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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넘버 3, 선다 피차이 부사장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추억의 한일 프로레슬링 대회

http://sunday.joongang.co.kr

“스마트폰 시장 포화? 아직도 갈 길 멀다” 김일파 vs 역도산파 장터에서 한판 Money & Biz 18~19p

Focus 10p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쇠창살을 통해 본 국회의사당. 정기국회가 시작됐지만 여야의 강경 대치 속에 정상화 전망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입법과 갈등 조정 기능이 마비된 ‘정치 불능’ 국회를 국가개조의 최우선 어젠다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정동 기자

국회 개조가 대한민국 혁신 출발점이다 박신홍·백일현 기자

의원 이익 걸린 사안엔 한마음

jbjean@joongang.co.kr

政피아 폐해, 官피아보다 심각

대한민국 국회는 5월 2일 이후 단 한 건의 법안도 세상에 내놓지 못한 ‘불 임’ 상태다. 지난달 26일 실시될 예정 이던 국정감사는 여야의 강경 대치 속에 없던 일이 됐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됐지만 향후 의사일정은 아무것 도 정해진 게 없다. 당분간 공전이 불 가피한 상황이다.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로 3일 본회의가 열렸지만 여야 는 민생 법안은 제쳐둔 채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 고 끝냈다. ‘넉 달 넘게 빈손’이란 비난은 아 랑곳하지 않고 제 식구 감싸기에 나 선 국회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 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외 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가 쌓여만 가

법 의결에 3년  폐기도 숱해

는데도 대한민국 국회는 국가적 의 제를 설정할 능력도, 현안을 해결할 의지도 없는 ‘정치 불능’의 늪 속에 서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위기감을 배경으로 전 문가들은 철저한 정치 개혁을 주문 한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능 부전 상태의 국회를 이대로 방치하 다간 총체적 국가 위기에 빠질 수 있 다”며 “더 늦기 전에 국회 개혁을 최 우선 어젠다로 삼아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국가 혁신’을 선언하고 나섰다. 정부는 처 음 내건 ‘국가개조’라는 슬로건을 국 가혁신으로 바꾸고 총리실 산하에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했 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수습의 맥락 에서 관(官)피아 척결을 앞세웠을 뿐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개혁 청사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피아 척 결을 전면에 내세우다 공무원들의 저항을 부른 측면도 있다. 6·4 지방선 거 때 세종시에서 여당이 패한 게 대 표적 사례다. 이후 국정기조의 중심 이 경제활성화 쪽으로 급속히 옮겨 가면서 국가혁신의 톤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학계에선 “처음부터 국가혁신의 기조와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 란 지적이 적잖다. 김병준(행정학) 국 민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시

급한 과제는 여의도 국회로 상징되 는 정치를 제대로 손보는 것이라는 게 대다수 국민의 인식”이라며 “국가 혁신도 관피아 척결 이전에 정치 개 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 회 개조가 국가혁신의 첫걸음이 돼 야 하며,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에서 보듯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해 있는 ‘정(政)피아’들이 관피아 못잖게 시 급한 개혁 대상이란 얘기다. 한국의 정당과 국회 운영시스템 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비판도 제기 된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2006 년까지 정부에서 발의한 3500여 건 의 법안을 추적 조사한 결과 국회 논 의를 거쳐 의결되기까지 법안당 평균 35개월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법 안 마련에서 실제 집행까지 무려 3년 이나 소요된 셈이다. 김 교수는 “이래

서는 21세기 급변하는 사회와 다양 해진 이해관계 속에서 한국의 정당 과 국회가 설 자리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야는 선거 때만 되면 혁신을 부르짖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 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신의 특권 카 르텔을 공고히 하곤 했다. 이게 결국 국민의 정치 불신과 혐오를 키운다. 2010~2012년 세계가치관조사에선 한국인 네 명 중 세 명(73%)이 국회 를 불신한다고 답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대대적인 제 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대세 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 하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 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 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이를 견제해야 할 국회는

손을 놓고 있으니 국정이 제대로 돌 아갈 수 없다”며 “분권형 대통령제 를 도입해 상호 견제 시스템을 갖춰 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4일 중앙SUNDAY와의 인 터뷰에서 “큰 선거가 없는 지금이 개 헌의 적기”라고 밝혔다. 단순 다수결에 의한 선거와 의사결 정, 권력배분 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된다. 중선거구제 적용, 비례대표제 확대, 양원제 도입 등이 그 방법론이다. 안 성호(행정학) 대전대 교수는 “한국의 고질적인 이전투구 정치는 승자 독식 의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기인하는 바 가 크다”며 “양원제와 비례대표 확 대, 지방분권, 협의 민주주의제 등으 로 권력 공유를 제도화하고 대표성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정치도 정상화된 다”고 했다. 관계기사 4~5p

S매거진 ‘시즌2’ 다음 주 찾아갑니다

“여야 새합의안 만들면 세월호 유족 설득” 위철환 대한변협 회장 “진심으로 다가가면 받아들일 것”

중앙SUNDAY의 문화·스타일 잡지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대한변호사협회가 교착 상태에 빠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피해자 가족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에 나서 기로 했다. “여야가 수긍할 만한 합의 안을 만들어내면”이라는 전제하에 서다. 위철환(56) 대한변협 회장은 지난 3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사고 초기 정부 대 응과 정치권의 불성실한 태도, 언론 보도 등으로 인해 불신이 깊은 상태” 라며 “대다수 가족들은 정치권이 조 금만 양보하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 모임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원회’(가족대책위)는 지난달 20일 여 야의 세월호 특별법 2차 합의안을 부 결시킨 바 있다. 상설특검 특별검사 후보추천위 구성에 있어 여당 측 추 천 몫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 다. 새누리당과 가족대책위는 지금까 지 세 차례에 걸쳐 만났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위 회장은 “대한변협과 가족대책 위 측이 세월호 사고 진상조사위원 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안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것 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며 “수사권과 기소권은 세월호 특별법의 목적인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방법론일 뿐이지 목적이 아니다”고 했다.

가 족 대책위의 법률 대리를 맡 고 있는 박 주민 변호 사도 중앙 SUNDAY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초 여야가 특별법 협상에 나선 뒤 가족들의 요구에 ‘버금가는’ 대안 이 마련된다면 진상조사위에 수사 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 외에 다른 대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버금가는 대안’이란 여 야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 (특별검사 포함)이 수사권과 기소 권을 가지고 이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을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위 회장은 대한변협의 정치적 편향 성 논란에 대해선 “특정 당파나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왔다”고 반박했다. 관계기사 7p

S매거진이 9월

Special Report

불공정 논란에 선 디지털 음원시장 디지털 음원시장의 불공정한 유통구 조가 논란을 빚고 있다. 공정유통을 표방하는 협동조합이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창작물이 제 값을 받지 못하 는 왜곡된 시장 구조가 근본 원인이 란 지적이 나온다.

14일자부터 양적· 질적으로 확 달라

이어령

윤광준

이상용

이진숙

김재훈

이윤정

이치훈·강예린

케이티 김

진 지면을 선보입 니다. 국내 문화계 숙 수(熟手)들의 맛 깔스러운 상차림

은 S매거진의 최대 강점입니다. 우선 대한민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국 내외 메가트렌드 경향을 매주 들려드립니다. 영화평론가 이상용, 미술평론가 이진숙씨 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만남에 대해 각각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중앙SUNDAY 창간 당시 ‘생활명품’을 연재한 사진작가 윤광준씨가 이번엔 ‘생활명 품 시즌2’를, 부부 건축가 강예린이치훈씨가 해외 도서관 건축 탐방을 시작합니다. ‘문

7~8일자 중앙SUNDAY는 추석 연휴로 6 일(토) 발행합니다. S 매거진 쉽니다.

사철(文史哲) 일러스트레이터’ 김재훈씨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와 함께 저명 도서의 탄 생 비화를 재미난 만화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또 칼럼니스트 이윤정씨가 팍팍한 우리 삶 에 웃음의 빗방울을, 뉴욕에서 활동 중인 사진작가 케이티 김은 ‘순간포착 남과 여’를 통

1부 1000원 / 월 5000원 정기구독 문의고객센터 080-023-5005

해 미소를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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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사설

Inside

언제까지‘원칙 외교’에 집착할 건가

Focus

조개송편도토리송편  8도 송편 드셔보셨나요 추석에 가족끼리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먹는 송편. ‘반달’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네모에서 비행접시같이 생긴 것까지 모양도 제각각이다. 피 와 소의 원료에서도 8도 고유의 색깔이 드러난다. 11p Focus

대안 있으면 세월호 유족 설득 대한변협이 “세월호 특별법의 본질은 진상규명이며 수사·기소권은 방법론 일 뿐”이라고 밝혔다. 위철환 회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권이 수긍할 만한 합의안을 가져오면 가족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7p

‘리카르도 OUT’ 외친 에릭 매스킨

양적완화의 설계자 리하르트 베르 너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유로 존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유 사한 디플레이션 위기에 들어섰다 고 분석한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미 국식 양적완화다. 3p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으로 200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에릭 매스 킨 하버드대 교수. 그는 선진국뿐 아 니라 개발도상국 내부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 했다. 8p

Economy

Column

서민 간식 지위 흔들리는 라면

詩人의 음악 읽기

‘하루에 열 개라도 먹을 수 있어~’ 서민 간식의 대명사 라면의 위상이 흔들린다. 새롭게 등장한 간편가정 식에, 웰빙 트렌드 때문이란다. 흔들 리는 라면. 예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21p

뉴욕필 지휘자 미트로폴로스 뉴욕 필의 지휘자 미트로폴로스는 잊 혀져 재조명조차 되지 않는다. 현대음 악 취향이 지나쳤지만 천재적 능력에 인품도 뛰어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기피 대상이 되었을까? 27p

1 회사에 도움 안 되면 당당히 퇴사 … 쉰 살에 21번째 ‘입사’ 2 “25년간 춤춘 것보다 TV 출연 2분 덕에 우리를 알아보네요” 3 시가총액 신기록 행진 이끈 애플 CEO 팀 쿡 4 금수원서 유병언 장례식 … 구원파 “첫날 4000명 조문” 5 “지지율은 한낱 깃털에 불과 … 일희일비하면 꼭 실패” sunday.joins.com

ch15 하이라이트 7일(일) 밤 11시 집밥의 여왕

교양

지난주에 이은 ‘원조 요정’ 2부에선 원조 국민 요정 슈, 원조 시크 요정 황혜영이 양 보 없는 집밥 대결을 펼친다. 세 아이의 엄 마이자 재일교포 출신인 슈는 우는 아이 들 때문에 정신 없는 와중에 ‘슈가 베이비 집밥’을 준비했다.

6일(토) 밤 11시 히든싱어3

예능

추석특집 ‘트로트 프린스’ 박현빈 편. 박 현빈의 사촌동생인 배우 이윤지는 “결혼 을 한 달 앞뒀지만 사촌오빠를 응원하려 고 출연했다”며 우애를 과시했다. 박현빈 의 엄마 정성을씨 등 온 가족이 총출동해 걸출한 입담을 뽐낸다. 채널 번호프로그램 안내는 02-751-6000

회장

홍석현

편집인 김교준

편집국장 남윤호

2007년 3월 18일 창간 / 2007년 2월 22일 등록 번호 서울다07635호<주간> 본지는 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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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전화 02-751-5114, 9114

올 추석엔 깨보세요 스마트폰 침묵 박재현 사회에디터 abnex@joongang.co.kr

클릭 SUNDAY 지난주 온라인 5

발행인·인쇄인 송필호

근엔 북한에 고위급회담 재개를 제의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받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가는 것 역시 곤란하다. 북한 응원단의 아시안게임 참 가 협상이 그렇다. 북한이 억지를 쓴다 해도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한 좋은 기회를 ‘아니 면 말고’ 식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 오죽하면 집권당의 김무성 대표가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정부 당국이 참 무능하다”고 말하는 지경이 됐나. 마침 여권 지도부는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론을 제기하고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 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선 천안함 폭침 도발에 대한 제재를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책 없이 거두는 게 원칙에 맞나라는 주장이 만만찮다. 충분히 일리 있고 공감할 만한 반론이다. 하지 만 지금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무엇이 더 긴 요한 일인지 따져보면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유연하지 못한 나무는 결국 부러지고 만다.

Editors letter

Focus

유로존, 미국식 양적완화 불가피

리 정부의 속수무책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칫 우리가 역으로 외교적 고립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다. 실제 요즘 국제 외교무대 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배경엔 박근혜 정부의 원칙주의 외교노선 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원칙이 나쁘다거나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냉엄한 국제정치 무 대에선 앞뒤가 딱 맞는 반듯한 원칙을 고수하 기보다 국익을 좇아 유연하게 굴신(屈伸)해야 할 때가 많다. 또 국민 정서에 영합하는 ‘내수 용 외교’에서 과감히 벗어날 용기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대해 전반적으로 강 경 자세로 일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동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 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드레스덴 선언 등 일련의 대북·외교 정책들을 발표하긴 했지 만, 아직은 공명(共鳴)을 얻지 못한 상태다. 상대방과의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은 일방 적인 선언이거나 제의인 경우도 적잖았다.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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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독자 여러분, 추석 연휴 즐겁 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올해는 10일이 대체 휴 일로 지정돼 길게는 5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 습니다. 여기다 올 들어 두 번째로 큰 ‘수퍼 문 (Super Moon)’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가족들과 함께 ‘큰 소원’을 큰 소리로 빌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추석 연휴가 자칫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될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모 처럼 만난 가족과 친지들이 화기애애한 모습으 로 식사를 하고 한바탕 웃고 떠들며 서로의 우의 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할 텐데, 모두가 스마트 폰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상상되기 때문입니다. 설날 때 세 자녀와 함께 고향을 다녀 온 A씨 가족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서울 집에서 출 발해 경북의 부모님 댁에 가는 4시간여 동안 다 섯 식구가 승용차 안에서 나눈 대화는 10여 분 에 불과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끝난 뒤 아들 두 명과 딸아이는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 었다고 합니다. 대학생인 큰아들은 페이스북 등 SNS를, 둘째아들은 스마트폰 게임을, 막내딸은 카카오톡 메신저를 했습니다. 세 자녀는 모두 귀 에 이어폰을 꼽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는 스마트폰을 통해 네이버와 다음 등의 사이트를 오가며 뭔가를 열심히 서핑하고 있었습니다. 스 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안내를 들으며 운전을 하 던 A씨도 이따금 들려오는 문자메시지 알림음 에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했답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썰렁한 분위기 A씨 가족의 모습은 부모님 댁에 도착해서도 변 화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와의 반가운 인사가 오간 뒤 아이들은 다시 ‘스마트폰과의 대 화’에 빠져들었습니다. 부엌에서 전을 부치는 아 내의 한 손에도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A씨 형님 식구들도 마찬가지였 습니다. 이런 모습이 멋쩍었던지 할아버지는 창문을 통해 말없이 먼 산만 바라봤고, 할머니는 음식 을 하면서도 자식과 손자들의 눈치만 연신 살폈 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세 자녀와 사촌 형제들 은 카카오톡을 통해 “분위기 썰렁! ㅋㅋ” 등의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는 겁니다. A씨의 가족 만 특별했던 걸까요. 아마도 한국의 많은 가정이 비슷한 모습 아니었을까요.

일러스트 강일구

News

김정은식 북한 외교가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현란할 정도다. 지난 5월 말 전격 타결된 북·일 교섭은 그 신호탄이었 다. 이번엔 이수용 외무상과 강석주 노동당 국 제비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수용은 북한 외무상으로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뉴욕 에서 이달 중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주역인 그는 유럽을 공략 무대로 삼 는다. 독일·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를 방문 하며 유럽의회 관계자도 만난다고 한다. 추가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 강력한 도발을 ‘주력 무기’로 삼아온 김정은 정권의 일대 노선 전환일 수도 있어 눈길을 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서방 국가들 을 상대로 전방위로 확대해 나가는 북한의 예 기치 못한 외교 행보에 우리 정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국제 외교무대로 북한 이 나왔다는 건 한편으론 환영할 일이지만 우

스마트폰은 이제 가상의 가족 진짜 가족과의 소통 시간 줄여 과도한 정보 집착은 소외 초래 전원 끄고 이야기꽃 피웠으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지하철·택시·버스 속에 서 스마트폰을 보느라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고 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 다. 종이신문이나 책을 펼쳐 드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된 듯합니다. 식당에 가도, 공원에 가도, 심지어 야구장·축구장·골프장에 서도 스마트폰을 사이비 종교의 ‘교주’라도 모 시듯 하는 이들을 흔히 봅니다. 이를 두고 외국 의 한 언론은 “마치 좀비들의 군상을 보는 것 같 다”고 표현했다지요. 게다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스마트폰에는 ‘집 안 및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인사’부터 벌초 대행 및 차례상 차림 등 200여 가지의 애플리케이션 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바꿔놓은 신 풍속도인 셈입니다. 2009년 한국에 스마트폰이 도입되면서 불과 5년 만에 우리의 생활과 명절 풍경이 이처럼 크 게 바뀌었습니다. 이동통신업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4000만 대가 량의 스마트폰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전 세 계 평균 보급률 22%의 4배에 이르는 규모지요. 어느 통신업체의 광고에서 수없이 반복되던 “빠 름~빠름~”처럼 순식간에 세계 1위에 올라선 것 입니다. 현재 초등학생은 절반이, 중·고등학생은 80%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보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숫자의 이면에는 스마트폰 ‘중독’과 이에 따른 소외라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한국정보 화진흥원 인터넷중독대응센터에 따르면 청소년 4명 중 한 명꼴로 중독증세를 보여 치료가 필요 하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압수’는 10대에게 가 장 큰 형벌이며, 자칫 ‘멘털 붕괴(멘붕)’로 이어 져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어른들도 스마트폰 중독에서 자유롭 지 않다 합니다. 직장에서 회의할 때는 물론, 직 장 상사나 집안 어른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스마 트폰을 체크하는 사람들은 이미 중독증세가 스 며들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설명입니다. 쓰레기 정보 증후군으로 변질 우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나미 박사는 최근 출간한 다음세대에서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생겨난 가짜 가족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 앞으로 누가 진 짜 가족인지 모르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 고했습니다. 피를 나눈 진짜 가족보다 사이버상 의 가짜 가족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고, 자신이 마 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대상에서 만족감을 찾으 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지적한 것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과다한 정보 집착은 ‘쓰레기 정보 증후군(Information Clutter Syndrome)’으로 변질되고, 이는 결국 본인과 가족까지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 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명절에는 반나절만 이라도 스마트폰의 전원을 가족이 함께 꺼 보면 어떨까요. 스마트폰이 잠들어 있는 동안 진짜 가족들 간의 정(情)을 확인해보는 것도 명절다 운 추억 아닐까요.


News 3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양적완화의 설계자 영국 리하르트 베르너 교수

월가 출신 드라기, 유로존 디플레이션 잡기 힘들 것 <유럽중앙은행 총재>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일 정기 통 화정책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자 산담보부증권(ABS)을 사들이겠다”고 공 언했다. 기준금리를 0.15%에서 0.05%로 내 린 직후다. 시장은 그의 약속을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QE) 예고로 받아들 였다. 그런데 드라기는 자산담보부증권을 언제 부터 얼마를 사들일지는 발표하지 않았다. 2 년 전인 2012년 7월 드라기의 런던 선언과 비 슷하다. 당시 그는 재정위기 회원국의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때도 구체적인 계 획은 내놓지 않았다. 어쨌든 이날 회의 결과는 ‘QE의 설계자’ 리하르트 베르너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의 예측대로였다. 그는 회의 직전 전화 인터뷰에 서 “드라기는 큰소리치겠지만 QE를 4일 회 의에서 실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 했다. 이런 예상은 뜻밖이었다. 유로존(유로 화 사용 18개국) 물가 상황이 녹록지 않아서 다. 올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동월에 비해 0.3%에 그쳤다. -왜 드라기가 당장 QE 버튼을 누르지 못 할 것으로 보는가. “많은 전문가는 독일 반대 때문이라고 설 명한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가 아 주 강력한 매파(인플레이션 파이터)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중앙은행가는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드라기는 이탈리아·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 청하는 사태를 막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유 로존 실물경제가 추락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 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등을 실시하 지 않았는가. “LTRO는 ECB가 시중은행에 저리·장기 로 대출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중은행은 대출 받은 돈을 다시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해 돈이 돌게 만들려는 의도로 시행됐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실물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안 됐다는 게 증명됐다. 봐라! 지금 유로존 경제 가 트리플딥(세 번 연속 침체)에 빠질 가능성 이 보인다. 은행들에 빌려준 장기 자금이 일 반 기업과 가계에 돌아가도록 유도하지 않아 서다.” -이 때문에 ECB가 최근 표적 장기대출 (T-LTRO)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긴 자금에 수수료(마이너스 금 리)를 물리기로 한 것 아닌가. “표적 장기대출프로그램은 ECB가 은행 에 대출해줄 때 돈에 꼬리표를 단다. 시중은 행은 ECB가 정한 특정 지역이나 산업 부문 에만 대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공격적인 선택을 하는 게 필요하다. 더 나아가 미국식 QE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베르너 교수가 말한 미국식 QE는 바로 시 중은행 자산을 우량하게 만드는 QE다. 은 행은 부실자산이 적어야 많은 돈을 일반 기 업과 가계에 꿔줄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 (Fed)가 새로 달러를 찍어 국채와 모기지 채 권(장기 부동산 담보대출)을 대량으로 사들 였다. 베르너 교수는 “국채보다 모기지 채권 매입이 미국 시중은행 자산구조를 건전화하 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왜 드라기가 QE를 실시하는 데 소극적일 것이라고 보나. “약간 음모론같이 들리겠지만 드라기 는 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 출신이다. 그는 2000년대 초 골드먼삭스 부회장이었다. 그는 Fed 이사들보다 훨씬 월가와 가까운 인물이 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더 익숙한 인물이란 얘기다.”

베르너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1994년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떨어지는 물가를 받치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일본은행에 제시했다. [블룸버그]

인플레 억제에 익숙  QE 의지 약해 독일 매파에 포위돼 리더십 한계 유로존 디플레이션은 이미 시작 일본 장기불황 원년인 94년과 닮아 유로화 안 돌아 돈 풀어도 효과 없어 미국처럼 부실자산 줄이는 QE 필요

1994년 일본의 추억

단위: %, 전년 동기 대비

 90년대 일본과 현재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비교 유로존 2013년 1월 2014. 1 8

2.0

2.0

1.0

1.2

1.3

0.7

0.3

0.0

-0.1

0.0 -1.0 일본 1993년 1월

1994. 1

8

3 자료: 블룸버그

유로존 2013년 1월

2.0

2.0

2014. 1

-그렇다고 그가 디플레이션 조짐을 진정시 키지 못할까. “나는 1990년대 일본은행(BOJ) 총재 등이 인플레이션 위기에만 익숙해 디플레이션에 일찍 대응하지 못한 것을 현장에서 봤다.” 베르너 교수는 일본 거품이 무너지고 있 던 90년대 초 일본개발은행과 일본은행, 재 무부(당시 대장성)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는 94년 떨어지는 일본 물가를 보고 일본 은행에 ‘료테키긴유간와(量的金融緩和·양 적금융완화)’라는 정책을 제시했다. 이 정 책을 영어로 번역한 게 바로 Quantitative Easing(QE)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유로 값을 떨어뜨려 달라고 요청했다. 정치권 압력 이 커지면 ECB가 QE를 실시하지 않을까. “ECB가 QE를 실시할 수도 있다. 문제는 드라기 버전 QE가 2조~3조 유로 정도로 추 정되는 은행권 부실자산 제거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드라기가 다양한 ABS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유로존 은행권 부실자산은 너무나 다양 하다. ABS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남유럽 0.6 에선 기업대출이 대부분 부실화했다. ECB가 회사채와 기업대출을 바탕으로 한 ABS를 사들일 만큼 파격적일지는 의문이다.” 드라기는 “단순하면서도 투명한 유로화 -0.5 표시 자산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로이 1996. 1 터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ECB가 몇

8

몇 투자은행에 의뢰해 매입 대상 자산 포트폴 리오를 연구하도록 했다”며 “연구 결과가 나 와 봐야 알지만 은행들이 처분하고 싶은 부실 또는 부실화 조짐을 보이는 자산을 ECB가 얼 마나 사들일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QE가 꼭 은행권 부실자산을 제거하는 쪽이어야 하는가. “국채 등을 주로 사들이면 은행권 여윳돈 이 늘어나고 금리가 낮아지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이런 QE는 일본이 2001년부터 했으 나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요즘 유로존 은행이 돈이 없어 대출하지 않는 게 아니다. 여윳돈이 넘쳐나고 있다. 오 죽했으면 은행들이 ECB에서 빌려온 장기 자 금을 다시 ECB에 예금해놓고 있겠는가. 그 래서 이런 예금에 대해 ECB가 마이너스 금 리를 물리지 않는가. 돈이 은행 창구를 나가 일반 기업과 가계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중은행들이 대출 본능을 잃은 이유가 뭘까. “우선 그들은 돈을 떼일까 염려한다. 경기 침체여서 기업 실적이 줄고 노동자들이 일자 리를 잃은 경우가 많다. 또 부실자산이 많아 은행 경영자들이 돈을 한 푼이라도 비축해 두려고 한다.” -자금 수요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다. “난 돈의 유통속도가 너무 떨어져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

로 1도 되지 않는다.” 화폐유통속도(V)는 1유로가 일정 기간 상 품을 사고파는 데 몇 번이나 쓰였는가를 보 여주는 지표다. 이를 보면 실물 영역에서 돈 이 얼마나 활발하게 돌고 있는지를 알 수 있 다. 유로화 도입 초기인 2000년엔 2가 넘었다. 금융위기 직전엔 1.5 수준이었다. 이런 속도 가 지금은 1도 되지 않는다. 미국은 올 6월 말 현재 1.47 정도다. -유통속도가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 는가. “속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유 로존의 경우는 버블과 금융위기가 낳은 경기 침체가 가장 큰 요인이다. 90년대 초 일본에 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 유로존 상황이 90년대 일본과 비슷 하단 말로 들린다. “유로존이 일본의 궤적을 밟기 시작했다고 본다. 시중은행의 신용공급이 너무 줄었다. 이런 때 중앙은행이 돈을 시중은행에 주입해 준다고 해도 효과가 없다.” 베르너 교수는 중앙은행 통화공급보다 시 중은행 신용공급 규모를 더 중시한다. 자신 의 모델을 ‘신용수량설(Quantity Theory of Credit)’이라고 부를 정도다. 화폐수량설 (Quantity Theory of Money)과 대비되는 말이다. 화폐수량설은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통화량에 주목한다. 반면 베르너 교수는 중 앙은행 통화공급량보다 시중은행의 신용창 출(Money Creation)을 통해 기업과 가계에 공급하는 신용 규모가 경제 활력을 결정한 다는 쪽이다. -또 어떤 점이 일본과 닮았는가. “현재 ECB에는 의사결정 주도권을 쥔 사 람이 뚜렷하지 않다. 드라기 리더십이 취약하 단 얘기다. 운명의 시기인 94년 일본은행 총 재에 취임한 마쓰시타 야스오(松下康雄)와 비슷해 보인다. 대장성(현재 재무부) 출신인 마쓰시타가 일본은행 출신에 둘러싸여 있었 듯이 드라기는 독일 분데스방크 출신들에게 포위돼 있다.” -옛 대장성이 일본은행보다 막강하지 않 았는가. “94년 당시엔 대장성의 주도권이 약해지 고 있는 때였다. 당시 일본은행 출신들은 신 자유주의 논리를 펴며 대장성이 ‘구식 경제 모델’ 신봉자라고 비난했다. 이런 때 대장성 출신이 총재가 됐으니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 겠는가. 그 바람에 일본은행이 디플레이션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유로존 디플레가 본격화하면 일본처럼 오래갈까. “일본처럼 20년씩 이어질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다만 일단 시작된 디플레이션은 파 격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제동이 걸린다.” -어느 정도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한가. “대공황 때 주요 나라들이 금본위제를 폐 기했다. 요즘은 금본위제가 아니니 정부가 시중은행 돈을 빌려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리하르트 베르너 1967년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정경대(LSE)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거품시대인 80년대 후반 일본은행(BOJ)에서 경제분석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일본 소피아대를 거쳐 현재는 영국 사우샘프턴대에서 금융통화정책을 가르치 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00년 선정한 차세대 리더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영미식 통화 이론보다는 독일식 통화이론을 편다. ‘히틀러의 중앙은행가’이며 ‘관치금융의 아버지’로 불리는 할마르 샤흐트 전 라히이방크 총재처럼 경제 활 동을 생산적인 부문과 비생산적인 부문(머니게 임)으로 구분해 신용공급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 다는 쪽이다. 그가 통화이론계 이단아로 불리는 까닭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금융의 역습, 과거로부터 미래를 읽다(Princes of Yen)이다.


4 News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대한민국 혁신의 조건 수면 위로 떠오른 개헌론

대통령만 쳐다보는 후진적 구조  힘 받는 분권형 개헌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600억원. 지난 넉 달간 한 건의 법안도 처리 하지 못한 국회가 쓴 돈이다. 모두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회의원 300명의 보수와 보좌진 급여, 사무실 운영비 등을 합친 액수다. 가장 최근 법률안이 통과된 것은 지난 5월 2일(76 건 처리). 이후 9월 6일까지 127일 동안 국회 는 손을 놓았다. 10월부터 소득이 최저생계 비보다 조금 많거나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 유로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던 빈곤층 40만 명에게 2300억원이 지원될 예정이었지만, 이 를 규정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일명 ‘송 파 세 모녀법’)이 국회에 묶여 무산 위기다. 그러는 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결단해야 한다”는 입 장을 굽히지 않는다. 새누리당도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나온다. 국회가 법안 통과는 물론이고 갈등 해결과 의제 설정조차 못 하는 ‘정치 불능’ 상태에 빠진 셈이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은 4일 1인당 387만원씩 총 11억여원의 추석 상여금을 받 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직은 8개월째 공 석이다. 11월 부산으로의 본사 이전 등을 챙겨 야 하는데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각 올 2, 3월부터 기관장 자리가 빈 강 원랜드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도 예산 집 행이 늦어지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예산 조기 집행을 천명한 정부 기조와 배치된다. 현재 공공기관 304곳 중 기관장이 공석이 거나 임기가 만료됐지만 후임을 못 정한 곳 은 30여 곳. “청와대 눈치 보느라 임원추천위 원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H공공기관 노조 위원장)는 분석이 정설이다. 대통령과 그 주 변에 인사권이 집중되다 보니 의사결정에 과 부하가 걸려 나타나는 폐해도 적지 않다. “대 통령제가 과연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인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원 절반 가까이 개헌 모임서 활동 대한민국 정치는 ‘부도 상태’다. 이해 조정 기능이 실종됐다. 한국 정치 특유의 여야 간 강대강 대결로 날을 지새운다. 모두 대통령 만 쳐다보니 국회에서의 정치 불능은 더 심 화된다.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과의 대치 정 국에서 법안이나 예산을 볼모로 잡곤 한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거쳐 내놓은 정책도 국회 에 가면 함흥차사가 되곤 한다. 그뿐 아니다. 국회 법사위원장이 법률 자 구에 손을 대면서 사실상 법안 통과를 가로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4년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렸다. 하지만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느라 의사 일정을 합의하지 못했다. 국회는 넉 달이 넘도록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제 효율성 사라진 지 오래 청와대엔 과부하, 밑에선 눈치만 국정 범위 계속 넓어져 분산 필요 강경 대결 국회는 조정 기능 상실 내부의 견제 가능한 양원제 부상 총리 선출권 줘 행정도 견제해야

주요 국가 의원 수와 의원 1인당 국민 수 국회의원수

(단위:명)

의원 1인당 국민 수

미국

635 49만6837 (상원 100, 하원 535)

독일

691 11만8590 (상원 69, 하원 622)

프랑스

925 (상원 348, 하원 577)

영국

1410 4만4810 (상원 760, 하원 650)

한국

300 (단원제)

7만957

16만6681

자료: 안성호,양원제 개헌론-지역대표형 상원 연구

김형수 기자

막는가 하면,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수결이 힘 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국 회의장도 직권 상정을 못 하고 있으니 국회 안에는 조정 기능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책임제의 장점으로 강조되던 효율성 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이를 타파하자며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 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대 국회의원 300 명 중 절반에 가까운 148명이 ‘개헌 추진 국 회의원 모임’(간사 이군현·우윤근 의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외치, 총리 =내정’으로 구분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 장한다. 올해 1월 구성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자문위(위원장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도 6 년 단임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양원제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을 하자고 지난 5월에 제안했다.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이 통일· 외교안보·국민통합을, 국회가 선출하는 국무 총리가 그 외의 일반 행정을 담당하게 한다. 국회 역시 민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지역 대표)이 상호 견제하도록 한다”는 게 요지다. 국회와 행정부가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민 의원은 재적 의원 과반수가 후임 국무총리 를 선출하는 방법으로 현직 국무총리를 불신 임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무

총리를 불신임하면 내각이 총사퇴하며, 개별 국무위원도 불신임이 가능하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에 대한 대안으로 많이 거론된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늘날 국 정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외교·국방·통일만 해 도 일이 많아져 행정을 국무총리에게 분산시 키면 국정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양원제의 경우 일반인들의 인식은 낮지만 정치인과 법학자들 사이에선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뢰 로 2006년과 2010년 작성된 두 편의 헌법 개 정안과 2009년 국회의장 헌법자문위원회가 작성한 헌법 개정안이 모두 지역대표형 상원 제를 제시했다. 2010년 10월 한국헌법학회· 한국공법학회·한국정치학회 회원과 헌법재 판소 연구원 등 전문가 2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3%가 지역대표형 상원제 도입을 찬성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개헌 논의 끝내야” 올해 헌법개정자문위가 내놓은 양원제 안은 이렇다. “민의원은 200명 이상, 참의원은 100 명 이하로 하며 민의원에는 국무총리 선출· 불신임권을 주고 참의원엔 대법원장·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임명동의권을 준다. 민의원

중에는 비례대표를 50% 이상 포함하고, 참 의원도 지역대표 기능으로 수를 제한해 국회 비대화를 방지한다.” 김철수 교수는 “지금 국회가 법률 한 건 못 만들고 장외투쟁하는 데는 의회정치 경험이 없는 초선 의원이 50%에 달하고, 전횡을 막을 수단이 없는 것도 원인”이라며 “경험 있는 이 들이 상원에서 견제하면 일하는 국회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자체가 점차 입법 권을 요구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상원이 바람직하다. 통일 후 북한 출 신이 지자체를 대표하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안성호(행정학) 대전대 교수도 “지역대표 형 상원제는 권력 공유 민주제의 핵심 요소 인 자치·비례성·소수거부권을 한꺼번에 충족 시킬 수 있다”며 “양원제를 도입하면 입법 생 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 만 정당들 간의 지나친 대립을 완화해 전체 적으로 보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국회의회연맹(IPU)에 따르면 194개 국 가 중 40%인 78곳이 양원제를 채택(2012 년 기준)하고 있다.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에선 19곳(56%)이 양원 국 회를 운영한다. 인구 1200만 명 이상 13개 회 원국 중 단원제 국가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다양하고 분절된 민의를 제도권에서 충실 히 대표하고 반영하려면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국영(정치학) 성균 관대 교수는 “개헌에서 중요한 사안은 정당 정치의 파행성, 즉 거대 양당의 적대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제도”라며 “합의제 민주주 의의 제도적 기반은 순수한 비례대표제 선거 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헌은 쉽지 않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뒤, 국민투표에서 유 권자 과반수 투표와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가 2012년 7월 19대 국회의 원 233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2명이 ‘개헌에 찬성한다’고 답한 바 있다. 국회 개 헌선(200명)을 웃도는 응답이었다. 그런데도 개헌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집권층이 자신의 권력을 제한할 개헌을 좋아하지 않아 서다. 대선 후보 시절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 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 서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논의를 미뤘다. 그런 제약을 감안하면 개헌은 차기 국회의 원·대통령이 정해지기 전에 해야 한다는 지 적이 많다. 결국 총선·대선이 있기 전인 내년 상반기까지는 논의를 끝내야 하는 셈이다. 문 제는 누가 개헌에 동력을 불어넣어 밀고 나가 느냐다.

