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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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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음악이 흐르는 고궁 덕수궁 뒤편으로 정동극장 옆에 중명전(重 明殿)이 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 도서관 으로 지어졌는데 1904년 덕수궁에 불이 나자 고종이 집무실로도 사용한 서양식 2 층 벽돌집이죠.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궁궐 내 남아있는 최초의 근대 건축물인
08 ISSUE
14 FOCUS
스포츠카 마세라티 탄생 100주년 기념전
드라마로 화제… ‘미생’의 윤태호
18 STYLE 반클리프 아펠의 ‘홍콩 보석 스쿨’
이 곳에 문화유산국민신탁 사무실이 있습 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문 화유산 보존을 목적으로 2007년 설립됐 죠. 지난해 회원 5000명을 돌파해 덕수궁 에서 처음 회원의 날 행사를 열었고 올해 도 지난달 27일 덕수궁 중화전 특설무대 에서 회원의 날 행사를 가졌습니다. 1년 사 이에 회원이 2000명이나 늘어난 것을 자 축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이날 “문화재의 미 래 가치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지
22 INTERVIEW
28 GALLERY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 매니저 김용주
06 THIS WEEK PEOPLE 27일 우리곁 떠난 가수 신해철
도널드 저드전
30 REVIEW & PREVIEW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
키고 가꿔서 널리 알리자”고 축사를 했죠.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국 민신탁운동을 처음 시작한 영국에는 현재 420만 명의 회원이 있는데 우리도 곧 1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며 “모두의 관심으로
32 BOOK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자”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지도』
7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소리꾼
26 CARTOON
34 ESSAY
만화로 보는 현대카드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고금성의 걸죽한 소리와 가수 손승연·채유 리의 신명나는 음악, 정옥희 시인과 연극인 박정자씨의 낭송 시가 소슬한 가을 바람을
라이브러리 걸작선
타고 퍼졌습니다. 내년 이맘때면 회원 1만
29 INSIGHT
명 돌파 기념 축제가 열릴 수 있겠죠. 그때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는 보다 많은 분들이 더욱 신나게 즐길 수
35 PHOTO ESSAY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케이티 김의 남과 여
표지 이탈리아의 100년 된 스포츠카 마세라티의 A6G-54 베를리네타 자가토 정면, 사진 김성희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이도은 유주현 사진 최정동 김춘식 전호성 편집 임종일 디자인 전유진 통신원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구명서 김진경 박본재 마케팅 박유선 최수인 이민주 이선우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1부 1000원 /월 5000원 정기구독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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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EEK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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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와 넥스트 등을 거치며 스무 장이 넘는 음반을 발표하며 그는 댄스곡으로 도, 시대를 앞서간 전위적인 메탈로도, 혹은 눈물 한 방울 툭 떨어뜨리게 만드 는 발라드로, 그리고 김동률 등을 낳은 프로듀서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놀랍게도 그의 음악은 과감한 실험 속에서도 늘 주류에 있었다. 특별히 그의 음악에 매료된 팬이 아니었다고 해도 언제나 그의 음악이 들려왔던 90년대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알지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오늘까지 한순간도 잊혀 지지 않았던 건 인간 신해철의 모습 때문이다. 괴짜, 독설가, 싸가지, 마왕…. 어 27일 우리곁 떠난 가수 신해철
떤 별명으로 불리던 간에 인간 신해철은 어떤 일에서도 자신만의 주관을 숨기
음악엔 새 바람 부조리엔 독설 마왕이 벌써 그립다
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거칠 것 없는 냉소와 독한 말 에 비난과 조소가 쏟아졌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적을 만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달변으로 그것이 어떤 것이든 체제가 강요하 는 권리, 혹은 잘못된 시스템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불합리라면 싸웠다. 누 구는 그의 논리가 일관성이 없다고, 자의식 과잉에 빠진 궤변일 뿐이라고 비웃 기도 했다. 하지만 한 인간의 목소리가 평생 한 가지 목소리와 한 가지의 논리만을 가지지 않는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의 주장이 온 인생을 꿰뚫는 일관성으로 다져지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일은 적절치 않다. 그는 순간순간 자신의 생각을 최선을 다해 합리적이고 찌질하지 않게, 그리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큰 소리 로 내세웠다. 그것이 매사에 눈치만 보면서 같은 시대를 겨우겨우 살아간 동년 배의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를 아쉬움 속에 그리워하는 이유다. 신해철의 냉소와 독설은 그저 싸늘하게 닥치는 대로 기존 체제를 비난하 고 비웃는 것이 아니었다. 주류 가수에서 시작해 비주류의 사회적 감성을 숨기 지 않았던 그는 록밴드 노래를 표절한 인기 밴드에게 “니네가 록밴드면 파리 도 새다”라고 비난을 날리지만 립싱크 가수만의 독자적인 영역이 있음을 인정 해야 한다고 했고, “아이돌 가수 노래의 유해성보다는 국회 소식을 유해뉴스 로 지정해 금지시켜야 한다”며 기존 체제 안의 사람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라 디오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인디가수 후배들의 노래에 애정을 아끼지 않 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간 신해철을 말할 때 우리는 차가움보다는 따뜻한 온기를 떠올
아이돌 가수에서 헤비메탈 록커까지, 사춘기 소녀같은 감성에서 시대의 부조
리게 된다. 스스로에 대한 매체의 오해와 왜곡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분노했지
리를 비판하는 독설과 또 다른 세상을 향한 꿈까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이슈
만 자신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웃으며 즐길 줄 알았던 그는 아마도 하늘나라
에도 자신만의 주관을 펼치는 걸출한 논객까지. 한 사람이 이걸 다 가질 수 있
에서도 “나 죽고 나니 그립지? 욕할 놈들은 욕해. 나도 같이 욕하면 되지 뭐”라
을까. 신해철은 그랬다. 그리고 그가 떠났다.
며 낄낄대고 있을 것만 같다. 똑똑한 어른과 철없는 어린아이의 감성이 공존했
뮤지션으로서 그는 뛰어났다. 아직까지도 응원가로 애창되는 1988년 대
던, 자유로웠지만 자유로워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지 않았던 진정한 자유인 신
학가요제 대상곡 ‘그대에게’는 이전 몇 년 동안 기존 상업적 가요와 별반 다를
해철을 우리는 영원히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게 없었던 대학가요제의 궤도를 일순간 바꿔놓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솔
글 이윤정 칼럼니스트 filmpool@gmail.com,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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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티포 6CM. 뒤에 V4 스포트 자가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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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마세라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가다
과거 속 첨단 시간 초월한 수퍼카
이탈리아 수퍼카의 살아있는 역사 마세라티(Maserati)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모데나 (Modena)시의 본사 바로 옆에 위치한 엔초 페라리(Enzo Ferrari) 뮤지엄에서 기념전(6월 12일~2015 년 1월 31일)을 시작했다. 전시를 위해 지난 1세기 동안 출시된 경주용 차, 일반 자동차 중 브랜드를 대표 하는 가장 상징적이고 가치가 높은 30여 대를 엄선했다. 이 중요한 차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중 21대는 내년 1월 31일까지 엔초 페라리 뮤지엄에 전시되고 10대 정도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100주년 행사를 위해 사용된다. 이 기념적인 전시회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모데나(이탈리아)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ghee@stella-b.com, 사진 마세라티
엔초 페라리 상설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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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포 26B
우선 드는 궁금증 하나. 마세라티의 100주년 전시를 왜 엔초 페라리 뮤지엄에
로 포르테를 선보이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두 브랜드는 이제 ‘형제’가
서 할까. 페라리는 마세라티의 경쟁자 아니었나. 이를 위해 마세라티와 페라리
된 것이다.
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세라티가 없었다면 페라리는 자극을 받지 않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훌륭한 차들을 만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00년의 명성과 가치 따져 고르고 고른 21대
마세라티는 엔초 페라리가 파일럿으로 활동하던 1930년대에 이미 삼지
모데나시 기차역에 내려 왼쪽으로 500m 정도 걸어가니 2012년 개관한 노란
창 로고를 앞세워 또 다른 이탈리아 레이싱카 브랜드인 알파 로메오와 경쟁중
벽과 지붕의 엔초 페라리 뮤지엄이 나왔다. 이곳은 페라리를 창립한 엔초 페
이었다. 페라리가 그의 첫 자동차 815를 만들고 있을 때 마세라티는 인디애나
라리(1898~1988)의 생가이며 그의 아버지가 19세기 말까지 정비소로 사용했
폴리스 경기에서 우승할 정도로 이미 인정받은 스포츠카 브랜드였다. 2차 세
던 곳이다. 뮤지엄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엔초 페라리의 개인용품, 페라리의 희
계대전이 끝나고 마세라티와 페라리는 모데나(마세라티)와 마라넬로(페라리)
귀 모델과 알파 로메오의 상징적인 차들을 상설 전시해 놓았다.
라는 근접한 지역에 공장을 두고 각각 삼지창과 말 로고를 앞세워 자존심 싸
입장하자마자 2500 평방m의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마세라티의 역사적인
움을 시작했다. 판지오 같은 파일럿은 두 경쟁사의 차를 몰아 포뮬러 원에서
자동차 21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방문객들은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에서 아
함께 우승하기도 했었다.
