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08 ISSUE
14 ART
16 INTERVIEW
20 GALLERY
22 ARCHITECTURE
24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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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 얀손스(71). 라트비아 공화국 태생의 지휘
얀손스의 팬이 유독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 카라얀ㆍ므라빈스키에게 지휘를 배웠으며 아
선 굵고 묵직한 음악을 선보이다가 부드럽고 나긋
버지 역시 지휘자였다. 1971년 카라얀 콩쿠르 우승
나긋한 노래로 음악을 확 바꾼다. 청중이 지휘자
으로 데뷔했다. 현재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의 완급 조절을 쫓아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로열 콘세트르허바우 오케스트라(RCO)를 이끌
이런 밀고 당김에 빠졌던 팬들의 걱정은 얀손
고 있다. 이전에는 오슬로ㆍ런던ㆍ피츠버그 심포니
스의 건강이다. 그는 내년 3월 RCO와 고별 연주
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지금껏 함께 연주한 악단으
를 계획하고 있다. 10년 동안 함께 한 오케스트라
로는 뉴욕필, 베를린필 등등….
다. 지난 4월 사임 발표를 하면서 얀손스는 건강 문
이 설명은 사실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얀손스
제를 이유로 들었다. 그는 1996년 오슬로에서 오
가 40여 년 동안 세계 일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페라 ‘라보엠’을 연주하던 중 심장발작으로 쓰러
이유를 확인할 방법은 따로 있다. 그리고 간단하다.
진 경험이 있다. 2003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유튜브에서 얀손스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가 연
무대에 올라 단원들이 앉을 의자의 방향까지 바꾸
2004년 RCO를 맡으면서 책임이 겹쳤고, 건강에
주한 말러의 교향곡 2번을 들어보는 것이다.
는 사람이다. 영국의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
대한 우려가 다시 나왔다.
이 교향곡은 음악적 변화가 많다. 특히 장례
는 “수십번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도 처음 보는 것
18ㆍ1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얀손스는 바
식 혹은 죽음을 표현한 1악장이 그렇다. 시작은 현
처럼 공부해 새로운 걸 꼭 찾아내는 지휘자”라고
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내한공연을 한다. 2년 만
악기가 도전적이고 불안한 저음으로 한다. 리드미
평했다. 오슬로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용 홀 건립을
이다. 그는 RCO를 사임하면서 바이에른 방송교
컬한 음악은 이내 장대한 선율로 바뀐다. 1악장은
위해 지휘자 자리를 걸고 정부와 싸웠던 강경파다.
향악단에 전념하고 싶다고 밝혔다. 연주곡으로는
지휘 스타일에도 성격이 드러난다. 전통적 해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얀손스는 이러한 대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석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정도를 간다. 단원들은
그림’, 슈트라우스 ‘돈 주앙’,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강렬한 부분에서는 단원들에게 박자를 오차 없이
정확한 통제 속에서 분명한 연주를 한다. 얀손스
5번을 골랐다. 말 그대로 정통 교향악이라 할 만한
완벽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선율이 긴 호흡으로 이
의 지휘 동작은 불필요한 부분이 없는 것으로 유
작품들이다. 협연자도 없다. 무섭도록 철저하지
어지는 부분에 오면 달라진다. 지휘봉을 거꾸로 쥐
명하다. 그러나 한편 그는 천상 체험과 같은 몰입
만 지휘대에 오를 때만큼은 소년처럼 웃고, 음악
어 없애다시피 하고 맨손으로 지휘한다. 악기들은
을 강조하는 지휘자다. 음악의 내용이 달라지면 지
적 긴장을 쥐락펴락 하는 지휘자가 오롯이 강조될
충분한 자유 속에서 마음껏 노래한다.
휘봉도 없애버리고 맨손으로 노래 안에 들어가는
무대다.
것이다.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 빈체로
이렇게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교대하며 진행된다.
그는 엄격한 지휘자로 꼽힌다. 리허설 전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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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중국 상하이 워터하우스에서 열린 ‘K패션 프로젝트’의 제시뉴욕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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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패션 프로젝트’는 한국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 하기 위해 한국패션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고 있는 야심찬 기획이다. 2012년 뉴욕에서 주요 바이어와 프레스를 초청해 한국 브랜드를 본격 소개했고 2013년에는 뉴욕의 유명 트레이드쇼인 ENK 인터메조의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해 한판 쇼를 펼쳤다. 올해는 판을 더 키웠다. 지난 4일 저녁에는 중국 상하이에서도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워터하우스에서 400명이 넘는 현지 바 이어와 언론, 패션 피플을 초청한 가운데 화려한 패션쇼를 했 다. 한국패션협회가 글로벌 브랜드 육성사업에서 리딩 브랜드 로 선정한 ‘제시뉴욕(JESSI N.Y)’, ‘버커루(BUCKAROO)’, ‘지센(ZISHEN)’의 옷을 입은 중국 모델들은 런웨이를 마음껏 활보하며 옷맵시를 뽐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뉴욕의 5대 쇼룸(주요 바이어와 언 론이 신상품을 체크하는 곳)으로 꼽히는 곳에 처음 한국 브랜 드를 입점시키고 맨해튼 한복판 브라이언트 파크 호텔 최고층 라운지로 주요 바이어와 언론을 초청해 국내 브랜드를 입은 미 국 모델들과 만나게 했다. 이 행사에 참가한 브랜드는 역시 패 션협회가 리딩 브랜드로 선정한 ‘제시뉴욕’, ‘버커루’, ‘데무 (DEMOO)’였다. 특히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 다’에서 의상 감독을 맡았던 뉴욕 패션계의 거물 패트리샤 필 드에게 두 행사 모두 의상 선정 및 스타일링을 맡겨 눈높이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한국패션협회는 패트리샤 필드가 2012년부터 한국 패션을 뉴욕 패션계에 알려온 공로를 높이 사 K패션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뉴욕에서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번 상하이와 뉴욕 행사에 모두 참가한 업체가 여성복 브랜드 ‘제시뉴욕’의 제시앤코와 프리미엄 진 브랜드 ‘버커루’를 갖고 있는 엠케이트렌드다. 두 곳 모두 동대문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20여 년 동안 차근차근 몸집을 다져온 이들은 이제 세계 시장 을 본격적으로 두드리려는 참이다. 상하이·뉴욕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한국패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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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상하이 ‘K패션 프로젝트’의 제시뉴욕 무대. 아래 사진은 제시뉴욕 2014 FW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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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필드와 함께 한 전희준 대표와 남희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산학을 전공한 남자와 디자인을 공부한 여자가
을 내세워 ‘완벽한 옷’을 추구한 제시뉴욕의 입소
남 디렉터에게 제시뉴욕은 어떤 옷일까. “요
1996년 결혼을 한다.
문은 금세 퍼졌다. 런칭 6개월 만에 제품을 달라는
즘 소비자들은 정보가 많아요. 그런 분들이 딱 볼
매장이 30곳이 넘었다.
때 무궁무진하게 자기 스타일링을 할 수 있는 옷?
그런데 여자에겐 조건이 있었다. 옷장사를 같 이 해야 한다는 것. 수입 수영복 회사 이사였던 남
“비결이라면 부부 기업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
룩북을 많이 제작해 매장에 계속 제공하는 이유
자는 그 조건을 수락한다. 그리고 2년 뒤 딸의 이
했다는 것이죠. 일반 회사는 디자이너 바뀔 때마
도 아이디어를 많이 드리기 위해서죠. 주력은 시티
름을 따 회사를 만들고, 브랜드를 런칭한다. 제시
다 브랜드 색깔이 바뀌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저
룩이지만 이효리처럼 자연 속에서 여유를 추구하
앤코의 전희준(47) 대표와 남희정(45) 크리에이티
희는 원가 절감을 위해 현장을 직접 뛰면서 결정
는 ‘바바 쿨(Baba Cool)’이라는 컨셉트에도 관심
브 디렉터 얘기다.
을 빨리 빨리 했어요.”(남)
이 있어요.”
“외환위기 직후 숙녀복 시장이 무너진 때였죠.
“저희가 가두 매장이 70%에요. 매장 점주들
스타 마케팅도 한몫했다. 영화 ‘미녀는 괴로
좋은 제품을 착한 가격에 내놓아 여성 캐주얼 매
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일로 만났지만 서로의
워’(2006)에서 수술 후 바뀐 김아중이 거리를 활보
스티지(masstige·합리적인 가격의 명품) 시장을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저희는 어음결제가
할 때 입던 옷이 그랬다. “연말 파티용으로 조금 만
주도해보고 싶었어요. 스타일리시한 28세 뉴요커
없어요. 신뢰가 쌓여야 진정성이 나오거든요. 이것
든 옷인데 스타일리스트 눈에 띄었죠. 영화는 시
제시라는 모델을 설정했죠.”
은 중국과 거래하면서도 마찬가지에요.”(전)
즌 후에 나왔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한 2년 동안 꾸
여성 캐주얼을 시작한 동기를 묻자 전 대표는
2005년 상하이에 중국법인을 설립하고 이듬
준히 팔렸어요. 요즘엔 스타홍보대행사에서 자기
대뜸 ‘가족력’이라고 말한다. 남 디렉터가 말을 받
해 공장도 설립했지만 중국 시장은 쉽지 않았다.
연예인 돋보이게 할 때 와서들 골라가시더라고요.
았다. “어머니와 이모들이 모두 대단한 멋쟁이셨어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었다. 북방과 내륙과 남쪽
그럼 블로거들이 어디 옷이라고 찾아서 올려주시
요. 옷감을 떠다가 직접 해 입으셨죠. 어릴 적부터
이 각각 다른 나라였다. 중국인과 중국 시장에 맞
죠.”(남)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재봉질도 잘했고요.
는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조금씩 적응했다. “올해로 10년이네요. 중국 시장에서 10년간 버
외 전시에 나갔다. 처음에는 한국을 전자제품이나
텼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해외 바이어들도 이
휴대전화 만드는 나라로만 알았던 바이어들이 이
걸 보더라고요. 중국 시장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
제 ‘너희도 패션하는 국가구나’라고 인정하기 시
작했고요.”
