니다. 나뭇잎들은 계절의 옷으 로 갈아입기 직전입니다. 회청색 청설모가 부지런히 뛰어갑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호젓합니다. 몇 번 출장

08 ISSUE

14 ART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르포

16 FOCUS

이진숙의 접속! 미술과 문학

프랑스 국립요리학교 페랑디를 가다

을 왔지만 공원 안을 이렇게 천천히 걸어보 는 건 처음입니다. 마천루 앞 하늘이 아주 넓습니다. 구겐하임 뮤지엄과 메트로폴리 탄 뮤지엄이 있는 동쪽 라인 대신 이번에 는 서쪽 라인을 따라갑니다. 링컨 센터와 줄리아드 음대, 메트로폴리판 오페라와 뉴 욕 시티 발레단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예술 광장을 조금씩 아껴가며 둘러봅니다. 비행기 안에서 읽은 소설이 떠올랐습니 다. 이곳에서 사랑하고 아파하며 마침내 성숙해진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들고 온 책인데, 배경이 하

20 GALLERY

24 PEOPLE

22 STYLE

정현 개인전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작가 이승택

필 뉴욕이라니. 이런 짜릿한 우연이야말로 삶의 진짜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내용 중에 존 레논이 쓴 비틀스 노

06 THIS WEEK PEOPLE

32 BOOK

5년만에 돌아온 ‘문화 대통령’, 서태지

래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Strawberry Fields Forever)’ 얘기가 나옵니다. 존 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논을 추모하는 작은 공간 ‘스트로베리 필

21 INSIGHT

34 ESSAY

즈’도 마침 서쪽 라인에 있네요.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당신을 데려가고 싶어요 / 난 스트로베리

26 CARTOON

필즈로 갈 거니까요 / 그곳에 현실은 없어

35 PHOTO ESSAY

만화로 보는 현대카드

요, 마음에 걸리는 것 또한 없죠 / 스트로

케이티 김의 남과 여

라이브러리 걸작선

30 REVIEW & PREVIEW

28 TASTE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연극 ‘프랑켄슈타인’

이도은 기자의 ‘거기’

표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프랑스 파리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27일 공식 개관한다. © Iwan Baan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이도은 유주현 사진 최정동 김춘식 전호성 편집 임종일 디자인 전유진 통신원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구명서 김진경 박본재 마케팅 박유선 최수인 이민주 이선우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1부 1000원 /월 5000원 정기구독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베리 필즈여 영원히.” 비 내리는 뉴욕의 가을은 비틀스의 노래를 타고 깊어만 갑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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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EEK PEOPLE

서태지가 돌아왔다. 5년 만이다. 오랜만에 복귀한

5년만에 돌아온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모습은 믿을 수 없을 만치 그대로다. 인터

말랑함 속의 가시 세상은 변했지만 서태지 혼은 여전

넷을 떠도는 ‘뱀파이어설’이나 ‘우리만 늙냐?’는 ‘태지매니아’들의 애교 섞인 하소연도 공감이 갈 정 도다. 하지만 그의 ‘방부제 미모’와 달리 많은 게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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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뒤에서 선배로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요.” “예전부터 음반을 내면 늘 팬과 안티팬의 콜 라보레이션이었어요. 이번엔 더했죠. 제가 떡밥을 많이 던져 진수성찬을 차렸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음악이고 그런 관심들 덕에 제 음악을

했다. 문화계 전반의 흐름도, 음악을 소비하는 풍

한번이라도 들어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

토도 완전히 바뀌었다. 수년간 쏟아진 사생활에

입니다.”

관한 가십들은 그의 이미지를 처참히 끌어내렸다.

음악도 그랬다. 최근 태어난 딸 ‘삑뽁이’를 뮤

예전만 못한 반응, 쏟아지는 악플, 뭘 해도 욕먹는

즈 삼아 만들었다는 이번 앨범은 “딸과 함께 듣고

분위기에서 서태지는 컴백을 했다.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다른 새 생명을 가진

그래서일까. 18일 잠실 주경기장 컴백 콘서트

어머니들과 그 아이들도 함께 들어줬음 좋겠다”고

로 오랜만에 무대에 선 서태지에게선 어딘지 뻣뻣

서가던 그의 행보는 이번 역시 누구도 예상치 못

할 만큼 전작에 비해 확연히 말랑말랑해졌다. ‘동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90여 분의 짧은 공연 시

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완벽하고 비밀스런 신비주

화’를 콘셉트로 했다지만 내면의 어두운 이야기를

간 동안 그는 멘트마저 최소화한 채 뭔가 조급한

의 뮤지션이란 굴레를 내려놓고, 시대의 흐름 속

끄집어낸 가사나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해석

듯 열여덟 곡을 내리 부르기만 했다. 신곡을 낯설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현명하게 수

할 수 있는 가사도 여전히 눈에 띈다.

어 하는 관객들에게 “내 말 안 들려요? 생소해요?”

용해 나가는 소탈하고 진정성 있는 아티스트로 다

하고 묻는가 하면 새 앨범 수록곡 중 ‘90’s Icon’

시 대중 앞에 선 것이다.

분위기는 돌아섰다. 한물간 90년대 아이콘에 유부남 애 아빠라 이죽거렸던 차가운 시선은 오히

을 부를 때는 “한물간 가수, 별 볼일 없는 가수가

“서태지의 시대는 사실 90년대에 끝났다고 생

려 그것들을 영감 삼아 만들어 낸 음악과 22년간

들려드립니다”라며 노래를 시작해 팬들의 가슴을

각해요. 누구도 거부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은 아

수많은 비난을 견뎌 온 초연함에 눌려 사그라들었

찢어놓았다.

니니까,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제가 있는 자

다. 이전보다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대신 더 편안

리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

하고 행복하게 음악을 하게 된 듯한 모습에 이번 9

각하고 있어요.”

집 활동은 서태지에게도, 팬들에게도, 가장 즐겁

그러나 20일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 (Quiet Night)’의 공식 발매와 함께 개최한 기자 회견과 JTBC 뉴스룸 출연을 통해 서태지는 시대

“‘문화 대통령’이란 호칭은 과분하고 자랑스

의 변화보다 더 획기적으로 달라진 스스로를 드러

럽기도 하지만 족쇄 같은 느낌이 분명히 있었어요.

글 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rachel@joongang.co.kr

내며 허를 찔렀다. 대중의 생각보다 늘 한 발짝 앞

(이 호칭을) 누군가가 빨리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사진 일간스포츠 제공

고 신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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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공식 개관하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르포

패션왕이 꿈꾸던 미술관의 ‘명품’ 파리 시민이 사랑하는 블로뉴 숲 가운데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은 어린이들을 위한 종합 놀이시설이 있는 곳이다.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이 이 공원 내 1만 1700 ㎡부지에 프랑스의 새로운 랜드 마크를 표방하며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 건립 계획을 밝힌 것이 2006년. 그리고 8년이 흘러, 오는 27일 드디어 일반에 문이 열린다. 20일 오후(현지 시간) 열린 오프닝 행사에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 그룹 회장, 플뢰르 페를랭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안느 이달고 파리 시장, 미술관 설계를 맡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 등 각국 문화예술계 인사 400여 명이 자리를 함 께 한 가운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개관을 공식 선언했다. 이날 개관식에는 루이 비통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비롯해, 칼 라거펠트(펜디), 피비 파일로(셀린), 라프 시몬스 (디올), J.W 앤더슨(로에베), 리카르도 티시(지방시) 등 LVMH 그룹의 주요 패션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대거 참석 했으며, 재단 미술관 내 레스토랑 ‘르 프랭크(Le Frank)’의 스타 셰프 장 루이 노미코가 준비한 만찬이 이어졌다. 이에 앞서 17일에는 세계 각지에서 5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렸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아르노 회장의 고문인 장-폴 클라브리, 루이 비통 재단의 아트 디렉터 수잔 파제가 직접 설명에 나섰다. 그 자리에 중앙SUNDAY가 다녀왔다. 파리 글·사진 최선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hee.lefur@gmail.com, 사진 루이 비통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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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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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내부는 밝은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돼 있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Iwan B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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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 회장 열정과 건축가 게리의 상상력 결실

미술관 개관에 앞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역시 건물 디자인이다. 외관부터 상당히 인상적이 다. 아클리마타시옹 공원 녹지에 누군가 마술을 부려 투명한 돛단배를 띄워놓은 형상이랄까. 아니 면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앉은 느낌, 혹은 북극 해를 떠도는 유빙 같기도 하다. 투명한 건물에 하 늘에 떠 있는 구름이 반사되니 초현실주의 작품 같 은 느낌마저 든다. 건물로 들어서니 1층 너른 로비로 환한 빛이

아르노 회장이 프랭크 게리(오른쪽)와 함께 개관 연설을 하고 있다.

들어온다. 로비의 어디에서든 하늘이 보인다. 밝고

파리에 와서 고딕 빌딩도 보았고 중세 빌딩도 보았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고 로마네스크 건물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었

아르노 회장이 미술관 건축과 관련해 게리와 첫 대화를 한 것은 2001년. 평소 건축에 대해 관심

다. 오늘 이렇게 프랑스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기 쁘다. 나는 모두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많았던 아르노 회장은 자신의 고문인 클라브리

프랭크 게리는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

와 함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

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 건물은 항해하는 배의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대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나의 관심은 처음부터

단한 것을 상상할 수 있고, 이것을 또 실현할 수 있

‘움직임’에 있었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

단 말인가?”

는 건물을 창조하고 싶었다. 나는 미니멀리즘의 절

오랜 세월 재단 건립의 꿈을 꾸어왔던 그에게

제됨과 차가움과는 반대로 인간적인 교감과 따뜻

게리보다 더 적합한 건축가는 없어 보였다. 둘의

함을 주는 미술관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곳에는

만남이 곧바로 이루어졌고 루이 비통 재단에 대한

어떠한 특별함도 없다. 이것은 그저 우리가 살아가

설명을 들은 게리는 종이에 펜으로 끼적거리다시

는 하나의 터전일 뿐이다. 그리고 이곳은 아이들이

피한 크로키를 처음 선보였는데, 지금의 건축은 바

뛰어노는 운동장이 되어야 한다.”

로 그 크로키에서 시작됐다.

이 미술관이 들어선 곳이 어린이 공원임을 생

그의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모형이 60개 이상

각해보면 미술관이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그

만들어졌고,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세계 정상급 엔

리고 어른들에게도 문화적 삶을 향유하는 ‘놀이

지니어들이 총동원됐다. 특히 전투용 비행기를 만

터’가 되길 소망하는 그의 바램은 이 개관을 주목

드는 프랑스 회사 다쏘시스템이 개발한 소프트웨

하는 프랑스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어 카티아(CATIA)가 큰 역할을 했다. 건축가의 비전과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이

미술·음악·대화의 장 그리고 문화의 중심

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노력도 놀랍다.