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두 브랜드의 스포츠카 제작에 대한 경쟁이 시들해진 것은 1960년대다.
100년간 출시된 멋진 자동차들 중 21대만 고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페라리가 피아트 그룹의 도움을 받아 계속적으로 스포츠카 제작에 전념할 무
것이다. 전시 큐레이터이며 1937년부터 67년까지 마세라티 사장이었던 아돌
렵 마세라티는 주인이 바뀌면서 경주용 차 제작을 포기하고 일반 양산차로 방
포와 오메르 오르시(Adolfo & Omer Orsi) 부자의 3세손인 아돌포 오르시
향을 바꾼 뒤부터다. 마세라티는 93년 피아트 그룹에 인수된 뒤 2003년 콰트
주니어(Adolfo Orsi Jr)도 마찬가지였다.
엔초 페라리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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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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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4 스포트 자가토
“마세라티의 역사를 빛낸 많은 차들 중 몇 대만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어 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차들이 ‘꿈의 주차장’에 적합할지 상상해보
타일 센터는 100년 동안 이어온 영광에 강한 책임을 느끼며 이탈리안 스타일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바탕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았고 기술적, 미적 측면은 물론 역사적으로 브랜드에 가장 상징적인 모델을 골 랐습니다. 다행히도 자동차 수집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소유한 차들을
첫 경주용차 티포, 최고의 클래식카 V4
전시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대서양을 건너온 차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현
전시의 시작은 마세라티의 첫 경주차인 티포(Tipo) 26(1926년 제작)으로 시
재 유럽에서는 보기 힘든 모델들입니다.”
작한다. 아직도 엔진 시동을 거는 손잡이가 앞부분에 달려있는 티포 26은 손
큐레이터의 선정 기준이 어떻든 간에 전시장 방문자에게 중요한 것은
으로 두드려 차를 만들던 제작자들의 장인정신이 생생하게 배어있는 차다.
차의 스타일, 즉 마세라티에 열광하게 하는 디자인 아닐까. 우리는 마세라티
우측에는 전설의 V4 스포트(Sport)가 있었다. 우고 자가토(Ugo Zagato)
의 아름다운 곡선 뒤에 숨은 피닌파리나(Pininfarina), 투어링(Touring),
가 디자인한 V4 스포트는 레이싱 카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8기통 엔진
피에트로 프루아(Pietro Frua), 베르토네(Bertone), 기아(Ghia), 주지아로
두 개를 V자 형태로 배열해 16기통으로 만든 획기적인 모델이다. 비행기 제작
(Giugiaro), 비냘레(Vignale), 자가토(Zagato), 그리고 현재 마세라티의 디자
공장에서 일했던 자가토의 기술적 경험이 자동차 디자인에 적용되어 가볍지
인 센터인 FCA까지 자동차를 만들어온 디자이너들의 공헌을
만 볼드하고 아름다운 곡선의 자동차를 탄생시켰다. 포뮬러 원 파일럿이었 던 바코닌 보르자키니가 이 차를 몰아 1929년 크레모나 플라잉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강조 하듯 FCA 스타일 센터의 팀
10km 경기에서 평균시속 246km라는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
장 로렌조 라마쵸티는 전시
우며 우승했다. V4는 2014년 콩코르소 델레간자 디 빌라 데스 테에서 최고의 클래식 카로 선정됐다.
오픈식에서 “마세라티 스 1인승 레이스카4CLT-48
마세라티 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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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420M 엘도라도
A6 GC-53 A6 GC-53 베를리네타 피닌파리나 베를리네타 피닌파리나
이 두 ‘전설’을 지나 경사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33년부터 35년까지 제
조) 때문에 버드케이지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차는 200개 이상의
작된 마세라티 최초의 1인승 레이싱카 티포 8CM, 48년부터 3년동안 각종 레이
작은 튜브를 용접해 만든 구조물을 핸들 앞에 엽기적으로 보이게 삽입했다. 혁
스에서 23회나 우승한 1인승 레이스카 4CLT는 당장이라도 새 경기에 출전할
신적인 버드케이지 튜블러 섀시는 모노코크 섀시보다 가볍지만 훨씬 견고하고
준비를 마친 듯 보였다.
파워풀해 미국과 유럽의 차 애호가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그 뒤로 250F를 만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파일럿 후안 마누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마세라티의 실험작 MC12 코르사(Corsa) 주변은
엘 판지오가 몰아 54년과 57년 두 차례에 걸쳐 포뮬러 1 경기에서 승리한 스포 그 압도적인 디자인과 성능, 유명세 덕분에 방문객들로 항상 북적거렸다. 이 모 츠카이며 마세라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이싱카로 여겨지는 차다. 슬쩍 만져
델은 2004년 출시된 MC12의 후속 모델이다. 차체의 단단함은 유지하면서 무
보니 판지오의 숨소리와 경기장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게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본체는 카본파이버로, 서브 프레임은 알루미늄으로
전시장 중앙에 눈에 띄는 흰 색 차가 하나 있었다. 58년 몬자 500마일 대
만들어 기존 제품보다 380kg이 덜 나가게 제작됐다. 무게가 1150kg밖에 나가
회를 위해 만든 레이싱카 엘도라도다. 당시 유명했던 아이스크림회사 ‘라 엘도
지 않지만 V12기통, 5998cc 배기량의 엔진, 최대 766마력을 자랑한다. 밑부분
라도’가 스폰서한 차로 레이싱과 관련 없는 회사도 레이싱카를 지원할 수 있다
이 낮아 도로주행이 불가능했는데 튜닝을 바꿔 가능해졌다.
는 개념을 처음 선보였다. 뒷부분이 마치 토실토실한 아기 엉덩이같은 풍만한
로드카는 65년 제작돼 이탈리아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곡선의 엘도라도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색 몸체에 카우보이가 그려져
(1924~1996)가 소유했던 콰트로포르테를 비롯해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A6
있어 마치 만화에서 빠져나온 듯 했다.
1500(1947년), 그란투리스모의 첫 모델이 된 3500 GT(1957년), 피닌파리나가
티포 60 버드케이지(Tipo 60 Birdcage, 1959 년)는 기술적 측면에서 마
디자인한 일명 ‘마세리타’라 불렸던 마세라티의 첫 로드카 A6 1500 등이 보
세라티 역사상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다. 새장처럼 생긴 섀시(기계의 뼈대 구 였다.
버드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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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트로포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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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12 코르사
미래형 외관, 최고 컨셉트카 ‘부메랑’
떠들썩하게도 한 부메랑은 2014년 명품 브랜드 루이 비통의 가을 컬렉션을 위
그런데 이곳에 어릴적 동생이 갖고 놀던 미니카와 똑같이 생긴 차가 전시돼 있
한 광고사진에 사용됐다.
었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컨셉트카 부메랑(BOOMERANG·1972). 주
마세라티는 19개의 동영상을 제작해 30분마다 전시장 천정과 벽면에 상
지아로가 디자인한 이 차는 마치 한 선에서 납작한 사다리꼴로 서서히 뽑아낸
영하여 방문자들에게 회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동시에 지난 100 년간 제작
듯한 미래형의 독특한 외관 디자인과 핸들 중앙에 삽입된 계기판(대쉬보드)
된 차들, 카 레이스에서 얻은 영광, 그리고 숨은 제작자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때문에 수많은 수집가들이 몸살을 앓게 하는 차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튀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지하에는 마세라티 전성기의 레이싱 포스터를
나온 것 같이 생긴 이 차가 과연 움직일까 궁금해하며 차의 곳곳을 주의깊게
따로 모아 과거의 영광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했다.
관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세라티 100주년 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엔조 페라리 뮤지엄도 동시
이 부메랑 디자인은 후에도 주지아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마세라티
에 관람할 수 있다. 마라넬로의 페라리 뮤지엄까지 관람할 수 있는 표를 구입
의 메락(Merak), 로투스의 에스프리(Lotus Esprit), 들로리언(DeLorean)
하면 뮤지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 당
DMC-12 등을 탄생시켰다. 71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프로토 타입을 공개하고
일 이동이 가능하다.
72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완성된 컨셉트카로 등장한 부메랑은 로드카로 제작 됐지만 실제로는 전시용으로 일반인들에게 더 많이 공개됐다. 74년 바르셀로 나 모터쇼에서 한 수집가에게 팔린 후 90년 파리 바가텔 콩쿠르에서 약간의 변형된 모습으로 새 주인을 통해 선보였으며 2000년 몬트레이 클래식 자동차
부메랑
경주에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2013년 10월 프랑스 니스에서 포착돼 세상을
A6 1500 피닌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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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의 첫 대량생산 모델 3500GT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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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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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다시 화제 웹툰 ‘미생’의 작가 윤태호
기댈 곳 조차 없는 이 시대 청춘위해 ‘미생’ 그렸지요 웹툰 ‘미생’을 TV 드라마로 옮긴 tvN의 ‘미생’이 화제다. 원작 캐릭터와의 놀라운 싱크로율이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률도 3%를 돌파했다. 통속적 내용은 쫙 빼고 리얼리티와 극적 긴장감을 내세워 승승장구하고 있다. 웹툰 시절 인기를 체감한 윤태호(45) 작가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이같은 제 2의 인기 열풍이 싫지 않은 표정이다. 글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comixpark@gmail.com, 사진 위즈덤하우스·tvN·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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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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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과장
안영이
김대리
한석율
장백기
“어휴, 계속 인터뷰에요. 하루 종일 이야기했어요.”
