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② 시장설계자 앨빈 로스
“경제학은 미래 예측 학문 아니다” News 3p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다음 달부터 변경되는 이혼 소장 제도
누구 위한객관식 이혼인가 논란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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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0p
“러 탱크가 민간인 가옥 파괴” 우크라, EU에 적극 대응 촉구 러는 군사개입 부인 NYT “반군, 남부 요충지로 진격”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우크라이나 내전 남부로 확전 ※반군 장악 지역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무력 충돌하고 있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의 전선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반군은 남동부 소도시 노보아 조프스크를 점령한 데 이어 크림반도와 연결되는 길목에 있는 인구 50만의 전략요충지 마리우폴을 노리고 있다. 사진은 정부군 병사가 지난 29일(현지시간) 장갑차를 타고 동부 도 네츠크주 데발트세베에서 이동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뉴스1]
16년 뒤엔 전국 지자체 10곳 중 4곳 55세 이상 주민 절반 넘는 ‘관심 지자체’ 이수기 기자차길호 인턴기자 retalia@joongang.co.kr
앞으로 16년 후인 2030년께 국내 주 요 지방 대도시들도 노인 마을로 바 뀌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기초자 치단체 중 군(郡)지역이 노인 마을의 상징이었다. 지역 젊은이들은 대도시 로 이주하고, 시골 고향에는 노인들 만 남아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 는 적막한 모습이 이런 마을의 풍경 이었다. 하지만 2030년께는 주요 지방 대도시들도 고령화의 파도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구센터(센터장 김순은 교수)는 최근 ‘유형별 지방정부의 고령화와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 를 통해 2030년께 전국 226개 기초 자치단체(통합 창원시·세종시 등 제 외) 중에서 55세 이상의 장년 인구 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 는 곳이 89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 다. 이는 조사대상 226개 기초지자 체의 39.4%에 달하는 것으로, 이 중 광역시에 속하는 기초지자체도 부 산시 중구·서구·동구·영도구, 대구
시 서구, 광주시 동구 등 6곳이, 시 (市) 지역인 기초지자체도 17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지역 내 65세 이상의 고 령 인구가 총인구의 50% 이상을 차 지해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곳을 ‘임계지방정부’로, 55세 이상의 장 년 인구가 총인구의 50% 이상을 차 지해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 는 곳을 ‘관심지방정부’로 규정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서 조사 65세 이상 반 넘는 곳 16개 인구 2만 미달도 27개 달해 지자체 시스템도 변화 필요 이번 연구에서 2030년이 되면 임계 지방정부는 16곳이지만 관심지방정 부는 73곳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를 주도한 서울대 김순은 교수 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가 심 각해지면서 임계지방정부의 전 단계 인 관심지방정부가 크게 늘어날 것” 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고령화 관련 연구는 국가 전체나 시·도 같은 광역지방자치단
체만을 대상으로 고령화율(전체 인 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을 추론 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지만 전국의 모든 기초지방자치단체 전체를 대상 으로 조사해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 음이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인구 예측을 위해 ‘H-P 기법’을 활용했다. 이 기 법은 1960년대 미국의 인구학자인 해밀턴과 페리에 의해 고안된 것으로 기초지자체와 같은 소규모 지역의 인 구추이를 예측해 내는 데 유용하다. 조사 결과 2030년께 전국에서 고 령화율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된 곳은 경북 군위군이다. 2010년 기준 고령화율 39.4%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던 군위군은 16년 후 이 비율이 68.1%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고령화율이 전체 인구의 7% 를 넘지 않아 비(非)고령사회로 분류 되는 곳은 현재 신도시 조성이 한창 인 경기도 화성시(6.6%)가 유일할 것 으로 조사됐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로 현행 지방자치법상 읍(邑) 설치 기준인 인 구 2만 명 선이 무너지는 지자체도 충 북 보은군과 강원 양양군을 비롯해
27곳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인구 2만 명이 안 되는 지자체는 경북 울릉군과 영양군 두 곳뿐이다. 한국의 고령화가 경쟁국들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도 큰 부담이 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 상 인구 비율은 2010년 11.3%(전체 인구 4799만 명)였지만 2030년에는 23.1%(4763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 측됐다. 이웃 일본은 2010년 22.7%에 서 2030년 30.3%로 예상됐다. 같은 기간 미국은 13.1%에서 19.9%로, 중 국은 8.2%에서 16.5%로 고령화율이 올라갈 것으로 전망됐다. 김 교수는 “아직 일본보다 고령화 정도는 낮지만 문제는 다른 나라들 보다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도 이제 본격적 으 로 나타나 는 ‘고령사회 위기 (aging risk)’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구구조 가 바뀌고 있는 만큼 지자체의 역할 과 지자체 운영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는 물론 젊은 노동력 확보를 위 해 이민 문호를 넓히는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관계기사 4~5p
S Magazine 추석 합본호
융복합 사상 담긴 최치원의 풍류
‘풍류’란 본래 ‘술 먹고 노는 행위’가 아닌, 유·불·선을 통합하는 정신 문화 의 원형질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마련한 ‘최치원-풍류 탄생’전은 ‘풍류’라는 말을 처음 쓴 고운 최치원(857~909?)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긴다. 각 예술 분야 작가 38명이 ‘풍류’에 연관된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국경을 넘어온 러시 아 군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이어 지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군 당국이 주장했다. 안드리 리셴코 우크라이 나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30일(현 지시간) “러시아 탱크가 국경을 넘어 루간스크 인근 노보스비틀리브카 를 공격해 거의 모든 가옥을 파괴했 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 다. 국방안보위원회도 트위터를 통 해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의 직접적 인 군사공격이 행해지고 있다”고 주 장했다. 브뤼셀에서 열리고 있는 유 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금 우크라이나에는 수 천 명의 외국군과 수백 대의 외국탱 크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 러나 러시아는 이에 대해 군사개입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전선은 동부에 이어 남부로까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친러시아 분리 주의 반군은 최근 남부 소도시 노보 아조프스크를 점령한 데 이어 전략 적 요충지인 마리우폴로 진격하기 시 작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9일 전했다. 인구 45만의 마리우폴은 노 보아조프스크에서 서쪽으로 30㎞ 떨 어진 아조프해 연안의 항구도시다.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육로로 이어주 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우크라이 나 영토였던 크림은 지난 3월 러시아 에 합병됐다. NYT에 따르면 노보아조프스크 의 반군 지도자는 “우리는 마리우폴 을 점령할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남동
6월 18일
루간스크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일료바이스크
정부군 200명 이상 포위된 상태
러시아
마리우폴 우크라이나
베지메네 노보아조프스크
크림반도
자료:워싱턴포스트·BBC
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 다”고 말했다. 반군은 ‘노보로시야 (Novorossiya·새로운 러시아라는 뜻)’라는 깃발을 달고 다니고 있다. 분리주의 친러 반군의 공세가 거세 지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게 무기와 병 력을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서 방의 대응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 국·덴마크·네덜란드·노르웨이 등 나 토 7개 국가들은 1만 명 규모의 신속 대응군을 창설키로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 다. EU 정상들은 30일 러시아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은 “제재는 러시 아가 우크라이나를 불안정하게 만들 지 못하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말했 다.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EU의 강력한 대응을 호소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민간 화물기 한 대가 30일 아프리카 알제리 남단 타 만라셋주 산악지대에 추락했다고 외 신들이 보도했다. 사고기는 타만라 셋 공항에서 승무원 7명을 태우고 이 륙했으나 3분 만에 교신이 끊겼다.
정부, 러시아와 공식 접촉 금지령 우크라이나 사태 감안, 인적 교류 제한 조치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이 본 격화되면서 정부는 러시아에 대해 인적 교류 제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정부 관리나 여 당 국회의원들이 한국을 찾은 러시 아 당국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나지 않게끔 지시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대러시아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 책 임자들이 정보수집 차원에서 비공식 적으로 접촉하는 것 외에는 러시아 와 정부 차원의 공적 접촉을 사실상 끊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외 교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직 간접으로 연관된 러시아 당국자들과
의 접촉을 피해 달라고 서방 국가들 이 정부에 권유(recommendation) 를 해왔다”며 이 같이 전했다. 정부 소식통은 “정부는 박근혜 대 통령의 역점사업인 나진-하산 프로 젝트 등 러시아와 기존에 진행해온 경협은 모두 유지하되 신규사업 확 장이나 서방기업들이 제재에 동참 하며 이탈한 영역을 차지하는 ‘백필 (backfill)’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기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지 난 27일 “원칙적으로는 동참해야 하 지만 무조건적으로 대러 제재 조치 에 참여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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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장악 지역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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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사설
Inside
9월 정기국회도 공전시킬 건가
Focus
김우중과의 대화 신장섭 교수가 말하는 대우 사태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대우그룹 해체 15년 만에 마음에 담아뒀던 얘기를 쏟 아냈다. IMF 처방에 대한 반감, 세계경영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골자다. 책을 함께 낸 신장섭 교수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8p Focus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브리티시 인베이전 출발점 소호 1964년 영국 록그룹 비틀스가 미국 순회공연에 나서면서 시작된 ‘브리티 시 인베이전’가 올해로 50주년을 맞 았다. 영국 록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명소들을 찾아가 한 시대를 풍미한 록음악의 원류를 음미해 본다. 14p Focus
Money
박원순이 말하는 요즘 정국
현금이자 제품, 상품권의 두 얼굴
730 재보선에서 야권의 대권 잠룡 ‘가장 받고 싶은 명절 선물’ 조사에서 들이 침몰하면서 블루칩으로 떠오 항상 1등을 차지하는 상품권. 한 해 른 박원순 서울시장. 최근 2주 연속 10조원씩 풀리며 소비 욕구를 자극하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1위에 올랐 지만 통화량 집계에서는 제외된다. 현 다. 재보선 이후 신문에 처음 입을 금의 속성을 가졌으면서도 어엿한 상 연 박 시장에게 2기 시정 구상과 현 품이기 때문이다. 상품권의 두 얼굴 정국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7p 을 살펴봤다. 18~19p Economy
Column
작지만 강한 녀석들이 몰려온다
김미경의 마이웨이
덩치는 작지만 한결 힘세진 녀석들이 스물한 번째 퇴직 준비하는 남자 한국 시장으로 몰려온다. 소형 스포츠 ‘오늘 21번째 회사로 옮겼습니다’. 나 유틸리티차량(SUV) 얘기다. BMW나 이 쉰이 돼서도 SNS에 이런 문구를 포르셰 같은 고가 브랜드들도 SUV 시 적고 있는 남성이 있다. 대기업 사원 장에 눈독을 들인다. 실속형 소비 성 으로 출발해 식당·학원까지 안 해 본 향이 강한 베이비부머들이 SUV에 갖 일이 없는 김명섭씨. 그에게 경쟁력 강화 비결을 들어본다. 24p 는 관심도 커지고 있다. 21p
클릭 SUNDAY 지난주 온라인 5 1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자신감으로 온라인에 새 바람 오프라인 세상도 바꿀까 2 불신 늪에 빠진 부산 갈매기, 프로야구 4강 경쟁서도 밀려날 조짐 3 소련 포로 된 푸이 “거창한 이념은 사람 홀리는 도구일 뿐” 4 ‘바바리맨 증세’ 큰 망신당해도 재발률 높아 5 여당 “의회 입법권 침해” 유족 “수사·기소권 필수 아니다”
내일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하지만 늦더위 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정국 때 문에 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 정의화 국회의장 이 1일 정기국회 개회식 소집 공고를 냈고 새정 치민주연합도 개회식엔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의사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기 만 하다. 이러다가 정기국회마저 그저 공전되 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파행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7 월에 이어 8월 임시국회도 단 한 건의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끝났다. 특히 ‘방 탄국회’라는 비판 속에 새정치연합의 요구로 지난 22일 소집됐던 열흘짜리 8월 국회는 본회 의 한 번 열지 못했다. 25일부터 별도로 진행하 겠다던 국정감사는 흐지부지됐고, 2013년 회계 연도 결산안도 이달 말 법정 시한을 넘기게 됐 다. 증인 채택 논란만 거듭하던 세월호 국정조 사 특위 역시 청문회조차 열지 못하고 종료됐 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130여 건의 민생법안을
외면한 채 세월호특별법 공방 속에 그냥 시간 만 보내고 만 것이다. 지난 5월 8일 나란히 취임 한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 대표는 “고작 한 일이 넉 달 가까이 ‘입법 제로’ 의 빈손 국회를 방치한 것뿐이냐”는 비난을 받 아 마땅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정기국회마저 파행으 로 이어질 경우 ‘불능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세월 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와 유가족의 대타협이 시급하다. 정국 최대 현안인 세월호 문제가 풀 려야 원만한 국회 운영도 담보될 수 있기 때문 이다. 때마침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하고 새누리당 지도부와 유가족 대표가 마주 앉으면서 타결의 물꼬가 트이는 모양새 다. 어렵사리 조성된 협상의 불씨를 제대로 살 려내 국회 정상화라는 열매를 맺는 것은 여야 정치권의 몫이자 책무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 모두 한 발짝씩 양보하
는 자세가 필요하다. ‘담화문 정권’과 ‘운동권 야당’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각자 제 갈 길만 가고 있는 정치인들은 이제 대화와 타협 이라는 정치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다. 여당과 청와대부터 보다 적극 나서야 한 다. 정국 정상화의 제1 책임은 누가 뭐래도 집권 여당에 있다. 각종 민생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도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는 모습에 누가 박 수를 보낼 수 있겠는가. 야당도 이젠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 여야 합 의를 두 번이나 파기하며 장외투쟁에만 몰두 하는 건 누가 봐도 제대로 된 공당의 자세가 아 니다. 국회에서의 정책 경쟁은 소홀히 하면서 어느 세월에 수권정당의 면모를 갖추겠다는 말인가. 기초생활보장법 등 사회적 약자 보호 법안과 안전 관련 법안은 세월호법 못지않게 중 요하다. 민생경제 회복의 ‘골든 타임’을 놓쳐서 는 안 된다는 국민적 요구를 여야 모두가 진지 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북 이수용 외무상, 15년 만에 유엔총회 참석 다음달 방미, 기조연설 예정 북미 관계 개선 돌파구 될지 촉각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AP통신 등 외신들은 30일 이동일 북한 유엔대 표부 차석대사의 발언을 인용, “이수용 외무 상(장관)이 다음 달 중순 시작하는 유엔총회 에 참석할 예정”이라며 “북한 외무상의 방문이 북·미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될지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측은 각 국 대표들이 총회에서 하는 기조연설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에 따르면 북한 외교 책임자의 유엔총 회 참석은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이 후 두 차례에 불과했다. 92년에는 당시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99년에는 백남순 외무 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북한은 유엔총회에 주로 외무성 부상(차관)을 보냈다. 외신들은 이 외무상의 방미를 두고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북·미 양국이 이 외 무상의 방문을 계기로 막후 협상을 통해 핵실
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 이슈 해결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 이례적 으로 외무상을 파견하는 것이란 분석이다. 실 제 99년 백남순 외무상은 미국 방문 때 “우리 는 미국을 100년 숙적으로 보지 않으며 북·미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미사일을 발 사하지 않겠다”며 유화책을 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가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근 북한 유엔대표부가 기 자회견 등을 통해 “미국은 침략자”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한 인권문제를 지적한 유엔 인 권보고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 외 무상이 직접 나섰다는 분석이다. 유엔보고서 는 “북한의 반인권 관련자들을 국제형사재판 소에 세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따라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유엔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이 외무상을 보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16일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군 용기를 타고 평양을 극비리에 방문한 것으로 뒤 늦게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 신들은 “미 고위 관리들이 16일 군용기로 평양 을 방문한 후 17일 새벽 돌아왔다”고 전했다. 한 국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사전에 방북 사실을 통보해줬으며 우리 정부의 도움을 받아 북한 영 공으로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이번 방북에서 북·미 양국 관계자들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케네스 배 등 미국인 3명에 대한 석방 문제를 논의했을 가 능성이 크다”며 “미 정부가 인정하고 있지는 않 지만 북·미 관계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특히 이번 방북이 북한이 강력히 비 난해온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 언(UFG) 연습 이틀 전에 이뤄진 것을 볼 때 양 국이 억류 미국인 석방 외에도 핵과 미사일 문제 등 주요 관심사를 논의했을 수 있다는 것이 외신 들의 분석이다.
sunday.joins.com
ch15 하이라이트 밤 11시 집밥의 여왕
교양
배우 강예빈이 고향인 경기도 여주식 집밥
금수원서 유병언 장례식 구원파 첫날 4000명 조문 철통 보안 속 내일 발인 새정치연합, 광화문서 세월호특별법 집회
을 선보인다. 강예빈은 오징어 부추 보쌈 으로 화끈하고 매콤한 요리를 준비하지만 예상치 못한 손님들의 반응에 당황한다.
안성=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전 기상캐스터 안혜경은 감자옹심이전골로 황금주걱을 노린다.
저녁 7시25분 닥터의 승부
교양
여성 CEO 한경희가 몸무게 43kg에 강 한 집착을 보였다. 한경희는 대학생 때 15kg을 빼느라 3년을 고생했다며 매일 아 침 몸무게를 재 43kg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에 전문의들은 심각하게 경고를 한다. 채널 번호프로그램 안내는 02-75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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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73) 청해진해운 회장의 장례식이 30일 경기도 안성시 ‘금수원’에서 이틀간의 일정으 로 치러졌다. 지난 6월 12일 전남 순천시의 야산 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지 80일 만이다. 이날 오 전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집단 거주 시설인 금수원에 신도들을 태운 전세버스와 개 인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구원파 측은 4000여 명의 조문객이 찾아왔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철통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일반 인들의 출입은 철저히 차단됐다. 비표를 가진 구 원파 신도들도 “소속 지역의 총무가 누구냐” 등 경비원의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어야 입장 이 허용됐다. 경비 인원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으로 늘었고, 전동카트를 타고 금수원 주변을 도는 순찰조도 있었다. 유 회장의 장례는 2일장으로 치러지며 빈소 는 금수원 강당에 차려졌다. 영정 뒤의 대형 스 크린에는 그가 강연하던 모습의 동영상이 펼쳐 졌다. 전날 52시간 구속집행정지로 구치소에서
이 장례위원을 맡은 것 아니냐 는 세간의 추측과 관련해 이태 종 구원파 대변인은 “장례위원 회와 후계 구도를 연결 지어 해 석하는 것을 삼가 달라”고 말했 다. 한 신도는 “구원파 의료인협 회 대표인 구회동씨가 장례위원 장을 맡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 다. 유 회장의 영결식은 31일 오 전 10시에 열린다. 장지는 금수 원 뒷산이다.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본거지로 알려진 경기도 안성 금수원이 대 한편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강당에 차려진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장례식장 내부를 공개했다. 이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날 금수원에는 신도 수천 명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뉴시스] 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86명 등 4000여 명(경찰추산)이 모 풀려난 유 회장의 부인 권윤자(71)씨와 장남 대 여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열 균(43)씨, 동생 병호(61)씨, 처남 권오균(64)씨가 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단체로 옥외 집회에 빈소를 지켰다. 경찰은 이들을 밀착 감시하고 있 참여한 건 지난 2월 간첩조작사건 규탄대회 이 다고 밝혔다. 후 반년 만이다. 새누리당은 의원들의 국회 복 장례위원회는 20명 안팎으로 꾸려진 것으 귀를 촉구했다. 집회에는 세월호 실종자 10명의 로 알려졌다. 향후 구원파를 이끌어 갈 인사들 가족도 참여했다.
News 3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② 시장설계자 앨빈 로스
“마약 합법화 때 중독 늘지 범죄 늘지 따지는 것도 경제” 시장(市場)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상품시장(commodity market)을 생각한다. 상품시장에선 대개 누구로부터 상품을 사는지 따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욕 증시에서 주식을 살 때 파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 채용이나 대학입시 같은 시장에선 좀 더 인간적인 요소가 결부된다. 내가 회사를 선택한다고 반드시 거기서 일할 수 있 는 게 아니다. 회사도 나를 선택해야 채용이 이뤄진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63)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런 시장을 ‘매칭시장(matching market)’이라고 부른다. 단순 히 돈이 있다고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21일 독일 린다우에서 열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에서 만난 로스 교수는 “매칭시장 중에서도 신장이나 마약 거래처럼 어떤 사람들은 하고 싶은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혐오적 시장(repugnant market)’이 경제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라고 말했다.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혐오적 시장’이 무엇이고 왜 관심 베를린 이 필요한가. “몇몇 유럽 국 독일 가 에는 ‘난쟁이 프랑크푸르트 던 지 기( d w a r f 프랑스 뮌헨 tossing)’라는 놀 린다우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가 있다. 축제 때 몸집이 큰 남자 가 조그만 사람을 과녁 같은 곳에 던 지면서 노는 게임이다. 축제 참가자들은 박 수를 치며 즐거워하지만 키 작은 사람 폄하, 인권 유린 등의 비난이 쏟아져 요즘은 공개 적으로 하는 곳이 드물다고 알고 있다. 혐오 적 시장은 이처럼 당사자들은 원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시 장이다. 신장 매매, 동성 결혼, 마약 거래처럼 꽤 다양하다. 내가 오랫동안 연구하고 실제 주선에 나선 신장 거래의 경우 전 세계에서 이란을 제외하면 모든 국가가 불법으로 규정 하고 있다. 누구도 아픈 사람한테 신장을 이 식해 주는 것에 반대하진 않지만 돈을 주고 신장을 사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 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곳 독일에선 내가 미 국에서 만든 신장 교환 프로그램조차 불법이 다.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출발한 나 로서는 이처럼 누군가에겐 절실한 거래를 어 떻게 문제없이 성사시킬 수 있을지 경제학자 들이 연구하는 게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신장 이식은 그렇다고 쳐도 마약 거래까 지 연구해야 하나. “사실 경제학의 관점에선 합법시장을 규 제하는 게 불법시장, 곧 블랙마켓을 규제하 는 것보다 수월하다. 대다수의 사람은 코카 인 밀매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불법으로 만 든다고 그 거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 려 경제학자들이 연구해야 할 것은 마약 거 래(코카인은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마리화 나)를 허용했을 때 중독자 수가 더 늘어날지, 범죄율이 더 감소할지 여러 모형을 돌려 조 사해 보는 것이다. 만약 중독자 수는 조금만 늘거나 비슷하고 마약으로 인한 각종 범죄율 이 많이 줄어든다면 나는 마약 거래 합법화 를 지지할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엔 지지 하지 않을 것이다. 실물경제나 경제학 이론이 나 많은 경우에 이런 트레이드 오프(tradeoff:상호 대체)가 수반된다. 개인이나 국가나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런 트레이드 오
앨빈 로스 교수가 지난 23일 ‘린다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 폐막 패널토론에서 ‘경제학의 유용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신장 매매, 동성 결혼, 마약 거래 등 혐오 시장도 분명 수요는 존재 정보공유 효율화로 성사 높여야 한국, 매칭시장 연구에 흥미로운 곳
프가 뭔지 조사해 보는 건 당연하다. 또 네덜 란드나 포르투갈처럼 마약 관련 규정이 독특 한 나라의 사례를 분석해 보는 일도 필요하 다. 과거엔 혐오적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 은 시장도 있다. 예컨대 중세엔 돈 빌려 주고 이자 받는 게 불법이었지만 지금은 합법이다. 온라인상의 프라이버시처럼 새로운 혐오적 시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과제가 무궁무 진하다.” -이번 린다우 회의의 주제 중 하나가 ‘불 평등’이다. “나는 거시경제학자가 아니어서 대답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매칭시장의 견지에서 보 자면 1950년대엔 미국 메디컬스쿨에 여학생 이 한 명도 없었다. 지금은 평균 50% 정도 될
거다. 이처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여 성 고소득자가 생기고 그들이 남성 고소득 자와 결혼하는 일이 많아졌다. 또 과거엔 의 사가 24시간 대기해야 해 여의사가 결혼해서 육아를 병행하는 게 어려웠던 적도 있다. 하 지만 지금은 의사의 전공도 다양해져 항상 병원에서 대기할 필요는 없어졌다. 이렇다 보 니 의사끼리, 변호사끼리 결혼하는 사례가 늘게 되고 다시 말해 양극화가 가속화된 측 면도 있다. 나는 철저하게 시장 설계 입장에 서 말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때마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틀려 ‘경제학이 유용한가’라는 말도 나온다. “경제학은 물리학·화학 등에 비해 젊은 학 문이다.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정답이 딱 떨 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경제학에서 미래 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 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느 학문이든 어려운 일이다. 의학의 예를 들어 보자. 새로 운 전염병의 발발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 나 좋겠나. 하지만 의학이 에볼라 창궐 같은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다리 부러진 사람을 고쳐 주지도 말라고 해선 안 된다. 시장 설계자 입장에서 새로운 금융상품의 등장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불러온 원인의 하나가 비우량 주택담
[Christian Flemming/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연결된 다양 한 파생상품이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많 은 사람이 규제 당국이나 경제학자에게 왜 미리 그런 파생상품을 규제하지 못했는지 책 임 추궁을 했다. 그 결과 현재 관련 규제는 강 화됐다. 난 이걸 규제의 자연스러운 사이클 이라고 본다. 새로운 금융상품이 나오면 규 제를 정비하고 나아가 강화하는 것이다. 왜 미리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느냐며 경제학의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경제학자가 무능하다 고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경제학은 분명 히 효용가치가 있고 아직 그 효용성을 다듬 는 중이다.” -당신은 신장 이식과 공립학교 지원(志願) 시스템을 재설계해 ‘실무형·현장형’ 교수라 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04년에 지역 신장이식센터를 통합해 매칭시스템을 도입했더니 한꺼번에 6쌍이 교 차 이식수술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 이전에 미국 전역에서 실시된 신장 교차 이식수술 은 19건에 불과했다. 2004년에 34건, 2011년 엔 443건으로 급증했고 지금까지 2000여 명 이 새 생명을 얻었다. 센터에 등록된 사람 수 가 4만 명에서 현재 10만 명으로 증가한 것 도 고무적인 일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 로 인한 정보 공유의 용이성도 물론 큰 몫을
했다. 보스턴과 뉴욕의 공립학교도 마찬가 지다. 아까 불평등 얘기를 했는데 불평등 심 화 원인 중 하나가 가난한 지역에 살면 학력 이 떨어지는 학교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 다. 공립학교 지원시스템도 하나의 매칭시장 이다. 단순히 학부모와 학생들의 1순위 선호 학교가 어디고 거기에 들어갈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내놓은 선호도에 대한 정보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어 떻게 유통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크게 작 용한다. 이래저래 매칭시장에서의 정보 공유 방법은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많은 실업자도 어떻게 보면 정보 미스매치 때문에 양산되는 측면이 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신장 이식 교차수술을 성사시켰고, 성균관대에서 강연도 했다. 한 국은 매칭시장을 연구하는 데 매우 흥미로운 곳 중 하나다.” 로스 교수 약력 ^ 1951년 미국 뉴욕 출생. 유대인 ^ 컬럼비아대 졸업,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 일리노이·피츠버그·하버드대 교수 역임 ^ 스탠퍼드대 교수 ^ 전미경제연구회(NBER)·계량경제학회 회원 ^ 201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최고 이론가이면서 현장형 교수 앨빈 로스
공립학교 지원 시스템 등 실제 정책입안에도 참여 박성우 기자
린다우 회의에 참석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들의 강연 스타일은 천차만별이었다. 수학과 통계를 중시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연방 넘기는 수상자, 자신의 워딩 하나하나를 중 요하게 생각해 원고를 또박또박 읽는 수상 자, 헤지펀드 근무 경력을 살려 세일즈맨 같 은 면모를 보인 수상자 등. 이런 쟁쟁한 연사 중에서 박수와 웃음을
로스 교수는 연구에만 전념한 게 아니라 직접 신장 기증자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끊임없이 이끌어낸 수상자가 로스 교수다. 그만큼 소탈하게 현실의 사례를 들어가며 쉽 고 재미있게 자신의 연구 내용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200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 킨 하버드대 교수는 로스 교수를 가리켜 “최 고의 이론가이면서 현장형 교수”라고 치켜세 웠다. 실제로 로스 교수는 신장 교차 이식 수 술, 공립학교 지원 시스템 재설계를 비롯해 결 혼 중매 모형도 만든 적이 있을 정도로 경제
학의 이론과 현실을 메우는 데 노력해 왔다.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하던 중 뉴욕 공 립 고등학교 지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매년 고교 지원자 10만 명 가운데 3만 명이 자신이 지원하지 않은 고교에 배정 된 것이다. 로스 교수는 선호 순위를 적지 않 고 학생이 원하는 학교 이름을 적어내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재설계했다. 그 결과 ‘매칭 확률’이 높아져 학생이 원하지 않는 학교에 갈 확률이 낮아졌다. 신장 교차 이식 분야에
서는 신장을 교환할 수 있는 대상을 넓힘으 로써 이식 가능성을 높였다. 2012년 로스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도 게임이론에서 시작한 이 같은 시장설계 연구 덕분이다. 로스 교수는 “시장은 생각보 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시장설계 연구와 매칭 이론을 통해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만 드는 게 나의 임무”라고 말했다. 로스 교수의 장남은 펜실베이니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차남은 MIT 출신 경제학자다.
4 News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2030년 전국 ‘고령화 지도’ 그려봤더니
군위고흥신안, 16년 뒤엔 10명 중 6~7명은 65세 이상 <경북>
<전남>
<전남>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는 덜하지만 농어촌 중심의 군지역에선 고령화 문제가 이미 일상이 됐다. ‘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지역도 많다. 앞으로 16년 뒤 전체 인구 중 65세 인구 비중이 68.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북 군위군을 찾아가 현실을 살펴봤다.
이수기 기자, 군위=차길호 인턴기자
임계지방정부와 관심지방정부
retalia@joongang.co.kr
(2030년 기준)
27일 오후 3시 경북 군위군 동부1리 마을회 관 경로당. 트로트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회관 앞마당 정자는 화투 놀이하는 할아버지들이 이야기꽃을 피워 시끌벅적했다. 맞은편에 위 치한 어린이집의 한산함과는 대조적이다. 매 일 오후 2시가 지나면 어김없이 마을 노인들 이 이곳에 모인다. 집 안에서 적적하게 있기 보다는 군에서 제공하는 레크리에이션에 참 여하거나 담소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함께하 기 위해서다. 이날 모인 25명 중 11명이 배우 자와 자녀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었다. 동부1리 이장 이종록(69)씨가 가장 젊다. 나 머지는 모두 73세 이상으로 그중 5명은 80대 였다. 셋 중 한 명이 70대 이상인 마을에서 누 가 하루라도 경로당에 나오지 않으면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돼 찾아가 보 는 게 일상이다. 이종록 이장은 “젊은이들은 다 외지로 나가서 없으니 마을은 적적하고, 주민들은 외롭다”고 말했다. 군위군 내 다른 마을의 사정도 크게 다르 지 않았다. 서부2리 경로당에는 할머니 3명 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각각 80, 84, 86 세였다. 서부1리 경로당에 모인 11명의 노인 도 모두 70세 이상이었다. 서부1리 노인회장 배부호(77)씨는 “촌동네 가면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 70세라는데 여기는 그나마 양호 한 편이다”고 말했다. 간판 개선사업으로 깔끔하게 단장된 군위 읍 중앙로는 군위군에서 가장 번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내내 인적이 드물었다. 20~30 대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중앙로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48)씨는 “10년 전과 비교 해 봐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고 인 구도 많이 줄었다. 내 또래까지는 괜찮지만 더 젊은 사람들은 자녀 학업 등으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임계지방정부 관심지방정부
경기도
인천광역시
충남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노인을 돌보고 있다.
[사진 서천군]
경상북도
주요국 인구와 고령화율 추계 14억만(명)
충청남·북도 중국
대전광역시
35(%)
대구광역시 일본
30 13억만
전라북도 미국
3억5000만
울산광역시
한국
25
3억만
캐나다 20
미국 2억만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부산광역시
영국
경상남도
중국
15
일본 1억만
영국
한국
제주도
10
5000만
캐나다 2010년 인구
2030년 인구
노인 인구 절반 넘는 지자체 16곳 경북 의성, 전북 진안도 60%에 접근 광역선 전남 고령화율 가장 높아
서울 고령화율 22%, 광역 단체 중 12위 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 구센터(센터장 김순은 교수) 조사 결과 앞으 로 16년 뒤인 2030년에는 경북 군위군의 고 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68.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주민 10명 중 7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란 얘기다. 이는 2005 년과 2010년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의 인구 수를 기준으로 전출입과 출생, 사망 등의 추이를 고려해 2030년의 지역별 인구와 고령화율을 추산해 낸 결과다.
강원도
서울특별시
경기 화성, 신도시 덕에 6%대 전망 고령화 → 경제 후퇴 → 젊은층 이탈 농어촌 지역 악순환에 빠질 우려
2010년 고령화율
2030년 고령화율
※임계지방정부는 전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0% 이상인 지자체
※고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
관심지방정부는 전 인구 중 55세 이상이 50% 넘는 지자체
자료=유엔·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구센터
자료=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구센터
최근 지자체 간 합병으로 인구가 크게 변 한 창원시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조 사 결과 고령화율 예상 2위는 전남 고흥군 (62.4%)이었고 전남 신안군(3위·61.6%)이 뒤를 이었다. 이어 전북 진안군(4위·59.6%), 경북 의성군(5위·59.1%) 등이 노인 비중이 높은 지자체로 예측됐다. 군 단위 지역들의 고령화율이 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조사 결과 226개 기초지자 체 중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50% 이상 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16곳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기도 화성시 (고령화율 6.6%)와 전남 무안군(8.5%), 충남 아산시(8.6%)를 비롯한 11개 기초지자체의 고령화율은 15%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나타
났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신 도시 조성이나 도청 이전(전남 무안군) 등의 호재 덕에 젊은층이 대거 유입된 지역들”이 라고 이유를 밝혔다. 광역지자체(세종시 제외) 중에선 2030 년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라남 도(31.6%)로 나타났다. 이어 부산광역시 (29.1%)와 경상북도(28.7%), 강원도(28.3%), 전라북도(26.9%)의 고령화율이 높을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신도시가 많은 경기도(20.4%)와 대 전광역시(20.6%), 충청남도(20.8%) 등은 상 대적으로 젊은 광역자치단체로 남을 것으로 예상됐다. 서울특별시의 2030년 고령화율은 22.1%로 16개 광역시·도 중 12위로 나타났다.
