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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ISSUE
14 ART
16 INTERVIEW
20 GALLERY
22 STYLE
28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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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발표된 토이의 새 앨범 ‘Da Capo’가 발
재 한국 대중음악의 진영이 총동원된 앨범이라 해
매와 동시에 음원 차트에 ‘줄세우기’를 전했다. 음
도 과언이 아니다. 이적, 김동률, 성시경 등 그의 오
반 판매량에 비해 음원에서는 상대적으로 열세를
랜 벗들이 있다. 페퍼톤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보였던 지난 앨범을 능가하는 성적이다. 김동률-서
세컨드 세션 등 인디 진영의 뮤지션들이 편곡과 세
태지에 이은 토이의 음원 차트 장악은 음악 시장
션에 대거 참여했다. 김예림, 악동뮤지션 등 오디션
의 판도가 1990년대 싱어송라이터들에게마저 완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이 새로운 객원 가수로 참가
전히 음원으로 넘어갔음을 확인해주는 결과이기
했다. 급작스레 가요계의 대세를 차지한 힙합 뮤지
도 하다.
션들까지.
이 앨범은 시작과 끝을 명확히 제시하고 짜
음악 박람회급의 이 다채로운 참가진은 결국
여간다. 인트로에 이어 이적이 보컬을 맡은 ‘Reset’
‘지금 우리에게 유희열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은 오랜만의 복귀작에 임하는 유희열의 자세를 보
타이틀 곡 ‘세 사람’은 전형적인 ‘토이표 발라
던지게 한다. 6집 ‘Thank You’ 이래 유희열의 활
여주는 일종의 출사표다. ‘기다려줘 이 노랠 다 만
드’다. 기승전결 뚜렷한 멜로디로 그려나가는, 결국
동 범위는 확 넓어졌다. ‘라디오천국’으로 다시 심
들 때까지/마지막 코드가 다 끝날 때까지’라는 각
실패한 짝사랑의 후일담이야말로 90년대 정서의
야의 청취자들을 사로잡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
오와, ‘조금씩 나를 잃어 가고 있어/여기가 난 어딘
한 축이자 토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많은 이들이
으로 지상파의 유일한 음악 전문 프로그램의 MC
지 모르겠어’라는 불안이 공존한다. 중견이라는
기다렸을 바로 그 이야기와 노래를, 유희열은 보다
를 맡았다. ‘K팝 스타’를 통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그리고 한 세대의 감성을 여
정교해진 편곡과 구성으로 제시한다. 김동률이 노
무게감을 더했다.
전히 책임지고 있는 40대 중반의 음악인이라면 능
래한 ‘너의 바다에 머무네’ 역시 토이의 발라드란
히 느낄 감정들이다.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일격이다.
이 모든 것들은, 아이돌 편향의 현 방송계에 서 다른 음악인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했
이 중첩된 감정은 그 뒤 9곡을 거친 후 보다
이런 노래들을 중심점 삼아 토이의 컴퍼스는
다. 소외될지 모를 컨텐트들이 유희열이란 플랫폼
진솔하게 돌아온다.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어느 때 보다 큰 원을 그린다. 다이나믹 듀오를 끌
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Da
‘우리’에서 그는 ‘난 노래를 만드는 뭐 그런 일들을
어들여 랩을 도입하고 선우정아와 함께 유럽 고전
Capo’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각양각색 개성을
해’라는 고백으로 시작해서 ‘소중한 건 변해갈수
포르노 영화에서 만날 수 있던 끈적끈적한 음악을
하나의 앨범에 솜씨 있게 소개하고 배치하며 어우
록 내 곁에 변함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선보인다. 이 큰 원이 안정감을 가지는 이유는, 그
러지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유희열은 큐레이터이
그리고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힘겨워하며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화려한 객원 가수들과 참여
자 지휘자이기도 하다.
만든 ‘취한 밤’은 일종의 에필로그가 되어 앨범의
뮤지션들 때문이다.
글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문을 닫는다.
‘Da Capo’는 말하자면, 아이돌을 제외한 현 ●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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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포토 행사가 열린 그랑 팔레
세계 최고이자 최대 규모의 사진 전문 아트 페어로 꼽히는 파리 포토(Paris Photo 2014)가 13일부터 16일까지 파리의 그랑 팔 레에서 열렸다. 프랑스와 전세계에서 146개 갤러리가 참여한 올해 18회 행사에는 관람객이 6만 여명에 달했다. 지난해보다 5000명 가량 늘어났다. 그만큼 사진에 대한 수요와 대중들의 관 심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미술시장 통계를 발표하는 아트 탁틱 (Art Tactic)에 따르면 2013년도 크리스티·소더비·필립스 경매 의 사진 경매 판매액은 5억700만 달러(약 6266억 원)로 2012년 도에 비해 30% 증가했다. 사진 시장이 커지는 것은 에디션이 여럿이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때문이기도 하고 사진의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높아져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에디션 역시 사진당 10개 내외로 한정돼 있는지라, 전세계적으로 컬렉터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인기 작가의 작품가는 천정 부지로 뛰기 도 한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독일 작가 안드레 아 거스키(Andrea Gursky)가 찍은 라인강의 사진으로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433만 달러(약 47억 6000만 원)를 기록했다. 그 뒤로 미국의 여류 사진 작가 신디 셔먼(Cindy Sherman), 캐 나다 출신의 제프 월(Jeff Wall)이 있다. 12일 오후 플뢰르 펠르랑 문화부 장관이 개막을 선언한 이래 장 자크 아야공 전 베르사유 궁 관장, 프렌치 시크의 대명사 제인 버 킨, 토마스 루프·마틴 파·리처드 프린스 같은 세계적인 사진 작가 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그 현장을 중앙SUNDAY가 다녀왔다. 파리 글 최선희 중앙SUNDAY 유럽통신원 sunhee.lefur@gmail.com, 사진 파리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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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닉슨이 40년간 네 자매를 찍은 ‘브라운 자매들(The Brown Sisters)’이 걸려 있는 프라앤켈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 사진 파리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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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파비안 밀러의 ‘In Red’(2010-2014), Light, water, Lambda c-print from dye-destruction print © Garry Fabian Miller, Courtesy HackelBury Fine Art, Exhibitor : HACKELBURY
윌리엄 이글스톤의 ‘무제(스낵바)’(1976/2014), Pigment print, © Eggleston Artistic Trust Exhibitor : GAGO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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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배우가 기획한 미국의 감성
올해의 주빈국은 미국이었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 작가 윌리 엄 이글스톤이 찍은 미국의 도시 풍경을 선보였다. 때맞춰 파리의 앙리 카르티에 브 레송 재단도 12월까지 이글스톤의 전시를 열고 있다. 이목이 집중된 곳은 샌프란시스크에서 온 프라앤켈(Fraenkel) 갤러리였다. 이 부스에서는 미국 작가 니콜라 닉슨(Nicholas Nixon)의 ‘브라운 자매들’을 내 놓았는데, 닉슨이 아내 베이브 브라운과 그녀의 세 자매 모습을 40년간 매년 찍은 사진들이다. 네 자매가 나이 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40장의 사진 앞에서 많은 사람 들이 쉽사리 자리를 옮기지 못했다. 가격은 40만 유로(약 5억5000만 원)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파리에 갤러리를 가지고 있는 타데우스 로팍은 프 랑스의 유명 여배우인 이자벨 위페르를 기획자로 초대해 미국 사진 작가 로버트 마 플토르프(1946~1989) 재단의 소장품 중 ‘여성’에 관한 작품을 골랐다. 위페르의 감성과 기획력이 돋보인 자리였다. 기획력으로 부스의 협소함을 이겨낸 갤러리도 많았다. 런던의 헤켈버리
라이프지 사진 기자들의 전시 중 봅 런더리의 ‘Cringing Before his Judges’(1944), silver gelatin print on fibre paper, Daniel Blau Munich/London © Bob Laundry
(Hackelbury) 갤러리는 사진이 어떻게 회화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생각해
© ACME Newspictures, Exhibitor : Daniel Blau
볼 수 있도록 회화 같은 사진을 찍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하얀 바탕에 굵은 검 은 붓질을 한 그림을 보는 느낌을 주는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마크 로스 코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게리 파비앙 밀러(Gary Fabien Miller), 도널드 저드의 설치 작품 같은 기하학적 색채 배열을 사진으로 담은 이안 매키버(Ian McKeever) 가 대표적이다. 기록으로서의 사진도 빠질 수 없었다. 런던과 뮌헨에 문을 연 다니엘 블로
해밀튼 갤러리가 출품한 ‘케이트 모스’(1993)와 관람객들. by Albert Watson at Hamiltons Gallery’s booth © Marc Domage/Paris Photo
(Daniel Blau) 갤러리는 2차 대전 당시 시사 잡지 라이프(LIFE)를 위해 활동했던 스무 명의 다큐멘터리 사진 기자들이 남긴 생생한 전쟁 기록 사진을 ‘LIFE+WAR, 1943-1945’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스무 명 중 열아홉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 만 이들이 남긴 사진들은 인류가 남긴 역사의 과오에 대한 질문을 영원히 남기고 있었다.