국회의원 특권, 외국과 비교해 보니

선진국 의원 연봉 국민소득의 2~3배  한국은 5배에 달해 백일현 기자

스스로 월급을 얼마 받을지 정한다. 부리는 직원 수도 마음 내키면 늘릴 수 있다. 해외에 나갈 때 공무수행을 위해서라고 하면 장관급 대우에 비즈니스석 항공료를 지원 받는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 중 극히 일부다. 불체포특권(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음), 면책특권(국회에서 한 발언 에 책임지지 않음)도 있다. 일각에선 “특권이 200개에 달한다”고도 하나, 맞는 말은 아니 다. 의원들 사이에선 “다른 직종에서 고소득 을 올릴 수 있는 엘리트를 불러오려면 그 정 도의 특권이 필요하다”(변호사 출신 3선 의 원)는 주장도 나온다. 과연 그럴까. 우리 의원들이 누리는 특권 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지나치다는 지적이

외국과 달리 자신들이 세비 결정 호주, 본회의 장기 불출석 땐 제명 미프랑스선 국무위원 겸직 금지 스웨덴은 철저하게 무노동무임금 지배적이다. 선진국에서 의원이 자기 보수를 직접 정하 는 곳은 거의 없다. 미국과 프랑스는 공무원 급여나 물가상승률에 자동 연동한다. 영국 과 캐나다는 외부 기구가 결정한다. 우리 국 회는 1988년 ‘급여 인상을 위한 법 개정은 그 들 의원의 임기 중에 효력이 없다’는 법 조항 을 삭제했다. 액수도 많다. 주요 국가 국회의 원의 연봉은 미국 1억9488만원, 프랑스 1억 2695만원, 영국 1억1619만원, 일본 2억3698

만원이다. 총액을 단순 비교하면 우리 의원(1 억3796만원)이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얘기가 달라진 다. 선진국에선 의원 연봉이 1인당 국민소득 의 2~3배인 데 비해 한국의 경우 약 5배다. 보좌진 정수도 의원이 정한다. 보좌진이 원 래의 취지와 달리 지역구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고, 보좌진 급여도 자주 유용된다. 스웨덴 국회의원에겐 개인 보좌관이 없다. 대신 정 책보좌관 1명이 의원 여럿을 보좌한다. 건물 관리비 등 의원 한 명에 쓰이는 연간 소요 비용은 5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우리 국 회는 국고보조금 예산 심사를 직접 하기 때 문에 증액을 통제하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국회 예산 증가율은 9.9%로 정부 예산 증가 율 8.7%를 웃돈다(2011년 기준). 국회는 정기국회와 짝수 달에 임시국회를

개최하도록 돼 있으나, 사실상 개회 일수는 연 간 150일 안팎이다. 그것도 국회에서 여야가 다투느라 의사 일정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 다. 흔히 민생 법안을 정쟁의 볼모로 잡곤 한 다. 반면 프랑스는 회기의 3분의 2 이상 출석하 지 않으면 세비의 3분의 1을 받을 수 없다. 상 임위에 세 번 이상 결석하면 다음 해까지 상임 위원을 할 수 없다. 호주·인도·터키는 의원이 일정 기간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으면 제명한 다. 스웨덴은 회기 중 결근하면 세비를 못 받는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따라 주급을 받는다. 의원이 장관 등 국무위원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특권이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미국 과 프랑스는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금한 다. 우리 의원들은 지방선거의 공천에도 깊숙 하게 관여한다. 이 때문에 시·도의원이나 단 체장들이 의원에게 공천헌금 성격의 후원금

을 내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 책 을 썼다며 공공기관·기업들에 초청장을 돌려 출판기념회를 열고, 세금도 내지 않은 채 두 둑한 책값을 받아 챙기는 관행도 여전하다. 여야는 특권을 줄이겠다는 약속을 해왔 다. 2012년 대선 전후 ‘세비 30% 삭감’을 공 언했지만 법안은 2년6개월 이상 국회에서 잠 자고 있다. 장기 5년 초과 징역 이상의 혐의는 불체포특권 대상에서, 명예훼손·모욕과 민 주적 기본질서 침해 발언은 면책특권 대상에 서 제외하자는 목소리도 적잖다. 미국은 반 역죄와 중죄를 불체포특권 대상에서, 독일은 중상적 모욕을 면책특권 대상에서 제외한다. 회의 참석 여부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자는 의견도 있다. 다만 말만 무성할 뿐 이 역시 국 회의원들이 법으로 만들어 스스로를 구속해 야 하는 일이라서 진행되지 않고 있다.


News 5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대한민국 혁신의 조건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진단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 를 전면에 내걸었다. 관피아 척결과 공기업 개 혁을 앞세운 국가개조는 이후 국가혁신으로 표현을 바꾸면서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의 최 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국가혁신이 더 이상 미 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 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론에 대 해선 이견과 우려가 적잖다. 국가혁신의 방향 은 잘 잡았는지, 개혁 대상은 올바르게 선정했 는지에 대한 학계와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 하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사진) 국민대 교수를 만나 박근혜 정 부의 국가혁신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현 정부, 개조혁신 구분 못한 채 접근 -국가개조론이 화두다. “국가개조와 국가혁신을 논하기에 앞서 우 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내외적 환경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분업 체제가 가속화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 되는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신속하고도 합리 적인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의사결정의 두 주체는 국회와 행정부다. 하지 만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릴 능 력도 구조도 갖춰져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주변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숙제는 더 많 이 쌓여가지만 이를 풀어낼 메커니즘은 오히 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세월호 국면 을 봐라. 국회도 대통령도 관료도 아무런 결 정을 못하고 있지 않나.”

정당의 부실화가 관료 천하 초래 지금 상태 이순신도 일 못할 구조 사회가 준비돼야 좋은 리더 탄생 누가 해도 잘 돌아가는 구조 갖춰야

-박근혜 정부의 국가혁신을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레토릭에 불과하다. 국회와 행 정부의 전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합리적이 고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를 고민 하는 가운데 보다 큰 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접근 방식 자체가 틀렸다. 그러니까 이내 관피아 척결이 국가개조와 동의어가 돼 버린 것 아니냐. 마치 공무원을 잡으면 국가 개조가 다 되는 것처럼 난리를 쳤지만 지금 까지 뭐 하나 달라진 게 있나. 이는 문제 해결 의 순서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용어도 개조에서 혁신으로 바꿨는데. “혁신은 지속적인 개념인 반면 개조는 큰 맘 먹고 틀을 한 번 바꾸는 거다. 의미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국가는 꾸준히 바꿔가야지 개 조하고 끝내는 대상이 아니잖은가. 매일 상을 뒤엎을 순 없지 않나. 용어를 쉽게 바꾸는 것 부터가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결국 국회와 행정부의 개혁이 국가혁신의 핵심이며, 이를 국가적 과제 차원에서 진지하 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정치 혁신, 행정부는 정부 혁신으로 이어진다. 먼 저 정치 혁신에 대해 물었다. -정치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의 정당과 국회는 의사결정 능력과 정책 역량이 제로에 가깝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국회의원 중 에는 똑똑한 사람도 많지만 집합적 차원에선 결정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현실 아닌가.” -뭐가 가장 큰 문제인가. “정당이 뜻을 세우고 세력을 모으는 게 아 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필요할 때마다 이 사 람 저 사람 모아온 게 비극의 뿌리다. 자질과

는 상관없이 대중적 지지가 좀 있다고 끌어 들이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당의 전략도, 비전도 세울 수 없는 게 당연했고 문제가 생 기면 뒤만 따라가기 바빴던 거다. 연평도 사 태가 터져도 보온병을 들고 호통치는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었겠나(당시 피격 현장에 간 안 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불에 탄 보온병을 집 어 들곤 북한이 쏜 포탄의 탄피로 착각해 “이 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당 구조 속에서는 포지티브하게 지지를 이 끌어내는 건 언감생심이고 오히려 비난과 분 노의 네거티브 정치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와 정당 위기론을 거론 했다. “앨빈 토플러도 ‘의회는 농경시대의 유 물’이라 하지 않았나. 산업혁명 이전에는 서 구 의회에 상정되는 법안이 1년에 몇 십 개뿐 이었지만 지금은 몇 천 개에 달한다. 이슈들 은 훨씬 다양해졌고 이해관계 또한 복잡해졌 다. 하지만 의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정 을 내려야 하는 구조상 빠르게, 대량으로 일 을 처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많은 미 래학자도 머지않은 장래에 정당은 소멸할 거 라고 경고하고 있지 않나.” -해결책은 뭔가. “오늘날 한국 정치의 무능력 상태는 의회 주의의 본질적 한계와 한국 정치의 특수성이 겹치면서 생겨났다. 이를 개선하려면 무엇보 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이젠 중선거구제 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다당제가 되 면 지금의 양당 구도가 담아내지 못하는 각계 각층의 목소리를 훨씬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 을 거다. 절대다수가 아닌 완화된 다수의 통 치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 같은 구조에 선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가 와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의회 권력을 분산해 새 로운 21세기형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 때다.” 행정 투명화로 ‘철의 3각 유착’ 끊어야 -관피아 문제는 어떤가. “정당의 정책 능력이 떨어지니 여당도 대통 령을 받쳐줄 힘이 없고, 결국 대통령은 관료 들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당에서 사람을 데려다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당장 일이 급한데 청와대에 그럴 여유 는 없다. 노무현 정부 때 보니까 정치인 출신 장관들조차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설파하긴 커녕 서너 달만 지나면 오히려 부처의 대표가 돼서 대통령을 찾아오더라. 정당의 부실이 관 료 천하와 직결되는 구조인 셈이다.” -모든 관료가 개혁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관료 자체가 악마는 아니다. 다만 관료제 에 뿌리 깊이 내재돼 있는 전통적 병폐가 문제 다. 무사안일, 형식주의, 복지부동, 부처이기 주의 등이 그것이다. 사실 관료 입장에선 수많 은 법과 규정이 전부 지뢰다. 잘못 밟으면 죽 으니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인 거다. 이런 상황 에서 전략과 비전, 능력을 가진 정치인 리더가 잘 이끌어 주면 관료도 빛나고 정부도 잘 운영 될 텐데 청와대와 여당은 갈피를 못 잡고 야 당은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으니….” -유착의 폐습도 비판 대상이다. “국회와 관료집단·기업 간 철의 3각 고리 는 아무리 막아도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관료 출신들이 대형 로펌에 스카우트되는 건 재직 때 일종의 마일리지를 쌓았기 때문이다. 산하기관에 못 가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숨어서 유착하게 돼 있다. 이런 유착을 끝까지 추적해서 막는다? 불가 능하다. 해법은 행정 과정을 투명화하는 길 뿐이다. 미국에 수많은 로비스트가 있어도 큰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 돈을 받 았고, 누구를 만났으며, 누구와 서신을 주고 받았는지 전부 공개하기 때문이다.” -개방형 관료제가 해법으로 거론되는데. “외부 인사 영입은 필요하지만 한국 사회

에선 주의할 점이 훨씬 많다. 인재 풀이 좁은 데다 외부 인력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시장과 관료체제가 유착을 넘어 아예 일체화돼버리 는 부작용을 낳기 십상이다. 특히 규제권이 강한 경제부처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대통령의 막강한 힘으로도 해결 못하나.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엄 청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실제 정부를 운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는 걸 절감하게 된다. 관료들도 정권이 몇 번 바뀌면서 ‘나를 끝까지 보호해줄 사람은 선 후배와 동료들이지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게 됐다. 여당도 2~3년만 지나면 레임덕 대통령 취급한다. 정권을 잡아도 정권의 주 인이 아닌 거다. ‘명량 신드롬’도 그렇고 요즘 많은 사람이 새로운 영웅을 얘기하는데 철저 한 정치·정부 혁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준비 돼 있어야 지도자도 있는 법이다. 누가 대통 령이 되더라도 잘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 를 만드는 것, 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최정동 기자

다당제중선거구제로 다양한 목소리 수용해야


6 Focus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여권 차기 대선후보 선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대통령 행적 논란, 김기춘 탓  개헌 내년 초 논의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체포동의안 부결 비판 달게 받을 것” -송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데 대한 후 폭풍이 거세다. “국민적 비판을 달게 받겠다. 대표로서 불 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는데 어긴 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이 특권이 헌법상 권 한인 데다 의원들이 체포동의 대상인 동료 의원의 호소를 듣고 ‘정말 억울하겠다’ ‘나 도 구속될 수 있겠다’고 여긴다는 거다. 그래 서 이런 일이 생긴 거다. (당 대표라도) 막을 수가 없다. 결국 개헌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 으로 어렵지 않나. 그래서 국회법을 개정하 려 한다.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접수된 지 24 시간 이후 72시간 안에 의결하되 이 시한 내 에 의결이 안 되면 체포에 동의한 걸로 간주 한다’는 내용이다.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이 안을 들고 당장 야당과 협상하라, 연말까지 갈 것도 없다’고 했다. 야당도 합의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새정치연합은 그보다는 세월호특별법 처 리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협상에선 여당이 더 양보해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주장이었다. 그런데 특별법은 우리 (새누리당)가 낭떠러지까지 양보한 거다. 여 당 몫 특검 추천위원 2명을 야당과 유족의 결 재하에 임명하기로 했지 않나. 더 양보하면 벼랑에서 떨어진다.” -대표가 나서서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답답하다. 새누리당은 철저한 투톱 체제 라 특별법은 원내대표의 고유 업무다. 여야 원내대표끼리 합의가 안 되면 대표 간 물밑 대화 루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엔 대표가 없다. 박영선 국민혁신공감위원장은 이 원내대표의 파트너다. 그러니 내가 나설 수 없는 거다.” -새정치연합에서 박 위원장에겐 원내대표 만 맡기고 비대위원장을 따로 뽑자는 움직임 이 있지 않나. “그러면 (내가) 나설 수 있다. 원칙을 지키 면서 운영의 묘를 살릴 길을 찾아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야당은 참사 당일인 4월 16일 박근혜 대통 령의 ‘의문의 7시간’을 계속 겨냥하고 있다. “그런 유언비어가 퍼진 건 국회에서 답변 을 잘 못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책 임이 있다. ‘박 대통령이 사고 당일 분 단위로 이렇게 이렇게 움직였다’고 밝혔으면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문제가 커진 것 아니

최정동 기자

“이 문제는 김기춘 실장에게 책임이 있다. 참 답답한 사람들이다.” 김무성(사진) 새누리당 대표가 세월호 참 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논란에 대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직격탄을 날렸 다. 김 대표는 4일 아침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 출 석한 김 실장이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보 를 분 단위로 밝혔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 라며 “김 실장이 국회에 열 번이라도 나와 국 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기 위한 개헌 논의를 내년 초에 시작해야 한다”며 “차기 대 통령은 새 헌법하에서 뽑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기 표류 중인 세월호특 별법과 관련해 김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비대위원장을 따로 뽑는다면 그와 대표 간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송광호 새누 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선 “체 포동의안이 접수 72시간 안에 의결되지 않으 면 동의로 간주되도록 국회법을 개정하겠다” 고 했다. 지난주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 (리얼미터)에서 1위(17.6%)에 오른 김 대표는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선 “논할 때가 아니 다”라고 답했다.

대통령 일정 잘 알렸으면 지나갈 일 朴 대통령도 후보시절 개헌 공약 차기 대선, 새 헌법 체제서 치러야 세월호 특별법, 벼랑까지 양보한 것 야당 비대위원장 따로 뽑으면 대화 북한 응원단 통 크게 받아들여야

냐. 최근 십수 년 동안 나라에 이런 큰 쇼크가 있었나. 대통령 비서실장이 열 번이라도 국회 에 나와 국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했다. 그런데 (김 실장 측이) ‘국회에 장시간 나와 서 다 답변했는데 또 불러내느냐’는 식으로 나오니 국민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나. 내 오늘 처음 공개적으로 이 얘기를 한다. 김 실장 측은 ‘(야당이) 협상 용도로 나를 (국회 로) 부른다’고 반발하는데, 이는 (김 실장이) 국민에게 무언가 숨기려 한다는 오해의 빌미 를 제공할 뿐이다. 답답한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이나 김 실장과는 연락하나. “대통령과 자주는 없지만 김 실장은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도록 (돼 있다).” -재·보선 때 약속한 당 개혁은 어떻게 되나. “추석 지나면 곧 혁신위원회가 출범한다. 재·보선 기간 가동됐던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새바위)’에서 요구한 공천 인사 검증제 등 혁신안을 다 수용하고 새바위 멤 버들을 혁신위에 참여시킬 생각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행동이다. 신한국당·한나라당 시 절부터 혁신위원회를 대여섯 번이나 만들었 지만 대표 바뀌면 다 뒤집혔지 않나. 나부터 행동으로 혁신을 실현하겠다. 우선 낮술이나 폭탄주 같은 과도한 음주 문화를 없애고, 선 관위에서 받은 국가보조금으로 결제되는 법 인카드 사용 내역을 전부 공개하겠다. 호텔에 서 한 끼 10만원 넘게 먹어 온 조찬·오찬·만찬 도 일반 식당으로 바꾸겠다.” “공천 장난 못 치게 완전 국민경선 도입” -정치인들은 늘 호텔 밀실에서 만나더라. “은밀한 대화에서 부패가 나온다. 얼마 전 당 상임고문들을 점심에 초대했다. 과거에 이 런 자리는 63빌딩의 고급 중식당 ‘백리향’에 서 이뤄졌다. 고문 36명에다 당직자를 포함 해 50명쯤이 한 끼 먹는데 1000만~1200만원 들어갔다. 이번엔 국회 앞 일반 한정식집에 서 모셨더니 200만원이면 되더라. 취지를 말 씀드렸더니, 다들 ‘잘했다’며 술 한잔 안 드 시더라. 백리향에서 식사하면 어김없이 고 급 포도주가 나온다. 쩨쩨한 놈이란 소리 들 을까봐 무조건 따야 한다. 하지만 건배용으 로 한 잔 따르고 나머지는 버리기 마련이다. 그게 전부 국민 혈세다. 내가 이런 걸 못 하게 하니 ‘짠돌이’란 소리가 나오더라. 앞으로도 대표로서 유명한 짠돌이란 소문이 이어지길

바란다.” -그보다 중요한 개혁은 공천 개혁 아닌가. “그렇다. 우리 정치권의 고민의 90%가 잘 못된 공천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공천권 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당) 권력을 잡아도 (공천)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하 겠다. 미국식으로 완전 국민경선(오픈 프라 이머리)을 도입할 거다. 역선택을 막기 위해 야당과 같은 날 경선을 치르도록 법제화하겠 다. 야당도 대찬성 하는 걸로 안다. 박영선 위 원장이 ‘모든 걸 국민 선택에 맡기자’고 했지 않나. 현역 의원들이 유리해진다는 반론이 있지만 논리에 맞지 않는다. 과거 선거를 보 면 늘 50% 넘게 물갈이를 했지만 정치는 오 히려 퇴보했지 않나.” -제왕적 대통령제로 인해 ‘통치 불능’ 상 태가 고착화됐다는 우려가 크다. “5년 단임제로 집권했던 역대 대통령 6명 중 4명이 자기 당에서 쫓겨났다. 또 5년은 유 능한 대통령에겐 너무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 겐 너무 길다. 미국 대통령보다 강한 제왕적 권력과 승자독식 게임구조, 총선·대선 주기 불일치도 문제다. 결국 개헌으로 권력을 분 산해야 한다. 내 소신은 뚜렷하다. 미국식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나 대통령·총리가 외교· 내치를 나눠 갖는 오스트리아 방식 등이 다 연구돼 있다. 논의만 시작하면 금방 (개헌)할 수 있다고 본다.” -그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원하나. “내 입장이….”(말하기 적절치 않다는 뜻) -박 대통령은 개헌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개혁에 집중하는 집권 초반기엔 개헌을 논의하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하지만 다음 선거(2016년 20대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 은 지금이 적기다. 내년 초부터 (개헌 논의 를) 시작해야 한다.” -내년 안에 개헌안이 나올까. “이미 컨센서스는 형성돼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도 개헌해야 한다고 공인으로서 공식 적으로 밝혔지 않나.” -차기 대통령은 새 헌법으로 뽑아야 하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나중에 차기 대 권주자군들이 굳어지는 시점이 되면 또 개헌 에 반대하지 않겠나. 그러니 지금부터 내년까 지가 논의의 적기다.” -야당도 응할까. “야당에서도 합리적인 사람들은 다 개헌

을 원한다. 그리고 수준 높은 정치, 즉 연정을 할 필요가 있다. 중간 지대를 만들어 양극화 된 정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일례로 의석이 5석인 정의당이 참여할 틈이 있어야 하는데 새정치연합이 막고 있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1위다. “지금이 대권 논할 때인가. 오죽하면 대권 주자들을 초청한 관훈토론회에서 내 이름은 빼달라고 했겠나. 당을 개혁해야 하는 대표 가 대권 운운하면 사심이 들어간 것으로 받 아들인다.” -김 대표를 빼면 새누리당에 대권주자급 스타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왜 나 혼자뿐이냐. 문수(김문수 전 경기 지사)도 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복안은. “우리는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이다. 보수 우파를 아우르는 큰 그릇을 만든 뒤 천 하의 영웅 호걸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혁신위원회 대표부터 외부 인사를 쓰나. “외부 인사가 당내 사정을 뭘 아나. 권력자 마음대로 하수인 역할만 했으니, 나는 (외부 영입) 안 한다. 단 위원회 멤버들은 (영입) 가 능하다.” -5·24 대북 제재를 풀라는 얘기가 당내 곳 곳에서 나온다. “인천아시안게임은 북한의 체육·외교 엘 리트들을 만날 좋은 기회다. 쩨쩨하게 굴지 말고 통 크게 해줘야 한다. 응원단도 오게 해 야 한다. 그 경비로 30억원쯤 든다는데 내 얘 기를 들은 어느 기업인이 ‘그 돈 내가 내겠다’ 고 하더라. ‘북한=위협’이란 논리에만 빠지 면 아무것도 못한다. 수백 명의 응원단이 우 리 잘사는 모습 보면 다 득이 된다.” -서청원 최고위원이 병 치료를 이유로 한 달간 칩거 끝에 복귀했다. “내 오랜 선배로 너무 잘 아는 사이다. 병 원에 문안 가서 ‘적극 협조하겠다, 잘 하자’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무 문제 없다. 또 내가 인 선한 당직자들을 보라. 전당대회 때 서 의원 밀던 사람들이 절반이다. 오히려 날 민 사람 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 -국민들에게 추석 메시지를 전한다면. “추석 전에 세월호 정국을 풀지 못한 데 무 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역에 나가 귀성객들에 게 전단 돌리는 대신 형편이 어려운 사할린 동포들을 뵙는 걸로 추석 인사를 할까 한다.”


Focus 7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세월호특별법 초안 만들었던 대한변협은 지금

“특별법은 진실규명 위한 것  수사기소권은 방법론”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 하고 있다.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본질 은 사라진 채 우리 사회의 고질적 진영논리 와 이념 갈등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에 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법률 대리인 역할을 해 온 대한변호사협회에 대한 비판도 불거졌다. 가족들이 진상조사위원회 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특별법 초안을 마련했던 대 한변협에 불똥이 튄 것이다. 지난 1일에는 전 임 대한변협 회장들이 “현 대한변협 집행부 의 정치적 중립에 우려를 표한다”며 대한변 협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틀이 흐른 지난 3일. 서울 역삼동 대한변 협회관에서 위철환(56) 협회장을 만나 입장 을 들어봤다. 위 회장은 “사상 유례없는 대참 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 하지 않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세월호특별법의 본질인데, 본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방법론에 불과한 각론을 놓고 불필 요한 갈등을 빚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치권이 진심을 다해 피해자 가족 들을 설득했다면 특별법은 벌써 통과돼 진상 조사위원회가 가동될 수 있었다”며 “대한변 협은 지난 5개월 동안 500명 넘는 회원(변호 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피해자 가족들의 법률 지원과 상담, 증거보존 신청 등 수많은 활동을 해왔는데 전체 활동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특별법 초안 문제를 놓고 마치 파국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위 회장과의 인터뷰 에는 대한변협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명숙 변호사와 김영훈 사무총장이 함 께했다. “특정 정파진영에 가담할 생각 없어” -전임 회장들이 우려하는 바는 뭐였고 어떻 게 해명했나. “회장들께서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을 보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별법 논란이 이념 공세이거나 정부·여당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 으로 전도된 게 아니냐는 우려였다. 그게 사 실이라면 충분히 우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만 문제는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거다. 지난 5 월 피해자 가족들과 업무협약을 한 뒤 대한 변협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불필요한 정쟁 이나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 다. 특정 당파나 진영논리에 가담할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4개월 넘게 묵묵히 봉사해 온 협회 소속 변호사들 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특별법 문 제가 교착상태에 빠지니까 마치 정치적 갈등 의 중심에 대한변협이 서 있는 것처럼 오해 를 사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설명을 전임 회 장들께도 충분히 드렸고 설명을 듣고 나서는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고 가셨다.” -대한변협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변)에 장악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대한변협 진상조사 특위의 공동위원장, 위원, 대변인 모두 민변 소속이 아니다. 대한변협 30명 임원 중에 인 권이사만 민변 소속이다. 회원 비율로 따져도 7%에 불과하다. 민변이나 진보를 폄훼하겠다 는 게 아니라 대한변협은 처음부터 특정 정파 에 치우친 목소리가 가족 대책위의 이름으로 나오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피해자 가족 들도 처음 민변 차원의 법률지원단 도움을 거 부하고 대한변협과 업무협약을 하지 않았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3일 오후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 실패 책임, 변협에 쏠려 곤혹 기본 바탕은 똑같은 사건 재발 방지 관계자 처벌이 기본 목적 아닌데 

위철환 협회장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 여할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대한변협이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마련한 입법청원 초안 에 들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도저히 물러 설 수 없는 문제인가. “가장 답답한 것이 그 부분이다. 처음 특별 법 초안을 만들 때부터 진상조사위에 수사권 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였지, 유일무이 하거나 확고부동한 입장은 아니란 점을 분명 히 했었다. 그런데 특별법 논란이 심해지면서 마치 대한변협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 권을 부여하는 문제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것처럼 호도하거나 곡해하는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세월호특 별법의 목적은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다.” 위 회장은 수사권·기소권 문제를 이야기하 면서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별법 초안 에서 수사권·기소권 문제는 진상 규명을 위 한 방법론에 불과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여야의 2차 재합의안에서 협상의 의제가 상 설특검에서 특별검사 후보 추천위원을 어떻 게 구성할 것인지로 옮겨 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며 “대한변협과 피해자 가족들이 특정 안을 고집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수사권·기소권 문제에 대해 피해자 가족 법률대리를 맡은 대한변협 회장으로서 분명 한 입장을 이야기해 달라. “우선 가족들의 입장을 설명하겠다. 그 분들은 자식들이 배에 갇혀 침몰하는 순간

[뉴스1]

을 TV 생중계로 지켜봤다. 진도 현장에서 구 조 과정을 지켜보면서 초기 정부 대처에 대 해 큰 실망을 했다. 언론에서 구조하고 있다 고 보도되는데, 실제 이뤄진 건 없었다. 불신 이 쌓였다는 얘기다. 피해자 가족들은 진상 조사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게 아닐까 불안해 한다. 그래서 수사권·기소권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거다. 정치권이 그걸 이해해야 한다.” “유족정치권 간극 생각처럼 크지 않아” -여야가 두 차례에 걸쳐 합의안을 냈는데도 피해자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선 수사권·기소권 주장에서 물 러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진상조사위 구성에 대해서도 피해자 가 족들의 애초 요구는 달랐지만 여야 합의안에 반대하지 않았다. 가족총회에서 여야 합의안 이 부결되긴 했지만 특검으로 가자는 것 자 체를 반대한 것도 아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가족들 입장에선 진상조사위에 수 사권·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원칙론을 계속 이야기하는 거다. 협상에 참여한 대한변협에 서 ‘절대 양보하지 말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오히려 여야 1, 2차 합의 과정에서 ‘이런 대안 이 있으니 진상조사위부터 출범시키자’고 설 득을 했다. 2차 합의안이 가족총회에서 부결 됐지만 현장에 있었던 우리 변호사들이 느끼 기에 정치권이 성실한 자세를 보여준다면 양 보할 수 있다는 분위기도 강했다고 한다.” 위 회장은 “정치권이 수긍할 만한 합의안

을 만들어내면 우리가 피해자 가족들을 설 득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껏 피해자 가족들 의 곁을 지키며 신뢰를 얻어온 만큼 세월호 특별법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역할을 하 겠다고 한다. -지난 2차 합의안에 대해서도 피해자 가 족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과연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겠나. “반드시 설득할 거라고 자신은 못한다. 하 지만 여러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4개월 넘게 가족들 곁을 지킨 건 우리다. 법률대리인 역 할을 하겠다고 천명한 이상 수긍할 만한 합 의안이 나온다면 최선을 다해 설득할 것이 다. 정치권과 가족들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 생각만큼 큰 게 아니다. 여야가 조금씩만 양보하고, 가 족들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간다면 의외로 금 방 풀릴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나. 상설특검법에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주체가 명시돼 있는데 여당 몫을 포기하라는 건 법을 어기는 것 아닌가. “실정법 위반 논란을 피하면서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여당이 후보 2명을 추천하되, 가족들이 원하는 분들 을 복수로 받아서 그중에 정하면 되지 않나.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여야 각 2명, 그리고 대 법원과 법무부, 대한변협이 각각 1명씩 추천 하도록 돼 있다. 가족들은 야당 측 2명과 대 한변협 측 추천위원을 합쳐도 과반수가 되지 못하니 중립적인 인사를 특검으로 정하기 어 렵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여당의 추천 권한 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추천은 하되 가족 의 의견을 반영하면 되는 거다.” 위 회장과 대한변협 특위 지도부는 대한 변협이 피해자 가족을 지원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 온 부 분이 특별법 논란 때문에 묻혀지는 것이 안 타깝다고 했다. 대한변협 진상조사 특위에서 는 세월호 승무원들에 대한 재판 참여는 물 론 증거물 보존에 이르기까지 특별법에 따른 진상조사위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 해왔다. 최근 재판 과정에선 세월호 승무원들이 구 조를 기다리는 동안 맥주를 마셨다는 사실 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를 밝혀낸 것도 대한변협 변호사들이었다. 마대 자루에 담겨 폐기될 뻔했던 CCTV 자료와 제주·진 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자료에 대한 증 거물 보존신청을 한 것 역시 대한변협이었다. -지난 5월 대한변협이 피해자 가족대책위 와 업무협약을 맺은 뒤 어떤 활동을 해왔나. “정부와 가족 간의 대화창구를 일원화하 고 지원단체들을 통합한 것은 저희들의 역할 이 컸다고 본다.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지 않 도록 설득한 것도 우리 역할이었다. 피해자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 중엔 극단적인 사람들 도 있고, 법률가임에도 무책임한 발언을 하 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월호특별법은 왜 필요한가. 일반법으론 진상 규명이 불가능한 건가. “특별법 제정의 본질이 잊혀졌다. 처음으 로 돌아가보자.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사고 가 벌어졌고 대한민국의 많은 병폐가 드러 났다. 독립적 조사위원회에서 종합적인 진 단을 하지 않으면 이런 병폐들이 집약돼 일 어난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도, 재발방 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근본 적 원인을 총망라해 분석하는 기관이 필요 하단 얘기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은 20개월 동안 조사를 벌여 250만 페이지짜리 보고서 를 내놨다.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한 거다. 조사위 활동을 하면서 협조가 이뤄지지 않 을 때에 대비해 수사권을 주고, 수사기관이 놓친 범죄 혐의가 있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기소권을 주자는 거다. 처벌이 특별법의 목 적은 아니다.”


