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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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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뉴욕도착 알림곡 지난번 뉴욕 출장길. 비행기가 JFK 국제공 항에 곧 도착한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사 라지면서 귀에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빱빠 빠라바 빱빠 빠라바 ~.” 프랭크 시나트라의 ‘뉴욕 뉴욕’이었습 니다. “소문 좀 내주세요, 난 오늘 떠나요(Start
08 ISSUE
14 ART
‘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
16 TRAVEL
이상용의 ‘작가의 탄생’
안동 전통고택 리조트 ‘구름에’
spreading the news, I’m leaving today) / 난 뉴욕, 뉴욕의 한 부분이 되고 싶어(I want to be a part of it - New York, New York)….” 애잔한 선율이 이어졌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 하려면(Where do I begin to tell the story of how great a love can be)….” 영화 ‘러 브 스토리’의 주제가였습니다. 뉴욕의 로 펌에서 막 일하게 된 올리버와 제니 커플의 희망찬 얼굴이 떠올랐습니다(알리 맥그로
20 GALLERY
24 SCENE
22 STYLE
‘남경민-풍경 속에 머물다’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대림미술관 ‘린다 매카트니’전
우도 올해 75세네요). 그 뉴욕에 이제 도착 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부풀어 오 르던지. 그런데 문득 서울에 오는 탑승객들은 무슨
06 THIS WEEK PEOPLE ‘다른 춘향’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
32 BOOK
노래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
『새벽 한시』
이 들었습니다. 귀국길에 귀를 기울여봤는 데,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21 INSIGHT
34 ESSAY
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26 CARTOON 만화로 보는 현대카드
그것도 물론 좋지만,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 에 관한 멋진 노래를 만들어 들려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듣
35 PHOTO ESSAY
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막 희망으로 부풀
케이티 김의 남과 여
라이브러리 걸작선
30 REVIEW & PREVIEW
28 TASTE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영화 ‘인터스텔라’
이도은 기자의 ‘거기’
표지 컬렉션 때마다 디자인에 맞게 제작되는 모피 샘플. 다양한 장인들의 기술이 정사각형 ‘태블릿’에 응축돼 있다. 사진 펜디.
문화에디터 정형모 취재 이도은 유주현 사진 최정동 김춘식 전호성 편집 임종일 디자인 전유진 통신원 최선희(파리) 김성희(밀라노) 광고 구명서 김진경 박본재 마케팅 박유선 최수인 이민주 이선우 기사제보 02-751-9000, 080-023-5002 광고문의 02-751-5555 / Fax 02-751-5806 1부 1000원 /월 5000원 정기구독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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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르는. 물론 그런 곳이 먼저 돼야 하겠 지만.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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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EEK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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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괴팍한 성격으로 소문났지만 팥죽색 개량한복을 입고 나타난 그는 아이처 럼 농담을 섞어가며 친근함을 어필했다. 당초 제안받은 ‘흥부가’를 거절하고 ‘춘향가’로 바꾼 것에 대해 “흥부가에서는 늘 밥을 먹고 있더라. 한국인들이 그 렇게 많이 먹는데도 날씬해 놀랍다”면서 “흥부전은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춘향은 매우 감성적인 이야기다. 우리가 연극을 하는 이유는 마음에 감동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오늘이 오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으로서 한국 인들 의식에 깊이 뿌리박힌 이야기에 위축되기도 했고, 두려움을 떨쳐내는 데 1년이 걸렸죠. 하지만 결론은 브로드웨이 쇼처럼 전석 매진을 목표로 합니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겁니다.” 그의 주무기는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대담한 실험성. 그 자신이 ‘가장 대 담했던 작품’으로 꼽는 데뷔작 ‘줄리어스 시저’(1968)부터 일본 가부키의 무 대와 모션을 차용해 연극 강국 루마니아를 충격에 빠트렸었다. 그런 만큼 ‘춘향’에서도 파격을 감행한다. 해피엔딩 러브스토리가 아니 라 춘향을 ‘사랑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그리며, 오지 않는 몽룡을 백발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든 다. 몽룡은 고위 관료의 대학생 아들, 춘향은 가난한 아가씨로 설정했고, 향단 이 없는 대신 방자를 여자가 맡는다. 대사와 연기는 현대적이지만 판소리 원형 국립창극단 세계거장시리즈 ‘다른 춘향’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
은 유지해 눈대목(판소리의 중요한 대목) ‘사랑가’ 등이 그대로 불린다. “처음 영상을 봤을 때 너무 완벽한 상태라 어떻게 재해석할지 막막했죠.
열녀에서 영웅으로 춘향이 달라진다
하지만 연습을 하다보니 춘향이 셰익스피어와 비슷하더군요. 여러 가지 방법 으로 뒤집을 수 있는 열린 재료지만 어떻게 비틀어도 결국 절대적 진리에 도달 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창극 배우들이 오페라 배우에 비견되는 특유의 기술을 갖고 있다고 평하면서도 ‘특별한 스타일을 가진 배우들이 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가 도전이었단다. 그런 면에서 그가 선택한 안무가 안은미의 활약이 컸단다. “안 은미가 창극 배우들의 인위적인 움직임에 생명을 부여해 줬습니다. 말을 할 때 나 몸을 쓸 때 판에 박힌 것에서 벗어나도록 분명하게 이끌더군요.” 무대는 검은 철골 구조물에 모래와 물을 가득 채우고 스크린을 세워 공 연 내내 영상을 투사한다. 영상을 또 하나의 언어로 활용해 무대 위에서 펼쳐 지는 오늘의 ‘현실’과 대비되는 ‘전통’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
“이전의 춘향과 다르지 않을 거라면 내가 연출할 이유는 없다.”
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유치원생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는 ‘춘향가’가 색
“나는 매번 다른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나의 시그니처가 보이지 않게 하
다른 옷을 입는다. ‘20세기 최고의 연출가’로 칭송받아온 루마니아의 거장 안
죠. 이번 프로덕션처럼 영상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라 나도 결과물이
드레이 서반(71)의 ‘다른 춘향’(11월 20일~12월 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이다.
상당히 궁금합니다. 하지만 창조 작업에서는 불확실성이 중요해요. 어떻게 될
2년 전부터 국립창극단 ‘세계거장시리즈’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오랫동 안 뜸을 들여온 그가 드디어 개막을 앞두고 5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까다롭 ●
지 이미 알고 있다면 이미 죽은 것이죠. 끝까지 몰라야 됩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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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FENDI: UN ART AUTRE)’ 전시에 나온 12벌의 모피 아카이브. 1970년부터 2014년까지 펜디 모피의 혁신을 담은 컬렉션을 따로 뽑았다. 전시장에선 왼쪽 위 사진부터 시대순에 따라 진열됐다. 1 에스키모(1970) 2 케이스(1971) 3 미로(1979) 4 드레이퍼리(1984) 5 웨이브(1988) 6 초콜릿(1999) 7 인레이(2000) 8 오키드(2012) 9 3D(2013) 10 변형(2013) 11 해부학(2014) 12 21세기(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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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 홍콩 순회전을 가다
모피, 패션과 예술 사이
홍콩 랜드마크 쇼핑몰에 마련된 전시장 전경
‘묵은 풍속, 관습,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혁신’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다. IT 기술이나 경영전략에 서 흔하게 등장하는 이 말을 유독 입에 달고 사는 패션 브 랜드가 있다. 이탈리아 패션하우스 펜디다. 1925년 로마의 작은 가죽·모피 상점에서 출발한 펜디는 그 DNA를 살려 모피 디자인 혁신에 반세기를 투자했다. 65 년부터 칼 라거펠트(현 샤넬 수석 디자이너)를 영입해 모피 가 무겁고, 복부인 같고, 겨울용 옷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 렸다. 아예 브랜드의 로고로 ‘Fun Fur’라는 뜻의 더블F를 만들며, 모피를 자르고 벗기고 염색하고 주름지었다. ‘무엇 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디자인이 컬렉션마다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모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된 펜디는 최근 이 를 기념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 (FENDI: UN ART AUTRE)’ 전이다. 모피 아카이브에 기반을 둔 이 행사는 세계 순회전으로, 올해 도쿄·베이징 에 이어 지난달 홍콩에서 그 세 번째 순서가 마련됐다. 모 피의 혁신, 아니 패션의 혁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 을 엿보는 시간이었다. 홍콩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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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건축물 외관에 여러 대의 모니터로 이루어진 큰 화면을 설치, 196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펜디 모피의 대표적 디자인들을 끊임없이 재생시켰다.
모피 공방을 재현한 ‘템플’. 스케치부터 완성품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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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이용한 펜디의 대표 핸드백들. 2013~2014년에 선보인 ‘피카부’와 ‘바게트’ 모델이다.
모피 조각들 말끔히 이어 붙이는 ‘인레이 기법’
는 이름의 의상을 선보였는데, 이는 비행기 위에서 땅을 내려다본 장면을 표현
지난달 23일 홍콩 시내 중심부의 랜드마크 쇼핑몰. 사람들로 붐비는 1층 로비
한 디자인이었다. 구불구불한 지평선을 푸른색 페르시안 모피로 표현한 코트
한가운데 황금색으로 꾸민 원형 구조물이 웅장하게 들어섰다. ‘펜디, 또 다른
는 겉감과 안감을 바꿔 입을 수 있는 펜디의 첫 모피 작품이기도 했다. 라거펠
아트의 세계’를 위한 팝업 미술관이었다. 9일간 열리는 전시 동안 이 공간은 멀
트는 7년 뒤 다시 바다를 옷으로 재현했는데, ‘늘어지는(Drapery)’ 코트가
리서도 단박에 눈길을 끌었다. 외관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로 이루어진 큰 화면
그것이었다. 이름 그대로 절개선 대신 품을 넉넉하게 늘어뜨리고 그 접힘 부분
이 설치됐는데, 6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펜디 모피의 대표적 디자인들을 끊
을 마치 파도를 포용하는 피오르드처럼 표현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임없이 재생시켰다.
특히 모피에 위트를 불어넣은 컬렉션 앞에서는 절로 미소가 흘렀다. 99
드디어 오후 4시를 지나면서 오프닝 행사가 시작됐다. 전시의 큐레이터인
년 발표된 ‘초콜릿’ 컬렉션이 그것. 가죽에 나일론 열처리로 메탈 효과를 주고,
엠마누에라 노빌레 미노가 도슨트 진행자로 나섰다. 그는 “단순한 옷이 아닌
안을 열어보면 짙은 갈색의 밍크가 드러나도록 만든 롱코트였다. “이제 이 옷
혁신과 장인정신, 창조성, 실험성이 모두 녹아 들어간 예술”이라는 말로 전시
이 왜 초콜릿인지 알겠죠?”라는 미노의 한마디에 관람객들 입에선 짧은 탄성
물들에 대한 가치를 표현했다.