광역자치단체 내에서도 고령화율 차이는 크 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부산시 서구의 2030 년 고령화율은 38.4%(226개 중 63위)였지만 강서구의 고령화율은 14.5%(226개 중 217위) 에 그쳤다. 중·장년 생산성 높이는 정책 변화 시급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지역 생산력 감소도 우려된다. 이경은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구 센터 연구원은 “특히 농촌형 지방정부에서 고령화는 지역 생산력 감소로 이어질 것이 고, 지역경제 성장의 속도는 더욱 더뎌질 것” 이라고 말했다. 농어촌 지방일수록 경기가 둔화하고, 이로 인해 젊은 인구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
아니라 정신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으 로 파악됐다. 반면 대중교통, 편의시설 이용, 주거환경 의 열악함 등의 어려움과 관련한 환경 문제, 주변인과의 관계 문제나 노인에 대한 편견· 차별 등을 아우르는 사회적 관계 문제는 각 각 2.12점과 1.95점으로 집계돼 상대적으로 고민이 덜한 분야로 나타났다. 37개 세부 항목 중에서는 만성질환과 치아 문제가 4점 만점에 평균 3점을 기록, 노년층 엔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어려움으로 나타났
다. 이처럼 건강에 대한 고민은 곧바로 정서 적 불안에도 영향을 끼쳐 건강에 대한 염려 (2.96점)로 연결됐다. 기억력 저하에 따르는 심리적 공포 역시 2.95점으로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수입 감소(2.81점) ^국가적 경기 침체(2.76점) ^생활비 부족(2.71점) ^ 의료비 부족(2.63점) 순이었다. 네 항목 모두 경제적 문제에 해당한다. 노년층의 전반적인 경제적 빈곤상태가 이 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란 방증
65세 이상 1060명에게 물었더니
노년층 최대 고민은 뭐니뭐니해도‘돈 문제’ 이수기 기자·차길호 인턴기자
노년층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적 어려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구센터’가 고령화 율 추계와는 별도로 65세 이상 노인 1060명 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설문조사는 노년층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을 37개 세부 항목·5개 카테고리 로 제시한 뒤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지 응답 자 스스로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만성질환치아 문제도 고통 나이 들수록 정신건강도 나빠져 노인 삶의 질 개선위한 대책 시급
점수는 4점 척도로 1점(전혀 경험하지 않 는다)부터 4점(자주 경험한다)까지 응답하도 록 했다. 조사 결과 노년층의 고민은 경제적 문 제(2.63점)에만 그치지 않는다. 건강 문제 (2.61점)가 뒤를 이었다. 이는 몸이 쇠약해 진 상태에서 잦은 골절 등으로 기초건강을 유지하거나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 음을 보여 준다. 이어 심리정서 문제(2.32점)가 비교적 높 은 점수를 받아 노년층이 육체적 건강뿐만
News 5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어떻게 조사했나
소규모 지역에 유용한 H-P 기법으로 분석 <Hamilton- Perry>
인구 2만 명 무너지는 지자체는 (고령화율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
지역 지자체명
2010년 인구 (단위: 명)
2010년 고령화율 2030년 인구 2030년 고령화율 (단위: %) (단위: 명) (단위: %)
경북 울릉군
7737
20.9
4887
39.9
경북 군위군
1만9794
39.4
7247
68.1
전북 진안군
2만318
36.2
8877
59.6
경북 영양군
1만6453
35.3
9961
50.8
전남 구례군
2만2291
33.1
1만1766
50.5
전북 장수군
1만9293
32.6
1만2330
43.1
강원 양양군
2만5294
23.5
1만2656
49.5
전북 임실군
2만3490
37.7
1만3177
48.2
전남 함평군
3만770
35.7
1만3230
52.2
경북 청송군
2만3930
33.3
1만3286
55.3
전남 진도군
2만8414
33.7
1만3646
47.9
전남 곡성군
2만6975
34.7
1만4314
47.7
전남 신안군
3만2987
37.1
1만4443
61.6
경남 의령군
2만5249
36.6
1만4446
49.8
강원 고성군
2만6458
22.8
1만5563
40.0
전북 무주군
2만1752
31.5
1만5707
41.4
전북 순창군
2만5063
35.4
1만6090
43.3
강원 양구군
1만9252
18.9
1만7215
27.3
충북 단양군
2만8009
25.6
1만7329
47.8
강원 정선군
3만5804
21.2
1만7591
42.7
전남 보성군 80%
3만9963
36.5
1만7879
54.0
4만8432
27.9
1만7917
54.6
전남 장흥군 40%
3만5590
33.6
1만8115
48.8
30% 40% 충북 보은군 20%
3만311
32.6
1만9221
49.4
70%
80% 전남 영광군 60% 70%
50%
60% 50% 30%
10%
강원 인제군 5~10%
2만8591
17.4
1만9288
31.2
0~5% 0~5% 경북 영덕군
3만6220
33.5
1만9471
53.9
충남 청양군
2만9506
32.7
1만9486
43.6
20% 5~10%
자료=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구센터
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서 공동화(空洞化)가 우려되는 지역도 늘고 있다. 2010년 현재 7737명의 주민등록인구 를 가진 경북 울릉군의 인구는 2030년에는 4887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 년 인구의 생산성을 높이고, 이민정책의 문 턱을 낮춰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 수 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맞춰 서울시는 지난 4월 나이가 많다 는 이유로 조기 은퇴의 길로 들어섰지만 노 인으로 우대받지도 못하고 있는 이른바 ‘낀 세대’인 50대에 초점을 맞춘 베이비부머 응 원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구체적으론 일자리 엑스포를 매년 열어 50대 이상 계층에 일자 리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또 50대 베이비부
노인이 겪는 주요 어려움은 ※어려움 겪는 정도(4점 만점)
경제적 문제
2.63
건강 문제
2.61
심리정서 문제 환경적 문제 사회적 관계
2.32 2.12 1.95
자료=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연구센터
머들의 은퇴 대비 교육을 맡은 ‘인생 이모작 센터’를 현행 2곳에서 2020년까지 2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인생 후반을 맞은 이들에 게 교육 기회를 늘려 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은 서울시처럼 그나마 여건이 좋은 일부 지자체에서나 가능하다. 김순은 교수는 “단기간 내에 인구 고령화와 과소화, 공동화가 예상되는 지역에 대해선 행정구역 개편은 물론 정주공간 개편, 지역 공동체 역량 강화 등 구체적인 대책이 나와 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앙정부 차 원에서도 소규모 지역별 인구추계 정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지역 특성화 정 책 수립을 위한 권한 이양이 시급하다”고 덧 붙였다.
이다. 여기에 복지·의료 서비스 이용(2.21점) 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수입까지 줄면서 노인 들은 생활비와 의료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 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스트레스(2.58점)와 일자리(2.52점)가 2.5점 이상을 받은 고민거 리였다. 서울대 김순은 교수는 “결국 노년층은 급 증하고 있는 반면 이들의 저하된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책은 너무나 부족하다” 며 “노년층이 체감하는 어려움을 다각도로 풀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순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비교적 간단한 자료로 예측 가능
sekim0313@snu.ac.kr
미국 등에서 정확성 입증된 방법
현재 통계청에서는 ‘전국’ 단위와 ‘광역시· 도’ 단위의 장래인구추계 정보만을 제공한 다. ‘기초시·군·구’ 단위의 인구추계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고령사회와 사회자본 연구센터의 연구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개 별 기초지자체의 인구추이를 살펴볼 수 있 어야 해당 지역에 맞는 인구대책도 내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본 연구에선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지자체를 ‘임 계지방정부’로, 55세 이상 장년 인구가 전 체의 절반 이상인 지역을 ‘관심지방정부’ 로 정의했다. 2006년 일본 농림수산성의 조 사에서 적용한 연령 기준을 준용한 것이다. 구체적인 인구예측을 위해 일명 ‘H-P 기
인구이동 많은 지역에선 한계
법’을 활용했다. H-P 기법은 해밀턴-페리 (Hamilton-Perry) 기법의 약자로, 1960년 대 미국의 인구학자인 해밀턴과 페리에 의해 고안된 인구추계 기법이다. H-P 기법은 센 서스 인구자료, 출생과 관련된 자료를 활용 해 인구예상치를 측정해 낸다. 계산 과정에 서 사망과 인구이동에 의한 인구변동률(코 호트 변화비)을 반영하는 만큼 가장 일반적 인 인구추계 방식인 ‘코호트 조성법(Cohort
Component Method)’의 복잡함을 보완하 면서도 소규모 지역의 인구를 비교적 정확 히 추산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PAD(The Cornell Program on Applied Demographics)에서도 이 기법 을 활용하여 뉴욕 주 Adirondack Park 지 역의 2020년의 인구를 추계한 결과를 보고 한 바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 스탠리 K 스미 스 교수도 “H-P 방식과 코호트 조성법 간 인 구추계에서 나오는 오류의 폭이 거의 유사하 다”는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세종시로의 행정기능 이전과 같은 사회정치적 요인에 의한 인구이 동은 특히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다. 학교 또 는 직장 선택에 따른 인구이동이 활발히 일 어나는 10~30대의 연령층은 상대적으로 그 오차가 커질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세종시와 창원시의 2030년 인구추계를 내지 않은 이 유다.
6 Focus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박 대통령-세월호 유족 만남 평행선, 해법은 뭔가
“유족과 어설픈 만남은 무익 사태해결 촉진제 역할 해야”
박 대통령, 마무리 시점 잘 찾아야 하지만 박 대통령이 무조건 유가족 면담을 회피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정의 무한 최고책임자로서 이견을 조 정하고 국민을 통합해야 할 책무가 크기 때 문이란 것이다. 문명재 교수는 “대통령이 직 접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는 없지만 핵심 현안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간접적인 방식으 로라도 물꼬를 트는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 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여권 고위 관계 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대신 친박 핵심 인 이완구 원내대표가 유가족과의 대화를 주 도하는 데서 청와대가 유가족과 간접적으로 소통하려는 뜻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여론에 떠밀려 행동하는 것처 럼 보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유가족을 만 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는 지적도 나온 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하나회 를 전광석화처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전 격 실시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세주도형 지도자’였다면 박 대통령은 민감한 사안을 조용히 주시하다가 마무리 시점에 등판해 매 듭을 지으려 하는 ‘대세편승형 지도자’의 전 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기소권·수사권을 부 여하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박 대통령이 전 격 수용하면서 유가족을 만나는 대안은 어 떨까. 이와 관련해 김병준 교수는 노 전 대통 령의 또 다른 에피소드를 전했다. “2006년 여 야가 사립학교법 처리를 놓고 극한 대치를 이 어가자 노 전 대통령이 정국을 풀겠다는 취 지에서 한나라당(당시 야당)안을 일부 수용 했다. 야당 요구를 일부 들어주고 더 큰 것을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진보 세력이 ‘노무현이 변절했다’며 극력 반발하면서 타 협안은 동력을 잃고 말았다. 결국 사학법 처 리는 물 건너가고 지지 기반마저 떨어져나가 혼란만 가중됐다.” 대통령이 갈등 사안을 외면해서도 안 되 지만 섣불리 전면에 나서면 지지층이 이반해 리더십이 더욱 상실되는 결과를 빚을 수 있 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여야 지도 부와 거리를 두지 말고 자주 대화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광웅 총 장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야당인 공 화당의 상·하원 원내대표와 거의 매일 수시 로 전화한다. ‘내 숙원인 ○○ 법안만큼은 꼭 통과시켜주시라’고 부탁하고 사정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창피한 행동이 아니다. 바로 이런 게 대통령의 정치력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들은 야당 대표 만나는 걸 정치적 항 복이나 치욕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뿐 아니라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여의도와 거리를 두는 걸 당연 시 여겼지만 그 결과 본인의 국정 장악력이 급락하고, 추진했던 정책 상당수가 장기 표 류하는 결과를 빚었다”며 “민주주의의 본령 인 의회주의 착근을 위해서도 대통령이 국회 와 자주 대화해야 한다. 또 대통령과 야당 지 도자의 만남을 놓고 ‘청와대가 야당에 항복 한 것’이란 식으로 해석하는 정치문화도 없 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원용 전 이화여대 교수도 “국민들이 영 화 ‘명량’에 열광하는 이유는 군림 대신 설 득하는 지도자를 원하기 때문”이라며 “꼬인 정국을 해결할 마지막 열쇠는 대통령이 쥐고 있는 만큼 늘 어느 시점에, 어떻게 나설지를 숙고한 뒤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력 정치인 중 가장 오래 단식한 이는 전 두환 전 대통령이다. 95년 내란 혐의로 구속 된 그는 28일을 굶었다. 그러다가 “계속 단식 하면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식 사를 재개했다고 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 단식”이란 말도 남겼다. 단식은 종종 희화화된다. 과거 한 야당 대 표는 단식 도중 곰국을 먹었다는 의혹을 받 은 끝에 쌀뜨물을 먹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 를 찾아온 YS가 “굶으면 죽는다”고 한 말도 회자됐다. 단식 중 화장실에서 카스텔라를 먹다가 기자들에게 들킨 의원도 있다. 단식은 위험하다. 단식 시작 후 3주가 지나
면 신체는 기관을 갉아먹기 시작해 생명이 위험해진다. 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관현씨는 40일간의 옥중단식 끝에 29세로 숨졌다. 영국에선 81년 IRA 무장대원 보비 샌즈가 단식 66일 만에 숨져 당시 대처 총리 가 곤경에 휘말렸다. 특히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의 단식은 ‘한국 만의 특이한 현상’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단 식 정치가 광화문광장이나 청와대 앞 등 거리 에서 이뤄지는 것도 특징이다. 서울대 강원택 (정치학) 교수는 “제도권 정치인이 대화 대신 단식 같은 비의회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는 건 외국에선 찾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대통령이 교황은 아니지 않은가. 현시점에 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유가족을 만나는 건 적절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을 만날 때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국민대 김병준(행 정학)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노무현 정부에 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한 전력으로 볼 때 “당연히 만나 위로해야 한다”는 답변이 예상 됐지만 의외의 반응이었다. 김 교수는 “단순 히 위로의 뜻을 전하거나 상황을 파악하기 위 해서라면 대통령은 언제나 누구든 만날 수 있 다. 하지만 세월호특별법 같은 중대 사안을 놓 고 결단을 해야 하는 국면이라면 대통령은 함 부로 나서선 안 된다. 관련자를 만난다면 미리 대안을 갖고 만나야 한다. 어설프게 등장하면 정국을 더욱 꼬이게 할 뿐”이라고 단언했다. ‘유민 아빠’ 김영오(47)씨가 지난 28일 단 식을 중단해 극단적인 대치 상황은 꺾였지 만 세월호특별법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 다. 여야와 유가족이 복잡하게 얽혀 협상이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 데 국민 상당수의 시선이 박 대통령에게 꽂 히고 있다. “김영오씨를 만나 손 좀 잡아달 라. 그러면 꼬인 정국이 풀리지 않겠느냐” 는 주장이다. “어머니의 심정을 가져달라”는 호소도 빠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가 지난 26~2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야 한다” 는 의견과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 각각 49.5%로 똑같았다. 그야말로 ‘대통령 의 세월호 희생자 가족 면담’을 두고 대한민 국 국론이 두 동강 난 상태다. 노무현 “경제 해법 없이 상인 안 만난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에피소드 하 나를 소개했다. “2006년 초였다. 청와대 참모 진이 노 대통령에게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아 상인들 손을 잡 고, 목도리라도 둘러주시라’고 건의했다. 대 통령은 거부했다. 며칠 뒤 참모진이 같은 건 의를 반복하자 노 대통령은 역정을 냈다. ‘나 보고 자꾸 시장 가라는데, 내가 가서 뭐가 달 라지나. 선거 때면 쇼가 필요할지 모르지. 또 내가 교수나 종교 지도자라면 그럴 수도 있 다. 하지만 대통령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이다. 이리저리 해서 경기를 살릴 테니 조금 만 참아달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당신들이 갖 고 오면 당연히 상인들을 만나겠다. 그런 것 도 없이 무조건 만나라고 하면 어떡하나’는 일갈이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은 한정된 자원을 다룬 다. 무한정 퍼줄 수 없다. 여야 정치권이 문제
세월호특별법 정국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민생 행보를 밟고 있다. 지난 22일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상인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상황 종료시킬 수 있을 때 나서야 한국선 아직‘대통령=해결사’ 인식 민주화 시대 맞는 역할 기대해야
를 벌여놓은 뒤 대통령에게 수습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유가족 주장을 받아들이거나, 다른 타협책을 내놓을 수 없는 이상 박 대통 령이 유가족을 만나는 건 의미가 없다.” 한국교통대 임동욱(행정학한국대통령학 연구소 부소장) 교수의 의견도 비슷했다. “대 통령은 잽을 날리는 사람이 아니다. 카운터 펀치를 날려야 한다. 한마디로 상황을 종료 시킬 수 있을 때 나서야 한다는 거다.” 그럼에도 “아픈 사람 있으면 보듬어주는 쇼라도 하는 게 나라님 할 일 아닌가”란 정 서가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연 세대 문명재(행정학) 교수는 “국민 상당수가 이성적으로는 민주적 리더십을 원하지만 정 서적으론 ‘대통령=왕’이란 전근대적 인식에 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 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냈던 김광웅 명지전 문대 총장도 “대통령은 메시아가 아닌데도 무조건 나서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심리 기저 엔 ‘대통령이 맨 위에 있다’란 사고가 깔려 있다”며 “그만큼 한국 사회가 가부장적 권위
주의를 버리지 못한 것”이라 진단했다. ‘제왕 적 대통령’의 임기와 권한을 축소시키는 데 집중해온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역설적으로 ‘대통령=만능 해결사’란 이미지를 부각시키 면서 국민에게 퇴행적인 대통령관을 심어줬 다는 지적이다.
단식의 정치학
“제도권 정치인 단식, 외국에선 사례 찾기 힘들어”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문재인·심상정·이정희….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 식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47)씨를 따라 동 조 단식을 한 정치인들이다. 문 의원은 김씨 가 단식을 중단한 지난 28일, 열흘간의 단식 을 그만뒀지만 새정치민주연합·통합진보당 일부 의원은 아직 단식을 풀지 않고 있다. 단식의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세월호특별 법 제정엔 진전이 없다. 문 의원의 단식에 대 해서도 ‘좋지 않게 본다’는 응답이 64%였고 ‘좋게 본다’는 24%에 불과했다(26~28일 실
문재인 동참에 부정적 여론 64% YSDJ, 민주화지방자치제 성과 민주화 이전엔 강력한 정치수단
시한 한국갤럽 조사). 단식은 약자가 몸을 담보로 상대방의 죄 의식에 호소하는 정치 수단이다. 서울대 김 광억(인류학) 명예교수는 “새로운 사회적 양 심을 창조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1995년 논문 ‘단식과 몸의 정치학’). 인도의 간디는 평생에 걸쳐 145일 동안 단
식투쟁으로 독립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선 김 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단식이 성 공 사례로 꼽힌다. YS는 1983년 5·18 3주년을 맞아 ‘민주화 조건 5개 항’을 내걸고 23일간 단식했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YS는 85년 신민당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단식은 87 년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는 단초도 됐다. DJ도 90년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DJ는 당 시 민자당 대표 자격으로 찾아온 YS에게 “지방자치는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를 놓 칠 것”이라고 압박했다. 결국 노태우 정부는 지방자치제 실시를 약속했다.
Focus 7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 박원순 서울시장
지지율은 하늘의 깃털에 불과 일희일비하면 꼭 실패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하 면서 안철수·손학규·김두관 등 야권의 대 권 주자급 스타들이 대거 몰락했다. 이런 가 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가는 치솟고 있 다. 박 시장은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 서 최근 2주 연속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와 문재인 의원을 제치고 1위(리얼미터)에 올 랐다. 무당파 유권자층에서 가장 높은 지지 (23%)를 얻은 점도 눈에 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시청 6층 시장실에서 7·30 재·보선 이후 처음으로 중앙SUNDAY 와의 신문 인터뷰에 응한 박 시장은 자신의 대권 도전 여부와 7·30 재·보선, 새정치연합에 대한 질문에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대신 국 제회의 유치 확대와 관광객 배증 등 본인이 추 진 중인 시장 2기 핵심 사업에 대한 설명에 몰 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에 공감을 표시하고 최경환 부총리의 소통 노력을 칭찬 하며 협치주의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얘기가 나오자 그의 어조는 달라졌다. “유족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고 “조사위원회에 수사 권을 부여해도 위헌은 아니다”며 정부의 결 단을 촉구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바람 넣지 말라”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 했다. “그런 조사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은 늘 실 패한다고 생각한다. 인기라는 건 하늘에 딸린 깃털과 같은 거다. 늘 진중하게 자신의 중심을 지키면서 주어진 본분만을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내 건배사도 ‘오직 서울, 오직 시민’이다. 이렇게 (시장 업무) 열심히 하 는 사람에게 바람 집어넣지 말라.(웃음)” -무당파층에서 가장 인기 높은 정치인이 됐다. “지지율은 삽시간에 변할 수 있다. 나는 소 속 정당이 있지만, 시장이 되면 당파적 입장 에 따라 시정을 펼 수 없다. 모든 시민에게 봉 사해야 한다.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을 조정 해 통합적으로 시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래 서 늘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적도 친구가 된다.” -소속 정당인 새정치연합이 참패한 7·30 재·보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내가 뭐 (말하는 게 적절치 않다)… 그렇 다고 (내가) 서울시장 내팽개치고 여의도로 갈 수는 없지 않나? 어쨌든 (당이 위기를) 극 복해 잘해 나갈 것으로 본다.” -문재인 의원의 단식은 어떻게 보나. “….”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 의 리더십은 어떻게 보나. “일희일비는 있겠지만 (박 위원장이) 당을 잘 이끌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현직 대표다. 당원으로서 그 리더십을 존중 하고 잘하도록 해 줘야 한다고 본다.” -세월호 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줘 야 하나. “변호사 일을 한 지 오래돼 잘 모르겠지만 내가 배운 바로는 특검도 가능한 것 아니냐. 그러니 (조사위에) 수사권을 주는 게 헌법에 위반되는 건 아니다. 유족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 좋겠다. 자녀들 다 잃고 삶의 벼랑 끝으 로 몰린 이들 아니냐. (일각에서) 그들을 짓밟 는 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대로 잘하는 사람은 격려하고, 못하는 사람은 일으켜 세워 함께 가야 하지 않겠나.” -서울광장을 세월호 추모행사에 장기 개 방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가. “그렇다. (유족들) 마지막 한 분까지 잊지 않고 챙기는 게 우리 사회가 갈 길 아닌가? (앞으로도 추모행사에 광장을 개방하나?)
김춘식 기자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지지율? 내 건배사는 ‘오직 시민’ 세월호 특별법, 유족 뜻 존중해야 조사위에 수사권 줘도 위헌 안 돼 박 대통령처럼 내 신념도 창조경제 국제행사 적극 유치, 세계 2위 목표 ‘제2 롯데’ 임시 사용 일정 곧 발표
다소 불편이 있더라도 한동안 그럴 생각이 다. (광장에서 하던 수익사업은?) 참배공간 만 빼고 나머지는 수익사업을 한다.” “그동안은 준비, 앞으로 4년간은 성취”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연임된 지 석 달이 돼 간다. 2기 시정 구상은. “내게 ‘3년간 시장 하면서 도대체 뭘 했 나’ ‘왜 토건을 안 하나’라고 묻는 분들이 있 지만 사실 3년 동안 도로·통신망 같은 사회 간접자본(SOC)을 크게 늘리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해 왔다. 이 때문인지 6·4 서울시장 선 거 때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가 ‘박원순 시장 은 일을 하나도 한 게 없다. 잠자는 서울을 깨 우겠다’고 하자 서울사람들이 ‘잠 좀 자자’ 고 말했다고 한다.(웃음) 지난 3년이 준비하 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4년은 성취하는 시 간이다. 우선 서울의 얼굴이 확 달라질 거다. 잠실·반포 등 재개발지구는 아파트 숲 대신 생태와 경관이 보장되고 공동체가 살아 숨쉬 는 주거단지로 바뀐다. 또 삼성동 코엑스~잠 실운동장 일대가 완전히 달라진다. 코엑스는 면적이 몇 배로 늘어나고 잠실운동장과 탄천 은 첨단 스포츠 콤플렉스와 자연생태하천으 로 탈바꿈한다. 곧 매각될 삼성동 한전 부지 의 40%를 기부채납으로 확보한 뒤 이 세 곳 과 연계해 국제업무·전시·컨벤션·엔터테인 먼트가 복합된 ‘MICE’ 공간을 개발할 것이 다. 연간 관광객도 현재 1000만 명에서 2배로 늘리겠다. 싱가포르가 자랑한다는 ‘마리나 샌즈베이’를 앞서는 공간을 만들겠다.” -마리나샌즈베이에선 카지노가 큰 역할을 하는데. “그건(카지노 허용은) 쉽지 않다. 카지노를 추진하는 건 미국 샌즈그룹 (한 곳)인데 그 밖에도 투자를 원하는 기업은 많다. 내 구상 은 (카지노 대신) 호텔과 박물관·엔터테인먼 트·스포츠·식물원 등 모든 게 복합된 세계 최 고의 콤플렉스를 세우는 거다. 이젠 서울이 다른 도시를 따라가는 대신 주도하는 시대 다. 서울이 가진 각종 인프라부터 내가 시장 에 취임하기 전 세계 5위였고, 지금은 4위에 올라 있다. 이 순위를 톱으로 끌어올릴 것이 다. 그 핵심이 ‘MICE’ 프로젝트다.”
-개발구상이 강남에 집중된 느낌이다. “아니다. 재개발이 확정된 창동은 10만 평 이 넘는 거대 프로젝트다. 홍릉이나 홍대 앞 밸리도 큰 재개발 프로젝트고 매출이 수조 원 규모라는 자동차 튜닝산업과 장안평 일대 를 연계하는 프로젝트도 구체화되고 있다. 강남북의 균형은 내 시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1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한강 개발을 논의한다고 들었다. “한강만큼 크고 아름다운 강이 없다. 여름 에 ‘한강 행복 몽땅 프로젝트’를 했는데 1000 만 명이 다녀갔다. 서울시민은 물론 세계인의 쉼터임이 입증된 거다. 이런 한강에 유람선만 있지 셔틀선이 없다. 사람들이 놀고 싶은 데 내려서 놀다가 배를 타고 이동해 또 다른 곳 에서 놀 수 있는 ‘hip and hop’식 셔틀선을 곧 도입하겠다. 한강대교 아치를 호주 시드니 하버 브리지처럼 사람이 걸어 횡단할 수 있 게 하고, 노량진 수산시장도 선착장을 설치 해 관광지로 만들겠다. 오세훈 전 시장 때는 한강 개발에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갔지만 그 런 거액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한강을 만들 거다.” 한강, 셔틀선 오가는 관광지로 개발 -최경환 부총리와의 만남은 어떻게 성사됐나. “서울시장 정도면 중앙정부에 영향력이 있 을 거라 생각되지 않나? 사실은 완전 ‘수퍼 을(乙)’이다. 국무회의에 들어가긴 하지만 안 건을 통과시키기가 별 따기고 중앙정부에 어 느 한 곳 사정을 얘기할 곳도 없다. 최 부총리 의 전임자(현오석 전 부총리)에게도 만남을 청했지만 안 만나 주더라. 그러나 최 장관은 내가 연락하니 바로 날짜를 잡더라. 나는 대 화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들으면 바로 수첩에 적는데, 최 장관도 내 얘기를 적더니 긍정적 인 답변을 주더라. 장관 가운데 그런 분은 처 음이라 큰 감동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가끔 발언을 하고 서울시 사례를 얘기하 기도 한다. (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이 나?) 내가 좋은 얘기를 하면 ‘좋다’고 하더라.