8 Focus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③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의 대가 에릭 매스킨

세계화로 개도국 미숙련 노동자 낙오  불평등 해소 시급 지난달 22일 독일 린다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 행사장. 오전 11시에 만나기로 한 에릭 매스킨(64·2007년 수상자)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30분 먼저 나타났다. 독일의 한 방송사와 인터뷰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방송사 기자는 “지금 피터 다이아몬드(2010년 수상자) 미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인터뷰 일정이 겹쳤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주최 측과 방 송사 간에 혼선이 있었던 것이다. 졸지에 인터뷰 룸에서 쫓겨난 매스킨 교수는 멋쩍은 듯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커피 포트가 놓인 탁자에 걸터앉았다. 그 옆에선 학생들이 매스킨 교 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커피를 따라 마셨다. 한국의 국제회의에서 매끄러운 의전을 본 적이 있는 기자는 노벨상 수상자를 저렇게 놔둬도 되나 싶어 “나와 좀 일찍 인터뷰를 시작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매스킨 교수는 “내가 노벨상을 탄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은 바로 이런 상황을 막고자 하는 이론”이라는 농담으로 말문을 열었다.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 뭔가. 베를린 “경제학의 많은 분야는 어떤 ‘결 독일 과’를 도출해내는 프랑크푸르트 데 신경을 쓴다. 프랑스 뮌헨 이런 조건에서 저 린다우 오스트리아 스위스 런 방식으로 생산 을 하면 모두가 만 족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식이다. 메 커니즘 디자인은 그걸 뒤집는다. 결과를 미리 설정해 놓고 어떤 방법이나 제도(메커니즘), 도구들을 동원해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를 연구한다.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부모가 케이크를 잘라서 두 자녀에게 나눠주려고 한 다. 물론 아이들은 서로 더 많이 먹기를 원한 다. 그래서 부모가 아무리 똑같은 크기로 케 이크를 잘라줘도 상대방이 더 큰 케이크 조 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입장에선 각각의 아이가 케이크 크기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방법은 있다. 부모가 자르지 말고 한 아이에 게 자르도록 시키고 다른 아이가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 자르는 아이는 상대방 아이가 더 큰 조각을 가져갈까봐 똑같은 크기로 자르게 된다. 정말 똑똑한 해법 아닌가(웃음). 현실 세계의 시장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이상적인 시장 이 아니다. 경쟁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고 시 장 참여자들의 정보에 차이가 있다. 개인에 겐 도움이 되는 선택이 사회에는 비용을 유 발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곳이 현실 시장이 다.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은 이런 현실 시장 에서 각 참여자의 인센티브와 개인 정보 차 이를 고려해 최적의 자원 배분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메커니즘)을 연구한다.” -좀 더 정책적인 사례는 없나. “내가 가장 최근에 동료와 함께 쓴 논 문은 ‘선심성 예산 몰아주기(pork-barrel politics)’에 대한 것이다. 어떤 정치인이 자신 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려고 특정 집단에 예 산을 몰아준다고 치자. 이렇게 되면 정부 예 산을 방만하게 운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국 가 또는 주(州) 정부의 채무가 늘어날 수 있 다. 이런 예산 몰아주기가 빚을 키운다는 사

매스킨 교수는 세계화의 혜택이 개도국에선 숙련 노동자에게만 돌아갔다고 분석했다.

‘비교우위론’ 지금 현실 반영 못 해 교육과 보조금으로 풀어야 효과적 메커니즘 디자인은 과정 보는 이론 금융위기는 자율 과신한 탓 발생

[Christian Flemming/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실이 유권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으면 공 공 채무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와는 별 도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행하는 예산통제 (balanced budget requirements) 법률은 예산 몰아주기도 줄이지만 정당한 예산 집행 도 줄인다는 것을 입증했다. 선거제도에 대 한 논문을 쓴 적도 있다.” -케이크의 사례가 더 이해하기 쉬운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메커니즘 디 자인 이론은 나와 노벨상을 함께 수상한 레오 니트 후르비치(1917~2008) 전 미네소타대 교 수가 개척한 것이다. 나와 또 한 명의 공동 수 상자인 로저 마이어슨 시카고대 교수는 메커 니즘 디자인 이론을 더 발전시킨 것뿐이다.” -이번 회의에서 당신은 개발도상국의 불 평등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 “많은 불평등 연구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불평등 상황에 국한돼 있다. 물

론 현재 미국의 소득 격차는 19세기 후반 수 준으로 매우 심각하다. 나는 불평등의 원인 을 노동 숙련도의 분산(variance)에서 찾 으려고 시도했다. 전형적인 제조업 회사인 GM이나 포드자동차 같은 곳에선 숙련 노동 자와 미숙련 노동자가 같은 회사에서 일했 다. 하지만 세계화와 함께 노동시장의 분리 (segregation)가 일어났다. 간단하게 말해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 같은 곳에는 숙 련 노동자만 있고 맥도날드나 월마트에는 미 숙련 노동자만 몰린 형국이 된 것이다. 또 지 금의 미숙련 노동자는 옛날 GM에서 일하 던 미숙련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 금을 받고 있다. 국가와 회사의 종류, 노동 숙 련도와 임금 같은 변수들 사이에 ‘미스 매치 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개도국으로 넓혀보 면 세계화는 그곳의 숙련 노동자에게만 혜 택을 줬을 뿐 미숙련 노동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리카르도가 주창한 ‘비교 우위 (comparative advantage)’ 이론이 맞지 않 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론 자체가 잘못됐다 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다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비교 우위 이론대로라면 세계화가 진행 되고 무역 장벽이 사라지면서 개도국의 소득 격차, 불평등도 줄어야 한다. 하지만 개도국 서민들은 여전히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 고 있다. 노동시장을 ^선진국의 숙련된 노 동력 ^선진국의 미숙련 노동력 ^개도국의 숙련된 노동력 ^개도국의 미숙련 노동력으 로 나누어 보자. 세계화가 서비스 산업 위주 로 이뤄지다 보니 개도국의 숙련된 노동력은 혜택을 보지만 미숙련 노동력은 그렇지 못하 다. 리카르도는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 -해법은 뭔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아무래도 교육 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들도 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하고 정부도 기업에 지원금 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미숙련 노동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미숙련 노동자들을 직접 지원하면 그들이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모 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각종 보조금 혜택 도 도움이 된다.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은 전 체적인 고용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보조금이 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예산이 많이 들어가겠다. “재정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 진다고 생각한다. 보조금을 마냥 주라는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렇게 지원함으로 써 사람들이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 선다는 점이다. 불평등은 중대한 정책 사안이다. 각 국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정책 최고순위에 올려놔야 한다.” -이번 회의의 또 다른 주제는 경제학이 과 연 유용한가 하는 점이다.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경제학 이 실패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제학 의 실패가 아니고 경제학에 관심을 두지 않 은 사람들이 실패한 것이다. 시장원리가 작 동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사람, 금융시 장은 자율규제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 들이 득세했기 때문에 위기가 왔다. 시장의 실패는 만연한다. 이를 위해 규제가 필요한 데 무턱대고 규제할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 한 외부효과가 있는지 살펴보고 메커니즘 을 잘 디자인해야 한다.”

수학자 출신 경제학자

수학·경제학·정치학 넘나드는‘크로스오버’학자 박성우 기자

매스킨 교수는 수학자 출신의 경제학자 다. 하버드대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 위를 받았다. 그는 경제학으로 전환한 이 유에 대해 “어차피 나는 게임이론(game theory) 학자다. 수학·경제학 같은 학문적 인 경계가 중요하지 않다. 경제학자로 분류 되는 지금도 연구는 거의 수학으로 하고 있 다”고 말했다. 경제학의 장점은 실생활에 응용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매스킨 교수는 정치학 분야에도 관심을 보 이고 있다. 지금 몰두하고 있는 선심성 예

선거제도예산집행 분야도 연구 “SW 특허가 혁신 장애물” 주장 2009년 연세대 특임교수로 강의

산 몰아주기, 연립정부 형성 연구는 물론 선거제도도 게임이론과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으로 풀어낸다. 26세 때인 1976년 박사학위를 받은 매스 킨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연구원 으로 활동했다. 이후 MIT와 하버드대 교수 를 거쳐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 재직 시절

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프린스턴대 시 절 불가리아 출신 부인과 함께 살던 사택은 과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2011년에 하버드대 교수로 복직했다. 2003년엔 계량경제학회 회장도 지냈다. 매스킨 교수는 소프트웨어 특허가 혁신을 방해한다는 주장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소프트웨어·반도체·컴퓨터 산업 등에선 혁 신이 순차적이고 보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 에 특허제도가 오히려 창의성과 사회 전체 적인 복지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80년대 소 프트웨어 특허제도가 도입된 이후 연구개발

과 효율성이 증가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그는 2009년 연세대 특임교수로 한 학기 동안 강의하는 등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에 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한국에 대한 인 상을 묻는 질문엔 “린다우 회의가 열리는 이 곳 유럽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발전 가능성 이 큰 나라”라고 말했다. 매스킨 교수 약력 ^ 1950년 미국 뉴욕 출생. 유대인 ^ 하버드대 학부 졸업 및 응용수학 박사 ^ MIT·하버드대·프린스턴대 교수 역임 ^ 계량경제학회 회장, 유럽경제학회 회원 ^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매스킨 교수가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사진이 걸린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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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능곡 전통시장서 열린 한일 프로레슬링 대회

장터에 뜬 김일派역도산派, 추억 되살리고 시장 살리고 강승한 인턴기자 kshwvv@hanmail.net

상고머리 일본 선수의 필살기 ‘코브라 트위스 트’(상대의 뒤편에서 어깨 밑으로 상체를 넣 은 뒤 몸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으로 고통을 주는 공격)에 괴로워하던 콧수염 대머리 한 국 선수. ‘경기가 이대로 허무하게 끝나나’라 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괴력을 발휘해 상대 를 업어 메쳐버린다. 이어진 두 차례의 날아 차기. 일본 선수는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 거리며 링 안을 돌아다닌다. ‘촤악-. 대머리 선수는 생수 한 병을 자신의 머리에 부었다. “멋지다.” 옆 아주머니가 고함을 질렀다. 노지심(56)이라는 이름의 대머리 선수는 상 대의 뒷덜미를 잡고 회심의 일격인 박치기 를 작렬시킨다. 링 바닥에 누운 일본 선수 위 로 한국 선수가 몸을 포개어 짓누르자 심판 이 바닥을 세 번 내리쳤다. 노지심 선수의 역 전극에 1000여 명의 관중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지난달 30일 열린 한·일 국제프로레슬링 대회 현장. 사각의 링은 장충체육관도 문화 체육관도 아닌 경기도 고양시 능곡전통시장 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추석 대목 맞이 시장 이벤트였다. 대회 시작 4시간 전인 오후 4시, 시장 번영 회가 준비한 500여 개 플라스틱 의자는 이미 사람으로 꽉 찼다. 대형 앰프에서 트로트 메 들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날의 주인공인 15명의 한국과 일본의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도착했다. 20, 30대가 주축인 일본 선수들과 달리 한국 선수들은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40, 50대였다. 한국팀의 단장인 이왕표 (60) 선수는 몸보다 훨씬 큰 양복을 입고 나 타났다. 당당한 체구를 자랑했던 그는 최근 담도암으로 투병생활을 했다. 이들이 향한 곳은 경기장 바로 옆의 ‘월셋 방 있습니다’라고 붉은 글씨가 쓰여 있는 여 관. 여관 옥상이 선수 대기실이었다. 일본 선 수들은 어리둥절해하며 큰 가방을 하나씩 들 고 4층까지 계단을 밟았다. 레슬링협회 간부는 링 상태 점검에 들어 갔다. “이런 바닥에서는 선수들 살이 다 까진 다”며 딱딱한 바닥을 지적하자 번영회에서 급하게 푹신한 합성수지 바닥재를 구해다 깔 고 청테이프로 고정시켰다. WWF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 초등생·중학생 때 화려한 미국 프로레슬링 ‘WWF(현재는 WWE)’ 경기를 보며 자란 나 같은 세대에는 낯선 풍경이었다. 김일 박 치기와 천규덕 당수의 ‘전설’, 일본 선수 안토

경기도 능곡전통시장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프로레슬링 대회에서 강형관 선수(닉네임 ‘솔저강’)가 로프 위에서 상대 선수를 향해 뛰어 내리고 있다. 김춘식 기자

한국 4050, 일본 2030 선수 ‘열전’ 어설픈 드롭킥에도 화끈 리액션 비 오듯 땀 쏟으며 팬서비스 몰두 사각의 정글은 청테이프로 도배 여관 옥상이 선수대기실이지만 레슬링 사랑 열정으로 명맥 이어

일본 선수단을 이끌고 온 역도산의 손녀 모모타 레미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자.

니오 이노키와 우리나라 선수의 시합이 있는 날이면 모두 TV 앞에 모여 길거리도 한산했 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를 들 은 기억은 있다. 시합에 출전한 한국 프로레슬러들에게 ‘현실’에 대해 물어봤다. 현재 한국프로레슬 링연맹에 등록돼 활동하는 선수는 40명가량 이다. “우리끼리는 지리산 반달곰보다 우리 수가 더 적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조경호(27) 선수가 씁쓸해하며 말했다. 경기 때마다 일부 러 찾아오는 열성팬은 10명 정도라고 했다. “레슬링 경기 수입으로 생활이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다들 하는 일이 따로 있다” 고 대답했다. 그의 옆에 있던 ‘인간 어뢰’라 는 닉네임을 가진 김남훈(40) 선수는 이종격 투기 해설가 등으로 간간이 방송에 출연 중 이다.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임기영 심판 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저 런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선수도 있었다. 재래시장 복판에서 시합하게 된 데 대해 한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랑 비슷한 신 세 아닙니까.” 대형마트에 밀려 고전하고 있 는 시장과 오래 전에 사양 종목이 되어버린 한국 프로레슬링. 동병상련의 처지라는 얘기 였다. 김 선수는 “이런 곳에서 경기하면 관중

과 스킨십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웃어 보였다. 이날 시합에서 김 선수를 포함 해 두 명의 한국 선수는 레슬링화도 없이 일 반 운동화를 신고 경기를 치렀다. 전문 복장 으로 잔뜩 멋을 낸 일본 선수들과 대비됐다. 오후 5시 정각, 트로트 메들리 소리가 멈추 고 시장 번영회 부회장(장재균)의 쩌렁쩌렁 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여 러분, 능곡 전통시장은 여러분의 사랑에 보 답하고자 한가위를 맞이하여 국제 프로레슬 링 대회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북한에서도 지금 이 시간에 세계 프로레슬링 대회가 열 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바로 이곳에서 피가 터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레슬링 경기가 열립니다.” 1000여 명 관중으로 ‘흥행’ 성공 이 시장에서의 레슬링 대회는 이번이 두 번 째. 장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시합을 한 번 열 었는데 반응이 좋아 다시 기획했다”고 설명 했다. 1970년대 우시장으로 유명했던 능곡시 장은 여느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쇠 락의 길을 걸어왔다. 프로레슬링 시합에 대 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 정육점 주인은 “다른 것도 많은데 왜 하필 프로레슬링인지 모르겠

다”고 화를 냈다. 인기 연예인들을 불러야 장 사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장 부회장은 “지난해엔 젊은 층까지 포함해 많 은 사람이 왔다”고 얘기했지만 관중석에서 20, 30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오후 7시40분,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노래와 댄스 공연에 청테이프로 붙여놓은 바닥재가 다 뜯겨나간 상태에서 대회가 시작됐다. 링 바로 앞까지 관중이 가득 찰 정도로 ‘흥행’은 성공이었다. 50대 이상이 대부분이었지만 아 이들도 제법 모였다. 태권도복을 입은 초등 학생들이 링 바로 옆 미용실 창문 밖으로 머 리를 빼고 재잘거렸다. 식순의 마지막인 고양시장의 축사. “여러 분, 제가 빨리 축사를 마치시길 바라시죠. 꼭 한 말씀만 하자면 시장의 활성화가 ….” 한 주 민이 찬물을 끼얹었다. “아따, 고만하쇼!” 드디어 경기 시작. 100㎏이 넘어 보이는 두 거구가 서로를 노려보다 달려들어 서로 손으 로 가슴팍을 후려친다. 어설프게 적중한 드 롭킥보다 타이밍 맞춰 뒤로 자빠지는 상대의 ‘리액션’이 더 눈길을 끈다. 로프 반동을 이 용한 가격으로 육중한 육체들이 격렬하게 맞 붙었다. “어이 거기 앞에, 좀 앉아.” 할아버지 의 고함 소리와 자리 다툼, 말싸움을 벌이는 아저씨들의 시끌벅적함 속에서 분위기가 무 르익어갔다. 생계 걱정하던 선수들 영웅 변신 선수들은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땀으로 범벅 이 됐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다던 젊 은 프로레슬러는 로프 위로 올라가 두 손으 로 V자를 만들며 관객들 앞에 섰다. 돌고래  심판은 판정에 불만을 품은 일본 선수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서 있는 사람과 앉아 있는 사람의 경계는 무너진 지 오래. 여관 옆 청과물집 아들은 어 느새 진행 요원으로 둔갑해 노인들의 이동을 도왔다. 자리를 놓고 싸우던 아저씨들은 언 제 그랬느냐는 듯이 나란히 서서 동시에 팔 을 번쩍번쩍 치켜세웠다. 선수들은 이날 장 터의 영웅이었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선수의 손을 잡아당 겨 손등에 뽀뽀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요 즘 같은 때에 무슨 레슬링이냐”며 못마땅해 했던 정육점 주인도 가게를 정리하며 “저렇 게들 열심히 하는데. 내년에 다시 왔으면 좋 겠다”고 했다. 아버지 세대가 소년이었던 시절에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는 한국 프로레슬링은 그렇 게 변두리 장마당에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들 고 있었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어제와 오늘

60~70년대 인기 폭발  일본 선수 때려 눕히는 짜릿함에 열광 강승한 인턴기자

한국 프로레슬링의 발상지는 부산 국제종합 체육관이다. 1950년대 후반 그곳의 레슬링 사범인 장영철(1928~2006)은 일본에서 활동 하던 역도산(1924~63)을 보고 프로레슬링 선수를 꿈꾸며 독학으로 기술을 익혔다. 태 권도 사범 출신 천규덕(82)이 장영철의 도장 으로 들어와 60년대 초 부산에서 함께 레슬 링 경기를 열었다. 64년 동양방송(현 JTBC) 이 개국할 때 기념으로 레슬링 경기를 중계 했다. 김일(1929~2006)은 57년 일본에서 역도산 체육관의 문하생 1기로 들어가 60년대 초 일 본 및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휩쓸었다. 그는 역도산 피살 2년 뒤인 65년 12월에 한국으로

미국 선수와 대등히 맞서면 으쓱 부산서 시작  김일 귀국 후 전성기 옛 TBC 개국 땐 기념 중계방송 프로 스포츠 활성화로 사양길에

돌아왔다. 조선호텔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 에 전 매스컴이 모였다. 이때부터 박치기의 김일, 당수의 천규덕, 드롭킥의 장영철로 대 표되는 한국 프로레슬링 전설이 시작됐다. 프로레슬링은 주요 선수들이 가진 독특한 개성과 다양한 공격 기술로 인기몰이를 했 다.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시대를 겪은 한국 국민들은 일본 선수를 때려눕히고, 미국 선

수와 대등히 맞서는 한국 선수들에게 열광했 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팬이었다. 한ㆍ일전 이 꾸준히 열린 배경이다. 서울 장충체육관 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메카’가 됐다. 경기 날마다 8500석의 관중석이 가득 찼다. 한 외 국 선수가 김일에게 “내일 저녁 7분 내에 뼈 다귀만 추려서 병원으로 보내겠다”고 으름 장을 놓은 것이 일간지에 대서특필 되던 시절 이었다. 프로레슬링은 장영철의 ‘쇼’ 발언으로 한 때 위기를 맞았다. 65년 11월 28일. 5개국 친 선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장영철이 일본의 오 쿠마 모토시의 허리 꺾기에 비명을 지르자 그 의 제자 10명이 링 안으로 난입해 병 등으로 오쿠마를 마구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사건 은 경찰 수사로까지 번졌고, 장영철은 “프로

레슬링은 사전에 승패를 정하는 쇼”라고 진술 했다. 프로레슬링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 였다. 하지만 TV 판매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프로레슬링 중계 시청은 최고의 국민 오락이 됐다. 70년대 중반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71· 일본 참의원)의 대결에 전국민이 TV 앞에 모 여 앉았다. 그러나 80년대 초반부터 프로레슬링은 프 로 야구ㆍ축구ㆍ씨름의 인기에 밀려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77년에 데뷔한 김일의 제 자 이왕표(60) 선수는 “83년께부터 TV 중계 가 거의 끊어졌다”고 기억했다. 84년에 인기 의 부활을 노리며 천규덕ㆍ김광식 등이 출전 하는 극동헤비급 대회를 열었으나 대세를 되 돌릴 수는 없었다. 일본의 ‘반칙왕’들에게 억 울하게 당하다가 마지막 한 방으로 경기를 뒤

집는 유사한 패턴의 경기, 1세대 스타들의 뒤 를 이을 신진 육성의 실패, 오락성 뛰어난 미 국 프로레슬링의 인기 등 몰락의 이유는 다 양했다. 그 결과 격투 스포츠 중에서도 UFC 등의 이종격투기에 밀리며 찬밥 신세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프로레슬 러는 40명 안팎. 선수 대부분은 별도의 생 계 수단을 가지고 있다. 방송 출연ㆍ호텔 관 리ㆍ음식점 모델 등 일의 종류는 다양하다. 매년 한 차례 고양시에서 주최하는 대회가 있고, 종종 비정규 대회가 열린다. 오는 10월 에는 김일 타계 8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인 전 남 고흥에서 국제대회가 열린다. 이왕표 선 수는 “대회 입장 수입을 통해 프로레슬링이 자생할 수 있는 길을 트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Focus 11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알록달록 가지각색, 8도 송편 지도

감자송편

서울송편

노비송편

도토리호박칡  송편 재료 무궁무진 평양 가서 조개송편 먹을 날 언제일까 <강원>

<충청>

<경상>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의 절식(節食)은 뭐니 뭐니 해도 송편이다. 솔잎을 깔고 쪄낸 떡이 라 하여 송편이다. 송편을 찔 때 켜마다 솔잎 을 깔면 송편이 서로 들러붙지 않는다. 또 솔 잎엔 ‘산의 정기(精氣)’로 통하는 피톤치드 가 들어 있다. 우리 조상은 송편을 먹으면 소 나무처럼 건강해진다고 여겼다. 송편 피의 주재료인 멥쌀가루에 무엇을 첨 가하느냐, 소로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송편 의 이름이 정해진다. 멥쌀가루에 모싯잎 찧은 것을 섞어 반죽하면 모싯잎 송편, 송기·도토 리가루·칡가루·호박가루를 섞으면 송기·도 토리·칡·호박 송편이다.

에 쪄내면 속이 비친다. 식감은 차지고 쫀득 쫀득하다. 감자를 직접 갈아서 나온 앙금과 건더기로 반죽을 만들기도 한다. 감자송편은 충청도·경상도·함경도에서도 만들어 먹는다. 메밀가루와 멥쌀을 섞어 피를 만들고 소로 무생채를 넣은 무송편도 강원도의 맛이다. 충청도의 대표 송편은 호박송편이다. 늙은 호박을 썰어 말려 뒀다가 가루로 만들거나 찐 호박을 으깬 다음 멥쌀가루와 섞고 반죽 해 피를 만든다. 호박의 노란색이 선명해 볼 품도 좋다. 빚을 때도 호박 모양으로 빚는다. 호박 특유의 달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재 료로 사용된 호박은 육식을 즐기는 현대인에 게 부족하기 쉬운 식이섬유가 풍부해 건강식 으로도 인기다.

속이 훤히 비치는 감자 송편 각 지역마다 송편 만드는 법이 독특하다. 그 래서 ‘8도(八道) 송편’이다. 서울 송편은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 고 귀엽다. ‘서울 깍쟁이’란 말을 들을 만하 다. 오미자·치자·송기·쑥 등을 이용해 다섯 가지 색깔을 낸 오색(五色) 송편이 있다. 조개 모양으로 빚어낸다. 강원도에선 도토리송편·감자송편·무송편 을 즐겼다. 강원도에서 유독 많이 생산되는 천연 식재료를 이용한 것이다. 도토리송편은 멥쌀가루와 도토리가루를 3대 1 비율로 섞은 반죽으로 피를 만들고 다양한 소를 넣어 빚 어낸다. 도토리 특유의 갈색 빛이 난다. 도토 리 향도 배어 멥쌀만으로 피를 만든 송편보 다 구수하다. 도토리에 풍부한 아콘산(酸)은 국내의 한 연구에서 체내에 쌓인 중금속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토리의 껍질을 까서 잘 말린 뒤 절구로 빻은 것을 물에 오래 담가두면 떫은맛 성분 인 타닌을 우려낼 수 있다. 앙금과 물이 분리 되면 웃물만 따라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친 뒤 가라앉은 앙금을 잘 말리면 하얀 가루를 얻을 수 있다. 이게 바로 도토리가루(녹말가 루)다. 감자송편은 감자 녹말로 피를 만들고 삶 은 감자를 소로 넣어 만든 것이다. 다른 송편 처럼 반달 모양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반죽을 꾹 눌러 네모나게 만든다. 반죽을 만들 때도 멥쌀가루는 넣지 않고 감자 녹말만 이용한 다. 반죽을 오롯이 감자 녹말로만 만들어 일 반 송편과는 달리 반죽이 반투명하다. 찜통

쉬 상하거나 굳지 않는 모싯잎 송편 전라도는 ‘음식의 고장’답게 송편도 다양하 고 화려하다. 치자·쑥·송기·포도즙·오미자즙 등 천연 재료로 색을 내어 반죽한 꽃송편이 있다. 꽃 모양으로 빚어 꽃송편이다. 매화송 편이라고도 불린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처럼 꽃송편은 외양은 물론 맛 도 기막힌 떡이다. 멥쌀가루에 삶은 모싯잎을 넣어 피를 만든 모싯잎 송편은 식감이 쫄깃쫄깃하다. 소로 넣은 살구색 콩은 달콤한 맛을 더해준다. 한 귀정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가공이용 과장은 “전라도에선 과거에 머슴들에게 나 눠주기 위해 주먹만 한 ‘노비송편’을 만들었 다”며 “여기에 푸른 모싯잎을 넣은 것이 전남 영광·고흥 등의 특산물인 모싯잎 송편”이라 고 소개한다. 모싯잎을 반죽에 넣으면 송편이 쉽게 상하 거나 굳어지지 않는다. 모싯잎의 항균(抗菌) 효과 덕분이다. 모싯잎엔 지방 흡수를 억제 하는 성분이 있어 과식하기 쉬운 추석에 권 할 만한 음식이다. 또 모싯잎엔 철분이 풍부 해 빈혈 예방을 돕는다는 입소문도 났다. 요 즘 모싯잎 송편은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다. 전라도엔 삐삐떡(삘기송편)이란 고유의 질 긴 맛 송편도 있다. 삘기는 여러해살이 풀인 띠 의 어린 새순으로 들치근한 맛이 난다. 이 송 편의 피는 멥쌀가루와 삘기를 섞어 만든다. 경상도에서도 전라도처럼 모싯잎 송편을 즐겨 먹는다. 삶은 모싯잎을 멥쌀가루에 섞어 반죽한 뒤 꿀에 재어둔 밤·콩·대추 등을 소로 넣은 송편이다. 대개 참기름에 발라 감잎에 싸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서 먹는다. 경북의 산간 지역에서 나는 칡을 이용해 만든 칡송편도 경상도 송편이다. 송편 모양이 큼직하고 투박한 것이 특징이다. 제주송편은 동글납작한 비행접시처럼 생 겼다. 대개 완두콩을 소로 넣는다. 조개송편엔 조개가 없더라 황해도에선 송편을 빚을 때 손바닥에 가득하 게 빚는다. ‘얄밉다’는 서울 송편보다 5배 정 도는 크다. 넓적하게 반달형으로 만든 뒤 손가 락 자국을 내어 찐다. 껍데기 먹자는 송편, 속 먹자는 만두란 말은 황해도의 큰 송편에서 유 래했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은 “대체로 북쪽지방은 송편을 크게 만들며 서울 이나 경기도에선 작게 빚는다”고 설명했다. 평안도 해안지방에선 ‘모시조개가 많이

서울 송편은 한입에 쏙 귀요미 도토리송편엔 중금속 제거 효과도 경상도 송편은 크고 투박한 게 특징 제주선 동글납작한 비행접시 모양

잡힐 것’을 기원하며 모시조개 모양으로 송 편을 예쁘게 빚었다. ‘조개가 없는’ 조개송 편이다. 볶아서 찐 깨를 설탕·간장으로 버무 려서 소를 만든다.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산간벽지인 함경도 에선 감자가 쉽게 얼곤 한다. 이런 지역적 특 성을 고려해 만든 떡이 언감자송편이다. 언 감자로 가루를 만들어 익반죽(가루에 끓는 물을 뿌려 가며 하는 반죽)해 치댄 다음, 소 로 팥을 넣고 송편처럼 빚는다. 이애란 북한 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은 “팥이 많이 나 는 황해도에선 송편의 소로 팥을 주로 넣는 다”며 “북한의 다른 지방에선 단콩·설탕·볶 은 들깨 등을 소로 쓴다”고 말했다. 송편은 다른 명절에도 먹는 떡 송편은 추석에만 먹는 떡은 아니다. 이애란 원장은 “북한에선 송편을 다른 명절 때도 많 이 만들어 먹는다”고 전했다. 지역에 따라 음력 2월 초하루인 중화절(中 和節)에 송편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과거에 중화절은 농사철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이었 다. ‘머슴날’ ‘노비일’이라고도 불렀다. 이날

머슴·노비들에게 ‘농사일을 잘해 달라’며 큼 지막하게 빚은 송편을 나이 수대로 나눠줬다. 이 송편이 ‘노비송편’ 또는 ‘나이떡’이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도문대작(屠門 大嚼)이란 책에서 “송편은 봄에 먹는 떡”이 라고 썼다. 설날, 정월 대보름날, 3월 삼짇날, 매밀총떡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절에도 송편 을 빚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러나 송편은 역시 가을에 먹어야 제맛이 다.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 내에서 온다”는 말도 있다. 추석 때 먹는 송 편을 ‘오려송편’이라 했다. ‘오려’는 올벼(햅 쌀)를 뜻한다. 우리 민족이 봄·가을에 간식거리로 즐겨 먹는 떡으론 송편 외에 개피떡이 있다. 개피 떡은 성질이 따뜻하고 송편은 서늘하다. 그 제주빙떡 래서 봄엔 송편이 먼저 나오고 개피떡이 나 중에 등장하는 것과 정반대로 가을엔 개피 떡 먼저, 송편 나중이다. 인절미도 우리 선조들이 추석 전후로 즐겨 먹은 떡이다. 차진 찰떡을 늘려서 끊은 맛있 는 떡이란 데서 인절미란 이름이 붙었다. 여주 산병, 메밀총떡, 제주빙떡, 송기떡 등도 조상 함경 평안 들이 추석이나 명절에 즐겨 먹은 떡들이다. 언감자송편 조개송편 예부터 처녀들이 송편을 예쁘게 빚으 강원 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임신부가 도토리송편 황해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송기떡 감자송편 큰송편 낳는다고 하여 송편 빚기에 정성을 무송편 다했다. 윤숙자 소장은 “덜 익은 송편을 서울 깨물면 딸을 낳고 잘 익은 송편을 오색(五色) 송편 깨물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여 임신부들이 찐 송편을 일부러 충청 씹어보기도 했다”며 “송편 속 호박송편 에 솔잎을 가로로 넣고 찐 다음 한 8도 송편 대전 감자송편 쪽을 깨물어서 솔잎의 귀 쪽이면 딸 이고, 뾰족한 끝 쪽이 오면 아들을 낳 는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영남 호남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 칡송편 꽃송편(매화송편) 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푼주 송편꿀떡 모싯잎송편 (넓고 밑이 좁은 사기그릇)처럼 감자송편 삐삐떡(삘기송편) 비싼 그릇에 담긴 송편이라 할지 라도 정성과 사랑이 담기지 않으 면 볼품없는 주발 뚜껑에 담긴 송편보다 맛이 좋을 리 없다 는 뜻이다. 추석에 가족끼리 도 제주 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먹는 제주송편 정성 가득한 송편이 바로 솔변 그 맛일 것이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여주산병


12 Focus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의경 구타 없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병영폭력 해법’

병영 개혁은 의식의지 문제  군 수뇌가 전면에 나서라 지난 1일 경기경찰청 제2청의 의무경찰(의 경) 선발에는 27명 모집에 748명이 몰렸다. 27.7대 1의 경쟁이 벌어졌다. 요즘 각 지방경 찰청별로 매달 한 차례 뽑는 의경시험 경쟁 률이 20대 1이 넘는 일은 예사다. 30대 1을 웃도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 도 의경 지원자가 부족해 경찰관들이 홍보 에 나서기도 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의경 부대에서 는 구타나 가혹행위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 이다. 이러한 의경 개혁의 핵심에 조현오(59사 진) 전 경찰청장이 있었다. 그는 2011년 1월 26일 전국의 전·의경 중 입대 6개월이 지나지 않은 4581명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개 인 짐을 모두 챙겨서 오도록 지시했다. 구타 나 가혹행위에 대한 피해조사를 벌여 피해자 300여 명을 곧바로 다른 부대로 보냈다. 가해 자와 관리 책임자에 대한 조사도 벌였다. 분 대별로 선임 대원 중에서 한 명을 분대장으 로 임명해 그가 아닌 다른 선임은 후임 대원 에게 업무와 생활에 대한 지시나 명령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같은 지침을 잘 이행한 경 찰관은 특진시켰고, 어긴 이는 징계했다. 10 명의 경찰 간부로 ‘전·의경 복무점검단’을 구 성해 암행 감찰을 하도록 했다. 매달 수십여 건에 달했던 구타·가혹 행위 건수는 이른바 ‘조현오식 개혁’을 밀어붙인 지 6개월 만에 한 달 평균 1건 이하로 크게 줄었다. 조 전 청장을 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그 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 령 비자금 계좌 발언’ 사건으로 재판에서 징 역 8월형(사자 명예훼손죄)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 5월 만기 출소했다. 오피스텔에 마련한 개인 공간에서 주로 책을 읽으며 지낸다고 했 다. 재판에 대한 얘기는 뒷날로 미루고 의경 개혁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눴다. 전국 신참 의경 한데 모아 피해 조사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 작업을 왜 시작했나. “경찰관 수에 치안 상태를 대비해보면 우 리나라 경찰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경 찰 조직이다. 치안 수요를 따져보면 사실 기 적에 가깝다. 그런데 국민이 경찰에 보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유 중 하나가 전·의경 부대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빈번히 일어 난다는 점이었다. 본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고 생각했다.”

Weather

-좀 더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나. “경찰청장 취임(2010년 8월) 뒤 전·의경 부 대에서 자살사건 등 사고가 계속 일어났다. 그러다 2011년 1월에 강원경찰청 소속 307 전 경대에서 선임 대원의 괴롭힘 때문에 대원 6 명이 집단으로 탈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위기가 기회’라고 마음먹었다. 우선 307 전 경대를 해체하기로 결심했다. 내 의지를 분 명히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전경부대 하나 해체는 일반인이 짐작하는 것보다 지방경찰 청에는 큰 충격이 간다. 시위나 시설경비 인 력이 크게 줄어 여간 힘들어지는 게 아니다.” (군 훈련소에서 무작위로 차출되던 전투경 찰(전경)은 국방부의 군 인력 개편 계획에 따 라 2013년 9월에 사라졌다.) -당시 과정을 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해나갔다. 평소에 구타 근절에 대한 생 각을 많이 하고 있었나.