빈티지 사진의 매력 발견하는 기쁨
희귀한 빈티지 사진은 항상 눈길을 끈다. 사진 예술사에 기록된 브라사이, 앙리 카 르티에 브레송, 어빙 펜, 윌리엄 클라인, 리처드 아베돈 등의 흑백 사진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은 파리 포토의 매력이다. 빈티지 사진 갤러리를 이야기하자면 해마다 멋진 부스 디자인으로 관심 받는 런던의 해밀턴 갤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는 패션과 초상 사진계의 거장 호스 트 P. 호스트(Horst P. Horst)가 1930년에서 50년 사이 찍은 플래티넘 프린트를 회 색빛 부스 안에 모아 놓았다. 부스 외벽에도 93년 리처드 웟슨이 모델 케이트 모스 의 뒷태를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 사진가들의 오래된 사진을 발굴하는 프랑스의 뤼미에 르 데 로즈(Lumiere des Roses) 갤러리도 돋보였다. 1850년에서 1970년 사이에 활동했던 무명 사진 작가들의 작품만 팔고 있었는데, 이제 노랗게 색이 바랜 프랑스 인들의 옛 생활상과 로맨틱한 풍경이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 덕분인지 판매도 활발 했다. 경매장에서도 좋은 소식들이 날아왔다. 프랑스 경매 회사 아르큐리알(Art Curial)에서 있었던 사진 경매에서는 초현실주의 사진의 대표작가인 만 레이 (Man Ray)가 1930년 찍고 70년 프린트한 ‘기도하는 여인(La prière)’이 2만에 S
가츠미 오모리의 ‘Everything happens for the first time, Iwaki-shi, Fukushima’(2011),
파리 포토 주간에 프랑스 경매 회사 아르큐리알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Chromogenic print, MEM, Tokyo, Exhibitor : MEM
만 레이의 빈티지 사진 ‘기도(La prière)’(1930년 촬영, 1970년 프린트)
크리스티 파리 지점 사진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구스타브 르 그레이의 작품 ‘Ciel chargé, Mer Méditerranée’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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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3만 유로의 추정 가를 훌쩍 넘어 19만 4000유로(약 2억6630만 원)에 낙찰됐 다고 발표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예술 사진의 선구자인 구스타프 르 그레이 (Gustave Le Gray)가 1857년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26만 9000 달러(약 2억9571만 원)에 팔리면서 작가의 사진 중 최고 기록을 냈다. 중국에서 금지된 사진만 모은 ‘파리-베이징 갤러리’
사진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동양 갤러리들의 참가는 아직 낮은 편이지만 일본과 중국 작가를 소개하는 갤러리들이 돋보였다. 타이페이의 비욘드 갤러리는 ‘기억 에 관하여(Regarding Memory)’라는 제목으로 대만 작가 슌주첸(Shun-Chu Chen, 51)의 개인전으로 부스를 꾸몄다. 대만에서 예술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는 슌주첸은 자신의 아버지가 찍은 사진에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마치 타일을 끼워넣 듯 붙여 넣으며 가족의 역사와 개인의 기억을 오버랩시켰다. 그는 10년에 거쳐 대만 의 평범한 실내와 실외를 배경으로 지인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찍어 200여 장의 흑백 사진으로 남겼는데, 이번에 전시된 뒷모습 시리즈는 10만 유로에 유럽의 한 개 인 컬렉션에 팔렸다. 대만 작가 슌주첸(Shun-Chu Chen)의 ‘Journeys in Time- Zhinan Temple II’(2003), Black and White Photo, Image Tiles, Zinc-Plated Iron Frame,
가장 대담한 부스를 선보인 곳은 파리-베이징 갤러리였다. ‘THE RED LINE, Censored photographs in China’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전시금지 딱지를 받
Artist and BEYOND GALLERY, Exhibitor : Beyond Gallery
은 작품만 모아놓았다. 천안문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아이 웨이웨이 의 작품과 중국 아방가르드 예술이 탄압받던 90년대 초 나체 퍼포먼스를 하고 이 를 기록으로 남긴 마 류밍의 사진, 세계의 독재자들을 합성으로 모아놓은 가오 브 라더스의 작품, 중국 젊은 세대들의 성적 유희를 기록한 항 렌의 작품 등이었다. 2014 하셀블라드 사진 상을 수장한 미야코 이시우치의 ‘히로시마#9’(2007), C type print Exhibitor : THE THIRD GALLERY AYA
도쿄의 MEM 갤러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피해 지역에 서 피어난 벚꽃을 시리즈로 촬영한 가츠미 오모리(Katsumi Omori)의 사진을 소 개했다. 거대한 재앙의 절망 속에서 봄이 오면 어김 없이 피어나는 벚꽃을 평범한 스냅 샷처럼 촬영한 이 시리즈의 사진들은 ‘절망 속에 피어나는 희망’에 대한 메시 지를 던져주기도 했지만, 문명의 이기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 허무로 남는지 일깨 워주기도 했다. 파리 포토에 단골로 등장하는 일본 사진 작가 노부요시 아라키(Nobuyoshi Araki)의 작품은 도쿄의 다카이시(Taka Ishi) 갤러리가 소개했다. 밧줄에 묶이고 매달린 나체의 여인들과 에로틱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의 꽃을 찍은 그의 작품은 이미 유럽과 미국의 미술관들과 개인 컬렉터들에게 인기다. 올해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참가한 갤러리는 오사카 출신의 ‘더 써 드(The Third) 갤러리일 것이다. 이 갤러리가 20년 동안 소개해 온 미야코 이시우 치(Miyako Ishiuchi)는 사진 예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하셀블라드 사진상의 2014년도 수상자가 됐다. 올해 67세인 이시우치는 남성 위주의 사진 예술계에서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공로가 인정됐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어머니(mother)’라는 제목으로 어려서 사별한 어머니가 남 긴 물품들을 찍어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이시우치는 일본 근현대사와 개인의 역사를 여성적인 감수성으로 포착해 보는 이들의 감성적 공감을 끌어내 왔다. 한국에서 온 갤러리는 없었지만 프랑스의 소수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 품을 전시했다. 파리의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 갤러리는 구본창 작 가의 도자기 시리즈와 이정진 작가의 대나무 시리즈, 파리의 RX갤러리에서는 배 병우 작가의 소나무 시리즈를 각각 선보였다. 배 작가의 작품은 일간지 피가로의 발 레리 뒤퐁셀이 선정한 ‘파리포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작품 10’으로도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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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을 탄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외교관이었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기 위해 홀몸으로, 온 마음
으며 작가로 이름을 높인 로맹 가리(Romain
로맹 가리가 가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세상
을 다하여 후원한 한 여성에 대한 헌사이자, 어린
Gary·1914~1980)는 요약되지 않는 삶을 살았
에 대한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로칼랭』을
시절에 대한 회고담이다. 시장 사람들에게 대거리
다.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는 1975년에 일어났다.
완전히 끝낸 뒤, 나는 출판사에도 알리지 않고 가
질을 하던 어머니는 아들을 두고 호언장담을 한다.
『자기 앞의 생』으로 공쿠르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
명으로 발표할 결심을 했다. 명성, 내 작품의 평가
“더럽고 냄새 나는 속물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구
데 로맹 가리는 56년에 『하늘의 뿌리』로 이미 공
기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내 얼굴’, 그리고 책의
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쿠르상을 받았었다. 공쿠르상은 규정상 한 작가에
본질 사이에는 모순이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게 두 번 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다.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미 두 번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입
이나 가명을 쓴 적이 있었다.”
센, 가브리엘 단눈치오가 될 거라고! 내 아들은!”
진실은 5년 뒤 밝혀졌다. 로맹 가리는 80년 파 리에서 권총을 입에 넣고 자살했다. 그리고 반년
어머니의 ‘말’은 모두 ‘사실’이 됐다. 로맹 가
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 출간됐는데, 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족집게 예언
리는 엑상프로방스대학과 파리대학에서 법학을
책은 에밀 아자르가 바로 로맹 가리이며 아자르라
이처럼 가면을 쓰며 살아가야 했던 것은 단순히 예
전공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
는 이름은 로맹 가리가 쓴 다섯 개의 필명 중 하나
술가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삶이 받아들여야
스 공군에 입대하여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게 된
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글이 출판될 즈음에
했던 근본적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로맹 가리는
다. 그가 대위로 제대한 로렌 대대는 45년 5월 28
는 어쩌면 이것은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도 모른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배우 출신
일 훈장을 부여받는다. 이 부대는 2차 세계대전 기
나는 그 점까지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었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폴란드를 거
간 동안 3000번 이상의 출정으로 2500톤이 넘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 후손 앞에서 나 자
쳐 프랑스 남부 지역인 니스에 정착한다. 니스에 정
포탄을 퍼부었다. 로렌 대대의 최정예 대원 일흔다
신을 밝히는 한, 이 글이 내 작품들 중, 그중에서도
착한 모자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는 로맹 가리의
섯 명 가운데 네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그 네 명 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네 편의 소설에
『새벽의 약속』에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은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게 될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자기 대신 아들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운데 하나가 로맹 가리였다.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35년에 쓴 단편
영화배우 진 세버그와 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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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를 ‘그랭그아르’에 발표하면서부터다. 어머
Seberg·1938~1979)와 만난 일이다. 미국보다 프
이렇게 로맹 가리는 공쿠르를 두 번 수상한
니의 말처럼 입센 못지않은 유명한 작가로 인정받
랑스에서 더 인기가 많았던 진 세버그는 장뤼크 고
작가라는 신화를 남겼다. 이 결과의 책임을 작가
기 시작한 작품은 훈장을 받은 해에 출간된 『유
다르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이다.
에게 짊어지우는 것은 잔인한 일일 것이다. 그는
럽의 교육』. 이 작품의 수상과 함께 이등대사 서기
그녀는 로맹 가리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다양한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하는 타고난 예술가
관으로 프랑스 외무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45년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를 주인공 삼아 두 편
였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성인이 아니라
은 로맹 가리에게 어머니의 예언이 진정으로 실현
의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하나는 자신의
어린 소년 모모다. 아이는 42년에서 43년까지 폴란
된 해였다.
유명한 단편을 영화로 옮긴 ‘새들의 페루에 가서
드의 숲에 숨어 살며 독일 점령군에 맞서 싸우는
죽는다’였고, 다른 하나는 71년에 만든 ‘킬’이라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그것은 끔찍하지만 동시에 희
작품이다.
망을 찾는 일이었다.
네 멋대로 해라’의 여배우 진 세버그와의 인연
어머니는 전쟁기간 동안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두 번째 공쿠르상
로맹 가리가 자살을 한 해는 진 세버그가 자
그녀의 예언은 계속되었다. 『새벽의 약속』에는 눈
을 수상한 해에 로맹 가리의 나이는 예순한 살이
살한 1년 후의 일이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도 여
길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문장이 있다. “가장 아름
었다. 이 무렵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 합의 이혼
러 말이 말았고, 로맹 가리 역시 세간의 말들에 대
다운 사교계 여자들, 유명한 발레리나들, 프리마
한 상태였고, 모든 일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해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는 침묵을 선
돈나들, 라셀이나 뒤즈나 가르보 같은 여자들, 바
“다음해에 공쿠르상이 문제가 되었을 때 ‘아
택한다. 로맹 가리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 문장은
로 그들이 내가 운명적으로 차지할 여자들이라고
자르’로 알려진 나의 친척은 이미 유명해져 있었고,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로 끝이 난다.
어머니는 생각했다. 나로 말하자면, 나도 몹시도 원
내가 다시 공작을 시작했더라고 아무도 그 이유를
죽음을 통한 침묵은 수많은 작품과 말들을 남긴
하는 바였다.”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하
세상을 향해 던져 둔 가장 완전한 문장이었다.
