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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로니 웨스턴 탄생 50주년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서울 석촌동 싱크홀지하동굴 원인은

이탈리아가 비튼 서부극  액션 신세계 “지질에 부적합한 공사하다 땅 꺼졌다” Special Report 14~15p

기약 없는 난민캠프 생활

Focus 10p

이라크 내 소수 종족인 야지디족이 22일(현지시간) 수니파 무장반군 이슬람국가(IS)의 공격을 피해 도후크 지역에 있는 난민캠프에 몰려들고 있다.

노벨상 경제학자들의 불황 해법은 “과감하게 돈 풀어 디플레 막아야 ”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23일(현지시간) 스 위스와 국경을 맞 댄 독일 남부의 작 은 마을 린다우. 마 을회관 격인 ‘인젤 할레(Insel Halle)’ 건물 앞에서 신자 유주의 경제학을 비난하는 시위대 수십여 명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우리는 영혼을 가진 경제학자를 기 다린다.”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들 모임인 ‘2014 린다우 경제학 회의’ 에 참석한 경제학자들에게 불황·실 업·불평등 같은 문제에 새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압박과 항의였다. 20일부터 시작해 이날 폐막한 이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유로존(유로 화 사용 18개국) 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 게 제기했다. 유로존 경기침체와 디 플레 위험이 심상찮아 미국처럼 양 적완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앙SUNDAY와 만나 “유럽이 일본

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유럽중앙은 행(ECB)이 (한때) 긴축정책을 편 것 은 실수로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말 했다. 그는 “이런 잘못된 긴축정책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적극적인 경기부 양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업문제 전문가인 피터 다이아몬 드 미국 MIT 교수(2010년 수상자)는 22일 연설에서 “유럽이 긴축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

린다우서 경제학수상자 모임 생존 수상자 38명 중 17명 참석 불평등실업 해결책 함께 고민 “유럽도 양적완화 필요” 조언 다”며 “ECB 관료들은 훗날 역사학 자들로부터 질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로존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양적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주저하지 말 고 돈을 더 풀어 위기를 막아야 한다 는 주장이다. ECB는 시장에서 다양한 자산을 사들임으로써 통화 공급량을 늘리

S Magazine

연극무대서도 반짝 늦바람 김성령

http://sunday.joongang.co.kr

는 양적완화를 아직 실시하지 않고 있다. 양적완화는 통상적인 금리정 책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시장에 돈을 무제한 풀기 위해 동원 하는 비(非)전통적인 정책이다. 이달 초 발표된 유로존의 2분기 경제성장 률은 0%였다. 독일은 2분기에 전 분 기 대비 -0.2%의 성장을 기록했다. 5 개 분기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프 랑스도 2분기 제자리걸음(0%)에 그 쳤고, 이탈리아도 0.2% 마이너스 성 장을 했다. 마침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주장에 화답을 보내왔다. 그는 22일 미국 와 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미국 중 앙은행 경제정책 심포지엄인 ‘잭슨 홀 회의’에 참석해 “필요하다면 추가 조치에 나설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있다 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ECB 정책위원회는 비전통적 조치들을 사 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 한 비전통적 조치의 대표가 양적완 화다. ECB는 지난 6월 사상 처음으 로 은행이 중앙은행에 자금을 예치 할 때 벌칙성 마이너스 금리를 물리 는 등 부양책을 내놨으나 경기는 좀

관계기사 8p

[도후크 로이터=뉴스1]

“세월호 동조단식 2만 명 넘어” 대책위 “온라인으로도 참여”  유민 아빠, 병원서도 단식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날로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2007년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하버 드대 교수는 “세계화는 생산의 절대 량을 늘려 개발도상국 중산층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서민에겐 도움 이 되지 않았다”는 이론을 소개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도 강연에서 “불평 등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 지 문제를 넘어 사회 발전에 큰 걸림 돌이 되고 있다”며 “정치인들은 증세 등 과감하고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린다우 미팅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축사에서 “국내 총생산(GDP)이나 생산성 같은 지표 를 논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독일 정부는 ‘무엇이 국민을 진정으로 행 복하게 할 것인가’를 정책의 주안점 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모임 엔 생존해 있는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38명 중 17명과 80여 개국에 서 온 450명의 젊은 경제학도들이 ‘경제학은 일상생활에 어떻게 기여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관계기사 4~5p

‘중년 여성들의 워너비(닮고 싶은 사람)’로 불리는 배우 김성령을 만났다. 1988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화려하게 대중 앞에 섰지만 주역급 연기자로 발 돋움하진 못했던 그는 2012년 드라마 ‘추적자’를 계기로 만개하기 시작했다. 최근 연극 ‘미스 프랑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를 만나 뒤늦게 맞은 전성기의 즐거움에 대해 들어봤다. 1부 1000원 / 월 5000원 | 정기구독 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세월호 희생자인 유민양의 아버지 김 영오(47)씨를 따라 동조단식을 하겠 다고 나선 인원이 2만 명을 넘어섰다 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 대책위원회 가 밝혔다. 여기에는 자신의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단식을 알린 이들과 서울 광화문광장 바닥에 함께 주저 앉아 하루 이상 단식 농성을 한 일반 시민 3000명도 포함된다. 김씨가 병 원으로 긴급 이송된 22일 당일에 온 라인상에서 단식을 알려온 인원이 1 만9000명에 달했다. 참가자들은 “세 월호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배고픔 을 함께하겠다”며 동조단식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동조단식에 참가하

는 사람들은 유가족이 요구하는 대 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 월호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정부에 요 구하고 있다. 23일에는 장애인과 빈 민 100명도 일일단식을 했다. 25일에 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수도 사들이 단식기도회를 연다. 광화문 에 비치된 단식 참가신청서에는 자신 을 일반 시민이라고 밝힌 이들의 서 명도 줄을 이었다. 세월호 대책위 관계자는 “김영오 씨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서도 41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며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든 수액을 맞고 혈압은 안정됐지만 여전히 식사를 거부하고 있어서 정신적·체력적으로 매우 불 안정하다”고 밝혔다. 관계기사 6p

새누리 연찬회서 유족과 대화론 김무성 “언제든 만나겠다”  금주령 속 음주 논란

박신홍 기자, 천안=최민우 기자 jbjean@joongang.co.kr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23일 세월호특별법 협상과 관련해 “유가 족 마음을 헤아려가며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다시 한번 전향적으로 문제 에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충남 천안에서 열린 새누리 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원칙적 입 장은 지키되 유연하게 유가족 말씀 에 더 귀를 열어놓겠다”며 이같이 밝 혔다. 김무성 대표도 “언제든지 유족 들이 원할 때마다 만나겠다”며 교착 국면 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이날 자유토론에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이 나서 유족들과 대

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집권여당으 로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못 지않게 제기됐다. 1박2일 연찬회 동안 세월호 정국을 감안한 당 지도부의 금주령에도 불구 하고 22일 밤 행사장 주변엔 술자리가 잇따랐다. 김 대표가 22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연찬회 금주를 결정했다”며 당부했지만 참석자들의 음주를 막진 못했다. 이틀째 자유토론에는 소속 의 원 158명 중 50여 명만 자리를 지켰다. 토론 중엔 “어제 좀 과음해서…”라고 발언한 의원도 있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 은 의원은 전부 나쁜 사람이다. 직무 를 방기하는 것으로 부끄럽게 생각해 야 한다”고 말했다. 관계기사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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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사설

Inside

세월호 열쇠 어디에 있는지 국민은 안다

Focus 연중기획 한국문화대탐사

희석 소주와 막걸리가 국민술 된 슬픈 사연 우리의 전통술은 일제강점기 때 몰락했다. 한때 30만 명이 넘던 가양주 주조 자는 1930년께 손으로 꼽을 정도로 급감했다.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가 국민 주가 돼버렸다. 전통 명품주의 화려한 부활을 꿈꿔본다. 11p Column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 미국 최연소 여성 갑부의 자리에 올라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로까지 꼽히 는 그녀의 성공비결은. 내면의 두려움 과 맞서는 리더십 내세워 자신감을 갖 고 세상을 주도하라는 샌드버그의 경 영 철학을 들여다본다. 24p Health Plus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하던 세월호 유가족 김 영오씨가 병원에 실려가던 22일, 박근혜 대통 령은 부산 자갈치시장에 갔다. 극명한 대조만 큼이나 여론도 엇갈린다. 한편에선 박 대통령 이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고, 얘기라도 들어봐 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정치 이슈 로 변질되고 청와대 책임론으로 귀착되는 것 을 우려하는 여권의 상황 인식 앞에선 통하지 않는 말이다. 다른 한편에선 무작정 떼쓰면 다 들어줘야 하냐며 유가족의 절제를 바라는 쪽 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자기 자식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고 믿는 부모들에게 할 말은 아 니다. 사실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는 것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곤 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지 난 5월 청와대에서 유가족을 면담하면서 “기 회가 되면 또 뵙도록 하겠다”고 했다. 다시 만 난다고 대통령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것도, 권 위가 손상되는 것도, 무슨 봉변을 당하는 것 도 아니다. 게다가 박 대통령 스스로 세월호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시한 바 있 다. 그렇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성의를 보여야 할 차례다. 청와대가 ‘특별법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 해 처리할 일’이라는 형식논리를 방패로 삼는 것도 한두 번이다. 청와대가 입법부의 등을 떠 밀다간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유가족은 이미 정치권에, 특히 여권에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상태다. 게다가 유가 족을 둘러싼 주변 세력들이 내뿜는 잡음도 커 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본질적 문제 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곁가지만 무성하 게 키울 뿐이다. 물론 청와대가 적극 나서지 않는 데도 이유 가 있다고 본다. 세월호 정국에 편승하려는 야권의 전술이 눈에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수 사권과 기소권을 지닌 진상조사위를 통해 야 권은 청와대·정부에 칼을 겨누려는 뜻을 숨기 지 않고 있다. 예컨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일 의 박 대통령의 소재에 대한 루머 검증, 유병

언 시신 미스터리 확인, 국가정보원의 세월호 운항 개입 등이 야권이 노리는 메뉴다. 세월호 가 왜 침몰했고, 왜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하지 못했으며, 재발을 막기 위해선 뭘 해야 하는 가 하는 본질적 사안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청와대의 경계심만 자극할 뿐, 사태 수습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 결과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언제 까지나 진전 없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바 둑에서 말하는 순환패에 걸린 형국이다. 그 에 이르게 된 책임을 떠나 지금 누군가 양보해 야 한다면, 그래서 국면을 진전시킬 수 있다면 아무래도 청와대가 나서는 게 순리다. 국정 의 최고 책임은 늘 청와대로 귀결되기 때문이 다. 더 늦기 전에, 아직 다리가 끊기지 않았을 때 청와대가 교착상태를 돌파해야 한다. 야권 의 정치공세를 무릅쓰고 유가족의 마음을 움 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형식논리를 거두고 진 심과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People

고치기 힘든 바바리맨 증세

‘인간 박정희·육영수’ 저자 김두영

딸 살해 혐의 재미교포 이한탁씨 25년 만에 석방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일탈 행동에 대한 전문의들의 처방과 진단을 알아 봤다. 일단 정신과 의사들은 ‘국격’이 나 ‘정신병’과는 무관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현재로선 성도착증 환자로 판정하긴 애매하나…. 22p

박정희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평가 하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1위다. 영부 인 평가에서는 육영수 여사가 1위다. 하지만 왠지 멀게 느껴지는 두 분의 면모를 김두영 청와대 전 비서관이 따뜻하게 그려냈다. 12p

Money

Economy

박종화 인턴기자 hjmh7942@naver.com

앞금, 뒷금 금 거래 불편한 진실

비주얼 경제사

금 거래를 양성화하겠다. 정부는 지 난 3월 이런 청사진을 내보이며 KRX금거래소를 개설했다. 그후 5 개월, 현재 거래소를 통한 금 거래량 은 하루 3~5㎏에 불과하다. 음성거래 가 사라지지 않는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 엇박자가 있었다. 18~19p

임진왜란이 세계 노예무역 활성화?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감형 없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25년간 복역해 온 재미교포 이한탁(79)씨 가 22일(현지시간)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씨는 이날 보석심리를 받기 위해 수감돼 있 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하우츠데일 주립교도 소를 나왔다. 회색 양복으로 갈아입은 이씨 는 ‘이한탁 구명위원회’ 손경탁 위원장, 김영호 목사 등과 함께 승용차로 2시간 30분 거리인 해리스버그 연방법원으로 향했다. 보석심리를 주재한 마틴 칼슨 판사는 40 분 만에 이씨에게 최종 보석판결을 내렸다. 이씨 는 판결 직후 취재진 앞에서 미리 준비한 소감문 을 읽었다. 그는 “세상천지 이렇게 억울한 일은 역사에 없을 것”이라며 “지난 25년간 수고해 준 여러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더 보람되게 살 것” 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앞으 로 머물게 될 뉴욕 플러싱으로 향했다. 이씨의 구명운동을 펼쳐 온 김영호 목사는 중 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이 선생님은 ‘25년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며 놀라기도 했지만 사회에 적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스 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고 전 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는 조선에 은을 요구했다. 당시 명나라는 전 세 계 은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명 나라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은 수요가 늘어나니 노예무역이 확대 됐다는 이론이다. 20p

클릭 SUNDAY 지난주 온라인 5 1 막강하지만 위험한 ‘직업’ 암살된 교황 적어도 6명 2 삼성 ‘자린고비 경영’ 득보다 실이 크다 3 “제수는 나를 독살하려는 일본 밀정” 전전긍긍한 푸이 4 “안전하고 편한 곳으로”  대입 전쟁 끝나자 입대 전쟁 5 400억대 부자가 민심을 알까 sunday.joins.com

ch15 하이라이트 밤 11시 집밥의 여왕

교양

개그우먼 곽현화가 다양한 해산물을 이 용한 특별 요리를 선보인다. 집밥 손님들

화재로 딸 사망해 종신형  8번째 항소서 유죄 평결 무효로 보석

발생한 화재에서 이씨는 간신 히 빠져나왔지만 딸은 목숨을 잃었다. 미국 검찰은 이씨의 옷 에 묻어있던 휘발성 물질을 증 거로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법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 을 선고받았다. 사건 직후 이씨의 철도고 4 년 선배인 손경탁씨를 중심 으로 구명위원회가 결성됐다. 2008년 7번째 항소마저 기각됐 불을 질러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25년간 수감됐던 재미교 지만 2012년 8번째 항소에서 피 포 이한탁(79·가운데)씨가 22일(현지시간) 구명위원회 관계자 터 골드버그 변호사가 무료 변 들의 부축을 받으며 보석심리가 열린 해리스버그 연방법원에 들어서고 있 론을 맡으면서 상황이 바뀌었 다. 작은 사진은 수감 초기 이씨의 모습. [뉴욕=뉴시스] 다. 지난 5월 항소법원은 당시 화재감식 기법이 비과학적이라 보석판결 후 이씨가 처음 찾은 곳은 한식당이 는 점을 인정했고, 지난 19일 이씨에게 적용된 었다. 그는 뉴저지 포트리에 있는 ‘북창동 순두 유죄평결과 형량을 무효화하라고 판결했다. 부’를 찾아 두부 한 모와 순두부로 식사를 마쳤 미국 검찰은 오는 12월 6일까지 항소하거나 새 다. 함께했던 구명위원회 관계자는 “이씨가 반 로운 증거를 찾아 재기소해야 한다. 하지만 구명 찬과 숭늉까지 깨끗이 비웠다”고 말했다. 위 측은 재기소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구 이씨의 수감생활은 1989년 7월 29일 발생한 명위 관계자는 “과거 유죄평결 당시의 증거들이 화재로 큰딸 지연(당시 20세)씨가 사망하면서 모두 무효화돼 검찰이 다시 증거를 찾아 재기소 시작됐다. 78년 이민 와 뉴욕에서 의류업을 하던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검찰이 항소하지 않 이씨는 딸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화재 전날 으면 이대로 무죄가 확정돼 억울한 누명을 벗게 펜실베이니아주의 교회 수양관을 찾았다. 새벽 된다”고 말했다.

은 곽현화표 꽃게 된장찌개에 놀라고 일명 양다리 오징어라는 요리에 또 한번 놀란 다. 곽현화는 또 자신만의 S라인 유지법인 독특한 운동법을 전수한다

저녁 7시25분 닥터의 승부

교양

배우 변정수가 사춘기 딸과의 갈등해결법

현충사 이순신 장검에 원인 모를 붉은 페인트 문화재제자리찾기, 안료 제거 요청  현충사 측 70년대에 칠해져

을 의뢰한다. 집안일과 스케줄로 바쁜 일 상 속에서 수퍼맘 변정수는 열일곱 살인 딸과 다투다 문까지 부쉈다고 말하고 닥터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군단은 부모가 인내해야 한다며 특별한 노하우를 알려준다. 채널 번호프로그램 안내는 02-75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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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 에 정체 모를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 기(대표 혜문 스님)는 칼날의 혈조(칼날의 무 게를 줄이기 위해 홈을 파서 만든 부위)와 문양 에 붉은색 안료가 칠해져 있다며 이를 제거해 야 한다고 요청했다. 1963년 보물 326호로 지 정된 충무공 장검은 1594년 4월 제작된 것으로 이순신 장군이 직접 사용했던 칼로 알려져 있 다. 칼에는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 山河·한칼에 쓸어버리니, 붉은 피가 산하를 물

현충사가 소장 중인 이순신 장군 장검. 도신에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사진 문화재제자리찾기]

들이도다)’라고 쓰여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21일 문화재청에 이 같은 의혹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조속히 화

학안료를 제거해 줄 것을 촉구했다. 혜문 스님은 “조선시대 도검에 붉은색이 칠해진 예를 찾아볼 수 없다”며 “현재의 붉은색은 페인트와 같은 화 학안료가 칠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우선적으로 화학안료를 제거한 뒤, 원형을 찾아 고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충사 측은 “2011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과 학적 성분조사 결과 충무공 장검의 붉은색은 화 학안료로 판명됐다”며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 만 1970년대에 칠해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 혔다. 현충사 관계자는 “이순신 장군 장검의 특 별전 전시가 끝나는 대로 화학안료를 제거할 계 획”이라고 말했다.


News 3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위기 감지의 달인닥터둠마크 파버

선진국 증시는 거품, 올가을 주가 추락에 대비하라 조짐이 심상찮다. 글로벌 주가가 높이 날 고 있는 와중에 경제와 투자 구루(Guru) 들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노벨 경제학 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 수와 ‘헤지펀드 귀재’인 조지 소로스 소 로스펀드 회장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두 사람 모두 2008년 금융위기 등을 미 리 경고한 적이 있다. 위기를 감지하는 촉 이 남다르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원조 ‘닥 터둠’ 마크 파버 글룸붐앤드둠(Gloom, Boom & Doom) 편집자 겸 발행인은 어 떻게 생각할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20일 태국에 머물고 있는 파버 박사에게 전화 를 걸었다. 그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0년 닷컴거품 붕괴, 2007년 미국 주택 시장 위기 등을 정확하게 예견했다. 위기 를 감지하는 촉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 워할 사람이다.

43.77 닷컴거품 2000년

미국의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 26.28

(로버트 실러의 CAPE)

2014년 8월 20일

27.06 블랙 블랙튜즈데이 1929년 10월

14.92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요즘 시장 상황이 위태위태한가.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은 그렇다. 요즘 미국 주가는 주당순이익이나 장부가 등 여러 지표 에 비춰 너무 비싸다. 유명한 펀드매니저 벤 저민 그랜섬은 늘 낙관적인데 최근 기대 수익 을 크게 낮췄다.” 그랜섬은 영국 출신 장기 투자자다. 미국 보 스턴에 있는 자산운용사 GMO의 설립자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운용하는 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1120억 달러(약 114조원)에 이른다. -소로스는 아예 미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 고 하더라. “소로스 경우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그의 자산은 200억 달러 정도다. 이 가운데 20억 달러를 공매도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 서 건네주고 차액을 수익으로 챙기는 전략이 다. 물론 공매도 규모가 이전보다 늘기는 했 지만 일반적인 리스크 헤지라고 봐야 한다.” -실러 교수는 주가뿐 아니라 채권 등의 값 도 너무 뛰었다고 지난주 경고했다. “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말에 동의한 다. 선진국 자산 가격이 인플레이션돼 있다고 판단한다. 실러 교수가 개발한 지표를 봐라. 진실을 보여준다.” 그 지표는 바로 실러 교수가 개발한 ‘경 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CyclicallyAdjusted Price Earnings Ratio)’이다. 물 가를 반영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주당 순이익 10년 평균값으로 산출한 주가수익비율이다. 올 8월 20일 현재 26.28 이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때보다 높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과 엇비슷하다. 실러는 “CAPE가 주식 매매 타이밍을 보여주진 않 지만 현재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는 알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CNBC 등과 인터뷰에서 올가 을께 미 주가가 20~30% 떨어질 것으로 경 고했다. 그 생각엔 변함이 없는가. “뉴욕증시의 S&P 500 지수가 2009년 3월 670선까지 떨어진 뒤 계속 올라 1900선을 웃 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기업 실적이나 거 시경제 상황에 비춰 이는 자산가격 인플레이 션이다. 내가 보기에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자산가격 버블이라고 해도 될까. “그렇다. 주요 나라 주식뿐 아니라 채권이 나 집값 모두 너무 비싸다. 우리 눈앞엔 값이 너무 오른 글로벌 자산시장이 있다.” -주가가 급락한다면 무엇이 촉발시킬 것 으로 보는가. “현재로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지정학 적 갈등일 수도 있고 어떤 나라의 정치적인

블랙먼데이 1987년 10월

14.52

1910년

1920

1930

1940

1950

1960

1970

1980

1990

24.02 2008년 금융위기

2000

2010

자료: 블룸버그, 톰슨로이터

지금의 주가 상승은 저금리 덕분 금리 조금만 올라도 추락 불가피 미국 주가 올 20~30% 조정 가능성 중국 주택시장 약세, 차 판매도 둔화 신용거품 겹쳐 조만간 위기 겪을 듯 신흥시장 주식과 금 투자가 유망

사건이 주가 추락을 야기할 수도 있다. 자연 재해도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실제 87년 10월 블랙먼데이는 아주 우연한 사건에 의해 촉발됐다. 그해 10월 10일 미국 과 이란 군함이 전투를 벌였다. 닷새 뒤인 15 일엔 허리케인이 영국 런던을 엄습했다. 런던 증권거래소 매매가 중단됐다. 그리고 나흘 뒤인 19일 주가가 폭락했다 -경제적인 변수를 하나 꼽는다면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신용시장, 즉 채권과 자금 시 장이 화근일 듯하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 어날 것 같다.” -대기업이 부도를 낸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요즘 국채 값이 너무 올랐다. 독일의 채권값을 봐 라. 현재 10년 만기 국채의 만기 수익률이 1% 도 되지 않는다. 스위스 국채 10년짜리 수익 률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프랑스 국채 모두 고공 행진이다.” -채권값이 떨어지는 게 방아쇠란 말인가. “채권값이 떨어지면 만기 수익률(시장 금 리)이 오르지 않는가. 그러면 글로벌 자산가 격 조정이 불가피하다. 현재 주가는 아주 낮 은 시장 금리를 전제로 형성된 것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바탕 위에 높은 주가가 형성돼 있다. 금리가 오르면 주가가 떨어질 것이다.” -또 다른 방아쇠는 없을까. “방아쇠라기보다는 증폭기에 가까운 존재 들이 시장에 있다. 모멘텀 플레이어들과 고주 파 트레이더(HFT)들이다. 이들은 주가 흐름 이 바뀌는 시점을 노려 엄청난 물량을 사고파 는 무리다. 주가가 일단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 들이 떨어지는 폭을 순식간에 키울 수 있다.” 파버는 거시경제 전문가는 아니다. 그가 경제학 박사이기는 하지만 자산시장에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그에게 미국 통화정책은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철 학이나 비전을 어떻게 보는가. “옐런만을 두고 말할 필요가 없다. 서방 세 계 중앙은행 총재들은 모두 비둘기라고 생각 한다. 그들은 기준금리를 너무나 긴 기간 동 안 아주 낮게 유지하고 있다. 내년에 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시늉만 낼 것이다.” -무슨 말인가.

2011년 마크 파버가 한국에서 강연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미국 Fed가 1913년 설립됐다. 이후 100년 동안 기준금리는 평균 4% 안팎이었다. 지금은 0%다. Fed가 예고한 것보다 서둘러 금리를 올 린다고 하자. 몇 %포인트나 올릴 것 같은가?” -0.25~0.5%포인트 정도이지 않을까. “그 정도 올려도 기준금리는 1%도 되지 않 는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그 정도 올려봐야 의미 없다고 본다.”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는 것 자체가 의미 있지 않을까. “그 의미가 주는 파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시장은 인상 초기 긴장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리 인상폭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을 재기 시작한다. 결국 기준금리가 2% 이상 을 넘어설 때까지 자산 가격이나 실물경제에 큰 일이 없다는 것을 간파할 것이다.” -어쨌든 옐런이 기준금리를 예정보다 빨 리 인상한다는 말인가. “내가 보는 올 하반기 글로벌 경제는 일반 적인 예측과 정반대다. 그들은 대부분 올 하 반기 글로벌 경제가 좋을 것이라고 본다. 난 아니다. 올 하반기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것으 로 본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 옐런 은 기준금리 인상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금 리 인상을 어렵게 할 또 다른 요인도 있다.” -무엇인가. “미국 주가가 앞으로 6개월 사이에 10% 정 도 떨어진다면 옐런은 금리 인상을 꺼릴 수 밖에 없다.” 다시 중국 경제가 화두다. 집값이 중국 전 역에서 떨어지고 있다. 건설과 부동산 부문 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 다. 기업의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거의 비슷 하다. 이런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중국은 핵심적인 성장 엔진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다. -요즘 중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있 다고 보는가. “주택시장은 약해지고 있다. 실물경제도 심상치 않다. 중국 내 자동차 판매가 둔화하 고 있다. 마카오 카지노 수입도 줄고 있다. 그 런데도 중국 경제가 나쁘지 않다고 보는 전 문가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의 분석 능력을 의심한다.” -주택시장이 계속 약해져 위기의 도화선 이 될까. 2007년 미국 주택시장처럼 말이다.

“주택시장보다 중국의 신용거품(부채 급 증)이 더 큰 문제다. 2009년 이후 중국 빚이 100% 늘어났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급격히 불 어난 빚 더미는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돈을 찍어내 거나 재정을 풀어 부채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껄껄 웃으며) 북한이나 군사정부 시절 남 한 정부라면 가능할 것이다. 중국 경제는 아 주 빠르게 시장화돼 있다. 중국 정부의 통제 능력 밖에 있다. 더욱이 인구가 13억 명이나 된다. 싱가포르 같은 나라처럼 할 순 없다.” -그렇다면 중국 위기가 온다는 말인가. “곧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꽤 된다. 다만 다 가오는 위기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처럼 메 이저급일지 아니면 소규모일지는 모르겠다.” -한국이 중국의 이웃이라서 위기가 걱정 된다. “한국이나 대만이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 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 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높지 않으면 한 국이 시원찮을 것이다.” -중국 주가는 어떨까. “중국 주가는 실물경제와 좀 다른 흐름이 될 수도 있다. 주가가 2007년 10월 정점에서 떨어졌다. 다른 나라 주가와 견줘 싼 편이다. 위기가 발생한다고 해도 주가가 폭락할 가능 성은 크지 않다.” -주가 급락이나 중국 위기 같은 폭풍을 피 할 만한 투자 대상은 무엇일까. “요즘 금값이 상대적으로 낮다. 주가가 추 락할 때 금값이 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가오는 주가 조정은 주로 선진시장에서 일 어날 것이다. 신흥시장 주식을 사면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다.” 마크 파버=19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취리 히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0년대 정크본 드 파문을 일으킨 투자은행 드럭셀번햄램버트의 트 레이더와 아시아 담당 전무이사를 지냈다. 90년에 독 립해 투자자문사인 마크파버리미티드를 설립해 최 근까지 운영했다. 요즘엔 투자 레터인 ‘글룸붐앤드둠 (Gloom, Boom and Doom)’ 발행에 집중하고 있 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2008년 위기를 예측해 명성을 얻기 전까지 파버가 ‘닥터둠’으로 불렸다.


4 News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2014 린다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 참관기

경제학은 유용한 학문인가  석학과 젊은피‘열린 대화’ “미국 대학에 갔을 때 노벨 경제학상 받은 교수를 본 적은 있다. 그런데 여기처럼 노벨상 수상자를 한꺼번에 만나는 것이 꿈만 같다.”(독일 대학원생 크리스티안 슈타트) “당신이 직접 노벨 경제학상을 타지 못하는 한 여기는 일생에 한 번 정도밖에 올 수가 없다. 많은 수상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도록 노력하라.”(2011년 린다우 경제학 회의 참가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린다우 경제학 회의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70~80대가 상당수인 수상자들은 청바지 차림에 가방을 메고 회의장을 들어왔다. 전 세계 80개국에서 온 450여 명의 학생은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강연과 토의는 뜨거웠다. ‘경제학은 유용한가’ ‘불평등은 왜 심화하나’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식사 자리에서도 책에서만 봤던 대가들의 설명을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5회 린다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에 참석한 학생들이 2007년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와 토론하고 있다.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2004년부터 2~3년 주기로 열려

blast@joongang.co.kr

경제학 대가들 강연료 없이 봉사

린다우 경제학 회 의에서 강연하는 베를린 노벨 경제학상 수 상자들은 강연료 독일 를 받지 않는다. 최 프랑크푸르트 고의 경지에 오른 프랑스 뭰헨 석학들이 무료로 린다우 오스트리아 스위스 젊은 후학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회의 첫날인 20일 (현지시간) 강연 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수상자는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였다. 2012년 ‘시장 설계’ 연 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스 교수는 ‘혐 오적 시장(repugnant markets)’에 대해 유머 를 섞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했다. 혐오적 시장 이란 마약·신체 장기처럼 어떤 사람들은 거래 를 원하는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시 각이 있는 시장을 말한다. 로스 교수는 실제 신장 거래를 주선하고 있다. 단 돈은 받지 않는 다. 돈을 뺀 장기 시장을 설계한 것이다. 로스 교수는 30여 분에 걸친 강연 말미에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신장 거래에 찬성하면 손을 들어보세요.” 많은 학생이 손 을 들었다. 로스 교수는 곧바로 “그럼 기증자 가 죽게 되는 심장 거래는 어떤가”라고 질문 했다. 손을 들었던 학생들이 황급히 손을 내 렸다.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스 교수가 객 석에 앉아있던 신자유주의 성향의 시카고대 소속인 라스 피터 핸슨 교수를 가리키며 “그 래 시카고. 사람을 죽이자는 거래에 찬성해야 지”라고 말하자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 스 교수는 마지막 날 토론에서 경제학의 유용 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경제학이 모 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 다”며 “연구 환경이 변하고 도전 과제도 변하 면서 경제학은 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스킨 “리카르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됐지” 2007년 수상자인 하버드대 에릭 매스킨 교수 는 경제학의 대표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반 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상대우위 이 론대로라면 세계화가 진행되고 무역 장벽이

위원장 “배우고 영감받고 쌓으라” “환경 변해도 경제학은 진화 중”

환영 인사를 하는 조직위원장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 [Rolf Schultes/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Christian Flemming/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린다우 회의 참석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17명 이름(수상 연도)

소속

수상 이유

로버트 아우만(2005)

이스라엘 헤브루대

게임이론 통해 협력의 필수요소 분석

피터 다이아몬드(2010)

MIT

노동시장의 탐색마찰 연구. 정부 정책이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

라스 피터 핸슨(2013)

시카고대

위험’과 ‘불확실성’을 구분해 ‘시스템 리스크’의 실체 밝혀. 금융위기 원인 분석

핀 신들란(2004)

카네기멜런대

경제 정책의 일관성과 세계적 경기 변동의 추진력 연구

에릭 매스킨(2007)

하버드대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 발전. 불완전한 경쟁과 비대칭 정보 속 자원배분 연구

대니얼 맥패든(2000)

UC버클리대

개인 및 가계의 행위 선택에 관한 통계분석기법 개발

로버트 머튼(1997)

MIT 슬론 경영대학원

파생상품 가치 평가 위한 공식 개발

제임스 멀리스(1996)

홍콩 중문대

불균형 정보 속 인센티브라는 경제이론 정립

로저 마이어슨(2007)

시카고대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 발전

에드먼드 펠프스(2006)

컬럼비아대

인플레와 실업의 상충관계에 관한 이해 증진

에드워드 프레스콧(2004)

애리조나주립대

경제 정책의 일관성과 세계적 경기 변동의 추진력 연구

앨빈 로스(2012)

스탠퍼드대

안정적 배분 이론과 시장설계 관행 연구에 기여

라인하르트 젤텐(1994)

독일 본대

복잡한 게임이론 적용해 현실 세계에서의 인간 상호작용 예측

윌리엄 샤프(1990)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금융시장과 투자의사 결정 등 금융경제학 이론의 선구적 연구

크리스토퍼 심스(2011)

프린스턴대

거시경제의 인과관계에 관한 실증적 연구에 공헌

버넌 스미스(2002)

채프먼대

실험경제학 토대 마련

조지프 스티글리츠(2001)

컬럼비아대

시장 참여자들의 불균등한 정보 소유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 분석

사라지면서 개발도상국의 소득 격차, 불평등 도 줄어야 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서민들 은 여전히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매스킨 교수는 노동시장을 선진국의 숙련 된 노동력 선진국의 미숙련 노동력 개발 도상국의 숙련된 노동력 개발도상국의 미 숙련 노동력으로 나누었다. 세계화가 서비스 산업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개발도상국의 숙 련된 노동력은 혜택을 보지만 미숙련 노동력 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매스 킨 교수는 “리카르도는 이제 은퇴할 때가 됐 다”며 “상대우위 이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 다”고 설명했다.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는 미국 상황을 언급하며 경제학의 정파성에 대해 얘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물리학의 경우 민주당 물 리학과 공화당 물리학이 따로 없다. 하지만 경 제학은 민주당 성향과 공화당 성향이 나뉘며 객관적인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 다. 행사에 초청받은 손석준(서울대 대학원) 씨는 “경제학 연구는 유용할 수도 있고 그렇 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연구자가 끊임 없이 연구를 유용하게 하려고 고민하고 노력 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번 모임에 참 가해 유로존 국가들이 어렵지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강연을 했다. 그는 ”유로존 18개

국의 통화 연합을 운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지만 위기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많이 메웠다. 곧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 대 교수는 “유로존 정책입안자들이 아직도 유로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 올바른 길을 간다니 납득하기 어렵 다”고 말했다. “유로의 구조적 문제 해법 못 찾아” 린다우 경제학 회의는 ‘린다우 노벨상 수상 자 모임(Lindau Nobel Laureates Meeting)’ 의 일부다. 이 행사는 1951년 린다우 출신 두 의사인 구스타프 파라데, 프란츠 카를 하인과 스웨덴 백작 렌나르트 베르나도테가 공동 창 립했다. 베르나도테 백작은 1905년 제1회 노 벨상을 시상한 구스타프 5세 스웨덴 국왕의 손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학자들을 모아 토론하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 였다. 60여 년간 생리의학·화학·물리학 수상 자를 매년 교대로 초청해 행사를 했다. 2000 년부터는 5년마다 한 차례씩 학제 간 교류 모 임을 했다.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은 2004년 부터 2~3년에 한 번씩 열려 올해가 다섯 번째 다. 모임마다 15~3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수백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초청된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강연을 하고, 젊은 연구자들과 토

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베르나도테 백 작은 1989년 물러났다. 그 뒤를 부인인 소냐 베르나도테 백작 부인이 이었다. 2004년 백작 과 백작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딸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베 르나도테 여백작은 환영사에서 학생들에게 “배우고, 영감 받고, 쌓으라”고 주문했다. 린다우 경제학 회의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친다. 세계 각국의 주요 대학, 42개 중앙은행, 수상자 본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학 석·박사 과정 학생 들을 추천한다. 최종 명단은 린다우 회의가 결정한다. 올해 한국에선 한국은행이 박사급 소속 연구원 2명과 서울대와 연세대 대학원 생 2명을 추천해 참석했다. 450여 명 가운데 대부분이 유럽 출신이다. 최근 중국 출신 학 생들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독일 최남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자리한 린다우는 보덴 호숫가에 있어 휴양지 로 손꼽힌다. 인구 2만 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할 정도로 아름다워 관광객을 모은다. 린다우 기차역 앞 광장 이 름이 ‘알프레드 노벨 플라츠’다. 그만큼 노벨 상으로 먹고사는 곳이다. 숙소는 이름은 호 텔이지만 실제는 우리의 모텔이나 펜션에 해 당한다. 에어컨도 없다. 린다우 미팅도 마을 회관 격인 인젤 할레에서 열렸다.