‘포브스’지의 백만장자 명단에 의하면 베르나르 아

100명의 정상급 기술자와 3000명의 현장 인력이

르노 회장은 자산 350억 달러를 보유한 프랑스 최

동원됐다. “이 프로젝트가 프랑스 첨단 기술의 승

고의 부자다. 전 세계 부자 리스트에서는 13위에

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클라브리

올랐다. 아르노라는 이름은 몰라도 전세계 럭셔

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리 브랜드 1위 기업인 루이 비통 모에 샹동 헤네시

이런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를 실현하는데 있 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이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LVMH)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이를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행운의 인물이다. 초

파리 샹젤리제에 위치한 루이 비통 본점 앞

기에 예상 예산만 1억 달러였는데 이 금액을 훌쩍

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가방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뛰어넘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

다. 이런 경제적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문화

하자 “꿈은 값으로 따질 수 없다”는 단호한 대답이

적인 성공이 뒤따라야 하는데, 루이 비통의 문화

돌아왔다.

적인 기여에 대한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루이 비통

“나는 항상 프랑스를 사랑했다. 1960년대에 S

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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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퍼 엘리아손 Inside the horizon ©2014 Olafur Eliasson ©Iwan Baan 엘스워스 켈리 Color Panels (Red Yellow Blue Green Purple) ©Ellsworth Kelly Fondation ©Louis Vuitton Marc Domage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6 septembres ©ADAGP, Paris 2014 ©Fondation Louis Vuitton Marc Do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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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티에 재단이 이미 30년 전 문을 열었고, 비록 개인 재단이긴 하지만 경쟁자인 프랑소와 피 노의 재단이 베니스에 문을 연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루이 비통 재단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화 마케팅을 내세운 이윤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경제적 성공을 사회에 문화적 혜택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프 로그램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일 개관 식에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정치경제문화계 인 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유도 공공 재정으로 할 수 없는 문화 사업을 민간 재단이 적극 추진하며 프랑

20일 개관 기념식에서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와 첼리스트 앙리 드마르케트가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이라는 클라브리 대변인의 말이 과언이 아니다.

스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다른 전시들은 2% 아쉬운 느

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르노의 경제적

낌이 들기도 한다. 루이 비통에서 작가들에게 의

영향력은 이렇게 문화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뢰한 프로젝트로 구현된 작품들이 이번에 공개가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됐는데, 그 주인공은 올라퍼 엘리아손, 사라 모리

재단 미술관이 설립된 부지는 파리 시 소유

스, 타린 싸이몬, 엘스워스 켈리, 아드리안 빌라 로

다. 파리 시가 루이 비통에게 55년 대여를 조건으

자스다. 장소와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작품은

로 재단 설립 허가를 내주었고 이미 5년이 흘렸으

지하 전시장과 연결된 공간에 설치된 엘리아손의

니 50년 후 이 건물은 파리 시 소유로 넘어간다. 클

‘Inside the horizon’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라브리 대변인은 이를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알루미늄, 유리, 거울, LED를 이용한 이 설치 작품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막대한 운영 예산 역시

은 건물의 내부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사하고 다

파리 시에서 충당해야 하고 세금이 필요할 지도 모

시 옆에 설치된 물 위에 반사되면서 물·빛·공간에

른다. 이같은 필자의 질문에 클라브리 고문은 “50

대한 개인의 느낌을 독특하게 시각화했다.

년 후의 일은 50년 후에 가서 생각하기로 한다. 그

앞으로 작품이 공개되는 작가들은 에드 아

때 가서 아르노 회장의 자손들이 지원 사업을 이

트킨스,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마우리지오 카탈란,

어갈 지 기대해 봐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타시타 딘, 모나 하툼, 베르트랑 라비에, 시그마 폴케,

게리는 재단 미술관의 내부 콘텐트를 기획하

게르하르트 리히터, 볼프강 틸만, 백남준 등이다.

는 아트 디렉터 수잔 파제에게 “내가 바이올린을

전시 작가들의 명단만 보자면 세계적인 컬렉

만들었으니 연주는 당신의 몫”이라고 말했다. 파제

터 개인이나 기업 미술관에서 선호하는 작가들이

는 이날 “현대 미술계를 이끄는 정상급 작가들의

대부분이며,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기

전시를 기획하고, 아르노 회장의 개인 컬렉션을 선

록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작가들이고, 서양의 현대

보이며,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

미술 작가들에 치우쳐 있다. 아직까지는 루이 비통

램을 운영하고,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에서

재단만의 특별함과 유니크함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음악회와 컨퍼런스를 기획하는 등 흥미로운 프로

아쉬웠다. 루이 비통 브랜드가 세계 각국에서 성공

그램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글로벌 브랜드가 된 것에 비하면 전시 프로그램 은 그다지 글로벌한 것 같지 않다는 필자의 의견에

한국일본 등 아시아 작가들도 초청 예정

클라브리 고문은 “재단의 프로그램은 이제 시작”

베일에 쌓였던 전시 프로그램은 내년 3월까지 하

이라며 “향후 한국·일본·중국·인도네시아 등 아

나씩 공개될 예정이다. 우선 개관 기념전은 건물을

시아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일 장기 계획도 있다”

디자인한 여든다섯의 노장 건축가에게 영광을 돌리

고 답변했다.

고자 했다. 프랭크 게리가 재단을 디자인하고 첨단

수잔 파제를 중심으로 하는 루이 비통 재단

기술로 이를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가 메

이 프랭크 게리의 모험심과 자유 정신을 어떻게 이

인으로 꾸며졌다. 퐁피두 센터에서도 게리의 개인전

어갈 지, 해를 거듭하면서 미술관만의 고유한 성격

이 동시에 개막했으니 그야말로 ‘프랭크 게리의 날’

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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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14

좋은 날이었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이 다가오고

의 원작이며, 2014년 찰리 스트래튼 감독에 의해

절, 미술에서 ‘현대성’에 대한 탐구는 반성과 성찰

있었다. 마지막 일광을 ‘유익하게’ 즐기기 좋은 날

동명 제목으로 다시 한 번 영화화됐다.

에서 시작됐다. 과거를 꼼꼼히 되짚어 보는 것은

이었다. 테레즈와 카미유 부부 그리고 카미유의 친

즐거운 소풍을 범죄 현장으로 바꾼 것은 도

구 로랑은 파리 근교로 소풍을 갔다. 뜨거운 햇살

시의 욕망이었다. 1848년 혁명이 끝난 후 프랑스에

을 피해 잡목림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몸

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범죄

에밀 졸라의 소설이 발표되기 4년 전인 1863

이 허약한 카미유는 이내 아내의 치맛자락 옆에서

역시 급증했다. 젊은 졸라의 설명에 따르면 좀 특

년 마네는 살롱전에 ‘풀밭 위의 식사’라는 건조한

거대한 혁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마네가 그린 소풍 장면 역시 그랬다.

잠이 들었다. 가까이서 ‘센강이 으

제목의 작품을 발표한다. 마네는

릉대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미

기까지, 여기까지는 모두 좋았다. 그

술상의 관례에 현대적인 삶을 대입

림으로 치면, 분명 르누아르나 모네

해보았다. 이 작품은 16세기에 그려

가 여러 번 반복해서 그린 밝고 환

진 티치아노의 ‘전원의 콘서트’를

한 인상주의 풍의 그림이 될 것이다.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전원의 콘서

카미유와 로랑은 같은 고향

트’에서는 벌거벗은 여인들이 두 명

출신으로 같은 철도국 직원이었다.

이나 등장하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특히 화가가 되고 싶었던 로랑에게

않았다. 그러나 마네가 그린 알몸

사무실의 무료하고 단조로운 노동

의 여인은 공격의 초점이 됐다.

은 고역이었다. 카미유가 잠에서 깨

티치아노의 ‘전원의 콘서트’

자, 셋은 강가의 식당에 가서 근사

에서 ‘전원(pastrol)’이란 말은 유

한 저녁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

토피아적 공간을 연상시켰다. 여기

이 나올 때까지 뱃놀이를 하기로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1863)

한다. 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

서 두 여인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 는 두 남자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

트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깔깔대던 웃음소리

이한 기질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범죄자가 됐다. 수

는 신화적 존재다. 비너스가 아무리 옷을 갖춰 입

는 비명소리로 바뀌었다. 믿음직한 친구는 살인마

많은 미제 사건의 범인들은 신사복을 차려 입고

고 다니지 않아도, 아무도 복장의 선정성을 논하지

로 변했고, 다정한 아내는 살인의 방조자, 공모자

태연히 파리 시가지를 활보하고 있었다.

않았다. 아니, 거꾸로 세속의 의상을 벗을수록 그

가 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소풍은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소설 『테레즈 라켕(T hérèse R aqu i n)』

들은 더욱 신화적인 존재가 됐다. 티치아노의 여신 똑같이 옷 벗어도 지탄 받은 마네의 그림

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신화적으로 헐벗은 채 그곳

19세기말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대의 특성,

에 있었다.

(1867)은 스물일곱 젊은 에밀 졸라의 두 번째 장편

즉 ‘현대성(modernity)’을 찾기 위해서 글을 쓰

반면 마네의 화면 왼쪽 하단의 음식 바구니

소설이다. 극적인 스토리 전개 덕에 무성영화 시절

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삶은 바뀌었으나 삶을

옆에는 그녀가 벗어놓은 하늘색 드레스가 보인다.

부터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설명하는 새로운 표현법이 아직 발명되지 않던 시

그녀는 지금 여기서 옷을 벗은 것이다. 거기다가 여

이진숙의 접속! 미술과 문학 <3>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vs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켕』

욕망 자극하는 도시의 바람타고 스캔들이 된 소풍 ●


ART

인은 자신이 알몸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도리어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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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건장한 로랑의 등장은 그녀의 탈출구가 되었다.

사랑은 공포로” 변해버렸고, 두 사람의 결혼은 “살

여기서 졸라가 내세운 것은 독특한 기질론이

인의 숙명적인 벌”이 되어버렸다. 범죄 공모자를 영

그림 속 인물들이 모두 태평하므로, 스캔들은

다. ‘알제리’ 태생의 어머니를 둔 테레즈는 뜨겁고

원히 묶어 놓는 죄의 공모자였던 그들 중 누구든

거꾸로 그림 밖에서 일어났다. 마네는 부도덕하다

히스테릭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로랑은 전

지 먼저 죄를 고백함으로써 배신자가 될 가능성이

고 비난 받았다. 19세기말 파리 근교에 소풍 가서

형적인 농부의 기질을 가진 단순한 사람이었다. 시

있었다. 불신과 죄책감으로 그들은 파멸해갔지만

여자가 태연히 알몸이 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골에서의 순박한 생활을 할 때는 발휘되지 않던

그들은 헤어질 수도, 그 집에서 떠날 수도 없었다.

뻔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소위 클래식한 미술의 관행을 19세

카미유의 어머니 라캥 부인에게 기

기 현실의 삶에 옮겨놓자마자 심각

대하는 상속이 있기 때문이다.

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관행과

처음에는 사랑을 얻기 위해,

현실의 간극, 이것이 마네의 소풍

그 다음에는 돈을 얻기 위해 그들

그림이 스캔들이 된 이유였다.