(수첩에 적기도 하나?) 그러지는 않고….” -최 부총리와 협력이 성사되면 박근혜 정 부와 ‘협치’하는 셈 아닌가.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강조하는데 내 신념도 창조경제다. 주변 사람들은 내 경제 정책을 ‘위노믹스(wenomics)’같이 다른 말 로 바꾸자고 하지만 대통령이 (창조경제란 용어를) 쓴다고 안 쓰겠다는 게 말이 되나. 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이고 서울 시는 그 상징이니 정부가 창조경제를 추진하 면서 서울시를 팽개친다면 가능하겠나. 이렇 게 서로 필요한 건 출처를 따지지 않고 활용 하는 실용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본다.” -송파지구에 잇따라 출몰한 싱크홀은 걱 정 안 해도 되나. “싱크홀은 석회암지대에 생기는 것이다. 송 파지역의 동공은 ‘도로 함몰’로 봐야 한다. 지 하철 시공이 잘못된 탓으로 대략 판정이 났다.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지하철 공사를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우려되는 건 일반 도로 함몰이다. 하수도가 오래된 지역에서 그럴 우 려가 있어 컨트롤타워를 만들기로 했다.” -송파 싱크홀은 인근에 건설 중인 제2롯데 월드 빌딩과는 관계없나. “관계없다고 판단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을 챙길 거다. (롯데월드 측은 추석 전 조 기 개장을 원하는데?) 롯데 측이 임시 사용을 원하는 건물 저층부는 대체로 안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럼에도 소방·실내 안전 등 우려되는 82개 사항에 대해 보완을 지시했 고, 롯데 측이 이를 이행한 보고서를 제출해 검토가 거의 마무리된 단계다. 또 하나 문제 가 교통이다. 개장되면 하루 유동인구가 20만 명 늘어나게 돼 이 부분도 면밀히 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주 안에 임시 개장 일정 에 대한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음 주면 추석이다. 서울시민에게 추석 메시지를 전한다면. “올해 유난히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추석 만큼은 살림도 나아지고 화평이 넘치는 시 간이 되시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 대로 서로를 이해하고 낮은 곳에서 고통 받 는 사람들을 돌아보는 자리가 되면 좋지 않 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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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김우중과의 대화 책 펴낸 신장섭 교수
“저성장청년실업 해법, 대우 세계경영 정신에 담겨”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1999년의 대우그룹 해체 과정이 15년이 지난 지금 또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당시 해 체를 집행한 관료들은 논쟁을 거부한다. 대우 는 무리한 차입경영과 지나친 확장 투자로 빚 이 너무 많았고 외환위기가 닥치자 살아날 방 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우중 전 대 우 회장은 최근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와 대담 형식으로 엮은 책을 내고 ‘대우 기획 해체설’을 주장했다. 수출금융을 터주면 살릴 수 있었던 회사를 김 전 회장을 불편하게 생각 했던 관료들이 망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김 전 회장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한다 해 도 당시 재계 2위였던 대기업을 정부 관리가 사사로운 개인 감정으로 문 닫게 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외 환보유액이 바닥난 당시 한국 정부는 대우 를 도울 능력이 없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 다. 관료집단과 김 전 회장이 충돌한 지점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대한 대응방식이다. 관료들과 대다수 경제학자는 IMF 처방에 따라 철저한 구조조정을 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봤다. 반면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가 기업이 아닌 금융의 문제인 만큼 수출을 늘려 무역흑자 500억 달러를 달성하 면 IMF 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공교롭게도 IMF는 한국을 마지막으로 위기 국가에 지원할 때 긴축 처방을 요구하지 않 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IMF 총재는 아 예 긴축정책의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다. 그렇 다고 김 전 회장의 주장이 맞았던 걸까. 김 전 회장과 함께 책을 낸 신장섭 교수를 만나 물 어봤다. -당시 IMF 처방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건가. “한마디로 엄청나게 무자비한 처방이었 다. 금리를 하루아침에 10%에서 30%까지 올 리라고 했는데 한국에 대해 그렇게 할 이유 가 없었다. IMF가 고금리 처방을 한 것은 그 직전에 외환위기를 겪은 멕시코 등 중남미 국 가의 경우 물가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 나 라들은 통화를 방만하게 운영했고 재정적자 도 컸다. 반면 한국은 물가가 높지 않았고 재 정적자도 심하지 않았다. 거시경제가 상대적 으로 건전한 나라에 고금리 처방은 경제학적 으로 말이 안 된다. 위기 상황에서 긴축정책을 쓰면 돈이 마른 다. 국내 자본을 동원할 길이 봉쇄되는 거다. 한국 기업의 당시 평균 부채비율 360%는 국 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높은 수준이 아니었 다. 80년대 후반 프랑스 기업이 평균 350%,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기업도 비슷한 수준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특별포럼에서 대우 해체에 대한 소회를 밝히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대우 빠진 신흥시장, 중국이 독차지 IMF의 긴축 강요는 무자비한 대책 양극화저성장 늪에 빠지게 된 계기 대우 해체 핵심도 결국 IMF의 처방
었다. 일본 기업은 중화학산업을 일으킬 땐 500%가 넘었다. 게다가 국제 금융기관들도 아시아 시대가 열린다며 ‘우리 돈 갖다 쓰라’ 고 하던 시절이다. 다시 말해 부채비율이 위 기를 불러올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일상화한 저성장·양극화 가 IMF 처방 때문이란 말인가. “IMF는 제일은행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 다. 그게 한국 경제를 선진화하는 것과 무 슨 상관이 있나. 지금 국민은행·삼성전자 등 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다. IMF 체제를 거치 면서 한국 경제의 심장을 다 내준 거다. 양극 화·저성장 같은 지금 한국 경제의 문제들이 그때 다 생긴 거다. 부채비율 축소, 구조조정 이 만병통치약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해법 이었다. 빚을 내 제조업에 투자하는 게 잘못 된 것이라고 하니 은행들은 기업대출 대신 가계대출로 옮겨 갔다. 지금 한국의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높 은 게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그래도 당시 IMF 처방 덕 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원만하게 넘긴 것 아닌가. “그렇게 보지 않는다. 2008년 한국은 엄청난 외 환보유액을 갖고 있었지
만 원화 환율이 급등했다. 키코(KIKO) 사태 도 겪지 않았나. 국제금융의 변동에 따라 경 제가 흔들리는 구조를 만들어 놔서 두고두고 피해를 보는 거다. 그리고 저성장이 고착된 것에 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한다. IMF의 말 이 선진적이고 미국 시스템이 맞다는 인식이 너무 강하게 박혀 있다.” -그럼, 김우중 전 회장의 말대로 했으면 한 국이 IMF 체제를 벗어날 수 있었을까. “지난 15년을 돌이켜 보면 김 전 회장의 얘 기가 옳았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너무 많다는 자성론이 판을 쳤다. 김 전 회장 의 혜안대로 2000년대에는 신흥시장의 시대 가 열렸다. 중국이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를 독식하고 있지 않나. 대우가 만약 해체되지 않았다면 중진국 출신 최대 다국적기업이 라는 위치를 계속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비관 론에만 휩싸여 그 기회를 놓쳤다. 그 때 구조조정해서 외국에 자 산을 헐값에 팔아 손해 본 게 얼마나 많나. 한국 기 업이 부채비율을 낮추 라는 IMF 프로그램 때 문에 2000년대 들어 제 신장섭 교수 조업 투자를 등한시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대우 해체에 대한 논 란보다 더 역사적으로 길게 남을 부분은 대 우의 세계경영에 대한 재해석과 신흥시장 진 출에 관한 교훈”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현재 당면한 저성장이나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해 결하는 데도 대우의 세계경영이 주는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세계경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흥국에서 사업은 단순 비즈니스가 아 니라 정부와 정치인을 상대해야 하고 이들에 게 경제 발전의 노하우를 제공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김 전 회장이 이윤만 추구하는 일반적인 사업가였다면 역량을 발휘하지 못 했을 것이다. 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신 흥국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곧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이다. 미래의 먹거리는 신흥시장에 있다. 대우 의 세계경영은 신흥국 출신 기업이 신흥시장 에 어떻게 진출하고 이를 어떻게 세계적인 범 위에서 엮어내는지에 관한 교본을 제시하고 있다. 신흥국 출신 기업은 선진국 출신 다국 적기업들이 갖고 있는 기술력과 자본력에 대 항할 다른 무엇인가를 갖고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대우는 그런 것들을 세계적 규모에 서 종합적으로 만들어 낸 첫 번째 사례고, 그 결과 신흥국 출신 최대 다국적기업으로 발돋 움했는데 이게 꽃을 피우지 못해 아쉽다.” -김 전 회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벌이는 글로벌 YBM(Young Business Managers) 과정의 의미가 뭔가. “김 전 회장은 2012년부터 글로벌 YBM 백만 양병론을 펴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20%는 해외에 나가도 된다고 본다. 젊은이 들이 신흥국에 나가면 처음엔 연봉이 적고 힘들어도 더 저축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진다. 해외에 나가려는 젊은 이들을 ‘대우인’처럼 조련하고 있다. 한국의 청년실업 해소에 기여하면서 한국 경제의 국제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 될 것이라고 기 대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그냥 세상에 나 가라고 하는 게 아니라 대우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실무교육을 해 일자리 를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말했 다. ‘이제 나는 나이가 들어 직접 할 수 없으 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나 대신 세계에서 사 업할 수 있도록 키우는 데 내 여생을 바치려 고 해요’.” 신장섭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기획재정부 정책자문관 ^저서 금융 전쟁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논란 여전한 대우그룹 퇴출
“대우 해체 과정 석연치 않아” vs “시장 신뢰 잃은 기업 퇴출 당연” 박성우 기자
신장섭 교수는 대우 해체와 관련해 세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우선 그룹 해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미국 GM과 대우자동차 간의 협상 에 대해 당시 정부 관계자들이 “(대우 측이) 조건을 바꿔 가며 질질 끌다가 1998년 7월에 협상을 깨고 말았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김우중 전 회장은 지금도 협상이 깨진 적이 없다고 믿고 있다. GM과 체결한 양해각서 (MOU)에 ‘협상을 깨면 상대방에게 통보한 다’고 돼 있는데 한 번도 통보받은 적이 없다 는 것이다. 합작 협상 자체도 대우가 다급해 제안한 게 아니라 중국 시장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GM이 소형차 노하우를 얻기 위해 먼
해체 결정적 계기 된 GM과의 협상 김우중과 당시 관료 ‘결렬’에 이견 대우차 기술력 놓고도 극과 극 주장
전 대우그룹 사옥
저 제안해 왔다고 회고한다. 정부가 ‘대우차의 기술력이 없어 자립이 어 려웠다’고 본 부분도 근거 없는 판단이라고 주 장한다. GM이 99년 12월 보냈다는 인수의향서 에서 ‘50억~60억 달러의 기업가치, 보완성과 시 너지와 관련한 대단한 기회’라고 적시했다는 것 이다. 나중에 중국에서 GM이 대우차 모델을 그 대로 가져가 판매 1위에 오른 걸 보면 기술력이 없다는 것은 선입견 내지 잘못된 판단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모두 “당 시 GM이 제시했다는 인수의향서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의 면담을 앞두 고 올린 접견자료에서 ‘대우의 차입금이 19
대우 해체 의견 엇갈리는 부분 정부 정부·금융·기업의 구조적 위기 IMF식 구조조정 철저히 이행
대우 외환위기의 원인
금융의 문제, 정부 외환 리스크 관리 실패
외환위기 대응 방안 수출 확대로 외환보유액 늘려야
세계경영 무리한 투자
신흥시장 성장 가능성 보고 선점
부채가 원래 많았다
외환위기 전엔 높지 않았다
구조조정 등한시했다 대우차는 기술력이 없었다
대우 몰락 원인
김우중 회장, 해외 도피했다
조원 늘었다’고 보고한 부분도 문제를 삼는 다. 수출금융을 막아 버려 단기차입금 16조 원이 늘어난 것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 이에 대해 강 전 수석은 “대우그룹의 유 동성 위기가 불거진 98년 상반기부터 6개월
GM과 합작으로 구조조정 추진 GM 대우차로 중국에서 성공 청와대로부터 해외에 나갔다 오면 8개 계열사 경영권 유지 약속 받고 출국했다
간 김 전 회장을 20여 차례나 만났다. 그때마 다 김 전 회장은 ‘금융회사를 통해 지원해 달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또 “대우 를 구제하는 것은 관치금융의 부활인데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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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 이혼 소장’ 내달 시행 찬반 논란 거센 법조계
“이혼 사유 서너 개 고르라는 건 비인격적” 학계도 지적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객관식 이혼 소장의 37개 청구 사유 (※결정적인 사유 3개 또는 4개를 고르도록 돼 있다.) 배우자 아닌 자와 동거·출산
시가·처가와의 갈등
대화 단절
배우자 아닌 자와 성관계
시가·처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이
기타 부정행위
마약·약물 중독
원치 않는 성관계 요구
장기간 별거
알코올 중독
성관계 거부
가출
도박
회복하기 어려운 성적 문제
잦은 외박
게임 중독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질환
폭행
정당한 이유 없는 과도한 채무 부담
배우자에 대한 지나친 의심
욕설·폭언
정당한 이유 없는 생활비 미지급
범죄·구속
무시·모욕
사치·낭비
과도한 음주
기타 경제적 무책임
전혼 자녀와의 갈등
가정에 대한 무관심
종교적인 갈등
애정 상실
자녀 학대 이혼 강요 국내 미입국 해외 거주 기타
서술 대신 37개 항목서 선택하게 해 서울변호사회 “현실 회피한 잔꾀” 법원 측 “수임 감소 우려한 반대” 반박 학계 “법원의 편의주의 발상 의심”
“사유 자세히 적다 보면 소송 과열” 37개의 보기 중 서너 개를 선택하도록 돼 있 는 새 소장의 도입 취지에 대해 서울지방법원 은 “갈등의 증폭을 방지하자는 뜻”이라고 설 명했다. 기존의 ‘서술형 소장’에 배우자의 잘 못을 낱낱이 들춰내 적다 보니 이를 받아 보 고 모욕감을 느낀 상대방이 공격과 비난의 반격에 나서고, 결국 ‘난타전’이 벌어져 서로 지나치게 상처를 입는 일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장에는 청구 사유를 간략하게 표시 하고, 상대가 이를 수긍하지 않는 경우에만 소송 진행 과정에서 구체적인 문제들을 확인
해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변호사회는 객관식 소장 양식 공개 다음 날인 23일 낸 논평에서 “서울지방 법원은 기존 이혼소송이 상호 비방으로 얼룩 졌던 원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 운 가사소장 모델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혔 다. 이 단체는 “서술형을 객관식으로 바꾼다 고 해도 상대방 배우자가 자신의 귀책사유를 인정하지 않으면 답변서나 재판 준비서면 단 계에서 곧바로 갈등 표출이 될 수밖에 없다. 객관식 소장은 이를 잠시 미루는 것에 불과하 다”고 주장했다. 이어 “갈등이 심해지는 근본 이유는 우리나라 민법이 채택하고 있는 ‘유 책주의’ 때문인데, 소장을 바꿔 이를 막겠다 는 것은 고식지계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땜질 처방이라고 표 현한 변호사도 있다. 나승철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다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권투시 합 같은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로 때리 지는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책주의’는 한쪽 배우자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행동을 했을 경우에 한해 상대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청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이와 달리 어느 쪽에 책 임이 있느냐를 떠나 결혼 생활이 사실상 파 탄에 이르렀음이 인정되면 법원이 이혼을 허 락해 주는 제도를 ‘파탄주의’라고 일컫는다. 미국·영국·독일 등 서구 국가는 대부분 이를 채택하고 있다.
변호사회 “때리지 말고 권투하라는 것” 새 이혼소장에 대한 비판은 학계에서도 나 온다. 차선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과연 서너 개로 이유를 쉽게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 르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라는 것 은 법원이 청구인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태 도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변호사 출신의 한 교수는 “물 론 이혼소송은 아름다울 수 없는 일이지만 부부의 삶과 감정이 복합적으로 응축된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자 하는 이에게 선택지를 던 지고 그중에서 이유를 몇 개 고르라는 것은 사람에 대한 배려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갈등의 상황을 충분히 정리해 주기보다는 합 의로 쉽게 마무리를 유도하려는 법원의 편의 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가정법원의 김성우 공보판 사는 “변호사회 등에서 오해하고 있는 측면 이 있다. 새 소장이 시범적으로 도입돼도 기 존의 서술형 소장으로 재판을 청구할 수 있 다. 새 모델에는 부부 양쪽이 이혼에 대한 기 본적인 합의는 이뤄진 상태에서 재산 분할 이나 양육권 문제 정도에만 이견이 있는 경 우에 소장을 간략히 작성할 수 있는 등의 장 점이 많다”고 반박했다. 이 법원의 한 판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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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이혼한 외국계 기업 여성 임원 K 씨(47)에게 최근 서울가정법원이 만든 이른 바 ‘객관식 이혼소장’을 보여 주며 이혼 청구 사유 중 그의 전 남편에게 해당됐던 것을 골 라봐 달라고 부탁했다. K씨는 37개의 보기를 보며 하나씩 체크해 나가기 시작했다. 배우자 아닌 자와의 성관계, 가출, 잦은 외박, 폭행, 욕설·폭언, 무시·모욕, 도박, 사치·낭비, 가정 에 대한 무관심, 애정 상실, 대화 단절, 과도 한 음주. 총 12개 항목이 선택됐다. 그중 새로 운 형식의 이혼소장에 적혀 있는 대로 ‘결정 적인 사정 3개 또는 4개’로 선택지를 좁혀 달 라고 다시 얘기했다. K씨의 시선이 12개 항목 을 한참 동안 오르내렸다. “이걸 어떻게 서너 개로 줄이나….” 그는 난감해했다. K씨의 이혼 배경이 아주 유별난 것은 아니 었다. 대기업에 다니다 10년 전께 퇴사해 통 신장비 개발사업에 뛰어든 전 남편은 여러 차 례 외도를 들켰고, 이 때문에 부부싸움이 자 주 벌어졌다. 이혼 직전에는 거의 집에 들어 오지 않았다. 자녀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었 고 룸살롱·골프여행·카지노 도박을 좋아했 다. 주변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소재도 되기 어려울 정도의 비교적 흔한 스토리였다. 그런데도 객관식 소 장의 보기 선택이 쉽지 않았다. 서울가정법원이 다음 달 1일 시범 도입하 기로 한 객관식 이혼소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법조계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반 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는 ‘고식지계(姑息之計·당장의 불편함을 해 소하기 위한 잔꾀)’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법 원을 비판했다. 법원 측은 이에 대해 “사건 수임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변호사들의 집단 이기심이 작용 한 것”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장 작성이 쉬워져 이른바 ‘나홀로 소송’ 을 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을 예상해 변호사 들이 반발하는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새 소장 모델 개발에 참여한 이명숙 한국 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소장에 사유를 자세 히 적다 보면 싸움이 커져 소송이 오래간다. 나는 10여 년 전부터 아주 간략하게 요지만 소장에 적어 왔다. 그랬더니 대체로 다른 변 호사들보다 오히려 소송을 일찍 원만하게 끝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혼제도 전반적 개선 필요 주장도 찬반 양론 중 어느 쪽이 옳으냐를 떠나 이번 일을 우리나라 이혼제도의 적합성을 따져 보 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계기로 삼자는 의 견도 있다. 유책주의의 한계와 파탄주의의 장 점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살펴보자는 주장 이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조정위원으로 활동하 고 있는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 조 부장은 “법원도 점차 피고의 잘못을 일일 이 확인하는 것보다 재산 분할이나 자녀 양 육 문제 등 현실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 조정 이나 화해로 소송을 마무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번 소장 변경도 그런 흐름 속에서 나 온 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 관 련 법 개정, 이에 따른 대법원 판례의 문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사회적 공론화 작업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혼 조건에 다소 유연해진 법원
이혼 책임 소재보다 파탄 현실 중시하는 판결 속속 나와 이상언 기자
고위 공무원 A씨는 10여 년 전에 수년 동안 이혼소송을 벌였다. 부인과의 불화에 따른 별거 생활이 힘들었지만 공직자라는 신분 때 문에 수십 번 망설이다가 시작한 일이었다. 그의 부인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혼만큼 은 할 수 없다며 협의이혼에 동의하지 않았 다. 소송 결과는 1심과 항소심 모두 패소였다. 부인에게 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그는 이혼을 포기하고 별거 상태로 지내다 가 5년 전 다시 소장을 냈다. 법원 분위기가 상대방에게 반드시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 니더라도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파탄 상태 에 이른 경우에는 이혼 판결을 내려 주는 방 향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계기였
대법원, 가출 부인의 청구도 인정 ‘유책주의’ 고수 입장 누그러져 시대 흐름에 따라 판사들도 변화
다. 부인은 여전히 완강히 이혼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새 삶을 사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판사의 설득에 결국 마음을 바 꿨다. 재판은 재산 분할과 위자료에 대한 합 의를 거쳐 조정으로 끝이 났다. A씨는 지난 해 재혼해 새 부인을 얻었다. A씨가 듣고 경험했던 것처럼 법원의 기류 가 변했다. 파탄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배우 자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을 받아들이 지 않는 ‘유책주의’ 원칙에서 다소 벗어난 것 으로 보이는 판결들도 종종 나온다. 대법원은 2010년 원만하지 않은 결혼 생활 을 하다가 가출해 11년간 별거를 해 온 B씨 (당시 43세)가 남편 C씨(당시 47세)를 상대 로 낸 이혼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파탄에 이르
게 된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의 법 적·사회적 의의는 현저히 감소했다”고 의견 을 밝혔다. 재판부가 B씨가 별거 중 다른 남 성을 만나 장애가 있는 딸을 낳았고, 그 딸의 양육을 위해서는 동거 남성과의 결혼이 필요 하다는 점을 고려한 판결이었다. 이후에도 대법원은 46년간 ‘두 집 살림’을 해 온 남편이 청구한 이혼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부인에게 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사례였다. 남편의 성기능 장애를 이유 로 이혼을 청구한 부인에게 ‘성관계 회피가 아 니라 어쩔 수 없는 신체적 문제’라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내린 하급심을 뒤집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이 민법이 정한 유책 주의를 버리고 파탄주의(책임 문제보다 파탄 상태의 사실성을 중시하는 제도)를 택한 것 은 아니다. 민유숙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논
문에서 “대법원이 사안별로 이혼 청구에 유 연하게 대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사 실이다. 하지만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경우에도 상대 배우자도 혼인 관계 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 다는 판단을 근거로 삼기 때문에 엄밀한 의 미에서는 여전히 유책주의 원칙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천지법에서 가사사건을 맡고 있는 임태 혁 부장판사는 “법적으로 유책주의가 유지 되고 있는 한 판사가 파탄주의에 따른 판결 을 자의적으로 할 수는 없다. 다만 사실상 관 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부부는 조정 과 정에서 원만한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중재 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30~40대 판사는 선배 판사들에 비해 책임의 문제만큼이나 파탄의 상황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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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유엔 기후변화정상회의 앞둔 GGGI 이보 드 보어 총장
삶과 추억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탄소배출권 거래, 창조경제에 도움”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환경 문제에 있어 2015년은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다. 온실가스 규제의 기본 규범이었던 교토의정서 체제가 막을 내리고 내년에 새로 운 틀이 마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 23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정상회 의에서는 새로운 체제의 기본 골격이 심도 있 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적인 기후변화 전 문가인 이보 드 보어(사진) 글로벌녹색성장 연구소(GGGI) 사무총장을 27일 만나 온실 가스 규제 및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유엔 정상회의의 현안은. “내년 12월 파리에서 국제회의가 열려 기 후변화와 관련된 국제협약을 맺는다. 이 협 약이 효력을 가지려면 모든 당사국이 논의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준수해야 한다. 이를 위 해서는 사전 가이드라인이 필요한데 이것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가장 높 은 수준에서 파리 협약에 어떤 내용을 담을 지, 사전 타협이 이뤄지는 셈이다.” -특징이라면. “전 세계 주요 기업인들도 참여해 대기업 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지도 상의한다. 정치 는 물론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기후변화 문제 에 접근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이 오염물질 축소 기술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합리적인 얘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기술 개발은 민간 부문에서 이뤄지며 엄청난 자금 이 투입된다. 이런 기술을 민간 부문에서 뺏 어다 거저 준다는 게 말이 되나. 물론 에이즈 신약 기술 같은 건 인도적 차원에서 싼값에 제공하는 게 옳다. 그러나 다른 기술까지 그 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도리어 선진국 기 업들로 하여금 후진국에 투자해 필요한 기술 을 얻도록 하는 게 현실적이다.” -기업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 게 만들려면. “인센티브와 페널티가 뭔지 확실하게 알 려 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 스스로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창조경제에 기여하는지, 아니면 반대인지 깨달을 수 있다. 한국 경제 는 에너지 과소비형에서 절약형으로 가야 한 다. 다행히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창조경제 를 많이 이야기해 왔다. 지식기반산업은 전통 산업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훨씬 적다. 이 나 라 경제가 한국인의 근육이 아닌 한국인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이 30일 삼성 서울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73세.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거쳐 미 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 기업인이었다. 1967년 동방유량에 입사 해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 신덕균 명예회 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66년 신덕 균 회장이 세운 동방유량은 당시 중견 식 품기업이었다. 고인은 동방유량을 종합식 품회사로 성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정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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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기자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namjh@joongang.co.kr
한국 경제, 에너지 과소비형 성장 한국 전기요금 너무 싼 것도 문제
두뇌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내년에 한국에도 시행될 탄소배출권 거 래제가 도움이 될까. “그럴 수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탄소배 출 비용이 적절하게 부과될 거다. 현재 한국 전기료는 워낙 싸 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 가지다. 소비자들이 합당한 비용을 내지 않 는 셈이다. 만약 전기료가 적절하게 책정되면 소비자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이점은. “불가능했던 일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정 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대기업에 제시 했다 치자. 기존 설비가 온실가스를 많이 배 출하는 구형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낡 은 설비를 버리고 새 걸 사는 수밖에. 그러나 거래제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사들이면 노후 장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쓸 수 있다. 끝으 로 기업으로선 또 다른 수입원이 생기게 된 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탄소배출권을 팔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녹색성장정책의 최대 문제는. “대통령 임기가 5년밖에 안 된다는 점이 다. 녹색경제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환 경정책은 초기엔 엄청난 비용이 들고 혜택은 맑음 구름 조금 구름 많음 한참 후에 나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모든 정치인이 환경정책의 결실을 못 기다리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거다. 이 때
이보 드 보어 195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네 비 / 소나기 등 흐려져 비 흐림 흐려짐 덜란드 출신의 환경전문가. 네덜란드 환경부 차관보
를 지냈으며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 장과 KPMG 기후변화 부문 대표도 역임했다.
부고
2014년 8월 31일 일요일, 음력 2014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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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철태씨 별세, 용표(한영회계법인 부회 토요일(00일) 장)씨 부친상=30일, 일산백병원 특1호실, 발 인 9월 1일 오전 6시, 031-910-7444 (5/1) (4/-1) (9/1) (8/2) 별세, 공대식(곡부공씨대종회 ^구인명씨 회장)·규식(주식회사 주원 대표이사)·형식 (9/2) (8/3) (새누리당 경기도 오산시 당협위원장)씨 모 (11/7) (8/6) 친상=30일 오전 9시6분, 경기도 오산시 장례 (10/4) (8/2) 문화원 402호, 발인 9월 2일 오전 9시, 031375-1100 (11/9) (10/6) ^정병훈씨 별세, 문옥(재미)·진규(사업)·인 옥(주부)씨 부친상, 구한서(동양생명 대표 이사)씨 장인상=30일 오후 1시, 삼성서울병 4일(화) 5일(수) 6일(목) 원 장례식장 19호실, 발인 9월 2일 오전 7시, 02-3410-3151
금요일(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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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몰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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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부회장 맡아 유통발전 주도 며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질적 신 전 회장은 84년 한국 능률협회 부회장, 발전을 추구했던 사업 확장 과정은 순탄 85년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88~97년 치 않았다. 그룹의 역량을 투입해 시도한 에 한국 대두가공협회 회장을 역임하면 미도파 인수합병이 무산되면서 위기에 몰 서 한국 식품가공산업의 발전을 위해 애 렸다. 신동방은 97년 3월 대농그룹의 미도 썼다. 89~2001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파에 대한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그러나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인의 리더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원을 받은 대농그 서 제조산업·유통산업·수출산업의 발전 룹 쪽의 방어로 성공하지 못했다. 과 국제 교류를 주도했다. 특히 대한민국 이어 외환위기가 불어닥치고 고금리 고도 경제성장의 어두운 그림자인 환경문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1조원 가까이 늘 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99년부터 2001년 어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워크아웃 까지 전경련 환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 에 들어갔다. 신동방은 이후 전분당사업 며 환경과 관련한 경제정책과 법규를 개 을 CJ에 매각하고 식용유 부문은 사조그 선하는 데 앞장섰다. 고인은 언론인으로 룹에 팔았다. 사조로 넘어간 동방유량의 도 활동했다. 97년부터 99년까지 코리아 ‘해표’는 지금까지 식용유 대표 브랜드로 헤럴드·내외경제신문 회장을 역임하며 언 남아 있다. 론 발전에도 기여했다. 신 전 회장의 활동은 국내에만 국한되 10여년전 대장암 발병 악화 지 않았다. 고인은 전세계 경영인들과 글 신 전 회장은 한때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 로벌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미국에서 한 돈관계였다. 하지만 95년 대검 중수부가 국연구가 활발해지도록 하는데 기여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 다. 70~80년대엔 전세계 젊은 최고경영자 면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신 회장에 연합회인 ‘국제 YPO’의 본부 집행위원 게 흘러갔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대법원 을 지내며 한국 경제의 글로벌화를 위해 은 2001년 검찰이 제기한 추심금 청구소 노력했다. 89년에는 고인의 이름을 사용 송에서 신 전 회장에게 230억원을 납부 한 M.S SHIN 편드를 조성해 모교인 미 하라고 판결했다. 고인은 지난해 자신이 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에 한국 연 80억원을 내놓고, 노 전 대통령의 동생 구를 담당하는 ‘한국연구센터’를 설립하 재우씨가 150억원을 납부하는 걸로 합의 는데 일조했다. 당시는 미국 대학 내에 한 를 보았다. 신 전 회장은 10여 전부터 앓던 대장암 국학과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한국관계 연구가 부진하던 때였다. 한국연구센터가 이 뇌와 폐 등으로 전이돼 상태가 나빠지 설립되면서 한국 경제·정치·외교 분야의 면서 미국과 국내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은 부인 송길자씨 외 2남 국제적 연구가 활성화했다. 비 / 천둥 눈 안개 비 눈후갬 비 후 갬삼성서울병원 흐린신동방 후갬 1녀. 빈소는 장례식장(02신 전 회장은 96년눈 또는 회사 이름을 으로 바꾸고 제 2의 창업을 선언한 뒤 고 3410-6917). 발인은 9월 2일. 장지는 경기 분당메모리얼파크. 객위주·사회공헌·합리적 경영을 앞세우기본성남 사이즈
문에 정치인들은 빨리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단기 처방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우선 초당적으로 필요한 환경정책을 채택 하면 된다. 호주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다 탄 소배출권 거래제에 대해 오락가락했다. 초당 적으로 제도가 도입되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아무 이상이 없다. 이어 법제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법으로 만들면 고치기 어렵다.” -에너지와 관련해 또 다른 문제점은. “개인적으로 한국의 자동차업체들이 전기 차에 집중 투자하지 않는 사실에 다소 실망 하고 있다. 1970년대엔 비디오테이프의 표준 이 되기 위해 소니 베타맥스, JVC VHS, 필 립스 Video 2000 등 세 업체가 싸운 적이 있 었다. 그때처럼 지금은 친환경 차량의 표준 을 놓고 ‘배터리전기차(BEV)’와 ‘수소연료 전지차(FCV)’로 양분돼 경쟁하고 있다. 현 대차는 도요타와 마찬가지로 FCV에 집중 투 자해 왔다.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에선 BEV 쪽으로 대세가 기운 느낌이다.” -한국의 친환경 차량의 전망이 어둡다는 얘긴가. “실망하긴 이르다. 이쪽 분야에는 기술 혁 신의 기회가 충분히 있다. 비록 전기차 분야 에서 처지더라도 한국 기업들의 배터리 기술 은 뛰어나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기술 들을 전기차 산업에 접목시킬 수 있다.”
에너지 적게 쓰는 지식산업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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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 대표 브랜드 ‘해표’ 키워 한국 식품가공업 글로벌화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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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① 런던 소호
50년대 커피집 무대서 영국 록 태동 지금은 명판만 남아 < 2i’s Coffee Bar>
브리티시 인베이전 50주년
영국 록밴드의 미국 공습을 뜻하는 ‘브리티시 인베이 전(British Invasion)’이 소호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템스강
1964년 비틀스의 미국 순회공연과 음반차트 런던
석권으로 시작된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로 큰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정표로 꼽힌다. 영국 로큰롤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명소들을 찾아가 록음악의 원류를 음미해본다. 지난해 중앙SUNDAY에 연재됐던 ‘팝의 원류를 찾
는 명판이 붙어있다. 보위가 이 음반 작업 때 입었던 의상을 포함한 300여 점의 소품들은 지난해 3월 런던이 자랑하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세계 순회전을 시작, 24 일 독일 베를린 전시를 마무리했다. 소호 중심에는 ‘소호 스퀘어’로 명명된 작 은 공원이 있다. 싱어송라이터 커스티 맥콜 은 이 공원을 자신의 노래로 남겼고 그녀가 사망한 뒤 공원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벤치도 생겼다.
아서’의 후속이다.
런던=조현진 국민대 특임교수·미래기획단장 gooddreams@hanmail.net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는 로큰롤의 암흑기 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군 입대, 제리 리 루 이스의 혼인 스캔들, 리틀 리처드의 종교인 변신 등으로 초기 로큰롤 선구자들은 무대에 서 그리고 관객에게서 자의반 타의반 멀어지 고 있었다. 급기야 1959년 2월 3일 버디 홀리 마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로큰 롤은 죽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미국 출신의 로큰롤 1세대들이 남 긴 공간을 영국 출신의 록밴드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른바 빅4인 비틀스, 롤링 스톤 스, 후, 킹크스를 앞세운 영국 밴드들이 미국 음악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리 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으로 불리 는 이 현상은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꼽힌다. 관광객 위한 로큰롤 체험 관광프로그램 지난해 중앙SUNDAY ‘팝의 원류를 찾아서’ 제하의 연재를 통해 소개했듯, 미국의 많은 로 큰롤 유적지에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조성 돼 있고 관광객이 이를 편하게 관람하고 감상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영국은 미국만큼 풍부한 로큰롤 역사가 있 지만, 비틀스를 배출한 리버풀을 제외하면 미 국처럼 로큰롤 관광명소 개발이 활발하지 못 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로큰롤이 아 니더라도 오래된 왕실문화 등 관광자원이 풍 부하기 때문아닐까. 비록 박물관이나 기념관 같은 상설 기관은 아니지만 다양한 로큰롤 체험 관광 프로그 램이 방문객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로큰롤의 중요한 장면이 연출된 많은 곳이 이제는 업 종이 변경됐거나 도시 개발과 함께 흔적마저 사라진 곳도 많지만, 시는 명판(plaque)을 제 작해 제막하는 등 대중음악 역사 보존을 위 한 노력에 적극적이다. 진한 감동과 매력적인 사연이 담긴 명소를 일일이 찾아가 대중음악 의 역사를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영국 로큰롤 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런던에서 로큰롤 향수를 느끼기에 최적의 출발지는 시내 중심 부 소호(Soho) 지역이다. 레드 제플린 매니저, 무명 시절 문지기 소호 로큰롤의 중심에는 56년 문을 연 2i's 커 피 바가 있다. 지금은 다른 카페로 탈바꿈했지 만 시는 개업 50주년을 기념해 2006년 이 건물 에 명판(사진)을 제막했다. 명판 중앙에 ‘영국 로큰롤 탄생지’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인다. 클리프 리처드와 바이퍼스 등 영국 초기 로큰 롤 음악인들의 이곳에서의 무대가 이후 비틀 스와 롤링 스톤스 등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작 은 감사 표시다. 훗날 하드록의 원조 레드 제플 린의 매니저로 활동하게 되는 피터 그랜트는 무명 시절 여기서 문지기로 일했다. 레드 제플린이 처음 결성돼 리허설을 한 장소도 소호다. 지금은 차이나타운 내의 중 국 식당이 됐다. 영국 로큰롤 초기의 전설적 인 밴드 야드버즈가 해체되면서 밴드를 끝
1960년대 런던 문화의 중심지였던 카나비 스트리트. 지금까지도 런던의 패션 중심지로 건재하다.
[사진 조현진]
소호 로큰롤의 중심지 2i’s 커피 바의 기념 명판.
레드제플린이 첫 리허설을 했던 곳.
기타 전문점이 된 녹음 스튜디오 리젠트 사운드.
클리프 리처드 등 선구자들 활동
까지 지킨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새 멤 버를 모은 직후였다. 보컬로는 로버트 플랜트가 영입됐는데 지 미는 원래 테리 라이드라는 보컬을 원했으나 그가 사양했다. 테리는 훗날 하드록에서 큰 획을 긋게 되는 또 다른 밴드인 딥 퍼플 결성 때도 보컬로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이 역시 거절해 ‘가장 운 없는 보컬리스트’로 회자되 곤 한다.
유명 음반 표지가 촬영된 장소를 찾아가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오아시스의 1995년 음 반이자 이들의 글로벌 출세작인 ‘모닝 글로 리’ 음반 표지는 버윅 스트리트에서 촬영됐 다. 밴드 리더 노엘 갤러거가 원래 등장하려 했으나 당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음반 디자 이너가 대신 등장(앨범 표지에서 등지고 있는 사람)했다. 버윅은 오랫동안 런던 내에서 제법 괜찮은 음반 상점들이 밀집해 있었고 아 직도 영업 중인 곳들이 있어 음악팬들에게 여전히 인기
롤링 스톤스 데뷔 음반 녹음했던 ‘리젠트 사운드’는 악기점 변신 전설의 음반 표지 촬영지도 즐비
오아시스의 출세작 ‘모닝 글로리’의 음반 표지(작 은 사진)와 촬영지인 버윅 스트리트.
음악인 모이던 ‘카나비’는 패션 거리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긴축정책이 완화되 고 경제가 활력을 찾게 되는 1960년대 런던 에는 낙관주의와 쾌락주의 성향의 역동적 인 문화가 확산된다. 언론은 이를 ‘스윙잉 (Swinging) 런던’이라고 명명했고 그 중심 에 카나비 스트리트가 있다. 지금도 런던의 패션 중심지 역할을 하는데, 60년대 이후 많 은 아티스트가 모여들었다. 록밴드 U2의 인 기곡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 뮤직 비디오가 이 거리에서 촬영되기도 했 다. 인기 록밴드 스몰 페이시스의 사무실이 있던 자리에는 시가 2007년 제막한 동판 을 찾을 수 있다. 당시의 활발했던 모 습은 지난해 뮤지컬로도 제작돼 공 연에 들어갔다. 소호 서편에 패션 1번지 카나비 스트리트가 있다면 동편에는 악기 1 번지인 덴마크 스트리트가 있다. 더 킹 크스가 일찍이 그들의 곡에서 “어디인지 모르면 귀와 코를 따라가라 / 발 박자 맞추는 소리에 온 거리가 진동한다”고 재치 있게 표 현한 바로 그 거리다. 지금은 기타 전문점이 된 리젠트 사운드는 과거 녹음 스튜디오였는 데, 롤링 스톤스가 데뷔 음반을 녹음한 장소 로 늘 관광객들로 꽉 차 있다. 이곳에서 연습 하다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럽다”는 주변 항 의에 쫓겨난 음악인도 있었으니 바로 지미 헨 드릭스다.