작했다는 게 가장 보람 있다고 했다. 남 디렉터의
집안이 옷 얘기로 항상 와글와글했죠.” “집사람이 서초고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때 별 명이 ‘서초 패션’이었대요.” “제가 중학교부터 교복자율화 시범학교를 나
2007년부터 정부와 협회의 지원을 받아 해
전 대표는 “트렌드보다 소비자를 읽는다는
이름을 딴 유러피언 컨템퍼러리 브랜드 ‘알렉시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생각했다는 이들 부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라이드 있는 소비자는
앤(Alexis N)’과 플레이보이와의 콜라보레이션,
부가 회사를 세우면서 눈여겨본 것이 이탈리아의
세일하는 브랜드를 원치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북유럽 스타일의 가구 멀티숍 ‘까사 알렉시스’ 런
‘프론토 모다’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있는 옷들을
래서 저희는 세일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좋은 제
칭도 제시앤코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모아놓고 도매로 파는 곳이었다. 이들은 동대문 시
품을 착한 가격으로 드리고 싶어요. 1년 전에 선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게 중요한 가치가 됐어
장 뒤편에 건물을 빌려 디자인과 제조와 유통을
(先)기획을 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굉장히 어려
요. 삼성, 싸이, 서울이 대표적이죠. 브랜딩과 가치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오로
운 일이지만 점주들과 꾸준히 토론하면서 현장의
라는 차원에서 의류 산업은 대단한 벤처 산업인데,
지 ‘빨리, 싸게’가 모토였던 동대문에서 특유의 촉
목소리도 반영하고 있어요.”
이런 분위기를 잘 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왔어요. 그 덕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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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상하이 ‘K패션 프로젝트’의 버커루 무대. 아래 사진은 버커루 상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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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뉴욕 인터메조 행사장에서 패트리샤 필드와 만난 김문환 대표.
지난달 23일 저녁 맨해튼 한복판 브라이언트 파크
장을 휩쓰는 것을 보고 ‘한국 브랜드의 자존심을
호텔 최고층 라운지. 뉴욕의 패셔니스타 패트리샤
보여주자’하고 TBJ에 힘을 집중했지요. 이어 2001
‘국내 1등이 우선’이라는 보수적인 회사 분
필드가 한국 브랜드 옷을 입은 모델들과 포즈를
년 Old&New(현 ANDEW), 2004년 버커루, 그리
위기에 내수에만 집중해 오다가 2007년 미국 시
취했다. 그는 옆에 선 모델의 셔츠를 가리키며 흥겨
고 2011년에는 미국 프로농구 브랜드 NBA를 각
장을 처음 구경하러 갔다. “도매가가 생각보다 높
워 했다. “최근 버커루와 진행한 컬래버레이션 제
각 런칭했습니다.”
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입고
점입니다. 손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품이다. 빨간 머리 젊은 여성의 얼굴이 아주 귀엽
김문환 대표는 “특히 버커루는 게스, CK진,
간 옷에 관심들이 높아 저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지 않나. 보시다시피 내 얼굴을 틴에이저 스타일로
리바이스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대전을 벌이는
2008년 뉴욕과 상하이, 홍콩에 현지법인을 세우
꾸몄다. 미디어가 관심을 갖게 되면 시장에서도 좋
프리미엄 진 시장에서 2위를 고수하는 괄목할만
고 해외 진출을 시작했습니다.”
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 기대한다.”
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버커루는 2009년부터 시작된 글로벌패션 리
버커루를 만들고 있는 엠케이트렌드는 동대
프리미엄 진을 표방한 버커루에 처음에는 우
딩 브랜드에 한 해도 빠짐없이 선정되며 국내 대
문 의류시장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90년 의류
려도 많았다. “왜 진을 하느냐, (유행하는) 캐포츠
표 브랜드라는 입지를 다져갔다. 게다가 인기를 얻
소매업에서 시작해 도매로, 다시 자체 브랜드를 개
(캐주얼 스포츠)를 하지” “해외 브랜드는 충성도
기 직전의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삼은 전략이 적중
발하며 몸집을 다져왔다. ‘데님(denim·두툼한 면
가 높아 뚫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에도 ‘장인
해 스타 마케팅에서도 발군의 안목을 과시했다. 비,
직물)의 지존’이라 불리던 걸출한 디자이너 김상훈
정신’과 ‘고가정책’을 고수했다.
원더걸스, 신세경, 송지효, 김우빈이 대표적이고 올
(60) 현 대표이사 부사장이 94년 형님 김상택(62)
“외국 브랜드와 달리 국내 소비자를 잘 이해
현 대표이사 회장과 고향(강원도 양구) 후배로 대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국 브랜드는 나온 지
기업 바이어로 일하던 김문환(57) 현 사장을 끌어
몇 개월이 지나야 들어올 수 있었지만 우리는 최신
김 대표는 “웨스턴 스타일의 버커루와 미국
들여 95년 (주)티비제이(2000년 엠케이트렌드로
스타일을 반영해 빨리 생산하고 또 한국인 체형에
프로농구 NBA 브랜드라는 두 가지 트랙으로 중
상호 변경)를 설립했다.
대한 연구와 노하우를 최대한 반영했지요. 특히
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고 포부를 밝
외국에서는 한국에서 워싱했다는 것이 커다란 강
혔다.
“외환위기 직후 외국 청바지 브랜드가 국내 시
최태현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산업정책관
해는 드라마 ‘미생’에서 준수한 신입사원 장백기 로 열연 중인 강하늘이 발탁됐다.
“패션 산업은 창조 경제의 주축”
K패션 프로젝트’ 시작 동기는.
順·2012년)나 된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턱이 높았는데 올해 처음으로 ‘52’ 쇼룸에 입점을 시켰
“패션은 제조업과 지식정보ㆍ문화ㆍ유통이 융합된, 국
높아진 것을 활용해 2009년부터 유망 중소 브랜드를 선
다. 또 유럽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을 위한 IT융합 밀라노
가 브랜드 경쟁력과 관련 깊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그
정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패션쇼에 참가했다.”
다른 정부 지원사업과 차별점은.
러나 국내에는 아쉽게도 이렇다 할 글로벌 패션 브랜드
향후 추진 방향은.
가 아직 없다. 참고로 세계 100대 글로벌 브랜드를 보면
“영향력이 큰 현지 패션계의 주요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
“패션 산업이야말로 창조 경제의 주축이 될 수 있는 만큼
패션 산업이 13개(루이 비통, H&M, 나이키, 자라, 구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뉴욕 쇼룸은 매우 중요하지만 문
글로벌 브랜드 기반 마련을 위해 지원을 계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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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되지만, 사랑은 안 된다. 달콤한 속삭임은
천재다. 사랑은 평범한 삶을 단숨에 천국으로도,
되지만, 진지한 맹세는 금지다.
지옥으로도 바꾸어버린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브
키티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주고 받는 사소한
이 황당한 룰이 지배하는 곳은 사치스러운 무
론스키에게 마음을 빼앗긴 안나는 감정을 억누르
눈길, 표정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챈다! 검은 머
도회용 드레스 위에 위선과 거짓이라는 장식품이
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집으로 돌아왔다. 역에는
리에 검은 벨벳드레스, 짙은 회색 눈동자의 안나가
필수적이었던 사회, 바로 19세기 말 안나 카레니나
남편이 마중 나와 있었다. 다정한 환대였다. 그러나
뿜어내는 생기, 그리고 브론스키의 순종적인 표정.
가 살았던 귀족들의 사교계였다. 권세와 아름다움
그녀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이상하게 생
갓 피어난 사랑으로 그들의 주변 세상은 싱싱하게
과 교양, 모든 것을 다 가진 고관 대작의 부인 안나
긴 남편의 귀”였다. 덩치에 비해 가늘고 느린 목소
물들었다. 20대의 키티가 30대의 안나보다 아름답
는 야심만만한 젊은 군인 브론스키 백작과 사랑
리도 귀에 거슬렸다. 새롭게 눈뜬 감정은 이전에는
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랑의 패배자가 된
에 빠졌다. 그러나 사랑을 선택한 대가는 컸다. 안
깨닫지 못한 불만에 구체적인 이미지와 소리를 부
키티의 눈에 안나는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비참한 죽음이었다.
여하기 시작한다. 반면 남들에게는 중요한 사교계
가진 여인으로 보인다.
1878년 처음 발간된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
에게서 청혼 받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던 키티였다.
관행은 그녀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는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톨스토이는 궁극적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천
읽히는 걸작이다. 2007년 발간된 『 톱 10 : 문인들
재다. 전지전능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각 개인은
브론스키의 눈을 멀게 하고, 키티를 절망에 빠뜨
의 추천작』 은 영국, 호주 등 영어권 문인 125명이
모두 불완전하고 자기 위치에서만 세상을 볼 뿐이
린 안나처럼 검은 머리에 짙은 회색 눈동자의 여인
추천한 가장 위대한 소설 10권을 추린 책인데, 이
다. 다만 사물의 모습이 가장 제대로 보이는 위치
을 그린 그림. 화가 크람스코이는 이런 여인을 그리
중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가 1위를, 『전쟁
에 서있는 인물이 있을 뿐이다. 그가 내세운 인물
고는 ‘미지의 여인’이라는 아리송한 제목을 붙였
과 평화』 가 3위를 차지했다.
들 중 흠 없는 인물은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뿐만
다. 도도하면서도 슬퍼 보이고, 냉정하면서도 마음
10년을 주기로 4번 『안나 카레니나』 를 읽었
아니라 톨스토이의 분신으로 알려진 레빈 역시 그
속에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여인.
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 요즘 태어났다면, 톨스
렇다. 부족하고 조금씩 흠 있는 여러 인물들의 다
누굴까? 후대의 미술사학자들은 이 그림을 ‘안나
토이는 분명 대단한 영화 감독이 되었을 거다. 러시
양한 시점에서 사태가 묘사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카레니나’로 해석했다.