중요한 건 장그래는 인생의 뼈대를 만들고 싶은 사
중에 ‘인천상륙작전’도 함께 작업했으니 주 3회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하
람이라는 거죠. 인생의 뼈대란 켜켜이 쌓여가는
마감한 셈이다. 쪽수로 따지면 ‘미생’이 15쪽 2회
고, 다른 매체 인터뷰를 하나 마치고 나오는 길이
거라고 생각해요. 먼지 하나하나가 쌓이는 과정을
로 30쪽. 거기에 ‘인천상륙작전’이 18쪽이니까 총
라고 했다. 5년간의 잡지 연재를 마치고 단행본 20
허투루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48쪽을 한 주에 작업했다.
권(초판 기준)으로 ‘야후’를 완간한 뒤 2005년 중
장그래가 그런 사람이다. 윤태호도 그런 사
“주 3회 마감은 정말 힘들었어요. 남극에 갈
앙일보에서 인터뷰한 기억이 떠올랐다. ‘야후’는
람이다. 1988년 서울로 상경해 고생하다 허영만 문
때는 9회 분을 미리 마감하고 갔어요.” 그냥 듣고
“잘못에 대한 비용을 치르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
하로 만화계에 입문한 사실은 유명하다. 90년 조
있을 수 없었다. “맙소사!” 그랬더니 윤 작가가 웃
노”를 그린 만화다. 작가가 20대 후반에 시작해 30
운학 화실로 자리를 옮긴 뒤 93년 『월간 점프』에
으며 말했다. “이건 인간의 힘으로 한 건 아닌 것
대 중반이 되어 끝낸 작품이다. ‘이끼’, ‘당신이 거
40쪽짜리 단편 ‘비상착륙’으로 데뷔하지만, 스토
같아요. 어떤 분이 와서 도와주신 것 같아요. 실제
기 있었다’로 이어지는 이 3부작은 공통적으로
리의 부족함을 느끼고 다시 조운학 화실로 돌아간
로 여러 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죠.”
‘분노’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미생’은 달랐다. 주인공 장그래는 어 디에도 기댈 곳 없는 청춘이었지만 전작의 주인공
다. 96년 성인용 만화잡지 『미스터 블루』에 ‘혼 자 자는 남편’을 연재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고 오래도록 켜켜이 쌓아와 오늘에 이르렀다.
들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일단은 제가 바뀌었죠. 저는 우리 아이들의 기댈 곳이 되고 싶은 욕망이
독자와 소통하는 웹툰이라 가능한 작업
있어요. 잘못 살고 있지 않아, 그 얘길 해주고 싶었
단행본 100만 부 판매, 드라마의 폭발적 인기 등으
고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죠.”
로 새삼스럽게 주목받는 것 같지만, ‘미생’은 2012
‘미생’을 설명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기댈 곳 이 되고 싶은 욕망은 아버지의 마음이다.
년부터 2013년까지를 대표하는 만화다. 2012년 1 월 20일 다음 만화속세상에 미생 착수를 시작으 로 2013년 7월 19일 145수로 연재를 마무리했다.
분노하지 않는 장그래, 아버지의 마음 터득
단행본은 2012년 9월 15일 1권을 시작으로 2013
끝끝내 프로기사가 되지 못한 ‘주변인’ 장그래. 아
년 10월 5일 마지막 9권이 나왔다. 2012년 오늘의
버지는 돌아가셨고, 바둑을 가르쳐준 선생님도 없
우리만화상, 대한민국콘텐츠대상, 2013년 대한민
다. 무역에 쓰이는 약어조차 모르는 그는 주변인으
국 국회대상 올해의 만화상까지 싹쓸이했다. 그런
로 직장에 발을 담근다. 전작들이었다면, 끝없이
데 2014년 11월 다시 ‘미생’이다. 소감을 물었다.
갈등하고 좌절하고, 분노했을 터였다. 하지만 장그
“작품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지점이 있어요.
래는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누구에
그런데 이 아이에게 생명력이 있다면 어디까지 자
게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에게
라려고 그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물었다.
짐작할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태호씨 작품에는 늘 아버지가 부재했었잖아
하고 그래요. 100만 부라는 크기가 주는 부담이 있
요? 하지만 ‘미생’에선 아버지를 느꼈어요. 원 인
어요. 말 한마디를 하는 것도 그렇고, 어디에 나가
터내셔널 직원들의 모습에서 우리 아버지, 또 다른
는 일도 그렇고. 어려워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이의 아버지를 보았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자리에
어요. 낯선 영역이 계속 올 텐데, 이 낯선 영역을 받
이제 내가 서 있다는 걸 깨달았죠. 장그래도 언젠
아들여 익숙하게 만들어야 할지, 계속 낯설게 놔
가 아버지가 될 테니, ‘미생’은 이 세상의 모든 아
둬야 할지 고민이에요. 중심을 어떻게 잡아야 할
버지에게 바치는 만화라고 불러도 되겠어요.”
지…. 워낙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윤 작가가 대답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미생’은 1년 7개월간 주 2회를 마감했다. 연재 ●
직장 생활을 해 보지 않았던 윤 작가는 현업
FOCUS
에 있는 수많은 직장인을 통해 ‘미생’을 완성했다.
웹툰에는 고무되는 지점이 많아요. 댓글, 그러니까
아주 작은 부분까지 의문점이 생기면 만나거나 문
독자반응이죠. 제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계속 확
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다.
인할 수 있거든요. 출판 연재는 마감 후 직접적 피
“그런데 그 분들을 만나 만화를 그리며 저도,
드백은 없으니까, 그냥 힘들면 며칠 쉬고 다시 마감
주인공도 같이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하는 거죠. 하지만 웹툰은 계속 독자의 관심 안에
아무래도 40대니까 이야기를 들으면 깨닫는 지점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긴장을 벗어나지 않고 유지
이 있었죠. 장그래는 어리지만 바둑을 뒀으니까 통
할 수 있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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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그래(임시완)
찰력이 있는 거고. 연재를 통해 저도, 주인공도 발 전된다는 느낌을 처음 경험하는 즐거운 작업이었
임시완이성민 곱창집 취중연기 놀라워
어요.”
장그래에서 시작한 윤 작가는 어느새 오 과장으로
웹툰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맞아요.
진화했다. ‘미생’은 당초 위즈덤 출판사에서 ‘바둑’ 이라는 아이템으로 기획된 만화였다. 이걸 윤 작가
오과장(이성민)
가 직장만화로 틀었다. 출판사가 흔쾌히 “작가 방 향에 100% 동의”해 주었다고 한다. ‘미생’ 이전에도 직장을 다룬 만화들이 있었 다. 직장인의 애환에서 나온 웃음을 보여주거나 아 니면 과장된 성공 스토리를 담아냈다. 김수정 작가 의 ‘날자! 고도리’나 홍윤표 작가의 ‘천하무적 홍 대리’가 전자이고, 80년대 만화방의 재벌극화가 후자다. 그런데 ‘미생’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안영이(강소라)
“예전에 선생님들이 했던 직장만화를 보면, 직 장인이 힘들다는 걸 전제로 해요. 힘들다는 건 너
‘곱창집 취중 연기’는 놀라웠어요. 강소라 씨는 만
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죠. 힘든 건 각각의 이유
화보다 원색적 느낌이 더해졌어요. 원작에서는 약
가 있는 거에요. 10명이 10명이다. 각각 고통의 포
간 애늙이같은 면도 있었는데. 변요한 씨는 만화의
인트가 조금씩 다르고, 또 공통의 지점이 있을 거
한석율 역을 맡았는데, 존재감이 더 강해졌어요.
라고 생각했어요. 공통 지점은 직장의 속성인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는데, 드라마
업무의 속성인가? 개별적으로 다른 고통은 개인
에서 완성시켜 준 것 같아요. 강하늘 씨의 장백기
의 개성인가? 이런 질문을 한 거죠.”
연기는 만화와 비교해 드라마에서 결이 하나 더 추
그는 직장에서 직원으로 초점을 좁혀나갔고,
가되었더라고요. 입사를 목표로 열심히 준비한 사
마침내 캐릭터에게 다가갔다. “누군가가 뭔가를
람의 당연한 질시랄까, 이런 요소가 더해져 인물이
간절히 원하지만, 그걸 이루기는 어렵다는 드라마
풍부해 졌어요.”
의 원칙을 발견한 거죠. 그렇게 장그래, 오과장이
우리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서 나의
나왔습니다.” 디테일을 통해 구체적인 ‘그’의 모습
모습, 내 가족의 모습을 발견했다. 두 번째 불고 있
으로 들어간 것이다.