1972년에 발표된 데이비드 보위의 음반 표지(작은 사진)와 촬영지인 헤돈 스트리트.
가 많다. 가수 엘튼 존은 록스타가 된 이후인 70년대 초까지 이곳에 있던 뮤직랜드 음반점 에서 일해 손님들을 놀라게 했다. 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로큰롤의 기 념비적인 음반 표지가 촬영된 장소가 또 한 곳 나온다. 데이비드 보위의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음반의 표지가 촬영된 헤돈 스 트리트다. 영국 국립우체국이 2010년 로큰롤 중요 음반 표지 10점을 선정해 우표를 발행 했을때도 포함된 표지다. 당시 어둡고 쓰레 기 가득찬 거리는 이제 세련된 식당들로 채 워졌다. 표지에서 보위 머리 위에 있던 ‘K. West’ 간판은 오래전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는 이곳이 음반 표지 촬영 장소임을 기념하
수 많은 라이브 바식당에 록의 역사 이 주변 수많은 라이브 바나 식당도 로큰롤 의 역사다. UFO나 마키(Marquee)처럼 이 미 사라진 전설적인 곳들도 있지만, 펄프의 노래에 영감을 준 바 이탈리아(Bar Italia) 와 재즈 클럽으로 시작한 로니 스캇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소호의 명소다. 백 오 네일스 (Bag O'Nails)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와 그의 첫 아내인 린다가 처음 만난 장소로 로 큰롤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역시 이를 기 념하기 위한 명판이 붙어있다. 옥스퍼드 도 로 100번지에 위치한 ‘100 클럽’은 76년 9월 21일 섹스 피스톨스와 클래시 등이 참가한 세계 첫 펑크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롤링 스 톤스는 86년 2월 23일 이들의 피아니스트였 던 이안 스튜어트 사망 직후 추모 공연을 갖 기도 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해리 닐슨이 소유했 던 커즌 스트리트의 한 아파트는 영국 로큰 롤에서 매우 슬픈 장소로 기억된다. 해리는 자신이 런던에 없을 경우 이 아파트를 지인들 에게 곧잘 빌려줬는데 74년 7월 29일 마 마스 앤드 파파스의 마마 카스가 런던 공연 후 이곳에 머물다 숨 졌다. 그녀 나이 32살이었다. 햄 샌드위치를 먹다 숨이 막 혀 사망했다는 첫 보도는 나 중에 오보로 밝혀졌지만 40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오보는 사 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4년 뒤인 78년 9월 7일, 광기의 드럼 연주 스 타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후(The Who) 의 키스 문은 폴 매카트니가 초대한 파티에 갔다 돌아온 뒤 마마 카스가 숨진 같은 침대 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진다. 당시 32살. 이 사건 이후 해리는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런데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 준비위원 회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폐막식 공 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 주인공으로 후 를 선정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 과정 에서 사망한 지 34년이 지난 키스 문에게 초 청장을 보낸 것. 더 후는 65년 발표한 그들의 대표곡 ‘마이 제너레이션(My Generation)’ 에서 “난 늙기 전에 죽고 싶어(I Hope I Die Before I Get Old)”라는 파격적이고 상징적 인 가사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더 후의 매니 저는 올림픽 준비위에 “키스는 이 가사에 충 실했고 지금은 한 화장터에서 쉬고 있다”고 답해줬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 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 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Focus 15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23 전통술<하>
향토색 분명한 우리 누룩, 마을마다 술 익는 향 모두 달라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여론계량분석센터 연구위원 mhgo@asaninst.org
나그네가 길을 간다. 강을 건너고 밀밭을 지 난다. 이윽고 서산에 타는 듯한 노을이 번진 다. 고단한 나그네의 마음은 하염없이 가라 앉는데 문득 술 익는 향기가 번진다. 시인 박 목월은 그 서정을 ‘나그네’라는 시에 담았다.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술 익 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문득 궁금해진다. 술 익는 마을을 어떻게 알았을까. 발효하는 누룩의 향내 덕이다. 한반도에서 누룩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됐 고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와 ‘누룩 세 상’을 이뤘다. 누룩에 대한 정식 기록은 조 선시대 중엽 이후의 음식 관련 문헌인 사시 찬요초,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에서 이 름과 만드는 법이 상세히 등장한다. 이후 누 룩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누룩 이름이나 만드는 법이 치생요람(1691), 산림경제 (1715), 농정회요, 본초강목, 임원십육 지, 동의보감 같은 무게 있는 책에까지 등 장한다. 천년 세월 넘게 진화한 누룩은 다양성을 자랑했다. 지방마다 독특한 기후의 영향으 로 모양과 제조법, 발효기간이 달랐다. 경기· 영남지역에선 성형한 누룩을 짚으로 싸서 온 돌방에 4~5일간 띄웠다. 호남과 충청도 서해 안에선 짚으로 묶고 실내의 시렁이나 천장에 매달아 10~30일을 띄웠다. 밀·보리·쌀·녹두 누룩 등 종류도 수십 가지나 됐다. 밀 누룩이 발효가 잘되고 향이 좋아 가장 많이 쓰였다. 쌀 누룩은 이화주를 빚는데 쓰였고, 녹두 누 룩은 ‘향온주’나 ‘백수환동주’ 같은 특수한 술에 사용했다. 녹두 누룩은 오묘한 향취를 내서 궁중이나 부유층, 사대부가에서도 혼 자 마실 만큼 귀했다. 그러니 누룩이 빚어낸 술의 맛과 향을 경 탄하는 시가 많을 수밖에 없다. 김종직은 ‘…기장술 거듭 기울이나 맛은 더욱 향기롭 네…’라 읊었고, 정수강은 ‘…칡뿌리로 빚은 술이 술잔에 가득하니 향기가 비로소 흩어지 고…’라 읊었다. 다 누룩이 만든 조화에 취한 이들이다. 누룩 자체가 글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고
려의 문인 이규보(1168~1241)는 누룩이 얼 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의인화해서 ‘국선생 전(麴先生傳)’을 지었다. “국성(麴聖)의 자 는 중지(中之, 곤드레)니, 주천(酒泉)고을 사 람이다. …하루만 이 친구를 보지 못하면 비 루함과 인색함이 싹돋는다…”고 노래했다. 한자로 누룩은 ‘곡자(麯子)’ 또는 ‘국자(麴 子)’라 한다. 지난 21일 충북 청주 청원구 내수읍 풍정리 (楓井里).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풍광 이 좋고 양지바르며 물이 좋은 고장이다. 동 네에는 조그만 술 회사 ‘화양’이 있다. 이 고 향 출신이기도 한 이한상 대표는 “좋은 물을 써서 술을 빚으려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전통누룩을 손수 만들어 술을 빚는다. 자그 마한 공장 내, 후끈하고 습한 누룩방에는 둥 글둥글한 원반 모양의 누룩들이 볏짚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볏짚 위에서 누룩을
삼국시대부터 진화 거듭해 다양화 첨가물 없어 술향 좋고 깊은 맛 특징 일제가 변종 누룩 퍼뜨린 뒤 급속 퇴화 생산성만 따지다 질 낮아져
‘띄우는’ 것은 볏짚에 서식하는 효모균과 효 소를 분비하는 곰팡이균이 누룩에 잘 달라 붙게 하려는 것이다. 누룩의 모양·재료·두께 모두에 조상의 경험과 지식이 녹아 있다. 미생물학이 없던 시절 조상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좋은 누룩균이 많이 배양될 수 있게 했다. 온돌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다. 문득 코끝에 구수한 누룩향이 감돈다. 건너편 방 에 있는 옹기로 된 술항아리에선 이 누룩으 로 만든 술 ‘화양(가칭)’이 숙성되고 있다. 여 기서 술은 영상 10℃의 서늘한 온도에서 길게 는 석 달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쳐 애주가에 안기게 된다. 8년 준비 끝에 올해 처음으로 술을 출시하려 한다는 이 대표는 “내 누룩이 없으면 내 술도 없다”고 말했다. 한민족의 입에 감칠맛을 돋워줬던 ‘우리 누룩’은 전통술의 몰락과 더불어 근래에 들 어와 모진 풍상을 맞았다. 일제는 변종 누룩 인 ‘입국(粒麴)’을 이용하라고 강권했다. 입 국은 특정 효모균과 효소만을 써 맛이 획일 적이었다. 그래서 전통누룩으로 빚은 술의 향과 풍미를 따를 수 없었다. 수천 년 함께 해
우리 전통술의 주 재료인 누룩을 발효시키는 누룩방. 천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누룩의 재료와 제조법 은 다양하다. 술의 향과 풍미는 누룩에 따라 달라진다.
온 ‘우리 누룩’이 사라진 뒤 한국인은 공산 품화된 술 맛에 길들어졌다. 일본 누룩이라고 무조건 폄하할 것은 아니 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술은 쌀로 빚는 발효 주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술의 풍미 를 좌우하는 첫 단계 발효과정에 들어가는 자연 첨가물이 전혀 다르다. 쌀 같은 곡물로 술을 빚으면 먼저 전분을 당화(糖化)해야 한 다. 일본 술의 경우 입국이라고 불리는 코지
[중앙포토]
(효소제(곰팡이균)와 혼합물)를 함께 넣어 곡물의 전분을 당화시킨 뒤에야 발효 효모를 첨가한다. 그러나 누룩을 쓰는 우리 전통술 은 첨가물도 없고 당화와 발효가 함께 이루 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을 일 본 누룩은 흉내 낼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누룩 몰락의 주범은 일제만도 아니다. 전통누룩을 최대 월 120t씩 생산하 는 ‘진주곡자’의 이진형 사장은 “80~90년대
우리 술이 맥주와 소주에 밀리고 전통누룩이 개량누룩에 밀린 대표적 원인은 누룩 생산자 들의 주먹구구식 제조 때문”이라고 안타까 워했다. 그전까지 대도시와 각 도에 있던 곡자 회 사들이 막걸리의 고정 수요만 믿고 품질관리 를 게을리 한 탓에 누룩 품질이 나빠졌고 이 는 술맛 저하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애주가 들이 전통술, 특히 막걸리를 외면하게 됐다 는 것이다. 전통주에서 떠난 입맛은 쉬이 돌 아오지 않았다. 주류시장에서 밀리면서 그 많던 곡자회사들은 문을 닫았다. 진주곡자도 한 달에 보름은 쉴 만큼 위기에 몰렸다. 설비 자동화와 과학화로 살아남았지만 대부분 전 통누룩의 처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심각한 것은 그런 사이 우리 술 고유의 향 과 풍미에 대한 편견이 소비자들 사이에 커 졌다는 점이다. 한국전통주연구소의 박록담 소장은 “요즘 막걸리 제조에 누룩을 밑술의 30%까지 쓰니 냄새가 심하다. 10% 이상을 쓰면 안 그렇다. 그래도 누룩을 많이 쓰면 술 이 쉽게 빨리 만들어지기 때문에 업자들은 포기를 못한다. 적게 넣으면 실패율이 높아 지고 술 익는 기간도 길어지는 걸 우려한다” 고 말한다. 게다가 좋은 누룩도 아닌 개량누룩을 쓴 다. 밀 껍데기를 공업적으로 가공해 생산한 개량누룩은 전통누룩보다 싸면서 더 빨리 주조한다. 그러나 맛이 떨어져 첨가제를 넣어 야 한다. 악순환이다. 첨가제가 섞인 누룩향 의 맛이 제대로일 리 없으니 주당들은 외면 한다. 배상면주가의 배영호 사장은 “우리의 문제는 체계화되지 않은 가양주 기술을 그대 로 사용하고 있어 일정한 술맛을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며 “전통주의 부활은 제조 과정의 과학화와 고유의 전통 기술을 잘 골 라 활용하는 데 달려있다”고 말한다. 흔히 전통주를 와인과 비교한다. 좋은 와 인은 궁극의 향을 자랑하며, 그 향기를 부케 (bouquet), 즉 꽃다발로 묘사한다. 다채롭고 화사하다는 뜻이다. 전통누룩으로 빚은 한 국 술도 가능하다. 제대로 된 청주의 고소하 면서도 달달한 향은 보리 누룩이 주는 향취 다. 이진형 사장은 “누룩향은 퀴퀴하지 않으 며 고소할 정도”라고 한다. 전통누룩엔 와인 에 도전할만한 힘이 담겨 있다. 취재지원=신희선·오수린·이영경·최지은·홍예지 아산 서원 알럼나이 소모임
주안상 문화 어제와 오늘
조선시대 술상은 담백웰빙 요즘은 육류 위주에 맛 자극적 신창훈·이승률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chshin@asaninst.org
산골 집에 고요히 앉아있으면 해가 긴데 한잔 술과 창포김치에 남은 향기 있네 -원천석의 운곡 행록(여말 선초) 출렁이는 술잔은 따스함 머금고 소반엔 부드럽고 살찐 냉이나물 올라왔네 -임상원 염헌집(1686) 김치와 냉이나물. 옛사람들의 주안상에 깃든 ‘안주의 절제미(節制美)’를 잘 보여주는 재 료다. 그렇다고 다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다. 조선후기, 은진 송씨 송병하 가문의 조리 서 겸 주안상 레시피를 들여다 보자. ‘좋은 송이 껍질 벗겨 엷게 저민다. 소고기 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지고 두부 조금 섞어 유 장 갖추어 각색 양념한다. …송이 저민 것을 넣 고 마주 덮어쓰고 밀가루 묻혀 계란 씌워 지지
되 국은 꾸미(국에 넣는 고기) 많이 넣고 밀가 루와 계란 풀어 끓이다가 송이 지져 낸 것을 다 시 넣어 끓인다. 계란을 황백으로 부쳐 석이버 섯 채쳐 뿌리로 쓰고 또 그 위에 후춧가루 잣 가루 뿌려 쓴다. 반상과 요기 상에도 쓰며 주 물상(晝物床)과 주안상에도 쓴다.’ 주안상에 올릴 송이찜 요리 하나에 이렇 게 정성을 들였다. 석이버섯은 동의보감에 ‘성질이 차고 평하다. 맛이 달고 독이 없어 속을 시원하게 하고 위를 보하며 피나는 것 을 멎게 한다’고 했다. 술의 독성을 중화할만 한 안주다. “조리법이 재료의 맛을 잘 살리는 방식이 다. 송이는 또 비타민 B2 함량이 높고, 소화 가 잘되며 위벽도 보호한다. 전체적으로 식 재료도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아 전통술과 잘 어울리는 웰빙 안주다. 담백하고 자극성 이 없는 조선시대 주안상 문화와 레시피와 비 교하면 현대인들은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산정책연구원 강수현 영양사의 분석 이다. 반가의 주안상에 난삽하지 않은 품격이 있었던 까닭은 조선 양반들이 손님을 후하 게 대접하는 ‘접빈객(接賓客)’을 큰 덕목으 로 삼았기 때문이다. 황혜성의 한국의 전통 우리 술과 잘 어울리는 음식 분류 가향약주
혼성·혼양주
과실주
주명 송죽오곡주(전북) 구기주(충남) 인삼주(충남) 국화주(경남) 유자주(경남) 백화주(서울) 과하주(경북) 추성주(전남) 홍주(전남) 머루주(경기)
음식에 따르면 제대로 된 주안상엔 청주·소 주·탁주가 나오고 안주론 전골·찌개 같은 국 물이 있는 음식, 전유어·편육·김치 같은 안주 가 따랐다. 대체로 떡 벌어지지 않고 소박한 주안상이었다. 그런 전통이 요즘 어떻게 돼 있을까. 이화 여대 서선희 교수 팀이 2008년 전통주 주점 4 자료: 숙명여대한국전통주연구소
추천음식 풋고추장떡, 김부각, 취나물볶음 구기강정, 파전, 쇠고기구기자찜 인삼치즈말이, 한방찜떡, 인삼쇠고기말이 편육, 참치구이, 밤단자 마늘꼬치구이, 시금치된장무침, 두텁떡 오절판, 탕평채, 닭살겨자무침 임자수탕, 참나물초무침, 새송이구이 죽순볶음, 대잎강정, 새우전 어란, 육포, 물만두 궁중겨자채, 도토리묵전, 곶감치즈말이
개 점포에서 소비자 402명을 대상으로 ‘전통 술과 어울리는 음식’에 대해 조사했다. 전류 32.7%, 고기류 20.1%가 거의 휩쓸었고 두부· 묵 요리 13.1%, 탕·국류 9.3%, 찌개·전골류 4.8%, 구이 3.1%, 회 2.7%, 무침 2.6%, 김치 2.1%, 볶음 1.9%, 튀김 0.7%의 순으로 나타 났다. ‘굽고 지지는’ 무거운 안주가 반이 넘 는다. 소득향상과 식생활 서구화로 육류 섭 취가 늘어난 때문이겠지만 ‘소박함’을 넘어 고열량, 고염분, 단백질·지방 과다 섭취라는 부작용이라는 대가도 치러야 한다. 삼겹살 에 소주, 치킨에 맥주가 일반화됐지만 건강한 술안주문화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옛 조리서에 수록된 전통술에 어울리 는 음식 재현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2008 년엔 숙명여대와 한국전통주연구소가 함께 안주개발 조사를 했고 지난해에는 ‘떡·한과· 전통주 페스티벌’이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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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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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최고령 미 군함 보수 위해 3년간 휴가 미국 보스턴항의 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콘스티튜 션함 박물관’. 미 해군함정 중 가장 오래된 콘스티 튜션함은 1797년 건조됐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변 신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군함은 목선임에도 불구 ‘올드 아이언사이즈(Old Ironsides)’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812년 영국 해군과의 44회에 걸친 해전 에서 수많은 포탄 공격을 받았지만 침몰하지 않았 기 때문이다. 사진은 29일(현지시간) 콘스티튜션함 이 보수를 위해 견인선에 이끌려 조선소로 이동하 고 있는 모습. 박물관 측은 “3년간 보수작업을 벌인 후 다시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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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연 10조원 풀리면서 통화량에 안 잡히는 ‘유령 화폐’ 상품권
인지세 1만원으로 상품권 250만원 발행 돈 찍는 백화점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주관식 퀴즈 하나. 백화점·전통시장·문화·도 서·구두·모바일, 이들 단어 뒤에 공통으로 쓰 일 수 있는 단어는?. 얼른 떠올리기 쉽지는 않 을 터. 정답은 바로 ‘상품권’이다. 국내에서 발행하는 상품권은 모두 200종 (種)을 넘는다. 대형 유통업체부터 정부 부 처, 지방자치단체까지 발행 주체들도 다양 하다. ‘명절 때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에 단골로 오를 만큼 선호가 높아지면서 공급 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한민국은 상품권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품권은 발행 주체와 한국조폐공사 간 의 계약을 통해 만들어진다. 올해 초 한국조 폐공사가 새정치민주연합 정성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 지 최근 5년간 국내에서는 모두 26조 4855억 여원어치의 상품권이 발행됐다. 2009년 3조 3782억원에서 지난해 8조2794억여원으로, 연간 30% 이상 발행 규모가 성장해 왔다. 이 중 신세계·롯데·현대 등 ‘백화점 빅3’와 홈플 러스가 5조1000억원 어치, SK·GS·현대오일 뱅크·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8000억원 가량 을 발행했다. 문화상품권은 6000억원, 전통 시장에서 쓰는 온누리상품권은 3200억원어 치가 발행됐다. 이 밖에 구두·의류업체와 음 식점·제과점, 지자체 등이 발행한 상품권이 3 조원어치에 이른다. 국내에서 발행되는 상품권의 96%는 한국 조폐공사를 통해 인쇄되고 유통된다. 조폐 공사 관계자는 “업체들과 발행 주체, 발행 액 수 등을 공개하지 않기로 계약돼 있어 상세 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크게 보면 일부 지역 백화점 상품권과 카드·모바일 같은 온 라인 상품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조폐공사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상품권 발행 규모가 처음으 로 10조원선을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통업체들이 상품권 발행에 신경을 쓰 는 것은 매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백 화점의 경우 ‘할인율’을 적용한 판매촉진 효 과가 크다. 예를 들어 상품권 1000만원어치 판매에 5%의 할인율을 적용하기로 한 경우,
1050만원 어치를 건넬 수 있다. 고객의 입장 에서 상품권 구입단계부터 ‘세일 효과’를 누 릴 수 있어 구입을 반긴다. 백화점 입장에선 판매량만큼 매출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상품권 발행에는 별 제약이 없다. 조폐공 사에 인지세만 내면 쉽게 찍어낼 수 있다. 인 지세는 상품권의 액면 가격에 따라 1만원권 은 50원, 1만원 초과~5만원 이하는 200원, 5 만원 초과 ~10만원 이하 400원, 10만원권 초 과의 경우 800원이다. 인지세 1만원으로 상 품권 250만원어치(10만원권 25장)를 발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법제연구팀 김성천 연구위원은 “상품권이 시중에서 현 금처럼 쓰이는 점을 감안하면 백화점이나 정 유업체들이 현금을 찍어내는 것이나 마찬가 지”라고 말했다. 50만원권 등 고액권 발행 급증 최근 고액 상품권 발행이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백화점 3사가 지난해 찍어낸 고액 상품권(50만원권)은 1조8225억원어치다. 작 년 백화점 상품권 전체 발행액(5조4000억 원)의 30%가 넘는다. 발행이 느는 것은 그만 큼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실제 A백화 점은 50만원권 발행 규모를 2011년 60만 장 에서 지난해 302만 장으로 5배 늘렸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50만원권 상품권은 한장·두 장 낱개로 팔리는 게 아니라 수십 장 씩 한번에 팔려나간다”며 “주로 법인 고객들 이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 했다. 30만원권도 지난해 A백화점 12만장 (360억원), B백화점 2만장(60억원), C백화점 3만2000장(96억원), D백화점 4000장(12억 원) 등 총 17만6000장을 발행했다. 금액으로 는 528억원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해 백화점들이 30만원권을 500억원 조금 넘 게 발행한 반면 50만원권을 2조원어치 가까 이 발행한 것은 선물용 고액권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액면가만큼 구매력을 가진 상품권은 기능 상 현금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화폐 규모인 통화량 부문에서는 제 외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흐름을 파악하 는 대표적인 통화지표로는 협의통화(M1)와 광의통화(M2)가 있다. ‘M1’은 민간 보유 현
200여종 상품권, 5년간 26조원 풀려 소비 자극해도 통화량에서는 제외 손실·파괴 등 미사용 비율 3~5% 1조원어치 찍으면 500억원 ‘공돈’
금과 요구불 예금, M2는 M1통화량에 저축성 예금, 투신사 MMF 등이 포함된다. 상품권은 연간 10조원대가 풀리면서도 통화량 산정에 서는 제외된다. 실제 화폐와 동일한 구매력을 가지면서도 돈으로 치지 않는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상품권을 ‘유령화폐’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김 연구위원은 “만 약 상품권 발행에 따라 통화량이 내생적으로 변동할 경우 이를 감안한 금리정책이 필요해 진다”며 “상품권 발행규모가 투명하게 공개 돼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할인율 보면 시중 경기 알 수 있어 유효기간이 지나거나 손실·파괴돼 휴지조각 이 된 상품권의 판매액은 낙전 수익이 돼 고 스란히 발행업자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업계
에서는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낙전 수익을 연간 발행액의 3~5%로 추산한다. 1조원어치 상품권을 발행하면 300억~500억원의 ‘공돈’ 이 생긴다는 얘기다. 백화점들은 찍어낸 상품권을 주로 입점업 체나 납품업체 등에 판매한다. 업체들은 이 를 다시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소비자들이 이 를 매장에서 사용하면 이때 백화점의 상품권 판매 수입과 매출이 상쇄된다. 상품권을 기한 내에 사용하지 않아 상쇄되지 않고 남은 금액 이 낙전 수익이 되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낙전수익 규모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발 행업체들이 비자금을 조성할 유혹에 빠지기 쉽다”며 “금융당국의 상품권 흐름에 대한 감 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품권의 시중 판매가는 경기 상황을 반
상품권도 양극화 시대
백화점 상품권, 같은 액면가라도 제품 선택 폭 넓어 인기 박태희 기자
상품권은 상품과 교환할 수 있는 금액이 정 해진 채권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상품이 다. 대형마트에서 함께 쓸 수 있는 일부 백화 점 상품권의 선호도가 높은 것도 효용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증시에 대장주와 소형주가 있듯, 같은 액면가의 상품권이라도 활용도에 따라 선호도는 크게 갈리는 것이다.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할인율이 3~4% 에 불과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한다. 반면 전 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2009년 탄생한 온누
리 상품권은 판매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 다. 중소기업청장이 직접 나서 은행과 기업 을 대상으로 판촉활동을 할 정도다. 온누리 상품권은 추석 특수가 시작되는 이달 1∼19 일 352억9000억 원어치가 팔렸다. 기업 고객 이 62.5%로 가장 많았고, 공공부문 고객이 27.7%였다. 최근에는 모바일 상품권(사진)의 성장세 가 가파르다. 모바일 상품권 판매액은 지난 해 1400억 원대에서 올해 3배 이상 늘어날 전 망이다. 특히 올해 추석에는 편의점에서 쓸 수 있는 카카오톡 상품권이 나오는 등 스마트
전통시장 활성화 위한 ‘온누리’ 중기청장이 독려 나서야 팔려 편의점용 카톡 상품권 급부상
폰 메신저를 통해 유통되는 상품권이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국내 상품권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 러 올라간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서울 충무 로 본점 자리에 있던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 이 1930년 10월 최초로 상품권을 발행했다. 미쓰코시 경성점은 한국 최초의 백화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해방 후 자취를 감췄던 백화 점 상품권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 은 ‘5·16혁명’ 직후인 1961년부터였다. 군사 정부는 내수경기 부양을 위해 소비촉진책을 폈다. 당시엔 물품교환권이 주를 이뤘는데
먹을 것이 귀하던 60년대에는 설탕과 조미료 교환권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때 ‘국민 상품권’ 역할을 했던 구두상 품권은 76년 등장했다. 과거 구두가 귀한 선 물로 여겨지던 시절, 받는 사람이 직접 구두 를 고를 수 있도록 교환권을 발행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등장했다. 하지만 할인율이 높 다 보니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서서히 쇠락했다. 2011년 엘칸토를 인수한 이랜드 는 “구두상품권 할인율이 너무 높아 정가 개념이 없어진다”며 상품권 발행을 전면 중 단했다.
Money 19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도둑들
연결(Connectivity)의 경제학
다음 주 preview
퇴임 후 은둔하던 버냉킹 전 Fed 의장. AIG관련 소송
중국 갑부 1위 반열에 오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한화
홍콩~마카오를 잇는 50㎞ 다리(2017년 완공 예정)는
9월 첫날 미국 노동절 휴장(1일)인 가운데 8월 고용
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2008년 금융위기는 대공황보
약 22조). 40인의 도둑을 속인 알리바바를 社名으로 전
물류, 복합레저와 산업단지를 아우름. 3㎞에 불과한 우
지표(5일·실업률 6.1%, 고용창출 21만 명)에 시장
다 심각했다”고 답변. 단, 왜 리먼 사태로 상징되는 금
자상거래 혁명을 일으키며 종래의 과도했던 유통마진
크라이나 ‘사랑의 터널(Tunnel of Love)’은 전란에도
의 초점. 주초 중국·독일 및 미국 ‘빅 3’의 제조업
융공황의 도화선에서 막대한 구제금융을 퍼부어 AIG
을 장물로 전락시킴. IPO를 보름 앞둔 Grey시장에 벌
불구, 전세계 연인들의 聖地. 제주 해저터널 논쟁에 되
구매관리자 지수도 관심. 영란은행(BOE)의 정책
라는 뇌관을 제거했는지는 답변을 미뤄.
써 알리바바 주가는 15% 프리미엄.
새김 해보는 섬의 의미.
금리결정(4일) 또한 눈여겨 봐야.
버냉키 코드 A.I.G.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2050 박스권에 갇힌 증시의 숙제들 외국인 매수가 뜸해졌다. 상반기 내내 외 국인이 수급 균형을 맞춰왔다는 점을 감안 할 때 불안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고 글로벌 유동성 규모나 역할이 의심받을 정도로 바뀐 건 없다. 미국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빨라야 내년 2 분기쯤 첫 번째 조치가 단행되지 않을까 생 각된다. 선진국중 어떤 곳도 두드러지게 유 동성을 회수한 곳이 없다. 이렇게 보면 외 국인 매수 둔화는 국제적인 자금 흐름이 바뀐 것보다 우리 시장 자체 요인 때문으 로 보는 게 맞다. 지난 7~8월 국제 자금 흐 름은 독일과 대만 등지에서 빠져 나온 돈이 우리 시장과 홍콩으로 들어오는 형태였다. 두 지역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오르지 못한 점이 작용했다.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기 고 있다. 달러화로 환산한 종합주가지수가 2011년 고점 수준에 도달했다. 외국인 입장 에서 한국 시장에 자금을 넣어야 할 이유 가 약해진 것이다.
이종우
미국 S&P 500지수가 처음으로 2000을 넘 었다. 다우지수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 주요국 주식시장도 비슷한 흐름을 보 이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시장은 박스권 을 돌파할 때 기대와 달리 2050 주위를 벗 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시장 강세에 기 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가는 형태다. 이런 차이는 실적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 했다. 미국은 3년 가까이, 유럽도 1년 넘게 최고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2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1.4% 줄었다. 3분기도 자신할 수 없는 상 황이다. 고가 스마트폰 보급이 일단락됨에 따라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빠르게 하락하 고 있다. 그런 경향은 아시아에서 특히 심 해 중국 시장 점유율이 1분기의 절반 수준 으로 떨어졌다. 앞으로 상황도 만만치 않 다. 남아 있는 수요의 상당 부분이 200달러 이하 중저가 폰에 한정돼 있어 삼성전자가 들어갈 부분이 없다. 그 때문에 수익 전망 역시 낮아지고 있다. 애초 7조원대로 예상 되던 3분기 영업이익이 최근에는 6조원대 초반까지 낮아졌다. 하락 속도도 시간이 흐 를수록 빨라지고 있다.
8조2794억
26만 387장
6조2194억
매년 늘어나는 상품권 발행 (단위: 원)
4조7786억 21만 2301장
3조8299억 액면가
3조3782억 발행규모
15만 4952장
16만 1927장
13만 6390장
2010
2011
2012
2013
자료: 한국조폐공사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백 화점 상품권 전성시대다. 신세계·롯데·현대 등 백화점 3사의 상품권 발행금액은 1994년 1000억원이 채 안 됐지만 지난해 4조원을 넘 었다. 발행 규모가 20년 만에 40배 커졌다. 전 체 상품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40%를 넘어섰다. 같은 액면가라도 백화점에서는 다 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인기가 식지 않는다. 발행한 회사 입장에서는 상품권 발행금액 만큼 무이자 자본을 차입한 효과가 있는 데 다 명성과 신용도를 높일 수 있어 발행을 늘
년 이후 연평균 2200여 건이 접수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구제까지 이어진 경우는 2010년 3.29%, 2011년 10.38%, 2012년 4.72%, 2013 년 7.23%에 불과했다. 상품권은 유형에 따라 인지세법, 표시·광 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전자금융거래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문화예술진흥법 등 다양 한 규정의 저촉을 받는다. 그만큼 소비자 간 자율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분쟁이 유효기간 포함 여부다.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르면 상품권 유효기간이 지나 더라도 5년(상사채권 소멸시효) 이내에는 상 품권에 찍힌 금액의 90%에 해당하는 현금· 물품·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 고 있으나, 강제력이 없어 현장에서 무시당하 기 일쑤다.
리는 추세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선물 받은 백화점 상 품권을 주로 어디에 쓸까. 지난해 추석 전후 인 9~10월 롯데백화점이 서울 본점에서 결제 된 상품권을 조사한 결과 해외패션에 26.0%, 생활가전에 23.0%가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젊은 층이 이용하는 롯데 영플라자 에서 상품권 회수량은 3.6%에 그쳤다. 롯데 백화점 관계자는 “평소 현금으로 구입하기 부담스러웠던 명품이나 고가의 제품을 상품 권을 이용해 주로 구매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내수활성화 정책 효과 있으려면 유사한 조치 몇 차례 더 나와야 실적으로 이어져야 주가 오를 것 면 강하게 늘어나던 과거 모습이 이번에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우리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목표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선진국만큼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후 시중 금리 하락 폭이 정 책 금리 하락 폭보다 작았다. 금리 인하가 한 번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 다. 부동산 가격이 일부 반응을 보이고 있 긴 하지만 지속성이 얼마나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정책에 의 해 경제 흐름이 바뀌려면 유사한 정책이 몇 차례 더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두 번 시행에 그칠 경우 정부가 경제에 신경을 쓰 고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순 있어도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선진국 경제 정책이 시장에서 힘을 발휘 할 수 있었던 것도 2~3년간 반복 시행을 통 해 효과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정책 효과 가 잘 나타나지 않을 경우 한국은행이 정 책 금리를 1%대까지 낮출 정도로 강도 있 게 정책을 펼 거라고 투자자들이 확신할 경 우 우리 시장에서도 정책에 의한 주가 상승 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부 정책이 시작됐으 므로 투자자들은 당분간 후속 정책 여부와 효과를 지켜볼 것이다.