아 사회를 관통하는 장대한 스토리 라인 뿐만 아
소설에는 가장 종합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세
니라 장면 구성의 정교함, 심리를 전달하는 미묘한
상이 얻어진다.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그렸던 크람스코이
『안나 카레니나』 의 집필이 시작된 1873년 그 해, 화가 크람스코이는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그렸
동작, 스치듯 주고 받는 각 인물들의 시선 흐름까
예컨대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졌음을 가장
다. 후에 톨스토이는 소설 속에 화가 크람스코이를
지, 소설의 모든 장면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
잘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그 사
모델로 한 미하일로프라는 화가를 등장시킨다. 소
게 펼쳐진다.
람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이다. 이 소설의 가장
설 속에서 화가 미하일로프는 안나의 초상화를 그
매력적인 장면 중 하나인 안나와 브론스키가 함께
렸다.
여자와 사랑의 내면을 파고든 톨스토이
춤추는 장면을 보자. 정신없는 무도회에서 오로지
소설에서 톨스토이가 묘사하고 있는 초상화
여자, 그리고 사랑에 관한 한 톨스토이는 진정한
그들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브론스키
속 안나의 미소는 단순하지 않다. 전체적인 인상은
문학과 미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문화사 속 인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위대한 미술책』 『미술의 빅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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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었지만, 거기에 어떤 ‘도취’된 듯한, 정당하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브론스키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내고 나서 농
지 않은 ‘승리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안
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사랑
민 계몽운동과 새로운 공동체 운동에 매진했다.
나의 본성인 ‘다정함’을 숨기지는 못하는 매력적
은 더 부족해 보이는 법. “그녀는 그의 사랑이 식
그는 서구화된 귀족들의 위선적이고 타락한 삶을
인 초상화였다. ‘슬픔’과 ‘도취’ 같은 부정적인 뉘
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낮에는
비판하고 러시아 농민들의 소박함을 삶의 모범으
앙스로 물든 아름다움. 그것은 몰락하는 세계의
일로, 밤에는 모르핀으로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로 삼았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레빈과 키티
징표다.
출구를 찾지 못한 안나는 기차역에서 투신해 비극
는 톨스토이가 찾은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
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들이다. 소설에는 이런 대안적인 삶을 찾으려는 수
안나와 브론스키가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헤어지는 사교계의 룰을 따랐다면 파멸하지는 않
브론스키에게도 긴 고통만이 남았다. 살아있
없이 많은 논쟁이 담겨있다. 이로써 『안나 카레니
았을 것이다.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아들의 불륜
는 안나와는 사랑을 할 수도, 이별을 할 수도 있지
나』 는 단순한 애정소설을 넘어 러시아적 삶에 대
을 알고 처음에는 흡족해”했다. 그 상대가 지체 높
만, 죽은 안나와는 사랑도, 이별도, 그 어떤 것도 불
한 거대한 보고서, 진정한 인간적인 삶에 대한 탐
은 고관대작의 부인이니 아들의 출세에 오히려 도
가능하다. 허무의 끝에 선 브론스키는 전쟁에 참
구가 된다. 거대한 스케일을 꽉 채운 경이로운 디테
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
여하기 위해서 길을 떠나버린다.
일. 이것이 톨스토이가 여전히 많은 문필가와 독자
랑이 “베르테르 식의 지독한 열정”이라는 것이 드
출구는 없는 것일까? 백작 가문에서 태어난
를 사로잡는 이유다.
러났을 때부터는 문제가 달라졌다. 진실한 사랑의 대가는 경멸과 독설
사랑은 짧고, 고통은 길었다. 그들이 진실한 사랑 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아한 사교계의 모든 신기루는 사라지고 말았다. 차가운 경멸과 독 설이 무방비 상태의 그녀를 공격해 왔다. 진실된 사랑을 찾아 상류사회의 틀을 깨고 나왔지만, 안나 자신도 다른 삶의 방식을 알지 못 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왔지만, 그녀는 그 시골에서도 온통 외국 제품으로 가득 채운 집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했다. ‘사교계’로 표현된 타락한 귀족 사회 전체의 틀에서 벗어난, 다른 대 안적인 삶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와 그녀는 그 저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뿐”이다.
N.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1883) 부분
S
●
판소리 ‘추물’을 공연 중인 소리꾼 김소진
창작 판소리의 아이콘인 소리꾼 이자람(35)이 신작을 올린다. 지난 2월 두산아트센터의 젊은 창 작자 지원프로그램인 ‘두산 아트랩’의 워크숍 형태로 관객을 먼저 만났던 주요섭 단편선 ‘추물/ 살인(11월 20~23일, 두산아트센터)’을 갈고 닦아 초연 무대를 갖는 것. 그런데 소리꾼으로 무대에 오르지는 않는다. 자신이 이끄는 ‘판소리 만들기 자’의 소리꾼 김소진 과 이승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대본과 작창, 예술감독으로 물러섰다. 우리 시대의 아름다 운 소리꾼들에게 자기 작품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도다. 드라마투르기와 연출은 요즘 가장 실험적인 연극을 하는 집단으로 알려진 양손프로젝트의 젊은 연출가 박지혜(30)를 초빙해 한결 절제된 무대로 완성했다. 여기저기서 ‘새로운 판소리’의 탄생을 알리는 요즘, 기본으로 돌아가 ‘진짜 판소리’의 영역을 다지고 소리꾼들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두 여자를 만났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두산아트센터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긴 파마머리를 풀어헤친 두
저것이 내가 만나고 싶은 연출가의 모습이라 생각
여자는 자매 같았다. 5살 나이 차를 느낄 수 없을
했죠. 원래 ‘양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극단 중
만큼 다정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존경을 가득 담은
하나기도 해요. 판소리가 혼자서 여러 세계를 관객
눈빛을 번번이 교환했다. 양손프로젝트 연극의 열
의 상상으로 불러일으키는 장르인데 양손이 하는
성팬으로 모든 공연을 챙겨봐 왔다는 이자람이 어
것도 그런 미니멀리즘이거든요. 제가 하는 작업과
느 날 공연장에서 만난 박지혜에게 홀딱 반하면서
닮아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왔죠.”(이) “저도 판소리라는 장르도 좋아했고 사천가를
인연이 시작됐단다. “그날 저는 공연과 박지혜라는 사람을 같이
흥미롭게 봤어요. 제가 단편소설 작업을 막 시작
관람했어요. 며칠 동안 계속 해 온 공연임에도 흥
한 시점에 자람 언니가 나타났죠. 단편소설과 판소
미 가득한 관객처럼 자기 공연을 보더라고요. 아,
리를 같이 해보자면서요. 주요섭 작가를 좋아해서 S
이자람
연극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후보군 상위에 랭크돼
요. 하지만 서민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시
있다가 탈락됐던 작품 ‘추물’을 내미는 거에요. 모
대나 있어야 되요. 언년에게 공감하는 것은 그 시
든 것이 흥미로웠죠. 단편소설로 판소리 하는 것도,
대에 힘들었다는 게 아니라 지금도 못생긴 여자가
판소리 장르 자체도, 이자람도 다.”(박)
후진 동네에 태어난 조건들이 계급을 매긴다는 거
두 사람의 접점인 주요섭은 20세기 초 격변하
에요. 언년이는 지금 태어났어도 가난하기에 성형
는 한국 사회 속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
수술도 못 받고 돈을 모으기까지의 과정이 험난했
가다. ‘추물’은 첫날밤도 못 치르고 남편에게 소박
겠죠. 내가 하고픈 얘기는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
활약중이다. 지난 8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소리꾼으로
맞은 추녀 ‘언년’, ‘살인’은 꽃다운 나이를 매음으
로도 풀리지 않을 계급과 물질의 문제들이고, 이
서 3년만의 신작 ‘이방인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로 보내며 살아온 창부 ‘우뽀’의 이야기다. 이자람
런 이야기를 죽을 때까지 할 거에요. 내가 부당하
은 전작 ‘사천가’ ‘억척가’에 이어 주요섭을 통해
거나 슬프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감하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겪어야 하는 말못할 고통을
고 싶어서요.
‘판소리 만들기 자’ 예술감독. 창작 판소리 ‘사천가’ (2007) ‘억척가’(2011)로 국내외 공연계에 큰 반향을 일 으켰다. 뮤지컬 ‘서편제’로 2014 더뮤지컬어워즈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리드보컬로도
토로해 낸다.
박지혜가 속한 양손프로젝트는 무대장치도 거의 쓰지 않고 온전히 배우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주요섭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결과물들로 주목받고 있는 독특한 연극집단. 연출
이: 작품은 본능이 골라요. 이유는 나중에 찾죠. 본
과 세 명의 배우가 대본도 없이 즉흥 연기를 바탕
능의 레이더가 서치하다가 주요섭이라는 독특한
삼아 공동창작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배우가
소설가에 꽂힌 거에요.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
연출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만드는
로 매력적인 글들을 많이 남긴 분이에요.
작업을 연출이 정리하는 식이다.
주요섭 하면 『사랑손님과 어머니』잖아요.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다’로 시작하기에 굳
이: 처음엔 ‘사랑손님’과 ‘추물’을 같이 하고 싶었
이 없어도 배우가 만들 수 있는 것은 들여오지 않
어요. 그런데 지혜를 만나 판소리가 뭔지 서로 얘
으려 해요. 그게 더 재밌는 것 같아서요. 워낙 요즘
기하는 과정에서 ‘사랑손님’은 탈락했죠. 이미 옥
공연들이 무대장치도 화려하고 조명도 음향도 화
희라는 서사자가 얘기를 하고 있어 소리꾼이 개입
려한데, 그런 것들은 또 다른 무언가를 표현하기
할 공간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대신 지혜가 ‘살
위한 거지만 우리는 연극이 배우의 몸, 그 에너지
인’을 제안했구요.