는 ‘미생’ 신드롬은 “자기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
‘미생’은 만화로, 그리고 지금 새롭게 TV에서
는다면, 그것이 자아가 성취되는 것”이라는 작가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드라마 ‘미
의 생각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생’은 무척 만족스럽죠. 임시완 씨와 이성민 씨의
‘미생’ 2부는 2015년 초에 연재를 시작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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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클리프 아펠의 ‘홍콩 보석 스쿨’ 르포
명인 솜씨 따라했더니 세상에 하나뿐인 ‘DIY 주얼리’ 탄생
‘예술사’ 관련 수업은 이론 중심이지만 간단한 실습이 이어진다. 주얼리의 영감과 상징에 대한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실물들을 직접 카테고리에 따라 분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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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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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야 하는 술이에요.” 와인 애호가들을 만나면 너나없이 하는 얘기다. 포도 품종은 물
해 똑같이 꾸몄기 때문이었다. 실습하는 학생들이
론이고 산지의 토양, 기후, 숙성방식 등 갖가지 변수를 깨쳐야만 와인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입는 하얀 가운, 리셉션 한쪽을 차지한 서가의 책
때문이란다. 그만큼 와인은 알고 마실수록 그 가치가 달라진다.
들 역시 파리 본교의 것 그대로였다. 하드웨어가 이
프랑스 하이 주얼리·시계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도 똑 같은 생각을 했다. 다만 와인이 아니
정도이니 교수진이 파리에서 날아오는 건 크게 놀
라 보석이다. 보석의 진가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이 아니라는 것. 하여 그 예술적 깊이와
랄 일도 아니다. 실제 브랜드 공방에서 일하는 보
감흥을 알리기 위해 2012년 ‘레꼴(L’Ecole·학교)’을 열었다. 주얼리 전문가가 아닌 대중을
석 장인 외에도 미술 고고학자, 보석학자, 시계 역
대상으로 하고, 보석에 관한 이론과 실제를 모두 가르치는 커리큘럼을 갖췄다.
사가 등으로 구성된 교수진 13명은 20여 년 이상
호응은 놀라웠다. 불과 2년 만에 학생 수는 33개 나라에서 온 2600여 명에 이르렀다. 이쯤
한 분야에서 몸담은 전문가라는 게 학교 측 설명
되자 브랜드 측은 아예 ‘유목 학교’를 기획하기로 마음 먹었다. 2주간 파리의 교수진과 시설
이다.
이 해마다 다른 나라로 옮겨 진행되는 특별한 수업이다. 지난해 도쿄에 이어 올 10월에는 홍
수업은 크게 예술사·원석의 세계·장인 정신
콩에서 학생들을 맞이했다. 개교 전인 지난 6월 설명회를 전후로 모든 프로그램이 마감될 정
의 세 가지 카테고리 아래 카테고리 별로 세부 과
도로 관심을 모았는데, 지난달 16일 첫 수업이 진행됐다. 그 현장에 중앙SUNDAY S매거진 이 다녀왔다.
목이 정해졌다. 예술사의 경우 ‘반클리프 아펠의 세계로 입문하기’ ‘스토리와 영감’ ‘부적 주얼리
홍콩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반클리프 아펠
이야기’ 등으로 세분화됐다. 이렇게 모두 10개 과 목이 개설돼 2주간 69번의 수업이 진행됐다. 파리 레꼴에 비해 과목 수는 두 개 줄었다. ‘스토리와 영감’이 주얼리의 원산지 환경과 천 재성을 발휘했던 주얼러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시 간이라면, ‘다이아몬드 첫 번째 단계, 역사의 시작’ (‘원석의 세계’ 카테고리) 수업은 고대부터 지금까 지 세대를 아우르는 다이아몬드 관련 전설부터 시 작해 어떻게 프로포즈의 상징이 됐나 등을 배우 는 시간. 또 ‘탐험과 제작’(‘장인 정신’ 카테고리)
홍콩 소호의 PMQ 건물에 문을 연 레꼴 반클리프 아펠. 파리 본교의 가구와 도구들을 모두 공수해 왔다.
에서는 장인의 지도 하에 스케치, 컬러링, 납땜을 거쳐 주얼리 모형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반클리
2주간 문 여는 노마드 보석 학교
프 아펠의 실제 제작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
학교가 세워진 곳은 홍콩 소호에 있는 ‘PMQ’.
에 특히 인기가 높다.
1889년 최초의 공립학교로 세워졌던 건물은 2차 대전 이후엔 결혼한 경찰들의 숙소로, 그리고 이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주얼리를 만들다
제는 1000여 명 신진 예술가들의 둥지로 탈바꿈
보석에 문외한이어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했다. “과거의 흔적을 지니면서도 미래를 지향하
“일반인들이 보석의 가치를 발견하는 안목을 기르
는 공간의 의미가 레꼴이 지향하는 부분과 같다”
는 기회”라는 레꼴의 성격을 알고서도 은근 걱정
는 게 이 곳을 터로 잡은 이유다.
이 되는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안목’을 길러야 한
건물 2층에 자리한 학교에 들어섰을 때 단지
다면 실습보다는 이론이 먼저일 터. ‘탈리스만(부
2주 수업을 위해 임시로 만든 공간이라는 사실을
적) 주얼리 이야기’라는 수업에 들어갔다. 수호신
잠시 잊었다. 리셉션의 쇼파·테이블 등 가구는 물
같은 역할을 하는 탈리스만 주얼리에 대해 심도 깊
론이고 수업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파리에서 공수
은 이해를 돕는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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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정신’ 관련 수업에선 실제 브랜드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공방 도구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스케치부터 컬러링, 모형 제작까지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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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이 모인 작은 교실. 예술 역사학자인 남녀
싶을 때쯤, 자신만의 탈리스만 주얼리를 디자인해
교수가 번갈아 진행하는 수업은 영화 영상과 함께
보는 시간이 시작됐다. 종이와 색연필을 이용해 배
시작됐다. 고전 영화부터 최신 할리우드 작품까지,
운 것을 ‘복습’해 보는 시간이었다. 완성된 뒤에는
주요 순간마다 보석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이어
각자 만든 디자인의 의미를 설명했다. 후반부로 넘
졌다. 화면이 꺼지자 여교수인 길스렝 오크레만이
어가면서 해골과 십자가, 손바닥처럼 각 문화에서
질문을 던졌다. “보석이 대체 무엇일까요? 무엇을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기호와 상징을 살펴보고, 세
상징하는 걸까요?”
계의 주요 보석 브랜드·수집가에 대한 소개로 이
그는 사랑·행복·성공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
어졌다. 잘 버텨낼까 싶던 4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
을 이야기했다. 동시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
렸다. 교실 문을 나서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걸이·
은 그 상징을 대자연에서 찾아나섰다고 했다. “모
귀고리·브로치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
란은 중국에서 새로운 탄생이나 결혼을 의미합니
았다.
다, 벚꽃은 일본에서 기쁨의 표현이죠. 네잎 클로버
‘원석의 세계’ 관련 수업에선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탄생의 기원과 의미,
가 행운을 상징한다는 건 다들 아실테고…. 잠자
아무나 따라할 수 없기에 자신있게 기술 공개
리는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나타내죠. 박
레꼴 반클리프 아펠은 하이주얼리 메종 중 유일하
쥐는 어떨까요? 역설적이지만 다섯 마리 박쥐는
게 운영되는 ‘학교’다. 홍콩 개교를 앞두고 지난 6
행복이 충만한 상태를 상징한답니다.” 이어 전갈·
월 열린 설명회에서 CEO인 니콜라 보스도 이 점
무당나비·거북·개구리·코끼리가 하나씩 열거됐는
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수’ 혹은 ‘교육’이라는
데, 그때마다 방대한 영상자료가 스크린을 메웠다.
레꼴의 의미를 덧붙였다. 언뜻 들었을 때 이해가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수업은 흐름을 탔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제품을 파는 브랜드 입장에
다. 자연에 이어 인간이 만들어 낸 수호의 상징물
서 ‘영업 비밀’을 공개하는 게 과연 이득일까 싶어
이 소개됐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말굽, 충성
서였다. 이 궁금증은 레꼴 반클리프 아펠의 마리
을 의미하는 손바닥, 영원함의 수레바퀴 등이 예
발라네 들롬 대표의 긴 설명으로 해소됐다.
로 등장했다. 특히 고대 수마니안 글자나 아라비아
“우리의 기술은 레시피가 아닙니다. 브랜드에
숫자는 대표적인 ‘상상적 역량’에 속했다. “5는 완
서 미스테리 세팅(접지가 보이지 않게 원석을 세팅
벽함을 뜻해요. 다섯 손가락·발가락뿐 아니라 인
하는 기술)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9명의 장인이죠.
간의 몸 자체가 다섯 부분이잖아요.”
1933년 특허를 받은 기술인데 이걸 아무리 설명한
남자 교수인 이네지타 가이가 바통을 이어 받
들 쉽게 따라할 수 없을 거예요. 그것이 얼마나 어
았다. 상징물에 이어 ‘돌’의 역사로 운을 뗐다. “하
려운지, 거의 불가능한지 알게 될 뿐이죠. 전수하
늘과 땅을 바라보던 인간이 다음으로 땅 속을 보
는 건 테크닉이 아니라 보석의 의미와 문화라고 보
게 됐죠. 그것이 바로 원석입니다.” 익히 알고 있던
는 게 맞을 겁니다.”
탄생석에서 시작된 돌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그는 “보석은 쇼윈도 너머가 아닌 역사의 일
전개됐다. 인간이 돌을 깎고 새긴다는 행위엔 심오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도 보탰다. 오랜
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정교하면 할수록 인
세월을 함께 하며 개인의, 가족의, 시대의 일부분
간이 스스로 지닌 힘 이상의 것을 욕망함을 나타
으로 흘러간다는 얘기였다. “지금의 주얼리 세계
내죠. 비취 반지 안에 이름을 써 넣는 것만으로도
는 호사로움만 강조하면서 너무 협소해졌어요. 더
강력하다는 상징이 됩니다.”