이 터져 나왔다.
이번 전시는 이전 두 도시와 달리 모피 제작 기법의 발전에 비중을 두고
맨 마지막으로 선보인 ‘21세기’ 코트는 모피의 계절성을 깨뜨렸다는 데
이를 연대기적으로 펼쳐냈다. 많은 의상을 보여주기보다 기술적으로 기념비적
상징성을 지녔다. 속이 비치는 옷감인 오간자에 바짝 깎은 밍크털을 결합시켜
인 컬렉션 12벌과 모피 핸드백·액세서리들을 선별했다. 이를 통해 디자이너의
모피가 봄에도 활용할 수 있는 의상임을 증명해 냈다.
창조성이 장인들의 기술력으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했다.
이날 전시장 일부는 의상이 아닌 핸드백이 차지했다. 한쪽 벽면에 실비아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1970년 가을·겨울 컬렉션에 발
벤추리니가 만든 펜디의 대표 핸드백 ‘바게트’와 ‘피카부’ ‘바이더웨이’ 모델
표된 ‘에스키모’였다. 이름 그대로 에스키모 전통 의상을 연상케 하는 기하학
십 수 개가 동시에 걸려 있었다. 행사 콘셉트에 맞춰 모두 가죽이나 천 대신 형
적 패턴의 코트는 언뜻 보면 가벼운 가죽처럼 보이지만 사실 송아지 모피를 이
형색색 모피가 표면을 덮었다. 이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벤추리니가 시도한
용한 의상이었다.
모피 핸드백의 일부로, 의상처럼 다양한 패턴과 컬러를 자랑했다. 여기에 올
이것이 전시의 출발점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실크 스크린으로 이
가을·겨울 컬렉션에선 핸드백에 달 수 있는 참 모양 액세서리까지 만들어냈다.
패턴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고유의 ‘인레이(inlay)’ 기법을 개발해 낸 것. 이에 대해 미노가 잠시 설명에 나섰다. “‘인레이’란 밍크
코트 하나에 150시간 한번의 실수도 용납 안돼
조각들을 패치워크처럼 이어 붙여 기하학적 패턴을 만드는 고도의 기술입니
전시는 전시로 끝나지 않았다. 전시장을 반 층 올라간 별도 공간엔 장인의 아
다. 겉에서 보면 모피가 마치 찍어낸 옷감처럼 매끄럽게 연결돼 있죠.”
틀리에가 꾸며졌다. 미노는 이를 ‘템플(temple)’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에서
최근까지도 인레이는 모피 디자인을 더욱 다채롭게 확장시키는 으뜸 기
는 로마 공방의 장인들이 실제 모피 의상·핸드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
술로 통하고 있다. 전시물 중 하나인 ‘난초(orchid·2012)’ 컬렉션 역시 밍크와
여줬다. 말로만 듣던 인레이 기법을 짧게나마 시연하기도 했고, 관람객들의 질
여우털, 염소털, 양모가 각기 다른 컬러와 소재로 한 벌에 자연스럽게 녹아 드
문에 하나하나 답하기도 했다. 그중 한 명에게 모피 컬렉션이 완성되는 과정을
는 정교함을 선보였다. 펜디는 89년부터 무게를 줄이기 위해 라이닝(속에 덧대
물었다.
는 원단)을 없애고 안까지 깔끔하게 처리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일단 라거펠트가 스케치를 해 오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연구하죠. (벽면의 모피로 덮인 사각 액자들을 가리키며) 저것들이 그 샘플들입니다.” 그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자연스러운 컬러의 모피를 발견하는 게 관건이
칼 라거펠트 상상력과 장인의 기술 조화
전시를 돌다 보니 패션에서 기술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라고 했다. 검정이 다 같은 검정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소재 개발에만 3명의 장
제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도 이를 현실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면 옷이 될 수 없
인이 전문적으로 상주할 정도다.
기 때문이다. 펜디는 이런 점에서 최상의 조합이었다.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인
이 단계가 통과되면 종이 패턴에 그림을 그리고, 그다음 일단 광목으로
라거펠트의 상상력과 장인의 기술력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패션 하우스 중 유
옷을 만들어본다. 모피라는 게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게 모피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브랜드의 자랑은 화려한 수사만이 아니
세로선과 사선이 교차하는 인레이 기법의 코트의 경우 150시간이 꼬박 걸린
었다.
다고 했다. 이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의 말이 단호했다. “누구도 가
전시물 중에서도 그런 의상들이 눈에 띄었다. 라거펠트는 79년 ‘미로’라 S
지 않은 길을 가는 게 혁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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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복 디자인을 맡은 칼 라거펠트의 스케치를 토대로 최적의 모피를 골라낸다. 로마 공방의 장인이 모피 조각으로 제작 기법을 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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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추리니
우리의 꿈은 깃털처럼 가벼운 모피 펜디 여성복을 포함해 모피 부문을 진두지휘 하는 건 칼 라거펠트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을 달고 모피와 남성복·액세서리·키즈 라인까지 브랜드 전 체를 아우르는 역할은 실비아 벤추리니의 몫이다. 그는 25년 펜디를 창업한 에도아르도 펜디와 아델 카사그란데 부부의 손녀다. 65년 네 명의 이모들과 엄 마가 칼 라거펠트를 영입했던 다섯 살 때부터 브랜드의 역사를 목격한 인물이 기도 하다. 칼 라거펠트가 찍은 광고 컷에서 어린아이로 등장한 그를 보면 이 를 금세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와 함께 홍콩 플래그십스토어 리오픈에 맞춰 현 장을 찾은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펜디의 모피 기술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나.
“우리의 모피 공방은 로마 본사 맨 꼭대기 층에 있다. 그만큼 가장 중요한 위치라는 얘기다. 우리 장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가진 사 (위로부터)
람들이다. 늘 실험적이고, 늘 열린 태도를 갖췄다. 무엇보다 ‘불가능한 것은 없
펜디 창업주 부부의 2세손인
다(Nothing is Impossible)’라는 우리의 모토를 그대로 따르는 자들이다.”
다섯 자매들과 칼 라거펠트(앞줄 가운데). 이들은 1965년 라거펠트를 영입해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다. 라거펠트가 찍은 펜디 광고 컷. 오른쪽 소녀가 실비아 벤추리니다. 펜디의 모피 숄을 두른 벤추리니의 과거 모습.
지금까지 가장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기술은.
“우리는 모피라기보다 옷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라이닝을 없앤 첫 번째 브랜드가 됐다. 60년대만 해도 모피는 무겁고 입기 어 렵지 않았나. 엄마를 비롯한 다섯 자매들이 여기에 혁명을 일으켰다.” 모피를 어렸을 때부터 봐 왔는데, 어떤 기억이 있나.
“흥미로운 유년이었다. 학교에서보다 이모들과 엄마, 라거펠트가 함께 작 업하는 모습을 보는 게 몹시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우유와 패션으로 자랐 다’고 말하곤 한다. 태어나서부터 패션을 알아왔기 때문에 패션이 무엇인지도 안다. 흥미롭지만 심각한 사업이라는 것이고, 다음 컬렉션에서 발전하지 못하 면 도태된다는 점이 늘 다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얻은 성과라면.
“모피가 패션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패션 과 모피는 다른 영역이었다. 부의 상징이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새로운 패브릭 의 개념으로 실험하고 도전한다. 다른 브랜드까지 모피로 뭔가를 생각해본다 는 게 진정한 혁명이다.” 의상에 이어 핸드백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펜디의 더블F가 ‘펀 퍼’ 아닌가. 모피 없는 펜디는 없다. 모피의 유머러스 한 느낌을 액세서리로 표현하려는 의도다.” 특별히 좋아하는 펜디 모피 코트가 있다면.
“다음에 나올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내년 2월 런웨이까지 기다려달라. 불가능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S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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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고 이듬해 퓰리
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그는 이 일이
(1929)를 쓴 것은 그녀와 함께한 기간 중이었다. 하
처상을, 그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단지 스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것
지만 키웨스트의 삶이 녹아 있는 작품은 바다 사
헤밍웨이(1899~1961)는 작가의 신화를 써내려간
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생
나이 해리 모건을 내세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인물 중 맨 앞자리에 서있다. 그의 신화는 20세기
각은 당시 헤밍웨이를 비롯한 예술가와 지식인들
(1937)다.
초의 굵직한 전쟁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게다가
이 내전을 바라보는 공통적인 정서였다.
이탈리아, 파리, 마이애미, 쿠바 등 장소를 옮길 때 마다 새 작품과 새 연인이 함께했다. 열아홉 살 헤밍웨이는 적십자사 운전병에 자
세 번째 부인은 저널리스트 마서 겔혼이다. 이
44년 미군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하자
들은 스페인 내전 중에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녀
2차 세계대전에도 뛰어들어, 다시 파리에서 한 시
와 결혼을 한 해에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절을 보낸다.
종은 울리나』(1940)를 내놓았고, 두 사람은 20세
원하면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물건을 수송
원고 작성법도 남달라서, 의자에 앉아 우아하
기의 현장을 고루 돌며 기사와 작품을 남겼다. 이
하는 것이 주업무였지만 포화의 한가운데서 부상
게 자판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 선 채로 타자기
들의 휴식처는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쿠바였다.
병을 도운 공로로 훈장까지 탄다. 그렇게 소년은 전
를 두드렸다. 이렇게 헤밍웨이는 20세기 미국 문학
헤밍웨이의 말년을 지킨 아내는 네 번째 부인
쟁 영웅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온다.
사의 전반부를 채웠다.
1921년에는 파리로 간다. 특파원 신분으로 무
메리 웰시였다. 그녀는 병들어 가는 헤밍웨이를 돌 봤고, 『노인과 바다』(1952)의 완성을 지켜봤다.
솔리니와 인터뷰를 하는 등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아내만 네 명 작품 탄생에 기여
헤밍웨이의 작품은 뮤즈들과 함께 탄생한 영감의
하지만 파리가 중요했던 이유는 화가 피카소, 소설
정력적인 사내의 개인사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
기록물이었던 셈이다.
가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예술가와 교분을 쌓을 수
다. 헤밍웨이의 첫 번째 부인은 연상의 해들리 리
있는 문화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쓴 『태
처드슨이다. 그녀와 함께 파리에서 보낸 시절을 통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속 헤밍웨이
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통해 헤밍웨이는 ‘로스트
해 헤밍웨이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27년에는 ‘보
이렇게 20세기 전쟁사와 여인들을 따라 작가의 신
제너레이션’(길 잃은 세대)의 선두주자가 된다.
그’의 편집자로 일하던 폴린 파이퍼와 결혼한다.