News 5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① 원조 불평등 전문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불평등은 국가 발전 최대 걸림돌  정치로 풀어야 조지프 스티글리츠(71)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원조’ 불평등 문제 전문가다. 올 들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각광받기 전엔 그가 불평등 담론을 주도했다. 독일 린다 우 회의에서 만난 스티글리츠 교수는 ‘피케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가 과거에 쓴 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43세 피케티가 연예인이라면 아버지 뻘인 스티글리츠는 영향력으로 승부한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개발원조단체들이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혹자는 이런 스티글리츠를 두고 ‘경제’보다 ‘정치’에 매달린다는 비판 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불평등의 근원은 시장경제 원칙이 제대로 작용할 수 없게 만드는 정치권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린다우 회의 첫날인 지난 20일, 대학 세미나실처럼 생긴 작은 기자회견장에서 그와 대화를 나눴다.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새삼 불평등이 화두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지(웃음). 2002년 발간한 책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이 세계적 베스트셀러 가 됐고, 2012년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도 큰 반향을 불러왔다. 그만 큼 불평등이 세계 각국 많은 사람의 중요한 관심사라는 걸 보여 준다. 브라질의 사례를 들고 싶다. 라틴아메리카는 전통적으로 소득 격차가 극심한 곳이다. 그런데 브라질은 불 평등이 국가 발전에 가장 심각한 걸림돌이라 는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보수적인 엔리케 카르도주 대통령조차 보건·교육 분 야에 투자했고, 진보의 아이콘인 룰라 대통 령은 진보·보수를 넘나들며 혁신적인 정책을 폈다. 그랬더니 지니 계수가 10%포인트 내려 왔다. 브라질은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불평등이 시장경제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 니라 정책과 정치 때문이란 걸 보여 준다.” -불평등이 화두인 것은 피케티 때문인 것 같다. “피케티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가 불평 등이 줄어든 자본주의의 전성기’라고 했다 지? 내가 한참 자랄 때였는데 미리 알았으 면 좀 더 만끽할 걸 그랬다(웃음). 피케티가 세계 여러 나라의 200여 년에 걸친 데이터 를 모은 것은 높게 평가한다. 대단한 공헌이 다. 하지만 피케티는 계속 심화하는 불평등 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귀결이라고 주장한 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경제 프레임 안에서 더 공평한 사회를 충분히 만 들 수 있다. 북유럽의 사례도 있다. 사실 이 런 얘기는 내가 이미 1969년에 박사 학위 논 문에서 했고, 내 책 불평등의 대가에도 나 온다. 피케티는 책 제목을 21세기 자본론 이 아니라 21세기 정치론으로 해야 한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최고 80% 누진세율과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피케티는 자신의 논리를 잘 정리했다. 글 로벌 부유세는 한 나라에서 부자에게 세금 을 매기면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걸 막자는 취지다. 옳은 취지 아닌가. 하지만 실현하기 가 굉장히 어렵고 단기적으로 불가능할 것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시위대와 손을 흔들고 인사할 정도로 가까운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 개선을 촉구하는 연설을 정열적으로 했다. 그는 세금은 공평 한 사회를 위해 쓸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고 주장했다.

피케티 주장은 이미 내가 했던 말 다양성 수용 못하면 경제학 흔들 시장경제 안에서 공평사회 가능

[Christian Flemming/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라고 본다. 정치인들을 먹여 살리는 부자들 이 가만히 있겠는가. 사실 미국과 유럽의 정 부들이 징세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이미 외국에 나가서 사는 자국민에게 세금을 매긴다. 이런 측면 에서 미국 최대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이 직원 이 몇 명밖에 없는 아일랜드에 법인을 차려놓 고 세금을 안 내려고 하는 건 용납이 안 된다. 이건 기업 윤리의 문제도 아니고 아주 기본 적인 시민 의식의 결여다.” -불평등과 함께 이번 린다우 회의의 주제 는 경제학이 쓸모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시경제학은 게임이론의 진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발전이 있었지만 스탠더드 거시경 제 모델은 2008년 위기와 경기 침체를 예상하 지 못했다. 예상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제일 심각 한 문제는 대다수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은행 의 역할을 빼놓은 모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다. 그냥 통화(通貨)량만 체크하고 있다. 경제 에 은행이 없으면 중앙은행은 있겠나. 중앙은 행이 역할도 없는 모델로 경기를 예측하고 있

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두 번째 문제는 기존 경 제학이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이 생기는 걸 당 연하다고 보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다행히 상당 부분 해소된 걸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국제통화 기금(IMF)은 97년 홍콩 회의에서 개발도상 국들에 자본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했지만 2011년에 이르러서는 반대로 열지 말라고 권 고했다. IMF도 소득 불평등을 비롯한 자본시 장 개방의 폐해를 알게 된 것이다. 경제학의 위 기는 다양성 부족 때문이다. 벤 버냉키 전 연 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아주 훌륭한 경제학 자다. 하지만 경제 위기와 부시 행정부의 수많 은 정책오류의 와중에도 “경제학 이론에는 아 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걸 보고 기절할 뻔 했다. 통계만 돌리고 주류만 따져선 경제학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지고 계속 틀릴 수밖에 없 다. 세계은행이 올가을에 행동경제학·사회학· 심리학까지 지평을 넓힌 새로운 경제학에 대 한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세계 경제는 언제쯤 좋아지겠나. “여기가 독일이니 유럽 얘기부터 하자. 결 론부터 말하면 유럽은 일본의 ‘잃어버린 20

년’ 같은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고 본다. 사실 잃어버린 20년이라곤 하지만 2000년 이후 일본의 지표들은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유럽이 침체에 빠지면 일본보다 더 심각할 거란 얘기다. 유 럽중앙은행(ECB)은 긴축정책의 부작용을 과소평가했다.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아무 영향도 없었다. 성장률은 과대평가했다. ECB의 모델이 근본 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긴축정책은 쓰레기통 에 버려야 한다. 유럽엔 훌륭한 사람들이 많 은데 계속 예측이 빗나가고 대다수 회원국에 서 문제가 생기면 유로존이란 게 얼마나 잘 못 설계됐고 정책은 또 얼마나 잘못 집행되 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우크라이 나 사태 같은 지정학적 위험도 있다. 유럽의 경제 전망에 대해 나는 아주 비관적이다. 물 론 경제가 나빠지면 사회보장제도가 엉망인 미국 국민의 피해가 제일 클 것이다.” -당신은 세계화 전문가이기도 하다. “기존 경제학 이론은 무역 장벽을 걷어내 는 게 좋다고 가르친다. 현재 세계의 관세 장 벽은 많이 내려왔다. 요즘 논점은 비관세 장 벽(non-tariff barriers)이다. 흔히 각종 규 제를 가리킨다. 미국·유럽·아시아 할 것 없이 규제완화를 외치고 있는데 많은 규제가 소 비자를 기업의 횡포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완화해선 안 된다. 20세기 초 서양이 중국 에 아편을 강요한 것처럼 지금은 미국의 담 배회사들이 세계인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우루과이가 얼마 전 담배 광고 등을 규제하 니까 필립모리스가 우루과이 정부를 WHO 에 제소했다. 이해가 안 된다. 우루과이 국민 을 죽일 권리를 달라고 제소를 하는 건가. 나 는 세계 각국 정부에 절대 미국과의 투자 협 정에 서명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국도 많 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는데 실질적으로 무슨 도움이 됐나. 그냥 정치인들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처럼 쇼를 한 거다. 쇼가 끝난 뒤 정치인 말고 큰 이득 봤다는 사람을 본 적 있나.” ▶스티글리츠 교수 약력 -1943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출생. 유대인. -앰허스트대 졸업, MIT 경제학 박사 -컬럼비아대 교수 -클린턴 행정부 백악관 경제자문회의(CEA) 의장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신자유주의 반대하는 제도권 학자 스티글리츠

IMF 정책 비판 글 기고 뒤 세계은행 부총재서 밀려나 박성우 기자

린다우 회의가 열린 마을회관 격인 ‘인젤 할 레(Insel Halle)’ 건물 앞에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스티 글리츠 교수는 그 앞을 지나가면서 활짝 웃 으며 손을 흔들었고 시위대도 화답했다. 린 다우 회의에 참석한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 상자 가운데 그런 사람은 없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경력은 시위대와 함 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세 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재 직할 당시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클린턴 땐 백악관 경제자문의장 오바마 정부 월가 지원하자 독설 논문 인용 세계 4위  영향력 막강

(WTO) 회의장 앞에서 경제 관련 국제기구 들을 비난하는 격렬한 시위가 처음으로 벌 어졌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들을 옹호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해고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문도 맡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 월스트리트 은행들을 구제해 주는 것을 보곤 “은행 구제계획을 입 안한 사람은 그 은행들과 한통속이거나 무능 력하다”며 독설을 내뿜었다. 이런 스티글리 츠지만 클린턴 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CEA) 의장을 맡아 중도적인 정책을 만들기 도 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은 ‘비대칭 정보 시 장 이론’으로 받았다. 신고전학파 경제학 이 론은 ‘제한적이고 극명한 시장 실패를 제외 하면 시장은 항상 효율적’이라고 본다. 스티 글리츠 교수는 그 이론을 뒤집어 ‘시장은 극 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효율적’이라는 가설 을 내놨다. 시장이 불완전하거나 시장 참여 자 일방의 정보가 부족하면 경쟁 시장 배분 도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전통적 경제학자들보다 정부 개입 가능성을 훨씬 넓혀놨다. 함께 노벨상을 수 상한 조지 애컬로프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 클리캠퍼스 교수는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

(Fed) 의장의 남편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뉴 케인지언 학자로 분류된다. ‘샤피로-스티 글리츠의 정리(定理)’는 왜 시장이 균형에 도달해도 실업이 생기는지, 왜 취업 희망자 들이 경쟁해도 임금이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지를 설명한다. 논문 인용 횟수로 전 세계 경제학자 가운 데 4위이며, 2011년엔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세 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선정 하기도 했다. 2011~2014년 국제경제학회 회 장을 지냈다.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유 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보고서 작성 총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6 Focus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세월호 정국 꽉 막힌 ‘세월호특별법’ 무엇이 문제인가

여당 “의회 입법권 침해”  유족 “수사기소권 필수 아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40일 동안 단식을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47)씨가 지 난 22일 병원으로 옮겨진 뒤 동조단식이 이어 지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을 향한 비난 수위 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23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 따르면 24시간 동안 참여하는 동조단식단은 2만 명 을 넘어섰다. 이날 장애인·빈민단체 회원 100 명도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소셜네트워크서 비스(SNS)에서도 동조단식에 참여하겠다는 게시글이 이어지고 있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 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섞이기 시 작했다. 배우 이정현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이 스 버킷 동영상을 올리면서 “루게릭병 환자 뿐 아니라 사회 소외계층,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지지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조단식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생겼다. SNS 에서는 ‘김영오씨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단식의 순수성에 의심이 간다’는 글이 유포되고 있다. 보수논객을 자 처하는 변희재씨도 트위터에 “유민 아빠란 자의 신분이 금속노조원이라면 당연히 지금 의 비정상적 투쟁이 대한민국 정부를 엎으려 는 친노 정치세력의 정략이라 의심할 만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 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곡해하는 게 더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라며 비판한다. “청와대로 불러 진상규명 약속해놓고 ” 세월호특별법이 불신과 원칙 사이에서 표류 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 모임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 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대책위)는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을 믿지 못한다. 단순 한 불신으로 보기엔 쌓인 감정의 골이 깊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가족 대표들을 청 와대로 불러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 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 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나 세월호 사 건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입법 태스크포스 (TF) 활동이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됐고, 이 과 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부적절한 발언’ 이 이어진 것도 불신의 벽을 높였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은 지난 7월 최고위원회 의에서 “세월호 사고는 일종의 교통사고”라 고 말했다.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이달 초 황우여 교육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단식을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 고 말해 가족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고수하고 있는 ‘원 칙론’도 특별법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원 인이 되고 있다. 이른바 국회의원의 입법권 침해 논란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 분립하에서 법을 만드는 것은 헌법상 대의기 관인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지난 20일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 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국회의 고유 권 한을 침범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완구 새 누리당 원내대표도 2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세월호특별법은 법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온전히 국회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입법권 원칙’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야당인 새정치민 주연합 내부에서도 율사 출신 의원들을 중심 으로 팽배해 있다. 대책위가 특별법 TF 논의 과정에 가족들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 을 때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 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이 23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비닐을 덮은 채 노숙하고 있다.

대책위 “가족 의견 반영 바랄 뿐” 여당 원칙론 속 야당은 역할 못 해 시간 흐를수록 불신 벽만 높아져 법조계 “특별법은 치유 뜻 담아야”

하지만 지나친 원칙론의 고수가 불신의 벽 을 높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대책위의 세월호특별법안에 참여했던 대 한변협 박종운 변호사는 “피해자 가족들은 입법 과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지, 국회의원의 입법 권한을 침해하거나 의결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 에서 법은 전문가들만 만드는 게 아니라 충 분히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며 “일반법도 아 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라면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버 리고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돼야 한 다”고 말했다.

[뉴시스]

특별법을 둘러싼 오해도 증폭되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에 대해 특정한 원 칙을 정해놓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것처 럼 비춰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일부 언론에서 ‘대책위가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진상조사위 활동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 도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조금 다르다. 대책위 측 은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에 1차 합의했던 이달 초 이후 “대책위의 특별법안에 ‘버금가는’ 대안을 정치권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왔 다. 입법TF에 대책위를 포함시켜 3자협의체 를 구성해달라거나, 진상조사위 구성에 있어 국회 추천위원과 피해자 단체 추천위원을 동 수로 해달라는 주장은 이미 철회한 상태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청와대, 여야 간 갈등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이제는 대통령께서 답할 때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 여야가 합의해 처리할 일, 대통령 나설 일 아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세월호특별법 만드는 건 국회의 권한

입법권은 국회의원 고유권한이라는 원칙 무기력하고 무능한 야당도 못 믿 겠다 특별법 합의는 피해자 가족 무시한 정략적 야합

5월 철저한 진상규명 위한 특별법 제정 약속 지켜라

망언 계속한 여당 믿을 수 없다 특검추천위원회에서 믿을 수 없는 여당 배제해달라

세월호 피해자 가족 대책위 최초 주장

현재 주장 ● 진상조사위원 구성 및 입법TF 참여 주장 철회

● 대한변협과 마련한 세월호특별법 입법청원

● 대책위 안에 버금가는 국회 대안 마련 촉구

●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 부여

● 독립적 수사권기소권 보장

● 진상조사위원 구성 국회와 피해자 가족 동수 추천

● 수사권기소권 기한 보장 ● 진상조사위와 유기적 연계

유족, “국회가 대안 내면 받아들일 것” 피해자 가족들은 왜 여야가 두 차례에 걸쳐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안에 반대하는 걸까. 그 리고 이들이 요구하는 건 뭘까. 대책위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 호사는 23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세 가지 원칙을 말했다. 반드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 들의 요구에 ‘버금가는’ 대안만 마련된다면 국회의 특별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야 한다는 건 물러설 수 없는 요구인가. “이미 3주 전(여야의 특별법 1차 합의 시 점)부터 가족들은 ‘대책위 안에 버금가는’이 란 표현을 썼다. 이는 세 가지 원칙만 충족되 면 된다는 의미다. 우선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하고 두 번째는 권한이 발 휘되는 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다. 마지막으로 이 권한을 가진 사람이 진상 조사위 활동과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그렇다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사람 혹은 기구가 조사위 바깥, 예를 들어 특별검 사의 형태로 있어도 된다는 의미인가. “우리가 요구하는 원칙은 세월호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세 가지 구성요소만 갖춰진다면 다른 형태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여야는 이미 상설특검을 통한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에 합의했다. 여야가 특별검사 추천위원회 위원(7명)의 국회 몫 추천위원 4 명 중 여당 추천위원 2명에 대해 야당과 유가 족의 사전동의를 받기로 재합의하기도 했다. 이 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뭔가. “피해자 가족들이 특검을 직접 추천할 수 없다면 특검 추천위원 구성이라도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여당 몫 2명의 추천위원은 어쨌든 추천 주체가 여당이다. 여당은 계속 자신들이 원하는 인사를 올리고 가족들이 계속 반대한다면 어쩔 건가. 여당 추천과 가족의 반대가 되풀이될 텐데.” -정부 여당에도 세월호 사고의 책임이 있 는 건 사실이지만 특검 후보 추천 과정에서 여당을 죄인 취급하면서 무조건 배제하겠다 는 것은 무리한 주장 아닌가. “여당은 피해자 가족들이 너무 못 믿는다 고 얘기하는데 여당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이런 주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새 누리당이 보여준 행태가 어땠나. 세월호 사건 이 교통사고와 뭐가 다르냐고 망언을 했고, 국정조사 증인 채택도 안 됐다. 여당이 가족 들의 얘기를 들어주려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 는데 ‘우리가 미쳤다고 이상한 사람을 (특검 후보로) 추천하겠냐’며 무조건 믿으라고 하 면 믿을 수 있겠나. 가족들 내부에선 여당이 처음부터 믿음을 줬다면 수사권기소권 문제 에 있어 기존 상설특검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입법 권한은 국회에 있는 것 아닌가. “가족들이 법을 만들게 해달라는 게 아니 다. 대통령이 입법 과정에 간여하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는 거다. 청와 대는 국회에 떠넘기고, 여당은 야당에 ‘가족 들을 설득하라’고 떠넘긴다. 여당은 특별법 에 대해 빨간펜 들고 이건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기밖에 더 했나. 여당과 청와대는 도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일각선 갈등 부추겨  국민들 피로감 세월호특별법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국민들 의 피로감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진영논리나 이념 갈등처럼 곡해되면 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경향이 있 다는 데 있다. 진보와 보수 양측의 일부 극단 주의자들이 세월호특별법을 아전인수격으 로 해석해 갈등만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비 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 가족들도 이런 논란에 대해 당혹감 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병권 대책위 대표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피해 자 가족들은 정치적 논란에는 관심이 없는 평 범한 국민들”이라며 “배후가 있다거나 무리 한 배·보상을 요구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가족들 은 하루도 쉬질 못했다. 특별법 문제를 하루 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건 오히려 우리 가 족들”이라며 “많이 응원해주시고 함께 슬퍼 해주신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선 안타깝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빨리 해결 해주지 못해 논란이 길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시간을 끌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Focus 7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세월호 정국 출구 못 찾고 헤매는 정치권

청와대여야 네 탓 공방  ‘유민 아빠’불상사 땐 핵폭풍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마치 폭탄 돌리기를 연상시킨다. 서로들 “당 신이 해결하라”며 떠넘기기 급급하다. 새정 치민주연합은 일찌감치 조정 능력을 상실했 고, 새누리당은 여론과 권력 사이에 낀 채 주 저하고 있다. 청와대는 뒷짐 진 상태다.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해법 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들 역시 답답해 한다.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상황을 질질 끌다 결국엔 유가족과 청와대만 남지 않겠 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 양쪽 다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치킨게임(chicken game)으로 변질되 는 양상이다. 과연 브레이크는 없는 걸까. 새누리 연찬회서 대응 방식 논쟁 23일 오전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 서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가 이틀째 진행됐 다. 의원 20여 명이 단상에 올라갔고, 방탄국 회·공천방식·경제활성화 등 다양한 현안이 논의됐지만 핵심은 ‘세월호’였다. 강경론이 여전히 강했다. 안덕수(인천 서강화을) 의원은 “(세월호 해결 방법은) 첫 단 추를 잘못 끼웠다. 야당이 과잉을 해 (유가족 이) 너무 큰 기대를 갖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노근(서울 노원갑) 의원은 “수사권·기소권 을 달라니 기가 막힌다. 양보라는 아름다운 용어로 포장하지 마라. 응급상황을 넘기기 위해 대한민국 정통성과 헌법적 가치를 무너

정치력 실종에 여야 위기 공감 새누리당 일각에서 협상론 고개 박영선호 지속 여부 곧 결정될 듯 청와대 침묵 속 여론 동향 촉각 뜨려선 안 된다”고 했다. 김상훈(대구 서구) 의원은 더 나아가 “광우병 파동에 나섰던 세 력이 세월호 유족과 함께 하고 있다는 보도 가 있다. 심히 우려스럽다. 여야 협상이 결렬 될 때마다 대통령이 나설 수 없지 않은가”고 반문했다. 홍문표(충남 홍성-예산) 의원도 “원칙과 온정의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국가 를 책임진 집권 여당은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원칙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원도 적 지 않았다. 정미경(경기 수원을) 의원은 “만 약에 내가 (세월호) 엄마라도 자식 잃고 살 수 없을 것 같다. 평생 원망이 가슴에 맺혀 있 을 거다. 가슴속 그 한풀이를 해줘야 하지 않 겠나”고 호소했다. 황영철(강원 홍천-횡성) 의원도 “우리가 진정 유가족에게 따뜻했는가 돌아봐야 한다”고 했고, 정병국(경기 여주양평-가평) 의원은 “대통령이 김영오씨 병실 을 찾아가야 한다. 이제 야당에 맡길 게 아니 라 우리가 직접 유가족과 협상해야 한다. 기 소권·수사권을 주느냐 마느냐보다 더 선행되 어야 할 건 신뢰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찬회 막판 김무성 대표가 “유가족을 만 나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일각에선 ‘김무성 역할론’을 제기하고 있다. 여야 협상이 사실 상 무의미해진 상태에서 김 대표가 유가족 과 청와대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에겐 ‘해결사’ 정치인으로 각인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은 여당 대표 아닌가. 지난 해(철도 파업 때)와는 위상이 다르다.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유가족을 만나겠다는 건 원 론적인 입장일 뿐”이라고 전했다. 박영선 비대위 체제 25일 의총이 분수령 새정치연합 당내 기류도 요동치고 있다. 소속 의원 22명이 22일 “여·야·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강경파

로 분류되는 우원식·이인영·정청래·최민희 의원 등이 참여했다. 지난 7일 여야 간 1차 협 상 이후 46명 의원이 냈던 협상 반대 성명에 비해선 수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수위는 약 해졌지만 “기존 협상안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건 같다. 재협상안 합의 이후 “유족을 설득 하자” “새누리당이 나서라” 등과는 분명 다 른 목소리다. 일찌감치 박영선 국민공감혁신 위원장(비대위원장)은 “재재협상은 없다”고 단언했기에, 이번 성명은 사실상 박영선 체 제 비토(거부)라는 해석이다. 때마침 박지원·박병석·유인태 의원 등 당 내 중진 8인은 22일 회의를 하고 비대위원장 과 원내대표의 분리안에 공감을 표했다고 한 다. “박 위원장에 대한 문책성은 결코 아니 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박영선 체제의 힘 을 빼는 꼴이다. 구심력을 잃은 당내 목소리가 다양하게 표 출되고 있다. 비주류계 황주홍 의원은 “세월 호특별법에 꽁꽁 묶여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라고 했고, 한정애 대변인은 “민생 법안과 세 월호특별법을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의 견도 있다”고 전했다. 7·30 재·보선 참패 이후 내년 전당대회까지 잠복할 것으로 예측되던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결이 세월호특별 법 파동으로 인해 예상보다 빨리 부상했다 는 분석이다. 25일 의원총회가 박영선 체제 지속 여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편 문재인 의원은 23일 단식을 이어갔다. 41일째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47)씨 의 병실에도 갔다. 그는 “단식을 언제까지 하 느냐”는 질문에 “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유 민 아버지가 (단식을) 중단하는 게 중요한데 아직은 음식을 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새 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세월호 참사는 정치권 공동의 책임인데, 문 의원은 혼자 단식을 지속하며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정말 야비하다”고 적었다. 대처도 IRA 대원 단식 사망으로 휘청 세월호 희생자 가족대책위는 22일 서울 종로 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청와대는 “면담 계획은 없다”는 입 장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야 의 재협상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45.8%, 유가족 뜻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38.2%였다. 박근혜 정부 책임론만큼 세월호 피로감이 있다는 뜻이며, 세월호를 정치적 으로 이용하려는 데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는 방증이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유가 족이 단순히 대통령의 위로를 원하는 건 아 니지 않은가. 면담을 하면 그들이 원하는 기 소권·수사권을 관철시키려 할 텐데, 그건 청 와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면 또 ‘대통령 만나봤자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공격할 거고, 만나는 게 능사는 아니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 정국의 키를 쥐고 있는 건 김 영오씨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41일째 단식 중이다. 자칫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딸 잃 은 아비마저 죽게 만들었다”는 후폭풍이 몰 아칠 건 분명하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 가 있었다. 영국에서 1981년 보비 샌즈라는 IRA 무장대원이 자신을 죄인 취급하지 말고 정치범 대우를 해 달라며 단식에 들어가 66 일 만에 사망했다. 당시 대처 총리는 ‘테러리 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견지했음에도 정치적 타격에 휘청거렸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권, 특히 재야세력 은 이제 김씨를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그를 전면에 내세워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 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해도 생사 의 문제를 이겨낼 수 있겠는가. 청와대가 직 접 나섰다간 자칫 정권 차원의 문제로 확대 될 수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불가피하게 완충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22일 오후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2014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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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오바마, 이라크 내전 늪에 빠지나

미국, 시리아 내 IS 공격 벼르지만 ‘이적 효과’ 딜레마 <이슬람국가>

<利敵>

감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미국이 IS 공습 에 나서게 된 것은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지 역에서의 이권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포린어페어스는 “미 국민과 IS에 의해 대량학살 위기에 처한 이 라크 내 소수종파 야지디족 보호를 군사 공 격의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쿠르드 지역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가 있 다”며 “쿠르드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엑손모빌 등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의 이익과 도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또 “미 상원의 적지 않은 의원들이 쿠르드 자치정부와 밀접 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 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라크 사태에 재개 입하게 된 이유를 몇 가지 더 들고 있다. 먼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당시 사담 후 세인 대통령 축출에 쿠르드족이 적극 협력 했다는 것이다. 쿠르드족은 후세인 정권이 1988년 화학무기를 사용해 주민 5000명을 학 살한 이후 후세인 몰아내기를 추진하는 미국 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후세인 몰락 이후 등장한 이라크 중앙정부 의 무능도 미국의 쿠르드족에 대한 직접 지 원 배경 중 하나다.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의 수니파 차별정책으로 야기된 이라 크의 혼란이 바그다드 정부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IS의 세력 확장에 대응할 최선의 방안이 쿠 르드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지원이라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특히 IS가 그 세력권 을 북부 쿠르드 지역으로 확장하자 이를 차 단하기 위해 IS를 직접 공격했다는 것이다. 친미파인 쿠르드족에 대한 지원이 향후 이 라크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절대 적인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미국이 이라크 내전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제임스 폴리(40)가 최 근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 수를 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후 전쟁이 새 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라크와 시리아 양국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이 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는 인질로 잡 고 있는 또 다른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스티 븐 소트로프를 추가로 살해하겠다고 경고했 다. 이들은 시리아 내전을 취재하던 중 실종 된 미국 언론인들이다. IS가 무고한 민간인을 잔인하게 살해하자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는 IS에 대한 강 경 대응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은 참수 동영상이 공 개된 이후 IS에 대한 공습 강도를 높이고 있 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IS는 암과 같은 존 재”라며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 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 케리 국무장관 도 “미국은 IS라는 악마에 맞서 절대 물러서 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파괴할 것”이라고 강 조했다. 자국민이 잔인하게 희생된 사건에 대 해 어설프게 대응할 경우 여론의 비난을 모 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제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시리아에서 실 종된 언론인은 2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 중 상당수가 IS에 붙잡혀 있다는 것이 CPJ의 주장이다. 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납치된 미국 인 인질들에 대한 구출작전을 벌였으나 실패 했다. 인질들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라크 사태가 악화되자 백악관 내 에서는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IS에 대한 공습까지 거론되고 있다. 벤 로즈 백악관 국 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22일(현지시 간) “미국민을 보호하고 폴리 기자 참수 관 련자들을 응징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검토하 고 있다”며 “이런 조치들은 국경에 제한 받지 않을 것이며 보복 테러 위협이 있다고 판단되 면 직접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리아 내 IS에 대한 직접 공격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이 시리아 내 IS 를 공격할 경우 미국은 이라크에 이어 시리아 내전에도 휘말리게 된다. 4년을 끌어온 시리 아 내전이 미국의 개입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리아 내 IS를 소탕한다는 보장 도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이날 그는 골프에 앞서 이라크 반군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 수된 미국인 기자에 대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미 언론들은 “부적절한 처신이다” “IS 해법 구상을 위한 휴식일 뿐”이라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미국 기자 참수 후 소탕 목소리 커져 시리아에 거점 둔 IS 공격할 경우 반미 알아사드 돕게 돼 진퇴양난

내전 참여 중간선거 앞둔 오바마에 부담 IS의 공세와 미국인 기자 참수로 중동 정세 가 꼬여가자 오바마 독트린에 대한 논란도 심화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까지 중동의 분쟁에 대해 소극적 개입을 주장해 왔다. 미국의 안보가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 거나 대량 학살 등 반인륜적인 행위가 발생 했을 때만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오바마의 룰이 이번 이라 크 내전을 계기로 깨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 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다. 대이라크 정 책의 성과에 표심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오바마 정부는 또 다른 인질을 살 해하겠다는 IS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몸값 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나쁜 선례 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다. 마리 하프 국무 부 대변인은 지난 21일 브리핑에서 “미국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며 “이 는 인질의 몸값을 지불하지 않는 것도 포함 된다”고 밝혔다. 미국이 지불하는 몸값이 테 러리스트들의 활동자금으로 사용돼 또 다른 민간인 납치를 부추긴다는 논리다. 프랑스 와 스페인 등이 인질 석방을 위해 수백만 달

“쿠르드 지역 석유 노린 이중잣대” 이라크 IS 공격 보는 눈도 곱지 않아 미국서도 “강공” “발 빼라” 엇갈려

러를 지불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라 크 내전 개입을 싸고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군사개입 강도를 높 여야 한다고 주장해온 야당 공화당은 오바 마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소속된 민주당은 미국인 참수로 인한 강경 대응 분위기 속에서도 지상군 투입 등 전면 개입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입장 이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제임스 인호프 (공화·오클라호마) 의원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IS가 (9·11 테러처럼) 미국의 대도시를 공격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대비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반면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 애 덤 시프(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은 “폴리 기 자 참수 사건 이후 오바마 정부 내에서 일고 있는 군사개입 확대 요구를 좌절시켜야 한 다”며 “끔찍한 사건이지만 전면적인 군사 개 입은 더 큰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 다. 현재와 같은 제한된 공습 등 소극적 군사 지원과 함께 IS의 자금줄을 끊는 것이 효과 적인 대책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이 지상군 투입 등 전면적인 군사 활동에 돌입할 경우 오랫동안 막대한 전비 를 쏟아 부었던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 크 전쟁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 프 의원 같은 이라크 내전 개입 반대파들은

[AP=뉴시스]

“미국이 이라크 내전 참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과가 크지 않다”며 “지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워진 경제와 미군의 희 생 등을 심사숙고해서 판단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이라크 중앙정부에 미국 불신 커져 이런 와중에 오락가락하고 있는 오바마 독트 린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온 대중동 정책 이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판론자들은 우선 이라크 내전과 시리아 내전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상이한 대응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 미 정부는 2012년 4월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부군이 반군과 민간인에 대해 화 학무기를 사용했을 당시 적극적인 군사 개입 을 추진했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 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마지노 선을 넘은 것”이라며 “미국은 반인륜적인 무 기 사용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천 명했다. 하지만 결국 러시아의 중재로 알아사 드 정권의 화학무기 폐기를 조건으로 군사 공 격을 포기했다. 이번 이라크 내전에서의 태 도는 사뭇 다르다. 지난 7일 오바마 대통령 은 백악관 연설을 통해 “IS가 시아파와 기독 교 주민들을 학살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며 “위험에 처한 이라크를 지원하고, 현지에 있는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적 공습을

시리아에선 정부군반군IS 3파전 전문가들은 IS에 대한 미국의 제한적 공습 만으로는 IS를 격퇴할 수 없다는 데 동감하 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광범위한 세 력을 확보하고 있는 IS를 몰아내기 위해서 는 양쪽 모두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여 야 한다는 것이다. 시리아 내 IS 무장세력이 이라크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며 전투를 벌 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마틴 뎀프 시 미 합참의장은 “시리아 내 IS를 공격하지 않을 경우 IS를 일시적으로 억제할 수는 있 지만 영원히 격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 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시리 아 내 IS 공격의 효과와 파장이 미국의 국익 에 부합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 리아에서는 알아사드 정권과 반군, IS가 3파 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반군을 지원하고 있으며, 알아사드 정권과 IS와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반군이 정부군에 대한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리아 내 IS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알아사드 정권의 강화를 지원 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정부군을 공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알아 사드 정권은 러시아의 중동 교두보 역할을 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유엔 안전 보장이사회 등에서 공격을 위한 합의를 이 끌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미국 으로서는 IS나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직접 적인 공격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미국인 희 생자가 늘어나는 등 결정적인 계기가 없다면 미국의 시리아 내전 개입이 현재로선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세 분석가들의 진단이다. 또 다른 미국인 인질의 참수를 예고하고 있는 IS에 맞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 는 이유다.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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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서울 석촌동 싱크홀지하동굴 원인은

“지질에 부적합한 공사 강행한 시공사 과실” 잠정 결론 하지만 지난 8월 5일 지하차로에서 180m 정도 떨어져 있는 도로가 함몰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원인 조사 과정에서 지하 차로와 지하철 공사장 사이의 동공들이 발견 됐다. 길이가 85m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조사단은 도로 함몰과 동공은 지하철 공 사 현장의 터널 뚫기 과정에서 상층부 지반 을 이루고 있던 토사가 섞여 나옴으로써 발 생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공사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3222㎥가 더 많은 토사가 현장에서 배출된 것으로 적혀 있는 삼성물산 의 현장 기록이 유력한 근거다. 문제는 삼성물산이 공사장 윗부분에서의 토사 유실을 알았느냐는 점이다.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대형 트럭 100대분이 넘는 흙 이 더 나왔는데도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삼 성물산 현장 직원들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강제 조 사권이 없어 그 부분까지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 은 “조사 결과가 확정될 때까지는 입장 표명 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상언 기자, 황은하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30㎝가 넘는 크기의 호박돌들이 쏟아져 나 올 때 시공사가 서울시(발주처)감리단과 함 께 진지하게 공법 변경을 검토했어야 합니 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 지하차로와 주변에 서 발견된 ‘싱크홀(sinkhole·사람이나 물체 를 그 속으로 빨아들이는 땅의 구멍)’과 동 공(洞空·지하 동굴)의 발생 원인을 조사 중인 서울시 조사단 소속의 한 전문가(토목공학 전공의 대학교수)는 22일 이렇게 말했다. 호 박돌은 하천 활동에 의해 생성된 땅에서 주 로 나타나는 둥글고 큰 돌이다. 익명을 원한 그는 “땅에서 그 정도 크기의 돌이 나온다는 것은 수평식 그라우팅(굴 파기 공사 전에 지 반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와 물 등을 섞은 물질을 주입해 땅을 단단하게 굳히는 작업) 이 제대로 될 수 없는 지질이라는 것을 의미 한다”고 설명했다. 공사 방법에 심각한 결함 이 발견됐으나 시공사가 무리하게 공사를 강 행해 지반 침하를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이 조사단 소속의 전문가들과 서울시 관계 자들이 추정하는 석촌동 지하차로 밑(지하 철 9호선 919 공구) 동공과 주변의 도로 함몰 의 발생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공사 현장에 대한 사전 지질조사 불가 판정→②지하차로 훼손 우려로 통상의 수직 적 그라우팅 대신 수평적 그라우팅 공법 선 택→③굴진기(쉴드 TBM)로 지하 터널 뚫기 작업 진행→④대형 호박돌들이 쉴드 TBM 앞부분의 커터(수직으로 회전하면서 땅을 파 내는 장비) 작동 방해→⑤지하수에 토사가 섞인 진흙과 흙탕물이 터널 공사장으로 대량 유입→⑥공사 중단하고 보강 방법 강구→⑦ 공사 다시 진행→⑧지하 터널과 지표면 사이 의 지반 유실 확인

공사 때 지반 유실 몰랐는지 의문 당시 서울시의 관할 부서도 이를 알았다. 공 사를 중단한 삼성물산은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서울시와 감리단에 알렸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의 이은상 도시철도토목 부장은 “올해 1월에 삼성물산에서 장비 교체 등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얘기했다”고 말 했다. 공사는 2월에 재개됐다. 그리고 지하차 로 아래 구간의 공사는 외견상 별탈 없이 진 행됐다.