외국인 매수 뜸한 것도 문제 비슷한 경우가 대만에서도 나타났다. 달러 화 기준 대만 주가가 2011년 고점에 도달하 면서 외국인 매수가 줄어든 경험이 있다. 미 국의 3차 양적 완화가 마무리되는데 따른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10월에 양적 완화가 끝나면 시차를 두고 유동성 흡수가 시작될 것이다. 이 경우 달러가 다른 통화에 대해서 강세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국내 시장으로 돈 이 들어오는 걸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8월에 주가가 박스권을 돌파하면서 추가 상승 기대가 커졌다. 박스권 돌파는 유동성 에 의해 이뤄지지만, 주가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펀더멘털의 뒷받침돼야 한다. 경 기와 기업실적 회복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 다. 우리 경제가 작년 3월에 저점을 찍었으 니까 회복이 시작되고 1년 이상이 지났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꺾인 것도 아닌데 부양 책이 나온 걸 보면 정부가 경기 회복이 힘없 이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주식 시장이 상승하려면 난제들을 넘어야 한다. 당분간 주식시장은 장애물을 치우면서 힘 겹게 올라가는 상황을 겪어야 할 것 같다.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시가총액 신기록 행진 이끈 애플 CEO 팀 쿡
공개 임박 아이워치 잡스 그림자 지울까
중앙포토
영하는 지표 역할도 한다. 경기가 안 좋으 면 상품권을 팔아 현금으로 쓰려는 사람들 이 늘어 할인율이 높아진다. 즉 상품권 가 격이 낮아진다. 반대로 경기가 좋을 때는 상품권 수요가 늘면서 할인 폭이 축소된다. 현재 롯데상품권 10만원권은 9만6000원 가량에 거래된다. 지난 설에 비해 다소 높 은 가격이다. 명동의 한 상품권 도매상인은 “추석이 다 가올수록 상품권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아져 다음주에는 10만원짜리 상품권 가격이 좀 더 오를 것”이라며 “경기가 풀린다는 걸 상품권 가격을 통해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권 발행 규모가 커지면서 이로 인한 피해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에 따르면 상품권 관련 소비자 피해는 2010
중앙포토
2009년
삼성전자 뒤 이을 종목 눈에 안띄어 삼성전자의 이익이 줄어들 경우 이를 메 울 대상이 마땅치 않다. 산업 규모를 감안 할 때 화학·조선·철강 등이 대상이 돼야 하 는데 업황이 좋지 않다. 작년에 삼성전자가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을 때 40%에 육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 자의 이익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시장 전 체 이익 역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2분 기에 기업 실적이 바닥을 쳤을 거란 전망이 많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앞으로 모양은 이익이 크게 늘기보다 더 이상 줄지 않는, 그래서 증가율도 미미한 형태가 될 것이다. 당분간 이익이 주가 상승의 힘이 되기 어렵 다는 의미가 된다. 이익이 바닥을 치고 나
일러스트 강일구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박태희 기자
“더 많이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Wish we could say more)”. 애플이 최근 주요 언론사에 보낸 초대 장에 들어있는 한 줄 글귀다. 애플은 내달 9일 오전 10시(현지시각) 차기 전략 제품 을 공개할 계획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이번 애 플의 행사를 계기로 ‘팀 쿡의 시대’가 열 릴지 주목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이래 3년 동안 팀 쿡은 혁신가라기보다 ‘안정적 관 리자’의 역할을 해왔다. 생전에 자사주 매 입을 기피했던 잡스와 달리 올 1분기에 만 180억 달러를 풀어 자사주를 사들 이면서 주가를 띄웠다. 중국 땅을 밟 은 적 없는 잡스와 달리 쿡은 빈번하 게 중국을 드나들며 시장 확대에 공 을 들였다. 그 결과 애플은 올해 2 분기에만 중국에서 매출 59억달
러(약 6조180억원)를 기록했다. 관리자 역할에 충실했던 쿡이 내달 행 사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제품은 아이워 치로 알려졌다. 아이폰6의 사진이 여러 차례 유출된 데 비해 아이워치는 지금까 지 단 한 장의 사진도 유출된 적이 없다. 쿡이 아이워치 보안 유지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 목이다. 쿡이 이번 행사 장소로 ‘플린트 센터’ 를 선택한 것도 아이워치 공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볼 수 있다. 플린트 센 터는 잡스가 1984년에 ‘매킨토시’ 컴퓨 터를 발표한 곳으로 유명하다. 쿡 역시 이 곳에서 아이워치를 처음 공개하면서 혁 신가의 면모를 선보일 전망이다. 신제품 발표에 대한 기대감으로 29일 (현지시간) 애플 주가는 전날 종가 대비 0.24% 상승한 102.50달러로 마감했다. 최 근 9거래일 중 이틀만 빼고 매일 최고기록 을 갈아치웠다.
20 Economy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마켓&마케팅 ① 사교의 기술이 경쟁력이다
소비자와 연인처럼 밀당하라 그러다 결혼하라 이 세상에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몇 개쯤 존재할까요. 일일이 세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을 겁니다. 이들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생산활동도 그만큼 다양하겠지요. 신기한 건 이 많은 기업들의 마케팅 목표는 모두 같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고객 마음 잡기’죠. 이번주부터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최순화 교수가 기업 마케팅과 브랜딩에 숨은 전략, 경영학적 의미 등을 재미난 일화와 함께 소개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들에게 기업과 소비자를 보는 눈, 고객 마음의 실체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schoi@dongduk.ac.kr
“연애결혼 하셨어요, 중매결혼 하셨어요?”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사람들과의 회식 자 리에서 ‘공장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 자면 아마 자녀가 어떻게 되는지 다음으로 나올 만한 질문이다. 남녀 관계는 물론, 개성 강한 독특한 친구 이야기, 오랜 친구와 절교 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사연까지 우여곡절 많은 관계 이야기는 남녀노소 모두 의 관심사다. 소비자와 기업의 관계도 흥미롭다. 기계적 으로 제품을 만들어 파는 생산자, 가격에 맞 춰 선택하는 구매자의 거래적 관계는 이제 서로의 성격·능력·취향까지 고려하는 생명 력 있는 관계로 진화했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민하는 브랜드, 좋아하는 브랜 드의 신제품 출시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고객 은 밀고 당기는 애정관계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인간적 관계’는 다 양한 유형으로 설명된다. 고된 업무 후에도 음주를 피할 수 없는 샐러리맨의 애환, 팍팍 한 삶 속에서도 지킬 것은 지킨다는 젊은이의 모습, 대한민국 알바생, 학부형으로 사는 고 달픔 등을 주제로 광고를 만들어온 박카스는 “그래, 많이 힘들지?”라며 다독여주는 인생 선배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녀노소 모두와 따 뜻한 추억을 공유하며 국민 브랜드로 자리매 김한 초코파이는 정감 어린 소꿉친구다. 누구와 교제할지 끝없이 질문해야 컬트 브랜드의 대명사 할리데이비슨은 브랜 드와 고객이 서로 구속하는 중독성 있는 사 랑을 나누고, 나이키는 매일 만나 건강관리 를 함께하는 운동 파트너로 여겨진다. 세계 어디서나 편리하게 사용하는 아멕스 카드 는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든든한 비서 와 같다. 업무시간 몰래 스트레스를 푸는 게 임 사이트나 웹툰과의 비밀스러운 관계, 당 장 헤어지고 싶지만 약정에 묶여 어쩔 수 없 이 참고 사는 계약결혼 관계도 있다. 어린 시 절 크리스마스 선물 1순위였던 소니 워크맨 은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한 첫사랑이 아니 었을까. 한때 애플은 Mac을 캐주얼한 차림을 한 쾌활한 젊은이로, IBM PC는 구식 양복을 입 은 고리타분한 아저씨로 묘사한 TV광고 시 리즈를 내보냈다. ‘당신이라면 어떤 스타일 의 사람과 교제하고 싶은가?’를 질문하며 자 신의 매력을 어필한 것이다. 교제 대상에 대 한 평가 기준이 제각각인 것처럼 소비자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기업과 제품을 선택 한다. 현실적인 사람이 배우자를 고를 때 학 벌이나 직업을 살피듯이 실용적인 소비자들 은 제품의 기능과 성능, 애프터서비스 수준 을 꼼꼼하게 따진다. 연애 상대는 무조건 예 쁘거나 잘 생겨야 한다는 사람이라면 성능은 조금 처지더라도 디자인이 우수한 제품에 매 력을 느낀다. 남아메리카 소비자들은 신생기업보다 역 사와 전통을 갖춘 기업을 선호하는데, 뼈대 있는 집안을 찾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것 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어떤 조건보다 인품이 중요하다면, 기업의 윤리경영 수준이나 친사 회적 활동을 최우선시하는 소비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학벌·외모·가문·성품까지 따 지는 눈 높은 소비자들로부터 파트너로 선택 받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박카스는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삶의 한 단면을 광고 소재로 삼아 인간적인 제품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사진은 하루를 마치는 젊은 여성을 방전된 배터리에 비유해 기운을 북돋우는 광고.
첫사랑 워크맨 인생선배 박카스 고객은 구매자 아닌 교제 대상 상대가 원하는 것 알아차리는 연애 고수 같은 마케팅이 효과적
기업 입장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을 함 께할 가치 있는 고객을 고르는 안목이 필요 하다. 연령대, 주거지역, 라이프 스타일, 소득 까지 여러 조건에 맞는 목표고객을 설정해 야 한다. 할인 시즌에 잠시 왔다 사라지는 철 새 고객, 사기성 짙은 블랙 컨슈머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2012년 국내 신용카드사 6개 중 4개사가 상위 0.05%의 VVIP(Very Very Important People) 회원에 대한 혜택 프로 그램으로 평균 23억 원 이상의 적자를 본 것 처럼, 고소득층의 큰손 고객이라도 파워를 남용하거나 유지 비용이 너무 큰 경우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주변 어슬렁대는 브랜드엔 불쾌감 고객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현명하게 판단해 야 한다. 많은 기업이 고객과 최대한 자주 만 나서 많은 대화를 나눌수록 더 가까워진다 고 생각하는데, 큰 착각이다. 2010년 포레스 터 리서치가 10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 해본 결과 기업 블로그, 소셜미디어 등을 통 한 기업 측과의 대화를 즐기는 비중은 16%에 불과했다. 오히려 대다수 틴에이저는 원치 않 는 간섭을 하거나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브랜 드에 강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쿨한 관계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직접적인 구애보다 브 랜드 컨셉 스토어 같은 공간에서 또래끼리의 자유로운 만남을 지원하며 은근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사교의 기술은 타고나는 것일까? 좋은 친 구를 많이 둔 사람들은 화려한 배경이나 현 란한 말솜씨보다 상대방의 생각, 마음, 고민 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만남을 앞두고 서
P&G 시장조사부서를 1925년부터 34년 동안 이끈 스멜서 박사.(왼쪽) 1940년대 P&G 조사원이 고객조 사를 위해 가정을 방문하는 모습.(오른쪽)
[사진 P&G]
IBM PC를 구식 양복 입은 아저씨, Mac을 캐주얼 차림의 젊은이로 대비시킨 애플의 광고.
둘러 상대의 근황을 살피는 것이 아닌, 일상 적이고 습관적인 관심과 관찰이 진정한 우정 과 사랑의 결실로 이어진다. 세계 최고의 마 케팅 강자로 인정받는 P&G도 오랜 기간 동 안의 고된 노력을 통해 고객의 마음을 사로 잡는 기술을 체득할 수 있었다. 창사 이래 P&G가 고수해온 성공 공식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실천은 1925년 설립된 시장조사부서에서 시작되었는데, 기 업경영 역사에서 마케팅 리서치 조직의 효 시라 할 수 있다. 초대 팀장을 역임한 스멜서 (Smelser) 박사는 본사 임원회의에서 경영 진 앞으로 걸어가 난데없는 질문을 한 일화 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아이보리 비누로 손, 얼굴 어디를 더 씻을까요?” 제품만 생각하는 경영진의 시각을 소비자가 제품을 언제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그래서 기분은 좋은지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P&G는 수천 명의 대졸 여성 조사원을 고 용하여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요리설거지 세탁을 할 때 자사는 물론 경쟁사 제품까지 사용행태를 조사하고 보고하도록 했다. 조 사원들은 아무런 도구 없이 자연스럽게 주 부들과 대화하고 행동을 관찰하도록 훈련받 았는데, 조사 내용을 잊지 않고 기록하기 위 해 자동차로 부리나케 뛰어간 적도 많았다고 한다. 19 4 1년에 는 세 계 최 초 로 고객 관계 (Consumer Relations) 부서를 설립했고, 1960년대부터는 방문 조사를 대체할 장거리 전화와 우편을 사용한 장거리 조사방법을 활용하면서 고객 연구의 트렌드를 주도했다. 1973년에는 콜센터 서비스, 1980년대에는 e
[사진 동아제약]
메일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 는 심리학인류학사회학적 관점을 접목시킨 혁신적인 조사방법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흐 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제품이 소비자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용 되고 있고,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파 악하기 위한 오랜 노력은 오늘날 P&G가 마 케팅 최강자로서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근 간이 되었다. 고객이 미처 깨닫거나 말하기 전에 욕구와 불만을 감지하는 기업, 무슨 말 이 듣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읽어주는 상대를 누가 미 워할 수 있을까. 인간적 매력 느껴지는 기업 돼야 한때 소니는 고객들에게 ‘펫(pet)’ 같은 제품 만들기를 목표로 삼았다. 24시간 곁에 두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대상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소니의 위세가 많이 약 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고객을 대하는 근본적 인 자세에서는 여전히 배울 점이 많다. 고객 의 펫이 되고 싶다는 소니의 마음은 단순히 높은 수익과 점유율을 좇기보다 사람의 마음 을 위로하고 교감하고자 하는 기업의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 제품과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어떤 대 상으로 비칠까? 무심코 쓰고 버리는 물건, 자 기 이익에만 급급한 탐욕적인 폭군으로 여겨 지는 것은 아닌지, 일상 속에서 함께 추억을 만들고 교감을 나누는 즐거운 교제 대상인 지 점검해봐야 한다. 나아가 기업의 역량과 소비자의 특성에 맞춰 로맨틱한 연애의 대상 이 될지, 진중하고 믿음직스러운 신뢰의 대 상이 될지, 상대를 애타게 하는 얄밉지만 사 랑스러운 대상이 될지, 이상적인 관계의 유형 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고객을 단순히 구매 자(purchaser)가 아닌 교제의 대상(human) 으로 바라본다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 을 넘어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기업으로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최순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에서 석사 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 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 (공저, 2010)가 있다.
Economy 21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BMW포르셰도 앞다퉈 뛰어드는 SUV 자동차 시장
아담하지만 강력한 외국산이 몰려온다 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 ceo@roadtest.co.kr
올 하반기 국내 시장엔 다양한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가 출시될 전망이다. 이달에 만 2~3일 간격으로 4개 차종이 데뷔했다. 18일 BMW X4, 20일 지프 체로키, 25일 메르세데 스-벤츠 GLA, 28일 기아 쏘렌토가 베일을 벗 었다. 이후에도 출생 신고는 이어진다. 9월 링 컨 MKC, 10월 렉서스 NX와 아우디 Q3 부분 변경, 11월 닛산 캐시카이가 줄줄이 나온다. 최신 SUV엔 눈에 띄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아담한’ 덩치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 의 관심이 뜨겁다. 정체된 고급차 시장에서 소형 SUV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는 까닭이 다. 포르셰가 올 초 공개한 조사결과에 따르 면 2007년 프리미엄 소형 SUV 시장 규모는 46만4000대. 반면 올해는 185% 늘어난 132 만4000대, 2019년엔 172만 대로 예상한다. 쟁쟁한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들이 빤히 보이는 수요를 놓칠 리 없다. 주도권을 쥐기 위해,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신 차를 투입하고 있다. 물론 업체별로 노림수는 제각각이다. 가령 장르와 체급이 겹칠 뿐 서 로 겨냥하는 고객의 연령층이나 성향엔 차이 를 보인다. 이 시장의 후발주자인 링컨 MKC 와 렉서스 NX가 대조적 사례다. 6월 링컨 이 미국 산타바바라에서 치른 MKC 시승회 에서 만난 치프 엔지니어 존 즈레이크(John Jraich)는 “자녀를 독립시킨 베이비 부머가 직접적 타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베이비 부머 세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46년부터 64년 사이에 태어난 이 들이다. 미 통계청의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약 7600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28%다. 그런데 이들이 미국 금융자산의 77%를 거머쥐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보고 서에 따르면 미국 베이비 부머 세대의 소비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다 쓰고 죽 주요 소형 SUV의 제원 차종 BMW X4 BMW X4 지프 체로키 지프 체로키 MB GLA MB GLA MB GLA 링컨 MKC 링컨 MKC 렉서스 NX 닛산 캐시카이
출시 8월 18일 8월 18일 8월 20일 8월 20일 8월 25일 8월 25일 8월 25일 9월 중 9월 중 10월 중 11월 중
자’다. 부를 자녀에게 물려주기보다는 자신 을 위해 쓰고 싶어한다. 둘째는 ‘신상(최신제 품)’에 관심이 많다. 구세대와 달리 새로운 것 에 호기심이 많다.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다.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느끼게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싫어한다. 프리미엄 소형 SUV는 여러모로 베이비 부 머 세대와 이해관계와 맞는 듯하다. 이들은 젊었을 때처럼 큰 차로 허세부리는 데 더 이 상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궁색해 보이는 차 또한 원치 않는다. 수많은 장르 가운데 SUV 가 주목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키가 껑충 해 덜 왜소해 보인다. 짐 공간이 큰 데다 싣고 내리기도 쉽다. 아울러 세단보다 한층 젊고 발랄한 분위기다. 또한, 상시 아담한 SUV사륜구동 시스템 을 고를 경우 폭우나 폭설 등 변화무쌍한 기 후에도 비교적 안심할 수 있다. 게다가 중장 년층으로 접어들면 반사 신경이 스스로 자각 할 만큼 둔화한다. 그래서 운전자의 실수를 줄이고 수고를 덜 각종 전자장비가 필요하 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가능하다. 그러나 NX를 앞세운 렉서스가 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NX 프로젝 트는 2009년 막을 올렸다. 금융위기의 여파 로 렉서스의 최대 시장인 미국 경기가 차갑 게 얼어붙었을 때였다. 하지만 기회이기도 했 다. 당시 도요타 가문의 아키오 사장은 렉서 스의 전면개혁을 주문했다. 감성을 자극할 차를 원했다. 렉서스는 NX를 ‘프리미엄 어 번(urban) 스포츠 기어’로 정의했다. 활동적 이미지의 고급 정밀기계를 지향했다. 궁극엔 스포츠카와 SUV의 융합을 꿈꿨다. 모험에 관대한 고객을 노렸다. 반면 이미 아담한 SUV 차종을 거느린 브랜 드는 ‘틈새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BMW X4 가 대표적이다. X3을 바탕으로 앞뒤 유리를 가파르게 눕히고 지붕을 납작하게 다졌다.
*트림과 상관없이 선착순 500대 판매 적용가격, 가격은 변경될 수 있음
길이 x 너비 x 높이(㎜) 엔진 4671 x 1881 x 1624 2.0L 디젤 4671 x 1881 x 1624 3.0L 디젤 4620 x 1860 x 1710 2.0L 디젤 4620 x 1860 x 1710 2.4L 가솔린 4305 x 1770 x 1445 1.5L 디젤 4440 x 1805 x 1510 2.2L 디젤 4445 x 1804 x 1479 2.0L 가솔린 4554 x 1839 x 1605 2.0L 가솔린 4554 x 1839 x 1605 2.3L 가솔린 4630 x 1845 x 1645 2.5L 하이브리드 4377 x 1806 x 1595 1.6L 디젤
자료: 각 회사
출력(마력) 연비(㎞/L) 가격(만원) 190 미정 7020 258 미정 8690 170 14 *4830~5280 177 10.1 *4830 109 19.3 3790~4100 136 16.2 4900 360 미정 7110 243 미정 미정 285 미정 미정 197 미정 미정 130 미정 미정
Biz Report BC카드 추석맞이 이벤트
2000만원 어치 소원 들어드려요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BC카드가 추석을 맞아 다양한 경품과 혜택 을 주는 ‘달달한 한가위’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번 이벤트는 투표를 통해 총 3명의 회원 에게 소원성취 기회를 제공하고, 총 1만 명에 게 주유권을 준다. 또 2~3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도 준다. 소원성취 이벤트는 BC카드 홈페이지 (www.bccard.com) 내 이벤트 페이지를 통 해 이뤄진다. 이벤트 페이지에 소망하는 소 원을 등록한 후 네티즌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최다득표자 3명의 소원을 각각 2000만원 한도 내에서 들어준다. 투표기간은 9월 16일부터 22일까지. 주유권은 9월 한 달 동안 사전에 설정해 놓 은 BC카드 사용 목표금액(홈페이지 내 이벤 트 페이지에 신청)을 달성한 고객 1만 명(5만 원권 100명·1만원권 9900명)에게 준다.
모델들이 달달한 한가위 이벤트 알림 푯말을 들 고 있다.
[사진 BC카드]
또 이벤트 기간 동안 BC카드 회원 전원은 모든 가맹점에서 2~3개월 무이자 할부혜택 을 누릴 수 있다. 해외직구파를 위한 특별 이 벤트도 있다. 다음달 6일부터 10일까지 BC카 드 홈페이지를 통해 이벤트를 신청한 BC카 드 회원 중 선착순 5000명이 GAP·랄프 로렌 등 10개 해외 인기 사이트에서 미화 100달러 이상 결제하면 15% 청구할인 혜택(회원당 최대 2만원까지 할인)을 주기로 했다.
미국 크라이슬러사의 지프 올뉴 체로키. 국내에도 이달 출시됐다. 2.0L 디젤 모델은 1L당 14㎞의 연비를 자랑한다.
[사진 크라이슬러코리아]
22 Health Plus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베스트 닥터
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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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박윤수 교수
금속 인공관절 부작용 세계 최초로 밝혀내
강동우백혜경 성의학전문가
남편의 성적 이중성
성(性)은 우리의 숨겨진 본능이 작용하기에 겉 으로 보이는 면만 갖고 예측하긴 어렵다. 오히려 지위가 높은 사람의 경우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지위 때문에 진정한 친밀감정을 상대와 공유할 기회가 적을 수 있으므로 더 취약할 수도 있다. 이런 남성들을 정신적으로 분석해보면, ‘허 락된 성’의 안정감보다 ‘금지된 장난’의 위험함 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성을 처음 간접 경 험하는 성장기 자위 행위의 이중적 감정과 관련 있다. 쾌락이란 감정과 동시에, 자신의 나쁜 장 난이 부모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죄책감이나 처 벌에 대한 두려움이란 이중 감정을 만든다. 보통 이런 초기 성 경험의 이중 감정은 자라서 성인이 된 뒤 연인이나 배우자와 친밀관계를 형성하면 서 자연스레 극복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해 고 착화되거나 퇴행되면 급기야 허락된 성보다 금 지된 장난을 선택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뒤로 호박씨 까는 ‘하이드씨’ 남성들 중엔 평소 자신은 성욕이 별 로 없다거나 공공연히 섹스리스 부부임을 알리 는 경우가 꽤 있다. 도박·약물·주식 등 중독 성 향이 강하거나, 얌전하다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 는 등 평소 감정적으로 억제돼 있는 사람도 ‘호 박씨’ 남성일 위험성이 있다. 아주 가까운 인간 관계에서 친밀감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도 억눌 린 성 심리가 엉뚱하게 표출될 수 있다. 성적 이중성을 가진 사람들은 통제가 풀리고 익명성이 보장될 때 자신의 억눌렸던 거친 본능 이 ‘하이드씨’처럼 튀어 나온다. 특히 충동 억제 를 약화시키는 음주나 어둠처럼 익명성을 강화 할 수 있는 상황은 지킬박사를 하이드씨로 만들 기 쉽다.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어둡고 으 슥한 곳과 술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니켈 소재의 귀고리나 반지에 알레르기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요. 인공관절 소재인 코발트가 니켈과 비슷한 성질이므로 알레 르기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박윤 수 교수(58)는 같은 병원 피부과 양준모 교 수의 말에 귀가 번뜩였다. 박 교수는 성공 적인 수술 뒤 통증을 호소하며 절룩거리는 일부 고관절 (엉덩이관절) 환자 때문에 머 리가 하얗게 셀 지경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망가진 고관절 대신 미국에서 개발한 코발 트·크롬 합금의 금속 인공관절을 이식 받 은 환자들이었다. 박 교수는 2004년 이런 환자들의 부작용 사례를 모아서 국제 학회에 발표했다. 금속 이란 이물(異物)이 환자에게 염증과 통증 을 유발하고 심지어 연결된 뼈를 녹이기도 한다는 그의 주장에 다른 나라 의사 들이 수군댔다. 태국에서 열린 인공관절 심 포지엄에선 미국 로스앤젤 레스의 저명 의사가 조용 히 다가왔다. 그는 “주 위의 의사들에게 물 어봤는데 그런 부작 용은 없었다”며 “당신 의 생각이 틀린 것 같 으니 수술영상과 통계 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말이 요청이 지 ‘은근한 협박’이었 다. 알고 보니 그는 인공관 절 회사의 자문의사였다. 박 교수는 이듬해 7월 관 절수술 분야의 최고 권위지
인 ‘골관절수술지(JBJS)’에 금속 인공관절 의 부작용 사례 10건을 보고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지금까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무 려 246번 인용됐다. 이후 학회의 가장 중요 한 이슈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그 의사도 나중에 만난 뒤 “내가 잘못 해석했다”고 항복했다. 금속 인공관 절을 만든 회사인 ‘존슨 앤 존슨’사(社)는 손해배상과 재수술비로 40억~50억 달러 (약 4조~5조원)를 써야 했다. 처음에는 15 억 달러를 예상했지만 피해 사례가 눈덩이 처럼 불어난 것이다.
논문 발표 뒤 국제학회 단골 초청 관절수술로 걷게 한 환자 8000명 수술 부작용 줄인 의료기도 개발
박 교수는 이 논문 발표 뒤 국제학회의 단골 초청 의사가 됐다. 다른 나라 의사들 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스타 의사’가 됐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환자들이 수 술 후 벌떡 일어나는 모습에 반해 정형외 과를 택했다. 수련과정과 군의관을 거친 뒤 3년 반 동안 서울의 강남시립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시민들에게 온갖 정형외과 수 술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연구에 대 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박 교수는 주말에 우연히 서울 대모산을 등산하다가 삼성서 울병원이 터를 닦는 것을 보고 ‘이곳이 내 가 가야할 곳’이라고 마음을 정했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를 공모하자 피부과 양준 모, 외과 전호경 교수 등과 함께 곧바로 지 원했다. 삼성서울병원 개원 전 그는 캐나다 토론 토병원 정형외과 휴 카메론 교수의 문하로
들어가 내공을 쌓았다. 수술을 직접 하면서 의술을 배우려면 그 나라의 의사 면허증이 필요했다. 밤새 공부해 캐나다 의사 면허증 을 땄다. 박 교수는 1994년 8월 삼성서울병원 개 원 멤버로 정형외과에 합류했다. 2년 뒤부 터 고관절 환자만 보기 시작해 지금까지 8000여명의 환자에게 인공관절을 심어 주 었다. 그는 내·외부 공기가 차단되고 멸균 상태를 유지하는 인공관절 전용수술실에 서 우주복과 비슷한 수술복을 입고 수술한 다. 인공관절 전용수술실의 수술 감염률 은 0.1% 미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 병원의 0.3~0.5%보다 훨씬 낮다. 그는 수술 실력과 연구 능력 모두에서 명 성을 얻었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인 공관절학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지난해엔 대한고관절 학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또 미국인공관절학회 정회원이 됐다. 올해엔 국제고관절협회의 정회원이 됐다. 2006년과 2012년엔 대한정형외과학회 학 술상을 받았으며 2008년엔 대한의사협회 의과학상과 대한고관절학회 학술상을 수 상했다. 박 교수는 수술 부작용을 줄이는 의료기 기의 개발에도 부지런히 나서고 있다. 2000 년부터 서울성모병원 김용식, 서울대병원 김희중 교수 등과 함께 국산 인공 고관절을 개발했다. 이 국산 고관절은 2007년 상용 화에 성공했다. 2009년부터는 값싸고 빠른 수술용 로봇의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엔 자신의 논문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입은 ‘존슨 앤 존슨’에서 러브콜이 왔다. 인공관절을 설계하는 자문의사단에 합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자문의사단 10 명 가운데 아시아 출신으론 박 교수가 유 일하다.
박윤수 교수가 말하는 인공고관절수술
일러스트 강일구
“남편은 양의 탈을 쓴 악마죠. 이젠 더 이상 못 믿겠어요. 뒤로는 또 무슨 짓을 할 줄 몰라…” 30대 중반의 여성 L씨는 남편의 이중성에 치 를 떨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어디 빠질 데가 없 는 전형적인 엘리트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성범죄로 형사처 벌을 받았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여성에게 몸을 비비다가 발각된 것이다. 회사나 가정에서 바른 생활을 하거나 사회적 으로 성공한 남성이 이중적인 성도착이나 성범 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 아니다. 평 소의 지위나 모습과는 전혀 달라서 사람들은 입 을 쩍 벌릴 수 밖에 없다. 성적 이중성을 지닌 남성들이 지킬 박사에 서 하이드씨로 변하는 시간은 주로 밤이다. 역 시 자신의 익명성이 확보되는 시간이기 때문이 다. 일몰 이후 야심한 밤은 물론 일출 전 새벽에 도 ‘사고’를 친다. 흔히 이런 남성들은 새벽에 사 우나나 새벽운동을 한다며 일찍 집을 나서 홀로 거리를 배회하기도 한다. 이런 남성들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오기란 참 힘들다. 이들이 진료실을 처음 찾는 것은 대개 진단서를 끊기 위해서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처 벌을 최대한 줄이려는 목적이다. 그래서 특히 처 음 치료를 맡은 의사가 초기 진단과 치료관계를 잘 이끌어야 한다. 바로 이때가 당사자에겐 자신 의 문제를 깨닫고 교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 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 범죄는 교육·사회경제적 수준 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반(反)사회성 성격장애 등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흉악한 사람 들이 범할 것이라 여긴다.
중앙SUNDAY와 건강포털 코메디닷컴 이 선정하는 ‘베스트 닥터’의 엉덩이 관 절염 치료 분야에선 성균관대 삼성서울 병원 박윤수 교수(58)가 선정됐다. 이는 중앙SUNDAY와 코메디닷컴이 전국 11 개 대학병원의 정형외과 교수 41명에 게 “가족이 아프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의 사”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기본으로 하 고, 코메디닷컴 홈페이지에서 전문가들 이 추천한 점수와 환자들이 평가한 체험 점수를 반영해 집계한 결과다. 이번 조 사에선 서울성모병원 김용식 교수도 박 교수에 버금가는 추천을 받았다. 전남대 병원 윤택림, 서울대병원 김희중, 분당 서울대병원 구경회, 한림대 동탄성심병 원 장준동, 경희대병원 조윤제 교수 등 도 추천이 많았다.
^고관절의 위치와 구조=고관절은 골 반과 다리를 연결하는 관절로 차려 자 세 때 손이 닿는 부분에 있다. ^인공 관절수술 대상=퇴행성관절염· 대퇴골두무혈성 괴사·외상·류마티스 성 관절염 등으로 고관절이 상한 환자 ^수술 뒤 변화=수술 뒤 몇 주∼몇 달 은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서서히 통증이 사라짐. 관절의 운동범
위가 넓어져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 로 회복됨. ^인공 관 절의 수명=과거엔 평균 10~15년이었으나 최근 2배가량 연장. ^수술 후 부작용=가장 심각한 것은 감염. 입원 중이나 퇴원 후에 생길 수 있으며 몇 년 후에 나타나기도 함. 감 염 다음으로 탈구가 많이 생김. 최근 한국형 인공관절 기구 개발로 탈구 발
생률은 대폭 감소. ^입원기간과 비용=수술 뒤 2~3일이 면 목발보행기를 이용해서 걸을 수 있 음. 1주 정도 입원하며 수술 후 2주 정 도 지나면 실밥 제거. 6주 동안은 목발 로 걸어야 하며 2개월 지나면 걷기·운 전 등이 가능. 건강보험 적용되므로 한 쪽 고관절을 수술하고 6인실에 입원했 다면 본인 부담금은 300만 원 정도.
캐리커처=미디어카툰 김은영
WHO선 당류 섭취 반으로 줄이라는데, 한국 현실은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당류(糖 類)의 하루 섭취기준을 기존보다 50% 낮 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당류 섭취량이 우리 보다 훨씬 많은 서구에선 이 사실을 대대적 으로 보도했다. 국내에선 ‘현실을 도외시 한 기준’이란 반론과 ‘우리도 동참해야 한 다’는 의견 등 찬반양론이 제기되고 있다. 28일 서울시 서소문청사에서 열린 한국식 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 주최 심 포지엄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당류는 탄수화물의 일종이다. 하지만 가 공식품의 ‘영양성분표’엔 탄수화물과 당 류 함량이 따로 표시돼 있다. 탄수화물은 5대 영양소 중 하나이며, 최 소 단위가 단당류(포도당·과당 등)다. 단당 류가 둘 모이면 이당류(설탕·맥아당·유당 등), 3∼10개면 올리고당, 이보다 많으면 다
당류(전분 등)다. 단당류·이당류는 단순당(單純糖), 올리 고당·다당류는 복합당(複合糖)이라 불린 다. 마트에서 팔리는 식품 라벨에 쓰인 ‘영 양성분표’ 상의 당류도 단순당의 총량이다. 당류는 다시 첨가당과 천연당으로 나뉜다. 숭의대 식품영양과 이애랑 교수는 “천 연당은 말 그대로 과일·우유·꿀 등 천연식 품에 함유된 당, 첨가당은 빵·과자·아이스 크림·초콜릿·탄산음료 등에 단맛을 내기 위해 일부러 첨가한 당”이며 “가공식품의 ‘영양성분표’에 쓰인 당류는 주로 첨가당” 이라고 설명했다. 체내에 들어온 당류는 가장 빠르게 에너 지로 전환되므로 기진맥진한 사람에겐 권 할 만하다. 하지만 당류는 비만·당뇨병이 걱정인 사람은 섭취를 최대한 절제해야 하 는 당이다. 당류는 먹자마자 혈당이 빠르게 상승하며, 이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면서 췌장(인슐린 분비 장기)에 부
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당류를 먹으면 2∼3 시간만 지나도 허기지고 식은 땀·현기증 등 저혈압 증상이 동반되는 것은 이래서다. 2002년 WHO는 첨가당을 통해 얻는 열 량이, 1일 섭취 총 열량의 10%를 넘지 말아 야 한다는 당류 섭취기준을 발표했다. 하 루에 2000㎉를 섭취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 의 10%인 200㎉ 이상을 첨가당에서 얻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WHO 당류 섭취기준은 일부 서 구 소비자 단체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당류가 충치 등 치아건강과 비만· 당뇨병 등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했을 때 섭취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됐다는 비난이 었다. 결국 WHO는 올해 당류 섭취기준을, 당류를 통해 얻는 열량이 하루 총 섭취열 량의 5%를 넘기지 않도록 하는 ‘조건부 권 고’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쉽게 말해 첨 가당을 하루에 25g(기존 50g) 이하 섭취할 것을 권장한 셈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08∼2011년)에 따 르면 10대∼20대는 이미 하루에 평균 46g 이 넘는 첨가당을 섭취하고 있다. 40대는 37g, 50∼64세도 28g을 섭취한다. 또 전체 국민의 23%가 하루에 첨가당을 50g(기존 기준) 이상 섭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대∼20대에게 최대 당류 제공 식품은 탄산음료. 30대 이후엔 설탕(1위)과 커피(2 위)를 통해 첨가당을 많이 섭취한다. 정부가 발표한 ‘한국인을 위한 식생활 지침’엔 당류 섭취를 줄이는 방법이 소개 돼 있다. 어린이에겐 “과자나 탄산음료, 패 스트푸드를 자주 먹지 말 것”을, 청소년에 겐 “탄산음료·가당음료를 적게 마실 것”을 주문했다. 한 국보건산업진흥원 김초일 박사는 “2002년 지침엔 ‘성인은 단 음식과 단 음 료를 제한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으나 2009년에 이 조항이 삭제됐다”며 아쉬움 을 표했다.