화를 정리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37년에는 종군기자가 되어 스페인 내전을 취
부유했던 폴린 덕분에 마이애미 키웨스트로 건너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영화라는 필터는 신화적 인
재한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 『누구를
가 낚시를 하며 여유로운 시기를 보낼 수 있었다. 1
물들을 관객들에게 다소의 거리를 두고 보여준다.
위하여 종은 울리나』다.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다
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다룬 『무기여 잘 있어라』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헤밍웨
이상용의 ‘작가의 탄생’ <4> 헤밍웨이 신화
전쟁터 기억과 4명의 뮤즈가 창작의 원천
헤밍웨이와 겔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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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이가 잠깐씩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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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에서 다큐멘터리 촬영도
웨이를 20세기의 작가 중 앞자리에 서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연인과 함께 파리에 온
헤밍웨이를 묘사하는 또 다른 영화는 ‘헤밍웨이
그런 의미에서 헤밍웨이는 인간 카메라였는지도
소설 지망생 ‘길’이다. 자정 무렵 갑자기 등장한 구
와 겔혼’이다. 니콜 키드먼이 연기하는 세 번째 부
모른다. 그에게는 사건의 중심에서 거리를 두고 초
형 푸조 자동차에 올라타게 된 그는 꿈에 그리던
인 겔혼은 마이애미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난다.
연해서 문학적으로 증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과거의 파리를 만나게 된다. 20년대의 파리는 미국
『무기여 잘 있거라』의 영화화로 인해 헤밍웨이는
인 예술가들의 천국이었다. 길은 헤밍웨이, 피츠제
커다란 명성을 누리게 됐지만, 그는 낚시질로 세월
럴드,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난다. 미국인 실비아 비
을 보내고 있었다.
이었다. 그러나 20세기를 넘겨 헤밍웨이가 남긴 작품 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쟁이나 바다 한가운데의
그러나 36년 스페인내전이 시작되면서 상황
광풍 속에서도 상처입기 쉬운 영혼을 붙잡는 집요
은 급변한다. 헤밍웨이는 네덜란드의 다큐멘터리
함이 느껴진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우디 앨런의 영화가 은근히 참고하고 있는 것
감독 요리스 이벤스와 함께 스페인 내전을 찍기로
등장하는 기도문은 이와 같은 영혼의 표현이다.
이 바로 헤밍웨이의 에세이다. 『파리는 날마다 축
결정한다. 영화를 통해 프랑코가 아니라 스페인 민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제』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밥값을 빌리
중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
는 젊은 작가 헤밍웨이의 파리 시대를 묘사하고
처음엔 ‘시민 케인’의 감독 오손 웰즈에게 내레이
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있다. 그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 문학적 교감
션을 부탁했지만 다툼으로 인해 헤밍웨이가 직접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을 나누기도 하고, 주변의 예술가 친구들과 유유
마이크를 잡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스페
‘그대’를 위해 두드린 타이프가 남긴 헤밍웨이
자적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원제는 ‘이동축제(A
인의 대지’는 이벤스와 헤밍웨이의 생생한 증언이
의 글은 인류에게 위로와 행운이 되었다. 그의 시
Moveable Feast)’인데, 이 말은 부활절처럼 특정
담긴 합작품이다.
대와 삶은 복잡했지만 그가 써내려간 것들은 언제
치가 영어 도서 전문 대여점 겸 출판사인 ‘셰익스 피어 앤드 컴퍼니’를 연 것도 이 무렵이다.
한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은 휴일을 가리키는 교회
‘헤밍웨이와 겔혼’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용어다. 조금은 배고픈 예술가이던, 파리의 센 강
겔혼이 포화가 퍼붓는 한가운데서 아랑곳하지 않
좌편에 거주했던 시절을 ‘축제’ 기간이라고 명명
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한 예술가를 목격하는 대목
한 것이다. 불확실하지만 미래를 향한 기대감이 가
이다. 인간에 대한 열정과 개인의 집착 그리고 정력
득한 시절이었다.
적인 태도가 수많은 글자를 써내려가게 했고, 헤밍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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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편적인 명쾌함을 향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KBS ‘즐거운 책 읽기’ 등에서 방송 활 동을, CGV무비꼴라쥬에서 ‘씨네샹떼’ 강의를 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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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전통고택 리조트 ‘구름에’
외갓집에 온 듯 한 없이 편한 한옥의 하룻밤 캠핑은 글램핑이, 호텔은 부티크 호텔이 대세로 자리 잡는 요즘이다. 단 하루를 자더라도 색깔이 분명하면서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들이 많아 지면서다. 음식이나 패션에서 나타나는 ‘스몰 럭셔리(작은 호사)’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7월 문을 연 경상북도 안동의 전통고택 리조트 ‘구름에’는 이 새로운 트렌드를 영리하게 파고든 경우다. SK행복나눔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안동시와 MOU를 맺고 추진한 이 사업은 1975년 안동댐 수몰 지역에서 옮겨온 고택들을 현대 건축의 손길을 거쳐 숙박 단지로 바꿔놨다. 기존에 생겨난 고택들이 ‘전통문화 체험’에 초점을 맞췄다면, 구름에는 ‘럭셔리 스타일’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 한옥의 장단점을 공략, 옛 가옥의 형 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는 요소들을 곳곳에 녹여냈다. 하룻밤 50만원에 이르는 가격도 과감하게 책정했다. (성수기 최고 한 채 가격 기준 ) 이처럼 새로운 공간으로 입소문이 퍼져가는 차에 가을 끝자락인 지난달 30일 구름에를 찾았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내세운 ‘모던 한옥’이란 대 체 어떤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품고서다. 안동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구름에 달 가는 듯’ 마음이 둥실거렸다. 안동(경북)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구름에 리조트, 표기식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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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리조트의 가을 풍경. 오르막을 따라 있는 고택 일곱 채가 단풍을 배경으로 단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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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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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구름에 리조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운정의 마루와 방. 특히 이 고택은 방 하나를 욕실로 개조해 부티크 호텔 못잖은 시설을 만들었다. 4 공간 속에 다른 공간이 숨어 있는 칠곡고택 사랑채.
객실 중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을 물으니 리조트 측은 단박에 서운정을 꼽
물감을 쓱쓱 칠한 가을 수채화
세 시간 반을 달려와 도착한 구름에 리조트는 ‘가을 수채화’였다. 물감으로
았다. 방 하나와 욕실 하나뿐인 이곳이 뭐가 독특할까 싶었는데 욕실 문을 여
쓱쓱 붓칠한 듯한 단풍 아래 고택이 눈앞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택
는 순간 답이 나왔다. 욕실이 외부에 있는 기존 고택과 달리 방 하나를 욕실로
의 기와지붕이었다. 입구에서부터 100여 m 오름길이 펼쳐지는데, 그 사이사
바꿨는데, 두 명은 너끈히 들어가는 깊고 큰 욕조가 시선을 압도했다. 보디클
이 고택 7채가 보일 듯 말듯 자리를 잡고 있었다. 150~400년 전 지어진 문화재
렌저까지 갖춘 유기농 어매니티들도 눈길을 끌었다.
급 가옥들이다.
순간적으로 어떤 그림이 떠올랐다. 봄이나 가을, 욕조를 둘러싼 창호 문
고택들은 각기 규모와 컨셉트가 달랐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계남고택은
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으며 몸을 씻는다면…. 보통 호텔이라면 할 수 없는 경
퇴계 이황의 8세손이 1800년대에 지은 종갓집 건축물. 그래서 리조트 중 가장
험이라는 짜릿함이 더하리라. 서운정과 비슷한 규모의 청옹정(방 1개, 욕실 1
컸다. ㅁ자 구조에 안채(방 4개와 욕실 1개), 사랑채(방 2개와 욕실 2개), 중간
개)의 욕실 역시 원기둥 형태의 세면대가 설치됐는데, 창을 열면 저 멀리까지
방(방 1개와 욕실 1개)으로 꾸며져 있는데, “와인 동호회나 회사 워크숍 장소
시야가 탁 트이는 구조였다. 닫혀 있지만 열려 있고, 열려 있지만 닫혀 있는 한
로 쓰고 싶다며 문의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는 얘기를 리조트 측으로부터 들
옥의 매력을 제대로 응용한 아이디어였다.
을 수 있었다. 좀더 걸어 올라가니 팔회당재사가 나타났다. 안동의 고성 이씨 법흥 탑동
첨단 보안키와 고무신이 공존하는 곳
파가 조상 3대를 모시려 마련했던 곳이다. 붉은 갈색 나무 기둥들과 천장 및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전망이 최고라는 박산정(방 2개, 욕실 1개)까지 한 바
서까래가 여느 한옥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안채(방 2개, 욕실 1개)와 작
퀴를 돌고나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고택마다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왔
은 방(방 1개, 욕실 1개)으로 구성된 집은 대청마루 말고도 안채 방 하나와 작
다. 특히 디딤돌 같은 오브제에 넣어둔 간접 조명이 근사했다.
은 마루가 연결돼 있었다. 홀로 경치를 즐기며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아늑한
이 정도 하드웨어를 갖춘 ‘스타일리시 고택’의 소프트웨어는 디테일에 있 었다. 일단 방 열쇠는 자동차 키 같이 생긴 첨단 스마트키. 개폐 버튼을 눌러 작
공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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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경상북도 안동시 민속촌길 190번지. 투숙객은 산 속 절경을 감상 할 수 있는 ‘만휴정(晩休亭)’과 영화 ‘스캔들’의 무대로 하회마을 강 건 너 절벽(부용대)에 자리한 ‘옥연정사’를 둘러보면 좋다. 문의 054-8239001, 홈페이지 www.gurume-andong.com 5
5 고택의 소박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풀 장식. 6 욕실 내에는 수건과 목욕용품이 깔끔하게 구비돼 있다.
동시키는 것이었다. 여닫이 창호 문에 이게 필요할까 싶었는데, 얼마 안 돼 이
7년여 관리한 경력이 있다. 남편 김씨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해가 갔다. 창호 문을 열면 자동 잠금장치를 단 유리문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
“고택에서 지내는 매력이 뭘까요?”
이었다.
“음…. 어젯밤 여기 방이 10개가 찼는데요. 혹시 다른 숙박객들을 보셨나
이것 말고도 깨알 같은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슬리퍼 대신 꽃 그림이 그
요? 참 신기한 게 여기는 모두가 있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은 호젓함이 있어요.
려진 고무신을 비치한다거나 야생화를 말려 마루와 방, 욕실에까지 장식하는
그냥 어디 돌아다니고 놀거리가 딱히 없어도 다들 한옥에 머무는 자체를 휴양
소소함까지 시선이 갔다.
으로 생각하는 거죠. 오늘 같은 날이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어
방 안에는 옛날 베갯잎에 놓인 자수를 끼운 액자와 30년 안동 명주, 장인
도 시간이 후딱 가요.”