서울시, 시공업체 고발도 검토 석촌지하차로 주변의 도로 함몰과 지반 유실 은 시공사의 과실에 의해 빚어졌다는 게 8명 의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서울시 조사단 의 잠정 결론이다. 하수도관 파손이나 매립 지 부실 조성 등으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지 반 함몰(싱크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 다. 서울시는 이 같은 조사 내용을 이번 주 초 반에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삼성물산을 수사당국에 고발하 는 것도 검토 중이다. 시 관계자는 “석촌지하 차로를 관리하는 동부도로사업소가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 했다. 서울시 산하기관인 도로사업소가 기둥 균열 등의 피해를 주장하며 삼성물산의 공사 과정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하 지만 23일까지 이에 대한 결론은 내리지 못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토사 유실 을 알았는지 등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개입이 필요해 보이지만 자칫 서 울시가 모든 책임을 건설업체에 떠넘기는 인 상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부적으로 고 심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물산이 책 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서울시와의 법적인 싸 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하철 공사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밝혀져 가고 있다. 석촌동 싱크홀 원인 규명을 위한 서울시 조사단에 참여한 우종태 경복대(건설환경 디자인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싱 크홀의 대부분은 지하에 매설된 상하수도관 의 누수 때문에 생겨났다. 특히 1960~70년 대에 설치된 콘크리트 하수관의 이음새 균 열이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우 교수는 “상 수관은 수압 확인 방법으로, 하수관은 탐사 로봇 투입의 방법 등으로 누수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다. 관리를 맡고 있는 기관에서 지불 해야 할 비용이 예방의 걸림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적어도 차량 운행 중에 도로 속으 로 빨려 들어갈 위험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 다는 의미다. 물론 해외 사례와 같은 대규모 지반 침식 에 의한 싱크홀이 국내에서 발생하지 않으리 라는 보장은 없다. 이수곤 서울시립대(토목 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밀한 지질조

사가 이루어져 있지 않고, 부분적이나마 돼 있는 지질조사 자료를 건설 공사에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는다. 서울시내에도 대형 싱크 홀이 생겨날 수 있는 석회암 지대가 여러 곳 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각 지역의 정밀한 지반정보 관리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불특정 지역에서 싱크홀 발생을 사전에 감 지할 수 있는 첨단기술은 아직 없다. 미국 플 로리다 지역에서 싱크홀 피해 컨설턴트로 일하는 잭 디파토는 “현재로서는 의심 지역 에서 구멍을 뚫어보거나 레이더로 지하 구 조를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땅 속에 넣어 지반의 상태를 확인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업체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 다. 의심지역을 특정하지 않는 한 조기 발견 은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인구가 늘고 땅 에 대한 개발이 진행되는 한 인류가 싱크홀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고 덧붙 였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밑에서 발견된 대형 동공을 관찰하고 있다.

하천 활동으로 형성된 지역이라 공사 때 30cm 넘는 호박돌 나오고 땅 굳히기 작업 제대로 안 이뤄져 예상보다 3222 많은 흙 유출

공사장비도 현장 상황에 안 맞아 풀어 설명하면, 공사 현장은 백제 고분들이 나온 곳이라 지표면에 구멍을 뚫어 지질을 조사하는 작업이 허용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의 결정 사항이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크기 의 돌들이 땅속에 묻혀 있는지 사전에 확인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공사장 바로 윗부분이 지하차로라서 지표에 구멍을 뚫어 굳히기 물 질을 주입하는 수직 그라우팅 공법을 쓰기 가 어려웠다. 지하차로 밑의 방수재 훼손 등

이 문제였다. 시공사·발주처·감리단은 수직 그라우팅 대신 땅속에서 앞쪽으로 파이프를 박아 땅을 굳히는 물질을 주입하는 수평 그 라우팅 방법을 택했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 르면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지하에서 굴진기 를 전진시키는 ‘쉴드 TBM(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의 공사에서 수평 그라우팅 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공사는 터널 굴착 현장에서 지름 30㎝ 이 상의 돌들이 자주 나타나면서 난관에 봉착 했다. 서울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물산 의 주문으로 일본 업체가 제작한 쉴드 TBM 의 커터는 최대 25㎝ 크기의 돌들이 출현 가 능성까지만 예상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인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지름 20㎝ 이상의 돌 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형 돌들 때문에 커터가 제구실을 못하고 수직 으로 겉돌았다. 동시에 흙과 지하수가 섞인

[뉴시스]

진흙과 흙탕물이 공사 현장으로 대량 유입됐 다. 그라우팅이 제대로 안 됐다는 의미였다. 지난해 가을의 상황이다. 우종태 경복대(건 설환경디자인과) 교수는 “무거운 돌들이 지 반에 섞여 있으면 수직 그라우팅으로도 땅이 잘 굳지 않고, 수평 그라우팅으로는 더욱 굳 히기가 어렵다는 것은 토목계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한국 땅 꺼짐 현상 대부분은 상하수도관 누수 탓 이상언 기자, 박종화 인턴기자

중국 도가(道家)의 3대 경전에 속하는 열자 (列子)의 천서편(天瑞篇)에는 하늘이 무너 질까봐, 땅이 꺼질까봐 걱정하며 밥 못 먹고, 잠 못 자는 기(杞)나라 사람이 등장한다. 그 는 “하늘은 공기가 모여있는 것이니 무너질 리 없고, 땅은 사방에 있는 것이라 꺼질 리 없 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정상적 삶을 되찾는 다. 열자는 이 일화를 소개하며 “하늘과 땅 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고 평 정심을 유지하며 살라”고 가르친다. 쓸데없 는 걱정이라는 ‘기우’(杞憂·기나라 사람의 걱정)라는 말의 유래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땅 꺼짐에 대한 염려 는 공연한 걱정이 아니고, 반드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다. ‘싱크홀 (sinkhole)’에 대한 공포는 점점 커가고, 서 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방지

수압 조사, 로봇 투입으로 예방 가능 토목공사 의한 함몰침하도 발생 암반 침식인 대형 ‘싱크홀’과 달라

22일 오후 3시 27분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교대역 인근에서 도로가 함몰돼 차의 한쪽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뉴스1]

하기 위한 대책반을 속속 만들고 있다. 국내의 여러 전문가들은 우선 ‘싱크홀’이 라는 용어를 되도록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한 다. 싱크홀은 학술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발 생 원인이나 크기에 따른 해당 기준이 정해 져 있지는 않다. 한국시설안전공단의 이태형 연구원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싱크홀이라 불리는 것들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석회 석 암반이 지하수나 빗물에 녹아 지반이 대 규모로 사라지며 생겨나는 것과는 구별된다. 주로 지하 매설물이나 토목공사 때문에 빚어 지는 도로 함몰이나 지반 침하에 해당된다” 고 말했다. 과테말라에서 3층 건물이,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집이 통째로 땅속으로 사라 지는 것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실제로 22일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에 서 일어난 도로 함몰은 하수관 파열로 새어 나온 물에 의한 지반 침하로 조사됐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 지하차로와 인근에 나타난 도로 위의 구멍과 대형 지하 동공(洞空)도


Focus 11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23 전통술<상>

30만 넘던 가양주 기능인, 일제 때 10여 명으로 줄어 이승률 아산정책연구원 인문연구센터 연구위원 sungryul1@asaninst.org

요즘 대학생들은 ‘막사’를 마신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넣어 맛을 달달하게 한 것이다. 다 음날 뒷골이 당긴다. 술이 덜 숙성돼 그렇다. 전통술의 대명사, 막걸리의 현실이다. 그럼 우리 전통술은 어땠을까. 당연히 달랐다. 그 러나 우리 술의 근대사는 뒤틀린 운명을 강 요했고 지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통술은 고장의 좋은 물과 누룩, 쌀로 빚 었기 때문에 맛과 향이 좋고 웬만큼 마셔도 몸이 개운했다. 그래서 적당히 마시면 건강 에 좋고 국산 원료를 사용하여 안전했다. 한 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전하는 집안 일화가 재밌다. “조부모님은 점심·저녁에 한 대접씩 술을 마셨다. 매일 즐겼어도 85세까지 건강히 사 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을 드신 다음 날 꼭 힘들어했다. 40대부턴 고혈압·당뇨 같은 걸 앓으셨다. 하지만 술 잘 빚는 동네 할머니의 술을 드시면 다음 날 가볍고 좋다 하셨다.” 우리 술의 기본은 물·누룩·쌀이었다. 박 소 장은 “우리 술에 관한 책은 80권 가까이 되는 데 다 주원료는 쌀로 기록한다. 이게 수수로 빚은 중국, 멥쌀로 빚은 일본과 다른 점이다. 주곡으로 술을 빚는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고 했다. 주곡인 기장·조·쌀 같은 곡식과 누룩으로 빚는 한국의 문화는 삼국시대에 이미 형성 돼 있었다. 고구려 여인의 사연이 얽힌 ‘곡 아주(穀蛾酒)’ 전설(태평어람), 멥쌀로 빚 은 ‘신라주’(해동역사), 주국(酒麴)과 맥아 (엿기름)를 이용한 백제의 감주 발효법(주 서)은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백제인 인번(仁 番)이 일본에 전한 술은 오진(應神) 일왕(270 ∼310)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일본인은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사기). 고려 때는 술이 만개했다. 국산으론 청주· 법주(왕의 술)·탁주(민간)가 주류였고, 여기 에 조구이화주·오가피주·녹파주·국화주·창 포주·황금주·백자주·죽엽주 같은 다양한 술 도 곁들였다. 행인자법주·계향어주·마유주· 백주·포도주 같은 외래주도 있었고, 몽골족 의 원(元)의 지배는 증류식 소주 제조법을 퍼 트렸다. 원의 일본 정벌 전초기지인 개성·안 동·제주도는 소주의 명산지가 됐다. 조선은 술 문화를 숙성시켰다. ‘봉제사 접 빈객(奉祭祀 接賓客)’이 가이드였다. 관혼상 제와 사랑채에서의 손님맞이에 술은 빠질 수 없었다. 술 문화는 세련되고 양조기법도 고 급화됐다. 쌀 곡주만 850여 종이나 된다(박 록담, 역사의 부침과 함께해온 전통주). 조선 후기에는 지방주가 발달했다. 서울의 약산춘, 전라도 여산의 호산춘, 충주의 노산 춘 등 춘주류(春酒類), 평안의 벽향주, 김제 충주의 청명주, 제주의 초정주, 한산의 소국 주 등이 유명했다(장지현, 우리나라 전통주 의 역사). 서울을 중심으로 근교에선 약주, 이남에선 탁주, 이북에선 소주가 주로 소비 됐다(조재선, ‘한국발효식품연구’). 전통술은 일제 강점기 때 몰락했다. 일제 는 1909년에 식민지 재정 확보를 위해 ‘주세 부과’와 ‘주조 면허제’를 골자로 하는 주세법 을 시행했다. 1916년엔 세율을 인상했다. 그 리하여 전체 조세액에서 주세의 비중이 1910 년 1.8%였다가 1934년에는 29.5%로 지세 (26.3%)를 제치고 1위가 됐다. 또 한국식 주조장과 ‘일본식 개량 누룩’ 제조장을 통합시켰다. 그 과정에서 1916년 30 만 명이 넘던 가양주(집에서 담는 술) 주조자 가 1930년께 10여 명으로 격감했다. 1934년에 는 가양주 면허제도를 폐지했다. 수천 종 향 토주와 증류식 소주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 자리를 일본 청주·맥주, 일제가 도입한 저 급·저가 주정의 소주, 일반 민중이 몰래 만든

20일 오후 정여창고택 옆 솔송주 문화원이 자리한 경남 함양의 개평마을엔 가는 비가 내려앉고 있었다. 찹쌀에 솔잎, 봄에 나는 솔순으로 빚은 솔송주의 단아한 향이 비가 만든 습기에 섞여 조용한 한옥마을을 감싸 안았다. 경남 무형문화재 박흥선 명인이 문화원 마루에 단촐한 술상을 차렸다. 단번에 삼키기엔 아쉬운 향이 대청마루를 가득 채웠다.

향토주증류소주 수천 종 사라져 술문화 고려 때 만개, 조선 때 숙성 국민술 된 막걸리와 희석식 소주 일제 저가 정책에 탄생한 슬픈 역사

탁주가 대신 들어섰다. 오늘날 우리가 대중적 으로 마시고 있는 희석식 소주와 값싼 막걸리 는 일제의 ‘저가품주의’ 정책으로 만든 슬픈 술이다(이승연, ‘1905~30년대 초 일제의 주 조업 정책과 조선 주조업의 전개’). 해방 후에도 전통술의 시련은 계속됐다. 일제 때 주세법은 여전히 사용됐고, 식량난 으로 1960년대에는 탁·약주 제조에 쌀 사용 을 금했다. 잡곡에 밀가루·옥수수·당밀 등을 섞어 빚게 했다. 가양주도 못 만들게 했다. 공 장에서 술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사람들 을 취하게 했다. 전통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경복궁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은 “전통술은 궤멸됐다”고 했다. 88올림픽은 숨통을 조금 열어줬다. ‘관광 토속주’와 ‘민속주 기능보유자’가 처음 지정 돼 민속주 50여 종이 재현되고 개발·보급이 시작됐다. 업체도 2001년 민속주 46개, 농민 주 81개 등 129개에서 2010년 현재 민속주 57 개, 농민주 412개 등 총 469개로 늘었다. 주류 규제완화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1990년 주류도매면허 개방·쌀막걸리 제조 허 용이 시작돼 1998~2000년 막걸리 신규 면허 제한 폐지, 주류 제조 시설기준 완화, 주조사 의무고용제 폐지, 주류 판매업 면허요건 완 화, 민속주 및 농민주 통신판매 허용으로 이 어졌다(이동필, ‘한국의 주류제도와 전통주 산업’). 그렇지만 전통술은 여전히 허덕이고 맥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다음 3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양조가 노영희씨가 자연의 단맛을 재현한 자희향의 양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지난 20일 찾은 경남 함양 개평마을 명가 원.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 때부터 담 기 시작했다는 솔송주의 고장이다. 일제 때 맥이 끊기지 않은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가 양주로만 전해지다 16대손 정천상 회장과 박 흥선 명인이 1996년 주조 허가를 받으면서 대량 생산에 성공했지만 명인은 뜻밖에 “너 무 힘들다”고 한다. “주위에서 시어머님께 맛 있는 술을 많이 담가보라고 한 게 고생의 시 작이었다. 항아리에 조금씩 하던 것을 크게 하니 고른 품질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작은 항아리는 온도 조절도 됐지만 대량으로 하니 곧잘 쉬어버렸다. 저온에 발효하면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판로 확 보도 골치가 아팠다”고 했다. 누룩내도 문제 였다. 젊은이와 외국인이 싫어하기 때문이었 다. 탁주는 할수록 손해여서 중단했고 전통 술만으론 안 돼 복분자주 개발에도 뛰어들었 다. 7년 적자 끝에 겨우 숨을 돌리고 지금 10 년째 맥을 이어간다. 우연한 기회에 마신 막걸리에 매료돼 전 통술에 뛰어들었다는 노영희 대표도 허덕 인다. 지난 20일 그의 회사가 있는 전남 함 평을 찾았다. 이 회사에서 만든 자희향은 국 향대전에서 인정받아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만찬주로 지정됐다. “국향대전은 격과 작품 성이 있는 축제여서 품격 있는 술이 필요했 다. 그래서 술을 잘 빚는 지역 종가를 다니 며 술을 다 맛을 봤지만 다들 유원지 동동 주 맛이었다”며 “전통주 제조 과정이 전혀 매뉴얼화돼 있지 않았다. 얼마나 몇 도에서 숙성시킬지도 없고, …저온 저장시설이라고 찾아보니 와인용이었다”고 했다. 국세청 기 술연구소에서 6개월간 교육까지 받았다. 그 래도 그 레시피대로 하면 시중 막걸리가 나 올 뿐이었다. 실패했던 술이 몇 백 항아리인 지 모른다. 그렇게 5년 고생 끝에 겨우 성공 했다. 술 빚는 법을 찾아 13년간 전국을 다녔다 는 박록담 소장의 설명이다. “맥주·와인·막걸리 전문가는 많아도 우 리 술을 가르쳐 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술 산업이 일본 술에서 출발했기 때문이 다. 막걸리 연구자도 마찬가지다. 누룩으로 빚는 시골 술을 전공한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독학해야 하는데 와인·맥주로 공부 를 하면 기본적 주조 과정은 꿴다 해도 우

김춘식 기자

리 누룩 공부는 여전히 안 된다. 일본에는 미생물을 비롯해서 모든 정보가 다 정리되 어 있어 이를 베껴다 만든 걸 우리 술로 알 고 마시고 그 다음 날 숙취에 시달려 온 것 이다. 시중의 막걸리·동동주·희석식 소주 의 95%가 일본식으로 주조한다.” 전통주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경남무형 문화재와 대한민국식품명인 보유자인 박 흥선 명인은 “지금 한국 술은 아사 직전” 이라고 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1 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자금 부족 20.5%, 판매 부진 18.5%, 시설 낙후 15.3%, 노동력 부족 및 인건비 부담 14.3%의 순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또 한국인의 36.4%가 술을 주 1~2 회, 32.9%가 월 1~2회 마신다. 희석식 소 주(39.4%)와 맥주(35.7%)가 1, 2위이고 3 위는 막걸리지만 13.9%에 불과하다. 수입 와인(3.2%)·양주(1.8%) 소비도 전보다 줄 었다지만 국산 과실주(4.9%), 약주·청주 (0.6%), 증류식 소주(0.4%)는 거의 안 마 신다. 다만 가능성이 닫힌 것은 아니다. 연구원 의 응답자 가운데 94.5%가 “전통술을 마셔 봤다”고 했고 68.1%가 “만족한다”고 했다. 뭔가를 잘만 하면 멀어진 소비자를 돌아서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프랑스 에섹(ESSEC) 경영대학원의 데니 스 모리셋 교수는 “명품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희소성과 사람을 꿈꾸게 하는 힘이다. 역사와 문화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했다. 청와대나 대사관·기업 등의 만찬주로 와인 만 마실 게 아니라 전통주를 더 폭넓게 활용 하는 것도 좋다. 우리 술에 왜 명주가 없느냐 고 탓하는 것은 섣부르다. 우리 술에도 수백 년의 맛과 전통을 이어온 중국의 마오타이 주, 일본의 사케, 영국의 위스키, 프랑스의 와 인·코냑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것이 물론 있 다. 그것을 어떻게 브랜드화할 건가는 끊임 없는 품질향상 노력과 국민의 관심, 그리고 국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술이 지역축제·관광·예술 등과 결합한 고부 가가치 문화상품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 하다는 점이다. 취재지원=권희연 아산정책연구원 인턴, 신희선ㆍ오수 린ㆍ이서영ㆍ이영경ㆍ홍예지 아산서원 알럼나이 소모임


12 People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인간 박정희·육영수’ 다룬 책 낸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국민과 청와대 사이, 70년대가 훨씬 가까웠지요” 가까이에서 본 인간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박정희 인간 육영수

지난 15일은 육영수 여사 서거 40주기였다. 1974년 8월 15일 오후 7시. 청와대 본관 1층 영부인 접견실에 육 여사의 유해가 임시로 안 치됐다. 육영수 여사를 4년간 보좌한 김두영 당시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은 마구 쏟아 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냥 서서 울 었다. 갑자기 누군가 김 비서관의 목을 끌어 안고 대성통곡했다. 육 여사의 남편, 대통령 박정희였다. 현재와 후세의 평가와 반성을 위해서는 박 정희 대통령에 대한 자료가 많을수록 좋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가까운 거리에서 접한 사 람들의 증언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 두영(73·사진) 전 비서관이 최근 출간한 가 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인간 육영수(대양 미디어작은 사진)는 중요한 사료다. 1971년 부터 89년까지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한 그로 부터 인간 박정희·육영수에 대해 듣기 위해 김 전 비서관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육영수 여사에게 청와대 정문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뒷모습. (1974년) [중앙포토] -출간 동기는? “1996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맞다. 박 대통령은 혁명가다. 혁명가는 하-상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신뢰하는 동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www.516.or.kr)의 기존 질서·체제를 무너뜨린다. 혁명을 하면 지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결성에 발기인 대표로서 참여했다. 이번에 아부 싫어했던 박정희 대통령 서도 박 대통령이 항상 염두에 둔 것은 ‘민 -‘이상한’ 소문들도 있는데. 나온 책 내용을 이 모임의 웹사이트에 올리 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소문이 한 번 나면 사실인 양 소문이 퍼져 친한 척 귓속말하는 사람 배척 자 방문자가 크게 늘었다. 인터넷을 못하는 였다.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형성돼야 민 버렸다. 박 대통령이 샤워하다 욕조에서 넘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 軍면제 고위 공직자 문제 되자 주주의가 가능하다. 제도만으로는 어렵다. 어져서 기침을 못 할 정도로 늑골에 금이 간 에 책으로 출간하게 됐다.” 짧은 기간 내에 민주주의에 필요한 경제적 적이 있었다. 외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니까 군번 없으면 청와대서 나가게 해 -모임은 어느 지역이 가장 활발한가. 인 역량을 키우다 보니 무리가 왔다. 당시 ‘대통령이 간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났다.” “부산 지역이 제일 활발하다. 그쪽 회장단 북한이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앞서갔다. 대 -박 대통령이 가장 행복해 보인 때는? 지도부가 제일 열심히 잘 하는 것 같다. 역시 통령 입장에서는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 “농민들이 잘 사는 것을 봤을 때 제일 좋아 리더십이 중요하다. 국가 관리 능력과 통찰력 는 조급한 심정도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 했다. 가족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이 있는 지도자가 선도하면 국민은 믿고 따라 령은 또 남북 통일도 우리가 잘 사는 나라 휴가 가서 육 여사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 가게 돼 있다. 박 대통령 시대에 경제인·근로 가 됐을 때 가능하다고 봤다.” 낼 때도 행복해 보였다. 그 외의 시간에는 항 자·지도자가 삼위일체가 돼 전 국민이 힘을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일본 군복을 입 상 골똘히 사색하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정 합쳤기 때문에 산업화가 성공했다고 본다.” 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고 해 신이나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책을 읽어보니 아이들을 기업 경영인 또 도 ‘친일’ 문제가 아니라 ‘젊은 날의 회상’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때는? 는 지도자로 키우려는 부모가 읽어도 유익한 라는 사적인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국가 정책에 실수가 있으면 호되게 야단 내용이다.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말이 안 된 을 쳤다. 육 여사께서 돌아가시고 병원에 들 “글쎄. 아직 그런 생각은 못 했다. 책을 읽 다.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대 어오셨을 때, 하도 무섭게 보여서 잊을 수가 은 사람들 반응이 두 가지다. ‘눈물이 많이 통령이 정신이 이상한 것이다. 독립군을 토벌 없다. 또 당시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이 아들 났다’는 말이 의외로 많다. 또 ‘박 대통령이 했다는 주장도 당시 기록을 보면 전혀 근거 을 군대에 안 보내고 해외에 보냈다. 이게 사 무섭고 냉정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부드러운 가 없다. 거리가 멀었고 독립군도 많이 사라 회 문제화되자 박 대통령은 당직자·고위 공직 데가 있었느냐’고도 묻는다.” 지고 없는 때였다.” 자에게 경고 서신을 보냈다. 대통령은 ‘군번 -광화문 세종대왕상 자리가 이승만·박정 -박 대통령은 평등주의자였나. 없으면 청와대에서 내보내라’고 했다. 그런 희 대통령의 자리였을 수도 있다. 한 “박 대통령은 유교적인 교육을 받아 예절 면에서 단호했다.” 비 / 천둥 눈 비 / 소나기 등 흐려져 비 맑음 눈 또는 비 구름 조금 흐림 흐려짐 구름 많음 흐린 후 갬 분은 ‘건국의 아버지’, 한 분은 이 깍듯했다. 청와대의 이발사건, 요리사건 -박 대통령이 제일 싫어한 것은? ‘산업화의 아버지’ 아닌가. 아쉽 모든 아랫사람들도 항상 지극히 평등하게 대 “아부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했다. 특히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게도 두 분은 독재를 했다. 했다. 박 대통령과 박태준 포철 회장도 부 행사장에서 그냥 인사하고 가면 되는데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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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철씨 별세, 정희(자영업)·해선·해숙 토요일(00일) 씨 부친상, 이승우(금융감독원 금융경영분 석실 팀장)씨 장인상=23일 오전 1시, 신촌세 (5/1) (4/-1) (9/1) (8/2)25일 오전 7 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7호, 발인 시, 02-2227-7587 (9/2) (8/3) ^김영덕(인컴 전 대표이사)씨 별세, 보미 (11/7) (8/6) 나·동진씨 부친상, 김성애(인컴 회장)씨 남 (10/4) (8/2) 편상=23일 0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 장 8호실, 발인 25일 오전 6시30분, 02-2227(11/9) (10/6)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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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자신 이 대통령과 친한 듯 쓸데없는 말을 귀에 대 고 하려는 그런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 -책에 보면 기업인 중에서도 정주영 회장 을 특히 좋아했다. 이유가 뭔가. “맡긴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장비·기 술 등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내니까 좋게 평가했다. 정 회장은 ‘산을 깨면 필요한 돌이 나온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 못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박 대통령, 육 여사의 공통점은? “사생관(死生觀)이 분명했다. 두 분의 사 생관의 핵심은 애국심이었다. 박 대통령의 모토는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였다. 역사상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 지도자가 또 있을까. 육영수 여사도 마찬가지다. 8·15 광복 절 저격 영상을 보면, 총소리를 듣고 모두 다 숨는데 육 여사 혼자 앉아 있었다.” -두 분은 어떤 책을 많이 읽었나. “박 대통령은 역사책을 많이 봤고 육 여사 는 시나 수필을 좋아해서 문인들을 많이 도 왔다. 박 대통령은 국사 지식이 해박했다. 역 사책을 사서 비서실에 나눠주기도 했다.” -10대였을 때의 박근혜 대통령은. “3남매 중에서도 제일 모범적이었다. 공부 도 잘하고 부모님께 걱정 끼치는 일도 없었 다. 부모들도 그를 각별히 존중했다.” -육 여사에게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는데. “육 여사는 모든 민원을 자신에게 바로 보 내라고 했다. 좋은 얘기건 나쁜 얘기건 거르 지 않고 들으려 했다. 육 여사는 일반인들이 보내는 편지를 소중히 여겼다. 민원을 성의 있게 처리하다 보니 소문이 나서 계속 편지 가 많이 왔다.” -어떤 면에선 70년대에 오히려 청와대와 국민 간의 소통이 더 잘 됐다. “공감한다. 일반 부처들이 처리하지 못한 민 안개 눈 후 갬 것 같다.” 비 후해결해서 갬 원을 청와대가 더 그랬던

부고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음력 2014년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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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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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마카로니 웨스턴 탄생 50주년

동쪽으로 간 서부극, 이탈리아서 액션 신대륙 발견 1964년 ‘황야의 무법자’가 출발점 허진 외교부 조정기획관 jhur87@mofa.go.kr

뽀얀 먼지, 을씨년스런 바람 소리, 황량하게 버려진 마을, 꼬질꼬질한 차림의 건맨과 카 우보이. 살기등등한 멕시코 산적의 무자비한 총질, 그리고 귀가 찢어질 듯한 트럼펫 소리, 과장된 기타 음이 가득한 배경음악…. 40대 중후반 이상이라면 이쯤에서 무슨 이야기인 지 감을 잡을 것이다. 바로 1960~70년대 세계 를 휩쓴 이탈리아제 서부극 마카로니 웨스턴 이다. 홍콩의 싸구려 무술영화가 밀려오기 전 극 장가 간판의 절반 정도를 도배한 것이 마카 로니 웨스턴이었다. 한국에 상영된 것은 50 개를 웃도는 정도지만 본국 이탈리아의 경우 총 450편, 여타 유럽 국가의 것들과 2개국 이 상 공동 제작한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600개 에 달한다고 하니, 한 주에 한 편 꼴로 제작된 셈이다. 당시 미국에 비해 TV 보급이 뒤떨어 진 이탈리아라곤 하지만, 국민들이 영화를 주 평균 3편이나 보는 시기였기에 얼마나 많 은 저예산의 B급 웨스턴이 나왔는지 대충 짐 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삐딱 장르’ 완성 70년대 중반 소재 고갈로 몰락했지만 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 법칙 마련 한국 영화계에도 DNA 확실히 이식

1959 ‘보안관’(The Sheriff) 로버트 비안치 몬테로 감 독의 ‘보안관’은 기록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마카로니 웨스턴이다. 당 대의 유명 코미디언이었 던 우고 토냐치가 주연을 맡았다.

1960 ‘공포의 달러’(Dollar of Fear)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삼부작은 영어로는 ‘달 러 삼부작’(Dollars Trilogy)이라 불린다. 첫 두 편의 영어 제목에 ‘달러’라는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인데, 마카로니 웨스턴 제목에 처음 ‘달러’란 단어가 등장

미국 서부와 풍광 비슷한 스페인서 촬영 이탈리아 서부극의 교황,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엔니 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1964) 가 개봉된 지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미국 TV 서부극 ‘로하이드’에 출연한 것 외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스트우드가 마카로니 웨스턴의 초대 영웅이 된 것은 지극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당초 레오네가 주연으로 쓰고 싶어했던 찰스 브론슨과 제임스 코번이 출연 요청을 거절한 뒤, 캐스팅 제안을 받은 이스 트우드는 ‘아르바이트’ 거리 정도로 생각하 고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스트우 드조차 이 영화가 10년 넘게 전 세계에 충격 파를 던지면서 마카로니 웨스턴의 황금기를 열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탈리아·스페인 등에 서 간헐적으로 서부극을 만들기는 했다. 그 러나 그 대부분이 미국 서부극의 단순 모방 에 그쳤던 데 반해, 레오네의 서부극은 당시 로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미학적 액션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 대해 서 구 평론가들은 19세기 빛에 의해 변화하는 사물의 인상을 표현했던 회화 사조에 대해 ‘인상파’라는 비판적 명칭을 부여했던 것처 럼, 잔인한 총격전 끝에 터져 나오는 피칠갑

한 첫 영화는 조르지오 시모넬리의 ‘공포의 달러’다. 기록이 남아있는 마카로니 웨스턴 가운데 제목에 ‘달러’가 들어있는 영화만 100편이 넘는다.

1964 ‘그랜드캐년 대학살’(Grand Canyon Massacre) ‘장고’ 시리즈로 훗날 마카로니 웨스턴 거장으로 평가받은 세르 지오 코부치가 첫 마카로니 웨 스턴을 만든 것도 1964년이었 다. 같은 해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가 나오면서 마카로네 웨스턴 창시 자의 영광은 레오네에게 돌아갔다.

1966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 로니 웨스턴 세계를 완성 한 작품. 엔니오 모리코네 의 메인 테마 ‘엑스터시 오브 골드(The Ecstasy of Gold)’는 록밴드 메탈리카의 콘서트 오프닝곡으 로도 유명하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팬인 메탈리카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이 곡을 사용했다.