로맹 가리의 여성 편력은 유명하다. 그중 가
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유명한 인연은 미국 주재 프랑스대사로 로
내가 행동에 들어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진짜 이
스앤젤레스에 갔을 때 여배우 진 세버그(Jean
유는 한마디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로맹 가리가 감독한 영화 ‘킬(Kill!·1971)’에서 스티븐 보이드와 열연 중인 진 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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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KBS ‘즐거운 책 읽기’ 등에서 방송 활 동을, CGV무비꼴라쥬에서 ‘씨네샹떼’ 강의를 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석준(왼쪽)과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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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회의 기둥들’
연말 공연 시즌을 맞아 온갖 화려한 무대들이 유혹하는 가운데 유독 눈 길을 끄는 묵직한 연극 한 편이 있다. ‘인형의 집’, ‘페르귄트’, ‘헤다 가 블러’ 등으로 유명한 ‘현대극의 아버지’ 헨리크 입센(1828~1906)의 국 내 초연작 ‘사회의 기둥들’(11월 30일까지 LG아트센터)이다. 1877년 쓰 인 이 희곡은 사회변혁의 가치를 직설해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서양 연극사에 실질적인 근대극 시대를 열었지만, 웬일인지 지난 한 세 기 동안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잊혀질 뻔한 ‘숨겨진 걸작’이다. 무려 137년 전 작품이라 고루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올해만 해 도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줄리어스 시저’ ‘은밀한 기쁨’ ‘스테디 레 인’ 등 화제작을 쏟아낸 연출가 김광보가 2014년의 대한민국을 제대 로 조명했다. 박지일·유연수·정재은 등 출연진도 빛난다. 김광보 연출이 ‘20년 연극 인생 동안 만난 최고의 배우’로 엄선했다는 16명이다. 이중 삼각관계를 이루며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 두 사람, 이석 준(42)과 이승주(33)를 만났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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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거에요. 상대배우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죠.(웃 음) 어차피 자꾸 바뀌니까 처음부터 굳이 외울 필 요는 없거든요.”(석) “노력한다기보다 제 방식이에요. 텍스트를 먼 저 통째로 외워놓으면 나중에 튜닝이 되는데, 연습 하면서 조금씩 단단해지면 그게 안되거든요. 언어 에 대한 집착이 좀 있긴 해요. 암기과목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기도 했죠.”(승) 빈틈없는 성격에 완벽한 외모가 왠지 연극 배 우 같지 않은 이승주는 알고 보니 KBS 공채탤런 트 출신. 왜 연극을 하느냐고 물으니 “배우로서 추 구하는 최종 목표를 위해 정도를 걷고 있다”고 답 한다. “성의없는 대답 같지만 연극이 좋아서 해요. 연극은 발전할 시간을 주거든요. 두 시간짜리 희곡 의 주인공이라고 해봤자 대사 몇백 마디 안 되는 데, 그걸 두 달 이상 고민해서 쏟아내는 그런 호흡 이석준
이 제게 맞아요. 영화나 방송은 제대로 해보지 않 아서 모르지만 지금 이 작업이 만족스럽고 여기서
둘은 재미난 조합이었다. ‘베르테르’ ‘아이다’ 등
하는 결론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미처 상상하지
얻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한데, 그게 다 채워지려면
뮤지컬 배우로 유명하고 TV드라마로도 친숙한 이
못한 부분에 들어가는 게 부러울 정도죠.”(이석준,
지금은 연극만 하기에도 부족한 것 같아요.”
석준은 ‘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 공연을
이하 석)
‘사회의 기둥들’은 1877년 발표되자마자 당시
10년째 진행하고 있을 만큼 끼가 넘치는 성격. 어
“순간적인 감으로 연기하고, 거기 머무는 배우
로서 엄청난 수치인 1만 부가 팔린 화제작이다. 노
떤 질문을 해도 재치있게 답했다. 반면 지난해 말
들이 많은데 형은 철저히 분석적이에요. 말 한마디
르웨이 해안가 소도시의 영주 베르니크(박지일 분)
국립극단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로 주목받기 시
에도 ‘왜 이 대사가 여기서 나가야 되나’는 의문을
는 존경받는 지도자지만 사실 도시를 개발해 개
작해 올해 ‘M.Butterfly’ ‘유리동물원’ 등 굵직
제기하죠. 그런 것들이 빈틈없는 배우들은 또 그
인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속물. 과거 자신이 저지른
한 작품에서 주연을 꿰찬 이승주는 댄디한 외모
것만 하는데, 형은 무대 위에 올라가면 자기 걸로
실수를 덮어주고 떠난 처남 요한(이석준 분)이 돌
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연극에서 깨달음을 찾
만들어요. 자기화시키는 게 가장 어렵거든요. 보
아오자 수리가 덜 된 배에 요한을 태워 무리하게
는 구도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서로에 대한 해
통 인물에 자기를 넣으려고 하지 새로 창조를 하기
출항시키려 하고, 철저한 보수파로 도시 개발에 반
석은 정반대였다. 이석준은 이승주가 ‘동물적인 감
가 쉽지 않은데, ‘M.Butterfly’때도 저와 완전 다
대하던 교사 뢰를룬(이승주 분)은 요한과 한 여자
각의 연기자’라고 했고, 이승주에 의하면 이석준
른 르네를 만드시더군요. 배우고 싶은 부분이에요.”
를 놓고 대립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놀랄 만큼 우
은 ‘철저히 분석적인 배우’란다.
(이승주, 이하 승)
리 현실과 유사하다. 우리가 ‘사회의 기둥’으로 믿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에서 처음 봤는데, 신
두 사람은 올해 초 역시 김광보 연출의
선했어요. 승주씨처럼 잘생긴 배우는 무대 위에서
‘M.Butterfly’로 처음 만났다. 당시 주인공 ‘르네’
룰을 지키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굉장히 동물적인
역에 더블 캐스팅됐지만, 무대 위에서 직접 부딪치
연기를 하는 거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배운 대로
며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텍스트를 분석해서 인물의 합당한 선을 찾아내는
“동물적인 줄만 알았는데 엄청난 노력파더군
스타일인데, 승주씨는 나름 분석도 하겠지만 도달
요. 제일 당황스러웠던 게 리딩 첫날 대본을 외워오 ●
고 있는 존재들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 문일까.
오래된 작품인데 지금 한국 사회와 오버랩되는 부 분이 많네요.
석: 주인공이 제일 많이 하는 대사가 ‘나는 이
사회의 공익을 위해서 그랬다’에요. 우리 정치가, 사회운동가들도 국민을 인질 삼은 듯한 말을 많이 하잖아요. 배나 철도 사건이 우리 사회와 겹치는 것보다 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이 문제인 것 같아 요. 상대를 위하는 척 자기 이익을 챙기는 마음이 너무 닮아있는 거죠. 승: 그 시대에 쓰인 작품이 우리 현실과 닿아
있다는 게 처음엔 굉장히 놀라웠는데, 생각해보니 이 작품은 백 년 후에도 놀라울 거 같아요. 권력을 가질수록 케케묵은 관습이나 위선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런 인간의 모습은 영원히 반복될 테니까요. 요한은 희생양 같은 역할이라 할 말이 많을 것 같 아요.
석: 이 작품은 반전투성이에요. 4막 끝까지 봐
야 다 드러나죠. 요한도 희생양처럼 보이지만 위선
이승주
적인 면이 있어요. 첫 리딩 때 번역자 김미혜 선생 님이 하신 얘긴데, 이 작품에서 위선적이지 않은 인물은 없어요. 절절히 사랑하는 것도 자기를 먼저
다. 연습할 때 제가 웃다가 연출님께 혼날 정도였어
사랑해야 사랑하는 사람을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기
요. 어떻게 연기하면 진지한 캐릭터로 사람을 미치
는 거니까. 그만큼 텍스트를 파고들수록 표현하기
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모델이 될 것 같아요.
애매한 인물이죠. 뢰를룬은 매우 보수적인 역할인데 공감이 잘 되
뢰를룬이 코믹 캐릭터가 될 줄 몰랐는데, 의도한 건가요?
석: 의도했겠죠. 의도 안 했으면 미친 놈!(웃음)
나요.
승: 굉장히 가여운 인간이라 생각해요. 본인
승: 희곡 상에 그려진 인물이 저와 괴리가 너
은 자신이 가여운 것조차 모를 정도로 위선적인
무 커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지
인물인데, 빠져서 보면 그 누구보다 가엾더라고요.
금도 고민이 많습니다.
왜 그걸 깨닫지 못할까 싶고. 본인의 생각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극단적인 인물이
인지도 있는 배우 16명이 한 무대에 서니 그 누구도 튀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아주는 묘미가 있네요. 승: 이런 분들과 한 무대에서 호흡하는 자체
가 영광입니다. 그 속에서 제가 보여드려야 하는 부분이 있는 건데, 저를 보고 뭔가 생각하게 해드 리고 싶어요. 결국 우리가 믿는 ‘사회의 기둥’들이 의심스럽단 얘긴데, 그럼 진짜 기둥은 누구일까요.
석: 기둥이 기둥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구 축하는 정계, 재계, 언론 등이 기둥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137년이 흐른 뒤에도 똑같은 문제가 벌어
라 공감이라기보다 재밌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
석: 근래 이런 작은 분량으로 뭘 해 본적이 없
지는 것이겠죠. 사회를 위해 전부를 내놓는 건 항
죠. 요한이 정말 어려운 역할이에요. 여러 겹의 모
거든요. 인물 만들다 멘붕에 빠진 게, 배역별 서브
상 떡볶이 할머니 아닌가요. 그런 걸 보면 기둥 위
습과 내적인 갈등이 깊은데 표현은 안 하니까. 뢰
텍스트가 정말 깊고 큰 데 그걸 담아내야 하는 대
치가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을 해요.
를룬은 너무나 확실한 생각이 있는 캐릭터인데 저
사가 너무 적고 등장 시간도 적어요. 억울하게 당
승: 개개인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
와 닿지 않아 접근 방법을 고심하긴 했어요.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뒤에 품은 게 많은데 몇 마
는 모든 사람들이 기둥이겠죠. 정치인은 정치에,
석: 거의 ‘이승주의 기둥들’을 보게 될 거에요.
디 대사 안에 실망, 의심, 불안을 다 보여줘야 하죠.