전경대원 집단 탈영에 개혁 시동 기강해이 우려, 안팎서 강력 반발 부대 해체 충격 요법으로 돌파 ‘무엇이 강군을 만드나’ 고민해야

“대학(고려대 정외과 75학번) 다닐 때 월 남전 참전 선배로부터 한국 군대와 미국 군 대를 비교하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군은 매 일 ‘빠따’를 때리고 맞는데, 미군은 완전히 군기 빠진 군대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전투 현장에선 지휘관이 ‘돌격 앞으로’ 를 외치면 미군은 절반 정도가 앞으로 진격 하는데, 한국군은 절반 이상이 미적거렸다 고 했다. 선배는 한국군에는 ‘저(지휘관이나 선임병)는 안 가고 나더러 가라 한다’는 생각 이 팽배한 반면 미군은 ‘국가가 나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고 전했다. 전·의경을 지휘하는 경비부서에 서 근무할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그 래서 내가 관리하고 지휘하는 전·의경 부대 에서만큼은 바꿔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맑음 구름 조금 구름 시 많음 그러다 경찰청장이 된 뒤 작심하고 개혁을 도했다.” -개혁에 가장 큰 어려움은 뭐였나.

최정동 기자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의식의 문제였다. 내가 일선 경찰관 생활 강이 나빠져 시위나 경비에 효과적으로 대 을 하는 동안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전·의경 관 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리 철저’라는 경찰청장 특별지시가 내려왔다. 후배 간부들도 공공연히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쪽에서 ‘너무 많이 나간 이런 관행 때문에 ‘어차피 바꾸기 힘든 일’이 다’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당시 대 라는 사고가 경찰 조직에 퍼져 있었다.” 통령(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런 내용의 보고 를 받고도 묵묵히 지켜봐 준 것이 큰 도움이 눈 흐려져 비 눈 또는 비 흐림 우려 비 / 소나기 등 됐다.” 비 / 천둥 흐려짐 흐린 후 갬 민정수석실서도 “너무 나간다” -반발은 없었나. 당시 경찰청 간부에 따르면 회의에서 “우 “왜 없었겠나. 그런 식으로 운영하면 기 리나라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26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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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졸업 후 81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외교관이 눈후갬 비 후 갬 서울 종암경찰서장, 아닌안개 경찰에 투신해 경찰청 경비

국장,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을 지냈다. 영국 케임 브리지대 법학 석사. 기본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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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30/22)

달뜸 16시 40분 달짐 02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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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오 1955년 부산 출생. 부산고·고려대(정치외교

2014년 9월 7일 일요일, 음력 2014년 8월 14일

일요일(최고/최저기온)

서울 인천 수원 철원 청주 대전 춘천 강릉 대구 창원 포항 울산 부산 전주 광주

전·의경 자살률이 10만 명당 24명이다. 따지 고 보면 전·의경 관리가 제도나 시스템적으 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 고 위 간부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집회나 시위 대응에 문제가 발생 하지는 않았나. “과거의 집회·시위 대응에서 전·의경들이 시민을 방패로 찍거나 농민을 발로 차 문제 를 일으킨 적이 꽤 있었다. 구타나 가혹행위 때문에 불평·불만에 가득 찬 대원들이 이에 대한 분풀이 성격으로 현장에서 난폭한 행 동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작전 뒤 선임 대 원들에게 ‘게으름 피운다’는 이유로 욕을 먹 거나 맞지 않으려고 과잉행동을 하기도 했다. 구타·가혹 행위가 줄어든 뒤 이런 문제도 획 기적으로 개선됐다.” -요즘 군이 구타 문제로 사회적 지탄의 대 상이 됐나. 군에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적과 전투를 해야 하는 군과 시설 경비나 시위 대응을 하는 의경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 기 확립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 전투에서 이기는 부 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 해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돌격 앞 으로’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오히려 총 구를 평소에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병이나 상 관에게 겨누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이 진 정한 강군을 만드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의지만 있다면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 가 앞장서야 한다. 그들이 우선 개혁에 대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본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의경을 지원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군 입대를 피하려고 선택하는 측면도 있다. 이 를 어떻게 보나. “좋은 인력의 효율적 배치 측면에서 국가 가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일이다. 국가 재정의 문제 때문에 미뤄지고 있지만 형편이 되는대로 의경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직업 경 찰관을 늘리는 게 옳다.”

고 저 고

저 고

(주)웨더아이 제공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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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불공정 논란에 선 디지털 음원시장

한곡 스트리밍 서비스 때 ‘소녀시대’ 1명 당 수입 0.1원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2014년 최저시급 5210원. 가수가 그 돈을 음 원팔아 벌려면 965명이 다운로드 해주거나 43416명이 스트리밍 해주면 된다. 이 정도면 음악을 할 이유가 있을까?” 지난 4월 록그룹 시나위 리더이자 우리나 라 대표 기타리스트 신대철(47)씨가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퍼져 나갔다. 신씨는 “당신 자식이 음악 을 한다고 하면 말려야 한다”며 창작자에게 정당한 수익이 배분되지 않는 음악계의 현실 에 대해 비판했다. 디지털 음악 서비스는 온 국민의 필수 애플 리케이션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버스나 지 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물론 사무실에서도 스 마트폰으로 디지털 음악을 즐긴다. 하지만 음 악인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전(錢)’ 단위 에 불과하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음날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 온 글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2002년부터 두 장의 앨범을 낸 인디밴드 뮤지션이라고 소개 한 익명의 게시자는 자신의 음원수익 내역을 공개했다. 그는 “제 노래 2곡이 다운로드됐는데 저 한테는 35원을 주네요. 스트리밍(디지털 재 생) 97번에 제 정산금액은 662원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창작물을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유통구조로 소비자에게 보급하면 도대체 이 나라에 창작가들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모르 겠지만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고 열심히 노 력하는 음악인들에게 합당한 이익이 창출될 수 있는 구조가 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첫 단추 잘못 꿴 디지털 음악 시장 199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 음악시장은 처 음이자 마지막 전성기를 맞았다. 서태지, 김 건모, 신승훈 같은 가수들은 이른바 ‘길보 드’ 불법 복제 카세트테이프 판매를 제외하 고도 100만장이 넘는 음반을 팔아 치웠다. 하지만 빛이 밝았던 만큼 어둠도 깊었다. 빠른 속도로 소비되는 댄스음악이 유행하고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를 맞으면서 시장이 급 격히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 매체는 전통적인 카세트테이프나 레코드판, 컴팩트 디스크(CD) 대신 컴퓨터와 mp3 플레이어로 하루아침에 옮아갔다. 이 같은 추세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 었다. P2P(peer to peer)방식의 디지털 공유 기술을 이용한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인 냅스 터가 출현했고 우리나라에선 이를 본 따 ‘소

리바다’ 서비스가 탄생했다. 더 이상 음반을 구입하지 않아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 가 열린 것이다. 대형 음반사와 기획사, 오프라인 음반판매 상이 갖고 있던 음악유통의 주도권은 디지털 유통기반을 갖춘 인터넷기업으로 넘어갔다. ‘싸이월드’ 등 인터넷 미니 홈페이지 배경음 악과 휴대전화 벨소리·연결음이 각축하던 시 대를 거쳐 디지털 음악 플랫폼은 스마트폰으 로 정착됐다. 현재 음악 소비자들은 저작권료를 내지 않 는 불법 다운로드 음악을 스마트폰에 넣어 듣 거나(전체 이용자 중 절반 정도로 추산) 대부 분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를 이용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란 디지털 음원을 직접 구매 하지 않고 음원 서비스업체의 서버에서 휴대 전화망이나 와이파이로 전송해 듣는 방식이 다. 우리나라 유료 음악시장에서 스트리밍 서 비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90%가 넘는다. 휴대전화가 디지털음악의 주된 플랫폼으 로 자리잡으면서 음악시장은 이동통신사들 이 주도하게 됐다. 이동통신과 휴대전화 산업 을 국가 경제개발 모델로 삼은 정부 정책도 일조했다. 현재 디지털음악시장에서 65%의 시장점 유율을 갖고 있는 ‘멜론’은 SK텔레콤의 콘 텐트사업에서 출발했다. 멜론은 다른 나라 에 비해 일찍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유무선 초고속인터넷망에 주목했다. 불법 다운로드가 대부분이었던 상황에서 유료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에 스 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서비 스를 개발한 것이다. 이른바 월정액 음원대 여업(Monthly Rental)이란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났다. 공짜음악에 길들여져 있던 소비자 들이 주머니를 열게 하기 위해선 값싼 상품 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헐값 논란 을 피하기 위해 월 6000원(실제론 각종 프로 모션으로 반값 결제)에 무제한 스트리밍 음 악을 들을 수 있는 ‘무제한 정액제’를 폐지했 다. 하지만 여전히 창작자(작사·작곡가, 가수, 연주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비현실적일 정 도로 적다. 2000년대 초 냅스터로 홍역을 겪었던 미국 과 유럽 등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 다. 2000년 세계적 록그룹 메탈리카는 냅스터 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미국 연방지방법원 에 고소했다. 데뷔 이후 수천만장의 음반을 팔 아치운 ‘억만장자’ 록그룹이 일개 벤처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자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하 지만 이 소송은 결과적으로 디지털 시대 창작

디지털 음원 수익 배분 어떻게 되나 연주자 18원

가수 18원 작사가 30원

작사가(100명) 150원

가수(100명) 90원

작곡가(100명) 150원

연주자(100명) 90원

작곡가 30원

제작사

600원

유통사

264원

1200원

제작사

3000원 1320원

유통사

240원

다운로드 했을 때(곡당 600원 기준)

스트리밍 했을 때(한 달 100곡 당 3000원 기준)

우리나라 음원 유통 구조는 오프라인 도·소매상

제작자

기획자

CD·LP·TAPE

소비자

(전통적 유통방식, 사실상 고사 상태) 작사 작곡가

가수

온라인 연주자

창작자

디지털음원(콘텐트) MP3, WMA, ACC 등 불법 다운로드 (전체시장의 50% 추산)

작사작곡자가 받는 돈은 각 1.5원 ‘월정액 100곡’ 서비스에 예술 멍들어 음반 시장은 죽고 음원은 돈 안 돼 뮤지션들 손 놓으면 음악계 공멸 정부서 공정시장생태계 조성해야

음원중계업체 로엔엔터테인먼트, CJ E&M, KT 뮤직, 네오위즈인터넷 등 대기업

물의 가치를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으로 디 지털음악 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하면서 디지 털음악을 유료로 구입할 수 있는 ‘아이튠즈’ 생태계를 정착시켰다. 아이튠즈는 창작자와 유통사의 수익배분비율을 7대3으로 정했고, 이후 등장한 경쟁 서비스들도 이 비율을 따 라갔다. 유무선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이 우리나라에 비해 더뎌 스트리밍 서비스가 늦 게 등장한 것도 도움이 됐다. 최근 스포티파 이(www.spotify.com) 등 스트리밍 서비스 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미국에선 오프라인 음 반시장과 온라인 다운로드 시장이 비교적 건 실하게 유지되고 있다. ‘생산자’가 가격 결정에 참여 못 해 창작자의 권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신 대철씨는 지난 4월부터 ‘바른음원유통협동 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신씨가 던진 물 음은 ‘왜 유독 음악시장에서만 생산자가 가 격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가’라는 것이다. 음원수익에서 유통수수료 명목으로 멜론

음원사이트 멜론, 지니, 엠넷, 벅스뮤직 등 대형사이트 (SKT, KT, LG U+ 등 이동통신사 영향력 높음)

소비자 PC, MP3 플레이어, 스마트폰 등

등 대형 음원사이트들이 가져가는 비율은 한 때 60%에 달했다. 지금은 40%까지 떨어졌지 만 창작자들은 여전히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신씨는 스페인 프로축구단 FC바르셀로나, 통신사 AP통신처럼 협동조합 방식의 대안적 음원사이트를 개발 중이다. 대형 음원사이트 에 비해 적은 유통수수료만 가져가고 나머지 는 창작자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신씨는 “세상 어느 유통업체가 40% 마진 을 남기고 물건을 파느냐”며 “더 비싸게 팔고 적게 이윤을 남겨도 소비자들에게 유리하다 는 것을 보여주면 현재의 대형 음원사이트들 이 얼마나 과도하게 수익을 보고 있는지 증명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저작권사용료 징수규정에 따르면 디 지털 음원의 수익은 제작사가 44%, 유통사 (음원사이트)가 40%를 가져가도록 돼 있다. 작곡·작사가가 각 5%, 가수와 연주자 등 이 른바 실연자는 각 3%를 가져간다. 소비자가 600원을 내고 음악을 다운로드 받으면 제작사와 유통사가 504원을 떼 가고 작사·작곡가는 각 30원, 가수와 연주자는 각

공연계도 저작권 놓고 잡음

음악 저작권협, 사용료 대충 징수정산  공연단체도 창작자도 불만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저작권 사용료는 당연히 줘야 하지만 차라 리 아티스트에게 직접 주는 게 낫겠습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의 징수 규정은 공정하지 않아요.” 올해 8회째를 맞는 ‘월드 DJ 페스티벌(월 디페)’ 기획자 류재현(49) 감독은 “음저협이 주먹구구식으로 사용료를 받아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류 감독은 지난 6월 법원으로부터 100만원 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공연에서 DJ DOC 멤버 이하늘이 ‘나 이런 사람이야’ 등 몇 곡을 불렀는데, 음저협 측이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며 형사고소했기 때문이다. 음 수수료는 19%나 받아 챙기면서 저협은 월디페 측에 저작권료 4000만원을 내 사용료 징수 뚜렷한 기준 없어 라며 민사소송도 냈다. 협회선 “정확한 요율 산정 어려워” 류 감독은 “140팀 가운데 한 팀이 음저협 이 저작권 신탁관리를 하는 곡을 연주했다 ‘제2 저작권 신탁기관’ 곧 출범 는 이유로 전체 공연수입의 3% 가까운 사 용료를 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사 용된 곡 파악도 인터넷 후기를 근거로 주장 하는 등 엉성한 잣대를 들이댔다”고 주장 훈 대리는 “월디페의 경우 사용료 징수가 원 했다. 활히 이뤄지지 않았고 주최측 자료의 신빙 음저협 징수규정에 따르면 음악공연에서 성이 떨어져 요율산정을 할 수 없었기 때문 의 저작권 사용료는 전체 공연 매출액의 3% 에 3% 전체에 가까운 사용료 징수소송을 낸 가운데 공연에 사용된 음저협 등록곡 비율 것”이라고 반박했다. 만큼을 내도록 돼 있다. 음저협 홍보팀 박상 음악 저작권을 둘러싼 갈등은 최근 활성

화되고 있는 각종 페스티벌과 공연으로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음원 수익배분을 둘러 싼 갈등이 창작자와 유통사 간의 문제라면, 공연 관련 갈등은 창작자의 저작권 신탁기 관인 음저협과 공연 기획자들 사이에 벌어 진다. 공연 기획자들은 음저협이 주먹구구식 징 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요율 산정도 없이 미리 ‘딜(deal)’을 한다는 주장 도 있다. 공연에 앞서 일정금액을 미리 정해 놓는다는 것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길거리 공연인 ‘버스킹’까지 일일이 무슨 곡을 부르 는지 확인할 수 없어 미리 몇 곡 정도를 부를 것 같다고 얘기한 뒤 금액을 정한다”며 “용인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상을 참작해달라 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료 징수대상 기준도 논란이 많다. 자 라섬 재즈페스티벌 계명국 사무국장은 “재 즈는 ‘스탠더드’라고 부르는 원곡을 재해석 하거나 편곡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 를 들어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 같은 곡은 공연자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더라도 원곡을 신고해야 한다”고 어 려움을 털어놨다. 신고하는 곡이 워낙 많아 협회에 등록된 곡이 맞은 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계 사무 국장은 “협회 홈페이지에서 검색이 안 돼 문 의를 하면 협회는 ‘내부 리스트가 있다’고 하


Special Report 15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유통 협동조합 준비하는 뮤지션 신대철

뮤지션은 정당한 대가 받고 소비자는 돈 덜 내게 할 수 있어

음원 유통은 유통사와 개인의 사인(私人) 계 약으로만 여겨져 왔지만 실제론 창작자 집단 전체와 거대 유통사와의 관계”라며 “개별적 저작권 계약방식보다 음악산업 전체의 균형 을 맞출 수 있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업 아닌 문화 차원서 정책 마련해야 큰 돈을 들여서 음악을 만들어봐야 음반은 팔리지 않고 디지털 음원으론 수익을 낼 수 없다 보니 대중음악인들은 ‘공 들인’ 음악을 만들 엄두를 못 낸다. 올 상반기와 하반기 1, 2부로 나눠 정규 11 집 앨범을 출시할 예정이던 가수 이승환은 하반기 앨범 발매 계획을 포기했다. 그는 최 근 라디오에 출연해 “11집 전(前)편을 정산했 는데 6억5000만원을 들여 4억5000만원을 손 해 봤다.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하고 체념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앨범을 내는 게 악수(惡手)가 되는 이상한 게임처럼 돼 버렸 다”고 말했다. 대중음악계에선 이대로라면 창작자들이 더

는데 정말 그런 지 확인도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저작권 사용료가 제대로 걷히고 있는 지 알기 위해 각 공연별 사용료 징수내역을 음저협에 문의했지만 협회 측은 ‘내부자료’ 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협회는 징수한 사용 료 가운데 19%를 수수료로 떼고 저작권자들 에게 지급한다. 음악계에선 “창작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음저협이 대형 유통사들에겐 제 목소리를 내 지 못하고 군소 공연기획자들을 상대로 과도 한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비판을 한다. 한 중견 뮤지션은 “음저협이 저작권료를 지 급하고 있지만 제대로 정산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작은 공연기획자들과 함께 일하

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음저협에 대해 불 만을 터뜨리면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 했다.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나오는데도 주무부 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저작권법에 따라 신탁단체의 징수규정 제· 개정 문제는 문화부장관이 승인만 할 뿐, 개 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화부 김지희 사무 관은 “저작권 문제는 양자 간의 사적 영역” 이라며 “정부가 개입하기보단 자율에 맡기는 맡기는 게 옳다”고 말했다. 하지만 음원 판매에선 대형 유통사가, 공 연에선 음저협이 과도한 수익을 가져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저작권사용료 징수규정

이 합리적인지 문화부가 따져봐야 한다는 비 판이 나온다. 그 동안 단일기관이 저작권신탁업무를 하 면서 잡음이 적지 않아 저작권신탁기관도 복 수 경쟁체제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에 따라 ‘제2 신탁기관’을 표방한 ‘함께하 는 음악저작인협회’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1970년대 유명 포크듀오 ‘사월과 오월’ 멤버 였던 백순진(65) 이사장이 만든 단체다. ‘함 께하는 음악저작인협회’ 김종진 전무이사 는 “그간 음저협의 공이 컸던 게 사실이지만 투명하고 합리적인 사용료 징수와 저작권자, 사용자 모두의 이익을 위해 경쟁체제가 바람 직하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면 한 곡당 가 격이 3.6원(월 6000원, 1000회 이용 기준) 이에요. 3.6원짜리 물건을 어디에서 보신 적 있나요? 편의점 비닐봉투 1장에 20원 이고, 공중화장실에 있는 종이타월이 한 장에 4원이죠. 우리나라에 음악보다 싼 상품은 없어요.” 지난 1일 서울 논현동 연습실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신대철(47·사진)씨의 손가락 사이엔 피크(pick) 대신 담배가 들려 있 었다. 그는 “음악의 길을 걷겠다는 후배들에 게 칠판 가득하게 음악을 해서 먹고 살 수 없는 이유를 적어주면서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낮은 목소 리였지만 힘이 서렸다.

중앙포토

18원씩 받는다. 시장의 대부분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창 작자의 수익은 더 처참해진다. 소비자가 월 3000원을 내고 100곡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 용할 때 1곡 당 작곡·작사가 1명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각각 1.5원, 가수 1명이 받을 수 있는 수 익은 0.9원에 불과하다. 밴드나 아이돌그룹의 경우에도 1명으로 치기 때문에 9명으로 구성 된 소녀시대 멤버 1명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 해 한 달에 받을 수 있는 돈은 0.1원이다. 여기서 디지털 음원시장의 함정이 드러난 다. 월정액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 통사는 창작자 개인과 1대1로 수익을 나누는 것 같지만, 소비자가 월 100곡을 들으면 100 명의 창작자와 1대100으로 나누는 셈이기 때 문이다. 즉, 월 3000원짜리 스트리밍 100곡 을 들으면 1곡 기준 작곡가가수 등 창작자들 에게 총 16%의 수익이 돌아가는 것 처럼 보 이지만 실제론 100곡으로 나눈 0.16%씩만 지 급되는 것이다. 대중예술인 권익보호운동을 하고 있는 예 술인소셜유니온 김상철 정책위원은 “그 동안

이상 창작을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수익을 내고 있는 유통사들도 ‘팔 물건이 없 는’ 시장의 실패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왜곡된 시장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 차원 의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시 장경제에서 이익을 내려면 지속가능한 시장 이 있어야 한다”며 “소비자들은 좋은 음악에 대해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려는 태도를 가져 야 하고, 정부는 한류같이 민간영역에서 성 공한 분야에 숟가락만 올려놓으려 하지 말고 공정한 시장과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장기 정책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배분과 관련해 유통사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서로 “우리 권한이 아니 다”라며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하다. 문화부 저작권산업과 관계자는 “사용료 징수규정 은 이해당사자가 합의한 것을 문화부가 승 인하는 것 뿐”이라며 “정부 입장에선 창작자 와 소비자, 유통사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1위 유통사인 로엔엔터인먼트(멜론) 관계자도 “가격결정 권은 사업자에게 있는 게 아니라 문화부에 있다”며 “40%의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하지 만 마케팅 비용이나 결제수수료 등을 감안 하면 우리가 많은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서 음원유통구조 개선논의를 제기 한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창작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 운동과 함께 정부도 물가관리나 차세대 성장 동력 개발 등 경제관점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문화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 가 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처음부터 꼬인 시장을 하루 아침에 고칠 수 없다면 당장 클 라우드 펀드나 창작 바우처 제도 등을 도입해 창작자들에게 단기적인 재정지원을 하는 방 안도 검토해볼 만 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창작물에 매겨지는 가격 이 워낙 헐값이라는 데 있다는 지적도 나온 다. 스트리밍 중심의 시장이 고착화되면서 저가정책에 소비자들이 길들여졌고, 헐값이 나 다름없는 음원수익에서 10~20%를 나눠 가진들 다수의 창작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서교음악자치회 이준상 회장은 “독과점 유통사들이 헐값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 에서 군소 유통사들은 독과점 업체의 비즈니 스모델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며 “바른음 원유통조합 같은 대안 유통이 자리를 잡고 경쟁할 수 있어야 시장의 왜곡이 바로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

용자환경(유저 인터페이스)이 대형 사이 트와 비교해 경쟁력을 가져야 할텐데. “아직 비밀이지만 우리만의 독창적 인 터페이스가 있다.(웃음) 다행히 조합 내 에 개발자가 있어서 사용자 입장에서 이 상적인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려고 노력 하고 있다. 무조건 우리가 좋은 일 하니 까 이용해달라고 할 순 없다. 누가 봐도 잘 만들었다. ‘쿨하다’ 소리가 나와야 시 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나. 그래야 좋은 취지도 살릴 수 있다. 내년 상반기 오픈이 목표인데 거기 맞춰 소비자정책 도 발표한다. 당신들이 사실 손해보고 있 다. 듣는 것보다 많이 내고 있다. 사이트 자체도 우리가 훨씬 ‘쿨하다’ 이렇게 설 득해서 소비자들이 수긍하면 성공할 수 있다.”

-대형 음원사이트와의 경쟁도 버겁지 만 디지털음악은 공짜거나 헐값이란 대중 들의 인식이 더 큰 문제 아닌가. “시장이 하루 아침에 바뀔 거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냉소적이다. 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 는 것 아닌가. 최소한 문제제기를 하고 공 정하고 합리적인 유통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다.” -기존 음원사이트와 경쟁할 수 있는 차 별성은 뭔가. “기존 스트리밍 상품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음원사이트들이 ‘낙전(落錢)수입’ 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음악 을 많이 듣는 유저라 해도 월 500회 이상 듣기 어렵다. 1곡에 3.6원이니까 월 6000 ‘낙전’ 없애면 충분히 윈윈 가능 원을 내고 1800원 어치만 듣는 것이다. 나 머지 4200원의 낙전은 음원사이트가 가 모든 음악 공정 노출 시키고 져간다. 우리는 들은 만큼 과금할 예정이 해외서도 유료 서비스 모색 다. 스트리밍 가격을 1곡당 7.2원, 두 배를 받아도 500회 듣는 유저는 3600원만 내면 된다. 더 비싼 가격을 받아도 소비자에겐 더 이익이 되게 하겠다는 거다. 1000회 이 -최근에는 무손실음원과 같이 매니어 상 듣는다면? 그 정도 헤비유저라면 멜론 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에서 듣는 게 낫지. (웃음)” 실제로 이 분야가 더 수익은 많을 수도 있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자 는데. 는 취지만으로 대중들을 모을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라는 이름 때 “좋은 음악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문에 비틀스와 법적분쟁을 벌이고도 아 건 그만큼 노출되지 않아서다. 차트에 오 이튠스에서 비틀스 음악을 독점판매하기 르지 않으면 노출되지 않고, 좋은 음악이 위해 공을 들여 결국 성공했다. 산업보다 어도 대중들이 알 수 없다. 기획사에서 음 문화를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제작, 음원서비스까지 수직계열화된 업 우리 사이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좋은 음 체들이 해외 서버를 이용해 차트에 자사 원을 유통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음악을 올린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아닌 마찬가지로 우리 음악이 유튜브에선 넘쳐 가. 나 같은 사람은 (차트에) 들어가지 못 나는데 제대로 된 유통경로가 없어 수익 한다. 노출이 안 되니까 음반이 나왔는지 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국내 음원을 미 대중들이 모른채 묻힌다. 이건 공평하지 국유럽남미까지 유료서비스할 수 있는 않다. 공정하게 대중들에게 노출시킬 방 길을 열어보고 싶다.” 법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협동조합 설립신고를 마친 걸로 안다. -어떤 식으로 공정한 노출이 가능한가. 조합은 언제 공식 출범하나. “수직계열화한 음원사이트는 초기화 “이제 등기만 남겨둔 상태다. 등기해서 면에 노출되는 추천곡이 4곡이면 3곡은 법인화시키면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다. 자사 음악이다. 다른 음악을 찾아보기 어 온라인으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조 렵게 만들어놨다. 우리는 원 모양 화면 위 합원으로 받고, 오프라인에선 유명 뮤지 에 모든 음악을 고르게 노출시키려고 한 션들을 찾아 다니며 조합원으로 가입시 다. 그래서 ‘사발통문’이라고 이름 붙였 킨 뒤 ‘인증샷’도 찍어 올릴 생각이다.” 다. 음악가는 대중들에게 공정하게 노출 -시장 점유율 목표가 있나. 될 기회를 갖게 되고, 대중들도 다양한 음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진 않는다. 써보 악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음악을 듣 니 좋더라는 입소문이 나서 5%만 점유해 고 싶어도 기존 사이트 구석에 숨겨져 있 도 좋겠다. 우리 사이트에선 싸고 좋은 음 어 찾지 못했던 소비자들이 좋은 음악을 악 들을 수 있다고 알려지면 합리적인 소 들을 수 있다는 걸 알면 우리 사이트를 찾 비를 하는 소비자 10% 정도는 끌어올 수 게 될 것이다.” 있지 않을까. 여기에 우리 취지에 공감하 -우선 대다수 소비자들을 기존 사이트 는 ‘이념 소비’를 하는 분들이 동참해 준 에서 끌어와야 한다. 데이터베이스나 사 다면 희망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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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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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하하, 호호  즐거운 평양주민들

추석을 앞둔 지난 3일 평양 주민들이 모란봉 구역의 놀이

지도하는 ‘유원지 총국’을 신설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

공원인 개선청년공원에서 회전 놀이기구를 타면서 즐거

도 추석을 맞아 우리처럼 분주하다. 북한에서 추석은 공

워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권좌에 앉은 이후 놀이공원에

식 휴일은 아니지만 민간의 명절 풍습은 그대로 남아 성묘

대한 철저한 관리를 지시하곤 했다. ‘인민 생활 향상’이란

도 하고 제사도 지낸다. 북한의 공식 명절은 김일성과 김

명분이다. 2012년에는 전국의 놀이공원들을 통합 관리·

정일 생일이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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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구글의 넘버 3, 선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이 말하는 캠퍼스 서울 플랜

능력있는 한국 벤처기업 언제든 인수합병 하겠다 <M&A>

구글이 한국의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전용 공간인 ‘캠퍼스 서울’ 설립 계획을 발표했 다. 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선다 피차이(42사진) 구글 수석부사장을 지난달 27일 만 나 구글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피차이 부사장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웹 브 라우저인 크롬, G메일 등 구글의 주요 서비스를 총괄한다.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 르게이 브린에 이어 사실상 구글의 ‘넘버 3’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중앙SUNDAY와의 인 터뷰에서 “처음 창업을 할때부터 글로벌 시 장을 목표로 뛰는 게 매력있는 기업으로 성장 하는 첫 단추”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꿈을 크 게 가지란 얘기다. 그는 “안드로이드 같은 모 바일 운영체제 덕에 전세계 어디에 있든 세계 전체 소비자들과 만나는 일이 가능해졌다”며 “이런 기업을 사들이는 게 구글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해다. 실제 구글은 최근 1년 사이 인공지능 개발 업체인 영국의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를 비롯 해 40개에 달하는 기업을 인수합병했다. 분야 도 다양하다. 인수 기업 중에는 디자인 회사 (Gecko Design)와 레스토랑용 웹사이트 제 작 회사(Appetas)도 있다. 구글은 인수합병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찾 는 걸로 유명하다. 피차이 부사장은 “능력있 는 한국의 벤처기업들을 언제든 인수합병 (M&A)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의 관계에 대해서도 “삼성과의 파트너십은 구 글의 발전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끈끈한 파트너십이 계속 유지되리 라 믿는다”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구글의 창업 지원 공간인 ‘캠퍼스’를 서 울에 여는 이유는. “캠퍼스 서울은 영국 런던과 이스라엘 텔아

1

비브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 캠퍼스다. 아 시아 지역에선 최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모 바일 시장이 가장 발달한 선진국이다. 그만큼 창업을 위한 진입장벽이 낮다고 봐야 한다. 그 런 점에서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갖추지 못 한 경쟁력을 가졌다. 한국의 창업자들이 좀더 용감해 졌으면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 야 한다.” -스마트폰이 창업에 주는 순기능은. “전 세계 20억 명이 아주 강력한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손에 지니고 다니는 시대다. 스마 트폰을 지녔다는 것은 모든 이가 같은 양의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걸 의 미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2년 사이 안드로이 드 개발자가 3배 이상 늘어났다. 한국은 개발 자 수를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 상위 다섯 개 국가 중 하나다.”(전 세계에서 안드로이드 개 발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지금처럼 성공한 비결은 무엇 때문인가.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한 개방형 플 랫폼 전략이 주효했다. 안드로이드는 창업자 개개인이 지닌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어떤 이라도 안드로이드를 활 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만 들 수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유료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많다.

2

3

선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모바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 9월 3일

구글 주가 추이

58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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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집에 TV나 자동차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그가 12살 되던 해 처음 다이 선다 피차이 수석부사장은 올해 6월 비즈니 얼식 전화기를 갖게 됐다. 그 전화기는 피차 스 위크가 꼽은 ‘모바일 세계에서 가장 영향 이 부사장에게 기술의 편리함을 가르쳐 준 력 있는 인물’에 꼽혔다. 가장 뜨는 분야에서 최초의 기기였다. 천재성은 어려서부터 눈에 가장 잘나가는 엔지니어란 얘 띄었다. 피차이 부사장은 한 번 기다. 걸었던 전화번호는 저절로 외 피차이 부사장은 ‘개천에서 웠다. 집에 찾아온 삼촌이 자신 난 용’이다. 그는 인도 남부의 타 이 걸어야 할 사무실의 전화번 밀 나두주(州)의 주도인 첸나이 호를 그에게 물어보곤 했다는 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게 주변의 말이다. 인도 최고 명문인 인도 공과대 속기사였고, 아버지는 현지 영 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뒤 미국 국 회사의 공장 관리자로 일했 다. 4명의 가족은 방 두 개 짜리 대학원 재학 당시 피차이(가운 스탠퍼드대학에서 장학금을 받 고 재료공학과 반도체 물리학을 집에서 살았다. 그는 “어린 시절 데) 부사장과 그의 부모.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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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어제와 오늘 (단위: 달러)

500

2004년(IPO 당시)

450

현재

16억7000만

시가총액

3945억12700만

85

주가

589.52

31억9000만

연매출

555억2000만

4억

순이익

129억2000만

*현재시가총액주가 2014년 9월 3일 기준, 연매출순이익은 2013년 실적

9월 2013년

11월

1월 2014년

3월

5월

7월

9월 자료: 블룸버그


Money 19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김문수의 홍콩 트위터

불편한 올림픽 한일전

금단현상 주의보

다음 주 preview

알리바바 IPO(시총 160조원)에는 전자상거래의 하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시장에 공급되던 미국 Fed의 유동성 모르핀은 오는 10

주초 아시아 주요국 추석연휴. 지난 AIG 소송 때

구조인 택배가 자리. 설날추석 등 명절 선물을 주고받

필연적 경쟁구도. 작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기뻐 뛰던

월에 완전히 끊김. 집 나갔던 정책이 돌아오겠다는 말

진술서로 시장에 모습을 들어낸 벤 버냉키 전임

는 미풍양속에 정교해진 택배문화. 알리바바는 이러한

아베 수상. 절반의 성공인 아베노믹스에 불쏘시개로 활

이자 미국경제가 회복되었다는 자신감. 이면에 신흥국

Fed 의장 강연(10일)도 주목. 중국 8월 무역수지(8

온-오프 라인을 꿰어 보배를 만든 셈. 뉴욕거래소 코드

용할 듯. 소치와 도쿄 사이 샌드위치가 된 평창의 처지

은 돌발적 금단현상에 두려워 떨고, 시장은 금리인상

일)와 미국 8월 소매실적(12일) 및 1.30달러 저항선

BABA. 별칭 자이언트 BABA.

에 국가차원 리스크를 생각해 봄.

사이클로의 진입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움.