을 이탈리아 파스타 요리에 쓰 는 토마토 케첩에 빗대 ‘스 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이란 냉소적인 이 름을 붙인다. 이게 일본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일본인 입 에 생소했던 스파게티 대신, 같 은 면류이면서 좀더 익숙한 마카로니 로 표현이 바뀌었고, 이게 우리에게 건너와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굳어졌다. 미국 서부극이 우리나라 사극처럼 미국사 회의 한 시대적 문화양식을 대변해 온 데 반 해, 레오네가 창시하고 그 후예들이 만들어 낸 마카로니 웨스턴은 미국적 신화를 완전히 뒤바꾸는 혁명적인 전환점을 마련한다. 기존 의 서정적 서부극을 성인 오락의 극치로 탈 바꿈시키면서 웨스턴의 전혀 색다른 지평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자, 마카로니 웨스턴 이후의 서부극은 더 이상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의 그림자를 따라다니지 않게 됐다. 오 히려 70년대 뉴시네마 운동 이후 이탈리아에 영감을 주었던 미국의 웨스턴은 오히려 역으 로 이탈리아 웨스턴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황야의 무법자’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黒 澤明)의 사무라이 영화 ‘요짐보’(用心棒·경호 원)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옮겨 만든 불완전한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야의 무법자’는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서 부극이라는 의미 위에, 50년대 종교영화 붐이 사라지고 난 다음 빈사상태에 있었던 이탈리 아와 유럽의 영화계를 완전히 부활시키는 계 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세계영화사에서 기 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이탈리아·스페인·독일(당시의 서독)·오스 트리아 등의 배우들이 총망라된 국제적 캐스 팅을 보면 이것이 왜 진정한 ‘유로 웨스턴’의 효시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나중에는 뉴질 랜드·일본·홍콩·스웨덴·콜롬비아·아르헨티 나·브라질 등 서부극과 전혀 관계 없을 것 같 은 국가의 배우들까지 속속 이탈리아로 몰려 들었다. 미국 서부 사막지대와 비슷한 풍광 을 지닌 남부 스페인의 알메리아 지방은 갑자 기 국제적 영화 촬영지가 되면서 유럽의 할 리우드로 변신했다.

짧은 시가. 미국 총잡이의 전형적 출국가 복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로 자리 너무나도 쇼킹했던 멕시코 판 잡는다. 쵸. 그리고 한 치의 자비도 없이 60년대 후반, 전 뽑아 드는 45구경 콜트의 속사 세계적으로 진보좌 건플레이까지 ‘무법자’ 삼부작 파적 학생운동의 물 속 이스트우드 하면 떠오르는 구성 결이 거세지면서 이른 요소가 완전히 자리잡힌 영화가 ‘석양의 바 ‘68혁명’의 시대가 열 무법자’였다. 렸다. 이 즈음 계급투쟁 여기에 이스트우드를 능가하는 노련한 현 과 서부극을 결합시킨 상금 추적자 리 밴 클리프를 등장시키면서 마 카로니 웨스턴 레오네는 이 장르에 뛰어든 여타 감독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면서 제1인자 자리를 완전 히 굳혔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진정한 좌표 를 설정한 레오네의 독창성이 정점에 달 할 무렵의 위업이다. 그리고 1년 뒤 레오네는 상영시간만 2 시간40분에 달하는 대장편이자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1966)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본토 이탈리아보다 는 미국·일본·한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회심의 역작이다. 이후 등장한 코미디풍, 또는 초현실주의적 경향의 다양한 마카 로니 웨스턴의 변주를 낳게 하는 단초 를 제공하면서 복합적이고 실험적인 서 부극의 대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 영화 의 테마음악(빠라바라밤~ 와와와)은 아직까지도 광고 삽입곡이나 TV프 로그램 배경음악으로 사용될 정도 로 질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 근에는 애니메이션 ‘마다가스 군도: 카2’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시대 민란의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의 (2014) 편곡으로 실리기도 했다. 레오네와 이스트우드로 본격 화된 마카로니 웨스턴은 이 후 줄리아노 젬마, 프랑코 네로, 토마스 밀리안, 지안니 가르코, 앤서 니 스테판, 테렌스 힐, 버드 스펜서 등 숱 한 영웅 들 을 탄생 시 켰 다. 마 카로니 웨 스턴의 기이 한 대히트 가 거대시장을 형 성한 데 힘입어 60~70년대 이탈 리아는 미국 다 음가는 영화 수

oni Macar rn Weste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과 찰떡 궁합 레오네 웨스턴의 2탄 ‘석양의 무법자’(For A Few Dollars More·1965)는 속편임에도 불 구하고 전편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 계의 영화언론, 특히 일본에서는 이 두 번째 작품을 마카로니 웨스턴의 최고봉으로 손꼽 기도 한다. 늘 졸리는 듯 찡그린 눈, 입에 문

와 리: 다찌마 행 여 지옥 악인이 라 차를 타 급행열 ) (2008

마카로니 웨스턴의 사회적 의미

미국식 정통에 대한 배반  전 세계 대중들 열광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o.kr

미국의 경제호황, 그리고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1950년대. 정의로운 보안관과 무법자 (혹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대결로 상징되던 정통 서부극에도 균열이 시작됐다. 지금은 정통 서부극으로 여겨지는 ‘하이 눈’(1952)은 사실 수정주의 서부극의 시작을 알린 영화다. ‘하이 눈’에는 역마차 추격전, 기병대 액션과 같은 서부극의 전형적 요소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외되고 고립된 서부 사나이의 심리를 묘사하는 수정주의 서 부극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 영화에서 액

서부극 신화 노골적으로 뒤엎어 중층적 서사 구조로 극적 재미 눈 앞 이익 좇는 인간에 현실 투영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의 한장면.

션 장면은 마지막의 몇 분에 불과하다. 주인 공 케인(게리 쿠퍼)의 고뇌를 묘사하는 데 치 중한다. 정통 서부극의 주인공들이 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데 반해 ‘하이 눈’의 주인공 은 절체절명의 순간, 여성인 에이미(그레이 스 켈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훗날 마카로니 웨스턴에 이식된 ‘장르 혼 합’ 역시 수정주의 서부극에서 먼저 시작됐 다. ‘OK목장의 결투’(1957)를 만들었던 존 스터지스 감독은 1960년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각색해 ‘황야의 7인’을 선보였다. 이 영화는 율 브린너, 찰스 브론슨, 스티브 맥퀸 등 반(反)영웅(anti hero)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고용된 총잡 이라는 점에서 정통 서부극의 주인공과 달랐 다.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은 이후 클 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마카로니 웨스턴 배역들의 원형이 됐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가장 미국적인 영화 ‘벤허’(1959)의 조감독 출신이었다. 하지만 ‘무법자’ 삼부작을 통해 그는 선도, 악도 없 는 황량한 서부와 하드보일드 액션,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인간군상, 안티 히어로라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공식을 정립했다. 수정주의 서부극은 마카로니 웨스턴을 낳 았고, 마카로니 웨스턴은 다시 미국 서부극

에 영향을 미쳤다. 샘 페킨파로 대표되는 하 드보일드 장르가 할리우드에 안착한 것이다.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1969)는 마카로니 웨스턴에 비정함과 잔혹함을 더한 이종교배 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 유 산은 아직도 수많은 영화감독들과 배우들 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감독들 가 운데에서도 마카로니 웨스턴에 대한 오마주 (hommage·존경경의라는 뜻의 프랑스어) 를 바치는 경우가 많다. 올 여름 개봉해 500만 관객을 앞두고 있 는 ‘군도: 민란의 시대’를 연출한 윤종빈 감


Special Report 15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놈 놈 놈’으로 변주한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마카로니 웨스턴

“불결무례불길  그러나 멋진 영화”

ood, The G ad, The B ly he Ug And T ) (1966

비린내 나는 마카로니 웨스턴은 코미디풍 의 ‘튜니티’(Trinity) 시리즈, 스스로를 희 화화하거나 자기 복제한 ‘무숙자(My Name Is Nobody)’가 출시되면서 급작스런 몰락 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7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 스크린은 홍콩발 싸구려 무협영화들 로 대체됐다. 프랑코 네로 주연의 ‘케오마 (Keoma·1976)’와 66년작 ‘장고’(Django) 의 속편인 ‘돌아온 장고(Django Strikes Again·1987)’ 등이 마카로니 웨스턴의 부활 을 꾀했지만 결정적 후속타를 내진 못했다. 그러면서 드디어 마카로니 웨스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는 변주 마카로니 웨스턴은 정통 서부극 자체를 극 한적으로 변혁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본토 서부극에 돌이킬 수 없는 강력한 충격을 남 겼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개봉관에서 본 적 이 없는 지금 세대들조차 서부극의 영웅이 라고 하면 존 웨인이나 버트 랭카스터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 밴 클리프, 테렌스 힐을 떠올린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생명력은 지금도 존 속하고 있다. 정통 서부극의 비판에서 시작 된 수정주의 서부극은 구로사와 아키라와 유로 웨스턴의 결합으로 마카로니 웨스턴 을 낳았다. 그리고 마카로니 웨스턴 이후 할리우드 액션영화는 보다 폭력적이고 역동적인 액션물의 전통을 형성하는 이른바 ‘하드보일드 액션’의 시대로 이어졌다. 마카로니 웨스턴이 등장하기 전 까지 미국 액션영화는 천편일률적 인 구조의 반복이었다. 현대 할 리우드 액션영화에서 당연스 , 좋은 놈 럽게 여겨지는 대부분의 요 , 나쁜 놈 소들은 마카로니 웨스턴이 놈 이상한 남긴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 (2008 아니다. 속도감 넘치는 편집, 극단적 클 로즈업과 줌 아웃, 하드 보 일 드 액 션 과 주

을 쇠사슬 끊어라 (1971)

제음악·음향의 효과적인 결합은 물론, 냉소 적인 정치적 함의와 같은 마카로니의 유제 (遺制)들은 요즘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에 서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는 요소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현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끊임없는 변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장르의 신봉자를 자처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 ‘킬 빌’ (2003~2004),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나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데스페라도’(1995) 등 을 보면 이미 오래 전에 한물간 것으로 치부 되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요소가 여전히 미국 액션영화의 저변에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 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이단적 센스’가 미국 영화의 ‘교과서적 규범’에 얼마나 많은 영감 을 부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당대의 한국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0년대 충무로는 훗 날 ‘만주 웨스턴’으로 불린 장르영화를 쏟 아냈다.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 (1962)를 시작으로 ‘광야의 결사대’(정창화 감독·1966), ‘무숙자’(신상옥 감독·1968) 등 이 만들어졌다. 71년엔 만주 웨스턴의 기념비 적 작품인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 가 개봉되었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종언을 고한 지 40년이 흘렀지만 변주는 계속된다. 2007년 일본에선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라 는 괴상한 제목의 영화가 등장했다. 우리나 라에서도 ‘석양에 돌아오다’와 ‘쇠사슬을 끊 어라’를 모티브로 삼은 김지운 감독의 ‘좋 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과 만주 웨 스턴의 희극적 변주인 류승완 감독의 ‘다찌 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2008)가 만들어졌다. 끝으로 마카로니 웨스턴이 낳은 희대의 스 타, 프랑코 네로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매 니어들에겐 종교적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마카로니 웨스턴 50주년의 의미를 갈음한다. “웨스턴은 미국인뿐 아니라 미국으로 이 주했던 기록이 있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신화이자 팬터지로 남아 있다. 즉 웨 스턴에 대한 향수는 영원하다. 웨스턴이 기억 되고 존재하는 한 이탈리아 웨스턴도 영원히 기억되고 살아남을 것이다. 비바 웨스턴 알 이 탈리아나!(Viva Western All’Italiana)” 허진 외무고시 출신의 직업 외교관. 독일·헝가리·네 덜란드 등에서 총영사·참사관으로 일했다. 1967년 불과 5살 때 ‘석양의 무법자’를 개봉관에서 본 이래 마카로니 웨스턴을 일생의 과제로 채택. 지금까지 250편을 관람하고 200편을 VCR·CD·DVD로 보관 중. 현재 외교부 조정기획관.

독은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는 장면이나 등 장인물 간의 대결 구도 등에 마카로니 웨스 턴을 차용했다. 줄리아노 젬마, 리 밴 클리프 주연의 마카로니 웨스턴 ‘분노의 날(Day of Anger·1967)’에 쓰였던 메인 테마 음악을 삽 입하기도 했다. ‘놈놈놈’으로 한국형 마카로니 웨스턴을 만들었던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 연출 데뷔 작 ‘라스트 스탠드’(2013)에서 ‘하이 눈’의 구 조를 빌렸다. 작은 마을을 습격하는 악당들과 이에 맞서는 외로운 보안관. 말을 타고 달리는 악당이 괴물 스포츠카로 갈아탔을 뿐이다. 당대의 B급 영화였던 마카로니 웨스턴에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 영화평론가들은 마카로니 웨스턴이 갖고 있는 ‘도발성’과 극 적 재미에서 이유를 찾는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서부극은 미국의 신화인데 이탈리아 등 유럽 나라들이 서부극 을 만들면서 이 신화를 노골적으로 뒤집기 시 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세르지오 레오 네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옛날 옛적 서부에 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처럼 미국 신화의 붕괴를 그린 걸작들을 만들어 냈다”며 “B급 영화로 출발했지만 레오네 같은 거장들이 개

입하면서 영화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독특 한 지위를 얻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마카로니 웨스턴 의 매력은 정통에 대한 배반, 기성질서에 대 한 새로운 해석과 저항”이라며 “60~70년대 자본주의 발달로 인한 황금만능주의가 팽배 할 때 마카로니 웨스턴 속의 탐욕스런 인간 상이 부조리한 사회를 은유하면서 관객의 공 감과 재미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이어 “복잡한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복합적이고 중 층적이며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마카로 니 웨스턴의 극적 재미에 관객들이 열광한 것 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총을 구입하기 위해 러시아 밀매상(오달 수)을 접선하는 공간은 마치 서부의 황야 처럼 삭풍 부는 벌판이었다. 마지막 복수 를 하기 위해 스카이라운지 긴 복도 앞에 보스(강영철)와 대치하며 천천히 걸어가 는 쇼트 역시 서부극의 대결구도를 보여주 려는 클리셰(상투적 표현)였다. 내게 있어 최고의 마카로니 웨스턴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오프닝 장면이다. 세 명의 악당(우디 스트로드, 알 멀록, 잭 엘럼)이 귀찮은 듯 느릿느릿 손사레를 치며 파리를 쫓고, 어디선가 간헐적으로 물방울 이 떨어진다. 권태롭고 나른한 황야의 어느 기차역. 기차는 오지 않고 세 명의 악당은 그렇게 오랜 시간 늘어져 있다. 얼굴 앞을 날아다니는 파리들, 멀고 먼 황야의 지평 선, 무표정한 세 악당들의 얼굴과 끼익거리 는 마루바닥, 흔들의자의 마찰음. 아무런 사건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이 권태롭고 적막한 시간들을 이런 쇼트 들이 채워가는데, 엄청난 긴장감이 차곡 차곡 쌓인다. 그러다 마치 유령처럼 나타 난 주인공. 하모니카 소리가 그들의 죽음 을 알리는 장송곡처럼 들려온다.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풍경의 세밀한 묘사 만으로 이처럼 에너지 가득한 폭발 직전 의 긴장감을 자아내는 건 어느 영화에서 도 찾아볼 수 없다. 야심차고 멋지며 황홀 한 오프닝이다.

‘장고’ 오마주한 ‘군도’ 윤종빈 감독

“머리 아닌 심장이 먼저 뛰는 장르” ‘군도: 민란의 시대’를 본 관객이나 평론 가들이 ‘조선 웨스턴’이라고 부르는 걸 들 었다. ‘조선 웨스턴’을 만들겠다는 생각으 로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다분히 마카 로니 웨스턴적인 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 다. 극중 돌무치(하정우)의 캐릭터를 구사 할 때에 수레를 끄는 장면이라든가, 광장 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 같은 것은 오리지널 ‘장고’ 영화에서 따왔다. 마카로니 웨스턴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 는 장르의 요소를 모두 담고 싶었다. 마카 로니 웨스턴도 있고 무협도 있고 만화적인 느낌이나 구전동화의 요소도 있다. 내가 좋아하고 즐겼던 장르를 모두 가지고 한번 놀아보자는 느낌으로 찍었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극장 개봉 당시 본 세대는 아니다. 주로 비디오로 봤는데, 모 든 마카로니 웨스턴을 좋아한다기보단 몇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장고’ 시리즈나 ‘와일드 번치’ 같은 영화다. 어떻게 보면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시작된 장르 혼합형 영화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누가 선한 사 람이고 누가 악한 사람인지 모호한, 일종 의 대결구도가 좋았다. 형식적으론 홍콩 쇼브러더스(1960년대 홍콩 무협영화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영화 사)풍의 오프닝 장면을 차용했다. 말 달리 는 장면과 함께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방 식이다. 쇼브러더스 영화들이 마카로니 웨 스턴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점에선 마카로니 웨스턴의 요소들이 차용된 것으

최정동 기자

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 카로니 웨스턴이 또 한 번의 변주 를 시작한 것이다. 한편 뒤이어 등장한 ‘사르타나’(Sartana), ‘사바타’(Sabata·서부악인전) 시리즈가 일 시적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부분적인 변형과 변신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지속돼 온 고질적인 소재 고갈과 저급한 모방은 마카로니 웨스턴을 점차 쇠락 의 길로 내몰았다. 비정과 잔혹, 몰 살의 삼박자로 점철됐던 피

마카로니 웨스턴 이전에 이렇게 불결하고 무례하고, 불길하며 건조한 느낌으로 화면 을 장악하는 서부극의 주인공들은 없었다. 그런데 멋있다. 총을 뽑는 이유는 단지 현상금을 노리 거나 개인적 복수를 위해서거나, 그도 아 니면 그저 마음이 들지 않아서다. 마주보 고 선 두 사내 혹은 일대 다수는 정지돼버 린 시공(時空) 속에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흰자위를 번득거린다. 일촉즉발의 순간. 특별할 건 없다. 상대보다 먼저 방아쇠를 당겼을 뿐. 존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를 서부극의 신화적 공간으로 만들었다면 세르지오 레 오네는 심드렁하고 찌푸린, 무미건조한 표 정을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잡아 새로운 서부극의 풍경을 창조해냈다. 이 지저분하 고 위악적(僞惡的)인 표정이 ‘진짜 서부극 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미국의 모뉴먼트 밸 리가 아닌 스페인의 삭막한 벌판에서 찍은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진짜 서부극의 생생 한 감각을 비로소 느꼈다. 이전 서부극의 주인공들이 아버지처럼 권위적이고 엄숙 했다면, 마카로니 웨스턴의 주인공들은 전 설로 듣던, 십대일로 싸웠다던 동네의 멋 진 형처럼 느껴졌다.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는 우리를 보호해 주는 대신 따끔한 훈계를 늘어놨지만, 프 랑코 네로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우리가 이 비정한 거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보여주 고는 그저 미간을 찡긋대다 사라졌다. 누 가 더 마음을 흔들어 놓겠는가. 내 영화에서는 서부극을 표방한 ‘놈놈 놈’을 뺀다면 아마 ‘달콤한 인생’(2005)에 서 가장 마카로니 웨스턴의 원형을 많이 가져왔을 것이다. 주인공 선우(이병헌)가

로 볼 수도 있겠다. 어느 블로거가 ‘군도’ 를 보고 ‘짜파게티 웨스턴’이란 표현을 썼 던데, 아주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는 ‘장 고’나 ‘와일드 번치’를 제외하면 역시 세 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삼부작이 최고 다. 이 영화에서 처음 떠오르는 것은 쾌감 이다. 즉각적으로 오는 대결의 쾌감 말이 다. 이런 대결구도는 이후 모든 영화에서 차용됐다. 80년대 홍콩 액션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신’(1989)같은 영화에서 저우룬파(周潤發)가 등장하는 장면은 마 카로니 웨스턴과 매우 흡사하다. ‘군도’에서 마카로니 웨스턴을 가장 노 골적으로 드러낸 건 오히려 음악이다. 조 영욱 음악감독과 음악 컨셉트를 이야기하 면서 마카로니 웨스턴처럼 가자고 이야기 했다. 아예 ‘분노의 날’이라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테마음악을 넣기도 했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한 마디로 쾌감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만 들어도 흥분이 된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영화, 머리가 아 니라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영화. 이게 바 로 마카로니 웨스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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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저 높은 곳 향한 가장 낮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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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한국 가톨릭 최초의 교리서인 주교요지(主敎要旨)는 한글로

주로와, 시청과 충정로를 잇는 서소문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는 한양에서 붙잡힌 평신도들이었다. 근처 칠패 시장에 사람들

쓰였다. 한문을 모르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하

의주로 길 건너편에는 중앙일보·JTBC 사옥이 있다. 근방에 건

의 왕래가 많으니, 서소문 순교성지 일대는 가톨릭을 믿으면 안

낮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길목에서 평범한 순교자들이 형장

기 위한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의 뜻이었다. 정약종은 지난 16일

물이 켜켜이 들어서고, 기차가 다니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된다는 경각심을 알리기에도 적합한 위치였다. 명절 즈음엔 시

의 이슬로 사라진 곳. 서소문 순교성지는 여전히 이 일대에서 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124위(位) 시복미사를 통해 복자(福

이 분주해진 사이 서소문 성지는 한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장 상인들이 처형을 중단해달라며 형조에 하소연을 했다고 한

장 낮은 지대다. ‘늘 낮은 곳으로 향한다’는 말대로, 프란치스코

者)로 추대됐다. 미사에 앞서 교황은 정약종이 참수됐던 서울 서

교황의 방한 전까지만 해도 이 곳이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임을

다. 대목에 손님 발길이 끊긴다는 것이었다.

교황 또한 이 곳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소문 순교성지를 참배했다. 정약종과 함께 추대된 복자 가운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1999년에야 형틀 3개를 형상화한 대

지금도 순교 성지 앞에는 생선과 채소를 파는 중림시장이 있

사진은 지난 22일 오전 인근 브라운스톤 아파트 8층 옥상정

26위가 이 곳에서 순교했다. 현양탑에는 그들의 이름이 촘촘하

형 현양탑이 세워졌고, 2010년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 순교자를

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점심 전에 닫는, 낡고 작은 가게들이 모

원에서 바라본 성지 전경이다. 현양탑 앞에서 약현성당 주관으

게 새겨져 있다.

기억하는 성지 미사가 봉헌되기 시작했다.

여있다. 성지 북쪽으로는 경찰청이 있다. 200여년 전에도 형조

로 성지 미사가 열리고 있다.

서소문 순교성지는 서울과 의주를 잇던 조선의 제1로(路) 의

이 곳에서 순교한 신자들은 대부분 한양에 살고 있었거나 또

와 의금부가 이 근방에 있었다고 하니 지금과도 풍경이 꽤 닮았

을 법하다.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글=유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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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개장 5개월, 지지부진한 KRX 금 거래소

거래소 열면서 한쪽선 세제혜택 폐지  정책‘엇박자’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거래는 있지만 사고 판 흔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바로 지하경제의 특성이다. 금(金) 거래 시장이 대표적이다. 현 물과 현찰을 주고 받기 때문에 당국은 거래를 포착하기 어렵다. 음성 거래는 관행이 됐다. 이를 양성화하고 세금을 정상적으로 걷는 게 필요했다. 정부가 지난 3월 ‘KRX 금 거래소’ (이하 금 거래소)를 연 이유다. 5개월이 흘렀 다. 금 거래소는 애초 취지대로 금 거래 양성 화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국내 금시장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생소한 단어 두 개를 숙지해야 한다. ‘앞금’과 ‘뒷금’ 이다. 세금을 내고 정상적으로 거래된 금이 ‘앞금’, 음성적으로 거래된 금은 ‘뒷금’이다. 현재 국내에서 금을 사고 파는 데는 크게 3가 지 방법이 있다. 우선 시중 금은방을 통해 장 신구나 골드바를 사고 파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로는 은행을 찾아가 금 실물을 매매하거 나 금 적립계좌를 개설해 적립식 투자를 할 수 있다. 마지막이 금 거래소를 이용하는 방법이 다. 은행이나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은 모두 ‘앞금’이지만 시중 금은방에서 거래되는 금 은 대부분 ‘뒷금’이다. 뒷금 거래로 인한 세금 탈루액은 연간 3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금 거래 통장 개설한 뒤 매매 정부는 금 거래소를 열면서 국제시세와 동일 하게 금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했다. 거래 방법 도 주식시장과 똑같아 편리하다. 금 거래 통 장을 개설해 돈을 넣어 둔 뒤 금 매입이나 매 도를 주문하면 된다. 자신이 보유한 금의 양 과 거래 후 남은 잔액이 통장에 표시된다. 그 램(g) 단위로 사고팔 수 있지만 실물로 찾아 갈 땐 킬로그램(kg) 단위로만 가능하다. 정 부는 금 거래소 활성화를 위해 1년 동안 거래 수수료도 면제하고 거래액의 일부는 소득세 에서 공제해주기로 했다. 실물로 찾아가지 않 는 한 부가세 10%를 내지 않아도 된다. 공도 현 거래소 금시장 운영팀장은 “투자 목적으 로 금을 보유하려면 굳이 실물로 집에 보관 하는 것보다 금 거래소에 개설한 통장으로 보관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수료와 각종 세제 혜택, 안전성

도 확보됐지만 지난 5개월간 거래소의 금 매 매량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거래량이 하루 평균 3~5kg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국내 총 금 거래량을 하루 100kg으로 추산한다. 이 중 ‘앞금’은 거래소와 은행, 세금계산서가 발 행된 시중유통 분을 합쳐도 25%에 불과하다. 금 거래소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금을 사는 수요자나 금을 공급하는 공급자나 모두 ‘뒷금’ 거래에 비해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부가세 안 낸 시중뒷금이 오히려 저렴 먼저 수요 측면. 뒷금의 가격은 부가세 10% 를 내지않아 생긴 이익을 업자와 개인이 6 대 4로 나누는 방식으로 매겨진다. 예를 들 어 국제시세가 3.75g(한 돈)에 16만 원일 경 우, 시중 뒷금 가격은 16만 원이 아니라 16만 4000~17만원 사이에 매겨진다. 제대로 납부 하지 않는 부가세를 거래 가격에 얹기 때문에 국내 금 가격은 항상 국제시세보다 높다. 거 래소 가격(=국제시세)이 100이라면 뒷금은 100.6~100.7에 거래되는 식이다. 하지 만 거 래 소 에 서 금 을 국제 시 세 (3.75g=16만원)에 산 뒤 현물을 찾아갈 때는 부가세 10%가 붙은 17만6000원을 내야 한다. 거래소를 통해 금 현물을 매입하면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더 비싸게 사는 것이다. 가격이 더 비싸니 거래소를 외면하는 게 당연하다. 금 현물을 찾지 않고 주식처럼 계좌상으로 거 래해 자본이득을 올리려는 투자자 외에는 금 거래소를 이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어 공급 측면. KRX 금 거래소에 금을 팔 수 있는 곳은 정련업체다. 개인은 거래소 에 금을 팔 수 없다. 정련업체들은 시중에서 금붙이를 사들여 녹인 뒤 골드바를 만들어 거래소에 공급한다. 문제는 정련업체들도 시 중에서 국제시세의 100.6~100.7의 가격으로 금붙이를 사들인다는 점이다. 이들 업체는 사온 금붙이를 녹여 골드바로 만든 뒤 국제 시세인 100에 거래소에 납품해야 한다. 시중 에서 16만4000원에 사온 금을 16만원에 납품 해야하니 공급을 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그나마 ‘뒷금’을 ‘앞금’으로 양 성화하고, 세금도 내도록 유도했던 ‘의제매 입’ 제도를 지난해 말 폐지했다. 이 제도는 금 업자가 금을 팔 때 부가세 10%를 받아 17만

금 거래 75%가 세금 안내는‘뒷금’ 거래소 거래량은 하루 5㎏ 미만 양성화 유도하는 제도 사라져 일제히 지하로  연 3000억 탈루

6000원에 ‘정상’ 거래할 경우, 원래는 매입 근거가 없는 ‘뒷금’이었으나 ‘16만원에 사온 금’이라고 신고하면 매입근거로 간주해 매입 금액의 103분의 3(대략 3%)을 세액공제해주 는 제도다. 이 제도가 4년간 운용되는 동안 세금감면 규모는 2009년 164억, 2010년 236 억, 2011년 292억, 2012년 246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정부도 부가세 2500억원 규모를 더 걷었다. 금 거래는 연 5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데 이 중 5% 가량이 양성화된 것이다. 정련업체인 삼덕금속의 최팔규 회장은 “의 제매입제도가 지속됐다면 거래소에 국제시 세대로 납품하더라도 돌려받는 세금이 있어 금을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련업체들이 시중에서 16만4000원에 재료금 을 사오더라도 3%에 해당하는 4800원을 환

급받을 수 있어 공급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의제매입제도가 없어지 면서 거래소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그나마 일 부 양성화되던 금 거래도 일제히 음성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제매입제도 폐지 이유에 대해 “정책 효과가 적었다”고 설명한다. 기재부 부 가가치세제과 이승규 사무관은 “부가세 환 급의 혜택이 소비자들이 아니라 가짜 신고서 를 만들어낸 업자들에게 돌아갔고, 금에 꼬 리표가 없다 보니 ‘앞금’이 됐다가도 언제든 ‘뒷금’이 된다는 점 때문에 정책효과가 지속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 거래소에 공급용으로 수입되는 금지금 (金地金·금덩어리)에 대한 세금문제도 거래 소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금지

화폐이면서 재화  독특한 물질‘금’

세월 지나도 가치 하락 없어  금융위기 올수록 더 각광 박태희 기자

금은 화폐일까, 재화일까. 금에 세금을 매기 는 문제는 결국 금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 로 귀결된다. 화폐에는 세금이 붙지 않지만 재화에는 세금이 붙는다. 국내에서 금 거래 에 10%의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것은 재화 로 본다는 의미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 가운데 금에 부가세를 매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그나마 일본은 골드바를 되팔 때 부가세의 일정 부분을 소 비자에게 환급해준다. 금이 처음 화폐로 쓰인 건 고대 그리스로

알려져 있다. 그 전까지는 왕족이나 상류층 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신구 재료로만 사용 됐다. 화폐로 각광받게 된 건 특유의 성질 때 문이다. 금은 고체원소 가운데 화학반응성 이 가장 적다. 다른 물질과 결합하거나 시간 이 많이 지나도 고유 성질이 변치 않는다는 얘기다. 부식되거나 상하는 일이 없으니 가 치 저장수단으로 유용했다. 수천 년 전 고대 인류가 소유했던 금들이 오늘날에도 귀걸이· 목걸이·반지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이 때 문이다. 명칭에도 이런 성질을 칭송한 흔적 이 남아있다. 금의 영어표기인 ‘Gold’는 ‘노 란색’이라는 뜻의 옛 영어 ‘Gelou’에서, 원소

전쟁위기 때 ‘법화’는 가치폭락 금은 인플레이션 때도 걱정 없어 한국 금 보유 103t, 세계 34위

기호 ‘Au’는 ‘빛나는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 어 ‘Aurum’에서 파생됐다. ‘금 고유 색이 아 침 햇빛처럼 변함없이 노랗다’는 뜻이다. 특 히 연성과 전성이 커서 선 모양으로 늘리거 나 얇게 펴기 쉽다 보니 장신구·예술품·공업 용·의료용 등에 다양하게 쓰일 수 있었던 점 도 선호도가 높아진 원인이 됐다. 자산으로서 금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실 물로서 내재가치가 있으므로 전쟁·재난·경제 위기 등에도 가치 유지가 가능하다. 또 인플레 이션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 위험이 다른 자산 에 비해 적다. 그러다 보니 금은 혼돈과 공황 의 시기일수록 더 주목받는다. 전쟁이나 재난

을 거치면서 화폐가 휴지조각으로 변하는 경 험을 되풀이하면서 이런 인식은 더 강해졌다. 1997년, 2008년처럼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 올 때 금값이 항상 급등한 것도 이런 이유다. 화폐이면서 재화이다 보니 금 거래를 놓 고 희한한 현상도 생겨난다. 홈쇼핑에서 금 을 판매할 때 의외로 젊은 층 구매자가 많다. 금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을 마련하기 위 해서다.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으면 약 27% 의 높은 수수료를 내야하지만 금은 매입가보 다 18~19% 낮은 가격으로 현금화할 수 있다. ‘카드 깡’ 대신 ‘금 깡’을 하는 것이다. 세계금협회(WGC)가 2012년 발표한 자료


Money 19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円 105 고지 경계경보

“With China” 패러다임

위기의 메가 뱅크(Mega Bank)

다음 주 preview

일본 엔저(円低) 경계경보. 작년 말 화폐전쟁 갈등을 불

지난 30년 동안 한국경제는 “Made in China”의 실효

한국의 은행 대형화 전략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을 벤

잭슨홀 세계 중앙은행 총회 논쟁 포인트에 주목. 미

러 일으켰던 “円 105 고지”도 어느덧 가시권. 월초 101

적 수혜자. 최근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Made for

치마킹. 한편, 2008년 미국발 메가뱅크 위기, 2011년

국 7월 신규주택 판매(25일·42만호), 케이스 실러

중반이었던 엔-달러, 금주 104 고지를 넘나들며 파죽

China” 화두. 더 나아가 중국의 장단점을 활용하여 세

유럽발 금융위기 및 작금의 볼커룰(Volker Rule)까지

주택지수(26일·+1.1%) 등 주택경기 가늠자도 관

의 기세. 유로화(EUR)마저 11개월 저점 갱신에 더욱 고

계를 상대할 “Made with China” 패러다임도 늦지않

메가뱅크론 괴사 직전. 적정 크기에 수익성이 결합한

심. 중국 본토관광객 감소에 6개월 연속 마이너스

단해진 한국 수출업체.

게 연구해야.

Smart Banking이 대안.

우려되는 홍콩의 소매판매실적(26일)도 살펴야.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활짝 열린 분양권 시장 서울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그린벨트 해제지구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4년 3월 우리 나라 주택시장 역사에 남을 ‘청약 광풍’이 불었다. 서울 용산에 분양된 주상복합 아파 트 시티파크에서였다. 이 단지는 최고 43층 의 전용 114~242㎡형 629가구. 특별분양분 을 제외한 619가구 모집에 21만여 명이 몰 려 평균 354대 1, 최고 69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무후무한 경쟁률에는 이 단지의 가치 가 크게 작용했다. 용산공원 등 장밋빛 개 발 청사진에 들떠 있던 용산이라는 입지 여건과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라는 당 시로선 최고의 상품성을 갖췄다. 직전인 2001~2003년 서울 아파트값이 연평균 20% 넘게 치솟을 정도로 시장은 바짝 달아올라 있었고 큰 집일수록 더욱 인기였다.