의사는 치료에 전념하면 되는데 그렇게 못해서 기
캐릭터 완성까지 힘들어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웃
그런 걸 각자가 다 갖고 있고, 이런 인물들이 동시
둥이 흔들리고 사회가 휘청거리는 것 같아요. 우리
기기 시작하는데…. 여태껏 진지한 모습은 간데없
다발적으로 부딪쳐야 하니 혼란스럽기도 해요. 그
작품도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기둥인데, 각자 잘
고 이 잘 생긴 배우가 망가지는 걸 보시게 될 겁니
런데 정말 좋은 배우들이 모여 ‘아’하면 ‘어’로 받
해내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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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20
Neverland10(2014), 90.9x72.7cm, Oil on canvas
“가장 아름다운 꽃이 뭔지 아세요? 식물도감에 실려있는 꽃사진이에요. 최절정의 순간을 포착한 것이죠. 진짜 꽃보다 더 진짜 같아 보이도록.” ‘홀 마크’ 시리즈 등을 통해 꿈과 환상, 현실을 오가는 이야기를 화면에 담아온 작가 정소연(47)은 이번엔 식물도감을 펼쳤다. 열대와 냉대, 아시아 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식물들이 같은 장소에서 자라는 것처럼 캔버스 안에 그려냈다. 이 현실에서 실현불가능한 ‘기호’의 숲을 작가는 ‘네버랜 드’라고 이름 붙였다. 꿈과 현실이 뒤섞인, 이미지가 실제를 대체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세상이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이화익 갤러리
정소연 Neverland 전 11월 19일~12월 6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이화익 갤러리, 문의 02-730-7817 ●
“대륙 파워와 해양 파워 중 한
다의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국은 어디에 속하는가, 응답
서 생겨난 군대지. 하늘과 땅
하라”고 했던 시리즈 모두(冒
에서 싸울 수 있는 공수부대
頭)의 이야기가 에디슨과 테
도 그렇잖아. 패러다임이 바
슬라로, 다시 유선과 무선으
뀐 거야. 학문에서도 그런 것
로 엮어졌다. 이것이 바로 하
이 생겨나고 있어. 그걸 우리
이퍼 텍스트이고 새로운 지
는 요즘 융합이니 ‘통섭’(統
(知)의 담론 방식이구나.
攝·Consilience)이니 하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부르고 있지.”
앞으로는 해양과 대륙의 이항 대립이 아니라 그 사이의 인터페 이스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컨테이너 같은 것, 해병대 같은 것. 그 단어를 처음 만 든 사람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윌리엄 휴얼(William
“생각해 봐. 대륙 세력은 전쟁으로, 해양 세력은 무역으로
Whewell·1794~1866)이다. “그는 통섭 외에도 새로운 말을 많
세계를 제패하려 했어. 그런데 무역에 혁명을 일으킨 것은 거
이 만들었어. 과학자를 뜻하는 사이언티스트(scientist)라는
함 거포가 아니라 작은 알루미늄 상자였어. 교과서에도 나오지
말도 이 사람이 처음 쓴 말이야. ‘ist’가 붙으면 보통 ‘쟁이’라
않는 말콤 맥린이 발명한 것, 우리가 지금 이 정도 살게 된 것도
는 의미가 되는데 당시엔 반발도 많았대. 그전까지는 ‘내추럴
바로 이 마법의 상자 덕분이지.”
필러소퍼(natural philosopher)’나 ‘맨 오브 사이언스(man
“그 상자란게 뭔가요?”
of science)’로 불렸는데 이상하다 이거지.”
“컨테이너야. 육지와 바다는 수송 시스템이 전혀 다르잖아.
이 교수는 그가 괴테 작품을 번역했을 정도로 언어와 문
트럭으로 짐을 실어와 풀어서 배에 옮겨 싣고 가서는 다시 또
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학문세계의 해병대라는 이
내려야지. 그 과정에서 손상·분실·시간·비용이 크게 발생했거
야기다. 아이작 뉴턴과 함께 케임브리지대에 동상이 서있을 정
든. 그런데 한 트럭 운전사가 그 불편을 더는 기발한 생각을 한
도인데, 우리는 통섭이란 말은 알아도, 그 말을 퍼뜨리는 에드
것이 컨테이너 상자란 말이지. 트럭과 배, 육지와 바다 사이의
워드 윌슨은 알아도, 그 말을 창조해 낸 진짜 개혁자는 기억하
인터페이스를 이 상자만으로 간단히 메울 수 있었거든. 땅과
지 못한다.
바다의 차이를 없애버린 사고의 전환이야.”
“오래된 이야기야. 우리는 지금도 고등학교부터 문과와 이
말콤 맥린(Malcom McLean·1913~2001), 바로 이 사
과로 나누지만 이 폐단은 이미 백 년 전에 영국에서 제기됐어.
람이었구나. 컨테이너를 발명하고 세계적인 운송업체가 된
C.P. 스노우가 쓴 ‘두 개의 문화’는 쉽게 말해 ‘뉴턴(물리학)’과
‘Sea Land’를 창업한 인물. 포브스가 2007년 ‘20세기 후반
‘셰익스피어(문학)’가 완전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현상을 비
세계를 바꾼 15인’ 중 하나로 그를 선정하기도 했다. 고속도로 나 항구에서 쉽게 보는 그 컨테이너에 21세기가 담겨 있었다니 놀랍다.
판한 글이지.” 바다와 땅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육해공군으로 싸우는 세 상이 아니다. 학문 역시 새로운 인터페이스에서 생겨나고 있는
“해병대도 마찬가지야. 이게 육군과 해군을 그냥 모아놓은 게 아냐. 바다에서도 싸우고 육지에서도 싸울 수 있는, 땅과 바 S
데 우리는 말만 통섭이지 그걸 상상도 실감도 하지 못한다. 이 교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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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 있는 국립독일박물관을 돌아본 적 있다.
이미지는 융커스 전투기 동체에서 따왔다. 과거의
어설픈 합리를 선택한 낭비의 과정이다. 리모와의
잔뜩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한 나라의 과학 수준
유물이 된 아름다운 비행기는 1950년 캐리어로 현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용자의 온 역사를 담아도
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규모와 내용의 압도감
신해 생명을 이어간다. 비행기나 캐리어나 온 세상
부서지지 않는 견고함에서 나온다. 나의 리모와는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시품은 독일의 과거
을 떠돌긴 마찬가지다. 인터내셔널 제트족의 듬직
앞으로 할 여행을 함께하며 죽음마저 지켜볼지 모
와 현재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한 장비가 된 리모와는 속성의 인자를 기막히게
른다.
항공기 관련 전시 부스에서 발걸음을 멈췄
타고난 셈이다. 독일박물관에서 융커스 전투기 실
다. 독일 항공기술을 이끌었던 인물 후고 융커스
물을 보길 잘했다. 과거의 전통이 리모와 캐리어로
질 좋은 재료가 금속 광채의 비결
(Hugo Junkers·1859∼1935) 박사가 만든 융커
어떻게 변용되는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 것의 자
튼튼하고 강인해 보이는 리모와의 느낌은 알루미
스 전투기다. 당시의 첨단소재 두랄루민으로 만든
부심이 없다면 어림도 없다. 과거가 부끄러운 이는
늄 합금 품질이 바탕이다. 독일의 앞선 재료공학기
동체는 세월의 오염을 묻히고도 여전히 아름다웠
선조의 자산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술을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질 좋은 두랄루민은 정 평 있다. 오디오를 해봐서 안다. 금속의 질감과 광
다. 자체 강성을 보완하기 위해 굴곡 처리된 직선 의 간격과 폭, 도장하지 않은 알루미늄의 금속광택
리벳 마무리는 지금도 장인이 망치질
채의 깊이란 근본 재질의 밀도가 뒷받침되어야 나
은 조형성 넘치는 대형 오브제 같았다. 폭탄을 싣
지금 보면 리모와는 새로울 것도 없는 알루미늄 소
온다는 사실을. 재료의 속성 파악은 전문 영역의
고 전장을 향해 날아가는 전투기의 속성과 재질의
재의 캐리어다. 과연 그럴까. 과거로 돌아가 보자.
비교를 통하지 않으면 쉽게 알기 어렵다. 세월의 더
아름다움은 서로 다투지 않았다. 본질과 기능이
두랄루민은 당시의 최첨단 소재였다. 가방은 가죽
께를 뒤집어쓰고도 추해지지 않는 리모와의 금속
곧 디자인으로 완성된 묘한 상징의 아이러니 앞에
과 천 같은 익숙한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
광채는 질 좋은 재료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다.
서 혼자 감탄을 연발했다.
관념은 독일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지금으로 치
리모와의 기품은 낡을수록 깊이를 더해간다.
면 듣도 보도 못한 소재가 3D 프린터로 찍혀져 캐
표면의 금속광택이 한숨 죽어 내부로 머금은 은
리어로 됐다는 거다.
은함을 풍긴다면 최고조의 아름다움이다. 여러 나
청년시절 전투 경찰을 자원해 배속받은 첫 근 무지는 김포공항이었다. 오가는 비행기를 바라보 며 군 생활을 했다. 1970년대 말 공항의 모습을 선
어느 시대나 호불호의 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라에서 보았던 낡은 리모와 캐리어의 자태는 이상
명히 기억한다. 멋진 제복을 입은 외국인 조종사들
처음부터 순조로웠을 리 없다. 첨단소재의 가능성
하리만큼 쓰는 사람의 인상을 닮았다. 머리 희끗
에게 보낸 선망의 눈초리를 부정하지 않겠다. 훤칠
을 확신한 리모와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주장
희끗한 중년 신사가 풍기는 중후한 세련됨과 일치
한 키에 영화배우 같은 용모의 수컷들에게 이상한
은 주변의 인정으로 힘을 얻고 가치가 확산되면 시
한다고나 할까. 캐리어의 이력이 사용자의 인생처
열등감마저 들었다.
대의 기준으로 바뀐다. 확신이 바뀌면 인정도 없다.
럼 느껴진다. 군데군데 찌그러진 흔적은 지난 세월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는 리모와 주재자의
의 훈장처럼 보인다.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사물은
우직함이 결국 승리한다.
절대로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지 못한다.