이 무너진 달러-유로 환율도 살펴봐야

택배와 자이언트 바바

액티스 캐피털 아시아 본부장

거시경제 읽기

디플레이션이란 이름의 사슴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비교 신세돈

연도

경 제 성 장 률(%) 한국 일본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5.8 6.3 8.8 8.9 7.2 5.8 -5.7 ● 10.7 8.8 4.0 7.2 2.8 4.6 4.0 5.2 5.1 2.3 0.3 ● 6.3 3.7 2.0 ● 2.8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안드로이드가 처음 등장한 건 2007년 11 월이다. 그 사이 1000종에 달하는 안드로이 드 기반 스마트 기기가 출시됐다. 구글 혼자 서 이만큼 다양성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삼 성전자나 LG전자 같은 파트너들에도 그렇 고, 구글에도 협업이 주는 이익이 더 크다. 그 런 관계를 훼손할 이유는 없다.” -스마트폰 시장 포화론이 나온다. 거기에 중 국의 샤오미 같은 중저가 스마트폰 생산업체들 이 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관계는 어떤가. “삼성과의 파트너십은 구글에 있어 절대 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몇 가지 중요한 프 로젝트를 삼성과 진행 중이고, 지금 같은 끈 끈한 파트너십이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고 본 다. 그리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

스마트폰 시장 성장 여지 커 샤오미 부상해도 삼성전자 중요 미래 아이디어 한국서 나올 것

라는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은 물론 보급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인 도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전 인구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 세계 국가의 55%는 스마 트폰 보급률이 25% 이하다.” -구글이 2004년 기업공개(IPO)를 한 뒤 올해 만 10년이 됐다. 앞으로 10년간 구글의 발전계획은.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최초의 믿음을 실현해 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기존 기술들 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구

글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 고 있다.” 검색엔진으로 출발한 구글의 사업 영역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최근에는 무인항공기 개발에도 성공했다. 무인항공기를 통해 배송 서비스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구글의 비밀연 구소로 불리는 ‘구글X’를 보면 앞으로의 세 상이 보인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구글이 다 양한 분야에 진출하면서 산업간 장벽도 허 물어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대표적이다. 구글이 무인자동차 개발에 뛰어들면서 자동 차 업체들 만의 경쟁이 전자와 인터넷을 비 롯한 정보통신기업과의 경쟁으로 바뀌었다. -2004년 기업 공개 이후 구글의 시가총액 이 200배 이상 커졌다. 앞으로 주가 전망은. “구글은 과거나 현재보다 앞으로 더 나아 지리라 믿는다. 방금 말한 대로 두 사람의 창 업자를 비롯한 구글 임직원들은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공유하고 있 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 는 만큼 장기적인 주가 전망도 밝다고 본다.” -한국의 개발자들을 위해 조언을 해달라. “성공적인 제품은 대부분 다수의 의견에 서 어긋나는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이 그런 아이디어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 각한다.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가능할 것이라 고 굳게 믿고 노력하라. 제품 개발 때 가장 안 돼봤자 실패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 과정 에서 배우는 점이 분명히 있다. 목표를 높게 설정해라. 그리고 항상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둬라. 대부분의 한국인이 스마트폰을 사용하 고 있다는 점을 볼때 미래의 중요한 아이디 어들이 한국에서 나올 것이라 믿는다.”

구글이 개발 중인 제품들. 1 실시간 혈당 측정이 가능한 스마트 콘택트 렌즈. 2 무인 배송을 위한 무인 항공기. 3 대형 풍선을 활용해 전세계에 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는 프로

디플레이션(deflation)은 ‘지속적으로 물 가가 하락하는 상태’다. 인플레이션율이 ‘마이너스’라는 뜻이다. 물가상승 속도가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과는 다르다.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가 있다. 첫째, 빚의 실질가치를 높인다. 이 때 문에 사실상 빚 부담이 늘어난다. 우리나라 같이 가계 빚이 큰 경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둘째, 가격하락이 기업의 영업이익 을 떨어뜨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면서 저 성장을 초래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소비 나 투자가 위축될 때 ‘수요위축→가격하락’ 의 고리가 형성된다. 좀 더 발전되면 저성장 으로 인해 임금이 하락하고 이것이 소득감 소를 가져와 다시 수요가 감소하는 ‘수요축 소→가격하락→임금축소→소득축소→수 요축소→가격하락’의 소용돌이가 반복해 서 발생할 수 있다. 소위 ‘디플레-저성장 소 용돌이(deflationary spiral)’다. 많은 사람 이 우려하는 경우다. 통화 공급의 축소 또는 통화 사재기 (hoarding)도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 다. 금본위제도 하에서 경화(硬貨)의 급격한 국외 유출(혹은 사재기)이 일어나 디플레가 초래된 전례는 역사적으로 매우 많다. 그 외 에도 1870~1900년의 미국처럼 생산성이나 경제 효율성 증대(상품공급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하는 데, 이런 디플레이션은 나쁠 것이 없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20여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1999 년부터 2005년까지 7년간은 소비자물가 가 연속적으로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였다. 그 뿌리에는 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생산 자물가 디플레이션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 의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92년부터 2003년 까지 11년 동안 한 해(97년 0.7%)를 빼고는 11년 연속 마이너스였다. 이런 충격적인 디 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92년 이후 2013년

● 2%미만

0.8 0.2 0.9 1.9 2.6 1.6 -2.0 -0.2 2.3 0.4 0.3 1.7 2.4 1.3 1.7 2.2 -1.0 -5.5 4.7 -0.5 1.5 1.5

소비자 물가상승률(%) 한국 일본 ● 0%이하

● ● ● ● ● ● ● ● ● ● ● ● ● ● ● ● ●

6.2 4.8 6.3 4.5 4.9 4.4 7.5 0.8 2.3 4.1 2.8 3.5 3.6 2.8 2.2 2.5 4.7 2.8 3.0 4.0 2.2 1.3

1.7 1.3 0.6 -0.1 0.1 1.9 0.6 -0.3 -0.7 -0.8 -0.9 -0.3 0.0 -0.3 0.3 0.0 1.4 -1.4 -0.7 -0.3 0.0 0.3

● ● ● ● ● ●

● ● ●

자료: 한국은행 ecos.or.kr

물가·성장률 마이너스 아닌데도 정부는 ‘일본형 디플레 진입’ 진단 잘못된 정책처방은 부작용 부를뿐 재정적자·부동산 조심히 다뤄야 까지 21년 중 일본은행이 공식적으로 인정 한 ‘경기침체기’는 다섯 번(91~93, 98~99, 2001~02, 2008~09, 2011)에 불과하며, 그 기간도 다 합해서 4년(전체 기간의 19%에 해당)이 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디플레 이션=경기침체(혹은 위기)’라는 자동적인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98년 이후 몇 년간 디플레이션과 동시적 경기침체를 살리기 위해 총 100조 엔에 달 하는 공공사업이 집행되었지만 이것도 디 플레이션 대책이라고 하기 보다는 경기활성 화 대책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디플레도 못 잡고 경기도 못 살리면서 재정적자만 늘리 는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디플레이션이 수요나 통화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뿌리 깊 은 구조적인 문제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며칠 전 “한국이 디플레이션 초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물가안정 목표 범위 2.5∼3.5%에서 3년째 하한선으로 가 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그러면서 “경 제 전반에 퍼져 있는 축 처진 분위기를 반전 시킬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며 “금기시된 재정적자 확대, 부동산 시장 정책을 과감하 게 하지 않고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디플 레이션=경기침체=적극적 경기부양책 필 요’를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 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 92 년 이후 20여 년 중 절반이 넘는 13년 동안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 또는 마 이너스였지만,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이 마이너스였던 적은 한 해도 없었다. 최근 2~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2%대로 떨 어진 디스인플레이션을 ‘물가안정’으로 평 가할 수는 있지만, 이를 디플레이션의 전조 로 두려워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일본형 경기 침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의 경제성장 률이 2%에도 못 미치는 경우는 92년 이후 2013년까지 17번 있었지만 한국은 외환위 기와 서브프라임 위기(98년과 2009년) 때 를 제외하면 92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지 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2.8%)도 92년 이 후 일본이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는 ‘고 성장’에 속한다. 물론 서브프라임 직후인 2009년 -5.5% 성장에 대한 반동으로 2010 년 4.7% 성장을 제외하고 말이다. 위기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경제정책 은 옳고 또 좋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이 아닌 것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하고, 경기침체라 고 할 수 없는 것을 경기침체라고 우길 일은 아니다. 나아가 일본의 정책 경험에서 보았 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나 국가부채를 증대시킨다거나, 부동산 시장 과열을 초래 하는 등의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조심할 일 이다. 성공할지도 불확실하고, 책임지지도 못할 일들이다. 독감을 암(癌)이라고 진단 해 항암제를 과잉 투여하는 것은 진(秦)나 라 조고(趙高)가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것(指鹿爲馬)과 다를 바 없다. 좀 더 차근하 고 신중한 정책을 주문하는 이유다.

젝트 룬. 4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무인자동차. 5 구글 글라스. [사진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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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줄 알아라” KB 임원진에 철퇴

있는 인물 인도 타밀 출신  개천에서 난 용 12세에 전화기보고 기술에 눈 떠 “버거운 업무에 도전해야 성장” 배웠다.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에도 유명한 일 화가 있다. 비행기 삯이 없었던 그는 대출을 받 아 비행기 티켓을 사려고 했지만, 제시간에 대 출을 받지 못해 가족의 저축 통장을 헐어 비행 기 티켓 값과 제반 비용을 치러야 했다. 피차이 부사장은 “당시 가족의 저축 통장에서 인출한 돈은 1000달러로 아버지 연봉을 훨씬 뛰어넘 는 금액이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 도착해서 는 백팩을 사려다 한 개 값이 60달러에 달한다 는 사실에 놀랐다고 술회한다. 결국 그는 그 백

인물로 본 ‘금주의 경제’ 제재심의위 결정 뒤집은 최수현 금감원장

팩을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구입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 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 사 학위를 받았다. 석·박사 학자금은 모두 장 학금으로 충당했다. 선다는 애초 교단에 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실리콘 밸 리의 반도체 제조회사인 어플라이드 머티리 얼즈(Applied Materials)에 엔지니어이자 제 품 매니저로 취업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이 후 매킨지&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04년 구글에 합류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비 결에 대해 “항상 나를 불편하게 할 만큼 똑똑 하고 정열적인 사람들과 일해 온 게 오늘에 이 른 비결인 것 같다”며 “항상 능력에 버거운 업 무에 도전해야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뉴시스

4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한국 금융의 민낯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 다.” “대한민국 산업 중 국제경쟁력이 오 랫동안 하위권인 업종이 금융…” 최수현(59사진) 금융감독원장이 4 일 쓴소리를 쏟아냈다. 주전산망 교체를 놓고 갈등을 빚은 KB금융 수뇌부에 대 해 중징계를 발표한 자리에서다. 최 원장 은 “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며 법규를 성실 히 준수해야 할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진 (CEO)이 제재의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 가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임영록 KB금 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사실상 동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이날 중징계 발표는 금감원장이 제재심 의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첫 사례다. 금감원은 지난 6월 KB금융 측 에 갈등의 두 주체인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해 중징계하겠다고 사전 통보했 다. 그러나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는

수차례 회의를 연기하면서 결정을 미뤘다. 다섯 번째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릴 예정 이었던 지난달 14일은 최 원장이 최종 결 정을 내리는 ‘터닝 포인트의 날’이 됐다. 저녁식사 도중 제재심의위원회가 또 연기 됐다는 소식을 들은 최 원장은 주위 사람 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세게 물잔을 탁자 에 내려놓고 자리를 박찬 것으로 알려졌 다. 최 원장은 이후 ‘법과 원칙대로’를 강 조했으나 일주일 뒤인 21일 열린 6차 제재 심의위원회는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 적 경고’로 결론을 모았다. 최 원장이 최종 결정을 고민하는 동안 KB 사태가 더 악화한 점도 중징계 강행 의 배경이 됐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화 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임원들과 함께 템플스테이를 떠났지만 임 회장에게 만 독방이 배정되자 이 행장 측은 불만을 표시하며 자리를 떴다는 후문이다. 이후 두 사람을 그대로 두고는 KB 경영이 정상 화되기 어렵다는 여론이 커졌다.


20 Economy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비주얼경제사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⑬ 아메리카 버펄로 대재앙

버펄로의 비극적 최후는 세계화가 낳은 과오의 역사 지난 수 세기 동안 아메리카 대륙은 혁명 적 수준의 생태적 변화를 겪었다. 특히 19 세기 후반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다. 미 국 서부개척시대의 대평원하면 카우보이 들이 말을 타고 소떼를 모는 모습을 떠올 리기 쉽지만, 말과 소는 모두 콜럼버스 이 후 구세계로부터 전해진 동물이다. 그 전 에 대평원을 누비던 버펄로 무리는 과연 어떻게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었을까?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아메리카에 엄청난 수의 버펄로가 존재했었 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역사가들의 추 정에 따르면 콜럼버스 이전에는 5000만 마리 이상이 평원을 누볐고, 19세기 중반까지도 그 수가 2000만 마리쯤 되었다. 시기적으로 변동하기는 했지만 버펄로 수는 대체로 생태 적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버펄로를 위협하 는 대표적 야생동물은 늑대였는데, 이들이 버펄로의 개체 수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 다. 버펄로의 숫자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존재 는 인간이었다. 전통적으로 인디언은 고기 가죽뼈를 얻기 위해 버펄로를 사냥해 왔다. 그러나 유럽인과의 접촉이 있기 전에 인디언 은 버펄로와 장구한 기간을 함께 지내왔다. 이들 사이에는 일정한 생태적 균형이 존재하 고 있었다. 인디언의 버펄로 사냥능력은 말을 도입하 여 기동력을 높임으로써 크게 변화하였다. 이후에 총이 들어와 널리 사용되면서 버펄 로를 사냥하는 능력은 다시 한 번 도약하였 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소규모로 유목생활 을 하는 인디언에게 버펄로를 필요 이상으로 사냥할 이유는 없었다. 비록 교환을 통해 새 로운 물품을 얻을 필요성이 있기는 했지만, 생태계를 교란시킬만한 규모의 유인은 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버펄로 사냥을 묘사 한 밀러의 그림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광 활한 대지에서 많은 수의 인디언이 엄청난 수 의 버펄로 떼를 몰아 큰 절벽 아래로 떨어뜨 리는 작전은 구사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이렇 게 해서 죽은 버펄로들은 손상이 많아 값어 치가 크게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꺼번에 많은 버펄로를 잡을 경우 유목생활 을 하는 인디언들이 감당하기도 부담스러웠 을 것이다. 작은 규모의 낭떠러지로 버펄로 를 유인하는 방식은 사용되었을 수 있지만, 그림에서처럼 대규모로 사냥을 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이다. 그림 1은 대자연의 장관을 그 려보고자 한 화가의 상상력의 결과물이었으 리라. 가죽 수요 늘자 버펄로 사냥 급증 버펄로의 수가 본격적으로 줄어든 것은 백 인에 의해서였다. 남북전쟁 이후 가죽에 대 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문적인 백인 사냥 꾼들이 대규모로 버펄로 사냥에 나섰다. 일 부 인디언들도 점차 판매를 위해 버펄로 사 냥의 빈도를 높였다. 그런데 인디언의 생활 에 요긴한 고기와 생활재료를 공급하는 버 펄로의 수가 줄어들면 인디언의 생존 기반 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백인들은 버펄로 사냥이 인디언을 축출하는 효과적 인 수단이라고 인식하고서 의도적으로 버 펄로 사냥을 장려하였다. 예를 들어 인디 언과 많은 전투를 벌였던 셰리단(Philip Sheridan) 장군은 버펄로 사냥이 인디언의 물적 기반을 파괴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버펄로 사냥꾼에게 탄약을 공

그림 1 앨프레드 밀러, 버펄로 사냥, 1858-1860년. 인디언들이 엄청난 버펄로 떼를 절벽으로 몰아 떨어뜨리는 장면을 묘사했다. 대자연의 장관을 상상력으로 그렸다.

인디언과 버펄로간 균형 깨져 말총기차가 변화 촉발 수단 아메리카 생태계도 유럽형 대변화 멸종 낳은 최종 병기는 산업 수요

급하고 포상 제도를 마련하자고 의회에 제 안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1865년에만 약 100 만 마리의 버펄로 가 목숨 을 잃었으며, 1872~1874년에는 400만 마리 이상이 사냥 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버펄로 사냥으로 가장 큰 명성을 얻은 사람은 윌리엄 프레더 릭 코디, 일명 버펄로 빌(Buffalo Bill)이라 는 인물이었다. 그는 버펄로를 사냥하여 미 국의 육군과 캔자스퍼시픽 철도회사에 공 급하는 일을 했는데 불과 7개월 만에 4280 마리나 잡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나 중에 ‘버펄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Buffalo Bill’s Wild West)’라는 공연단을 조직해 미 국 각지는 물론 유럽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리하여 버펄로 사냥은 쇼 비지니스의 형 태로 세계화되었다. 버펄로 사냥이 늘어난 데에는 철도 부설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철도회사들은 버펄로 사냥을 위한 특별열차를 편성하였다. 그림 2 는 캔자스퍼시픽 철도회사가 편성한 특별열 차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는 열차 위에서, 그리고 일부는 열차에서 내려 사방으로 버펄 로를 향해 총을 쏘고 있다. 이제 버펄로는 백 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진 ‘스포츠’의 대상 이 되고 말았다.

그림 2 버펄로를 향해 총을 쏘는 캔자스퍼시픽 열차의 승객들, 1871년 작품.

그림 3 디트로이트의 미시간 카본공장의 야적장에 쌓아놓은 버펄로의 머리뼈. 1880년대 촬영.

이렇게 잡은 버펄로를 백인들은 주로 가죽 을 얻는데 사용하였다. 백인 사냥꾼은 가죽 만을 벗겨 모으고, 사체는 대부분 그대로 들 판에 방치하였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든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 다. 들판에 버려진 사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들짐승과 날짐승에 의해 뜯기고 햇볕에 말라 붙어 하얗게 뼈를 드러냈다. 시간이 흐르자 이 뼈는 수집상에 의해 모 아져 산업용으로 사용되었다. 뼈를 태운 재 는 고급자기인 본차이나의 원료로 사용되었 고, 설탕과 와인의 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사 용되었다. 버펄로 뼈의 가장 큰 수요자는 비 료공장이었다. 그림 3은 산업용으로 사용하 기 위해 산더미처럼 많은 버펄로의 머리뼈를 쌓아놓은 디트로이트의 한 공장 야적장 모 습을 보여준다. 이 머리뼈 더미는 높이가 9m 에 이르렀고 길이가 수십m에 달했다고 한다. 이미 사냥감으로 쫓기고 있던 버펄로 떼에게 가해진 결정적인 한 방은 바로 ‘산업용 수요’ 였다. 이런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버펄로의 수는 1880년대에 급속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1892 년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살아남은 버펄로 는 1091마리에 불과하였다. 오늘날 북아메리 카에 남아있는 버펄로는 보호정책의 결과로 약 50만 마리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 부분 다른 들소와 교잡하여 태어난 것들이 며, 야생의 상태에 있지도 않다. 진짜 버펄로 는 실질적으로 멸종했다고 볼 수 있다.

생태계 보존과 생물의 종 다양성 유지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버펄 로의 멸종은 자연의 정복을 진보라고 여겨 온 구시대의 잘못을 보여주는 증거다. 대항해 시대 이래 구세계와 신세계의 접 촉은 양 세계 모두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 다. 특히 ‘콜럼버스의 교환’이라고 불리는 교류를 통해 사람은 물론 식물, 동물, 미생 물과 바이러스가 양방향으로 이동하여 지 구 각지의 생태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 였다. 특히 구세계인들에게 강제적 세계화 를 강요당한 신세계는 가히 혁명적인 생태 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쫓겨나고 유럽인들이 자리를 잡았고, 다시 아프리카인들과 아시아인들 이 유입되었다. 버펄로 희생 후 소떼 유입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들어와 기존 생태 계를 교란시키고 파괴했다. 경제적 유인의 힘은 대단했다. 때로는 털가죽과 같은 재료 를 얻기 위해, 때로는 원주민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고 때로는 산업적 수 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한때 대평원의 주인 공이었던 버펄로는 속절없이 희생을 당해야 했다. 그 자리에 소떼가 유입되면서 북아메 리카의 생태계는 유럽형으로 개조가 이루 어졌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구는 과거의 지 구가 아니다. 지구 생태계에는 인간의 무지, 편견, 탐욕과 그에 따른 수많은 실책의 역사 가 새겨져 있다. 19세기 후반 버펄로가 처했 던 운명은 세계화 시대가 남긴 과오의 역사 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오늘날 우리 는 과연 이 돌이킬 수 없는 ‘시행착오’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었을까?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 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회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 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 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 (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Economy 21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라면이 안 팔린다

간편 가정식에 밀리고, 웰빙 트렌드에 외면 당하고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주부 염지연(31)씨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간편 가정식(HMR)을 구입한다. 자주 사는 메뉴는 남편이 좋아하 는 베트남식 양지쌀국수. 맞벌이 부부인 만 큼 조리와 설거지가 간편해서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 라면을 사는 일은 부쩍 줄었다. 2~3 년 전만해도 박스째 사다놓고 라면을 먹었지 만, 최근 석달간 라면을 구입한 적은 손에 꼽 을 정도다. 굳이 라면이 생각날땐 집 근처 편 의점에서 한 두개 사다먹는게 전부다. 염씨 는 “대형마트에서 파는 간편 가정식은 라면 만큼 조리가 쉬운데다, 라면보다는 인스턴트 느낌이 적고 식사 분위기가 나는 편이라 자 주 구입한다”고 말했다.

이마트에선 올 들어 5.1% 빠져 간편 가정식 매출은 7.1% 늘어 학생 단체여행 준 것도 영향 바캉스철 잦은 비로 매출 줄어

대형마트에서 라면 매출이 줄고 있다. 라 면 매출 감소세는 2~3년 전부터 꾸준히 이 어졌다. 이마트의 경우 올들어 8월말까지 라면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5.1% 줄었다. 지 난해는 2012년보다 3.7% 줄었다. 매출 감소 폭이 더 커진 것이다. 롯데마트도 사정은 마 찬가지다. 올 상반기 국물 있는 라면 매출은 10.1%나 줄었다. 라면 전체로는 7.7%가 빠 졌다. 대형마트 업계에서는 라면 매출 감소 요인 으로 우선 ‘간편 가정식’의 등장을 꼽는다. 여기에 웰빙 트렌드가 겹치면서 인스턴트 식 품 이미지가 강한 라면을 찾는 소비자가 줄었 다는 것이다. 라면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간편 가 정식은 찌개와 밥은 물론, 순대와 파스타 중 국식 만두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라면 의 지위를 흔들고 있다. 이마트에서 판매하 는 간편 가정식은 300종에 육박한다. 가격

이마트 월별 라면 매출 신장율 4.5 2014년 1월

2

3

4

6

2010년 3 200 100

7

8

5

-4.2

-3.8

-5.1

-4.2

-5.3 -8.6

-9.1

자료: 이마트

도 밥류는 3000원선, 찌개류는 5000원을 넘 기지 않는다. 간편 가정식 매출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이마트의 경우 올들어 지난달까 지 전년 동기보다 7.1%가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의 간편 가정식 매출도 39.4%나 뛰 었다. 제품도 진화하고 있다. 건강을 중요시 하 는 웰빙 트렌드에 따라 기존의 일반적인 육개 장, 갈비탕에서 ‘한우 양지를 넣은 육개장’· ‘왕갈비가 들어간 갈비탕’ 등이 새롭게 등장 하는 식이다. 최성재 이마트 식품본부장은 “대형마트 의 간편 가정식과 즉석 조리코너 상품이 더 조리하기 쉬워지고, 제대로 된 요리로 발전하 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올해 말까지 판매 중인 간편 가정식 가지수를 520종으로 늘릴 계획이다. 간편 가정식을 집중적으로 파는 전용매장의 숫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롯데마트의 경우 2010년 1월 서울역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50개점에서 간편 가정식 전용매장을 운영 중 이다.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등 연이은 단체 여행 사고도 라면 매출엔 악 재로 작용했다. 라면을 필수로 챙겨가는 대 학생 여행객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이마트 의 경우 올 3월 라면 매출이 9.1%나 줄었다. 연이은 단체 여행 사고로 대학생들이 학과 단위로 여행 가기를 꺼린 탓이다. 바캉스철 잦은 비도 라면 매출엔 악영향을 줬다. 바캉스철인 7~8월에 이마트 라면 매출 이 8.4%나 줄었다. 이 기간 물놀이 용품 매출 도 23.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 간편 가정식 판매 현황 연도 전용매장 운영 점포 수 (단위: 개) 품목 수 (단위: 개) 매출액 추이 (단위: 억)

단위: %

자료: 롯데마트

2011년 11 240 145.3

2012년 23 350 171.5

2013년 47 480 198.2

2014년(목표) 53 520 230

Biz Report 시대를 초월한 ‘부활 마케팅’

에디슨, 마릴린 먼로가 돌아왔다 이수기 기자

침대 브랜드 시몬스의 광고에는 이색 인물들 이 등장한다. 세기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 미국 루스 벨트 대통령의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가 주인 공이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들이 등장해 ‘성공한 인생과 수면’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게 주 내용이다. 예를 들어 에디슨은 “숙면한 다면 하루 네 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말한 다. 이 광고는 시몬스가 1920년대 미국에서 선보인 증언식 광고 캠페인을 고스란히 살려 낸 것이다. 10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소비자에게 ‘통하는’ 마케팅은 여전 히 활발하다.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성을 강 조할 수 있어 매출 증대는 물론 이미지 개선 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럭셔리 브랜드 샤넬은 자사의 대표 향수

인 ‘샤넬 N°5’에 마릴린 먼로를 광고 모델로 다시 캐스팅해 활용하고 있다. 1955년 샤넬 No.5의 모델이었던 마릴린 먼로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No.5만 입고 잠자리에 든다”고 말했고, 이후 ‘마릴린 먼로=샤넬 No.5’이란 공식이 50년 가까이 이어졌다. 마릴린 먼로 가 등장하는 샤넬 N°5의 광고 영상에서는 그녀의 생전 육성과 미공개 화보사진이 흑백 영화처럼 펼쳐진다. 패스트 푸드도 향수 자극에 나섰다. 최근 까지 주력 상품인 빅맥의 재료들을 따 노래 로 만든 ‘빅맥송’ 마케팅을 펼쳤던 한국맥도 날드가 대표 사례다. 빅맥송 마케팅은 1974 년 미국을 휩쓸었던 ‘빅맥 챈트송’이란 라디 오 광고 캠페인이 모태다. 당시 미국 앨라배 마주에서 맥도날드점을 운영하던 맥스 쿠퍼 가 빅맥 재료로 만든 노래를 4초 이내에 암 송한 고객에게 빅맥을 무료로 주는 마케팅을 펼쳤던 일을 본떴다.

4일 서울 한강로동 이마트 용산점에서 한 소비자가 간편 가정식을 고르고 있다. 간편 가정식을 찾는 사람은 늘면서, 라면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다.

[사진 이마트]


22 Health Plus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여드름 박사’서울대병원 피부과 서대헌 교수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정크푸드스트레스 탓 어린이도 여드름 고민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방전 휴대폰과 우울증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일러스트 강일구

면 하루 종일 쓰는데 문제가 없다. 어떤 이유에 서든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밤새 충전하더라 도 금방 방전돼 버린다.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걸 리면 일상생활을 하는 것, 뭔가에 집중하는 것, 흥미를 갖는 것,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마음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 은 상황이니 일상이 위축돼 대인관계나 사회 활 동을 할 때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울증에 빠지면 잠을 충분히 못 자고 식 욕도 떨어진다. 이는 배터리 충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K와 대화를 나누다가 보니 내 휴대폰의 배터 리도 눈금이 거의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보조 배터리를 꺼내 갈아 끼웠다. 새 배터리 덕분에 내 휴대폰은 다시 완전 충전됐다. 이유 없이 자 신감도 함께 충전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나와 K를 포함한 현대인의 자 화상인지 모른다. 마음은 보조배터리가 없어 갈아 끼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쾌속충전을 할 어댑터도 없다. 그러니 방전되면 우리의 뇌와 정신은 ‘우울증 모드’로 들어간다. 이때는 마치 오래된 휴대전화기처럼 조심해서 잘 충전해 사 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울해진 마음은 원인을 찾아 교정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과거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이란 ‘휴대전화’를 과잉 사 용하게 해 배터리를 쉽게 소진시켜버리고 있다. 아이폰같이 갈아 낄 수도 없는 나의 마음을 잘 지키려면 미리 사용관리를 잘 해야 한다. 내 얘기가 다 끝났는데도 아직 K의 핸드폰은 충전 중이었다. 나는 “한 번 방전되면 회복도 힘 든 법”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듣기 싫었는지 K 는 술을 들어 내 잔을 채웠다.

tkpark@joongang.co.kr

서울대병원 피부과 서대헌 교수(50)는 ‘여드름 박사’다. 그는 1996년 국내 대학 병원에선 처음으로 병원 내에 ‘여드름클 리닉’을 열었다. 지난 3월부터는 대한여드 름학회장을 맡고 있다. 여드름 치료의 가 이드라인을 정하는 세계여드름 연구회(20 명 이내의 종신회원으로 구성)에 참가하 는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껏 사춘기 중·고생 시절부터 생기는 것으 로 알려진 여드름이 ‘초등학생에게도 고 민이 되는 병’(소아 여드름)임을 세상에 알렸다. 사실 여드름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초등 1학년 아이에서 60대까지 여드름이 생길 수 있다. 서 교수는 “여드름은 청춘을 상징하고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고민거리일 뿐이라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며 “회장 임기 동안 여드름이 만성 피부질환임을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피부가 유달리 좋은 서 교수를 만나 여 드름 이야기를 나눴다. -소아 여드름은 약간 생소하다. “여드름 발생의 주원인인 성(性)호르몬 분비가 본격화되기 전인 만 12세 이하 연 령에서 생기는 것이 소아 여드름이다. 사 춘기나 성인에게 나타나는 일반 여드름과 마찬가지로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소아 여드름이 늘어난 이유는. “요즘 아이들의 사춘기가 빨리 와서 호 르몬의 영향을 너무 일찍부터 받는 탓이 크 다. 정크 푸드·인스턴트식품에 무방비로 노 출된 아이들의 식생활과도 관련 있다. 아이 들이 공부·학원 등 스트레스 심하게 받는 것도 소아 여드름의 원인이다.” - 녹차가 여드름에 효과가 있다던데. “우리 연구팀은 녹차의 EGCG(떫은맛 성분인 카테킨의 일종)가 여드름 치료에 효과적이란 연구 결과를 지난해 권위 있는 학술지인 ‘피부연구학회지’에 발표했다. EGCG는 여드름의 원인인 피지 분비와 염 증을 억제한다. 하지만 EGCG 원가가 너 무 비싸 아직 상품화는 하지 못하고 있다. 시판 중인 녹차 추출물은 EGCG의 농도가 일정하지 않고 다른 성분들도 포함돼 있어 효과를 확신하기 힘들다. 하지만 신선한 녹 황색 채소는 여드름 완화에 유익하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저녁 모임이 있었다. 친구 K가 들어와 앉자마 자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선물이라 도 주려나 싶었는데 휴대폰 어댑터였다. 종업원 을 불러서 콘센트의 위치를 물었다. 다른 친구 도 생각났다는 듯이 자기 것을 꺼내 혹시 충전서 비스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종업원은 익숙한 듯 여러 대를 받아 가져갔다. “아이폰 6 기다리다가 생활이 안 돼…” 오래된 아이폰 유저인 K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배터리가 낡아서 오후만 되면 배터리 가 반도 남지 않을 때가 많은데 교환이 불가한 기종(機種)이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외출할 때마다 어댑터를 꼭 챙겨야 해서 가방이 무거워진단다. 어쩌다 맨몸으로 나 오면 불안해진다고도 했다. 잠시 짬이 날 때 평 소 같으면 인터넷 검색이나 SNS를 했는데 배터 리가 간당간당할 때는 자제하고, 통화도 최대한 짧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상하게 사는 게 재미없고 위축되며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K가 스마트폰 중독자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냥 빨리 약정이 끝나고 새 휴대폰이 나와 교체하기만을 바라는 보통의 사회인이다. 평소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냉소적 시선을 지녀 “우울증은 존재하지 않고 엄살일 뿐이며, 우울증 없는 사람은 없다”고 믿 던 그를 교화할 좋은 기회를 잡았다. “우울증은 마치 너의 오래된 휴대폰 같은 마 음의 상태야.” K는 무슨 황당한 얘기인가 하는 시선으로 나 를 쳐다봤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말인즉 우울증은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돼 버 리는 병과 같다. 보통은 사용 후 충분히 충전하

“청춘 상징 아닌 만성 피부질환 세수는 하루 두 번 정도가 적당” 세계 여드름연구회 첫 한국 회원

-여드름을 악화시키는 식품은. “여드름과 식품은 관련성이 있다. 우리 여드름클리닉을 방문한 환자 약 800명과 정상인 500여명을 비교 조사한 결과 여드 름 환자들은 당(糖)부하 지수(Glycemic Load, GL, 해당 식품이 혈당에 영향을 미 치는 정도)가 높은 햄버거·크루아상·도넛· 비스킷·와플·라면·탄산음료 등 인스턴트 식품의 섭취가 많았다. 가공치즈 등 유제 품과 김·미역 등의 요오드 함량이 높은 해 조류의 섭취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겹 살·삼계탕·프라이드치킨·견과류·삶은 돼 지고기 등 고지방식의 섭취도 더 많았다.