금 1g 국제 가격 6만(원) 원)

5만

4만

4만1968

3만

1만4285 2만

1만

2005년 1월 2일

2014년 8월 21일

3만1365

KRX금시장 주간 거래량 추이 2만5000(g)

주간 총 거래량 일평균거래량

2만

한때 당첨만 되면 목돈 벌어 그렇더라도 이 정도로 그런 경쟁률이 나오 긴 어렵다. 무엇보다 당첨만 되면 적지 않 을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로또’여서다. 이 아파트는 전매 제한이 없어서 계약과 동시 에 분양권을 팔 수 있었다. 청약 접수를 앞 두고 주변 중개업소를 중심으로 떠돈 예상 웃돈이 억대였다. 3000만~5000만 원의 청 약금을 내고 신청한 뒤 추첨에서 당첨만 되면 주머니에 굴러들어올 돈이었다. 신청 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됐다. 필자의 주 변 지인들도 적지 않게 신청했다. 당첨확률 을 높이려고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을 것 으로 예상된 전용 233~242㎡형(88~92평 형) 펜트하우스(꼭대기층 고급주택)에 청 약하기도 했다. 당첨자 발표 뒤 형성된 시 티파크 분양권 웃돈은 1억5000만원에서 최고 10억원에 달했다. 아파트 분양권이 돈이 되던 시설의 대표 적인 사례다.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 부동 산시장에서 소액으로 가능한 게 분양권이 다. 주택 공급이 집을 짓기 전에 먼저 분양 하는 선분양으로 이뤄지다 보니 분양권 시

1만5000

1만

5000

0

1주차 3.24

5주 4.21

10주 5.26

금에 대해서는 관세 3%를 면제해주지만 관 세 면제액의 20%에 해당하는 0.6%를 농어 촌특별세로 내야한다. 국제시세대로 사온 금 이 세관을 통관하는 순간 0.6%만큼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금파라치’ 도입, 효과 있을까 정부는 금 거래 양성화의 보완책으로 지난 7 월부터 ‘10만원 이상 현금거래시 현금영수증 발행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100만원어치 를 현금으로 산 개인이 110만원을 안 받은 금 방 주인을 신고하면 100만원의 40%를 세금 으로 매기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때 걷은 세 금 가운데 절반(20%)을 신고자에게 포상금 으로 지급하고, 20%는 국가에 귀속시킨다. 이 른바 ‘금파라치’(금+파파라치)제도다. 효과

15주 6.30

20주 8.4

23주 8.22

자료: KRX 금거래소

가 있을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금 업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종로에서 금방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부가 세 없는 거래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소비자가 부가세 없이 사고 싶어해 팔았는데 갑자기 범 법자로 몰고 간다”며 “정부가 올바른 거래 시 스템을 못 만들어내고는 국민끼리 감시하도 록 조장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금은 방 주인은 “세무공무원이나 수사기관들이 부 가세 탈루를 방조한 뒤 금 거래업자들을 쥐락 펴락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온현성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장은 “거래소 에서 금을 사고 파는 게 도리어 손해가 된다면 거래가 활성화 될 리가 없다. 금 거래가 양성화 되고 주얼리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금 관 련 세제를 정교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다른 나라에 두는 것이 안전해서다. 주로 미 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 많이 맡겨 둔다. 화폐로서 금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금 산 출량보다 재화 생산량이 훨씬 빨리 증가한다 는 사실이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금을 합 쳐도 달러표시 본원통화량의 0.3%에 불과하 다.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1971년 기축통화인 달러를 금과 바꿔주는 ‘금 태환’을 포기하겠 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처럼 희소 성이 있는데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이 달러· 유로 등을 과도하게 찍어내 ‘법화(法貨)’의 안정성이 의심받으면서 실물자산인 금이 다 시 주목받고 있다.

공공주택

민간주택

4년

2년

70~85%

6년

3년

70% 미만

8년

5년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85% 이상

기타 지역 전용 85㎡ 이하 공공택지 (신도시·택지지구 등) 85㎡ 초과 민간택지 (공공택지 이외)

85㎡ 이하 85㎡ 초과

1년 1년 6개월 6개월 자료: 국토해양부

분양권 웃돈은 집값 상승 기대치 집값 하락 땐 되려 돈 주고 팔아야 주택시장 불투명  투자 신중해야 장이 생겨났다. 분양가는 비싸지만 분양권 은 싸게 거래할 수 있다. 청약에 당첨된 뒤 분양가의 10~20% 정도인 계약금을 내면 동·호수가 정해진 분양권이 나온다. 당첨되 고 계약금만 마련할 수 있으면 웃돈은 그 냥 굴러들어온다. 활발하던 분양권 전매는 2000년대 초· 중반 집값 불안 요인의 하나로 지목돼 제한 됐다. 지역·분양가에 따라 전매제한 기간 은 최장 10년까지 늘어났다. 사실상 폐점된 분양권 시장이 다시 열리 고 있다.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얼어붙은 주택경기를 살리기 위해 분양권 전매제한 을 대폭 풀었다. 6월부터 서울·수도권 민간 택지 아파트의 전매제한이 6개월까지 줄어 들었다. 규제 완화에 힘입어 분양권 거래가 크게 늘었다. 강남권 인기 단지들에선 웃 돈이 1억원 넘게까지 붙었다.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가격을 땅값과 건축비 범위 내에서 제한하 는 분양가 상한제를 올해 안에 원칙적으로 폐지할 방침이다. 현재 분양권 전매제한이 상한제 대상 단지에 연동돼 있어 상한제가 없어지면 전매제한도 완전히 풀릴 가능성 이 크다. 물론 청약과열이 빚어지는 주택에 선별적으로 전매제한이 적용될 수 있지만.

로또 기대하다 독 삼킬 수도 분양권을 되팔아 짭짤한 재미를 본 기억이 있다면 큰 장이 서는 분양권 시장에 절로 미소를 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장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분양 권 전매차익은 꾸준한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다. 분양권 웃돈은 아파트가 입주할 시 점의 기대가격을 반영해 형성된다. 분양가 3억원짜리 아파트가 입주 후 5억원의 가치 가 나갈 것으로 보고 기대가치를 먼저 반 영하는 것이다. 분양권 시세도 전체적인 집 값 동향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집값 오름 세를 타야 차익을 낼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처럼 집값이 떨어지고 미 분양이 속출하면 ‘마이너스 웃돈’이 될 수 있다. 매도자가 되레 돈을 주고 팔아야 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속출한 하우스푸어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집 주인)의 상당수가 분양권 수렁에 빠졌다. 전매차익을 노리고 분양받거나 분양권을 샀는데 시세가 고꾸 라지면서 팔지도 못하고 애물단지가 됐다. 입주하면서 중도금·잔금 대출 이자를 한꺼 번에 떠안게 돼 버티기 어려워진 것이다. 새 아파트 견본주택이 북적대고 최경환 경제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해 최근 집값이 회복되는 분위기지만 과거와 같은 지속적인 상승세를 예상하기 어렵다. 아직 주택이 되기 전 분양권으로 사고 팔 수 있는 2년여 동안 주택시장이 어 떤 암초를 만날지 모른다. 분양권 차익에는 주택보다 많은 양도 세가 붙는다. 세율이 보유기간 기준으로 1년 이내 50%, 2년 이내 40%, 2년 초과 6~38%다. 주택은 1년 이내 40%, 2년 초과 6~38%(1주택자는 비과세)다. 분양권 시장 활기는 주택경기 회복의 자 극제가 된다. 떠오르는 부동산 재테크 상 품이 될 수 있지만 ‘로또’를 기대하다 ‘독’ 을 삼킬 수도 있다.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아직 세계는 넓고 ’ 책 내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15년 만에 침묵 깨고 “관료들이 대우 해체”

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가 보유한(이미 캐낸) 금의 총량은 17만t이다. 추가로 캐낼 수 있는 금 매장량은 4만t 가량으로 추정된다. 17만t 가운데 각국의 중앙은행이 18%인 3만1000t 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개인들 이 기호품으로 소장하거나 각종 제품 속에 들어있다. 한국은행의 금 보유량은 2013년 현재 104.4t으로 세계 34위에 올라 있다. 국 내에서 거래되는 금 물동량은 약 116t으로 이 중 보석류 비중이 40%를 차지한다. 각국 중 앙은행들은 보유한 금을 대부분 다른 나라 에 보관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쟁이나 재 해 같은 비상시에 현금처럼 쓰려면 자국보다

구분

분양권 시장은 당첨 직후인 초기에 가장 활발하다. 웃돈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 계 약금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자금 부담이 적어서다.

박태희 기자

김우중(78사진)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입 을 열었다. 대우그룹 해체 15년 만에 나온 책 김우중과의 대화-아직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서다. 김 전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집필한 이 책에서 대우그룹의 해체를 “경 제 관료들의 판단 오류로 인한 기획 해체” 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제 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 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각을 만들어 부실 기업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미국 제 너럴모터스(GM)의 투자를 받아 대우차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당시 관 료들이 “GM과의 협상은 깨졌다”며 투자 유치를 막았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그 근거로 GM이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 장에게 대우차를 50억∼60억 달러에 인수 하겠다는 의향서를 비밀리에 보냈다고 주 장했다. 김 전 회장은 정부가 이렇게 대우

차를 잘못 처리해 한국 경제가 손해 본 금 액만 210억 달러(약 30조 원)가 넘는다고 추산했다. 한국이 금융위기 때에 국제통 화기금(IMF)으로부터 빌린 돈과 비슷한 액수다. 책에서 김 회장은 “대우 해체에 따른 비용은 한국경제가 고스란히 부담 했고, 투자 성과는 GM이 다 가져갔다. 대 우 해체는 실패한 정책이 되고 GM 성공은 숨기고 싶은 진실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자동차를 대우에 넘기고 대 우전자를 삼성으로 넘기는 빅딜도 경제 관료들이 막았다고 주장했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 때부터 10년 동안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20차례 만난 사실 도 공개했다. 김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해 이 헌재 당시 금감원장은 “대우가 해체된 건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데다, 김 전 회장이 대우 회생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 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책은 26일 출 간된다. 15년 전 대우 해체를 둘러싼 공방 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20 Economy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비주얼경제사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⑫ 대항해시대 아메리카 은(銀)의 세계 일주

임진왜란으로 전세계 노예무역 확대  근거는? 기독교적 내용을 담은 성화(聖畵)가 있다. 중앙에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보이고, 그 위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있고 좌 우로 성자와 성부가 위치하여 삼위일체를 완성하고 있다. 그림의 아래쪽으로는 교 황과 군주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까지는 유럽적 색채가 강하다. 그런데 그림의 중 앙 부분이 이채롭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 이 삼각형의 붉은 산 안에 위치하고 있는

그림3 드 브리, 포토시, 1590년.

데, 자세히 보면 사방으로 길이 나 있고 나 무와 동물들이 보인다. 산 아래쪽에 유럽 적이지 않은 모습의 인물이 황금색 복장 을 한 채 서 있다. 산의 양 옆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해와 달이 그려져 있다. 그림 1 은 과연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이 그림의 소재는 오늘날의 볼리비아에 위치 한 세로 리코(Cerro Rico)라는 곳이다. 세로 리코는 ‘부유한 산’이라는 뜻이다. 이 산은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이유는 포토시(Potosi)라는 엄청난 규모 의 은광이 이 산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새 항로를 개척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금과 은 을 확보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초기에 이들 은 인디오 원주민들이 보유한 금은공예품을 탈취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원주민으 로부터 빼앗을 귀금속이 더 이상 없다고 판 단되자 정복자들의 관심은 금은 광맥을 직접 찾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마침내 1545년 그 들은 포토시에서 초대형 은광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인디오 원주민의 노동력을 강제 동원 하여 전통적인 용해방식으로 은을 채굴·제련 하였다. 그런데 은의 함유량이 높은 광맥이 점차 고갈되자 은광의 경제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그런데 1570년쯤 스페인에서 수은을 이용하 여 저급 광맥에서도 값싸게 은을 추출하는 기술인 수은아말감법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페루에서 대규모 수은광산이 개발되 면서 포토시의 은 생산은 다시 증가하게 되 었다. 그림 2는 1584년에 제작된 포토시 광산 의 그림이다. 은광 아래쪽으로 광산촌이 조 성되어 있고, 그 아래로 노동자들이 제련작 업을 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은 생산이 절 정에 이르렀던 1600년쯤에 이 도시의 인구는 1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해발 4000m에 육 박하는 장소에 서반구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도시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포 토 시광산의 채굴 장면은 드 브리 (Theodorus de Bry)가 남긴 작품에 가장 꼼 꼼하게 묘사되어 있다. 드 브리는 16세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동판화가이자 출판가였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탐험가들이 남긴 기록 에 의거하여 제작하였다. 따라서 탐험의 모습과 신세계의 풍습을 비 교적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1590년에 제작한 포토시광산의 모습은 매우 독특하다(그림 3). 세로 리코의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묘사한 점이 눈길을 끈 다. 산꼭대기의 구멍을 통해 인디오 원주민 들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채굴작업을 진행 한다. 이들은 벌거벗은 채 횃불을 밝히고 힘 들게 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채굴한 은덩 이를 부대에 담아 어깨에 짊어지고 사다리를 통해 광산 밖으로 나온다. 이 은덩이는 다시 그림의 왼편과 오른편 위쪽에 보이는 것처럼 라마와 같은 가축을 이용하여 다른 곳으로 수송된다.

그림1 화가 미상, 세로 리코의 성모, 1720년 이전. 포토시 은광이 있는 삼각형 붉은산의 윗부분에 성모 마리아가 위치하고 있다.

스페인 포토시 은광 개발이 촉발 은을 매개로 지구 전체 연결돼 明, 임진왜란 전후로 조선에 은 요구 은 수요 늘면서 세계 노예무역 증가

그림에서 느낄 수 있듯이, 원주민 광부들 의 노동조건은 지극히 열악했다. 고된 노역 이 장시간 이어졌고 사고의 위험도 컸다. 또 이들은 대부분 낮은 지대에서 살다가 강제 로 끌려온 사람들로서 낯선 기후와 음식, 가 혹한 채찍질로 인해 죽거나 노동 능력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에 세로 리코는 ‘사람 을 잡아먹는 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 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부유 한 산’이 엄청난 인명 희생을 가차없이 요구 하는 상황, 그리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 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사들여 오게 되는 상황이 바로 대항해시대가 드러내기 꺼 리는 속살이었다. 이렇게 생산된 아메리카의 은은 어디로 갔을까? 스페인인들은 채굴한 은의 대부분 을 자국으로 보냈다. 이 은은 스페인이 왕위 계승전쟁을 치르고, 종교개혁의 와중에 신 교도를 압박하고, 서유럽으로부터 많은 물 품을 수입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 서 은이 서유럽 전역으로 유입되었는데, 이 는 다시 서유럽이 발트 해 연안에서 곡물과 목재를 수입하고, 레반트에서 동방의 생산품 을 구매하고, 무엇보다도 남아프리카를 도는 인도항로를 통해 인도와 중국의 인기상품

그림2 화가 미상, 포토시의 세로 리코, 1584년.

을 수입하는 데에 사용됐다. 한편 아메리카 에서 생산된 은의 일부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세계 최장항로를 통해 마닐라에 있는 상관에 보내져 아시아 물품을 구입하는 데에 소요되 었다. 이렇듯 세계무역망을 통해 아메리카에 서 채굴된 은은 지구를 돌고 돌아 중국과 인 도로 모아졌다. 당시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은을 가장 많이 생산한 국가는 일본이었는 데, 일본의 은도 수출항 나가사키, 그리고 쓰 시마와 류큐(琉球, 지금의 오키나와)를 거쳐 중국으로 향했다. 은이 풍부해진 중국은 조세를 은화로 납 부하도록 제도를 개편하였다. 명대 후기와 청 대에 실시된 일조편법(一條鞭法)과 지정은제

(地丁銀制)가 바로 이런 제도였다. 새 조세제 도는 은에 대한 수요를 늘려 세계적으로 은 을 중국으로 더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였다. 마치 전 세계를 연결한 순환펌프가 작동하듯 이 은이 지구를 일주하여 중국으로 빨려들 었다. 대항해시대에 세계는 은을 매개로 하 여 단일한 경제권으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정세도 세계적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되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 을 침략해 오자 명은 군대를 파병하는데, 이 에 따라 막대한 양의 은의 필요해졌다. 임진 왜란 시기와 전쟁 후에도 명은 부족한 은을 조달하기 위해 조선에 은을 요구했다. 세계적 으로는 명이 은의 순환펌프에 압력을 높였을 것이고 그에 따라 아메리카에서는 은 채굴의 필요성이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광산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노 예수입을 더 늘렸을 것이다. 은을 매개로 지 구 전체가 연결된 상황에서, 임진왜란이 세 계적 노예무역의 증가로 이어졌으리라는 추 정은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이렇게 대항해시대에 은은 식민지 체제와 국제 무역망을 통해 세계를 일주하였다. 당시 에 은의 종착지가 중국과 인도였다는 사실은 아시아의 경제가 국제적 경쟁력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대항해시대를 연 유럽인들에 의해 주 도됐다는 사실은 향후 세계경제의 무게중심 이 점차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리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림 1로 돌아가 보자. 그림의 아래 왼편에 는 교황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묘사돼 있 다. 오른편에는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가 가슴에 손을 얹 고 있다. 이들 위로 보이는 황금색 복장의 작 은 인물은 잉카제국의 황제로, 유럽인이 옮 겨온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우아이나 카팍 (Huayna Capac)이다. 왜소하게 표현된 카 팍 뒤로 붉은 산이 성모를 덮고 있는데, 역사 가들은 이를 안데스 산맥의 토지의 여신인 파차마마(Pachamama)를 성모상과 결합시 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산의 양옆으로 떠 있 는 해와 달도 잉카제국에서 사용되던 형상이 다. 유럽의 기독교와 잉카의 전통신앙을 혼 합한 형태의 작품이다. 이른바 ‘신크레티즘(Syncretism: 혼합주 의)’의 색채가 다분한 이런 작품들은 18세기 에 많이 제작되었다. 이들은 공통으로 신세 계 믿음 체계의 일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것 이 구세계 믿음 체계에 흡수되고 복속된 것 으로 묘사한다. 유럽의 아메리카 진출은 물 리적 정복만이 아니라 정신적 정복이기도 했 다는 점을 세로 리코의 성모는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채굴된 은 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영향을 끼치게 된 점 이야말로 4세기 전 대항해시대가 초래한 세 계 경제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 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회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 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 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 (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conomy 21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고객 늘리기 경쟁 대신 고객 마음 잡기 경쟁으로

빅데이터 활용, 소상공인 자립 지원  카드사는 변신 중 <신한카드>

<현대카드>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슈퍼마켓부터 택시·목욕탕·영화관 결제까 지. 신용카드는 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침투 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경제활동인구의 1 인당 보유 카드 수는 3.94장. 신용카드의 본 고장인 미국(3.5장)보다 많다. 국내총생산 (GDP) 대비 신용카드 사용액 비중(2012년 말 기준)도 한국이 38.2%로 캐나다(19.4%)· 호주(16.7%)·미국(15.0%)·영국(7.6%)보다 훨 씬 높다. ‘카드의 생활화’ 이면에는 카드사 들의 공격적인 영업이 있었다. 카드사들은 2003년 ‘카드 대란’으로 불렸던 유동성 위기 를 넘긴 뒤 다시 경쟁을 시작했다. 신용카드 발급 수도 2006년 9000만 장으로 다소 줄어 드는 듯하다 2011년 다시 1억2000만 장을 돌 파했다. 이처럼 몸집 불리기에 열중하던 카드업계 는 올 들어 위기를 맞았다. 고객 정보 유출 사 건이 터지면서 신용카드사에 대한 불만이 봇 물처럼 터져 나왔다. ‘탐욕의 영업’이라는 비 판은 카드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카 드업계는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회사별로 구체적 대책은 다르 지만 크게 보면 과거의 ‘양적 확대’에서 고객 에게 다가가는 ‘질적 확대’로 변신하고 있다. 신한 카드는 빅데이터를 상품 혁신에 활용하고 있다. 신한카드 측은 ‘빅데이 터 경영’의 본질을 “고객에 대한 깊은 이 해를 바탕으 로 한 경영”이라고 설명한 다. 기존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관계관리)이 고객의 과거 이력 분석에 국한됐다면 ‘빅데이터 경영’은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미리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성호 사장은 지난 5월 빅데이터 경 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는 고객이

신한카드는 고객 기부금을 모아 소외지역에 도서관 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서울 서교동 행복무지개지역아동센터에 열린 아름인도서관 개관 식. 왼쪽부터 아이들과 미래 박두준 상임이사, 기부고객 대표 홍호선씨, 신한카드 조성하 부사장, 강창구 센터장.

기업, 정보유출 걱정없는 상품 국민, 한글사랑 고취 상품 내놔

신용카드 발급 추이

1억2253만

(단위: 장)

9541만

8711만

2004년 3분기

2011. 3

2014. 1

자료: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 문보다 각자 편의에 따라 고객을 분류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한 분 한 분께 맞춤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 고 설명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말 업계 최 초로 ‘빅데이터 센터’를 열고 공익성을 높이 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 성과는 지 난 2월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 화정보센터와 제휴를 맺고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이용행태를 분석해냈다. 이 분석은 관 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활용 되고 있다. 4월부터는 킨텍스(KINTEX)와 협력해 지역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방문객 들의 소비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신용을 잃은 사람들과 금융 소

[사진 신한은행]

외 계층의 자립을 돕고 있다. 소상공인을 위 해서는 현대차미소금융재단에서 대출을 받 은 자영업자를 상대로 사업 컨설팅, 경영개 선 교육, 인테리어 디자인, 마케팅까지 해법 을 제공한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CSR, 디 자인, 고객서비스 담당직원들과 업종 전문가 들이 단계별로 함께 한다. 정규 교육을 이수 할 기회를 놓쳐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는 ‘드림 교육 프로젝 트’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 6기 과정은 30세 이상~50세 이하의 구직 희망자 21명을 선발 해 12개 자격증 취득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금융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사회공헌을 고민하다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낚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일을 계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IBK기업은행은 캐시백을 대폭 확대한 신 상품 ‘IBK약속카드’를 내놨다. 복잡한 제휴 할인을 없애는 대신 사용 금액에 따라 돌려 주는 돈의 액수를 늘렸다.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을 위한 까다로운 조건 없이 서비스를 단순화했다. 본인과 가족카드 연간 이용금 액을 합산해 3000만원 이상시 50만원, 2000 만원 이상시 30만원, 1500만원 이상시 15만 원, 1000만원 이상시 10만원, 600만원 이상 시 5만원, 300만원 이상시 3만원을 매년 한 번에 제공한다. 연간 이용액이 300만원 미만 이거나 중도에 해지할 경우 연간 이용금액의 0.3%를 캐시백 해 준다. 카드 결제계좌를 기 업은행으로 지정하고 30만원 이상 이용하면 전자금융 이체수수료와 타행 자동화기기 출 금수수료(월 10회), 기업은행 자동화기기 타 행 이체수수료 등 각종 금융수수료가 면제 된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제휴처 할인 서비스를 없애면서 고객들은 자신의 정보가 마케팅을 목적으로 다른 곳에 제공될 걱정 을 안 해도 되게 됐다”며 “복잡한 할인 혜택 을 꼼꼼히 따지지 않으면서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중장년층 고객의 반응이 좋다”고 말 했다. KB국민카드는 순우리말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한글사랑 의식 고취에 나서고 있다. ‘누리카드’는 한 장의 카드로 국내외 모든 가 맹점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훈·민· 정·음은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학원비 할인 혜택을 받으려면 ‘훈카드’, 이동통신요금 할 인을 많이 받으려면 ‘민카드’ 등을 취사 선택 할 수 있다. ‘가온카드’는 전월 실적 조건, 적 립 한도 제한 없이 모든 가맹점에서 일시불 및 할부 이용 금액의 0.5%가 포인트로 기본 적립된다.

담뱃갑 흡연 경고 사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Biz Report 용산 스카이라인 바꿀 복합단지 래미안 용산

공포감 키우는 금연 캠페인  해법 없나

눈 앞에 한강, 단지 앞엔 지하철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김종윤기자 yoonn@joongang.co.kr

담뱃갑에 흡연 경고 그림을 삽입하는 내용 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이번에는 법 제화될 수 있을까. 두 달 전 보건복지부는 이 개정안을 7월에는 입법예고하고 하반기 에는 법제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입법 예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그 이후부턴 쪼그라든 허파와 검게 그 을린 치아, 타 들어가는 뇌 사진 등 혐오감 을 일으킬 수 있는 그림이 포장지에 박힌다. 앞뒤옆면 모두 50% 이상 면적을 차지한 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담뱃갑 경고 그림은 대표적인 비(非)가격 정책으로 현재 55개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 다. 담뱃세를 올리는 것 다음으로 효과가 좋 다는 말도 있다. 2002년에 경고 그림을 도입 한 브라질에서는 성인의 67%가 “금연 동기 가 강화됐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 제 금연 상담 문의도 4배 가까이 올랐다고 했다. 이경은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우리나라는 2005년 이미 담배규제기본협 약(FTCT)을 비준한 나라다. 당연히 빠르 게 시행해야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부가 산업만 발전할 거라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 케이스와 같은 ‘담뱃갑 케이스’가 불티나게 팔릴거 라고들 한다. 애연가 커뮤니티인 ‘아이러브 스모킹’ 운영자 이연익씨는 “대부분의 흡 연자들은 잠자는 시간 빼곤 하루 종일 담배 를 가지고 다니는데 경고 그림 보는 게 기분

삼성물산이 용산에서 복합주거단지 분양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2 가 342번지 일대 용산역 전면3구역을 재개 발한 복합주거단지 ‘래미안 용산’을 분양 중이다. ‘래미안 용산’은 지하 9층~지상 40층 2 개 동의 트윈타워다. 오피스텔은 전용면 적 42~84㎡ 782실, 아파트는 전용면적 135~240㎡ 195가구(펜트하우스 5가구 포 함) 등 총 977가구로 구성됐다. 조합원분을 제외한 오피스텔 597실과 아파트 165가구 등 762가구를 일반분양 중이다. 오피스텔에는 바닥 난방시설이 깔려 있 다. 세탁실, 창고와 함께 풍부한 수납공간도 갖췄다. 층고는 일반 아파트보다 40㎝ 높은 270㎝나 된다. 아파트는 2~3면이 개방형인 파노라마식 거실 설계를 적용했다. 자연환 기는 물론 조망이 좋다. 150m의 고층에서 느낄 수 있는 높은 조 망도 주목할 부분이다. 공동주택은 21~40 층까지 고층에 배치되기 때문에 일부 가구 를 제외하고는 한강 및 용산공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조경 및 커뮤니티시설도 ‘래미안 용산’ 이 내세우는 장점이다. 피트니스 센터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지상 20층에 배치해 쾌적 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20 층 주민 커뮤니티에는 동과 동을 연결하는 독특한 외관의 스카이브릿지를 만들어 두

▲ 담뱃갑 경고그림 때문에 담배케이스 산업이 커질 거라는 주장이 나온다. ◀ 지난해 미국 연방 항소법원은 FDA의 담뱃갑 경고그림 인쇄 의무화에 대해 표 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 좋을 리 있겠느냐”며 “사진을 끼우거나 케이스를 씌워 경고 그림을 사실상 소용없 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흡연자에게 수치심을 준다는 주장도 있 다.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담배소비 자협회 최비오 부장은 “담뱃갑 그림을 본 비흡연자들은 ‘담배도 끊을 줄 모르는 의 지 약한 사람’으로 흡연자들을 인식할 것” 이라며 “담배가 몸에 좋지 않은 건 인정하 지만, 담배 소비자들을 억지로 불편하게 해 가며 흡연율을 떨어뜨리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악마의 인쇄’라고도 불리 는 담뱃갑 그림이 비흡연자에게까지 시각적 폭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충격을 주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무조건 못 피우게 하는 방식으로 금연시키기 보다 는, 팔꿈치로 슬쩍 찔러 금연을 하게끔 하는 ‘넛지 전략(Nudge·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 는 말이 나온다. 담뱃세 인상은 세수확보를 위한 꼼수로 언급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금 연구역 확대가 통행구역 흡연으로 이어졌 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 전자담배 판 매율이 상승세를 타는 등 담배 대체재를 찾 는 움직임도 늘고 있지만, 현재 마련된 금연 시스템은 이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는 분석도 있다. 이연익씨는 “정부는 흡연자를 죄인 취급 하고 사회적 경멸 대상으로 만들 게 아니 라, 담뱃값에서 걷은 세금을 흡연자 건강검 진 지원에 써서 스스로 몸 상태를 자각하게 하는 등 궁극적으로 흡연율을 줄여나갈 방 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담배에 직접 메스를 대는 것보다 우회적으로 금연을 독 려할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이다.

삼성물산이 서울 용산구에 분양하는 래미안 용 산의 조감도.

[사진 삼성물산]

건물 간의 이동 편의성을 높였다. 스카이브 릿지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뛰어난 입지여건도 ‘래미안 용산’의 자 랑거리다. 지하철 1호선과 중앙선 환승역 인 용산역과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이 인 근이다. 단지의 지하 1층과 신용산역은 연 결됐다. 단지 주변에 7만5900㎡ 규모를 자랑하 는 용산가족공원이 위치해 도심 속 자연을 누릴 수 있으며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와 가까워 이용이 편리하다. 단지 인근 용산미 군기지 약 265만㎡ 중 미국 대사관부지, 드 래곤힐 호텔, 헬기장 등을 제외한 약 243만 ㎡가 대규모 공원으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래미안 용산’모델하우스는 송파구 문정 동 래미안 갤러리 5층에 마련되며, 입주는 2017년 5월 예정이다.


22 Health Plus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의학적으로 본 ‘김수창 음란행위’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바바리맨 증세’ 큰 망신 당해도 재발률 높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9시 등교’ 필요한 까닭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일러스트 강일구

tkpark@joongang.co.kr

김수창(52) 전 제주지검장의 음란 행위가 국민적 공분을 부르고 있다. “나라 꼴이…” 란 탄식과 “정신병자”란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들은 ‘국격’이 나 ‘정신병’과는 무관하다는 분석을 내놓 고 있다. 박용천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 의학과 교수는 “노출증 같은 성(性)도착증 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 등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며 “선진국에서도 저명 인사나 부유층이 성도착증으로 문제를 일 으킨다”고 말했다. 이들의 비정상적 행위는 이성을 뛰어넘는 것이 보통이다. 다른 사람 에게 알려져 큰 망신을 당해도 반복하는 경 우가 많다. 재범이 많은 것은 그래서다. 행동 양식도 조금씩 다르다. 이른바 ‘바 바리맨’도 공공장소에서 성기 노출만 하 는 사람이 있고 자위행위까지 해야 만족하 는 사람도 있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성 생활에선 발기부전 상태이다가 남들이 볼 때 자위행위를 하면 발기가 되는 사람도 있 다”며 “어릴 때 성적인 트라우마(외상)가 있었거나 성(性) 상대는 많지만 이들에겐 성적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성적인 트라우마의 단 적인 예는 어릴 때 부모의 외도를 목격했거 나 성적 학대를 받은 경우다. 심리적 갈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2000 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아메리칸 뷰 티’에선 미국 중산층 가정의 남편(케빈 스 페이시)이 딸의 친구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 고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공공장 소에서의 행위는 아니지만 영화에선 가족 간의 갈등을 그 원인으로 그리고 있다. 김 전 지검장은 자신의 이상 행동을 ‘격 무로 인한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기도 했 다. 이에 대해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 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가 많으면 자신의

일러스트 김회룡기자

경기도 교육청에서 9월1일부터 등교시간을 오 전 9시로 늦춘다고 발표했다. 모자란 잠을 충분 히 자고, 가족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것, 과중 한 학습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 다. 반대 의견도 많다. 아이들의 공부 시간이 줄 어들어 다른 지역 학생들과 격차가 생길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출근시간과 맞지 않아 불편하다 등의 의견이다. 수능 시험의 시작시간과 맞지 않 아 생체리듬에 혼란이 온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교 3학년 때 딱 한 번 시험을 보는데, 그날을 위해 생체리듬을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이 문 제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객관적인 연 구결과를 중심으로 한 번 분석했으면 한다. 먼저 우리 아이들 얼마나 자고 있나를 보자.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중고등학생 7만5643명 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중(週中) 평균 수면 시간이 고등학생 5.5시간, 중학생 7.1 시간이었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이 권고한 청소 년 수면 시간 8.5~9.25시간에 비해 많이 부족하 다. 국내 조사에서 주중 수면 시간이 5시간 미 만인 고등학생의 비율은 27.2%였다. 8시간 이상 충분히 잔다는 학생은 2.3%에 그쳤다. 하루에 4시간 자면 시험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공 부를 잘 하기 위해선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잠을 자다가 특히 잠에 깊게 빠진 렘(REM) 수면 동안에 낮에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 는 과정이 일어난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특 히 어려운 문제의 해결, 악기 배우기와 같은 절 차 기억과 관련한 영역은 충분한 수면과 상관관 계가 있다. 가천의대 이유진 교수팀이 미국의학 회가 출간하는 ‘소아과학’에 발표한 연구에 따

어릴 때 부모 외도 목격했거나 성적인 학대 받은 사람들 많아 스스로 병원 찾는 경우 거의 없어 자신의 병 인정이 치료 첫 단추 욕구를 억제하는 힘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 이나 스트레스와 노출증이 직접적인 연관 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는 없다”며 “스트레 스를 받는다고 다 일탈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바바리맨’ 같은 노출증은 성도착증 (paraphilia)의 일종이다. 의학적으론 ‘반 복적이고 강렬한 성적 각성환상욕구행 동으로서 본인이나 상대에게 고통·모욕 감을 주고 이런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때’ 성도착증으로 진단된다. 성도착증은 흔히 노출증, 여성물건애(여 성의 물건에 대해 흥분), 소아 성애증(소아 기호증), 관음증(觀淫症), 새디즘(성적 가 학증), 마조히즘(성적 피학증), 의상도착증 (여성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는 것), 접촉 도착증(상대의 신체 일부분에 몸을 문질 러 쾌감이나 성적 흥분을 얻는 것) 등 8개 의 유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3~4가지 이상을 함께 보이는 사람도 상당수다. 일반적으로 관음증이 가

장 흔하고, 노출증·여성물건애 순서인 것 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가 가장 힘들고 재 범률이 60% 가량 되는 것이 아동에게 성욕 을 느끼는 소아 기호증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선 성도착증을 정신 병으론 분류하지 않는다. 노이로제(신경 증)의 일종으로 본다. 현실감각이 마비되 고 망상에 빠지는 정신병보다는 상대적으 로 ‘가볍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노출증 환 자는 상대를 해치진 않는다. 상대가 쫓아가 면 대부분 겁을 내며 도망간다. 박용천 교 수는 “일반인도 일부 유형의 성도착 기질 을 조금씩은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 전적으 로 의존하진 않는다”며 “상태가 심하고 지 속적인 사람만 성도착증 환자로 진단한다” 고 설명했다. 현 단계에서 김 전 지검장이 성도착증 환 자인지는 판정하기 힘들다. 권준수 교수는 “노출증은 성기 등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 줌으로써 쾌감을 얻는 것”이며 “김 전 지검 장이 어두운 곳에서 외부 자극을 통해 음 란행위를 한 것으로 보여 노출증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정신과 상담을 거쳐야만 치료가 필요 한 병적(病的)인 상태인지 판명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성도착증 환자가 제 발로 병원 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꼭꼭 숨은 병’ 이란 뜻이다. 전문의 경력 30년째인 박용천

교수도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아 치료한 경험은 없고 뭔가 사고를 저질러 법 적으로 문제가 된 후에 몇 명 만나 본 것이 전부”라고 했다. 성도착증은 평생 계속되진 않지만 만성 적인 질병이다. 성도착증을 갖고 있다고 해 서 처벌 받지는 않지만 이런 욕구를 밖에 서 타인을 향해 행동으로 옮기면 불법이다. 성도착증 치료의 첫 단추는 자신의 병 을 인정하는 것이다. 김 전 지검장은 “(본인 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상 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하겠다”고 밝혔다. 채정호 교수는 “어릴 때의 성적 트라우마 가 원인이라면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료 를 한다”며 “남다르게 태어난 기질적인 문 제이거나 원인 불명이거나 어떤 성적 자극 에도 반응이 없는 사람이라면 치료가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노출증 등 성도착증을 전문적으로 치료 하는 약은 없다. 소아 기호증 환자에 대해 선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 온 것은 이래서다. 권준수 교수는 “대개는 의사가 면담을 통해 어릴 적의 성적 트라우 마 등 환자의 심리 상태를 확인한 뒤 현재 의 일탈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문제를 찾아내 알려준다”며 “이 과정에서 환자 본인이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를 스스 로 깨닫게 하는 것이 치료”라고 소개했다.