이 만들었다는 침구가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숙박객 중에는 실제 고무신·이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다고 제가 손님들과
불을 사 가고 싶다고 문의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고 한다. 화장대에 놓인 숙박
접촉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호텔처럼 필요한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도 아니죠.
안내문에는 TV도 없는 깊은 밤을 염두에 둔 것인지 와인과 안주, 간단한 간식
짧은 시간 동안 오히려 다양한 사연을 듣게 되죠. 장애인 아들과 함께 온 어머
을 위주로 하는 룸서비스 메뉴가 적혀 있었다.
니나 남편을 사별하고 친정어머니·시어머니와 함께 온 분도 자연스럽게 마음 을 터 놓으세요. 화려하지 않지만 외갓집 같은 느낌, 그게 사람들에게 편안함 을 주나 봐요.”
모든 방이 찼지만 아무도 없는 듯한 호젓함
이튿날 아침, 빗소리에 잠이 깼다. 후두득후두득 소리가 마치 욕실 샤워기를
그의 말처럼 어제 내내 보지 못했던 다른 숙박객을 아침 식당에서야 마
틀어놓은 것 같았다. 리조트 밖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기 위해 리셉션에서 우
주쳤다. 역시 한옥인 그곳에선 객실마다 테이블이 미리 지정되고, 안동의 식재
산을 빌렸다.
로 만든 반찬과 디저트가 제공됐다. 식당 옆 카페에 들르자 메뉴판에선 로스
‘까치구멍집’이라 불리는 리셉션에는 마흔여덟 동갑내기 김상철·김정희 부부가 총지배인으로 24시간 상주하는데, 둘은 이미 관광객들이 묵는 고택을 S
팅으로 이름난 홍대앞 카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전통과 현재, 지방과 서울 이 공존이 모닝 커피에 더해졌다.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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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화방-화가 신윤복에 대한 생각에 잠기다’(2012), Oil on linen, 162 x 260.6 cm
혜원의 방 이런 모습이었을까
폴 세잔, 데이비드 호크니 등 서양 거장들의 작업실을 나름의 몽환적인 화풍으로 그려온 남경민 작가 는 2007년 겸재 정선의 민화 한 점을 본 이후 줄곧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작 우리 조상 인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에 대해 나는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그래서 그는 규장각을 연구하고 부용정을 찾아갔다. 현존하는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자신의 상상을 더해 선조 화가들의 작업실을 구현했다. 커다란 거울이 있고 커피포트와 생황 같은 옛날 악기가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나비와 해골까지 담아내는 남경민식 화풍은 여전하다. 이번 전시에는 길이가 4m 50cm에 달하는 대작 ‘초대받은 N-김홍도 화방을 거닐다’를 비롯해 총 15 점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사비나미술관
‘남경민-풍경 속에 머물다’ 11월 7일~12월 19일 서울 율곡로 사비나미술관, 문의 02-736-4371 ●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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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과 떠나는 知의 최전선 <9> 에디슨과 테슬라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한다
지(知)의 최전선에서 이 교수의 첨단 무
동차를 만들면서 이 에디슨의 라이벌 이
기는 말(語)이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
름을 썼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겠다는
이 쓰는 말의 어원을 파고들어 개념을 끄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지.”
집어낸다. ‘아시아’가 그랬고 ‘바이러스’
이 교수는 ‘쉬프트(shift)’라는 말을
가 그랬다. 기업의 이름 같은 것도 마찬가
강조했다. “중국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은
지다.
두렵지 않지만 훌쩍 뛰어넘어(shift) 앞
“이름이 아주 중요한데, 우리나라 기
서는 것은 정말 무섭다”고 했다. 유선을
업들의 이름은 로마나이즈(romanize)가 쉽지 않아. 일본은 안
뛰어 넘어 무선으로, 휘발유차를 뛰어 넘어 전기차로 바로 가
그렇거든. 예를 들어 카메라 회사 캐논은 관음보살의 ‘관음’(觀
는 것. 3D 프린터로 집과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것. 그런 새로운
音·일본어 칸논 kannon)에서 나온 말이야. 창업주가 독실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있는 대한민국
불교신자였대. 그걸 규칙이나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 ‘canon’
이 진정 추구해야할 길이라고 했다. 테슬라는 벤츠나 도요타를
으로 슬쩍 바꾼 거지.”
쫓아가지 않고 그것을 넘어섰다(shift)는데 포인트가 있다는
“이름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뭔가요?”
것이다.
“정치가가 권력에, 기업가가 돈에 관심 있듯 인문학하는 사
“전기차 이용을 높여야 한다면서 충전소를 곳곳에 세워야
람이 글자에 관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게다가 이름에는
한다고 하잖아.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장래성이 없어. 그럼 그
중요한 뜻이 담겨있거든. 미국의 전기 자동차 테슬라(Tesla사
게 지금의 주유소와 무슨 차이가 있나. 각자 집에서 충전할 수
진) 얘기를 해볼까. 왜 하필 테슬라라고 붙였을까? 이걸 알려면
있도록 해야지. 집집마다 태양열 에너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면
에디슨과의 관계를 알아야해.”
되는 거잖아.”
테슬라가 사람이었구나. 재빨리 검색을 했다. 니콜라 테슬
그는 에디슨 대신 테슬라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남의 뒤
라(Nikola Tesla·1856~1943). 크로아티아 출신의 천재 물리학
를 쫓아가서는 절대로 그를 앞설 수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자이자 전기공학자, 발명가. 미국으로 건너와 교류 발전기를 만
“과학과 기술의 수준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정관
든 그는 직류를 고집하는 에디슨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결국 자
념을 벗어나는 상상이거든. 그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이 ‘전류 전쟁’은 공학사에서
인문학이지. 그것도 과거를 쏘우트(thought)하는 인문학이 아
는 아주 유명한 얘기인데, 대부분의 우리는 에디슨만 알고 테슬
니라 현재를 씽킹(thinking)하는 살아있는 인문학. 아직도 창
라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본 적도 없다.
의 교육의 상징으로 아이들에게 에디슨을 가르치는데 그건 아
“테슬라의 위대한 점은 전깃줄이 막 깔리고 있을 무렵에 이미 무선 시대를 생각했다는 거지. 무선 통신은 마르코니가 발
니야, 에디슨이 왜 테슬라에게 이기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가르 치는 것이 우리 미래를 만드는 일이지.”
명했다고들 알고 있는데 사실 테슬라가 2년 먼저 한 거야. 오늘
이 교수는 칸트가 아니라 테슬라를 인문학자로 읽고 있다.
날 리모컨 블루투스의 기초가 다 그 사람에게서 나왔어. 이 사
테슬라 전기 자동차와 구글 무인 자동차가 앞으로 인간의 생활
람 생각이 너무 앞서가서, 일설에는 이 사람이 죽었을 때 연구
과 사상을 어떻게 바꿀지 보여주기 위해서 두툼한 인쇄물을 뽑
자료를 CIA가 모두 가져갔다는 얘기도 있어. 전파나 레이저로
아내기 시작했다.
무기를 만든다고 생각해 봐. 하여튼 실리콘밸리 애들이 전기 자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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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5> 부산 삼진어묵
일본 오뎅도 울고 갈 부산 어묵의 ‘지존’
가을바람이 차다. 집 앞 거리에 보이는 붉게 물든
적으로 어묵을 집어든다. 누가 뭐래도 나는 어묵
터 주위의 평판이 좋았다. 비결은 간단했다. 신선
가로수의 이파리도 몇 개 남지 않았다. 불현듯 뜨
을 좋아한다. 유심히 냉장 매대를 보게 된다. 수많
한 생선을 듬뿍 썼고 깨끗한 기름에 튀겼을 뿐이다.
끈한 국물이 떠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눈
은 회사들이 만들었음직한 어묵은 모두 ‘부산어
할아버지는 생전에 한마디를 남겼다. “사람이 먹는
맛까지 곁들인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무릇
묵’이라 찍혀있다. ‘부산어묵’이 마치 브랜드화된
음식이다. 이윤 남기지 말고 좋은 재료를 써라.”
음식이란 간절할 때 바로 먹어야 맛의 감흥도 커지
느낌이다.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진짜 ‘부산어묵’
게 마련이다. 눈앞에 어묵 파는 집이 있다면 무작
은 어디에서 누가 만드는 것일까.
정 들어갈 일이다. 나 같은 ‘꼰대 세대’에게 맛있는 음식을 몇
할아버지의 유훈은 후대에 그대로 지켜졌을 까. 선대의 업적은 미화되게 마련이다. 먹거리의 불 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만드는 과정을 보
생선 많이 넣어 직원도 걱정한 창업주 비법
게 되면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이란 얼마나 많은가.
개 꼽으라면 짜장면과 함께 반드시 어묵이 들어간
호기심은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또다시 호기심이 발동했다. 59년 삼진어묵에서 일
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탓이다. 김치 쪼가
탐문했다. 레스토랑 체인을 몇 개나 운영해서 음식
했던 기술자를 찾아가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이
리 몇 개가 반찬일 때 어묵 조림의 기름기는 대단
에 조예 깊은 서지희 대표의 자문이 신빙성 높았
제 칠십 노인이 된 그의 증언은 거짓이 없어 보였다.
한 맛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고기는 먹지 못해도 그
다. 시중의 ‘부산어묵’은 대부분 부산과 관계없는
“사장님이 생선을 너무 많이 넣어 외려 회사가 망하
나마 어묵은 만만했다. 이후 포장마차를 전전하며
상술일 뿐이라는 점, 제대로 된 ‘부산어묵’을 찾고
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어묵의 수율을 높이는 방
어묵을 먹었다. 친근한 포장마차의 싸구려 줄 무늬
싶으면 삼진어묵에 가보라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법은 간단하다. 주재료인 생선을 적게 넣고 밀가루
휘장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뽀얀 김을 내뿜으며 사
좋아하는 어묵의 본산을 직접 찾아갔다. 부
와 수분 함량을 높여 중량을 늘리면 된다. 삼진어
각의 스테인리스 용기에 곱창처럼 꿰어져 끓던 어
산에 근거지를 둔 삼진어묵을 샅샅이 들여다보게
묵은 지금도 이윤을 높이기 위한 수율을 포기하고
묵 꼬치. 불안한 쪽의자에 걸터앉아 소주를 들이
됐다. 우선 1953년부터 어묵을 만들어 3대째 가업
있다. 제대로 된 어묵은 생선으로 만들어야 맞다.
켜야 제격이다. 볼품없는 안주와 함께 뜨끈한 국
계승을 이룬 60년 넘는 역사가 눈에 띈다. 일제에
회사에 몸담았던 사람의 말만으론 모자란
물이 빠질 리 없다.