불규칙한 식사 습관 역시 여드름을 악화 시킬수 있다. 식사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면 IGF-1(인슐린 생성유사인자)이 다량 분비 돼 피지가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드름을 개선시키는 생활 습관은. “우선 여드름을 악화시킨다고 알려진 음 식들을 피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받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스트 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코티솔이란 스트레 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피지선을 자극시켜 피지 분비를 촉진한다. 충분한 수면 역시 여드름 개선에 유익하다. 유분 성분이 과하지 않은 화장품을 선택하 는 것도 효과적인 여드름 완화법이다. 집에 서 손으로 여드름을 짜는 것은 금물이다. 손톱 등으로 짜면 여드름의 염증이 더 넓 게, 깊게 확산된다. 염증의 확산은 흉터로 직결된다.” -성인 여드름이 늘고 있는데. “사춘기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00% 여드름이 돋는다. 20대 초반의 80%, 20

대 후반의 60% 30대의 30%가 여드름을 갖고 있다. 40대가 되면 여드름 발생률이 10% 아래로 떨어지지만 드물게는 60대 환 자도 있다.” -성인 여드름의 증가 원인은. “첫 번째는 늦어지는 출산 연령이다. 젊 은 여성의 여드름은 40%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호전된다. 높아진 스트레스와 과 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줄어든 수면시간도 문제다. 혈당을 빨리 높이 올리면서 열량이 높은 정크 푸드 섭취가 늘어난 것도 성인 여드름의 증가 원인이다. 공해 등 환경 요인 에 의한 영향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드름 약을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의 먹는 여드름 치료제는 피지선 자체를 억제, 다양한 여 드름 치료에 모두 효과적이다. 그러나 임산 부가 복용하면 기형아 출산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절대 금기약이다.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청소년이 복용하는 것도 권장하기 힘 들다. 복용 뒤 골밀도가 높아지거나 낮아 질 수 있어서다. 항생제는 여드름 환자에게 자주 처방되는 약이다. 그러나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항생제 내성균이 생 길 수 있어 한 종류의 항생제만 쓰는 것은 피해야 한다. 여러 항생제를 자주 바꾸면 서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적당한 세수 횟수는. “약한 세기의 세안제로 세수를 하는 것 이 여드름 완화에 도움을 주고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러나 하루에 세 번 이상의 과도한 세안 은 오히려 손해다. 피부는 지방막을 형성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잦은 세안이 이를 방해할 수 있어서다. 세수는 아침과 저녁에 각각 한 번씩 두 번 정도 하는 것이 여드름 완화에 가장 효과적이다.” -등·가슴에 난 여드름 대처법은. “등·가슴 등에 많이 난 여드름도 치료 대 상이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등·가슴 여드 름의 발생률은 남성이 여성보다 3배가량 높다. 등·가슴에 난 여드름을 함부로 짜는 등 잘못 다뤘다간 얼굴에 난 여드름보다 흉 터를 더 쉽게 남긴다.” -왜 하필 여드름에 심취했나. “피부과 레지던트 때 여드름은 흔한 피 부병인데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 을 알게 됐다. 세계적으로도 이 분야에 대 한 전문가가 드물었다는 것도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블루 오션을 찾아낸 것이다.”

히말라야마추픽추 여행 때 비아그라 챙기는 까닭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서울아산병원 신장내과 김순배 교수(54) 는 2008년 ‘버킷리스트(The 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란 영화를 본 뒤 히말라야 산행을 실행에 옮겼다. 그 후 네팔의 안나푸르나, 케냐의 킬리만자로 등 4000m 이상의 고봉(高峰)을 다섯 차례나 다녀왔다. “남들보다 고산병이 훨씬 심했다. 머리 아프고 못 걷고 못 먹고…. 다른 사람의 부 축을 받아 하산하기 일쑤였다. 비아그라· 스테로이드도 사용해 봤지만 효과는 만족 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산악 트레킹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고산병 때문에 산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김 교수는 만성 신장병 환자에게 주로 처 방하는 조혈 호르몬(빈혈 치료용)이 고산 병 예방과 완화에 효과적이란 사실을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다. 고산지대로 떠나기 3 주 전부터 혈액 속 ‘산소 탱크’인 헤모글로 빈(혈색소)의 수치를 높여주는 조혈(造血) 호르몬을 4번 가량 주사로 맞았더니 고산 병이 눈에 띄게 경감됐다. 김 교수는 지난해 조혈호르몬의 고산병 예방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안 나푸르나를 등반할 지원자 39명을 모집하 고 이들에게 각각 50만원씩을 지원했다. 최근 히말라야 트레킹, 남미 페루의 쿠 스코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고산병에 대 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산병(altitude sickness)은 해발 3000m 이상의 고도에서 나타난다. 산소 부족이 주원인이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산소가 적어지면 서 저산소증이 생기는데 고산병은 이를 보 상하기 위한 신체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낮은 산을 오르면서 힘이 들어 숨쉬기 힘 든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산지대는 저지대보다 산소량이 적고 건조하다. 따라서 숨 쉴 때 산소를 덜 들이 마시게 되고 호흡량은 늘어나게 돼 폐를 통 한 탈수에 빠지기 쉽다. 높은 산에선 혈액의 점성도 높아져 혈액 이 산소를 신체 곳곳에 잘 전달하지 못하 게 된다. 이에 따라 두통·구토·무기력·호흡 곤란·식욕부진·기침·수면 장애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 뇌수종이나 폐수종 등으로 숨지는 사람도 있다. 평소 체력이 강하고 산 꽤나 탄다는 사람들도 고 산병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산병의 초기 증상은 걸을 때 자기도 모르게 몸이 흔들리거나 메스꺼움을 느끼 거나 두통이 생기는 것이다.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강형구 교수는 두통 등 이상 증세가 느껴지면 산을 내려 오는 것이 최선이며 대개는 1000m 정도 만 내려와도 증상이 가벼워지거나 사라진 다고 말했다.

고산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위한 전문 의 약품은 없다.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 이뇨제인 아 세타졸라마이드(다이아목스), 남성 발기 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고산병 완화에 효과적이란 연구결과는 나와 있다.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는 음 경 혈관을 확장시키는 약이다. 이 약은 고 산병 예방에도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비아그라를 복용하면 폐혈관이 확 장돼 폐로 가는 산소 공급이 늘어날 것으 로 봐서다. 고산을 오르기 전과 도중에 충분한 수 분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탈수 증상 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마늘도 유용하다. 마늘엔 혈액을 묽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앨 라배마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마늘을 즐겨 먹으면 혈류 흐름을 돕는 성분이 더 많이 생성된다.


Focus 23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한국문화 대탐사 24 도시문화 정체성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 도시로 꼽힌 경북 안동에 들어선 한옥마을 ‘구름에 리조트’. 고택 숙박과 전 통마을 교육프로그램으로 지역문화관광을 이끈다. 작은 사진은 전통과 현대미가 조화를 이룬 리조트 내부의 모습.

김춘식기자

고유문화 살린 창조도시로  회색도시는 지금 변신 중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jongryn@gmail.com

한국 인구의 90%가 도시에 살고 있다. 선진 국과 마찬가지로 도시는 한국 문화를 보호하 고 표현하며 개발하는 중요한 단위다. 그런 데 한국 도시에는 고유의 얼굴이 없다. 거의 모든 도시가 획일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정 체성이 모호하다. 이는 1960년대 이후 급격 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모든 도시가 하나의 발전 모델을 따랐고, 그 과정에서 각 도시의 개성과 문화가 많이 훼손됐기 때문으 로 보인다. 도시문화는 도시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요 소다. 경제지리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 도시의 부상을 설명하면서 “창조도시는 창 조산업을 만드는 인재가 선호하는 문화를 가 진 도시”라고 주장한다. 이제 한국 도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도시 문화를 키워야 한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중 요하게 여기는 젊은 세대는 도시문화에 따라 ‘살고 싶은 도시’를 결정한다. 미래 도시의 성패는 젊은 세대의 다양한 문화 욕구를 얼 마나 성공적으로 만족시키는지에 달렸다. 살 고 싶은 도시, 매력적인 도시는 국가 경쟁력 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도시가 키운 스타벅스이케아나이키 정부는 국정과제로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설정했다. 문화를 기반으로 한 창조도시가

많아지면 동시에 해결된다. 플로리다가 말한 창조도시가 되려면 도시 문화 정체성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사례 1=미국 시애틀은 매력적인 도시문 화로 큰 기업을 키운 대표적인 도시다. 시애 틀은 미국에서 카페인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도시다. 날씨와 연관이 있다. 늦가을에서 늦 봄까지 거의 매일 비가 온다. 해가 일찍 져 어 둡고 음산하다. 시민들은 유난히 커피를 마 시며 대화하는 걸 즐긴다. 이 도시는 새로운 기업을 지원하는 문화와 자원이 풍부하다. 스타벅스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코스트코 등도 시애틀에서 시작했다. #사례 2=실용적 가구 이케아(IKEA)의 실질적인 본사는 스웨덴의 남부 도시 알름홀 트에 있다. 알름홀트가 속한 ‘스몰란트’라는 지역은 예로부터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근 검절약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이케아는 화려한 디자인을 멀리하고 단순하고 실용적 인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뿐 아니라 매장 위 치와 구조에서도 지역 환경에 대한 배려를 엿 볼 수 있다. 끝까지 다 둘러봐야만 밖으로 나 올 수 있게 매장을 설계했고, 직접 차를 몰고 오는 고객을 주 소비층으로 정해 임대료가 싼 도시 외곽에 문을 열었다. #사례 3=포틀랜드는 나이키가 창업하고 성장한 도시다. 포클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푸른 도시’로 불린다. 그에 걸맞게 지역 전체 에 산책로가 많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운동 을 즐긴다. 나이키가 운동화 개발을 위해 노

급속한 산업화에 개성문화 훼손 지속 발전위해 정체성 찾기 확산 안동전주서울 가장 한국적 평가 제주통영부산, 문화도시 탈바꿈 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포틀랜드 는 자유로운 도전을 강조하는 나이키의 경영 철학과 어울렸다. 이처럼 지역 특유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연 계해 산업을 발전시킨 창조도시가 세계 경제 를 주도한다. 아산정책연구원 여론계량분석센터는 리 서치앤리서치와 함께 지난 5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51명에게 한국의 도시문화에 대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문화 정체성이 가장 뚜렷한 도시는 서 울(24.7%)·안동(11.9%)·전주(10.8%)·제주 (8.5%)·부산 (7.4%) 순이었다. 흥미로운 점 은 ‘잘 모름(19.3%)’이 많다는 사실이다. 상 당수의 시민이 도시문화 정체성을 중요하 게 인식하지 않고 있거나 도시의 문화 정체 성이 그만큼 뚜렷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 장 한국적인 도시로는 안동(17.4%)과 전주 (16.0%), 서울(15.4%) 순이었다. 매력적이면 서 살고 싶은 도시는 서울· 제주·부산 순으 로 꼽혔다. 전주와 안동 등 전통문화 도시는 문화와 한국 정체성은 뚜렷하나 제주와 부 산 등의 현대 문화 도시보다 도시 매력성과

거주 희망도가 떨어졌다. 전통문화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만들 것인가가 이들 전통 도시의 숙제인 것이다. 제주와 부산은 문화 정체성 과 한국 정체성에서 전주와 안동에 뒤졌지만 도시 매력성과 거주 희망도에서 앞섰다. 환 경·대중문화·관광 등 비전통문화 요소가 한 국의 도시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 을 보여준다. 하지만 제주와 부산의 문화 정 체성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가 않다. 독특한 생활 습관도 소중한 도시 자원 서울은 모든 항목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 은 도시다. 문화 정체성, 한국 정체성, 도시 매력성, 거주 희망도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 을 대표한다. 하지만 뚜렷하게 서울의 문화 정체성을 정의하기 어렵다. 서울 정체성의 부 재는 곧 한국 문화 정체성의 부재를 의미한 다. 우리가 한국 문화의 정체성과 차별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 도시는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 문화 거리의 확산, 귀농의 증가, 문화도시의 등장 등 우리나라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많은 시민이 자연을 음미하고 걷거나, 구석구 석을 누비며 맛과 쇼핑을 즐기기 위해 주변의 거리와 동네를 찾는다. 좋은 동네는 더 이상 투자 가치가 높은 지역이 아니다. 이제 시민 이 원하는 동네는 새로운 도시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문화적으로 매력이 있는 동네인 것 이다.

제주·전주·통영·부산·강릉은 도시 전체가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화도시로 변 모해나가는 이들 도시는 대규모 관광객을 유 치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 광객은 무려 230만 명에 이른다. 전주는 전주 한옥마을로만 연간 500만 명이 넘는 관광객 을 유치한다. 강릉의 커피 문화(테라로사 공 장), 안동의 리조트 문화(한옥 리조트 구름 에), 통영의 바다 문화를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다. 함평군은 2013년 함평 나비 대축제에 총 24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고 탄광 도시로 알 려진 정선은 지역 문화를 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다. 지난해 정선 5일장을 방문한 관 광객은 무려 46만 명에 달했다. 대구시는 매년 지역의 치킨산업을 문화적으로 지원하기 위 해 매년 ‘치맥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마산의 무학소주, 부산의 파크랜드, 경주 의 경주법주 등 대기업 수준의 지역 기업도 전국 기업이 됐다. 현재 추세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의 소도시에서도 글로벌 기 업이 탄생할 것이다. 창조도시의 전제 조건은 매력적인 도시문 화다. 전통문화 보호, 예술가 지원, 문화 시설 건립 등 문화 인프라에 더 투자해야 한다. 그 를 통해 지역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계승하 고 현대 문화에 맞춰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역 문화 정체성의 확립 을 위해 정부가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면 초·중등학교에서 지역 정체성 교육을 강 화하는 것이다.

창조문화도시의 조건

전통문화가 도시 정체성 좌우  기억 잃은 도시엔 미래 없어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m

문화도시란 역사성을 바탕으로 자기정체성 을 갖고 있으며 공공성이 확장되고 보장되는 도시다. 역사성과 정통성, 유기적인 문화 인 프라와 문화 정책, 개성적인 문화 공간과 도 시경관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문화도 시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2001년 개정된 도 시계획법에서 문화도시를 시범도시로 지정 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부터다. 서울전주경주공주부여익산은 문화 도시로 손에 꼽을 만한 고도(古都)다. 하지만 많은 외침과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로 옛

모습을 대부분 잃었다. 그나마 서울의 5대 궁 궐, 전주 경기전, 경주 첨성대, 공주 공산성, 부여 낙화암, 익산 미륵사지는 훼손되기는 했 지만 옛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문화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역사의 전반기 500년 역사를 간직한 한성백제의 실체가 고구려에 패망한 이후 사 라졌습니다.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가 나당 연 합군에 의해 모두 불탔고, 몽고의 침입으로 황룡사를 비롯한 신라 왕경의 중요 건축물들 이 석조유구와 도로유구만을 제외하고 대부 분 사라졌죠. 우리 옛 도시가 대대적인 공간 구조 변화를 겪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입니 다. 전쟁이 단기간에 걸쳐 일어난 전통문화

일제 때 장기간 걸쳐 조직적 파괴 울산포항  산업화 덕에 정체성 기업 성장하며 색다른 도시 문화

공간 파괴라면, 일본 식민지 기간은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진행된 전통문화 공간 훼손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한국감정원 채미옥 부동산연구원장의 지 적이다. 급격한 산업화는 전통 도시를 몰개성의 밀 집주거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경주시의 경 우 1980년 도심에 4층짜리 아파트 23동이 건

립되면서 도심의 경관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 했다. 1990년대부터는 북천 이북 지역에 9층 에서 20층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건설됐다. 백제 수도였던 공주의 옛 도심은 금강 이남이 었다. 지금은 강북에 신도시가 생겨나 도시 의 얼굴이 크게 변모했다. 도시 문화 정체성을 묻는 여론조사에 서 시민들이 가장 중시하는 게 전통문화 (2 3.5%)였다. 대중 문화엔터테인먼트 (19%), 관광 및 쇼핑(17.9%)이 전통문화 다음으로 많았다. 도시의 정체성은 도시에 쌓인 기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지만, 기억은 우 리를 영원한 현재에 묶어두는 끈이다. 기억

이 없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모종린 교수의 저서 작은 도시 큰 기업  에 따르면 산업화가 반드시 문화도시를 훼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이 없던 도시에 뚜렷한 특징을 부여하기도 한다. 외국 의 경우 말고도 울산과 중공업, 포항과 광양 의 제철, 수원과 반도체가 좋은 예다. 특정 도 시를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은 다른 도시와 색다른 도시문화를 만든다. 그 기업이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도시문화를 만 들어 가는가, 아니면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덧쌓아 가느냐가 중요하 다. 기억을 찾아가는 문화도시 만들기, 우리 시대 한국 문화계의 또 다른 사명이다.


24 Column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37 게오르게 구르지예프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

본성 자제하고 다양한 사고한다면 당신은 ‘놀라운 사람’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사람은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미국인들을 비롯해 서양 사람들은 이집트를 좋아한다. 표지에 고대 이집트 풍물이 나오 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는 평소보다 많이 팔린다. 티베트 매니아도 많다. 1968~69년에 방영된 영국 TV 시리즈 ‘챔피언’에는 네메 시스라는 유엔 비밀 조직 요원 3명이 나온다. 그들은 티베트에서 텔레파시와 예지력을 얻 어 악과 맞서 싸운다. 달라이 라마의 인기도 서양사람들이 티 베트나 동양을 신비스러운 지혜의 원천이 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와 전통적인 서구 문명에 대안을 제 시하려는 서양의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의 4대 분야 혹은 원천은 영성주 의신비주의환경주의전체론(holism)이다. 모두 동양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르메니아 출신 영성가 게오르게 이바노 비치 구르지예프(1866?~1949)는 ‘뉴에이지 운동의 원조’‘20세기의 영적인 스승’이라 불 린다. 다른 극단의 평가는 그가 사기꾼에 불 과하다는 것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괴승 라스푸틴(1872?~1916)과 미국 현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1894~1991)을 합쳐놓은 인물 이라는 평가도 있다. 기성 종교 교리와 의식에 반기 확실한 것은 구르지예프를 통해 동양과 서양 의 신비주의(神祕主義)가 만났다는 것이다. 다른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구르지예 프는 기성 종교의 교리나 의식에 반대하는 입 장이었다. 또 확실한 것은 많은 유명인들이 그 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건축가 저술가 프랭크 라이트(1867~1959), 영국 올더 스 헉슬리(1894~1963), 헝가리 출신 영국 작 가 아서 케스틀러(1905~1983), 메리 포핀스 (1934)의 저자 패멀라 트래버스(1899~1996)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1960년대 서구의 대항문화(對抗文化counter culture)에도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 구르지예프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혼합주 의·종합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한 이야기들은 동서양 신비주의자들의 영성 문학과 겹친다. 또 구르지예프가 한 이 야기들은 ‘영성 구루’로 각광 받는 디팩 초프 라가 하는 말들과도 공통분모가 많다. 이런 얘기들이다. 인간은 보다 높은 수준 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해 알 게 되고 집중력을 키우면, 잠재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몽 유(夢遊) 상태다. 환경의 자극에 자동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인이 아니라 그저 결과로서 살고 있다. 그런 로봇 같은 삶에서 탈출하려면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필요하다. 스스로 를 관찰하면 몇 가지 이런 사실들이 들어난 다. 알고 보니 나(I)라는 존재는 단수가 아니 라 복수다. 수많은 나들(I’s), 서로 충돌하는 나들이 있다. 구르지예프는 “어떤 두 사람의 본질상 차이는, 광물(鑛物)과 동물의 차이 사이만큼이나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안의 나들 중에는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작은 나로 구성된 게 나다. 그 중에 서 진짜 나를 찾아라. “당신이 모르는 사람 빼고는 모두다 이상 하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러 나를 발견 하고 보니, 그 중에 하나의 나는 이상하다. 나 안의 그 녀석들은 기괴하다.고약하다. 쩨쩨 하고 치사하다. 왜 여러 나의 모습을 발견해 야 할까. 그래야 허물 많은 남들을 동병상련 의 심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르지예프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 신이 창안한 ‘자기계발’ 프로젝트이자 시스 템인 ‘노력(The Work)’을 전수받으려면 스 승이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노력’은 ‘제4의 길’이라고도 불린다. 제1~3의 길은 이슬람의 파키르 수도자, 기독교의 수도사, 인도의 요 기들의 수행법으로 구성된다. ‘제4의 길’을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어떻게 될까. 지성·감 성·본능이 균형 잡힌 인간이 된다. 구르지예프 방식의 특징은 일상 생활 속 에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세를 등지 지 않아도 된다. 그의 방식은 음악에 맞춰 추 는 춤을 중시한다. 그가 권장하는 춤은 ‘무브 먼트(Movement·움직임)’라 불린다. 신성한 춤, 신성무(神聖舞)다. 대체적으로 수피 신비 주의 춤을 바탕으로 개발한 것으로 평가된 다. 구르지예프는러시아 작곡가 토마스 하트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우리말(왼쪽)과 영 문판 표지. ◀책에 나오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 구르지예프는 정교회의 신비주의 전통,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 즘(Sufism)과 동양의 종교 철학을 융합한 체계를 선보였다.

자서전인 동시에 영적 순례의 기록 “남을 공정관대하게 대하라” 외쳐 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서 만난 왕족과 수 많은 사람들 이야기 담아 만(1885~1956)의 도움을 받아 170곡의 피아 노곡을 지었는데 그 중 일부가 무브먼트에 활 용된다.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 Gurdjieff을 쳐보면 많이 올라와 있다. 수피 춤뿐만 아니 라 인도의 춤이나 중국 태극권을 연상시키 는 그의 춤동작은 4500년 된 것으로 ‘알려졌 다’. 묘한 느낌을 주는, 중독성 있는 춤과 음 악의 앙상블이다. 구르지예프는 또 환경의 변화가 습관적으로 하는 생각을 깨는데 특효 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자신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여행을 했다. 1979년엔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는 “내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말라. 스스로 발견하라”는 말도 했지만 자신이 쓴 글은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 기도 했다. 그가 1927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가 쓴 세 책 중 에서 가장 쉬운 책이다. 이 책은 베엘제부브 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만, 삶은 실재한다와 더불어 삼부 작을 이룬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1979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감독은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이다.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자서전이자 여행기이자 영적 순례의 기록이다. 그가 말하 는 ‘놀라운 사람(remarkable man)’이란 다 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본성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을 공정하고 관대하 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의 무대는 근동· 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다. 여행 과정에서 사제에서 왕족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책의 내용은 믿기 힘들다. 상당 부분 꾸며 낸 이야기 일수도 있다. 아무래도 영성주의·신비주의는 종교와 가 장 가깝다. 구르지예프의 종교관은 책에 나 오는 다음 몇 마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모든 종교를 존중하라. 객관적인 도덕을 신 (神)이 부여했다면 주관적인 도덕은 사회나 문화, 전통이 만든 것이다. 네 자신이 된 다음 에는 신도 악마도 중요하지 않다. 소금이 없 으면 설탕도 없다. 스스로를 자각하는 신앙 인은 자유롭고 감정 중심으로 믿는 신앙인 은 노예이며 기계적으로 믿는 신앙인은 우 둔하다. 여러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데 ‘이론 만들기(theorizing)’는 필요 없다. 여 러분 내면에 간단하고 적극적인 이성의 행 사만 있으면 된다. 죄란 무엇인가. 불필요한 게 죄다. 신앙을 잃고 싶다면, 사제와 친구가 되면 된다.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한다. 무

엇이 죽어야 하는가.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잘 못된 확신, 자기애, 이기주의가 죽어야 한다. 나의 가르침은 비전(秘傳) 기독교(esoteric Christianity)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신(神)이 직접 가르쳐준 비결(祕訣)을 유지해온 형제 단(brotherhood)이 예수 탄생 1000년 전에 창립됐다. 예수도 이 형제단 소속이었다. 그의 교육 방식은 선사(禪師)의 방식을 방 불케 했다. 오만 가지 몸동작과 표정을 지으 면서 제자들보고 따라 해 보라고 했다. 갑자 기 ‘그만’하라고 외쳤다. 제자들에게 해답을 주기보다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를 가르쳤 다. 그의 제자들은 오늘날에도 15~30명 규모 의 조용한 모임을 가진다. 구르지예프 모임에 는 약간의 비밀주의가 있다. 세간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의 후예들은 포교는 하 지 않는다. 주로 추천을 받아 멤버가 된다. 인간 구르지예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를 만나는 사람은 그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 았다. 그는 구두닦이, 장사, 관광 가이드 등 어 렸을 때 젊었을 때 안 해본 일이 없다. 의문이 생기면 풀어야 하는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 다. 그는 음식과 여자를 좋아했다. 유부녀제 자 등 7명의 여인으로부터 7명의 자식을 뒀 다. 불같이 화를 내는 때도 많았다. 꾀를 써서 돈을 많이 벌었다가 사정이 생겨 탕진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가 깨달았기 때문일까, 깨닫 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깨달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 때문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SNS의 비인간성

궁금해서 본다지만  참수 동영상 공유 행태 ‘섬뜩’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국의 타블로이드 일간지 뉴욕포스트는 아 주 일관성 있는 신문인 것 같다, 그 후안무치 함에 있어서 말이다. 지난달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 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했을 때, 뉴욕포스 트는 IS대원이 희생자의 얼굴을 움켜잡고 목 에 칼을 들이댄 참수 직전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1면에 실었다. 유족에 대한 일말의 배려 없이 선정성만 가득한 이 사진에 대해서 비 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일 것 이다. 이 신문은 2012년에 비슷한 물의를 일 으켜 놓고도 또 이런 사진을 올린 것이니까. 그때 뉴욕포스트는 부랑자에게 떠밀려 지 하철 선로로 떨어진 재미교포 남성이 플랫폼 으로 올라가려 애쓰다 다가오는 전동차를 마 주하는 장면을 1면 전면에 실었다(그 남성은 결국 사망했다). 그때 쓰디쓴 심정으로 칼럼을

지난달 이슬람 무장단체 IS에게 참수된 제임스 폴 리 기자의 부모.

[AP]

잔혹한 동영상 보는 것 자체가 살인 현장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 가족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

쓰면서 <중앙선데이 2012년 12월 9일자 ‘타인 의 고통은 나의 구경거리?’> 더 이상 그런 종 류의 지면을 보지 않기 바랬다. 그러나 선정적 이고 폭력적인 뉴스 전달은 계속 되고 있다. 그

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참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 서 보고 공유하는 사람들도 국내외에 꾸준 히 있다. 10년 전 김선일 씨 동영상부터 폴리 기자에 이어서 며칠 전 IS에 의해 희생된 또 한 명의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틀로프까지. 참수 동영상뿐만이 아니다. 2012년에 ‘나 이지리아 화형’은 국내 포털 검색어 상위에 까지 올라갔었다. 나이지리아의 어느 마을에 서 절도범으로 몰린 대학생들이 주민들에게 구타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진 끔찍한 사건인 데, 그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그것이 국내 뉴스에 보도되면서, 찾아보는 사람들 이 많았다. 당시에 그 사건 자체보다도 그 동 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봤다는 사실에서 한 줄기 섬뜩함을 느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 대부분은 잔인하거나 냉혹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호기심에서 봤을 뿐이고 보고 나서는 후회했고 고통스러 웠다고 말한다. 그 호기심을 전혀 공감하지 못 할 것도 아니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의 마음에서 최우선이자 가장 단 순한 감정은 호기심”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는 그 동영상을 보는 것이 과 연 피해자에 대한, 인간에 대한 예의인가이 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학적 쾌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본 것이리라. 하지만 피해자가 죽는 모습을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 해 본다는 것은, 어떤 미사여구로 변명해도, 결국 흥미를 위해, 호기심이 충족될 때의 일 종의 쾌감을 위해, 살인 장면을 구경하는 것 이 된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작가이며 문화 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이 말했던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로 소 비하는” 것으로 되고 만다. IS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알기 위해 동영상 을 본다는 말도 있으나, 이는 핑계에 불과하 다.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텍스 트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 이다. 결국 ‘이 죽일 놈의 호기심’이다. 사실 이 테러리스트의 정체를 밝혀야 하는 정보 기관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영상은 굳이 볼 필

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동영상을 보는 것 자체가 폭력 과 살인의 현장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삼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며, 죽은 피해자에 대한 모독, 나아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 다. 폴리 기자의 부모는 미국 매체와의 인터 뷰에서 사람들에게 아들의 참수 동영상을 보거나 SNS에 공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 기도 했다. 게다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며칠 전 LA타 임스 칼럼은 우리가 참수 동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실질적으로 그 제작자들의 인지도를 높이도록 돕는 것이며, 그들이 인지도를 위 해 그런 짓을 더욱 많이 하도록 부추기게 된 다고 했다. 그러니 아무리 호기심이 원초적 본능에 가 까운 기본 감정이라고 해도 때론 접어둘 필 요가 있다. 그 호기심으로 선정적인 폭력의 영상에 탐닉할 때 우리는 점점 그것에 무감 각해지고 더 끔찍한 것을 구경거리로 찾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Science 25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28 알코올중독 회로

보신과 망신 사이 음주 경계, WHO 기준은 ‘소주 반병’ <補身>

<亡身>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지난달 11일 오전 11시 55분. 미국 캘리포니 아 주(州) 마린 카운티의 911센터 응급요원이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Carpe Diem(오늘을 잡아라)’, 즉 ‘지금 이 시간을 즐겨라’라는 명 대사로 청 소년들에게 지금의 중요함과 꿈을 심어줬던 1990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연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그렇게 자살로 생을 마감 했다. 1998년 영화 ‘패치아담스’에서 웃음으 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였던 그다. 그는 스 크린 속에선 웃고 있었지만 현실에선 내면의 악마와 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30년 동안 그를 괴롭힌 악마는 다름 아닌‘알코올’이었 다. 청년시절 시작된 알코올과의 인연은 중독 으로 발전했다. 그 후 수차례 재활센터를 들 락거려야 했다. ‘알코올 중독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 은 소주병을 끼고 살거나 취해서 길거리에서 잠든 술주정뱅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진단은 다르다. 술 취해 횡설수설하다가 아침이면 자 기는 절대 중독이 아니라고 외치는 남성, 낮 에 몰래 한잔하고 저녁이면 멀쩡해지는 주 부, 이들이 모두 알코올 중독의 초기 환자라 고 본다. 저녁이면 술 한 잔 생각이 나고 1주 일에 한두 번은 친구들과 소주를 나누는 필 자도 어쩌면 알코올 중독의 문을 두들기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리 집안 어르신들이 모두 술 때문 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말술이면 아들이 대 물림할 확률이 4배나 높다고 하니 걱정이다. 소주 반병의 저녁반주도 이젠 망설여진다. 그 나마 조금 위안을 삼는 것은 하루 소주 반병 가량의 음주는 건강이나 중독에 큰 문제가 없 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견해다. 주사를 ‘무용담’으로 용인하는 풍토 문제 전문가들은 중독의 위험성을 무얼 보고 판단 할까? 답은 간단명료하다. 판단 기준은 술을 왜 마시는 가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던 필자의 지인은 키 생각이 날 때마다 한잔씩 했다. 한잔하면 일 단 키를 잊을 수 있었다. 홀로 마시는 횟수가 점차 늘었다. 평소 주량이 소주 한 병이던 그 친구가 한 자리에서 세 병을 비운다고 하더니 어느 날 회사를 그만뒀다. 술자리에서 ‘키’를 언급한 상사를 넥타이 채로 잡아 팽개친 것 이다. 그 친구는 술을 분풀이로 마셔왔던 셈 이다. 중국의 작가 린위탕(林語堂)은 저서 ‘생활 의 발견’에서 ‘애주가에겐 정서가 가장 귀중 한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떠들썩한 자리에서 적 당량의 ‘사회적 음주’는 살아가는 즐거움의 하나다. 하지만‘현실을 잊으려고 퍼 마시는 폭 주’는 중독의 첫째 요건이다. 즉 개인문제를 술 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중독 위험이 높다. 중독의 둘째 요건은 술 마시기에 대한 사회 분위기다. 술 마시고 벌어진 추태를 ‘무용담’ 으로 받아들이는 등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 는 중독의 두 번째 허들을 쉽게 넘게 한다. 세 번째 요건은 각자의 유전자다. 특이한 숙취 분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알코올 중 독이 되기 쉽다. 만약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췄 다면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늘 자기를 돌아봐야 한다. 술로 인한 사망, 고혈압담배 이어 3위 알코올 중독의 4단계는 (1)자주 마시기 (2)가 끔 필름 끊기기 (3)시작하면 발동 걸리기 (4) 술 끼고 살기다. 1단계는, 한국의 직장인이라 면 쉽게 들어선다. “술을 못하면 등신(等神) 이요, 적당히 하면 보신(補身)이요, 지나치면

프랑스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의 작품 ‘숙취’(1888년)

술은 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 혈중농도 0.2% 넘으면 통제력 상실 살인 42%, 교통사고 30%는 술 때문 ‘중독 회로’ 한번 완성되면 뿌리 깊어 20년 금주했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 위스키 한잔으로 재발해 결국 자살

술을 보신(補身)의 단계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현명 하다.

일러스트 박정주

망신(亡身)”이란 농담엔 ‘남자가 술은 조금 해야지’라는 사회적 압력이 내포돼 있다. 술 로 인한 실수는 2,3단계에서 주로 나타난다. 술을 마시다가 절제의 끈이 끊어지면 큰 낭 패와 망신을 겪을 수 있다. 상사를 넥타이 채 로 잡아챈 내 친구의 경우 꾹꾹 누르고 절제 해왔던 분노가 소주 3병에 튀어나온 셈이다. 알코올은 뇌 활동을 조절하는 신호물질을 증가 혹은 감소시킨다. 도파민·세로토닌의 분비를 늘려서 연애할 때처럼 공연히 ‘흥얼 흥얼’ 콧노래가 나오게 한다. 하늘이 돈짝만 해지고 귀가 길에 뜬금없이 장미 열 송이를 사가 돈 낭비했다며 집사람에게 ‘구박’을 받 기도 한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 상태는 소주 1병, 즉 혈중 알코올 0.1%까지다. 이 정도를 넘어서면 알코올은 몸을 휘청 거리게 한다. 글루타메이트·가바(GABA)같 은 신경전달물질의 정교한 밸런스가 깨져 두뇌가 일을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 결과 학 습과 기억 장애가 일어난다. 또 근육의 움직 임이 둔해져 혀가 꼬이고 다리가 풀린다. 심 하면 ‘땅이 얼굴로 올라온다!’라고 외치며 넘어진다. 특히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는 뇌의 ‘중앙통제장치’다. 술이 ‘술술’ 넘어가서 혈 중 농도가 0.2%를 넘어서면 알코올이 우리 몸 의 통제실 스위치를 내려버려 뇌가 마취된다. 평소엔 이성으로 조절되던 성욕억제 스위치 도 내려진다. 젊은 커플은 새 식구가 생기는 ‘연애사고’를 치지만 중년에선 가정이 위태 로워지는 ‘불륜사건’이 생기기도 한다. 마취 된 뇌는 몸의 반응시간도 늦춘다. 소주 한 병 이면 몸의 반응시간이 0.2초 늦어진다. 이에 따라 자동차의 제동거리는 두 배나 늘어난다. 정신이 멀쩡한 것 같아도 운전대를 잡았다간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다. 보신과 망신의 경계점은 WHO의 ‘적정 음주’, 즉, 남성 기준(여성은 절반. 임신 여성 은 금주)으로 맥주 2캔, 와인 0.4병, 소주 반 병 그리고 위스키 3 잔까지다. 술을 자주 마시 는 1,2단계를 넘어 3,4단계에 들어서면 망신 의 단계를 넘어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 신(死神)이 된다. WHO가 지난 20년간 사망· 장애의 발생 원인을 조사해 보니 고혈압·흡

지만 다음 날 숙취로 고생하기 때문에 그나 마 알코올 중독자가 유럽의 반에 그친다. 지나친 음주 탓에 한국인의 간암 사망자 비율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내 1위다. 간 질환은 국내 남성 사망률 3위다. 알코올 은 WHO의 1급 발암물질이다. 또 ‘만성 자살 병’을 일으키는 ‘법적 허용 마약’이다.