Sports 23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서른 다섯에 다시 태극마크 단 이동국
“난 비운의 사나이 아닌 가장 행복한 축구 선수”
도합 16년 4개월간 축국 국가대표로 뛴 이동국이 다음달 열리는 우루과이·베네수엘라 평가전에서 또 다시 태극마크를 단다. 앞으로 2개월만 대표 생활을 더 하면 골키퍼 이운재가 세운 최장기 국가대표 축구 선수 기록도 갈아치운다.
온누리 JTBC 스포츠문화부 기자 nuri3@joongang.co.kr
이동국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그는 현 재 프로축구 K리그 득점(11골)·도움(6도움)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1979년생으로 올해 35세. 이미 동기 대부 분은 은퇴했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과의 거친 몸싸움에서 아직은 좀처럼 밀리지 않는다. 다음달 우루과이·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태극 마크도 다시 달았다. 국가대표 팀 활약 기간만 16년 4개월. 필드 플레이어로 서 최장 기간 태극 마크를 단 축구선수가 됐 다. 2개월만 더 하면 골키퍼 이운재(41)가 지 닌 최장기 축구 국가대표 활동 기록을 넘겨 받는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 중인 그를 만났다. “아직은 은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서 른 아홉에 다시 국가대표가 되고, 마흔에 골 을 넣는 것도 지금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다”고 했다. 2년 뒤엔 K리그 통산 200골 가능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고 ‘100골’을 기록했다. “나도 잘 몰랐는데, 역시 언론사들은 기록 을 정확히 찾아낸다. 사실 100골에 의미를 두 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골을 넣을 기회가 왔 을 때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퇴하는 날 까지 골 기록을 계속 쌓고 싶다.” -올 시즌에는 K리그 득점왕도 바라보고 있다. “욕심난다. 우리 팀 동료들이 도와주고 있 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K리그에서 몇 골이나 넣으면 만족스러울
것 같나. “200골?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모르겠다.” 이동국은 현재 K리그에서 165골을 기록 중이다. 35골을 더 넣으면 통산 200골을 달 성한다. 지난 세 시즌 동안 평균 18골을 기록 했으니, 이 추세라면 2년 후에는 가능한 목 표다. -사실 백전노장인데, 활약의 비결은 뭔가. “조금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 가 미래에서 돌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마흔 다섯 살에서 10년 이전으로 돌아와 뛰 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의 미 있게 보낼 수밖에 없다. 사실 어릴 때 주위 의 시선이나 매스컴의 관심 때문에 많이 흔 들렸다. 중심도 잡지 못할 나이에 실력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시 기, 거침없이 뛰어야 할 시기를 치열하게 보 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지 금 후회 없이 열심히 뛰고 싶다.” -태극 마크도 다시 달았다. “최근 팀(전북 현대)이 좋은 모습을 보이 고 있어서 재발탁의 기회가 왔다. 기회가 주 어진 만큼 A대표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 겠다. 나보다는 대표팀을 위해 뛰겠다.” 일찌감치 청소년 대표로 발탁된 이동국은 1997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A대표팀 상비군에 포함됐고, 프로 1년차 때인 19세에 1998년 월 드컵에 출전했다. 이후 청소년·올림픽·A대표 팀을 오가며 ‘혹사’에 가까운 수준으로 뛰었 다. 전지훈련·시범경기·국제 대회·리그 경기· 올스타전 등에 쉼 없이 출전했다. 전 세계를 돌 며 춥고 더운 기후에 적응해야 했다. 젊은 몸이 었지만 소화하기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당신에게 태극 마크는 어떤 의미인가.
17년 동안 팬 사랑 과분하게 받아 대표 뽑히면 언제든 받아 들여야 월드컵과 인연 없지만 원망도 없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선수라면 응당 받 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선수로 뛰면서 ‘국가 대표는 이제 은퇴하겠다’고 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다. 실력이 되면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 고, 실력이 못 미치면 어차피 선발되지 못한 다. 집착이나 욕심은 아니다. 다만 대표팀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는 뛸 수 있는 한 항상 준비할 것이다. 또 대표팀에 목표를 둬야 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 월드컵 경기선 51분 뛴 게 전부 월드컵은 이동국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19 세 나이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로 발 탁돼 ‘깜짝스타’로 발돋움했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 밖 에 나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대 표팀에 발탁됐다가 부상당해 낙마했고, 2010 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이렇다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올해 브 라질 월드컵에서는 대표 선수에서 탈락했다. 월드컵 경기에서 그가 그라운드에서 뛴 시간 은 총 51분에 불과하다. -브라질 월드컵은 특히 아쉬울 것 같다. K 리그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는데도 선수
로 발탁되지 못했다.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했나.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하 는 게 맞다. 새 감독이 부임하면 그가 원하는 전술이 있기 때문에 그 전술을 토대로 선수 들을 선발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것에 대해 주위에서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갔다는 그 자체, 그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그 래서 아쉬움은 전혀 없다.”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는 골도 넣고 맹활 약을 했다. 그런데 본선에는 쏙 빠졌다. 혹사 만 당하고, 정작 큰 대회에는 뛰지도 못했다. “나는 많은 혜택을 본 선수이기도 하다. 1998년 월드컵에 출전할 때는 예선전 한 경기 도 뛰지 않고 본선에 바로 갔다. 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 도움을 준 건 나로선 흐뭇한 일이 다. 1998년 월드컵 예선에 못 뛰었던 것을 후 배 선수들에게 갚아줬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부상당해 고생한 적 도 있다.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느 낌은 안 들었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부상을 당하고 회복 할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롱런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2회, 올림픽에 1회 출전했다. 월드컵도 뛰었다. 군 면제 기회 가 정말 많았다. 그 숱한 기회가 다 날아갔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이)영표 형 이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하 는 바람에 아쉽게 무산된 적도 있다. 이른바 ‘이동국 군대가라 슛’이다. 그때 나는 ‘아, 군 대 갈 운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보통 다른 선수들은 28,29세에 입대하는데, 나는 훨씬 일찍 입대했다. 그런데 군 제대를 하고 2개월
[뉴시스]
만에 십자인대 파열을 당했다. 이 부상은 군 면제 사유가 될 정도다. 그 때 다시 떠올렸다. ‘나는 군대 갈 팔자였구나’. “체력 받쳐주면 2018 월드컵도 뛸 의향 ” -‘멘탈’이 강한 선수인 것 같다. 당신만의 ‘내상’ 회복 비결이 있나. “나보다 더 안 된 사람을 계속 생각한다. 한 달짜리 부상을 당했을 때는 ‘6개월짜리 부상 을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 상당히 마음이 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비운의 사나이’라 고 부른다. 동의하나. “아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선수다. 17년 동안 롱런하고 있는 선수다. 팬들의 사랑도 과분할 만큼 받았다. 이렇게 행복한 선수는 또 없다.” -2018년에는 러시아 월드컵이 열린다. 그 때 나이는 39세다. 출전 가능성이 있을까. “없지는 않다. 체력이 받쳐주고 경기력에 문제가 없으면 된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체력 이 달라질 것이기에 집착을 가지거나 욕심을 내지는 않겠다.” ‘대표팀 애정남’ 이동국의 또 다른 꿈은 태극 마크를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동 국의 딸 재아(8)양이 최근 테니스를 시작했 다. 그는 “공부하면 머리 아프다고 하던 애가 테니스는 눈빛을 내면서 한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언젠가 ‘테니스 김연아’가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축구를 그만 두는 날, 15인승 차량을 사 다 섯 아이(그는 딸 넷을 두고 있고, 현재 부인이 임신 중이다)와 놀러 다니는 것이 꿈이라며 활짝 웃는 이동국. 그는 오늘도 달리고 있다.
성호준의 세컨드샷 동명이인 늘어나는 KLPGA의 고민
번호로 선수 구분은 비인간적 우즈처럼 예명 쓰는 건 어떨지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김혜림 투와 김현수 쓰리가 공동 선두이고 요, 이정은 세븐틴과 김민선 투앤티원이 한 타 차입니다.” 이십년쯤 지나 한국여자프로골프 방송을 보면 이런 멘트가 나올 수 있다. 농담이 아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는 정회원 중 같은 이름이 나오면 순서에 따라 2, 3, 4 같은 번호 를 매겨 놓는다. 여러 이름이 선점당한 상태 라 앞으로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름에 숫자 를 붙여야 할 것이다. 이미 번호는 5(이정은, 김민선, 이수진, 김민지)까지 갔다. 회원이 마 음에 들어하지 않는 4같은 숫자가 나오면 패 스를 하고(영구결번 처리된다) 다음 숫자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번호 증가 폭은 빨라 질 것이다. 왜 그래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숫자는 영어로 읽는다. “이정은 세븐틴, 김민선 투앤 티원”같은 어려운 발음을 해야 한다. 협회로선 번호를 붙여 두면 편하다. 서부 카우보이들이 소에 낙인을 찍거나, 어린 학생 들에게 ‘앉으면서 번호’를 시켜 인원을 파악 하는 것처럼 쉽다. 그러나 남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 은 예의가 아니다. 특히 이름에 숫자를 넣으 면 뉘앙스가 나빠진다. 물건에 붙인 시리얼 넘버인 듯도 하고 ‘25번 올빼미’ 등을 외치 던 군대 유격훈련 느낌도 난다. 협회 내부적으로는 이름에 숫자를 붙여 구분하더라도 외부에는 이름만 쓰는 것이 당 연하다.
협회는 “똑같은 이름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동명이인을 구 분하기 위해 뭔가 필요하다면 숫자보다는 거 주지나 특징소속 등을 쓰는 것이 기억하기 좋다. 축구 대표팀에 박지성이 둘이라면 “큰 박지성이 빠른 박지성에게 패스했다”고 하는 것이 “박지성 원이 박지성 투에게 패스했다” 고 하는 것 보다 팬들의 이해가 쉽다. 그래도 구분이 어렵다면 숫자를 써야 하 겠지만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남자협회인 KPGA는 대회 출전권이 없으면 동명이인 대 상에서 제외한다. 여자협회는 협회 편한대로 선수 번호를 단 다. 현재 여자 투어 선수(출전권이 있는 회 원) 중 동명이인은 김민선과 김지현 각 두 명 씩 뿐이다. 구분을 위해 뭔가 표시를 해야 하 는 선수는 총 4명이란 말이다. 그런데 올해
투어에 나온 선수 중 무려 17명이 주렁주렁 숫자를 달고 다닌다. 선수인지 아닌지, 현역 선수인지 은퇴 선수인지 여부에 상관없이 모 두 하나의 카테고리로 놓고 구분을 해서 숫 자를 붙여 생긴 결과다. 학교로 치면 졸업생 까지 모두 포함시켜 동명이인 숫자를 부여한 꼴이다. 왜 그럴까. 한국 남녀 프로골프 협회는 선 수를 위한 대회 사무국일뿐 만 아니라 일반 프로들이 포함된 이익단체여서다. 팬들은 선 수 이외에는 관심이 없지만 협회는 일반 프 로도 챙겨야 한다. 미국 LPGA 투어에선 아직 이름이 똑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LPGA가 선 수가 아닌 일반 프로들까지 포함시켰다면 상 황은 달랐을 것이다. LPGA 투어는 팬과 선 수를 위한 조직이고, KLPGA는 모든 프로를
위한 조직이라는 것이 동명이인 대량 발생의 가장 큰 이유다. 동명이인은 계속 나올 것이다. 사실 한국 인들의 성씨 종류가 적고 이름의 풀도 작다. 이름도 유행을 타서 또래에 비슷한 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우리 조상의 창의력 만 탓할 건 아니다. 타의에 의해 이름에 꼬리표가 붙느니 자발 적으로 등록이름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 을 듯하다. 타이거 우즈가 원래 호랑이는 아 니었다. 본명은 엘드릭 톤트 우즈다. 미국프 로농구 선수였던 론 아티스트는 세계평화를 위한다면서 메타 월드피스로 개명하더니 중 국 리그로 진출하면서는 판다스 프랜드(판 다의 친구)로 이름을 또 바꿨다. 장난스럽긴 하지만 개성이 있다. 이정은 세븐틴 보다는 이소렌스탐이 나아 보인다.
24 Column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김미경의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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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 컨설턴트 김명섭
회사에 도움 안되면 당당히 퇴사 쉰 살에 21번째 ‘입사’ 문에 늘 ‘플랜 B’를 연구했고 끊임없이 시장 조사를 했다. 덕분에 그는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역할을 훌 륭히 수행하고 있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
요즘 우리 83학번 동창들 사이에 떠오르는 화제의 인물이 있다. 이 친구와 밥 한 끼 먹으 려고 다들 줄을 섰단다.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어 SNS에 들어가 봤더니 문장 한 줄이 눈 에 확 들어온다. ‘오늘 21번째 회사로 옮겼습 니다.’ 한국 남자들에게 ‘한 직장 오래 다니기’는 일종의 의무다. 잠깐이라도 가족을 불안에 떨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한 두 달이라 도 백수가 되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아무리 지겨워도, 눈치 보여도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버티는 게 원칙이다. 남자들에게 허용된 자유는 고작 포장마차에서 먹는 쓰디 쓴 소주뿐이다. 가끔은 술기운에 ‘내가 이 회 사 그만두면 갈 데가 없냐’고 소리쳐 보지만 본인도 안다. 그건 단지 ‘객기’라는 것을. 막상 직장을 옮기고 싶어도 가장 두렵고 무서운 건 자기 자신이다. 매일 출근하던 사 람이 다음날 아침에 갈 곳이 없는 것만큼 공 포스러운 게 없다. 정해진 날 월급이 안 들어 온다는 것, 명함 없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무서운 일 을 무려 스무 번이나 했다는 놀라운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 심지어 그의 한 줄 프로필 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위험을 즐겨라.’ 아무리 봐도 단순한 객기는 아닌 것 같다. 나이 오십이 되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은퇴’ 를 평생 스무 번이나 연습한 남자. 그가 위험 을 즐기는 법이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남들보다 이직을 많이 하게 됐죠. 내 의지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떠밀려 간 적도 많았어요. 대기업부터 외국계 기업, 중소기 업까지 두루 다녀봤고 자영업도 몇 가지 해봤 죠. 거기서 한가지는 확실히 알았어요. 나는 뭘 해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웃음).” 어디에서 일하든 신입생 자세로 배워 엔지니어링 컨설턴트 김명섭(51). 연세대 기 계공학과 83학번인 그는 기업에 정보기술 (IT) 솔루션 관련 컨설팅을 해주는 일을 주로 한다. 직책은 몸담은 회사마다 그때그때 바뀐
직장을 스무 번 그만둔 ‘은퇴하는 남자’ 김명섭씨가 서울 마포구 한 레스토랑에서 생존 경쟁력을 키우는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다.
다. 지사장도 했다가 임원도 했다가 계약직 프 리랜서로도 일했다. 심지어 직업도 들쑥날쑥 하다. 레스토랑 사장부터 속독학원 원장, 피 아노 학원 오너 등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최 근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보려고 구석 구석 시장 조사를 다니기도 했다. 우리 또래
자영업 마인드로 사는 ‘노마드족’ 대기업서 밀려나며 삶의 방향 바꿔 컨설팅학원자영업 유연한 변신 위험 즐기며 자기만의 경쟁력 키워
의 50대 남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안한 노마드의 삶. 그러나 반대로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던 자유로운 삶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인생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첫 직장이었던 삼성에서는 계열사를 돌며 5년 동안 꼬박 회사에 충성을 바쳤다. 맡은 프로젝트마다 성공시켜 회사로부터 표 창도 여러 번 받았다. 두 번째로 다시 들어간 삼성자동차에서도 24시간이 모자랐다. 쌍 용·기아·현대차 출신들에게 자동차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동호회를 6개나 들었다. 일하기 도 바쁜 시간을 쪼개 테니스·스키·단전호흡 까지 안 해본 취미가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자동차를 내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과 기 쁨도 잠시.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1999년 대우 와의 빅딜 논의가 오갈 무렵, 회사는 직원들 을 강당에 모아놓고 말했다. 간부들은 3명씩 책임지고 나가라. 그 무렵 그는 처음으로 6개 월의 백수생활을 했다. 명문대에 대기업 출신 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던 그였지만 불러주 는 데가 없었다.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동안은 인생이 내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외부의 사 건에 의해서도 인생이 바뀌는구나. 이제 기업 이 나를 책임져 주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다 면 더 이상 상황 탓하지 말고 그것 역시 내가 책임지자, 그렇게 마음먹었던 거죠.” 그때부터 그의 ‘노마드’ 생활이 본격적으 로 시작됐다. 컨설턴트로 짧게는 몇 달, 길게 는 몇 년까지 PTC코리아, IBM, HP 등 수많 은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중소기업을 오갔 다. 틈틈이 중간에 속독학원과 피아노 학원 을 차린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변화의 폭이 상하좌
[사진작가 김도형]
우로 너무 넓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 직장 에 다니다 보면 가장 떨어지는 게 바로 유연 성과 적응력이다. 대기업을 퇴직한 사람의 유 연성은 넓어져 봐야 프랜차이즈 음식점 사장 이나 중소기업 임원이다. 최대한 이전 직장과 비슷한 자리에서 두 번째 삶을 꾸려가려고 애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경쟁은 치열해 지고 눈과 귀를 현혹하는 제안에 쉽게 넘어가 기도 한다. 수많은 퇴직자들이 은퇴 이후 사 업에 실패하는 이유다. 그는 변화의 폭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98 년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전보다 못한 직장으로 옮기거나 대우를 받게 되더라도 온전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어디에 서든 신입생처럼 배웠다. 그가 스무 번이나 이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측에서 ‘모셔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는 ‘자영업자 마인드’로 일하려고 노력했다. 남들처럼 회사의 안정성을 따지기보다 내가 들어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봤다. 적 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회사에 돈을 벌어주 고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싶으면 과감히 나왔 다. 스스로에게 월급 주는 훈련을 할수록 이 직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었다. 대신 월급 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리스크가 있기 때
이직 전엔 아내와 여행 금슬도 좋아져 무엇보다 그가 유연성을 지키는데 있어 강조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아내와의 관계 회복’이 다. “은퇴 이후의 삶은 초반에 불안하고 답답 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가장 가까운 배 우자에게 기대고 쉬어갈 수 있어야 돼요. 그 렇지 않으면 쉽게 지치고 조급해져서 새로운 열정과 모험정신이 나오기 힘들거든요. 한번 은 제대로 아내와 관계회복을 해야 30년 행 복할 수 있습니다.” 이들 부부도 한 때는 일과 육아 때문에 남 남처럼 지냈다. 남편은 열심히 일해도 집안 에서 대접 못 받아 서운했고 아내는 집안일 과 육아를 떠넘긴 채 밖으로만 도는 남편이 야속했다. 한 때는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심 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마흔 다섯이 넘 으면서 다행히 깨달음이 왔단다. ‘아이들은 결국 떠나게 돼 있고 늙은 나를 챙겨줄 사람 은 아내밖에 없다.’ 그가 택한 회복 전략은 아내와의 여행이었 다. 그는 이직할 때마다 중간의 한두 달을 이 용해 함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내와 유럽·동남아·중국 등 안 다녀본 곳이 없다. 덕분에 요새 그는 제2의 신혼 재미에 푹 빠졌 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요리학원에 다니고 그는 아내의 운동화 끈을 매어주는 살가운 남자가 됐다. 한번 진하게 사랑했던 흔적은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실망 과 미움으로 덮여 있었다 해도. 한국의 50대 남자들이 걸어왔던 길은 정해 져 있다. 가장이기에 모두 꼼짝없이 가야 했 던, 샛길 하나 없는 대로(大路). 그러나 정작 가족에게 왕따 당하는 그 길을 그도 묵묵히 걸어왔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큰 길만 있 는 것은 아니다. 작은 골목도 생각보다 걸을 만하다.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이 나올 것 같 지만 자신을 믿고 방향을 틀면 또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라면 좁은 길도 어느덧 괜찮은 길이 되기도 한다. 아내의 손 을 꼭 잡고 골목길을 걷고 있는 그는, 뒷모습 마저 행복해보였다.
김대수의 수학 어드벤처
천장에 붙은 파리 위치 표시하려다 좌표 창안한 데카르트 [문제 1] 주사위는 마주 보는 면에 표시된 점의 개수를 더하면 7이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다 음 주사위에서 보이지 않는 바닥과 뒷면의 점의 개수를 더하면 얼마인가요?
[문제 2] 다음 중 연관성이 가장 적은 것을 고르 A
시오. (1) 21 (4) 99
D
D
A
(2) 31B B
(5) 27
(3) 15 C
[문제 3] 다음의A가로, 대각선 방향으로 모 B 세로 C D D A 들어간다고 B 두 A, B, C, D가C한 번씩만 할때빈 D
B
A
D
C
C 칸에 들어갈 문자들을 적으시오. B
A
A
D D
A B
B
C
A
B
C
D
C
D
A
B
D
C
B
A
B
A
D
C
김대수 교수 한신대 컴퓨터공학부
오늘날 우리는 좌표 시대에 살고 있다. 휴대 폰을 이용하여 특정한 사람의 위치를 추정할 수도 있고, 차 안의 내비게이션은 모르는 길 도 자세히 안내해준다. 이러한 기술은 GPS란 위성 항법 시스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통상 4개의 인공위성 에서 쏘는 전파를 이용하여 정확하게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비행기·배·자동차 등의 위치 추적 장치에 주로 쓰이는 이 기술은 최근 들 어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에서도 많이 활용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위치를 좌표상의 숫자로 처음 나타낸 사람은 누구일까? 평면과 공간에서의 위치를 좌표로 처음 나타낸 사람은 프랑스의 수학자 데카르트 (Descartes, René·1596~1650)였다. 그는 어 느 날 침대에 누워있다가 우연히 천장에 붙
은 파리 한 마리를 바라봤다. 파리의 위치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방법을 궁리하다가 현재 의 가로·세로·높이를 이용한 좌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우리는 학창 시절 모눈종이 위에 (1, 0), (0, -1)과 같이 좌표를 이용하여 점을 찍고 그것 을 연결하여 y=x-1이란 함수를 다루어 본 적 이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이 발전되어 직선뿐 만 아니라 원·타원·쌍곡선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도 모두 식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 이 처럼 데카르트의 좌표 개념은 물체의 이동 과 미적분에도 활용되므로 크나큰 공헌으로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17세기 프랑스가 낳은 저명한 수학자·철학자·물리학자였다. 그는 서양 ‘근 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합리주의적 철학 의 길을 열었으며, 해석기하학과 좌표기하학 의 창시자란 큰 치적을 남겼다. 데카르트는 확실치 않은 모든 것을 의심하 는 데서 출발하여 엄밀하고 논증적인 지식인 수학에 근거하여 형이상학·역학·윤리학 등을
로 한번만 들어가야 하므로 그 규칙에 위배 되지 않는 것을 먼저 넣고 다른 가능성을 살 펴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포함하는 학문의 체계를 정립하려 했다. 그리 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 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 겼는데, 그의 학문 연구 방법과 형이상학적 사유 개념은 방법서설에 잘 서술되어 있다.
데카르트의 좌표 시스템은 오늘날 컴퓨터 의 마우스에도 응용되고 있다. 마우스의 움 직임은 바로 모니터의 좌표 이동으로 연결되 며, 버턴을 누르면 해당 프로그램으로 실행 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좌표가 없 A D D A 는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B
B
정답 1. 9개
[문제 1]에서는 마주보는 면의 점의 개수의 합이 7이 되는 성질을 이용한다. 그 결과 주 사위 바닥의 점의 개수는 4이고, 뒷면의 점의 개수는 5이다. 따라서 합하면 9개가 된다. [문제 2]에서는 짝수, 배수, 자리 수 등 여러 가지 관점으로 살펴본다. 그 결과 31을 제외하 고 나머지는 모두 3의 배수인 것을 알 수 있다. [문제 3]에서는 가로·세로·대각선 방향으
C
2. (2)번
3.
A
B
C
D
C
D
A
B
D
C
B
A
B
A
D
C
서울대 사대 수학과·동 대학원 수료,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대 컴퓨터 공학 석·박사, 인공지능과 신 경망 등을 연구해 온 컴퓨터공학자이자 두뇌 과학 자다. 창의 수학 콘서트와 컴퓨터공학 관련 1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Science 25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김대식의 Big Questions 30 무한이란 무엇인가
‘부분은 전체보다 작다’를 증명할 수 없는 무한의 세계 ◀그림 1 무한으로 작아지는 도형들로 나눠지는 원 김대식 KAIST 교수뇌 과학자
형 공간. 네덜란드 작가 M.C. 에셔(M.C. Escher)
daeshik@kaist.ac.kr
의 1958년 작품 ‘서클 리미트 I(Circle Limit I)’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 킬레우스의 분노를! 엄혹하고 잔혹한, 셀 수 없는 아카이아 인의 목숨을 가져간 분노를.”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호메로스가 쓴 ‘일 리아스’의 첫 문장. 고대 그리스(아카이아) 최고의 영웅 아킬 레우스.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던 그의 분 노. 마치 성난 짐승같이, 날카로운 창을 휘두 르며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의 목숨을 가져가던 아킬레우스. 영화 ‘트로이’ 에서의 브래트 피트를 기억해보자. 아니, 차 라리 적군의 방어선 뒤에 ‘던져져’ 마치 신들 린 것 같이 싸웠다는 바이킹 특전사 ‘베르세 커(Berserker)’들을 상상해보면 되겠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제 논(Zenon기원전 490∼430년)은 상상해 본 다. 만약 아킬레우스가 거북이와 경주를 한 다면? 말도 안 된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과 느려터지기로 유명한 거북이와의 경주라 니? 꼭 해야 한다면, 거북이에게 넉넉하게 한 100m 앞에서 먼저 ‘달리라’고 하면 되겠 다. 화살보다 빠른 아킬레우스님과 경주하 며 겨우 100m 앞이라니! 아킬레우스는 눈 깜작 할 사이에 100m를 달려 거북이가 있 던 위치에 도착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역시 열심히 달리던 거북이는 1m 정도 더 앞으 로 나가있다. 뭐 1m 정도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킬레우스가 다시 1m를 달리는 동안 거북이는 1㎝ 앞으로 나간다. 또 다시 아킬레우스가 1㎝를 달리면, 0.1㎜ 앞에 서 있고, 다시 0.1㎜를 달리면, 0.001㎜ 앞에 서 있는 거북이.
▲그림 2 유리수와 정수는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 기에 유리수 역시 정수와 같은 기수를 갖고 있다.
▲그림 3 정수와 일대일 대응이 불가능한, ‘셀 수 없는’ 무한집합의 존재를 증명한 칸토어의 ‘대각 선 논증’
홀수와 짝수는 정수의 일부지만 갯수를 표현하려면 똑같이 ‘무한’ 집합론 정의한 독일 수학자 칸토어
거북이는 아킬레우스가 쏜 화살에 맞을까? 제논은 주장한다. 무한으로 점점 더 가까워 질 수는 있겠지만,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절대 추월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만약 거북 이를 추월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 아킬레우 스가 다시 시작된 경주에서 100m 앞 거북이 에게 화살을 쏜다면? 100m를 날아가기 위해 화살은 물론 우선 50m를 날아야 한다. 50m 를 날기 위해선 당연히 25m를 날아야 하고. 25m를 날기 위해선 25m의 반, 그리고 반에 반, 그리고 반에 반에 반, 그리고 반에 반에 반에 반…을 날아야 한다. 시작은 언제나 그 전 것의 끝에서부터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무한으로 나눌 수 있다면, ‘마지막’이란 의미의 끝이 존재하지 않고, 끝 없이는 그 다음 것의 시작도 불가능 하다. 고로 화살은 결국 쏜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나, 제논 이 누구였던가! 존재는 결국 하나이며, 없는 것은 없고, 변화는 무지한 인간의 착각일 뿐 이라고 주장하셨던 나의 사부님 파르메니데 스(Parmenides)의 최고 제자 아니었던가! 변화의 기본은 운동이다. 거북이조차 추 월할 수 없는 아킬레우스, 그리고 쏜 자리를 떠날 수 없는 화살. ‘움직임은 불가능하다’를 나, 제논은 이렇게 증명한다! 그리스어로 개, 즉 키니코이(kynikoi)같 이 떠돌이 인생을 산다 해서 키니코스라 불 리던 학파의 대표 철학자 디오게네스(기원전 412∼323년). 움직임은 불가능하다는 제논의 ‘증명’을 알게 된 그는 벌떡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다녀 주었다고 한다. 현실과 도 저히 일치하지 않는 제논의 주장. 그를 비웃 긴 쉽다. 하지만 제논의 ‘증명’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을까? 심플리키오스, 아리스 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아르키메데스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봤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제논의 패러독스(Paradox 역설)는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바이어스트
“절대 무한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Penthesileia)를 살 해하는 아킬레우스.