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거든요.”(박)
서사자가 이미 있으니 더 쉽지 않나요.
실험적인 연극을 하는 입장에서 판소리의 매력은.
박: 물론 소리꾼이 옥희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박: 실험적인 연극이라기보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
판소리의 매력은 우리가 ‘이자람 판소리’라 기억
는 연극을 만들까 실험하는 입장에서 판소리는 정
하듯, 관객이 소리꾼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에요.
말 대단한 장르에요.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 앞에
그런데 ‘사랑손님’은 옥희 시선으로 들어가야 재미
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태도가 엄청나게 복잡한 레
있는 작품이죠. 이야기적으로도 이유가 있어요. 재
이어죠. 자연인 소리꾼이 나와서 시작해 이야기꾼
혼을 하면 안 되고 남녀가 가까이 있으면 안 되는…
으로 변신하는 지점이 있고, 그가 다루는 인물들,
요즘 시대와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이야기꾼을 바라보는 소리꾼이 있고, 그러면서
여성이기에 겪는 고통도 요즘 시대와 거리가 느껴
끊임없이 관객들을 배려하고…. 한 명의 퍼포머가
지는데요.
관객과 맺는 관계의 다양성이 놀랍고 이걸 지금껏
이: 그럼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게 뭔가요. 2014년은
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한데, 춘향가나 흥보가 외
그런 담론들이 고루하게 느껴지는 시대인 것 같아
에는 본 적이 없잖아요. 당연히 새로운 걸 만들어
●
보고 싶죠. 판소리에서 연출의 역할이 뭔가요?
를 판소리로 잘한 것 정도로 여겨지는 거죠. 브레 히트나 주요섭이나 본능에 맞닿아서 해보고자 하
박: 2월 워크숍에선 불필요한 걸 다 빼주는 역할을
는 이야기일 뿐인데 남들 눈에는 서구화로 비치는
했어요. 이야기에 소리를 깨끗하게 얹고 싶었어요.
거죠. 그렇게 보는 이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이전 공연에서 너무 많이 넣었던 걸 다 빼 보면 다
좋겠어요.
음 공연에 뭐가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판 소리라는 장르에서 연극 연출처럼 할 수는 없어요.
요즘 새로운 판소리가 많이 나와 이자람의 작업이 상대적으로 덜 새로워 보이는데요.
박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배우 3명과 연출 1명의 공동 연극 창작 집단 ‘양손프로젝트’의 연출가로 활동 하며 실험성 짙은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 연극 ‘죽음과 소녀’ ‘개는 맹수다 ‘’새빨간 얼굴’ ‘마음의 오류’ ‘엔드
판소리가 부족해서 연극적인 걸 넣는 것은 아니라
이: 저는 ‘새로운 판소리’라고 얘기하지 않아
게임’ ‘오셀로’ 등을 연출했고 이자람과 함께 ‘판소리
는 거죠. 그걸 경계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판소리
요. 그냥 판소리라고 하죠. 저는 판소리의 ‘현대
단편선_주요섭 추물/살인’ ‘이방인의 노래’를 선보였다.
란 장르가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연기를 넣고 조
화’도 아닌 ‘현재화’ 작업을 처음 한 사람일 뿐, 앞
명을 때리고, 이런 걸 하지 않으려고 해요.
으로 이런 작업은 우후죽순 생길 거에요. 남들 보
이: 연출과 예술감독으로서 우리 둘의 밸런스
기에 똑같은 것만 한다고 여겨져도 제가 좋아하는
가 잘 맞아요. 박지혜라는 연극 공부한 사람이 판
판소리에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담는 일을 계속
소리의 훌륭한 점 발견해주고 훼손하지 않으려고
하려고요.
노력하고. 반대로 나는 판소리 공부한 사람이 연
박: 전통을 여러 가지로 발전시키고 새롭게 보여주
극적인 것을 하려 하고…. 서로의 영역에 대한 존중
려는 작업이 많죠. 훌륭한 전통을 관객과 소통할
이 확고해서 판소리가 가진 연극성과 박지혜 연극
방법을 찾으려는 건데, 오히려 전통에서 좋은 점들
의 비워짐이 서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이 바뀌면서 버려지는 걸 느껴요. ‘추물/살인’을 시
밸런스를 찾는 것 같아요.
작할 때 개인적 목표는 판소리가 얼마나 훌륭하고
이자람이 직접 출연하지 않으니 티켓파워가 덜하
아름다운 장르인지 알자는 거였죠. 진짜 아름다움
지 않나요.
을 모르면서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드나요. 변형시켜
박: ‘판소리 만들기 자’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소리
재밌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여서 재밌는 것을 찾아
꾼 두 명이 돋보일 기회를 주려는 거에요.
야 되고, ‘추물/살인’은 많은 창작판소리 중 좀 더
이: ‘추물’은 정말 김소진의 것이고 ‘살인’은 이승
거기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희 것이에요. 제가 해도 그렇게 안 되죠. 요즘 잘하
이: 판소리라는 장르는 굉장히 특수한데 뭉뚱그레
는 소리꾼은 많은데 그 사람에게 맞는 작품 써 줄
연극으로 분류되거나 전통으로 분류돼 아쉬울 때
작가가 없는 게 지금 판소리계 현실이에요. ‘사천가’
가 많아요. 판소리의 카테고리가 명확해진다면, 새
를 하느라고 이자람의 그늘에 가려있던 아름다운
롭다는 많은 작업은 판소리가 아니라 다른 장르로
두 소리꾼을 무대에 잘 세워주고 싶은 거죠. 저도
들어가야죠. 판소리의 창법을 쓰되 판에 대한 개
배우는 게 많아요. 밖에서 작가로서 관찰하는 이
념은 없는 작업들이 많잖아요. 음악적인 부분만 부
시간이 소리꾼 이자람에게 또 다른 걸 주는, 모두
각시킨다든가, 소리꾼의 태도를 가져가서 연극에
에게 이로운 시간이죠.
활용한다든가. 판소리의 기교를 갖고 실험을 하는
사천가, 억척가와의 차별점이라면.
거지 판소리 자체로 칼을 뽑은 작품은 아니죠. 반
이: 얼마 전 두 작품에 대한 외국인들 평의 공통점
면 우리 작업은 판소리라는 카테고리를 단단하게
을 문득 깨달았어요. ‘너무 잘된 판소리의 서구화’
만들어가는 일이에요. 그 모든 작업들에 비해 잘
라는 건데,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어요. 하지만 브
해갔으면 좋겠고, 판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
레히트기 때문에 그들 눈에는 동양인이 브레히트
이 생기면 100년은 더 가지 않을까요. S
GALLERY
20
이두식의 제목미상 작품(1972), 53 x 74cm, 종이에 수채
변곡점은 오묘하다. 방향이 바뀌는 순간이다. 작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숙성된 내공이 만개하기 직전, 그 품고 있는 열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갤러리마노가 준비한 이번 전시는 유명 작가들의 이른바 ‘뜨기 직전’의 그림에 초점을 맞췄다. 한 세계가 열리 기 직전의 거칠고 숨가쁜 세계가 펼쳐진다. 기하학적 추상을 화면에 구상한 고 이두식 화백을 비롯해 한봉덕· 장성순·신성희·장순업·주태석·하상림·문봉선·이강욱 작가의 초기작을 볼 수 있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갤러리마노
‘注目前(Before Becoming Renowned)’ 10월 28일~11월 20일 서울 서초동 갤러리마노, 문의 02-741-6030 ●
“애들 교과서에는 마르코니가 무선 통신
에 회사도 세웠어. 그의 조국 이탈리아는
을 발명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테
구대륙의 지는 해라 관심이 없었던 거지.
슬라가 원조지.”
섬나라 영국이 세계의 정보를 쥐고 있었
이 교수의 천재 과학자 테슬라(사진)
다는 뜻이야. 이 같은 무선 기술은 영국
이야기는 100년 전 일인데도 순식간에 오늘의 문제로 이어진다.
을 통해 미국으로 전달되고 두 나라가 거대한 해양국가의 세력
형광등도, 레이저도, 수직이착륙기도 그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권을 형성하잖아. 그래서 영불간 도버해협보다도 영미 간의 대
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류가 에너지를 공짜로 쓰도록 하는
서양 바다가 더 좁았다는 아이러니가 생겨나게 돼. 인터넷 용어
것이 그의 꿈이었다는 것이다. “공기처럼, 물처럼. 이를테면 우
만 해도 거의 모두가 해양문명권에서 생긴 것들이야. 내비게이
주 에너지를 만들어 무선으로 보내는 거지. 테슬라 코일은 그
션이란 말이 바로 항해한다는 뜻이 아닌가. 블로그는 웹(web)
가 꿈꾸던 세상이었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그 가공할 힘으
과 로그(log)의 결합어인데, 로그가 뭐야. 배에서 통나무(로그)
로 비밀 병기를 꿈꾸고 있으니 역사는 진화하는 게 아니라 퇴
를 던져 속도를 잰 것을 기록한 항해일지잖아. 물론 대륙도 만만
화하고 있는 것이지.”
찮아. 컴퓨터를 시동하는 ‘부팅’은 부츠를 신는다는 말에서 나
검색을 해보니 테슬라 코일이 마침 과천 국립과학관에 설
온 것으로 노마드(유목민)들의 생활습관에서 나온 용어거든.”
치돼 있다. 220볼트를 400만 볼트로 증폭시키는 것을 형광등
인터넷 공간을 바다로 보느냐 초원으로 보느냐. 해양과 대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데, 가장 인기 있는 코너라고 했다. 애들
륙이 맞서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의 이야기는 바둑 같다.
데리고 여기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 교수의 말이
돌들을 여기저기 그냥 툭툭 놓는데, 어느새 그것들이 모여 거대
이어졌다.
한 집을 만든다. 유선과 무선 이야기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땅에서처럼 바다에는 전신주를 세울 수 없어. 항해하는
지정학 문제로 점프한다. 거대한 문명을 읽는 섬세한 더듬이다.