큰 보석의 세계가 열리려면 이 의미를 놓쳐선 안
감정법 등을 배울 수 있다.
신화로 이야기가 흐르면서 조금 지루해진다 S
돼요.”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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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 매니저 김용주
명함에 적힌 직함이 ‘디자인 매니저’다. 디자이너도 아니고 디자인 매니저는 뭘까. “큐
그의 손길 닿은 전시장 미술품은 마음에 쏙쏙 꽂힌다
레이터가 작가를 선정하고 작품 고르는 일을 한다면 저는 그 작품이 관람객의 마음에 와닿도록 전시 공간을 꾸미는 일을 합니다. 작가 선생님, 큐레이터들과 수십 차례가 넘 는 회의를 통해 컨셉트를 잡아나가죠.” 김용주(34)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 매니저의 목소리가 낭랑하다. 국내 대학과 대학원 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미국 보스턴 피바디 에섹스 뮤지엄에 서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녀는 2010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 ‘생소한 일’을 시작했다. 과천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김춘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
INTERVIEW
23
독일 ‘왕중왕’ 디자인상 등 6개 연속 수상
지금까지 오후 10시 퇴근이 정례화됐을 정도로 일 에 공을 들인 덕분에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결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관이 개관 하면서 그의 일도 덩달아 확 늘어났다. 치열한 노력은 달콤한 보상으로 이어졌다. 2012년 2월 선보인 ‘한국의 단색화’ 전시가 세계 디자인계 3대 상으로 꼽히는 레드닷(Red dot) 디 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올해의 작가상 2012’(2012년 8월) 전시 공간은 역 시 3대 디자인 상으로 꼽히는 아이에프(iF) 디자인 어워드 2013에서,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 브’(2013년 2월)가 다시 레드닷 2013에서 각각 호 명됐다. 전시 공간 디자인으로는 모두 국내 최초의 성과들이다. 그런데 최근 또다시 낭보가 들려왔다. 조각 가 최만린 선생의 삶을 투영한 ‘최만린전’(2014 년 4월)이 일본의 ‘Good Design Award Japan 2014’에서 국내 최초로 전시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본상을 받게 된 것. 게다가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가 ‘독일 디 자인 어워드(German Design Council’s International Premier Prize 2015)’에서 수상 자로 뽑히는 쾌거를 올렸다. 독일 연방 경제기술부 가 후원하는 독일 디자인 어워드는 1953년 시작됐 는데,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 수상 작품들이 경 쟁하는 일종의 ‘왕중왕’전이다. 독일 디자인 협의 회(The German Design Council)의 추천을 받 은 작품만 수상 후보가 된다. ‘올해의 작가상 2012’ 가 지난해 독일 디자인 어워드를 받은 바 있다. 이 로써 전시 디자인 분야에서 3년간 6개 부문 수상 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이다. “전시 공간 디자인이라는 게 전시가 끝나면 없 어지잖아요. 들인 공이 아깝기도 하고 의미를 기 록해둘 만 하다 싶어서 자료를 만든 뒤 무작정 보 내봤지요. 심사위원들도 전시 공간 디자인으로 응 모한 경우가 많지 않아 매우 흥미로워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회화(한국의 단색화)·조각(최만린전)·설 치(올해의 작가상)·건축(정기용전)의 네 가지 분야 로 모두 상을 받게 되어 더욱 뜻깊습니다.”
관객 눈높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 들도록
그의 공간 구성의 가장 큰 특징은 관람객의 몰입을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 건축가 김종성’전. 도면을 서랍처럼 꺼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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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하는 데 있다. ‘최만린전’의 경우 작은 조각들
INTERVIEW
은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도록 설치대를 제작해 그
자료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그의 생각과 삶에 대
위에 올려놓았다. 또 가운데 가림막에는 커다란
한 열정, 소통에 대한 의지를 느껴볼 수 있도록 기
창을 내 관람객들이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끼
획했다”며 “관람자를 이성적 감상의 주체로만 간
도록 했다. “조각 전시의 경우 대부분 비슷한 높이
주해 이론 중심의 동선을 꾸미지 않도록 조심했다”
의 좌대 위에 작품을 올려놓는 일관된 형식을 띄
고 설명했다. 레드닷 심사위원회는 “관객들에게 정
는 경우가 많죠. 저는 최만린 조각전에서 ‘틈’ ‘창’
기용이 위대한 건축가임을 보여주기보다 고인이
‘담’의 요소를 집어넣어 관람객들이 ‘전환’ ‘사이’
열심히 살았던 한 인간임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경계’ ‘펼쳐짐’이라는 다채로운 공간적 상황 속에
디자인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서 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정기용전의 경우 2011년 타계한 건축가 정기
작은 차이로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 매니저의 손길
용이 남긴 2000여 장의 기록물을 선별해 전시장
김 매니저가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려 심사위원들
을 만들었다. “길이란 세대간의 관계가 형성되는
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전시를 관람하지 못한 사람
통로”라는 고인의 지론을 화두로 삼았다. 정기용
들이 제대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사진이 주는 평
은 “어떤 길목에서 할아버지가 바라보던 풍경을
면에는 한계가 있다.
똑같이 아버지가 바라보았고, 나 또한 같은 풍경을
그런데 마침 그가 새로 꾸민 전시가 국립현대
바라 볼 수 있는 ‘길’은 곧 역사이며 ‘풍경’이다”라
미술관 과천관에서 시작됐다. ‘테크놀로지와 예술
고 말했다. 김 매니저는 “관람객이 건축가가 남긴
의 조화: 건축가 김종성’(9월 23일~2015년 4월 26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 (2013). 벽면에 창을 내고 테이블엔 서랍을 여럿 달아 입체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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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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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린전’(2014). 공간 구분과 조각들의 배치가 흥미롭다.
일)이다. 올해 79세인 김 건축가는 현대 건축의 거
느낌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벽에 붙인 스탠드도 건
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힐
축 사무소 느낌을 담았죠. 이 퐁피두 센터 설계 지
튼호텔, 서린동 SK사옥, 서울대박물관, 서울역사
원작은 김 선생님이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에요.”
박물관 등을 통해 그의 모더니즘 건축관을 이 땅 에 구현해 왔다.
그가 설계한 고층 빌딩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 는 컬럼을 수직으로 만들고 벽면에서 도면을 서랍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선 남산에서 서울 시내
처럼 꺼내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벽면에는 도면
북쪽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는 반투명 사진이 코
트레이싱 지를 나란히 걸어놓았는데 나풀거리지
르텐(부식 철) 틀 속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김 매니
않고 얌전히 매달려 있다. “관람객 눈길을 끌기 위
저는 “쇠와 유리가 중심이 되는 고층 빌딩을 많이
해 벽체를 기울여 만들었어요. 도면 끝에는 자석
지은 건축가의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했다”며
을 붙여 놓아 자력으로 물결치도록 만들었죠.”
“뒤로 자연 채광이 되어 날씨에 따라 다른 화면이
결국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작은 차이가 큰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 그의 일
차이를 만든다. 그리고 작은 차이는 정성과 열정에
리노이 공대 건축학과 시절의 일상을 재현한 공간
서 시작된다. 이 전시 공간 역시 그것을 잘 보여주
에서 그의 족적을 느끼고 다시 왼쪽으로 오면 지금
고 있었다.
까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주요 대회에서 연속 수상했으니 상금도 많이
“지금은 컴퓨터로 작업하지만 옛날에는 다 손
받았겠다”고 슬쩍 눙쳤다. 그랬더니 미소와 함께
으로 그렸잖아요. 선 하나에도 얼마나 정성이 들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상금은 없고요, 오히려 수
갔는지 보여주기 위해 디스플레이 책상도 제도판
상 로고를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내야 한대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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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GALLERY
28 20
혼이 담긴 간결함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아티스트 중 하나인 도널드 저 드(1928~1994)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미니멀리즘’이 라는 간단한 말로 설명하는 것에 반발했다. 그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특정한 사물(specific object)’이라는 용어는 명확하고 강력한 표현을 생성하 는 간결한 오브제를 의미한다. 표상은 간결하지만 수많은 고민과 기법이 응축됐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에는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에 이르는 입체 작 품 14점을 모았다. 전시를 위해 내한한 저드의 아들은 “아 버지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이상해’라는 말은 쓰지 못하 게 하셨다. 대신 ‘거기 배울 게 있다’고 하셨다. 배움에 대 한 진지한 열정이 있는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국제갤러리
‘untitled’(1992), cor-ten steel and green, yellow, purple, ivory, orange, and black acrylic sheets, 50 x 100 x 50cm (each) Art ©Judd Foundation. All right reserved. Image provided by Judd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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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전 10월 30일~11월 30일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문의 02-735-8449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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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8> 검색과 사색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를 아십니까 그 사이에 새 인문학이
에볼라 바이러스 완치 간호사를 포
정말 놀라웠다. 어디서도 보고
옹하는 오바마 대통령 사진이 이번
들을 수 없었던 얘기가 노학자의 입
주 초 신문 1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에서 술술 흘러나온다. 처음 만나
외신은 그녀가 어떤 치료를 통해 음
들었던 3D 프린터로 집짓는 이야기
성 판정을 받게 됐는지는 아직 불분
가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뉴스로 점
명하다고 전한다. 이 교수의 책상 위
프한다. 이게 바로 지(知)의 최전선
엔 “10월 1일부터 60일 이내에 치료 방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인류
이고 지식의 하이퍼 텍스트다. 첨단 무기가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는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는 앤서니 밴버리 UN 에볼라 긴
“서울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간 책이 재레
급 대책 기구 수장의 말이 실린 기사가 프린트돼 있다. 문득 이 교
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라지. 그런데 여기서 균은 그냥 세균
수가 물었다.