은 스스로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

마네의 뒤를 이어 변화한 삶

갔다. 결국 이들은 죽음을 택한다.

에 어울리는 새로운 표현법을 찾는

자살이 아니라 불신과 의혹 속에

화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인상

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상호 파

주의자들이라고 불렸다. 따라서 마

멸에 이르렀다.

네의 소풍이 일으킨 스캔들은 긍정

발전하는 도시는 욕망을 자극

적인 방향으로 귀착됐다.

했다. 화려한 도시의 삶과 멋진 상 품으로 둘러싸인 안온한 삶은 도 시 하급 사무원인 로랑이나 조그

도시의 어둠속으로 들어간 졸라

그러나 테레즈 라켕의 소풍은 그렇

티치아노의 ‘전원의 콘서트’(1509)

지 못했다. 이 소풍이 스캔들이 된

만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테레즈에 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되고자

것도 바로 삶의 저주받은 ‘현대성’ 때문이었다. 인

기질들이 욕망의 도시, 파리의 뒷골목에서 끔찍한

하는 것과 되어 있는 상태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상주의자들은 밝은 햇살 아래 벌어지는 일들을 선

화학작용을 발생시켰다. 둘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

욕망은 들끓는다. 테레즈와 로랑은 도시가 부추키

호했지만, 소설가 에밀 졸라는 도시의 어둠 속으로

간, 거친 욕망이 그들을 몰아쳤다. 사랑이 격해질

는 욕망의 노예이자, 희생자였다. 더 많이 갖고자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것은 ‘욕

수록 남편인 카미유는 방해물로 여겼다. 더 많이

하는 욕망은 평범한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었다.

망’이었다.

사랑하고 싶어서 그들은 살인을 했다.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켕』 은 도시가 욕망을 자

어린 테레즈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모에

그러나 욕망은 욕망일 때만 의미가 있었다. 그

극하고 양산하는 한, ‘범죄’라는 단어는 ‘소풍’ ‘사

게 맡겨졌고 병약한 고모의 아들 카미유와 함께

토록 갈망하던 사랑이었지만, “카미유를 살해함

랑’ ‘우정’ 같은 행복한 단어들의 영역을 끊임없이

자라 그의 신부가 된다. 테레즈에게 주어진 것은

으로써 욕망도 죽어 버렸다.” 야수와 같은 정욕으

침입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냉정한 언어로 보

약냄새 나는 환자를 위한 보족물로서의 삶뿐이었

로 서로를 사랑했는데, “범죄의 흥분 가운데서 그

고하고 있다.

문학과 미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문화사 속 인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위대한 미술책』 『미술의 빅뱅』을 썼다.

S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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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계의 하버드’ 프랑스 국립요리학교 페랑디

대학과정 3년이면 미식가도 인정하는 미슐렝 2스타급 전식(Entree)·본식(Plat)·후식(Dessert)을 제대로 차려 먹는 일을 의 식으로 여기는 나라, 음식 맛뿐 아니라 요리를 돋보이게 하는 그릇·서비 스·식사예절까지, ‘배를 채우는’ 행위를 문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나 라. 프랑스가 ‘미식(美食)의 나라’로 꼽히는 이유다. 이런 프랑스에서도 국립 요리학교 페랑디(Ferrandi)는 최고의 셰프 양성기관으로 꼽힌다. 입학이 어려워 ‘요리계의 하버드’라는 평을 듣는 곳이다. 지난 15일(현지 시간) 파리 6구에 있는 페랑디 캠퍼스. 취재진에게 학교 측은 반도체 공장 방진복 같은 흰색 가운부터 내밀었다. 오드리 자네 페 랑디 홍보담당은 “조리 공간은 항상 가장 청결한 상태로 유지해야 하니 불편해도 참아 달라”고 당부했다. 파리(프랑스) 글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사진 제공취재협조 삼성전자

파리 6구 페랑디 정문에 걸린 학교 안내 현수막.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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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제과 클래스 학생들이 교내 레스토랑에 보낼 빵과 과자를 만들고 있다. 같은 시간 마케팅 전공 학생들은 레스토랑 주방에서 서빙 준비를 하고 있다.

제빵 교실에 들어서자 대형 조리공간이 중앙 칸막이에 의해 양쪽으로 나뉘어

마찬가지로 수학·과학 등도 배운다. 이론 교육 땐 반

있다. 양쪽에서는 흰색 셰프 가운과 모자 차림 학생들의 빵 반죽이 한창이다.

드시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걸쳐야 한다. 브루노 드 몽테

두 클래스의 학생들은 한눈에도 나이 차가 나 보였다. 자네 홍보담당은 “왼쪽

교장은 “페랑디는 요리 기술뿐 아니라 요리사의 마음가짐도 가르치는 곳”이라

교실은 고교 졸업생을 위한 1년 코스, 다른 쪽은 직장인들이 전직(轉職)을 위

며 “복장 규정을 통해 요리사가 지켜야하는 여러 가지 규율을 준수하는 훈련

해 지원한 코스”라며 “빵집을 내고 싶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을 한다”고 말했다.

전직을 위한 코스의 구성원은 은행원부터 교사, 경찰, 건설회사 직원, 부

이곳에는 베이커리 2곳, 제과 실습실 7곳, 주방 9곳 등 모두 20여 곳의 조

동산업자까지 다양하다. 이곳에서 만난 경력 10년차 한국인 제과사 공보경(32·

리공간이 갖춰져 있다. 정규학교인 고교·대학과정 학생 1500여 명, 해외에서

여)씨는 “케이크는 제과의 영역이지만 한국에서 케이크는 주로 빵집에서 팔리

온 유학생 200명, 일반인 코스 2000여 명 등 모두 3700여 명이 셰프를 꿈꾼다.

기 때문에 베이커리 오픈을 위해 제빵 과정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제빵·제과 외에 데코레이션 디자인, 마케팅 등 30여 개의 과정도 함께 개설돼 있다. 학비는 대학 과정의 경우 연간 7500유로(약 1000만원)지만 전직 코스 같

주당 35~40시간 실무 강의  요리사 마음가짐도 전수

은 무료 강좌가 절반을 넘는다. 가장 인기가 높은 제빵 코스의 경우 올해 입학

3층 교실에서는 흰색 요리복 대신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 학생들이 수업을 듣

경쟁률이 17대 1에 달했다.

고 있었다. 3년간의 고등학교 과정에선 요리 수업뿐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와 S

수업은 주당 35~40시간 진행되는데 철저히 실무 위주다. 브루노 드 몽테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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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페랑디 본관에 삼성전자 주방가전으로 꾸며진 ‘삼성 키친’에서 일일 강사 셰프로 나선 에릭 프레숑(오른쪽 위 사진 중앙)이 학생들과 함께 요리를 만들고 있다.

교장은 “우리의 교육철학은 ‘행동으로 배운다(Learning by doing)’”라며

한 달, 저녁은 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다. 파리 시내의 미슐렝 1스타 레스

“수업의 70% 가량이 주방이나 연구실, 교내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겸해 진행된

토랑의 한끼 식사는 1인분에 45유로가 넘는데 이곳에서는 25~30유로에 비슷

다”고 설명했다. 교사의 요리 솜씨를 학생들이 바로 옆에서 배울 수 있도록 수

한 품질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자네 홍보담당은 “미슐렝 스타 셰프급 교수들

업 당 학생 수가 12명이 넘지 않도록 커리큘럼을 짠다.

의 지도 하에 2년 이상 훈련한 학생들의 솜씨이기 때문”이라며 “르28 3학년 학생들의 요리는 미식가들 사이에 미슐렝 2스타급으로 인정받는다”고 귀띔

만든 음식 모두 교내 식당서 판매, 저녁은 두 달전 예약해야

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만들어낸 빵·디저트·요리는 모두 교내 레스토랑 두 곳에

학생들은 실무 공부를 한 뒤 반드시 현장 인턴십을 거쳐야 한다. 학교 측

서 판매된다. 레스토랑 ‘르 프리미에’에서는 고교 과정 학생들이 만든 요리가,

은 학생의 적성, 전공, 장·단점, 장래 희망을 고려해 레스토랑·베이커리·호텔 등

‘르 28’에서는 대학과정 학생들이 만든 음식이 판매된다. 각 식당의 홀 서비스

의 인턴십 과정과 연결해준다. 인턴십까지 마치면 취업·창업에 나서는데, 프랑

도 마케팅 과정 1학년 학생들이 실습을 겸해 제공한다. 두 식당의 차이가 있다

스 요식업계에서 페랑디 출신은 인기가 높다. 브루노 드 몽테 교장은 “프랑스

면 르 프리미에에서는 기존 전통 프랑스 요리가, 르 28에서는 창의성 넘치는 음

전통 요리부터 창의성 넘치는 조리법 개발까지 풍부한 경험을 쌓아 일류 셰프

식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가 될 자질을 갖춘 다음 졸업한다”며 “이들이 각국에 진출해 프랑스 미식문화

두 곳 모두 파리 시민과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식사를 하려면 점심은 ●

를 확산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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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통요리 장인 에릭 프레숑

요리란 채우고 나누고 누리는 것 파리 시내 포부르 생토노레 112번지에 있는 5성급 호텔 ‘르 브리스톨’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장 미 컨셉트. 호텔 외벽 곳곳을 장식한 장미 넝쿨이 고 1

풍스러운 멋을 더한다. 중앙 정원도 만화 ‘들장미 소 녀 캔디’가 뛰어나올 것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또 하나는 이 정원을 내다보게 지어진 호텔 레스토 랑 ‘에피퀴르(Epicure)’. 프랑스인은 물론 해외 여행객들에게 소문난 미슐렝3 스타 맛집이다. 이 레스토랑을 진두지휘하는 셰프는 프랑스 요리 거장 에릭 프 레숑. 프랑스에서 그는 ‘테루아(terroir) 퀴진의 오마주’라 불리운다. 와인 용 어로 친숙한 테루아는 흙을 뜻하는 ‘테르’에서 파생한 말로 토종 농산물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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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한다. 그러니 우리 말로는 ‘프랑스 전통요리 장인(匠人)’쯤 되겠다. 지난 16일 (현지시각), 에피퀴르 주방 한가운데 유리로 지어진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유리 집무실이 독특하다.

“주방에 요리사만 30명이 넘는다. 곳곳에서

진행되는 요리 진행 상황을 한눈에 내다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프랑스 대형 레스토랑에는 중앙 유리 집무실이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대형 주방을 지도하려면 요리사보다 경영자에게 가깝겠다.

“직원들에게 가

장 강조하는 점이 ‘지금 서빙하는 이 접시에 미슐렝 3스타의 면모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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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려고 노력하라’라는 점이다. 바빠서 별다른 취미 활동도 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즐기는 일이 요리 관련 책을 읽는 것이다. 요리가 내 삶의 모든 것이다.” 프랑스가 미식 문화의 중심이 된 이유는 뭔가.