배에서 절대로 못하는 것이 유선 통신이나 전화거든. 그러니까
“컴퓨터망이 광케이블에서 무선 와이파이로 옮겨가고 있
무선 기술은 해양세력권의 꿈이었던 것이지.” 이 교수는 타이
지만 아직도 경합 중이지. 특성이 서로 달라. 유선과 무선은 대
타닉의 침몰은 무선 통신의 시대의 개막과 극적으로 연결돼 있
립이 아니라 공생해야 하는 것처럼 새로 대두되는 브릭스 국가
다고 했다. 당시 타이타닉호에는 무선 통신사가 4명 있었어. 배
의 랜드 파워(land power)와 기존의 시 파워(sea power)역시
가 빙산에 부딪히자 이들이 구조를 청하는 무선을 쳤지만 제일
갈등과 대립으로 가서는 인류의 미래는 없어. 내가 10년 전 디
가까운 곳에 있었던 배의 통신사가 무전기를 끊고 자고 있었다
지로그 문명을 주장하고 한중일 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바로 그
고 해. 그때 그 녀석만 졸지 않았어도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런 이유 때문이었지. 랜드 파워인 중국과 시 파워인 일본 사이
있었을 텐데….”
에 끼여 있는 우리 반도의 사활을 건 미래 전략이 나와야지.”
‘타이타닉’하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마침 이번 주는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맞춰 한중FTA라
이 뱃머리에 서서 십자 허그를 하는 장면과 셀린 디옹의 애절한
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의 지
노래 선율을 떠올릴 테지만 역시 이 교수는 타이타닉의 침몰에
정학적 위치와 정치외교적 스탠스는 더욱 중요해졌다.
서 정보시대와 바로 이 칼럼 3회에서 언급했던 해양과 대륙세 력이 반전되는 신(新)지정학으로 이어진다. “마르코니는 무선통신 기술을 영국에서 특허를 내고 그곳 S
“중국이 대륙에 유선 전화를 놓았다면 세계의 동(銅)이 동 났겠다. 무선 휴대전화는 중국을 바다로 만든 거야. 유선이냐 무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교수가 크게 웃는다. 정형모 기자
높은 책장이 2층으로 나눠서 쓰인다.
후지모토 소우(藤本壮介·43) 건축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가장 명쾌하게 풀어낸다고 평가받고 있는 일본의 차세대 대표 건축가. 일본건축가협 회 신인상(2004년)과 대상(2008년), 제 13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2012년)을 탔고, 동시대 가장 주목받 는 건축가에게 맡기는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Serpentine pavilion) 초청 설계를 수행(2014년)했다.
●
책장이 기둥이 되고, 보가 되고, 창이 된다.
건축가 부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도서관 산책자』 『세도시 이야기(공저)』를 썼다.
책장과 책장을 길과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S
책장과 책장 사이가 열람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열람 공간마다 조명과 책걸상이 다르다.
회오리 돌려진 분류서가를 뚫고 방사상으로 길이 나 있다.
7번 예술 서적의 서가로 열린 길이 다양하다. 이 다양한 길에 따라 예술을 공부하는 방식이 달라지도록 설계됐다.
●
사람들이 도서관에 대한 좋은 경험을 이야
우주처럼 확장되는 책의 미로
기할 때 제일 많이 떠올리는 말, 나 역시 몇
이 ‘책의 집’을 찾는 방문객이 꽤 되는지, 학
번씩 길어 올린 말은 ‘도서관에서 길을 잃어
생들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일반인의 방문
본 근사한 경험’에 관한 것이다. 도시에서 길
이 제한되어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을 잃으면 낭패라고 생각하지만, 도서관 서
금요일, 그것도 2주 전 예약했을 경우에만 잠
가에서 길을 잃는 것은 그렇지 않다. 우연히
시 방문할 수 있기에, 조급하고 아쉬운 마음
만나게 된 책으로 인해 즐거운 기분까지 들
으로 둘러보았다. 방문객들에게는 오로지 2 층만 공개되는데, 이곳이 무사시노 미술대학
곤 한다. 도서관의 정면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유희를 의도하고
교 도서관 건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은 도서관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을까? 일부러 길을 잃고 헤매기 쉽게
이 도서관에 대해서는 이미 지어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네
만든 도서관을 살펴보기 위해, 도쿄 외곽의 소도시 무사시노(武蔵野)로 향
덜란드에서 이 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의 강연을 통해 미
했다. 무사시노 미술대학교(Musashino Art University)의 대학 도서관이
리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자신의 건축을 설명했는데, 말투와
오늘의 목적지다.
달리 보여주는 건축의 개념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특히 도서관을 설명하면
무사시노 미술대학교는 ‘제국미술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62년
서 보여줬던 이미지가 강렬했다. 마치 ‘보르헤스의 도서관’(보르헤스의 단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세계적인 디자인 명문대학교다. 이름이 낯설지가 않
편집 『픽션들』에 나오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빠져 나온 듯한 서가의 스
아서 찾아보니, 영화 ‘4월의 이야기’ 속 20세 여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던 선
케치가 인상적이었다. 회전하며 증식하는 서가를 위에서 본 그림인데, 책의
배를 따라 들어간 대학이 바로 이곳이다.
미로가 우주로 확장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이날 나는 이 기억 속 이미
첫사랑에 환하게 번졌던 영화 속 캠퍼스와 달리, 실제의 교정은 예술에
지를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 거였다.
대한 분명한 의도와 태도를 갖춘 건물들로 즐비했다. 그 중에서도 마치 하나 의 개념미술 작업처럼 지어진 도서관 건물은 단연 눈에 띄었다.
무덤처럼 잠든 책을 깨우는 기쁨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도서관 정면에는 책장이 가장 앞에 나서고 있다.
보통 도서관의 서가는 ‘총류(0)->철학(1)->역사(2)->사회과학(3)->자연과학
책장이 기둥이고 보(beam)이고, 창문이고, 길이며, 담도 이루고 있다. 책장
(4)->기술(5)->산업(6)->예술(7)->언어(8)->문학(9)’ 이렇게 0에서 9까지 분류
으로 지은 집 아니 말 그대로 ‘책의 집’이다. 도서관이야말로 건축의 도움 없
에 따라 차례대로 나란히 배치된다.
이 책만으로도 그 깊이와 공간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건축이라면, 무사시노
하지만 이곳의 서가는 0번 총류에서 9번 문학까지 회오리처럼 둘려져 있다. 그 사이를 방사상으로 뚫고 지나가는 길을 두어 이 겹겹이 쌓인 미로
미술대학교의 도서관은 그것을 증명하듯 서 있다.
의 서가 사이를 이용자들이 들락날락할 수 있게 했다. 책장이 벽이 되고 그 책과 책장의 조합으로 이룬 인테리어
아래로 난 게이트를 통해서 그 뒤의 책의 벽으로 연결되고 또 이 아래 게이
책장 아래로 난 크지 않은 입구를 통해 도서관에 들어갔다. 내부 역시 보이
트를 통해서 이 뒤의 서가로 연결되는, 책장으로 연속되는 방사상의 터널이
는 전부가 책장과 책이다. 거대하게 솟아난 책장이 8.5m의 기둥이 되어 지
눈에 띈다. 4.8m의 천장 끝까지 닿는 높은 서가와 3-5단으로 이루어진 낮은
붕을 받치고 있고, 떠있는 다리가 책장 사이를 연결하는 길을 내고 있으며,
서가, 저마다 다른 위치와 크기로 난 책장 터널 때문에, 회전하는 돌아가는
책장으로 된 계단이 사람을 2층으로 올리고 있다.
서가들은 차곡차곡 중첩되어 보인다.
천정마저 반투명 재질로 살짝 가린 식이어서, 마치 지붕 아래 책장이 자
낮고 높고 저마다 모양을 가진 서가와 다양한 표지판의 조합이 서가 사
라고 있는 책의 숲과 같은 기분이 든다. 가볼 수 없는 지하 수장고를 제외하
이로 난 길 모두를 저마다 개성 있는 표정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어디로 가
고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상 1층 연구 층(research floor)과 지상 2
야하는지 고민하게끔 만드는 방향성이 없는 서가다. ‘7번 예술’ 서적 쪽으
층 공부 층(study floor)의 모든 내부 경관은 오로지 책과 책장의 조합으로
로 가는 길은, ‘4번 자연과학’과 ‘2번 역사’와 ‘9번 문학’을 거쳐서 갈 수도
이뤄져 있다. 통역을 위해 기꺼이 먼길을 동행해준 도쿄에 사는 오랜 벗은,
있고, ‘0번 총류’와 ‘5번 기술서적’을 통해서 갈 수도 있다. 선택하게 되는 길
“과자로 만든 집에 들어온 기분”이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과자
에 따라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는 책들도 다르지 않을까? 이 매번의 선택으
로 된 집처럼 달콤하고 흥미롭고 더 나아가 호기롭게도 보인다.
로 마주하는 책의 우연들이 점차로 예술을 하는 방향을 정하게 해주지 않을
그렇다고 이곳의 모든 책장이 다 책꽂이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 손
까 기대해 본다.
이 닿지 않는 6단 위로의 책장은 책을 꽂는 용도 보다는 건축의 마감용으
아직 발견되지 않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무덤처럼 잠이 들어 있기 쉽다.
로 쓰였다. 외부에 쓰이는 책꽂이 역시 책의 집을 상징하는 마감 재료다. 여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는 쉽게 잠들고 말아버리는 책들을 깨우기 위해서 이
기에 따라 재료조차 달라지는데, 진짜 책꽂이는 일본 들메나무(Japanese
런 장치를 했다. 바닥과 벽에 있는 서가의 배치도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보
Manchurian ash)로, 마감재료로 쓰이는 책장의 위쪽 벽면은 일본피나무
여 준다기보다, 어디로 갈지 여정을 고민하게 하는 지도다. 물론 길을 잃는 것
(Tilia japonica)다. 도서관 바깥은 측백나무(red cedar)로 구분해 사용했다.