라스(Karl Weierstrass)와 코시(AugustinLouis Cauchy)의 엡실론-델타(고등학교에 서 배운 epsilon-delta 규칙을 기억해보자!) 미적분을 통해서야 드디어 수학적으로 만족 스런 수준으로 풀 수 있게 된다. 함수의 극한 을 응용하면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추월하 는 순간을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명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제논이 제 시한 문제의 핵심은 ‘반에 반에 반에 반…’이 란, ‘공간을 무한으로 나눌 수 있다’는 가설 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추상적인 미적분 (微積分)적 공간이 아닌, 우리가 만지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실질적 공간 역시 무한으로 나 눌 수 있을까?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베일(Herman Weyl, 1885∼1955년)은 물리적 우주는 연 속적이지 않으며 플랑크 시간(Planck time, 5.39106×10-44 초)과 플랑크 길이(Planck length, 1.616199×10-35m)란 마치 작은 ‘레고 블럭’ 같이 분리된 기본단위로 나눠진다고 주장했다.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할 수 있는 진짜 이유는, ‘무한’보다 절대적으로 작 은 숫자의 공간적 ‘레고 블럭’들만을 정해진 시간에 따라잡으면 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무한이란 과연 존재할까? 그렇다면 ‘무한(無限)’이란 과연 존재할까? 우선 가장 간단한 자연수 또는 정수 {…-3, -2, -1, 0, 1, 2, 3…}를 생각해보자. 정수는 몇 개나 있을까? 물론 무한이다. 아무리 큰 숫자 라도 우리는 언제나 ‘하나’를 더 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수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 눌 수 있다. 2, 4, 6, 8 같은 짝수로도, 1, 3, 5, 7 같은 홀수로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잠깐! 무 언가 이상하다. 홀수, 짝수 역시 무한으로 계 속 연장시킬 수 있지 않은가? 직관적으로 누 구나 알고 있듯이 ‘부분’은 ‘전체’보다는 작 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정수의 한 부분인 ‘짝수’가 정수와 동일한 ‘무한’의 크기를 가 질 수 있다는 말인가? 19세기 최고 수학자 중 한 명이던 독일의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1845∼1918
년). 그는 무한의 세상을 이해하기로 결심한 다. 칸토어는 현대 수학 기초의 바탕인 ‘집합 론’을 정의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집합이란 무엇인가? 칸토어는 말한다. “집합(영어 set, 독어 Menge)이란 인지적 또는 지각적으로 나눠질 수 있는 것들을 합친 것이다”라고. 과 일={사과, 바나나, 수박}, 동물={개, 고양이, 거북이}, 정수={……-3, -2, -1, 0, 1, 2, 3…}가 모두 집합의 예들이다. 그렇다면 ‘두 집합의 크기가 같다’는 의미 는 무엇일까? 칸토어는 집합들 사이 ‘일대일 대응(bijection)’이 존재하면 두 집합의 크 기가 같아 동일한 ‘기수(cardinality)’를 가 진다고 제안한다. 예로 든 ‘과일’과 ‘동물’이 란 집합들은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기에(사 과→개, 바나나→고양이, 수박→거북이), ‘3’ 이란 동일한 기수를 가진다. 하지만 정수의 기수는 무한이다. 더구 나 무한의 홀수, 무한의 짝수, 무한의 유리 수 모두 정수와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다(그 림 2). 칸토어는 그렇기에 무한의 정수와 일 대일 대응이 가능한 모든 무한집합들의 크 기를 ‘셀 수 있는 집합들’의 기수, 고로 ‘알레 프-0(aleph-0)’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모든 무한의 집합들은 셀 수 있 을까? 칸토어의 답은 ‘아니다’였다. 실수 (real number)를 생각해 보자. 실수의 특징 은 아무리 작은 숫자 역시 다시 무한으로 나 눌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무한의 이진수(0 과 1)들로만 만들어진 실수의 부분 집합을 생 각해보자(그림 3). 칸토어는 ‘대각선 논증’을 통해 무한으로 확장 가능한 이진수들의 집합 은 ‘셀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아무리 모든 무한의 이진수들을 순서대로 나열해 세 보려고 노력해도, 이 행렬 대각선 에 자리 잡은 이진수들(그림 3의 빨간 숫자 들)의 ‘반대수(0→1, 1→0; 그림 3의 파란 숫 자들)’는 나열에 포함돼 있지 않다. 고로 무 한의 이진수는 정수와 일대일 대응이 불가능 하며, 무한의 이진수를 포함하고 있는 실수 역시 정수와 일대일 대응이 불가능한 ‘셀 수 없는 무한’이란 말이다. 칸토어는 셀 수 없는 무한의 기수를 ‘알레프-1’이라 부르고, 알레
프-1은 알레프-0보다 절대적으로 더 큰 무한 이란 사실을 증명한다. 우주엔 다양한 크기 의 ‘무한’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3000년 전 이야기인 ‘일리아스’가 주는 교훈 그런데 인간에게 무한의 세상은 금지된 구 역이었을까? 19세기 수학의 대가인 프랑스 의 앙리 프앙카레(Henri Poincare, 1854∼ 1912년)는 칸토어의 이론을 ‘지적(知的) 감 염병’이라 불렀다. “자연수는 신이 만들었 고, 나머지 모든 수는 단지 인간이 만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던 독일의 수학자 크로네커 (Leopold Kronecker, 1823∼1891년)는 그 를 ‘사기꾼’이라 부르며 베를린대학 교수 임 명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깊은 우울증과 정 신병에 빠진 칸토어는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 리다 결국 1918년 시골의 한 정신병원에서 숨 진다. “알레프 수들을 초월한 절대 무한은 오 직 하나님뿐이다”, “셰익스피어는 사실 프랜 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년) 의 익명(匿名)”이란 주장들을 일기책에 남긴 채 말이다. 아킬레우스의 창에 맞아 죽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Hektor). 사랑하는 아들의 시 체만이라도 찾기 위해 아들을 죽인 자의 발 에 입을 맞추려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 자신의 몸으로 만든 아들의 몸을 다시 자신 이 묻어야 하는 아버지의 슬픔을 바라보며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서서히 사라진다. 존재에 대한 ‘셀 수 있는’ 무한의 분노를 갖고 태어났기에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늑대(Homo homini lupus)’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 하지만 인간에겐 ‘셀 수 없는 무한’ 의 ‘자비’란 희망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 여주기에, 우리는 여전히 3000년 전 이야기인 ‘일리아스’에 귀를 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 사후 과정을 거쳤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 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26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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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성과에 취한 YS, 자신감 넘쳐 교만하다 ‘환란’ <외환위기>
함영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전무 jmedia21@naver.com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4000억원이 시중 은행에 100억원짜리 40개 계좌로 분산 예치 돼 있다.” 1995년 10월19일 박계동(민주당) 의원의 폭탄 발언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신 한은행 서소문 지점의 차명계좌 3개가 증거 로 제시됐다. 연희동 노 전 대통령 측은 처음에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 계좌는 없다. 박계동이 헛 다리를 짚었다.” 유엔(UN) 참석차 미국에 있 던 김영삼 대통령은 그 말을 듣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래? 그렇다면 검 찰보고 수사하라고 해.” 그러나 박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10 월 21일 노 전 대통령과 이현우 전 경호실장, 서동권 전 안기부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자금 통장 가방을 열어보니 문제의 신한은 행 통장이 나왔다. 비자금 담당 직원의 실수 였다. 모두들 아연실색했다. 이튿날 이현우 씨는 검찰에 자진 출두해 사실을 인정했다. 이제 칼은 YS에게 넘어갔다. 불과 3개월 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1212와 518에 면죄부를 주었는데…. 그러나 YS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 이를 정면 돌파키로 결심했다. 노태우는 물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서도 전면 수사를 지시하는 한편 1212와 518을 군사반 란과 내란으로 규정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1년반 동안 ‘역사 바로 세우기’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외교 등 모 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우리 경 제가 막 1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 는 시점에 온 국민의 에너지와 관심은 죄수복 을 입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쏠렸다. 그러나 과연 이 일을 YS가 주도한다는 게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바로 3당 합 당을 통해 사실상 전노와 손잡고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 아닌가. 더구나 그 역시 정치자 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조만간 그에게도 부메랑이 닥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민주계 출신들 한보서 엄청난 정치자금 돌이켜보면 1993년 봄 YS 정권의 출발은 좋 았다. 하나회 척결, 공직자 재산공개 등 개혁 정책으로 지지율이 90%나 되기도 했다. 그 러나 독단적 국정 운영과 졸속 정책 추진으 로 인해2년 뒤 1995년 6월 지방선거에선 참 패를 했다. 세간의 비판 핵심에는 YS의 차남 김현철이 있었다. 그가 사조직을 운영하며 국정에 개입하고 인사 농단을 부린다는 것 이다. 1995년 8월 나는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 던 홍준표 검사(현 경남지사)를 만났다. 그는 대뜸 현철씨가 동창관계로 얽힌 사업가들로 부터 돈을 얻어 쓰면서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K고 동문인 W그룹 C회장, H그룹 P회장과, K대 동문인 J그룹 J회장, K 그룹 후계자인 L씨 등등이었다. (이들 대부 분이 2년 뒤 IMF 사태를 전후해 도산했다.) 홍 검사는 특히 현철씨가 한보그룹과도 밀 착돼 있다고 전했다. 한보그룹은 불과 4년 전 (1991년) ‘수서 비리’사건으로 정태수 회장 이 구속되는 등 큰 타격을 받았는데 최근 재 기했다는 것이다. 얼마 뒤 나는 한보그룹이 PK 출신 민주계 세력들에게 엄청난 정치자금을 쏟아 붓고 있 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민주계 좌장 S의 원 수하 직원들이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를 찾아가보니 인건비와 사무실 유지비는 물론 사업자금까지 한보로부터 지원받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전·노 비자금’ 정국이라 취 재가 무르익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금융지원 협의차 방한한 미셸 캉드쉬 IMF 총재를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접견하는 모습. 한국은 1997년 12월 3일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IMF로부터 195억 달러,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 (ADB)으로부터 각각 70억 달러와 37억 달러를 지원받아 가까스로 외환위기를 넘겼다.
하나회 척결재산공개 전폭적 지지 임기 후반엔 역사 바로 세우기 올인 측근아들 일탈 속 점점 나라 기울어 출생부터 성장까지 승승장구 인생 최고 자리 오른 뒤 섬김의 정신 희미 국정운영 독단적으로 하다 파국
홍콩특파원 발령을 받고 떠나기 며칠 전인 1997년 1월 11일, ‘한보 부도 위기설’이 크게 보도됐다. 1993년 6000억원이던 한보철강 부 채가 1996년말 4조원을 넘어섰고, 부채비율 은 자기자본(2000억여원)의 무려 20배를 초 과했다. 이런 터무니 없는 대출이나 재무 상 태는 사상 유례가 없었다. 그날로부터 12일 후인 1월23일, 한보철강은 5조원의 부채를 지 고 도산했다. 홍콩에 부임한 나는 외국 언론 들이 연일 한보사건을 집중 보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훗날 깨닫게 된 것이지만 한보 사건은 한국의 정경유착과 관치에 길들여진 부도덕한 금융실태를 낱낱이 노출시켜 세계 투자가들이 한국에서 손을 떼도록 만든 기폭 제가 됐다. (1년 후 홍콩스탠다드는 한보사건
1997년 1월 30일 한보그룹은 최종 부도 처리됐다. 정태수 총회장은 공금 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징 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사진은 97년 4월 대검찰청 에 출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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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한국의 IMF 사태뿐 아니라 아시아 금융 위기의 시발점으로 규정했다.) 임박한 국가 부도 모른 채 허세 부려 당시 홍콩에 진출한 한국 금융기관들은 흥 청망청이었다. 소위 YS의 ‘세계화 정책’에 따라 국제금융에 대한 고삐가 풀리면서 무 려 83개 금융사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이들 은 선진국 수준의 체재비와 판공비를 쓰지 만 영업활동은 후진적이었다. 동남아· 남미· 러시아 등의 고수익·고위험 정크 본드(junk bond)를 거래하고 있었다. 한보사건 이후 한국 경제는 외국 언론에 거 의 ‘엉망 수준’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3월 들 어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에 대한 비리 수사가 집중 보도됐다. 4월 중순 홍콩 외신기자클럽(FCC)에 들렀 을 때 나는 외국 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처 벌한 현직 대통령 측이 또 다른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실이 맞나?”(키스 리치버그·워싱턴 포스트) “뇌물의 단위가 너무 크다. 개인이 받 는 돈이 수십만, 수백만달러라니….”(리처드 맥그리거·디 오스트레일리언) 5월 이후 아시아 각국의 독재와 금융 부실 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이미 한국에 빌려준 돈의 회수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금융 기관과 기업은 돈이 마르고 도산이 시작됐다.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다 음날인 1997년 7월2일, 태국 바트화(貨) 가치 가 폭락하면서 동남아 전역으로 금융위기가 번져 나갔고 8월 하순에는 홍콩마저 휘청거 리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적 위기에도 한국은 오불관언이 었다. YS는 아들 현철씨가 구속된 이후 사 실상 ‘식물 대통령’이 돼 보이지 않았고, 여 론은 이회창 아들 병역문제에 올인하고 있 었다. 내가 홍콩에서 아무리 외환위기 기사 를 송고해도 국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대선 이었다. 정부는 더욱 한심했다. 9월 홍콩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 온 강경식 경제 부총리는 “한국 경제력에 걸맞는 분담금을 내겠다”며 오히려 IMF 회비 증액 로비에 열 중했다. 불과 2개월 뒤 국가부도 위기를 맞게
[중앙포토]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그와 인터뷰 를 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경제부장 레 이 배시포드는 “일국의 경제 총수가 어쩌면 그렇게 상황을 모를 수 있나”며 한탄했다. 당 시 IMF 총회에는 미국의 ‘큰 손’ 조지 소로 스도 참석했다. 그는 일본 관리들에게 “금융 위기 다음 타깃은 한국”이라고 귀띔했다. 10월 말 한국 주가는 결국 500선이 붕괴됐 다. 11월 들어 세계 유수 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국이 위험하다’고 연일 보도했지만 우리 정부는 전혀 대응을 못했다. 오히려 관 리들은 YS 임기 중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 겠다며 외환보유고를 바닥상태까지 끌고 갔 다. 마침내 우리 외환시장과 증시가 붕괴 상 황에 이른 11월 21일 저녁, 정부는 IMF에 구 제금융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늘은 내편’이라는 자신감이 독 1997년 후반기는 그동안 한국인들이 피땀 흘 려 쌓아온 ‘한강의 기적’이 일순간 거덜 나게 될,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가장 위험했던 시 간들이었다. 그러나 훗날 정부 조사에서 밝혀 진 것처럼 YS가 외환위기를 처음 파악한 것 은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을 통해서가 아니 라 11월 10일 한 국회의원(홍재형)과의 전화 통화에서였다. 국가적 위기 사태를 맞아 통치 자는 무지했고, 그런 징후를 보고한 부하도 없었다. 나라는 표류하고 있었다. YS는 20대 의원 시절부터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의리와 정이 있었고, 국민 의 마음을 읽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야당 투사였다. 그런 그가 왜 대통령 후반기 때 그 런 실정(失政)을 하며 추락하게 됐는가. 국가 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 을 돌려선 안되지만 외환 위기에 관한 한 YS 의 책임은 크다. 그는 측근들과 한보 사이의 유착을 제어하지 못했고, ‘세계화’란 명목 하 에 세심한 고려 없이 자본시장을 덜컥 개방해 버렸을 뿐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엄청난 국력을 소모했다. 그 와중에 한국 경 제가 곪고 썩어 들어가는 것을 아무도 주목하 지 못했다. 사실 야당투사로서 비판과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은 전혀 다른 세계다. 박정희가 그
어려운 시절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며 시 대적 악역을 자처하고 좁은 길을 헤쳐 나갔 던 것과 달리, YS는 거칠 것이 없는 탄탄대 로의 넓은 길(大道無門)을 걸어갔다. 누구 보다 군사정권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은 DJ(김대중)지만 대통령이 된 뒤 꾹 참고 보 복을 하지 않은 것과 달리 YS는 군사정권과 손을 잡고 집권하고서도 한 순간에 그들을 내쳐 버렸다. YS의 그 같은 과단성, 즉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처럼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다. 유복 한 집안에서 자라나 명문교를 졸업하고 승승 장구하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다 됐고, 하늘은 항상 자기편이라고 자신(自 信)했을 성 싶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 결국 대통령이 된 뒤 국정 운영에는 독(毒)이 되고 말았다. 어느 새 마음 속에는 ‘국민을 섬기는’ 겸손보다 ‘내가 최고’라는 교만이 자리 잡아 위기를 위기로 보지 못하고, 주위의 판단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 아닐까. 등산을 즐긴 YS는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 오기가 더 어렵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이란 인생 최고 목표를 이루고 하산하 다가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세 계적인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의 말이 생각난다.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정복하 고 영웅이 됐지만 평생 후진국 네팔에서 봉사 하다가 타계한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에베 레스트에 오른 첫 인간이라는 기록은 중요하 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등정을 통해 겸 손과 관용을 배웠다는 점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YS가 저 힐러리경(卿)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대통령 직을 수행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 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또 우리 각자의 인생 은…. 외환 위기가 한국 사회에 너무 많은 상 처와 그늘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함영준 조선일보 사회부장·국제부장 등을 역임하 고 국민대 겸임교수를 거쳐 청와대 문화체육관광 비서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 냈다. 저서로 마흔이 내게 준 선물 등이 있다.
Column 27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삶과 믿음
기도와 응답 김영준 목사 pastortedkim@gmail.com
스승 슈만(좌)과 제자 브람스. 서로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으나 둘의 음악세계는 양극단에 있었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음악가만 아는 것들 ③ 슈만과 브람스
서로를 밀고 끌어준 극과 극의 두 감성 손열음 피아니스트
오랜만에 B의 음악을 공부하자니 지난달에 공부했던 A의 음악이 계속 떠오른다. 그 정 반대의 음악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를 테 면 쇼팽과 리스트가 다른 것이나, 브루크너 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다른 것이야 놀 랄 일이 아니잖나. 그들은 살아 생전에도 서 로의 대척점이었고 지금까지도 각자의 추종 자가 현격히 나뉠 정도로 다르고 또 다른 음 악가들이니.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여기 A와 B가 악보에 쓴 지시어만 봐도 바 로 알 수 있다. 먼저 지난달 내가 공부했던 A의 곡, Äussert bewegt (빠른 움직임으로) - Sehr innig und nicht zu rasch (매 우 내밀하게, 너무 서둘지는 않게) Sehr aufgeregt (매우 흥분해서) - Sehr langsam (매우 느리게) - Sehr lebhaft (매우 생동감있게) - Sehr langsam (매우 느리게) - Sehr rasch (매우 서둘러서) Schnell und spielend (빠르고 재미있게). 그리고 B의 비슷한 형식의 작품, Un poco agitato (조금 흥분해서) Allegretto non troppo (조금 빠르게 그러 나 너무 심하지 않게) - Grazioso (우아하 게) - Allegretto grazioso (조금 빠르고 우 아하게) - Agitato ma non troppo presto (흥분해서, 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게) Andante con moto (느리게 그러나 움직 임이 있게) - Moderato semplice (중간 정 도의 속도로 단순하게) - Grazioso ed un poco vivace (우아하고 조금 빠르게). 감정의 양 극단을 오가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 A와, 이와는 정 반대로 행여 나 모자랄까, 행여나 지나칠까 전전긍긍인 B. 상극처럼 보이는 이 두 사람은 살아 생 전 서로를 가장 아꼈다. A가 “시대의 이상 을 가져다 줄 운명의 젊은이”로 소개하며 B 의 인생은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당신의 그 찬사 덕에 상상할 수도 없이 늘어난 나에
대한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 그 시 작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A에게 직접 밝 힌 소회에서처럼 B는 무명의 신인에서 일약 음악계의 총아로 급부상했다. A는 로베르 트 슈만, B는 요하네스 브람스다. 각각의 곡 은 첫번째가 ‘크라이슬레리아나’ 작품번호 16, 두번째 곡이 ‘8개의 작품’ 작품번호 76 이다. 이 멘토와 멘티는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 의외 로 드문 순수 독일 혈통이었다는 점. 멘델스 존은 유대계, 쇼팽·리스트는 동구권 태생, 베를리오즈는 프랑스인이었으니 순수 아리 안으로는 이 두 사람과 바그너가 선봉장이 었던 셈이다. 자연스레 슈베르트의 뒤를 잇듯 많은 독
하노버의 요아힘거리 이정표.
[사진 손열음]
일시 가곡을 남겼으며 둘 다 피아니스트 출 신으로 여러 피아노 곡을 남기기도 했다. 그 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 최고 ‘대세’이던 신 독일악파, 즉 리스트·바그너·베를리오즈 등 이 음악의 드라마적 요소를 극대화시킨 외 향적 음악을 지향했던 것에 반해 소규모의 내향적 음악을 고집했던 것 때문에 얼핏 둘 의 음악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악보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본질 적 성향은 그야말로 정반대에 가까운 것이 다. 슈만의 음악이 훗날의 정신착란으로 발 전될 정도의 고도의 환상성에 뿌리를 두었 다면 브람스의 음악은 보다 순수한 이성이 원천이다. 가장 순도 높은 영감이나 감정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뽑아내던 슈만과 달 리 브람스는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이나 치
미는 감정들의 나열을 지양했다. 몇 달 안 에 수십개의 작품을 쏟아냈던 슈만과 비교 하면 브람스의 작업은 답답할 정도로 치밀 했다. 소규모의 실내악을 작곡한 경험을 차곡 차곡 쌓은 후에야 박차를 가한 교향곡 1번 의 작업은 20년만에 결실을 이뤘으니. 혹자 들은 이 곡을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 했 다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브람스가 이 곡에 서 꿈꾼 것은 베토벤이 매 교향곡에서 추구 했던 자아의 성취, 영웅적 승리보다는 예술 의 신성, 정신의 고양에 더 가깝지 않은가. 개인의 사랑과 꿈, 시정을 노래한 자전적 에 세이에 가까운 슈만의 음악세계와 비교하 면 그야말로 끝에서 끝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런 슈만이야 말로 오히려 더 꽉 막힌 사람이었던 것도 같 다. 순수 음악이나 문학 작품만을 모티브로 차용한 슈만과는 달리 브람스는 헝가리 춤 곡, 16개의 왈츠 작품번호 39, 자장가 등 민 속음악과도 부합하고 대중적인 경음악과 도 타협했다. 평생의 친구였던 요한 슈트라 우스 2세의 부인 아델레가 사인을 요청하 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 소절을 그 려주며 ‘애석하게도, 브람스가 안썼음’ 이 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하니, ‘유머 있게(mit Humor)’ 를 강박적으로 강조하던 슈만과 는 다른 형태의 융통성을 지녔던 건지도 모 르겠다. 또한 한음 한음에 고유한 성격이 부여되 어 들리는 절대음감이 없었던 탓에, 슈만은 그 무한대의 상상력을 가공할 만한 세밀한 화성 진행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 니었을까. 반면 브람스는 완벽한 절대음감 의 소유자였다고….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악사에서 서 로의 덕을 제일 많이 보고 있는 훈훈한 관 계로,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서로의 일대기 에서 서로를 지울 수 없을 샴쌍둥이 같은 이 둘의 인연은 참고로 이 곳 하노버에서 시작 됐다. 1852년 하노버로 건너 온 요제프 요아 힘은 이듬해 이곳으로 연주여행을 온 약관 의 브람스를 만났고 슈만에게 건넬 추천사 를 써주었다. 갑자기 엄청 중요한 곳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인간은 기 도한다. 그렇다면 그 기도는 도대체 얼마나 응답이 되는가? 확실한 대답은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도 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응답되는 경우보다는 응 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기도를 중단하 느냐? 기도를 포기하느냐?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성경에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를 다양하게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욕을 채우기 위해 잘못 구하는 경우다. 라스베이 거스가 세상에서 기도를 제일 많이 하는 도 시라고 하는데, 과연 그 중 얼마나 응답이 되 겠는가? 둘째는 기도를 막는 게 있는 경우다. 대표적인 게 미움이나 원망이다. 사람과 사 람 사이에 화목하지 못했을 때 그것이 기도 의 응답을 막는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남의 용서를 빌고 남을 용서해야 한다. 이를 건너뛸 순 없다. 우 리 조상들도 나라에 가뭄이 들면 죄수들을 풀어줬다고 하는데, 이는 억울한 사정 때문 에 하늘이 문을 닫았을까 염려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다면 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다. 하 나님이 “No” 혹은 “기다려”라고 말씀하는 경우다. 부모는 자녀가 조르는 걸 다 들어주 지 않는다.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게 해달라 고 조를 때, 밤 늦게 인터넷 게임을 하게 해달 라고 조를 때, 몸에 해로운 간식을 사달라고 조를 때 부모는 거절한다. 사랑하지 않아서 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자식 에게 이롭고 해로운지 부모는 안다. 문제는 자식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면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과 다툼이 발생 한다. 이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자녀가 커서 부모가 돼봐야 그제서야 부모 의 마음을 이해한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
게 ‘좋은 것’으로 주시리라고 했다. 좋은 것 을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다. 영화 ‘벤허’에서 로마 해군제독은 자신이 섬기던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지만 응답 받지 못한 경험 탓에 종교와 신에 대해 냉소적 감 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벤허가 어려 움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 는 걸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는 “네 고 집스러운 믿음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벤허는 “만일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면 이제 껏 나를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들이 망망대해를 떠돌다 로마 해군에 의 해 구조된 뒤 로마 제독은 “너의 하나님이 너를 살려주기 위해 로마 해군까지 살렸다” 고 했다. 벤허의 믿음이 로마 제독의 생명뿐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살린 것이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인간은 여러 아 픔을 경험한다. 소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은
종교 떠나 인간은 ‘기도하는 존재’ 용서하고 사심 버려야 응답 받아 독한 시련 뒤엔 참된 신앙 찾아와 데 따른 아픔도 있고 믿음이 흔들림으로 인 한 아픔도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의 지했던 게 다 헛된 것이었나 싶어 번민하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묻기도 한다. 성경 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도 동일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욥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심지 어 예수님마저도 십자가 상에서 “하나님, 어 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쳤다. 참된 신앙은 이런 혹독한 시련을 통과하 고 극복한 뒤 맺어지는 것이다. 만일 신앙의 경험에 이런 아픔과 번민만 존재한다면 인 간은 벌써 오래 전에 신앙을 버렸을 것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이 존재했기에 버리지 않은 것이다. 울면서 씨를 뿌린 뒤 기쁨으로 단을 거둔 적이 있기에 신앙은 살아남은 것이다. 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 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猶豫
<유예>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梁啓超, 1873~1929) 는 자신의 당호(堂號)를 음빙실(飮氷室)이 라 했다. 차디찬 얼음물을 마시듯 늘 깨어 있자는 뜻에서였다. 그는 사람의 참된 마음 이 행동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 나 말이 쉽지 어디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 던가. 그래서 수양이 필요하며 그 수양의 방 법으로서 그는 신독(愼獨)을 제안했다. 신독은 자기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 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가는 것을 일컫 는다. 대학(大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 온다.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所謂 誠其意者 毋自欺也). 나쁜 냄새를 싫어하고 좋은 빛깔을 좋아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이라 한다(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고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에도 신중해야 한다(故君子必 愼其獨也)’. 중용(中庸)에서는 ‘숨겨진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에 조심해야 한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 子愼其獨也)’고 했다. 모름지기 군자라 하 는 이는 남이 보건 보지 않건 상관없이 자신 의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임을 주문하 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경우 국민의 세 금으로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절실히 요구 되는 덕목이다. 이들 정치인의 행동은 어떠해야 할까. 도 덕경(道德經) 15장에 보면 ‘조심조심하는 구나. 마치 살얼음 낀 겨울 내를 건너는 듯 이 한다(豫焉若冬涉川). 신중하구나. 사방 을 경계하듯이 한다(猶兮若畏四隣)’는 구 절이 있다. 여기서 ‘망설이다’ 또는 ‘주저하 다’는 뜻의 유예(猶豫)라는 말이 나온다. 예 (豫)는 코끼리를, 유(猶)는 원숭이를 가리 키는 말로 조심스러운 동물들이 겨울 내를 건너고 사방을 살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유예’에는 망설이다와 함께 신중하다 는 뜻이 담겨 있다. 줏대가 없어서, 또는 겁 을 내서가 아니라 치우침이 없이 여러 상황 을 두루 감안하는 자세다. 최진석 서강대 교 수는 이를 “어느 한쪽을 경솔하게 선택하지 않기도 하려니와 어떤 상황에서나 그 반대 편까지 고려하는 자의 신중한 모습”이라고 풀이한다.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능사로 아 는 우리 정치인들이 꼭 새겨야 할 말이다.
28 Column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다시 쓰는 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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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멸망의 서곡
통일로‘대박’일군 신라, 평화 만끽하며 권력다툼 몰두 는 적임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기에 정치가 잘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풍토가 달 라졌다고 개탄했다. 어떤 사람이 가까운 사 이면 그가 설령 인재가 아니더라도 높은 자 리로 끌어 올려주고, 미워하는 사이면 재능 이 있더라도 구렁창으로 빠뜨리니 나라 일이 혼탁하게 될 뿐 아니라 인사문제를 처리하는 사람도 병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비판했 다. 충공은 녹진의 직언을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이를 태자에게도 알리라 했다.
이종욱 교수 leejw@sogang.ac.kr
신라의 역사는 상·중·하대(代)로 구분된다. 시조 혁거세~제28대 진덕여왕이 상대, 제29 대 무열왕~제36대 혜공왕이 중대, 제37대 선 덕왕~제56대 경순왕을 하대라 한다. (삼국 사기 신라본기 12, 경순왕 9년(935) 조) 중대에는 김춘추의 종족(宗族)들이, 하대 에는 원성왕의 종족들이 나라를 지배했다. 중대와 하대의 왕들은 색깔이 달랐다.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들이 신라를 흥하게도, 망하게도 했다. 무열왕의 직계 후손들은 중대의 중흥을 일 궈냈다. 이 시기엔 왕위 장자계승의 원칙이 지켜졌다. 왕자가 없을 때는 왕의 동생이 계 승하기도 했다. 왕위는 매우 안정됐고, 왕들 은 강력한 왕권으로 왕국 전체를 비교적 잘 통치했다. 중대의 왕들은 신라를 대평화의 길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한통합은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고 통이 있었지만 결국 대박이었다고 할 수 있 다. 통합에 성공한 이후 김유신의 말대로 외 우(外憂)가 없어졌기에 통일신라는 부귀를 누리게 되었다. (화랑세기 15세 유신공) 제33대 성덕왕은 733년 8월 보름에 월성의 한 언덕에서 시종들과 경치를 보며 술자리를 베풀고 즐기다가 김유신의 적손(嫡孫) 윤중 을 불러오게 했다. 왕은 자신과 모든 신료들 이 안평무사(安平無事)한 것은 모두 윤중의 조부 김유신의 덕택이며 이를 잊는다면 도리 가 아니라 했다. 윤중을 가까운 자리에 앉히 고 왕은 김유신의 무용담을 열거하며 극찬했 다. 날이 저물어 윤중이 돌아갈 때에는 절영 산의 말 한 필을 선물로 줬다.(삼국사기 열 전 3, 김유신 하) 유교로 무장한 신료 양성, 중국 배우기 이 무렵 성덕왕을 포함한 신라인들은 평화 를 만끽하고 있었다. 삼한통합으로 늘어난 옛 백제·고구려의 토지와 인민을 지배하게 된 신라의 왕들은 통치체제를 확대 개편하 였다. 문무왕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조에 율령격식(律令格式)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고치라고 했다. 삼한통합으로 신라의 재정 수입도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신문왕 7년 (687) 5월에는 문무관료전을 차등 있게 지 급했다. 2년 후에는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 에게 매년 조(租·곡식)를 차등 있게 나눠주 었다. 중대 신라는 중국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국학을 설치하여 유교교리로 무장한 신료를 양성했다. 유교적 윤리와 같은 당시에 만들어 진 중국화의 유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삼한통합으로 신라가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중대에 는 무열왕·문무왕·신문왕과 같은 뛰어난 군 주가 있었다. 신라 중대를 연 무열왕은 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 중 한 명이다. 둘째, 왕 과 국가를 위해 열정을 다한 김유신을 중심 으로 한 칠성우 같은 신료집단이 있었다. 셋 째, 삼한통합을 이룬 신라는 새로이 늘어난 토지와 인민을 통해 인적자원과 재정확대를 기했다. 백성들의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안 정되었다. 넷째, 외국과의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이종욱, 신라의 역 사 2, 2002) 혜공왕과 왕비, 반란군에게 피살 하지만 중대의 대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 았다. 혜공왕(765~780)에 이르러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여덟 살에 왕위에 오른 혜공왕을 대신해 태후는 섭정을 했다. 혜공 왕은 장년이 되어서는 노래와 여색에 빠졌 다. 나라의 기강은 문란해지고 재난도 겹쳤
822년 ‘김헌창의 난’ 뒤 종말 향해 질주 같은 해인 822년 일어난 김헌창의 난은 신 라의 종말을 재촉했다. 아들을 낳지 못한 헌덕왕은 이해 정월 아우 수종을 부군(副 君·왕위계승권자)으로 삼아 월지궁에 들어 오게 했다. 2월엔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그 의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이 유로 반란을 일으켰다.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무진주·완산주·청 주·사벌주의 도독과 국원경·서원경·금관경 의 사신, 그리고 여러 군현의 수령을 위협해 복속시켰다. 김헌창은 9개 주 중 5개 주, 5개 소경 중 3개 소경을 장악했다. 완산주 장사 (長史) 최웅의 보고를 들은 조정에서는 8명 의 장군을 뽑아 왕도의 8방을 지키게 한 후 군사를 출동시켰다. 일길찬 장웅, 잡찬 위 공, 파진찬 제릉, 이찬 균정, 잡찬 웅원, 대 아찬 우징, 각간 충공, 잡찬 윤응 등이 동원 되었다. 조정에서 보낸 군대는 도동현·삼년산성· 속리산·성산 등에서 승리를 거두고 웅진에 서 김헌창의 군대와 싸워 이겼다. 김헌창 은 성에 들어가 열흘을 버텼는데 성이 함 락되기 전 자결했다.(삼국사기 10, 헌덕 왕 14년)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8명의 장군 중 여럿은 왕위계승전을 벌였다. 이들은 모두 원성왕의 후손들이었다. 제릉 (제43대 희강왕), 균정(제45대 신무왕의 아 버지), 우징(제45대 신무왕), 충공(제44대 민 애왕의 아버지) 등이 그들이다. 그런 의미에 서 김헌창의 난은 신라 멸망의 직접적인 출발 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문무왕의 수중릉. 신라 중대의 왕들은 양백성(養百姓·백성을 보살핌)과 무사이(撫四夷·외적을 진압함)를 국가 목표로 삼한통합을 완성했다.
땅인구 늘어 재정수입 크게 증가 무열문무왕 등 中代의 발전 견인 혜공왕 때부터 기강문란민심이반 조카 몰아낸 헌덕왕 ‘신라판 세조’
다. 민심이 떠나자 나라는 편치 않게 되었다. 780년 2월에는 김지정이 무리를 모아 궁궐 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달 뒤 상대 등 김양상과 이찬 김경신이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혜공왕과 왕비는 반란군에 살해됐다.(삼국사기 9, 혜공왕 16년)
신라 하대(下代)를 연 제38대 원성왕의 능인 괘릉(사적 제26호). 원성왕의 후손들은 왕위계승 전쟁을 벌 여 신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다.
[사진 권태균]
김양상은 제37대 선덕왕이 됐다. 신라 하 대(下代)가 열린 것이다. 김양상이 왕위에 오 른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왕정을 장악할 생각은 없었다. 선덕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왕의 조카뻘 되는 김주원을 왕으로 세우자 는 의견이 있었다. 그의 집은 왕경 북쪽 20리 에 있었는데 마침 큰 비가 내려 알천물이 불 어 건너지 못했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뜻 을 모아 김경신을 왕으로 세우니 이가 곧 제 38대 원성왕(785~798)이다. (삼국사기, 10, 원성왕 즉위조) 이후 제52대 효공왕까지 원성왕의 후손 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이 시기에 왕정이 붕괴되어 갔다. 신라도 멸망의 길을 치닫게 됐다. 인사정책은 난맥상을 보였다. 이 때문에 중대의 칠성우와 같은 인재들이 더 이상 등 장할 수 없게 됐다. 제41대 헌덕왕 14년(822) 상대등 충공은 정사당에서 관리를 뽑은 뒤 병가를 얻어 집에 머물며 아무도 만나지 않 았다. 그때 집사부의 시랑(侍郞) 녹진이 찾아 가 어렵게 충공을 만났다. 녹진은 “그동안엔 재주가 큰 사람은 높은 벼슬자리에 앉히고 작은 사람은 낮은 직책을 맡겨, 벼슬자리에
원성왕 후손들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 이들에게는 왕위계승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태자(太子) 제도는 의미가 없었다. 오로지 군사적 힘이 중요했을 뿐이다. 헌덕왕은 조 카인 제40대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 다. 단종을 쫓아내고 왕좌에 오른 조선의 수 양대군(세조)과 다를 바 없다. 희강왕·민애 왕·신무왕은 836년 12월부터 839년 1월까지 짧은 기간에 왕위계승전을 벌였다. 희강왕 은 큰아버지 균정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민애왕은 6촌인 희강왕을 목매 죽게 하고 왕 위를 빼앗았다. 우징(신무왕)은 장보고의 군 대 5000명을 동원한 왕위계승전에서 민애왕 을 물리치고 왕위를 차지했다. 중대에 삼한 통합을 했던 신라의 군사력은 이제 무너질 대로 무너져 버렸다. 또한 왕권도 땅바닥에 떨어졌다. 원성왕계 종족들의 왕위계승전은 그 후 100년도 못 가 신라 왕국을 멸망으로 이끌었 다. 오직 왕위를 장악하기 위한 권력다툼밖 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백성도, 국가도, 그 뒤 에 이어질 역사도 안중에 없었다. 그런데 우 리 시대는 어떤가. 신라 하대의 왕들을 중심 으로 한 정치가들과 같이 정권 장악에만 혈 안이 되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객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졸, 문학박사, 서강대 사학 과 부교수교수서강대 총장 역임, 현재 서강대 지 식융합학부 석좌교수. 신라국가형성사연구 등 22권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음.