“특정 국가의 문화를 세계

최고라고 말해선 안 된다.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듯 문화도 서로 다를 뿐 이다. 다만 세계인들이 프랑스에 요리나 식문화를 배우러 오는 이유는 프랑스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재료로 쓴다고 할 만큼 전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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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리가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또 기후가 좋고 남부·북부가 해안가에 접해 식재료가 풍부한 게 원인이다.” 요리에 대한 철학은 뭔가.

“음식에는 3가지가 있다. 배를 채우기 위한

것, 식탁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나누기 위한 것, 그리고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요리사는 음식을 통해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다. 손 님이 식사하면서 음식을 즐기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면 그곳은 실패 한 레스토랑이다”. 손님이 어느 정도 기쁨을 느꼈는지 알기 어렵지 않나.

“셰프만이 갖고 있는

감이 있다. 손님들 눈빛을 보면 즐거움의 강도를 알 수 있다. 요리를 완 성하기까지 들인 땀과 노력에 대한 존경심이 배어나는 따뜻한 눈빛은 감춰질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셰프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른 것 같다.

“엄마나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면 셰프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요리든 에피퀴르에서 제공되는 전채(1), 본식(2,3번), 5 후식(4,5번)의 일부.

S

가정식 요리든, 요리하는 이는 먹는 사람의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만든 다. 그 마음에 감사해야 하고 존경심을 드러내야 한다. 한국에서도 주방 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지기 바란다.” 글 박태희 기자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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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자재 속 예술 DNA를 찾다 조각가 정현(58·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은 재료 의 본질에 천착한다. 청동 거푸집에 사용된 철근 을 용접해 만들어낸 ‘인체’에는 울퉁불퉁한 상처 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종이 위에 콜타르를 이용 해 그려내는 나무에는 번들대는 대지의 에너지가 묻어있다. 쇠 찌꺼기를 부수는데 사용되는 16t 짜 리 쇳덩어리 파쇄공은 흥미롭다. 자석으로 25m 까지 들어 올려졌다 떨어지는 과정에서 파쇄공은 닳고 깨지고 줄어들어 무게가 절반으로 깎였다.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는 우리의 삶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 7점과 드로잉 70여 점을 볼 수 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학고재갤러리

Untitled(2012), Bronze, 250x75x60cm

정현 개인전 10월 15일~11월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 문의 02-720-1524 ●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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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7> 에볼라의 이면

무차별 박멸 작전에 인간과 공생하던 바이러스가 역습

에볼라(Ebola) 바이러스의 창궐로 지구

아온 거 아냐? 그런데 인간이 세균은 무

촌이 난리다. 치사율이 최고 90%에 이르

조건 죽여야한다고 하니까 세균이 이빨

는 무서운 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을 드러낸 거지.”

관계자는 “6주 안에 막지 못하면 발병률

“자연의 복수인가요?”

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

“문명이 가져온 해악이랄까. 인간이

고했다. 도대체 에볼라가 뭐길래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문제가

먼저 바이러스를 적으로 돌려놓고 공생할 생각을 안 했기 때문

되고 있는 것일까.

에 역습이 시작된 것이지. 몇천 년을 같이 살던 바이러스가 신

이 교수가 색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방역(防疫) 문제가 아 니라 문명학적인 지(知)의 최전선 차원에서 읽어보자는 것이다.

종이나 변종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우선 에볼라 바이러스라는 게 이번에 처음 생긴 게 아냐.

“준비가 필요한데 우리는 너무 태평해. 지금 미국 회사가 백

1967년 독일 미생물학자가 아프리카에서 발견해 파스퇴르 연

신을 만들고 있다지만 환자가 늘어날 경우 약을 구하기가 얼마

구소에 분석을 의뢰하면서 알려졌지.”

나 힘들겠어. 백신이 부족할 경우 누구부터 맞혀야 할 것인지

“그런데 왜 에볼라라고 부르게 됐나요?”

고민하는 사람이 있나. 리스트도 미리 만들어놔야지.”

“콩고에 있는 에볼라라는 작은 강 근처에서 발견됐거든. 그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시선을 돌렸더니 진짜 종군 기자

런데 병명은 조심해서 붙여야 해. 광우병 사태 때 경험했잖아.

가 된 느낌이다. 그동안 우리는 아프리카를 너무 몰랐다. 지구 반

공식 명칭인 BSE(소해면상뇌증)라는 용어를 안쓰고 광우병이

대편에서 생기는 일로만 알았는데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협

라고 하니까 다들 얼마나 패닉이 됐나. 소가 미친 게 아닌데. 일

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며 지구 공동 생명체의

본 신문은 BSE라고 썼는데 우리는 광우병이라고 썼지. ‘장질

일원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린 탓이다. 이 교수가 말을 이었다.

부사로 돌아가셨네요’ 하지 않고 ‘염병으로 돌아가셨네요’ 해

“과장 보도도, 과소 평가도 다 해를 줄 수 있지. 이럴수록

봐. 뺨맞지. 특히 전염병 이름은 객관적으로 붙여야 해. 감정을

믿을만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 정말로 중립적인 과학적이

넣어 공포심을 조장하면 안 되는 거거든.”

고 지적인 대응 말이야. 누가 말했던가, 우리는 에볼라와의 경쟁

“에볼라는 지역 이름이잖습니까.”

에서 스타트부터 지고 있다고. 그들(바이러스)은 민첩하게 조직

“마찬가지지. 왜 아프리카의 강 이름을 넣어서 아프리카에

적으로 앞서가는데 우리는 느린 걸음으로 뒤처지고 있다고.”

서 재앙이 오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느냐고. 문제는 전세계가 글

이 교수는 지금을 ‘지적 이종 격투기 시대’라고 불렀다. 어

로벌화로 월드 시스템이 됐기 때문에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아프

느 한 전공이나 지식만 갖고는 어림도 없는 세상이다. 아레나가

리카에서 생긴 일이 세계적인 재앙이 됐다는 것이야. 옛날에는

달라진 것이다.

풍토병이라 해서 그 지역의 일로 끝났는데.”

“전염병은 인간과 인간의 접촉에서 나온다. 우리가 혼자 사

“다른 시각은요?”

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야. 그런데도 타자의 슬픔이나 가난은

“바이러스를 보는 인간의 인식에 대한 것이지. 파스퇴르 이

나와 관계없다고 생각하지. 에볼라 바이러스의 의미에 대해 10

후 모든 병은 바이러스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무조건

분만 검색하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적

바이러스 죽이는 방법만 연구해온 셈이잖아. 하지만 바이러스

나라하게 느껴질 텐데.”

는 지금까지 인간과 상생해 왔거든. 모든 생명체가 다 함께 살 S

그래서 세균학은 인문학이 되고 정치학이 된다. 글 정형모 기자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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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4> 카페모티브 ‘바끼’ 에스프레소 머신

커피 폐인도 반한 최상급 맛과 향 비결은 증기기관

사람들이 웬만큼 다니는 거리를 걷다 보면 세 집

다. 평소 먹던 커피가 시시하게 느껴진 변화를 인

건너 하나 꼴로 커피숍과 마주친다. 일상의 식사를

정한다. 이제 원두를 갈아 내려 먹는 드립과 전용

빼고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 1위를 아시는지? 최근

커피 머신 추출 방식은 대세로 자리 잡은 듯하다.

통계를 보면 라면도 빵도 아닌 커피다. 1인당 하루

이것도 모자라 소문난 커피 집을 찾아 분당과 강

평균 2잔 정도를 마신다는 것이다.

릉을 넘나드는 일은 보통이다. 폐인들은 커피 명인

밥값만큼 비싼 커피를 대수롭지 않게 마셔대 는 모습은 이젠 일상이다. 무엇이든 바람이 불면

들의 로스팅 기법까지 터득해 자신 만의 맛을 뽐내 기도 한다.

바로 달아오르는 우리 사회의 특질을 확인한다. 그

커피의 맛을 품평하는 수사도 와인만큼 요란

럼에도 아무도 자신을 커피 중독이라 떠벌이지 않

스럽다. “잘 내린 과테말라는 묘하게 거칠어서 솜

는다. 제 스스로 미친 사람이라 하지 않듯이. 어느

브레로 모자를 쓴 수염 텁수룩한 중남미 산악지대

날 하루 커피 없이 사는 일이 끔찍했다면 이미 중

의 노상강도 혹은 불한당들이 떠오른다. 가장 먼

독의 단계에 들어섰을지 모른다.

저 느껴지는 맛은 다크 초콜릿인데, 살짝 단맛이 감돌아서 바닐라 비슷하기도 하다. 그 다음엔 파인

로스팅 기법 배워 자기만의 커피 찾는 시대

애플이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 같은 향이 난다. 온

커피가 끊을 수 없는 일상으로 바뀌었다면 애호의

대 과일처럼 신맛이 강하지 않은 살풋한 느낌의….”

종류와 방법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달달한 커

친구인 커피 애호 출판인 안희곤의 묘사다. 커피의

피믹스의 맛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어

풍미를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세 배쯤 즐거

느 때부터인가 본격 커피들이 더 친숙하게 다가왔

워진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STYLE

원두 속에 숨은 비밀 찾는 커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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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모티브’란 회사에서 나온 ‘바끼’ 에스프

전 세계의 온갖 커피 품종을 섭렵하는 일은 어느

레소(BACCHI ESPRESSO) 기계다. 처음 이 물

새 고상한 취미로 자리 잡았다. 더 나은 맛과 향을

건을 봤을 때 “미친놈들!”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

찾아 헤매는 폐인들의 열정은 놀랍기만 하다. 커피

왔다. 당연하다. 휴대용으로 쓰라고 만든 에스프

란 풍미의 세계는 작은 커피콩 속에 감춰진 비밀을

레소 기계인 탓이다. 먹거리란 아쉬울 때 나타나야

풀어내는 일이다. 품종과 추출방식에 따라 커피

극적 충족의 감흥이 커진다. 높은 산 정상에 올라

맛은 천변만화를 보인다. 원두에 얽혀진 맛과 향을

비로소 절실한 커피의 맛과 향은 차라리 절규와

물에 녹여내는 게 커피의 단순한 규칙이다. 축구

같을 게다. 편의 때문에 어설프게 대체된 커피는

또한 다 큰 어른들이 팬티만 입고 상대의 골대에

언제나 아쉬움만 남겼다. 이를 아는 이들은 미친놈

공을 차 넣어야 이기는 경기다. 게임의 룰이 단순

들이 아니다! 나의 경솔함을 반성해야 마땅하다.

할수록 복잡한 전술과 고도의 기량이 필요함을 우 리는 살아봐서 안다.

‘바끼’는 본격 에스프레소 기계의 성능 실현 을 위한 참신한 시도다. 모터 작동의 압축 대신 수

축구는 눈에 보이고 소리가 들린다. 커피는

증기로 손쉽게 고압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고리

각자의 입안을 그라운드 삼아 맴돌기만 할 뿐이다.