전투기 동체에서 따온 굴곡진 직선 이미지
그들 가운데 유독 ‘루프트한자’의 기장들이 눈에
당시에 퀄른에서 만든 리모와 캐리어는 지금
한 해 전 친구 김정운과 베를린에서 리모와
띈다. 견고하고 야무지게 보이는 알루미늄 캐리어
까지 그 원형을 지켜오고 있다. 복잡하게 섞여 있
‘루프트한자’ 버전을 찾아 돌아다녔다. 루프트한
를 끌고 다니는 모습은 남다르게 보였다. 온 세상
는 공항의 짐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리모와는 눈
자항공 마크가 박힌 스페셜 에디션 캐리어는 국내
을 누볐던 캐리어는 빛바랜 금속광채마저 세월의
에 쉽게 띈다. 색깔과 재질의 독특함 때문이 아니
에서 구하기 어렵다. 친구는 입에 침 튀기며 리모
관록으로 바뀐 리모와(RIMOWA)다.
다. 알록달록한 캐리어 패션의 화려함 속에서도 밀
와 예찬론을 펼친 나의 속사정을 모를 것이다. 발
이후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해외여
리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것의 묵직한 존
품 팔아 산 김정운의 리모와 ‘루프트한자’ 버전은
행은 꿈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허겁지겁 여러 공항
재감은 그저 그런 시대의 경박함을 압도
수많은 캐리어를 제치고 현역으로 활약한다. 엊그
을 헤집으며 일과 놀이가 구분되지 않는 작업으로
한다. 공방의 장인들은 여전히 리벳을 망
제도 리모와 캐리어를 끌고 오사카에서 날아왔다.
살게 된다. 난 전화 한 통으로 어디라도 달려가야
치로 두드려 박아 접합부를 마무리한다.
천여 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그의 모습을 지
하는 ‘콜 보이’, 아니 프리랜서 작가다. 공
보이지 않는 부분의 완벽한 체결을 위
켜보았다. 이야기는 애플 노트북에서 끌어냈고 그
항을 제집마냥 여겨야 하는 팔자가 나
해 리벳의 위치가 약간씩 다르다. 기
를 실어온 캐리어는 리모와 아니던가. 결국 리모와
쁘지 않다. 한 때 선망의 대상이던 루프
계로 찍어내면 혹시 빗겨날지 모르
안에 한 인간의 인생이 담긴 셈이다. 베를린 이후
트한자의 기장과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
의 행적을 나는 안다. 자료 준비를 위해 여러 공항
다. 그토록 멋지게 보였던 그들의 캐리어
면 전달되지 않는 완벽의 가치는 세월
을 전전했던 분주함이 리모와에겐 영광으로 비쳐
보다 큼직한 리모와가 내게도 있다. 찌질
을 통해 입증된다. 공유의 방법은 철
졌을지 모를 일이다.
한 자부심이라도 키워야 세상사는 일이
저히 우회적이다.
덜 억울하다.
그동안 꽤 많은 캐리어를 갈아치
듬직한 리모와 캐리어 표면의 굴곡진 직선의
웠다. 만든 이의 메시지 대신 기능과 S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 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다양한 딤섬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왼쪽 두 번째 줄 아래가 샤자오, 맨 오른쪽이 왕쯔춘즈완이다.
홍콩은 그 지역에서도 맛있는 음식들이 모두 모여
다르기도 하고 숙련된 전문 요리사가 부족해서 본
드는 최 상위 단계의 소비 블랙홀이었다. 그 중에서
토의 맛을 못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 딤섬(點心)은 특별했다. 몇 천년 전부터 광둥 지
을지로에 있는 ‘바오 차이(Bao Chai)’는 홍
역에서 전해 내려온 음식이라고 하는데, 작은 만두
콩에서 맛보는 수준의 딤섬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모양의 한입 요리를 대나무 통에 쪄 내오는 방식이
되는 곳 중 하나다. 딤섬과 홍콩식 죽을 전문으로
중심이다. 재료에 따라, 조리 방법에 따라 요리가
한다. 호텔과 외식업계에서 오래 일을 해온 조상현
아주 다양해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맛도 대
(44)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경력이 20여 년이 넘은
부분 훌륭했다.
딤섬 전문 요리사 두 분을 홍콩에서 초빙하고, 중요
딤섬은 중국 표준어인 디앤신의 광둥어 발음
한 식재료는 중국 현지에서 직접 공수해 제대로 된
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불가(佛家)에서 선승
딤섬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서 눈길
‘뻑 하면’ 홍콩을 갈 때가 있었다. 미국계 글로벌 기
이 수도를 하다가 시장기가 돌 때 마음(心)에 점(點)
을 끌었다. 매일 새롭게 만들어 당일 사용하는 것
업의 한국 현지 법인을 맡아 운영할 때의 일이다.
을 찍듯이 간단하게 먹는 음식에서 비롯됐다는 설
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신선한 딤섬을 즐길 수 있
당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사가 홍콩에 있었다. 직
이 가장 유력하다. 우리가 아침, 점심, 저녁식사 할
고, 종류도 모두 20여 가지로 다양하다.
접 얼굴을 마주 대하고 얘기를 하면 안 풀리는 일
때 바로 그 점심(點心)의 유래가 된 단어다. 이 단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딤섬은 샤자오(蝦餃·하
도 풀리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 선진 경영 시
가 어떻게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아침과 저녁 사이
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쫄깃하고 투명한 만두피에
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글로벌 기업에서도 결국 사
에 먹는 식사를 의미하게 됐는지 정확한 경위는 알
튼실한 새우가 꽉 차 있는 만두다. ‘바오 차이’에서
람이 일을 하는지라 이런저런 회의를 많이 해야 했
수 없지만 의미는 참 재미있다. 정작 중국에서 딤섬
만들어내는 샤자오는 우선 만두피부터 다르다. 오
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출장을 가야 할 때도 있었고,
은 차와 함께 먹는 간식이라는 의미이고 점심식사
랜 경력의 딤섬 장인이 제대로 만들었다. 대충 만들
심지어는 아침에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올 때도 있
는 우판(午飯)이라고 부른다.
면 쉽게 찢어지거나 쫄깃한 맛이 안 난다. 홍콩에서
었다.
홍콩을 자주 가지 않게 되면서 딤섬을 먹을
처럼 생 새우를 통으로 넣지 않은 것이 좀 아쉽기
이렇게 피곤한 출장 스케줄 속에서도 그나마
기회도 많이 줄어 들었다. 그 맛이 그리울 때면 이
는 하지만 그래도 새우가 닭고기 베이스의 육수를
위안이 되는 것은 홍콩의 음식이었다. ‘네발 달린
곳 저곳을 찾아 다니기는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나
기본으로 해서 잘 양념이 된 것이 이만하면 훌륭한
것은 책상과 의자를 제외하고 뭐든지 먹는다’는 음
라에서는 딤섬을 제대로 하는 곳이 드물다. 그저
수준이다. 대나무 통에 갓 쪄낸 따끈따끈한 샤자오
식 천국 식도락의 본고장이 광둥(廣東) 지역이고,
모양만 흉내를 내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식재료가
를 한입 베어 물면 맛이 참 충실하다는 생각이 절
●
외부 모습
오지랖이 넓어서인지 종종 남의 장사를 걱정한
미밥은 화려하지 않아도
다. 특히 새로 꾸민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갔는
맛깔스럽다.
데 손님이 없으면 ‘여기 괜찮을까’ 마음이 쓰인
영업시간은 오후 9시
다. 외식 창업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와서
까지지만 하루분 재료가 다
인데, 최근 발표된 조사도 다르지 않다. 5년간
팔리면 문을 닫는다. 그 분량이 30~35
문 열었던 열 집 중 여덟 집이 문을 닫고, 버티는 인분 정도라, 점심에는 테이블 회전도 없다. 손님
내부 모습
이들도 35%는 폐업이나 업종전환을 고려한단
이 빠져나가고 한가한 틈을 타 주인에게 이유를
다. 식재료와 임대료·인건비 상승이 주 원인이
물으니 ‘딱 혼자서도 오래 버틸 수 있는 분량’이
다(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2014 외식업 경영주 설문
라고 한다. 가장 손님이 많을 일요일에 쉬는 것
조사’).
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돈을 금세 벌기보다 오
그래서일까. ‘셀프 식당’을 자처한 서울 연 남동 ‘토마스 식당’은 불편하다기보다 신선하
래 벌고 싶다는 주인의 말이 여운이 남는다. 토마스 식당의 뒷골목에도 비슷한 분위기
다. 주인은 주방에서 요리만 하고 물도, 반찬도, 의 카페가 있다. 문 연 지 한 달이 채 안 된 ‘까사 로 들면서 행복해 진다.
심지어 계산도 셀프다. 메뉴는 오로지 등심돈
데 스파키’는 마치 친구네 집에 온듯하다. 소파
왕쯔춘즈완(網紙春卷·망지춘권)이라고 새우
까스 하나. 손님들은 메뉴판 대신 ‘토마스 식당
대신 침대를 놓고, 가정용 양문형 냉장고에 홀
와 죽순 채를 춘권 피로 싸서 튀겨낸 딤섬도 아주
사용 설명서’를 숙지해야 한다. 가령 ‘계산은 냉
과 경계를 없앤 주방이 보통 가정집 같다. 이곳
맛있다. 쌀 가루로 만든 춘권 피는 홍콩에서 직접
장고 오른쪽 계산대에서 하십시오/ 현금은 주
에서도 주인 혼자 커피를 내리고 차를 만든다.
가져온다. 우리나라의 쌀을 이용해서 만들면 중국
방에 문의하십시오’ 식이다. 손님이 왕이기는커
특히 녹인 초콜릿 위에 커피, 그 위에 우유 거품
현지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우와 죽
녕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는 소리지만 그리 툴
을 얹는 ‘비체린’과 다크 초콜릿을 녹여 우유와
순의 조화도 훌륭하지만 잘 튀겨진 춘권피가 아주
툴댈 일은 아니다. 33㎡(약 10평) 남짓한 식당이
생크림과 섞은 ‘리얼 쇼콜라떼’ 등은 다른 곳
고소하고 바삭거리며 씹히는 것이 일품이다.
라 한두 발짝만 움직여도 모두 해결될 동선이다.