징용됐던 할아버지 박재덕이 어묵 기술을 배워 영
다. 부산 부평시장 깡통골목 어묵 판매상들의 말
도 봉래동 시장 어귀에서 어묵집을 차렸다. 출발부
을 들어봐야 나머지를 채우게 될지 모른다. “부산
지금도 마트에 가면 마누라 눈치를 보며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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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의 원조가 어디입니까?” 약간의 의견차를 누
나올 수 없는 표시이기도 하다. 여느 어묵에 비해
하지 못한 일이다. 출발을 여는 일은 중요하다. 없
르고 삼진어묵을 드는 이들이 많았다. 부산시에서
차지고 탱글탱글한 식감은 당연하다. 끓이면 대개
던 것을 만들어낸 공로 때문이다. 이를 키워 더 큰
도 가장 오래된 어묵 제조소로 삼진어묵을 공인했
흐물흐물하게 풀어지는 어묵이 많다. 그 전에는 이
가능성으로 만들어가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살아
다. “삼진어묵이 오래된 이유만으로 원조라고 해도
유를 몰랐다. 생선 대신 밀가루가 더 많이 들어간
움직이지 않는 과거보단 현재를 숨 쉬는 친근감이
됩니까?”
별 볼일 없는 어묵이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어묵은
바라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몇 곳의 삼진어묵 매장
상인들은 다음 말을 이어갔다. “삼진만큼 제
가라! 좋은 어묵으로 끓여낸 건더기와 국물은 눈과
에 연일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누
대로 된 어묵 만드는 집 별로 없어요. 옛날부터 지
코를 흥분시키고 혀와 이빨의 호사로 마무리된다.
구나 바랐던 좋은 먹거리의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
금까지 맛이 똑같습니다.” 좁은 매장 뒤 ‘부산어
현재의 삼진어묵은 손자인 박용진이 이끌고
묵의 원조 삼진어묵’이라 쓰인 박스가 켜켜이 쌓여
있다. 젊은 경영인의 총기는 어묵으로 새로움을 열
삼진어묵을 한 자루 넘게 사서 먹고 있다. 어
있었다.
어간다. 반찬과 포장마차용으로 머물렀던 어묵을
묵이 이토록 맛있는지 미처 몰랐다. 맛의 감탄만으
빵처럼 먹을 수 있게 바꾸어 놓았다. 도넛과 고로
론 모자란다. ‘어묵을 세계적 먹거리로 키우면 어
조리 없이 바로 먹는 새로운 어묵도 개발
케, 바게트 같은 별의별 모양이 다 있다. 어묵을 바
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라면’과 ‘초코파이’
현재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어묵은 국내 전체 생산
로 먹는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쾨쾨한 냄새와 기
가 세계인의 음식이 된 과정을 떠올리면 못할 것도
량의 약 10% 정도다. 나머지 ‘부산어묵’은 부산어
름 끈적이는 어묵이 아니다. 별도 조리할 필요 없
없다. 까다로운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은
묵이 아닌 셈이다. 이름을 뺏긴 어묵의 본가 부산
이 바로 먹는 맛있는 음식이 됐다. 과거의 기억에
삼진어묵이다. 한국은 이제 남의 눈치나 보는 변방
으로선 속상할지 모른다. 부산어묵의 자부심은 맛
얽매일 필요 없는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어묵의 출
의 나라가 아니다. 스스로 세계 어묵의 중심을 자
으로 구별된다. 진짜 ‘부산어묵’은 먹어보면 안다.
현에 열광했다. 빵에 식상한 이들의 출출함은 신선
처하고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데 누가 뭐랄까.
생선에 관한 한 까다롭기로 유명한 부산사람들의
한 식감과 맛의 어묵이 책임진다.
제법은 남달랐다. 진짜 ‘부산어묵’인 삼진어묵은
이제 어묵은 세련된 인테리어의 베이커리 매
색깔도 맑고 희다. 좋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장 같은 곳에서 판다. 어묵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S
킨 결과를 잘 보여준 예다.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 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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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잡지 ‘롤링 스톤’의 커버 사진을 찍은 최 초의 여성 포토그래퍼, 도어스에서 비틀스까지 당 대 최고의 음악 거장들을 카메라 앞에 세운 인물. 동물권리 보호와 채식주의를 실천한 예술가. 비틀 스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자 네 남매의 엄마-. 20세기 최고의 여성 사진작가로 꼽히는 린다 매카트니(1941~1998)를 설명하는 건 단순하지 않 다. 아티스트이자 스타의 가족이면서 사회적 메시 지를 내세운 공인의 역할까지, 다채로운 삶의 면모 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린다를 추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림 미술관이 6일부터 내년 4월 26일까지 선보이는 린 다 매카트니 회고전이다. 3년여 기획 끝에 성사된 전시에서는 200여 장의 사진들이 공개됐다. “한 점 한 점을 남편 폴과 딸인 메리, 스텔라 매카트니 가 함께 고를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미술 관 측 설명이다. 5일 기자간담회에서 폴은 영상 메 시지를 통해 “린다는 나의 소울 메이트이자 수많 은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사진을 남긴 사진가였다” 는 말로 의미를 부여했다. 전시는 그의 삶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눴고, 이에 걸맞는 작품을 각 층에 배치했다. 포토그래 Linda by Eric Clapton, London © 1968 Paul McCartney / Linda McCartney Archive
퍼로서의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4층부터 보 는 게 좋다. 그가 사진의 길로 들어선 출발점부터
대림미술관 ‘린다 매카트니’전, 11월 6일~2015년 4월 26일
스타를 ‘무장해제’ 시킨 따뜻한 카메라의 힘
기록돼 있어서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린다는 친 구의 카메라를 처음 만져보며 흥미를 가지기 시작 했고, 타운 앤 컨트리 매거진에서 일하다 우연히 록그룹 롤링 스톤스의 프로모션 이벤트에서 촬영 기회를 얻는다. 뉴욕 허드슨강변에서 벌어진 선상 파티에서 그는 스타의 포장된 모습이 아닌 인간적 면모를 포착한 한 컷으로 일약 주목을 받는다. 전 시에는 당시 성조기를 배경으로 찍은 그의 데뷔 사진이 걸려 있다. 그 옆으로는 도어스, 사이먼&가펑클, 에릭 크 랩튼 같은 뮤지션을 앵글에 담은 작품들이 이어진 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참을 대화하며 스타들 을 무장 해제시켰던 것이 그만의 작업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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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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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도슨트 설명은 벽면 하나 가득 확대된 지미 헨 드릭스 사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강렬하던 평소 이미지와 달리 연약해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색다 른 표정을 잡아냈기 때문이다. 한 층 내려오면 비틀스의 ‘예스터데이’가 울 려 퍼진다. 그가 찍었던 비틀스 사진이 대거 포진 돼 있다. “린다가 비틀스의 사진을 찍게 된 것이 폴 과 결혼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사실이 아니죠. 린다는 당시 이미 유명한 사진가였거든요. 비틀스의 사진을 찍고 싶어 포트 폴리오를 가지고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가 카페에 서 담당자를 기다리다 우연히 폴을 만나게 된 겁 니다. 카페에서 린다를 처음 본 폴이 그랬다죠. ‘나 는 폴 매카트니입니다. 당신은요?’라고요.” 어쨌거나 린다가 찍은 비틀스의 사진은 상징 적이다. 존 레논과 폴이 즐겁게 작업하는 한 장면 을, 작업실에 쌓여 있는 5개의 커피잔을 찍었다. 벽 면 하나 가득 그 유명한 애비로드 앨범 커버 사진 이 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다른 사진가가 촬 영하는 동안 그 옆에서 같은 장면을 찍은 그만의 번외 작품이다. 3층에는 사회활동가로서의 흔적이 있다. 특 히 동물 보호 메시지를 담은 컷들이 인상적이다. 가령 영국 양의 심장이 99센트에 판매되는 컷이다. 일상 속 순간 포착에 능했던 린다는 차를 타고 가 면서도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을 찍거나, 자전거를 타는 소녀를 앵글에 담기도 했다. 마지막 전시 공간인 2층에는 남편 폴을 만난 뒤 달라진 작품들을 모아 놨다. 싱글맘으로 키우 Mary, Paul and Heather, Scotland © 1970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던 딸과 폴 사이에서 낳은 아이 셋을 키운 린다는 가족을 중요한 오브제로 삼았다. 린다를 백 허그 하거나 풀장으로 뛰어드는 폴의 모습도 있지만 아 버지로서의 폴을 자주 포착했다. 무스탕 외투 속 에 큰 딸을 넣어 두고 찍은 사진, 누드로 누워 딸을 안고 있는 사진들이 그러하다. 전시 홍보용으로 쓰인 사진은 비틀스 해체 이 후 스코틀랜드 농가 생활을 시작한 폴의 모습을 담았다. 세기의 스타답지 않게 허름한 옷을 입었지 만 한 팔에 아이를 안고 다른 한 팔을 하늘 높이 뻗 으며 소리지르는 듯한 표정에 행복이 가득하다. 이 회고전의 부제는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 어찌나 이 사진이 인상적인지, 작명의 이유가 고스 란히 느껴졌다. 월요일 휴관. 성인 5000원.
The Beatles, Abbey Road, London © 1969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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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도은 기자, 사진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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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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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과 램 갈비. 일본에서 들여온 불판에 참숯으로 굽는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47>
방법이 기계화되고 우리 소득 수준이 높아져 가면
워서 좋다.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중간쯤이라고 할
마포 라무진
서 식용소가 사육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까? 소화도 더 잘 된다. 근육의 섬유 조직이 더 가늘
쇠고기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지만 아직도 고기 중
고 연하기 때문이다. 쇠고기에 비해 몸에 이로운 불
지존의 자리는 굳건하다. 한 사회의 오래된 공통 인
포화지방산이 더 많은 것도 장점이다. 그래서인지
식이란 후천적 유전자마냥 쉽게 바뀌기 어려운 모
많이 먹어도 느끼하지 않고 포만감이 덜한 편이다.
양이다.
전체적으로 쇠고기보다 더 몸에 좋은 고기라고 할
보들보들 양고기 삿포로 스타일로 참숯에 지글지글
고기 요리가 발달한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
수 있겠다.
다 보면 우리처럼 쇠고기를 편애하는 경우는 많지
양고기를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 양고기 특
않다.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즐기는 편인데 쇠고기
유의 냄새는 거부감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하지
가 아닌 고기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고기
만 생후 일년 미만의 어린 양고기인 램(Lamb)에
였다. 고급 식당에서는 양고기 요리가 쇠고기 못지
서는 그 냄새가 심하지 않아 거부감이 거의 느껴지
않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때로는 한 단계
지 않는다. 약하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이것이 오히
위의 대접을 받기도 한다.