타분한 과거의 기술로 여겨지던 증기 기관의 원리

눈에 띄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안 보인다고 이해

는 현대에 되살아났다. 수증기의 힘으로 육중한 증

의 편견을 보여선 곤란하다. 살면서 누려야 할 즐거

기기관차가 움직이지 않던가. 9기압 정도면 되는

움이란 축구처럼 어쩌다 한 번의 열광으론 모자란

에스프레소 기계의 압력이다. 증기압 방식은 가정

다. 각자의 입안에서 벌어지는 풍미의 차이를 소중

용 에스프레소 기계로는 어림도 없는 성능을 주변

하게 여기는 게 외려 지속의 방법이다. 커피에 빠진

의 흔한 불과 물만으로 해결했다.

사람들은 보기보다 지독한 감각주의자들 같다. 드립 커피보다 특별한 것을 원한다면 에스프

로봇 닮은 형상에 재질도 독특

레소가 제격이다. 에스프레소 하면 우선 이탈리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함을 누구나 공감한다. 다른

사람들을 떠올려야 한다. 최초로 에스프레소 커

생각만으론 모자란다. 실제와 실물로 만들어내야

피를 고안한 이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밀라노 사람

비로소 업적이 된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과거의 것

‘배째라(Bezzera)’다. 오래 전 밀라노 대 성당 앞

은 기발한 접근으로 쓸모를 만들어간다. 오래되어

에서 마셨던 찐득한 고약 같은 에스프레소의 맛에

서 낡은 것이 아니다. 새롭게 보지 못하는 눈이 낡

반했다. “역시! 전통의 이탈리아 커피…”하며 감탄

음이다. 바끼를 만든 ‘카페모티브’는 커피에 미친

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배째라’의 후손들은 커

세 명의 젊은이들이 세운 회사였다.

피에 관한한 내 배를 송두리째 째버렸다. 맛의 각 인은 어느새 취향의 레퍼런스로 자리 잡게 된다.

‘카페모티브’는 대단했다. 최상의 에스프레소 를 위해선 과거의 방식이 외려 장점으로 바뀔 수

에스프레소의 맛은 원두가 같다면 추출기계

있음을 확신한 까닭이다. ‘바끼’로 내린 에스프레

에 좌우된다. 수천만 원의 가격을 붙인 명품 기계

소 커피는 최상급 기계로 내린 풍미를 그대로 내준

들이 즐비한 이유다. 아무리 에스프레소를 좋아해

다. 까다로운 커피 폐인들도 이를 수긍한다. SF 영

도 집안에 이런 기계를 들여놓을 위인은 없다. 아

화에 등장하는 로봇 같은 알루미늄의 형상과 재

쉬운 이들은 가전 메이커들이 만들어준 캡슐형 에

질도 독특하다. 눈 밝은 이들이 ‘바끼’를 비켜가기

스프레소 기계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힘들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아는 게 병이다.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계로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올라섰다. 에스프레소

내린 커피의 맛은 ‘그저 그렇다’다. 고압 추출방식

한 잔의 유혹이란 얼마나 강렬한가! 커피에 미친

기종만큼 충분한 압력을 뿜어내지 못하는 탓이다.

청년들의 에스프레소 사랑은 공감의 지점을 찾았

더 좋은 에스프레소 기계가 어른거렸다. 디자

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앉아서 혜택을 누리고 있

인이 돋보이는 간편한 캡슐형은 쓰기 싫다. 너무나

는 중이다.

싱겁게 에스프레소가 만들어지는 무미건조함을 참 을 수 없다.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널려있다. 이 번에도 이탈리아인들이 해결 방법을 찾아주었다. S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 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PEOPLE

24

2003년 시작된 런던 프리즈(Frieze) 아트페어는 아트 바젤 다음으로 유럽에서 중요한 미술 장터다. 2012년부터는 근현대 거장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 는 갤러리를 초대해 ‘프리즈 마스터스’를 진행하고 있다.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 열린 올해 행사에서 영국의 말보로 갤러리가 내놓은 프랜시스 베이컨 의 몇 천억 원 대의 작품도 관심거리였지만 우리로 서는 갤러리 현대 부스에서 개인전 형식으로 소개 된 아방가르드 작가 이승택(82)의 작품세계가 더 눈길을 끌었다. 본인 스스로 거장이 되고자 한 적도 없고 오 랜 세월 재야에서 활동해야 했던 이 노작가의 육 십 평생 지치지 않던 실험적 예술혼을 이제 와서 ‘마스터스’라는 말로 위로하기엔 살짝 미안한 감도 든다. 하지만 프리즈 마스터스 중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거장의 솔로 부스로 꾸며지는 스포트라이트 섹션에 선보여진 그의 전시는 “왜 작가 이승택이 마스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개막 두 시간만에 작품 절반 팔려

14일 VIP 프리뷰부터 붐비기 시작한 그의 부스는 개막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출품작의 반 이상이 팔렸다. 컬렉터와 평론가로부터 모두 호평받은 작 품은 여러 개의 고드렛돌을 밧줄로 매단 1957년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재조명 받은 팔순 작가 이승택

가지 않은 길 찾아 거꾸로 살아온 예술 인생 60년

작 ‘고드렛돌’ 이었다. 테이트 모던에 소장된 이 작 품을 알아본 컬렉터도 많았다. 돌돌 말고 실로 꽁 꽁 묶어 연결한 종이를 벽에 설치한 ‘드로잉’, 대표 작 ‘바람(Wind)’(풍어제에서 쓰는 붉은 천을 날 리거나 나무에 매다는 작업으로 물질화할 수 없는 바람의 존재를 형상화한 1970년대 초반 작품)을 기록으로 남긴 사진과 도자기에 밧줄을 엮어 작업 한 시리즈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니콜라 세로타 테이트 미술관 관장, 한스 울 리히 오브리스트 서펜타인 갤러리 관장, 3년 전 그 의 작품을 구매한 컬렉터 프랭크 코헨 등 영국 미 술계 거물들이 부스를 찾아 관심을 표했다. 유럽에 서 활동하는 유명 큐레이터 아드리아노 페드로사 는 “이번 프리즈 마스터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 가는 이승택”이라며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2012년 뉴욕 프리즈 아트 페어에 처음 소개 했고 이번에 유럽에 처음 선보이는데 특히 유럽과 남미 컬렉터들 평가가 아주 좋습니다. 3년 전만 해 도 국제 미술계에 인지도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


PEOPLE

25

기회를 통해 한국의 훌륭한 작가를 알리고 한국 미술의 발전에도 기여한 것 같아 매우 자랑스럽고 영광스럽습니다.” 조정열 갤러리 현대 대표의 말이 다. 이 작가는 프리즈 기간에 열리는 야외 조각 프 로젝트 선정 작가 10인으로도 뽑혀 작품 ‘삐라’가 리전트 공원에 전시됐다.

“재료가 변하니 세상 보는 인식도 변하더라”

한국에서 필자와 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작 품 세계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남들이 하지 않 는 것을 해왔어요. 현대 미술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가 재료의 개발이라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어느날 고드렛돌이 물렁물렁하게 보였고 역설적인 반 개 념을 생각해냈습니다. 이후 노끈으로 고드렛돌과 사물들을 묶기 시작했는데 모든 사물을 묶고 감으

Wind(1979), Photograph, 70x80cm

면 그 물성이 전혀 다르게 변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술 더 떠서 ‘그럼 물질적인 것만이 재료가 될 수 있 을까? 비물질도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니 물·불·돌·바람·연기·안개를 이용하 게 됐습니다. 재료가 변하니 세상을 보는 인식도 변 하게 됐죠.” 그는 이미 1960년대에 화판에 불을 질러 한강 으로 떠내려 보냈고 석상에 불을 지르는 ‘분신하 는 석상’ 같이 당시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던 행위 예술을 시작했다. 재료의 물질성에 반해 비물질에 탐구한 그의 창작 영역이 우리 사회와 정치를 뒤집 어 보는 사상으로까지 확장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

Godre Stone(1957), Stones Cords Bar image, 66.5x106cm

었다. “본래 예술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입니다. 사회 에 도전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이죠. 세

학이 이제서야 서양의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존중

상을 비틀고 세상에 역행하니까 예술이 막 생겼어

받게 됐다. 시대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예술계 사조

요. 독설과 야유,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즐기다 보

에 편승하는 것도 거부하고, 기성의 가치와 이데올

니 사회며 정치며 다 비틀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뒤

로기와 제도에 반하는 작업이 이제 막 세계인들에

집어서 보아왔어요.”

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젊어서 미술사를 가르치며 피카소를 가장 존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세상을 뒤집어 볼

경했고 마르셀 뒤샹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인정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작가 이승택은 알고 있다.

던 그였지만 서양의 미술계 역시 그는 뒤집어서 보

그래서 그는 지금도 우리가 허리를 곧게 펴고 꼿꼿

았다.

하게 걸어가는 세상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땅 바닥

“60년대에 서양 미술계를 소개한 잡지들을 보

에 뒹굴고 한쪽 눈을 지긋이 감고 세상을 삐딱하게

면서 ‘아, 서양이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 1991년 작 ‘자각상’에 쓰

요. 그리고 서구에 없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인 문구처럼.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나는 세

우리의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닌가?

상을 거꾸로 생각했다. 나는 세상을 거꾸로 살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런던 글 최선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hee.lefur@gmail.com

반세기 전 했던 그의 생각과 예술가로서의 철

사진 갤러리 현대

S

런던 리전트 공원에 전시된 이승택의 설치작품 ‘삐라’



S


T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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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하게 머릿고기가 들어간 순댓국. 순대는 조연이다. 먼저 국물을 한 수저 먹어보면 진가를 알 수 있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46>

맛깔스러운 순댓국이라면 아버지께서 맛있게 드

고 깔끔하면서 머릿고기가 푸짐하게 들어있는 것

남순남 순댓국

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가장 좋다. 이런 기준에 가장 잘 들어맞아서 내

기름기냄새 쏙 빠진 국물맛 진화한 순댓국

순댓국을 사들고 병원으로 가서 따뜻하게 데

가 좋아하는 곳이 ‘남순남 순대국’이다.

워 드렸는데, 특유의 냄새가 생각보다 좀 거슬렸다.

이곳의 순댓국은 꼬리꼬리 한 냄새가 거의 나

식당에서는 잘 못 느꼈었다. 음식 냄새가 거의 없는

지 않는다. 돼지 머릿고기와 머리뼈만을 이용해서

병원에 오니까 그 냄새가 도드라진 것이다. 다행히

국물을 내는데 매일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서 새로

아버지께서는 평소보다 많이, 그리고 열심히 드셨

끓이는 것이 첫째 비결이었다. 재료를 여러 번 다시

다. 생전 말이 없이 무뚝뚝하신 분이 일부러 “맛있

사용하면 잡스러운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거슬리

다”라고 칭찬까지 하시면서.