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메뉴. 공정과정이 복잡
딤섬이란 원래 불가에서는 마음에 점을 찍듯
“2인분 나왔어요.” 음식을 받으러 목소리
하고 혼자 만드느라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아
이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었다지만 우리 속인들은
만 들리는 주방으로 간다. 주문하는 순간 튀김
야 하는데, 그 맛의 보답은 확실하다. 코코아 특
막상 이렇게 맛있는 딤섬 집에 가게 되면 점을 하
가루를 입힌다는 주인의 원칙 때문에 15분쯤
유의 달달함 대신 묵직한 초콜릿의 맛 그대로
나만 찍는 것이 참 어렵다. 유혹처럼 여러 접시를
여유롭게 기다려줘야 한다. 제주 흑돼지로 만
가 느껴진다.
시키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라 마음에 점이 하나가
들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한 입 베어보
연남동은 홍대 앞에서 확장된 상권이지만
아니라 점점이 쭈욱 찍히게 된다. 이래저래 마음
니 참 부드럽다. 돈까스에 어울리는 표현일지
아직까지 ‘동네’의 푸근함이 남아있다. 좁은 골
다스리는 것은 원래 어려운 일이라는 변명으로 자
모르겠으나 식감이 딱 그렇다. 살짝 육즙도 느
목골목으로 재래시장과 게스트하우스, 갤러리
기 위로를 하면서 슬쩍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맛 있
껴진다. 사용 설명서에 따르면 ‘고기가 벚꽃 색
가 혼재하는 이색적 공간이기도 한다. 그래서
는 것이 죄도 아니고.
깔일 때 가장 맛있다’고 한다는데, 벚꽃만큼은
골목을 나오며 그곳만큼은 가로수길, 경리단길
아니겠지만 하얀 고기 색깔이 눈에 뜨이긴 하
과 다른 골목 풍경이 펼쳐지길, 소박하고 개성
다. 뭣보다 젓가락질 몇 번이면 튀김옷과 자체
넘치는 밥집과 술집, 카페들이 버텨내길 바라게
▶바오 차이: 서울시 중구 을지로 100 파인에비뉴 지하 1층. 전 화 02-6031-0107. 휴일은 없다. 딤섬 한 접시 8800원 수준. 세 트 메뉴도 있다. 와인을 가져가서 마셔도 따로 돈을 안 받는 고
분리되는 분식집 돈까스들와는 확연히 다르다. 된다. 특히나 1인 가게들의 건투를 빌면서.
마운 곳이다.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무국과 샐러드, 흑
dangdol@joongang.co.kr
▶토마스 식당: 마포구 연남동 227-38, 010-8738-7624,
▶까사데스파키: 마포구 연남동 227-37, 02-337-1226,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등심돈까스(7000원), 점심은 정오부터 오후 2시, 저녁은
비체린(6000원), 리얼 쇼콜라떼(5500원) 자정부터 오후
대표. yeongjyw@gmail.com
오후 5~9시(24일부터 사나흘 간 내부공사 예정)t
11시까지(월요일 휴무)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S
●
S
밀피예의 안무작 ‘STAY’
늦가을 두 명의 프랑스 남자에게 국내 무용계 관
을 무대에 올린다. 더욱이 영화 ‘블랙 스완’의 안무
심이 집중됐다. 영화배우 내털리 포트만의 남편이
자로 주인공 포트만과 결혼한 장본인이라는 사실
자 최근 파리 국립발레단장직을 맡은 뱅자맹 밀피
만으로도 대중의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예(38)와 세계 유수발레단의 러브콜을 받으며 고
이번 무대에서 밀피예의 안무작은 소품 세 편
전과 현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천재 안무가 앙즐
중 첫 번째로 소개됐다. 프랑스 주얼리 회사 반클
랭 프렐조카주(58). 둘 다 프랑스를 대표하면서 세
리프&아펠의 의뢰를 받아 보석에서 영감을 받은
계적으로 주목받는 안무가이기에 그들의 행보가
작품 ‘리플렉션’은 과거 조지 발란신이 안무한 ‘보
곧 미래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석’에서 보았던 다이아몬드, 루비 등의 구체적인 이 미지는 없었다. 단지 빨간 무대 뒷막을 가득 채워
밀피예, 알레고리의 부재 극복
하얗게 쓴 ‘STAY’ 타이포그래피(디자인 바바라
밀피예는 LG아트센터 무대(11월 13~14일)에 섰다.
크루거)를 배경으로 솔로, 듀엣, 트리오의 긴장감
비록 밀피예가 직접 내한하지는 못했지만 LA댄스
넘치는 구성이 눈에 띄었다. 동작은 발레와 현대무
프로젝트의 첫 내한공연이어서 세간의 주목을 받
용이 적절하게 녹아있었고, 피아노곡과 어우러진
았다. 2012년 설립한 LA댄스프로젝트는 영상제작
빠른 발동작이 경쾌했다.
자·음악가·사진작가·의상디자이너와의 공동작업 ●
밀피예의 안무력을 판단하기엔 작품 길이가
프렐조카주의 ‘스노우 화이트’
너무 짧았다. 그러나 프랑스 태생이지만 미국에서
안무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거기에 그로테스크
20여 년간 활동해온 그가 흔히 미국적이라고 지적
하면서도 춤추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장 폴 고티
세대도 다르고, 표현방식도 다르지만, 우리
하는 알레고리(은유)의 부재를 극복하고, 자신의
에의 의상, 미니멀하지만 화려한 비주얼을 담은 티
시대를 대표하는 두 안무가를 연이어 접하면서 느
예술철학인 ‘공동작업’의 모델을 제시하기엔 충분
에리 르푸르스트의 무대는 말러의 섬세하면서도
낀 점은 그러한 과정 속에서 컨템퍼러리댄스의 진
한 시간이었다.
장엄한 선율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쉬는 시간없
정한 정의가 쌓이듯 내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이 110분간을 하나의 숨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원
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이 젊고 스타성 강한 밀
천재성 압축해 보여준 프렐조카주
동력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동작 사이사이 감정
피예에게 수장자리를 맡긴 점, 최첨단의 기술과 협
프렐조카주의 ‘스노우 화이트’(11월 14~16일 예술
이입을 충분히 녹여낸 움직임에 있었다.
업의 선두에 섰던 프렐조카주가 고전에서 정체성
의전당 오페라극장)는 ‘명작’이다. 이미 ‘로미오와
직임의 본질을 잃기도 했다.
을 다시 찾고 있는 점 등을 보아 (단순히 발레와 현
줄리엣’, ‘공원’ 등 컨템퍼러리발레의 선두적인 작
세대표현 방식 달라도 우리 시대의 ‘스타’
대무용의 경계를 허무는 움직임이라는) 표현의 자
품을 보며 감탄했지만, ‘스노우 화이트’는 프렐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현대예술은 협업의 중요성
유를 넘어선 전통과 미래의 결합에서 미래의 춤은
카주의 천재성을 압축·발현한 결정판임이 분명했
이 늘 강조되어왔다. 그 결과 각 방면에 다재다능
그 본질을 얻을 것이다. 춤은 전방위 예술을 등에
다. 동화를 소재로 하지만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
한 전방위 예술가도 탄생했고, 종합예술인 무용은
업은 전통으로의 회귀로 나아갈 것이다.
는 계모의 ‘질투’를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감성이
그들의 장기를 보여주기에 적절한 장르로 부각됐
글 장인주 무용평론가 cestinjoo@daum.net
넘쳐나는 남녀2인무, 전통을 표현하는 군무 등의
다. 그러다 보니 무용작품이 화려해지긴 했으나 움
사진 LG아트센터, 현대카드
S
지금 같은 물질적 욕망의 충족을 발전의 동력으로
대 교수(시각정보디자인전공)는 “아편전쟁 이후
삼는 발전 방식은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것인가. 중
왜곡된 만남의 기본 구도가 근 200년 동안 계속되
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산업화
고 있다”며 “이성과 분석력이 발달한 서양과 감성
의 모델을 모방 답습할 경우, 인류의 미래는 어떻
과 직관력이 뛰어난 동양이 각각 상대의 장점으로
게 될 것인가. 서양과 동양의 문명이 서로 보완해
자신의 결핍을 보완하는 상보적 융합을 통해 신문
가며 공생·상생할 길은 어떤 것인가. 디지털 기술
명을 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의 급격한 혁신과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어떤 영 향을 미칠 것인가-.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와 서울시 부시장 및
정욱주 서울대 교수(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는 과소비와 지속할 가치가 없는 것을 대량생산하 는 체제를 지적하며 “1000년을 지속할 디자인을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을 지낸 권영걸(63·사진)
할 수 있으려면 1000년을 꿰뚫는 지혜가 필요하다”
(주)한샘 사장이 ‘신문명(新文明)디자인대학’을 개
고 말한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BK 교수를 역임한
설한 이유다. 그는 “지금은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
채정우 CA plan 대표는 “누가 먼저 디지털을 선
를 최소화하면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문
점하고 디지털 사회를 자신의 역량으로 건설해 가
명의 모형을 제시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는 가의 경쟁에 직면해 있다”며 “이 경쟁은 창의성
그렇다면 왜 디자인인가. 권 사장은 “인류의
기반의 경쟁이고 그 배후에는 디자인 능력간의 경
삶의 방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변
쟁이 뒤따른다”고 통찰한다.
혁은 모두 디자인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
맹형재 건국대 교수(디자인대학원장)는 중국
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디자인 혁명
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중국은 향후 30년 동안
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약 5억 명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이동할 것으로 추
그가 주창하는 신문명 디자인의 기본 이념은
정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연간 600만 세대의 주
크게 세 가지다. 절제와 자족, 맥락과 회복, 가치와
택을 신규 건설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
보존의 컨셉트다. “근대 디자인은 상업적 이익의
모의 도시화죠. 이는 자원 고갈의 가속화 등 심각
수단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오브제였죠. 욕망을
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중국이
미덕으로 여기는 대중소비사회에서 지속적인 결
서양 도시를 모방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도시화를
핍과 갈증의 만성화를 유발하는 데 악용됐습니다.
독자적으로 이뤄낸다면 산업사회를 이끌어 왔던
하지만 미래에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가치 중심
미국을 뛰어넘어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문명을 열
사회입니다. 필요에 의한 디자인을 하고 그것을 대
수 있을 것입니다.”