은 언제나 환영이다. 책의 집이 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우연이 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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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억짜리 모피 코트, 수 천만 원짜리 가방…. 상상 을 초월하는 가방과 옷들을 보면 저렇게 비쌀 이 유가 대체 뭔가 싶다. 그럴 때마다 듣는 생산자의 논리는 분명하다. 최고급 소재만 쓰고, 장인이 만 든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는 오랫동안 기술을 연 마한 숙련자가 수작업을 한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말 그대로 ‘장인의 한 땀 한 땀’이다. 이 같은 주장의 대표 주자가 에르메스다. 천 만원을 훌쩍 넘기는 가방이 상당수인데다, 돈이 있다고 바로 살 수도 없다. 그래서 가격과 물량 공 급에 대해 회자될 때마다 내세우는 건 단 하나. “우 리는 한 명의 장인이 한 개의 가방을 책임지고 만 들기 때문”이라는 자부심 섞인 한 마디다.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최근 확인할 기회 가 있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3일까지 서울 삼 성동 현대백화점(무역센타점) 에르메스 매장에 서 열린 장인 시연회다. 한 명의 장인이 나흘에 걸 쳐 한 개의 가방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 행사로, 남자 서류 가방인 ‘삭 아 데페쉬(SAC À DÉPÊCHES)’의 시작과 끝을 일반인들에게 공개 했다. ‘삭 아 데페쉬’는 버킨백·켈리백이 나오기 전 인 1928년 처음 선보인 이래 매 시즌 새로운 소재 와 색상이 소개된다.
두 개 바늘을 한 구멍에 교차시키는 ‘새들 스티치’
2일 오전 매장을 찾았을 때, 공간 정면으로 한 평 남짓한 ‘미니 공방’이 마련돼 있었다. 마치 교탁처 럼 앞이 막힌 높다란 테이블 위로 가위·실·염료·붓 등 각종 도구들이 보였다. 그 앞에서 11년차 장인 나디아 아마주가 능숙한 솜씨로 바느질에 한창이 었다. 가방은 앞 뒤판과 양옆 판이 하나로 연결되 고, 가방 커버가 완성된 상태라 어느 정도 틀을 갖 추고 있었다.
장인 나디아 아마주가 새들 스티치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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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과정
가방의 경우 장인들은 가죽 재단을 제외한
한 시간 넘게 다음 과정 진행을 기다려 봤지만 무
모든 과정을 진행한다. 아마주도 파리에서 공수
리였다. 가방 하나를 완성하는 데 21시간. 그 중 새
받은 가죽 조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가죽 조각
들 스티치에만 12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잠시
들이 한 트레이에 담겨져 오면 준비를 하죠. 가장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아마주가 완성까지 과정에 대
자리를 다듬고 정리하고, 제품의 윤곽선을 미리
해 설명을 하며 맛보기 시연을 해줬다.
초크로 표시하는 게 첫 단계에요. 특히 초크 표시
“바느질이 끝나면 모든 가죽의 끝 부분을 정리
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중요합니다. 완벽한 직선
하는 일이 남죠. 사포로 부드럽게 문지른 뒤 가죽
을 얻기 위해서는 정확해야 하니까요.”
색보다 더 어두운 컬러로 붓 칠을 해요. 여러 겹의
몸통에 앞서 손잡이를 만들고, 이를 덮개에 박음질 해두는 과정을 먼저 거친다. 그것이 완성되
가죽을 하나로 보이게 하는 효과죠. 그리고 나서 열처리 과정을 수차례 반복합니다.”
면 퍼즐을 맞추듯 가방 형태를 잡는다. 바닥과 앞·
금속 부품 부착은 순서가 딱히 정해져 있지
뒤·옆 네 개 면을 접착제로 붙여 몸통의 형태를 만
는 않지만 마무리 과정에서 주로 하게 된다. 자물
들어 낸다. 그는 이 과정이 전체에서 가장 까다롭
쇠와 버클을 박으며 작은 구슬 못을 쓰는데, 망치
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꼽았는데, 말 그대로
로 두드리며 못의 머리를 동그랗게 구부리는 데 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죽
간을 들인다. 그게 끝인가 싶은데, 정말 중요한 작
이 여러 겹 겹치게 마련인데, 바느질을 더욱 쉽게
업이 남아 있다고 했다. 완성 연도와 장인의 표식을
하고 날렵한 마감 처리를 위해 끝을 비스듬히 잘
새겨넣는 일이다. 이와 함께 제품마다 파리 공방의
라내는 작업을 추가한다.
번호 코드가 새겨진다. 이 시연품은 ‘메이드 인 프
아마주는 이 복잡하고 긴 설명을 하면서도
퍼즐맞추기
가장자리 광택내기
랑스’가 아니기에 일단 본사로 보내진다고 했다.
연신 바느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두 개의 바늘
그는 1928년 가방이 처음 나왔을 때와 지금
을 한 구멍 안에 통과시키며 엑스(X)자로 교차시
의 제작 과정이 똑같다고 소개했다. 도구만 조금
키느라 손놀림이 바빴다. 두 번의 박음질로 견고
더 가벼워졌을 뿐이라면서.
함을 주려는 일명 ‘새들 스티치’였다.
자랑스러워 하는 그에게 이 모든 작업을 왜 굳이 손으로 해야 하냐는 우문을 던져봤다. “수작
수작업이라 세월 지나도 언제든 고칠 수 있어
업 한 가방은 망가지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금세
장인의 바느질은 가방에 따라 최소 0.2mm 간격
알죠. 기계라면 달랐을 거예요. 어떻게 제작됐는
을 주는데, 그것을 일정한 힘을 유지하며 진행시켜
지 과정조차 모르니까요. 그 기계가 어느 순간 사
야 한다는 점이 보는 내내 더 놀라웠다. 자세 역시
라져 버릴 수도 있고요. 고쳐
특이했다. 테이블에 가방을 올려놓고 몸을 구부리
쓰면서 대를 물려 쓰는 가방
는 식이 아니라 커다란 나무 집게 안에 가방을 넣
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지 않을
고 마치 첼로를 잡고 있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집
까요.”
게는 가죽이 엇나가 꿰매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하는 장치라고 했다.
사진 에르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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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못
완성
남자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계절이다. 성 공을 위해 청춘을 제물로 바친 중년들은 인생의 정 점에 오른 지금, 내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도 과거 를 꿈꾼다. 바쁜 일정을 쪼개 동창회에 나가는 것 도 ‘내 인생 최고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다. 그 런데 ‘내 인생 최고의 시절’이 단순히 추억 속 한 페이지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 건, 연극 ‘우리 는 영원한 챔피언’의 주인공들 때문이다. 1972년 미국 어느 소도시. 40대 남자 4명이 스승의 집에 모였다. 조지와 필, 제임스와 톰은 20 여 년 전 펜실베니아주 챔피언 게임에서 우승한 필 모어 고교 농구부 멤버들.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매해 모이는 이들은 정치인, 사업가, 교사 등 저마 다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천부적인 재능이 있 던 톰만은 웬일인지 떠돌이 알코올중독자 신세다. 현 시장인 조지는 재선을 위해 유력 후보인 유태인 샤만을 물리쳐야 하는 상황. 감독과 친구들은 조 지의 성공을 위해 유태인 죽이기 전략을 세우지만, 대화가 진행될수록 서로를 이용가치로만 여기는 친구간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국립극단의 ‘자기응시’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인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미국의 극작가 제이 슨 밀러의 대표작으로 72년 뉴욕드라마비평가상, 토니상 베스트상, 퓰리쳐상 등을 수상한 명작. 30 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미국식 성공윤리의 타락을 다룬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1949)의 계보 를 잇고 있다. 공황을 극복하고 50~60년대 폭주하
발레리나가 한복을 입고 너울너울 춤을 추면 어떨까. 거기에 다양 한 장르의 음악이 연주된다면 어떤 분위기일까. ‘스카이워크 프로 젝트’는 신개념 문화 융합을 실행으로 옮긴 행사다. 사진과 미디어 아트, 설치 미술 등과 다양한 공연 장르를 협업한다. 처음 열리는 프로젝트는 ‘순응과 거부’를 주제로 삼아, 이를 한복 에 투영시켰다. 패션 범주에서 제외된 한복의 새로운 도전이다. 이 를 위해 패션 사진작가 박세준은 한복 디자이너인 담연 이혜순과 손잡고 한복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나섰다. 발레리나 김주원·김지 영에게 한복을 입힘으로써 새롭고 낯선 한복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행사는 사진전을 넘어 퍼포먼스로 확장된 다. 전시를 배경으로 클래식·재즈·연극 등이 벌어지는데, 9일간 9개 국내 아티스트 팀이 참가한다. 김주원·김지 영은 물론 발레리노 김용걸, 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첼리스트 송영훈, 연극배우 박정자 등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스카이워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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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선대본부장에서 밀려나자 폭발하고 만다. 이에 반전을 시도하는 것이 알코올중독자 톰 이다.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는 친구들을 내내 비웃 던 그가 ‘우승 트로피는 훔친 것’이라며 우승 멤버 5명 중 유일하게 잠적한 마틴의 비밀을 폭로하고 나선 것. 마틴과 톰은 도둑질한 승리를 인정할 수 없기에 ‘성공신화’의 일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이제부터. 친구들은 20년 전부터 그 비밀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각자의 이익 앞에 분열되다 ‘인생 최고의 순간’이 부정당할 위 기에 처하자 냉정을 찾는다. 그들을 뭉치게 하는 건 물론 감독이라는 이름 던 미국 경제에 다시 브레이크가 걸린 70년대 초반,
의 화신이 된다. 흡사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대공
의 성공신화다. 결승전 마지막 10초의 실황중계방
또다시 미국식 성공윤리의 치부를 들추는 ‘세일즈
황에 좌절했던 윌리의 아들 비프가 아버지의 비극
송 녹음이 흘러나오자 친구들은 홀린 듯 교가를
맨’ 손자 세대의 화끈한 고백이 흥미로운 건, 역시
을 성공지상주의로 극복한 모양새다.