는 냄새가 나기 쉬운 내장의 경우에는 국물과 아예

그 순댓국은 아버지께서 외부 음식으로 드신

따로 삶는다. 끓일 때 마늘과 생강을 듬뿍 넣는 것

마지막 식사였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

도 또 다른 요령이다. 순댓국은 그 냄새 때문에 싫

후에야 나는 알았다. 항암제 치료를 받을 때면 비

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다들 그런 거

위가 약해져서 음식 냄새가 특히 더 예민하게 느껴

부감을 거의 못 느낀다.

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때 아버지께 순댓국 냄새는

일단, 국물 맛이 아주 일품이다. 오래 끓여서

많이 역하셨으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일부러 사

충실하게 우러난 것이 깔끔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음식은 우리네 삶, 그 자체다. 인생의 모든 중요한

들고 온 아들을 생각해서 맛있게 드시는 척하셨던

기름기가 거의 없는 맑은 국물이지만 구수한 맛이

순간들은 이런저런 음식들과 연결돼 있다. 그래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순댓국은 내 인생에서 아주 특

라 자꾸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주인장이 권해주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음식이

별한 음식이 되었다.

는 방법대로 양념을 더하면 국물 맛이 더욱 풍부해

있다.

순댓국은 장터마다 그저 자연스럽게 생겨난

진다. 들깨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 새우젓의 깊은맛,

아버지께서 암으로 투병하실 때였다. 항암 치

아주 서민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만드는 방식이 따

칼칼한 매운맛 등이 함께 어우러져 풍미가 더해지

료의 후유증으로 입맛을 잃으셔서 음식을 거의

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각각이다. 내용물도

는 것이다. 푸짐하게 넣어주는 머릿고기는 두툼하

못 드셨다. 입맛을 당기게 해드릴 만 한 것이 뭐 없

집집마다 다르고 국물을 만드는 방법도 여러 가지

지만 부드럽게 씹히면서 술술 넘어간다. 냉동을 했

을까 고민하다가 회사 근처에서 파는 순댓국이 생

다. 사람들마다 익숙해진 입맛이 다르니 좋아하는

었거나 삶아놓은 지 오래된 고기가 주는 퍽퍽하고

각났다. 밋밋한 병원 밥보다 따끈한 국물이 있는

순댓국의 형태도 다르다. 나는 국물이 텁텁하지 않

무미건조한 맛과는 확실히 다르다.


29

이도은 기자의 ‘거기’ <4> 서교동 선술집 몽로

이탈리아한국 음식의 만남 젊은 아저씨들의 지하 아지트

서민적인 분위기의 내부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를 종종 가곤

조잘대는 이십대가 아닌, 눈

한다. 한 잔 하면서 밥과 술을 동시에 해결할 수

빛으로 교감할 줄 아는 삼십

있기에 그만한 데가 없어서다. 지글지글 굽고

대 이상이 주를 이뤘다. 나중에

볶는 거한 요리 대신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요 직원이 귀띔하길 손님 대부 리들이 번잡스럽지 않은 것도 장점. 여기에 사

분이 ‘웬만큼 나이가 있는

케에서 맥주, 소주, 때로는 위스키까지 구비한

분들’이란다.

그곳의 멀티플 메뉴 체제가 일단 가면 실패는 없다는 안도감을 준다.

외부 모습

드디어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훑어 보니 대략 이런

다만 예전만한 감흥은 차츰 사라지게 되

식이다. 어란과 구운 빵, 빵에

었다. 베이컨 숙주 볶음, 닭 날개 튀김, 사시미 샐

발라먹는 절인 대구와 감자

러드가 신선하기는커녕 3종 세트 자동 주문으

스프레드, 곱창과 소힘줄찜-.

로 들어가는 순간이 온 것이다. 게다가 프랜차

이름만으로는 감이 잘 안잡히

이즈 빵집처럼 똑같은 간판의 이자카야를 드나

는 요리들인데, 이탈리안과 한식 그

드는 회수도 점점 늘어났다.

중간쯤에 있는 절충형이라 보면 옳다. 가령 ‘얇

이곳은 전라도 나주 출신 남순남(58)씨가 운

그러던 차에 서교동 ‘몽로(夢路)’가 눈에

게 저민 흑돼지 등심과 참치 소스’만 해도 그렇

영을 하고 있다. 남편을 도와 살림에 보탬이 되려

들어왔다. ‘이탈리안 선술집’이라는 문구가 마

단다. 원래 이탈리아 요리는 송아지 고기를 재

고 조그맣게 식당을 낸 것이 1994년이다. 쉽게 할

음에 꽂혔다. 이탈리아 음식이라 하면 우아한

료로 쓰는데 국내에서 좋은 송아지 고기를 구

수 있는 음식이라 순댓국으로 시작했는데 처음에

(혹은 느끼한) 피자·파스타부터 떠오르는 와중

하기란 쉽지 않아 대신 양질의 흑돼지 등심으

는 어떻게 만드는지도 몰랐었다고 한다. 일단 눈 동

에 선술집이라니, 뭐가 다를까 싶은 호기심이

로 대체한다는 설명이다. 주류 역시 이탈리안

냥으로 시작을 하고 나서 그저 한결같이 성실하게

생겨났다. 게다가 맛 칼럼니스트로도 이름난

음식과 와인의 조합에서 한결 자유롭다. 수입

노력을 하면서 맛을 잡았더니 어느새 많은 사람이

박찬일 셰프가 문 연 곳이라는 후광 효과도 한

맥주와 프리미엄 소주, 위스키, 보드카까지 망

좋아하는 순댓국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몫했다. 일단 가서 정체를 파악할 수 밖에.

라한다. 이탈리안 햄과 소주의 조합이 이 몽로

만든 순댓국 하나로 20여 년 동안 딸 둘과 아들 하

친구 셋을 대동하고 찾은 그곳은 번쩍이

나를 잘 교육시키고 결혼까지 시켜서 다들 잘 살고

는 네온사인은커녕 인적조차 드문 주택가 골목

여자 넷이 식탐인지 호기심인지 이름이 끌

있다고 하니 역시 어머니의 힘은 대단하다.

에 자리하고 있었다(그래서 간판조차 단박에

리는 대로 이것저것을 먹어봤다. 가지 치즈구이,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건물에 들어서서도

프로 볼로네 치즈에 명란을 넣은 계란찜, 박찬

나는 어려서부터 순댓국을 좋아하긴 했는데

에서만큼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더 좋아하게 되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은밀한 공 일식 닭튀김, 명란 파스타 등의 맛은 황홀할 정

우연히 순댓국집 간판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뭔

간이었다. 일행 중 하나가 ‘이런데 술집이 있네’ 도는 아니지만 딱히 흠잡을 데도 없다. 기교보

가에 끌리듯이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한다. 그 음

라며 문을 연 순간, 또다시 낯선 광경이 펼쳐졌

다 재료에 충실하다. 산지 식재를 쓰고, 직접 소

식을 앞에 놓고 앉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따

다. 귀로는 1980~90년대 가요와 팝송이 흘러

스와 면을 만든다는 셰프의 고집이 그대로 드

뜻해 지기 때문이다. 나에게 순댓국은 그냥 음식이

나오고, 눈으로는 투박한 회색 페인트 벽에 나

러난다. 다만 먹성 좋은 이들이 식사 대용으로

아니다. 아버지께서 남기고 가신 정(情)이다.

무 테이블이 일렬로 배치된 복고풍 인테리어와

먹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2만 원대 요리의 양이

마주했다. 노란 필라멘트 전구 빛 덕에 술집이

그야말로 안주 수준이라 가지 치즈구이는 3조

라기보다 지하 아지트의 분위기도 났다. 그 공

각, 닭튀김은 8조각으로 나온다.

간 속에서 함께 풍경이 되는 이들은 왁자지껄

dangdol@joongang.co.kr

▶남순남 순대국: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945-2 전화 02-5743227 원래 ‘서초 순대국’에서 이름을 바꿨다. 일요일은 휴일이 다. 순댓국 70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몽로: 서울 서교동 377-20, 02-3144-8767, 오후 6시~오전 1시(일요일 휴무). 어란과 구운 빵(2만원), 빵에 발라먹는 절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인 대구와 감자 스프레드(2만원), 박찬일식 닭튀김(2만3000원)

대표. yeongjyw@gmail.com

S


REVIEW &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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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프랑켄슈타인’이다. 올 초 동명의 할리우드 영 연극 ‘프랑켄슈타인’ 11월 9일까지

화가 개봉하고 대형 창작뮤지컬로도 제작돼 인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를 끌더니, 이번엔 연극이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해 관객과 평단의 뜨거

사랑 없는 창조는 또 하나의 원죄

운 호응을 얻었던 영국 국립극장의 2011년 초연작 으로, 일찌감치 한국판 제작 소식이 전해져 국내 팬들의 기대가 높았다.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 타인』은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로, 200여 년간 영화·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재해석되며 세계인의 꾸준한 사 랑을 받아왔다. 세월이 흘러 빛이 바래기는커녕, 신 의 영역에 도전하는 생명공학이 첨단으로 치닫는 오늘이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명품 고전이다. 200년 동안 수없이 재창작되어온 ‘프랑켄슈 타인’이 새삼 연극 무대에서 보여주는 매력은 뭘까. 사실 연극 특유의 긴밀한 속삭임을 느낄 수 있는 무대는 아니다. 뮤지컬 분야에서 주로 활약해온 연 출가 조광화와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가 뭉쳐 통상 연극 수준을 껑충 뛰어넘는 스펙터클로 관객을 유 혹한다. 1000석 규모의 극장, 리프트와 이동세트를 활용한 창의적인 장면전환, 모든 소품과 구조물을 투명한 비닐로 감싼 독특한 무대미술이 돋보인다. 노래만 더해진다면 그대로 화려한 한 편의 뮤지컬 이 될 법하다. 이 무대만의 차별점은 피조물의 시각에서 인 간 세상을 바라보는 해석 자체에 있다. 제목만 ‘프

제 6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10월 29일~11월 3일

달콤한 음악이나 아름다운 그림에 빠져드는 것처럼,

이화여대 ECC 아트하우스 모모 02-3415-6865

건축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는 없을까. 올해로 여섯

무의미하게 보이던 건축

번째를 맞는 서울국제건축영화제는 이에 대한 해법

음악미술처럼 감상하는 법

을 제시한다.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건축을 영화를 통해 쉽고 재미있는 대상으로 바꿔보자는 취지로 시 작된 아시아 유일의 건축영화제다.

올해 주제는 ‘건물’. ‘만약 건물이 말을 한다면?’을 부제로 12개국에서 출품된 영화 21편을 4개 섹션에서 선보 인다. 특히 개막작 ‘문화의 전당 3D’는 가장 주제와 밀접한 작품이다. 카림 아이노우즈, 마카엘 글라보거, 마이 클 매드슨 등 6명의 감독이 ‘건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각자의 방 식으로 답을 내놓는다.이 밖에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10년에 걸쳐 세계무역센터가 재건되는 과정을 그린 ‘16 에이커스’와 벨기에 리아주 극장의 건축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제 4의 벽’도 상영된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사무국


REVIEW &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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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켄슈타인’일 뿐 주인공은 ‘피조물’이 되는, 이제

그가 하물며 ‘피조물’에게 사랑을 허용할 리 없다.