를 이어 사용하면서 지속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어 야 합니다.” 22일 시작돼 12월 13일까지 토요일마다 열리
한샘은 강연회 이후 12월 22일까지 디자인 관 련 포털 ‘창신’을 런칭한다. 신문명디자인공모전 ‘창신’은 12월 말 모집 공지를 통해 2015년 7월에 발
는 강연에는 권 사장을 비롯해 9명의 디자인 전문
표할 예정이다. 문의 academy@chunagxin.kr
가들이 매번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강현주 인하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중앙포토
신문명을 여는 창조와 혁신 11월22일
오후 1시
파국을 넘어 신문명을 열어가는 디자인
권영걸 ㈜한샘 사장/ (전)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11월22일
오후 3시
동서의 가치를 융합한 새로운 디자인 문화의 창조
강현주 인하대학교 교수
11월29일
오후 1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 사고의 전환
정욱주 서울대학교 교수
11월29일
오후 2시30분
디지털기술의 선용과 생활환경의 디자인 혁명
채정우 CA plan대표/(전)서울대학교 BK교수
11월29일
오후 4시
한중일 16억 인구를 위한 동양성 기반의 디자인
맹형재 건국대학교 교수, 디자인대학원장
권영걸 ㈜한샘 사장/ (전)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미래 디자인 트렌드의 창조와 혁신 12월6일
오후 1시
글로벌 디자인트렌드를 선도하는 뉴 거버넌스
12월6일
오후 3시
디자인의 세계화와 대중화를 견인하는 매스미디어
이준환 서울대학교 교수
12월6일
오후 4시30분
MICE산업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디자인 페어의 창조
신현대 ㈜엑스포럼 대표이사/MICE WEEK 발행인
12월13일
오후 1시
동양성 기반 디자인 교육의 새로운 플랫폼 구축
최경란 국민대학교 교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원장
12월13일
오후 2시30분
미래 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개척하는 디자이너/스튜디오 모델
송봉규 SWBK 공동대표
12월13일
오후 4시
새 시대의 필요에 대응하는 디자인혁신 기업들과 산업생태계
김이숙 이코퍼레이션 대표/이화여대 경영대학 겸임교수
●
안재욱·임태경·팀이 번갈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홀 블루관에서 하는 연극 ‘품
디큐브아트센터의 인기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를
바 각시품바’(오후 7시30분 공
보기 위해서는 VIP석은 13만 원, R석은 11만 원, S
연)는 정가 3만 원짜리 티켓을
석은 8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하지만 이 가격의 절반으로 관람할 수 있는
있다.
방법이 있다. 올해부터 시작된 ‘매달 마지막 수요
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
일 문화가 있는 날’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공연의
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상파
경우 26일 오후 3시와 8시 공연, 12월 31일 오후 6
의 고향, 노르망디; 유럽 모던풍
시 공연은 선착순 100명에게 등급별 문화사랑석
경화의 탄생’은 이날 오후 6시
이 50% 할인된 가격에 제공된다.
부터 8시 입장할 경우 역시 절
‘문화가 있는 날’은 문화융성위원회가 지난해
반가에 티켓을 살 수 있다. 단
10월 대통령 보고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
현장매표소에서만 할인받을
화예술위원회 주관으로 올 1월 처음 시행됐다. 전
수 있다. 이날은 전시 시간이 오
국의 공연장·영화관·미술관·박물관·스포츠 시설·
후 9시까지 연장된다. 영화의 경우 오후 6시부터 8
문화재 시설을 할인 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시 상영 영화 1회 분에 한해 5000원에 볼 수 있다.
한 것이다. 이 행사에 참가한 곳은 1월 883개에서 10월 1539개로 크게 늘었다. 11월의 경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아
1500개가 넘는 시설들이 어디서 어떤 이벤트 를 하는지 먼저 알고 빨리 신청하기 위해서는 홈페 이지(www.culture.go.kr/wday)를 수시로 확인
이다 1963’(오후 7시30분 공연)은 A석과 B석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20% 할인(각 30매 한정)한다. 대학로 상상아트
글 정형모 기자,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가 있는 날 사무국
양방언 Evolution 2014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크로스오버 뮤지션 양방언
11월 28~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54)이 토속적 색채 물씬한 단독 콘서트로 국내 관객
정선아리랑, 해녀의 노래
을 찾는다. 미국과 일본의 정상급 퍼커션 주자들을 비
양방언 음악의 자유로운 진화
롯, 퓨전국악밴드 억스, 젊은 판소리꾼 권송희, 인디 밴드 국카스텐의 드러머 이정길 등 여러 분야의 아티 스트들과 함께 하는 이색적인 콜라보레이션 무대로
양방언 음악의 자유로운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주목되는 순서는 처음 공개되는 ‘정선아리랑 신악곡’. 정 선아리랑의 슬픈 사랑 얘기가 전해져 오는 아오라지 나루터와 동강을 올 가을 직접 여행하고 얻은 영감과 이미지 를 담아 새롭게 만들었다. 지난해 선친의 고향인 제주도에 헌정한 ‘제주판타지’ 초연 당시 합창단으로 참여했던 제주 하도리 해녀 6인도 함께한다. 해녀들을 위해 작곡한 ‘해녀의 노래’를 위해 현역 해녀들이 실제 물질 때 입는 해녀 옷을 입고 테왁을 둘러맨 채 무대에 오르는 것. 그밖에 게임과 애니메이션 주제곡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재 해석한 차별화된 공연으로 꾸민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극장
S
책 찾아가서 먹는 점심집 저자: 김순경 출판사: 길과맛 가격: 2만2000원
음식 블로거가 넘쳐나 는 요즘, 1세대 음식평 론가가 작심하고 맛집 을 한 권에 엮었다. 서 저자: 도미니크 풀로 역자: 김한결 출판사: 돌베개 가격: 1만5000원
울·경기 지역을 대상으로 식당 인근 직장인 들과 주민들이 최소한 10년 이상 검증한 음 식점만 골랐다. ‘점심집’이라는 제목에 맞
가치로 평가됐다면,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
게 곰탕·청국장·순두부 등 1만원 내외로 먹
냐가 관건이 된 것. 또 영화의 블록버스터처럼 관람객
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을 주로 소개한다.
‘유산’ 같은 단어는 편견과 무지였다. 박물관은 언제나
의 숫자가 전시의 성패를 좌우한다. 학문의 바탕이 되
맛집을 일군 주인들의 다양한 스토리도 읽
생물이었고, 늘 변화무쌍한 존재였다. 소장품은 물론
는 지식 습득의 장이 아닌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오락
‘박물관이 살아있다’. 생뚱맞게도 책을 덮고나자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박물관 하면 떠올렸던 ‘불변’ ‘영원’
는 재미를 더한다.
이고 관람객의 계층, 전시의 가치까
의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이 떠오른
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
다. 설탕부터 재판 서류까지, 박물관
To Better Lifestyle with internet
었다.
에 들어가지 못할 물건들은 거의 없
저자: 라이크컴퍼니
책은 프랑스 박물관사 및 박물
다고 봐도 좋다. 아니, 틀렸다. 물건
편집부
관학 연구의 중심적 인물인 도미니
만이 아니라 무용과 음악 같은 무형
크 풀로(58)가 학생들과 일반인을 대
의 예술까지 ‘전시’가 가능해 진다.
상으로 쓴 개론서다. 16~18세기 유
박물관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
럽의 근대 시기부터 19~20세기까지
되고 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그
출판사: 라이크컴퍼니 가격: 2만원
국내에서 처음 발간 되는 인터넷 무크지. 인터넷의 과거·현재·미래를 통해 현대인의
박물관의 길고 긴 역사를 정리했다.
변화의 기류에서 중심을 잡고 본질
그리고 이를 중심축 삼아 박물관의
을 짚어내는 일이 더욱 중요해 진다.
화감독부터 대기업 인턴까지 각계각층의
정의부터 사회적 책임, 미래의 바람직한 방향까지를 짚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박물관학’을 통해 화두를 제
인물들을 만나 그들이 인터넷을 활용해 어
어낸다. ‘박물관학’이라는 새로운 학명을 소개하는 부
시한다. ‘박물관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박물관의 정
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또 앞으로의 인터
분에선 저자의 학문적 깊이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책은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박물관을
넷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을 들어본
애초 박물관의 소장품은 소수 상류층의 전유 물이었다. 왕가와 군주들, 부르주아끼리만 서로 공개
활용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박 물관을 찾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던 컬렉션이 점차 예술계 전문가나 제자들에게 공
이 같은 논점이 중요한 이유는 박물관이 대규모
개된 것이 근대적 박물관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여기
조직과 자본의 논리에 마주했기 때문이다. 어느 건축
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처럼 대중에게 문을 연 건
가가 지었느냐는 차치하더라도 카페테리아의 인테리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였다. 당시 정부는 국립박물
어와 메뉴, 조명과 표지판, 심지어 보안시스템과 매표
관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입장할 권리를 부여했다. 이
전산관리 같은 ‘대민 서비스’가 박물관의 미래를 결정
후 나라마다 박물관을 국가 정체성의 상징으로 인식
짓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달라진 라이프 스타일을 그려낸다. 책은 영
다. 국내 인터넷 상용화 20년을 맞아 KT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베스트셀러 순위 책명
자료=교보문고
작가·출판사
01 미생 완간 세트(전9권) 윤태호 위즈덤하우스 02 비밀의 정원
조해너 배스포드 클
하며 소장품을 놓고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기도 했
책을 덮으며 박물관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기억
고, 20세기에는 정치 체제를 선전하는 프로파간다고
하지 못하더라도 새롭게 드는 생각이 있다. 역자의 말
04 창문 넘어 도망친 요나스 요나손 열린책들
을 빌리자면 “박물관이 사회 전반에, 모든 시대에 촘
05 나미야 잡화점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이용하기도 했다.
03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06 에디톨로지
김정운 1세기북스
하지만 이같은 과거보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현
촘히 뿌리를 박고 있는 엄청난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
대 박물관의 변화다. 더 이상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로 구축된 장소”라는 거다. 이것이 죽은 공간에서 살
08 어두운 상점들의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보여주는’ 곳이라는 점을 포착해 낸다. 예전에는 컬렉
아있는 공간으로 재조명되는, 박물관의 새로운 탄생
09 어떤 하루
일 터다.