부르며 하나가 된다. “우리의 우승은 역사야. 책에 기
잔치가 끝나버린 오늘의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허
“인간의 약점을 찾아 철저히 공략하는 것. 그
록돼 있어”라는 감독의 다짐에 으르렁대던 친구들
것이 게임의 요체”라는 논리가 팀 내부에도 적용
도 “난 널 형제처럼 사랑해”라며 서로 얼싸안는다.
이 무대를 지배하는 건 다 부서져가는 창고
되니 갈등이 생기지만, ‘성공신화’는 이마저도 간
“서로 사랑해라 이놈들아, 사람은 홀로서지 못
같은 낡은 집에 사는 감독이다. “감독님은 영원히
단히 수습한다. 정치 자금과 여자 문제로 애들처럼
한다. 어딘가에는 반드시 속해야 돼”라는 감독의
사신다”는 조지의 대사처럼, 이들에게 감독은 20
싸우던 조지와 필은 각자 감독의 방으로 불려가
마지막 대사는 일견 지당한 명제지만, 목적이 아닌
여 년 전 챔피언십을 선사한 정신적 지주이자 남성
순한 양이 되어 나온다. ‘공공의 적’을 물리치고 승
수단이 되기에 정당성을 상실한 채 다시 저들을 홀
적 가치의 상징이다. 무대 전면에 놓인 우승 트로
리의 편에 서기 위해서다.
리는 주문처럼 공허하게 울린다. 암전 후 감독역 배
상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시선 때문이다.
피는 그가 뿌리는 마약. “난 내 자신을 잃어버렸어.
그러나 그의 ‘승리 제일주의’는 필연적으로
우 박용수의 비웃음이 객석에 강렬히 내리꽂힌다.
내가 되고 싶었던 그 사람이 아냐”라는 나약한 고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문제다. ‘이기기 위해
너희도 이 다 부서진 창고 집 같은 철 지난 성공신
백 따윈 마약 앞에 속수무책이다. “우리가 곧 미국
견뎌야 하는’ 고통은 증오와 파괴를 부른다. 오늘
화 속에 갇혀 우승 트로피라는 마약에 취해 훔쳐
이다” “모두 승자를 응원하게 돼 있다” “뛰려거든
의 희생양은 제임스. 평범한 중학교 교장이지만 이
온 챔피언의 삶을 살고 있지 않으냐 물으며.
이겨라” 같은 선동과 함께 그는 미국적 성공윤리
번 선거를 발판으로 정치판에 진출할 것을 꿈꾸었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극단
최우현은 한국 주얼리 디자이너 1세대 작가다. 한국에 주얼리 디자이 너라는 직업이 없던 1990년대 초 피렌체에 있는 레 아르티 오라페(Le Arti Orafe)를 졸업했다. 이후 밀라노와 코모에서 두 번의 전시회를 마 친 후 귀국, 크레오로라는 공방을 열고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2 년 동안 중앙대, 국민대 대학원, 홍익대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지난 9 월 11일부터 14일까지는 주얼리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한· 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자연에서 모티브를 찾는다. 정원이나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꽃들을 주황색의 산호, 초록색의 비취, 비취보다 색상이 더 발랄하고 경쾌한 그린 터쿼이즈, 볼륨을 주는 흑진주를 이용 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밀라노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과 12월 3일 밀라노에서 유명 패션 디자 이너 엘레오노라 스카라무치와 함께 하는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글 김성희 유럽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사진 크레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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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트렌드 코리아 2015 저자: 김난도 외 5인 출판사: 미래의 창 가격: 1만6000원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 석센터가 내년 한 국을 변화시킬 저자: 엘사 스키아파렐리 역자: 김홍기 출판사: 시공사 가격: 1만6000원
트렌드 10가지를 선정했다. 책은 양처럼 안온하면서도 소소 한 소비자들의 일상을 키워드로 삼으면서, 우유부단한 ‘썸’ 현상이 사회 전반에 대두
패 션 디자 이너 엘 사 스 키아파 렐리(E l s a
오직 자유를 찾아 파리·런던으로 향하고, 결혼에 실패
될 것을 예측했다. 또 셀피족의 ‘자랑질’, 학
Schiaparelli·1890~1973). 그가 왜 전설인지 알게 된
하며 어린 딸을 홀로 키우지만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력과 경제력을 갖춘 ‘어번그래니’, 올레길
건 파리의 한 자수 공방에서였다. 고급 맞춤복을 위
삶을 헤쳐간다.
에 이은 ‘숨은 골목 찾기’ 등을 새로운 트렌
한 자수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아카이브를 가득 채우
패션과 인연을 맺은 계기 역시 극적이다. 당대
고 있는 것이 바로 스키아파렐리의 컬렉션이었다. 파
최고의 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의상실에 찾아간 스키
드로 전망했다.
무지개에는 왜 갈색이 없을까
리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이
아파렐리. 옷에 빠져든 그에게서 어떤 기
것이 보물 상자나 다름없어서, 그의 옛날
운을 느꼈던 것인지 푸아레는 코트 한
저자: 주드 스튜어트
옷을 보고 다음 컬렉션의 영감을 얻는다
벌을 내민다.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당
역자: 배은경
는 얘기를 들었다.
신은 마음껏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수
출판사: 아트북스 가격: 1만5000원
있어요.”
그는 1920~30년대 패션계를 뒤흔 든 세기의 디자이너였다. 기존 패션의 문
어느 날 친구가 입고 온 스웨터에서
법을 철저히 회피했고, 자신만의 세계를
영감을 얻은 그는 ‘눈속임 기법(트롱프뢰
오직 색을 통해 세 상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는 책. 무심결에 지나치는 색깔들에 천착해 다양한 질문을
구축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파격
유) 스웨터’를 만든다. 마치 스카프를 맨
의 연속이었고 ‘최초’라는 꼬리표가 늘
것처럼 스웨터에 리본을 수놓은 옷은 대
출발해 ‘내가 말하는 빨간색과 타인이 말
따라다녔다. 오죽하면 같은 시기 활동했
성공을 거두며 그를 일약 스타 디자이너
하는 빨간색이 같은 것인가’ ‘좋아하는 파
던 가브리엘 샤넬이 그의 천재성을 두려
로 만든다. 이후 그는 해골 모양 드레스,
란색은 어떤 파란색을 말하는가’ 등 원초
워하며 질투심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을
튜브처럼 생긴 니트 모자 ‘매드캡’ 가슴
적인 주제를 던져 놓는다. 이에 대해 저자는
패드를 넣은 옷 등 지금껏 없었던 패션을 만들어 내고,
까. 자서전은 시간을 거슬러 그 파격과 최초의 행적 을 소개한다. 로마·파리·미국·런던 등을 종횡무진 누
여밈을 드러내지 않는 관행을 깨고 드레스에 지퍼를
다양한 이론과 사실을 예로 들며 세세하게 답한다.
다는 파격을 행한다.
비는 사연과 함께 그 장소에서 만난 수많은 문화예술
의상실을 벗어나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등과 우
계·사회 명사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제1·2차 세
정을 나누며 작업을 펼친다. 특히 달리와 만든 랍스터가
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대도 시대지만, 단순히 옷 만
그려진 드레스는 초현실주의 예술을 의상에 접목시킨
드는 사람만이 아닌 세상사에 관심을 두던 그의 열정
이끌어 낸다. ‘색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대표적인 작품이다.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01 미생 완간 세트(전9권)
자료=교보문고
작가·출판사 윤태호 위즈덤하우스
이 함께한 결과다. 책 제목이 된 ‘쇼킹 라이프’는 그가
‘책 한 권으로는 모자랄’ 드라마틱한 인생이기
히트시킨 ‘쇼킹 향수’ ‘쇼킹 핑크’를 빗대 지은 것임에
에 배경 지식 없다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하여 맨 뒤
03 여자 없는 남자들
도 그의 삶을 묘사하는 최적의 키워드로 읽힌다.
에 실린 역자의 ‘해제(解題)’를 먼저 읽는 것도 낫겠다.
04 창문 넘어 도망친
어린 시절 일화부터가 쇼킹의 맛보기다. 자신을
한 가지 더. 한 단락 안에 1인칭 ‘나’와 3인칭 ‘그녀’가
05 나미야 잡화점의
아름답게 꾸미려 목구멍·귀·입에 씨를 심고 꽃이 피어
뒤섞여 있는 서술법은 낯설기 그지없지만, 스키아파
나기를 기다리거나, 여섯 살에 시위가 벌어지는 광장
렐리라는 인물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파격’으로 이
08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에 갔다 혼자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일은 부모들을 기
해하면 흥미롭다.
09 어떤 하루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10 싸드
함시킨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유복한 출신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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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비밀의 정원
조해너 배스포드 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06 에디톨로지
김정운 21세기북스
07 트렌드코리아 2015
김난도 외 미래의창
신준모 프롬북스 김진명 새움
영화
공연
클래식
전시
헝거게임: 모킹제이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달이 물로 걸어오듯
탁인아 사진 개인전
감독: 프란시스 로렌스
기간: 11월 21일~2015년 4월 5일
일시: 11월 20ㆍ21일 오후 7시30분
기간: 11월 22일 ~ 12월 2일
배우: 제니퍼 로렌스, 조쉬 허처슨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1588-5212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문의: 02-735-1036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자신의 고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10주년을 맞
문의: 02-399-1783
사진작기 탁인아가 속절없이 사라지
향인 12구역이 캐피톨의 폭격으로 파
았다. 인간의 이중성에 질문을 던지는
서울시오페라단이 제작한 우리말 오
는 시간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담아 호
괴되자, 절망한다. 하지만 생존자들이
묵직한 주제와 프랭크 와일드혼의 유
페라. 작곡가 최우정이 곡을 쓰고 작가
소력 있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나란히
13구역에 모여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려한 음악이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 뮤
고연옥이 대본을 맡았다. 화물차 운전
누웠던 자리에 엎어져 있는 성경, 천세
반정부 세력의 중심이 된다. 13구역의
지컬 흥행사를 새로 써온 작품이다. 이
사 수남이 술집 여자인 경자를 만나
불변을 약속하며 굳게 맞잡은 남녀의
대통령 코인은 캣니스에게 반군의 상
작품으로 대형스타로 거듭난 조승우,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경자가 살인
두 손을 포착한 사진은 영원한 자연을
징인 모킹제이가 돼달라고 부탁한다.