계망을 무한히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시스템의 사

껏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프레임이다. 원작에서

여기까지가 원작 소설의 시점을 뒤집은 영국

랑법이다. 결국 시스템이 인간의 감정을 사로잡고,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생명체 창조 실험에 이

국립극장 버전이라면, 거기서 한발 더 나간 것이

인간은 시스템에게 사랑을 애걸하게 된다. 인공지

르게 된 장황한 배경은 과감히 생략되고, 피조물

한국판만의 결말이다. 창조의 비밀을 터득한 피조

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돼버린 셈이다.

탄생 장면에서 극이 시작된다. ‘피조물’ 역은 최근

물이 자살한 빅터와 지금껏 자신이 죽인 희생자들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맥베스’ 등에서 선 굵은

을 살려내고, 되살아난 빅터와 인간들은 피조물에

점에서 ‘그녀’뿐 아니라 ‘피조물’ 또한 지금 우리

연기를 보여준 배우 박해수의 몫. 갓난아이처럼 순

종속된 신세가 되는 아이러니로 막을 내린다. ‘왜

의 일상을 지배중인 첨단 디지털문명의 알레고리

수한 존재로 창조돼 걸음마부터 터득해가는 과정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는 섬찟한

가 된다. “생명창조? 왜 그런 일을 했어? 그냥 아일

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경고와 함께.

낳으면 되잖아. 낙원이라도 만들려고?” 빅터의 신

흉측한 외모 탓에 ‘창조주’에게 버림받은 피

이 결말에서 인공지능 OS와의 사랑을 소재

부 엘리자베스의 물음은 마치 우리에게 이 디지털

조물은 숲 속에 사는 눈 먼 노인 드 라쎄를 만나 인

로 한 영화 ‘그녀’가 떠올랐다. 손편지를 대신 써주

세상이 과연 낙원 같으냐고 묻는 듯하다. 면전에

간으로 진화해 간다. 피조물이 순수한 상태에서

는 직업까지 등장할 만큼 인간관계가 메마르고 사

친구를 두고도 기계만 쳐다보는 우리. 진짜 친구를

최초로 습득한 단어는 ‘낙원’. 그러나 플루타크 영

랑이 상실된 시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 시스

사귀고 사람을 사랑하면 될 것을, 왜 끊임없이 ‘체

웅전을 읽으며 음모, 술수, 복수를 배우고 급기야

템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은 얄궂게도 ‘사랑’이

온 없는 친구’를 창조해 내는 걸까. ‘피조물’에게 주

밀턴의 ‘실락원’의 한 대목을 스스로 읊조리는 대

다. 그런데 인간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인간을 도와

권을 뺏긴 세상은 결코 낙원이 아닐텐데 말이다.

목은 의미심장하다.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을 잃

주는 역할을 넘어, 스스로 진화한 끝에 또 다른 관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예술의 전당

어버린’ 인간에 성큼 가까워졌음에도 결코 인간 에게 다가갈 수 없는 그는 생명창조의 비밀이 담긴 빅터의 비밀노트를 발견하고 행동에 나선다. “친구를 줘. 그게 다야.” 외로움에 사무쳐 ‘사 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격하게 반응하는 ‘피조물’ 이 바라는 건 의외로 소박하다. 동반자를 얻어 사 회구성원이 되는 것. ‘창조주’ 인간에게 구하는 건 오직 ‘사랑’일 뿐인데, 인간에겐 베풀 사랑이 없 다. 빅터에겐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누구보다 먼저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 싶다는 과학자의 욕심이 전 부다. 사랑이 ‘통제 불가능한 미친 짓’이라 말하는

연극 ‘단테의 신곡’ 10월31일~11월8일

지난해 국립극장의 국가브랜드 공연으로 제작돼 7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4

공연 모두 100%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공연계 고

1년만에 다시 만나는 단테

전 재창작 열풍을 선도한 ‘단테의 신곡’이 1년 만에 전

묵직한 울림과 사유의 무대

면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온다. ‘신곡’은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시인이었던 단테 알 리기에리(1265~1321)가 지옥연옥천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대서사시. 기독교적 죄와 구원의 문제를 다룬 내용을 연극계 거장 한태숙 연출과 극작가 고연옥 이 현대적으로 해석해 2014년 오늘을 살고 있는 보편적 관객에게 묵직한 울림과 사유를 전하는 무대다. 초연에 없던 ‘단테의 그림자’와 ‘늙은 단테’를 등장시켜 자기 성찰적 존재인 단테를 더욱 부각시켜 완성도를 더 했다. 무대 디자인의 명장 이태섭이 전혀 달라진 무대로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실감나게 구현하고, 15인조 국악 양악 혼합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30곡의 음악도 새롭게 편곡됐다. 공연계 블루칩 지현준과 국민배우 정동환· 박정자 등 초연 배우들이 안정된 무대를 이어간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극장

S


BOOK

32

책 MANAGA 저자: MANAGA 편집부 출판사: 거북이북스 가격: 1만6000원

만화가 들의 창작 세계는 어떤 것일 까. 그들의 창조적 에너지에 포커스를

저자: 최정동 출판사: 한길사 가격: 2만원

맞춘 무크지(부정기 간행물)가 나왔다. 1호 에서는 주호민·최규석·백성민·앙꼬 등 10 명 만화가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창작 현 장과 작업 과정을 소개한다. 글과 사진, 만

저자의 음악 여정이다. 프로필과 권두언에 나온 위게

화 작품을 적절히 섞은 레이아웃은 물론이

흐부터 20대를 보낸 바이마르, 30대를 보낸 쾨텐, 40

트 드레퓌스의 프랑스 모음곡, 디누 리파티의 파르티

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국영문 혼용 표기도

대 이후를 보낸 라이프치히를 순례하고 있다. 아이제

타부터 범상치 않았지만, 고교시절 테크닉스 턴테이

이 책은 여행기인가? 그렇다. 바흐가 태어난 아이제나

블로 듣기 시작한 카를 리히터

나흐 게오르크 교회에 있는 바 흐 세례반에서 시작된 여정은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 있는 바흐의 무덤을 거쳐 성 베 드로와 바울 교회에 있는 자식 들의 세례반에서 끝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여

특색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음악처럼 다가오는 바흐의 여정

와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의 관

방황하는 아티스트에게

현악 모음곡 엘피 중 ‘G선상의

저자: 대니엘 크리사

아리아’는 독자인 음악 애호가

역자: 박찬원 출판사: 아트북스

들에게 진솔한 공감을 불러일

가격: 1만8000원

으킨다. 피에르 푸르니에와 장

창작의 벽에 맞닥뜨린

막스 클레망의 무반주 첼로 모

사람들이 어떻게 돌파

음곡 음반이 등장하고, 프라이

행기가 아니다. 바흐의 생애를

구를 찾아야할지 알려주는 책. 전세계에서 활동하

통시적으로 재구성해 그 사이 사이를 채운 음악적 수

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카를 리히터의 연주 사

상록이기도 하다. 바흐가 있었던 공간을 접점으로 현

이에 의외로 등장하는 핀커스 주커만의 브란덴부르

들을 담았다. 중고 상점 탐험하기, 콜라주로 자화

재와 과거를 씨줄로, 바흐와 저자를 날줄로 잇고 있다.

크 협주곡이 나오면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상 만들기 등 개성 넘치는 방법들이 가득하다. 슬럼

활자를 통해 들어오는 저자는 능숙한 여행가이기도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인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하지만, 대단한 내공을 지닌 음악 매니어다. 책장을 넘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 쾨텐 시대 바흐가 작곡한 바

기다 보면, 음악가 바흐의 인생 여정과 한 장 한 장 소

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BWV1014 중의

중히 사 모은 LP며 CD가 수천 장이 될 때까지 저자의

1악장이다. 저자는 이 곡을 매일 들렀던 레코드 가게

진솔한 음악 여정이 겹쳐진다.

인 ‘오리지널 사운드’에서 처음 들었다. 다비드 오이

튀링겐의 음악가문에서 태어난 소년 제바스티

스트라흐와 한스 피슈너의 연주다. ‘어두운 방구석에

안은 어머니를 잃은 지 아홉 달 만에 아버지마저 잃어

서 소리 죽여 곡을 하는 중년의 사내’가 떠오른다는

열 살 나이에 고아가 된다. 큰형 크리스토프의 집에서

저자는 이 음악을 통해 첫 번째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

건반 연주의 기본을 배우고 젊은 천재 오르가니스트

를 잃은 바흐의 슬픔과, 암에 걸려 스러진 레코드 숍

로 불리다가 거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펼

주인과의 황망한 이별을 교차시킨다.

는 아티스트 50명이 직접 경험하고 발굴한 해결책

프 극복 요령과 함께 그들의 대표 작품 300여 점도 함께 실려 있다.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01 여자없는 남자들 02 비밀의 정원

자료=교보문고

작가·출판사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조해너 배스포드 클

쳐진다. 바흐가 연주했던 교회, 결혼식을 올린 곳, 괴

이 책은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전기, 풍광만이 가

테의 도시 바이마르와 궁정 악장으로 있던 쾨텐, 라이

벼운 여행기와는 궤를 달리한다. 여정을 좇는 발걸음

04 21세기 자본(양장본)

프치히 토마스 칸토르에 작센의 궁정작곡가 지위까지

에 늘어나는 근육처럼, 바흐에 대한 지식과 음악의 감

05 어두운 상점들의 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얻은 바흐와 프리드리히 대왕을 알현한 상수시 궁전

동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음악처럼 피부에 와 닿

06 나미야 잡화점의 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도 담아냈다. ‘마태 수난곡’을 비롯해 바흐의 작품들

는 바흐는 새로웠다.

을 부활시킨 멘델스존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글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09 어떤 하루

kinsechs0625@gmail.com

10 스코치 트라이얼

바흐의 인생 여정 못지않게 마음을 끌었던 건

03 창문넘어도망친100세  요나스요나손 열린책들

07 싸드 08 메이즈 러너

토마 피케티 글항아리

김진명 새움 제임스 대시너 문학수첩 신준모 프롬북스 제임스 대시너 문학수첩


GUIDE & CHART

영화

33

공연

클래식

전시

나의 독재자

연극 ‘1000프랑의 보상’

요요마와 실크로드

드림 소사이어티

감독: 이해준

기간: 10월 25~26일

일시: 10월 28일 오후 8시

기간: 10월 10일~11월 16일

배우: 설경구, 박해일

장소: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장소: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1544-8117

문의: 1577-5266

문의: 02-3141-1377

1972년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며 성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진정한 자유가

첼리스 트 요 요마가 전 세계의 선

현대자동차의 문화마케팅 ‘더 브릴리

근은 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의 대

올 때까지 상연하고 싶지 않다며 숨겨

율ㆍ악기와 함께하는 앙상블 무대. 한

언트 아트 프로젝트’의 두 번째 행사.