(germ)이야. 100년 전 얘기를 읽고 있는 거지. 21세기의 전선은 세
“정 부장,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를 알아요?”
균이 아닌 바이러스야. 그런데 세균과 바이러스도 구별 못하는 사
“네? 글쎄요…. 전 문과라서.”
람들이 낡은 책을 읽고 있는 것이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를 거야. 세균은 세포핵이 있는
“이런 얘기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 내십니까?”
생명체고 바이러스는 유전자 정보만 있는 비생명체지. 세포 속으
“관심과 관찰과 관계지. 인문학자로서 나의 최전선은 말이고
로 들어가 기생하면서 비로소 증식을 해. 바이러스는 생명과 물질
개념이야. 말이 나오면 언어의 전선이 형성되거든. 그 말에 관심을
사이에서 존재하는 세계야. 21세기는 이것과 저것의 접속점에서
갖고 검색을 하다 보면 수억 개의 정보 중에서 유의미한 것들을 고
정쟁이 벌어지고 있어. 지의 최전선도 바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
를 수 있지. 그럼 그것을 과학적·역사적으로 면밀히 관찰하고 내
지. 자, 그 전선을 보여줄게. 미사일도 방호복도 필요 없어. 내 고양
분야와의 관계를 설정한 뒤 개념적으로 정리하지. 아시안 게임을
이와 쥐만 있으면 돼.” 과연 노 교수의 마우스(쥐)가 “클릭 클릭”하
생각하다가 아시아란 말의 어원을 찾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고 울었다.
학』7권 7장에 나오는 유럽과 아시아의 비교론까지 꼬리에 꼬리를
동영상이 요란한 배경음악과 함께 모니터에 가득 찬다. 그리
물고 올라가는 식이야. 인류학자가 화석을 뒤지듯.”
고는 다시 드롭박스에서 ‘에버노트’ 프로그램을 열고 자료 하나를
그의 컴퓨터 화면을 슬쩍 보았다. 에버 노트에 ‘10463’이라는
쓱쓱 프린트해 건네준다. ‘오토데스크사의 유전학 엔지니어가 3D
숫자가 보였다. 인터넷을 서핑하며 관심을 갖고 정리해둔 파일 개
프린터로 바이러스를 제작, 곧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제목이 보인
수다.
다. 10월 17일자 뉴스다. 동영상에서는 뉴스의 주인공 앤드류 헤셀 (사진)이 지난 5월 TEDx에서 강연하는 모습이 흘러나온다.
“책으로는 아직 안 나온 것들이야. 살아있는 정보들이지. 책 이나 도서관에 있는 것은 이미 누군가 생각한 것들, 즉 쏘우트
“와, 이건 뭔가요?”
(thought)야. 과거분사지. 하지만 나는 지금 검색을 통해 씽킹
“3D 프린터로 바이러스를 찍어낸다는 거잖아. 제약회사가 아
(thinking)하고 있어. 최전선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분사야. 국
닌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바이러스 하나
경 없이 창궐하는 에볼라와 싸우기 위해서는 국경 없는 의사회뿐
를 만드는데 지금은 1000달러 정도지만 머지않아 1달러 수준으로
만 아니라 국경 없는 지식인단도 필요한 때지. 쏘우트가 아니라 씽
떨어질 것을 기대한다지. 그런데 암세포뿐이겠어? DNA를 조작해
킹하는. 그런데 우물 안 개구리들은 우물 안을 비추는 달빛만 바
서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바이러스를 만든다고 생각해 봐.”
라보고 있으니….” 글 정형모 기자, 사진 www.wired.com
S
REVIEW & PREVIEW
30
요요마와 실크로드 앙상블, 28일 예술의전당
다음 세 문구를 소리 내 읽어보자. ‘꼴뀌뽀크로를
연주자와 악기 국적은 달라도 음악은 통한다
위한 하라위’ ‘친차의 차랑고’ ‘까참빠’. 왠지 낯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요요마
선 곳에 와 있는 기분이 된다. 나와 상관없을 것 같
와 실크로드 앙상블’ 무대가 바로 이랬다. 프랭크
은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의 작품은 이날 연주곡 중 하나였다.
의 합성어다. 이쯤 되면 머리가 아프다.
첫 말은 잉카 문명권의 언어다. 꼴뀌뽀크로는
‘실크로드 앙상블’은 1998년 첼리스트 요요마
은(銀)으로 된 우물이란 뜻이며, 하라위는 플루트
가 만든 단체. 20개국 음악가를 모았다. 각 나라의
비슷한 전통 악기다. 둘째 문구는 페루에서 왔다.
음악ㆍ악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합해 새로운 작
친차는 도시 이름, 차랑고는 이 지역의 기타류 악
품을 내놓고 연주한다. 이날 공연에 참여한 연주
기다. 마지막으로 까참빠는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
자들의 국적만 따져도 한국ㆍ캐나다ㆍ미국ㆍ러시
이 전투를 위해 추던 춤이다. 작곡가인 가브리엘라
아ㆍ싱가포르ㆍ인도ㆍ일본ㆍ중국 등이다. 요요마는
레나 프랭크는 위의 세 문구를 제목으로 곡을 만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이다. 이 정보를 모
들었다. 전체 제목은 ‘안치노의 리듬’이다. 여기서
아 ‘요요마와 실크로드’의 무대를 상상해보자. 각
또 한 번 어려움을 만난다. ‘안치노(Anchnos)’는
나라의 흥겨운 전통 음악이 흐르는 이국적 무대?
또 뭔가. 안데스 주민(Andino)과 중국인(Chino)
생전에 가보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여행 같은 음
2014 ‘스웨덴영화제’ 11월 5~11일(서울), 7~13일(부산)
스웨덴 영화제가 올해로 3회를 맞았다. 스웨덴 영화
아트하우스 모모(서울), 영화의전당(부산) 02-747-7782
가 아직 낯설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많지만 이미 ‘렛
생소함 속의 묵직한 울림
미 인’ ‘밀레니엄 3부작’ 등의 작품이 ‘스칸디 시네
스웨덴 영화에 푹 빠지는 기쁨
마 파워’를 보여준 바 있다. 또 올 여름 흥행작 중 하나 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함께 9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로이 안데르
손 감독의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 역시 스웨덴 영화의 저력을 입증하는 작품들이었다. 올 영화제에서는 모두 10편을 볼 수 있다. 감동적인 부녀의 실화를 소재로 미카엘 페르스브란트가 열연한 ‘노바 디 오운즈 미’가 개막작으로 상영되는 가운데, 60대가 되어도 젊은 시절의 향락적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어른들 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아발론’, 스웨덴 최대 범죄 실화를 소재로 한 ‘비하인드 블루 스카이즈’ 등 최신 화제작 이 마련돼 있다. 모든 상영작 무료.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백두대간
●
REVIEW & PREVIEW
31
그래서 이 무대는 각 나라 연주자들이 모인 화합의 자리 이상이었다. 요요마는 하버드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부시맨 연구로 유명한 어빈 드 보어 교수의 제자다. 요요마는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음악 을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곧 이어 “한 국 전쟁을 예로 들어보자”고 했다. 이 전쟁을 겪지 않았어도 처참함과 비인간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 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백제와 일본의 칼 모양을 비교해봤다고 도 했다. 이날 연주된 모든 곡은 현대음악이다. 많 은 곡이 조성을 벗어나 있었고, 음악의 진행은 서 양 고전 음악에 익숙한 청중에게는 낯설었다. 또 악? 여행지에서 만나는 힐링 같은 경험?
등이 연이어 등장했다.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를 제외하면 모르는 악기
예상과 다르다. 이 공연은 맨 처음 제시한 세
요요마는 두 곡이 끝난 후 마이크를 잡고 곡
문구처럼 쉽지 않았다. 청중은 음악과 악기에 대한
설명을 했다. 처음 보는 악기와 낯선 음악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었다. 첫 곡 ‘실크로드
궁금증은 이때 풀렸다. 새로운 문화를 궁금해 하
하지만 공연이 끝날 무렵엔 자신감이 생겼다.
모음곡’은 요요마의 조용한 첼로 소리로 시작했다.
고, 답을 얻으면서 그 문화에 가까워지는 과정의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들은 어떤 음조로 노래했는
터키의 민속 음악 선율이다. 이를 곧 중국의 비파
반복이었다. 연주자들은 종종 다른 나라의 선율
지, 라오족의 전통 관악기의 음색은 얼마나 투명한
가 받았다. 중국에서 3세기부터 썼던 비파는 빠르
을 해석해야 했다. 장구 연주자인 김동원은 뱃노래
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네이버ㆍ유튜브에서는 찾
고 기교적인 음악을 소화했고, 소리에 힘이 있었다.