마흔의 다이어트는   책 펴낸 오한진 박사 르면 국내 고교생들 중 주중에 잠이 모자라서 주말에 몰아서 자는 시간이 많은 학생일수록 집 중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더 나아가 청소년이 잠이 모자란 경우 우울증과 상관없이 자살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잠 을 잘 자는 것은 정신건강을 떠나, 공부를 잘 하 는 데도 중요하다. 이상하게 고등학생이 되면 잠이 늘고, 아침 엔 일어나기 힘들어한다. 왜 그런 것일까.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이라 서? 둘 다 아니었다. 미국 브라운 대학의 마리 카 스카돈 교수는 사춘기 후반인 청소년의 경우 수 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2시간 정도 지 연되면서 몸의 생체시계가 밤이라고 여기는 시 간이 늦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밤에 잠이 안 오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지는 것은 그래서 다. 일찍 학교에 가서 앉아 있다고 해도 여전히 몸은 잠을 원하고 있으므로 멍하고 졸린 상태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잠이 항상 부족 하다고 여기며 짜증이 늘어난다. 이같은 청소년 의 정상적인 발달 생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해결책은 등교 시간을 늦추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세인트 조지 고등학교에서 등교 시간을 30분 늦추는 프로젝트를 9주간 실시했 다. 그 결과 충분히 잘 잤다는 학생이 확연히 늘 어났다. 첫 시간의 지각은 줄어들고 집중력이 높아졌으며 낮잠 욕구는 20% 줄고 주간 졸림도 50% 감소했다. 이처럼 과학적 사실은 9시 등교 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물론 여러 현실적인 어 려움과 불편이 예상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건강 과 더 나은 학교환경을 위해 9시 등교는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잘 자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공부도 잘 한다.

“나잇살 피하려면 걷고 장보고  꾸준히 움직이세요”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오한진(53) 박사는 관동대 의대 가정의학 과 교수 출신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달 서 울 비에비스나무병원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를 두고 세간에 말들이 많았다. 지명도 높은 ‘스타 의사’인데다 정년을 많이 남긴 의대 교수가 중소병원으로 이직한 사실 자 체가 의료계에선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 다. 새 일터에서 갱년기·노화방지 센터장을 맡은 그는 중년을 위한 다이어트 처방전인 마흔의 다이어트는 달라야 한다란 책을 최근 펴냈다. 대한비만건강학회장인 오 박 사와 중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기간의 다이 어트와 운동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나잇살이란. “20대에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던 사람 도 서른, 마흔을 넘기면서 서서히 무너진 다. 얼굴선이 바뀌고 허리 경계가 없어지 며 배도 나온다. 특히 옆구리 살과 팔뚝 살 이 붙으면서 전반적인 체형의 변화가 일어 난다. 이것이 나잇살이다. 나이 들면서 기 초 대사량이 감소하는 것이 나잇살의 주원 인이다. 기초 대사량은 호흡 등 생명 유지 를 위해 필요한 최소량의 에너지다. 중년 이후엔 음식 섭취량이 특별히 늘지 않아 도 기초 대사량이 줄어 자연스레 나잇살 이 들게 마련이다. 또 가는 세월과 함께 성

장호르몬의 분비가 줄어 들어들면서 기초 대사량은 더욱 감소하고 나잇살은 가속화 된다.” -나잇살 빼는 운동법이 있나. “N E AT(Nonexercis e ac t iv it y thermogenesis) 운동법을 권한다. NEAT 는 비(非)운동성 활동성 에너지 소모를 뜻 한다. 운동이 아닌 수면·식사·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적극 사용하는 것이다. 걸어서 출 퇴근하기, 서서 타이핑하기, 서서 청소하 기, 장보기 등이 여기 속한다. 일상생활에 서 에너지 소모를 늘려서 운동 효과를 누 리는 것이다.” -중년의 비만 예방 식사법은. “소중대(少中大) 다이어트를 추천한다. 아침엔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점 심엔 두부·살코기·달걀 등 단 백질을 충분히 먹고, 저녁엔 뿌리·줄기·열매 채소를 배 부를 때까지 먹는 것을 뜻한 다. 소중대 다이어트를 꾸준 히 하면 비타민·단백질 파우 더·유산균 캡슐 등 다이어트 보조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체 중을 줄일 수 있다. 특정 영양소 의 결핍 등 부작용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가 수십 년간 실천해 온 식사법이기도 하다.” -중년 살빼기의 주의할 점은. “중·장년층이 운동으로 살빼기란 정말 어렵다. 35분간 열심히 걸어도 고작 150∼ 200㎉ 정도 소모된다. 지방 1g의 열량이 9 ㎉다. 30분 운동으로 태운 150㎉는 지방 15 ∼20g에 불과하다. 게다가 운동시간이 짧 으면 식욕이 당기고 배가 쉬 고파져 체중이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운동을 포기하란 얘기는 아니다. 운동을 통해 근육량이 많 아지면 기초 대사량이 증가하므로 장기적 으론 운동은 꼭 필요하다.” -갱년기 살빼기도 필요한가. “갱년기 여성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로 심신이 불안정해진다. 폐경으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분비가 급감하면 감정 변화 가 심하고 스트레스에 더 쉽게 흔들린다. 스트레스 를 심하게 받으면 신체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늘어난다. 스트레스 호르몬 은 체내 지방을 축적시켜 체 중을 늘린다.” -왜 노년 살빼기 가 중요한가. 관동대 의대 가정의학과

“대개 노인은 만 65세 이상을 가리킨다. 최근 평균수명이 늘어나 노인으로 살아가 야 할 시간이 20년 이상이다. 문제는 한국 노인들은 건강하지 못한 질병 상태에서 10 년가량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노 년을 보내기 위해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년 살빼기의 주의할 점은. “노인이 체중 감량을 위해 식사량을 갑 자기 줄이면 근육량이 급감한다.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영양소들의 결핍도 동반된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도 노인은 칼슘·칼 륨·단백질·비타민 등의 영양소 섭취가 부 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인은 근육 유지를 위해 젊은 세대보다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육류(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다.” -100세 장수를 위한 솔루션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만의 스트 레스 해소법을 찾아내 준비할 것을 권장한 다.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물을 충분히 마시며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은 필수다.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감정을 조절하는 방 법도 익혀야 한다. 정기검진을 통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거나 예방하는 것도 검증된 장 수법이다. 장수를 위해선 정신적 안정이 필 요하다. 호르몬 분비량의 변화를 확인하고 이를 보충하는 일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Sports 23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프로야구 인기구단 롯데에 무슨 일이

불신 늪에 빠진 부산 갈매기, 4강 경쟁서도 밀려날 조짐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프로야구 최고 인기구단 롯데 자이언츠가 흔 들리고 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구단 등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에 빠졌다. 올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기대됐던 롯데는 22일 기준으로 45 승1무54패(승률 0.455)로 6위에 머물러 있다. 지난 두 달간 지켜온 4위 자리를 두산과 LG 에 한 번씩 내줬다. 4강 경쟁을 하는 가운데 뒷심이 가장 약해 보인다. 그렇다고 흥행에 성공한 것도, 롯데의 미래를 이끌 선수를 발 굴한 것도 아니다. 갈등과 분열의 싹이 커지 더니 몇 차례나 팀을 흔들었다. 최근 롯데의 이슈 메이커는 외국인 거포 루이스 히메네스(32)다. 한 달 동안 경기에 뛰 지 않은 채 구단과 정면충돌하고 있다. 그는 태업 의혹을 받고 있다. 웨이버 공시(계약해 지) 시한인 7월24일을 마지막으로 실전에 나 서지 않는 중이다. 왼쪽 무릎 부상이 이유다. 외국인 선수 선발·관리 제대로 못해 키 1m92cm, 체중 127kg의 거구 히메네스는 시즌 전 큰 기대를 받았다. 5월까지 3할 중반 의 타율에 홈런 11개를 때렸다. 화끈한 야구 를 좋아하는 부산 팬들에게 최고의 스타였다. 그런데 6월부터 이상했다. 바깥쪽 공을 공 략하지 못하면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당하자 스트레스를 받 았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틀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 웨이버 공시 시한을 넘기자마자 히 메네스는 드러누웠다. 롯데 구단이 파악하고 있는 그의 부상은 무릎 건염이다. 그러나 히 메네스는 지난 12일 기자들 앞에 나타나 “무 릎뼈에 구멍이 났다. 지금 무리하면 내 야구 인생이 끝난다.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팀을 위해 주사치료 중”이라고 주장했다. 김시진(56) 롯데 감독은 “히메네스가 돌 아와도 문제”라며 심드렁해 하고 있다. 지명 타자 최준석(31)이 잘해주고 있어 히메네스 가 1루수로 나서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박종 윤(32)이 좌익수로 돌아야 한다. 전문 1루수 인 박종윤은 외야 수비 때 실수가 잦다. 예전 처럼 홈런을 펑펑 치는 히메네스가 아니라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물증은 없지만 태업을 하는데 대한 괘씸죄도 더해진 것 같다. 이럴 거라면 7월에 히메네스를 다른 외국인 선수 로 바꿨어야 했다. 히메네스 사건으로 롯데의 외국인 선수 선 발·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 코칭스태프와 구단은 그를 잘 어 르지도, 단칼에 내치지도 못했다. 아무리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외국인이라고 해도 롯데 유 니폼을 입은 선수가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건 지나치다. 팀에 질서가 없다는 의미다. 선수 사생활 통제하려다 거센 역풍 롯데는 5월 말 심한 내홍을 겪었다. 권두조 (62) 롯데 수석코치가 갑자기 경질됐고, 그를 추천했던 구단 인사도 징계를 받은 것이다. 롯데 선수들 몇몇이 신동인 구단주 대행과 만나 ‘수석코치와 야구를 같이 하기 힘들다’ 는 뜻을 전해 이뤄진 조치다. 구단의 수장은 대표이사(롯데는 최하진 사장)다. 몇몇 선수들이 배석자 없이 대표이 사보다 더 높은 구단주 대행을 대면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인사 건의가 이뤄진 게 놀랍다. 이게 받아들여져 수석코치가 시즌 중 퇴진한 건 더욱 놀랍다. 롯데의 이런 소통 구조는 스포츠계에 만연 한 상명하복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기획됐다. 여기서 자유로운 소통문화가 만들어진 게 아 니라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권 수석코치는 선수들 사생활까지 통제하 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은 이에 반 발했고 결국 이겼다. 이 역시 개인간 갈등구

도로 볼 수만은 없다. 롯데 구단은 김시진 감 독의 심복(心腹)이 아닌 구단을 대변할 인물 을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그런 권 수석코치 가 선수들과 충돌해 완패했다. 구단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김시진 감독의 권한이 강한 것 도 아니다. 김성근(72) 감독이 SK에서 경질 된 2011년 이후 각 구단은 감독의 권한을 축 소하는 추세다. 구단이 선수 영입과 운영을 맡고, 감독은 현장 지휘를 한다. 임기가 짧은 감독이 아닌 구단이 중장기 계획을 세우려 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방식의 시스템 이다. 권한 분리는 감독과 구단, 두 기둥이 각자 단단하게 서 있을 때 제대로 작동된다. 그렇 지 않은 경우 리더십 공백이 생긴다. 재난에 가까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롯데엔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 다른 팀과 싸울 힘으로 팀 내 부의 각 주체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롯데 구단은 김시진 감독의 오른팔 격인 정민태 투수코치를 지난 21일 2군으로 내려보냈다. 구단이 감독에게만 책임을 묻는 모양새다. 제이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 이후 롯데는 프로야구 흥행을 주도했다. 2000년

외인 거포, 부상 이유로 태업 의혹 수석 코치는 선수와 불화로 경질 팀내 갈등분열로 몇 차례나 흔들 팬들도 방황  부산 관중 40% 넘게 줄어

이후 하위권에 머물렀던 롯데가 5년 연속 포 스트시즌에 진출하자 부산은 물론 전국의 롯 데 팬들이 야구를 즐겼다. 팬들이 우승을 꿈 꾸기 시작할 때 롯데 구단은 적극적으로 드 라이브를 걸지 못했다. 이대호(32·현 소프트 뱅크)와 홍성흔(37·두산)을 연달아 빼앗겨 공격력이 악화됐다. 투수 전문가 김시진 감 독을 지난해 선임하는 등 마운드 보강에 애 썼지만 나아진 건 별로 없다. 방향도, 타이밍도 틀린 엉뚱한 투자 지난 겨울 히메네스와 최준석을 영입했고, 공격형 포수 강민호를 4년 총액 75억원에 눌 러 앉혔다. 그래도 롯데 공격력은 중간 수준 이다. 투자를 했으나 방향이 틀렸고, 타이밍 이 맞지 않았다. 때문에 롯데는 화끈한 공격 야구도, 냉정하게 상대를 옥죄는 독한 야구 도 하지 못하고 있다. 롯데가 표류하자 팬들도 방황하고 있다. 롯데는 2008, 2009, 2011, 2012년 홈 관중 130 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롯데가 더 이 상의 상승 모멘텀을 찾지 못한 데다, 특유의 화끈함마저 사라자자 팬들이 실망하기 시작 했다. 지난해 롯데의 총 관중은 77만 명(평균 1만2000명)으로 전년에 비해 44%나 줄었다. 올해 홈 경기 관중도 평균 1만3000명 정도로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 롯데는 단지 9개 구단 중 하나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프로야구의 위기는 롯데의 부 진과 맞물렸다. 롯데 야구에 불이 붙자 2008 년 이후 프로야구는 활황이었다. 전체 관중 715만명을 기록한 2012년이 정점이었다. 이 후 롯데의 성적과 관중이 떨어졌고 프로야구 흥행도 정체돼 있다. 2014년 프로야구는 극심한 타고투저(打高 投低) 현상과 비디오 판독 도입 문제로 시끄 러웠다. 미국으로 떠난 류현진(27·LA 다저 스)과 윤석민(28·볼티모어 오리올스), 일본 으로 진출한 오승환(32·한신 타이거스)을 대 체할 스타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 삼성의 독 주를 막을 팀도 없다. 팀컬러를 잃은 롯데의 부진이 더 아쉬운 이유다.

롯데 야구에 불이 붙으면 프로야구도 활황세를 탄다. 반대로 롯데 팬들이 돌아서면 프로야구 전반의 분위기도 침체된다. 최근 몇년새 롯데는 팀 안팎으로 홍역 을 앓았고 특유의 화끈함마저 잃어버렸다. 팀 컬러가 사라졌다는 비난도 받는다.

[중앙포토]


24 Column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38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

자신감으로 온라인에 새 바람  오프라인 세상도 바꿀까 대에 오른 그녀는 여자로서의 자기 삶을 담 담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실패한 첫 결혼, 재 혼과 임신, 극심한 입덧, 자리에서 밀려날까 출산휴가 중에도 노트북을 끼고 산 사연. 회 사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린 이유. 그녀는 이 런 경험과 주변 여성들의 삶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유능하고 야망이 큰 여성은 남녀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여성들은 이를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한다. 반복된 부정적 경험은 그 녀에게 불안·두려움·죄책감을 안긴다. 결국 자신감을 잃고 뒤로 물러 앉게 된다.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한 여성기업인 모임에서 짧은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이야기가 끝나자 누군가 물었다. “여성 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자 할 때 가장 경 계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내 대답은 이 랬다. “친절한 공감자(共感者)다. ‘그만하면 애썼다. 마음 가는 대로 하라’며 등 토닥거려 주는 사람들이다.” 청중들의 얼굴에 ‘뭔 소리야?’ 하는 표정 이 떠올랐다. 나는 말을 이었다. “직위가 올 라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여성의 불안감은 커진다. 사람들이 자신을 욕심 많은, 설치는 여자라 생각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도 깊어진다.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 바로 그 공감자들이 나타나 속삭인다. ‘그 만둬 버려, 나댄다는 욕 안 먹어도 되고 스트 레스도 사라질 거야’. 거기 호응하면 당신 커 리어는 단절된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 던 져버리려 할 때 ‘정말 할 만큼 했냐, 네 자신 을 스스로에게 충분히 증명했냐’고 진지하 게 되물어주는 사람을 만나라. 당신에게는 더 큰 야망이 어울린다고 격려해 주는 친구 를 사귀어라.” 나로 말하자면 위기의 순간마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멘토가 있어 지금껏 경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한 분은 “칼이 짧으면 한 발 더 다가가 찔러라”는 말로 나를 독려했다. 또 한 분은 “장(長) 역할을 해 보기 전엔 사표 를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엄마 없이 크다시 피 하는 아들에게 미안해 울 때 또 다른 한 분 은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상처 없는 어린 시 절이 어디 있어. 엄마가 정말 애쓰고 있다는 걸 아이가 알면 되는 거야.” 저서 린인 통해 여성의 사회진출 독려 지난해 여름, 나는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의 책에서 그와 비슷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 버그(Sheryl Sandberg·45)의 린 인(Lean In)이다. 우리 말로 바꾸자면 ‘뛰어들라’ ‘들이대라’ 정도가 될 이 책 제목은 샌드버 그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고자 만든 비영리 재단(LeanIn.org)의 이름이기도 하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해 7월 방한 중 진행한 연세대 강연에서 여성들에게 “평생 당신 꿈을 응원해줄 배우자를 만나기 위 해 기다리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 것, 가정을 이루고 싶다 해서 일에 열정을 쏟길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구글 재직 때 회사 매출 절반 담당 페북 이직 후엔 새 수익 모델 발굴 창업자 저커버그보다 연봉 많아 유력한 미국 대통령 후보로 부상 다. 영어 원서에는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 어있다. ‘여성, 일, 그리고 주도하려는 의지 (Women, Work and the Will to Lead)’. 말 그대로 여성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라”는 주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샌드버그의 말이기에 강력하고 설득력 있다. 한편으로는 본인이 책 서문에서 예견 한 것처럼 ‘남녀 모두의 심기를 건드리며’ 거 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여성은 엘리 트 고액 연봉자의 배부른 주장이란 비판을, 어떤 남성들은 이미 알파 걸이 넘치는 세상 에서 여자가 어떻게 더 잘 나가냐는 비아냥 을 쏟아냈다. 책 출간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샌드버그

는 논란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미국의 가 장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 중 하나로 급부상 했다. 사업적 성공 또한 눈부시다. 창업자인 마 크 저커버그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페이스 북 2인자로서, 자신이 수립한 수익 모델을 통 해 흑자를 이루고 회사 가치를 크게 끌어올렸 다. 스스로 1조 원 이상의 재산을 일군, 미국 의 최연소 여성 갑부가 됐다. 그녀 말처럼 온갖 종류의 두려움에 맞서 위험을 감수한 대가다. 유대계인 그녀는 워싱턴D.C.에서 태어나 마이애미에서 자랐다. 하버드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최우등 졸업한 뒤 맥킨지, 미국 재무부 등을 거쳐 2001년 구글에 입사했다. 그녀가 신생 벤처인 구글 입사를 망설이자 당 시 CEO이던 에릭 슈미트가 했다는 말은 유명 하다. “직업 선택 시 중요한 단 한 가지는 성장 속도다. 로켓에 탈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자리 인지 묻지 마라. 그냥 올라 타라.” 이후 그녀는 글로벌 비즈니스 책임자로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 회사 매출의 절반 이 그녀 부서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중앙포토]

2008년 새 로켓으로 옮겨 탄다. 페이스북이었 다. 다른 기업으로부터 CEO 자리를 제안 받 은 상태였지만 페이스북의 가치를 알아보고 스물 세 살 저커버그 밑에서 일하기로 한다. 그녀는 201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식사에 서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실시간 소통이 일 반화한 세상에서 커리어는 더 이상 사다리가 아니다. 정글짐이다. 수직 승진 같은 건 생각 지도 마라. 직함이나 연봉에 매몰되지 마라. 대신 회사의 사명(mission)과 성장성, 담당 업무의 영향력을 따져라. 이력 말고 직무능력 을 쌓아라.” 그 몇 달 뒤 그녀는 세계 최대 지식포럼인 TED 무대에 선다. 사람들은 그녀가 소셜 마 케팅의 미래를 이야기하리라 짐작했지만 예 상은 빗나갔다. 샌드버그는 ‘왜 여성 리더는 소수인가’라는 주제 하에, 사회 최상위층에 오른 여성들의 은밀한 금기를 깨뜨렸다. 이들 은 자신이 ‘여성이기에 주목 받는 상황’을 극 도로 꺼린다. 남성과 대등하게 경쟁해 이겼 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하지만 무

자녀 위해 9시 출근, 5시 30분 퇴근 철저 샌드버그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성들이 먼저 ‘일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고 역설한다. 포춘 500대 기업 CEO 중 여성 은 겨우 4%, 미국 상원에서 여성 의원은 20% 에 불과하다. 더 많은 여성이 내면의 두려움을 깨고 리더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을 때 세상은 바뀐다. 그 자신도 중역이 됨으로써 기업 문 화를 바꾸고, 여성 후배들의 멘토이자 롤 모 델로서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음을 설 명한다. 그렇다고 무한 경쟁에 뛰어들라는 것 은 아니다. 그녀는 매일 9시에 출근해 5시30 분에 퇴근한다. 그녀는 “아이들과 저녁을 함 께 하려면 어쩔 수 없다. 못 다 한 일은 아이 들을 재운 뒤 한다. 중요한 건 일과 삶의 균형 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자신감 있 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배 우자의 지원 없이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자신도 사업가 남편과 가사 및 육아를 절반씩 부담하게 되기 까지 지난한 논쟁을 거쳤음을 고백한다. TED 발표 이후 샌드버그는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명성을 더하게 됐다. 지난 4월에는 재산 절반을 기부한다고 공표했다. 산업계를 넘어 정치·사회 영역으 로 무섭게 영향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샌드버그가 즐겨 인용하는 저커버그의 말 이 있다. “위험을 짊어져라. 두려움을 모른다 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두려움 자체를 없 앨 수는 없다. 하지만 맞서 싸울 수는 있다. 대차게 한 번 붙어보지도 않고 회의 테이블 에서 지레 물러앉고 마는 여성들에게 샌드버 그가 주는 진심 어린 조언이다.

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전진하라! 한국 고전 DB

난중일기는 언제쯤 온라인으로 볼 수 있을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지난 칼럼에서 출판계의 인문학 열풍의 허구 를 이야기하면서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달 고 철학·문학·예술사를 한 권에 밀어 넣은 상 식백과식 참고서를 읽느니 차라리 정식 백과 사전을 읽는 게 낫다고 썼었다. 그러자 요즘 도 백과사전 종이책을 구할 수 있느냐는 질 문을 많이 받았다. 나올 만한 질문이다.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브리태니커도 2012년 종이책 출판 종료를 선 언하고 유료 온라인 버전만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두산백과사전 역시 종이책 출판이 중 단되고 이제 두피디아 웹사이트와 포털 등에 서 무료 디지털 정보로 공급된다. 그런데 종 이책 대신 이런 디지털 버전으로 읽어도 달 라질 것은 없다. 종이책으로 읽든, 온라인 텍 스트를 컴퓨터 모니터로 읽든, 전자책을 태 블릿 PC나 스마트폰으로 읽든, 결국 중요한

한국고전종합DB 웹사이트

‘명량’ 바람타고 인터넷 검색 급증 한글판 없어 일반인에겐 먼 얘기 디지털 강국 조건은 콘텐트인데 것은 매체가 아니라 콘텐트다. 나는 여러 서구 고전을 온라인 텍스트로 읽 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 사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메타모르포 세이스(변신담:그리스·로마 신화의 집대성) 의 경우, 어릴 때 국문 번역 종이책도 읽었지

만, 나중에 영문 완역본을 온라인에서 읽었 다.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 구텐베르그’나 미국 MIT 등 여러 대학의 고전 아카이브에서 그 완역본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 역시,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이 운영하는 ‘폴저 디지털 텍스트’ 등 여러 사이트에서, 무료로 희곡 전 문을 막과 장 별로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다. 어떤 사이트는 상세한 주석까지 제공한다. 서구의 주요 인문학 고전은 이미 10여 년 전에 검색했을 때도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잘 돼 있는 상태였다. 당시에 그걸 보고 감탄하 면서 한국의 고전을 온라인에서 보기 힘든 것을 아쉬워했었다. “한국이 IT강국이라지 만 디지털 콘텐츠 면에서는 전혀 강국이 아 니다”는 여러 전문가들의 지적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요즘은 좀 나아졌다. 교육부 산하 한국고 전번역원이 운영하는 한국고전종합DB(사 진)에서 조선왕조실록의 한글 완역본을 각 임금과 날짜 별로 검색해서 읽을 수 있고, 또

정약용의 경세유표,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여러 고전의 한문 원본과 한글 완역본을 무료로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요즘 영화 ‘명량’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난중 일기 한글 완역본의 명량해전 부분을 온 라인에서 찾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 그러 나 난중일기 한글 완역본은 아직 한국고 전종합DB에 올라와 있지 않다(한문 원본은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희 실장은 “시 중에 종이책으로 나온 난중일기 완역본을 올리고자 하는 계획은 있지만, 먼저 번역자에 게 충분한 저작권료를 지급할 예산이 확보되 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해방 이 후에 한글로 번역된 한문 고전문헌이 4900여 권인데, 이중 27%인 1300여 권이 현재 한국고 전종합DB에서 제공된다. 이 비율을 50~70% 까지 끌어올리고자 하는데 결국 저작권료로 쓰일 예산이 문제라는 것이다. ‘명량’을 보고 난중일기 완역본을 읽는 것처럼, 허구가 섞인 사극 영화와 사료가 되

는 고전문헌을 비교하는 것은 훌륭한 역사 공부 방법이다. 이때 종이책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실록이나 일기 양식의 방대한 고전문 헌은 일단 궁금한 부분을 발췌독하는 것으 로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 경우 온라인 DB가 훨씬 편리하다. 게다가 ‘디지털 네이티 브’라고 불리는 지금의 청소년과 대학생 세 대가 한국 문화 정체성의 뿌리인 고전문헌과 쉽게 친해지도록 하는 길은 무료 디지털 정 보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 구보다도 정부가 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 이다. 예산을 투입해 고전의 연구번역자에 게 충분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무료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는 것 말이다. 더구나 저작권료뿐만 아니라 연구 인력 양 성도 문제다. 한 실장에 따르면 “한문학 고전 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은 현재 한국 에 20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진정한 문화 융성을 위해서는, 여러 한류 홍보 프로그램 도 좋으나, 이런 가장 근간이 되는 문화사업 부터 예산이 확충되어야 하지 않을까.


Science 25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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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형 공룡의 퇴장

공룡 대멸종 뒤, 지구에 풀 돋고 포유류 시대 개막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인간의 코는 왜 이리도 오뚝할까? ‘안경을 걸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바보는 없을 것 이다. 하지만 조금만 근원적인 문제로 들어 가면 우리는 이런 입장에 자주 서곤 한다. 우 주론의 ‘인류 원리’에 관한 해석이 바로 그렇 다.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에 수많은 변수들 이 조금만 달랐다면 태양·지구 그리고 생명 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물리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놓고서 인류를 탄생 시키기 위해 우주에 이러저러한 물리법칙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지난 3월 인문학 분야의 한 원로 교수는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우주에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간에게 우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과학이 답해 야 한다면서 “우연히 생겼어요” 같은 것은 제대로 된 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론 대 부분의 과학자들은 원로 교수의 글을 보고 서 과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이 인문학 자들 듣기 좋은 얘기를 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 가운데도 비슷한 착각 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키위란 과일 이 름이 붙은 새에서 찾을 수 있다. 몸집 줄여 생존한 키위, 알 크기는 못 줄여 뉴질랜드는 불과 1000년 전까지만 해도 인 류뿐만 아니라 육지에 사는 어떠한 포유류 도 접근하지 못한 땅이었다. 뉴질랜드는 천 적이 없는 새들의 천국이었다. 여기엔 타 조처럼 날지 못하는 거대한 새가 자그마치 13~20종이나 살고 있었다. 이 가운데는 타조 무게의 두 배가 넘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섬에 상륙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사람들은 날지 못하는 거대한 새들을 쉽게 멸종시켰다. 이제 뉴질랜드에 남아있는 날지 못하는 새는 3종의 키위가 전부다. 이들이 살아남은 까닭은 아마도 닭 정도로 작은 크 기인데다 야행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키위 새는 과일 키위처럼 생긴 몸통에 기 다란 부리가 달렸다. 키위의 놀라운 점은 알 의 크기다. 키위 크기의 새들이 보통 70g 정 도의 알을 낳는 데 반해 키위 알은 6배나 무 거운 420g이나 된다. 여기에 ‘왜?’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전통 적인 진화생물학자들은 알이 크면 새끼도 크고 충분히 자란 상태로 부화한다는 데 주 목한다. 때문에 어미의 최소한의 보살핌만 으로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자연선택에 의해 키위는 점점 더 큰 알을 갖게 됐다는 전통적인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진화이론의 3대 스타에 속하는 고(故)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현재의 유용성은 역사적 기원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란 금언을 반복한다. 우리 코 가 안경을 걸기 위해 그렇게 생긴 게 아닌 것 처럼, 키위의 커다란 알도 어떤 이득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란 것이다. 키위는 원래는 엄청 컸던 새가 작게 진화한 왜소종(種)이란 게 굴드의 주장이다. 그의 주장을 따라 역사 를 복원해 보자. 어떤 육상 포유류도 없는 뉴 질랜드에서 키위는 포유류와 같은 생활 방식 을 택했다. 키위는 조류 가운데 유일하게 양 쪽에 난소가 있다. 같은 크기의 포유류의 수 태기간과 비슷한 80일의 부화기간, 굴 파기 습성, 모피 같은 깃털, 후각에 의존하는 야행 성 먹이 찾기 습관도 포유류와 닮았다. 키위 의 조상은 몸집이 거대했지만 점차 작아졌 다. 하지만 알의 크기는 몸의 크기와는 다른 비율로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뉴질랜드는 천적이 없는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알이 수

키위의 알은 몸집에 비해서 왜 이렇게 커졌을까? 많은 자연선택론자들은 큰 알의 이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키위의 알이 큰 이유는 몸집이 작아지는 동안 알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덜 줄었기 때문이다.

멸종 이긴 조류형 공룡 몸집 거대화 키 2m ‘공포의 두루미’가 지상 지배 대륙 이동으로 포유류 다양한 진화 초식 포유류가 새 지배자로 부상

신생대 초기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를 누린 동물은 거대한 조류형 공룡(새)인 디아트리마였다. 나중에 풀을 먹는 거대한 초식 포유류 무리가 등장하면서 디아트리마의 시대가 마감됐다.