10 싸드
션의 질과 희소성, 양적인 완벽함이 박물관과 전시의
●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07 트렌드코리아 2015
김난도 외 미래의창
신준모 프롬북스 김진명 새움
영화
공연
클래식
행사
빅매치
음악극 ‘공무도하’
콘체르토 이탈리아노
감독: 최호
기간: 11월 21~30일
일시: 11월 25일 오후 8시
(Animpact Korea 2014)
배우: 이정재, 이성민, 보아
장소: 국립국악원 예악당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기간: 11월 21~26일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2-580-3300
문의: 070-4234-1305
장소: 서울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2014 최강애니전
악당 에이스에게 납치된 형을 구하기
국립국악원이 연극계 거장 이윤택 연
이탈리아 고음악의 대표적 연주단체
문의: 02-3455-8341
위해 질긴 파이터 익호가 거침없는 질
출가와 뭉쳤다. 최초의 고대시 ‘공무
인 콘체르토 이탈리아노가 처음 내한
유명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수상작
주를 시작한다. 유치장에서 탈출해 거
도하가’를 모티브 삼아 판소리·경기민
한다. 르네상스ㆍ바로크 시대 음악에
을 한곳에서 선보여 온 ‘최강애니전’
대한 도박장, 상암 경기장, 서울역 등
요·서도민요·정가·범패·구음 등 다양
서 대담하고 드라마틱한 해석을 보여
이 9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안시 페스
서울의 랜드마크 곳곳을 누비는 익호
한 소리를 바탕으로 국악관현악과 전
준다. 연주단을 1984년 결성하고 지
티벌에서 그랑프리와 관객상을 받은
의 질주가 게임처럼 펼쳐진다. 룰은 단
통 무용이 어우러져 우리 공연 예술의
금껏 이끌고 있는 건반악기 연주자 리
‘소년과 세계’를 비롯해 34개국의 장·
하나, 멈추면 안 된다는 것.
원형을 찾는다.
날도 알렉산드리니가 함께한다.
단편 애니 150편이 상영된다.
덤 앤 더머 투
연극 ‘취미의 방’
테너 김재형
아트옥션 서로 書로
감독: 바비 패럴리, 피터 패럴리
기간: 11월 15일~2015년 1월 18일
일시: 11월 26일 오후 8시
기간: 11월 14~26일
배우: 짐 캐리, 제프 다니엘스, 캐슬린 터너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장소: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등급: 15세 관람가
문의: 02-766-6007
문의: 02-580-1300
문의: 02-515-8140
오로지 친구 해리를 웃기겠다는 일념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의 코사와 료
런던 로열, 빈 국립, 뉴욕 메트로폴리
1988년 개관한 서예박물관이 융복합
으로 20년 동안 환자인 척했던 로이드.
타 작가의 신작으로 2013년 일본 초
탄 오페라 무대에 선 테너 김재형의 무
예술장르까지 수용하는 아트 뮤지엄
마침내 해리를 완벽하게 속이고 임무
연 당시 전 공연 매진된 최고의 흥행작
대. 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로 유명
으로 거듭나기 위해 리모델링 기금마
를 완수한 그는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
이다. 네 명의 남자가 취미 생활을 즐
하다. 예술의전당의 클래식스타 시리
련 전시 및 경매 행사를 한다. 서예 고
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착한
기기 위해 비밀 공간인 ‘취미의 방’에
즈 중 하나이며 R. 슈트라우스의 가곡
미술품은 물론 장욱진, 박서보 등 현
엽서 한 장에는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모여들어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치
‘내일’ ‘은밀한 초대’ 등을 들려준다.
대미술품과 명사 휘호 등 300여 점을
담겨있었다.
닫는 본격 미스터리 추리 코미디.
피아니스트 문정재가 함께 한다.
영화 예매
자료=맥스무비
공연 예매
자료=인터파크
순위 영화명
주연
순위 공연명
출연
클래식 음반
자료=풍월당
순위 음반명
음반사
01 인터스텔라
매튜 맥커너히
01 뮤지컬마리앙투와네트
옥주현 김소현
01 카라얀:1980년대DG관현악
02 헝거게임:모킹제이
제니퍼 로렌스
02 뮤지컬황태자 루돌프
재욱 임태경팀
02 비발디:조화의영감
03 퓨리 04 카트 05 패션왕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03 뮤지컬그날들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04 뮤지컬지킬앤하이드
주원 설리 안재현 박세영
조승우 류정한
Channel Classics
04 베토벤:피아노협주곡5번‘황제’
Decca
순위 노래 01 나는달라 02 광화문에서
자료=가온차트
가수 HI SUHYUN 규현
03 내가그리웠니
MC몽
04 내생애가장행복한시간
MC몽
05 사뿐사뿐
06 아트서커스 카발리아
06 브라보-롤란도비야손
06 죽을만큼아파서Part2.
07 액션라이브쇼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07 베토벤:첼로와피아노를위한소나타 Sony
07 12시30분
BEAST
08 번개맨의비밀3 스페이스번개맨
08 솔가베타:플레이어
08 헤픈엔딩
에픽하이
09 부니 베어: 롤라 구출 대모험
09 연극라이어
09 독일음악의황금시대;요나스카우프만Sony
09 마음단단히먹어
MC몽
10 보이후드
10 지컬조로
10 모데라토칸타빌레
10 도망가자
MC몽
07 나를 찾아줘 08 아더우먼
김상경 벤 애플렉
카메론 디아즈 레슬리 만
엘라 콜트레인 에단 호크
공효진 강혜정전무송
03 모차르트:바이올린
DG Alpha
가요 음원
05 페이지4:스테레오콘서트시리즈 DECCA
06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05 연극리타
유준상 이건명 최재웅
선보인다.
공찬호 김연철 박중근 김우형 휘성 양요섭 S
Erato Sony ECM
AOA MC몽
만나기만 하면 “혈액형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A형이라 대
비교적 내 맘에 들었던 MBTI 유형분류도 그렇다. INFP 잔다르크형이
답할 때 “그래 A형이라서 나랑 잘 맞는구나”해주면 다행이지만 “나는 A형이
라고 대부분 나오지만 내가 생각해 봐도 혼자 있을 땐 I(내향성)인게 맞지만
랑은 정말 안 맞아”라며 쌀쌀한 표정을 짓는 사람 앞에서는 난감해진다. 내
술자리에만 나오면 대한민국 상위 1% 외향적인 E 타입이다.
몸에 흐르는 피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술로 판단해보는 성격마저 와인과 소주와 맥주
‘B형 남자’에 대한 영화나 속설, ‘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이라는 웹
를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내가 어떤 성격인지 나도 모르게 된다.
툰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듯, 사람들을 어떤 유형에 맞춰 들여다 보는 일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폰 사용자의 차이점을 조사한 리서치 회사의 결과를
아무리 무시하고 싶어도 너무 재미있다. 혈액형, 탄생 별자리, 태어난 해의
보면 평생 아이폰 사용자여야 딱 맞는데 알뜰한 주부라 공짜폰만 찾다 보니
띠…. 분명 한 카테고리에 속한 사람들에
내 손에는 늘 안드로이드 폰만 있다.
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고, 나도 모르게 몸
무언가를 통해서 그 사람의 본질을
에 익숙해진 그것들을 예리하게 집어낼 때
파악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나와 딱 맞는 사
“맞어 맞어”하면서 큭큭대게 된다. 어렸을
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 마음
땐 나도 어김없이 혈액형을 물어보는 사람
속을 들여다 보는 창을 가지고 싶다는 욕 각종 유형별 사람 분류에 대한 신화를 깨는 법
심 때문인지 우리는 자꾸만 사람들을 틀
1. 혈액형-초등학교 선생님이 실수로 혈액형을 잘못 적었을 수 있다.
속에 넣어 분류한다. 나도 남자를 볼 때 ‘문
액형 검사를 하는 순간, 믿음은 무너졌다.
2. 띠, 별자리-당신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학을 좋아하는 사람, 과학을 좋아하는 사
이십 몇 년 동안 A형이라고 알고 살았는데,
3. 사상체질-아이를 낳거나 나이가 들고 나면 아픈 곳이 달라질 수 있다
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미술 혹은 스포
갑자기 O형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4. 좋아하는 술-당신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츠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요리를 하는 사
12년 썼던 건강기록부에는 분명 A형이었
취한 뒤 온갖 종류의 술을 섞어 마셔왔을 수 있다.
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고 내가 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서 혈
는데, 피가 바뀌는 수도 있나. 여학생 시절 예쁜 일기장 뒤에 적혀 있던 혈액형별 성격
5.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서울말만 잘 흉내 내면 다 서울사람 같다. 6. 내향형/외향형-당신이 내향형인건 그냥 집에 혼자 있을 때만 그럴 수 있다.
설명 때문에 ‘근심 걱정이 많고 타인의 단
진 편견을 쏟아 부어 그 사람에 대한 사소 한 고정관념을 순식간에 쌓아 판단 잣대로 활용한다.
점을 발견하는 능력이 뛰어난 완벽주의자’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싸구
로 맞춰서 소심하고 꼼꼼한 투덜이로 살아
려 소설을 쓴다면 그 첫 문단은 “A형에 토
왔는데. 그와는 정반대 같은 ‘승부욕이 뛰
끼띠, 처녀자리, 전형적인 INFP였고 데킬
어나고 개그 본능이 있으며 어디서든 대장
라를 마시는 사람이었다”라는 식으로 주
노릇을 하려한다’는 O형이라고?
인공 캐릭터를 설명할지도 모른다. 빅 데이터 분석 기술이 점점 발전하게 되
그것이 초등학교 선생님의 사소한 기록 실수였든 비과학적 혈액검사의
면 아마도 갖가지 표지를 통해 인간의 성격을 정확하게 유형화해 갈 것이다.
결과였든 아무튼 이후 O형의 전형적인 성격에 맞춰서 또 이십 여 년을 살아
하지만 위대한 소설가들이 눈 하나, 콧수염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움찔
봤다. 그랬더니 오늘날엔 ‘술자리에서 승부욕을 발휘해 가장 먼저 취해서 가
거리는 모습을 묘사할 지언정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유형화해서 캐릭터를
장 큰 소리로 타인의 단점을 발견해 개그로 만들어 떠든 뒤 뒷날 소심하게
만들어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많은 공통점과 유형을 공
후회하며 걱정하는’ 양쪽의 성격이 합쳐진 이상한 사람이 됐다. 사람의 성격
유한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혈액형도, 혈액형을 물어보는 사람
는 나만의 우주를 내 몸속에 간직한, 너와 아무리 비슷해도 같아질 수 없는
들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됐다.
나일 뿐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
Shangrilla, Tibet 2009
여자의 발끝 그림자가 수도승을 향할 때 처마끝이 시샘하듯 그의 제자를 가리킬 때 사진가는 수도승의 눈길을 바라본다. 세상의 점, 선, 면이 하나가 된다. 나만의 샹그리라가 되는 순간.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