선율을 가지고 실크로드 앙상블 전원이 연주할 수
을 수 없는 내용이다.
이어 기다란 대나무 통을 세로로 부는 악기가 등
있는 곡을 만들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이 선율
“내 가장 큰 관심은 음악보다도 사람”이라고
장했다. 한국의 대금이나 퉁소 비슷했지만 더 크
을 각 나라 악기가 연주했다. 같은 멜로디인데 연
했던 인류학도 요요마의 ‘연구결과 발표회’인 셈
고 투박했다. 일본의 사쿠하치라는 악기다. 이처럼
주자마다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랐다. 저들에게는
이다. 따라서 음악회인데 공부한 것 같은 기분이
악기와 음악에 대한 궁금증은 공연 내내 일어났다.
한국의 음악과 언어가 어떻게 들릴 것인가. 서로의
들었더라도 꼭 손해 본 건 아니다.
중동에서 주로 연주되는 포도주잔 모양의 북인 다
음악을 바꿔보는 연주가 거울처럼 각 나라 문화를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르부카,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북인 프레임 드럼
비췄다.
사진 크레디아
정경자: 우연의 뿌리, 10월 30일~12월 24일
“우연히 만난 모든 것은 결국 필연입니다. 나에게 다가
서울 서소문동 일우스페이스, 02-753-6502
온 우연의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감수성
사진작가 정경자(40)는 일상에서 섬세한 감수성을
사각 프레임에 투영해봤더니
길어올려 정사각형 프레임에 붓는다. 주변의 평범한 것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찾아내 감정을 이입하 는 것이다.
제 5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 작가’로 선정된 그는 이번 전시에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 유학 시절을 잔잔하게 풀어낸 ‘Story within a Story’, 작가 자신의 삶과 죽음에의 경험을 녹인 ‘Speaking of Now’, 그리고 폐허의 사물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순환고리를 다룬 ‘Language of Time’의 세 가지 시리즈 50여 점의 작품으 로 전시장을 구성했다. 슬라이드 영상쇼에서는 TV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발췌한 텍스트 문장이 사진과 맞물리며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일우스페이스
S
투성이었다. 음악이 아름답거나 듣기 편해서 즐길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BOOK
32
책 청동정원 저자: 최영미 출판사: 은행나무 가격: 1만3000원
‘서른, 잔치는 끝났 다’의 시인이 1980 년대 서울대 학생 운동권의 속살을
저자: 오영욱 출판사: 페이퍼스토리 가격: 2만5000원
소설로 그려냈다. 88년 초고를 썼던 만큼 ‘26년 만에 마치는 숙제’라고 털어놓는다. 제목 ‘청동정원’은 후배로부터 선물 받은 청동 벽걸이 장식에서 비롯된 영감이자 쇠
그저 키워드만 넘겨 봐도 좋겠지만 원래 목적은
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푸른 나무 옆에 서
는 책인 듯 한데 들춰 보면 지도 뭉치다. 그런데다 내
지도를 따라가는 여행 아닌가. 오른쪽 페이지를 보자.
있던 시대에 대한 은유다. 작가는 “소설 속
용은 잠언 문구들로 가득하다. 철학서라 해야할지 문
여기엔 키워드와 짝맞춘 지도가 등장한다. 저자가 만
학에세이라 해야할지 어정쩡하다.
든 가상의 대륙 ‘니히르반(Nihirbahn·Nihilism+Nirb
요즘은 책도 썸을 타는 것일까. 페이지를 넘기는 형태
ana+Bahn)’의 일부다. 키워드
이 요상한 ‘출판물’을 낸 자는 ‘오기사’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 오영욱씨다.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 나로 떠나다』 『나한테 미안해 서 비행기를 탔다』등 워낙 여 행 에세이를 많이 펴낸지라 어
『인생의 지도』
정답 없는 우리 삶의 내비게이션
등장인물과 사건은 허구”라고 말한다.
추사와 초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지도 속에
편역: 박동춘 출판사: 이른아침
는 ‘여섯 가지 맛이 나는 호수’
가격: 1만8000원
가 펼쳐지고 ‘직관의 강물’이 흐른다.
추사 김정희가 평 생 지기였던 초의
독자는 선택은 이제부터
선사(草衣禪師)에
다. 지도에 나온 ‘경험의 삼거
느 기사에선 ‘여행 기자’라는
리’라는 갈림길에서 ‘법’·’희
타이틀이 붙기도 한 그인데, 이
망’·’버릇’ 중 하나의 길을 택
게 보낸 편지들을 소개하고 해설했다. 초의선사는 대흥사 13 대 종사로 우리나라 다도의 정립자이기도
할 차례다.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의 의미가 다음 행
한 인물. 책에 실린 70여 편의 편지들은 둘
정에 이정표가 될 ‘지도’를 만든 것이다. 가로 2.9m,
로를 정하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택할지는 전
이 나눈 배려와 인간애, 차를 통해 다져진
세로 2.19m짜리 지도를 그리는데만 6개월을 매달렸
적으로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듯 다
우정을 담아냈다. 추사의 문학적 감수성과
다고 한다.
음 키워드를 찾아 책을 뒤적이다 보면 저자의 의도를
번엔 한걸음을 훌쩍 앞으로 내딛었다. 인생이라는 여
하여 이 책의 독법은 좀 남다르다. 일단 매 왼쪽
알게 된다. “선택을 위한 실마리나 도움은 거의 없다.
페이지에는 우리가 살며 마주할 수밖에 없는 희로애
지도를 보며, 방향 감각을 희미하게 간직한 채 우연들
락의 관문들이 키워드로 등장한다. 탄생을 시작으로
이 난무하는 길을 무작정 떠나보는 것이다. (중략) 여
후회·증오·지혜 ·성찰 같은 단어가 모두 108개다. 그
러 페이지를 거쳐가며 삶의 인자들에 대해 나름대로
리고 그 키워드는 저자의 시각으로 새롭게 풀이된다.
정의를 내려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전부다.”
가령 ‘신뢰의 기술은 가급적 말을 덜 하고 많이 듣는
책 중간 중간엔 저자가 생각하는 인생의 종착지-
것’이라거나 ‘내 삶만이 내 신념을 증명할 수 있다’는
예술·종교·사랑·지혜·영혼-가 있다. 하지만 거기 도달
식이다.
한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
내면 생활 역시 편지 곳곳에 묘사돼 있다.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01 비밀의 정원 02 여자 없는 남자들
자료=교보문고
작가·출판사 조해너 배스포드 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03 창문넘어도망친100세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것이 내가 생각하는 목적지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
04 미생 1: 착수
윤태호 위즈덤하우스
말은 기왕이면 들키지 않도록 치밀하게 하는 것’이고
다. 게다가 처음에 가지 않은 길을 다시 돌아가 볼 여
05 21세기 자본(양장본)
토마 피케티 글항아리
‘남녀관계는 이해가 아닌 암기로 형성되는 것’이란다.
지도 충분하다. 어찌 됐든 중요한 건 마지막으로 얻게
‘경험’에 대한 그의 사유도 이러하다. “’내가 많이 해봐
되는 경로가 ‘마이웨이’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름
08 어떤 하루
길도 정답도 없다. 그게 우리의 인생이니 말이다.
09 싸드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10 버티는 삶에 대하여
그렇다고 다 근엄한 가르침만도 아니다. ‘거짓
서 아는데’라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보통 일은 그들에 의해 망쳐진다.”
●
06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07 나미야 잡화점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신준모 프롬북스 김진명 새움 허지웅 문학동네
GUIDE & CHART
영화
33
공연
클래식
전시
인터스텔라
음악극 ‘유럽 블로그’
피아니스트 박종훈
레자 데락샤니 개인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기간: 10월 21일~오픈런
일시: 11월 3일 오후 8시
기간: 11월 6~30일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 앤 헤서웨이
장소: 대학로 TOM 1관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장소: 서울 논현동 오페라 갤러리
등급: 12세 관람가
문의: 1544-1555
문의: 02-720-3933
문의: 02-3446-0070
거대한 흙먼지 때문에 식물이 자라날
지난해 초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김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슈퍼 슈베르트’
국제적 명성의 이란 작가 레자 데락샤
수 없게 된 지구. 인류는 식량부족이라
수로 프로젝트와 연우 무대의 합작 여
란 제목으로 여는 독주회. 슈베르트의
니의 한국 첫 개인전. 화가·서예가·행
는 대재앙에 직면할 위기에 처한다. 새
행 음악극 ‘유럽 블로그’가 돌아왔다.
소나타 16번과 즉흥곡 Op.90, 연주자
위 예술가이자 뉴욕 줄리어드 음대와
로운 인류의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전
배우들이 직접 유럽을 여행하며 일어
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을 수
케네디 센터에서 공연을 한 프로페셔
직 조종사 쿠퍼(매슈 매코너헤이)를
난 에피소드와 현지에서 찍어온 영상,
있다. 여러 곡을 엮어 만든 ‘슈베르티
널한 뮤지션이기도 한 데락샤니는 자
비롯한 탐사대원들은 사랑하는 가족
3인조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노래까
아나’, ‘로자문데’에 대한 콘서트 패러
신의 음악 세계를 시각예술을 통해 표
들을 뒤로 한 채 우주로 향한다.