려 식욕을 돋우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쇠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고기
우리나라에서 양고기는 낯선 편이다. 전통적
최근 중국식 양꼬치가 유행하고 있기는 하다.
하면 가장 먼저 쇠고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열에
으로 양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찾는 이가 많
하지만 본격적으로 양고기 구이를 즐길 수 있는 전
아홉은 될 것이다. ‘오랜만에 고기 한번 먹으러 가
지 않으니 시장 크기가 작아서 좋은 양고기가 수입
문점은 많지 않고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그 중에
자’고 하면 당연히 쇠고기 먹으러 가자는 줄 아는
될 리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더 정을 못 붙여왔다.
서 소개하고 싶은 곳은 ‘라무진’이라는 곳이다. 일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말해 놓고 돼지고기를
하지만 해외 여행객의 증가와 함께 양고기를
식 요리사 출신인 주일용(38) 대표가 일본 홋카이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입
도에서 즐겨 먹는 양고기 구이 방식을 도입해서 시
우리 인식 속에 소고기가 이렇게 대단한 위치
맛도 다양하게 바뀌면서 양고기를 좋아하는 사람
작했다. ‘징기스칸’이라고 부르는 요리이다. 몽고
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전통적으로 귀한 존재였기
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도 원래 양고기를 거의 먹지
병사가 쓰는 투구를 불판 삼아 양고기를 구워 먹
때문이었을 것이다. 농사가 경제활동의 근간이었
않았는데 외국 출장을 다니면서 맛을 붙이기 시작
었다는 유래에 따라 메뉴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던 우리나라에서 소는 농사를 위한 도구였지 고기
해 이제는 일부러 찾아서 먹기에 이르렀다.
삿포로에서 양고기 구이 불판을 수입하고, 고기 찍
먹이는 상사는 윗사람 대접도 제대로 못 받는다.
를 얻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농사 짓는
양고기는 쇠고기보다 씹히는 느낌이 부드러 ●
어 먹는 소스 방식을 독학으로 배워서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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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은 기자의 거기 <5> 서울 신사동 ‘멜팅샵’
리조또꼬리찜과 깻잎 페스토 맛감각 사르르 녹아든 신개념 삼합
라무진 외부
서울 신사동에 새로 문을 연 ‘멜팅샵’의 ‘후
면, 와사비 소프트쉘 크랩
광’은 강렬하다. 2년 전 청담동에서 처음 문 열
팝오버(빵 튀긴 것), 겨자잎
어 서래마을·한남동·코엑스 등으로 지점을 늘
칩과 요거트 아이올리….
린 레스토랑 ‘테이스팅룸’의 세컨드 브랜드이기
라무진 내부
그 중 ‘멜팅 조리’가 돋보
때문. 건축가인 안경두씨와 조명 디자이너 김주
이는 음식들을 먹어봤다. 일
영씨 부부가 차린 테이스팅룸이 뜬 이유는 새로
단 와사비 소프트쉘 크랩
운 스타일의 메뉴 덕이다. 대표작 ‘시금치 플랫
팝오버. 보기엔 튀김의 기름
브레드(밀가루 반죽을 과자처럼 얇게 만들고
기가 부담스럽지만 와사비 소
시금치와 치즈를 풍성하게 얹은 음식’)’는 어느
스가 이를 잡아준다. 참치&포
새 경쟁 식당에서도 하나둘씩 따라하는 먹거
도 샐러드 피아디나(이탈리
리가 됐다. 이런 메뉴 베끼기의 정도가 점점 심
아식 또띠아)는 플랫 브레
해지자 식당이 먼저 나서서 테이크아웃 주문을
드의 시즌2 같다. 반죽 위에
없앴을 정도다.
짭조름한 참치와 달달한 적포
이런 연유로 또 다른 도전이 궁금하지 않
도가 그린 샐러드와 함께 올라간다.
을 수 없다. “요즘 참 갈 데가 없어”라거나 “어디
다른 버전으로 육회와 배를 올리는 피아디나
나 다 비슷하지 않나”라며 시큰둥하던 미식가
도 있다. 레드와인 소꼬리찜과 페스토 리조또
이곳에서 참숯으로 구워주는 양고기 구이는
들도 눈독을 들였는지 1일 정식 오픈을 한 이래
는 일행 모두가 감탄한 음식이다. 치즈가 녹아
한마디로 입에 착 달라붙는다. 입맛을 끌어당기는
예약을 안 하고는(하루 전 예약도 보장이 안 된
든 리조또에 바베큐 소스의 꼬리찜, 그리고 깻
찰진 고기가 입에서 부드럽게 씹히면서 술술 넘어
다) 갈 수 없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잎 페스토가 곁들여진다. 블로거 누군가는 이
에 문을 열었다.
간다. 냉동하지 않은 품질 좋은 램(Lamb)을 골라
도산공원 담벼락을 끼고 자리한 그곳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다. 느끼하지 않아서 먹으면
찾았다. 10m 전방에서 든 생각은 기왕이면 저
디저트는 또 어떤가. 오디와 머랭 파블로
서도 별 부담이 없다. 소고기에 비해서 고기의 향
녁이 낫겠다는 것, 그리고 데이트라면 더 좋겠
바는 비주얼에서 최강이다. 넓적한 머랭 2장 사
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묘한 중독적인 매력이 있
다는 점이다. 놀이동산 회전목마처럼 반짝이는
이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오디가 올려져 있고
다. 숙주나물과 대파, 양파, 버섯, 방울토마토 같은
외관이 일순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서다.
그 위에 슈가 파우더가 뿌려져 있다. 테이블마
야채를 곁들여 굽는데 여기에 양고기 기름이 배어
하나 막상 들어가면 또 다른 느낌이다. 공
다 맛 보는 리코타 아이스크림은 재미까지 더
간과 분위기가 그야말로 참신하다. 앤티크와 빈
했다. 소주잔 사이즈의 미니 종이컵에 막대기
쇠고기는 맛있다. 하지만 다른 고기들보다 월
티지를 섞은듯한 홀은 원목과 돌·타일·벽돌이
가 꽂힌 아이스크림이 들어가 있는데, 종이를
등하게 사랑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격
공존한다. 블랙과 브라운·화이트가 적당히 배
벗겨 메이플 시럽에 찍어 먹는다.
도 솔직히 터무니없이 높을 때가 많다. 이 생각에
분돼 있다. 다양한 소재와 컬러가 한데 모였는
여기까지 쓰고 보니 데이트로 오기엔 무리
동의하시는 분들은 양고기의 세계에 한번 발을 들
데 차분하고 고급스럽다. 벽에 붙은 앤티크 거
다 싶다. 메뉴마다 가격이 좀 나가는 만큼 양도
여 놓으시기를 권한다. 그 동안 맛보지 못했던 새
울들이 조도를 낮춘 조명 아래 더욱 반짝거린
많다. 둘이 왔다 식탐만큼 먹지 못해 아쉬울 게
로운 고기 맛이 그곳에 있다. 왜 진작에 몰랐나 싶
다. 여러가지가 녹아든 모양새가 그야말로 멜팅
뻔하다. 친구들끼리든, 엄마들 브런치 모임이든
은 분들이 꽤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샵이다.
여럿이 모여 고루 맛보는 게 낫겠다. 그리고 먹
들면 풍미가 더해지며 야채의 맛이 더 살아난다.
음식 역시 국적이 딱히 없다. 미국식·이탈 ▶라무진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40-2 전화 02-3144-0737 오후 5시부터 영업 시작하고 휴일은 없다. ‘생’ 램 갈비 1인분 2 만5000원, ‘생’ 징기스칸 양고기 1인분 1만8000원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를 ‘신개념 삼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는 동안이라도 서로에게 녹아들면 좋겠다. 이곳
리안식·한식의 식재와 요리법이 혼합됐다. 그래
의 분위기처럼, 음식처럼.
서 음식들의 이름이 길다. 바지락 매생이 비빔
dangdol@joongang.co.kr
▶멜팅샵: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7-19, 전화번호 02-544-4256, 월요일 휴무. 발레주차 가능. 오후 11시까지. 와사비 소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프트쉘 크랩 팝오버 1만8700원, 레드와인 소꼬리찜&페스토리조또 2만8600원, 오디와 머랭 파블로바 1만4800원.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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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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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전전긍긍하듯 그때쯤 세계경제는 붕 괴한 지 오래다. 식량 위기도 도래한다. 군대 따위 는 해체됐다. 전쟁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UN이 니 하는 세계 기구도 유명무실하다. 하물며 NASA 따위는 존재를 감췄다. 자연환경은 급격하게 절망 선으로 접근해 간다. 지구는 곧 종말을 고할 듯 위 태위태한 모습이다. 한때 전설적인 파일럿이었던 쿠퍼(매튜 매커 너헤이)는 아내를 잃고 장인과 아들, 딸 그렇게 두 아이와 대규모의 옥수수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그 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황사가 덮 치고 불길한 징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그 런 와중에 딸 아이 머피(멕켄지 포이)의 기이한 행 동으로 쿠퍼는 좌표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 서 비밀리에 작업중인 NASA 기지를 발견하게 된 다. 한때 멘토였던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현 재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 작업 이 진행중임을 실토하고 쿠퍼에게 다른 대원들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영화 ‘인터스텔라’
SF영화가 미래 세계의 얘기를 그리는 것으로만 생
이어 또 다시 은하계로 넘어갈 것을 제안한다. 쿠퍼
은하와 은하계 사이 웜홀 지났더니 인간이 마주친 건
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절대 그렇지가 않다. 앞날
는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딸 머피를 뒤로하고 아멜
의 얘기를 하려는 척 사실은 현재에 대한 문제를
리에(앤 해서웨이) 등 다른 팀원들과 함께 인터-스
성찰하려 한다. 2시간 49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망
텔라, 곧 은하계와 은하계의 사이에 있는 웜 홀을
망대해의 우주 이야기를 펼치는 크리스토퍼 놀란
넘어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우주의 공간으로 날아
감독의 대작 ‘인터스텔라’ 또한 마찬가지다. 이 영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쿠퍼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화를 보고 있으면 미래보다 현실의 고민이 더욱 깊
경악에 가까운 그 무엇이다.
어지게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12세관람가지만 18세 이
영화는 어느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하의 청소년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
‘움직이는 글자, 조선을 움직이다’ 10월 29일~2015년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운 신흥국가 조선은 여
2월 28일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말선초의 사회적 혼란을 서적을 통해 다스리려 했다.