류정한의 명연기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을 저지르고 상황이 빠르게 바뀐다.
배경으로 유한한 시간과 대비된다.
장소: 서울 화동 갤러리 가비
22ㆍ23일 오후 5시
퓨리
연극 ‘맨프럼어스’
앤드류 타이슨 피아노 독주회
박 종호 의 그림감상 ( P a i n t i n g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기간: 11월 7일~2015년 2월 22일
일시: 11월 22일 오후 2시
Appreciation)
배우: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기간: 11월 3~27일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1544-1555
문의: 02-548-4820
장소: 서울 금천구 이랜드스페이스
제 2차 세계대전 중 미군 전차부대의
2007년 개봉한 동명 영화를 세계 최초
피아니스트 강충모가 추천하는 피아
문의: 02-2029-9885
부대장 워대디(브래드 피트)에게 독일
로 무대화한 작품. ‘스타트랙’의 작가
니스트 시리즈의 첫 회. 앤드류 타이
이미지 과잉시대. 박종호 작가는 ‘무
군과의 마지막 전투 명령이 떨어진다.
제롬 빅스비의 유고작이다. 1만 4000
슨은 커티스 음악원과 줄리아드 음대
엇을 그려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그
수차례의 전투로 대부분의 동료를 잃
년을 살아온 존 올드맨의 이야기를 통
를 거쳤으며 에버리피셔커리어그랜트
의 그림 속에는 다시 그림이 있다. 작
은 그에겐 단 한 대의 탱크 ‘퓨리’, 그
해 시간의 유한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
상을 수상한 주목받는 젊은 연주자다.
품의 안과 밖의 구별이 모호한 액자 구
리고 녹초가 돼버린 부대원들과 신병
다. 이원종·여현수·문종원·박해수 등
이번 무대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쇼팽
조다. 현실과 실재에 대한 경계 흐리기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출연한다.
발라드 등을 연주한다.
작업이기도 하다.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순위 영화명
주연
순위 공연명
출연
01 인터스텔라 02 카트
매튜 맥커너히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01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조승우 류정한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순위 음반명
음반사
01 카라얀:1980년대DG관현악레코딩
02 뮤지컬 마리 앙투와네트 옥주현 김소현
02 모차르트:바이올린
03 베토벤:피아노협주곡5번‘황제’
DG
ChannelClassics
가요 음원 순위 노래
자료=가온차트
가수
01 내가 그리웠니
MC몽
02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
MC몽
03 죽을 만큼 아파서 Part2.
MC몽
03 패션왕
주원 설리 안재현 박세영
03 뮤지컬 그날들
04 아더우먼
카메론 디아즈 레슬리 만
04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안재욱 임태경 팀
04 브라보-롤란도비야손
04 마음 단단히 먹어
MC몽
05 뮤지컬 조로
05 베토벤:첼로와피아노를위한소나타 Sony
05 도망가자
MC몽
06 비발디:조화의영감
Alpha
06 New York
MC몽
05 나를 찾아줘
벤 애플렉
06 박스트롤
엘르 패닝 사이몬 페그
07 보이후드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유준상 이건명 최재웅 김우형 휘성 양요섭
06 액션라이브쇼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Decca Erato
07 음악극 유럽블로그 김수로 강성진 김도현
07 독일음악의황금시대
Sony
07 고장난 선풍기
MC몽
08 울브스
루카스 틸 메릿 패터슨
08 번개맨의 비밀3 스페이스번개맨
08 코미타스등;모데라토칸타빌레
ECM
08 Whatever
MC몽
09 거인
최우식 김수현 강신철
09 연극 라이어 1탄 공찬호 김연철 박중근
09 오르페우[스]:임선혜
이상호 안해룡
10 세종문화회관 제야콘서트 Promise2015
10 그라모폰‘디오리지널스의전설’
10 다이빙벨
S
HarmoniaMundi DG
09 What Cold I Do
MC몽
10 격정적인 열애설
MC몽
엉성한 한국말 발음으로 보이스 피싱을 시도하는 전화는 나른한 일상에 웃
을 노리는 전화에는 “그 아들 속썩이더니 참 잘됐다. 잘 키워주세요” “어머니
음을 던져주는 활력소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요즘 보이스 피싱업계는 그리
는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라며 적극적으로 상대의 의지를 무너뜨릴 수도
만만치 않다. 이쪽도 나름 정보 통신 IT업종이라 스마트 시대의 진화속도만
있다. 한번은 메신저로 친한 친구의 계정을 해킹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하기
큼이나 빨리 진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시사 트렌드, 대중 심리, 그
에 40년 동안 평생 익혀온 욕을 해주며 한달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
리고 당신의 가장 나약한 허점까지 파고드니 이 어찌 정치 경제 사회 및 심리
었다.
학까지 총동원한 종합 기술이라 하지 않겠나. 역시 세상 일엔 쉬운 게 하나도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게으른 무심함이다. “고객님 당황하셨
없다. 심지어 사기마저도.
어요?”에 고객님이 당황하지 않을 때, 업
일단 중국 말투가 사라졌다. 정확한
자님들은 당황하게 된다. “당신의 계좌
발음으로 “서울지검 금융사기팀 이일형
가 해킹되어….” “그래서요.” “아, 그러니
수사관”이라면서 대포 통장으로 당신이
까 고객님이 당황하셨을텐데 제가 지켜 보이스피싱에 대처하는 방법
범죄에 이용되었으니 ‘피해자 입증’을 요 구하고 ‘제 3자에게 이를 발설할 시 공무
“근데 지금 위험한 상황인데 잠이 안 깨
집행 방해죄가 적용된다’고 법률 용어를
1. 질문형: “뇽협인데요? ”“뭐라고요? ” “넝협이요.” “뭐라고요? ”
들먹이며 만연한 개인정보 피해 의식과
2. 검색형: “잠깐만요. 서.울.검.찰.청”
비전문가 열등 의식을 부추긴다. 고객님의 의심은 당연한 본능. 그러
드릴께요” “네.” “자다 깨셨어요?” “네.”
3. 자다 깬 무심형: “그런데요….” “그래서요….”
셨으면…잠을 깨고 다시 전화드릴께요.” “네.그러시던가요.” 보이스 피싱은 이제 우리 삶 속으로
4. 사칭에는 사칭으로: “난 특수부 김 검사인데 몇 호야?”
‘스며들었’고 개그의 소재로까지 쓰였다.
나 여기도 대책이 서 있다. “제가 전화를
5. 읍소형: “그 통장엔 잔액이 없어요. 다른 통장도요.”
어리숙한 전화로 유머를 즐기는 시대다.
걸어볼게요”라고 대응하면 요즘은 지역
6. 욕설형: “야, 이 새@%#$^&*@야. 안 그래도 돈 없어 죽겠는데.”
국번과 비슷한 전화번호까지 자세히 안
6. 평소에 전기료 미납, 쓰레기 무단투입 같은 걸 안 한다
국가를 모독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면
내해준다. 한 유명 변호사는 다행히 서울
7. 최신 보이스 피싱번호는 1599-8036. 02-530-3112
카톡까지 실시간 감청이 가능한 첨단 정
지검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어 ‘그 번호는
8. 정부에 ‘보이스피싱과의 전쟁’ 초강력 입법을 청원한다.
보시대,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이라도 높
9. 휴대전화 사용을 끊는다.
은 분이 선포하시면 도저히 해결이 안 되
10. 은행 사용을 끊는다.
는 일인가 궁금해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틀렸다’며 끊을 수 있었단다. 노인 복지가 국가적 이슈인 상황을
그런데 이게 정말 웃고 넘길 일일까.
이용 “00구 노인복지센터인데 노인 복지
이렇게 서로를 등쳐먹기 위해 온갖 창조
금을 매월 입금해드리겠다”라는 전화가,
적 지혜와 시사상식, 대중 심리학까지 동
군대 폭행 문제로 아들의 안위가 궁금할
원하고 우리는 또 거기에 맞서는 대응책
때는 “지금 당신의 아들이 군대에서 맞
을 고심하다가 아이큐를 늘리며 살아야
아서 입원해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최근에는 은행권 해킹문제를 놓치지
할까.
않고 내 농협 계좌정보가 유출됐다는 식이 가장 흔하다. 새 주소체계로 변경
우울해진 마당에 또 하나 날아온 문자. “고객님의 은행 계좌로 5억 원이
됐을 때는 은행 등록 주소를 바꿔야 하니 정보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걸려왔
입금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갑절 이상 오른 전셋값 때문에 속이 터져 있
으며, 전화요금 미납 혹은 쓰레기 무단 투기 같은 당신의 작은 죄의식까지 놓
을 때였다. 5억이라.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돈다. 답문자를 보냈다. “고맙습니
치지 않고 호출하니, 보이스 피싱의 세계란 참으로 꼼꼼하고 세밀하다.
다. 덕분에 잘 쓰겠습니다.” 그래, 힘들고 서러울 땐 상상력이라도 자극시켜
‘아들이 납치됐다’ ‘어머니가 피를 흘리고 계신다’며 당신의 가족사랑
주는 보이스 피싱에 위안을 받고 살아야지 어쩌겠나.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
Saint Germain des Pres 2003 Paris
파리지엥 봉쥬르 무슈 마드모아젤 이러한 발음들을 모두 섞어놓는다 치면 프렌치 키스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다. 옴므와 팜므, 즉 남과 여의 명작.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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