지 더해져 독특한 감성을 전한다.
프레이즈 등을 연주한다.
현한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연극 ‘죽음과 소녀’
첼리스트 정명화
감독: 임유철
기간: 10월 24일~11월 15일
일시: 11월 13일 오후 8시
배우: 김남길(내레이션), 김태근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급: 전체관람가
문의: 1544-1555
문의: 042-270-8383
장소: 서울 경희궁길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전 ‘하얀 비명:김윤경숙’ 기간: 10월 17일~2015년 1월 11일
가난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두산아트센터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첼리스트 정명화가 대전시립교향악
문의: 02-737-7650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이들이 모
세트도 없는 전위적인 무대를 선보이
단, 지휘자 금노상과 함께 드보르자크
김윤경숙 작가는 테이프를 사용한 설
인 유소년 축구단 ‘희망FC’가 우여곡
고 있는 양손프로젝트의 작품이다. 아
의 협주곡을 연주한다. 오케스트라는
치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피를
절 끝에 결성된다. 축구를 통해 성공
르헨티나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대
카니발 서곡, 교향곡 8번을 선곡해 모
연상시키는 빨간 테이프로 공간에 개
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던 박
표작. 칠레 독재정권이 무너진 지 15년
든 무대를 드보르자크로 꾸몄다. 대전
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과 대
철우 감독의 엄한 교육 방식에 아이들
후에도 독재 시절 고문의 악몽을 떨치
시립교향악단은 매년 이 같은 서울 특
형 설치작업 20여 점을 선보인다. 매
은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간다.
지 못하고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
별연주회를 열 예정이다.
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 3000원.
클래식 음반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순위 영화명
주연
순위 공연명
출연
자료=풍월당
순위 음반명
음반사
가요 음원 순위 노래
가수
01 나를 찾아줘 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
01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 옥주현 김소현
01 카라얀: 1980년대 DG 관현악
02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민아 조정석
02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안재욱 임태경 팀
02 오르페우[스]: 임선혜 Harmonia Mundi
02 12시 30분
03 나의 독재자
설경구 박해일
03 뮤지컬 레베카
오만석 엄기준
03 그라모폰 ‘디 오리지널스의 전설’
03 BORN HATER
에픽하이
04 우리는 형제입니다
조진웅 김성균
04 뮤지컬 그날들
유준상 이건명 최재웅
04 독일 음악의 황금시대-요나스
Sony
04 스포일러
에픽하이
05 다이빙벨
이상호 안해룡
05 어린이뮤지컬 번개맨의 비밀3
05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Sony
05 화장 지웠어
06 보이후드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06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조승우 류정한
06 명상-엘리나 가란차
공찬호 김연철 김다흰 고훈정 강정우
07 웨스턴 리벤지
매즈 미켈슨 에바 그린
07 연극 라이어 1탄
08 제보자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
08 뮤지컬 사춘기
09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루크 에반스
09 음악극 유럽 블로그
10 내가 잠들기 전에
니콜 키드먼
10 연극 황금연못 S
김수로 강성진 이순재 신구 나문희
DG DG
01 헤픈엔딩
자료=가온차트
에픽하이 비스트
개코
06 또 싸워
에픽하이
07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Decca
07 RICH
에픽하이
08 마리아칼라스:스튜디오Warner Classics
08 부르즈 할리파
에픽하이
09 13개의 왈츠-알도 10 스티브 허프: 인 더 나이트
DG
La Dolce Volta Hyperion
09 AMOR FATI 10 시간과 낙엽
에픽하이 악동뮤지션
ESSAY
34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호모 리스트쿠스
리스트 홍수 시대 내게 필요한 리스트 또 만들어야 하나 어릴 때 나는 리스트를 사랑하는 소녀였다. 팝송과 스포츠에 빠져있던 사춘
정받았다. 백 년 넘는 세월동안 유려한 기사 문체를 위해 고생했을 정통 신
기 시절 빌보드 핫 100 차트와 세계 권투 협회가 매달 발표하는 체급별 세계
문 기자들은 땅을 치고 통탄할 노릇이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타임지같은
랭킹 리스트를 끼고 살았고 일기장엔 나만의 고교 야구 포지션별 대표선수
전통의 매체들 역시 번호 매기기 식 기사를 올린다. 페이스북을 열면 ‘~하는
명단을 매일 바꿔 적었다. 교수의 장황한 강의를 번호 매겨 리스트화한 내 노
몇 가지’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진다. 개인의 SNS 글도 인기를 얻으려면
트는 시험 때 친구들의 인기품목이었고 족집게 예상문제 답안 리스트의 앞
번호 매긴 리스트식으로 쓰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페북 포스팅을 살
글자만 외우는 식으로 객관식 시대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효과
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의미 없는 번호를 문단마다 1. 2. 하는 식으
적인 기억에 도움을 주는 리스트의 힘은 막강해서, 나는 아직도 중학교 가정
로 매기고 있을 것이다. 뇌과학에서도 혹은 심리학적으로도 리스트는 무한
시간에 외운 ‘돌려짓기 농사 식물은 가지, 오이, 고추’를 기억한다(도대체 이
하게 널려있는 정보들을 유한한 것으로 인식하게 해줘 읽는 사람으로 하여
런 걸 왜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금 ‘적은 노력으로 이 정보를 쉽
하지만 어느 때부터 리스 트는 애증의 대상이 됐다. 특히 나이 들면서 ‘20대에, 혹은 30 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10가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특징’ 같은 걸 볼 때 그렇다. 아, 내 인 생이 오늘날 이 꼴이 된 건 그때
게 처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 내가 사랑하는 리스트
내가 싫어하는 리스트
롤링스톤즈의 팝송 500선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도시
피플지의 가장 섹시한 인물 50
vs.
20 30대에 꼭 해야할 것들
김연아의 베스트 경기 10선
성공하는 사람들의 비결
개인별 ‘내 인생의 책’ 10선
암을 예방하는 음식
와인을 매일 마셔야하는 이유
와인을 많이 마시면 안되는 이유
지게 해준단다. 사실 그렇다. 성공하는 7가 지 비결만 알면 성공할 것 같고 침대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7가 지 비결만 알고 있으면 언젠가 는 천하제일의 요부가 될 수 있
그런 걸 하지 않았기 때문이구
다는 희망에 부푼다. 오죽하면
나 싶은 후회와 자책을 불러일
성경에서도 10계명으로 딱딱 정
으킨다.
리해서 우리가 살아야 할 도리
그뿐인가? ‘암을 예방하기
를 외우기 쉽게 전파했겠는가.
위해 먹어야 할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떨어뜨리고 ‘커피가 몸에 좋
정작 알아듣기 힘든 의사들의 질병 검사 결과나 치료방법, 교수들의 논문 같
은 이유’ 리스트는 자고 나면 ‘커피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로 순식간에 바뀌
은 것도 몇 줄 리스트로 정리해서 말해줬으면 싶기도 하다.
어 사람을 헛갈리게 한다. 카톡으로는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라’로 시작하
그러니 쓰기 쉽고 읽기 쉬운 리스트는 우리를 유혹하고 희망을 가지게
는 40대의 행동지침을 날마다 보내는 친구들이 있다. 죽기 전에 가야할 도시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좋은 글을 쓰는 9가지 비법’을 아무리 외우고 있
들은 왜 그렇게 많으며 죽기 전에 해야할 일들은 또 왜 그리 많은가. 죽기 전
다 해도 수십 년 걸려 읽고 쓰고 다듬는 노력이 없으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없
에 멋진 여행을 가고 좋은 일을 하기 전에 내 책상 위에 뒹굴고만 있는 ‘추석
다는 걸. 공부 잘하는 비법, 연애에 성공하는 비법을 수백 가지 외워도 우등
명절에 7인의 명사들이 추천한 도서’들, 그보다 오늘의 해야할 일 리스트, 저
생이 되기란, 내 인생의 짝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걸. 결국
녁 밥상을 차리기 위해 사야할 장보기 리스트 같은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
리스트는 정보 홍수의 산만한 시대에 사과 대신 후루룩 마시는 사과 주스 같
는데. 이러다간 ‘죽기 전에…’ 리스트를 하나라도 해보기 전에 스트레스로
은, 정보의 패스트푸드다.
먼저 죽을 것만 같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우리의 묘비명마저 리스트 식 글이 될 것 같은 이
바야흐로 우리는 리스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리스트는 지난해부터 미
호모 리스트쿠스 시대에는 애증의 리스트와 잘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나만
디어 세계에서 가장 ‘돈이 되는’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허접한 리스트를
해도 그 추세에 따라 ‘내맘대로 리스트’라는 패러디 리스트 글로 원고료를
나열한 인터넷 미디어 ‘버즈피드’는 뉴욕타임스에 버금가는 회사가치를 인
벌고 있으니.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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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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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김의 남과 여
구두 ‘Talk Talk’
2013 파리 패션쇼
여자는 자정이 가까워진 신데렐라처럼 한쪽 구두를 잃어버리고 싶어하고
남자는 그걸 발견한 왕자님처럼 한쪽 구두의 임자를 찾아 헤맨다.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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