활자에서 찾은 조선의 정신
태종은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주자소를 설치,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제작한다. 이 어 세종은 ‘갑인자(甲寅字)’를 통해 금속활자 기술을 크게 발전시켰고 세조는 당대 명필가였던 강희안과
정난종의 서체를 바탕으로 각각 ‘을해자(乙亥字)’와 ‘을유자(乙酉字)’를 제작했다. 임진왜란으로 서적의 손실 역시 막대했는데, 광해군은 주자도감을 설치해 금속활자의 전성기를 재현한다. 또 정조는 ‘정유자(丁酉字)’ 등을 만들어 규장각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출판 사업을 펼쳤다. 이번 전시는 성보문화 재단 호림박물관 소장품전으로 금속활자로 인쇄한 전적(典籍)과 문방사우를 중심으로 조선 전후기로 구분해 꾸몄다. 사진은 정유자로 찍어낸 『주서백선(朱書百選)』(1794년). 글 정형모 기자, 사진 호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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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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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될 것이다. 영화는 그래서 또 다른 갈래를 만들 어서 보여주는데 그건 바로 광활하고 깊은 시각 디 자인이다. 이 영화의 철학성을 짐작하기 힘들어 하 는 관객들에게 어마어마한 비주얼을 제공함으로 써 세속적 만족도를 주려 한다. 영화가 매우 철학 적이면서 동시에 세속적이고 신파적인 느낌이 드 는 것은, 명백히 1억6500만 달러(1650억원) 짜리 영화를 만들면서 비평과 흥행, 양 쪽 모두를 가져 가려는 놀란 감독의 기지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는 그래서 복합적이면서도 동시 에 단순하고,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이다. 세상과 우주는 물질적이지만 그 존재증명은, 지금의 인식 론상, 상당히 초월적일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미래세계에서 온 존재는 결국 우리의 연장선상이
극적으로는 구원의 문제로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
‘인터스텔라’는 결국 우리가, 거창하게 인류라
어서 ‘외계인=나 자신’이며 ‘우주=자아 그 자체’임
게 한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미래의 우리
고 얘기할 것도 없이, 이 험악한 세상살이에서 결
을 얘기한다. 같지 아니한 것은 같고, 같은 것은 같
가 구해낼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국 생존해 낼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그 생존의
다른 은하계의 12행성 중 한 군데에서 쿠퍼
방식은 결코 최첨단의 물리 방정식을 발견해 내는
와 아멜리에 등은 어마어마한 대양(大洋)과 그에
것이 아니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마음속으로 유
이 영화를 이해하는 키 워드는 어쩌면 환원이
따른 파도를 만나 사고를 당한다. 그래도 허비한
레카를 외치게 되는 것은 바야흐로 그때쯤이다.
다. 우리는 현재 3차원에 살지만 언젠가 4차원과 5
시간은 단 몇 시간. 그러나 지구에서는 이미 26년
유레카는 무엇인가를 발견해 냈을 때 소리쳐 외치
차원의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시
이 흐른 뒤다. 우주 정거장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
는 말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미래 세계의 아빠 쿠
공간을 뛰어 넘어 현재와 과거, 미래를 오가게 될
온 쿠퍼가 이미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구에서, 이
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머피가 지구를 구할 이론
것이다. 미래가 과거가 되고 과거가 미래가 되는 현
제는 어엿한 30대 처녀로 자란 딸 머피(제시카 채
을 발견하고 나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연구자료를
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곧 현재의 우리들은 미
스테인)의 통신 메시지를 보는 장면은 기이한 통
뿌리며 외치는 말이기도 하다. 진정한 유레카를 위
래 세계의 존재가 되고 미래에 갔던 우리는 다시
곡을 속으로 삼키게 만든다. 아버지는 늙지 않는데
하여!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영
딸은 점점 자신보다 늙어 간다. 그것을 바라보는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화가 들려주는 환원과 환치(還置)의 얘기들은 궁
아버지의 마음은 진정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사진 워너브라더스
지 아니하다. 그 불일치의 일치라는 변증법적 사고 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벵자멩 밀피예 & LA댄스프로젝트
영화 ‘블랙 스완’의 안무가이자 나탈리 포트만의 남
11월 13~14일 LG아트센터
편으로 유명한 벵자멩 밀피예가 이끄는 LA댄스프
블랙 스완’ 안무가 첫 한국 무대
로젝트(LADP)가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올 가을부 터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새로운 수장을 맡은 밀피예 는 지금 가장 핫한 스타 안무가. 무용불모지 LA에서 출범한 LADP는 무용수뿐 아니라 필름 메이커, 뮤지
션,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등 아이디어가 넘치는 예술가와의 창조적인 협업을 통해 창단 2년 만에 세계 무용계 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세 작품을 선보인다. 밀피예가 직접 안무한 ‘Reflections (2013)’ 는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에 빛나는 개념주의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타이포그라피와 감각적인 움직 임들이 다양한 조합으로 펼쳐지는 무대. 검은 여백 위를 유영하는 무용수들이 인상적인 엠마누엘 갓의 안무작 ‘Morgan’s Last Chug (2013)’와 금세기 최고의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가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보내는 아름 다운 걸작 ‘Quintett (1993)’도 볼 수 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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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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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에바 오디세이 저자: 이길용 출판사: 책밭 가격: 1만6000원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 걸작으로 꼽 히는 ‘신세기 에반 게리온’을 종교학
저자: 안대회 출판사: 태학사 가격:1만2000원
자의 눈으로 해설한 책. 애니메이션 TV판 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 속에 녹아있는 대중 문화 코드, 차용된 종교적 메시지, 인간 소
“세금을 납부하라 너무 시달려 / 견디다 못 견뎌서 집
“허둥지둥 달려온 마흔여섯 세월 거친 꿈은 아직
을 팔았네”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공감하는 사람이
식지 않았는데 강호의 곳곳은 아우들이 차지하고 비
자 특유의 해박한 인문, 사회, 종교철학적
바람 속 벗들은 곁을 떠난다/ 남산의 달빛 아래 홀로
지식을 동원해 해석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많겠지만, 요즘 시가 아니다. 정조·순조 시대 사람 장
섰더니 고목 가지엔 거미가 줄을 치
혼(1759~1828)의 시다. 바람을 읊고 달빛을 희롱하는 음풍농월, 전원의 여유를 노래하고 산수의 멋을 자랑하는 목가, 술기운 과 춤사위, 회고풍과 감상풍.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시(漢詩)’의 특징 들이다. 그런데 한문학자 안대회가 엄
외와 생명의 의미 등 존재론적인 문제를 저
『새벽 한시』
21세기 고단함 싹 풀어주는 수백년 전 漢詩
선한 100편의 한시에는 그런 게 없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중년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느끼는 남
저자: 남정호 출판사: 김영사
자의 허전한 심사도 200년 전이나
가격: 1만6000원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보다. 하지 만 그런 허전함을 훌훌 털어내는 것
유엔 사무 총 장으
도 소시민들의 몫이다.
로 당선된 지 7년. 반 총장의 코리안
“누가 우리 살림살이 가난하다더냐? 봄 되면 모
한시가 과거의 향수나 자극하는 낡고 무감각한 문학 이 아니기에 이런 시들을 애써 배제했다고 한다.
고 있다”(황오·1816~?)
든 것이 기이한 것을 / 산에서는 붉은 비단 병풍을 치
드림의 신화는 온 나라가 열광할 일이었지만 관심은 거기까
그럼 한시의 본모습은 뭘까? 저자에 따르면 20
고 하늘은 푸른 비단 휘장을 친다 옛 책을 읽는 것이
세기 이후의 문학과 차별되는 독특한 감각으로 세상
으뜸가는 멋 그 좋다는 고기 맛도 잊어버린다”(김성
관에 부딪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책
일·1538~1593).
은 그의 취임 이후 행적을 밀착 취재한 결
과 인생을 다채롭고 폭넓게 표현해낸 문학이 한시다. 몇백 년 전을 살았던 사람들이 쓴 시지만 지금 우리
“중년 되어 고향으로 되돌아오니 작은 집은 앞 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만큼,
녘을 내려다보네 산 스님은 산나물을 한 움큼 나눠
‘결함의 세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흠 많은 인생’의
주고 개울가 노인은 물고기를 한 바구니 보내네 / 그
희로애락을 담은 것이 『새벽 한시』에 엮인 100편이
풍미에 나는 사뭇 만족하노니 귀한 음식 부러워한 적
다. 그래서 여기엔 시대를 초월한 소시민의 삶이 오롯
언제 있었나?”(김이만·1683~1758)
하다. 세상 풍파에 찌든 일상을 살고 있지만, 철 따라
화려한 현역생활이 끝나간다고 초조해 할 필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의 이치에서 인생의
없다. 은퇴 후 잠시 공허함과 우울함도 찾아오겠지만
의미를 곱씹어 보는 지긋한 시선들이다. “팔딱팔딱 날아갈 듯 기운이 몹시 세어 앞으로 만 나가고 물러서지 못하나니 / 넓은 바다 푸른 파도
금방 괜찮아진다. 물리게 먹던 고기 맛보다 책 읽는 맛 을 새롭게 알게 되고, 잊고 지내던 고향의 풍미와 인심 을 새삼 깨닫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보니 한시란 우리 시대의 고품격 힐링 아
는 영영 가지 못하리라”(안축·1282~1348).
지였다. 이후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난
과물이다. 빈곤과 분쟁의 현장에서, 첨예한 대립에서 발휘된 그의 리더십을 조명한다.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윤태호 위즈덤하우스
02 비밀의 정원
조해너 배스포드 클
03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04 창문 넘어 도망친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05 나미야 잡화점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이템이다. 촌스럽게 희망과 절망 따위 입에 담지 않고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자유를 빼앗고 비참한 결말을
도 세상을 버텨나갈 힌트를 스스로 얻고, 몸과 마음을
맞는다. 뛰어오를 힘이 있어도 뒤로 한발 물러서는 태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지 저절로 알게 하는 것. 그게
도가 추락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생도 다르지
한시의 참모습이다.
09 싸드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10 버티는 삶에 대하여
●
작가·출판사
01 미생 1: 착수
한사코 상류로 오르려는 송어의 억센 욕망은 드
않다.
자료=교보문고
06 어두운 상점들의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07 어떤 하루 08 21세기 자본(양장본)
신준모 프롬북스 토마 피케티 글항아리 김진명 새움 허지웅 문학동네
GUIDE & CHART
영화
33
공연
클래식
전시
아더 우먼
아트서커스 ‘카발리아’
피아니스트 김준
이로재 창립 25주년 기념 가구전
감독: 닉 카사베츠
기간: 11월 12일~12월 28일
일시: 11월 14일 오후 8시
기간: 11월 6~21일
배우: 카메론 디아즈, 레슬리 만
장소: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장소: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장소: 서울옥션 강남점 호림아트센터 1층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1544-1555
문의: 02-3436-5929
문의: 02-395-0330
피아니스트 김준이 스크리아빈의 소
건축가 승효상의 건축연구소 이로재
모든 게 완벽하지만 연애만큼은 제대
‘태양의 서커스’의 공동설립자인 노만
로 안 되는 골드미스 변호사 칼리, 남
라투렐이 연출한 아트서커스. 세계
나타 전곡(10곡)을 연주하는 시리즈
창립 25주년 기념전. 승효상이 디자
편만 바라보며 살아온 케이트, 외모는
65개 도시 순회, 400만 관객을 매료
중 하나. 11세에 서울시향과 협연으로
인한 가구·조명·철물·소품을 각각 목
섹시하지만 사실은 순진한 여자 앰버.