뇌의 신경연결도. 한잔의 음주로 기분이 좋아지는 ‘보상’회로가 견고해지면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 쉽다.

연에 이어 알코올이 3위를 차지했다. 또 살인 의 42%, 교통사고의 30%, 응급 입원환자의 11%가 술 탓이었다. 알코올 분해 유전자, 유럽보다 한중일 강력 국내 20세 이상 성인의 63%가 술을 마신다. 10.9%가 중독 위험군(群), 4.2%가 알코올 중 독자다. 이는 미국·일본보다 높은 비율이다. 음주량 세계 13위, 소주 포함 독주 소비량 10 년 연속 1위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인이 특별 히 술에 센 DNA(유전자)를 가진 것일까? 알코올 중독의 세 번째 요건, 즉 유전자의 영향은 50% 정도다. 유전자는 알코올 중독 자가 되는 데 사회·문화적 요인보다 영향을 더 많이 미친다. 아버지가 주정뱅이이면 그 아들이 설사 정상인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 도 주정뱅이가 되기 쉽다. 알코올은 알코올 분해 유전자에 의해 숙취물질(아세트알데히 드)로 분해되고 숙취물질은 숙취분해 유전 자에 의해 물로 변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 기 쉬운 유형은 남들보다 숙취 물질이 훨씬 덜 생겨서 다음 날 술을 또 마시려는 사람이 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여성의 경우 알코올의 분해속도가 느려서 술에 장시간 취해 있다. 하지만 이 여성의 숙취분해 유전자가 강하다 면 다음날 머리가 멀쩡해서 또 술을 찾게 된 다. 그만큼 중독 위험성이 높다. 동아시아인, 특히 한국·일본·중국인은 알 코올 분해 유전자가 유럽인보다 강하지만 숙 취물질 분해 유전자는 상대적으로 약한 편 이다. 따라서 음주량은 유럽인 이상으로 많

음주→심적 안정→중독회로 강화 ‘악순환’ ‘어린 왕자’가 별에서 주정뱅이에게 이야기 한다. “왜 술을 마셔요? 잊으려고. 무엇을 잊 으려고요?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왜 부끄러 운데요? 술을 마신다는 것이.”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 자’에 나오는 얘기다. 알코올 중독의 전형적 인 악순환 패턴이다. 마시면 슬픈 기분이 금 방 사라지는 ‘보상’이 반복되면 뇌의 ‘보상 심리’회로, 즉 중독회로가 점점 튼튼해진 다. 올해 7월 권위 있는 과학 전문지 ‘네이처 (Nature)’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반복된 뇌의 전기 자극은 실제로 그 지역의 신경세 포(뉴런) 사이의 연결고리(시냅스)를 점차로 많이, 강하게 만든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이유’가 눈으로 확인된 셈이다. 한번 완성된 알코올 중독 회로는 뿌리가 깊 다. 10년 간의 음주 생활을 청산하고 20년 간 잘 버텨왔던 로빈 윌리엄스도 우연히 찾은 한 가게에서 마신 ‘잭 다니엘’ 위스키 한잔으로 다시 폭음이 시작됐다고 고백했다. 끊은 것이 아니고 참고 있었던 것이다. 폭탄주는 ‘빨리, 같이 취하자’는 한국형 폭 음 형태다. 다행히도 최근엔 대기업을 중심으 로 폭탄주 회식 대신 음악회를 가는 일도 늘 어났다고 한다. 강요된 폭음으로 인한 개인의 건강 악화와 국가 GNP의 4%에 해당하는 음 주관련 손실은 이제 없어지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술을 사신·망신 이전의 보신(補身) 수준 에만 머물도록 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 에게 알리고 있다.


26 Column

반상(盤上)의 향기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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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기원

왕한년 “천원은 태극 자리  1착의 가치는 논할 수 없다” <명나라 말 국수>

<天元>

문용직 객원기자전 프로기사 moonro@joongang.co.kr

바둑이란 무엇일까? 고래(古來)로부터의 질 문이다. 만약 바둑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어 떻게 두어야 할지도 알 것이다. 그 답을 찾는 마음이 3000년을 흘러왔다. 누군가 답을 찾았다. 글을 썼다. “冬至後左旋 夏至後右旋 冬至逆三 成 一七四 夏至順三 成九六三 冬至起坎 一而逆 歷三宮 成七自七宮 逆歷三宮 成四 故一七四 夏至起離 九而順歷三宮 成三 … 奇門劍家曰 逆三大者 是也 …” (동지 이후는 (해가) 왼쪽으로 돌고, 하지 이후에는 오른쪽으로 돌고…)

1933년 홋카이도의 지고쿠다니(地獄谷) 계곡 입구 에서 우칭위안(앉은 사람)과 기타니가 기념촬영을 했다. 두 기사는 반상의 논리만으로 반상의 지평을 크게 여는 데 성공했다.

19세기 말 ‘기국해(碁局解)’의 일부다. 1964년인가 바둑 잡지 기원(碁苑)에 “해석 이 어려우니 함께 연구해 봅시다”라는 취지 로 게재되었다. 40여 년이 흐른 후 이 글은 또 다시 월간 바둑에 실렸다. 무슨 내용일까. 절기(節氣)와 마방진 같은 숫자, 주역, 간지(干支), 병법 … 이런저런 것 들이 뒤섞였다. 여러 가지 다른 체계를 잡다 하게 섞어서 바둑의 절대적인 답을 찾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체계는 쉽게 하나로 모아질 수 없다. 모으면 오류가 도처에 발생한다. 그 래서 아무도 해석 못했다. 정신도 초점도 없 는 글이다. 밤하늘 닮은 중국 출토 석제 바둑판 바둑의 역사 3000년. 갖가지 철학과 관념이 출몰했다. 마술적(magic)인 정신과 신화적 인 이해, 합리적인 사고가 역사를 이뤘다. 바둑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 천원(天元· 바둑판 위의 제일 가운데 자리)과 결부된 답은 오랜 기간 바둑을 수놓았다. 명말 청초 왕한년(汪漢年)은 국수(國手)였 다. 그는 첫 수를 천원에 즐겨 두었다. “천원 은 태극(太極)의 자리. 태극은 출발점이니 천 원 1착은 그 가치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문학의 고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원 (元)은 시작”이라 했다. 18세기 일본 최초의 역인 정향력(貞享 曆)을 만든 천문학자 야스이 산테쓰(安井 算哲·1639~1715)는 바둑에도 일류였다. 그 는 천문(天文)의 이치가 반상에도 살아 있 으리라 가정했다. 1670년 본인방 도사쿠 (道策·1645~1702)에게 천원 1착으로 도전 했다.(기보) 당시 많은 기사들이 천원에 첫 수를 두곤 했다. 모두가 천문의 이치를 기대했는지 여부 는 모르지만 실험 정신이 왕성했다. 천문은 매혹적인 관념이었다. 바둑의 기원설(起源 說) 중 하나가 천문설(天文說)이다. 천문 관 측 도구로부터 바둑이 왔다는 것이다. 사진 을 보자. 1958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왕두 현(望都懸) 유(劉)장군의 묘(墓)에서 출토된 석제(石製) 바둑판이다. 돌이 깨진 탓이겠지 만, 그와는 별개로 은하수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 같다. 화점 문양도 아름답 다. 하나 부언하면 이 바둑판이 17줄이라는 점이다. 늦어도 당나라(618~907) 때엔 바둑 판이 19줄이 됐다. 19 2 9년 여름 중 국의 천재 우 칭위안 (吳淸源·1914~)은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1909~75) 5단과의 대국에서 천원에 1착 을 두었다. 역사상 첫 번째 흉내 바둑이었다. 천원 1착 이후 63수까지 기타니를 따라 두었 다. 난데없는 시도에 기타니는 당황했다. 대 국장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이 세 사건만을 봐도 바둑이 신비와 탈 신 비를 오가면서 3000년을 살아왔음을 알 수

1958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왕두현(望都懸) 유(劉)장군의 묘(墓)에서 출토된 석제(石製) 바둑판. 현대와 달리 17줄 바둑판이다.

신비와 탈 신비 사이서 3000년 역사 ‘천원 첫수’ 대국은 천문철학설 영향 17세기 일본 기사들 사이서도 유행 바둑은 결국 우연사건 이어진 게임 천지우주 같은 개념과 맞지 않아 프로들도 철학보다 승부에만 관심

기보 천문의 실험으로 도사쿠에 도전한 산테쓰(흑).

있다. 물론 시간적인 선후(先後)가 있는 건 아 니다. 중국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바둑엔 병법의 이치가 살아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병법엔 궤계(詭計)가 핵심이다. 소위 정보를 제한하는 것인데, 그와 달리 바둑은 정보를 완벽히 공개하는 게임이다. 눈을 돌려보자. 태극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왕한년은 철학의 이치가 구체적으 로 세상에 살아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관념 과 실체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천 원=태극’설은 바둑의 자유와 모순된 것이었 다. 만약 제1착을 천원으로 정해놓는다면 다 른 자리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1착 이후 모 든 착수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력을 가진 다. 사고를 제한한다. 사고의 제한! 그것이었다. 그것이 역사적으 로 천원 1착이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이는 두 번째 사건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 다. 태극 대신에 북두로 대치했을 뿐이다. ‘천 원=북두’였다. 사고는 굳어지고 유연성은 사 라진다. 당연히 실패한다. 실제로 산테쓰의 실험은 실패했다. 기보를 보면 수법이 딱딱하 기 그지없다. 흑9는 당연히 A에 두어야 부드 럽고 반상에 생기가 돈다. 큰소리쳤던 그는 다 시는 천원에 1착을 두지 않았으며 천문학자의 길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우칭위안의 천원 1착은 성공이었다. 덤이 없다면 흑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증거가 됐다. 1940년대 덤의 채택에 논리적인 근거가 됐다. 다른 세계의 투영이 아니라 자체 논리 로부터 출발했기에 현실적이었다. 철학과 천문 모사한 왕한년과 산테쓰 도가(道家) 철학에서 태극은 신화에서의 천 지창조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우주적 질서 를 상징한다. 그런데 세상의 질서를 이끄는 관념은 의례(儀禮)에 속한다. 잠시 의례와 게

천원을 실험한 인물과 배경 인물

출발 자리

논리

왕한년

도가의 태극(太極)

철학

야스이 산테쓰

천문의 북두(北斗)

천문학

우칭위안

흉내바둑 자리

반상 논리

임의 차이를 보자. 제의(祭儀) 같은 의례는 불평등한 세상을 균형으로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정당성을 제공한다. 왕조의 봉선(封禪) 의식이나 제사가 그런 것이다. 태극은 그런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상한다. 하지만 바둑은 게임. 게임은 우연과 사건 에 복속된다. 비록 출발은 규칙이 있어 공정 한 것이지만 과정과 결과는 사건과 불균형, 불평등으로 귀결된다. 간단히 말해 태극과 게임은 맞지 않는 대응이자 틀린 유추 관계 에 속한다. 물론 태극을 상정함으로써 지적 (知的) 차원의 만족은 얻는다. 우주를 축소 했으니 말이다. 축소하면 갖고 놀 수 있다. 천지·천문·하늘과 같은 개념은 게임의 세 상과는 맞지 않다. 바둑의 놀이성과 거리가 멀다. 그러기에 프로들은 철학에 관심을 두 지 않는다. 프로들은 게임의 세상에서 노는 사람들. 게임은 우연과 사건의 세상이지 구 조로 답하는 세상이 아니다. 실력 13단으로 불린 도사쿠가 남긴 글에서 도 신비나 어려운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이 런 이야기가 전부다. “상대의 세(勢)를 갈라 두어라.” “끊기면 문제 되나니 조심하라.” 철학과 천문의 단순 모사(模寫)에 그쳤지 만 왕한년과 산테쓰는 바둑을 통제하려고 했다. 바둑에 의례를 도입함으로써 주술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주술은 자연에 영향을 미 치려는 행위. 삶이 풍성하게 보일 수 있을지 는 몰라도 그건 잠깐이다. 유사(類似)함에 현혹되는 태도의 밑바닥 엔 질서를 찾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요청 이 있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C Levi-

Strauss·1908~2009)는 “인간은 다른 건 다 참 아도 무질서는 참지 못한다”고 했다. 질서를 찾는 방법으로 원시인들이 발견한 것은 토테 미즘(totemism)이었다. 동식물 등 자연을 이용해서 세상을 분류하고 질서를 수립했다. 초점은 토템이 아니다. 토템을 이용해 사회를 나누고 관계를 설정하는 조작이 핵심이다. 오행설(五行說)도 맥락은 다르지 않다. 유 사와 대응, 매개항을 이용한 분류법을 사용 해 체계를 세운 것이다. 주역의 설괘전(說卦 傳)도 그런 것이다. 분류의 핵심 하나는 축소다. 인간과 사회 를 우주 질서의 축소판으로 보는 견해는 어 디에나 있었다.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로 보 는 것은 한의학의 바탕이다. 서양도 다르지 않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B.C. 25 ~A.D. 42)는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다. “창 조물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애정을 가진 신 은 하늘을 시작으로 인간을 끝으로… 축소 된 우주(a miniature heaven)로서의 인간을 만들었다.” 간단한 분류는 매혹적이다. 이미지 하나 로 복잡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다. 정치도 그 렇다. ‘음모론’에 갇히면 세상 모든 것을 ‘음 모’ 틀 속에서 설명한다. 단순하지만 스스로 는 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흑백은 회색보 다 훨씬 분간하기 쉽다. 맑은 눈망울 가진 저 개발 국가의 아이를 보고 그 사회를 평화로 채색하는 태도도 그런 것이다. 신비스런 현상은 있어도 신비는 없다 돌아보면 ‘기국해’는 버젓이 책에도 실리고 칭송도 받았다. 글에 담긴 주술적 요소는 무 시되었다. 위안은 있었다. “우린 모른다. 옛사 람은 뭔가 알았을 것이다.” 옛사람은 성인(=진리)의 다른 얼굴. 뭔지 는 몰라도 손 안에 열쇠 하나는 쥐고 있겠다 는 심사다. 하지만 신비스런 현상은 있어도 신비는 없 다. 그 점을 이해 못했다. 얻으려 하는 것이 손에 쉽게 잡히지 않고, 또 그것이 오랜 역사 를 견뎌온 것이라면 그 대상엔 신비가 서려 있는 것이 보통이다. 바둑에서도 권위 없이 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다. 바둑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문명의 역사 길어야 1만 년. 어느 분야든 깊게 알면 신비스런 현상과 신비를 구별할 수 있지만, 약간 맛보면 신비에 넘어가기 쉬운 단계다. 그럴 때 문제는 이것이다. 인생 유한 한데, 대체 얼마나 던져야 제대로 알게 될 것 인가. 인생 짧은데, 신비의 권위를 인정하면 뭐가 문제인가.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 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 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Column 27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삶과 믿음

내 마음 속 ‘선배 어록’ 정은광 교무 dmsehf4438@hanmail.net

그리스 출신 지휘자 드리트리 미트로폴로스(1896~1960). 현대음악의 예리한 해석자로 정평이 나 있다.

[사진 LIFE]

詩人의 음악 읽기 지휘자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유별난 음의 강약  천둥번개 몰아치듯 지휘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명성이 예전 같지는 않다 해도 뉴욕 필하모 닉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의 하나다.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로 토스카니 니, 브루노 발터가 거쳐 간 교향악단. 레너 드 번스타인과 함께 했던 1960년대 최전성 기를 맞아 카라얀의 베를린 필과 더불어 세 계 악단을 양분했던 영광의 시절들. 뉴욕 필 은 흡사 미국의 크기와 영향력을 문화예술 로 상징하는 존재 같아 보인다. 그런데 그 속에 꽤 이상한 존재가 한 사 람 있다. 그 유명하고 인기 있던 스토코프 스키의 후임으로 1949년부터 58년까지 9 년 간이나 음악감독과 상임 지휘자를 맡았 다면 영광의 시절을 되새길 때 자주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 옳다. 당연히 마에스트로 반열에 올라 있을 것이고, 지속적인 음반 재발매가 이루어지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의 이름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재발매도 극히 드물다. 기록들을 보면 뭔가 불편한 내력이 역력해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어떤 인물인 것일까. 그의 이름은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일 단 주변적인 것부터 떠올려 보자. 언제나 머 리를 박박 깎는 그는 무척 험악하게 생겼다. 활동했던 시대배경 탓인지 잔인한 마피아 보스를 연상시킨다. 절대 장애우를 모욕하 려는 뜻이 아닌데, 유튜브나 ‘전설의 거장’ 같은 타이틀의 DVD 영상으로 모습을 보 면 흡사 뇌성마비 환자의 몸동작처럼 위태 롭게 지휘를 한다. 레퍼토리는 쇤베르크, 베 르크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에 치중되어 있 는데 곡 탓이겠지만 사운드가 참 무시무시 하게 들린다.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듯하고 강한 음과 약음 사이의 진폭이 유별나게 크

다. 좀 정신이 없군, 하는 기분을 느낀다. 그 런데 그는 실제로 정신이 좀 없었던 것 같다. 활동기 내내 언론의 십자포화에 시달렸던 모양인데 가령 버질 톰슨이 했던 미트로폴 로스 평이 이렇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지 나치게 과장하고, 지나치게 잔혹하고, 지나 치게 총명하면서도 자신감이 부족하고 완 전히 난해하다.’ 이쯤 되면 평이 아니라 대놓고 하는 욕이 라 하겠는데 어떤 점이 그런 악감정을 불러 일으켰던 걸까. 미트로폴로스는 그리스 사 람이다. 수도원으로 유명한 아토스 산에서 성직자의 길을 준비하다가 방향을 바꿔 독

일로 유학을 간다. 피아노지휘작곡 등 음 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지휘자 행보 로는 미국의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을 10 여 년간 맡아 정상에 올려놓은 점이 두드러 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뉴욕필에서의 활약 상. 쏟아지는 악평과 일부의 열광적인 찬미. 음악이 나빴나? 처신을 잘 못했나? 아무래 도 두 가지 다 해당되는 것 같다. 첫째 음악의 문제. 나는 이제껏 쇤베르크 의 ‘정화된 밤’ 연주에서 미트로폴로스를 능가하는 지휘자를 들어보지 못했다. 오싹 함과 기괴함을 안겨주는 면에서 그는 최고

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상업악단을 이 끌기에 그의 현대음악 취향이 지나쳤다. 정 갈한 소리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대중들 에게서 ‘뭐 하자는 짓이냐’ 하는 비난이 쏟 아질 법 했다. 그는 소수의 열광적 찬미자를 낳을 수밖에 없는 마이너리티 숙명을 타고 났다. 둘째 처신의 문제. 그의 인품을 칭송하는 증언이 많다. 그는 돈에 초연한 편이어서 노 먼 레브레히트의 기록에 따르면 ‘자신의 수 입과 재산 대부분을 가난한 음악가들과 학 생들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순수하고 예의바르고 이타적인 인간’이라는 인물평 이 말하듯 진보적이고 이상주의자적인 면 모 또한 두드러진다. 머리도 천재적이어서 모든 연주를 악보 없이 암보로 해치웠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호모포 비아. 그는 동성애 혐오의 희생물이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 혐오는 의외로 뿌리 깊었던 모양이다. 위장결혼이나 거짓 말 따위로 성 정체성을 숨길 수 없었던 그는 위험한 남색가로 낙인 찍혔다. 음악 이전에 사생활이 문제가 된 케이스다. 미트로폴로 스의 기용이 뉴욕필로서는 재앙의 시간이 었다는 평가를 본 적이 있다. 그 말에 동의 할 수 없다. 그는 연주도 인물도 무언가 특별 하다는 느낌을 특별하게 갖고 있다. LP음반 콜렉터들에게 ‘식스 아이(six eye, 작은 사진)’는 꿈의 수집품이다. 콜럼 비아의 1940~50년대 모노음반 가운데 식스 아이가 많다. 음반 속 동그란 라벨을 둘러 싸고 있는 사람 눈을 닮은 여섯 개의 동그라 미 때문에 붙은 별명이 식스 아이인데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판가게에 미트로폴로스 식스아이 음반이 재고품 목록 속에 오래 묵 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들이 외면하는 것을 보물인 양 건져 홀로 아끼며 들을 때의 기분이 얼마나 삼삼한지. 누가 뭐래도 미트 로폴로스는 뛰어난 1급 지휘자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은 번뇌 속에서 살 아가는 듯하다. 세상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 면 순리대로 일이 잘 풀렸다는 말은 쉽게 하 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는데 나름대로 온갖 변칙을 다해 처리했다며 나름의 비법을 늘 어놓는다. 원칙을 위반했어도 결국엔 목적 에 맞게 되었다는 것인데, 하지만 이는 자기 입맛에 맞는 당위성의 집착은 아닐까. 그 허 상 속에 자신이 가려진 것은 아닐까. 옛 경전 에 ‘허공 꽃이 어지럽게 춤 춘다’는 문장이 있다. 허공 꽃은 실체가 없다. 다만 환상을 아름다운 꽃이라 생각하고 좋아할 뿐이다. 그게 공화(空花)다. 어느 강연에서 스님이 법설을 하던 도중 질문을 받았다. 남자 대학생이 “스님, 연애 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나요”라 고 물었다. 순간 청중은 서로를 바라봤다. 스님의 답변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뜬금없 는 질문에 스님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스님은 눈 하나 까딱 않 고 “연애는 말이지, 한과처럼 바삭바삭하게 해야 돼. 추하고 비겁하고 찐득찐득하게 하 지 말고. 싫다고 하는데도 찐득찐득 달라붙 거나 매달리지 말고, 아니다 싶으면 샤프하 게 헤어져!” ‘샤프’라는 말에 대중은 크게 박수를 쳤다. 과연 연애를 해보고 스님은 저 런 말을 하는 걸까, 그냥 짐작으로 하는 말 일까. 문득 우리네 삶은 바삭바삭한 걸까, 아니면 찐득찐득 한 걸까 궁금해졌다. 청년 시절 원불교에 오기 전 행자 같은 간 사 생활을 3년 했다. 그때 수행이 철저하기 로 알려진 어른 법사님께 이런저런 말씀을 올리면 “너나 잘해. 그리고 남 탓하지 마”라 는 핀잔을 종종 듣곤 했다. 나이 40이 다 돼 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잘 되었다고 말하 면 이내 선배 법사들로부터 호령이 떨어졌 다. “잘난 체 하지 마라. 원래 잘난 사람은 나 서지 않는 법이다. 못난 놈들이 서성거리고 깝죽대는 거다.” 함부로 나서거나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허튼 짓 하지 마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 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배는 적당히 후배 기 죽이는 게 품격이고 멋인가 보다. ‘전탈전수 (全奪全受)’라는 옛말이 있다. ‘온전히 버릴 줄 알아야 온전히 법을 받을 수 있다’는 뜻 이다. 이름 없는 풀도 온전히 말라 물기가 하 나도 없어야 바람에 자유롭게 흔들리지 않 나. 선어록에서 자주 쓰는 ‘끽다거(喫茶去)’ 도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는 단순한 의미 가 아니라 ‘뜻도 모르는 놈, 저기 가서 차 한 잔 홀짝거리고 사라져’라는 일종의 꾸지람 이다. 얼마 전 한 선배는 이렇게 당부했다. “함 부로 글 쓰지 마라, 시비에 끌리지 마라. 출 가한 교무에게서 교무 냄새가 나지 않으면 왜 출가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교무 노릇 제대로 하려면 바보 소리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허튼 짓, 잘난 체, 남 탓하지 말라” 그들의 가르침은 내 삶의 나침반 참 자유는 절제로부터 나오는 법 의미에서 9월 법회의 주제도 ‘계문만 잘 지 키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로 정했다. 첫째 욕 하지 말고, 둘째 술 과하게 먹지 말고, 셋째 성질내지 마라. 이것만 잘 지켜도 세상을 살 아가는데 소홀함이 없을 듯싶다. 소태산 대종사는 전서 요훈품에 이렇게 썼다. “참 자유는 방종을 절제하는 데서 오 고, 큰 이익은 사욕을 버리는 데서 오나니. 그러므로 참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계 율을 잘 지키고, 큰 이익을 구하는 사람은 먼저 공심(公心)을 길러야 하느니라.” 나도 후배에게 시 구절 하나 전하고 싶다. ‘달빛 들어 솔소리 희고, 솔잎은 달빛 머금 어 차게 젖어 있네.’(月入松聲白 松含月色 寒) 조선 후기의 선승인 함월의 글이다.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 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 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靜夜思

<정야사>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곧 추석이다. 이날 만큼은 ‘방탄 국회’도 잊 고, 특별법 논란도 밀쳐내자. 둥근 달을 보 며 더 밝은 내일을 소망하자. 시선(詩仙) 이 백(李白)이 지은 보름 달 시(詩) 두 편을 소 개한다. 우선 ‘고요한 밤의 생각’이라는 ‘정 야사(靜夜思)’라는 시다.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 침대 머리 맡으로 흘러든 밝은 달 빛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땅에 서리가 내렸나 했네 擧頭望山月(거두망산월) 고개를 들어 산에 걸린 달을 바라보고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땅에 비친 달 빛이 흡사 서리가 내린 듯 하 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가족 모두 모 이는 명절이건만, 밝은 달을 보고 고향을 그 려야 하는 나그네의 고독이 물씬 풍겨난다. ‘달 아래에서 홀로 술을 마신다’는 제목의 ‘월하독작(月下獨酌)’도 음미해 볼만하다.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술 한 병을 끼고 꽃 밭에 앉아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홀로 술 마시자니 같이 할 벗이 없구나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잔을 들어 달을 맞이하니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나와 그림자, 그리고 달이 서로 어울리누나 …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은 이리저리 배회하고 我舞影零亂(아무영령난)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어지러이 출렁인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깨어 있을 때는 함께 즐거이 어울리었건만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하면 서로 흩어지겠지 永結無情游(영결무정유) 우리 슬픔없는 영원한 사랑으로 노닐어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서로 먼 하늘에서 다시 만나기로 기약하세 고독하지만, 그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시인 의 심적 방랑이 그대로 표현됐다. 바쁘고 어 지러운 세상, 이번 명절 만큼은 상큼한 고독 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아보자.


28 Column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일러스트 강일구

빠른 삶 느린 생각 슬픔의 보다 높은 자리

교황의 세월호 애도는 부당한 고통 막자는 뜻이리라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근래의 대사건이 었다. 요즘 보도되는 큰 사건이란 전쟁, 테러 리즘, 지진, 대형사고, 역병, 폭력, 부패, 사기, 협잡 등 사람이 사는 지구가 얼마나 불안한 곳인가, 또 우리 사회의 경우, 다행히도 큰 천 재(天災)는 피해가면서도, 정치나 인간관계 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가를 매일매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일들이다. 교황의 방문은 이와는 정반대되는 의미에서의 대사 건이었다. 국가 원수나 국가 기구의 수장이 나라를 방 문하는 것도 중요한 사건이다. 국가 수장의 뒤 에는 국가라는 조직의 힘이 있고, 그것이 뒷 받침하는 권위는 그러한 인물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대사건이 되게 한다. 정치적으로 말하 면, 바티칸은 ‘바티칸 도시국가‘라는 독립국 이다. 교황은 이 독립국의 수장이다. 교황은 온 세계의 12억 가톨릭 신자들이 이루는 조직 의 정점에 있다. 바티칸시는 다른 국가나 마찬 가지로 내각에 해당하는 추기경과 신부들의 회의가 있고, 많은 현실적 결정은 여기에서 이 루어진다. 교황은, 어떤 설명에 의하면, 민주 주의나 적어도 입헌군주제가 확립된 유럽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절대군주다.

구하는 윤리의 강점은 그것이 무엇보다도 개 인에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속적 윤리강령과는 달리,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비윤리적 행동을 개인과 집단의 윤리의 틈새 에 감추기 어렵게 한다. 개인적 실천의 삶을 넘어, 교황의 관심은 빈곤과 괴로움 속의 사람들을 향한다. 그는 행동에서나 강론에서나 특히 가난과 고통 속 의 인간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명동성 당의 강론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고린도전서 에 나오는 바 사람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 라는 말이 교황의 중요한 삶의 지침으로 보 인다. 여기의 사랑은 특히 불우한 사람과의 유대를 강조하는 사랑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분단의 문제와 세월호의 비극 후에 계속되는 우리 사회의

원한울분에 잠기자는 의미 아닌 유족 아픔 존중하는 예절 어린 슬픔 대책 강구하는 일은 지도자 의무 먼저 위로하고 원인 규명 나서야 가운데 아닌 높은 곳서 살펴야

개인적 실천의 삶이 프란치스코의 힘 ‘교황무류성(無謬性)’이란 말이 있다. 이것 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교황이 선포하는 말 씀은 다시는 논박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세 속적인 관점에서 교황은 이렇게 조직이나 제 도상의 절대권자이지만, 그 권위의 근본은 정신적인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권위 는 지도자의 권위가-또는 흔히 이야기하는 카리스마도-반드시 ‘일반의지’가 된 민의 (民意) 또는 다른 현실적인 힘에서만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위 또는 호소력은 그 의 개인적 삶에서 시작한다. 취임하면서 그 가 새 이름 프란치스코를 택한 것이 이미 그 것을 표현한 것이지만, 널리 보도된 바 그의 검소한 일상생활은 그가 선택한 정신적 삶 의 모습을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러면 서 그의 개인윤리는 성 프란치스코가 그러했 던 것처럼, 집단 윤리로 확대된다. 종교가 요

분열과 갈등에 관련하여, 염수정 추기경은 이기고 지는 것을 넘어 하나가 되는 것이 중 요하다는 말로 교황의 메시지를 요약하였 다. 정치에서나 개인적으로나 하나로 묶는 다는 것은 반드시 그것으로 사람들을 집단 적 투쟁에 동원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명동성당 강론의 제목은 ‘평 화와 화해를 위한 강론’이었다. 하나가 되는 것은 화해를 통하여 화평한 관계를 만든다 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결정에 계기가 된 것은 아시아의 가톨릭 청년들이 모이는 아시아청년대회였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한 국 순교자들의 시복 행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은 한국이 분단국가라 는 것과 관계된 것일 수 있다. 교황은 지난 5

월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방문하였 다. 그리고 이번 방한 시에 중국의 상공을 지나면서, 중국에 대한 선의를 전달하고, 또 기자회견에서 중국 방문의 희망을 표명하 였다. 중국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단 절하고 있으며,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됨에 따라 동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나라다. 원수 사이 같은 이팔 지도자 초청한 뜻 세계 분쟁 지역의 문제 해결에 교황의 방문 이나 설법이 무슨 소용이 되는가, 하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교황은 중동을 방문한 후 팔레 스타인의 마흐무드 압바스,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대통령을 바티칸으로 초청하였다. 6 월에는 바티칸에서 이들과 함께 하는 기도회 가 있었다.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행 한 잔학한 살육전은 평화를 위한 교황의 노 력이 역사적 갈등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 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교황이 팔레스타 인 지역의 두 지도자를 초청한 것은 두 지역 의 갈등에 대한 정치적 타결책을 직접적으로 거래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초청의 목적은 함 께 하는 기도였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 는 일이었을까? 교황은 명동성당의 강론에 서,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는 기도도 큰 힘이 된다는 마태복음의 구절을 언급하면서 분단 된 한국에서 온 민족이 함께하는 기도는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일을 바르게 달성하는 데에는 윤리적 기초 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현실의 위 또는 아래 에 있는 공통의 소망에서 나온다. 우선 필요 한 것은 마음의 평정이다. 단순히 마음을 집 중하는 것 또는 경건하게 갖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세이 다. 다만 경건함을 지니는 마음-옛날에 지경 (持敬)이라고 불렀던 마음가짐이 유치하고 허망한 일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는 냉소주의 가 지배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상이다. 그러나 교황이 사람들의 마음에 불러일으 킨 반향(反響)은 정신적 전환에 대한 갈증이 사람들의 마음 깊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 하게 한다. 현실은 현실이라도, 그러한 마음 가짐이 있어서 현실은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만국정쟁 만인정쟁과 그로부터의 임시 휴전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남북 관계에 못지 않게 평화

와 화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이 다. 이러한 갈등이 특히 심한 나라가 한국이 라는 것이 교황의 방한 결정의 한 동기가 되 었는지도 모른다. 교황은 사회적 분열의 요인 이 되는 “불운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일자리 를 얻지 못한 이들, 번영에서 제외된 이들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황이 위 안부 문제나 세월호 참사 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이에 추가하여, 지리멸렬이 된 사회의 정신상태를 보여준 것이 윤 일병의 죽음인데, 이것은 교황의 눈에 띠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교황은 세월호 비극의 유족을 만나기도 하고, 애도 의 뜻을 표하는 리본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한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여, 교황 은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동정과 애도를 표하였다면, 가족의 격렬한 아픔에 완전히 일치하자는 것 만은 아니었다. 원한과 울분에 함께 잠기자 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교황이 애도하는 마 음을 표하였다면, 그것은 슬픔에 가까운 것 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의 죽음은 견디 기 어려운 고통과 절망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이 슬픔으로 옮겨 간다. 슬픔은 여러 가 지 가닥을 가지고 있는 인간 감정이다. 슬픔 은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그러 나 제삼자가 나누어 갖는 슬픔이 가족의 슬 픔과 같다고 행세하는 것은 참월한 일이다. 가족의 슬픔을 지켜보는 슬픔은 그것을 존중하는 예절의 슬픔이다. 이러한 슬픔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식은 사자(死者)와 가족의 고통, 그리고 인간의 고 통스러운 현실에 이른다. 슬픔의 가장 깊은 층위에 놓여 있는 것은 인간의 공동운명에 대한 깨우침이다. 이것은 현실로 되돌아와 다시 오늘과 내일에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한 죽음과 고통을 생각하고 그것을 완화할 일들 을 생각하는 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죽음이 아무리 비극적이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부당한 죽음과 부당한 고통을 방지하는 방법에 마음을 돌리는 일이 다. 세월호의 비극에 애도를 표하는 교황의 마음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슬픔의 마음, 자 비(慈悲)의 마음 그리고 인간 조건의 개선을 위한 성심으로 이어지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이 모든 사람에게 일 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 대책 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데에는 의식하든 아니 하든 이러한 마음의 층위가-무의식의 사회 적 규범으로-그 아래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공공의 자리에 위치해 있는 사람의 의무는 현실 대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그 첫 책임은 물론 수난자를 위로하고, 둘째로 진상의 원 인을 규명하는 일이다. 진상의 규명은 분노 를 터뜨리고 복수를 위해서보다도, 책임 소 재를 분명히 하고, 고통과 불행한 죽음이 다 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현실적 방책과 제도 를 확립하기 위해서다. 이기고 지는 것 보다 중요한 ‘하나됨’ 미국의 철학 교수이며, 정치행동가인 코넬 웨스트는 자기와 같은 흑인 배경의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미조리 주 퍼거슨에서 최근 경찰이 흑인 소년을 총살한 사건에 대한 대 책, 민간인 살상을 불사하는 미국의 중동정 책 등-을 비판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 세력들의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으려는 까닭 에, 보다 높은 자리에 서지 못한다고 말하였 다. 그가 서야 할 자리는 여러 정치세력의 가 운데 지점이 아니라 “보다 높은 자리, 도덕의 자리, 더 나아가 성스러운 자리이어야 한다” 고 웨스트 교수는 말하였다. 이것은 전혀 다 른 정치 상황에서의 이야기지만, 어려운 문제 에 부딪는 정치 지도자는 마땅히 이러한 높 은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미 말 한 바와 같이 반드시 집단화된 삶을 가리키 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누어 갖는 삶을 산 다는 것을 말하고, 어제의 불행을 넘어 오늘 과 내일을 생각하는 삶을 말한다. 이것은 국 내 문제만이 아니라 민족 문제 그리고 국가 간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월호의 경우 슬픔을 나누어야 할 때도, 보다 높은 슬 픔의 자리는 현실의 문제를 널리 살펴보게 하는 자리이다. 거기로부터 삶의 현실 문제 를 보살피는 일이 시작된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 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 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Column 29

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90>

세번째 부인 사망 뒤 가난한 국수집 딸 점찍은 푸이 1957년 2월 8일 오후. 20세 후반의 여인이 푸 순(撫順)시의 허베이(河北)구 인민법원 문전 을 서성거렸다. 위병소에 근무하던 해방군 전사가 42년 뒤 그에 대한 구술을 남겼다. “나이를 측정하기 힘들었다.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뭔가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혼 수 속을 밟으러 왔다기에 제1 합의실로 안내했 다. 어깨가 축 늘어지고 발걸음도 무거워 보 였다. 리위친(李玉琴이옥금)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날 따라 법원장이 직접 여인과 마주했 다. 평소 하던대로 인적 사항을 물었다. “이름은?” “리위친.” “별명이나 아명이 있으면 말해라.” “한때 푸웨이칭(溥維淸부유청)이란 이름 을 사용한 적이 있다.” “연령과 직업은.” “나이는 28세, 창춘(長春)시 도서관 관원 이다.”