역으로 뽑힌다. 성근은 필사적으로 김

놨던 보물 같은 작품. 프랑스 툴루즈

국ㆍ중국ㆍ몽골ㆍ이란 등의 연주자와

국내외 유망 작가 11명이 진보와 융합

일성 연기를 준비하지만 남북정상회

국립극장 내한공연으로 선보인다. 돈

전통 악기가 무대에 오른다. 한국에서

을 의미하는 ‘엑스브리드(Xbrid)’를

담은 무산되고 만다. 20년 후. 여전히

이 좌우하는 권력과 사회적 불평등 속

는 장구가 참여했다. 이번 무대에서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다. 26일 석파정

스스로를 김일성이라 믿는 성근 때문

에서 살아가는 19세기 프랑스 사람들

아리랑을 비롯해 ‘우화의 경로’‘왕궁

야외공원에서는 ‘화음 쳄버오케스트

에 아들 태식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의 모습에서 21세기 한국을 본다.

을 위한 음악’ 등을 연주한다.

라’의 클래식 무대도 마련돼 있다.

내가 잠들기 전에

뮤지컬 ‘그날들’

한국예술종합학교 오케스트라

투모로우 2014 ‘발아(發芽)’

감독: 로완 조페

기간: 10월 21일~2015년 1월 18일

일시: 11월 1일 오후 8시

기간: 10월 9일~11월 2일

배우: 니콜 키드먼, 콜린 퍼스

장소: 대학로 뮤지컬센터 대극장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장소: DDP 디자인 박물관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문의: 1544-1555

문의: 02-580-1300

문의: 02-2153-0045

크리스틴은 매일 아침 남편 벤의 품에

2013년 최고의 창작 뮤지컬로 평가받

2014 예술의전당 대학 오케스트라 축

간송미술문화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

서 깨어나지만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은 작품. 한층 강화된 안무와 음악, 짜

제 개막 공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오케

이 간송 전형필 선생의 뜻을 기리며 한

환자다. 그런 그녀에게 기억을 찾아주

임새 있는 스토리로 돌아왔다. 고 김

스트라가 정치용의 지휘로 시벨리우

국의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첫 번째 프

겠다며 내쉬 박사가 다가온다. 그를 통

광석의 명곡들이 천재 연출가 장유정

스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첼리스트

로젝트. 간송미술관 소장품 ‘훈민정

해 자신의 사고와 관련된 충격적인 이

특유의 휴먼 미스터리 드라마와 절묘

이강호는 블로흐의 작품을 연주한다.

음 해례본’의 의미를 동시대 한국 예

야기를 듣게 되는 크리스틴은 그 누구

하게 엮이는 무대다. 유준상, 지창욱,

축제는 국민대ㆍ단국대ㆍ서울대ㆍ이화

술의 흐름 속에서 되새긴다. 2부 ‘문화

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오종혁, 규현 출연.

여대 등으로 이어져 11월 9일 끝난다.

지형도’(11월 8~30일)로 이어진다.

클래식 음반

가요 음원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순위 영화명

주연

01 나를 찾아줘

벤 애플렉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순위 공연명

출연

01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안재욱 임태경 팀

02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민아 조정석

02 뮤지컬 레베카

03 우리는 형제입니다

조진웅 김성균

03 어린이뮤지컬 번개맨의 비밀3

04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루크 에반스

05 레드카펫

윤계상 고준희 오정세

06 다이빙벨

이상호 안해룡

07 제보자 08 보이후드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오만석 엄기준 옥주현

04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 05 뮤지컬 그날들

06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07 연극 황금연못 08 뮤지컬 킹키부츠

옥주현 김소현

유준상 이건명 최재웅 조승우 류정한 이순재 신구 나문희 김무열 오만석 정선아

자료=풍월당

순위 음반명 01 마리아칼라스: 전집

음반사

순위 노래

Warner Classics

01 시간과 낙엽 02 화장 지웠어

03 카라얀:1980년대DG관현악레코딩

DG

03 그게 나야

김동률

04 13개의왈츠-알도치콜리니 La Dolce Volta

04 보고싶어

걸스데이

05 시네마세레나데:존윌리암

05 Error

SONY

악동뮤지션 개코

빅스

06 모차르트:바이올린 Channel Classics

06 손대지 마

에일리

07 스티브허프:인더나이트

07 Christmalo.win

서태지

08 하이든&모차르트:피아노협주곡 ERATO

08 Home

로이킴

Hyperion

09 연극 옥탑방고양이

이대일 김선호

09 슈베르트:즉흥곡&환상곡-유센형제 DG

09 제발

10 슬로우 비디오

10 뮤지컬시카고(대구) 최정원 아이비 성기윤

10 요나스카우프만:50개의아리아 DECCA

10 틈

S

가수

02 오르페우[스]:칸타타들 Harmonia Mundi

09 컬러풀 웨딩즈 프레데릭 벨 엘로디 퐁탕 차태현 남상미 오달수

자료=가온차트

윤민수 신용재 소유 권순일 박용인


ESSAY

34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드라마 ‘유나의 거리’속 명대사

시원한 웃음 든든한 위안 화젯거리 만발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속 사람과 공간은 우리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존

흠씬 두들겨팬 뒤 주인공은 “내가 때린 니가 불쌍해서 운다. 너를 때린 내가

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콜라텍, 빨래가 널린 옥상, 고물상, 꽃이 가득하고

비참해서 운다”라며 우리를 울컥하게 하며, “유나씨는 순수한 축복이 아니

달을 올려보는 마당, 그리고 집들이 오밀조밀한 골목길. 소매치기 여인, 개장

라 가끔씩 질릴 때도 있는 축복이야”라는 근사한 말로 사랑의 본질을 꿰뚫

수, 페인트공, 조폭이었던 깡패. 한 아파트 촌에서도 임대 주택과 일반 분양을

는다.

구별 짓지 못해 안달인 현실 속에서도 내 이웃에 저런 사람이 있었다면 고개

죽일 만큼 나쁜 놈도, 궁극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모

를 돌려버렸을 그런 사람과 풍경이었다. 그곳 사람들 역시 생계에 급급해 그

두 이런저런 선함과 악함, 재주와 한계를 가진 인간일 뿐이다. 김운경 작가

악스럽고 세세한 감정도 없이 살아가는 납작한 성격일 거라고 쉽게 생각했

가 부리는 마법의 비결은 가난한 사람들, 상처입은 사람들의 가난과 상처를

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셋방에서 자살한 여자에게 주인 여자는

극적인 효과만을 위해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데

“월세도 밀리고 죽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있다.

며 분통을 터뜨린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속 명대사

하지만 김운경 작가의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과 이야기는 그런 사람과 공

- 라면 짜게 먹어 싱겁게 먹어? - 힘들지? 사람 싫어할 때보다 좋아할 때가 더 힘든 거야

간에 마치 마법을 풀어놓듯 생생한 기운 을 불어넣으킨다. 그들이 나의 모습, 나의 상처, 나의 기억과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

- 도둑질하는 나보다 간통하는 언니가 더 나빠. 십계명에도 7위 간음하지 말라 8위 도둑질하지 말라 순위잖아. - 뭐든지 처음에 할 때 잘해야 돼. 쌍도끼를 문신하라 그랬더니

다는 리얼리티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더 욱 놀라운 것은 단 한 순간도, 단 하나의 인물도 뻔하거나 전형적이지 않다는 것

잘못 듣고 산토끼를 그려놨어. - 유나씨는 완전 하늘에서 내려온 순수한 축복이 아니라 가끔씩 질릴 때도 있는 축복이야.

이다. 조폭과 깡패 출신들은 마초적이지

- 우리가 개라고 생각하고 한번 웃어봐.

않다. 소매치기는 “도둑질도 남의 눈에 서 눈물나게 하면 안되는 도리가 있다”고

-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고, 콜라텍은 손님의 안전을 지켜야 하잖아요.

말한다. 한때는 날리던 조폭이었던 70대

사람들과는 못 어울리고 개하고만 통한다는 남동생에게 “그럼 우리를 개라 고 생각하고 웃어봐”라고 한다든지, 원수 같은 사람을 응징할 때마다 중요 부위를 위협하며 가위를 등장시키더니 “이건 보 통 가위가 아니야, 갈비집에서 고기 자르 는 가위야”라며 질겁하는 장면, “쌍도끼 를 그리랬더니 잘못 알아듣고 산토끼를 문신으로 그려놨지 뭐야”하는 식의 원초 적인 유머는 속시원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그러나 그 문신 이야기와 함께 던지 는 “뭐든지 처음부터 잘해야 해”라는 조 폭 선배의 말 한마디는 오랜 세월의 회한

노인은 언제 혼자 굶어 죽을지 모르는 쓸쓸한 노인일 뿐이다. 애정 전선의 핵 심인 남녀 주인공은 42회나 가서야 겨우 입을 맞추다가 그마저 들킨다. 콜라 텍의 노인들은 짝맞추는 일 말고도 정말로 춤을 열심히 배운다. 하지만 악다구니 쓰며 사는 그들에게도 사랑과 인생에 대한 서늘한 통 찰과 세밀한 감정이 있다. 돈밖에 모를 것 같던 여주인은 사랑에 빠진 의붓딸

을 담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과거에 무언가를 하나씩 잘못했던 사람들, 그래서 이제는 남들처럼 평 범한 일상을 사는 게 겨우 목표인 인생들, 하지만 그 과거가 마음속에 켜켜이 상처로 남은 사람들. 평범한 삶을 살기가 이토록 힘들어서 특별해 보이는 사 람들이지만 그걸 보는 우리도 상처 하나 없는 이가 없다.

에게 “사람 싫을 때보다 좋을 때가 더 힘들어. 싫을 때는 안 보면 되지만 좋을

결국 사는 공간과 모습이 달라도 같은 인생이구나, ‘유나의 거리’가 준

때는 보고 싶어서 힘들잖아”라며 말하고, 천사 같은 남자의 애정에 싸늘하

것은 그런 뭉클한 깨달음이었다. 유난히 위로받고 위안해야할 일들이 많았

게 대하던 여주인공은 “라면 짜게 먹어 싱겁게 먹어?”라며 에둘러 배려와 사

던 시기에 우리를 울고 웃게 해주었던 이런 위대한 드라마를 언제 다시 만날

랑의 감정을 내비친다. 70대 노인은 “종로 제일의 주먹잡이와 겨루다 비가 와

수 있을까. 언제나 맑고 환한 웃음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지켰던 주인공 창만

서 들어간 천막에서 현인의 ‘비가 온다’가 흘러나왔지”라며 그런 인생 속에

의 얼굴처럼 따뜻함과 애틋함으로 ‘유나의 거리’가 안겨줬던 든든한 위안이

도 잊지못할 추억이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정의의 사도처럼 제비족 남자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PHOTO ESSAY

35

케이티 김의 남과 여

사랑과 영혼

2013 New York

블랙과 화이트 드레스를 입은 남녀는 물론 모형. 한참을 서서 그들을 바라본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나 혼자뿐이었던가. 천년을 가는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문득 아내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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