시킨 무대로, 질주하는 말 위에서 펼치
데뷔한 김준은 이후 국내외 다양한 콩
공예가 박태홍·조명가 윤병천·소목장
외모와 취향, 성격이 모두 다른 세 여
는 환상적인 아크로바틱 등 49마리의
쿠르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조화신·최가철물점 최홍규 등 장인들
자의 공통점은 바람둥이 마크와 얽혀
말과 33명의 아티스트가 시종일관 예
작곡가 스크리아빈의 소나타를 지난
이 ‘우리 모두의 수도원을 위한 가구’
있다는 것.
술로 승화된 곡예를 선보인다.
5월부터 세 번에 나눠 완주한다.
라는 주제로 제작해 선보인다.
카트
연극 ‘타조 소년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정종기 개인전 ‘talk&family’
감독: 부지영
기간: 11월 15~30일
일시: 11월 15일 오후 7시
기간: 10월 24일~11월 14일
배우: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김강우
장소: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장소: 서울 청담동 표 갤러리 사우스
등급: 12세 관람가
문의: 1688-5966
문의: 02-580-1300
문의: 02-511-5295
대형마트 ‘더 마트’에서 일하는 선희
지난해 국립극단 ‘노란 달’로 호평받
아나운서 부부 손범수ㆍ진양혜가 연
정종기 작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통
는 마트 손님들이 아무리 불평을 하고
았던 연출가 토니 그래함이 선보이는
주자들을 초대해 여는 토크 콘서트.
해 현대인의 소외감을 그려왔다. “문
못살게 굴어도 꿋꿋이 참는다. 정규직
또 하나의 청소년극. 어른이 되었다가
성악가 부모에게 태어나 3세에 바이
명화된 현실 속에 감추어진 인물의 일
전환을 눈 앞에 두고 있어서다. 그런
여자가 되었다가 하는 소년들의 눈에
올린을 시작한 이야기, 5세에 국제 무
상을 표현, 개인의 존재가치와 삶을 되
그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
비친 어른 세상을 그려낸다. 혼돈의 시
대에 데뷔해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바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 작가의 기획의
온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일방적인
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너만
이올리니스트로 자리잡은 스토리를
도. 꿈을 잃어버린 청소년에 이어 이번
해고 통지를 한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연주와 함께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에는 대화가 단절된 가족이 등장한다.
클래식 음반
가요 음원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순위 영화명
주연
순위 공연명
출연
01 인터스텔라 02 패션왕
매튜 맥커너히 주원 설리 안재현 박세영
03 나를 찾아줘
벤 애플렉
01 뮤지컬 그날들
유준상 이건명
02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 03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옥주현 조승우 류정한
자료=풍월당
순위 음반명
음반사
01 카라얀: 1980년대 DG 관현악
DG
순위 노래 01 헤픈엔딩
자료=가온차트
가수 에픽하이
02 모차르트: 바이올린 Channel Classics
02 12시 30분
03 코미타스·구르디에프·몸푸
03 BORN HATER
에픽하이
04 스포일러
에픽하이
ECM
비스트
04 현기증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04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안재욱 임태경 팀
04 그라모폰 ‘디 오리지널스의 전설’
05 박스트롤
엘르 패닝 사이몬 페그
05 연극 리타
공효진 강혜정
05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Decca
05 화장 지웠어
개코
김우형 휘성 양요섭
06 오르페우[스]: 임선혜 Harmonia Mundi
06 오늘따라
2AM
07 독일 음악의 황금시대
07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이승환
08 손대지마
에일리
06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신민아 조정석
06 뮤지컬 조로
DG
07 보이후드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08 다이빙벨
이상호 안해룡
08 액션라이브쇼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09 우리는 형제입니다
조진웅 김성균
09 뮤지컬&토크 콘서트 온스테이지 시즌2
09 베토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Sony
09 언제쯤이면
10 나의 독재자 설경구
박해일 윤제문
10 연극 라이어 1탄
10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Warner Classics
10 술이 너보다 낫더라
07 뮤지컬 레베카
S
오만석 엄기준
공찬호 김연철
08 바흐: 푸가의 기법
Sony 굿 인터내셔널
윤현상 포스트맨, 6 to 8
ESSAY
34
이윤정의 내맘대로 리스트: 평양냉면 찬가
안주로 먹을까 해장으로 먹을까 히수무레 진짜 냉면 20대 초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게 평양냉면을 알게 된 일이
고기와 냉면 세트를 6000원에 판다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유명 식품회사
었다. 상사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를 미워했고 나도 그를 존경하지 않았지
브랜드 인스턴트 냉면을 들먹이며 그것보다 못하다고 할 것이다. 그럴 때 들
만, 그가 평양냉면 집에 데리고 갈 때 나는 늘 둘도 없이 싹싹한 사람으로 돌
려주는 답변은 한 가지. “이게 한 번 맛들이면 끝장이야.”
변했다. 처음 만난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100퍼센트 내 취향인 음
그러면서 한 수 가르쳐 주는 거다. “밍밍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슴슴하
식이!”라는 감탄을 멈출 수가 없다. 평양냉면을 내 인생에 소개해준 그 공만
다고 표현하는 거야.” 이러면서 백석의 시 한 줄도 읊어주면 좀 더 ‘있어’ 보
큼만 그를 덜 미워하게 되면서 식성은 미움을 뛰어 넘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겠다.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약속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일이 끝나면 내 머
매니어들끼리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냉면을 먹으러 갔으면 조용히 냉
릿속 냉면 내비게이션이 뚜뚜 작동하며 인근 평양냉면집을 검색한다. 점심
면 맛만 즐길 일이지 맛에 대해 또 상대방의 취향에 대해 언급해선 안 된다.
을 먹었든, 몇 km 떨어져 있든, 백발이 성
‘평양 냉면 매니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성한 노인들 사이에서 젊은 여자 혼자 앉
은 나름 미각과 맛집의 감식안에 자부심
아야 한다는 점도 가리지 않았다. 의정부
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평양냉면 매니어가 명심해야 할 7가지
는 성지순례처럼 여러 번 다녀왔다. 죽기 전에 전국의 유명 냉면집은 한 번씩 다 가
나는 일단 냉면이 나오면 찬 육수를
“냉면 먹으러 갈래?”(X) “평양냉면 좋아해?”(O)
벌컥벌컥 들이켜 맛을 본 다음 고춧가루
‘맹탕, 밍밍’같은 반응은 ‘슴슴하다’로 교정해준다
만 뿌려 먹는다. 거기에 식초와 겨자를 뿌
4대 천왕이 어디인지에 대해 절대 논쟁하지 말라
리든지 말든지, 혹은 계란을 냉면보다 먼
관에서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얼른 통
타인의 계란의 냉면 선후 섭취, 식초 겨자의 첨가 여부에 대해서 눈감아라
저 먹든 나중에 먹든, 편육 고명으로 면
일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요즘은 집 앞
1만원대 가격에 불만을 품는 이에게는 2만원대의 파스타값으로 응수하라
발을 싸서 먹든 그냥 먹든 상관 안 한다.
에 평양냉면계의 신흥강자로 부상한 식
안주로 먹을 것인가 해장으로 먹을 것인가
“이 평양 냉면이란 게 말이야”로 대화가
당이 생겨 일 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은 간
존박을 미워할 것인가 사랑할 것인가
시작되면 메밀 함량, 동치미와 쇠고기 꿩
볼 생각이다. 그러니 나의 냉면 사랑을 평양 옥류
다. 솔직히, 매일 가고 싶지만 참는 거다.
고기 국물, 갈아낸 얼음 육수에 대한 의
술 해장으로 냉면만 한 게 없고 심지
견이 엇갈리며 밥 먹는 자리가 불행하게
어 안주로도 최고다. 그러니 술과 냉면을
끝날 확률이 높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이틀 연속 사흘 연속 먹게 되는 수가 생긴다.
행여나 ‘평양냉면 집 4대 천왕’ 같은 주제가 올라왔다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 아, 하지만 이렇게 매니어 표시를 내는 일도 옛날 얘기가 되어간다. 평양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평양 냉면을 어떤 이들은 아주 싫어한다는 걸
냉면의 자발적 최강 홍보대사 존박이 등장한 이후, 평양냉면은 정말 ‘애들도
알게 되면서 ‘취향’이란 것에 대해 겸손해졌다. 나만 먹기 아까워서 집안 어
다 먹는’ 음식이 됐다. 국가스텐을 몰래 좋아하던 골수 팬들이 ‘나는 가수다’
른들 대접하러 데리고 갔다가 구박만 잔뜩 받았다. 사람들이 “뭐 먹을래?”
때문에 그들이 누구나의 가수가 되자 이유없이 화가 나듯, 번듯하고 깔끔한
라고 할 때 나의 1순위는 이미 정해져 있지만 신중해야 한다. “평양냉면 어
인테리어의 평양 냉면집이 속속 등장하고 더 먹기 쉬워졌지만 왠지 심통 부
때?”라고 묻고 “아 그래 냉면 좋지”라고 대답할 때도 다시 한 번 차분하게 확
리게 된다.
인한다. “그냥 냉면 말고 ‘평양’냉면. 먹어본 거지? 좋아하는 거지?”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진정한 매니어로 거듭나면 그것도 극복할 수 있
굳이 초보임에도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이제 겨울이다. 여름에 바글거렸던 흔한 냉면 손님들 때문에 존박을 원망
방심하면 안 된다. 제대로 몇 젓가락 뜨지 못하면서 “이게 당최…아무 맛도
한 사람이라면 혼자 한가로워진 식당에서 조용히 맛을 음미하면서 “냉면은
없는 맹탕에 맹물도 아니고 밍밍한 게”라는 반응이 올 확률이 30%는 된다.
역시 겨울이지”를 외칠 때다.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
PHOTO ESSAY
35
케이티 김의 남과 여
사랑은 앞으로 지나치며
사랑이란 때론 지나치는 것
걸터앉기도 하고 위로 오르기도 하고 혹은 무작정 따라가야만 하는 법. 내 말인즉, 로버트 인디애나식 사랑이 그렇다는 것.
Manhattan, New York 2013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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