관동군 결혼 권유에 처음엔 손사래 여중생 리위친 사진 보고 마음 바꿔 福貴人에 봉했지만 사람 대접 안해 57년 인민법원서 정식 이혼 당해 “용건은.” “푸이(溥儀)와 이혼하려 한다.” 익숙한 이름을 들은 법원장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앞에 앉은 여인을 넋나간 사람처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복장은 소박했지만 용모가 수려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놀란 표 정으로 빤히 쳐다봐도 리위친은 자세를 바꾸 지 않았다. 남편의 신분을 말하라고 하자 담 담히 입을 열었다. “본명은 아이신줴뤄(愛新覺羅 애신각라) 푸이. 나이는 51세, 만주족이다. 황족 출신으 로 청나라 황제와 만주국 황제를 역임했다. 정규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수준은 10년간 사숙(私塾)을 다닌 사람보다 높다. 외국어 구 사능력도 뛰어난 편이다. 수학은 백치에 가 깝다. 현재는 전범 관리소에서 개조 교육을 받고 있다. 아직은 미결수라고 들었다.” 법원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결혼을 언제 했는지 물었다. 1943년 3월이라고 하자 그간 이혼을 요구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냉정 함을 잃지 않던 리위친은 한바탕 훌쩍거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푸이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많고 자 원해서 한 결혼도 아니다. 개인의 행복을 위 해 이혼하고 싶다. 그간 남편 때문에 불공정

만주국 황제 시절 일본을 방문해 총리 관저에서 열린 환영 만찬장에 도착한 푸이. 1945년 4월 8일 도쿄.

[사진 김명호]

한 대우를 받았다. 푸이와 그의 가족들은 내 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남편이 황제 시절에 는 감히 생각도 못했고, 지금은 전범관리소 에 수감 중이라 이혼얘기를 꺼내기 힘들었 다. 희생만 하라고 태어난 인생은 없다. 법원 문 앞에 와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창공을 휘 젓는 새를 보고 들어올 결심을 했다. 며칠을 살아도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법원이 판단해주기 바란다.” 리위친은 정식으로 소송장을 제출하고 창 춘으로 돌아갔다. 법원 측은 인민 배심원을 선정했다. 배심원들은 리위친의 행적을 탐문 했다. 1942년 여름, 푸이의 세번째 부인인 귀인 (貴人) 탄위링(譚玉齡담옥령)이 세상을 떠 났다. 관동군 참모부는 푸이의 일본여인 중

에서 새로운 신부감을 물색했다. 사진들을 건네며 선택을 청했다. 푸이는 자신의 사생 활이 일본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했다. “탄위링의 시신이 채 식지 않았다. 당분간 결 혼할 생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푸이의 속내를 읽은 관동군은 중국인 중 에서 후보자를 찾았다. 창춘의 난링(南齡) 여중 교장에게 예쁜 여학생 사진을 보내라 고 지시했다. 일본인 교장은 한 반에서 3명 씩 골라 사진관으로 데리고 갔다. 당시 여학 생들은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이유가 어떻 건 무조건 따라 나섰다. 워낙 맛이 없어서 하루에 열 그릇 파는 게 고작인 국수 장수 딸 리위친도 머리를 예쁘게 빗고 사진기 앞 에 섰다. 60여장의 사진을 만지작거리던 푸이는 리

위친이 맘에 들었 다. 유모에게 이유 를 설명했다. “천 진난만하고, 단순 해 보인다. 나는 유 치한 애가 좋다. 황후 완 룽(婉 容 완용)처럼 집안 좋 고 똑똑한 여자는 싫다. 내 맘대로 푸이는 리위친의 이 사진 할 수 있는 여자가 밑에 방점을 찍었다. 필요하다.” 몇 주일 후, 두 명의 일본인이 통역을 데리 고 리위친의 집에 나타났다. 리위친의 엄마는 남편이 사고라도 친 줄 알고 안절부절했다. 일본인들은 리위친의 엄마부터 안심시켰다.

“경사가 났다. 딸을 궁궐로 데려다 공부시키 라는 황제폐하의 어명이 내렸다.” 옆에 있던 리위친이 끼어들었다. “학비가 비쌀텐데, 우 린 돈이 없어요.” 걱정 말라고 하자 질문을 계 속했다. “대학 진학도 가능한가요? 집에서 다 닐 수는 없나요?” 일본인들은 뭐든지 가능하 다며 리위친의 손을 끌었다. 푸이는 리위친을 복귀인(福貴人)에 봉했 다. “앞으로 무슨 불길한 일이 생겨도 문제없 다. 네 福자 덕에 화를 면할 수 있을 테니 두고 봐라.” 리위친은 집안이 워낙 가난하다 보니 복 귀인 칭호를 받고도 사람 대접을 못 받았다. 푸이도 가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원히 변 할 수 없다며 21개 조항을 제시했다. 두 사람 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계속>

우리의 뇌는 동일한 확률이라도 이익적 상황 이냐, 손실적 상황이냐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 다음을 보자. A(4만원을 얻을 80% 확률) VS. B(3만원 을 얻을 100% 확률) C(4만원을 잃을 80% 확률) VS. D(3만원 을 잃을 100% 확률) 당신은 이익상황인 A와 B중 무엇을 선택 하겠는가? 그리고 동일한 확률의 손실상황 인 C와 D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실험 결과 이익적 상황에서 A를 선택한 비율이 20%, B를 선택한 비율은 80%이었다. 하지만 손실적 상황에서 C를 선택한 비율이 92%, D 를 선택한 비율은 8%에 불과하여 동일한 확 률이지만 이익과 손실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즉 사람들은 이익상황에서는 4만원을 얻 기 위해 무리하게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확 실하게 3만원을 얻을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을

하였다(A<B). 반면 손실상황에서는 확실하 게 3만원을 잃기보다는 4만원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아예 손실에서 벗 어날 수 있는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C>D). 이처럼 사람들은 동일한 확률이라도 이익 상황에서는 수중에 넣은 이익을 확실하게 지 키기 위해 위험을 회피하는 반면, 손실상황 에서는 가만이 앉아서 손실을 맞이하기보다 는 기꺼이 위험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동일한 확률적 상황에서 우리의 뇌는 무조건 똑 같은 선택을 할까? 다음의 예 를 살펴보자. 만약 당신이 희귀질환에 걸려 있고 1년 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0%라고 가정해 보자. 어느 제약회사에서 치 료약을 개발했는데, 이 치료약을 투입하면 생존 가능성을 3%까지 높일 수 있다. 이를 상 황A라 하자. 상황B는 A와 모두 동일하지만, 1년간 생존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50%라는 차이만 있다. 두 가지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A.생존율을 0%에서 3%로 높이는 치료약 B. 생존율을 50%에서 53%로 높이는 치료약 두 상황 모두 생존의 가능성 기존보다 3% 높일 수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확실 한 죽음이 예견되는 A상황에서 3% 확률은 한 줄기 빛과 같이 다가온다. 반면 B상황은 A 에 비해 사소한 차이로 느껴진다. 실제 실험 결과,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A상황에서 휠씬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자 했다. 이를 가능성 효과 라 한다. 여기에 상황C를 추가해 보자. C. 생존율을 97%에서 100%로 높이는 치 료약 실험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율을 50%에서 53%로 높이는 B보다 C상황에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자 했다. 97%가 상당 히 높은 확률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3%의 위 험이 도사리고 있다. 새로운 치료약으로 인해

100% 확실한 생존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C상황의 치료약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확실성 효과라 한다. 요약하면 우리의 뇌는 동일한 확률이라도 어중간한 확률대에 있는 경우보다 0% 확률 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경우(가능 성 효과)와 99%의 확률을 확실하게 100%로 보장하는 경우(확실성 효과)에 더욱 높은 가 치를 느낀다. 결국 우리의 뇌는 객관적으로 동일한 상 황이라도 준거점에 따른 손익방향과 발생확 률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 라 다른 판단을 내린다. 또한 동일한 확률이 라도 발생하는 지점에 따라 우리의 뇌가 주 관적으로 느끼는 가치는 매우 다르다. 적어도 우리의 뇌 속에는 ‘절대’를 위한 자리는 없는 듯하다. 인간은 숫자로 선택하지 않는다.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가능성과 확실성의 가치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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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노동시장의 올바른 규제개혁 유경준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요즘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부 정책은 단연 규제개혁일 것이다. 규제개혁은 대통령 의 신년기자회견에서 성장 촉진과 일자리 창 출을 위해 특히 강조되었다. 물론 안전과 환경 등 세심한 점검과 보호가 필요한 분야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보호가 지 나치면 다른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서 규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측면을 지 닌다. 또한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교묘하게 위장된 규제도 있다. 노동시장에서의 규제 역시 과유불급의 측 면에서 양면성을 갖고 있다. 노동시장의 규제 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근로자에 대한 고 용보호, 즉 해고의 제한이라 불리는 것이다. 개발 연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고용안정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외환위기 때 대량실업을 겪으면서부터다. 당시 위기를 극 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리해

고법이 도입되었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 로 이분화된 고용형태가 정착되기 시작하였 다. 그 뒤 비정규직의 급속한 증가와 정규직 과의 지나친 차별이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이 에 따라 2007년에는 차별 금지와 기간 제한 을 골자로 하는 소위 비정규직법이 시행되었 다. 이 법의 효과는 비정규직 일부의 정규직 전환과 눈에 보이는 차별의 감소 정도로 파 악된다. 그러나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근로 자의 3분의 1 수준에서 크게 변함이 없고, 정 규직과 비정규직의 직종 분리 등을 통해 눈 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 우리나라 노동시장 규제개혁의 방향 은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좋을까. 과유불급 의 원칙을 적용하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배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 은 전체로 보아선 경직적이라 말하기 어렵지 만, 특정 부분은 상당히 경직돼 있다. 이는 중 소기업과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 조합의 유무에 따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반영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의 정규직은 근로기준법만이 아

빅데이터 시대 유감 홍병기 칼럼 기획 에디터 klaatu@joongang.co.kr

나는 지금 손 안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전 세계의 모습을 보고 있다. 플로리다의 한가 로운 해변가나 뉴욕 도심의 길거리 풍경에서 도쿄의 한 일식집 내부까지 훤히 들여다본 다. 세계 4000여 곳에 설치된 개방형 CCTV 를 실시간으로 연결해서 볼 수 있게 만든 ‘Live Cams+’라는 애플리케이션 덕분이다. 마침 켜놓은 PC에선 flightradar24.com 사이트를 통해 지금 이 시각 전 세계 상공을 날고 있는 모든 민항기들의 궤적이 한 눈에 들어온다. 표식 하나를 클릭해보니 기종과 항로는 물론 현재 속도·고도까지 각종 정보 가 쫙 흘러 나온다. 이 역시 비행기에서 위 치 정보를 전송하는 ADS-B 트랜스폰더의 신호음을 포착해서 데이터로 제공하는 서 비스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thingful.net처럼 전 세계에 퍼져있는 자 동차 속도 측정기, 공기·방사능 오염 계측기 와 같은 각종 모니터 기기의 실시간 자료를 내 집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사이트도 등장 했다. 휴대폰 송수신 전파나 위치추적장치 (GPS), 신용카드 기록이나 인터넷 쿠키 등의 흔적은 내가 24시간 내내 뭘 하고 다니는지 를 훤히 알려준다. 괜히 이상한 정보를 흘리 고 다니다간 낭패 보는 날이 오기 십상이다. 과거엔 공유되지 않았던 이 세상의 모든 데이터들이 하나의 망으로 연결되고 있음 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가히 ‘빅데 이터 시대’다. 초(超)연결사회의 출현은 손·발·귀·눈과 같은 인간의 감각 능력을 무한대로 확대·연 장시켜주고 있다. 마치 줄기와 가지가 어디 로든 쭉쭉 늘어나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신화 속의 나무 괴물이 디지털 시대에 다시 살아난 듯하다. 감각의 확대란 지금 이 시간에 벌어지는 모든 일을 한 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동시성 (synchronicity)의 확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미디어 비평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이런 현 상에 대해 “데이터에만 입각해 현재 진행중 인 사실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숫자와 사실이 가치에 우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것이 현재 진행형이고, 라이브이고, 실 시간의 세상이 된 것을 앨빈 토플러의 ‘미래

대기업 정규직 보호망 너무 튼튼 기업의 추가 채용 방해하는 효과 노동시장 경직 풀 대책 마련해야

니라 각 기업의 단체협약에 의해 과도한 고용 보장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전체 임금근로자 의 6∼7%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해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고용의 역설’이라는 말도 있듯 이 기업의 입장에서 해고가 불가능하다면 추 가적인 채용 자체를 꺼리는 실정이다. 이 부 분에 대한 개혁이 없다면 양질의 일자리 창 출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비정규 직 문제는 그들 가운데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는 풀기가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일부 정규직의 과보호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에 대한 부실한 사회안전망에서 비

해외 만평

롯되기 때문이다. 먼저, 일부 대기업 정규직의 과보호를 완화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 다. 유(有)노조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가 과 보호된 이유는 대기업의 근로자들이 파업을 하는 경우 기업의 대처 방안이 없기 때문이 다. 수출 차질이 발생하여 손실을 보느니 과 도한 내용의 단체협약을 수용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선 이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도한 고용보호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에게 노조의 파업에 대한 대응 수단을 제공해야 한 다. 대다수 외국에서 허용하고 있는 파업 시 대체근로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해고에 대한 금전적 보상제도의 도입 도 고려해야 한다. 즉 부당해고가 이뤄진 경우 에도 원직 복귀보다는 피해 근로자에 대한 금 전적인 보상을 통해 사용자의 잘못을 처벌하 는 게 필요하다. 이는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 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유럽의 국가들에서 많 이 사용되는 제도다. 근로자에게는 해고에 따 른 금전적 배상을, 사용자에게는 해고에 따른 결과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노동위원회에서는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허용하고 있으나 법원의 판결은 아직 없다. 부부도 같이 살다가 헤어지면 잘 못한 쪽에서 위자료를 지급하고 헤어지는데 노사 한쪽이 굳이 싫다는데 같이 일하라고 강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금 전적 보상제도가 노동조합의 활동을 방해하 는 데 악용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비정규직에 대한 실질적인 보 호 수준을 높여야 한다. 취약한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과의 차이가 주로 사회안전망의 가입 유무에서 비롯되곤 한다. 사회보험 사 각지대의 축소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 다. 또한 비교대상인 정규직이 없는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들의 실질적인 차별 해소 를 위해 동일 업무가 아닌 유사 업무로 차별 해소의 비교 대상을 넓혀야 할 것이다. 유경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을 거쳐 현재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전 공은 고용과 노동. 저서는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구축 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비정규직 문제 종합연구 등.

“이상하군, 이 친구들은 왜 자기 패를 안 보여주지?  오바마의 실패한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여론 고조.

의 충격’에 빗대 ‘현재의 충격’이라고 명명했 다. 사람들이 지금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에 너무 매달리면서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충 동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어디 에 있는가에만 집착하고 세상이 어디로 향하 는가에 대한 생각은 멈춘 지 오래다. 데이터와 감각의 과도한 연결과 확장은 인간 본성의 상실에 대한 공포로도 이어진 다. 현재만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세상이다 보니, 종말이니 최후 니 하는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주는 단순함 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프레퍼(prepper)’ 들이다. 지구 종말(둠스데이)이 임박했다며 나름의 생존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미국 에만 300만명에 달한다는 프레퍼족들은 현 재를 위기로 규정하고 외부와의 연결을 차 단한 채 순전히 자신만의 감각만으로 살아 남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들은 데이터나 ©CLEMENT/Cartoon Arts International www.cartoonweb.com

독자 옴부즈맨 코너

인간 손발 확장해주는 빅데이터 현재에만 집착해 미래의 꿈 잊어

김상득 코너 끝나 아쉽지만 S매거진 변신 기대

정보 홍수 속 사색의 길 간직해야

정보 대신 아날로그식 자원인 식량·물·무기 의 대량 확보에만 극단적으로 매달린다. 한 국에서 각종 생존술을 가르쳐주는 인터넷 카페에 회원들이 몰리는 것도 이들과 비슷 한 심리다. 빅데이터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호모 데 이터쿠스’ 호모 모빌리쿠스’류의 인간군과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 ‘프레퍼’ 양 극단 외에 우리의 선택은 없는 것일까? 러시코프는 “현재에 마비되지 말고 미래 를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폭증하는 정보에 짓눌리지 말고, 연결이 아닌 통합, 검색이 아 닌 사색을 통해 미래의 꿈과 내일을 그리는 사람만이 시대 충격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러하니 여러분들도 이 순간에만 매몰 되지 말고 과감하게 현재와의 접속을 해제 해 보라. 당신의 미래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 는지 곰곰이 한번 생각해봄 직하지 않은가.

8월 31일자 중앙SUNDAY는 김우중과의 대화라는 책을 펴낸 신장섭 교수와의 인터 뷰를 실었다. 이미 당시 경제관료들과 간접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 당사 자의 견해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했다는 점에서 유익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이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이 지면을 통해 계 속되면 흥미로울 것 같다. 어느 쪽 말이 맞는 지 결론을 낼 수는 없더라도 논쟁 과정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고 우리 경 제를 보는 안목도 기를 수 있을 듯싶다. ‘객관식 이혼 소장’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 기사도 관심을 끌었다. 역시 중앙SUNDAY 답게 이혼 사유에 관한 유책주의와 파탄주 의의 문제까지 소개하며 깊이있게 접근한 점 이 돋보였다. 다만 법원과 변호사회와의 견 해 차이와 관련해 서로의 오해를 키울 수 있 는 추측성 주장까지 소개한 것은 바람직하 지 않았다고 본다. 차라리 기사 말미에도 언 급했듯 이 문제의 근저에는 법원이 해결할 수 없는 입법적인 문제가 깔려있는 만큼 파 탄주의를 채택한 나라의 문제점을 좀 더 자

세히 소개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발행액이 연 10조원에 달한다는 상품권 을 다룬 기사는 상품권 할인율로 시중 경기 를 알 수 있다는 점, 1조원을 발행하면 500 억원의 ‘공돈’이 생길 수 있다는 점 등 흥미 로운 사실을 알게 해줬다. 다만 기사 첫 문 장에 주관식 퀴즈를 내고 독자들이 정답을 얼른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터라고 했는데, 독자들은 이미 기사 제목에서 감을 잡은 뒤 여서 다소 맥빠진 느낌을 줬다. 또한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은 강제력이 없다고 했는데, 기준 자체는 강제력이 없더라도 약관규제 법 등 관련법의 해석에 의해 유사한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덧붙였으면 하 는 아쉬움이 들었다. 새롭게 시작한 ‘마켓&마케팅’ 코너는 ‘사교의 기술이 경쟁력이다’는 제목을 뽑았 다.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는 늘 좋은 단어를 동원해 지당한 소리만 한다는 선입견이 있 기 마련인데 막상 글을 다 읽고 나니 스스로 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 다. 우리 주변의 회사나 사업을 새로운 각도

에서 바라보고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바쁜 와중에도 ‘부부의사가 쓰는 성칼 럼’은 빠뜨리지 않고 읽게 된다. 성은 늘 관 심있는 주제이면서도 관심도에 비해 매체에 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성 담 론이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거지는 일 회성 잡담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구성원 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가 됐으면 하 는 바람이다. 중앙SUNDAY가 이 칼럼 외 에 성을 주제로 한 기획 코너를 더 늘려도 좋을 듯싶다. S매거진에서는 필자들이 여 럿 바뀔 모양이다. 특히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를 읽으며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에 행복했는데 또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신현영 변호사. 서울대 외교학과 를 졸업한 뒤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기업 자문을 하고 있고 특히 정보기술 (IT) 산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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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한류 망치는 지름길

대우 해체와 명량대첩

신장섭의

시대공감

환란 극복 방법론 둘러싼 충돌이 대우그룹 해체 진실규명의 핵심 IMF 처방을 애국인양 떠 받들어 사실 반영한 현대경제사 다시 써야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 은 많다가 출간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렇지만 대우 해체를 둘러싼 논란은 처음부 터 방향이 많이 잘못된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대우 해체의 진실 규명에서 핵심은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철학과 방법론을 둘 러싼 충돌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DJ)은 김우중 회장에게 “경제대통령을 해달라”며 김 회장을 경제정책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 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처방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 한국경제에 좋은 일인지 의 문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DJ는 대통령 후보 시절에 3인의 유 력 후보 중 유일하게 ‘IMF 재협상’ 얘기를 꺼낸 인물이었다. 재협상 발언이 나오자 마 자 미셸 캉드시 당시 IMF 총재가 한국에 날 아와서 세 후보에게 각서를 받아갔다. 김영삼 대통령 정부에서 약속한 IMF 프로그램을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대로 집행하겠다는 것 이었다. DJ는 각서에 사인을 하고 당선됐지 만, IMF 처방에 대한 의문을 버리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김우중 회장은 IMF 프로그램 을 철저히 이행하자는 ‘구조조정론자’들의 반대편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파 트너였다. 김 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계를 대표하고 있었고, 외환위기가 빈발한 신흥시 장 중심으로 ‘세계경영’을 펼쳐 위기가 왜 일 어나고,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피부로 알고 있었다. 김 회장은 IMF 프로그램을 ‘외침(外侵)’ 으로 규정했다. 1998년5월에 한 공개강연에 서 김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IMF체제가 … 형식상으로는 국제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 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리 체제로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체제 가 오래가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김 회장은 경제관료들과 달리 ‘매년 500 억달러 무역흑자 달성을 통한 2년 내 IMF체 제 조기탈출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최근 한 서평은 이렇게 행동한 김 회장을 명량대첩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조정의 대신들뿐 아니라 국 내 언론학계선진국들은 한 목소리로 외환 위기가 한국이 크게 잘못해서 온 것이라며 ‘철저한 구조조정’을 외쳤다. 기업부채비율 200% 낮추기 등으로 국내 자산을 외국 투자 자들에게 값싸게 팔더라도 그것을 통해 ‘투 자자 신뢰’를 회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는 것이었다. 당시 그들에게는 자산 해외매

각이 애국하는 일이었고 수출을 늘리는 것 은 위기를 심화시키는 역적짓이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김 회장이 ‘세상 바뀐 것을 모른다’ 고도 했고, DJ가 김 회장을 잘못 신뢰하고 있 다고 계속 ‘진언’했다. 이 과정에서 대우는 해체됐다. 김 회장은 해외로 떠밀려나갔다. 그 후 새로이 만들어진 한국경제의 ‘정사 (正史)’는 한국이 구조조정을 ‘잘 해서’ 외환 위기를 빨리 극복했다고 기록해 왔다. 그러나 1998년만 보더라도 이 ‘정사’엔 문제가 많았 다. 그 해 한국의 무역흑자는 416억 달러이고 대우가 기록한 무역흑자는 그 3분의 1에 달하 는 143억 달러였다.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신 고기준으로 89억달러였지만 집행기준으로 는(UNCTAD 발표) 54억달러에 불과했다. 대우가 거둔 무역흑자의 3분의 1 수준이다. 김 회장의 ‘역적짓’이 조정의 ‘애국하는 일’ 보다 외환위기 극복에 훨씬 더 크게 기여했 다. 그래서 “김 회장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산화(散花)했다”고 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 원장은 말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돌아보면 ‘정사’ 의 허구성이 더 잘 드러난다. 선진국들은 자 신들이 금융위기를 당했을 때에 IMF프로 그램을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 고금리 대신 제로금리를 택했고 양적완화까지 시행했다. 한국에게는 ‘대마불사론’에 빠지지 말라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세계최대 자동차 회사 (GM)상업은행(시티)보험회사(AIG) 등을 경영진조차 바꾸지 않고 돈을 무제한 공급해 서 살려냈다. 이에 대해 선진국의 이중잣대 를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일잣대다. 자신의 이익이 라는 잣대로 보면 남들에게 IMF프로그램을 강요하면 이익볼 일이 많고, 자신들에게는 IMF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 다. 15년 전 한국 조정의 대신들이 적(敵)의 이익을 국익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IMF체제의 부정적 유산은 한국사회에 길게 남아 있다. 기업부채 비율은 미국보다 도 낮아졌지만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가 열렸다. 기업부채가 가계부채로 이전됐을 뿐이다. 그래서 내수가 부진하고 경제는 저 성장으로 신음한다. 정리해고가 도입되면 서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양극화도 많이 심해졌다. 이제 충분히 시간이 지난 만큼 사실(史實) 을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한국 현대경제사 를 다시 써야 한다.

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 한국특파원

서울에서 터키 언론사 특파원으로 활동해 온 지난 4년 동안 남북한 문제나 삼성·현대 등 주요 대기업들을 주로 취재해 왔다. 이는 터키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는 뉴 스들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정치·경제 등 조금 딱딱한 주제 외에도 문화를 다루는 기 사를 늘리고 있다. 한류에 힘입어 한국 스타 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 다. 실제 종종 독자들로부터 한류 스타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이에 따라 한류 배우들에 대해 서도 적지 않은 기사를 쓰고 있다. 출연한 영화들은 물론 스타들의 삶에 대한 것도 좋 은 기사거리다. 그런데 최근 모 남자배우와 관련된 협박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배우가 술자리 에서 했던 부적절한 농담을 인터넷에 공개 하겠다며 거액을 요구한 사건이다. 스타들 의 사생활과 관련된 스캔들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특파원으로서 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을 접했을 때 할리우드 스타인 안젤리나 졸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이 연상됐다. 졸리는 ‘식스티 세컨즈’란 영화에 한국의 국민 사위인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출연 한 배우다. ‘툼 레이더’ 시리즈를 통해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을 얻었다. 졸리를 가장 유 명하게 만든 영화는 ‘미스터 & 미세스 스미 스’일 것이다. 이후 졸리의 사생활은 언론에 더욱 많이 노출됐다. 졸리가 벌여 온 인도 주의 봉사활동은 특히 그의 명성에 큰 도움 이 됐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친선대사 등 졸리는 폭넓게 봉사활동을 펼쳤다. 하지 만 졸리가 1990년대 후반부터 마약을 복용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팬들은 큰 실망과 함께 안타까움을 표했다. 현재 졸리 는 마약에서 벗어나 성실한 연예활동과 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평판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마약에 빠졌던 어두운 과거가 영원히 잊혀지긴 어 렵다. 또 다른 사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삶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열렬한 독자로 서 다우니 주니어가 주연으로 등장한 ‘셜 록 홈즈: 그림자 게임’을 아주 인상 깊은 영

화로 평가하고 싶다. 그는 만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어벤져스’와 ‘아이언 맨 시리즈’ 에도 출연해 전 세계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 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졸리처럼 마약과 관련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 90년대 마 약 복용으로 여러 번 체포를 당했으며 재활 치료 등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 현재 모범적 인 연예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팬들을 실망 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이며 이미지 개 선에 주력하고 있다. 요즘 한국의 유명 배우들은 한류 덕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면서도 종종 바 람직하지 못한 사생활로 구설에 오르고 있 다. 한류 스타들은 할리우드 스타들보다 더 욱 절제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가 성공한 배경 중 하나가 서구와 달리 ‘자유’보다는 ‘도덕’을 중시한 측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한류팬들 동양 정서에 호감 스타의 스캔들은 한류에 치명타 외국과 다른 한국적 절제 보여야

해외의 한류 팬들은 동양적인 정서를 바 탕으로 한 한국 영화를 통해 배우들에 대 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최근 일부 한류 스 타들의 무절제한 사생활은 이런 이미지와 는 동떨어져 있다. 이로 인해 자칫 한국 배 우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만들 수도 있다. 한류 스타들을 사랑하는 팬의 입장 에서도 한국발 스캔들에 관련된 기사를 점 점 많이 송고하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 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 는 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계 영화시장 에 도전하는 한국 영화가 더욱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 속 담 중 ‘도둑 맞고 사립문 고친다’는 말이 있 다.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한국 영화 계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알파고 시나씨 2004년 한국에 유학 와 충남대 정 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말말말

On Sunday

이라크 갈등과 세월호 갈등

“개를 서울시 공무원으로 특채했나”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이 키우는 진돗개 3마리를 공관 방호견으로 지정해 연간 1000만원의 세금을 쓰고 있다는 보도에 대한 한 네티즌의 반응.

최익재 국제부문 기자 ijchoi@joongang.co.kr

“이라크는 역사의 희생양이다.” 최근 만난 할릴 알모사위 주한 이라크 대사는 내전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이라크 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라크 정부 는 현재 수니파 반군인 ‘이슬람국가(IS)’ 와 내전을 벌이고 있다. 내전의 발단은 이 렇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수니 파인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을 축출 한 후 이라크에서는 시아파가 득세했다. 표 면적으로는 연립정부가 출범했지만 정권 을 놓친 수니파의 불만은 쌓여갔다. 곳곳에 상대 종파를 겨냥한 테러가 발생했다. 최근 3선을 노렸던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가 물러난 이유도 차별정책으로 인한 종파 갈등과 그 부작용이 너무 커졌기 때문 이다. 이런 틈새를 수니파인 IS가 비집고 들어 갔다. IS가 이라크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

고 독립국가 수립을 선언한 데는 이런 뿌리 깊은 종파 갈등이 있다. 이라크의 비극은 1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제국이 붕괴된 후 영국은 1921년 이라크 왕국을 세워 신탁통치했다. 이라크 내 시아·수니파, 쿠르드족 지역을 모 두 한 국가로 묶었다. 이라크에서의 석유 이 권을 장악하기 위한 무리수였다. 32년 국제 연맹에 가입한 이라크는 영국의 신탁통치 에서 벗어나 독립했지만 상당기간 그 영향 력 하에 있었다. 알모사위 대사의 ‘역사의 희생양’ 발언 역시 이런 역사적 배경과 궤 를 함께 한다. 그는 서방을 직접 비난하진 않았지만 후세인 몰락 이후 이라크를 재편 하는 과정에서도 그 같은 자국 이익 우선 전 략이 개입됐다고 에둘렀다. 현재 이라크의 모토는 새로운 국가 건설 이다. 하지만 첨예한 갈등은 독재자를 내쫓 은 후에도 새 국가건설 대신 혼란으로 이어 지고 있다. 이라크는 이에 대한 대가를 독톡 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를 놓고 우리 사회가 넉 달 이

상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 시스템 개조라는 절호의 기회는 정파 간 다툼으로 퇴색된 듯 하다. 정쟁으로 변질된 세월호 특별법 문제 에 눈살을 찌푸리는 민심도 확산되고 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내부 갈 등의 골이 마치 이라크의 종파 대립을 연상 시킨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우리 상황 은 무력 충돌만 없을 뿐이지 마치 이라크의 종파 대립을 연상시킬 만큼 첨예하지 않나. 갈등이 커지면, 그에 따라 지불해야 할 대가 도 커지는 법이다. 새 국가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이 라크가 내분과 혼란에 빠진 것은 심각한 갈 등과 대립 탓이다. 우리 사회도 세월호 참사 후 참담했던 분위기가 국가 혁신의 동력으 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갈등이 치유되지 않으면 그 대 가는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 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깊어지는 갈등을 우 리는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겠나. 이 라크처럼 ‘역사의 희생양’이라는 말이 변 명으로 통할 수 있겠는가.

“이름 값보다 헌신하겠다는 자세를 봤다” 대한축구협회, 5일 국가대표 신임 감독을 발표하면서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1 년에 한달, 휴가 때 빼고는 한국에 줄곧 체류하기로 했다”며.

“축제 한마당 행사라고 해서 출연 계약했다” 3일 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금융노조 총파업 투쟁 집회에서 걸 그룹 최초로 공연 한 ‘크레용 팝’ 소속사의 해명.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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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가격 비율(전세 가율). KB국민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 달 전국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전달보다 0.02% 포인트 상승했다. 국민은행이 관련 통계를 작성 한 1998년 12월 이후 최고치였던 69.5%(2001년 10월)에 0.4%포인트 근접한 수치. 최근 전세가 율 상승은 전셋값이 오르는 속도가 매매가 상 승 속도보다 빨라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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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호 2014년 9월 7일~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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