란관(輸卵管)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키위 암 컷은 거대한 알로 인해 배가 부푼 채 ‘겁 없 이’ 뒤뚱거리며 돌아다녔을 것이다. 고립된 생태계의 거대한 새는 과거 생태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비늘이 털로  포유류는 파충류에서 분화 6500만 년 전. 신생대(新生代), 즉 새로운 생 명의 시대가 열렸다. 새 생명의 시대가 시작 된 계기는 바로 중생대 백악기(期)의 대멸종 이다. 외계에서 날아온 거대한 운석의 충격 에 따른 화산 폭발과 기후변화를 큰 동물들 은 견뎌내지 못했다. 하늘엔 익룡이 날아다 니고, 땅에선 공룡이 포효하며, 바다에선 어 룡과 수장룡이 헤엄치던 중생대가 뜬금없이 끝나고 만 것이다. 단지 중생대의 지배자 공룡만 멸종한 게 아 니었다. 10~20㎏이 넘는 육상 척추동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바다의 동물들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식물성 플랑크톤이 절멸한 게 결정적 인 이유였다. ‘식물성 플랑크톤-동물성 플랑 크톤-작은 물고기-큰 물고기’로 이어지는 먹 이사슬이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생대에 출현해 중생대 바다를 지배하던 암모나이트 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암모나이트는 플랑 크톤을 먹던 생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민물에 살던 동물들은 아주 큰 동물만 제외하고 웬만하면 살아남았다. 물이란 피난처가 있는 악어와 거북은 저(低) 산소와 건조라는 악조건을 버텨낼 수 있었 다. 지난 네 번의 대멸종을 견뎌내면서 적응 성을 키워온 곤충들도 대부분 살아남았다. 어쨌든 중생대 백악기가 끝났다는 것은 공룡의 시대가 끝나고 포유류의 시대가 열 렸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포유류 가 이때 생겨난 것은 아니다. 포유류는 중 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期)에 이미 등 장했다. 포유류는 파충류에서 분화했다. 파충류 의 비늘 한 개는 포유류의 수십∼수백 개의 털로 변했다. 아직도 천산갑이나 아르마딜 로처럼 원시적인 비늘을 가진 포유류가 남 아 있다. 포유류는 피부에 땀샘이 있어서 체 온을 조절하고 알 대신 새끼를 낳는다. 또 후

각이 발달했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 많 다. 신생대는 기후의 변화가 컸기 때문에 변 온(變溫)의 거대한 파충류보다는 항온(恒 溫)의 작은 포유류가 생존하기 쉬었다. 덩치 가 크고 낮에 활동했다면 공룡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공룡이 멸종하고 말았다. 포유류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의 최고 포식자는 누구였을까? 여전히 공룡 이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백악기 가 끝나면서 비(非)조류 공룡은 모두 사라졌 지만 조류 공룡(즉 조류)은 살아남았다는 사 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조 류는 키가 2m에 달했던 ‘공포의 두루미’였 다. 북아메리카의 디아트리마와 유럽의 가스 토르니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날개가 퇴화 돼 날진 못했다. 빽빽하게 우거진 팔레오세 (6500만 년 전~5650만 년 전)의 숲에서 날개 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공포의 두루미들 은 갈고리 같은 기다란 발톱이 달린 육중한 다리로 뛰어다니면서 먹이를 잡았다. 뾰족한 부리론 작은 포유류를 잡아 살을 찢었다. 풀 덕분에 거대한 초식 포유류 등장 신생대가 시작될 무렵 인도 대륙은 아프리 카에서 떨어져 나와 인도양을 가로질러 빠 르게 돌진했다. 곧 아시아의 아랫부분과 충 돌해 히말라야 산맥을 형성하게 될 터였 다. 북아메리카에선 로키 산맥이 계속 높아 졌다. 하나의 거대한 초(超)대륙, 즉 판게아 (Pangaea)를 형성하고 있던 지구 대륙이 서 로 쪼개져서 흩어져 있는 현재의 모습을 점 차 갖추게 되었다. 비(非)조류형 공룡이 사 라진 신생대엔 조류형 공룡의 거대화가 진 행됐다. 오스트레일리아엔 키가 3m, 무게가 400㎏이 넘는, 날지 못하는 거대한 ‘천둥 새’ 인 드로모르니틴이 살았다. 오늘날의 에뮤 나 화식조는 큰 축에도 못 낀다. 마다가스카 르엔 현생 타조 키의 두 배가 넘는 ‘코끼리 새’ 아이피오르니스, 뉴질랜드엔 거대한 모 아가 살았다. 이들은 주로 곰과(科)·고양잇 과·갯과 따위의 큰 태반 포유류 포식자가 없 는 섬이나 섬대륙에서 둥지를 틀었다. 대륙 이동은 포유류의 진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포유류는 크게 단공류·유대류·태반 류로 나뉜다. 단공류(單孔類)는 알을 낳는 포유류로 현재는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 단 두 종(種)만 남아 있다. 유대류(有袋類)는 새끼가 일찍 태어나 어미의 배에 있는 주머 니에서 어미의 젖을 먹으면서 일정한 크기로 자랄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 포유류다. 유대류의 화석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중생대 지층에서도 나오지만 현존하는 종은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에만 존재한다. 특히 오스트 레일리아는 신생대 내내 고립돼 있었다. 그 곳의 유대류는 경쟁 없이 다양한 생태학적 이점들을 이용해 여러 형태로 진화했다. 신생대엔 유대류도 번생했지만 태반류(胎 盤類)의 진화는 더 성공적이었다. 태반류는 해부학적인 특징에 따라 다시 분류된다. 개 미핥기·나무늘보·아르마딜로·천산갑은 이 빨이 없거나 불완전한 빈치류(貧齒類)다. 포 유류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송곳니가 없는 설치류(齧齒類)다. 온갖 종류의 쥐가 여기에 속하며 1700종이 넘는다. 태반류는 진화하 면서 점차 몸집이 커졌고 초식동물과 육식 동물로 양분됐다. 커다란 초식동물론 양·염 소·소와 말, 그리고 코끼리처럼 발굽이 있는 유제류(有蹄類)가 있다. 거대한 초식 포유류가 출현하게 된 결정적 인 계기는 신생대에 들어서 마침내 등장한 풀이다. 풀은 고생대에도 중생대에도 존재하 지 않았다. 그 어떤 공룡도 풀을 구경하지 못 했다. 몸집이 크고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초 식동물이 등장하자 고양잇과·갯과·곰과 동 물들이 커다랗게 진화하면서 비로소 조류형 공룡의 지배가 마감된다. 풀이 생기자 날지 못하는 거대한 조류형 공룡들은 두 가지 길 앞에 놓이게 됐다. 서서 히 멸종하거나 공룡시대의 포유류처럼 몸을 최소한의 크기로 줄이도록 진화하는 거였 다. 거대했던 키위도 몸집을 줄이고서야 겨 우 살아남았다. 커다란 알을 품은 채.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 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 이언스 등을 썼다.


26 Column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차(茶)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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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재 유방선

세종의 부름 거부한 태재, 차향과 벗하며 문향 키워 <太齋>

호탕한 천지의 기운, 따사로워지니(乾坤浩 蕩氣方和) 온갖 꽃들 만발하여 아름다움을 드러내누 나(萬枝千紅總自花) 슬프다. 그늘진 벼랑엔 아직도 봄기운이 전 해지지 않아(惆愴陰崖春有恨) 초췌한 가지엔 꽃도 피우지 못했구나(一枝 憔悴未開葩)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dongasiacha@hanmail.net

조선의 건국은 정치·사회·문화·의례 등에 많 은 변혁을 가져왔다. 실권을 장악한 신진 사 대부들은 유교의 이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법전을 만들어 통치의 기초를 다졌다. 아울러 불교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 해 사원을 철폐하고, 사전(寺田)을 몰수하는 한편 승려의 출가를 법으로 제한했는데, 이 러한 조치들은 불교의 쇠락뿐만 아니라 음 다 풍속이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더구 나 태종 때 이르러서는 왕실의 의례에서 차 를 퇴출한 것이 본격화됐다. 태종15년(1415) 다시(茶時·관청에서 공무를 보기 전 차를 마 시는 의례)를 폐지하고, 이듬해(1416)에 선왕 후(先王候)의 기신재제(忌晨齋祭)에 차를 대 신해 술과 감주를 올리라는 조칙을 내렸으니 이는 통치자의 차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 라 하겠다. 원래 차 문화를 주도한 것은 왕실 귀족층 과 승려들이었고, 차 문화가 풍성해질 수 있 었던 것은 문인들의 역할이었다. 따라서 불 교의 몰락이나 왕실 의례에서 차가 사라진 것은 조선의 차 문화사에 있어서 대단한 영 향을 미쳤다. 더 이상 차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음다(飮茶) 풍속 의 위축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차를 즐기는 습속(習 俗)이 일시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원을 중 심으로 유행했던 명전(茗戰) 놀이가 줄어들 었지만 검소하게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 음다의 본질은 조선시대에서도 이렇게 이어졌다. 목은 이색의 외손자로 뛰어난 문장가 태재 유방선(太齋 柳方善1388~1443)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차를 즐겼던 인 물이다. 차를 통해 소외된 자신의 삶을 위로 하고, 차를 즐기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가 남긴 수 편의 다시(茶詩)에는 순수한 차의 맑 음을 오롯이 즐기는 은자(隱者)의 자족한 삶 이 잘 드러나 있다. 더구나 그의 문체는 조선 의 시단(詩壇)을 이끌던 서거정(徐居正)·한 명회(韓明澮)·김수온(金守溫)·성간(成侃) 같은 제자를 기른 대가다운 풍미를 지녔다. 시어와 시어 사이에 숨겨진 간극의 절대 미가 주는 감동의 여운이 길었다. 고려의 명신이며,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 던 사암 유숙(思庵 柳淑·1324∼1368)이 그 의 증조부(曾祖父)이고, 목은 이색(牧隱 李 穡·1328∼1396)이 외증조부(外曾祖父)였다 는 사실에서도 그의 문장가로서의 자질은 이 미 예견된 일이었다. 영민한 자질과 문재(文 才)를 타고 났던 그가 어린 나이에 신동(神 童)으로 회자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듯하 다. 그가 원래 발랄한 재기를 타고났다 하더 라도 문재의 원천은 집안의 내력에서 나온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시경·예기에 밝았던 권근(權近·1352~1409)과 변계량(卞 季良·1369~1430) 같은 당대의 대학자들이 그 의 학문적 연원(淵源)이었음에랴. 이처럼 부족할 것이 없었던 그의 앞날이 파란만장할 줄을 누구인들 짐작했을까. 1405 년 국자사마시(國子司馬試)에 합격한 후, 태 학(太學)에 입학한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다. 그러나 인생의 황금기 대부 분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기구한 그의 운명은 진정 무엇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던 가? 집안이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된 것은 조 선 초기 정치적 혼란기에 일어났던 사건 때 문이었다. 바로 그의 부친이 역모 죄에 연루 된 것. 그의 나이 22세 때의 일이다. 부친 유 기(柳沂)는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방원을 돕던 민무구(閔無咎) 형제와 뜻을 같이 했다.

산림에서 사는 선비의 유유자적한 삶을 그린 8폭 병풍 산정일장(山靜日長) 중 제5폭 부분도. 이인문(1745~1824) 개인 소장.

부친은 역모죄에 연루돼 참형 22세 때부터 식솔들과 유배지 전전 40세 때 해금돼 원주서 후학 양성 서거정한명회 등이 문향다도 이어

태종이 즉위한 후, 태종과 사이가 벌어진 민 무구 형제가 역모 죄에 연루되자 그의 부친 도 이들과 함께 참형을 당하고 만다. 태재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가산이 몰수되고, 식솔 들이 유배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가 청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영천(永川)으로 이배(移 配)된 것도 이 일 때문이었다. 그가 자유의 몸이 된 것은 40세가 되던 해 의 일이다. 원주 명봉산 아래 법천(法泉)로 거처를 옮긴 그는 비로소 안정을 찾은 듯했 다. 원주의 법천학사에서 강학하며 후학을 양성할 때, 그의 학덕을 흠모했던 세종은 스 승의 예로 대우하여 벼슬을 주고자 했지만 끝내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다. 한편 유배지를 떠돌면서도 학문과 강학에 열중했던 그는 조선 전기의 문단을 이끌었던 인재들을 길러냈다. 앞서 언급한 서거정과 같 은 그의 제자들은 실제 조선의 시단을 이끌 던 인물들로, 이들 또한 차를 즐겼다. 소박한 문인의 음다 풍속은 이렇게 이어졌던 셈이다. 그가 유배지의 어려움을 극복했던 힘은 어 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이것은 그의 깊은 학 문적 성찰에서 나온 것이리라 짐작된다. 아 울러 산림에 살며 차를 즐기는 소박한 일상 의 즐거움은 마음의 의지처가 되기에 족했 다. 그가 차나무를 심고, 무일사(無一事)한 일상의 한가함을 노래한 ‘즉사(卽事)’의 내 용은 다음과 같다.

만년에 궁벽한 곳 좋아하여(晩歲愛幽獨) 인적 드문 산에 거처를 잡았네(卜居投遠山) 차를 심고 약초 밭을 일구며(種茶開藥圃) 대나무 심어 낚싯대 만드네(栽竹製漁竿) 봄빛에 (마음이) 산란하여 잠이 오지 않는 데(春色惱無睡) 지저귀는 새소리가 적막함을 깨누나(鳥聲 啼破閑) 누가 알리오. 초가집 아래에(誰知茅屋下) 한가하게 즐길 느긋함이 있는 것을(自有臥 태재집(太齋集) 권1 遊寬)

유방선이 말년에 살았던 강원도 원주 법천 인근에 있는 법천사의 당간 지주.

이 시는 아마 영천에서 머물던 시기에 지 은 듯하다. 만년이란 40세 이후를 말한 것이 라 짐작되지만 원주에선 차나무가 자라지 않 는다. 따라서 그가 1431년에 ‘가족을 이끌고 법천촌사에 도착하여(挈家到法泉村舍)’라 는 시를 지었으니 아마도 해배가 된 후에도

도판 국조인물고의 유방선 편

얼마 동안 영천에서 머물렀던 것은 아닐까. 더구나 영천은 차를 기를 수 있는 지역이기에 “차나무를 심고, 약초 밭을 일궜을” 것이라 는 생각이 든다. 차를 좋아했던 그이기에 차 나무를 가꾸며, 은자의 소박한 즐거움을 만 끽할 수 있었다. 대나무는 선비를 상징한다. 곧게 자란 대 나무의 기상은 선비의 기개를 닮았다. 선비 의 청빈한 삶은 초가집이 제격이다. 물론 그 의 처지는 초가집에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 이었지만 무위(無爲)한 자연에서 도학의 이 치를 탁마하는 은일한 선비에겐 “한가하게 즐길 느긋함이 있는” 공간으론 최상이었으 리라. 더구나 그의 곁엔 자족할 차가 있으니 지족(知足)을 누리는 선비의 삶이란 바로 이 런 것이라 하겠다. 실로 안빈낙도(安貧樂道) 할 수 있는 용기란 자긍심에서 나온다. 자신 이 귀한 존재임을 아는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가에서는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로(子路)가 군자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께서는 “경으로써 자신을 닦 고(修己以敬), 자신을 닦아 다른 사람을 편 안하게 하며(修身以安人), 자신을 닦아 백성 을 편안하게 하는 것(修身以安百姓)”라 하 였다. 유방선은 바로 이를 실천코자 했던 선 비였다. 하지만 죄인의 신세였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수기이경(修己以敬)뿐 이었다. 온 세상에 봄 기운이 화창하여 세상의 모 든 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툴 때, 이 광경을 바라보며 느낀 상대적인 상실감은 더욱 절 절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봄날의 서정성을 자신의 처지와 대비한 ‘유감(有感)’은 절창 (絶唱)이라 불린 만한 시격(詩格)을 갖췄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태재의 시어 속엔 고난의 흔적 가득 온 세상엔 따스한 봄기운이 완연하다. “호탕 한 천지의 기운, 따사로워졌음”은 성군의 은 택을 의미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 하다운 태평성대엔 효자와 현신(賢臣)이 출 현한다.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쓸쓸한 유배지에서 간난의 세월을 보내던 그에겐 임금의 덕화가 미치지 않았다. 그가 “그늘진 벼랑”이라 말한 것은 바로 해 배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이리 표현한 것이 다. 따라서 해배를 기다리는 절절한 그의 심 정은 그늘진 벼랑의 “초췌한 가지엔 꽃도 피 우지 못했다”한 것과 같은 처지였다. 바로 그 의 문재(文才)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와 깊이 교유했던 명곡스님이 열반한 후, 그를 회상하며 지은 ‘곡명곡상인(哭明谷 上人)’에는 태재가 유배지를 전전하던 시절, 차를 나누며 명곡 스님에게 의지했던 시절의 인연사를 그림처럼 그려냈다.

만년에 환귀사에서 깊이 사귄 후(晩向還 歸托契深) 객지에 있을 때도 항상 만났지(客中無處不 相尋) 산사의 창가에서 종종 함께 차를 즐겼고 (禪窓幾伴煎茶話) 주점에선 자주 달을 보며 시를 읊조렸지 (酒店頻同對月飮) 오래된 절엔 이미 그 주인이 아니지만(古 院已非當日主) 절 앞의 개울 물 소리만 예나 지금이나 같 구나(前溪惟有舊時音) 이제 누가 내 마음 알아주랴(從今誰是知 心者) 청산을 바라보니 흐르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回首靑龍悌滿襟) 태재집(太齋集) 권3 명곡 스님이 죽은 뒤, 환귀사를 찾았던 태 재는 변함없는 환귀사의 정경에서 물상(物 像)은 모두 공하다는 이치를 드러냈다. “깊이 사귀던” 명곡 스님도 없고, 차를 즐 겼던 시간과 공간도 옛날과는 다른 것. 매 순 간 변하는 이치는 분명하였다. 그가 “이제 누 가 내 마음 알아주랴”라고 한 말은 그 공명이 하도 커서 청산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그를 곁에서 보는 듯하다. 태재가 겪은 고난은 그의 시어 속에 가득 한데, 그는 차에서 어떤 위안을 받았던 것일 까? 다시(茶詩)를 읽을 때마다 일어나는 의 문이기도 하다. 유방선 자는 자계(子繼)이다. 송도 방제에서 태어났다. 변계량과 권근의 문하에서 수학하 였고, 영천의 송곡(松谷) 아래에 집을 지어 태 재(太齋)라는 당호를 걸었다. 태재에서 이보 흠 등에게 강학하였고, 40세에 해배 되어 원 주로 돌아왔다. 시학은 두보의 시를 배웠다. 원주 법천으로 옮겨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 는 시를 남겼다.

박동춘 철학박사,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문화 융성위원회 전문위원. 저서론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맑은차 적멸을 깨우네 우리시대 동다송 이 있다.


Column 27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삶과 믿음

달라이라마의 가르침 원영 스님 metta4u@hotmail.com

슈만과 클라라 부부. 슈만의 제자 브람스는 클라라를 연모했으나 스승의 사후에도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브람스의 ‘러시아 추억’

끝없는 숲과 하늘평원으로의 초대 송영 작가 sy4003@chol.com

불어의 souvenir(추억)라는 말은 시에도, 음악에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souvenir 를 제명으로 내세운 곡이 제법 많고 그 곡 들 모두가 일정한 매력과 특징을 갖고 있기 도 하다. 추억이 사람의 생각과 감각에 그만 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파가니니의 ‘베니스 카니발’을 피아 노곡으로 편곡한 쇼팽의 ‘파가니니의 추억’ 은 얼마나 상큼한 보라색 물빛으로 번쩍이 는가. 차이콥스키의 현악6중주곡 ‘플로렌 스의 추억’, 비에냡스키의 ‘모스크바의 추 억’도 독특한 이국풍의 색채를 뽐내는 매력 적인 곡들이다. 나도 이 souvenir라는 단어 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브람스의 네손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 ‘러시아 추억(Souvenir de la Roussie)’ 은 LP 바람이 불기 시작한 몇해 전 우연히 음반을 얻었는데 잘 알려진 러시아의 듀 오 로제스트벤스키와 포스트니코바 부부 의 연주(작은 사진)였다. 러시아엔 이 곡 연주를 즐기는 또 한쌍, 타티아나와 레오 니드가 있다. 역시 부부가 손을 맞춰야 이 연탄곡은 완벽 하머니가 이뤄지는 모양이 다.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은 흘러간 시대의 유물같은 느낌이 들고 현대에 자주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모차르트 곡이 라 해도 이 형식은 왠지 싱겁고 연주자의 개성이나 특징이 드러나지 않아 크게 흥미 를 끌지 못한다. 브람스의 출세작 ‘헝가리 무곡’도 초기 에는 연탄곡으로 출발했다. 그가 클라라 슈 만과 1868~1880년 사이에 공식무대에서 피 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이 곡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브람스가 왜 연탄곡에 유독 열중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브람스는 헝가리를 여행하고 ‘헝가리 무곡’을 썼지만 러시아엔 가지 않았다. 사실

은 ‘러시아 추억’이란 제명도 후대 연주가 들이 편의상 붙였을 가능성이 많다. 이 곡은 러시아 민요 외에 보헤미아 민요에서도 악 상을 빌려오고 있기 때문에 제명 자체에 약 간의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곡에 붙여진 소제목들이 재미있다. 5번커다란 마을이 길게 누워있다. 4번-나이팅 게일. 3번-그대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어스름 새벽에. 2번-지류, 혹은 갈래길 등인데 자연 풍경과 그곳에서 피어나는 로맨틱한 심상 을 그렸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음악 자체 도 ‘헝가리 무곡’이 그렇듯 빠른 리듬, 표정 의 잦은 변화, 특유의 활기와 우수가 각 곡 마다 색채를 바꿔가며 잘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내가 듣기에는 러시아의 지방 풍 광을 어느 곡 보다 더 생생하게 묘사해내고 있는 것이다. 2005년, 기후가 가장 좋다는 7월에서 9월 사이 나는 모스크바 동남부 라잔 지방을 잠 시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아까강이 그곳에 있고 솔제니친의 중편소설 마뜨료나네 집 의 무대도 그 지역이다. 고려인 작가 A의 멋 진 다차도 그 지역 가브리노란 마을에 있는 데 그 다차에서 일주일가량 머물면서 그와 함께 숲으로 가서 흰 버섯을 따기도 했다. 다 차 앞에 있는 큰 호수 건너 마을에는 A의 친구이자, 전형적 러시아 농부(農婦)인 니 나네 집이 있는데 거기서 맛있는 삶은 계란 을 실컷 대접받은 기억도 있다. 전상자(戰傷

者)인 남편을 일찍 보내고 홀로 땅을 일구며 살아온 니나는 여러 가지로 솔제니친의 마 뜨료나와 닮았었다. 러시아 숲은 끝이 없다(요즘은 벌목으로 많이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하늘도 끝이 없다. 솥뚜껑처럼 하늘이 넓었다. 앞을 가로 막은 산이 없는 것이다. ‘하늘은 정말 넓어 요’라는 노래를 A가 흥얼거려 들려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 하나를 사귀었다. 다차 뒤뜰에 있는 한 그루 뿐인 러시아 민들레였 다. 키가 허리에 닿을만큼 큰 파클론 아드반 치쿠의 모습이 특이해서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 앉아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재작년, 7년만에 니나의 무덤 을 찾아간 성묘 길에 다차에 다시 들렀는데 제일 먼저 뒤뜰의 친구에게 달려갔다. 그가 무사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민들레는 그사 이 군락을 이룰만큼 크게 번성한 모습이었 다. 그 모습을 소형 카메라에 여러 장 담아 왔다. 포스트니코바와 로제스트벤스키의 ‘러 시아 추억’ 연주는 과연 부부 연주답게 한 치 빈틈 없는 완벽 호흡을 뽐낸다. 짙은 우 수와 활력이 교차하는 곡의 진전에 따라 내 시야에도 오래 전 라잔에서 보았던 끝없는 숲과 하늘, 평원 사이에 난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고 그곳에서 만났던 여러 인물들의 갖가지 표정과 목소리가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추상의 판타지인 브람스의 ‘러시아 추 억’은 우랄합창단이 부르는 러시아 민속곡 인 ‘레비니슈까’나 ‘카투사’같은 실체가 있 는 노래 보다 도리어 더 사실적이며 포괄적 으로 러시아 풍경과 정취를 생생하게 환기 시켜 준다. 브람스는 러시아에 여행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이것이 뛰어난 예술작품, 기 악곡의 매력이고 미덕일 것이다. ‘레비니슈카’는 레비냐란 나무와 참나무 가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한다는 러 시아 민담을 소재 삼은 노래이다. 레비냐 나 무에는 빨간색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밤에 불빛이 비치면 루비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온 나라가 교황의 축복을 받고 있을 때, 나는 그리운 도반들을 만나러 경주에 다녀왔다. 1 년에 한 번씩 있는 운문사승가대학 졸업반 모임이다. 쉽게 말해 동창회다. 스님들도 동 창회가 있냐며 더러 놀라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우리에겐 그날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 한 시간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만난 벗들과 밤새는 줄 모르게 이야기가 쏟아지고, 어쩌 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시간. 같은 길을 가는 자만이 느끼는, 출가자들만의 공통된 정서가 서로의 눈길 속에 충만하다. 스님들은 거처를 자주 옮기기 때문에 우린 항상 “스님, 지금은 어디 살아요?”라고 묻는 다. 지난 1년 간의 일정이 어떠했는지, 앞으로 의 계획이 어떠한지를 더불어 묻는 것이다. 올해는 30명의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 데, 밀린 소식이 어찌나 많았는지 왁자지껄했 다. 특히 사찰 음식의 달인인 스님이 음식을 준비해 먹는 즐거움이 더했다. 저녁 공양과 회의를 마친 뒤에는 담소가 이어졌다. 늘 그 렇듯 그 시작은 ‘차’였다. 카페인에 약해 평 소엔 밤에 차를 안 마시는 나도 도반들과 함 께 있을 때는 예외다. 좋은 차를 좋은 벗과 함 께한다는 건 귀한 일이니까. 한 스님이 노스 님께 얻어왔다는 오래된 홍차 맛이 일품이었 다. 더워서 무심코 꺼내든 부채엔 마침 ‘다반 향초(茶半香初)’라 쓰여 있었다. 올해는 이웃 종교 소식도 화제였다. 교황 의 방한 소식과 그 분의 아름다운 행보, 세월 호 참사 등 사회적 이슈들, 불교의 미래를 걱 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진지한 토론에 밤 은 짧았다. 새벽 4시가 되자 여기저기서 알람 이 울렸고, 예불할 시간이라며 우린 또 한번 웃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도 반들을 만나 우린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 다. 출가자에게 도반이란 그런 존재다. 서로 를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가늠하 는. 개인의 수행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종교 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더욱 마음을 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교황이 노란 리본 을 달고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숙 연해졌다. 아마 그 모습을 본 전 세계 모든 종 교 지도자들이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광화 문의 90만 인파도 감동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가톨릭 외에도 우리나 라에는 종교를 가진 이들이 엄청 많고 전 세 계에서 종교 서적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 라고도 하는데, 정작 부정부패가 심하고 사 건사고도 많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일컬 어지는 것은 왜일까? 니체는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사물이 나 상황 그 자체를 보지 않는다. 그것에 사로 잡힌 자신의 생각이나 집착·고집,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 또는 머릿속에 멋대로 떠 올린 상상을 본다. 결국 자신을 이용해 사물 이나 상황 자체를 감추고 있다.” 이 말대로 어

긴 세월 종교에서 위안 찾았지만 현대 사회에선 해답 찾기 어려워 종교 초월한 보편적 접근법 절실 쩌면 우린 각자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현 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위로가 지금의 상황을 바꾸지 않는 데도 마치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처럼 느끼 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달라이라마는 말했다. “종교는 수많은 사 람들에게 도움을 줬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 양화된 세계화 시대에는 종교가 인간의 모든 고민과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없다. 이제 종교를 초월한 삶의 방식과 행복을 찾아야 할 때다.” 그 분 말처럼 지금 이 세상에는 종교를 넘어선 인간 사회의 공통 조건이 필요하다. 도덕과 내적 가치, 진실에 대한 보편적 접근 법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앗, 그러고 보니 달라이라마의 방한 문 제는?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 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 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諧音

<해음>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한자는 표의문자다. 상형문자도 포함한다. 그렇다고 원시문자는 아니다. 뜻글자는 소 리글자와 다른 묘미를 갖는다. 갖가지 언 어 유희가 가능하다. 해음(諧音)은 그 하나 다. 발음은 같지만 철자가 다른 동음이철어 (homophonous)를 말한다. 해음은 중국의 선물 풍속에 녹아 있다. 술은 중국어 발음으로 주(酒)다. ‘오래, 길 게’를 뜻하는 주(久·구)와 같다. 술 선물이 상대와 오래 사귀겠다는 의미를 갖게된 이 유다. 사과를 뜻하는 핑궈(蘋果)는 ‘평안하 다’를 뜻하는 핑안(平安·평안)과 음이 비슷 하다.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선물로 적합 하다. 정치도 해음을 좋아한다. 중국 공산당의 목소리는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통해 전달 된다. 인민일보는 필명(筆名)을 해음으로 짓는다. 주요 칼럼인 중성(鐘聲·종성)은 종 소리란 뜻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 중앙의 소 리(中共中央聲)란 의미다. 인민일보 국제부 가 집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런중핑(任仲 平·임중평)도 같은 경우다. 개혁 논조로 유

명한 이 필명은 ‘인민일보 중요 평론(人重 評)’을 해음했다. 중쭈원(仲祖文·중조문)은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 문장(中共中央組 織部文章)의 해음이다. 중쉬안리(鐘軒理· 종헌리)는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 이론국 (中央宣傳部理論局)의 주장을 뜻한다. 1991년 황푸핑(皇甫平·황보평)이란 필 명이 상하이시 당 기관지인 해방일보에 처 음 등장했다. 당시 상하이에서 덩샤오핑(鄧 小平)의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학습조직이 던 ‘황푸강 평론(黄浦江評論)’을 딴 이름 이었다. 황푸핑은 보통 필명과 차원이 달랐 다. 황(皇)은 푸젠(福建)성 사투리인 민남 어(閩南語)로 받들 봉(奉)과 발음이 비슷하 다. 푸(甫)는 도울 보(輔)와 같다. 즉 “인민 의 명령을 받들어 덩샤오핑을 보좌한다(奉 人民之命 輔佐鄧小平)”가 황푸핑의 속뜻 이었다.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을 맞은 중국이 추 모 열기에 휩싸였다. 사상해방(思想解放) 은 그의 최고 업적이다. 고정관념인 스테레 오타이프를 버리란 뜻이다. 사상해방은 창 신(創新)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89년 천안 문 사건을 철완(鐵腕)으로 진압했다. 이후 정치는 죄고, 경제는 풀었다. 덩샤오핑의 역 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28 Column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길 위의 인문학

2

로고스는 운명이다!

알고자 하는 인간 본능,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사라지다 고미숙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아 가던 시대는 복되도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나오는 말이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뛰는 구절이다. 루카치의 말대로,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이전 엔 별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었다. 별의 운행 이 지상의 계절을 만들고, 사계절의 리듬 속 에서 인생의 희노애락이 펼쳐진다. 이 ‘천지인’의 삼중주를 일러 도(道) 혹은 로고스라 부른다.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지 식의 시원에 점성술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 다. 저 무한한 별의 세계와 이 유한한 인간의 운명이 하나로 연결되다니, 이보다 더 경이로 운 일이 어디 있으랴. 이로써 알 수 있는 바, 인간은 원초적으로 로고스적 존재다. 로고스는 말지성진리로 번역되는 낱말 이다. 앎 혹은 지혜라 번역해도 무방하다. 말 과 지성, 말과 진리의 직접성을 보여주는 표 현인 셈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요한 복음) 이것이 기독교의 창조론이다. 여기에 따르면, 말씀이 곧 신이다. 말씀이 세상을 창 조했으므로. 신-말씀-창조, 이것이 로고스 를 둘러싼 의미망이다.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의 신화는 더 리얼하 다. “창조주는 빙산과 같았다! 그는 바위처 럼 침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빙산을 던 져 버리고 침묵을 깼다. 이 세상을 창조하고 싶은 열망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이 세상이 생겨날 지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이 창조되었 다.” 여기서도 말이 세상을 창조한다. 창조의 소리, 그것이 곧 로고스다. 로고스는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 사이를 이어주 는 교량이자 전령사다. 하여, 문명의 탄생 이래 인간은 천지의 모 든 것을 알고자 했다. 빅뱅에서 별의 탄생, 지 구의 심층, 세포와 DNA, 사회구성체와 역 사적 변동에 이르기까지. 왜? 그래야 자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저 별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고, 다시 그 별에 대한 앎이 생명과 존재의 비밀을 풀 게 해준다. 하여, 모든 점성술은 천문학이자 운명론이다. 음양오행의 상생과 상극, 그 생 극의 파노라마를 통해 운명의 지도를 그리는 사주명리학 역시 같은 패러다임에 속한다. 우주는 빅뱅 이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약 3만년쯤 전에, 처 음으로 자신에 대해, 또 자기를 낳고 거두는 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하여, 로 고스적 충동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자 의지 에 속한다. 문명은 이 로고스의 해방을 향해 달려왔 다고 해도 무방하다. 신화를 전승하고, 문 자를 발명하고, 책을 보급하고, 학교를 만들 고…. 좀 더 많은 앎을 좀 더 많은 인간들이 누 릴 수 있도록! 20세기를 장식한 모든 혁명의 비전 역시 궁극적으로 이 구호의 틀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마트폰이 우리 앞 에 도래하였다. 스마트폰은 앎의 모든 장벽 을 해체한, 그야말로 로고스적 의지로 충만 한 기술이다. 하지만 아주 역설적으로 현대 인들은 그 혁신의 동력을 망각해버렸다. 별을 보지도, 길을 묻지도 않게 된 것이다. 대신 에로스에 올인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성적 열기를 느낄 때만이 비로소 살 아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또한 인간적인 속성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렇지 않다! 에로스적 충동은 인간만의 고유 한 속성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도 다 공유하 고 있지 않은가. 그들과 달리 인간의 에로스

일러스트 강일구

고전평론가

로고스 욕구 덕에 문명 이뤘지만 스마트폰 발달로 ‘혁신 동력’ 망각 삶 편해진 만큼 에로스 충동 커져 ‘별그대’는 로고스 결핍된 드라마 남긴 건 현란한 이미지와 치맥 뿐 “로고스 없는 에로스는 허망” 증거

에는 고매한 가치가 담겨 있노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이를테면 쾌락을 전제하지 않 는 사랑, 타자와의 깊은 공감, 화폐 법칙을 벗 어나는 증여와 헌신 등등…. 맞다. 헌데, 그게 바로 로고스다. 앎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없 는 한, 사랑과 윤리가 오버랩되기란 거의 불 가능하다. 그때 사랑이란 화폐보다 더 지독 한 소유의 게임이 돼버린다. 로고스가 배제 된 에로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 지는 우리 시대 멜로가 잘 보여준다. 멜로가 그리는 사랑은 일종의 상품이다. 특히 여성들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주 는! 남자 주인공들의 신분이 계속 상승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벌 2세3세에서 왕황 제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외계인까지 강림해주셨다. 2014년 한국과 중국을 강타 한 멜로 ‘별에서 온 그대’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 날 지구에 불시착한 이 남자는 400살이 나 먹었음에도 무지막지한 동안에 꽃미남이 다. 늙음에 대한 경멸과 불멸에의 갈망을 한 눈에 집약한 캐릭터다. 거기다 초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 순간이동과 괴력을 발휘하 여 수시로 연인을 지켜준다.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일단 이 정도는 용서하기 로 하자.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단 이 남성에겐 네트워크가 없다. 시월드는 물론이고, 동업 자도, 친구도 없다. 이쯤 되면 외계인이 아니 라 전형적인 강남스타일 아닌가. 그래서인지 40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춘기의 첫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퇴행의 극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새로운 삶, 낯선 세 계와의 접속을 의미한다. 그때 로고스적 본 성이 요동치면서 아주 색다른 삶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퇴행적인 외계인을 소유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둘 다 ‘우주적 왕따’ 가 되는 수밖에. 내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참고 본 건 대체 ‘어느 별에서 왔을까’가 궁금해서였다. 비록 상상의 산물일지언정 하나의 별이 설정되면 그 별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끝까지 그

별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맙소사! 그냥 익명의 ‘별’에서 왔다니, 이게 말이 되나? 요 즘처럼 천문학이 만개한 시대에. 더 어이없는 건 여주인공의 반응이다. 외계 인이라는 걸 알게 되자, 처음엔 괴로워하다 가 결국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 아들인다. 거기까진 좋다. 그 다음엔 당연히 물어야 하지 않는가? 그를 낳고 길러준 별에 대하여. 그곳의 자연과 환경살림살이 등에 대하여. 하지만 여주인공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던 거다. 오직 그가 언 제부터 자신을 사랑했는지, 또 앞으로도 영 원히 사랑할 것인지 따위만 알고 싶어 했다. 솔직히 이건 여성에 대한 모독이다. 여성 들은 지적 호기심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지성은 에로스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건 가? 그래서인지 다른 멜로들에는 그래도 한 동안 회자되는 대사가 있었건만, 이 작품은 한중 양국에서 빅히트를 쳤음에도 그럴싸한 대사 하나 탄생시키지 못했다. 주인공들의 미모와 현란한 이미지, 그리고 ‘치맥’이 전부 란다. 그야말로 로고스적 결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별과 ‘그대’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대를 사 랑하면 별에 대해서도 알고자 하는 법.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자신과 이 지구에 대해서도 궁금하지 않다는 뜻인데, 만약 그렇다면 그 녀는 위태롭다! 자신에 대한 탐구 없이 타자 를 받아들인다는 건 결국 맹목과 충동으로 화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과연 그랬다. 외계인이 별로 돌아간 이후 그녀는 거의 파탄 상태에 빠진다. 울부짖고 부수고 미쳐버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진정 성이라 간주한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착각이 다. 일상을 내팽개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 지는 이가 대체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것은 중독이지 진정성이 아니다. 사랑이 진정 성을 가지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번뇌의 카오스 속에서 리듬 을 부여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로고스적 충 동이다. 그때 비로소 질문이 시작된다. 이 사랑의

원천은? 이 괴로움과 광기의 이유는? 그럼에 도 살아야 하는 근거는?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진리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인류는 이 로고스의 해 방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스마트 폰을 통해 그 뜻을 이루었다. 스마트폰 안에 는 인류가 도달한 최고의 지적 성취가 다 들 어 있다. 먼 곳을 가지 않아도, 장서각을 뒤지 지 않아도 손 안에서 다 접속가능하다. 그렇 다면 이제 모든 이들이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여행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스 스로 운명의 길을 열어가야 하지 않을까? 오 래 전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별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한다. 살아 있 을 땐 세상에 빛을 선사하고 죽어서는 자신 의 모든 것을 이 우주에 환원한다. 대표적인 예로, 초신성의 폭발이 이 지구를 만들고 생 명체를 만들었다. 그 폭발과 증여가 없었다 면 이 지구도, 우리도 없다. 고로 우리는 모두 별의 후예다. 당연히 우리들 존재의 심층에 도 ‘증여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프란치스 코 교황을 비롯하여 모든 영적 멘토들이 청 빈과 비움, 또 나눔을 강조하는 이치 또한 거 기에 있으리라. 또 별은 홀로 빛나지 않는다. 누군가 보내 는 빛을 반사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서로 가 서로를 반사하고 그 반사체들끼리 서로를 비추는 우주적 네트워크, 이것이 인드라망이 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 또한 그러하리라. 생 로병사란 결국 인연의 그물망 속을 헤쳐가는 것임을. 공자의 인(仁), 부처의 자비, 노자의 도(道)가 탄생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러니 ‘별에서 온 그대’를 기다리지 말고, 감히 알려고 하라! 아니 별이 선사하는 앎의 향연을 만끽하라! 그때 비로소 지금껏 한번 도 체험해보지 못한 삶의 길이 열릴 것이니. 고로, 로고스는 운명이다! 고미숙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공부와 밥과 우 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일기 3 종세트 달인 3종세트  동의보감 3종세트 등.