Column 29
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9>
청 태조 첫 깃발 날린 푸순서 ‘전범 수감’된 마지막 황제 2012년 봄, 성을 청(程)씨라고 밝힌 노인이 창 춘의 허름한 빵집에서 62년 전에 겪었던 일을 회상했다. “1950년 8월 3일 동틀 무렵, 중·소 국경마을 수이펀허(綏芬河)엔 전운이 감돌 았다. 당시 나는 21세, 동북 인민정부 외사국 간사였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역에 도착해보니 새벽 4시였다. 사방에 매복을 끝 내고 무장 병력을 철로 변에 배치한 후 전투 태세를 선포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밤안개가 짙었다.” 노인의 회고는 그칠 기색이 없었다. “6시 무렵, 소련 방향에서 울리는 기적 소리가 정 적을 깼다. 육중한 열차가 안개를 뚫고 모습 을 드러내자 다들 긴장했다. 객차 문이 열리 고 무장한 소련 군인들이 먼저 내렸다. 잠시 후, 키가 1m70㎝ 남짓한 40여 세 정도의 중 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색 양복에 검 은 테 안경, 손에는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
일본을 방문한 푸이는 천황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 다.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해 요요기(代代木) 연병장 으로 향하는 푸이(앞줄 오른쪽)와 히로히토. 1935 년 4월 9일 오전.
소련에서 중국으로 넘겨지자 사색 당장 처형되는 줄 알고 자포자기 동북 통치자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눈앞의 ‘마지막 음식’ 먹기에 열중 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공포에 질린 모습 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한눈에 누구인지 를 알아봤다.” 상부의 지시를 받고 현장에 나와있던 푸순 (撫順)전범 관리소 간호사도 훗날 구술을 남 겼다. “그는 만주국 황제 시절에도 검은 테 안 경을 쓰고 있었다. 1938년, 33세의 푸이가 선 양을 방문했을 때, 나는 만주국 기와 일본 깃 발을 들고 환영 대열 맨 앞에 서있었다. 고관 들이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 숙이는 것을 보 고 황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실감했다. 어릴 때부터 사진이나 초상화로 보아온 위엄있고 화사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으며, 한때 일본 천황과 나란히 마차에 앉아 도쿄 한복판을 질주했던 사내 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생각만해도 머리가 아팠다.” 동북 인민정부 측에 신병이 인도된 푸이 일행은 중국 열차로 갈아탔다. 푸이와 함께 송환된 공친왕(恭親王) 손자의 구술이 흥미 롭다. “중국 기차에 올라탄 우리는 사람 몰골 이 아니었다. 염라대왕의 심부름꾼이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입이 얼어 붙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푸이는 사색이 돼 있었 다. 자신이 1급 전범인 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형장으로 직행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황후였던 완룽(왼쪽)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자금성 시절 영어 가정교사와 함 께 한 완룽. 연도 미상.
[사진 김명호]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선포 한다. 이제 너희들을 포로가 아니다. 전범죄 로 모두 체포한다. 나는 저우언라이 총리의 지시에 의해 너희 일행을 조국으로 안내하 러 나왔다. 우리 당의 정책과 인민정부를 믿 어라. 학습에 매진해서 사상을 개조하고 새
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기 바란다.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 든지 우리를 불러라.” 전범 선언과 동시에 손 발이 묶일 줄 알았던 푸이 일행은 반신반의 했다. 의심이 많던 푸이는 말이 저렇지 그럴 리가 없다며 믿지 않았다.
선양(瀋陽)에 도착하자 인솔자가 푸이와 전 만주국 총리 장징후이(張景惠·장경혜)를 호명했다. “따라와라. 만날 사람이 있다.” 밖으로 나온 푸이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줄 알았다. 조카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너희들까지 죽일 심산이구나. 우리
독일 남부 린다우에서 1951년부터 과학 분야 를 중심으로 매년 열려온 ‘린다우 노벨상 수 상자 모임’과 2004년부터 자매 행사로 진행 돼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이 올해 중 앙SUNDAY의 보도로 한국에도 본격 소개 됐다.(7월20일자 및 8월24일자)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에 걸친 보덴(영 어 콘스탄스, 프랑스어 콩스탕스) 호수의 작 은 섬 린다우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독일 과 학자들의 열정과 인근에 살던 한 스웨덴 왕 족의 헌신이 빚은 결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51년 린다우의 의 사 구스타프 파라데와 프란츠 카를 하인은 인근에 살고 있던 스웨덴 왕족 레나르트 베 르나도테(1909~2004)를 찾아가 노벨상 수상 자 모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그러 자 베르나도테가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행사 가 시작됐고 올해로 64회를 맞았다. 노르웨 이에서 시상하는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노벨
상은 스웨덴 군주가 시상하므로 스웨덴의 베 르나토테 왕실 출신이 수상자 모임을 주도하 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레나르트는 보덴호의 마이나우 섬에서 취 미인 조경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 엔 사연이 있었다. 스웨덴 구스타프 5세 국왕 (재위 1907~1950)의 손자이며, 구스타프 5세 의 차남인 빌헬름 왕자(1884~1965)의 외아 들인 그는 낮은 순위지만 왕위 계승권과 스 몰란드 공작 작위를 보유했다. 하지만 32년 평민인 카린 니스반트(1911~1991)와 결혼하 면서 왕위 계승권과 작위를 잃게 됐다. 1810년 만들어진 스웨덴 왕위 계승법은 군 주나 정부의 동의 없이 결혼한 왕자나 공주 는 본인과 후손의 왕위 계승권과 작위를 박 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평민과 결혼할 경우 적용된다. 하지만 예우 차원에서 왕위 계승권 상실 자에겐 1868년부터 외국 작위를 대신 받게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4명의 스웨덴 전 왕자 가 룩셈부르크 대공국으로부터 비스보르크 백작 작위를 받아왔다. 레나르트는 51년 이 를 받아 비스보르크 백작 레나르트 베르나 도테로 불리게 됐다.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 하고 한 결혼이었지만 40년 만인 72년 이혼 하고 그해 소냐 하운츠(1944-2008)와 재혼했 다. 첫 결혼에서 1남3녀를, 재혼에서 2남3녀 를 얻었다. 세상을 떠나 마이나우의 영지에 묻혔는데 재혼한 부인에게 옆자리를 내줬다. 첫 부인은 가족 묘지에 안장됐다. 레나르트는 80세인 89년 란다우 노벨상 수 상자 모임의 위원장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부인인 소냐 공작부인이 넘겼다. 2008년 공작 부인이 숨지면서 그의 장녀인 베티나 여백작 이 위원장을 이어받았다. 지금 스웨덴 국왕인 카를 구스타프 16세 도 평민과 결혼했다. 카를 구스타프 16세는 왕세자 시절인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통
모두 조상을 만나러 가자”며 앞장섰다. 건물 로 들어서자 큰 탁자에 과일·사탕·빵·담배 등 이 놓여 있었다. 푸이는 “내 생각이 맞았다. 마지막 음식이니 실컷 먹자”며 닥치는 대로 입에 쑤셔 넣었다. 중국은 사형 집행 직전에 한바탕 먹이는 전통이 있었다. 키 크고 안경 낀 사람이 나타났다. 수행원이 가오강(高崗) 주석이라고 해도 푸이는 먹기를 그치지 않았 다. 당시 가오강은 동북 인민정부 주석과 중 공 동북국 서기, 동북군구 사령관을 겸한 동 북의 최고 통치자였다. 가오강이 입을 열었다. “5년 만에 돌아왔 으니 우선 쉬고 학습을 받도록 해라.” 푸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사과 씹는 소리만 요란했다. 가오강이 귀국 소감을 묻자 먹기를 그치고 쏘아 부쳤다. “소감은 무슨 놈에 소감. 이왕 갈 거, 먹을 만큼 먹었으니 빨리 가자. 형장에 가기 전에 판결서나 보자.” 갑자기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가오강도 웃 고 수행원들도 웃었다. 웃기를 그치자 가오강 이 푸이를 달랬다.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할 필요 없다. 일단 푸순에 가서 쉬도록 해라. 선 양에는 적합한 장소가 없다.” 가오강은 푸이에게 황후 완룽(婉容·완용) 의 소식도 전했다. “4년전 옌벤(延邊)에서 세상을 떠났다. 조선족 부부가 정성을 다해 돌봤지만 전쟁 중이라 치료가 불가능했다. 유골을 찾으면 우리가 잘 보관했다가 돌려 주마.” 푸순의 전범관리소에 수용되던 날, 푸이의 심정이 어땠을 지는 알 길이 없다. 푸순은 3백 여 년 전, 푸이의 조상인 청 태조 누르하치가 처음 깃발을 날린 곳이었다. <계속>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노벨상과 베르나도테 왕가
역을 맡았던 실비아 조머리아트와 76년 결 혼했다. 결혼식 전야 행사에서 팝 그룹 ‘아 바’가 초연하고 실비아 왕세자빈에게 헌정 한 노래가 그 유명한 ‘댄싱 퀸’이다. 실비 아 왕비는 왕족도 귀족도 아닌 독일인 아버 지와 브라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74년 만들어진 새 헌법에 따라 왕 위 계승 지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헌법이 왕위 계승법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80년에는 장남 대신 남녀에 상관없이 첫 자녀가 왕위를 물려받게 했다. 이에 따라 79 년생인 장남 칼 필립 대신 77년생인 장녀 빅 토리아가 앞으로 왕위를 잇게 됐다. 빅토리아 도 2009년 평민으로 자신의 헬스 트레이너였 던 다니엘 베스틀링과 결혼했다. 왕실의 현 대화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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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글 쓰는 고통을 즐기는 까닭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hwesook7@naver.com
어느 날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소원이 뭐예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는 원고에 서 해방되는 것, 그리고 둘째는 일생에 길이 남을 멋진 글을 쓰는 것.”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이율배반적인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 만은 글 쓰는 것만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직업적으로 늘 하는 일이니 이력이 날 법 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일은 아무리 해도 숙달이 안 된다. 글을 쓸 때마다 너무나 막막 해서 “이 짓 안 하고 살 수 없나?”하는 한탄 이 절로 나오곤 한다. 어린 시절 내 꿈은 피아니스트나 외교 관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대충 화려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글 쓰기에 대한 욕망이 열병처럼 찾아왔다. 사 고력이나 표현력에 있어서 또래 친구들의 수 준을 훨씬 능가하는 한 친구의 글을 읽고 충 격을 받은 후였다. 갑자기 나도 그 친구처럼 폼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래서 일기니 편지니 수필이니 소설이니 되지 도 않는 글을 마구 써대기 시작했다. 나는 내 글이 정말로 잘 쓴 글인지, 내가 글쓰기에 소 질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냥 글 쓰는 것이 좋았다. 대학 졸업 후, 한때 다른 직업을 기웃거렸 다. 글쓰기는 취미로 해야지 직업으로 할 만 한 것은 못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아무리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결국에는 꼭 글 쓰는 일로 돌아오곤 했다. 글은 처음 시작하기가 힘들다. 일단 써야 할 원고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원고 써야 하는데…”라고 하면
보물지도 같은 친구 ‘늘봄’ 최정동 칼럼 영상 에디터 choijd@joongang.co.kr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 지’를 보면 카페 아드리아노의 여주인 지나 가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부르잖아요. 처음 듣는 순간 팍 꽂혔는데 그 곡이 뭔지…” 광화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 내가 혼잣 말처럼 중얼거리자 앞에 앉아 있던 S가 말 했다. “‘버찌가 익어갈 무렵’이라는 곡입니 다. 샹송이죠. 저도 좋아합니다.” 빙그레 미 소 짓는 그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그는 음악 동호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 나 ‘버찌’ 이후로는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같은 걸 좋아하면 남다른 유대감이 생기는 법이다. 그 날 이후 카페에 갈 때마다 첼로 로 연주하는 ‘버찌’가 우리의 주제곡처럼 흘러나왔다. 만나면 늘 음악 이야기를 했다. 슈베르트 가곡의 낭만성에 대해 토론하고 오래 된 LP음반을 주고받고 가끔 연주회도 같이 갔다. 그는 나보다 네 살 연하에 동향 출신이다. 동생으로 대접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에 ‘형’을 붙여 부르고 존대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만난 사이기도 하거니와, 그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기 때 문이다. 친구는 성실한 기독교인이지만 나와 밥 상을 마주할 때 기도를 하지 않는다. 수저를 들고 멈칫거리지 않아도 된다. 삼계탕에 딸 려 나오는 인삼주 한 잔을 물리는 답답한 사 람도 아니다. 오히려 나와 지내는 동안 술이 많이 늘었다고 하하 웃는다. 그러나 취해서 예의를 잃거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 본 적 이 없다. 흥이 나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 른다. 내 생일에는 이글스의 ‘데스페라도’ 를 멋지게 불러주었다. 나눔의 실천도 음악으로 한다. 친구는 5000여 장의 LP레코드를 오랜 세월 꾸준 히 모으고 애지중지하며 들어왔다. 음악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흔히 고립적 성향을 보 이는데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 주기 위해 애쓴다. 자신의 레코드에서 주 제별로 곡을 골라 CD에 녹음하고 소량을 복제한다. 그와 동호회를 같이 하거나 레 코드 가게에서 만난 몇몇 사람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특별한 음반을 받아 들고 즐거 워한다.
원고 쓸 일 생기면 스트레스 엄습 끙끙대다 일단 시작하면 술술 풀려 어떤 일보다 만족스런 창조적 작업
서도 글은 쓰지도 않고, 공연히 TV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간을 죽인다. 그 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마감이 닥쳐 서야 마지못해 책상 앞에 앉는다. 만약 원고 쓰는데 5시간이 걸린다면 딱 마 감 5시간 전에 글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고 도 처음에는 한 동안 끙끙거린다. 이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물 끓이기에 비 유하자면 온도가 100도까지 올라 물이 끓기 시작할 때까지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일단 물이 끓기 시작하면 즉, 뇌가
해외 만평
워밍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글쓰기 모드로 돌 입하면, 신기하게 글이 술술 잘 풀린다. 내가 아닌 내 속의 어떤 존재가 대신 글을 써주는 듯하다. 이때부터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끙 끙거리며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시간이 모 든 것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무척 힘든 일이지만 이 일처럼 충만한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일전에 이 세상의 직업 중에서 작가들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창조적인 작업은 사람에게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아마 이 매력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 이 지옥처럼 힘든 글쓰기를 감내하고 있는 지 도 모른다. 본래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애당 초 이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지 금은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것으로 글쟁이 에 대한 열망을 대신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
가 음악을 전공하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 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음악인으로 분 류한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글 쟁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글쟁이로 봐주 길 원한다. 글을 향해 짝사랑을 시작한 지 어언 40여 년, 힘들 때도 많지만 행복한 순간도 많다. 글 을 쓰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곤 한다.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서 만 진정한 자유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곧 글쓰기이고, 내 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정신이 허락하는 한 죽는 날까지 글을 쓸 것이다. 그렇게 이 땅의 영원한 글쟁 이로 남고 싶다.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 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얼음물 대신 수류탄 붓기 시리아이라크가자 등 곳곳이 화약고 멀고 먼 중동 평화.
내가 받은 CD는 마흔 한 장이나 된다. 그 속에 800곡이 넘는 클래식, 재즈, 올드 팝, 가요 명곡들이 그득하다. 최근에 만든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 앗간 아가씨’는 기획력이 돋보인다. 스무 곡 의 연가곡을 11명의 남녀 가수들이 번갈이 부르는데 각 가수들에게 그들이 가장 잘 부 를 곡을 맡겼다. 복잡 미묘한 음악과 방대한 음반에 통달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양희은· 최양숙·김민기가 이어 부르는 ‘김민기 작 곡 노래집’을 들어보면 김민기가 이미지와 달리 얼마나 순수하고 동심 가득한 노래를 많이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친구는 머지않아 “신보 나왔습니다”하며 또 한 장의 음반을 건넬 것이다. 그는 아내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얼마 전 JTBC 드라마 ‘밀회’가 화제 속에 방영될 때 친구도 궁금해 했다. 클래식 음악이 큰 줄기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친구가 ‘원장수녀님’이라고 부르 ©CLEMENT/Cartoon Arts International www.cartoonweb.com
독자 옴부즈맨 코너
남 배려하고 나누는 음악 애호가 집에서도 양보하며 살아 가정 평온
현실 돌아보게 한 경제학 대가와 닥터 둠 인터뷰
그를 따라하면 평화로운 삶 누릴 것
는 엄숙한 신앙인인 아내는 “그래 봐야 불 륜이고 그런 걸 내 집에서 볼 이유가 없다” 고 선언했다. 친구는 거실에서 ‘불건전 드라 마’를 보는 만용을 결코 부리지 않았다. 단 한번, 수녀님이 일찍 잠드신 날, 볼륨을 한 껏 낮추고 주인공 김희애와 유아인의 밀회 를 숨죽여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러니 부부 사이에 큰 소리 날 일이 없다. 그 댁 아들딸 들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 얼굴이 맑았다. 그는 평화의 중재자다. 내가 누군가와 사 이가 틀어지면 조용히 둘 사이를 오가며 결 국 자연스럽게 마주 앉게 만든다. 이런 친구 를 보며 보물지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노다지와 같은 평화 를 누릴 것 같다. 친구는 서씨인데 ‘늘봄’이라고 스스로 호 (號)를 지어 쓴다. 이 소박한 호는 본인의 이 름을 - 한자의 뜻까지 일치하지는 않지만 순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8월 24일자 중앙SUNDAY는 대립과 갈등 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많이 띄었다. 세월호 동조단식 인원이 2만 명을 넘어섰다. 광화 문 광장의 천막도 더 늘었다. 그럼에도 이 많 은 우리(We)들이 그들(They)로만 인식된 다는 게 문제다. ‘세월호 정국, 출국 못 찾고 헤매는 정치권’ 기사도 네 탓 공방에 빠진 정치권을 다뤘는데 ‘우리’니까 함께 만나 얘기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2면 사설 의 기조가 보다 적극적으로 강조됐으면 좋 았겠다. ‘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소설가 이응준의 기고처럼 세계에서 민족주의가 강하기로 북한에 이어 둘째라 는, ‘우리’ 의식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대 한민국이라 더욱 ‘그들’과 대화하기가 힘든 가 보다. 그 연장선상에서 S매거진 ‘들숨날숨’ 코 너에 실린 산드라 콘라트의 나의 상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중에 “우리 삶에서 해결 되지 않은 주제들은 필연적으로 우리 자녀 에게도 전달될 것”이란 진단이 유난히 마음 에 와 닿았다. “우리가 가족의 어두운 면을
똑바로 대면하고 금기와 비밀들을 밝히는 순간 그것들이 지닌 위력과 공포는 힘을 잃 을 것”이란 구절도 의미심장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등 해외의 저명한 인물 인터뷰는 중앙SUNDAY만의 차별점 이 아닌가 싶다. 지난 호에는 금융위기를 감 지하는 촉이 남다른, 위기 감지의 달인 ‘닥 터 둠’ 마크 파버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미 국 시장을 매우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그의 논리적이고도 단호한 예측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갈 등과 불신에 휩싸인 한국 사회를 그의 촉으 로 예지한다면 어떤 답변이 나올지 문득 궁 금해진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관 10주년전 교 감’ 스케치는 규모감있게 다뤄져 실제 전시 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전시관의 관람 동선을 따라가며 작품과 주제에 대해 친절 하게 설명을 곁들이니 마치 도슨트(작품해 설) 투어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세상 바꾸 는 체인지 메이커’에 소개된 페이스북 COO 셰릴 샌드버그의 직업관도 눈길을 사로잡
았다. “실시간 소통의 시대에서 커리어는 사 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라며, 이력 말고 직 무능력을 쌓으라는 그녀의 충고는 졸업 후 에도 평균 1년 반 동안 적절한 간판을 찾아 백수 생활을 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취업 준비생들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다. ‘아저씨들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사회’라 는 제목의 칼럼은 요즘 시대의 ‘아저씨’들 이 보여주는 씁쓸한 모습들을 속 시원히 끄 집어냈다. 사회의 큰 기대로 인해 많은 남성 들이 ‘페르소나(가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 는 분석도 공감이 갔다. 다만 “정신 줄 놓지 말자”는 마무리 호소는 다소 가벼운 것 같 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에는 이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다뤄보면 어 떨까 싶다. 임명옥 코콤포터노벨리 CEO. 이 화여대 불문과, 연세대 언론홍보 대학원을 나왔다. 홍보컨설팅, 위 기관리 시뮬레이션, 미디어 트레 이닝 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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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
정치가 퇴폐하면 청년이 결딴난다
이훈범의
세상탐사
실업 탓 이슬람 전사된 서구 청년들 성취 동기 찾으려 테러에 눈 돌려 정치 불안 태국, 쿠데타경제후퇴 우리 정치인은 지금 뭘하고 있는지
중앙일보 국제부장 cielbleu@joongang.co.kr
지난주 중앙일보에 실린 2건의 국제 기사에 주목한다. 하나는 28일자 ‘이슬람 전사가 된 서구 젊은이들’ 얘기고, 다른 하나는 다 음날 실린 ‘태국의 잃어버린 17년’ 얘기다. 첫 번째 기사에 따르면 이라크·시리아 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지하디스트가 1만 2000명 정도인데 그 중 유럽 출신이 3000명 에 이른단다. 이들이 돌아와 조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는 게 요즘 유럽 공안당국의 악몽이라는 거다. 놀랍지만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운 얘 기가 아니다. 정말 놀라운 건 이 유럽 출신 전사들의 상당수가 풍족한 중산층 자제들 이라는 사실이다. 납치한 미국인 기자를 참 수하는 동영상으로 세계를 경악시켰던 압 델(23)도 런던 고급주택가의 100만파운드 (약 18억원)짜리 집에 살았었고, 래퍼로 활 동하며 BBC방송에도 소개될 정도였다. 열 악한 성장 환경에서 자란 이민 2세들이 암 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로서 테러 조직을 선택한다는 과거의 정설을 뒤집는 사례였다. 교육도 많이 받고 물질적 결핍 없이 자란 젊은이들이 무엇 때문에 자기를 키워준 서 구를 상대로 AK소총을 겨누는 걸까. 압델 한테는 탄자니아·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에 연루된 혐의로 2012년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된 아버지의 복수라는 이유가 있다. 하 지만 모든 서구 청년 지하디스트들이 그와 같은 이유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압델이 속한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 (IS)’에는 50여명의 이탈리아 국적 전사들 이 있다. 그 중 40명은 이민 2세대가 아닌 이 탈리아 가정 출신이다. 기사에서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의 맥스 에이브러햄 교수는 가장 큰 이유를 ‘청년 실업’이라고 단언한다. “정말 가난해서 굶 고 있다면 당장의 현실 문제에 몰두하지 테 러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는 거다. 그보 다 먹고 살만한 여유는 있는데 직업이 없다 보니 목적 없는 삶을 고민하고 성취 동기를 찾아 테러집단에 가담하게 된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은 43%가 넘는다. 두 번째 기사는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번이나 군부 쿠데타를 겪은 태국의 비극을 들려준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서민 층의 지지를 받는 포퓰리스트 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군부와 특권계급 사이의 갈등에
태국이 골병 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지난해 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는 5370달러였다. 우리에게까지 폭탄을 돌렸 던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 비해 80% 늘 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10배 가까이 증가한 중국(6560달러)에 추월 당했다. 정정 불안 은 태국 전체 산업에서 9%를 차지하고 있는 관광산업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올 4월까지 태국을 찾은 관광객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 해 5% 줄었고 5월에는 감소폭이 10%로 커 졌다고 한다. 해외기업의 투자와 이에 따른 수출도 따라 줄었다. 국민들의 삶이 고단해 졌음은 물론이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보 여주는 지니계수가 40 수준으로 이웃 나라 들에 비해 훨씬 열악해졌다. 이들 두 기사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지 실증하는 사례다. 정치 리더십이 무능하 면 소모적 정쟁을 부르고 이 같은 정치 혼란 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혼란으로 이어진다 는 것이다. 경기 후퇴의 가장 크고 직접적인 피해자는 우리가 경험했듯,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다. 그들이 사회에서 자신 의 미래를 발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사 회, 그 국가의 미래가 있겠나 말이다. 단언컨대, 우리는 물론 어떤 사회나 국가 도 이 사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서고 금을 막론하고 그렇다. 명재상 관중이 이미 기원전에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 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고 말한 게 다른 의미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도 개혁적 정치 철학을 집대성한 원목(原牧)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임금의 정치가 퇴폐(쇠퇴해 결 딴남)하면 백성이 곤궁하게 되고, 백성이 곤궁하면 나라가 가난하게 되며, 나라가 가 난해지면 부세의 징수가 가혹해지고, 세금 징수가 혼란하면 인심이 떠나게 되며, 인심 이 떠나면 천명이 가버리게 되니, 그런 까 닭에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것이 바로 정 치다.” 갈등의 소지가 있을 것도 없는 세월호 정 국조차 풀지 못하는 정치권에서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정치인들 하나하나가 스스로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나 자신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지, 아니면 정치를 위해서 나를 버릴 수 있는지 말이다. 만약 전자라면 국 가와 사회를 위해 정치판을 떠나는 게 좋 겠다.
한국 리틀야구의 희망 홈런 버틸 피터슨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 이상 흘렀 다. 단원고 학생 250명이 희생된 이번 사건 은 한국을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 하지만 지 난 25일 한국 소년 13명이 아주 기쁜 소식 을 전해왔다. 12세 이하 소년들로 구성된 한 국의 리틀야구 대표팀이 미국 펜실베이니 아주 윌리암스포트 라마데구장에서 열린 2014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세계리틀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팀 은 결승전에서 미국의 일리노이 대표팀을 8 대 4로 꺾었다. 한국은 체코와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파죽의 5연승을 거뒀다. 아시아의 라이벌인 일본에도 승리했다. 12대 3의 대 승이었다. 한국팀은 1985년 이후 29년 만에 감격적인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한국에겐 84, 85년 2연패에 이어 통산 세 번째 우승이 다. 이 경기는 미국의 유명 스포츠 전문채널 인 ESPN를 통해 중계될 만큼 미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어린 선수들은 경기를 통해 충분 히 재능을 보여줬고 우승할 자격이 있었다. 한국의 투수 황재영 선수는 “특히 오랜 라 이벌이었던 일본과의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박종 욱 감독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 에서 “우리는 대 일본전에서 다른 팀 경기 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싸웠다. 이번 경기는 어린 소년들 간 게임이었다. 특별히 한·일전 이라고 의미를 두진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NYT에 따르면 한·일 선수들은 경기가 끝 난 후 T-셔츠를 서로 교환하며 우정을 나눴 다. 어린 선수들에게 한·일간의 해묵은 감정 도 우정을 쌓는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사실 야구선수들에게 한국의 환경이 척 박하다. 한국에는 산악 지형이 많은 데다 특 히 서울은 인구 밀집지역이어서 야구장이 넉넉하지 않다. 코리아중앙데일리에 따르면 한국 내에서 리틀야구를 할 수 있는 공식적 인 구장은 7개에 불과하다. 서울에는 단지 1 개 뿐이다. 7개의 구장 중 3곳에는 야간경기 를 위한 조명시설도 없다. 이에 불구, 한국의 리틀야구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 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팀 숫자에서도 한국은 158개로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턱없 이 적다. 2006년에는 23개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일본에는 745개의 리틀야구팀이 있다. 미국의 경우 무려 2만 개가 넘는다. 한국 선 수들은 우승이 확정된 후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 나가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경기장 을 누비며 우승을 자축했다. 또 일부 선수들 은 투수가 공을 던지는 마운드의 흙을 기념 품으로 컵에 담아 가기도 했다. 홈런을 쳤던 신동완 선수는 “너무 행복하다. 이제 청와 대에 가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도 어린 선수들을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한국팀의 우승은 무 더운 늦여름에 세월호 참사로 인해 침통해 있던 한국민에게 용기를 줬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16일의 비극은 아직도 한국 사회를 요동치 게 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의 아버지인 김 영오씨는 단식투쟁을 벌였다. 세월호 특별 법과 관련해 정치권의 무능에 대항하기 위
불모의 땅에서 3번째 세계 제패 세월호 참사로 참담한 국민에게 후유증 극복할 작지만 큰힘 선사
해서다. 세월호 참사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 황의 방한으로 잠시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 지는 듯 했지만 다시 한국 사회의 최대 쟁점 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세월호 참사가 아 니었더라면 한국 리틀야구팀의 우승은 국 민의 더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13명의 한국의 어린 야구선수들은 희망을 보여줬다. 앞으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들은 지난 넉 달 반의 고통이 물러가고 희망찬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가 무엇 을 해야할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 다. 리틀야구팀을 우승으로 이끈 박 감독의 말을 되새길만 한다. 그의 우승 비결은 “뜻 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였다. 버틸 피터슨 보스톤 글로브 등 미국의 주요 신문사 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이집트 미국상공회의소가 발간하는월간 비즈니스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코 리아중앙데일리 경제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On Sunday
말말말
누가 영재의 뇌를 일찍 불태웠나
“제발 조용히 해주세요, 이거 살인죄예요.” 육군 28사단 윤 일병 구타ㆍ사망 사건 가해자들, 사건 직후 폭행의 전 과정을 목격한 김모 일병에게 입막음을 시도하며.
유재연 사회부문 기자 queen@joongang.co.kr
머리도 좋은데 노력까지 하는 영재들, 정말 생각만 해도 얄밉다. 얼마 전 끝내주게 얄미 운 친구와 재회했다. 고등학교 때 학원 한 번 안 다녀도 머리가 좋아 공부를 곧잘 하더니 대학 가서도 학점은 늘 4.0(평균 A)을 넘었다. 그러던 친구가 취직을 한 뒤론 학습이라는 것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요즘 일반 직장인들이 인문학과 순수 과학 열기에 빠져 일일 강좌를 듣거나 대학원 진학까지 고려하 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지쳐서 공부하기 싫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했다. ‘지겨워서’가 아니라 ‘지쳐 서’라고 했다. 하다못해 영어책 한 번 들여다 볼까 싶어도 딱히 내키지도 않고 심지어 머리 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예전의 그 천재 소리 듣던 친구가 맞나 싶었다. 그는 “영재 또는 천재라 불리던 사람들의 머리는 우리나라 교육 여건 상 빨리 소진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과 비슷한 과학 고·민족사관고 동기들의 예도 들었다. 10대 때 다 써버렸다는 거였다. “1등을 지켜야 한 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머리를 많이 쓸 수 밖에 없었고, 그래 서 그는 시험이 끝나면 ‘머리 속까지 시원해 지는 느낌’이라고 광고하던 모 음료수를 늘 마셨다고 했다. 그거라도 마셔야 두통이 가 셨다는 거다. 만화 내일의 죠의 대사 “하얗 게 불태웠어”를 읊조리며 말이다. 보상의 문제도 있었다. 이전까지는 1등, 100점과 같은 산술적인 보상이 있었다. ‘수 능을 잘 보면’ 또는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입 상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뚜렷한 결과가 있었다. 그것이 10대에 주입된, 인생 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목표던 셈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던 과목을 더 파고들어봤자 ‘최고 권위자가 될 수는 없 다’는 현실을 빨리 깨우쳤다고 했다. 그래서 더 이상 학습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 다. 그의 다른 동기들도 지금은 공부라면 손 사레를 친다고 했다. 10대 때 앓았던 학습 과
잉의 대가가 컸던 셈이다. 듣고 보니 김두식·김대식 교수 형제의 공 부논쟁에 나오는 ‘번 아웃(Burn out)’이란 용어와도 뜻이 통했다. 학습 능력과 의지가 모두 방전돼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 미다. 두 교수 또한 그 원인을 ‘고등학교 때 1 등한 것으로, 평생 먹고 사는 지위가 확보되 는 사회 구조’에서 찾았다. 인생을 통틀어 10 대때 몇 년만 바짝 공부하면 되는 시스템이 기 때문에 그 때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린다 는 것이다.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곧게 자란 ‘만들어진 영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조차도 나중에는 지쳐서 더 이상 학습 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타고난 천재 가운데도 끊임없이 공부 해서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 영재들을 게 으르다고만 치부할 수도 없다. 반짝반짝 빛나 는 영재들의 머리를 온전히 그들 대학 진학에 만 쏟아 붓도록 하는 건 사회 전체적으로도 좀 안타깝지 않은가. 지쳐서 머리를 못쓰겠 다는 영재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요즈음이다.
“헬리캠으로 촬영하면 법적 대응할 것” 30일 유병언 회장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는 구원파 측에서 “유 전 회장이 가십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장례식을 비공개로 하겠다며.
“한국의 보증금 문화는 말도 안 된다”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중인 벨기에 출신 패널 줄리안, “유럽의 보증금 은 월세의 3~4배 수준”이라며.
Numbers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 지수(BSI). 전달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7월(72) 이후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지난 4월(82) 이후 4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 경제 를 뒷받침하는 제조업의 체감 경기가 아직 ‘겨울’을 벗어 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BSI는 기업이 실제 체감하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것으로, 지수가 100을 넘으면 경기를 좋 게 보는 기업이 나쁘게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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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호 2014년 8월 31일~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