Column 29

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8>

소련 포로된 푸이 “거창한 이념은 사람 홀리는 도구일 뿐” 1945년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한 소련은 관동군 사령관에게 비밀문건을 보냈다. “만 주국 황제 푸이(溥儀·푸이)를 우리측에 인도 해라. 장소는 선양 비행장, 시간은 8월 17일 정오. 착오 없기 바란다.” 1945년 8월 16일, 압록강 인근의 폐광 창고 에서 만주국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다. 퇴위 를 선언한 푸이는 공포에 휩싸였다. 훗날 회 고록에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만주국 황 제 시절, 일년에 한 번씩 관동군의 안배로 지 방을 순시했다. 한번은 옌지(延吉)의 조선족 지구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전용 열차가 지 나는 곳마다 일본 헌병과 만주군들이 넘쳐 났다. 수행한 관동군 장군에게 이유를 물었 더니 토비들 때문이라고 했다. 토비가 뭐 대 단하기에 이렇게 많은 병력이 필요한지 의아 했다. 이 지역의 토비는 거의가 공산당이라 는 설명을 듣자 이해가 됐다.”

일본 관동군, 패전 직전 소련에 넘겨 연금된 푸이, 환심 사려 공산당 공부 스탈린에게 소련 잔류 요청했지만 내전 이긴 마오쩌둥쪽으로 송환돼 푸이는 잠시도 폐광마을에서 지체할 생 각이 없었다. 여자들을 떼어놓고 선양으로 향했다. 일년 후 황후 완룽(婉容·완용)이 옌지의 감옥에서 병사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선양 공항에 도착한 푸이 일행은 소련군과 조우했다. 동행했던 공친왕(恭親王)의 손자 가 기록을 남겼다. “일행은 푸제(溥杰·부걸) 와 처남 룬치(潤麒·윤기), 경호실장, 주치의 등 모두 9명이었다. 소련군은 휴게실에 차와 간 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너 희들은 우리의 포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소 련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지만 태 도는 정중했다. 의심이 많은 푸이는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먹기를 마치자 비행기 있 는 곳으로 안내했다. 붉은 별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소련 비행기였지만 자세히 보니 미국 의 더글라스가 만든 항공기였다. 뭐가 뭔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신해혁명 이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관동군이 우리 를 소련측에 팔아 넘겼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무슨 피곤한 일들이 벌어질지, 생각 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농촌 풍경은 평화로웠다.” 푸이의 첫번째 기착지는 치타(러시아 남

만주국 황제 시절, 일본군과 만주국 대신들에게 둘러쌓인 푸이(계단 가운데 안경 쓴 사람). 1933년 가을 만주국 수도 신징(新京. 지금의 長春).

동부 도시)였다. 공항에 도착하자 중국인이 다가왔다. 푸이는 깜짝 놀랐다. “장제스(蔣 介石·장개석)가 나를 인수하러 보낸 사람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중국계 소련인이었다. 세상천지에 중국인이 없는 곳은 없다는 생 각이 처음 들었다. 포로생활은 그런대로 지 낼만했다. 철조망 안이었지만 단독건물에 거주하며 중국에서 함께 온 일행들의 시중 을 받았다.” 소련측은 푸이의 수중에 엄청난 보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증받기 위해 무 던히 애를 썼다. 그럴 때마다 푸이는 조상들 이 남긴 유물이라며 딱 잡아뗐다. 대신 수용 소 소장이나 지역 사령관에게 비누와 치약을 자주 선물했다. 푸이의 선물을 받을 때마다 사령관과 소장은 희희낙락했다. 말이 비누나 치약이지 그 안에는 큼직한 다이아몬드가 박 혀 있었다. 푸이는 소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본론

저우언라이(周恩來오른쪽)는 푸이를 각별히 챙겼다. 1960년 1월 22일, 베이징 정치협상회의 접견실. 맨 왼쪽은 푸이의 숙부 자이타오(載濤).

과 레닌의 저술들을 구입했다. 포로로 끌려온 만주국의 대신장군들과 학습반을 만들었다. 특히 소련 공산당사는 밑줄까지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다.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

가 안 갔다. 동생 푸제를 붙잡고 푸념했다. “아무리 거창한 이념이나 소신도 결국은 다수를 홀리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 로소 알았다. 인간세상도 동물세계와 다를

[사진 김명호]

바 없다. 먹고 먹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 간 우리는 허구헌날 먹히기만 했다. 혁명파 들에게 먹혔고,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 와 장제스, 일본군에게 먹혔다. 지금 중국은 내전 중이다. 누가 이기건 우리는 살아남기 힘들다. 당장은 소련이 가장 안전하다. 소련 은 영국미국과 맹방이다. 이곳에 머무르다 기회를 봐서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자. 지금 내 손에는 엄청난 귀금속이 있다. 이것만 있 으면 나머지 삶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유모와 동생들까지 불러서 편하게 살자. 네 처는 일 본 여인이라 안된다.” 푸이는 혼자 남은 유모가 자살한 줄을 몰 랐다. 푸이는 스탈린에게 “소련에 머물고 싶 다”는 편지를 보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 동)과 장제스를 저울질하던 스탈린에게 푸이 는 안중에도 없었다.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 리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푸이의 송환 을 요청하자 스탈린은 승인했다. <계속>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두 눈 뜨고 놓친 국보급 유물

‘물건을 모르거든 금 보고 사라’는 속담이 있다. 좋은 물건을 사고 싶을 때는 이왕이면 비싼 것으로 사야 속지 않는다는 말이다. 문 화재급 유물에 걸맞는 격언이지만 세상사가 그렇듯 다 맞는 건 아니다. 거금을 들여도 좋 은 걸 못 얻는가 하면, 소액으로도 보물을 얻 는 때가 있다. 그래서 물건의 진심을 알아주 는 마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 설득 력을 얻는다. 1970년 대 초, 대구에서 삼국시대에 제작됐 다는 기마 인물형 토기 한 점이 나왔다. 목욕 탕 겸 여관을 하던 주인이 고미술품 중간 상 인에게 내놓은 매물이었다. 4세기 후반에서 5 세기로 추정되는 연대에 비해 보존 상태가 너 무 깨끗하고 도상이 독특해 대다수 전문가들 이 가품(假品), 즉 가짜라고 판단했다. ‘도기 기마 인물형 뿔잔’이라 이름 붙여진 이 토기 는 무장을 한 무사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높이 23.2㎝의 부장품이다. 좋은 물건이 나오면 첫째로 보곤 했던 호림

국보 제 275호 ‘기마 인물형 토기’. 가짜라는 오명 을 벗고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눈 밝은 이들의 노력 이 필요했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湖林) 윤장섭(92) 선생은 이 토기를 놓친 뼈 아픈 경험을 자신의 문화재 수집기록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 (눌와)에 털어놓았 다. “가격은 1650만 원이었다. 몇몇 전문가에 게 물어본 결과 가품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사지 않고 돌려보냈는데 나중에 대구의 수집가 이양선 선생의 손에 들어간 뒤 국보 로 지정되었다.”(44쪽) 객관적인 서술이지만 얼마나 애석한 체험 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국보급 유물을 1000 만 원대에 살 수 있었던 호기를 놓쳤던 것이 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뿔잔은 결국 진가를 알아본 서울의 한 화 랑 주인이 900만 원에 사들여 기탁 전시하게 되었다. 당시 한병삼(1935~2001) 국립경주박 물관장은 이 토기를 진품(眞品)이라 판단하 였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문화재 관계자들 을 설득해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도록 노력했다. 이 기상천외한 토기에 생명을 불어넣은 숨 은 인물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경북대 교수 를 지낸 국은(菊隱) 이양선(1916~99) 선생이 다. 국은은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 666점을 국 립경주박물관에 보내며 이 토기 소장자에게 청화백자교로를 주는 조건으로 함께 기증하

도록 유도했다. 한때 천덕꾸러기였던 이 토기 가 국보 제275호로 지정되기까지 이렇게 여 러 사람의 노력이 더해졌다.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하고 호림박물관을 일궈 한국 문화재 수호의 살아 있는 수장으 로 평가받는 윤장섭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전시회를 수 백 번 보는 것보다 제 주머니를 털어 미술작품을 한 점 사는 게 안목을 키우 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 있다. … 가품도 사보고, 고민하다가 세기의 명품도 놓쳐보았 다. 그래서 감식안만큼은 웬만한 학자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게 되었다.” 맹자(孟子)는 존구자명(存久自明), 즉 ‘오 래 되면 스스로 밝아진다’라 했다. 세상사에 정답이 없듯이 유물 수집에도 지름길은 없다. 제 스스로 살아가고 깊이 생각해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초역(超譯)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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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이응준 소설가

하나의 질문이 다른 여러 질문들을 껴안고 있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란 질문 안에 미움 과 희생과 후회와 용서 같은 질문들이 숨어 있듯이. 그러한 이치를 알면 인간과 세상을 보다 깊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향후 삶의 갈피갈피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를 일들이 꽤 될 것이다. 한 개인의 행로만이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 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가령, 상상해보자. 만 약 통일 대한민국이 실현된다면 주사파나 민 족해방론(NL)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 가? 언뜻 계산해보면, 북한이 소멸되면서 우 리 한민족 전체가 비로소 통일 대한민국이라 는 하나의 국가로 수렴됐으니 음으로든 양으 로든 저들이 존속될 리 없을 것 같지만 나의 견해는 영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일 대 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폭넓게 사고 를 칠 주체는 평소 우리가 자부심에 차 의지하

는 그 ‘민족’이라는 미신일 것이다. 그러니 민 족해방론자나 주사파와 같은 병든 민족주의 의 스페셜리스트들은 증발되기는커녕 더 독 한 변종으로 진화해 형형할 공산이 적잖다. 이는 민족이라는 무지에 대한 우리의 기질 과 착종된 우리 역사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본시 반도에서는 제노사이드가 자주 일어나 발칸반도가 저 지경이라지만, 전 세계에서 민족주의가 드세기로는 1등이 북한이요, 2등 이 남한인 것은 분명하다. 통일 대한민국에 서 차별당하는 과거 북한의 인민들은 외국인 들과 다문화적 요소들에 폭력을 일삼을 테 고, 과거 남한의 국민들은 그러한 혼돈에 신 경질적으로 반응하며 길을 잃기 십상일 것이 다. 통일 독일이 한참 그랬고, 우리는 그 수천 배의 하중을 견뎌내야 하리라. 민족이라는 개념은 대략 19세기를 거치면 서 서구에서 생겨난 국민국가(nation-state) 의 그 ‘네이션(nation)’을 일본인들이 ‘민족’ 이라고 번역하면서 동양으로 넘어온 것이다. 우리의 수많은 사회적 고질병들은 우리가 정 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연유

엇갈린 남북의 반일과 친일 강찬호 칼럼 정치 에디터 stoncold@joongang.co.kr

지금 동북아에서 노골적인 친일 행보로 국 제사회의 이목을 끄는 나라가 있다. 북한이 다. 지난 10일 김정은의 오른팔로 알려진 리 수용 북한 외상은 미얀마에서 기시다 후미 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 회담했다. 양국 외상이 만난 건 2004년 7월 이후 꼭 10년만 이다. 기시다는 북한에 납치됐거나 실종·사 망한 일본인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요구했 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여 다음달 초 조사 결과를 일본에 통보해줄 전망이다. 납치자 에 비해 실종·사망자 공개는 부담이 덜하다. 따라서 북한이 적지 않은 숫자의 실종·사망 자 내역을 전달하고, 일본은 화답 차원에서 만경봉호의 입항을 허가하는 등 대북 제재 를 추가 완화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북한의 ‘친일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 는다. 최근 일본 기자들을 잇따라 초청해 주 민들과의 인터뷰를 시켜주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주민들은 “일본과 잘 지내고 싶다” 는 말을 잊지 않는다. 또 일제 시대 북한에 서 살다 숨진 일본인(약 3만명)의 후손들도 초청해 조상이 묻힌 곳을 찾게 하고 있다. 이 장면은 동행한 일본 기자에 의해 일본 전 역에 전파된다. 이렇게 북일 간에 밀월이 이어지면서 일 본에선 뿌리깊던 반북 감정이 약화되고, 대 신 반한 감정이 위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도를 넘었다. 또 매일 신문지상을 장식해 온 북한 비판 기 사가 사라진 가운데 한국을 비난하는 기사 는 급증했다. 지난달 3일, 일본이 전격적으 로 대북 제재 조치를 일부 해제했다. 예전 같으면 “북한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이 쏟아졌겠지만 일본 조야는 잠잠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지율도 하락하지 않았다. 이처럼 일본인들의 반북 감정이 묽 어진 데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남북의 대응 차이도 작용했다고 한다. 아베의 과거사 망언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한국은 강도높은 비난성명을 내며 반발했지만, 북한은 상대적으로 잠잠 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항일 빨치산이 세 운 한민족의 ‘적통국가’라고 강조하는 북 한이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가장 반한(反

민족이란 비과학적 환각서 깨어나 민주공화국 국민임을 자각 못하면 통일 대한민국에서의 공존은 난망

한다. 우리가 고작 말만 똑바로 해도 필경 좌 파니 우파니 하는 개와 고양이 싸움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왜냐. 최소한 자기들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저 ‘날라리’에 불과하다는 사 실만큼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대로라면 저 중동의 수니파와 시아 파처럼 우리가 통일 대한민국 안에서 서로를 학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인간은 자신 이 정의로워서 으르렁댄다고 착각한다. 천만 에. 우리는 욕망 때문에 물어뜯고 무식해서 원한을 갖는다. 우리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민족이란 기실 종족인 셈인데, 이것 역 시 민족처럼 매우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해외 만평

망상에 불과하니 순결한 겨레라는 것은 말짱 새빨간 거짓말이다. 순결한 척 하는 것들은 다 악마의 자식임을 세계사는 증명한다. 민족국가라는 것은 곧 국민국가로서 누구 든지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누리면 주권국 민이 될 수 있는 나라다. 공상과학 소설가이 자 문명비평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는 “우리 의 진정한 민족은 인류다”고 갈파했다. 우리 는 세계인으로서 국민이 돼야 한다. 우리는 민족이란 허구를 감상화해서 몰핀을 맞고 있 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들 아무렇 게나 사랑하고 쉽게 미워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증오와 비합리로 연명하 며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우리가 아직 온전한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비롯 된 연옥인 것이다. 제 이념과 이득을 악쓰기 전 에 우리들 각자는 스스로 근대인이 맞는지부 터 되돌아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직 현대국 가는커녕 근대국가조차도 아니다. 그리고 그 것은 그 나라의 주인이라는 우리들 자신 때문 이다. 우리의 불행이 우리에게서 말고 다른 데 서 왔을 리 없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다면 장차 해일처럼 닥칠 통일 대한민국은 기 껏 연옥이 아니라 당연히 지옥일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민족이 아니라 국가다. 요 컨대 민족과 같은 환각에서 깨어나 국가라는 과학을 자각하는 데 있다. 우리는 찡얼대는 가족이 아니라 무책임을 경멸하는 민주공화 국의 국민이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국가의 정신은 종족주의라는 낡은 단지 안 에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술을 만들기 위한 효모다”라고 했다. 국가라는 질문 속에는 현 재의 우리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질문들이 너 무 많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우리는 우리의 이 사회과학적 무명(無明)을 정직하게 직시해 스스로를 치료하고 재활해야 한다. 끔찍한 소리지만,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한 국가 안에 서 함께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이 전 혀 없는 시간이 벌써 가까이 와 있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 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못 다 쓴, 그러나 계속 써야 할, 펜은 칼보다   이라크 반군의 미국인 기자 참수가 미국의 강경 대응 촉발.

韓)적인 아베와 손잡는 모순을 보인 셈이다. 북·일의 밀착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한·미·일 공조를 약화시키고, 아베의 우경 화 행보를 도와주는 부작용이 크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사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친일’을 해온 나라다. 2002년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총리와 합의한 ‘평양선언’에 서 북한은 배상 대신 1965년 한국이 일본과 수교하면서 확보한 ‘청구권’을 보장받는 데 그쳤다. 일본이 동의해줄 가능성이 없는 배 상을 고집하는 대신 수십억 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얻어내는 게 실리적이라고 판단했 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립과 빈곤을 돌파 하려면 일본과 손잡는 게 살 길이란 인식에 서 김정은은 아베와 밀착하려는 것으로 봐 야 한다. 말로는 항일의 선봉임을 떠들면서 도 외교만큼은 현실주의 노선을 걷는 게 북 한이다.

©CLEMENT/Cartoon Arts International www.cartoonweb.com

독자 옴부즈맨 코너

우리가 일본과 냉각 유지하는 새

모바일 버전 지면보기 기능 뉴스 이해에 큰 도움

북한, 제재 해제 노리고 급속 ‘친일’ ‘감정외교’ 연장은 국익 도움 안돼

문제는 우리 정부다. 친일 프레임이 두려 워선지 동북아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국익 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만남마저 피하고 있 다. 정상회담이야 열기 어렵다고 치자. 매년 7~8번씩 만나온 한·일 외교장관이 박근혜 정부 1년 반 동안 딱 3차례, 그것도 다자 외 교무대에서 짬을 내는 형식으로 만난 건 위 험 수준이다. 양국간엔 과거사 외에도 현안이 많다.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한·중·일 원자력 안전협의체나 일본이 제안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이 대표적이다. 이런 화 두를 놓고 양국 장관이 자주 얼굴을 맞대야 위안부 문제 해법을 도출하고, 북일 밀착에 제동을 걸 동력도 생기지 않겠는가. 야당에 서도 “대일 감정 외교의 무익한 연장은 결코 국익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 오는 이유를 정부는 깊이 따져봐야 한다.

‘비바 포프’ ‘비바 포프’…. 말 그대로 열광 과 흥분의 도가니였던 것 같다. 가톨릭 신자 가 아닌 나도 살포시 눈물을 흘렸음을 반추 해 볼 때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전해진 교황의 모습은 뭇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 했다. 그런 점에서 메인 뉴스는 물론 와이드 샷까지 활용한 중앙SUNDAY의 지면은 독 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막강하 지만 위험한 ‘직업’으로 소개한 교황 기사 도 ‘세속과 신성 사이’라는 머릿글처럼 정 말 어렵고도 험난한 자리임을 절실히 보여 준 의미있는 기사였다. 교황 방한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대통합이 이뤄지고 대한민국 의 앞날에 희망만 가득했으면 하는 염원에 “Pope is the Hope”라고 외치고 싶다. 18일 만에 관객 1362만명을 돌파한 영 화 ‘명량’ 뉴스는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표 와 함께 관객이 극장에서 포스터를 바라보 고 있는 사진까지 실으며 전면에 배치한 점 이 돋보였다. 사실 문화 뉴스는 S매거진에 실릴 수도 있고 후면에 나올 경우가 많았는 데 그만큼 커다란 뉴스라는 반증인 듯싶다.

‘RO 내란음모 무죄’ 항소심 판결로 본 음 모죄에 관한 기사도 중립성을 유지한 가운 데 일반인들도 읽다 보면 수긍이 가게 하는 차별화된 뉴스로 다가왔다. 재미난 칼럼들도 눈에 띄었다. 요즘 어렵 게만 여겨졌던 수학이 ‘빅데이터’ 열풍을 타 고 관심을 모으는 상황에서 김대수 교수의 수학어드벤처 기고는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실례로 퀴즈까지 곁들여져 흥미롭게 읽 을 수 있었다.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이 쓴 ‘한국 영화의 힘’이란 칼럼도 외국인의 입 장에서 한류 열풍에 대한 체감을 가감없이 기술했다는 점에서 곱씹을 만했다.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에선 올 상반기 에 113억원을 받은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에 대해 다뤘는데,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꿈 꿔볼 만한 입지에 올랐지만 그만큼 도전도 많이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과에 따른 확실한 보수 뒤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는 기업 경영의 생존 본능도 절실히 보여줬 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 사였다.

아울러 오랜만에 앱에 접속해 모바일을 통해서도 중앙SUNDAY를 봤더니 온라인 기사 아래 지면보기가 링크돼 있었다. 사실 온라인 뉴스로만 접하다 보면 이 기사의 크 기가 어느 정도인지, 면 배치는 어떻게 된 것 인지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적 절한 링크 하나를 통해 기사를 읽는 맛 또한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늘 고민하고 한 발 앞 서 가려 노력하는 중앙SUNDAY의 모습이 엿보인 사례라 하겠다. 이제 곧 개학 시즌이고 직장인들의 여름 휴가도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올 하반기는 이미 시작됐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리 셋’했으면 좋겠다. 중앙SUNDAY도 보다 다양하고 참신한 기사로 독자들에게 다가 가길 기대해 본다. 최민수 13년간 건설회사·자동차회 사 등을 거치며 홍보맨으로 활약했 다. 현재 CJ그룹 홍보실 부장으로 근무 중이다.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신문 읽기가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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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현대판 징비록을 써야 하나

황정근의

시대공감

200년 간격 나타난 정도전류성룡 나라 세우고 나라 구한 참된 리더 지금 한국 위기, 임진왜란에 버금 목숨 바쳐 나라 일으킬 리더 절실

변호사

학창 시절 역사를 공부할 때 연도를 암기 해야 했다. 그때 외운 것 중에 ‘조선 건국 1392년, 임진왜란 1592년’이 있다. 200년 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역성혁명과 임진왜란은 격동의 시기였기 에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다루어졌다. 올 해의 대하드라마 ‘정도전’과 10여년 전의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은 보는 재미가 있었다. 최근 영화 ‘명량’은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 멸에도 열광했다. 나라를 세운 사람이나 나라를 구한 사람을 조명함으로써 이 시 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울 지도자에 대 한 국민적 여망과 갈망을 대변한 것이 이 들 작품의 성공 비결이다. 우리는 대한민 국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 상(像)이 우리 역사 속에 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가져 도 좋다. 1392년 창업 후 수성(守成)과 경장(更張· 개혁)을 게을리 한 조선은 정확히 200년 후 에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았다. 창업 주역이 자 조선 500년의 기본 틀을 설계한 삼봉 정 도전이 1342년에 태어났고, 임란 극복의 주 역인 서애 류성룡이 태어난 것은 200년 후 인 1542년이다. 역사란 참으로 오묘하다. 임란 직전에 걸출한 인물 이순신의 인품과 그의 준비된 능력을 알아보고 천거한 이가 바로 서애다. 중대장급을 장군으로 임명한 파격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순신도 없 었고 조선도 없었다. 옛말에 명마(名馬)를 직접 구하기보다 명 마 감별 능력을 가진 ‘백락’(伯樂)을 찾으 라 했다. 서애는 이순신이라는 탁월한 명마 를 발굴한 백락이었다. 역사는 200년 시차 를 두고 나라를 세운 사람과 나라를 구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낸 것이다. 임금의 자질은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모 든 일을 통괄하고(宰) 임금을 도와서 바 로잡는(相) 재상이 국정을 주도해야 한다 는 소신을 펴던 삼봉은 1398년 왕권 강화 를 노리는 이방원에게 일격을 당했다. 다시 200년 후인 1598년, 이순신은 철수하는 왜 군을 노량 앞바다에서 가로막고 한 놈도 살 려보내지 말라고 독전하다가 전사한다. 이 순신이 불멸의 별이 된 바로 그날 임금은 영의정 류성룡을 파직한다. 전쟁 승리의 영 웅들이 사라진 조선에는 무책임하게 먼저 도망갔던 옹졸한 임금만 남았다. 낙향한 서

애는 1604년까지 회고록 징비록(懲毖錄) 을 썼다. 최근 징비록을 다시 읽어보았다. 징비 는 지난 일을 징계하여 환난을 경계한다 는 뜻이다. 그 서문은 읽을수록 비장하다. “아아, 임진년의 재앙은 참담하였다. ··· 나 같은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떠받치지 못하였으니 그 죄는 죽어 도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 근심과 두려 움이 조금 진정되어 지난날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나라를 세운 사람이나 나라를 구한 사 람의 특징은 무엇일까. 애국심과 판단력과 겸손함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다. 특히 사 람을 볼 줄 안다. 리더는 특히 위기의 시기 에 빛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백성에게 희 망을 주고 비전을 제시한다. 멸사봉공과 유 비무환의 정신에 투철하다. 멀리서 바라보 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따뜻하 며, 그 말을 들어보면 합리적인, 인품의 지 도자다. 40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현대판 징 비록을 다시 써야 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이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극한 대립의 데드 락(deadlock) 정치, 경제성장의 둔화, 소득 분배의 악화, 저출산·고령화, 과도한 규제, 사회갈등의 확대, 불안·불만·불신의 심화, 사회안전망의 부족, 민간·국가 채무의 증가 등의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강의 기적 이 멈춰버릴 수도 있다. 국가의 운영 방식과 사회 구조 및 사고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이 제 죽는다는 절박감을 가져야 한다. 이번에 는 정말 달라야 한다. 모두의 눈빛부터가 달 라져야 한다. 급기야 국가혁신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 는 쉽게 말하면 ‘제대로 된 나라 만들기’ 다. 정치의 정(政) 자는 발걸음이 목표를 향해 똑바로 가도록 채찍질한다는 뜻이 다. 그 목표란, 첫째는 내·외부로부터 백성 을 지켜내는 것, 둘째는 백성을 배불리 먹 여 살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 금은 국민을 지켜내고 국민을 잘 살게 하 는 데 목숨마저 거는 자세로 일하는 지도 자, 바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 필요한 때다. 국민들이 제대로 된 ‘민생 큰 물결’을 일으키는 정치 지도자를 고대하는 이유다.

사면초가 러시아 이리나 코르군 한국외국어대 교수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무대에 서 러시아가 보여준 모습은 맞제재로 대응 하는 ‘강한 러시아’다. 하지만 러시아의 속 사정이 의도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내심 바 짝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러시아는 경제제재가 금융 분야로 확대 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기업들은 유럽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물론, 유럽 의 은행들에 예치한 자산마저도 동결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2000년 대 들어 러시아 경제가 급속히 성 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유럽 금융시 장에서 자본을 빌려 경제발전에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이런 식의 자 금조달이 불가능해져 국내 자본을 동원해 야 하는 데, 그게 넉넉하지 않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부와 기업들은 유럽 이외의 지역 에서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분주하다. 러시아 정부는 국내외에서 자본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증세도 그 중 하나다. 고소득을 올리면서도 돈을 잘 풀 지 않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걷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경제활 성화를 위해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대 해 과세를 하겠다는 것과 유사한 취지다. 러시아 내에서는 증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내수시장이 아직 경제를 떠받칠 만큼 성장 하지 못했고 중산층도 두텁지 않아 자칫 증 세가 내수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 다. 이럴 경우 결국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 들과 유통업체들은 생존을 위협 받을 수 있 다.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는 조만간 더욱 힘든 상황을 맞게 될 것이고 이 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소비자들 이 상당수다. 이에 증세까지 거론되는 상황 이 되자 소비자들은 더욱 지갑을 닫을 것이 뻔하다. 자칫 악순환의 고리에 물려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자본의 해외 유출에 대해서 도 민감하다. 자본 유출은 소련 붕괴 이후 지

속됐고 이는 러시아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 용해왔다. 이를 해결한다면 경제발전을 위한 자본 동원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쉽지 않 은 문제다. 엄격한 규제를 통해 자본 유출을 막으려 한다면 1990~2000년에 걸쳐 이룬 규 제완화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러시아 대기업들은 당장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의 몇몇 대기업들은 자산을 이미 유 럽의 은행에서 아시아 지역 은행으로 옮기 기 시작했다. 아시아가 예전과 달리 만족할 만한 비즈니스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어 오 히려 러시아 기업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 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방의 제재를 우려한 러시아 기 업들이 대거 자산을 아시아 쪽으로 이동시 킬 경우 심각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아시 아의 새 파트너들과의 협력은 모험이 될 수

서방 경제제재, 금융 분야로 확대 돈줄 막히고 자산도 동결 당할 위기 아시아서 출구 찾지만 쉽진 않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투자는 적어도 5~10년 동안 비즈니스 거점을 유지해야 성 과를 낼 수 있다.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가뜩이나 부족한 자금이 묶이는 꼴이 된다. 지금처럼 러시아 기업들의 탈유 럽이 가속화될 경우 아시아는 유럽 역할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성공 여부는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러시아 정부 내에서도 새 파트너 모색과 협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에 근거를 둔 오랜 경제 파트너를 잃는 것뿐 아니라 아시아의 새 파트너와의 협력 을 통한 시너지 창출도 자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지도자들에겐 선 택의 폭이 크지 않다. 지금껏 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리스크에도 불구, 별다른 해법이 없는 것이 러시아의 현주소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의 국제경제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 외대 러시아연구소의 HK연구교수로 부임했다.

말말말

On Sunday

아저씨들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사회

“얼음물 뒤집어쓰기 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AP통신, 21일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지목받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기부만 하겠다고 밝 힌 데 대한 기사 중에서.

이상언 사회부문 기자 joonny@joongang.co.kr

퇴근 중 한적한 길을 걷는다. 앞서 가던 여 성이 힐끗 뒤돌아본다. 나는 발걸음의 속도 를 늦춰 부러 거리를 늘인다. 엘리베이터 앞 에서도 자주 주춤거린다. 젊은 여성과 단 둘 이 타게 되는 상황은 되도록 피한다. 뒤따르 는 ‘아저씨’를 향한 상대의 경계심에 대한 일종의 배려다. 이런 염려는 과연 기우인가. 물어보지 않으니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아 마 아닐 것 같다. “언제부턴가 아저씨로 살기가 더 피곤해 졌다”는 이들이 있다. 공연히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지하철 에서는 가급적 젊은 여성의 옆자리는 피한 다. 술에 좀 취했다싶으면 대중교통은 이용 하지 않는다. 거리에서의 ‘눈길’도 조심한 다. 잠시 바라본 대상이 옷매무새를 고치는 순간 내 시선의 불온성 여부를 스스로 따져 본다.

다른 아저씨들 탓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 다. 밤 거리를 헤매고 다닌 검찰 간부, 인턴 직원에게 몹쓸 짓을 한 고위 공직자, 여제자 를 겁탈한 명문대 교수가 원흉으로 떠오른 다. 그들은 모두 한 순간에 지킬 박사에서 하이드로 돌변했다. 본디부터 괴물은 아니 었다고들 한다. 현실에서 멋진 아저씨는 별로 없다. 영화, 특히 외국영화에는 종종 출몰한다. 공통된 특징의 하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순수함 이다. 한국 아저씨들이 좀처럼 갖기 어려운 특성이다. 집합명사 ‘아저씨’에 속하기 싫은 이유 는 또 있다. 거짓말쟁이들 때문이다. “희생 과 봉사”를 목놓아 다짐한 선량(選良)들이 탈 난 뒷돈에 대해 온갖 변명을 하다가 이리 저리 도망친다. 바른 말 열심히 하던 방송사 앵커 출신은 과거에 소유했던 아파트에서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고 인사청문회에서 얘기한다. 나름 점잖은 분들이 갑자기 욕망에 사로 잡힌 맨 얼굴을 들이댄다. 심리학자 카를 융

이 말한 ‘페르소나(가면)’가 벗겨진 상황이 다. 내내 보여줬던 ‘사회적 인격’이 허물어 지고 가면 뒤에 도사리고 있던 어두운 이면 이 드러난다. 인격에 대한 타인들의 기대를 크게 받 을수록, 즉 가면을 써야 하는 시간이 길수 록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발동할 가능성 이 크다고 배운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나 또한 위험군에 속하는 걸까. 점잖음까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 는 직업집단에 포함돼 있다(또는 그렇게 믿는다). 가면을 벗어서는 안되는 때와 장소에서 민낯 노출의 욕구가 분출하지 않도록 하려 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가끔씩 ‘솔 직한’ 자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심리학자들 은 말한다. 아저씨들에게는 술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 술이 종종 ‘가면 이 탈’의 일탈을 부른다. 결국 어찌할 도리없 이 이렇게 다짐과 호소를 동시에 한다. 동료 아저씨들이여, 모두 함께 정신줄 놓지는 맙 시다.

“인간적 슬픔 앞에선 중립적이 될 수 없다” 18일 프란치스코 교황, 귀국 전세기에서 “방한 기간, 중립을 위해 세월호 추모 리본 배지를 떼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하며.

“서로 장난을 치던 과정에서 다친 것” 여자친구에게 고소 당한 한류스타 김현중(28)이 23일 자신의 매니지먼트 회사를 통해 낸 자료에서 폭행혐의를 부인하며.

Numbers

만원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 1년 전에 비하면 2.8% 늘어난 데 그쳐 5.0%가 늘었던 1분기에 비해 소 득증가율이 둔화됐다. 가구당 평균 지 출은 월 325만 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 비 3.1% 늘었다. 저축능력을 보여주는 흑자액은 90만3000원으로 전년 동기 에 비해 2.2%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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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호 2014년 8월 24일~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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